통합대장경

013_0399_a_01L불설홍도광현삼매경(佛說弘道廣顯三昧經) 제1권일명(一名) 입금강문정의경(入金剛問定意經)
013_0399_a_01L佛說弘道廣顯三昧經卷第一一名入金剛問定意經


축법호(竺法護) 한역
이미령 번역
013_0399_a_02L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1. 득보지심품(得普智心品)
013_0399_a_03L得普智心品第一

이와 같이 들었다.
013_0399_a_04L聞如是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국(王舍國) 취산(鷲山) 정상에서 큰 비구 무리 1,250명과 여러 보살 8천 명과 함께 계셨는데, 이때 세존께서는 무수한 백천 무리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그들을 위하여 법을 자세히 말씀하셨다.
013_0399_a_05L一時佛遊王舍國鷲山之頂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諸菩薩八千人俱于時世尊廣爲無數百千諸衆而所圍繞敷演說法
이때 아뇩달(阿耨達)[중국(西晉) 말로는 무열(無熱)이다.]이라는 용왕이 있었는데, 과거 세상에 덕의 근본을 짓고 보살을 따라 수행하였고, 대승에 견고하게 머물러 6도무극(度無極)을 행하여, 원만한 상호를 갖추어 부지런히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교화하는 것이 한량없었다. 그리고 일찍이 96억의 모든 부처님들을 섬겨 공덕을 쌓은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권방편(權方便)으로 널리 5도(道)에 나타나서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과 어둠을 없애 보살의 무욕행(無慾行)을 닦게 하였고, 자심(慈心) 등 4등심(等心)을 품고 모든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였다. 죄지은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용으로 몸을 나타내어 수억 마리의 용을 교화하고, 재앙의 행을 벗어나게 하려했다.
013_0399_a_08L爾時有龍王名阿耨達晉言無熱宿造德本遵修菩薩堅住大乘行六度無極以具滿相勤救衆生化道無極曾事九十六億諸佛積累功德不可稱數執㩲方便普現五道拔諸愚冥使修菩薩無欲之行懷慈四等濟度一切傷愍罪類故現爲龍化龍億數使免殃行
013_0399_b_01L스스로 그 못에 머물면서 모든 권속 8천만 무리를 이끌었으며 또한 채녀(采女) 14만 명을 거느렸다. 그를 에워싸고 앞뒤로 수행하며 창기(倡妓)를 이루어 연주하였는데, 그 소리는 온화하여서 하늘로 승천하는 용이 감동하였다.위덕을 알맞게 품고 신통의 변화가 자유로운 그들은 온갖 꽃들과 가장 미묘한 향을 바치고, 깃발과 일산을 높이 받쳐 들고서 세존에게 나아가 곧 머리 숙여 경배하고 여래께 문안드렸다. 이어서 향과 꽃과 온갖 보배와 고운 빛깔의 비단 깃발을 가지고 거듭 음악을 연주하며 마음으로 공경하였으며, 대중 권속과 여러 채녀들도 모두 나아가 부처님께 절을 하고 곧 앞에서 길게 무릎을 꿇고 엄숙하게 합장한 채로부처님을 향하여 말씀드렸다.“여래ㆍ무착(無著)ㆍ평등(平等)ㆍ최정각(最正覺)께 여쭙고자 합니다. 보살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道)는 어떤 것입니까? 오직 저희는 가르침을 받고 싶어 이에 감히 여쭙습니다.”
013_0399_a_16L自處于池率諸眷屬八千萬衆又將婇女十四萬人周帀導從調作倡伎其音和雅乘龍感動恊懷威德神變自由齎衆雜花奉最妙香擎持幡蓋而詣世尊至輒稽首敬問如來尋以所持香華雜寶繒綵幡蓋重調音樂欣心敬意與衆眷屬及諸婇女俱進詣佛則前長跪肅然叉手而白佛言欲問如來無著平等最正菩薩所應行道當云何唯蒙聽許乃能敢問
그러자 세존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의심나는 대로 묻어 의심하지 말며 하고 싶은 것을 어려워하지 말라.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은 마땅히 그에 응하여 널리 펼쳐서 그대의 마음을 풀어 줄 것이니라.”
013_0399_b_04L爾時世尊告龍王曰恣汝所問勿疑勿難所欲如來至眞等正覺當隨敷散解釋汝心
이때 아뇩달용왕은 부처님께서 질문을 허락하심을 얻고 마음으로 더욱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하늘의 스승이시고 가장 존귀하시며 인간세상 가운데에서 성스러운 인도자이시며, 용맹하기가 사자와 같아서 감화와 변화가 한량없으신 여래께 저는 여쭙니다. 널리 중생에게 영향을 미치시고 또한 보살대사를 위하는 까닭에 세상의 스승이 되시며, 속세의 법을 없애시고 지행(志行)이 청정하여 인연을 밝혀 없어지게 하시고, 뭇 중생을 제도하여 청하지 않아도 벗이 되시며, 마음은 두루 평안하시어 이들을 구제하고 이끌고 기르시며, 두려움 없는 열 가지 힘을 집지(執持)하시고, 나아가 뭇 마귀를 항복시키고 모든 외도를 무릎 꿇게 하시며, 마음에는 더러운 행이 없고 굳게 금강대덕(金剛大德)의 갑옷을 입으시고 뜻은 권태로움이 없으며, 덕을 쌓은 인연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013_0399_b_06L時阿耨達得爲神尊所聽質疑心益欣悅而白佛言天師最尊人中聖導猛如師子感變無量吾問如來普及衆生亦爲菩薩大士之故爲世師者拔過俗法志行淸淨明盡因緣濟度群生作無請友心普安救誘育立之執持無畏十種力進伏衆魔降諸外心無穢行被堅金剛大德之鎧不有惓積德因緣不可計量
013_0399_c_01L보시와 계율과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는 이미 갖추셨으며, 마음은 일체에 동등하게 잡상(雜相)을 제거하고, 두 가지 견해를 없애며, 지혜가 바라밀을 넣음으로써 인연법을 이해하고, 이미 깊고 깊어 다하기 어려운[難極] 법요(法要)에 들었으며, 성문과 연일각(緣一覺)의 생각을 떠나고 대승의 일체지심(一切智心)을 버리지는 않았으며, 의행(意行)이 견고하고 강하며 언제나 자재로움을 얻으셨습니다. 몸은 깨끗하고 티끌이 없어 찬란하게 빛나고 맑고 투명하며, 뜻은 허공과 같았으며, 무수한 겁 동안 마음은 권태를 느끼지 않아 총지(總持)를 빨리 얻었으며, 탐욕의 티끌과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을 조복하여 제거했습니다.
이처럼 여서(如逝:여래)께서는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으로 마치 그림자나 메아리ㆍ아지랑이ㆍ물속의 달에 머무르는 것을 넘음으로써, 이러한 여러 법에 대해서 동등하게 이해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삼보의 가르침을 중히 여기고 받들고 공경하며,그 법륜을 굴리되 걸림이 없으며 기쁘게 믿고 좋아하여 모두 스스로 이것을 얻었으니, 우담화(優曇花)가 억만 세월 동안 희유하게 피는 것과 같습니다. 뜻은 고요하게 홀로 편안하나 널리 상(相)을 갖추었고 과거에 공경함을 심은 보살대사[大士]는 상의법(上義法)을 존중하며 닦아 머무는 것이 이와 같사오니, 그 보살[正士]를 위하는 까닭에 여래께 여쭙습니다.
013_0399_b_15L智已備心等一切蠲除雜相捐二見以越智度解因緣法已入深奧難極之要去離聲聞緣一覺念捨大乘一切智心意行堅强常得自身淨無垢暉曜明徹志若虛空數諸劫意不惓者逮獲摠持降除貪穢自大貢高等如逝者無相過如住夢幻影響野馬水月於斯諸法等解不動重三寶教奉而敬之其法輪而無所㝵欣悅信樂皆自得如優曇花億世希出志靜安獨普有具相宿樹恭恪明賢大士尊修上義法住若此爲彼正士故問如來
오직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보살대사가 행할 바를 해설해 주십시오. 법문에 노닐며 금강의 덕(德)에 들고, 과보가 매우 미묘함에 도달하게 되어 그 수행으로써 응당 총지(總持)의 장(場)을 얻게 하며, 4성제(聖諦)의 행으로써 성문을 잘 교화하고, 진리의 요체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뭇 연각들을 이끌어 인연을 고요히 일으킴을 권장하여, 일심으로써 정각과 같게 하십니다. 모든 법에 통달하여 마땅히 대승에 들어가며, 대승을 깨쳐서 들어가 능히 마장(魔場)을 항복시키고, 의심의 번뇌를 떨쳐 버리고 죄의 번뇌를 건너게 하고자 하시며, 널리 중생을 알고 말솜씨를 잘 쌓아서 모든 법을 널리 펼치며, 모든 원(願)에 따라서 바라는 바를 화시(化示)하십니다.
013_0399_c_05L唯願如來至眞等正覺解說菩薩大士所行得遊法門入金剛德果達深使其修應獲摠持場以四諦行順化聲聞使解要眞導衆緣覺靜起因獎以一心使等正覺欲達諸法當入大乘曉入大乘能伏魔場散棄疑結過度罪惱普知衆生意志所行最辯達布演諸法隨一切願化示所
013_0400_a_01L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ㆍ무착ㆍ평등ㆍ정각께서는 널리 현명한 대사들을 위하는 까닭에 두루 널리 법을 펼치시니,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지혜의 힘을 이룰 수 있게 하시며, 스스로의 교만함을 다스려 법의 상력(上力)을 얻어서 재앙의 행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짓는 바가 있지 않게 하십니다. 보시의 힘을 얻게 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않게 하십니다. 지계의 힘을 얻게 하여 동등하게 뭇 죄를 없애서 모든 원(願)을 넘어서게 하십니다. 인욕의 힘을 얻게 하셔서 모든 괴로운 법에 의해 생(生)을 받는 장소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정진의 힘을 얻어서 뭇 덕의 근본을 쌓고 뜻은 언제나 권태롭지 않게 하십니다. 선정의 힘을 얻게 하셔서 적정함으로써 고요함에 머물며 선정의 요행(要行)을 이해하게 하십니다. 지혜의 힘을 얻게 하셔서 삿된 견해와 의심과 어둠의 애매함을 넘어서 권도(權道) 방편을 깨치게 하고, 중생을 제도함에 분명히 알아서 권하고 도우며, 함께 다섯 가지 신통 즉 천안(天眼)이 무한하며 천이통(天耳通)과 타심통(他心通)과 신족통(神足通)과 숙명통(宿命通)에 통달하게 하십니다.이로써 과보에 즐겁게 노닐며 위대한 말솜씨로써 변재구의(辯才句義)가 다함이 없고 끊임이 없게 하십니다. 곧 총지를 얻어서 뜻에 황홀함이 없게 합니다.
013_0399_c_14L善哉世尊如來無著平等正覺爲賢明大士之故普弘演說使諸菩薩得致智力降己自大得法上力解央行不有所造使得施力所有無惜惠不望報使得戒力等除衆罪而過諸願使得忍力於諸苦法受生之處身命無惜得精進力積衆德本志常無惓使得定力善寂居靜解定要使得慧力而過邪見疑冥昧昧曉㩲方便濟度衆生明了勸助具達五天眼無限徹聽知心神足明宿此遊樂果大辯才辯才句義無盡不便得摠持志無恍忽
해인삼매의 바른 선정에 이르게 하며, 널리 지혜를 따라 나아가니 과보가 동일한 한맛이며, 부처님의 지정(志定)을 얻어서 통행(通行)을 즐겨 익히며, 영원히 부처님을 항상 받들고 따라서 장애나 폐단이 없기에 빨리 법의 지정(志定)에 이르고 정의(定意)에 힘써 나아가며, 오래도록 법을 듣되 도무지 제한이나 장애가 없고, 뭇 지정(志定)을 숭상하고 널리 일체로 하여금 물러나지 않는 대중을 받들며, 보시의 지정을 얻어서 세속에서 재물과 법시를 베풀어 아까워하지 않고, 계행(戒行)과 염정정(念靜定)을 구족해서 빨리 부처님을 얻되 마음으로 잊지 않아 지정에 승천(昇天)하고, 언제나 도솔천의 일생보처(一生補處)를 생각하고 보살의 깨끗하고 고매한 행을 생각하고 즐기게 하십니다.”
013_0400_a_03L令逮海印三昧正定進隨普智果同一味得佛志定習樂通行永常奉尊而無障蔽法志定勉進定意長久聞法都無限崇衆志定普令一切奉不退衆施志定俗貨法施不有遺惜具足於行念靜定使速得佛心而無忘天志定常念兜述一生補處志樂菩薩淸高之行
이때 용왕은 질문을 마치고 나서 마음으로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거듭 게송으로 찬탄하여 세존께 여쭈었다.
013_0400_a_11L爾時龍王質疑畢訖心怡懌重以讚頌啓問世尊

대인(大仁)이시여, 현세의 뜻을 설하소서.
보살의 덕행이 응당 들어가야 할 곳,
내성(內性)의 지조(志操)가 응당 닦아야 할 바,
어떤 도에 마음을 내어야 하고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013_0400_a_12L大仁願說現世義
菩薩德行所當入
內性志操所應修
興發何道行云何

사랑으로 잘 이끌고 비심(悲心)으로 실천해 들어가며
중생을 제도하고 보호하며 구제해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선정과 지혜로 널리 교화하고 청정하게 하면 되는지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드리우셔서 널리 설하소서.
013_0400_a_14L順導以慈行入悲
意以度衆護濟念
弘化定智使淸淨
願垂哀傷而普說

지의(志意)와 의단(意斷)으로 중생을 이끌고
근(根)과 역(力)과 신족행(神足行)으로도 이와 같이 하며
도(道)의 7각(覺)을 펼치셔서 중생에게 나타내 보이시어
받들어야 할 그 덕을 설하소서.
013_0400_a_16L誘衆止意及意斷
根力神足行如是
演道七覺散示衆
願說彼德所應奉

보시를 살피고 계를 검사하는 덕을 갖추시고
인욕의 힘을 널리 행하고 정진하시며
혜지(慧志)의 인연이 구르는 것이 한량없으십니다.
어찌해야 그 어리석음을 제도하는지 말씀해 주소서.
013_0400_a_18L施調撿戒德具足
忍力普行及精進
慧志因緣轉無量
云何度彼蒙說之

말재주에 통달하고 어리석음을 벗어나셨으며
지행(志行)을 자세히 살피며 언제나 청정하고
모든 일어나는 것을 곧 깨달아 아십니다.
오직 모든 보살을 위하여 설해주소서.
013_0400_a_20L辯才通達勉愚冥
志行詳審常淸淨
諸起生者卽覺知
唯願爲諸菩薩說

기뻐하는 공덕에서 큰 환희심을 이루며
성종(聖種)1) 7재(財)2)는 바로 행의 가장 으뜸가는 것이며,
즐겁게 노닐고, 고요한 곳에 머물며 그리고 정려를 닦는 것을
오직 자존(慈尊)께서는 널리 설법을 펴시어 제도하소서.
013_0400_a_22L欣悅之德有歡豫
聖種七財是行最
樂遊閑居及修靜
唯蒙慈尊廣度說
013_0400_b_01L
변재의 행을 어떻게 모두 갖추며
깊이 총지를 이루어 영원히 안주하고,
법요(法要)를 널리 설하시되 언제나 끊임이 없고
잠시 들은 것도 받들어 행하되 끝내 잊지 않고
013_0400_b_01L辯才行具云何得
深致摠持永安住
弘法要說常無斷
聞輒奉行終不忘

적멸청정하게 관(觀)을 행하고,
깨달은 뜻이 매우 깊고 지(智)가 두루 넓으며
그 지혜는 궁구하기 어렵고 덕은 치우침이 없는
해행(解行) 가운데 어느 것이 보살에게 마땅한 것입니까?
013_0400_b_03L寂滅淸淨而行觀
覺意深邃智廣博
其慧難究德無邊
解行云何應菩薩

악마의 힘과 분노의 마음을 제지(制持)하고
외도와 뭇 삿된 부류를 부수고 무너뜨리며
용맹한 덕은 움직이기 어려움이 마치 태산과 같음을
밝은 달이 노닐 듯이 널리 설해주소서.
013_0400_b_05L制持魔力與怒意
毀壞外道衆邪類
勇德難動若大山
月明至遊弘說之

환히 공(空)과 무상(無想)의 성품의 존재에 비추어
아지랑이나 환법(幻法)을 깨치고
몽상(夢想)의 체상(體像)을 헤아림이 없는 것에 대해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오니 가리켜 보이시고 말씀해 주옵소서.
013_0400_b_07L曉空無想性所在
解了野馬及幻法
夢想體像計皆無
唯願世尊指示說

그러자 세존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장하구나. 참으로 비할 데가 없구나.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 여래에게 의심을 물었구나. 지금의 네 물음은 과거세의 공덕을 이어 대비(大悲)를 드러내어 중생들의 지우(志友)가 되었으며, 생사에 피로하지 않고 삼보를 끊지 않았기 때문이니, 왕이 질의하는 것은 바로 이것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진실로 잘 듣고 받아서 사유하라. 나는 마땅히 보살대사가 응당 닦아야 할 행에 피차에 한량없는 과보인 최법요(最法要)를 널리 말해 주리라.”
013_0400_b_09L於是世尊告龍王曰善哉善哉快甚無比乃自發心啓疑如來今汝所問承宿功德已顯大悲爲衆志友不勞生死弗斷三寶王之質疑用是故也聞以諦聽受而思惟吾當廣說菩薩大士應所修行彼此無限果最要法
용왕이 말하였다.
“대선(大善) 세존이시여, 저는 기꺼이 사유하고 듣고 빨리 받아서 행하기를 원하오며, 시방에 널리 퍼뜨리며 정진하기를 권하되 싫증을 내지 않겠습니다.”
013_0400_b_15L時龍王言大善世尊願樂思聽聞輒受行宣布十方勸進無惓
이때 세존께서 용왕에게 답하셨다.
“하나의 법행(法行)이 있으니, 응당 보살이라면 이로써 상호를 원만히 갖추고 모든 불법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을 하나라고 하느냐? 도의 뜻을 짓고 일으키며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 모든 불법을 이루는 하나의 행이라고 한다.
013_0400_b_17L於是世尊答龍王曰有一法行菩薩應者相好備具得諸佛法何謂爲一造起道意不捨衆生是謂一行致諸佛法
013_0400_c_01L또다시 서른두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심(普智心)을 얻게 하니, 마땅히 부지런히 즐겨 행하고 전일(專一)한 마음으로 지키고 익혀야 한다. 무엇을 서른두 가지라고 하는가? 내성(內性)을 길들이고 닦으며, 가장 으뜸가는 뜻을 지니고, 대자(大慈)를 승행(昇行)하고, 대비(大悲)가 견고하며, 뜻을 우러러 받들되 싫증내는 일이 없고, 정진을 일으키고, 모든 힘은 용맹정진을 모두 갖추고, 그러면서 강력함을 얻고,또한 높이 뛰어오르는 세력이 있고, 편안하고 고요하여 번거로움이 없으며, 중생을 위하여 인욕에 머물고, 착한 벗을 자주 가까이하며, 오로지 법사(法事)를 행하고, 권화(權化)를 지니고 다스리며, 두루 베풀고, 인욕을 행하고, 검계(撿戒)를 즐기며, 아첨하는 생각이 이미 없고, 거짓을 멸하여 끊었으며, 말과 행동이 상응하고, 뜻은 반복(反復)함을 살피고, 언제나 부끄러워하는 안색을 지니고, 안으로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이미 기뻐함을 다스리고, 근행(根行)이 지신(至信)하고, 뜻하되 제어하며, 공덕을 쌓아 갖고, 뜻이 좁은 길을 멀리하고, 대승의 행을 즐겨 퍼뜨리며, 모든 삼보의 일을 관찰하고, 그것으로 하여금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용왕이여, 이것을 이른바 32법이라고 하니, 보살은 이에 응하여서 보지심(普智心)을 이룬다.
013_0400_b_21L又有三十二事得普智心當勤樂行專意守習何謂三十二御修內執上最志昇行大慈堅固大悲慕無厭發於精進仂具猛勵而德强又踰踊勢安靜無煩爲衆忍任近善友專行法事執御㩲化施備忍樂於撿戒諂想已無滅斷僞佞行相應志存反復常有愧色內自慚已調怡悅根行至信意而制御持功德志遠小道樂弘大乘行觀一切三寶之事使其不斷是謂龍王十二法菩薩應此逮普智心
또다시 용왕이여, 열여섯 가지가 있어서 보지(普智)를 더욱 증장시키고 힘을 나타내 널리 집행[弘軏]한다. 어떤 것이 보지로 나아가는 열여섯 가지인가? 보시를 행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계를 구족하되 결여되는 것이 없고, 인욕하되 응당 조인(調忍)하고, 과보를 향해 정진하되, 정(定)과 모든 행이 일치하고, 지혜를 이미 구족하며, 믿음과 행이 모두 충족되고, 여래를 받들어 섬기며, 고요하고 한적한 곳을 즐겨 유행(遊行)하고, 6견법(堅法)3)을 갖추고, 최십선(最十善)을 갖추며, 몸과 입과 뜻을 장엄하고, 행동함에 덕을 갖추며, 만족함을 알아서 고요함을 즐기고, 몸의 세 가지 업을 그들에게 권하며, 승정관(勝定觀)을 닦고, 모든 덕을 갖추는 것이니, 이것을 열여섯 가지 행법의 일이라고 한다. 보살은 이것을 통해 상(相)이 길상하고 복스러워지며, 대지심(大智心)을 펼쳐서 불세(佛世)에 지니어 자유롭게 교화하느니라.
013_0400_c_09L又復龍王有十六事進增普智顯力弘軌何謂十六進普智耶施行衆濟具戒無缺忍應調忍果上精進致定諸行已具智慧信行悉足供事如來遊靜樂閑備六堅法有最十善飾身口意德具操行知足樂靜身三勸彼修勝定觀諸德得備是謂十六行法之事應相祥福演大智心顯持佛世流化自由
013_0401_a_01L또다시 용왕이여, 그 보지심은 스물두 가지 일로써 삿된 길을 없애며 그 대승의 뜻으로써 보지를 닦는다. 어떤 것이 스물두 가지인가? 행동은 성문과 연일각(緣一覺)의 뜻을 완전히 넘어서고, 교만함을 낮추어 자신의 거만을 없애며, 아첨하는 일을 버리고, 속세의 잡된 말을 억누르며, 계 아닌 것을 멀리 버리며, 성냄의 뿌리를 뽑으며, 악마의 일을 벗어나 물리치며, 장애를 제거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으며, 죄를 멸해 없애며, 자기를 반성하길 몹시 간절히 하며, 상대의 그릇됨을 논하지 않고,능히 나쁜 벗 떠나며, 선량함을 거스르는 것을 멀리하며, 6바라밀 아닌 것을 떠나고, 또한 탐착하고 인색함을 버리며, 계(戒)를 청정하게 하지 않음이 없고, 언쟁을 완전히 버리며, 게으름을 떠나고, 미혹함에 대해 스스로 올바르게 분별하며, 모든 무지(無知)를 버리며, 방편 없음을 끊어버리고, 악행을 떠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보지로써 스물두 가지 삿된 집착을 없앴다고 하는 것이다. 속히 권혜(權慧)에 응하면 영원히 게으르거나 물러서지 않느니라.
013_0400_c_18L又復龍王其普智心以二十二事而除邪徑以其大乘志修普智何謂二十二事行過聲聞緣一覺意已下貢高我自大消去諂事抑俗雜言遠棄非拔恚怒根免卻魔事除去蔽㝵章師訓耗滅罪除省己切惻不論彼習離惡友遠逆良善去非六度逝貪惜戒無不消已棄諍訟而離懈於迷自正捨諸無知斷去無便去惡行是謂菩薩普智釋除二十二邪軌速應㩲慧永無懈退
또다시 용왕이여, 스물두 가지 용사(踊事)가 있으니, 이로써 수순행(隨順行)에 나아가 보지심을 얻어, 대적할 수 없는 모든 악마 파순 및 악마 궁전의 권속과 외도를 항복시켜 이를 물리친다. 무엇을 스물두 가지라고 하는가? 계사(戒事)를 지나 정(定)에 높이 뛰어 오르는 것이고, 또한 지(智)를 높이 뛰어올라서 혜행(慧行)을 넘는 것이다. 권화(權化)를 높이 뛰어오르고, 또한 대자(大慈)를 높이 뛰어오르며, 대비(大悲)를 높이 뛰어오르는 것이다. 말을 간추려 이르면, 공(空)과 상(相)과 원(願)ㆍ아(我)ㆍ인(人)ㆍ수(壽)ㆍ명(命)을 뛰어넘는 것이다. 뭇 견해와 인연이 일어나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고, 마음이 저절로 깨끗하여 신성(神聖)을 승각(承覺)하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고, 식념(識念)에 대해서 견해에 상응하거나 상응하지 않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고, 대금강견고(大金剛堅固)의 행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것을 용왕이여, 이른바 보살이 행하는 스물두 가지 뛰어오르는 법으로써 보지심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니, 이로써 모든 뭇 악마와 그 악마의 몸과 삿된 외도들이 자재로움을 얻지 못하여,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을 모두 항복시켜 다스린다.
013_0401_a_06L又復龍王二十二踊事進順隨行得普智心而不可當諸魔波旬及魔官屬幷與外道降而卻之何謂二十二踊過戒事踊過於定亦踊過智而過慧行踊過㩲化亦過大慈踊過大悲以要言之過空壽命過離衆見及發因緣過心自淨承覺神聖過於識念應不應見過大金剛堅固之行是謂龍王菩薩所行二十二踊法致普智心一切衆魔及諸魔身幷外道不得自在無敢當者悉降卻之
또다시 용왕이여, 그 보지심은 두 가지 수행처[行處]에 의지하여 보지심을 이룬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그 말한 바대로 닦아 상응하는 수행처이고, 둘째는 모든 공덕의 근본인 도(道)를 관하는 수행처이니, 이것이 두 가지 보지(普智)의 수행처라고 한다.
013_0401_a_17L又復龍王其普智心依二行處致普智心何謂爲二如其所言修應行處諸功德本觀道行處是謂二事普智行處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어서 그 보지심을 훼손할 수 없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 일인가? 중생에 대해서 다른 마음을 늘리지 않는 것이고, 모든 재앙의 행에 대하여 대비(大悲)로써 제도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두 가지 일로써 보지(普智)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013_0401_a_21L復有二事其普智心而不可毀何謂二事在於衆生無增異心於諸殃行濟以大悲是謂二事普智無毀
013_0401_b_01L또한 다시 용왕이여, 그 보지심에 두 가지 무거운 법이 있어서 넘어서는 자가 없고,생사의 무리들과 뭇 성문과 모든 연각이 능히 뛰어넘지 못한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권도(權道) 방편을 유지하는 것이고, 깊이 지혜를 행하는 것이니, 이것을 무거운 두 가지 보지법이라고 한다.
013_0401_a_23L又復龍王其普智心有二重法而無過者生死之黨及衆聲聞幷諸緣覺無能勝踰何謂爲二執㩲方便深行智慧是爲二事普智重法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심을 쉬게 하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일에 처하여 의심하거나 머뭇거리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있는 곳마다 속세의 탐욕의 모든 즐거움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보지심을 쉬게 하는 두 가지 일이라고 한다.
013_0401_b_04L又有二事休普智心何謂爲二處毀無疑滯結之心在在不安樂俗諸樂是謂二事休普智心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어 보지심을 보호하니 어떤 것이 둘인가? 성문과 연각의 행지(行地)를 뜻에 두지 않고, 대승의 지극히 아름다운 덕을 바라보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보지심을 보호하는 두 가지 일이라고 한다.
013_0401_b_07L復有二事護普智心何謂爲二不志聲聞緣覺行地觀睹大乘至美之德是謂二事護普智心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어 보지심을 방해하니 어떤 것이 둘인가? 뜻이 언제나 아첨하기를 좋아하고, 내성(內性)에 아첨을 품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지심을 방해하는 두 가지 일이라고 한다.
013_0401_b_10L復有二事妨普智心何謂爲二志常多佞內性懷諂是卽二事妨普智心
또다시 두 가지 일이 있어 보지를 방해하지 않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오로지 바른 믿음을 닦으며, 아첨하지 않는 것을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보지를 방해하지 않는 두 가지 일이라고 한다.
013_0401_b_12L復有二事不妨普智何謂爲二專修直信行于無諂是謂二事不妨普智
또다시 네 가지 일이 있어 보지심을 덮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자주 정법을 어지럽히고, 모든 보살과 현명한 달사(達士)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며, 항상 (보살을) 공경하지 않고, 악마의 일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지심을 덮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13_0401_b_14L又有四事蓋普智心何謂爲四數亂正法於諸菩薩賢明達士亦不奉敬常無恭恪不覺魔事是爲四事蓋普智心
또다시 네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심을 덮지 못하게 하니, 어떤 것이 넷인가? 정법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며, 겸손히 공경하여 법문을 받들어 지니는 것이고, 보살을 존중하여 세존인 것처럼 보는 것이며, 언제나 악마의 일을 깨닫는 것이니, 이것이 보지심을 덮지 않는 네 가지 일이다.
013_0401_b_18L復有四事於普智心而無其蓋何謂爲四護持正法謙恭受聽尊重菩薩視若世尊常覺魔事是爲四事普智無蓋
013_0401_c_01L또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 보지심을 이루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행하는 것이 생사의 번뇌를 바라는 일이 없고, 계덕(戒德)을 사용하는 까닭이며, 일체를 버리지 않나니 대비(大悲) 때문이며,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이 둘이 아니니 몸과 목숨을 베풀기 때문이며, 재산과 이익을 두루 베풀어 법을 공양하고 받드는 것이니, 이것이 보지를 이룰 수 있는 다섯 가지 일이라고 한다.
013_0401_b_22L又有五事致普智心何謂爲五所行無望於生死漏用戒德故不捨一切以大悲故愛無二身命施故財利周惠供事法故是爲五事得致普智
또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심에 나아가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생사를 싫어하지 않으며, 뜻은 무익함을 멀리하고, 제때가 아닌 마음[非時心]을 떠나며,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지심에 나아가는 다섯 가지 일이다.
013_0401_c_03L復有五事進普智心何謂爲五習善知識不患生死志遠無益去非時心求諸佛智是爲五事進普智心
또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심에 있게 하니, 모든 성문과 연일각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성문의 해탈을 넘는 것이고, 연각의 해탈을 넘는 것이며, 중지심(衆智心)을 넘는 것이고, 모든 나[吾我]를 넘어서는 것이며, 또한 번뇌를 익히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니, 이것을 모든 행법을 넘어서는 다섯 가지 일이라고 한다.
013_0401_c_06L復有五事在普智心過諸聲聞緣覺一覺念何謂爲五過聲聞脫過緣覺過衆智心過諸吾我又過習結爲五事過諸行法
또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심에 대해서 기쁨을 갖게 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악도를 넘어선 것을 기뻐하는 것이고, 보지를 살피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고, 각혜(覺慧)를 갖추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고, 계(戒)에 대해서 싫증내지 않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고, 뭇 행을 이해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의 보지(普智)의 기쁨이라고 한다.
013_0401_c_10L復有五事於普智心而有其悅何謂爲五悅過惡道悅審普智悅具覺慧悅戒無厭悅解衆行是爲五事普智之悅
또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심을 발하게 하며, 다섯 가지 힘의 도움을 얻어서 생사에 빠지지 않게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분노하거나 원한을 품지 않으니 인욕의 힘 때문이며, 능히 모든 서원을 만족시키니 덕의 힘 때문이며, 자기에 대한 교만함을 항복받으니 지혜의 힘 때문이며, 부지런히 널리 듣는 것을 익히니 혜(慧)의 힘 때문이며, 뭇 두려움과 겁을 넘어서니 두려움 없는 힘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도움의 힘을 이루는 다섯 가지 일이다.
013_0401_c_14L復有五事發普智心得五力助不溺生死何謂爲五無其怒恨用忍力故能滿諸願用德力故降己自大以智力故勤勢廣聞用慧力故過衆恐怯無畏力故是爲五事致諸助力
또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심에서 다섯 가지의 청정함을 얻게 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뭇 더러운 행을 떠나기에 모든 타락한 자를 청정하게 하며, 인연의 모든 근에 미혹이 없기에 이것을 청정하게 하며, 일체를 때[時]에 따라 하기에 이것을 청정하게 관하며, 평등하게 권도(權道)에 따라 행하여 다스리기에 이것을 청정하게 하며, 일체 모든 법을 가르쳐 교화하므로 이것을 청정하게 하나니, 이것이 다섯 가지의 보지청정이다.
013_0401_c_19L復有五事在普智心得五淸淨何謂爲五體衆穢行淨諸墮者因緣諸根無惑淨之隨順諸時以觀淨之行治於等㩲道淨之一切諸法化轉淨之是爲五事普智淸淨
013_0402_a_01L또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의 밝음을 얻는 것이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해(解)의 탐욕이 없음을 밝히는 것이고, 나와 남의 마음을 밝히는 것이고, 5구(句)를 밝히는 것이고, 혜행(慧行)에 통달함을 밝히는 것이고, 눈에 장애 없음을 밝히는 것이니, 이것이 보지의 밝음에 이르는 다섯 가지 일이다.
013_0402_a_01L復有五事得普智明何謂爲五明解無欲明己彼心明於五句明達慧行明眼無㝵是爲五事致普智明
또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보지심을 넓게 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다섯 가지 씨앗과 다섯 가지 뿌리와 다섯 가지 줄기와 다섯 가지 가지[枝]와 다섯 가지 잎과 다섯 가지 꽃과 다섯 가지 열매이다.
013_0402_a_04L復有五事廣普智心何謂爲五以其五種五根五莖五枝五葉五花五果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씨앗인가? 날마다 수행하고 수행하기를 뜻에 두며, 그리고 내성(內性)을 맑게 하고, 사람과 사물을 동등하게 관하고, 해탈행을 구하여 익히며, 권변(權變)을 넓히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씨앗이라고 한다.
013_0402_a_06L何謂爲五種日修志修而淨內性觀人物求習脫行弘於㩲變是爲五
어떤 것이 다섯 가지 뿌리인가? 대자비로써 덕의 근본에 싫증내지 않고, 중생을 권하여 나아가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소승에서 벗어나게 하며, 다른 도에 마음을 두게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뿌리라고 한다.
013_0402_a_09L何謂五根以大慈悲德本無厭進衆生使免小乘不志餘道是爲五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줄기인가? 권방편(權方便)을 깨닫고, 지혜바라밀이 끝이 없으며, 사람들을 인도하고, 정법을 지키고, 기쁨과 분노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줄기라고 한다.
013_0402_a_11L何謂五莖曉㩲方便慧度無極導人民護持正法等觀喜怒是爲五
어떤 것이 다섯 가지 가지[枝]인가? 보시바라밀이 무극하고, 지계바라밀이 무극하고, 인욕바라밀이 무극하고, 정진바라밀이 무극하고, 선정바라밀이 무극한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의 가지라고 한다.
013_0402_a_13L何謂五枝施度無極戒度無極度無極進度無極定度無極是爲五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잎인가? 계를 듣기를 즐기며 정진하고, 공적(空寂)한 곳에 처하기를 구하며, 언제나 출가하기를 뜻하며, 마음은 부처님의 종자에 편히 두고, 노니는 곳에 걸림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잎이라고 한다.
013_0402_a_15L何謂五葉樂進聞戒求處空靜志出家心安佛種所遊無㝵是爲五
어떤 것이 다섯 가지 꽃인가? 문상(文相)을 고루 모두 갖추어 덕을 가득 쌓기 때문이며, 뭇 좋은 비단을 갖춰서 갖가지로 베풀기 때문이며, 7각재(覺財)를 갖추어 마음이 잡되지 않기 때문이며, 언변에 통달하여 법을 가로막지 않기 때문이며, 총지(總持)에 깊이 통달하여 듣고는 잊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꽃이라고 한다.
013_0402_a_17L何謂五花得文相具積滿德故好繡備種種施故七覺財具心無雜致有顯辯不蔽法故深達摠持聞無忘故是爲五花
어떤 것이 다섯 가지 열매인가? 계과(戒果)에 올라 이르는 것이고, 도과(度果)를 이미 얻는 것이며, 연각과에 도달하는 것이고, 또한 보살의 불퇴전과를 얻는 것이며, 불법과(佛法果)를 얻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열매이다.
013_0402_a_20L何謂五果昇致戒已得度果達緣覺果又得菩薩不退轉果獲佛法果是曰五果
용왕이여,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일곱 가지가 각각 다섯 가지로 있는 서른다섯 가지의 일이니, 이로써 보지수도보행(普智樹道寶行)을 넓히는 것이다. 이에 응하여 닦는 자는 어렵지 않게 부처를 이룰 것이다.”
013_0402_a_22L斯謂菩薩七五三十五事廣普智樹道寶行也修應之者得佛不難
013_0402_b_01L부처님께서 용왕에게 이르셨다.
“어떤 보살이 이 보지심수(普智心樹)를 받아 지니어 깊고 미묘하게 중요한 행구(行句)를 밝히고자 한다면, 마땅히 더욱 부지런히 보지보수(普智寶樹)를 익혀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용왕이여, 나는 일체 모든 법의 공덕을 보았는데, 이 보배나무의 깊은 뜻에서 연유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위없는 정진도의(正眞道意)를 발하는 것도 모두가 이 보지보수로 인하여 중요한 구절에 도달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용왕이여, 나무의 씨앗을 가려 심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매우 무성해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용왕이여, 그 보지심의 씨앗을 능히 받는 자로서 이와 같은 것을 이루고 나면 모든 부처님과 현성의 가장 으뜸이 되는 혜법(慧法)의 37품(品)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용왕이여, 보지의 소행공덕(所行功德)에 들어가고자 하고 법륜을 굴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것을 수지하여 정진하고 독송하며 전일한 마음으로 행을 닦아 널리 일체를 위하여 두루 전하고 펼쳐야 한다. 이와 같이 용왕이여, 부지런히 이것을 배우고 익혀야 하느니라.”
013_0402_b_01L佛告龍王其有菩薩欲受持此普智心樹深妙明顯要行句者當勤加習普智寶樹如是龍王吾視一切諸法功德莫不由斯寶樹奧義諸發無上正眞道意悉皆因是普智寶樹至要句也譬如龍王選植樹種知此已致樹之根果而甚盛茂也龍王其有能受普智心種斯已得致諸佛賢聖最上慧法三十七品龍王欲入普智所行功德欲轉法當受持此精修誦讀專心習行爲一切宣傳布演如是龍王勤受學
장차 부처님께서 이런 보지심품의 법어를 말씀하실 때에 모든 용의 무리 가운데 7만 2천이 모두가 위없는 정진도의 뜻을 일으켰다. 용왕의 태자와 모든 채녀 1만 4천 명도 모두가 다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속히 얻었으며, 5천 보살은 과거세의 덕의 근본을 이어서 법인(法忍)을 모두 얻었다.
013_0402_b_14L當佛說斯普智心品法語之時諸龍衆中七萬二千皆發無上正眞道意龍王太子及諸婇女萬四千人悉皆逮得柔順法忍五千菩薩承宿德本悉得法忍
013_0402_c_01L이때 아뇩달과 다른 용왕과 모든 권속들이 각자 신통력을 부려 허공으로 날아올라가서 향(香)의 구름을 일으켜 갑자기 두루 퍼뜨리자, 향긋한 향기와 가루전단이 잘 어울려 여래와 대중들의 모임 위에 가늘게 뿌려졌다. 또한 기묘한 보배가 서로 이어져 덮개가 이루어 왕사성 나라 전체를 두루 덮으니, 모두가 환희하면서 그 위에서 노래하기를, 지진ㆍ여래께서 복을 쌓으신 것이 태산 같으며 성스러운 덕이 무량한 것을 찬양하였다. 구름과 해가 죽 벌려져 머물며 각각 반신(半身)의 빛을 허공에 그리니,모든 대중들 가운데 보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
013_0402_b_18L時阿耨達幷餘龍王及諸眷屬自乘神力踊昇虛空興香之雲忽便普布調和美香及末栴檀微雨如來及衆會上又化琦妙珠交露蓋遍覆王舍一國境界而悉歡悅於上歌詠至眞如來積祚巍巍聖德無量列住雲日各現半身光文虛空一切衆會莫不見者也

2. 청정도품(淸淨道品)
013_0402_c_02L淸淨道品第二

이때 용왕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참으로 희유하고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널리 중생을 위하여 도속(道俗)의 마음과 보지심행(普智心行)의 덕이 응하는 바를 말씀해 주십시오. 또한 세존이시여, 여래ㆍ무착ㆍ평등ㆍ정각께서는 보살의 행수(行修)가 청순(淸純)에 응하며 명현(明賢)이 말미암는 바를 널리 펼쳐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도(道)의 청정함을 얻어서 그로 하여금 끝내 오래도록 티끌이 없고 그 속에서 게으르지 않으며 권태롭거나 물러서지 않고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를 얻어 모든 부처님의 법을 두루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013_0402_c_03L於是龍王復白佛言甚未曾有唯然世尊乃若如來博爲衆生說道俗及心普智心行德所應又唯世尊如來無著平等正覺願演散說菩薩之行修應淸純明賢所由得道淸淨使其終已長久無垢不中有懈無惓弗退至得十力四無所畏而得具足諸佛之法
그러자 세존께서 아뇩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기특하구나. 용왕이여, 부지런히 생각하고 기억하고 행하라. 나는 보살대사의 청정도품(淸淨道品)을 자세하게 말해 주리라.”
013_0402_c_11L爾時世尊告阿耨達善哉龍王勤思念行吾當廣說菩薩大士淸淨道品
아뇩달이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다행히도 가르침을 입게 되었사오니 오직 원하건대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013_0402_c_13L阿耨達曰甚善世尊幸蒙授教唯願說之
그리하여 성존(聖尊)께서 용왕에게 말씀하셨다.
“보살행에는 여덟 가지 곧고 바른 길이 있으니 부지런히 받들고 지녀야 한다. 여덟 가지란 어떤 것인가? 6도무극도(度無極道), 은행(恩行)의 도(道), 다섯 가지 신통을 얻는 도, 네 가지 평등함을 행하는 도(道), 그리고 8정도(正道), 중생을 평등하게 대하는 도[心等諸衆生道], 세 가지 해탈문의 도[三脫門道], 법인(法忍)에 들어가는 도이다. 용왕이여, 이와 같은 것이 바로 보살의 여덟 가지 바르게 행하는 도이다.
013_0402_c_14L於時聖尊告龍王曰菩薩行有八直正道當勤受持何謂爲八六度無極道恩行之道得五通道四等道及八正道等衆生道三脫門入法忍道如此龍王是爲菩薩八正行道
무엇을 보살의 도무극도(度無極道)라고 하는가? 도무극도라는 것은 모든 보시하는 대상에게 그 보지(普智)를 권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보시를 권하지 않고는 보지를 이루지 못하며, 그러한 행은 덕의 근본을 행하고 돕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시도무극(施度無極)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또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 보지심을 권하고 도움으로써 혜도무극(慧度無極)이라는 이름 등을 얻게 되니, 이것을 보살의 도무극도(度無極道)라고 한다.
013_0402_c_19L何謂菩薩度無極道度無極道者諸所布施勸彼普智何則然者不以無勸施成普智其行勸助於德本者斯得施度無極名目又及行戒亦以勸助彼普智心乃得慧度無極名目是曰菩薩度無極道
013_0403_a_01L은행도(恩行道)란 중생을 포용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저 보살이 법도(法度)를 널리 펼쳐 보임으로써 보살의 행은(行恩) 일체를 포용하고, 네 가지 은혜로써 덮고 널리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순조롭게 계(戒)의 교화를 받아들이게 하나니, 이것이 네 가지 은혜의 도[恩道]이다.
013_0403_a_01L恩行道者含受衆生何則然者以彼菩薩演示法度菩薩行恩含受一切覆以四恩廣爲說法而使衆生順受戒化是四恩道
신족도(神足道)란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관하되 천안(天眼)으로 꿰뚫어보고 뭇 일체의 산 자와 죽은 자를 보며, 또한 시방의 모든 불세존께서 제자에게 둘러싸이신 것을 보니, 모두 보는 것을 이와 같이 하여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그 천안으로써 응당 채집해야 할 것을 채집하여 받는다. 또한 천이(天耳)로써 모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오로지 받아 행하며, 중생과 모든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있으나 모두 환히 깨달아 알고 완전히 알고 나서 그들의 근기에 따라서 법을 설하며, 숙명(宿命)을 알고 지난 세상에 지은 공덕을 잊지 않는다. 또한 신족통을 갖추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넘나들면서 응당 신족으로써 장차 제도함을 얻게 되는 자는 오로지 신족을 널리 펼쳐서 그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니, 이것이 신족응도(神足應道)이다.
013_0403_a_05L神足道者睹諸佛土天眼徹視見衆一切生者終者又見十方諸佛世尊弟子圍繞悉見如是於諸佛土以其天眼應當所採而採受之又其天耳聽諸佛言聞輒受行在於衆生及諸類人而皆明曉悉了知盡爲隨說法得識宿命不忘前世所作功德又具神足遊過無數諸佛國土應以神足當得度者輒弘神足而度脫之是神足應道
또 무엇을 네 가지 평등한 행의 도(道)라고 하는가? 청정하게 수행하는 범지(梵志)와 여러 색상(色像)의 천자(天子)들이 그 뜻을 알아 행하고 그것에 따라 교화하며, 곧 자비로써 바로 기꺼이 보호하고 도를 건립하여 그들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네 가지 평등한 행의 도이다.
013_0403_a_14L又何謂爲四等行道其隨修淨梵志中者幷及諸餘色像天子知彼意行隨順化日則慈悲是爲喜護建立以道使彼應此謂菩薩四等行道
그 8정도(正道)는 두루 모두가 이것을 행하니, 성문이 말미암는 바이고 연각이 의지하는 바탕이며, 대승 또한 그러하다. 이것을 현성의 여덟 가지 곧고 바른 길이라고 한다.
013_0403_a_18L其八正道普悉行之聲聞所由緣覺依因大乘亦是謂賢聖八直正道
무엇을 마음이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도[心等諸衆生道]라고 하는가? 마땅히 행이 평등한 보살은 ‘이것을 위해서 일으키고 이것을 위해서 일으키지 않으며, 이것을 위해서 설해야만 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응당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하며, 이것은 어질고 덕이 있으며 이것은 복인(福人)이 아니며, 이것은 다 상응하며 이것은 다시 상응하지 않는다’와 같은 이런 뜻을 다 없애니, 이것을 마음이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도라고 한다.
013_0403_a_20L何謂心等諸衆生道當爲此興不爲是興爲斯可爲此不應是有賢德此非福人爲盡應此復不應行等菩薩盡除此是謂心等諸衆生道
013_0403_b_01L무엇을 보살의 세 가지 해탈문도[三脫門道]라고 하는가? 공(空)으로써 모든 망견(妄見)을 끊게 되며, 무상(無相)으로써 뭇 염상(念想)의 상응과 불응(不應)을 없애고, 그 무원(無願)으로써 영원히 삼계를 여읠 수 있게 되니, 이것을 일러서 보살의 세 가지 해탈문도라고 한다.
013_0403_b_01L何謂菩薩三脫門道得致以空斷諸妄見以其無相除衆念想應與不應以其無願永離三界是謂菩薩三脫門道
무엇을 법인(法忍)의 도에 이른다고 하는가? 보살에게 절을 해서 보살의 자각행(自覺行)이 인(忍)에 응하고 모든 불세존으로부터 기별을 받은 자는 위없는 정진도(正眞道)의 뜻을 얻는다. 이것을 일러서 보살의 불기인도(不起忍道)라고 한다.
013_0403_b_04L何謂得致法忍之道受拜菩薩菩薩自覺行應於忍得爲諸佛世尊所決授者無上正眞道意是謂菩薩不起忍道
보살은 이 여덟 가지 곧고 바른 길을 이루어서 널리 교화하고 유포하여 권하고 이끄는 데 장애가 없느니라.”
013_0403_b_07L薩致此八直正道弘化流布權導無
그때 부처님께서 이 여덟 가지 바른 도를 모두 말씀하시자, 2만 4천의 하늘과 용과 사람이 모두 이 8도행(道行)에 곧 상응하였다.
013_0403_b_09L時佛說是八正道已二萬四千天龍及人悉逮應此八道行也
“이와 같이 용왕이여, 보살은 이 여덟 가지 곧고 바른 도로써 평등하게 한 곳으로 돌아가니, 동등함이 없기 때문에 보살에 비할 자가 없다. 또한 그 짝이 없이 홀로 삼계를 걸어가 고요한 한 마음으로 혜행(慧行)을 이루게 되니, 마땅히 얻어진 것은 자기의 과보를 이루어 모든 법에 밝게 통달하나, 이는 본래 없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이른바 여래(如來)라고 한다. 용왕이여, 그리고 이것을 여덟 가지 바른 길이라고 하니, 저 일체 모든 중생의 행할 바를 위하여 갖가지 설법을 하나, 이 중요한 설법은 동등하고 한결같아서 망령된 설법이 아닌 까닭에 미처 말로는 이룰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간다.
013_0403_b_10L若是龍王菩薩以此八直正道等塗一歸用無等故莫有能與菩薩比者亦無其侶獨步三界靜一心時修致慧行應當所得已自果之明達諸法而如本無斯謂如來是曰龍王八正之道爲彼一切凡諸若干衆生所行興種種說而此要說等同一向以無望歸未至說也
013_0403_c_01L무엇을 도청정(道淸淨)이라 하는가? 도(道)에 티끌이 없고 먼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 도는 허물이 없으니 본래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도는 어둠이 없으니 혜(慧)가 밝게 비추기 때문이다. 이 도는 집착함이 없으니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다. 이 도는 언제나 발생이 없으니 소멸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도는 영원히 근본이 없는 것과 같으니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는 번뇌와 더러움이 없으니 삼계가 깨끗하기 때문이다. 도는 적연(寂然)하니 범부의 행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도는 이를 수 없으니 감[去]이 없기 때문이다. 도는 오는 곳이 없으니 어디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는 언제나 머묾이 없으니모든 탐욕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도는 처하는 곳이 없으니 뭇 소견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도는 그것을 이기는 자가 없으니 모든 마(魔)를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도는 널리 두루 덮으니 외도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013_0403_b_18L云何於此道淸淨耶道無垢用無塵故是道無瑕本無念故是道無冥慧照明故是道無著本淸淨故道常無生無所滅故道如永無本無有故道無漏穢三界淨故是道寂然過凡行故道無可至無有去故道無所來無從來故道恒無住過諸欲故道無所處過衆見故道無勝者過諸魔故道大弘覆外道不及
도는 영원히 망령됨을 여의었으니 스스로 큰 것[大者]이기 때문이다. 도는 수용하는 바가 없으니 닦아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도는 지극히 원대한 것이니 희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는 영원히 떠난 것이니 어리석은 범부의 행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도는 이루어낼 수 있으니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도는 순조롭고 쉬우니 수행하는 데 방해됨이 없기 때문이다. 이 도는 걸림이 없으니 평등하고 올바르게 행하기 때문이다. 이 도는 티끌이 없으니 3독(毒)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이 도는 청정하나니 끝내 집착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러서 보살도의 청정함이라고 한다.
013_0403_c_04L道永離妄自大者故道無所容修入故是道極遠用希望故道爲永過愚夫行故道可果致修行者故是道夷易樂勤行故道極平坦住正見故是道無妨修無毀故是道無㝵等正行故是道無垢三毒淨故是道淸淨終無著故是謂菩薩道之淸淨
이와 같이 보살이 청정한 도로 힘써 나아가고 부지런히 수행하며 또한 응당 행한다면, 그는 법의 성품에서 이미 모두 청정해질 것이고, 나[我]의 성품이 청정해질 것이며, 또한 이것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법의 성품이 청정해지는 까닭에 곧 수(數)의 성품이 청정하다. 수의 성품이 청정한 까닭에 무수(無數)의 성품이 청정하며, 무수가 청정한 까닭에 삼계가 청정해진다. 삼계가 청정한 까닭에 눈의 인식[眼識]의 성품이 청정하고, 눈의 인식이 청정한 까닭에 뜻의 인식[意識]의 성품이 청정하다. 뜻의 식별이 청정한 까닭에 공의 성품[空性]이 청정해진다. 공의 성품이 청정한 까닭에 모든 법의 성품이 청정하다. 이 청정함으로써 곧 모든 법 등이 평등하고 청정한 것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 공이 평등하고 청정한 까닭에 중생이 청정해진다. 모든 청정함으로써 곧 둘이라는 분별도 없고 또한 둘에 집착하지도 않으니, 둘이 없이 청정한 까닭에 곧 도가 청정하다. 이로써 그것을 말하여 청정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뭇 생각도 생각 아님도 없는 도이니, 모든 생각이 전부 청정하여 열반과 같다. 그 영원히 없는 것을 일러서 생각 없음[無念]이라고 하니, 도(道)를 생각한 바도 없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또한 식념(識念)도 없다. 이 도는 도무지 심(心)ㆍ의(意)ㆍ식(識)의 행이 없으니 이를 일러서 청정도라고 하느니라.”
013_0403_c_10L若是菩薩於淸淨道務進勤修又應行者彼於法性已悉淸淨得淨我性亦以而過法性淨故則數性淨數性淨故無數性淨無數淨故得三界淨三界淨故眼識性淨眼識淨故意識性淨意識淨故得空性淨空性淨故諸法性淨用是淨故則諸法等等淨如空空等淨故得衆生淨以諸淨故便無其二亦不著二無二淨故則道淸淨斯言之淸淨道也彼無衆念亦不念諸念悉淨若如泥洹於彼永無謂無念應無所念無念道者亦無識其道都無心意識行以此言之淸淨道也
013_0404_a_01L이 청정도품법을 말씀하셨을 때에2만의 천인(天人)이 모두 법인(法忍)을 얻었다.
013_0404_a_01L說是淸淨道品法時二萬天人皆得法忍
이때 아뇩달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보살대사가 이 청정함을 닦아서 응당 도(道)로 향해야 합니까?”
013_0404_a_02L時阿耨達復白佛言云何世尊菩薩大士修是淸淨而應向道
성스런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용왕이여, 보살대사가 이 청정도의 뜻을 행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정행(淨行)을 환히 깨쳐야 한다. 또한 그 몸과 입과 뜻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어떤 것을 몸의 청정함이라고 하는가? 나의 몸이 이미 공함으로써 모든 몸의 공함을 깨닫고, 몸의 고요함으로써 모든 몸의 고요함을 깨닫고, 몸의 완전한 벗어났음으로써 모든 몸의 벗어남을 깨닫고, 몸의 게으름으로써 모든 몸의 게으름을 깨닫고, 몸이 그림자와 같음을 깨달아 모든 몸의 그림자를 깨닫는다. 이것을 보살의 청정도라고 하느니라.”
013_0404_a_04L聖尊告曰如是龍王菩薩大士欲行斯淸淨道意者當曉淨行亦使其身意淸淨何謂身淨己身已空解諸身空身之寂靜解諸身寂身之已脫解諸身脫身之怠慢解諸身怠身之如影解諸身影是謂菩薩淸淨道也
또 말씀하셨다.
“몸이 청정하면 몸의 행은 생겨남이 없다. 그 나고 죽음이 있되, 생함이 없음을 관하면 그 생겨남이 없으므로 나고 죽음이 동등하다. 그리하여 그 몸을 알면 또한 몸의 행을 깨닫는 것이다. 무엇을 몸의 행이라고 하는가? 거래생법(去來生法)은 무진법(無盡法)에서 오고, 현재경법(現在景法)이 끝내 다함이 없는 법[終無盡法]이니, 그 다함이 없는 것을 곧 몸의 행이라고 한다.
013_0404_a_10L又云身淨身行無生其有生死觀於無生彼以無生而等生死則其知身亦曉身行何謂身行去來生法來無盡法見在景法終無盡法其無盡者是謂身行
또한 다시 몸의 법은 인연이 합한 것이니, 그 인연이란 것은 곧 공(空)ㆍ무상(無想)이며 담연(淡然)하고 무념(無念)하다. 이와 같이 용왕이여, 이 상법(像法)을 관하면 이것을 몸의 청정함이라고 한다. 또 여래 몸의 무루(無漏)는 삼계에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 몸의 무루를 관하면 여여(如如)하여 본래 없는 것과 같다. 이 무루의 몸은 삼계에 떨어지지 않으니, 그 무루의 몸은 능히 생사에 들어간다. 그 무루제(無漏際)는 권태롭거나 버리거나 물러나지 않으니, 무루의 몸으로써 색신을 나타내 보인다. 이와 같이 나타낸 뒤에 또한 멸신(滅身)의 법본(法本)을 생각하지 않는다. 여래의 몸이 청정한 것처럼 중생의 몸도 청정하고 나의 몸 또한 청정하고 동등하니, 본래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일러서 보살의 행이 응당 청정해야 한다고 한다.
013_0404_a_15L又復身法因緣合會其因緣者則空無想淡然無念若此龍王是像法觀斯謂身淨又若如來身之無漏不墮三界觀身無漏如如本無以無漏身不墮三界彼無漏身能入生死其無漏際無惓捨退以無漏身示現色如此現已亦不念滅身之法本如來身淨衆生身淨己身亦淨等如本無是謂菩薩行應淸淨
013_0404_b_01L무엇을 말과 입이 응당 청정해야 한다고 하는 것인가? 모든 현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전부 청정하다. 왜냐하면 등상(等相)이기 때문이다. 범부와 저열한 사람들은 음성에 집착한다. 혹은 진리 아닌 것을 믿으며 근심하고 기뻐하며 덧없고 뒤바뀐 생각을 즐거워한다. 중생을 관찰함에 근본이 없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탐욕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모든 문자와 주장과 소리는 모두 청정함에서 나오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고 또한 그것에 집착함도 없다. 이로써 일체의 말은 청정하다고 한다.
013_0404_b_01L何謂口言爲應淸淨一切賢愚言皆淸淨所以者何用等相故凡夫劣勢著於音聲若信不諦憂喜無常樂於顚倒觀察衆生無本都無婬癡欲何則然者以諸字說聲出皆淨無欲亦無其著以此謂之一切言淨
말로써 이것을 말한다면, 무엇을 말하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하는가? 모든 티끌을 말하는가? 말이란 무착(無著)이다. 눈ㆍ귀ㆍ코ㆍ입ㆍ몸ㆍ마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음색[風像]과 음향[風動]과 발성[聲出]은 인연이 모여서 소리를 있게 할 뿐이다. 말이 된 것은 메아리와 같으니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이들의 말이 된 것은 모두 똑같이 메아리와 같다. 가히 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안에 머물지 않고 또한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그 중간에서 또한 가히 얻을 수 없어, 본래의 소념(所念) 및 소행(所行)에 머무르나, 말을 벗어난 자는 염상(念想)하는 바에 머무름도 없고 생각함도 없다. 용왕이여, 이것을 일러서 여래의 말의 내용과 중생의 모든 음성은 모두가 공하고 진실하지 않으며, 그 법을 버려야만 할 뿐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013_0404_b_07L以言言之何者爲言以欲癡而爲言耶諸垢爲言乎言者無著不著眼所言風像風動聲出緣合會使有聲耳所言如響賢愚所言皆同如響所可言者不住於內亦不出外於其中閒而不可得住本所念及其所行出於言者幷所念想無住無想是謂龍王如來所言及其衆生一切音聲皆空非眞損斯法耳
용왕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하신 말씀도 이렇듯 진리가 아닙니까[不諦]?”
013_0404_b_16L世尊如來所言斯不諦耶
013_0404_c_01L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용왕이여, 여래는 심제(審諦)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진리이기 때문이니, 모든 법이 진실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라고 알고 이해한다. 또 용왕이여, 여래가 말한 글자와 음성은 모두가 중생의 모든 음성에 답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 또한 법륜을 굴려도 법의 뜻과 순서를 알지 못하나, 이 보응(報應)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이것을 행하게 한다. 이와 같이 뭇 괴로운 일이 멸함에 따라서 모든 법을 환히 깨쳐 이와 같이 그 행을 마치면, 중생의 음성은 더 이상 머무는 곳이 없이 모든 번뇌 속에서 언제나 한가롭고 고요하게 된다.그리하여 집착과 무집착에 대해 말을 현출(現出)하고자 하여도 발성과 말의 내용과 강론(講論)과 담어(談語)가 법과 같으므로 어긋나거나 잘못되는 일이 없다. 이것을 일러서 보살의 입과 말이 청정하다고 한다.
013_0404_b_17L如來審諦所以者何如來諦故知諸法非眞非諦又復龍王如來所言隨字音聲皆答衆生一切音聲故衆生亦轉法輪而亦不知法之義以此報應使其行之隨如等滅衆苦之事曉解諸法行了如是衆生音聲已無所住在諸煩惱而常閑靜現出欲言於著無著聲出所言講論談語其如法者不有違錯是謂菩薩口言淸淨
무엇을 보살의 마음이 청정하다고 하는가? 그 마음의 근본은 더러움에 물들 수 없다. 왜냐하면 마음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다. 저 객욕(客欲)과 구폐(垢蔽)를 깨닫는다고 말할지라도 보살은 그에 있어서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심권(心權)이 본래 스스로 깨끗한 것임을 밝게 안다. 또 그 마음의 행은 덕의 근본을 가리지 않으며, 저 덕의 근본은 마음의 근본을 환히 안다. 이 마음의 행으로써 자애로움이 중생에게 미치며, 저 공무아(空無我)의 사람을 환히 알아서, 그 마음의 덕의 근본은 도(道)를 관하는 것을 도와 그 도와 동등함을 알게 한다. 이와 같이 관하면, 이것을 마음의 청정함이라고 한다. 이 청정한 마음이 모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행하는 자와 함께 해도 영원히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영향을 받지 않고, 태도와 행실을 함께 해도 모든 더러움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살의 몸의 세 가지 청정함이라고 하느니라.”
013_0404_c_04L何謂菩薩心爲淸淨其心本者不可染污所以者何心本淨故其所可謂客欲垢蔽菩薩於斯不有所著了解以㩲於本自淨又其心行不撰德本彼德本者了識心本以此心行慈及衆生識了知彼空無我其心德本助勸於道知等彼道觀如是者斯謂心淨以此淨心與諸婬愚行者俱而永不受欲癡垢與操行俱不著諸穢是謂菩薩身三淸淨
이 청정도품의 법을 말씀하셨을 때에 3만의 보살은 보생처(補生處)에 빨리 올랐다.
013_0404_c_14L說斯淸淨道品法時三萬菩薩逮補生處

3. 도무습품(道無習品)
013_0404_c_15L道無習品第三
013_0405_a_01L
“또다시 용왕이여, 그 보살은 이러한 청정한 마음에 올라타 욕계(欲界)에 태어나 형계(形界)에 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하늘과 함께 뭇 범중(梵中)에 머물면서 상서롭고 평안하며 고요하여, 그 속에 있으면서 나아가거나 멈추는 데에 있어 그보다 더 뛰어난 자가 없게 된다. 또 이 보살은 능히 모든 하늘을 항복시키고 권도방편으로써 교화한다. 혹은 형계에 태어나도 욕계에 머물면서 재가인과 같은 모습을 나타내며, 모든 중생과 함께 행동하고 앉거나 일어서며 피로해하지 않고 중생들에게 자만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정(定)과 정수(正受)를 청정하게 함으로써 두루 스스로 정(定)을 이루며, 정정(正定)을 따르기에 발생하는 것이 없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하면, 저 보살이권도방편[權方便]을 가짐으로써 마음이 청정함에 상응하는 까닭이다.
만약 이와 같이 보살이 청정행을 깨달아 이해하려면 마땅히 청정을 닦은 후에 도를 익혀야 한다.
013_0404_c_16L又復龍王其菩薩者乘是淨心生於欲界而在形界與諸天俱處衆梵中詳安靜然在中進止無勝動者又斯菩薩能降諸天化道以㩲或生形界而在欲界現如有家與諸衆生周旋坐起不與有勞弗慢衆生亦無自輕彼以斯淨諸定正受盡自爲定不隨正定而有所生何則然者以彼菩薩執㩲方便心應淨故若此龍王菩薩曉解淸淨行者當修淸淨已而習道
용왕이여, 이러한 까닭에 보살은 익히지 않음으로써 도(道)의 익힘을 구하며, 습(習)ㆍ무습(無習)하지 않음으로써 도의 익힘을 생각하며, 또한 도를 바라는 익힘을 익히지 않는다. 또한 익힘을 구하지 않아 도의 익힘을 이해하여 깨쳐도 발생하는 것을 익히지 않고 도습을 바라며, 행멸(行滅)을 익히지 않고 도의 익힘을 이루며, 또한 익히기를 구하지 않음으로써 도의 익힘을 이루며, 습ㆍ무습하지 않고 도의 익힘을 이루며, 집사(執捨)를 익히지 않음으로써 도의 익힘을 익히며, 아(我)와 인(人)과 수명(壽命)이 없고, 몸이 무상(無常)하지 않으며, 몸의 성품이 괴롭지 않고, 몸에 아(我)가 있지 않고, 몸은 꿈이나 환(幻)ㆍ아지랑이ㆍ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지 않고, 또한 몸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이 아니며, 몸은 무욕법(無欲法)을 행하지 않고, 도를 익힌다.
013_0405_a_03L如是龍王菩薩不習以求道習不習無習以想道習亦不習於望道之習亦不求習了解道習不習所生冀向道習不習行滅而爲道習亦不求習以爲道習不習無習爲道之習不習執捨以習道習不我人壽不身無常不身性苦不身有我不身夢幻野馬影響亦不身空無相無願不身無欲法身習道
요컨대 취지를 말하자면, 신성제정(身性諸情)은 일어날 때에 12인연(因緣)과 나아가 노사(老死)의 무욕의 법이 없다. 수(數)와 무수(無數)의 도(道)가 아닌 무이(無二)를 익히며, 속(俗)과 무속(無俗)이 아니고, 누(漏)와 무루(無漏)가 아니며, 범(犯)과 무범(無犯)이 아닌 불이(不二)의 익힘으로써 도습(道習)을 구한다. 또한 다시 모든 법의 무습(無習)의 익힘은 바로 도의 무습이며, 이것을 도의 습ㆍ불습의 익힘이라고 이름한다. 공과 같이 무습은 또한 무습이 아니다. 마땅히 이와 같이 익혀야만 하나니, 이 도는 무습(無習)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이다. 그 익힘은 익힘을 짓지 않고 또한 무습이 아니다. 마땅히 이와 같은 습을 지어야만 하니, 짝[偶]과 짝 아님이 없고 모든 법은 무주(無住)인 것이다. 부지런히 익히는 것이 이와 같다면 곧 도습(道習)에 응할 것이니라.”
013_0405_a_12L以要言旨身性諸情亦不興有十二因緣乃至老死無欲之法不數無數道無二習不俗無俗不漏無漏不犯無犯不二之習以求道習又復諸法無習之習是道無習斯謂道習不習之習如空無習亦不無習當如此習是道無習無相無願彼不作習亦非無習當作是習無耦不耦諸法無住勤習如此乃應道習
013_0405_b_01L불세존께서 이러한 청정행의 무소습도품(無所習道品)을 말씀하시자, 그때 3만 2천의 하늘 및 세간 사람들이 모두 다 어디로부터 온 곳이 없이 생한 법의 즐거움의 인(忍)을 재빨리 얻었다. 또 5만의 천인(天人) 가운데 지난 세상에 보살에 대해서 마음을 내지 않은 자들은 모두가 위없는 정진도(正眞道)의 뜻을 일으켰고,7만의 보살들은 법인(法忍)을 빨리 얻었다.
013_0405_a_20L當佛世尊說是淸淨行無所習道品法時三萬二千天及世人悉皆逮得無所從生法樂之忍五萬天人宿不發心於菩薩者皆發無上正眞道意七萬菩薩逮得法忍
이때 모든 이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곳에 있는 족성자(族姓子)와 족성녀(族姓女)로서 이 청정도품무습(淸淨道品無習)의 법을 설하신 것을 빨리 듣는 자나, 그것을 듣고 나서 마음에 놀라거나 두려움이 없고 버리거나 물러서지 않는 자는, 모두가 바로 여래의 위없는 정진도의 뜻을 받아 익히고 모든 부처님께서 굴리시는 법륜을 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이들 보살은 모두가 위없는 정진도의 뜻을 얻어서 한량없는 사람을 위해 이 법을 널리 펼칩니다. 또한 다시 장차 사자좌에 앉아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의 인간들 중에서 지극히 사자후하는 것이 지금 여래의 사자후와 같이 모든 마의 무리를 항복시키고 외도를 꿇어 엎드리게 하며, 법의 깃발을 높이 꽂고 법의 불빛을 번쩍이며, 우레와 같은 법의 북을 울린 뒤에 능히 법의 비를 내리게 하소서.”
013_0405_b_02L爾時一切同聲而言世尊其有族姓之子及族姓女逮聞說是淸淨道品無習法者其値聞已心無驚恐不捨退者是皆受習如來無上正眞道意得轉諸佛所轉法輪又唯世尊是輩菩薩悉獲無上正眞道意爲無量人分布斯法亦復當坐師子之座當於天上天下人中極師子吼猶若如今如來之吼悉降魔衆伏摧外道顯樹法幡熾法煇明震雷法鼓已鳴能降法雨
그러자 세존께서는 모든 하늘과 용의 신 무리와 사람과 비인(非人)과 네 가지 무리들이 그 지극한 설법을 듣고서 기쁨에 젖어들지 않는 이가 없음을 보시고, 이에 여래께서는 아뇩달을 위하여 거듭 다시 널리 게송으로 설하셨다.
013_0405_b_12L爾時世尊見諸神之衆人與非人又及四輩其至說莫不悅懌於是如來爲阿耨達重復弘演而說頌云

도(道)는 익혀도 얻을 수 없고
곧 익힌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니
그 도의 행은 이와 같아서
습념(習念)의 행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013_0405_b_15L道非習可得
無乃興習想
其道行如此
棄離習念行

습도(習道)를 구하기를 바라지 말며
모든 다른 생각도 전부 없애야 한다.
그 도는 도무지 익힐 것이 없으니
청정하기가 밝은 달과 유사하다.
013_0405_b_17L不望求習道
蕩除衆異想
其道都無習
淸淨像明月

만일 익히려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익힌 곳이 없으니 또한 익힘이 없다.
이미 익히는 곳이 없음을 넘어선 뒤에는
가장 으뜸인 도를 이룰 수 있다.
013_0405_b_18L若有起習想
無處亦不習
已過無習處
得致最上道

도는 무아(無我)의 생각이며
또한 공습(空習)과 함께 하지 않으며
이 도는 둘이 있지 않아서
안락하고 명쾌하면서 위없으니
013_0405_b_19L道爲無我念
亦不與空習
是道無有二
安快而無上

명(命)과 수(壽) 또한 이와 같아서
인(人)과 말이 없고
그 도는 인(人)이 없고
명(命)도 없으며 또한 머묾도 없다.
013_0405_b_21L命壽亦如此
無人及與言
其道不有人
無命亦無住

모든 도를 익히는 자는
공(空)에 머물고자 하지만
이것은 성스러운 도에서 멀어져 가는 것이며
이것은 도습(道習)에 상응하지 않는다.
013_0405_b_22L諸有習道者
而欲住於空
斯去聖路遠
是不應道習
013_0405_c_01L
도에는 또한 공이 있지 않으며
유습(有習)을 버리는 까닭에
본래와 같이 동일한 상(相)으로써
영원히 공은 공에 대해 공하다.
013_0405_b_23L道亦無有空
以捨於有習
如本同一相
永空空於空

도는 무기상(無起相)이며
또한 멸상(滅相)이 있지 않고
생기가 없고 또한 멸함도 없어
그것은 모두 도습(道習)이다.
013_0405_c_02L道爲無起相
亦不有滅相
不起亦無滅
彼悉爲道習

나의 음성은 허깨비와 같으니
해상(解想)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며
생각을 갖는 것은 익힐 것을 행한다.
도는 마땅히 어느 곳으로부터 생하였으며
013_0405_c_03L吾音譬如幻
解想當如此
持想行所習
道當何從生

도는 다 세속을 넘어선 것인가?
거기에 신습(身習)이 있지 않으며,
또한 멸신행(滅身行)이 없고,
가히 습을 이룰 수 있다.
013_0405_c_04L道爲都過俗
彼不有身習
亦無滅身行
可得致於習

이것은 신근(身根)의 집이니
본래 없어 널리 펼치는 바가 없으며
그것은 다른 구함이 있지 않으니
본래 얻을 수 없는 것도 없다.
013_0405_c_06L是身根之家
本無所演廣
彼不有餘求
本無不可得

그 익힘은 도이니
마땅히 여여하며 본래 없어야 한다.
여래께서는 본래 근본이 없음을 아시니
이것을 도습에 응한다고 말한다.
013_0405_c_07L其習是道者
當如如本無
如本知本無
是謂應道習

모든 법은 본래 없어
허깨비와 같음을 깨달아
해행(解行)하여 이것에 이르러
곧 도습에 응한다.
013_0405_c_08L諸法之本無
所覺若如幻
解行而致此
乃應道之習

만일 그 도에 이르지 못하면
짓는 바는 부주(不住)와 같이
능히 그 행을 멈추지 못하고
불법(佛法)은 도에 말미암지 않는다.
013_0405_c_10L若其不至道
所作如不住
無能止其行
佛法不由道

익히는 바의 도와
무습이 같다면,
펼치는 바가 이와 같고
이로써 본래 없음에 머무는 것이 된다.
013_0405_c_11L若如所習道
幷及與無習
所演爲如此
以住於本無

제한이 있는 다른 도는
낮은 승(乘)이 의지하는 바이나
이것은 위없는 도이므로
본승(本乘)이 말미암는 바이다.
013_0405_c_12L有限餘道者
劣乘之所依
是者無上道
本乘所因由

이 도를 일으키는 모든 자는
이로써 이루되 머물지 않으니,
이것은 곧 행덕(行德)을 나타내며
응당 도를 수습할 만하다.
013_0405_c_14L諸興此道者
以致而無住
斯則顯行德
可致應道習

도는 바르며 험난하지 않고
단정하고 곧으며 평탄하니
부지런히 이 도를 가까이하고 행하면
영원히 온갖 삿된 적(迹)을 떠난다.
013_0405_c_15L道正而無嶮
端直且平坦
勤親行此道
永離衆邪迹

마치 그대 용왕이
스스로 그 궁전에 머물면서
머무는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도
비를 내려 큰 바다를 채우는 것처럼
013_0405_c_16L若如卿龍王
自住其宮室
不動於所處
降雨充大海

보살 또한 그와 같아서
도를 수습함은 행하는 바와 같아
법신(法身)을 움직이지 않고서도
능히 지혜의 바다를 채운다.
013_0405_c_18L大士亦如是
習道如所行
法身而不動
能滿於智海

또 그대 용왕이
대지에 있으면서
비로써 두루 충족시키지만
그 몸은 젖지 않는 것처럼
013_0405_c_19L又如仁龍王
在於大地上
以雨遍充足
其不有身著

보살의 덕도 이와 같아서
이러한 익히는 바를 향하며
법으로써 중생을 만족시켜도
그 안에서는 집착하는 바가 없다.
013_0405_c_20L菩薩德如斯
行此之所習
用法滿衆生
其內無所著

마치 아뇩달용왕이
크게 신통력이 있으며
뛰어난 도의 덕도 그와 같아서
두루 시방이 감동하는 것처럼
013_0405_c_22L若如阿耨達
龍王大神變
勝道德如是
感動普十方

중생이 삿된 길에 떨어져
온갖 집착의 견해에 빠지고 받아들이나
그러한 이 도에 머무는 자는
장차 수순하여 무위(無爲)로 건너게 될 것이며
013_0405_c_23L衆生墮邪徑
諸墮受著見
其住是道者
將順度無爲
013_0406_a_01L
이 도에 이미 머무르면
보살은 커다란 칭호를 이루니
능히 악마 파순과
삿된 외도행자의 항복을 받게 된다.
013_0406_a_01L已住於斯道
菩薩果大稱
能降魔波旬
幷及邪外行

도를 이루는 것이 그 여여함과 같고
여도(女道)는 능히 움직일 수 없으며
모든 속법(俗法)을 뛰어넘으니
그 행은 연꽃에 비유된다.
013_0406_a_03L得道如其如
如道無能動
踊過諸俗法
其行譬蓮花

도의 마음에는 어리석음이 없으니
이러한 행으로 머물며
수천의 모든 중생은
도(道)로써 교화하여 제도하니
013_0406_a_04L道心無有愚
是行爲住止
千數諸衆生
化度立以道

이 도에 언제나 머묾으로써
5순(旬)을 이룰 수 있다.
신족(神足)은 모두를 감동시키고
중생을 위하여 널리 법을 설하며
013_0406_a_05L以常住斯道
得致於五旬
神足諸感動
爲衆廣說法

모든 일이 전부 청정해지며
몸과 입과 뜻이
마땅히 현성(賢聖)의 도를 원해야 한다.
인성(人性)은 인식할 수 없으니
013_0406_a_07L諸事悉淸淨
身口及與意
當願賢聖道
人性不可識

인행(忍行)은 집착함이 없으며
가서 도달할 곳이니
이곳이 여래가 있는 곳이다.
모든 중생을 이끌며
013_0406_a_08L忍行爲無著
其往所可至
斯得如來處
示道諸衆生

생사(生死)도 지귀(至歸)함에서 생사하니
이곳이 바로 여래이다.
그 가는 것이 이루는 것과 비슷하지만
이것은 이를 바가 없는 것이다.
013_0406_a_09L生死於至歸
斯處則如來
其往似若至
此爲無所至

중생이 가히 이를 수 있는 곳은
마땅히 그 위의 곳을 생각해야 하고
으뜸가는 부처의 도를 배우고
환법(幻法)으로써 노닐고 즐겨야 한다.
013_0406_a_11L衆生所可至
當念彼上處
學最佛之道
遊樂以幻法

이러한 이 습도(習道)를 짓는 것은
홍도(弘道)의 소습(所習)이다.
저 뭇 덕의(德儀)의 행은
모든 부처가 찬탄하는 바이다.
013_0406_a_12L其作是習道
弘道之所習
彼衆德儀行
諸佛所稱歎

그 덕은 끝이 없어
끝내 지극히 다할 수 없으니
이와 같이 도를 익힌다면
익히지 않음 또한 머묾이 없고
013_0406_a_13L其德無有邊
終不可極盡
如此習道者
不習亦無住

그곳은 악마의 증오가 없고
무리는 모두 집착 없는 행을 한다.
이렇게 이 도를 따른다면
일어나지 않고 또한 소멸하지 않으며
013_0406_a_15L彼處不咎魔
衆都不著行
其順此道者
不起亦無滅

이미 뜻을 얻어서 행할 것을 뜻한다면
널리 많이 말하여 총체적으로 지니며
자혜로운 보시와 지계와 인욕이
마침내 바다와 같이 불어날 것이다.
013_0406_a_16L已得意志行
摠持弘大辯
施惠及戒忍
遂增進若海

몸과 입의 티끌이 없고
마음이 순결하고 청정하며
티끌을 없애고 영원히 허물없다.
이러한 도를 닦는 자는
013_0406_a_17L身口穢以無
心潔乃淸淨
垢消永無瑕
修應此道者

지달(知達)에 오르는 것과 같고
행하고 익히는 바가 깊고 미묘하며,
움직이기 어려운 지혜[惠]는 무즉(無卽)하니,
이 도를 지키고 익혀야 한다.
013_0406_a_19L得昇於知達
所行習深妙
難動惠無卽
守習是道者

그것은 모든 최정각(最正覺)으로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 또한 이와 같이
도를 이루어 세간의 귀의처가 될 것이다.
013_0406_a_20L其諸最正覺
過去與當來
現在亦如是
致道世所歸

그가 이미 온갖 어려움을 여읜 뒤에는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만나도
영원히 모두 불자가 될 것이다.
이 법을 듣는 자여
013_0406_a_21L彼已離衆難
値世遭難遇
永爲諸佛子
其聞此法者

장하구나, 모든 중생은
지극한 선으로써 이 법을 듣고
진실로 여래를 받들어야 하니
이 경을 즐기는 자
013_0406_a_23L快哉諸衆生
至善聞斯法
眞應奉如來
其樂是經者
013_0406_b_01L
이 도를 깨우친 자는
능히 모든 유정의 습관을 끊으며
덕을 이어서 뭇 상(相)을 보고
마땅히 삼계를 건너게 될 것이다.
013_0406_b_01L有曉此道者
能斷諸情態
紹德具衆相
得應三界將
佛說弘道廣顯三昧經卷第一
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성자(聖者)의 종성(種性)이란 뜻. 불도에 들어가 계ㆍ정ㆍ혜의 3학(學)을 닦는 이, 또는 성자가 되는 행법으로서 현재의 의복과 음식과 와구에 만족하여 악을 끊고 선을 닦기를 좋아하는 이를 가리킨다.
  2. 2)7성재(聖財)ㆍ7덕재(德財)라고 하며, 성과(聖果)를 얻기 위한 일곱 가지 법재(法財)를 말한다. 신재(信財)ㆍ계재(戒財)ㆍ참재(慚財)ㆍ괴재(愧財)ㆍ문재(聞財)ㆍ사재(捨財)ㆍ혜재(慧財)이다.
  3. 3)『본업경』에 있는 여섯 가지 견법(堅法), 즉 신견(信堅)ㆍ법견(法堅)ㆍ수견(修堅)ㆍ덕견(德堅)ㆍ정견(頂堅)ㆍ각견(覺堅)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