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_0556_c_01L이때 세존께서 땅으로부터 일곱 길 높이가 되는 보배 연꽃에 앉아 화염삼매(火炎三昧)에 드셔서 쇄신사리를 나타내셨는데 헤아릴 수 없고 한정할 수 없는 나유타(那由他) 중생인 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라ㆍ견타라(甄陀羅)ㆍ건달바ㆍ가유라(迦留羅)ㆍ구반다(鳩槃茶)ㆍ부단나(富單那)ㆍ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이[人非人]들로 하여금 모두 여래께서 보배 연꽃에 앉아 계신 모습을 보게 하셨다.
이때 세존께서 게송을 마치고 발바닥에서 육계(肉髻)에 이르기까지 온몸으로 84천억의 광명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비추었고 위로는 허공의 세계에 이르니, 그 사이에 있는 중생이 모두 다 광명을 보았다. 광명을 보고 오는 이도 있었고, 어떤 자는 모든 부처님께서 보살들을 보내어 사바세계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 중음(中陰)들은 모습이 지극히 미세하여 오직 부처인 세존만 볼 수 있구나. 그러나 이 중생들은 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한 유학(有學)과 아라한이 된 무학(無學)들로서 한 번 와서 머물거나, 두 번 머물거나, 더 나아가 아홉 번만 이 세계에 머물 이들인데 중음의 경계를 쉽게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제 부처의 위신력으로 조명삼매(照明三昧)에 들어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이 이 미세한 모습을 보게 하리라.’
그리하여 세존께서 차례로 걸림이 없는 정[無礙定]에 드셔서 이 허공세계 중생이 생하고 멸하는 것을 보게 하셨다. 모든 여래께서 행하신 금계(禁戒)와 같고, 허무하고 적막하며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170가지 지어가는 괴로움의 근본 인연과 더 나아가 나고 죽음의 열두 가지 결박과 애착을 관찰하셨다.
내 이제 큰 서원의 마음으로 섞임도 물듦도 없으니 보리 도덕으로 뿌리를 삼고 청정한 수행으로 최상의 법 이루리.
013_0557_a_06L吾今弘誓心, 無雜無所染, 菩提道德根,
梵行究竟法。
세존께서 이 게송의 말씀을 끝내시고 다시 미간백호(眉間白毫)에서 광명을 내셔서 동쪽의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는 나유타 세계를 널리 비추셨고, 남쪽과 서쪽과 북쪽 방면도 또한 그렇게 하셨다.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 광명을 거두어들이니 빛은 부처님을 일곱 번 돌고 이마 위로 들어갔다.
미륵이 대답하였다. “어머니의 배 안에서 먹는 혈분(血分)을 제외하고 180섬의 젖을 먹습니다.
013_0557_a_20L彌勒答曰:“飮乳一百八十斛,除母腹中,所食血分。
013_0557_b_01L 동불우체(東弗于逮)에서는 아이가 나서 세 살까지 1천8백 섬의 모유를 먹고, 서구야니(西拘耶尼)에서는 아이가 나서 세 살까지 880섬의 모유를 먹고, 북울단왈(北鬱單曰)에서는 젖이 없고, 아이가 나면 자리에 앉고 길을 가는 사람이 손가락을 주면 손가락을 빨고 7일 만에 성인(成人)이 됩니다. 중음 중생은 바람을 마십니다.
이 부처님께서 허공중의 보배 연꽃에 앉으셔서 혀에서 광명을 내어 동쪽 방면으로 87억 항하(恒河: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 멀리 비추시니, 동쪽에 있는 그 나라의 이름은 화(化)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견고(堅固)이시며, 열 가지 이름을 구족하시고, 1승(乘)으로 교화하셨다.
“예, 그러합니다. 이것을 보기는 했으나 세존이시여, 이 광명은 어떤 부처님의 광명이기에 이 세계를 비추는지 모르겠습니다.”
013_0557_b_17L對曰:“唯然,已見。世尊不審,此光何佛光明照此世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서 서쪽으로 87억 항하의 모래 수만큼 멀리 가면 불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의 이름은 사바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석가모니이다. 그런데 지금 열반하셔서 사신사리(捨身舍利)를 취하게 하고 중음 가운데 들어가셔서 교화하려고 하시는데, 이 광명은 묘각여래의 빛이다. 그대들이 가고 싶으면 지금이 꼭 알맞은 시간이다.”
“예, 보기는 했으나 이 광명은 어떤 부처님의 광명이기에 이 세계를 비추는지 모르겠습니다.”
013_0557_c_07L對曰:“唯然,見之。不審此光是何佛光照此世界?”
013_0558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서 북쪽으로 87억 항하의 모래 수만큼 멀리 가면 불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의 이름은 사바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석가모니이다. 그런데 지금 열반하셔서 사신사리(捨身舍利)를 취하게 하고 중음 가운데 들어가셔서 교화하려고 하시는데, 이 광명은 묘각여래의 빛이다. 그대들이 가고 싶으면 지금이 꼭 알맞은 시간이다.”
013_0558_b_01L“예, 보기는 했으나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광명은 어떤 부처님의 광명이기에 이 세계를 비춥니까?”
013_0557_c_21L對曰:“唯然已見,不審此光是何佛光明照此世界?”
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서 남쪽 방향으로 87억 항하의 모래 수만큼 멀리 가면 불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의 이름은 사바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석가모니이다. 그런데 지금 열반하셔서 사신사리(捨身舍利)를 취하게 하고 중음 가운데 들어가셔서 교화하려고 하시는데, 이 광명은 묘각여래의 빛이다. 그대들이 가고 싶으면 지금이 꼭 알맞은 시간이다.”
대답하였다. “예, 보기는 했으나 이 광명은 어떤 부처님의 광명이기에 이 세계를 비추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013_0558_b_01L對曰:“唯然,已見。不審此光明是何佛光明照此世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서 위쪽으로 87억 항하의 모래 수만큼 멀리 지나가면 불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의 이름은 사바이고 부처님의 명호는 석가모니이다. 그런데 지금 열반하셔서 사신사리(捨身舍利)를 취하게 하고 중음 가운데 들어가셔서 교화하려고 하시는데, 이 광명은 묘각여래의 빛이다. 그대들이 가고 싶으면 지금이 꼭 알맞은 시간이다.”
지금 이 보살들이 감관[根]을 세워 힘을 얻을 수 있고, 처음 마음을 낸 이들도 있으며, 다시 미처 자취를 밟지 못한 사부대중들도 있으니, 부처의 힘과 위신력으로 접촉하고 인도하여 저 대중으로 하여금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은 생각과 말로 할 수 없고 있기 어려운 법인 줄 알게 해야겠다.’
본래 이름 석가모니였으나 몸을 사리로 바꾸어 머물고 있네. 지금 허공 세계에 들어와 중음 중생류 제도하네.
013_0558_c_06L本號釋迦文, 留身舍利化。
今當入空界, 中陰度萌類。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니, 8만 4천 나유타 중생이 생사를 싫어하여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뜻을 내었다. 다시 70억 중생들이 모든 번뇌를 다하여 법의 눈이 깨끗해졌고, 마(魔)의 세계의 7천만 보살 무리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마하(摩訶)’ 하면서 떠나갔다.
이때 염부제의 대가섭(大迦葉)과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ㆍ하늘ㆍ용ㆍ귀신ㆍ가유라(迦留羅)ㆍ견타라(甄陀羅)ㆍ마후라가ㆍ건달바ㆍ구반다ㆍ부단나ㆍ사람인 듯 아닌 듯한 이와, 여덟 나라의 임금과 8억 백천 대중이 신족력(神足力)으로써 중음에 들어갔다. 이때 세존께서 그 가운데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3_0559_a_01L
중음은 미혹한 등류이고 미혹되고 거칠어 삼존(三尊)도 없네. 몸을 굴려 다섯 갈래를 향하니 행함에 따라 이끌려 다니네.
013_0559_a_01L中陰迷惑等, 迷荒無三尊, 轉身向五道,
隨行所牽往。
가끔은 두 가지 좋은 갈래에 떨어지지만 가끔은 세 가지 나쁜 갈래에 빠진다네. 아, 이들을 가련하게 여겨서 오늘 여래가 왔다네.
013_0559_a_03L或墮二善道, 或入三惡趣,
善哉可愍傷, 今日如來至。
이 무리들 이미 득도(得度)했으니 내 서원 또한 성취하여 마쳤도다. 형상 없어도 형상으로 교화를 받고 생각을 끊고 근본을 끊어 여의었네.
013_0559_a_04L此類旣得度,
我願亦成辦, 無形受形教, 斷想斷滅本。
3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모두 이 법을 행하셨나니, 색법(色法)은 스스로 치연하지만 정(定)의 뜻으로 멸하였네.
013_0559_a_05L三世諸佛等, 無不行此法, 色法自熾然,
滅以定意道。
여래의 진실한 모습 태어남도 없고 일어나고 멸함도 없네. 육신의 안팎이 빈 줄 관찰하면 영원하지 않는 법임을 이해하리라.
013_0559_a_07L如來眞實相, 無生無起滅,
觀身內外空, 解知非常法。
행함은 어리석고 애착을 근본으로 말미암으니 재[灰]가 불을 덮은 것 같네. 어리석은 이 불이 꺼졌다고 하지만 불은 본래 항상 있다네.
013_0559_a_08L行由癡愛本,
如灰覆火上, 愚者謂爲滅, 火本猶常存。
마음은 사람에게 독의 근본이니 착함과 나쁨은 그 모습 따르네. 행함이 착하면 곧 좋은 데 나고 행함이 나쁘면 나쁜 데 나아가네.
013_0559_a_09L心爲人毒本, 善惡隨其形, 行善卽趣善,
行惡卽趣惡。
악행을 저지르면서 스스로 후에 과보가 없다 말하지만 그 과보가 이르면 아무리 친한 이도 대신하지 못하리.
013_0559_a_11L如人作惡行, 自謂後無報,
臨其報至時, 非親所能代。
계율을 범하고 법답지 못하게 행하면서 스스로를 세상에 짝할 이 없다고 하나 벌거벗은 이들 과라(果蓏) 먹으며 해와 달을 신(神)으로 받들어 섬기네.
013_0559_a_12L犯戒無法行,
自稱世無雙, 裸形食果蓏, 奉事日月神。
세 가지 나쁜 갈래에 떨어진 이래 몇 겁을 지났는지 생각 못하니 이들은 불자(佛子)가 아니며 내 가까이 있어도 나를 멀리 떠난 사람이네.
013_0559_a_13L自墜三惡趣, 不慮劫數期, 此等非佛子,
雖近離我遠。
묘각여래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곧 신묘한 힘으로 중음 가운데 들어가셔서 신통변화로 7보(寶)로 된 강당을 만들어냈다. 강당에는 7보로 된 높은 자리가 있었고, 그림이 그려진 깃발[幡]과 덮게[蓋]가 내걸렸으며, 계단은 금과 은으로, 바닥은 유리로 이루어졌다. 뒷켠 정원의 목욕하는 못은 7보로 이루어졌고, 오리ㆍ기러기ㆍ원앙과 기이하고 신기한 온갖 새들이 서로 화음을 내어 지저귀었다.
013_0559_b_01L 저 중생들이 마음으로 바라는 것을 분별하셔서 각기 한 켠에 머물게 하셨다. 사향사득(四向四得)1)의 사람이 각각 한쪽에 머물렀고, 처음 마음을 낸 이와 아홉 번 머물 이가 각기 한 켠에 머물렀고, 향벽지불(向辟支佛)2)과 득벽지불(得辟支佛)3)이 각기 한 켠에 머물렀다.
013_0559_c_01L 모든 하늘 사람ㆍ용ㆍ귀신과 큰 나라 임금은 부처님 뒤에 앉아 있었고, 사천왕(四天王)ㆍ도리천왕(忉利天王)ㆍ염천(炎天)ㆍ도술천(兜術天)ㆍ합천(廅天)ㆍ파리타천(波利陀天)ㆍ합파마나천(廅波魔那天)ㆍ아회두수천(阿會豆修天)ㆍ수가천(首呵天)ㆍ파리타수가천(波利陀首呵天)ㆍ수체천(須滯天)ㆍ수체기뇩천(須滯祇耨天), 더 나아가 아가니타천(阿迦膩叱天)이 허공에 있으면서 꽃을 뿌리고 하늘 음악을 연주하며 공양을 올렸다. 중음 중생들이 여래 앞에서 법을 듣고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뜻을 잘 말씀하셔서 중생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음향(音響:성문)인 자가 나아가야 할 법을 듣고 쉽게 제도되었으나, 다시 제도하기 어려운 이도 있습니다.
013_0560_a_19L“善哉,世尊!快說斯義曉了衆生,音響所趣,聞法易度。復有難度者。
013_0560_b_01L 중생이 음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은 이, 음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지 않은 이, 혹은 유대법(有對法)에 있는 이, 혹은 무대법(無對法)에 있는 이, 혹은 볼 수 있는 법[可見法]에 있는 이, 혹은 볼 수 없는 법[不可見法]에 있는 이, 혹은 유루법(有漏法)에 있는 이, 혹은 무루법(無漏法)에 있는 이, 혹은 유위법(有爲法)에 있는 이, 무위법(無爲法)에 있는 이, 혹은 수기(授記)할 수 있는 법에 있는 이, 혹은 수기할 수 없는 법에 있는 이, 욕계법(欲界法)에 있는 이, 혹은 해설할 수 없는 법[不可解法]에 있는 이, 혹은 색계법(色界法)에 있는 이, 혹은 무색계법(無色界法)에 있는 이, 혹은 중음의 미세한 형상법[中陰微形法]에 있는 이, 혹은 중음의 미세한 형상이 아닌 법[中陰非微形法]에 있는 이, 혹은 다섯 가지 색식법[五色識法]에 있는 이, 혹은 다섯 가지 색과 식이 아닌 법[五色非識法]에 있는 이, 혹은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 식법[非想非不想識法]에 있는 이, 혹은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 식법에 있지 않는 이, 혹은 한 번 머물거나 아홉 번 머묾에 이르러 있는 이, 한 번 머묾에 있거나 한 번 머묾에 있지 않거나 하는 이, 아홉 번 머묾에 있거나 아홉 번 머묾에 있지 않는 이를 관찰하시어 오직 세존께서 일일이 부연하셔서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영원히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않게 하시고 중생의 부류들도 법을 듣고 해탈하게 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정화왕보살이 말씀드렸다. “눈이 빛깔을 보는 것이 아니며, 또한 눈에서 떠난 것도 아니며, 또한 빛깔이 눈에 들어간 것도 아니며, 또한 빛깔을 떠난 것도 아닙니다.”
013_0560_b_17L定化王菩薩言:“亦不眼見色,亦不離眼,亦不色入眼,亦不離色。”
“족성자야, 눈은 빛깔이 아니고 빛깔은 눈이 아니니 어느 것이 보는 것이냐?”
013_0560_b_19L佛告定化王菩薩:“族姓子,眼非色,色非眼。何者是觀?”
“법에 대한 인식이 실제로 머문다면 법을 관찰함이 일어납니다.”
013_0560_b_20L定化王菩薩白佛言:“識法實住,觀法乃起。”
“족성자야, 무엇을 인식이 법을 있게 하며 인식이 법을 없게 한다고 말하느냐?”
013_0560_b_21L佛告定化王菩薩:“云何,族姓子!識爲有法,識爲無法?”
정화왕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인식은 유위(有爲)도 아니고, 유위를 떠난 것도 아닙니다. 인식은 무위(無爲)도 아니고 무위를 떠난 것도 아닙니다.”
013_0560_b_23L定化王菩薩白佛言:“識非有爲不離有爲,識非無爲不離無爲。”
013_0560_c_01L“무엇을 유위라고 하며, 무엇을 무위라고 하느냐?”
013_0560_c_02L佛告定化王菩薩:“何謂有爲,何謂無爲?”
정화왕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일어남이 유위이며, 머묾이 무위입니다. 제일의법(第一義法)에는 일어남이 있음을 보지 못했으며, 머묾이 있음도 보지 못했습니다. 법의 성품은 깨끗하여 물질도 없고 인식도 없으니, 니원법조차 물들고 애착할 것이 없습니다. 눈은 물질이 아니고 물질은 눈이 아니니, 볼 수 있는 법도 없고 볼 수 없는 법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정화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야, 성문은 상대할 것이 있느냐, 상대할 것이 없느냐?”
013_0560_c_11L佛告定化王菩薩曰:“族姓子!聲爲有對耶?無對耶?”
“성문은 상대할 것이 있기도 하고 상대할 것이 없기도 합니다.”
013_0560_c_13L定化王菩薩白佛言:“聲亦有對,亦無對。”
“성문은 또한 상대할 것이 있지도 않고 또한 상대할 것이 없지도 않느니라. 무엇을 말하는가? 족성자야, 이 성문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허(虛)하기도 하고 실(實)하기도 함에 부응하느니라. 무엇을 말하는가? 족성자야, 허공에 글씨를 쓰면 글자가 이루어지겠느냐,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예, 세존이시여, 글자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래께서 아승기겁 동안 익혀 행하신 것이 또한 있음을 보지 못하고 또한 없음도 보지 못하며, 또한 3세가 있음도 보지 못하며 또한 3세가 없음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생각 아님과 생각 아님이 아님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013_0561_a_01L이때 정화왕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위의 모든 법을 낱낱이 관찰하셔서 아시오니, 바라건대 여래ㆍ지진(至眞)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께서는 세 가지 미묘한 법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것이 가장 미묘한 중음의 모양이며, 다섯 가지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며,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 인식입니까?”
부처님께서 정화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면서 이것을 잘 생각하여라. 내가 마땅히 그대에게 낱낱이 분별해 주리라.
013_0561_c_08L佛告定化王菩薩:“諦聽諦聽,善思念之,吾當與汝一一分別。
정화왕아, 어떤 것을 인연이 다했다 하며, 어떤 것을 인연이 다함이 아니라 하며, 여섯 가지로 거두어들임으로써 번뇌가 무거우며, 내가 어리석음과 애욕에 물드는 법이며, 안팎으로 날숨과 들숨을 관찰하는 법이며, 8만 4천 바라밀이며, 세세생생에 여읠 수 없으며, 생각마다 그 모습을 이룬다고 하는가?
유루법은 8만 4천 가지이며, 무루법은 37조도품(助道品)이다. 유위와 무위법은 열반의 도가 아니다. 몸이 청정하여 악을 범하지 않고, 입으로 하는 말에 실수가 없고, 마음이 깨끗하여 정(定)과 꼭 맞으며, 네 가지가 평등하여 온갖 것에 두루 하면, 이것을 보살행이라고 하느니라.”
삼식처(三識處)가 몸에 머물면 이것을 유루라고 하며, 한 가지 인식ㆍ 한 가지 처소ㆍ한 가지 형상이 있으면 이것을 무루라고 한다. 형상은 있으나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 이것은 법을 헤아려 쓸 수 있나니, 쓰지 않는 처소는 3선(禪)의 지위이니라. 나고 죽음을 싫어하는 까닭으로 쓰지 않는다고 이름하나니 원함이 있거나 원하지 아니함은 초선(初禪)에서 처음 출발되느니라.
상쾌하도다. 이 즐거움이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생각이 깨끗해져서 기쁘고 편안하여 스스로 5행(行)을 지키며 생각이 있고 인식이 있음을 성취하니, 이것이 법의 기쁨[法喜:法悅]을 내거나 거두는 행이니라. 백여덟 가지 애욕의 번뇌[愛結]는 한 생각[一念]이니 많은 행[一億行]의 중간 정[中間]에서이니라. 생각들은 다할 수 없나니, 하물며 이 현재의 몸에 있어서는 어떠하겠는가?
저것이 없으면 나[我]라는 생각도 없거늘 나는 헤아릴 수 없는 겁부터 이것을 버리기도 하고 이것을 성취하기도 하였느니라. 3식이 지나는 처소는 있지도 않고 또한 나도 없느니라.
013_0562_b_16L無彼無我想,吾從無數劫,捨此就此,三識所經處,非有亦無我。
삼계의 괴로움이란 매우 심하니라. 몸이 나고 죽음을 받는 어려움은 비유하면 장인[工]이 요술을 부려 주먹으로 어린이를 속이는 것과 같다. 인식하는 정신[識神]은 형상이 없는 법이니, 일어났다가 없어짐은 무상(無常)한 정(定)이다. 나라고 하면 곧 나의 몸은 없거늘 하물며 인식의 형태가 법이 있겠는가? 생각도 또한 생각이 없는 법이며 또한 인식이 있음을 보지 못하느니라. 4음(陰:수ㆍ상ㆍ행ㆍ식)은 필경 어디에 있는가?
일어나도 또한 일어남을 보지 못하고 태어나도 태어남을 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일어남과 없어짐은 어떠하겠는가? 모든 하늘 사람과 세상 사람이 피안에 이름을 끊고 삼계에 매이고 물들어 나고 죽음의 바다를 지나며, 탐욕으로 스스로를 묶어 물질에 미혹되어 영원히 삼계[三有] 가운데 있으나 부처의 힘으로 두려움이 없고 위의와 신기한 힘으로 득도하리라.
다른 이를 위하고 자기를 위하지 않으면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다. 항상 4의(意)로 방지하느니라. 5근(根)ㆍ5력(力)과, 보배롭고 화려한 7각의(覺意)와 37조도법(助道品)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삼매의 문으로 나고 죽음을 잘 여의게 방편으로 교화하여 여섯 가지 바라밀로 저 언덕에 이르되 겁의 숫자로 기약하지 못하였느니라.
도의 마음으로 법을 관찰하고도 일어나고 없어짐을 보지 못하는 이는 안팎의 몸을 분별해도 안반식(安般息)에 매인다. 숨 쉼이 길면 긴 줄 알고 숨 쉼이 짧으면 짧은 줄 안다. 들뜬 생각이면 들뜬 줄 알며 안정된 생각이면 안정된 줄 아나니, 한결같이 들뜬 생각이 없어야 청정한 정법을 행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