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비구 1,250명과 함께 모여 이 경을 말씀하셨다. 그때 현자 아난(阿難)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으니 천중천(天中天)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의혹을 풀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마음대로 물어라. 다타갈(多陀竭:여래)이 너에게 설명해 주리라.” 아난이 여쭈었다. “도를 배우는 우바새(優婆塞)에 상류ㆍ중류ㆍ하류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다가올 미래 중생들을 위해 이런 질문을 하는구나. 여래가 마땅히 너에게 설명할 것이니, 잘 듣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라.” 아난은 대답하고 가르침을 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상류의 우바새ㆍ우바이는 5계(戒)를 지니며 털끝만큼도 범하지 않는 자들이고, 가르쳐 주어 남들을 이해시킬 때에는 모두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자들이다. 어떤 것이 보살의 마음[菩薩心]인가? 시방의 모든 사람들을 염려하되 갓난아기같이 보며, 사람을 제도하여 도에 들어가서 마하연(摩訶衍:大乘)을 행하게 하며, 빠짐없이 가르쳐 주되 바라는 바가 없으며, 공양과 의복과 음식과 진기한 보물과 돈과 재물을 구하지 않으며, 작은 길[小道]을 위하지 않고 사람 제도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작은 길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큰 법에 들어가 마하연의 행을 지으면서도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佛)을 구하는 것이니, 이것은 작은 길로서 보살이 아니다. 보살의 법이란 온갖 무리를 가르쳐 반야바라밀에 들어가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方便善巧)를 알고 살운야(薩芸若:一切智)의 지혜를 얻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수행한 것이 오래되었음을 알아야 하니, 이 사람은 과거 부처님 때 사람으로서 스승과 부모를 부처님과 다름없이 공양한 자이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가 상류의 우바새ㆍ우바이이다. 중류의 우바새ㆍ우바이 또한 5계를 받아 털끝만큼도 범하지 않는 자들이고, 또한 과거 부처님 때 사람으로서 본래부터 도를 배운 자들이다. 그러나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해 반야바라밀을 듣지 못하고, 구화구사라를 깨닫지 못하며,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一心) 중 단 하나의 바라밀(波羅蜜)만 행하고, 경법(經法)에서 지혜를 보지 못한 자들이다. 전생의 공덕으로 인간의 길로 들어오고, 전생의 의식[宿識]이 남아 있어 법문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완전히 갖춰진 계율을 지키고, 스승과 부모를 부처님과 다름없이 보며, 결코 계율을 범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가 중류의 우바새ㆍ우바이이다. 하류의 우바새ㆍ우바이는 5계를 받긴 했지만 모두를 다시 범하는 자들이다. 밝은 스승과 법에 밝은 현자를 보면 곧 법문의 요점을 듣고 물으며, 그때는 즐거워하며 그에게 허물과 죄를 뉘우친다. 그러면 더욱 열심히 5계를 지켜 다시는 범하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는데 가슴에는 욕심의 뜻을 품고 부처님의 계를 다시는 지니지 않는다. 스스로 잘난 체하며 도리어 밝은 스승과 현자를 미워해 그들의 잘잘못을 이야기하며 비방한다. 내가 볼 때 밝은 스승과 현자의 계율에는 깊은 지혜가 있어 방편으로 보호하는 것인데, 이런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고서 그저 음식만 공양하며, 그들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면서도 그 경과 계율에는 힘쓰지 않는다. 이런 우바새ㆍ우바이는 시체나 메고 다니는 부류[擔死人種]들이니, 한자리에 모여 함께 앉고 서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의 좋은 마음과 행을 무너뜨리면서 사람들을 교화한다고 하고, 법과 계를 받은 자들에게 공양을 희망하며, 돈ㆍ재물ㆍ곡식ㆍ비단 등을 얻어 처자를 먹여 살리려고 한다. 부처님의 위신을 빌리지만 마음으로는 시방의 다섯 세계 중생을 제도할 생각을 않고 도리어 자기가 받을 사람이란 생각에 마하연의 지혜를 말해 주지 않으니, 이것은 부처님의 바르고 참된 법에 애쓰지 않는 것이다. 경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세간 사람으로서의 잡다한 인연과 술 마시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부처님도 온갖 음식을 다 잡수셨다며 술집에 다니고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과 교류를 끊지 않는다. 혹은 종이나 나그네나 하인 또는 다른 사람을 시켜 살생한 것인데도 손을 내미니, 불제자(佛弟子)가 아니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부처님의 공덕을 막는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공덕을 막는 것인가? 백성들을 깨우쳐 주고 나서는 네 가지 무리가 더 이상 듣고 아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난이 길게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네 가지 무리가 듣고 아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우바새ㆍ우바이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말한다. 실제로 경의 깊고 요긴한 지혜를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는 도리어 새로이 배우는 현자들에게 장애가 되어 밝게 이해한 좋은 스승을 만나보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혼자서만 공양을 얻고 싶은 생각에 도리어 큰 도를 가리고 장해하는 것이다. 이런 우바새ㆍ우바이는 비록 사람을 제도한다고는 하나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고 구화구사라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어두운 봉사가 오로지 작은 길만 다니는 것이다. 혹 사람에게 복을 지으라고 하나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이 없어서 보시가 널리 미치지 못하며, 저쪽에 있는 것을 청해 이쪽에서 지내게 해도 도법(道法)이 시행되지 않는다. 그러니 사천왕의 태자(太子)와 사자(使者), 부처님의 도를 보호하는 신들이 그것을 낱낱이 기록하며 그를 점점 멀리할 것이고, 칙사[刺伺]에게 분부하여 쌓인 그 죄목과 소장의 이름들을 모두 정리하고 기록해 상제(上帝)에게 보고할 것이다. 그러면 타고난 수명이 끝나기도 전에 문득 나쁜 귀신을 보내 그가 계행을 범하는 순간 남은 수명을 빼앗을 것이며, 자연히 니리(泥梨: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열여덟 지옥에서 벌을 받다가 하늘과 땅이 불에 탈 때가 되어서야 벗어나 새나 짐승의 몸으로 떨어지거나 혹은 사람의 세계로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도 분명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며, 법다운 집안[法家]에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도에 있어서 마땅히 자주자주 모여 법과 뜻을 강의하고 설명하라.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의 도는 막지 않으면 안 된다. 반드시 법을 끊고, 불교를 멸한 죄를 받을 것이다.” 모든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을 듣고 두려워 떨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모두 바른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고 부처님께 예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