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6_0843_b_01L대승장엄경론서(大乘莊嚴經論序)
016_0843_b_01L大乘莊嚴經論卷第一
太子右庶子安平男臣李百藥奉 勅序
016_0843_c_02L


신(臣)은 들으니 천제(天帝)께서 최상의 법(法)을 받으셔서 큰 복이 모여 그 기운이 더욱 커지고 전륜성왕이 바르고 참된 도(道)를 이루어 하늘의 신(神)과 땅의 신[祇]들이 덕에 합하였습니다.
이는 곧 성인(聖人)이 집계(執契)함에 현묘한 조화가 은근하게 통하고, 지극한 정성이 감통(感通)함에 공력(功力)이 은근하게 이에 응하여서 임금의 마음[情]이 서쪽을 돌아보게 되고 법의 바다가 동쪽으로 흐르니 홍범(洪範)의 계책을 여는 것과 같고 원광(圓光)의 꿈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천에 씌어진[持綫] 미묘한 경전은 부처님의 입[金口]에서 나온 비밀한 윤언(綸言:임금의 뜻을 일반에게 알리고자 내린 문서)이었으며, 나뭇잎에 쓴 옛 경전[舊章]은 용궁(龍宮)으로부터 인각(麟閣)1)에 올라온 것입니다.
옛날 가유위(迦維衛)가 세상을 다스리면서 법문을 크게 여셔서 무상(無象)에 밝은 거울을 달아놓고 저 언덕에 빈 배를 운행하시어서 공(空)과 유(有)를 모두 없애고 생(生)과 멸(滅)을 함께 잊으시어 희이(希夷:심오한 도리)의 밖에서 지혜를 끊으셨고 움직임과 고요함의 밖에 형체를 남기었습니다.
그러나 인연을 따라 날카롭게 보고 자취에 응하여 앎을 내시니 대지가 진동하고 사람과 하늘이 모이고 신비한 빛을 놓아서 해와 달을 가렸습니다. 이에 백억(百億)의 수미산이 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화되었으며 삼천세계가 다 그 한계[隄封] 안에 들었습니다.
삼독(三毒)의 고삐에 매인 것을 가엾게 여기시고 오음(五蔭)의 타래에 뒤덮임을 불쌍히 여기시며 빠른 번개 같은 떠도는 삶을 애석하게 여기시고, 흘러가는 물위의 등나무에 매달린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8관(關)을 여시어 어두운 길에 지혜의 식(識)을 여시고 3승(乘)의 법도로써 썩은 집에 자비하신 마음을 운행하셨습니다.
용이 일어나니 안개가 모이고, 신(神)이 움직이니 하늘이 따릅니다. 큰 도로 마음을 삼아서 법의 구름을 바라보며 멀리 거행하시고 음성을 듣고 도를 깨달아서 초지(初地)로부터서 점점 인(仁)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내원(苑)의 큰 가지를 옮겨서 기원(祇園)의 깊숙한 방에 들여 놓았습니다. 지수(智水)의 여윤(餘潤)을 붓고 혜일(慧日)의 마지막 빛을 이었습니다.
이윽고 수례를 니련하(尼連河)에 멈추고 사라쌍수(沙羅雙樹)에서 돌아가셨으니 성령(聖靈)이 더욱 멀어지고 상교(像敎)가 점차 미약해져서 큰 뜻이 더러는 무너지고 이 도[文]가 장차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에 이단(異端)을 깊이 파서 연구하고 숱한 실마리를 분석하여서, 이것은 말류(末流)로서 옛것이 아니라고 하며 길을 달리하고 파(派)를 나눕니다.
천친(天親:세친)을 처음 배우는 무리들이 오히려 서하(西河)의 의심을 일으키고, 용수(龍樹)를 끝까지 배우는 무리들이 동로(東魯)의 탄식을 더욱 깊이 내쉽니다.
우러러 생각하오니 법보(法寶)는 다 무위(無爲)를 깨닫는 것이기에 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는 법을 스승으로 삼으시고 법을 의지하여 머무신다”고 하였으니, 어찌 기틀을 연구하고 성품을 다하며 만물의 미묘함과 신(神)을 궁구(窮究)하여 찰나 간에 나가고 들며 원기(元氣)를 포함할 뿐이겠습니까?
무릇 생각건대 하늘이 크기에 추위와 더위가 그의 공(功)으로 운행(運行)하고 땅을 일러 두텁다고 하기에 산과 못[澤]이 그 기운을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희문(姬文)은 큰 성인의 자질로서 주역[易]의 도를 은근히 도왔으며, 구명(丘明)은 동치(同恥)의 덕을 품어서 미묘한 이치를 이어받아 서술하였습니다.
모든 경과 지어진 논이 이 뜻을 같이하였기에 대승장엄론(大乘莊嚴論)을 무착(無著)보살이 지었습니다.
보살은 여래께서 열반(涅槃)하신 뒤에 함장수발(含章秀發)한 32상(相)을 갖추었지만 미미(微微)한 8천억의 번뇌[結]가 불법의 교화로 함께 풀려버렸습니다. 바른 법을 널리 유통시켜서 경의 으뜸을 장식하니 진여(眞如) 공덕의 종(宗)을 밝히고 보살 위행(位行)의 지위를 나타내어 소승의 집착을 깨뜨리고 대승의 뼈대[綱紀]를 이루었습니다.
그 가운데 보리(菩提) 한 품이 가장 미묘하여서 8식(識)을 돌려 4지(智)를 이루고 4지를 묶어서 3신(身)을 갖추었으니, 여러 경론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일찍이 있지 않았던 것이니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고 말할 만합니다.
016_0843_b_03L臣聞天帝受無上之法景福會昌王致正眞之道神祇合德是則聖人執契玄化潛通至誠所感冥功斯應皇情西顧法海東流如開洪範之圖似得圓光之夢持線妙典發金口而秘綸言書葉舊章自龍宮而升麟閣昔迦維馭世大啓法門懸明鏡於無運虛舟於彼岸空有兼謝生滅俱絕智希夷之表遺形動寂之外隨緣利見應迹生知震大地而萃人放神光而掩日月百億須彌俱霑聲教三千世界盡入隄封愍三毒之繮鎖矜五蔭之纏蓋惜飛電於浮生歎懸藤於逝水八關云闢開慧識於幽塗三乘方軌運慈心於朽宅龍興霧集神動天隨大道爲心望法雲而遐擧聞聲悟道漸初地而依仁遷柰苑之喬枝入祇園之隩室酌智水之餘潤承慧日之末光旣而稅駕連河眞雙樹聖靈逾遠像教浸微大義或斯文將墜穿鑿異端分析多緖末非古殊塗別沠天親初學之輩致西河之疑龍樹究竟之儔彌深東魯之歎仰惟法寶盡諦無爲故經文佛以法爲師佛從法生佛依法住豈止硏幾盡性妙物窮神出入無閒苞含元氣而已若夫惟天爲大寒暑運其功謂地蓋厚山澤通其氣是以姬文以大聖之姿幽贊易道丘明懷同恥之德祖述微言諸經著論俯同斯旨大乘莊嚴論者無著菩薩纂焉菩薩以如來滅度之後含章秀發十二相具體而微八千億結承風俱弘通正法莊飾經王明眞如功德之宗顯大士位行之地破小乘執著成大乘綱紀其菩提一品最爲微妙轉八識以成四智束四智以具三身詳諸經論所未曾有可謂聞所未聞見所未見
016_0844_a_02L성상(聖上)께서는 하늘이 내린 보명(寶命)을 모두 받들어 선대의 왕보다 더욱 빠르게 나아가셨습니다.
천사(天師)의 높음을 굽혀 지혜가 만물(萬物)에 두루 하고 인황(人皇)의 운수(運數)에 응하시니 도가 3명(明)을 비추십니다.
자비하신 은혜를 밖으로 펴시고 신기하신 기틀은 안으로 깊으십니다.
단정히 임금의 자리[座]에 앉아 온갖 신령을 부리니 팔짱을 끼고서 온 나라를 조회받고, 조화(造化)의 시작을 두루 다스리니 음양(陰陽)의 경계[際]를 삼켰다 토해냈다 자유롭습니다.
공(功)을 이루고 음악을 지으니 이미 소무(韶舞)2)를 빛내었고 정(定)을 다스리어 예(禮)를 지으니 말씀이 취화(翠華)3)를 움직입니다.
금륜(金輪)으로 임금이 되시니 국경[封疆]의 견고함이 오직 멀었고, 자그만 성[芥城]이 비록 가득하나 구정(龜鼎)4)의 복조(福祚)가 다함이 없습니다.
큰 계획을 빛나게 널리 드러내시어서 여러 중생들을 열어 인도하시기에 무릇 모든 내전(內典)을 다 번역하셨습니다.
마가다국(摩伽陀國)의 삼장 법사(三藏法師) 바라파밀다라(波羅頗蜜多羅)는 중국[唐] 말에 밝은 분입니다. 그는 중천축(中天竺)의 왕족으로서 당나라 정관(貞觀) 원년 12월에 장안[京]에 들어왔습니다.
법사는 계행이 정밀하고 부지런하며 재주와 학식이 밝고 총명합니다. 지극한 덕은 초과(初果)에 가깝고 재능이 많아 장차 성인에 버금갑니다. 불도징(佛圖澄)과 구마라집(鳩摩羅什)의 맑은 행적을 이어서 상국(上國)에 오셨고, 도생(道生)과 혜원(慧遠)의 빼어난 기상을 목표로 하여 불문[玄門]을 공경하여 걸어왔습니다.
임금은 마음속으로 소중히 생각하고 태자가 예의를 다하여 공경하였습니다. 그는 견문이 넓고 생각이 뛰어나 그윽한 것을 찾고 은밀한 것을 통찰하니, 장안에 있는 대덕들이 모두 그를 공경하여 높이 받들지 않음이 없습니다.그는 정관 4년에 밝은 어명을 공손히 받들었습니다.
016_0843_c_21L聖上受飛行之寶命摠步驟於前王屈天師之尊智周萬物應人皇之運道照三明慈惠外宣神機內湛端扆而役百靈垂拱而朝萬國彌綸造化之初含吐陰陽之際功成作樂旣章韶儛治定制禮言動翠華金輪所王封疆之固惟遠芥城雖滿龜鼎之祚無窮光闡大猷開導群品凡諸內典盡令翻譯摩伽陁國三藏法師波羅頗蜜多羅唐言明友卽中天竺剎利王之種姓也以大唐貞觀元年十二月入京法師戒行精勤才識明至德鄰于初果多能亞夫將聖澄什之淸塵來儀上國摽生遠之逸高步玄門帝心簡在皇儲禮敬其博聞强記探幽洞微城大德莫不推許粤以貞觀四年恭承明詔
016_0844_b_02L또 칙명으로 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 한공(國公) 방현령(房玄齡)과 산기상시(散騎常侍) 행태자좌서자(行太子左庶子) 두정륜(杜正倫)을 시켜서 의학(義學)을 해설하도록 정하였고, 법사 혜승(慧乘)ㆍ혜랑(惠朗)ㆍ법상(法常)ㆍ지해(智解)ㆍ담장(曇藏)ㆍ지수(智首)ㆍ도악(道岳)ㆍ혜명(惠明)ㆍ승변(僧辯)ㆍ승진(僧珍)ㆍ법림(法琳)ㆍ영가(靈佳)ㆍ혜색(慧)ㆍ혜정(慧淨)ㆍ현모(玄謨)ㆍ승가(僧伽) 등에게 명하여 승광사(勝光寺)에서 함께 뛰어난 업적을 이루게 하였으며, 또한 칙명으로 태부(太府)의 경(卿) 난릉남(蘭陵男) 소경(蕭璟)을 시켜 삼장(三藏)을 수집(修緝)하게 하였습니다.
삼장 법사가 이르기를 “무릇 외국(外國)에서 대승이나 소승을 공부하는 자가 모두 이 논으로써 근본을 삼아서 만일 이것을 통하지 못하면 법을 크게 펼 수 없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정신을 한데 모아 특별히 연구를 더하였습니다. 혜정 법사는 총명하고 영민하며 학식이 넓은 이로서 임금의 명을 받아 문장을 엮었으며, 현모 법사는 방언(方言)에 능통하고 또한 의해(義解)를 겸해 맡아서 지극한 마음으로 번역하여 하나도 틀린 데가 없었습니다.
정관 7년 봄에 찬정(撰定)을 마치니 13권 24품입니다.
태자우서자(太子右庶子) 안평남(安平男) 이백약(李百藥)에게 칙명을 내려 서문을 쓰게 하였다.
016_0844_a_16L勅尚書左僕射邘國公房玄齡散騎常侍行太子左庶子杜正倫銓定學法師慧乘慧朗法常智解曇藏智首道嶽慧明僧辯僧珍法琳靈佳慧賾慧淨玄謨僧伽等於勝光寺共成勝業又勅太府卿蘭陵男蕭璟監掌修緝三藏法師云外國凡大小乘學悉以此論爲本若於此不通可弘法是以覃思專精特加硏究淨法師聰敏博識受旨綴文玄謨法善達方言又兼義解至心譯語無紕謬以七年獻春之始撰定斯畢勒成十有三卷二十四品勅太子右庶子安平男李百藥序之云爾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제1권
016_0844_b_07L大乘莊嚴經論卷第一


무착보살(無著菩薩) 지음
016_0844_b_08L無著菩薩造
바라파밀다라(波羅頗蜜多羅) 한역
이영무 번역
016_0844_b_09L大唐天竺三藏波羅頗蜜多羅譯


1. 연기품(緣起品)
016_0844_b_10L緣起品第一

게송으로 말한다.
偈曰

의지(義智)로 여러 뜻을 지으니
말과 글귀가 다 때[垢]가 없다.
괴로운 중생들을 구제함은
자비로써 성품을 삼기 때문이다.
016_0844_b_11L義智作諸義
言句皆無垢
救濟苦衆生
慈悲爲性故

선교(善巧)의 말과 방편의 법은
이른바 최상승(最上乘)이니
대승의 마음을 낸 자를 위하여
간략히 다섯 가지의 뜻으로 나타낸다.
016_0844_b_13L巧說方便法
所謂最上乘
爲發大心者
略以五義現
016_0844_c_02L
【釋】『장엄대승경론』은 누가 능히 장엄하였는가?
【답】의지(義智)가 능히 장엄하였다.
【문】의지가 어떻게 장엄합니까?
【답】여러 가지의 뜻을 열어서 짓는다.
【문】무엇으로써 열어서 짓습니까?
【답】말과 글귀를 쓴다.
【문】어떠한 말을 쓰고 어떠한 글귀를 씁니까?
【답】때 없는 말을 쓰고 때 없는 글귀를 쓴다. 때 없는 말이라 함은 능히 열반의 성(城)에 이르는 것이요, 때 없는 글귀라 함은 글자와 글귀가 서로 호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때 없는 말과 글귀를 떠나서는 여러 가지 뜻을 능히 열어 깨우치지 못할 것이다.
【문】어떠한 뜻으로써 장엄한다고 합니까?
【답】괴로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문】중생들이 스스로 괴로워하는데 어찌하여 구제합니까?
【답】보살이 되려는 이는 큰 자비로 체를 삼아서 괴로움을 받는 중생에게 연민(憐愍)의 마음을 내기 때문이다.
【문】만일 그들의 괴로움을 구제하려면 무슨 법으로 장엄해야 합니까?
【답】여래의 선교(善巧)의 말과 방편의 법으로 장엄해야 한다.
【문】어떠한 방편과 법입니까?
【답】이른바 최상승(最上乘)이다.
【문】누구를 위하여서 장엄합니까?
【답】대승의 마음을 낸 이들을 위해서이다.
【문】몇 가지의 뜻으로 장엄합니까?
【답】대략 다섯 가지의 뜻을 나타내 보인다.
【문】어떤 것을 다섯 가지의 뜻이라고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4_b_14L釋曰莊嚴大乘經論誰能莊嚴智能莊嚴義智云何莊嚴開作諸義以何開作以言及句何等言以何等句以無垢言 以無垢句 無垢言者謂能至涅槃城 無垢句者謂字句相應若離無垢言句於諸義不能開曉以何義故莊嚴爲救濟苦衆生故衆生自苦因救濟爲菩薩者大悲爲體生憐愍故若救他苦莊嚴何法莊嚴如來巧說方便法何等方便法所謂最上乘爲誰故莊嚴爲發大乘心者以幾義莊嚴略以五義示現何者五義 偈曰

비유하면 금(金)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 같고
비유하면 꽃이 한창 피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면 좋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고
비유하면 문자(文字)를 아는 것과 같다.
016_0844_c_05L譬如金成器
譬如花正敷
譬如食美膳
譬如解文字

비유하면 보배 상자를 여는 것과 같아서
이들이 각기 환희심을 얻으니
다섯 가지의 뜻과 법으로 장엄함도
환희하기는 또한 마찬가지이다.
016_0844_c_07L譬如開寶篋
是各得歡喜
五義法莊嚴
歡喜亦如是

【釋】여기서의 다섯 가지 비유는 곧 다섯 가지 뜻으로 장엄함과 그 순서가 같은데 능히 대승의 마음을 낸 이들이 믿고 향하기 때문이요, 가르침을 받기 때문이요, 사유(思惟)하기 때문이요, 닦아서 익히기 때문이요, 증득하기 때문이다.
【문】그의 뜻이 어떠합니까?
【답】‘금으로 그릇을 만든다’고 함은 대승을 믿고 향하여 그들의 마음을 돌림을 비유한 것이요, ‘꽃이 핀다’고 함은 대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그들을 열어 보임에 비유한 것이요,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함은 그들로 하여금 사유하여 법의 맛을 얻음에 비유한 것이요, ‘문자를 안다’고 함은 그들로 하여금 닦고 익혀서 더는 생각하지 않음에 비유한 것이요, ‘보배 상자를 연다’고 함은 그들로 하여금 진실한 보리라는 보배를 증득케 하여서 스스로 깨달아 증득하게 함이다.
이 다섯 가지의 뜻으로 말미암아 대승을 분별하여 능히 그들이 애락(愛樂)을 내게 하는 것이다.
【문】만일 그 법의 자기 성품에 공덕이 구족하다면, 어떠한 뜻을 다시 장엄하겠습니까?
이 물음에 게송으로 답한다.
016_0844_c_08L釋曰此中五譬卽譬彼五義莊嚴其次第能令發大心者信向故受教思惟故修習故證得故其義云金成譬爲令信向轉彼心故敷譬爲令受教開示彼故食膳譬令思惟得法味故解文譬爲令修習更不思故開篋譬爲令證得眞實菩提分寶自覺證故 由此五義分別大能令彼人得生愛樂若彼法自性功德具足何義更須莊嚴爲答此 偈曰

비유하면 아름다운 바탕에 더 장엄을 하여서
거울을 보고서 뛰어난 기쁨을 내듯이
미묘한 법으로 장엄하여 마치면
기쁨을 얻음이 제일이지요.
016_0844_c_19L譬如莊美質
臨鏡生勝喜
妙法莊嚴已
得喜更第一
016_0845_a_02L
【釋】비유하면 아름다운 바탕에 그 모습을 더욱 꾸며서 거울 앞에 있으면 기쁨이 더욱 커지는 것과 같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기쁨을 얻기 위해서이다. 보살 또한 그러하여서 미묘한 법과 뜻을 장엄하여 자기의 마음에 들어가면 곧 뛰어난 기쁨을 내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보고 들음이 있기 때문이다.
【문】그 법에 어떠한 공덕이 있기에 이렇듯 장엄을 하여서 굳이 그들로 하여금 공경하여 믿어 받게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4_c_21L釋曰譬如美質加莊像現在於鏡則生勝喜 何以故爲有悅故 菩薩亦爾莊嚴妙法義入自心則生勝喜 何以爲有聞故彼法有何功德須此莊嚴强欲令他恭敬信受耶 偈曰

비유하면 약을 먹기는 괴롭지만
병이 나으면 즐거움이 되듯이
문자에 머물고 뜻을 아는 것도
괴로움과 즐거움은 이와 같다.
016_0845_a_03L譬如飮藥苦
病差則爲樂
住文及解義
譬如飮藥苦
病差則爲樂
住文及解義
苦樂亦如是

비유하면 어려운 임금을 섬김과 같아서
일로 인하여 위엄과 힘을 얻는다.
이와 같이 어려운 데서 뜻을 알면
앎으로 인하여 법재(法財)를 얻는다.
016_0845_a_06L譬如難事王
因事得威力
如是難解義
因解得法財

비유하면 보배를 보는 것과 같아서
특별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듯이
이와 같이 미묘한 법을 듣고서
깨닫지 않으면 또한 기쁨도 없다.
016_0845_a_07L譬如見生寶
不別則不愛
如是聞妙法
不覺亦不喜

【釋】이 세 게송은 순서대로 미묘한 법에 세 가지의 공덕이 있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첫째는 장애를 끊는 인(因)의 공덕을 나타낸 것이요, 둘째는 자재한 인의 공덕을 나타낸 것이요, 셋째는 미묘하게 기쁜 인의 공덕을 나타낸 것이다.
【문】이 뜻이 무엇입니까?
【답】쓴 약을 먹을 때 처음에는 괴롭다. 쓴 약은 먹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즐겁다. 그것은 병이 치료되기 때문이니, 이 법도 또한 그러하여서 문자에 머물 때에는 괴롭다. 그것은 맛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을 알 때는 즐거우니, 장애되는 병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또한 마치 엄한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괴롭다. 그것은 뜻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즐거우니, 위엄과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 법도 또한 그러하여서 사유할 때는 괴롭다. 그것은 너무 깊어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아릴 때에는 즐거우니, 성재(聖財)를 키우기 때문이다.
보배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함은 보배가 특별하지 않을 때는 사랑하지 않으니, 그것은 쓸데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하게 인식될 때에는 매우 중하게 여긴다. 그것은 쓸모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 법도 또한 그러하여서 닦아 행할 때는 기쁘지 않다. 그것은 비어서 쓸모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닦아서 헤아릴[思度] 때는 매우 기쁘다. 그것은 크게 쓸모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연기품(緣起品)을 마친다.
016_0845_a_08L釋曰此三偈次第顯示妙法有三功顯斷障因功德顯自在因功顯妙喜因功德此義云何如飮苦藥初時則苦以難服故 後時則樂以病差故 此法亦爾住文時苦味難得故 解義時樂障病破故 如事嚴王初時則苦難得意故後時則樂與威力故 此法亦爾思惟時苦深難解故 思度時樂長聖財故 如見生寶未別時則不愛謂無用故 識別時則深重知有用故 此法亦爾修行時則不喜謂空無用故 修度時則深悅有大用故 緣起品究竟

2. 성종품(成宗品)
016_0845_a_21L大乘莊嚴經論成宗品第二

【釋】어떤 사람은 이 대승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닌데 무슨 공덕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의심한다. 내가 이제 그 의심 그물[疑網]을 끊어버리고 대승이 참으로 부처님의 말씀임을 세우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5_a_22L釋曰有人疑此大乘非佛所說云何有此功德可得我今決彼疑網成立大乘眞是佛說 偈曰
016_0845_b_02L
불기(不記)와 동행(同行)과
불행(不行)과 또한 성취와
체(體)와 비체(非體)와 능치(能治)와
문이(文異)의 여덟 가지 인(因)으로 성립되었다.
016_0845_a_25L不記亦同行
不行亦成就
體非體能治
文異八因成
016_0845_c_02L
【釋】대승이 성립하는 데 대략 여덟 가지의 인이 있다. 첫째는 불기(不記)요, 둘째는 동행(同行)이요, 셋째는 불행(不行)이요, 넷째는 성취요, 다섯째는 체(體)요, 여섯째는 비체(非體)요, 일곱째는 능치(能治)요, 여덟째는 문이(文異)이다.
첫째 ‘불기’라 함은 이전의 법이 다 없어지고 난 뒤에 부처님께서 나오신 것이다. 만일 이 대승이 바른 법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 처음에 기록하지 않으셨겠는가? 비유하면 미래의 세상에 다른 세존이 있다면 곧 기록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동행’이라 함은 성문승과 대승은 어느 것을 먼저하고 어느 것을 뒤에 함이 없이 일시에 동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 대승만이 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아느냐?
셋째 ‘행하지 않는다’고 함은, 대승은 깊고 넓어서 남의 마음을 미루어서 헤아리는 사람들도 능히 믿을 수 없는데 하물며 온갖 논박을 일삼는 외도들이 행하겠는가? 그들은 대승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행하지 않는다. 저 외도들이 행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다.
넷째 ‘성취한다’고 함은, 만일 그대가 다른 이가 보리를 얻는다고 말하였다면 그것은 대승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부처님께서 대승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하여 이러한 고집을 지으면 이는 도리어 나[我]를 이루는 뜻이 된다. 그가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은 또한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 된다.
다섯째 ‘체’라고 함은, 만일 그대가 다른 부처님에게는 대승의 체가 있고 이 부처님에게는 대승의 체가 없다고 하여 만일 이러한 고집을 지으면 이도 또한 나라는 뜻을 이룬다. 대승에는 다름이 없어서 체가 오직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체가 아니다’라고 함은, 만일 그대가 이 부처님께는 대승의 체가 없다고 하면 이는 곧 성문승에도 체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성문승은 부처님의 말씀이기에 체가 있고 대승은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이 아니기에 체가 없다고 고집하면 이는 큰 과실(過失)이 있다. 만일 불승(佛乘)은 없으나 부처님께서 출현하시어서 성문승을 말씀하신 것이 있다면 이치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곱째 ‘능히 다스린다’고 함은, 이 법을 의지하여 닦아 행함으로써 무분별의 지혜를 얻게 되고 무분별의 지혜로 말미암아 능히 여러 번뇌를 깨뜨린다. 그러므로 대승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덟째 ‘글이 다르다’고 함은, 대승은 매우 깊어서 글과 뜻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한결같이 글을 따라 뜻을 취하여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서는 안 된다.
또는 만일 그대가 말한 대로 처음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 부처님께서 무공용(無功用)의 마음에서 버린 까닭이라고 고집하여서는 안 된다. 이 뜻은 그렇지 않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5_b_03L釋曰成立大乘略有八因 一者不記二者同行三者不行四者成就五者六者非體七者能治八者文異一不記者先法已盡後佛正出若此大乘非是正法何故世尊初不記耶譬如未來有異世尊卽記 此不記故知是佛說 第二同行者聲聞乘與大乘非先非後一時同行 汝云何知此大乘獨非佛說 第三不行者大乘深廣非忖度人之所能信 況復能行外道制諸論彼種不可得是故不行彼不行故是佛說 第四成就者若汝言餘得菩提者說有大乘非是今佛說有大乘若作此執則反成我義得菩提亦卽是佛如是說故 第五體若汝言餘佛有大乘體此佛無大乘體若作此執亦成我義大乘無異體是一故 第六非體者若汝言此佛無大乘體則聲聞乘亦無體 若汝言聲聞乘是佛說故有體大乘非佛說故無體 若作此執有大過失 若無佛乘而有佛出說聲聞乘者理不應故第七能治者由依此法修行得無分別智由無分別智能破諸煩惱由此因故不得言無大乘 第八文異者乘甚深非如文義不應一向隨文取言非佛語 復次若汝言初不記者由佛無功用心捨故若作此執是義不然 偈曰

모든 부처님은 세 가지의 인연으로
현저하게 보고 또한 법을 보호한다.
여래의 지혜는 걸림이 없는 것이니
버린다는 것은 마땅히 그러하지 않다.
016_0845_c_09L諸佛三因緣
現見亦護法
如來智無㝵
捨者不應爾

【釋】만일 이 대승이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 이는 큰 장애가 된다. 모든 부처님은 세 가지의 인연이 있는데 어찌해서 기록하지 않았는가?
첫째는 무공용의 지혜를 항상 일으켜 이 눈으로 항상 보는 것이요, 둘째는 항상 정근(正勤)을 지어서 바른 법을 수호하는 것이며, 셋째는 여래의 지혜의 힘은 장애가 있지 않은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인연으로 인하여 그대가 말한 여래께서 버려서 기록하지 않는다고 함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만일 그대가 말한 대로 체가 있는 것은 곧 성문승이요, 이는 곧 대승의 체이니,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곧 이 승으로써 큰 보리를 얻기 때문이라고 고집하면 이 뜻은 옳지 않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5_c_11L釋曰若此大乘非佛說者是爲大障諸佛有三因緣何故不記無功用智恒起是眼恒見恒作正勤守護正法如來智力無有障礙 由此三因汝言捨而不記者不應道理 復次汝言有體者卽聲聞乘是大乘體以故卽以此乘得大菩提故 若作此是義不然 偈曰

완전함도 아니요 어긋나지 않음도 아니며
행(行)함도 아니고 가르쳐 줌도 아니다.
그러므로 성문승이
곧 대승은 아닌 것이다.
016_0845_c_19L非全非不違
非行非教授
是故聲聞乘
非卽是大乘
016_0846_a_02L
【釋】네 가지 인연이 있어서 곧 성문승을 대승의 체로 삼아서는 안 된다.
완전함[全]이 아니기 때문이요, 어긋나지 않음이 아니기 때문이며, 행이 아니기 때문이요, 가르쳐 줌도 아니기 때문이다.
‘완전함이 아니다’라고 함은 성문승은 남을 이롭게 함을 가르쳐 주는 것에 다만 스스로 욕심을 싫어하여 떠나서 해탈하도록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어긋나지 않음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만일 그대가 말하기를 성문승이 스스로의 방편으로 남을 가르쳐 주는 것이 곧 남을 이익되게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뜻은 그렇지 않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비록 자기를 이익되게 함으로써 남을 편안하게 하나 그 또한 스스로의 열반을 구하여 방편으로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니 이로써는 곧 큰 보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행이 아니다’라 함은 만일 그대가 오래도록 성문승의 행을 행하면 큰 보리의 과(果)를 얻는다고 말하나 그 뜻은 그렇지 않으니 방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문승은 큰 보리의 방편이 아니다. 오랫동안 방편이 아닌 것을 행하여서 능히 대승의 과를 얻을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쇠뿔을 당겨서 우유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대승에서 가르쳐 주는 것과 같은 것이 성문승에는 없다. 그러므로 성문승으로써는 대승을 얻을 수 없다. 이제 다시 그대에게 서로 어긋나는 뜻을 보이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5_c_21L釋曰有四因緣非卽以聲聞乘爲大乘體 非全故非不違故非行故非教授故 非全者聲聞乘無有利他教授但爲自厭離欲解脫而教授故 非不違者若言聲聞乘以自方便而教授卽是他利教授是義不然何以故雖以自利安他彼亦自求涅槃勤行方便不可以此得大菩提故 非行者若汝言若能久行聲聞乘行則得大菩提果是義不然非方便故 聲聞乘非大菩提方便不以久行非方便得大乘果譬如搆角求乳不可得故非教授者如大乘教授聲聞乘無聲聞乘不得卽是大乘 復次今更示汝相違義 偈曰

마음을 일으키는 것과 가르쳐 주는 것과
방편과 머무름과
시절(時節)의 아래와 위에서 승은
다섯 가지의 일이 일체가 다르다.
016_0846_a_13L發心與教授
方便及住持
時節下上乘
五事一切異
016_0846_b_02L
【釋】성문승이 대승과는 다섯 가지의 서로 어긋남이 있으니, 첫째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다르고, 둘째는 가르쳐 주는 것이 다르며, 셋째는 방편이 다르고, 넷째는 머무름이 다르며, 다섯째는 시절이 다른 것이다.
성문승에서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가르쳐 주거나 부지런히 방편을 닦는 것이 다 스스로 열반을 얻으려는 것인 까닭에 머무는 것도 또한 적고, 복과 지혜의 무더기가 작은 까닭에 시절(時節)도 또한 적어서 나아가 삼생(三生)에 이르러야 해탈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승은 그러하지 않아 마음을 일으키거나 가르쳐 주거나 부지런히 방편을 닦는 것이 모두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머무는 것도 또한 많고, 복과 지혜의 무더기가 크기 때문에 시절도 또한 많아서 삼 대아승지겁(三大阿僧祇劫)을 지낸다.
이와 같이 일체가 서로 어긋난다. 그러기에 마땅히 소승의 행으로써 대승의 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대는 부처님의 말씀에는 세 가지의 상(相)이 있으니, 첫째는 경[修多羅]에 들어가는 것이요, 둘째는 계율[毗尼]을 나타내 보인 것이며, 셋째는 법공(法空)을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대가 모든 법이 자기의 성품이 없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니, 이 세 가지의 상에 어긋난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만일 이러한 고집을 지어도 이 뜻은 옳지 않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6_a_15L釋曰聲聞乘與大乘有五種相違發心異教授異方便異住持時節異 聲聞乘若發心若教授若勤方便皆爲自得涅槃故住持亦福智聚小故時節亦少乃至三生得解脫故 大乘不爾發心教授勤方便皆爲利他故住持亦多福智聚大故時節亦多經三大阿僧祇劫故是一切相違是故不應以小乘行而得大乘果 復次若汝言佛語有三相一者入修多羅二者顯示毘尼三者不違法空 汝以一切法無自性而爲教授違此三相故非佛語若作此執是義不然 偈曰

스스로 대승의 경에 들어가면
현재 번뇌는 스스로 멸(滅)하여진다.
넓고 크고 매우 깊은 뜻은
스스로 법공에 어긋나지 않는다.
016_0846_b_06L入自大乘經
現自煩惱滅
廣大甚深義
不違自法空

【釋】이 대승은 또한 세 가지의 상에 어긋나지 않는다. 스스로 대승의 경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스스로 번뇌로부터 계율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보살은 분별로써 번뇌를 삼기 때문이다. 넓고 크고 매우 깊은 것은 곧 보살의 법공이며 이 공(空)과 어긋나지 않으면서 큰 보리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대승에서는 부처님의 세 가지의 모습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또한 앞에서 행하지 않음을 말하였는데 내가 이제 이 뜻을 더 보여서 그대로 하여금 믿어 받아들이게 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6_b_08L釋曰今此大乘亦不違三相 入自大乘修多羅故現自煩惱毘尼故由菩薩以分別爲煩惱故廣大甚深卽是菩薩法空 不違此空得大菩提故此乘與三相不相違 復次前說不行者我今更示此義令汝信受 偈曰

의지함이 있고 일정하지 아니하고
세속을 인연하고 또한 넓지 않으며
물러나 굴복하여 헤아리는 사람이
어찌 대승의 뜻을 알겠는가.
016_0846_b_14L有依及不定
緣俗亦不普
退屈忖度人
寧解大乘義
016_0846_c_02L
【釋】다섯 가지의 인이 있음을 말미암기 때문에 헤아리는 사람들은 능히 대승의 경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것은 지혜는 의지함이 있기 때문이요, 일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세속을 인연하기 때문이요, 넓지 못하기 때문이요, 물러나 굴복하기 때문이다.
‘의지함이 있다’는 것은 지혜가 가르침을 의지하여 생기고 증득한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정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어느 때에는 다시 다른 지혜가 나기 때문이다.
‘세속을 인연한다’는 것은 세제(世諦)를 헤아려서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넓지 못하다’는 것은 비록 세제를 인연하더라도 아는 것이 적어서 일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러나 굴복한다’는 것은 다투어 의논하다가 말이 궁하면 곧 잠자코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승에서는 곧 의지할 것이 없으며, 마침내 물러나 굴복하지도 않는다. 물러나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량경(無量經) 가운데 백천 가지의 게송에서 말하기를 대승의 법이라고 한다. 이 법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변재가 다함이 없다. 그러기에 대승은 헤아리는 사람의 경계가 아닌 것이다.
그대가 말하기를 성문승은 부처님의 보리 방편이 아니라고 하니, 만일 그렇다면 어느 것이 그것입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6_b_16L釋曰由有五因彼忖度者不能得入大乘境界 彼智有依故不定故緣俗不普故退屈故 彼有依者智依教生非證智故 不定者有時更有異智生 緣俗者忖度世諦不及第一義諦 不普者雖緣世諦但得少解不解一切故 退屈者諍論辯窮卽默然故大乘者卽無所依乃至終不退屈退屈者無量經中有百千偈說大乘由得此法辯才無盡是故大乘非忖度人境汝說聲聞乘非佛菩提方便若爾何者是耶 偈曰

넓고 크고도 매우 깊어서
성숙(成熟)을 분별할 수 없다.
이 두 가지의 방편을 말하기에
이것이 곧 무상승(無上乘)이다.
016_0846_c_05L廣大及甚深
成熟無分別
說此二方便
卽是無上乘

【釋】‘넓고 크다’는 것은, 말하자면 온갖 신통이 매우 부지런한 방편을 말미암아 남들로 하여금 다 믿고 알게 하기 때문이다.
‘매우 깊다’는 것은, 말하자면 무분별의 지혜는 행하기 어렵기에 그 순서대로 하나는 중생을 성숙하게 하고 또 하나는 부처님의 법을 성숙하게 하는데, 이 둘을 말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방편이라 하니, 이 두 가지의 방편이 곧 무상승의 체인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그 가운데서 두려워한다면 과실은 무엇입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6_c_07L釋曰廣大者謂諸神通由極勤方便令他信解故 甚深者謂無分別智難行故 如其次第爲成熟衆生爲成熟佛法 卽說此二爲無上菩提方便 此二方便卽是無上乘體有人於中怖畏過失云何 偈曰

마땅히 두려워하지 않을 데서 두려워하면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불타게 된다.
두려움은 복 아님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길이 과환(過患)을 일으킨다.
016_0846_c_13L不應怖而怖
由怖被燒然
怖引非福故
長時過患起

【釋】만일 사람이 두려워하지 아니할 데서 허망하게 두려움을 내면 이 사람은 곧 매우 뜨거운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불타게 될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하면 이 두려움을 말미암아 큰 복취(福聚)가 아닌 것을 끌어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죄로 말미암아 능히 이 사람은 한량없는 시겁(時劫)을 지나면서 큰 열뇌(熱惱)를 받게 된다.
【문】그 사람이 다시 무슨 인으로 이런 두려움을 냅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6_c_15L釋曰若人非怖畏處妄生怖畏是人卽墮極熱惡道而被燒然 何以故此怖畏引大非福聚生 由此罪故令是人經無量劫受大熱惱彼人復有何因生此怖畏 偈曰

종성(種性)이 아니고 법의 벗이 아니며
지혜가 적고 인연의 힘이 적기에
이 깊고 미묘한 법을 두려워하여
큰 보리를 물러나 잃는다네.
016_0846_c_20L非性非法朋
少慧少因力
怖此深妙法
退失大菩提
016_0847_a_02L
【釋】사람이 두려움을 내는 데는 네 가지의 인연이 있다.
첫째는 종성이 아니어서 보살의 종성을 떠났기 때문이고, 둘째는 법의 벗이 아니어서 선지식(善知識)을 떠났기 때문이고, 셋째는 지혜의 힘이 적어서 대승의 법이 공함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넷째는 인연의 힘이 적어서 지난 세상에 여러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자기 성품인 착한 뿌리를 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매우 깊고 미묘한 법에서 그릇되게 두렵다는 생각을 낸다.
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큰 보리의 복과 지혜의 두 무더기에서 마땅히 얻을 것을 얻지 못하니 이를 물러선다[退]고 이른다.
그대는 이제 마땅히 이 물러섬의 허물과 근심이 매우 깊고 무거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미 두려움의 허물과 두려움의 원인을 말하였다. 다음으로 마땅히 두려워해서는 안 될 원인을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6_c_22L釋曰若人生怖由四因緣非種性離菩薩性故非法朋離善知識故少慧力未解大乘法空故少因先世不種諸波羅蜜自性善根故由此因緣於甚深妙法橫生怖想此想故於大菩提福智二聚應得不是名爲退 汝今應知此退過患最極深重 已說怖過及怖因次說不應怖畏因 偈曰

다름이 없으면 곧 서로 없고
다름이 있으면 곧 험한 곳
비교할 것이 없는 가지가지의 말과
계속한 말과 다문(多門)의 말은
016_0847_a_08L無異卽互無
有異卽險處
無譬種種說
續說多門說

글의 뜻과 같음이 있지 않아서
모든 부처님의 매우 깊은 체를
총명하고 지혜로워 바로 관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016_0847_a_10L非有如文義
諸佛甚深體
聰慧正觀人
應知不應怖
016_0847_b_02L
【釋】‘다름이 없으면 곧 서로 없다’는 것은, 만일 그대가 성문승은 곧 대승이요, 대승의 체와 다름이 없다고 말한다면 곧 성문과 벽지불(辟支佛)의 승이 다시 체가 없다. 왜냐하면 부처님 됨을 얻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체가 다 불승(佛乘)이니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겠는가?
‘다름이 있으면 곧 험한 곳이다’라는 것은, 만일 그대가 대승의 체와 다름이 있다고 인정하면 이 체는 곧 일체지(一切智)의 도이기에 제일 험한 곳이 되니, 그것은 건너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마땅히 우러러 믿어야만 하는데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겠는가?
‘비유할 이가 없다’는 것은 일시(一時)에 두 개의 대승이 함께 나와서 가히 서로 비교할 것이 없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하나는 두려워하고 둘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가지가지로 말한다’는 것은 이제 이 대승은 홀로 공(空)만 설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큰 복과 지혜의 무더기를 설한다. 그러나 마땅히 이러한 뜻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유독 공만을 두려워하는가?
‘계속하여 말한다’고 함은 모든 때에 결정코 서로 이어서 공을 말하였으니, 그대가 잠깐 들음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공을 두려워하는가?
‘다문(多門)으로 말한다’는 것은 경들 가운데 다문으로 달리 말하여 큰 요용(要用)을 나타내어 온갖 분별을 깨뜨리고 무분별의 지혜를 얻게 하였다. 만일 이 말씀과 달라서 큰 용이 없는 것에는 여래는 다만 공만을 말씀하시고, 법성(法性)ㆍ실제(實際) 등과 같은 것들은 말씀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이미 다문이 있음을 말하였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유독 공만을 두려워하는가?
‘글의 뜻과 같은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은 대승은 매우 깊어서 글의 뜻과 동일하지 않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글을 따라 뜻을 취하여 공을 두려워하는가?
‘모든 부처님의 매우 깊은 체’라는 것은 부처님의 성품은 매우 깊어서 갑자기 깨달아 알기 어렵기에 마땅히 요별(了別)함을 구한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가?
이와 같은 것들의 인연이 있다. 그러기에 총명하고 지혜로워 정관(正觀)하는 사람은 이 대승에서 마땅히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마땅히 두려워하지 아니할 인을 말하였다. 다음에는 이 법을 능히 행할 지혜를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7_a_11L釋曰無異卽互無者若汝言聲聞乘卽是大乘無異大乘體若如是者聲聞辟支佛乘復無有體 何以故得佛故 如是一切皆是佛乘 何因怖有異卽險處者若汝許有異大乘此體卽是一切智道最爲第一險由難度故 此應仰信 何因怖耶譬者於一時中無二大乘竝出可以相比 何因怖一不怖二耶 種種說者今此大乘非獨說空亦說大福智聚應解此意 何因獨怖空耶 續說者切時中決定相續說空汝非乍聞因怖耶 多門說者彼彼經中多門異顯大要用破諸分別得無分別智若異此說無大用者如來但應言空不說如法性實際等 旣說有多門因獨怖空耶 非有如文義者大乘甚深不如文義何因隨文取義而怖空 諸佛甚深體者佛性深卒難覺應求了別 何因怖耶 由如是等緣故聰慧正觀人於此大乘不應怖 已說不應怖畏因次說能行此法 偈曰

순서에 따라 듣고 생각하고 수행하면
법을 얻고 지혜를 얻으리니
이 지혜로 이 법을 행하여서
얻지 못하여도 그르게 여겨 헐뜯지 말라.
016_0847_b_11L隨次聞思修
得法及得慧
此智行此法
未得勿非毀

【釋】만일 사람들이 가장 먼저 선지식을 의지하면 능히 바른 들음을 일으키고, 다음으로 정의(正義)에서 능히 바른 기억을 일으키고, 다음으로 진실한 경계에서 바른 지혜를 나게 하고, 다음으로 저것들을 좇아 법과(法果)를 증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저것들을 좇아 뒤에 해탈의 지혜를 일으키면 그 사람의 지혜는 깊음을 따르고 멀리까지 들어가서 능히 이 법을 행하게 된다.
그러니 그대가 만일 스스로 이러한 지혜가 없다면 마땅히 결정하여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이 법을 행하는 지혜를 말하였다. 그러니 다음으로는 이 법의 글귀를 두려워함을 막아야 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7_b_13L釋曰若人最初依善知識能起正聞次於正義能起正憶次於眞實境界得生正智 次從彼彼得證法果 次從彼後起解脫智是人此智隨深入遠能行此法 汝若自無此智不應決定言非佛語 已說能行此法智次遮怖畏此法句 偈曰

알지 않으면 아는 것이 깊지 못하고
깊으면 헤아림[思度]으로 아는 것이 아니니
아는 것이 깊어 해탈을 얻으면
모든 두려움이 마땅히 그렇지 않으리라.
016_0847_b_20L不解解不深
深非思度解
解深得解脫
諸怖不應爾
016_0847_c_02L
【釋】‘알지 않는다’는 것은,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깊은 법은 자신이 알 것이 아니라고 하여 두려움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그래서는 안 된다.
‘아는 것이 깊지 못하다’는 것은, 만일 그대가 부처님의 아심도 또한 깊지 못하니, 만일 아시는 것이 깊었으면 무슨 까닭에 깊다고 말하겠는가라고 하여 두려움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그래서는 안 된다.
‘깊음이 헤아림[思度]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만일 그대가 어찌해서 이 깊음은 생각하여 헤아림의 경계가 아닌가라고 하여 두려움을 일으키는 자는 마땅히 그래서는 안 된다.
‘아는 것이 깊어서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만일 그대가 어찌해서 유독 깊은 뜻을 알아야 능히 해탈을 얻고 생각하여 헤아리는 사람은 능히 해탈을 얻지 못하는가라고 하여 이와 같이 두려움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그래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이미 이 법의 글귀는 두려워함을 막았다. 다음에는 대승이 성립되었음을 믿지 않는 자를 일깨우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7_b_22L釋曰不解者若汝言如是深法非我所解如是起怖畏者不應爾 解不深若汝言佛解亦不深如其解深何故說深如是起怖畏者不應爾 深非思度解者若汝言何故此深非思量境界如是起怖畏者不應爾 解深得解脫者若汝言何故獨解深義能得解脫非思量人能得解脫如是起怖畏者不應爾 如是已遮怖畏此法句次以不信成立大乘 偈曰

작은 믿음과 경계와 짝으로 말미암아
깊고 큰 법을 알지 못한다.
그대가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무상승(無上乘)을 이루었다고 한다.
016_0847_c_09L由小信界伴
不解深大法
由汝不解故
成我無上乘

【釋】‘작은 믿음’이란 좁고 용렬하게 믿고 아는 것이다. ‘작은 경계’란 아리야(阿梨耶)의 식 가운데서 작은 종자를 훈습(熏習)하는 것이다. ‘작은 짝’이란 서로 비슷한 믿음의 경계로써 권속을 삼기 때문이다.
이 셋이 만일 작으면 따로 대승이 있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 믿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장하는 것을 이루어서 이를 무상(無上)의 법이라고 이른다.
이미 대승이 성립됨을 말하였다. 다음은 대승을 비방하여 헐뜯는 것을 막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7_c_11L釋曰小信者狹劣信解故 小界者梨耶識中熏習小種子故 小伴者似信界爲眷屬故 此三若小則不信別有大乘由此不信則成我所立是無上法 已說成立大乘 次遮謗毀大 偈曰

들음을 따라 깨달음을 얻지만
듣지 못하였어도 삼가 헐뜯지 말라.
한량없는 나머지를 듣지 못하였다고
비방하는 자는 어리석은 업(業)을 짓는다.
016_0847_c_17L隨聞而得覺
未聞愼勿毀
無量餘未聞
謗者成癡業

【釋】그대가 사소하게 들은 것에 깨달음이 있는 듯하더라도 마땅히 들은 것에 의해 다시 비방하여 헐뜯어서는 안 된다. 그대가 듣지 못해서 믿음이 없더라도 관계없으니, 왜냐하면 착한 업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다. 듣지 못한 이가 많다고 하여 삼가 비방하여 헐뜯어서도 안 된다. 그대가 가려 구별하지는 못할망정 만일 비방하여 헐뜯는다면 다시 어리석은 업을 더하여서 앞서 들은 것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승을 비방하여 헐뜯는 것을 막았다. 다음으로는 삿된 생각을 막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7_c_19L釋曰汝隨少聞得有覺悟不應隨聞復生謗毀 汝於未聞無信可爾何以不積善故 未聞者多愼勿謗毀無簡別若生謗毀更增癡業壞前聞 已遮謗毀 次遮邪思 偈曰
016_0848_a_02L
글과 같게 뜻을 취할 때에
스승의 마음은 참 지혜에서 물러나고
비방하여 말하고 법을 가볍게 여기면
이를 인연하여 큰 허물이 생긴다.
016_0847_c_24L如文取義時
師心退眞慧
謗說及輕法
緣此大過生

【釋】‘스승의 마음’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스스로 보고 취하여서 지혜스럽지 못한 쪽에서 뜻을 구하기 때문이다. ‘참 지혜에서 물러난다’고 하는 것은 참다운 앎은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비방하여 말한다’는 것은 착한 말을 헐뜯기 때문이다. ‘법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듣는 것을 시기하기 때문이다.
이 복이 아닌 것의 순서를 인연하여 몸에 큰 괴로움의 보(報)를 받는 것을 큰 허물이 일어난다고 이른다.
이렇게 삿된 생각을 막았으니 다음으로 악한 뜻을 막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8_a_03L釋曰師心者謂自見取非智者邊求義故 退眞慧者如實眞解未得退故謗說者毀善說故 輕法者嫉所聞故緣此非福次身受大苦報 是名大過 已遮邪思 次遮惡意 偈曰

악한 뜻과 자기 성품의 악은
착하지 못한 데서 마땅히 일으켜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착한 곳으로 옮기겠는가?
마땅히 큰 허물을 버려야 한다.
016_0848_a_08L惡意自性惡
不善不應起
況移於善處
應捨大過故

【釋】‘악한 뜻’이라는 것은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다.
‘자기 성품의 악’이라는 것은 이 마음은 자기 성품의 죄이어서 오히려 과실의 법에서도 일어날 수 없거늘 하물며 과실이 아닌 법에서 일으키겠는가? 그런 까닭에 마땅히 빨리 큰 허물과 근심을 버려야 한다.
성종품(成宗品)을 마친다.
016_0848_a_10L釋曰惡意者是憎嫉心 自性惡者心是自性罪 尚不可於過失法中起何況於非過法中起 是故急應須捨大過患故 成宗品究竟

3. 귀의품(歸依品)
016_0848_a_14L大乘莊嚴經論歸依品第三

【釋】이와 같이 이미 대승이 성립하였으니 다음은 대승을 의지하여 훌륭하게 귀의(歸依)함을 포섭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8_a_15L釋曰如此已成立大乘 次依大乘勝歸依 偈曰

만일 사람이 삼보에 귀의하는 데는
대승의 귀의가 제일이니
일체에 두루 하는 것이며 용맹스럽고
과를 얻으며 미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016_0848_a_17L若人歸三寶
大乘歸第一
一切遍勇猛
得果不及故
016_0848_b_02L
【釋】 일체 삼보에 귀의하는 데는 마땅히 대승의 귀의가 제일이 됨을 알아야 한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네 가지의 큰 뜻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성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네 가지의 뜻이라 하는가? 첫째는 일체에 두루 하다는 뜻이요, 둘째는 용맹하다는 뜻이요, 셋째는 과를 얻는다는 뜻이요, 넷째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들의 뜻은 뒤에 마땅히 말하겠다.
이 네 가지의 뜻으로 말미암기에 유난(留難)하는 이가 많이 있으나 모든 귀의하는 자가 혹은 능하고 혹은 능하지 못하니 능한 자가 훌륭함이 된다.
이렇게 귀의의 훌륭함을 말하였다. 다음은 훌륭한 귀의를 권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8_a_19L釋曰一切歸依三寶中應知大乘歸最爲第一 何以故 由四種大義性勝故 何者四義 一者一切遍義勇猛義三者得果義四者不及義此義後當說 由此四義多有留難歸依者或能不能 能者爲勝 已說歸依勝 次勸勝歸依 偈曰

일어나기 어렵고 또한 이루기 어려우니
응당 큰 뜻을 세워라.
자기와 남의 이익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땅히 훌륭한 귀의를 지어야 한다.
016_0848_b_03L難起亦難成
應須大志意
爲成自他利
當作勝歸依

【釋】‘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은 이른바 훌륭한 원(願)이니 큰 서원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루기 어렵다’는 것은 이른바 훌륭한 행이니 한량없는 시겁을 경유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그러기에 마땅히 큰 뜻을 내야 한다. 왜냐하면 남의 이익과 자기의 이익을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을 이롭게 한다’고 함은 이른바 원과 행이니 원과 행으로 말미암은 것을 들음의 인이라고 이른다.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고 함은 이른바 큰 뜻이니 큰 뜻으로 말미암기에 이는 자체(自體)의 과이다.
앞에서는 네 가지의 뜻을 말하였고, 이제는 마땅히 일체에 두루 한 뜻을 먼저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8_b_05L釋曰難起者所謂勝願由弘誓故成者所謂勝行由經無量劫故 由如此難應須發大志意 何以故 爲欲成就他利與自利故 他利者所謂願行由願行是名聞因故 自利者所謂大由大義是自體果故 前說四義當先說一切遍義 偈曰

중생이 두루 하고 승(乘)이 두루 하고
지혜가 두루 하고 적멸(寂滅)이 두루 한 것,
이를 지혜 있는 자의
네 가지가 일체에 두루 한다고 이른다.
016_0848_b_12L衆生遍乘遍
智遍寂滅遍
是名智慧者
四種一切遍

【釋】대승에 귀의하는 자는 네 가지의 일체에 두루 함이 있다. 첫째는 중생이 일체에 두루 한 것이니,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승(乘)이 일체에 두루 한 것이니, 3승(乘)을 잘 알기 때문이요, 셋째는 지혜가 일체에 두루 한 것이니, 두 가지의 무아(無我)에 통달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적멸(寂滅)이 일체에 두루 한 것이니, 태어나고 죽음과 열반의 체가 일미(一味)이어서 과악(過惡)과 공덕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일체에 두루 한 뜻을 말하였으니, 다음으로는 용맹의 뜻을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8_b_14L釋曰大乘歸依者有四種一切遍衆生一切遍欲度一切衆生故乘一切遍 善解三乘故 三者智一切遍 通達二無我故 四者寂滅一切 生死涅槃體是一味過惡功德不分別故 已說一切遍義 次說勇猛義偈曰

부처님의 보리를 희망하여서
퇴전하지 않고 어려운 행을 행한다.
모든 부처님과 똑같이 깨닫는 데는
훌륭한 용맹이 세 가지 있다.
016_0848_b_21L悕望佛菩提
不退難行行
諸佛平等覺
勇猛勝有三
016_0848_c_02L
【釋】대승에 귀의하면 세 가지의 훌륭한 용맹이 있다.
첫째는 원(願)이 훌륭한 용맹이니, 부처님께 귀의할 때에 큰 보리를 구하여서 환희(歡喜)를 많이 내어 훌륭한 공덕을 알기 때문이요, 둘째는 행이 훌륭한 용맹이니, 수행을 일으킬 때에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고 굴복하여 종속되지 아니하며 어려운 행을 행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과가 훌륭한 용맹이니, 부처를 이룰 때에 이르러서는 모든 부처님과 똑같이 깨닫기 때문이다.
또한 이 용맹으로 말미암아 모든 불자(佛子)들이 항상 좋은 데 태어남을 얻는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8_b_23L釋曰大乘歸依有三種勝勇猛 一願勝勇猛歸依佛時求大菩提多生歡知勝功德故 二者行勝勇猛起修行時不退不屈難行行故 三者果勝勇猛至成佛時與一切諸佛平等覺 復次由此勇猛彼諸佛子恒得善 偈曰

발심과 지도(智度)와
취만(聚滿)과 대자(大慈)는
종자와 낳으신 어머니와
태장(胎藏)과 유모(乳母)로서 훌륭하오.
016_0848_c_07L發心與智度
聚滿亦大慈
種子及生母
胎藏乳母勝

【釋】보살이 좋은 데 태어나는 데는 네 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는 종자가 훌륭한 것이니 보리의 마음으로써 종자를 삼기 때문이요, 둘째는 낳아 주신 어머니가 훌륭함이니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로써 낳아 주신 어머니를 삼기 때문이요, 셋째는 태장(胎藏)이 훌륭함이니 복과 지혜의 두 무더기로써 주지하여 태장을 삼기 때문이요, 셋째는 유모(乳母)가 훌륭함이니 큰 자비로써 길러서 유모를 삼기 때문이다.
또는 좋은 데 난다 함은, 용맹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항상 훌륭한 몸을 얻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8_c_09L釋曰菩薩善生有四義 一者種子勝以菩提心爲種子故 二者生母勝般若波羅蜜爲生母故 三者胎藏勝以福智二聚住持爲胎藏故 四者母勝以大悲長養爲乳母故 復次生者由勇猛故恒得勝身 偈曰

미묘한 상호(相好)와 생성(生成)하는 힘과
큰 즐거움과 큰 방편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를 성취함,
이를 훌륭한 몸이라 이른다.
016_0848_c_15L妙相成生力
大樂大方便
如此四成就
是名爲勝身

【釋】보살의 몸이 훌륭한 것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색신(色身)이 훌륭한 것이니 미묘한 상호로 몸을 꾸밈을 얻어 전륜왕(轉輪王)들의 상호보다 훌륭한 것이요, 둘째는 힘이 훌륭한 것이니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자재한 힘을 얻기 때문이요, 셋째는 즐거움이 훌륭한 것이니 적정(寂靜)한 상품(上品)의 부처님 지위는 가없는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요, 넷째는 지혜가 훌륭함이니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는 큰 선교방편(善巧方便)을 얻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를 성취하는 것을 불자가 좋은 데 태어나는 것이라고 이른다. 말하자면 색(色)의 성취와 힘의 성취와 즐거움의 성취와 지혜의 성취이다.
또한 이 용맹으로 말미암아 왕자(王子)의 모습과 더불어 비슷하게 태어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8_c_17L釋曰菩薩身勝有四種 一者色勝妙相嚴身勝轉輪王等相故 二者得成熟衆生自在力故 三者樂勝得寂滅上品佛地無邊樂故 四者得救一切衆生大巧方便故 此四成就是名佛子善生所謂色成就成就樂成就智成就 復次由此勇猛得與王子相似 偈曰
016_0849_a_02L
광명을 주고 법이 자재하며
선교(善巧)의 말과 잘 다스림[善治]으로 조섭한다.
이 네 가지의 인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는다.
016_0849_a_02L光授法自在
巧說善治攝
由此四因故
佛種則不斷

【釋】네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임금의 종자가 끊이지 않는다. 첫째는 지위에 들어가서 직책을 받음이요, 둘째는 증상(增上)하여 어긋남이 없음이요, 셋째는 능히 잘 결정하여 판단하고, 넷째는 상주고 벌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좋은 데 태어나는 불자(佛子)도 또한 그러하다. 첫째는 광명과 직위를 받음[授職]을 얻는 것이니, 말하자면 일체의 모든 부처는 대광명과 함께 직위(職位)를 받게 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법이 자재한 것이니, 말하자면 일체의 법 가운데 지혜가 자재하여서 남과 어긋남이 없음이요, 셋째는 능히 교묘하게 말함이니, 말하자면 부처님과 중생들 가운데서 법을 잘 말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상과 벌을 잘 다스리는 것이니, 말하자면 계를 배우는 자의 허물과 악함을 능히 다스리고 공덕을 능히 포섭하는 것이다.
또한 이 용맹으로 말미암아 대신들의 모습과 더불어 비슷함을 얻는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9_a_04L釋曰由四因緣王種不斷 一者入位受職 二者增上無違 三者善能決判四者分明賞罰 善生佛子亦爾 一者蒙光授謂一切諸佛與大光明令受職故 二者法自在謂於一切法中慧自在他無違故 三者能巧說謂對佛衆中善說法故 四者善治罰謂於學戒者過惡能治功德能攝故 復次由此勇猛得與大臣相似 偈曰

바라밀(波羅蜜)에 들어가고 깨달음의 분(分)을 보며
은밀한 것을 지니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한다.
이 네 가지의 인으로 말미암아서
대신들과 비슷함을 얻는다.
016_0849_a_13L入度見覺分
持密利衆生
由此四因故
得似於大臣

【釋】네 가지의 인(因)이 있으니 이는 대신들의 공덕이다. 첫째는 임금의 금궁(禁宮)에 들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임금의 미묘한 보물을 보는 것이고, 셋째는 임금의 밀어(密語)를 간직하는 것이고, 넷째는 자재하게 상을 주는 것이다.
용맹한 보살도 또한 그렇다. 첫째는 항상 모든 바라밀다에 잘 들어감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곳곳의 경 가운데서 항상 큰 보리의 보배를 보는 것이니 그것은 법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여래의 몸과 입과 뜻의 비밀을 항상 지니는 것이고, 넷째는 항상 가없는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용맹의 뜻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과를 얻는 뜻을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9_a_15L釋曰有四種因是大臣功德 一者王禁宮 二者見王妙寶 三者秘王密 四者自在賞賜 勇猛菩薩亦爾常得善入諸波羅蜜 二者常見處處經中大菩提分寶由不忘法故常持如來身口意密 四者常能利益無邊衆生 已說勇猛義 次說得果 偈曰

복덕과 존중함과
즐거움이 있고 또한 고를 멸하고
즐거움을 증득하고 법음(法陰)을 증득하고
습기(習氣)를 다하고 유와 멸의 버림이 있는 것이다.
016_0849_a_23L福德及尊重
有樂亦苦滅
證樂證法陰
習盡有滅捨
016_0849_b_02L
【釋】대승에 귀의하는 자는 이 여덟 가지의 과를 얻는다. 첫째는 믿고 알 때에 큰 복덕의 무더기를 얻는 것이요, 둘째는 발심할 때에 세 가지의 존중함이 있음을 얻는 것이요, 셋째는 일부러 생을 받을 때에 3유(有) 가운데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요, 넷째는 자기와 남이 평등함을 알 때에 큰 고(苦)의 무더기가 멸함을 얻고, 또는 모든 중생들의 고를 멸해 주는 힘을 얻는 것이요, 다섯째는 무생인(無生忍)에 들어갔을 때에 최상의 즐거움을 깨달아 증득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보리를 얻었을 때에 큰 법음(法陰)을 증득하는 것이다.
법음이라 함은 이른바 법신이다. 이와 같은 법신을 크다고 이르고, 훌륭하다고 이르고 항상하다고 이르고, 좋은 무더기라 이른다. 이것은 끝없는 경[修多羅] 등의 법장(法藏)이기 때문에 크다고 이르고, 일체의 법 가운데 가장 위이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이르며, 영원하여서 다함이 있지 않기에 항상하다고 이르며, 힘과 두려움이 없는 것들의 착한 법을 쌓아 모은다. 그러기에 잘 모은다고 이른다.
일곱째는 훈습(熏習)하여 무더기가 다 없어져서 남김이 없음을 얻는 것이요, 여덟째는 유(有)와 멸(滅)의 버림을 얻는 것이니, 버림이 있는 자는 태어나고 죽음에 머물지 아니하고, 멸하여 버리는 자는 열반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과를 얻는 뜻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미치지 못하는 뜻을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9_b_02L釋曰大乘歸依者得此八果 一者解時得大福德聚 二者發心時得三有尊重 三者故意受生時得三有中 四者解自他平等時得大苦聚滅亦得滅一切衆生苦力 五者入無生忍時覺證最上樂 六者得菩提時大法陰法陰者所謂法身 如此法身名爲大名爲勝名爲常名爲善聚無邊修多羅等法藏故名大一切法中最上故名勝永無有盡故名常力無畏等善法積聚故名善聚 七者得熏習聚盡永滅無餘 八者得有滅有捨者不住生死滅捨者不住涅 已說得果義 次說不及義 偈曰

큰 체와 큰 뜻과
가없음과 다함이 없음은
세간과 출세간에 잘함으로 말미암아
신통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016_0849_b_16L大體及大義
無邊及無盡
由善世出世
成熟神通故
016_0849_c_02L
【釋】대승에 귀의하는 자에게 있는 선근(善根)은 네 가지의 인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로서는 능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첫째는 큰 체요, 둘째는 큰 뜻이요, 셋째는 가없음이요, 넷째는 다함이 없는 것이다.
【문】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큰 체라는 것은 말하자면 세간의 선근이니 이미 2승(乘)을 초월하여 지났기 때문이요, 큰 뜻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출세간의 선근이니 2승들의 출세간은 다만 자기를 이익되게 할 뿐이기 때문이요, 가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선근을 성숙한 것이니 능히 가없는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때문이요, 다함이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신통의 선근이니,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이르러도 또한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의의 훌륭한 뜻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귀의하는 차별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9_b_18L釋曰大乘歸依者所有善根由四因一切聲聞辟支佛所不能及 一者大體二者大義三者無邊四者無盡此云何大體者謂世閒善根得超過二乘故 大義者謂出世善根二乘出世但自利故 無邊者謂成熟善根能成熟無邊衆生故 無盡者神通善根至無餘涅槃亦無盡故說歸依勝義 次說歸依差別 偈曰

희망과 큰 자비와
종지(種智)와 또한 뒤로 물러나지 않음과
삼출(三出)과 이득(二得)의
차별에 여섯 가지가 있다.
016_0849_c_04L悕望及大悲
種智亦不退
三出及二得
差別有六種

【釋】대승에 귀의하는 차별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기의 성품이요, 둘째는 인(因)이요, 셋째는 과(果)요, 넷째는 업(業)이요, 다섯째는 서로 응함이요, 여섯째는 품류(品類)이다.
희망으로 자기의 성품을 삼아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체를 구하기 때문이다.
큰 자비를 인으로 삼아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이다.
종지(種智)를 과로 삼아서 더 이상 위가 없는 보리를 얻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나지 아니함으로 업을 삼아서 남을 이익되게 하는 어려운 행을 행하여 행이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고 굴복하여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출(三出)을 서로 응함으로 삼아서 3승의 출리(出離)하는 행을 구족하기 때문이다.
이득(二得)을 품류(品類)로 삼아서 세속을 얻고 법성(法性)을 얻어서 거칠고 세밀한 차별을 얻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덕의 차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행의 차별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9_c_06L釋曰歸依差別有六種自性相應品類 悕望爲自至心求佛體故 大悲爲因爲一切衆生故 種智爲果得無上菩提故退爲業行利他難行行不退不屈故三出爲相應具足三乘出離行故得爲品類世俗得法性得麤細差別 已說功德差別 次說行差別 偈曰

귀의에는 큰 뜻이 있어서
공덕의 무더기가 증장(增長)하고
뜻이 자비하여 세간에 두루 하며
큰 성인의 법을 널리 유통한다.
016_0849_c_14L歸依有大義
功德聚增長
意悲遍世閒
廣流大聖法

【釋】큰 뜻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자기와 남을 이익되게 하는 행이다. 자기를 이익되게 하는 행이라 함은 말하자면 공덕이 증장하는 것이다.
또한 이에는 많은 종류가 있으니, 만일 헤아리든지 만일 수로 셀 수 없든지 만일 시절이든지 헤아려 알 수가 없어서 가히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가히 세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마침내 항상 행하여 때에 분제(分齊)가 없기 때문이다.
남을 이익되게 하는 행이라 함은 뜻을 지음과 자비가 모든 중생들에게 두루 미치기 때문이다.
널리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큰 성인의 법을 유통하기 때문이라고 함은, 큰 성인의 법은 대승의 법이기 때문이다.
귀의품(歸依品)을 마친다.
016_0849_c_16L釋曰大義謂自他利行 自利行者功德增長 復有多種若思度若數數若時節皆無有量由不可思度故可數知故畢竟恒行時無分齊故利行者作意及悲遍一切衆生故勤方便流大聖法故 大聖法者大乘法故 歸依品究竟

4. 종성품(種性品)
016_0849_c_23L大乘莊嚴經論種性品第四

【釋】이미 귀의의 뜻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종성의 차별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49_c_24L釋曰已說歸依義 次說種性差別 偈曰
016_0850_a_02L
유(有)와 훌륭함과 자기의 성품과 자기의 형상[相貌]과 품류와
과악(過惡)과 공덕과
금으로 비유함과 보배로 비유함 등
아홉 가지에 각기 네 가지가 있다.
016_0850_a_02L有勝性相類
過惡及功德
金譬與寶譬
九種各四種

【釋】종성에는 아홉 가지의 차별이 있으니, 첫째는 유(有)의 체요, 둘째는 가장 훌륭함이요, 셋째는 자기 성품이요, 넷째는 상모요, 다섯째는 품류요, 여섯째는 과악(過惡)이요, 일곱째는 공덕이요, 여덟째는 금으로 비유함이요, 아홉째는 보배로 비유한 것이다.
이와 같은 아홉 가지의 뜻에 하나하나 각기 네 가지의 차별이 있으니, 이 게송은 모두 합하여 든 것이요, 나머지의 게송은 각각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유의 체를 분별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0_a_04L釋曰種性有九種差別有體自性相貌品類過惡功德金譬寶譬 如是九義一一各有四種差別 此偈摠擧餘偈別釋此中先分別有體 偈曰

경계로 말미암고 믿음으로 말미암고
행으로 말미암고 과로 말미암으니,
이 네 가지의 차별로 말미암아서
마땅히 유성(有性)의 체를 알아야 한다.
016_0850_a_09L由界及由信
由行及由果
由此四差別
應知有性體
016_0850_b_02L
【釋】종성은 체가 있는 것에 네 가지의 차별로 말미암으니, 첫째는 경계의 차별로 말미암고, 둘째는 믿음의 차별로 말미암고, 셋째는 행의 차별로 말미암고, 넷째는 과의 차별로 말미암게 된다.
경계의 차별로 말미암게 된다고 함은, 중생에는 가지가지 경계의 한량없는 차별이 있다. 많은 경계와 같은 것은 경[修多羅]에서 말한 것과 같이 경계의 차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기에 마땅히 3승의 종성들이 차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믿음의 차별로 말미암은 것이라 함은, 중생에게 가지가지의 믿음을 가히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인(因)의 힘으로 일어남이 있고, 혹은 연(緣)의 힘으로 일어남이 있어서 능히 3승에서 하나의 승을 믿는 것이요, 일체를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만일 성품의 차별이 없으면 또한 믿음의 차별도 없을 것이다.
행의 차별로 말미암은 것이라 함은, 중생들이 행을 행하는 데는 혹은 능히 나가는 것이 있고, 혹은 능히 나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니 만일 성품의 차별이 없으면 또한 행의 차별도 없을 것이다. 과의 차별로 말미암은 것이라 함은 중생들의 보리에는 하(下)와 중(中)과 상(上)이 있어서 자(子)와 과가 서로 비슷하다. 그러니 만일 성품의 차별이 없으면 또한 과의 차별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네 가지의 차별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기에 마땅히 종성이 체가 있음을 알 것이다. 이미 종성의 체가 있음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종성이 가장 훌륭한 것을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0_a_11L釋曰種性有體由四種差別由界差別由信差別由行差別果差別 由界差別者衆生有種種界無量差別如多界修多羅說由界差別故應知三乘種性有差別 由信差別者衆生有種種信可得或有因力或有緣力起能於三乘隨信一乘非信一切若無性差別則亦無信差 由行差別者衆生行行或有能進或有不能進若無性差別則亦無行差別 由果差別者衆生菩提有下中子果相似故若無性差別則亦無果差別 由此四差別是故應知種性有體 已說種性有體 次說種性最勝偈曰

밝고 깨끗함과 널리 포섭함과
큰 뜻과 또한 다함없고
뛰어난 네 가지의 훌륭함이 있기에
종성의 제일을 얻는다.
016_0850_b_03L明淨及普攝
大義亦無盡
由善有四勝
種性得第一

【釋】보살의 종성은 네 가지의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가장 훌륭함을 얻는다.
첫째는 선근이 밝고 깨끗함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둘째는 선근이 널리 포섭됨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셋째는 선근의 큰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넷째는 선근이 다함없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온갖 성문들의 선근은 이와 같이 밝고 깨끗하지 못한 것이요, 모든 사람들의 선근은 네 가지의 섭(攝)과 열 가지의 힘과 네 가지의 두려움이 없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요, 나머지 사람들의 선근은 남을 이익되게 함이 없기 때문이요, 나머지 사람들의 선근은 열반할 때에 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살의 선근은 그러하지 않다. 그것은 이로 말미암아 인이 되어 종성이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미 종성이 가장 훌륭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종성의 자기 성품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0_b_05L釋曰菩薩種性由四種因緣得爲最由善根明淨由善根普攝由善根大義由善根無盡 何以故非諸聲聞等善根如是明淨故 非一切人善根攝力無畏等故 餘人善根無他利故 餘人善根涅槃時盡故薩善根不爾 由此爲因種性最勝說種性最勝 次說種性自性 偈曰

성종(性種)과 습종(習種)과
소의(所依)와 능의(能依)는
마땅히 있음과 있음 아님을 알아야 하니
공덕으로 제도하기 때문이다.
016_0850_b_13L性種及習種
所依及能依
應知有非有
功德度義故

【釋】보살의 종성에는 네 가지의 자기 성품이 있다. 첫째는 성종의 자기 성품이요, 둘째는 습종의 자기 성품이요, 셋째는 소의(所依)의 자기 성품이요, 넷째는 능의(能依)의 자기 성품이니, 그 순서대로이다.
또는 저것이 있다고 함은 인(因)의 체가 있기 때문이요, 있음이 아니라고 함은 과의 체는 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만일 그러하다면 무엇을 일러 성품이라고 이릅니까?
【답】공덕으로 제도하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도한다고 함은 공덕을 출생(出生)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도리로 말미암기에 성품이라고 이른다.
이미 종성의 자기 성품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종성의 형상과 모양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0_b_15L釋曰菩薩種性有四種自性性種自性種自性所依自性依自性 彼如其次第 復次彼有者體有故 非有者果體非有故若爾云何名性功德度義故 度者出生功德義 由此道理是故名性 已說種性自性 次說種性相貌 偈曰

큰 자비와 큰 믿음과
크게 참음과 큰 행이다.
만일 이와 같은 상(相)이 있으면
이를 보살의 종성이라 이른다.
016_0850_b_22L大悲及大信
大忍及大行
若有如此相
是名菩薩性
016_0850_c_02L
【釋】보살의 종성은 네 가지의 상모가 있다. 첫째는 큰 자비를 상으로 삼아서 모든 고를 받는 중생들을 애민(哀愍)하여 주고, 둘째는 큰 믿음을 상으로 삼아서 모든 대승의 법을 애락(愛樂)하고, 셋째는 크게 참음을 상으로 삼아서 능히 모든 어려운 행을 참고 행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큰 행으로 상을 삼아서 여러 바라밀(波羅蜜)의 자기 성품인 선근을 두루 행하기 때문이다.
이미 종성의 형상과 모양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종성의 품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0_b_24L釋曰菩薩種性有四種相貌大悲爲相哀愍一切苦衆生故大信爲愛樂一切大乘法故大忍爲相能耐一切難行行故大行爲相行諸波羅蜜自性善根故 已說種性相貌 次說種性品類 偈曰

결정됨과 결정되지 못함과
후퇴하여 물러나지 아니함과 혹은 후퇴하여 떨어지는 것이
인연을 만나는 순서와 같아서
품류에는 네 가지가 있다.
016_0850_c_07L決定及不定
不退或退墮
遇緣如次第
品類有四種

【釋】보살 종성의 품류는 간략히 말하여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결정된 것이고, 둘째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며, 셋째는 후퇴하여 물러나지 않은 것이며, 넷째는 후퇴하여 떨어지는 것이니, 그 순서대로이다.
결정됐다고 함은 인연을 만나도 후퇴하여 물러나지 아니함이요, 결정되지 않았다고 함은 인연을 만나면 후퇴하여 떨어지는 것이다.
이미 종성의 품류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종성의 과실(過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0_c_09L釋曰菩薩種性品類略說有四種者決定二者不定三者不退四者退 如其次第決定者遇緣不退 不定者遇緣退墮 已說種性品類 次說種性過失 偈曰

보살의 종성은
간략히 말하면 네 가지의 과실이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습혹(習惑)과 악한 벗과
빈궁과 남에게 소속된 것이다.
016_0850_c_14L應知菩薩性
略說有四失
習惑與惡友
貧窮屬他故

【釋】보살 종성의 과실은 간략히 말하여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습혹(習惑)이니 공덕을 행하지 아니하고 번뇌를 많이 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악한 벗이니 착한 지식을 떠나고 나쁜 사람들과 지나치게 친한 것이요, 셋째는 빈궁함이니 필요한 여러 물건들이 다 모자라고 적기 때문이요, 넷째는 남에게 소속되는 것이니 남들에게 얽매이고 소속되어서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종성의 과실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종성의 공덕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0_c_16L釋曰菩薩種性過失略說有四種者習惑功德不行煩惱多行故 二者惡友離善知識狎弊人故 三者貧窮所須衆具皆乏少故 四者屬他繫屬於人不自在故 已說種性過失 次說種性功德 偈曰

공덕에는 또한 네 가지가 있으니
비록 악한 길에 떨어져도
더디 들어가고 다시 빨리 나오며
박(薄)한 듯하여도 자비가 깊음이다.
016_0850_c_22L功德亦四種
雖墮於惡道
遲入復速出
苦薄及悲深
016_0851_a_02L
【釋】보살의 종성에는 비록 앞의 것과 같은 과실이 있어서 만일 악한 길에 떨어져도 마땅히 알아라. 이 가운데에는 다시 네 가지의 공덕이 있다. 첫째는 더디 들어가서 깊이 떨어지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속히 나와서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요, 셋째는 고(苦)가 핍박(逼薄)하여도 번뇌가 가볍기 때문이요, 넷째는 자비가 깊어 중생들을 애민(哀愍)하고 또한 성취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종성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종성을 금에 비유함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0_c_24L釋曰菩薩種性雖有如前過失若墮惡道應知於中復有四種功德 一者遲入不數墮故 二者速出不久住故三者苦薄逼惱輕故 四者悲深哀愍衆生亦成就故 已說種性功德 次說種性金譬 偈曰

비유하면 훌륭한 금의 성품과 같아서
생겨나는 데 네 가지가 있으니
온갖 착함과 온갖 지혜와
온갖 깨끗함과 온갖 신통이다.
016_0851_a_07L譬如勝金性
出生有四種
諸善及諸智
諸淨諸通故

【釋】훌륭한 금의 성품이라는 것은, 생겨나는 데 네 가지의 뜻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매우 많음이요, 둘째는 광명이요, 셋째는 때가 없음이요, 넷째는 조유(調柔)하는 것이다.
보살의 종성도 또한 그렇다. 첫째는 한량없는 선근을 의지하고, 둘째는 한량없는 지혜를 의지하며, 셋째는 모든 번뇌장(煩惱障)과 지장(智障)에서 얻는 청정을 얻음을 의지하고, 넷째는 모든 신통변화(神通變化)를 의지하는 것이다.
이미 종성을 금에 비유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종성을 보배에 비유한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1_a_09L釋曰勝金性者所出有四義 一者二者光明三者無垢四者調柔薩種性亦爾 一者爲無量善根依止二者爲無量智慧依止 三者爲一切煩惱障智障得淸淨依止 四者爲一切神通變化依止 已說種性金性譬次說種性寶性譬 偈曰

비유하면 미묘한 보배 성품과 같아서
네 가지를 성취하는 인이 된다.
큰 과와 큰 지혜와
큰 정(定)과 큰 뜻이다.
016_0851_a_16L譬如妙寶性
四種成就因
大果及大智
大定大義故

【釋】미묘한 보배의 성품이라고 함은 네 가지 성취하는 의지이다. 첫째는 진(眞)을 성취하는 의지이고, 둘째는 색(色)을 성취하는 의지이며, 셋째는 형상[形]을 성취하는 의지이고, 넷째는 양(量)을 성취하는 의지이다.
보살의 종성도 또한 그러하여서 첫째는 큰 보리의 인이 되고, 둘째는 큰 지혜의 인이 되며, 셋째는 큰 정(定)의 인이 되니, 정이라 함은 마음이 일정한 데 머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넷째는 큰 뜻의 인이 되니, 끝없는 중생들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이미 자세히 종성의 지위를 분별하여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무성(無性)의 지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1_a_18L釋曰妙寶性者四種成就依止 一者眞成就依止 二者色成就依止 三者形成就依止 四者量成就依止 菩薩種性亦爾 一者爲大菩提因 二者大智因 三者爲大定因定者由心住 四者爲大義因成就無邊衆生故已廣分別性位 次分別無性位 偈曰
016_0851_b_02L
한결같이 악한 행을 행하여서
널리 온갖 백법(白法)을 끊어
해탈할 분수가 있지 아니하고
착함이 적고 또한 인이 없다.
016_0851_b_02L一向行惡行
普斷諸白法
無有解脫分
善少亦無因

【釋】열반에 들어갈 법이 없는 자를 무성(無性)의 위치라고 한다. 여기에는 간략히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때가 되면 열반의 법에 드는 것이요, 둘째는 필경에는 열반의 법이 없는 것이다.
때가 되면 열반의 법에 들어간다고 함은 네 가지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한결같이 악한 행을 행함이요, 둘째는 온갖 착한 법을 널리 끊음이요, 셋째는 해탈의 분수인 선근이 없기 때문이요, 넷째는 선근이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열반의 법이 없다고 함은, 인이 없기 때문에 열반에 들어갈 성품이 없는 것이니,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다만 나고 죽고 하는 데만 구하고 열반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미 무성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열반에 들어가게 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1_b_04L釋曰無般涅槃法者是無性位 此略有二種 一者時邊般涅槃法二者竟無涅槃法 時邊般涅槃法者有四種人 一者一向行惡行二者普斷諸善法三者無解脫分善根四者善根不具足 畢竟無涅槃法者無因故彼無般涅槃性 此謂但求生死不樂涅槃人 已說無性 次說令入 偈曰

깊고 큰 법을 자세히 연설하여
믿게 하고 끝까지 참게 하여
마침내 대보리를 성취하게 하니,
두 사람[二知]으로 하여금 두 성품이 뛰어남을 알게 한다.
016_0851_b_12L廣演深大法
令信令極忍
究竟大菩提
二知二性勝

【釋】‘자세히 깊고 큰 법을 연설한다’는 것은 남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혜 없는 자에게는 크게 믿음을 얻게 하고, 이미 크게 믿는 자에게는 극히 참음을 성취하여 능히 퇴전하지 않음을 행하게 하고, 이미 극히 참는 자에게는 구경에 더 위가 없는 보리를 성취하게 한다.
‘두 사람[二知]’이라고 함은 말하자면 여러 범부와 여러 성문들이니, 만일 이와 같은 두 사람을 얻어서 자기 성품과 성품의 덕이 원만함이 가장 뛰어남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문】무엇을 뛰어나다고 이릅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1_b_14L釋曰廣演深大法者爲利他故謂無智者令得大信 已大信者令成就極能行不退已極忍者令究竟成就無上菩提 二知者謂諸凡夫及諸聲若得如是彼諸二人則知自性性圓滿性最爲殊勝云何勝 偈曰

보리의 나무를 증장하여
즐거움을 내고 고를 멸하여서
자기와 남의 이익됨이 과(果)가 되니
이 뛰어난 것은 마치 좋은 뿌리와 같다.
016_0851_b_20L增長菩提樹
生樂及滅苦
自他利爲果
此勝如吉根
016_0851_c_02L
【釋】이와 같은 종성은 능히 매우 넓은 공덕의 큰 보리의 나무를 증장하며, 능히 큰 즐거움을 얻으며, 능히 큰 괴로움을 멸하며, 능히 자기와 남이 이롭고 즐기는 것을 얻어서 그로써 큰 과를 삼는다. 그러기에 이 성품이 가장 제일이 되니, 길상(吉祥)의 나무뿌리와 같다고 비유한 것이다. 보살의 종성도 또한 그러하다.
종성품(種性品)을 마친다.
016_0851_b_22L釋曰如是種能增長極廣功德大菩提樹能得大樂能滅大苦能得自他利樂以爲大果 是故此性最爲第譬如吉祥樹根菩薩種性亦爾性品究竟
大乘莊嚴經論卷第一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중국 전한의 무제가 기린을 얻었을 때 세운 누각.
  2. 2)순(舜)임금이 지은 무악(舞樂).
  3. 3)물총새의 깃으로 장식한 천자(天子)의 기(旗).
  4. 4)원귀(元龜)와 구정(九鼎). 여기서는 제왕(帝王)의 지위를 일컫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