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적에 한 장사꾼이 있었는데 이름이 아구류(阿鳩留)였다. 그는 매우 큰 부자여서 금은(金銀) 진보(珍寶)와 노비(奴婢)들이 아주 많았다. 아구류는 후세의 생이 있음을 믿지 아니하여서 선(善)을 지어도 선의 과보를 얻지 못하고 악(惡)을 지어도 악의 과보를 얻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아구류는 평소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이 죽고 난 뒤에 몸은, 땅의 성질[地]은 바깥 경계의 땅으로, 물의 성질[水]은 바깥 경계의 물로, 불의 성질[火]은 바깥 경계의 불로, 바람의 성질[風]은 바깥 경계의 바람으로, 각각 모두 함께 화합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죽은 뒤에는 끝내 다시 나지 않아서, 사람이 짓는 선악(善惡)인 의식의 작용과 입으로 말하는 것과 몸으로 행하는 것은 모두 없어지고 말아서 뒤에 다시 나지 않는다.’ 어느 때에 아구류는 돈 수천만을 지니고 장사꾼 5백 명과 함께 길을 떠났다. 아구류는 가장 화려하고 성대한 행차를 이루어 상인들을 따라 갔는데, 물도 풀도 없는 곳에 이르러 가진 양식과 물과 풀이 모두 다 떨어졌다. 하루 이틀을 가도 물과 풀이 보이지 않았으며, 사흘 나흘을 가도 물과 풀이 보이지 않았다. 상인들은 모두 공포에 떨면서 ‘이제 우리는 이 황무지에서 굶어죽는구나’ 하고 제각기 울부짖으며 부모와 처자를 불렀다. 이에 아구류는 말 네 필을 몰고 다니면서 물과 풀을 구하였다. 아구류는 가다가 멀리 한 나무를 발견했는데, 나무 잎사귀가 시퍼렇고 열매가 주렁주렁하였다. 생각하기를, ‘이 나무 밑에는 반드시 물이 있을 것이다’라 하고는 곧 나무가 있는 쪽으로 나아가니, 한 남자가 있는데 비길 데 없이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멀리서 아구류가 말을 타고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마중하며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그대가 찾는 것이 여기 있습니다.’ 아구류는 나무 밑에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어찌나 기쁜지 목숨을 다시 얻은 듯하였다. 나무 밑의 그 사람이 말했다. ‘어디서 오는 길이며 어디로 가려 하오?’ 아구류가 말하였다. ‘나의 목숨을 구하고 또 5백 명의 사람과 가축들을 살리기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나무 밑의 사람이 말하였다. ‘무엇을 구하고자 하오?’ 대답하였다. ‘물을 얻고자 합니다.’ 나무 밑의 사람이 곧 오른손을 들었다. 물이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왔는데, 마치 샘물이 흐르는 것과 같았으며 맛이 매우 향기로웠다. 아구류에게 말하였다. ‘실컷 마시고, 다 마시고 나서 다시 밥을 먹으시오.’ 나무 밑의 사람이 또 오른손을 드니 맛좋은 음식이 손가락 끝에서 나왔다. 아구류는 배불리 먹고 나서 곧 소리 내어 울었다. 나무 밑의 사람이 물었다. ‘그대는 왜 우는가?’ 아구류가 말하였다. ‘저의 일행 5백 인과 가축들이 모두 3, 4일이 지나도록 마시고 먹지 못하여 굶주림이 극심하니, 목숨이 경각(頃刻)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나무 밑의 사람이 아구류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가서 5백 인과 가축들을 데리고 오시오. 그러면 내가 그대를 위해 그들을 배불리 먹이리라.’ 아구류는 곧 달려가서 그 동료들을 부르며 말하였다.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 내가 먹고 마실 곳을 얻었으니, 나를 따르라’ 일행은 크게 기뻐하며 곧 그를 따라서 나무 밑에 이르렀다. 모두들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나무 밑의 사람에게 인사를 올렸다. 나무 밑의 사람이 물었다. ‘무엇을 얻고 싶소?’ 사람들이 모두 대답하였다. ‘심히 목마르고 배고픕니다.’ 나무 밑의 사람이 다시 오른손을 들었다. 다섯 손가락 끝에서는 곧 다시 큰 물줄기가 샘물처럼 흘러 나왔다. 이에 사람들과 가축들이 모두 풍족하게 마셨다. 그러고 나서 다시 밥을 구하니, 나무 밑의 사람은 또 오른손을 들었다. 다섯 손가락 끝에서 맛난 음식을 흘려 내려주니, 5백 명의 사람들과 가축들이 모두 다 배불리 먹었다. 나무 밑의 사람은 5백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모두 어디로 가며 무엇을 구하려 하오?’ 상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들 모두는 바다로 가서 값진 보물[珍寶]을 찾으려고 합니다.’ 나무 밑의 사람이 물었다. ‘그대들이 모두 진귀한 보물을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지금 내 손에서도 나오게 할 수 있소이다.’ 나무 밑의 사람이 곧 오른손을 드니, 손가락 끝으로부터 금ㆍ은ㆍ수정ㆍ유리ㆍ산호ㆍ호박(琥珀)ㆍ백주(白珠)를 내어놓니, 사람들은 제각기 이를 긁어모아 무겁도록 가지고 갔다. 이에 나무 밑의 사람은 아구류에게 말하였다. ‘이 금은 등 보배를 가지고 마을로 가거든 빈궁한 이에게 보시하는 데 쓰되, 밥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 밥을 주고, 금은 등 재물과 의복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 이를 한껏 주며, 도인들로 하여금 모두 나를 축원하도록 하여, 내가 그 복을 얻어서 내 손 안에서 보물을 더 많이 나오게 하여서 이 황폐한 못[澤]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여 주시오.’ 아구류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서 이마와 얼굴을 땅에 대고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늘입니까, 용입니까, 귀신입니까, 사람입니까?’ 나무 밑의 사람은 대답하였다. ‘나는 하늘도, 용도, 귀신도, 사람도 아니오. 나는 호벽려(豪薜荔)1)일 뿐이오. 나는 전생 때에 나라 안에서 제일 가난하여 늘 성【문】밑에 앉아 있었소. 빈궁하였지만 마음엔 욕심이 없었으며 사문과 도인을 좋아하였소. 나는 가난했기에 남에게 보시할 수 없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보시하는 것을 봄으로써 그 기쁨을 대신하였소. 가섭(迦葉)부처님께서 입멸[般泥洹]하셨을 때 모든 비구들이 와서 나에게 밥을 빌었는데, 나는 비구들에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였소. 그리고는 다만 멀리 성 안을 가리키면서 뉘 집은 착하니 밥을 얻을 수 있고, 뉘 집은 착하지 못하니 밥을 얻을 수 없다고 알려 주었소. 그리하여 비구가 알려준 그 집에서 걸식하고 나올 때 얻은 것을 보고는 기뻐하였소. 또한 가섭부처님께서 입멸하시자 그 나라 왕인 기립(基立)이 가섭부처님을 위하여 칠보탑을 세웠을 때 나는 손을 그 위에다 대고 말하기를, ≺나로 하여금 그 복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으며, 왕이 진귀한 물건을 부처님 탑에 올리면 나는 곧 손을 거기에다 대고 말하기를, ≺나로 하여금 그 복을 얻게 하소서≻라고 하였소. 나는 이렇듯 가난하여 재(齋) 한 번 올리지 못했으며 밥이나 술을 먹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어서 이렇게 호벽려가 된 것이오. 전세(前世)에서 다만 남이 선행하는 것만을 보고 그 기쁨을 대신하며 손을 그 물건 위에 댄 것을 인연으로 하여 나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이와 같은 물건들이 흘러나오게 되었소. 그러나 전생에서 한 번도 재(齋)를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벽려(薜荔)가 된 것이라오.’ 아구류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전에 후세의 생을 믿지 않았고, 선(善)을 지어도 선의 과보를 얻지 못하고 악(惡)을 지어도 악의 과보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과연 후세의 생이 있으며, 또한 생에는 진실로 선을 행하면 선의 과보를 얻고 악을 행하면 악의 과보를 얻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부터는 마을에 돌아가서 반드시 선을 행하며 남에게 보시하되, 얻고자 하는 사람이 구하거든 금이든 은이든 값진 보배든 밥이든 의복이든 모두 주워서 이를 거절하지 말아야겠구나.’ 이에 아구류는 마을로 돌아가서 온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금ㆍ은ㆍ보배ㆍ음식ㆍ의복을 갖고 싶은 이가 있거든 갖고 싶은 대로 다 와서 가져가시오.’ 그는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시를 행하였으며, 날마다 8만 4천 명의 도인(道人)에게 공양하였는데, 만일 큰 물[瀾汗]이 흘러 길이 막히면 사람들은 배로 운반하여 공양을 행하였다. 아구류는 마음을 다하여 선을 행하고 죽은 뒤에 둘째 도리천에 올라가 천인(天人)이 되었는데, 천제(天帝)의 자리에서 480리 떨어진 데 있게 되었다. 한편 나라 안에 한 거지 여인이 있었는데, 이름이 삼(㜗)이었다. 착한 마음으로 한 그릇 쌀죽을 사문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주었기 때문에 죽은 뒤에 역시 도리천에 나서 천인(天人)이 되었는데, 제석천(帝釋天)의 옆, 셋째 자리에 있었으며, 다섯 가지에 있어서 다른 하늘보다 뛰어났다. 그 다섯 가지란 바로 장수(長壽)ㆍ단정(端正)ㆍ안락(安樂)ㆍ지혜(智慧)ㆍ위신(威神)이니, 이것이 다른 하늘보다 뛰어났다. 나중에 부처님의 어머니가 홀연히 도리천에 태어나서 부처님께서 천상에서 어머니를 위해 경을 설하였으며, 경을 설해 마치시자, 부처님의 어머니와 더불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러 하늘들이 모두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이로 인하여 도리천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아구류는 사람에게 보시하고 제석천과 480리 떨어진 자리에 있었고, 거지 여인은 쌀죽을 마하가섭에게 주고서 제석천의 옆 셋째 자리에 있게 되었으며 또한 다른 하늘보다 다섯 가지 일에서 뛰어남을 알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다 보시고서 그 인연을 다 아셨다. 곧 멀리서 아구류를 불러 말씀하셨다. ‘보시한 훌륭한 이여, 이리 오라. 한번 만나 보자.’ 아구류는 곧 와서 앞에 나아가 이마와 얼굴을 땅에 대어 부처님께 절하고서 아뢰었다. ‘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시하였지만 다만 평범한 천인(天人)일 뿐, 수다원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ㆍ벽지불(辟支佛)ㆍ불도(佛道)를 얻지 못하였사온데, 이제 거지 여인을 보니, 사문 마하가섭에게 쌀죽을 주고서 지금 제석천의 옆 세 번째 자리에 있으며 또한 천인보다 다섯 가지 일에서 뛰어남이 있으니, 사람이 작은 물질을 마하가섭에게 주고서 복을 얻음이 저러합니다. 그러므로 저절로 호귀(豪貴)함을 이룸이 이와 같습니다.’ 하늘은 곧 부처님께 절하고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