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시라고 하는가? 자신이 지닌 재물을 베풀어주는 것으로 세 가지가 있다. 자신의 몸을 위한 것과 다른 사람을 위한 것과 남과 나를 위한 것이다. 탑과 절에서 부처님ㆍ벽지불(辟支佛)ㆍ아라한(阿羅漢)을 공양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위한 것이고, 중생에게 베풀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며, 보시를 사람들에게 베풂은 남과 나를 위한 것이다. 사호(思好)ㆍ전호(田好)ㆍ물호(物好)는 좋은 과보를 얻는다.
무엇을 사호라고 하는가? 믿음과 청정함, 공양을 하는 것이다. 무엇을 전호라고 하는가? 세 종류의 복전(福田)이 있다. 대덕(大德)이 있고, 가난한 고통이 있고, 대덕의 가난한 고통이 있다. 무엇을 대덕이라고 하는가? 부처님ㆍ보살ㆍ벽지불2)ㆍ아라한ㆍ아나함(阿那含)3)ㆍ사다함(斯陀含)4)ㆍ수다원(須陀洹)5)이다.
무엇을 가난한 고통이라고 하는가? 짐승과 중생이 늙고, 병들고, 귀멀고, 눈멀고, 벙어리가 되는 이와 같은 갖가지가 가난한 고통이다. 무엇을 대덕의 가난한 고통이라고 하는가? 부처님ㆍ보살ㆍ벽지불ㆍ아라한ㆍ아나함ㆍ사다함ㆍ수다원이 늙고, 병들고, 귀멀고, 눈멀고, 벙어리가 되는 갖가지 가난한 고통이 있는 것이다. 대덕의 복전이란 공경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과보를 얻는 것이다. 가난한 고통의 복전이란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커다란 과보를 얻는 것이다. 대덕의 가난한 고통에 대한 복전이란 공경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과보를 얻는 것이다. 이것이 복전의 좋음이다.
028_0533_b_02L무엇을 물호6)라고 하는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훔치지 않고, 빼앗지 않고,(강도처럼) 묶어두지 않고, 두들겨 패지 않고, 속이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청정한 물건을 많고 적음에 따라 때에 따라 보시한다. 이것을 물호라고 한다. 무엇을 믿음이라고 하는가? 후세의 과보를 알아 열반(涅槃)을 향하여 일심(一心)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한다. 청정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아끼고 탐내는 마음을 없애서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것을 청정이라고 한다. 공양이란 무엇인가? 예배를 받들어 행하고, 자신의 손으로 보시를 베푸는 것 등을 공양이라고 한다.
무엇을 복전의 차이라고 하는가? 계율을 지키고, 선정(禪定)ㆍ지혜ㆍ해탈을 잘 행하여 과보를 얻는 등의 공덕이 만약 이처럼 있으면 이를 복전의 차이라고 한다. 위기와 재앙에서 구제하는 차별된 인연으로 차별된 고통이나 고통이 없음을 얻는다. 마음을 내어 (물건 등을) 공급하면 묘한 과보를 얻는다. 부처님께 보시하면 곧 모든 복을 얻는다. 승가에 보시하여 받아들여지면 곧 모든 복을 얻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모든 복을 얻을 수 없다. 진리의 가르침[法]을 공양하기 때문에 커다란 과보를 얻는다.
만약 배우는 사람이 총명하고, 아주 지혜로우면 진리의 가르침으로 공양한다. 이를 공양이라고 한다. 진리의 가르침을 보시[法布施]하면 부귀를 얻는다. 보시를 받아 마치면 즐거움ㆍ힘ㆍ수명 등의 공덕이 있다. 번뇌를 제거하여 뛰어나게 커다란 과보를 얻는다. 만약 짐승에게 보시를 행하면 1백 세(百世) 동안 과보를 받는다. 만약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시를 행하면 천 세 동안 과보를 받는다. 만약 착한 사람에게 보시를 행하면 천만 세 동안 과보를 받는다. 만약 욕심을 떠난 범부(凡夫)에게 보시를 행하면 천만억 세 동안 과보를 받는다. 만약 도를 얻은 사람에게 보시를 행하면 한없는 세월 동안 과보를 받는다. 만약 부처님께 보시를 행하면 열반에 이를 때까지 과보를 받는다.
보시에는 여섯 종류의 어려움이 있다. 첫째는 교만한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명예를 구하여 보시하는 것이요, 셋째는 힘을 얻기 위하여 보시를 하는 것이요, 넷째는 강제로 보시를 베푸는 것이요, 다섯째는 인연에 따라 보시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과보를 구하여서 보시를 하는 것이다. 승가에서 보시를 분별하니, 이를 보시에서의 여섯 종류의 어려움이라고 한다.
무엇을 계율을 지킴이라고 하는가? 두 종류의 율의(律儀)가 있으니 선하지 않은 율의[不善律儀]와 선한 율의[善律儀]가 있다. 무엇을 선하지 않은 율의라고 하는가? 산 것을 죽이는 것, 남의 것을 훔치는 것,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율의라고 한다. 이간질하는 말, 욕하는 말, 거짓 말,꾸미는 말이 입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율의라고 한다. 탐내고, 성내고, 사악한 것이 뜻으로 짓는 세 가지 나쁜 율의라고 한다.
028_0533_c_02L무엇을 산 것을 죽이는 것이라고 하는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목숨을 빼앗는, 이와 같은 것을 산 것을 죽이는 것이라 한다. 다른 사람이 받아쓰는 물건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받아쓰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훔치려는 마음을 내어 훔치고 빼앗는, 이와 같은 것을 훔치는 것이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부인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함께 음행을 하고자 하는 욕심을 낸다. 만약 도(道)와 도 아닌 것[非道]에서 스스로 부녀자를 범하면 비도이니, 이와 같은 것을 삿된 음행이라 한다. 만약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말하거나, 안다고 말해 놓고서 말지 못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서 의심하거나, 의심스럽다고 말하고서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이 거짓말이다. 만약 실로 헤어지게 하고자 하여 다른 말을 한다면 이것이 이간질하는 말이다. 물든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면 이것이 욕하는 말이다. 알지 못할 때 뜻 없는 말을 하면 이것이 꾸미는 말이다.
타인의 재물에 탐내고 애착을 가져 이는 마땅히 내 것이라고 하면 이것이 탐욕이다.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고통스럽게 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성냄이다. 사악한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실로 있으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잘못된 견해이다. 무엇을 ‘실로 있으나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죄도 없고, 복 받는 과보도 없고, 금생도 후생도 없고, 부모도 없고, 부처님ㆍ벽지불ㆍ아라한과 나머지 도를 얻는 등의 것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실로 있으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잘못된 견해’란 무엇인가? 선과 악은 하늘이 지은 것이고 행위의 과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악함을 세 종류의 선하지 않은 업[不善業]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세 종류의 일을 참회하고 다시는 짓지 않도록 없애버린 것을 세 종류의 선한 업[善業]이라고 한다. 항상 세 종류의 악한 행위를 멀리 여의고, 세 종류의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을 계율을 굴건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보시ㆍ계율을 지킴ㆍ선정(禪定)의 사유는 반드시 세 가지 과보를 얻게 하니, 재산이 많아지고, 천상에 태어나고, 해탈(解脫)을 얻는 것이다. 세간에는 서른 종류의 복전이 있다. 부모ㆍ노인ㆍ병든 사람ㆍ착한 사람ㆍ욕심을 떠난 범부ㆍ유루(有漏)의 일곱 종류의 사람, 4도향(道向)ㆍ4도과(道果)ㆍ멸함으로 선정에 든 벽지불 보살ㆍ부처님ㆍ비구승ㆍ오고 감에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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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계(界)는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이다. 이 3계 가운데 다섯 종류7)의 길이 있으니 지옥(地獄)ㆍ축생(畜生)ㆍ귀신(鬼神)ㆍ인간(人間)ㆍ천(天) 및 중음도(中陰道)이다. 무엇을 지옥이라고 하는가? 대지옥(大地獄)에 여덟 종류가 있다. 첫째는 승시피(僧時披)8)지옥, 둘째는 흑승(黑繩)9)지옥, 셋째는 합회(合會)10)지옥, 넷째는 노랍(魯臈)11)지옥, 다섯째는 마하로랍(摩訶魯臘)12)지옥, 여섯째는 반나(般那)13)지옥, 일곱째는 파다반(波多般)14)지옥, 여덟째는 아비(阿鼻)15)지옥이다. 하나하나의 대지옥마다 각각 열여섯 개의 지옥이 딸려 있다.
무엇을 축생이라고 하는가? 다리가 없는 것, 다리가 둘인 것, 다리가 넷인 것, 다리가 많은 것, 물에 사는 것, 땅에 사는 것, 공중에 사는 것이다. 무엇을 귀신의 길이라고 하는가? 갖가지 몸으로 욕계에서 선하지 않은 일을 한다. 세 종류로 상ㆍ중ㆍ하가 있다. 상의 과보는 지옥이고, 중의 과보는 축생이고, 하의 과보는 아귀(餓鬼)이다. 무엇을 인도(人道)라고 하는가?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동쪽의 불우체(弗于逮)16)인, 서쪽의 구야니(瞿耶尼)17)인, 남쪽의 염부제(閻浮提)18)인, 북쪽의 울단왈(鬱單曰)19)인이다. 욕계의 네 종류의 선행의 과보로 태어난다.
무엇을 천도(天道)라고 하는가? 욕계에는 여섯 종류의 천이 있다. 첫째는 사천왕천(四天王天), 둘째는 도리천(忉利天)20), 셋째는 염천(鹽天)21), 넷째는 도술천(兜率天)22), 다섯째는 니마라천(尼摩羅天)23), 여섯째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24)이다. 욕계 가운데서 여섯 종류의 선행의 과보로 태어난다.
028_0534_b_02L무색계는 공처(空虛)45)ㆍ식처(識處)46)ㆍ불용처(不用處)47)ㆍ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48)이다. 무색의 선정을 얻으면 이와 같은 순서에 따라 무색처에 태어난다. 선정의 힘에 따라 태어나는 롯이 얻어진다. 이것이 천도이다. 받기를 바라고, 쓰기를 바라고, 모아두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러한 인연으로 욕계라고 한다. 욕심은 없으나 색이 있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색계라고 한다. 무색계는 4음(陰)이 있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무색계라고 한다.
사람의 50년은 사천왕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사천왕의 수명은 천상(天上)의 5백 년으로 사람의 1만년에 해당한다. 이것이 승시니리(僧時泥梨)49)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얼두 달로 1년을 삼는다. 승시니리의 수명은 5백 년이다. 또한 사람의 백 년이 도리천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도리천의 수명은 천상의 천 년으로 사람의 3억 6만년에 해당한다. 이것이 흑승니리(黑繩泥梨)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흑승니리의 수명은 천 년이다. 또한 사람의 2백 년이 염천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염천의 수명은 천상의 2천 년으로 사람의 14억 4만 년에 해당한다. 이것이 노랍(魯臘)니리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12달로 1년을 삼는다. 노랍니리의 수명은 2천 년이다.
028_0534_c_02L또한 사람의 4백 년이 도술천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도술천의 수명은 천상의 4천 년으로 사람의 57억6만 년에 해당한다. 이것이 마가노랍(摩呵魯臘)니리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마가노랍니리의 수명은 4천년이다. 또한 사람의 8백 년이 화응성천(化應聲天)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화응성천의 수명은 천상의 8천 년으로 사람의 2백30억 4만 년에 해당한다. 이것이 다반(多般)니리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다반니리의 수명은 8천 년이다. 또한 사람의 1천6백 년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타화자재천의 수명은 천상의 1만 6천 년으로 사람의 9백21억 6만 년에 해당한다. 이것이 반다반(般多槃)니리의 하루 밤낮이다. 이와 같이 30일이 한 달이 된다. 열두 달로 1년을 삼는다. 반다반니리의 수명은 1만 6천 년이다.
028_0535_a_02L승랍(僧臘)의 수명은 반 겁(半劫)이고, 아비(阿鼻)니리의 수명은 1겁이다. 짐승의 수명은 손가락 한 번 튀기는 동안 한 나절ㆍ하루ㆍ한 달ㆍ1년ㆍ년ㆍ백년ㆍ천 년ㆍ만 년ㆍ1억 년 그리고 1겁까지이다. 아귀의 수명도 이와 같이 7만년 까지이다. 사람 가운데 염부제인의 수명은 헤아릴 수 없거나 10년에 이르기도 하지만 혹은 10년까지 있고, 지금의 시기에는 백 년을 넘거나 모자라거나 한다. 구야니인의 수명은 2백 50년이고, 동쪽의 불우체인의 수명은 5백 년이다. 북쪽의 울단왈인의 수명은 천 년으로 늘어나거나 줄지 않는다. 나머지 곳의 중생의 수명은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있다. 이것을 욕계 가운데 중생의 수명이라고 한다.
색계의 수명은 어떤가? 범가이천(梵迦夷天)의 수명은 반 겁이고, 범부루천의 수명은 1겁이다. 마가범천의 수명은 1겁 반이다. 이것을 초선(初禪)의 수명이라고 한다. 소광천의 수명은 2겁이고, 무량광천의 수명은 4겁이고, 광요천의 수명은 8겁이다. 이것을 2선(禪)의 수명이라고 한다. 약정천의 수명은 16겁이고, 무량정천의 수명은 32겁이다. 변정천의 수명은 64겁이다. 이것을 3선(禪)의 수명이라고 한다. 과실천의 수명은 백25겁이고, 득덕천의 수명은 2백 50겁이고, 대과천의 수명은 5백겁이다. 무겁 천의 수명은 천 겁이고, 무뇌천의 수명은 2천 겁이다. 선관천의 수명은 4천 겁이다. 쾌견천의 수명은 8천 겁이고, 아가니타천의 수명은 1만 6천 겁이다. 이것을 4선(禪)의 수명이라고 한다. 공처(空處)의 수명은 2만 겁이고, 식처(識處)의 수명은 4만 겁이고, 불용처(不用處)의 수명은 6만 겁이고, 유상무상처(行想無想處)의 수명은 8만 겁이다. 이것을 무색계의 수명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것이 3계(界) 중생의 수명이다.
4식주(識住)가 있다. 어찌하여 넷인가?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이다. 욕계ㆍ색계 가운데서 식(識)은 색을 많이 반연하여 머무른다. 공처ㆍ식처 가운데서 식은 통을 많이 반연하여 머무른다. 불용처에서 식은 상을 많이 반연하여 머무른다. 유상무상처에서 식은 행을 많이 반연하여 머무른다. 네 가지 종류의 식(食)이 있어 유정의 목숨과 감각기관을 크게 하고, 성장케 한다. 무엇이 넷인가? 첫째는 단식(摶食)이고, 둘째는 낙식(樂食)50)이고, 셋째는 의사식(思思食)이고, 넷째는 식식(識食)이다.
028_0535_b_02L췌식(揣食)51)에는 3입(人)이 포섭된다. 향기ㆍ맛ㆍ미세하고 부드러움(綱滑:촉감)의 입(入)이 그것이다. 어찌하여 색입(色入)은 포섭되지 않는가? 췌식은 눈으로 보고 먹는 것으로 유정의 목숨과 감각기관을 크게 성장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췌식에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미세한 것[細]과 거친 것[麤]이다. 거친 것이란 무엇인가? 밥과 떡과 같은 모든 종류의 것이다. 미세한 것이란 무엇인가? 마시면 사라지는 것과 몸에 바르는 향과 같은 것이다. 낙식이란 무엇인가? 눈의 갱락(更樂)52), 귀ㆍ코ㆍ혀ㆍ몸의 갱락 및 유루의 의(意)의 갱락이다. 능히 후세의 삶이 상속하여 끊임이 없게 한다. 낙식은 새의 알에 많고, 거위, 기러기의 알과 같은 모든 것에 많다. 의사식은 물 속에 사는 벌레와 물고기의 알과 같은 모든 것에 많다. 식식은 유상무상처 및 중음(中陰)의 중생에 많다. 췌식은 욕계 가운데 많고, 나머지 세 종류의 식은 색계 및 무색계에 많다. 췌식이 가장 거칠고, 낙식은 미세하며, 의사식이 그 다음으로 미세하고, 식식이 가장 미세하다.
네 종류의 태어남이란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이다. 니리(泥犁)ㆍ천(天)ㆍ중음(中陰)의 모든 것은 화생이다. 귀신은 두 가지 종류로 태어나니 태생과 화생이다. 나머지의 중생은 네 가지 종류로 태어난다. 화생의 중생은 한꺼번에 6정(情)과 6근(根)을 갖추고 태어난다. 나머지의 중생들은 처음에는 신근(身根)과 명근(命根)만을 갖추고, 나머지 감각기관은 차례로 갖춘다. 네 가지 유(有)가 있으니 생유(生有)53)ㆍ사유(死有)54)ㆍ본유(本有)55)ㆍ중유(中有)56)이다. 사유와 생유의 중간은 미세한 5음이 있으니 이를 중유라고 한다. 중유와 생유는 비유하자면 도장에 글씨를 새기는 것과 같고, 마치 아버지와 아들이 비슷한 것과 같다. 무색계를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중생은) 중음신을 받는다. 무색계에서 삶을 마치어 욕계와 색계에 태어나면 증음신을 받는다. 비유하자면 중아나함(中阿那含)에 중음이 있고, 나머지 모든 태어남에 중유와 생유가 있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028_0535_c_02L 잡심(雜心) 가운데 잡스러운 때[雜垢]에 연하여 잡스러운 행[雜行]을 일으킨다. 이 행 가운데서 잡스러운 과보를 받는다. 무엇을 잡스러운 행라고 하는가? 세 종류의 행이 있다. 몸으로 하는 행ㆍ입으로 하는 행ㆍ뜻으로 하는 행과, 선한 행ㆍ선하지 않은 행ㆍ무기(無記)의 행, 배울 것이 남아 있는 행[有學行]ㆍ배울 것이 남아 있지 않은 행[無學行]ㆍ배울 것이 남아 있지도 없지도 않은 행, 그리고 견제(見諦)의 진리로 끊는 행ㆍ사유(思惟)로 끊는 행ㆍ끊을 것이 없는 행, 현세에 받는 과보ㆍ첫 번째 생에 받는 과보ㆍ후세에 받는 과보, 즐거움을 받는 과보ㆍ괴로움을 받는 과보ㆍ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과보, 흑보(黑報)ㆍ백보(白報)ㆍ잡스러운 과보, 흑보도 백보도 아니며 과보가 없는 행ㆍ행이 끝나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 행ㆍ행이 끝나도 반드시 과보를 받지 않는 행이다.
무엇을 몸으로 하는 행이라고 하는가? 몸으로 움직이고 몸으로 짓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입으로 하는 행이라고 하는가? 입으로 움직이고 입으로 짓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뜻으로 하는 행이라고 하는가? 뜻으로 움직이고 뜻으로 생각한 것을 말한다. 무엇을 선한 행이라고 하는가? 선한 몸으로 짓는 것이고 선한 입으로 짓는 것이며 선한 뜻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선하지 않은 행이라고 하는가? 선하지 않은 몸으로 짓는 것이고 선하지 않은 입으로 짓는 것이며 선하지 않은 뜻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무기의 행이라고 하는가? 무기의 몸으로 짓는 것이고 무기의 입으로 첫는 것이며 무기의 뜻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배울 것이 남아 있는 행이라고 하는가? 몸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배울 것이 있음이고, 입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배울 것이 있음이고, 뜻으로 생각함이 배울 것이 있는 것이다. 무엇을 배울 것이 남이 있지 않은 행이라 하는가? 몸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배울 것이 없음이고, 입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배울 것이 없음이고, 뜻으로 생각하지 않음이 배울 것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배울 것이 남아 있지도 없지도 않은 행이라고 하는가? 유루(有漏)의 몸으로 움직이는 것이고, 유루의 입으로 움직이는 것이며 유루의 뜻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견도의 진리로 끊는 행이라고 하는가? 견고한 믿음과 견고한 법견인(法見忍)으로 여든여덟 가지의 번뇌와 상응하는 생각을 끊음을 말한다. 무엇을 사유로 끊는 행이라고 하는가? 믿음과 해탈과 견도의 진리로 사유에 도달하여 열 가지 번뇌와 상응하는 생각 및 오염된 몸으로 짓는 행, 입으로 짓는 행, 선한 유루의 행과 무기의 행을 끊음을 말한다. 무엇을 끊을 것이 없는 행이라고 하는가? 모든 무루의 행을 말한다. 무엇을 현세에 받는 과보라고 하는가? 만약 선한 행이나 악한 행을 짓는다면 (과보를) 금생에 받는 것이지 후세에 받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첫 번째 생에 받는 과보라고 하는가? 선한 행이나 악한 행을 함에 따라 뒤이어 첫 번째 생에 (과보를) 받는 것이지 다른 생에 받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후세에 받는 과보라고 하는가? 선한 행이나 악한 행을 함에 따라 두 번째에 혹은 세 번째, 네 번째에 혹은 (그러한 생을) 지나서 (과보를) 받는 것을 말한다.
028_0536_a_02L무엇을 즐거운 과보라고 하는가? 욕계에서의 선한 행, 색계에서부터 3선(禪)에서의 선한 행은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무엇을 괴로운 과보라고 하는가? 선하지 않은 행으로 받는 과보를 말한다. 무엇을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과보라고 하는가? 제4선(禪)의 선한 유루의 행동 및 무색계의 선한 유루의 행이 받는 과보를 말한다. 무엇을 흑흑보(黑黑報)라고 하는가? 선하지 않은 행은 흑흑보를 받는다. 무엇을 백백보(白白報)라고 하는가? 선한 유루의 행은 백백보를 받는다. 무엇을 잡스러운 과보[雜報]라고 하는가? 욕계의 선한 행이나 악한 행은 잡스러운 과보를 받는다. 무엇을 흑보도 백보도 아니며 과보가 없는 행이라고 하는가? 행이 다하여 3계의 누(漏)가 다하였을 때 무애도(無礙道)에서 무루의 사유를 굳건히 지킴을 말한다.
무엇을 반드시 과보를 받는 행이라고 하는가? 5역(逆)57)의 행은 반드시 현세보(現世報)ㆍ생보(生報)ㆍ후보(後報)에서 악한 과보를 받는다. 나머지 것들은 조건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 조건이 없고 사람이 없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지 않는다. 모든 유루행은 일부러 지으면 성숙해서 과보를 받고, 일부러 짓지 않으면 성숙하지 않아서 과보를 받지 않는다. 일부러 지어도 성숙하지 않고 과보도 받지 않는 세 가지 종류의 행이 있으니, 몸의 업으로 교업[敎業]58)과 무교업[無敎業]59)이 있고, 입의 업으로 교업과 무교업이 있으며, 뜻의 업으로 교업이 있다. 무엇을 교업의 행이라고 하는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것과 같다. 무엇을 무교업의 행이라고 하는가? 몸과 입으로 작의(作意)하여 나머지 다른 마음을 일으킬 때 (이것이) 항상 있어서 무교색(敎敎色)을 잃지 않는다. 선한 마음과 선하지 않은 마음에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무기의 마음에서는 무교색이 생겨나지 않는다. 어찌된 까닭인가? 무기심은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무기에 두 종류가 있다. 은몰(隱沒)60)과 불은몰(不隱沒)61)이 있다. 번뇌에 가려진 것을 은몰이라 하고, 가려지지 않은 것을 불은몰이라고 한다.
028_0536_b_02L무엇을 은몰무기법이라고 하는가? 욕계 가운데의 신사(身邪)62)와 변사(邊邪)63) 및 그와 상응하는 무명(無明)과 공유법(共有法), 색계ㆍ무색계의 모든 번뇌 및 색계의 몸ㆍ입의 행이다. 이를 은몰무기법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불은몰무기법이라고 하는가? 앉고 눕고 서고 움직이는 것과 기교(扶巧)와 보법(報法)과 변화심(變化心)과 허공과 비지연진(非智緣盡)이다. 이를 불은몰무기법이라고 말한다. 무교업(無敎業)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무루이고, 둘째는 정공(定共)이고, 셋째는 계율의(戒律儀)이다. 무엇을 무루계(無漏戒)라고 하는가? 바른 말ㆍ바른 업ㆍ바른 직업[正命]이다. 무엇을 정공계(定共戒)라고 하는가? 선정으로 욕심과 악한 법을 떠남을 얻은 것이다. 무엇을 계율의라고 하는가? 계를 받을 때에 선한 유루의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의 행(行)을 얻음을 말한다.
무엇을 세 종류의 율의를 얻는 것이라고 하는가? 모든 도(道)를 얻어 무루의 율의를 성취하는 것이며, 모든 선정을 얻어 정공(定共)의 율의를 성취하는 것이며, 욕계의 사람들이 계를 받아 계의 율의를 성취하는 것이다. 계의 율의(에 머무는) 사람은 처음에 교업[敎]을 지을 때 현재 눈앞의 무교업(無敎業)을 성취한다. 만약 (육신이) 다하여도 (계율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과거를 성취하는 것이다. 선정을 얻은 사람은 모든 과거ㆍ미래의 정공율의를 성취한다. 만약 선정에 들면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성취하며 무루율의(無漏律儀)가 미래의 모든 것을 성취한다. 만약 도에 들어 머문다면 현재 전을 성취한다. 만약 (육신이) 다하여도 (계율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과거를 성취한다. 율의 (에 머무는) 사람이 만약 두터운 악과 선하지 않음을 짖는다면 선하지 않은 교업과 무교업을 성취한다. 만약 두텁지 않은 악을 짓는다면 선하지 않은 교업을 성취하고, 무교업이 없다. 만약 악한 마음이 없어지면 교업과 무교업을 성취하지 못한다.
028_0536_c_02L불율의의 사람은 현재의 선하지 않은 무교업을 성취한다. 만약 (육신이) 다하여도 (계율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과거의 선하지 않은 무교업을 성취하는 것이다. 만약 두터운 선을 짓는다면 선한 교업과 무교업을 성취한다. 만약 두텁지 않은 선을 짓는다면 선한 교업을 성취하고, 무교가 없다. 만약 선한 마음이 없어지면 교업과 무교업을 성취하지 못한다. 만약 중간의 사람이거나, 두터운 선이나 선하지 않음을 짓는다면 선함과 선하지 않음의 교업과 무교업을 성취한다. 만약 두텁지 않은 선과 선하지 않음을 짖는다면 선한 교업을 성취하고, 무교가 없다. 만약 선한 마음과 선하지 않은 마음이 없어지면 교업과 무교업을 성취하지 못한다. 색계의 선한 마음을 얻으면 선정[禪]의 율의를 성취한다. 만약 (이 경지에서) 마음이 물러나면 선정의 율의를 성취하지 못한다. 모든 색계의 선한 마음 가운데서 율의는 마음과 상응하나, 안심(眼心)ㆍ이심(耳心)ㆍ신심(身心)ㆍ문혜(聞慧)와 죽을 때의 마음은 제외된다.
6지(地)의 무루심의 힘으로 무루율의를 성취한다. 무엇을 6지라고 하는가? 아직 선정[禪]에 도달하지 못한 경지, 초선(初禪)ㆍ중간의 선정[中禪]ㆍ2선(禪)ㆍ3선(禪)ㆍ4선(禪)이다. 6지의 마음에서 물러나면 무루율의를 성취하지 못한다. 두 가지 일로 무루율의를 잃는다. 만약 (위의 경지에서) 물러나거나 도과(道果)를 얻는 경우이다. 두 가지 일로 선정의 율의를 잃는다. 물러나거나 목숨이 끊어지는 경우이다. 세 가지 일로 계의 율의를 잃는다. 첫째는 계를 범하는 것이고, 둘째는 계를 버리는 것이며, 셋째는 사악 (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약 법이 멸하여 없어지는 때 어떤 사람은 계율의를 잃는다고 말하고, 혹은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은 잃지 않는다. 네 가지 일로 불율의를 잃는다. 첫째는 계를 받음이고, 둘째는 다시는 짓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일심으로 구함을 그치는 것이고, 넷째는 도를 얻는 것이다. 선한 색[善色]은 무엇을 잃는다고 하는가? 선근(善根)을 끊는다거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다. 나머지 오염된 심수법(心數法)64)은 번뇌를 끊을 때에 끊어진다.
다섯 종류의 결과가 있다. 첫째는 보과(報果)65)이고, 둘째는 소의과(所依果)66)이고, 셋째는 증상과(增上果)이고, 넷째는 신력과(身力果)67)이고, 다섯째는 해탈과(解說果)68)이다. 선한 유루의 법은 네 종류의 결과, 혹은 다섯 종류의 결과를 이룬다. 능히 번뇌를 끊을 수 있는 것을 다섯 증류의 결과라고 말한다. 번뇌를 끊을 수 없는 것을 네 종류의 결과라고 하며, 해탈과는 제외된다. 선하지 않은 법에는 네 종류의 결과가 있고, 해탈과는 제외된다. 무루법은 네 종류의 결과, 혹은 세 종류의 결과를 얻는다. 만약 번뇌를 끊을 수 있으면 네 종류의 결과를 얻고, 보과는 제외된다. 만약 번뇌를 끊을 수 없으면 세 종류의 결과만 얻는다. 보과와 해탈과는 제외된다. 무기법(無記法)은 세 종류의 결과만 있다. 보과와 해탈과는 제외된다.
028_0537_a_02L무엇을 보과라고 하는가? 선하지 않은 법과 선한 유루법은 보과를 얻는다. 무엇을 소의과라고 하는가? 선한 법과 선하지 않은 법과 무기법은 항상 행해져서 더욱 늘어나고 증가하여서 끝에 이르러(같은 종류의 결과를) 얻는다. 이것을 소의과라고 말한다. 무엇을 증상과라고 하는가?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간에 더불어 최상의 느낌[受]을 받는다. 이를 증상과라고 말한다. 무엇을 신력과라고 하는가? 몸으로 행위하고, 짓는 것 등이다. 이를 신력과라고 말한다. 무엇을 해탈과라고 하는가? 지혜로 번뇌를 없앤다. 이를 해탈과라고 말한다. 선근(善根)과 불선근(不善根)과 무기근(無記根)이 있다. 세 종류의 선근이 있으니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음이 없는 선근이다. 세 종류의 불선근이 있으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네 종류의 무기근이 있으니, 무기의 애착과 무기의 무명(無明)과 무기의 견해와 무기의 교만이다.
세 종류의 법이 있으니 선한 법, 선하지 않은 법, 무기법이다. 무엇을 선한 법이라고 하는가? 선한 몸과 구업(口業), 선한 마음[善心]과 마음과 상응하는 법[心相應法] 및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心不相應行法] 및 지연진(智緣盡)69)을 선한 법이라 한다. 무엇을 선하지 않은 법이라고 하는가? 선하지 않은 몸과 구업, 선하지 않은 마음[不善心]과 마음과 상응하는 법[心相應法] 및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心不相應行]을 선하지 않은 법이라 한다. 무엇을 무기법이라고 하는가? 무기의 몸과 구업, 무기의 마음과 마음과 상응하는 법[心相應法) 및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心不相應行]ㆍ허공(虛空)ㆍ비지연진(非智緣盡)70)을 무기법이라 한다.
술을 마시지 않고, 보시를 행하며, 공양하고, 존중하는 것 등은 선한 몸과 입으로 짓는 업에 속한다고 말한다. 술을 마시고, (다른 중생을) 두들겨 패고, 교만한 것 등은 선하지 않은 몸과 입으로 짓는 업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는 10업도(業道)에 속하지 않는다. 욕계의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은 욕계의 4대(大)로 짓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색계의 것도 이루어진다. 무엇을 4대로 짓는 것이라고 하는가? 만약 6지(地)71)에 의지하면, 즉 그 경지의 4대로 짓는 것이 된다. 만약 무색계에 태어나 이와 같이 본래 무루의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을 얻는다면, 즉 그 경지의 4대로 짓는 것이다. 세 종류의 목숨이 다하는 것이 있다. 목숨이 없어짐은 있으나 복은 없어지지 않은 것과 복이 없어짐은 있으나 목숨은 없어지지 않은 것과 복도 다하고 목숨도 없어진 것이다.
모든 유루의 법은 네 가지를 떠나 있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영원하지 않음[無常], ‘나’가 없음[無我], 즐거움이 없음[無樂]과 청정함이 없음[無淨]이다. 번뇌는 모두 새어 들어 온다. 어찌된 까닭인가? 모든 태어나는 곳에 나아가며 마음에 틈새가 있어 연달아 흘러들어 세계에 따라 흘러들기 때문에 이를 유루(有漏)라고 말한다. 3계(界)에는 백여덟 가지 번뇌가 있다. 98결(結)72)과 열 가지 묶임[十纏]이다. 이 번뇌는 어디에서 생기더라도 이를 유루법이라고 말한다. 또한 수음(受陰) 또는 번뇌처라고 이름한다. 따라서 이 가운데 두 종류의 5음(陰)이 있으니 유루와 무루이다. 수음의 모든 것은 유루이다.
무엇을 색음(色陰)이라고 하는가? 모든 4대로 만들어진 것과 12입(入)에서 의입(意入)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입(入)들과 법입(法入)에 포함되는 무교색(無敎色)73)을 색음이라고 부른다. 이 색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볼 수 있는 것[有見]과 볼 수 없는 것[無見]이다. 무엇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한 가지의 입(入), 즉 색입(色人)이다. 무엇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가? 아홉 가지의 입 및 법입에 포함되는 무교색이다. 다시 세 종류의 색이 있다. 볼 수 있으면서 대응하는 존재가 있는 것[有見有對]과 볼 수 없으면서 대응하는 존재가 있는 것[無見有對]과 볼 수도 없고 대응하는 존재도 없는 것[無見無對]이다. 색입은 볼 수 있으면서 대응하는 존재가 있는 것이고, 나머지 아홉 가지 입은 볼 수 없으면서 대응하는 존재가 있는 것이고. 법입의 무교색은 볼 수도 없으면서 대응하는 존재도 없는 것이다. 이를 색음이라고 말한다.
028_0537_c_02L무엇을 통음(痛陰)74)이라고 하는가? 느낌의 받아들임[受痛]은 여섯 가지 갱락(更樂)으로부터 생긴다. 이것에 두 가지의 느낌이 있다.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이다. 세 가지의 느낌이 있다.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네 가지의 느낌이 있다. 몸의 기(記)와 무기(無記), 마음의 기와 무기이다. 다섯 가지 느낌이 있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느낌이 그것이다. 여섯 가지의 느낌이 있다. 눈의 접촉에 의해 생긴 느낌[販更痛], 귀의 접촉에 의해 생긴 느낌, 코의 접촉에 의해 생긴 느낌, 혀의 접촉에 의해 생긴 느낌, 몸의 접촉에 의해 생긴 느낌, 생각의 접촉에 의해 생긴 느낌이다. 열여덟 가지의 느낌이 있다. 눈 등에 기쁨[喜]ㆍ즐거움[樂]ㆍ무덤덤함[護]75)이 있다. 서른여섯 가지의 느낌이 있다. 열여덟 가지 느낌 가운데 선함과 선하지 않음이 있다. 백여덟 가지의 느낌이 있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각각 서른여섯 가지가 있다. 하나하나의 중생은 한 순간에 무수한 느낌을 일으킨다. 이를 통음이라고 한다.
무엇을 상음(想陰)이라고 하는가? 뜻[意]이 갖가지와 반연하여서 일체의 법을 상상케 한다. 이것에 세 가지76)가 있으니 작은 것[小]ㆍ큰 것[大]ㆍ셀 수 없이 갖가지 바깥에서 들어온 것에 포섭되는 것이 있다. 이를 인연으로 하여 상상을 불러 일으키니, 이를 상음이라고 한다. 무엇을 행음(行陰)이라고 하는가? 유위법 가운데서 행하여 갖가지 법을 짓는 것을 말한다. 이 행음에 두 가지가 있다. 마음과 상응하는 법과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법이다. 무엇을 마음과 상응하는 법이라 하는가? 첫째는 사(思), 둘째는 갱락(更樂), 셋째는 기억[憶] 등의 모든 법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과 상응하는 법이라 한다. 무엇을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법이라 하는가? 첫째는 얻음[得],둘째는 무상정(無想定), 셋째는 멸진정(滅盡定)으로서 이것이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법이다. 이를 행음이라고 한다. 무엇을 식음(識陰)이라고 하는가? 푸르고, 붉고, 누렇고, 하얀 등의 모든 법을 분별하여 아는 것이다. 이 식(識)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 신식ㆍ의식이다.
무엇을 안식이라고 하는가? 눈이란 감각기관[眼情]이 색을 분별하여 의지하는 것이다.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의식이란 뜻의 감각기관[意情]이 법(法)을 분별하여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식음(識陰)이라고도 한다. 12입(入)77)은 안입(眼人)ㆍ이 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人)ㆍ의입(意入)의 여섯 가지가 6내입(內入)이고, 색깔ㆍ소리ㆍ향기ㆍ맛ㆍ미세하게 매끄러운(감촉)ㆍ법입(法入)의 여섯 가지가 5외입(外人)이다. 또한 안식에서부터 의식까지를 합쳐서 열여덟 가지를 이룬다. 4대(大)로 청정하게 만들어진 색으로 식의 인연이 되는 것을 눈이라고 이름한다. 이와 같이 4대로 청정하게 만들어진 소리ㆍ맛 향기ㆍ미세하게 매끄러운(감촉)으로 식의 인연이 되는 것을 귀ㆍ코ㆍ혀ㆍ몸이라고 한다.
028_0538_a_02L모든 안식의 대상이 되는 대상의 색에 긴 것ㆍ짧은 것ㆍ밝음ㆍ어두움ㆍ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거친 색[麤色]ㆍ미세한 색[細色]ㆍ허공에 두루 퍼져 있는 색ㆍ몸에 드러나는 색[身敎包]의 열두 가지 종류가 있다. 모든 이식의 대상이 되는 소리에 중생의 수많은 소리와 수많은 소리가 아닌 것이 있다. 모든 비식의 대상이 되는 향기에 좋은 향기, 나쁜 향기 등의 향기가 있다. 모든 설식의 대상이 되는 맛에 매운 맛ㆍ신맛ㆍ짠맛ㆍ쓴맛ㆍ달콤한 맛 등의 예순세 가지 종류의 맛이 있다. 모든 신식의 대상이 되는 것에 미세함 매끄러움ㆍ가벼움ㆍ무거움ㆍ견고함ㆍ부드러움ㆍ차가움ㆍ따뜻함ㆍ4대 등이 있다. 모든 의식의 대상이 되는 법을 일체의 법이라 한다. 5식(識)은 분별할 수 없으나 의식은 분별한다. 마음[心]ㆍ뜻[意]ㆍ식[識]은 차별이 없으나 말함에 있어서는 차별이 있다.
정(情:根)ㆍ진(塵:境)ㆍ식(識)이 합쳐져서 갱락(更樂)을 낳는다. 느낌 등의 10대지법(大地法)ㆍ10번뇌대지법(煩惱大池法)ㆍ10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을 함께 낳는다. 이 모든 법은 마음과 함께 생겨나고, 함께 조건이 되고, 함께 머물고, 함께 일어나고, 함께 소멸한다. 비유하자면 등불에서 밝음과 따뜻함이 함께 일어나고, 함께 머물고, 함께 사라지는 것과 같다. 【문】18지(持)의 몇은 선함이고, 몇은 선하지 않음이고, 몇은 무기(無記)인가? 【답】여덟 가지는 무기이고, 열 가지는 마땅히 분별이다. 색지(色持)ㆍ성지(聲持)ㆍ일곱 가지 식지(識持)ㆍ법지(法持)는 선함ㆍ선하지 않음ㆍ무기가 있다. 무엇을 선한 색[善色]이라 하는가? 선한 몸의 교색(敎色)이다. 무엇을 선하지 않은 색[不善色]이라 하는가? 선하지 않은 몸의 교색이다.
무엇을 무기색(無記色)이라 하는가? 선한 몸의 교색, 선하지 않은 몸의 교색을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색지를 무기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성진(聲塵)과 안식(眼識)은 선함, 선하지 않음, 무기가 있다. 무엇을 선함이라 하는가? 선한 기억과 상응하는 안식이다. 무엇을 선하지 않음[不善]이라 하는가? 선하지 않은 한 기억과 상응하는 안식이다. 무엇을 무기라고 하는가? 무기의 기억과 상응하는 안식이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ㆍ의식지(意識持), 법지(法持)는 혹은 선함, 선하지 않음, 무기가 있다. 무엇을 선함이라 하는가? 법지가 선한 신업(身業)과 구업(口業), 선한 통음(痛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 및 지연진(智緣盡)을 포섭한 것이다. 무엇을 선하지 않음이라 하는가? 법지가 선하지 않은 몸과 구업(口業), 선하지 않은 통음ㆍ상음ㆍ행음을 포섭한 것이다. 무엇을 무기라고 하는가? 법지가 무기의 통음ㆍ상음ㆍ행음 및 허공, 비지연진을 포섭한 것이다.
028_0538_b_02L【문】18지의 몇은 유루이고, 몇은 무루인가? 【답】18지에서 열다섯 가지는 유루이고,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이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의지ㆍ법지ㆍ의식지이다. 유루의 기억과 상응하는 의지는 유루라고 말한다. 무루의 기억과 상응하는 의지는 무루라고 말한다. 의식도 또한 이와 같다. 법지 가운데 유루의 신업ㆍ구업, 유루의 통음ㆍ상음ㆍ행음을 포섭한 것을 유루라고 말한다. 법지가 무루의 신업ㆍ구업, 무루의 통음ㆍ상음ㆍ행음 및 무위법(無爲法)을 포섭한 것을 무루라고 말한다. 【문】18지의 몇이 욕계에 묶여 있고, 몇이 색계에 묶여 있고, 몇이 무색계에 묶여 있는가? 【답】네 가지가 욕계에 묶여 있으니, 향(香)ㆍ미(味)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으로써 췌식처(揣食處)를 삼기 때문이다. 열네 가지는 마땅히 분별이다. 안지(眼持)는 욕계와 색계에 묶여 있다.
무엇을 욕계의 묶임이라고 하는가? 욕계는 4대조(大造)에 묶여 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색ㆍ소리ㆍ미세하고, 미끄러움은 욕계에 묶인다. 욕계는 4대조에 묶여 있다. 무엇을 색계가 안지(眼持)를 묶었다고 하는가? 색계는 4대조에 묶여 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색ㆍ소리ㆍ미세하고 미끄러움은 색계에 묶인다. 색계는 4대조에 묶여 있다. 안식은 욕계와 색계에 묶여 있다. 무엇을 욕계라고 하는가? 욕계의 기억과 상응하는 안식이다. 이식ㆍ(비식ㆍ설식) 신식도 이와 같다. 무엇을 색계라고 하는가? 색계의 기억과 상응하는 안식이다. 이식ㆍ(비식ㆍ설식) 신식도 이와 같다. 의지(意持)는 욕계에도 묶이고, 색계와 무색계에도 묶인다. 혹은 묶이지 않는다. 무엇을 욕계의 묶임이라고 하는가? 욕계의 기억과 상응하는 의지이다. 무엇을 색계의 묶임이라고 하는가? 색계의 기억과 상응하는 의지이다. 무엇을 무색계의 묶임이라고 하는가? 무색계의 기억과 상응하는 의지이다. 무엇을 묶이지 않음이라고 하는가? 무루의 기억과 상응하는 의지이다.
028_0538_c_02L의식지(意識持)도 역시 이와 같다. 법지는 욕계에 묶이고, 혹은 색계ㆍ무색계에 묶이고, 혹은 묶이지 않는다. 법지는 욕계에 묶인 몸과 구업(口業) 및 통음ㆍ상음ㆍ행음을 포섭한다. 이를 욕계의 묶임이라고 한다. 색계의 묶임이란 무엇인가? 법지는 색계에 묶인 신업ㆍ구업 및 통음ㆍ상음ㆍ행음을 포섭한다. 이를 색계의 묶임이라고 한다. 무엇을 무색계의 묶임이라 말하는가? 법지는 무색계에 묶인 신업ㆍ구업 및 통음ㆍ상음ㆍ행음을 포섭한다. 이를 무색계의 묶임이라고 한다. 무엇을 묶이지 않음이라 하는가? 법지는 무루의 신업 구업 및 무루의 통음ㆍ상음ㆍ행음 및 무위법을 포섭한다. 이를 묶이지 않음이라고 한다. 【문】8지(持)의 몇은 내입(內入)에 포섭되고, 몇은 외입(外人)에 포섭되는가? 【답】눈ㆍ귀ㆍ혀ㆍ몸ㆍ뜻ㆍ안식지ㆍ이식지ㆍ비식지ㆍ설식지ㆍ신식지ㆍ의식지의 열두 가지는 내입에 포섭되고, 색지ㆍ성지ㆍ향지ㆍ미지ㆍ미세하고 매끄러움ㆍ법지의 여섯 가지는 6외입에 포섭된다.
【문】몇이 각과 관이 있고(有學有觀], 몇이 각은 있으나 관이 없고[有覺無觀], 몇이 각도 관도 없는가[無覺無觀]? 【답】5정(情)과 5진(塵)의 열 가지는 각(覺)78)과 관(觀)79)이 없다. 5식(識)은 각과 관이 있고, 세 가지는 마땅히 분별이다. 의지(意持)는 각과 관이 있거나 각은 있으나 관이 없거나, 혹은 각도 관도 없다. 무엇을 각과 관이 있음이라 하는가? 욕계의 초선은 각과 관이 있고, 중간의 선정은 각은 있으나 관이 없고, 상지(上地)는 각도 관도 없다. 의식도 역시 이와 같다. 법지에 포섭된 신업과 구업과 모든 상응하지 않는 행과 무위법은 각과 관이 없고, 나머지는 의지와 같다. 【문】몇은 공연(共緣)80)이고, 몇은 불공연(不共緣)81)인가? 【답】일곱 가지 심지(心持)는 공연이다. 어찌된 까닭인가? 스스로의 대상을 조건으로 삼기 때문이다. 열 가지인 5정, 5진은 불공연이다. 법지는 마땅히 분별이다. 법지에 포섭된 신업과 구업과 모든 상응하지 않는 행과 무위법은 불공연이고, 나머지는 공연이다.
028_0539_a_02L【문】18지(持)의 몇은 수(受)82)이고, 몇은 불수(不受)83)인가? 【답】9지84)의 정근(情根)이 합해져서 만약 현재를 이루면 이는 수이다. 그 가운데서 심법과 심수법이 의지하여 머문다. 과거와 미래를 이루는 것은 불수이다. 그것에는 심법과 심수법이 의지하여 머물지 않는다. 성지(聲持)ㆍ7식지(食持)ㆍ법지(法持)는 불수이다. 심법과 심수법이 의지하여 머물지 않는다. 【문】18지의 몇은 유위이고, 몇은 무위인가? 【답】열일곱 가지는 유위이고, 법지는 마땅히 분별하면 유위, 무위이다. 무엇을 유위라고 하는가? 법지에 포섭된 신업과 구업과 통음ㆍ상음ㆍ행음은 유위라고 말한다. 지연진ㆍ비지연진 허공은 무위라고 말한다.
모든 유위법은 세력이 없기에 다른 세력을 원인으로하여 더불어 생긴다. 이 모든 법은 일어남[起]ㆍ머묾[住]ㆍ늙음[老]ㆍ영원하지 않음[無常]의 네 가지 모습이 있다. 【문】만약 네 가지 모습이 있다면 여기에는 마땅히 다시 네 가지 모습이 있지 않는가? 【답】다시 네 가지 모습이 있어 그 모습 가운데서 다른 네 가지 모습과 더불어 생기하나니, 생겨남을 생겨남으로 하고, 머묾을 머묾으로 하고, 늙음을 늙음으로 하고, 영원하지 않음을 영원하지 않음으로 한다. 【문】만약 그렇다면 끝이 없는 것이 아닌가? 【답】전전(展轉)함이 자신의 모습이다. 모든 행의 법[行法]에는 마음과 상응하는 행의 법과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의 두 가지가 있다.
028_0539_b_02L무엇을 마음과 상응하는 행의 법이라 하는가? 통(痛)ㆍ상(想)ㆍ사(思)ㆍ갱락(更樂)ㆍ기억[憶]85)ㆍ욕(欲)ㆍ해탈ㆍ믿음ㆍ정진(精進)ㆍ염(念)ㆍ선정ㆍ지혜ㆍ각(覺)ㆍ관(觀)ㆍ사행(邪行)ㆍ불사행(不邪行)ㆍ선근ㆍ불선근ㆍ무기근, 모든 사(使)ㆍ뇌(惱)ㆍ결박에 묶인 모든 지혜의 이와 같은 갖가지 마음과 상응하는 법을 마음과 상응하는 행의 법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이라 하는가? 얻음[得]ㆍ태어남[生] 머묾[住]ㆍ늙음[老]ㆍ영원하지 않음[無常]ㆍ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ㆍ무상처의 갖가지 지혜ㆍ각ㆍ관ㆍ사행ㆍ불사행ㆍ선근ㆍ불선근ㆍ무기근ㆍ모든 사ㆍ번뇌ㆍ결박에 묶인 모든 지혜의 이와 같은 갖가지 법을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이라고 말한다. 인연(因緣)ㆍ차제연(次第緣)ㆍ연연(緣綠)ㆍ증상연(增上緣)이 있다. 모든 유위법은 이 네 가지 연(緣)으로부터 생겨난다. 무엇을 인연이라고 하는가? 다섯 가지 원인[因]인 상응인(相應因)ㆍ공유인(共有因)ㆍ자연인(自然因)86)ㆍ변인(遍因)ㆍ보인(報因)87)을 인연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차제연이라고 하는가? 모든 심법과 심수법(心數法) 가운데 이 법이 멸하면 이 법이 생기는 것을 말하여 차제연이라고 한다. 무엇을 연연이라고 하는가? 대상[塵]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심법과 심수법이 생기는 것을 말하여 연연이라고 한다. 무엇을 증상연이라고 하는가? 모든 만물이 서로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을 말하여 증상연이라고 한다. 상응인ㆍ공유인ㆍ자연인ㆍ변인ㆍ보인ㆍ소작인(所作因)의 여섯 가지 원인[因]이 있다. 무엇을 상응인이라고 하는가? 심법은 모든 심수법의 원인이고, 모든 심수법은 심법의 원인이다. 이를 상응인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공유인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은 각각 서로 짝이 되니 심법은 모든 심수법의 원인이고, 모든 심수법은 심법의 원인이다. 또한 4대(大)와 더불어 생기하는 것이 공유인이다. (4대로) 이루어진 색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이고, 심법과 심수법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의 원인이다. 무엇을 자연인이라고 하는가? 먼저 선함을 낳으면 뒤에 선함을 낳고, 먼저 선하지 않음을 낳으면 뒤에 선하지 않음을 낳고, 먼저 무기(無記)를 낳으면 뒤에 무기를 낳는 것을 말한다.
028_0539_c_02L무엇을 변인이라고 하는가? 유신견(有身見)으로 ‘나’를 생각하여 ‘나’는 영원히 존재한다는 견해를 말한다. 모든 음(陰)들의 느낌[受]은 영원함 나[我]ㆍ즐거움ㆍ청정함 등이 있다고 하여 모든 번뇌를 낳는다. 무엇을 보인이라고 하는가? 선함은 즐거운 과보를 낳고, 선하지 않음은 괴로운 과보를 낳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소작인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들은 각각 서로 장애가 되지 않고, 잠시 머물지 않으며, 영원히 머물지도 않는다. 과보의 심법에 다섯 가지 원인이 있으나 변인은 제외한다. 심수법도 이와 같다. 모든 번뇌에 다섯 가지 원인이 있으나 보인은 제외한다. 과보의 색법 및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을 낳는 것에 네 가지 원인이 있으나 상응인ㆍ변인은 제외한다. 염오의 색 및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에 네 가지 원인이 있으나 상응인ㆍ보인은 제외한다. 나머지 심수법에 네 가지 원인이 있으나 보인ㆍ변인은 제외한다. 나머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에 두 가지 원인 또는 세 가지 원인이 있으나 상응인ㆍ변인ㆍ보인은 제외한다. 또는 자연인을 제외하고 또는 처음 (의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무루의 마음과 상응하는 법에 세 가지 원인이 있으나 자연인 보인ㆍ변인은 제외한다. 이 무루의 심법 가운데 색 및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을 낳는 것에 두 가지 원인이 있으니 공인, 소작인이다. 심법ㆍ심수법은 네 가지 연으로부터 생겨난다. 무상정ㆍ멸진정은 연연을 제외한 세 가지 연으로부터 생겨난다.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행의 법 및 모든 색법은 차제연ㆍ연연을 제외한 두 가지 연으로부터 생겨난다. 한 가지 연으로부터 생겨나는 법은 없다. 나머지 법들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나의 법은 세 가지 것[三事]88)이 모여서 갱락(更樂)을 더불어 낳는다. 통(痛)ㆍ상(想)ㆍ사(思)ㆍ기억[憶]ㆍ욕(欲)ㆍ해탈ㆍ믿음ㆍ정진(精進)ㆍ염(念)ㆍ선정ㆍ지혜ㆍ무덤덤함은 마음과 더불어 일어나고, 합쳐져서 성취된다. 이 모든 법은 마음과 더불어 갖추어진다. 세 가지 것이 모여서 갱락이 된다.
몸과 마음이 감수 작용하는 것은 통이고, 반연하여 대상을 분별하는 식은 상이고, 움직임은 사이고, 마음이 잊지 않음은 기억이고, (무엇인가를) 짓고자 함은 욕망이고, 마음의 걸림이 없는 것이 해탈이고, 믿음이고, 갖가지 일을 부지런히 함이 정진이고, 수승한 대상을 잊지 않음이 염이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이 선정이고, 법을 분별함이 지혜이고, 마음이 집착하지 않음이 무덤덤함이다. 일을 반연하여서 일어나고, 심법과 상응해서 모든 법의 성취를 얻는다. 통(痛)ㆍ상(想)ㆍ사(思)ㆍ갱락(更樂)ㆍ기억[憶]ㆍ욕(欲)ㆍ해탈ㆍ염(念)ㆍ선정ㆍ지혜, 이를 10대지법(大地法)이라고 한다. 어찌된 까닭인가? 모든 마음과 생기는 것이다. 무엇을 상응이라 하는가? 더불어 한 가지 대상에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게 작용한다. 이를 상응이라고 말한다. 10번뇌대지법(煩惱大池法)은 모든 선하지 않은 한 마음 가운데서 생겨난다. (이들은) 믿지 않을[不信]ㆍ게으름[懈怠]ㆍ잊음[忘]ㆍ마음의 산란함[心亂]ㆍ암둔(闇鈍)89)ㆍ삿된 기억ㆍ삿된 해탈ㆍ마음의 들뜸[調]90)ㆍ무명ㆍ삿된 행동이다.
028_0540_a_02L무엇을 믿지 않음이라 하는가? 마음이 법에 들지 않음이다. 무엇을 게으름이라 하는가? 마음이 작용을 함에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다. 무엇을 잊음이라 하는가? 정신집중을 하지 않음이다. 무엇을 마음의 산란함이라 하는가?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은 것이다. 무엇을 암둔이라 하는가? 일에 대해 밝지 못함이다. 무엇을 삿된 기억이라 하는가? 도가 아닌 것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다. 무엇을 삿된 해탈이라 하는가? 전도(轉倒)된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마음의 들뜸이라고 하는가? 가슴이 뛰어 진정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무명이라 하는가? 3계(界) 가운데 지혜가 없는 것이다. 무엇을 삿된 행동이라 하는가? 선한 법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10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 있으니 성냄ㆍ우파나(優波那)91)ㆍ불어(不語)92)ㆍ파다사(波多舍)93)ㆍ마야(摩夜)94)ㆍ사치(舍恥)95)ㆍ아낌[慳]ㆍ질투[嫉]ㆍ교만[慢]ㆍ큰 교만[大慢]이다.
무엇을 성냄이라 하는가? 마음에서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다. 무엇을 우파나라 하는가? 마음에 독을 품고 머무는 것이다. 무엇을 불어라고 하는가? 죄지은 일을 덮어두고 감추는 것이다. 무엇을 파다사라 하는가? 법이 아닌 일을 속히 받아 지니고 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마야라 하는가? 몸과 입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무엇을 사치라 하는가? 마음의 거스림을 거두어 두는 것이다. 무엇을 아낌이라 하는가? 마음으로 애석해 하여 없어짐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무엇을 질투라고 하는가?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을 보면 성내는 것이다. 무엇을 교만이라 하는가? 나보다 비천한 사람을 보면 내가 더 뛰어나다고 하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나와 같다고 여기는 것이다. 무엇을 큰 교만이라 하는가? 평등한 무리 가운데서는 내가 크다고 하고, 큰 무리 가운데서는 내가 가장 크다고 하는 것이다. 이 열 가지 번뇌지법은 의식과 상응하고, 5식(識)과는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소번뇌지법이라고 말한다. 이 가운데서 일곱 가지 번뇌는 욕계에 묶여 있고, 사치는 색계 및 범천에, 그리고 교만과 큰 교만은 3계에 묶여 있다.
10선대지법(善大地法)은 탐내지 않음ㆍ성내지 않음ㆍ믿음ㆍ편안함[猗]96)ㆍ게으르지 않음ㆍ정진ㆍ무덤덤함ㆍ해치지 않음[不嬈惱]ㆍ(부끄러워함ㆍ뉘우침)이다. 무엇을 탐내지 않음이라 하는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재물에 대해서 욕심내지 않고, 이익을 구하지도 않는 것이다. 무엇을 성내지 않음이라 하는가? 사람들과 가까이하거나 가까이하지 않거나 간에 성냄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믿음이라 하는가? 참되게 알아 마음이 청정한 것이다. 무엇을 편안함이라 하는가? 마음의 선함이 무거움을 떠나서 가볍고, 차분함을 얻는 것이다. 무엇을 게으르지 않음이라 하는가? 마음이 선한 법에 묶여 있는 것이다. 무엇을 정진이라 하는가? 선한 법을 가까이하여 습득하는 것이다. 무엇을 무덤덤함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떠나서 머무는 것이다. 무엇을 해치지 않음이라고 하는가? 모든 중생 가운데서 몸ㆍ입ㆍ뜻으로 악을 범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부끄러워함이라 하는가? 스스로 지은 악한 일을 수치스러워하는 것이다. 무엇을 뉘우침이라 하는가? 사람들 가운데서 옳지 않은 일을 지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이 10선법(善法)은 모든 선한 마음과 상응하기 때문에 대지법(大地法)이라고 말한다.
028_0540_b_02L3처(處)란 사랑하는 곳, 사랑하지 않는 곳, 중간의 곳[中處]이다. 사랑하는 곳이란 음탕한 욕심[婬欲]ㆍ아까워하는 마음ㆍ탐욕 애석해 하는 등의 모든 번뇌를 낳는다. 사랑하지 않는 곳이란 성법ㆍ투쟁ㆍ질투 등의 모든 번뇌를 낳는다. 중간의 곳이란 어리석음ㆍ교만 등의 모든 번뇌를 낳는다. 모든 결사(結使), 번뇌는 3독(毒)97)에 속하는 것이다. 어찌된 까닭인가? 세 가지 불선근(不善根)이 있어 모든 결사와 번뇌는 이 3독이 낳는다. 능히 세 가지 선근을 끊게 하고, 3계의 중생들을 번뇌로 산란케 하기 때문에 3독에 속하는 것이다.
12인연(因緣)이란 무명(無明)ㆍ행(行)ㆍ식(識)ㆍ명색(名色)ㆍ6입(入) 갱락(更樂)ㆍ통(痛)ㆍ애(愛)ㆍ수(受)ㆍ유(有)ㆍ생(生)ㆍ노사(老死)이다. 이 12인연에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이고, 둘째는 업이고, 셋째는 괴로움[苦]이다. 세 가지인 무명ㆍ애ㆍ수는 번뇌이다. 두 가지인 행 및 유는 업이다. 일곱 가지인 식ㆍ명색ㆍ6입ㆍ갱락ㆍ통ㆍ생ㆍ노사는 괴로움이다. 두 가지는 과거에 속하고, 두 가지는 미래에 속하며, 여덟 가지는 현재에 속한다. 모든 번뇌는 업의 원인이고, 업은 괴로움의 원인이고, 괴로움은 번뇌의 원인이고, 번뇌는 번뇌의 원인이고, 번뇌는 업의 원인이고, 업은 괴로움의 원인이고, 괴로움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러한 종류가 차례로 일어난다.
028_0540_c_02L과거의 무명과 모든 번뇌가 상응하는 것이 무명이다. 이를 반연하여 업을 짓는다. 업을 지으면 세간의 과보를 짓는다. 이를 행이라고 말한다. 저 행의 인연에서 오염된 마음이 몸이라는 감각기관[身根]을 분별하는 식을 얻는다. 비유하자면 송아지가 어미 소를 인식하는 것이 식이다. 이 식은 4무색음(無色陰)을 함께 낳고, 또한 상속하여 색을 낳는다. 이를 명색이라고 한다. 눈 등에 의지하는 감각기관과 대상이 6입이다. 감각기관[情]ㆍ대상[塵]ㆍ마음이 화합한 것이 갱락이다. 갱락이 생기하여 감수작용을 하는 것이 통이고, 통에 집착하는 것이 애이다. 갈구하여서 근심스럽고 수고로운 것이 수이다. 근심하여서 업을 지음이 유이고, 미래의 과보가 생이고, 생에 한없는 괴로움을 일으키는 것이 노사이다. 또한 무명은 네 가지 진리[四諦]를 알지 못하고, 내법(內法)ㆍ외법(外法), 과거ㆍ미래ㆍ현재, 부처님ㆍ부처님의 가르침ㆍ가르침을 따르는 무리, 인연법의 이와 같은 갖가지 참된 법을 알지 못한다. 이를 무명이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세 가지 행동을 하니, 유덕행(有德行)ㆍ무덕행(無德行)ㆍ부동행(不動行)이다.
무엇을 유덕행이라 하는가? 좋은 과보를 얻는 행등을 말한다. 무엇을 무덕행이라 하는가? 나쁜 과보를 얻는 행동을 말한다. 무엇을 부동행이라 하는가?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나는 행동을 말한다. 또한 보시ㆍ지계ㆍ선정이 있다. 무엇을 보시라고 하는가? 두 가지 보시가 있다. 첫째는 재물을 보시하는 것[財布施]이고, 둘째는 진리의 가르침을 보시하는 것[法布施]이다. 다섯 가지 계율이 있다. 만약 계율을 받으면 끝까지 청정하고, 악한 마음의 때[垢]를 제거하며, 항상 정신을 (바르게) 지키고, 세간의 과보를 구하지 않는다. 선정이란 몸의 청정하지 않음을 관하는 법[不浮觀], 수식관(數息觀) 등이다. 뜻이 모든 유루의 선한 선정의 법에 있으면 이는 유덕행이다. 무엇을 무덕행이라 하는가? 3불선근(不善根), 10불선도(不善道) 등의 갖가지 죄를 짓는 것을 무덕행이라 말한다. 무엇을 부동행이라 하는가? 초선(初禪)에서부터 유상무상정(有想無想定)까지를 부동행이라 말한다. 세 가지 인연에서 유루의 식이 첫 번째의 일곱 가지 유[七有]를 받는다. 이를 식이라고 한다. 식으로부터 명색이 있다. 통음(痛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을 명(名)이라 하고, 4대 및 (4대가) 만든 색을 색이라 한다. 이 둘을 합하여 명색이라고 한다. 명색은 6입을 낳는다. 6입은 갱락을 낳는다. 갱락에 여섯 가지 종류가 있다. 두 가지는 몸과 뜻이 일으키는 것으로 대할 것이 있는 것[有對]98)과 증어(增語)99)이다. 6식이 분별하기 때문에 여섯 가지의 갱락이 있다. 갱락은 애착[愛]과 애착하지 않음[不愛]과 애착도 아니고 애착하지 않음도 아닌 것[不愛不不愛]을 낳는다.
028_0541_a_02L세 가지 느낌[痛]이 있다. 괴로운 느낌ㆍ즐거운 느낌ㆍ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다. 무엇을 괴로운 느낌이라 하는가? 성법의 번뇌가 시킨 바이다. 무엇을 즐거운 느낌이라 하는가? 욕심의 번뇌가 시킨 바이다. 무엇을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라 하는가? 무명의 번뇌가 시킨 바이다. 즐거움을 일으키고 즐거움에 머물고, 즐겁지 않음이 없어진 것을 즐거운 느낌이라 말한다. 괴로움을 일으키고 괴로움에 머물고, 괴롭지 않음이 없어진 것을 괴로운 느낌이라 말한다. 알지 못할 때는 즐겁지 않고 알 때는 즐거움인 것을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라 말한다. 세 가지 갈애(渴愛)가 있다. 욕계의 갈애ㆍ색계의 갈애ㆍ무색계의 갈애이다. 갈구하여도 만족함이 없는 생각이 갈애이다. 네 가지 수(受)100)를 낳으니 욕수(欲受)101)ㆍ견수(見受)102)ㆍ계수(戒受)103)ㆍ아수(我受)104)이다. 욕계에 묶인 열두 가지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번뇌를 욕수라고 말한다. 네 가지 삿된 견해를 견수라고 말한다. 외도의 계율을 지키면서 도를 구한다면 이를 계수라고 말한다. 색계ㆍ무색계에 묶인 스물네 가지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번뇌를 아수라고 말한다. 네 가지 취함은 모든 결사(結使)의 업처를 낳는다.
세 가지 유(有)가 있으니 욕유ㆍ색유ㆍ무색유이다. 유가 생겨나서 5음을 얻는다. 이를 생(生)이라고 말한다. 행동이 쇠락하고 오랜 시간이 흘러간 것이 늙음[老]이다. 늙음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차츰차츰 약해지는 늙음이고, 둘째는 나이가 들어감에 생기는 늙음이다. 두 가지 죽음이 있다. 자살과 타살의 죽음이다. 수심(愁心)ㆍ근심[憂]ㆍ슬픈 통곡[悲哭]ㆍ괴로움ㆍ번뇌를 얻는다. 무엇을 수심이라 하는가? 필요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일이 다가와 마음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을 수심이라 말한다. 무엇을 슬픈 통곡이라 하는가? 갖가지통곡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슬픔이라 한다. 무엇을 괴로움이라 하는가? 몸의 번뇌와 괴로움을 괴로움이라 말한다. 무엇을 근심이라 하는가? 마음의 괴로움을 근심이라 말한다. 무엇을 번뇌라 하는가? 현의 관리에게 수재ㆍ화재ㆍ도적 등의 갖가지 급한 일 및 다른 일들이 생기는 것을 번뇌라 말한다. 이와 같은 한없는 괴로움의 쌓임은 이 무명 등의 인연이다. 이 인연을 다 없애면 모든 과보가 다하고, 이와 같은 한없는 괴로움의 쌓임도 없어진다.
028_0541_b_02L여섯 가지가 합쳐져서 사람의 몸이 얻어진다. 무엇을 여섯 가지라 하는가? 4대(大)와 공(空)ㆍ식(識)이다. (4대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이다. (지ㆍ수ㆍ화의) 3대에는 색이 있다. 지ㆍ수ㆍ화에는 무게, 길고 짧음, 거칠고 미세함이 있다. 풍에는 풍 한 가지 뿐이다. 4대는 항상 화합하여 차별이 없다. 견고한 모습은 지 (의 특징)이고, 축축한 모습은 수 (의 특징)이고, 뜨거운 모습은 화(의 특징)이고, 움직이는 모습은 풍(의 특징)이다. 바깥의 4대가 내부 4대종을 이룬다. 색 가운데 공(空)이 있어, 안식(眼識)을 반연하니 내외(內外)가 있다. 이를 공종(空種)이라 말한다. 5식 및 유루의 의식을 식종(識種)이라 말한다. 세계를 낳는 것은 여섯 가지이다. 견고하고 높은 것이 지이고, 수는 물기가 넉넉하고, 화는 익힌 냄새를 제거한다. 풍은 움직임으로, 안고 일어나는 동작이다. 태어나고 자람은 공을 원인으로 하고, 음식을 소화시킴은 풍이 지니다가 제거하며, 식의 힘으로 수명이 있다. 이것이 사람이다.
음탕한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마음과 상응하는 것을 번뇌라고도 하며 결박(詰縛)105)이라고도 한다. 이를 제거하는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억제함[制]이고, 둘째는 제거함[除]이며, 셋째는 지혜로 끊는 것이다. 무엇을 억제함이라 하는가? 만약 무루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계율을 지키는 것과 사유로써 음탕한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물리쳐 (이들을) 받지 않는 것을 억제함이라 말한다. 무엇을 제거함이라 하는가? 선정을 얻어 음탕한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 선하지 않은 법을 떠나는 것을 제거함이라 말한다. 무엇을 지혜로 끊음이라 하는가? 깨달음의 뜻으로 괴로움과 집착[苦習]을 반연하는 것을 끊는 것을 끊음이라 말한다. 만약 억제함이나 제거함의 경우라면 어떤 때는 청정하고 어떤 때는 청정하지 않으나 무루의 지혜로 끊는다면 이를 청정하다고 말한다. 스물두 가지 근(根)은 모든 외입(外入)의 남근(男根)ㆍ여근(女根)ㆍ명근(命根)ㆍ고근(苦根)ㆍ낙근(樂根)ㆍ우근(憂根)ㆍ희근(喜根)ㆍ호근(護根)ㆍ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ㆍ미지근(未知根)ㆍ이지근(已知根)ㆍ대지근(大知根)106)과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내입(內入)의 6근이다.
028_0541_c_02L남자의 모습과 남자라는 인식을 남근이라 말한다. 여자의 모습과 여자라는 인식을 여근이라 말한다. 3계 가운데 살아가는 모습을 명근이라 말한다. 6식(識)과 상응하는 즐거운 느낌을 낙근이라 말한다. 5식과 상응하는 괴로운 느낌을 고근이라 말한다. 의식과 상응하는 즐거운 느낌을 희근이라 말한다. 의식과 상응하는 괴로운 느낌을 우근이라 말한다. 의식과 상응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호근이라 말한다. 모든 선법 가운데 믿음을 신근(信根)이라 말한다. 정진근ㆍ염근ㆍ정근ㆍ혜근은 이와 같다. 견고한 믿음과 견고한 법의 도에 속하는 무루의 아홉 가지 근(根)을 미지근이라 하고 신해탈(信解脫)과 견도(見到)107)의 도에 속하는 무루의 아홉 가지 근을 이지근이라 하며 무학도(無學道)에 속하는 무루의 아홉 가지 근을 대지근이라 한다. 무엇을 근의 뜻으로 삼는가? 힘이 있고, 이익이 있는 것을 근이라고 말한다. 6정(情)과 남근ㆍ여근ㆍ명근의 아홉 가지 근은 세계 가운데 힘이 있고, 이익이 있다. 다섯 가지 느낌의 근[五痛根]은 번뇌를 낳는 힘이 있고, 이익이 있다. 신근 등의 다섯 가지 근은 선법 가운데서 힘이 있고, 이익이 있다. 세 가지 무루의 근은 도 가운데서 힘이 있고, 이익이 있다. 도를 얻기 때문이다. 모든 근은 각각 힘이 있고, 이익이 있다.
스물두 가지 근의 몇은 욕계에 묶이고, 몇은 색계ㆍ무색계에 묶이고, 몇은 묶이지 않는가? 네 가지 근 즉, 남근ㆍ여근ㆍ우근ㆍ고근은 욕계에 묶인다. 다섯 가지 근 즉, 안근ㆍ이근ㆍ비근ㆍ설근ㆍ신근(身根)은 색계에 묶인다. 유루의 희근ㆍ낙근은 욕계와 색계에 묶인다. 유루의 호근ㆍ의근ㆍ명근과 신근 등의 다섯 가지 근의 모든 것은 3계에 묶인다. 무루의 의근ㆍ호근ㆍ희근ㆍ낙근과 신근 등의 다섯 가지 근은 묶이지 않는다. 이들 아홉 가지 근이 합쳐진 것이 세 가지 무루근 즉, 미지근ㆍ이지근ㆍ대지근이다. 스물두 가지 근의 몇은 수(受)이고, 몇은 불수(不受)인가? 낙근 등의 다섯 가지 근과 신근 등의 다섯 가지 근, 모든 무루근은 불수이고, 나머지 다른 근은 혹은 수이고, 혹은 불수이다. 스물두 가지 근의 몇은 선함이고, 몇은 선하지 않음이고, 몇은 무기(無記)인가? 신근 등의 다섯 가지와 세 가지 무루근의 여덟 가지 근은 선함이고, 안근 등의 다섯 가지 근과 남근ㆍ여근ㆍ명근의 여덟 가지는 무기근이다. 여섯 가지를 마땅히 분별하면 의근과 낙근 등의 다섯 가지 통근은 어느 때는 선함이고, 어느 때는 선하지 않음이며, 어느 때는 무기이다. 스물두 가지 근의 몇은 유루이고, 몇은 무루인가? 신근 등의 다섯 가지와 낙근ㆍ희근ㆍ호근ㆍ의근은 어느 때는 유루이고, 어느 때는 무루이다. 뒤의 세 가지 근은 오로지 무루이다. 열 가지 근인 안근ㆍ이근ㆍ비근ㆍ설근 신근ㆍ남근ㆍ여근ㆍ명근ㆍ우근ㆍ고근은 유루이다.
028_0542_a_02L(태생, 난생, 습생의) 세 가지 태어남은 최초에는 두 가지 근인 신근 및 명근을 얻는다. 화생은 때에 따라서 여섯 가지ㆍ일곱 가지ㆍ여덟 가지가 된다. 무형(無形)은 여섯 가지이고, 하나의 형[一形]은 일곱 가지이며, 형(形)은 안근 등의 다섯 가지 큰 및 남근ㆍ여근ㆍ명근의 여덟 가지이다. 나머지 근들은 차례로 얻는다. 색계 가운데서는 최초에 6근과 5정(情), 명근을 얻는다. 무색계 가운데서는 최초에 한 가지인 명근만을 얻는다. 욕계의 무기심(無記心)에서 점차 명(命)을 다하면 네 가지108)를 버리고 혹은, 어느 때는 여덟 가지109), 어느 때는 아홉 가지110), 어느 때는 열 가지111)를 버린다. 만약 선심(善心)에서 죽는다면 아홉 가지112), 혹은 열세 가지, 혹은 열네 가지, 혹은 열다섯 가지를 버린다. 스물두 가지 근의 몇은 진리를 보는 것으로 끊고, 몇은 사유로 끊고, 몇은 끊지 못하는가? 네 가지 근 즉, 의근ㆍ낙근ㆍ희근ㆍ호근은 어느 때는 진리를 보는 것으로 끊고, 어느 때는 사유로 끊고, 어느 때는 끊지 못한다. 세 가지 무루근은 끊지 못한다. 나머지 근들은 사유로 끊는다.
아흔여덟 가지 사(使)113)는 두 가지 즉, 어느 때는 진리를 보는 것으로 끊고, 어느 때는 사유로 끊는다. 스물여덟 가지114)는 견도에 의해 괴로움을 끊는 것이도[見苦斷], 열아홉 가지115)는 견도에 의해 집착을 끊는 것이며[見習斷]116), 열아홉 가지117)는 견도에 의해 집착이 다하여 끊는 것이고[見盡斷]118), 스물두 가지119)는 견도에 의해 끊는다[見道斷]. 열 가지는 사유로 끊는다. 욕계에 묶인 괴로움을 견도에 의해 끊는 것은 열 가지 사(使)이고, 집착을 견도에 의해 끊는 것은 일곱 가지 사(使)이고, 견도에 의해 집착이 다하여 끊는 것은 일곱 가지 사(使)이고, 견도에 의해 끊는 것은 여덟 가지 사(使)이고, 사유로 끊는 것은 네 가지 사(使)이다. 이 서른여섯 가지는 욕계에 묶여 있다. 성법을 제외한 남아 있는 나머지 결사의 색계와 무색계 가운데서 각각 서른한 가지를 끊는다. 대략 말하자면 실제로는 신사(身邪)120)ㆍ변사(邊邪)121)ㆍ사견(邪見)122)ㆍ견도(見盜)123)ㆍ계도(戒盜)124)ㆍ의심ㆍ애착[愛]ㆍ성냄[恚]ㆍ교만[慢]ㆍ무명의 열 가지 사(使)이다.
028_0542_b_02L무엇을 신사(身使)라 하는가? 5음(陰) 가운데서 ‘나’가 있다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이러한 견해를 신사라고 말한다. 무엇을 변사(邊邪)라 하는가? 세계는 끝이 있다거나 없다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이러한 견해를 변사라고 말한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諦]ㆍ인연ㆍ과보가 없다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이러한 견해를 사견이라 말한다. 유루법 가운데서 항상 제일이라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이러한 견해를 견도라고 말한다. 청정하지 않은 인연 가운데서 청정한 도를 구하는 이러한 견해를 계도라고 말한다. 아직 도를 얻지 못하고 마음이 어리석어서 옳다, 옳지 못하다, 있다, 있지 않다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의심하는 어리석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모든 법 가운데서 욕심으로 집착하는 것을 애착이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마음 가운데서 대하기를 바라지 않으나 마음은 분노로 이는 것을 성냄이라 말한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뽐내는 마음을 교만이라 말한다. 모든 법의 참된 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 말한다.
이 모든 사(使)는 욕계의 괴로움의 진리[苦諦]로 모두 포섭되며, 집착의 진리[習諦]125)에 일곱 가지, 멸함의 진리[滅諦]126)에도 마찬가지 (로 일곱 가지)이고, 도의 진리[道諦]에 여덟 가지가 있다. 모든 (신사 등의) 사(邪)와 의심은 진리를 보는 것으로는 끊고, 욕계의 네 가지는 사유로 끊고, 색계ㆍ무색계의 여섯 가지는 사유로 끊게 된다. 탐욕ㆍ성냄ㆍ교만과 무명은 다섯 가지 행[行]으로 끊고, 의심과 사(邪)과 삿된 견도(見盜)는 네 가지 진리[四諦]로 끊고, 신사(身邪)와 변사(邊邪)는 괴로움의 진리[苦諦]로 끊고, 계도(戒盜)는 괴로움의 진리ㆍ도의 진리로 끊는다. 욕계의 괴로움의 진리로 끊는 여섯 가지는 5사(邪)127)와 의심이다. 집착의 진리로 끊는 세 가지는 2사(邪)128)와 의심이다. 무명의 두 가지는 괴로움의 진리로 끊는다. 무명은 어느 때는 두루 퍼져 있고[遍], 어느 때는 두루 퍼져 있지 않다[不遍]. 무엇을 두루 퍼져 있음이라 하는가? 여섯 가지 사(使)와 상응무명(相應無明) 및 불공무명(不共無明)은 두루 퍼져 있음이라 한다.
무엇을 두루 퍼져 있지 않음이라 하는가? 세 가지 사(使)129)와 상응무명(相應無明)은 두루 퍼져 있지 않음이라 한다. 이와 같이 집착의 세 가지 사(使)130)와 상응무명 및 불공무명은 두루 퍼져 있음이라 한다. 나머지 것들은 두루 퍼져있지 않음이다. 애(愛)ㆍ성냄ㆍ교만을 제외한 모든 사(使)의 나머지 것들은 모두 두루 퍼져 있다. 어찌된 까닭인가? 이 모든 사(使)는 다섯 가지131)를 반연한다. 이렇게 퍼져 있는 사(使) 가운데 2사 및 그들의 상응무명은 자신의 세계에는 두루 퍼져 있으나 다른 세계에는 두루 퍼져 있지 않다. 색계도 역시 이와 같다. 무색계에 모두 두루 퍼져 있는 사(使)는 자신의 세계에도 두루 퍼져 있다. 나머지에 역시 두루 퍼져 있는 사는 자신의 세계에도 두루 퍼져 있고, 또한 다른 세계에도 반연한다.
028_0542_c_02L무명은 모든 사의 상응인(相應因) 및 불공무명이 된다. 3계의 멸함의 진리와 도의 진리로 끊는 사견과 의심과 무명의 이 열여덟 가지 사는 무루연이고, 나머지는 유루연이다. 모든 유루연의 사 및 그 상응무명은 유루연이다. 나머지 무명은 무루연이다. 모든 3계(界)의 결사는 호근(護根)과 상응한다. 범천(梵天)과 광요천(光耀天)의 모든 사는 호근과 상응하는 것 및 희근(喜根)과도 (상응)한다. 변정천(遍淨天)의 모든 사(使)는 호근ㆍ낙근(樂根)과 상응한다. 욕계에 묶인 사(邪)와 사견과 무명은 세 가지 근인 희근ㆍ우근(憂根)ㆍ호근과 상응한다. 의심은 우근 호근의 두 가지 근과 상응한다. 성냄은 우근ㆍ고근(苦根)ㆍ호근의 세 가지 근과 상응한다. 나머지 욕계를 진리를 보는 것으로 끊는 것은 희근ㆍ호근의 두 가지 근과 상응한다. 욕계 가운데 사유로 끊은 것은 6식과 상응한다. 교만은 제외한다. 교만은 의식과 상응한다. 모든 진리를 보는 것으로 끊는 것은 의식과 상응한다.
열 가지 소번뇌(小煩惱)를 묶임[纏]이라고 한다. 첫째는 성냄이고, 둘째는 자신의 죄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셋째는 졸음[睡]이고, 넷째는 잠[眠]이고, 다섯째는 마음의 들뜸[調]이고, 여섯째는 후회[戲]132)이고, 일곱째는 인색함이고, 여덟째는 질투이고, 아홉째는 자신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無慚]이고, 열째는 타인에게 뉘우치지 않음[無愧]이다. 무엇을 성냄이라 하는가? 마음에 미워하는 날카로움이 이는 것이다. 무엇을 자신의 죄를 두려워함이라 하는가? 다른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무엇을 졸음이라 하는가? 마음이 잠기어 둔중하고 몸이 무거운 것이다. 모든 결사(結使)와 상응한다. 무엇을 잠이라 하는가? 마음이 몰입되어 누워 있거나 나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욕계에 묶인 의식과 상응한다. 무엇을 마음의 들뜸이라 하는가? 마음이 선하지 않고,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모든 결사와 상응한다. 무엇을 후회[戲]라 하는가? 선한 일이나 선하지 않은 일을 짓고, 후회하는 것이다. 우근과 상응한다. 무엇을 인색함이라 하는가? 애착하고 아껴서 마음이 인색한 것이다.
028_0543_a_02L무엇을 질투라 하는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긴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다. (이) 욕심과 사(使)로 괴로움을 얻는다. 이 두 가지 사(使)133)는 욕계에 묶인 것으로서 사유로 끊어진다. 무엇을 자신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이라 하는가? 스스로 악을 짓고 수치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뉘우치지 않음이라 하는가? 악을 짓고는 다른 사람에게 뉘우치지 않는 것이다. 이 두 가지134)는 모든 선하지 않은 법과 상응한다. 세 가지 결사인 애착ㆍ성냄ㆍ무명은 6식과 상응한다. 색계의 두 가지인 애착ㆍ무명은 4식과 상응한다. 나머지 결사는 의식과 상응한다. 한 번에 무애도(無礙道)로 결사를 끊고, (깨달음을) 증득할 때는 거듭 증득하여 욕계의 결사를 끊어 3단지[斷智]를 얻는다.
욕계의 괴로움의 진리와 집착의 진리로 끊는 것이 1단지이고, 소멸의 진리로 끊는 것이 2단지이고, 도의 진리로 끊는 것이 3단지이다. 색계ㆍ무색계의 네 가지 진리[四諦]로 끊어 결사를 다 없애면 3단지이다. 욕계 가운데 5하분결(下分結)135)을 다 없애면 7단지이다. 색계의 사유로 끊는 것은 8단지이다. 모든 결사와 번뇌를 다 없애면 9단지이다. 결사를 소멸하여 남김이 없는 것을 단지(斷智)라고 말한다. ‘모든 결사는 마음과 상응하지 않고, 묶임[纏]은 마음과 상응한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옳지 않다. 모든 것은 마음과 상응한다. 어찌된 까닭인가? 결사와 번뇌를 일으키면 선한 법을 깨뜨리지만, 결사에 대해 깨달을 때 선한 법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모든 결사는 마을과 상응함을 알게 된다. 이 모든 결사는 선정과 상응하는 마음과 지혜와 상응하는 마음의 두 가지를 끊는다. 무엇을 선정이라 하는가? 처음의 유연한 마음을 끊는 것이다. 무엇을 지혜라 하는가? 모든 법을 분별하는 것이다. 선정에 들어 일심(一心)으로 모든 법의 영원하지 않음 등을 관해서 사유한다. 이를 지혜라 말한다. 선정과 지혜는 같이 행하고 함께 사유하여 해탈을 얻는다. 세 가지 경우일 때 선함이다. 즉, 정진과 일심과 무덤덤함이다. 좌선(坐禪)을 할 때 만약 마을이 유연하면 이때는 마땅히 사유로 정진해야 한다. 만약 마음이 들뜨면 이때는 마땅히 일심으로 정진해야 한다. 만약 이 두 가지가 같이 유연하지도 않고, 마음이 들뜨지도 않으면 이때는 마음을 풀어놓아야 한다.
028_0543_b_02L비유하자면 금을 제련하는 사람이 금을 불 속에 넣어두고 때때로 바람을 불어주고, 때때로 물에 약간 담가두었다가 때때로 식혀주는 것과 같다. 어찌된 까닭인가? 만약 항상 바람만 불어주면 곧 금이 타서 녹아버릴 것이며, 항상 물에 담가두기만 하면 차거워서 (단련하기 좋게) 뜨겁지가 않을 것이고, 항상 식혀주기만 하면 균형이 잡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좌선도 이와 같다. 바람을 불어주는 것은 정진이며, 집어서 물에 약간 담가두는 것은 선정과 같고, 풀어놓는 것은 무덤덤함과 같다. 어찌된 까닭인가? 항상 정진하면 마음은 들뜨게 되고, 항상 선정하여서 일심이면 마음이 유연하게 되며, 항상 무덤덤하면 모든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때때로 부지런히 정진하고, 때때로 일심으로 선정에 들며 때때로 무덤덤해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이 조화롭게 되면 모든 결사 가운데서 해탈을 얻는다.
좌선하는 방법은 먼저 마음을 정수리나 이마 끝, 혹은 미간(眉間), 혹은 코 끝, 또는 마음 속의 한곳에 묶어 두고 마음으로 하여금 한곳에 머물게 한다. 만약 생각이 달아나면 포섭하여 돌아오게 하고 (앞에서 말한) 곳곳에 머물게 해야 한다. 이 마음이란 원숭이와 같다. 목에 줄을 매달아 기둥에 묶어두면 달아날 수 없어서 끝내는 다시 머물게 되는 것과 같다. 마음의 달아남도 이와 같다. 마음을 법으로 묶어두면 달아날 수 없어서 끝내는 머물면서 점점 몸[身]ㆍ느낌[通]ㆍ뜻[意]ㆍ법(法)136)을 관하게 된다. 이 사람은 법의지(法意止)137) 가운데서 일심으로 잘 익혀서 참다운 지혜를 얻는다. 일체 행(行)의 참다운 모습을 관하여서, 생멸(生滅)하고 머무름이 없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고, 재난과 환란이 쌓여 있으므로 괴로움이고, 내부에 자아가 없기 때문에 공이고,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나’가 아니라고 (안다) 이로부터 난법(煖法)을 얻어서 의지(意止)를 일으킨다. 비유하자면 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벼서 불을 붙이는 것도 나무에서 생기는 것과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믿음의 청정한 선근이 생긴다.
028_0543_c_02L4연(綠)으로 16행(行)138)을 관한다. 4행(行)으로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관한다. 인연으로부터 생겨나 머물지 않으므로 영원하지 않고, 영원한 힘으로 깨뜨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괴로움이고, 자아가 없기 때문에 공이고,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나’가 아니다. 4행으로 집착의 진리[習諦]를 관한다. 비슷한 과보를 낳기 때문에 집착의 원인이고, 삶과 죽음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집착이며, 없어짐이 없기 때문에 유(有)이고, 비슷하지 않게 상속하기 때문에 연(緣)이다. 4행으로 소멸의 진리[盡諦]를 관한다. 모든 괴로움과 환간을 막았으므로 없어짐이고, 모든 결사의 불길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그침[止]이며, 모든 법보다 수승하므로 묘(妙)이고, 3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건너감[度]이다. 4행으로 도의 진리[道諦]를 관한다. 열반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도(道)이고. 전도(轉倒)되지 않았으므로 올바름[應]이고, 성인(聖人)이 행하므로 머묾[住]이고, 세간의 번뇌를 떠날 수 있기 때문에 벗어남[出]이다.
16행을 관하여 선법으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을 난법(煖法)이라고 말한다. 이 난법으로부터 선근이 더욱 자라는 것을 정선근(頂善根)이라고 말한다. 삼보(三寶)를 믿고, 만약 5음의 영원하지 않음ㆍ괴로움ㆍ공ㆍ’나’가 아님을 믿는다면 이와 같이 네 가지 진리의 16행을 반연하여 난법을 뛰어넘기 때문에 정(頂)이라고 말한다. 이미 정보다 더욱 뛰어나고 진리에 따르는 인(忍)이기에 인선근(忍善根)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상ㆍ중ㆍ하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네 가지 진리의 관법으로 16행을 관하면 진리에 따라 더욱 선근이 자란다. 이를 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이라고 이름한다. 일심일 때의 심법(心法)과 심수법[心數法]을 세간제일선근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신근 등의 5근이 세간계일법이다’라고 말한다. 참다운 뜻은 일심일 때의 심법과 심수법을 세간제일선근이라고 말한다. 능히 열반의 문을 열 수 있다. 이는 범부의 법 가운데서 제일이다. 한 가지 진리의 4행인 영원하지 않음ㆍ괴로움ㆍ공ㆍ나가 아님을 반연하여 관한다. 어찌된 까닭인가? 제일의 무루심은 괴로움의 진리를 반연한다. 세간제일법도 역시 이와 같다.
028_0544_a_02L6선정의 경지[六禪地]가 있으니 아직 선정에 도달하지 않음[未到禪], 중간의 선정[中間禪], 4선(禪)으로 이는 인선근(忍善根)ㆍ정선근(頂善根)ㆍ난선근(煖善根)이다. 6선정의 경지 가운데 세간제일법이 있다. 차례로 무루인(無漏人)을 일으킨다. 이를 고법인(苦法忍)이라고 이름한다.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보기 시작했으므로 능히 참을 수 있기 때문에 인(忍)이라고 말한다. 이 처음의 인은 무애도(無礙道)이고, 차례로 고법지(苦法智)가 생긴다. 여실하게 괴로움의 모습을 알아 고법지는 해탈도(解脫道)가 된다. 이 두 가지 마음은 욕계에 묶인 괴로움을 반연한다. 인을 알지 못하는 것은 무애도이고, 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은 해탈도이다. 이 두 가지 마음은 색계와 무색계의 묶임을 반연한다. 괴로움ㆍ집착ㆍ멸함ㆍ도의 진리도 역시 이와 같다. 이 모든 법을 바르게 관하는 것은 열여섯 가지 청정한 마음이다. 열다섯 가지 마음 가운데 근기가 예리한 사람을 법에 따라 행동하는[隨法行]사람이라고 말한다. 근기가 둔한 사람을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隨信行]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두 수행자는 아직 욕계의 묶임을 떠나지 못하며 오로지 첫 번째 과보만을 향한다[向第一果].139) 욕계의 여섯 가지 결사(結使)를 끊은 사람은 두 번째 과보를 향한다[向第二果].140) 만약 아홉 가지 결사를 다 없애면 세 번째 과보를 향한다[向第三果].141) 첫 번째 과보를 향하는 열다섯 가지 마음 가운데 도달하고자 하는 수행자와 또한 과보의 중간에 있는 수행자의 이 두 수행자는 법에 따라 행하고 믿음에 따라 행하여 열여섯 가지 마음 가운데 이르러 과보를 얻어 머문다. 이 두 가지 수행자가 아직 결사를 끊지 못하고 열여섯 가지 마음을 갖추면 모두 수다원(須陀洹)이 된다. 만약 여섯 가지 결사를 끊고 열여섯 가지 마음을 갖추면 모두 사다함(斯陀含)이다. 만약 아홉 가지 결사를 다하고 열여섯 가지 마음을 갖추면 모두 아나함(阿那含)이 되어 세 번째의 과보를 얻는다. 여든여덟가지 결사를 다 없애면 이 수행자는 무루의 계율의 선근을 성취하기 때문에 수다원이라고 말한다.
근기가 예리한 수행자가 과보를 얻는 것을 견도(見到)142)라고 이름하고, 근기가 둔한 수행자가 과보를 얻는 것을 신해탈(信解脫)이라고 이름한다. 이 두 가지 사람이 만약 욕계의 묶인 사유로 결사를 다 없앤다면 일곱 번 죽고 일곱 번 태어난다. 만약 앞서 3품(品)을 다하면 이를 가가(家家)라고 이름한다. 세 번 죽고, 세 번 태어난다. 8직도(直道)143)의 흐름을 타고 열반에 도달하면 이를 중행(中行)아나함이라고 말한다. 여섯 가지 결사를 끊었으면 이를 사다함이라고 말한다. 여덟 가지 결사를 다하면 이를 일종(一種)이라고 말한다. 욕계천에 태어나 사람 가운데 환생했다가 곧 반열반(般涅槃)한다. 이를 일종 및 사다함이라고 말한다.
028_0544_b_02L아나함에는 중(中)반열반, 생(生)반열반, 행(行)반열반, 무행(無行)반열반, 상류아가니도(上流阿迦尼到)아나함의 다섯 가지가 있다. 또한 무색계에는 생아나함이 있다. 색계ㆍ무색계의 괴로움이 다하여 반열반을 얻어 다시는 하계에 태어나지 않는다. 이를 아나함이라고 말한다. 욕계의 결사에 아홉 가지가 있다. 색계ㆍ무색계도 이와 같다. 이 모든 결사는 무애도와 해탈도의 두 가지 도로 끊는다. 먼저 무애도로 끊고, 해탈도로 성취한다. 비유하자면 독사를 잡아서 먼저 병 속에 넣고 뒤에 입구의 뚜껑을 닫는 것과 같다. 세속도와 출세계도가 있다. 출세계도는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 묶인 모든 결사를 끊는다. 세속도도 역시 세계 상에 묶인 결사를 끊어 제거할 수 있다. 8지(地)의 욕심을 끊어 멸진정(滅盡定)을 얻는다. 이를 몸으로 아나함을 증득하는 것[身證阿那含]이라고 말한다.
만약 구해탈(俱解脫)의 아라한이라면 법이 열반과 비슷하게 몸 가운데 드러난다. 5하분결(下分結)이 다하면 아나함을 얻는다. 5상분결(上分給)이 다하면 아라한을 얻는다. 이 나머지의 모든 결사ㆍ묶임ㆍ속박을 마음의 들뜸이라고 말한다. 금강정(兪剛定)처럼 차례로 멸지(滅智)144)가 생긴다. 이 때 아라한의 과보를 얻는다. 이는 최승의 것으로 욕심을 떠나 있는 무애도이다. 또한 최후에 배우는 마음이다. 이 금강정은 다음의 차례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더 이상 배울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멸지가 생겨 ‘나는 모든 생을 다 멸하였고, 아라한을 얻었다’고 한다. 모든 결사가 다하고, 크고 작은 번뇌를 끊어 없앤 것을 아라한이라고 말한다. 모든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마땅히 받을 수 있는 것을 아라한이라고 말한다.
028_0544_c_02L더 이상 배울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경지에 아홉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에서 물러남[退法]이고, 둘째는 법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不退法]이고, 셋째는 법을 생각함[思法]이고, 넷째는 법을 지킴[守法]이고, 다섯째는 법에 머묾[住法]이고, 여섯째는 법으로 나아가는 것[能進法]이고, 일곱째는 부동법[不動法]이고, 여덟째는 혜해탈(慧解脫)이고, 아홉 번째는 구해탈(俱解脫)이다. 무엇을 법에서 물러남이라 하는가? 유연한 지혜와 유연한 정진으로 다섯 가지 물러나는 일[五退具]145) 가운데서 행하여 도의 과보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무엇을 법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이라 하는가? 예리한 지혜와 부지런한 정진으로 다섯 가지 물러나는 일 가운데서 행하여 도의 과보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이를 법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무엇을 법을 생각함이라 하는가? 유연한 지혜와 유연한 정진으로 부지런히 몸의 부정(不淨)과 악함을 관하여 자신의 몸이 소멸함을 사유하는 것이다. 이를 법을 생각함이라 말한다. 무엇을 법을 지킴이라 하는가? 유연한 지혜와 유연한 정진으로 자신의 몸을 지킨다. 이를 법을 지킴이라 말한다. 무엇을 법에 머묾이라 하는가? 중간의 지혜와 중간의 정진으로 도를 행함에 중간 정도로 한다. 이를 법에 머묾이라 말한다.
무엇을 법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하는가? 조금 예리한 지혜와 부지런한 정진으로 부동(不動)의 선함을 얻을 수 있다. 이를 법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무엇을 부동법이라 하는가? 예리한 지혜와 매우 부지런한 정진으로 앞서 부동(不動)의 선함을 얻는다. 이를 부동법이라 말한다. 무엇을 혜해탈(慧解脫)이라 하는가? 멸진정을 얻지 못한 것이 혜해탈이다. 무엇을 구해탈이라 하는가? 멸진정을 능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구해탈이라 한다.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경지에는 다섯 가지의 아라한이 있다. 이를 시해탈(時解脫)146)이라 이름한다. 이 모든 아라한에게는 두 가지 지혜가 있으니 멸지(滅智)와 더 이상 배울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경지의 직견(直見)이다. 법에 따라 행하는 근기가 예리한 한 아라한이 있다. 이를 불시해탈(不時解脫)147)이라 이름한다. 이 아라한에게는 세 가지 지혜가 있으니, 멸지와 무생지(無生智)와 더 이상 배울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경지의 직견(直見)이다.
028_0545_a_02L여덟 가지148) 아라한이 있다. 애와 시해탈이고, 부동법을 성취하고,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경지를 성취한다. 진리를 보는 것[見諦道]의 열다섯 가지 마음 가운데 무루의 아홉 가지 근을 미지근(未知根)이라 말한다. 열여섯 가지 마음으로 과보를 얻는 것이 무루의 아홉 가지 근이다. 이를 이지근(已知根)이라 말한다. 이 아홉 가지 근과 더 이상 배울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법을 갖춘다. 이를 대지근(大知根)이라 말한다. 과보를 얻을 때 향도(向道)149)를 잃고, 도(道) 가운데서 결(結)을 끊고, 사(使)를 다하여 유위와 무위의 두 가지를 성취한다. 큰 과보[大果]를 얻을 때 일체는 근본과 두 가지를 잃고 한 가지를 성취한다. 아홉 가지는 결사와 모든 불은몰법(不隱沒法)을 끊는다. 제9의 마음은 모든 얻음을 끊는다. 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아라한은 부동(不動)의 선을 얻지만 나머지는 아니다. 신해탈(信解脫)의 배울 것이 남아 있는 경지와 같은 예리한 근기를 얻는 것을 견도(見到)라 이름한다. 나머지는 아니다. 진리를 보는 것 가운데 결사는 각각 다르다. 무루법도 각각 다르다. 이런 까닭에 점차 진리를 보는 것과 한 번에 무애도를 보아 힘써 과보를 얻지 않는 것이 있다. 이런 까닭에 유위의 과보와 무위의 과보의 두 가지 과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