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아, 나는 너의 근본을 안다. 생각함으로써 뜻이 일어나니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으면 곧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029_0781_c_04L 欲我知汝本, 意以思想生 我不思想汝,
則汝而不有。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시자(侍者) 아난과 함께 가사를 두르고 발우를 지니신 채 사위성 안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시고, 다시 성 밖으로 나오셨다. 그때에 아기를 업은 부인이 물병을 들고 우물가로 가서 물을 긷고 있었다. 그런데 용모가 단정한 어떤 남자가 우물가 오른쪽에 앉아 비파를 타면서 혼자 즐기고 있었다. 그 여자는 음욕이 많았기 때문에 그 남자를 탐하였고, 그 남자도 음욕이 불꽃처럼 일어나 그 여자를 탐하였다. 그러다가 여자는 음욕 때문에 정신이 미혹되어 아기 목을 새끼줄에 매어 달고 우물에 집어 넣고 말았다. 이내 정신이 들어 끄집어 내었으나, 아이는 그만 죽고 말았다. 그녀는 가슴이 미어질 듯이 괴로워서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고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욕망아, 나는 너의 근본을 안다. 생각함으로써 뜻이 일어나니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으면 곧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029_0781_c_15L 欲我知汝本, 意以思想生 我不思想汝,
則汝而不有。
029_0782_a_01L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듣는 저 게송은 항하의 모래알같이 많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너는 그것을 잘 외워 두었다가 저녁 때에 대중들을 모아놓고 그 게송의 뜻을 널리 알려 주어라.”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마치신 뒤에 3의(衣)를 거두시고, 대중들을 모아 보회강당으로 가셔서 대중 앞에 앉으셨다. 그리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 아침에 아난과 함께 성안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다시 성 밖으로 나오다가 아이를 업은 부인이 병을 가지고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우물 가까이에 어떤 남자가 비파를 타면서 혼자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자 정욕이 일어나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여자가 착란을 일으켜서 아기의 목을 매어 우물에 집어 넣고 말았다. 이내 끄집어 내었으나, 아기는 그만 죽고 말았다. 그녀는 통곡하여 울부짖으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욕망아, 나는 너의 근본을 안다. 생각함으로써 뜻이 일어나니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으면 곧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029_0782_a_06L欲我知汝本, 意以思想生 我不思想汝,
則汝而不有。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음욕의 불길이 왕성하면 모든 선의 근본을 태운다. 그러므로 음탕한 사람은 선악을 알지 못하고 깨끗한 행을 분별하지 못하여서 그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한다. 그런 무리는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에 친족이 상(喪)을 당하더라도 돌아보지 않다가 드디어 형벌을 받으며, 정욕을 채우기 위해 그 뜻을 거스른다. 혹은 음욕 때문에 부모나 형제 자매를 죽여서 그 재앙을 받으며, 혹은 음욕 때문에 그 죄가 5역(逆)에까지 미쳐서 왕에게 사형을 받고 죽어서는 악한 과보(果報)를 받는다. 마치 들에 불을 지르면 주변의 나무도 타는 것처럼 자기의 죄가 깊어지면 그 벌은 친족에게까지 이른다. 사람들은 음욕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법을 업신여기게 되며, 성스러운 제자들을 비방함으로써 현성의 비웃음을 받는다. 나는 지금 음행의 근본을 말할 것이니, 너희들은 잘 들어라.”
029_0782_b_01L옛날 간음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부모에게는 자식이 오직 이 아들 하나뿐이었다. 뇌성이 울리고 번개가 치는 인적 없는 어느 날 밤에, 그는 칼과 활을 가지고 어떤 음녀촌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가 그를 붙들고 타일렀다. “오늘 밤은 어둡고 뇌성이 울리고 번개가 친다. 만일 잘못하면 남의 해침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는 전생에 공덕을 적게 지어 아들이라야 너 하나뿐인데, 만일 네가 무슨 변을 당하면 이 어미는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아들은 대답하였다. “나는 기어코 가고야 말 것입니다. 만류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어머니는 단념하지 않고 아들에게 절까지 하면서 말하였다. “오늘 밤은 집에서 자고, 가려면 내일 가도 되지 않느냐?”
그러자 아들은 대답하였다. “나를 놓아 주시오. 만일 내 기분을 거스르면 어머니를 죽여 버리겠소.”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네가 남의 손에 죽는 것은 차마 볼 수 없다.” “빨리 나를 놓아 주시오. 어두울 때에 가야겠소. 정말 듣지 않으면 참으로 어머니를 죽여 버리겠소.” “죽여라, 죽여라. 나는 너를 못 놓겠다.” 아들은 칼을 빼어 어머니를 찔러 죽이고, 다음 생에 받을 깊고 무거운 죄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음녀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며 가만히 불렀다. 음녀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답하였다.
029_0782_c_01L
차라리 화롯불에 뛰어들거나 깊은 골짜기에서 떨어지거나 7보(步)나 되는 산 독사를 안을지언정 어리석은 너와는 상종하지 않으리라.
029_0782_c_01L寧入投炭爐, 從山投幽谷, 生把七步蛇,
不與愚從事。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않은 채 각기 헤어졌다. 그 남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적에게 살해당했으며, 죽어서는 아비(阿鼻)지옥에 떨어져서 무수한 겁 동안 죄를 받았다. 음욕은 병이 되어 한량없는 재앙을 받으니, 조그만 죄가 쌓여 점차 크게 되고, 자신만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남도 망가지게 하여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자기도 독약을 마시고 남도 그것을 마시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음욕은 따를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애욕 때문에 근심이 생기고 애욕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니 만일 조금도 애욕이 없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리.
029_0782_c_09L愛欲生憂, 愛欲生畏, 無所愛欲,
何憂何畏?
“애욕 때문에 근심이 생기고”란 무슨 뜻인가? 아내가 죽거나 남에게 빼앗기거나, 혹은 그 남편이 오랜 병을 앓고 있거나 멀리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애욕 때문에 근심이 생기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애욕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니”란 무슨 뜻인가? 세도 있는 사람에게 아내를 빼앗기거나, 혹은 남편이 오랜 병을 앓아 목숨이 아침 저녁으로 왔다갔다하거나, 혹은 다른 지방에 가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애욕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조금도 애욕 없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어떠한 이들을 애욕이 없는 이들이라고 하는가? 아나함(阿那含)과 아라한은 근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왜냐 하면, 그들은 이미 모든 근심을 떠나 아무런 두려움도 없기 때문이다. 근심과 두려움이 있는 곳은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인데, 아나함은 욕계의 근심과 두려움이 없고, 아라한은 삼계(三界)의 번뇌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근심하거나 두려워하는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만일 조금도 애욕이 없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근심이 생기고 좋아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니 만일 좋아하거나 즐겨 하지 않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리.
029_0782_c_22L好樂生憂, 好樂生畏, 無所好樂,
何憂何畏。
029_0783_a_01L
“좋아하기 때문에 근심이 생기고”란 무슨 뜻인가?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5욕(欲)을 스스로 즐기다가 왕의 시기를 받아서 왕이 그 악기를 빼앗으려 하면 그는 그것 때문에 근심이 생기며, 혹은 왕이 멀리 다른 지방으로 보내더라도 근심이 생긴다. 혹은 오랜 병을 앓아서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눈이 어두워지거나 목숨을 잃게 될까봐 걱정하여도 거기서 근심과 두려움이 생긴다. 이것은 그 악기 때문에 몸을 잃게 되는 경우이다. 혹 어떤 왕은 나라를 망치고 왕위에서 쫓겨나서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옛날에 호화롭게 지내던 일을 생각하면서 근심하고 한탄하다가 결국 병을 얻고 만다. 혹은 오랜 원수가 그 목숨을 해치려고 밤낮으로 기회를 엿보아도 걱정과 고민이 생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좋아하기 때문에 근심이 생기고, 좋아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좋아하거나 즐겨 하지 않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저 아나함이나 아라한이 5락(樂)을 버리고 법의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유하자면 난타(難陀)가 부처님께, “저는 제 처(妻)인 손타리(孫陀利)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을 때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송과 같은 것이다.
채워짐이 없는데 무슨 만족이 있으며 만족이 없는데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 즐거움이 없는데 무슨 사랑이 있으며 사랑 없는데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
029_0783_a_14L“無厭有何足? 不足有何樂? 無樂有何愛?
無愛有何樂?
너는 지금 네 멋대로인데도 어떠한 만족도 없고 마음은 언제나 불처럼 타오르니 어느 때에 그치겠는가.
029_0783_a_16L汝今放意, 無有厭足, 志常熾盛,
何時當息?
029_0783_b_01L “그러므로 네가 지금 몸의 더러움을 생각하고 관찰하면, 스스로 깨달아서 마음속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네가 지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몸의 더러움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불꽃처럼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난타여, 참고 견디며 부지런히 노력하되, 일심으로 그 오로(惡露)의 더러움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 하면 사람의 몸은 얻기도 어렵고, 현성을 만나기도 어려우며, 모든 감관이 완전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오시는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뵙기도 역시 어려우니, 마치 우담발화(優曇鉢華)가 모처럼 피는 것처럼, 바른 법을 들으려 하여도 역시 만나기 어렵다. 함이 없으며 언제나 즐겁고 편안한 피안(彼岸)에 이르게 되는 것은, 모두 바른 법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난타여, 스스로 삼가고 바른 법을 생각하며, 이 몸이 더럽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저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좋아하기 때문에 근심이 생기고, 좋아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니, 만일 좋아하거나 즐겨 하지 않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먼저는 달다가 뒤에는 쓴 과일처럼 음욕도 분노도 이와 같아서 뒤에는 괴로움의 과보를 받으며 무수히 긴 겁(劫)을 지내게 되리.
029_0783_b_08L菓先甜後苦, 婬怒亦如斯, 後受苦痛報,
經歷無數劫。
어리석은 사람은 고통받으며 언제나 타오르는 불길에 자신을 태우니 갈고리에 굴복하는 코끼리처럼 결국 옥졸(獄卒)에게 끌려가리라.
029_0783_b_10L愚者受燒煮, 恒在盛火焰,
爲獄伺所執, 如鉤制伏象。
옛날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괴로움[苦陰]에 대해 말씀하셨다.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애욕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자랑하기를, ‘구담(瞿曇) 사문과 바라문들은 항상 미연에 방지하고 장래를 걱정하여서 애욕은 더럽고 부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형상에 취하여 5욕(欲)을 스스로 즐기는 것보다는 못하다. 곱고 부드러운 촉감이 있으니 또한 즐거우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만일 중생들이 굳이 그 법에 집착하여 선하지 않은 행을 짓게 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지옥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깨달아 뉘우치면서 스스로 책망할 것이다. ‘우리들은 사람으로 나서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애욕은 더럽고 부정한 행이라고 한 말을 믿지 않고 더러운 음욕을 행했다. 이로 말미암아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있으며 벗어나려고 하지만 기약이 없다. 스스로 지은 죄를 누구에게 원망하고 하소연하겠는가?’”
029_0783_c_01L그러므로 “먼저는 달다가 뒤에는 쓴 과일처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치 어떤 과일은 입에 넣으면 달고 맛이 있어서 당장에는 기분이 좋다가도 뒤에는 병이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곧 비유를 들어서 지혜로운 사람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혹 어떤 지혜로운 사람은 권하고 격려하여서 성취하며, 어떤 지혜로운 사람은 꾸짖고 만류하여서 그만두며, 어떤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방의 뜻을 살펴서 교화받으며, 어떤 지혜로운 사람은 차츰 권유를 받고 정진하여서 제도받고, 어떤 지혜로운 사람은 멀리 다니면서 세상 풍속을 관찰하고 스스로 깨닫는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자유로이 중생들의 집착에 대해 관찰하신 다음, ‘무엇으로 치료할까?’라고 생각하시고는 곧 그 약을 주신다. 중생들은 차츰 그 마음이 열려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 허물을 부끄러워하게 되니, 점차 온갖 속박이 다하고 번뇌로 물든 마음이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후에 비로소 음욕이 병이 되는 것과 “먼저는 달다가 뒤에는 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단한 쇠ㆍ구리ㆍ주석으로 만든 이러한 감옥은 견고한 것이 아니니 저 형상에 취하여 빠져 있는 감옥이야말로 가장 견고한 것이다.
029_0783_c_08L堅材鐵銅錫, 此牢不爲固, 好染著彼色,
此牢最爲固。
옛날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쇠로 만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몰래 어떤 방도를 써서 그 죄를 면하고자 하였다. 세도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재물을 쓰기도 하였으며, 혹은 친족들에게 의지하기도 하여 죄를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애욕의 견고한 속박은 범부로서는 풀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지혜의 불꽃으로써 산과 들의 우거진 덤불을 태우고, 날카로운 지혜의 칼로써 7사(使)의 근본 번뇌를 끊어야 비로소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 갇히게 되었는데, 우연히 여러 스님들이 설법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관리의 허락을 얻어서 잠시 그 설법을 들으러 갔다.
029_0784_a_01L마침 어떤 비구가 고요한 한밤중에 경을 외우고 있었다. “늙음에 속박되고 생(生)에 속박되고 병에 속박되고 죽음에 속박되니, 이승이나 저승에서도 언제나 속박된다.” 이때에 그의 친족들이 왕에게 용서를 청하여 그는 죄를 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친족과 친지와 벗들이 그의 집으로 가서 모두 축하해 주었다. “네가 감옥에서 나왔다는 말을 들으니, 매우 기쁘다.” 그가 말하였다. “당신들은 왜 나를 현혹하십니까? 나는, 어젯밤에 어떤 비구가 경전 외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속박은 왕의 속박보다 더 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었다. “너는 풀려났는데도 정신에 이상이 있구나.”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들이 잘못본 것뿐입니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속박은 왕이라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친족으로서 참으로 나를 아낀다면, 출가하여 도를 닦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친족들은 타이르고 충고하며 만류하였다. “너는 부모와 종친과 남녀 자식이 다 있는데, 왜 그것을 버리고 구차히 도를 탐하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앞서 기어코 출가하여 도를 닦으리라고 서원을 세웠습니다.” 친족들은 거듭 만류하여 집에 있게 하였다. 이레가 지나자, 그는 피로가 풀리고 기운이 회복되었다. 그는 집을 나갔다가 다시 어떤 도인이 고요히 다음과 같은 게송을 외우는 소리를 들었다.
단단한 쇠ㆍ구리ㆍ주석으로 만든 이러한 감옥은 견고한 것이 아니니 저 형상에 취하여 빠져 있는 감옥이야말로 가장 견고한 것이다.
029_0784_a_11L堅材鐵銅錫, 此牢不爲固, 好染著彼色,
此牢最爲固。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친족들에게 말하였다. “마음을 굳혔으니 집에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출가하여 위없는 범행을 닦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친족들은 출가하여 도를 닦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정진하여 아라한의 도를 얻었으며, 속박과 집착을 영원히 떠나서 다시는 생사에 헤매지 않았다.
속박 가운데 가장 견고한 것은 유실(流室)이니 풀어 주어도 헤어나기 어렵다. 이것을 끊는 것이 중요하건만 애욕을 끊으려고 하지 않는다.
029_0784_a_17L縛中牢固者, 流室緩難解, 能斷此爲要,
不觀斷欲愛。
029_0784_b_01L “속박 가운데 가장 견고한 것”이란 무슨 뜻인가? 은혜와 애정이 다 속박이고 집착이다. 오직 부처님만이 이 세상에 나오셔서 아주 견고하여 부수기 어려운 금강심(金剛心)을 지니시며, 온갖 덕의 영락으로 장엄하시고, 모든 악을 버려서 죄의 인연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능히 모든 악을 끊으신다. 그러므로 “속박 가운데 가장 견고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유실(流室)이니 풀어 주어도 헤어나기 어렵다”란 무슨 뜻인가? 유(流)란, 3계(界)와 3유(有)와 4생(生)과 5취(趣)를 떠도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제 너희들에게 비유로 말하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으면 스스로 알게 된다.
옛날 어떤 국왕이 은혜를 두루 베풀어서 천하에 큰 사면령(赦免令)을 내렸다. 그래서 감옥에 갇혀 있는 죄인들을 모두 석방하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중생은 속박을 싫어하고 감옥을 견디지 못하여서 항상 마음을 먼 곳에 두고 빨리 감옥을 떠나려고 하여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중생은 감옥에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죄인들의 괴로워하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감옥에 있으면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실(流室)이니 풀어 주어도 헤어나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른바 풀어 주는 것이란, 죄를 사면하여 은혜를 베푸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과거에 선을 쌓고 온갖 공덕을 지었어야 그것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끊는 것이 중요하건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형제도 집안 일도 친척들도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애욕을 끊으려고 하지 않는다”란 무슨 뜻인가? 애욕을 남김없이 영원히 끊어 버리고 세상의 8사(事)1)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맹세를 해야 한다. 두 가지란, 첫 번째는 지혜를 얻겠다는 맹세이고, 두 번째는 번뇌를 없애겠다는 맹세이다. 곧 이 두 가지로써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세상의 온갖 묘한 색(色) 그것을 탐욕이라 하지 않는다. 세상의 탐욕은 오래 전부터 있었으니 오직 현인이라야 그것을 안다.
029_0784_b_14L世容衆妙色, 此不名爲欲, 世欲久存世,
唯賢能覺知。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비구들이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우리는 여러 스님들과 같이 공양하는 것을 버리고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나가서 걸식을 하자. 왜냐 하면 걸식을 하는 비구들은 사람들을 구경하며 눈으로는 지극히 아름다운 색을 보고, 귀로는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며, 코로는 지극히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몸으로는 아주 곱고 부드러운 촉감을 가까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티없이 맑고 고요한 천이(天耳)로써 모든 비구들이 서로 세상 영화를 그리워하며 집착하는 것을 들으셨다. 곧 사람을 보내어서 그들을 보회강당에 모이게 하였다.
029_0784_c_01L비구들이 모두 강당에 모이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구들이여, 나는 일찍이 너희들에게 걸식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다. 비구들이 세상 사람들 사는 곳에 있게 되면, 눈으로는 지극히 아름다운 색을 보고, 귀로는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며, 코로는 아주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몸으로는 아주 곱고 부드러운 촉감을 가까이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음은 가벼이 떠도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색(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細滑]ㆍ법(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다시 기름을 부어서 더욱 세차게 타오르게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너희들은 더욱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은 스스로 계율을 지키되, 밖에 나가 걸식할 때에는 항상 마음으로 걱정해야 한다. 곧 ‘남의 보시를 어떻게 쉽게 받을 수 있겠는가? 여러 시주자 [檀越]들을 사방으로 분주히 쫓아다니면서 마음과 생각을 괴롭혀서야 비로소 재물을 얻게 되므로, 이 보시는 다음 생에 내가 받을 보시를 줄이는 것이다. 나는 지금 덕이 적으므로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두렵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또한 저 시주자가 보시할 때를 관(觀)하여서 마음속으로 보시를 받고 싶더라도 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자기 몸을 관찰하여 큰 병을 앓는 것처럼 생각하여 그 보시하는 물건이 약이라 생각하며, 텅 비고 고요한 곳을 생각할 때에는 죽음을 당한 것처럼 생각하고, 항상 생각을 잡아매어 모든 선의 근본을 닦으며, 여자들을 볼 때에는 무덤처럼 생각하라. 이런 사람은 세상에 나가 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을 탐하고 거기에 집착하면서 도에 의지하는 척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큰 도적이라고 할 것이다.”
029_0785_a_01L그때에 사리불(舍利弗) 존자가 대 구치라(拘絺羅)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구치라여, 눈이 색이라는 관념을 만듭니까, 색이 눈이라는 관념을 만듭니까? 귀ㆍ코ㆍ혀ㆍ몸 등과 촉감ㆍ법 등에 있어서 법이 의지라는 관념을 만듭니까, 혹은 의지가 법이라는 관념을 만듭니까?” 구치라가 사리불에게 대답하였다. “눈이 색이라는 관념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색이 눈이라는 관념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귀ㆍ코ㆍ혀ㆍ몸ㆍ의지와 그 인식 대상인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에 있어서, 의지가 법이라는 관념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법이 의지라는 관념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이른바 관념[相]이란, 탐욕이 스스로 작용하여 된 것으로 이를 관념이라고 합니다. 다시 비유를 들면, 자연히 알 수 있습니다. 흰 소와 검은 소를 한곳에 매어 두거나 혹은 멍에에 나란히 매어 두었을 때에, 혹 어떤 사람이 흰 소를 검은 소에 매었다거나 혹은 검은 소를 흰 소에 매었다고 말한다면, 어떻습니까? 사리불이여, 그것을 바른 말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리불이여, 그것은 흰 소를 검은 소에 맨 것도 아니고, 검은 소를 흰 소에 맨 것도 아닙니다. 이른바 매었다는 것은 새끼줄이나 고삐나 혹은 멍에이니, 그것을 매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눈이 색이라는 관념을 만든 것도 아니고, 색이 눈이라는 관념을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귀ㆍ코ㆍ혀ㆍ몸ㆍ의지에 있어서도 의지가 법이라는 관념을 만든 것이 아니고, 법이 의지라는 관념을 만든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가운데 탐욕이 작용하여 일어난 것을 관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온갖 묘한 색(色), 그것을 탐욕이라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덧없는 것이지만 그 욕심의 속박은 항상 있으니 그것을 끊으면 생존을 받지 않고 다른 세계에 몸을 받지 않는다.
029_0785_a_11L人閒欲無常, 內欲縛是常, 此滅不受有,
餘趣不受生。
“사람의 욕심은 덧없는 것이지만”이란 무슨 뜻인가? 욕심이란, 덧없는 것으로서 쇠퇴하여 없어지는 법이며, 변하여 머무르지 않기에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오래 지속되지 않아서 혹은 망하거나 잃기도 하며, 혹은 남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이렇게 덧없으므로 오랫동안 지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욕심은 깊고 강하여서 정신을 번뇌로 물들이므로, 마음은 재앙의 으뜸이 되어 그 화를 몸과 입에까지 미치게 한다. 그러므로 “그 욕심의 속박은 항상 있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혹은 세도 있는 사람의 눈에 띄어서 죽는 경우도 있으니, 이와 같은 욕심은 억누르거나 금하기가 어렵고, 자신의 힘으로 붙들 수도 없다. 그러니 다시는 다른 세계에 나지 말고, 이 생(生)이나 다음 생에 나기도 원하지 말라. 그러므로 “세상의 탐욕은 오래 전부터 있었으니, 오직 현인이라야 그것을 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욕심이 번뇌 없는 행(行)을 내면 원(願)으로 언제나 충만하며 욕심에 그 마음이 속박되지 않으면 구경(究竟)의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
029_0785_a_22L欲生無漏行, 意願常充滿, 於欲心不縛,
上流一究竟。
029_0785_b_01L
“욕심이 번뇌 없는 행을 내면”이란 무슨 뜻인가? 욕심에는 선한 것도 있고 선하지 않은 것도 있으며, 선한 욕심에도 번뇌가 있는 것이 있고 번뇌가 없는 것이 있다. 번뇌가 없는 욕심이란, 모든 욕망이 없어진 것이므로, 여기서는 번뇌를 말하지 않는다. “원(願)으로 언제나 충만하며”란 무슨 뜻인가? 모든 선법(善法)이 몸 속에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욕심에 그 마음이 속박되지 않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마음이 저 번뇌에 물들지 않고 또 더럽혀지지 않은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욕심에 그 마음이 속박되지 않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구경(究竟)의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바로 아나함(阿那含)을 뜻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아나함(阿那含)의 과(果)를 말하고 5하분결(下分結)2)을 말하며 또 애욕의 단절을 말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구경(究竟)의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단계를 뛰어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점차 나아가니 마치 솜씨 좋은 장인이 차츰차츰 때를 벗겨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없애는 것과 같다.
029_0785_b_10L智者不越次, 漸漸以微微, 巧匠漸刈垢,
淨除諸穢污。
“지혜로운 사람은 단계를 뛰어넘지 않고”란 무슨 뜻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옛 것을 널리 보고 지금 것을 밝게 알아서 그 시비를 분별하며, 지혜가 줄어들지 않고, 타고난 성질이 게으르지 않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단계를 뛰어넘지 않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점차 나아가니”란 무슨 뜻인가? 날마다 차츰차츰 나아가 중도에서 쉬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치 솜씨 좋은 장인이 묵은 때를 벗길 때, 여러 날이 걸려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처럼, 사람이 마음의 때를 버리는 것도 역시 이와 같으므로, 모든 천인(天人)들과 아수륜(阿須倫)이나 진타라(眞陀羅)나 마휴륵(摩休勒) 등의 칭찬을 받는 것이다.
마치 수레를 만드는 솜씨 좋은 장인이 낡은 수레를 잘 수리하는 것처럼 욕심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없애면 나중에 영원한 안락을 얻으리.
029_0785_b_18L猶如車巧匠, 善能修治樸, 隨欲能滅欲,
後必受永康。
029_0785_c_01L 마치 저 솜씨 좋은 장인이, 낡은 수레를 잘 수리하고 장식하게 되면, 무거운 짐을 싣고 멀리 가더라도 조금도 상하지 않는 것처럼, 또한 두 가지 이익이 있다. 두 가지란, 첫 번째는 좋은 이름이 널리 퍼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재물을 얻는 것이다. 저 훌륭한 비구도 이와 같아서 오직 욕심을 버림으로써 두 가지 칭찬을 받는다. 즉, 그 명성이 널리 퍼져서 모든 천인들의 칭찬을 받으며, 현세(現世)에서는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치 수레를 만드는 솜씨 좋은 장인이 낡은 수레를 잘 수리하는 것처럼 욕심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없애면 나중에 영원한 안락을 얻으리.
029_0785_c_03L猶如車巧匠, 善能修治樸, 隨欲能滅欲,
後必受永康。
그때에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물러갔다.
029_0785_c_05L時諸衆會聞佛所說,歡喜而去。
11
일체의 즐거움을 받으려면 모든 애욕을 버려야 한다. 모든 애욕을 버린 뒤에는 영원히 끝없는 즐거움을 누린다.
029_0785_c_06L欲受一切樂, 當捨諸愛欲, 已捨諸愛欲,
永受無窮樂。
만일 어떤 중생이 일체의 즐거움을 받고자 한다면, 4지(支)와 5지(支)의 선정(禪定)3)의 즐거움과 신통을 행하는 즐거움과 도로써 생사를 벗어나는 즐거움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는 마땅히 생각하여서 일체의 욕심을 버리고 그 욕심을 버린 뒤에는, 몇 배의 공덕을 얻으며 끝없는 즐거움을 누린다. 유희의 즐거움과 온갖 복업(福業)의 즐거움을 누릴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는 세속의 재물이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옛날 외도(外道)의 도를 닦는 이들이 제각기 말하였다. “둘이 둘로써 모여 합해지면, 그들은 곧 깨끗해져서 이내 해탈을 얻고 또 생사에서도 벗어난다.” 또 어떤 이는 말하였다. “애욕은 아름답고 애욕은 깨끗하다. 그러므로 서로 즐겨라. 애욕에는 만족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그런 삿된 소견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 “욕심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없애면, 나중에 영원한 안락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애욕을 생각하여 싫어하지 않으면 어떻게 선정을 닦을 수 있으랴. 뉘우치며 그 행의 근본을 깊이 찾고 지혜로써 다스리면 이내 그치리.
029_0785_c_18L不念欲有厭, 豈能修禪定? 變悔尋行本,
智慧療乃止。
029_0786_a_01L 만일 중생이 애욕을 생각하여 버리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으면, 결국 번뇌가 생긴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불구덩이로 가까이 갈수록 더 뜨거워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열기를 피하려면 묘한 방편을 구하여서 불을 꺼야 할 것이다. 사람도 역시 이와 같아서 끝내 애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애욕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마치 어떤 독약은 사람의 얼굴빛을 아름답게 만들고, 향기롭고 맛있으며 또 달지만, 사람이 병에 걸려서 그 약을 먹게 되면, 목구멍을 통해 뱃속에 들어간 지 오래지 않아 목숨을 잃는 것과 같다. 탐욕도 이와 같아서 당장에는 기분이 좋지만, 법답지 않게 음행을 행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진다. 이제 비유로써 이끌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 말하면 스스로 이해한다.
옛날 염부리(閻浮利) 땅에 정생왕(頂生王)이라는 왕이 세상에 나와서 14억 년을 살았다. 어느 때 그는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도리천(忉利天)에 이르렀는데, 36 명의 제석(帝釋)이 목숨을 마쳤기 때문에 그 천궁(天宮)에 머물렀다. 그는 거기서 오랫동안 지내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 수명은 천인들의 수명보다 길기 때문에 내 눈으로 36명의 제석이 모두 목숨을 마치는 것을 보았다. 지금 이 석제환인(釋提桓因)을 죽이고, 여기서 바로 네 천하의 왕이 되어 인간과 천상을 통치하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였기 때문에 곧 신통을 잃고, 세간으로 떨어져서 염부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큰 병을 앓으면서 온갖 고통을 받았다. 그때에 대신들이 그에게 물었다. “대왕께서는 지금 중병을 앓고 계시기 때문에 언제 세상을 떠나실지 모릅니다. 만일 백성들이 와서 ‘정생왕께서 임종하실 때에 어떤 말씀이 있으셨습니까?’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029_0786_b_01L정생왕은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만일 누가 와서 묻거든, 그대들은, ‘정생왕이란 자는, 5욕(欲)에 탐착하여 7보에도 만족할 줄 몰랐으며, 천 명의 왕자를 두었어도 만족하지 않았고, 네 천하를 거느렸어도 만족할 줄 모르다가 목숨을 마쳤다. 정생왕이란 자는, 이레 낮과 이레 밤으로 하늘에서 7보가 내려와 그 궁전에 빗물처럼 내릴 때에도 만족할 줄 모르다가 목숨을 마쳤다. 정생왕이란 자는,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도리천에 머물면서 석제환인을 죽이려는 마음을 내었기에 목숨을 마쳤다’고 대답하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애욕을 생각하여 싫어하지 않으면 어떻게 선정을 닦을 수 있으랴. 뉘우치며 그 행의 근본을 깊이 찾고 지혜로써 다스리면 이내 그치리.
029_0786_b_02L不念欲有厭, 豈能修禪定? 變悔尋行本,
智慧療乃止。
그때에 대중들은 애욕을 여의어서 탐착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모두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내었다.
029_0786_b_04L爾時諸來會者,皆離愛欲無貪著心,皆發無上正眞道意。
13
지혜가 넘치는 자는 다시는 애욕을 바라보지 않는다. 사람이 지혜로 넘치면 애욕이 그 자취를 쫓지 않는다.
029_0786_b_06L智慧厭足者, 不復觀欲愛, 人以智慧厭,
不隨愛蹤迹。
“지혜가 넘치는 자[智慧厭足者]”란 무슨 뜻인가? 무엇 때문에 지혜가 넘치는 자라고 하는가? 그는 모든 부처님과 한곳에 머물며, 진인(眞人)인 아라한과 더불어 깨끗하지 못한 행을 관찰하고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서 온갖 근심과 괴로움을 없애고, 그 괴로움의 근본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지혜로 사유하신다. 그러므로 “지혜가 넘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는 애욕을 바라보지 않는다”란 무슨 뜻인가? 애욕이라는 실체를 알고 가까이하지 않으며, 일찍이 애착하였던 것도 지금은 이미 멀리 여읜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삼가하여서 애욕에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그때에 대중들은 이 말을 듣고 애욕은 더럽다는 생각을 내어서, 곧 그 자리에서 총지(摠持)를 얻었다.
애욕을 탐하고 집착하여서 법답지 않은 행을 익히는 사람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목숨은 긴 것이라고 말한다.
029_0786_b_16L人貪著愛欲, 習於非法行, 不觀死命至,
謂命爲久長。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때에 매우 가난한 어떤 남자가 있었다. 그는 가난하여 몹시 궁핍하였기 때문에 온갖 험한 일을 하며 살았는데,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한량없는 보물을 얻게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부모와 친척들과 함께 즐기면서 여러 사람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얻은 보물은 그 가치가 수억에 이릅니다. 지금 당장 큰 부잣집 딸과 결혼하겠습니다.”
029_0786_c_01L곧 그는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그녀는 한창 꽃다운 나이의 처녀로서 살이 찌지도 않고 여위지도 않았으며, 너무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았으며, 여자의 자태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또한 그 모습이 단정하였으며, 얼굴빛은 복숭아꽃과 같았는데, 다시 향과 꽃과 연지와 분으로 그 몸을 장식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즐겁게 지냈기 때문에 서로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먹는 음식도 날마다 같은 것이 없었으며, 헤아릴 수 없는 갖가지 짐승을 죽였고, 한껏 방탕해져서 세상에 비할 데가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우연히 병을 얻어 곧 죽고 말았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만 미치광이가 되고 말았다. 그는 거리를 헤매며 원망하고 다녔다. “어쩌면 이리도 참혹한가, 저 무도한 살인귀가 내 아내의 목숨을 빼앗아 간 것인가, 아니면 종족과 친척들이 질투하는 마음으로 나쁜 뜻을 내어서 내 아내를 빼앗으려 한 것인가, 혹은 저지른 일이 탄로날까 두려워서 몰래 공모하여 내 아내를 함정에 빠뜨렸는가?”
이와 같이 그는 그치지 않고 날마다 그 원통한 마음을 호소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티없이 맑은 천안(天眼)으로 관찰하셔서 이 남자가 원망하며 거리를 헤매 다니고 마음은 미혹되어서 바르고 진실한 법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이치를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처음과 끝을 살피셨으며, 미래의 중생들을 위해 큰 광명을 나타내고,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며, 또한 과거 모든 부처님의 신성한 입이 봉인(印封)된 것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셨다. 이에 대중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애욕을 탐하고 집착하여서 법답지 않은 행을 익히는 사람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목숨이 긴 것이라고 말한다.
029_0786_c_18L人貪著愛欲, 習於非法行, 不觀死命至,
謂命爲久長。
그때에 대중들은 이 게송을 듣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었다.
029_0786_c_20L爾時衆會聞說此偈,諸塵垢盡得法眼淨。
15
어리석은 자는 탐욕에 자신을 속박하고 저 피안(彼岸)을 구하지 않는다. 탐욕은 재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도 해치고 스스로도 해친다.
029_0786_c_22L愚以貪自縛, 不求度彼岸, 貪爲財愛故,
害人亦自害。
029_0787_a_01L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난타(難陀)라는 장자가 있었다. 그는 재물과 보배가 많았는데, 금, 은, 진보(珍寶), 차거(車渠), 마노(馬瑙), 산호(珊瑚), 호박(虎珀) 따위와 코끼리, 말, 수레, 종, 하인들과 의복과 전답이 한량없이 많아서 그 나라에서는 그보다 더한 부자가 없었다. 그는 비록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지만 아무런 신심이 없었으며, 인색하고 탐욕과 질투가 많았다. 대문은 일곱 겹으로 만들고 거기에 문지기를 세워서 사람들이 집의 한가운데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또 집의 허공 위로는 쇠그물을 쳤는데, 새들이 날아와 곡식을 쪼아먹을까 걱정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방 벽 밑에는 흰 금니(噤泥)를 발랐는데, 쥐들이 구멍을 뚫고 들어와서 재물을 축낼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장자에게도 죽음이 닥쳐 왔다.
그에게는 전단향(栴檀香)이라는 외아들이 있었다. 그는 아들을 앞에 불러다 놓고 신신당부하였다. “나는 지금 병으로 결국 죽을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도 집에 있는 재물과 7보를 함부로 쓰지 말아라. 또 사문이나 바라문들에게도 보시하지 말고 거지에게도 한푼도 주지 말아라. 이 재보는 7대(代)가 먹고 살기에 넉넉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유언한 뒤에 곧 목숨을 마쳤는데, 사위성에 사는 장님인 전다라(栴陀羅)의 아내의 뱃속에 잉태되었다.
아이는 8, 9개월이 지난 뒤에 세상에 나왔으며, 태어날 때부터 장님으로 두 눈이 모두 없었다. 곁의 사람들이 그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들인가, 딸인가?”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아들입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생각하였다. ‘아들이라면 내가 장님이니, 이 아들의 부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곁의 사람들이 말하였다. “아들을 낳기는 하였지만 두 눈이 모두 장님입니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너무나 비통하여 슬피 울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도 장님인데 아들도 장님이라니 둘 다 양쪽 눈이 없구나. 이런 병신 자식을 낳았으니 근심과 고통만이 더하여라.
029_0787_a_22L子盲吾亦盲, 二俱無兩目, 遇此衰耗物,
益我愁憂苦。
029_0787_b_01L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시자 아난을 데리고 기원정사의 문밖을 거니시다가 손을 흔들면서 말씀하셨다. “아, 큰 재화(災禍)로다, 재화로다.” 그러자 아난이 합장하고 꿇어앉아서 말씀드렸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큰 재화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그 뜻을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혹 사위성에 사는 장자 난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느냐?” 아난은 말씀드렸다. “사위성의 그 장자는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장자의 혼이 사위성으로 돌아와서 장님인 전다라의 아내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두 눈이 다 없구나. 그는 옛날에 큰 부자였지만, 지금에 와서 본다면 그것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그는 코끼리와 말과 7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인색하고 탐욕과 질투가 많아서 보시하기를 꺼렸다. 그러므로 ‘재화로다’라고 한 것이다.” 아난은 부처님께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나고 죽는 것은 두려운 것이지만 그것은 환술(幻術)과 같아 진실이 아니다.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없어지니 지혜로운 이로서 그 누가 즐겨 하리.
029_0787_b_13L生死有畏懼, 幻化非有眞, 有成必有敗,
智者誰可樂?
이때에 어머니는 아들을 길러서 아들이 나이 8, 9세가 되자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지팡이 하나와 밥그릇 한 벌을 주면서 아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까지 너를 길러 주어서 이제 걸어다니게 되었다. 이제는 여기 있지 말고 네 힘으로 살아가도록 해라. 나도 눈이 멀었지만 구걸하여 남은 목숨을 연명하겠다.” 그래서 장님인 아이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구걸하다가, 이윽고 전단향 장자의 집에 이르자, 문밖에 서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몹시 배고프고 지쳤는데 더군다나 두 눈까지 없네. 온갖 괴로움은 그 끝이 없으니 누가 가엾이 여겨 적선하려나.
029_0787_b_21L飢餓切已困, 兼復無兩目, 衆苦無端緖,
誰當愍而施?
029_0787_c_01L 문지기는 이 말을 듣고 잔뜩 화가 나서 곧 앞으로 가 그의 손을 잡아채어서 멀리 깊은 구덩이에 던져 버렸다. 그는 왼팔을 다치고 또 머리가 맞아서 깨어졌고. 구걸한 밥은 모두 땅바닥에 흩어졌다. 그런 가운데 어떤 사람이 구덩이에 빠진 아이를 보고는 매우 가엾이 여겨서 그 어머니에게 가서 말하였다. “당신 아들이 어떤 집 문지기에게 맞아서 매우 고생하고 있는데, 팔과 머리를 다쳐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는 기기도 하고 지팡이를 짚기도 하면서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는 아들을 껴안아 무릎에 앉히고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네가 지금 무슨 잘못을 하였느냐. 아들아, 빨리 말해 보아라. 그 어떤 사람이 너로 하여금 이런 재앙을 당하게 하였느냐.
029_0787_c_07L汝今有何愆? 子今速說之, 與誰誰與子?
遭此苦戹難。
아들은 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029_0787_c_09L子報母曰:
어머니, 저는 조금 전 구걸하면서 이 전단 장자의 집에 이르게 되었는데 잠깐 이 문밖에 서 있다가 어떤 나쁜 사람의 손에 맞았습니다.
029_0787_c_10L母我向者乞, 至此栴檀家, 暫立此門外,
便遇惡人手。
그때에 마치 부모와 같이 중생을 사랑하고 길러 주시는 부처님께서 큰 자비심을 내어 그를 제도하려고 하셨다. 그래서 공양을 마치신 뒤에 단정히 가사를 입으시고, 비구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사위성으로 들어가셔서 전단 장자의 집 문밖에 이르셨다. 성안의 장자와 사람들은 걸식할 때가 아닌데도 성안으로 들어오시는 부처님을 보고 말하였다. “반드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일을 말씀하시려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모두 모여 부처님의 뒤를 따랐으며, 전단 장자의 집 문밖에 이르러 장님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029_0788_a_01L전단향 장자는 부처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곧 문 밖으로 나와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한 다음 한쪽으로 물러나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이 다 모이고 또 전단 장자도 문밖에 나온 것을 보시고는, “인색함과 탐욕과 질투는 한량없는 죄를 받고 보시는 한량없는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설하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생존을 떠나 삼계에 집착하지 않고, 열반을 가르쳐서 무위(無爲)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자 하셨다.
부처님께서 그 아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바로 저 난타가 아니냐?” 아이는 대답하였다. “제가 바로 그 난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거듭 물으셨다. “네가 바로 난타인가?” 그 아이는 곧 대답하였다. “진실로 난타입니다.” 그러자 성안의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어린아이에게 이름을 물으신다는 말을 듣고 모두가 놀라서 말하였다. “어떻게 난타 장자가 저런 몸을 받았을까?”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전단 장자를 지옥의 고통에서 구제하시고, 인색함과 탐욕스러운 마음을 없애서 복전(福田)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전단 장자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지금의 이 난타는 옛날의 네 아버지다. 인색함과 탐욕에 마음이 속박되어 전생에 선한 행을 짓지 않다가 이러한 온갖 고뇌를 받는 것이다.
029_0788_a_08L昔父今難陁, 慳貪意纏裹, 本不造善行,
遭此衆苦惱。
만일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장차 무간(無間)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중생의 집을 악하게 지어서 과거의 인연에 단단히 매였기 때문이다.
029_0788_a_10L設當從此終, 當入無擇獄,
成惡衆生室, 繫以宿緣强。
그때에 전단 장자는 슬피 울면서 눈물을 그치지 못하다가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서 이 죄의 근본을 뽑아 제도하여 주시고, 저로 하여금 부처님께서 얻으신 그 복을 받게 해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없이 그 청을 들어주셨다. 어느 이른 아침에 부처님께서는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지니신 채 비구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장자 집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모두가 차례대로 앉았다. 장자는 몸소 물을 올리고 깨끗한 음식을 차려서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끝내시자, 그는 다시 깨끗한 물을 올렸다. 그리고 나서 조그만 자리를 취하여 부처님 앞에 앉아 설법을 들으려 하였다.
029_0788_b_01L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권방편(權方便)으로 장자를 위해 미묘한 법을 차례로 말씀하시고, 또 부처님의 아주 깊은 법장(法藏)에 대해서도 논하셨다. 이른바 그 논(論)이란, 보시와 계율과 천상에 나는 것에 대한 논이었다. 또한 탐욕과 음행은 더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불가사의한 법을 말씀하시자, 그 자리에서 장자의 모든 번뇌가 없어지고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었다. 장자는 스스로 관찰하여 법을 얻고 법을 보았으며, 온갖 법을 분별하여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는 말하였다. “저는 지금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과 법과 스님에게 귀의하옵고, 지금부터는 우바새(優婆塞)가 되어서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살생하지 않겠습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난타 장자를 나무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재물을 잃으니 역시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재물을 탐하여 스스로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029_0788_b_07L愚者喪財貨, 亦非自爲己, 愚者貪財貨,
自沒溝爲獄。
이와 같이 탐욕은 이익이 없으니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임을 알아라. 어리석은 자는 이 때문에 현자를 해치고 그 머리와 목이 땅 위에 흩어진다.
029_0788_b_09L如是貪無利, 當知從癡生,
愚爲此害賢, 首領分于地。
“어리석은 사람은 재물을 잃으니”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잃는다는 것은 모두가 다 없어져서 남음이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재물을 잃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도 없고 깨닫는 바도 없어서 재산을 쌓아 두고서도 자기도 쓰지 않고 남에게 보시하지도 않는데, 그것은 어리석음 가운데 가장 큰 어리석음이어서 그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재물을 가지면, 첫째는 보시하고, 둘째는 자기가 써야 하는 것인데, 그 장자는 자기도 쓰지 않고, 남에게 보시하지도 않았다. 자기도 쓰지 않은 것은 바로 인색하기 때문이다. 그 인색함이 마음의 근본을 속박하니 스스로 풀 수도 없고 풀리지도 않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재물을 탐하고 애착하기 때문에 이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탐욕을 버리고 마음을 고요히 한다. 이에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탐욕은 이익이 없으니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임을 알아라. 어리석은 자는 이 때문에 현자를 해치고 그 머리와 목이 땅 위에 흩어진다.
029_0788_b_19L如是貪無利, 當知從癡生, 愚爲此害賢,
首領分于地。
그때에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물러갔다.
029_0788_b_21L時諸大會聞佛所說,歡喜而去。
16
하늘에서 7보(寶)가 비처럼 내려도 탐욕이 많은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니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은 많다. 이를 깨닫는 그 사람을 현자라 한다.
029_0788_b_22L天雨七寶, 猶欲無厭, 樂少苦多,
覺之爲賢。
029_0788_c_01L
옛날 부처님께서는 정생왕을 위하여 위의 게송을 읊으셨다. 어느 때에 정생왕의 궁전에는 이레 낮과 이레 밤으로 하늘에서 7보가 비처럼 내렸다. 그러나 왕은 그것을 보고도 만족할 줄 몰랐다. 탐욕이란 괴로움은 많고 즐거움은 적은 것이다. 어느 때에 왕은 천상을 돌아다니면서 5락(樂)을 누리고, 또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쾌락을 즐겼으나 그 끝이 없었다. 그러나 죽을 때가 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관찰하고 언제나 그 탐욕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을 현자라고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천상에 나고 싶은 욕망이 있더라도 널리 보시하여 탐욕이 없고 은혜와 애정을 멀리하는 것을 좋아하면 이 세 가지로써 부처의 제자가 된다.
029_0788_c_07L雖有天欲, 惠捨不貪, 樂離恩愛,
三佛弟子。
옛날 부처님께서는 마두라국(摩頭羅國)4)의 니구류원(尼拘類園)에 계셨다. 그때에 어떤 비구가 고요한 방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는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평상 밑에는 독사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비구는 졸음에 못 이겨서 앞으로 꾸벅 졸기도 하고 뒤로 꾸벅 졸기도 하였다. 독사는 이것을 보고, ‘이 사람이 나를 보면 무서워하여 반드시 나를 해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곧 좌선하는 비구를 물어 버렸다. 비구가 죽은 뒤에 도리천(忉利天)에 났을 때, 천상의 여인들이 와서 그를 맞았다. 천자(天子)가 된 비구는 그녀들에게 말하였다. “누이들이여, 내 몸을 가까이하지 말라. 만일 가까이하면 반드시 계율을 범하게 될 것이다.” 천녀들은 생각하였다. ‘저 천자는 반드시 전생에 사문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나서 이 천상의 복을 받는 것이리라.’
029_0789_a_01L곧 모든 천녀들이 각기 거울을 가져 와서 천자의 앞을 비추었다. 천자는 거울 속에서 자기가 천자의 옷을 입고 머리에는 천관(天冠)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는 생각하였다. ‘아아, 내 모습이 변했구나. 내가 어떻게 사람의 몸을 버리고 지금 이 천상에 나게 되었는가.’ 그는 슬피 울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 천상의 궁궐을 돌아다녔는데, 시종들이 그를 호위하였다. 시종들 가운데에는 아름다운 이도 있었고, 추한 이도 있었다. 이윽고 동산에 이르게 되자, 그는 한 그루의 나무 밑에 단정히 앉아 사유하면서 삼매(三昧)에 들려 하였다. 그때에 연못에서 갖가지 진귀한 새들이 슬피 울어 대었다. 그 소리는 매우 애처로웠으며 새의 모양과 빛깔도 가지각색이었다. 결국 그 천자는 도를 이루려 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그만 하늘의 수명이 다하여 33천(天)에서 염부리(閻浮利)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한 다음 합장하고서 부처님을 향해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그 이치를 물었다.
저를 모시던 무수한 천녀들 가운데 얼굴이 추한 이도 있었습니다. 뒷동산의 이름은 미혹(迷惑)이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제도될 수 있습니까?
029_0789_a_06L天女無數衆, 侍衛有醜陋, 後園名迷惑,
何由而拔濟?
“또한 세존이시여, 저는 결국 도를 보지 못한 채 목숨을 마쳤습니다. 비록 천상에 나서 천상의 복을 받더라도 그 복이 다하면 태산(泰山)지옥에도 떨어집니다. 이렇게 유전하여 그 끝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막다른 길에 이르러 나아갈 곳이 없습니다. 오직 부처님만을 의지하오니, 가엾이 여기소서.”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곧고 한결같은 것을 도라 하고 저 언덕의 이름을 무외(無畏)라 하며 일그러짐 없는 것을 수레라 하니 법을 보는 이가 성취할 것들이다.
029_0789_a_13L道名直一向, 彼方名無畏, 車名無曲戾,
觀法所成就。
천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 번뇌가 없어져 깨끗한 법안(法眼)을 얻었다. 그래서 뛸 듯이 기뻐하며 어쩔 줄을 모르면서 부처님 주위를 일곱 번 돌고는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관찰하시고 그 처음과 끝을 살피신 다음 큰 광명을 나타내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천상에 나고 싶은 욕망이 있더라도 널리 보시하여 탐욕이 없고 은혜와 애정을 멀리하는 것을 좋아하면 이 세 가지로써 부처의 제자가 된다.
029_0789_a_21L雖有天欲, 惠捨不貪, 樂離恩愛,
三佛第子。
그때에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물러갔다.
029_0789_a_23L爾時衆會聞佛所說,歡喜而去。
029_0789_b_01L 18
모든 산을 모두 금으로 만들어서 그것이 마치 철위산(鐵圍山)만큼 하더라도 오히려 만족할 줄 모르니 오직 성인이라야 그것을 안다.
029_0789_b_01L衆山盡爲金, 猶如鐵圍山, 此猶無厭足,
唯聖能覺知。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정생왕(頂生王)을 위하여 위와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아직 탐욕을 끊지 못한 사람은 마음으로 어떤 경계와 영역을 구할 때, 하나를 얻으면 다시 하나를 생각하여서 만족할 줄을 모른다. 저 정생왕은 탐욕과 집착 때문에 산 가운데 제일 큰 철위산을 모두 금으로 만들어서 온 세계에 가득 채운다고 하더라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괴로움의 근본을 보지 못하면 욕망이 생긴들 어떻게 분별하겠는가. 욕망은 칼 끝임을 알아서 부지런히 계율을 닦고 배워라.
029_0789_b_08L不觀苦原本, 愛生焉能別, 解知世愛刺,
進意修學戒。
“괴로움의 근본을 보지 못하면”이란 무슨 뜻인가? 중생들이 사방으로 분주히 돌아다닐 때에는 여러 가지 험하고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즉, 호랑이나 이리나 도적이나 독사나 악귀나 가시덤불이나 깊은 숲이나, 혹은 사람의 자취가 없는 곳에 이르게 되고, 혹은 칼에 베여 죽은 시체를 보기도 하며, 또 바다에 빠져서 온갖 재난을 겪기도 하고, 혹은 사나운 바람이나 굽이치는 소용돌이를 만나서 큰 배가 난파되기도 하며, 혹은 흑 산(黑山)의 귀신을 만나거나 나찰(羅刹)의 세계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근본을 보지 못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욕망이 생긴들 어떻게 분별하겠는가”란 무슨 뜻인가? 중생들은 모두 탐욕 때문에 계속해서 이 세상에 나는 것이다. “욕망은 칼 끝임을 알아서”란 무슨 뜻인가? 번뇌도 칼 끝이라 하고, 4대(大)도 칼 끝이라 한다. 사람에게는 이 두 가지 칼 끝이 있어서 생사를 떠나지 못하고 온갖 고통을 받는 것이다. 칼 끝이란, 욕망의 칼 끝이라 하기도 하고, 소견의 칼 끝이라 하기도 한다. “부지런히 계율을 닦고 배워라”란 무슨 뜻인가? 부지런함은 곧 지혜이니, 그윽한 이치를 연설하고, 그름을 버리고 옳음으로 나아가며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다.
2)2)중생들을 욕계에 속박시키는 다섯 종류의 번뇌를 말한다. 탐결(貪結), 진결(瞋結), 신견결(身見結), 계취견결(戒取見結), 의결(疑結)이 그것이다.
3)3)색계(色界)에서 생기는 4단계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초선(初禪)에는 각(覺)ㆍ관(觀)ㆍ희(喜)ㆍ낙(樂)ㆍ일심(一心)의 5지(支)가, 제2선에는 내정(內淨)ㆍ희(喜)ㆍ낙(樂)ㆍ일심(一心)의 4지(支)가, 제3선에는 사(捨)ㆍ염(念)ㆍ혜(慧)ㆍ낙(樂)ㆍ일심(一心)의 4지(支)가, 제4선에는 불고불락(不苦不落)ㆍ사(捨)ㆍ염(念)ㆍ일심(一心)의 4지(支)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