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설묘법결정업장경(說妙法決定業障經)』에 나오는 것세 가지 조항을 드러내어 설명하였다. 보살행을 가르쳐야 선지식임을 알 수 있고, 보리(菩提)에서 물러나는 것에 관한 여러 인연들에 대해 설명하였다. 비록 법을 비방하여도 법을 귀로 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불도를 성취한다. 스물네 가지 대승의 명호(名號)를 해설하였다.
6.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에 나오는 것네 가지 조목의 행을 드러내어 설명하였다. 수행하는 보살은 처음에 단바라밀(檀波羅蜜)을 닦음으로 인하여 산란함이 없어서 보리를 발기(發起)시킨다. 수행하는 보살은 보리심(菩提心)이 흩어지고 어지러워지게 됨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6바라밀을 섭념(攝念)해야 한다고 해설했다. 번뇌의 인연을 해석했다. 수행하는 보살은 처음 보리심을 발기하여 전념(專念)으로 6바라밀을 유지해야 함을 해설했다.
12. 『해혜보살소문경(海慧菩薩所問經)』에 나오는 것여덟 가지 조목의 행을 드러내어 설명하였다. 수행하는 보살은 비록 계율을 범해도 6바라밀의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능히 범하지 아니함을 성취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반야바라밀의 깊은 이치를 성문과 보살의 경중(輕重)을 비유하여 비교하고 살펴보았다. 수행하는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발하여 능히 인욕(忍辱)하면 삿된 마(魔)로 하여금 보리에서 물러나 잃게 하지 못하게 한다. 몸≺身≻ㆍ입≺口≻ㆍ뜻≺意≻의 세 가지 업을 참으면 부동(不動)한 6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을 해설하였다. 관행(觀行)으로 6바라밀의 염문(念門)을 성취함을 해설하였다. 여덟 가지 공덕이 번뇌와 조화롭게 섞임을 비유하여 해설하였다. 네 가지 선행(善行)을 해설했다. 수행하는 보살이 닦는 도행에는 열두 가지 삿된 마가 있어 도를 장애함이 있다는 앙구사구(央俱賖鉤)를 해설하였다.
39. 『수승구계품경(殊勝具戒品經)』에 나오는 것두 가지 조목의 행을 드러내어 설명하였다. 처음으로 수행하는 보살이 처음 보리심을 일으키고 당연히 마군과 함께 싸운다면, 헤아릴 수 없는 의복ㆍ음식ㆍ침구를 받아도 장애되지 않는다. 또 아뇩달(阿耨達)용왕이 네 개의 큰 강으로써 성취하였음을 해석했다.
42. 『출생무변문경(出生無邊門經)』에 나오는 것세 가지 조목의 행을 드러내어 설명하였다. 이 경의 다라니를 지니는 이는 죽을 때 80억의 모든 부처님께서 친히 오셔서 영접함을 설명하였다. 또 여래의 3신(身)을 표현하였다. 또 수행하는 보살이 네 가지 일과 네 가지 일의 무상행문(無相行門)을 닦아야 빨리 불도(佛道)를 이룬다고 설명하였다.
실천해야 할 세 가지 조목을 드러내어 설명했다. 수행하는 보살이 실천해야 할 6바라밀은 공행(空行)임을 해설하였다. 보살이 태어나면서 6도(道)에 들어가 중생들을 구원하여 제도하나니, 그런 까닭에 몸이 쾌락을 느낀다. 보살의 수행은 비유하면 마치 허공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그때에 문수사리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수행하는 보살은 어떻게 가장 뛰어난 미묘한 법[妙法]에 머물러서 일체의 보살행문(菩薩行門)을 나타내며, 또한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성숙시키는 것을 비유하면 마치 모든 부처님의 국토[佛刹]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수행하는 보살은 삼매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이 마하발두마(摩訶鉢頭摩)이다. 이 삼매를 얻고 나면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지옥에 들어가도 천상의 쾌락을 누린다. 그 보살은 이 모든 지옥의 사람들이 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보면, 복력(福力)으로 모든 죄인을 위해 널리 법을 설하여 무량 백천 중생들을 도탈(度脫)케 한다. 문수사리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수행하는 보살은 지옥에 태어나도 모든 하늘의 쾌락을 누리느니라.”
또 문수사리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찌하여 수행하는 보살은 축생으로 태어나서도 인간의 가장 승묘한 쾌락을 누립니까?”
030_0050_a_15L復次,文殊師利童子白佛言:“如何修行菩薩生於畜生而受人閒上妙快樂?”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수행하는 보살은 삼매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이 변적정(遍寂靜)이다. 이 삼매를 얻고 나면, 곧 축생으로 태어나도 그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가장 뛰어나고 미묘한 쾌락을 누리게 된다. 축생의 몸이기 때문에 모든 축생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해설하여 무량 백천 중생들을 도탈케 한다. 문수사리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수행하는 보살은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축생으로 태어나도 인간의 가장 뛰어나고 미묘한 쾌락을 누리는 것이니라.”
030_0050_b_02L문수사리동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수행하는 보살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도 전륜성왕의 쾌락을 누립니까?”
030_0050_a_24L文殊師利童子復白佛言:“世尊!如何修行菩薩生於貧里而受輪王快樂?”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수행하는 보살은 삼매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이 이연적정(離緣寂靜)이다. 이 삼매를 얻고 나면,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도 모든 가난한 이웃 중생들에게 설법하여, 간탐(慳貪)과 계율을 지키지 않는 것을 꾸짖고 보시와 지계를 찬양하여 이러한 좋은 인연으로 무량 백천 중생들을 도탈케 하며, 몸으로는 전륜성왕의 쾌락을 누리는 것이니라.”
030_0050_c_02L그때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수행하는 보살은 삼매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이 섭일체어언(攝一切語言)이다. 이 삼매의 힘을 얻은 까닭에 몸을 나누어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나타나지만,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이 안연히 움직이지 않고 부처님의 세계에 나타나서 모든 여래를 뵙고 법요(法要)를 다 듣는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보살은 훌륭하고 미묘한 방편으로 일체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돌아다니지만,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이 안연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마치 물속의 달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수행하는 보살은 다라니(陀羅尼)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이 아난차벌다(阿難哆伐多)이다. 이 다라니를 얻고 나면 수행하는 보살은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중생들의 마음을 분명하게 알고 그 언어를 각각 다 이해하여 뒤섞이거나 혼란함이 없느니라.”
또 비유하면 마치 허공과 같아서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는 모두 화합하는 일이 없으니, 모습이 없는 것[無相]이기 때문이다. 일체 색(色) 등의 온갖 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상응(相應)하는 것이 없나니,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가 열반의 모양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열반도 또한 화합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030_0051_b_02L문수사리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수행하는 보살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일체 중생들이 일체 법에 대하여 집착할 것이 없으며, 열반도 또한 그러하여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하면 바른 지혜[正智]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니라. 모든 법에 집착하는 생각이 곧 열반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무상(無常)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니라.
문수사리야, 일체 모든 법이 이미 실상(實相)이 없는데도, 만약 불신(佛身) 보기를 원하는 이라면 응당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 만약 볼 것이 아니라고 하면 곧 바른 지위에 도달할 것이다. 바른 지위에 도달한 이가 그 가운데에서 상(相)에 집착하면, 이와 같은 보시는 큰 복밭이 아니며, 또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도 아니니라. 이와 같이 보시하는 이는 많은 복을 얻지 못하고 이익될 것도 없다.
만약 보시하는 것이 있어도 많은 복과 이익 얻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를 세간에서 걸사(乞士)라고 부른다. 보시한 것 가운데 복과 이익의 대가가 없으면 이미 대가가 없는 복과 이익을 얻은 것이니, 곧 스스로 취할 것이 없는 복과 지혜를 성취한 것이니라. 이미 스스로 취할 것이 없는 복덕과 지혜를 성취했다면, 이후에 곧 속히 무생법인(無生法忍)1)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법계장전(法界藏殿)에 계셨는데, 모든 부처님께서 모인 한량없이 넓은 도량에 큰 비구들과 보살마하살과 함께 계셨다. 그때에 이 도량에 한 부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공덕장엄개부화(功德莊嚴開敷花)였으며, 그는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물러나 한편에 앉았다.
이때에 부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 있다면, 어떠한 무리의 사람은 선지식이 아니므로 응당 함께 머물지 않아야 합니까?”
030_0051_b_24L爾時,夫人白佛言:“若有初修行菩薩,何等之人非善知識,不應共住?”
030_0051_c_02L부처님께서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저 삼계(三界) 가운데 범천왕(梵天王)ㆍ제석천왕(帝釋天王)ㆍ사천왕(四天王)ㆍ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은 다 수행하는 보살에게는 선지식이 된다. 오직 성문만은 제외하나니, 성문은 수행하는 보살을 대승의 도를 수행하는 데에서 물러나게 할까 염려되기 때문에 선지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하는 까닭에 처음으로 수행하는 보살에게 권장하고 유인하여 돌이켜 소승에 들어가게 하나니, 이런 까닭에 성문승(聲聞乘)의 사람은 선지식이 아니다.
수행하는 보살은 보리심 때문에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받아들이나니, 차라리 불구덩이에 같이 있을지언정, 성문의 적멸(寂滅)한 열반에 머물지 않아야 하고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
030_0052_a_05L修行菩薩菩提心故攝諸衆生,寧同火坑,不住聲聞寂滅涅槃、不退菩提。
이러한 이치로 인하여 중생들을 거두어 받아들여서 그들로 하여금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보살은 일체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수라(阿修羅)의 존중을 받을 것이며 공양을 받을 만하나니, 성문을 초월하면 곧 삿된 마군의 권속이 희롱하거나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대승의 경전을 펴서 연설하는 곳에서, 만약 어떤 중생이 대승경전을 설하는 것을 듣고 마음으로 듣기를 좋아하지 않고 조롱하고 비방하면, 이것이 삿된 마군의 권속이며, 그는 대승경전을 비방한 마음 때문에 죽어서 아비지옥(阿鼻地獄)2)에 떨어져 한량없이 많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꼭 알아야만 한다.
또 아귀(餓鬼)에 태어나 불과 똥오줌을 먹으며 한량없이 많은 겁을 지내면서 고통을 다 받고 나면, 뒷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들 가운데 눈이 멀고 귀가 먹고 벙어리나 문둥병이나 불구자로 태어날 것이며, 이 중생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 한량없이 많은 생을 지내다가 비로소 부처님을 만나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직접 공양을 올리고 돌아와 다시 대승경전을 듣고 순일하여 잡스러움이 없게 된다.”
이 모임 가운데의 어떤 중생은 과거에 일찍이 부처님의 법을 듣지 못했으므로, 여래께서 묵묵히 말씀하시지 않으심을 보았다. 그 나머지 중생들은 과거에 일찍이 대승경전을 비방했던 까닭에 비록 많은 겁 동안을 지옥에 떨어져 있었고 아귀로 고통을 받았을지라도, 법을 비방할 때에 대승경전이 귀로 들어왔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부처님의 처소에서 직접 대승의 법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고, 위없는 보리심을 일으켜 마침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성취하였다.
다섯째는 사방의 바다와 같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여섯째는 금시조(金翅鳥)3)ㆍ긴나라(緊那羅)4)ㆍ마후라가(摩睺羅伽)5) 등 잡다한 종류가 다 공경하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일곱째는 건달바(乾達婆)6)에게 칭찬을 들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여덟째는 여러 하늘들이 다 공경하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아홉째는 범천(梵天)이 귀의하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열째는 천제석(天帝釋)이 공경하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열한째는 사천왕(四天王)이 거두어 보호해 주는 대상이 되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열두째는 용왕(龍王)이 공양하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030_0052_c_02L열셋째는 보살이 받들어 가지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열넷째는 불성(佛性)을 성취하게 하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열다섯째는 현인(賢人)과 성인(聖人)이 귀의하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열여섯째는 일체의 공양을 널리 받을 만하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열일곱째는 약수왕(藥樹王)7)과 같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열여덟째는 모든 번뇌를 끊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열아홉째는 법륜(法輪)을 굴릴 수 있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스무째는 말이 없고 연설할 것도 없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스물한째는 허공의 모양과 같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스물두째는 삼보(三寶) 종자의 성품이 끊어지지 않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스물셋째는 근기가 둔한 중생은 믿지 않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하며, 스물넷째는 일체를 초월했으므로 이것을 대승이라고 이름한다.”
그때 부처님께서 대승의 위력(威力)과 그 명호(名號)에 대해 연설하실 때,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백천 가지 악기는 연주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울렸으며, 공중에서는 여러 하늘들이 꽃을 비 내리듯이 흩어 내렸다. 무량 백천의 천자들은 모두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일으켰으며, 무량 백천의 성문들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 또 처음 계를 받은 보살로서 아직 법을 깨닫지 못한 자들도 모두 이미 깨달아 알게 되었다.
문수가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종성이니, 5음(陰)도 종성이고, 무명(無明)으로 나고 죽고 하는 것도 종성입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도 종성이며, 4전도(顚倒)8) 망상도 다 종성입니다. 5개(蓋)9)도 종성이며, 6입(入)도 종성입니다. 7식(識)의 번뇌도 종성이요, 9뇌(腦)10)로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것도 종성이며, 십악불선(十惡不善)도 종성입니다.
선남자여, 요점을 간추려 말하면 62견(見)11)과 일체 번뇌가 모두 여래의 종성입니다.”
030_0053_a_08L善男子!略要言之,六十二見及一切煩惱皆是如來種性。”
그때에 유마힐이 물었다. “그대는 무슨 뜻으로 일체 번뇌가 모두 부처님의 종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030_0053_a_10L時維摩詰問言:“汝何義故云一切煩惱是佛種性?”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만약 무위(無爲)를 깨달아 알아서 이미 정멸(定滅)에 머물러 있으면, 이 사람은 당연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또 보살이 번뇌에 머무르면서 지(地)의 자리에 머물러 정위(正位)의 실상(實相)을 보면, 이러한 사람은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비유하면 육지에서는 연꽃은 자라지 못하고 진흙탕에서만 자라며 꽃을 피우는 것과 같습니다.
저희들은 삼계(三界)의 번뇌 종자를 태워 없앴습니다. 저희들은 차라리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5역죄[五逆]를 지을지언정 당연히 세간의 번뇌를 끊고 해탈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030_0053_b_08L我等爲燒滅三界煩惱種子。我等寧以無閒五逆,不應斷解世閒煩惱。
왜냐하면 만약 사람이 이미 5역죄를 지었어도 죄를 받는 것이 끝나면, 마침내 돌아와 다시 보리심을 발하여 직접 불법을 듣고 불사(佛事)를 드러내지만, 아라한(阿羅漢)과 같은 이는 번뇌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뒤의 존재가 없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030_0053_c_02L라후라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분께 나아가서 문병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옛적을 생각해 보니, 옛날 비사리성(鞞舍離城)에 살고 있던 모든 족성의 사람들이 저의 처소를 찾아와 절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라후라여,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轉輪王)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道)를 닦으시니, 그렇게 출가한 이에게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라후라여, 당신이 지금 말씀하신 출가의 공덕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출가라는 것은 아무 이익도 없고 아무 공덕도 없으니 이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유위법(有爲法)을 주장하는 이는 이익이 있고 공덕이 있다고 말하지만, 저 출가라는 것은 무위법이기 때문입니다.
무위법은 아무 이익도 없고 아무 공덕도 없으며, 일체 모든 행을 멀리 여의었고, 열반(涅槃)에 지혜로운 이가 나아가 받는 것이며, 성인이 행할 바의 처소입니다. 많은 마군을 항복받고 5도(道)를 벗어나며, 5안(眼)12)을 깨끗이 하고 5근(根)을 안정하며,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다른 이를 괴롭게 하지 않으며, 온갖 악에 물들지 않고 모든 외도(外道)를 굴복시키며, 거짓된 이름을 초월하고 계율을 범하는 진흙탕을 벗어나며, 내 것에도 집착이 없고 내 것이 없는 것에도 받을 것이 없으며, 또한 동요하고 혼란함이 없고 몸과 마음을 조복하며, 다른 대중들을 거두어 보호하고 선정(禪定)을 따라 바깥 허물을 여의며, 일체의 처소에서 취할 것이 없어야 하니, 만약 이와 같이 출가하면 좋은 출가라고 이름할 것입니다.’
이때에 부처님께서 마하목건련(摩訶目揵連)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선지식이기 때문에 모든 법으로 보살을 가르쳐 인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하나니, 이로써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라도 당연히 성문과 연각의 소승(小乘) 교도(敎道)를 배우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파계한 사람과 삿된 행을 하는 모든 사람이 바로 보살의 선지식이기 때문이다.
030_0054_b_02L수행하는 보살은 차라리 계율을 깨뜨리고 삿된 행을 행하는 이와 사귀는 한이 있을지언정, 반드시 성문승과 연각승(緣覺乘)의 사람에게는 법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율을 범하고 삿된 행을 행하는 이와는 비록 사귄다고 해도 몸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성문의 사람들은 가고 앉음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집안의 도둑이 그 곁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러한 까닭에 보살은 당연히 성문과 함께 익히고 배우고 사귀고 내왕하지 않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야간(野干:여우)은 사자와 같이 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성문과 보살과의 관계도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성문은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닦아 배우기 때문이다.
만약 수행하는 보살이라면 불도만을 전념하여 구해서 중생들을 제도하지만, 성문은 오직 제 한 몸만 나아갈 길을 볼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라면 바른 길을 잘 행하여 중생들을 인도하지만, 성문은 오직 자기의 마음만을 청정히 할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라면 능히 자기의 마음을 청정히 하고 또한 중생들의 마음도 청정하게 하지만, 성문은 오직 자기의 번뇌만 제거할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라면 자기의 번뇌를 제거하고 또한 중생들의 번뇌도 제거하여 없애지만, 성문은 삿되게 빠른 길에 들어가 혼자만 세간을 피할 뿐이기 때문이다. 보살이라면 스스로 바른 길에 들어가 중생들을 인도하지만, 성문은 오직 습기와 번뇌만을 제거할 뿐이기 때문이다. 보살은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습기를 모두 없애고 번뇌도 다 제거하지만, 성문과 외도들은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살은 스스로 바른 도와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증득하지만, 성문은 적멸(寂滅) 열반(涅槃)에 들어가 그 법마저도 또한 없애기 때문이다.
첫째는 일체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이요, 둘째는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 번뇌를 멀리 여의게 하려는 서원이며, 셋째는 상속(相續)되는 습기를 제거하여 없애 주려는 서원이요, 넷째는 일체의 불법에 대하여 의혹이 없게 하려는 서원이며, 다섯째는 중생들의 일체 괴로움 덩어리를 제거하고 구원해 주려는 서원이다.
여섯째는 중생들을 3도(途)13)와 여덟 가지 재난[八難]14)에서 구제해 주려는 서원이요, 일곱째는 일체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고 친히 모시겠다는 서원이며, 여덟째는 보살의 일체 계행을 배우겠다고 하는 서원이요, 아홉째는 공중에 올라가서 털끝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사(佛事)를 나타내어 보이겠다고 하는 서원이며, 열째는 큰 법의 북을 크게 쳐서 모든 부처님 국토의 중생들이 듣는다면, 근기를 따라 속히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겠다는 서원이다.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처음 배우는 보살들은 이와 같이 수행하고 만약 이러한 지위에 머물면 오래지 않아서 여래의 행원을 일으킬 것이다.
030_0054_c_12L當知初學菩薩如是修行,若住此地不久而起如來行願。
또한 불자야, 수행하는 보살에게는 다시 열 가지 계행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030_0054_c_13L復次,佛子!修行菩薩復有十種戒行。何者,爲十?
첫째는 구경에는 보리(菩提)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그 계행이요, 둘째는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의 지위를 멀리 여의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일체 중생들의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행에 머물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보살의 계율을 받아 행하되 중생들로 하여금 조금도 범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일체 모든 법을 깨달아 알게 하려는 것이요, 일곱째는 닦은 바의 공덕을 시방에 회향하고 보시하여 불도(佛道)를 이루게 되기를 서원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여래의 법체(法體)를 마땅히 분별하지 아니함이요, 아홉째는 일체 세간의 법에 탐욕과 집착하는 것이 없는 것이며, 열째는 6근(根)을 방어하고 보호하여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030_0055_a_02L또한 수행하는 보살에게는 도에서 물러나 길을 헤매는 열 가지가 있으니, 항상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 반드시 멀리 여의어야 한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030_0055_a_02L復次,修行菩薩復有十種退道迷路應當遠離,每自察心。何者爲十?
첫째는 자기의 스승[師僧]과 화상(和尙)15)과 선지식(善知識)16)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요, 둘째는 세간의 괴로움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며, 셋째는 닦는 바의 계행에서 홀연히 후회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머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며, 다섯째는 삼마발저(三摩鉢低)17)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여섯째는 조그마한 공덕을 닦고 문득 만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요, 일곱째는 대승(大乘)을 비방하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며, 여덟째 보살의 계행을 멀리 여의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요, 아홉째는 아라한도(阿羅漢道)와 벽지불도(辟支佛道)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며, 열째는 또 수행하는 보살을 보고 증오하거나 질투하는 것이니, 이것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불자야, 이와 같은 열 가지가 보살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니, 이런 것들을 멀리 여읠 능력만 있다면 오래지 않아 틀림없이 해탈의 법문(法門)에 들어가리라.
030_0055_a_14L佛子!如是十種菩薩迷路能遠離,不久當入解脫法門。
또한 수행하는 보살은 반드시 열 가지 행원(行願)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030_0055_a_15L復次,修行菩薩應有十種行願。何者爲十?
첫째는 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미래의 겁(劫:아주 오랜 시간)이 다하도록 세간에 머물기를 서원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서원하는 것이 넓고 좋은 행원이며, 둘째는 나는 최후까지 일체 모든 부처님께 친히 공양 올리기를 서원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서원하는 것이 넓고 좋은 행원이다.
불자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이것을 수행하는 보살의 열 가지 큰 행원이라고 하나니, 원력(願力)의 힘 때문에 속히 보살이 되고 행원을 구족하느니라.
030_0055_b_08L佛子當知:是修行菩薩十種大願,以願力故,速獲菩薩具足行願。
또한 수행하는 보살에게는 다시 열 가지 마장(魔障:악마의 장애)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030_0055_b_10L復次,修行菩薩復有十種魔障。何者爲十?
첫째는 홀연히 물러나는 마음을 내어 ‘나는 부처를 성취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장애이고, 둘째는 부지런히 수행함을 올바르게 일으켰다가 홀연히 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장애이며, 셋째는 조그마한 공덕으로 싫어하고 만족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장애이고, 넷째는 세상에서 은둔하여 후미진 데 머물기를 좋아하고 선행(善行)을 함께 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장애이며, 다섯째는 일체 좋은 행원을 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장애이다.
여섯째는 번뇌를 끊어버리고 멸정(滅定)19) 닦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장애이고, 일곱째는 세간법(世間法)을 끊어버리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장애이며, 여덟째는 보살의 도행(道行)을 버리고 물러나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장애이고, 아홉째는 중생들에게 권유하여 교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악마의 장애이며, 열째는 부처님의 법을 비방하는 것이니, 이것이 열 번째의 마장이다.
실천해야 할 네 가지 조목을 드러내어 설명했다. 처음 수행하는 보살은 처음에는 단바라밀(檀波羅蜜:보시바라밀)을 배워서 보리의 마음을 일으킨다. 산란함이 없어지고 나서도 보리의 마음이 산란한 까닭에 6바라밀의 행으로 생각을 다잡는다. 번뇌의 인연에 대하여 해설했으며, 보살은 처음 낸 보리의 마음으로 6바라밀의 행을 유지한다고 설하고 있다.
만약 수행하는 보살이 이것을 버릴 때엔 아끼는 마음도 곧 버리게 되며, 그 인연으로 보리심을 낼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보리심이 발하면 곧 점점 자라고 커져서 성취하게 될 것이요, 점점 자라고 커져서 성취하면 곧 2승(乘)을 점점 멀리 여의게 됩니다. 만약 2승을 점점 멀리 여의면 곧 다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나아가게 됩니다.
비유하면 마치 비가 올 때 비가 내리는 곳에 병을 놓아두면 이 병에 제일 먼저 들어간 빗방울과 제일 나중에 들어간 빗방울, 그 두 방울만이 인연이 되어 병이 가득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들어간 빗방울을 필요로 하며 그것이 점점 들어가서 병이 가득 차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까닭에 인자(仁者)24)이신 부루나여, 수행하는 보살은 반드시 산란한 마음에 물드는 일이 없어야만 합니다.”
030_0055_c_23L是以,仁者富婁那!修行菩薩不應散亂,心無所染。
이때에 성자 부루나가 성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수행하는 보살은 어떻게 마음을 거두어야 산란함이 없습니까?”
030_0055_c_24L爾時,聖者富婁那語聖者舍利弗言:”修行菩薩如何攝心而無散亂?”
030_0056_a_02L사리불이 말했다. “보살은 부처님의 도를 돕기 때문입니다. 만약 삿된 행과 나쁜 견해를 내어도 장차 좋은 이익이 될 것입니다.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내가 지금 저지른 나쁜 행도 반드시 보리에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삿된 견해를 위하여 세간의 생사를 끊지 않나니, 이 때문에 내 몸은 세간에서 바꾸고 변하여 방편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수행하는 보살은 이와 같은 지혜로 마음에 산란함이 없습니다.”
그때에 부루나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만약 보살의 보리심이 산란하면 어떤 모양으로써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030_0056_a_07L爾時,富婁那語舍利弗言:“若菩薩菩提心亂,如何相貌而得知耶?”
사리불이 말했다. “이 마음이 산란한 것은 성문승과 연각승의 사람들이 그 도를 장애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2승(乘:성문승ㆍ연각승)의 도과(道果:불도의 과위)를 구하면 곧 이것이 산란한 마음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2승의 도행(道行)은 보리에 상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행하는 보살이라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견해도 오히려 산란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3독(毒)25)의 견해가 불도를 돕기 때문에 나고 죽음을 바꾸어가면서 보리를 이익되게 하나니, 이러한 견해 때문에 세간에 태어나 훌륭하고 좋은 방편으로 6바라밀을 원만하게 합니다. 수행하는 보살은 번뇌를 돕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030_0056_b_02L이미 태어나고 나면 곧 단바라밀(檀波羅蜜)ㆍ지계(持戒)바라밀ㆍ인욕(忍辱)바라밀ㆍ정진(精進)바라밀ㆍ선(禪)바라밀ㆍ지혜(智慧)바라밀을 받아 이와 같이 닦고 배우는데, 이와 같이 생각을 거두는 것이 세간의 나고 죽음의 길을 돕기 때문입니다. 수행하는 보살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이 주고 배우며, 나아가 부처님이 될 때까지 버리지 않습니다.
부루나여, 수행하는 보살은 반드시 번뇌를 싫어하거나 여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지혜로써 번뇌를 알고 분별하여 ‘이들 번뇌는 나의 몸을 이롭게 하고 내가 부처를 성취하는 것을 돕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번뇌에 모양이 있다면 최상의 미묘한 공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번뇌를 위하기 때문에 수행하는 보살은 항상 번뇌를 보호하고 아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마땅히 지혜로써 번뇌의 원인을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을 쓰기 때문에 삼계의 얽매임에 간섭 받지 않고 나로 하여금 6바라밀을 증장시켜 원만하게 하여 빨리 보리를 얻기 때문입니다. 만약 6바라밀이 점점 증장하면 나는 곧 세간의 나고 죽고 하는 얽매임에서 해탈하여 관만(寬慢)을 얻습니다.
030_0056_c_02L보살이 이미 정각을 성취하고 나면 번뇌는 다시 인연할 것이 없나니, 비유하면 수레의 굴대가 무거운 짐을 싣고 성에 들어가서 일이 끝나고 나면 비로소 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수행하는 보살이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고 나면 또한 이와 같아서 번뇌가 일을 분별하는 것을 다시는 인연하지 않습니다.
만약 나한(羅漢)의 마음을 거둔다면 그 지혜도 또한 이러하나니, 수행하는 보살은 불도를 돕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한의 행문(行門)이 없었다면 여래는 무엇을 따라 그 법을 만들어서 나한의 도과(道果)를 닦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법을 만들어 닦게 하는 까닭에 불도(佛道)를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중생들에게 만약 보리의 씨앗이 없으면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으셨다면 성문은 무엇으로부터 생겼겠습니까? 비유하면 등을 밝히는 데는 심지의 힘을 필요로 하지만, 이 심지는 맨 처음의 불꽃을 원인으로 하여서만 다 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맨 마지막의 불꽃을 원인으로 하여 다 타는 것도 아니고, 맨 마지막의 불꽃을 원인으로 하여 다 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까닭에 앞과 뒤와 중간의 불꽃들이 서로 이어져서 심지가 다 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030_0056_c_19L以是義故,前、後、中閒焰焰相續故,炷心燒盡。
보리도 또한 그러하여 처음 발심만을 인연하여 부처를 이루는 것도 아니며, 또한 최후의 발심만을 인연한 것도 아닙니다. 앞과 뒤와 중간의 마음이 서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까닭에 부처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찰나찰나(刹那刹那:아주 짧은 시간)가 보리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불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030_0057_a_02L만약 수행하는 보살이 보시(布施)27)하면 아상(我相)ㆍ인상(人相)ㆍ수자상(受者相)28)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마음에 구하는 바도 없고 탐하고 아끼는 생각도 없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보시하면 비록 조금만 보시하여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시를 하는 것과 같나니, 곧 수행하는 보살이 단바라밀을 구족하는 것입니다.
또 수행하는 보살이 세간의 법을 수순하는 까닭에 비록 오욕(五欲)30)을 받지만 마음으로는 3귀의(歸依)31)를 생각하나니, 이러한 까닭에 ‘나는 정각을 성취하고 중생을 구원하기를 서원합니다’라고 하면, 이것이 곧 이미 지계바라밀행에 머문 것입니다. 수행하는 보살은 이와 같은 지혜로써 마음으로 계를 범하지도 않고 계를 범했다고 이름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수행하는 보살이 넓고 큰 마음을 내어 모든 중생들이 감옥에 갇혔거나 목에 칼을 차고 있거나 발에 칼을 채운 채 있거나 손과 발에 고랑을 차고 있거나 형틀에 묶였거나 용수를 썼거나 채찍질을 당하거나 목이 잘리거나 손과 발과 코와 귀를 잘리거나 몸이 분리되는 것을 보면, 그때에 보살은 생각하기를 ‘내가 저들을 대신하여 모든 고통을 받아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다 안락함을 얻게 하겠노라. 만약 나를 고달프게 하면 아무리 참기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잘 참으며 마음으로 나쁘게 대함이 없으리라’라고 하나니, 이와 같이 수행하는 보살이 행하는 이런 것이 바로 자비로운 인욕바라밀행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또한 비유하면 상인(商人)이 큰 바다에 들어가려고 하면서 선박을 수리하지 않고 타고 가면, 상인과 재물이 모두 바다에 빠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미리 배를 수리하여 튼튼하게 하였다면, 상인과 재물을 목적지[彼岸]까지 잘 운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하는 보살도 비록 도에 대한 마음이 있으나 견고한 지혜가 없으면 오래지 않아 보리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처음 수행하는 보살도 비유하면 사자가 처음 새끼를 낳았을 때와 같이 보리의 우렁찬 소리를 내나니 보살도 또한 이와 같다. 이런 까닭에 여래가 살바야 지혜로써 처음 수행하는 보살을 위하는 것이다. 큰 소리로 불성(佛性)을 찬탄하시는 것은 다 여래가 잘 가르쳐 인도하고자 함이니, 보살이 지혜를 얻어 용감하고 건장하면 보리가 증장될 것이다. 만약 모든 중생들이 번뇌에 탐착하면 저절로 손해를 본다.
030_0057_c_02L비유하면 사자의 힘줄로 현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면 다른 짐승의 힘줄로 만든 줄은 모두 끊어지는 것과 같다. 여래가 바라밀로써 보리를 성숙시키고 보리심을 일으키게 하는 까닭에 만약 찬탄함이 있으면, 5정(情)32)이 다 끊어지고 2승의 도행(道行)도 모두 함께 끊어진다.
비유하면 코끼리와 소 따위의 잡다한 젖을 가득 채워 큰 못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만약 사자의 진짜 젖 한 방울을 못에 떨어뜨리면 이 모든 잡다한 젖은 흘러가 버리고 같은 못에 머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보리심의 젖도 또한 이와 같아서 백천 겁 동안 쌓은 악과 죄업도 사자의 보리심 때문에 그 죄장(罪障)은 다 사라져 없어지고 나머지 2승(乘)의 해탈도 없어져서 보리의 종성(種性)과 감히 함께하지 못하게 된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가릉빈가(迦陵頻伽)33)가 오히려 알 속에 있으면서 만약 소리를 내면, 설산(雪山)에 사는 큰 새들의 소리가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보살도 또한 이와 같나니, 생사의 알 가운데서 큰 보리심을 발하는 까닭에 닦은 공덕과 대비(大悲)의 세력이 저 성문과 연각은 미칠 수 없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금시조(金翅鳥)34) 왕의 새끼는 처음 나서도 눈은 밝고 날카로우며 매우 빨리 날아서, 일체 모든 새들이 아무리 오래 성장했다 하더라도 미칠 수 없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보살도 또한 이와 같다. 보리심을 내어 법왕자(法王子:부처님의 아들)가 되면 지혜가 청정하고 대비하며 용감하고 건장하여 일체 2승은 비록 오랜 겁을 지내면서 이미 도행(道行)을 닦았다 하더라도 모두 미칠 수가 없다.”
실천해야 할 한 가지 조목을 드러내어 설명했다. 수행하는 보살은 한 가지 계율을 잘 지키고 청정하게 바라밀을 실천해야 함을 해설하였다.
030_0057_c_19L第八
出『寶髻所問經』顯說一條行解修行菩薩一種持戒淸淨行波羅蜜。
그때에 부처님께서 보계(寶髻)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어떤 것이 수행하는 보살의 지계바라밀의 청정한 행인가?
030_0057_c_23L爾時,佛告寶髻菩薩言:“善男子!何者是修行菩薩持戒波羅蜜淸淨行?
030_0058_a_02L선남자야, 수행하는 보살에게는 한 가지 지계바라밀의 청정한 행(行)이 있느니라. 어떠한 것이 그 한 가지인가?
030_0057_c_25L善男子!修行菩薩有一種持戒淸淨行。何者爲一?
위없는 보리에서 마음을 버렸지만, 다시 그 마음이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마음은 만약 일[事]과 서로 호응하지 않는 것이라도 능히 상응하게 한다. 이 마음은 삼계(三界) 안에서 가장 뛰어나고 훌륭하여 최상이 되며, 이 마음은 성문과 연각을 초월하였으며, 이 마음은 일체 중생들을 구원하여 제도할 수 있고, 삼계의 중생들을 피안(彼岸)35)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 마음은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배 구슬이 한량없이 많은 양과 같으며, 이 마음은 깊고 무거워 생각을 보호하여 버림이 없고 잠깐도 잊음이 없게 하는 것이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큰 바다에 들어가 바다 밑바닥에 앉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030_0058_a_16L爾時,佛告舍利弗言:“舍利弗!譬如有人自言:‘我能入大海,至海底坐。’
이 사람이 이미 바다를 보고 나서는 곧 소 발자국에 고인 물에서 손과 발을 흔들어대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손을 내저으면서 물에서 뜨는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는 지난번에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큰 바다에 들어가 바다 밑에 앉을 수 있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오늘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는가?’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나는 먼저 이 소 발자국에 고인 물에서 배우고 익힌 다음에 바다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030_0058_b_02L사리불이 말했다. “옳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사람이 큰 바다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바다에 들어가 뜨는 것을 익혀야만 할 것입니다.”
030_0058_b_02L舍利弗言:“不也。世尊!若人願入大海,必須入海習浮。”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또한 그와 같으니라. 부처가 열반에 든 뒤에 세간에 법주(法主)36)인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가 이 대승경전에 대하여 믿는 마음을 내어 공양을 올리며, 여래의 지혜와 거룩한 덕을 드러내어 드날리고 공경하고 존중하면 이미 대승의 깊은 이치에 인연한 것이긴 하지만, 지혜가 좁고 하열하면 그 밑바닥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여 뒤에는 성문에 의지하여 머물거나 잡된 학문과 『아함경(阿含經)』과 논(論)을 닦고 익히며, 명예와 이양(利養) 때문에 모든 단월(檀越:보시하는 불자들)들과 오가고 하게 되느니라.
사리불아, 수행하는 보살은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서 모든 보살들을 따라 법행(法行)을 익히고 배워야 하느니라.
030_0058_b_21L舍利弗!修行菩薩應當於諸剎土隨諸菩薩習學法行。
030_0058_c_02L또 저 위의(威儀)와 행업(行業)37)과 선정(禪定)38)과 해탈삼매(解脫三昧)와 삼마발제(三摩鉢帝:定)와 선교방편(善巧方便)과 위신력(威神力)과 5신통과 해탈을 마땅히 배워야 하는 까닭에 그들을 따라서 닦고 배우는 것이니라. 그러나 공한정처(空閑靜處)에서는 마음으로 시방 국토의 모든 큰 보살들의 근기(根機)를 따르는 방편을 생각하되, 반드시 성문의 지혜에 들어가기를 좋아하여 수지(受持)하거나 익히고 배우지 말아야 하느니라.”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차라리 몸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비니율장(毗尼律藏)40)에 있어서는 가장 으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지금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물러 계시니 별다른 문제가 없사오나 만약 이후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제가 어떻게 계율을 가르치는 것이 좋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이러한 이유로 저를 위하여 자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지금 부처님의 처소에서 비밀리에 듣고 지녀 기억하고자 합니다. 저는 곧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에 저 자신을 자제할 수 있사오니, 저에게 만약 금단(禁斷)의 계율을 거두어 주시면 감히 감당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것을 계율을 어기는 것이라 하며, 어떤 것을 계율을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
세존이시여, 지금 이 모임 가운데는 성문과 보살과 헤아릴 수 없는 대중들이 다 모였으니, 감히 드러내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030_0058_c_22L世尊!今此會中聲聞菩薩無量衆集,堪可表示。
030_0059_a_02L그때에 우바리가 이 말을 마치자, 부처님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성문을 위하여 근기에 알맞은 청정한 계율을 따로따로 설명하도록 하라’고 하고, 다시 ‘처음 대승의 행을 수행하는 보살들을 위한 까닭에 훌륭하고 좋은 방편으로 근기에 맞도록 청정한 계율을 특별히 설하라’고 하였다.
무슨 까닭이겠느냐? 우바리야, 만약 성문이 지키는 계율은 그 계행이 차별이 있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처음 대승을 수행하는 보살의 계상과 위배되나니, 이는 곧 보살의 청정한 계율이 아니다. 만약 처음 대승을 수행하는 보살이 지키는 계율이 청정하지만, 곧 성문의 계행과 더불어 위배되어 같지 않다면, 이것도 청정한 계율은 아니다.
만약 처음 대승의 수행법을 수행하는 보살의 뜻과 원력 때문에 ‘바라건대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 동안 이 고통의 바다에서 중생들을 구원하여 제도하되 마음에 피곤해 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나이다’라고 서원한다면, 이것이 처음 대승이 수행하는 법을 수행하는 보살의 청정한 계행이다. 이러한 까닭에 우바리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각각 근기를 따라 금계(禁戒)를 설하는 것이 당연하니라.
030_0059_b_02L우바리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처음 대승의 수행법을 수행하는 보살은 각각 근기를 따라 중생들을 인도하여 교화하며, 다른 이의 마음을 순종하기 때문에 괴로운 일이 없다. 그러므로 계행을 닦고 지키는 것이다. 만약 성문이라면 곧 다른 사람의 마음을 따르지 않는 까닭에 계행을 닦고 지니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처음 대승이 수행해야 할 법을 수행하는 보살의 계행은 너그럽게 용납하면서도 여김이 없으며, 무슨 까닭에 성문의 금계는 몹시 좁고 위엄이 있고 엄격한가?
만약 정오를 당하여 계율을 범하였더라도 황혼에 이르러 보리심을 잠시라도 끊어짐이 없게 하면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약 초저녁에 계율을 범했다 하더라도 한밤중이 다 되도록 보리심을 잠시라도 끊어지지 않게 하여 계를 쌓아 성취하면 곧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다. 만약 한밤중에 계율을 어긴 일이 있더라도 그 다음날 새벽이 이를 때까지 보리심을 잠시라도 끊어지지 않게 하여 계를 쌓아 성취하면 곧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다.
우바리야,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처음 대승이 수행해야 할 법을 수행하는 보살은 계행(戒行)이 느슨해져서 엄격하지 않으면, 또한 보살이 죄를 짓고 계율을 범하는 일이 있어도 마땅히 뉘우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만약 성문이 계율을 어기면 계상(戒相)42)이 곧 없어져서 다시 온전해질 수 없다. 무슨 까닭인가? 만약 성문이라면 계율을 지켜서 번뇌를 제거하려는 까닭에 머리가 타고 옷에 붙은 불을 끄려는 것처럼 마음으로 빨리 적멸의 열반을 구하기 위하여 단단히 계행(戒行)43)을 지킨다.
030_0059_c_02L우바리야, 만약 처음으로 대승이 수행해야 할 법을 수행하는 보살이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 동안 비록 오욕(五欲)의 쾌락을 받았어도 보리심을 잠깐이나마 버린 적이 없다면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이 보살의 계행은 완전무결한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대승의 행을 닦는 보살은 뒤에 가서는 보리심을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성문을 가르쳐 주고 계율을 말해 주려면, 반드시 다른 이에게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그럽거나 느리게 함이 없어야 한다.
030_0059_c_15L若爲聲聞敎授說戒不應順他,亦無寬緩。
왜냐하면 처음 대승의 수행법을 닦는 보살은 큰 인연을 위하여 법의 그릇을 닦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성취한다. 보살은 반드시 세간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나는 헤아릴 수 없는 멀고 먼 오랜 겁 동안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생사의 괴로움을 받는다’고 발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래는 수행하는 보살을 위하여 삼계(三界)의 나고 죽음의 고통을 벗어나고 허물을 뉘우치는 인연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030_0060_a_02L왜냐하면 여래는 수행하는 보살을 위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매우 심오하고 청정한 인연과 허물이 없고 얽힘이 없으며 장애가 없고 공상(空相)이라는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만약 보살이 이러한 말을 듣고 나면 세간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면서 조금이나마 싫어하거나 피곤해 하는 일이 없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것이니라.”
그때에 성자 우바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3독(毒)의 중죄에 세 종류가 있으니, 탐욕을 반연하여 서로 호응하는 것과 성냄을 반연하여 오라에 묶이는 것과 어리석은 것[愚癡]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무거우며 어느 것이 가장 가볍습니까? 처음 대승의 수행법을 닦는 보살을 위하여 그 가볍고 무거운 것과 방편의 계행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성자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처음 대승의 수행법을 닦는 보살이라면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 동안 항상 탐욕을 범하여 여러 가지 죄를 지은 까닭에 또한 대승을 믿고 지니면서 한 생각이라도 성내는 마음을 내면 그 죄는 탐욕의 죄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왜냐하면 우바리야, 만약 성내는 마음이 발동하면 곧 중생들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성내는 마음을 버리고 탐욕심이 일어나면 곧 중생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며, 보살도 액난(厄難)이 없게 되느니라. 왜냐하면 우바리야.”
부처님께서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만약 탐욕을 범하게 되면 보리심을 버리고 떠나가는 것이 느릴 것이며 지은 죄는 점점 가벼워지게 될 것이다. 만약 진심(瞋心)을 범하면 보리심이 없어지고 떠나가는 것이 점점 빨라지고 죄를 얻는 것도 매우 무거울 것이다. 만약 어리석음을 범하면 나태해지고 보리심을 떠나는 것이 빨라져서 얻은 죄가 점점 더 깊게 될 것이니라.
문수가 대답했다. “마음이 놀라고 움직이는 까닭에 삼계가 싫어서 여의려고 하면 이것은 곧 성문이 그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요, 만약 한량없이 많은 법으로 세간을 섭수하려고 나고 죽고 하는 것을 끊지 않고, 일체 중생들에게 무외(無畏)를 베풀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려고 세간에 머물기를 좋아하면 이것은 곧 수행하는 보살이 그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다.
030_0061_a_02L간략하게 요긴한 것만 말하여 만약 마음으로 수량(數量)에 집착하여 양법(量法)을 가까이하고 헤아릴 수 있는 계행(戒行)과 삼매(三昧)와 지혜(智慧)와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익히고 배우면 이것은 곧 성문이 그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요, 만약 숫자를 따지지 않고 한량없이 많은 번뇌로써 무량한 훌륭하고 좋은 방편으로 배운 계행과 삼매와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을 친근히 하면 이것은 곧 수행하는 보살이 그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다.”
무슨 이치 때문인가? 문수사리야, 내가 말한 해탈까지의 일에 대하여 잘 살펴보아라. 이것이 조복(調伏)의 뜻이니, 모두 다 원만히 성취하게 하기 위한 때문이다.
030_0061_a_10L以何義故?文殊師利!聽我所說乃至解脫,此調伏義多應成就圓滿故。
문수사리야, 비유하면 마치 두 사람이 같은 곳에 있어도 한 사람은 사해의 바닷물에 대하여 찬탄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을 찬탄하는 것과 같으니라.
030_0061_a_12L文殊師利!譬如二人同居一處,一人讚歎四大海水、一人讚歎牛迹渦水。
문수사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소 발자국에 고인 물이 찬탄할 만큼 많은 것이냐?”
030_0061_a_14L文殊師利!於意云何?牛迹渦水堪讚多不?”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작은 웅덩이로서 아주 얕은 물인데 하물며 사해의 바닷물과 비교하여 찬탄의 경중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030_0061_a_15L文殊師利言:“是坑微淺,況堪類於四大海水讚歎輕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성문이 그 마음을 조복하는 현상도 또한 이와 같다. 비유하면 소 발자국에 고인 물과 같아 자체가 너무 적어서 건널 것도 아니고 찬탄해도 이익될 것이 없다. 소승의 경중(輕重)도 이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다른 한 사람이 찬탄하는 큰 바다에 대하여 문수사리야,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사람이 큰 바다에 대한 찬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030_0061_b_02L그때에 이 법을 말해 마치자, 1만 2천 명의 천자(天子)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각각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부터 보살이 수행하는 곳에서 수행하여 닦고 배워 일체 중생들을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 길에 들어가게 하기를 바라옵니다.”
1)세상 모든 것이 공(空)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을 말한다. 법공지(法空智)라고도 한다. 무생법인을 법공지라고 하는 데 대하여, 무생인은 인공지(人空智)를 뜻한다. 즉 아견(我見)에 의해 인식되는 인아(人我)는 모두 공한 것이라는 이치를 터득하는 지혜이다.
2)‘아비’는 avici의 음사이다. 의역하여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한다. 8대 지옥의 하나로서 염부제 밑 2만 유순(由旬) 되는 곳에 있으며 5역(逆)의 죄를 지은 사람이 떨어진다고 한다. 고통이 끊일 사이 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한다.
3)범어 garuḍa. 가루라(迦樓羅)ㆍ가류라(加留羅)ㆍ계로다(揭嚕茶)라 음역하며, 묘시조(妙翅鳥)라고 번역한다. 인도 신화의 가공의 큰 새이다. 사천하(四天下)의 대수(大樹)에서 내려와 용을 잡아먹고 양 날개를 펴면 336만 리나 된다고 한다. 그 날개는 금색이라고 한다. 대승경전에서는 천룡인부중(天龍人部衆)의 하나이고, 밀교에서는 범천(梵天)ㆍ대자재천(大自在天)이 중생들을 구하기 위해 이 새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다고 한다. 또는 문수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4)범어 Kiṃnara. 또는 긴나라(緊拏羅)ㆍ긴타라(緊陀羅)ㆍ긴날락(緊捺洛)ㆍ견타라(甄陀羅)ㆍ진타라(眞陀羅)라고 하기도 하며, 번역하여 의인(疑人)ㆍ의신(疑神)ㆍ인비인(人非人)ㆍ가신(歌神)ㆍ가악신(歌樂神)ㆍ음악신(音樂神)이라고도 한다. 8부중(部衆)의 하나로서 사람인지 짐승인지 또는 새인지 일정하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는 하늘의 악신(樂神)이라고 한다. 혹은 사람 머리에 새의 몸을 하고, 또는 말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는 등 그 형상도 일정하지 않다.
5)범어 Mahoraga. 8부중(部衆)의 하나이다. 또는 막호락(莫呼洛)ㆍ모호락(牟呼洛)이라고도 하며, 번역하여 대망신(大蟒神)ㆍ대복행(大腹行)이라고 한다. 몸은 사람과 같고 머리는 뱀이라고 한다. 용의 무리에 딸린 악신(樂神)으로 묘신(廟神)이라고도 한다. 태장계 만다라에서는 외금강원의 북쪽에 있다.
6)범어 gandharva의 음역이다. 또는 건달박(健達縛)ㆍ건달바(犍達婆)ㆍ언달바(彦達婆)ㆍ건답화(犍沓和)ㆍ헌달박(巘達縛)이라 하기도 하며, 번역하여 향신(香紳)ㆍ후향(齅香)ㆍ향음(香飮)ㆍ심향(尋香)ㆍ식향(食香)ㆍ심향행(尋香行)이라고 한다. 갖가지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가지 속성이 주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하늘의 악사라 하는데, 하늘에 있으며 풍악을 울리는 신이다. 술ㆍ고기를 안 먹고, 다만 향을 찾을 뿐이므로 심향이라고도 하며, 긴나라와 함께 제석천을 모시고 기악을 연주한다고 한다. 후세에 와서는 동방 지국천(持國天)의 권속으로서 동방 수호의 신으로 인식되었으며, 또 천룡팔부 중의 하나로서 불법의 수호자로 되어 있다.
7)초목으로 병을 고치는 이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이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대승의 가르침이 번뇌로 고통 받는 중생을 가장 잘 치유해 주는 것을 뜻한다.
8)4종전도(種顚倒) 또는 4도(倒)라고도 한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이 빠져 있는 네 가지 그릇된 견해로서, 즉 상전도(常顚倒)ㆍ낙전도(樂顚倒)ㆍ아전도(我顚倒)ㆍ정전도(淨顚倒)를 말한다. 2승(乘)전도로서 무상(無常)전도ㆍ무락(無樂)전도ㆍ무아(無我)전도ㆍ무정(無淨)전도 등 네 가지 그릇된 견해라고도 한다.
9)범어 pañca nivaraṇā. 5장(障)이라고도 한다. 개(蓋)는 개부(蓋覆)한다는 뜻이다. 5법(法)이 있어 심성(心性)을 가리워 선법(善法)을 낼 수 없게 한다. 첫째는 탐욕개(貪欲蓋)이니, 5욕에 집착함으로 심성을 가리는 것이요, 둘째는 진에개(瞋恚蓋)이니, 성내는 것으로써 심성을 가리는 것이며, 셋째는 수면개(睡眠蓋)이니, 마음이 흐리고 몸이 무거워짐으로 심성을 가리는 것이요, 넷째는 도회개(掉悔蓋)이니, 마음이 흔들리고 근심함으로 심성을 가리는 것이며, 다섯째는 의법(疑法)이니, 법에 대하여 결단이 없이 미룸으로써 심성을 가리는 것이다.
10)9액(厄)ㆍ9난(難)ㆍ9횡(橫)ㆍ9죄보(罪報)라고도 한다. 석존이 현세에서 받은 9가지 재난. 첫째 음녀 손타리에게서 욕설을 들은 일. 둘째 전차파라문의 계집에게서 욕설을 들은 일. 셋째 제바달다에게 발가락을 다친 일. 넷째 병목에 발을 찔린 일. 다섯째 비루리 때문에 두통을 앓은 일. 여섯째 아기달다 파라문에게 말 먹이 보리의 베풀음을 받은 일. 일곱째 차가운 바람 때문에 등이 아팠던 일. 여덟째 성도 전 6년 동안의 고행. 아홉째 바라문의 마을에 들어가 밥을 빌다가 얻지 못한 일.
11)외도의 여러 주장을 분류하여 62종으로 한 것. ①본겁본견(本劫本見)ㆍ말겁말견(末劫末見)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을 62종으로 나눔. 본겁은 과거시, 본견은 과거에서 상견(常見)을 일으킨 것. 말겁은 미래, 말견은 미래세에서 단견(斷見)을 일으킨 것. 본겁본견의 설을 18종으로, 말겁말견의 설을 44종으로 하여 62견이라 한다. ②과거ㆍ현재ㆍ미래의 3세(世)에 각각 5온(蘊)이 있어 곱하여 15가 되고, 낱낱이 4구(句)의 이견(異見)이 있어 합하여 60견(見)이 되고, 근본인 단(斷)ㆍ상(常) 2견을 더한 것. ③5온ㆍ3세의 곱하는 것은 ②와 같고, 4구의 방식을 달리하여 이 4구로써 3세의 5온에 일관하여 62견으로 한다. ④4구의 해석은 ②와 같고, 4구와 3세의 배대(配對)를 달리한 것이다.
12)①육안(肉眼)이니 우리 중생들의 육신이 가지고 있는 눈이며, ②천안(天眼)이니 색계(色界)의 사람이 가진 눈으로 멀고 가까움, 안과 밖,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눈이며, ③혜안(慧眼)이니 2승(乘)의 사람의 눈으로 연기의 실상(實相)을 보는 지혜의 눈이며, ④법안(法眼)이니 보살의 눈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일체의 법문을 비춰 보는 지혜의 눈이며, ⑤불안(佛眼)이니 부처님의 눈으로 일체를 알며 일체를 비춰 보는 눈으로 앞의 네 가지를 모두 구비한 눈을 말한다.
13)지옥ㆍ아귀ㆍ축생의 세계를 말한다.
14)부처님의 법을 듣지 못하는 여덟 가지 어려운 처지를 말한다.
15)범어 upādhyāya, 팔리어 upahāya. 오사(烏社)ㆍ올사(殟社)ㆍ화사(和社)ㆍ화사(和闍)ㆍ화상(和上)이라고도 한다. 범어로는 오파타야(鄔波駄耶)라 음역하고, 친교사(親敎師)ㆍ역생(力生)ㆍ의학(依學)ㆍ근송(近誦)이라 번역한다. 본래는 아사리와 함께 수계사(授戒師)인 스님을 말하는 것이나, 후세에는 덕이 높은 스님을 가리키게 되었다.
16)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을 선지식(善知識)ㆍ선우(善友)ㆍ친우(親友)ㆍ승우(勝友)ㆍ선친우(善親友)라 하고,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을 악지식(惡知識)ㆍ악우(惡友)ㆍ악사(惡師)라 한다. 다만 지식이라고만 할 때는 선지식을 말한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보이듯이 노ㆍ소ㆍ남ㆍ녀ㆍ귀ㆍ천 어떠한 모양을 하였든지 불도로 나아가도록 인도하고 인연을 맺게 하는 이는 모두가 선지식이다.
17)범어 samāpatti. 정(定)의 일명. 삼마발제(三摩鉢提)ㆍ삼마발제(三摩拔提)라고도 하며, 등지(等至)라 번역. 정을 등지라 함은 등(等)은 정력(定力)에 의하여 혼침(惛沈)ㆍ도거(掉擧)의 번뇌를 여의고, 마음이 평등 평정(平靜)함을 말함. 정력이 이런 상태에 이르게 하므로 지(至)라 한다.
18)범어 Samyaksaṁbuddha. 부처님의 10호(號)의 하나. ‘삼먁삼불타’라고 쓰기도 한다. 번역하여 정등각(正等覺)ㆍ정변각(正遍覺)ㆍ정변지(正遍智)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평등하고 바른 깨침을 말한다.
19)마음의 작용을 모두 끊어버린 선정. 멸진정(滅盡定)의 준말.
20)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장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예언하신 말씀.
21)부처님 제자를 부르는 말.
22)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지혜가 제일 뛰어난 분.
23)보살이 불위(佛位)에 이르기까지 수행하는 햇수[年數]. 또는 3기(祇)라고도 한다. 10주ㆍ10행ㆍ10회향의 3위(位)를 수행하여 마치는 데 1아승기겁을 지내며, 그 동안에 7만 5천 부처님께 공양한다. 10지 중의 초지로부터 제7지에 이르기까지 수행을 마치는 데 제2 아승기겁을 지내며, 7만 6천 부처님께 공양한다. 제8지로부터 제10지의 수행을 마치는데 제3 아승기겁을 지내며, 7만 7천 부처님께 공양한다고 한다. 아승기겁은 불교에서 일컫는 124대수(大數) 가운데 105번째의 수로서 한자어로는 무수(無數)라고 한다.
24)부처님의 제자가 같은 서열의 제자를 일컫는 말.
25)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26)범어 sarvaña. 줄여서는 살운(薩雲)ㆍ살운(薩云)이라고도 하며, 일체지(一切智)라고 번역한다. 불과(佛果)에서 일체 법을 증득하는 지혜이다. 살바야해(薩婆若海)라 함은 이 지혜의 넓은 것을 바다에 비유한 것이다.
27)단나(檀那)ㆍ단(檀)ㆍ다나(陀那)ㆍ시여(施與)라고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물질 등을 베풀어 주는 것으로서, 6바라밀의 하나. 보시의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분류가 있다. 재(財)와 법(法), 2종 보시를 비롯하여, 3ㆍ4ㆍ5ㆍ6ㆍ8종 등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 재시(財施)ㆍ법시(法施)ㆍ무외시(無畏施) 등으로 나누는 3종 보시가 가장 대표적이다. 여러 가지 보시행들은 보살이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덕목이다. 보시할 때 중요한 점은 집착함이 없어야 하며, 청정한 것을 베풀어야 하며, 보시물에 기준을 두지 말고 베푸는 마음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28)모든 물질은 필연적으로 일정한 목숨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 수(受)는 수(壽).
29)신(身)ㆍ구(口)ㆍ의(意) 3업(業)을 행할 때 계행(戒行)이 나타나는 모양.
30)눈ㆍ귀ㆍ코ㆍ혀ㆍ몸의 5관이 그 대상인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에 대해 일으키는 욕망. 또 재욕(財欲)ㆍ색욕ㆍ음식욕ㆍ명예욕ㆍ수면욕(睡眠欲)을 말하는 수도 있다.
31)부처님과 법과 스님들에게 귀의한다는 뜻이다.
32)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으로 일으키는 다섯 가지 감정. 5근(根)이라고도 한다.
33)범어 kalaviṅka. 또는 가라빈가(歌羅頻伽)ㆍ갈라빈가(羯羅頻迦)ㆍ가릉비가(迦陵毘伽)라고도 하며, 줄여서 가릉빈(迦陵頻)ㆍ가루빈(迦累賓)ㆍ가릉(迦陵)ㆍ갈비(羯脾)ㆍ빈가(頻迦)라고도 하며, 번역하여 호성(好聲)이라 한다. 소리가 곱기로 유명하다. 깃이 아름답고 소리가 맑은 인도의 새를 말하기도 한다. 이 새는 ‘극락조’라고도 하여, 정토만다라 등에서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으로 그린다. 옛날 동양에서 천상 사람이 나는 모양을 그려 가릉빈가라 함은, 대개 그 소리가 고운 것을 이상화(理想化)하여 모양의 아름다움으로 변한 것인 듯하다.
34)범어 garuḍa. 가루라(迦樓羅)ㆍ가류라(迦留羅)ㆍ계로다(揭路茶)ㆍ가로다(加嚕茶)라고도 쓰고, 항영(項癭)ㆍ대소항(大嗉項)ㆍ식토비고성(食吐悲苦聲)이라 번역한다. 또는 소발랄니(蘇鉢剌尼)라 하고, 묘시조(妙翅鳥)라 번역하기도 한다. 용을 잡아먹는다는 조류의 왕. 8부중(部衆)의 하나. 실제로 있는 동물이 아니고 신화의 새이다. 고대 인도 사람들은 새의 괴수로서 이러한 큰 새의 존재를 생각하고, 대승경전 같은 데에 8부 중의 하나로 자주 인용하고 있다. 밀교에서는 이 새를 대범천(大梵天)ㆍ대자재천(大自在天) 등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화현한 것이라 하고, 혹은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태장계 외금강부 중에 들어 있다.
35)불교가 지향하는 이상향, 즉 열반의 경지.
36)원래는 부처님을 일컫지만 여기서는 불법을 알고, 법을 말하는 이.
37)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
38)선은 범어 선나의 준말, 정은 선의 한자 뜻. 생각을 고요히 하여 산란하지 않은 상태.
39)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계율에 대하여 제일 뛰어났던 제자.
40)부처님의 제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설한 율장.
41)범어 kṣaṇa. 차나(叉拏)라고 음역. 일념(一念). 지극히 짧은 시간. 120찰나가 1달찰나(怛刹那), 60달찰나가 1납박(臘縛), 30납박이 1모호율다(牟呼栗多), 30모호율다가 1주야(晝夜)이므로, 1주야인 24시간을 120×60×30×30으로 나눈 것이니, 곧 75분의 1초가 된다.
42)각주 28) 참조.
43)계 4별(別)의 하나. 계를 받은 뒤, 계법의 조목에 따라 이를 실천 수행하는 것.
44)고통 세계의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이 중생을 불도에 이끌어 들이기 위한 네 가지 방법. ①보시섭(布施攝)이니, 상대편이 좋아하는 재물이나 법을 보시하여 친절한 정의(情誼)를 감동케 하여 이끌어 들임. ②애어섭(愛語攝)이니, 부드럽고 온화한 말을 하여 친해서 이끌어 들임. ③이행섭(利行攝)이니, 동작ㆍ언어ㆍ의념(意念)에 선행(善行)으로 중생을 이익케 하여 이끌어 들임. ④동사섭(同事攝)이니 상대편의 근성(根性)을 따라 변신(變身)하여 친하며, 행동을 같이하여 이끌어 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