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존께서 볏짚을 보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 비구들이여, 만일 연생(緣生)을 보면 곧 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면 부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박가범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잠잠히 계셨습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이 경은 어떠한 뜻이 있으며, 어떤 것이 연생이며, 어떤 것이 법이며, 어떤 것이 부처이며, 어떤 것이 연생을 보는 것이 곧 법을 보는 것이며, 어떤 것이 법을 보면 곧 부처를 보는 것입니까?”
이렇게 말하자, 자씨보살마하살이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박가범께서는 항상 비구들에게 이 뜻을 말씀하시되, ‘만일 연생을 보면 곧 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면 부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연생이란, 이른바 무명을 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6처(處)가 있고, 6처를 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사(老死)가 있으니, 여래께서는 이것이 연생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연생인가? 여래께서는 이 연생이 상주하여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壽命)도 없고, 뒤바뀜[顚倒]도 없고, 무생(無生)이며 무작(無作)이며 무위(無爲)이며 무대(無對)이며 무애(無礙)라 하셨습니다. 자성이 적정함을 보는 것이 곧 법을 보는 것이니, 만일 이러한 종류들이 상주하여 인이 없고, 아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고, 뒤바뀜이 없고, 무생이며 무대이며, 무애임을 보면 곧 이것이 법을 보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법신(法身)을 보고 여래께서 현전에 증득한 바른 지혜를 보게 됩니다.”
자씨보살이 대답하였다. “인이 있고 연이 있으니, 인연이 없는 것을 연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여래께서는 이에 간략히 연생의 모습을 말씀하셨으니 ‘이 인을 말미암은 까닭에 능히 이 결과를 낸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간에 법성의 법은 법의 위치에 머물러서 연생에 수순합니다. 진여는 뒤바뀜이 없으며, 진여는 진여와 다르지 않으며, 진실은 진실과 다르지 않으니, 뒤바뀜이 없고 어긋나지 않음이 이러합니다.
또 연생은 두 가지 인(因)을 말미암아 일어나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인에 속한 것[繫屬因]이며, 둘째는 연에 속한 것[繫屬緣]입니다.
036_0925_c_17L復次緣生者,由二種因起。云何爲二?一者繫屬因,二者繫屬緣。
036_0926_a_01L연생하는 법에도 두 가지가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하니, 외(外)와 내(內)입니다. 외연생(外緣生)의 인에 속한 것[繫屬因]은 어떠한가? 이른바 종자로부터 싹을 내고, 싹으로부터 잎을 내고, 잎으로부터 가지를 내고, 가지로부터 줄기를 내고, 줄기로부터 곁가지를 내고, 곁가지로부터 꽃을 내고, 꽃으로부터 열매를 내니, 만일 종자가 없으면 싹이 나오지 못하고, 꽃과 열매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 종자가 있으므로 싹을 내고, 내지 꽃이 있고 열매를 내거니와, 그 종자는 내가 능히 싹을 내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싹도 또한 내가 종자에서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시계(時界)인가? 종자로 하여금 거두어 지니게[攝持] 함이 지계이며, 종자로 하여금 불어나게 하는 것이 수계(水界)이며, 종자로 하여금 성취하게 하는 것이 화계(火界)이며, 종자로 하여금 자라나게 하는 것이 풍계(風界)이며, 종자로 하여금 장애가 없게 하는 것이 공계(空界)이며, 종자로 하여금 달라지게[變易] 하는 것이 시계(時界)이니,
만일 여러 가지 연이 없으면 종자는 싹을 내지 못하니, 지계를 빠뜨리지 않거나, 만일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시계를 빠뜨리지 않으면 일체가 화합하여 종자는 싹을 냅니다. 그리고 그 지계(地界)는 내가 능히 종자를 거두어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수계(水界)는 내가 능히 종자를 불어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화계(火界)는 내가 능히 종자를 성취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풍계(風界)는 내가 능히 종자를 자라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공계(空界)는 내가 능히 종자를 장애가 없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시계(時界)는 내가 능히 종자를 달라지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036_0926_b_01L 그 종자도 내가 여러 연으로부터 싹을 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연을 의지하여 종자는 싹을 내니, 그 싹은 자기가 짓는 것도 아니며, 남이 짓는 것도 아니며, 둘이 함께 짓는 것도 아니며, 자재천(自在天)이 짓는 것도 아니며, 시간이 변화하여 짓는 것도 아니며, 자성(自性)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며, 짓는 자에 속하거나 인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종자는 지ㆍ수ㆍ화ㆍ풍ㆍ공ㆍ시가 화합하는 까닭에 이러한 외연생법을 내거니와, 반드시 다섯 가지를 알아야 하니, 항상하지 않으며, 단절 되지 않으며, 옮겨가지 않으며, 인(因)은 적으나 과(果)가 많으며, 같은 것이 상속(相續)하여 다른 물건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단절 되지 않는 것인가? 먼저 종자가 부서져서 싹이 나는 것은 아니나, 또한 부서지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이와 같이 종자와 부서지는 것이 화합하여 싹을 내는 것을 단절 되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 옮겨가지 않는다는 것은 종자와 싹이 다르기 때문이며, 인은 적고 결과가 많다는 것은 종자는 적은데 과실은 많은 것이며, 비슷한 것이 상속한다는 것은 그가 심은 종자에 따라서 걷는 열매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외연생법의 다섯 가지를 마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내연생(內緣生)인가? 두 가지가 있어 생기게 하니, 첫째는 인에 속한 것[繫屬因]이며, 둘째는 연에 속한 것[繫屬緣]입니다.
036_0926_b_15L云何內緣生?有二種得生。云何爲二?種一者繫屬因,二者繫屬緣。
내연생법(內緣生法)의 인에 속한 것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생을 연하여 노사(老死)가 있는 것이니, 만일 무명이 없으면 행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명이 있으면 행이 있고, 내지 생(生)이 있음을 연하여 노사(老死)가 생합니다. 그 무명은 내가 능히 행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은 내가 무명에서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내지 생은 내가 능히 노사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명이 있으면 행이 생기고 내지 생이 있으면 노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내연생법의 인에 속한 것입니다.
036_0926_c_01L어떤 것이 내연생법의 연에 속한 것인가? 6계(界)가 화합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6계가 화합하는가? 이른바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2)가 화합하여 연생함이 연에 속한 것입니다. 어떤 것이 지계인가? 몸이 모이고 굳게 하는 것이 지계입니다. 어떤 것이 수계인가? 몸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수계입니다.
어떤 것이 화계인가? 몸 안에 음식이 성취되게 하는 것이 화계입니다. 어떤 것이 풍계인가? 몸 안의 드나드는 호흡이 되는 것이 풍계입니다. 어떤 것이 공계인가? 몸 안에 구멍과 틈을 이루게 하는 것이 공계입니다. 어떤 것이 식계인가? 갈대 묶음과 같은 명색(名色)을 움직이게 하며, 다섯 가지 식과 상응하는 유루(有漏)의 의식(意識)을 식계라 합니다.
만일 6계가 없으면 몸을 이루지 못하거니와 그 안에서 지계를 빠뜨리지 않고,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를 빠뜨리지 않으면, 일체가 화합하여 능히 몸을 이룹니다. 그 지계는 내가 능히 몸으로 하여금 모이고 체성을 굳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화계는 내가 능히 몸 안의 음식을 성취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풍계는 내가 능히 몸에 드나드는 호흡을 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공계는 내가 능히 몸 안에 구멍과 틈을 이룬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식계는 내가 능히 갈대 묶음과 같은 명색을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몸도 또한 내가 여러 연을 입고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연이 있어서 그 몸이 생겼습니다.
이 지계는 나[我]도 없고, 남[人]도 없고, 명(命)도 없고, 수자(壽者)도 없고, 뜻으로 나는 것[意生]도 없고, 유동(儒童)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남녀가 아닌 것도 없고, 나도 없으며, 우리[我]도 없고 또한 나머지도 없습니다[無餘].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도 또한 나도 없고, 남도 없고, 명도 없고, 수자도 없고, 뜻으로 나는 것도 없고, 유동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남녀가 아닌 것도 없고, 나도 없으며, 우리도 없고, 나머지도 없습니다.
036_0927_a_01L 어떤 것이 무명인가? 이 6계에서 하나라는 생각[一想], 합한다는 생각[合想], 항상하다는 생각[常想], 견고하다는 생각[堅想], 영원하다는 생각[常恒想], 즐겁다는 생각[樂想], 고요하다는 생각[靜想], 중생이란 생각[眾生想], 명이란 생각[命想], 수자란 생각[壽者想], 뜻으로 난다는 생각[意生想], 유동이라는 생각[儒童想],3) 내가 짓는 이라는 생각[作者想]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렇듯 가지가지 무지(無知)를 내는 것이 무명입니다.
이러한 무명의 경계에서 탐(貪)ㆍ진(瞋)ㆍ치(痴)가 생기고, 그 탐ㆍ진ㆍ치에서 행(行)이 생겨 저 일들을 시설(施設)하는 것을 식이라 합니다. 그 식은 네 가지 온[四蘊]을 내고, 저 명색(名色)이 의지하는 것은 모든 근(根)이니 곧 6처(處:入)이며, 세 가지 법[三法:根境識]이 화합한 것을 촉(觸)이라 합니다. 촉은 수(受)를 내고, 수는 탐착하는 까닭에 애(愛)를 내며, 애가 광대해지는 까닭에 취(取)라 하고, 취는 다시 유(有)를 냅니다.
업의 유(有:존재)가 작인(作因)4)이 되어 온(蘊)을 내니, 온이 익어지면 노(老)라 하고, 온이 부서지면 사(死)라 합니다. 사랑에 미혹하고 탐착하여 열을 내고 번뇌하니 수(愁)라 하고, 지나간 일을 거슬러 생각하고, 말소리가 슬픈 것이 탄(嘆)이며, 다섯 가지 식신(識身)과 상응함이 고(苦)이며, 뜻에 즐겁지 않음이 우(憂)이며, 수번뇌(隨煩惱)를 뇌(惱)라 합니다.
어리석음이 무명이며, 조작하는 것이 행이며, 요별하는 것이 식이며, 서로서로 포섭해 가지는 것이 명색이며, 처소에 의지하는 까닭에 6입이라 하고, 경계에 부딪치는 까닭에 촉이라 합니다. 받아들이는 까닭에 수라 하고, 목마르게 사랑하는 까닭에 애라 하며, 취하여 집착하는 까닭에 취라 합니다.
취한 것이 다시 존재를 내는 까닭에 유라 하고, 능히 생기는 까닭에 생이라 하며, 근이 익은 까닭에 노라 하고, 부서져 멸하는 까닭에 사라 합니다. 슬퍼하는 까닭에 수(愁)라 하고, 처량히 여기는 까닭에 탄(嘆)이라 하며, 뜻이 기쁘지 않은 까닭에 우(憂)라 하고, 몸을 핍박하는 까닭에 고(苦)라 하고, 감정에 맞지 않는 까닭에 뇌(惱)라 합니다.
036_0927_b_01L진실한 행(行)을 닦지 않는 것이 사행(邪行)이며, 무지(無知)를 무명이라 하며, 무명이 있으므로 가지가지를 조작하니, 복근행행(福近行行)과 비복근행행(非福近行行)과 부동근행행(不動近行行)입니다. 복근행행과 비복근행행을 일으키는 것을 식(識)이라 하니, 그러므로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다 합니다. 비복근행행을 일으키면 비복근행행도 또한 식이니, 그러므로 행을 연하여 식이 있다 합니다. 부동근행행을 일으키면 부동근행행도 또한 식이므로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다 합니다.
명색이 자라나서 6처문(處門)이 되니, 그러므로 명색을 연하여 6처가 있다 하며, 6처의 몸이 움직이는 까닭에 6처를 연하여 촉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종류의 촉은 같은 종류의 수(受)를 내니, 그러므로 촉을 연하여 수가 있다 합니다. 수에서 기쁘고 즐거움을 차별하여 탐착하니, 그러므로 수를 연하여 애가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고 탐착하고 즐거워하는 까닭에 사랑하고 버리지 못하고 자주자주 원하니, 그러므로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다 합니다.
이렇게 따르고 구하는 것은 다시 유(有)를 내어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일으키니, 그러므로 취를 연하여 유가 있다 합니다. 업을 따라 생겨난 5온(蘊)이 움직이니, 유를 연하여 생이 있다 합니다. 생겨나서 온은 익고 부서져 멸하니, 생을 연하여 노사가 있다 합니다. 이것이 12연생(緣生)입니다.
비록 연생하는 것이 끊임없이 움직여서 급히 흐르는 물결과 같을지라도, 이들 12지연생(支緣生)은 4지(支)가 화합하여 움직이는 인(因)이 됩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무명(無明)과 애(愛)와 업(業)과 식(識)이니, 식은 종자의 자성(自性)인 인이며, 업은 밭[田]의 자성인 인이며, 무명과 애는 번뇌의 자성인 인이 되어서, 업과 번뇌와 식이 능히 종자를 냅니다.
036_0927_c_01L 이렇듯이 업과 식은 종자와 밭이 되고, 애와 식은 종자와 적시는 것이 되고 무명과 식은 종자와 싹트는 것이 되거니와, 그 업은 내가 식의 종자에게 밭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애는 내가 식의 종자에게 적셔 준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명은 내가 식의 종자로 하여금 싹트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식의 종자는 내가 여러 인연으로부터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에는 식의 종자가 업ㆍ번뇌에 안정하여 애로써 적시게 하고, 무명의 흙으로써 덮게 하여 명색의 싹을 내니, 명색의 싹은 자기가 지은 것[自作]도 아니며, 타인이 지은 것[他作]도 아니며, 두 가지가 함께 지은 것[二俱作]도 아니며, 자재천(自在天)이 지은 것도 아니며, 시간이 변화하여 지은 것도 아니며, 자성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얽매인 데서 생기는 것도 아니며, 원인이 없는 데서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가 화합하는 때와 상응하고 다른 연이 상응하고 상속하여 생김으로, 이 식의 종자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명색의 싹을 냅니다.
주재[主]가 없고 아(我)가 없지만, 법을 주되 허깨비와 같아서 인연이 빠지지 않으면 다섯 가지의 인연으로 안식(眼識)을 냅니다.
036_0927_c_12L於無主、無我授、法如幻相因緣不闕,從五種緣生眼識。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眼]과 연(緣)인 색(色)과 광명[明]과 허공[空]과 그들에게서 생긴 작의(作意)입니다. 안식은 의지하는 것[依止]이며, 색(色)은 소연(所緣)5)이며, 광명은 비추고[照], 허공은 걸림이 없게 하고[無礙], 그들에서 생긴 작의는 살피고 생각[審慮]합니다. 만일 여러 가지 연이 없으면 안식은 나지 않으니, 만일 눈의 처소 안에서 이들 색이나 광명이나 허공이나 작의가 빠지면 안식은 생기지 못합니다.
036_0928_a_01L 이렇듯 다섯 가지의 연이 구족하여 일체가 화합하면 능히 안식을 내되 그 눈은 내가 안식에게 의지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색은 내가 안식에게 경계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광명은 내가 안식에게 비추는 연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허공은 내가 안식에게 걸림이 없는 연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생긴 작의는 내가 안식에게 살피고 생각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 안식은 내가 이들 여러 가지의 연에서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인연이 있으므로 안식을 내는 것이며, 나머지 네 가지의 근도 그러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실로 어떤 법이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 옮겨 갈 것이 없지만, 업보가 베풀어져 있는 것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니, 비유컨대 명경(明鏡) 속에 얼굴의 모양이 나타나지만, 얼굴의 모양이 옮겨져 거울 속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거울 속에 얼굴의 모습이 있는 것은 인연이 빠지지 않은 까닭이니, 이렇듯 이곳에서 멸하여 다른 곳에 이르지 않는 것은 업과를 받고 인연이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죽어서 다른 곳에 태어나는 것은 업보가 서로 받는 인연이 빠지지 않은 까닭이니, 비유컨대 장작이 없으면 불을 피우지 못하고, 장작이 있으면 불을 피우는 것과 같습니다. 업과 번뇌에서 생긴 식의 종자는 그가 생기는 곳에서 상속하여 명색의 싹을 내어 움직이게 합니다. 이렇듯 주재가 없고[無主], 내가 없는 법[無我法], 포섭된 곳이 없는 법[無所攝法]이 서로서로 인연이 되어 허깨비와 같이 자성법의 인연이 빠지지 않습니다.
내연생법(內緣生法)은 다섯 가지가 있으니, 항상하지 않으며, 단절 되지 않으며, 옮기지 않으며, 인은 적으나 과는 많고, 비슷한 것이 상속하여 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항상하지 않은 것인가? 이쪽의 온(蘊)이 죽어서야 다른 곳의 온이 생깁니다. 죽는 쪽의 온은 태어나는 쪽의 온이 아니니, 죽는 쪽의 온이 저곳에서 없어져야 태어나는 쪽의 온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항상하지 않습니다.
036_0928_b_01L 어떤 것이 단절 되지 않는 것인가? 죽는 쪽의 온이 먼저 멸하면 태어나는 쪽의 온이 일어나지 못하며, 또한 죽는 쪽의 온이 멸하지 않으면, 그 순간에 중유(中有)의 온이 생겨날 수 없으니, 마치 천칭[秤:저울]이 오르내리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단절 되지 않는다 합니다.
어떤 것이 옮겨 가지 않는 것인가? 다른 종류보다 앞서는 것이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인이 적고 과는 많은 것인가? 이 몸으로 적은 선악의 업을 지으면 내생의 몸에 많은 선악의 보를 받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같은 것이 상속함인가? 현재의 몸으로 업을 지으면 내생에 보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에 이 연생법을 여실히 바른 지혜의 눈으로써 이 남[人]도 없고, 나[我]도 없고, 뒤바뀜[顚倒]도 없고, 태어남도 없고, 함도 없고, 작위(作爲)도 없고, 걸림도 없고, 소연(所緣)도 없고, 멸하여 적정하며, 두려움도 빼앗을 이도 없고, 다함이 없어서 허깨비 같으며, 자성이 공적하며, 견고하지 못하며, 앓는 것 같으며, 종기[癰]와 같으며, 질애(質礙)이며, 덧없는 성품이며 괴로운 성품이며 공한 성품이며, 무아의 성품임을 오래 수행하면 과거[前際]로 유전(流轉)하지 않을 것이니,
이른바 ‘내가 과거에 일찍부터 있었을까, 어느 것이 나의 과거에 있던 몸일까, 내가 과거에 어찌하여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미래[後際]로 유전하지 않을 것이니 이른바 ‘내가 미래에 있을 것인가, 어느 것이 나의 미래에 있게 될 몸일까, 내가 미래에 어떻게 있게 될까, 내가 미래에 있지 않을까, 내가 미래에 있지 않을 것을 누가 말할까, 내가 미래에 어찌하여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036_0928_c_01L 모든 사문ㆍ바라문들이 세간의 다른 소견, 곧 아견계(我見繫)와 중생견계(衆生見繫)와 수자견계(壽者見繫)와 제견계(諸見繫)와 희망길상계(希望吉祥繫)들을 만일 바른 소견으로 상응하여 모든 매듭을 끊고 변지(遍知)를 얻으면 다라(多羅)나무를 자른 것 같아서, 없는 성품이 승의에 들어가고, 모든 갈래에서 오래도록 불생불멸(不生不滅)을 깨달아 법인(法忍)을 성취하고, 가없는 유정을 이롭게 하는 일을 널리 지을 것입니다.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녀인이 이 경에 잠깐 동안이라도 연생의 이치와 뜻을 관찰하는 이는 능히 끝없는 옛적부터 극히 중대한 죄업을 소멸하고 널리 복덕을 모아 지혜가 통달하며, 영원히 사견을 끊도록 설법하되,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덕 사리자여, 박가범께서는 그러한 선남자와 선녀인에게 무상등각대보리(無上等覺大菩提: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수기를 주실 것입니다.”
대덕 사리자와 천(天)ㆍ용(龍)ㆍ약차(藥叉:夜叉)ㆍ언달바(彦達嚩:乾闥婆)ㆍ아소라(阿蘇囉:阿修羅)ㆍ얼로나(蘖嚕拏:迦樓羅)ㆍ긴나라(緊那囉)ㆍ마호라아(摩護囉誐:摩睺羅伽)ㆍ인비인(人非人)들은 자씨보살의 말을 듣고 마음이 대단히 즐거워서 깊이 따라서 기뻐하는[隨喜] 생각을 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씨보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환희하여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