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선재동자가 천궁에서 내려와 가비라성(迦毗羅城)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선지중예(善知衆藝:Śilpābhijña)동자의 처소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려 예경하고 한쪽에 서서 말하였다.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만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어떻게 보살도를 닦는지 모릅니다. 저는 성자가 가르침을 잘 베풀어 준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원하건대 저를 위하여 설하여 주십시오.” 그때 그 동자는 선재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야,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어 선지중예라 한다. 나는 항상 이 해탈의 근본이 되는 종자(種字)1)를 송하고 지니며 들어간다.
아(阿上)자를 송할 때에는 보살의 위덕에 의해 차별 없는 경계의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의 근본이 불생인 것을 깨닫는다.
라(囉)자를 송할 때에는 변제(邊際)와 차별이 없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이 더러움을 떠나 있음을 깨닫는다.
파(跛)자를 송할 때에는 법계의 경계인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의 승의제를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左輕呼)자를 송할 때에는 널리 차별을 끊는 윤(輪)의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는 제행(諸行)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囊舌頭呼)자를 송할 때에는 아뢰야(阿賴耶)의 경계가 없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의 성품과 모습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라(攞)자를 송할 때에는 더러움이 없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이 세간을 벗어나 있으며, 갈애(渴愛)의 갈래로서의 인연이 영원히 나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娜)자를 송할 때에는 물러서지 않는 가행(加行)의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을 조복하여 적정(寂靜)과 진여(眞如)와 평등(平等)과 무분별(無分別)을 깨닫는다.
마(麽)자를 송할 때에는 금강장(金剛場)의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이 묶이지도 벗어나지도 않았음을 깨닫는다.
나(拏上)자를 송할 때에는 널리 법륜을 굴리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서 열뇌를 여의고 더러움을 바로잡아 청량을 얻는 것을 깨닫는다.
새(灑)자를 송할 때에는 해장(海藏)2)과 같은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 장애가 없음을 깨닫는다.
바(嚩)자를 송할 때에는 보편적으로 생하고 안주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서 언어의 길이 끊어졌음을 깨닫는다.
다(多上)자를 송할 때에는 더러움을 널리 비추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이 진여로서 움직이지 않음을 깨닫는다.
야(野)자를 송할 때에는 차별을 쌓아 모은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이 실답게 생겨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시타(瑟吒二合上)자를 송할 때에는 두루한 광명으로 열뇌(熱惱)를 없애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은 스스로 지닌 모습을 제복(制伏)시켜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가(迦上)자를 송할 때에는 차별의 종류인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는 행위를 짓는 자를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娑上)자를 송할 때에는 눈앞에 큰 비가 쏟아지는 반야마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서 시간의 평등성(平等性)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망(莽輕呼)자를 송할 때에는 매우 바르며 아주 높은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는 나라고 집착할 성품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가(誐)자를 송할 때에는 널리 굴려서 키우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의 행위에서 성품을 취하려 해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타(他上)자를 송할 때에는 진여로서 차별이 없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는 머무는 곳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惹)자를 송할 때에는 세간이 흘러 나가는 궁극적인 근원이 청정한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는 능히 생겨나는 것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바(娑嚩二合)자를 송할 때에는 일체 부처님의 장엄을 염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의 안은(安隱)한 성품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타(馱)자를 송할 때에는 법계도량(法界道場)을 관찰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서 경계의 성품을 지니는 것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捨)자를 송할 때에는 일체 부처님의 가르침에 수순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의 적정(寂靜)한 성질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카(佉上)자를 송할 때에는 현행하는 인지(因地)의 지혜 창고인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은 허공의 성품과 같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가사(訖灑)자를 송할 때에는 바다 창고와 같은 모든 업을 결택(決擇)하고 그치게 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이 다한 성품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다(娑多二合上)자를 송할 때에는 모든 번뇌를 없애는 청정한 광명의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이 머무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나(孃輕呼上)자를 송할 때에는 세간의 요별이 생겨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서 능히 아는 성품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라타(囉他二合上)자를 송할 때에는 생사의 윤회를 거스르는 지혜도량의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서는 집착할 뜻의 성품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바(婆引去)자를 송할 때에는 일체의 궁전과 도량을 장엄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서 파괴할 수 있는 성품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샤(磋上)자를 송할 때에는 수행과 가행의 저장고로 차별을 덮는 도량의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서 욕망과 쾌락으로 덮인 성품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마(娑麽二合)자를 송할 때에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눈앞에 나타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은 기억할 수 있는 성품으로서는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하바(訶嚩二合)자를 송할 때에는 일체 중생이 감내하는 힘을 관찰하고 두루 바다의 창고를 일으키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은 호소(呼召)하는 성품으로는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다사(哆娑二合)자를 송할 때에는 일체 공덕의 바다에 들어가는 수행의 근원인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은 용감한 성품으로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가(伽去)자를 송할 때에는 일체법의 구름을 지니는 견고한 바다의 창고인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의 두터운 평등성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타(姹上)자를 송할 때에는 원하여 시방에 나아가 일체의 부처님을 눈앞에서 보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의 쌓여진 성품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니(儜上)자를 송할 때에는 구지의 종자를 적집한 자륜(字輪)인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은 모든 떠들썩한 논쟁을 떠나며, 가고 옴이 없으며,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파(頗)자를 송할 때에는 일체 중생을 모두 성숙시켜 도량에 나아가게 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에 두루 가득한 과보는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가(塞迦二合上)자를 송할 때에는 집착도 없고 장애도 없는 해탈지장광명륜(解說地藏光明輪)이 두루 비추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은 온(蘊)이 쌓여진 성품으로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야사(也娑二合上)자를 송할 때에는 일체 불법의 경계를 드러내어 설하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은 약해지고 늙어가는 성품과 모습으로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시좌(室左二合上)자를 송할 때에는 일체의 허공이 법의 구름으로 우레와 벼락소리를 내며 두루 비추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이 모여진 흔적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타(吒上)자를 송할 때에는 무아로서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이 끝없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은 서로 몰고 쫓는 성품으로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다(茶引去)자를 송할 때에는 법륜의 차별 없는 창고인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일체법의 궁극적인 경지는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선남자야, 내가 이와 같은 모든 해탈에 들어가는 근본자(根本字)를 송할 때에 이 마흔두 가지의 반야바라밀을 으뜸으로 하여 무량무수의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간다. 또 선남자야, 이와 같은 자문(字門)은 법공(法空)의 변제(邊際)에 깨달아 들게 한다. 이와 같은 종자를 빼고서 제법이 공함을 나타내는 것은 더욱이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종자의 뜻은 말할 수 없고, 나타낼 수 없으며, 취할 수 없고, 쓸 수 없으며, 관찰할 수 없으니, 그것은 모든 모습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허공이 일체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이 모든 종자의 문도 또한 그와 같다. 제법의 공한 의미가 모두 이 문에 들어 널리 나타나는 것이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모든 종자의 문에 들어간다면 선교(善巧)의 지혜를 얻어 모든 언어와 음성으로 나타내는 것에 장애가 없어지며, 일체법의 평등성을 남김없이 증득해 지니며, 갖가지 언어와 음성에서 모두 훌륭한 방편을 얻는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듣고 모든 종자의 문에 들어간다면 아자인(阿上字印)을 인하고 수지하며, 독송하고, 남을 위해 널리 이롭게 해설하고, 명예나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연으로 스무 가지의 수승한 공덕을 얻는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이른바 강한 기억력을 얻으며, 참괴(慙愧)를 물리치며, 견고한 힘을 갖게 되며, 법의 근본 뜻을 알게 되며, 증진된 깨달음을 얻으며, 뛰어난 지혜를 얻으며, 거침없는 변설(辯說)을 얻으며, 총지(摠持)의 문을 얻으며, 의혹이 없어지며, 말을 거스르거나 따르더라도 노여움이나 좋아하는 일이 없어지며, 높고 낮음 없이 평등하게 머물며, 유정의 말과 음성에 훌륭한 방편을 얻으며, 온(蘊)ㆍ처(處)ㆍ계(界)에 있어 훌륭한 방편을 얻으며, 연기(緣起)ㆍ인(因)ㆍ연(緣)ㆍ법(法)에 있어 훌륭한 방편을 얻으며, 근기의 높고 낮음과 타인 마음을 아는 지[他心智]에 있어 훌륭한 방편을 얻으며, 별과 역법을 관찰하는 훌륭한 능력을 얻으며, 천이통과 숙명통과 신족통과 생사를 아는 지혜에 대해 훌륭한 능력을 갖게 되며, 누진통의 지혜에 대한 훌륭한 능력을 얻으며, 설할 곳과 그렇지 못한 곳에 대한 훌륭한 지혜를 얻으며, 오고 가는 등에 있어 위의(威儀)에 대한 훌륭한 방편을 얻는다. 이와 같은 스무 가지의 수승한 공덕을 얻게 된다. 선남자야, 오직 나만이 이것을 알아 모든 해탈의 근본인 종자에 대한 지혜에 들어가며, 모든 보살마하살과 같이 일체 세간의 훌륭한 방편의 법을 지혜로써 통달하여 피안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서 나는 그 공덕의 행위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고 설할 수 있다.’ 그때 선재동자는 머리를 중예의 발에 대어 예경하고 수없이 그 주위를 돈 뒤 연모와 추앙의 마음을 품고 떠나갔다.
무릇 일승(一乘)에 돈입(頓入)하여 비로자나여래의 법신관을 수습하고자 하면 먼저 보현보살의 미묘한 행원(行願)을 일으켜야 한다. 또한 몸과 마음을 3밀(密)로 가지하여 곧 바다와 같이 광대한 문수사리의 큰 지혜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자면 수행자는 먼저 공한처(空閑處)에서 생각을 거두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눈을 감고 몸을 곧게 하며 결가부좌하여 운심(運心)하고 널리 끝없는 광대한 불국토를 연(緣)하여 3세 모든 여래가 두루한데 그 하나하나의 불보살 앞에 은근히 공경하며 예배하며 주위를 돈다고 관하여야 한다. 또한 갖가지 구름과 바다처럼 광대한 공양구로 봉헌하며, 이렇게 모든 성스러운 대중들께 광대하게 공양올린다고 관상하라. 다시 자심에서 이 마음이 본래 생겨남이 없으며 자성이 성취되어 광명이 두루 비추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다고 관하라. 또 깊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자심을 깨닫지 못하여 모든 세계에 윤회하는 중생을 애민하고, ‘내가 반드시 널리 교화하여 구제하여서 그들을 깨치게 하고 남음이 없게 하리라’고 해야 한다. 다시 자심과 모든 중생의 마음과 모든 부처님의 마음이 본래 다름이 없어 평등하고 한가지 모양이어서, 대보리심을 성취하니 빛나고 맑으며 시원하고 확연하여 두루 원명하고 교결하고, 대일륜(大日輪)을 성취하니 크기가 허공과 같고 끝가는 데가 없다고 관찰하여야 한다. 다시 월륜 안에 오른쪽으로 돌아 마흔두 개의 범자(梵字)를 나열하는데 모두가 금색으로 큰 광명을 내어 시방을 밝게 비추며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나하나의 광명 속에서 바다처럼 무량한 국토에 무량한 모든 부처님께서 무량한 대중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이시어 보리도량에 앉아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의 지혜를 이루시고 과거⋅현재⋅미래에 들어가시어 시방에 두루하게 대법륜을 굴리시어 중생들을 제도하여 무주열반(無住涅般)을 증득하게 하심을 본다. 다시 반야바라밀 42자문(字門)에 깨달아 들어가 일체법이 모두 얻을 바 없어서 능관(能觀)의 정지(正智)와 소관(所觀)의 법계가 모두 다 평등하여 아무런 다름이 없음을 이해한다. 유가를 닦는 자가 만일 이 선다라니(旋陀羅尼)와 더불어 관행하여 상응하면 곧 비로자나여래의 지신(智身)을 현증하고 모든 법에서 장애가 없게 되리라.
원명자륜(圓明字輪)≺/img≻
42자송(字頌)으로 송한다.
아 라파자나라나마나 새바다 야시타 가 사 망가타 자사바 타사 阿上囉跛左曩攞娜麽拏上灑嚩䫂上野瑟吒上二合迦上娑上莽誐他上惹娑嚩二合馱捨 카 가사 사다 나 라타 바 샤 사마 하바 다사 가 타 니 佉上訖灑二合娑䫂二合上孃上囉他上二合婆去縒上娑麽二合訶嚩二合哆娑二合伽上姹上儜上 파사가 야사 시자 타 다 頗塞迦二合野娑二合上室左二合上吒上茶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