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구나,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여. 헤매는 중생들을 교화해 인도하시고, 으뜸가는 성품을 널리 드날리셨도다. 넓고 크고 성대한 언변이여, 뛰어나고 훌륭한 자도 그 뜻을 궁구하지 못하는구나. 정밀하고 은미하고 아름다운 말씀이여, 용렬하고 우둔한 자가 어찌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으랴. 뜻과 이치가 그윽하고 현묘한 진공(眞空)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만상(萬象)을 포괄하는 비유는 끝이 없네. 법 그물[法網]의 벼릿줄을 모아 끝이 없는 바른 가르침을 펴셨고, 사생(四生)을 고해에서 건지고자 삼장(三藏)의 비밀스러운 말씀을 풀어주셨다. 하늘과 땅이 변화하여 음과 양을 이루고,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추위와 더위를 이뤘으니, 크게는 선과 악을 말씀하셨고, 세밀하게는 항하의 모래알에 빗대야 할 정도네. 다 서술할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온갖 일들을 마치 상법(像法)2)을 엿보듯이 하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하였다. 이는 육정(六情)3)을 벗어나 길이 존재하고 천겁이 지나도록 오래갈 만한 것이며, 마치 수미산이 겨자씨에 담기 듯 여래께서 끝없는 세계에서 걸림이 없으신 것이다.
달마(達磨)께서 서쪽에서 오시자 법이 동토에 전해졌고, 오묘한 이치를 선양하시자 대중이 돌아갈 길을 순순히 따랐으니, 피안(彼岸)은 보리요 애욕의 강은 생멸이라, 오탁의 악취(惡趣)에서 보살행을 실천하고, 삼업(三業)의 길에서 빠진 자들을 건지셨다. 세상에 드리운 경은 궁구하기 어렵지만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영원히 태평하도다. 설산(雪山)의 패엽(貝葉)4)이 눈부신 은대(銀臺)와 같고, 세월의 연라(煙蘿)5)가 저 멀리 향계(香界)6)를 일으켰지만 높고 우뚝하여 측량하는 자가 드물고, 멀고 아득하여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이런 까닭에 도(道)를 깨달은 십성(十聖)7)과 덕(德)을 갖춘 삼현(三賢)8)께서 지극한 도를 건원(乾元)9)에서 일으키고 온갖 오묘함을 태역(太易)10)에서 낳아 무성한 생명체들을 총괄해 어둠을 뚫고 한 가닥 빛을 비추었으며, 저 시시비비를 단절하고 이 몽매함을 깨우쳤던 것이다.
040_0617_a_02L서역의 법사 천식재(天息災) 등11)은 항상 사인(四忍)12)을 지니며 삼승(三乘)을 일찌감치 깨달은 분들이니, 불경의 참된 말씀을 번역하여 인간과 천상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이었다. 이는 꽃망울이 거듭 터진 것이요, 국운이 창성할 때를 만난 것이니, 문장(文章)에서 오성(五聲)13)을 윤택하게 하였고, 풍율(風律)14)에서 사시(四始)15)를 드러냈다. 당당한 행동거지에 온화하고 아름답도다. 광대한 세월 어둠에 빠졌던 세계가 다시 밝아 현묘한 문이 환하게 드러났으며, 궤범이자 두루한 광명인 오묘한 법이 청정한 세계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유정을 이롭게 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고, 장애를 만드는 일 없이 병들고 지친 자들을 모두 구제하였으며, 드러내지 않고 자비를 행하며 만물 밖으로 광대하게 노닐고, 부드러움으로 탐학한 자들을 조복해 어리석음을 씻고 깨우쳐 주었다. 소승의 성문(聲聞)을 연설하여 그 위의에 합하고 대승의 정각(正覺)을 논하여 그 성품을 정립하자, 모든 생명체들이 깨달아 복을 받았고, 삼장의 교법에서 결락된 것들이 다시 흥성하였다.
허깨비에 홀려 길을 잃은 것이니, 화택(火宅)16)은 심오한 비유로다. 부처님께서 비록 이런 가르침을 시설하셨지만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이에 “선념(善念)이 생기면 한량없는 복이 남몰래 찾아오고, 악업(惡業)이 일어나면 인연 따라 모두 타락한다”17)는 말씀으로 사부대중을 길들이고 시방세계에서 보살행을 쌓았다. 금륜왕[金輪]18)에게 꽃비를 쏟아 붓고 대궐에서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를 보호하였으니, 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19)도 파괴하지 못할 것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홍수도 휩쓸지 못하리라. 맑고 고요해 담담한 것이 원만하고 밝으며 청정한 지혜요, 성품이 공하여 물듦이 없는 것이 망상으로부터 해탈하는 인연이니, 이로써 마음의 밭에서 번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우주에서 청량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짐은 부끄럽게도 박학하지도 못하고 석전(釋典)20)에 능통하지도 못하니, 어찌 감히 서문을 써서 후인에게 보일 수 있는 자이겠는가? 반딧불이나 횃불과 같아 찬란한 태양과 견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작은 소라로 바다를 측량하려다 그 깊은 연원을 끝내 밝히지 못하는 자일 따름이로다!
높고 밝은 것이 처음으로 나뉘자 삼진(三辰)21)이 비로소 차례로 나타났고, 두텁게 실어주는 것이 비로소 안정되자, 만물이 이로써 실마리를 일으켰으니, 맑음과 탁함의 본체가 이미 밝혀진 것이요, 선과 악의 근원이 여기서 드러난 것이다. 이런 다음에 문물(文物)로 그 가르침을 세우고 바른 법전[正典]으로 그 세속을 교화하는 것이니, 이익의 공은 모두 이치로 돌아간다. 이렇게 상법(像法)이 서쪽 나라에서 와 진제(眞諦)가 중국에 유포되었지만 천고의 세월을 관통하는 진실한 이치는 궁구할 방법이 없고, 구위(九圍)22)를 포괄하는 현묘한 문은 궁구할 수가 없다. 허망한 생각으로 말하자면 오온(五蘊)이 모두 공하고, 참된 모습을 나타내자면 터럭 하나에도 원만하니, 광대한 그 가르침을 어찌 기술할 수 있겠는가!
삼가 살피건대, 태종신공성덕문무황제께서는 법성이 두루 원만하시어 인자함을 널리 베푸셨다. 오랑캐들을 교화하시자 만방(萬邦)이 바큇살처럼 몰려들어 온 백성을 인수(仁壽)의 영역에 올려놓으셨고, 교법을 숭상하시자 사해(四海)가 구름처럼 뒤따라 창생에게 풍요로운 땅을 베푸셨다. 존귀한 경전이 방대함을 보시고는 방편을 시설해 물에 빠진 자들을 구제하셨고, 법계가 광활함을 알시고는 정진을 행하여 나태한 자들을 거두셨다. 이에 아늑한 절을 선택해 저 참된 문서23)들을 교열하고는 천축의 고승들에게 명령하여 패다라(貝多羅)의 부처님 말씀을 번역하게 하셨다.24) 상아 붓대가 휘날리며 황금의 글자를 완성하고, 구슬을 엮어 다시 낭함(琅函)에 안치하자25) 용궁(龍宮)의 성스러운 문장26)이 새롭게 탈바꿈하였으니, 취령(鷲嶺)의 필추(苾芻)27)들마저 우러러 감탄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삼승(三乘)이 모두 하나로 꿰뚫어지고 사제(四諦)가 함께 원만해졌으니, 고(苦)가 공하다는 참되고 바른 말씀을 완전히 밝히고, 정밀히 연구한 비밀스러운 뜻을 환히 드러냈다. 상(相)을 찬탄하는 상이 바로 진실한 상이고, 공(空)을 논하는 것도 공하여 모조리 공이라 하였으니, 화엄(華嚴)의 이치와 궤도를 같이하고, 금상(金像)28)의 가르침과 규구(規矩)29)가 동일하였다.
040_0617_c_02L짐은 대업(大業)을 계승하여 삼가 황위에 임했기에 항상 조심하면서 만백성을 어루만지고 매일 긍긍하면서 선황의 훈계를 지켜왔다. 불교경전[釋典]에 대해서는 더구나 정밀하지도 상세하지도 못하니, 진실로 그 그윽하고 심오한 뜻을 어찌 탐색하고 측량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역경원(譯經院)30)의 서역 승려 법현(法賢)31)이 간절한 글을 올리고 그 뜻을 너무도 열심히 피력하였다. “선황제께서는 참된 교화의 바람을 크게 펼치고 부처님의 뜻을 높이 전하셨으며, 전대의 왕들이 빠뜨린 전적을 흥성시키고 각로(覺路)32)의 무너진 기강을 다시 떨치셨다”고 하면서, 하늘이 이룬 공로를 높이 휘날리고 성황의 글33)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나에게 서문을 지어 성인의 가르침을 계승해달라고 청하였다.
성고(聖考)34)께서 승하하시고 추호(追號)35)가 아직 잊히지도 않았는데 정사 밖에 마음을 둘 겨를 어디 있었겠는가? 담제(禫祭)36)를 마치고 이제야 생각이 은미하고 오묘한 곳에 미치게 된 것이다. 어려서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능통한 재주가 본래 부족한 걸 어쩌랴. 법해(法海)의 나루터와 언덕을 어찌 궁구하리오! 공문(空門)의 문턱으로 나아가질 못하니, 대략 대의나마 서술하여 이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부응할 따름이다. 소발자국에 고인 빗물이라 태양을 씻는 파도에 빗대기에는 부족하니, 한척짜리 채찍이 어찌 드넓은 하늘의 그림자를 측량할 수 있으랴! 이렇게나마 짧은 서문을 지어 이로써 성인들의 공로를 기록할 따름이다.
040_0618_a_02L“금당아, 세간의 즐거운 놀이 등 온갖 오락이 다 희롱거리이니 우리가 비록 무엇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진실한 것이 아니므로 몸이나 마음이 이내 권태를 내게 되고, 몸과 마음에 권태가 있으므로 바른 생각을 잃게 되며, 이 생각을 잃은 원인이 곧 무상(無常)한 것이며, 견고하지 못한 것이며, 참다운 것[究竟]이 아니며, 흩어져 무너지는 법이니, 자네는 이제 마땅히 이와 같은 희롱거리 즐거워하는 법을 닦지 말아야 할걸세. 불 섬기는 법[事火法] 따위를 하는 것 말일세.”
백의는 자세히 말해 주었다. “내가 존자 구담(瞿曇)께 들어서 아네. 구담은 변재(辯才)가 많고, 이러한 뜻을 잘 아시는 분일세. 그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불 섬기는 법은 옛적 선인(仙人)으로부터 전하여 익혀온 것으로서 나중에는 불 섬기는 교법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하셨네. 그 분은 그 연유를 다 알고 계시네. 즉 어떤 선인이 사문과 바라문의 처소에서 잘못된 마음을 내어 일부러 불 섬기는 짓을 하였는데, 그 잘못된 마음이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여 단점을 들추어내는 것이니, 이렇게 서로 허물의 인(因)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有情]이 죽게 되며, 또 다른 중생들도 딴 세계에서 목숨이 다하면 이 세계에 와서 나게 되는 것이네.
만일 깨끗한 마음으로 집을 버리고 나와서 고행을 닦아 진실과 서로 응하여 바른 생각으로 몸과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삼마지(三摩地)37)에 들어가면 그 삼마지의 마음을 따라 능히 지나간 세상의 일들을 기억하게 된다네. 이러한 중생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여 남의 단점만 찾아내려고 하지 않고 저러한 잘못된 원인을 서로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곧 늘 있는 것[常住]이며, 견고한 것이며, 참다운 것이며, 흩어져 무너지지 않는 법이라고 하셨네. 만일 중생들이 서로 단점을 들추어내면 잘못의 원인을 서로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곧 무상한 것이며, 견고하지 못하며, 참다운 것이 아니며, 흩어져 무너지는 법이라네. 이러므로 바라문들은 이렇게 잘못된 마음을 내어 불 섬기는 일을 하지 말 것이라고 하셨네.
040_0618_b_02L금당아, 자네는 아는가? 부처님 세존께서 오후에 방에서 나오셔서 녹자모 강당에 나아가 거닐고 계시니, 그대가 지금 나와 같이 부처님 세존께 가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하고 나서 부처님 뒤를 따라 거닐면 부처님 세존께서 반드시 우리들에게 적당한 법을 말씀하실 것일세.”
이 때 세존께서는 백의와 금당 두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거라. 바라문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삼명(三明)을 통달하였고 높은 족속이다. 그 종성(種姓)이 깨끗하여 불을 섬기는 훌륭한 종족으로 태어났으므로 아버지도 깨끗하고 어머니도 깨끗하며, 나아가 7세(世)에 이르기까지 부모들이 다 존귀하고 종족이 우수하여 죄가 없고 비방할 수 없으니, 이것이 다 종성이 깨끗하기 때문이다’고 하며,
또 말하기를 ‘다섯 가지 기론(記論)을 통달하였다 하니, 그 첫째는 본모법등구경삼명(本母法等究竟三明)이요, 둘째는 모든 물건의 정명[諸物定名]이요, 셋째는 해타바나(該吒婆那)요, 넷째는 문자장구(文字章句)요, 다섯째는 희소묘언(戱笑妙言)이니, 이런 등등의 기론과 모든 위타(圍陀:베다) 경전은 본사(本師) 되는 바라문이 다 잘 통달했다’고 하나, 백의야, 모든 바라문들이 그 삼명 가운데서 어찌 경멸하거나 헐뜯거나 업신여기거나 훼방함이 없겠느냐?”
040_0618_c_02L백의와 금당 두 바라문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라문들이 저 삼명(三明) 가운데서 어찌 경멸하거나 헐뜯거나 욕하거나 비방함이 없다고 하겠나이까? 바라문들은 삼명 경전 중에서 말하기를, ‘바라문들은 이렇게 깨끗하니 이것이 참다운 바라문이며, 범왕(梵王)의 아들로서 깨끗한 입에서 나왔으니 범왕의 종류요, 범왕이 변화한 것이며, 범왕의 상속자이니, 이러므로 모든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깨끗하여 참다운 바라문이다’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백의와 금당 두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두어라. 모든 바라문들이 삼명 가운데 경멸하거나 비방함을 초래하게 된 것은 바라문들에게 ‘모든 바라문은 깨끗하나니 참 바라문이며, 범왕의 아들로서 깨끗한 입에서 나왔으니 범왕의 종류요, 범왕이 변화한 것이며, 범왕의 상속자이다. 그러므로 모든 바라문들은 이렇게 깨끗하니 참다운 바라문이다’라고 하는 말이 있기 때문이니라.
백의여, 저 모든 바라문들이 비록 이와 같이 말하지마는 그것이 도리어 스스로 파괴함이 되며, 자신을 열등하게 만들며 약하게 하고, 다시 손실케 하느니라. 저 바라문들이 스스로 파괴함이 된다 함은 실답지 못한 것을 집착하여 도리어 올바른 법을 나무라고 꾸짖고 싫어하는 마음을 내므로 이로 말미암아 서로 쟁론을 일으키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백의여, 어떤 바라문이 말하기를 ‘태어날 때에 시분(時分)이 다르며, 태 속에서도 또한 다르다고 하니, 그런 소견을 고집하되, 태어나는 때가 다르기 때문에 깨끗하다고 하며, 또 모든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깨끗하게 난 것이라고 하여 그러므로 말하기를 모든 바라문은 범왕의 아들로서 깨끗한 입에서 나왔으니 범왕의 종류며, 범왕이 변화한 것이며, 범왕의 상속자이다. 그러므로 모든 바라문들이 이와 같이 깨끗하니 참다운 바라문이다’라고 하느니라.
백의여, 네 종류 가운데 흑업(黑業)을 지은 이는 흑업의 과보를 받게 되나니 이것은 훌륭한 것이 아니며, 지혜 있는 이가 나무라고 허물 하는 바가 되며, 죽어서는 악취(惡趣)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이와 반대로 네 종족 가운데 백업(白業)을 지은 이는 백업의 과보를 받게 되나니, 이것은 훌륭한 이가 할 짓이며, 지혜 있는 이의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며, 죽어서도 하늘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백의여, 너는 ‘목숨을 죽이는 것 등 여러 가지 흑업으로 흑업의 과보를 받는 것은 훌륭한 짓이 아니며, 지혜 있는 이가 나무라고 싫어하는 바이니, 찰제리ㆍ비사ㆍ수타의 종족들은 다 이러한 짓이 있지마는 우리 바라문에게는 이러한 나쁜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백의와 금당 두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흑업을 짓는 이는 흑업의 과보를 받게 되나니, 찰제리나 바라문ㆍ비사ㆍ수타 등이 다 이러한 짓이 있을 터이온데, 어찌하여 바라문만이 그러한 일이 없겠습니까?”
040_0619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백의여, 너는 또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라. 온갖 흑업은 바라문에게는 없고 다른 세 종족에게만 있다는 이 말이 바로 삼명 경전 가운데 상응한 말이라 해서 바라문은 범왕의 아들로서 깨끗한 입에서 나왔으니 범왕의 종류요, 범왕이 변화한 것이며, 범왕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본래 날 적부터 깨끗하므로 참다운 바라문이라고 해서는 아니 된다.
백의여, 너는 또 만일 네 가지 종족에게 다 흑업이 있다고 하면 이것은 삼명 경전에 어긋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백의여, 너는 또 목숨 죽이지 않는 것 등의 백업으로 백업의 과보를 받는 것은 훌륭한 짓이며, 지혜 있는 이가 칭찬하는 바이니, 찰제리와 비사ㆍ수타의 종족들에게는 이러한 일이 없고, 오직 바라문들에게만 그러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백의와 금당 두 바라문은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저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백업을 지은 이가 백업의 과보를 받는 것은 찰제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 등이 다 똑같은 일이니, 어찌 바라문에게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백의여, 너는 또 ‘온갖 백업은 바라문에게만 있고 다른 세 종족에게는 없다는 말이 삼명 경전의 뜻에 맞는 것이다. 바라문은 바로 범왕의 아들로서 깨끗한 입에서 났으니 범왕의 종류요 범왕이 변화한 것이며 범왕의 상속자이므로 본디 날 적부터 깨끗하기 때문에 참다운 바라문이다’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백의여, 너는 다시 ‘만일 네 가지 종족이 다 똑같이 백업이 있다고 하면 이 말은 삼명 경전에 어긋나는 뜻이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또 백의여, 너는 ‘찰제리ㆍ비사ㆍ수타의 종족들은 산목숨을 죽이는 따위의 온갖 흑업을 지녔으므로 목숨이 다한 뒤에 지옥에 떨어지지만 바라문들만은 그러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040_0619_c_02L백의와 금당 두 바라문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그것은 그렇지 않사옵니다. 찰제리ㆍ바라문ㆍ비사ㆍ수타 중에서 흑업을 지은 이는 목숨이 다하면 다 지옥에 떨어질 것이지 어찌 바라문만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백의여, 너는 또 ‘흑업을 짓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바라문은 하나도 없고, 다른 세 종족에게만 그런 일이 있다는 말이 삼명 경전에 맞는 말이라 해서 바라문은 범왕의 아들로서 깨끗한 입에서 나왔으니 범왕의 종류요, 범왕이 변화한 것이며, 범왕의 상속자이므로 본래 날 적부터 깨끗하기 때문에 참다운 바라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040_0620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백의여, 너희들은 또 ‘백업을 짓고 하늘에 나는 것은 바라문에게만 있는 일이요, 다른 세 종족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은 삼명 경전의 뜻에 맞는 말이라 해서 바라문은 범왕의 아들로서 깨끗한 입에서 나왔으니 범왕의 종류요, 범왕이 변화한 것이며, 범왕의 상속자이므로 본래 날 적부터 깨끗하기 때문에 참다운 바라문이다’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또 백의여, 내가 아까 말한 이와 같은 법 가운데 혹 착하거나 착하지 못하거나 또는 검거나 희거나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깨끗한 것이거나 더러운 것이거나 훌륭한 것이거나 변변치 못한 것이거나 너그럽거나 옹졸하거나 이러한 온갖 법이 때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것이거늘, 바라문들은 한결같이 고집하나니, 나는 이러한 사람을 진실로 바보라서 제 아는 것만 아는 이라고 하노라.
백의여, 또 바라문들이 종성론(種姓論) 혹은 족씨론(族氏論) 또는 자교론(自敎論)을 일으키며, 또 ‘다른 사람이 마땅히 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물을 길어다 바치고 일어나 맞아들이며 합장하고 문안하더라도 나는 이에 응하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이러한 일을 하게 해서는 아니 되리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는 이를 나는 바른 법을 보지 못했다고 하노라.
백의여, 저 교살라 임금 승군대왕이 부처님 여래께 기뻐하여 위안하고 공경ㆍ예배하며 앞에 일어나 맞이하여 합장하고 묻는 것은, 그 임금이 사문 구담이 높고 훌륭한 종족이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니라. 왕도 또한 높고 훌륭한 종족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느니라. 사문 구담이 용모가 단정해서도 아니며, 왕도 그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니라. 또 사문 구담이 큰 명예가 있어서도 아니며, 왕도 자기의 명예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느니라.
백의여, 만일 사람이 나에게 편안히 머물러 바른 믿음을 내면 이 사람은 곧 견고하고 향상되는 믿음의 뿌리가 생겨나며,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얻게 되리라. 왜냐 하면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군ㆍ범(梵)ㆍ삼계 등의 모두가 다 내 아들이라. 다 같은 한 법이며 차별이 없도다. 바른 법의 입에서 나온 것은 같은 한 법의 종자라 법으로부터 변화해 난 것이니, 이것이 참으로 법의 아들이니라.
1)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 : 이 서문은 태평흥국(太平興國) 7년(982)에 천식재(天息災)가 『성불모경(聖佛母經)』을, 법천(法天)이 『길상지세경(吉祥持世經)』을, 시호(施護)가 『여래장엄경(如來莊嚴經)』을 각각 번역하여 올리자 송나라 태종(太宗)이 이를 치하해 지은 것이다.
2)상법(像法) : 부처님의 열반 뒤에 정법(正法)ㆍ상법(像法)ㆍ말법(末法)으로 나누어진 교법의 세 시기 중의 하나이다. 열반 후 500년부터 1000년까지의 시기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은 따르지만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는 시기를 말한다.
3)육정(六情) : 육근(六根) 또는 육근이 발생시키는 정식(情識)을 말한다.
4)설산은 인도, 패엽은 불교경전을 뜻한다.
5)연라(煙蘿) : 연하등라(煙霞藤蘿)의 준말로, 안개와 노을이 자욱하고 등나무 여라덩굴이 우거진 곳이라는 뜻이다. 깊은 산이나 은둔처를 의미한다.
6)향계(香界) : 향기 자욱한 세계라는 뜻으로, 사찰을 가리키는 말이다.
7)십성(十聖) : 10지(地)의 보살을 말한다.
8)삼현(三賢) : 10주(住)・10행(行)・10회향(回向)의 위(位)에 있는 보살을 말한다.
9)건원(乾元) : 하늘의 도(道)이며, 천덕(天德)의 시초이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이를 힘입어 비롯되나니, 이에 하늘을 통괄하도다.[大哉 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고 하였다.
10)태역(太易) : 기(氣)가 분화되기 이전 최초의 상태이다.
11)천식재(天息災) 등 : 역경원에서 번역을 주도했던 천식재(天息災)와 법천(法天)과 시호(施護)를 말한다.
12)사인(四忍) : 무생법인(無生法忍)・무멸인(無滅忍)・인연인(因緣忍)・무주인(無住忍)을 말한다. 인(忍)은 인가(忍可)・안인(安忍)의 뜻으로, 진실을 수긍하고 안주(安住)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13)오성(五聲) : 오음(五音)이라고도 한다.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다섯 가지 음조를 말한다.
14)풍율(風律) : 시나 음악의 운율을 말한다.
15)사시(四始) : 사성(四聲)이라고도 한다.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이니, 사성으로 음운(音韻)의 고저(高低)와 강약(强弱)과 장단(長短)을 구분한다.
16)화택(火宅) : 삼계(三界)가 탐욕 등의 번뇌로 어지러운 것을 불타는 집에 비유한 것이 『법화경』 「비유품」에 나온다.
17)천식재(天息災)가 『분별선악업보경(分別善惡報應經)』을 번역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18)금륜왕[金輪] : 4종의 전륜성왕(轉輪聖王) 중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제왕을 말한다.
19)유정천(有頂天)에 부는 바람 : 비람풍(毘嵐風)을 말한다. 우주가 파괴되는 시기에 이 바람이 불어 인간세계로부터 위로 색구경천까지 차례로 파괴한다고 한다. 유정천은 색구경천(色究竟天)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가장 마지막에 파괴된다.
20)석전(釋典) : 석가의 가르침을 담은 전적, 즉 불교서적을 말한다.
21)삼진(三辰) : 해와 달과 별의 세 가지를 말한다. 『좌전(左傳)』에 “하늘에는 삼진이 있고, 땅에는 오행이 있다[天有三辰 地有五行]”고 하였다.
22)구위(九圍) : 구주(九州)와 같은 말로, 온 천하를 뜻한다.
23)진문(眞文) : 천식재를 비롯한 서역승들이 가져온 범어 경전을 말한다.
24)송 태종은 태평흥국 5년(980)에 태평흥국사(太平興國寺) 서쪽에다 역경원(譯經院)을 세우고, 천식재(天息災)・법천(法天)・시호(施護) 등에게 수집한 범어경전을 번역하게 하였다.
25)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 이를 귀한 상자에 보관했다는 뜻이다. 낭함(琅函)은 천자의 문서를 보관하던 옥으로 만든 함이다.
26)범어경전의 문장을 말한다. 용수 보살이 용궁의 창고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가져와 유포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27)인도출신 승려들을 말한다. 취령(鷲嶺)은 영취산 봉우리란 뜻으로, 곧 인도를 의미한다. 필추(苾芻)는 Ⓢbhikkhu의 음역어로, 비구(比丘)라고도 한다.
28)금상(金像) : 황금 같은 형상이란 뜻으로 곧 부처님을 지칭한다.
29)규구(規矩) : 목수가 사용하는 컴퍼스와 곱자로, 곧 기준・척도・법규를 뜻한다.
30)역경원(譯經院) : 송 태종이 태평흥국 5년(980)에 태평흥국사(太平興國寺)에 설치한 번역기관이다. 후에 전법원(傳法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31)법현(法賢) : 중인도 출신으로, 본래 이름은 법천(法天)이었는데, 송 태종이 법현(法顯)이란 법명을 하사하였다. 973년(개보 6)에 중국에 와서 천식재(天息災) 등과 함께 평생 역경사업에 종사하였다.
32)각로(覺路) : 깨달음의 길, 즉 불교를 뜻한다.
33)태종이 쓴 ≺대송신역삼장성교서(大宋新譯三藏聖教序)≻를 말한다.
34)성고(聖考) : 임금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칭하는 말이다.
35)추호(追號) : 죽은 임금에게 올리는 시호(諡號)를 말한다.
36)담제(禫祭) : 죽은 지 만 2년 기일에 지내는 제사가 대상(大祥)이고, 대상을 치른 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가 담제(禫祭)이다.
37)범어 samdhi의 음사로서 삼매(三昧)라고도 한다. 정(定)ㆍ등(等)ㆍ지(持)ㆍ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고 한역한다.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산란하지 않게 하는 정신 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