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란 이른 바 보리심을 발기함이고 근작이란 뭇 선한 법을 성취함이고 사찰이란 모든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이고 수행이란 어떠한 법에서도 다 인욕에 머묾이며
041_0056_b_20L發起所謂菩提心, 勤作成辨衆善法;
伺察利益諸衆生, 修行隨何法住忍。
또 발기란 경전의 법을 공경히 들음이요 근작이란 들은 법을 선설하여 밝힘이요 사찰이란 그 뜻을 견고하게 함이요 수행이란 올바른 소견을 일으킴이며
041_0056_b_22L發起恭敬此聽受, 勤作宣說而開明;
深固作意伺察門, 修行謂起聖正見。
041_0056_c_02L
또 발기란 간탐(慳貪)하는 더러움을 씻음이요 근작이란 모든 가진 것을 다 버림이요 사찰이란 보리심을 갖추어 회향함이요 수행이란 하는 일에 과보를 구하지 않음이며
041_0056_c_02L發起滌除於慳垢, 捨諸所有是勤作;
具菩提心伺察門, 修行所作不求報。
또 발기란 크게 희사하는 명성을 떨침이요 근작이란 구걸하는 자에게 인자하게 함이요 사찰이란 모든 수용에 있어 무상을 관함이요 수행이란 보시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음이며
041_0056_c_04L發起謂振大捨聲, 慈於丐者是勤作;
伺察受用觀無常, 修行施已不生悔。
또 발기란 모든 수용을 법에 의지함이요 근작이란 깨끗한 생명을 스스로 유지함이요 사찰이란 진실한 보시를 행함이요 수행이란 보시할 때 아무런 생각이 없음이며
041_0056_c_06L依法所受名發起, 淨命自資是勤作;
我眞實施伺察門, 修行施時無意念。
또 발기란 파계한 더러움을 씻음이요 근작이란 금지한 계에 결함이 없음이요 사찰이란 파계한 사람을 거두어 옹호함이요 수행이란 계율을 구족하여 다른 생각이 없음이요
041_0056_c_08L發起滌除破戒垢, 禁戒無缺是勤作;
伺察將護破戒人, 修行具戒無意念。
또 발기란 몸의 업이 청정함이요 근작이란 입의 업이 청정함이요 사찰이란 마음의 업이 청정함이요 수행이란 모든 법이 청정함이며 또 발기란 성내는 마음을 용납하지 않음이요 근작이란 인욕의 힘을 발휘함이요 사찰이란 자신과 다른 이를 다 옹호함이요 수행이란 인욕을 갖추어도 다른 생각이 없으며
또 발기란 성내는 자를 항상 청정케 함이요 근작이란 그 성내는 자를 버리지 않음이요 사찰이란 마음속이 언제나 청정함이고 수행이란 자타가 다 소득을 벗어남이며
041_0056_c_14L恚者常淨名發起, 勤作於彼不捨離;
內心淸淨伺察門, 修行自佗無所得。
또 발기란 그 게으름을 제거함이고 근작이란 정진하는 힘을 선택함이고 사찰이란 게으른 중생을 포섭함이고 수행이란 어떠한 법에서도 다 인욕에 머묾이며
041_0056_c_16L發起謂除懈怠垢, 擇精進力是勤作;
護懈怠者伺察門, 修行隨何法住忍。
또 발기란 선한 법을 쌓아 모음이고 근작이란 선한 법을 다 성취함이고 사찰이란 다른 승(乘)을 좋아하지 않음이고 수행이란 모든 업보를 파괴하지 않음이며
041_0056_c_18L積集善法名發起, 成辦善法是勤作;
伺察不樂於餘乘, 修行不壞諸業報。
또 발기란 정념(正念)을 분명하게 앎이고 근작이란 법을 깨달아 행함이며 사찰이란 바른 지혜를 잘 옹호함이고 수행이란 견고하게 머묾이며
041_0056_c_20L發起了知於正念, 勤作悟入法行中;
善護正慧伺察門, 修行所謂堅固住。
041_0057_a_02L 또 발기란 이치이고 근작이란 가르침이며 사찰이란 법문이고 수행이란 벗어나는 길이니 이것이 정진을 일으키는 선방편이다. 또 발기란 문자를 다 거두어 가짐이고 근작이란 그 이치를 잘 선설함이고
사찰이란 음성과 문자에 집착하지 않음이고 수행이란 말할 수 없는 법을 깨달음이며
또 발기란 불선한 법을 끊음이고 근작이란 선한 법을 헐지 않음이고 사찰이란 몸과 마음이 경쾌함이고 수행이란 4신족(神足)의 지혜를 일으킴이며
041_0057_b_06L防斷不善名發起, 不壞善法是勤作;
身心輕利伺察門, 修行智起四神足。
또 발기란 7각분(覺分)을 닦음이고 근작이란 8정도(正道)를 행함이고 사찰이란 지관(止觀) 법을 익혀 행함이고 수행이란 진실한 해탈을 증득함이며
041_0057_b_08L發起謂修七覺分, 行八正道是勤作;
修習止觀伺察門, 修行眞實明解脫。
또 발기란 모든 행을 발기함이고 근작이란 그 결백한 행을 나타냄이고 사찰이란 마음이 경쾌하고도 편안함이고 수행이란 모든 상(相)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음이니라’하고 말씀하셨다.
041_0057_b_10L發起勤作起諸行, 心得輕安伺察門;
不轉諸相境界中, 此說是爲修行住。
이같이 몸과 마음이 경쾌하고 편안하므로 그 견(見)과 인(因)을 다 벗어나 그 중에 명색(名色)을 분명히 알 수 있으므로 모든 부처님이 이 정진을 칭찬하심이며 나[我]와 내 것[我所]이라는 견해를 없애면 일체 취할 바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며 현전의 5개(蓋)를 제거하고 나쁜 조작과 온갖 의혹을 다 끊어버리고
또 이 정진의 힘을 말미암아 모든 번뇌의 병을 다 파괴하고 그 장애를 제거해 번뇌를 없애고 교만과 지나친 아만을 다 끊어버리고
041_0057_b_16L又復能破諸結病, 此力除障無所覆;
於慢過慢斷無餘, 所作皆由精進力。
나아가선 일체의 상(相)을 제거하고 일체의 희론(戱論)을 다 그치게 하고 일체의 번뇌 원인을 끊어 없앨 수 있으므로 지혜로운 자 이 정진을 칭찬함이라.
041_0057_b_18L遣除一切諸有相, 止息一切諸戲論;
斷滅一切煩惱因, 智者稱讚此精進。
그러므로 이 정진의 공덕을 듣고 나서 용감히 정진을 발기하여 함께 칭찬한 그때 그 모임의 십천(十千) 보살들이 모두 생사 없는 법의 지혜를 얻음이네.
041_0057_b_20L聞此精進功德已, 勇發精進咸稱讚;
菩薩會中有十千, 悉得無生妙法忍。
석가여래가 이 모임에서 여러 보살들 위해 널리 선설하노니 이 정진 듣고 솔선 수행할 때엔 5천의 보살들이 청정한 인(忍)을 얻고
041_0057_b_22L釋迦如來此會中, 爲諸菩薩廣宣說;
聞說精進先行時, 五千菩薩忍淸淨。
041_0057_c_02L 그밖에 하늘ㆍ사람ㆍ아수라와 긴나라(緊那羅) 등 모든 대중들
이때 모임에 백천이 있었으니 다 보리심 내어 편히 머물리라. 나 옛날 견고개라는 이름으로 보살의 지위 최상의 인(忍)을 얻어 몸과 목숨 버려가면서 정진을 닦되 그 오랜 때에 항상 게으름 없고
대범이여, 만약 일체 법의 평등함을 안다면 그것이 곧 보리이므로 일체 법을 불법이라고 말함이니, 일체 법이 곧 불법이라면 일체 법의 자성(自性)이 또한 불법의 자성이라, 일체 법을 여의므로 불법도 여읜 것임을 알아야 하고 일체 법이 공하므로 불법도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범이여,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불법을 알려면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방편에 집착하지 않아야 함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041_0058_a_04L大梵!若善男子及善女人,欲知佛法者,應如是知,然於所知方便不應取著。
다시 대범이여, 이른바 불법이 방분(方分)도 없고 처소도 없는가 하면,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푸르거나 누르지도 않고 붉거나 희지도 않으므로 빛깔을 드러냄이 없고, 어떤 형상도 없으므로 빛깔과 형상이 없으며, 형상이 빛깔을 드러내지 않으므로 그것을 곧 상(相)없음이라 합니다.
대범이여, 다시 말하자면 상없는 이치란 곧 불법의 이치이고, 불법의 이치란 곧 문구(文句)에 떨어지지 않는 이치이고, 문구에 떨어지지 않는 이치란 곧 적정(寂靜)의 이치이고 적정의 이치란 곧 여의는 이치이고, 여의는 이치는 곧 공(空)의 이치이고, 공의 이치란 곧 집착이 없는 이치이고, 집착이 없는 이치란 곧 진실한 성품의 이치이고, 진실한 성품의 이치란 곧 진여(眞如)의 이치이고, 진여의 이치란 필경 나지 않는 이치이고, 나지 않는 이치란 곧 사라지지 않는 이치이고, 사라지지 않는 이치란 곧 머무는 처소가 없는 이치입니다.”
이른바 상없는 이치란 곧 수승한 불법의 이치이고 그 수승한 불법의 이치란 곧 문구에 떨어지지 않는 이치이고
041_0058_a_17L所說無相義, 是勝佛法義;
其說佛法義, 卽不墮句義。
문구에 떨어지지 않는 이치란 곧 적정의 이치이고 그 적정의 이치란 여의는 이치이고 여의는 이치란 곧 공의 이치이고 공의 이치란 집착 없는 이치이고 집착 없는 이치란 진실한 성품의 이치이고 진실한 성품의 이치란 진여의 이치이고 진여의 이치란 곧 필경의 이치이고 필경의 이치란 생멸 없는 이치이고 생멸 없는 이치란 처소 없는 이치이다.
041_0058_b_02L 법의 이치에 이와 같이 머묾은 바로 법계에 머무는 것이므로 모든 법의 머묾이 다 그러하고
모든 법의 머묾과 같이 불법의 머묾이 또한 그러하고 불법의 머묾과 같이 생멸 없는 법도 그러하고 집착 없는 법의 평등한 이치가 본래 다 진리 그대로의 머묾이므로 저 성문ㆍ연각의 법까지도 다 평등에 따라 머물러야 하네.
보살이 말하였다. “대범이여, 불법이 만약 빛깔이 아니라면 볼 수도 없고, 또 대치나 장애가 없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도 없거늘 무슨 소견이 있다는 말입니까?.
041_0058_c_14L菩薩言:“若法非色卽不可見,若無對礙卽無表了。是中云何有所見邪?”
범천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梵天言:“不也。善男子!”
보살이 말하였다. 대범이여, 불법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일체의 법도 다 그러하나니, 왜냐 하면 법이 본래 두 가지가 없고 두 가지가 없는 그것이 곧 일체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대범이여, 만약에 어떤 법이 소견이 있다면 그는 어떠한 상(相)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므로 분별없는 것으로써만 분별없는 불법을 볼 수 있고, 분별없는 견으로써 불법을 보는 것처럼 일체의 법을 보는 것도 다 불법을 보는 그러한 견으로써 볼 수 있습니다.”
보살은 대답하였다. “대범이여, 어떤 중생일지라도 부처님의 가호하는 힘을 얻어 이미 보리심을 발기한 자라면, 이 깊고 깊은 불법을 듣고 놀라거나 겁내지 않을 것이며, 또 취함이 있거나 집착이 있는 자는 놀라고 겁내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놀라거나 겁내지 않으며,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자는 놀라고 겁내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놀라거나 겁내지 않으며, 나와 내것이라는 소견이 있는 자는 놀라고 겁내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놀라거나 겁내지 않을 것입니다.”
041_0059_b_02L 이른바 여덟 가지란, 첫째 장애 없는 믿음의 힘이니 이는 모든 불법에 수승한 신해(信解)를 내기 때문이요, 둘째 존중하는 마음으로 선지식의 힘을 냄이니 이는 스승과 어른에게 정성껏 수순하기 때문이요. 셋째 많이 들어 지혜의 힘을 냄이니 이는 출세간의 법을 다 원만케 하기 때문이요, 넷째 복된 행으로 받들어 섬기는 힘을 냄이니 이는 한량없는 복된 행을 다 원만케 하기 때문이요. 다섯째 견고한 뜻으로 지혜로운 힘을 냄이니 이는 모든 마군을 파괴하기 때문이요,
여섯째 대자(大慈)로써 대비(大悲)의 힘을 냄이니 이는 무아(無我)의 법에 대한 의혹을 벗어나기 때문이요. 일곱째 안정된 마음으로 잘 사유하는 힘을 냄이니 이는 큰 보리심을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요, 여덟째 전일한 신심으로 인욕의 힘을 냄이니 이는 생사 없는 묘법의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해의는 알아 두라. 모든 설법의 음성을 다 분별할 수 있지만, 보리의 그 수승한 이치는 말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그 수승한 이치는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고 문자(文字)를 쌓거나 모아서 지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하는 법으로도 굴릴 수 없거늘 하물며 문자로써 그 이치를 쌓아 지을 수 있겠느냐?
041_0059_c_02L해의여, 네가 이제 본 바 그대로 부처님의 모든 설법은 다만 그 헤아릴 수 없는 일체 중생을 위해 대비를 굴리기 때문에, 곧 이러한 깊고 깊은 법에 정각(正覺)을 성취하였을 뿐, 문자가 없고 언어도 없고 문자의 기록도 없고 어떤 표현하는 법도 없나니, 말하자면 저 중생과 일체의 유정들을 위해 문자를 빌려서 법을 선설함이니라.
해의여, 마치 어떤 사람이 이 허공은 빛깔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볼 수 없고 대치나 장애가 아니므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허공에 갖가지 빛깔로써 코끼리ㆍ말ㆍ수레ㆍ천룡ㆍ야차ㆍ건달바 따위의 모든 형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려면 네 생각에는 그 사람의 하는 일이 어렵겠느냐, 어렵지 않겠느냐?”
“해의여, 그 보다는 이 불ㆍ세존 되기가 더욱 어렵나니, 왜냐 하면 그 말할 수 없는 법 가운데 정각을 성취하고 나서 언어를 빌려 저 중생과 일체 유정들에게 법을 선설하고, 또 말할 수 없는 이치를 여실하게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ㆍ세존 되기가 어렵고도 어려우니라.
“해의여, 내가 이제 너에게 말하겠으니 너는 알아 두라. 만약에 어떤 보살이 여래의 법을 잘 옹호하여 3보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고 모든 중생에게 대비를 버리지 않으며, 또 이러한 매우 깊은 경전과 여래의 큰 지혜 법을 분명히 알고서 받아 지니고 읽어 외움은 물론, 나아가서 그 이치대로 수행한다면 이 보살이 얻는 그 복의 쌓임이 저 보시의 인연으로 얻는 복보다 배로 많으리니, 왜냐 하면 모든 재물의 보시는 다만 세간 사람의 애락(愛樂)하는 것일 뿐 이 법의 보시야말로 일체의 세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니라.
다시 해의여, 만약에 어떤 보살이 이 바른 법을 호지(護持) 한다면 그는 곧 네 가지 섭수(攝受)를 얻으리니, 이른바 네 가지란 부처님의 섭수를 얻는 것이 그 첫째이고, 하늘의 섭수를 얻는 것이 그 둘째이고, 복의 섭수를 얻는 것이 그 셋째이고, 지혜의 섭수를 얻는 것이 그 넷째이다.
그리고 보살이 부처님의 섭수를 얻는다면 그는 또 네 가지 가장 수승한 법을 얻나니, 첫째는 여래를 항상 우러러 뵙게 되고, 둘째는 일체 마군의 무리들이 침해할 기회를 노릴 수 없고, 셋째는 다함이 없는 다라니 문을 얻고, 넷째는 빨리 신통의 힘을 얻어 퇴전하지 않는 지위에 머무는 것이 그것이다.
041_0060_b_02L그리고 보살이 하늘의 섭수를 얻는다면 그는 또 네 가지 청정을 얻나니, 첫째는 하늘 무리들이 그의 신력(神力)으로 보살 대중을 청정케 하고, 둘째는 바른 법을 듣고서 전일한 마음을 갖게 하고, 셋째는 일체의 마군과 외도의 무리들을 제거하게 하고, 넷째는 하늘의 위신(威神)을 말미암아 일체를 청정하게 함으로 인하여 청정한 마음을 얻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보살이 복의 섭수를 얻는다면 그는 또 네 가지 장엄한 모습을 얻나니, 첫째는 원만한 상호를 얻어 몸이 장엄하고, 둘째는 일체 중생들의 언어와 음성보다 뛰어나 말이 장엄하며, 셋째는 모든 시작(施作)을 나타내어 국토가 장엄하고, 넷째는 범왕ㆍ제석ㆍ호세천왕 등의 위치에 태어나 그 출생하는 곳이 장엄함이다.
그리고 보살이 지혜의 섭수를 얻는다면 그는 또 네 가지 조명(照明)하는 법을 얻나니, 첫째는 일체 중생의 근성(根性)을 조명하여 알맞게 설법하고, 둘째는 일체 번뇌의 병을 조명하여 그 병에 따라 법의 약[法藥]을 주어 치료하고, 셋째는 그 신통의 힘으로 모든 불찰을 두루 조명하고, 넷째는 법계를 조명하여 일체의 법을 사실 그대로 분명히 요달함이 그것이다.
041_0060_c_02L해의여, 이와 같이 보살이 부처님의 섭수를 받는 자는 네 가지 가장 수승한 법을 얻고, 하늘의 섭수를 받는 자는 네 가지 청정을 얻고, 복의 섭수를 받는 자는 네 가지 장엄을 얻고, 지혜의 섭수를 받는 자는 네 가지 조명을 얻나니,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만약 이러한 섭수를 받아 공덕 찬탄하는 법을 얻으려면 부지런히 수행하여 바른 법을 호지해야 하며, 부지런히 수행하여 바른 법을 호지하는 자라야만 곧 한량없는 그 가장 수승한 공덕을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