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니건자1) 등은 마음속으로 다른 견해[異見]를 품고, 의혹이 일어나서 대승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解大乘者]을 찾아가서 예를 갖추고 합장하여 공경을 표하고 무아(無我)의 의미를 물었다. “마음속의 어둠을 없애버릴 수 있도록,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저를 위하여 진리의 가르침을 열어주십시오. 만약 이 몸에 나[我]가 없다면 저 최상의 자아(自我)도 있을 수 없을 터인데 무슨 까닭에 이 몸에는 현실적으로 울고, 웃고, 즐거워하고, 분노하고, 아만(我慢)에 사로잡히고, 질투하고, 이간질[兩舌]하는 등의 일이 있습니까?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 분명히 알 수 없으니 인자(仁者)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해서 의심을 없애주소서.” 대승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이 니건자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부터 집착한 최상의 자아[最上我]란 완전히 허망한 것이다. 무엇을 있다 하며, 무엇을 없다 하는가? 이 둘 가운데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다. 만약 자신의 머리카락ㆍ피부ㆍ살ㆍ근육ㆍ뼈ㆍ지방ㆍ골수ㆍ창자ㆍ위장ㆍ손발의 모든 몸의 부분을 최상의 자아로 여긴다면 안팎에서 찾아보라. 어디에서 보겠는가?” 이때 니건자가 지자(智者)에게 말하였다. “나는 육안이기에 볼 수 없거니와, 천안(天眼)이 있는 이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자가 말하였다. “천안(天眼)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는 현색(顯色)2)도 아니요, 형색(形色)3)도 아니어서, 자성이 공하거늘 어찌 볼 수가 있겠는가?” 니건자가 말하였다. “그것은 결코 없는 것입니까?” 지자가 말하였다. “만약 없다고 한다면 어찌 현전에 인연따라 울음과 웃음 등의 모습이 생기는 것을 보겠는가? 혹 있다거나 혹 없다거나 하는 것은 둘 다 삿된 망상이고 바른 진리가 아니다.” 니건자가 말하였다. “만약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주장을 모두 말할 수 없다면 어찌하여 이 몸이 현전에 머무는 것[所住]이 있습니까?” 지자가 답하였다. “머무는 것의 모습[所住相]이란 조금도 있지 않다.” 니건자가 말하였다. “만약 머물러 있는 곳이 없다면 허공과 같지 않겠습니까?” 지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니건자가 말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울고 웃는 등의 모습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나이까?” 지자가 말하였다. “그 이치 가운데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세속(世俗)이고, 둘째는 승의(勝義)이다. 세속(世俗)의 말에 의지하면 나와 남, 생명이 있는 것[命者]ㆍ사부(士夫)4)ㆍ보특가라(補特伽羅)5)ㆍ작자(作者)6)ㆍ수자(受者)7)ㆍ재물ㆍ보석ㆍ처자ㆍ친척ㆍ친구 등과 같은 차별이 있다. 승의(勝義)에 의지하면 곧 나와 남, 생명이 있는 것 내지 친구 등의 일[事]이 없고, 또한 조그마한 차별 등의 모습[相]도 없다. 만약 세속의 말에 의지하면 생멸(生滅)과 선악(善惡)의 과보가 있거니와, 만약 승의의 말에 의지하면 생멸과 선악의 과보가 없다. 그 진여법(眞如法)의 자성(自性)은 본래 청정하여 번뇌도 없고, 더러움에 물듦도 없고, 깨달음[覺了]도 없어 본래 적정(寂靜)하니 이를 이름하여 진여의 자성[眞如自性]이라고 한다.”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속제(世俗諦)와 승의제(勝義諦) 이 둘을 이제 마땅히 말하리니 세속제는 곧 세상의 법이고, 승의제는 잘못이 없는 최상법이니
유정은 세속에 의지하여 번뇌를 더욱 일으키고, 윤회에 오래도록 빠져있어서 승의법을 알지 못하네.
세속법에 의지하는 까닭에 나와 남을 가르는 변계소집(遍計所執)을 일으켜 분별과 의혹을 낳아서 모든 고뇌를 받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