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6_0869_b_01L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14권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4. 업온(業蘊)

1) 악행납식 ③
【論】 세 가지 업[三業]이란 신업(身業)ㆍ어업(語業)ㆍ의업(意業)을 말하며, 네 가지 업[四業]이란 흑흑이숙업(黑黑異熟業)ㆍ백백이숙업(白白異熟業)ㆍ흑백흑백이숙업(黑白黑白異熟業)ㆍ비흑비백무이숙업능진제업(非黑非白無異熟業能盡諸業)을 말한다. 세 가지가 네 가지를 포섭하는가, 네 가지가 세 가지를 포섭하는가?119)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계경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니, 예컨대 계경에서 “세 가지 업과 네 가지 업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계경에서는 비록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아직 자세하게 분별하지 않았으며, 또한 일찍이 “세 가지가 네 가지를 포섭하는가, 네 가지가 세 가지를 포섭하는가?”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또 어떤 이는 “앞에서 비록 세 가지 업을 분별했다 하더라도 아직 네 가지 업은 분별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분별하려고 이것을 논한다”라고 한다.
여기에서 어떤 것이 흑흑이숙업인가? 불선업(不善業)으로 험난한 악취(惡趣)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문】이숙은 흑(黑)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품류족론(品類足論)』에서 “어떤 것이 흑법(黑法)인가? 불선의 법[不善法]과 유부무기의 법[有覆無記法]이다. 어떤 것이 백법(白法)인가? 선의 법[善法]과 무부무기의 법[無覆無記法]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모든 이숙과(異熟果)는 무부무기인데, 무엇 때문에 흑이라 하는가?
【답】 여기에서는 다만 “어떤 것이 흑업인가? 불선의 업이어서 험난한 악취를 받게 하는 것이다”라고만 해야 하고, 다시 “흑이숙(黑異熟)”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어떤 뜻이 있어서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미 흑(黑)은 원인[因]이요 결과[果]가 아니라는 것이 성립된다. 마치 도둑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과 같아서 여기에서 하는 말은 아버지를 욕하면서도 아들은 욕하지 않은 것이니, 여기에서도 그러하다.
또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에서는 뜻에 맞지 않은[不可意] 흑에 의거한 까닭에 이렇게 말한다. 흑(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염오(染汚)의 흑이요, 둘째는 뜻에 맞지 않은 흑이다. 여기에서의 업(業)은 두 가지 흑으로 말미암아 흑이라고 하면서 이숙은 다만 뜻에 맞지 않은 흑으로 말미암아서 역시 흑이라고 한다.”
【문】흑업(黑業)도 인간ㆍ천상 안의 이숙을 받는데, 무엇 때문에 다만 악취의 이숙만을 받는다고 하는가?
【답】 역시 말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이 뜻에는 그 밖의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말한다.
“그것은 결정되지 않아서이다. 인간ㆍ천상 안에서는 만일 어떤 곳에 흑업의 이숙이 있으면 이곳에는 반드시 백업(白業)의 이숙이 있어서 오직 흑업의 이숙만이 있고 백업의 이숙이 없는 곳은 없지만, 모든 악취에는 만일 그곳에 백업의 이숙이 있으면 이곳에는 반드시 흑업의 이숙이 있고, 어떤 곳에는 흑업의 이숙만 있으면서 백업의 이숙은 없는 곳도 있어서이니, 악취에는 결정코 흑이숙의 처소가 있다. 이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에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이 흑흑이숙업(黑黑異熟業)인가? 불선의 업으로 나락가(捺落迦)의 갈래[趣]를 받는 것이다.”
【문】모든 불선의 업은 방생(傍生)이나 아귀 갈래[鬼趣]의 이숙도 받게 되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나락가를 받는다고만 하면서 그 밖의 다른 것은 말하지 않는가?
【답】 말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그 밖의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이는 “그것은 결정되지 않아서이다. 방생이나 아귀 갈래에서는 불선의 업의 이숙도 받고, 또한 선의 업의 이숙도 받지만, 나락가의 갈래에서는 결정코 오직 불선의 업의 이숙만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세존께서 경에서 중(重)한 악업(惡業)으로써 모든 유정을 두렵게 하신 것은, 그 경에 따르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다만 나락가를 받는 모든 불선의 업만을 흑흑이숙업이라고 말했을 뿐이다”라고 한다.
이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 경을 인용하겠다.
“두 사람의 외도(外道)가 있었다. 한 사람은 포라나교치가(布剌拏憍雉迦)인데 소의 계[牛戒]120)를 받아 지녔고, 또 한 사람은 액제라서이가(額制羅栖爾迦)인데 개의 계[狗戒]121)를 받아 지녔다.
이 두 외도는 어느 때에 같이 모여 앉아서 이런 말을 했다.
‘세간에서 모든 행하기 어려운 금계(禁戒)를 우리들 두 사람은 닦고 배워서 이미 원만하게 되었으니, 그 누가 우리들이 받게 될 이숙(異熟)을 사실대로 기별(記別)할 수 있을까?
듣건대 석가 종족에서 한 분의 태자가 탄생했는데, 얼굴과 모습이 단정하게 생겼고,

32대장부상(大丈夫相)과 80수호(隨好)로써 그 몸을 장엄하였으므로 보는 이들이 만족할 줄을 모르며, 몸은 순금 빛이요, 상광(常光)은 한 길[一尋]이며, 음성은 맑고 밝고 화아하면서 뜻을 즐겁게 하는 것이 묘한 소리를 내는 갈라빈가(羯羅頻迦) 새보다 더 뛰어나며, 지견(智見)은 걸림이 없고 변재(辯才)는 막힘이 없는데, 가법(家法)은 싫어하여 버리고 집이 아닌 곳으로 나아가서 고행을 부지런히 닦다가 다시 도로 그만두고서 처중(處中)의 행122)을 닦아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증득하여 일체지(一切智)를 갖추어서 모든 법의 성상(性相)을 사실대로 깨달아 보며[證見], 온갖 의심 그물[疑網]을 끊고, 온갖 결정(決定)을 베풀며, 온갖 문론(問論)의 근원까지 궁구하여 통달하였다 한다.
우리들 두 사람은 이제 가서 물어야 한다. 만일 우리들의 금계로 받게 될 기별을 얻는다면, 그에 의지하여 배울 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에 두 사람은 부처님께로 와서 갖가지 좋은 말로 위문을 하고 나서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포라나(布刺拏)는 먼저 다른 이를 위하여 물으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서이가(栖爾迦)는 개의 계를 받아 지녀 닦고 배워서 이미 원만하게 되었습니다. 장차 어느 곳으로 나아가며, 장차 어디에 나게 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 포라나야, 그만두어라. 물을 필요가 없다. 이 일로 인해서는 묻지 말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가 참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으면서 마음에 수치[恥]와 한(恨)을 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세 번을 되풀이하였는데도 그는 오히려 은근히 청하고 물으면서 그치지 않았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면서[慈愍]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사실대로 기별(記別)하리라. 개의 계를 받아 지니어 만일 결범(缺犯)이 없었으면 당연히 개[狗] 가운데에 나야 하고, 만일 결범이 있었으면 당연히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

그때에 포라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두려움을 품고서 슬피 울며 목이 메어 어쩔 줄을 몰랐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먼저 자주 너에게 ≺그만두어라, 물을 필요가 없다. 이 일로 인해서는 묻지 말라. 너희들은 모두가 참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으면서 마음에 수치와 한을 품게 되리라≻고 어찌 말하지 않더냐? 이제 과연 그렇게 되었구나.’
포라나는 곧 스스로가 억제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서이가에게 ≺장차 개의 갈래[狗趣]에 날 것이다≻라고 기별하셨기 때문에 제가 슬피 우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소의 계[牛戒]를 받아 지니어 닦고 배워 이미 원만하게 되었으므로 역시 그렇게 될까 저어하여 그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대자(大慈)시여, 저를 위하여 소의 계를 받아 지닌 자는 장차 어디로 나아가며, 장차 어디에 날 것인가를 말씀하여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소의 계를 받아 지니어 만일 결범이 없었으면 당연히 소 가운데에 나야 하며, 만일 결범이 있었으면 당연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라.’”
이와 같은 일은 경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것과 같다.
【문】어떤 것을 개의 계와 소의 계를 받아 지니면서 결범(缺犯)이 없다고 하는 것인가?
【답】 만일 개의 계율을 지니면서 개의 법과 한결같이 하면 결범이 없다고 하며, 만일 소의 계율을 지니면서 소의 법과 한결같이 하면 결범이 없다고 하는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결범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세존께서는 중한 악업으로 모든 유정을 두렵게 하셨으며, 때문에 나락가 갈래를 받는 모든 불선의 업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경에 따르기 위하여 『집이문족론』에서는 “나락가를 받는 모든 불선의 업을 흑흑이숙업이라 한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견도에서 끊을 바[見道所斷]의 모든 불선의 업을 흑흑이숙업이라 하는 것이니, 제 종류 중에는 백(白)이 섞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도 있다.
“온갖 불선의 업은 모두 흑흑이숙업이라 한다. 욕계 중의 불선(不善)은 강하고 성함으로 말미암아 선(善)의 법이 끼어들지 못하지만, 불선의 법은 자기 지[自地]의 선을 능히 조복시키고 능히 끊기 때문에 선의 업은 미약하고 하열하면서 불선이 끼어들게 되는 것이니, 욕계의 선으로써는 불선을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백백이숙업(白白異熟業)인가? 색계계(色界繫)의 선업(善業)이다.
【문】무색계계(無色界繫)의 선업도 백(白)의 이숙을 받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색계계의 선업만을 말하면서 백백이숙업이라고 하고, 무색계계의 선업은 말하지 않는가?
【답】 말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그 밖의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색계계의 선업을 백백이숙업이라고 한다면 이미 무색계계의 선업도 그 업이라는 것을 말한 줄 알아야 할 것이니, 똑같이 정지(定地)요, 수지(修地)의 법이기 때문에 만일 이것을 말하면, 그것도 말한 것인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모든 선업으로서 두 가지 이숙과, 즉 중유(中有)와 생유(生有)를 받는 것이면 이 선업을 백백이숙업이라고 하지만, 무색계의 업은 오직 생유만을 받으면서 중유는 받지 않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중유와 생유에서처럼 이와 같이 기수(起受)와 생수(生受), 기이숙(起異熟)과 생이숙(生異熟), 기과(起果)와 생과(生果), 세과(細果)와 추과(麤果)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업으로서 두 가지 이숙, 즉 색(色)과 색이 아닌 것123)을 받게 되면 이 모든 선업을 백백이숙업이라고 하지만, 무색계의 업은 오직 색이 아닌 것만을 받으면서 색의 것은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두 가지 업을 완전히 갖추어 색과 색이 아닌 이숙을 받는 것이면 이 가운데서의 선업을 백백이숙업이라 하지만, 무색계에는 오직 색이 아닌 업만이 있으면서 색이 있는 업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색과 색이 아닌 것에서처럼 이와 같이 상응하는 것과 상응하지 않는 것, 소의가 있는 것[有所依]과 소의가 없는 것[無所依], 행상이 있는 것[有行相]과 행상이 없는 것[無行相], 소연이 있는 것[有所緣]과 소연이 없는 것[無所緣], 작의가 있는 것[有作意]과 작의가 없는 것[無作意]의 두 가지 업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세 가지 업, 즉 신업ㆍ어업ㆍ의업을 갖추어서 이숙을 받는 것이면 이 청정한 선업을 백백이숙업이라고 하지만, 무색계에는 오직 의업만이 있으면서 이숙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더불어 5온(蘊)으로써 이숙을 받는 것이면 이 청정한 선업을 백백이숙업이라고 하지만, 무색계에는 오직 4온(蘊)만이 있으면서 이숙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열 가지 선업도[十善業道]를 두루 갖추고서 이숙을 받는 것이면 이 청정한 선업을 백백이숙업이라고 하지만, 무색계에서는 오직 세 가지 선업도만 있으면서 이숙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이 세계 안에서 첫째 원인[因]과 둘째 결과[果]의 이 두 가지의 깨끗함[鮮淨]이 있고, 이 두 가지의 명백함[明白]이 있는 것이면, 이 세계의 선업을 백백이숙업이라고 하지만, 무색계에는 원인인 이 한 가지의 깨끗함과 명백함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직 색계계의 선업만을 백백이숙업이라고 하고, 무색계계의 선업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흑백흑백이숙업(黑白黑白異熟業)인가? 욕계계의 선업(善業)으로 인간과 천상 갈래[人天趣]의 이숙을 받는 업이다.
【문】하나의 업이면서 흑(黑)이기기도 하고 백(白)이기기도 한 것은 없는데, 무엇 때문에 흑백흑백이숙업이라고 하는가?
【답】 하나의 의지(依止) 중의 하나의 상속(相續) 가운데서 두 가지 업으로 받는 이숙, 즉 첫째는 흑이요, 둘째는 백인 것을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니, 이 때문에 흑백흑백이숙업이라고 한다.
【문】모든 악취에서도 흑ㆍ백 두 가지 업의 이숙을 받게 되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인간ㆍ천상 갈래의 이숙을 받는 업만을 말하면서 흑백흑백이숙업이라고 하고, 악취의 이숙을 받는 업은 말하지 않는가?
【답】 말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그 밖의 다른 뜻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인간ㆍ천상을 받는 선업을 말하면서 흑백흑백 이숙업이라 하면 이미 악취를 받는 선업도 그 업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인 줄 알 것이니, 뒤섞인 모양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에 만일 이것을 말하면 이미 그것도 말한 것인 줄 알아야 한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그것은 결정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욕계의 인간ㆍ천상 갈래에 있어서는 어느 한 곳도 흑백업(黑白業)의 이숙을 뒤섞여 받지 않는 곳이 없지만, 모든 악취에서는 비록 흑백업의 숙을 뒤섞여 받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다시 어떤 곳에서는 한결같이 순전한 흑업의 이숙만을 받는 것이니, 일부 방생(傍生)과 아귀[鬼]와 온갖 지옥이다. 이와 같이 악취에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욕계계의 수도에서 끊을 바[修所斷] 선(善)ㆍ불선(不善)의 업을 흑백흑백이숙업이라 하는 것이니, 하나의 종류 중에 두 가지의 업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만일 선ㆍ불선의 업으로서 욕계의 인간ㆍ천상ㆍ방생ㆍ아귀 갈래의 이숙을 받는 것이면 흑백흑백이숙업이라고 하는 것이니, 한 갈래[一趣] 안에서 두 가지 업의 이숙을 섞여 받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도 있다.
“욕계의 온갖 선업을 흑백흑백이숙업이라 한다. 그 선업의 체(體)는 비록 백(白)이라 하더라도 불선의 흑(黑)이 끼어들게 되는데, 불선은 자기 지[自地]의 선을 끊기 때문이며, 불선은 그렇지가 못하여 자기 지의 선이 끼어들지 못하는데,
자기 지의 선은 자기 지의 불선을 끊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욕계의 선업을 제3의 업(業)이라 한다.”
어떤 것을 비흑비백무이숙업능진제업(非黑非白無異熟業能盡諸業)이라 하는가? 모든 업을 영원히 끊는 학(學)의 사(思)이다.
【문】모든 무루의 업[無漏業]은 승의(勝義)의 백(白)인데, 무엇 때문에 이에 흑도 아니고[非黑] 백도 아니라[非白]고 하는가?
【답】 『집이문족론』과 『시설론』에서는 모두 이 업을 가리켜 “불선(不善)ㆍ염오(染汚)의 흑(黑)과 뜻에 맞지 않은[不可意] 이숙을 받는 흑과 같지 않기 때문에 흑이 아니다[非黑]라고 하며, 또 선(善)의 유루(有漏)의 백(白)과 뜻에 맞는[可意] 이숙을 받는 백과도 같지 않기 때문에 백이 아니다[非白]라고 한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이것은 결과의 백[果白]에 의거하기 때문에 백이 아니라고 한다. 백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원인의 백[因白]이요, 둘째는 결과의 백이다. 선의 유루의 업은 두 가지 백을 모두 갖추므로 백이라 하지만, 모든 무루의 업은 오직 원인의 백만이 있고, 결과의 백은 없기 때문에 백이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이숙의 백[異熟白]에 의거하기 때문에 백이 아니라고 한다. 백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체의 백[自體白]이요, 둘째는 이숙의 백이다. 선의 유루의 업은 두 가지 백을 모두 갖추었으므로 백이라 하지만, 무루의 업은 오직 자체의 백만이 있고 이숙의 백이 없기 때문에 백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이 무루의 업은 세간이 좋아하는 이숙을 끊을 수 있지만 세간이 좋아하는 바는 그렇지 못하여 백의 모양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백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치 때문에 흑도 백도 아니라고 하고, 이 무루의 업은 앞의 세 가지와 같이 이숙업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숙업이 없다[無異熟業]고 하며, 이 무루의 업은 앞의 세 가지 업으로 하여금 마침내 없어져 다하고[滅盡] 평등하게 다하고[等盡] 영원히 다하고[永盡] 영원히 해치고[永害], 버려 버리고[棄捨] 변해 토하고[變吐], 욕심을 여의고[雜欲] 고요히 사라지게 하는[寂滅] 것이기 때문에 모든 업을 다하게 된다[能盡諸業]고 한다.

이와 같다면 곧 열일곱 가지의 학의 사를 말하는 것이니, 견도(見道) 중의 네 가지 법지인[四法智忍]과 상응하는 학의 사와 욕계의 염(染)을 여읜 여덟 가지의 무간도[八無間道]와 상응하는 학의 사의 이 열두 가지의 사[十二思]는 흑흑이숙업을 다하고, 욕계의 염을 여읜 제9 무간도와 상응하는 학의 사는 흑흑이숙업과 흑백흑백이숙업을 다하며, 초정려(初靜慮)의 염을 여읜 제9 무간도와 상응하는 학의 사와 나아가 제4 정려의 염을 여읜 제9 무간도와 상응하는 학의 사는 백백이숙업을 다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열일곱 가지 무루의 사를 모든 업을 능히 끊는 학의 사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온갖 무간도의 무루의 사(思)를 모두 업을 끊는 학의 사라고 하는 것이니 온갖 무간도는 모두 업을 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온갖 학의 사를 모두 업을 끊는 학의 사라고 하는 것이니, 모든 학의 사는 모두 유루의 업을 대치(對治)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말하는 이는 처음의 설[初說]에서 오직 열일곱 가지 무루의 사(思)만을 말하니, 바로 앞의 세 가지의 업[三業]을 대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모든 무루의 혜(慧)와 상응하고 구유(俱有)하는 것은 모두 바로 앞의 세 가지 업을 끊을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무루의 학의 사만을 말하는가?
【답】 사(思)는 능히 발동(發動)하여 모두 법이 끊어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모두가 비록 끊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 가운데서는 업을 분별하고 있기 때문에 오직 사만을 말한다”고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따라 구르는[隨轉] 신업과 어업도 말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사만을 말하는가?
【답】 이 학의 사는 무루의 혜와 상응하면서 구르되, 동일한 소연[同一所緣]과 동일한 행상(行相)과 동일한 소의(所依)로 서로 도와 세력이 있으면서 모든 업을 끊게 되지만, 신업과 어업에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이미 세 가지 업[三業]과 네 가지 업[四業]의 자성(自性)을 말했으므로 이제는 뒤섞인 모양[雜相]과 뒤섞임이 없는 모양[無雜相]을 나타내 보이겠다.124)

【論】 세 가지 업과 네 가지 업에서는 세 가지가 네 가지를 포섭하는가, 네 가지가 세 가지를 포섭하는가?
【답】 세 가지가 네 가지를 포섭하는 것이요, 네 가지가 세 가지를 포섭하는 것이 아니다. 포섭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업을 능히 끊는 학(學)의 사(思)를 제외한 그 밖의 무루의 업과 무색계계의 선(善)의 업과 온갖 무기(無記)의 업이다.

여기에서 모든 업을 끊는 학의 사를 제외한 그 밖의 무루의 업이라 함은, 모든 열일곱 가지 무루의 사(思)를 말하여 제4의 업(業)으로 삼는 이면, 그는 열일곱 가지 사(思)를 제외한 그 밖의 무루의 가행도(加行道)ㆍ무간도(無間道)ㆍ해탈도(解脫道)ㆍ승진도(勝進道)와 상응하는 사(思)와 학(學)의 수전업(隨轉業)과 아울러 온갖 무학(無學)의 업을 그 밖의 무루의 업이라고 한다.
모든 온갖 무간도와 상응하는 학의 사(思)를 말하여 제4의 업으로 삼는 이면, 그는 온갖 무간도를 제외한 그 밖의 무루의 가행도ㆍ해탈도ㆍ승진도와 상응하는 학의 사와 학의 수전업과 아울러 온갖 무학의 업을 그 밖의 무루의 업이라고 한다.
모든 온갖 학의 사(思)를 말하여 제4의 업으로 삼는 이면, 그는 학의 수전업과 온갖 무학의 업을 그 밖의 무루의 업이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도 있다.

“처음에 무색계계의 선의 업을 제외한다는 것은 무색계계의 온갖 선(善)의 업을 말하며, 무기의 업을 제외한다는 것은 삼계계(三界繫)의 모든 무기(無記)의 업을 말한다.”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세 가지 업[三業]은 학(學)과 무학(無學)과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의 업을 빠짐없이 포섭하지만, 네 가지 업[四業]은 오직 학과 비학비무학의 업만을 포섭할 뿐이다.
세 가지 업은 욕계계와 색계계와 무색계계의 업을 빠짐없이 포섭하지만, 네 가지 업은 오직 욕계계와 색계계의 업만을 포섭할 뿐이다.
세 가지 업은 선과 불선과 무기의 업을 빠짐없이 포섭하지만, 네 가지 업은 오직 선과 불선의 업만을 포섭할 뿐이다.
세 가지 업은 견도에서 끊을 바[見所斷]와 수도에서 끊을 바[修所斷]와 끊을 것이 없는[無斷] 업을 빠짐없이 포섭하지만, 네 가지 업은 오직 세 가지의 일부만을 포섭할 뿐이다.
세 가지 업은 유루(有漏)ㆍ무루(無漏)의 업과 염오(染汚)ㆍ불염오(不染汚)의 업과 유이숙(有異熟)ㆍ무이숙(無異熟)의 업과 상응(相應)ㆍ불상응(不相應)의 업과 유수전(有隨轉)ㆍ무수전(無隨轉)의 업과 표(表)ㆍ무표(無表)의 업을 빠짐없이 포섭하지만, 네 가지 업은 오직 모든 두 가지씩의 업의 일부분만을 포섭할 뿐이니, 이와 같은 등의 문(門)은 모두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세 가지가 네 가지를 포섭하는 것이요, 네 가지가 세 가지를 포섭하는 것이 아니다. 포섭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업을 능히 끊는 학의 사를 제외한 그 밖의 무루의 업과 무색계계의 선의 업과 온갖 무기의 업이다”라고 한다.

【論】 세 가지 업[三業]이라 함은, 신업(身業)과 어업(語業)과 의업(意業)이며, 또 세 가지 업이 있는데, 순현법수업(順現法受業)과 순차생수업(順次生受業)과 순후차수업(順後次受業)이다.125)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계경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니, 예컨대 계경에서 “순현법수업 등의 세 가지 업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으나 자세히 분별하지 않으셨다. 자세한 설명은 앞에서와 같다.
또 어떤 이는 “앞에서 비록 신업 등의 세 가지 업을 분별했다 하더라도 아직 순현법수업 등의 세 가지 업은 분별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분별하려고 이것을 논한다”라고 한다.
어떤 것이 순현법수업(順現法受業)인가? 만일 어떤 업을 이생[此生]에서 짓고 더욱 자라게 하여 곧 이생에서 이숙과(異熟果)를 받는 것이면, 이것을 순현법수업이라고 한다.
【문】어떤 업을 이때에 짓고 더욱 자라게 하여 곧 이때에 이숙과를 받는 것인가?
【답】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모든 선업(善業)ㆍ악업(惡業)은 반드시 상속(相續)을 기다리거나 혹은 상속을 지나서야 비로소 이숙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업을 짓고 자라게 하여 곧 이 한 상속[一相續] 동안이나 혹은 곧 이 한 시분[一時分] 동안에, 혹은 곧 이 한 중동분[一衆同分] 동안에 이숙과를 받으면 이와 같은 것을 순현법수업이라고 한다. 반드시 어떤 업이 이 찰나 동안에 지어서 곧 이 찰나 동안이나 다음 찰나 동안에 성숙[熟]한다는 뜻은 없는 것이니, 다른 종류[異類]로 말미암아 친히 끌어 일으키기[引發] 때문이다.
여기에서 모든 세간에서 실제로 보게 되는 순현법수업에 대해 말해 보기로 하자.
“일찍이 들었다. 어떤 나무꾼이 산으로 들어갔다가 눈을 만나 길을 잃게 되었다. 그때 마침 해가 지고 눈은 깊이 쌓이고 하여 추위에 얼어서 마침내 죽을 지경이 되었다. 얼마쯤 앞으로 나아가다가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한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한 마리의 곰이 먼저 그 숲 속에 있는 것을 보았다. 몸은 청감색이었고, 눈은 두 개의 횃불과 같았다.
그 사람은 몹시 두려워 틀림없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보살이 곰의 몸으로 현신한 것이라 그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곧 위로하고 달래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 두려워하지 마시오.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행여 딴 마음이 있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이제 그대에게 끝내 나쁜 뜻이 없습니다.’
곧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두 손으로 받들고 굴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의 몸을 따뜻하게 하여 소생시킨 뒤에 여러 뿌리와 열매들을 가져다 권하면서 먹게 하고는 차서 소화시키지 못할까 저어하여 껴안고 누웠다.
이렇게 은혜로이 봉양한 지 엿새를 지나고 이레째가 되어 날은 개어서 맑아졌고 길이 나타났으므로 그 사람이 돌아가고 싶어하자 곰이 이미 알아채고, 다시 단 과일을 가져다 배불리 먹이고는 그를 전송하였다. 숲 바깥까지 나와 은근히 작별하려 할 때에 그 사람은 무릎을 꿇고 감사해하며 말했다.
‘무엇으로써 이 은혜를 갚으오리까?’
곰이 말했다.
‘나는 이제 달리 보답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이 날에 내가 당신의 몸을 보호했던 것처럼 당신도 나의 목숨에 대하여 역시 그렇게 해주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 사람은 공손히 허락한 뒤에 땔나무를 지고 산을 내려오다가 두 사람의 사냥꾼을 만났다. 그들이 물었다.
‘산중에서 어떤 짐승을 보았습니까?’
나무꾼이 대답했다.
‘나 또한 다른 짐승은 보지 못했고, 오직 한 마리의 곰을 보았을 뿐입니다.’
사냥꾼들은 청했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겠습니까?’
나무꾼이 대답했다.
‘만일 나에게 3분의 2를 주겠다면 당신들에게 가르쳐 주겠소.’
사냥꾼들이 그렇게 주겠다고 허락했으므로 함께 데리고 가서 끝내 곰을 죽이고는 고기를 3등분으로 나누었다.
나무꾼이 양 손으로 곰의 고기를 가지려 하는데 악업(惡業)의 힘 때문에 두 팔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이 마치 구슬에 꿴 끈이 끊어지듯 했고 마치 연뿌리가 끊어지듯 했다.
사냥꾼들은 당황하고 놀라면서 그 까닭을 물었으므로 나무꾼은 부끄러워하면서 자세히 그 사실을 말해 주었다. 이 두 사냥꾼들은 나무꾼을 책망하며 말했다.
‘남이 그렇게도 당신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는데, 당신은 이제 어찌 차마 이런 악역(惡逆)을 저질렀단 말이오? 괴이하구료. 당신의 몸이 어찌 문드러지지 않으리오?’
이리하여 사냥꾼들은 함께 그 고기를 가지고 가서 승가람(僧伽藍)에게 보시했다.
그때에 스님들의 상좌(上座) 중에 묘한 원지(願智)를 얻은 이가 있었다. 곧 정(定)에 들어서 ≺이것은 무슨 고기일까?≻라고 관하다가 곧 이것이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과 안락을 지었던 큰 보살의 살임을 알고는 이윽고 정에서 나와 이 일을 대중에게 알렸다. 대중들은 모두가 놀라고 감탄하면서 함께 향나무를 가져다 그 고기를 화장한 뒤에 그 남은 뼈는 거두어서 솔도파(率堵波)를 일으켜 예배하고 공양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악업은 반드시 상속을 기다리거나 혹은 상속을 거쳐서야 비로소 그 과보를 받게 된다.
“또 옛날에 소를 잡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를 몰고 길을 가다가 사람은 많은 데다 양식은 떨어져서 굶주림에 몹시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자 잠깐 쉬면서 의논했다.
‘이 소떼들은 끝내 우리의 물건은 아니니, 혀를 끊어 내어서 허기를 채웁시다.’
그리고는 곧 소금을 여러 소들의 입에 발라 두자 소들이 짠맛을 탐하여 혀를 내어서 핥았으므로 이내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일시에 끊어 내어서 불에다 구워 다 같이 먹었다.
먹고 나서는 서로 함께 물 있는 데로 가서 양치질을 하고 다 같이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쑤셨는데, 가지가 쪼개지면서 혀를 긁어 비었다. 그 악업의 힘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혀가 마치 썩어 문들어진 과일과 같이 되면서 한꺼번에 모두 떨어져 버렸다.”
이와 같이 악업은 반드시 상속을 기다리거나 혹은 상속을 거쳐서야 비로소 그 과보를 받게 된다.
“또 듣건대 옛날에 포악한 자가 있었는데, 어머니로 하여금 그릇을 잡게 하고 자신은 우유를 짜다가 짠 것이 양이 넘치자 어머니는 그만 짜게 하면서 말했다.
‘남은 것은 두었다가 송아지에게 먹이도록 하자.’
그 사람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성을 내면서 손으로 젖을 떠서 그의 어머니의 얼굴에다 뿌렸다. 어머니의 몸에 닿은 우유 방울은 모두가 그 악업의 힘 때문에 그 사람의 몸 위에 도로 가서 붙으면서 그만큼의 백라병(白癩病)으로 번져 버렸다.”
이와 같이 악업은 반드시 상속을 기다리거나 혹은 상속을 거쳐서야 비로소 그 과보를 받게 된다.
이것은 간략하게 순현법수(順現法受)의 세 가지 악업을 인용한 것이다.
“옛날 교살라국(憍薩羅國)에 승군(勝軍)이라는 왕이 있었다. 왕은 한 딸을 낳았는데, 열여덟 가지 추태(醜態)를 다 갖추었다.
가난하고 천한 자에게는 주지 않았고 부귀한 자는 구하지 않았는데, 마침 장자(長者)로서 재위(財位)를 상실한 이가 있었으므로 왕은 듣고 사람을 시켜서 불러와서 말했다.
‘나에게 딸이 있는데 용색(容色)이 조금 모자란다. 경(卿)이 만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후히 값진 보물과 재산을 내리겠다.’
그 사람은 허락했으므로 왕은 듣고 기뻐하면서 많은 재보와 밭과 집과 하인 등을 하사하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고서 빈(嬪)으로 내려 예(禮)로써 대우하여 은밀히 저택으로 돌아가 살게 했다.
그 사람은 부끄러워서 외출할 때는 자물쇠를 채웠고, 친지들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으므로 그 여러 친밀히 지낸 벗들은 책망하여 말했다.
‘무엇 때문에 우리들에게 아내를 보여 주지 않는가?’
장자의 아들은 말했다.
‘어째서 그리도 서두르는가?’
여러 사람들은 그가 계속 미루는 것을 괴히 여기면서 드디어 함께 약속을 했다.
‘이로부터 7일 후에 저마다 자기 부인을 데리고 아무 동산 숲에 모여서 재미있게 연회를 베풀기로 하자. 어기는 이는 벌금 5백 전을 물리기로 하자.’
이리하여 7일이 되자 모두 약속한 대로 하였으나 오직 장자의 아들만은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고 와서 스스로 재물의 부[財富]를 뽐내며 벌금을 물었다.
그의 부인은 혼자 집 안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책망하며 원망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미운 몸을 받아서 여러 사람들은 모두가 즐기는데, 나 혼자만이 괴로워하고 있을까? 빨리 죽어 버리는 것이 낫겠다.’
일심으로 부처님을 염(念)하면서 곧 자살하려고 했다.
부처님은 때가 이르렀음을 아시고 곧 여기에서 없어져 그의 앞에 나타나셨다.
여인은 여래를 뵙자마자 희비(喜悲)가 몹시 엇갈리면서 은근하고 청정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살펴보자 선업(善業)의 힘 때문에 잠깐 만에 몸이 변하여 천녀(天女)와 같이 되었다. 갑절 더 좋아서 뛰노는데,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자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예류과(預流果)를 얻었다.
세존께서 돌아가시자 그 여인은 혼자 앉아 있었다. 단정하기 견줄 이 없었으므로 기분이 좋아서 조용하고 편안히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 사람이 부인을 데려오지 않은 것을 보고 곧 취하도록 술을 먹여 놓고 그의 열쇠를 몰래 훔쳐서는 같이 그의 집으로 가서 멀리서 그의 아내를 보았다. 그러자 단정 엄숙하고 견줄 데 없는 것이 마치 제석천왕(帝釋天王)의 비(妃)와 같았으므로 이에 여러 사람들은 몹시 찬탄하고 우러르면서 서로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진실로 이 때문이었구나.’
동산으로 달려가서 함께 그의 남편에게 사죄하고 아울러 그를 축하하며 찬양했다.
그 사람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면서 거짓으로 놀리는 것으로 알고 돌아와 아내를 보고서는 몹시 의아하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물었다.
‘성녀(聖女)는 요술쟁이이십니까, 도깨비입니까? 나의 아내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의 아내는 위의 사실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이에 그의 남편은 전에 없던 일을 얻고서 삼보(三寶)께 귀의했다.”
이와 같이 선업(善業)은 반드시 상속을 기다리거나 혹은 상속을 거쳐서야 비로소 그 과보를 받게 된다.
“옛날 건타라국(健馱羅國)의 가이색가왕(迦膩色迦王)에게 한 사람의 황문(黃門)이 항시 안의 일을 감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성 밖을 나갔다가 소떼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수는 5백 마리가 더 되었다. 성안으로 돌아오면서 소를 모는 이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소들이오?’
그러자 대답했다.
‘이 소들은 장차 거세(去勢)할 것들입니다.’
이때에 황문은 곧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나는 전생의 악업으로 인하여 고자[不男]의 몸을 받고 있다. 이제 재물로써 이 소들의 재난을 구해 주리라≻고 하고, 마침내 그 값을 치르고 모두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선업의 힘 때문에 이 황문은 곧 남자의 몸으로 회복되었으므로 몹시 기뻐하면서 곧 성안으로 들어가 궁문(宮門)에 서 있으면서 심부름을 시켜 왕에게 아뢰었다.
‘청컨대 들어가 뵙고 싶습니다.’
왕이 불러들여 괴히 여기면서 그 까닭을 묻자, 이에 황문은 위의 일들을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놀라며 기뻐하면서 후히 값진 재보를 하사하고서는 높은 관직을 내려 바깥일을 맡게 했다.”
이와 같이 선업은 반드시 상속을 기다리거나 혹은 상속을 거쳐서야 비로소 그 과보를 받게 된다.
“옛날 달차시라국(怛叉尸羅國)에 한 여인이 있었다. 월광왕(月光王)이 천 개의 머리를 버린 곳으로 가서 무우왕(無憂王)이 일으킨 영묘(靈廟)에 예배를 하는데, 개똥이 부처님 자리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이내 ‘이곳은 청정한 곳인데 어떻게 개똥이 그 안을 더럽힌단 말인가?’라고 생각하고, 손으로 가져다 버리고는 향을 이겨다 발랐다.
이 선업의 힘 때문에 이 여인의 온몸에서 향내가 나는 것이 마치 전단나무와 같았으며, 입속에서는 언제나 푸른 연꽃향기가 났다.”
이와 같이 선업은 반드시 상속을 기다리거나 혹은 상속을 거쳐서야 비로소 그 과보를 받게 된다.
이것은 간략하게 순현법수의 세 가지 선업을 인용한 것이다.
어떤 것이 순차생수업(順次生受業)인가? 만일 업을 이생에서 짓고 더욱 자라게 하여 제2생(生)에서 이숙과를 받게 된다면, 이것을 순차생수업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순후차수업인가? 만일 업을 이생에서 짓고 더욱 자라게 하여 제3생에서나 혹은 제4생에서나 혹은 다시 이보다 더 지나가서 이숙과를 받게 된다면, 이것을 순후차수업이라고 한다.
【문】모든 순현법수업은 반드시 현법(現法)에서 받는가? 순생(順生)과 순후(順後)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도 그렇다.
【답】 비유자(譬喩者)는 “이것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 온갖 업은 모두 바꿀 수 있기 때문이며, 나아가 무간업(無間業)도 바뀌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순현법수업 등이라고 하는가?
【답】 그는 “모든 순현법수업은 현법 중에서 이숙과를 받는 것이 정해 있지 않다. 만일 받게 되면 현법에서 정해진 것이나 그 밖의 다른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순현법수업이라고 한다. 순생과 순후에서 말한 바도 그러하다”라고 한다.
그는 “온갖 업은 모두 바꿀 수 있으며, 나아가 무간업도 바꿀 수 있다. 만일 무간업을 바꿀 수 없다면 제1유(有)를 초월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제1유는 초월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간업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한다.
아비달마(阿毘達磨)의 논사는 “모든 순현법수업은 결정코 현법 중에서 이숙과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순현법수업이라고 한다. 순생과 순후에서 말한 바도 그러하다”라고 한다. 이 때문에 만일 “무엇 때문에 순현법수업과 나아가 순후차수업이라 하는가?”라고 물으면, 이것으로써 대답해야 한다.
또 어느 다른 논사는 네 가지 업[四業]을 말하니, 순현법수업(順現法受業)ㆍ순차생수업(順次生受業)ㆍ순후차수업(順後次受業)ㆍ순부정수업(順不定受業)이다.
모든 순현법수업과 나아가 순후차수업의 이 업은 바꿀 수가 없지만, 모든 순부정수업의 이 업은 바꿀 수가 있다. 오직 이 네 번째 업만을 바꾸기 위하여 금계(禁戒)를 받아 지니고 범행(梵行)을 부지런히 닦으면서 그는 ‘저는 이로 말미암아서 장차 이 업이 바뀌어지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어느 다른 논사는 “다섯 가지 업[五業]을 말한다. 순현법수업과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의 각각 한 가지씩과 순부정수업 중에서 다시 두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이숙이 결정된 업이요, 둘째는 이숙이 결정되지 않은 업이다.
모든 순현법수업과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과 순부정수업 중의 이숙이 결정된 업은 바꿀 수가 없지만, 순부정수업 중의 이숙이 결정되지 않은 업의 이 업은 바뀔 수가 있다. 오직 이 제5의 업만을 바꾸기 위하여 금계를 받아 지니고 범행을 부지런히 닦으면서 그는 ‘저는 이로 말미암아서 장차 이 업이 바뀌어지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 어느 다른 논사는 여덟 가지 업[八業]을 말한다. 순현법수업에 두 가지가 있어니, 그 첫째는 이숙이 결정[異熟決定]된 업이요, 둘째는 이숙이 결정되지 않은[異熟不決定] 업이며,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과 순부정수업에 있어서도 각각 두 가지씩이 있어니, 첫째는 이숙이 결정된 업이요, 둘째는 이숙이 결정되지 않은 업이다. 이것이 여덟 가지의 업이다.
여기에서 모든 이숙이 정해진 업[異熟定業]은 모두가 바뀔 수 없지만, 이숙이 정해지지 않은 업[異熟不定業]은 모두 바뀔 수 있다. 이것을 바꾸게 하기 위하여 금계를 받아 지니고 범행을 부지런히 닦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기에서는 4구(句)를 만들어야 한다.
혹 어떤 업은 시분(時分)은 결정되어 있으면서도 이숙(異熟)이 결정되지 않은 것이 있고, 혹 어떤 업은 이숙은 결정되어 있으면서도 시분이 결정되지 않은 것이 있으며, 혹 어떤 업은 시분도 결정되어 있으면서 이숙도 결정되어 있는 것이 있고, 혹 어떤 업은 시분도 결정되어 있지 않고 이숙도 결정되지 않은 것이 있다.
어떠한 업이 시분은 결정되어 있으면서도 이숙은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순현법수업(順現法受業)ㆍ순차생수업(順次生受業)ㆍ순후차수업(順後次受業) 중에서 이숙이 결정되지 않은 업이다.
어떠한 업이 이숙은 결정되어 있으면서도 시분은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순부정수업(順不定受業) 중에서 이숙이 정해진 업이다.
어떠한 업이 시분도 결정되어 있으면서 이숙도 결정되어 있는 것인가? 순현법수업과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 중에서 이숙이 정해진 업이다.
어떠한 업이 시분도 결정되지 않고 이숙도 결정되지 않은 것인가? 순부정수업 중에서 이숙이 정해지지 않은 업이다.
이와 같은 것을 여덟 가지 업의 4구라고 한다.
【문】혹시 한때의 한 찰나 동안에 순현법수업ㆍ순차생수업ㆍ순후차수업의 세 가지 업[三業]을 일으키는 것도 있는가?
【답】 있다. 먼저 두 사람을 시켜서 생명을 죽이는 것과 도둑질[不與取]하는 일을 하게 하고, 뒤에 자기 자신은 음욕의 삿된 행[欲邪行]을 행하는 것이니, 이것은 스스로 마칠 바의 일이요, 다른 이로 말미암아 마칠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은 종류의 법이 생기면 세 가지 업을 동시에 마칠 수 있게 된다.
이 중에서 처음의 업은 현법(現法)에서 이숙과(異熟果)를 받고, 둘째의 업은 간단없는 생[無間生]에서 이숙과를 받으며, 셋째의 업은 제3생(生) 이후의 모든 생에서 이숙과를 받는 것이다. 그 나머지 업도(業道)로서 자기 자신이 짓고 남을 시켜서 하는 것의 차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문】이 순현법수업 등은 몇 가지가 중동분(衆同分)의 과보를 이끌 수 있고, 몇 가지가 중동분의 과보를 원만하게 하는가?
【답】 혹 어떤 이는 “두 가지는 중동분의 과보를 이끌 수도 있으면서 또한 중동분의 과보를 원만하게도 하는 것이니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이며, 두 가지는 중동분의 과보를 원만하게 하면서도 중동분의 과보를 이끌 수는 없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순부정수업이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세 가지는 중동분의 과보를 이끌 수 있으면서 또한 중동분의 과보를 원만하게도 하는 것이니 순현법수가 제외되며, 한 가지는 중동분의 과보를 원만하게 하면서도 중동분의 과보는 이끌 수 없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다”라고 한다.
또 순현법수업으로 하여금 또한 중동분의 과보를 이끌 수 있게 하려는 것도 있다. 만일 이렇게 말한다면 이 네 가지 업은 모든 것이 다 중동분의 과보도 이끌 수 있고 중동분의 과보도 원만하게 한다.
【문】이와 같은 모든 업은 어느 것이 가장 뛰어난가?
【답】 혹 어떤 이는 “순현법수업이 가장 뛰어나다. 왜냐하면 가까운 시일에 과보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순후차수업이 가장 뛰어나다. 왜냐하면 온갖 보살의 업은 가장 뛰어난 것인데, 모두가 순후차수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문】순현법수업은 가까운 시일에 과보를 얻게 되는 것이므로 모든 업 가운데서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만 순후차수업은 과보와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주 먼데, 어떻게 가장 뛰어나다 하겠는가?
【답】 순현법수업은 비록 가까운 시일에 과보를 얻는다 해도 그 과보는 하열(下劣)하므로 가장 뛰어나다고 하지 않지만, 순후차수업은 비록 과보와는 떨어짐이 멀다 하더라도 그 과보는 뛰어나므로 다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마치 바깥의 종자[種]와 같다. 어떤 것은 가까운 시일에 열매를 얻으면서도 열매가 하열한 것이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열매를 맺는 시일이 멀면서도 열매가 가장 뛰어난 것이 있기도 하다.
어떤 가을에 수확하는 곡식의 모종 같은 것은, 세 번의 보름[三半月]을 지나서 곧 열매를 맺으면서도 이 열매는 가장 시일이 가까우면서 가장 하열한 것이 있고, 벼나 보리 등과 같은 것은 여섯 달 동안을 지내야 그 열매가 비로소 익는데 열매가 맺는 시일이 그 다음으로 오래 걸리면서도 그 다음으로 훌륭하며, 거리수(佉梨樹) 같은 것은 5, 6년 혹은 12년을 지나야 비로소 그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 열매는 그 다음으로 훌륭하고, 다라수(多羅樹) 같은 것은 백 년을 지나야 비로소 그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 열매는 가장 훌륭하다.
바깥의 종자는 열매가 맺는 시일이 가장 가까우면 그 열매는 가장 하열하고, 열매가 맺는 시일이 그 다음으로 멀면 그 열매는 그 다음으로 훌륭하며, 열매를 맺는 시일이 가장 멀면 그 열매는 가장 훌륭하다.
종류에 따라 그 열매의 훌륭함[勝]ㆍ열등함[劣]의 차별이 있듯이 안의 업[內業]도 그러하다. 순현법수업은 과보를 받는 것이 가장 가까우면서도 그 과보는 가장 하열하고, 순차생수업은 과보를 받는 것이 그 다음으로 멀면서 그 과보는 그 다음으로 훌륭하며, 순후차수업은 과보를 받는 것이 가장 멀면서 그 과보는 가장 훌륭하다. 업에 따라 그 과보의 훌륭함과 열등함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순후차수업이 가장 훌륭한 것이요, 그 밖의 다른 것은 그렇지 못하다.
【문】어느 세계 안에서 몇 가지의 업을 짓게 되는가?
【답】 어떤 이는 “욕계에서는 네 가지의 선(善)ㆍ불선(不善)의 업을 짓고, 색계ㆍ무색계에서는 세 가지의 선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가 제외된다. 왜냐하면 욕계에서는 불ㆍ보살ㆍ성문ㆍ독각ㆍ부모ㆍ사장(師長) 등의 모든 덕이 있는 이들의 곁에서 더욱 으뜸가는 선업(善業)ㆍ악업(惡業)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 업은 빨리 이숙과를 받지만 색계ㆍ무색계에서는 이런 훌륭한 연(緣)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이 순현법수업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품류족론(品類足論)』의 말을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그 논(論)에서 “순현법수업과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은 온갖 수면(隨眠)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답】 그 논에서는 “순현법수업은 욕계의 온갖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하고,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은 욕계의 온갖 수면과 색계ㆍ무색계의 변행수면(遍行隨眠)과 수도에서 끊을 바[修所斷]의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어떤 뜻이 있어서이니, 그 글에서는 바로 통틀어 요약하여 설명한 것인 줄 알아야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집이문족론』의 말을 다시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그 논에서 “순현법수업과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은 욕계의 온갖 수면과 색계ㆍ무색계의 변행수면과 수도에서 끊을 바의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답】 그 글에서는 “순현법수업은 욕계의 온갖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하고,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은 욕계의 온갖 수면과 색계ㆍ무색계의 변행수면과 수도에서 끊을 바의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한다”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은 것은 무슨 뜻이 있어서이니, 그 안에서는 언세(言勢)가 이끈 바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 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말하는 이도 있다.
“색계와 무색계에도 순현법수업을 끌어 일으킬 수 있다.”
【문】앞에서 욕계에서는 불ㆍ보살 등의 훌륭한 연에 의하여 순현법수업을 일으킬 수 있어도 위의 두 세계에서는 이런 훌륭한 연이 없어서라고 말하였는데 어떻게 일으킬 수 있겠는가?
【답】 그곳에서는 다만 인의 힘[因力]만을 맡아 지님[任持]으로써 역시 순현법수업을 끌어 일으킬 수 있고, 욕계에서도 다만 인의 힘만으로 말미암아 이 업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 혹 어떤 사람은 문을 열어젖히고 크게 보시하여 성현께 공양을 하면서도 순현법수업을 이끌지 못한 이가 있고, 혹 어떤 사람은 한 움큼의 밥을 한 방생(傍生)에게 베풀면서도 순현법수업을 이끄는 이가 있다. 이와 같기 때문에 반드시 모두가 훌륭한 연에 의하여 이 업을 일으키지는 않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인의 힘을 맡아 지님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끌어 일으킬 수가 있다. 이 때문에 옛날 아비달마(阿毘達磨)의 가습미라(迦濕彌羅)의 모든 대논사(大論師)들은 모두 “만일 은근하고 청정한 마음이 있으면 한 줌의 풀을 가져다 다른 소에 베풀어 먹이게 되어도 순현법수업을 능히 이끌게 되는 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문】어느 갈래[趣]에서 몇 가지의 업을 지을 수 있는가?
【답】 나락가(捺落迦)에서는 네 가지 불선(不善)의 업과 세 가지 선(善)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가 제외되고, 방생(傍生)과 아귀(餓鬼)와 3주(洲)의 인간과 욕계의 천상에서는 네 가지 선과 불선의 업을 지으며, 북구로주(北拘盧洲)에서는 네 가지 선의 업과 세 가지 불선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가 제외되고, 색계ㆍ무색계의 천상에서는 짓는 것이 앞에서 이미 말한 것과 같다.
【문】어느 생(生)에서 몇 가지의 업을 지을 수 있는가?
【답】 4생(生)에서는 모두 네 가지 선ㆍ불선의 업을 짓게 된다.
【문】누가 어느 지(地)에서 몇 가지의 업을 지을 수 있는가?
【답】 만일 모든 이생(異生)으로서 욕계에 나 있으면서 아직 욕계의 염(染)을 여의지 못한 이면 욕계의 네 가지 선ㆍ불선의 업을 짓고, 만일 이미 욕계의 염은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초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로서 만일 퇴법자(退法者)이면, 그는 욕계의 네 가지 업을 짓고 초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가 제외된다.
어떤 이는 “그는 초정려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후차수업과 부정수업(不定受業)이다”라고 한다.
만일 불퇴법자(不退法者)이면 그는 욕계의 세 가지 선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업이 제외되고, 초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만일 이미 초정려의 염은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제2 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로서 만일 퇴법자이면 그는 욕계의 네 가지 업을 짓고, 초정려와 제2 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어떤 이는 “그는 제2 정려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후차수업과 부정수업이다”라고 한다.
만일 불퇴법자이면 그는 욕계의 세 가지 선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업이 제외되고, 초정려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후차수업과 부정수업이며, 제2 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나아가 만일 이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염(染)을 여읜 이로서 만일 퇴법자이면 그는 욕계의 네 가지 업을 짓고, 4정려(靜慮)와 4무색(無色)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어떤 이는 “그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후차수업과 부정수업이다”라고 한다.
만일 불퇴법자이면 그는 욕계의 세 가지 선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업이 제외되고, 4정려와 3무색에서의 두 가지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후차수업과 부정수업이며, 비상비비상처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이와 같이 이미 이생으로서 욕계에 나 있는 이의 것을 말했다.
만일 모든 이생으로서 초정려에 나서 아직 초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초정려의 네 가지 업을 짓는다.
만일 이미 초정려의 염을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제2 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초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가 제외되고, 제2 정려의 세 가지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가 제외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나아가 만일 무소유처의 염을 여읜 이면 그는 초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업이 제외되고, 3정려와 3무색에서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후차수업과 부정수업이며, 비상비비상처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초정려에 난 이의 것을 말한 것처럼 이와 같이 나아가 비상비비상처에 난 이의 것에서도 자세히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이 이미 모든 지(地)에서의 이생을 말했다.
만일 모든 성자(聖者)로서 욕계에 나 있으면서 아직 욕계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욕계의 네 가지 선과 불선의 업을 짓는다.
이미 욕계의 염은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초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욕계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초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이미 초정려의 염은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제2 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로서 만일 퇴법자(退法者)이면, 그는 욕계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초정려와 제2 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어떤 이는 “그는 제2 정려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후차수업과 부정수업이다”라고 한다.
만일 불퇴법자(不退法者)이면, 그는 욕계의 두 가지 선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초정려의 한 가지의 업을 짓는 것이니 부정수업이며, 제2 정려의 세 가지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나아가 만일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로서 만일 퇴법자이면, 그는 욕계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4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되며, 4무색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이것은 총괄적인 설명이요, 만일 개별적으로 설명하면, 4무색에서 만일 순차생수업을 지으면 순후차수업은 짓지 않으며, 만일 순후차수업을 지으면 순차생수업은 짓지 않는다.
어떤 이는 “그는 비상비비상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후차수업과 부정수업이다”라고 한다.
만일 불퇴법자이면, 그는 욕계의 두 가지 선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4정려와 3무색에서의 한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부정수업이며, 비상비비상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업과 부정수업이다.
만일 이미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읜 이면, 그는 욕계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4정려와 4무색에서의 한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부정수업이다.
이와 같이 이미 성자로서 욕계에 나 있는 이에 대하여 말했다.
만일 모든 성자로서 초정려에 나 있으면서 아직 초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초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후차수업이 제외된다.
만일 이미 초정려의 염은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제2 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초정려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제2 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
만일 제2 정려의 염을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제3 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초정려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제2 정려의 한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부정수업이며, 제3 정려의 세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이 제외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나아가 만일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초정려의 두 가지의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와 부정수업이요, 3정려와 3무색에서의 한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부정수업이며, 비상비비상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업과 부정수업이다.
만일 이미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읜 이면, 그는 초정려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3정려와 4무색에서의 한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부정수업이다.
성자로서 초정려에 난 이에 대한 설명에서처럼, 이와 같이 제2ㆍ제3ㆍ제 4 정려에 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그러하다. “아직 자기 지[自地]의 염을 여의지 못하면, 그는 자기 지의 네 가지 업을 짓는다”고 하는 것을 제외하는 것은, 앞과 구별된다.
만일 성자로서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나서 아직 공무변처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공무변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다.
만일 이미 공무변처의 염은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식무변처(識無邊處)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공무변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며, 식무변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업과 부정수업이다.
만일 이미 식무변처의 염은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공무변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식무변처의 한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부정수업이며, 무소유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업과 부정수업이다.
만일 이미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었으면서도 아직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그는 공무변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수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요, 식무변처와 무소유처의 한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부정수업이며, 비상비비상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차생수업과 부정수업이다.
만일 이미 비상비비상처의 염을 여읜 이면, 그는 공무변처의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순현법수업과 부정수업이며, 3무색에서의 한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부정수업이다.
성자로서 공무변처에 난 이에 대한 설명처럼 이와 같이 나아가 비상비비상처에 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욕계의 중유(中有)의 자리에 머무른 이는 스물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중유의 자리의 이숙정업(異熟定業)과 부정업(不定業)과 같이 갈랄람(羯剌藍)ㆍ알부담(遏部曇)ㆍ폐시(閉尸)ㆍ건남(鍵南)ㆍ발라사거(鉢羅奢佉)ㆍ초생(初生)ㆍ영해(嬰孩)ㆍ동자(童子)ㆍ소장(少壯)ㆍ쇠로(衰老)의 위(位)에서의 각각 이숙의 정업과 부정업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22업이라 한다.
갈랄람위(羯剌藍位)에 머무른 이는 스무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중유에서의 두 가지 업이 제외된다. 이와 같이 하면서 나아가 쇠로위(衰老位)에 머무르면 두 가지 업을 짓는 것이니, 곧 쇠로위에서의 정업과 부정업이다.
【문】만일 중유위에서 짓게 되는 모든 업이 본유위(本有位)에 이르러서 이숙과를 받는다 하면, 이 업은 순현법수업이라 해야 하는가, 순차생수업이라 해야 하는가?
【답】 이것은 순현법수업이요, 순차생수업이 아니다. 왜냐하면 중유와 본유는 온통 중동분(衆同分)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앞뒤의 세 가지 업의 자성(自性)을 말했으므로 이제는 뒤섞인 모양[雜相]과 뒤섞임이 없는 모양[無雜相]을 나타내 보이겠다.126)

【論】 앞의 것이 뒤의 것을 포섭하는가, 뒤의 것이 앞의 것을 포섭하는가?
【답】 앞의 것이 뒤의 것을 포섭하는 것이요, 뒤의 것이 앞의 것을 포섭하는 것이 아니다. 포섭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인가? 부정업(不定業)과 무기업(無記業)과 무루업(無漏業)이다.

여기에서 앞의 세 가지는 공통으로 정업과 부정업을 포섭하지만, 뒤의 세 가지는 오직 정업만을 포섭한다.
앞의 세 가지는 공통하게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의 업을 포섭하지만, 뒤의 세 가지는 오직 선ㆍ불선의 업만을 포섭한다.
앞의 세 가지는 공통하게 유루ㆍ무루의 업을 포섭하지만, 뒤의 세 가지는 오직 유루의 업만을 포섭할 뿐이다.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면 한량없는 문[無量門]이 있으면서 앞뒤로 차별된다. 지금은 간략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앞의 것이 뒤의 것을 포섭하는 것이요, 뒤의 것이 앞의 것을 포섭하는 것은 아니다. 포섭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부정업과 무기업과 무루업이다”라고 말한다.
026_0869_b_01L阿毘達磨大毘婆沙論卷第一百一十四 退五百大阿羅漢等造三藏法師玄奘奉 詔譯業薀第四中惡行納息第一之三三業謂身意業四業謂黑黑異熟白白異熟業黑白黑白異熟業黑非白無異熟業能盡諸業爲三攝四攝三耶何故作此論爲欲分別契經義故如契經說三業四業契經雖作是說而未廣辯亦未曾說爲三攝四爲四攝三乃至廣說復有說者前雖分別三業而未分別四業今欲分別故作斯論此中云何黑黑異熟業謂不善業能感嶮惡趣異熟異熟不應名黑所以者何如品類足說云何黑法謂不善法及有覆無記法云何白法謂善法及無覆無記諸異熟果無覆無記何故名黑此中但應說云何黑業謂不善業能感嶮惡趣不應更說黑異熟言應如是說而不爾者有何意趣謂如是說已成立黑是因非果如說賊兒此所出言罵父非子此中亦爾復有說者此中依止不可意黑故作是說黑有二種一染污黑二不可意黑此中業由二黑故說名爲黑異熟但由不可意黑故亦名黑黑業亦感人天中異熟何故但說感惡趣異熟耶應說而不說者當知此義有餘復有說者彼不決定謂人天中若處有黑業異熟此處必有白業異熟無處唯有黑業異熟無白業異熟者諸惡趣若處有白業異熟此處必有黑業異熟有處唯有黑業異熟無白業異熟者由惡趣中有決定黑異熟處故偏說集異門論復作是說云何黑黑異熟業謂不善業感那落迦趣諸不善業亦感傍生鬼趣異熟何故唯說感那落迦不說餘耶應說而不說者當知此義有餘復有說者不決定謂傍生鬼趣亦受不善業異亦受善業異熟那落迦趣決定唯受不善業異熟是故偏說復有說者世尊經中以重惡業怖諸有情爲順彼經是故但說感那落迦諸不善業名黑黑異熟業爲顯此義應引彼經有二外道一名布剌拏憍雉迦受持牛戒二名頞制羅拪你迦受持狗戒此二外道於一時閒同集會坐作如是言世閒所有難行禁戒我等二人修學已滿誰能如實記別我等所感異熟聞釋迦種生一太子顏貌端正以三十二大丈夫相八十隨好莊嚴其身觀無厭足身眞金色常光一尋言音淸亮和雅悅意過妙音鳥羯羅頻迦智見無㝵辯才無滯厭捨家法出趣非家勤修苦行復還厭離修處中行證得無上正等菩提具一切智如實證見諸法性相斷一切疑網一切決定究達一切問論原底我等二人今應往問若得記別我等禁戒所感異熟則當依學豈不快哉於是二人來至佛所種種愛語相慰問已退坐一面布剌拏先爲他問而白佛言此拪你迦受持狗戒修學已滿當何所趣當何所生世尊告曰汝布剌拏止不須問勿因此事汝等皆當不忍不信心懷恥恨如是至三彼猶慇懃請問不止佛以慈愍告言諦聽吾當爲汝如實記別受持狗戒若無缺犯當生狗中若有缺犯當墮地獄布剌拏聞佛語已心懷憂怖悲泣哽咽不能自勝世尊告曰吾先豈不數告汝言止不須問勿因此事汝等皆當不忍不信心懷恥恨今果如是布剌拏便自抑止而白佛言不以世尊記拪你迦當生狗趣故我悲泣然我長夜受持牛戒修學已滿恐亦當爾所以憂怖唯願大慈爲我宣說受持牛戒當何所趣當何所生世尊告曰受持牛戒若無缺犯當生牛中若有缺犯當墮地獄如是等事如經廣說云何受持狗戒牛戒名無缺若持狗戒一如狗法名無缺犯持牛戒一如牛法名無缺犯若不爾名有缺犯是故世尊以重惡業諸有情故說能感那落迦趣諸不善爲順彼經故集異門作如是說那落迦諸不善業名黑黑異熟業有說者見道所斷諸不善業名黑黑異熟業自種類中無白雜故如是說一切不善業皆名黑黑異熟業欲界中不善强盛不爲善法之所陵以不善法能伏能斷自地善故業羸劣而爲不善之所陵雜以欲界不能斷不善故云何白白異熟業謂色界繫善業無色界繫善業亦感白異熟何故唯說色界繫善業名白白異熟業不說無色界繫善業耶應說而不說者知此義有餘復有說者若說色界繫善業名白白異熟業當知已說無色界繫善業亦是彼業同是定地修地法若說此當知亦說彼復有說者諸善業能感二種異熟果謂中有生有此善業名白白異熟業無色界業唯感生有不感中有是故不說如中有生有如是起受生受起異熟生異起果生果細果麤果應知亦爾有說者若業能感二種異熟謂色此諸善業名白白異熟業無色界業唯感非色不感於色是故不說有說者若具二業能感異熟謂色此中善業名白白異熟業無色界唯有非色業無有色業是故不說非色如是相應不相應有所依所依有行相無行相有所緣無所緣有作意無作意二種業應知亦爾有說者若具三業能感異熟謂身此淨善業名白白異熟業無色界中唯有意業能感異熟是故不說有說者若具以五薀能感異熟此淨善業名白白異熟業無色界中唯有四薀能感異熟是故不說復有說者若有具足十善業道能感異熟此淨善業名白白異熟業無色界中唯有三善業道能感異熟是故不說復有說者若此界中有二鮮淨有二明白一因二果此界善業名白白異熟業無色界中有一鮮淨明白謂因是故不說由如是等種種因緣唯色界繫善業名白白異熟業非無色界繫善云何黑白黑白異熟業謂欲界繫善業能感人天趣異熟業無有一亦黑亦白何故名黑白黑白異熟業耶爲欲顯示一依止中一相續受二種業所感異熟一黑二白故說名黑白黑白異熟業諸惡趣中亦受黑白二業異熟何故唯說能感人天趣異熟業名黑白黑白異熟不說能感惡趣異熟業耶應說而不說者當知此義有餘復有說者若說能感人天善業名黑白黑白異熟業當知已說能感惡趣善業亦是彼業以雜雜相無差別故若說此當知已說彼復有說者彼不決定是故不說謂在欲界人趣中無有一處而不雜受黑白業異熟者諸惡趣中雖有雜受黑白業異熟處而更有處一向純受黑業異熟謂一分傍生鬼及一切地獄由惡趣中有不決定是故不說復有說者界繫修所斷善不善業名黑白黑白異熟業一種類中二業雜故復有說若善不善業能感欲界人傍生鬼趣異熟名黑白黑白異熟業於一趣中雜受二業異熟故如是說者界一切善業名黑白黑白異熟業彼善業體雖是白而爲不善黑所陵以不善能斷自地善故不善不爾不爲自地善所陵雜自地善不能斷自地不善故由此欲界善業名第三業云何非黑非白無異熟業能盡諸業謂能永斷諸業學思諸無漏業是勝義白何故乃名非黑非白集異門論施設論皆說此業不同不善染污黑及感不可意異熟黑故說非黑又亦不同善有漏白及感可意異熟故說非白復有說者此依果白說非白白有二種一因白二果白有漏業具二白故名白諸無漏業唯有因白而無果白故不名白復有說依異熟白故名非白白有二種自體白二異熟白善有漏業具二白名白無漏業唯有自體白無異熟故不名白復有說者此無漏業能斷世閒所愛異熟非世所愛無有白故不名白以是義故名非黑白無漏業非如前三感異熟果是故說名無異熟業此無漏業令前三業畢滅盡等盡遍盡永斷永害棄捨離欲寂滅是故說名能盡諸業是則說十七學思謂見道中四法智忍相應學思離欲界染八無閒道相應學思此十二思能盡黑黑異熟業離欲界染第九無閒道相應學思盡黑黑異熟業及黑白黑白異熟業離初靜慮染第九無閒道相應學思至離第四靜慮染第九無閒道相應學思能盡白白異熟業如是十七無漏思說名能斷諸業學思復有說者一切無閒道無漏思皆名能斷諸業學思以一切無閒道皆能斷諸業故復有說者一切學思皆名能斷諸業學思以諸學思皆能對治有漏業故如是說者謂初說唯十七無漏思能對治前三業故諸無漏慧相應俱有皆能正斷前三種業何故唯說無漏學思思能發動諸法令斷故偏說復有說者雖皆能斷此中辨故唯說思若爾亦應說隨轉身語業何故唯說思耶由此學思與無漏慧相應而轉同一所緣同一行同一所依相助有力能斷諸業語業得有是事是故不說已說三業四業自性今當顯示雜雜相三業四業爲三攝四四攝三耶三攝四非四攝三不攝者何謂除能斷諸業學思餘無漏業無色界繫善業一切無記業此中除能斷諸業學思餘無漏業者諸說十七無漏思爲第四業者彼說除十七思餘無漏加行無閒解脫勝進道相應思及學隨轉業幷一切無學業是名餘無漏諸說一切無閒道相應學思爲第四業者彼說除一切無閒道餘無漏加行解脫勝進道相應學思及學隨轉業幷一切無學業是名餘無漏業諸說一切學思爲第四業者彼說學隨轉業一切無學業是名餘無漏業如是說者謂初說除無色界繫善業謂無色界繫一切善業除無記業謂三界繫諸無記業由此道理業具攝學無學非學非無學業四業唯攝學非學非無學業三業具攝欲色界無色界繫業四業唯攝欲界繫業三業具攝善不善無記業業唯攝善不善業三業具攝見所斷修所斷無斷業四業唯攝三種一分三業具攝有漏無漏業染污不染污有異熟無異熟業相應不相應業有隨轉無隨轉業無表業四業唯攝諸二業少分如是等門皆應廣說是故說言三攝四非四攝三不攝者謂除能斷諸業學思餘無漏業色界繫善業一切無記業三業謂身意業復有三業謂順現法受業次生受業順後次受業何故作此爲欲分別契經義故如契經說順現法受等三業而不廣辯廣說如復有說者前雖分別身等三業未分別順現法受等三業今欲分別作斯論云何順現法受業謂若業此生造作增長則於此生受異熟果是名順現法受業若業此時造作增長則於此時受異熟果耶不爾所以者何諸善惡業要待相續或度相續方受異熟謂若此業造作增長或則於此一相續中或則於此一時分中或則於此一衆同分中受異熟果如是名爲順現法受業必無有業此剎那造則此及次剎那熟義由異類故親引發故此中所有世所現見順現法受業者曾聞有採樵者入山遇雪迷失途路時會日暮雪深寒凍將死不久卽前入一蒙密林中乃見一羆先在林內形色靑紺眼如雙炬其人惶恐分當失命此實菩薩現受羆身見其憂恐尋慰喩言汝今勿怖父母於子或有異心吾今於汝終無惡意卽前捧取將入窟中溫煖其身令蘇息已取諸根果勸隨所食恐冷不消抱持而臥如是恩養經於六日至第七日天晴路現人有歸心羆旣知已復取甘果飽而餞之送至林外慇懃告別人跪謝曰何以報恩羆言我今不須餘報但如此日我護汝身汝於我命亦願如是其人敬諾擔樵下山逢二獵師問言山中見何虫獸樵人答言我亦不見餘獸唯見一羆獵師求請能相示不樵人答曰若能與我三分之二吾當示汝獵師依許相與俱行竟害羆命分肉爲三樵人兩手欲取羆肉惡業力故雙臂俱落如珠縷斷如截藕根獵師荒忙驚問所以樵人恥愧具述委由是二獵師責樵人曰他旣於汝有此大恩汝今何忍行斯惡逆怪哉汝身何不糜爛於是獵師共持其肉施僧伽藍僧上座得妙願智則時入定觀是何肉則知是與一切衆生作利樂者大菩薩肉尋時出定以此事白衆衆皆驚歎共取香焚燒其肉收其餘骨起窣堵波拜供養如是惡業要待相續或度相方受其果復次昔有屠販牛人驅牛涉路人多糧盡飢渴熱乏息而議曰此等群牛終非己物宜割取舌以濟飢虛則時以鹽塗諸牛口牛貪鹹味出舌舐之則用利刀一時截取以火暗炙而共食之食已相與臨水澡漱俱嚼楊枝揩齒旣了擘以刮舌惡業力故諸人舌根猶如爛果一時俱落如是惡業要待相續或度相續方受其果復次聞昔有暴惡者令母執器自搆搆便過量母止之言餘者可留以乳犢子其人旣聞忽生瞋忿以手掬乳散其母面隨著母身乳滴多少惡業力故則令彼人身上還生爾所白癩如是惡業要待相續或度相續方受其果是爲略引順現法受三種惡業昔憍薩羅國有王名勝軍生其一女具十八醜貧賤者不與富貴者不求有長者子財位喪失王聞遣使召至告言吾有小女少乏容色卿若不恥厚俸珍財其人許之王聞歡喜多賜財寶田宅僕使恣其所欲降嬪以禮密令歸第其人慚恥出則關鑰親知莫見有諸密友責言何故不示我妻長者子言何遽之有衆人怪其推延遂共立約卻後七日各將室家會某園林歡娛宴賞違者當罰金錢五百至第七日皆如所約唯長者子不將婦來自恃財富任罰多少其婦獨在家中自責自恨我宿何罪受此惡身衆人皆樂唯我獨苦不如早死一心念佛便欲自害佛知時至則於此沒踊出其前女見如來深生悲喜發殷淨心觀佛相好善業力故須臾變身猶如天女倍增踊躍佛爲說法遠塵離垢得預流果世尊旣還彼女獨坐端正無比安隱快樂彼朋類旣見其人不將妻室便醉以酒竊其戶鑰共往其家遙見其婦端嚴無比如帝釋妃於是衆人深生讚仰因相謂曰比不示人誠由於此則馳園所共謝其夫幷慶讚之其人慚𧹞謂相譏弄及還見之深生疑怪問言聖女爲是幻術爲鬼魅耶我婦安在其妻具以上事答之於是其夫得未曾有歸依三寶如是善業要待相續或度相續方受其果昔健馱羅國迦膩色迦王有一黃門恒監內事蹔出城外見有群牛數盈五百來入城內問驅牛者此是何牛答言此牛將去其種於是黃門則自思忖我宿惡業受不男身今應以財救此牛難遂償其價悉令得脫善業力故令此黃門則復男身深生慶悅尋還城內佇立宮門附使啓王請入奉覲王令喚入怪問所由於是黃門具奏上事王聞驚喜厚賜珍財轉授高官令知外事如是善業要待相續或度相續方受其果昔怛叉尸羅國有一女人至月光王捨千頭處禮無憂王所起靈廟見有狗糞在佛座前尋作是思此處淸淨如何狗糞穢污其中以手捧除香泥塗飾善業力故令此女人遍體生香如栴檀樹口中常出靑蓮華香如是善業要待相續或度相續方受其果是爲略引順現法受三種善業云何順次生受業謂若業此生造作增長於第二生受異熟果是名順次生受業云何順後次受業謂若業此生造作增長隨第三生或隨第四或復過此受異熟果是名順後次受業諸順現法受業定於現法受耶順後爲問亦爾譬喩者說此不決以一切業皆可轉故乃至無閒業亦可令轉若爾云何說名順現法受業等耶彼作是說諸順現法受業不定於現法中受異熟果若受者定於現法非餘故名順現法受業順生順後所說亦爾彼說一切業皆可轉乃至無閒業亦可轉若無閒業不可轉者應無有能越第一有然有能越第一有者是故無閒業亦應可轉毘達磨諸論師言諸順現法受業決定於現法中受異熟果故名順現法受業順生順後所說亦爾是故若問何故名順現法受業乃至順後次受應以此答復有餘師說四種業謂順現法受業順次生受業順後次受業順不定受業諸順現法受業乃至順後次受業業不可轉諸順不定受業此業可轉唯爲轉此第四業故受持禁戒勤修梵行彼作是思願我由是當轉此業復有餘師說五種業謂順現法受業順次生受業順後次受業各唯一種順不定受業中復有二種一異熟決二異熟不決定諸順現法受業順次生受業順後次受業順不定受業中異熟決定業皆不可轉不定受業中異熟不決定業此業可轉唯爲轉此第五業故受持禁勤修梵行彼作是思願我由是當轉此業復有餘師說八種業謂順現法受業有二種一異熟決定二異熟不決定順次生受業順後次受業順不定受業亦各有二一異熟決定二異熟不決定是謂八業於中諸異熟定皆不可轉諸異熟不定業皆可轉爲轉此故受持禁戒勤修梵行是故此中應作四句謂或有業時分決定異熟不定或有業異熟決定時分不或有業時分決定異熟亦定或有業時分不定異熟亦不定云何業時分決定異熟不定謂順現法受業順次生受業順後次受業中異熟不定業云何業異熟決定時分不定謂順不定受業中異熟定業云何業時分決定異熟亦定謂順現法受業順次生受業順後次受業中異熟之業云何業時分不定異熟亦不定謂順不定受業中異熟不定業如是名爲八業四句頗有一時一剎那頃能起三種業謂順現法受業順次生受業順後次受業謂先遣二使斷生命與取後自行欲邪行以此自所究竟非由他故若有如是種類法生三業同時皆得究竟於中初業於現法中受異熟果第二業於無閒生受異熟第三業於隨第三生以後諸生異熟果其餘業道自作教他差別亦爾此順現法受業等幾能引衆同分幾能滿衆同分果或有說者二能引衆同分果亦能滿衆同分果謂順次生受業順後次受業二能滿衆同分果不能引衆同分果謂順現法受順不定受業復有說者三能引衆同分果亦能滿衆同分果謂除順現法一能滿衆同分果不能引衆同分謂順現法受復有欲令順現法受亦能引衆同分果若作是說此四種業一切皆能引衆同分果及滿衆同分果如是諸業何者最勝或有說者順現法受業最勝所以者何得果故復有說者順後次受業最勝所以者何一切菩薩業最爲勝而皆是順後次受故問順現法受業能近得果於諸業中可說爲勝順後次受業去果懸遠云何最勝耶順現法受業雖近得果而果下劣不名最勝順後次受業雖去果遠而果殊勝難故名最勝如外種子有近得果果下劣有去果遠而果最勝如有秋苗經三半月則便結果此果最近而最下如稻麥等經於六月其果乃熟果次遠而次爲勝如佉梨樹經五六或十二年方結其果此果次勝多羅樹經於百年方結其果此果最如外種子去果最近其果最劣果次遠其果次勝去果最遠其果最種隨其果勝劣差別內業亦爾現法受業去果最近而果最劣順次生受業去果次遠而果次勝順後次受業去果最遠而果最勝業隨其果勝劣差別故順後次受業最勝非餘於何界中能造幾業有說欲界能造四種善不善業無色界能造三種善業除順現法受所以者何於欲界中依佛菩薩聲聞獨覺父母師長諸有德邊發起增上善惡業故此業速疾受異熟果無色界無此勝緣是故於彼不能起此順現法受業若爾品類足說當云何通如彼說言順現法受業順次生受業順後次受一切隨眠之所隨增於彼論中應作是說順現法受業欲界一切隨眠之所隨增順次生受業順後次受業欲界一切隨眠無色界遍行隨及修所斷隨眠之所隨增應作是而不說者有何意趣當知彼文是摠略而說若爾集異門說復云何如彼說言順現法受業順次生受順後次受業欲界一切隨眠色無色界遍行隨眠及修所斷隨眠之所隨增彼文應作是說順現法受業欲界一切隨眠之所隨增順次生受順後次受業欲界一切隨眠色界遍行隨眠及修所斷隨眠之所隨增應作是說而不說者有何意趣當知彼中言勢所引故作是說如是說者無色界亦能引起順現法受前說欲界依佛菩薩等勝緣能起順現法受業上二界無此勝緣何能起彼處但以因力任持亦能引起順現法受業欲界亦有但由因起此業者謂或有人開門大施供養賢聖而不能引順現法受業或復有人以一摶食施一傍生而能引起順現法受業如是等故知不必皆依勝緣而起此業然其要由因力任持方能引起是故往昔阿毘達磨迦濕彌羅諸大論師咸作是說若慇淨心持一把草施他牛食當知能引順現法受業於何趣中能造幾業那落迦中能造四種不善業三種善業除順現法受傍生餓鬼及三洲人欲界天中能造四種善不善業北拘盧洲能造四種善業三種不善業除順次生受無色界天中能造多少如前已說於何生中能造幾業答於四生中皆能造四種善不善業誰於何地能造幾業若諸異生生在欲界未離欲界染能造欲界四種善不善業若已離欲界染未離初靜慮染若退法者彼能造欲界四種能造初靜慮三種業除順現法受有說彼能造初靜慮二種業謂順後次受及不定受若不退法者彼能造欲界三種善業除順次生受能造初靜慮三種業除順現法受若已離初靜慮未離第二靜慮染若退法者彼能造欲界四種業能造初二靜慮三種除順現法受有說彼能造第二靜慮二種業謂順後次受及不定受不退法者彼能造欲界三種善業順次生受能造初靜慮二種業謂順後次受及不定受能造第二靜慮三種業除順現法受廣說乃至若已離無所有處染若退法者彼能造欲界四種業能造四靜慮四無色三種業順現法受有說彼能造非想非非想處二種業謂順後次受及不定受若不退法者彼能造欲界三種善業除順次生受能造四靜慮三無色二種業謂順後次受及不定受能造非想非非想處三種業除順現法受如是已說異生生在欲界若諸異生生初靜慮離初靜慮染彼能造初靜慮四種業若已離初靜慮染未離第二靜慮染彼能造初靜慮三種業除順次生受能造第二靜慮三種業除順現法受廣說乃至若已離無所有處染彼能造初靜慮三種業除順次生受能造三靜慮三無色二種業謂順後次受及不定受能造非想非非想處三種除順現法受如說生初靜慮如是乃至生非想非非想處亦應廣說是已說諸地異生若諸聖者生在欲界未離欲界染彼能造欲界四種善善業已離欲界染未離初靜慮染能造欲界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初靜慮三種業除順現法受已離初靜慮染未離第二靜慮染退法者彼能造欲界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初二靜慮三種除順現法受有說彼能造第二靜慮二種業謂順後次受及不定受不退法者彼能造欲界二種善業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初靜慮一種業謂不定受能造第二靜慮三種除順現法受乃至若已離無所有處染未離非想非非想處染若退法彼能造欲界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四靜慮三種業除現法受能造四無色三種業除順現法此則摠說若別說者四無色中造順次生受業則不造順後次受業若造順後次受業則不造順次生受有說彼能造非想非非想處二種謂順後次受及不定受若不退法彼能造欲界二種善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四靜慮三無色一種業謂不定受能造非想非非想處二種業謂順次生受及不定受若已離非想非非想處染彼能造欲界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四靜慮四無色一種業謂不定受如是已說聖者生在欲界若諸聖者生初靜慮未離初靜慮染彼能造初靜慮三種業除順後次受若已離初靜慮未離第二靜慮染彼能造初靜慮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第二靜慮三種業除順現法受若已離第二靜慮染未離第三靜慮染能造初靜慮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第二靜慮一種業謂不定能造第三靜慮三種業除順現法廣說乃至若已離無所有處染離非想非非想處染彼能造初靜慮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三靜慮三無色一種業謂不定受造非想非非想處二種業謂順次生受及不定受若已離非想非非想處彼能造初靜慮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三靜慮四無色一種業謂不定受如說聖者生初靜慮如是生第二第三第四靜慮廣說亦除未離自地染彼能造自地四種與前差別若諸聖者生空無邊處未離空無邊處染彼能造空無邊處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若已離空無邊處染未離識無邊處染能造空無邊處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識無邊處二種業順次生受及不定受若已離識無邊處染未離無所有處染彼能造空無邊處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識無邊處一種業謂不定受造無所有處二種業謂順次生受及不定受若已離無所有處染未離非非非想處染彼能造空無邊處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識無邊處無所有處一種業謂不定受能造非想非非想處二種業謂順次生受及不定受若已離非想非非想處染彼能造空無邊處二種業謂順現法受及不定受能造三無色一種謂不定受如說聖者生空無邊處如是乃至生非想非非想處廣說亦住欲界中有位能造二十二種業謂中有位異熟定業及不定業如是羯剌藍遏部曇閉尸鍵南鉢羅奢佉初生嬰孩童子少壯衰老位各有異熟定及不定業是名二十二業住羯羅藍位能造二十種業謂除中有業如是乃至住衰老位能造二業則老位定及不定業若中有位所造諸業至本有位受異熟者此業當言是順現法受順次生受耶此是順現法受業非順次生受所以者何中有本有摠衆同分無差別故已說前後三業自性今當顯示雜雜相爲前攝後後攝前耶前攝後非後攝前不攝者何謂不定業無記無漏業此中前三通攝定不定業後三唯攝定業前三通攝善不善無記業後三唯攝善不善業前三通攝有漏無漏業後三唯攝有漏業如是廣說有無量門前後差別今簡略說故言前攝後非後攝前不攝者何不定業無記業無漏業說一切有部發智大毘婆沙論卷第一百一十四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19)본 절(節)은 신업ㆍ어업ㆍ의업의 세 가지 업과 흑흑(黑黑) 등의 네 가지 업의 잡(雜)ㆍ부잡론(不雜論)을 논술함에 앞서서 먼저 흑(黑) 등의 자성(自性)에 관한 해설을 시도한 문단이다.
  2. 120)소의 계[牛戒]라 함은, 외도 가운데 소가 죽어서 천상에 나는 것을 보고, 소의 법[牛法]을 천상에 나는 원인으로 잘못 알고서 소가 하는 대로 머리를 숙이고 풀을 뜯어먹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3. 121)개의 계[狗戒]라 함은, 외도 가운데 개가 죽어서 천상에 나는 것을 보고, 개의 법[狗法]을 천상에 나는 원인으로 잘못 알고서 개가 하는 대로 문 밖에서 눕고 사람 똥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4. 122)처중(處中)의 행(行)이라 함은, 몹시 치우친 고행주의자가 닦는 고행도 아니고, 또 몹시 치우친 쾌락론자가 닦는 행도 아닌 이른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중도(中道)의 수행이다.
  5. 123)색업(色業)이란,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의 두 가지 업을 말하고, 비색업(非色業)이란 의업(意業)을 말한다.
  6. 124)본 절은 『발지론』 송문(頌文) 중 ‘구문업상섭(九門業相攝)’의 하나에 해당한다. 신업ㆍ어업ㆍ의업의 세 가지 업[三業]과 흑흑이숙업(黑黑異熟業)ㆍ흑백흑백이숙업(黑白黑白異熟業)ㆍ비흑비백무이숙업능진제업(非黑非白無異熟業能盡諸業)의 네 가지 업[四業]과의 상섭(相攝) 관계를 밝히는 문단이다.
  7. 125)본 절(節)에서는 다음의 절에서 세 가지 업[三業]과 3시업(時業)의 잡(雜)ㆍ부잡(不雜) 관계를 밝히기에 앞서 먼저 3시업의 자성(自性)과 성질 등을 논구한다.
  8. 126)여기에서는 신업(身業)ㆍ어업(語業)ㆍ의업(意業)의 세 가지 업과 순현법수업(順現法受業)ㆍ순차생수업(順次生受業)ㆍ순후차수업(順後次受業)의 세 가지 업의 잡(雜)ㆍ부잡론(不雜論)을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