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보살은 공덕을 두루 닦는데, 덕에 의거하여 이름을 세우면 자호(自號)가 평등하고, 드러난 것을 따르면 칭호가 같지 않다. 설법에 있어서 질문과 토론은 대부분 자신의 자(字)에 의거하기 때문에 분신왕(奮迅王)이 분신법을 묻자 여래께서 네 가지 종류의 분신을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분신을 갖출 수 있다면 온갖 것에서 분신을 할 수가 있다.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 사바제성(舍波提城) 기타수림(祇陀樹林) 급고독원(給孤獨園)에 2만 명의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한 생만 지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게 되는 보살마하살 만 명과 미륵보살(彌勒菩薩)ㆍ덕대세보살(德大勢菩薩)ㆍ사자의보살(師子意菩薩)ㆍ사자당보살(師子幢菩薩)ㆍ대당보살(大幢菩薩)이 상수가 되었다.
007_1179_b_02L세존께서는 그때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권속에게 에워싸여 그들이 공경스레 바치는 공양을 받으시고는, 대승(大乘)을 실천하는 자가 닦고 행할 법을 말씀하셨다.
007_1179_b_02L爾時,世尊無量百千眷屬圍遶,恭敬供養而爲說法,謂大乘者之所修行。
이때에 분신왕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오른쪽 어깨에 정돈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머리를 발에 대고 예를 올리고 나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여래(如來)ㆍ응(應)ㆍ정변지(正遍知)께 여쭤 볼 것이 좀 있사온데, 세존께서는 부디 저를 위해 해설해 주십시오.”
분신왕보살이 이미 허락을 받고 매우 기뻐하며 부처님께 말하였다. “어떻게 해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대승에 분신(奮迅)1)하옵나이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중생을 위하여 이 대승을 설하여 저 분신으로 모든 마군과 교만한 사람과 다투는 사람과 일체 분별희론을 즐기는 사람을 무찔러, 그들을 대승에 머물게 하고 큰 원을 만족하게 하고 계행이 성취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할 수 있습니까?”
007_1179_c_02L부처님께서 분신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분신왕이여. 훌륭하다, 분신왕이여. 그가 지금 여래께 이와 같은 뜻을 잘 물었으니 잘 기억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대 분신왕아,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기억하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저 보살과 저 대승분신을 분별하여 해설할 것이며, 다시 중생을 위하여 이 대승을 설하여 저 분신으로 모든 마군과 교만한 사람과 일체 분별희론을 즐기는 사람을 무찔러 그들을 대승에 머물게 하고 큰 원을 만족케 하고 계행이 성취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리라.”
즉 이지러지지 않는 계ㆍ구멍나지 않는 계ㆍ잡되지 않는 계ㆍ분별하지 않는 계ㆍ후회하지 않는 계ㆍ훼방하지 않는 계ㆍ뜨겁지 않은 계ㆍ잘 보호하는 계ㆍ지혜로 찬탄하는 계ㆍ도를 따르는 계ㆍ다른 법을 성취하는 계ㆍ일체 법을 보호하는 계ㆍ기뻐하고 사랑하는 계ㆍ모든 유위의 도를 의지하여 생하지 않는 계ㆍ사마타에 안주하는 계ㆍ비바사나에 따르는 계ㆍ깊은 법으로 해탈하는 계ㆍ물러나지 않고 통하는 계ㆍ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의 계ㆍ청정하고 적정한 계ㆍ불법승을 설하는 계ㆍ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 계ㆍ자비로 보호하는 마음의 계ㆍ대비에 근본 하는 계ㆍ믿음이 청정한 계ㆍ몸가짐이나 외모를 분별하지 않는 계ㆍ청정한 행을 닦는 공덕의 계ㆍ복과 덕의 밭이 되는 계ㆍ필경에 깨끗한 계ㆍ여래의 종자를 끊지 않는 계ㆍ법의 종자를 보호하는 계ㆍ성스러운 스님을 보는 계ㆍ보리심에 잘 안주하는 계ㆍ6바라밀에 머무는 계ㆍ염처(念處)ㆍ정근(正勤)ㆍ신족(神足)ㆍ근(根)ㆍ력(力)ㆍ보리(菩提)ㆍ8성도(聖道)를 수행하는 계ㆍ보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법[菩提分法]을 내는 계를 말한다.
007_1180_a_02L분신왕아, 보살이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해 마치고 큰 원을 성취하면 그가 말하는 무슨 원이든 계에 갖추어진다. 겁이 다 탈 때 불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데, 보살이 ‘이 불이 고요히 멸해지리다’고 말하면 불이 곧 고요히 멸한다. 만일 이 삼천대천세계에 물을 가득 차게 하고싶으면 물이 바로 가득 차며, 꽃을 가득 채우고자 한다면 곧 뜻대로 가득 차게 되며, 보배를 가득 채우고자 한다면 즉시 일체 진기한 보배가 그 가운데 가득하게 된다. 또 항하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모든 세계 속에 있는 모든 수미산들을 하나의 산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바로 하나의 산이 된다.
분신왕아, 과거 오랜 옛날 아승기겁, 생각하거나 의논하지 못할 한량없는 큰 겁을 지나 광명무구광왕(光明無垢光王) 여래ㆍ응(應)ㆍ정변지(正遍智)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 세존(佛世尊)이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007_1180_b_02L저 금강제가 이와 같이 관찰하였다. ‘모든 법을 분별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모든 물건을 기뻐하거나 즐기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모든 번뇌를 고요히 멸해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몸과 거울에 나타난 모양이 평등한 줄 알아야만 계라 할 수 있다. 말과 메아리 소리를 평등하게 여겨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마음과 법이 허깨비와 같아 다름이 없는 줄 관찰해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 두 가지를 둘로 여기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다.
깨끗하지 못하다는 관찰로 탐욕을 없애 버려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자비의 관찰로 성내는 마음을 없애 버려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지혜로 어리석음을 없애 버려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분별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분별하는 견해로 일체 법을 분별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다. 나라는 견해ㆍ중생이라는 견해ㆍ일정한 수명을 가진다는 견해ㆍ부가라(富伽羅:보특가라, 업을 짊어지는 주체로서 개개의 중생)라는 견해ㆍ그리고 항상 하다는 견해가 없어야 계라 할 수 있다.
그 어느 법에도 화합하지 않는 행이라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삼계(三界)에 마음이 의지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모든 법이 나지 않음을 믿어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마음으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믿고 이해해야 계라 할 수 있다. 재물과 이익과 공양을 희망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공(空)을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모양 없음을 닦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소망이나 구하는 것을 떠나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많은 계가 있어도 마음에 취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다.
007_1180_c_02L자신이 많은 계를 지녔다 하여 스스로 뽐내며 다른 사람을 능멸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모든 입〔入:근(根)〕에 대해 찬탄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경계를 만나도 행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다. 5음(陰)과 법음(法陰)에 평등해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계속의 법계가 평등해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다투거나 송사하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착한 모든 법을 쉬지 않아야만 계라 할 수 있으며, 필경에 일체 법이 다 적멸한 줄 알며 적멸한 줄 알고 나서 몸소 바른 행을 해야만 계라 할 수 있다.’
분신왕아, 그때 금강제보살이 이와 같은 법으로 계를 성취해 머물고 성인의 법을 수행하며, 정진을 부지런히 행하며, 바른 관찰을 떠나지 않았다.
007_1180_c_06L奮迅王!爾時金剛齊菩薩以如是法住戒成就,修行聖法,勤行精進,不離正觀。
그때 가림[遮見]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군이 있었는데, 저 비구가 이와 같은 법으로 계를 성취해 머물고, 성인의 법을 수행하며, 정진을 부지런히 행하며, 바른 관찰을 떠나지 않으며, 이와 같이 경행하는 것을 보고는 8만 4천 마군의 무리에게 갑옷을 입혀 모두 거느리고 몸을 숨긴 채 비구의 처소에 이르러 틈을 엿보며 천 년 동안이나 비구의 행동을 따랐다. 그 마군이 천 년 동안이나 그렇게 했으나 저 비구의 마음을 한 생각도 어지럽힐 수 없었다. 저 마군이 이렇게 그의 마음이 어지러운지를 엿보다가 만일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게 되면 곧장 장애(障碍)를 주어 두렵게 하고 뇌란 하려 하였다.
007_1181_a_02L저 금강제보살 비구는 마군의 무리가 손에 칼과 창과 갖가지 무기를 잡고 공포스럽게 소리치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맹서하였다. ‘내가 지금 이 법 가운데서 진실로 바르게 관찰하고 계의 무더기를 청정이 수행하려 하오니, 이 일이 진실 되다면 모든 마군 권속이 손에 잡은 칼과 창과 갖가지 무기가 우발라화(優鉢羅華)ㆍ발두마화(鉢頭摩華)ㆍ구물두화(拘物頭華)ㆍ분타리화(分陀利華)ㆍ첨바가화(瞻婆迦華)ㆍ소마나화(穌摩那華)ㆍ바사가화(婆師迦華) 등 갖가지 꽃타래로 변하고, 이 하늘 마군의 몸과 일체 군사 무리는 나의 형색과 똑같이 되어 바른 몸가짐에 안주하게 하옵소서.’
분신왕아, 금강제보살 비구가 이 서원을 마치자 모든 마군이 잡은 칼과 창과 갖가지 무기가 즉시 묘한 색깔과 한량없는 색깔과 뒤섞인 색깔의 꽃타래로 변해서 그것을 보거나 냄새를 맡으면 사랑하고 기뻐할 만큼 훌륭하고 특이하였다. 모든 마군의 외형과 복식도 저 비구와 같았으며, 모두가 다 출가자의 거동과 같이 몸에는 가사를 입고 머리와 수염을 깎았는데, 그것을 자타가 다 볼 수 있었다.
분신왕아, 그때 금강제보살 비구가 가림이라는 마군에게 대답하였다. ‘큰 선인이여, 이런 법은 얻는 것이 있어서 머무는 것이 아니니, 일체 법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큰 선인이여, 몸과 입과 뜻 등 어디든 의지함이 없나니, 의지함 없는 이것이 내가 의지하는 바임을 알아야 한다. 일체 법은 의지하거나 머묾이 없기 때문이다. 큰 선인이여, 이렇게 머무는 자는 모양 있음으로써 머무는 것이 아니며 모양 없음으로써 머무는 것이 아니니, 이런 것을 머문다고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머무는 자는 법이 있는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므로 머묾이 없고, 처소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두고 머문다고 한다.’
007_1181_b_02L금강제보살 비구가 말하였다. ‘큰 선인이여, 그대가 항하(恒河)의 모래같이 많은 겁 동안 내 마음의 움직임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마음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안팎 두 곳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 선인이여, 환술로 지어낸 꼭두각시의 마음이 움직이는 곳을 그대는 찾을 수 있겠는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이런 곳[處]에는 가는 사람도 없고 오는 사람도 없고 갈 사람도 없다. 큰 선인이여, 발심도 없고 행함도 없는 것을 원함 없음[無願]이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큰 선인이여, 그대가 내게 묻기를, ≺부지런히 정진하고 지계에 안주하며 성인의 법을 수행하는데, 무엇을 희구해서 이와 같이 발심하고 수행하느냐?≻고 하였다.
007_1181_c_02L 이 물음에 대해 그대는 이제 듣도록 하라. 내가 여기에서 구하는 것은 색(色)이 나는 데서 구하는 것이 아니며, 색이 없어지는 데서 구하는 것도 아니며, 색처(色處)에서 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나는 데서 구하는 것이 아니며, 식이 멸하는 데서 구하는 것도 아니며, 식처(識處)에서 구하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일체 법이 나는 데서 구하는 것도 아니며, 멸하는 데서 구하는 것도 아니며, 법처(法處)에서 구하는 것도 아니다.
큰 선인이여, 알아야 한다. 바로 저곳은 색(色)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이것이 내가 구하는 곳이다. 내가 구하는 저곳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이 내가 구하는 곳이다. 바로 저곳은 색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 곳이 바로 내가 구하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구하는 그곳을 보지 못한다. 큰 선인이여, 성인이 구하듯 나도 이렇게 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살 비구가 대답하였다. ‘큰 선인이여, 범부의 법이나 부처님의 법이나 이 모든 법은 평등하여 둘이 아니다. 배울 것이 남아 있는 법이나 배울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법이나 부처님 법이나 이 모든 법은 평등하여 둘이 아니다. 과거의 법이나 미래의 법이나 현재의 법이나 모든 법은 평등하여 둘이 아니다. 나지 않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평등하며,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평등하며, 멸하지 않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평등하다. 만일 누군가가 이와 같은 평등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는 평등을 닦는 것이므로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할 수 있다.
큰 선인이여, 이와 같은 바른 곳을 내가 이와 같이 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큰 선인이여, 이와 같이 바른 곳은 욕계(欲界)에 처하지 아니하며, 색계(色界)에 처하지 않으며, 무색계에 처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평등에 안주한 자는 법과 같아서 움직이지 않고, 행함도 행하지 않음도 아니며 남을 시켜 행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007_1182_a_02L큰 선인이여, 이것을 바른 곳이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발심하고 행하는 것은 모든 법에 대해 이와 같이 발심하고 행하는 것이며, 법계와 같이 발심하고 행하는 것은 모든 법에 대해 이와 같이 발심하고 행하는 것이며, 실제(實際)와 같이 발심하고 행하는 것은 모든 법에 대해 이와 같이 발심하고 행하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구한다면 그 사람은 이렇게 행하는 곳을 보지 못하여 기뻐하거나 즐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른 곳이라 한다.’
이때 가림이라는 마군이 금강제보살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바른 수행으로 무엇을 얻습니까?’
007_1182_a_05L爾時,遮魔語金剛齊菩薩比丘作如是言:‘此正修行爲何所得?’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의 바른 수행은 얻어도 얻은 바가 없으며, 얻은 바가 없다는 것도 없어 평등하고 만족하다. 그대는 무슨 법을 얻느냐고 물었는데, 만일 얻을 바가 있다면 바른 수행이 아니다. 교만을 떠났기 때문에 바른 수행이라 이름하는데, 바른 수행을 하는 자는 얻을 법이 없다. 바르게 닦는다는 말이 곧 닦을 바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구가 대답하였다. ‘보리는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몸과 견해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몸과 견을 구하는 것같이 보리도 그렇게 구하니, 나도 이와 같이 구한다.’
007_1182_a_20L比丘答言:‘菩提非起身見、非起如求身見;菩提亦爾,我如是求。’
이때 가림이라는 마군이 금강제보살 비구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이런 말솜씨를 가르쳤는가?’
007_1182_a_22L爾時,遮魔問金剛齊菩薩比丘作如是言:‘汝師是誰?何人教汝如是辯才?’
007_1182_b_02L비구가 대답하였다. ‘큰 선인이여, 성내지 않고 스스로 보리를 얻은 자가 나의 스승이며, 물든 데 머물지 않고 깨끗한 데 머물지도 않은 자가 나의 스승이며, 어떤 사람이든 일정함에 머물지도 않고, 일정함이 없는 데 머물지도 않음을 안다면 그가 나의 스승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그에게 법에도 머물지 말고 법을 분별하지도 말라는 설법을 듣고는 어리석음의 바다를 건넌다면 그가 나의 스승이다.
만일 지혜로 일체 법을 알지만 차례로 아는 것이 아니라면 그가 나의 스승이며, 일체 말을 두루 알지만 차례로 아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지 않는다면 그가 나의 스승이다. 만일 일체 법을 내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으며 성인의 법륜을 굴린다면 그가 나의 스승이며, 저기에 머물지도 않고 여기에 머물지도 않으며 중간에 머물지도 않는다면 그가 나의 스승이며, 일체 법은 불생(不生)이면서 스스로 생하는 것이라고 설한다면 그가 나의 스승이며, 일체 법은 불멸(不滅)이면서 스스로 멸하는 것이라 설한다면 그가 나의 스승이니, 내가 그 스승에게서 이런 말솜씨를 얻었다.’
비구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색(色)의 굴림이 아니며, 색의 진여(眞如)가 아니며, 색의 법이 아니며, 색의 공(空)함이 아니며, 색의 모양 없음[無相]이 아니며, 색의 원 없음[無願]이 아니며, 색의 적정함이 아니다. 이것은 색을 떠나지 않았으며, 색의 나지 않음이 아니며, 색의 본성이 아니며, 색 자체가 아니며, 자체가 구르는 것이 아니며, 구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차례로 수ㆍ상ㆍ행ㆍ식도 구르거나 구르지 않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식(識)의 여여함ㆍ식의 법ㆍ식의 공ㆍ모양 없음ㆍ원 없음ㆍ고요함 없음ㆍ식을 떠남ㆍ나지 않는 본 성품 자체는 구르거나 구르지 않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여래의 법륜도 이와 같이 일체 법륜을 굴리나니 이것을 두고 법륜이 구른다고 한다. 저 법륜이 구르거나 구르지 않거나 한없는 법계의 보(報)를 버리지 않는다. 법륜이 저렇게 구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저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그는 걸림 없는 눈으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시방 부처님의 세계를 한 세계와 같이 보며, 물건이 있는 곳도 마치 허공처럼 보며, 피차의 세계가 다 장애하지 않고 평등하여 저 부처님의 세계에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모든 성문의 무리에게 둘러싸인 것을 하나로 본다. 일체에서 다 일체 부처님을 보며, 한 부처님으로 일체 법계를 믿고 이해하니, 파괴되지 않음을 닦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 부처님을 보면 일체 부처님이 다 청정하며, 일체 부처님을 보면 한 부처님이 청정하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청정함을 보아서 스스로 청정함에 들어가며, 그가 이렇게 스스로 청정함에 들어가면 일체 법이 다 청정하게 보이며, 자신을 청정하게 보고, 법을 청정하게 보지만 상대적인 관념을 갖지 않는다. 만일 저 세존과 성문이 보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청정함을 보고 모든 성문을 보면 보는 것이 다르지 않으니 저 성문을 보는 것이 곧 부처님을 보는 것이며, 저 부처님을 보는 것이 곧 성문을 보는 것이다.
저 한량없고 가없는 세계에 있는 중생과 중생에 포함되는 지옥의 몸ㆍ축생의 몸ㆍ아귀의 몸ㆍ인천의 몸ㆍ아수라ㆍ무색계를 제외한 욕계의 행하는 것들 모두에서 물러나고 태어나며 줄어들고 늘어나는 것을 본다. 이와 같이 중생의 업보를 다 알며, 중생을 알고 보며, 업보를 알지만 그러나 실제로 중생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중생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업보를 알지만 업보라는 생각이 없는 것은 일체 법에 들어가면 업보가 없기 때문이다.
저 사람의 천안은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볼 수 있는가? 지혜의 힘 때문에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보이는 대로 그렇게 보며, 자기 마음을 따르기 때문에 일체를 보지 않으며, 만일 일체 색을 보고자 희망하면 마음을 따라 곧 보이며, 조금의 색도 있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저 사람이 만일 색계천의 미세한 몸ㆍ훌륭하고 묘한 몸ㆍ빛을 내는 몸ㆍ비슷하지 않은 몸을 희망한다면 저 색계천에 나타나 보살의 몸을 나타내어 저 색계천에게 보살의 몸을 볼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저 색계천의 몸을 보며, 만일 그 하늘로 하여금 보살의 몸과 자신들의 몸을 보게 하고자 한다면 보게 한다. 만일 그 하늘로 하여금 자신들의 몸만 보고 보살을 보지 못하게 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몸만 보고 보살은 보지 못한다. 만일 그 하늘로 하여금 보살의 몸만 보고 자신들의 몸은 보지 못하게 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보살만 보고 자신들의 몸은 보지 못한다. 분신왕아, 보살이 이와 같은 천안을 성취하였다.
분신왕아, 어떤 것이 보살의 천이통분신(天耳通奮迅)인가? 저 보살이 천이를 성취하면……(중략)……한량없고 가없는 세계에 있는 하늘 소리ㆍ용의 소리ㆍ야차의 소리ㆍ건달바의 소리ㆍ아수라의 소리ㆍ가루라의 소리ㆍ긴나라의 소리ㆍ마후라가 등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의 소리와 같은 모든 소리를 다 듣는다.
007_1183_c_02L비록 저 소리들을 듣기는 하지만 자기가 듣는다거나 어떤 중생의 소리라거나 그것이 소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소리의 특성을 안다.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듣는 처소에서 앞소리와 뒷소리에 소리라는 실체가 없음을 믿고 이해한다. 이와 같이 통달하는 것이다. 저 소리는 처소가 없으니, 처소 없음을 믿고 이해하면 이근(耳根)과 식계(識界)에 장애가 없고, 저 소리를 듣고 나서는 저 소리의 뜻을 안다.
어떤 것이 소리의 뜻인가? 모든 소리는 분별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 소리의 뜻이다. 즉 적정(寂靜)하다는 뜻이 모든 소리의 뜻이다. 저 보살은 이 뜻을 따라 행하여 어떤 소리를 들어도 그 소리가 어디에 의지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데, 일체 법은 다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하는가? 만일 저 보살이 한 글귀라도 얻는다면 잃음이 있겠지만, 저 보살은 한 글귀도 얻지 않기 때문에 잃는 것도 없다.
007_1183_c_16L云何不忘?若彼菩薩得一句者,可得有忘;以彼菩薩不得一句,是故無忘。
저 보살이 유류법(有漏法)이나 무루법(無漏法)을 듣고, 항상한 법이나 무상한 법을 듣고, 세간법이나 출세간법을 듣고, 선한 법이나 선하지 않은 법을 듣고,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법을 듣고, 성문법ㆍ연각법ㆍ대승법을 들어도 저 모든 법은 한바탕이며 한 맛이다. 이에 따라서 수행한다. 말하자면 법을 듣고 나서 욕심을 떠난 맛을 얻었으므로 어떤 법을 들어도 일체 경계에 대해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또 어떤 법을 들어도 일체 모양에 머물거나 집착하지도 않으며, 일체 법에 따라서 행하며, 법이 아닌 데서는 따라 행하지 않는다.
007_1184_a_02L법이라 이름할 때는 욕심을 떠난 것이며, 법이라 이름할 때는 모양이 없는 것이며, 법이라 이름할 때는 함이 없는 것이며, 법이라 이름할 때는 처소가 없는 것이다. 비유를 들어 설명할 수도 없고, 대상도 없고, 얻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벗어나는 것도 않는 것을 법이라 한다. 반면 이와 같은 법에 대해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마음으로 상상하여 관찰하고, 희론으로 취하고 버린다면 이것을 법 아닌 것이라 한다.
분신왕아, 저 보살은 뜻만 취하고 말은 취하지 않는다. 말을 취하기 위하여 법을 듣지 않으며, 뜻을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법을 듣는다.
007_1184_a_07L奮迅王!彼菩薩唯取於義而不取語,不爲取語聽法、聞法,爲取義故是以聽法。
무엇을 법을 취한다 하는가? 공한 뜻을 보았다면 취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모양 없는 뜻을 보았다면 취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원함이 없는 뜻을 보았다면 취하지도 않고 집착하지 않는데, 이것을 뜻을 취한다고 한다. 그가 뜻을 취하여 법을 들었다면 취한 뜻에 대해서도 분별을 내지 않으며, 분별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분별하지 않는다. 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와 같이 법을 듣는다.
또한 분신왕아, 저 보살은 요의경[了義]의 뜻을 따르고, 불료의경[不了義]의 뜻은 따르지 않는다. 저 요의란 어떤 뜻인가? 저 경의 모든 뜻을 끝까지 다 밝힌 것이다. 그에 따라 설하여 다른 뜻이 없기 때문에 모든 요의경이 되며, 말로는 설할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요의경의 뜻에 그가 따라서 행하는 것이다.
만일 요의경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불료의가 된다. 어떤 인연 때문에 불료의가 되는가?
007_1184_a_20L若於了義修多羅義不隨順者則非了義。以何因緣非了義耶?
경의 뜻을 끝까지 다 밝히지 못했다면 저 요의경의 뜻에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저 요의와 상응하지 못한다. 어떤 인연으로 서로 응하지 못하는가? 따르지 못하므로 저 법행과 괴리되기 때문이다. 따른다 할 때 그 대상은 소리를 따른다는 것이나 이러한 요의경에서는 소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또한 분신왕아, 저 보살은 부처님 세존께 법을 듣고는 지혜만 취하고 식(識)은 취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식은 앎이기 때문이며, 허깨비와 같기 때문이며, 취할 수 없기 때문이며, 자체가 없기 때문이며, 색(色)이 없기 때문이며, 볼 수 없기 때문이며,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안다면 지혜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지혜만 취하고 식을 취하지 않는다. 식은 다른 알음알이가 된다. 이와 같이 식을 알면 식과 지혜 어느 것도 탐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식의 진여[識眞如]로 지혜의 진여[智眞如]를 설하게 된다.
또한 분신왕아, 저 보살은 개개 중생[富伽羅]의 언어에 맞추어 법을 설하되 법만 취하고 사람은 취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분신왕아, 만일 실제로 사람이 있다면 중생이 결코 부처님 법 속에서 청정해질 수 없으며, 해탈할 수도 없다. 분신왕아, 그렇다면 일체 법 가운데 결국 사람이란 것이 존립할 수 없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의지하기 때문에 사람을 설하신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법에 사람이란 전혀 없다. 이와 같이 보살은 법만 취하고 사람은 취하지 않는다.
007_1184_c_02L분신왕아, 법을 법계(法界)라 이름한다. 이 법계를 나지 않는 계(界)라 이름한다. 분신왕아, 나지 않는 계를 벗어나지 않는 계(界)라 이름한다.
007_1184_b_25L奮迅王!法名法界,此法界者名不生界。奮迅王!不生界者名不出界。
분신왕아, 위에서 말한 이름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이름이라 한다. 어째서 그런가? 저런저런 이름을 의지해서 저런저런 법(法)을 안다. 그런데 저런저런 법들에서는 이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기는 해도 상식을 따라 억지로 언어를 말한다. 언어라는 것이 모두 세간 상식을 따라 말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저 부처님 말씀을 할 줄 안다고 하거나, 의식적으로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 부처님 말씀에는 의식이 없다. 의식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이 되는 것이다.
007_1184_c_08L若我知語,彼是佛語;若起意相,非是佛語。佛語無意,以無語故,名爲佛語。
만일 부처님 말씀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말 아닌 데 들어가는 것이며, 말 아닌 데 들어간다면 그것은 부처님 말씀에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말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부처님 말씀에 들어가야 한다.부처님 말씀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사람의 말을 취해서 말하고 법의 말을 취해서 말하여 이와 같이 취한다면 부처님 말씀에도 들어가지 않을 터이니, 어느 곳인들 둘 아닌 것이 되지 않겠으며, 또한 둘 아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 말씀이다. 어느 곳인들 소리가 있지 않겠으며, 어느 곳인들 소리가 없지 않겠는가? 저것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 설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설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면 그것이 부처님 말씀이다.
또한 분신왕아, 보살은 다른 이의 마음을 통달해 아는 지혜를 얻는다. 다른 중생과 다른 부가라(富伽羅)의 마음을 알고 생각을 알아 이런 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한다. 처음에는 이와 같이 대중의 마음을 관찰한다. 즉 어떤 것이 중생이며, 어떤 깊은 마음을 갖고 있으며, 수행하는 바가 무엇이며, 원인이 무엇이며, 모양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관찰하고 나서는 그에 맞게 법을 설한다. 자기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일체 대중의 깨끗한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007_1185_a_02L분신왕아, 비유를 들자면, 거울이 청정하기 때문에 파란색, 노란색 등의 색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형체대로 모양대로 더하거나 덜함 없이 저것과 같게 보이는 것은 거울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거울은 분별 없이 모든 형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저 대중 가운데 어떤 사람이 욕심을 가지면 저 사람의 마음을 알며, 욕심 여의는 것도 안다. 왜냐 하면 마음의 본 성품은 욕심에 물드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저 대중 가운데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의 마음을 알며, 어리석은 마음 여의는 것도 안다. 왜냐 하면 마음의 본성은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성문승을 믿으면 저 사람의 마음 상태를 보살이 알며, 법계가 내려가지 않음을 안다. 어떤 사람이 연각승을 믿으면 저 사람의 마음 상태를 보살이 알며, 법계가 줄어들지 않음을 안다. 저 대중 가운데 마음으로 대승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의 마음 상태를 보살이 알며, 법계가 늘어나지 않음을 안다.
보살은 저 중생들의 마음이 행하는 세계를 알아서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되 분별하지 않는다. 마음의 본성대로 그에 맞게 법을 설하여 모든 승(乘)에 안주하게 하며, 모든 계(界)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중생의 이런저런 마음 상태를 빠짐없이 안다. 저 보살이 자기 마음으로 관찰할 때, 마음이 끊임없이 연속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끊어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저 보살은 끊임없이 연속되는 마음으로 일체 중생의 마음도 이와 같은 줄 안다. 마음의 계(界)와 진여의 계를 안다면 법계도 그러하여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을 안다.
이와 같이 분신왕아, 보살은 다른 이의 마음을 통달해 아는 지혜를 얻는다. 통달해 알았기 때문에 그를 통한 사람[通人]이라 하며 모든 천상과 인간이 그를 안다.
007_1185_a_24L如是,奮迅王!菩薩得是他心通智,以得通故則名通人,一切天人之所識知。
007_1185_b_02L또한 분신왕아, 보살은 지난 업[宿命]을 통달해 아는 지혜를 얻어 삼매의 뿌리로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겁에 일어났던 자기와 남의 숙명을 알고 기억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안 뒤에 법을 설한다. 즉 자신이 어느 처소에서는 어떤 이름을 가졌었는지ㆍ어떻게 태어났는지ㆍ얼만큼의 수명을 누렸는지ㆍ어떤 즐거움을 누렸는지ㆍ어떤 괴로움을 받았는지를 이와 같이 기억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의 마음을 안다. 이 중생이 전에 어떤 선근을 심었는지 알며, 이 중생이 심은 선근이 어떤 원인으로 작용하는지를 알며, 이 중생이 심은 선근이 어떤 조건으로 작용하는지를 알며, 이 중생이 성문승을 닦은 원인을 알며, 이 중생이 연각승을 닦은 원인을 알며, 이 중생이 대승을 닦은 원인을 안다. 저 중생이 전에 지은 인연을 안 뒤에야 이런 중생에게 적합하게 법을 설한다.
저 보살이 스스로 숙명을 알고 숙명을 안 뒤에 다시 본래 닦았던 수행이 구족했음을 안다. 과거에 몇 부처님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었는지 알며, 저 선근으로 전에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원하여 성취한 줄 안다. 이와 같이 모든 선근을 기억해 생각하고 나서는 다시 원을 발한다.
저 보살은 본래의 숙명을 생각하지만 과거 일체 모든 법에 대해 마음으로 분별하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으며, 취하지 않는다. 앞과 뒤의 행에 대해서도 마음으로 분별하지 않으며, 앞과 뒤의 행에 대해 마음으로 분별하지 않은 뒤에는 과거와 미래 등의 모든 법에 있어서 그 처소를 분별하지 않는다.
보살은 저런 앎을 이렇게 성취하여 모든 행을 마치 꿈처럼 믿고 이해한다. 비유하면 꿈속에서 태어남을 보고ㆍ죽음을 보고ㆍ괴로움을 보고ㆍ즐거움을 보는 것과 같이, 보살이 모든 행을 믿고 이해하는 것도 그러하다. 믿고 이해하고 나서는 저 태어나고 죽는 일에서 고뇌를 받지 않으며, 중생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며, 일체 법을 알아서 생겨난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저 보살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다. 즉 자신이 과거 많은 천 겁의 세간에 태어나고 죽음을 행하였지만 다 실재하지 않음을 알아서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모든 중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세간에 태어나고 죽는 일이 허망하여 실재하지 않은 줄 알고 탐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실재하지 않는 그곳은 생겨나는 일이 전혀 없고 실재하는 것이 전혀 없다.
분신왕아, 저 보살이 숙명을 기억하고 나서는 모든 행이 다 무상함을 실제로 본다. 왜냐 하면 저 보살이 과거 전륜왕으로 있을 때의 즐거움을 기억해 보아도 그것은 항상하지 않는 파괴되는 법이며, 과거 제석왕으로 있을 때의 즐거움을 기억해 보아도 그것은 항상하지 않는 파괴하는 법이며, 과거 범천왕으로 있을 때의 즐거움을 기억해 보아도 그것은 항상하지 않는 파괴되는 법임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007_1186_a_02L보살은 모든 부처님 세존의 세계 장엄과 성문을 닦는 사람의 공덕 장엄과 보살을 닦는 사람의 공덕 장엄을 사유하고 기억해 생각하며, 저 부처님 세존의 구족한 색신과 여래께서 구족하게 법의 바퀴를 굴리신 일을 기억하고 생각한다. 기억해 생각하고 나서는 탐내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조작이 있는 모든 것과 어디에든 포섭되는 모든 것은 다 놓아 버린다.
왜냐 하면 저 보살은 이와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그와 같은 저 부처님 세계의 수승함, 부처님 색신의 수승함도 무상하기는 마찬가지라서 다 멸하는 법이며, 자신이 거두어들인 것도 마찬가지로 다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이와 같이 생각한다. ‘모든 행이 이와 같아서 다 무상한데도 중생들은 항상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저 보살이 이 지혜를 성취하면 일체 모든 법이 무상함을 알고 마음으로 올바르게 생각하여 생함이 있는 것들을 거두어들이고 중생을 성취시킨다. 비록 생함이 있는 것들을 거두어들인다고는 하나 탐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보살은 있음을 여의었으나 모든 있는 것들을 거두어들이고 중생을 성취시킨다.
저 보살이 현재 신통을 얻은 것은 하고자 함이 있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희망한다면 한 생각 사이에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부처님세계에 다 이를 수 있다. 저곳에 이르고 나서는 저곳 중생들이 보살의 몸을 보지만 보살의 몸은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저곳 중생들이 법 설하는 것을 보고 듣지만 이곳에서 법을 설하는 것을 그치지도 않는다. 분신왕아, 이것이 보살의 신통분신이다. 이 신통으로 중생을 길들인다.
전륜왕을 믿는 중생이 있으면 그를 위해 전륜왕의 형색과 복장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 제석왕을 믿는 중생이 있으면 그를 위해 제석왕의 형색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며, 범왕을 믿는 중생이 있으면 그를 위해 범왕의 형색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며, 마왕을 믿는 중생이 있으면 그를 위해 마왕의 형색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며, 여래를 믿는 중생이 있으면 그를 위해 여래의 형색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 보살이 허공 가운데 머물러 가부좌를 하고 몸에서 광명을 내는 것을 봐야 할 중생이 있으면 바로 허공에 머물러 몸에서 광명을 놓으면서 법을 설한다.
매우 수승한 일에 대해 믿음과 이해를 내는 중생이 있으면, 깃발과 일산으로 장엄한 삼천대천세계ㆍ깃발과 꽃타래로 장엄한 삼천대천세계ㆍ휘장과 깃발로 장엄한 삼천대천세계ㆍ방울과 꽃타래가 가득한 삼천대천세계와 향과 쪼여서 만든 향 등의 쾌락과 백천 종류의 음악을 보여 주고 난 후에 법을 설한다.
주리고 목마르고 피로하고 지친 중생이 있으면 하늘 음식을 충분히 그에게 주어서 몸이 포만하여 모든 즐거움을 만족시키고는 곧 법을 설한다. 지옥 가운데서 하나하나의 중생들이 항상 큰 괴로움을 받는다면 신통력으로 지옥의 불을 꺼 버리고 힘을 주어 모든 모근(毛根)에 그 힘이 들어가게 하여 저들이 즐거움을 얻으면 곧 법을 설한다.
눈이 어두운 중생이나 눈을 잃은 중생에게는 신통력으로 그에게 천안을 주어 안근(眼根)을 얻게 하고 나서 법을 설한다. 귀가 어둡거나 이근(耳根)을 잃은 중생이 있으면 신통력으로 이근을 얻게 하고 나서 법을 설한다. 갖가지 병환이 있는 중생에게는 신통력으로 많은 병을 제거하고 그가 병을 여의게 하고 나서 법을 설한다.
007_1187_a_02L뱃속에서 귀먹고 벙어리가 되었거나 태어나서도 완악하고 둔하여 누워서 똥오줌을 싸는 중생이 있으면 먼저 치료하는 신통력으로 보배로 장엄한 궁전을 보여 거기에 앉히고 법을 설하는데, 그에게서 마음ㆍ뜻ㆍ지혜가 나게 하고는 법을 설하는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이미 태어난 중생 중에 6근이 아직 완숙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신통력으로 6근을 완전하게 하고 나서 법을 설한다.
분신왕아, 저 때 보살이 이와 같은 신통력을 성취하고 나서는 다시 불가사의한 신통력으로 법을 설한다. 해와 달을 믿고 이해하여 법률을 이해하는 중생이 있으면 신통력으로 삼천대천의 모든 세계에 있는 해와 달을 손바닥 안에 두고, 한량없고 가없는 세계까지 던지면 이에 제도될 만한 모든 중생들이 해와 달이 허공에서 가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 해와 달은 본래 있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또 저 보살은 한번의 입김으로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 세계에 일어나는 겁화(劫火)를 꺼 버릴 수 있다. 또 저 보살이 한번 가부좌하면 즉시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 세계에 이를 수 있다. 또 저 보살은 두 손으로 해를 덮고 달을 덮어 자신의 광명으로 세계를 두루 비추며 법을 설한다.
007_1187_b_02L분신왕아, 저 보살이 여래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가 여래께 공양하겠다는 희망을 일으키면 즉시 수미산 등 갖가지 묘한 꽃을 여래의 몸에 뿌려 모든 꽃이 영롱하게 여래를 덮게 하여 오직 몸의 반만 보이게 한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수풀을 등불로 변화시켜 앞에서와 같이 공양할 마음을 일으키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비가 내릴 때 불을 나타내 보일 수 있고, 자기의 몸을 나타내 보여 일체 중생이 두루 다 보게 한다. 저 중생들의 믿고 이해하는 수준을 따라 어떤 형색이라도 보인다. 즉 자기 몸으로 제석의 몸을 보이며ㆍ혹은 범(梵)의 몸을 보이며ㆍ혹은 성문의 몸을 보이며ㆍ혹은 연각의 몸을 보인다.
분신왕아, 이것이 보살의 신통분신이다. 즉 천안(天眼)은 보는 데 장애가 없는 것이며ㆍ청정한 천이(天耳)는 듣는 데 장애가 없는 것이며ㆍ일체 중생의 마음 상태를 아는 지혜로 아승기겁의 일을 기억하고 생각하여 모든 신통으로 다 나타내 보이는 것을 통분신(通奮迅)이라 한다.
분신왕아, 위에서 통(通)이라 했는데, 무엇을 통한다는 말인가? 일체 부처님의 법을 빠짐없이 보는 통함ㆍ다른 일체 중생의 근기를 아는 통함ㆍ성문승의 법률을 능가하는 통함ㆍ연각승의 비니(毘尼)를 능가하는 통함ㆍ대승의 율을 통함ㆍ앉은자리에서 사라지고 나오는 통함ㆍ모든 중생의 순숙한 지혜로 통함ㆍ바른 지혜로 나아가 행하는 통함ㆍ훌륭한 방편에 통함ㆍ보시의 원을 통함ㆍ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의 원을 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군을 파괴하고 마군을 포섭하여 선근을 성취하므로 통함이라 한다.
분신왕아, 이것이 보살의 통함이다. 보살은 통함으로써 본래 세웠던 원에서 물러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일체 법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007_1187_b_24L奮迅王!此菩薩通,菩薩以通不退本願,能示他人一切諸法。
분신왕아, 어떤 것이 지혜 분신[智奮迅]인가?
007_1187_b_25L奮迅王!何者智奮迅?
007_1187_c_02L분신왕아, 지혜의 분신이라는 것은, 즉 음지(陰智)ㆍ계지(界智)ㆍ입지(入智)ㆍ인연지(因緣智)ㆍ실제지(實諦智)를 말한다.
007_1187_c_02L奮迅王!智奮迅者,所謂陰智、界智、入智、因緣智、實諦智。
분신왕아, 어떤 것이 음지인가? 색(色)이 빈 것임을 아는 것이다. 전찰나의 색ㆍ후찰나의 색ㆍ중간의 색은 다 공한 것이다. 수ㆍ상ㆍ행ㆍ식도 다 이와 같아서 전찰나의 식ㆍ후찰나의 식ㆍ중간의 식은 다 공한 것이다. 이는 5음(陰)이 공하다는 뜻으로서 필경에 공하다는 말이다. 음이 공하다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음지(陰智)라 한다.
분신왕아, 어떤 것이 계지(界智)인가? 지계법계(地界法界)ㆍ수계법계(水界法界)ㆍ화계법계(火界法界)ㆍ풍계법계(風界法界)를 아는 것을 말한다. 무슨 말인가? 이 네 가지 계는 하나의 계이니, 즉 공계(空界) 또는 법계(法界)의 계이다. 이것은 지계(地界)도 아니며, 수계(水界)도 아니며, 화계(火界)도 아니며, 풍계(風界)도 아니다.
어째서 그런가? 계가 다르지 않은 법계이며, 계가 둘이 아닌 법계이며, 계가 나지 않는 법계이며, 계가 물들지 않는 법계이기 때문이다. 착하고 깨끗한 계의 법계이며, 법다운 계이며, 나와 같은 계이며, 중생과 같은 계이며, 명(命)과 같은 계이며, 부가라나(富伽羅那)와 같은 계이며, 나고 죽음과 같은 계이며, 열반과 같은 계이기 때문이다. 저 계는 욕계(欲界)이며, 저 계는 색계(色界)이며, 저 계는 무색계(無色界)이며, 저 계는 작위가 있는 계이며, 저 계는 작위가 없는 계이다. 그러므로 열반계라 한다.
법계를 아는 지혜라면, 이와 같은 색계의 지혜가 인연을 아는 지혜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계지(界智)라 한다.
007_1187_c_19L如若法界智,如是,色界智不異因緣智,故名界智。
분신왕아, 어떤 것이 입지(入智)인가?
007_1187_c_21L奮迅王!何者入智?
분신왕아, 눈의 본래 성품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벗어나는 것도 아닌, 조작이 없는 것이다.
007_1187_c_22L奮迅王!眼之本性不生、不出、無造作者。
분신왕아,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성품도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벗어나는 것도 아닌, 조작이 없는 것이다.
007_1187_c_23L奮迅王!如是,耳、鼻、舌、身、意性不生、不出、無造作者。
007_1188_a_02L분신왕아, 저 눈에는 주재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보는 것이 없으며, 저 귀에는 주재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듣는 것이 없으며, 저 코에는 주재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냄새 맡는 것이 없으며, 저 혀에는 주재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맛보는 것이 없으며, 저 몸에는 주재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감촉 하는 것이 없으며, 저 뜻에는 주재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다.
분신왕아, 눈은 빛깔을 보지 않으며, 귀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 코는 냄새를 맡지 않으며, 혀는 맛을 보지 않으며, 몸은 감촉을 느끼지 않으며, 뜻은 법을 알지 못한다. 왜냐 하면 눈은 알아차리는 기능이 없어서 풀 같고, 벽 같고, 흙덩이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 등 일체가 알아차리는 기능이 없이 풀 같고, 나무 같고, 벽 같고, 흙덩이 같다.
분신왕아, 눈은 물듦이 없고, 또한 물들지 않음이 없다. 이와 같이 귀ㆍ코 ㆍ혀ㆍ몸ㆍ뜻 등 일체도 물듦이 없고, 또한 물들지 않음이 없다. 왜냐 하면 눈의 성품은 본래 물듦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 등도 본성이 이와 같아 물듦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분신왕아, 모든 입(入)에 대해서 이와 같이 알고 나면 마음에 욕심을 여의기 때문에 입지(入智)라고 한다.
007_1188_a_13L奮迅王!若一切入如是知已,心得離欲,故名入智。
이와 같이 음(陰)ㆍ계(界)ㆍ입(入) 등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벗어나는 것도 아님을 알면, 이와 같이 필경에 열반에 들어간다. 그리고 나서는 음ㆍ계ㆍ입에서 생겨나고 물러나는 것들을 거두어들여 그들과 똑같은 음ㆍ계ㆍ입을 갖되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 사자가 몸을 뒤채듯[奮迅] 하는 이러한 지혜로 음ㆍ계ㆍ입의 본성과 양상을 알고 저 모두를 버린다. 그러면서도 삼계에 행하되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나고 죽는 모습을 나타내지만 나고 죽는 일이 없다. 이것이 바로 지혜 분신이다.
007_1188_b_02L무명(無明)은 행(行)을 반연하지만 자신이 행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행은 식(識)을 반연하지만 자신이 식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지만 자신이 명색을 낸다 생각하지 않으며, 명색은 6입(入)을 반연하지만 자신이 6입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6입은 촉(觸)을 반연하지만 자신이 촉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촉은 수(受)를 반연하지만 자신이 수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수는 애(愛)를 반연하지만 자신이 애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애는 취(取)를 반연하지만 자신이 취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취는 유(有)를 반연하지만 자신이 유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유는 생(生)을 반연하지만 자신이 생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생은 노사(老死)를 반연하지만 자신이 노사를 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신왕아, 보살이 이와 같이 인연을 관찰한다면 단견(斷見)이나 상견(常見) 등 모든 견해가 없다.
007_1188_b_08L奮迅王!菩薩如是觀察因緣,則無諸見,無有斷見、無有常見。
그는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인연에서 생겨나는 줄 알고, 이와 같이 인연을 따져 들어가 찾으려 하나 얻을 수 없을 때, 그가 인연에서 인연의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007_1188_b_09L彼如是知一切諸法皆因緣生,彼人如是推求因緣亦不可得,彼於因緣得因緣智。
무엇을 두고 지혜를 얻었다고 하는가?
007_1188_b_11L云何得智?
인연과 나지 않음, 이 두 가지가 평등한 줄을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평등은 공(空)하고, 상이 없고[無相], 원이 없다[無願]. 12인연(因緣)이 다 평등하니, 평등으로 이와 같이 깨달은 모든 법의 인연이 평등하다면 이와 같은 인연은 곧 인연이 아니다. 저 인연 가운데는 조그마한 법도 생겨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인연이라 이름한다. 생겨나지 않는 그것도 인연임을 알면 그것을 인연지(因緣智)라 한다.
007_1188_c_02L명(明)과 무명, 이 법은 둘이 아니니 이것을 알면 인연지라 한다. 행(行)과 행 아닌 것, 이 법은 둘이 아니니 이것을 알면 인연지라 한다. 식(識)과 식 아닌 것, 이 법은 둘이 아니니 이것을 알면 인연지라 한다. 명색(名色)과 명색 아닌 것, 이 법은 둘이 아니니 이것을 알면 인연지라 한다. 6입(入)과 6입 아닌 것, 이 법은 둘이 아니니 이것을 알면 인연지라 한다. 6입과 6입 아닌 것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촉(觸)과 촉 아닌 것도 둘이 아니며, 수(受)와 수 아닌 것도 둘이 아니며, 애(愛)와 애 아닌 것도 둘이 아니며, 취(取)와 취 아닌 것도 둘이 아니며, 유(有)와 유 아닌 것도 둘이 아니며, 생(生)과 생 아닌 것도 둘이 아니며, 노사(老死)와 노사 아닌 것도 둘이 아니다. 이것을 안다면 인연지라 한다.
만일 인연의 처소를 관찰해 보면 저러한 인연들은 다 공하여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저런 인연들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저런 인연들은 허망하여 실재하지 않으며, 저런 인연들은 잡을 수도 없고 잡힐 수도 없다. 이와 같이 인연은 행(行)도 없고 모양도 없으니, 이와 같이 안다면 그것을 인연지라 한다.
만일 인연을 보더라도 무명을 보지 않으며, 행을 보지 않으며, 식을 보지 않으며, 명색을 보지 않으며, 6입을 보지 않으며, 촉을 보지 않으며, 수를 보지 않으며, 애를 보지 않으며, 취를 보지 않으며, 유를 보지 않으며, 생을 보지 않으며, 노사를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본다면 그는 인연을 보는 것이며, 인연을 본다면 그는 법을 보는 것이다.
어떤 법을 보는가? 하고자 함[欲]을 떠나는 법을 본다. 어떤 등의 하고자 함을 떠난다는 말인가? 일체 법 가운데 갖가지 보는 욕[見欲]이니, 이와 같은 욕을 떠났다는 뜻에서 욕을 떠났다고 한다.
007_1188_c_12L見何者法?見離欲法。離何等欲?一切法中種種見欲,離如是欲故名離欲。
그가 보는 법이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그것은 진여(眞如)로서 얻을 수도 없고 물들일 수도 없다. 이렇게 본다면 그것은 법계(法界)로서 파괴할 수도 없고 만들 수도 없다. 이렇게 본다면 그것은 실제(實際)로서 천착하지 못한다. 이렇게 본다면 봐도 보는 것이 아니며, 이렇게 본다면 육안(肉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천안(天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혜안(慧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007_1189_a_02L분신왕아, 보살이 일체 법을 이렇게 본다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색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모양 등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법계로 보는 것도 아니다. 계(戒) ㆍ정(定)ㆍ혜(慧)ㆍ해탈견(解脫見)ㆍ해탈지견(解脫知見)ㆍ법(法)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과거ㆍ미래ㆍ현재로 보는 것도 아니다. 만일 이와 같이 본다면 여래를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