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09_1423_a_01L
불설돈진다라소문여래삼매경(佛說伅眞陀羅所問如來三昧經) 상권
009_1423_a_01L佛說伅眞陁羅所問如來三昧經卷上


후한(後漢) 월지(月氏) 삼장(三藏) 지루가참(支婁迦讖) 한역
현성주 번역
009_1423_a_02L後漢月氏三藏支婁迦讖譯


이와 같이 들었다.
009_1423_a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6만 비구와 함께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에 계셨다.
009_1423_a_04L一時佛在羅閱祇耆闍崛山與六萬比丘俱
또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시방세계[十方佛刹]의 7만 3천 보살은 각 보살마다 대중에게 존경을 받는 분들이다. 이 보살들은 다 다라니법(陀羅尼法)을 얻어서 걸림이 없는 변재(辯才)를 갖췄으나, 마음으로는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더욱 더 인욕(忍辱)을 닦았다. 이 인욕을 성취한 마음이 금강(金剛)처럼 견고하였으므로, 어느 누구도 그 마음을 단절(斷截)시킬 수가 없었다. 모든 불법(佛法)을 다 닦아서 남김없이 성취하려는 원력(願力)을 원만하게 갖췄으므로, 그 의지도 대단히 훌륭한 경지로 향하였다.
그들의 의지가 조금도 보살의 마음[菩薩心]을 떠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도 보살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도와 주었다.
009_1423_a_05L菩薩七萬三千人一尊復各從十方佛剎來到是閒——悉得陁鄰尼法其欲無所罣礙其心所念羞慚多所忍而行從是而得成心如金剛無能斷截者諸佛法一切諸佛法欲具足其意所作而欲甚其意不離菩薩心令他人亦爾
009_1423_b_02L또 보시로 조화롭게 마음을 굴복시켜 어지럽지 않게 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도 아낌없이 베풀면서 청정한 계율로 몸과 입과 뜻을 장엄하였다. 여기에 그 인욕(忍辱)은 저절로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어 닦아나가는 힘이 되었다.
이것은 큰 서원을 세워 헤아릴 수 없는 겁[阿僧祗劫] 동안 백천억의 공덕을 닦고 게으름 없이 정진하여 선정해탈삼매[禪惟務三昧三摩越]를 얻어서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뜻을 알고 스스로 기뻐해 왔기 때문이다.
그 지혜의 공덕으로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그 마음은 수미산(須彌山)처럼 장중하여 비유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 마음은 흙, 물, 불, 바람처럼 평등하여 애착하거나 미워하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慈]을 지녔으므로 그 몸의 광명은 걸림이 없었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哀:悲]으로 모든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하였으며, 법의 평등한 마음[等:捨]으로 상대를 따라 기뻐하였다[樂:喜].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여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았으니, 이로운 일ㆍ이롭지 못한 일ㆍ칭찬하는 일ㆍ비방하는 일ㆍ명예로운 일ㆍ명예롭지 못한 일ㆍ괴로운 일ㆍ즐거운 일의 온갖 세상 법을 뛰어넘었다.일체의 온갖 모임에 차별을 두지 않으면서 모든 외도(外道)를 물리치고,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켰다.
009_1423_a_11L與伏意而不亂所愛而無所惜其淨戒莊嚴飾身其忍辱柔軟是則爲力是則僧那阿僧祇劫憶那術百千所作精進而不懈怠禪惟務三昧三摩越其心知他人意以是自娛樂其慧功德無所不解其心譬若須彌無能譬者其心如地亦無所亦無所憎常有慈心其身光明無所罣㝵其哀是行爲一切人而作傷已法等心已是爲樂其護者不墮一道有利無利若譽若謗若有名若苦若樂過世間之所有法一切諸會不已爲會卻諸外道降伏衆魔
그들은 만나기 어려운 우담발라(優曇跋羅)꽃처럼 귀하였으나, 모든 사람은 어느 때이고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초청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일부러 찾아가서 교화하였기 때문에, 후덕(厚德)한 벗으로 알려졌다. 이 후덕한 벗들은 이미 열반에 이르러서, 더없이 큰 서원(誓願)으로 심오한 법에 들었으므로 사자처럼 용맹하였다.
여래의 법인(法印)으로 인가(印可)를 얻고 아무런 장애 없이 수기를 받아서, 진실한 법을 환하게 알고 말대로 실천하였기 때문에, 그 광명은 해와 달보다 더 밝게 빛나서 시방 어디에서도 그 이름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여기에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서 불법(佛法)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보호하시니, 그들은 모두 그 심오한 법장(法藏)을 지키면서 삼보(三寶)를 끊지 않았다.
009_1423_b_03L是者難値若優曇鉢花時時可得切人而無倩者而爲作倩故名曰厚其厚者乃致至泥洹已無極上僧那僧涅已深法猛若如師子已怛薩阿竭印而印之所受決而無所㝵其作如所言已諦法而審其光明照於日十方莫不聞名者一切諸佛無不救不令離法悉皆守名深法滅不斷三寶
그 마음의 공덕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를 두루 다녔으나 그 마음은 맑고 깨끗하여 부처님이 계신 자리[其處]를 익숙하게 알았으므로, 모든 부처님의 처소를 잊지 않고 왕래하였다.
항상 모든 사람을 교화하고 인도하면서 이미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교묘하고 훌륭한 방편[善巧方便:漚★拘舍羅]에 들어갔다. 이에 수행자[頭隨人:頭陀行者]의 마음에 좋아하는 일을 알고 그에 알맞은 법으로 가르쳐서 각기 알맞은 자리를 찾도록 하였고, 모든 사람의 모양과 소행을 알고 그들이 좋아하는 일에 따라 그 뜻을 잃지 않으면서, 의왕(醫王)의 덕을 일으켜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치료하였다.
009_1423_b_12L其心功德通無央數剎土其心淨潔習其處而往還到佛所無所失常教道一切人已入般若波羅蜜漚和拘舍羅則是頭隨人心所喜以法教照各令得所索知諸人相所行隨所樂喜不失其意而作醫王之德於老
이미 과거에 한량없는 부처님을 공양(供養)한 공덕이 몸의 모양[相]에 나타나서 모든 종류의 상호(相好)를 갖추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법을 뛰어넘었다. 온갖 법이 존재하지 않음이 환술(幻術)과 같고, 아지랑이[野馬]와 같고, 꿈과 같고, 물 속의 그림자와 같고, 산 속의 메아리와 같음을 깨달았으며, 일체의 음성을 다 알고 온갖 법에 두루 들어가서 묻는 일마다 모두 답할 수 있었다.
또 이미 바라는 일을 성취하여 지니고 지혜로 도(道)의 일을 분명하게 알아서, 거의 세존(世尊)의 10력(力)과 가까운 경지에 들었고. 육안(肉眼)ㆍ혜안(慧眼)ㆍ도안(道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으로 온갖 어두운 번뇌를 멀리 벗어났으며, 모든 공덕행(功德行)에 다 들어가서 보살(菩薩)의 법장(法藏)을 환하게 알았다.
009_1423_b_18L已供養過去無央數佛功德而致相諸種好已過空無相願之法諸法無所有如幻野馬如夢如水中影山中之響悉知一切之音通入諸法各各能答已成持諸所欲以智慧曉了道事已稍近尊十種力肉眼慧眼道眼法眼佛眼過度衆冥盡入諸功德行曉知菩薩之藏
009_1423_c_02L그리고 어떤 법을 들을지라도 더 이상 옮기거나 물러나지 않고, 곧바로 참모습 그대로 아는 삼매[相印三昧]ㆍ금강행의 삼매[金剛行三昧]ㆍ법을 마음대로 일으키는 삼매[其法在所作三昧]ㆍ보배처럼 밝고 맑음을 잃지 않는 삼매[寶明持三昧]ㆍ모든 사람을 버리지 않는 삼매[不捨一切人三昧]ㆍ일체의 마음을 다 아는 삼매[悉知一切心三昧]를 얻었다.
이미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 부처님과 같은 일을 하면서, 일체중생이 본래 원만하게 갖추고 있는 모든 상호(相好)를 성취하도록 도와 주었다.
009_1423_c_02L其聞是法不復轉移便得相印三昧金剛行三昧其法在所作三昧寶明持三不捨一切人三昧悉知一切心三昧已得佛智慧如佛所作爲一切作已具足諸好
그 보살들의 이름은 낙작(樂作)보살ㆍ낙등유(樂等有)보살ㆍ보수(寶手)보살ㆍ명화(明華)보살ㆍ보염(寶炎)보살ㆍ희견(喜見)보살ㆍ의희(意喜)보살ㆍ희이안견(喜以眼見)보살ㆍ지지(持地)보살ㆍ환희작(歡喜作)보살ㆍ대처폐(大處廢)보살ㆍ대리(大利)보살ㆍ벽마(辟魔)보살ㆍ의락향(意樂香)보살ㆍ인중지천(人中之天)보살ㆍ제원(諦願)보살ㆍ등시(等視)보살ㆍ진견등부등(盡見等不等)보살ㆍ집어(執御)보살ㆍ일체무천이작천지후(一切無倩而作倩之厚)보살ㆍ미륵(彌勒)보살ㆍ우음(雨音)보살ㆍ
009_1423_c_07L有菩薩名曰樂作有菩薩名曰樂等有復有菩薩名曰寶手復有菩薩名曰明華有菩薩名曰寶炎復有菩薩名曰喜見復有菩薩名曰意喜復有菩薩名曰喜以眼見復有菩薩名曰持地復有菩薩名曰歡喜作復有菩薩名曰大處廢復有菩薩名曰大利復有菩薩名曰辟魔復有菩薩名曰意樂香復有菩薩名曰人中之天復有菩薩名曰諦復有菩薩名曰等視復有菩薩名曰盡見等不等復有菩薩名曰執御復有菩薩名曰一切無倩而作倩之厚二十復有菩薩名曰彌勒復有菩薩名曰雨音
009_1424_a_02L양약산반(兩若山半)보살ㆍ양산정(兩山鼎)보살ㆍ자행(慈行)보살ㆍ광영(光英)보살ㆍ광성양(光聲陽)보살ㆍ등명왕(鐙明王)보살ㆍ여당안소견(如當眼所見)보살ㆍ광등지(光等知)보살ㆍ존관(尊官)보살ㆍ천관(天官)보살ㆍ천안(天眼)보살ㆍ시처실길(視處悉吉)보살ㆍ쾌벽(快辟)보살ㆍ제의의(諦議意)보살ㆍ안처의(安處意)보살ㆍ안처도(安處度)보살ㆍ무소동이도(無所動而度)보살ㆍ금강행도(金剛行度)보살ㆍ삼세행도(三世行度)보살ㆍ제여사불이(諦如事不異)보살ㆍ지엄욕호(持嚴欲好)보살ㆍ부진욕(不盡欲)보살ㆍ불계유욕(不稽留欲)보살ㆍ의음(意音)보살ㆍ정음(淨音)보살ㆍ포만일체음(飽滿一切音)보살ㆍ문수시리(文殊尸利)라고 한다.
009_1423_c_22L復有菩薩名曰兩若山半復有菩薩名曰兩山復有菩薩名曰慈行復有菩薩名曰光英復有菩薩名曰光聲復有菩薩名曰鐙明王復有菩薩名曰如當眼所見復有菩薩名曰光等知三十復有菩薩名曰尊官復有菩薩名曰天官復有菩薩名曰天眼復有菩薩名曰視處悉復有菩薩名曰快臂復有菩薩名曰諦議意復有菩薩名曰安處意復有菩薩名曰安處度有菩薩名曰無所動而度復有菩薩名曰金剛行度四十復有菩薩名曰三世行度復有菩薩名曰諦如事不異復有菩薩名曰持嚴欲好復有菩薩名曰不盡欲復有菩薩名曰不稽留欲復有菩薩名曰意復有菩薩名曰淨音復有菩薩名曰飽滿一切音復有菩薩名曰文殊尸利四十九
009_1424_b_02L이와 같이 이 법회에 모인 7만 3천 보살들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刹土]의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으로서, 세상을 보호하는 분들이다.
이외에 모두가 하나같이 위덕(威德)이 훌륭한 하늘ㆍ용ㆍ열차(閱叉:夜叉)ㆍ건타라(揵陀羅:乾闥婆)ㆍ아수륜(阿須倫:阿修羅)ㆍ가류라(迦留羅:迦樓羅)ㆍ진타라(眞陀羅:緊那羅)ㆍ마후륵(摩睺勒:摩睺羅伽)ㆍ사람 모양으로 변한 신들[人非人]도 이 법회(法會)에 참석하였다. 이들은 모두 부처님께서 설하시려는 경(經)을 듣고자 하였다.
제무리(提無離)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바르게 고치고, 두 손 모아 길게 꿇어앉아서 부처님의 말씀을 찬탄하였다.
“세상 사람들이따를 수 없는 도(道)를 밝히시어 세상의 본보기가 되시고, 그들을 온갖 어두운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저는 이제 세상을 건져주시는 분께 귀의하옵니다.
009_1424_a_19L如是等菩薩會者七萬三千人於三千大千剎土釋梵護持世者一一豪尊諸天閱叉犍陁羅阿須倫迦留眞陁羅摩睺勒人非人盡來會欲聞佛所說經提無離菩薩從坐起整衣服叉手長跪而讚歎佛說俗者不及道之明爲世閒而作本已過度於衆冥今自歸度於世者
부처님께서는 보시(布施)와 총지(摠持:陀羅尼)와 열 가지의 힘[十種力]으로, 그 마음을 조화롭게 다스리시고, 아울러 다른 사람들을 교화하시면서 일체중생을 다 건져주시니, 받들어 모시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삼계(三界)에서 비길 자가 없는 분께 귀의합니다.
상호(相好)로 중생에게 풍요로운 이익을 베푸시면서 그 광명은 붉게 비춰 황금처럼 빛나고 그 음성은 고루 맞춰 들려주시니, 너무도 훌륭하신 그 상호는 비길 데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그 상호를 받들어 모시지 않는 이가 없는 분께 귀의합니다.
바라밀(波羅蜜)의 바른 법으로 제도하시면서 수많은 외도(外道)를 항복시키셨습니다. 그 훌륭하신 지혜(智慧)는 온갖 지식(知識)이 따를 수 없고, 그 누구도 흔들 수 없으며, 일체의 행을 다 아시는 그 공덕도 비길 데 없이 위대하시니, 저는 이제 더없이 훌륭한 대비[無極大哀]께 귀의합니다.
009_1424_b_04L以布施摠持十種力已自伏意幷化餘人則爲度一切莫不供事者今自歸於三界無能與等者以相無所不饒其光赤色若於金其音中和甚殊好無能與等者今自歸莫不供事者以度而度以降伏衆外道智甚尊在於衆黠之上莫能有轉動盡知一切之行其功德甚尊今自歸無極之大哀
온갖 욕망[諸所欲]은 욕망에서 얻을 수 없으니, 온갖 마(魔)들이 찾을지라도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 청정한 계율(戒律)을 일체의 모든 하늘에 다 세우시고 하늘 가운데서 으뜸이오나 조금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시니, 저는 이제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는 분께 귀의합니다.
그 덕(德)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고, 보배 같은 형상(形像)을 보고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보시를 행하시어 이미 탐욕[婬]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벗어나셨으니, 저는 이제 그 덕이 하늘처럼 덮지 않음이 없는 분께 귀의합니다.
네 가지 진리[四諦]로 네 가지의 세차게 흐르는 번뇌[四竇]를 초월하시고, 바른 안목이 없는 자들을 바르게 볼 수 있도록, 끝없는 설법으로 삼세(三世)를 두루 행하시면서 일체중생의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저는 이제 그 발에 법륜상(法輪相)을 두신 분께 귀의합니다.
009_1424_b_13L諸所欲於欲無所衆魔已索莫能當者其淨戒無所不安於諸天一切則爲天中天其意無所復著今自歸莫能當者其聞德莫不歡喜形像若寶其見者無不愛樂於施與已離婬今自歸其德若天無所不覆以四諦過於四以無眼者悉得視占所說法無涯於三世行爲一切作本今自歸其足而有輪
009_1424_c_02L부처님의 몸은 모든 하늘과 일체 인간이 받들어 섬기므로 남자거나 여자거나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음이 없고 마의 무리는 감당하지 못하니, 천상천하에서 가장 훌륭하십니다. 온갖 도리의 바른 법으로 일체중생을 보호하시면서그 평등한 마음의 자비는 누구에게나 미치지 않음이 없으시고, 일체중생을 이끌어 주시니, 그 법은 어디에서나 평등하게 머뭅니다. 저는 이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덕을 갖추신 분께 귀의합니다.
그 음성은 부드럽고 맑으셔서 듣는 이의 마음은 기쁘지 않음이 없고, 그 성향(聲響)은 범음(梵音)처럼 들리지 않는 곳이 없으시니, 일체의 온갖 음성을 모두 다 갖추셨습니다. 저는 이제 훌륭한 진리를 갖추신 분께 귀의합니다.
009_1424_b_22L其身者爲諸天一切人之所供事無男無女皆得而依衆魔而不敢當則是天上天下之所特尊以衆諦政法持於一切其心等慈無所不遍爲一切作導其法而等住今已自歸其德無及者其音柔軟淸淨其聞者莫不悅心其聲如梵所不至一切諸音皆悉具足今自歸於尊諦
이미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경지도 뛰어넘으셨으니, 그 지혜는 너무도 심오하여 그 바닥을 알 수 없고, 이미 깨달아 들어가신 여러 해탈의 경지는 바로 공덕이 되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미 해탈의 경지를 얻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인연이 생기는 일마다 그에 따른 공덕이 있음을 다 아시고, 그 안도 없고 밖도 없이 평등한 작용을 보셨으므로, 그 말씀도 평등한 작용대로 분별하시고 설하십니다. 저는 이제 세상의 온갖 소견을 초월하신 분께 귀의합니다.
온갖 법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이 다 해탈되어 마치 환술(幻術)이나 아지랑이와 같다고 보셨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법의 공덕을 바로 보신 분께 귀의합니다.
009_1424_c_07L已度空無相無願其智甚深不可得根已入衆脫是爲功德自歸已得脫者十一悉知因緣而所生有之功德其見無內無外用等故其知所說別於如作今已自歸過度諸所可見十二亦無所從來無所從去視諸法悉脫若幻野馬今自歸於法功十三
생기는 일이 있거나 생기는 일이 없을지라도 모두 생겨남이 없으시고, 비록 이미 멸했을지라도 사라질 때가 없으시니 법대로 머무시고 진리에서 오신 그대로[如怛薩] 들어가십니다. 진실한 말씀도 법대로 설하시면서 진리에서 오신 그대로 움직이거나 변함이 없으시니, 그 덕은 큰산처럼 움직이지 않으시며, 그 몸은 금강(金剛)처럼 견고하십니다. 저는 이제 큰산처럼 안온한 경지에 머무신 분께 귀의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이 조화롭고 평등하시며, 삼세(三世)에 고루 퍼진 그 이름은 듣지 못하는 이가 없습니다. 무엇을 물어도 다 답할 수 있으시므로 번거롭게 여기지 않으시고 즐겁게 말씀해주시니, 이제 제가 묻고자 하옵니다.”
제무리(提無離)보살은 이렇게 부처님을 찬탄하고 나서 말했다.
“만일 기쁜 마음으로 설해 주신다면 이 일을 묻고 싶습니다.”
009_1424_c_14L所生無所生俱無生其有已滅無有盡時所住如法如怛薩所入十四審如所說若法如怛薩無所動轉其德若大山身者若金剛今自歸安則若山十五意而適等其名流於三世莫不聞者一切所問皆能報答惟不以煩而肯說者願欲所問十六歎佛已儻肯說者而欲問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묻도록 하여라.”
009_1424_c_21L佛言所問
009_1425_a_02L“첫 번째, 보살이 자유자재한 설법으로 몸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
두 번째, 보살이 심오한 법을 결정하여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
세 번째, 보살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
네 번째, 보살이 상대의 기쁜 일을 따라서 교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4]
다섯 번째, 보살이 사람들의 마음의 행을 따라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5]여섯 번째, 보살이 인연의 변화작용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6]
009_1424_c_22L提無離言何謂菩薩以法自在說而莊飾身何謂菩薩快深法無所不入何謂菩薩知一切人心謂菩薩隨所喜而化何謂菩薩心行而入何謂菩薩知因緣有所作
일곱 번째, 보살이 보시[施與]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7]
여덟 번째, 보살이 지계(持戒)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8]
아홉 번째, 보살이 인욕(忍辱)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9]
열 번째, 보살이 정진(精進)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0]
열한 번째, 보살이 선정[一心]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1]
열두 번째, 보살이 지혜(智慧)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2]1)
009_1425_a_03L何謂菩薩而施與爲莊嚴持戒忍辱精進一心智慧
열세 번째, 보살이 범천(梵天)에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3]
열네 번째, 보살이 세간의 지혜가 매우 훌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4]
열다섯 번째, 보살이 언제나 훌륭한 경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5]
열여섯 번째, 보살이 여기에서 해탈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6]
열일곱 번째, 보살이 성문(聲聞)이나 벽지불(辟支佛)이나 온갖 사람들에게 법을 시현(示現)하면서 그들을 그 속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7]
열여덟 번째, 보살이 생사(生死)를 벗어나서 열반(涅槃)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8]
009_1425_a_05L何謂菩薩得在梵何謂菩薩其智甚尊何謂菩薩而常得勝何謂菩薩從是得度十一何謂菩薩於聲聞辟支佛一切人而示現法不入其中十二何謂菩薩離於生死而不泥洹十三
열아홉 번째, 보살이 일체 인간의 세계가 법신(法身)을 떠나지 않았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9]
스무 번째, 보살이 본 바탕을 떠나지 않는 가운데 본 바탕을 벗어나서 시현(示現)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0]
스물한 번째, 보살이 존귀한 자리를 얻고 그 복이 창고의 재화(財貨)처럼 많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1]
스무두 번째, 보살이 욕망의 세상을 따라서 도(道)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2]
스물세 번째, 보살이 모든 법을 남김없이 다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3]
009_1425_a_10L何謂菩薩知一切人界不離法身十四何謂菩薩不離於離本而示現十五何謂菩薩而得尊貴其福若帑藏十六何謂菩薩隨欲而得入道十七何謂菩薩盡知諸法十八
스물네 번째, 보살이 하는 일에 항상 안전하게 법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4]
스물다섯 번째, 보살이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일에 물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5]
스물여섯 번째, 보살의 자유자재한 법이 단정하여 당할 자가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6]
스물일곱 번째, 보살이 언제나 부처님의 곁에서 떠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7]
스물여덟 번째, 보살이 안전한 법을 세우고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8]
009_1425_a_14L何謂菩薩所作常安諦十九何謂菩薩於世閒而行無所著二十何謂菩薩而自在法端正莫能當者何謂菩薩常不離佛何謂菩薩安諦而學
스물아홉 번째, 보살의 뜻이 법과 더불어 취하는 일도 없고 버리는 일도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9]
서른 번째, 보살이 일체중생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0]
서른한 번째, 보살이 법륜(法輪)을 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1]
서른두 번째, 보살이 마침내 일생보처(一生補處:阿惟顔)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2]”
009_1425_a_18L何謂菩薩意與法無所取無所捨何謂菩薩而護一切何謂菩薩至法輪轉何謂菩薩乃至阿惟顏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다. 제무리(提無離)여, 보살은 모두를 위하여 알맞은 질문을 하였으니, 이 법회(法會)의 대중은 미래의 중생을 다 인도하여 이 대승법[摩訶衍]을 오래 머물 수 있게 하리라.
009_1425_a_21L佛言善哉善哉提無離菩薩所問乃令一切得所其在會者若當來悉爲作導是摩訶衍而得久住
이제 내가 하는 말을 마음에 새겨 자세히 듣도록 하여라.”
009_1425_a_24L佛言聽諦聽今我所說
모두 말했다.
“부디 말씀해 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듣고자 하옵니다.”
則言願樂欲聞
009_1425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자유자재한 설법으로 몸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첫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자유자재하게 설법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광명을 모두에게 걸림 없이 두루 비추는 일이요, 둘째는 귀한 보배를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찾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일이며, 셋째는 만일 경을 밝혀 설하는 이가 있다면 중단하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 권장하는 일이요, 넷째는 만일 설법을 청하는 이가 있다면 상대가 곤혹스럽게 여기지 않게 하고 여래[怛薩阿竭]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뜻을 받들어서,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설하는 가운데 보살의 일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법을 베푸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b_02L菩薩用四事而自在何謂四其光明爲一切無所罣㝵所有名寶有索者不爲愛惜若明經者說法而不中斷於邊勸助若有倩令說法而不以難承怛薩阿竭不可議踊躍而說之於菩薩事無所悕望以法而施與是名曰四事
보살이 심오한 법을 결정하여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
두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온갖 법에 깊이 들어가서 지혜를 닦고 그 공덕(功德)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12인연(因緣)을 바르게 아는 일이요, 둘째는 자신의 몸을 아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몸과 다름없이 아끼는 일이며, 셋째는 생사에 대하여 어디에서 온다거나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일체의 모든 법을 공(空)으로 관하여 공으로 보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b_09L復有四事深入諸法其慧所作不離功德何謂四於十二因緣而眞知之如自惜身亦惜於人與身無異於生死亦不念有所從來有所從去一切諸法以空現空是爲四事
보살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
세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온갖 사람의 마음을 보고 그 공덕(功德)의 증감(增減)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법신(法身)에 들어가서 더러움이 없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종류의 상호(相好)를 다 나타내는 일이며, 셋째는 네 가지 일[四事:註]로 관찰하는 일이요, 넷째는 그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곧바로 삼매(三昧)를 얻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b_14L復有四事悉知一切人心其功德增減何謂四事以入法身而無瑕穢諸種好悉以以四事而觀其心無破壞便得三昧是爲四事
보살이 상대의 기쁨을 따라서 교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4]
네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일체중생의 소행을 따라 교화(敎化)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지혜를 평등하게 지니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사람을 다 교화하는 일이며, 셋째는 모든 법을 살펴서 아는 일이요, 넷째는 먼저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나서 온갖 사람들의 마음을 청정케 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b_18L復有四事隨一切所行而教化之何謂四事其慧而悉化一切人觀知諸法其心已淨潔悉淨一切人心是爲四事
보살이 사람들의 마음의 행을 따라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5]
다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마음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소행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세간의 지혜로 어디에든지 드나드는 일이요, 둘째는 그 출세간의 지혜가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일이며, 셋째는 그 마음에 두 갈래의 차별이 없는 일이요, 넷째는 자고 눕는 온갖 장애[睡臥諸盖]에 더 이상 붙들리지 않은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b_22L復有四事知一切人心化之所何謂四事其智無所不入其慧無所罣礙其心無有二睡臥諸蓋已不復著是爲四事
009_1425_c_02L보살이 인연의 변화작용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6]
여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인연 따라 짓는 죄(罪)와 복(福)을 잊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일체에 끊을 대상이 없는 일이요, 둘째는 역시 집착할 대상도 없는 일이며, 셋째는 그것이 인연(因緣)의 작용임을 알고 그 작용을 따라 시현(示現)하면서 법으로 법을 지니는 일이요, 넷째는 거기에 나란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이란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이 가르침을 따라 도법(道法)을 잃지 않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c_02L復有四事所作罪福不忘何謂四事一切無所亦無所著而知因緣所作隨其示現以法持法亦不念有我不念有人隨是教者不失道法爲四事
보살이 보시[施與]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7]
일곱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보시(布施)를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상호(相好)를 장엄하는 일이요, 둘째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좋은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일이요, 셋째는 그 몸의 색(色)이 매우 훌륭하고 좋은 일이며, 넷째는 한없이 보시를 행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c_07L復有四事以布施而莊嚴謂四事以相莊嚴隨人所喜示現其好其色甚尊好所作而不可是爲四事
보살이 지계(持戒)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8]
여덟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청정한 계율(戒律)을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곧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지라도 보살의 마음을 잊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될지라도 보살의 마음으로 자신을 장엄하는 일이며, 셋째는 범천(梵天)이 될지라도 그 마음을 보살의 행으로 장엄하는 일이요, 넷째는 일체의 악도(惡道)를 벗어나게 하고 단지 천상(天上)에 태어나거나 인간세상에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보살의 마음으로 장엄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c_10L復有四事用淨戒而爲莊嚴便爲遮迦越羅不忘菩薩心得作釋提桓因以菩薩心而自莊而作梵天其心以菩薩而爲莊嚴離一切惡道但生天上世閒作人以菩薩心而爲莊嚴是爲四事
보살이 인욕(忍辱)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9]
아홉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인욕(忍辱)을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범천(梵天)과 같은 음성을 내어 듣는 이들에게 각기 알맞도록 하는 일이요, 둘째는 그 소리가 부드럽고 훌륭함이 마치 가릉빈가(迦陵頻伽)처럼 듣기 좋게 하는 일이며, 셋째는 그 소리를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은 이가 없도록 하는 일이요, 넷째는 언제나 공덕(功德)이 견고한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c_15L有四事忍辱莊嚴何謂四事其音如聲聞者各得所其聲軟好譬如迦一切莫不愛樂常於功德而堅是爲四事
보살이 정진(精進)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0]
열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정진을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몸이 금강(金剛)처럼 견고하여 온갖 삿된 무리가 엿볼 틈이 없도록 하는 일이요, 둘째는 모두에게 두터운 덕을 베푸는 일이며, 셋째는 해야할 일을 갖추고 마련하여 중간에 뉘우치거나 싫증내지 않고 끝까지 배우고 묻는 일이요, 넷째는 그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다 원만하게 갖추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c_19L復有四事以精進莊嚴何謂四事其身若金剛諸邪不能得其便爲一切而作厚所作事具足辦而不中悔學問無厭極其心所求而悉具足是爲四事
009_1426_a_02L보살이 선정[一心]을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1]
열한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스스로 선정(禪定)을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하는 일이 겨루거나 부딪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희롱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나쁜 경계에 빠지지 않는 일이요,넷째는 스스로 알고 선정의 뜻이 변함이 없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5_c_23L有四事以禪自莊嚴何謂四事所作不抵突而不調戲不爲弊惡自知而無異意是爲四事
보살이 지혜(智慧)를 장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2]
열두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지혜를 장엄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스스로 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목숨의 길이를 생각하지도 않고, 목숨[命]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일이요, 둘째는 하는 바가 매우 훌륭한 일이며, 셋째는 일체의 존재에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는 일이요, 넷째는 일체의 모든 법에 더 이상 두려움이 없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a_03L復有四事以智慧而莊嚴何謂四事不自念有我亦不念有人亦不念有壽亦不念有命亦不著亦不斷所作甚尊一切所有無所不入一切諸法無所復畏是爲四事
보살이 범천(梵天)에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3]
열세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지혜를 닦아 스스로 범천(梵天)에 이르러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공(空)과 일치한 사랑[空慈]으로 모두를 생각하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사람을 교화하면서 대비(大悲)를 베푸는 일이며, 셋째는 온갖 법을 다 거둬들여 미리 보호하는 일이요, 넷째는 일체를 평등하게 대하여 부처님을 버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a_08L復有四事其慧自致梵天何謂四事以空慈念一切教一切人而以加哀棇攬諸法而已護故等於一切亦不捨佛是爲四
보살이 세간의 지혜를 매우 훌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4]
열네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세간의 지혜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4선정(禪定)에 머물면서 보살의 마음이 변하지 않은 일이요, 둘째는 4공정(空定)의 삼매(三昧)와 삼마월(三摩越)로, 방편선교(方便善巧:漚★拘舍羅)를 행하여 무색계(無色界) 가운데 태어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마음대로 설하면서 법을 떠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시방(十方) 곳곳에서 두루 모든 부처님을 다 친견(親見)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a_12L復有四事不離於智何謂四事四禪而住不動轉於菩薩以四事三昧三摩越用漚和拘舍羅故不生無色中自在心所說不離法至十方盡見諸佛是爲四事
보살이 언제나 훌륭한 경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5]
열다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자유자재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안에서도 저절로 없어지고, 밖에서도 저절로 없어지는 일이요, 둘째는 온갖 법이 환술(幻術)과 같음을 분명하게 깨치는 일이며, 셋째는 그 출세간의 지혜로 힘을 삼는 일이요, 넷째는 교만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a_16L復有四事而自在何謂四事於內而自滅於外亦自滅悉曉了諸法如幻以慧爲力不自貢高而得度爲四事
보살이 여기에서 해탈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6]
열여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출세간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욕망을 알고 욕망을 끊지 않으면서 중간[中道]에 깨달음을 취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생사(生死)를 알고 방편선교로 생사에 있는 일이며, 셋째는 바른 도와 바르지 못한 도를 다 아는 소견을 버리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무명[無黠]을 알고 12인연(因緣)과 친근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a_20L復有四事深入慧何謂四事知欲而不斷欲不中道取證知生死以漚和拘舍羅而在中所見悉知其政道非政道亦不捨所見知無黠而親近十二因緣是爲四事
009_1426_b_02L보살이 성문(聲聞)이나 벽지불(辟支佛)이나 온갖 사람들에게 법을 시현(示現)하면서 그들을 그 속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7]
열일곱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나한(羅漢)과 벽지불(辟支佛)과 모든 사람들에게 법으로시현하여 그들의 경계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깨우쳐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온갖 삼매(三昧)를 환술(幻術)처럼 보고 아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법을 분명하게 알고 장엄하는 일이며, 셋째는 신통[旬]을 스스로 즐기면서 진실한 법을 짓는 일이요, 넷째는 그 스스로 마음을 환술과 같다고 아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a_24L有四事於羅漢辟支佛一切人以法而示現不於中有所悕望何謂四事視諸三昧知若如幻曉了諸法而嚴飾以旬自娛樂所作審諦其心自知譬若如幻是爲四事
보살이 생사(生死)를 벗어나서 열반(涅槃)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8]
열여덟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생사를 떠나서 열반에 들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일이요, 둘째는 그 마음이 평등하게 대비[哀]를 행하는 일이며, 셋째는 방편선교(方便善巧:漚★拘舍羅)를 행하는 일이요, 넷째는 본래 발심(發心)한 서원(誓願)을 잊지 않은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b_06L復有四事離生死亦不般泥洹何謂四事諸佛故其心而等哀用漚和拘舍羅故不忘本發心之願是爲四事
보살이 일체 인간의 세계가 법신(法身)을 떠나지 않았음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19]
열아홉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모든 사람이 법신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일체의 사람은 자연이므로 모든 사람이 법신에 들어감도 자연 그대로 진실하다고 보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사람이 자연 그대로 진실하다고 아는 일이며, 셋째는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 진실하고 지혜도 자연 그대로 진실함을 의심하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사람도 자연 그대로 진실하고 열반[泥洹]도 자연 그대로 진실함을 알고 법인(法忍)을 얻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b_10L復有四事而知一切人不離於法身何謂四事視一切人皆自然人入法身亦自然知一切人而自然人自然慧自然而不疑人自然洹自然而得忍是爲四事
보살이 본 바탕을 떠나지 않는 가운데 본 바탕을 벗어나서 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0]
스무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본 바탕을 떠나지 않고 본 바탕을 떠나서 세상에 나타나야 한다.
보살이 존귀한 자리를 얻고 그 복이 창고의 재화(財貨)처럼 많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1]
스물한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생각을 지키면서 생각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항상 열반(涅槃)을 생각하고 불법(佛法)을 원만하게 갖추려는 의지로 두루 아는 일이요, 둘째는 전륜성왕(轉輪聖王)ㆍ범천(梵天)ㆍ제석(帝釋)의 몸을 시현하고, 그 가운데 공덕(功德)을 나타내면서 모인 사람들을 이 법으로 이끄는 일이며, 셋째는 모자란 몸을 나타내어 모자란 이들이 공덕을 짓게 하는 일이요, 넷째는 자신의 몸을 구하는 이가 있으면 아낌없이 몸을 보시하기도 하고, 존귀한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존귀한 부호(富豪)의 모습을 나타내어 그들을 이끌어 교화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b_14L復有四事亦不離本於無本而見何謂四事常念泥洹欲具足佛法其意而遍知以身現遮迦越羅於其中現功令會者因是法以身現不肖劣者得作功德其有所求者則施與以身於尊貴現於極豪而往率化是爲四事
보살이 욕망의 세상을 따라서 도(道)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2]
스물두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모든 견해의 법을 떠나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무상(無常)한 생사(生死)에 있으면서 그 마음이 청정한 일이요, 둘째는 본래 이미 괴로운 세상에서 이제 출세간의 지혜를 얻는 일이며, 셋째는 일체의 온갖 법에 나의 존재가 없는 이치를 보는 일이요, 넷째는 열반(涅槃)의 고요한 경지에 드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b_21L復有四事持想入無想謂四事生死無常其心淨從本已今已慧得視一切諸法無我洹寂是爲四事
009_1426_c_02L보살이 모든 법을 남김없이 다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3]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스물세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모든 의심을 마음대로 결단해야 한다.
첫째는 청정한 일이요, 둘째는 지혜의 눈으로 못 보는 경계가 없는 일이며,셋째는 불안(佛眼)이 뚜렷하게 앞에 나타나는 일이요, 넷째는 모든 법을 해탈하여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인가[印]를 받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b_24L復有四事離諸見何謂四事淸淨於慧眼無所不佛眼者悉在前立已度諸法印阿惟顏是爲四事
보살이 하는 일에 항상 안전하게 법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4]
스물네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법에 머물러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소원에 장애가 없는 일이요, 둘째는 온갖 진실한 지혜에 들어가는 일이며, 셋째는 이 지혜로 덮지 못할 것이 없는 일이며, 넷째는 온갖 총지법문(摠持法門:陀羅尼)에서 떠나지 않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c_04L復有四事自在決諸疑何謂四事所欲無覆蔽諸諦慧無所不覆不離諸陁鄰是爲四事
보살이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일에 물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5]
스물다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세속을 따라 익히면서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세상의 일을 빠짐없이 아는 일이요, 둘째는 곧바로 온갖 사람을 제도(濟度)할 수 있는 일이며, 셋째는 미움과 사랑에서 벗어나는 일이요, 넷째는 근본 바탕을 깨끗이 닦아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c_07L復有四事而隨習俗無所著何謂四事盡知世事便能度一切人已離憎愛以淨於本無所沾污是爲四事
보살의 자유자재한 법이 단정하여 당할 자가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6]
스물여섯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고요한 경지에서 모든 법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그 마음이 자유자재한 경지에 드는 일이요, 둘째는 그 출세간의 지혜[慧]도 자유자재한 경지에 드는 일이며, 셋째는 그 세간의 지혜[智]도 자유자재한 경지에 드는 일이요, 넷째는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方便善巧]도 자유자재한 경지에 드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c_10L復有四事而住何謂四事其心自在其慧亦自其智亦自在漚和拘舍羅而自在是爲四事
보살이 언제나 부처님의 곁에서 떠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7]
스물 일곱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을 따라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여래[怛薩阿竭]를 떠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모든 사람에게 부처님의 용모(容貌)를 찬탄하는 일이며, 셋째는 사람들을 발심시켜 보살(菩薩)이 되도록 교화하는 일이요, 넷째는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c_13L復有四事何謂四不離怛薩阿竭爲一切讚歎佛形容教照人令發心爲菩薩念於佛是爲四事
보살이 안전하게 법을 세우고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8]
스물여덟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스승이 되어 탐욕이 없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온갖 사람들에게 인연을 짓게 하는 일이요, 둘째는 그 마음이 질박하여 아첨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자신의 편함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일이요, 넷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지혜를 구하지 않고 일체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지혜를 구하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c_16L復有四事寂而知諸法何謂四事以道盡知俗事一切曉了諸慧於所聞無有疑而得法忍不念有是無是不隨俗人有所作爲是爲四事
보살의 뜻이 법과 더불어 취하는 일도 없고 버리는 일도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9]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도(道)로써 세속의 일을 다 아는 일이요, 둘째는 일체의 세간 지혜와 출세간 지혜[智慧]를 환하게 아는 일이며, 셋째는 무엇을 들을지라도 의심하지 않고 법인(法忍)을 얻는 일이요, 넷째는 옳음과 옳지 않음[有是無是]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세속 사람들의 행위를 따르지 않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c_20L復有四事而爲師無所貪何謂四事爲一切人作因緣其心質朴而無諛諂捨身之安而憂他人所求慧不用身故但爲一切是爲四事
009_1427_a_02L보살이 일체중생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0]
서른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일체중생을 보호해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자신의 몸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일이요,둘째는 온갖 즐거움을 다 버리고 법으로 즐거움을 삼는 일이며, 셋째는 들은 일을 지식[解]으로 여기지 않는 일이요, 넷째는 법으로 자신을 길러나가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6_c_24L復有四事爲一切作護何謂四事自捨身而憂他悉捨諸樂以法自樂所聞不以爲解以法而自長養是爲四事
보살이 법륜(法輪)을 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1]
서른한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마땅히 법륜(法輪)을 굴려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총지법문(摠持法門:陀羅尼)를 체득하여 원하는 바가 마음대로 성취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일이요, 둘째는 도달한 경지가 사라지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스스로 그 마음에 들어가서 안으로 모든 법을 환하게 깨치는 일이요, 넷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아는 일이다.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7_a_04L復有四事當成輪轉何謂四事逮得陁鄰尼逮得自恣所欲而無盡滅自入其心於內曉了諸法盡解他是爲四事
보살이 마침내 일생보처(一生補處:阿惟顔)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2]”
서른두 번째는 다음의 네 가지 일로, 마침내 일생보처에 이르러야 한다.
네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이미 생사를 벗어났더라도 보살행(菩薩行)을 떠나지 않는 일이요, 둘째는 곧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므로 생사를 수용하여 법을 떠나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이로써 물러남이 없는 법인(法印)을 얻는 일이요, 넷째는 이미 이제 불퇴전(不退轉:阿惟致)의 법인을 얻고 나서, 이제 여래의 인가를 얻으면 열 가지 도지(道地)에 이르며, 이로써 열 가지 도지에 이르면 열 가지 도지를 차례로 환하게 아는 일이니라. 이것을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09_1427_a_08L復有四事乃至阿惟何謂四事已度於生死不離於菩便得無所從生法樂忍故受生死用不離法故已得阿惟致印已今得怛薩阿竭印今到十道地到十道地從次第悉曉了是爲四事
부처님께서 보살사사경(菩薩四事經)을 설하시자,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그 광명은 밝게 비추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모든 하늘은 그 위로 날아와서, 억백천의 즐거운 음악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 하늘 꽃을 뿌리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수 겁(無數劫) 동안 닦아오신 모든 법을 이제 다 들려주셨습니다. 여기 법회대중(法會大衆)이 이 법을 듣게 된 것은 본래부터 이미 그 공덕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듣고 나서 읊고 외어 지닐 뿐 아니라, 또 모든 사람에게 널리 설하면서 그 마음에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보살들이 해온 일도 부처님과 다르지 않사오니 저희들은 벌써 이익을 얻었습니다. 왜냐 하면 이 법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009_1427_a_13L佛說菩薩四事經時三千大千剎土六反震動其光明無所不明諸天飛在其上以億百千種妓樂而娛樂供養佛雨於天華皆言善哉善哉佛從無數劫所行今皆聞之其在會者聞是法從本已作功德聞已便諷復爲一切人廣說其心未曾忘薩如是輩人所作亦當如佛吾等已得是利所以者何逮聞是法
이때 8만 4천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더없이 높고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을 일으켰고, 1만 2천 보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無所從生法樂忍)을 얻었다.
009_1427_a_22L爾時天及人八萬四千皆發阿耨多羅三耶三菩提心萬二千菩薩皆得無所從生法樂忍
009_1427_b_02L제무리보살(提無離菩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여래[怛薩阿竭]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이 경(經)을 듣는 이가 읽고 외우고 찬탄하고 받들어 섬긴다면, 마땅히 몇 가지 법공덕(法功德)을 얻겠습니까?”
009_1427_b_02L提無離菩薩問佛從怛薩阿竭般泥洹已後其有聞是經者供事當得幾法功德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연히 여덟 가지 법의 공덕을 얻으리라. 첫째는 그 믿음이 보살과 다름없이 견고하게 머무는 일이요, 둘째는 그 몸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덕을 베풀면서 모든 사람을 더욱 이롭게 하였으니 그 마음에 원한이 없는 일이며, 셋째는 끝없는 대비(大悲)에 머물면서 모든 사람을 교화하는 일이요, 넷째는 바른 법을 배우고 묻는 일에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음이 마치 큰 바다가 온갖 크고 작은 냇물을 싫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섯째는 모든 법을 보호하려는 일이요, 여섯째는 법의 공덕으로 자신을 키우면서 비록 몸은 죽더라도 뒤에는 오히려 배로 좋아지는 일이며, 일곱째는 모든 복의 공덕에 들어가서 본래의 서원(誓願)을 원만하게 갖추고 모든 부처님의 보호를 받는 일이요, 여덟째는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보살이여,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에도 마땅히 이 여덟 가지 일로 법의 공덕을 얻으리라.”
009_1427_b_04L佛言得八法功德其信無有異於菩薩而堅住其身施人於功德而令增益於一切人其心無所恨住於無極大哀教照一切以法故學問不厭若海不厭衆流欲護諸法法功德而自長養雖身而死後還倍入諸福功德具足本願爲諸佛所擁護降伏衆魔以離恐懼薩以是八事佛般泥洹已後便逮得功德法
이때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을 반복하면서 그 땅은 온통 손바닥처럼 평평해졌다. 모든 산과 언덕과 비탈의 못과 골짜기의 냇물들도 모두 땅처럼 평평해졌으나, 물 속의 중생들은 다 본래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백년 동안 마른 온갖 나무에서 여러 가지 새 잎들이 생기더니 가지를 기울여 부처님 쪽을 향하였으며, 그 외 다른 훌륭한 나무들도 역시 이와 같이 부처님을 향하였다. 땅에서는 수레바퀴만한 연꽃들이 피어나서 헤아릴 수 없는 색깔이 어우러진 가운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환하게 비췄다. 아래에서 위를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서 그저 매우 아름다운 음악[妓樂]소리만 들려 왔다.
009_1427_b_14L爾時三千大千剎土地爲六反震動悉平如掌諸山陵海水陂渠溝坑悉見如地其在水中謂爲如故以百歲枯木諸樹皆生若干種葉葉者在佛方面皆傾枝向之其餘好樹亦復如是地爲生蓮華大如車輪其色無數其光明悉開辟三千大千之剎土從下視上了無所見但聞妓其音甚好
009_1427_c_02L이때 빙산(氷山)의 향산(香山)으로부터 나온 향기가 곳곳에 두루 퍼졌으며, 이 산에서 나온 꽃들은 부처님 위를 비 오듯 뿌리더니,발의 복사뼈가 잠길 정도로 쌓였다. 또 부처님이 앉아 계신 나무에서도 꽃이 피면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는데, 하늘의 음악과 다르지 않았다.그리고 부처님 위에는 바로 30만 리를 가릴 수 있는 보배 꽃 일산이 생겨서 부처님의 자리를 덮었다. 일산의 사이마다 주렁주렁 달린 진귀한 보배 방울들이 주변을 빙 둘러싼 가운데, 방울마다 다 구슬을 늘어뜨렸으며, 이 구슬에서 흘러나온 소리[音聲]는 삼천대천세계에 울려 퍼졌다.
009_1427_b_22L爾時從冰山香山其香到是無所不遍其華從是山出乃來雨佛上遍其地沒人踝佛所坐樹其樹亦出華亦聞妓樂音若如天樂佛上便有三十萬里珍寶華蓋而覆蓋座蓋閒而有珍寶鈴周帀其邊悉皆垂珠從其垂珠閒其音聲悉遍三千大千之剎土
사리불(舍利弗)이 앞으로 나와 길게 꿇어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누구의 본래 서원에서 나온 상서로운 감응[瑞應]이기에 이러한 일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009_1427_c_06L舍利弗前長跪問佛何本之瑞應乃有是現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돈진다라(伅眞陀羅)란 왕이 한량없는 수천의 모든 돈진다라(伅眞陁羅)와 한량없는 수천의 건타라(犍陀羅)와 한량없는 수천의 온갖 하늘들과 함께 향산(香山)으로부터 와서 이 상서로운 감응(感應)에 대하여 말해주리라.”
009_1427_c_07L佛謂舍利弗有王名曰伅眞陁羅從名香山與諸伅眞陁羅無央數千與犍陁羅無央數千與諸天無央數千而俱來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돈진다라왕(伅眞陀羅王)이 8만 4천 악사(樂師)들과 함께 오는 모습이 보였다. 또 그 뒤를 이어 한량없는 사람들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하늘 꽃 속에 오는 모습도 보였다.
돈진다라왕은 거느리고 온 이들과 함께 머리를 땅에 대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부처님의 주위를 세 번 돌고 나서 부처님 앞에 멈췄다.
009_1427_c_10L說是瑞應言適未竟便見伅眞陁羅與八萬四千伎人俱來及無央數人其華從上墮譬若天雨從上悉下與諸俱來者頭面著地爲佛作禮遶佛三帀皆在前住
돈진다라왕은 손에 유리 거문고를 잡고 있었다. 그 거문고를 들고 있는 까닭은 그의 본 서원(誓願)이기 때문이다.
8만 4천의 악사들은 각각 4만 2천명씩 나누어 두 방면으로 늘어섰다. 돈진다라왕이 그 한 복판에서 그들과 함께 거문고를 연주하자, 그 소리는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울려 퍼졌다. 이 소리를 들은 모든 욕계(欲界)의 천자(天子)들도 그들의 기악으로 즉시 연주해 보았으나, 그 소리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다 그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욕계의 천자들과 온갖 색계(色界)의 천자(天子)들도 모두 다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왔다.
009_1427_c_15L伅眞陁羅王便以手持琉璃之琴所以者何是本之願面面各四萬二千伎樂伅眞陁羅在其中央同時鼓琴其聲悉遍三千大千之剎諸欲天子所有伎樂應時其音不與是聲而等所以者何其音悉覆令不如諸欲天子諸色天子皆悉到佛所
009_1428_a_02L돈진다라왕이 이 음악을 연주할 때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나무들과 이름난 대산(大山)ㆍ빙산왕(氷山王)ㆍ마하목린(摩訶目鄰)산들이 마치 춤을 추는 듯 모두 다 덩실덩실 흔들거렸다. 모든 것이 다 구부렸다가 올렸다가 하면서 마치 사람이 예를 올리듯 다 부처님을 향하였다.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와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들, 또 그마다 훌륭한 비구들과 새로 발심한 보살들, 그리고 이 법회(法會)에 참석한 모든 하늘ㆍ용ㆍ귀신들도 모두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덩실거렸고, 파아산(頗峨山)마저 그 몸을 일으켜서 춤을 추려고 하였다.
009_1427_c_22L鼓是音時三千大千之剎土應時諸樹名大山冰山王摩訶目鄰皆悉%((尸/言)*令)%((尸/言)*令)搖譬若如舞一切低昂皆向譬若如人之作禮比丘比丘尼婆塞優婆夷諸一一尊比丘及新發意菩薩其在會者諸天一切自於坐皆踊躍坡峨其身而欲起舞
제무리(提無離)보살이 물었다.
“존경하는 성문들이여, 그대들은 이미 온갖 욕심의 번뇌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다 8해탈(解脫)의 선정(禪定)을 얻어 네 가지 도리[四諦]도 남김없이 보았으면서 무엇 때문에 여기에 들떠 춤을 추십니까?”
009_1428_a_05L提無離菩薩問尊聲聞已離諸欲得八惟務禪盡見四諦何緣復舞
뛰어난 성문들은 모두 답하였다.
“저희들은 이 거문고 소리를 참을 수 없으므로, 앉은자리를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이 마음을 굳게 멈추려 하나 억제할 수도 없습니다.”
009_1428_a_07L尊聲聞答言吾等不得自在用是琴於坐不能忍其音亦不能制其心令堅住
또 제무리보살은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이도 들었고 만족할 줄도 아십니다. 스스로 계율을 법대로 지키면서 모든 하늘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춤을 추십니까?”
009_1428_a_10L提無離菩薩問摩訶迦葉言仁者年尊而知厭足自守如戒爲諸天及人之所敬愛云何不能自制身若如小兒
마하가섭이 말했다.
“회오리바람이 한 번 몰아치면 온갖 나무들 중에 아무리 이름난 큰 나무일지라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 하면 이 몸이 돈진다라왕의 거문고 소리를 감당하지 못함이 마치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때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자신을 억제할 수 없고서야 비로소 이제 훌륭한 분[上人]의 공덕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성문의 온갖 공덕은 이 거문고 소리에 눌려버린 것입니다.”
009_1428_a_13L摩訶迦葉言譬若隨藍風一起時諸樹名大樹而不能自制所以者何其身不堪伅眞陁羅王琴譬若如隨藍風起時以是故吾等而不能自制今乃知上人之所作功德不可當諸聲聞之所有今悉爲是音而覆蔽
009_1428_b_02L제무리보살은 또 마하가섭에게 말했다.
“저 물러남이 없는 보살들의 행의(行誼)를 보십시오. 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만일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리를 듣고도 어찌 더없이 높고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모든 성문이 소유한 위신력(威神力)은 모두 다 거문고 소리에 눌려버렸지만, 그 소리는 대승보살들을 동요시킬 수 없습니다.”
돈진다라왕이 소유한 음악의 8만 4천 음성(音聲)은모두 다 돈진다라가 본래 세운 서원(誓願)의 복으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아들였다.
009_1428_a_19L提無離菩薩復謂摩訶迦葉觀諸阿惟越致所作爲聞是琴聲而無動者其有智人聞是奈何不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諸聲聞之所有威神之力皆悉爲琴聲而所覆蔽是音不能動搖諸摩訶衍眞陁羅王所有伎樂八萬四千音聲皆悉佛威神之所接亦伅眞陁羅本願福之所致
그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 음악 소리는 다 함께 말했다.
“모든 법은 평등하면서 다 해탈하였으니, 위와 중간과 아래도 모두 청정하면서 공(空)하여 차별이 없습니다.[1]
일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본래 없으니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도 그렇습니다. 그저 소리만 들을 뿐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법은 일체 인간의 소리도 그렇습니다.[2]
일체 세계는 평등합니다. 세계가 평등한 까닭은 세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009_1428_b_04L諸所音樂聲莫不聞其聲皆言諸法等而悉脫上悉而亦空無有異一切諸人計無有人已過去當來今現在亦爾但聞其了無所有其法者一切人聲亦復如是一切剎等剎所已故等而無剎
비록 존재가 없는 평등을 밝혀서 세계라고 칭할지라도 생기는 일도 없고, 또한 자라거나 커지지도 않습니다.[3]
그러므로 공(空)하여 식(識)이 없으면서 자연 그대로 진실하고, 온갖 존재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자연 그대로 진실합니다. 바깥 작용도 얻을 수 없고, 안의 작용도 얻을 수 없습니다.[4], [5].
그 지혜는 본래 다른 법입니다. 그 문자의 법[字法]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이름[名]도 그렇습니다. 만일 명색(名色)이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면, 그 작용에 집착하지 않습니다.[6]
과거에 세운 법은 끝없이 많습니다.
009_1428_b_10L其明無所有等而稱其剎者有生者亦無長大者是故空無有識而自然諸所有無所有是自然不可得外行亦不可得內行其慧而本異法而字法亦無所有其名亦爾其知名色無所有其行無著已過去安無有極
이미 법을 들은 뿌리부터 다 무너졌으니, 나갈 곳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습니다.[7]
그 헤아리는 일에 단지 문자가 있을 뿐이니 단지 문자가 사라짐을 알면, 문자의 법은 평등하여 헤아려 구별하지 않습니다.[8]
마음에 지닌 일을 평등하게 지니기 때문에 지니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구르고 변하여 서로 알지 못하니, 마음으로 생각하는 일[心所思]도 생기는 일이 없습니다.[9]
이 출세간의 지혜가 곧 법에 들어가는 것을 압니다. 그 뿌리마다 평등하게 끊어야만 앞뒤의 법이 고루 평등해집니다. 이렇게 삼세(三世)에 평등함을 안다면, 그 출세간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갑니다.[10]
009_1428_b_16L已從聞法本盡壞無所亦無所至亦無所住其所計但有字但字盡知字法而等不校別心所持等持故無所有其本轉而不相知心所思亦無所生其知是慧便入法其根根已等斷前與後法這其知等於三世其慧便入無央數
009_1428_c_02L세상의 범부들이 색(色)과 명(名)에 얽힘은 바로 범부 자신이 저지른 일입니다. 본래부터 지금까지 또 나서부터 늙을 때까지 아무것도 없으나, 그들은 이미 인연은 더 이상 사라지지 않음을 압니다.나도 있고 사람도 있다고 하니 본래의 바탕과 뒤바뀌었습니다.[11]나의 머무는 일도 평등하여 머무는 일이 없고 모든 법도 머무는 일이 없으니, 만일 머물면서 머물지 않음을 안다면, 이것을 ‘기쁜 마음으로 듣고 믿는 법인(法忍)’이라고 합니다.[12]
비에 따른 번개가 위의 자연(自然)인 것처럼 일체의 온갖 법도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자연이라고 합니다.
009_1428_b_22L凡人爲色名之所繫是者凡之所作從本至本從生至老無有已已知因緣不復滅其言有我有人是與本而我所住等無所住諸法亦無所其知住無所住是爲歡喜聞信十一譬若雨而有電是上之自然一切諸法我故曰自然
나와 사람은 자연 그대로 공(空)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는 사람은 바로 총지법인(摠持法印:陀隣尼印)에 들어갑니다.[13]
모든 해탈문(解脫門)을 다 알고 나면 모양[相]은 평등한 모양이므로 모양 법[相法]이 없고, 상(相)과 무상(無相)의 뒤섞임이 없으므로 바랄 일이 없습니다.[14]
문자를 쓰기 때문에 법과 차별되어 곧바로 상ㆍ중ㆍ하가 있으나, 문자 자체는 스스로 알지 못하고 별도의 작용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그 마음은 이미 본래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15]
그러나 문자와 마음[二本]이 서로 응하여 이어지므로, 이로써 모든 법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이미 진실한 바탕[本際]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16]
이미 진실한 바탕을 끊고 일체중생을 위하여 행하면 이미 진실한 바탕이 평등함을 알게 되니, 이것을 자비[慈哀]라고 합니다.[17]
009_1428_c_06L我與人自然空已知是者便入陁鄰尼印諸所脫門戶而悉知相等相故無有相法者無有空無悕望用字故故與法別便有上其字者不自知而別用不可見故其心已本來故而有本者續故已知諸法無所有已爲斷本際故已斷本際爲一切而有行已知本際是則爲慈哀
이미 자비에서 청정해지면 곧바로 괴로움과 즐거움에도 평등해져서,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上]이라고 합니다.[18]
이미 진실한 바탕[本]에 들어갔으므로 법을 닦는 사람은 고요하고 또 고요하니, 말을 하든지 말을 안 하든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법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고요하여 바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19]
공중(空中)의 소리는 얻을 수 없습니다. 단지 듣기만 할 뿐 설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설하는 일과 듣는 일은 다 진실하지 못합니다.[20]”
009_1428_c_14L已淨於慈便等於亦不喜亦不憂所已者是爲上已入本故法學者寂而寂若說不說無所增減法者所以故寂而無悕望空中之聲而不可獲但可聞無所說若所說若所聞皆不誠
이 소리를 들었을 때 8천 보살이 모두 다 무생법인[無所從生法樂忍]을 얻었다.
009_1428_c_19L聞是音時八千菩薩悉得無所從生法樂
제무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찬탄하는 소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提無離菩薩問佛是歎聲從所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돈진다라왕에게 묻는다면 그대를 위하여 스스로 다 말해 주리라. 만일 설해준다면 잘 받들어 듣도록 하여라.”
009_1428_c_21L佛語若問伅眞陁羅王悉自爲若說之
제무리보살은 곧 돈진다라왕에게 물었다.
“이 찬탄하는 소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009_1428_c_22L應時受言便問伅眞陁羅是歎聲所從出
돈진다라왕이 곧 답했다.
“모든 사람의 소리에서 나왔습니다.”
則答言從一切人聲從彼出
제무리보살이 다시 물었다.
“모든 사람의 소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009_1428_c_24L一切人聲從所出
돈진다라왕이 답했다.
“허공에서 나왔습니다.”
從空出
009_1429_a_02L제무리보살이 말했다.
“돈진다라여, 모든 사람의 소리는 뜻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009_1429_a_02L提無離菩薩則言伅眞陁羅一切人聲不從意出
돈진다라는 제무리보살에게 되물었다.
“이 소리는 몸에서 나오겠습니까, 마음에서 나오겠습니까?”
009_1429_a_04L伅眞陁羅復問提無離菩薩聲當從身出爲從心出
제무리보살이 말했다.
“몸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 몸은 영원히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풀이 영원히 살지 못하고, 담장이 영원히 머물지 못하여 때가 오면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마음은 형상이 없으므로, 볼 수도 없고 들리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으니 마치 환술(幻術)과 같습니다.”
009_1429_a_05L提無離言不從身出亦不從心出何以故其身不常住故譬若草不常生若牆壁不常而住會有僻時其心無有形亦不可見亦不可聞亦不可聽譬若如幻
돈진다라는 다시 제무리에게 물었다.
“만일 소리가 몸에서도 나오지 않고 마음에서도 나오지 않는다면, 이 소리는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009_1429_a_09L伅眞陁羅復問提無離若無有身是聲何從得出
제무리보살이 바로 답했다.
“일체는 생각을 따라 자연히 소리가 있습니다. 마치 당신이 말하는 소리가 생각을 따라서 곧바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내가 찬탄한 소리는 공(空)을 근거로 나왔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소리는 공(空)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009_1429_a_11L則答言一切從念自然而有聲如仁說聲從念便有我歎聲因空而出所已故諸聲不離空故
돈진다라가 말했다.
“만일 당신이 소리를 알고자 한다면 소리는 공을 근거로 자연히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소리만 들릴 뿐 볼 수가 없으며 곧 사라져버립니다. 그 사라짐도 공(空)이므로 자연이라고 합니다.
모든 법이 평등한 까닭은 공(空)과 같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일이 있거나 말하는 일이 없을지라도 역시 평등합니다. 그 이유는 공(空)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일체 모든 법은 단지 듣기만 할 뿐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듣는 법도 소리만 들을 뿐 그 법을 보지 못합니다. 법을 소리에서 볼 수 없는 것처럼 이 소리도 법에 나타나지 않으니, 모든 법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들리는 소리도 교묘한 방편으로 분명하게 들을 수 있고, 들리지 않은 소리도 교묘한 방편의 지혜로 아니, 곧바로 법에 바랄 일이 없는 것입니다.
009_1429_a_14L伅眞陁羅則言如仁欲知聲者皆因空自然有聲但聞音而不可見卽時滅其滅者亦空故曰自然諸法所以等者如空等故其有所說無所說亦等所以者空等故一切諸法但可聞不可見其所聞法於聞不見其如法聲不見是聲亦於法不現法不可覺所以聞者已漚和拘舍羅故而可聞則亦無所聞已漚和拘舍羅知便於法無所悕望
009_1429_b_02L바랄 일이 없는 경지는 바로 견고한 요의(要義)입니다. 이 견고한 힘은 다시 약해지지 않고 곧바로 굳고 강하니 끊을 수가 없습니다. 끊을 수 없는 것은 생겨남이 없고, 생겨남이 없는 것은 매이는 곳이 없으며,매이는 곳이 없는 것은 곧 가볍고 편안한 경지입니다. 가볍고 편안한 경지는 곧 청정하고, 이미 청정한 것은 곧 번뇌의 더러움이 없으며, 이미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것은 지극히 밝습니다.
009_1429_a_23L無所悕望者是固要是固力不復羸便堅彊無有能斷無有能斷者無有生無有生者無所無所屬者便已輕已輕者便淨潔淨者便無垢已無法甚明甚朗
지극히 밝은 것은 마음의 바탕입니다. 마음의 바탕은 초월한 것[過]입니다. 그 초월이란 지식(知識)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뛰어넘으면 곧 생각[想]이 없습니다. 모든 생각을 뛰어넘으면 그 자리는 더욱 향상됩니다. 더욱 향상된 자리는 보살의 법인[菩薩忍]입니다. 이미 법인(法忍)을 얻은 이는 법의 도리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공(空)도 법의 도리로 알고 사람도 법의 도리로 압니다. 왜냐 하면 공도 또한 사람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공하다고 하겠습니까? 사람이 공하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는 경지[無想]도 법의 도리로 알고, 생각이 있는 경계[有想]도 법의 도리로 압니다. 왜냐 하면 생각이란 자연 그대로 생각[想]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원이 없는 경지[無願]도 법의 도리로 알고 소원이 있는 경계도 법의 도리로 압니다. 왜냐 하면 그 원하는 생각[願想]은 자연 그대로 원하는 바탕이 없기 때문입니다.
009_1429_b_04L甚明者是心本心本者爲過其過者知過已過者便無有想已過諸想其處轉上轉上者是菩薩忍已得忍者無所不忍亦忍空亦忍人何以故空亦不離人何所是空人則空忍於無想忍於有想所以故想者自然而無想亦忍無願亦忍有願所以故其願想自然無有願本
모든 법과 열반[泥洹]도 법의 도리로 생사에서 압니다. 왜냐 하면 나고 죽음은 꿈과 같기 때문입니다.
법인(法忍)을 체득한 보살은 유(有)와 무(無)를 의심하지 않으면서, 단 한 번의 생각으로 모든 사람을 알아봅니다. 법인을 얻었으므로, 일체 모든 법이 가는 곳도 없고, 오는 곳도 없음을 압니다. 모든 법이 다 머문 것을 알고 이미 법에 머문 사람은 모든 사람이 머무는 경계도 압니다.
009_1429_b_12L諸法泥洹亦復忍於生死所以故生死者譬若如夢菩薩得忍者不疑有無持一計而盡知一切人用得忍故知一切諸法亦無所亦無所來知諸法悉住已住於法知一切人亦住
이미 이 법에 들어가면 무생법인[無所從生法樂忍]이라고 하나, 단지 음성(音聲)만 있을 뿐입니다. 그 법인(法忍)도 역시 말할 경계가 없으니 말할 수 없으며, 그 바탕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매우 훌륭하시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법으로 사람들을 알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009_1429_b_17L已入是法者是爲無所從生法樂忍但有音聲其法忍亦無所語無可說其本者亦復不可佛者甚尊不可說法而令人得了
제무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참으로 시원합니다. 돈진다라의 설법은 미묘합니다. 심오한 법을 환하게 깨달아 법인(法忍)을 얻었으므로, 한 마디 한 마디가 대단히 훌륭하며, 지니고 들어간 법인도 매우 깊습니다.
부처님께 여쭙겠습니다. 이 왕이 이룩한 공덕은 과거에 몇 부처님을 섬겨 왔기에, 그 말하고 싶은 법을 마음대로 설할 수 있는 것입니까?”
009_1429_b_20L提無離菩薩白佛快哉伅眞陁羅所說微妙曉了知深法而得忍能有一一尊所有所入忍而甚深問佛是王所作功德已更幾佛其所欲自恣乃
009_1429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무리보살이여, 분명히 알아야 한다.모래 한 알을 한 불토(佛土)로 삼아 항하(恒河)의 모래를 다 가지고 저 별들을 남김없이 채울지라도 셀 수 있지만, 돈진다라가 받들어 섬겨온 부처님들은 셀 수가 없느니라.”
009_1429_c_02L佛語提無離菩薩可知洹河邊沙一沙爲一佛土盡索滿中星宿是數可知伅眞陁羅所供事佛其數不可
제무리보살이 돈진다라에게 물었다.
“받들어 섬겨온 부처님이 이렇게 많으니, 그 공덕을 다 합한다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높고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무슨 연유로 빨리 성불(成佛)하지 않았습니까?”
009_1429_c_05L提無離菩薩問伅眞陁羅所供事佛甚多乃爾合會功德甚大巍巍緣不疾成佛
돈진다라가 말했다.
“보살의 열 가지 일을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열 가지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여래를 받들어 섬기는 일이요, 둘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공덕을 쌓는 일이며, 셋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법을 배우면서 묻는 일이요, 넷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4선정(禪定)과 5신통(神通)을 아는 일이며, 다섯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모든 법을 보는 일이요, 여섯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널리 법을 설하려는 일이며, 일곱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모든 사람을 교화하려는 일이요, 여덟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언제나 법을 지키려는 일이며, 아홉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다 갖추려는 일이요, 열째는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상대를 감동시키면서 권장하고 돕고 교화하고 인도하려는 일입니다. 이것이 보살이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행하는 열 가지 일입니다.”
009_1429_c_07L伅眞陁羅則言菩薩用十事無有厭足何謂爲十供事怛薩阿竭而無厭足所作功德亦無厭學問法亦不厭足四禪五旬知亦不厭足視諸法亦不厭足欲廣說法亦不厭足欲教一切人亦不厭足常欲護法亦不厭足欲具足諸波羅蜜亦不厭足欲感動化道勸助亦不厭足是菩薩十不厭足
돈진다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위대한 보살[菩薩摩訶薩]들은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지닌다고 들었습니다. 이 삼매를 얻은 보살은 온갖 공덕의 보배를 다 갖추기 때문에 누가 어떤 법을 물을지라도 법을 자유자재하게 설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009_1429_c_16L伅眞陁羅問佛聞菩薩摩訶薩有三昧名曰寶如來其得是三昧者悉具足諸寶其問者所說法而自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말을 자세히 들어라.”
009_1429_c_18L佛言諦聽所說
돈진다라가 말했다.
“가르침을 받들어 듣고자 하오니, 말씀해 주옵소서.”
009_1429_c_19L伅眞陁羅言受教願聞之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을 끊임없이 받들면서 이 세 가지 일로 발심한다면, 곧바로 여든 가지 법보(法寶)가 있으리라.
009_1429_c_20L佛言菩薩不盡佛及法比丘用是三事發心便有八十法寶
009_1430_a_02L여든 가지 법보(法寶)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그 마음이 일체종지(一切種智:薩芸若)를 잊지 않는 보배요, 두 번째는 그 마음이 믿음을 버리지 않는 보배이며, 세 번째는 그 마음이 게으르지 않고 모든 공덕을 닦는 보배요, 네 번째는 그 마음이 견고한 서원(誓願)을 세워서 버리지 않는 보배이며, 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자기의 소유를 아낌없이 베풀어서남을 더욱 이롭게 하는 보배이니라.
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단지 보살행(菩薩行)만을 생각하는 보배요, 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몸을 장엄하여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일[身三事]을 범하지 않는 보배이며, 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깨끗하여 나쁜 말을 하지 않는 보배요, 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뜻을 장엄하여 나쁜 일을 생각하지 않는 보배이며, 열 번째는 그 마음이 미리 계법(戒法)으로 장엄하여 몸을 단속하면서 스스로 나쁜 일을 짓지 않고 남의 나쁜 점을 생각하지 않는 보배이니라.
009_1429_c_21L謂八十其心不忘薩芸若是則爲寶其心不捨信是則爲寶其心習諸功德不懈是則爲寶其心堅其願不捨是則爲寶其心所有施與無所愛惜而復增益是則爲寶其心所作但念菩薩是則爲寶其心莊嚴身不犯身三事是則爲寶其心淨者其語無惡是則爲寶其心莊心不念惡是則爲寶其心已戒莊嚴加身不欲不念人惡是則爲寶
열한 번째는 그 마음이 걸림 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보배요, 열두 번째는 그 마음이 인욕(忍辱)을 장엄하여 온갖 거슬리고 나쁜 경계를 참는 보배이며, 열세 번째는 그 마음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보살행(菩薩行)을 닦는 보배요, 열네 번째는 그 마음이 미움과 사랑을 뛰어나서 흔들림이 없는 보배이며, 열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견고하게 정진(精進)하여 게으르지 않는 보배이니라.
열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하는 일을 다 성취하려는 보배요, 열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사유(思惟:念)한 뜻을 행하여 바르게 지은 공덕을 잊지 않고, 보살의 일을 원만하게 갖추려는 보배이며, 열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이미 일으킨 선삼매(禪三昧)의 삼마월(三摩越)에서 하는 일이 자유로운 보배요, 열 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법을 구하여 모든 지혜와 합하려는 보배이며, 스무 번째는 그 마음이 들은 법을 익히고 외우면서 곧 정진으로 이어지는 보배이니라.
009_1430_a_08L其心無所罣㝵等一切人是則爲寶其心已忍辱爲莊嚴忍一切諸惡則爲寶其心不愛惜身壽命用菩薩故是則爲寶其心無所憎不搖動是則爲寶其心堅固精進而不懈怠是則爲寶其心所作皆欲成是則爲寶其心所念意行直所作不忘欲具足菩薩事是則爲寶其心禪三昧三摩越已發是所作便自在是則爲寶其心求法欲合會諸智是則爲寶其心所聞法而習誦便有精進是則爲寶二十
009_1430_b_02L스물한 번째는 그 마음이 설법하는 일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갖 원하여 구하는 욕망을 벗어난 보배요, 스물두 번째는 그 마음이 법에 허식(虛飾)이 없는 보배이며, 스물세 번째는 그 마음이 정도(正道)를 사유하고 행한 바가 일과 다르지 않는 보배요, 스물네 번째는 그 마음이 듣고 닦은 일을 들은 대로 진실하게 이루는 보배이며, 스물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충분히 지혜를 갖추고 외도의 가르침에 빠져들지 않는보배이니라.
스물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끝없는 사랑[慈]을 베풀면서 자신을 지키는 보배요, 스물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끝없는 대비[悲]를 행하여 일체를 평등하게 대하는 보배이며, 스물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끝없는 다른 사람과의 기쁨[護:喜]으로 법을 즐기는 보배요, 스물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끝없는 평등[捨]으로 모든 법을 살펴보는 보배이며, 서른 번째는 그 마음이 생사를 괴롭게 여기지 않으면서 공덕을 짓는 보배이니라.
009_1430_a_20L其心所說法無所悕望度諸求故是則爲寶其心於法無有虛飾是則爲寶心念正道所作如事是則爲寶心所聞所作如所聞用審故是則爲其心具足智慧已不隨他人教是則爲寶其心已無極慈而自護是則爲寶其心爲無極哀謂等一切故是則爲寶其心無極護已法自娛樂是則爲寶其心已無極等觀視諸法是則爲寶其心於生死不以爲勤苦已入功德故是則爲寶三十
서른한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사람을 교화하기 위하여 남을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는 보배요, 서른두 번째는 그 마음이 자신의 법을 모자라지 않게 남에게 나눠줘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보배이며, 서른세 번째는 그 마음이 큰 지혜로 깨치지 못한 법이 없고 신통으로 감동시키지 못할 일이 없는 보배요, 서른네 번째는 그 마음이 선지식(善知識:迦羅密)을 친근하여 듣고 배우고 묻지 않음이 없는 보배이며, 서른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나쁜 스승을 멀리 벗어나서 공덕을 닦는 보배이니라.
서른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일체와 평등하여 두 마음이 없는 이치를 닦는 보배요, 서른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생사가 바로 병임을 알고 곧 모든 사람의 뜻에 들어가는 보배이며, 서른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약사(藥師)가 되고 온갖 병을 치료하는 보배요, 서른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지혜 없는 이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법으로 상대를 존경하는 보배이며, 마흔 번째는 그 마음이 자신을 받들어 교만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참는 보배이니라.
009_1430_b_09L其心欲教一切人多念於人不自念是則爲寶其心不乏已法分與人令得而學是則爲寶其心以大智無所不曉有神足無所不感動是則爲寶其心而親近迦羅蜜所聞而學問是則爲寶其心遠離惡師而習功德是則爲寶其心等一切因是習無有二心是則爲寶其心知生死是則爲病便入一切人是則爲寶其心爲一切作藥而愈諸病是則爲寶其心不輕易無智者用法尊故是則爲寶其心不自貢高而忍一切是則爲寶四十
009_1430_c_02L마흔한 번째는 그 마음이 아첨하지 않는 보배요, 마흔두 번째는 그 마음이 들은 법을 잊지 않고 법에 머무는 보배이며, 마흔세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법을 다 지키면서 모든 부처님의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하는 보배요, 마흔네 번째는 그 마음이 은혜를 갚기 위하여 견고하고 두터운 정을 베푸는 보배이며,마흔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자신을 해친 사람이 있을지라도 되갚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보배이니라.
마흔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산수(山水)를 즐기면서 법을 청정하게 지키려는 보배요, 마흔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집을 떠나서 사문(沙門)이 되어 바른 법에 이르려는 보배이며, 마흔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도를 스스로 지극히 만족하게 여기고 자제(自制)하면서 나쁜 행위를 단속하는 보배요, 마흔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만족을 알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보배이며, 쉰 번째는 그 마음이 세상일에 만족해야만 법에서도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구할 수 있음을 아는 보배이니라.
009_1430_b_21L其心不諛諂是則爲寶其心所聞法不於法住故是則爲寶其心盡護諸法用念報諸佛恩故是則爲寶心欲報恩用堅固厚故是則爲寶其心若有侵者而不念報是則爲寶其心樂於山閒欲守法淨故是則爲其心常欲捨家欲作沙門至於正道故是則爲寶其心於道而自趣足自制而護惡是則爲寶其心知足令人各歡喜是則爲寶其心於世事知足者是爲不厭足於法則爲寶五十
쉰한 번째는 그 마음이 스스로 지키면서 온갖 시끄러운 일을 따르지 않는 보배요, 쉰두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공덕을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닦으면서 몸의 모든 모양에 종호(種好)를 갖추는 보배이며, 쉰세 번째는 그 마음이 만족하거나 싫증내지 않고 지혜를 닦아서 모든 사람의 의심을 결단(決斷)하려는 보배요, 쉰네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보배이며, 쉰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법을 생각하고 법을 설하여 법에서 떠나지 않는 보배이니라.
쉰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언제나 보살법(菩薩法:僧法)을 생각하면서 곧 물러남이 없는 보살의 법[阿惟越致僧]에 이르는 보배요, 쉰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계법을 생각하여 보살의 행에서 흔들리거나 떠나지 않는 보배이며, 쉰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보시를 생각하여 몸을 탐내지 않는 보배요, 쉰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항상 천상(天上)을 생각하여 곧 일생보처(一生補處)에 들어가는 보배이며, 예순 번째는 그 마음이 본 바탕을 다 알고 온갖 소유(所有)를 밝혀내는 보배이니라.
009_1430_c_10L其心自護不與衆鬧從事是則爲寶其心不厭足諸功德諸相具諸種好是則爲寶其心不厭足於智慧欲決一切人疑故是則爲寶其心常念佛不離佛故是則爲其心常念法所說不離法故則爲寶其心常念僧便至阿惟越致僧故是則爲寶其心常念戒動離菩薩是則爲寶其心常念施不貪身故是則爲寶其心常念天便入一生補處是則爲寶其心盡知本索曉諸所有是則爲寶六十
009_1431_a_02L예순한 번째는 그 마음이 법을 알고 법신(法身)을 무너뜨리지 않는 보배요, 예순두 번째는 그 마음이 작용하여 앎이 일과 다르지 않아서 모든 사람의 말하는 일을 다 아는 보배이며, 예순세 번째는 그 마음이 자유자재하게 알면서 모든 사람에게 법을 만족하게 베풀어주는 보배요, 예순네 번째는 그 마음이 총지법문(摠持法門:陀羅尼)을 체득하여 들은 법을잊어버리지 않는 보배이며, 예순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본래 진실한 법을 알고 온갖 존재가 자연 그대로 진실한 이치를 다 환하게 깨닫는 보배이니라.
예순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출세간의 지혜를 지키면서 그 식(識)이 환술(幻術)과 다르지 않다고 아는 보배요, 예순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진실한 법[審諦]을 배우고 진실한 법에서 해탈을 얻고 닦은 공덕을 무너뜨리지 않는 보배이며, 예순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법을 지키면서 사람이 자연 그대로 진실한 이치를 알려는 보배요, 예순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생사가 무상하고 괴롭다는 것을 알면서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는 보배이며, 일흔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법에 나의 실체가 없음을 보고 사람의 존재도 없음을 보는 보배이니라.
009_1430_c_21L其心知法不壞法身故是則爲寶其心所作知如事盡知一切人之所語則爲寶其心知自在飽滿一切人是則爲寶其心得陁鄰尼所聞法無所忘是則爲寶其心知本法所有自然悉曉了是則爲寶其心護慧知其識如幻是則爲寶其心學審諦從是而得脫不壞所作是則爲寶其心護法欲知人自然是則爲寶其心知無常苦生死於三界無所著是則爲寶其心視諸法無有我用無人故是則爲寶七十
일흔한 번째는 그 마음이 열반(涅槃)에 들어가서 본래부터 고요하고 또 고요한 이치와 일치한 보배요, 일흔두 번째는 그 마음이 텅 빈 경지[空]와 모양이 없는 경지[無相]와 소원이 없는 경지[無願]를 이미 벗어나고 해탈하여 열반문(涅槃門)에 가까운 보배이며, 일흔세 번째는 그 마음이 본래 생기지 않으므로, 생겨나는 일도 없고 무너지는 일도 없고 사라지는 일도 없는 자리에서 그대로 해탈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보배요, 일흔네 번째는 그 마음이 온갖 존재를 환영(幻影)ㆍ꿈ㆍ아지랑이ㆍ산울림ㆍ물 그림자처럼 알면서 바랄 일이 없는 경지가 견고한 보배요, 일흔다섯 번째는 그 마음이 기쁘게 12인연(因緣)을 알면서 집착하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보배이니라.
일흔여섯 번째는 그 마음이 무엇을 보든지 다 환하게 알면서 구하지도 않고 두 갈래 차별에 떨어지지도 않는 보배요, 일흔일곱 번째는 그 마음이 두 가지 일[二事]을 떠나서 한 일[一事]로 법을 다 아는 보배이며, 일흔여덟 번째는 그 마음이 모든 행을 원만하게 갖춰서 허망한 경계로 되돌아옴이 없이 온갖 모양과 이름[色名]에서 해탈하는 보배요, 일흔아홉 번째는 그 마음이 점차 진실한 경지에 가깝도록 이미 법을 갖춘 보배이며, 여든 번째는 그 마음이 37품(品)을 모으고 합해서 모든 법을 해탈하는 보배이니라.”
009_1431_a_10L其心入泥洹從本本寂復寂是則爲寶心知空無相無願已度於脫近泥洹是則爲寶其心無有生無有生無所壞無所滅其脫是者得忍是則爲寶其心知若幻如夢如野馬山中響如水中影已堅固無所悕望是則爲寶其心喜知十二因緣已去著斷之事是則爲寶其心所見悉曉而不求不墮二是則爲寶心不入二事以一事悉知法是則爲其心具足諸行而不轉還度於諸色名是則爲寶其心稍近已具法故是則爲寶其心合聚三十七品用度諸法故是則爲寶八十
009_1431_b_02L부처님께서 돈진다라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든 가지 일을 닦고 원만하게 갖춘다면, 곧바로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얻느니라.또 이미 이 삼매에 체득한 보살은 출세간의 보배[道寶]에도 머물지 않고 세간의 보배[欲寶]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009_1431_a_24L佛語伅眞陁羅已習是八十事而具足便得寶如來三昧已逮是三昧者於道寶欲寶無所住
세간의 보배[欲寶]는 무엇이며, 출세간의 보배[道寶]는 무엇인가?
세간의 보배는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의 보배이다.
사람들 가운데 존귀한 자와 제석(帝釋)ㆍ범천(梵天)ㆍ사천왕(四天王)ㆍ전륜성왕(轉輪聖王:遮迦越羅)과 존귀한 제후(諸侯)와 낱낱 세력가들은 천상(天上)과 천하(天下)에서 각기 존경을 받는 이들이다. 이들이 이 보배를 얻는다면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여기에서 기쁜 마음으로 보살이 되어 이것을 얻으려고 하므로, 이를 세간의 보배[欲寶]라고 한다.
009_1431_b_04L何謂欲寶何謂道寶寶者諸天及人人中之尊四天遮迦越羅若尊者諸侯其一一豪姓者於天上天下各自有尊已得者則不如驕自於是中悅心爲菩薩而欲得之是名曰欲寶
출세간의 보배[道寶]는 법으로 세속을 해탈하는 보배이다. 어떤 법으로 세속을 벗어나야 하는가? 바로 출세간의 법[道法]이니라. 그 이유는 원해서 하는 일이 출세간의 지혜를 따르기 때문이다.
출세간의 지혜는 불도[象道]의 법이다. 비유하면 크고 작은 냇물이 돌아가는 큰 바다와 같다. 또 모든 산 가운데 가장 높은 수미산(須彌山)과 수많은 별 가운데 가장 밝은 달과 온갖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해와 온갖 짐승 가운데 용맹이 뛰어난 사자와 모든 사람에게 으뜸으로 군림하는 왕과 도리천(忉利天)의 존귀한 제석(帝釋)과 여러 범천 가운데 홀로 높은 범천왕(梵天王)과 같다. 이렇게 이 출세간의 지혜가 모든 법보다 훌륭하므로 지혜의 왕이라고 한다. 세속을 벗어나려면 이 출세간의 지혜로 해탈하여 조용하고 편안한 도[安穩道]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009_1431_b_09L道寶者以法度何所法而度俗者則道法何以故欲之所作皆因慧慧者則象道之法譬如衆流皆歸於大海須彌者諸山中尊月者衆星中大明日者明於衆若師子諸獸中之猛如王於衆而爲上如釋於忉利而爲尊梵者於衆梵而獨高以是慧尊於諸法故曰智慧王所以其欲度者因是而得度安隱道故
마치 어둠을 밝히는 횃불처럼 그 작용은 대단히 용맹하여 온갖 마군(魔軍)을 항복시키는 것과 같다. 또 훌륭한 의사가 모든 약을 잘 조제하는 것과 같고, 뛰어난 스승이 온갖 일을 밝게 아는 것과 같다. 그리고 활을 가지고 목표물을 쏘면 그 화살이 명중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고, 역사(力士)가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할 곳을 공격하면 즉시 한 사람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이 지혜를 가지고 어두운 어리석음을 공격하면, 그 어리석음은 남김없이 다 사라지느니라. 왜냐 하면 온갖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009_1431_b_18L若冥持炬火而得明其作甚猛降伏衆魔作醫王調和諸藥曉知諸事若持弓弭箭在所射箭無所不入若力士持兵有所擊時無有全命者持是智慧擊於愚冥無有不盡者所以者何用去垢故
009_1431_c_02L그 마음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니, 다른 사람과 다투는 일이 없고 해칠 수도 없고 다른 사람과 원한을 맺는 일도 없느니라. 이는 해야 할 일을 최고의 경지[究竟]에 두었기 때문이며,그 출세간의 지혜가 진실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이루는 일과 하는 일의 능력이 지극히 진실하면 이를 고요한 마음의 경지[止意]라고 하며, 일체와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면 이를 인연을 끊었다고 하며, 신통[神足]이 온갖 공덕과 합하여 모이면 이를 뛰어난 작용[根]이라고 하느니라. 또 닦은 공덕이 뒤에 있으니 힘이라고 하며, 지혜가 없는 데서 지혜가 되니 깨달음이라고 하며, 다른 사람에게 길을 보이니 도(道)라고 하느니라.
009_1431_b_23L心而等無有異亦不與人有所諍無有能害者與人無有恨所作有究竟故其慧而忠質故能有所成作至是爲止意一切平等是爲斷因緣是神足合會諸功德是則爲根所作在後是則爲力於無智而爲智是則爲覺視人道徑者是則爲道
그리고 고요하고 또 고요하며 더욱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어두운 욕망을 밝혀서 어둠이 다 사라져 없어지면, 이를 밝음이라고 한다. 이는 밝음이 자연 그대로 진실하기 때문이다. 번뇌의 때가 없으므로 나머지를 깨끗이 씻어내고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욕망을 해탈하고 볼 수 없는 것은, 이미 모든 경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모든 경계가 없고 안이 고요함은, 이미 온갖 공(空)을 뛰어넘어 공에서 공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009_1431_c_07L已寂而向觀而觀於冥欲作明冥去是則爲明是明之自然故無有垢故能淨餘脫於欲故能脫餘欲不可見已度諸界故無有諸界內已寂已過諸空用入空故
이미 온갖 소견(所見)에서 떠난 것을 생각이 없다[無想]고 하며, 구하는 일 없이 고요한 것을 바라는 생각이 없다[無願想]고 하느니라. 이미 삼계(三界)를 해탈하여 모양에 모양이 없는 것을 모양[相]이라고 하니, 그 모양이 공(空)과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원하여 구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시(布施)라고 하니 나의 소유와 나의 소유가 아닌 것을 벗어나서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이것을 지계(持戒)라고 하니 나에 집착하여 머물지 않으며, 이것을 인욕(忍辱)이라고 하니 가질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며, 이것을 정진(精進)이라고 하니 더하고 덜함이 없으며, 이것을 선정(禪定)이라고 하니 처소(處所)를 알 수 없으며, 이것을 지혜(智慧)라고 하니 들어가야 할 일체의 경계를 다 출세간의 지혜로 들어가서 교묘한 방편[善巧方便]과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이를 비유하면 꿈과 같다. 이렇게 무아(無我)로 장엄하면 닦는 대로 다 공덕이 되어 이미 모두 벗어나서 머무는 일이 없느니라.”
009_1431_c_12L已離諸所見是則無想所求寂是則無願想已度三界已相無有相是爲相其相與空等故所以者何以無求故是則爲布施已度是我所非我所無希望是則爲戒我無所住是則爲忍無所持無所捨是則爲精進無所增是則爲禪不可知處所是則爲慧其所入一切皆慧之所入與漚和拘舍羅而相得故譬若如夢已無我爲莊嚴所作皆功德離無所住
009_1432_a_02L부처님께서 돈진다라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출세간의 보배이니라. 보살이 이 보배를 원만하게 갖춘다면, 곧바로 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를 얻으리라. 비유하면 큰 바다가 온갖 크고 작은 냇물을 다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진귀한 보배가 그 속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 보살이 이 삼매(三昧)를 얻고 곧 모든 사람을 받아들여서모든 법을 다 합하여 모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보배의 삼매는 온갖 보배 가운데 가장 밝은 보배로서, 온갖 보배의 근본이니라. 그러므로 삼보(三寶)의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은 알 길이 없느니라.”
009_1431_c_22L佛語伅眞陁羅是則慧寶菩薩已具足是者便逮寶如來三昧若大海悉含受衆流及寶其名寶悉從中生若菩薩得是三昧者便含受一切是爲合集諸法故是者衆寶之明是者衆寶之本以是故三寶衆不知
제무리(提無離)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돈진다라왕은 이미 이 삼매(三昧)를 얻었습니까?”
009_1432_a_05L提無離菩薩問佛伅眞陁羅王已逮得是三昧不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돈진다라에게 직접 물어 보라. 그러면 너에게 밝혀 주리라.”
009_1432_a_06L佛言自從伅眞陁羅而問爲而發遣
제무리(提無離)는 돈진다라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삼매를 얻었습니까?”
009_1432_a_07L提無離則問仁者已得是三昧
돈진다라가 답했다.
“이 삼매는 머문다는 생각이 없으므로, 마땅히 내가 얻었다고 할지라도 내가 얻은 것이 아니니, 이 삼매는 얻을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이 삼매는 또한 색(色)이 없으니, 색으로도 알 수 없고, 감각[痛痒:受]ㆍ상상[思想:想]ㆍ옮김[生死:行]ㆍ의식[識]으로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삼매는 색으로도 볼 수 없고 소리로도 들을 수 없습니다. 생기는 모양도 없고, 사라지는 모양도 없으며, 존재하는 모양도 없으니, 마땅히 생기는 모양과 사라지는 모양과 존재하는 모양으로 관찰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만일 나는 볼 수도 있고, 나는 관찰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면, 삼매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인연상(因緣想)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삼매는 인연상이 없고, 삼매는 모든 법과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모든 법과 평등하니, 나 또한 이와 같이 평등하고 모든 사람도 평등합니다.
009_1432_a_08L伅眞陁羅報言是三昧不作是住念當得我者不得我者是三昧無有能得者是三昧亦無有色不可知思想生死識亦不可知是三昧不可已色見亦不可聽聞亦無所生相亦無所盡相亦無所有相而可相相相亦不可觀亦不可視其言我能視我能觀不爲三昧何以故有因緣想故三昧者無有因緣想三昧者等諸法故已等諸法我亦如是一切人等人
왜냐 하면 일체와 평등하여 공하기 때문입니다.
삼매는 공상(空相)으로서 모든 사람은 모양이 없으니, 모양이 없는 자체가 바로 삼매상(三昧相)입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모양이 없으니, 바라는 모양이 없는 자체가 바로 삼매상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청정하니, 다 청정한 자체가 바로 삼매상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의 존재가 없으니, 나의 존재가 없는 것이 바로 삼매상입니다.
이 삼매상(三昧相)은 몸을 얻을 수도 없고, 접촉[細滑]할 수도 없으며, 마음을 쓸 수도 없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나는 법을 알고 법을 본다고 말할지라도 다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바라는 마음으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009_1432_a_18L何以故等一切空故三昧者空相一切人無有想無有想是三昧一切人無有願無有願是三昧相一切人悉淨悉淨是三昧相一切人無有我無有我是三昧相亦不可得亦不可得細滑亦不可得心其有說我知法我見法是皆不可得所以故不可從悕望得
009_1432_b_02L제무리(提無離)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돈진다라가 입은 옷과 따르는 여자들과 음악[伎樂]은 다 그 자신이 여색을 즐기는 방종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들어간 법이 얼마나 깊고 미묘하기에, 이렇게 법에 맞춰 마음대로 설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009_1432_b_02L提無離菩薩白佛伅眞陁羅所被服從婇女及妓樂已婬妷不知所入法甚深微妙所說自恣如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이미 출세간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서 교묘한 방편을 환하게 알고 있으므로, 그 도의 경지[道地]에서는 이와 같이 못할 일이 없느니라. 돈진다라가 거문고를 타면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70억의 긴나라[眞陁羅]와 30억의 건달바[揵陀羅]와 자기를 늘 따르는 8만 4천 부인들은 모두 다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보살은 출세간 지혜의 교묘한 방편으로, 이름과 아름다움을 성취하고 사람들의 높은 지위에 올라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근본이 되었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불을 지필 때 땔감[薪]을 더 넣지 않는다면 그 불은 오래지 않아 꺼져버린다는 것을 알리라. 이와 같이 혼자 사는 보살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될 수 없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사람들에게 이익을 베풀 수 있느니라. 큰불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마땅히 땔감을 더 넣어야 큰 광명을 밝힐 수 있는 것처럼 보살은 사람들을 땔감으로 삼아야만 비로소 큰 광명을 성취할 수 있느니라.”
009_1432_b_05L佛言菩薩已入深慧曉了漚和拘舍羅其道地如是無所不作伅眞陁羅所持琴而鼓之其音莫不而聞故七十億眞陁羅三十億犍陁自隨者八萬四千夫人悉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菩薩以是慧漚和拘舍羅便致名及美人而在尊位不可數人故爲作本如人作火不益知令滅不久菩薩而獨住者不能爲人作本以與人共乃能益人其欲作大火者當益其薪故能大明菩薩以人爲薪乃能成大之光明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그러면 보살은 아무리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지라도 사람들은 각각 보살행의 근본을 얻는 것이다.”
009_1432_b_16L佛言薩所受人多各各得本
제무리(提無離)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돈진다라는 어떻게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더없이 높고 바르고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내게 하는 것입니까?”
009_1432_b_17L提無離問佛伅眞陁羅何以故能持伎樂音而令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돈진다라(伅眞陀羅)와 건달바[犍陀羅]는 다들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각기 음악을 즐기면서 기뻐하느니라. 돈진다라는 그들의 환희에 벅찬 상태를 알고, 곧바로 부처님의 소리와 법의 소리와 승의 소리를 들려주느니라. 그러면 그들은 ‘오, 시원하구나, 장엄한 소리여, 더없이 훌륭한 공덕이여’라고 보살을 찬탄하면서, 마땅히 마음으로 일체종지(一切種智:薩芸若)를 익히는 것이다.
009_1432_b_19L佛言伅眞陁羅犍陁羅者悉樂於伎樂便以伎樂而樂之各得歡喜知得歡喜便令聞佛音聞法音聞僧音讚歎菩薩快其德極尊當以心習薩芸若
009_1432_c_02L그들은 단지 보시(布施)의 소리ㆍ지계(持戒)의 소리ㆍ인욕(忍辱)의 소리ㆍ정진(精進)의 소리ㆍ선정[一心]의 소리ㆍ지혜(智慧)의 소리를 들을 뿐이다.
이어 그들은 다 대자[慈]의 소리ㆍ대비[哀]의 소리ㆍ수희(隨喜:喜)의 소리ㆍ평등[捨]의 소리ㆍ4념처(念處:4意止)의 소리ㆍ4정근(正勤:4意斷, 4正斷)의 소리ㆍ4신족(神足:4如意足)의 소리ㆍ5무루근(無漏根)의 소리ㆍ5력(力)의 소리ㆍ칠각지(覺支:7菩提分)의 소리ㆍ8정도(正道:8聖道)의 소리ㆍ정(定:向)의 소리ㆍ관(觀:智慧)의 소리ㆍ선정해탈삼매(禪定解脫三昧:禪惟務三昧三摩越致)의 소리를 듣는다.
또 그들은무상(無常)의 소리ㆍ괴로움의 소리ㆍ무아(無我)의 소리ㆍ적정(寂靜)의 소리를 듣는다.
또한 그들은 공(空)의 소리ㆍ무상(無相:無想)의 소리ㆍ무원(無願)의 소리ㆍ무생(無生)의 소리ㆍ무소생(無所生:無起)의 소리ㆍ무생사(無生死:無行)의 소리를 듣는다.
009_1432_b_23L聞布施持戒忍辱精進一心智慧音慈哀護等意止意斷神足向觀禪惟務三昧三摩越皆聞是音無常無我亦復聞是音無想不願無生無所生無生死亦聞是音
그리고 그들은 보살장(菩薩藏) 총지법문(摠持法門:陀隣尼)의 소리ㆍ금강행삼매(金剛行三昧)의 소리ㆍ정수제법왕인해인삼매(淨水諸法王印海印三昧)의 소리ㆍ입일체제법자자제법삼매(入一切諸法自恣諸法三昧)의 소리ㆍ장엄삼매(莊嚴三昧)의 소리ㆍ보여래삼매(寶如來三昧)의 소리ㆍ보자연삼매(寶自然三昧)의 소리ㆍ지선삼매(知禪三昧)의 소리ㆍ환희삼매(歡喜三昧)의 소리ㆍ영지실작연화삼매(令地悉作蓮華三昧)의 소리ㆍ연화존삼매(蓮華尊三昧)의 소리ㆍ무소불변입삼매(無所不遍入三昧)의 소리ㆍ법지삼매(法池三昧)의 소리ㆍ기의차특삼매(其意差特三昧)의 소리ㆍ대전명삼매(大電明三昧)의 소리ㆍ사자명삼매(師子明三昧)의 소리ㆍ일명삼매(日明三昧)의 소리ㆍ무앙수인삼매(無央數因三昧)의 소리ㆍ이입본삼매(已入本三昧)의 소리ㆍ금강서삼매(金剛署三昧)의 소리ㆍ금강당번삼매(金剛幢幡三昧)의 소리ㆍ약금강삼매(若金剛三昧)의 소리ㆍ금강제삼매(金剛濟三昧)의 소리를 듣는다.
009_1432_c_04L復聞菩薩藏陁鄰尼金剛行三昧水諸法王印海印三昧入一切諸法自恣諸法三昧莊嚴三昧寶如來三寶自然三昧知禪三昧歡喜三昧令地悉作蓮華三昧蓮華尊三昧無所不遍入三昧法池三昧其意差特三大電明三昧師子明三昧日明三無央數因三昧已入本三昧金剛署三昧金剛幢幡三昧若金剛三昧金剛濟三昧
여지삼매(如地三昧)의 소리ㆍ약수미삼매(若須彌三昧)의 소리ㆍ약수미주삼매(若須彌住三昧)의 소리ㆍ명화삼매(明華三昧)의 소리ㆍ기심자자삼매(其心自恣三昧)의 소리ㆍ지일체입삼매(知一切入三昧)의 소리ㆍ일체행기지인시삼매(一切行其地因是三昧)의 소리ㆍ심심전삼매(甚深全三昧)의 소리ㆍ무앙수설법삼매(無央數說法三昧)의 소리ㆍ개명삼매(開冥三昧)의 소리ㆍ지일체인심행삼매(知一切人心行三昧)의 소리ㆍ소락삼매(所樂三昧)의 소리ㆍ생순삼매(生旬三昧)의 소리ㆍ항복마삼매(降伏魔三昧)의 소리ㆍ현제색삼매(現諸色三昧)의 소리ㆍ각입기음삼매(各入其音三昧)의 소리ㆍ실지일체인신삼매(悉知一切人身三昧)의 소리ㆍ법행삼매(法行三昧)의 소리ㆍ혜지수삼매(慧地首三昧)의 소리ㆍ지수삼매(地首三昧)의 소리ㆍ견제소유삼매(見諦所有三昧)의 소리ㆍ해제박삼매(解諸縛三昧)의 소리ㆍ실입제인연삼매(悉入諸因緣三昧)의 소리를 듣는다.
009_1432_c_14L如地三昧若須彌三昧若須彌住三昧明華三昧其心自恣三知一切人三昧一切所行其地因是三昧甚深全三昧無央數說法三開冥三昧知一切人心行三昧樂三昧生旬三昧降伏魔三昧現諸色三昧各入其音三昧悉知一切人身三昧法行三昧慧地首三昧地首三昧見諦所有三昧解諸縛三昧入諸因緣三昧
佛說伅眞陁羅經卷上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보시 이하부터 열두 번째의 지혜까지가 원문에는 하나의 번호로 되어 있으나, 뒤에 이것에 대한 대답을 한 부분과 맞추기 위해서 이렇게 하나하나의 번호를 부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