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4_0989_a_01L대지도론 제49권
014_0989_a_01L大智度論釋發趣品第二十卷四十九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014_0989_a_02L龍樹菩薩造
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


20. 발취품(發趣品)을 풀이함①

【경】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가느냐고 물었는데, 만일 보살마하살이 6바라밀을 행할 때에 한 지위[地]로부터 다시 다른 지위에 이른다면 그것을 보살마하살이 대승으로 나아간다고 하느니라.”
014_0989_a_04L【經】佛告須菩提汝問云何菩薩摩訶薩大乘發趣若菩薩摩訶薩行六波羅蜜時從一地至一地是名菩薩摩訶薩大乘發趣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한 지위로부터 다시 다른 지위에 이르게 되는지요?”
014_0989_a_08L須菩提白佛言世尊何菩薩摩訶薩從一地至一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의 오고 가는 모양도 없고, 또한 어떠한 법도 오거나 가거나 이르거나 이르지 않거나 하는 것도 없는 줄 아나니, 모든 법의 모양은 소멸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모든 지(地)에 대하여 기억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지의 업[地業]을 닦고 다스리며, 또한 그 지를 보지도 않느니라.
014_0989_a_09L佛言菩薩摩訶薩知一切法無來去相無有法若來若去若至若不至諸法相不滅故菩薩摩訶薩於諸地不念思惟而修治地業亦不見地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초지(初地)에 머물러 있을 때에 열 가지의 일을 행하느니라. 첫째는 깊은 마음이 견고하나니, 그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동등한 마음을 지니나니 중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셋째는 보시를 하나니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넷째는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면서도 또한 교만해지지 않으며, 다섯째는 법을 구하나니 온갖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014_0989_a_13L何等菩薩摩訶薩治地業菩薩摩訶薩住初地時行十事一者深心堅固是不可得故二者於一切衆生中等心衆生不可得故三者布施與人受人不可得故四者親近善知識亦不自高五者求法一切法不可得故
014_0989_b_01L여섯째는 항상 출가(出家)하나니 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부처님의 몸을 좋아하나니 상호(相好)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법의 가르침을 널리 펴내나니 모든 법의 분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아홉째는 교만의 법을 깨뜨리나니 법(法)과 생함[生]과 지혜[慧]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열째는 진실한 말을 하나니 모든 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초지 가운데에 머물러서 열 가지 일을 닦으며 지업(地業)을 다스리느니라.
014_0989_a_19L六者常出家家不可得故七者愛樂佛身相好不可得故八者演出法敎諸法分別不可得故九者破憍慢法生慧不可得十者實語諸語不可得故菩薩摩訶薩如是初地中住修治十事治地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2지(地) 안에 머무를 때에 항상 여덟 가지의 법을 염(念)하느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계율[戒]이 청정한 것이요, 둘째는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것이며, 셋째는 인욕(忍辱)에 머무르는 것이요, 넷째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며, 다섯째는 온갖 중생들을 버리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대비(大悲)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며, 일곱째는 스승을 믿고 공경하면서 물어 가르침을 받는 것이요, 여덟째는 모든 바라밀을 힘써 구하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2지 안에 머무르면서 온전히 갖추어야 할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014_0989_b_03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二地常念八法何等八一者戒淸淨知恩報恩三者住忍辱四者受歡五者不捨一切衆生六者入大悲七者信師恭敬諮受八者勤求諸波羅蜜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二地中應滿足八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3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다섯 가지 법을 행하느니라. 무엇이 다섯 가지 법이냐 하면, 첫째는 많이 배우고 물으면서 만족해하지 않고, 둘째는 청정하게 법을 보시하면서 또한 교만해지지 않으며, 셋째는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하면서 또한 교만해지지 않으며, 넷째는 세간의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으며, 다섯째는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3지 안에 머무르면서 온전히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014_0989_b_09L復次須菩提薩摩訶薩住三地中行五法何等五一者多學問無厭足二者淨法施亦不自高三者莊嚴佛國土亦不自高受世閒無量勤苦不以爲厭五者住慚愧處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三地中應滿足五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4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열 가지의 법을 받아 행하고 버리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 법이냐 하면, 첫째는 아련야(阿練若)의 처소1)를 버리지 않고, 둘째는 욕망이 적으며, 셋째는 만족할 줄을 알며, 넷째는 두타(頭陀)의 공덕을 버리지 않으며, 다섯째는 계율[戒]을 버리지 않으며, 여섯째는 모든 욕망을 더럽게 여기며, 일곱째는 세간을 싫어하는 마음을 지니며, 여덟째는 온갖 가진 것을 버리며, 아홉째는 마음이 침몰하지 않으며, 열째는 온갖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4지 안에 머무르면서 버리지 않는 열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014_0989_b_15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四地中應受行不捨十法何等十一者不捨阿練若住處二者少欲三者知足四者不捨頭陁功德五者不捨戒六者穢惡諸欲厭世閒心八者捨一切所有九者不沒十者不惜一切物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第四地中不捨十法
014_0989_c_01L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5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열두 가지의 법을 멀리 여의느니라. 무엇이 열두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속인과 가까이하는 일을 멀리 여의고, 둘째는 비구니(比丘尼)를 멀리 여의며, 셋째는 다른 이의 집에 대한 간탐을 멀리 여의며, 넷째는 무익한 담론(談論)을 멀리 여의며, 다섯째는 성내는 일을 멀리 여의느니라.
014_0989_b_22L須菩提菩薩摩訶薩住五地中遠離十二法何等十二一者遠離親白二者遠離比丘尼三者遠離慳惜他家四者遠離無益談處五者遠離瞋恚
여섯째는 자기 자신이 위대한 척하는 일을 멀리 여의며, 일곱째는 남을 멸시하는 일을 멀리 여의고, 여덟째는 10불선도(不善道)를 멀리 여의며, 아홉째는 크게 잘난 체하는 일을 멀리 여의고, 열째는 스스로 쓰는 일을 멀리 여의며, 열한째는 뒤바뀐 일을 멀리 여의고, 열두째는 음욕[婬]ㆍ성냄[怒]ㆍ어리석음[癡]을 멀리 여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5지 안에 머무르면서 멀리 여의는 열두 가지의 일이라 하느니라.
014_0989_c_04L六者遠離自大七者遠離蔑人八者遠離十不善道九者遠離大慢十者遠離自用十一者遠離顚倒二者遠離婬須菩提是爲菩薩摩訶薩住五地中遠離十二事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6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여섯 가지의 법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여섯 가지의 법이냐 하면, 이른바 6바라밀이니라.
다시, 하지 않아야 할 여섯 가지의 법이 있느니라. 무엇이 여섯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짓지 않고, 둘째는 보시하면서 근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구한 바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위축되지 않고, 넷째는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다 보시하며, 다섯째는 보시한 뒤에는 마음에 뉘우치지 않고, 여섯째는 깊은 법을 의심하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6지 안에 머무르면서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의 법이요 멀리 여의어야 할 여섯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014_0989_c_08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六地中當具足六法何等六所謂六波羅蜜復有六法所不應爲何等六一者不作聲辟支佛意二者布施不應生憂心三者見有所索心不沒四者所有物布施五者布施之後心不悔六者疑深法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六地中應滿具六法遠離六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7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스무 가지의 법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엇이 스무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나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둘째는 중생(衆生)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셋째는 수명(壽命)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넷째는 무리의 수[衆數] 내지 아는 자[知者]와 보는 자[見者]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다섯째는 단견(斷見)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014_0989_c_16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七地中二十法所不應著何等二十一者著我二者不著衆生三者不著壽命四者不著衆數乃至知者見者五者不著斷見
여섯째는 상견(常見)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일곱째는 상(相)을 짓지 않아야 하며, 여덟째는 원인[因]에 대한 견해를 짓지 않아야 하고, 아홉째는 이름과 물질[名色]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열째는 5중(衆)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014_0989_c_21L六者不著常見七者不應作相八者不應作因見九者不著名十者不著五衆
014_0990_a_01L열한째는 18계(界)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열두째는 12입(入)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열셋째는 삼계(三界)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열넷째는 집착할 곳[著處]을 만들지 않아야 하며, 열다섯째는 바라는 곳[所期處]을 짓지 않아야 하느니라.
014_0989_c_23L十一者不著十八十二者不著十二入十三者不著三界十四者不作著處十五者不作所期處
열여섯째는 의지하는 곳[依處]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열일곱째는 부처님을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열여덟째는 가르침[法]에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열아홉째는 승가[僧]에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스무째는 계율을 의지하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아야 할 스무 가지의 법이니라.
014_0990_a_03L十六者不作依處十七者著依佛見十八者不著依法見十九不著依僧見二十者不著依戒見是二十法所不應著
다시 스무 가지의 법이 있나니, 두루 갖추고 원만하게 하여야 하느니라. 무엇이 스무 가지의 법이냐 하면, 첫째는 공(空)을 구족해야 하고, 둘째는 무상(無相)을 증득하여야 하며, 셋째는 무작(無作)을 알아야 하고, 넷째는 3분(分)이 청정하여야 하며,2) 다섯째는 온갖 중생 가운데에서 자비(慈悲)와 지혜를 구족해야 하느니라.
014_0990_a_06L復有二十法應具足滿何等二十一者具足空二者無相證三者知無作四者三分淸淨五者一切衆生中具足慈悲智
여섯째는 온갖 중생들을 염(念)하지 않아야 하고, 일곱째는 온갖 법의 동등함을 관하되 이에 대해서도 집착하지도 않아야 하며, 여덟째는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알되 이 일도 또한 염(念)하지 않아야 하며, 아홉째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갖추어야 하며, 열째는 무생지(無生智)를 갖추어야 하느니라.
014_0990_a_09L六者不念一切衆生七者一切法等觀中亦不著八者知諸法實相是事亦不念九者無生法忍十者無生智
열한째는 모든 법은 한 모양[一相]임을 말해야 하고, 열두째는 분별하는 모양을 깨뜨려야 하며, 열셋째는 기억하는 생각을 변하게 해야 하며, 열넷째는 견해를 변하게 해야 하며, 열다섯째는 번뇌를 변하게 해야 하느니라.
014_0990_a_12L一者說諸法一相十二者破分別相十三者轉憶想十四者轉見十五者轉煩惱
열여섯째는 정혜(定慧)가 동등한 자리이어야 하며, 열일곱째는 뜻이 조복되어야 하며, 열여덟째는 마음이 고요히 사라져야 하며, 열아홉째는 막힘없는 지혜[無礙智]를 얻어야 하며, 스무째는 애욕에 물들지 않아야 하나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7지 가운데 머무르면서 구족해야 할 스무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014_0990_a_15L十六者等定慧地十七者調十八者心寂滅十九者無碍智十者不染愛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七地中應具足二十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8지(地) 안에 머물러서 다시 다섯 가지의 법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다섯 가지 법이냐 하면, 중생의 마음에 따라 들어가고, 모든 신통에 유희하며, 모든 부처님의 나라를 관찰하고, 보게 된 부처님의 국토와 같이 자신의 국토를 장엄하며, 여실히 부처님의 몸을 관하면서 스스로 부처님 몸을 장엄하는 것이니, 이것을 두루 갖추고 원만하게 하는 다섯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014_0990_a_18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八地中應具足五法何等五順入衆生心戲諸神通觀諸佛國如所見佛國莊嚴其國如實觀佛身自莊嚴佛身是名五法具足滿
014_0990_b_01L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8지(地) 안에 머물러서 다시 다섯 가지의 법을 두루 갖추느니라. 무엇이 다섯 가지냐 하면, 위아래의 모든 근기를 알고,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여환삼매(如幻三昧)3)에 들어가고, 항상 삼매(三昧)에 들어가며, 중생에게 알맞은 선근(善根)에 따라 몸을 받나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8이지 안에 머무르면서 두루 갖출 다섯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014_0990_a_23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八地中復具足五法何等五知上下諸根淨佛世界入如幻三昧常入三昧隨衆生所應善根受身菩提是爲菩薩摩訶薩住八地中具足五法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제9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열두 가지의 법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열두 가지냐 하면, 끝이 없는 세계에서 제도할 바의 몫을 받고, 보살로서 원한 바를 그대로 얻으며,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의 말을 알아듣고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며, 태(胎) 안에 드는 일을 성취하며, 집안에 대한 일을 성취하며, 태어날 바의 일을 성취하며, 성바지의 일을 성취하며, 권속에 대한 일을 성취하며, 태어나는 일을 성취하며, 출가하는 일을 성취하며, 불수(佛樹)를 장엄하는 일을 성취하며, 온갖 모든 착한 공덕을 원만하게 이루면서 두루 갖추는 것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제9지 안에 머무르면서 구족해야 할 열두 가지의 법이라 하느니라.
014_0990_b_05L復次須菩提菩薩摩訶薩住九地中應具足十二法何等十二無邊世界所度之分菩薩得如是願知諸天夜叉犍闥婆語而爲說法處胎成就家成就所生成就姓成就眷屬成就出生成就出家成就莊嚴佛樹成就一切諸善功德成滿具足須菩提是名菩薩摩訶薩住九地中應具足十二法
수보리야, 10지(地)의 보살은 부처님과 같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014_0990_b_13L須菩提十地菩薩當知如佛
그때에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깊은 마음으로 지의 업[地業]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살바야(薩婆若)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선근(善根)을 쌓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깊은 마음으로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014_0990_b_14L爾時慧命須菩提白佛言云何菩薩摩訶薩深心治地業菩薩摩訶薩應薩婆若心集諸善是名菩薩摩訶薩深心治地業
“어떻게 보살은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동등한 마음을 지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4무량심(無量心), 이른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내면 이것을 온갖 중생들에 대하여 동등한 마음을 지닌다 하느니라.”
014_0990_b_17L何菩薩於一切衆生中等心佛言菩薩摩訶薩應薩婆若心生四無量所謂慈是名於一切衆生中等心
“어떻게 보살은 보시(布施)를 닦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온갖 중생에게 베풀어 주되 분별함이 없나니, 이것을 보시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014_0990_b_21L云何菩薩修布施佛言菩薩施與一切衆生無所分別是名修布
014_0990_c_01L“어떻게 보살은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살바야 안에 들어가 머무르게 해주는 이러한 선지식을 친하게 가까이하면서 물어 그 가르침을 받고 공경하며 공양한다면, 이것을 선지식을 가까이한다 하느니라.”
014_0990_b_23L云何菩薩親近善知識佛言能敎入薩婆若中住如是善知識親近恭敬供養是名親近善知識
“어떻게 보살은 법을 구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법을 구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나니, 이것을 법을 구한다 하느니라.”
014_0990_c_02L云何菩薩求法佛言若菩薩應薩婆若心求法不墮聲聞辟支佛地是名求法
“어떻게 보살은 항상 출가(出家)하여 지의 업[地業]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세상마다 뒤섞이지 않는 마음으로 불법 안에 출가하되 장애하는 것이 없나니, 이것을 항상 출가하여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014_0990_c_04L云何菩薩常出家治地業佛言菩薩世世不雜心佛法中出家無能障礙是名常出家治地業
“어떻게 보살은 부처님 몸을 좋아하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이 부처님의 몸의 모양[身相]을 뵙고서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부처님에 대한 염(念)을 여의지 않는다면, 이것을 부처님 몸을 좋아하면서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014_0990_c_07L云何菩薩愛樂佛身治地業佛言若菩薩見佛身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終不離念佛是名愛樂佛身治地業
“어떻게 보살은 교법을 널리 펴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부처님이 현재 계시거나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 뒤이거나 간에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되 처음도 중간도 나중도 좋으며 묘한 이치와 좋은 말로써 정결하고도 순수하고 완전히 갖추나니, 이른바 수투로(修妬路)에서 우바제사(優婆提舍)까지이니라. 이것을 교법을 널리 펴면서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014_0990_c_10L云何菩薩演出法敎治地業佛言菩薩佛現在若佛滅度後爲衆生說法後善妙義好語淨潔純具所謂修妒路乃至優婆提舍是名演出法敎治地業
“어떻게 보살은 교만을 깨뜨리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이 교만을 깨뜨리는 까닭에 끝내 하천(下賤)한 집에 태어나지 않나니, 이것을 교만을 깨뜨리면서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014_0990_c_15L云何菩薩破於憍慢治地業佛言菩薩破是憍慢故終不生下賤是名破於憍慢治地業
“어떻게 보살은 진실한 말로써 지의 업을 다스리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말씀한 바대로 그 말씀을 따라 행하나니, 이것을 진실한 말로써 지의 업을 다스린다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초지(初地) 안에 머물러 열 가지의 일을 수행하면서 지의 업을 다스리는 것이니라.”
014_0990_c_17L云何菩薩實語治地業佛言菩薩如所說隨說是名實語治地業是爲菩薩摩訶薩住初地中修行十事治地業
【논】해석한다. 수보리는 위에서 마하연(摩訶衍)을 물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갖가지로 마하연의 모양[相]을 대답하셨고, 또한 위에서는 대승으로 나아가는 일을 물었는데 이제는 대승으로 나아가는 모양을 대답하신다.
014_0990_c_20L【論】釋須菩提上問摩訶衍佛種種答訶衍相上又問發趣大乘今答趣大乘相
014_0991_a_01L보살마하살은 이 승(乘)에 올라 모든 법은 본래부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움직임도 없고 일으킴도 없어서 법의 성품[法性]이 항상 머무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정진바라밀과 방편의 힘 때문에 도리어 모든 착한 법을 닦고 다시금 수승한 지위[勝地]를 구하면서도 그 지위의 모양을 취하지도 않고 또한 그 지위를 보거나 하지도 않는다.
014_0990_c_23L菩薩摩訶薩乘是乘知一切法從本已來不來不去無動無發法性常住故又以大悲心故精進波羅蜜故方便力故還修諸善法更求勝地而不取地相亦不見此地
【문】당연히 대승으로 나아감을 대답해야 되시거늘 어찌하여 지(地)로 나아가는 일을 말씀하시는가?
014_0991_a_04L問曰應答發趣大乘何以說發趣地
【답】대승(大乘)이 곧 지(地)이다. 지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초지(初地)로부터 2지(地)에 이르는 이것을 나아간다[發趣]고 한다. 비유컨대 마치 말을 타고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는 말을 버리고는 코끼리를 타며, 다시 코끼리를 타고 용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는 코끼리를 버리고는 용을 타는 것과 같다.
014_0991_a_05L答曰大乘卽是地地有十分從初地至二是名發趣譬如乘馬趣象捨馬乘乘象趣龍捨象乘龍
【문】이 가운데에서 무엇이 10지(地)인가?
014_0991_a_08L問曰此中是何等十地
【답】지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단지 보살만의 지[菩薩地]요 둘째는 공통되는 지[共地]이다.
014_0991_a_09L答曰地有二種一者但菩薩地二者共地
공통되는 지라 함은, 이른바 간혜지(乾慧地)에서 불지(佛地)까지이다. 단지 보살만의 지란, 환희지(歡喜地)ㆍ이구지(離垢地)ㆍ유광지(有光地)ㆍ증요지(增曜地)ㆍ난승지(難勝地)ㆍ현재지(現在地)ㆍ심입지(深入地)ㆍ부동지(不動地)ㆍ선근지(善根地)ㆍ법운지(法雲地)이니, 이 지에 대한 모양은 『십지경(十地經)』 가운데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991_a_10L共地者所謂乾慧地乃至佛地但菩薩地者歡喜地離垢有光地增曜地難勝地現在地入地不動地善根地法雲地此地相如『十地經』中廣說
초지에 든 보살은 열 가지의 법인 깊은 마음[深心]에서 진실한 말[實語]에 이르기까지를 수행해야 된다. 수보리는 비록 알고 있지만, 중생들의 의심을 끊어 주기 위하여 짐짓 세존께 묻기를 “무엇이 깊은 마음인지요?”라고 하니, 부처님은 대답하시되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모든 선근을 쌓는 것이니라.”고 하신다.
014_0991_a_14L入初地菩薩應行十法深心乃至實語須菩提雖知斷衆生疑故問世尊云何是深心應薩婆若心集諸善根
살바야의 마음[薩婆若心]이라 함은, 보살마하살이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뜻을 일으키면서 원을 세우되 “나는 미래 세상에 부처님이 되리라.”고 하는 것이니,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意]이 곧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이다.
014_0991_a_17L薩婆若心菩薩摩訶薩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意作是願我於未來世當作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意卽是應薩婆若心
상응한다[應] 함은, 마음을 매어 두면서 “나는 부처님이 되리라.”고 하는 원이다. 만일 보살이 근기가 영리하고 크게 복덕을 쌓았으며 모든 번뇌가 엷어지고 과거의 죄업이 적어졌으면 뜻을 일으키자마자 바로 깊은 마음을 얻게 된다.
014_0991_a_21L繫心願我當作佛若菩薩利根大集福德諸煩惱薄去罪業少發意卽得深心
014_0991_b_01L깊은 마음[深心]이라 함은, 깊이 부처님의 도를 좋아하면서 세상마다 세간에 대한 마음이 엷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이라 한다. 짓는 바의 온갖 공덕으로 보시하며,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는 등의 것으로써 이 세상과 뒷세상의 복락과 수명과 안온을 구하지 않고 단지 살바야만을 위할 뿐이다.
014_0991_a_23L深心樂佛道世世於世閒心薄是名應薩婆若心所作一切功德若布施若持若修定等不求今世後世福樂安隱但爲薩婆若
비유컨대 마치 간탐하는 사람은 인연이 없으면 한 푼도 베풀지 않고 탐내고 아끼고 쌓아 모으면서 더욱 불어나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복덕이 많거나 적거나 간에 그 밖의 일에는 향하지 않고 단지 사랑하고 아끼고 쌓아 모으면서 살바야에만 향할 뿐이다.
014_0991_b_04L譬如慳貪人無因緣乃至一錢不施貪惜積聚但望增長菩薩亦如是福德若多若少向餘事但愛惜積集向薩婆若
【문】이 보살은 아직 살바야를 모르고 그 맛[味]도 얻지 못했거늘 어떻게 깊은 마음을 얻겠는가?
014_0991_b_07L問曰是菩薩未知薩婆若不得其味云何能得深心
【답】나는 앞에서 이미 설명했다. 이 사람이 만일 근기가 영리하고 모든 번뇌가 희박하며 복덕이 순수하고 두터우며 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비록 아직 대승을 찬탄함을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물며 이미 들은 뒤이겠는가. 마치 마하가섭(摩訶伽葉)은 금빛 여인[金色女]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면서도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은 채 버리고 출가한 것과 같다.
014_0991_b_09L答曰我先已說此人若利諸煩惱薄福德純厚不樂世閒未聞讚歎大乘猶不樂世閒何況已如摩訶迦葉娶金色女爲妻心不愛樂棄捨出家
또한 장자(長子)의 아들 야사(耶舍)는 한밤중에 채녀(婇女)들이 모두 죽은 모습처럼 된 것을 보고 값이 십만 량이나 되는 보배 신을 강가에 벗어버리고는 곧장 건너가 부처님께로 나아갔다.
014_0991_b_13L又如耶舍長者子夜見衆婇女皆如死狀捨直十萬兩金寶屐於水岸邊直渡趣佛
이러한 등의 모든 귀인(貴人)과 국왕으로 5욕(欲)을 버린 이가 수 없거늘 하물며 보살이 부처님 도의 갖가지 공덕과 인연을 들으면서도 즉시 발심하여 깊숙이 들어가지 않겠는가.
마치 뒤의 「살타파륜품(薩陀波崙品)」 가운데에서 장자의 딸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말을 듣고는 즉시 집을 버리고 담무갈(曇無竭)에게로 나아간 것과 같다.
014_0991_b_15L如是等諸貴人國王厭捨五欲者無數況菩薩聞說佛道種種功德因緣不卽時發心深入如後「薩陁波崙品」長者女聞讚歎佛功德卽時捨家詣曇無竭所
014_0991_c_01L또한 신근(信根) 등의 5근(根)이 성취되고 순숙(純熟)해지는 까닭에 이 깊은 마음을 얻게 된다. 비유컨대 마치 어린아이가 눈 등의 다섯 감관이 아직 성취되지 못한 까닭에 5진(塵)을 구별하지 못하고 곱거나 추한 것도 모르는 것처럼, 신근 등의 5근이 아직 성숙되지 못한 이도 그와 같아서 선악(善惡)을 식별하지 못하고 속박과 해탈을 알지 못하며 5욕을 좋아하면서 삿된 견해에 빠지게 된다. 곧 신근 등의 5근이 성취된 이라야 비로소 선과 악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다.
014_0991_b_20L復次信等五根成就純熟故能得是深心譬如小兒眼等五情根未成就故不別五塵不識好醜信等五根未成就亦復如是不識善不知縛解愛樂五欲沒於邪見等五根成就者乃能識別善惡
10선도(善道)와 성문의 법조차도 오히려 좋아하거늘 하물며 위없는 도[無上道]인데 깊이 염(念)하지 않겠는가. 또한 처음에 위없는 도의 마음을 일으키면 이미 세간에서 맨 위가 되거늘 하물며 성취하는 일이겠는가.
014_0991_c_02L十善聲聞法猶尚愛樂況無上道而不深念初發無上道心已於世閒最上況成就
또한 보살은 비로소 반야바라밀의 기미(氣味)를 얻기 때문에 깊은 마음을 내게 된다. 마치 사람이 캄캄한 데에 갇혀 있을 적에 조그마한 틈으로부터 빛을 보게 되면 뛸 듯이 흥분하며 생각하기를 ‘여러 사람들 가운데 나만이 이러한 광명을 보았구나.’하며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이내 깊은 마음을 일으키며, 이 광명을 생각하면서 방편을 써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014_0991_c_05L復次菩薩始得般若波羅蜜氣味故能生深心如人閉在幽闇隙見光心則踊躍作是念言衆人獨得見如是光明欣悅愛樂卽生深心是光明方便求出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전생 업의 인연 때문에 12입(入)이란 무명(無明)의 캄캄한 감옥 속에 갇혀 있으면서 온갖 알거나 보는 것이 모두 허망하다가 반야바라밀을 듣고서야 조그마한 기미를 얻고는 깊이 살바야를 생각하기를 ‘나는 어찌 하면 이 6정(情)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모든 부처님이나 성인과 같이 될까?’라고 한다.
014_0991_c_09L菩薩亦如是宿業因緣故閉在十二入無明黑闇獄中所有知見皆是虛妄聞般若波羅蜜少得氣味深念薩婆若我當云何於此六情獄得出如諸佛聖人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서 원에 따라 행하게 되나니, 이 때문에 깊은 마음을 낸다. 깊은 마음이란, 온갖 법들 가운데에서 사랑할 것은 살바야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온갖 중생 가운데에서 사랑할 것은 부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으며, 또한 깊이 비심(悲心)에 들어가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니, 이러한 것 등을 깊은 마음의 모양이라 한다.
초지(初地)의 보살은 항상 이런 마음을 행해야 한다.
014_0991_c_13L復次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隨願所行是故生深心深心一切諸法中愛無如愛薩婆若一切衆生中愛無如愛佛又深入悲心利益衆生如是等名深心相初地菩薩應常行是心
일체 중생에 대한 동등한 마음이란, 보살이 이런 깊은 마음을 얻어서 일체 중생을 동등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중생은 항상 정(情)으로써 그 친한 것을 사랑하고 그가 미워하는 것을 싫어한다. 보살은 깊은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원수이거나 친한 이거나 동등하여 둘로 보지 않으니, 이 가운데서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동등한 마음이란 바로 4무량심(無量心)이니라.”고 하셨다.
이 보살은 중생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곧 사랑하고[慈] 기뻐하는[喜] 마음을 내며 원을 세우기를 “나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다 부처님의 즐거움을 얻게 하리라.”고 한다.
014_0991_c_18L一切衆生等心菩薩得是深心已等心於一切衆生衆生常情愛其所惡其所憎菩薩得深心故怨親平視之無二此中佛自說等心者無量心是菩薩見衆生受樂則生慈喜心作是願我當令一切衆生皆得佛樂
014_0992_a_01L만일 중생이 괴로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心]을 내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원을 세우기를 “나는 일체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리라.”고 하며, 만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不苦不樂] 중생을 보면 버리는 마음[捨心]을 내어 원을 세우기를 “나는 중생으로 하여금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게 해야 하리라.”고 한다. 4무량심의 그 밖의 이치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992_a_02L若見衆生受苦則生悲心愍之作是願我當拔一切衆生苦若見不苦不樂衆生則生捨心作是願我當令衆生捨愛憎心四無量心餘義先說
버리는 마음이라고 함은, 버림[捨]에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재물을 버려 보시를 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번뇌[結]를 버려 도(道)를 얻는 것이다. 이 간탐을 없앰으로써 버림으로 삼는 것은 두 번째의 번뇌를 버리게 하는 인연이 되어 주니, 제7지(地) 안에 이르러야 비로소 번뇌를 버릴 수 있다.
014_0992_a_06L捨心捨有二種一者捨財行二者捨結得道此以除慳爲捨第二捨結作因緣至七地中乃能捨
【문】버리는 모양[捨相]에는 안과 바깥과 가볍고 무거운 것과 재물의 보시와 법의 보시와 세간과 출세간(出世間) 등 갖가지가 있거늘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단지 분별과 생각이 없는 출세간의 보시만을 말씀하시는가?
014_0992_a_09L問曰捨相有種種內外輕重財施法施世閒出世閒等佛何以故但說無分別憶想出世閒施
【답】보시에는 비록 갖가지 모양이 있다 하더라도 단지 큰 것만을 말씀하시고 모양을 취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부처님은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으시며, 또한 이로써 보살에게 보시를 가르치면서 부처님 법에서와 같이 집착하지 않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가운데에서는 분별이 없는 보시를 자세히 설명하셔야 한다. 그 밖의 보시하는 모양은 곳곳에서 갖가지로 이미 말씀하셨다.
014_0992_a_11L答曰布施雖有種種相但說大者不取相復次於一切法不著亦以此敎菩薩布施令如佛法不著此中應廣說無分別布施餘布施相處處已種種說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이치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법을 구한다[求法]”고 함은, 법에서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모든 법 가운데에서 맨 위가 되는 이른바 열반이고, 둘째는 열반을 얻은 방편으로서의 8성도(聖道)이다. 셋째는 온갖 착한 말씀[善語]과 진실한 말씀[實語]이니, 8성도를 돕는 이른바 8만 4천의 법들과 12부경(部經)과 아함(阿含)ㆍ아비담(阿毘曇)ㆍ비니(毘尼)ㆍ잡장(雜藏)의 4장(藏)과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密) 등의 모든 마하연경(摩訶衍經)을 모두 법이라 부른다.
014_0992_a_15L近善知識如先說求法有三種諸法中無上所謂涅槃二者得涅槃方便——八聖道三者一切善語實語助八聖道者所謂八萬四千法衆十二部經四藏——所謂阿含阿毘曇毘尼『摩訶般若波羅蜜』等諸摩訶衍經名爲
이 가운데에서 법을 구한다 함은, 서사하고 읽고 외고 바르게 기억하는 것이니, 이러한 등으로 중생들의 마음병을 다스리기 위하여 모든 법의 약을 모으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014_0992_a_22L此中求法書寫誦讀正憶如是等治衆生心病故集諸法藥不惜身命
014_0992_b_01L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본래 보살이었을 적에 이름을 낙법(樂法)이라 했었는데 그때 세상에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아서 착한 말씀을 듣지 못했으므로 사방으로 법을 구하면서 애쓰며 게으르지 않았으나 마침내 얻을 수 없었다.
014_0992_b_01L如釋迦文佛本爲菩薩時名曰樂法時世無佛不聞善語四方求法精勤不懈了不能得
그때에 악마가 바라문(婆羅門)으로 변화되어 그에게 말하기를 “나에게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의 게송이 있다. 그대가 살갗으로 종이를 삼고 뼈로써 붓을 삼으며 피로써 먹을 삼아서 이 게송을 베껴 쓴다면 그대에게 말해 주리라.”고 했다.
014_0992_b_03L爾時魔變作婆羅門而語之言我有佛所說一偈汝能以皮爲紙以骨爲筆以血爲墨書寫此偈當以與汝
낙법은 즉시 생각하기를 “나는 세상마다 몸을 잃은 것이 헤아릴 수 없지만, 이런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고 하고는 이내 스스로 살갗을 벗겨 햇볕에 쪼여 말린 뒤에 받아쓰려고 하자 악마는 그만 몸을 숨겨 버렸다. 이때 부처님은 그의 지극한 마음을 아시고는 곧 아래로부터 솟아오르시더니 그를 위하여 깊은 법을 말씀하시니,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014_0992_b_06L樂法卽時自念我世世喪身無數不得是利卽自剝皮曝之令乾欲書其偈魔便滅身佛知其至心卽從下方踊出爲說深法卽得無生法忍
또한 살타파륜(薩陀波崙)은 고행(苦行)을 하면서 법을 구했고, 석가모니[釋迦文] 보살은 5백 개의 못을 몸에 박았으니, 그것은 법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금견왕(金堅王)은 5백 군데에 몸을 파서 심지를 넣고는 등불을 켰으며, 몸을 바위에 던지기도 하고 불에 뛰어 들기도 했다.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의 고행난행으로 중생을 위하여 법을 구했었다.
014_0992_b_10L又如薩陁波崙苦行求法如釋迦文菩薩五百釘釘爲求法故又如金堅王割身五百處爲燈炷投巖入火如是等種種苦行難行爲衆生求法
또한 부처님은 스스로 법을 구하는 모습을 말씀하시되 “살바야를 위하여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014_0992_b_14L復次佛自說求法相爲薩婆若不墮聲聞辟支佛地
“항상 출가한다[常出家]”고 함은, 보살은 집에 있으면 갖가지의 죄의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므로 “내가 만일 집에 있으면 나 자신도 청정한 행을 행할 수 없거늘 어찌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청정한 행을 얻게 하겠는가. 만일 재가의 법을 따른다면 채찍이나 매 따위로 중생을 괴롭히는 일이 있을 것이요, 만일 착한 법을 따라 행한다면 재가의 법을 깨뜨리게 된다. 이 두 가지 일을 헤아려 보건대 나는 지금 출가하지 않는다 해도 죽을 때에는 모두 함께 버려야 하니, 이제 스스로 멀리 여읜다면 복덕이 크리라.”고 한다.
014_0992_b_15L常出家菩薩知在家有種種罪因我若在家自不能得行淸淨行能令人得諸淨行若隨在家法則有鞭杖等苦惱衆生若隨善法行則破居家法籌量二事我今不出家者時俱亦當捨今自遠離福德爲大
또한 보살은 생각하기를 ‘온갖 국왕과 모든 귀인은 세력이 마치 하늘[天] 같아서 쾌락을 구하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죽음은 강제로 그것을 빼앗아 간다. 나는 이제 중생들을 위하여 집을 버리고 청정한 계율을 지니며, 부처님 도를 구하면서 시라(尸羅)바라밀의 인연을 두루 갖추리라.’고 한다.
014_0992_b_21L菩薩作是念一切國王及諸貴人力勢如天求樂未已死强奪之我今爲衆生故捨家持淸淨戒求佛道具足尸羅波羅蜜因緣
014_0992_c_01L이 가운데에서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세상마다 뒤섞인 마음이 되지 않는다.”고 하신다.
“출가하되 뒤섞인 마음이 되지 않는다[出家不雜心]”고 함은 96종의 외도(外道) 가운데에서 출가하지 않고 단지 불도 가운데에서 출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부처님의 도 가운데에는 바른 견해[正見]의 세간과 바른 견해의 출세간이라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바른 견해인 까닭이다.
014_0992_c_02L此中佛自說菩薩世世不雜心出家不雜心不於九十六種道中出家但於佛道中出家以者何佛道中有二種正見世閒正出世閒正見故
“부처님의 몸을 좋아한다[受樂佛身]”고 함은, 갖가지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공덕과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대자대비(大慈大悲)와 온갖 지혜를 듣고 또한 부처님 몸의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와 큰 광명을 놓는 것과 하늘과 사람들이 공양하면서 만족할 줄을 모르는 것을 보고 스스로 “나도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역시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014_0992_c_06L愛樂佛身聞種種讚佛功德十力四無所畏大慈大悲一切智慧又見佛身三十二相八十種隨形好放大光明天人供養無有厭足自知我當來世亦當如是
가령 부처가 될 인연이 없더라도 좋아하겠거늘 하물며 장차 될 터인데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깊은 마음을 얻어서 부처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세상마다 항상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법의 가르침을 널리 편다[演出法敎]”고 함은, 보살이 위에서와 같이 법을 구하고 그 뒤에 중생을 위하여 연설하는 것이다.
014_0992_c_10L假令無得佛因緣猶尚愛樂何況當得而不愛樂得是深心愛樂佛故世世常得値佛演出法敎菩薩如上求法爲衆生演說
재가(在家)의 보살은 많은 재물을 보시함으로써 행하지만, 출가한 이는 부처님을 사랑하는 정(情)이 무겁고 항상 법시(法施)로써 행하며, 부처님이 세간에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계율을 잘 지니고 명예와 이득을 구하지 않으며, 일체 중생들에게 마음을 평등하게 지녀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해주어야만 한다.
014_0992_c_14L菩薩在家者多以財出家者愛佛情重常以法施若佛在世若不在世善住持戒不求名利等心一切衆生而爲說法
단(檀)의 이치를 찬탄하기 때문에 처음이 좋다[初善] 하고, 계율 지니는 것을 분별해서 찬탄하기 때문에 중간이 좋다[中善] 하며, 이 두 가지 법의 과보로 모든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나고 또는 큰 하늘[大天]이 되므로 나중이 좋다[後善]고 한다.
014_0992_c_17L讚歎檀義故名爲初善分別讚歎持戒名爲中善是二法果報若生諸佛國若作大天名爲後善
또한 삼계(三界)의 5수중(受衆)의 몸에 고뇌가 많은 것을 보고 곧 싫증내어 여의고자 하는 마음을 내므로 처음이 좋다 하고, 살던 집을 버리고 몸이 떠나기 때문에 중간이 좋다 하며, 마음이 번뇌를 여의기 때문에 나중이 좋다 한다.
014_0992_c_20L復次見三界五受衆身多苦惱則生厭離心名爲初善棄捨居爲身離故名爲中善爲心離煩惱名爲後善
014_0993_a_01L성문승(聲聞乘)을 해설하는 것을 처음이 좋다 하고, 벽지불승(辟支佛乘)을 해설하는 것을 중간이 좋다 하며, 대승을 선양하는 것을 나중이 좋다고 한다.
묘한 이치[妙義]와 좋은 말[好言]이라 함은, 세 종류의 말이 비록 언사는 묘하다 하더라도 의미(義味)가 천박하고, 비록 이치[義理]는 깊고 묘할지라도 그 언사가 완전하지 못하나니, 이 때문에 묘한 이치와 좋은 말로써 설명한다.
014_0992_c_23L解說聲聞乘名爲初善說辟支佛乘名爲中善宣暢大乘後善妙義好語三種語雖復辭妙而義味淺薄雖義理深妙而辭不具足以是故說妙義好語
3독(毒)의 때[垢]를 여의는 까닭에 오직 바른 법만을 말하고, 그릇된 법이 섞이지 않게 하는 이것을 청정하다 하며, 8성도분과 6바라밀을 구비하기 때문에 “구족한다.”고 한다. 수다라(修多羅)4)와 12부경(部經)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993_a_04L離三毒垢但說正法不雜非法是名淸淨聖道分六波羅蜜備故名爲具足多羅十二部經如先說
“교만을 깨뜨린다[破憍慢]”고 함은, 이 보살은 출가하여 계율을 지니고 설법하여 대중의 의심을 끊어 줌으로 간혹 스스로 뽐내면서 교만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에는 생각하기를 “나는 머리를 깎고 물든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을 깨뜨리는 법이거늘 내가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교만한 마음을 내겠는가”라고 해야 한다.
014_0993_a_07L破憍慢菩薩出家持戒說法能斷衆疑或時自恃而生憍慢是時應作是念我剃頭著染衣持鉢乞食此是破憍慢法我云何於中生憍慢
또한 이 교만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으면서 공덕을 덮어 없애면서 사람들은 좋아하지도 않고 나쁜 명성은 널리 퍼지게 되며 뒤에 받은 몸은 항상 불행한 축생 안에 태어나고 또는 인간 안에 태어난다 해도 비루하고 하천한 데에 태어난다.
014_0993_a_11L又此憍慢在人心中則覆沒功德人所不愛惡聲流後身常生弊惡畜生中若生人中卑鄙下賤
이 교만에 이러한 한량없는 허물과 죄가 있는 것을 알면 이 교만을 깨뜨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게 된다. 마치 사람이 재물을 구하려 하는 데도 오히려 겸손하면서 뜻을 낮추거늘 하물며 위없는 도를 구하는 것이랴. 교만을 깨뜨리기 때문에 언제나 존귀(尊貴)한 데에 태어나고 끝내 하천한 집에 태어나지 않는다.
014_0993_a_14L知是憍慢有如是無量過破是憍慢爲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如人求財猶尚謙遜下意況求無上道以破憍慢故常生尊貴終不在下賤家生
“진실한 말씀[實語]”이라 함은, 이것은 모든 선(善)의 근본이요 하늘에 가 나는 인연이며 사람들이 믿고 받게 된다. 이 진실한 말씀을 행하는 이는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학문(學問)을 빌리지 않고 단지 진실한 말씀만을 닦아도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 진실한 말씀이란 그 말씀한대로 따라서 행하는 것이다.
014_0993_a_18L實語是諸善之生天因緣人所信受行是實語者不假布施持戒學問但修實語得無量福實語者如說隨行
【문】구업(口業)에는 네 가지가 있거늘 무엇 때문에 진실한 말씀[實語]만을 말씀하시는가?
014_0993_a_21L問曰口業有四種何以但說實語
014_0993_b_01L【답】부처님 법 중에서는 진실을 귀히 여기기 때문에 진실한 말씀을 말하는 것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네 가지의 진리[四諦]에 포섭되니, 진실하기 때문에 열반을 얻는다.
또한 보살은 중생들과 함께 있으면서 거친말[惡口]과 꾸밈말[綺語]과 두 가지 말[兩舌]에 휩싸이고 때로는 중한 망어죄(妄語罪)가 있기도 하기 때문에 초지(初地)에서 버려야 한다. 이 보살의 행은 초지에서는 아직 두루 갖추지 못하고 이 네 가지 업(業)을 행하는 까닭에 단지 진실한 말만을 설명하지만, 제2지(地) 가운데에서는 두루 갖추게 된다.
014_0993_a_22L答曰佛法中貴實說實餘皆攝四諦實故得涅槃菩薩與衆生共事惡口綺語兩舌有妄語罪重故初地應捨是菩薩行初地未能具足行此四業故說實語第二地中則能具足
【문】초지 가운데에서는 무엇 때문에 열 가지 일만을 말씀하시는가?
014_0993_b_04L問曰地中何以但說十事
【답】부처님은 법왕(法王)이 되시어 모든 법 가운데에서 자유자재하시다. 이 열 가지 법을 알면 초지를 이루게 되나니, 비유컨대 마치 용한 의사는 약초의 종류와 수를 잘 알므로 다섯 가지나 열 가지로도 충분히 병을 물리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가운데에서는 그 많고 적은 것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초지(初地)를 마친다.
014_0993_b_05L答曰佛爲法王諸法中得自在知是十法能成初地譬如良醫善知藥草種數若五若十足能破病是中不應難其多少初地竟
【경】어떻게 보살은 계율이 청정하다[戒淸淨]고 하느냐 하면, 만일 보살마하살이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과 계율을 깨뜨리고[破戒] 불도를 장애하는 법을 염(念)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계율이 청정하다 하느니라.
014_0993_b_08L【經】云何菩薩戒淸淨若菩薩摩訶薩不念聲聞辟支佛心及諸破戒障佛道是名戒淸淨
어떻게 보살은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느냐[知恩報恩] 하면,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도를 행할 때에는 조그마한 은혜조차 오히려 잊지 않거늘 하물며 많은 것이겠는가. 이것을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다 하느니라.
014_0993_b_11L云何菩薩知恩報恩若菩薩摩訶薩行菩薩道乃至小恩尚不忘何況多是名知恩報恩
어떻게 보살은 인욕의 힘에 머무르느냐[住忍辱力] 하면, 성내거나 괴롭히는 일도 없으면 이것을 인욕의 힘에 머무른다 하느니라.
014_0993_b_13L云何菩薩住忍辱力若菩薩於一切衆生無瞋無惱是名住忍辱力
어떻게 보살은 기쁨을 느끼느냐[受歡喜] 하면, 이른바 중생을 성취시키는 이것으로써 기쁨을 삼나니, 이것을 기쁨을 느낀다 하느니라.
014_0993_b_15L云何菩薩受歡喜所謂成就衆生以此爲喜是名受歡喜
어떻게 보살은 온갖 중생을 버리지 않느냐[不捨一切衆生] 하면, 만일 보살이 온갖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이것을 온갖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하느니라.
014_0993_b_17L云何菩薩不捨一切衆若菩薩念欲救一切衆生故是名不捨一切衆生
어떻게 보살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드느냐[入大悲心] 하면, 만일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낱낱 중생들을 위하여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 동안 지옥 가운데에서 갖은 고통을 받겠으며, 나아가 이 사람들이 부처님 도를 얻어 열반에 들기까지 대신 받을 것이다.”고 하면 이와 같은 것을 온갖 시방의 중생들을 위하여 고통을 참는다고 하며 이것을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든다고 하느니라.
014_0993_b_19L云何菩薩入大悲心菩薩如是念我爲一一衆生故如恒河沙等劫地獄中受勤苦乃至是人得佛道入涅槃如是名爲爲一切十方衆生忍苦是名入大悲心
014_0993_c_01L어떻게 보살은 스승을 믿고 공경하며 물어 가르침을 받느냐[信師恭敬諮受] 하면, 만일 보살이 모든 스승에 대하여 세존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 이것을 스승을 믿고 공경하며 물어 가르침을 받는다 하느니라.
014_0993_b_23L云何菩薩信師恭敬諮受若菩薩於諸師如世尊想是名信師恭敬諮受
어떻게 보살은 힘써 모든 바라밀을 구하느냐[勤求諸波羅蜜] 하면, 만일 보살이 일심으로 모든 바라밀을 구하면서 다른 일들이 없으면 이것을 힘써 모든 바라밀을 구한다 하느니라.
014_0993_c_02L云何菩薩勤求諸波羅蜜若菩薩一心求諸波羅蜜無異事是名勤求諸波羅蜜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제2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원만하게 갖추는 여덟 가지의 법이니라.
014_0993_c_04L爲菩薩摩訶薩住二地中滿足八法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많이 배우고 물으면서 만족해 함이 없느냐[多學問無厭足] 하면,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으로서 이 세계와 그리고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남김없이 다 듣고 지니려 하나니, 이것을 많이 배우고 물으면서 만족해함이 없다 하느니라.
014_0993_c_05L云何菩薩摩訶薩多學問無厭足佛所說法若是此閒世界若十方世界諸佛所說盡欲聞持是名多學問無厭足
어떻게 보살은 청정하게 법을 보시하느냐[淨法施] 하면, 법을 보시함이 있을 적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구하지 않거늘 하물며 그 밖의 일이겠는가. 이것을 명예와 이득을 구하지 않으면서 법을 보시한다 하느니라.
014_0993_c_09L云何菩薩淨法施有所法施乃至不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況餘事是名不求名利法施
어떻게 보살은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느냐[淨佛世界] 하면, 모든 선근(善根)을 회향(廻向)하면서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나니, 이것을 부처님세계를 청정하게 한다 하느니라.
014_0993_c_11L云何菩薩淨佛世界以諸善根迴向淨佛世是名淨佛世界
어떻게 보살은 세간의 한량없는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느냐[受世間無量勤苦不以爲厭] 하면, 모든 선근을 구비했기 때문에 중생을 성취시키고 또한 부처님 세계도 잘 장엄하며, 살바야(薩婆若)를 완전히 갖추기까지 끝내 고달파하거나 싫증내지 않나니, 이것을 한량없는 갖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는다 하느니라.
014_0993_c_13L云何菩薩受世閒無量勤苦不以爲厭諸善根備具故能成就衆生亦莊嚴佛界乃至具足薩婆若終不疲厭是名受無量勤苦不以爲厭
어떻게 보살은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에 머무르느냐[住慚愧處] 하면,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부끄러워하나니, 이것을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에 머무른다 하느니라.
014_0993_c_17L云何菩薩住慚愧處恥諸聲聞辟支佛意是名住慚愧處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제3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원만하게 갖추는 다섯 가지의 법이니라.
014_0993_c_18L爲菩薩摩訶薩住三地中滿足五法
어떻게 보살은 아란야 처소를 버리지 않느냐 하면[不捨阿蘭若住處],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를 초월하게 되는 이것을 아란야 처소를 버리지 않는다 하느니라.
014_0993_c_19L云何菩薩不捨阿蘭若住處能過聲辟支佛地是名不捨阿蘭若住處
어떻게 보살은 탐욕이 적다 하느냐[少欲]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오히려 바라지 않거늘 하물며 그 밖의 탐욕이겠는가. 이것을 탐욕이 적다하느니라.
014_0993_c_21L云何菩薩少欲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尚不欲何況餘欲是名少欲
어떻게 보살은 만족한 줄 아느냐[知足] 하면,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만족한 줄 안다 하느니라.
014_0993_c_23L云何菩薩知足得一切種智是名知
014_0994_a_01L어떻게 보살은 두타의 공덕을 버리지 않느냐[不捨頭陀功德] 하면, 모든 깊은 법인(法忍)을 관하는 것이니, 이것을 두타의 공덕을 버리지 않는다 하느니라.
014_0994_a_02L云何菩薩不捨頭陁功德觀諸深法忍是名不捨頭陁功德
어떻게 보살은 계율을 버리지 않느냐[不捨戒] 하면, 계율의 모양[戒相]을 취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계율을 버리지 않는다 하느니라.
014_0994_a_03L云何菩薩不捨戒不取戒相是名不捨戒
어떻게 보살은 모든 탐욕을 더럽다 여기느냐[穢惡諸欲] 하면, 욕망의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모든 탐욕을 더럽게 여긴다 하느니라.
014_0994_a_04L云何菩薩穢惡諸欲欲心不生故是名穢惡諸欲
어떻게 보살은 세간의 마음을 싫어하느냐[厭世間心] 하면, 온갖 법은 짓지 않는 것인 줄 알기 때문이니, 이것은 세간의 마음을 싫어한다 하느니라.
014_0994_a_06L云何菩薩厭世閒心知一切法不作故是名厭世閒心
어떻게 보살은 가진 것을 버리느냐[捨一切所有] 하면, 안팎의 모든 법을 아까와 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온갖 가진 것을 버린다 하느니라.
014_0994_a_07L云何菩薩捨一切所有不惜內外諸法故是名捨一切所有
어떻게 보살은 마음이 위축되지 않느냐[心不沒] 하면, 두 가지 식처(識處)에서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마음이 위축되지 않는다 하느니라.
014_0994_a_09L云何菩薩心不沒二種識處心不生故是名心不沒
어떻게 보살은 온갖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느냐[不惜一切物] 하면, 온갖 물건에 대하여 집착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나니, 이것을 온갖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014_0994_a_10L云何菩薩不惜一切物於一切物不著不念是名不惜一切物
이것이 보살이 제4지(地) 가운데에서 버리지 않는 열 가지의 법이니라.
014_0994_a_12L是爲菩薩於四地中不捨十法
어떻게 보살은 속인과 친하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親白衣] 하면, 보살의 출가는 태어날 적마다 한 부처님의 세계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면서 언제나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물든 옷을 입나니, 이것을 속인과 친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a_13L云何菩薩遠離親白菩薩出家所生從一佛界至一佛常出家剃頭著染衣是名遠離親白衣
어떻게 보살은 비구니를 멀리 여의느냐[遠離比丘尼] 하면, 비구니와 함께 있지 않으며 손가락을 튕기는 한 순간까지도 또한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것을 비구니를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a_16L云何菩薩遠離比丘尼不共比丘尼住乃至彈指頃亦不生念名遠離比丘尼
어떻게 보살은 다른 이의 집에 대한 간탐을 멀리 여의느냐[遠離慳惜他家] 하면,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중생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어야 한다. 다른 이가 이제 나의 안락을 돕고 있거늘 어떻게 간탐을 부리겠는가”라고 하나니, 이것을 다른 이의 집에 대한 간탐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a_18L云何菩薩遠離慳惜他家菩薩如是思惟我應安樂衆生他今助我安樂云何生慳是名遠離慳惜他家
어떻게 보살은 무익하게 담론하는 처소를 멀리 여의느냐[遠離無益談處] 하면, 만일 어떤 담론하는 처소에 있으면서 혹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이 생기게 되면 “나는 멀리 여의어야 한다.”고 하나니, 이것을 이익 없이 담론하는 처소를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a_21L云何菩薩遠離無益談處若有談處或生聲聞辟支佛心我當遠離是名遠離無益談處
014_0994_b_01L어떻게 보살은 성내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瞋恚] 하면, 성을 내는 마음이나 괴롭히는 마음이나 싸우려는 마음이 들어올 수 없게 하나니, 이것을 성내는 마음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a_23L云何菩薩遠離瞋恚不令瞋心惱心鬪心得是名遠離瞋恚
어떻게 보살은 스스로 위대한 척하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自大] 하면, 이른바 안의 법[內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자신이 위대한 척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b_02L云何菩薩遠離自所謂不見內法故是名遠離自大
어떻게 보살은 남을 멸시하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蔑人] 하면, 이른바 밖의 법[外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남을 멸시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b_03L云何菩薩遠離蔑人所謂不見外法是名遠離蔑人
어떻게 보살은 10불선도를 멀리 여의느냐[遠離十不善道] 하면, 이 10불선도는 8성도(聖道)조차 장애하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겠는가. 이것을 10불선도를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b_05L云何菩薩遠離十不善道是十不善道能障八聖道況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名遠離十不善道
어떻게 보살은 크게 잘난 체하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大慢] 하면, 이 보살은 어떤 법도 크게 잘난 체할 만한 것을 보지 못하나니, 이것을 크게 잘난 체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b_08L云何菩薩遠離大慢是菩薩不見法可作大慢者是名遠離大
어떻게 보살은 자신이 쓰는 일을 멀리 여의느냐[遠離自用] 하면, 이 보살은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어떤 법도 보지 않나니, 이것을 자신이 쓰는 일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b_10L云何菩薩遠離自用是菩薩不見是法可自用者是名遠離自用
어떻게 보살은 뒤바뀜을 멀리 여의느냐[遠離顚倒] 하면, 뒤바뀜의 처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뒤바뀜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b_11L云何菩薩遠離顚倒顚倒處不可得故是名遠離顚倒
어떻게 보살은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멀리 여의느냐[遠離婬怒癡] 하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처소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니, 이것을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멀리 여읜다 하느니라.
014_0994_b_13L云何菩薩遠離婬癡處不可見故是名遠離婬癡處
이것이 보살이 제5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멀리 여의는 열두 가지 법이니라.
014_0994_b_15L是爲菩薩住五地中遠離十二法
어떻게 보살은 제6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여섯 가지의 법을 두루 갖추느냐 하면, “이른바 6바라밀이니라. 모든 부처님과 성문과 벽지불은 6바라밀 안에 머물러서 저 언덕[彼岸]을 건너가게 되나니, 이것을 여섯 가지 법을 두루 갖춘다 하느니라.”
014_0994_b_16L云何菩薩住六地中具足六法所謂六波羅蜜諸佛及聲聞辟支住六波羅蜜中能度彼岸是名具足六法
어떻게 보살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을 짓지 않느냐 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뜻[意]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道)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014_0994_b_19L云何菩薩不作聲聞辟支佛作是念聲聞辟支佛意非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
어떻게 보살은 보시하면서 근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냐 하면 “이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014_0994_b_21L云何菩薩布施不生憂心作是念此非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
어떻게 보살은 구하는 바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침몰하지 않느냐 하면, “이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014_0994_b_23L云何菩薩見有所索心不作是念此非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
014_0994_c_01L어떻게 보살은 소유한 물건들을 보시하느냐 하면, 보살은 처음 마음을 일으켰을 때에 보시하면서 “이것은 주어야겠다. 이것은 주지 않아야겠다.”고 말하지 않느니라.
014_0994_c_02L云何菩薩所有物布施菩薩初發心時布施不言是可與是不可與
어떻게 보살은 보시한 뒤에 마음으로 후회하지 않느냐 하면, 자비(慈悲)의 힘 때문이니라.
014_0994_c_03L云何菩薩布施之後心不悔慈悲力
어떻게 보살은 깊은 법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느냐 하면, 믿는 공덕[信功德]의 힘 때문이니라.
云何菩薩不疑深法信功德力故
이것이 보살이 제6지(地) 안에 머무르면서 멀리 여의는 여섯 가지 법이니라.
014_0994_c_05L是爲菩薩住六地中遠離六法
【논】해석한다. “계율이 청정하다.”고 함은, 초지(初地)가운데에서 보시를 많이 행하고 다음에는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는 것이 보시보다 수승하다는 것을 알게 되나니, 그것은 왜냐하면, 계율을 지니면 온갖 중생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014_0994_c_06L【論】者戒淸淨初地中多行布施次知持戒勝於布施所以者何持戒則攝一切衆生
보시는 곧 온갖 것에 두루 원만할 수가 없거니와 계율을 지니면 두루 원만함이 한량없나니, 마치 불살생의 계[不殺生戒]는 온갖 중생에게 목숨을 보시 하는 것과 같다. 마치 중생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것처럼 복덕도 또한 한량없고 그지없다.
014_0994_c_09L布施則不能普周一切戒遍滿無量——如不殺生戒則施一切衆生命如衆生無量無邊福德亦無量無邊
간략하게 말하여 모든 불도(佛道)의 일을 깨뜨린다면, 여기에서는 모두 파계(破戒)라 한다. 이 파계의 때[垢]를 여의는 것을 모두 청정하다 한다. 나아가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까지도 오히려 이것은 계율의 때이거늘 하물며 그 밖의 악(惡)이겠는가.
014_0994_c_12L略說諸能破佛道事此中皆名破戒離是破戒垢皆名淸淨乃至聲聞辟支佛心尚是戒垢何況餘惡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다.”고 함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전생에 지은 복덕의 인연으로 당연히 얻어야 한다.”고 하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저절로 존귀하게 된 것이거늘 그대에게 무슨 은혜가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기도 하면서 이런 삿된 견해에 떨어지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보살은 은혜를 알아야 하느니라.”고 하신다.
014_0994_c_14L知恩報恩有人言我宿世福德因緣應得或言我自然尊貴汝有何恩是邪見是故佛說菩薩當知恩
중생에게 비록 전생에 지은 즐거움의 원인이 있다고 해도 금생에 와서 그 일과 화합하지 않으면 즐거움을 얻을 까닭이 없다. 비유컨대 마치 곡식의 씨가 땅에 있다 해도 비가 없으면 나지 않는 것과 같나니, 땅이 곡식을 낸다 하여 비에 은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비록 이 받게 되는 물건이 전생에 심은 종자라 하더라도 공양하고 받드는 사람의 존경과 사랑과 좋은 마음이 어찌 은분(恩分)이 아니겠는가.
014_0994_c_17L衆生雖有宿世樂因今世事不和合則無由得樂譬如穀種在地無雨則不生不可以地能生穀故言雨無恩雖所受之物是宿世所種供奉之人敬愛好心豈非恩分
또한 은혜를 안다라는 것은 바로 대비(大悲)의 근본이요 선업(善業)을 여는 첫 번째의 문이다. 사람에게 사랑과 공경을 받고 명예가 멀리까지 퍼지며, 죽으면 천상에 태어나고 마침내는 부처님 도를 이루게 되나니,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심하기가 짐승보다 더하다.
014_0994_c_22L復次知恩者是大悲之本開善業初門人所愛敬名譽遠死則生天終成佛道不知恩人於畜生
014_0995_a_01L마치 부처님께서 『본생경(本生經)』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산으로 들어가서 나무를 베어 오다가 잘못하여 길을 잃게 되었다. 때마침 폭우가 쏟아지고 날은 저물었으며 배고프고 추운데다 나쁜 벌레와 독한 짐승들이 와서 침해하려 하므로 이 사람은 하나의 석굴(石窟)을 찾아 들었다. 마침 그 석굴 안에는 한 마리의 큰 곰이 있었으므로 그를 보고 질겁하며 되돌아 나오자 그 곰이 사람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집은 따뜻하니 이리로 들어와 머무십시오.”라고 했다.
014_0995_a_02L如佛說『本生經』有人入山伐迷惑失道時値暴雨日暮飢寒虫毒獸欲來侵害是人入一石窟中有一大熊見之恐怖而出熊語之汝勿恐怖此舍溫煖可於中宿
그때 비는 7일 동안 계속하여 내렸으며, 곰은 늘 단 과일과 맛있는 물을 그에게 대접했다. 7일 만에 비가 그치자 곰은 이 사람을 데리고 나가 그가 갈 길을 가리켜 주면서 말하기를 “나는 죄가 있는 몸이라 원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이가 물어도 나를 보았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014_0995_a_06L連雨七日常以甘果美水供給此人七日雨止熊將此人示其道逕熊語人言我是罪身多有怨家若有問者莫言見我
이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뒤에 앞으로 얼마를 가다가 사냥꾼들을 만났다. 그 사냥꾼은 묻기를 “당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오? 짐승들을 보지는 못했소?”라고 했으므로 “나는 큰 곰을 한 마리 보았습니다만, 나는 그 곰에게 은혜를 입었기에 당신들에게 가리켜 줄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014_0995_a_10L人答言此人前行見諸獵者獵者問言汝從何來見有衆獸答言我見一大熊此熊於我有恩不得示汝
사냥꾼은 말하기를 “당신은 사람이오.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과 서로 친해야 되거늘 무엇 때문에 곰을 아끼시는 것이오? 이제 한번 길을 잃게 되면 언제 다시 오겠소. 당신이 우리에게 가리켜 주면 당신에게 많은 몫을 드리겠소이다.”라고 했으므로 이 사람은 그만 마음이 변하여 곧 사냥꾼을 데리고 가서는 곰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014_0995_a_13L獵者言汝是人當以人類相親何以惜熊今一失道何時復來汝示我者與汝多分此人心變卽將獵者示熊處所
사냥꾼은 그 곰을 죽여서 바로 많은 몫을 그에게 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손을 펴서 그 고기를 가지려 하자 두 팔이 한꺼번에 떨어져버렸다. 사냥꾼은 말하길 “당신에게 무슨 죄가 있는 것이오?”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이 곰은 나를 대하기를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은혜를 저버렸으므로 이런 죄를 받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 사냥꾼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면서 감히 그 고기를 먹지 않고 가져다 스님네에게 보시했다.
014_0995_a_16L獵者殺熊卽以多分與之此人展手取肉二肘俱墮獵者汝有何罪答言是熊看我如父視我今背恩將是此罪獵者恐怖敢食肉持施衆僧
그때에 상좌(上座)로 있던 6통(通)의 아라한은 여러 하좌(下座)들에게 말하기를 “이 분은 바로 보살의 몸이어서 미래 세상에 부처님이 되시리니, 그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오.”라고 하면서 즉시 탑을 세우고는 공양했다.
014_0995_a_20L爾時上座六通阿羅漢語諸下座此是菩薩未來世當得作佛莫食此肉卽時起塔供養
014_0995_b_01L왕은 이런 일을 듣고는 온 나라 안에 칙명을 내리기를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이 나라에 머무르지 못하게 하라.”고 하면서, 또한 갖가지 인연으로써 은혜 아는 이를 찬탄했으므로 은혜의 이치를 아는 이들이 염부제(閻浮提)에 두루 했고 사람들은 모두가 믿고 행했다.
014_0995_a_22L王聞此事勅下國內不知恩人無令住此又以種種因緣讚知恩者知恩之義閻浮提人皆信行
또한 보살이면 생각하기를 ‘어떤 사람이 나에게 나쁜 일을 저질렀어도 나는 오히려 제도해야 되거늘 하물며 나에게 은혜가 있는 이이겠는가.’라고 한다.
014_0995_b_02L復次菩薩作是念若人有惡事於我我猶尚應度何況於我有恩
“인욕의 힘에 머무른다.”고 함은, 마치 인욕바라밀(忍辱波羅密) 가운데에 널리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995_b_04L住忍辱力如忍波羅蜜中廣說
【문】갖가지의 인연이 바로 인욕하는 모양이거늘 이 가운데에서 무엇 때문에 성내지 않고[不瞋] 괴로워하지 않는[不惱] 것만을 말씀하시는가?
014_0995_b_05L問曰種種因緣是忍辱相中何以但說不瞋不惱
【답】이것이 바로 인욕의 본체[體]이다. 먼저 성을 내고 그런 뒤에야 몸과 입으로 다른 이를 괴롭히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의 첫 번째의 행이기 때문에 단지 중생으로서의 인욕만을 말하고 법으로써 인욕은 말하지 않는다.
014_0995_b_06L答曰此是忍辱體先起瞋心然後身口惱他是菩薩初行故但說衆生忍不說法忍
“기쁨을 받는다.”고 함은, 보살은 바로 계율을 지니기 때문에 몸과 입이 청정하고 은혜를 알면서 욕됨을 참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해지나니, 3업(業)이 청정한 까닭에 저절로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비유컨대 마치 사람이 향탕(香湯)에 목욕하고 좋은 새옷을 입고 영락으로 장엄하고는 거울 앞에 서서 자기 자신을 비처 보면 마음에 기쁨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과 같다.
014_0995_b_08L歡喜菩薩見是持戒故身口淸淨知恩忍辱故心淸淨三業淸淨故自然生歡喜譬如人香湯沐浴著好新衣瓔珞莊嚴鏡中自觀心生歡喜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이 착한 법을 얻으면 저절로 장엄되나니, 계율 이것은 선정과 지혜의 근본이다. 우리는 이제 이 청정한 계율을 얻게 되므로 한량없고 끝이 없는 복덕을 모두 쉬이 얻게 되나니, 이 때문에 저절로 기뻐하는 것이다.
014_0995_b_12L菩薩亦如是得是善法自莊嚴戒是禪定智慧根本我今得是淨戒無量無邊福德皆應易得以是自喜
보살은 이 계율과 인욕 가운데 머무르면서 중생을 교화함으로 다른 지방에 계신 부처님 앞에 가 나게 되고 그리고 천상과 인간 안에 태어나서 쾌락을 누리게 되며, 혹은 성문승이나 벽지불승이나 불승(佛乘)을 얻게도 된다.
014_0995_b_15L菩薩住是戒忍中敎化衆生令得生他方佛前及生天上人中受樂或令得聲辟支佛乘佛乘者
중생이 즐기면서 집착하는 것을 관할 때에는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들이 함께 노는 것을 보고서 또한 그들과 같이 놀아 주면서 다시 조그마한 다른 물건을 그들에게 주고 먼저 좋아했던 것을 버리게 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중생들을 교화하여 인간과 천상의 복락을 얻게 하고 점차로 권유하여 나아가면서 3승(乘)을 얻게 하나니, 이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을 받는다 한다.
014_0995_b_18L觀衆生樂著長者觀小兒共戲亦與之同戲更以少異物與之令捨前所好菩薩亦如敎化衆生令得人天福樂漸漸誘令得三乘以是故言受歡喜樂
014_0995_c_01L“온갖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고 함은, 대비(大悲)의 마음을 잘 닦고 쌓으면서 중생을 맹세코 제도하고자 발심이 견고하며, 모든 부처님과 성현에게서 경멸과 조소를 받지 않고 온갖 중생을 저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버리지 않는 것이다. 비유컨대 마치 먼저 남에게 물건을 주겠다고 허락 했다가 뒤에 만일 주지 않으면 그는 거짓말을 한 죄인인 것과 같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014_0995_b_22L捨一切衆生善修集大悲心誓度衆生故發心牢固故不爲諸佛賢聖所輕笑故恐負一切衆生故不捨如先許人物後若不與則是虛妄罪以是因緣故不捨衆生
“대비(大悲)의 마음에 든다.”고 함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아서 여기에 대하여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본래 서원한 큰 마음은 중생을 위해서이다. 이른바 낱낱의 사람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겁 동안 대신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나아가 이 사람들이 공덕을 쌓고 행하여 부처님이 되어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게 한다.”고 하신다.
014_0995_c_04L入大悲心如先說此中佛自說本願大心爲衆生故所謂爲一一人故於無量劫代受地獄苦乃至令是人集行功德作入無餘涅槃
【문】대신하여 죄를 받는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이런 서원을 세우는 것인가?
014_0995_c_08L問曰無有代受罪者何以作是願
【답】이 보살의 넓고 큰 마음은 중생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므로 만일 대리할 것이 있다면 틀림없이 대리하게 될 것이다.
014_0995_c_09L答曰是菩薩弘大之心深愛衆生若有代理必代不疑
또한 보살은 인간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에 사람의 고기와 피와 오장으로써 나찰귀(羅刹鬼)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보게 되는데, 희생을 대신해주어야 할 이가 있다면 이내 허락하면서 보살은 생각하기를 “지옥 가운데에서도 만일 이와 같이 대신할 일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대신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살의 큰 마음이 이와 같음을 듣고는 그를 귀히 여기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보살이 중생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인자한 어머니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014_0995_c_10L復次菩薩見人閒有天祠用人肉血五藏祀羅剎鬼有人代者則聽菩薩作是地獄中若當有如是代理我必當衆人聞菩薩大心如是則貴敬尊重之所以者何是菩薩深念衆生踰於慈母故
“스승을 믿고 공경하면서 물어 받는다.”라고 함은, 보살은 스승으로 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거늘 어떻게 스승을 공경하고 공양하지 않겠는가. 비록 지혜와 덕이 높고 밝다 하더라도 만일 공경하거나 공양하지 않으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비유하면 깊은 우물의 물이 맛은 있으나 두레박이 없으면 길을 수 없는 것과 같다.
014_0995_c_16L信師恭敬諮受菩薩因師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云何不信恭敬供養師雖智德高明若不恭敬供養則不能得大利譬如深井美水若無綆者無由得水
만일 교만과 뽐내는 마음을 깨뜨리고서 존중하고 공경하며 신복하면 공덕과 큰 이익이 그에게 돌아온다. 또한 내리는 비[雨]가 산꼭대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반드시 낮은 곳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만일 사람이 교만한 마음으로 스스로 뽐내면 법의 물[法水]이 들어가지 않는다. 만일 착한 스승을 공경하면 그 공덕은 그에게로 돌아온다.
014_0995_c_20L若破憍慢高心宗重敬伏則功德大利歸之又如雨不住山頂必歸下處若人憍心自則法水不入若恭敬善師則功德歸
014_0996_a_01L또한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착한 스승에게 의지하면 지계(持戒)와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와 해탈(解脫)이 모두 더욱더 자라게 된다.”고 하셨다. 마치 뭇 나무들이 설산(雪山)에 의지하면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모두 무성해지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모든 스승을 숭상하고 공경하기를 부처님과 같이 하라.”고 하신다.
014_0996_a_01L復次佛說依止善師持戒禪定解脫皆得增長譬如衆樹依於雪皆得茂盛以是故佛說於諸師宗敬之如佛
【문】나쁜 스승을 어찌 공양하고 믿고 가르침을 받겠는가? 착한 스승도 그를 부처님이라고 여길 수 없겠거늘 하물며 나쁜 스승이겠는가.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여기서 “모든 스승을 존경하되 세존을 생각하듯 하라.”고 하시는가?
014_0996_a_04L問曰惡師云何得供養信受善師不能視之如何況惡師佛何以故此中說於諸師尊如世尊想
【답】보살은 세간의 법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세간의 법을 따른다면, 착한 이면 마음에 집착하고 나쁜 이면 멀리한다. 하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만일 깊은 이치를 해석 할 수 있고 의심의 맺힘[疑結]을 풀어 주는 이면 나에게 이익되는 이이므로 마음을 다하여 공경하면서 그 밖의 나쁜 일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014_0996_a_07L答曰菩薩不應順世間法順世閒法者善者心著惡者遠菩薩則不然若有能開釋深義散疑結於我有益則盡心敬之不念餘惡
마치 헤진 주머니에 보배가 담겨 있을 적에 주머니가 나쁘다 하여 그 보배를 취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과 같으며 또한 밤에 험한 길을 가면서 못된 사람이 횃불을 잡고 갈 적에 그 사람이 나쁘다 하여 그 빛을 따라가지 않을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스승에게서 지혜의 광명을 얻을 적에는 그의 나쁨을 헤아리지 않는다.
014_0996_a_11L如弊囊盛寶不得以囊惡故取其寶又如夜行嶮道弊人執炬得以人惡故不取其照菩薩亦如是於師得智慧光明不計其惡
또한 제자라면 생각하기를 ‘스승은 반야바라밀의 방편의 힘을 행하시니, 나로서는 무슨 인연으로 이런 나쁜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라고 해야 하나니, 마치 살타파륜(薩陀坡崙)이 공중에서 시방의 부처님께서 “그대는 가르침의 스승[法師]에 대하여 그 단점을 생각하지 말고 항상 공경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라.”고 하는 말씀을 들은 것과 같다.
014_0996_a_14L復次子應作是念師行般若波羅蜜無量方便力不知以何因緣故有此惡事如薩陁波崙聞空中十方佛敎汝於法師莫念其短常生敬畏
또한 보살은 생각하기를 ‘가르침의 스승께서 나쁜 일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나의 일이 아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법을 듣고서 스스로 이익이 되려고 할 뿐이다. 마치 진흙으로 만든 불상이나 나무로 만든 불상에는 실로 공덕이 없건만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냄으로 인하여 한량없는 복덕을 얻게 됨과 같거늘 하물며 이 사람이 지혜와 방편으로 남을 위해 해석함이겠는가. 이 때문에 가르침의 스승에게 허물이 있을지언정 나에게는 허물이 없다.’고 한다.
014_0996_a_18L復次菩薩作是念法師好惡非是我事我所求唯欲聞法以自利益如泥像木像無實功德因發佛想故得無量福德何況是人智慧方便能爲人說以是法師有過於我無咎
014_0996_b_01L“마치 세존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함은, 내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보살은 세간 사람들과는 다르다. 곧 세간 사람들은 아름답고 추함을 분별하면서 아름다운 이에게는 애착하되 오히려 부처님 같게는 하지 못하며, 미운 이는 깔보는 일이 끝내 비교하여 셀 수조차 없다. 하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나니, 모든 법은 마침내 공이요 본래부터 모두가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모양과 같다고 관하고 온갖 중생을 관하면서 그들을 마치 부처님과 같다고 보거늘 하물며 가르침의 스승이겠는가. 지혜와 이익이 있으면서 불사(佛事)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를 마치 부처님과 같이 보는 것이다.
014_0996_a_23L如世尊想我先說菩薩異於世人世人分別好好者愛著猶不如佛惡者輕慢不比數菩薩則不然觀諸法畢竟空從本已來皆如無餘涅槃相觀一切衆生視之如佛何況法師有智慧利以能作佛事故視之如佛
“부지런히 모든 바라밀을 구한다.”고 함은, 보살은 생각하기를 “이 6바라밀이 바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의 인연이니, 나는 일심으로 이 인연을 행해야만 한다.”고 하나니, 비유컨대 마치 장사하는 이나 농부가 적절한 나라에서 구한 물건을 바꾸거나, 땅에 적당한 씨를 뿌려서 애써 가꾸고 구하게 되면 일마다 이루지 못함이 없는 것과 같다.
014_0996_b_06L勤求諸波羅蜜菩薩作是念是六波羅蜜是無上正眞道因緣我當一心行是因緣譬如商人農夫隨所適國土所須之物地之所宜種子勤修求辦無不成
또한 마치 이 세상에서 보시를 하면 뒤에는 큰 부자가 되고, 계율을 지니면 뒷날에 존귀한 이가 되며, 선정과 지혜를 닦으면 도를 얻게 되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6바라밀을 행하면 부처님을 이루게 된다.
014_0996_b_11L又如今世行布施後得大富持戒後得尊貴修禪定智慧得道薩亦如是行六波羅蜜則得成佛
부지런히 도를 구하는 이는 항상 일심으로 6바라밀을 부지런히 구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부드러운 마음으로 점차 나아가다가 번뇌에 덮이거나 마라[魔人]에게 무너지게도 되니, 이 때문에 부처님은 “제2지(地) 가운데에서 부지런히 구하면서 게으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제2지(地)를 마친다.
014_0996_b_13L求道者常一心勤求六波羅蜜所以者若軟心漸進則爲煩惱所覆魔人所壞以是故佛說於二地中勤求莫二地竟
“많이 배우고 물으면서 만족해함이 없다.”고 함은, 보살은 많이 배우고 묻고 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인연임을 알며 지혜를 얻으면 잘 분별하면서 도를 수행하게 된다. 마치 사람이 눈이 있으면 도달하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보살은 이처럼 서원을 세우되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나는 남김없이 다 받아지니리라.”고 하나니,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의 힘 때문이고, 청정한 천이(天耳)의 힘을 얻기 때문이며, 불망(不忘)다라니의 힘을 얻기 때문이다.
014_0996_b_17L多學問無厭足菩薩知多學問是智慧因緣得智慧則能分別行道如人有眼所至無碍是故菩薩作是願十方諸佛有所說法我盡受持聞持陁羅尼力故得淸淨天耳力故不忘陁羅尼力故
비유컨대 마치 큰 바다가 온 시방의 모든 물을 받아 지니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잘 받아 지닌다.
014_0996_b_22L譬如大海能受持一切十方諸水菩薩亦如是能受持十方諸佛所說之法
014_0996_c_01L“청정하게 법을 보시한다.”고 함은, 마치 모판 안에 풀이 났을 적에 그 김을 매어 주면 그 모가 무성해지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법을 보시할 때에 명리나 뒷세상의 과보를 구하지 않으며, 이에 중생을 위하여 스승의 열반까지도 구하지 않는다.
014_0996_c_01L淨法施者如苗中生草除穢則茂菩薩亦如是法施時不求名利後世果報乃至爲衆生不求小乘涅槃
단지 대비(大悲)로써 중생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법륜(法輪)을 굴리시고 법을 보시하는 모양과 부처님의 나라를 장엄하는 모양을 따르면서 세간의 한량없는 갖은 고통을 받으며,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에 머무르고 아련야(阿練若)의 처소를 버리지 않을 뿐이다.
“탐욕을 적게 하고 만족할 줄 안다.”고 함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996_c_04L但以大悲於衆生隨佛轉法輪法施相莊嚴佛國相世閒無量勤苦住慚愧處不捨阿蘭若住處少欲知足如先說
【문】갖가지의 인연으로 생사(生死) 안에 있으면서 싫어하지 않게 되거늘 무엇 때문에 단지 두 가지의 인연만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가?
014_0996_c_07L問曰種種因緣在生死中不厭何以故但二因緣說不厭
【답】이 선근(善根)이 두루 갖추어진 까닭에 생사 안에 있으면서도 고뇌(苦惱)가 희박하고 적나니, 비유컨대 마치 사람이 상처가 난 데에 좋은 약을 바르면 상처가 나으면서 그 고통이 적어지는 것과 같다.
보살은 선근을 얻고 청정한 까닭에 이 세상에서 근심 걱정이나 질투나 악한 마음 등이 모두 다 그치면서 쉬게 된다.
014_0996_c_09L答曰是善根備具故在生死中苦惱薄少譬人有瘡良藥塗之其痛差少菩薩得善根淸淨故今世憂愁嫉妒惡心等悉皆止息
만일 다시 몸을 받으면 선근의 과보를 얻는지라 저절로 복락(福樂)을 받으며 또한 갖가지의 인연으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한다. 그 원한 바대로 스스로 세계를 청정하게 하며, 세계가 장엄하고 청정하여 천궁(天宮)보다 뛰어남으로 그를 보면서 싫어하지 않나니, 큰 보살의 마음까지도 위로될 수 있거늘 하물며 범부이겠는가. 이 때문에 비록 많은 인연이 있다고 해도 단지 두 가지 일만의 싫어함이 없음[無厭]을 말할 뿐이다.
014_0996_c_12L若更受得善根果報自受福樂亦種種因緣利益衆生隨其所願自淨世界界嚴淨勝於天宮視之無厭能慰釋大菩薩心何況凡夫以是故雖有多因緣但說二事無厭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함[慚愧]에는 비록 갖가지가 있다고 해도 이 가운데에서도 큰 것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이다. 보살이 발심한 것은 온갖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려 함이거늘 조그마한 고뇌가 있다 하여 곧 혼자만이 열반을 취하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할 만하다. 마치 어떤 사람이 크게 진수성찬을 마련해 놓고 여러 사람을 청하고서는 인색한 마음이 일어난지라 곧 자기 혼자서 먹어 치우면 참으로 나와 남에게 부끄러워할 만한 일인 것과 같다.제3지(地)를 마친다.
014_0996_c_17L慚愧雖有種種此中大者聲聞辟支佛心菩薩發心欲廣度一切衆生得少苦惱便欲獨取涅槃是可慚愧譬如有人大設餚請呼衆人慳悋心起便自獨食甚可慚愧三地竟
014_0997_a_01L“아련야의 처소를 버리지 않는다.”고 함은, 대중을 여의고 혼자 머무르면서 만일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초월하게 되면 이것을 바로 대중을 여읜다[離衆]고 한다. 온갖 법은 얻을 바 없는 공[無所得空]이기 때문에 모양을 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도 또한 취하지 않나니, 집착하는 마음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014_0996_c_22L不捨阿蘭若住處離衆獨住若過聲聞辟支佛心是名離衆一切法以無所得空故不取不著相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不取無有著心故
보살은 항상 모든 공덕을 쌓으면서 만족해함이 없지만 위없는 도를 증득하게 되면 곧 만족해지나니, 다시는 그보다 수승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음식과 의복과 침구에 있어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은 바로 착한 법의 인연이나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는다.
014_0997_a_03L菩薩常集諸功德無厭得無上道則足更無勝法故飮食衣服臥具知足者是善法因緣不以爲要故不說
“두타(頭陀)의 공덕을 버리지 않는다.”고 함은, 뒤의 각마품(覺魔品) 가운데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말하는 것과 같다. 이 가운데에서는 무생법인을 두타로 삼나니, 보살은 순인(順忍)에 머무르면서 무생법인을 관한다.
이 12두타5)는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기 위한 까닭이요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는 것은 선정을 위한 까닭이며, 선정은 지혜를 위한 까닭이다. 무생법인은 곧 진실한 지혜이자 무생법인은 바로 두타의 과보(果報)이니, 결과 가운데에서 원인을 말하기 때문이다.
014_0997_a_06L不捨頭陁功德如後「覺魔品」中說無生法忍此中以無生法忍爲頭陁菩薩住於順忍觀無生法忍是十二頭陁爲持戒淸淨故持戒淸淨爲禪定故禪定爲智慧故無生忍法卽是眞智慧無生法忍是頭陁果報果中說因故
“계율을 버리지 않고 계율 모양[戒相]을 취하지 않는다.”고 함은, 이 보살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계율을 지니는 것조차도 보지 않거늘 하물며 계율을 깨뜨리는 것이겠는가. 비록 갖가지의 인연이라 하더라도 계율을 깨뜨리지 않는 이것이 가장 큰 것이 되나니, 공해탈문(空解脫門)에 들기 때문이다.
014_0997_a_12L不捨戒不取戒相菩薩知諸法實相故尚不見持戒況破戒雖種種因緣不破戒此最爲入空解脫門故
“모든 탐욕을 더럽다 여긴다.”고 함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은 이 마음의 모양[心相]은 거짓이요 진실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이에 욕망의 마음조차 내지 않거늘 하물며 탐욕을 받겠는가.
014_0997_a_15L污穢諸欲如先此中佛說知是心相虛誑不實故乃至不生欲心何況受欲
“세간을 싫어하는 마음”이란 마치 세간불가락상(世間不可樂想)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이 가운데에서 부처님은 “싫어하는 마음의 과보는 이른바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이다.”고 말씀하신다.
“온갖 소유를 버린다.”고 함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997_a_17L厭世閒心如世閒不可樂相中說此中佛說厭心果報所謂無作解脫門捨一切所有如先說
014_0997_b_01L“마음이 위축되지 않는다.”라는 것은 앞에서 이미 갖가지의 인연으로 설명했나니, 보살은 이 위축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不沒不畏相]을 듣는다.
“두 가지 식처[二識處]를 내지 않는다.”고 함은, 두 가지 식처는 이른바 눈[眼]과 물질[色] 가운데에서 안식(眼識)을 내지 않고 나아가 뜻[意]과 법(法) 가운데에서 의식(意識)을 내지 않는 것이다. 보살은 이 둘이 아닌 문[不二門] 안에 머물러서 6식(識)으로 아는 바는 모두가 거짓이요 진실이 없음을 관하면서 큰 서원을 세우기를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둘이 아닌 법 안에 머물러서 이 6식을 여의게 하겠노라.”고 한다.
014_0997_a_20L不沒心先已種種因緣說菩薩聞是不沒不畏相不生二識處二識處所謂眼色中不生眼識乃至意法中不生意識菩薩住是不二門中觀六識所知皆是虛誑無實作大誓願令一切衆生住不二法離是六識
“온갖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함은, 온갖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 안에는 비록 갖가지의 인연이 있다 하더라도 이 인연이 가장 크다. 이른바 보살은 온갖 법은 필경공(畢竟空)임을 알고 온갖 취하는 모양이 소멸한다 함을 기억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받는 이에 대하여 은혜를 구하지 않고 베푸는 동안에도 잘난 체하는 마음이 없다. 이와 같이 청정한 단(壇)바라밀을 갖추게 된다.제4지(地)를 마친다.
014_0997_b_03L不惜一切物不惜一切物中雖有種種因緣此因緣最大所謂菩薩知一切法畢竟空不憶念滅一切取相是故於受者不求恩惠施中無高心如是具淸淨檀波羅蜜四地竟
“속인과 친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고 함은, 수행하는 이는 도(道)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출가하거늘 만일 속인과 가까이한다면 아무 다를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수행하는 이는 먼저 스스로를 제도한 연후에야 다른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다. 만일 아직 자신이 제도되지 못했으면서 남을 제도하고자 하다면, 마치 물 위에 뜰 줄도 모르는 사람이 물속에 빠진 이를 구하려다가 함께 빠져 죽는 것과 같다.
014_0997_b_08L遠離親白衣行者以妨道故出家若復習近白衣則與本無異是故行者先求自度然後度人若未能自度而欲度人者如不知浮人欲救於溺相與俱沒
이 보살이 속인과 친하는 일을 멀리 여의면 모든 청정한 공덕을 쌓을 수 있고 깊이 부처님을 염(念)하기 때문에 몸을 변화하여 모든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러서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물든 옷을 입게 되나니, 그것은 왜냐하면, 항상 출가하는 법을 좋아하면서 속인과 가까이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014_0997_b_12L是菩薩遠離親白衣則能集諸淸淨功德深念佛故變身至諸佛國出家剃頭著染衣所以者常樂出家法不樂習近白衣故
“비구니(比丘尼)를 멀리 여읜다.”라는 것은 초품(初品)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997_b_15L離比丘尼如初品中說
【문】보살은 동등한 마음으로 온갖 중생들을 보거늘 어떻게 함께 머물 수 없다고 하시는가?
014_0997_b_16L問曰菩薩等心視一切衆生云何不得共住
【답】이 보살은 아직 아비발치(阿毘跋致)에 이르지 못했고, 아직 모든 번뇌도 끊지 못했으면서 모든 공덕을 쌓는 사람이라 쾌락에 집착하게 되나니, 이 때문에 함께 살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을 비방하지 않기 위해서이니, 만일 비방하게 되면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014_0997_b_17L是菩薩未得阿鞞跋致未斷諸漏集諸功德人所樂著以是故不得共又爲離人誹謗若誹謗者墮地獄
014_0997_c_01L“남의 집에 대한 간탐을 멀리 여읜다.”고 함은,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 자신조차도 집을 버리고 오히려 탐내지도 않고 아까워하지도 않거늘 어떻게 남의 집을 탐내고 아까워하겠는가. 보살의 법은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나와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려고 하며, 또한 그 사람은 나와 중생의 즐거움을 돕고 있거늘 어떻게 간탐을 부리겠는가. 중생은 전세의 복덕의 인연과 금세에 적은 노력[功夫]으로도 공양을 얻게 되거늘 내가 어찌 간탐하고 질투하겠는가?”라고 한다.
014_0997_b_21L遠離慳惜他家菩薩作是念自捨家尚不貪不惜云何貪惜他家菩薩法欲令一切衆生得樂彼人助我與衆生樂云何慳惜衆生先世福德因緣今世少有功夫故得供養我何以慳嫉
“무익한 담설(談說)을 멀리 여읜다.”고 함은, 이것은 바로 이것은 곧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綺語]인데, 자기의 마음과 다른 이의 마음에 근심되는 일을 풀기 위하여 국법에 대한 일과 도적에 대한 일과 큰 바다와 산과 숲과 약초와 보물이며 모든 지방과 국토 등의 이러한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복도 얻지 못하고 도(道)의 이익도 없다.
014_0997_c_03L遠離無益談說此卽是綺爲自心他心解愁事說王法事大海山林藥草寶物諸方國土是等事無益於福無益於道
보살은 온갖 중생이 무상함과 괴로움의 불속에 빠져 있음을 가엾이 여기면서 “내가 구제해 주어야 한다.”고 해야 하거늘 어떻게 편안히 앉아서 부질없이 무익한 것들을 말한단 말인가. 마치 사람이 잘못하여 불을 내어 사방에서 한꺼번에 타오르고 있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그 속에 편안히 있으면서 다른 일이나 말하고 있겠는가.
여기에 대하여 부처님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일을 말하는 것조차 오히려 무익한 말이 되거늘 하물며 그 밖의 일이겠느냐.”고 하신다.
014_0997_c_06L菩薩愍念一切衆生沒在無常苦火我當救濟云何安坐空說無益之事如人失火四邊俱起云何安處其內語說餘事此中佛說若說聲聞辟支佛事猶爲無益之言何況餘事
“성냄을 멀리 여읜다.”고 함은, 마음속에서 처음에 생긴 것을 성내는 마음[瞋心]이라 하나니,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내는 마음이 더욱 자라고 일이 확정되면서 마음속으로 때리고 찢고 살해하게 되면 이것을 괴롭히는 마음[惱心]이라고 하고, 나쁜 말로 헐뜯으면 이것을 송사하는 마음[訟心]이라 하며, 만일 몸으로 살해하고 때리고 묶고 한다면 바로 싸우는 마음[鬪心]이라고 한다.
보살은 중생을 크게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이러한 마음을 내지 않는다. 항상 이런 악한 마음을 막아 들어올 수 없게 한다.
014_0997_c_11L遠離瞋恚心中初生名瞋心以未定故瞋心增長事定打斫殺害是名惱心惡口讒是名訟心若殺害打縛等是名鬪心菩薩大慈悲衆生故則不生是心防此惡心不令得入
“자신은 위대하다 하면서 남을 멸시하는 일을 멀리 여읜다.”라는 것은 안팎의 법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5중(衆)을 받아들이는 것과 5중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10불선도(不善道)를 멀리 여읜다.”고 함은, 보살은 10불선도 안에 있는 허물의 갖가지 인연을 관찰하나니, 이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여기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10불선도는 소승(小乘)조차도 파괴하거늘 하물며 대승(大乘)이겠는가”라고 하신다.
014_0997_c_16L遠離自大蔑人不見內外法所謂受五衆不受五衆遠離十不善道菩薩觀十不善道中過罪種種因緣如先說此中佛說十不善道破小乘何況大乘
014_0998_a_01L“크게 잘난 체함[大慢]을 멀리 여읜다.”고 함은, 보살은 18공(空)을 수행하면서 모든 법은 일정하여 크고 작은 모양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자기의 작용[自用]을 멀리 여읜다.”고 함은, 일곱 가지 교만[七慢]의 근본을 뽑아 없애기 때문이며 또한 착한 법을 몹시 좋아하기 때문이다.
“뒤바뀜[顚倒]을 멀리 여읜다.”고 함은, 온갖 법안에서는 항상하다[常]ㆍ즐겁다[樂]ㆍ깨끗하다[淨]ㆍ나[我]이다 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3독(毒)을 멀리 여읜다.”고 함은, 3독에 대한 이치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또한 이 3독이 반연할 바[所緣]는 일정한 모양이 없다.제5지(地)를 마친다.
014_0997_c_20L遠離大菩薩行十八空不見諸法定有大小相遠離自用拔七種憍慢根本故又深樂善法故遠離顚倒切法中我不可得故遠離三三毒義如先說又此三毒所緣無有定相五地竟
“6바라밀”이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여기에 대하여 부처님은 “3승(乘)의 사람은 모두가 이 6바라밀로써 저 언덕[彼岸]에 이르게 된다.”고 하신다.
014_0998_a_03L六波羅蜜如先說中佛說三乘之人皆以此六波羅蜜得到彼岸
【문】이것은 바로 보살마하살의 지위이거늘 무엇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도 저 언덕에 이르게 된다고 하시는가?
014_0998_a_05L問曰此是菩薩地何以故說聲聞辟支佛得到彼岸
【답】부처님은 이제 6바라밀은 능(能)한 바가 많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대승의 법 안에서는 소승을 능히 포함하고 포용[含容]하여 받아들이지만, 소승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014_0998_a_06L答曰佛今說六波羅蜜多有所能大乘法中則能含受小乘小乘則不能
이 보살은 제6지(地) 가운데 머무르면서 6바라밀을 두루 갖추고 온갖 법들이 공한 줄 관찰하나 아직 방편의 힘[方便力]을 얻지 못한지라 성문이나 벽지불의 경지에 떨어질까 두려워함으로 부처님은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014_0998_a_08L是菩薩住六地中具足六波羅蜜觀一切諸法空未得方便力畏墮聲聞辟支佛地將護故說不應生聲聞辟支佛心
보살은 중생들을 몹시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 때문에, 온갖 법들은 필경공이라고 알기 때문에 보시할 때에도 아까와 하는 바가 없다. 구하는 이가 있는 것을 보고도 성을 내지 않고 근심하지도 않으며, 보시한 뒤의 마음도 또한 후회하지 않는다.
014_0998_a_11L薩深念衆生故大悲心故知一切諸法畢竟空故施時無所惜見有求者不瞋不憂布施之後心亦不悔
복과 덕이 크기 때문에 믿음의 힘도 또한 크며, 깊고 청정하게 모든 부처님을 믿고 공경한다. 또한 여섯 가지바라밀을 완전히 갖추었으므로 비록 아직 방편을 얻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무생법인(無生法忍)과 반주삼매(般舟三昧)의 깊은 법 가운데에서도 역시 의심하는 바가 없이 생각하기를 “온갖 논의(論議)는 모두가 허물이 있지만 오직 부처님의 지혜만은 모든 희론(戱論)이 사라졌으니, 모자람이나 허물이 없기 때문이다.”고 하면서 방편으로써 모든 착한 법을 닦나니, 이 때문에 의심하지 않는다.제6지(地)를 마친다.
014_0998_a_14L福德大故信力亦大深淸淨信敬諸佛具足六波羅蜜雖未得方便無生法忍般舟三昧於深法中亦無所疑作是念切論議皆有過罪唯佛智慧滅諸戲論無有闕失故而能以方便修諸善是故不疑六地竟
大智度論卷第四十九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아련야(阿練若)는 범어 araṇya의 음역어로서 아란야의 처소란 고요한 숲속에 있는 수행처를 말한다.
  2. 2)곧 베푸는 이와 받는 이와 베푸는 물건의 셋이 청정한 것을 말한다.
  3. 3)범어로는 māyā-upama-samādhi이다. 일체가 환(幻)과 같아서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것이다.
  4. 4)범어 sūtra의 음역어이다.
  5. 5)두타(dhūta)란,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여의고 최소한의 생활수단으로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열두 가지란, ①인적 없는 한적한 곳에서 머문다[在阿蘭若處], ②항상 걸식한다[常乞食], ③빈부를 가리지 않고 걸식한다[次第乞食], ④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受一食法], ⑤발우 안의 음식으로 만족한다[節量食], ⑥정오가 지나면 꿀조차 먹지 않는다[中後不得飮漿], ⑦낡은 옷만을 입는다[糞掃衣], ⑧세 벌의 옷만을 지닌다[但三衣], ⑨무덤에 머문다[塚間坐], ⑩나무 밑에 앉는다[樹下坐], ⑪지붕 없는 곳에 머문다[露地坐], ⑫앉기만 할 뿐 눕지 않는다[常坐不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