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6_1081_a_01L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번역기(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飜譯記)
016_1081_a_01L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翻譯之記
여러 나라의 언어 중에서 중천축[中天]1)의 소리가 정확하다. 그 곳에서 말하는 나가이리순나(那伽夷離淳那)2)는 용승(龍勝)을 말하는데, 이름과 의미를 모두 구족하여 상세(上世)의 덕인(德人)이다. 용수(龍樹)3)라고 말하는 것은 조각들을 합하여 하나의 상자[箱]4)를 만드는 식이므로 온전히 타당한 것은 아니다.
016_1081_a_02L諸國語言中天音正彼言那伽夷離淳那此云龍勝名味皆足上世德人言龍樹者片合一廂未是全當
용승보살은 법을 통달한 스승으로, 대반야(大般若)5)에 의거하여 『중론(中論)』을 지어서 여러 경전들의 의미를 포용하기는 하였으나, 끝까지 궁구하지는 못하였다. 그 후 아승거(阿僧佉)6)라 이름하는 대승 논사가 중론에서 해설하지 못한 부분을 해석하여, 따로 이 논부(論部)를 이루었다.
016_1081_a_05L龍勝菩薩通法之師依『大般若』而造『中論』衆典於義包而不悉大乘論師名阿僧佉解未解處別爲此部
위(魏)의 상서령(尙書令) 의(儀)는 고공연국(高公延國)7)의 상빈(上賓)인 구담류지(瞿曇流支)8)와 함께 차례로 공양하였는데 불법(佛法)에 정통하였으며, 석담림(釋曇林)9)과 대론하여 이러한 의미를 지닌 논서를 역출하게 되었다.
무정(武定) 원년10) 세차(歲次) 계해(癸亥) 8월 10일 병인(丙寅)에 휘사(揮辭)하노니, 글자는 무릇 일만 삼천칠백이십칠 자이다.
016_1081_a_08L魏尚書令儀同高公延國上賓瞿曇流支在第供養正通佛法對釋曇林出斯義論武定元年歲次癸亥八月十日揮辭丙寅凡有一萬三千七百二十七字
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
(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 상권
016_1081_a_12L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卷上
용승(龍勝) 지음
무착(無着) 주석
반야류지(般若流支) 한역
016_1081_a_13L龍勝菩薩造無著菩薩 釋
元魏婆羅門瞿曇般若流支譯
일체지(一切智)에 귀명합니다.
016_1081_a_15L歸命一切智
소멸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으며
단절되지도 않고 상주하지도 않으며
한 가지 의미도 아니고 다른 의미도 아니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016_1081_a_16L不滅亦不生
不斷亦不常
不一不異義
不來亦不去
부처님께서 이미 인연을 말씀하시어
모든 희론(戱論)하는 법을 단절시켰다.
그러므로 나는 설법하는 스승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머리 숙여 예배드린다.
016_1081_a_18L佛已說因緣
斷諸戲論法
故我稽首禮
說法師中勝
이와 같은 『중론(中論)』의 게송이 이 논서의 근본이다. 나는 그 논의 의미를 모두 섭수하기 위하여 이제 다시금 해석하는 것이다. 그 게송에는 또한 의미가 있으니 이와 같고 이와 같으며, 그 의미의 설명은 이와 같고 이와 같으며, 중생들의 즐거움과 탐착을 단절하는 것도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의미에 따라 논서를 지은 것에는 차례가 있지 않다.
016_1081_a_19L如是論偈是論根本盡攝彼論我今更解彼復有義如是如是如彼義說如是如是斷諸衆生喜樂取著如是如是隨義造論無有次第
016_1081_b_02L【문】 그대는 이 논서를 말하였는데, 의미에 차례가 있는가, 혹은 차례가 없는가? 어떠한 뜻을 인연으로 하여 의론(義論)1)을 말하여, 의지하는 법대로 이 논서를 지었는가?
016_1081_b_02L問曰汝說此論義無次第或有次第何意因緣而說義論如所依法如是造論
【답】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이다. 세존께서 이미 대경(大經)에서 말씀하셨다.
“‘교시가(憍尸迦)2)야, 미래 세상에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자신의 뜻과 이해에 따라 다른 이를 위하여 이 반야바라밀을 말한다면, 그들은 오직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과 유사한 것을 말한 것이고, 진실된 반야바라밀을 말한 것이 아니다.’
016_1081_b_05L答曰此如是義世尊已於『大經』中說言憍尸迦於未來世若善男子若善女人隨自意解爲他說此般若波羅蜜彼人唯說相似般若波羅蜜非說眞實般若波羅蜜
제석왕(帝釋王)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진실한 반야바라밀이기에 유사한 것은 진실한 반야바라밀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나이까?’
016_1081_b_09L帝釋王言何者是實般若波羅蜜而言相似非實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그 사람은 응당 색(色)이 무상(無常)하다고 말하고, 식(識)에 이르기까지 무상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고(苦)ㆍ무아(無我)ㆍ부적정(不寂靜)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원(無願)을 말하며, 이와 같이 일체지(一切密)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저 그와 같은 사람은 방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얻는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016_1081_b_11L佛言憍尸迦彼人當說色無常乃至說識無常如是說無我不寂靜無相無願如是乃至說一切智彼如是人不知方便所得故如是應知
제석왕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진실한 반야바라밀입니까?’
016_1081_b_15L帝釋王言世尊者是實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오히려 색조차 없는 것이거늘 그 어디에 마땅히 항상함과 무상함이 있겠느냐? 이와 같이 일체지에 이르기까지도 없는 것인데, 어디에 다시 항상함과 무상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016_1081_b_16L佛言憍尸迦尚無有色何處當有常與無常如是乃至無一切智何處復有常與無常如是等故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와 같이 다른 이로 하여금 반야바라밀을 수행하고 반야바라밀을 말하게 하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선남자야, 와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선남자야, 그대는 나아가 조그마한 법에도 집착할 것3)이 없으니, 그대의 마음을 작은 법 중에도 머무르지 않도록 하라.
016_1081_b_19L又言憍尸迦若善男子若善女人是敎他修行般若波羅蜜而說般若波羅蜜作如是言善男子來修行般若波羅蜜汝善男子乃至無有少法可捨汝心勿於少法中住
016_1081_c_02L 왜냐 하면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 중에는 정법(正法)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라 하는 것은 곧 법이 없는 것이니, 어디에 머무르겠느냐? 왜냐하면 교시가야, 모든 법은 자체의 성품이 공(空)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법의 자체가 공하다면, 그 법은 자체가 없는 것이고 그 자체가 없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
016_1081_b_24L何以故是般若波羅蜜中無有正法若過法是則無法於何處住何以故憍尸如一切法自體性空若其彼法自體空者彼法無體若無體者是名般若波羅蜜
만약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라면, 그것은 법을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으며, 생하거나 소멸하지도 않고, 단절되거나 상주하지도 않고, 한 가지 뜻이거나 다른 뜻도 아니며, 오거나 가지도 않는다. 이것이 진실한 반야바라밀이니라.’”
016_1081_c_06L若是般若波羅蜜者彼無少法可取可捨若生若滅若斷若常若一義若異義若來若去此是眞實般若波羅蜜
이러한 인연에 의거하여 이 논서를 지은 것이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알고 이 방편에 의하여 이제 해석할 것이니, 이른바 중론(中論)에 들어가는 문[入中論門)이다.
016_1081_c_09L依彼因緣故造此論如是知般若波羅蜜此方便故我今解釋所謂入『中論』門
저 선남자와 선여인이 말하였다.
“나는 색(色)이 무상함을 말고, 식(識)에 이르기까지 무상하고 괴로움, 무아 등이 무상함을 안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이것은 유사한 반야바라밀이지 진실한 반야바라밀은 아니다.
016_1081_c_11L彼善男子善女人言我知色無常乃至識無常我等以此因緣故是相似般若波羅非是眞實般若波羅蜜
【문】 만약 색이 공(空)하고 무상(無相)하며 무원(無願)이라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이 법이 오직 상사한 것이고 진실한 반야바라밀이 아니란 말인가? 이 세 가지 해탈(解脫)4)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유위(有爲)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공도 또한 유사한 것이겠는가?
016_1081_c_14L問曰若說色空無相無願云何此法唯是相似非實般若波羅蜜耶此三解脫世尊所說非有爲故云何彼空亦相似耶
【답】 취착(取著)5)하기 때문이다.
答曰以取著故
【문】 어떠한 법을 취착한다는 말인가?
016_1081_c_18L問曰取著何法
016_1082_a_02L【답】 색(色)에 취착하고 공(空)에 취착하고 혹은 유(有)에 취착한다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얻겠는가? 이 취착이 어찌 이러한 견해뿐이겠는가? 일체의 견해들이 모두 여래(如來)에 의하여 공이라고 설해졌으므로 단절해야 한다. 또 다시 어떤 사람이 곧 저 공을 보는데, 그 사람은 또 어떠한 법으로써 대치[對活]하는가? 오직 이제(二際)6)가 없다는 것만이 곧 그런 견해를 제거할 수 있다. 이제가 없기 때문에 제(際)가 아니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이미 가섭(迦葉)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일체의 모든 견해들은 공을 봄으로써 벗어날 수 있으나, 만약 사람이 공을 취하고 공에 대하여 견해를 일으킨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구제할 수 없느니라.”
이러한 의미에서 스승7)은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016_1081_c_19L答曰於色取著於空取著若有取著云何得是般若波羅此取著者豈非是見一切諸見皆因如來說空故斷又復何人卽見彼彼人復以何法對治唯無二際則能除無二際故名爲非際是故如來已爲迦葉如是說言一切諸見空得出若人取空於空生見我不能以此義故師說偈言
공(空)은 일체의 견해를 대치하니
이것은 여래께서 하신 말씀이다.
공에 대하여 견해를 일으킨다면
그에게는 곧 대치할 수가 없다.
016_1082_a_04L空對一切見
是如來所說
於空生見者
彼則無對治
또 다시 라후라발다라(羅睺羅跋多羅)8)라 이름하는 다른 스승도 말씀하셨다.
016_1082_a_06L又復餘師名羅睺羅跋陁羅言
일체의 견해를 대치하는 것은
여래께서 설한 공이 그것이다.
공을 탐애하지 않으면 집착하지 않게 되지만
공에 집착하면 공도 또한 사물일 뿐이다.
016_1082_a_07L一切見對治
如來說空是
不愛空不著
著空空亦物
공(空)과 불공(不空)을 탐애하지 말라.
이 두 가지는 탐애 아님이 없다.
부처님 말씀은 훼손할 수 없으며
부처님 말씀은 곳곳에 두루하다.
016_1082_a_09L不愛空不空
此二非不愛
無能壞佛語
佛語處處遍
또 다시 경전에서 부처님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016_1082_a_10L又復經中佛說偈言
무릇 사람은 바르게 보지 못하고
지혜가 적기 때문에 공에 취한다.
마치 뱀을 견고하게 잡지 못하고
주술을 잘 성취하지 못함과 같다.
016_1082_a_11L夫人不正見
少智故取空
如捉蛇不堅
如呪不善成
모두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색(色)에 취착하거나 색의 자체에 취착하고, 혹은 공(空)하다고 분별하거나 공하지 않다고 분별한다. 그러나 그러한 색은 필경 어떠한 사물도 없으니, 어떻게 공과 공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016_1082_a_13L諸如是等取著於色取著色體或分別空分別不空彼如是色畢竟無物云何當有空與不空
또 저 색의 경우처럼 모든 법이 또한 그러하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바와 같다.
“색과 다른 별도의 다른 공이 있지 않은 것처럼, 또한 공과 다른 별도의 다른 색이 있지 않다. 색이 공인 것처럼, 공이 색인 의미도 역시 또한 그러하다.”
016_1082_a_16L又如彼色一切諸法皆亦如是如佛世尊如是說言如不異色別更有空亦不異空別更有色如色於空空於色義亦復如是如是等故
또 다시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법이 공하지 않음을 본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법이 또한 공이고, 공이 또한 법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016_1082_a_20L又復經中佛言迦葉若有何人見法不空如是之人法亦是空空亦是法
016_1082_b_02L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하는 바 공이란 것은 공 자체가 공하고, 말하는 바 색이란 색 자체가 공하다. 만약 법이 조금이라도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에는 곧 공이 있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자체가 없으니, 어디에 마땅히 공과 공하지 않음이 있겠느냐?”
이러한 의미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에서 말하였다.
016_1082_a_22L又佛說言所言空者空自體空所言色者色自體空若有少法而不空者彼則有空一切諸法皆無自體何處當有空與不空依此義故有偈說言
만약 공하지 않은 법이 있다면
공도 또한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공하지 않은 법이 있지 않으니
어떤 법에 의하여 공을 말하리.
016_1082_b_03L若法有不空
空亦得言有
無有法不空
依何法說空
나는 이에 의하여, 취착하기 때문에 비슷한 주장이 성립한다는 것을 안다.
016_1082_b_05L我依此知以取著故相似義成
【문】 만약 스승들이 이와 같이 그러한 방편으로써 반야바라밀을 해석하였다면, 무슨 뜻으로 먼저 『중론』을 짓고는 조작이라 말하고 경(經)이라 하지 않았는가?
016_1082_b_06L問曰若師如是以此方便解釋般若波羅蜜義以何義故先造『中論』名爲造作而非是經
【답】 만약 사람이 어리석으면 지혜롭지 못하여, 그 사람은 마음을 일으켜 이와 같이 분별하며 모든 경전을 훼방할 것이다.
곧 “경(經)은 성숙하지 못하고 오직 논(論)만이 참다우며, 그 밖의 법은 논할 바가 못 된다”라고. 그러한 사람을 위하여 여기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016_1082_b_09L答曰若人愚癡非是黠慧彼人起心如是分別毀呰諸經謂經不熟唯論是實餘法無論爲彼人故此有偈言
번뇌의 원수를 모두 베어버리고
유(有)에서 구제하고 악도(惡道)에서 구제한다.
여래에게는 번뇌를 베어버림과 구제가 있으나,
이 둘은 그 밖의 법에는 없다.
016_1082_b_12L伐煩惱怨盡
救有救惡道
如來有伐救
此二餘法無
이 게송은 다만 바로 이 논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찬탄으로써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다. 또한 일체의 희론(戱論)과 분별과 모든 취착 등을 단절하기 때문에, 이 게송을 설한 것이다.
016_1082_b_14L此偈非唯直是根本亦以讚歎供養如來亦斷一切戲論分別諸取著等故說此偈
【문】 어찌하여 그러한가?
問曰云何
【답】 여래에게 공양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여래는 무량한 공덕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제 일단 대략 세 가지의 공양을 설명하겠다. 첫째는 법에 따라 수행하는 공양이고, 둘째는 자산과 재물을 바치는 공양이며, 셋째는 자신의 몸으로 예배하는 공양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법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공양 가운데 수승하다. 이 게송 가운데 법으로써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공양 중에서 수승하며, 물질적 공양은 수승하지 못하다.
016_1082_b_17L答曰有無量種供養如來以如來有無量功德今且略說三種供養一者隨法順行供養二者資財奉施供養三者自身禮拜供養此初隨法順行供養供養中勝以此偈法供養如來供養中勝非物供養
【문】 이것은 어떤 사람이 여래에게 공양하는 것을 말하는가?
問曰此說何人供養如來
016_1082_c_02L【답】 사람으로서 생함이 없는 이치를 통달한 자이다. 또 다시 하는 말이 있다. 수보리(須菩提)가 이전에 예경하였고, 우리 논사(論師)9)도 이와 같이 이 게송의 법으로 여래에게 공양하였다.
016_1082_b_23L答曰若人通達不生際者又復有說言菩提於先禮我論師如是以此偈法供養如來
【문】 세존에게 공양하는 것은 제일 길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논의 처음에 마땅히 법으로 공양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게송의 법으로써 능히 일체의 취착과 희론 등을 단절한다는 말과 같은 것을 이제 응당 설명해야 할 것이다.
016_1082_c_03L問曰供養世尊第一上吉是故論初應法供養謂此偈法如說能斷一切取著戲論等者今應當說
【답】 그대는 들으라. 나는 이제 그대를 위하여 설명할 것이니 잘 생각할지어다. 회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소위 얻음이 있다는 것[有得]과 사물이 있다는 것[有物]의 두 가지에 취착하고, 또 참되지 않은 모든 모습들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희롱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희론이라 이름한다. 그것을 이제 대략 설명하겠다. 소위 자체(自體)10)를 취착하거나, 혹은 자체 아닌 것을 취착하거나, 혹은 자체이기도 하고 자체 아니기도 한 것을 취착하거나, 혹은 자체도 아니고 자체 아님도 아닌 것을 취착하는 것 등을, 이 게송은 여기에서 일체 모두를 단절한다.
016_1082_c_05L答曰汝聽我今爲說善意思念言戲論者所謂取著有得有物二及不實取諸相等是戲弄法故名戲論彼今略說所謂取體若取非體取體非體或取非體非非體等此偈於彼一切皆斷
【문】 어찌하여 모두 단절하는가?
【답】 게송에서 말하였다.
問曰云何皆斷答曰偈言
부처님께서 이미 인연을 말씀하시어
모든 희론하는 법을 단절시켰다.
그러므로 나는 설법하는 스승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머리 숙여 예배드린다.
016_1082_c_11L佛已說因緣
斷諸戲論法
故我稽首禮
說法師中勝
인연에 의해 생하는 것은 모두 희론이다.
016_1082_c_13L因緣生者
皆是戲論
【문】 인연으로 생하는 것이 어찌하여 희론인가?
【답】 인연으로 생하는 것은 세존께서 이미 소승불교에서 말씀하시어, 차례대로 법의 뜻에 들어갈 수 있게 하고, 또한 외도들이 법에 취착하는 것을 대치하였다.
016_1082_c_14L問曰因緣生者云何戲論答曰因緣生者世尊已於小乘中說隨順次第得入法義亦以對治外道取法
016_1083_a_02L【문】 어떻게 대치하였는가?
【답】 외도는 삿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자체(自體)가 있다는 견해나, 단견(斷見)11)과 상견(常見)12)을 갖고 있다. 이렇게 집착을 즐겨 일체의 세계는 마혜수라(摩醯首羅)13)ㆍ시절(時節)14)ㆍ미진(微塵)15)ㆍ승(勝)16) 등으로 인하여 자성(自性)17)과 단멸(斷滅)18) 등이 생한다고 분별한다. 저 외도들이 이렇게 분별하면, 곧 인연의 뜻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이 희론을 즐기기 때문에 삿된 견해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희론은 모든 외도들이 취착하는 법이다. 이것을 단절하기 위하여 세존께서는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명을 인연으로 하여 행(行)이 생하고,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모든 행이 소멸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생겨나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소멸하기도 하는 것이지, 다른 법 때문에 이와 같이 세계가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016_1082_c_17L問曰云何對治答曰外道惡見彼有體見有斷常見如是樂著一切世界摩醯首羅時節微塵勝及自性斷滅等生如是分別彼外道人如是分別則失因緣彼人如是樂戲論故名爲惡見此之戲論是諸外道取著之法爲斷此故世尊已說無明因緣而生於行無明滅故諸行滅等以如是故有世界生以如是故則世界滅非餘法故如是生滅
【문】 마혜수라ㆍ시절ㆍ미진ㆍ승과 자성 및 단멸 등 이것들이 인연이 되어 능히 세계가 생겨나거나 세계가 소멸된다는 그러한 모든 인연들은 가히 희론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으로 소멸한다면, 어떻게 희론이라 하겠는가?
016_1083_a_03L問曰摩醯首羅時節微塵勝者自性及斷滅等此等因緣能生世界滅世界者此諸因緣可是戲論若因緣生因緣滅者云何戲論
【답】 취착하기 때문에 차례로 취착하여, 나아가 열반에 취착하게 된다. 그렇기에 여래도 또한 그러한 것을 금지하였으니, 하물며 인연에 취착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겠는가. 외도 사람들은 자체에 취착하기 때문에, 선도(善道)를 잃어버리고 악도(惡道)를 행하며 희론하고 참되지 못하다.
016_1083_a_07L答曰以取著故次第乃至取著涅槃如來亦遮何況不遮取著因緣外道之人取著體故失於善道行於惡道戲論不實
【문】 어찌하여 그러한가?
016_1083_a_10L問曰云何
【답】 마혜수라가 만약에 세계를 만든다면 그것은 항상하는 것인가, 무상한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하여 만드는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이미 생겨나서 만드는 것인가, 아직 생겨나지 않고 만드는 것인가, 존재하는데 만드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데 만드는 것인가? 그것은 이와 같은 모든 경우에 모두 옳지 않다. 만약 세계를 만든다면 항상하는데 만드는 것인가, 무상한데 만드는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하여 만드는 것인가, 다른 이를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겨난 것인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와 같은 모든 것은 상응하지 않는다. 도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016_1083_a_11L答曰摩醯首羅若作世界彼爲是常爲是無常爲爲他作不爲他作彼爲生已而有所作爲是未生而有所作爲有而作爲無而作彼如是等皆悉不然若作世界爲常而作無常而作爲爲他作不爲他作爲生不生爲有爲無如是一切皆不相應無道理故
【문】 어찌하여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016_1083_a_18L問曰云何名爲無道理耶
【답】 만약 항상하는 법이라면, 어떻게 세계를 조작할 수 있겠는가. 만약 항상하는 법이 세계를 만든다면, 허공도 또한 마땅히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무상한 법이 세계를 만든다면, 병(甁) 등도 또한 응당 세계를 만들 것이다. 만약 항상하며 무상한 법이 세계를 만든다면, 허공과 병이 모두 응당 세계를 만들 것이다. 이런 얼은 있을 수 없다.
016_1083_a_19L答曰若是常法云何而得造作世界若是常法作世界者虛空亦應得作世界是事不可若是無常作世界者甁等亦應造作世界若常無常作世界者虛空與甁皆應得作是事不可
016_1083_b_02L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항상하고 무상한 것은 과오이며 항상한 것과 무상한 것을 여의고 다시 다른 작업이 있어서 세계를 만든다고 한다면, 이것은 곧 무궁한 작업이 세계를 만드는 것이 되고, 또 다시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있게 된다. 여기에도 또한 과오가 있으니, 병도 또한 응당 작업이 있어 세계를 만들 것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그것은 허물이니 곧 만드는 자가 없이 세계를 만드는 것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 뜻도 성립하지 않는다.
016_1083_a_24L若汝意謂常無常過離常無常更別有作作世界者是則無窮作世界作更復有作之所作故此復有過甁亦應是作世界作是事不可若汝意謂此是過則無作者而作世界此義不成
【문】 어찌하여 성립하지 않는가?
016_1083_b_06L云何不成
【답】 중생(衆生)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작자가 없다면, 오히려 만드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하물며 다시 만드는 것이 있겠는가. 그 만드는 것이 없는데도 만들어진 것이 있다면, 이것은 곧 사물이 없는데도 또한 응당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다면, 토끼뿔[兎角]19)도 만들 것이고, 또한 응당 석녀(石女)의 자식20)도 만들 것이며, 또한 응당 허공의 화만(花鬘)21)도 만들 것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또한 병을 만들 수는 있으나, 모두 만들지 않는 것이다.
016_1083_b_07L答曰無衆生故若無作尚自非有況復有作如其無作得有造作是則無物亦應得作若其得作#兔角亦應作石女兒又亦應作虛空花鬘是事不可亦可作甁而皆不作
만약 이미 생겼다면 마땅히 세계를 만들 수 없음을 알 것이니, 병을 만들지 않음과 같다. 만약 아직 생기지 않았다면 또한 만들 수 없으니, 석녀의 아이와 같다. 만약 이미 있다면 세계를 만들지 않으니, 마치 그 사람(자신)과 같다. 만약 아직 없다면 세계를 만들지 않으니, 마치 토끼뿔과 같다. 이렇게 세계에서 항상함과 무상함 등은 비슷하지 않은 과오가 있는 것이다.
016_1083_b_12L若已生者當知不得造作世界如甁不作若未生者亦不得作如石女兒若是有者不作世界猶如其人若是無者不作世界猶如兔角此於世界常無常等不相似過
이와 같이 마혜수라와 항상함과 무상함 등이 만약 이 세계를 만드는 인연이라면, 세간의 죄(罪)와 복(福)도 또한 이들이 만든 것이 된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와 같다면, 일체의 죄와 복은 곧 과보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간을 보게 되면 죄와 복에는 모두 과보가 있다.
016_1083_b_17L又復如是摩醯首羅常無常等若是世界之因緣者世閒罪福亦是所作事不可若如是者一切罪福則無果然今現見世閒罪福皆有果報
016_1083_c_02L또 다시 수승[勝] 등은 사물 자체가 없기 때문에 세계를 만들지 않는다. 이 의미가 성취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자세히 말하였다. 인연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없는 것이다. 또한 장부(丈夫)22)가 장부를 만드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스스로 성립하지 않으므로 법을 성립시킬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장부가 존재한다면 유전(流轉)하는 행위가 있을 것이다. 수승함 같은 것은 항상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기 때문에, 수승함에는 유전하는 행위가 없다. 이것은 항상하기 때문이다. 장부가 깨닫고 장부가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곧 항상함은 수승한 것과 같다.
016_1083_b_21L復勝等無物體故不作世界此義成先已廣說以無因緣是故彼無丈夫作丈夫不成自不成故不能成若有丈夫可有轉行如勝是常因緣故勝無轉行以是常故如丈夫丈夫無覺則常如勝
만약 이와 같다면, 일체의 모든 법은 모두 다 항상하는 것이다. 만약 사물이 없다면 어떤 법이 항상하고, 만약 법이 항상하지 않다면 어떻게 유전(流轉)이 행해지는 것 등을 분별하겠는가? 가비라사(迦卑羅師),23) 그대는 제자이니 어찌 수승함이 있겠으며, 장부가 존재한다면 그대는 마땅히 설명하여 그 의미가 성립하게 하라. 그러한 후에야 항상함 등의 법이 성립될 것이다.
016_1083_c_04L若如是者切諸法皆悉是常若無物者何法爲若無法常云何分別流轉行等卑羅師汝是弟子云何有勝有丈夫汝當說之令義成就爾乃於後常等法成
【문】 어찌하여 수승함이 없는가?
【답】 어떻게 수승함이 있겠는가.
016_1083_c_09L問曰云何無勝答曰云何有勝
【문】 아함(阿含)24) 때문이다.
【답】 나도 지금 또한 아함 때문에 없다고 한 것이다.
016_1083_c_10L問曰以阿含故答曰我今亦以阿含故無
【문】 도리(道理)에 의하여 수승함의 존재함이 성취된다. 교대로 서로 포섭하기 때문이다.
【답】 무엇이 도리인가?
016_1083_c_11L問曰以道理故有勝成就迭相攝故答曰何者道理
【문】 수승함이 있으니, 차례로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마치 나무의 껍질을 보고 나무에 마을이 있음을 아는 것과 같다.
016_1083_c_13L問曰有勝以見次第有壞相故如見樹皮知有樹心
【답】 만약 이와 같다면, 그것은 그대 학파 중에서 개인적으로 헤아려 도리가 성취된 것일 뿐이다. 실제로 이 수승함은 없으니,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토끼뿔과 같으니, 토끼뿔에서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의 껍질 등도 그와 같다.
016_1083_c_14L答曰若如是者是汝家中私量所量道理成就實無此勝見壞相故猶如兔角兔角是有見壞相故如樹皮等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비록 겉모습[面] 등이 없어도 이것이 있다’고 한다면, 서로 유사한 종류가 아니므로 곧 수승함이 없음을 알 것이다. 생함이 없기 때문에 석녀의 아이와 같다. 만약 허공과 같다면 곧 성취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열반과 같다면 이것은 곧 사물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있고 있지 않음을 이루겠는가.
016_1083_c_17L若汝意謂雖無面等而是有者不相類故則知無勝以不生故如石女兒若如虛空則不成就若如涅槃是則無物無體云何成有不有
지금 나의 이러한 설명에 의하면, 그대가 비록 말을 한다고 해도 도무지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대가 지난 번처럼 종(宗)ㆍ인(因)ㆍ유(喩)25)로써 설명하여도 모두 상응하지 않는다. 이것을 나는 이제 설명하겠다. 그대가 주장한 수승한 법을 파괴하는 데는 무량한 종류가 있어 자세히 말할 수 없으나, 대략 조금만 설명하겠다.
016_1083_c_21L此我今說汝雖有語都無義理如汝向者見宗喩而有所說皆不相應此我今說破汝勝法有無量種不可具說略說少分
016_1084_a_02L그대가 말한 법 중에서 장부(丈夫)라고 말하는 것은, 중생이 없고 인연이 없기 때문에 마치 토끼뿔과 같다. 그대가 지난 번에 장부는 세계의 인연이라고 말하였는데, 이미 인용한 비유인 세계의 인연을 이제 함께 헤아려 보자. 만약 설명할 수 없다면, 인연의 구비됨이 곧 감소[減]한다. 인연의 구비됨이 감소하기 때문에, 이에 곧 과오가 있게 되어 비유가 감소한다. 그대는 곧 패퇴하여 일체의 논쟁에 대하여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비유가 없기 때문이다. 응당 먼저 스스로 자신의 주장26)을 관찰하라.
016_1084_a_02L於汝法中言丈夫者此無衆生無因緣故猶如兔角如汝向者言丈夫是世界因緣已引喩者世界因緣今共籌量若不能說緣具則減緣具減故是則有過譬喩則減汝則退壞一切諍對不成就者無譬喩故應先自觀己之朋
이미 자인상(自因相)을 설명하였다. 만약 그것이 항상하다면 곧 작자(作者)가 아니고, 만약 무상하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며, 만약 타인이 만들었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고, 타인이 만들지 않았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다. 만약 그 자체가 이미 생하였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고, 만약 아직 생하지 않았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며, 만약 그것이 있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고, 만약 그것이 없다면 또한 작자가 아니다. 모두 비유가 있어서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으니, 마땅히 세심하게 생각하여 헤아려 보라. 자붕(自朋)27)은 비유가 있으나 타붕(他朋)28)은 비유가 없다.
016_1084_a_09L已說自因相若其是常則非作者若是無常亦非作者若爲他作亦非作者不爲他作亦非作者若體已生亦非作者若是未生亦非作者若其是有亦非作者若其是無亦非作者皆有譬喩不能具說審思量自朋有喩他朋無喩
이와 같이 마혜수라와 시절, 미진 등이 세계의 인연이 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성립된다면, 만드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이 교대로 서로 상대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존재한다면 마혜수라는 곧 수승함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수승함도 또한 마혜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저 외도들이 말하는 만드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은 교대로 서로 어긋나서 모두 상응하지 않는다.
016_1084_a_15L如是如摩醯首羅微塵等世界因緣則不成就若此成就作與所作迭互相作無如是事若有此事摩醯首羅則能作勝勝亦能作摩醯首羅如是等故如是外道說作所作迭互相違皆不相應
【문】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인연을 구비함이 성립되지 않으면, 이것은 곧 과오이며 비유도 즉시 소멸된다. 또 패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나는 이제 설명하겠다. 어떤 것이 인연을 구비함이고, 어떤 것이 감소하는 모습이며, 어떠한 사람들이 그러한가? 종(宗)ㆍ인(因)ㆍ유(喩) 등의 셋이 인연을 구족함인데, 그와 같은 사람은 곧 세 가지가 감소되어 오직 인(因)29)과 비유[喩]만 있게 된다. 이 두 가지로는 과오가 있다.
016_1084_a_21L問曰如汝所說緣具不成是則有過譬喩則減復退壞者此我今說何等緣具何者減相若何等人喩等三是緣具彼如是人則三種減唯因譬喩此二有過
016_1084_b_02L 인연을 구비하기 때문에 종(宗)은 곧 감소될 수 없다. 이것이 언설의 근본이기 때문이며, 또 의미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이미 세 가지의 감소와 인과 비유의 두 가지 감소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이것의 세 부분을 분별한다면, 구족하여 화합하므로 인연을 구족한다고 이름한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응당 세 가지의 감소가 있다.
016_1084_b_02L以緣具故宗則無減以是言說之根本故又義成故此久已說有三種減喩二減若人分別此之三分具足和合故名緣具彼如是人應三種減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인(因)의 세 가지 모습[因三相]30)을 말한다면, 즉시 인연을 구족하는 것인데, 그 사람에게 세 가지 중 어떠한 감소가 있겠는가? 인연이 구족되는 것이 잘못인가, 비유가 감소되는가, 어떻게 그 사람에게 응당 감소가 있겠는가? 만약 인연이 구족되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대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비유가 감소되었기에 인연을 구족하는 잘못이 있다거나 또는 패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16_1084_b_06L若復有人因三相語則是緣具彼人三種云何有減若緣具過若譬喩減云何彼人而當有減若緣具過汝未知故作如是說說喩減已得緣具過若復退壞
【답】 어찌하여 이렇게 허공을 쳐대는가, 만약 능히 마혜수라에 관한 주장을 떨쳐 버린다면, 그 즉시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지혜롭다고 할 만하여, 이내 약야수마(若耶須摩)31)의 주장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대가 이렇게 하는 말은, 출세간법(出世間法)과 세간법(世間法)을 설명할 수도 없고 또한 상응하지도 않는다. 그 허망한 것이 지극히 범속하고 비루하기 때문이다.
016_1084_b_10L答曰云何如是撾打虛空若能捨離摩醯首羅之朋分已則可起心自謂黠慧爾乃攝取若耶須摩之朋分也汝此語言不能說於出世閒法與世閒法復不相應以其虛妄最凡鄙故
사정이 이러하므로 곧 대답할 필요조차 없다. 약야수마 논사가 말한 그 언어법(言語法)32) 같은 것이 어떻게 또 세제(世諦)33)의 법을 여의겠는가. 이렇게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어떤 것이 그 인(因)의 세 가지 모습인가? 만약 어떤 법의 말이 인연을 구족한다면, 다시 어떤 것이 인의 세 가지 모습인가?
016_1084_b_15L此如是故則不須答若耶須摩論師說言言語法云何復離世諦之法此我今以何者是彼因三相若何者法語爲緣具復以何者是因三相
【문】 주장 중의 법은34) 상대하는 주장이 없고,35) 또 자신의 주장이 성립한다.36) 마치 소리[聲]가 무상한 것과 같다.37) 조작되기 때문이고, 인연이 허물어지기 때문이며, 조작된 후생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으므로 만약 법이 조작되면 모두 무상하다. 비유하면 병(甁) 등과 같다. 소리도 또한 이와 같이 조작되므로 무상하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은 조작된 것이므로 무상하다.
016_1084_b_19L問曰朋中之法相對朋無復自朋成如聲無常以造作故因緣壞故作已生故如是等故若法造作皆是無常譬如甁等聲亦如是作故無常諸如是等一切諸法作故無常
016_1084_c_02L【답】 어떤 것을 조작된 법이라고 말하는가? 곧 조작된 것을 조작이라 말하는가, 조작을 여의고 조작이라 말하는가? 이것을 이제 해석하겠다. 만약 조작되었기 때문에 조작이라 말한다면, 소리는 조작된 법이며 소리는 모두 조작된 것이므로 조작된 것이라 말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주장하는 법은 포섭할 수 없어 곧 소리는 주장하는 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016_1084_b_24L答曰名作法爲作名作離作名作此今解若以作故名爲作者聲是作法聲皆是作是故名作若如是者朋法不攝則不得言聲是朋法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이러한 과오가 있기는 하지만 소리와 조작이 달라서 소리는 곧 조작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만약 법이 조작을 여읜다면 조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소리는 조작이 아님을 안다. 만약 소리가 조작이 아니라면, 이것은 곧 법이 아닌 것이다. 만약 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말하거나 혹은 무상하다고 말하겠는가. 만약 사물을 분별한다면, 사물을 분별하는 병이 어떻게 소리를 조작하겠는가.
016_1084_c_06L若汝意謂有如是過聲與作異聲則非作若法離作不得言作以如是故知聲非作若聲非作是則無法若無法者云何言常或言無常若分別物分別物法云何作聲
있기 때문에 조작이고 없기 때문에 조작이라는 것을 이제 해석하겠다. 있는 법은 조작되지 않고, 없는 법도 또한 조작되지 않으며, 만약 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도 역시 조작되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말하기를, ‘소리는 조작된 법이다, 그러므로 무상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 일은 옳지 않다. 또 그대가 세 가지 모습을 말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조작된 법이라 이름하고, 인(因)과 인의 말[因語]이 모두 인연을 구족한다고 하면, 곧 상응하지 않는다.
016_1084_c_11L爲有故作爲無故作此今解釋有法不作無亦不作若法有無亦不成作若汝說言聲是作法故無常者是事不然又如汝說三種相故是名作法因及因語皆是緣具則不相應
【문】 어찌하여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問曰云何名爲不相應耶
【답】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체의 조작된 법에는 세 가지 모습이 없다. 주장의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조작된 주장의 상대인 그 주장은 조작되지 않으므로 서로 파괴한다. 만약 조작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법이 없는 것이다. 만약법이 없다면, 어떻게 파괴되겠는가. 이와 같이 양쪽의 주장은 동등하지도 않고, 수승하지도 않으며, 조작된 법도 아니다. 만약 법의 파괴가 없다면, 또한 토끼뿔도 파괴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의미가 상응하지 않는다.
016_1084_c_16L答曰以不成故一切作法無三種相無朋對故作朋之對彼朋不作是故相破若不作者是則無法若無法者云何破壞如是兩朋非等非勝非有作法若無法壞亦可說言兔角破壞以無體故義不相應
016_1085_a_02L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무상하다는 주장과 항상하다는 주장이 상대하여 이렇게 따라 일어난다’고 한다면, 이것을 내가 이제 설명하겠다. 그대는 대단히 어리석어 성립되지 않는 법을 가지고 성립시키려고 한다. 이 무상한 것을 이름하여 사물이 없다고 한다. 만약 사물이 없다면 곧 자신의 주장이 없고, 자신의 주장이 성립되지 않으면 따라 일어날 수도 없고 전변할 수도 없다. 만약 이와 같다면 허공 등과 같다. 사물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타붕(他朋)은 항상하다고 말한다면, 이 일은 옳지 않다.
016_1084_c_22L若汝意謂無常之朋常朋相對如是隨起此我今說汝甚愚癡以不成法而欲成法此無常者名爲無物若無物者則無自朋自朋不成不得隨起不得迴轉若如是者不得言朋如虛空等以無物故若汝說言他朋常者是義不然
【문】 어찌하여 옮지 않은가?
問曰云何不然
【답】 항상함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항상함이란 것은 있는 사물인가, 없는 사물인가? 만약 있는 사물이라면, 병(甁)은 곧 항상할 것이다.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항상함이 없는 사물이라면, 토끼뿔은 응당 항상할 것이다.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그대가 말하기를, “조작된 법은 자신의 주장[自朋]을 따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이 일은 옳지 않다. 그 자신의 주장이 성취되지 않기 때문이다.
016_1085_a_05L答曰常不成故如此常者爲是有物爲是無物若是有物甁則是常以有物故若常無物兔角應常以無物故是故不得言常無常若汝說言作法隨自朋不是義不然以其自朋不成就故
【문】 어찌하여 성취되지 않는가?
016_1085_a_10L云何不成
【답】 이것은 주장과 더불어 비슷함이 성립되지 않음을 말한다. 비슷하다고는 말할 수 있으나, 비슷하기 때문에 자붕(自朋)과 타붕(他朋)이 있다. 그러나 그대의 주장은 곧 상응하지 않는다. 성취되어야 할 법이 성취되지 않기 때문이다.
016_1085_a_11L答曰此說不成與朋相得言相似以相似故有自他朋汝朋者則不相應以所成法未成就故
【문】 어찌하여 성취되어야 할 법이 성취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016_1085_a_13L問曰云何名爲所成未成
【답】 성취되어야 할 법이 무상하기 때문이다. 무상한 것은 사물이 없는 것이다. 그 없는 사물이 어디에 비슷한 것이 있겠으며, 무엇이 비슷하단 말인가. 소위 병(甁)은 무상하지만 또한 비슷하게 생한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말한다면, 성취되는 법은 비슷함과 다름이 있어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고, 비슷하기 때문에 자붕과 타붕이 있다. 이것이 성립되어야 할 법이다.
016_1085_a_14L答曰以所成法是無常故無常無物如其無物何處相似何者相似謂甁無常亦相似生若如是說所成之法有異相似得言相似以相似故有自他朋此所成法
만약 두 가지가 있으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병과 무상은 두 가지 법이 있으므로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두 가지 법이 없으므로 비슷하지 않다. 저 성취되어야 할 법이 만약 생기지 않는다면, 무엇을 무상이라고 말하며, 어떻게 성취되어야 할 것이 성취된다고 말하며, 어떻게 무상함이 성취되어야 할 것을 성취하겠는가?
016_1085_a_19L若有二種得言相似甁與無常有二種法得言相似無二種法故不相似彼所成法若未生者何名無常云何名爲所成成就云何無常所成成就
【문】 어찌하여 성취되어야 할 것이 성취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問曰云何名爲所成不成
016_1085_b_02L【답】 그런데 이 성취되어야 할 것이 때로는 소리[聲]이고, 때로는 무상(無常)이며, 때로는 소리와 무상이 합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일체는 모두 성취될 수 없다. 만약 성취되지 않는다면, 어디에 성취되는 법이 있겠는가. 만약 사물을 분별한다면, 분별하는 사물의 법에는 비슷함이 있게 된다.
016_1085_a_23L答曰然此所成或時是聲或是無常或聲無常若合或和此等一切皆不可成若不可成爲於何處有所成法若分別物分別物法若有相似
만약 그대가 생각하기를, ‘소리와 무상의 두 가지 법을 여의고 그 밖에 다시 다른 사물을 포섭하는 것이 성취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일은 옮지 않다. 사물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물이 소리와 무상 등의 두 가지를 여의고 어디에 포섭되기에 사물이라 이름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만약 소리라면, 그것은 곧 성취되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만약 무상이라면, 그것은 없는 법이므로 성취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리는 파괴할 수 없다. 만약 합하는 것이라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있는 사물과 없는 사물은 합할 수 없기 때문에 합해지지 않는다. 조화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얻을 수 없다.
016_1085_b_04L若汝意謂離聲無常二種法外更攝餘物名所成者是義不然物不成故彼何者物離聲等二於何處攝而得言物彼若是聲彼則不得名爲所成以成就故若是無常彼無法故所成不成聲不能破若是合者是亦不然物與無物不可得合是故不合和亦如是而不可得
만약 그대가 다시 생각하기를, ‘소리는 다른 것으로 성취된다’고 한다면, 이 일은 옳지 않다. 무상과 소리는 별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다르게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말하기를, “주장이 있으면 법을 만든다”라고 한다면, 이일은 옳지 않다. 주장을 여의고 법이 있다는 것은 성취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佛敎)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물을 여의고 그 밖에 다시 사물이 있는 법이 없다.
016_1085_b_12L若復意謂聲異所成是義不然無常與聲不別異故不異成故若汝說言有朋法作是義不然離朋有法義不成就於佛法中離物以外更無物法
【문】 인연을 구비함과 성취되는 것, 이 둘은 상대되는 것으로, 사물과 사물의법[物物法]이라 이름한다
016_1085_b_16L問曰緣具所成此二相對名物物法
【답】 인연을 구비함과 성취되는 것의 둘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 만드는 사물을 여의고 그 밖에 다시 만드는 법이 없다. 이와 같이 만드는 법과 주장은 서로를 여의지 않는다. 만약 만드는 것이 주장을 여읜다면, 주장은 곧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만드는 것이 법이며, 만드는 것을 여의고 법이 없다. 소리를 여의고 만드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말하였다.
016_1085_b_17L答曰緣具所成二皆不成離作物外更無作法如是作法與朋不離若作離朋朋則非作唯作是法離作無法不離於聲而有作法是故偈言
생함을 만드는 것은 오직 형상일 뿐이며
만드는 자도 또한 이와 같다.
일체의 생함은 진실하지 않으며
생하는 법은 토끼뿔과 같다.
016_1085_b_21L生作唯相貌
作者亦如是
一切生不實
生法如兔角
016_1085_c_02L이와 같이 만드는 법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다시 있고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만드는 법의 세 가지 양태는 도리에 상응하지 않는다. 만드는 법은 사물이 없으니 말[語]이 어디에서 인연을 구비하겠는가, 세 가지 양태가 감소하는 데에서인가, 인연이 구비되는 잘못에서인가?
016_1085_b_23L如是作法非有故有非無故有亦復非是有無故有如是思量作法三相義不相應作法無物語於何處得爲緣具若三種減若緣具過
또 다시 말[語言]은 세 가지 양태에서 상응하지 않는다. 말로 설명된 법은 모두 공(空)하여 없기 때문이고, 자체의 모습[自相]이 없기 때문이다. 구(句)와 말[言]은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글자[字]를 여의고 구(句)가 없다. 그 둘은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글자는 미진(微塵)으로 구성되며, 미진으로 인하여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미진은 분량을 얻을 수 없다. 분량이 없기 때문이다. 미진은 자체가 없어서 생성되거나 소멸하는 일이 성립될 수 없다.
016_1085_c_04L又復語言於三種相則不相應語所說法皆空無故無自相故句之與語非一非異離字無句非一非異字微塵成因微塵有然彼微塵無分可得以無分故微塵自無不能有成若起若滅
【문】 그대는 말한 바와 같이 법이 공하다고 말하는데, 법이 공하기 때문에 말[語]의 세 가지 양태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 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고, 그 말이 말하는 바는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연의 파괴 등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법이 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세 가지 양태를 부정하는 것이다.
016_1085_c_10L問曰如汝所言所說法空以法空故語三種相皆不成者是義不然所說有故此語所說有可得故因緣壞等云何而言所說法空遮三種相
【답】 인연의 파괴라는 것은 도리에 상응하지 않는다.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의 인연이 파괴된다면, 어떻게 상응하겠는가? 시시각각으로 생멸하기 때문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이미 없는 물건인데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인연의 파괴는 생함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토끼뿔과 같다. 또한 무상(無常)이라는 이 말의 세 가지 양태는, 항상하거나 무상하거나 그 둘은 모두 상응하지 않는다.
016_1085_c_14L答曰因緣破壞義不相應不成就故聲因緣壞云何相應以念念故以不住故旣是無物何處得有因緣破壞以不生故猶如兔角若復無常此語三相若常無常二不相應
마치 허공이 없는 것과 같고, 또한 병(甁)과 같아 인연이 다. 이와 같이 인연은 일체가 모두 없으니, 두 가지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일체는 다 이렇게 삿된 법에 소속되며 모두 희론이지만, 외도(外道)를 깨뜨리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인연을 설한 것이다.
016_1085_c_19L如虛空無又亦如甁無有因緣如是因緣一切皆無有二過故此等一切悉皆如是邪法所攝皆是戲論破外道故佛說因緣
016_1086_a_02L【문】 만약 이와 같다면, 어떻게 인연을 희론(戱論)이라 할 수 있는가? 여래(如來) 세존(世尊)께서는 모든 인연이 진실하기 때문에 설하였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무명(無明) 등은 큰 괴로움의 무리로서 화합하여 생긴다. 만약 무명이 멸하면 큰 괴로움의 무리도 멸한다.”
여래 세존은 이렇게 고성제(苦聖諦)38)를 말씀하거나, 혹은 괴로움의 소멸을 말씀하셨다. 만약 이것이 진실이라면 어떻게 희론이라 하겠는가?
016_1085_c_22L問曰若如是者云何因緣得言戲論如來世尊以諸因緣是實故說佛如是說此無明等是大苦聚和合而生若無明滅大苦聚滅如來世尊說苦聖諦或說苦滅若是實者云何戲論
【답】 현명하게 마땅히 잘 들어라, 이제 이것을 대략 설명하겠다. 무엇을 무명이라 이름하는가? 네 가지 전도(四顚倒)39)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명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어떻게 진실하다고 말하겠는가. 또 괴로움은 고성제라고 말하였는데, 여래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016_1086_a_04L答曰賢面當聽此今略說何名無明以不能知四顚倒故說名無明云何名實又言苦是苦聖諦者如來世尊不如是說
『승사유범천소문경(勝思惟梵天所問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梵天)이여, 만약 저 괴로움[苦]이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면, 일체의 소나 돼지 등의 모든 축생들도 응당 진실한 진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모두 갖가지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016_1086_a_08L如『勝思惟梵天問經』佛言梵天若彼苦是實聖諦者一切牛諸畜生等應有實諦何以故以彼皆受種種苦故
또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약 저 괴로움의 발생[集]40)이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면, 육도(六道)의 중생들은 응당 진실한 진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괴로움의 발생으로 인하여 그 모든 생존계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016_1086_a_11L又言梵天若彼集是實聖諦者六道衆生應有實諦何以故以彼因集生諸趣故
또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약 저 괴로움의 소멸[滅]41)이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면, 일체 세간의 삿된 단견(斷見)에 떨어져 일체의 소멸을 말하는 자들은 응당 진실한 진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소멸하는 법이 열반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016_1086_a_13L又言梵天若彼滅是實聖諦者一切世閒墮邪斷見說滅法者應有聖諦何以故彼說滅法爲涅槃故
또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만약 저 도(道)42)가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면, 일체의 유위도(有爲道)를 반연하는 것에 응당 진실한 진리가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유위법(有爲法)43)에 의지하여 유위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은 진실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016_1086_a_16L又言梵天若彼道是實聖諦者緣於一切有爲道者應有實何以故以彼依有爲法求離有爲法故以是故知苦非實諦
또 다시 말씀하셨다.
“괴로움이 생겨남이 없음을 아는 것을 괴로움에 대한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경전에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6_1086_a_19L又復說言知苦無生是名苦實聖諦是故如來經說偈言
한 가지 진리가 있어 생하지 않음[不生]이라 이름하는데
사람들은 네 가지 진리[四諦]를 설한다고 한다.
도량에서는 한 가지도 보지 않거니와
하물며 어찌 다시 네 가지가 있으랴.
016_1086_a_21L一諦名不生
有人說四諦
道場不見一
何況復有四
이와 같이 미래 세상에는
항상 여러 비구들이 있어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출가한 후
이렇게 나의 법을 파괴할 것이다.
016_1086_a_23L如是未來世
當有諸比丘
惡意出家已
如是壞我法
016_1086_b_02L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법은 전부 다 생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통달하여 안다면, 이것이 진실로 성스런 진리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수보리(須菩提)야, 나아가 미진 등의 법조차도 없기 때문에 생하지 않는다고 이름한다. 그대가 어떠한 법을 알았기에 생하지 않는 법을 안다고 말하는가 하면, 무생인(無生忍)44)을 아는 것을 무생법인(無生法忍)45)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괴로움 등의 네 가지 법은 사성제(四聖諦)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저 사람들처럼 분별한다면, 곧 지혜가 될 수 없다. 만약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안다면, 이에 진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고, 지혜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성자 수보리는 여래께 이렇게 질문하였다.
016_1086_a_24L是故得知一切諸法悉皆不生通達知者是實聖諦是故如來復有說言須菩提乃至無有微塵等法故名不彼何法知而得名爲知不生法無生忍而得名爲無生法忍以是故苦等四法非四聖諦若如彼人之所分別則非是智若有能知不生不乃得言諦乃得言智此如是義聖須菩提問如來言
괴로움[苦]이 열반입니까,
괴로움을 아는 지혜[苦智]가 열반입니까?
괴로움의 발생[集]이 열반입니까,
괴로움의 발생을 아는 지혜[集智]가 열반입니까?
016_1086_b_10L爲苦是涅槃
苦智是涅槃
爲集是涅槃
集智是涅槃
괴로움의 소멸[滅]이 열반입니까,
괴로움의 소멸을 아는 지혜[滅智]가 열반입니까?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이 열반입니까,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아는 지혜[道智]가 열반입니까?
016_1086_b_12L爲滅是涅槃
滅智是涅槃
爲道是涅槃
道智是涅槃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佛言須菩提
괴로움은 열반이 아니고
괴로움을 아는 지혜도 열반이 아니다.
괴로움의 발생은 열반이 아니고
괴로움의 발생을 아는 지혜도 열반이 아니다.
016_1086_b_13L苦非是涅槃
苦智非涅槃
苦集非涅槃
集智非涅槃
괴로움의 소멸은 열반이 아니고
괴로움의 소멸을 아는 지혜도 열반이 아니다.
괴로움을 없애는 길은 열반이 아니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아는 지혜도 열반이 아니다.
016_1086_b_15L苦滅非涅槃
滅智非涅槃
道非是涅槃
道智非涅槃
또 다시 수보리야,
사성제(四聖諦)는 평등하니
나는 이것을 열반이라 말한다.
이와 같이 열반이란 것은
016_1086_b_16L又復須菩提
四聖諦平等
我說是涅槃
如是涅槃者
괴로움도 아니고 괴로움을 아는 지혜도 아니며 ,
이와 같이 차례로 내지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아는 지혜도 아니다.
016_1086_b_17L非苦非苦智
如是次第至
非道非道智
그때 성자 수보리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또 어떤 것이 사성제가 평등하다는 말입니까?”
016_1086_b_18L時聖須菩提白佛言世尊復以何者是四聖諦平等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佛言須菩提
평등이라 말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 임하게 되어도
괴로움도 아니고 괴로움을 아는 지혜도 아니며,
이와 같이 차례로 내지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아는 것도 아니다.
016_1086_b_20L所言平等者
隨在於何處
非苦非苦智
如是次第至
非道非道智
저 일체의 법은
일체법이 진여(眞如)로서
허망하지 않은 진여이니
이렇게 법은 평등하다.
016_1086_b_22L若彼一切法
一切法眞如
不虛妄眞如
如是法住等
나는 저 열반이
괴로움 등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체의 법은 생하지 않으니
자체(自體)가 없기 때문이다.
016_1086_b_23L我說彼涅槃
而非是苦等
一切法不生
以無自體故
이렇게 말할 때 능히
일체의 법이 생하지 않음을 아는 것을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고 이름한다.
016_1086_b_24L如是說能知
一切法不生
是名實聖諦
016_1086_c_02L【문】 만약 이와 같다면, 어떠한 뜻으로 여래께서는 경전 중에서 사성제를 말씀하셨는가?
016_1086_c_02L問曰若如是者以何義故如來經中說四聖諦
【답】 그것은 차례로 순서를 따라 진리에 들어가게 하려고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제일의(第一義)46)가 아니며, 혹은 진실하고 혹은 허망한 말이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이여, 진실로 성스런 진리, 진실로 성스런 진리라고 말하는데, 어디에 진실하지 않고 허망하지 않은 말이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일 때문에 네 가지 전도가 발생하니, 그러한 지혜는 진실하지 않다. 이와 같이 괴로움이 진리라는 것은 진실로 성취되지 못하고, 나의 주장이 성취된다.
016_1086_c_04L答曰此爲次第隨順入故佛如是說非第一義或實或妄語故世尊說言梵天言實聖諦實聖諦何處無實無妄語等以是義故顚倒起此智非實如是苦諦實不成我義成就
【문】 나는 지혜가 아닌 것을 진실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혜가 아닌 것을 깨닫기 때문에 진실이라 이름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말하는가 하면, 무상(無常)한 법을 항상하다[常]고 말하기 때문에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며, 괴로움[苦]을 즐거움[樂]이라 말하기 때문에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며, 무아(無我)를 자아[我]라 말하기 때문에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며, 청정하지 못한 것을 청정[淸]하다고 말하기 때문에 지혜가 아니라 이름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지혜가 아니다. 만일 무상한 것을 무상한 줄 알고,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알고, 무아의 법에서 능히 무아를 알며, 부정한 법에서 능히 부정을 안다면, 이와 같이 아는 자를, 그는 지혜를 얻고 그는 진실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내가 말한 지혜를 진실하다고 이름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지혜와 진실이 없는 것이 아니다.
016_1086_c_09L問曰我則不說非智爲實我說非智覺故名實云何而說於無常法謂是常法故名非智於苦謂樂故名非智無我謂我故名非智不淨謂淨故名非智如是等者皆非是智若於無常能知無常於苦知苦於無我法能知無我於不淨法能知不淨如是知者彼得言智彼得言實如是我說智名爲實非無智實
【답】 이는 불쾌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와서 내게 풍기는 것과 같다. 이것은 희론이기 때문이며, 이 불쾌함은 최대로 집착을 즐기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016_1086_c_18L答曰此癡臭氣風來薰我以戲論故此癡最大樂著智
【문】 어찌하여 그러한가?
問曰云何
【답】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答曰偈言
만약 무상함이 있다면
항상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이미 조금도 무상함이 없는데
어디에 마땅히 항상함이 있으리.
016_1086_c_20L若其有無常
可得言有常
旣無少無常
何處當有常
만약 괴로움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즐거움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이미 조금도 괴로움이 없는데
어디에 마땅히 즐거움이 있으리,
016_1086_c_22L若其少有苦
可得言有樂
旣無微少苦
何處當有樂
만약 조금이라도 무아가 있다면
자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이미 무아가 있지 않은데
어디에 마땅히 자아가 있으리.
016_1086_c_23L若少有無我
可得言有我
旣無有無我
何處當有我
016_1087_a_02L만약 적정(寂靜)하지 않음이 있다면
적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이미 적정하지 않음이 없는데
어디에 적정이 있으리.
016_1086_c_24L若有不寂靜
可得有寂靜
旣無不寂靜
何處有寂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色) 자체에 탐욕하여 집착한 후, 혹은 항상하다고 분별하거나 무상하다고 분별한다. 그러나 색 자체는 공(空)하여 필경 아무런 물체도 없다. 어디에 항상함이 있고 또 무상함이 있겠는가. 이러한 종류들은 색이 그러하듯 모든 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희론을 성립한다. 그러나 이 인연도 또한 희론이다. 다만 인연만이 이러한 희론일 뿐 아니라, 부처님에 대한 견해를 취하는 것까지도 또한 희론이다.
016_1087_a_03L而於色體貪取著已或分別常分別無常色自體空畢竟無物何處有常及有無常如是等類如色如是至一切法皆此因緣成就戲論然此因緣亦是戲論非唯因緣如是戲論乃至取佛亦是戲論
【문】 어찌하여 그러한가?
016_1087_a_09L問曰云何
【답】 선남자여, 그대는 이 말을 듣고서 교만하지 말라. 부처님의 지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세존(世尊)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6_1087_a_10L答曰善男子汝勿憍慢佛智難解世尊偈言
마음을 금강(金剛)같이 지니고
부처님의 지혜를 깊이 믿으라.
심지(心地)47)가 본래 무아임을 안다면
능히 미세한 지혜를 얻어 들을 것이다.
016_1087_a_11L持心如金剛
深信佛智惠
知心地無我
能聞微細智
이제 그대는 착한 뜻으로 금강같이 선한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대를 대면하여 이제 희론과 희론하지 않는 모습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016_1087_a_13L今汝善意生金剛心善面汝今聽說戲論不戲論相
【문】 어떠한 것인가?
016_1087_a_15L問曰云何
【답】 그것은 이와 같은 의미이다. 부처님께서 대경(大經)48)에서 깨달은 보살을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자체 아닌 것은 자체 아님을 깨닫지 못한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자체는 능히 자체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수보리야.’
016_1087_a_16L答曰此如是義佛大經中覺菩薩故言須菩提非體不覺非體須菩提言世尊云何體能覺非體耶佛言不爾須菩提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자체 아닌 것이 능히 자체를 깨달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수보리야.’
016_1087_a_19L須菩提言世尊何非體能覺體耶佛言不爾須菩提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자체가 능히 자체를 깨달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수보리야.’
016_1087_a_20L須菩提言世尊云何體能覺體耶不爾須菩提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자체 아닌 것이 자체 아닌 것을 깨달을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수보리야.’
016_1087_a_22L須菩提言世尊云何非體能覺非體耶佛言不爾須菩提
016_1087_b_02L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일체의 법을 얻을 수 없으며, 깨달을 수도 없고, 증득할 수도 없습니까? 자체는 자체 아닌 것을 깨달을 수 없고, 자체 아닌 것은 자체를 깨달을 수 없으며, 자체는 자체를 깨달을 수 없고, 자체 아닌 것은 자체 아닌 것을 깨달을 수 없다면, 이것은 마땅히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016_1087_a_23L須菩提言世尊云何一切法不可得不可覺耶不可證耶若體不覺非非體不覺體體不覺體非體不覺非體此當無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깨달음이 있고 얻음이 있는 이 네 가지 유형의 법은 옳지 못하다.’
016_1087_b_04L佛言有覺有得非此四句法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어떻게 깨달아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자체도 아니고 자체 아님도 아니라고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어디에도 희론이 없다고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희론도 아니고 희론하는 법도 아니라고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016_1087_b_05L須菩提言世尊云何覺佛言須菩提非體非非體彼如是覺何處無戲論彼如是覺非戲論非戲論法彼如是覺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에게 어떤 것이 희론입니까?’
016_1087_b_08L慧命須菩提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何者戲論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 색(色)이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는 것이 희론이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는 것이 보살마하살에게 희론이다. 혹은 색을 안다거나 모른다는 것이 보살마하살에게 희론이며,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을 안다거나 수ㆍ상ㆍ행ㆍ식을 모른다는 것이 보살마하살에게 희론이다. 일체가 괴로움이라는 성스런 진리를 안다는 것이 희론이고, 괴로움의 발생을 단절한다는 것이 희론이며,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한다는 것이 희론이고, 괴로움을 없애는 도를 닦는다는 것이 희론이다.
016_1087_b_09L佛言須菩提色常無常者菩薩摩訶薩戲論菩提受想行識常無常者菩薩摩訶薩戲論若知色若不知色者菩薩摩訶薩戲論如是知受想行識不知受想行識者菩薩摩訶薩戲論知苦聖諦者戲論斷集者戲論證滅者戲論修道者戲論
네 가지 선정[四禪]49)을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고, 네 가지 무량[四無量]50)ㆍ네 가지 무색정[四無色]51) 삼마발제(三摩跋提)52)를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다. 사념처(四念處)ㆍ사정근(四正勤)ㆍ사여의족(四如意足)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칠각분(七覺分)ㆍ팔성도(八聖道)53)를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며, 공해탈문(空解脫門)ㆍ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ㆍ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54)을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다. 팔해탈(八解脫)55)ㆍ구차제정(九次第定)56)ㆍ수순행(隨順行) 삼마발제(三摩跋提)를 수행하는 것이 희론이며,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벽지불도(辟支佛道)를 얻는 것이 회론이다.
016_1087_b_16L修行四禪者戲論修行四無量四無色三摩跋提四念處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聖道者戲論修行空解脫門無相無願解脫門者戲論修行八解脫九次第隨順行三摩跋提者戲論得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者戲論
016_1087_c_02L나는 인연을 만나 보리(菩提)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고, 나는 보살의 십지[十菩薩地]57)를 구족하였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다. 나는 또한 보살행(菩薩行)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고, 나는 중생을 교화하여 성취시켰다고 하는 것이 회론이다.
016_1087_b_23L我得緣覺菩提者戲論我具足滿十菩薩地者戲論得菩薩行者戲論我敎化衆生令成就者戲論
나는 여래의 열 가지 힘[十力]58)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고, 나는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所畏)59)과 네 가지 걸림없는 지혜[四無礙智]60)와 열여덟 가지 함께 할 수 없는 법[十八不共法]61)을 얻어 만족하였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다. 또한 일체를 얻어 구족하였다는 것이 희론이고, 나는 일체의 결습(結習)62)을 끊었다고 하는 것이 희론이다.
016_1087_c_03L我生如來十力者戲論得四無所畏四無碍智十八不共法滿足者戲論我得一切具足者戲論我斷一切結習者戲論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여 이미 색이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희론임을 알고, 응당 이와 같이 희론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회론하지 말아야 하며, 나는 일체지(一切智)63)를 얻었다고 하는 희론까지 응당 이와 같이 희론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016_1087_c_06L彼菩薩摩訶薩修行般若波羅蜜已知色若常無常戲論不應如是戲論菩薩如是不戲論乃至我得一切智者戲論不應如是戲論如是不戲論
왜냐 하면, 자체를 자체라고 희론하지 않고, 자체 아닌 것을 자체 아닌 것이라고 희론하지 않으며, 자체를 자체 아닌 것이라고 희론하지 않고, 자체 아닌 것을 자체라고 희론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어떠한 희론할 수 있는 법이 없으니, 어디에 희론이 있으며, 누가 희론을 하며, 어떤 것이 희론이며, 어떻게 희론하겠는가?
016_1087_c_10L何以故自體自體不戲論非自體非自體不戲論自體非自體不戲論非自體自體不戲論更無有法可以戲論何處戲論誰爲戲論何者戲論云何戲論
그러므로 수보리야, 색에 대하여 희론하지 않고, 식에 이르기까지 회론하지 않으며, 대략 말하여 보리(菩提)64)에 이르기까지 회론하지 않아야 한다. 수보리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희론하지 않으며, 응당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여야 한다.’
016_1087_c_14L是故須菩提色不戲論乃至識不戲論說乃至菩提不戲論如是須菩提薩摩訶薩如是不戲論應如是修行般若波羅蜜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색에 대하여 희론하지 않고 식에 이르기까지 희론하지 않으며, 보리에 이르기까지 희론하지 않는 것입니까?’
016_1087_c_18L須菩提言世尊云何色不戲論乃至識不戲論略說乃至菩提不戲論
016_1088_a_02L부처님께서 혜명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색은 자체가 없고, 식에 이르기까지 자체가 없으며, 일체지에 이르기까지 자체가 없어서 그것에 대하여 희론하지 않는다. 수보리야, 이와 같은 인연으로 색에 대하여 희론하지 않고, 식에 이르기까지 희론하지 않으며, 일체지에 이르기까지도 희론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한다면, 보살법을 성취할 것이니라.’”
그대는 이제 잘 생각하여 그 희론과 희론하지 않는 양상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게송에서 말하였다.
016_1087_c_20L佛告慧命須菩提言須菩色無自體乃至識無自體略說乃至一切智無自體彼不戲論須菩提如是因緣色不戲論乃至識不戲論乃至一切智不戲論如是菩薩摩訶薩修行般若波羅蜜成菩薩法汝今善意知此戲論不戲論相偈言
부처님께서 이미 인연을 말씀하시어
모든 희론하는 법을 단절시켰다.
그러므로 나는 설법하는 스승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머리 숙여 예배드린다.
016_1088_a_04L佛已說因緣
斷諸戲論法
故我稽首禮
說法師中勝
이 게송은 네 가지 소득(所得)에 대한 희론을 단절시키는 뜻을 성취한다.
016_1088_a_06L此偈成就四種所得戲論則斷
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卷上
癸卯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1. 1)부처님이 탄생하여 불교를 창시하고 전파한 인도를 옛날 중국과 한국에서는 신성시하여 천축(天竺)이라 칭하였다. 그 천축은 매우 광대하여 중심부와 동ㆍ서ㆍ남ㆍ북의 다섯 지역으로 구분하여 다섯 천축이라고도 하였다. 그 대표적 사용례는 신라의 혜초(慧超)스님이 지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잘 나타난다. 중천(中天)은 중천축(中天竺)을 가리킨다.
  2. 2)범어 Nāgārjuna(龍樹)를 소리나는 대로 이렇게 표시한 것이다.
  3. 3)이 순중론(順中論)의 서문격인 번역기(飜譯記)를 지은 위나라 상서령(尙書令) 의(儀)는 중관파(中觀派)의 조사인 Nāgārjuna를 용승(龍勝)이라 해야 하고, 용수(龍樹)라고 하면 완전히 타당하지 않다는 독특한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예로부터 보통 용수라고 번역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역시 이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4. 4)번역 대본에서는 상(廂)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다른 판본에 나오는 상(箱)과 같다.
  5. 5)경전의 부피가 큰 『대품반야바라밀경(大品般若波羅蜜經)』 계통의 경전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반야경인지는 차후 자세한 연구가 요구된다.
  6. 6)인도 유가행파(瑜伽行派)의 논사인 Asaṅga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며, 무착(無着)이라 번역한다. 무착보살은 그 유명한 세친보살(世親菩薩)의 형이며, 중관파(中觀派)와 더불어 인도불교의 2대학파의 하나인 유가행파(瑜伽行派)의 실질적인 조사이다.
  7. 7)서역(西城)에 존재했던 많은 나라들 중의 하나인 고창(高昌:Turfan)을 고연국(高延國)이라 표기하였던 듯하다.
  8. 8)반야류지(般若流支:Prajñāruci)를 말한다. 남인도 사람인 반야류지는 그 성이 구담씨(瞿曇氏)이기에 구담류지, 또는 구담반야류지라고도 한다. 바라문 출신으로서 어려서부터 불교를 배워 경전의 뜻에 깊이 통하였다. 북위(北黎) 효명제(孝明帝) 희평(熙平) 원년(元年:516)에 비목지선(毘目智仙)과 함께 낙양(洛陽)에 오고, 그 뒤에 업도(鄴都)로 천도하자 역시 따라가서 원상(元象) 원년(538)부터 무정(武定) 원년(543) 사이에 금화사(金華寺)와 창정사(昌定寺) 등에서 경론을 번역하였다. 그가 번역한 경전은 여러 기록마다 차이가 나지만, 인정할 만한 것으로 『정법염처경(正法含處經)』, 『순중론(順中論)』, 『회쟁론(廻諍論)』, 『업성취론(業成就論)』 등이 있다[반야류지가 번역한 경론은 보리류지의 번역과 혼동되기 쉬우므로 주의가 요청된다].
  9. 9)태어나고 사망한 연대가 자세하지 않은 담림은 중국 선종의 개조인 보리달마의 제자이며, 선종의 2조(祖)인 혜가(慧可)의 친한 도반이었던 듯하다. 담림의 전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북위(北魏)의 원상(元象) 원년부터 무정(無定) 원년까지 구담반야류지와 비목지선(毘目智仙), 보리류지(菩提流支) 등의 번역을 도우며 필수(筆受)하고 또는 서문을 짓기도 하였다. 가상 길장(嘉祥吉藏)의 『승만경보굴(勝鬘經寶窟)』에 담림의 『승만경소(勝鬘經疏)』가 인용되어 있어, 그가 승만경의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
  10. 10)무정(武定)은 동위(東魏) 효정제(孝靜帝)의 연호이며, 그 원년은 서기 543년에 해당한다.
  11. 1)이 『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을 간략하게 줄여서 이렇게 부른 것이다.
  12. 2)범어 Kauśika를 소리나는 대로적은 것임. 교시가는 제석천(帝釋天)의 속명인데, 제석은 모든 신들의 왕으로 도리천(忉利天)의 천주(天主)이기도 하다.
  13. 3)다른 판본에 의거해 사(捨)로 해석하지 않고 취(取)로 해석한다.
  14. 4)삼해탈문(三解脫門)의 약칭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세 가지의 해탈문이다. 즉 공해탈문(空解脫門)ㆍ무상해탈문(無相解說門)ㆍ무원해탈문(無顧解脫門)이 그것이다.
  15. 5)마음 밖에 어떤 대상이 실재한다고 보고, 그 실재한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16. 6)대립하는 두 가지의 극단을 말한다. 예를 들면 유(有)와 무(無), 열반(涅槃)과 생사(生死)같은 것이다.
  17. 7)여기서 말하는 스승은 부처님이 아니라 『중론(中論)』의 저자인 용수(龍樹)를 뜻한다.
  18. 8)범명은 Rāhulabhadra이다. 티베트에서 전하는 바로는 용수의 스승이라는 설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용수의 제자인 제바(提婆)의 제사라고 간주해 왔다. 따라서 그의 생존연대는 대략 서기 200~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그의 저서로는 『찬반야바라밀게(讚般若波羅蜜偈)』 등이 있었고, 그 외에도 저서가 있었으나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19. 9)한역자의 번역대로라면 수보리가 용수보살에게 예배하였다는 것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보리는 부처님 생존시의 인물이므로 용수와 만난 일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 구절은 수보리가 게송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용수논사도 게송으로 여래에게 공양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 10)사물 그 자체, 본체를 말한다.
  21. 11)세계는 한 번 단절되면 없어진다는 견해로서, 사람도 한 번 죽으면 단멸되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잘못된 주장.
  22. 12)단견에 반대되는 견해로서, 세계는 상주불멸하며 사람은 육신이 사멸한 후에도 자아가 영구불멸한다고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
  23. 13)인도 종교에서 말하는 우주를 주재하는 신인 마헤스와라(Maheśvara)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것으로, 쉬바(Śiva)신의 별명이기도 하다. 인도 종교에서는 이 마혜수라신이 세계를 창조하는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4. 14)시간을 말함. 시절이 곧 존재를 성립시키는 근본이라 보는 것이다.
  25. 15)일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극히 미세한 최소의 물질을 말하며, 오늘날 물리학에서 말하는 원자의 개념에 해당한다.
  26. 16)프라크리터(prakrti)를 번역한 말이다. 인도 철학 중에 상캬(Sāṁkhya) 학파에서는 이프라크리터가 근원적인 물질의 본질로서, 이것으로부터 모든 사물이 생성되어 현상계가 존재하게 된다고 한다.
  27. 17)사물 자체의 본성. 존재의 고유한 성실.
  28. 18)절단되어 없어지는 것.
  29. 19)토끼의 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30. 20)돌로 만든 여인이 낳은 자식. 역시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31. 21)허공에는 꽃으로 만든 꽃다발이 존재하지 않지만. 환상에 빠져 있는 줄 착각할 때 쓰는 비유.
  32. 22)일반적으로 나이 든 남자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세계를 전개시키는 원인인 푸루샤(Puruṣa)를 의미한다. 이 말은 오래 전에 베다(Vēda) 성전에서 세계의 창조자로서 설명되었으나, 이 『순중론』에서 지적하는 것은 그 보다 후대에 전개된 상캬학파에서 제시한 정신적 원리인 푸루샤를 말한다.
  33. 23)카필라(kapila)를 말한다. 카필라는 상캬철학의 개조라고 전해지며, 그 생존연대는 대략 BC 350~250년경으로 추정된다.
  34. 24)인도말인 Āgama를 그대고 옮긴 것. 이 아함이란 말을 인도철학 일반에서는 예전부터 전승되던 가르침이란 의미로 사용하며, 바라문 종교에서는 주로 베다 성전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의미하며, 대승불교가 흥기한 뒤로는 원시불교의 경전을 『아함경(阿含經)』이라 불렀다.
  35. 25)불교에서는 논리학(論理學)을 인명(因明:hetu-vidyā)이라 불렀다. 인명학은 처음 인도철학 중의 하나인 니야야(Nyāya)학파의 가우타마(Gautama:서기 50~150년경)에 의하여 창시되었다는 전승이 있으며, 나중에 불교학자인 진나(陳郡:Dignāga, AD 480~540)에 의해 개혁되어 대성되었다. 니야야학파에서는 종(宗)ㆍ인(因)ㆍ유(喩)ㆍ합(合)ㆍ결(結)이라는 다섯 가지에 의거한 오지작법(五支作法)을 제시했으나, 진나의 손을 거치며 종(宗)ㆍ인(因)ㆍ유(喩)만으로 가능한 삼지작법(三支作法)으로 간략히 정착되었다. 종(宗:pritiñā)은 주장하는 명제로서 논증되어야 할 것이며, 인(因:hetu)은 논증이 성립되는 근거이며, 유(喩:dṛṣṭānta)는 종과 인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비유이다.
  36. 26)붕(朋)은 일반적으로 친구ㆍ벗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나, 인명학에서는 논쟁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이나 그 한 쪽의 주장을 말한다. Pakṣa를 번역한 말이다.
  37. 27)동품정유성(同品定有性)에 해당한다. 다음의 주 30)을 참조.
  38. 28)이품편무성(異品遍無性)에 해당한다. 다음의 주 30)을 참조.
  39. 29)삼지작법 중의 가운데 조건. 종(宗)ㆍ인(因)ㆍ유(喩)에 대해서는 앞의 주 25)를 참조.
  40. 30)불교논리학과 인도철학에서 이유로 제시되는 개념인 인(因)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 본래 이 인삼상(因三相)이라는 논리는 『순중론(順中論)』의 기록에 의거하면, 아마도 정리과(正理派:Nyāya) 계통에 속하는 약야수마(若耶須摩)에 의하여 설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나중에 불교학자인 진나(塵那:Dignāga)에 수용되어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인(因)의 세 가지 조건이란 편시종법성(遍是宗法性)ㆍ동품정유성(同品定有性)ㆍ이품편무성(異品遍無性)이다. 예를 들면 ‘저 산에 불[火]이 있다. 연기[煙]가 있기 때문에’라는 논리가 있을 때, 이유개념인 인(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편시종법성(pakṣadharmatva):이유개념이 증명되어야 할 명제의 주어의 종법(宗法)이라는 것이다. 곧 연기라는 인(因)이 종(宗)인 저 산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동품정유성(sapakṣesattvaṃ):이유개념이 증명되어야 할 명제의 술어(述語:불)와 같은 종류 중에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곧 부엌의 아궁이에서 불과 연기의 양쪽이 보이기 때문에 아궁이는 저 산과 같은 종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因:연기)과 종(宗:산)의 양쪽 사이에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이품편무성(vipakṣésattvameva):이유개념이 증명되어야 할 명제의 술어와 모순되는 것, 다른 종류 중에는 반드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곧 바다나 강은 산과 다른 종류인데 이 경우에는 불이 없는 곳에 연기가 나지 않듯이, 이품(異品) 전체에 인(因)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말한다.
  41. 31)누구인지 명확한 자료가 없으나, 논리학파인 니야야학파에 속하는 논리가로 추측되고 있다.
  42. 32)인명학(因明學)에서 말하는 논리방식.
  43. 33)세속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상식적인 진리. 속제(俗諦)라고도 한다.
  44. 34)인(因)의 삼상(三相) 중에서 편시중법성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앞의 주 30)을 참조.
  45. 35)인(因)의 삼상(三相) 증에서 이품편무성에 해당한다. 앞의 주 30) 참조.
  46. 36)인의 삼상 중에서 동품정유성에 해당한다. 앞의 주 30) 참조.
  47. 37)소리, 말, 언어를 의미하는 śabda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항상하지 않고 무상하다는 것. 이에 대하여 미맘사(Mīmāṁsā) 학파에서는 소리는 그 말에 해당하는 실재하는 것이 나타난 것이라 하여 성상주론(聲常住論)을 취하였다.
  48. 38)세간의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며, 이것은 성스런 진리라는 뜻임. 이것은 원시경전에서 말한 사성제의 첫 번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성제를 대승경전에서 대승적으로 말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49. 39)진리에 어긋나는 네 가지 뒤바뀐 범부들의 견해. 첫째, 상전도(常顚倒):무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보는 것. 둘째, 낙전도(樂顚倒):괴로운 것을 즐겁다고 보는 것. 셋째, 아전도(我顚倒):자아는 없는데도 영원히 있다고 보는 것. 넷째, 정전도(淨顚倒):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보는 것이다.
  50. 40)사성제(四聖諦)의 두 번째 진리인 집제(集諦)를 말한다.
  51. 41)사성제의 세 번째 진리인 멸제(滅諦)를 말한다.
  52. 42)사상제의 네 번째 진리인 도제(道諦)를 말한다.
  53. 43)여러 가지 인연에 의하여 생겨나고 소멸하는 현상계의 모든 사물을 유위법이라 부른다.
  54. 44)절대불변의 진리를 깨달아 다시는 미혹한 세계로 타락하지 않고 안심하게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
  55. 45)제법이 불생불멸(不生不滅)하다는 진리를 증득하는 것. 줄여서 무생인(無生忍)이라고도 한다.
  56. 46)가장 뛰어난 진실한 진리로, 진제(眞諦)라고도 한다.
  57. 47)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는 참된 마음을 대지(大地)에 비유하여 부르는 말임. 대지가 일체의 존재를 생장시키는 것처럼, 마음이 모든 선과 악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한 것이다.
  58. 48)『대품반야경』 계통의 경전.
  59. 49)네 가지 단계의 선정으로 사선(四禪)이라고도 한다. 초선(初禪)ㆍ이선(二禪)ㆍ삼선(三禪)ㆍ사선으로, 욕계(欲界)의 미혹을 벗어나 색계(色界)에 출생하는 네 단계의 선정임.
  60. 50)네 가지 광대한 마음으로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도 한다. 그 네 가지는 자무량(慈無量)ㆍ비무량(悲無量)ㆍ희무량(喜無量)ㆍ사무량(捨無量)이다.
  61. 51)무색계에서 닦는 네 단계의 선정으로 사무색정(四無色定)이라고도 한다. 공무변처(空無邊處)ㆍ식무변처(識無邊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네 선정.
  62. 52)범어 samāpatti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며, 등지(等至)라 번역하기도 한다. 정신통일에 의하여 마음이 안온하게 평등해진 상태를 말함.
  63. 53)소위 삼십칠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을 말한다.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는 수행법이므로 보리분법이라 한다.
  64. 54)소위 삼해탈문(三解脫門)을 말한다. 앞의 주 4) 참조.
  65. 55)삼계(三界)의 번뇌를 벗어나 그 계박에서 해탈하는 여덟 가지 선정. 사선정(四禪定)과 사무색정(四無色定) 그리고 멸진정(滅盡定)을 말한다. 이 선정들을 수행하면 미혹을 떠나 깨달음을 얻기 때문에 해탈이라 한다.
  66. 56)사선정(四禪定)ㆍ사무색정(四無色定)ㆍ멸수상정(滅受想定)의 아홉 가지 선정을 말한다.
  67. 57)보살이 수행해야 할 십지(十地)를 말한다. 이 보살 십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공지(共地)이고 또 하나는 단보살지(但菩薩地)이다. 전자는 반야경에 설해진 것이고 후자는 화엄경에 설해진 것인데, 여기서 의미하는 보살지는 『대반야경』에 설해진 반야경의 십지이다.
  68. 58)부처님에게 구족되어 있는 처비처지력(處悲處智力)에서부터 누진지력(漏盡智力)에 이르기까지의 열 가지 힘으로, 부처님이 전지자임을 나타내는 지혜의 힘.
  69. 59)사무소외(四無所畏)라고도 한다. 부처님과 구도자가 가르침을 설할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자신 있게 설법할 수 있는 네 가지 지혜. 그 네 가지는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ㆍ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ㆍ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ㆍ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이다.
  70. 60)부처님과 보살이 설법할 때 아무런 장애 없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지혜의 능력으로 사무애변(四無礙辯)이라고도 한다. 그 네 가지는 법무애(法無礙)ㆍ의무애(義無礙)ㆍ사무애(辭無礙)ㆍ요설무애(樂說無礙)이다.
  71. 61)오직 부처님에게만 갖추어져 있는 열여덟 가지 뛰어난 특징을 말한다. 그것은 여래의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와 삼념주(三念住), 그리고 대비(大悲)이다. 삼념주(三念住)는 부처님께서 정지정념(正智正念)에 머물러 세 가지로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중생이 부처님을 믿어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 두 번째는 중생이 부처님을 믿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는 것, 세 번째는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아도 기쁨과 근심을 생하지 않는 것이다. 대비(大悲)는 많은 사람들의 괴로움을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님과 보살의 큰 자비심ㆍ자애심을 말한다.
  72. 62)번뇌(煩惱)와 습기(習氣)를 말한다.
  73. 63)모든 것을 알며, 완전한 지혜를 갖고 있는 전지자(全知者). 곧 부처님을 말한다.
  74. 64)범어나 팔리어(pāli)의 bodhi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말. 이 보리, 즉 보디는 미혹과 번뇌에서 자각하여 깨달은 바른 지혜, 정각(正覺)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