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9_0700_b_01L잡아함경(雜阿含經)
019_0700_b_01L雜阿含經


오(吳)와 위(魏) 두 나라의 기록에 부록되어 있음
권자훈 번역
019_0700_b_02L附吳魏二錄



[1]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0_b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국(拘薩國)에 계셨는데, 많은 비구들과 함께 대나무 숲을 거닐다가 한 대나무 앞에서 멈추셨고, 다시 마을 가운데 잣나무 사이로 가서 쉬셨다.
그때 성이 포로(蒲盧)인 전가(佃家:농사짓는 사람) 바라문이 한 대나무 숲 밖에서 5백 명이나 되는 많은 밭가는 자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오늘은 너무 이르니, 지금 한 대나무 앞에 머물고 있는 전가에게로 가야겠다’라고 생각하셨다.
많은 밭가는 자들이 밥을 먹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곧바로 전가가 밥 먹고 있는 곳에 이르셨다.
019_0700_b_04L一時佛在拘薩國多比丘俱行往竹中一竹中止行止陬中柏樹在時佃家婆羅門姓爲蒲盧一竹外多犂者共會飯能五百犂是時佛念日尚早今居前一竹中行到佃家多犂者飯時會佛便至佃家飯會處
전가가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저는 손수 밭을 갈고 손수 씨를 뿌립니다. 이미 손수 밭을 갈고 씨를 뿌렸기에 먹을 수 있습니다. 그대 구담(具譚) 행자께서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시나요? 이미 밭을 갈고 씨를 뿌리셨다면 마땅히 드실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전가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니, 이미 밭을 갈고 씨를 뿌렸기에 먹느니라.”
019_0700_b_09L佃家見佛從來已見爲說如是我爲自犂自種已自犂自種爲食卿具譚行者可犂可種已犂已種當食佛報佃家說如是我亦犂亦種已犂已種
전가가 부처님께 말하였다.
“비록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저는 직접 밭을 갈고 씨를 뿌렸으며, 이미 밭을 갈고 씨를 뿌렸기에 먹습니다. 저는 구담 행자께서 소ㆍ멍에ㆍ끌채ㆍ볏단끼우개[扠鄧]1) 같은 것으로 씨를 뿌리는 모습을 뵌 적이 없습니다.”
전가는 씨 뿌리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하였다.
“저는 구담 행자의 씨 뿌리는 기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 씨 뿌리는 기구를 알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019_0700_b_14L佃家報佛如是雖佛說如是我爲犂爲種已犂已種食我不見卿種具若牛若槅若轅若扠鄧但言佃家種從後說絕我不見種具說種具令我知種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믿음으로 씨앗을 삼고, 행함으로 물을 삼으며, 지혜로 소를 삼고, 부끄러움으로 쟁기를 삼으며, 마음으로 등(鄧)을 삼고, 의(意)로 금(金)을 삼으며, 몸을 지키고, 입을 지키며, 먹을 것으로 언덕을 삼고, 지극한 정성으로 잘 다스려 그치지 않는 것을 구경(究竟)으로 삼는다. 정진하되 진중하게 행함을 버리지 않는 행으로 안은(安隱)함을 삼으면, 행하여 다시 돌이키지 않으니, 행하는데 근심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이미 씨를 뿌려 감로(甘露)에 이르게 되고, 이와 같이 일체의 씨를 뿌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019_0700_b_18L佛報信爲種行爲水慧爲牛爲犂心爲鄧意爲金身守口守食爲至誠治不止爲竟精進不舍槅行爲安隱行不復還已行無有憂是已種從是致甘露如是種一切從苦得脫
019_0700_c_01L전가는 곧 그릇에 가득 담긴 음식을 부처님께 올리며 말했다.
“참으로 부처님께서는 능히 밭을 가시며, 크게 밭을 가십니다. 바라건대 제 음식을 드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미 진리를 말했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 행자여, 이미 물은 이 법을 스스로 알도록 하라.”
019_0700_c_01L便佃家滿器飯至佛上眞佛能佃實佛大佃願取我飯哀故佛報說如是已說經故不可食行者自知是法已問
부처님께서 경(經)의 항상하는 법(法)에 대해 말씀하셨다.
“법을 더하는 것이 반드시 이 도(道)를 바라서가 아니니, 다만 의심의 끈이 묶인 것이 다하면 뜻이 그치게 된다. 이 음식을 먹고 마시며 신에게 공양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땅에 묻으면 큰 복이 함께 할 것이다.”
019_0700_c_04L佛說經常法如是增法不必從是望道但結盡疑索意止是飯食飮供養祠如是地入與中大福
바라문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면 저는 이 음식을 누구에게 주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없는 천(天)ㆍ마(魔)ㆍ범(梵) 같은 무리와 사문들 모두로 하여금 이 음식을 먹게 해도 소화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부처님과 도를 얻은 이가 이 밥과 음식을 가지고 벌레가 없는 물에 이르러 그 가운데 던지거나, 풀이 없는 빈 땅을 파서 묻도록 하라.”
019_0700_c_06L羅門復白佛我今爲是食與誰佛報如是無有世閒若天若魔若梵若沙一切令是飯食不能得消但佛亦得道者持是飯行至無有虫水便投若空地無有草掘埋
바라문이 부처님의 말씀을 다 듣고 곧바로 행하여, 벌레가 없는 물 가운데 던졌더니 그곳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며 크게 끓는 소리가 나니, 비유하면 마치 철(鐵)과 적엽철(赤葉鐵)2)을 가려서 하루 종일 불에 녹이다가 곧바로 물에 던지면 열기가 뿜어져 나와 용솟음치며 크게 끓는 소리를 내는 것과 같았다.
이와 같이 바라문이 지닌 음식을 물속에 던지자 갑자기 연기가 솟아오르며 크게 끓는 소리가 나니, 놀라고 두려워서 털이 곤두섰다. 그래서 곧바로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고 절한 다음 말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을 따르는 사문이 되어, 악을 버리고 가르침과 계율을 받아 부처님을 따라 행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청정하게 도를 행해야 한다.”
이 바라문은 부처님을 따라 교계(敎誡)를 받아서 마침내 집착하지 않는 도(道)를 얻어 불법(佛法)에 이르렀다.
019_0700_c_11L婆羅門已受佛言便行無有虫水投中已投中煙出燃沸大沸作聲譬喩如揣鐵赤葉鐵一日在火燒便投水便熱出滊出沸大沸有聲如是已婆羅門持飯著水中便煙出然沸大沸作聲婆羅門驚怖毛起便持頭面著佛足作禮言我可從佛得作沙門離惡受教誡佛受行佛言可淨行道已從是婆羅門從佛受教誡竟佛法到得不著道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019_0700_c_20L佛說如是

[2]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0_c_21L聞如是
019_0701_a_01L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 있는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는데, 이때 생문(生聞) 바라문이 부처님께 이르러 안부를 여쭙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에 앉아 있던 생문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듣기로는 부처님께서 ‘마땅히 나에게만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시하지 말라. 나에게 보시하면 큰 복을 받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면 큰 복을 받지 못한다. 내 제자에게만 보시하고 다른 사람의 제자에게는 보시하지 말라. 내 제자에게 보시하면 큰 복을 받고 다른 사람의 제자에게 보시하면 큰 복을 받지 못한다. 만약 이와 같이 말하는 자가 이와 같이 해서 나에게 보시하고 내 제자에게 보시한다면 큰 복을 받을 것이며, 이와 같은 말을 베푸는 자는 부처님을 욕하지 않고 의론(議論)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여실한 가르침이 아닌 것 아닙니까? 법다운 가르침입니까? 그릇된 법이 아닙니까, 논란은 있지 않겠습니까?”
019_0700_c_22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是時生聞婆羅門到佛已到爲問佛起居一處坐已一處坐生聞爲佛說如是聞佛說是但應與我布施不可與奇布施與我布施大福與奇布施不大福但與我弟子布施莫與奇弟子布施與我弟子布施大福與奇弟子布施不大福若如是說者爲如是爲與我布施與我弟子布施爲大福設如是說者爲不罵佛不論爲是佛言不如說不爲法說不犯法不爲無有得長短不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 말씀이 다음과 같다고 하면서 ‘다만 나에게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지 말며, 내 제자에게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지 말라. 내 제자에게 보시하면 큰 복을 받고 다른 사람의 제자에게 보시하면 복이 적다’라고 하셨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여실한 말씀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논의했다고 말한다면, 또한 그 말도 여실한 말이 아니고 법이 아니며 모든 법에 대한 논의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와 같이 나에게는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와 같이 만약 그와 같이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면, 문득 세 가지 전도된 도(道)에 무너지게 되어서, 보시하는 사람은 복을 무너뜨리고, 받는 자는 덕을 무너뜨리며, 또 자신은 뜻을 무너뜨리게 된다.
만약 솥을 씻거나 그릇을 씻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동산에 버리며 ‘동산에 있는 벌레들이 이 음식으로 벌레의 몸이 편안해 진다면 이것을 먹고 살아라.’라고 생각한다면, 이 인연으로 복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니, 어찌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묻겠는가. 나는 다만 계(戒)를 지키는 이에게 베풀면 복이 크고, 계를 지키지 않는 이에게 베풀면 복이 적다고 말한 것이다.”
019_0701_a_10L佛告婆羅若人說佛說如是但與我布施莫與奇與我弟子布施莫與奇與我弟子布施大福與奇弟子布施福少是言不如言爲說我論議亦不如言亦非法諸有法論議何以故我不說如是爲與我布施莫與奇至如上說若有說如是便壞三倒道布施家壞受者壞德亦自壞意若有蕩釜亦蕩杅器人持至園中棄園中意生園中虫從食令虫身安隱從是活是因緣我說能致福何復問與人但說與持戒者福大不持戒者福少
바라문이 부처님께 대답했다.
“저 역시 ‘계를 지닌 자는 복이 크고 계를 지니지 않은 자는 복이 적다’고 말합니다.”
019_0701_a_22L婆羅門報佛我亦說如是持戒者福不持戒者福少
019_0701_b_01L“일체를 옳은 생각에 따라 보시를 행해야 하니,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복이 적고, 계(戒)를 지키는 사람은 복이 크다.
만약 검고 희며 또 붉고 누렇고, 또한 다니는 공작과 소와 비둘기와 또 너의 이 몸은 그것이 생겨난 근본을 살피면, 모양과 힘이 따라 모이고 선과 악이 따라 나오지만, 다만 그 행을 살피고 그 색(色)을 보지 말라. 사람 또한 이와 같이 몸을 가지고 태어나니, 도인도 그렇고 성에 사는 전가(佃家)도 그렇고 죽음을 짊어진 사람도 그렇다. 이것은 각기 타고난 몸이 있는 것인데, 계율을 지키는 사람은 세상을 제도할 수 있으니 이런 사람에게 보시하면 큰 복을 얻고, 어리석고 못난 사람은 배우기 어려운 것을 듣지 못하니 그런 사람에게 보시하면 복이 적다.
지혜롭지 못한 자를 섬기지 말라. 다만 지혜가 많은 도를 닦는 제자를 섬겨라. 도를 닦는 제자는 믿음이 많고 가지와 뿌리가 있다.
인연이 있으면 인연을 따라 하늘에 오르고, 인연이 있으면 인연을 따라 악도(惡道)에 떨어지며, 인연이 있으면 인연을 따라 세상을 제도하니, 이와 같이 다 인연을 따르는 것이다.”
019_0701_b_01L一切應與布施隨可意不持戒者少福持戒者福大亦赤亦所行孔雀鴿亦爾所是身案本從生態力從聚善惡從但案行莫視色人亦如是所有身亦道人亦城中人佃家亦擔死人是爲各有身從是生持戒者能得度世與是爲大福癡不及者不聞難與是少福莫事不知者但事知者多慧道弟子道弟子多信有枝根本有因緣從因緣上天有因緣從因緣墮惡道有因緣從因緣度世如是皆從因緣便
문득 생문(生聞) 바라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마를 부처님 발아래 조아리고 절하며 말했다.
“이제부터 부처님께 귀의하여 계를 지니겠습니다.”
019_0701_b_13L生聞婆羅門從坐起持頭面著佛足下從今爲歸佛持戒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019_0701_b_14L佛說如是

[3]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1_b_15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상갈사(𨻗闍)라는 젊은 바라문이 있었는데,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과 더불어 안부를 여쭙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앉고 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와 같이 무엇을 가지고 악인을 분별해서 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악한 사람은 달과 같다.”
019_0701_b_16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有𨻗(掲 -⺘+⻖)闍壯年婆羅門至佛所已至與佛共相問已問一處坐已坐爲問佛如是持何等分別觀惡人報言譬喩惡人如月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약 지혜로운 사람을 분별하려면 무엇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까?”
“비유하면 지혜로운 사람3)은 달과 같다.”
019_0701_b_20L復問佛若人欲分別慧人持何等觀譬喩慧人如月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째서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달과 같습니까?”
019_0701_b_21L復問佛何等爲不慧人如月
019_0701_c_01L“비유하면 스무아흐레 날의 달과 같으니, 달의 밝기가 점점 약해지고 색깔 또한 점점 옅어지며, 달 모양도 점점 줄어들고 나타나는 것 또한 점점 줄어든다. 한밤중에 지나가는 것도 더디 가고, 때에 달이 있어도 모두 다하여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니, 달이 다한 때와 같다. 어리석은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도를 얻은 사람을 따르게 되어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계(戒)ㆍ혜(慧)ㆍ신(信)을 이미 얻었더라도 받들어 행하지 않으며 받아 듣지 않고 마음에 두지 않아서 가르침을 버리고 여의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신(信)이 점점 줄어들고, 계(戒)가 점점 줄어들며, 문(聞)이 점점 줄어들며, 시(施)가 점점 줄어들고, 혜(慧)가 점점 줄어들어 밤이 지나는 가운데 다 없어지고 만다.
이 바라문은 한때 어리석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다하여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얻게 하는 법을 좋아했으니, 비유하면 달이 다한 때인 스무아흐레 날과 같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자를 보는 것은 달에 비유할 수 있다.”
019_0701_b_22L譬喩二十九日月明亦減色亦減方亦減亦減在中夜過爲減行有時月爲一切索盡不復現如月盡時愚癡亦如是爲從所得道者聞經教誡慧信已得不奉行不受聽不著心捨離教不著行便信減戒減聞減施減慧減中夜過亡是婆羅門有一時令所愚人者一切盡一切不現所得好法如月盡時二十九日如是見愚癡者譬喩月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혜로운 자가 행하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復問佛欲知慧者行說
“비유하면 달은 보름에 밝은 것도 더하고 모양도 더하고 드러나는 것도 더하여, 다시 한때에 달이 모든 것을 더하여 갖추기를 멈추니, 바로 보름일 때이다. 이처럼 지혜로운 자는 도덕(道德)을 말함이 마치 법과 같아서 행하여 문득 신(信)을 얻으면, 신(信)을 얻음으로부터 듣고 섬기는 데 뜻을 두어서 버리고 여의지 않으므로 가르침이 모이고 쌓여 곧 신(信)이 더해지며, 계(戒)가 더해지고, 문(聞)이 더해지고, 시(施)가 더해지며, 혜(慧)가 더해져 높아져서 확언하여 한밤중에 더욱 가득 찬다고 하니, 또한 한때에 더하는 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가 모든 행이 구족함을 얻고 청정한 가르침과 계율을 행하는 것이다.
019_0701_c_09L譬喩月十五日明亦增方亦增見亦增一時爲月一切增具止十五日時亦如是慧者所道德言如法行便得信從得信聽事著意不捨離所教合聚便得增信增戒增聞增施增慧增高敢言便中夜增滿亦有一時增所智慧者一切行得具足所行淨教誡
019_0702_a_01L비유하면 달이 보름이 되면 밝은 달이 때맞춰 이르는 것과 같이, 지혜가 밝은 사람의 견해도 이와 같으니, 바라문이여, 비유하면 달은 말[說]을 옮겨감에 따라 말을 끊는 것과 같으며, 또 비유하면 달은 밝은 가운데 가는 것과 같아서 모든 하늘 아래 별들이 그 눈부심을 쫓는 것처럼, 믿고 듣는 것도 또한 그러할 뿐이다.
능히 보시하되 아끼지 말아야 하니, 세간의 일체의 것을 버리기 어려우나 보시의 밝음을 따라 행하라. 비유하면 천둥 번개가 치면 물기를 많이 머금었다가 땅에 흩어져 내리는 것처럼, 믿고 듣는 것도 이와 같다.
능히 보시하되 아끼지 말아야 하니, 곧 음식을 가득히 마련하여 다시 주면 갑자기 이름이 들리는 소리가 마치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소리같이 날 것이다. 많은 복을 아낌없이 주면 얻는 것이 마치 진귀한 보배 같은 곡식이 비 오듯 하고, 이름이 들리는 것 또한 하늘 위에서 들리듯 할 것이니, 이미 덕행이 있으므로 다음 생에는 하늘 위에서 태어날 것이다.”
019_0701_c_16L譬喩月十五日明月時至明慧人見如是婆羅門譬喩月從移說絕辭如月明在中行一切天下星宿從明所勝信聞者亦爾能布施無有慳捨世閒一切爲從布施明譬如雷鳴雲電俱多含水灑地信聞者亦如是能布施無有慳便從飮食滿設說復便有名聞聲如天雨墮便多福汔與者得如雨珍寶穀名聞亦得天上已有德行後世在天上
문득 상갈사 바라문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아래 이마를 조아리고 절하며 말했다.
“이제부터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계를 행하겠습니다.”
019_0702_a_03L便𨻗(掲 -⺘+⻖)闍從坐起持頭面著佛足禮從今受佛教誡行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說如是

[4]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2_a_05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9_0702_a_06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우타라국(優墮羅國)에 계셨는데, 굴연(屈然) 강가의 니구류(尼拘類) 나무가 있는 곳에서 마침 도(道)를 얻으셨을 때를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사람이 도(道)를 행함에 한 번 매이게 되면 근심 때문에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고통이 가득하게 된다. 능히 열반에 이르러 소멸시키고 또한 바른 법에 이르러야 한다’라고 하셨으니, 어떤 것을 바른 법이라고 하는가? 4의지(意地)이다.
019_0702_a_07L佛告比丘一時佛在優墮羅國名屈然在邊尼拘類樹適得道時自人行道一挈令行者從憂懣苦不可意能得度滅亦致正法何等爲正爲四意止
어떤 것을 4의지라고 하는가? 만약 비구의 몸으로 몸을 관하여서 스스로 생각하여 세간의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이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면, 능히 외신(外身)의 몸의 모습을 관(觀)하여 여읠 수 있다. 내신(內身)과 외신의 몸의 모습을 관하여서 스스로 생각하여 세간의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이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면, 능히 고통을 여읠 수 있다.
법을 생각함도 역시 이와 같으니, 만약 행하는 자가 4의(意)를 따르는 것을 여읜다면, 곧 행을 따라 법을 여의게 된다. 이미 행을 따라 법을 여의었으면 곧 행을 따라 도를 여의게 되며, 이미 행을 따라 도를 여의었으면 곧 감로(甘露)를 여의게 되니, 감로를 여의고 나면 곧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근심과 번뇌를 건너지 못하게 되며, 또한 고통을 여의지 못하고, 요체를 얻지도 못하게 된다.
019_0702_a_11L何等爲四意止若比丘身身觀止行自意知從世閒癡不可能離外身身身相觀止內身外身身身相觀止行自意知從世閒癡不可意能離痛意法亦如是若行者從四意離便從行法離已從行法離便從行道離已從行道離便離甘露甘露已便不得度生老死憂惱亦不得離苦亦不得要
019_0702_b_01L만약 행하는 자가 4의지(意地)가 있으면 능히 건널 수 있으니, 곧바로 받아서 도(道)를 얻은 자가 행할 수 있다. 이미 능히 받아서 도를 얻은 자가 행하였으면 곧바로 도를 얻을 수 있으며, 이미 도를 얻었으면 곧바로 능히 생로병사의 근심과 번뇌를 소멸하고, 곧바로 괴로움을 건널 수 있으며 또한 요체를 얻으니, 범(梵)도 바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안다.
비유하면 건강한 사람이 팔을 폈다가 굽히고 다시 펴는 것과 같으니, 범(梵)은 이와 같이 천상으로부터 내 앞에 머무르며, 머무른 뒤에는 곧바로 내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부처님 마음과 같고 부처님 말씀과 같다고 말한다.
도(道)에 한번 끌려 청정함을 얻게 되면 근심과 생각할 수 없이 가득 찬 고통을 여의게 되어, 능히 멸도(滅度)를 얻고, 능히 바른 법에 이르게 되며, 능히 4의지에 이르게 된다.
019_0702_a_19L若行者有四意止能度便能受得道者行已能受得道者行便能得道已得道便能滅老病死憂惱便能得度苦亦得要梵便知我所念譬如健人申臂屈復申梵如是從天上止我前已止便說我如是如佛念如佛言道一挈令得淸淨得離憂懣苦不可意能得度滅能致正法能致四意止
몸으로 몸을 관하여서 스스로 생각하여 세간의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이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면, 외신(外身)의 몸의 모습을 관하여 여읠 수 있다. 내신과 외신의 몸의 모습을 관하여서 스스로 생각하여 세간의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이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안다면, 능히 고통을 여읠 수 있다.
법을 생각함도 역시 이와 같으니, 만약 행하는 자가 4의(意)를 여의면 곧 법을 행함을 여의게 되고, 이미 법을 행함을 여의었으면 곧바로 도(道)를 행함을 여의게 되며, 이미 도(道)를 행함을 여의었으면 곧바로 감로를 여의게 된다. 이미 감로를 여의었으면, 곧 생로병사의 근심과 고뇌를 여의지 못하며, 또한 괴로움을 여읠 수 없고, 또한 괴로움의 요체도 얻지 못하니, 이것이 행하는 방편임을 알아야 한다.”
019_0702_b_04L身身觀止行自意知從世閒癡不可意離外身身身相觀止內身外身身身相觀止行自意知從世閒癡不可意能離痛意法亦如是若行者從四意離便從法行離從法行離便從行道離已從行道離便離甘露已離甘露便不得離生老死憂惱亦不得離苦亦不得苦要是爲知是行方便

기러기가 발을 물 가운데서 한번 끄는 것을 일컬어
스스로 ‘부처님 말씀을 내가 바르게 행한다’라고 한다면,
다만 이 말은 마땅히 스스로 헤아린 것뿐이다.
019_0702_b_12L鴈足在水中一挈
令自佛說我正行
但受是言當爲使自計

생사의 깊은 근심에 한 번 끌려
도의 가르침에서 벗어남을 슬퍼하니,
이미 성현이 세간을 제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지금 제도하고 뒤에 제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019_0702_b_14L爲一挈生死憂要
出道教爲哀故
已上頭得度世亦從是
今度後度亦從是

이것은 본래 청정무위(淸淨無爲)이며
또한 이 때문에 생로병사가 다하니,
약간의 법을 받아서 의지하여 행하는 것이
이것이 바로 도안자(道眼者)의 말이니라.”
019_0702_b_16L是本淸淨無爲
亦從是生老死盡
從若干法受依行
是道眼者說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說如是

[5]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2_b_18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때 자범(自梵)이 스스로를 밝히니 밤인데도 또한 밝았다. 자범이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니, 때마침 부처님께서는 화신족(火神足)을 행하고 계셨다.
자범이 생각하기를, ‘너무 일찍 부처님을 뵈러 왔나 보다. 지금 부처님께서 화신족을 행하시고 계시니, 이제 나는 구피리(俱披犁) 비구 조달부(調達部)에게 가야겠다’라고 하고는, 곧바로 구피리 비구 조달부에게 이르렀다.
019_0702_b_19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是時自梵自明夜亦明梵往至在時佛火神足行在時自梵念尚早至佛見今佛亦火神足行令我今居前到俱披犂比丘調達部便自梵至俱披犂比丘調達部
019_0702_c_01L이르러서는 구피리 비구 조달부에게 말하였다.
“구피리여, 구피리여, 이와 같이 좋아하는 뜻을 지니고서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乾連) 비구와 또한 나머지 다른 지혜롭게 도를 행하는 이에게 향하시는군요.”
구피리 조달부가 곧바로 말하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자범(自梵)이 말했다.
“나는 범이라고 합니다.”
019_0702_c_01L已到爲告俱披犂調達部如是俱披犂俱披犂爲持好意向舍利弗目乾連比丘餘慧行道者俱披犂調達部便言爲誰梵言我爲梵
구피리 조달부가 다시 물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나함(阿那含)이 당신입니까?”
범이 말했다.
“맞습니다.”
019_0702_c_05L俱披犂調達部報佛說卿阿那含不梵言
구피리 조달부가 다시 물었다.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 올 수 있었습니까?”
문득 자범이 생각하기를 ‘이 어찌 슬픈 뜻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고는, 곧바로 자범(自梵)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서 마쳤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리려 하니
이런 까닭에 세간에는 지혜가 적어졌고,
헤아릴 수 없는데도 헤아림을 지으려 하니
이와 같이 세간은 스스로 덮어 가려졌네.
019_0702_c_06L俱披犂調達部報言何因緣得來到是閒便梵思惟念是何以無有悲意便自梵說是絕
不可量欲量
爲是故世閒少慧
不可量欲作量
如是世閒自覆蓋
019_0703_a_01L
문득 자범이 부처님께 이르러서는 부처님 발아래 조아려 예배하고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 한곳에 머물러 있다가 자범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스스로 빛을 밝히니 밤인데도 또한 밝아져서, 부처님께 이르렀는데, 이미 그때 화신족(火神足)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문득 ‘부처님을 뵙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나는 이미 와서 부처님의 화신족을 보았다’고 생각하고는, 곧 저는 구피리 비구 조달부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하였고, 저는 곧바로 구피리 비구 조달부에게 이르렀습니다.
구피리 비구 조달부에게 이르고 나서 제가 문득 말하기를 ‘구피리(俱披犁)여, 구피리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사리불과 목건련 비구와 같은 도를 행하는 이에게 향하시는군요.’라고 하였더니, 곧바로 말하기를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하기에, 제가 말하기를 ‘저는 범(梵)이라고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비구가 저에게 다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나함(阿那含)이 당신입니까?’라고 하기에, 제가 맞다고 하였더니, 곧바로 그 비구가 말하기를 ‘당신은 어떠한 인연으로 이곳에 왔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쯧쯧, 이 어찌 슬픈 뜻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리려고 하니
이 때문에 세간의 지혜는 적어지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려 말하나
세간 사람들의 속셈을 저는 스스로 압니다.
019_0702_c_11L便梵行至佛已到爲佛足下禮一處已一處止自梵爲佛說是我爲自光明夜亦已明爲至佛已至是時火神足行我便思惟念尚早至見佛已到見佛火神足我便念令我居前行俱披犂比丘調達部我爲便至俱披犂比丘調達部已至俱披犂比丘調達部我便告俱披犂俱披犂持好心向舍利弗目乾連比丘亦同道行便言卿爲誰我言便報我佛說卿阿那含不我言便報若何因緣得來到是我便思惟念是何以無有悲意
不可量欲量
是故世閒少慧
不可量說量
世閒人意計我自知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구피리 비구 조달부가 희론(戱論)을 깨뜨렸다”라고 하시고, 이때에 다음과 같이 말씀을 맺으셨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리려고 하니
세간 사람들은 지혜를 얻기 어려우며,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려 말하니
이 때문에 세간은 스스로 덮어 가려지네.
019_0703_a_03L佛便說俱披犂調達部破戲亦唼時說是絕
不可量欲量
故世閒難得慧
不可量說量
從是世閒自覆蓋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說如是

[6]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3_a_07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삶을 다스리는 데는 세 가지 방편이 있어, 이익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능히 이르게 하고, 이미 이른 것을 줄어들지 않게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것을 비구에게 물으셨다.
“삶을 다스리는 것이 있으니, 이른 새벽에 많은 방편을 생각하여 온 힘을 다해 삶을 다스려 나아가되 낮이나 또한 밥 먹는 때도 그렇게 해서 많은 방편을 구하고 힘을 다해 찾아 이롭게 한다.
비구가 삶을 다스리는 세 가지 법도 이와 같으니, 아직 얻지 못한 좋은 법을 능히 얻게 하고, 이미 얻은 좋은 법을 줄어들지 않게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것을 모든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어떤 비구가 이른 새벽에 도(道)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여의지 않고, 낮이나 밥 먹을 때도 역시 그렇게 해서, 생각을 모아 정하고 받아 행하여 뜻을 여의지 않으면 능히 도가 늘어난다.”
019_0703_a_08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佛告比丘治生有三方便未致利能致已致不減何等爲三是閒比有治生者晨念多方便盡力向治日中亦爾晡時亦爾求多方便盡力索令有利比丘治生三法亦如是未得好法能得致已得好法不減等爲三是閒諸比丘有比丘晨時多受道思念意不離日中晡時亦爾合定意受行意不離能多增道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019_0703_a_17L佛說如是

[7]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3_a_18L聞如是
019_0703_b_01L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국(王舍國) 죽원(竹園) 오취(烏)에 계셨다. 이때 이름이 불신중(不信重)이라고 하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왕사국에 살고 있었다.
문득 불신중은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이 구담(俱譚) 사문이 왕사국 대나무 동산 오취에 머물고 있으니, 지금 그에게로 가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을 물리쳐 믿지 못하게 해야겠다.’
곧 불신중(不信重)은 왕사국을 나와 부처님 계신 곳에 도착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한 명이 아닌, 백 명의 대중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들에게 둘러싸여 앉아서 법에 대해 두루 말씀하시고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불신중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문득 설하시던 것을 멈추셨다. 불신중은 도착하여 부처님께 안부를 여쭙고 한쪽으로 가서 앉은 다음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경을 설해 주십시오. 설하시는 것을 저도 듣고 싶습니다.”
019_0703_a_19L一時佛在王舍國竹園烏陬在是時有婆羅門名爲不信重在王舍國居便不信重念如是是俱譚沙門王舍國止竹園陬令我今行至俱譚沙門俱譚沙門所說經我當爲一切卻語不信便不信重從王舍國出到佛所是時佛爲非一百衆會周帀坐遍說法經佛見不信重從遠欲來見便止不說經不信重已到佛問訊一處坐已一處坐不信重爲佛說勸佛說經我欲聞
부처님께서 바라문 불신중에게 말씀하셨다.

신중히 이 법에 응하지 않고,
이해조차 하지 못하며,
또한 그 뜻을 어지럽게 하고,
또한 무조건 다투려고 하는 자여,
019_0703_b_06L佛報言婆羅門不信重
重是法不應
亦不解言者
亦彼意亂者
亦悉欲諍者

만약 논쟁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도
논쟁하길 좋아하여
성내고 다투게 되니
이와 같은 자가 능히 법어(法語)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019_0703_b_09L若爲意離諍
憙者亦諍
能合恚諍
如是者能解法語

곧바로 불신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마를 조아리며 부처님 발아래 절하고 나서 깨달았으니, 이미 우둔하고 어리석고 밝지 못하고 공교하지 못하여 악한 뜻을 지니고 왔음을 깨달았으며, 여래ㆍ무소착(無所著)을 향하여 부처님 말씀을 버리려고 하고 믿지 않으려고 했음을 깨달았다. 이로부터 스스로 허물을 뉘우치고 근본을 지켜서,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스스로 법에 귀의하고, 스스로 비구승에 귀의하여 근본을 지켰다.
019_0703_b_10L便不信重從坐起頭面著佛足下禮已覺已覺爲愚爲癡爲不曉爲不工爲持惡意來向如來無所著如有覺欲卻語不欲信從今自悔過本守歸佛自歸法自歸比丘僧守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019_0703_b_15L佛說如是

[8]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3_b_16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또한 급하게 제자의 법을 설하였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자를 위해서 다 갖추어 설할 것이다.”
사리불이 곧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급하게 설하시는 것도 괜찮고, 제자의 법을 다 갖추어 설하셔도 괜찮습니다. 법회에 참석한 제자들 중에 이해하는 자가 있습니다.”
019_0703_b_17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是時佛告舍利弗我亦倉卒說弟子法我亦具說但爲難得解者利弗便白佛倉卒說亦可弟子法具說亦可弟子法會有解者
019_0703_c_01L부처님께서 곧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니, 자신이 밖의 일체 사상에 대해 모두 인식하면 ‘이것이 나이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는 교만의 번뇌가 다시는 없게 된다. 뜻을 이해하고 지혜를 이해해서, 스스로 법을 보며 스스로 이해하고 스스로 알아 행함을 얻으니, 이것이 바로 자신이 밖의 일체 사상에 대해 모두 인식하면 ‘이것이 나이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는 교만의 번뇌가 다시는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사리불 비구가 이렇듯 자신이 밖의 일체 사상에 대해서도 모두 인식해서 ‘이것이 나이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는 교만이 다시는 없게 되어 뜻을 이해하고 지혜를 이해한다면, 법을 보고 지혜롭게 행하며 스스로 보고 스스로 알아 구하여 행함을 마칠 것이니, 이를 일컬어 사리불 비구가 번뇌와 집착을 다하고 배움에 이르러 세상을 건너 열반으로 간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까닭에 이런 말을 설한 것이니라.”
019_0703_b_21L佛便告舍利當學如是身識俱外一切思想是是我所憍慢使便不復有所意解所慧解自見法自解自知得行是身識俱外一切思想我是是我所憍慢使不復有若舍利弗比丘是身識俱亦外思想一切我是是我所憍慢使便不復有所意解得慧解見法慧行自見自知求行止是名爲舍利弗比無所著漏索盡至學度世我爲是故說是言
이후로는 말씀이 없으셨다.
從後說絕

이르지 못한 세상의 제도에 대해 설하고
욕망을 파괴하여
구족할 수 없는 것에 뜻을 두고
또한 어둠을 제거하고
의심을 돌이키며
019_0703_c_08L度世說不致
壞欲欲思想
意不可俱爾
亦除曉睡暝
亦還結疑

청정함을 관하여
본래의 사유법(思惟法)이 일어난다.
이미 세상을 제도하는 지혜를 말하였고
또한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을 말하였다.
019_0703_c_10L觀意除淨
本起思惟法
已說度世慧
亦說壞癡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019_0703_c_11L佛說如是

[9]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3_c_12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는데, 이때 부처님께서 많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몸에 있는 피부는 피를 따라 생기고 살은 똥과 오줌을 싸안고 있다. 스스로 몸을 살펴보건대 어떻게 좋은 것을 볼 수 있겠는가? 항상 아홉 구멍에는 나쁜 병이 있어 늘 깨끗하지 못하고, 항상 씻어도 가히 부끄럽다. 늘 원수와 더불어 생로병사(生老病死)에 이르고 또한 늘 질병에 시달린다.
어찌하여 마땅히 던져지고 마땅히 무너질 몸을 싫어하지 않는가? 버려져서 땅속에 장례를 지내고 다시는 쓰이지 못하니, 여우나 이리의 밥이 된다. 그러니 어찌 보고도 부끄럽지 않겠으며, 누구라서 탐욕스럽고 음란하게 말하겠는가?”
019_0703_c_13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是時佛告諸比丘是身有肌膚髓血生肉含滿屎尿自視身見何等常有九孔惡病常不淨常洒可足常與怨家合爲至老死亦與病俱何以不惡身會當墮會當敗以棄葬地中不復用爲狐狼所噉何以見不誰說貪婬
019_0704_a_01L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적은 것을 가히 많다고 스스로 마음속으로 이것을 관(觀)하더라도, 이것은 마치 장례용 막대기로 시체의 뼈를 모으는 것과 같다. 또 마치 불을 태우는 것과 같고, 독약을 먹은 것이 고통스러워서 몸을 쥐어짜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기뻐도 기쁜 이유를 스스로 알지 못하니, 어찌 탐내고 음란하게 행하여서 그물에 걸리는 어리석음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돈ㆍ곡식ㆍ금ㆍ은ㆍ소ㆍ말ㆍ노예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려 하지만, 목숨은 호흡에 있으니, 본래 목숨 역시 자연히 적은 것이요, 아주 오래 산다고 해도 백 살 남짓이나 또한 고통이 합쳐진 것이다.
누가 이것을 관(觀)할 수 있겠는가? 마치 시간이 지나가면서 목숨이 곧 점점 줄어들어 살날이 다 사라지는 것 같고, 빠르게 흘러가는 강물 같고, 해와 달이 다하는 것같이 목숨은 이렇게 빨리 사람을 지나가는 것이다. 목숨은 한 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듯이 사람이 죽을 때 목숨이 끊어져 버리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019_0703_c_20L如佛言少可多自心觀如屠杅屠机爲骨聚如然火如毒藥痛爲撓癡人憙爲喜不自知何不畏羅網貪婬爲癡哉奴婢人爲命故求命在呼吸本命亦自少極壽百餘歲亦苦合觀是誰爲可者如時過去便命稍少命日俱盡如疾河水如日月盡命疾是過去命去不復還如是爲不可得人死時命去
가령 약간의 재물과 천상의 신비한 물건을 찾았다 하더라도 또한 모든 것이 있다고 해도 죽을 때가 닥쳐서는 또한 즐겁지 않으며, 또한 싫어할 수도 없고, 즐거워할 수도 없으며, 또한 스스로 즐거워할 수도 없다. 다만 남김없이 스스로 선을 짓고, 남김없이 스스로 있는 그대로 선을 짓는다면, 죽음을 당하여서 어떤 사람들이 탐욕스럽고 음란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오래 살든지 빨리 죽든지 당연히 죽음을 만나게 되니, 어찌 모든 즐거움을 찾으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깊은 사려 없이 마음을 다 기울여 사랑하던 아이가 있더라도 이 아이가 죽게 되면 울고불고 하지만 열흘을 넘기지 않고, 이미 열흘이 지나면 곧 그 사실을 잊게 되니, 아이를 사랑하던 부인 또한 그렇고, 집안의 친척들과 친구들도 그러하다.
019_0704_a_06L設使若干財索天琦物亦一切有死時對來亦不樂亦不可厭亦不可樂亦不可自樂無餘但自善作有餘所自作善所自然若以知見死當有何等人可隨貪婬設使久壽設使亡去會當死何以意索俱藥何以不念靜極意愛兒兒已死啼哭不過十日已十日便忘之愛兒婦亦爾爲家室親屬知識亦爾
고생하고 살면서 재물을 모으지만 죽을 때에 사람은 모았던 것을 다 버려야 하며, 스스로 사랑하던 몸과 생명도 끈으로 묶여 어지러이 버려진다. 또한 흙속에 들어가면 다만 음(陰)이 되어 사라지니, 나고 자라고 떨어짐이 마치 나무의 과실과 같다. 이미 이와 같이 사람의 뜻이 무너지는 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다.
천하의 모든 만물도 한 사람을 제대로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만약 그 일부분을 얻더라도 어찌 만족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에 다섯 가지 즐거움이 두루 하더라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겠는가? 이미 고통을 만나 죄를 받은 사람의 뜻은 이 때문에 이익이 되는 바가 있을 것이나 고요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 자기 몸이 뱀이 될 것이다. 적었다가 많아져도 그럴 것이고, 많았다가 적어져도 그럴 것이다.
019_0704_a_14L以苦生致財死時人會棄自愛身命在索棄亂亦入土下但爲陰去生熟隨人如樹菓實已見如是有爲人意隨中天下一切萬物一人得不自足若得一分當那得自厭無有數世五樂自樂遍當爲何等益人已逢苦索受罪人爲是有所益不欲受靜索爲蛇自如少多亦爾如多少亦爾
019_0704_b_01L이것은 마치 병이 들면 크든 적든 역시 고통스러운 것과 같고, 마치 살이 없는 뼈를 개가 얻으면 씹어서 싫증내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개가 습관대로 하고자 하나 이것 역시 얻기가 어렵다. 이미 얻었다면 마땅히 매우 두려워해야 하니, 이 습관은 오래가지 않으며 사람도 악한 데 떨어진다.
마치 사람이 꿈에서 보았더라도 깨고 나면 다시는 탐하고 빠질 수 없는 것과 같고, 또한 이것은 연극과 같은 것이다. 꿈에 즐거움이 있더라도 검은 뱀과 같고, 낚싯밥으로 쓰는 고기와 같으며, 나무에 과실이 있으나 실제로는 적고 많음이 없는 것과 같다. 더욱더 얽매여 악을 지으니 본래 도가(道家)에서는 항상 이런 사람을 쓰지 않는다.
천상에 있으면 즐겁고 천상의 화려한 나무 역시 단정하여 마치 화원과 같으며 또한 천상의 왕녀를 얻지만, 이미 얻은 사람은 천상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만족하지 못하니, 지금 마땅히 어찌 천하에서 만족함을 얻겠는가?
019_0704_a_22L如病爲大小亦苦如骨無有肉狗得齩之不如是欲狗習是亦難得已得當多畏之是習所不久人亦墮惡如人見夢已悟不復得貪婬亦如是劇夢爲有樂如黑虺如飢肉如樹菓實實少末多亡爲增結爲惡作本道家常不用是人在天上舍樂亦天上色亦在端正如苑園亦得天上王女已得人不厭天上五樂今當那得天下厭
이백 골(骨)ㆍ백 골ㆍ백이십 단(段)을 취하고 힘줄로 묶여 있으며 아홉 구멍은 항상 새어 아흔세 가지 종류의 백 가지 심한 병이 되고, 살과 피가 서로 화합하여 살가죽이 생기고, 속에서는 춥고 뜨거운 바람으로 똥과 오줌이 되며 천 가지 벌레들이 있으니, 이것은 다 몸을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서 이 가운데 천(千) 개의 구멍이 있는데 또한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내가 친하고자 해도 저것은 무너져버리고 이것을 쫓아 깨끗하지 않은 것들이 나오니, 코에서는 콧물이 나오고, 입에서는 침이 나오고, 겨드랑이 아래에서는 땀이 나오고, 구멍이 있는 곳을 따라 똥과 오줌이 나온다. 이와 같이 다 몸을 따라 심하게 나오고, 무덤 속의 시체도 실로 악취가 심하니, 버린 후에도 가히 악취가 심한 깨끗하지 못한 종류들이기 때문이다.
본래 이렇기 때문에 금 같은 것으로 바르고 달리 옷을 입고 향수와 화장을 하고 붉은 솜과 감대(紺黛)를 하는 것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마음이 산란해지니, 마치 화병(畵甁) 같고 구덩이를 풀로 덮어 놓은 것 같은데, 사람이 껴안고 사랑하다가 뒤에 후회한다.”
019_0704_b_09L爲取二百骨百骨百二十段筋纏爲九孔常漏爲九十三種爲百病極爲肉血和爲生革肌爲中寒熱爲屎尿爲千虫皆從身起中亦有千孔亦有劇爲親已壞他爲從是不淨出從鼻中涕出從口涎唾出從腋下流汗出從孔處屎尿出如是皆從身出劇塚閒死人誠可惡劇舍後可惡劇爲所有不淨種爲從是本來如金塗餘爲衣故香粉脂滓赤絮紺黛爲癡人見是是亂意如畫甁如坑覆以草人所抱愛後會悔
비구는 무릎을 꿇고 절하고서 이와 같이 가르침을 받았다.
019_0704_b_20L比丘跪拜受教如是

[10]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4_b_21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잘 듣고 가르침을 받아라.”
019_0704_b_22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佛告比丘比丘聽受教
019_0704_c_01L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비구여, 사람에게는 네 가지 인연이 있으며 탐애(貪愛)에는 가볍고 무거움이 있으니 이것을 따라 도(道)를 떠나게 된다.
비구여, 비유하자면 한 사람이 네 명의 아내를 두고 있는 것과 같으니, 첫째 부인은 남편이 소중하게 여겨서 앉고 서고 다니고 걷고 움직이고 눕고 쉴 때 일찍이 떠난 적이 없으며, 목욕하고 장식하고 밥을 먹고 다섯 가지 즐거움을 항상 먼저 그와 더불어 하였으며, 춥고 덮고 배고프고 목마르면 여기에 따라 살펴 주었고, 그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서 일찍이 더불어 다툰 적이 없었다. 둘째 부인은 앉고 일어서고 말을 할 때에 항상 좌우에 있었는데, 그녀를 얻으면 기뻐하고 그녀를 잃으면 우울해 하다가 늙고 병들기도 하고 송사를 일으켜 싸우기도 했다. 셋째 부인은 함께 모일 때면 나타나, 자주 함께 있곤 했는데 아무렇게나 안부를 묻곤 했지만 몹시 곤란하고 지나치게 피곤하면 곧 매우 근심하다가도 혹 서로 멀리 떨어져 가게 되면 생각을 했다. 넷째 부인은 주인의 심부름을 하였는데 심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할 때에도 먼저 달려가서 번번이 가서 응하였으나 안부를 묻지도 않고 더불어 말을 하지도 않았으니, 그녀는 보호하여 돌봐주기를 바랐지만 마음에 두질 않았다.
019_0704_b_23L佛便說是比丘人有四因緣貪愛有輕重是離道比丘譬一人有四婦第一婦爲夫所重坐起行步動作臥息未曾相離沐浴莊飾飯食五樂常先與之寒暑飢渴摩順護視隨其所欲未曾與諍第二婦者坐起言談常在左右得之者喜不得者憂或致老病或致鬪訟第三婦者時共會現數相存問苦甘恣意窮困瘦極便相患厭或相遠離適相思念第四婦者主給使令趣走作務諸劇難苦輒往應之而不問亦不與語希於護視不在意中
이 네 부인의 남편이 하루아침에 죽게 되어 멀리 떠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남편은 곧 첫째 부인을 불렀다.
‘너는 마땅히 나를 따라가야 한다.’
부인이 대답했다.
‘저는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다.’
남편이 말했다.
‘내가 너를 비할 데 없이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서 크나 작으나 많으나 적으나 항상 너의 뜻을 살피고 돌보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를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가?’
부인이 말했다.
‘당신이 비록 저를 사랑해주고 소중하게 여겨주셨지만 저는 끝내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다.’
019_0704_c_12L四婦夫一旦有死事當遠徙去便呼第一婦汝當隨我去第一婦報言不隨卿壻言我重愛無有比大小多少常順汝旨養育護汝不失汝意那不相隨婦言卿雖愛重我我終不能相隨
019_0705_a_01L남편은 탄식을 거두고 둘째 부인을 불렀다.
‘너는 마땅히 나를 따라가야 한다.’
둘째 부인이 대답했다.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던 첫째 부인도 오히려 당신을 따르지 않습니다. 저도 또한 끝내 당신을 따를 수 없군요.’
남편이 말했다.
‘내가 일찍이 너를 구할 때에 노력하고 고생한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몹시 춥고 더워도 참고, 배고프고 목마름도 꾹 참았으며, 물난리나 불난리 관청의 시달림과 도적에 맞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싸우면서 약삭빠르고 민첩해서 너를 얻을 수 있었는데 어찌하여 나를 따를 수 없다고 하는가?’
부인이 말했다.
‘당신 스스로 이익을 탐하여 억지로 저를 구하신 것이지, 제가 당신을 구한 것은 아니니, 어찌 애쓰고 고생했다고 말씀하십니까?’
019_0704_c_18L夫便恨去呼第二婦汝當隨我去第二婦報言卿所重愛第一婦尚不隨卿我亦終不相隨壻言我始求汝時勤苦不可言觸寒逢暑忍飢忍渴又更水火縣官盜賊與人共諍儇儇咋咋乃得汝耳爲那不相隨卿自貪利强求爲我我不求卿爲持勤苦相語耶
남편은 곧 탄식을 거두고 다시 셋째 부인을 불렀다.
‘너는 마땅히 나를 따라가야 한다.’
셋째 부인이 대답했다.
‘저는 당신이 베푸신 은혜를 받았기에 당신을 성 밖에까지는 배웅해 드리겠지만, 끝내 멀리 당신이 가시는 곳까지는 갈 수 없습니다.’
019_0705_a_02L夫便恨去復呼第三婦汝當隨我去第三婦報言我受卿恩施送卿至城外終不能遠行到卿所至處
남편은 스스로 한탄하는 것을 거두고 다시 넷째 부인과 함께 이야기했다.
‘내가 이 나라의 경계를 떠나야만 하니, 너는 나를 따라가야 한다.’
넷째 부인이 대답했다.
“저는 본래 부모를 떠나 당신께 보내졌으니, 생사고락(死生苦樂)을 마땅히 당신과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소중히 여기던 세 부인에게서 당신을 따르겠다는 뜻을 얻을 수 없었으니, 다만 괴롭고 부끄러우나 저도 따라갈 수 없다는 뜻을 그들과 함께 할 뿐입니다.’”
019_0705_a_05L夫自恨如去還與第四婦共議言我當離是國界汝隨我去四婦報言我本去離父母來給卿使死生苦樂當隨卿所到此夫不能得可意所重三婦自隨但得苦醜不可意者俱去耳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위의 비유에서 말한 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의 의신(意神)이요, 첫째 부인은 사람의 몸이다. 사람이 몸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첫째 부인보다 더하다. 그러나 목숨이 다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면 의신은 죄와 복을 따라 마땅히 홀로 멀리 가야 하는데, 몸은 땅에 엎드려 기꺼이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019_0705_a_10L佛言上頭所譬喩說人者是人意神第一婦者是爲人之身也人好愛其身過於第一婦至命盡死意神隨逐罪福當獨遠去身僵在地不肯隨去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4행(行)을 따르지 않으면 도탈(度脫)할 수 없느니라.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근심과 고통이요, 둘째는 습관과 욕심이요, 셋째는 공이 다한 것이요, 넷째는 소멸하는 것이다. 모든 악도(惡道)는 반드시 8행(行)이 있으며, 지극한 정성은 4제(諦)에 있다.
019_0705_a_14L佛言比丘不隨四行不得度脫何等爲四一者憂苦二者習欲三者盡空四者消滅諸惡道要有八行至誠在四諦
019_0705_b_01L둘째 부인은 사람의 재산이다. 얻으면 기쁘고 얻지 못하면 근심스럽지만 목숨이 다하는 때에 이르면 재물과 보배는 세상에 남겨둬야 하며, 또한 스스로 따라가지 못하는데도 공연히 앉아 근심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셋째 부인은 부모ㆍ처자ㆍ형제ㆍ다섯 친척, 알고 있는 사람들ㆍ노비들이다. 살았을 때 은혜로이 사랑하고 서로 사모하였기에 목숨이 다할 때에 이르면 울고 통곡하면서 성 밖의 무덤까지는 전송해 준다. 그렇지만 곧 죽은 사람을 버려두고 각자 되돌아와 우울하게 생각하기를 채 열흘도 되지 않아서 곧 함께 먹으면서 죽은 사람에 대해 점점 잊어버린다.
넷째 부인은 사람의 뜻이다. 천하에 스스로 뜻을 사랑하고 지켜서 보호하는 자는 있지 않으니, 모두 마음이 산만하여 제멋대로이고 탐욕스러우며 성을 내고 정도(正道)를 믿지 않다가, 몸이 죽으면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는데, 지옥에 들어가거나 축생이 되거나 아귀가 되어 모두 쾌히 뜻하는 대로 이르는 것이다.
019_0705_a_17L第二婦者是人之財產得之者喜不得者愁至命盡時財寶續在世閒亦不自隨去空坐之愁苦第三婦者謂父母妻子兄弟五親知識奴婢以生時恩愛轉相思至於命盡啼哭而送之到城外塚便棄死人各自還歸憂思不過十便共飮食捐忘死人第四婦者是人意天下無有自愛守護意者皆放心恣意貪欲瞋恚不信正道身死當墮惡道或入地獄或爲畜生或爲餓皆快意所致也
비구여, 도(道)를 구하는 사람은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르게 해야 하며, 마땅히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며 악을 행하는 것을 그쳐야 한다. 악을 행하지 않으면 재앙을 받지 않고, 그 재앙을 받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으며, 태어나지 않으면 또한 늙지 않고, 늙지 않으면 또한 병들지 않으며, 병들지 않으면 또한 죽지 않고, 죽지 않으면 곧 무위(無爲)의 니원도(泥洹道)를 얻을 것이다.”
019_0705_b_05L比丘爲道當自端心正意當去愚癡之心無愚癡之行息不行惡不行惡不受殃不受其殃不生不生亦不老不老亦不病不病亦不死不死便得無爲泥洹道
부처님께서 여여(如如)하게 이것을 말씀하시니, 비구는 가르침을 받고 크게 기뻐하였다.
019_0705_b_09L佛如如說是比丘受歡喜

[11]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5_b_10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국(王舍國) 계산(鷄山)에 계셨는데,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상에 머무르며 일 겁 동안 나고 죽는 그 뼈를 취하여 보관해서 썩지 않고 소멸하지 않게 하여 수미산처럼 쌓아 놓거나, 혹은 백 겁 동안 나고 죽은 자, 혹은 천 겁 동안 나고 죽은 자라 하더라도, 오히려 아직 아라한ㆍ니원도(泥洹道)를 얻을 수 없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일 겁 동안 그 뼈를 모아 합쳐서 수미산과 같더라도 내가 짐짓 그 근본 인연을 나타내리니, 비구여, 만약 너희들이 모두 마땅히 그 근본을 뽑아서 그 근본을 버리고 여읜다면 이 때문에 다시 태어나고 죽지 않을 것이며, 다시 태어나고 죽지 않으므로 곧 세간을 건너 니원도를 얻을 것이다.”
019_0705_b_11L一時佛在王舍國鷄山中便告比丘人居世閒一劫中生死其骨藏之不腐不消不滅積之與須彌山等人或有百劫生死者或千劫生死者尚未能得阿羅漢道泥洹告比丘人一劫中合會其骨與須彌山等我故現其本因緣比丘若曹皆當拔其本根去離本根用是故不復生死不復生死便得度世泥洹道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019_0705_b_19L說如是

[12]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5_b_20L聞如是
019_0705_c_01L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기수수달원(祇樹須達園)으로 행차하셨다.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시니 비구가 응하여 부처님 말씀을 받았다. 부처님께서 곧 색(色)을 말씀하셨다.
“비구가 근본을 생각하면 고통이 일어나는데 생각은 항상 무너지지 않으니, 버리고 자세히 관(觀)할 뿐이다.
비구가 색을 자세히 관할 수 있어서 만약 능히 색의 본래 생각을 알고, 능히 색이 항상 무너지지 않음을 알며, 능히 자세히 관할 줄 안다면, 곧바로 색을 사랑하는 것을 버리게 된다. 이미 색을 사랑하는 것이 무너지면 곧 사랑하고 탐하던 마음도 무너지며, 이미 사랑하고 탐하던 마음이 무너지면 곧 뜻을 벗어날 수 있다.
내가 이와 같이 통양(痛癢:受)ㆍ사상(思想:想)ㆍ생사(生死:行)ㆍ식(識)을 말한 것은 비구가 근본을 생각하고 또한 식을 생각하는 것이 항상하지 않기 때문이니, 또한 마땅히 자세히 관(觀)해야 한다. 만약 비구가 능히 자세히 관하여 사랑하는 것을 버리면, 이미 사랑이 다하고 사랑하고 탐하는 마음이 다하여서 곧바로 생사(生死)를 해탈해 도(道)를 얻을 것이다.”
019_0705_b_21L一時佛在舍衛國行在祇樹須達園佛便語比丘比丘應唯然佛語佛便說色比丘念本起苦念非去諦觀已比丘色能諦觀若能知色本念若能知色非常若能知諦觀便色愛爲去已色愛壞便愛貪亦壞已愛貪壞便意脫我爲說如是痛癢思想生死爲比丘念本亦念識非常亦當諦觀若比丘能已到諦觀愛棄已愛盡便愛貪盡便脫生死得道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說如是

[13]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5_c_08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를 위해 악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또한 선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는지 말하리니, 비구는 잘 듣고 생각하여 마음에 두라.”
비구가 대답했다.
“그러겠습니다.”
019_0705_c_09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佛便告比丘我爲若說惡從何所起亦說善從何所起比丘聽念著比丘應唯然
“악의(惡意)는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는가?
색(色)은 과거ㆍ미래ㆍ현재에 탐욕이 스스로 성냄과 두려움 그리고 어리석음을 일으켜 일체를 악의라고 보아서 이를 일컬어 악한 것이라고 하니, 통양(痛癢) 또한 그렇고, 사상(思想) 또한 그러하며, 생사(生死) 또한 그렇고, 식(識) 또한 그러하다. 이와 같은 것을 이름하여 일으킨 바의 악을 따른다고 한다.
선의(善意)는 어떤 것인가? 색은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이것이 일어나는 것을 봄이 없으니, 성냄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어서 모든 악의에 어지럽게 됨이 없다. 이와 같은 것을 이름하여 선의라고 하며, 이와 같은 것을 이름하여 통양ㆍ사상ㆍ생사ㆍ식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와 같이 선악의(善惡意)에 대해 말하였다.”
019_0705_c_12L惡意爲何等所色過未來今貪起自恚一切見惡是名爲所惡痛癢亦爾思想亦爾生死亦爾識亦爾如是名爲從所起善意爲何等色過去未來今無有見是起無有恚無有畏無有癡無有一切嬈惡意如是名爲善意如是名爲痛癢思想生死佛言我所說善惡意如是

[14]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5_c_20L聞如是
019_0706_a_01L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4의지(意止)가 있으니, 네 가지는 어떤 것인가?
비구는 내신(內身)의 몸을 관하여[觀止]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외신(外身)의 몸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내ㆍ외의 몸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019_0705_c_21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佛便告比丘有四意止何等爲在有比丘內身身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癡天下憂外身身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癡天下憂內外身身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癡天下憂
안의 통양(痛癢)의 모습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밖의 통양의 모습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안팎의 통양의 모습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019_0706_a_04L內痛癢痛癢相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天下憂外痛癢痛癢相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天下憂內外痛癢痛癢相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天下憂
안의 의(意)의 모습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밖의 의의 모습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안팎의 의의 모습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019_0706_a_09L內意意意相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天下憂外意意意相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天下憂內外意意意相觀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天下
안의 바른 법(法)의 모습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밖의 바른 법의 모습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안팎의 바른 법의 모습을 관하여 힘을 다해 바로 뜻을 알아서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니, 어리석음은 천하의 근심이 되기 때문이다.”
019_0706_a_14L內正法法法相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天下憂內外正法法法相觀止盡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天下憂內外正法法法相觀止力今知意不忘出從癡爲天下憂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4의지(意止)를 말씀하셨으니, 부처님의 제자는 마땅히 받아 행하고 정진하므로 도를 얻을 수 있다.
019_0706_a_18L說如是四意止佛弟子當爲受行進爲得道

[15]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6_a_20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9_0706_a_21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019_0706_b_01L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에게 하나의 법이 있으니, 이 법에 대해 사유하고 많이 행해야 한다. 몸이 편안함을 얻게 되고, 뜻으로 생각하고 기대하는 바를 그쳐 남음이 없게 된다. 다만 지혜롭게 법을 행함을 생각하고 또한 구족하게 행함을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것이 하나의 법인가? 한 법의 모양은 안반(安般)4)을 익혀 뜻을 지키는 것이니, 만약 비구가 안반으로 뜻을 지킴을 익숙하게 하고 생각하여 오랫동안 머무른다면, 곧 몸이 편안함을 얻고 뜻도 생각하고 기대하는 바를 곧바로 그쳐서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된다.
다만 지혜롭게 법을 행할 것을 생각하고 원만 구족하게 행하라. 이것이 비구의 하나의 법인 것이다. 이 한 법의 모양을 서로 행하고 서로 많이 하면 몸이 쉴 수 있을 것이다. 뜻과 생각이 기대함도 곧바로 그쳐 남음이 없으리니, 다만 지혜롭게 법을 행하고 더욱 행을 많이 할 것을 생각하라. 만약 비구가 이 한 법을 능히 행하고 능히 부리며 능히 생각하며 능히 많이 지으면 도를 따를 수 있을 것이다.”
019_0706_a_22L佛便告比丘有是比丘一法一法相行想念多作爲身得息爲意所念所待能止無有餘但念黠行法念俱行何等一法爲一法相習安般守意若比丘安般守意爲習爲念爲多住便身得息意亦所念所待便止無有便黠念法行滿具行是爲比丘所一法爲一法相便相行相多爲身得息爲意相念相待便止無有餘黠行法念增滿行若比丘是一法比丘能行能使能念能多作得墮道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019_0706_b_09L說如是

[16]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6_b_10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9_0706_b_11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힘이 있으면 상근기의 도(道)를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 힘인가? 밝게 깨달아 제어하는 힘[曉制力]과 뜻으로 방호하는 힘[意護力]을 말한다.
019_0706_b_12L佛便告比丘有二力得上頭道何等爲二力謂曉制力謂意護力
밝게 깨달아 제어하는 힘은 무엇이냐 하면, 부처님 말씀을 들어 도가 있는 참된 제자가 몸으로 악행(惡行)을 하는 것을 배우면 악복(惡福)을 받게 된다. 지금 세상과 나중 세상에 나[我]의 몸이 악을 행하면 나는 마땅히 스스로 몸을 범하게 되며, 또한 타인도 번거롭게 하여 도인(道人)이 됨도 도를 함께 함도 없게 된다.
또한 계(戒)를 범하면 시방 사람들이 나의 악행에 대해 말할 것이며, 나 또한 불길한 말을 쫓아서 몸이 무너지면 곧 지옥 가운데 떨어지리니, 이렇게 몸으로 악행(惡行)을 하는 것을 악복(惡福)이라고 한다.
지금 세상의 악도 이와 같고, 나중 세상의 악도 이와 같을 것이니, 곧 몸의 악함을 버리고 몸을 위하여 좋은 생각을 지니며 몸을 청정히 하면 이와 같이 몸이 범하고 마음이 범하는 데에 이르지 않는다. 이것을 밝게 깨달아 제어하는 힘[曉制力]이라고 한다.
019_0706_b_13L等爲曉制力者是聞有道眞弟子是學身惡行爲得惡福今世後世我身行惡我當自身犯亦爲嬈他人無所道人所同道亦爲犯戒十方人亦說我惡我亦隨不吉語言我亦身敗便墮地獄中是爲身惡行謂惡福世惡如是後世亦惡如是便身惡棄爲身好念淨除身到不犯如是身犯行心犯行是名爲曉制力
019_0706_c_01L어떤 것을 염력(念力)을 행한다고 하는가?
지키는 바를 이루는 것이며, 스스로 지켜 돌아가는 것이고, 그칠 바의 생각을 힘써 행하는 것이니, 이른바 행하여 스스로 도달하되 염(念)하여 구함에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일컬어 염행력도(念行力道)라고 한다.”
019_0706_b_22L何等爲行念力者若所守致若自守歸若所止念行力謂行之自到爲念致求如是名爲念行力道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비구는 몹시 기뻐하며 일어나서 예배를 드렸다.
019_0706_c_02L說之如是比丘歡喜起作禮

[17]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6_c_0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셨는데,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서 머무셨다.
019_0706_c_04L一時佛在舍衛國行在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힘이 있으니, 어떤 것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믿음의 힘이고, 둘째는 정진(精進)의 힘이며, 셋째는 지혜의 힘이다.
019_0706_c_05L佛便告比丘有三力何等三力一者信力二者精進力三者黠
믿음의 힘은 어떤 것인가? 도가 있는 제자는 불도(佛道)를 위하여 능히 뜻을 무너뜨림이 없고, 불은(佛恩)을 얻어 행하여 머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잘 살펴서 집착하는 바가 없고, 지혜의 긴요함을 깨달아 천하의 아버지가 되는 즐거움을 얻는다’고 하셨으니, 이와 같이 부처님께 도달하여 악을 버리고 지혜롭게 행하면, 혹 이것을 일컬어 믿음의 힘이라고 한다.
019_0706_c_07L信力爲何等在有道弟子爲佛道無有能壞意得佛恩行止說佛如是如諦無所著諦覺黠要得樂天下如是到佛棄惡到黠行或是名爲信力
정진의 힘은 어떤 것인가? 어떤 비구가 있었는데 이미 악의(惡意)가 생겼으면 끊어버렸기 때문에, 행하고자 함을 구하고 정진함을 구하여 정의(正意)를 받게 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의는 문득 일으키지 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의(善意)는 구하여 낳으니, 이미 법의(法意)에 머물렀으면 잊지도 않고 덜어내지도 않는다. 나날이 더하고 나날이 많아져 행하려는 생각이 가득하면 내려고 하고 받기를 구하여 정진제의(精進制意)가 나오니, 이것을 일컬어 정진력이라고 한다.
019_0706_c_11L精進力爲何等在有比丘已生惡意斷故求欲行求爲精進爲受正未生惡意不便起未生善意爲求已法意爲止不忘不減日增日多行念滿欲生求受精進制意出是名精進力
지혜의 힘은 어떤 것인가? 만약 어떤 비구가 이 고(苦)와 집(集)이 같음을 살펴서 집이 고이며 고가 집임을 안다면, 이 고가 다하면 고의 요체[要]를 받으리니, 이것을 일컬어 지혜의 힘이라고 한다.”
019_0706_c_16L黠力爲何等若有比丘是苦習如諦知是習苦是苦習是苦盡是苦要受是名爲慧力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시자 비구는 듣고 받아서 말씀대로 행하였다.
019_0706_c_18L佛告比丘比丘已聞受行如說

[18]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6_c_19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서 머무셨다.
019_0706_c_20L一時佛在舍衛國行在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의 힘이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 힘인가?
첫째는 의력(意力)이요, 둘째는 정진력(精進力)이며 , 셋째는 불범력(不犯力)이요, 넷째는 수력(守力 )이다.
019_0706_c_21L佛便告比丘有四力何等爲四力一者意力二者精進力三者不犯力四者守力
019_0707_a_01L의력(意力)은 어떤 것인가? 만약 어떤 비구가 선과 악의 혼탁함에 대해 안다면 지극한 앎에 이른 것과 같다. 또한 범할 것을 알고 범하지 않을 것을 알며, 또한 행할 수 있음을 알고 행할 수 없음을 알며, 또한 그릇된 것을 알고 또한 증장함[增]을 알며, 또한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알며, 또한 혼탁한 것을 안다면, 자세히 살펴서 아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일컬어 의력(意力)이라고 한다.
019_0706_c_23L意力爲何等若有比丘知善惡濁如至誠知亦知犯亦知不犯亦知可行亦知不可行亦知非亦知增亦知白亦知黑亦知從得濁如諦知是名爲意力
정진력은 어떤 것인가? 어떤 비구가 혼탁하여 악한 것을 말하고, 범하는 것을 말하며, 불가한 것을 말하고, 검은 것을 말하며, 뛰어난 사람을 쓰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면, 이와 같은 무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만약 혼탁하면서도 말하기를 좋아하여 범하지 않음을 말하고, 익힐 수 있음을 말하고, 말할 수 있는 흰 것을 말하며, 도에 대해 말하더라도, 이와 같은 무리는 탁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탐욕이 된다. 행하는 것이 정진이 되며, 의(意)를 받아들여 의를 제어하는 이것을 일컬어 정진력(精進力)이라고 한다.
019_0707_a_04L精進力爲何在有比丘在有濁所惡說所犯說所不可說所黑說不用進人說如是輩爲棄之若所爲濁好說不犯說習說可說白說所道說如是輩濁行爲貪欲爲行爲精進爲受意爲制是名爲精進力
불범력(不犯力)은 어떤 것인가? 어떤 비구가 몸을 범하지 않고 받아 행하여 머무르며, 입을 범하지 않고, 또한 마음을 범하지 않아 받아 행하여 머무는 이것을 일컬어 불범력이라고 한다.
019_0707_a_10L不犯力爲何等有比丘爲不犯身受行止爲不犯口爲不犯心受行止是名爲不犯力
수력(守力)은 어떤 것인가? 네 가지 부류를 말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 부류인가? 첫째는 거두어 줌[攝]이고, 둘째는 보시(布施)이며, 셋째는 서로 슬퍼함[相哀]이고, 넷째는 서로 도와 선을 행함[相助善行]이다. 이것을 일컬어 수력이라고 한다.”
019_0707_a_12L守力爲何等謂四輩何等爲四輩一爲攝二爲布施三爲相哀四爲相助善行是名爲守力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說如是

[19]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7_a_15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9_0707_a_16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5력(力)이 있어서 여자로 하여금 남자를 속이게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 힘인가? 첫째는 색(色)이고, 둘째는 단정(端正)함이며, 셋째는 남자 형제가 많은 것이고, 넷째는 집안이 세력이 있는 것이며, 다섯째는 재산이 많은 것이다.
019_0707_a_17L佛便告比丘人有五力令女人欺男子何爲五力一者色二者端正三者多男兄弟四者家豪五者多財
어떤 것을 색이라고 하는가? 여인이 어질지 못한 것을 이른다. 이미 어질지 않으므로 곧 생활의 방도를 세우려고 하지 않으며, 마땅히 성을 내면서 집안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이 여인은 스스로 단정함이 비길 데가 없다고 말하며, 남자 형제가 많아서 강하다고 말하고, 세력이 있고 귀한 집안이라고 말하며, 재산이 많다고 말하니, 이와 같은 여인은 어질지 못하다.
019_0707_a_20L何等爲色謂女人不良已不良便不欲治生當瞋恚不欲持家是女人自謂端正無比自謂多男兄弟强謂豪貴家自謂多財產如是女人爲不良
019_0707_b_01L만약 여인이 정숙하고 어질다면 여인의 색(色)이 없을 것이다. 아주 정숙하면 곧 두 가지 선한 가르침을 지닐 것이니, 이미 두 가지 선한 가르침을 받았다면 생업을 다스려 수입을 늘리려 하고 성내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집안을 지키려 한다. 이와 같은 여인은 단정함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이 여인은 다만 마음으로 하는 사람일 뿐이니, 남자형제가 많아 강하다고 내세우지 않으며, 집안이 세력이 있고 귀하다고 스스로 높이려 들지 않으며, 또한 재산이 많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내세우지 않을 뿐이다. 곧바로 가르침을 받으며, 이미 가르침을 받았으면 잘 지녀서 게으름 피우지 않으니, 곧 생활의 방도를 세우려 하고, 마음이 화평하여 성내는 일이 없고, 집안일을 버려두지 않으며, 곧 생활의 방도를 세워서 집안을 잘 지키기 위해 걱정한다. 이와 같은 것이 정숙하고 어진 여인의 뜻이다.”
019_0707_b_01L若有女人貞良無有女色大貞便爲持兩善教已受兩善教便欲治不欲瞋恚便欲抦持家如是者不用端正故爲是人但心爲人耳不用多男兄弟强不用家豪貴自貢高用多財產意適等耳便爲受教已教善持之不懈便欲治生心和不欲瞋便不棄家事便欲治生憂持家是爲貞良女人意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說如是

[20]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7_b_09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9_0707_b_10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아무것도 듣지 않는 자는 듣지 않는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여서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많이 들은 자는 많이 들은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여서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인색한 자는 인색한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이며 서로 응하고 서로 옳다고 한다. 보시하는 자는 보시하는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이며 서로 응하고 서로 옳다고 한다.
019_0707_b_11L佛告諸比丘比丘諸不聞者聞俱相類相聚相應相可多聞者聞俱相類相聚相應相可慳者慳俱相類相聚相應相可布施者布施俱相類相聚相應相可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운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며 서로 모이고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이며 서로 응하고 서로 옳다고 한다.
욕심이 많은 자는 욕심이 많은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이며 서로 응하고 서로 옳다고 한다. 욕심이 적은 자는 욕심이 적은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이며 서로 응하고 서로 옳다고 한다.
지니기 어려운 자는 지니기 어려운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이며 서로 응하고 서로 옳다고 한다. 지니기 쉬운 자는 지니기 쉬운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여서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019_0707_b_15L黠者黠俱相類相聚相應相可癡者癡俱相類相聚相應相可多欲者多欲俱相類相聚相應相可少欲者少欲俱相類相聚相應相可難持者難持俱相類相聚相應相可易持者易持俱相類相聚相應相可
019_0707_c_01L주는 것이 어려운 자는 주는 것이 어려운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여서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주는 것이 쉬운 자는 주는 것이 쉬운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여서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만족하지 않은 자는 만족하지 않은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여서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만족한 자는 만족한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여서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지키지 않는 자는 지키지 않는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여서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지키는 자는 지키는 자끼리 함께 서로 어울리고 서로 모여서 서로 응하며 서로 옳다고 한다.”
019_0707_b_21L難給者難給俱相類相聚相應相可易給者易給俱相類相聚相應相可不足者不足俱相類相聚相應相可足者足俱相類相聚相應相可不守者不守俱相類相聚相應相可守者守俱相類相聚相應相可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으니,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이 인연을 분별하여 행해야 할 것은 마땅히 행하고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은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한다.
019_0707_c_03L佛說比丘如是黠人當分別是因緣可行者當爲行不可行者當爲莫行

[21]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7_c_05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9_0707_c_06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제석천[天上釋]이 된 것은 옛날 세상에서 사람 가운데 있을 때 일곱 가지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니, 목숨이 다하도록 구하여 나아가서 근본을 따랐던 까닭에 제석천이 된 것이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목숨이 다하도록 마땅히 부모님께 효도하고, 목숨이 다하도록 어른을 뵙게 되면 예의를 갖추며, 입으로는 불꽃이 튈 정도의 험한 말을 하지 않고, 의(意)에 따르는 법어(法語)를 말하며, 목숨이 다하도록 성내거나 헐뜯는 망령스런 말을 하지 않고, 목숨이 다하도록 지극한 정성으로 말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기뻐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머무는 것이다.
항상 믿어서 천하를 속이지 않으면, 마땅히 목숨이 다하도록 천하가 아껴줄 것이다. 내가 마땅히 뜻하여 집안에 있는 것을 아끼지 않고 보시를 행해서 펼쳐진 손마다 항상 구하는 것을 주었으니, 이를 일컬어 보시(布施)를 좋아한다고 한다. 보시하여 똑같이 나누었으되, 이 제석천왕[釋天王]이 된 것은 옛날 세상에서 사람 가운데 있을 때 이 일곱 가지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한 것을 목숨이 다하도록 모두 행하고 성취하여 이 본래의 제석을 쫓아 제석천이 된 것이다.”
019_0707_c_07L佛告比丘天上釋爲故世在人中有七願爲如至命爲如求就爲所從本故爲釋何等爲七到命要當爲父母孝到命要當爲見老爲禮當爲不出口炎言當爲隨意法語言當爲至命要不怒讒妄語當爲至命要至誠語至誠喜至誠止常信不欺天下當爲至命要天下慳我當爲意中不隨慳家中行布施放手常與所求好布施布施等分爲是釋天王故世在人中爲是七願說爲至命要具行爲從是本釋釋得
이어 말씀을 맺으셨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노인에게 예를 갖추며
속 태우는 말을 하지 말고 의(意)에 따라 말하며
헐뜯거나 망령된 말을 버리고
또한 인색함에서 스스로 벗어나길 살폈으며
성내지 않고 기뻐하여 말씀대로 행하였네.
019_0707_c_18L從後說絕
爲孝父母姓中
有老人禮
不炎說隨意說
讒妄言棄
從慳自出
不怒喜行言

“이런 까닭에 천상(天上)을 얻었으니,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마땅히 천상에 이와 같이 예(禮)를 올려야 할 것이다.”
019_0707_c_21L爲是故能得上天在所人欲行是爲天上禮如是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說如是

[22]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7_c_23L聞如是
019_0708_a_01L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셨는데,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서 머무셨다.
019_0708_a_01L一時佛在舍衛國行在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문득 손톱 끝에 흙을 묻히신 다음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것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이 손톱 끝의 흙이 많겠는가, 땅의 흙이 많겠는가?”
비구가 곧 대답했다.
“부처님, 손톱 위의 흙은 적어서 땅의 흙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또한 백 배도 아니고 천 배도 아니며 만 배도 아니며 억 배도 아니고 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숫자로도 비유할 수 없으며 모을 수도 없고 또한 말로써 비유할 수도 없으니, 이것은 땅의 흙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019_0708_a_02L佛便以爪甲頭取土已取便告比丘比丘知是云何何等爲多爪頭土何如地土多比丘可便報爪甲上土少不可比地土無有比非百倍亦非千倍亦非萬倍亦非億亦無有數亦無有數喩亦無聚不可說譬喩是地土甚多
부처님께서 곧바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지혜롭게 지혜의 눈으로 행하는 것이 땅의 흙과 같음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사람이 하는 것은 지혜롭게 지혜의 눈으로 행하더라도 손톱 위의 흙과 같다. 이와 같이 하는 사람은 지혜롭게 지혜의 눈으로 행하되, 이와 같이 배워서 지혜롭게 지혜의 눈으로 행하면 허물이 없다. 지혜가 생기면 마땅히 스스로 살아갈 수 있으니, 이와 같이 비구로서 도(道)를 행하고자 하는 자는 배워야 할 것이다.”
019_0708_a_08L佛便告比如是人所不知智黠眼行如地土如是人所爲智黠眼行如爪上土是人所爲智黠眼行如是可學智黠眼行無有過黠生當爲自活如是比丘欲行道者可學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說如是

[23]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8_a_1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9_0708_a_14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몸은 돌이켜 회복됨이 없고, 몸은 은혜를 생각하지 않으니, 만약 조그만 통증으로 말미암아 병이 들면 온몸이 다 고통스럽다. 항상 뜻하는 대로 얻고자 하여 눈은 아름다운 색을 보며 귀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코는 좋은 향기를 맡으며 혀는 좋은 것을 맛보고 몸은 곱고 부드러운 것을 입지만, 이와 같이 몸을 길러도 사람이 버려져 죽게 되면 몸은 사람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계(戒)와 법(法)을 따르지 않고 다만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019_0708_a_15L佛便告比丘身爲無有反復不念恩若有小痛因作病擧身幷痛常隨意所欲得眼與好色耳與好聲鼻與好香舌與羙味身與細耎養身如是捨人壞敗身不欲度人何以故不盡隨戒法但作罪
019_0708_b_01L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에 대화(大華)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있었는데, 죽음의 순간에 이르자 ‘쯧쯧, 몸을 써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백 년 동안이나 힘을 다하여 이와 같이 기르고 보호하였는데도 한 번 죽음이 찾아오니 몸은 곧 무너지는구나’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몸은 돌이켜 회복될 수 없으니, 가령 마땅히 몸을 쓰고 살피며 보살피더라도 종국에는 마치 원수와 같음을 알게 될 것이다. 몸은 스스로 죄를 구하여 이미 작은 고통을 얻게 되면 곧 근심하는 태도를 보인다. 항상 가장 좋은 다섯 가지 즐거움과 더불어 있다가 오래되어 보면 마땅히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비구는 잘 생각하여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미 이것을 알았으면 마땅히 행하여 다른 사람을 가르쳐라.”
019_0708_a_20L佛便告比丘世有王名爲大花欲死時說言用身作何等養護百歲盡力如是死事來身便壞敗如是身爲無有反便知是爲若當用爲視養有劇如怨家身自求罪已得小痛便見憂態常與最好五樂久視之會當老病死比丘可念而不忘是已知是當行教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教如是

[24]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8_b_05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서 머무르셨다.
019_0708_b_06L一時佛在舍衛國行在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사자는 축생의 왕이니, 스스로 머무는 곳에서 나오며, 이미 스스로 머무는 곳에서 나와서는 곧 하품을 한다. 하품을 한 다음에는 곧 가만히 바라보고 다시 사방을 두루 살펴보되, 문득 세 번 되풀이해서 사자의 목소리를 내고 가서 곧 뜻하는 곳에 이르러 거닌다. 산과 강이 깊어서 빠르게 지나가더라도 건널 수 없음을 이미 알기에 사자는 이 강가에서 스스로 머물러 있다가 곧 건너가는 가장자리에서 식(識)을 지어 의념(意念)을 관(觀)하며, 이로부터 내려와서 식처(識處)에 이르러 나온다. 이미 문득 내려왔으나 만약 사자왕이 아는 바를 곧바로 얻어 나오지 못하면 곧 다시 돌아가서 다시 건너나 다시 돌이키지 못한다. 항상 식(識)을 얻어 처한 곳에서 나오려고 하다가, 죽음에 이르러 사자왕은 머무르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며 베풀지 못하니, 알아야 할 바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019_0708_b_07L佛便告比丘師子畜生王從自處出已自處出便欠已欠便視便四面觀便三反師子聲行便所意至處便行已見有山河中深疾過使難度便師子在從是邊河自止便度邊作識觀意念從是下到識處出已已便下若師子王所識直不得出便復還復度不得復還常欲得識處出至死師子王不止不行不置所識不得故亦如是
어리석은 사람은 배워서 들은 바를 자세히 받지 않고, 문득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 가서 말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끌려나오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어리석은 사람은 또한 베풀지 않으며, 어리석은 태도로 행하고, 또한 그것을 하려 하지 않으며 경(經)에서 요구하는 바를 받아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
만약 이와 같이 문득 지혜로운 사람이 이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이것은 내가 마땅히 경전의 힘을 배워서 힘써 행한 것이고, 내가 마땅히 학문을 하는 힘이며, 내가 마땅히 자세히 살펴 행하는 힘이며, 내가 마땅히 방종하지 않은 것이다.
사자왕은 죽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깨달은 젊은 사람이 도(道)를 행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019_0708_b_16L所有癡人不諦受所學便爲人聚行說到人牽出所癡人亦不置癡態行亦不欲所不諦受經所要若如是便黠人可覺是是我當爲學經力力行我當爲學問力我當爲精觀行力我當爲不放師子王死態難出覺少人欲爲道當學如是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019_0708_b_22L說如是

[25]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8_b_23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국(王舍國)의 강당 안에 계셨다.
一時佛在王舍國講堂中
019_0708_c_01L이때 아속륜자(阿遫輪子)라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이르러 추악한 입으로 부처님께 나쁜 욕을 하며 심하게 다그쳤다. 부처님께서 곧 아속륜자 바라문에게 경(經)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악은 없으나 악한 입을 가지고 말을 한다면, 밝고 바른 행동이 없을 것이다.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쫓아 재앙에 이르니, 비유하면 마치 사람이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가면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019_0708_c_01L在時名爲阿遬輪子婆羅門至佛已至爲麤惡口惡罵佛劇罵訶止佛便爲婆羅門阿遬輪子說經譬喩若人無有爲持惡口說向淸白行無有惡癡人從是致殃譬如人逆向風末塵來
즉시 아속륜자 바라문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엎드려서 말했다.
“허물을 알게 되니 몰라서 어리석었던 것이 후회됩니다. 마치 이해하지 못하며, 분명하게 알지 못한 것을 어리석다고 이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을 제도하는 이는 더러운 입으로 욕을 하는 것을 없게 하고 수없이 충고를 하니, 부처님께서 마땅히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시는 까닭에 제 허물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부터 스스로 잘 지켜서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019_0708_c_07L卽時婆羅門阿遬輪子爲持頭面著足曰知過受悔如癡如愚如不解如不了名爲愚癡者爲度世者持弊惡口罵亦數諫爲佛當爲愚癡人故受悔過從今自守不復犯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미 바라문이 어리석고 이해하지 못하며 분명하게 알지 못하여 더러운 입으로 욕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구나. 이미 돌이켜 후회함을 보았고 스스로 지켜서 이 후에는 감히 범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말하는구나. 이 도(道)를 행하는 가운데 도가 늘어나서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고, 만약 이미 깨달아 스스로 허물을 후회하여 스스로 나타내어 숨기지 않고 근본을 지키면 다시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019_0708_c_11L佛報言婆羅門悔過如愚如癡如不解不了爲罵如來惡喙已見復悔自說自守後不敢犯是道行中望增道不減已見自悔過自現不匿現守本不復
바라문이 곧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했다.
婆羅門便自歸佛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佛說如是

[26]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8_c_16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국(王舍國)에 계실 때였다. 이름이 불침행자(不侵行子)인 바라문이 있었는데, 부처님께 나아가 안부를 여쭙고 한쪽에 앉았다. 이미 한쪽에 앉아 있던 불침행자가 부처님을 향하여 이와 같이 말하였다.
“제 이름은 불침(不侵)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름과 같이 뜻도 그러할 뿐이다. 그대 바라문은 마땅히 침범하지 말라.”
019_0708_c_17L一時佛在王舍國時有婆羅門名爲不侵行者至佛所與佛談處坐已一處坐不侵行者向佛說如我名爲不侵佛報言如名意亦爾爾乃婆羅門應不侵
이어 말씀을 맺으셨다.

만약 몸을 침범하지 않으면
입도 착한 말을 하고, 뜻도 그렇다네.
이런 것을 불침(不侵)이라 이름하니
기이하게도 침범하는 것이 없다네.
019_0708_c_21L從後說絕
若身不侵者
口善意亦然
如是名不侵
無所侵爲奇
019_0709_a_01L
곧 불침행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 발아래 엎드렸다.
“지금부터 가르쳐주신 계율을 지녀 다시는 5계(戒)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019_0708_c_23L卽不侵行者從坐起持頭面著佛足從今持教誡不復犯五戒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019_0709_a_02L佛說如是

27. 불설칠처삼관경(佛說七處三觀經)

이와 같이 들었다.
019_0709_a_03L佛說七處三觀經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019_0709_a_05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부처님께서 문득 비구를 부르셨다.
“7처(處)를 알고, 3처處)를 관(觀)하라. 속히 도법(道法)에 마음을 두어 묶인 것에서 벗어나면 묶인 뜻이 없게 되며, 벗어나 지혜를 쫓으면 법(法)을 얻게 되고, 법을 보면 스스로 도를 증득하게 된다. 생을 받으면 도의(道意)를 끝까지 행하고, 해야 할 것을 한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019_0709_a_06L佛便呼比丘七處爲知三處爲疾爲在道法脫結無有結意脫從黠得法已見法自證道受生盡行道作可作不復來還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물으셨다.
“어떤 것이 7처선(處善)인지 아는가? 이것을 듣고 비구는 색(色)이 근본과 같다는 것을 잘 살펴서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색습(色習)을 알고, 색이 다함을 알며, 색이 멸도행(滅度行)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색의 맛[色味]을 알고, 색의 괴로움을 알고, 색이 나오는 중요한 곳과 지극히 진실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통양(通癢)ㆍ사상(思想)ㆍ생사(生死)ㆍ식(識)이 근본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식습(識習)의 식(識)이 다하면 식이 다한 것을 받아 행하여 근본을 알고, 또한 식의 맛[識味]을 알며, 또한 식이 고통임을 알고, 또한 식이 나오는 중요한 곳을 알며, 또한 식의 근본은 지극히 진실함을 알아야 한다.
019_0709_a_09L佛問比丘何等爲七處善爲知是聞比丘色如本諦亦知色習亦知色盡亦知色滅度亦知色味亦知色苦亦知色出要亦至誠如是痛癢思想生死識如本識習識盡識盡受行本知亦知識亦知識苦亦知識出要亦知識本至誠
019_0709_b_01L어떻게 색(色) 같은 것을 살필 수 있는가? 색이라는 것은 네 가지를 근본으로 하니, 또한 4대(大)가 있고, 4대에는 독이 있다. 색의 근본은 이와 같이 근본이 같음을 알라.
어떻게 색습(色習)의 근본이 같음을 아는가? 애습(愛習)이 색습이니, 이와 같이 색습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색이 다하면 지극히 진실하게 되는가? 애착이 다하면 색도 다함을 알 것이니, 이와 같이 색이 다하면 지성지(至誠知)가 된다.
어떻게 색의 행이 다하면 지성지와 같이 되는가? 만약 이 색을 이 8행(行)으로 삼아 자세히 보아서 자세하게 8행을 정하는 데 이르면, 이와 같이 색이 다 행을 받으니, 지성지의 근본과 같다.
어떻게 색의 맛[色味]이 지성지와 같음을 아는가? 색이라는 것은 살고자 하되, 기쁘게 살고자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색의 맛은 지성지와 같은 것이다.
어떻게 색의 번뇌[色惱]가 지성지와 같은 것인가? 색이라는 것은 항상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법륜을 굴리니, 이와 같이 색의 번뇌는 지성지와 같은 것이다.
어떻게 색요(色要)가 지성지와 같은 것인가? 색이라는 것은 욕심내어 탐하는 것을 능히 벗어나서 욕심을 버릴 수 있고 욕심을 건너갈 수 있으니, 이와 같이 색이 요(要)임을 알아 지성(至誠)과 같은 것이다.
019_0709_a_16L何等爲色如諦如所色爲四本亦在四大亦爲在四大蚖所色本如是如本知何等色習如本知愛習爲色習如是色習爲知何等爲色盡如至誠知愛盡爲色盡如是色盡爲至誠知何等爲色行盡如至誠知是色爲是八行諦見到諦定爲八是色盡受行如至誠知本何等爲知色味如至誠知所色欲生喜生欲生如是色爲味如至誠知何等爲色惱如至誠知所色不常轉法如是爲色惱如至誠知何等爲色要如至誠知所色欲貪能解能棄欲能度欲如是爲色知要如至誠
어떤 것이 통양(痛癢)임을 능히 아는 것인가? 여섯 가지 통양이 있으니, 눈[眼]에 통양이 심어져 있으며,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에도 통양이 심어져 있다. 이와 같은 통양을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을 통양습(痛癢習)이라 하는가? 습(習)에 심겨진 것을 통양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습이 통양습이다.
어떤 것을 통양진지(痛癢盡知)라 하는가? 심은 것이 다함을 통양진지라고 한다. 이런 것이 통양진지가 된다.
어떤 것을 통양수행(痛癢受行)라고 하는가? 만약 8행(行)을 받아서 자세히 보아 의(意)가 정해져 여덟 가지가 되는데 이르면, 이와 같이 통양을 다 받아서 행하여 도가 된다.
어떤 것을 통양미식(痛癢味識)이라 하는가? 이것은 통양이 오기를 구하여 기쁨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통양식미를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을 통양뇌식(痛癢惱識)이라고 하는가? 통양이라 하는 것은 고(苦)를 무너뜨리지 않고 법의(法意)를 굴리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통양뇌식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통양요(痛癢要)라고 하는가? 통양이라는 것은 능히 살아서 아끼고 탐하여 능히 건너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통양요식이니, 자세히 살펴 알아라.
019_0709_b_06L何等爲痛癢能知六痛癢眼栽痛癢耳鼻舌身意栽痛癢如是爲知痛癢何等爲痛癢栽習爲痛癢習如是習爲痛癢習何等爲痛癢盡知栽盡爲痛癢盡知如是爲痛癢盡知何等爲痛癢受行若受八行諦見到諦定意爲八如是痛癢如盡受行爲道何等爲痛癢味是爲痛癢求來可求喜如是爲痛癢識味爲知何等爲痛癢惱識所痛癢爲不非轉法意如是爲痛癢惱識何等爲痛癢要所痛癢欲能活爲愛貪能度如是爲痛癢要識如諦
019_0709_c_01L어떤 것을 사상식(思想識)이라고 하는가? 몸에 여섯 가지의 사상(思想)이 있으니, 눈[眼]에 사상이 심어져 있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도 사상이 심어져 있다. 이와 같이 이 여섯 가지 식(識)이 사상(思想)이다.
어떤 것을 사상습식(思想習識)이라고 하는가? 습(習)을 심는 것이 사상습(思想習)이 된다. 이와 같은 것이 사상습식이 된다.
어떤 것을 사상진식(思想盡識)이라고 하는가? 사상진식이 다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사상진식이 된다.
어떤 것을 사상진수행식(思想盡受行識)이라고 하는가? 이것은 8행식(行識)이다. 식(識)을 자세히 살펴보아 자세히 정해서 의(意)가 여덟이 되는데 이르니, 이런 것이 사상수행식(思想受行識)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사상미식(思想味識)이라고 하는가? 사상의 인연으로 즐거움이 생겨서 뜻[意]의 기쁨을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사상미식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사상뇌식(思想惱識)이라고 하는가? 사상이 항상 고통을 다하지 못한 채 법을 굴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사상뇌식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사상요식(思想要識)이라고 하는가? 사상이 능히 욕심과 탐욕을 벗고자 하여 능히 욕심과 탐욕을 끊고 능히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사상요식이라고 한다.
019_0709_b_19L何等爲思想識爲身六思想眼栽思耳鼻舌身意栽思想如是是六識思想何等爲思想習識栽習爲思想如是爲思想習識何等爲思想盡盡爲思想盡識如是爲思想盡識何等爲思想盡受行識是爲八行識識諦見到諦定意爲八如是盡思想受行識何等爲思想味識所爲思想因緣生樂得意喜如是思想味識等爲思想惱識所爲思想不常轉法如是爲思想惱識何等爲思想要識所思想欲能解欲貪能斷欲貪能自度如是爲思想要識
어떤 것을 생사식(生死識)이라고 하는가? 몸에는 여섯 가지의 생사식이 있다. 눈에 생사식이 심어져 있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도 심어져 있다. 이와 같은 것을 생사식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생사습(生死習)이라고 하는가? 습(習)에 심어진 것을 생사습식(生死習識)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생사진식(生死盡識)이라고 하는가 ? 심음이 다한 것을 생사진식(生死盡識)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생사욕진애행식(生死欲盡愛行識)이라고 하는가? 이것은 8행식(行識)을 자세하게 살펴보아 자세하게 정하여 여덟이 되는 데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사를 멸하고자 하여 식을 받아서 행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생사미식(生死味識)인가? 나고 죽는 인연이 즐거움과 기쁨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생사미식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생사뇌식(生死惱識)인가?
나고 죽는 것이 항상 고통을 다하지 못한 채 법을 굴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생사뇌식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생사요식(生死要識)인가? 나고 죽는 욕심과 탐심이 욕심과 탐심을 피하여 능히 욕심과 탐심을 끊고 능히 건너가니, 이와 같은 것을 생사요식이라고 한다.
019_0709_c_08L何等爲生死識爲六身生死識眼栽生死識鼻舌身意栽行如是爲生死識何等爲生死習栽習爲生死習識何等爲生死盡識栽盡爲生死盡識何等爲生死欲盡愛行識爲是八行識諦見至諦定爲八如是爲生死欲滅受行何等爲生死味識所爲生死因緣生樂喜意如是爲生死味識何等爲生死惱識所有生死不常轉法如是爲生死惱識何等爲生死要識所爲生死欲貪避欲貪能斷欲貪能如是爲生死要識
019_0710_a_01L어떤 것이 식(識)이 몸의 여섯 가지 쇠미한 식(識)인 것인가?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식이 심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식의 식이 된다.
어떤 것이 식습(識習)인가? 명자습(命字習)이 식습(識習)이 된다. 이와 같이 습(習)이 식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식(識)이 다 받아 행하여 식이 되는 것인가? 목숨이 다 식이다. 이와 같은 것이 식을 다함이 된다.
어떤 것이 식(識)이 다 받아 행하여 식이 되는 것인가? 8행(行)을 잘 살펴보아 자세하게 정해서 여덟 가지가 됨에 이르니, 이와 같이 식이 다 받아서 행하려고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 아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식미(識味)를 아는 것인가? 인연을 아는 까닭에 태어남이 즐겁고 태어남에 기쁜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태어남을 음미하는 것이 식미를 아는 것이다.
어떤 것이 식뇌식(識惱識)인가? 식이 다하여 고통이 되고 구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식뇌식이다.
어떤 것이 요식(要識)인가? 식의 욕심과 탐심이 능히 욕심과 탐심을 다스려 능히 끊어서 능히 건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요식이라고 한다.
019_0709_c_20L何等爲識身六衰識眼栽識耳鼻舌身意如是爲識何等爲識習命字習爲識習如是習爲識何等爲識盡受行爲識命字盡識如是爲盡識何等爲識盡受行爲識八行諦見至諦定爲八如是爲識盡欲受行如諦識何等爲識味知所識因緣故生樂生喜意如是味生爲味識知何等爲識惱識所識爲盡爲苦爲轉如是識惱識何等要識識欲貪能治欲貪能斷能度如是爲要識
이와 같이 비구는 7처(處)를 깨달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을 일곱 가지라 하는가? 색(色)ㆍ습(習)ㆍ진(盡)ㆍ도(道)ㆍ미(味)ㆍ고(苦)ㆍ요(要)니, 이것은 5음(陰)에 각각 일곱 가지 일이 있는 것이다.
019_0710_a_08L如是比丘七處爲覺知何等爲是五陰各有七
어떤 것을 3관(觀)이라고 하는가? 식(識) 또한 일곱 가지 일이 있는데, 5음을 얻으면 여섯 가지 일을 이룬다. 몸을 관(觀)하는 것이 일색(一色)이 되고, 5음을 관하는 것이 2가 되고, 여섯 가지 쇠함을 관(觀)하는 것이 3이 되니, 이런 까닭에 3관이라고 한다.
019_0710_a_10L何等爲三觀識亦有七事得五陰成六事觀身爲一色觀五陰二觀六衰三故言三觀
비구여, 능히 7처(處)와 3관(觀)을 밝게 하면 오래지 않아서 도(道)를 따라 행할 것이며, 묶인 것을 끊어서 묶인 뜻이 없을 것이고, 벗어나서 지혜를 모아 긴요히 하나를 증득해 받아 머무는 것을 볼 것이며, 마침내는 생사를 끊어 지어야 할 바를 결국 행할 것이니, 다시 돌아와 생사에 떨어지지 않고 도를 얻을 것이다.”
019_0710_a_12L比丘能曉七處亦能三觀不久行隨道斷結無有結意黠會見要一證受止已斷生死竟所作竟不復來還墮生死得道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비구가 크게 기뻐하고 가르침을 받아 행하였다.
019_0710_a_15L佛說如是比丘歡喜受行
雜阿含經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농기구의 한가지로 볏단을 끼우는 데 쓴다.
  2. 2)철을 불속에서 제련할 때 불에 녹아떨어지는 쇳조각을 말한다.
  3. 3)문맥상 ‘지혜롭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나, 원문에 불(不)자가 없으므로 그대로 번역한다.
  4. 4)호흡을 헤아리는 관법으로, 호흡을 통해 산란한 마음을 쉬고 집중하는 마음을 길러 선정을 닦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