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0_1130_a_01L불설흑씨범지경(佛說黑氏梵志經)


오(吳) 월지국(月支國) 지겸(支謙) 한역(漢譯)
김철수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니련강(尼連江)의 물가에서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부처님께서는 한 달 동안 지내시며 열여덟 가지 변화를 지으셔서 가섭 형제 세 사람과 천 명의 제자들에게 보이셨다.
그 다음에 부처님께서는 나열기성(羅閱祇城)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한 해를 머무시면서 백성들에게 법을 강설하여 가르치셨다.
처음 도를 이루신 지 두 해가 지난 다음에는 사위성(舍衛城)에 이르셔서 불도를 융성하게 일으키셔서 천상 사람들과 세간 사람들을 교화하셨다.
그때 향산(香山)에는 가라(迦羅)라는 바라문[梵志]이 있었는데, 4선(禪)을 얻고 5신통(神通)을 갖추어서, 사물을 꿰뚫어 보고 멀리서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으며, 몸은 능히 날 수 있고, 스스로 마음속의 생각을 관찰하여 다른 사람의 내생(來生)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경전의 내용을 밝혀 강설하면 석범(釋梵)ㆍ사천왕(四天王)과 모든 귀신ㆍ용들과 아울러 염라왕(閻羅王)을 감동시켰으므로 그들 모두가 찾아와서 들었다. 그의 말은 아름답고, 오묘한 음성은 온화하여 마치 범(梵)의 음성과 같았다. 그는 날마다 질문을 받고 토론하기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의 음성은 멀리까지 두루 미쳤다가 다시 되돌아오곤 하였다.
어느 날 염라왕은 앉아서 경법(經法)을 듣고 있다가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그는 눈을 들어 범지를 바라보고 더욱더 비탄에 젖었다.
그러자 범지가 염라왕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비 오듯 눈물을 흘리며 슬퍼합니까?”
염라왕이 대답했다.
“모든 일은 실제(實際)로 돌아간다는 것이 헛된 말은 아닌 듯합니다.
인자(仁者)께서 지금 경법을 설하시는 말씀은 아주 명쾌하시고 그 뜻이 매우 오묘하여 마치 연꽃과 같고 명월주(明月珠)와 같습니다. 하지만 수명이 거의 다하여 7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홀연히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실까 염려되어 슬픔에 겨워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자께서는 수명이 다하면 지옥 가운데 저의 영역(部界)에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제가 온 마음으로 법을 받고 있지만 곧 그대를 잡아다가 다섯 가지 독(毒)으로 고문하고 때릴 것이니, 이런 일을 깊이 생각하면 마침내 차오르는 회한을 어찌 다 말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문이 깜짝 놀라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염라왕에게 알려 말했다.
“저는 4선(禪)을 얻고 5신통을 성취하여 4역(域)을 활보하고 범천(梵天)을 넘어서는 데 장애가 없습니다.
죄과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지옥의 염라왕 영역에 떨어진다는 것입니까?”
염라왕이 말하였다.
“인자여, 그대는 임종할 때 악마를 만날 것이니, 그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마음속에 해치려는 생각이 있어 본행(本行)의 뜻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염라왕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라문은 이와 같은 말을 듣고 홀연히 근심스럽고 두려워져 어떤 계책으로 어떤 방편을 세워서 이러한 환란을 면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였고, 근심과 슬픔으로 망연자실하여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불길을 품고 앉았다 일어섰다 불안해하면서 길게 탄식 하였다.
석범(釋梵)과 사천왕(四天王)과 여러 신들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며 길게 큰 한숨을 내쉽니까?”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저의 수명이 거의 다하여 7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장차 악마를 만나 그것에 대항하여 저의 선심(善心)을 어지럽힐 것이니, 이런 연유로 나쁜 갈래[惡趣]에 나아갈까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몸을 뒤척이며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 향산(香山)에 거주하면서 부처님의 처소를 자주 방문하며 경전의 내용을 자문하였던 여러 착한 신들이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간에 법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자께서는 모르십니까?”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신명(身命)이 꺼져가고 있는 속인(俗人)이 어찌 그것을 알겠습니까?”
그 신들이 다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3계의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분이시니, 아직 건너지 못한 이들을 건네주시고, 아직 해탈하지 못한 이들을 해탈하게 하시며, 아직 편안하지 못한 이들을 편안하게 하시고, 모두 액난에서 구제하셔서 영원히 고요한 무위(無爲)의 도(道)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니 어찌 부처님을 찾아뵙고 우환에서 벗어나 오래도록 편안함을 얻어 도와 덕이 함께 합치되도록 하지 않습니까?”
바라문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흔쾌해져서 뛸 듯이 기뻐했으니 마치 어둠 속에서 광명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양손에 각기 오동나무와 자귀나무 같은 색깔이 좋은 꽃나무를 거두어 들고, 날아서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렀다.
한편 그가 도달하기 직전에 부처님께서는 마이(摩夷)에게 말씀하셨다.
“세존은 대자비로 끝없는 슬픔을 다스려서 일찍이 제도해야 할 이들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
부처님께서 그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바닷물은 밀려와 절벽을 따라 돌아서
일찍이 옛 경계를 넘어선 적이 없지만
홀연히 수신(水神)이 어지럽히면
일어나 옛 흐름을 침범하네.

부처님께서는 본성이 없음을 관(觀)하시고
마땅히 제도해야 할 이들을 살피시니
널리 액난을 면하고 구제 받도록 하여도
끝내 넘어가 잃어버림이 없네.

이때 바라문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날아와 공중에 머물면서 똑바로 부처님을 향하여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 흑씨(黑氏)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바라문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응답하고, 세존의 가르침대로 곧바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오동나무를 버려서 부처님의 오른쪽에 심었다.
부처님께서 다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바라문은 곧바로 왼손에 잡고 있던 자귀나무를 버려서 부처님의 왼쪽에 심었다.
부처님께서 다시 거듭해서 말씀하셨다.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바라문이 아뢰었다.
“가지고 왔던 두 나무를 부처님의 좌우에 내려놓아 빈손으로 서 있는데, 다시 무엇을 놓아버리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에게 손에 지니고 있던 것을 놓아버리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내가 놓아 버리라 한 것은 이전의 것을 놓아버리고 또한 나중의 것을 놓아버리고 다시 중간의 것을 놓아버리게 하여 처소가 없도록 해서, 생사의 갖가지 환난(患難)을 건너게 하려고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인자(仁者)여, 그 근본[本]을 버리고
또한 그 끝[末]도 버리며
중간에 깃들 곳[處所]이 없어야
생사의 근원을 건널 수 있다.
안으로는 6입(入)이 없고
밖으로는 6쇠(衰)1)가 현전하지 않으며
6정(情)을 내버려 두면
무위(無爲)를 이룸이 빠르다네.

흑씨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나라고 보지 않으면 마음을 분명하게 알 것이니, 마음이 없다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로다.
부처님께서 병에 맞게 약을 주셔서 이 못난 마음을 열어 깨우쳐 주시니, 장님이 눈을 얻은 것 같고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는 것과 같도다.
참으로 널리 보고 살피시는 일체지(一切智)이시니, 지금 부처님을 만나 뵌 덕은 이루 말로 비유할 수 없도다.’
그는 곧 아래로 내려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부처님께서는 그 바라문의 마음속 생각에 응하시고 분별하여 설하시고, 도량(道場)을 나타내 보이셔서 세 가지 해탈문을 연설하셨다.
이때 바라문은 곧 불퇴전지(不退轉地)에 머물게 되어 어떤 우환(憂患)도 없었으므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여 여러 게송으로 말하였다.

광명은 해와 달을 뛰어넘으시고
지혜는 큰 바다와 같으시며
자비는 광대하고 끝이 없으니
시방이 모두 흔쾌히 떠받드네.

중생은 3계를 유전(流轉)하기를
무수억만 년인데
병에 맞게 법약(法藥)을 주시고
훌륭한 변재(辯才)를 베풀어 주시네.

비록 현세(現世)에 생사에 들더라도
빙빙 돌면서 오고 감이 없으시고
격려하고 교화하여 정진하게 하시니
죄와 복은 대신할 수 없다네.

노력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탐욕 때문에 재앙을 초래하지 말라.
6쇠와 4마(魔)2)를 항복받아 제거하면
도를 이루어 걸리고 막힘이 없으리라.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미혹된 이래로 그 날이 오래되었습니다.
바라건대 가엾게 여기시고 사문이 되게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곧 들어주시니, 그의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져 위의(威儀)가 가지런해져서 적지(寂地)3)가 되었다.
그는 곧 염라왕에게 찾아가 말하였다.
“그대는 제가 목숨이 7일 밖에 남지 않았으며, 죽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사문이 되어 신통을 이미 갖추었고, 온갖 번뇌(漏)를 다하였으며, 네 개의 강[四瀆]을 건넜고, 뭇 병을 영원히 제거하였으니 마치 큰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과 같습니다.
일시에 수명을 늘려 49일이 되게 하고, 온갖 괴로움을 이미 소멸하였으며 외도의 신이한 술수를 넘어섰으니, 자재하게 세간에 머무르기를 다시 무수겁 동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염라왕이 대답했다.
“인자께서는 남은 복에 의지하여 부처님을 만났으니, 때맞춰 부처님께서 병에 맞는 법약을 주셔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멸하고, 신통을 다 갖추며, 안과 밖에 의심이 없어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마치 쥐가 이리를 만난 것과 같고 벼가 재해를 입은 것과 같았을 것이니, 죄에 의해 이끌려서 물고기가 낚시의 미끼에 걸린 것처럼 지옥 속으로 떨어져 벗어날 기약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영원히 벗어나게 되었으니, 저도 기쁠 따름입니다.”
이 말을 마쳤을 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道)에 대한 마음을 냈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비구ㆍ보살ㆍ흑씨 범지ㆍ하늘ㆍ용ㆍ귀신ㆍ아수륜 및 세간의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모두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020_1130_a_01L佛說黑氏梵志經吳月支國居士支謙譯聞如是一時佛遊尼連江水邊在彼一月造十八變化於迦葉兄弟三人及千弟子轉遊行羅閱祇城止頓一教授國民爲其講法初成佛道二年已乃到舍衛興隆道化開度天世閒人民香山有梵志名曰迦得備四禪具足五通徹視洞聽能飛行自察心念知人來生講說經感動釋梵及四天王諸鬼神龍幷閻羅王悉往聽之言語雅妙聲和猶日日諮受不以爲懈音徹于遠來歸聽閻羅王坐聞經法淚下如擧目觀視益用悲歎于時梵志問閻羅王何爲悲泣淚下如雨閻羅答事當歸實不可虛言仁今說經便辭利口義理甚妙猶如蓮華若明月而命欲盡餘有七日恐忽然過就於後世是以悲泣不能自勝又仁命過墮地獄中在我部界今自相歸心受法及當取卿拷掠五毒熟思惟遂用增懷不可爲喩梵志愕然中沈吟報閻羅王曰吾獲四禪成五神通獨步四域超昇梵天不以爲礙旣無罪舋何因當墮地獄閻界閻王仁臨壽終時當値惡對起瞋恚恨意欲有所害失本行義故趣閻界志聞之忽然悒懅不知何計設何方便得濟斯難愁慼惘惘心懷湯火起不安爲長歎息四王諸神問何爲不安長太息乎梵志答曰命欲盡餘有七日且有惡對來亂吾善心緣是之故恐歸惡趣是以反側不能自勝彼香山有諸善神數詣佛所諮受經典謂於梵志佛興于世仁不知乎梵志答曰身沈俗人安能知之其神復謂佛爲一切三界之救度諸未度脫未脫安未安皆濟危厄令至永寂無爲之道何不詣佛可脫憂患長得恬怕道德合同梵志聞之欣然踊躍如冥睹明兩手各取梧桐合歡好色華樹飛到佛所未到之頃佛告摩夷世尊大慈修無極哀未曾忘捨應當度者佛時頌曰潮水徑順崖 未曾越故際 儻有水神亂起犯於故流 佛觀於本無 察應當度者普使得免濟 終無越失耶於是梵志飛到佛所住虛空中正向歸佛佛告梵志謂黑氏曰放捨放捨梵志應諾如世尊教卽捨右手梧桐之樹種佛右面復謂梵志放捨放捨梵志卽捨左手所執合歡之樹種佛左面佛復重告放捨放捨梵志白曰適有兩樹捨佛左右空手而立當復何捨佛告梵志佛不謂卿捨手中物佛曰所捨令捨其前亦當捨後復捨中閒使無處所乃度生死衆患之難佛於是頌曰仁當捨其本 亦當捨其末 中閒無處所乃度生死原 內無有六入 外衰不得前放置於六情 乃成無爲疾黑氏梵志聞佛所說心自念言不見吾我則了心無心者本無應病與藥鄙心開解如盲得目聾者得聽眞爲普見審一切智今已値佛德不可訾尋卽來下稽首佛足退住一面佛應心本而分別說顯示道場演三脫門於時輒住不退轉地無一憂患歎佛功德而說頌曰光明踰日月 智慧猶大海 大慈無極哀十方悉欣戴 衆生流三界 無數億萬載應病授法藥 宣暢大辯才 雖現入生死周旋無往來 勸化令精進 罪福無能代努力勤精進 勿爲欲所災 降衰四魔除道成無罣礙梵志白佛我迷已來其日久矣願見垂愍得爲沙門佛卽聽之頭髮自墮袈裟著身威儀齊整成爲寂志往詣閻王而謂之曰卿本謂我餘命七日當墮地獄今爲沙門神通已具諸漏已度於四瀆衆病永除猶大圍屋時增壽七七日諸苦已消超外異術自在住世更無數劫閻王答曰仁賴餘福得遇佛應病授法滅婬神通悉備內外無疑設不爾者如鼠遭狸如稻得災爲罪所牽如魚鉤餌墮地獄中無有出期今已永脫相代歡喜說是語時無央數人皆發道意佛說如是比丘菩薩黑氏寂志鬼神阿須倫世閒人莫不悅豫作禮而去佛說黑氏梵志經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6경(境), 즉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을 가리킨다. 이것들이 선법(善法)을 쇠멸하게 하므로 6쇠라고 하는 것이다.
  2. 2)사람의 신명(身命)과 혜명(慧命)을 빼앗는 네 가지 마(魔)이다. 즉 온마(蘊魔)ㆍ번뇌마(煩惱魔)ㆍ사마(死魔)ㆍ천자마(天子魔)를 말한다.
  3. 3)사문(沙門)과 같은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