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동쪽 동산 녹자모(鹿子母) 강당에서 5백 명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는 7월 15일로서 부처님께서는 노지에 자리를 펴고 앉으셨고, 비구들이 앞뒤로 에워싼 가운데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노지에서 건추(揵槌)를 쳐라. 왜냐 하면 오늘은 7월 15일, 바로 새해[新歲]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눈은 짝할이 없고 어떤 일이나 모두 익숙했으며 지혜롭고 집착이 없는 이시여 어떤 것을 해를 받음[受歲]이라고 이름합니까?
020_1240_a_10L淨眼無與等, 無事而不練, 智慧無染著,
何等名受歲。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아난에게 대답하셨다.
020_1240_a_12L爾時,世尊復說此偈報阿難曰:
해를 받음이란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세 가지 업을 깨끗이 하는 것 비구들이 쌍쌍이 서로 마주해 제가 잘못한 것을 다 털어 놓고 다시 스스로 제 이름 부르는 것이다.
020_1240_a_13L受歲三業淨, 身口意所作, 兩兩比丘對,
自陳所作短, 還自稱名字。
오늘은 대중들이 해를 받는 날 깨끗한 마음으로 나도 받을 것이니 부디 그 허물을 따져 보아라.
020_1240_a_15L今日衆受歲,
我亦淨意受, 唯願原其過。
그러자 아난은 다시 게송으로 그 법을 여쭈었다.
020_1240_a_16L爾時,阿難復以此偈問其儀曰:
항하의 모래 같은 과거 부처님과 벽지불과 모든 성문들은 모든 부처님 법을 다하였는데 이것은 오직 석가모니의 법입니까.
020_1240_a_17L過去恒沙佛, 辟支及聲聞, 盡是諸佛法,
獨是釋迦文。
그때 부처님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답하셨다.
020_1240_a_19L爾時,世尊復更以偈報阿難曰:
항하의 모래 같은 과거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깨끗한 마음은 한결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이요 지금의 석가모니 법만은 아니다.
020_1240_a_20L恒沙過去佛, 弟子淸淨心, 皆是諸佛法,
非今釋迦文。
벽지불은 이 법이 없어 해를 받음도 없으며 제자도 없이 혼자 살면서 그 동료도 없고 남을 위하여 설법도 하지 않는다.
020_1240_a_22L辟支無此法, 無歲無弟子,
獨逝無伴侶, 不與他說法。
020_1240_b_02L 미래 세상의 여러 불세존들도
항하의 모래처럼 헤아릴 수 없고 지금의 고오타마 법처럼 이 해를 받음의 법을 받을 것이다.
020_1240_b_02L當來佛世尊,
恒沙不可計, 彼亦受此歲, 如今瞿曇法。
그때 존자 아난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환희심이 차올라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곧 강당에 올라가 손에 건추를 들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이 부처님의 신고(信鼓)를 치니, 부처님의 모든 제자들은 전부 이곳으로 모이시오.” 그리고 아난은 다시 다음 게송으로 말하였다.
힘센 악마의 원수를 항복받고 온갖 번뇌 남김없이 버린 이 나는 노지에서 이 건추를 치니 이 소리 듣는 비구 모두 모이시오.
020_1240_b_08L降伏魔力怨, 除結無有餘, 露地擊揵槌,
比丘聞當集。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듣고서 생사의 바다를 건너고자 하는 이 이 묘한 건추 소리 듣거든 모두 다 서둘러 이곳으로 모이시오.
020_1240_b_10L諸欲聞法人, 度流生死海,
聞此妙響音, 盡當速集此。
그때 존자 아난은 건추를 친 뒤에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이제 세존께서는 무엇을 시키시겠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차례대로 앉아라. 여래가 스스로 때를 알아 할 것이다.”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풀 자리에 앉아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도 모두 풀자리에 앉아라.”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은 모두 풀 자리에 앉았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묵묵히 여러 비구들을 관찰하신 뒤에 곧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새해를 받고자 한다. 나는 대중들에게 허물이 없었는가, 또 몸과 입과 뜻으로 죄를 범한 일은 없었는가?”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세 번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새해를 받고자 한다. 그런데 나는 대중들에게 허물이 없었는가?”
020_1240_c_02L그때 존자 사리불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금 비구들이 부처님을 관찰해 보니 부처님께서는 몸과 입과 뜻에 허물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는 지금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너게 하시고, 벗어나지 못한 이를 벗어나게 하셨으며, 열반하지 못한 이를 열반하게 하시고, 구호받지 못한 이를 구호하셨습니다. 장님을 위해서는 눈이 되어 주시고, 병자를 위해서는 의사가 되어 주셨으며, 삼계에서 홀로 높아 아무도 따를 이가 없으니, 가장 거룩하고 가장 훌륭하십니다. 도의 뜻을 내지 못한 이에게는 도의 뜻을 내게 하시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셨으며, 법을 듣지 못한 이는 법을 듣게 하시고, 헤매는 이를 위해서는 길이 되어 바른 법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허물이 없으시며, 또 몸과 입과 뜻의 허물이 없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리불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도 지금 부처님께 여쭙겠습니다. 저는 부처님과 비구 대중들에게 허물이 없었습니까?”
020_1240_c_10L是時舍利弗白世尊言:“我今亦向如來自陳,然無過咎於如來及比丘僧乎?”
020_1241_a_02L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지금 그대 사리불은 그 몸이나 입이나 뜻으로 지은 허물이 전혀 없다. 왜냐 하면 지금 지혜로써 그대를 따라올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갖가지의 지혜, 한량없는 지혜, 끝없는 지혜, 짝할 이 없는 지혜, 빠른 지혜, 날쌘 지혜, 매우 깊은 지혜, 평등한 지혜가 있으며,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을 알아 즐거워하는 곳이 있고, 온갖 방편이 많으며, 생각이 어지럽지 않아 모두 기억하고 삼매에 들어 근본을 두루 갖추었다. 계율을 성취하고 삼매를 성취하였으며, 지혜를 성취하고 해탈을 성취하였으며, 해탈지견을 성취하였고, 용맹스럽고 날래며 말을 참을 줄 알고, 악이 그른 법임을 알며, 심성은 조용하고 찬찬하여 사납지 않다. 마치 전륜성왕의 제일 큰 태자가 마땅히 왕위를 이어받아 보배 바퀴를 굴리는 것처럼 지금 사리불도 그와 같아서 어떤 하늘이나 세상 사람이나 용ㆍ귀신ㆍ악마나 악마 하늘도 굴리지 못하던 위없는 청정한 법 바퀴를 굴리며, 그대가 하는 말은 언제나 법의 이론에 맞아 이치에 어긋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리불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5백 명의 비구들도 모두 해를 받아야 하는데, 이들도 여래에게 허물이 없겠습니까.”
020_1241_a_03L是時,舍利弗白佛言:“此五百比丘盡當受歲,此五百人盡無過咎於如來乎?”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이 5백 명의 비구들의 몸과 입과 뜻의 행도 나무라지 않는다. 왜냐 하면 사리불이여, 이 대중들은 모두 아주 청정하여 어떤 티끌이나 더러움이 없다. 이 대중 가운데서 가장 작은 아래 자리의 사람도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어 반드시 더 높은 경지인 물러나지 않는 법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대중들을 원망하거나 나무라지 않는 것이다.”
축법호(竺法護)의 번역인 이 『수신세경(受新歲經)』을 살펴보면 국본(國本)ㆍ송본(宋本) 모두 용함(容函) 가운데 편집되어 있다. 거란장경은 용함 중에 『수세경(受歲經)』이란 것이 있는데, 이 경과는 크게 다르다. 지금 『개원록(開元錄)』에서 조사한 것에 의거한다면 거란장의 경이 바로 용함의 『수세경』이다. 이 송장경(宋藏經)은 경함(竟函)의 『신세경(新歲經)』과 글은 다르나 의미는 같으니, 아마 본(本)은 같으나 번역이 다른 것 같다. 『개원록』 중에서 『신세경』을 단역(單譯)이라고 여긴 것은 그 뜻이 분명하지 않다. 지금 우선 같은 부류끼리 모아서 현철(賢哲)을 기다리고자 하므로 이 경을 옮겨 경함(竟函)에 편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