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1,250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국왕 범마란(梵摩難)은 늘 부처님과 비구 승가에게 공양하였고, 매번 잿날[齋日]이 되면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수레를 정돈해 준비하게 하고서 수천 명을 거느리고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절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늘 모든 하늘과 인민(人民)들을 위하여 경을 설하셨는데 왕은 환희하고 공경하며 경을 들었으며, 궁궐 안에서도 또한 삼존(三尊)을 받들어 섬기고 청정하게 재계(齋戒)하였다. 왕에게는 이름은 균린유(均隣儒)라는 태자가 있었는데, 그는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세간은 무상(無常)하여 나면 죽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세속의 영화를 탐하지 아니하였다. 어느 날 태자는 왕에게 아뢰었다. “부처님 세상을 만나기란 어렵고, 또한 경법(經法)을 들어 알기란 어렵습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을 따라 사문이 되기를 원합니다.” 왕이 곧 허락하였으므로 균린유는 곧 왕께 하직하고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비구가 되기를 빌었다. 부처님께서 곧 손으로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시자 머리털이 떨어지고 가사가 저절로 입혀졌다. 균린유는 계율[重戒]을 받들어 지니고 정진하며 부지런히 밤낮으로 닦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더니 석 달 안에 아라한(阿羅漢)의 도를 얻었다. 왕은 그가 이미 도(道)를 얻은 줄을 알지 못하고, 그가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며 거친 밥과 푸성귀만을 먹는 것을 보고는 늘 가서 공양하되, 다른 비구와는 다르게 하여 유달리 마음을 썼다. 왕은 균린유에게 말했다. “나의 나라 안에 진기한 7보(寶)와 맛난 음식이 없는 것이 없거늘 너는 무엇 때문에 사문이 되기를 좋아하였느냐?” 부처님께서는 왕의 애정 때문인 줄을 아시고 곧 균린유에게 말씀하셨다. “위신력(威神力)을 일으켜보아라.” 균린유는 곧 부처님의 명을 받고 엎드려 부처님께 절하고는 사뿐히 허공에 올라 날면서 변화로 몸을 산산이 쪼개어서 틈이 없는 곳을 자유자재로 드나들었다. 그는 이 신통(神通)을 마치고 나서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절하였다. 그러자 왕은 그의 도덕(道德)이 이와 같음을 보고 슬픔과 기쁨이 엇갈려서 땅에 엎드려 균린유에게 절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균린유로 하여금 왕을 위해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과 4제(諦)의 법요를 설하게 하였다. 이에 왕은 곧 이를 이해하고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는 네 가지 일이 있으면, 보시하는 맛난 음식과 좋은 옷을 받으며, 좋든 나쁘든 보시한 이의 뜻을 거스르지 않나니, 그 첫째는 보시한 이에게 복을 내려주려 함이요, 둘째는 보시한 이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려 함이요, 셋째는 나이가 들어 늙었거나 몸에 병이 있거나 할 때요, 넷째는 사람이 도를 행하는 데 고생할까를 염려함이니라. 무릇 맛난 음식을 먹으려면 생각을 중한 계율에 두어야 하니, 곧 일체의 중생은 다 나의 친속인데 다만 오랫동안 생사에 전전하다 보니 그 근본을 잊었을 뿐이라, 비유컨대 몸에 종기나 병이 생기면 약을 먹여 낫게 하면 되고, 거기에 탐착하여서는 안 되는 것과 같으니라. 또한 보시를 하려는 이는 평등한 마음이라야 하며 크고 작음을 따져서는 아니 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때 아난으로 하여금 밥 먹음에 임하여서 승발(僧跋)1) 을 설명하게 하셨으니, 승발이란 대중 스님들의 밥은 모두 평등하다는 뜻이다.품(品)에 의거해 보건대 다음의 기록인 2지(紙) 8항(行)이 모든 본에 모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