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자(智者)이신 불일(佛日), 무구륜(無垢輪)의 언광(言光)으로 인(人)ㆍ천(天) 악취(惡趣)의 무지한 마음을 깨트리신 이에게 받들어 예배합니다.
028_0702_c_04L敬禮一切智, 佛日無垢輪, 言光破人天,
惡趣本心闇。
대법(對法:아비달마)의 올바른 이치로써 법상(法相)의 우매함을 제거한, 그 같은 모든 지자의 언장(言臧)에 머리 조아려 예배합니다.
028_0702_c_06L諸以對法理, 拔除法相愚,
我頂禮如斯, 一切智言藏。
지혜가 열등한 이의 무지의 망설에 의해 은폐된 모니(牟尼)의 말씀이 등불에 의해 밝혀졌으니, 그 같은 등불(아비달마 논사를 말함)에게 머리 조아립니다.
028_0702_c_07L劣慧妄說闇,
覆蔽牟尼言, 照了由明燈, 稽首然燈者。
총명한 지혜를 가진 자는 모니의 모든 가르침의 말과 뜻을 수지하더라도 어느 때 우연한 일로 성도(聖道)를 얻지 못하고 물러남이 있으며, 지혜가 열등한 자는 아비달마에서 말하는 명의(名義)의 숲을 보고 문득 두려워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항상 그것을 이해하고 분별하려는 마음이 있으니, 그들로 하여금 아비달마 법상의 바다 저 깊은 곳까지 즐거이 들어가게 하기 위해 이 논(論)을 짓는다.
불교[善逝宗]에서는 팔구의(八句義:aṣṭa padārtha)를 말하니, 첫째는 색(色)이며, 둘째는 수(受)이며, 셋째는 상(想), 넷째는 행(行), 다섯째는 식(識), 여섯째는 허공(虛空), 일곱째는 택멸(擇滅), 여덟째는 비택멸(非擇滅)이다. 이는 모든 의미를 다 포함한 것이다.
색(色:rūpa)에는 대종(大種:mahābhūta)과 소조색(所造色:bhautika-rūpa) 두 가지가 있다. 대종에는 다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계(風界) 등 네 가지가 있는데, 능히 자상(自相:svalakṣaṇa)과 공상(共相, sāmānyalaķsaṇa)을 지니고, 여러 소조색의 근거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계(界)라고 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대종은 그 순서상 견(堅:견고성)ㆍ습(濕:습윤성)ㆍ난(煖:온난성)ㆍ동(動:운동성)을 본질[自性:svabhāva]로 하고, 지(持:저항)ㆍ섭(攝:당김)ㆍ숙(熟:성숙)ㆍ장(長:동요)의 작용[業用:karman]을 갖고 있는데, 이는 모든 색 가운데 있는 가장 보편적인 것[大]이고, 자신의 결과를 산출하는 본질적 존재[種]이기 때문에 대종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무위인 허공은 대종에 포섭되지 않는다. 능히 자신의 결과를 내기 때문에 종의 의미이고, 소조색에 편재하기 때문에 대[大]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대종이 오로지 네 가지인 것은 의자의 다리처럼 다섯 개는 필요없고, 세 개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028_0703_a_02L소조색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즉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일부분, 그리고 무표색(無表色) 등이 그것인데, 대종 상(上)에 존재하기 때문에 소조(所造)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대종에 의지하여 생기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서 안은 안식(眼識)이 의지하는 것으로서 색을 보는 것을 작용으로 하고 정색(淨色)을 본체[體]로 한다. 그리고 이ㆍ비ㆍ설ㆍ신도 마땅히 이에 준하여 말하여야 할 것이다.
세존께서도 오현(惡顯)과 오형(惡形)을 말씀하셨듯이 색에는 현색(顯色:varṇa-rūpa)과 형색(形色:saṃsthāna-rūpa)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다시 현색에는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연(煙)ㆍ운(雲)ㆍ진(塵)ㆍ무(霧)ㆍ영(影)ㆍ광(光)ㆍ명(明)ㆍ암(暗)의 열두 가지가 있고, 형색에는 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ㆍ고(高)ㆍ하(下)ㆍ정(正)ㆍ부정(不正)의 여덟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무(霧)는 지ㆍ수의 기운이고, 광은 태양의 빛이며, 명은 달이나 별ㆍ화약ㆍ보주(寶珠)ㆍ번개 등 여러 가지 불빛을 말한다. 광과 명을 장애하여 생겨나지만 거기서 다른 여타의 색을 볼 수 있음을 영(影)이라 하며, 그 반대를 암이라고 한다. 방은 네모를 말하고, 원은 둥근 것을 말한다. 형태가 평평한 것이 정(正)이고, 평평하지 않은 것이 부정이다. 여타의 다른 색은 알기 쉬우므로 더 이상 해석하지 않는다. 이러한 스무 가지 색은 모두 안식과 그것에 의해 낳아진 의식에 의해 인식[了別]되는 대상이다.
028_0703_b_02L성(聲:śabda)에는 유집수(有執受) 대종과 무집수(無執受) 대종의 차별에 따라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유집수란 유정물 자체에 속한 것으로, 감각이 있다는 뜻이며, 무집수는 그 반대이다. 전자로부터 생겨난 것은 유집수 대종을 근거로 한 소리, 이를테면 말[語]이나 박수 소리 등이며, 후자로부터 생겨난 것은 무집수 대종에 근거한 바람 소리나 수풀 소리 등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유정명(有情名)1)과 비유정명(非有情名)의 차별에 따라 네 가지가 된다. 예컨대 전자, 즉 유집수대종에 근거한 소리 중 말소리[語聲]는 유정명이요, 나머지 소리는 비유정명이다. 그리고 후자, 즉 무집수 대종에 근거한 소리 중 귀신과 같은 변화된 소리는 유정명이요, 나머지 소리는 비유정명이다. 이 같은 소리는 다시 의미가 되고[可意] 의미가 되지 않는 것[不可意]에 따라 여덟 가지로 차별되니, 이 모두는 이식(耳識)과 그것에 의해 낳아진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이다.
향(香:gandha)에는 호향(好香)ㆍ오향(惡香)ㆍ평등향(平等香) 세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제근대종(諸根大種)을 이롭게 하는 것을 호향이라 하고, 만약 제근대종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면 오향, 이 두 가지에 반대되는 것을 평등향2)이라고 하는데, 이 모두는 비식(鼻識)과 그것에 의해 낳아진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이다. 미(味:rasa)에는 달고[甘] 시고[酢] 짜고[鹹] 맵고[辛] 쓰고[苦] 담백한[淡] 여섯 가지 차별이 있는데, 이 모두는 설식(舌識)과 그것에 의해 낳아진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이다.
촉(觸:sparśa)의 일부분3)에는 매끄러움[滑性]ㆍ깔깔함[澁性]ㆍ무거움[重性]ㆍ가벼움[輕性], 그리고 차가움[冷]ㆍ허기짐[飢]ㆍ목마름[渴] 등 일곱 가지가 있다. 유연함은 매끄러움으로 감촉이 좋다는 말이고, 깔깔함은 거칠고 강함을, 무거움은 저울질할 만함을, 가벼움은 그 반대, 차가움은 핍박된 바에 따라 따뜻하기를 바라는 원인, 허기짐은 먹기를 바라는 원인, 목마름은 마시기를 바라는 원인이다. 이는 원인에 따라 결과의 명칭을 설정한 것으로, 이를테면 모든 부처님의 출현을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네 가지 대종의 적취물 중에 수ㆍ화대가 강성하기 때문에 매끄러우며, 지ㆍ풍대가 강성하면 거칠고, 지ㆍ수대가 강성하면 무겁고, 화ㆍ풍대가 강성하면 가볍고, 수ㆍ풍대가 강성하면 차갑고, 풍대가 증대하면 허기짐이 있으며, 화대가 증대하면 목마름이 있다.4)
028_0703_c_02L무표색(無表色:avijñapti rūpa)이란 마음[心]과 마음의 작용[心所]에서 변화하여 차별적인 상태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표(表)라고 한다면, 그것과 동류이면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무표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크샤트리야를 비(非)바라문이라고 하듯이 서로 유사한 것에서 그 반대말을 설정한 것이다. 무표상이란 밖으로 드러난 마음의 대종차별에 따라 잠을 자거나 깨어 있거나, 혼란한 마음이거나 혼란하지 않은 마음에 있거나, 혹은 무상ㆍ멸진의 무심(無心)의 상태에 있을 때나 항상 선ㆍ불선의 색이 상속 수전(隨轉)하는 것으로 적집(積集)에 의한 것이 아니며, 이는 능히 비구 등을 설정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표의 상이다. 만약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비구 등의 행위 상속을 해명할 길이 없어 그 같은 존재 자체를 설정할 수 없으니, 세존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미래 더 나은 생의 근거가 되는 선행 보시 등의 복업이 있어, 그것은 항상 복을 증진시킨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 같은 무표에는 율의(律儀)ㆍ불율의(不律儀) 양쪽 어디에도 포섭되지 않은 것 등 모두 세 가지가 있다. 율의에는 별해탈(別解脫)ㆍ정려(靜慮)ㆍ무루(無漏)율의 등의 차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다. 별해탈율의에는 비구율의ㆍ비구니율의ㆍ근책(近策)율의ㆍ정학(正學)율의ㆍ근책녀율의ㆍ근사남(近事男)율의ㆍ근사녀율의ㆍ근주(近住)율의 등 여덟 가지가 있는데, 이는 오로지 욕계의 계(繫)이다. 정려율의는 말하자면 색계의 삼마지(三摩地)에서 상속 수전하는 색으로서, 이는 오직 색계의 계이다. 그리고 무루율의는 무루삼매의 수전색(隨轉色)으로, 이는 더 이상 번뇌의 존재와 관계하지 않는 것[不繫]이다.
불율의란, 말하자면 백장이나 짐승, 새, 물고기 등을 잡는 이나 도적ㆍ형리ㆍ박룡(縛龍)5)ㆍ자구(煮狗)ㆍ저강(罝弶)ㆍ괴회(魁膾) 등의 몸에 불선의 무표색이 상속 수전함을 말한다. 율의도 아니고 불율의도 아닌 무표란, 이를테면 비하라(毘訶羅:vihāra)ㆍ솔도파(窣堵波:stūpa) 승가라마(僧伽邏摩:saṁghārāma) 등을 조성하거나 제다(制多:탑묘)에 예배하고,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찬송하고, 소원하며, 아울러 타타(捶打)6) 등에 의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선ㆍ불선의 무표색이 상속 수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표색은 오로지 일찰나만 존재하지만 전찰나의 무표도, 후찰나의 무표도 모두 동일한 종류[總種類]이기 때문에 상속 수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28_0704_a_02L그렇다면 이 같은 모든 무표는 어떻게 획득되고 상실되는가? 율의 중 별해탈율의는 서원에 의해 획득되는 것으로, 앞의 일곱 가지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여덟 번째 근주율의는 하루 밤낮이 다할 때까지 유지된다. 또 앞의 일곱 가지는 학처(學處)를 포기할 때, 목숨을 다할 때, 선근이 끊어질 때, 성변환이 일어나 중성이 될 때 등 네 가지 조건에 의해 상실된다. 그리고 여덟 번째 율의는 앞의 네 가지 조건과 하루 밤낮이 다 지났을 때 상실된다. 정려율의는 색계선심에 속하기 때문에 색계선심을 얻음에 따라 획득되고 색계선심을 버림에 따라 상실된다. 무루율의의 획득과 상실 또한 이와 같다. 즉 무루선심을 얻음에 따라 획득되고 무루선심을 버림에 따라 상실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루심에 따라 획득되고 상실되기 때문이다.
불율의의 무표는 살생 등의 행위를 짓는 것과 그렇게 하려고 결의하는 것[受]에 의해 획득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율의를 받거나, 목숨이 다하거나, 양성이 되거나, 법이(法爾)로서 색계선심을 얻게 될 때 상실된다. 그리고 율의도 불율의도 아닌 무표는, 이를테면 큰 정심(淨心)과 같은 강렬한 번뇌로써 제다에 예찬하고 아울러 타타(捶打)하는 것 등에 의해, 또는 “만약 부처를 위해 만다라를 만들지 않으면 끝내 식사하지 않으리라”라고 서원 결의함에 따라 획득된다. 혹은 사사(寺舍)ㆍ방석ㆍ원림(園林)을 비구 등에게 희사함으로 획득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무표는 등기심(等起心)7)과 소작사(所作事)8)를 끊음으로써 상실된다. 이상의 무표와 앞에서 설명한 안(眼) 등 5근은 오로지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으로, 여기까지를 색구의(色句義)라고 한다.
028_0704_b_02L그런데 모든 법의 상(相)에는 자공상(自共相)ㆍ분공상(分共相)ㆍ변공상(遍共相) 등 세 가지가 있다. 자공상이란 색법 자체에 공통하는 성질로 변괴(變壞:rūpana) 혹은 변애(變碍)하기 때문에 색이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뇌괴(惱壞:bādhanā)9)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변괴하기 때문에 색취온이라 한다. 누가 능히 변괴시키는가? 손이 접촉하기 때문에 바로 변괴하는 것이다”라고 법왕(法王)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마치 빨리 달리기 [疾行:āśum ayati] 때문에 말(aśva)이라 하고, 바로 가기[正行:gacchati] 때문에 소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분공상이란 유위법에 공통된 성질인 무상성과 고성(苦性) 등이며, 변공상이란 모든 법에 공통하는 성질로서 무아성과 공성(空性)이다. 이와 같은 예에 따라 모든 법의 삼상(三相)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수(受:vedanā)란 영납(領納)의 뜻이다. 여기에는 고(苦)ㆍ락(樂)ㆍ불고불락(不苦不樂)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은 즉 촉(觸)에 따른 세 가지를 영납한다는 뜻이니,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양쪽 어느 것도 아닌 촉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심신 상태의 차별로 생기하는 것으로서, 대상에 대해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양쪽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데, 애(愛)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수라고 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촉에 의해 수가 있고, 수에 의해 애가 있다”고 하셨던 것이다.
여기에는 다시 식(識)의 차별에 따라 여섯 가지가 있다. 안촉(眼觸)에서 낳아진 안수(眼受)로부터 의촉(意觸)에서 낳아진 의수(意受)에 이르기까지가 그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식(五識)과 함께 생기하는 것을 신수(身受)라고 하며, 의식과 함께 생기하는 것을 심수(心受)라고 한다. 이것은 다시 소의감관의 차별에 따라 낙근(樂根)ㆍ고근(苦根)ㆍ희근(喜根)ㆍ우근(憂根)ㆍ사근(捨根)의 다섯 가지로 분류 설정되기도 한다. 여기서 낙근이란 모든 신열수(身悅受)와 제3 정려에서 생겨난 심열수(心悅受)를 말하는데, 여기서 열(悅)이란 바로 심신을 섭익 장양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신불열수를 고근이라 하는데, 여기서 불열이란 바로 신체를 뇌란 손상시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3 정려를 제외한 나머지 초, 제2선의 심열수를 희근이라 하고, 모든 심불열수를 우근이라 하며, 신심의 모든 비열ㆍ비불열수를 사근이라 한다. 이렇게 널리 분별함은 근(根) 등의 범주[處]에서와 같다.
028_0704_c_02L상(想:saṃjñā)이란 말하자면 대상의 상(相:nimitta)과 이름[名:nama]과 의미[義:artha]가 일시 결합하여, 이해되는 것을 말한다. 즉 청ㆍ황ㆍ장ㆍ단 등의 색이나 소라ㆍ북 등의 소리, 침향이나 사향과 같은 향기, 짜고 쓴 등의 맛, 딱딱하고 부드러운 등의 촉감, 남녀 등의 대상[法]에 대해 그 같은 상과 이름, 의미 등이 일시 결합하여 이해되는 것으로, 심(尋)과 사(伺)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상(想)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식(識)의 차별에 따라 여섯 가지가 있으니, 수의 경우와 같다. 또한 이것은 작고 크고 무량함의 차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는데, 작은 대상을 소연으로 삼은 것을 소상(小想)이라 하고, 수미산과 같은 커다란 존재를 소연으로 삼은 것을 대상(大想)이라 하며, 공무변처 등을 소연으로 삼은 것을 무량상이라고 한다. 혹은 삼계(三界)에 따라 이러한 세 가지 명칭을 설정하기도 한다.
행(行:samskāra)에는 상응행(相應行:citta samprayukta-)과 불상응행(不相應行:citta viprayukta-) 두 가지가 있다. 상응행이란, 사(思)ㆍ촉(觸)ㆍ욕(欲)ㆍ작의(作意)ㆍ승해(勝解)ㆍ염(念)ㆍ정(定)ㆍ혜(慧)ㆍ심(尋)ㆍ사(伺)ㆍ신(信)ㆍ정진(精進)ㆍ참(慙)ㆍ괴(愧)ㆍ불방일(不放逸)ㆍ경안(輕安)ㆍ불해(不害)ㆍ사(捨)ㆍ흔(欣)ㆍ염(厭)ㆍ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방일(放逸)ㆍ선근(善根)ㆍ불선근(不善根)ㆍ무기근(無記根)ㆍ결(結)ㆍ박(縛)ㆍ수면(隨眠)ㆍ수번뇌(隨煩惱)ㆍ전(纏)ㆍ누(漏)ㆍ폭류(暴流)ㆍ액(軛)ㆍ취(取)ㆍ신계(身繫)ㆍ개(蓋), 그리고 지(智)ㆍ인(忍) 등의 여러 심소법으로, 이것은 모두 마음과 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행상(行相)ㆍ시(時)ㆍ사(事) 등 다섯 가지 점에서 항상 평등하게 관계하기 때문에 상응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것을 불상응이라 하는데, 이를테면 득(得)ㆍ비득(非得)ㆍ무상정(無想定)ㆍ멸정(滅定)ㆍ무상사(無想事)ㆍ명근(命根)ㆍ중동분(衆同分)ㆍ생(生)ㆍ주(住)ㆍ노(老)ㆍ무상(無常)ㆍ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 등이다. 이와 같은 상응행과 불상응행을 모두 행온(行蘊)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대선(大仙)께서 말씀하기를, “행온의 취집은 마치 파초의 줄기와 같다”고 하셨던 것이다.
사(思:cetanā)라고 하는 것은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조작(造作)하게 하는 심리작용으로, 바로 의업(意業)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마음으로 하여금 운동하게 한다는 뜻이니, 여기에는 선ㆍ불선ㆍ무기의 차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다. 촉(觸:sparśa)이란 근(根)ㆍ경(境)ㆍ식(識) 세 가지가 화합하여 생겨난 심리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과 접촉하게 함으로써 능히 심소를 양생하고 활동하게 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 또한 낙수(樂受) 등의 차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다. 욕(欲:chanda)이란, 이를테면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은 일을 해야겠다’고 희구(希求)하는 심리작용으로, 정진을 수반한다.
028_0705_a_02L작의(作意:manasikāra)란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주의ㆍ경각(警覺)하게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즉 이것은 마음을 인기(引起)하여 대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또는 과거에 감수한 대상 등을 기억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학(學)ㆍ무학(無學)ㆍ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 세 가지가 있는데, 아라한과를 제외한 사향삼과(四向三果)의 일곱 가지 유학신(有學身) 중의 무루작의를 학이라 이름하고, 아라한의 소의신 중의 무루작의를 무학이라 이름하며, 모든 유루의 작의를 비학비무학이라고 한다. 승해(勝解:adhimukti)는 말하자면 대상에 대해 능히 인가 결정하는 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이다.
염(念:smṛti)이란, 말하자면 마음으로 하여금 과거 경험했거나 현재 경험하고 있거나 미래 경험할 모든 사실을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심리작용의 뜻이다. 정(定:samādhi)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에 전념[專注]하게 하는 심리작용으로, 예컨대 원숭이와 같은 마음을 제어하여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서 전변 상속한다는 뜻이다. 비바사(毘婆沙) 논사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한다. “마치 뱀이 죽통에 들어가면 구불구불하지 않고 바로 펴지듯이 마음이 만약 정에 들면 산란되지 않고 바로 곧게 전이한다”라고.
혜(慧:prajñā)란 이를테면 법에 대해 능히 간택ㆍ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것은 모든 법의 포섭ㆍ상응ㆍ성취ㆍ원인ㆍ조건[緣]ㆍ결과, 그리고 자상과 공상의 여덟 가지 사실 가운데 그것이 관계하는 바에 따라 관찰한다는 뜻이다. 심(尋:vitarka)은 말하자면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거칠게 추구하게 하는 심리작용으로, 분별(分別)이라고도 한다. 즉 이것은 사유상(思惟想)의 바람과 관계된 거친 작용으로 전전하며, 전오식을 일으키는 근거가 된다. 사(伺:vicāra)는 말하자면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세밀하게 추구하게 하는 심리작용으로, 이는 제6 의식을 대상에 수순시켜 전전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신(信:śraddhā)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징정(澄淨)하게 하는 작용으로, 이를테면 삼보(三寶)라든가 인과상속, 유성(有性) 등을 즉각 인가하는 것이므로 신이라 한다. 이것은 능히 마음의 더러운 때를 제거하는 것으로, 마치 물을 청정하게 하는 구슬을 연못에 놓아두면 더러운 물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이 같은 신이라고 하는 구슬이 마음의 연못 안에 있으면 마음의 여러 더러움이 모두 제거되어, ‘부처는 보리(菩提)를 증득하였고, 법(法)은 바로 그 같은 깨달음의 선설(善說)이며, 승(僧)은 그것에 이르는 묘행(妙行)을 갖추었다’고 믿게 되며, 또한 모든 외도가 미혹한 연기법성(緣起法性)에 대해 믿게 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본질과 작용이다.
028_0705_b_02L정진(精進:vīrya)이란 말하자면 선법을 낳거나 불선법을 소멸하는 데 있어 모질게 노력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생사의 늪에 빠진 자가 능히 마음을 독려하여 속히 그곳으로부터 나오게 한다는 뜻이다. 참(慙:hrī)이란 올바른 이치의 선법(善法)에 수순하여 탁월하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것으로, 애등류(愛等流)와 반대되는 마음의 자재성(自在性)이다. 이 같은 세력에 의해 모든 공덕과 공덕 있는 자를 공경하게 되는 것이다.
괴(愧:apatrāpya)는 말하자면 공덕을 닦는 것을 으뜸으로 하는 것이다. 즉 치(癡) 등류에 반대되는 것으로, 열등한 악법을 꾸짖어 나무라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 같은 세력에 의해 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불방일(不放逸:apramāda)이란 모든 선법을 닦는 것으로, 방일을 방해하여 마음을 수호하는 성질[心守護性]의 심리작용을 말한다. 경안(輕安:prasrabdhi)은 마음의 경쾌 민활한 상태[心堪任性]로, 혼침을 방해하여 선법을 따르게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불해(不害:ahiṃsā)란 선을 견고히 하려는 심리작용[心堅善性]으로, 이 같은 세력에 따라 다른 이를 괴롭히지 않고, 나아가 다른 이의 즐거움을 해코지하지 않는 것이다.
사(捨:upekṣā)란 마음의 평등함[心平等性]을 말한다. 그것은 곧 비리(非理)를 배반함도, 정리(正理)를 향함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세력에 따라 마음이 정리나 비리에 대해 향하지도 않고 배반하지도 않으며 평등하게 머물게 되니, 마치 균형이 잡힌 저울의 줄과도 같다. 흔(欣:prāmodya)이란 기꺼이 「환멸품(還滅品)」에서 공덕을 보고 난 다음 마음으로 흠모하여 선을 닦게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마음에 이것이 있기 때문에 열반을 기쁘게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상응하는 것을 흔작의(欣作意)라고 한다.
염(厭:nirveda)이란 슬프게 「유전품(流轉品)」에서 그 과실을 보고 난 다음, 마음이 염리(厭離)하여 그러한 더러움에서 떠나고자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즉 마음에 이것이 있기 때문에 생사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상응하는 것을 염작의(厭作意)라고 한다. 불신(不信)은 마음이 징정하지 않은 것으로서, 앞서 설명한 신(信)과 반대되는 심리작용이다. 해태(懈怠)란 마음이 모질게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서, 앞서 설명한 정진과 반대되는 심리작용이다. 방일(放逸)은 선법을 닦지 않는 것으로서, 앞서 설명한 불방일성과 반대된다. 즉 이것은 능히 마음을 수호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불신 등 세 가지를 수면(隨眠)이나 전(纏)ㆍ구(垢)에 설정하지 않은 것은 그 과실이 가벼워 쉽게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028_0705_c_02L선근(善根)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가 탐법(貪法)에 반대되는 무탐(無貪:alobha)이고, 두 번째가 진법(瞋法)에 반대되는 무진(無瞋:adveṣa)이며, 세 번째가 치법(癡法)에 반대되는 무치(無癡:amoha)인데, 이것들은 앞서 설명한 혜(prajñā)를 본질로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심소법은 선 그 자체이며, 능히 다른 선법을 낳는 뿌리가 되기 때문에 선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근은 능히 참으로 사랑할 만한 존재와 해탈의 싹을 인기(引起)하기 때문에 즐거움[安隱:sukha]의 뜻이 바로 선(善:kuśala)의 뜻이다. 혹은 이미 학습하여 능숙[巧便]하게 되었다는 뜻이 바로 선의 뜻이다. 왜냐하면 마치 화가가 그린 그림이 아름다우면 세간에서는 그것을 ‘잘 그렸다’고 하듯이, 이 같은 능숙함에 따라 능히 좋은 그림을 변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선근(不善根)에는 앞에서 설명한 세 가지 선근에 반대되는 탐ㆍ진ㆍ치 세 가지가 있다. 여기서 탐은 욕계 5부(部)의 탐이고, 진은 5부의 진, 치는 유신견(有身見)과 변집견(邊執見)에 상응하는 무명을 제외한 서른네 가지 무명을 말한다. 이 같은 세 가지 심소법은 불선 그 자체이며, 능히 다른 불선을 낳는 근본이 되기 때문에 불선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선근은 바람직 하지 못한 여러 존재의 싹을 인기하기 때문에, 이것의 뜻은 즐겁지 않다[不安隱]는 뜻이다. 혹은 아직 학습하지 않아 능숙하지 않다는 뜻이 바로 불선의 뜻이다. 왜냐하면 화가가 그린 그림이 아름답지 않으면 세간에서는 그것을 ‘잘 그리지 않았다[不善]’고 하듯이, 이에 따라 능히 나쁜 그림을 판별하기 때문이다.
028_0706_a_02L무기근(無記根)에는 애(愛)ㆍ견(見)ㆍ만(慢)ㆍ무명(無明) 등의 네 가지가 있다. 여기서 애는 색계ㆍ무색계 각각의 5부의 탐을 말하며, 견은 색계ㆍ무색계 각각의 12견과 욕계 유신견과 변집견을 말하며, 만은 색계ㆍ무색계 각각의 5부의 만을, 무명은 색계ㆍ무색계의 모든 무명과 욕계의 유신견과 변집견에 상응하는 무명을 말한다. 이 네 가지는 그 자체 무기근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즉 정려(靜慮)를 닦는 자에게는 애상(愛上) 정려자ㆍ견상(見上) 정려자ㆍ만상(慢上) 정려자 등 세 가지 차별이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모두 무명의 힘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비바사논사들은 무기근에 오로지 무기애(無記愛)ㆍ무명ㆍ혜 세 가지 만을 설정하는데, 견고하지 않은 만의 특징인 고거(高擧)는 근본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의 존재는 선하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으므로 무기라고 한다. 또는 이것은 능히 이숙과를 초래할 수 없어 좋아할 만한 결과도, 그렇지 못한 결과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무기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무기 자체는 또 다른 무기염법(無記染法)이나 여러 무기법을 능히 산출하기 때문에 무기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結:saṃyojana)에는 아홉 가지가 있는데, 애결(愛結)ㆍ에결(恚結)ㆍ만결(慢結)ㆍ무명결(無明結)ㆍ견결(見結)ㆍ취결(取結)ㆍ의결(疑結)ㆍ질결(嫉結)ㆍ간결(慳結)을 말한다. 애결(anunaya-)이란 삼계의 탐(貪)을 말하는데, 이것은 마치 아교나 옻이 달라붙는 것처럼 염착(染着)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애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가 바로 결박[結]이기 때문에 애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에결(pratigha-)이란 5부의 진(瞋)을 말하는데, 유정 등을 해치어 괴롭히기[損苦]를 즐거이 하여, 마치 쓰디 쓴 씨앗처럼 불요익(不饒益)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에라고 한다. 그리고 에가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에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결(māna-)이란 삼계의 만(慢)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모든 덕을 차별하는 마음의 오만한 상(相)을 만이라고 한다. 즉 오만 방일한 자가 타인을 능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다시 만(慢)ㆍ과만(過慢)ㆍ만과만(慢過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비만(卑慢)ㆍ사만(邪慢) 등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 만이란 가문ㆍ재산이나 지위ㆍ용모ㆍ힘ㆍ행동거지[持戒]ㆍ지식ㆍ기예 등이 자신보다 열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高擧] 심리작용을 말한다. 둘째, 과만이란 자신과 동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하거나, 혹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셋째, 만과만이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028_0706_b_02L넷째, 아만이란 오취온이 나[我]다, 나의 것[我所]이다라고 집착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다섯 번째, 증상만이란 아직 예류과(預流果) 등의 뛰어난 덕을 증득하지 못하였으면서도 이미 증득했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여섯 번째, 비만이란 가문 등이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일곱 번째 사만이란 실제로는 덕이 없으면서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상과 같은 일곱 가지의 만을 만결이라고 한다.
무명결(avidyā-)이란 삼계의 무지로서, 마치 장님처럼 이해하지 못함을 특징으로 한다. 즉 명(明:vidyā)에 반대되기 때문에 무명이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반대말은, 이를테면 친구(mitra)가 아닌 이를 원수진 이[怨家:amitra]라 하고, 진실(satya)이 아닌 것을 거짓말[虛誑語:asatya]이라고 하듯이 상반되는 의미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그리고 무명이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무명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견결(dṛṣṭi-)에는 유신견(有身見)ㆍ변집견(邊執見)ㆍ사견(邪見) 세 가지의 견이 있다. 여기서 유신견(satkāya-)이란 오취온은 나[我]나, 나의 것[我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나나 나의 것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염오혜(染汚慧)를 말한다. 즉 신(身:kāya)은 바로 취(聚)의 뜻으로, 그 같은 오온의 취인 신을 실재하는 것(sat)이라고 하기 때문에 유신(有身)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취온 상에서 일으키는 견해이기 때문에 유신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오취온은 단멸[斷]하는 것도, 항상[常]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단멸ㆍ항상의 두 가지 견해에 집착하는 염오혜를 변집견(antaragraha-)이라고 한다. 바로 두 가지 양 극단[邊]에 집착[執]한 것이기 때문에 그같이 말한 것이다. 나아가 만약 단멸론의 입장에서 업도 없고, 업의 과보도 없으며, 해탈도 없고 해탈을 획득하는 실천도도 없다고 결정코 주장하여, 그 같은 존재 자체의 실재성을 부정해 버리는 염오혜를 사견(mithya-)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의 견해를 견결이라고 한다.
028_0706_c_02L취결(parāmars´a-)에는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 두 가지가 있다. 앞서 설명한 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 세 가지와 오취온은 실제로는 뛰어난 존재가 아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것으로 취하는 염오혜를 견취(dṛṣṭi parāmarśa)라고 한다. 취(取)란 뭔가를 추구하고 강하게 집착한다[堅執]는 뜻이다. 그리고 계금취에 있어 계(戒:śila)란 여러 가지 파계의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규범을 말하며[非道計道],10) 금(禁:vrata)이란 새ㆍ닭ㆍ사슴ㆍ개와 같은 생활형태를 취하거나 나체로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단식하고, 탄더미 속에서 잠을 자는 등의 생활형태를 말한다.
혹은 복을 낳고 죄를 소멸한다고 망령되이 주장하여 강이나 연못에서 자주 목욕하기도 하고, 혹은 나무뿌리나 과실ㆍ풀이나 채소ㆍ약물을 먹고 살아가며, 혹은 재를 온몸에 칠하고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등의 일을 모두 금이라고 한다.11) 그리고 계와 금 두 가지는 청정한 수행의 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청정도라고 잘못 견취하는 염오혜를 계금취라고 한다. 여러 바라문 중에 지식 있는 자는 대개 이러한 수행법을 청정도라고 주장하니, 그들은 결국 청정함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취를 취결이라고 한다.
의결(vicikitsā)이란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사성제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의혹을 갖게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갈림길에 이르러, 풀이 무성하여 갈길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것처럼 고제에 대해 마음에 의혹이 생겨 ‘이것이 참일까, 거짓일까’, 나아가 집ㆍ멸ㆍ도제에 대해 ‘이것이 참일까, 거짓일까?’하고 의심하는 것으로, 의혹이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의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질결(īrṣya)이란 타인의 뛰어난 일에 대해 마음으로 참지 못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여기서 ‘참지 못한다[不忍]’고 함은 타인이 획득한 공경ㆍ공양ㆍ재산ㆍ지위ㆍ지식 내지 그 밖의 뛰어난 법에 대해 마음에 투기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즉 질투가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질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간결(mātsarya)이란 자신이 획득한 법이나 재물에 대해 마음으로 인색하게 아끼는 심리작용으로, 자신의 소유물이 타인에게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인색함이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간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結)은 바로 속박[縛]의 뜻으로, 이는 바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즉 “눈[眼]이 색을 결박[結]하는 것이 아니며, 색이 눈을 결박하는 것은 아니다. 즉 그것을 결박하는 것은 바로 욕탐으로, 여기서 욕탐을 바로 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컨대 검은 소와 흰 소가 하나의 멍에에 묶여 있을 경우 검은 소가 흰 소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며, 흰 소가 검은 소에게 묶여 있는 것도 아니다.12)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028_0707_a_02L이렇듯 결은 바로 속박(bandhana)의 뜻이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 결(結)이 바로 속박인 것이다. 그런데 계경에서는 다시 세 가지 속박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모든 탐을 말하는 탐박(貪縛)으로, 그 특징은 애결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둘째는 모든 진을 말하는 진박(瞋縛)으로, 그 특징은 에결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셋째는 모든 치를 말하는 치박(癡縛)으로, 그 특징은 무명결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수면(隨眠:anuśaya)에는 욕탐(欲貪)수면ㆍ진(瞋)수면ㆍ유탐(有貪)수면ㆍ만(慢)수면ㆍ무명(無明)수면ㆍ견(見)수면ㆍ의(疑)수면 등 일곱 가지가 있다. 이 일곱 가지의 개별적 특징은 이미 결을 논하면서 설명한 바 있지만, 마땅히 계(界)13)ㆍ행상(行相)14) 그리고 부(部)15)의 차별에 의거하여 이같이 일곱 가지 수면으로 분별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욕망에 대한 탐을 욕탐이라 하는데, 이 같은 탐이 바로 수면이기 때문에 욕탐수면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욕계 5부로서 다섯 가지이니, 견고소단 내지 수소단이다. 진수면 역시 오로지 욕계 5부의 수면으로, 다섯 가지이다.
유탐수면은 색ㆍ무색계의 각기 5부로서, 열 가지이다. 이것은 욕계의 탐, 즉 욕탐과는 달리 내적으로 향하는 작용[內門轉]이기 때문에, 또한 색계의 네 가지 정려나 무색계의 네 가지 무색정 상에서 실제로는 해탈하지 않았음에도 해탈했다고 하는 생각을 방지하기 위해 말한 것으로, 곧 내적으로 향하는 색ㆍ무색 2계에서의 탐을 유탐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수면은 3계 각 5부에 공통하는 수면으로, 열다섯 가지가 된다. 무명수면 역시 3계 각 5부에 공통하는 열다섯 가지가 있다. 견수면은 3계에 공통되어 각기 열두 가지, 도합 서른여섯 가지가 된다. 즉 욕계 견고소단에는 다섯 가지 견16)이 있으며, 견집ㆍ멸소단에는 오로지 사견과 견취 두 가지 견이, 견도소단에는 오로지 사견ㆍ견취ㆍ계금취 세 가지가 있어 모두 열두 가지이며, 색ㆍ무색 2계도 역시 그러하여 총 서른여섯 가지가 되는 것이다.
028_0707_b_02L의수면은 3계 각각의 견고ㆍ집ㆍ멸ㆍ도소단 4부에 공통하여, 열두 가지가 된다. 여기서 욕탐수면과 진수면은 오로지 그것이 끊어지는 유형, 즉 부(部)에만 차별이 있을 뿐 그것이 속한 세계[界]나 행상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유탐ㆍ의ㆍ만ㆍ무명의 수면은 계와 부의 차별은 있어도 행상의 차별은 없다. 그리고 견수면에는 계ㆍ행상ㆍ부의 차별이 모두 있다. 여기서 행상의 차별이란, 말하자면 아(我)와 아소(我所)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유신견이라 하며, 단멸과 항상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변집견, 절대 공무(空無)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사견, 앞의 세 가지 견해가 실제로는 저열한 것임에도 뛰어나다고 하는 승(勝)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견취, 그릇된 수행도를 청정하다고 하는 정(淨)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계금취라고 하는 것이다.
수면은 그것이 현현 생기할 때 알기 어렵기 때문에 바로 ‘미세(微細)하다’는 뜻이다. 혹은 ‘따라 속박한다[隨縛]’는 뜻이 바로 수면의 의미이다. 즉 마치 하늘을 나는 새[空行]의 그림자가 물 속에 비춰[水行] 따르는 것처럼 심신상속(心身相續)에 따라 간단없이 전이 계박하기 때문이다. 혹은 참기름은 참깨에 있으며 더러움은 막일꾼에게 있듯이 심신상속과 ‘함께 한다[隨逐]’는 뜻이 곧 수면의 뜻이다. 혹은 ‘따라 증장[隨增]한다’는 뜻이 바로 수면의 뜻이다. 이를테면 수면은 오취온 상에서 소연과 상응에 근거하여 점차 따라 증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따라 증장한다고 함은 소연과 상응이라고 하는 매개를 따라 증장한다고 하는 의미이다.
나아가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수면은 그것이 속하는 세계와 행상, 그것이 끊어지는 유형, 즉 부(部)의 차별에 따라 아흔여덟 가지 수면이 된다. 이를테면 욕계 견고소단에는 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ㆍ견취ㆍ계금취ㆍ의ㆍ탐ㆍ진ㆍ만ㆍ무명 등 열 가지 수면이 있으며, 견집소단에는 앞의 열 가지 수면 중 유신견ㆍ변집견ㆍ계금취를 제외한 일곱 가지 수면이, 견멸소단에도 역시 일곱 가지 수면이, 견도소단에는 앞의 일곱 가지 수면에 계금취를 더한 여덟 가지 수면이 있다. 그리고 수소단에는 탐ㆍ진ㆍ만ㆍ무명 등 네 가지 수면이 있다. 이같이 욕계에는 서른여섯 가지 수면이 있다. 또한 색계에는 욕계 서른여섯 가지 수면 중 5부의 진을 제외한 서른한 가지 수면이 있으며, 무색계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수면에는 총 아흔여덟 가지 수면이 있는 것이다.
028_0707_c_02L이 같은 3계 98수면을 다시 정리하면 여든여덟 가지는 견소단이며, 10가지는 수소단이다. 또한 각각의 계 중에서 견고ㆍ집소단의 모든 견ㆍ의와 그것들과 상응하는 불공무명(不共無明) 등 서른세 가지는 변행(遍行)이며, 나머지는 모두 비변행(非遍行)이다. 또한 각각의 계중에 견멸ㆍ도소단의 사견ㆍ의 및 그것들과 상응하는 불공무명등 열여덟 가지는 멸(滅)과 도(道)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무루연(無漏緣)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유루연이다. 여기서 유루연이란 소연과 상응에 의해 수증(隨增)하는 것을 말하며, 무루연이란 다만 자신의 취(聚) 상에서 상응함으로써 수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각각의 계 중에 견멸소단의 사견ㆍ의 및 그것에 상응하는 불공무명 등 아홉 가지는 멸제를 소연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무위연이며, 나머지는 모두 유위연이다.
열 가지 수면이 생겨나는 순서는 먼저 무명으로 인하여 사제를 알지 못하니, 즉 고제를 탐구하려 하지 않으며, 나아가 도제를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 사제를 알지 못함에 따라 의혹이 생겨난다. 즉 사제를 알지 못하는 이는 거짓되고 올바른 두 가지 사실을 듣고 문득 의혹을 품어, 괴로움을 괴로움이 아니라 하고, 나아가 도를 도가 아니라고 한다. 이 같은 의혹에 따라 사견이 생기니, 이를테면 나쁜 친구를 만나 거짓된 것을 듣고 생각함으로써 ‘보시도 없고 애락(愛樂)도 없으며, 제사도 없다.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는 그릇된 판단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견에 따라 유신견이 생겨난다. 즉 오취온 중의 고(苦)의 이치를 부정하고, 아 혹은 아소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유신견에 따라 아의 영속 내지 단멸의 극단에 집착하는 변집견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계금취가 생겨나니, 말하자면 이러한 변집을 능히 청정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다시 계금취에 따라 견취가 생겨난다. 곧 그들은 그같이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곧 계금취를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다시 이러한 견취에 의해 탐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같은 자신의 견해를 깊이 애탐하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탐에서 만(慢)이 생겨난다. 즉 그들은 그 같은 자신의 견해상에서 자기를 깊이 애착하고 믿음으로 오만함을 낳아 타인을 능멸하기 때문이다.
028_0708_a_02L이러한 만에 따라 진(瞋)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자신의 견해를 너무나 믿고 의지한 나머지 다른 이의 견해를 능히 참지 못하고 반드시 미워하고 혐오하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의 견해에 대해서도 취사(取捨)하는 과정에서 취하는 것에 대해 버리는 것을 증오하고 혐오하기 때문이다. 욕계 견고소단의 열 가지 수면이 일어나는 순서는 이상과 같다.
나아가 모든 번뇌는 세 가지 인연에 따라 일어나는데, 첫째 아직 수면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비리작의(非理作意)17)가 있기 때문이며, 셋째 대상[境界]이 현전하기 때문이다. 즉 번뇌는 이 같은 원인과 가행(加行), 그리고 대상의 힘에 의해 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설이 번뇌의 모든 조건을 완전히 갖추어 설명한 것이기는 하나, 어떤 경우에는 오로지 대상의 힘에 의해서만 번뇌가 일어나는 일도 있다. 이 경우도 역시 심신상속을 두루 뇌란시키기 때문에 번뇌라고 이름하니, 이것이 바로 수면이다.
수번뇌(隨煩惱:upakleśa)란 무엇인가. 모든 번뇌를 역시 수번뇌라고 한다. 말하자면 모든 행온(行蘊)에 포섭되는 그 밖의 나머지 염오한 의식작용과 여러 번뇌도 동일한 온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떤 것이 있는가 하면, 광(誑)ㆍ교(憍)ㆍ해(害)ㆍ뇌(惱)ㆍ한(恨)ㆍ첨(諂) 등 수없이 많이 있으니, 계경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광이란 말하자면 타인을 유혹하는 것이다. 교는 이를테면 자신이 소유한 미모나 힘ㆍ가문ㆍ도덕규범ㆍ학식ㆍ재능 등을 그릇되이 집착하여, 마음이 오만 방자하게 되어 타인을 돌아보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 해란 타인을 능히 핍박하고, 이에 따라 때리고, 매도하는 등의 일을 말한다. 뇌란 마땅히 비난받을 일을 진실하다고 완강히 고집하며, 이에 따라 다른 이의 진실된 훈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이란 노여움의 근거가 될 만한 일을 자주 생각하여, 원망하며 버리지 않음을 말한다. 첨18)이란 마음이 삐뜨름한 것을 말한다.
028_0708_b_02L이와 같은 여섯 가지 의식작용은 번뇌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더럽고 오탁한 형태의 거친 번뇌이기 때문에 번뇌구(煩惱垢)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이 같은 여섯 가지 번뇌구 중에서 광ㆍ교 두 가지 구는 탐의 일종이기 때문에 탐등류(貪等流)이며, 해ㆍ한 두 가지 구는 진의 일종이기 때문에 진등류, 뇌구(惱垢)는 자신의 현재 견해가 뛰어난 것이라고 집착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뇌란시키기 때문에 견취등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첨구(諂垢)는 여러 가지 견해가 증가할 경우 아첨 곡해가 많기 때문에 바로 모든 견(見)의 등류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계경에서 이미 ‘첨곡(諂曲)은 여러 악견을 말한다’고 설명한 바이다. 이상과 같은 번뇌구와 다음에 설명할 전(纏), 그리고 여타의 염오한 의식작용은 행온에 포섭되는데, 이 같은 여러 심소법은 번뇌에 따라 생겨나기 때문에 수번뇌라고 하는 것이다.
전(纏:paryavasthāna)에는 혼침(沈)ㆍ수면(睡眠)ㆍ도거(掉擧)ㆍ악작(惡作)ㆍ질(嫉)ㆍ간(慳)ㆍ무참(無慙)ㆍ무괴(無愧)ㆍ분(忿)ㆍ부(覆) 등 열 가지가 있다. 여기서 혼침(sthyāna)이란 심신상속의 상태가 민활하지 않음을 말하는데, 둔하고 무겁다는 뜻이다. 수면(middha)이란 심신상속의 상태를 능히 자유로이 간직하지 못하고 마음을 어둡게 하여 대상에 대해 작용하지 못하는 의식작용을 말하는데, 이것 역시 염오한 것이기 때문에 전이라 이름할 수 있다. 도거(auddhatya)란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여 경거망동하게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
악작(kaukṛtya)이란 과거에 지었던 악한 행위 자체를 말한다. 즉 그같이 악하게 지어진 과거 행위를 근거로 하여 생겨난 어떤 개별적인 의식작용을 악작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지나간 일에 잘못을 뉘우친다[追悔]는 뜻이다. 이는 결과 그 자체 상에다 원인의 명칭을 일시 설정한 것이니, 이를테면 공간에 근거하여 허공(원인)이라 이름하며, 부정상(不淨相)19)에 근거하여 부정관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세간 일반에서도 역시 장소(결과)에 근거하여 여기서 장소에 ‘근거한다’고 함은, 예컨대 시골이 모두 올라왔다고 하면 모든 시골 사람이 올라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악작 또한 오로지 염오한 것이기 때문에 전이란 명칭 아래 설정하는 것이다. 질(īrṣyā)과 간(mātsarya)에 대해서는 이미 결(結)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바 있다.
다음 무참(āhrikya)이란 모든 공덕과 공덕있는 자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공경하지 않게 하는 의식작용으로 공경에 반대되는 법이다. 무괴(anapatrāpya)란 모든 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죄란 능히 악취를 초래하는 것으로, 착한 이들이 꾸짖는 바를 말한다. 그리고 분(krodha)이란 유정이나 비유정에 대해 마음으로 분개를 촉발하는 진(瞋)과 해(害)를 제외한 의식작용을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mrakṣa)는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의식작용이다. 이상 열 가지 의식작용은 심신의 상속을 얽어 묶기[纏縛] 때문에 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혼침ㆍ수면ㆍ무괴는 바로 무명등류이며, 악작은 의(疑)등류, 무참ㆍ간ㆍ도거는 탐등류, 질과 분은 진등류, 부는 바로 탐과 무명의 등류이다.
028_0708_c_02L모든 심ㆍ심소법의 행상(行相)은 너무나 미세하여 그 하나하나의 상속을 분별하기도 어렵거늘 하물며 한 찰나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 있어서랴. 이지가 뛰어난 지혜로운 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라 그 같은 결과의 차별을 관찰하여 그 본질의 차이를 알고, 모든 학자를 위해 전도됨이 없이 널리 설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혜가 열등한 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도됨이 없이 해석한 아비달마의 여러 스승을 아직 직접 모시지 못하였으므로 심소에 대해 미혹하여 비방하고, 혹은 다만 세 가지 만을 설하고, 혹은 완전히 실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누(漏:āsrava)에는 욕루ㆍ유루ㆍ무명루 세 가지가 있다. 여기서 욕루란 무명을 제외한 욕계의 번뇌와 전(纏)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서른한 가지 수면과 열 가지 전 등 마흔한 가지가 있다. 유루란 무명을 제외한 색계ㆍ무색계의 번뇌와 전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상 2계의 각 스물여섯 가지 수면과 혼침ㆍ도거 등 쉬흔네 가지가 있다. 즉 이것들은 다 같이 무기이고, 내적으로 향하는 작용[內門轉]이며, 마음이 삼매에 든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색ㆍ무색 2계의 번뇌를 합하여 유루라고 하는 하나의 이름으로 설정한 것이다.
무명루란 삼계의 열다섯 가지 무명을 말한다. 즉 무명은 바로 모든 존재의 근본이므로 무명루를 별도로 설정한 것이다. 이 같은 번뇌는 유정을 붙들어 삼계에 오래 머물게 하여 해탈로 나아가는 것을 장애하므로 누라고 한다. 혹은 유정을 유정천(有頂天)으로부터 무간지옥에 이르기까지 유전하게 하므로 누라고 한다. 혹은 그들의 상속은 육창문(六瘡門)을 통해 허물을 끊없이 누설하기 때문에 누라고 하는 것이다.
028_0709_a_02L폭류(瀑流:ogha)에는 욕(欲)ㆍ유(有)ㆍ견(見)ㆍ무명(無明) 등 네 가지 폭류가 있다. 여기서 욕폭류는 견을 제외한 욕루 스물아홉 가지를 말하며, 유폭류는 견을 제외한 유루 서른 가지, 견폭류는 삼계 서른여섯 가지의 여러 견, 그리고 이상의 것과 상응하는 삼계의 불공무명 열다섯 가지를 무명폭류라고 한다. 이는 곧 마치 물이 세차게 흘러가듯이 모든 유정의 뛰어난 것[善]을 씻어 앗아가기 때문에 폭류라고 하는 것이다. 액(軛:yoga)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폭류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즉 유정을 화합시켜 여러 취(趣)ㆍ여러 생(生)ㆍ여러 지(地)에서 괴로움을 받게 되므로 액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는 유정을 취(趣) 등 여러 상태와 화합시켜, 여러 가지 가볍고 무거운 괴로움을 받게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