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8_0702_c_01L입아비달마론(入阿毘達磨論) 상권
028_0702_c_01L入阿毘達磨論卷上


색건타라(塞建陀羅) 지음
현장(玄奘) 한역
028_0702_c_02L塞建陁羅阿羅漢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모든 지자(智者)이신
불일(佛日), 무구륜(無垢輪)의
언광(言光)으로 인(人)ㆍ천(天)
악취(惡趣)의 무지한 마음을 깨트리신 이에게 받들어 예배합니다.
028_0702_c_04L敬禮一切智
佛日無垢輪
言光破人天
惡趣本心闇

대법(對法:아비달마)의 올바른 이치로써
법상(法相)의 우매함을 제거한,
그 같은 모든 지자의 언장(言臧)에
머리 조아려 예배합니다.
028_0702_c_06L諸以對法理
拔除法相愚
我頂禮如斯
一切智言藏

지혜가 열등한 이의 무지의 망설에 의해
은폐된 모니(牟尼)의 말씀이
등불에 의해 밝혀졌으니,
그 같은 등불(아비달마 논사를 말함)에게 머리 조아립니다.
028_0702_c_07L劣慧妄說闇
覆蔽牟尼言
照了由明燈
稽首然燈者

총명한 지혜를 가진 자는 모니의 모든 가르침의 말과 뜻을 수지하더라도 어느 때 우연한 일로 성도(聖道)를 얻지 못하고 물러남이 있으며, 지혜가 열등한 자는 아비달마에서 말하는 명의(名義)의 숲을 보고 문득 두려워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항상 그것을 이해하고 분별하려는 마음이 있으니, 그들로 하여금 아비달마 법상의 바다 저 깊은 곳까지 즐거이 들어가게 하기 위해 이 논(論)을 짓는다.
028_0702_c_08L有聰慧者能具受持諸牟尼尊教之文義由拘事業有未得退有劣慧者聞對法中名義稠林便生怖畏然俱恒有求解了心欲令彼於阿毘達磨法相海中深洄復處欣樂易入故作斯論
불교[善逝宗]에서는 팔구의(八句義:aṣṭa padārtha)를 말하니, 첫째는 색(色)이며, 둘째는 수(受)이며, 셋째는 상(想), 넷째는 행(行), 다섯째는 식(識), 여섯째는 허공(虛空), 일곱째는 택멸(擇滅), 여덟째는 비택멸(非擇滅)이다. 이는 모든 의미를 다 포함한 것이다.
028_0702_c_14L謂善逝宗有八句義一ㆍ色二ㆍ受三ㆍ想四ㆍ行五 識六ㆍ虛空七ㆍ擇滅八ㆍ非擇滅此摠攝一切義
색(色:rūpa)에는 대종(大種:mahābhūta)과 소조색(所造色:bhautika-rūpa) 두 가지가 있다. 대종에는 다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계(風界) 등 네 가지가 있는데, 능히 자상(自相:svalakṣaṇa)과 공상(共相, sāmānyalaķsaṇa)을 지니고, 여러 소조색의 근거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계(界)라고 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대종은 그 순서상 견(堅:견고성)ㆍ습(濕:습윤성)ㆍ난(煖:온난성)ㆍ동(動:운동성)을 본질[自性:svabhāva]로 하고, 지(持:저항)ㆍ섭(攝:당김)ㆍ숙(熟:성숙)ㆍ장(長:동요)의 작용[業用:karman]을 갖고 있는데, 이는 모든 색 가운데 있는 가장 보편적인 것[大]이고, 자신의 결과를 산출하는 본질적 존재[種]이기 때문에 대종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무위인 허공은 대종에 포섭되지 않는다. 능히 자신의 결과를 내기 때문에 종의 의미이고, 소조색에 편재하기 때문에 대[大]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대종이 오로지 네 가지인 것은 의자의 다리처럼 다섯 개는 필요없고, 세 개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028_0702_c_17L色有二種謂大種及所造色大種有四謂地ㆍ水ㆍ火ㆍ風界能持自共相或諸所造色故名爲界此四大種如其次第以堅ㆍ濕ㆍ煖ㆍ動爲自性以持ㆍ攝ㆍ熟ㆍ長爲業大而是種故名大由此虛空非大種攝能生自果是種義故遍所造色故名爲大如是大種唯有四者更無用故ㆍ無堪能故牀座足
028_0703_a_02L소조색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즉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일부분, 그리고 무표색(無表色) 등이 그것인데, 대종 상(上)에 존재하기 때문에 소조(所造)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대종에 의지하여 생기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서 안은 안식(眼識)이 의지하는 것으로서 색을 보는 것을 작용으로 하고 정색(淨色)을 본체[體]로 한다. 그리고 이ㆍ비ㆍ설ㆍ신도 마땅히 이에 준하여 말하여야 할 것이다.
028_0703_a_03L所造色有十一種一ㆍ眼二ㆍ耳三ㆍ鼻四ㆍ舌五ㆍ身六ㆍ色七ㆍ聲八ㆍ香九ㆍ味十ㆍ觸一分十一ㆍ無表色於大種有名所造卽是依止大種起義此中眼謂眼識所依以見色爲用淨色爲耳ㆍ鼻ㆍ舌ㆍ身准此應說
세존께서도 오현(惡顯)과 오형(惡形)을 말씀하셨듯이 색에는 현색(顯色:varṇa-rūpa)과 형색(形色:saṃsthāna-rūpa)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다시 현색에는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연(煙)ㆍ운(雲)ㆍ진(塵)ㆍ무(霧)ㆍ영(影)ㆍ광(光)ㆍ명(明)ㆍ암(暗)의 열두 가지가 있고, 형색에는 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ㆍ고(高)ㆍ하(下)ㆍ정(正)ㆍ부정(不正)의 여덟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무(霧)는 지ㆍ수의 기운이고, 광은 태양의 빛이며, 명은 달이나 별ㆍ화약ㆍ보주(寶珠)ㆍ번개 등 여러 가지 불빛을 말한다. 광과 명을 장애하여 생겨나지만 거기서 다른 여타의 색을 볼 수 있음을 영(影)이라 하며, 그 반대를 암이라고 한다. 방은 네모를 말하고, 원은 둥근 것을 말한다. 형태가 평평한 것이 정(正)이고, 평평하지 않은 것이 부정이다. 여타의 다른 색은 알기 쉬우므로 더 이상 해석하지 않는다. 이러한 스무 가지 색은 모두 안식과 그것에 의해 낳아진 의식에 의해 인식[了別]되는 대상이다.
028_0703_a_08L色有二種顯及形如世尊說惡顯惡形此中顯色有十二種謂靑ㆍ黃ㆍ赤ㆍ白ㆍ煙ㆍ雲ㆍ塵ㆍ霧ㆍ影ㆍ光ㆍ明ㆍ闇形色有八種謂長ㆍ短ㆍ方ㆍ圓ㆍ高ㆍ下ㆍ正ㆍ不正此中霧者謂地水氣焰名光月星火藥寶珠電等諸焰名障光明生於中餘色可見名影此名闇方謂畟方圓謂團圓形平等名正形不平等名不正餘色易了今不釋此二十種皆是眼識及所引意識所了別境
028_0703_b_02L성(聲:śabda)에는 유집수(有執受) 대종과 무집수(無執受) 대종의 차별에 따라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유집수란 유정물 자체에 속한 것으로, 감각이 있다는 뜻이며, 무집수는 그 반대이다. 전자로부터 생겨난 것은 유집수 대종을 근거로 한 소리, 이를테면 말[語]이나 박수 소리 등이며, 후자로부터 생겨난 것은 무집수 대종에 근거한 바람 소리나 수풀 소리 등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유정명(有情名)1)과 비유정명(非有情名)의 차별에 따라 네 가지가 된다. 예컨대 전자, 즉 유집수대종에 근거한 소리 중 말소리[語聲]는 유정명이요, 나머지 소리는 비유정명이다. 그리고 후자, 즉 무집수 대종에 근거한 소리 중 귀신과 같은 변화된 소리는 유정명이요, 나머지 소리는 비유정명이다. 이 같은 소리는 다시 의미가 되고[可意] 의미가 되지 않는 것[不可意]에 따라 여덟 가지로 차별되니, 이 모두는 이식(耳識)과 그것에 의해 낳아진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이다.
028_0703_a_18L聲有二種謂有執受及無執受大種爲因有差別故墮自體者名有執受是有覺義與此相違名無執受前所生者名有執受大種爲因謂語手等聲後所生者名無執受大種爲因謂風林等聲此有情名ㆍ非有情名差別爲四謂前聲中語聲名有情名餘聲名非有情名後聲中化語聲名有情名餘聲名非有情名此復可意及不可意差別成八如是八種皆是耳識及所引意識所了別
향(香:gandha)에는 호향(好香)ㆍ오향(惡香)ㆍ평등향(平等香) 세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제근대종(諸根大種)을 이롭게 하는 것을 호향이라 하고, 만약 제근대종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면 오향, 이 두 가지에 반대되는 것을 평등향2)이라고 하는데, 이 모두는 비식(鼻識)과 그것에 의해 낳아진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이다.
미(味:rasa)에는 달고[甘] 시고[酢] 짜고[鹹] 맵고[辛] 쓰고[苦] 담백한[淡] 여섯 가지 차별이 있는데, 이 모두는 설식(舌識)과 그것에 의해 낳아진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이다.
028_0703_b_06L香有三種一ㆍ好香二ㆍ惡香三ㆍ平等謂能長養諸根大種名好香若能損害諸根大種名惡香若俱相違名平等香如是三種皆是鼻識及所引意識所了別境味有六種謂甘ㆍ酢ㆍ醎ㆍ辛ㆍ苦ㆍ淡別故如是六種皆是舌識及所引意識所了別境
촉(觸:sparśa)의 일부분3)에는 매끄러움[滑性]ㆍ깔깔함[澁性]ㆍ무거움[重性]ㆍ가벼움[輕性], 그리고 차가움[冷]ㆍ허기짐[飢]ㆍ목마름[渴] 등 일곱 가지가 있다. 유연함은 매끄러움으로 감촉이 좋다는 말이고, 깔깔함은 거칠고 강함을, 무거움은 저울질할 만함을, 가벼움은 그 반대, 차가움은 핍박된 바에 따라 따뜻하기를 바라는 원인, 허기짐은 먹기를 바라는 원인, 목마름은 마시기를 바라는 원인이다. 이는 원인에 따라 결과의 명칭을 설정한 것으로, 이를테면 모든 부처님의 출현을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네 가지 대종의 적취물 중에 수ㆍ화대가 강성하기 때문에 매끄러우며, 지ㆍ풍대가 강성하면 거칠고, 지ㆍ수대가 강성하면 무겁고, 화ㆍ풍대가 강성하면 가볍고, 수ㆍ풍대가 강성하면 차갑고, 풍대가 증대하면 허기짐이 있으며, 화대가 증대하면 목마름이 있다.4)
028_0703_b_12L觸一分有七種謂滑性ㆍ澀性ㆍ重性ㆍ輕性及冷ㆍ飢ㆍ渴軟名滑是意觸義麤强名澀可稱名翻此名輕由此所逼煖欲因名冷食欲因名飢飮欲因名渴此皆於因立果名故作如是說如說諸佛出現樂等大種聚中水ㆍ火增故有滑性地ㆍ風增故有澀性地ㆍ水增故有重性火ㆍ風增故有輕性水ㆍ風增故有冷風增故有火增故有渴
028_0703_c_02L무표색(無表色:avijñapti rūpa)이란 마음[心]과 마음의 작용[心所]에서 변화하여 차별적인 상태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표(表)라고 한다면, 그것과 동류이면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무표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크샤트리야를 비(非)바라문이라고 하듯이 서로 유사한 것에서 그 반대말을 설정한 것이다. 무표상이란 밖으로 드러난 마음의 대종차별에 따라 잠을 자거나 깨어 있거나, 혼란한 마음이거나 혼란하지 않은 마음에 있거나, 혹은 무상ㆍ멸진의 무심(無心)의 상태에 있을 때나 항상 선ㆍ불선의 색이 상속 수전(隨轉)하는 것으로 적집(積集)에 의한 것이 아니며, 이는 능히 비구 등을 설정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표의 상이다. 만약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비구 등의 행위 상속을 해명할 길이 없어 그 같은 존재 자체를 설정할 수 없으니, 세존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미래 더 나은 생의 근거가 되는 선행 보시 등의 복업이 있어, 그것은 항상 복을 증진시킨다”고 하였던 것이다.
028_0703_b_21L無表色者謂能自表諸心ㆍ心所轉變差別故名爲表與彼同類而不能表故名無表此於相似立遮止言如於剎帝利等說非婆羅門等無表相者謂由表心大種差別於睡眠覺ㆍ亂不亂心及無心位有善不善色相續轉不可積集是能建立苾芻等因是無表相此若無者不應建立有苾芻等如世尊說於有依福業事彼恒常福增長
이 같은 무표에는 율의(律儀)ㆍ불율의(不律儀) 양쪽 어디에도 포섭되지 않은 것 등 모두 세 가지가 있다.
율의에는 별해탈(別解脫)ㆍ정려(靜慮)ㆍ무루(無漏)율의 등의 차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다. 별해탈율의에는 비구율의ㆍ비구니율의ㆍ근책(近策)율의ㆍ정학(正學)율의ㆍ근책녀율의ㆍ근사남(近事男)율의ㆍ근사녀율의ㆍ근주(近住)율의 등 여덟 가지가 있는데, 이는 오로지 욕계의 계(繫)이다. 정려율의는 말하자면 색계의 삼마지(三摩地)에서 상속 수전하는 색으로서, 이는 오직 색계의 계이다. 그리고 무루율의는 무루삼매의 수전색(隨轉色)으로, 이는 더 이상 번뇌의 존재와 관계하지 않는 것[不繫]이다.
028_0703_c_07L如是無表摠有三謂律儀ㆍ不律儀ㆍ俱相違所攝故儀有三種謂別解脫ㆍ靜慮ㆍ無漏律儀別故別解脫律儀復有八種一ㆍ苾芻律儀二ㆍ苾芻尼律儀三ㆍ勤策律儀四ㆍ正學律儀五ㆍ勤策女律儀六ㆍ近事男律儀七ㆍ近事女律儀八ㆍ近住律儀是八種唯欲界繫靜慮律儀謂色界三摩地隨轉色此唯色界繫無漏律謂無漏三摩地隨轉色此唯不繫
불율의란, 말하자면 백장이나 짐승, 새, 물고기 등을 잡는 이나 도적ㆍ형리ㆍ박룡(縛龍)5)ㆍ자구(煮狗)ㆍ저강(罝弶)ㆍ괴회(魁膾) 등의 몸에 불선의 무표색이 상속 수전함을 말한다.
율의도 아니고 불율의도 아닌 무표란, 이를테면 비하라(毘訶羅:vihāra)ㆍ솔도파(窣堵波:stūpa) 승가라마(僧伽邏摩:saṁghārāma) 등을 조성하거나 제다(制多:탑묘)에 예배하고,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찬송하고, 소원하며, 아울러 타타(捶打)6) 등에 의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선ㆍ불선의 무표색이 상속 수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표색은 오로지 일찰나만 존재하지만 전찰나의 무표도, 후찰나의 무표도 모두 동일한 종류[總種類]이기 때문에 상속 수전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28_0703_c_16L不律儀者謂諸屠兒及諸獵獸捕鳥捕魚ㆍ劫盜典獄ㆍ縛龍煮狗ㆍ罝弶魁膾此等身中不善無表色相續轉非律儀非不律儀者謂造毘訶羅ㆍ窣堵波ㆍ僧伽邏摩等及禮制多ㆍ燒香散華ㆍ讚誦願等幷捶打等所起種種善不善無表色相續轉亦有無表唯一剎那摠種類故說相續
028_0704_a_02L그렇다면 이 같은 모든 무표는 어떻게 획득되고 상실되는가?
율의 중 별해탈율의는 서원에 의해 획득되는 것으로, 앞의 일곱 가지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여덟 번째 근주율의는 하루 밤낮이 다할 때까지 유지된다. 또 앞의 일곱 가지는 학처(學處)를 포기할 때, 목숨을 다할 때, 선근이 끊어질 때, 성변환이 일어나 중성이 될 때 등 네 가지 조건에 의해 상실된다. 그리고 여덟 번째 율의는 앞의 네 가지 조건과 하루 밤낮이 다 지났을 때 상실된다. 정려율의는 색계선심에 속하기 때문에 색계선심을 얻음에 따라 획득되고 색계선심을 버림에 따라 상실된다. 무루율의의 획득과 상실 또한 이와 같다. 즉 무루선심을 얻음에 따라 획득되고 무루선심을 버림에 따라 상실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루심에 따라 획득되고 상실되기 때문이다.
028_0703_c_24L別解脫律儀由誓願受得前七至命盡第八一晝夜前七種捨由四緣一ㆍ捨所學故二ㆍ命盡故三ㆍ善根斷故四ㆍ二形生故第八律儀卽由前四及夜盡捨靜慮律儀由得色界善心故得由捨色界善心故捨屬彼心故無漏律儀得捨亦爾隨無漏心而得捨故
불율의의 무표는 살생 등의 행위를 짓는 것과 그렇게 하려고 결의하는 것[受]에 의해 획득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율의를 받거나, 목숨이 다하거나, 양성이 되거나, 법이(法爾)로서 색계선심을 얻게 될 때 상실된다.
그리고 율의도 불율의도 아닌 무표는, 이를테면 큰 정심(淨心)과 같은 강렬한 번뇌로써 제다에 예찬하고 아울러 타타(捶打)하는 것 등에 의해, 또는 “만약 부처를 위해 만다라를 만들지 않으면 끝내 식사하지 않으리라”라고 서원 결의함에 따라 획득된다. 혹은 사사(寺舍)ㆍ방석ㆍ원림(園林)을 비구 등에게 희사함으로 획득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무표는 등기심(等起心)7)과 소작사(所作事)8)를 끊음으로써 상실된다.
이상의 무표와 앞에서 설명한 안(眼) 등 5근은 오로지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으로, 여기까지를 색구의(色句義)라고 한다.
028_0704_a_08L得不律儀由作及受由四緣故捨不律儀一ㆍ受律儀二ㆍ命盡故三ㆍ二形生故四ㆍ法爾得色界善心處中無表或由作故得謂殷淨心猛利煩惱禮讚制多及捶打等由受故得謂作是念若不爲佛造曼茶羅終不先食如是等願或由捨故謂造寺舍敷具園林施苾芻等此無表由等起心及所作事俱斷壞如是無表及前所說眼等五根是意識所了別境齊此名爲初色句
028_0704_b_02L그런데 모든 법의 상(相)에는 자공상(自共相)ㆍ분공상(分共相)ㆍ변공상(遍共相) 등 세 가지가 있다. 자공상이란 색법 자체에 공통하는 성질로 변괴(變壞:rūpana) 혹은 변애(變碍)하기 때문에 색이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뇌괴(惱壞:bādhanā)9)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변괴하기 때문에 색취온이라 한다. 누가 능히 변괴시키는가? 손이 접촉하기 때문에 바로 변괴하는 것이다”라고 법왕(法王)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마치 빨리 달리기 [疾行:āśum ayati] 때문에 말(aśva)이라 하고, 바로 가기[正行:gacchati] 때문에 소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분공상이란 유위법에 공통된 성질인 무상성과 고성(苦性) 등이며, 변공상이란 모든 법에 공통하는 성질로서 무아성과 공성(空性)이다. 이와 같은 예에 따라 모든 법의 삼상(三相)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028_0704_a_19L然諸法相略有三種一ㆍ自共相二ㆍ分共相三ㆍ遍共相自共相者如變壞故ㆍ或變礙故說名爲色如是卽說可惱壞義如法王說苾芻當知由變壞故名色取薀誰能變壞謂手觸故卽便變壞乃至廣說如能疾行故名爲以能行故說名牛等分共相者非常性及苦性等遍共相者如非我性及空性等由此方隅於一切法應知三相
수(受:vedanā)란 영납(領納)의 뜻이다. 여기에는 고(苦)ㆍ락(樂)ㆍ불고불락(不苦不樂)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은 즉 촉(觸)에 따른 세 가지를 영납한다는 뜻이니,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양쪽 어느 것도 아닌 촉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심신 상태의 차별로 생기하는 것으로서, 대상에 대해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양쪽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데, 애(愛)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수라고 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촉에 의해 수가 있고, 수에 의해 애가 있다”고 하셨던 것이다.
028_0704_b_05L受句義者謂三種領納一ㆍ樂二ㆍ苦三ㆍ不苦不樂卽是領納三隨觸從愛非愛非二觸生身心分位差別所起於境歡慼非二爲相能爲愛因故名受如世尊說觸緣受ㆍ受緣愛
여기에는 다시 식(識)의 차별에 따라 여섯 가지가 있다. 안촉(眼觸)에서 낳아진 안수(眼受)로부터 의촉(意觸)에서 낳아진 의수(意受)에 이르기까지가 그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식(五識)과 함께 생기하는 것을 신수(身受)라고 하며, 의식과 함께 생기하는 것을 심수(心受)라고 한다. 이것은 다시 소의감관의 차별에 따라 낙근(樂根)ㆍ고근(苦根)ㆍ희근(喜根)ㆍ우근(憂根)ㆍ사근(捨根)의 다섯 가지로 분류 설정되기도 한다. 여기서 낙근이란 모든 신열수(身悅受)와 제3 정려에서 생겨난 심열수(心悅受)를 말하는데, 여기서 열(悅)이란 바로 심신을 섭익 장양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신불열수를 고근이라 하는데, 여기서 불열이란 바로 신체를 뇌란 손상시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제3 정려를 제외한 나머지 초, 제2선의 심열수를 희근이라 하고, 모든 심불열수를 우근이라 하며, 신심의 모든 비열ㆍ비불열수를 사근이라 한다. 이렇게 널리 분별함은 근(根) 등의 범주[處]에서와 같다.
028_0704_b_09L此復隨識差別有六謂眼觸所生受乃至意觸所生受五識俱生名身受意識俱生名心受由根差別建立五謂樂根ㆍ苦根ㆍ喜根ㆍ憂根ㆍ捨根諸身悅受及第三靜慮心悅受名樂根是攝益義諸身不悅受名苦根不悅是損惱義除第三靜慮餘心悅受喜根諸心不悅受名憂根諸身及心非悅非不悅受名捨根此廣分別根等處
028_0704_c_02L상(想:saṃjñā)이란 말하자면 대상의 상(相:nimitta)과 이름[名:nama]과 의미[義:artha]가 일시 결합하여, 이해되는 것을 말한다. 즉 청ㆍ황ㆍ장ㆍ단 등의 색이나 소라ㆍ북 등의 소리, 침향이나 사향과 같은 향기, 짜고 쓴 등의 맛, 딱딱하고 부드러운 등의 촉감, 남녀 등의 대상[法]에 대해 그 같은 상과 이름, 의미 등이 일시 결합하여 이해되는 것으로, 심(尋)과 사(伺)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상(想)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식(識)의 차별에 따라 여섯 가지가 있으니, 수의 경우와 같다. 또한 이것은 작고 크고 무량함의 차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는데, 작은 대상을 소연으로 삼은 것을 소상(小想)이라 하고, 수미산과 같은 커다란 존재를 소연으로 삼은 것을 대상(大想)이라 하며, 공무변처 등을 소연으로 삼은 것을 무량상이라고 한다. 혹은 삼계(三界)에 따라 이러한 세 가지 명칭을 설정하기도 한다.
028_0704_b_19L想句義者謂能假合相名義解卽於靑黃長短等色ㆍ螺鼓等聲ㆍ沈麝等香ㆍ醎苦等味ㆍ堅軟等觸ㆍ男女等法相名義中假合而解爲尋伺因故名爲想此隨識別有六如受小大無量差別有三謂緣少境故名小想緣妙高等諸大法境故名大想隨空無邊處等名無量想或隨三界立此三名
행(行:samskāra)에는 상응행(相應行:citta samprayukta-)과 불상응행(不相應行:citta viprayukta-) 두 가지가 있다.
상응행이란, 사(思)ㆍ촉(觸)ㆍ욕(欲)ㆍ작의(作意)ㆍ승해(勝解)ㆍ염(念)ㆍ정(定)ㆍ혜(慧)ㆍ심(尋)ㆍ사(伺)ㆍ신(信)ㆍ정진(精進)ㆍ참(慙)ㆍ괴(愧)ㆍ불방일(不放逸)ㆍ경안(輕安)ㆍ불해(不害)ㆍ사(捨)ㆍ흔(欣)ㆍ염(厭)ㆍ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방일(放逸)ㆍ선근(善根)ㆍ불선근(不善根)ㆍ무기근(無記根)ㆍ결(結)ㆍ박(縛)ㆍ수면(隨眠)ㆍ수번뇌(隨煩惱)ㆍ전(纏)ㆍ누(漏)ㆍ폭류(暴流)ㆍ액(軛)ㆍ취(取)ㆍ신계(身繫)ㆍ개(蓋), 그리고 지(智)ㆍ인(忍) 등의 여러 심소법으로, 이것은 모두 마음과 소의(所依)ㆍ소연(所緣)ㆍ행상(行相)ㆍ시(時)ㆍ사(事) 등 다섯 가지 점에서 항상 평등하게 관계하기 때문에 상응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것을 불상응이라 하는데, 이를테면 득(得)ㆍ비득(非得)ㆍ무상정(無想定)ㆍ멸정(滅定)ㆍ무상사(無想事)ㆍ명근(命根)ㆍ중동분(衆同分)ㆍ생(生)ㆍ주(住)ㆍ노(老)ㆍ무상(無常)ㆍ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 등이다. 이와 같은 상응행과 불상응행을 모두 행온(行蘊)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대선(大仙)께서 말씀하기를, “행온의 취집은 마치 파초의 줄기와 같다”고 하셨던 것이다.
028_0704_c_04L行有二種謂相應行ㆍ不相應行相應行者謂思ㆍ觸ㆍ欲ㆍ作意ㆍ勝解ㆍ念ㆍ定ㆍ慧ㆍ尋ㆍ伺ㆍ信ㆍ精進ㆍ慚ㆍ愧ㆍ不放逸ㆍ輕安ㆍ不害ㆍ捨ㆍ欣ㆍ厭ㆍ不信ㆍ懈怠ㆍ放逸ㆍ善根ㆍ不善根ㆍ無記根ㆍ結ㆍ縛ㆍ隨眠ㆍ隨煩惱ㆍ纏ㆍ漏ㆍ瀑流ㆍ軛ㆍ取身繫蓋及智忍等諸心所法此皆與心所依ㆍ所緣ㆍ行相ㆍ時ㆍ事五義等故說名相應與此相違名不相應謂得ㆍ非得ㆍ無想定ㆍ滅定ㆍ無想事ㆍ命根ㆍ衆同分ㆍ生ㆍ住ㆍ老ㆍ無常ㆍ名身ㆍ句身ㆍ文身等是相應ㆍ不相應行ㆍ摠名行薀故大仙行薀聚集如芭蕉莖
사(思:cetanā)라고 하는 것은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조작(造作)하게 하는 심리작용으로, 바로 의업(意業)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마음으로 하여금 운동하게 한다는 뜻이니, 여기에는 선ㆍ불선ㆍ무기의 차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다.
촉(觸:sparśa)이란 근(根)ㆍ경(境)ㆍ식(識) 세 가지가 화합하여 생겨난 심리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과 접촉하게 함으로써 능히 심소를 양생하고 활동하게 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 또한 낙수(樂受) 등의 차별에 따라 세 가지가 있다.
욕(欲:chanda)이란, 이를테면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은 일을 해야겠다’고 희구(希求)하는 심리작용으로, 정진을 수반한다.
028_0704_c_16L思謂能令心有造作卽是意業亦是令心運動爲義此善ㆍ不善ㆍ無記異故有三種別觸謂根境識和合生令心觸境以能養活心所爲相順樂受等差別有三欲謂希求作事業隨順精謂我當作如是事業
028_0705_a_02L작의(作意:manasikāra)란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주의ㆍ경각(警覺)하게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즉 이것은 마음을 인기(引起)하여 대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또는 과거에 감수한 대상 등을 기억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학(學)ㆍ무학(無學)ㆍ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 세 가지가 있는데, 아라한과를 제외한 사향삼과(四向三果)의 일곱 가지 유학신(有學身) 중의 무루작의를 학이라 이름하고, 아라한의 소의신 중의 무루작의를 무학이라 이름하며, 모든 유루의 작의를 비학비무학이라고 한다.
승해(勝解:adhimukti)는 말하자면 대상에 대해 능히 인가 결정하는 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이다.
028_0704_c_22L作意謂能令心警覺卽是引心趣境爲義亦是憶持曾受等此有三種謂學ㆍ無學ㆍ非學非無學七有學身中無漏作意名學阿羅漢身中無漏作意名無學一切有漏作意名非學非無學勝解謂能於境印可卽是令心於所緣境無怯弱義
염(念:smṛti)이란, 말하자면 마음으로 하여금 과거 경험했거나 현재 경험하고 있거나 미래 경험할 모든 사실을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심리작용의 뜻이다.
정(定:samādhi)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에 전념[專注]하게 하는 심리작용으로, 예컨대 원숭이와 같은 마음을 제어하여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서 전변 상속한다는 뜻이다. 비바사(毘婆沙) 논사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한다. “마치 뱀이 죽통에 들어가면 구불구불하지 않고 바로 펴지듯이 마음이 만약 정에 들면 산란되지 않고 바로 곧게 전이한다”라고.
028_0705_a_06L念謂令心於境明記卽是不忘已ㆍ正ㆍ當作謂事業義定謂令心專注一境卽是制如猿猴心唯於一境而轉義毘婆沙者作如是說如蛇在筒行便不曲心若在定正直而轉
혜(慧:prajñā)란 이를테면 법에 대해 능히 간택ㆍ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것은 모든 법의 포섭ㆍ상응ㆍ성취ㆍ원인ㆍ조건[緣]ㆍ결과, 그리고 자상과 공상의 여덟 가지 사실 가운데 그것이 관계하는 바에 따라 관찰한다는 뜻이다.
심(尋:vitarka)은 말하자면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거칠게 추구하게 하는 심리작용으로, 분별(分別)이라고도 한다. 즉 이것은 사유상(思惟想)의 바람과 관계된 거친 작용으로 전전하며, 전오식을 일으키는 근거가 된다.
사(伺:vicāra)는 말하자면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세밀하게 추구하게 하는 심리작용으로, 이는 제6 의식을 대상에 수순시켜 전전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028_0705_a_10L慧謂於法能有簡擇卽是於攝相應成就諸因緣果自相共相八種法中隨其所應觀察爲義尋謂於境令心麤爲相亦名分別思惟想風所繫麤動而轉此法卽是五識轉因伺謂於境令心細爲相此法卽是隨順意識於境轉
신(信:śraddhā)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징정(澄淨)하게 하는 작용으로, 이를테면 삼보(三寶)라든가 인과상속, 유성(有性) 등을 즉각 인가하는 것이므로 신이라 한다. 이것은 능히 마음의 더러운 때를 제거하는 것으로, 마치 물을 청정하게 하는 구슬을 연못에 놓아두면 더러운 물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이 같은 신이라고 하는 구슬이 마음의 연못 안에 있으면 마음의 여러 더러움이 모두 제거되어, ‘부처는 보리(菩提)를 증득하였고, 법(法)은 바로 그 같은 깨달음의 선설(善說)이며, 승(僧)은 그것에 이르는 묘행(妙行)을 갖추었다’고 믿게 되며, 또한 모든 외도가 미혹한 연기법성(緣起法性)에 대해 믿게 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본질과 작용이다.
028_0705_a_17L信謂令心於境澄淨謂於三寶因果相屬有性等中現前忍許故名爲是能除遣心濁穢法如淸水珠置於池內令濁穢水皆卽澄淸如是信珠在心池內心諸濁穢皆卽除遣佛證菩提ㆍ信法是善說ㆍ信僧具妙行信一切外道所迷緣起法性是信事
028_0705_b_02L정진(精進:vīrya)이란 말하자면 선법을 낳거나 불선법을 소멸하는 데 있어 모질게 노력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생사의 늪에 빠진 자가 능히 마음을 독려하여 속히 그곳으로부터 나오게 한다는 뜻이다.
참(慙:hrī)이란 올바른 이치의 선법(善法)에 수순하여 탁월하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것으로, 애등류(愛等流)와 반대되는 마음의 자재성(自在性)이다. 이 같은 세력에 의해 모든 공덕과 공덕 있는 자를 공경하게 되는 것이다.
028_0705_a_24L精進謂於善不善法生滅事中勇悍爲性卽是沈溺生死泥者能策勵心令速出義慚謂隨順正理白法上所生違愛等流心自在性由此勢力於諸功德及有德者恭敬而住
괴(愧:apatrāpya)는 말하자면 공덕을 닦는 것을 으뜸으로 하는 것이다. 즉 치(癡) 등류에 반대되는 것으로, 열등한 악법을 꾸짖어 나무라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 같은 세력에 의해 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불방일(不放逸:apramāda)이란 모든 선법을 닦는 것으로, 방일을 방해하여 마음을 수호하는 성질[心守護性]의 심리작용을 말한다.
경안(輕安:prasrabdhi)은 마음의 경쾌 민활한 상태[心堪任性]로, 혼침을 방해하여 선법을 따르게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불해(不害:ahiṃsā)란 선을 견고히 하려는 심리작용[心堅善性]으로, 이 같은 세력에 따라 다른 이를 괴롭히지 않고, 나아가 다른 이의 즐거움을 해코지하지 않는 것이다.
028_0705_b_05L謂修習功德爲先違癡等流訶毀劣由此勢力於罪見怖不放逸謂修諸善法違害放逸守護心性心堪任性說名輕安違害惛沈隨順善法堅善性說名不害由此勢力不損惱能違於他樂爲損事
사(捨:upekṣā)란 마음의 평등함[心平等性]을 말한다. 그것은 곧 비리(非理)를 배반함도, 정리(正理)를 향함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세력에 따라 마음이 정리나 비리에 대해 향하지도 않고 배반하지도 않으며 평등하게 머물게 되니, 마치 균형이 잡힌 저울의 줄과도 같다.
흔(欣:prāmodya)이란 기꺼이 「환멸품(還滅品)」에서 공덕을 보고 난 다음 마음으로 흠모하여 선을 닦게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마음에 이것이 있기 때문에 열반을 기쁘게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상응하는 것을 흔작의(欣作意)라고 한다.
028_0705_b_11L心平等性說名爲捨捨背非理及向故由此勢力令心於理及於非理無向無背平等而住如持秤縷欣謂欣尚於還滅品見功德已令心欣慕隨順修善心有此故欣樂涅槃與此相應名欣作意
염(厭:nirveda)이란 슬프게 「유전품(流轉品)」에서 그 과실을 보고 난 다음, 마음이 염리(厭離)하여 그러한 더러움에서 떠나고자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즉 마음에 이것이 있기 때문에 생사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상응하는 것을 염작의(厭作意)라고 한다.
불신(不信)은 마음이 징정하지 않은 것으로서, 앞서 설명한 신(信)과 반대되는 심리작용이다.
해태(懈怠)란 마음이 모질게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서, 앞서 설명한 정진과 반대되는 심리작용이다.
방일(放逸)은 선법을 닦지 않는 것으로서, 앞서 설명한 불방일성과 반대된다. 즉 이것은 능히 마음을 수호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불신 등 세 가지를 수면(隨眠)이나 전(纏)ㆍ구(垢)에 설정하지 않은 것은 그 과실이 가벼워 쉽게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028_0705_b_16L厭謂厭患於流轉品見過失已令心厭離隨順離染心有此故厭惡生死與此相應名厭作意心不澄淨名爲不信是前所說信相違法心心不勇悍名爲懈怠與前所說精進相違修善法爲放逸違前所說不放逸性卽是不能守護心義如是所說不信等三不立隨眠及纏垢者過失輕故ㆍ易除遣故
028_0705_c_02L선근(善根)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가 탐법(貪法)에 반대되는 무탐(無貪:alobha)이고, 두 번째가 진법(瞋法)에 반대되는 무진(無瞋:adveṣa)이며, 세 번째가 치법(癡法)에 반대되는 무치(無癡:amoha)인데, 이것들은 앞서 설명한 혜(prajñā)를 본질로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심소법은 선 그 자체이며, 능히 다른 선법을 낳는 뿌리가 되기 때문에 선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근은 능히 참으로 사랑할 만한 존재와 해탈의 싹을 인기(引起)하기 때문에 즐거움[安隱:sukha]의 뜻이 바로 선(善:kuśala)의 뜻이다. 혹은 이미 학습하여 능숙[巧便]하게 되었다는 뜻이 바로 선의 뜻이다. 왜냐하면 마치 화가가 그린 그림이 아름다우면 세간에서는 그것을 ‘잘 그렸다’고 하듯이, 이 같은 능숙함에 따라 능히 좋은 그림을 변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028_0705_c_02L善根有三種一ㆍ無貪是違貪法二ㆍ旡是違瞋法三ㆍ無癡是違癡法卽前所說慧爲自性如是三法是善自性亦能爲根生餘善法故名善根安隱義是善義能引可愛有及解脫牙故或已習學成巧便義是善義由此能辦妙色像故如彩畫師造妙色像稱爲善
불선근(不善根)에는 앞에서 설명한 세 가지 선근에 반대되는 탐ㆍ진ㆍ치 세 가지가 있다. 여기서 탐은 욕계 5부(部)의 탐이고, 진은 5부의 진, 치는 유신견(有身見)과 변집견(邊執見)에 상응하는 무명을 제외한 서른네 가지 무명을 말한다. 이 같은 세 가지 심소법은 불선 그 자체이며, 능히 다른 불선을 낳는 근본이 되기 때문에 불선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선근은 바람직 하지 못한 여러 존재의 싹을 인기하기 때문에, 이것의 뜻은 즐겁지 않다[不安隱]는 뜻이다. 혹은 아직 학습하지 않아 능숙하지 않다는 뜻이 바로 불선의 뜻이다. 왜냐하면 화가가 그린 그림이 아름답지 않으면 세간에서는 그것을 ‘잘 그리지 않았다[不善]’고 하듯이, 이에 따라 능히 나쁜 그림을 판별하기 때문이다.
028_0705_c_10L不善根有三種卽前所治貪ㆍ瞋ㆍ癡三貪謂欲界五部貪瞋謂五部癡謂欲界三十四無明除有身見及邊執見相應無明如是三法是不善自性亦能爲根生餘不善故名不善根不安隱義是不善義能引非愛諸有牙故或未習學非巧便義是不善義由此能辦惡色像故如彩畫師所造不妙世稱不善
028_0706_a_02L무기근(無記根)에는 애(愛)ㆍ견(見)ㆍ만(慢)ㆍ무명(無明) 등의 네 가지가 있다. 여기서 애는 색계ㆍ무색계 각각의 5부의 탐을 말하며, 견은 색계ㆍ무색계 각각의 12견과 욕계 유신견과 변집견을 말하며, 만은 색계ㆍ무색계 각각의 5부의 만을, 무명은 색계ㆍ무색계의 모든 무명과 욕계의 유신견과 변집견에 상응하는 무명을 말한다. 이 네 가지는 그 자체 무기근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즉 정려(靜慮)를 닦는 자에게는 애상(愛上) 정려자ㆍ견상(見上) 정려자ㆍ만상(慢上) 정려자 등 세 가지 차별이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모두 무명의 힘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028_0705_c_18L無記根有四種謂愛ㆍ見ㆍ慢ㆍ無明愛謂色無色界各五部貪見謂色無色界各十二見及欲界有身見邊執見謂色無色界各五部慢無明謂色無色界一切無明及欲界有身見ㆍ邊執見相應無明此四無記根是自所許修靜慮者有三種異故一ㆍ愛上靜慮二ㆍ見上靜慮者三ㆍ慢上靜慮者三皆因無明力起
비바사논사들은 무기근에 오로지 무기애(無記愛)ㆍ무명ㆍ혜 세 가지 만을 설정하는데, 견고하지 않은 만의 특징인 고거(高擧)는 근본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의 존재는 선하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으므로 무기라고 한다. 또는 이것은 능히 이숙과를 초래할 수 없어 좋아할 만한 결과도, 그렇지 못한 결과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무기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무기 자체는 또 다른 무기염법(無記染法)이나 여러 무기법을 능히 산출하기 때문에 무기근이라고 하는 것이다.
028_0706_a_04L毘婆沙者立無記根唯有三種謂無記愛ㆍ無明ㆍ慧三不堅住ㆍ慢性高擧非根法故於善不善義俱不記故名無記又不能記愛非愛果故名無記以不能招異熟果是無記性亦能生餘無記染法或諸無記法故名無記根
결(結:saṃyojana)에는 아홉 가지가 있는데, 애결(愛結)ㆍ에결(恚結)ㆍ만결(慢結)ㆍ무명결(無明結)ㆍ견결(見結)ㆍ취결(取結)ㆍ의결(疑結)ㆍ질결(嫉結)ㆍ간결(慳結)을 말한다.
애결(anunaya-)이란 삼계의 탐(貪)을 말하는데, 이것은 마치 아교나 옻이 달라붙는 것처럼 염착(染着)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애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가 바로 결박[結]이기 때문에 애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에결(pratigha-)이란 5부의 진(瞋)을 말하는데, 유정 등을 해치어 괴롭히기[損苦]를 즐거이 하여, 마치 쓰디 쓴 씨앗처럼 불요익(不饒益)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에라고 한다. 그리고 에가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에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028_0706_a_10L結有九種愛結ㆍ恚結ㆍ慢結ㆍ無明結ㆍ見結ㆍ取結ㆍ疑結ㆍ嫉結ㆍ慳結愛結者謂三界貪是染著相如融膠漆故名爲愛愛卽是結故名愛結恚結者謂五部瞋於有情等樂爲損苦不饒益相如辛苦種名爲恚恚卽是結故是名恚結
만결(māna-)이란 삼계의 만(慢)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모든 덕을 차별하는 마음의 오만한 상(相)을 만이라고 한다. 즉 오만 방일한 자가 타인을 능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다시 만(慢)ㆍ과만(過慢)ㆍ만과만(慢過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비만(卑慢)ㆍ사만(邪慢) 등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 만이란 가문ㆍ재산이나 지위ㆍ용모ㆍ힘ㆍ행동거지[持戒]ㆍ지식ㆍ기예 등이 자신보다 열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高擧] 심리작용을 말한다. 둘째, 과만이란 자신과 동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하거나, 혹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셋째, 만과만이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028_0706_a_16L慢結者謂三界慢以自方他德類差別心恃擧相說名爲慢如傲逸者淩篾於他復七種一ㆍ慢二ㆍ過慢三ㆍ慢過慢四ㆍ我五ㆍ增上慢六ㆍ卑慢七ㆍ邪慢謂因族姓財位色力持戒多聞工巧等事若於劣謂已勝ㆍ或於等謂己等由此令心高擧名慢若於等謂己勝ㆍ或於勝謂己等由此令心高擧名過慢若於勝謂己勝ㆍ由此令心高擧名慢過慢
028_0706_b_02L넷째, 아만이란 오취온이 나[我]다, 나의 것[我所]이다라고 집착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다섯 번째, 증상만이란 아직 예류과(預流果) 등의 뛰어난 덕을 증득하지 못하였으면서도 이미 증득했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여섯 번째, 비만이란 가문 등이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일곱 번째 사만이란 실제로는 덕이 없으면서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상과 같은 일곱 가지의 만을 만결이라고 한다.
028_0706_b_02L於五取薀執我我所由此令心高擧名我慢若於未證得預流果等殊勝德中謂已證得由此令心高擧名增上慢若於多分族姓等勝中謂己少由此令心高擧名卑慢若實無德謂己有德由此令心高擧名邪慢是七慢摠名慢結
무명결(avidyā-)이란 삼계의 무지로서, 마치 장님처럼 이해하지 못함을 특징으로 한다. 즉 명(明:vidyā)에 반대되기 때문에 무명이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반대말은, 이를테면 친구(mitra)가 아닌 이를 원수진 이[怨家:amitra]라 하고, 진실(satya)이 아닌 것을 거짓말[虛誑語:asatya]이라고 하듯이 상반되는 의미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그리고 무명이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무명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028_0706_b_09L無明結者謂三界無知以不解了爲相如盲瞽者違害明故說名無明此遮止言依對治義如非親友ㆍ不實等言卽說怨家ㆍ虛誑語等無明卽是結故名無明結
견결(dṛṣṭi-)에는 유신견(有身見)ㆍ변집견(邊執見)ㆍ사견(邪見) 세 가지의 견이 있다. 여기서 유신견(satkāya-)이란 오취온은 나[我]나, 나의 것[我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나나 나의 것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염오혜(染汚慧)를 말한다. 즉 신(身:kāya)은 바로 취(聚)의 뜻으로, 그 같은 오온의 취인 신을 실재하는 것(sat)이라고 하기 때문에 유신(有身)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취온 상에서 일으키는 견해이기 때문에 유신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오취온은 단멸[斷]하는 것도, 항상[常]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단멸ㆍ항상의 두 가지 견해에 집착하는 염오혜를 변집견(antaragraha-)이라고 한다. 바로 두 가지 양 극단[邊]에 집착[執]한 것이기 때문에 그같이 말한 것이다.
나아가 만약 단멸론의 입장에서 업도 없고, 업의 과보도 없으며, 해탈도 없고 해탈을 획득하는 실천도도 없다고 결정코 주장하여, 그 같은 존재 자체의 실재성을 부정해 버리는 염오혜를 사견(mithya-)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의 견해를 견결이라고 한다.
028_0706_b_13L見結謂三見卽有身見ㆍ邊執見ㆍ邪見取薀中無我我所而執實有我我所相此染污慧名有身見身是聚義有而是身故名有身卽五取薀於此起見名有身見卽五取薀非斷非常於中執有斷常二相此染污慧名邊執見二邊故若決定執無業無業果ㆍ無解脫無得解脫道撥無實事此染污慧名邪見如是三見名見結
028_0706_c_02L취결(parāmars´a-)에는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 두 가지가 있다. 앞서 설명한 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 세 가지와 오취온은 실제로는 뛰어난 존재가 아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것으로 취하는 염오혜를 견취(dṛṣṭi parāmarśa)라고 한다. 취(取)란 뭔가를 추구하고 강하게 집착한다[堅執]는 뜻이다. 그리고 계금취에 있어 계(戒:śila)란 여러 가지 파계의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규범을 말하며[非道計道],10) 금(禁:vrata)이란 새ㆍ닭ㆍ사슴ㆍ개와 같은 생활형태를 취하거나 나체로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단식하고, 탄더미 속에서 잠을 자는 등의 생활형태를 말한다.
028_0706_b_22L取結者謂二取卽見取ㆍ戒禁取謂前三見及五取薀實非是勝而取爲勝此染污慧名見取取是推求及堅執義戒謂遠離諸破戒惡禁謂受持烏鷄鹿狗ㆍ露形拔髮ㆍ斷食臥灰
혹은 복을 낳고 죄를 소멸한다고 망령되이 주장하여 강이나 연못에서 자주 목욕하기도 하고, 혹은 나무뿌리나 과실ㆍ풀이나 채소ㆍ약물을 먹고 살아가며, 혹은 재를 온몸에 칠하고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등의 일을 모두 금이라고 한다.11) 그리고 계와 금 두 가지는 청정한 수행의 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청정도라고 잘못 견취하는 염오혜를 계금취라고 한다. 여러 바라문 중에 지식 있는 자는 대개 이러한 수행법을 청정도라고 주장하니, 그들은 결국 청정함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취를 취결이라고 한다.
028_0706_c_04L或於妄執生福滅諸河池中數數澡浴或食根果草菜藥物以自活命或復塗灰拔頭髮皆名爲禁此二俱非能淸淨道妄取爲能淸淨道此染污慧名戒禁取諸婆羅門有多聞者多執此法以爲淨道而彼不能得畢竟淨如是二取名爲取結
의결(vicikitsā)이란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사성제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의혹을 갖게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갈림길에 이르러, 풀이 무성하여 갈길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것처럼 고제에 대해 마음에 의혹이 생겨 ‘이것이 참일까, 거짓일까’, 나아가 집ㆍ멸ㆍ도제에 대해 ‘이것이 참일까, 거짓일까?’하고 의심하는 것으로, 의혹이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의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질결(īrṣya)이란 타인의 뛰어난 일에 대해 마음으로 참지 못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여기서 ‘참지 못한다[不忍]’고 함은 타인이 획득한 공경ㆍ공양ㆍ재산ㆍ지위ㆍ지식 내지 그 밖의 뛰어난 법에 대해 마음에 투기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즉 질투가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질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028_0706_c_11L疑結者謂於四聖諦令心猶豫如臨歧路見結草人躊躇不決如是於苦心生猶豫爲是爲非乃至廣說疑卽是結故名疑結嫉結者於他勝事令心不忍謂於他得恭敬供養財位多聞及餘勝法心生妒忌是不忍義嫉卽是結故名嫉結
간결(mātsarya)이란 자신이 획득한 법이나 재물에 대해 마음으로 인색하게 아끼는 심리작용으로, 자신의 소유물이 타인에게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인색함이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간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結)은 바로 속박[縛]의 뜻으로, 이는 바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즉 “눈[眼]이 색을 결박[結]하는 것이 아니며, 색이 눈을 결박하는 것은 아니다. 즉 그것을 결박하는 것은 바로 욕탐으로, 여기서 욕탐을 바로 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컨대 검은 소와 흰 소가 하나의 멍에에 묶여 있을 경우 검은 소가 흰 소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며, 흰 소가 검은 소에게 묶여 있는 것도 아니다.12)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028_0706_c_17L慳結謂於己法財令心悋惜謂我所有勿至於他慳卽是結故名慳結結義是縛義如世尊說非眼結色ㆍ非色結眼此中欲貪說名爲結如非黑牛結白牛ㆍ亦非白牛結黑牛乃至廣先所說結亦卽是縛
028_0707_a_02L이렇듯 결은 바로 속박(bandhana)의 뜻이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 결(結)이 바로 속박인 것이다. 그런데 계경에서는 다시 세 가지 속박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모든 탐을 말하는 탐박(貪縛)으로, 그 특징은 애결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둘째는 모든 진을 말하는 진박(瞋縛)으로, 그 특징은 에결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셋째는 모든 치를 말하는 치박(癡縛)으로, 그 특징은 무명결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028_0706_c_23L以卽結義是縛義故然契經中復說三縛一ㆍ貪縛謂一切貪如愛結相說二ㆍ瞋縛謂一切瞋如恚結相說三ㆍ癡縛謂一切癡如無明結相說
수면(隨眠:anuśaya)에는 욕탐(欲貪)수면ㆍ진(瞋)수면ㆍ유탐(有貪)수면ㆍ만(慢)수면ㆍ무명(無明)수면ㆍ견(見)수면ㆍ의(疑)수면 등 일곱 가지가 있다. 이 일곱 가지의 개별적 특징은 이미 결을 논하면서 설명한 바 있지만, 마땅히 계(界)13)ㆍ행상(行相)14) 그리고 부(部)15)의 차별에 의거하여 이같이 일곱 가지 수면으로 분별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욕망에 대한 탐을 욕탐이라 하는데, 이 같은 탐이 바로 수면이기 때문에 욕탐수면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욕계 5부로서 다섯 가지이니, 견고소단 내지 수소단이다. 진수면 역시 오로지 욕계 5부의 수면으로, 다섯 가지이다.
028_0707_a_04L隨眠有七種一ㆍ欲貪隨眠二ㆍ瞋隨眠三ㆍ有貪隨眠四ㆍ慢隨眠五ㆍ無明隨眠六ㆍ見隨眠七ㆍ疑隨眠此七別相結中已說然應依界行相部別分別如是七種隨眠謂貪諸欲故名欲貪此貪卽隨眠故名欲貪隨眠此唯欲界五部爲五謂見苦所斷乃至修所斷隨眠亦唯欲界五部爲五
유탐수면은 색ㆍ무색계의 각기 5부로서, 열 가지이다. 이것은 욕계의 탐, 즉 욕탐과는 달리 내적으로 향하는 작용[內門轉]이기 때문에, 또한 색계의 네 가지 정려나 무색계의 네 가지 무색정 상에서 실제로는 해탈하지 않았음에도 해탈했다고 하는 생각을 방지하기 위해 말한 것으로, 곧 내적으로 향하는 색ㆍ무색 2계에서의 탐을 유탐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수면은 3계 각 5부에 공통하는 수면으로, 열다섯 가지가 된다. 무명수면 역시 3계 각 5부에 공통하는 열다섯 가지가 있다. 견수면은 3계에 공통되어 각기 열두 가지, 도합 서른여섯 가지가 된다. 즉 욕계 견고소단에는 다섯 가지 견16)이 있으며, 견집ㆍ멸소단에는 오로지 사견과 견취 두 가지 견이, 견도소단에는 오로지 사견ㆍ견취ㆍ계금취 세 가지가 있어 모두 열두 가지이며, 색ㆍ무색 2계도 역시 그러하여 총 서른여섯 가지가 되는 것이다.
028_0707_a_12L有貪隨眠唯色無色界各五部爲十內門轉故爲遮於靜慮無色解脫想故說二界貪名有貪慢隨眠通三界各五部爲十五無明隨眠亦爾見隨眠通三界各十二爲三十六謂欲界見苦所斷具五見見集滅所斷唯有邪見及見取二見道所斷唯有邪見ㆍ見取ㆍ戒禁取三摠爲十二上二界亦爾爲三十
028_0707_b_02L의수면은 3계 각각의 견고ㆍ집ㆍ멸ㆍ도소단 4부에 공통하여, 열두 가지가 된다.
여기서 욕탐수면과 진수면은 오로지 그것이 끊어지는 유형, 즉 부(部)에만 차별이 있을 뿐 그것이 속한 세계[界]나 행상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유탐ㆍ의ㆍ만ㆍ무명의 수면은 계와 부의 차별은 있어도 행상의 차별은 없다. 그리고 견수면에는 계ㆍ행상ㆍ부의 차별이 모두 있다. 여기서 행상의 차별이란, 말하자면 아(我)와 아소(我所)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유신견이라 하며, 단멸과 항상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변집견, 절대 공무(空無)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사견, 앞의 세 가지 견해가 실제로는 저열한 것임에도 뛰어나다고 하는 승(勝)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견취, 그릇된 수행도를 청정하다고 하는 정(淨)의 행상에 의해 작용하는 것을 계금취라고 하는 것이다.
028_0707_a_21L疑隨眠通三界各四部爲十二見苦集滅道所斷此中欲貪及瞋隨唯有部別ㆍ無界行相別有貪ㆍ疑ㆍ慢ㆍ無明隨眠有界部別ㆍ無行相別見隨眠具有界ㆍ行相部別行相別者謂我我所行相轉者名有身見斷常行相轉者名邊執見無行相轉者名邪見勝行相轉者名見取淨行相轉者名戒禁取
수면은 그것이 현현 생기할 때 알기 어렵기 때문에 바로 ‘미세(微細)하다’는 뜻이다. 혹은 ‘따라 속박한다[隨縛]’는 뜻이 바로 수면의 의미이다. 즉 마치 하늘을 나는 새[空行]의 그림자가 물 속에 비춰[水行] 따르는 것처럼 심신상속(心身相續)에 따라 간단없이 전이 계박하기 때문이다. 혹은 참기름은 참깨에 있으며 더러움은 막일꾼에게 있듯이 심신상속과 ‘함께 한다[隨逐]’는 뜻이 곧 수면의 뜻이다. 혹은 ‘따라 증장[隨增]한다’는 뜻이 바로 수면의 뜻이다. 이를테면 수면은 오취온 상에서 소연과 상응에 근거하여 점차 따라 증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따라 증장한다고 함은 소연과 상응이라고 하는 매개를 따라 증장한다고 하는 의미이다.
028_0707_b_06L微細義是隨眠義彼現起時難覺知故或隨縛義是隨眠義謂隨身心相縛而轉如空行影水行隨故或隨逐義是隨眠義如油在麻ㆍ膩在摶故或隨增義是隨眠義謂於五取薀由所緣相應而隨增故言隨增者謂隨所緣及相應門而增長故
나아가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수면은 그것이 속하는 세계와 행상, 그것이 끊어지는 유형, 즉 부(部)의 차별에 따라 아흔여덟 가지 수면이 된다. 이를테면 욕계 견고소단에는 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ㆍ견취ㆍ계금취ㆍ의ㆍ탐ㆍ진ㆍ만ㆍ무명 등 열 가지 수면이 있으며, 견집소단에는 앞의 열 가지 수면 중 유신견ㆍ변집견ㆍ계금취를 제외한 일곱 가지 수면이, 견멸소단에도 역시 일곱 가지 수면이, 견도소단에는 앞의 일곱 가지 수면에 계금취를 더한 여덟 가지 수면이 있다. 그리고 수소단에는 탐ㆍ진ㆍ만ㆍ무명 등 네 가지 수면이 있다. 이같이 욕계에는 서른여섯 가지 수면이 있다. 또한 색계에는 욕계 서른여섯 가지 수면 중 5부의 진을 제외한 서른한 가지 수면이 있으며, 무색계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수면에는 총 아흔여덟 가지 수면이 있는 것이다.
028_0707_b_12L如是七種隨眠由界ㆍ行相部差別故成九十八隨眠謂欲界見苦所斷具十隨眠卽有身見ㆍ邊執見ㆍ邪見ㆍ見取ㆍ戒禁取ㆍ疑ㆍ貪ㆍ瞋ㆍ慢ㆍ無明見集所斷有七隨眠於前十中除有身見ㆍ邊執見ㆍ戒禁取見滅所滅所斷有七隨眠亦爾見道所斷有八隨眠謂卽前七加戒禁取修所斷有四隨眠謂貪ㆍ瞋ㆍ慢ㆍ無明是欲界有三十六隨眠色界有三十一隨眠謂於欲界三十六中除五部無色界亦爾故有九十八隨眠
028_0707_c_02L이 같은 3계 98수면을 다시 정리하면 여든여덟 가지는 견소단이며, 10가지는 수소단이다. 또한 각각의 계 중에서 견고ㆍ집소단의 모든 견ㆍ의와 그것들과 상응하는 불공무명(不共無明) 등 서른세 가지는 변행(遍行)이며, 나머지는 모두 비변행(非遍行)이다. 또한 각각의 계중에 견멸ㆍ도소단의 사견ㆍ의 및 그것들과 상응하는 불공무명등 열여덟 가지는 멸(滅)과 도(道)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무루연(無漏緣)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나머지는 모두 유루연이다. 여기서 유루연이란 소연과 상응에 의해 수증(隨增)하는 것을 말하며, 무루연이란 다만 자신의 취(聚) 상에서 상응함으로써 수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각각의 계 중에 견멸소단의 사견ㆍ의 및 그것에 상응하는 불공무명 등 아홉 가지는 멸제를 소연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무위연이며, 나머지는 모두 유위연이다.
028_0707_b_23L中八十八見所斷十修所斷三十三是遍行謂界界中見苦ㆍ集所斷諸見及彼相應不共無明餘皆非遍行十八是無漏緣謂界界中見滅ㆍ道所斷邪見ㆍ疑及彼相應不共無明此十八種緣滅ㆍ道故名無漏緣餘皆有漏此中有漏緣者由所緣相應故隨無漏緣者但於自聚由相應故隨九是無爲緣謂界中見滅所斷邪見ㆍ及彼相應不共無明緣滅諦故名無爲緣餘皆有爲緣
열 가지 수면이 생겨나는 순서는 먼저 무명으로 인하여 사제를 알지 못하니, 즉 고제를 탐구하려 하지 않으며, 나아가 도제를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 사제를 알지 못함에 따라 의혹이 생겨난다. 즉 사제를 알지 못하는 이는 거짓되고 올바른 두 가지 사실을 듣고 문득 의혹을 품어, 괴로움을 괴로움이 아니라 하고, 나아가 도를 도가 아니라고 한다. 이 같은 의혹에 따라 사견이 생기니, 이를테면 나쁜 친구를 만나 거짓된 것을 듣고 생각함으로써 ‘보시도 없고 애락(愛樂)도 없으며, 제사도 없다.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는 그릇된 판단을 낳게 되는 것이다.
028_0707_c_11L十種隨眠次第生者先由無明於諦不了謂苦於不欲乃至於道不欲由不了故次引生謂聞邪正二品便懷猶豫爲苦非苦乃至爲道非道從此猶豫引生邪謂惡友由邪聞思生邪決定無施與ㆍ無愛樂ㆍ無祠祀乃至廣說
이러한 사견에 따라 유신견이 생겨난다. 즉 오취온 중의 고(苦)의 이치를 부정하고, 아 혹은 아소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 같은 유신견에 따라 아의 영속 내지 단멸의 극단에 집착하는 변집견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계금취가 생겨나니, 말하자면 이러한 변집을 능히 청정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다시 계금취에 따라 견취가 생겨난다. 곧 그들은 그같이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곧 계금취를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다시 이러한 견취에 의해 탐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같은 자신의 견해를 깊이 애탐하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탐에서 만(慢)이 생겨난다. 즉 그들은 그 같은 자신의 견해상에서 자기를 깊이 애착하고 믿음으로 오만함을 낳아 타인을 능멸하기 때문이다.
028_0707_c_17L從此邪見有身見生謂取薀中撥無苦理便執有我或有我所從有身見邊執見謂執我有斷常邊故從邊執見戒禁取生謂此邊執爲能淨故從戒禁取引見取生謂能淨者是最勝故此見取次引貪生謂自見中情深愛從此貪後次引慢生謂自見中深著己恃生高擧凌篾他故
028_0708_a_02L이러한 만에 따라 진(瞋)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자신의 견해를 너무나 믿고 의지한 나머지 다른 이의 견해를 능히 참지 못하고 반드시 미워하고 혐오하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의 견해에 대해서도 취사(取捨)하는 과정에서 취하는 것에 대해 버리는 것을 증오하고 혐오하기 때문이다. 욕계 견고소단의 열 가지 수면이 일어나는 순서는 이상과 같다.
028_0708_a_02L從此慢後次引瞋生謂恃己見於他見中情不能忍必憎嫌故或於自見取捨位中起憎嫌故十種隨眠次第如是
나아가 모든 번뇌는 세 가지 인연에 따라 일어나는데, 첫째 아직 수면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 비리작의(非理作意)17)가 있기 때문이며, 셋째 대상[境界]이 현전하기 때문이다. 즉 번뇌는 이 같은 원인과 가행(加行), 그리고 대상의 힘에 의해 현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설이 번뇌의 모든 조건을 완전히 갖추어 설명한 것이기는 하나, 어떤 경우에는 오로지 대상의 힘에 의해서만 번뇌가 일어나는 일도 있다. 이 경우도 역시 심신상속을 두루 뇌란시키기 때문에 번뇌라고 이름하니, 이것이 바로 수면이다.
028_0708_a_05L由三因緣起諸煩惱一ㆍ未斷隨眠故二ㆍ非理作意故三ㆍ境界現前故由因加行境界三力煩惱現前此說具者亦有唯依境界力起煩亂遍惱身心相續故名煩惱此卽隨眠
수번뇌(隨煩惱:upakleśa)란 무엇인가. 모든 번뇌를 역시 수번뇌라고 한다. 말하자면 모든 행온(行蘊)에 포섭되는 그 밖의 나머지 염오한 의식작용과 여러 번뇌도 동일한 온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어떤 것이 있는가 하면, 광(誑)ㆍ교(憍)ㆍ해(害)ㆍ뇌(惱)ㆍ한(恨)ㆍ첨(諂) 등 수없이 많이 있으니, 계경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광이란 말하자면 타인을 유혹하는 것이다. 교는 이를테면 자신이 소유한 미모나 힘ㆍ가문ㆍ도덕규범ㆍ학식ㆍ재능 등을 그릇되이 집착하여, 마음이 오만 방자하게 되어 타인을 돌아보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 해란 타인을 능히 핍박하고, 이에 따라 때리고, 매도하는 등의 일을 말한다. 뇌란 마땅히 비난받을 일을 진실하다고 완강히 고집하며, 이에 따라 다른 이의 진실된 훈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이란 노여움의 근거가 될 만한 일을 자주 생각하여, 원망하며 버리지 않음을 말한다. 첨18)이란 마음이 삐뜨름한 것을 말한다.
028_0708_a_10L隨煩惱者卽諸煩惱亦名隨煩惱有隨煩惱謂餘一切行薀所攝染污心所與諸煩惱同薀攝故此復云何誑ㆍ憍ㆍ害ㆍ惱ㆍ恨ㆍ諂等有無量種如聖教誑謂惑他憍謂染著自身所有色力族姓淨戒多聞巧辯等已令心傲逸無所顧性害謂於他能爲逼迫由此能行打罵等事惱謂堅執諸有罪事由此不受如理諫誨恨謂於忿所緣事中數數尋思結怨不捨諂謂心曲
028_0708_b_02L이와 같은 여섯 가지 의식작용은 번뇌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더럽고 오탁한 형태의 거친 번뇌이기 때문에 번뇌구(煩惱垢)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이 같은 여섯 가지 번뇌구 중에서 광ㆍ교 두 가지 구는 탐의 일종이기 때문에 탐등류(貪等流)이며, 해ㆍ한 두 가지 구는 진의 일종이기 때문에 진등류, 뇌구(惱垢)는 자신의 현재 견해가 뛰어난 것이라고 집착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뇌란시키기 때문에 견취등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첨구(諂垢)는 여러 가지 견해가 증가할 경우 아첨 곡해가 많기 때문에 바로 모든 견(見)의 등류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계경에서 이미 ‘첨곡(諂曲)은 여러 악견을 말한다’고 설명한 바이다.
이상과 같은 번뇌구와 다음에 설명할 전(纏), 그리고 여타의 염오한 의식작용은 행온에 포섭되는데, 이 같은 여러 심소법은 번뇌에 따라 생겨나기 때문에 수번뇌라고 하는 것이다.
028_0708_a_20L如是六種從煩惱生穢污相麤名煩惱垢於此六種煩惱垢中誑ㆍ憍二種是貪等流貪種類故害ㆍ恨二種是瞋等流瞋種類故惱垢卽是見取等流執已見勝者惱亂自他故諂垢卽是諸見等流諸見增多諂曲故如說諂曲謂諸惡見此垢及纏幷餘染污行薀所攝諸心所法從煩惱生故皆名隨煩惱
전(纏:paryavasthāna)에는 혼침(沈)ㆍ수면(睡眠)ㆍ도거(掉擧)ㆍ악작(惡作)ㆍ질(嫉)ㆍ간(慳)ㆍ무참(無慙)ㆍ무괴(無愧)ㆍ분(忿)ㆍ부(覆) 등 열 가지가 있다. 여기서 혼침(sthyāna)이란 심신상속의 상태가 민활하지 않음을 말하는데, 둔하고 무겁다는 뜻이다. 수면(middha)이란 심신상속의 상태를 능히 자유로이 간직하지 못하고 마음을 어둡게 하여 대상에 대해 작용하지 못하는 의식작용을 말하는데, 이것 역시 염오한 것이기 때문에 전이라 이름할 수 있다. 도거(auddhatya)란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여 경거망동하게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
028_0708_b_06L纏有十種謂惛沈ㆍ睡眠ㆍ掉擧ㆍ惡作ㆍ嫉ㆍ慳ㆍ無慚ㆍ無愧ㆍ忿ㆍ覆身心相續無堪任性名爲惛沈是昧重義不能任持身心相續令心昧略名爲睡眠此得纏名唯依染污掉擧謂令心不寂靜
악작(kaukṛtya)이란 과거에 지었던 악한 행위 자체를 말한다. 즉 그같이 악하게 지어진 과거 행위를 근거로 하여 생겨난 어떤 개별적인 의식작용을 악작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지나간 일에 잘못을 뉘우친다[追悔]는 뜻이다. 이는 결과 그 자체 상에다 원인의 명칭을 일시 설정한 것이니, 이를테면 공간에 근거하여 허공(원인)이라 이름하며, 부정상(不淨相)19)에 근거하여 부정관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세간 일반에서도 역시 장소(결과)에 근거하여 여기서 장소에 ‘근거한다’고 함은, 예컨대 시골이 모두 올라왔다고 하면 모든 시골 사람이 올라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악작 또한 오로지 염오한 것이기 때문에 전이란 명칭 아래 설정하는 것이다. 질(īrṣyā)과 간(mātsarya)에 대해서는 이미 결(結)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바 있다.
028_0708_b_11L惡所作體名爲惡作有別心所緣惡作生立惡作名是追悔義此於果體假立因名如緣空名空ㆍ緣不淨名不淨世間亦以處而說依處者言一切村邑來等此立纏名亦唯依嫉ㆍ慳二相結中已說
다음 무참(āhrikya)이란 모든 공덕과 공덕있는 자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공경하지 않게 하는 의식작용으로 공경에 반대되는 법이다. 무괴(anapatrāpya)란 모든 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죄란 능히 악취를 초래하는 것으로, 착한 이들이 꾸짖는 바를 말한다. 그리고 분(krodha)이란 유정이나 비유정에 대해 마음으로 분개를 촉발하는 진(瞋)과 해(害)를 제외한 의식작용을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mrakṣa)는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의식작용이다.
이상 열 가지 의식작용은 심신의 상속을 얽어 묶기[纏縛] 때문에 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혼침ㆍ수면ㆍ무괴는 바로 무명등류이며, 악작은 의(疑)등류, 무참ㆍ간ㆍ도거는 탐등류, 질과 분은 진등류, 부는 바로 탐과 무명의 등류이다.
028_0708_b_16L於諸功德及有德者令心不敬說名無慚卽是恭敬所敵對法於諸罪中不見怖畏名無愧能招惡趣善士所訶說名爲除瞋及害於情非情令心憤發名爲忿隱藏自罪說名爲覆此十纏縛身心相續故名爲纏此中惛沈ㆍ睡眠ㆍ無愧是無明等流惡作是疑等流無慚ㆍ慳ㆍ掉擧是貪等流嫉ㆍ忿是瞋等覆是貪無明等流
028_0708_c_02L모든 심ㆍ심소법의 행상(行相)은 너무나 미세하여 그 하나하나의 상속을 분별하기도 어렵거늘 하물며 한 찰나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 있어서랴. 이지가 뛰어난 지혜로운 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라 그 같은 결과의 차별을 관찰하여 그 본질의 차이를 알고, 모든 학자를 위해 전도됨이 없이 널리 설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혜가 열등한 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도됨이 없이 해석한 아비달마의 여러 스승을 아직 직접 모시지 못하였으므로 심소에 대해 미혹하여 비방하고, 혹은 다만 세 가지 만을 설하고, 혹은 완전히 실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028_0708_c_02L諸心所法行相微細一一相續分別尚難況一剎那俱時而有微密智者依佛所說觀果差別知其性異爲諸學者無倒宣說有劣慧者未親承事無倒解釋佛語諸師故於心所迷謬誹撥或說唯三或全非有
누(漏:āsrava)에는 욕루ㆍ유루ㆍ무명루 세 가지가 있다. 여기서 욕루란 무명을 제외한 욕계의 번뇌와 전(纏)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서른한 가지 수면과 열 가지 전 등 마흔한 가지가 있다. 유루란 무명을 제외한 색계ㆍ무색계의 번뇌와 전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상 2계의 각 스물여섯 가지 수면과 혼침ㆍ도거 등 쉬흔네 가지가 있다. 즉 이것들은 다 같이 무기이고, 내적으로 향하는 작용[內門轉]이며, 마음이 삼매에 든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색ㆍ무색 2계의 번뇌를 합하여 유루라고 하는 하나의 이름으로 설정한 것이다.
028_0708_c_08L漏有三種謂欲漏ㆍ有漏ㆍ無明漏欲界煩惱幷纏除無明名欲漏有四十一謂三十一隨眠幷十纏色無色界煩惱幷纏除無明名有漏有五十四謂上二界各二十六隨眠幷惛沈ㆍ掉擧同無記故ㆍ內門轉故ㆍ依定地故二界合立一有漏名
무명루란 삼계의 열다섯 가지 무명을 말한다. 즉 무명은 바로 모든 존재의 근본이므로 무명루를 별도로 설정한 것이다.
이 같은 번뇌는 유정을 붙들어 삼계에 오래 머물게 하여 해탈로 나아가는 것을 장애하므로 누라고 한다. 혹은 유정을 유정천(有頂天)으로부터 무간지옥에 이르기까지 유전하게 하므로 누라고 한다. 혹은 그들의 상속은 육창문(六瘡門)을 통해 허물을 끊없이 누설하기 때문에 누라고 하는 것이다.
028_0708_c_15L三界無明名無明漏有十五物以無明是諸有本故別立漏等稽留有情久住三界障趣解脫故名爲漏或令流轉從有頂天至無間獄故名爲漏或彼相續於六瘡門泄過無窮故名爲漏
028_0709_a_02L폭류(瀑流:ogha)에는 욕(欲)ㆍ유(有)ㆍ견(見)ㆍ무명(無明) 등 네 가지 폭류가 있다. 여기서 욕폭류는 견을 제외한 욕루 스물아홉 가지를 말하며, 유폭류는 견을 제외한 유루 서른 가지, 견폭류는 삼계 서른여섯 가지의 여러 견, 그리고 이상의 것과 상응하는 삼계의 불공무명 열다섯 가지를 무명폭류라고 한다. 이는 곧 마치 물이 세차게 흘러가듯이 모든 유정의 뛰어난 것[善]을 씻어 앗아가기 때문에 폭류라고 하는 것이다.
액(軛:yoga)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폭류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즉 유정을 화합시켜 여러 취(趣)ㆍ여러 생(生)ㆍ여러 지(地)에서 괴로움을 받게 되므로 액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는 유정을 취(趣) 등 여러 상태와 화합시켜, 여러 가지 가볍고 무거운 괴로움을 받게 한다는 뜻이다.
028_0708_c_20L瀑流有四謂欲ㆍ有ㆍ見ㆍ無明瀑流欲漏中除見名欲瀑流有二十九物有漏中除見名有瀑流有三十物三界諸見名見瀑流有三十六物三界相應不共無明名無明瀑流有十五物奪一切有情勝事故名瀑流如水瀑軛有四種如瀑流說和合有情令於諸趣諸生諸地受苦故名爲軛是和合令受種種輕重苦義
說一切有部入阿毘達磨論卷上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유의미의 소리.
  2. 2)호향이면서 신체를 손상시키거나 오향이면서 신체를이롭게 하는 것.
  3. 3)견ㆍ습ㆍ난ㆍ동의 4대종을 제외한 것.
  4. 4)이 일곱 가지와 사대종은 식신(身識)과 그것에 의해 낳아진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대상이다.
  5. 5)용사(龍蛇)의 주(呪)로써 사명(邪命)하는 것.
  6. 6)주먹이나 손뼉을 치는 종교의례.
  7. 7)그렇게 하려는 마음.
  8. 8)그래서 행해진 행위.
  9. 9)여기에는 변이를 낳는다(viparināmotpādanā)와 다른 색과 저촉하여 그 생기를 장애한다(pratighāto rūpeṇa)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0. 10)비도계도(非道計道), 즉 5계ㆍ10계 등 참된 열반의 도가 아닌 것을 무루열반의 도라고 주장하는 것.
  11. 11)비인계도(非因計道), 즉 생천의 올바른 근거가 아닌 것을 생천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것.
  12. 12)두 소를 묶고 있는 것은 멍에이듯이, 눈과 색 등을 묶고 있는 것은 욕탐이라는 속박인 것이다(『잡아함경』권9).
  13. 13)그것이 소속하는 세계, 즉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삼계를 말한다.
  14. 14)견의 작용방식으로 유신견ㆍ변집견ㆍ견취ㆍ계금취ㆍ사견의 5견을 말한다.
  15. 15)그것이 끊어지는 유형으로, 견고(見苦)ㆍ집(集)ㆍ멸(滅)ㆍ도소단(道所斷)과 수소단(修所斷)의 다섯 가지.
  16. 16)유신ㆍ변집ㆍ사ㆍ견취ㆍ계금취.
  17. 17)비리작의(非理作意), ayoniśomanaskāra 즉 올바르지 않은 의욕. 구역에서는 부정사유(不正思惟).
  18. 18)자신의 본심을 숨기어 순종을 가장하는 의식작용.
  19. 19)부정관을 닦음으로써 나타난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