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중변분별론소 권삼(中邊分別論疏 卷三) / 中邊分別論疏卷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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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변분별론소 권삼中邊分別論疏 卷三
신라 원효 지음 新羅 元曉 撰
중변분별론소 제3권(中邊分別論疏 卷三)
제1편 「대치품對治品」
「대치품對治品」이란 37품류의 도道를 연마해서 습득하는 것이다. 각각 경우에 따라 ▣▣▣▣▣▣▣이 의미를 나타내기에 ‘대치품’이라 한다. 이 중 먼저 그 의미를 밝히고, 그런 뒤에 본문1을 풀이하겠다.

제1장 의미를 밝힘
먼저 보리분菩提分의 의미를 밝히겠는데, 이는 크게 보아 6종의 문門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이름을 나열하는 것이고, 둘째는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고, 셋째는 본체를 밝히는 것이고, 넷째는 계위를 밝히는 것이고, 다섯째는 순서를 설명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문門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1. 이름을 나열함
첫째, 이름을 나열한다.
무엇을 37종의 보리분법이라 하는가? 사념주四念住, 사정단四正斷, 사신족四神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분지(八支)의 성도聖道를 말한다.

1) 사념주四念住

사념주四念住란 첫째 신념주身念住, 둘째 수념주受念住, 셋째 심념주心念住, 넷째 법념주法念住이다.

2) 사정단四正斷

사정단四正斷이란 첫째 이미 발생한 악불선법惡不善法을 끊고자 욕구를 내고 책려策勵하고 근勤과 정진을 발기하고 책심策心하고 지심持心하는 정단이며, 둘째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불선법을 발생하지 않게 하고자 욕구를 내고 책려하고 내지 지심하는 정단이며, 셋째 아직 발생하지 않은 선법을 발생하게 하고자 욕구를 내고 책려하고 내지 지심하는 정단이며, 넷째 이미 발생한 선법을 거주하게 하고 망실하지 않게 하고 수습을 원만하게 하고 수습을 배가하게 하고 증장하게 하고 광대하게 하고자 욕구를 내고 책려하고 내지 지심하는 정단이다.

3) 사신족四神足

사신족四神足이란 첫째 욕삼마지欲三摩地2의 단행斷行을 성취하는 신족, 둘째 근삼마지勤三摩止의 단행을 성취하는 신족, 셋째 심삼마지心三摩地의 단행을 성취하는 신족,

001_0817_b_01L[中邊分別論疏卷三]

001_0817_b_02L1)中邊2)分別論疏卷三

001_0817_b_03L

001_0817_b_04L3)新羅元曉撰

001_0817_b_05L4)對治品
[1] 硏習三十七品之道隨其
001_0817_b_06L所對▣▣▣▣▣▣▣顯是義故名對
001_0817_b_07L治品此中先明其義然後消文
[顯義]
5) [2]
001_0817_b_08L提分義略有六門一者列名二者釋義
001_0817_b_09L三出體性四顯明位地6) [3] 次第
001_0817_b_10L辨諸門

001_0817_b_11L初列名者
何等名爲三十七種菩提分
001_0817_b_12L謂四念住四正斷四神足五根
001_0817_b_13L七覺支八支聖道
四念住一身
001_0817_b_14L念住二受念住三心念住四法念住
001_0817_b_15L四正斷一於已生惡不善法爲令斷
001_0817_b_16L生欲策勵發勤精進策心持心正
001_0817_b_17L二於末生惡不善法爲不生故
001_0817_b_18L欲策勵乃至持心正斷三於未生善法
001_0817_b_19L爲令生故生欲策勵乃至持心正斷
001_0817_b_20L四於已生善法爲欲令住令不忘失
001_0817_b_21L令脩圓滿令倍脩令增長令廣大
001_0817_b_22L欲策勵乃至持心正斷四神足
001_0817_b_23L欲三摩地斷行成7)成) [4] 就神足二勤三摩
001_0817_b_24L地斷行成就神足三心三摩地斷行成

001_0817_c_01L넷째 관삼마지觀三摩地의 단행을 성취하는 신족이다.

4) 오근五根

오근五根이란 첫째 신근信根, 둘째 정진근精進根, 셋째 염근念根, 넷째 정근定勤, 다섯째 혜근慧根이다.

5) 오력五力

오력五力이란 신력信力,……내지 혜력慧力이다.3

6) 칠각지七覺支

칠각지七覺支란 첫째 염각지念覺支, 둘째 택법각지擇法覺支, 셋째 정진각지精進覺支, 넷째 희각지喜覺支, 다섯째 경안각지輕安覺支, 여섯째 정각지定覺支, 일곱째 사각지捨覺支이다.

7) 팔지성도八支聖道

팔분지의 성도(八支聖道)란 첫째 정견正見, 둘째 정사유正思惟, 셋째 정어正語, 넷째 정업正業, 다섯째 정명正命, 여섯째 정정진正精進, 일곱째 정념正念, 여덟째 정정正定이다.

2. 의미를 풀이함
둘째, 의미를 풀이한다.

1) 사념주

몸(身)에 대해서 염念과 상응하여 순신관循身觀을 확립하는 것이 신념주身念住이다. 내지 법法에 대해서, 모두 이렇게 말한다.4 무엇을 염念이라 하는가? 이 중 신념주의 염은 몸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바른 교법을 받아 새겨 두고 그 교법의 의미를 사유하여 작증作證을 수습하는 것을 말한다. 표현과 의미에 대해서 작증을 수습할 때 마음에 망실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관觀이라 하는가? 몸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문聞·사思·수修의 혜慧를 말한다. 이 혜慧에 의지하여 모든 몸의 모든 상相에 대해서 바르게 관찰하고 바르게 추구推求한다. 곧바로 따라가며 관찰하고 곧바로 따라가며 직관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관觀의 수습이라 하는가? 혹은 수신관隨身觀을 말하고, 혹은 순신관을 말한다. 수신관이란, 본질本質의 몸을 곧바로 따라가며 영상影像의 몸을 관찰하는 것을 수신관이라 한다. 『대법론』5에서 “몸에 대해서 수신관을 수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상의 몸을 분별하여 본질의 몸과 평등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몸의 경계를 따라가며 관찰하는 것은 몸의 상을 따라가며 관찰하는 것과 상사相似하기 때문에 몸에 대해 수신관한다고 한다. 영상의 몸을 따라가며 관찰하는 문門에 의지하여 본질의 몸을 상세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001_0817_c_01L就神足四觀三摩地斷行成就神足
001_0817_c_02L
一信根二精進根三念根四定
001_0817_c_03L五慧根五力信力乃至慧力
001_0817_c_04L覺支
一念覺支二擇法覺支三精
001_0817_c_05L進覺支四喜覺支五安覺支六定覺
001_0817_c_06L七捨覺支八支聖道一正見
001_0817_c_07L正思惟三正語四正業五正命六正
001_0817_c_08L精進七正念八正定

001_0817_c_09L第二釋義
所謂於身與念相應住8) [5]
001_0817_c_10L身念住乃至於法皆如是說
001_0817_c_11L何爲念謂依身增上受持正法思惟法
001_0817_c_12L脩習作證於文義於脩作證中
001_0817_c_13L無忘失故云何爲觀謂依身增上
001_0817_c_14L思脩慧由此慧故於一切身一切相
001_0817_c_15L正觀察正推求隨觀隨覺故云何
001_0817_c_16L脩觀或者隨身或言*脩身言隨身者
001_0817_c_17L隨本質身觀影像身名隨身觀如對
001_0817_c_18L法說云何於身隨身觀謂分別別影
001_0817_c_19L像身▣▣▣身平等隨觀於身境
001_0817_c_20L觀身相似性故名於身隨身觀由隨
001_0817_c_21L觀察影像身門審諦觀察本質身故
001_0817_c_22L{底}續藏經第一編七十五套一册「分別論」
001_0817_c_23L補入{編}
「新羅元曉撰」補入{編}論卷下
001_0817_c_24L
▣疑「初」「說」原本字體未詳「成」疑
001_0817_c_25L
「修」疑「循」次同

001_0818_a_01L순신관이란 순환循環의 의미이다. 상相의 몸을 관찰할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 또한 진여眞如의 몸도 관찰하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 「보살지 섭결택분攝決擇分」에 “보살은 어떻게 몸에 대해서 순신관을 확립하는가? 상의 몸에서 순환하여 진여의 몸을 관찰하기 때문이다.”라고 설한 바와 같다. 무엇을 염주念住라 하는가? 염念을 수호하기 위해서, 경계에 염오染汚가 없게 하기 위해서, 소연에 안주하기 위해서이다. “염念을 수호하기 위해서”란, 말한 바와 같이 먼저 염을 수호하고 또 항상 염에 매진한다. “경계에 염오染汚가 없게 하기 위해서”란, 말한 바와 같이 염은 마음 작용의 평등한 위位를 수호하여 그 상을 취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취하지 않는다.……내지 의근意根을 수호하고 의근의 율의律儀를 수습한다. “소연에 안주하기 위해서”란, 말한 바와 같이 4종의 소연에 그 염이 안주한다. 이 3상相에 의지하여 그 염에 능숙하게 안주하기 때문에 염주라 한다.6 또한 염처念處라고도 한다. 처處는 주住의 의미와 같다. 『대지도론』에서 “염에 순응하는 지혜가 소연에 집중하여 안주한다면 이를 염처라 한다.”고 설한 바와 같다. 총괄해서 말한다면, 이것에 대해 염이 안주하든 이것에 의해 염이 안주하든 이를 모두 염주라 한다. “이것에 대해 염이 안주한다.”란 소연념주所緣念住를 말한다. “이것에 의해 염이 안주한다.”란 혜慧 또는 염念을 말한다. 정定을 걷어 들여 보존한다는 것은 자성념주自性念住이다. 여타의 상응법相應法인 심과 심소법은 상응념주相應念住7이다. 이것은 「문소성지聞所成地」에서 설한 바와 같다.8 이는 간략하게 염주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2) 사정단

다음에 사정단四正斷의 의미를 밝힌다. 무엇이 “이미 발생한 악불선법”인가? “악불선법이란” 악행惡行을 일으키는 욕계의 번뇌와 수번뇌를 말한다. 추대한 전纏에 속한 것을 “이미 발생한 것”이라 한다. “끊기 위해서”란 ‘대치를 수습해서 미미하고 엷게 하기 위해서’이다. “욕구를 내고”란 끊음을 확증하고자 욕구를 내기 때문이다. “책려하고”란 악을 받아들이지 않고 끊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근勤과 정진을 발기하고”란 많은 종류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그 대치對治를 수습하기 때문이다.

001_0818_a_01L*脩觀者是*脩環義謂非直觀相身而
001_0818_a_02L於中復觀眞如身故如菩薩地決擇
001_0818_a_03L中說云何菩薩於身住*脩身觀謂於
001_0818_a_04L相身*脩環觀眞如身故云何念住
001_0818_a_05L守護念爲於境無染爲安住所緣故
001_0818_a_06L爲守護念者說言先守護念若常委念
001_0818_a_07L爲於境無染者謂如說言念守護心行
001_0818_a_08L來等住不住取其相不取隨好廣說乃
001_0818_a_09L守護意根脩律儀爲安住所緣者
001_0818_a_10L謂如說言於四所緣安住其念由此
001_0818_a_11L三相善住其念故名念住亦名念處
001_0818_a_12L處猶住義如智度說念隨順智緣中
001_0818_a_13L正住是名念處總而言之若於此念
001_0818_a_14L若由此念住皆名念住於此念住
001_0818_a_15L謂所緣念住由此念住者謂若慧
001_0818_a_16L若念攝持於定是自性念住所餘相
001_0818_a_17L諸心心法是相應念住此如聞所
001_0818_a_18L成地中說是名略說念住義也

001_0818_a_19L
次明四正斷義者云何已生惡不善法
001_0818_a_20L謂能起惡行欲界煩惱及隨煩惱麤纒
001_0818_a_21L所攝名爲已生爲令斷故者謂脩對
001_0818_a_22L令微薄故生欲者謂起證斷樂欲
001_0818_a_23L策勵者謂不忍受惡及歸趣斷故
001_0818_a_24L發懃精進者謂多種堅固脩彼對治故

001_0818_b_01L이 위의 3구9는 부정지不定地10 중 문혜聞慧와 사혜思慧 2혜慧의 하품下品을 대치하는 것을 나타낸다. “책심策心하고”란 그 대치를 수습해서 수혜修慧가 현행現行할 때 만약 마음이 침몰하여 번뇌에 염오染汚된다면 책심이 이를 들어 올리기 때문이다. “지심持心하는”이란 이 대치가 현행할 때 만약 마음이 부상浮上하여 번뇌에 염오된다면 지심이 이를 내려가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불선법”인가? “악불선법”이란 증성增盛된 수면隨眠에 속한 것을 말한다. 추대한 전纏을 일으키는 원인이기에 “아직 발생하지 않은”이라 한다. “발생하지 않게 하고자”란 ‘추대한 전纏이 현행하지 않게 하고자’이다. “욕구를 내고”란 ‘현행하지 않음을 확증하고자 욕구를 일으키고’이다. “책려하고”란 망실하지 않고 경계에 거주해서 악불선법이 현행하지 않도록 염을 잘 안주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아래의 4구11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무엇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선법”인가? 문聞과 사思와 수修에 의해 발생하는 삼혜三慧를 말한다. 과실이 없기 때문에 선법이라 한다.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이라 한다. “발생하게 하고자”란 ‘그것을 얻게 하고자’이다. “욕구를 내고”란 ‘얻음을 확증하고자 욕구를 일으키고’이다. “책려하고”란 그것에 속한 것을 구하는 바른 방편이기 때문이다. “정근을 발기하고”란 ‘장기간 신중하게 많은 종류를 견고하게 수습하고’이다. 이 위의 3구는 부정지의 문혜와 사혜 2혜에 속하는 선법을 얻는 것을 나타낸다. “책심하고 지심하는”이란 수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다른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무엇이 “이미 발생한 선법”인가? 이미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거주하게 하고”란 문혜를 말한다. “망실하지 않게 하고”란 사혜를 말한다. “수습을 원만하게 하고”란 수혜를 말한다. 이 위의 3구는 그저 이미 얻은 선을 수호한다는 것을 나타낼 따름이다. “수습을 배가하게 하고 증장하게 하고 광대하게 하고자”란 순서대로 그 앞의 것에 대해서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욕구를 내고” 등의 구는 모두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것의 의미를 『현양성교론』에서 자세하게 설하고 있다. 정단正斷이란 정근正勤이라고도 한다. 근勤은 본체의 이름이고 단斷은 작용의 이름이다. 『대지도론』에서 “그릇된 법을 타파하는 정도正道의 행行이기에

001_0818_b_01L此上三句顯不定地中聞思兩慧
001_0818_b_02L品對治策心者謂脩彼對治脩慧現行
001_0818_b_03L若心沈沒煩惱染汙策心令擧故
001_0818_b_04L心者謂卽此對治現行之時若心浮擧
001_0818_b_05L煩惱染汙持心令下故云何未生惡不
001_0818_b_06L善法謂增盛隨眠所攝能起麤纒之因
001_0818_b_07L名爲未生爲不生故者爲令麤纒
001_0818_b_08L現行故生欲者謂起爲證不現行欲策
001_0818_b_09L勵者謂由不忘住爲令不現行善住念
001_0818_b_10L此下四句如前所說云何未生善法
001_0818_b_11L謂聞思脩所生三慧由無過故名爲善
001_0818_b_12L所未得者名爲未生令生故生欲
001_0818_b_13L謂起證得欲策勵者謂求彼攝受
001_0818_b_14L正方便故發正起懃者謂長時殷重
001_0818_b_15L多堅脩習此上三句顯得不定地
001_0818_b_16L思兩慧所攝善法策心持心者爲得
001_0818_b_17L脩慧故餘如前說云何已生善法
001_0818_b_18L已得故爲念住者謂聞慧令不忘者謂
001_0818_b_19L思慧令脩滿者謂脩慧此上三句
001_0818_b_20L唯守護已所得善令倍脩令增長令廣
001_0818_b_21L大者如其次第不唯於彼生知足故
001_0818_b_22L生欲等句皆如前說此義廣如顯揚論
001_0818_b_23L言正斷者亦名正懃懃是體名
001_0818_b_24L是業稱智度論云破諸1) [6] 正道中

001_0818_c_01L정근正勤의 행行이라 한다.”고 한다. 단斷이란 『유가사지론』에서 설한 바와 같다. 첫째는 율의단律儀斷이라 하고, 둘째는 단단斷斷이라 한다. 이미 발생한 악불선법에 대해 율의律儀를 수습하여 그것을 끊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율의단이라 한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불선법에 대해 그것이 현행現行하지 않도록 끊고 그것이 현전現前하지 않도록 끊는다. 끊음을 위해 끊기에 단단이라 한다. 셋째는 수단修斷이라 하고, 넷째는 방호단防護斷이라 한다. 선법에 대해 자주자주 수습하여 전에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현전하게 할 때 능히 끊음이 있기 때문에 수단이라 한다. 이미 얻은 선법들에 대해 방일放逸을 여의고 수습을 원만하게 한다. 방호防護가 이미 발생했을 때 능히 끊음이 있기 때문에 방호단이라 한다. 총괄해서 말한다면, 흑품黑品은 버리고 백품白品은 취할 때 증상된 의향(增上意樂)이 원만하고 가행加行이 원만하기에 4종의 정단을 설한 것이다. 이 중 욕구를 내기에 의향(意樂)이 원만하고, 스스로 책려하고 내지 지심하기에 가행이 원만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것은 『유가사지론』에 나오는 것이다. 이는 정단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3) 사신족

사신족四神足의 의미를 풀이한다. 무엇을 욕欲·근勤·심心·관觀이라 하는가? 4종의 신족에 그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혹은 한 사람이 이 4법을 다 갖춘다. 혹은 각각의 사람이 넷 중의 하나를 주로 해서 갖춘다.
『유가사지론』 98권에서 “또 4종의 힘에 의해 지심持心하여 삼마지(定)에 들게 한다. 그래서 4종의 신족을 건립한다. 무엇을 넷이라 하는가? 첫째 청정한 의향의 힘, 둘째 노력함의 힘, 셋째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의 힘, 넷째 정지正智의 힘이다. 이 중 첫 번째 힘에 의해 삼마지에 들고자 하는 욕구를 발생하게 한다. 얻음을 확증하기 위해 노력함을 수습한다. 두 번째 힘에 의해 최초에 안주한 마음(心)을 안정安定되게 한다. 세 번째 힘에 의해

001_0818_c_01L行故名正懃行言斷者2) [7] 瑜伽說
001_0818_c_02L名律儀斷第二名斷斷由於已生惡不
001_0818_c_03L善法應脩律儀令其斷滅不應忍受
001_0818_c_04L名律儀斷於未生惡令不現行
001_0818_c_05L令彼不現前斷爲故斷名爲斷斷
001_0818_c_06L者名脩斷四名防護斷由於善法
001_0818_c_07L脩數習先所未得能定現前能有所斷
001_0818_c_08L故名脩斷由於已得諸善法中遠離放
001_0818_c_09L脩習圓滿防護已生能有所斷故
001_0818_c_10L名防護斷總而言之爲欲顯示於黑白
001_0818_c_11L品捨取事中增上意樂圓滿及加行圓
001_0818_c_12L滿是故宣說四種正斷當知此中由生
001_0818_c_13L欲故意樂圓滿由自策勵乃至持心
001_0818_c_14L加行圓滿上來所說出瑜伽論
001_0818_c_15L名略說正斷也
四神足義者云何名爲
001_0818_c_16L欲懃心觀知足四種有其二義或於一
001_0818_c_17L人具此四法或於別人隨一增上
001_0818_c_18L瑜伽論九十八卷云復次由四種力
001_0818_c_19L心令定是故建立四種神足云何爲四
001_0818_c_20L一淨意樂力二勤務力三心喜樂力
001_0818_c_21L四正智力當知此中由第一力於三摩
001_0818_c_22L發生樂欲爲證得故脩習勤務
001_0818_c_23L第二力最初住心令其安定由第三
001_0818_c_24L「耶」通「邪」下同「知」疑「如」{編}

001_0819_a_01L이미 안주한 삼마지의 마음은 다시 산동散動이 없으니 바깥으로 표류하지 않게 한다. 네 번째 힘에 의해 삼마지(等持)에 의해 대치되는 번뇌를 관찰하고, 이미 끊은 것과 아직 끊지 않은 것을 여실하게 안다. 또 삼마지의 들어가고 머물고 나오는 상을 잘 인식한다. 이와 같이 또 사마타(止) 등에 있는 상들이나, 사마타와 위파사나(觀)의 수번뇌들과 그것을 대치하는 것 등을 모두 여실하게 안다. 삼마지를 즐긴다면 삼마지에 있어서 단지 그만큼의 삼마지가 짓는 일이 있을 뿐, 이것 이외의 다시 지나침이나 더함이 없다.”고 한다. 이 논문論文은 한 명의 수행자가 4종의 힘을 모두 갖추고 삼마지를 성취하기에 4종의 신족을 건립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무엇이 각각의 사람이 넷 중의 하나를 주로 해서 갖추는 것인가? 『현양성교론』에서 “‘첫째 의욕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얻는다’란, 가령 수행을 하는 자는 선세先世에 대사大師가 계신 곳이나, 혹은 범행을 하는 지혜로운 자가 있는 곳에서 상품上品의 선근을 수습하고서 믿음을 내고 의욕을 내어 정법을 듣는다. 믿고 의욕하는 대로 정법을 듣고서 전전展轉하여 마음이 한 경계에 안주함을 증득한다. 이 의욕함에 의지해서 삼마지를 성취한다. ‘성취한다’란 이것에 있어서 자재로움을 얻는 것을 말한다. ‘둘째 근勤이 증상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얻는다’란, 가령 수행하는 자는 교수敎授와 교계敎誡의 법에 의지해서, 혹은 한적한 곳에 있거나 혹은 숲속에 있거나 혹은 고요한 방에 있거나 하는 이와 같은 곳에서 장기간 용맹스럽게 성숙하게 치열하게 정근해서 마음이 한 경계에 안주함을 증득한다. 정근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성취한다. ‘셋째 마음이 증상하기 때문에 삼매를 얻는다’란, 가령 수행을 하는 자는 먼저 이미 사마타의 수행을 수습한다. 이 인연에 의지하여 안의 법을 사유해서 급속히 마음이 한 경계에 안주함을 증득한다. 마음을 수습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성취한다. ‘넷째 관찰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얻는다’란, 가령 수행을 하는 자는 많이 듣고서 들어 간직해서

001_0819_a_01L已住定心無復散動不令於我
001_0819_a_02L復飄轉由第四力觀察等持所治煩
001_0819_a_03L於斷未斷如實了知又於等持入
001_0819_a_04L住出相能善了別如是復於奢摩他等
001_0819_a_05L所有諸相若於止觀諸隨煩惱及彼對
001_0819_a_06L治等皆如實知樂等持者於等持中
001_0819_a_07L但有爾所等持作事除此更無若過若
001_0819_a_08L此文顯示於一行者具四種力成就
001_0819_a_09L等持是故建立四種神足云何別人隨
001_0819_a_10L一增上如顯揚論說欲增上故得三摩
001_0819_a_11L地者如有行者先世脩習上品善根
001_0819_a_12L於大師所或於有智同梵行處生信生
001_0819_a_13L聽聞正法如所信樂聞正法已
001_0819_a_14L轉證得1) [8] 一境性由此欲故三摩地
001_0819_a_15L成就言成就者謂於此中而得自在
001_0819_a_16L第二勤增上故得三摩地者如有行者
001_0819_a_17L依於敎授及敎誡法或在空閑或在林
001_0819_a_18L或止靜室於如是處長時勇猛
001_0819_a_19L熟熾然正勤證得心住一境性由正勤
001_0819_a_20L三摩地成就第三心增上故得三摩
001_0819_a_21L地者如有行者先已脩習奢摩他行
001_0819_a_22L由此因緣思惟內法速疾證得心住一
001_0819_a_23L境性由脩心故三摩地成就第四觀
001_0819_a_24L增上故得三摩地者如有行者多聞聞

001_0819_b_01L그 들음을 축적한다.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홀로 거처하며 그 법을 혜에 의해 간택簡擇하고 극히 세밀하게 간택하고 완전하게 식별하고 관찰한다. 이에 의해 마음이 한 경계에 안주함을 증득한다. 관찰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성취한다.”고 한다. 이 논문은 4종의 수행에 의지하는 자가 이 넷 중의 하나를 주로 해서 삼마지를 성취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4종의 신족을 건립한다.
“넷이 모두 단행斷行을 성취한다.”란 8종의 단행을 성취한다는 것이니 후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신족이란 비유에 의해 이름을 세운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가령 족足이 있는 자는 능히 갈 수 있고 능히 돌아갈 수 있고 뛰어오를 수 있고 용감하고 강건해서 세간의 월등한 법을 능히 얻을 수 있다. 세간의 월등한 법을 신神이라 한다. 저것이 능히 이것에 도달하기 때문에 신족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만약 의욕함 등의 법들이 있어 삼마지가 원만하게 성취되어 있다면 감능堪能하는 바가 있어 부동不動을 획득하기에, 능히 갈 수 있고 능히 돌아갈 수 있고 뛰어오를 수 있고 용감하고 강건해서 능히 출세간의 월등한 법을 얻어 이를 확증할 수 있다. 출세간의 법은 가장 월등하고 자재롭기 때문에 이를 가장 월등한 신神이라 한다. 저것은 이것을 증득하기 때문에 신족이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여의족如意足이라 하기도 한다. 족足이란 만족滿足이다. 족足이 여의롭기에 여의족이라 한다. 또 이 각족脚足은 갈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서 “사정근을 행할 때 마음에 산란함이 적기 때문에, 정定으로 마음을 잡아매기 때문에 여의족이라 한다. 마치 좋은 음식은 소금이 적으면 맛이 없지만 소금을 얻으면 맛이 족하기가 여의로운 것과 같다. 또 마치 사람에게 두 발이 있으면 다시 좋은 말이나 좋은 수레를 얻어 여의롭게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자는 이와 같이 사념처의 실제적인 지혜를 얻어 사정근에서 바른 정진을 한다. 정진에 의해 지혜가 더욱 많아지지만 정定의 힘은 다소 약해진다. 4종의 정定을 얻어 마음을 잡아매기 때문에 지혜의 힘과 정定의 힘이 동등해진다. 원하던 바가 모두 얻어지기 때문에 여의족이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신족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4) 오근

오근五根의 의미를 풀이한다. 증상增上의 의미가 근根의 의미이다. 출세간의 법을 발생하게 하는데

001_0819_b_01L其聞積集獨處2) [9] 卽於彼法
001_0819_b_02L以慧簡擇極細簡擇遍覺觀察由此
001_0819_b_03L證得心住一境性由觀察故三摩地成
001_0819_b_04L此文顯示依四行者隨一增上成就
001_0819_b_05L等持是故建立四種神足四中皆言斷
001_0819_b_06L行成就者八種斷行後當廣說言神
001_0819_b_07L足者從喩立名如瑜伽說如有足者
001_0819_b_08L能往能還騰躍勇健能得世間殊勝之
001_0819_b_09L世殊勝法說名爲神彼能到此
001_0819_b_10L名神足如是若有欲等諸法有三摩地
001_0819_b_11L圓滿成辦有所堪能獲得不動能往
001_0819_b_12L能還騰躍勇健能得能證出世勝法
001_0819_b_13L由出世法最勝自在是最勝神彼能
001_0819_b_14L證此故名神足此亦名如意足足是
001_0819_b_15L滿足足於如意名如意足又是脚足
001_0819_b_16L有所至故如智度說問四正懃時
001_0819_b_17L小亂故以定攝心故如意足譬如美
001_0819_b_18L少鹽則無味得鹽則味足如意
001_0819_b_19L如人有二足復得好馬好車如意所至
001_0819_b_20L行者如是得四念處實智慧四正懃中
001_0819_b_21L正精進由精進故智慧增多定力少
001_0819_b_22L得四種定以定心故智定力等
001_0819_b_23L願皆得故名如意足是名略說神足義

001_0819_b_24L
五根義者增上義是根義謂於能生出

001_0819_c_01L이 믿음(信) 등의 행行이 증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 앞의 법들이 뒤의 법들을 발생하게 하는데 증상이 되기 때문이고, 내지 혜근慧根은 출세간의 법에 대해서 증상이 되기 때문이다.12 이는 오근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5) 오력

오력五力의 의미를 풀이한다. 굴복시키기가 어렵다는 의미가 역力의 의미이다. 이 청정한 믿음은 천天이든 마魔이든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다른 세간이든 법에 합당하게 탈취하는 자가 없다. 번뇌인 전纏들 또한 굴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굴복시키기가 어렵다.”고 한 것이다. 이 힘들은 큰 위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든 마군의 세력을 굴복시켜 모든 누漏들이 영원히 멸진한 상태를 증득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역力이라 한다. 이것은 간략하게 역力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이 근根과 역의 의미는 『유가사지론』에 의거한 것이다.

6) 칠각지

칠각지七覺支의 의미를 풀이한다. 정성이생正性離生에 깨달아 들어간 유형의 사람(補特伽羅)은 여실하게 식별하는 혜慧 이것을 분지로 삼기 때문에 각지覺支라 한다. 또한 각분覺分이라고도 한다. 분分이란 말은 원인을 의미한다. 각覺의 결과를 얻기 때문에 각분이라 한다. 『대지도론』에서 “각覺이 없는 것과 각이 있는 것을 포함해서 이 일곱 가지의 것은 각에 도달하게 하기 때문에 분分이라 한다.”고 한다. 이는 각지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7) 팔지성도

팔분지의 성도(八支聖道)의 의미를 풀이한다. 이미 사제四諦의 흔적을 본 자인 유학有學의 성인들은 팔분지에 의해 행行을 포섭하여 정도正道를 밟아 가며 일체의 번뇌를 남김없이 끊어 궁극의 해탈을 작증作證하기에 팔분지의 성도라고 한다. 또한 정도正道라고도 한다. 『대지도론』에서 “열반무위의 성에 들어가고자 이 법들을 행하는데 이때를 정도라 한다.”고 한다. 이는 정도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이와 같은 7법은 바르지 않은 것이 없는데 왜 근勤과 도道만 편벽되게 ‘바르다(正)’는 이름을 얻는가? 『대지도론』에서 “4종의 정진은 마음이 용감하게 발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착오를 할까 두려워해서 정근正勤이라 명명한 것이다. 또 도道를 행할 때 사도邪道에 떨어질까 봐 정도라 말한 것이다.”라고 한다.

001_0819_c_01L世間法是信等行爲增上故又復前前
001_0819_c_02L望後後法於能生起爲增上故乃至慧
001_0819_c_03L根唯望出世是名略說五根義也
五力
001_0819_c_04L義者難伏義是力義謂若天魔若諸
001_0819_c_05L沙門若婆羅門若餘世間無有如法
001_0819_c_06L引奪者諸煩惱經亦不能屈故名難伏
001_0819_c_07L由此諸力具大威勢摧伏一切魔軍勢
001_0819_c_08L能證一切諸漏永盡是故名力
001_0819_c_09L名略說五力義也此根力義依瑜伽說

001_0819_c_10L
七覺支義者諸已證入正性離生補特
001_0819_c_11L伽羅如實覺慧用此爲支故名覺支
001_0819_c_12L亦名覺分分之言因能得覺果故名
001_0819_c_13L覺分如智度說無學實慧此七事能
001_0819_c_14L故名爲分是名略說覺支義也

001_0819_c_15L支聖道
義者諸聖有學已見迹者由八
001_0819_c_16L支攝行迹正道能無餘斷一切煩惱
001_0819_c_17L於解脫究竟作證是故名爲八支聖道
001_0819_c_18L亦名正道智度論云欲人涅槃無爲城
001_0819_c_19L行是諸法是時名正道是名略說
001_0819_c_20L正道義也問如是七法莫非是正
001_0819_c_21L故勤道偏得正名答如智度說四種
001_0819_c_22L精進心勇發動畏錯誤故名爲正勤
001_0819_c_23L又行道時畏墮*耶道故言正道於中
001_0819_c_24L「心」下疑脫「住」「樂」疑「閑」

001_0820_a_01L이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들이 있는데 또한 후에 설명하겠다. 이는 팔분지의 도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3. 본체를 밝힘
셋째, 본체를 밝힌다.
작용을 합해서 건립하면 37종이 있다. 그러나 그 본체를 논한다면 10종의 법을 벗어나지 않으니 계戒·사思·수受·염念·정定·혜慧·근勤·신信·경안輕安·사捨이다. 이 중 계戒란 표색과 무표색의 법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그 밖의 9종은 모두 심법에 속하는 것이다. 이 중 사思와 수受는 변행遍行13 중 둘이고, 염念과 정定과 혜慧는 별경別境14 중 셋이다. 근勤과 신信과 경안輕安과 사捨는 선善의 대지大地에 속한다. 이 10종의 법에 의지해서 37종의 법을 건립한다. 계戒를 열면 셋이 되니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이다. 사思 심소에는 하나가 건립되니 정사유正思惟이다. 수受 또한 하나가 건립되니 희각지喜覺支이다. 염念을 열면 넷이 건립되니 염근念根, 염력念力, 염각지念覺支, 정념正念이다. 정定을 열면 여덟이 건립되니 사여의족四如意足, 정근定根, 정력定力, 정각지定覺支, 정정正定이다. 혜慧 또한 여덟이 건립되니 사념주四念住, 혜근慧根, 혜력慧力, 택법각지擇法覺支 그리고 정견正見이다. 근勤 또한 여덟이 건립되니 사정단四正斷, 정진근精進根, 정진력精進力, 정진각지精進覺支 그리고 정정진正精進이다. 신信에는 둘이 건립되니 신근信根과 신력信力이다. 경안輕安과 사捨에는 각각 하나가 건립되니 경안각지輕安覺支와 사각지捨覺支이다.

총괄해서 말한다면 그 다섯 부류가 있다. 첫째, 여덟을 여는 것에 셋이 있으니 정定과 혜慧와 근勤이다. 둘째, 넷을 여는 것에 하나가 있으니 염念이다. 셋째, 셋을 여는 것에 하나가 있으니 계戒이다. 넷째, 둘을 여는 것에 하나가 있으니 신信이다. 다섯째,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인 것에 넷이 있으니 사思와 수受와 경안輕安과 사捨이다.

첫째 부류 안에 24종이 있고 뒤의 네 부류 안에 합하면 13종이 있으니, 총합하면 37종이 있다. 열고 합함에 같지 않음이 있는 이유는 진실로 정과 혜와 근정진勤精進은 수습의 세력이 길기 때문에 열면 여덟이 되고, 사思와 수受와 경안輕安과 사捨는 도道를 돕는 세력이 짧기 때문에 각각 하나가 건립되는 것이다. 신信 등 법(신信·계戒·염念)의 세력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오르고 내리는 순서에 따라서 넷, 셋, 둘15이 건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체는 오직 10종의 법이 있을 따름이다.

001_0820_a_01L差別亦當後說是名略說八道支義也

001_0820_a_02L第三明體性者
用合建立有三十七
001_0820_a_03L論其體性不出十法謂戒思受念定慧
001_0820_a_04L勤信安捨此中戒者謂表無表色法所
001_0820_a_05L餘九皆是心法所攝於中思受遍行
001_0820_a_06L中二念定慧者別境中三勤信安捨在
001_0820_a_07L善大地依此十法立三十七開戒爲三
001_0820_a_08L正語業命思數立一謂正思惟受亦
001_0820_a_09L立一謂喜覺支開念立四謂念根念
001_0820_a_10L力念覺正念開定立八謂四如意足
001_0820_a_11L定根定力定覺正定慧亦立八謂四
001_0820_a_12L念住慧根慧力擇法覺支及與正見
001_0820_a_13L勤亦立八謂四正斷精進根力精進
001_0820_a_14L覺支及正精進信中立二信根信力
001_0820_a_15L安捨各一謂安覺支及捨覺支總而言
001_0820_a_16L有其五類一者開八有三謂定慧
001_0820_a_17L二者開四有一謂念三者開三有
001_0820_a_18L謂戒四者開二有一謂信五者唯
001_0820_a_19L一有四思受安捨第一類內有二十四
001_0820_a_20L後四類中總有十三都合則有三十七
001_0820_a_21L所以開合有不1) [10] 良由定慧與
001_0820_a_22L進脩力長故開爲八思受安捨助
001_0820_a_23L道勢短故各立一合信等法力在其中
001_0820_a_24L故隨階降立四三二是故體性唯有十

001_0820_b_01L『대지도론』에서 “37종의 품류는 10종의 법을 본체로 한다. 내지 운운.” 한다.

4. 계위를 밝힘
넷째, 계위를 밝힌다.
그 행行의 실제를 논한다면 37보리분법 모두 모든 계위에 있을 수 있다. 『유가사지론』에서 “또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의 증상增上에 의해 발생한 선善의 유루와 무루의 도道를 모두 염주라 한다.”고 한다. 또 뒤의 논문에서 “모든 팔분지의 성도聖道는, 간략하게 말하면, 두 곳에 속해 있다. 첫째는 세간이고 둘째는 출세간이다. 그 세간이란 삼루三漏와 사취四取에 따라서 계박되어 있기 때문에 고苦를 멸진할 수 없다. 선성善性이기 때문에 선취善趣에 갈 수는 있다. 출세간이란 그것과 상반되는 것이니 고를 멸진할 수 있다.”고 한다. 최초와 최후의 2법(사념주와 팔성도)에 대해서는 이미 이와 같이 말했다. 중간의 5법(사정단·사신족·오근·오력·칠각지)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에 의거할 때는 37보리분법이 모든 계위에 있을 수 있지만, 계위에 의거할 때는 37보리분법을 하나하나 계위에 배대해서 건립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크게 그 법(37보리분법)을 나누어 보면 두 계위가 된다. 앞의 5법은 범부의 계위에 있고 뒤의 2법은 성자의 계위에 있다. 범부의 계위인 5법을 건립하는 데에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아비달마의 학설에 의거한다면 사념처관은 난법煖法의 앞에 있고, 그 사정근은 난법에 있고, 사여의족은 정법頂法에 있고, 오근은 인법忍法에 있고, 오력은 세제일법世第一法에 있다. 만약 이 논에 의거한다면 앞의 세 가지 넷(사념주·사정단·사신족)은 해탈분解脫分에 있고, 뒤의 두 가지 다섯(오근·오력)은 통달분通達分에 있다. 합당하게 시설하고 있으니 모두 이치가 있다. 성자의 계위인 2법을 건립하는 데에는 세 가지 학설이 있다.

첫째의 학설이란, 『아비달마구사론』에서 다른 학설을 서술하며 이르기를, “어떤 논사는 ‘순서를 파하지 않는다. 견도見道에서는 각覺의 분지들을 수습하고, 견도와 수도修道에서는 성도聖道의 분지들을 수습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둘째의 학설이란, 『대지도론』에서 “수도修道에서 작용하기에 각覺의 분지들이라 하고, 견도見道에서 작용하기에 도道의 분지들이라 한다.”고 한다. 비바사사毗婆沙師의 학설 또한 이와 같다. 그 논에서 설하기를, “도의 분지들은 견도에 있고 각의 분지들은 수도에 있다. 왜 이와 같은가?

001_0820_b_01L如智度論云三十七品十法爲本
001_0820_b_02L乃至廣說故

001_0820_b_03L第四明階位者
論其行實皆通諸位
001_0820_b_04L如瑜伽說又由身受心法增上所生善
001_0820_b_05L有漏無漏道皆名念住又後文言
001_0820_b_06L說一切2) [11] 聖道支二處所攝一者世
001_0820_b_07L二出世間其世間者三漏四取
001_0820_b_08L隨縛故不能盡苦是善性故能往善
001_0820_b_09L出世間者與彼相違能盡衆苦
001_0820_b_10L後二法旣如是說中間五法當知亦爾
001_0820_b_11L約行雖通依位別立是義云何大分
001_0820_b_12L其地判爲二位謂前五法在凡夫位
001_0820_b_13L後之二法立聖位中凡位五法立有二
001_0820_b_14L依毗曇說四念處觀在𤏙法前
001_0820_b_15L四正勤在於𤏙法四如意足在於頂法
001_0820_b_16L五根在於忍法五力在世第一法若依
001_0820_b_17L此論前之三四在解脫分次之二五在
001_0820_b_18L通達分隨宜施設皆有道理聖位二
001_0820_b_19L立有三義一者如俱舍論述餘義云
001_0820_b_20L有餘師說不破次第於見道中脩習
001_0820_b_21L覺分於見道脩道中脩聖道分故
001_0820_b_22L二義者如智度說脩道用故名覺
001_0820_b_23L道用故名道毗婆沙師亦同此說如彼
001_0820_b_24L論云道分見道覺分脩道何故如是

001_0820_c_01L도는 감(去)을 의미한다. 견도에서는 감이 극히 신속하다. 각은 깨달음(覺)을 의미한다. 수도에는 9종의 각이 있다. 자주자주 깨닫기 때문이다. 수대로 순서를 잡았기에 앞에 칠각지를 놓고 뒤에 팔정도를 놓은 것이다.”라고 한다.

세 번째의 학설이란, 이 논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각覺의 분지들은 견도見道에 있고 도道의 분지들은 수도修道에 있다. 『대지도론』 또한 이와 같이 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학설 모두 이치가 있다. 각각의 체계에 맞게 건립되었기에 합당하지 않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에서는 세 가지 학설을 모두 설하고 있다. 제62권에서는 “‘자성을 이해한다’란, 팔분지의 성도聖道는 3종의 잡염雜染을 대치하기 때문에 삼온三蘊을 건립한다. 이를테면 악행惡行의 잡염을 대치하기 때문이고, 욕欲의 잡염을 대치하기 때문이고, 견見의 잡염을 대치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 논문은 첫 번째 논사의 학설에 해당한다. 견見을 대치하는 것은 견도에 있고, 욕欲을 대치하는 것은 수도에 있기 때문이다. 제18권에서는 “정직正直이란 무엇인가? 그 역류逆流16를 발생하게 하는 정직이다. 성도의 팔분지들은 견도에서 끊게 되는 번뇌들을 끊을 수 있다. 역류의 도에서는 아직 수류隨流17를 타고 있는데 어떻게 강성한 근심과 슬픔을 영원히 끊겠는가?”18라고 한다. 이 논문은 두 번째의 학설에 해당한다. 제29권에서는 “그는 그때 최초로 칠각지를 획득하기 때문에 최초의 유학有學이라 한다. 이미 성제聖諦의 흔적을 보았기에 견도에서 끊게 될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는다. 오직 수도修道에서 끊게 될 번뇌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논문은 세 번째의 학설에 해당한다.

5. 순서를 설명함
다섯째, 순서를 설명한다.
『대지도론』에서 “ 도道를 먼저 말해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도를 행한 후에야 선법善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길(道)을 간 후에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제 왜 거꾸로 먼저 염처念處를 말하고 뒤에 정도正道를 말하는가? 거꾸로 된 것이 아니다. 37품은 최초로 도에 들어가고자 할 때의 이름이다.

001_0820_c_01L道是知義於見道中知極速疾覺是
001_0820_c_02L覺義於脩道中有九種覺數數覺故
001_0820_c_03L數次第先七後八第三義者如此論
001_0820_c_04L說覺分在見道道支在脩道智度論中
001_0820_c_05L亦有是說如是三義皆有道理隨義建
001_0820_c_06L無不宜故瑜伽論中通說三義
001_0820_c_07L六十二卷云解了自性者謂八支聖道
001_0820_c_08L對治三種雜染故建立三蘊謂對治惡
001_0820_c_09L行雜染故對治諸欲雜染故對治諸見
001_0820_c_10L雜染故此文當於初師所說治諸見者
001_0820_c_11L在於見道治諸欲者在脩道故第十八
001_0820_c_12L卷言云何正直謂彼生起逆流正直
001_0820_c_13L聖八支道能斷見斷所有煩惱於逆
001_0820_c_14L流道得預隨順此文當於第二義也
001_0820_c_15L第二十九卷云彼於爾時最初獲得七
001_0820_c_16L覺支故名初有覺見聖諦迹已永斷
001_0820_c_17L滅見道所斷一切煩惱脩除脩道所斷
001_0820_c_18L煩惱此文當於第三義也

001_0820_c_19L第五明次第者
如智度說問曰應先
001_0820_c_20L說道何以故行道然後得諸善法譬如
001_0820_c_21L人先行道然後得至處今何以顚倒
001_0820_c_22L先說念處後說正道答曰不顚倒也
001_0820_c_23L三十七品是初欲入道時名因字如行
001_0820_c_24L「第」疑「等」「人」疑「入」

001_0821_a_01L마치 수행자가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 도의 법法을 듣는 것과 같다. 먼저 염念으로써 이 법을 간직하는데 이때를 염처라 한다. 간직하고 나서 법에 의지하여 결과를 구하고자 정진을 행하는데 이때를 정근正勤이라 한다. 많이 정진했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해지는데, 마음을 잡아매면 평온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여의족如意足이라 한다. 마음이 평온하게 되면 오근五根이 발생한다. 법들의 실상實相은 깊디깊어 알기가 어렵지만 신근信根이 있기에 믿게 되는데, 이를 신근信根이라 한다.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일심으로 도를 구하는데 이를 정진근精進根이라 한다. 항상 불도佛道를 억념하고 다른 것은 억념하지 않는데 이를 염근念根이라 한다. 항상 마음을 잡아매어 도에 있기에 이를 정근定根이라 한다. 제諦의 실상을 관찰하기에 이를 혜근慧根이라 한다. 오근五根이 증장增長하면 능히 번뇌를 차단할 수 있는데 이를 역力이라 한다. 이 역力을 얻고 난 후 도의 법이 분별된다. 두 부분의 셋이 있다. 붙들어 맴의 셋(경안輕安·정定·사捨)과 풀어 줌의 셋(택법擇法·정진精進·희喜)이다. 붙들어 맴과 풀어 줌 두 곳에 염念이 있는데, 마치 문을 지키는 사람과 같다. 이를 칠각분七覺分이라 한다. 이 법을 얻고 나면 열반무위의 성에 들어가기 위해 이 8법을 행하니 이를 도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 『유가사지론』에서 “이 중 염주의 위位에서 최초로 마음을 묶어 소연경所緣境에 놓아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마음을 소연경에 안주하게 하고 나서 정단을 근면하게 수습한다. 다음에 정定을 얻고 나서 다시 이 정을 잘 원만하게 하기 위해 신족에서 가행加行을 근면하게 수습한다. 정定이 원만하게 되면 일체의 상相과 추중麤重이 이계離繫를 얻게 하기 위해 신근信根 등에 의지해서 가행을 수습한다. 가행 중 근根이 하품下品이고 역力이 상품上品이다. 이와 같이 가행을 올바르게 수습하고 나면 다음에 각覺의 분지들을 얻어 실제實際에 통달한다. 실제에 통달하고 나면 다음에 도의 분지들을 수습한다. 점점 내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증득하게 되어 모든 장애(障)에서 해탈을 얻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두 논에서 설한 순서는 모두 수數에 따른 계위의 문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

6. 문을 설명함
여섯째, 문門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7법19은 모두 5문門으로 되어 있다.

001_0821_a_01L者至師所聽道時先用念持是法是時
001_0821_a_02L名念處持已從法中求果故精進行
001_0821_a_03L是時名正勤多精進故心散麤攝心
001_0821_a_04L調柔故名如意足心調柔已生五根
001_0821_a_05L諸法實相甚深難解信根故能信
001_0821_a_06L名信根不惜身命一心求道理是精
001_0821_a_07L進根常念是道不念餘1) [12] 是名念
001_0821_a_08L攝心在道是名定根觀諦實相
001_0821_a_09L名慧根五根增長能遮煩惱是名爲
001_0821_a_10L得是力已分別道法有二分三
001_0821_a_11L三起三法三下念在二處如守門人
001_0821_a_12L是名七覺分得是法已欲入涅槃無爲
001_0821_a_13L城故行是八法是名爲道故又瑜伽
001_0821_a_14L當知此中於念住位最初繫心
001_0821_a_15L所緣境次於所緣念安住勤脩正斷
001_0821_a_16L次得定已後令此定善圓滿故於神足
001_0821_a_17L勤脩加行定圓滿已爲令一切相
001_0821_a_18L及麤重得離繫故依信等根脩加行
001_0821_a_19L行中根是下品力是上品如是正脩
001_0821_a_20L加行道已次得覺支通達實際通達
001_0821_a_21L實際已次脩道支漸漸乃至證得阿耨
001_0821_a_22L菩提於一切障皆得解脫如是二論
001_0821_a_23L所說次第皆約隨數階位門說

001_0821_a_24L第六辨諸門者
如是七法皆有五門

001_0821_b_01L『대법론』에서 “또 모든 보리분법菩提分法은 차이 없이 모두 5문에 의지해서 건립할 수 있다. 소연이기 때문이고, 본체이기 때문이고, 동반자이기 때문이고, 수습함이기 때문이고, 수습의 결과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1) 사념주

(1) 염주의 소연所緣

첫째, 염주의 소연이란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이니 4종의 대상을 말한다. 아我의 의지처인 대상, 아我가 향수하는 대상, 아我의 자체인 대상, 아我의 잡염과 청정의 대상을 말한다. 무엇 때문에 오직 이 4종의 경계만을 건립하는가? 전도된 이해 때문에 어리석은 범부는 대부분 아我의 의지처가 유근신有根身이라 계탁하고, 고苦와 낙樂 등을 향수하고, 경계의 상을 파악하고 식별하고, 탐貪 등에 의해 염오染汚하게 되고, 신信 등에 의해 청정淸淨하게 된다. 그래서 최초로 진실한 대상의 상을 올바르게 관찰하기 위해 이 넷을 건립하여 소연경所緣境이라 한다. 총합해서 말하면 이와 같지만, 이를 분별한다면 이와 같은 4종의 대상에는 각각 3종이 있다. 첫째 안(內), 둘째 밖(外), 셋째 안과 밖(內外)이다.
『유가사지론』에서 간략하게 여섯 가지 의미를 설한다. 첫째, 안의 자기의 유정수有情數의 색을 안의 몸의 경계라 한다. 밖의 비유정수非有情數의 색을 밖의 몸의 경계라 한다. 다른 유정수의 색을 안과 밖의 몸의 경계라 한다. 이 안의 몸을 연해서 수受의 심법心法을 일으키는 것을 안의 수受라 한다. 안의 심心, 안의 법法,……밖의 법, 안과 밖의 법 또한 이와 같이 설한다. 둘째, 근根에 속한 유집수有執受의 색을 안의 몸이라 한다. 근에 속하지 않는 무집수無執受의 색을 밖의 몸이라 한다. 근에 속하지 않는 유집수의 색을 안과 밖의 몸이라 한다. 이 3종을 연해서 수受의 심법을 일으키기에 각 경우에 따라서 3종이라 하는 것이다. 셋째, 자기 안의 정지定地의 경안輕安과 함께하는 색을 안의 몸이라 한다. 자기 안의 부정지不定地의 추중麤重과 함께하는 색을 밖의 몸이라 한다. 타인의 경안과 함께하는 색, 추중과 함께하는 색을 안과 밖의 몸이라 한다. 이 3종을 연해서 수受의 심법을 일으켜서 3종이라 하니, 앞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내지 여섯째, 자기 몸 중 머리카락, 털, 손발톱, 이빨 등의 상을 안의 몸이라 한다.

001_0821_b_01L對法說復以一切菩提分法無有差別
001_0821_b_02L皆由五門而得建立謂所緣故自體故
001_0821_b_03L助伴故脩習故脩果故

001_0821_b_04L
[四念住]
念處所緣謂身受心法卽是四事
001_0821_b_05L我所依事我受用事我自體事我染
001_0821_b_06L淨事何故唯立此四境者由顚倒覺
001_0821_b_07L愚癡凡夫多分計我依止有根身受用
001_0821_b_08L苦樂故取了境爲相由貪等染汙
001_0821_b_09L信等淸淨是故最初爲正觀察眞實事
001_0821_b_10L故立此四爲所緣境總說雖然
001_0821_b_11L中分別者如是四事各有三種一內
001_0821_b_12L二外三者內外瑜伽論中略說六義
001_0821_b_13L一者內自有情數色爲內身境外非有
001_0821_b_14L情數色爲外身境他有情數色爲內外
001_0821_b_15L身境緣此內身起愛念法名爲內受
001_0821_b_16L內心內法法外與內外亦如是說二者
001_0821_b_17L根所攝有執受色爲內身非根所攝
001_0821_b_18L執受色爲外身非根所攝有執受色爲
001_0821_b_19L內外身緣此三種起受心法隨其所
001_0821_b_20L卽爲三種三者自內定地輕安俱色
001_0821_b_21L爲內身自內不定地麤重俱色爲外身
001_0821_b_22L若他輕安俱色麤重俱色爲內外身
001_0821_b_23L此三種起受心法卽以爲三如前應
001_0821_b_24L乃至第六自身中髮毛爪齒等相爲

001_0821_c_01L타인의 몸의 머리카락, 털 등의 상을 밖의 몸이라 한다. 안의 몸의 변이하거나 변이하지 않는 청어靑瘀 등의 상相과, 밖의 몸의 변이하거나 변이하지 않는 청어 등의 상과 상사한 법성이나 평등한 법성 이를 안과 밖의 몸이라 한다. 이 3종의 경계를 연해서 수受의 심법을 일으키니, 각각의 경우에 따라서 3종이라 한다.
『대지도론』 또한 여섯 가지 의미를 풀이한다. 안의 몸은 앞에서 말한 바와 대동소이하다. 그 둘을 총합해서 관찰한다면 안과 밖의 몸이라 한다. 안과 밖의 몸이 별도로 없는 것은 앞의 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 “또 이렇게 생각한다. ‘안을 관찰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데 밖을 관찰하는 것이 혹 있겠는가? 밖을 관찰하는 것 또한 얻을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에게 혹 착오가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안과 밖을 합해서 관찰해야 한다. 안을 관찰하는 것과 밖을 관찰하는 것을 개별적인 상이라 하고, 일시에 함께 관찰하는 것을 총체적인 상이라 한다.’ 총체적인 관찰이든 개별적인 관찰이든 지각할 수 없다. 관찰해야 할 경계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수受, 심心, 법에 대해서 안과 밖 등 3종이 있다는 것은 『유가사지론』에서 설한 바와 같다. 또 다른 학설이 있다. “다른 학설은 무엇인가? 의식意識과 상응하는 수受는 안의 수受 등이고, 오식五識과 상응하는 수受는 밖의 수受 등이다. 정심定心은 안의 마음이고 산심散心은 밖의 마음 등이다. 수受를 제외한 심소법은 안의 법이고 불상응행不相應行과 무위법은 밖의 법 등이다. 내지 운운.” 한다. 이를 염처念處의 소연경이라 한다.

(2) 염주의 본체

둘째, 염주의 본체란 이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만약 대치되어야 할 것을 상대로 한다면 혜慧를 본체로 한다. 혜는 사전도四顚倒를 바르게 대치하기 때문이다. 만약 소연을 상대로 한다면 혜慧와 염念을 본체로 한다. 혜와 염은 함께 소연에 머물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서는 “몸을 관찰하는 지혜,……내지 법을 관찰하는 지혜 이를 자성념처自性念處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대치되어야 할 것을 상대로 해서 본체를 나타낸 것이다. 『대법론』에서는 “염주의 본체란 혜와 염을 말한다. 불경佛經에

001_0821_c_01L內身他身髮毛等相爲外身若內身變
001_0821_c_02L異不變異靑瘀等相及外身變異不變
001_0821_c_03L異靑瘀等相相似法性平等法性
001_0821_c_04L爲內外身緣此三境起受心法隨其
001_0821_c_05L所應卽三智度論中亦六義釋內身
001_0821_c_06L前所說大同小異總觀彼二爲內外身
001_0821_c_07L無別內外前二不攝如彼說言復作
001_0821_c_08L是念內觀不得外或有耶外觀亦復
001_0821_c_09L不得自念我或錯誤是故今當總觀內
001_0821_c_10L觀內觀外是爲別相一時俱觀
001_0821_c_11L爲總相總觀別觀了不可得所觀已
001_0821_c_12L受心法中內外等三有同2) [13]
001_0821_c_13L有異說異說云何謂意識相應受是內
001_0821_c_14L受等五識相應受是外受等定心是內
001_0821_c_15L散心是外心等除受餘心數法是爲
001_0821_c_16L內法不相應行及無爲法是爲外法等
001_0821_c_17L乃至廣說是爲念處所緣境也第二念
001_0821_c_18L住自體
此有二義若對所治以慧
001_0821_c_19L爲體由慧正治四顚倒故若對所緣
001_0821_c_20L慧念爲體慧與念俱住所緣故智度論
001_0821_c_21L觀身智慧乃至觀法智慧是爲自
001_0821_c_22L性念處此對所治顯自性也對治論
001_0821_c_23L念住自體者謂慧及念由佛經中
001_0821_c_24L「東」疑剩「喩」疑「瑜」{編}

001_0822_a_01L몸 등에 대해서 ‘따라가며 관찰한다(隨觀)’는 말이 있기 때문이고, ‘염주念住’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순서대로이다.”라고 한다. 이것은 소연을 상대로 해서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3) 염주의 동반자

셋째, 염주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소법들과 그것을 우선으로 해서 일어나는 결과 등이다. 『대법론』에서는 “염주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이다. 그것이란 그 염과 혜 2법을 말한다.”고 한다. 『대지도론』에서는 “무엇을 염처와 함께하는 것이라 하는가? 몸(身)을 관찰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원인에서 생기는 도道이다. 유루이든 무루이든 신념처身念處이다. 내지 법을 관찰하는 것 모두 이와 같이 설한다.”고 한다. 또 아래의 논문에서 “염처와 함께하는 것 중 신업과 구업 2업業은 색법이다. 다른 것은 색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4) 염주를 수습함

넷째, 염주를 수습함이란 크게 보아 두 문이 있다. 공통되는 것을 수습하는 문과 공통되지 않는 것을 수습하는 문이다. ‘공통되는 것을 수습함’이란 소승과 공통되는 것을 수습하는 것이다. 안의 몸 등에 대해서 수신관隨身觀을 수습하고, 밖의 몸 등에 대해서, 안과 밖의 몸에 대해서 수신관을 수습한다. 이를테면 부정不淨을 관찰하고,……내지 무아無我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 등이 소승과 공통되는 것을 수습하는 것이다. ‘공통되지 않는 것을 수습함’이란 오직 보살의 관찰이다. 이를테면 몸 등에 대해서 안이나 밖의 상想을 배제하고 오직 몸 등의 중도中道의 실상實相만을 관찰하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이 보살들은 두루 모든 이승二乘의 이취理趣인 보리분법을 모두 여실하게 안다. 이를테면 성문의 이취에 대해서 그리고 대승의 이취에 대해서이다. 어떻게 보살은 대승의 이취인 보리분법을 여실하게 아는가? 보살들은 그 몸에 대해서 순신관循身觀을 수습할 때 그 몸에 대해서 자성自性이 있다고 분별하지 않고, 또 일체의 종류가 전연 없다고 분별하지 않는다. 또 그 몸에 대해서 언설의 자성을 여읜 법성法性을 여실하게 안다. 내지 운운.” 한다. 또 설하기를, “또 공성에 의지해서 염주를 근면하게 수습하는 보살은 크게 보아 6종의 허망한 상想에서 마음을 해탈하게 한다.

001_0822_a_01L有於身等隨觀言故及有念住言故如
001_0822_a_02L其次第此對所緣出自性也第三念
001_0822_a_03L住助伴
與彼相應諸心法及彼爲
001_0822_a_04L所發果等如對法說念住助伴者
001_0822_a_05L與彼相應心心法等彼者謂彼念慧二
001_0822_a_06L智度論云云何名共念處觀身爲
001_0822_a_07L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是身念
001_0822_a_08L乃至觀法皆如是說又下文言
001_0822_a_09L念處中身口二業是爲色法餘殘非色
001_0822_a_10L第四念處脩習略有二門謂共
001_0822_a_11L脩習不共脩習共脩習者謂共小乘
001_0822_a_12L脩於內身等脩隨身觀於外身等及內
001_0822_a_13L外身脩隨身觀謂觀不淨乃至無我
001_0822_a_14L是等名共小乘脩不共脩者唯菩薩
001_0822_a_15L謂於身等除內外想唯觀身等
001_0822_a_16L道實相如瑜伽說是諸菩薩普於一切
001_0822_a_17L二乘理趣菩提分法皆如實知謂於聲
001_0822_a_18L聞乘理趣及於大乘理趣云何菩薩大
001_0822_a_19L乘理趣菩提分法如實了知謂諸菩薩
001_0822_a_20L能於其身住*脩身觀不於其身分別
001_0822_a_21L有性亦不分別一切種類都無所有
001_0822_a_22L於其身遠離言說自性法性如實了知
001_0822_a_23L乃至廣說又言復次依空勤脩念住菩
001_0822_a_24L略於六種1) [14] 相縛中令心解脫

001_0822_b_01L여섯은 무엇인가? 몸에 대해서,……내지 법에 대해서 안의 상을 일으키는 것이 첫째의 상박相縛이다. 이것들에 대해서 밖의 상을 일으키는 것이 둘째의 상박이다. 이것들에 대해서 안과 밖의 상을 일으키는 것이 셋째의 상박이다. 만약 시방의 무량한 유정들을 해탈하게 하기를 원해서 염주를 수습한다면 이것에 대한 상들이 넷째의 상박이다. 만약 이 때문에 몸 등의 경계에 대해서 순관循觀을 확립한다면 이것에 대한 상들이 다섯째의 상박이다. 몸 등에 대해서 순관을 확립한다면 이것에 대한 상들이 여섯째의 상박이다.……내지 운운.” 한다.
『대지도론』에서는 “보살마하살의 사념처의 관찰이란, 안의 몸이 무상無常하고 고苦인 것이 마치 병과 같고 악창과 같고, 불덩어리이고 썩어 문드러지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고 아홉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마치 뒷간과 같다고 관찰한다.……내지 운운. 이 몸의 상은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 않다. 이 몸은 이전, 이후, 중간에서 모두 얻을 수 없다. 단지 법들의 인因과 연緣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이 인과 연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몸이라면 또한 허망한 전도顚倒에 의해 존재할 뿐이다. 이 인과 연들에는 인과 연들의 상相이 없다. 이 인과 연들에 의해 발생한 것은 또한 발생의 상이 없다. 이와 같이 사유해서 이 몸에는 본래부터 발생의 상이 없다는 것을 안다. 발생이 없기에 상이 없고 상이 없기에 발생이 없다. 단지 범부를 속이기 때문에 몸이라 할 뿐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몸의 실상을 관찰할 때 염착染着을 여의게 된다. 염을 잡아매어 몸에 대해서 순신관을 확립한다. 이를 보살의 신념처의 관찰이라 한다. 밖의 몸이나 안과 밖의 몸의 관찰 또한 이와 같다. 수受, 심心, 법法 등에 대해서……내지 운운.” 한다.

(5) 염주를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염주를 수습함의 결과란, 『대법론』에서 “사전도四顚倒를 끊어 사제에 들어간다. 신身 등의 ‘계박에서 벗어남(離繫)’을 수습함의 결과라 한다. ‘사전도를 끊음’이란 사념주를 말한다. 그 순서대로 정淨, 낙樂, 상常, 아我의 사전도를 끊는다.

001_0822_b_01L等爲六所謂於身乃至於法發起內相
001_0822_b_02L是初相縛卽於此中發起外相是第
001_0822_b_03L二縛卽於此中起內外相是第三縛
001_0822_b_04L若於十方無量有情願令解脫脩習念
001_0822_b_05L此中諸相是第四縛若由此故
001_0822_b_06L身等境脩觀而住此中諸相是第五
001_0822_b_07L卽於身等脩觀住者此中諸相
001_0822_b_08L第六縛乃至廣說智度論云菩薩摩
001_0822_b_09L訶薩四念處觀者觀是內身無常若如
001_0822_b_10L病如癰灾聚敗壞不淨充滿九孔流
001_0822_b_11L是爲行廁廣說乃至是身相不在
001_0822_b_12L不在外不在中間是身先際後際
001_0822_b_13L中際皆不可得但從諸法因緣和合生
001_0822_b_14L是諸因緣作是身者亦從虛妄顚倒故
001_0822_b_15L是因緣中無因緣相是因緣生亦無
001_0822_b_16L生相2) [15] 如是思推知於是身從本以
001_0822_b_17L來無有生相無生故無相無相故無生
001_0822_b_18L伹誑凡夫故名爲身菩薩如是觀身實
001_0822_b_19L離諸染著繫念在身住*脩身觀
001_0822_b_20L是名菩薩身念處觀觀外身內外身亦
001_0822_b_21L如是受心法等乃至廣說第五明念
001_0822_b_22L住脩果
如對法說斷四顚倒趣入
001_0822_b_23L四諦身等離繫是名脩果斷斷四倒
001_0822_b_24L謂四念住隨其次第能斷淨樂常

001_0822_c_01L신념주身念住에 의지해서 고제에 들어간다. 색신色身은 모두 행고行苦의 상을 갖고 있다. 추중麤重이 현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행觀行을 수습할 때 이 경안輕安을 닦는다. 몸(身)에 차별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념주受念住에 의지해서 집제에 들어간다. 낙樂 등의 수受들은 화합한 애愛 등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심념주心念住에 의지해서 멸제에 들어간다. 아我가 없는 식識을 관찰하면 아我가 끊어질까 두려워하는 문이 없어진다. 열반에 대한 공포가 생기는 것을 영원히 여의기 때문이다. 법념주法念住에 의지해서 도제에 들어간다. 대치되어야 할 법을 끊기 위해서, 대치하는 법을 수습하기 위해서이다. 또 이 4종은 그 순서대로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의 이계과離繫果를 증득한다. 이것들을 수습함으로써 점차 몸(身) 등의 추중을 여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은 사박四縛의 추중을 여의는 것을 밝힌다. 사박이란 첫째 집수執受의 박, 둘째 영수領受의 박, 셋째 요별了別의 박, 넷째 집착執着의 박이다. 이 사박에 의해 마음(心王)이 계박된다. 이를테면 마음(心)은 몸(身)에 계박되어 있다. 집수의 박縛에 의해 계박되어 있다. 집수가 안의 몸(內身)과 안위安危를 같이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몸(身)의 재환災患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마음은 수受에 계박되어 있다. 영수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다. 수受와 상응하기에 이에 따라서 고苦와 낙樂을 같이한다. 이 때문에 수受의 재환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경계(塵)에 계박되어 있다. 요별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다. 6종의 경계를 반연해서 때가 없이 머문다. 이 때문에 분별의 재환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혹惑에 계박되어 있다. 집착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다. 혹惑과 상응하기에 이에 따라서 법을 집착한다. 이 때문에 번뇌의 과실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이렇게 알아야 할 것이다. 마음은 몸에 계박되어 있다. 집수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수受에 계박되어 있다. 안의 영수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색 등 경계의 상에 계박되어 있다. 요별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001_0822_c_01L我四倒也由身念住趣入苦諦所有色
001_0822_c_02L皆行苦相麤重所顯故是故脩觀行
001_0822_c_03L能治此輕安於身差別生故由受
001_0822_c_04L念住趣入集諦以樂等諸受是和合愛
001_0822_c_05L等所依處故由心念住趣入滅諦
001_0822_c_06L離我識當無所有懼我斷門生涅槃
001_0822_c_07L永遠離故由法念住趣入道諦
001_0822_c_08L斷所治法爲脩能治法故又此四種
001_0822_c_09L3) [16] 次第能證身受心法離繫之果
001_0822_c_10L由此脩習漸能遠離身等麤重故此明
001_0822_c_11L遠離四縛麁重言四縛者一執受縛
001_0822_c_12L二領受縛三了別縛四執著縛由此
001_0822_c_13L四縛縛於心王謂心於身由執受縛
001_0822_c_14L所縛謂執受內身與同安厄由是不
001_0822_c_15L能離身患故又心於受由領受縛所縛
001_0822_c_16L與受相應隨同苦樂由是不能離受患
001_0822_c_17L心於諸塵由了別縛所縛攀緣六
001_0822_c_18L無時安住由是不離分別患故
001_0822_c_19L於諸4) [17] 由執著縛所縛與*或相應
001_0822_c_20L著諸法由是不離煩惱過故如瑜伽說
001_0822_c_21L當知心於身由執受縛所縛於受由內
001_0822_c_22L領受縛所縛於色等境界相由了別縛
001_0822_c_23L「忘」疑「妄」{編}「相」疑剩「眞」疑「其」
001_0822_c_24L
「或」通「惑」次同

001_0823_a_01L마음은 말한바 몸 등 법들에 계박되어 있다. 탐貪, 진瞋 등 크고 작은 번뇌의 집착의 박에 계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4종의 박博을 대치하기 위해 사념주를 건립한다.”고 한다. 이것은 염주를 수습함의 결과를 설명한 것이다. 염주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2) 사정단

다음에 사정단의 5문을 설명한다.

(1) 정단의 소연

첫째, 정단正斷의 소연이란 이미 발생했거나 아직 발생하지 않은 대치되어야 할 법과 대치하는 법을 말한다. 제1의 정단의 소연은 이미 발생한 대치되어야 할 법을 경계로 한다. 제2의 정단의 소연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대치되어야 할 법을 경계로 한다. 제3의 정단의 소연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대치하는 법을 경계로 한다. 제4의 정단의 소연은 이미 발생한 대치하는 법을 경계로 한다. 경에서 설한 바와 같이 자세하게 배대해서 풀이해야 한다.

(2) 정단의 본체

둘째, 정단의 본체란 4종의 경계에 대해서 발기하는 정진을 말한다.

(3) 정단의 동반자

셋째, 정단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을 말한다.

(4) 정단을 수습함

넷째, 정단을 수습함이란 경에서 설한 바와 같이 욕구(欲)를 냄, 책려策勵함, 정근을 발기함, 책심策心, 지심持心을 말한다. 이 어구들은 정근正勤을 수습함과 이것의 의지처를 나타낸다. 이것의 의지처란 욕구(欲)를 말한다. 욕구를 우선으로 해서 정진을 발기하기 때문이다. 정근이란 책려함 등20을 말한다. 멈춤(止), 들어 올림(擧), 버림(捨) 등의 상을 작의作意할 때 만약 멈춤(止) 등의 상을 작의해서 소연경계를 되돌아보며 연연하지 않고 순전히 대치를 수습한다면, 그때 ‘책려함’이라 한다. 침몰沈沒과 도거掉擧를 삭감하고자 정근을 발기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침몰 수번뇌가 발생할 때면 그것을 삭감하기 위해 정묘淨妙한 것 등을 작의해서 그 마음을 책려하며 단련한다. 만약 도거 수번뇌가 발생할 때면 소략하게 잡아매는 문을 안에서 증득하여 그 마음을 제지한다면, 그때 ‘정근을 발기함’이라 한다. 이 침몰과 도거를 삭감하는 적절한 방편을 보여 주기 위해 이어서 책심과 지심을 설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학설이 있는데

001_0823_a_01L所縛卽於所說身等諸法由貪瞋等大
001_0823_a_02L小煩惱執著縛所縛對治如是四種縛
001_0823_a_03L立四念住是明念處脩習之果
001_0823_a_04L住五門略說如是

001_0823_a_05L
次明四正斷中五門正斷所緣謂已
001_0823_a_06L生未生所治能治法初正斷緣已生所
001_0823_a_07L治法爲境第二正斷緣未生所治法爲
001_0823_a_08L第三正斷緣未生能治法爲境第四
001_0823_a_09L正斷緣已生能治法爲境如經所說
001_0823_a_10L廣配釋

001_0823_a_11L
正斷自體謂於四境所起精進正斷
001_0823_a_12L助伴
謂彼相應心心法等正斷脩習
001_0823_a_13L謂如經說生欲策勵發起正勤
001_0823_a_14L心持心此中諸句顯脩正勤及所依止
001_0823_a_15L所依止者謂欲以欲爲先發精進故
001_0823_a_16L正勤者謂策勵等於止擧捨相作意等
001_0823_a_17L若於止等相作意不頋戀所緣境界
001_0823_a_18L純脩習對治爾時名策勵爲欲損減沉
001_0823_a_19L沒掉擧發起正勤所以者何若沉沒
001_0823_a_20L隨煩惱生時爲損減彼故以淨妙等作
001_0823_a_21L策練其心若掉擧等隨煩惱生時
001_0823_a_22L卽以內證略攝門制持其心爾時名爲
001_0823_a_23L發起正勤卽爲顯此損減沉掉善巧方
001_0823_a_24L故次說言策心持心又有別義

001_0823_b_01L이는 앞의 ‘의미를 풀이하는 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5) 정단을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정단을 수습함의 결과란 모든 ‘대치되어야 할 것(所治)’을 끊어 내는 것을 말하고, ‘대치하는 것(能對治)’을 얻거나 증대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 순서대로 배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단의 5문을 설명하면 이와 같다.

3) 사신족

다음에 사신족의 5문을 설명한다.

(1) 신족의 소연

첫째, 신족의 소연이란 이미 원만하게 성취된 삼마지(定)에 의해 지어진 일을 말한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이미 원만하게 성취된 삼마지의 세력에 의해 갖가지 신변神變 등의 일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소연경이다.

(2) 신족의 본체

둘째, 신족의 본체란 삼마지三摩地를 말한다.

(3) 신족의 동반자

셋째, 신족의 동반자란 욕欲, 근勤, 심心, 관觀 그리고 그것들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을 말한다.

(4) 신족을 수습함

넷째, 신족을 수습함이란 8종의 단행斷行을 수습함을 말한다. 8종의 단행이란 의욕(欲), 정진精進, 믿음(信), 경안輕安, 정념正念, 정지正知, 사思, 사捨를 말한다. 이와 같은 8종을 축약하면 4종이 된다. 가행加行, 섭수攝受, 계속繼屬, 대치對治를 말한다. ‘가행’이란 의욕(欲), 정진, 믿음(信)을 말한다. 의욕은 정진의 의지처이고, 믿음은 의욕의 원인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욕구하기 때문에, 이 대상을 얻기 위해 근勤과 정진을 발기한다. 이와 같은 의욕(欲)은 믿음(信受)을 여의지 않는다. 본체가 동등하기 때문이다. ‘섭수’란 경안을 말한다. 이 경안에 의해 몸과 마음이 북돋워지기 때문이다. ‘계속’이란 정념과 정지를 말한다. 소연을 잊지 않음에 의해 마음이 한 경계에 안존하기 때문이다. 만약 방일放逸이 발생한다면 여실하게 알아채기 때문이다. ‘대치’란 사思와 사捨를 말한다. 책심과 지심 두 가행의 세력은 이미 발생한 침몰과 도거를 여의기 때문이다. 또 수번뇌를 여의게 하는 멈춤(止) 등의 상21을 끌어와 일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또 욕欲, 근勤, 심心, 관觀을 수습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모임, 흩어짐, 모임의 원인, 흩어짐의 원인을 멀리하는 것을 수습함이고, 다른 하나는 모이지 않음에 응해서, 흩어지지 않음에 응해서, 그 둘의 의지처에 응해서 수습함이다. 여기서 욕欲 등이 모임, 흩어짐, 그것들의 원인 등 두 종류의 수습함의 의미를 보여 준다. “모임(聚)의 원인”이란

001_0823_b_01L前釋義門中說也正勤脩果謂盡棄
001_0823_b_02L於一切所治於能對治若得若證
001_0823_b_03L其次第配屬應知正斷五門略說如
001_0823_b_04L

001_0823_b_05L
次明四神足中五門神足所緣謂已
001_0823_b_06L成滿定所住事此復云何由已成滿三
001_0823_b_07L摩地力發起種種神變等事是所緣境
001_0823_b_08L神足自體謂三摩地神足助伴
001_0823_b_09L謂欲勤心觀及彼相應心心法等神足
001_0823_b_10L脩習
謂數脩習八種斷行謂欲精進
001_0823_b_11L信安正念正知思捨如是八種略攝爲
001_0823_b_12L謂加行攝受繼屬對治言加行者
001_0823_b_13L謂欲精進信欲爲精進依信爲欲因
001_0823_b_14L所以者何由欲求故爲得此義發勤
001_0823_b_15L精進如是欲求不離信受有體等故
001_0823_b_16L攝受者謂輕安由此輕安攝益身心故
001_0823_b_17L繼屬者謂正念正知由不忘所緣
001_0823_b_18L心一境故若有放逸生如實了知故
001_0823_b_19L對治者謂思捨策心持心二加行力
001_0823_b_20L已生沉掉能遠離故又能引發離隱煩
001_0823_b_21L止等相故復次欲勤心觀脩有二種
001_0823_b_22L謂兼因緣聚散遠離脩1) [18] 不散
001_0823_b_23L二所依隨順脩此中顯示欲等遠聚散
001_0823_b_24L及因緣等二種脩義聚因緣者謂遠

001_0823_c_01L위파사나를 멀리하기 때문에 태만함의 문에 의해 생기는 침몰沈沒을 말한다. “흩어짐(散)의 원인”이란 부정不淨한 상을 멀리하기 때문에 요동침의 문에 의해 생기는 ‘들어 올려짐(高擧)’을 말한다. “모임(聚)”이란 혼침惛沈과 수면睡眠의 문에 의해 안으로 ‘움츠러듦(踧踖)’을 말한다. “흩어짐(散)”이란 정묘淨妙한 상에 응하는 문에 의해 바깥으로 ‘치달려 흩어짐(馳散)’을 말한다. “모이지 않음에 응해서 수습함”이란 관찰의 상에 의지해서 법들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흩어지지 않음에 응해서 수습함”이란 부정不淨한 상에 의지해서 머리카락, 털 등의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그 둘의 의지처에 응해서 수습함”이란 광명光明의 상을 수습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순서에 의해서 세존께서는 “나의 욕구는 열등하지도 않고 월등하지도 않다. 안으로 모이지도 않고 바깥으로 흩어지지도 않는다. 전과 후의 상想이 있고 상과 하의 상想이 있어 그 마음을 열어 일어나게 하고 전纏의 박縛을 여의게 한다. 광명과 함께해서 스스로 그 마음을 수습하여 나의 마음에 암흑과 은폐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제까지 설명한 것은 『대법론』에 나오는 것이다. 이 중 “관찰의 상에 의지해서 법들을 관찰한다.”라는 것은, 그 경의 “전과 후의 상想이 있어 그 마음을 열어 일어나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부정不淨한 상에 의지해서 머리카락 등을 관찰한다.”라는 것은, 그 경의 “상과 하의 상想이 있어 전纏의 박縛을 여의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무엇을 전과 후, 상과 하라고 하는가? 『유가사지론』 제28권에서 “사마타(止)를 수습할 때 지품止品의 상과 하의 상想을 수습하고 위파사나(觀)를 수습할 때 관품觀品의 전과 후의 상想을 수습한다. 상과 하의 상想이란 이 몸이 그것이 놓인 대로, 그것이 원해진 대로 위로는 정수리 위로부터 아래로는 발아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잡류의 부정不淨한 것이 충만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갖가지 잡류의 부정한 것이란 이를테면 이 몸에 있는 갖가지 머리카락, 털, 손발톱, 이빨이니, 앞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전과 후의 상想이란 가령 하나의 관찰되어야 할 상相에 대해서 신중하고 간절하게 잘 파악하고 잘 사려하고 잘 요별하고 잘 통달하는 것을 말한다.

001_0823_c_01L離毗鉢舍那故由懈怠所生沉沒散因
001_0823_c_02L緣者謂遠離不淨相故由掉動門所生
001_0823_c_03L高擧聚者謂由惛沉睡眠門於內踧踖
001_0823_c_04L散者謂由隨順淨妙相門於外馳散
001_0823_c_05L不*劣隨順脩者謂依觀察相觀察諸
001_0823_c_06L不散隨順脩者謂依不淨相觀察
001_0823_c_07L髮毛等事彼二所依隨順脩者謂脩光
001_0823_c_08L明相依如是次第薄伽梵說我之欲
001_0823_c_09L樂無有下劣亦無高擧於內不聚
001_0823_c_10L外不散有後前想及上下想開發其心
001_0823_c_11L遠離纒縛與光明俱自脩其心當令
001_0823_c_12L我心無諸闇蔽上來說出對法論此中
001_0823_c_13L依觀察相觀察諸法者是顯彼經有前
001_0823_c_14L後想開發其心也依不淨相觀察髮等
001_0823_c_15L是顯彼經及上下想遠離纒縛也
001_0823_c_16L等名爲2)後前 [19] 上下如瑜伽論第二十八
001_0823_c_17L卷云脩奢摩他時脩習心品上下想
001_0823_c_18L脩毗鉢舍那時脩習觀品前後想上下
001_0823_c_19L想者謂觀察此身如其所住如其所
001_0823_c_20L上從頂上下至足下種種雜類不
001_0823_c_21L淨充滿謂此身中所有種種髮毛爪齒
001_0823_c_22L如前廣說前後想者謂如有一於所
001_0823_c_23L觀相殷重懇到善取善思善了善達
001_0823_c_24L「劣」疑「聚」次同「後前」疑倒{編}

001_0824_a_01L이를테면 서 있을 때는 앉아 있는 것을 관찰하고, 앉아 있을 때는 누워 있는 것을 관찰한다. 혹은 뒤의 행에 있으면서 앞의 행을 관찰한다. 이것은 위파사나의 행으로 삼세의 연緣에서 생긴 행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만약 서 있을 때 앉아 있는 것을 관찰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현재의 작의로 미래의 알아야 할 바의 행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현재의 작의의 위位는 이미 현재에 발생해 있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라 한다. 미래의 알아야 할 바의 위位는 아직 현재에 발생해 있지 않기 때문에, 곧 발생하고자 하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것이라 한다. 만약 앉아 있을 때 누워 있는 것을 관찰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현재의 작의로 과거의 알아야 할 바의 행들을 관찰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왜 그런가? 이는 현재의 작의의 위는 곧 소멸하고자 하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것이라 하고, 과거의 알아야 할 바의 위는 이미 낙사落謝해서 소멸했기 때문에 누워 있는 것이라 한다. 만약 후의 행에 있으면서 전의 행을 관찰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현재의 작의로 찰나의 간격 없이 소멸한 현행現行의 작의를 관찰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왜 그런가? 만약 이미 발생했기 때문에 찰나의 간격 없이 낙사해서 소멸한 것이라면, 파악되어야 할 작의를 전의 행行이라 한다. 만약 이 찰나의 간격 없이 새롭게 발생하는 파악하는 작의가 전의 찰나의 간격 없이 이미 낙사해서 소멸한 것을 파악한다면 이를 후의 행行이라 한다. 여기서 사마타(止)와 위파나사(觀)를 수습하는 것은 그 두 품류의 월등한 광명의 상想을 수습하는 것이기에 이를 상想의 수습이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타 어구의 상호 관계 또한 이에 준하면 알 수 있다. 이를 신족을 수습함의 상이라 한다.

(5) 신족을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신족을 수습함의 결과란, 이미 잘 대치해서 삼마지를 수습했기 때문에 통달해야 할 법을 증득하고자 욕구하는 대로, 마음이 통달하는 대로 변현할 수 있다. 또 갖가지 처소의 법에 대해서 감능堪能을 증득해서 자재롭게 작용한다. 원하는 대로 갖가지 신통 등의 일을 성취한다. 또 월등한 품류의 공덕을 끌어와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신족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4) 오근

다음에 오근五根의 5문의 구별에 대해 설명하겠다.

(1) 오근의 소연

첫째, 오근의 소연이란 만약 공통되는 행行에 의거한다면 사성제를 연하고, 만약 공통되지 않는 행行에 의거한다면 비안립제非安立諦를 연하는 것을 말한다.


001_0824_a_01L謂住觀於坐坐觀於臥或在後行
001_0824_a_02L察前行謂若說言住觀於坐此則顯示
001_0824_a_03L以現在作意觀察未來所知諸行所以
001_0824_a_04L者何現在作意位已現生故說名爲住
001_0824_a_05L未來成所知位未現生故臨欲起故
001_0824_a_06L名爲坐若復說言坐觀於臥此則顯示
001_0824_a_07L以現在作意觀察過去所知諸行所以
001_0824_a_08L者何現在作意位臨欲滅故說名爲坐
001_0824_a_09L過去所知位已謝滅故說名爲臥若復
001_0824_a_10L說言或在後行觀察前行此則顯示
001_0824_a_11L以現在作意觀察無間滅現行作意
001_0824_a_12L以者何若已生故無間謝滅所取作
001_0824_a_13L說名前行若此無間新生能取作意
001_0824_a_14L取前無間已謝滅者說名後行當知此
001_0824_a_15L中爲脩止觀脩二品勝光明想是名想
001_0824_a_16L脩故餘句相屬准之可知是名神足脩
001_0824_a_17L習之相神足脩果謂已善脩治三摩
001_0824_a_18L地故隨所欲證所通達法卽能隨心通
001_0824_a_19L達變現又於別別處所法中證得堪能
001_0824_a_20L自在作用如所願樂能辨種種神通等
001_0824_a_21L又能引發勝品功德神足五門略說
001_0824_a_22L如是

001_0824_a_23L
次明五根五門差別五根所緣若約
001_0824_a_24L共行緣四聖諦若約不共行緣非安立

001_0824_b_01L
(2) 오근의 본체

둘째, 오근의 본체란 신信, 근勤, 염念, 정定, 혜慧를 말한다.

(3) 오근의 동반자

셋째, 오근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을 말한다.

(4) 오근을 수습함

넷째, 오근을 수습함이란 신근信根은 제諦들에 대해서 인가忍可의 행行의 수습을 일으키고, 정진근精進根은 식별하기 위해 정진의 행의 수습을 일으키고, 염근念根은 망실하지 않음의 행의 수습을 일으키고, 정근定根은 ‘마음을 한 경계에 놓음(心一境性)’의 행의 수습을 일으키고, 혜근慧根은 간택簡擇의 행의 수습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대지도론』에서 “신근이란 일체의 법이 인과 연들에 의지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믿고, 전도된 허망한 견해는 과거에도 있지 않고 미래에도 있지 않고 현재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법들의 공성, 무상無相, 무원無願, 불생불멸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지계, 선정, 지혜, 해탈, 해탈지견 등의 법을 믿는 것이다. 내지 혜근이란 법들의 실상에 이롭게 들어가 장애가 없고 난관이 없다. 세간에는 근심이 없고 열반에는 기쁨이 없어, 자재로운 지혜를 얻기 때문에 혜근이라 한다.”고 한다. 이것을 오근을 수습함에 대한 간략한 상이라 한다.

(5) 오근을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오근을 수습함의 결과란, 신속히 제諦의 현관現觀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 증상增上의 세력에 의해 오래지 않아 견도見道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난煖과 정頂을 닦아 다스리고 인忍과 세제일법世第一法을 끌어와 일어나게 해서, 이 몸(身)이 현현한 채 순결택분順決擇分의 계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오근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5) 오력

다음에 오력五力의 5문의 구별에 대해 설명하겠다.
앞의 4문은 근根과 유사하다. 오직 수습함의 결과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믿지 않음(不信) 등의 장애를 덜어 내는 것, 굴복되지 않는 것이 앞의 것을 월등하게 넘어서 있다.22 오력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6) 칠각지

다음에 칠각지의 5문의 상에 대해 설명하겠다.

(1) 각지의 소연

첫째, 각지의 소연이란 만약 이승二乘의 안립제의 문에 의거한다면 인공人空이 경계이고, 만약 보살의 안립제와 비안립제의 문에 의거한다면 인공과 법공法空 이공二空이 경계이다.


001_0824_b_01L五根自體謂信勤念定慧五根
001_0824_b_02L助伴
謂彼相應心心法等五根脩習
001_0824_b_03L謂信根於諸諦起忍可行脩精進根
001_0824_b_04L爲覺悟故起精進行脩念根起不忘失
001_0824_b_05L行脩定根起心一境性行脩慧根起簡
001_0824_b_06L擇行脩智度論云信根者信一切法
001_0824_b_07L從因緣生顚倒妄見不在過去不在
001_0824_b_08L未來不在現在信諸法空無相無作
001_0824_b_09L不生不滅而信持戒禪定智慧解脫解
001_0824_b_10L脫知見等法乃至慧根者於諸法實相
001_0824_b_11L和入無礙無難於世間無憂於涅槃無
001_0824_b_12L得自在智慧故名慧根是名五根
001_0824_b_13L脩習略相五根脩果謂能速發諦現
001_0824_b_14L由此增上力不久能生見道故
001_0824_b_15L能脩治𤏙頂引發忍世第一法卽現此
001_0824_b_16L身已入順決擇分位故五根五門略說
001_0824_b_17L如是

001_0824_b_18L
次明五力五門差別前之四門與根相
001_0824_b_19L唯脩習果少有差別謂能損減不
001_0824_b_20L信等障不可屈伏勝過於前五力五
001_0824_b_21L門略說如是

001_0824_b_22L
次明七覺支五門相覺支所緣若就
001_0824_b_23L二乘安立諦門所顯人空若就菩薩安
001_0824_b_24L立非安立諦門中人法二空以爲境界

001_0824_c_01L
(2) 각지의 본체

둘째, 각지의 본체란 염念, 택법擇法, 정진精進, 희喜, 경안輕安, 정定, 사捨를 말한다. 이와 같은 7법이 각지의 본체이다. 또 이 7법은 세 부류로 축약될 수 있다. 『유가사지론』에서 “3각지는 사마타(止)의 부류에 속하고, 3각지는 위파사나(觀)의 부류에 속하고, 1각지는 두 부류 모두에 속한다. 그래서 7종의 각지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택법, 정진, 희喜 이 셋은 위파사나의 부류에 속한다. 경안, 정定, 사捨 이 셋은 사마타의 부류에 속한다. 염각지 1종은 두 부류 모두에 속하기에 이를 변행遍行이라 한다.”고 한다. 『대지도론』에서 “염각지는 두 곳에 있다. 선법은 수집하고 악법은 차단한다. 마치 문지기가 유익한 사람은 들여보내고 무익한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이 가라앉을 때면 염이 3법(택법·정진·희喜)을 솟아오르게 하고, 만약 마음이 흩어질 때면 염이 3법(경안·정定·사捨)을 잡아매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3) 각지의 동반자

셋째, 각지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을 말한다.

(4) 각지를 수습함

넷째, 각지를 수습함이란 공통되는 것과 공통되지 않는 것이 있다. 공통되는 것을 수습함의 상이란, 『대법론』에서 “원리遠離, 무욕無欲, 적멸寂滅, 내버림(棄捨)으로 회향하는 것에 의지해서 염각지念覺支 내지 사각지捨覺支를 수습한다. 이와 같은 4구는 그 순서대로 제諦를 연해서 각지를 수습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고제를 연해서 고가 핍뇌逼惱할 때면 고의 경계에 대해서 원리遠離를 구하기 때문에 원리에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애愛의 상을 연해서 고가 집기集起할 때면 이 경계에 대해서 반드시 이욕離欲을 구하기 때문에 이욕에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고의 멸을 연해서 고가 멸할 때면 이 경계에 대해 반드시 작증作證을 구하기 때문에 적멸寂滅에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내버림(棄捨)이란 고를 멸하기 위한 행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세력에 의지해서 고를 내버리기 때문이다. 이 경계에 대해 반드시 수습을 구하기 때문에 내버림으로 회향한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것을 공통되는 것을 수습함이라 한다.
공통되지 않는 것을 수습함이란, 『대지도론』에서 “일체의 법에 대해 기억하지 않고 억념하지 않는 것 이것을 염각분念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법에 대해 선법,

001_0824_c_01L覺支自體謂念擇法精進喜安定捨
001_0824_c_02L如是七法是覺支體又此七法三品所
001_0824_c_03L如瑜伽說三覺支奢摩他品攝三覺
001_0824_c_04L毗鉢舍那品攝一覺支通二品攝
001_0824_c_05L是故說名七種覺支謂擇法精進喜
001_0824_c_06L三觀品所攝安定捨此三止品所攝
001_0824_c_07L覺支一種俱品所攝說名所行智度論
001_0824_c_08L念覺支在二處能集善法能遮惡
001_0824_c_09L如守門人有利者令入無益者除
001_0824_c_10L若心沒時念三法起若止散時念三
001_0824_c_11L法攝故覺支助伴謂彼相應心心法
001_0824_c_12L覺支脩習有共不共共脩相者
001_0824_c_13L如對法說依遠離無欲寂滅廻向棄捨
001_0824_c_14L脩念覺支乃至捨覺支如是四句
001_0824_c_15L其次第顯示緣諦脩習覺支所以者何
001_0824_c_16L若緣苦諦爲苦惱時於苦境界求遠離
001_0824_c_17L名依止遠離若緣愛相爲苦集時
001_0824_c_18L於此境界必求離欲故名依止離欲
001_0824_c_19L若緣苦滅爲苦滅時於此境界必求
001_0824_c_20L作證故名依止寂靜棄捨者謂起苦
001_0824_c_21L滅行由此勢力棄捨苦故於此境界
001_0824_c_22L必求脩習故名廻向棄捨是名共脩
001_0824_c_23L不共脩者如智度說於一切法不憶
001_0824_c_24L不念是名念覺分一切法中求索善法

001_0825_a_01L불선법, 무기법을 추구해 보아도 모두 얻을 수 없는 것 이것을 택법각분擇法覺分이라 한다. 삼계三界에 들어가지 않고 삼계의 상을 파괴하는 것 이것을 정진각분精進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지어진 법에 대해 즐거움(樂)에 집착함을 내지 않아 슬픔(憂)과 기쁨(喜)의 상이 파괴되기 때문에 이를 희각분喜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법에 대해 제除(경안輕安)의 마음을 연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제각분除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법이 항상 정定의 상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 흩어지지도 않고 모이지도 않는 것 이를 정각분定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법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또한 보지 않는 이 사捨의 마음 이를 사각분捨覺分이라 한다.”고 한다. 또 “실상을 보는 지혜에 대해 기쁨(喜)을 내는데 이를 참된 기쁨이라 한다. 이 참된 기쁨을 얻었을 때 먼저 몸의 추중麤重을 제거하고 뒤에 마음의 추중을 제거한다. 연후에 일체의 법의 상을 제거해서 즐거움(快樂)을 얻으면 이것이 몸과 마음에 편만하니, 이를 제각분除覺分이라 한다. 이미 기쁨과 제除를 얻고 나면 관행觀行을 내버린다. 관행이란 이를테면 무상無常, 고苦, 공空 등을 관찰하는 것이고 유有, 무無, 비유비무非有非無 등을 관찰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희론戲論이 없는 것이 실상實相이다. 만약 사捨를 행하지 않는다면 쟁諍들이 있다. 만약 유를 실實이라 한다면 무는 허虛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무를 실이라 한다면 유는 허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비유비무를 실이라 한다면 유와 무는 허라고 하는 것이다. 실에 애착하면 허를 증오하게 된다. 슬픔(憂)과 기쁨(喜)의 처소를 생하는데 어찌 사捨라 하겠는가? 이와 같이 기쁨(喜), 제除, 사捨를 얻으면 칠각분이 원만하게 갖춰지게 된다.”고 한다. 이 경우 제除란 경안이다. 능히 추중을 제거하기에 제除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분의 수습의 상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5) 각지를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각지를 수습함의 결과란, 견도에서 끊게 되는 번뇌를 영원히 끊는 것을 말한다. 그 공통되지 않는 것의 각분의 결과를 설명한다면, 부처의 집에 태어나 5종의 두려움(怖畏)이 없게 되고 백법百法을 밝히는 문을 얻어 백불百佛의 세계를 움직이게 하니, 이와 같은 내용을 경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다. 각지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7) 팔성도지

다음에 팔성도지八聖道支의 5문을 설명하겠다.

(1) 팔성도지의 소연

첫째, 팔성도지의 소연이란

001_0825_a_01L不善法無記法皆不可得是名擇法覺
001_0825_a_02L不入三界破壞諸界相是名精進
001_0825_a_03L覺分於一切作法不生著樂憂喜相
001_0825_a_04L增故是名喜覺分於一切法中除心緣
001_0825_a_05L不可得故名除覺分1) [20] 一切法常定
001_0825_a_06L不亂不定是名定覺分於一切法不
001_0825_a_07L著不依止亦不見是捨心是名捨覺分
001_0825_a_08L又觀實相智慧中生喜是名眞喜得是
001_0825_a_09L眞喜先除身喜次除心喜然後除一
001_0825_a_10L切法相得快樂遍身心中是爲除覺分
001_0825_a_11L旣得喜除捨諸觀行所謂無常苦空等
001_0825_a_12L有無非有非無等觀何以故無戱
001_0825_a_13L論是實相若不行捨便有諸諍若以
001_0825_a_14L有爲實以無爲虛若以無爲實則以
001_0825_a_15L有爲虛若以非有非無爲實則以有無
001_0825_a_16L爲虛於實愛著於虛憎恚生憂喜處云
001_0825_a_17L何不捨得如是喜除捨七覺分具足滿
001_0825_a_18L此中除者卽是輕安能除麤重故名
001_0825_a_19L爲除是爲略說覺分脩相覺支脩果
001_0825_a_20L謂見道所斷煩惱永2) [21] 其不共覺分
001_0825_a_21L果者生在佛家離五怖畏得百法明門
001_0825_a_22L動百佛世界等廣說如經也覺支五門
001_0825_a_23L略說如是

001_0825_a_24L
次明八聖道支五門八聖道所緣

001_0825_b_01L이 뒤 시기의 사성제의 여실성如實性과 일체의 진소유성盡所有性을 말한다. 여소유성如所有性은 모두 수도위修道位의 소연이기 때문이다.

(2) 팔성도지의 본체

둘째, 팔성도지의 본체란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을 말한다. 이와 같은 8법이 성도지聖道支의 본체이다. 또 이 8법은 삼온三蘊에 속한다. 『유가사지론』에서 “이 중 정견, 정사유, 정정진은 혜온慧蘊에 속하고, 정어와 정업과 정명은 계온戒蘊에 속하고, 정념과 정정은 정온定溫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무슨 이유로 각지覺支(칠각지)는 3품에 속하고, 이 도지道支(팔성도지)는 삼온에 속한다고 설하는가? 견도見道에서는 사마타(止)와 위파사나(觀)가 짝이 되어 운용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다른 방편의 도道는 짝이 되어 운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修道에서는 이 삼온을 수습해야 무학위無學位의 해탈온解脫蘊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의 온蘊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3) 팔성도지의 동반자

셋째, 팔성도지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을 말한다.

(4) 팔성도지를 수습함

넷째, 팔성도지를 수습함이란, 만약 그 공통되는 행行이라면 각지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만약 공통되지 않는 행이라면, 『대지도론』에서 “보살은 일체의 법이 공해서 얻음이 없는, 이와 같은 정견에 머물면서 정사유의 상을 관찰할 때 일체의 사유가 모두 그릇됨을 안다.……내지 열반을 사유할 때, 부처들을 사유할 때도 또한 이와 같다. 이유가 무엇인가? 일체의 사유의 분별을 끊는 것 이를 정사유라고 한다. 이와 같은 정사유에 머물기에 이것은 바르다, 이것은 그르다 하고 보지 않는다. 일체의 사유의 분별을 넘어서기에 이를 정사유라 하는 것이다. 일체의 사유의 분별은 모두 평등하고, 모두 평등하기에 마음이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들을 정사유라 한다. 운운.”라고 한다.

(5) 팔성도지를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팔성도지를 수습함의 결과란, 분별해서 타인에게 가르쳐 보이고 타인에게 믿게 하여, 번뇌의 장애를 청정하게 하고 수번뇌의 장애를 청정하게 하고 가장 월등한 공덕의 장애를 청정하게 해서 무량하고 월등한 공덕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도지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001_0825_b_01L卽此後時四聖諦如實性及與一切盡
001_0825_b_02L所有性如所有性皆是脩道位所緣故
001_0825_b_03L八聖道自體正見正思惟正語正業
001_0825_b_04L正命正精進正念正定3) [22] 是八法是道
001_0825_b_05L支體又此八法三蘊所攝如瑜伽說
001_0825_b_06L此中正見正思惟正精進慧蘊所攝
001_0825_b_07L語正業正命戒蘊所攝正念正定
001_0825_b_08L蘊所攝故何故覺支三品所攝說此道
001_0825_b_09L支三蘊攝者爲顯見道止觀雙運異方
001_0825_b_10L便道不得雙故爲顯脩道脩此三蘊
001_0825_b_11L能得無學位解脫蘊及與解脫知見蘊
001_0825_b_12L道支助伴謂彼相應心心法等
001_0825_b_13L道支脩習若其共行如覺支說不共
001_0825_b_14L行者如智度說菩薩於諸法空無所得
001_0825_b_15L住如是正見中觀正思惟相知一切思
001_0825_b_16L惟皆是邪乃至思惟涅槃思惟諸佛
001_0825_b_17L皆亦*知是以何故斷一切思惟分別
001_0825_b_18L是名正思惟住如是正思惟中不見是
001_0825_b_19L正是*耶過諸思惟分別是爲正思惟
001_0825_b_20L一切思惟分別皆悉平等平等故心不
001_0825_b_21L如是等名爲正思惟乃至廣說
001_0825_b_22L支脩果
謂分別4) [23] 示他令信煩惱
001_0825_b_23L障淨隨煩惱障淨最勝功德障淨
001_0825_b_24L得無量殊勝功德故是爲略說道支五

001_0825_c_01L보리분법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제2장 본문 풀이
다음에 본문을 따라가며 풀이하겠다.

1. 논의 일으키는 부분을 풀이함
네 번째, 대치를 수습함에 관한 품(對治修住品第四)

대치를 수습함이란 37도품道品을 수습하는 것이다. 이제 (이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 논에서 최초에 (다음의 것을) 설한다.

본문 중 먼저 논論의 일으키는 부분에 대해 풀이한다. 이것은 두 구절로 되어 있다. 앞 구절은 합해서 일으키는 것이고, 뒤 구절은 나누어 일으키는 것이다. “이 논에서 최초에 (다음의 것을) 설한다.”란 ‘이 품에서 최초에 사념처를 설한다.’는 것을 말한다.

2. 게송과 주석을 풀이함
송頌은 합하면 12송 반이 있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1송은 대치를 나누어 밝히고, 뒤의 1송 반은 대치를 합해서 설한다. 앞의 11송은 문의 형세가 여섯으로 되어 있다. 첫째 최초의 1송은 사념처四念處를 밝히고, 둘째 다음의 1송은 사정근四正勤을 밝히고, 셋째 3송 반은 여의족如意足을 밝히고, 넷째 2송은 근根과 역力을 합해서 밝히고, 다섯째 1송 반은 칠각지를 밝히고, 여섯째 2송은 팔성도를 밝힌다.

1) 대치를 나누어 밝힘

(1) 사념처


麤行貪因故  추중한 행이기에, 탐욕의 원인이기에
種故不迷故  종자이기에, 혼미하지 않기에
爲入四諦故  사제에 들어가기 위해
修四念處觀  사념처의 관을 수습하네 ≺1≻

몸(身)에 의해 추중한 행이 현현한다. 추중한 행을 사택思擇해서 고제에 들어간다. 이 몸은 추대한 행行들을 상相으로 하기 때문이다. 추대함이란 행고行苦이다. 이 행고로 인해 일체의 유루의 법들 이것들에 대하여 성인은 고제를 본다. 수受란 탐애의 의지처이다. 수들을 사택해서 집제에 들어간다. 마음(心)이란 아집我執의 의지처이다. 이 마음을 사택해서 멸제에 들어간다. 아我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없애 주기 때문이다. 법法이란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 두 부류이다. 이 법을 사택해서,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에 대한 무명無明이 없기 때문에, 도제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최초에, 사제에 들어가기 위해, 사념처를 수습함이 안립된다.

사념처를 밝히는 최초의 1송에서 앞의 반은 나누어서 밝히는 것이고, 뒤의 반은 합해서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념처를 건립하는 일은 크게 보아 3종의 의미가 있다. 첫째 사전도四顚倒를 대치하기 위해, 둘째 사박四縛에서 벗어나기 위해, 셋째 사제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3종의 구별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이제 여기서는 세 번째 의미를 설명한다. “추중한 행”이란 신념처身念處의 색신色身이다. 추중이 수반되는 것은 경안이 없다. 이것은 행고行苦의 상이 있다. 그러므로 몸(身)을 관찰해서 고제에 들어간다. “탐욕의 원인”이란 수념처受念處를 나타낸다. 6종의 수受는 6종의 탐애貪愛를 일으킨다. 탐애는 삼유三有의 고苦의 집취를 불러와 모은다. 그러므로 이것을 관찰해서 집제에 들어간다. “종자이기에”란 심념처心念處를 나타낸다. 마음(心)은 종자를 집지執持하기에 법들의 근본根本이다. 아我는 지말枝末이다. 없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마음을 여실하게 관찰할 때 멸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혼미하지 않기에”란 법념처法念處를 나타낸다. 법들이 잡염과 청정의 부류로 구별되는 것을

001_0825_c_01L菩提分義略說如是

001_0825_c_02L次消其文
[釋論發起]
文中在先釋論發起於中二
001_0825_c_03L初句總發下句別起此論中初說
001_0825_c_04L謂此品初說四念處也

001_0825_c_05L[釋偈頌註釋]
偈中合有十二頌半於中有二前十一
001_0825_c_06L別明對治後一頌半總說對治
001_0825_c_07L十一中文5) [24] 有六一初一頌明四念處
001_0825_c_08L二次一頌明四正勤三三頌半明如意
001_0825_c_09L四有二頌總明根力五一頌半明七
001_0825_c_10L覺分六有二頌明八聖道

001_0825_c_11L
[別明對治]初一頌明四念處上半別顯下半總
001_0825_c_12L然立四念處略有三意一爲治四
001_0825_c_13L倒故二爲脫四縛故三爲入四諦故
001_0825_c_14L三種差別如前已說今於此中說第三
001_0825_c_15L言麤行者是身念處所有色身
001_0825_c_16L重所隨遠離輕安是行苦相是故觀
001_0825_c_17L身從入苦諦言貪因者顯受念處
001_0825_c_18L種受起六貪愛貪愛招集三有苦聚
001_0825_c_19L以觀此能入▣諦言種*或者顯心念
001_0825_c_20L心持種子作諸法本我是▣▣
001_0825_c_21L畏斷滅如實觀心趣入滅諦故不迷
001_0825_c_22L故者顯法念處諸法品類染淨差別
001_0825_c_23L「者」疑「於」▣▣疑「斷若」「知」疑「如」
001_0825_c_24L次同
「海」疑「誨」或「顯」▣疑「亦」

001_0826_a_01L무명無明이 알지 못해서 명明인 혜慧를 덮고 가로막는다. 법의 상에 혼미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따라서 도제에 들어간다. 뒤의 반에서 “사제에 들어가기 위해”란 해야 할 바를 합해서 밝히는 것이다 “사념처의 관을 수습하네.”란 수습을 합해서 밝히는 것이다.

세친世親(바수반두)의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송의 위의 반을 주석하는 것이고, 뒷부분은 송의 뒤의 반을 주석하는 것이다. 앞의 “추중한 행”을 주석하는 부분에서, 앞부분은 송문을 간략하게 주석하는 것이고, 뒷부분은 거듭 분별하는 것이다. 앞의 “몸身에 의해 추중한 행이 현현한다.”란 『대법론』에서 “실재하는 색신은 모두 행고行苦의 상이 있다. 추중이 현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행觀行을 수습할 때 이 경안을 닦는다. 몸의 차별에 있어서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여기서 “추중한 행이 현현한다.”란 추중한 행의 고가 현현한다는 것이다. “이 몸” 이하는 앞의 의미를 거듭 밝히는 것이다. “추대함이란 행고의 상이다.”23는 “대大”란 “중重”이니 “추중이란 행고의 상이다.”를 의미한다. 다른 문장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하는 송의 아래의 반을 합해서 풀이하는 것이다.

(2) 사정근

다음에 정근을 수습한다.

已知非助道  도를 돕지 않는 것
一切種對治  대치를 모든 종류로 이미 알았네
爲上二種故  위의 두 종류를 위해
修習四正勤  사정근을 수습하네 ≺2≻

사념처를 완전하게 수습했기 때문에 도道를 돕지 않는 흑법과 도를 돕는 백법의 모든 종류에 대해서 명료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도를 돕지 않는 법을 소멸하게 하기 위해, 도를 돕는 법을 발생하게 하기 위해 4종의 정근이 일어난다. “첫째, 이미 발생한 비선非善의 악법을 소멸하게 하기 위해 운운.” 하며 경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다. 소멸하게 하기 위해, 차단하기 위해, 발생하게 하기 위해, 증장하게 하기 위해.

“다음에 정근을 수습한다.”란, 첫째로 아래의 본문을 일으키는 것이고, 이 아래는 둘째로 사정근을 밝히는 것이다. 송은 둘로 되어 있다. 위의 반은 앞의 것을 다시 거론하고 뒤의 것을 일으키는 것이다. 뒤의 반은 앞의 것을 이어서 이에 편승해서 정근을 밝히는 것이다. 앞의 법념처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잡염의 법은 도道를 돕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또 청정의 법은 그것을 대치한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래서 “도를 돕지 않는 것, 대치를 모든 종류로 이미 알았네.”라고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와 같이 이미 발생한 잡염의 법은 소멸하게 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잡염의 법은 발생하지 않게 한다. 위에서와 같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청정의 법은 발생하게 하고, 이미 발생한 청정의 법은 증장하게 한다. 그래서 “위의 두 종류를 위해 사정근을 수습하네.”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송의 위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고, “도를 돕지 않는 법을 소멸하게 하기 위해” 이하인 뒷부분은 송의 아래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다. 본문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3) 여의족


隨事住於彼  대상에 따라 그것에 안주하게 되네
爲成就所須  바라던 바를 성취하게 되네
捨離五失故  5종의 과실을 내버리기 위해
修習八資糧  8종의 자량을 수습하네 ≺3≻

흑법과 백법 2종의 법을 멀리하거나 얻기 위해 정근을 수습했을 때, 마음은 장애가 없고 (도를) 돕는 것이 있기 때문에 안주하게 된다. 이 마음의 안주는 4종의 역능이 있다. 4종의 역능이란 하나하나가 가르침(敎)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다. “가르침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란 사여의족을 말한다. 모든 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취하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안주란 마음의 안주이니 삼마제三摩提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정근 후 순서대로 사여의족을 설하는 것이다. 대상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안주한다란, 5종의 과실을 멸하기 위해 8종의 자량을 수습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하 셋째 여의족을 밝힌다. 3송 반이 있는데 세 단락으로 되어 있다. 첫째 단락인 제1구는 본체를 제시하는 것이고, 둘째 단락인 제2구는 이름을 풀이하는 것이고, 셋째 단락은 3송으로 되어 있는데 수습의 상을 밝히는 것이다.
제1구 “대상에 따라 그것에 안주하게 되네.”란, 전 단계에서 정근을 수습해서

001_0826_a_01L無明不了覆障明慧不迷法相順入
001_0826_a_02L道諦故下半中言爲入四諦故者
001_0826_a_03L顯所爲脩四念處觀者總明能脩
001_0826_a_04L中有二先釋上半後釋下半初中卽
001_0826_a_05L釋麤行中先略釋文後重分別初言
001_0826_a_06L由身故麤行得顯者如對法說所有色
001_0826_a_07L身皆行苦相麤重所顯故是故脩觀行
001_0826_a_08L能治此輕安於身差別生故今言
001_0826_a_09L麤行得顯者麤重行苦得顯現也此身
001_0826_a_10L以下重顯前義言麤大者是行苦相者
001_0826_a_11L大之言重謂麤重是行苦相也餘文可
001_0826_a_12L是故以下總釋下半

001_0826_a_13L
次脩正勤一者發起下文此下第二明
001_0826_a_14L四正勤頌中有二上半1) [25] 前以發於
001_0826_a_15L下半係前乘顯正勤如前所說
001_0826_a_16L念處中已知染法是非助道又知淨法
001_0826_a_17L是彼對治故言已知乃至對治如上染
001_0826_a_18L已生者滅未生不起爲上淨法
001_0826_a_19L生令生生者增長故言爲上二種故
001_0826_a_20L脩習四正勤也釋中有二先釋上半
001_0826_a_21L爲滅離下次釋下半文相可知

001_0826_a_22L
此▣▣三明如意足有三頌半卽爲三
001_0826_a_23L初句出體次句釋名後有三頌
001_0826_a_24L脩習相初言隨事住於彼者前脩正勤

001_0826_b_01L악이 소멸하고 선이 발생하게 되면 이에 따라 “장애는 없고 도를 돕는” 대상은 있게 되므로 ‘마음이 한 경계에 놓임(心一境性)’에 안주하게 된다. 마음의 소연경계는 두 종류를 벗어나지 않는다. 산란하고 추대한 경계와 정려靜慮의 경계이다. 이 산란하고 추대한 경계를 내버리고 그 정려의 경계에 안주하게 되므로 “그것에 안주하게 되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한 경계에 놓임’에 안주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사마타(止)가 사여의족의 본체이다. 넷이 증상함에 따라 삼마지(定)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제2구 “바라던 바를 성취하게 되네.”란, 이것은 둘째 여의족의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다. “성취함”이 여의如意의 의미이고, “바라던 바(所須)”가 족足의 의미이다. 여의해서 “바라던 바(所欲)”가 성취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은 육신통六神通의 자재로움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육신통은 네 발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마치 가야 할 곳이 있을 때 반드시 두 발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필요로 하는 바(所須)”로서 그 발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결과를 들어서 원인으로 삼기에 여의족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하 3송은 수습의 상을 밝힌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두 구는 수를 들어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의 두 송 반은 순서대로 나누어서 풀이하는 것이다. 합해서 표방하는 것은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앞의 구는 5종의 과실을 내버리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고, 뒤의 구는 8종의 자량을 수행하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위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고, 뒷부분은 아래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다. 앞부분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나누어서 풀이하는 부분과 합해서 밝히는 부분이다. 나누어서 풀이하는 부분 중 앞부분은 앞의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있는 대로 풀이하는 부분과 거듭해서 보여 주는 부분이다. 있는 대로 풀이하는 부분 중 “흑법과 백법 2종의 법을 멀리하거나, 내지 정근을 수습했을 때”란, 수반되는 대상을 들어서 ‘대상(事)’이라는 단어를 풀이한 것이다. 다음에 “마음은 장애가 없고 (도를) 돕는 것은 있기 때문에”란, 수반하는 것인 마음(心)을 다시 거론하고 이어서 ‘수반되는 것(隨)’이라는 단어를 풀이한 것이다. “때문에 안주하게 된다.”란 “그것에 안주하게 되네.(住於彼)”를 풀이한 것이다. “이 마음의” 이하는 앞의 의미를 거듭해서 보여 준 것이다. “이 마음의 안주는 4종의 역능이 있다.”란, 이 마음의 안주가 성취되면 4종의 월등한 역능이 있게 된다. 욕欲의 증상, 근勤의 증상, 심心의 증상, 관觀의 증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4종의 역능은 대상을 수반해서 마음의 안주를 성취하게 한다. 하나하나가 모두 성스러운 말씀인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이 한 경계에 놓임(心一境性)’을 성취하기에

001_0826_b_01L滅惡生善隨是無障有助之事故得
001_0826_b_02L住心於一境性心所緣境不出二種
001_0826_b_03L散麤境及靜慮境捨此散麤境住彼靜
001_0826_b_04L慮境以之故言住於彼也是明心住於
001_0826_b_05L一境性止爲四如意足體性隨四增上
001_0826_b_06L而得定故次言爲成就所說者是第二
001_0826_b_07L釋如意足義成就是如意義所順是其
001_0826_b_08L足義如義所欲無不成就卽是六通
001_0826_b_09L自在之義如是六通名須四足如有
001_0826_b_10L所至必須兩足故以所須釋其足義
001_0826_b_11L擧果曰因名如意足也此下三頌
001_0826_b_12L脩習相於中有二初之二句擧數總標
001_0826_b_13L下二頌半隨次別解總標中亦有二
001_0826_b_14L句標所脩行捨失下句標所

001_0826_b_15L
釋中有二初釋上半後釋下半初中
001_0826_b_16L亦二別釋總明別釋之中先釋初句
001_0826_b_17L於中亦二正釋重顯正釋中言爲離
001_0826_b_18L▣▣正勤已者擧所隨事以釋事字
001_0826_b_19L次言心者無彰有助者牒能隨心
001_0826_b_20L釋隨字故得住者釋住於彼也此心
001_0826_b_21L以下重顯前義言此心住有四能者
001_0826_b_22L此心住有四勝能謂欲增上及勤心觀
001_0826_b_23L如是四能作但隨事能成心住一一皆
001_0826_b_24L隨聖言師敎乃得成就心一境性故言

001_0826_c_01L“하나하나가 가르침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유가사지론』 제98권에서 “만약 어떤 비구가 청정한 의향(意樂)과 맹렬한 의욕(欲)에 의지해서 가장 월등한 신통의 혜慧를 증득하고자 한다면 여래들과 불제자들을 은중殷重하고 공경하며 정법正法을 듣고, 듣고서 즉각 점차 월등한 삼마지를 증득하게 되는데, 이를 증상된 욕欲의 삼마지라 한다. 또 만약 어떤 비구가 법을 들은 대로, 법을 얻은 대로 큰 공용功用을 일으키고 큰 정진을 일으키거나, 혹은 바르게 타인을 위해 언명하고 설명하거나, 혹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의미가 담긴 말을 독송한다면 이로부터 즉각 점차 인연이 되어 월등한 삼마지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를 증상된 근勤의 삼마지라 한다. 또 만약 어떤 비구가 현선賢善들의 삼마지의 상에 대해 잘 사유를 취하고 청어靑瘀 등 내지 골쇄骨鎖의 관觀을 최대한 행할 때 이 소연所緣에 의해 순서대로 월등한 삼마지가 생기하는데, 이를 증상된 심心의 삼마지라 한다. 또 어떤 비구가 법을 들은 대로, 법을 얻은 대로 한적한 곳에 홀로 거처하며 사유하고 잘 헤아리고 상세히 관찰한다면 이 인연에 의해 점차 월등한 삼마지가 생기하는데, 이를 증상된 관觀의 삼마지라 한다. 운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네 유형의 사람은 모두 법을 들은 대로 월등한 삼마지(定)를 성취하기에 “가르침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라 말한 것이다.
이 이하는 제2구를 풀이한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부분 중 “‘가르침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란 사여의족을 말한다.”란, 장차 뜻을 풀이하고자 함에 본체를 들어서 이름을 보여 준 것이다. “모든” 이하는 그 이름을 바로 풀이한 것이다. “모든 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취하게 하는”이란 송의 “성취하게 되네.”를 바로 풀이한 것이다. “원인”이란 송의 “바라던 바(所須)”를 풀이한 것이다. 아래의 “때문이다”란, 구하는 목적을 여의如意하게 성취하는 법의 원인이기 때문에 이 삼마지(定)를

001_0826_c_01L一隨敎得成就如瑜伽論第九十八卷
001_0826_c_02L若有苾蒭依淨意樂及猛利欲
001_0826_c_03L欲證得最勝通慧從諸如來及佛弟子
001_0826_c_04L殷重恭敬聽聞正法從聞無間漸次
001_0826_c_05L證得勝三摩地是名欲增上三摩地
001_0826_c_06L有苾蒭如所聞法如所得法起大功
001_0826_c_07L發大精進或正爲他宣說開示
001_0826_c_08L以勝妙意詞讀誦從此無間漸次因緣
001_0826_c_09L能隨獲得勝三摩地是名勤增上三摩
001_0826_c_10L復有苾蒭於諸賢善三摩地相
001_0826_c_11L取思惟觀靑瘀等乃至骨鏁以爲邊際
001_0826_c_12L由此所緣次第生起勝三摩地是名心
001_0826_c_13L增上三摩地復有苾蒭如所聞法
001_0826_c_14L所得法獨處空閑思惟籌量審諦觀
001_0826_c_15L由此因緣漸次生起勝三摩地
001_0826_c_16L名觀增上三摩地乃至廣說如是四人
001_0826_c_17L皆隨聞法成就勝定故言隨敎得成就
001_0826_c_18L從此以下釋第二句於中有二
001_0826_c_19L言隨敎得成就者說名四如意足者
001_0826_c_20L欲釋義擧體顯名也一切以下正釋其
001_0826_c_21L一切所求義成就者正釋頌中爲成
001_0826_c_22L就也言因緣者是釋所須下言故者
001_0826_c_23L諸所求義如意成就之所法因故說此
001_0826_c_24L「勝」疑「牒」

001_0827_a_01L여의족이라 한다. 두 구를 나누어서 풀이하는 것은 앞에서 다 설명하였다. “이 경우” 이하는 합해서 그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구절로 되어 있다. 앞의 구절은 여의족의 본체를 거듭 보여 주는 것이고 뒤의 구절은 순서대로 뜻을 설명하는 것을 매듭지어 밝히는 것이다. 앞의 구절 중 “마음의 안주이니 삼마제三摩提24라 한다.”란, 우리나라에서 ‘등지等持’라 하는 것이다. 마음의 안주를 설명하고자 할 때, 9종의 안주 중 오직 아홉째인 등지의 안주만을 취해서 사여의족의 본체로 한다. 무엇을 9종의 마음의 안주라 하는가? 첫째 내주內住, 둘째 등주等住, 셋째 안주安住, 넷째 근주近住, 다섯째 조순調順, 여섯째 적정寂靜, 일곱째 극한의 적정, 여덟째 일취一趣에 전념하는 것, 아홉째 등지이다. 자주 닦고 자주 익히고 자주 수습하는 것을 인연으로 하기 때문에 무가행無加行과 무공용無功用을 얻어 저절로 도道가 전전하기에 등지라 한다. 등지는 바로 삼마지이다. 앞의 8종은 후에 다시 설명할 것이다. “알아야 한다.”란, 이와 같은 등지의 의미를 알도록 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하는 둘째 매듭지어 밝히는 것이다. 앞의 8종의 마음의 안주의 단계 중 사정근에 의지해서 근면하게 수습하면 아홉째의 삼마지에 안주하기 때문에 정근 후에 여의족을 설하는 것이다.

“대상에 따라” 이하는 이어서 아래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다. “대상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안주한다.”란, 위를 다시 거론하며 여의족의 본체를 말하는 것이다. 안으로는 근면의 대상에, 밖으로는 성스러운 가르침에 의지해서 이 인연에 따라 마음의 안주를 성취하기 때문에 “대상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안주한다.”고 말한 것이다. 안과 밖의 인연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무슨 방편을 써서 이 안주를 성취하는가? 5종의 과실을 멸하기 위해 8종의 행行을 수습하는 것을 그 자량資糧으로 해서 마음의 안주에 도달하기 때문에 “5종의 과실을 멸하기 위해 8종의 자량을 수습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주장은 4종의 삼마지(定)를 얻고자 할 때면 반드시 이와 같은 8종의 자량을 필요로 하고, 이에 그 삼마지를 성취하게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대법론』에 의거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만약 『유가사지론』에 의거한다면

001_0827_a_01L名如意足也別釋二句竟在於前
001_0827_a_02L此中以下總顯其義於中二句初句重
001_0827_a_03L顯如意兄體下句結明次第說意
001_0827_a_04L言心住名三摩提者此云等持欲明心
001_0827_a_05L住者九種中唯取第九等持之住以爲
001_0827_a_06L四如意足之體何等名爲九種心住
001_0827_a_07L者內住二者等住三者安住四者近
001_0827_a_08L五者調順六者寂靜七者最極寂
001_0827_a_09L八者專住一趣九者等持數脩數
001_0827_a_10L習數多脩習爲因緣故得無加行無功
001_0827_a_11L用住任運轉道故名等持等持正是
001_0827_a_12L三摩地也前八種住後當更說言應知
001_0827_a_13L觀知如是等持義也是故以下第二
001_0827_a_14L結明由前八種心住位中依四正勤
001_0827_a_15L勤脩習已乃得第九三摩地住故正勤
001_0827_a_16L後說如意足也隨事以下次釋下半
001_0827_a_17L隨事隨敎住者者是牒上說如意足體
001_0827_a_18L依內勤事及外聖敎隨此因緣得成
001_0827_a_19L心住故言隨事隨敎住也內外因緣已
001_0827_a_20L如前說以何方便得成此住者爲滅五
001_0827_a_21L以脩八行爲其資1) [26] 得至心住
001_0827_a_22L故言爲滅乃至應知此意明其得四定
001_0827_a_23L必須如是八種資粮乃得成就彼三
001_0827_a_24L摩地依對法論應作是說若依瑜伽

001_0827_b_01L다시 다르게 풀이하게 된다. 무엇이 여의족을 수습하는 것인가? 이중二重으로 되어 있다. 앞의 욕欲 등 4종의 증상력에 의지해서 각 경우에 따라 삼마지를 얻는다. 오직 현행의 전纏을 멸하게 했을 뿐 아직 수면隨眠(번뇌)을 끊지 못했다. 그 사람이 이후의 시기에 수면을 끊고자 한다면 다시 전진해서 8종의 단행斷行을 수습해야 한다. 이에 가장 월등한 등지等持를 성취하게 된다. 합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전과 이후 두 단계에 4종의 신족의 본체를 건립한다. 그러므로 지금 “대상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안주한다.”란 앞의 단계(位)를 다시 거론하며 삼마지를 얻는 네 유형의 사람을 말한 것이고, “5종의 과실을 멸하기 위해” 이하는 그 네 유형의 사람이 각 경우에 따라 이후의 시기에 8종의 단행을 수습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회통해서 말한다면 이 8종의 행은 이전의 단계에도 있지만 그 단계에서는 그저 현행의 전纏을 끊을 뿐이다. 그래서 단행의 이름을 건립하지 않는다. 이후의 단계에서는 수면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비로소 단행을 건립하는 것이다. 그 『논』에서 “그 사람은 4종의 삼마지의 증상력에 의해 이미 전纏들을 여의었다. 다시 영원히 수면을 해하기 위해, 또 그 대치하는 것인 선법들을 수습해서 적집하기 위해 다시 욕구와 책려를 일으킨다. 그 사람이 이와 같이 바르게 수습할 때 8종의 단행이 있게 된다. 수면을 영원히 해하고자, 삼마지가 원만함을 얻고자 차별이 전전한다. 이 중 의욕(欲)이란 그것의 의욕이다. 이 중 책려란 그것의 정진이다. 이 중 믿음(信)이란 그것의 믿음이다. 이 중 경안輕安, 염念, 정지正知, 사思, 사捨는 그것의 방편이다. 이와 같이 이 중 앞의 의욕(欲) 등 4종의 삼마지나, 지금 말하는 8종의 단행이 수면을 영원히 끊고자 하고 삼마지를 원만하게 성취하고자 할 때 일체를 총합해서 욕삼마지단행성취신족欲三摩地斷行成就神足 내지 관삼마지단행성취신족觀三摩地斷行成就神足이라 한다. 운운.”라고 한다.
(『유가사지론』의) “이 중 의욕(欲)이란 그것의 의욕이다. 내지 그것의 방편이다.”란,

001_0827_b_01L更作異釋何者脩如意足有其二重
001_0827_b_02L前依欲等四增上力隨其所應得三摩
001_0827_b_03L唯滅現纒未斷隨眠彼人後時
001_0827_b_04L斷隨眠更進脩習八種斷行乃得成就
001_0827_b_05L最勝等持合說如是前後二位建立
001_0827_b_06L四種神足體性是故今言隨事隨敎住
001_0827_b_07L者者是牒前位得定四人爲滅以下
001_0827_b_08L彼四人隨其所應後時脩習八種斷行
001_0827_b_09L通而言之此八種行亦在前位伹彼位
001_0827_b_10L中唯伏現纒是故不立斷行之名於後
001_0827_b_11L位中能斷隨眠是故此中方立斷行
001_0827_b_12L彼論云四三摩地增上力故已遠諸纒
001_0827_b_13L後爲永害諸隨眠故及爲脩集能對治
001_0827_b_14L彼諸善法故便更生起欲樂策勵彼於
001_0827_b_15L如是正脩習時有八斷行爲欲永害諸
001_0827_b_16L隨眠故爲三摩地得圓滿故差別而轉
001_0827_b_17L此中欲者卽是彼欲此由策勵卽彼
001_0827_b_18L精進此中信者卽彼信此中安念正
001_0827_b_19L知思捨卽彼方便如是此中若先欲等
001_0827_b_20L四三摩地若今所說八種斷行於爲永
001_0827_b_21L斷所有隨眠圓滿成辦三摩地時一切
001_0827_b_22L總名欲三摩地斷行成就神足乃至觀
001_0827_b_23L三摩地斷行成就神足乃至廣說言此
001_0827_b_24L中欲者彼是彼欲乃至卽彼方便者

001_0827_c_01L그 앞선 4종의 삼마지를 수습할 때 또한 이와 같은 8종 행의 상이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 네 유형의 사람이 삼마지를 수습할 때 이 의욕, 정진, 믿음, 방편에 의지하지 않고서 삼마지를 얻는 일이 없기에 그때 합해서 넷이라 하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는 8종의 단행이라 하지 않는다. 비록 그 논이 단행의 이름을 건립하지 않지만 그 행의 상은 이 논과 저 논이 다름이 없기에 “이것 등은 그것 등이다.”25라고 설한 것이다. 또 비록 네 유형의 사람이 모두 욕欲 등26이 있기는 하나 돋보이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 넷을 구별한 것이다. 욕欲이 증상된 사람에게 정진 등의 행이 전연 없는 것이 아니고, 내지 관觀이 증상된 사람에게 욕欲 등이 전연 없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과실이라 하는가?

懈怠忘尊敎  해태, 존귀한 가르침을 잊는 것
及下劣掉起  그리고 하열下劣과 도기掉起,
不作意作意  작의하지 않음과 작의함
此五失應知  이 5종의 과실을 알아야 하네 ≺4≻

해태懈怠란 태만함의 나쁜 곳에 빠지는 것이다. 존귀한 가르침을 잊는 것이란 스승이 세운 법의 명名, 구句, 미味 등을 기억하지 않고 간직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열과 도기란 두 장애를 하나로 하고 있다. 슬픔과 기쁨을 본체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침몰과 부상이 그 작용이다. 이 위位 중 침몰할 때 작의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제4의 과실이다. 만약 이 둘이 없는데 작의한다면, 이것이 제5의 과실이다. 이 5종의 과실을 끊기 위해 8종의 자량을 안립한다. 해태를 끊기 위해, 무엇을 넷이라 하는가? 첫째 욕欲, 둘째 정근正勤, 셋째 믿음, 넷째 의猗이다.

이제 논서에 편승하여 설명하는 것을 그만두고, 돌아가서 다시 본문을 풀이하겠다. “무엇을” 이하는 뒤의 본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이하 2송 반이 있다. 앞은 전에 의지하여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순서대로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다. 앞의 1송은 5종의 과실을 밝히는 것이고, 뒤의 1송 반은 팔단행八斷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앞의 1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3구는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고, 뒤의 1구는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그 5종의 과실의 상을 주석에서 나누어서 밝히고 있다.
주석에서 순서대로 5종의 과실을 풀이한다. 제1의 과실 중 “태만함의 나쁜 곳에 빠지는 것”이란 산란한 곳에 매여서 정진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제2의 과실 중 “기억하지 않고 간직하지 않는 것”이란 가르침의 말을 기억하지 않고 가르침의 뜻을 간직하지 않는 것이다. 제3의 과실 중 “슬픔과 기쁨을 본체로 하는 것”이란, “하열下劣”은 슬픔이다. 슬픔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한다. 침몰沈沒을 작용으로 한다. “도기掉起”는 기쁨이다. 기쁨은 얻는 바를 적게 한다. 부상浮上을 작용으로 한다. 이 둘은 서로 의존하고 서로 두루 장애가 되기 때문에 합해서 하나의 과실이 된다. 마치 단斷과 상常을 합해서 하나의 변견邊見이라 하듯이. 제4의 과실이란, 침몰할 때는 위파사나(觀)를 수습하고 부상할 때는 사마타(止)를 수습해야 하는데, 때에 맞춰 작의해서 닦지 않는다. 그래서 “작의하지 않음”을 과실이라 하는 것이다. 제5의 과실이란 침몰과 부상을 멸했을 때

001_0827_c_01L是明彼先脩四定時亦有如是八種行
001_0827_c_02L以彼四人脩習定時無有不依此欲
001_0827_c_03L精進及信方便而得定者彼時合說名
001_0827_c_04L瑜伽論中不名八種斷行雖彼不
001_0827_c_05L立斷行之名而其行相此彼不異
001_0827_c_06L言此等卽彼等也又雖四人皆有欲等
001_0827_c_07L而隨偏增說四差別非謂欲增上者
001_0827_c_08L都無精進等行乃至觀增上者都無欲
001_0827_c_09L等行也

001_0827_c_10L
且止乘論還釋本文何者以下生起後
001_0827_c_11L從此以下有二頌半依前總標
001_0827_c_12L第別顯謂初一頌明五種失後一頌半
001_0827_c_13L頌八斷行初中有二三句別顯一句
001_0827_c_14L總結其五失相釋中分明釋中次第
001_0827_c_15L釋五種失第一中言沒嬾惡處者著散
001_0827_c_16L亂處不起精進也第二中言不憶不持
001_0827_c_17L不憶敎言不持敎旨也第三中言
001_0827_c_18L憂喜爲體者下劣是憂憂其難進
001_0827_c_19L爲事用掉起是喜喜小所得浮爲事
001_0827_c_20L此二相待互徧爲障是故合立爲一
001_0827_c_21L過失如合斷常爲一邊見也第四過者
001_0827_c_22L沉時脩觀浮時脩止而不隨時作意脩
001_0827_c_23L故不作意爲過失也第五過者
001_0827_c_24L「根」疑「粮」

001_0828_a_01L여전히 이를 제거해야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침몰을 멸한 후 여전히 멸하겠다는 의지(意)를 짓는다면(作) 다시 부상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만약 부상을 그치게 한 후 여전히 그치게 하겠다는 의지(意)를 짓는다면(作) 또한 다시 침몰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두 시기27가 없기에 “작의함”이 장애가 된다.

또 4종의 법이 순서대로 (다음과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依處及能依  의지처 그리고 의지하는 것
此因緣及果  이것의 원인 그리고 결과이네 ≺5ab≻

의욕(欲)이란 정근의 의지처이다. 의지하는 것이란 정근이다. 이것의 의지처를 의욕이라 한다. 무엇의 원인이기에 이것을 믿음(信)이라 하는가? 만약 믿음이 있다면 의욕을 낸다. 이 의지하는 것을 정근의 결과라 하는데, 이 결과를 의猗라 한다. 만약 정근을 행한다면 추구하는 선정禪定을 얻기 때문이다. 다른 4종의 자량은 첫째 염念, 둘째 지智, 셋째 작의作意, 넷째 사멸捨滅이다. 다른 4종의 과실을 순서대로 대치한다.

“이 5종의 과실을 끊기 위해” 이하는 대치하는 행行을 밝히고, 또한 우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세 구절로 되어 있다. 첫째 구절은 8종의 삼마지(定)를 세우는 것을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둘째 구절은 앞의 네 가지 의미28를 세우는 것을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다. “또 4종의 법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하는 아래의 본문을 곧바로 일으키는 것이다.
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2구는 앞의 4종의 행을 밝히는 것이고, 뒤의 1송은 뒤의 4종의 행을 밝히는 것이다. 앞의 4행29은 합해서 하나의 장애를 대치한다. 왜냐하면 장애(障)들 중에서 해태懈怠가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제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의욕(欲)과 정근正勤이 능동과 수동이 되어 서로 의지가 되어 주고, 믿음(信)과 의猗가 원인과 결과가 되어 서로 도움이 되어 준다. 이 4종의 세력에 의지해야 능히 그 뒤의 4종의 과실을 제복할 수 있다. 이미 과실의 우두머리이기는 하나 장애의 세력이 미미하여 넷 중의 하나가 능히 이를 제멸할 수 있다. 송의 “의지처”란 제1의 의욕(欲)이다. “그리고 의지하는 것”이란 제2의 정근正勤이다. 먼저 적정의 공덕을 깊이 욕구해야 이에 의지해서 정근正勤과 정진精進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원인”이란 의지처의 원인이니 제3의 믿음(信)이다. 결정적인 믿음에 의지해서 욕구를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이네.”란 의지하는 것인 결과이니 제4의 의猗이다. 정근正勤을 원인으로 해서 의猗인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주석은 순서대로 이 4종을 풀이한다. 넷째 구절의 “만약 정근을 행한다면 추구하는 선정禪定을 얻기 때문이다.”란, 선정을 얻을 때 추중이 사라진다. 이에 몸과 마음의 경안을 얻는다. 경안이 의猗이다. 적열適悅을 상으로 한다. 그래서 삼마지(定)를 얻음에 의거해서 의猗인 결과를 보여 준 것이다. “다른 4종의 자량은” 이하는 뒤의 4종의 행行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먼저 본문을 일으킨다. 그중 먼저 수를 들어 이름을 열거한다. “다른 4종의 과실을” 이하30는 과실을 대치하는 것을 밝힌다.

이 염(念) 등 4종의 법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緣境界不迷  소연경계에 혼미하지 않는 것
高下能覺知  올라오는 것과 내려가는 것을 알아채는 것 ≺5cd≻
滅彼心功用  그것을 제멸하고자 하는 마음이 공용功用하는 것
寂靜時放捨  적정하게 되었을 때 추방해서 내버리는 것이네 ≺6ab≻

염念이란 경계를 망실하지 않는 것이다. 지智란 경계를 망실하지 않을 때 침몰과 부상의 일을 알아채는 것이다. 알아채고 나서 이것들을 제멸하기 위해 공용用의 의지를 내는데, 이것을 작의라 한다. 이 침몰과 부상 두 법이 적멸했을 때 추방해서 내버리는 마음이 일어나 추방되어 흐르며 상속하는데, 이것을 사멸捨滅이라 한다.

다음에 송의 4구는 이에 따라서 4종의 상相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제1구 “소연경계에 혼미하지 않는 것”이란 정념正念은

001_0828_a_01L浮滅時卽應任捨若沉滅後猶作離意
001_0828_a_02L則還起浮若浮息後猶作止意亦還入
001_0828_a_03L故無二時作意爲障也
爲滅以下
001_0828_a_04L能治行亦先發起於中三句初句總
001_0828_a_05L標立八種定次句別顯立前四意復有
001_0828_a_06L以下正發下文

001_0828_a_07L
頌中有二初之二句明前四行次之一
001_0828_a_08L頌顯後四行用初四行總治一障所以
001_0828_a_09L然者諸障之中懈怠1) [27] 除遣爲難
001_0828_a_10L故須欲勤能所相依及與信猗因果相助
001_0828_a_11L依此四力乃能摧伏其後四過已失
001_0828_a_12L上首障力微劣隨一能除言依處者
001_0828_a_13L是第一欲及能依者第二正勤先深
001_0828_a_14L欲樂寂靜功德依此發起勤精進故
001_0828_a_15L因緣者依處之因是第三信▣決定
001_0828_a_16L起欲樂故言及果者能依之果
001_0828_a_17L第四猗正勤爲因得猗果故

001_0828_a_18L
釋中次第釋此四種第四中言若作正
001_0828_a_19L勤得所求禪定故者得禪定時麤重息
001_0828_a_20L於此卽得身心輕安輕安曰猗
001_0828_a_21L悅爲相故約得定以顯猗果餘四以
001_0828_a_22L明後四行亦先發起於中先卽擧數
001_0828_a_23L列名滅餘以下對過2) [28] 次頌中四句
001_0828_a_24L隨顯四相初言緣境界不迷者卽是正

001_0828_b_01L가르침을 잊는 것을 대치하는 것이다. 제2구 “올라오는 것과 내려가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란 정지正智가 제3의 과실을 대치하는 것이다. 침몰과 부상을 알아채는 것이란 부상해 올라오는 것과 침몰해 내려가는 것을 그에 따라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제멸하고자 마음이 공용功用하는 것”이란 작의作意를 밝히는 것이다. 부상과 침몰을 제멸하기 위해 마음이 작의하고 이에 따라 대치를 일으킨다. 이 경우 작의는 곧 사思 심소心所이다. 사마타(止)와 위파사나(觀)를 추동해서 일으키기에 작의라 하는 것이다. 변행遍行 내의 작의 심소가 아니다. “적정하게 되었을 때 추방해서 내버리는 것”이란 사捨의 상을 밝히는 것이다. 침몰과 부상이 제멸되었을 때 추방되어 흐르며 상속하는 것이다.

주석은 넷으로 되어 있다. 넷째 구절 중 “추방해서 내버리는 마음이 일어나 추방되어 흐르며 상속하는데”란, 사捨의 단계에 초·중·후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대법론』에서 “사捨란 정근正勤,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에 의지하기에 잡염에 머무는 것과는 상반된다. 마음의 평등성平等性, 마음의 정직성正直性, 마음의 무공용의 지속성(無功用住性)을 본성으로 한다. 잡염에 의지처가 되는 것을 작용으로 한다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마음의 평등성 등’이란 초·중·후의 위位로써 사捨의 구분을 밝힌 것이다. 왜 이렇게 하는가? 사捨가 마음과 상응해서 침몰 등의 불평등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최초에 마음의 평등성을 증득한다. 마음의 평등에 의해 가행加行을 여의고 자연히 상속하기 때문이다. 차후에 마음의 정직성을 증득한다. 마음의 정직에 의해 잡염들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후에 마음의 무공용의 지속성을 증득한다.”고 한다. 이 경우 “내버리는 마음이 일어나”란 어구를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다. 다음에 “추방되어”란 최초의 위位인 마음의 평등성이다. 최초에 처음으로 불평등을 추방해서 내버리기 때문이다. 다음에 “흐르며”란 제2의 위位인 마음의 정직성이다. 평등으로부터 4종의 정직正直이 흐르기 때문이다. “상속하는데”란 제3의 무공용의 지속성을 나타낸 것이다. 무공용이 영구히 지속하기 때문이다.

(4) 근과 역을 합해서 밝힘

사여의족 후에 순서대로 오근五根을 수습함에 대해 설명한다. 이 오근은 어떻게 안립하는가?

已下解脫種  이미 해탈분의 종자가 심겨져서
欲事增上故  의욕(欲)이 힘씀(事)이 증상하기 때문에 ≺6cd≻
境界不迷沒  경계에 혼미하지 않음,
不散及思擇  산란하지 않음, 그리고 사택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7ab≻

이 중 “증상하기 때문에”는 순서대로 다섯 곳에 흘러간다. 사근四勤을 수습했기 때문에 마음이 가르침에 따라 이미 안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마음에 이미 순해탈분順解脫分의 선근善根의 종자가 심겨져서, 첫째 의욕(欲)이 증상하기 때문에, 둘째 근면하게 수습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셋째 경계를 잊지 않음이 증상하기 때문에, 넷째 산란해서 동요하지 않음이 증상하기 때문에, 다섯째 법을 사택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순서대로 믿음(信) 등 오근五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여의족 후에 순서대로 오근五根을 수습함에 대해 설명한다.” 이하는 대부분 제4의, 근根과 역力을 합해서 밝히는 대목이다. 또한 먼저 뒤의 본문을 일으킨다.

001_0828_b_01L念對治忘敎次言高下能覺知者是正
001_0828_b_02L智對第三過覺知沉浮浮高沉下隨至
001_0828_b_03L覺知也滅彼心功用者是明作意
001_0828_b_04L滅沉浮用心作意隨起對治此中作
001_0828_b_05L正是思數推發止觀故名作意
001_0828_b_06L遍行內作意數也寂靜時放捨者是明
001_0828_b_07L捨相沉浮滅時任放而捨也

001_0828_b_08L
釋中卽四第四中言起放捨心放流相
001_0828_b_09L續者欲明捨位有初中後如對法論說
001_0828_b_10L捨者依止正勤無貪瞋癡與雜染住相
001_0828_b_11L心平等性心正直性心無功用住
001_0828_b_12L性爲體不容雜染所依爲業心平等性
001_0828_b_13L等者謂以初中後位辨捨差別所以者
001_0828_b_14L由捨與心相應離沉沒等不平等
001_0828_b_15L性故最初證得心平等性由心平等
001_0828_b_16L遠離加行自然相續故次後證得心正
001_0828_b_17L直性由心正直於諸雜染3)▣▣ [29]
001_0828_b_18L最後證得心無功用住性今言起捨心
001_0828_b_19L是總標句次言放者顯初位中心
001_0828_b_20L平等性初始放捨不平等故次言流者
001_0828_b_21L顯第二位心正直性從平等流四正直
001_0828_b_22L言相續者是顯第三無功用住由無
001_0828_b_23L功用得久住故

001_0828_b_24L
四如意下大分第四總明根力亦先

001_0828_c_01L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송 반은 행行의 상을 밝히는 것이고, 뒤의 2구는 계위를 배속하는 것이다. 앞의 1송 반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1송은 근根을 밝히고, 둘째 1구는 역力을 밝히고, 셋째 마지막의 1구는 근과 역 다섯의 순서를 밝힌다.
첫째는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구는 근根을 일으키는 원인을 밝히고, 뒤의 3구는 근根의 상을 밝힌다. 앞의 “이미 해탈분解脫分의 종자가 심겨져서”란, 오근의 단계는 통달분通達分에 있기 때문에 앞서 이미 해탈분의 종자가 심겨져 있다. 출리出離의 결과를 상대로 해서 볼 때 수습한 선근善根은 해탈의 결과에 대해 최초의 종자가 되기 때문에 “이미 해탈분의 종자가 심겨져서”라고 말한 것이다. 어떤 것들이 선법善法을 본체로 하는가? 어떤 논사는 “7방편 중 앞의 3방편이 해탈분이다. 난煖 등 사심四心은 통달분이기 때문에 앞의 셋이 해탈분에 속한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또 어떤 논사는 “문聞과 사思의 이혜二慧,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다문多聞의 삼업三業을 해탈분이라 한다. 『우바새계경』에서 ‘해탈분의 본체는 신身, 구口, 의意의 업業이다. 방편으로부터 얻는다. 방편에는 둘이 있다. 첫째 귀로 듣는 것, 둘째 사유하는 것이다. 다시 세 종류가 있다. 첫째 보시, 둘째 지계, 셋째 다문이다.’라고 한다.”고 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도 또한 이와 같이 설해져 있다. “신업, 구업, 의업이다. 의업이 더 많다. 의지意地이지 오식五識이 아니다. ‘방편에 의해 얻은 것(方便得)’이자 또한 ‘날 때부터 얻은 것(生得)’이기도 하다.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이지 수혜修慧는 아니다. 어떤 것으로 이 선근善根을 심는가? 혹은 보시로, 혹은 지계로, 혹은 다문으로 선근을 심는다. 이것으로써 해탈과 열반으로 회향하고 생사를 영원히 여의고자 하는, 만약 이와 같은 용맹심이 있다면 능히 해탈분의 선근을 심을 수 있다.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비록 많이 보시하고

001_0828_c_01L發起文相可知

001_0828_c_02L
頌中4) [30] 有二前一頌半正明行相
001_0828_c_03L之二句屬當階位初中有三一頌明根
001_0828_c_04L一句明力後之一句明五次第初中亦
001_0828_c_05L在前一句顯根起因下之三句正明
001_0828_c_06L根相初言已下解脫種者五根位在通
001_0828_c_07L達分中故先已下解脫分種望出離果
001_0828_c_08L所脩善根與解脫果作初種子故言
001_0828_c_09L已下解脫種子何等善法爲其體者
001_0828_c_10L師說云七方便中前三方便是解脫
001_0828_c_11L以𤏙等四心是通達分故知前三屬
001_0828_c_12L解脫分或有說者聞思二慧施戒三
001_0828_c_13L爲解脫分如優婆塞戒經說云
001_0828_c_14L脫分體者所調身口意業從方便得
001_0828_c_15L方便有二一者耳聞二者思惟復有
001_0828_c_16L三種一者施二者持戒三者多聞
001_0828_c_17L婆沙中亦同此說是身口意意業偏多
001_0828_c_18L唯是意地不通五識是方便得亦是
001_0828_c_19L生得是聞思慧非是脩慧以何事種
001_0828_c_20L如此善根或以布施持戒多聞以此廻
001_0828_c_21L向解脫涅槃永離生死若有如是勇猛
001_0828_c_22L心者是則能種若不如是雖多布施
001_0828_c_23L「無」疑「爲」「明」上疑脫「以」▣▣疑
001_0828_c_24L「怯畏」
「中」疑剩

001_0829_a_01L몸이 다할 때까지 지계하고 다문을 광범위하게 배운다 하더라도 또한 해탈분의 선근을 심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 논에서 설하는 것은 이와 같다.
만약 앞의 3방편이 해탈분이라면 정심념처停心念處는 삼혜 모두일 수 있거늘 왜 수혜修慧가 아니라고 말하는가? 또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 “해탈분의 선근에는 먼 것이 있고 가까운 것이 있다. 가까운 것은 전세前世의 몸(身)에 심은 것이다. 차세此世의 몸이 성숙해서 내세來世의 몸이 해탈한다. 먼 것은 일찍이 심은 것이다. 나유타那由他가 경과한 후 받은 몸이다. 통달분의 선근을 생기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바새경』 또한 이와 같이 설한다. 그런데 근기가 예리한 성문과 독각과 보살은 모두 최후의 일세一世의 몸에서 7방편을 수습하고 이에 의지해서 해탈을 얻는다. 만약 정심관停心觀의 총별념처總別念處가 해탈분의 선근이라면 일세의 몸에 선근을 심어 해탈을 얻는데 왜 삼세의 몸을 경과한다고 하는가? 그러므로 앞의 3방편의 선근이 통달분의 방편에 속한다는 것을 안다. 가령 중음中陰의 식識의 분지는 방편이기에 식識의 분지에 속한다고 하듯 이것 또한 그러하다. 혹은 어떤 논사는 “보시, 지계, 다문 그리고 2방편은 모두 해탈분의 선근의 본체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해탈분의 선근은 그 3품류가 있다. 중품과 하품 2품류는 문혜와 사혜를 본체로 하고 퇴보 가능성의 의미가 있다. 그 상품上品의 품류는 수혜修慧를 본체로 하고 이에 의지해서 통달분에 들어간다. 퇴보 가능성의 의미가 없다. 앞에서 설한 경과 논은 우선 최초에 선근을 심는 것에 의거해서 오직 중품과 하품 2품의 선근만을 나타낸 것이다. 『대법론』에서 “하품과 중품의 해탈분의 선근부터는 퇴보 가능성의 의미가 있다. 오직 퇴보의 현행現行이지 퇴보의 습기習氣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이 논에서 사정근과 사여의족에 의거해서 해탈분의 종자를 심는 것을 설하기 때문에 이 분分 또한 수혜를 수습하는 문에 통한다는 것을 안다. 만약 이 선근이 또한 수혜에도 통한다면 무엇 때문에 별도의 이분二分의 다른 상을 취하는가? 답한다. 믿음(信)이 증상할 때 해탈분을 세우고 혜慧가 증상할 때 결택분決擇分을 세운다. 『대법론』에서

001_0829_a_01L終身持戒廣習多聞亦不能種論說
001_0829_a_02L如是若言前三方便是解脫分者1) [31]
001_0829_a_03L心念處皆通三慧何故說言非是脩慧
001_0829_a_04L又婆沙云解脫分善有遠有近近者
001_0829_a_05L謂前身種此身成就2) [32] 身解脫遠者
001_0829_a_06L曾種逕那由他受身不能生遠分善
001_0829_a_07L婆塞經亦同此說然利根聲聞獨覺菩
001_0829_a_08L皆於㝡後一身之中脩七方便
001_0829_a_09L得解脫若*亭心觀總別念處是爲解
001_0829_a_10L脫分善根者則於一身下種得脫何得
001_0829_a_11L說言逕三身體故知前三方便善者
001_0829_a_12L通達分方便所攝如說中陰識支方
001_0829_a_13L故屬識支此亦如是或有說者
001_0829_a_14L戒多聞及二方便皆是解脫分善根體
001_0829_a_15L然解脫分善有其三品中下二品聞思
001_0829_a_16L爲體有可退義其上品者脩慧爲體
001_0829_a_17L乘入通達分無可退義前說經論
001_0829_a_18L約初種唯顯中下二品善根如對法論
001_0829_a_19L從下中品解脫分善有可退義
001_0829_a_20L退現行非退習氣故又此論中約四正
001_0829_a_21L懃四如意1) [33] 以說下解脫分種子
001_0829_a_22L知此分亦通修慧門若此善根亦通修
001_0829_a_23L何以取別二分異相答信增上時立
001_0829_a_24L解脫分慧增上時立決擇分如對法論

001_0829_b_01L“제諦의 증상의 법에 대해서 청정하게 믿고 월등하게 이해하는 상相 이를 순해탈분順解脫分이라 한다. 이 법에 대해서 법인法忍의 상을 자세히 관찰할 때 이것이 순결택분順決擇分이다. 그 순서대로 믿음(信)이 증상하기 때문이고, 혜慧가 증상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제 지엽적인 논의는 그만두고 본문으로 돌아가 풀이하겠다. 이하의 3구는 오근을 하나하나 밝히는 것이다. “의욕(欲)이 증상하기 때문에”란 신근信根의 상이다. 만약 믿음(信)이 증상한다면 반드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힘씀(事)이 증상하기 때문에”란 정진근精進根의 상이다. 악이 소멸하고 선이 발생하도록 노력하기 때문이다. “경계에 혼미하지 않음”이란 염근念根의 상이다. 염念이 증상하면 혼미해서 잃어버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산란하지 않음”이란 정근定根의 상이다. “그리고 사택思擇함”이란 혜慧의 상이 있는 근根이다.

주석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근根의 의미를 풀이하고, 둘째 앞의 1구를 풀이하고, 셋째 뒤의 3구를 풀이한다. 앞의 “이 중 ‘증상하기 때문에’는 순서대로 다섯 곳에 흘러간다.”란, 제2구의 ‘증상하기 때문에’라는 말이 다섯 곳 모두로 흘러간다는 뜻이다.31 증상함의 의미가 근根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근四勤을 수습했기 때문에” 이하는 앞의 1구를 풀이한 것이다. “사근을 수습했기 때문에”란 정근正勤을 들어 염처念處도 겸해서 취한 것이다. “마음이 가르침에 따라 이미 안주하게 되었다.”는 사여의족을 다시 거론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마음에 이미 순해탈분順解脫分의 종자가 심겨져서”는 3종의 넷(사념처四念處·사근四勤·사여의족四如意足)이 순해탈분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문장에 의해 이와 같은 3종의 넷의 단계는 사선근四善根의 전前이라는 것을 안다. “첫째 의욕(欲)이 증상하기 때문에” 이하는 오근을 하나하나 풀이한 것이다.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說力損惑故  역力은 혹惑을 덜어 낸다고 말하기 때문이네
前因後是果  전은 원인이고 후는 결과이네 ≺7cd≻

믿음 등 오법五法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월등한 힘이 있기에 역力이라 한다. 월등한 힘이란 무슨 뜻인가? (도를) 돕지 않는 혹惑을 덜어 내어 없애기 때문이다. 만약 오법이 믿지 않음(非信) 등 대치되어야 할 혹惑과 서로 장애하지 않는다면, (오력五力이다.) 그래서 근根과 역力은 순서가 있다고 말한다. 왜 믿음 등의 오법이 전과 후의 순서대로 말해지는가? 5종의 법은 전과 후이듯 원인과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와 같은가? 만약 어떤 사람이 원인을 믿고 결과를 믿는다면, 이 결과를 구해서 얻기 위해 결정코 근勤을 행한다. 이 근勤이 이미 행해졌기 때문에 경계를 수호해 이동하지 않는다. 만약 염念이 지속하게 되면, 마음이 삼매를 얻는다. 평등하게 지속해서 올라오지도 내려가지도 않는다. 첫째 3종의 수受이기 때문이고, 둘째 1종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또 5종의 지속(住)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만약 마음이 삼매(定)를 얻으면 여실하게 경계를 관찰해서 안다. 이 의미 때문에, 그래서 오법에 순서를 세우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이미 해탈분의 선근이 심겨져 있다면, 오근五根이 그 계위이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통달분의 선근이 심겨져 있다면, 오근의 계위에 있는 것인가, 오력의 계위에 있는 것인가?

송 중 1구는 둘째 역力을 밝히는 것이다. 오법五法에 의거해서 역力을 설명하는 것이다. 월등하게 전진할 때 혹惑을 덜어 내기에 역力이라 말한다. 혹惑을 덜어 내기 때문이다. 아래의 1구는 근根과 역 다섯의 순서를 밝히는 것이다. 앞의 것이 원인이 되고 뒤의 것이 결과가 된다. 그래서 처음에 믿음(信)을 말하고 내지 마지막에 혜慧를 말한다. 그래서 “전은 원인이고 후는 결과이네.”라고 말한 것이다.


001_0829_b_01L於諦增上法淨信勝解相是順解
001_0829_b_02L脫分卽於此法諦察法忍相是順決
001_0829_b_03L擇分如其次第信增上故慧增上
001_0829_b_04L止傍論還釋本文此下三句別顯五根
001_0829_b_05L欲增上者是信根相若信增上必有
001_0829_b_06L欲樂故事增上者精進根相滅惡生
001_0829_b_07L爲事能故境界不迷沒者是念根
001_0829_b_08L念增上者不迷失故言不散者
001_0829_b_09L定根相及思擇者是慧相根

001_0829_b_10L
釋中有三先釋根義次釋初一句
001_0829_b_11L釋下三句初言此中增上次第五處流
001_0829_b_12L第二句中增上之言通流五處
001_0829_b_13L增上義是根義故爲修以下釋初一句
001_0829_b_14L爲修四懃故者是擧正懃兼取念處心
001_0829_b_15L已隨敎得住者是牒四如意足心信言
001_0829_b_16L因此心已下解脫分種子者是明三四
001_0829_b_17L爲解脫分依此文知如是三四位在
001_0829_b_18L四善根之前也一欲以下別釋五根
001_0829_b_19L顯可知

001_0829_b_20L
頌中一句第二明力卽就五法以說力
001_0829_b_21L由勝進時能損惑故故言說力
001_0829_b_22L惑故也下之一句明五次第前前爲因
001_0829_b_23L後後是果故初說信乃至後慧故言前
001_0829_b_24L因後是果也

001_0829_c_01L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첫째 구를 풀이하는 첫째 부분은 다시 세 구절로 되어 있다. 첫째 구절은 오근五根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고, 둘째 구절은 송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이고 “만약 오법이” 이하는 거듭 근根을 밝히는 것이며, 셋째 구절은 역力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만약 오법이 처음으로 성립할 때면 흑법과 백법 간에 다다름이 있기에 아직 역力이라 하지 않는다. 만약 믿지 않음(不信) 등 도를 돕지 않는 혹惑의 법에 장애를 받지 않는다면 오력五力이라 한다. 그래서 근根과 역力은 이에 따라 순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와 같은가?” 이하는 둘째 구절로 송의 아래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따져 묻는 것이고, 둘째 송을 다시 거론하며 답하는 것이고, 셋째 “어떻게 이와 같은가?” 이하는 물음에 인해서 서로 발생하게 하고 발생하는 순서를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다.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그 행行의 상을 밝히는 것을 이미 마쳤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이하는 계위를 배당하는 것이다. 또한 먼저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이것은 두 구절로 되어 있다. 첫째 구절은 전의 해탈분에 상대해서 후의 계위를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오근이 해탈분의 후에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구절은 후의 통달분에 의거해서 소재를 각각 묻는 것이다. 이것은 통달분이 근根에 있는지, 역力에 있는지 묻는 것이다.


二二通達分  2종의 두 통달분은
五根及五力  오근과 오력이네 ≺8ab≻

난위煖位와 정위頂位에는 오근의 행行을 세운다. 인위忍位와 세제일법世第一法에는 오력의 행을 세운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해탈의 선근의 종자가 심겨져 있다면, 이 2종의 두 계위는 결정코 통달분이다. 만약 아직 심겨져 있지 않다면 (결택분과) 같지 않다.

송은 2구로 되어 있는데 바로 답하는 것이다. 이것은 난煖 등 4위位는 통달분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이 중 앞의 둘에는 근根을 세우고 뒤의 둘에는 역力을 세우기 때문에 “2종의 두 통달분은 오근과 오력이네.”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사선근四善根을 밝히고 있다. 이것들의 의미를 밝히고자 4종의 문을 분별한다. 첫째 이름을 풀이하는 문, 둘째 본체를 제시하는 문, 셋째 상을 밝히는 문, 넷째 계위를 밝히는 문이다.

첫째, 이름을 풀이한다. 난煖과 정頂 두 이름은 비유에 의거해서 명명한 것이고, 뒤의 두 이름은 법 자체에 의거해서 명명한 것이다. 이를테면 최초의 정심定心이 성제聖諦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은 진정한 현관現觀에 방불하고 유사하다. 마치 불을 얻고자 할 때 처음에 연기가 생기는데 이것이 불의 뜨거움과 처음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이 비유에 의지해서 난법煖法이라 하는 것과 같다.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근면히 수습해서 쉬지 않는데 이것은 마치 불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잠시도 쉬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서

001_0829_c_01L
釋中卽二釋初句中亦有三句初牒五
001_0829_c_02L次正釋文若五以下重顯根後說力
001_0829_c_03L之意謂若五法始成立時黑白間赴
001_0829_c_04L未名爲力若不信等非助或法不能
001_0829_c_05L障時乃名五力故說根力隨有次第也
001_0829_c_06L云何以下次釋下句於中亦三初以徵
001_0829_c_07L次牒偈答云何如是以下因問別顯
001_0829_c_08L相生次第文相可知

001_0829_c_09L
上來明其行相已竟若人以下屬當階
001_0829_c_10L亦先發起於中二句初句對前以
001_0829_c_11L分後位此明五根在解脫分後次句就
001_0829_c_12L後別問所在此問通達分在根在力

001_0829_c_13L
頌中二句正答此問𤏙等四位是通達
001_0829_c_14L於中前二立根後二說力故言二
001_0829_c_15L二通達分五根及五力也此中略明四
001_0829_c_16L善根義欲顯此義四門分別一名
001_0829_c_17L三相四位初釋名者𤏙頂二名
001_0829_c_18L從喩爲目其後二者當法立名謂初
001_0829_c_19L定心審觀聖諦與眞現觀髣髴相似
001_0829_c_20L如攢火時初生𤏙氣與火熱觸始有
001_0829_c_21L相似故從此喩名爲𤏙法欲令行者
001_0829_c_22L懃修不息如攢火者無蹔息故如智
001_0829_c_23L「亭」疑「停」次同「來」一作「成」「是」
001_0829_c_24L疑「足」

001_0830_a_01L“이와 같이 제諦를 관찰해서 열반의 도道를 믿게 되면 마음이 쾌락에 머무는데 이는 마치 무루無漏와 같다. 이것을 난법이라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불을 지피면 이와 함께 따뜻한 기운이 있게 되어 반드시 불을 얻기를 소망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정법頂法이란 최상이라는 의미이다. 오근五力을 수습하면 최상의 품류에 도달하게 된다. 사람 머리의 정수리가 몸 중에서 가장 위이기 때문에 이 비유에 의지해서 정법이라 하는 것이다. 마치 오력의 상품上品을 법에 의거해서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 하듯, 이제 이 오근의 상품을 비유에 의지해서 정법이라 하는 것이다. 비록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위(上)의 의미를 나타낸다. 『대법론』에서 “그 정법이 전전하며 증진해서 위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정頂이란 중간에 처한다는 의미이다. 무엇인가? 이전의 난법煖法은 죄가 증대하고 복이 미약해서 수행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마치 산을 올라가는 것과 같다. 이후의 인법忍法은 죄가 미약하고 복이 증대해서 수행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 마치 산을 내려가는 것과 같다. 이 둘의 중간은 죄와 복이 동등해서 마치 산의 정상에 도달했을 때 이미 올라가기는 했지만 아직 내려가지 않은 것과 같다. 이 비유에 의지해서 정법이라 명명한 것이다. 『대지도론』에서 “난법이 증진해서 죄와 복이 동등하기에 정법이라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산을 올라가 정상에 도달했을 때 양쪽의 길과 마을이 모두 평등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진보와 퇴보의 시기를 밝힐 때 이와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니 늘상 말하는 방식대로이다. 제諦에 부응하는 인법과 세제일법 또한 늘상 말하는 방식대로이다.”라고 한다. 숙고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본체를 제시한다. 앞의 두 선근은 오근을 본체로 하고, 뒤의 두 선근은 오력을 본체로 한다. 가장 현저한 것을 취한다면 정定과 혜慧를 본체로 하는 것이다. 그 동반자를 논한다면 다른 심법心法에 통한다. 『대법론』에서 “난법煖法이란 각각 안에서 증득하는 것이니 제諦에 대해 분명하게 얻은 삼마지三摩地,32 바라야鉢羅若,33 그리고 그것과 상응하는 법 등을 말한다. 내지 세제일법世第一法이란 각각 안에서 증득하는 것이니 제諦에 대해 찰나의 간격이 없는 마음(心)의 삼마지, 바라야, 그리고 그것과 상응하는 법 등을 말한다.

001_0830_a_01L度說如是觀諦信謂涅槃道心住快
001_0830_a_02L樂似如無漏是名𤏙法如人攢火
001_0830_a_03L有𤏙氣1) [34] 得火故言頂法者是㝡
001_0830_a_04L上義修習五根至最上品如人首頂
001_0830_a_05L身中㝡上故從此喩名爲頂法如彼
001_0830_a_06L五力上品就法名世第一今此五根上
001_0830_a_07L從喩名爲頂法雖有親疎齊顯上
001_0830_a_08L如對法說由彼頂法展轉增進
001_0830_a_09L上位故又復頂者是處中義何者𤏙
001_0830_a_10L法以前罪增福微脩行不易如似上
001_0830_a_11L忍法以後罪微福增修行不難
001_0830_a_12L從山下此二中間罪福亭等如至山
001_0830_a_13L已上未下故從此喩名爲頂法
001_0830_a_14L智度說𤏙法增進罪福亭等故名頂
001_0830_a_15L如人上山至頂兩邊道里俱等故
001_0830_a_16L或有說者明進退際如是等義知常說
001_0830_a_17L順諦忍法世第一法亦如2) [35] 常說
001_0830_a_18L尋之可知第二出體者前二善根
001_0830_a_19L根爲體後二善根五力爲體若取㝡
001_0830_a_20L勝定慧爲體論其助伴通餘心法
001_0830_a_21L對法說𤏙法者謂各別內證於諸諦
001_0830_a_22L明得三摩地鉢羅若及彼相應等法
001_0830_a_23L乃至世第一法者謂各別內證於諸諦
001_0830_a_24L無間心三摩地鉢羅若及彼相應等

001_0830_b_01L이것으로부터 찰나의 간격이 없이 반드시 최초의 출세간의 도道가 일어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셋째, 상相을 밝힌다. 불을 지피는 비유에 의거해서 상들의 차이를 밝히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어떤 사람이 그 불로써 불이 해야 할 일을 할 때, 불을 구하기 위해 아래에 나무들을 쌓아 놓고 위에서 부싯돌로 불을 지펴 부지런히 힘써 용맹스럽게 불을 구한다. 아래의 나무들에서 최초에 따뜻함이 생겨난다. 다음에 따뜻함이 증가해서 열기가 위로 솟아오른다. 다음에 배로 증가하면 그 연기가 피어난다. 다음에 불꽃이 없는 불이 홀연 흘러나온다. 불이 흘러나오자마자 맹렬한 불꽃이 일어난다. 맹렬한 불꽃이 생겨나면 불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아래의 나무들에서 최초에 생겨난 따뜻함과 같이 그 난煖의 선근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번뇌들을 태우는 무루법이 불이 생겨나기 전의 상이기 때문이다. 따뜻함이 증가해서 열기가 위로 솟아오르는 것과 같이 그 정頂의 선근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연기가 피어나는 것과 같이 제諦에 부응하는 인忍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꽃이 없는 불이 홀연 흘러나오는 것과 같이 세제일법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이 흘러나오자마자 맹렬한 불꽃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세제일법에 속한 오력五力에 곧바로 발생하는 출세간出世間의 무루無漏의 성법聖法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넷째, 계위를 밝힌다. 도道를 다루는 대목에서 이미 자세하게 분별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시 제시하지 않겠다. 사선근四善根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은 있는 대로 송문을 풀이하는 것이고, 뒤는 다시 분별하는 것이다. 다시 분별하는 것은 두 구절로 되어 있다. 앞의 구절은 긍정적으로 가정해서 밝히는 것이고, 뒤의 구절은 부정적으로 가정해서 밝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미 해탈분의 종자를 심었다면 다음의 4위位는 결택분을 얻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직 해탈분을 심지 않았다면 이것34은 결택분과 같지 않다. 이것은 긍정적으로 가정해서 밝힌 것이고, 부정적으로 가정해서 밝힌 것이다.

(5) 칠각지

역力 다음에 각분覺分을 설명한다. 이것은 어떻게 안립하는가?

依分自體分  의지처의 분지, 자체의 분지
第三出離分  제3의 것인 출리의 분지 ≺8cd≻
第四功德分  제4의 것인 공덕의 분지
三種滅惑分  3종의 혹惑을 멸함의 분지이네 ≺9ab≻

견도의 위位에 각분을 세운다는 것을 나타낸다. 각覺이란 무슨 의미인가? 분별이 없는 여여如如의 지智를 각覺이라 한다. 분分이란 무슨 의미인가? 사事와 법法을 같이해서 동반자가 되는 것을 분分의 의미라 한다. 이 7법 중 각覺의 의지처의 분지를 염각분念覺分이라 한다. 자체의 분지를 택법각분擇法覺分이라 한다. 출리의 분지를 정근각분正勤覺分이라 한다. 공덕의 분지를 희각분喜覺分이라 한다. 염오가 없고 장애가 없는 분지인 3종의 법을 의각분猗覺分, 정각분定覺分, 사각분捨覺分이라 한다.

“역力 다음은 각분을 설명한다.” 이하는 칠각분七覺分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우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송의 4구는 5종의 의미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 “의지처의 분지”란 최초의 염각분이다.

001_0830_b_01L從此無間必起㝡初出世道故
001_0830_b_02L三辨相者依攢火喩辨相3) [36] 如瑜
001_0830_b_03L伽說譬如有人欲以其火作火所作
001_0830_b_04L爲求火故下安乾木上施攢燧精勤
001_0830_b_05L策勵勇猛攢求於下木上㝡初生𤏙
001_0830_b_06L次𤏙增長熱氣上衝次倍增盛其烟
001_0830_b_07L遂發次無焰火欻然流出火出無間
001_0830_b_08L發生猛焰猛焰生已便能造作火所作
001_0830_b_09L如下木上初所生𤏙其𤏙善根
001_0830_b_10L知亦爾燒諸煩惱無漏法火生前相
001_0830_b_11L如𤏙增長熱氣上衝其頂善根
001_0830_b_12L知亦爾如次烟發其順諦忍當知亦
001_0830_b_13L如無烟火欻然流出世第一法當
001_0830_b_14L知亦爾如火無間發生猛焰世第一法
001_0830_b_15L所攝五力無間所生出世無漏聖法
001_0830_b_16L當知亦爾故第四明階位者如一道章
001_0830_b_17L已廣分別故今此中不重出也四善根
001_0830_b_18L義略說如是釋中有二初正釋文
001_0830_b_19L重分別重分別中卽有二句初句順明
001_0830_b_20L後句反顯若人已下解脫分種則次四
001_0830_b_21L位得決擇分若人未下解脫分種是則
001_0830_b_22L不如此決擇力是謂順明反顯意也

001_0830_b_23L
次說以下明七覺分亦先發起

001_0830_b_24L
頌中六句約五義說言依分者初念

001_0830_c_01L각覺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자체의 분지”란 택법각분이다. 각覺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출리出離의 분지”란 정진각분精進覺分이다. 타파하는 것인 각覺의 혜慧는 장애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공덕의 분지”란 희각분이다. 실상實相을 깨달으면 환희가 생기기 때문이다. “3종의 혹惑을 멸함의 분지이네.”란 의猗, 정定, 사捨를 말한다. 혹惑의 장애를 멸해서 각覺의 성취를 돕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1구는 세 부류(의猗·정定·사捨)를 나타낸다. 『대법론』에서 “염念이란 의지처의 분지이다. 염念을 잡아 두어 선법들을 망실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택법擇法이란 자체의 분지이다. 각覺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정진精進이란 출리의 분지이다. 이 세력에 의해 도달해야 할 곳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喜란 이익의 분지이다. 이 세력에 의해 몸이 쾌적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안輕安, 정定, 사捨는 불염오不染汚의 분지이다. 이 불염오로부터 이 불염오에 의해서 각覺 자체가 불염오가 되기 때문이다. 그 순서대로 경안에 의해 불염오가 된다. 이것에 의해 추중의 과실이 제멸되기 때문이다. 정定에 의해 불염오가 된다. 정定에 의해 ‘의지처인 몸이 전환(轉依)’하기 때문이다. 사捨는 불염오의 본체이다. 탐貪, 우憂 같은 불염오의 위位를 제멸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주석은 넷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각覺의 계위를 밝히는 것이고, 둘째는 이름을 풀이하는 것이고, 셋째는 송문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이고, 넷째는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첫째, 계위를 밝힌다. 견도의 위位에서 최초로 도리道理를 깨닫기 때문에 각覺의 분지를 세운다. 둘째, 이름을 풀이하는 구절에서 먼저 각覺의 이름을 풀이한다. “분별이 없는 여여如如의 지智를 각覺이라 한다.”란, 이승二乘에 의거한다면 사전도四顚倒의 분별이 없는 여여의 지이고, 보살에 의거한다면 일체의 분별이 없는 여여의 지이다. 다음에 분分의 이름을 풀이한다. “사事와 법法을 같이해서 동반자가 되는 것을 분分의 의미라 한다.”란,

001_0830_c_01L覺分覺所依故自體分者擇法覺分
001_0830_c_02L覺自性故出離分者精進覺分能摧
001_0830_c_03L覺慧令出障故功德分者是喜覺分
001_0830_c_04L由覺實相生歡喜故三種滅4) [37] 分者
001_0830_c_05L謂猗定捨由滅*或障助成覺故後之
001_0830_c_06L二句顯三差別對法論云念者是所依
001_0830_c_07L由繫念故令諸善法皆不忘失
001_0830_c_08L法者是自體支是覺自相故精進者
001_0830_c_09L是出離支由此勢力能到所到故
001_0830_c_10L是利益支由此勢力身調適故
001_0830_c_11L定捨者是不染汚支由此不染汚故
001_0830_c_12L依此不染汚故體是不染汚故如其次
001_0830_c_13L由安故不染汚由此能除麤重過故
001_0830_c_14L依定故不染汚依止於定得轉依故
001_0830_c_15L是不染汚體永除貪憂不染汚位
001_0830_c_16L自性故

001_0830_c_17L
釋中有四初明覺位次釋名義三正
001_0830_c_18L釋文四問發起初明位者見道位中
001_0830_c_19L始覺道理故立覺分也第二之中
001_0830_c_20L釋覺名無分別如如智是名覺者若約
001_0830_c_21L二乘無四倒分別之如如智就菩薩無
001_0830_c_22L一切分別之如如智次釋分義同事法
001_0830_c_23L「聖」疑「望」「是」疑剩「若」疑「差」
001_0830_c_24L
「或」通「惑」次同

001_0831_a_01L범부의 사事가 전환해서 성자의 법法이 될 때 같이 하나의 취지가 되어 서로 도와 성취하기 때문이다. “이 7법 중” 이하는 송문을 그대로 끌어들여 풀이하는 것이다. “왜 이 3법을 염오가 없고 장애가 없는 분지라고 말하는가?” 이하는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왜 이 3법을 염오가 없고 장애가 없는 분지라고 말하는가?

因緣依處故  원인이기에, 의지처이기에
自性故言說  자체이기에 설하네 ≺9cd≻

장애가 없고 염오가 없음의 원인이 의猗이다. 혹惑의 장애는 추중한 행行의 원인이기 때문이고, 이 의猗는 추중한 원인에 대해 대치가 되기 때문이다. 의지처는 선정禪定이다. 자체는 사각분捨覺分이다.

송의 2구는 세 부류를 밝히고 있다. “원인”이란 혹惑을 멸하는 원인이다. 이것은 의각분猗覺分으로 곧 경안이다. 추중의 원인과 정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지처”란 혹惑을 제멸함의 의지처이다. 무염오의 이 각분은 선정禪定에 의지해서 ‘의지처인 몸의 전환(轉依)’을 얻기 때문이다. “자체”란 사각분이다. 사捨는 혹惑의 장애를 제멸함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이기에 설하네.”란 이 세 종류에 의해 혹惑을 제멸하는 의미가 성립하기 때문에 세 종류를 혹惑을 제멸함의 분지라고 설한 것이다.

주석은 순서대로 이 세 종류의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첫째 의猗를 풀이하는 구절의 “혹惑의 장애는 추중한 행의 원인이 된다.(惑障爲重行作因)”란 반대가 되는 것(所對)35의 원인을 나타낸 것이다. 종자의 추중을 혹惑의 장애라 한다. 그래서 “혹의 장애는 추중(惑障重)”이라 말한 것이다. 이 추중은 현행現行의 혹惑에 대해 원인이 되기 때문에 “행의 원인이 된다.(爲行作因)”고 말한 것이다. 이 경우 “위爲” 자는 “중重” 아래에 놓여야 한다.36 “이 의猗는 추중한 원인에 대해 대치가 되기 때문이다.”란, 의猗는 경안이다. 추중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혹惑의 원인을 제멸할 수 있다. 다른 문장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6) 팔정도

다음에 도분道分을 설명한다. 이 법은 어떻게 안립하는가?

分決及令至  분한을 판별함, 또 도달하게 함
令他信三種  타인에게 믿게 함인 3종
對治不助法  (도를) 돕지 않는 법을 대치함이니
說道有八分  도道에 8종의 분지가 있다고 설하네 ≺10≻

수습도修習道의 계위에 도분을 안립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견도見道의 분한을 판별함이 정견이다. 이 견見은 세간의 정견이다. 출세간의 정견 ‘이후에 얻는 것(後得)’이다. 이 지智에 의해 자기가 얻을 도道와 결과를 판별한다(決定分別). 타인을 도달하게 함의 분지란 정사유와 정언正言이다. 발기發起가 있는 말(語言)에 의해 타인에게 알게 하고 얻게 한다. 타인에게 믿게 함의 분지는 3종이 있다. 정언, 정업, 정명이다.

“다음에 도분道分을 설명한다.” 이하는 팔정도를 밝히는 것이다. 또한 우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송은 4종의 의미에 의거해서 8종의 의미를 세우는 것을 바로 밝히는 것이다. 그다음 1송은 뒤의 2종의 의미에 의거해서 6종의 구분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분한分限을 판별해서 앎”이란 정견正見이다. 이를테면 후득지後得智는 얻은 분한에 대해 판별해서 알기 때문이다. 또 이전에 증득한 것을 분명하게 판별하기 때문이다. “또 도달하게 함”이란 정사正思와 정어正語이다. 사思는 의업意業이고 어語는 구업口業이다. 이 2종의 정업正業에 의해 타인을 정도正道에 도달하게 하기 때문이다.

001_0831_a_01L明是名分義者於轉凡事成聖法中
001_0831_a_02L爲一趣相助而成故此七以下正釋本
001_0831_a_03L云何以下徵問發起

001_0831_a_04L
頌中二句明三差別言因緣者滅*或
001_0831_a_05L因緣此猗覺分卽是輕安與麤重因
001_0831_a_06L正相反故言依處者滅*或依處是之
001_0831_a_07L覺分依於理定得轉依故自性故者
001_0831_a_08L捨覺分捨離*或障之自性故故言說
001_0831_a_09L由此三種滅*或義成故說三種爲
001_0831_a_10L滅*或分也

001_0831_a_11L
釋中次第釋此三義釋初中言*或障
001_0831_a_12L爲重行住 [1] 因者顯所對因種子麤重
001_0831_a_13L名爲*或鄣故言*或鄣重卽此麤重爲
001_0831_a_14L現行*或而作因緣故言爲行住因
001_0831_a_15L中爲字應在重下也言此猗與麤重因
001_0831_a_16L對治故者猗是輕安反對麤重是故
001_0831_a_17L能爲滅或因也餘文可知

001_0831_a_18L
次說以下八正道亦先發起

001_0831_a_19L
頌中有二前之一頌正約四義明立八
001_0831_a_20L其次一頌約後二義顯六差別初中
001_0831_a_21L言分決者卽是正見謂後得智於所得
001_0831_a_22L分決了知故又復分明決了先所證故
001_0831_a_23L及令至者正思正語思是意業語是
001_0831_a_24L口業由此二種正業令他至正道故

001_0831_b_01L“타인에게 믿게 함인 3종”이란 정어, 정업 그리고 정명正命이다. “정업”이란 신업身業이다. 이 신업과 구업은 크게 나누면 둘이 된다. 만약 무진無瞋과 무치無癡에 의지해서 일어나면 정어와 정업으로 세운다. 만약 무탐無貪의 선근善根에 의지해서 일어나면 별도로 정명이라 한다. 사명邪命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서 “5종의 사명을 여의기에 정명이라 한다. 무엇을 5종이라 하는가? 첫째, 수행을 하는 어떤 사람이 명리와 명예를 위해 괴이한 일을 속여 보여 준다. 둘째, 명리와 명예를 위해 스스로 공덕을 말한다. 셋째, 명리와 명예를 위해 길흉의 상을 점쳐 사람들에게 말해 준다. 넷째, 명리와 명예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 권위를 보여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겁을 먹고 놀라게 한다. 다섯째, 명리와 명예를 위해 얻은 공양을 칭찬해서 말해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하게 한다. 바르지 못한 인연에 의해 생활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명이라 한다.”고 한다. “도를 돕지 않는 법을 대치함”이란 정근正勤,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이 3종은 3종의 장애(障)를 대치하기 때문이다. 이 4종의 의미에 의지해서 8도분道分을 세우기 때문에 “도道에 8종의 분지가 있다.”고 설한 것이다. 이 8종 중 정어 1종은 두 능력37이 모두 있다.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설하고 다른 곳에서는 설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 중의 하나를 설하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우선 계위의 대지를 밝힌다. “수습도修習道의 계위에 도분을 안립한다는 것을 나타낸다.”란, 수도修道의 계위에 후득지가 있다. 세간의 정견이 분한을 판별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송문을 그대로 끌어와서 풀이하는 부분에서 앞의 3종의 의미를 풀이한다. 최초의 의미를 풀이하는 부분에 네 구절이 있다. 첫째 구절의 “견도見道의 분한을 판별함이 정견이다.”란, 송을 다시 거론하며 출세간의 후득後得인 정견을 배속하는 것이다. 자체의 견도를 연하여 판별(決定分別)해서 그 분한을 알기에 “견도의 분한을 판별함”이라 말한 것이다. 둘째 구절 “이 견見은 세간의 정견이다.”란 본체를 바로 제시하는 것이다. 셋째 구절 “출세간의 정견 이후에 얻는 것이다.”란 원인에 배대해서 분별하는 것이다.

001_0831_b_01L令他信三種者亦是正語及與正業正
001_0831_b_02L言正業者卽是身業此身口業
001_0831_b_03L分有二若從無嗔無痴而起立爲正語
001_0831_b_04L及與正業若依無貪善根所起別名正
001_0831_b_05L反*耶命故如智度說離五*耶命
001_0831_b_06L故名正命何等爲五一者若行者爲利
001_0831_b_07L養故詐現奇特二者爲利養故自說
001_0831_b_08L功德三者爲利養故占相吉凶而爲
001_0831_b_09L人說四者爲利養故高聲現威令人
001_0831_b_10L畏驚五者爲利養故稱說所得供養
001_0831_b_11L以動人心*耶因緣活命故名爲*耶命
001_0831_b_12L對治不助法者卽是正懃正念正定
001_0831_b_13L以此三種治三鄣故由此四義立八道
001_0831_b_14L故言說道有八分也此八種中正語
001_0831_b_15L一種通有二能故爾處說其餘不爾
001_0831_b_16L故隨一也

001_0831_b_17L
釋中有二先明位地修道位中顯立道
001_0831_b_18L分者於修道中有後得智世間正見
001_0831_b_19L分決義故正釋文中釋前三義釋初
001_0831_b_20L義中卽有四句初言見道分決分是正
001_0831_b_21L見者牒偈屬當後得正見緣自見道
001_0831_b_22L決定分別知其分齊故言見道分決分
001_0831_b_23L第二句言此見世間正見者正出體
001_0831_b_24L第三句言出世正見後得者對因分

001_0831_c_01L“이 지智에 의해” 이하는 넷째 구절인데 “분한을 판별함”을 풀이하는 것이다. “자기가 얻을 도道”란 알아야 할 견도를 다시 거론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란 견혹見惑38을 끊어 얻은 무위無爲이다. 이 도道와 결과에 대해서 얻은 바의 분한에 따라 판별하기 때문에 정견을 “분한을 판별함”이라 한 것이다. “타인을 도달하게 함” 이하는 송의 “도달하게 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타인에게 알게 하고 얻게 한다.”란, 안의 정사正思에 의지해서 정어正語를 발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그 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타인을 행行에 따라서 도를 얻게 한다. 그래서 이 둘을 “도달하게 하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타인에게 믿게 함” 이하는 셋째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수를 들어 이름을 나열하면서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이 3법은 순서대로,

見戒及知足  봄(見), 계戒, 만족할 줄 아는 것이
應知令他信  타인에게 믿게 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11ab≻

타인에게 믿게 함의 분지는 세 경우이다. 정언正言에 의해, 곧 말을 해 주고, 서로 논쟁하며 바른 주장을 펴고, 서로 논리를 펴서 주장하여 이 사람에게는 지智가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믿게 한다고 한 것이다. 정업正業에 의지해서 타인에게 계戒를 지킨다는 것을 믿게 한다. 교법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명正命에 의해 타인에게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을 믿게 한다. 교법에 맞게, 분량에 맞게 의복 등 4종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보며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만족할 줄 알고 재물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을 믿게 한다고 한 것이다. 번뇌를 대치함의 분지란 3종이니 정근, 정념, 정정이다.

송은 2구로 되어 있다. 세 부류를 밝히고 있다. “봄(見)”이란 올바르게 말하기 때문이다. 안의 올바른 봄(正見)을 표현하기 때문에 표현되는 것에 의거해서 “봄(見)”이라고 한 것이다. “계戒”란 정업正業이다.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이란 정명正命이다. 이 3종의 행行에 의해 타인에게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타인에게 믿게 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라고 말한 것이다. 『대법론』에서 “정어正語, 정업, 정명은 타인에게 믿게 하는 분지이다. 그 순서대로, 이理를 증득한 사람에게는 봄(見), 계戒, 정명의 청정함이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가? 정어에 의해 자기가 증득한 대로 잘 문답하고 논하고 논의하고 논증한다. 이로부터 봄(見)의 청정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정업에 의해 감과 옴, 나아감과 멈춤에 올바른 행동을 갖춘다. 이로부터 계의 청정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정명에 의해 교법에 맞게 붓다가 허락한 옷과 발우 같은 생활필수품을 구걸한다. 이로부터 생활(命)의 청정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타인에게 믿게 함의 분지는 세 경우이다.”란 아래의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정언正言에 의해” 이하는 위의 3종의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다. “지智가 있다.”란

001_0831_c_01L因此以下是第四句釋分決義自所
001_0831_c_02L得道者是牒所知見道言及果者
001_0831_c_03L見*或斷所得無爲於此道果隨所得分
001_0831_c_04L決了分別故說正見爲分決也令他以
001_0831_c_05L下釋令至義能令他知及得者依內正
001_0831_c_06L思發起正語故能令他知其有道及能
001_0831_c_07L令他隨行得道故說此二爲令至也
001_0831_c_08L他信下釋第三義擧數列名發起下
001_0831_c_09L

001_0831_c_10L
頌中二句顯三差別見者由正說故
001_0831_c_11L表內正見故從所表名爲見也或者正
001_0831_c_12L業知之正命由此三行令他起信
001_0831_c_13L言應知令他信也對法論說正語正業
001_0831_c_14L正命是令他信支如其次第令他於
001_0831_c_15L證理者決定信者見於正命淸淨性故
001_0831_c_16L所以者何由正語故隨自所證1) [38]
001_0831_c_17L問答論議決擇由此了知有見淸淨
001_0831_c_18L由正業故往來進止正行具足由此
001_0831_c_19L了知有戒淸淨由正命故如法乞求
001_0831_c_20L佛所聽許衣鉢資具由此了知有命淸
001_0831_c_21L淨也

001_0831_c_22L
釋中有二初言令他信分者三處者
001_0831_c_23L釋下句依正以下釋上三義初中言有
001_0831_c_24L「菩」疑「若」

001_0832_a_01L송에 표현된 “봄(見)”을 바로 풀이한 것이다. “정업正業에 의지해서” 이하는 다음의 “계戒”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정명正命에 의해” 이하는 송의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이것은 세 구절로 되어 있다. 첫째 구절 “타인에게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을 믿게 한다.”란 구를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교법에 맞지 않는 물건은 삼가 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재물을 가볍게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교법에 맞는 물건은 분량을 지나치게 취하지 않기 때문에 “만족할 줄 안다.”고 말한 것이다. 둘째 구절은 위의 의미를 반복해서 나타낸 것이다. “교법에 맞게 의복 등 4종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보며 행동한다.”란 “재물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을 풀이한 것이다. “분량에 맞게 의복 등 4종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보며 행동한다.”란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을 풀이한 것이다. 4종의 두 행동39의 “생활(命)에 필요한 것(緣)”이란 의복, 음식, 침구, 의약이다. “그래서 타인에게……믿게 한다.” 이하는 셋째 매듭짓는 구절이다. “번뇌를 대치함의 분지란” 이하는 넷째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수를 들어 이름을 나열하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이 3법은 순서대로,

大惑及小惑  대혹, 또 소혹
自在障對治  자재장을 대치하네 ≺11cd≻

도道를 돕지 않는 번뇌에 3종이 있다. 첫째, 수습도에서 끊게 되는 번뇌이다. 이를 대혹大惑이라 한다. 둘째, 마음의 침몰沈沒과 도기掉起의 번뇌이다. 이를 소혹小惑이라 한다. 셋째, 자재장自在障인데, 월등한 품류의 공덕이 발현하는 것을 장애하는 것이다. 제1의 번뇌는 정근正勤이 그것을 대치한다. 왜 이와 같은가? 정근의 수습에 의해 도가 성취되기 때문이다. 제2의 번뇌는 정념正念이 그것을 대치한다. 적정寂靜의 상에 거처한다. 만약 정념이 적정의 상에 바르게 거처한다면 침몰과 도기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제3의 번뇌는 정정正定이 그것을 대치한다. 선정에 의지해서 육신통의 공덕을 발현하기 때문이다.

송은 2구로 되어 있다. 세 부류를 밝힌다. “대혹大惑”이란 근본번뇌이니 정근正勤에 의해 대치된다. “또 소혹小惑”이란 수번뇌이니 정념正念에 의해 대치된다. “자재장自在障”이란 육신통六神通에 대한 장애이니 정정正定에 의해 대치된다. 아래의 “대치하네”란 위의 3종의 장애(障)을 대치하는 것이니 3종의 대치를 모두 나타낸다. 『대법론』에서 “정정진正精進이란 번뇌의 장애를 청정하게 하는 분지이다. 이것에 의해 일체의 결結을 영원히 끊기 때문이다. 정념正念이란 수번뇌의 장애를 청정하게 하는 분지이다. 이것에 의해 올바른 멈춤(止), 들어 올림(擧)의 상 등을 망실하지 않아 혼침惛沈과 도거掉擧 등의 수번뇌를 영원히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정正定이란 가장 월등한 공덕에 대한 장애를 청정하게 하는 분지이다. 이로부터 신통神通 등 무량한 공덕을 끌어와 일어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주석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3종의 장애를 풀이하는 것이고, 뒷부분인 “첫째” 이하는 장애에 배대해서 대치를 밝히는 것이다. 앞부분의 “도道를 돕지 않는 번뇌에 3종이 있다.”란 이 3종이 각각 번뇌의 장애와 육신통 등에 대한 장애라는 것을 밝힌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 세 논사의 학설이 있다. 어떤 논사는 “무지無知”를 말하고, 어떤 논사는 “정을 얻지 못함”을 말하고, 어떤 논사는 “정定에 대해 자재롭지 못함”을 말한다.

001_0832_a_01L智者正釋頌中所表見也正依業下
001_0832_a_02L次戒義依正命下釋知足義此中三句
001_0832_a_03L初言他得信輕財知足者是略表句
001_0832_a_04L非法物1) [39] 重心故言輕財於如法
001_0832_a_05L不過量取故名知足第二句者重
001_0832_a_06L顯上義如法行見衣服等四是釋輕財
001_0832_a_07L如量行見衣服等四是釋知足四二命
001_0832_a_08L緣者衣服飮食臥具醫藥也故令以下
001_0832_a_09L第三結句煩惱以下明第四義擧數列
001_0832_a_10L發起下文

001_0832_a_11L
頌中二句顯三差別言大*或者根本
001_0832_a_12L煩惱正勤所治及小惑者是隨煩惱
001_0832_a_13L正念所治自在鄣者是六通鄣正定
001_0832_a_14L所治下言對治者對上三鄣總顯三
001_0832_a_15L對法說云正精進者是淨煩惱鄣
001_0832_a_16L由此永斷一切結故正念者是淨隨
001_0832_a_17L煩惱鄣支由此不忘失正止擧相等
001_0832_a_18L永不容受2) [40] 掉等隨煩惱故正定者能
001_0832_a_19L淨最勝功德鄣支由此引發神通等無
001_0832_a_20L量勝功德故

001_0832_a_21L
釋中有二初釋三鄣第一以下對鄣明
001_0832_a_22L第一中言非助煩惱有三種者明此
001_0832_a_23L三種皆是煩惱六通等障婆沙論中有
001_0832_a_24L三師說有說無知有說不得有說於

001_0832_b_01L이와 같은 세 학설은 모두 이치가 있다. 지금 이 논에서는 첫째 학설을 말한다. 무지이기에 번뇌라 하는 것이다. “수습도에서 끊게 되는 번뇌를 대혹大惑이라 한다.”란, 견도見道에서 끊게 되는 번뇌도 대혹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도분道分에 의해 대치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단지 수도修道에서 끊게 되는 번뇌인 탐貪, 진瞋 등을 말했을 뿐이다. 둘째, 셋째 구절이 나타내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1의 번뇌는” 이하는 뒷부분인데 장애에 배대해서 대치를 밝히는 것이다. 순서대로 셋을 말한다.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2) 대치를 합해서 말함

이 대치를 수습함을 만약 간략하게 말하면 3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隨不倒有倒  전도되지 않음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있는 것
隨顛倒不倒  전도됨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없는 것
無倒無隨倒  전도됨이 없고 전도됨을 따르지 않는 것이
修對治三種  대치를 수습함의 3종이네 ≺12≻

대치를 수습함에는 3종이 있다. 무엇이 3종인가? 첫째는 전도되지 않은 법을 따르지만 전도됨과 뒤섞여 있는 것, 둘째는 전도됨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없는 것, 셋째는 전도됨이 없고 전도되지 않은 법을 따르는 것이다. 순서대로 범부의 계위, 유학성자의 계위, 무학성자의 계위에 있다.

이 품品(대치수습품對治修習品) 안에는 두 단락이 있는데, 대치를 하나하나 밝히는 것은 앞에서 끝났다. 이하는 둘째 대치를 합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는데, 앞의 1송은 계위에 의거해서 분별하는 것이고, 그 후의 2구는 사람의 유형에 배대해서 분별하는 것이다. 첫째 부분의 “이 대치를 수습함을” 이하는 아래의 본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3구는 3종의 계위를 나누어서 밝히는 것이고, 아래의 1구는 수를 들면서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제1구 “전도되지 않음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있는 것”이란 범부의 계위를 말한다. 만약 이승二乘에 의거한다면 정심관停心觀에서 세제일법에 이르기까지이고, 만약 보살에 의거한다면 십신十信 이상 십회향十廻向이 다할 때까지이다. 견도見道를 따르기에 “전도되지 않음을 따르는 것”이다. 아직 견혹見惑을 여의지 않았기에 “전도됨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제2구 “전도됨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없는 것”은 유학有學의 계위를 말한다. 만약 이승에 의거한다면 고인苦忍 이후 금강金剛에 이르기까지이고, 만약 보살에 의거한다면 최초의 대지(初地) 이상 내지 등각等覺까지를 말한다. 혹惑의 종자를 아직 끊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됨을 따르는 것”이다. 무분별을 얻기 때문에 “전도됨이 없는 것”이라 말한 것이다. 제3구 “전도됨이 없고 전도됨을 따르지 않는 것”이란 아라한과 여래의 대지를 말한다. 견혹을 이미 여의었기 때문에 “전도됨이 없는 것”이라 말한다. 수혹修惑(수도修道에서 끊게 되는 번뇌)을 영원히 끊었기 때문에 “전도됨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의 구는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먼저 송의 마지막 구를 풀이한다. “무엇이 3종인가?” 이하는

001_0832_b_01L定不得自在如是三說皆有道理
001_0832_b_02L此論中且說初義是無知故說名煩
001_0832_b_03L修斷煩惱名大惑者見道所斷亦是
001_0832_b_04L大惑今說道分所對治故但說脩斷貪
001_0832_b_05L瞋等耳第二第三文顯可知第一煩惱
001_0832_b_06L以下第二對鄣明治次第說三文相可
001_0832_b_07L

001_0832_b_08L
[總說對治]於此品內有二段中別明對治竟在
001_0832_b_09L於前此下第二總說對治於中有二
001_0832_b_10L前之一頌約位分別其後二句對人分
001_0832_b_11L

001_0832_b_12L
就第一中此脩習下發起下文頌中有
001_0832_b_13L初之三句別顯三位下之一句擧數
001_0832_b_14L總結初中言隨不倒有倒者謂凡夫位
001_0832_b_15L若約二乘從*亭心觀至世第一法
001_0832_b_16L就菩薩十信以上盡十廻向隨順見道
001_0832_b_17L故隨不倒未離見*或故言有倒隨顚
001_0832_b_18L倒不倒者謂有學位若約二乘苦忍
001_0832_b_19L以去乃至金剛若就菩薩初地以上
001_0832_b_20L乃至等覺*或種未盡故隨顚倒得無
001_0832_b_21L分別故言不倒無倒無隨倒者謂阿
001_0832_b_22L羅漢及如來地見*或已離故言無倒
001_0832_b_23L脩*或永盡故無隨倒下句總結文相
001_0832_b_24L可知釋中有二先釋下句何者以下

001_0832_c_01L앞의 3구를 풀이한다. 순서대로 아래에서 3종의 계위를 배속한다. 문장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보살이” 이하는 사람의 유형에 배대해서 분별한다. 또한 우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보살이 대치를 수습하는 것은 (이승과) 차이가 있다. 무엇인가?

境界及思惟  경계, 또 사유함
至得有差別  얻음에 차이가 있네 ≺13ab≻

성문과 벽지불이라면 자상속의 몸 등에 대한 염처念處의 법들이 그 경계이다. 만약 보살이라면 자상속과 타상속의 몸 등에 대한 염처의 법들이 그 경계이다. 성문과 벽지불은 무상 등의 상들에 의해 몸 등의 법들을 사유한다. 만약 보살들이라면 무생無生에 의해 도리道理를 얻고자 사유하고 관찰한다. 만약 성문과 연각이 사념처 등의 법들을 수습한다면 몸 등의 법들을 여의기 위해서이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은 법들을 수습한다면 (몸 등의 법들을) 여의기 위해서 수습하는 것도 아니고, 여의지 않기 위해서 수습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무주처열반을 얻기 위해서 수습할 뿐이다.

송의 2구는 3종의 차이를 밝힌 것이다. “경계”란 소연경을 말한다. “또 사유함”이란 수행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얻음”이란 얻는 결과를 말한다. 이 3종에 있어서 대승과 소승이 같지 않기에 “차이가 있네.”라고 말한다.

주석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자상속의 몸 등에 대한 염처念處의 법들이 그 경계이다”란, 실제를 논한다면 일승一乘 또한 밖의 몸 및 안과 밖의 몸을 여읜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자기 세계의 안을 연할 뿐 타방 세계는 두루 연하지 않는다. 그들이 좁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자상속의 몸 등”이라고 말한 것이다. 둘째 “보살들이라면 무생無生에 의해 도리道理를 얻고자”란, 그들은 생멸 등의 상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이理의 근원을 얻는다. 그래서 “도리를 얻고자”라고 말한 것이다. 셋째 “몸 등의 법들을 여의기 위해서”란, 몸 등을 멸해서 ‘적정寂靜에 거처함’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이승二乘이 오직 자기의 몸을 위해 적정에 머무는 것을 얻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보살은 여의기 위해서 수습하는 것도 아니고”란 이승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항상 생사에 있으면서 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이다. “여의지 않기 위해서 수습하는 것도 아니다.”란 범부와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안의 마음의 장애들을 여의기 때문이다. “단지 무주처열반을 얻기 위해서”란 범부의 집착을 여의어 유전流轉에 머물지 않고, 이승의 집착과 달리 적정에 머물지 않기에 이를 무주처열반이라 한다. “대치를 수습함에 대해 말했다.” 이하는 앞을 매듭짓고 뒤를 일으키는 것이다.

제2편 「수주품修住品」
대치를 수습함에 대해 말했다. 수습함의 계위란 무엇인가?

다섯째, 수습의 거주처에 관한 품(修住品第五)

修住有四種  수습의 거주처에 4종이 있네
因入行至得  원인, 들어감, 행行, 얻음
有作不作意  지음이 있음, 지음이 없음, 뜻
有上亦無上  위가 있음, 또 위가 없음 ≺1≻

願樂位入位  원함의 계위, 들어감의 계위
出位受記位  출리出離의 계위, 수기受記의 계위
說者位灌位  설하는 자의 계위, 관정灌頂의 계위
至位功德位  도달함의 계위, 공덕의 계위≺2≻

作事位已說  해야 할 일의 계위가 설해졌네 ≺3a≻

수습의 거주처에는 18종의 계위가 있다. 무엇이 18종의 계위인가? 첫째는 원인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어떤 사람이 이미 자성自性에 머물고 있을 때이다. 둘째는 들어감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이미 발심發心했을 때이다. 셋째는 행行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발심에서 아직 결과를 얻지 않았을 때까지이다. 넷째는 결과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이미 얻었을 때이다. 다섯째는 공용功用이 있는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유학성인이다. 여섯째는 공용이 없는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무학성인이다. 일곱째는 월등한 공덕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행行을 구해서 육신통을 얻은 사람이다. 여덟째는 위가 있음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성문 등의 계위를 넘어섰지만 아직 최초의 대지로 들어가지 않은 보살인이다. 아홉째는 위가 없음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부처여래이다. 이 계위 후에 다시 다른 계위가 없기 때문이다. 열째는 원함(願樂)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보살인이 일체의 원함을 행하는 계위에 있어서이다. 열한째는 들어감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최초의 보살의 대지이다. 열두째는 출리出離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최초의 대지 이후의 6종의 대지이다. 열셋째는 수기受記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제8의 대지이다. 열넷째는 설함에 능한 스승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제9의 대지이다. 열다섯째는 관정灌頂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제10의 대지이다. 열여섯째는 얻음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부처의 법신이다. 열일곱째는 공덕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부처의 응신應身이다. 열여덟째는 해야 할 일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부처의 화신化身이다. 모든 거주처는 무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습의 거주처에 관한 품(修住品)”이란, “수습修習”은 앞에서 말한 도품道品의 수행修行이다. “거주처”란 수행에 의해 건립되는 계위(位)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기에 “거주처(住)”라 한다.

001_0832_c_01L釋上三句如次第下屬當三位隨文可
001_0832_c_02L

001_0832_c_03L
菩薩以下對人分別亦先發起頌中二
001_0832_c_04L明三差別言境界者謂所緣境
001_0832_c_05L思惟者謂所脩行言至得者謂所得
001_0832_c_06L於此三中大小不同故言有差別
001_0832_c_07L

001_0832_c_08L
釋中卽三初中言自相續身等念處是
001_0832_c_09L其境界者實論一乘亦離外身及內
001_0832_c_10L外身然其但緣自世界內不能普緣他
001_0832_c_11L方世界爲顯其狹故說自身等也
001_0832_c_12L二中言菩薩無生得道理者以其不取
001_0832_c_13L生滅等相得理原故名得道理第三
001_0832_c_14L中言爲滅離身諸法者爲滅身等得寂
001_0832_c_15L靜處是明二乘唯爲自身住於寂靜
001_0832_c_16L以爲至得菩薩不爲滅離故脩者簡異
001_0832_c_17L二乘常在生死度群生故非不爲滅
001_0832_c_18L離者簡異凡夫於內心中離諸鄣故
001_0832_c_19L但爲至得無住處涅槃者離凡夫執
001_0832_c_20L住流轉異二乘著不住寂靜是名無
001_0832_c_21L住處涅槃也脩習以下結前起後也

001_0832_c_22L
脩住品者脩是前說道品之行住是
001_0832_c_23L依行建立之位行人所住故名目住
001_0832_c_24L「知」疑「殷」「汎」疑「沈」

001_0833_a_01L여기서 수습에 의지해서 거주처를 건립하는 것을 바로 나타내기에 “수습의 거주처에 관한 품”이라 한다. 이 품에는 3송 반이 있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3송은 계위의 상을 하나하나 밝히는 것이고, 뒤의 2구는 사람의 유형에 의거하여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제1장 계위의 상을 하나하나 밝힘
앞은 또한 둘로 되어 있다. 앞의 2송과 1구는 수행修行에 의지해서 4종의 계위의 차이를 세우는 것이고, 뒤의 3구는 법계法界에 의거해서 3종의 계위가 같지 않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1. 수행에 의지해서 4종의 계위의 차이를 세움
앞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처음의 1구는 수數를 들어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다음의 7구와 석 자40는 4종의 계위를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고, 마지막의 두 자41는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처음 합해서 표방하는 부분의 “수습의 거주처에 4종이 있네.”란 아래에서 말하는 “18종의 계위가 있다.”이다. 안립安立하는 의미에 오직 4종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4종이 있네.”라고 말한 것이다. 무엇을 4종이라 하는가? 첫째 앞의 7종42은 공통되는 계위를 안립한다. 삼승三乘에 공통되기 때문이다. 다음에 있는 2종43은 공통되지 않는 계위를 안립한다. 2종의 승乘의 거처44가 공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음의 6종45은 전후의 계위를 안립한다. 전후에 6종을 안립하기 때문이다. 최후의 3종46은 동시의 계위를 안립한다. 동시에 3종을 설하기 때문이다. 도품道品의 수행에 공통되는 것과 공통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앞의 둘을 안립한다. 원인의 수행과 결과의 공덕에 점漸이 있고 돈頓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뒤의 둘을 안립한다. 이것이 4종의 계위를 안립하는 의미이다.

본문은 넷으로 되어 있다. 처음의 3구47는 공통되는 계위를 안립하고, 다음의 1구48는 공통되지 않는 계위를 안립하고, 그다음의 3구49는 전후의 계위를 안립하고, 마지막의 1구와 남은 1구50는 동시의 계위를 안립한다.

첫째 단락의 공통되는 계위 중에 7종의 계위를 안립한다. “원인”이란 첫째 원인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삼승三乘의 종성種性을 말한다. 앞으로는 무시無始를 취하고 뒤로는 초발심初發心을 제외한다. 그 중간에 오직 원인인 것이 있을 뿐이다. 아직 수행의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원인의 계위라 한다. “들어감”이란 둘째 들어감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삼승의 사람들이 그 종성에 따라서 이미 초발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행行”이란 셋째 행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001_0833_a_01L此中正顯依脩立住是故名爲脩住品
001_0833_a_02L

001_0833_a_03L
此品之中有三頌半於中有二前之
001_0833_a_04L三頌別明位相1) [41] 二句 約人總結
001_0833_a_05L中亦二二頌一句依脩行立四位差別
001_0833_a_06L後之三句約法界明三位不同
[立四位差別]
初中有
001_0833_a_07L在前一句擧數總標次七句三字別
001_0833_a_08L顯四位最後二字是總結也初總標
001_0833_a_09L言脩住有四種謂下所說有十八位
001_0833_a_10L立之意唯有四種故言有四何等爲
001_0833_a_11L一者前之七種立共通位共通三
001_0833_a_12L乘故次有二種立不共位不共二處
001_0833_a_13L其次六種立前後位前後立六故
001_0833_a_14L最後三種立同時位同時說三故
001_0833_a_15L顯道品脩行有共不共故立前二爲顯
001_0833_a_16L因行果德有漸有頓故立後二是謂安
001_0833_a_17L立四種位意文中卽四初之二句立共
001_0833_a_18L通位次有一句立不共位其次三句立
001_0833_a_19L前後位後一句餘立同時位初共位
001_0833_a_20L卽立七位因者第一因位脩住
001_0833_a_21L三乘種性前取無始後除發心於其
001_0833_a_22L中間唯有因性未得行果故名因位
001_0833_a_23L入者第二入位脩住謂三乘人隨其種
001_0833_a_24L已能趣入初發心故行者第三行位

001_0833_b_01L삼승의 사람들이 초발심 이후 세제일법에 이르기까지 다시 그 방편에 의지해서 여실한 행을 수습하기 때문이다. “얻음”이란 넷째 결과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삼승의 사람들이 견도위見道位에 들어가 이에 최초로 출세간의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지음이 있음”이란 다섯째이니, 삼승의 사람들이 수도위修道位에 있으면서 아직 바라는 바에 도달하지 못해 공용功用을 짓기 때문이다. “지음이 없음”이란 여섯째이니, 삼승의 사람들이 무학위無學位에 도달해 이미 결과를 얻어 작용作用이 그쳤기 때문이다. “뜻(意)”이란 일곱째 월등한 공덕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육도六道를 얻어 뜻대로 전전하기 때문이다. 이 계위는 앞의 유학과 무학에 통한다.

둘째 단락에서 간략하게 2종의 계위를 안립한다. “위가 있음”이란, ‘대지에 들어가기 이전의 보살(地前菩薩)’은 공통되지 않는 수행에 의지해서 이미 이승二乘의 모든 계위에 나아갔고, 그 이승과 비교할 때 증상增上된 공덕이 있다. 이 보살에게 증상된 수행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가 있음”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증상된 수행은 아직 궁극의 것이 아니다. 그 월등한 수행은 위(上)에 수습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위가 있음”이라 한 것이다. 이 두 의미에 의해서 “위가 있음”의 계위를 안립한다. 무엇 때문에 단지 ‘대지에 들어가기 이전(地前)’의 계위만을 안립하는가? 보살이 범부의 계위에 있을 때 이미 이승의 성자의 결과의 계위를 넘어섰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위가 없음”이란 여래의 대지이다. 보살과 비교한 것이다. 보살은 비록 이승을 넘어서기는 했으나 아직 궁극이 아니기에 위(上)에 수습해야 할 것이 있다. 그래서 여래의 대지를 “위가 없음”의 계위로 안립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원만해서 다시 위(上)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이 불과佛果는 가장 높은 계위이다. 아만我慢의 습기를 영원히 끊었기에 위(上)의 상相이 전연 있지 않다. 그래서 이를 “위가 없음”의 계위라 한 것이다. 어떤 경의 송에서 “위(上)의 상相이 있지 않기에 ‘위가 없음’이라 부르네.”라고 한다. 이 두 의미에 의지해서 “위가 없음”의 계위라 한다. “위가 있음”을 안립하는 것은 이승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위가 없음”을 안립하는 것은 보살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이 두 의미에 의지해서 공통되지 않은 계위를 안립한다.


001_0833_b_01L脩住謂三乘人發心以後2) [42] 至世
001_0833_b_02L第一法以還隨其方便脩如行故
001_0833_b_03L得者第四果位脩住謂三乘人入見道
001_0833_b_04L方始至得出世果故有住第五
001_0833_b_05L三乘人在脩道位未至所望作功用故
001_0833_b_06L無作第六謂三乘人至無學位已果所
001_0833_b_07L息作用故意者第七勝德位脩
001_0833_b_08L得六道隨意轉故此位通前學無學也

001_0833_b_09L
第二段中略立二位言有上者地前菩
001_0833_b_10L薩依不共行已趣二乘一切位地
001_0833_b_11L彼二乘無增上德顯此菩薩有增上行
001_0833_b_12L故名有上然此上行未是究竟其勝行
001_0833_b_13L有上可脩故名有上依此二義立有
001_0833_b_14L上位何故但立地前位者爲顯菩薩在
001_0833_b_15L凡位時已超二乘聖果位故言無上者
001_0833_b_16L是如來地對諸菩薩雖過二乘而未
001_0833_b_17L究竟有上可脩故立如來爲無上位
001_0833_b_18L究竟圓滿更無上故又此佛果最極上
001_0833_b_19L能於我慢習氣永盡故於上相
001_0833_b_20L無所在以之故名爲無上位如經頌曰
001_0833_b_21L上相無所有故號爲無上依此二義
001_0833_b_22L名無上位立有上者爲異二乘立無
001_0833_b_23L上者爲簡菩薩由此二義立不共位
001_0833_b_24L

001_0833_c_01L
셋째 단락에서 6종의 계위를 안립한다. “원함(願樂)의 계위”란 ‘대지에 들어가기 이전(地前)’의 40심四十心의 계위이다. 1도道를 증득하는 업業을 원해서 만행萬行을 수습하기 때문이다. “들어감의 계위”란 최초의 대지이다. 보살이 이미 견도에 들어가 불가佛家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출리出離의 계위”란 다음의 6종의 대지이다. 도道를 점점 더 수습해서 장애들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수기受記의 계위”란 제8의 대지이다. 결정코 퇴보하는 일이 없어서 부처의 기별記別을 받기 때문이다. “설하는 자의 계위”란 제9의 대지이다. 걸림 없는 변설辨說의 능력을 얻어 법을 잘 설하기 때문이다. “관정灌頂의 계위”란 제10의 대지이다. 보살의 수행이 원만해서 부처의 계위를 받기 때문이다. 기별을 준 시방의 부처들이 쏟아 내는 광명이 보살의 정수리로 들어가 부처의 계위를 주는 일이 마치 왕이 왕위를 받을 때 사방의 바다의 물을 취해 그 정수리에 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6종의 계위는 계위의 오르고 내림에 전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넷째 단락에서 3종의 계위를 안립한다. “도달함의 계위”란 결과의 대지인 법신法身이다. 스스로 왕래하여 지극한 얻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공덕의 계위”란 수용신受用身이다. 만행萬行의 공功에 의해 만덕萬德을 받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의 계위”란 변화신變化身이다. 시방의 세계에 편만遍滿하며 8종의 상相을 화현하기 때문이다. 이 3종의 계위는 결과를 구분한 것이어서 전후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설해졌네”란 셋째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주석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수를 들어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둘째는 수를 다시 들며 하나하나 풀이하는 것이다. 여기서 순서대로 18종의 계위를 풀이한다. 제7의 “월등한 공덕의 계위”란 송의 “뜻(意)”을 풀이한 것이다. 월등한 공덕이 있을 때 “뜻대로 함(如意)”을 얻기 때문이다. 제8의 “성문 등의 계위를 넘어섰지만”은 증상된 수행이 있다는 의미에 의거해서 “위가 있음”이란 말을 풀이한 것이다. “아직 최초의 대지에 들어가지 않은 보살인”이란 위로 전진할 수 있다는 의미에 의거해서 “위가 있음”이란 말을 풀이한 것이다.

001_0833_c_01L
第三段中安立六位願樂位者謂在地
001_0833_c_02L前四十心位願證一道業脩萬行故
001_0833_c_03L言入位者初地菩薩已入見道生佛家
001_0833_c_04L言出位者謂次六地漸增脩道
001_0833_c_05L諸鄣故受記位者謂第八地決定無退
001_0833_c_06L受佛記故說者位者是第九地得無礙
001_0833_c_07L善說法故灌頂位者是第十地
001_0833_c_08L薩行滿受佛位故記十方佛所放光明
001_0833_c_09L入菩薩頂以授佛位事同於王受位之
001_0833_c_10L取四海水灌其頂故此六位者
001_0833_c_11L位階降有前後也

001_0833_c_12L
第四段中安立三位言至位者果地法
001_0833_c_13L從自往來到至得故功德位者
001_0833_c_14L受用身依萬行功受萬德故住事位事
001_0833_c_15L是變化身遍十方界化八相故
001_0833_c_16L三住者顯果差別無前後也言已說
001_0833_c_17L第三總結也

001_0833_c_18L
釋中有三一者擧數總標二者牒數別
001_0833_c_19L於中次第釋十八位第七中言勝
001_0833_c_20L德位者是釋頌中意字由有勝德
001_0833_c_21L如意故第八中言過聲聞等位者是約
001_0833_c_22L有增上行之義釋有上名未入初地菩
001_0833_c_23L3) [43] 約有其上可進之義釋有上名也
001_0833_c_24L「後」下疑脫「之」「乃」疑剩「有」疑剩

001_0834_a_01L제9의 “위가 없음”을 풀이할 때는 오직 한 의미에 의거해서 “위가 없음”을 풀이한 것이다. 다른 주석문은 앞에 준해서 이해하면 된다. “모든 거주처는” 이하는 셋째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이는 송의 “설해졌네”라는 문장을 풀이한 것이다.

2. 법계에 의거해서 3종의 계위가 같지 않음을 밝힘
이제 단지 축약해서 말하면,

法界復有三  법계에 다시 3종이 있네
不淨不淨淨  청정하지 않음,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
清淨如次第  청정함이 순서대로이네 ≺3cd≻

만약 이 계위들을 축약해서 말하면 셋이 있다. 첫째는 청정하지 않음의 계위인 거주처로, 원인의 계위에서 행行의 계위까지이다. 둘째는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의 계위인 거주처로, 유학성인의 계위이다. 셋째는 청정함의 계위인 거주처로, 무학성인의 계위이다.

이하는 둘째 법계法界의 계위를 밝힌 것이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다. 진여법계眞如法界의 본체는 잡염雜染이 없으나 단지 객진客塵에 의해서 3종의 계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법계에 다시 3종이 있네.”라고 말한 것이다. “청정하지 않음”이란 범부의 계위에 있어서이다. 혹惑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이란 유학성자의 계위에 있어서이다. 수혹修惑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나 견혹見惑은 이미 끊어졌기 때문이다. “청정함”이란 무학의 계위에 있어서이다. 견혹과 수혹 두 혹惑이 궁극적으로 끊어졌기 때문이다. “순서대로이네”란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처음은 제1구를 풀이하는 것이고, “첫째는 청정하지 않음” 이하는 다음의 2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앞의 4종의 계위 중 첫째인 공통되는 계위에 의거해서 셋을 구별하여 풀이하는 것이다. 법계는 삼승三乘에 두루 통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기에 다른 문門에 의거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제2장 사람의 유형에 의거해서 합해서 매듭지음

此中安立人  이것에 사람을 안립한다는 것을
應知如道理  이치대로 알아야 하네 ≺4ab≻

이 계위의 차이에 의해 이치대로 범부와 성인의 차이가 안립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자성의 계위에 있다.”, “이 사람은 이미 들어감의 계위에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이 품 안의 두 단락 중에서 계위의 상을 하나하나 밝히는 것은 이전까지 다 마쳤다. 이하 반의 송은 사람의 유형에 의거해서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이것에 사람을 안립한다.”란 이 계위의 구별에 따라서 다른 유형의 사람을 안립하는 것이다. “이치대로 알아야 하네.”란 이치에 부합하게 사람의 유형을 안립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권하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풀이하는 것이고, “이 사람은” 이하는 상을 하나하나 안립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사람은 자성의 계위에 있다.”란 제1의 계위에 의거해서 최초의 사람의 유형을 나타낸다. “이 사람은 이미 들어감의 계위에 있다.”란 제2의 계위에 의거해서 사람을 안립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것들이다.”란 예를 들어 후의 계위인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나타낸다. “이제까지 수습의 계위에 대해 말했다. 무엇이 결과를 얻음인가?”란 앞의 것을 매듭짓고 뒤의 것을 일으키는 것이다.

제3편 「득과품得果品」

001_0834_a_01L釋無上中唯約一義釋無上也此餘
001_0834_a_02L釋文准前可解一切以下第三總結
001_0834_a_03L卽釋頌中已說文也

001_0834_a_04L[約法界明三位不同]
此下第二明法界位初句總標下卽別
001_0834_a_05L眞如法界自性無染但依客塵
001_0834_a_06L顯三位故言法界復有三也言不淨者
001_0834_a_07L在凡夫位於諸*或種無所斷故不淨
001_0834_a_08L淨者有覺聖位脩*或未盡見*或盡
001_0834_a_09L言淸淨者在無覺位見脩二*或究
001_0834_a_10L竟滅故如次第者是總結也

001_0834_a_11L
釋中卽二先釋初句不淨以下釋次二
001_0834_a_12L前四位中約初共位釋三差別
001_0834_a_13L顯法界普通三乘是故不就餘門說
001_0834_a_14L

001_0834_a_15L[約人總結]
於此品內有二段中別明位相竟在於
001_0834_a_16L此下半頌約人總結此中安立人
001_0834_a_17L隨此位別安立別人應知如道理者
001_0834_a_18L勸知順理安立人也釋中有二先卽總
001_0834_a_19L此中以下別顯立相言自性中住者
001_0834_a_20L依第一位以顯初人此人已入住者
001_0834_a_21L顯第二位中立人如是等者例顯後位
001_0834_a_22L諸餘人也脩位已說何者得果者
001_0834_a_23L前生後也

001_0834_a_24L得果品者
依前脩住顯得果相是故

001_0834_b_01L
이제까지 수습함의 계위에 대해 말했다. 무엇이 결과를 얻음인가?

여섯째, 결과를 얻음에 관한 품(得果品第六)

器果及報果  기器인 결과, 또 보報인 결과
此是增上果  이것은 증상增上인 결과이네
愛樂及增長  욕구(愛樂), 또 증장增長
淸淨果次第  청정淸淨인 결과가 순서대로이네 ≺1≻

기器인 결과란 과보果報인데, 선근에 상응하는 것이다. 보報인 결과란 기器인 결과의 증상 때문에 선근이 최상품이다. 욕구(愛樂)인 결과란 숙세에 자주 수습했기 때문에 선법을 욕구한다. 증장增長인 결과란 현세에 자주 공덕의 선근을 수습하기 때문에 선근이 원만하게 되는 것이다. 청정淸淨인 결과란 장애를 끊는 것이다. 이 계위의 결과는 순서대로 5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과를 얻음에 관한 품(得果品)”이란, 앞의 수습의 거주처에 의거해서 결과를 얻음의 상相을 보여 주기 위해 “결과를 얻음에 관한 품”이라 한 것이다. 이 품에 2송 반이 있는데,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2송과 1구는 결과의 상을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고, 마지막의 1구는 설명이 끝난 뒤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첫째 단락 또한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송은 원인에 배대해서 5종의 결과가 같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뒤의 1송과 1구는 계위에 의거해서 10종의 결과가 구별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중 앞의 것에 대해서 간략하게 그 의미를 밝힌다. 5종의 결과의 의미를 3종의 구句로 분별한다. 첫째 이름을 나열하고, 둘째 본체의 상을 밝히고, 셋째 원인에 배대해서 분별한다.

첫째, 이름을 나열한다. 『유가사지론』의 설에 의거하면 첫째 이숙과異熟果, 둘째 등류과等流果, 셋째 이계과離繫果, 넷째 사용과士用果, 다섯째 증상과增上果이다. 이것은 총체적인 문에 의거해서 잡염과 청정을 섞어 말한 것이다. 지금 이 『중변분별론』의 설에 의거하면 첫째는 보과報果이니, 이는 이숙과이다. 둘째는 증상과이니, 그 논의 명칭과 다르지 않다, 셋째는 수류과隨流果이니, 이는 등류과이다. 넷째는 공용과功用果이니, 이는 사용과이다. 다섯째는 상리과相離果이니, 이는 이계과이다. 이는 개별적인 문에 의거해서 오직 선善의 결과를 말할 뿐이기 때문에 선에 따라서 순서를 일으켜 말한 것이다. 무엇인가? 숙세의 선업에 의해 초감된 보과는 선법의 기器이기 때문에 최초에 말한 것이다. 이 보과의 증상력에 의지해서 선근善根을 발하는데 이것이 증상과이다. 최초에 발한 이후 선세先世에 수습했기 때문에 월등한 선을 욕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등류과이다. 이 현재세의 욕구와 공용功用의 세력에 의해 선근이 원만하게 되는데 이것이 공용과이다. 원만하게 수습하기 때문에 장애(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다섯째 상리과를 건립한다.

둘째, 본체의 상을 제시한다. 가령 『유가사지론』 「보살지 역종성품力種性品」에서 “불선법은 악취惡趣에서 이숙과를 받고 선의 유루법은 선취善趣에서 이숙과를 받는다. 이를 이숙과라 한다. 불선법을 수습했기 때문에 불선법에 즐겁게 머물고 불선법이 증장한다. 선법을 수습했기 때문에 선법에 즐겁게 머물고 선법이 증장한다.

001_0834_b_01L名爲得果品也

001_0834_b_02L
於此品內有二頌半分作二段二頌
001_0834_b_03L一句別顯果相最後一句說已總結
001_0834_b_04L中亦二前之一頌對因以明五果不同
001_0834_b_05L後一頌一句約位以顯十果差別此中
001_0834_b_06L在前略明其義五果之義三句分別
001_0834_b_07L列名字次明體相其第三者對因分
001_0834_b_08L列名字者依瑜伽說一異熟果
001_0834_b_09L等流果三離繫果四士用果五增上
001_0834_b_10L此就通門染淨雜說今此論說
001_0834_b_11L名報果是異熟果二增上果不異彼名
001_0834_b_12L三隨流果是等流果四功用果是士用
001_0834_b_13L五相離果是離繫果此約別門
001_0834_b_14L說善果故隨善起次第而說何者宿
001_0834_b_15L世善業所感報果作善法器故在初說
001_0834_b_16L依此報果增上力故得發善根是增上
001_0834_b_17L果始起以後由先世習愛樂勝善是等
001_0834_b_18L流果由此現在愛樂功力善根圓滿
001_0834_b_19L是功用果圓滿脩故能離諸鄣是故
001_0834_b_20L第五立相離果第二出體相者如菩薩
001_0834_b_21L地力種性品說云諸不善法於諸惡趣
001_0834_b_22L受異熟果善有漏法於諸善趣受異熟
001_0834_b_23L是名異熟果習不善故樂住不善
001_0834_b_24L不善法增脩習善故樂住善法

001_0834_c_01L혹은 선세의 업과 유사하게 후세의 결과가 이에 따라 전기轉起한다. 이를 등류과라 한다. 팔분지의 성도聖道로써 번뇌들을 끊는다. 이를 이계과라 한다. 만약 이생異生이라면 세속의 도道로써 번뇌들을 끊지만, 궁극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계과라 하지 않는다. 어떤 부류는 현세의 법에 있어서 전문적인 일 중 하나에 의지해서 사람의 작용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농업이나 상업의 일, 서화나 산수나 점복 등의 일이다. 이것에 의해 농사 등 재리財利 등의 결과를 성취하기에 이것을 사용과라 한다. 안식 등은 안근의 증상과이다. 내지 의식 등은 의근意根의 증상과이다. 중생의 몸이 흩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은 명근命根의 증상과이다. 22근은 각각 자기의 증상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일체가 증상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중 “선세의 업과 유사하게 후세의 결과가 이에 따라 전기한다.”란, 가령 살생이 원인이 되어 악취의 이숙과를 받고 후에 인취人趣에 태어났을 때 단명短命의 결과를 받는다. 또 가령 물건을 훔친 것이 원인이 되어 악취에 떨어지고 후에 인취에 태어났을 때 빈궁의 결과를 받는다. 이와 같은 것들이 등류과에 속한다. 다른 문장들은 분명하니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오과五果의 본체의 상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셋째, 원인에 배대해서 분별한다. 이는 10종의 원인에 배대해서 그 구별을 보여 주는 것을 말한다. 이숙과는 인발인引發因에 배대한다. 증상과는 심과 심소법이 대상을 같이하는 원인에 대해서이다. 선과 불선을 얻는 것은 인발인이다. 등류과를 얻는 것은 생기인生起因이다. 사용과를 얻는 것은 인발인이다. 이계과를 얻는 것은 인발인이다. 이것 이외의 다른 원인들이 얻는 결과는 대개는 증상과에 속한다. 『유가사지론』 「사소성결택思所成決擇」에서 “또 선세에 지은 업과 번뇌는 삼계三界의 이숙과를 성숙하게 한다.

001_0834_c_01L法增長或似先業後果隨轉是名等
001_0834_c_02L流果八支聖道滅諸煩惱名離繫果
001_0834_c_03L若諸異生以世間道滅諸煩惱不究竟
001_0834_c_04L非離繫果諸有一類於現法中
001_0834_c_05L正隨一工巧業處起士夫用所謂農作
001_0834_c_06L商賈事工出書算數占卜等事由此成
001_0834_c_07L辦諸稼穡等財利等果是名士用果
001_0834_c_08L眼識等是眼根等增上果衆生等果
001_0834_c_09L名士用果若眼識等是眼根身分不壞
001_0834_c_10L不散是命根增上果二十二根各各能
001_0834_c_11L起自增上果當知一切名增上果此中
001_0834_c_12L言或似先業後果隨轉者如因煞生
001_0834_c_13L於惡趣異熟果已後生人趣受短命果
001_0834_c_14L由盜物故墮惡趣已後生人中受貧
001_0834_c_15L窮果諸如是等等流果攝餘文分明
001_0834_c_16L尋之可知五果體相略明如是第三
001_0834_c_17L1) [44] 因分別者謂對十因顯其差別
001_0834_c_18L熟果是引發因增上果中望心心法
001_0834_c_19L同事因得善不善是引發因得等流果
001_0834_c_20L是生起因得士用果是引發因得離繫
001_0834_c_21L果是引發因此餘諸因所得之果多分
001_0834_c_22L入於增上果攝如瑜伽論思所成決擇
001_0834_c_23L中說又先所住諸業煩惱於三界中異
001_0834_c_24L「封」疑「對」

001_0835_a_01L이 이숙과는 업과 번뇌의 인발인이 원인이기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또 육식신六識身은 안眼과 색色, 내지 의意와 법法이 증상연이 되어 대상을 같이하는 원인이기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또 불선법은 나쁜 친구와 가깝게 지내고, 옳지 않은 법을 듣고, 바르게 사유하지 않는 것이 인발인이기 때문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이것과 상반되는 3종의 인발인이 일체의 선법을 생기게 하니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원인들은 모두 각각의 증상과이기 때문에 결과를 갖는 법이다. 선과 불선과 무기無記의 법들의 종자는 해를 입지 않는다. 그 일체의 법들은 모두 생기인을 발생하게 하기 때문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이 생기인은 모두 각각의 등류과이기 때문에 결과를 갖는 법이다. 또 염오染汚의 지속은 그릇된 정진을 발생하게 하고 결과가 없게 수고해서 우憂와 고苦의 거주처를 발생하게 한다. 불염오不染汚의 지속은 바른 정진을 발생하게 하고 결과가 있게 수고해서 희喜와 낙樂의 지속을 발생하게 한다. 인발인이기 때문에 원인이 있는 법이다. 그 원인의 법은 모두 각각의 사용과이기 때문에 결과가 있는 법이다. 또 세간의 도道는 이욕離欲과 출세간의 성도聖道에 속한 것에 나아가서 열반을 증득한다. 그것은 인발인이기 때문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출세간의 도는 이계離繫의 증상과이기 때문에 결과를 갖는 법이다. 궁극의 이계과이기 때문이다. 만약 세간의 도라면 궁극의 이계과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여기에 인용하는 문장들은 의미에 따라 취한 것이기에 하나하나가 반드시 그 순서대로인 것은 아니다. 다섯째 결과의 상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다음으로 본문을 따라가며 있는 대로 풀이한다. 최초에 “기과器果”란 과보의 결과이다. 숙세에 수습한 선근善根이 얻는 바의 과보이다. 선행善行을 수습한 것에 수순해서 도道의 기器를 받기 때문에 “기과”라 하는 것이다. 이 과보의 결과는 선도善道와 악도惡道 모두이다.

001_0835_a_01L熟果熟此異熟果因業煩惱引發因故
001_0835_a_02L名有因法又六識身以從眼色乃至意
001_0835_a_03L法爲增上緣同事因故名有因法又不
001_0835_a_04L善法由近惡友聞非正法不正思惟
001_0835_a_05L引發因故名有因法與此相違三種引
001_0835_a_06L發因起一切善法當知亦爾卽此諸
001_0835_a_07L皆由各別增上果故名有果法若善
001_0835_a_08L不善無記諸法所有種子未被損害
001_0835_a_09L一切法皆是能生生起因故名有因法
001_0835_a_10L此生起因皆由各別等流果故名有果
001_0835_a_11L又染汚住生*耶精進無果劬勞
001_0835_a_12L憂苦住不染汚住生正精進有果劬勞
001_0835_a_13L生喜樂住彼由引發因故名有因法
001_0835_a_14L卽彼因法皆由各別士用果故名有果
001_0835_a_15L又世間道趣於離欲及出世法
001_0835_a_16L道所攝能證涅槃彼由引發因故
001_0835_a_17L有因法卽出世道由離繫增上果故
001_0835_a_18L名有果法謂由究竟離繫果故若世間
001_0835_a_19L道非由究竟離繫果故此所引文隨義
001_0835_a_20L類取未必一一如彼次第五果之相略
001_0835_a_21L說如是

001_0835_a_22L
次正消文初中言器果者是果報果
001_0835_a_23L宿習善根所得果報順脩善行爲受道
001_0835_a_24L故名器果此果報果通善惡道

001_0835_b_01L지금은 수순하는 결과를 밝히는 것이기에 선도를 취한다. “보과報果”란 증상과이다. 월등한 선근을 말한다. 기器인 보報의 세력의 증상增上에 의해 발생한 것이기에 원인을 따라 이름을 세워 “보과”라 한 것이다. 다음의 “이것은 증상과이네.”란 최초의 결과와 혼동할까 염려해서 본래의 것에 의지하여 별도로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이 증상과는 일체의 법일 수 있으나 지금은 선법에 의거해서 이 결과를 건립하는 것이기에 오직 기器인 보報의 증상에 의해 발생한 것을 취한다. “욕구(愛樂)”란 수류과이다. 그 선세先世에 오랫동안 수습한 선근에 의해 후세後世에 그 흐름을 따라 선법을 욕구하기 때문이다. 이 수류과는 삼성三性(선·불선·무기) 모두일 수 있으나 지금은 수습의 결과를 밝히는 것이기에 오직 선법만을 취한 것이다. “증장增長”이란 공용과이다. 현재세에 근면한 공용功用의 세력에 의해 선근이 증장하고 원만하게 되기 때문이다. “청정淸淨인 결과”란 상리과이다. 수행이 원만해서 장애(障)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순서대로이네”란 이 기器 등 5종의 결과의 전후를 보과 등 5종의 결과의 순서에 의해 건립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의지해서 발생하는 순서이기 때문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처음은 5종의 결과를 풀이하는 것이고 “이 계위의 결과는” 이하는 순서를 풀이하는 것이다. 기과器果를 풀이하는 부분에서 “과보果報”란 기器의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선善과 상응하는 것”이란 기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둘째 부분에서 “기器인 결과의 증상 때문에”란, 발생하게 하는 연緣을 든다면 이것은 “보報”이다. “선근이 최상품이다.”란 기과에 의해 발생한 선善을 나타낸 것이다. 결과의 본체를 바로 제시한 것이다. 셋째 부분에서 “숙세에 자주 수습했기 때문에”란 앞의 원인을 든 것이다. “선법을 욕구한다.”란 결과의 본체를 바로 제시한 것이다. 넷째와 다섯째는 문장이 표현하는 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계위의 결과는” 이하는 송의 “순서대로이네”를 풀이해서 말한 것이다. 이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上上及初果  상상上上, 또 최초의 결과
數習究竟果  자주 수습함, 완성함의 결과
隨順及對治  수순함, 또 대치함
相離及勝位  벗어남, 또 월등한 계위 ≺2≻

有上無上故  위가 있음, 위가 없음이기에
略說果如是  축약해서 결과를 말하면 이와 같네 ≺3ab≻

만약 축약해서 결과를 말하면 10종이 있다. ① 첫째 상상上上의 결과란 자성으로부터 발심, 수행에 이르기까지 후후後後의 순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② 둘째 최초의 결과란 최초로 출세간의 법들을 얻는 것이다. ③ 셋째 자주 수습함의 결과란 최초의 결과 이후 유학의 계위에 있어서이다. ④ 궁극의 결과란 무학의 법들이다. ⑤ 수순함의 결과란, 원인이 되기 때문에 상상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⑥ 대치함의 결과란 끊음의 도道이니, 이것에 의지해서 최초의 결과를 얻는다. 이 중 최초의 도를 대치함의 결과라 한다. ⑦ 벗어남(相離)의 결과라 한다. 자주 수습함의 결과와 원만함의 결과이다. 혹惑의 장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유학과 무학의 성인의 결과이다. ⑧ 월등한 계위의 결과란 신통 등 공덕들이다. ⑨ 위가 있음의 결과란 보살의 대지이다. 다른 승乘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⑩ 위가 없음의 결과란 여래의 대지이다. 이와 같은 4종의 결과는 원만함의 결과를 분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축약해서 말하면 이만큼 많지만, 만약 상세히 말한다면 무한하다.

이하는 둘째 계위에 의거해서 10종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중 앞의 4종은 간략하게 결과를 말하는 것이고, 뒤의 6종은 상세하게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앞의 4종의 결과를 열어 6종의 결과로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001_0835_b_01L明順果故取善道言報果者是增上
001_0835_b_02L謂勝善根由器報力增上所起
001_0835_b_03L因立名名爲報果次言此是增上果者
001_0835_b_04L恐濫初果依本名別此增上果通一切
001_0835_b_05L今就善法立此果故唯取器報增上
001_0835_b_06L所起也言愛果者是隨流果由其先
001_0835_b_07L長習善根後隨彼流愛樂善法故
001_0835_b_08L此隨流果普通三性今明脩果唯取
001_0835_b_09L善法也言增長者是功用果由現在
001_0835_b_10L世懃功用力善根增長得圓滿故
001_0835_b_11L淨果者是相離果由行圓滿出離鄣
001_0835_b_12L言次第者立此器等五果前後
001_0835_b_13L報果等五果次第由是相依生起次
001_0835_b_14L第也

001_0835_b_15L
釋中有二初釋五果此立以下釋次第
001_0835_b_16L器果中言果報者是出器體與善
001_0835_b_17L相應者是釋器義第二中言器果增上
001_0835_b_18L故者擧能起緣卽是報也善根最上
001_0835_b_19L品者1) [45] 所起善正出果體也第三
001_0835_b_20L中言宿世數習故者是擧前因愛樂善
001_0835_b_21L法者正出果體也第四第五文顯可
001_0835_b_22L此立以下釋次第言亦可知也

001_0835_b_23L
此下第二約位顯十於中前四是略說
001_0835_b_24L其後六者是廣說果開前四果

001_0835_c_01L또 앞의 4종의 결과는 상상上上의 결과이다. 하하下下의 원인에 상대해서 상상의 결과를 건립하기 때문이다. 그 후의 6종의 결과는 수순隨順의 결과이다. 둘과 둘이 서로 수순해서 세 쌍을 건립하기 때문이다. 최초에 “상상上上의 결과”란 제1의 결과이다. 실제로는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이나 단지 최초의 것에다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을 건립했을 뿐이다. 그 후의 셋에 다시 개별적인 것을 지칭하는 이름을 건립한다. 이 제1의 결과는 들어감과 수행함의 계위에 있다. 들어감의 계위는 원인의 계위의 위(上)이고, 수행함의 계위는 들어감의 계위의 위(上)이다. 아래의 계위에 상대해서 결과가 되기에 “상상上上의 결과”라 이름하는 것이다. 수습의 계위 중 하나인 원인의 계위는 오직 종성種性일 뿐 아직 수행을 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를 건립하지 않는다. “최초의 결과(初果)”란 제2의 결과이다. 얻음(至得)의 계위에 있다. 최초로 출세간의 법을 얻기 때문에 최초의 결과라 하는 것이다. “자주 수습함의 결과”란 제3의 결과이다. 유학有學의 계위에 있다. 수행을 가해서 힘을 들여 앞으로 나아가며 수습하기에 “자주 수습함의 결과(數習果)”라 하는 것이다. “궁극의 결과”란 제4의 결과이다. 무학無學의 계위에 있다. 무학과無學果이기 때문에 “궁극”이라 한 것이다. 이하 3구는 뒤의 6종의 결과를 밝히는 것이다. “수순함의 결과”란 앞의 넷 중 최초의 “상상上上의 결과”이다. 이 결과는 바로 견도의 방편이다. 그것에 수순하기 때문에 “수순함의 결과”라 한 것이다. 이 중 세 쌍은 모두 수순함의 결과이다. 단지 최초의 것이기에 이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을 받았을 뿐이다. “대치함의 결과”란 앞의 넷 중 제2의 “최초의 결과(初果)”이다. 전의 방편에 수순해서 최초로 견도를 얻는다. 앞의 시기에 잠복해 있는 혹惑의 종자를 영원히 끊기 때문에 “대치함의 결과(對治果)”라 한 것이다. “상을 여읨의 결과(相離果)”란 앞의 넷 중 뒤의 두 결과이다. 유학과 무학의 도道는 장애(障)의 상을 여의고 반드시 월등한 덕을 발기하기 때문에 “상을 여읨(相離)”이라 한 것이다. “월등한 덕의 결과”란 그 계위 중 육신통 등이다. 그 장애를 여읨에 수순해서 이 월등한 덕을 성취한다. 그래서 이 둘51을 또한 “수순함의 결과”라 한다. 이제까지의 결과들은 공통되는 계위에 의거한 것이고 이하의 두 결과는 공통되지 않은 계위에 의거한 것이다.

001_0835_c_01L別六故又前四果是上上果望下下因
001_0835_c_02L立上上果故其後六果是隨順果
001_0835_c_03L二相順立三雙故初中言上上果者
001_0835_c_04L是第一果實是通名但從最初以立
001_0835_c_05L通名其後三中更立別目此第一果在
001_0835_c_06L入行位入爲因上行爲入上望下爲
001_0835_c_07L名上上果因位脩住唯是種性
001_0835_c_08L發脩行故不立果言初果者是第二
001_0835_c_09L在至得位始得出世故名初果
001_0835_c_10L數習者是第三果在有作位加行功
001_0835_c_11L進脩名數習果究竟果者是第四果
001_0835_c_12L在無住位是無學果故名究竟此下
001_0835_c_13L三句明後六果言隨順者是前四中
001_0835_c_14L初上上果此果正是見道方便隨順彼
001_0835_c_15L名隨順果此中三雙皆是隨順
001_0835_c_16L從最初受此通名也言對治者是前四
001_0835_c_17L中第二初果順前方便始得見道
001_0835_c_18L斷前時所伏*或種是故名爲對治果也
001_0835_c_19L言相離者前四之中後之二果學無
001_0835_c_20L學道相離諸鄣須發勝德故名相離
001_0835_c_21L言勝德者卽彼位中六神通等順脩彼
001_0835_c_22L離鄣成此勝德是故此二亦隨順也
001_0835_c_23L上來諸果約共位立此下二果在不共
001_0835_c_24L「一」疑剩或有脫文歟

001_0836_a_01L“위가 있음의 결과”란 보살의 대지에 있다. 이것은 제3의 전후의 계위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위가 없음의 결과”란 여래의 대지를 말한다. 이것은 제4의 동시의 계위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위가 있음과 위가 없음 또한 서로 수순하기 때문에 이 세 쌍을 “수순함의 결과”라 한다. 이하의 1구는 둘째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본문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이고, 둘째 부분은 요약해서 구분하는 것이다. 첫째 부분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본문을 따라가며 풀이하는 것이다. 뒤는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10종의 결과를 풀이하는 것이고, 뒤는 송의 매듭짓는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앞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본문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이고, 뒤는 의미를 분별하는 것이다. 주석문에 “자성으로부터 발심”이란 아래의 자성自性으로부터 위의 발심發心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에 이르기까지”란 아래의 발심으로부터 그 위의 수행修行에 이르기까지를 의미한다. 이것은 ‘상상上上의 결과’의 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후후後後의 순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란 ‘후후後後’로 ‘상상上上’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이를테면 발심의 계위는 자성의 후後이고 그 수행의 계위는 발심의 후後이다. 이 후후後後에 의거해서 ‘상상上上의 결과’를 건립한 것이다. 자성은 후가 아니기 때문에 결과를 건립하지 않는다.
다음의 3종의 결과를 풀이하는 문장의 의미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순함의 결과를 풀이하는 부분 중 “원인이 되기 때문에”란 수순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즉 제1의 결과는 제2의 결과에 대해 원인이 되기 때문에 수순함이라 한다. “상상上上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란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대치함의 결과를 풀이하는 부분에 “끊음의 도道이니”란 그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끊어서 제멸하는 도이기에 끊음의 도라고 한다. “이것에 의지해서 최초의 결과를 얻는다.”란 이 수순함에 의지해서 견도의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결과에 상대해서 수순함의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이 중 최초의 도를 대치함의 결과라 한다.”란 결과 자체를 들어서 그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상리과相離果를 풀이하는 중에 “벗어남(相離)의 결과”란 그 이름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다. “자주 수습함의 결과와 원만함의 결과”란 그것의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이를테면 앞의 넷 중 뒤의 둘을 본체로 한다.

001_0836_a_01L言有上者在菩薩地是約第三前
001_0836_a_02L後位說言無上者謂如來地是約第
001_0836_a_03L四同時位說有上無上亦相隨順故
001_0836_a_04L三雙名隨順果也此下一句第二總結
001_0836_a_05L釋中有二一者正釋本文二者總集分
001_0836_a_06L初中亦二先卽總標後隨文釋
001_0836_a_07L中亦二先釋十果後釋結句初中亦
001_0836_a_08L先正釋文次分別義釋文中言從
001_0836_a_09L自性發心者從下自性得上發心也
001_0836_a_10L乃至脩行者從下發心乃至其上脩行
001_0836_a_11L此顯上上果體相也應知後後次第者
001_0836_a_12L此以後後釋上上義謂發心位是自性
001_0836_a_13L其脩行位是發心後約此後後立上
001_0836_a_14L上果自性非後故不立果也釋次三
001_0836_a_15L文相可知釋隨順中言爲因緣故
001_0836_a_16L是釋隨順義卽第一果與第二果
001_0836_a_17L作因緣故名爲隨順言應知上果者
001_0836_a_18L是出體也釋對治中言是滅道者
001_0836_a_19L其體相斷滅之道故名滅道言因此
001_0836_a_20L得初果者因此隨順得見道果是對
001_0836_a_21L前果顯隨順義言此中初道名對治果
001_0836_a_22L是擧果體1) [46] 其名也釋相離中
001_0836_a_23L言相離果者是牒其名言數習果圓滿
001_0836_a_24L果者是出其體謂前四中後二爲體

001_0836_b_01L원만함이란 궁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혹惑의 장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란 “벗어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순서대로 유학과 무학의 성인의 결과”란 사람의 유형에 의거해서 그 결과의 계위를 나타낸 것이다.
다음의 3종의 결과를 풀이하는 문장의 의미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하는 거듭 의미를 분별한 것이다. “이와 같은 4종의 결과”란 첫째는 제4의 결과로 궁극의 결과이고, 둘째는 제7의 결과로 벗어남의 결과이고, 셋째는 제8의 결과로 월등한 계위의 결과이고, 넷째는 제10의 결과로 위가 없음의 결과이다. 이 4종의 결과는 모두 원만함의 결과의 계위를 구분한 것이기 때문에 “원만함의 결과를 분별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에 준해서 그 다른 6종의 결과를 논하여 원인을 구분할 수 있는데,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같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같게 하지 않기 위해서란 4종의 결과 등은 동일한 계위의 결과라는 것을 나타내고, 6종의 결과는 이에 따라 계위의 원인을 구분하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축약해서 말하면” 이하는 그 송의 매듭짓는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축약해서 말하면 이만큼 많지만”이란 송문을 있는 대로 풀이한 것이다. 혹은 5종이고 혹은 10종이기 때문에 많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상세히 말한다면 무한하다.”란 매듭짓는 구의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이를테면 매듭짓는 구의 “축약해서 결과를 말하면”이란 상세하게 말하면 무한한 수의 결과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중 대치를 수습함의 의미를 요약한다. 식별함(覺悟)의 수습, 희박하게 하는 수습, 대치를 성숙하게 하는 수습, 위의 것의 수습, 밀접하게 합하는 수습은 지智가 경계에 도달해 한집이 되기 때문이다. 고급한 품류의 수습, 월등한 품류를 얻는 수습, 최초에 일어나는 수습, 중간을 행하는 수습, 최후의 수습, 위가 있음의 수습, 위가 없음의 수습은 경계에 더할 바가 없고, 사량思量에 집集이 없고, 얻음에 더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첫째 본문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을 마쳤다. 이하는 둘째 요약해서 구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은 바로 요약하는 것이고, 뒤는 완전하게 매듭짓는 것이다. 앞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대치를 요약하는 것이고, 둘째 수습의 계위를 요약하는 것이고, 셋째 결과를 얻음을 요약하는 것이다. 첫째는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나누어서 요약하는 것이다. 나누어서 요약하는 부분 중 「대치에 관한 품」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에서는 12종의 수습을 열거한다. “식별함(覺悟)의 수습”이란 사념처이다. 본체는 지혜이다. 무명無明을 여의기 때문이다. 『섭대승론』에서 이것을 “현시함의 수습”이라 설하고 있다. 무명의 어둠을 제멸해서 경계의 인식을 현현하게 하기 때문이다. “희박하게 하는 수습”이란 사정근이다. 2종의 선善을 근면하게 수습해서 2종의 악惡을 희박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깎아 내는 수습”이라 하고 있다. “대치를 성숙하게 하는 수습”이란 사여의족이다.

001_0836_b_01L圓滿卽是究竟義故言爲遠離*或鄣故
001_0836_b_02L釋相離義言如次第有學無學諸聖
001_0836_b_03L人果者此是約人顯其果位也釋次三
001_0836_b_04L文相可知如是以下重分別義
001_0836_b_05L如是四果者一者第四名究竟果二者
001_0836_b_06L第七名相離果三者第八名勝位果
001_0836_b_07L者第十名無上果此四種果皆顯圓滿
001_0836_b_08L果位差別故言爲分別圓滿果故也
001_0836_b_09L此而論其餘六果爲分別因而不說者
001_0836_b_10L非令同故非令同者四果等顯一位之
001_0836_b_11L六果隨顯別位因故爲略說下釋其
001_0836_b_12L結句言爲略說如是多者是正釋文
001_0836_b_13L或五或十故言多也言若廣說則無量
001_0836_b_14L是顯結意謂結句言略說意者
001_0836_b_15L顯廣說有無量果也

001_0836_b_16L
上來第一正釋文竟此下第二總集分
001_0836_b_17L於中有二初正集義後結究竟
001_0836_b_18L中有三先集對治次集脩位後集得
001_0836_b_19L初中亦二總標2) [47] 別*集之中
001_0836_b_20L對上品說列十二脩覺悟脩者是四
001_0836_b_21L念處體是智慧離無明故攝論說此
001_0836_b_22L名顯示脩除無明闇顯了境故令薄
001_0836_b_23L脩者是四正懃懃脩二善薄二惡故
001_0836_b_24L彼論名爲損3) [48] 脩也熟治脩者四如

001_0836_c_01L본체는 정려靜慮이다. 대치의 도를 성취하기(成就治道)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대치를 성취하게 하는 수습(治成修)”이라 하고 있다. “위의 것의 수습”이란 오근五根이다. 위의 계위를 일으켜서 오력五力의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뒤의 것을 행하는 수습”이라 하고 있다. “밀접하게 합하는 수습”이란 오력이다. 수행과 진리가 합해서 번뇌를 제압하기 때문이다. “지智가 경계에 도달해 한집이 되기 때문이다.”란 “밀접하게 합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그 논에서는 “상응하는 수습”이라 하고 있다. “고급한 품류의 수습”이란 칠각지이다. 최초로 출세간에 들어갔기에 세간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 “월등한 지智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월등한 품류를 얻는 수습”이란 팔성도이다. 수도修道에 진입했기에 고급한 품류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상상上上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최초에 일어나는 수습”이란 범부의 계위이다. 앞의 송에서 “전도되지 않음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있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최초 시기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중간을 행하는 수습”이란 유학有學의 성스러운 계위를 말한다. 앞에서 “전도됨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논에서는 “중간 시기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최후의 수습”이란 무학無學의 성스러운 계위이다. 앞의 송에서 “전도됨이 없고 전도됨을 따르는 것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최후 시기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위가 있는 수습”이란 이승二乘의 수습이다. “위가 없는 수습”이란 보살의 수습이다. 앞의 송에서 “경계와 사유思惟와 얻음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경계에 더할 바가 없고” 이하는 그 3종의 의미를 들어 “위가 없음”을 풀이한 것이다. “사량思量에 집集이 없다.”란 보살의 사유는 상相을 파척했기에 행行에 얻음이 없다. 그래서 “집集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승이 집취集取, 고苦, 무상無相 등의 상相을 사유하는 것에 상대한 것이다.

수습의 거주처의 의미를 요약한다. 수습의 거주처를 성취할 것이다. 거주처란 ① 이 유형의 사람은 자성自性에 거주한다. ② 일을 시작함의 수습의 거주처란, 초발심에서 수행의 계위까지이다. ③ 가장 청정한 거주처라 이름하기에 가장 청정한 계위의 거주처, ④ 장엄이 있는 계위의 거주처는 10종의 대지에 편만하기 때문이다. ⑤ 위가 없음의 계위인 거주처.

이하 둘째 수습의 거주처의 의미를 요약한다. 이것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나누어서 밝히는 것이다. 간략하게 5종의 계위를 들어 수습의 거주처를 요약한다.

첫째 중

001_0836_c_01L意足體是靜慮成就治道故彼論名
001_0836_c_02L爲治成脩也上事者脩卽是五根
001_0836_c_03L起上位五力事能故彼論名爲後行脩
001_0836_c_04L密合脩者卽是五力行與理合
001_0836_c_05L勝煩惱故言智到境一家故者釋密合
001_0836_c_06L彼論名爲相應脩也上品脩者
001_0836_c_07L七覺分始入出世上於世間故彼論名
001_0836_c_08L爲勝智脩也勝品脩者是八聖道
001_0836_c_09L入脩道勝於上品故彼論名爲上上脩
001_0836_c_10L初發脩者是凡夫位如前頌言
001_0836_c_11L不倒有倒故彼論名爲初際脩也中行
001_0836_c_12L脩者有學聖位如前頌言隨顚倒不
001_0836_c_13L倒故彼論名爲中際脩也最後脩者
001_0836_c_14L無學聖位如前頌言無倒無隨倒故
001_0836_c_15L彼論名爲後際脩也有上脩者是二乘
001_0836_c_16L無上脩者是菩薩脩如前頌言
001_0836_c_17L界及思惟至得有差別故境界無勝以
001_0836_c_18L擧彼三義釋無上也言無集者
001_0836_c_19L薩思惟破折諸相行無所得故言無集
001_0836_c_20L對二乘思集取苦無常等相也

001_0836_c_21L
此下第二集脩住義於中亦二總標別
001_0836_c_22L略擧五位集諸脩住第一中言應
001_0836_c_23L「富」疑「當」「集」疑「釋」次同「滅」疑
001_0836_c_24L「減」

001_0837_a_01L“수습의 거주처를 성취할 것이다.”란 그 이름을 다시 거론한 것이다. “이 유형의 사람은 자성自性에 거주한다.”란 사람의 유형을 들어 계위를 배속한 것이다. 앞에서 명명한 “원인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아직 성취하지 않았을지라도 성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취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둘째 중 “일을 시작함의 수습의 거주처”란 그 이름을 다시 거론한 것이다. “발심에서 수행까지이다.”란 그 계위를 배당한 것이다. 앞에서 “들어감의 계위”, “수행의 계위”라 한 것이다.

셋째 중 “가장 청정한 계위라 이름하기에”란 먼저 앞의 계위를 다시 거론한 것이다. 이를테면 앞의 제4를 얻음의 계위라 한다. “얻음”이란 이름이 법신法身의 계위와 같기 때문에 “가장 청정한 계위”라 한 것이다. 다음에 “가장 청정한 계위의 거주처”란 그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이 계위는 본체가 가장 청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지 이름을 가장 청정한 것이라 했을 뿐이기 때문에 “가장 청정한 계위의 거주처”라 한 것이다.

넷째 중 “장엄이 있는 계위의 거주처”란 그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10종의 대지에 편만하기 때문에”란 장엄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10종의 대지에 10종의 법계와 10종의 도度 등 유위와 무위의 공덕이 편만하기 때문에 “장엄이 있는 계위의 수습의 거주처”라 한 것이다.

다섯째 중 “위가 없음의 계위인 거주처”란 그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이미 앞에서 보여 주었기 때문에 다시 설명하지 않겠다. 이 5종의 계위에 의해 앞에서 말한 18종의 계위와, 이어서 말한 법계의 3종의 계위를 모두 포섭한다. 각 경우에 따라 서로 포섭하고 포섭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하 셋째 그 결과의 의미를 요약한다. 이것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나누어서 요약하는 것이다. 나누어서 요약하는 부분에서 6종의 결과를 밝힌다. 앞은 그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고, 뒤는 그 특징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포괄하는 결과”란 앞의 5종의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그 ‘보과報果’ 등 5종의 결과에 모든 결과가 포섭되어 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또 ‘기과器果’ 등 5종의 결과 안에 이어서 말한 10종의 결과가 남김없이 포섭되기 때문이다. 이 두 의미 때문에 “포괄하는 결과”라 말한 것이다. 둘째 “가장 월등한 결과”란 그 10종의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그 5종의 결과를 두루 포섭하는 것 중에서 가장 월등한 것을 간추려

001_0837_a_01L成脩住者是牒其名此人住自性中者
001_0837_a_02L擧人屬位卽是前名因住脩住雖未
001_0837_a_03L成就有應成性故名應成也第二中
001_0837_a_04L言作事脩住者是牒其名後發心乃至
001_0837_a_05L脩行者屬當其位卽是前名入位行位
001_0837_a_06L第三中言名最淨位者先牒前位
001_0837_a_07L謂前第四名至得位至得之名同法身
001_0837_a_08L是故名爲最淨位次言最淨位者
001_0837_a_09L是立其名欲顯此位非體最淨但名
001_0837_a_10L最淨故名爲最淨住也第四中言有莊
001_0837_a_11L嚴位住者是立其名遍滿十地故者
001_0837_a_12L釋莊嚴義於十1) [49] 十種法界及十
001_0837_a_13L度等有爲無爲功德遍滿是故名爲
001_0837_a_14L有莊嚴位脩住第五中言無上位住者
001_0837_a_15L是立其名義已顯前故不更說以此
001_0837_a_16L五位總攝上說十八種位及次所說
001_0837_a_17L法界三位隨其所應相攝應知

001_0837_a_18L
此下第三*集其果義於中亦二總標
001_0837_a_19L別*集別*集之中明六種果先列其名
001_0837_a_20L後辨其相一攝持果者*集前五果
001_0837_a_21L報果等五果之中攝一切果無不盡故
001_0837_a_22L又器果等五果之內盡攝次說十種果
001_0837_a_23L以是二義名攝持果二最勝果者
001_0837_a_24L*集彼十果就彼普攝五果之內簡取

001_0837_b_01L이 10종의 결과를 건립한 것이기에 “가장 월등한 결과”라 한다. 그다음의 2종의 결과는 5종의 결과를 다시 나타내고, 후의 2종의 결과는 10종의 결과를 다시 나타낸 것이다. 셋째 “숙세에 수습함의 결과”란 5종의 결과 중 초과初果, 보과는 숙세에 선근을 수습해서 얻은 과보이기 때문이다. 넷째 “상상上上을 인출引出하는 결과”란 5종의 결과 중 후의 4종의 결과이다. 보과에서 증상과增上果를 인출하고, 내지 공용과功用果에서 상리과相離果를 인출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간략한 결과”란 10종의 결과 중 앞의 4종의 결과에 있다.

여섯째 “상세한 결과”란 10종의 결과 중 후의 6종의 결과이다. 간략함과 상세함의 의미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이 중” 이하는 순서대로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다. “포괄하는 결과란 5종의 결과이다.”란 “최초의 결과(初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의미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다른 결과들은 이 5종의 결과를 구분한 것이다.”란 “가장 월등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후에 말한 10종의 결과를 “다른 결과들”이라 한 것이다. 5종의 결과 중 가장 그것이 월등하기 때문에 “5종의 결과를 구분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숙세에 수습을 집적했기 때문에 과보의 결과라 한다.”란 “숙세에 수습함의 결과(是顯數習果)”이다. 5종의 결과 중 최초의 것이다. “상상上上을 인출하기 때문에 4종의 다른 결과가 있다.”란 상상을 인출하는 결과는 5종의 결과 중 뒤의 4종이다. “만약 간략하게 말한다면 ‘상상上上의 결과’에 4종이 있다.”란 간략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10종의 결과 중 앞의 4종의 결과에 있다. 통괄의 의미에 의거해서 “상상의 결과에 4종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상세하게 말한다면 수순함의 결과에 6종이 있다.”란 상세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10종의 결과 중 뒤의 6종의 결과이다. 이 또한 통괄의 의미에 의거해서 “수순함의 결과에 6종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 4종의 결과에 대해 구별해서 상세하게 말하기 때문에”란 상세한 결과의 이름을 풀이한 것이다. 앞의 4종의 결과에 의거하여 6종의 결과를 구별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뒤의 6종을 “상세한 결과”라 한 것이다.

결과의 의미를 요약한다. 첫째 포괄하는 결과, 둘째 가장 월등한 결과, 셋째 숙세에 수습함의 결과, 넷째 상상上上을 인출引出하는 결과, 다섯째 간략한 결과, 여섯째 상세한 결과이다. 이 중 포괄하는 결과란 5종의 결과이다. 다른 결과들은 이 5종의 결과를 구분한 것이다. 숙세에 집적했기 때문에 과보의 결과라 한다. 상상上上을 인출하기 때문에 4종의 다른 결과가 있다. 만약 간략하게 말한다면 상상上上의 결과에 4종이 있다. 만약 상세하게 말한다면 수순함의 결과에 6종이 있다. 이 4종의 결과에 대해 구별해서 상세하게 말하기 때문에 『중변분별론』 중 이 장(處)은 네 번째이다. 세 품品이 있는데 첫째 대치에 관한 품, 둘째 수습의 거주처에 관한 품, 셋째 결과를 얻음에 관한 품이다. 이제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던 것을 마친다.

“『중변분별론』” 이하는 총합해서 완전하게 매듭짓는 것이다. “이 장(處)은 네 번째에 있다.”란

001_0837_b_01L最勝立此十果是故名爲最勝果也
001_0837_b_02L其次二果重顯五果後之二果重顯十
001_0837_b_03L三數習果者顯五果中初果報果
001_0837_b_04L數習善根所得報故四上上引出果者
001_0837_b_05L顯五果內後之四果於報果上出增上
001_0837_b_06L乃至功用果上引出相離果故五略
001_0837_b_07L果者顯十果內在前四果六廣果者
001_0837_b_08L顯十果中後之六果略廣之義如前已
001_0837_b_09L此中以下次第顯相言攝持果者是
001_0837_b_10L五種果者是顯初果義如前說言餘
001_0837_b_11L果是五種果別異者顯最勝果後說十
001_0837_b_12L名爲餘果五果之中最其殊勝故
001_0837_b_13L言是五果之別果也言宿世所集故名
001_0837_b_14L果報果者是顯數習果五果之初也
001_0837_b_15L言上上引出故有四種果者是上上引
001_0837_b_16L出果卽是五中後四也言若略說上上
001_0837_b_17L果有四種者是顯略果卽是十中在前
001_0837_b_18L四果約通義故說上上果有四種也
001_0837_b_19L言若廣說隨順果有六者是顯廣果
001_0837_b_20L是十中後六種果亦就通義故言隨順
001_0837_b_21L果有六也是四種果分別廣說故者
001_0837_b_22L廣果名就前四果分別說六故後六
001_0837_b_23L種名廣果也

001_0837_b_24L
中邊以下總結究竟言此處有四者

001_0837_c_01L총체적인 상을 들어 말한 것이다. 대치함, 수습의 거주처, 결과를 얻음 이 세 품을 합해서 한 장이 된다. 수행에 의지해서 계위를 건립하고, 계위에 의지해서 결과를 건립한다. 문장의 형세가 서로를 타서 단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론釋論의 논주(세친)는 이 세 품을 합해서 한 장에 의미를 집결해 놓았다. 이 의미 때문에 이 장에 다다르면 네 장이 된다. 첫째 상相, 둘째 장애, 셋째 진실, 넷째 수행과 거주처와 결과이다. 이 때문에 “이 장은 네 번째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네 번째의 장 안에서 구분하면 3종의 의미가 있다. 구분한 대로 품을 건립하기 때문에 “세 품”이라 말한 것이다.

중변분별론소 권제3


001_0837_c_01L總相而言對治脩住得果三品合爲一
001_0837_c_02L以依行立位就位立果文勢相乘
001_0837_c_03L無隔絕故故繹論主合此三品一處
001_0837_c_04L*集義由是義故至於此處則有四處
001_0837_c_05L一相二鄣三眞實其第四者謂行住
001_0837_c_06L以之故言此處有四第四處內別
001_0837_c_07L有三義隨別立品故言三品也

001_0837_c_08L
中邊疏卷第三

001_0837_c_09L「他」疑「地」{編}
    1. 1){底}續藏經。第一編七十五套一册。
    2. 2)「分別論」補入{編}。
    3. 3)「新羅元曉撰」補入{編}。
    4. 4)論卷下。
    5. 5)▣疑「初」。
    6. 6)「說」原本字體未詳。
    7. 7)「成」疑剩。
    8. 8)「修」疑「循」次同。
    9. 1)「耶」通「邪」下同。
    10. 2)「知」疑「如」{編}。
    11. 1)「心」下疑脫「住」。
    12. 2)「樂」疑「閑」。
    13. 1)「第」疑「等」。
    14. 2)「人」疑「入」。
    15. 1)「東」疑剩。
    16. 2)「喩」疑「瑜」{編}。
    17. 1)「忘」疑「妄」{編}。
    18. 2)「相」疑剩。
    19. 3)「眞」疑「其」。
    20. 4)「或」通「惑」次同。
    21. 1)「劣」疑「聚」次同。
    22. 2)「後前」疑倒{編}。
    23. 1)「者」疑「於」。
    24. 2)▣▣疑「斷若」。
    25. 3)「知」疑「如」次同。
    26. 4)「海」疑「誨」或「顯」。
    27. 5)▣疑「亦」。
    28. 1)「勝」疑「牒」。
    29. 1)「根」疑「粮」。
    30. 1)「無」疑「爲」。
    31. 2)「明」上疑脫「以」。
    32. 3)▣▣疑「怯畏」。
    33. 4)「中」疑剩。
    34. 1)「亭」疑「停」次同。
    35. 2)「來」一作「成」。
    36. 3)「是」疑「足」。
    37. 1)「聖」疑「望」。
    38. 2)「是」疑剩。
    39. 3)「若」疑「差」。
    40. 4)「或」通「惑」次同。
    41. 1)「菩」疑「若」。
    42. 1)「知」疑「殷」。
    43. 2)「汎」疑「沈」。
    44. 1)「後」下疑脫「之」。
    45. 2)「乃」疑剩。
    46. 3)「有」疑剩。
    47. 1)「封」疑「對」。
    48. 1)「一」疑剩或有脫文歟。
    49. 1)「富」疑「當」。
    50. 2)「集」疑「釋」次同。
    51. 3)「滅」疑「減」。
    52. 1)「他」疑「地」{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