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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17_b_01L중변분별론소 권삼中邊分別論 ✽ 疏 卷三 ✽신라 원효 지음 新羅 元曉 撰 ✽중변분별론소 제3권(中邊分別論疏 卷三)제1편 「대치품對治品」「대치품對治品」이란 37품류의 도道를 연마해서 습득하는 것이다. 각각 경우에 따라 ▣▣▣▣▣▣▣이 의미를 나타내기에 ‘대치품’이라 한다. 이 중 먼저 그 의미를 밝히고, 그런 뒤에 본문1을 풀이하겠다.
제1장 의미를 밝힘먼저 보리분菩提分의 의미를 밝히겠는데, 이는 크게 보아 6종의 문門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이름을 나열하는 것이고, 둘째는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고, 셋째는 본체를 밝히는 것이고, 넷째는 계위를 밝히는 것이고, 다섯째는 순서를 설명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문門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1. 이름을 나열함첫째, 이름을 나열한다.무엇을 37종의 보리분법이라 하는가? 사념주四念住, 사정단四正斷, 사신족四神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분지(八支)의 성도聖道를 말한다.
1) 사념주四念住
사념주四念住란 첫째 신념주身念住, 둘째 수념주受念住, 셋째 심념주心念住, 넷째 법념주法念住이다.
2) 사정단四正斷
사정단四正斷이란 첫째 이미 발생한 악불선법惡不善法을 끊고자 욕구를 내고 책려策勵하고 근勤과 정진을 발기하고 책심策心하고 지심持心하는 정단이며, 둘째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불선법을 발생하지 않게 하고자 욕구를 내고 책려하고 내지 지심하는 정단이며, 셋째 아직 발생하지 않은 선법을 발생하게 하고자 욕구를 내고 책려하고 내지 지심하는 정단이며, 넷째 이미 발생한 선법을 거주하게 하고 망실하지 않게 하고 수습을 원만하게 하고 수습을 배가하게 하고 증장하게 하고 광대하게 하고자 욕구를 내고 책려하고 내지 지심하는 정단이다.
3) 사신족四神足
사신족四神足이란 첫째 욕삼마지欲三摩地2의 단행斷行을 성취하는 신족, 둘째 근삼마지勤三摩止의 단행을 성취하는 신족, 셋째 심삼마지心三摩地의 단행을 성취하는 신족, -
001_0817_b_01L[中邊分別論疏卷三]
001_0817_b_02L1)中邊2)分別論 ✽ 疏卷三 ✽
001_0817_b_03L
001_0817_b_04L3)新羅。元曉撰 ✽
001_0817_b_05L4)對治品者。 [1] 硏習三十七品之道。隨其
001_0817_b_06L所對。▣▣▣▣▣▣▣顯是義故。名對
001_0817_b_07L治品。此中先明其義。然後消文。[顯義]5)▣ [2] 菩
001_0817_b_08L提分義略有六門。一者列名。二者釋義。
001_0817_b_09L三出體性。四顯明位地。五6)說 [3] 次第。六
001_0817_b_10L辨諸門。
001_0817_b_11L初列名者。何等名爲三十七種菩提分
001_0817_b_12L法。謂四念住。四正斷。四神足。五根。五
001_0817_b_13L力。七覺支。八支聖道。四念住者。一身
001_0817_b_14L念住。二受念住。三心念住。四法念住。
001_0817_b_15L四正斷者。一於已生惡不善法。爲令斷
001_0817_b_16L故。生欲策勵。發勤精進。策心持心正
001_0817_b_17L斷。二於末生惡不善法。爲不生故。生
001_0817_b_18L欲策勵。乃至持心正斷。三於未生善法。
001_0817_b_19L爲令生故。生欲策勵。乃至持心正斷。
001_0817_b_20L四於已生善法。爲欲令住。令不忘失。
001_0817_b_21L令脩圓滿。令倍脩。令增長。令廣大。生
001_0817_b_22L欲策勵。乃至持心正斷。四神足者。一
001_0817_b_23L欲三摩地斷行成7)成) [4] 就神足。二勤三摩
001_0817_b_24L地斷行成就神足。三心三摩地斷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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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17_c_01L넷째 관삼마지觀三摩地의 단행을 성취하는 신족이다.
4) 오근五根
오근五根이란 첫째 신근信根, 둘째 정진근精進根, 셋째 염근念根, 넷째 정근定勤, 다섯째 혜근慧根이다.
5) 오력五力
오력五力이란 신력信力,……내지 혜력慧力이다.3
6) 칠각지七覺支
칠각지七覺支란 첫째 염각지念覺支, 둘째 택법각지擇法覺支, 셋째 정진각지精進覺支, 넷째 희각지喜覺支, 다섯째 경안각지輕安覺支, 여섯째 정각지定覺支, 일곱째 사각지捨覺支이다.
7) 팔지성도八支聖道
팔분지의 성도(八支聖道)란 첫째 정견正見, 둘째 정사유正思惟, 셋째 정어正語, 넷째 정업正業, 다섯째 정명正命, 여섯째 정정진正精進, 일곱째 정념正念, 여덟째 정정正定이다.
2. 의미를 풀이함둘째, 의미를 풀이한다.
1) 사념주
몸(身)에 대해서 염念과 상응하여 순신관循身觀을 확립하는 것이 신념주身念住이다. 내지 법法에 대해서, 모두 이렇게 말한다.4 무엇을 염念이라 하는가? 이 중 신념주의 염은 몸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바른 교법을 받아 새겨 두고 그 교법의 의미를 사유하여 작증作證을 수습하는 것을 말한다. 표현과 의미에 대해서 작증을 수습할 때 마음에 망실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관觀이라 하는가? 몸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문聞·사思·수修의 혜慧를 말한다. 이 혜慧에 의지하여 모든 몸의 모든 상相에 대해서 바르게 관찰하고 바르게 추구推求한다. 곧바로 따라가며 관찰하고 곧바로 따라가며 직관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관觀의 수습이라 하는가? 혹은 수신관隨身觀을 말하고, 혹은 순신관을 말한다. 수신관이란, 본질本質의 몸을 곧바로 따라가며 영상影像의 몸을 관찰하는 것을 수신관이라 한다. 『대법론』5에서 “몸에 대해서 수신관을 수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상의 몸을 분별하여 본질의 몸과 평등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몸의 경계를 따라가며 관찰하는 것은 몸의 상을 따라가며 관찰하는 것과 상사相似하기 때문에 몸에 대해 수신관한다고 한다. 영상의 몸을 따라가며 관찰하는 문門에 의지하여 본질의 몸을 상세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
001_0817_c_01L就神足。四觀三摩地斷行成就神足。五
001_0817_c_02L根者。一信根。二精進根。三念根。四定
001_0817_c_03L根。五慧根。五力者。信力乃至慧力。七
001_0817_c_04L覺支者。一念覺支。二擇法覺支。三精
001_0817_c_05L進覺支。四喜覺支。五安覺支。六定覺
001_0817_c_06L支。七捨覺支。八支聖道者。一正見。二
001_0817_c_07L正思惟。三正語。四正業。五正命。六正
001_0817_c_08L精進。七正念。八正定。
001_0817_c_09L第二釋義。所謂於身與念相應住8)脩 [5] 身
001_0817_c_10L觀。是身念住。乃至於法皆如是說。云
001_0817_c_11L何爲念。謂依身增上受持正法。思惟法
001_0817_c_12L義。脩習作證。於文義於脩作證中。心
001_0817_c_13L無忘失故。云何爲觀。謂依身增上。聞
001_0817_c_14L思脩慧。由此慧故。於一切身一切相
001_0817_c_15L中。正觀察正推求。隨觀隨覺故。云何
001_0817_c_16L脩觀。或者隨身。或言*脩身。言隨身者。
001_0817_c_17L隨本質身。觀影像身。名隨身觀。如對
001_0817_c_18L法說。云何於身隨身觀。謂分別別影
001_0817_c_19L像身。▣▣▣身平等。隨觀於身境。隨
001_0817_c_20L觀身相似性故。名於身隨身觀。由隨
001_0817_c_21L觀察影像身門。審諦觀察本質身故。言
001_0817_c_22L{底}續藏經。第一編七十五套一册。「分別論」
001_0817_c_23L補入{編}。「新羅元曉撰」補入{編}。論卷下。
001_0817_c_24L▣疑「初」。「說」原本字體未詳。「成」疑
001_0817_c_25L剩。「修」疑「循」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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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18_a_01L순신관이란 순환循環의 의미이다. 상相의 몸을 관찰할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 또한 진여眞如의 몸도 관찰하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 「보살지 섭결택분攝決擇分」에 “보살은 어떻게 몸에 대해서 순신관을 확립하는가? 상의 몸에서 순환하여 진여의 몸을 관찰하기 때문이다.”라고 설한 바와 같다. 무엇을 염주念住라 하는가? 염念을 수호하기 위해서, 경계에 염오染汚가 없게 하기 위해서, 소연에 안주하기 위해서이다. “염念을 수호하기 위해서”란, 말한 바와 같이 먼저 염을 수호하고 또 항상 염에 매진한다. “경계에 염오染汚가 없게 하기 위해서”란, 말한 바와 같이 염은 마음 작용의 평등한 위位를 수호하여 그 상을 취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취하지 않는다.……내지 의근意根을 수호하고 의근의 율의律儀를 수습한다. “소연에 안주하기 위해서”란, 말한 바와 같이 4종의 소연에 그 염이 안주한다. 이 3상相에 의지하여 그 염에 능숙하게 안주하기 때문에 염주라 한다.6 또한 염처念處라고도 한다. 처處는 주住의 의미와 같다. 『대지도론』에서 “염에 순응하는 지혜가 소연에 집중하여 안주한다면 이를 염처라 한다.”고 설한 바와 같다. 총괄해서 말한다면, 이것에 대해 염이 안주하든 이것에 의해 염이 안주하든 이를 모두 염주라 한다. “이것에 대해 염이 안주한다.”란 소연념주所緣念住를 말한다. “이것에 의해 염이 안주한다.”란 혜慧 또는 염念을 말한다. 정定을 걷어 들여 보존한다는 것은 자성념주自性念住이다. 여타의 상응법相應法인 심과 심소법은 상응념주相應念住7이다. 이것은 「문소성지聞所成地」에서 설한 바와 같다.8 이는 간략하게 염주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2) 사정단
다음에 사정단四正斷의 의미를 밝힌다. 무엇이 “이미 발생한 악불선법”인가? “악불선법이란” 악행惡行을 일으키는 욕계의 번뇌와 수번뇌를 말한다. 추대한 전纏에 속한 것을 “이미 발생한 것”이라 한다. “끊기 위해서”란 ‘대치를 수습해서 미미하고 엷게 하기 위해서’이다. “욕구를 내고”란 끊음을 확증하고자 욕구를 내기 때문이다. “책려하고”란 악을 받아들이지 않고 끊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근勤과 정진을 발기하고”란 많은 종류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그 대치對治를 수습하기 때문이다. -
001_0818_a_01L*脩觀者。是*脩環義。謂非直觀相身而
001_0818_a_02L已。於中復觀眞如身故。如菩薩地決擇
001_0818_a_03L中說。云何菩薩於身住*脩身觀。謂於
001_0818_a_04L相身。*脩環觀眞如身故。云何念住。爲
001_0818_a_05L守護念。爲於境無染。爲安住所緣故。
001_0818_a_06L爲守護念者。說言先守護念。若常委念。
001_0818_a_07L爲於境無染者。謂如說言。念守護心行。
001_0818_a_08L來等住不住。取其相不取隨好。廣說乃
001_0818_a_09L至。守護意根脩律儀。爲安住所緣者。
001_0818_a_10L謂如說言。於四所緣。安住其念。由此
001_0818_a_11L三相。善住其念。故名念住。亦名念處。
001_0818_a_12L處猶住義。如智度說。念隨順智。緣中
001_0818_a_13L正住。是名念處。總而言之。若於此念
001_0818_a_14L住。若由此念住。皆名念住。於此念住
001_0818_a_15L者。謂所緣念住。由此念住者。謂若慧
001_0818_a_16L若念。攝持於定。是自性念住。所餘相
001_0818_a_17L應。諸心心法。是相應念住。此如聞所
001_0818_a_18L成地中說。是名略說念住義也。
001_0818_a_19L次明四正斷義者。云何已生惡不善法。
001_0818_a_20L謂能起惡行。欲界煩惱及隨煩惱。麤纒
001_0818_a_21L所攝。名爲已生。爲令斷故者。謂脩對
001_0818_a_22L治。令微薄故。生欲者。謂起證斷樂欲
001_0818_a_23L故。策勵者。謂不忍受惡。及歸趣斷故。
001_0818_a_24L發懃精進者。謂多種堅固。脩彼對治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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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18_b_01L이 위의 3구9는 부정지不定地10 중 문혜聞慧와 사혜思慧 2혜慧의 하품下品을 대치하는 것을 나타낸다. “책심策心하고”란 그 대치를 수습해서 수혜修慧가 현행現行할 때 만약 마음이 침몰하여 번뇌에 염오染汚된다면 책심이 이를 들어 올리기 때문이다. “지심持心하는”이란 이 대치가 현행할 때 만약 마음이 부상浮上하여 번뇌에 염오된다면 지심이 이를 내려가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불선법”인가? “악불선법”이란 증성增盛된 수면隨眠에 속한 것을 말한다. 추대한 전纏을 일으키는 원인이기에 “아직 발생하지 않은”이라 한다. “발생하지 않게 하고자”란 ‘추대한 전纏이 현행하지 않게 하고자’이다. “욕구를 내고”란 ‘현행하지 않음을 확증하고자 욕구를 일으키고’이다. “책려하고”란 망실하지 않고 경계에 거주해서 악불선법이 현행하지 않도록 염을 잘 안주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아래의 4구11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무엇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선법”인가? 문聞과 사思와 수修에 의해 발생하는 삼혜三慧를 말한다. 과실이 없기 때문에 선법이라 한다.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이라 한다. “발생하게 하고자”란 ‘그것을 얻게 하고자’이다. “욕구를 내고”란 ‘얻음을 확증하고자 욕구를 일으키고’이다. “책려하고”란 그것에 속한 것을 구하는 바른 방편이기 때문이다. “정근을 발기하고”란 ‘장기간 신중하게 많은 종류를 견고하게 수습하고’이다. 이 위의 3구는 부정지의 문혜와 사혜 2혜에 속하는 선법을 얻는 것을 나타낸다. “책심하고 지심하는”이란 수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다른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무엇이 “이미 발생한 선법”인가? 이미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거주하게 하고”란 문혜를 말한다. “망실하지 않게 하고”란 사혜를 말한다. “수습을 원만하게 하고”란 수혜를 말한다. 이 위의 3구는 그저 이미 얻은 선을 수호한다는 것을 나타낼 따름이다. “수습을 배가하게 하고 증장하게 하고 광대하게 하고자”란 순서대로 그 앞의 것에 대해서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욕구를 내고” 등의 구는 모두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것의 의미를 『현양성교론』에서 자세하게 설하고 있다. 정단正斷이란 정근正勤이라고도 한다. 근勤은 본체의 이름이고 단斷은 작용의 이름이다. 『대지도론』에서 “그릇된 법을 타파하는 정도正道의 행行이기에 -
001_0818_b_01L此上三句。顯不定地中。聞思兩慧。下
001_0818_b_02L品對治策心者。謂脩彼對治。脩慧現行。
001_0818_b_03L若心沈沒。煩惱染汙。策心令擧故。持
001_0818_b_04L心者。謂卽此對治現行之時。若心浮擧。
001_0818_b_05L煩惱染汙。持心令下故。云何未生惡不
001_0818_b_06L善法。謂增盛隨眠所攝。能起麤纒之因。
001_0818_b_07L名爲未生。爲不生故者。爲令麤纒。不
001_0818_b_08L現行故。生欲者。謂起爲證不現行。欲策
001_0818_b_09L勵者。謂由不忘住。爲令不現行善住念
001_0818_b_10L故。此下四句如前所說。云何未生善法。
001_0818_b_11L謂聞思脩所生三慧。由無過故。名爲善
001_0818_b_12L法。所未得者。名爲未生令生故。生欲
001_0818_b_13L者。謂起證得欲。策勵者。謂求彼攝受。
001_0818_b_14L正方便故。發正起懃者。謂長時殷重。
001_0818_b_15L多堅脩習。此上三句。顯得不定地。聞
001_0818_b_16L思兩慧。所攝善法。策心持心者。爲得
001_0818_b_17L脩慧故。餘如前說。云何已生善法。謂
001_0818_b_18L已得故。爲念住者謂聞慧。令不忘者謂
001_0818_b_19L思慧。令脩滿者謂脩慧。此上三句。顯
001_0818_b_20L唯守護。已所得善令倍脩令增長令廣
001_0818_b_21L大者。如其次第。不唯於彼生知足故。
001_0818_b_22L生欲等句。皆如前說。此義廣如顯揚論
001_0818_b_23L說。言正斷者。亦名正懃。懃是體名。斷
001_0818_b_24L是業稱。智度論云。破諸1)耶 [6] 法。正道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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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18_c_01L정근正勤의 행行이라 한다.”고 한다. 단斷이란 『유가사지론』에서 설한 바와 같다. 첫째는 율의단律儀斷이라 하고, 둘째는 단단斷斷이라 한다. 이미 발생한 악불선법에 대해 율의律儀를 수습하여 그것을 끊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율의단이라 한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불선법에 대해 그것이 현행現行하지 않도록 끊고 그것이 현전現前하지 않도록 끊는다. 끊음을 위해 끊기에 단단이라 한다. 셋째는 수단修斷이라 하고, 넷째는 방호단防護斷이라 한다. 선법에 대해 자주자주 수습하여 전에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현전하게 할 때 능히 끊음이 있기 때문에 수단이라 한다. 이미 얻은 선법들에 대해 방일放逸을 여의고 수습을 원만하게 한다. 방호防護가 이미 발생했을 때 능히 끊음이 있기 때문에 방호단이라 한다. 총괄해서 말한다면, 흑품黑品은 버리고 백품白品은 취할 때 증상된 의향(增上意樂)이 원만하고 가행加行이 원만하기에 4종의 정단을 설한 것이다. 이 중 욕구를 내기에 의향(意樂)이 원만하고, 스스로 책려하고 내지 지심하기에 가행이 원만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것은 『유가사지론』에 나오는 것이다. 이는 정단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3) 사신족
사신족四神足의 의미를 풀이한다. 무엇을 욕欲·근勤·심心·관觀이라 하는가? 4종의 신족에 그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혹은 한 사람이 이 4법을 다 갖춘다. 혹은 각각의 사람이 넷 중의 하나를 주로 해서 갖춘다.『유가사지론』 98권에서 “또 4종의 힘에 의해 지심持心하여 삼마지(定)에 들게 한다. 그래서 4종의 신족을 건립한다. 무엇을 넷이라 하는가? 첫째 청정한 의향의 힘, 둘째 노력함의 힘, 셋째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의 힘, 넷째 정지正智의 힘이다. 이 중 첫 번째 힘에 의해 삼마지에 들고자 하는 욕구를 발생하게 한다. 얻음을 확증하기 위해 노력함을 수습한다. 두 번째 힘에 의해 최초에 안주한 마음(心)을 안정安定되게 한다. 세 번째 힘에 의해 -
001_0818_c_01L行故。名正懃行。言斷者。2)知 [7] 瑜伽說。初
001_0818_c_02L名律儀斷。第二名斷斷。由於已生惡不
001_0818_c_03L善法。應脩律儀。令其斷滅。不應忍受
001_0818_c_04L故。名律儀斷。於未生惡。令不現行。爲
001_0818_c_05L令彼不現前。斷爲故斷。名爲斷斷。三
001_0818_c_06L者名脩斷。四名防護斷。由於善法。數
001_0818_c_07L脩數習。先所未得能定現前。能有所斷
001_0818_c_08L故名脩斷。由於已得諸善法中。遠離放
001_0818_c_09L逸。脩習圓滿。防護已生。能有所斷故
001_0818_c_10L名防護斷。總而言之。爲欲顯示於黑白
001_0818_c_11L品捨取事中。增上意樂圓滿。及加行圓
001_0818_c_12L滿。是故宣說四種正斷。當知此中由生
001_0818_c_13L欲故。意樂圓滿。由自策勵。乃至持心
001_0818_c_14L故。加行圓滿。上來所說。出瑜伽論。是
001_0818_c_15L名略說正斷也。四神足義者。云何名爲
001_0818_c_16L欲懃心觀知足四種。有其二義。或於一
001_0818_c_17L人具此四法。或於別人。隨一增上。如
001_0818_c_18L瑜伽論九十八卷云。復次由四種力。持
001_0818_c_19L心令定。是故建立四種神足。云何爲四
001_0818_c_20L一淨意樂力。二勤務力。三心喜樂力。
001_0818_c_21L四正智力。當知此中由第一力。於三摩
001_0818_c_22L地。發生樂欲。爲證得故。脩習勤務。由
001_0818_c_23L第二力。最初住心。令其安定。由第三
001_0818_c_24L「耶」通「邪」下同。「知」疑「如」{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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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19_a_01L이미 안주한 삼마지의 마음은 다시 산동散動이 없으니 바깥으로 표류하지 않게 한다. 네 번째 힘에 의해 삼마지(等持)에 의해 대치되는 번뇌를 관찰하고, 이미 끊은 것과 아직 끊지 않은 것을 여실하게 안다. 또 삼마지의 들어가고 머물고 나오는 상을 잘 인식한다. 이와 같이 또 사마타(止) 등에 있는 상들이나, 사마타와 위파사나(觀)의 수번뇌들과 그것을 대치하는 것 등을 모두 여실하게 안다. 삼마지를 즐긴다면 삼마지에 있어서 단지 그만큼의 삼마지가 짓는 일이 있을 뿐, 이것 이외의 다시 지나침이나 더함이 없다.”고 한다. 이 논문論文은 한 명의 수행자가 4종의 힘을 모두 갖추고 삼마지를 성취하기에 4종의 신족을 건립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무엇이 각각의 사람이 넷 중의 하나를 주로 해서 갖추는 것인가? 『현양성교론』에서 “‘첫째 의욕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얻는다’란, 가령 수행을 하는 자는 선세先世에 대사大師가 계신 곳이나, 혹은 범행을 하는 지혜로운 자가 있는 곳에서 상품上品의 선근을 수습하고서 믿음을 내고 의욕을 내어 정법을 듣는다. 믿고 의욕하는 대로 정법을 듣고서 전전展轉하여 마음이 한 경계에 안주함을 증득한다. 이 의욕함에 의지해서 삼마지를 성취한다. ‘성취한다’란 이것에 있어서 자재로움을 얻는 것을 말한다. ‘둘째 근勤이 증상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얻는다’란, 가령 수행하는 자는 교수敎授와 교계敎誡의 법에 의지해서, 혹은 한적한 곳에 있거나 혹은 숲속에 있거나 혹은 고요한 방에 있거나 하는 이와 같은 곳에서 장기간 용맹스럽게 성숙하게 치열하게 정근해서 마음이 한 경계에 안주함을 증득한다. 정근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성취한다. ‘셋째 마음이 증상하기 때문에 삼매를 얻는다’란, 가령 수행을 하는 자는 먼저 이미 사마타의 수행을 수습한다. 이 인연에 의지하여 안의 법을 사유해서 급속히 마음이 한 경계에 안주함을 증득한다. 마음을 수습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성취한다. ‘넷째 관찰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얻는다’란, 가령 수행을 하는 자는 많이 듣고서 들어 간직해서 -
001_0819_a_01L力。已住定心。無復散動。不令於我。更
001_0819_a_02L復飄轉。由第四力。觀察等持。所治煩
001_0819_a_03L惱。於斷未斷。如實了知。又於等持入
001_0819_a_04L住出相。能善了別。如是復於奢摩他等。
001_0819_a_05L所有諸相。若於止觀諸隨煩惱。及彼對
001_0819_a_06L治等。皆如實知。樂等持者。於等持中。
001_0819_a_07L但有爾所等持作事。除此更無若過若
001_0819_a_08L增。此文顯示於一行者具四種力。成就
001_0819_a_09L等持。是故建立四種神足。云何別人隨
001_0819_a_10L一增上。如顯揚論說。欲增上故得三摩
001_0819_a_11L地者。如有行者。先世脩習上品善根。
001_0819_a_12L於大師所。或於有智同梵行處。生信生
001_0819_a_13L欲。聽聞正法。如所信樂。聞正法已。展
001_0819_a_14L轉證得1)心 [8] 一境性。由此欲故。三摩地
001_0819_a_15L成就。言成就者。謂於此中。而得自在。
001_0819_a_16L第二勤增上故得三摩地者。如有行者。
001_0819_a_17L依於敎授及敎誡法。或在空閑。或在林
001_0819_a_18L樹。或止靜室。於如是處。長時勇猛。純
001_0819_a_19L熟熾然。正勤證得心住一境性。由正勤
001_0819_a_20L故。三摩地成就。第三心增上故得三摩
001_0819_a_21L地者。如有行者。先已脩習奢摩他行。
001_0819_a_22L由此因緣。思惟內法。速疾證得心住一
001_0819_a_23L境性。由脩心故。三摩地成就。第四觀
001_0819_a_24L增上故得三摩地者。如有行者。多聞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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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19_b_01L그 들음을 축적한다.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홀로 거처하며 그 법을 혜에 의해 간택簡擇하고 극히 세밀하게 간택하고 완전하게 식별하고 관찰한다. 이에 의해 마음이 한 경계에 안주함을 증득한다. 관찰하기 때문에 삼마지를 성취한다.”고 한다. 이 논문은 4종의 수행에 의지하는 자가 이 넷 중의 하나를 주로 해서 삼마지를 성취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4종의 신족을 건립한다.“넷이 모두 단행斷行을 성취한다.”란 8종의 단행을 성취한다는 것이니 후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신족이란 비유에 의해 이름을 세운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가령 족足이 있는 자는 능히 갈 수 있고 능히 돌아갈 수 있고 뛰어오를 수 있고 용감하고 강건해서 세간의 월등한 법을 능히 얻을 수 있다. 세간의 월등한 법을 신神이라 한다. 저것이 능히 이것에 도달하기 때문에 신족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만약 의욕함 등의 법들이 있어 삼마지가 원만하게 성취되어 있다면 감능堪能하는 바가 있어 부동不動을 획득하기에, 능히 갈 수 있고 능히 돌아갈 수 있고 뛰어오를 수 있고 용감하고 강건해서 능히 출세간의 월등한 법을 얻어 이를 확증할 수 있다. 출세간의 법은 가장 월등하고 자재롭기 때문에 이를 가장 월등한 신神이라 한다. 저것은 이것을 증득하기 때문에 신족이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여의족如意足이라 하기도 한다. 족足이란 만족滿足이다. 족足이 여의롭기에 여의족이라 한다. 또 이 각족脚足은 갈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서 “사정근을 행할 때 마음에 산란함이 적기 때문에, 정定으로 마음을 잡아매기 때문에 여의족이라 한다. 마치 좋은 음식은 소금이 적으면 맛이 없지만 소금을 얻으면 맛이 족하기가 여의로운 것과 같다. 또 마치 사람에게 두 발이 있으면 다시 좋은 말이나 좋은 수레를 얻어 여의롭게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자는 이와 같이 사념처의 실제적인 지혜를 얻어 사정근에서 바른 정진을 한다. 정진에 의해 지혜가 더욱 많아지지만 정定의 힘은 다소 약해진다. 4종의 정定을 얻어 마음을 잡아매기 때문에 지혜의 힘과 정定의 힘이 동등해진다. 원하던 바가 모두 얻어지기 때문에 여의족이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신족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4) 오근
오근五根의 의미를 풀이한다. 증상增上의 의미가 근根의 의미이다. 출세간의 법을 발생하게 하는데 -
001_0819_b_01L持。其聞積集。獨處2)樂 [9] 靜。卽於彼法
001_0819_b_02L以慧簡擇。極細簡擇。遍覺觀察。由此
001_0819_b_03L證得心住一境性。由觀察故。三摩地成
001_0819_b_04L就。此文顯示依四行者。隨一增上。成就
001_0819_b_05L等持。是故建立四種神足。四中皆言斷
001_0819_b_06L行成就者。八種斷行。後當廣說。言神
001_0819_b_07L足者。從喩立名。如瑜伽說。如有足者。
001_0819_b_08L能往能還。騰躍勇健。能得世間殊勝之
001_0819_b_09L法。世殊勝法。說名爲神。彼能到此。故
001_0819_b_10L名神足。如是若有欲等諸法。有三摩地
001_0819_b_11L圓滿成辦。有所堪能。獲得不動。能往
001_0819_b_12L能還。騰躍勇健。能得能證出世勝法。
001_0819_b_13L由出世法。最勝自在。是最勝神。彼能
001_0819_b_14L證此。故名神足。此亦名如意足。足是
001_0819_b_15L滿足。足於如意。名如意足。又是脚足。
001_0819_b_16L有所至故。如智度說。問四正懃時。心
001_0819_b_17L小亂故。以定攝心。故如意足。譬如美
001_0819_b_18L食。少鹽則無味。得鹽則味足如意。又
001_0819_b_19L如人有二足。復得好馬好車。如意所至
001_0819_b_20L行者如是。得四念處實智慧四正懃中。
001_0819_b_21L正精進。由精進故。智慧增多。定力少
001_0819_b_22L弱。得四種定。以定心故。智定力等。所
001_0819_b_23L願皆得。故名如意足。是名略說神足義。
001_0819_b_24L五根義者。增上義是根義。謂於能生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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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19_c_01L이 믿음(信) 등의 행行이 증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 앞의 법들이 뒤의 법들을 발생하게 하는데 증상이 되기 때문이고, 내지 혜근慧根은 출세간의 법에 대해서 증상이 되기 때문이다.12 이는 오근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5) 오력
오력五力의 의미를 풀이한다. 굴복시키기가 어렵다는 의미가 역力의 의미이다. 이 청정한 믿음은 천天이든 마魔이든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다른 세간이든 법에 합당하게 탈취하는 자가 없다. 번뇌인 전纏들 또한 굴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굴복시키기가 어렵다.”고 한 것이다. 이 힘들은 큰 위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든 마군의 세력을 굴복시켜 모든 누漏들이 영원히 멸진한 상태를 증득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역力이라 한다. 이것은 간략하게 역力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이 근根과 역의 의미는 『유가사지론』에 의거한 것이다.
6) 칠각지
칠각지七覺支의 의미를 풀이한다. 정성이생正性離生에 깨달아 들어간 유형의 사람(補特伽羅)은 여실하게 식별하는 혜慧 이것을 분지로 삼기 때문에 각지覺支라 한다. 또한 각분覺分이라고도 한다. 분分이란 말은 원인을 의미한다. 각覺의 결과를 얻기 때문에 각분이라 한다. 『대지도론』에서 “각覺이 없는 것과 각이 있는 것을 포함해서 이 일곱 가지의 것은 각에 도달하게 하기 때문에 분分이라 한다.”고 한다. 이는 각지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7) 팔지성도
팔분지의 성도(八支聖道)의 의미를 풀이한다. 이미 사제四諦의 흔적을 본 자인 유학有學의 성인들은 팔분지에 의해 행行을 포섭하여 정도正道를 밟아 가며 일체의 번뇌를 남김없이 끊어 궁극의 해탈을 작증作證하기에 팔분지의 성도라고 한다. 또한 정도正道라고도 한다. 『대지도론』에서 “열반무위의 성에 들어가고자 이 법들을 행하는데 이때를 정도라 한다.”고 한다. 이는 정도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문 이와 같은 7법은 바르지 않은 것이 없는데 왜 근勤과 도道만 편벽되게 ‘바르다(正)’는 이름을 얻는가? 답 『대지도론』에서 “4종의 정진은 마음이 용감하게 발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착오를 할까 두려워해서 정근正勤이라 명명한 것이다. 또 도道를 행할 때 사도邪道에 떨어질까 봐 정도라 말한 것이다.”라고 한다. -
001_0819_c_01L世間法。是信等行爲增上故。又復前前
001_0819_c_02L望後後法。於能生起爲增上故。乃至慧
001_0819_c_03L根唯望出世。是名略說五根義也。五力
001_0819_c_04L義者。難伏義是力義。謂若天魔。若諸
001_0819_c_05L沙門。若婆羅門。若餘世間。無有如法
001_0819_c_06L引奪者。諸煩惱經亦不能屈。故名難伏。
001_0819_c_07L由此諸力。具大威勢。摧伏一切魔軍勢
001_0819_c_08L力。能證一切諸漏永盡。是故名力。是
001_0819_c_09L名略說五力義也。此根力義。依瑜伽說。
001_0819_c_10L七覺支義者。諸已證入正性離生補特
001_0819_c_11L伽羅。如實覺慧。用此爲支。故名覺支。
001_0819_c_12L亦名覺分。分之言因。能得覺果。故名
001_0819_c_13L覺分。如智度說。無學實慧。此七事能
001_0819_c_14L到。故名爲分。是名略說覺支義也。八
001_0819_c_15L支聖道義者。諸聖有學已見迹者。由八
001_0819_c_16L支攝行迹正道。能無餘斷一切煩惱。能
001_0819_c_17L於解脫究竟作證。是故名爲八支聖道。
001_0819_c_18L亦名正道。智度論云。欲人涅槃無爲城
001_0819_c_19L故。行是諸法。是時名正道。是名略說
001_0819_c_20L正道義也。問如是七法。莫非是正。何
001_0819_c_21L故勤道。偏得正名。答如智度說。四種
001_0819_c_22L精進。心勇發動。畏錯誤故。名爲正勤。
001_0819_c_23L又行道時。畏墮*耶道。故言正道。於中
001_0819_c_24L「心」下疑脫「住」。「樂」疑「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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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0_a_01L이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들이 있는데 또한 후에 설명하겠다. 이는 팔분지의 도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3. 본체를 밝힘셋째, 본체를 밝힌다.작용을 합해서 건립하면 37종이 있다. 그러나 그 본체를 논한다면 10종의 법을 벗어나지 않으니 계戒·사思·수受·염念·정定·혜慧·근勤·신信·경안輕安·사捨이다. 이 중 계戒란 표색과 무표색의 법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그 밖의 9종은 모두 심법에 속하는 것이다. 이 중 사思와 수受는 변행遍行13 중 둘이고, 염念과 정定과 혜慧는 별경別境14 중 셋이다. 근勤과 신信과 경안輕安과 사捨는 선善의 대지大地에 속한다. 이 10종의 법에 의지해서 37종의 법을 건립한다. 계戒를 열면 셋이 되니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이다. 사思 심소에는 하나가 건립되니 정사유正思惟이다. 수受 또한 하나가 건립되니 희각지喜覺支이다. 염念을 열면 넷이 건립되니 염근念根, 염력念力, 염각지念覺支, 정념正念이다. 정定을 열면 여덟이 건립되니 사여의족四如意足, 정근定根, 정력定力, 정각지定覺支, 정정正定이다. 혜慧 또한 여덟이 건립되니 사념주四念住, 혜근慧根, 혜력慧力, 택법각지擇法覺支 그리고 정견正見이다. 근勤 또한 여덟이 건립되니 사정단四正斷, 정진근精進根, 정진력精進力, 정진각지精進覺支 그리고 정정진正精進이다. 신信에는 둘이 건립되니 신근信根과 신력信力이다. 경안輕安과 사捨에는 각각 하나가 건립되니 경안각지輕安覺支와 사각지捨覺支이다.
총괄해서 말한다면 그 다섯 부류가 있다. 첫째, 여덟을 여는 것에 셋이 있으니 정定과 혜慧와 근勤이다. 둘째, 넷을 여는 것에 하나가 있으니 염念이다. 셋째, 셋을 여는 것에 하나가 있으니 계戒이다. 넷째, 둘을 여는 것에 하나가 있으니 신信이다. 다섯째,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인 것에 넷이 있으니 사思와 수受와 경안輕安과 사捨이다.
첫째 부류 안에 24종이 있고 뒤의 네 부류 안에 합하면 13종이 있으니, 총합하면 37종이 있다. 열고 합함에 같지 않음이 있는 이유는 진실로 정과 혜와 근정진勤精進은 수습의 세력이 길기 때문에 열면 여덟이 되고, 사思와 수受와 경안輕安과 사捨는 도道를 돕는 세력이 짧기 때문에 각각 하나가 건립되는 것이다. 신信 등 법(신信·계戒·염念)의 세력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오르고 내리는 순서에 따라서 넷, 셋, 둘15이 건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체는 오직 10종의 법이 있을 따름이다. -
001_0820_a_01L差別亦當後說。是名略說八道支義也。
001_0820_a_02L第三明體性者。用合建立。有三十七。
001_0820_a_03L論其體性。不出十法。謂戒思受念定慧
001_0820_a_04L勤信安捨。此中戒者。謂表無表色法所
001_0820_a_05L攝。餘九皆是心法所攝。於中思受遍行
001_0820_a_06L中二。念定慧者別境中三。勤信安捨在
001_0820_a_07L善大地。依此十法立三十七。開戒爲三。
001_0820_a_08L正語業命。思數立一。謂正思惟。受亦
001_0820_a_09L立一。謂喜覺支。開念立四。謂念根念
001_0820_a_10L力念覺正念。開定立八。謂四如意足
001_0820_a_11L定根定力。定覺正定。慧亦立八。謂四
001_0820_a_12L念住。慧根慧力。擇法覺支。及與正見。
001_0820_a_13L勤亦立八。謂四正斷。精進根力。精進
001_0820_a_14L覺支。及正精進。信中立二。信根信力。
001_0820_a_15L安捨各一。謂安覺支及捨覺支。總而言
001_0820_a_16L之。有其五類。一者開八有三。謂定慧
001_0820_a_17L勤。二者開四有一。謂念。三者開三有
001_0820_a_18L一。謂戒。四者開二有一。謂信。五者唯
001_0820_a_19L一有四。思受安捨。第一類內有二十四。
001_0820_a_20L後四類中總有十三。都合則有三十七
001_0820_a_21L也。所以開合有不1)第 [10] 者。良由定慧與
001_0820_a_22L勤。進脩力長。故開爲八。思受安捨助
001_0820_a_23L道勢短。故各立一。合信等法力在其中。
001_0820_a_24L故隨階降立四三二。是故體性唯有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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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0_b_01L『대지도론』에서 “37종의 품류는 10종의 법을 본체로 한다. 내지 운운.” 한다.
4. 계위를 밝힘넷째, 계위를 밝힌다.그 행行의 실제를 논한다면 37보리분법 모두 모든 계위에 있을 수 있다. 『유가사지론』에서 “또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의 증상增上에 의해 발생한 선善의 유루와 무루의 도道를 모두 염주라 한다.”고 한다. 또 뒤의 논문에서 “모든 팔분지의 성도聖道는, 간략하게 말하면, 두 곳에 속해 있다. 첫째는 세간이고 둘째는 출세간이다. 그 세간이란 삼루三漏와 사취四取에 따라서 계박되어 있기 때문에 고苦를 멸진할 수 없다. 선성善性이기 때문에 선취善趣에 갈 수는 있다. 출세간이란 그것과 상반되는 것이니 고를 멸진할 수 있다.”고 한다. 최초와 최후의 2법(사념주와 팔성도)에 대해서는 이미 이와 같이 말했다. 중간의 5법(사정단·사신족·오근·오력·칠각지)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에 의거할 때는 37보리분법이 모든 계위에 있을 수 있지만, 계위에 의거할 때는 37보리분법을 하나하나 계위에 배대해서 건립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크게 그 법(37보리분법)을 나누어 보면 두 계위가 된다. 앞의 5법은 범부의 계위에 있고 뒤의 2법은 성자의 계위에 있다. 범부의 계위인 5법을 건립하는 데에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아비달마의 학설에 의거한다면 사념처관은 난법煖法의 앞에 있고, 그 사정근은 난법에 있고, 사여의족은 정법頂法에 있고, 오근은 인법忍法에 있고, 오력은 세제일법世第一法에 있다. 만약 이 논에 의거한다면 앞의 세 가지 넷(사념주·사정단·사신족)은 해탈분解脫分에 있고, 뒤의 두 가지 다섯(오근·오력)은 통달분通達分에 있다. 합당하게 시설하고 있으니 모두 이치가 있다. 성자의 계위인 2법을 건립하는 데에는 세 가지 학설이 있다.
첫째의 학설이란, 『아비달마구사론』에서 다른 학설을 서술하며 이르기를, “어떤 논사는 ‘순서를 파하지 않는다. 견도見道에서는 각覺의 분지들을 수습하고, 견도와 수도修道에서는 성도聖道의 분지들을 수습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둘째의 학설이란, 『대지도론』에서 “수도修道에서 작용하기에 각覺의 분지들이라 하고, 견도見道에서 작용하기에 도道의 분지들이라 한다.”고 한다. 비바사사毗婆沙師의 학설 또한 이와 같다. 그 논에서 설하기를, “도의 분지들은 견도에 있고 각의 분지들은 수도에 있다. 왜 이와 같은가? -
001_0820_b_01L法。如智度論云。三十七品。十法爲本
001_0820_b_02L乃至廣說故。
001_0820_b_03L第四明階位者。論其行實。皆通諸位。
001_0820_b_04L如瑜伽說。又由身受心法。增上所生善
001_0820_b_05L有漏無漏道。皆名念住。又後文言。略
001_0820_b_06L說一切2)人 [11] 聖道支。二處所攝。一者世
001_0820_b_07L間。二出世間。其世間者。三漏四取。所
001_0820_b_08L隨縛故。不能盡苦。是善性故。能往善
001_0820_b_09L趣。出世間者。與彼相違。能盡衆苦。初
001_0820_b_10L後二法旣如是說。中間五法當知亦爾。
001_0820_b_11L約行雖通。依位別立。是義云何。大分
001_0820_b_12L其地。判爲二位。謂前五法在凡夫位。
001_0820_b_13L後之二法立聖位中。凡位五法。立有二
001_0820_b_14L義。依毗曇說。四念處觀在𤏙法前。其
001_0820_b_15L四正勤在於𤏙法。四如意足在於頂法。
001_0820_b_16L五根在於忍法。五力在世第一法。若依
001_0820_b_17L此論。前之三四在解脫分。次之二五在
001_0820_b_18L通達分。隨宜施設。皆有道理。聖位二
001_0820_b_19L法。立有三義。一者如俱舍論述餘義云。
001_0820_b_20L有餘師說。不破次第。於見道中。脩習
001_0820_b_21L覺分。於見道脩道中。脩聖道分故。第
001_0820_b_22L二義者。如智度說。脩道用故名覺。見
001_0820_b_23L道用故名道。毗婆沙師亦同此說。如彼
001_0820_b_24L論云。道分見道。覺分脩道。何故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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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0_c_01L도는 감(去)을 의미한다. 견도에서는 감이 극히 신속하다. 각은 깨달음(覺)을 의미한다. 수도에는 9종의 각이 있다. 자주자주 깨닫기 때문이다. 수대로 순서를 잡았기에 앞에 칠각지를 놓고 뒤에 팔정도를 놓은 것이다.”라고 한다.
세 번째의 학설이란, 이 논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각覺의 분지들은 견도見道에 있고 도道의 분지들은 수도修道에 있다. 『대지도론』 또한 이와 같이 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학설 모두 이치가 있다. 각각의 체계에 맞게 건립되었기에 합당하지 않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에서는 세 가지 학설을 모두 설하고 있다. 제62권에서는 “‘자성을 이해한다’란, 팔분지의 성도聖道는 3종의 잡염雜染을 대치하기 때문에 삼온三蘊을 건립한다. 이를테면 악행惡行의 잡염을 대치하기 때문이고, 욕欲의 잡염을 대치하기 때문이고, 견見의 잡염을 대치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 논문은 첫 번째 논사의 학설에 해당한다. 견見을 대치하는 것은 견도에 있고, 욕欲을 대치하는 것은 수도에 있기 때문이다. 제18권에서는 “정직正直이란 무엇인가? 그 역류逆流16를 발생하게 하는 정직이다. 성도의 팔분지들은 견도에서 끊게 되는 번뇌들을 끊을 수 있다. 역류의 도에서는 아직 수류隨流17를 타고 있는데 어떻게 강성한 근심과 슬픔을 영원히 끊겠는가?”18라고 한다. 이 논문은 두 번째의 학설에 해당한다. 제29권에서는 “그는 그때 최초로 칠각지를 획득하기 때문에 최초의 유학有學이라 한다. 이미 성제聖諦의 흔적을 보았기에 견도에서 끊게 될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는다. 오직 수도修道에서 끊게 될 번뇌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논문은 세 번째의 학설에 해당한다.
5. 순서를 설명함다섯째, 순서를 설명한다.『대지도론』에서 “문 도道를 먼저 말해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도를 행한 후에야 선법善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길(道)을 간 후에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제 왜 거꾸로 먼저 염처念處를 말하고 뒤에 정도正道를 말하는가? 답 거꾸로 된 것이 아니다. 37품은 최초로 도에 들어가고자 할 때의 이름이다. -
001_0820_c_01L道是知義。於見道中。知極速疾。覺是
001_0820_c_02L覺義。於脩道中有九種覺。數數覺故。隨
001_0820_c_03L數次第。先七後八。第三義者。如此論
001_0820_c_04L說覺分在見道。道支在脩道。智度論中
001_0820_c_05L亦有是說。如是三義皆有道理。隨義建
001_0820_c_06L立。無不宜故。瑜伽論中通說三義。第
001_0820_c_07L六十二卷云。解了自性者。謂八支聖道
001_0820_c_08L對治三種雜染故。建立三蘊。謂對治惡
001_0820_c_09L行雜染故。對治諸欲雜染故。對治諸見
001_0820_c_10L雜染故。此文當於初師所說。治諸見者
001_0820_c_11L在於見道。治諸欲者在脩道故。第十八
001_0820_c_12L卷言。云何正直。謂彼生起。逆流正直。
001_0820_c_13L聖八支道。能斷見斷。所有煩惱。於逆
001_0820_c_14L流道。得預隨順。此文當於第二義也。
001_0820_c_15L第二十九卷云。彼於爾時。最初獲得七
001_0820_c_16L覺支故。名初有覺。見聖諦迹已。永斷
001_0820_c_17L滅見道所斷一切煩惱。脩除脩道所斷
001_0820_c_18L煩惱。此文當於第三義也。
001_0820_c_19L第五明次第者。如智度說。問曰。應先
001_0820_c_20L說道。何以故。行道然後得諸善法。譬如
001_0820_c_21L人先行道。然後得至處。今何以顚倒。
001_0820_c_22L先說念處。後說正道。答曰。不顚倒也。
001_0820_c_23L三十七品是初欲入道時。名因字。如行
001_0820_c_24L「第」疑「等」。「人」疑「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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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1_a_01L마치 수행자가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 도의 법法을 듣는 것과 같다. 먼저 염念으로써 이 법을 간직하는데 이때를 염처라 한다. 간직하고 나서 법에 의지하여 결과를 구하고자 정진을 행하는데 이때를 정근正勤이라 한다. 많이 정진했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해지는데, 마음을 잡아매면 평온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여의족如意足이라 한다. 마음이 평온하게 되면 오근五根이 발생한다. 법들의 실상實相은 깊디깊어 알기가 어렵지만 신근信根이 있기에 믿게 되는데, 이를 신근信根이라 한다.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일심으로 도를 구하는데 이를 정진근精進根이라 한다. 항상 불도佛道를 억념하고 다른 것은 억념하지 않는데 이를 염근念根이라 한다. 항상 마음을 잡아매어 도에 있기에 이를 정근定根이라 한다. 제諦의 실상을 관찰하기에 이를 혜근慧根이라 한다. 오근五根이 증장增長하면 능히 번뇌를 차단할 수 있는데 이를 역力이라 한다. 이 역力을 얻고 난 후 도의 법이 분별된다. 두 부분의 셋이 있다. 붙들어 맴의 셋(경안輕安·정定·사捨)과 풀어 줌의 셋(택법擇法·정진精進·희喜)이다. 붙들어 맴과 풀어 줌 두 곳에 염念이 있는데, 마치 문을 지키는 사람과 같다. 이를 칠각분七覺分이라 한다. 이 법을 얻고 나면 열반무위의 성에 들어가기 위해 이 8법을 행하니 이를 도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 『유가사지론』에서 “이 중 염주의 위位에서 최초로 마음을 묶어 소연경所緣境에 놓아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마음을 소연경에 안주하게 하고 나서 정단을 근면하게 수습한다. 다음에 정定을 얻고 나서 다시 이 정을 잘 원만하게 하기 위해 신족에서 가행加行을 근면하게 수습한다. 정定이 원만하게 되면 일체의 상相과 추중麤重이 이계離繫를 얻게 하기 위해 신근信根 등에 의지해서 가행을 수습한다. 가행 중 근根이 하품下品이고 역力이 상품上品이다. 이와 같이 가행을 올바르게 수습하고 나면 다음에 각覺의 분지들을 얻어 실제實際에 통달한다. 실제에 통달하고 나면 다음에 도의 분지들을 수습한다. 점점 내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증득하게 되어 모든 장애(障)에서 해탈을 얻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두 논에서 설한 순서는 모두 수數에 따른 계위의 문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
6. 문을 설명함여섯째, 문門을 설명한다.이와 같은 7법19은 모두 5문門으로 되어 있다. -
001_0821_a_01L者至師所聽道時。先用念持是法。是時
001_0821_a_02L名念處持。已從法中求果。故精進行。
001_0821_a_03L是時名正勤。多精進故。心散麤。攝心
001_0821_a_04L調柔。故名如意足。心調柔已。生五根。
001_0821_a_05L諸法實相。甚深難解。信根故能信。是
001_0821_a_06L名信根。不惜身命。一心求道理。是精
001_0821_a_07L進根。常念是道。不念餘1)東 [12] 事。是名念
001_0821_a_08L根。攝心在道。是名定根。觀諦實相。是
001_0821_a_09L名慧根。五根增長。能遮煩惱。是名爲
001_0821_a_10L力。得是力已。分別道法。有二分三。法
001_0821_a_11L三起三。法三下念在二處。如守門人。
001_0821_a_12L是名七覺分。得是法已。欲入涅槃無爲
001_0821_a_13L城故。行是八法。是名爲道故。又瑜伽
001_0821_a_14L說。當知此中於念住位。最初繫心。置
001_0821_a_15L所緣境。次於所緣念安住。勤脩正斷。
001_0821_a_16L次得定已。後令此定善圓滿故。於神足
001_0821_a_17L中。勤脩加行。定圓滿已。爲令一切相。
001_0821_a_18L及麤重得離繫故。依信等根脩加行。加
001_0821_a_19L行中。根是下品。力是上品。如是正脩
001_0821_a_20L加行道已。次得覺支。通達實際。通達
001_0821_a_21L實際已。次脩道支。漸漸乃至證得阿耨
001_0821_a_22L菩提。於一切障。皆得解脫。如是二論
001_0821_a_23L所說次第。皆約隨數階位門說。
001_0821_a_24L第六辨諸門者。如是七法皆有五門。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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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1_b_01L『대법론』에서 “또 모든 보리분법菩提分法은 차이 없이 모두 5문에 의지해서 건립할 수 있다. 소연이기 때문이고, 본체이기 때문이고, 동반자이기 때문이고, 수습함이기 때문이고, 수습의 결과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1) 사념주
(1) 염주의 소연所緣
첫째, 염주의 소연이란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이니 4종의 대상을 말한다. 아我의 의지처인 대상, 아我가 향수하는 대상, 아我의 자체인 대상, 아我의 잡염과 청정의 대상을 말한다. 무엇 때문에 오직 이 4종의 경계만을 건립하는가? 전도된 이해 때문에 어리석은 범부는 대부분 아我의 의지처가 유근신有根身이라 계탁하고, 고苦와 낙樂 등을 향수하고, 경계의 상을 파악하고 식별하고, 탐貪 등에 의해 염오染汚하게 되고, 신信 등에 의해 청정淸淨하게 된다. 그래서 최초로 진실한 대상의 상을 올바르게 관찰하기 위해 이 넷을 건립하여 소연경所緣境이라 한다. 총합해서 말하면 이와 같지만, 이를 분별한다면 이와 같은 4종의 대상에는 각각 3종이 있다. 첫째 안(內), 둘째 밖(外), 셋째 안과 밖(內外)이다.『유가사지론』에서 간략하게 여섯 가지 의미를 설한다. 첫째, 안의 자기의 유정수有情數의 색을 안의 몸의 경계라 한다. 밖의 비유정수非有情數의 색을 밖의 몸의 경계라 한다. 다른 유정수의 색을 안과 밖의 몸의 경계라 한다. 이 안의 몸을 연해서 수受의 심법心法을 일으키는 것을 안의 수受라 한다. 안의 심心, 안의 법法,……밖의 법, 안과 밖의 법 또한 이와 같이 설한다. 둘째, 근根에 속한 유집수有執受의 색을 안의 몸이라 한다. 근에 속하지 않는 무집수無執受의 색을 밖의 몸이라 한다. 근에 속하지 않는 유집수의 색을 안과 밖의 몸이라 한다. 이 3종을 연해서 수受의 심법을 일으키기에 각 경우에 따라서 3종이라 하는 것이다. 셋째, 자기 안의 정지定地의 경안輕安과 함께하는 색을 안의 몸이라 한다. 자기 안의 부정지不定地의 추중麤重과 함께하는 색을 밖의 몸이라 한다. 타인의 경안과 함께하는 색, 추중과 함께하는 색을 안과 밖의 몸이라 한다. 이 3종을 연해서 수受의 심법을 일으켜서 3종이라 하니, 앞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내지 여섯째, 자기 몸 중 머리카락, 털, 손발톱, 이빨 등의 상을 안의 몸이라 한다. -
001_0821_b_01L對法說。復以一切菩提分法無有差別。
001_0821_b_02L皆由五門而得建立。謂所緣故。自體故。
001_0821_b_03L助伴故。脩習故。脩果故。
001_0821_b_04L[四念住]
念處所緣者。謂身受心法卽是四事。謂
001_0821_b_05L我所依事。我受用事。我自體事。我染
001_0821_b_06L淨事。何故唯立此四境者。由顚倒覺。
001_0821_b_07L愚癡凡夫多分計我。依止有根身。受用
001_0821_b_08L苦樂故。取了境爲相。由貪等染汙。由
001_0821_b_09L信等淸淨。是故最初爲正觀察眞實事
001_0821_b_10L相。故立此四。爲所緣境。總說雖然。於
001_0821_b_11L中分別者。如是四事各有三種。一內。
001_0821_b_12L二外。三者內外。瑜伽論中略說六義。
001_0821_b_13L一者內自有情數色。爲內身境。外非有
001_0821_b_14L情數色。爲外身境。他有情數色爲內外
001_0821_b_15L身境。緣此內身。起愛念法。名爲內受。
001_0821_b_16L內心內法法外與內外亦如是說。二者
001_0821_b_17L根所攝。有執受色爲內身。非根所攝。無
001_0821_b_18L執受色爲外身。非根所攝。有執受色爲
001_0821_b_19L內外身。緣此三種。起受心法。隨其所
001_0821_b_20L應。卽爲三種。三者自內定地輕安俱色
001_0821_b_21L爲內身。自內不定地麤重俱色爲外身。
001_0821_b_22L若他輕安俱色麤重俱色爲內外身。緣
001_0821_b_23L此三種。起受心法。卽以爲三。如前應
001_0821_b_24L知。乃至第六自身中。髮毛爪齒等相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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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1_c_01L타인의 몸의 머리카락, 털 등의 상을 밖의 몸이라 한다. 안의 몸의 변이하거나 변이하지 않는 청어靑瘀 등의 상相과, 밖의 몸의 변이하거나 변이하지 않는 청어 등의 상과 상사한 법성이나 평등한 법성 이를 안과 밖의 몸이라 한다. 이 3종의 경계를 연해서 수受의 심법을 일으키니, 각각의 경우에 따라서 3종이라 한다.『대지도론』 또한 여섯 가지 의미를 풀이한다. 안의 몸은 앞에서 말한 바와 대동소이하다. 그 둘을 총합해서 관찰한다면 안과 밖의 몸이라 한다. 안과 밖의 몸이 별도로 없는 것은 앞의 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 “또 이렇게 생각한다. ‘안을 관찰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데 밖을 관찰하는 것이 혹 있겠는가? 밖을 관찰하는 것 또한 얻을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에게 혹 착오가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안과 밖을 합해서 관찰해야 한다. 안을 관찰하는 것과 밖을 관찰하는 것을 개별적인 상이라 하고, 일시에 함께 관찰하는 것을 총체적인 상이라 한다.’ 총체적인 관찰이든 개별적인 관찰이든 지각할 수 없다. 관찰해야 할 경계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수受, 심心, 법에 대해서 안과 밖 등 3종이 있다는 것은 『유가사지론』에서 설한 바와 같다. 또 다른 학설이 있다. “다른 학설은 무엇인가? 의식意識과 상응하는 수受는 안의 수受 등이고, 오식五識과 상응하는 수受는 밖의 수受 등이다. 정심定心은 안의 마음이고 산심散心은 밖의 마음 등이다. 수受를 제외한 심소법은 안의 법이고 불상응행不相應行과 무위법은 밖의 법 등이다. 내지 운운.” 한다. 이를 염처念處의 소연경이라 한다.
(2) 염주의 본체
둘째, 염주의 본체란 이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만약 대치되어야 할 것을 상대로 한다면 혜慧를 본체로 한다. 혜는 사전도四顚倒를 바르게 대치하기 때문이다. 만약 소연을 상대로 한다면 혜慧와 염念을 본체로 한다. 혜와 염은 함께 소연에 머물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서는 “몸을 관찰하는 지혜,……내지 법을 관찰하는 지혜 이를 자성념처自性念處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대치되어야 할 것을 상대로 해서 본체를 나타낸 것이다. 『대법론』에서는 “염주의 본체란 혜와 염을 말한다. 불경佛經에 -
001_0821_c_01L內身。他身髮毛等相爲外身。若內身變
001_0821_c_02L異不變異靑瘀等相。及外身變異不變
001_0821_c_03L異靑瘀等相。相似法性。平等法性。是
001_0821_c_04L爲內外身。緣此三境。起受心法。隨其
001_0821_c_05L所應卽三。智度論中亦六義釋內身。與
001_0821_c_06L前所說。大同小異。總觀彼二爲內外身
001_0821_c_07L無別內外。前二不攝。如彼說言。復作
001_0821_c_08L是念。內觀不得。外或有耶。外觀亦復
001_0821_c_09L不得。自念我或錯誤。是故今當總觀內
001_0821_c_10L外。觀內觀外。是爲別相。一時俱觀。是
001_0821_c_11L爲總相。總觀別觀。了不可得。所觀已
001_0821_c_12L竟。受心法中。內外等三。有同2)喩 [13] 伽。亦
001_0821_c_13L有異說。異說云何。謂意識相應受是內
001_0821_c_14L受等。五識相應受是外受等。定心是內
001_0821_c_15L心。散心是外心等。除受餘心數法是爲
001_0821_c_16L內法。不相應行及無爲法是爲外法等
001_0821_c_17L乃至廣說。是爲念處所緣境也。第二念
001_0821_c_18L住自體者。此有二義。若對所治。以慧
001_0821_c_19L爲體。由慧正治四顚倒故。若對所緣。
001_0821_c_20L慧念爲體。慧與念俱住所緣故。智度論
001_0821_c_21L云。觀身智慧。乃至觀法智慧。是爲自
001_0821_c_22L性念處。此對所治。顯自性也。對治論
001_0821_c_23L云。念住自體者。謂慧及念。由佛經中
001_0821_c_24L「東」疑剩。「喩」疑「瑜」{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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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2_a_01L몸 등에 대해서 ‘따라가며 관찰한다(隨觀)’는 말이 있기 때문이고, ‘염주念住’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순서대로이다.”라고 한다. 이것은 소연을 상대로 해서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3) 염주의 동반자
셋째, 염주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소법들과 그것을 우선으로 해서 일어나는 결과 등이다. 『대법론』에서는 “염주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이다. 그것이란 그 염과 혜 2법을 말한다.”고 한다. 『대지도론』에서는 “무엇을 염처와 함께하는 것이라 하는가? 몸(身)을 관찰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원인에서 생기는 도道이다. 유루이든 무루이든 신념처身念處이다. 내지 법을 관찰하는 것 모두 이와 같이 설한다.”고 한다. 또 아래의 논문에서 “염처와 함께하는 것 중 신업과 구업 2업業은 색법이다. 다른 것은 색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4) 염주를 수습함
넷째, 염주를 수습함이란 크게 보아 두 문이 있다. 공통되는 것을 수습하는 문과 공통되지 않는 것을 수습하는 문이다. ‘공통되는 것을 수습함’이란 소승과 공통되는 것을 수습하는 것이다. 안의 몸 등에 대해서 수신관隨身觀을 수습하고, 밖의 몸 등에 대해서, 안과 밖의 몸에 대해서 수신관을 수습한다. 이를테면 부정不淨을 관찰하고,……내지 무아無我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 등이 소승과 공통되는 것을 수습하는 것이다. ‘공통되지 않는 것을 수습함’이란 오직 보살의 관찰이다. 이를테면 몸 등에 대해서 안이나 밖의 상想을 배제하고 오직 몸 등의 중도中道의 실상實相만을 관찰하는 것이다.『유가사지론』에서 “이 보살들은 두루 모든 이승二乘의 이취理趣인 보리분법을 모두 여실하게 안다. 이를테면 성문의 이취에 대해서 그리고 대승의 이취에 대해서이다. 어떻게 보살은 대승의 이취인 보리분법을 여실하게 아는가? 보살들은 그 몸에 대해서 순신관循身觀을 수습할 때 그 몸에 대해서 자성自性이 있다고 분별하지 않고, 또 일체의 종류가 전연 없다고 분별하지 않는다. 또 그 몸에 대해서 언설의 자성을 여읜 법성法性을 여실하게 안다. 내지 운운.” 한다. 또 설하기를, “또 공성에 의지해서 염주를 근면하게 수습하는 보살은 크게 보아 6종의 허망한 상想에서 마음을 해탈하게 한다. -
001_0822_a_01L有於身等隨觀言故。及有念住言故如
001_0822_a_02L其次第。此對所緣。出自性也。第三念
001_0822_a_03L住助伴者。與彼相應諸心法。及彼爲
001_0822_a_04L首。所發果等。如對法說。念住助伴者。
001_0822_a_05L與彼相應心心法等。彼者謂彼念慧二
001_0822_a_06L法。智度論云。云何名共念處。觀身爲
001_0822_a_07L首。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是身念
001_0822_a_08L處。乃至觀法皆如是說。又下文言。共
001_0822_a_09L念處中身口二業。是爲色法。餘殘非色
001_0822_a_10L故。第四念處脩習者。略有二門。謂共
001_0822_a_11L脩習。不共脩習。共脩習者。謂共小乘
001_0822_a_12L脩於內身等脩隨身觀。於外身等及內
001_0822_a_13L外身脩隨身觀。謂觀不淨乃至無我。知
001_0822_a_14L是等名。共小乘脩。不共脩者。唯菩薩
001_0822_a_15L觀。謂於身等除內外想。唯觀身等。中
001_0822_a_16L道實相。如瑜伽說。是諸菩薩普於一切。
001_0822_a_17L二乘理趣菩提分法。皆如實知。謂於聲
001_0822_a_18L聞乘理趣及於大乘理趣。云何菩薩大
001_0822_a_19L乘理趣。菩提分法如實了知。謂諸菩薩
001_0822_a_20L能於其身。住*脩身觀。不於其身。分別
001_0822_a_21L有性。亦不分別一切種類都無所有。又
001_0822_a_22L於其身。遠離言說。自性法性如實了知
001_0822_a_23L乃至廣說。又言復次依空勤脩念住菩
001_0822_a_24L薩。略於六種1)忘 [14] 相縛中。令心解脫。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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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2_b_01L여섯은 무엇인가? 몸에 대해서,……내지 법에 대해서 안의 상을 일으키는 것이 첫째의 상박相縛이다. 이것들에 대해서 밖의 상을 일으키는 것이 둘째의 상박이다. 이것들에 대해서 안과 밖의 상을 일으키는 것이 셋째의 상박이다. 만약 시방의 무량한 유정들을 해탈하게 하기를 원해서 염주를 수습한다면 이것에 대한 상들이 넷째의 상박이다. 만약 이 때문에 몸 등의 경계에 대해서 순관循觀을 확립한다면 이것에 대한 상들이 다섯째의 상박이다. 몸 등에 대해서 순관을 확립한다면 이것에 대한 상들이 여섯째의 상박이다.……내지 운운.” 한다.『대지도론』에서는 “보살마하살의 사념처의 관찰이란, 안의 몸이 무상無常하고 고苦인 것이 마치 병과 같고 악창과 같고, 불덩어리이고 썩어 문드러지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고 아홉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마치 뒷간과 같다고 관찰한다.……내지 운운. 이 몸의 상은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지 않고 중간에 있지 않다. 이 몸은 이전, 이후, 중간에서 모두 얻을 수 없다. 단지 법들의 인因과 연緣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이 인과 연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몸이라면 또한 허망한 전도顚倒에 의해 존재할 뿐이다. 이 인과 연들에는 인과 연들의 상相이 없다. 이 인과 연들에 의해 발생한 것은 또한 발생의 상이 없다. 이와 같이 사유해서 이 몸에는 본래부터 발생의 상이 없다는 것을 안다. 발생이 없기에 상이 없고 상이 없기에 발생이 없다. 단지 범부를 속이기 때문에 몸이라 할 뿐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몸의 실상을 관찰할 때 염착染着을 여의게 된다. 염을 잡아매어 몸에 대해서 순신관을 확립한다. 이를 보살의 신념처의 관찰이라 한다. 밖의 몸이나 안과 밖의 몸의 관찰 또한 이와 같다. 수受, 심心, 법法 등에 대해서……내지 운운.” 한다.
(5) 염주를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염주를 수습함의 결과란, 『대법론』에서 “사전도四顚倒를 끊어 사제에 들어간다. 신身 등의 ‘계박에서 벗어남(離繫)’을 수습함의 결과라 한다. ‘사전도를 끊음’이란 사념주를 말한다. 그 순서대로 정淨, 낙樂, 상常, 아我의 사전도를 끊는다. -
001_0822_b_01L等爲六。所謂於身乃至於法。發起內相。
001_0822_b_02L是初相縛。卽於此中。發起外相。是第
001_0822_b_03L二縛。卽於此中。起內外相。是第三縛。
001_0822_b_04L若於十方無量有情。願令解脫。脩習念
001_0822_b_05L住。此中諸相。是第四縛。若由此故。於
001_0822_b_06L身等境。脩觀而住。此中諸相。是第五
001_0822_b_07L縛。卽於身等。脩觀住者。此中諸相。是
001_0822_b_08L第六縛。乃至廣說。智度論云。菩薩摩
001_0822_b_09L訶薩四念處觀者。觀是內身無常。若如
001_0822_b_10L病如癰。灾聚敗壞。不淨充滿。九孔流
001_0822_b_11L出。是爲行廁。廣說乃至。是身相不在
001_0822_b_12L內。不在外。不在中間。是身先際後際
001_0822_b_13L中際。皆不可得。但從諸法因緣和合生。
001_0822_b_14L是諸因緣作是身者。亦從虛妄顚倒故
001_0822_b_15L有。是因緣中無因緣相。是因緣生亦無
001_0822_b_16L生相。2)相 [15] 如是思推。知於是身。從本以
001_0822_b_17L來無有生相。無生故無相。無相故無生。
001_0822_b_18L伹誑凡夫。故名爲身。菩薩如是觀身實
001_0822_b_19L相。離諸染著。繫念在身。住*脩身觀。
001_0822_b_20L是名菩薩身念處觀。觀外身內外身亦
001_0822_b_21L如是。受心法等。乃至廣說。第五明念
001_0822_b_22L住脩果者。如對法說。斷四顚倒。趣入
001_0822_b_23L四諦。身等離繫。是名脩果斷。斷四倒
001_0822_b_24L者。謂四念住。隨其次第。能斷淨樂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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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2_c_01L신념주身念住에 의지해서 고제에 들어간다. 색신色身은 모두 행고行苦의 상을 갖고 있다. 추중麤重이 현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행觀行을 수습할 때 이 경안輕安을 닦는다. 몸(身)에 차별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념주受念住에 의지해서 집제에 들어간다. 낙樂 등의 수受들은 화합한 애愛 등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심념주心念住에 의지해서 멸제에 들어간다. 아我가 없는 식識을 관찰하면 아我가 끊어질까 두려워하는 문이 없어진다. 열반에 대한 공포가 생기는 것을 영원히 여의기 때문이다. 법념주法念住에 의지해서 도제에 들어간다. 대치되어야 할 법을 끊기 위해서, 대치하는 법을 수습하기 위해서이다. 또 이 4종은 그 순서대로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의 이계과離繫果를 증득한다. 이것들을 수습함으로써 점차 몸(身) 등의 추중을 여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은 사박四縛의 추중을 여의는 것을 밝힌다. 사박이란 첫째 집수執受의 박, 둘째 영수領受의 박, 셋째 요별了別의 박, 넷째 집착執着의 박이다. 이 사박에 의해 마음(心王)이 계박된다. 이를테면 마음(心)은 몸(身)에 계박되어 있다. 집수의 박縛에 의해 계박되어 있다. 집수가 안의 몸(內身)과 안위安危를 같이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몸(身)의 재환災患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마음은 수受에 계박되어 있다. 영수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다. 수受와 상응하기에 이에 따라서 고苦와 낙樂을 같이한다. 이 때문에 수受의 재환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경계(塵)에 계박되어 있다. 요별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다. 6종의 경계를 반연해서 때가 없이 머문다. 이 때문에 분별의 재환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혹惑에 계박되어 있다. 집착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다. 혹惑과 상응하기에 이에 따라서 법을 집착한다. 이 때문에 번뇌의 과실을 여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이렇게 알아야 할 것이다. 마음은 몸에 계박되어 있다. 집수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수受에 계박되어 있다. 안의 영수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색 등 경계의 상에 계박되어 있다. 요별의 박에 의해 계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
001_0822_c_01L我四倒也。由身念住。趣入苦諦所有色
001_0822_c_02L身。皆行苦相麤重所顯故。是故脩觀行
001_0822_c_03L時。能治此輕安。於身差別生故。由受
001_0822_c_04L念住趣入集諦。以樂等諸受。是和合愛
001_0822_c_05L等所依處故。由心念住。趣入滅諦。觀
001_0822_c_06L離我識。當無所有。懼我斷門。生涅槃
001_0822_c_07L怖。永遠離故。由法念住。趣入道諦。爲
001_0822_c_08L斷所治法。爲脩能治法故。又此四種。
001_0822_c_09L如3)眞 [16] 次第。能證身受心法離繫之果。
001_0822_c_10L由此脩習。漸能遠離身等麤重故。此明
001_0822_c_11L遠離四縛麁重。言四縛者。一執受縛。
001_0822_c_12L二領受縛。三了別縛。四執著縛。由此
001_0822_c_13L四縛。縛於心王。謂心於身。由執受縛
001_0822_c_14L所縛。謂執受內身。與同安厄。由是不
001_0822_c_15L能離身患故。又心於受。由領受縛所縛。
001_0822_c_16L與受相應。隨同苦樂。由是不能離受患
001_0822_c_17L故。心於諸塵。由了別縛所縛。攀緣六
001_0822_c_18L塵。無時安住。由是不離分別患故。心
001_0822_c_19L於諸4)或 [17] 。由執著縛所縛與*或相應。隨
001_0822_c_20L著諸法。由是不離煩惱過故。如瑜伽說。
001_0822_c_21L當知心於身由執受縛所縛。於受由內。
001_0822_c_22L領受縛所縛。於色等境界相。由了別縛
001_0822_c_23L「忘」疑「妄」{編}。「相」疑剩。「眞」疑「其」。
001_0822_c_24L「或」通「惑」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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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3_a_01L마음은 말한바 몸 등 법들에 계박되어 있다. 탐貪, 진瞋 등 크고 작은 번뇌의 집착의 박에 계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4종의 박博을 대치하기 위해 사념주를 건립한다.”고 한다. 이것은 염주를 수습함의 결과를 설명한 것이다. 염주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2) 사정단
다음에 사정단의 5문을 설명한다.
(1) 정단의 소연
첫째, 정단正斷의 소연이란 이미 발생했거나 아직 발생하지 않은 대치되어야 할 법과 대치하는 법을 말한다. 제1의 정단의 소연은 이미 발생한 대치되어야 할 법을 경계로 한다. 제2의 정단의 소연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대치되어야 할 법을 경계로 한다. 제3의 정단의 소연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대치하는 법을 경계로 한다. 제4의 정단의 소연은 이미 발생한 대치하는 법을 경계로 한다. 경에서 설한 바와 같이 자세하게 배대해서 풀이해야 한다.
(2) 정단의 본체
둘째, 정단의 본체란 4종의 경계에 대해서 발기하는 정진을 말한다.
(3) 정단의 동반자
셋째, 정단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을 말한다.
(4) 정단을 수습함
넷째, 정단을 수습함이란 경에서 설한 바와 같이 욕구(欲)를 냄, 책려策勵함, 정근을 발기함, 책심策心, 지심持心을 말한다. 이 어구들은 정근正勤을 수습함과 이것의 의지처를 나타낸다. 이것의 의지처란 욕구(欲)를 말한다. 욕구를 우선으로 해서 정진을 발기하기 때문이다. 정근이란 책려함 등20을 말한다. 멈춤(止), 들어 올림(擧), 버림(捨) 등의 상을 작의作意할 때 만약 멈춤(止) 등의 상을 작의해서 소연경계를 되돌아보며 연연하지 않고 순전히 대치를 수습한다면, 그때 ‘책려함’이라 한다. 침몰沈沒과 도거掉擧를 삭감하고자 정근을 발기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침몰 수번뇌가 발생할 때면 그것을 삭감하기 위해 정묘淨妙한 것 등을 작의해서 그 마음을 책려하며 단련한다. 만약 도거 수번뇌가 발생할 때면 소략하게 잡아매는 문을 안에서 증득하여 그 마음을 제지한다면, 그때 ‘정근을 발기함’이라 한다. 이 침몰과 도거를 삭감하는 적절한 방편을 보여 주기 위해 이어서 책심과 지심을 설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학설이 있는데 -
001_0823_a_01L所縛。卽於所說身等諸法。由貪瞋等大
001_0823_a_02L小煩惱。執著縛所縛。對治如是四種縛
001_0823_a_03L故。立四念住。是明念處脩習之果。念
001_0823_a_04L住五門。略說如是。
001_0823_a_05L次明四正斷中五門。正斷所緣者。謂已
001_0823_a_06L生未生所治能治法。初正斷緣已生所
001_0823_a_07L治法爲境。第二正斷緣未生所治法爲
001_0823_a_08L境。第三正斷緣未生能治法爲境。第四
001_0823_a_09L正斷緣已生能治法爲境。如經所說。應
001_0823_a_10L廣配釋。
001_0823_a_11L正斷自體者。謂於四境所起精進。正斷
001_0823_a_12L助伴者。謂彼相應心心法等。正斷脩習
001_0823_a_13L者。謂如經說。生欲策勵。發起正勤。策
001_0823_a_14L心持心。此中諸句。顯脩正勤及所依止。
001_0823_a_15L所依止者。謂欲以欲爲先。發精進故。
001_0823_a_16L正勤者。謂策勵等。於止擧捨相作意等
001_0823_a_17L中。若於止等相作意。不頋戀所緣境界。
001_0823_a_18L純脩習對治。爾時名策勵。爲欲損減沉
001_0823_a_19L沒掉擧。發起正勤。所以者何。若沉沒
001_0823_a_20L隨煩惱生時。爲損減彼故。以淨妙等作
001_0823_a_21L意。策練其心。若掉擧等隨煩惱生時。
001_0823_a_22L卽以內證略攝門。制持其心。爾時名爲
001_0823_a_23L發起正勤。卽爲顯此損減沉掉。善巧方
001_0823_a_24L便。故次說言策心持心。又有別義。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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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3_b_01L이는 앞의 ‘의미를 풀이하는 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5) 정단을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정단을 수습함의 결과란 모든 ‘대치되어야 할 것(所治)’을 끊어 내는 것을 말하고, ‘대치하는 것(能對治)’을 얻거나 증대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 순서대로 배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단의 5문을 설명하면 이와 같다.
3) 사신족
다음에 사신족의 5문을 설명한다.
(1) 신족의 소연
첫째, 신족의 소연이란 이미 원만하게 성취된 삼마지(定)에 의해 지어진 일을 말한다. 이것은 또 무엇인가? 이미 원만하게 성취된 삼마지의 세력에 의해 갖가지 신변神變 등의 일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소연경이다.
(2) 신족의 본체
둘째, 신족의 본체란 삼마지三摩地를 말한다.
(3) 신족의 동반자
셋째, 신족의 동반자란 욕欲, 근勤, 심心, 관觀 그리고 그것들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을 말한다.
(4) 신족을 수습함
넷째, 신족을 수습함이란 8종의 단행斷行을 수습함을 말한다. 8종의 단행이란 의욕(欲), 정진精進, 믿음(信), 경안輕安, 정념正念, 정지正知, 사思, 사捨를 말한다. 이와 같은 8종을 축약하면 4종이 된다. 가행加行, 섭수攝受, 계속繼屬, 대치對治를 말한다. ‘가행’이란 의욕(欲), 정진, 믿음(信)을 말한다. 의욕은 정진의 의지처이고, 믿음은 의욕의 원인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욕구하기 때문에, 이 대상을 얻기 위해 근勤과 정진을 발기한다. 이와 같은 의욕(欲)은 믿음(信受)을 여의지 않는다. 본체가 동등하기 때문이다. ‘섭수’란 경안을 말한다. 이 경안에 의해 몸과 마음이 북돋워지기 때문이다. ‘계속’이란 정념과 정지를 말한다. 소연을 잊지 않음에 의해 마음이 한 경계에 안존하기 때문이다. 만약 방일放逸이 발생한다면 여실하게 알아채기 때문이다. ‘대치’란 사思와 사捨를 말한다. 책심과 지심 두 가행의 세력은 이미 발생한 침몰과 도거를 여의기 때문이다. 또 수번뇌를 여의게 하는 멈춤(止) 등의 상21을 끌어와 일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또 욕欲, 근勤, 심心, 관觀을 수습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모임, 흩어짐, 모임의 원인, 흩어짐의 원인을 멀리하는 것을 수습함이고, 다른 하나는 모이지 않음에 응해서, 흩어지지 않음에 응해서, 그 둘의 의지처에 응해서 수습함이다. 여기서 욕欲 등이 모임, 흩어짐, 그것들의 원인 등 두 종류의 수습함의 의미를 보여 준다. “모임(聚)의 원인”이란 -
001_0823_b_01L前釋義門中說也。正勤脩果者。謂盡棄
001_0823_b_02L於一切所治。於能對治。若得若證。如
001_0823_b_03L其次第。配屬應知。正斷五門略說如
001_0823_b_04L是。
001_0823_b_05L次明四神足中五門。神足所緣者。謂已
001_0823_b_06L成滿定所住事。此復云何。由已成滿三
001_0823_b_07L摩地力。發起種種神變等事。是所緣境。
001_0823_b_08L神足自體者。謂三摩地。神足助伴者。
001_0823_b_09L謂欲勤心觀。及彼相應心心法等。神足
001_0823_b_10L脩習者。謂數脩習八種斷行。謂欲精進
001_0823_b_11L信安正念正知思捨。如是八種略攝爲
001_0823_b_12L四。謂加行攝受繼屬對治。言加行者。
001_0823_b_13L謂欲精進信。欲爲精進依。信爲欲因。
001_0823_b_14L所以者何。由欲求故。爲得此義。發勤
001_0823_b_15L精進。如是欲求。不離信受。有體等故。
001_0823_b_16L攝受者謂輕安。由此輕安。攝益身心故。
001_0823_b_17L繼屬者。謂正念正知。由不忘所緣。安
001_0823_b_18L心一境故。若有放逸生。如實了知故。
001_0823_b_19L對治者。謂思捨。策心持心。二加行力。
001_0823_b_20L已生沉掉。能遠離故。又能引發離隱煩
001_0823_b_21L惱。止等相故。復次欲勤心觀脩有二種。
001_0823_b_22L謂兼因緣聚散遠離脩。不1)劣 [18] 不散。彼
001_0823_b_23L二所依隨順脩。此中顯示欲等。遠聚散
001_0823_b_24L及因緣等。二種脩義。聚因緣者。謂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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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3_c_01L위파사나를 멀리하기 때문에 태만함의 문에 의해 생기는 침몰沈沒을 말한다. “흩어짐(散)의 원인”이란 부정不淨한 상을 멀리하기 때문에 요동침의 문에 의해 생기는 ‘들어 올려짐(高擧)’을 말한다. “모임(聚)”이란 혼침惛沈과 수면睡眠의 문에 의해 안으로 ‘움츠러듦(踧踖)’을 말한다. “흩어짐(散)”이란 정묘淨妙한 상에 응하는 문에 의해 바깥으로 ‘치달려 흩어짐(馳散)’을 말한다. “모이지 않음에 응해서 수습함”이란 관찰의 상에 의지해서 법들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흩어지지 않음에 응해서 수습함”이란 부정不淨한 상에 의지해서 머리카락, 털 등의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그 둘의 의지처에 응해서 수습함”이란 광명光明의 상을 수습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순서에 의해서 세존께서는 “나의 욕구는 열등하지도 않고 월등하지도 않다. 안으로 모이지도 않고 바깥으로 흩어지지도 않는다. 전과 후의 상想이 있고 상과 하의 상想이 있어 그 마음을 열어 일어나게 하고 전纏의 박縛을 여의게 한다. 광명과 함께해서 스스로 그 마음을 수습하여 나의 마음에 암흑과 은폐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다.이제까지 설명한 것은 『대법론』에 나오는 것이다. 이 중 “관찰의 상에 의지해서 법들을 관찰한다.”라는 것은, 그 경의 “전과 후의 상想이 있어 그 마음을 열어 일어나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부정不淨한 상에 의지해서 머리카락 등을 관찰한다.”라는 것은, 그 경의 “상과 하의 상想이 있어 전纏의 박縛을 여의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무엇을 전과 후, 상과 하라고 하는가? 『유가사지론』 제28권에서 “사마타(止)를 수습할 때 지품止品의 상과 하의 상想을 수습하고 위파사나(觀)를 수습할 때 관품觀品의 전과 후의 상想을 수습한다. 상과 하의 상想이란 이 몸이 그것이 놓인 대로, 그것이 원해진 대로 위로는 정수리 위로부터 아래로는 발아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잡류의 부정不淨한 것이 충만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갖가지 잡류의 부정한 것이란 이를테면 이 몸에 있는 갖가지 머리카락, 털, 손발톱, 이빨이니, 앞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전과 후의 상想이란 가령 하나의 관찰되어야 할 상相에 대해서 신중하고 간절하게 잘 파악하고 잘 사려하고 잘 요별하고 잘 통달하는 것을 말한다. -
001_0823_c_01L離毗鉢舍那故。由懈怠所生沉沒。散因
001_0823_c_02L緣者。謂遠離不淨相故。由掉動門所生
001_0823_c_03L高擧。聚者。謂由惛沉睡眠門。於內踧踖。
001_0823_c_04L散者。謂由隨順淨妙相門。於外馳散。
001_0823_c_05L不*劣隨順脩者。謂依觀察相。觀察諸
001_0823_c_06L法。不散隨順脩者。謂依不淨相。觀察
001_0823_c_07L髮毛等事。彼二所依隨順脩者。謂脩光
001_0823_c_08L明相依。如是次第。薄伽梵說。我之欲
001_0823_c_09L樂。無有下劣。亦無高擧。於內不聚。於
001_0823_c_10L外不散。有後前想及上下想。開發其心
001_0823_c_11L遠離纒縛。與光明俱。自脩其心。當令
001_0823_c_12L我心無諸闇蔽。上來說出對法論。此中
001_0823_c_13L依觀察相。觀察諸法者。是顯彼經有前
001_0823_c_14L後想開發其心也。依不淨相觀察髮等
001_0823_c_15L者。是顯彼經及上下想遠離纒縛也。何
001_0823_c_16L等名爲2)後前 [19] 上下。如瑜伽論第二十八
001_0823_c_17L卷云。脩奢摩他時。脩習心品上下想。
001_0823_c_18L脩毗鉢舍那時。脩習觀品前後想。上下
001_0823_c_19L想者。謂觀察此身。如其所住。如其所
001_0823_c_20L顚。上從頂上。下至足下。種種雜類不
001_0823_c_21L淨充滿。謂此身中所有種種髮毛爪齒。
001_0823_c_22L如前廣說。前後想者。謂如有一。於所
001_0823_c_23L觀相。殷重懇到。善取善思。善了善達。
001_0823_c_24L「劣」疑「聚」次同。「後前」疑倒{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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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4_a_01L이를테면 서 있을 때는 앉아 있는 것을 관찰하고, 앉아 있을 때는 누워 있는 것을 관찰한다. 혹은 뒤의 행에 있으면서 앞의 행을 관찰한다. 이것은 위파사나의 행으로 삼세의 연緣에서 생긴 행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만약 서 있을 때 앉아 있는 것을 관찰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현재의 작의로 미래의 알아야 할 바의 행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현재의 작의의 위位는 이미 현재에 발생해 있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라 한다. 미래의 알아야 할 바의 위位는 아직 현재에 발생해 있지 않기 때문에, 곧 발생하고자 하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것이라 한다. 만약 앉아 있을 때 누워 있는 것을 관찰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현재의 작의로 과거의 알아야 할 바의 행들을 관찰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왜 그런가? 이는 현재의 작의의 위는 곧 소멸하고자 하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것이라 하고, 과거의 알아야 할 바의 위는 이미 낙사落謝해서 소멸했기 때문에 누워 있는 것이라 한다. 만약 후의 행에 있으면서 전의 행을 관찰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현재의 작의로 찰나의 간격 없이 소멸한 현행現行의 작의를 관찰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왜 그런가? 만약 이미 발생했기 때문에 찰나의 간격 없이 낙사해서 소멸한 것이라면, 파악되어야 할 작의를 전의 행行이라 한다. 만약 이 찰나의 간격 없이 새롭게 발생하는 파악하는 작의가 전의 찰나의 간격 없이 이미 낙사해서 소멸한 것을 파악한다면 이를 후의 행行이라 한다. 여기서 사마타(止)와 위파나사(觀)를 수습하는 것은 그 두 품류의 월등한 광명의 상想을 수습하는 것이기에 이를 상想의 수습이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타 어구의 상호 관계 또한 이에 준하면 알 수 있다. 이를 신족을 수습함의 상이라 한다.
(5) 신족을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신족을 수습함의 결과란, 이미 잘 대치해서 삼마지를 수습했기 때문에 통달해야 할 법을 증득하고자 욕구하는 대로, 마음이 통달하는 대로 변현할 수 있다. 또 갖가지 처소의 법에 대해서 감능堪能을 증득해서 자재롭게 작용한다. 원하는 대로 갖가지 신통 등의 일을 성취한다. 또 월등한 품류의 공덕을 끌어와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신족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4) 오근
다음에 오근五根의 5문의 구별에 대해 설명하겠다.
(1) 오근의 소연
첫째, 오근의 소연이란 만약 공통되는 행行에 의거한다면 사성제를 연하고, 만약 공통되지 않는 행行에 의거한다면 비안립제非安立諦를 연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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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4_a_01L謂住觀於坐。坐觀於臥。或在後行。觀
001_0824_a_02L察前行。謂若說言住觀於坐。此則顯示
001_0824_a_03L以現在作意觀察未來所知諸行。所以
001_0824_a_04L者何。現在作意位已現生故。說名爲住。
001_0824_a_05L未來成所知位未現生故。臨欲起故。說
001_0824_a_06L名爲坐。若復說言坐觀於臥。此則顯示
001_0824_a_07L以現在作意觀察過去所知諸行。所以
001_0824_a_08L者何。現在作意位臨欲滅故。說名爲坐。
001_0824_a_09L過去所知位已謝滅故。說名爲臥。若復
001_0824_a_10L說言。或在後行。觀察前行。此則顯示
001_0824_a_11L以現在作意觀察無間滅現行作意。所
001_0824_a_12L以者何。若已生故。無間謝滅。所取作
001_0824_a_13L意。說名前行。若此無間新生能取作意。
001_0824_a_14L取前無間已謝滅者。說名後行。當知此
001_0824_a_15L中爲脩止觀。脩二品勝光明想。是名想
001_0824_a_16L脩故。餘句相屬准之可知。是名神足脩
001_0824_a_17L習之相。神足脩果者。謂已善脩治三摩
001_0824_a_18L地故。隨所欲證所通達法。卽能隨心通
001_0824_a_19L達變現。又於別別處所法中。證得堪能。
001_0824_a_20L自在作用。如所願樂。能辨種種神通等
001_0824_a_21L事。又能引發勝品功德。神足五門略說
001_0824_a_22L如是。
001_0824_a_23L次明五根五門差別。五根所緣者。若約
001_0824_a_24L共行緣四聖諦。若約不共行緣非安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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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4_b_01L(2) 오근의 본체
둘째, 오근의 본체란 신信, 근勤, 염念, 정定, 혜慧를 말한다.
(3) 오근의 동반자
셋째, 오근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을 말한다.
(4) 오근을 수습함
넷째, 오근을 수습함이란 신근信根은 제諦들에 대해서 인가忍可의 행行의 수습을 일으키고, 정진근精進根은 식별하기 위해 정진의 행의 수습을 일으키고, 염근念根은 망실하지 않음의 행의 수습을 일으키고, 정근定根은 ‘마음을 한 경계에 놓음(心一境性)’의 행의 수습을 일으키고, 혜근慧根은 간택簡擇의 행의 수습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대지도론』에서 “신근이란 일체의 법이 인과 연들에 의지해서 발생한다는 것을 믿고, 전도된 허망한 견해는 과거에도 있지 않고 미래에도 있지 않고 현재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법들의 공성, 무상無相, 무원無願, 불생불멸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지계, 선정, 지혜, 해탈, 해탈지견 등의 법을 믿는 것이다. 내지 혜근이란 법들의 실상에 이롭게 들어가 장애가 없고 난관이 없다. 세간에는 근심이 없고 열반에는 기쁨이 없어, 자재로운 지혜를 얻기 때문에 혜근이라 한다.”고 한다. 이것을 오근을 수습함에 대한 간략한 상이라 한다.
(5) 오근을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오근을 수습함의 결과란, 신속히 제諦의 현관現觀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 증상增上의 세력에 의해 오래지 않아 견도見道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난煖과 정頂을 닦아 다스리고 인忍과 세제일법世第一法을 끌어와 일어나게 해서, 이 몸(身)이 현현한 채 순결택분順決擇分의 계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오근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5) 오력
다음에 오력五力의 5문의 구별에 대해 설명하겠다.앞의 4문은 근根과 유사하다. 오직 수습함의 결과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믿지 않음(不信) 등의 장애를 덜어 내는 것, 굴복되지 않는 것이 앞의 것을 월등하게 넘어서 있다.22 오력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6) 칠각지
다음에 칠각지의 5문의 상에 대해 설명하겠다.
(1) 각지의 소연
첫째, 각지의 소연이란 만약 이승二乘의 안립제의 문에 의거한다면 인공人空이 경계이고, 만약 보살의 안립제와 비안립제의 문에 의거한다면 인공과 법공法空 이공二空이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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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4_b_01L諦。五根自體者。謂信勤念定慧。五根
001_0824_b_02L助伴者。謂彼相應心心法等。五根脩習
001_0824_b_03L者。謂信根於諸諦起忍可行脩。精進根
001_0824_b_04L爲覺悟故起精進行脩。念根起不忘失
001_0824_b_05L行脩。定根起心一境性行脩。慧根起簡
001_0824_b_06L擇行脩。智度論云。信根者。信一切法。
001_0824_b_07L從因緣生。顚倒妄見。不在過去。不在
001_0824_b_08L未來。不在現在。信諸法空。無相無作。
001_0824_b_09L不生不滅。而信持戒禪定智慧解脫解
001_0824_b_10L脫知見等法。乃至慧根者。於諸法實相。
001_0824_b_11L和入無礙無難。於世間無憂。於涅槃無
001_0824_b_12L喜。得自在智慧。故名慧根。是名五根
001_0824_b_13L脩習略相。五根脩果者。謂能速發諦現
001_0824_b_14L觀。由此增上力。不久能生見道故。又
001_0824_b_15L能脩治𤏙頂。引發忍世第一法。卽現此
001_0824_b_16L身已。入順決擇分位故。五根五門略說
001_0824_b_17L如是。
001_0824_b_18L次明五力五門差別。前之四門與根相
001_0824_b_19L似。唯脩習果。少有差別。謂能損減不
001_0824_b_20L信等障。不可屈伏。勝過於前。五力五
001_0824_b_21L門略說如是。
001_0824_b_22L次明七覺支五門相。覺支所緣者。若就
001_0824_b_23L二乘安立諦門。所顯人空。若就菩薩安
001_0824_b_24L立非安立諦門中。人法二空以爲境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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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4_c_01L(2) 각지의 본체
둘째, 각지의 본체란 염念, 택법擇法, 정진精進, 희喜, 경안輕安, 정定, 사捨를 말한다. 이와 같은 7법이 각지의 본체이다. 또 이 7법은 세 부류로 축약될 수 있다. 『유가사지론』에서 “3각지는 사마타(止)의 부류에 속하고, 3각지는 위파사나(觀)의 부류에 속하고, 1각지는 두 부류 모두에 속한다. 그래서 7종의 각지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택법, 정진, 희喜 이 셋은 위파사나의 부류에 속한다. 경안, 정定, 사捨 이 셋은 사마타의 부류에 속한다. 염각지 1종은 두 부류 모두에 속하기에 이를 변행遍行이라 한다.”고 한다. 『대지도론』에서 “염각지는 두 곳에 있다. 선법은 수집하고 악법은 차단한다. 마치 문지기가 유익한 사람은 들여보내고 무익한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이 가라앉을 때면 염이 3법(택법·정진·희喜)을 솟아오르게 하고, 만약 마음이 흩어질 때면 염이 3법(경안·정定·사捨)을 잡아매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3) 각지의 동반자
셋째, 각지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 등을 말한다.
(4) 각지를 수습함
넷째, 각지를 수습함이란 공통되는 것과 공통되지 않는 것이 있다. 공통되는 것을 수습함의 상이란, 『대법론』에서 “원리遠離, 무욕無欲, 적멸寂滅, 내버림(棄捨)으로 회향하는 것에 의지해서 염각지念覺支 내지 사각지捨覺支를 수습한다. 이와 같은 4구는 그 순서대로 제諦를 연해서 각지를 수습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고제를 연해서 고가 핍뇌逼惱할 때면 고의 경계에 대해서 원리遠離를 구하기 때문에 원리에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애愛의 상을 연해서 고가 집기集起할 때면 이 경계에 대해서 반드시 이욕離欲을 구하기 때문에 이욕에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고의 멸을 연해서 고가 멸할 때면 이 경계에 대해 반드시 작증作證을 구하기 때문에 적멸寂滅에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내버림(棄捨)이란 고를 멸하기 위한 행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세력에 의지해서 고를 내버리기 때문이다. 이 경계에 대해 반드시 수습을 구하기 때문에 내버림으로 회향한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것을 공통되는 것을 수습함이라 한다.공통되지 않는 것을 수습함이란, 『대지도론』에서 “일체의 법에 대해 기억하지 않고 억념하지 않는 것 이것을 염각분念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법에 대해 선법, -
001_0824_c_01L覺支自體者。謂念擇法精進喜安定捨。
001_0824_c_02L如是七法是覺支體。又此七法三品所
001_0824_c_03L攝。如瑜伽說。三覺支奢摩他品攝三覺
001_0824_c_04L支。毗鉢舍那品攝一覺支。通二品攝。
001_0824_c_05L是故說名七種覺支。謂擇法精進喜。此
001_0824_c_06L三觀品所攝。安定捨此三止品所攝。念
001_0824_c_07L覺支一種俱品所攝。說名所行。智度論
001_0824_c_08L云。念覺支在二處。能集善法。能遮惡
001_0824_c_09L法。如守門人。有利者令入。無益者除
001_0824_c_10L却。若心沒時念三法起。若止散時念三
001_0824_c_11L法攝故。覺支助伴者。謂彼相應心心法
001_0824_c_12L等。覺支脩習者。有共不共。共脩相者。
001_0824_c_13L如對法說。依遠離無欲寂滅廻向棄捨。
001_0824_c_14L脩念覺支乃至捨覺支。如是四句。隨
001_0824_c_15L其次第。顯示緣諦脩習覺支。所以者何。
001_0824_c_16L若緣苦諦。爲苦惱時。於苦境界求遠離
001_0824_c_17L故。名依止遠離。若緣愛相爲苦集時。
001_0824_c_18L於此境界。必求離欲。故名依止離欲。
001_0824_c_19L若緣苦滅。爲苦滅時。於此境界。必求
001_0824_c_20L作證。故名依止。寂靜棄捨者。謂起苦
001_0824_c_21L滅行。由此勢力。棄捨苦故。於此境界
001_0824_c_22L必求脩習故。名廻向棄捨。是名共脩。
001_0824_c_23L不共脩者。如智度說。於一切法。不憶
001_0824_c_24L不念。是名念覺分。一切法中求索善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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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5_a_01L불선법, 무기법을 추구해 보아도 모두 얻을 수 없는 것 이것을 택법각분擇法覺分이라 한다. 삼계三界에 들어가지 않고 삼계의 상을 파괴하는 것 이것을 정진각분精進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지어진 법에 대해 즐거움(樂)에 집착함을 내지 않아 슬픔(憂)과 기쁨(喜)의 상이 파괴되기 때문에 이를 희각분喜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법에 대해 제除(경안輕安)의 마음을 연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제각분除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법이 항상 정定의 상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 흩어지지도 않고 모이지도 않는 것 이를 정각분定覺分이라 한다. 일체의 법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또한 보지 않는 이 사捨의 마음 이를 사각분捨覺分이라 한다.”고 한다. 또 “실상을 보는 지혜에 대해 기쁨(喜)을 내는데 이를 참된 기쁨이라 한다. 이 참된 기쁨을 얻었을 때 먼저 몸의 추중麤重을 제거하고 뒤에 마음의 추중을 제거한다. 연후에 일체의 법의 상을 제거해서 즐거움(快樂)을 얻으면 이것이 몸과 마음에 편만하니, 이를 제각분除覺分이라 한다. 이미 기쁨과 제除를 얻고 나면 관행觀行을 내버린다. 관행이란 이를테면 무상無常, 고苦, 공空 등을 관찰하는 것이고 유有, 무無, 비유비무非有非無 등을 관찰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희론戲論이 없는 것이 실상實相이다. 만약 사捨를 행하지 않는다면 쟁諍들이 있다. 만약 유를 실實이라 한다면 무는 허虛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무를 실이라 한다면 유는 허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비유비무를 실이라 한다면 유와 무는 허라고 하는 것이다. 실에 애착하면 허를 증오하게 된다. 슬픔(憂)과 기쁨(喜)의 처소를 생하는데 어찌 사捨라 하겠는가? 이와 같이 기쁨(喜), 제除, 사捨를 얻으면 칠각분이 원만하게 갖춰지게 된다.”고 한다. 이 경우 제除란 경안이다. 능히 추중을 제거하기에 제除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분의 수습의 상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5) 각지를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각지를 수습함의 결과란, 견도에서 끊게 되는 번뇌를 영원히 끊는 것을 말한다. 그 공통되지 않는 것의 각분의 결과를 설명한다면, 부처의 집에 태어나 5종의 두려움(怖畏)이 없게 되고 백법百法을 밝히는 문을 얻어 백불百佛의 세계를 움직이게 하니, 이와 같은 내용을 경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다. 각지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7) 팔성도지
다음에 팔성도지八聖道支의 5문을 설명하겠다.
(1) 팔성도지의 소연
첫째, 팔성도지의 소연이란 -
001_0825_a_01L不善法無記法。皆不可得。是名擇法覺
001_0825_a_02L分。不入三界。破壞諸界相。是名精進
001_0825_a_03L覺分。於一切作法。不生著樂。憂喜相
001_0825_a_04L增故。是名喜覺分。於一切法中除心緣。
001_0825_a_05L不可得故。名除覺分。1)者 [20] 一切法常定
001_0825_a_06L相。不亂不定是名定覺分。於一切法不
001_0825_a_07L著不依止。亦不見是捨心。是名捨覺分。
001_0825_a_08L又觀實相智慧中生喜。是名眞喜。得是
001_0825_a_09L眞喜。先除身喜。次除心喜。然後除一
001_0825_a_10L切法相得快樂。遍身心中。是爲除覺分。
001_0825_a_11L旣得喜除捨諸觀行。所謂無常苦空等
001_0825_a_12L觀。有無非有非無等觀。何以故。無戱
001_0825_a_13L論是實相。若不行捨。便有諸諍。若以
001_0825_a_14L有爲實。以無爲虛。若以無爲實。則以
001_0825_a_15L有爲虛。若以非有非無爲實。則以有無
001_0825_a_16L爲虛。於實愛著。於虛憎恚。生憂喜處云
001_0825_a_17L何不捨。得如是喜。除捨七覺分具足滿。
001_0825_a_18L此中除者。卽是輕安。能除麤重。故名
001_0825_a_19L爲除。是爲略說覺分脩相。覺支脩果者。
001_0825_a_20L謂見道所斷煩惱永2)▣。▣ [21] 其不共覺分
001_0825_a_21L果者。生在佛家離五怖畏。得百法明門。
001_0825_a_22L動百佛世界等。廣說如經也。覺支五門。
001_0825_a_23L略說如是。
001_0825_a_24L次明八聖道支五門。八聖道所緣者。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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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5_b_01L이 뒤 시기의 사성제의 여실성如實性과 일체의 진소유성盡所有性을 말한다. 여소유성如所有性은 모두 수도위修道位의 소연이기 때문이다.
(2) 팔성도지의 본체
둘째, 팔성도지의 본체란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을 말한다. 이와 같은 8법이 성도지聖道支의 본체이다. 또 이 8법은 삼온三蘊에 속한다. 『유가사지론』에서 “이 중 정견, 정사유, 정정진은 혜온慧蘊에 속하고, 정어와 정업과 정명은 계온戒蘊에 속하고, 정념과 정정은 정온定溫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무슨 이유로 각지覺支(칠각지)는 3품에 속하고, 이 도지道支(팔성도지)는 삼온에 속한다고 설하는가? 견도見道에서는 사마타(止)와 위파사나(觀)가 짝이 되어 운용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다른 방편의 도道는 짝이 되어 운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修道에서는 이 삼온을 수습해야 무학위無學位의 해탈온解脫蘊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의 온蘊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3) 팔성도지의 동반자
셋째, 팔성도지의 동반자란 그것과 상응하는 심과 심소법을 말한다.
(4) 팔성도지를 수습함
넷째, 팔성도지를 수습함이란, 만약 그 공통되는 행行이라면 각지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만약 공통되지 않는 행이라면, 『대지도론』에서 “보살은 일체의 법이 공해서 얻음이 없는, 이와 같은 정견에 머물면서 정사유의 상을 관찰할 때 일체의 사유가 모두 그릇됨을 안다.……내지 열반을 사유할 때, 부처들을 사유할 때도 또한 이와 같다. 이유가 무엇인가? 일체의 사유의 분별을 끊는 것 이를 정사유라고 한다. 이와 같은 정사유에 머물기에 이것은 바르다, 이것은 그르다 하고 보지 않는다. 일체의 사유의 분별을 넘어서기에 이를 정사유라 하는 것이다. 일체의 사유의 분별은 모두 평등하고, 모두 평등하기에 마음이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들을 정사유라 한다. 운운.”라고 한다.
(5) 팔성도지를 수습함의 결과
다섯째, 팔성도지를 수습함의 결과란, 분별해서 타인에게 가르쳐 보이고 타인에게 믿게 하여, 번뇌의 장애를 청정하게 하고 수번뇌의 장애를 청정하게 하고 가장 월등한 공덕의 장애를 청정하게 해서 무량하고 월등한 공덕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도지의 5문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
001_0825_b_01L卽此後時四聖諦如實性。及與一切盡
001_0825_b_02L所有性。如所有性。皆是脩道位所緣故。
001_0825_b_03L八聖道自體者。正見正思惟正語正業
001_0825_b_04L正命正精進正念正定。3)知 [22] 是八法是道
001_0825_b_05L支體。又此八法三蘊所攝。如瑜伽說。
001_0825_b_06L此中正見正思惟正精進。慧蘊所攝。正
001_0825_b_07L語正業正命。戒蘊所攝。正念正定。定
001_0825_b_08L蘊所攝故。何故覺支三品所攝。說此道
001_0825_b_09L支三蘊攝者。爲顯見道止觀雙運。異方
001_0825_b_10L便道不得雙故。爲顯脩道。脩此三蘊。
001_0825_b_11L能得無學位解脫蘊。及與解脫知見蘊
001_0825_b_12L故。道支助伴者。謂彼相應心心法等。
001_0825_b_13L道支脩習者。若其共行如覺支說。不共
001_0825_b_14L行者如智度說。菩薩於諸法。空無所得。
001_0825_b_15L住如是正見中觀正思惟相。知一切思
001_0825_b_16L惟皆是邪。乃至思惟涅槃。思惟諸佛
001_0825_b_17L皆亦*知是。以何故。斷一切思惟分別。
001_0825_b_18L是名正思惟。住如是正思惟中。不見是
001_0825_b_19L正是*耶。過諸思惟分別。是爲正思惟。
001_0825_b_20L一切思惟分別皆悉平等。平等故心不
001_0825_b_21L著。如是等名爲正思惟。乃至廣說。道
001_0825_b_22L支脩果者。謂分別4)海 [23] 示他。令信煩惱
001_0825_b_23L障淨。隨煩惱障淨。最勝功德障淨。能
001_0825_b_24L得無量殊勝功德故。是爲略說道支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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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5_c_01L보리분법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제2장 본문 풀이다음에 본문을 따라가며 풀이하겠다.
1. 논의 일으키는 부분을 풀이함논 네 번째, 대치를 수습함에 관한 품(對治修住品第四)
대치를 수습함이란 37도품道品을 수습하는 것이다. 이제 (이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 논에서 최초에 (다음의 것을) 설한다.
소 본문 중 먼저 논論의 일으키는 부분에 대해 풀이한다. 이것은 두 구절로 되어 있다. 앞 구절은 합해서 일으키는 것이고, 뒤 구절은 나누어 일으키는 것이다. “이 논에서 최초에 (다음의 것을) 설한다.”란 ‘이 품에서 최초에 사념처를 설한다.’는 것을 말한다.
2. 게송과 주석을 풀이함송頌은 합하면 12송 반이 있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1송은 대치를 나누어 밝히고, 뒤의 1송 반은 대치를 합해서 설한다. 앞의 11송은 문의 형세가 여섯으로 되어 있다. 첫째 최초의 1송은 사념처四念處를 밝히고, 둘째 다음의 1송은 사정근四正勤을 밝히고, 셋째 3송 반은 여의족如意足을 밝히고, 넷째 2송은 근根과 역力을 합해서 밝히고, 다섯째 1송 반은 칠각지를 밝히고, 여섯째 2송은 팔성도를 밝힌다.
1) 대치를 나누어 밝힘
(1) 사념처
논
麤行貪因故 추중한 행이기에, 탐욕의 원인이기에
種故不迷故 종자이기에, 혼미하지 않기에
爲入四諦故 사제에 들어가기 위해
修四念處觀 사념처의 관을 수습하네 ≺1≻
몸(身)에 의해 추중한 행이 현현한다. 추중한 행을 사택思擇해서 고제에 들어간다. 이 몸은 추대한 행行들을 상相으로 하기 때문이다. 추대함이란 행고行苦이다. 이 행고로 인해 일체의 유루의 법들 이것들에 대하여 성인은 고제를 본다. 수受란 탐애의 의지처이다. 수들을 사택해서 집제에 들어간다. 마음(心)이란 아집我執의 의지처이다. 이 마음을 사택해서 멸제에 들어간다. 아我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없애 주기 때문이다. 법法이란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 두 부류이다. 이 법을 사택해서,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에 대한 무명無明이 없기 때문에, 도제에 들어간다.그러므로 최초에, 사제에 들어가기 위해, 사념처를 수습함이 안립된다.
소 사념처를 밝히는 최초의 1송에서 앞의 반은 나누어서 밝히는 것이고, 뒤의 반은 합해서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념처를 건립하는 일은 크게 보아 3종의 의미가 있다. 첫째 사전도四顚倒를 대치하기 위해, 둘째 사박四縛에서 벗어나기 위해, 셋째 사제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3종의 구별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이제 여기서는 세 번째 의미를 설명한다. “추중한 행”이란 신념처身念處의 색신色身이다. 추중이 수반되는 것은 경안이 없다. 이것은 행고行苦의 상이 있다. 그러므로 몸(身)을 관찰해서 고제에 들어간다. “탐욕의 원인”이란 수념처受念處를 나타낸다. 6종의 수受는 6종의 탐애貪愛를 일으킨다. 탐애는 삼유三有의 고苦의 집취를 불러와 모은다. 그러므로 이것을 관찰해서 집제에 들어간다. “종자이기에”란 심념처心念處를 나타낸다. 마음(心)은 종자를 집지執持하기에 법들의 근본根本이다. 아我는 지말枝末이다. 없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마음을 여실하게 관찰할 때 멸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혼미하지 않기에”란 법념처法念處를 나타낸다. 법들이 잡염과 청정의 부류로 구별되는 것을 -
001_0825_c_01L門。菩提分義略說如是。
001_0825_c_02L次消其文。[釋論發起]文中在先釋論發起。於中二
001_0825_c_03L句。初句總發。下句別起。此論中初說
001_0825_c_04L者。謂此品初說四念處也。
001_0825_c_05L[釋偈頌註釋]偈中合有十二頌半。於中有二。前十一
001_0825_c_06L頌。別明對治。後一頌半。總說對治。前
001_0825_c_07L十一中文5)▣ [24] 有六。一初一頌明四念處。
001_0825_c_08L二次一頌明四正勤。三三頌半明如意
001_0825_c_09L足。四有二頌總明根力。五一頌半明七
001_0825_c_10L覺分。六有二頌明八聖道。
001_0825_c_11L[別明對治]初一頌明四念處中。上半別顯。下半總
001_0825_c_12L明。然立四念處。略有三意。一爲治四
001_0825_c_13L倒故。二爲脫四縛故。三爲入四諦故。
001_0825_c_14L三種差別如前已說。今於此中。說第三
001_0825_c_15L義。言麤行者。是身念處。所有色身。麤
001_0825_c_16L重所隨。遠離輕安。是行苦相。是故觀
001_0825_c_17L身從入苦諦。言貪因者。顯受念處。▣
001_0825_c_18L種受起六貪愛。貪愛招集三有苦聚。所
001_0825_c_19L以觀此。能入▣諦。言種*或者。顯心念
001_0825_c_20L處。心持種子。作諸法本。我是▣▣。怖
001_0825_c_21L畏斷滅。如實觀心。趣入滅諦故。不迷
001_0825_c_22L故者。顯法念處。諸法品類。染淨差別。
001_0825_c_23L「者」疑「於」。▣▣疑「斷若」。「知」疑「如」
001_0825_c_24L次同。「海」疑「誨」或「顯」。▣疑「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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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6_a_01L무명無明이 알지 못해서 명明인 혜慧를 덮고 가로막는다. 법의 상에 혼미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따라서 도제에 들어간다. 뒤의 반에서 “사제에 들어가기 위해”란 해야 할 바를 합해서 밝히는 것이다 “사념처의 관을 수습하네.”란 수습을 합해서 밝히는 것이다.
세친世親(바수반두)의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송의 위의 반을 주석하는 것이고, 뒷부분은 송의 뒤의 반을 주석하는 것이다. 앞의 “추중한 행”을 주석하는 부분에서, 앞부분은 송문을 간략하게 주석하는 것이고, 뒷부분은 거듭 분별하는 것이다. 앞의 “몸身에 의해 추중한 행이 현현한다.”란 『대법론』에서 “실재하는 색신은 모두 행고行苦의 상이 있다. 추중이 현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행觀行을 수습할 때 이 경안을 닦는다. 몸의 차별에 있어서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여기서 “추중한 행이 현현한다.”란 추중한 행의 고가 현현한다는 것이다. “이 몸” 이하는 앞의 의미를 거듭 밝히는 것이다. “추대함이란 행고의 상이다.”23는 “대大”란 “중重”이니 “추중이란 행고의 상이다.”를 의미한다. 다른 문장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하는 송의 아래의 반을 합해서 풀이하는 것이다.
(2) 사정근
논 다음에 정근을 수습한다.
已知非助道 도를 돕지 않는 것
一切種對治 대치를 모든 종류로 이미 알았네
爲上二種故 위의 두 종류를 위해
修習四正勤 사정근을 수습하네 ≺2≻
사념처를 완전하게 수습했기 때문에 도道를 돕지 않는 흑법과 도를 돕는 백법의 모든 종류에 대해서 명료하게 보았기 때문이다.도를 돕지 않는 법을 소멸하게 하기 위해, 도를 돕는 법을 발생하게 하기 위해 4종의 정근이 일어난다. “첫째, 이미 발생한 비선非善의 악법을 소멸하게 하기 위해 운운.” 하며 경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다. 소멸하게 하기 위해, 차단하기 위해, 발생하게 하기 위해, 증장하게 하기 위해.
소 “다음에 정근을 수습한다.”란, 첫째로 아래의 본문을 일으키는 것이고, 이 아래는 둘째로 사정근을 밝히는 것이다. 송은 둘로 되어 있다. 위의 반은 앞의 것을 다시 거론하고 뒤의 것을 일으키는 것이다. 뒤의 반은 앞의 것을 이어서 이에 편승해서 정근을 밝히는 것이다. 앞의 법념처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잡염의 법은 도道를 돕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또 청정의 법은 그것을 대치한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래서 “도를 돕지 않는 것, 대치를 모든 종류로 이미 알았네.”라고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와 같이 이미 발생한 잡염의 법은 소멸하게 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잡염의 법은 발생하지 않게 한다. 위에서와 같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청정의 법은 발생하게 하고, 이미 발생한 청정의 법은 증장하게 한다. 그래서 “위의 두 종류를 위해 사정근을 수습하네.”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송의 위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고, “도를 돕지 않는 법을 소멸하게 하기 위해” 이하인 뒷부분은 송의 아래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다. 본문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3) 여의족
논
隨事住於彼 대상에 따라 그것에 안주하게 되네
爲成就所須 바라던 바를 성취하게 되네
捨離五失故 5종의 과실을 내버리기 위해
修習八資糧 8종의 자량을 수습하네 ≺3≻
흑법과 백법 2종의 법을 멀리하거나 얻기 위해 정근을 수습했을 때, 마음은 장애가 없고 (도를) 돕는 것이 있기 때문에 안주하게 된다. 이 마음의 안주는 4종의 역능이 있다. 4종의 역능이란 하나하나가 가르침(敎)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다. “가르침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란 사여의족을 말한다. 모든 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취하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안주란 마음의 안주이니 삼마제三摩提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정근 후 순서대로 사여의족을 설하는 것이다. 대상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안주한다란, 5종의 과실을 멸하기 위해 8종의 자량을 수습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 이하 셋째 여의족을 밝힌다. 3송 반이 있는데 세 단락으로 되어 있다. 첫째 단락인 제1구는 본체를 제시하는 것이고, 둘째 단락인 제2구는 이름을 풀이하는 것이고, 셋째 단락은 3송으로 되어 있는데 수습의 상을 밝히는 것이다.제1구 “대상에 따라 그것에 안주하게 되네.”란, 전 단계에서 정근을 수습해서 -
001_0826_a_01L無明不了。覆障明慧。不迷法相。順入
001_0826_a_02L道諦故。下半中。言爲入四諦故者。總
001_0826_a_03L顯所爲。脩四念處觀者。總明能脩。釋
001_0826_a_04L中有二。先釋上半。後釋下半。初中卽
001_0826_a_05L釋麤行中。先略釋文。後重分別。初言
001_0826_a_06L由身故麤行得顯者。如對法說。所有色
001_0826_a_07L身皆行苦相。麤重所顯故。是故脩觀行
001_0826_a_08L時。能治此輕安。於身差別生故。今言
001_0826_a_09L麤行得顯者。麤重行苦得顯現也。此身
001_0826_a_10L以下重顯前義。言麤大者是行苦相者。
001_0826_a_11L大之言重。謂麤重是行苦相也。餘文可
001_0826_a_12L見。是故以下總釋下半。
001_0826_a_13L次脩正勤。一者發起下文。此下第二明
001_0826_a_14L四正勤。頌中有二。上半1)勝 [25] 前以發於
001_0826_a_15L後。下半係前乘顯正勤。如前所說。法
001_0826_a_16L念處中。已知染法是非助道。又知淨法。
001_0826_a_17L是彼對治。故言已知乃至對治。如上染
001_0826_a_18L法。已生者滅。未生不起。爲上淨法。未
001_0826_a_19L生令生。生者增長。故言爲上二種故。
001_0826_a_20L脩習四正勤也。釋中有二。先釋上半。
001_0826_a_21L爲滅離下。次釋下半。文相可知。
001_0826_a_22L此▣▣三明如意足。有三頌半。卽爲三
001_0826_a_23L段。初句出體。次句釋名。後有三頌。明
001_0826_a_24L脩習相。初言隨事住於彼者。前脩正勤。
-
001_0826_b_01L악이 소멸하고 선이 발생하게 되면 이에 따라 “장애는 없고 도를 돕는” 대상은 있게 되므로 ‘마음이 한 경계에 놓임(心一境性)’에 안주하게 된다. 마음의 소연경계는 두 종류를 벗어나지 않는다. 산란하고 추대한 경계와 정려靜慮의 경계이다. 이 산란하고 추대한 경계를 내버리고 그 정려의 경계에 안주하게 되므로 “그것에 안주하게 되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한 경계에 놓임’에 안주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사마타(止)가 사여의족의 본체이다. 넷이 증상함에 따라 삼마지(定)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제2구 “바라던 바를 성취하게 되네.”란, 이것은 둘째 여의족의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다. “성취함”이 여의如意의 의미이고, “바라던 바(所須)”가 족足의 의미이다. 여의해서 “바라던 바(所欲)”가 성취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은 육신통六神通의 자재로움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육신통은 네 발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마치 가야 할 곳이 있을 때 반드시 두 발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필요로 하는 바(所須)”로서 그 발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결과를 들어서 원인으로 삼기에 여의족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하 3송은 수습의 상을 밝힌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두 구는 수를 들어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의 두 송 반은 순서대로 나누어서 풀이하는 것이다. 합해서 표방하는 것은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앞의 구는 5종의 과실을 내버리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고, 뒤의 구는 8종의 자량을 수행하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위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고, 뒷부분은 아래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다. 앞부분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나누어서 풀이하는 부분과 합해서 밝히는 부분이다. 나누어서 풀이하는 부분 중 앞부분은 앞의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있는 대로 풀이하는 부분과 거듭해서 보여 주는 부분이다. 있는 대로 풀이하는 부분 중 “흑법과 백법 2종의 법을 멀리하거나, 내지 정근을 수습했을 때”란, 수반되는 대상을 들어서 ‘대상(事)’이라는 단어를 풀이한 것이다. 다음에 “마음은 장애가 없고 (도를) 돕는 것은 있기 때문에”란, 수반하는 것인 마음(心)을 다시 거론하고 이어서 ‘수반되는 것(隨)’이라는 단어를 풀이한 것이다. “때문에 안주하게 된다.”란 “그것에 안주하게 되네.(住於彼)”를 풀이한 것이다. “이 마음의” 이하는 앞의 의미를 거듭해서 보여 준 것이다. “이 마음의 안주는 4종의 역능이 있다.”란, 이 마음의 안주가 성취되면 4종의 월등한 역능이 있게 된다. 욕欲의 증상, 근勤의 증상, 심心의 증상, 관觀의 증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4종의 역능은 대상을 수반해서 마음의 안주를 성취하게 한다. 하나하나가 모두 성스러운 말씀인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이 한 경계에 놓임(心一境性)’을 성취하기에 -
001_0826_b_01L滅惡生善。隨是無障。有助之事。故得
001_0826_b_02L住心於一境性。心所緣境不出二種。謂
001_0826_b_03L散麤境及靜慮境。捨此散麤境。住彼靜
001_0826_b_04L慮境。以之故言住於彼也。是明心住於
001_0826_b_05L一境性止。爲四如意足體性。隨四增上
001_0826_b_06L而得定故。次言爲成就所說者。是第二
001_0826_b_07L釋如意足義成就。是如意義。所順是其
001_0826_b_08L足義。如義所欲。無不成就。卽是六通
001_0826_b_09L自在之義。如是六通。名須四足。如有
001_0826_b_10L所至。必須兩足。故以所須。釋其足義。
001_0826_b_11L擧果曰因。名如意足也。此下三頌。明
001_0826_b_12L脩習相。於中有二。初之二句擧數總標。
001_0826_b_13L下二頌半隨次別解。總標中亦有二。初
001_0826_b_14L句標所脩行捨失。下句標所。
001_0826_b_15L釋中有二。初釋上半。後釋下半。初中
001_0826_b_16L亦二。別釋。總明。別釋之中。先釋初句。
001_0826_b_17L於中亦二。正釋。重顯。正釋中言爲離
001_0826_b_18L▣▣正勤已者。擧所隨事。以釋事字。
001_0826_b_19L次言心者。無彰有。助者。牒能隨心。次
001_0826_b_20L釋隨字。故得住者。釋住於彼也。此心
001_0826_b_21L以下重顯前義。言此心住有四能者。成
001_0826_b_22L此心住有四勝能。謂欲增上及勤心觀。
001_0826_b_23L如是四能作。但隨事能成心住。一一皆
001_0826_b_24L隨聖言師敎。乃得成就心一境性。故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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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6_c_01L“하나하나가 가르침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유가사지론』 제98권에서 “만약 어떤 비구가 청정한 의향(意樂)과 맹렬한 의욕(欲)에 의지해서 가장 월등한 신통의 혜慧를 증득하고자 한다면 여래들과 불제자들을 은중殷重하고 공경하며 정법正法을 듣고, 듣고서 즉각 점차 월등한 삼마지를 증득하게 되는데, 이를 증상된 욕欲의 삼마지라 한다. 또 만약 어떤 비구가 법을 들은 대로, 법을 얻은 대로 큰 공용功用을 일으키고 큰 정진을 일으키거나, 혹은 바르게 타인을 위해 언명하고 설명하거나, 혹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의미가 담긴 말을 독송한다면 이로부터 즉각 점차 인연이 되어 월등한 삼마지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를 증상된 근勤의 삼마지라 한다. 또 만약 어떤 비구가 현선賢善들의 삼마지의 상에 대해 잘 사유를 취하고 청어靑瘀 등 내지 골쇄骨鎖의 관觀을 최대한 행할 때 이 소연所緣에 의해 순서대로 월등한 삼마지가 생기하는데, 이를 증상된 심心의 삼마지라 한다. 또 어떤 비구가 법을 들은 대로, 법을 얻은 대로 한적한 곳에 홀로 거처하며 사유하고 잘 헤아리고 상세히 관찰한다면 이 인연에 의해 점차 월등한 삼마지가 생기하는데, 이를 증상된 관觀의 삼마지라 한다. 운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네 유형의 사람은 모두 법을 들은 대로 월등한 삼마지(定)를 성취하기에 “가르침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라 말한 것이다.이 이하는 제2구를 풀이한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부분 중 “‘가르침을 따라 성취하는 것’이란 사여의족을 말한다.”란, 장차 뜻을 풀이하고자 함에 본체를 들어서 이름을 보여 준 것이다. “모든” 이하는 그 이름을 바로 풀이한 것이다. “모든 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성취하게 하는”이란 송의 “성취하게 되네.”를 바로 풀이한 것이다. “원인”이란 송의 “바라던 바(所須)”를 풀이한 것이다. 아래의 “때문이다”란, 구하는 목적을 여의如意하게 성취하는 법의 원인이기 때문에 이 삼마지(定)를 -
001_0826_c_01L一隨敎得成就。如瑜伽論第九十八卷
001_0826_c_02L云。若有苾蒭。依淨意樂及猛利欲。爲
001_0826_c_03L欲證得最勝通慧。從諸如來及佛弟子。
001_0826_c_04L殷重恭敬。聽聞正法。從聞無間。漸次
001_0826_c_05L證得勝三摩地。是名欲增上三摩地。復
001_0826_c_06L有苾蒭。如所聞法。如所得法。起大功
001_0826_c_07L用。發大精進。或正爲他宣說開示。或
001_0826_c_08L以勝妙意詞讀誦。從此無間。漸次因緣。
001_0826_c_09L能隨獲得勝三摩地。是名勤增上三摩
001_0826_c_10L地。復有苾蒭。於諸賢善三摩地相。善
001_0826_c_11L取思惟。觀靑瘀等。乃至骨鏁以爲邊際。
001_0826_c_12L由此所緣。次第生起勝三摩地。是名心
001_0826_c_13L增上三摩地。復有苾蒭。如所聞法。如
001_0826_c_14L所得法。獨處空閑。思惟籌量。審諦觀
001_0826_c_15L察。由此因緣。漸次生起勝三摩地。是
001_0826_c_16L名觀增上三摩地。乃至廣說。如是四人
001_0826_c_17L皆隨聞法成就勝定。故言隨敎得成就
001_0826_c_18L也。從此以下釋第二句。於中有二。初
001_0826_c_19L言隨敎得成就者。說名四如意足者。將
001_0826_c_20L欲釋義。擧體顯名也。一切以下正釋其
001_0826_c_21L名。一切所求義成就者。正釋頌中爲成
001_0826_c_22L就也。言因緣者。是釋所須。下言故者。
001_0826_c_23L諸所求義。如意成就之所法因。故說此
001_0826_c_24L「勝」疑「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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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7_a_01L여의족이라 한다. 두 구를 나누어서 풀이하는 것은 앞에서 다 설명하였다. “이 경우” 이하는 합해서 그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구절로 되어 있다. 앞의 구절은 여의족의 본체를 거듭 보여 주는 것이고 뒤의 구절은 순서대로 뜻을 설명하는 것을 매듭지어 밝히는 것이다. 앞의 구절 중 “마음의 안주이니 삼마제三摩提24라 한다.”란, 우리나라에서 ‘등지等持’라 하는 것이다. 마음의 안주를 설명하고자 할 때, 9종의 안주 중 오직 아홉째인 등지의 안주만을 취해서 사여의족의 본체로 한다. 무엇을 9종의 마음의 안주라 하는가? 첫째 내주內住, 둘째 등주等住, 셋째 안주安住, 넷째 근주近住, 다섯째 조순調順, 여섯째 적정寂靜, 일곱째 극한의 적정, 여덟째 일취一趣에 전념하는 것, 아홉째 등지이다. 자주 닦고 자주 익히고 자주 수습하는 것을 인연으로 하기 때문에 무가행無加行과 무공용無功用을 얻어 저절로 도道가 전전하기에 등지라 한다. 등지는 바로 삼마지이다. 앞의 8종은 후에 다시 설명할 것이다. “알아야 한다.”란, 이와 같은 등지의 의미를 알도록 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하는 둘째 매듭지어 밝히는 것이다. 앞의 8종의 마음의 안주의 단계 중 사정근에 의지해서 근면하게 수습하면 아홉째의 삼마지에 안주하기 때문에 정근 후에 여의족을 설하는 것이다.
“대상에 따라” 이하는 이어서 아래의 반을 풀이하는 것이다. “대상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안주한다.”란, 위를 다시 거론하며 여의족의 본체를 말하는 것이다. 안으로는 근면의 대상에, 밖으로는 성스러운 가르침에 의지해서 이 인연에 따라 마음의 안주를 성취하기 때문에 “대상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안주한다.”고 말한 것이다. 안과 밖의 인연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무슨 방편을 써서 이 안주를 성취하는가? 5종의 과실을 멸하기 위해 8종의 행行을 수습하는 것을 그 자량資糧으로 해서 마음의 안주에 도달하기 때문에 “5종의 과실을 멸하기 위해 8종의 자량을 수습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주장은 4종의 삼마지(定)를 얻고자 할 때면 반드시 이와 같은 8종의 자량을 필요로 하고, 이에 그 삼마지를 성취하게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대법론』에 의거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만약 『유가사지론』에 의거한다면 -
001_0827_a_01L定。名如意足也。別釋二句。竟在於前。
001_0827_a_02L此中以下總顯其義。於中二句。初句重
001_0827_a_03L顯如意兄體。下句結明。次第說意。初
001_0827_a_04L言心住名三摩提者。此云等持。欲明心
001_0827_a_05L住者。九種中唯取第九等持之住。以爲
001_0827_a_06L四如意足之體。何等名爲九種心住。一
001_0827_a_07L者內住。二者等住。三者安住。四者近
001_0827_a_08L住。五者調順。六者寂靜。七者最極寂
001_0827_a_09L靜。八者專住一趣。九者等持。數脩數
001_0827_a_10L習數多脩習爲因緣故。得無加行無功
001_0827_a_11L用住。任運轉道。故名等持。等持正是
001_0827_a_12L三摩地也。前八種住後當更說。言應知
001_0827_a_13L者。觀知如是等持義也。是故以下第二
001_0827_a_14L結明。由前八種心住位中。依四正勤
001_0827_a_15L勤脩習已。乃得第九三摩地住。故正勤
001_0827_a_16L後說如意足也。隨事以下次釋下半。言
001_0827_a_17L隨事隨敎住者者。是牒上說如意足體。
001_0827_a_18L依內勤事。及外聖敎。隨此因緣。得成
001_0827_a_19L心住。故言隨事隨敎住也。內外因緣已
001_0827_a_20L如前說。以何方便得成此住者。爲滅五
001_0827_a_21L失。以脩八行。爲其資1)根 [26] 。得至心住。
001_0827_a_22L故言爲滅乃至應知。此意明其得四定
001_0827_a_23L時。必須如是八種資粮乃得成就彼三
001_0827_a_24L摩地。依對法論。應作是說。若依瑜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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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7_b_01L다시 다르게 풀이하게 된다. 무엇이 여의족을 수습하는 것인가? 이중二重으로 되어 있다. 앞의 욕欲 등 4종의 증상력에 의지해서 각 경우에 따라 삼마지를 얻는다. 오직 현행의 전纏을 멸하게 했을 뿐 아직 수면隨眠(번뇌)을 끊지 못했다. 그 사람이 이후의 시기에 수면을 끊고자 한다면 다시 전진해서 8종의 단행斷行을 수습해야 한다. 이에 가장 월등한 등지等持를 성취하게 된다. 합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전과 이후 두 단계에 4종의 신족의 본체를 건립한다. 그러므로 지금 “대상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안주한다.”란 앞의 단계(位)를 다시 거론하며 삼마지를 얻는 네 유형의 사람을 말한 것이고, “5종의 과실을 멸하기 위해” 이하는 그 네 유형의 사람이 각 경우에 따라 이후의 시기에 8종의 단행을 수습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회통해서 말한다면 이 8종의 행은 이전의 단계에도 있지만 그 단계에서는 그저 현행의 전纏을 끊을 뿐이다. 그래서 단행의 이름을 건립하지 않는다. 이후의 단계에서는 수면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비로소 단행을 건립하는 것이다. 그 『논』에서 “그 사람은 4종의 삼마지의 증상력에 의해 이미 전纏들을 여의었다. 다시 영원히 수면을 해하기 위해, 또 그 대치하는 것인 선법들을 수습해서 적집하기 위해 다시 욕구와 책려를 일으킨다. 그 사람이 이와 같이 바르게 수습할 때 8종의 단행이 있게 된다. 수면을 영원히 해하고자, 삼마지가 원만함을 얻고자 차별이 전전한다. 이 중 의욕(欲)이란 그것의 의욕이다. 이 중 책려란 그것의 정진이다. 이 중 믿음(信)이란 그것의 믿음이다. 이 중 경안輕安, 염念, 정지正知, 사思, 사捨는 그것의 방편이다. 이와 같이 이 중 앞의 의욕(欲) 등 4종의 삼마지나, 지금 말하는 8종의 단행이 수면을 영원히 끊고자 하고 삼마지를 원만하게 성취하고자 할 때 일체를 총합해서 욕삼마지단행성취신족欲三摩地斷行成就神足 내지 관삼마지단행성취신족觀三摩地斷行成就神足이라 한다. 운운.”라고 한다.(『유가사지론』의) “이 중 의욕(欲)이란 그것의 의욕이다. 내지 그것의 방편이다.”란, -
001_0827_b_01L更作異釋。何者脩如意足。有其二重。
001_0827_b_02L前依欲等四增上力。隨其所應。得三摩
001_0827_b_03L地。唯滅現纒。未斷隨眠。彼人後時。欲
001_0827_b_04L斷隨眠。更進脩習八種斷行。乃得成就
001_0827_b_05L最勝等持。合說如是。前後二位。建立
001_0827_b_06L四種神足體性。是故今言隨事隨敎住
001_0827_b_07L者者是牒前位。得定四人爲滅以下。明
001_0827_b_08L彼四人隨其所應後時脩習八種斷行。
001_0827_b_09L通而言之。此八種行亦在前位。伹彼位
001_0827_b_10L中唯伏現纒。是故不立斷行之名。於後
001_0827_b_11L位中能斷隨眠。是故此中方立斷行。如
001_0827_b_12L彼論云。四三摩地增上力故。已遠諸纒。
001_0827_b_13L後爲永害諸隨眠故。及爲脩集能對治
001_0827_b_14L彼諸善法故。便更生起欲樂策勵。彼於
001_0827_b_15L如是正脩習時。有八斷行。爲欲永害諸
001_0827_b_16L隨眠故。爲三摩地得圓滿故。差別而轉。
001_0827_b_17L此中欲者。卽是彼欲。此由策勵。卽彼
001_0827_b_18L精進。此中信者。卽彼信。此中安念正
001_0827_b_19L知思捨。卽彼方便。如是此中若先欲等
001_0827_b_20L四三摩地。若今所說八種斷行。於爲永
001_0827_b_21L斷所有隨眠。圓滿成辦三摩地時。一切
001_0827_b_22L總名欲三摩地斷行成就神足。乃至觀
001_0827_b_23L三摩地斷行成就神足。乃至廣說。言此
001_0827_b_24L中欲者。彼是彼欲。乃至卽彼方便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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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7_c_01L그 앞선 4종의 삼마지를 수습할 때 또한 이와 같은 8종 행의 상이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 네 유형의 사람이 삼마지를 수습할 때 이 의욕, 정진, 믿음, 방편에 의지하지 않고서 삼마지를 얻는 일이 없기에 그때 합해서 넷이라 하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는 8종의 단행이라 하지 않는다. 비록 그 논이 단행의 이름을 건립하지 않지만 그 행의 상은 이 논과 저 논이 다름이 없기에 “이것 등은 그것 등이다.”25라고 설한 것이다. 또 비록 네 유형의 사람이 모두 욕欲 등26이 있기는 하나 돋보이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 넷을 구별한 것이다. 욕欲이 증상된 사람에게 정진 등의 행이 전연 없는 것이 아니고, 내지 관觀이 증상된 사람에게 욕欲 등이 전연 없는 것이 아니다.
논 무엇을 과실이라 하는가?
懈怠忘尊敎 해태, 존귀한 가르침을 잊는 것
及下劣掉起 그리고 하열下劣과 도기掉起,
不作意作意 작의하지 않음과 작의함
此五失應知 이 5종의 과실을 알아야 하네 ≺4≻
해태懈怠란 태만함의 나쁜 곳에 빠지는 것이다. 존귀한 가르침을 잊는 것이란 스승이 세운 법의 명名, 구句, 미味 등을 기억하지 않고 간직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열과 도기란 두 장애를 하나로 하고 있다. 슬픔과 기쁨을 본체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침몰과 부상이 그 작용이다. 이 위位 중 침몰할 때 작의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제4의 과실이다. 만약 이 둘이 없는데 작의한다면, 이것이 제5의 과실이다. 이 5종의 과실을 끊기 위해 8종의 자량을 안립한다. 해태를 끊기 위해, 무엇을 넷이라 하는가? 첫째 욕欲, 둘째 정근正勤, 셋째 믿음, 넷째 의猗이다.
소 이제 논서에 편승하여 설명하는 것을 그만두고, 돌아가서 다시 본문을 풀이하겠다. “무엇을” 이하는 뒤의 본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이하 2송 반이 있다. 앞은 전에 의지하여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순서대로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다. 앞의 1송은 5종의 과실을 밝히는 것이고, 뒤의 1송 반은 팔단행八斷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앞의 1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3구는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고, 뒤의 1구는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그 5종의 과실의 상을 주석에서 나누어서 밝히고 있다.주석에서 순서대로 5종의 과실을 풀이한다. 제1의 과실 중 “태만함의 나쁜 곳에 빠지는 것”이란 산란한 곳에 매여서 정진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제2의 과실 중 “기억하지 않고 간직하지 않는 것”이란 가르침의 말을 기억하지 않고 가르침의 뜻을 간직하지 않는 것이다. 제3의 과실 중 “슬픔과 기쁨을 본체로 하는 것”이란, “하열下劣”은 슬픔이다. 슬픔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한다. 침몰沈沒을 작용으로 한다. “도기掉起”는 기쁨이다. 기쁨은 얻는 바를 적게 한다. 부상浮上을 작용으로 한다. 이 둘은 서로 의존하고 서로 두루 장애가 되기 때문에 합해서 하나의 과실이 된다. 마치 단斷과 상常을 합해서 하나의 변견邊見이라 하듯이. 제4의 과실이란, 침몰할 때는 위파사나(觀)를 수습하고 부상할 때는 사마타(止)를 수습해야 하는데, 때에 맞춰 작의해서 닦지 않는다. 그래서 “작의하지 않음”을 과실이라 하는 것이다. 제5의 과실이란 침몰과 부상을 멸했을 때 -
001_0827_c_01L是明彼先脩四定時。亦有如是八種行
001_0827_c_02L相。以彼四人脩習定時。無有不依此欲
001_0827_c_03L精進。及信方便而得定者。彼時合說名
001_0827_c_04L四。瑜伽論中。不名八種斷行。雖彼不
001_0827_c_05L立斷行之名。而其行相此彼不異。故
001_0827_c_06L言此等卽彼等也。又雖四人皆有欲等。
001_0827_c_07L而隨偏增。說四差別。非謂欲增上者。
001_0827_c_08L都無精進等行。乃至觀增上者。都無欲
001_0827_c_09L等行也。
001_0827_c_10L且止乘論。還釋本文。何者以下。生起後
001_0827_c_11L文。從此以下有二頌半。依前總標。次
001_0827_c_12L第別顯。謂初一頌明五種失。後一頌半
001_0827_c_13L頌八斷行。初中有二。三句別顯。一句
001_0827_c_14L總結。其五失相。釋中分明。釋中次第
001_0827_c_15L釋五種失。第一中言沒嬾惡處者。著散
001_0827_c_16L亂處不起精進也。第二中言不憶不持
001_0827_c_17L者。不憶敎言。不持敎旨也。第三中言
001_0827_c_18L憂喜爲體者。下劣是憂。憂其難進。沉
001_0827_c_19L爲事用。掉起是喜。喜小所得。浮爲事
001_0827_c_20L用。此二相待互徧爲障。是故合立爲一
001_0827_c_21L過失。如合斷常爲一邊見也。第四過者。
001_0827_c_22L沉時脩觀。浮時脩止。而不隨時作意脩
001_0827_c_23L治。故不作意爲過失也。第五過者。沉
001_0827_c_24L「根」疑「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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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8_a_01L여전히 이를 제거해야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침몰을 멸한 후 여전히 멸하겠다는 의지(意)를 짓는다면(作) 다시 부상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만약 부상을 그치게 한 후 여전히 그치게 하겠다는 의지(意)를 짓는다면(作) 또한 다시 침몰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두 시기27가 없기에 “작의함”이 장애가 된다.
논 또 4종의 법이 순서대로 (다음과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依處及能依 의지처 그리고 의지하는 것
此因緣及果 이것의 원인 그리고 결과이네 ≺5ab≻
의욕(欲)이란 정근의 의지처이다. 의지하는 것이란 정근이다. 이것의 의지처를 의욕이라 한다. 무엇의 원인이기에 이것을 믿음(信)이라 하는가? 만약 믿음이 있다면 의욕을 낸다. 이 의지하는 것을 정근의 결과라 하는데, 이 결과를 의猗라 한다. 만약 정근을 행한다면 추구하는 선정禪定을 얻기 때문이다. 다른 4종의 자량은 첫째 염念, 둘째 지智, 셋째 작의作意, 넷째 사멸捨滅이다. 다른 4종의 과실을 순서대로 대치한다.
소 “이 5종의 과실을 끊기 위해” 이하는 대치하는 행行을 밝히고, 또한 우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세 구절로 되어 있다. 첫째 구절은 8종의 삼마지(定)를 세우는 것을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둘째 구절은 앞의 네 가지 의미28를 세우는 것을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다. “또 4종의 법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하는 아래의 본문을 곧바로 일으키는 것이다.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2구는 앞의 4종의 행을 밝히는 것이고, 뒤의 1송은 뒤의 4종의 행을 밝히는 것이다. 앞의 4행29은 합해서 하나의 장애를 대치한다. 왜냐하면 장애(障)들 중에서 해태懈怠가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제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의욕(欲)과 정근正勤이 능동과 수동이 되어 서로 의지가 되어 주고, 믿음(信)과 의猗가 원인과 결과가 되어 서로 도움이 되어 준다. 이 4종의 세력에 의지해야 능히 그 뒤의 4종의 과실을 제복할 수 있다. 이미 과실의 우두머리이기는 하나 장애의 세력이 미미하여 넷 중의 하나가 능히 이를 제멸할 수 있다. 송의 “의지처”란 제1의 의욕(欲)이다. “그리고 의지하는 것”이란 제2의 정근正勤이다. 먼저 적정의 공덕을 깊이 욕구해야 이에 의지해서 정근正勤과 정진精進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원인”이란 의지처의 원인이니 제3의 믿음(信)이다. 결정적인 믿음에 의지해서 욕구를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이네.”란 의지하는 것인 결과이니 제4의 의猗이다. 정근正勤을 원인으로 해서 의猗인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주석은 순서대로 이 4종을 풀이한다. 넷째 구절의 “만약 정근을 행한다면 추구하는 선정禪定을 얻기 때문이다.”란, 선정을 얻을 때 추중이 사라진다. 이에 몸과 마음의 경안을 얻는다. 경안이 의猗이다. 적열適悅을 상으로 한다. 그래서 삼마지(定)를 얻음에 의거해서 의猗인 결과를 보여 준 것이다. “다른 4종의 자량은” 이하는 뒤의 4종의 행行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먼저 본문을 일으킨다. 그중 먼저 수를 들어 이름을 열거한다. “다른 4종의 과실을” 이하30는 과실을 대치하는 것을 밝힌다.
논 이 염(念) 등 4종의 법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緣境界不迷 소연경계에 혼미하지 않는 것
高下能覺知 올라오는 것과 내려가는 것을 알아채는 것 ≺5cd≻
滅彼心功用 그것을 제멸하고자 하는 마음이 공용功用하는 것
寂靜時放捨 적정하게 되었을 때 추방해서 내버리는 것이네 ≺6ab≻
염念이란 경계를 망실하지 않는 것이다. 지智란 경계를 망실하지 않을 때 침몰과 부상의 일을 알아채는 것이다. 알아채고 나서 이것들을 제멸하기 위해 공용用의 의지를 내는데, 이것을 작의라 한다. 이 침몰과 부상 두 법이 적멸했을 때 추방해서 내버리는 마음이 일어나 추방되어 흐르며 상속하는데, 이것을 사멸捨滅이라 한다.
소 다음에 송의 4구는 이에 따라서 4종의 상相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제1구 “소연경계에 혼미하지 않는 것”이란 정념正念은 -
001_0828_a_01L浮滅時。卽應任捨。若沉滅後猶作離意。
001_0828_a_02L則還起浮。若浮息後猶作止意。亦還入
001_0828_a_03L沉。故無二時作意爲障也。爲滅以下。明
001_0828_a_04L能治行。亦先發起。於中三句。初句總
001_0828_a_05L標立八種定。次句別顯立前四意。復有
001_0828_a_06L以下正發下文。
001_0828_a_07L頌中有二。初之二句明前四行。次之一
001_0828_a_08L頌顯後四行。用初四行總治一障。所以
001_0828_a_09L然者。諸障之中。懈怠1)無 [27] 首。除遣爲難。
001_0828_a_10L故須欲勤能所相依及與信猗因果相助。
001_0828_a_11L依此四力。乃能摧伏。其後四過。已失
001_0828_a_12L上首。障力微劣。隨一能除。言依處者。
001_0828_a_13L是第一欲。及能依者。第二正勤。先深
001_0828_a_14L欲樂寂靜功德。依此發起勤精進故。此
001_0828_a_15L因緣者。依處之因。是第三信。▣決定
001_0828_a_16L信。起欲樂故。言及果者。能依之果。是
001_0828_a_17L第四猗。正勤爲因。得猗果故。
001_0828_a_18L釋中次第。釋此四種。第四中言。若作正
001_0828_a_19L勤得所求禪定故者。得禪定時。麤重息
001_0828_a_20L滅。於此卽得身心輕安。輕安曰猗。適
001_0828_a_21L悅爲相。故約得定。以顯猗果。餘四以
001_0828_a_22L下。明後四行。亦先發起。於中先卽擧數
001_0828_a_23L列名。滅餘以下對過2)明 [28] 。次頌中四句。
001_0828_a_24L隨顯四相。初言緣境界不迷者。卽是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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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8_b_01L가르침을 잊는 것을 대치하는 것이다. 제2구 “올라오는 것과 내려가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란 정지正智가 제3의 과실을 대치하는 것이다. 침몰과 부상을 알아채는 것이란 부상해 올라오는 것과 침몰해 내려가는 것을 그에 따라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제멸하고자 마음이 공용功用하는 것”이란 작의作意를 밝히는 것이다. 부상과 침몰을 제멸하기 위해 마음이 작의하고 이에 따라 대치를 일으킨다. 이 경우 작의는 곧 사思 심소心所이다. 사마타(止)와 위파사나(觀)를 추동해서 일으키기에 작의라 하는 것이다. 변행遍行 내의 작의 심소가 아니다. “적정하게 되었을 때 추방해서 내버리는 것”이란 사捨의 상을 밝히는 것이다. 침몰과 부상이 제멸되었을 때 추방되어 흐르며 상속하는 것이다.
주석은 넷으로 되어 있다. 넷째 구절 중 “추방해서 내버리는 마음이 일어나 추방되어 흐르며 상속하는데”란, 사捨의 단계에 초·중·후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대법론』에서 “사捨란 정근正勤,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에 의지하기에 잡염에 머무는 것과는 상반된다. 마음의 평등성平等性, 마음의 정직성正直性, 마음의 무공용의 지속성(無功用住性)을 본성으로 한다. 잡염에 의지처가 되는 것을 작용으로 한다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마음의 평등성 등’이란 초·중·후의 위位로써 사捨의 구분을 밝힌 것이다. 왜 이렇게 하는가? 사捨가 마음과 상응해서 침몰 등의 불평등성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최초에 마음의 평등성을 증득한다. 마음의 평등에 의해 가행加行을 여의고 자연히 상속하기 때문이다. 차후에 마음의 정직성을 증득한다. 마음의 정직에 의해 잡염들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후에 마음의 무공용의 지속성을 증득한다.”고 한다. 이 경우 “내버리는 마음이 일어나”란 어구를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다. 다음에 “추방되어”란 최초의 위位인 마음의 평등성이다. 최초에 처음으로 불평등을 추방해서 내버리기 때문이다. 다음에 “흐르며”란 제2의 위位인 마음의 정직성이다. 평등으로부터 4종의 정직正直이 흐르기 때문이다. “상속하는데”란 제3의 무공용의 지속성을 나타낸 것이다. 무공용이 영구히 지속하기 때문이다.
(4) 근과 역을 합해서 밝힘
논 사여의족 후에 순서대로 오근五根을 수습함에 대해 설명한다. 이 오근은 어떻게 안립하는가?
已下解脫種 이미 해탈분의 종자가 심겨져서
欲事增上故 의욕(欲)이 힘씀(事)이 증상하기 때문에 ≺6cd≻
境界不迷沒 경계에 혼미하지 않음,
不散及思擇 산란하지 않음, 그리고 사택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7ab≻
이 중 “증상하기 때문에”는 순서대로 다섯 곳에 흘러간다. 사근四勤을 수습했기 때문에 마음이 가르침에 따라 이미 안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마음에 이미 순해탈분順解脫分의 선근善根의 종자가 심겨져서, 첫째 의욕(欲)이 증상하기 때문에, 둘째 근면하게 수습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셋째 경계를 잊지 않음이 증상하기 때문에, 넷째 산란해서 동요하지 않음이 증상하기 때문에, 다섯째 법을 사택함이 증상하기 때문에, 순서대로 믿음(信) 등 오근五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 “사여의족 후에 순서대로 오근五根을 수습함에 대해 설명한다.” 이하는 대부분 제4의, 근根과 역力을 합해서 밝히는 대목이다. 또한 먼저 뒤의 본문을 일으킨다. -
001_0828_b_01L念對治忘敎。次言高下能覺知者。是正
001_0828_b_02L智對第三過。覺知沉浮。浮高沉下隨至
001_0828_b_03L覺知也。滅彼心功用者。是明作意。爲
001_0828_b_04L滅沉浮。用心作意。隨起對治。此中作
001_0828_b_05L意。正是思數。推發止觀。故名作意。非
001_0828_b_06L遍行內作意數也。寂靜時放捨者。是明
001_0828_b_07L捨相。沉浮滅時任放而捨也。
001_0828_b_08L釋中卽四。第四中言起放捨心放流相
001_0828_b_09L續者。欲明捨位有初中後。如對法論說。
001_0828_b_10L捨者依止正勤無貪瞋癡。與雜染住相
001_0828_b_11L違。心平等性。心正直性。心無功用住
001_0828_b_12L性爲體。不容雜染所依爲業。心平等性
001_0828_b_13L等者。謂以初中後位辨捨差別。所以者
001_0828_b_14L何。由捨與心相應。離沉沒等。不平等
001_0828_b_15L性故。最初證得心平等性。由心平等
001_0828_b_16L遠離加行。自然相續故。次後證得心正
001_0828_b_17L直性。由心正直。於諸雜染。無3)▣▣ [29] 故。
001_0828_b_18L最後證得心無功用住性。今言起捨心
001_0828_b_19L者。是總標句。次言放者。顯初位中心
001_0828_b_20L平等性。初始放捨不平等故。次言流者。
001_0828_b_21L顯第二位心正直性。從平等流四正直
001_0828_b_22L故。言相續者。是顯第三無功用住由無
001_0828_b_23L功用得久住故。
001_0828_b_24L四如意下。大分第四。總明根力。亦先
-
001_0828_c_01L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송 반은 행行의 상을 밝히는 것이고, 뒤의 2구는 계위를 배속하는 것이다. 앞의 1송 반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1송은 근根을 밝히고, 둘째 1구는 역力을 밝히고, 셋째 마지막의 1구는 근과 역 다섯의 순서를 밝힌다.첫째는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구는 근根을 일으키는 원인을 밝히고, 뒤의 3구는 근根의 상을 밝힌다. 앞의 “이미 해탈분解脫分의 종자가 심겨져서”란, 오근의 단계는 통달분通達分에 있기 때문에 앞서 이미 해탈분의 종자가 심겨져 있다. 출리出離의 결과를 상대로 해서 볼 때 수습한 선근善根은 해탈의 결과에 대해 최초의 종자가 되기 때문에 “이미 해탈분의 종자가 심겨져서”라고 말한 것이다. 어떤 것들이 선법善法을 본체로 하는가? 어떤 논사는 “7방편 중 앞의 3방편이 해탈분이다. 난煖 등 사심四心은 통달분이기 때문에 앞의 셋이 해탈분에 속한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또 어떤 논사는 “문聞과 사思의 이혜二慧,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다문多聞의 삼업三業을 해탈분이라 한다. 『우바새계경』에서 ‘해탈분의 본체는 신身, 구口, 의意의 업業이다. 방편으로부터 얻는다. 방편에는 둘이 있다. 첫째 귀로 듣는 것, 둘째 사유하는 것이다. 다시 세 종류가 있다. 첫째 보시, 둘째 지계, 셋째 다문이다.’라고 한다.”고 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도 또한 이와 같이 설해져 있다. “신업, 구업, 의업이다. 의업이 더 많다. 의지意地이지 오식五識이 아니다. ‘방편에 의해 얻은 것(方便得)’이자 또한 ‘날 때부터 얻은 것(生得)’이기도 하다. 문혜聞慧와 사혜思慧이지 수혜修慧는 아니다. 어떤 것으로 이 선근善根을 심는가? 혹은 보시로, 혹은 지계로, 혹은 다문으로 선근을 심는다. 이것으로써 해탈과 열반으로 회향하고 생사를 영원히 여의고자 하는, 만약 이와 같은 용맹심이 있다면 능히 해탈분의 선근을 심을 수 있다.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비록 많이 보시하고 -
001_0828_c_01L發起。文相可知。
001_0828_c_02L頌中4)中 [30] 有二。前一頌半正明行相。後
001_0828_c_03L之二句屬當階位。初中有三。一頌明根。
001_0828_c_04L一句明力。後之一句明五次第。初中亦
001_0828_c_05L二。在前一句顯根起因。下之三句正明
001_0828_c_06L根相。初言已下解脫種者。五根位在通
001_0828_c_07L達分中。故先已下解脫分種。望出離果
001_0828_c_08L所脩善根。與解脫果。作初種子。故言
001_0828_c_09L已下解脫種子。何等善法爲其體者。有
001_0828_c_10L師說云。七方便中。前三方便。是解脫
001_0828_c_11L分。以𤏙等四心是通達分。故知前三屬
001_0828_c_12L解脫分。或有說者。聞思二慧。施戒三
001_0828_c_13L業。爲解脫分。如優婆塞戒經說云。解
001_0828_c_14L脫分體者。所調身口意業。從方便得。
001_0828_c_15L方便有二。一者耳聞。二者思惟。復有
001_0828_c_16L三種。一者施。二者持戒。三者多聞。毗
001_0828_c_17L婆沙中亦同此說。是身口意。意業偏多。
001_0828_c_18L唯是意地。不通五識。是方便得。亦是
001_0828_c_19L生得。是聞思慧。非是脩慧。以何事種。
001_0828_c_20L如此善根。或以布施持戒多聞。以此廻
001_0828_c_21L向解脫涅槃。永離生死。若有如是勇猛
001_0828_c_22L心者。是則能種。若不如是。雖多布施。
001_0828_c_23L「無」疑「爲」。「明」上疑脫「以」。▣▣疑
001_0828_c_24L「怯畏」。「中」疑剩。
-
001_0829_a_01L몸이 다할 때까지 지계하고 다문을 광범위하게 배운다 하더라도 또한 해탈분의 선근을 심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 논에서 설하는 것은 이와 같다.만약 앞의 3방편이 해탈분이라면 정심념처停心念處는 삼혜 모두일 수 있거늘 왜 수혜修慧가 아니라고 말하는가? 또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 “해탈분의 선근에는 먼 것이 있고 가까운 것이 있다. 가까운 것은 전세前世의 몸(身)에 심은 것이다. 차세此世의 몸이 성숙해서 내세來世의 몸이 해탈한다. 먼 것은 일찍이 심은 것이다. 나유타那由他가 경과한 후 받은 몸이다. 통달분의 선근을 생기게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바새경』 또한 이와 같이 설한다. 그런데 근기가 예리한 성문과 독각과 보살은 모두 최후의 일세一世의 몸에서 7방편을 수습하고 이에 의지해서 해탈을 얻는다. 만약 정심관停心觀의 총별념처總別念處가 해탈분의 선근이라면 일세의 몸에 선근을 심어 해탈을 얻는데 왜 삼세의 몸을 경과한다고 하는가? 그러므로 앞의 3방편의 선근이 통달분의 방편에 속한다는 것을 안다. 가령 중음中陰의 식識의 분지는 방편이기에 식識의 분지에 속한다고 하듯 이것 또한 그러하다. 혹은 어떤 논사는 “보시, 지계, 다문 그리고 2방편은 모두 해탈분의 선근의 본체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해탈분의 선근은 그 3품류가 있다. 중품과 하품 2품류는 문혜와 사혜를 본체로 하고 퇴보 가능성의 의미가 있다. 그 상품上品의 품류는 수혜修慧를 본체로 하고 이에 의지해서 통달분에 들어간다. 퇴보 가능성의 의미가 없다. 앞에서 설한 경과 논은 우선 최초에 선근을 심는 것에 의거해서 오직 중품과 하품 2품의 선근만을 나타낸 것이다. 『대법론』에서 “하품과 중품의 해탈분의 선근부터는 퇴보 가능성의 의미가 있다. 오직 퇴보의 현행現行이지 퇴보의 습기習氣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이 논에서 사정근과 사여의족에 의거해서 해탈분의 종자를 심는 것을 설하기 때문에 이 분分 또한 수혜를 수습하는 문에 통한다는 것을 안다. 만약 이 선근이 또한 수혜에도 통한다면 무엇 때문에 별도의 이분二分의 다른 상을 취하는가? 답한다. 믿음(信)이 증상할 때 해탈분을 세우고 혜慧가 증상할 때 결택분決擇分을 세운다. 『대법론』에서 -
001_0829_a_01L終身持戒。廣習多聞。亦不能種。論說
001_0829_a_02L如是。若言前三方便是解脫分者。1)亭 [31]
001_0829_a_03L心念處。皆通三慧。何故說言非是脩慧。
001_0829_a_04L又婆沙云。解脫分善有遠有近。近者。所
001_0829_a_05L謂前身種。此身成就。2)來 [32] 身解脫。遠者。
001_0829_a_06L曾種逕那由他受身。不能生遠分善。優
001_0829_a_07L婆塞經亦同此說。然利根聲聞獨覺菩
001_0829_a_08L薩。皆於㝡後一身之中。脩七方便。乘
001_0829_a_09L得解脫。若*亭心觀總別念處。是爲解
001_0829_a_10L脫分善根者。則於一身下種得脫。何得
001_0829_a_11L說言逕三身體。故知前三方便善者。屬
001_0829_a_12L通達分。方便所攝。如說中陰。識支方
001_0829_a_13L便。故屬識支。此亦如是。或有說者。施
001_0829_a_14L戒多聞及二方便。皆是解脫分善根體。
001_0829_a_15L然解脫分善有其三品。中下二品聞思
001_0829_a_16L爲體。有可退義。其上品者。脩慧爲體。
001_0829_a_17L乘入通達分。無可退義。前說經論。且
001_0829_a_18L約初種。唯顯中下二品善根。如對法論
001_0829_a_19L云。從下中品解脫分善。有可退義。唯
001_0829_a_20L退現行非退習氣故。又此論中約四正
001_0829_a_21L懃四如意1)是 [33] 以說下。解脫分種子。故
001_0829_a_22L知此分亦通修慧門。若此善根亦通修
001_0829_a_23L慧。何以取別二分異相。答信增上時立
001_0829_a_24L解脫分。慧增上時立決擇分。如對法論
-
001_0829_b_01L“제諦의 증상의 법에 대해서 청정하게 믿고 월등하게 이해하는 상相 이를 순해탈분順解脫分이라 한다. 이 법에 대해서 법인法忍의 상을 자세히 관찰할 때 이것이 순결택분順決擇分이다. 그 순서대로 믿음(信)이 증상하기 때문이고, 혜慧가 증상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제 지엽적인 논의는 그만두고 본문으로 돌아가 풀이하겠다. 이하의 3구는 오근을 하나하나 밝히는 것이다. “의욕(欲)이 증상하기 때문에”란 신근信根의 상이다. 만약 믿음(信)이 증상한다면 반드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힘씀(事)이 증상하기 때문에”란 정진근精進根의 상이다. 악이 소멸하고 선이 발생하도록 노력하기 때문이다. “경계에 혼미하지 않음”이란 염근念根의 상이다. 염念이 증상하면 혼미해서 잃어버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산란하지 않음”이란 정근定根의 상이다. “그리고 사택思擇함”이란 혜慧의 상이 있는 근根이다.
주석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근根의 의미를 풀이하고, 둘째 앞의 1구를 풀이하고, 셋째 뒤의 3구를 풀이한다. 앞의 “이 중 ‘증상하기 때문에’는 순서대로 다섯 곳에 흘러간다.”란, 제2구의 ‘증상하기 때문에’라는 말이 다섯 곳 모두로 흘러간다는 뜻이다.31 증상함의 의미가 근根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근四勤을 수습했기 때문에” 이하는 앞의 1구를 풀이한 것이다. “사근을 수습했기 때문에”란 정근正勤을 들어 염처念處도 겸해서 취한 것이다. “마음이 가르침에 따라 이미 안주하게 되었다.”는 사여의족을 다시 거론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마음에 이미 순해탈분順解脫分의 종자가 심겨져서”는 3종의 넷(사념처四念處·사근四勤·사여의족四如意足)이 순해탈분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문장에 의해 이와 같은 3종의 넷의 단계는 사선근四善根의 전前이라는 것을 안다. “첫째 의욕(欲)이 증상하기 때문에” 이하는 오근을 하나하나 풀이한 것이다.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논
說力損惑故 역力은 혹惑을 덜어 낸다고 말하기 때문이네
前因後是果 전은 원인이고 후는 결과이네 ≺7cd≻
믿음 등 오법五法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월등한 힘이 있기에 역力이라 한다. 월등한 힘이란 무슨 뜻인가? (도를) 돕지 않는 혹惑을 덜어 내어 없애기 때문이다. 만약 오법이 믿지 않음(非信) 등 대치되어야 할 혹惑과 서로 장애하지 않는다면, (오력五力이다.) 그래서 근根과 역力은 순서가 있다고 말한다. 왜 믿음 등의 오법이 전과 후의 순서대로 말해지는가? 5종의 법은 전과 후이듯 원인과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와 같은가? 만약 어떤 사람이 원인을 믿고 결과를 믿는다면, 이 결과를 구해서 얻기 위해 결정코 근勤을 행한다. 이 근勤이 이미 행해졌기 때문에 경계를 수호해 이동하지 않는다. 만약 염念이 지속하게 되면, 마음이 삼매를 얻는다. 평등하게 지속해서 올라오지도 내려가지도 않는다. 첫째 3종의 수受이기 때문이고, 둘째 1종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또 5종의 지속(住)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만약 마음이 삼매(定)를 얻으면 여실하게 경계를 관찰해서 안다. 이 의미 때문에, 그래서 오법에 순서를 세우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이미 해탈분의 선근이 심겨져 있다면, 오근五根이 그 계위이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통달분의 선근이 심겨져 있다면, 오근의 계위에 있는 것인가, 오력의 계위에 있는 것인가?
소 송 중 1구는 둘째 역力을 밝히는 것이다. 오법五法에 의거해서 역力을 설명하는 것이다. 월등하게 전진할 때 혹惑을 덜어 내기에 역力이라 말한다. 혹惑을 덜어 내기 때문이다. 아래의 1구는 근根과 역 다섯의 순서를 밝히는 것이다. 앞의 것이 원인이 되고 뒤의 것이 결과가 된다. 그래서 처음에 믿음(信)을 말하고 내지 마지막에 혜慧를 말한다. 그래서 “전은 원인이고 후는 결과이네.”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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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9_b_01L云。於諦增上法。淨信勝解相。是順解
001_0829_b_02L脫分。卽於此法。諦察法忍相。是順決
001_0829_b_03L擇分。如其次第。信增上故慧增上。且
001_0829_b_04L止傍論。還釋本文。此下三句別顯五根。
001_0829_b_05L欲增上者。是信根相。若信增上。必有
001_0829_b_06L欲樂故。事增上者。精進根相。滅惡生
001_0829_b_07L善。爲事能故。境界不迷沒者。是念根
001_0829_b_08L相。念增上者。不迷失故。言不散者。是
001_0829_b_09L定根相及思擇者。是慧相根。
001_0829_b_10L釋中有三。先釋根義。次釋初一句。後
001_0829_b_11L釋下三句。初言此中增上。次第五處流
001_0829_b_12L者。第二句中。增上之言。通流五處。以
001_0829_b_13L增上義。是根義故。爲修以下釋初一句。
001_0829_b_14L爲修四懃故者。是擧正懃。兼取念處心。
001_0829_b_15L已隨敎得住者。是牒四如意足。心信言
001_0829_b_16L因此心已下解脫分種子者。是明三四
001_0829_b_17L爲解脫分。依此文知。如是三四位在
001_0829_b_18L四善根之前也。一欲以下別釋五根。文
001_0829_b_19L顯可知。
001_0829_b_20L頌中一句。第二明力。卽就五法以說力
001_0829_b_21L者。由勝進時。能損惑故。故言說力。損
001_0829_b_22L惑故也。下之一句明五次第。前前爲因。
001_0829_b_23L後後是果。故初說信乃至後慧。故言前
001_0829_b_24L因後是果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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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29_c_01L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첫째 구를 풀이하는 첫째 부분은 다시 세 구절로 되어 있다. 첫째 구절은 오근五根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고, 둘째 구절은 송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이고 “만약 오법이” 이하는 거듭 근根을 밝히는 것이며, 셋째 구절은 역力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만약 오법이 처음으로 성립할 때면 흑법과 백법 간에 다다름이 있기에 아직 역力이라 하지 않는다. 만약 믿지 않음(不信) 등 도를 돕지 않는 혹惑의 법에 장애를 받지 않는다면 오력五力이라 한다. 그래서 근根과 역力은 이에 따라 순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와 같은가?” 이하는 둘째 구절로 송의 아래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따져 묻는 것이고, 둘째 송을 다시 거론하며 답하는 것이고, 셋째 “어떻게 이와 같은가?” 이하는 물음에 인해서 서로 발생하게 하고 발생하는 순서를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다.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그 행行의 상을 밝히는 것을 이미 마쳤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이하는 계위를 배당하는 것이다. 또한 먼저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이것은 두 구절로 되어 있다. 첫째 구절은 전의 해탈분에 상대해서 후의 계위를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오근이 해탈분의 후에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구절은 후의 통달분에 의거해서 소재를 각각 묻는 것이다. 이것은 통달분이 근根에 있는지, 역力에 있는지 묻는 것이다.
논
二二通達分 2종의 두 통달분은
五根及五力 오근과 오력이네 ≺8ab≻
난위煖位와 정위頂位에는 오근의 행行을 세운다. 인위忍位와 세제일법世第一法에는 오력의 행을 세운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해탈의 선근의 종자가 심겨져 있다면, 이 2종의 두 계위는 결정코 통달분이다. 만약 아직 심겨져 있지 않다면 (결택분과) 같지 않다.
소 송은 2구로 되어 있는데 바로 답하는 것이다. 이것은 난煖 등 4위位는 통달분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이 중 앞의 둘에는 근根을 세우고 뒤의 둘에는 역力을 세우기 때문에 “2종의 두 통달분은 오근과 오력이네.”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사선근四善根을 밝히고 있다. 이것들의 의미를 밝히고자 4종의 문을 분별한다. 첫째 이름을 풀이하는 문, 둘째 본체를 제시하는 문, 셋째 상을 밝히는 문, 넷째 계위를 밝히는 문이다.
첫째, 이름을 풀이한다. 난煖과 정頂 두 이름은 비유에 의거해서 명명한 것이고, 뒤의 두 이름은 법 자체에 의거해서 명명한 것이다. 이를테면 최초의 정심定心이 성제聖諦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은 진정한 현관現觀에 방불하고 유사하다. 마치 불을 얻고자 할 때 처음에 연기가 생기는데 이것이 불의 뜨거움과 처음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이 비유에 의지해서 난법煖法이라 하는 것과 같다.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근면히 수습해서 쉬지 않는데 이것은 마치 불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잠시도 쉬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서 -
001_0829_c_01L釋中卽二。釋初句中亦有三句。初牒五
001_0829_c_02L根。次正釋文。若五以下重顯根後說力
001_0829_c_03L之意。謂若五法始成立時。黑白間赴。
001_0829_c_04L未名爲力。若不信等。非助或法。不能
001_0829_c_05L障時。乃名五力。故說根力隨有次第也。
001_0829_c_06L云何以下次釋下句。於中亦三。初以徵
001_0829_c_07L問。次牒偈答。云何如是以下因問別顯
001_0829_c_08L相生次第。文相可知。
001_0829_c_09L上來明其行相已竟。若人以下屬當階
001_0829_c_10L位。亦先發起。於中二句。初句對前以
001_0829_c_11L分後位。此明五根在解脫分後。次句就
001_0829_c_12L後別問所在。此問通達分在根在力。
001_0829_c_13L頌中二句正答。此問𤏙等四位是通達
001_0829_c_14L分。於中前二立根。後二說力。故言二
001_0829_c_15L二通達分。五根及五力也。此中略明四
001_0829_c_16L善根義。欲顯此義。四門分別。一名。二
001_0829_c_17L體。三相。四位。初釋名者。𤏙頂二名。
001_0829_c_18L從喩爲目。其後二者。當法立名。謂初
001_0829_c_19L定心。審觀聖諦。與眞現觀。髣髴相似。
001_0829_c_20L如攢火時。初生𤏙氣。與火熱觸。始有
001_0829_c_21L相似。故從此喩。名爲𤏙法。欲令行者。
001_0829_c_22L懃修不息。如攢火者。無蹔息故。如智
001_0829_c_23L「亭」疑「停」次同。「來」一作「成」。「是」
001_0829_c_24L疑「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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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0_a_01L“이와 같이 제諦를 관찰해서 열반의 도道를 믿게 되면 마음이 쾌락에 머무는데 이는 마치 무루無漏와 같다. 이것을 난법이라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불을 지피면 이와 함께 따뜻한 기운이 있게 되어 반드시 불을 얻기를 소망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정법頂法이란 최상이라는 의미이다. 오근五力을 수습하면 최상의 품류에 도달하게 된다. 사람 머리의 정수리가 몸 중에서 가장 위이기 때문에 이 비유에 의지해서 정법이라 하는 것이다. 마치 오력의 상품上品을 법에 의거해서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 하듯, 이제 이 오근의 상품을 비유에 의지해서 정법이라 하는 것이다. 비록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위(上)의 의미를 나타낸다. 『대법론』에서 “그 정법이 전전하며 증진해서 위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정頂이란 중간에 처한다는 의미이다. 무엇인가? 이전의 난법煖法은 죄가 증대하고 복이 미약해서 수행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마치 산을 올라가는 것과 같다. 이후의 인법忍法은 죄가 미약하고 복이 증대해서 수행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 마치 산을 내려가는 것과 같다. 이 둘의 중간은 죄와 복이 동등해서 마치 산의 정상에 도달했을 때 이미 올라가기는 했지만 아직 내려가지 않은 것과 같다. 이 비유에 의지해서 정법이라 명명한 것이다. 『대지도론』에서 “난법이 증진해서 죄와 복이 동등하기에 정법이라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산을 올라가 정상에 도달했을 때 양쪽의 길과 마을이 모두 평등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진보와 퇴보의 시기를 밝힐 때 이와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니 늘상 말하는 방식대로이다. 제諦에 부응하는 인법과 세제일법 또한 늘상 말하는 방식대로이다.”라고 한다. 숙고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본체를 제시한다. 앞의 두 선근은 오근을 본체로 하고, 뒤의 두 선근은 오력을 본체로 한다. 가장 현저한 것을 취한다면 정定과 혜慧를 본체로 하는 것이다. 그 동반자를 논한다면 다른 심법心法에 통한다. 『대법론』에서 “난법煖法이란 각각 안에서 증득하는 것이니 제諦에 대해 분명하게 얻은 삼마지三摩地,32 바라야鉢羅若,33 그리고 그것과 상응하는 법 등을 말한다. 내지 세제일법世第一法이란 각각 안에서 증득하는 것이니 제諦에 대해 찰나의 간격이 없는 마음(心)의 삼마지, 바라야, 그리고 그것과 상응하는 법 등을 말한다. -
001_0830_a_01L度說。如是觀諦信。謂涅槃道。心住快
001_0830_a_02L樂。似如無漏。是名𤏙法。如人攢火。得
001_0830_a_03L有𤏙氣。必1)聖 [34] 得火故。言頂法者。是㝡
001_0830_a_04L上義。修習五根。至最上品。如人首頂。
001_0830_a_05L身中㝡上。故從此喩。名爲頂法。如彼
001_0830_a_06L五力上品。就法名世第一。今此五根上
001_0830_a_07L品。從喩名爲頂法。雖有親疎。齊顯上
001_0830_a_08L義。如對法說。由彼頂法。展轉增進。居
001_0830_a_09L上位故。又復頂者。是處中義。何者𤏙
001_0830_a_10L法以前。罪增福微。脩行不易。如似上
001_0830_a_11L山。忍法以後。罪微福增。修行不難。如
001_0830_a_12L從山下。此二中間。罪福亭等。如至山
001_0830_a_13L頂。已上未下。故從此喩。名爲頂法。如
001_0830_a_14L智度說。𤏙法增進。罪福亭等。故名頂
001_0830_a_15L法。如人上山至頂。兩邊道里俱等故。
001_0830_a_16L或有說者。明進退際。如是等義知常說
001_0830_a_17L也。順諦忍法。世第一法。亦如2)是 [35] 常說。
001_0830_a_18L尋之可知。第二出體者。前二善根。五
001_0830_a_19L根爲體。後二善根。五力爲體。若取㝡
001_0830_a_20L勝定慧爲體。論其助伴。通餘心法。如
001_0830_a_21L對法說。𤏙法者。謂各別內證。於諸諦
001_0830_a_22L中。明得三摩地鉢羅若。及彼相應等法。
001_0830_a_23L乃至世第一法者。謂各別內證。於諸諦
001_0830_a_24L中。無間心三摩地鉢羅若。及彼相應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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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0_b_01L이것으로부터 찰나의 간격이 없이 반드시 최초의 출세간의 도道가 일어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셋째, 상相을 밝힌다. 불을 지피는 비유에 의거해서 상들의 차이를 밝히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어떤 사람이 그 불로써 불이 해야 할 일을 할 때, 불을 구하기 위해 아래에 나무들을 쌓아 놓고 위에서 부싯돌로 불을 지펴 부지런히 힘써 용맹스럽게 불을 구한다. 아래의 나무들에서 최초에 따뜻함이 생겨난다. 다음에 따뜻함이 증가해서 열기가 위로 솟아오른다. 다음에 배로 증가하면 그 연기가 피어난다. 다음에 불꽃이 없는 불이 홀연 흘러나온다. 불이 흘러나오자마자 맹렬한 불꽃이 일어난다. 맹렬한 불꽃이 생겨나면 불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아래의 나무들에서 최초에 생겨난 따뜻함과 같이 그 난煖의 선근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번뇌들을 태우는 무루법이 불이 생겨나기 전의 상이기 때문이다. 따뜻함이 증가해서 열기가 위로 솟아오르는 것과 같이 그 정頂의 선근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연기가 피어나는 것과 같이 제諦에 부응하는 인忍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꽃이 없는 불이 홀연 흘러나오는 것과 같이 세제일법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이 흘러나오자마자 맹렬한 불꽃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세제일법에 속한 오력五力에 곧바로 발생하는 출세간出世間의 무루無漏의 성법聖法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넷째, 계위를 밝힌다. 도道를 다루는 대목에서 이미 자세하게 분별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시 제시하지 않겠다. 사선근四善根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은 있는 대로 송문을 풀이하는 것이고, 뒤는 다시 분별하는 것이다. 다시 분별하는 것은 두 구절로 되어 있다. 앞의 구절은 긍정적으로 가정해서 밝히는 것이고, 뒤의 구절은 부정적으로 가정해서 밝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미 해탈분의 종자를 심었다면 다음의 4위位는 결택분을 얻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직 해탈분을 심지 않았다면 이것34은 결택분과 같지 않다. 이것은 긍정적으로 가정해서 밝힌 것이고, 부정적으로 가정해서 밝힌 것이다.
(5) 칠각지
논 역力 다음에 각분覺分을 설명한다. 이것은 어떻게 안립하는가?
依分自體分 의지처의 분지, 자체의 분지
第三出離分 제3의 것인 출리의 분지 ≺8cd≻
第四功德分 제4의 것인 공덕의 분지
三種滅惑分 3종의 혹惑을 멸함의 분지이네 ≺9ab≻
견도의 위位에 각분을 세운다는 것을 나타낸다. 각覺이란 무슨 의미인가? 분별이 없는 여여如如의 지智를 각覺이라 한다. 분分이란 무슨 의미인가? 사事와 법法을 같이해서 동반자가 되는 것을 분分의 의미라 한다. 이 7법 중 각覺의 의지처의 분지를 염각분念覺分이라 한다. 자체의 분지를 택법각분擇法覺分이라 한다. 출리의 분지를 정근각분正勤覺分이라 한다. 공덕의 분지를 희각분喜覺分이라 한다. 염오가 없고 장애가 없는 분지인 3종의 법을 의각분猗覺分, 정각분定覺分, 사각분捨覺分이라 한다.
소 “역力 다음은 각분을 설명한다.” 이하는 칠각분七覺分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우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송의 4구는 5종의 의미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 “의지처의 분지”란 최초의 염각분이다. -
001_0830_b_01L法。從此無間。必起㝡初出世道故。第
001_0830_b_02L三辨相者。依攢火喩。辨相3)若 [36] 別。如瑜
001_0830_b_03L伽說。譬如有人。欲以其火作火所作。
001_0830_b_04L爲求火故。下安乾木。上施攢燧。精勤
001_0830_b_05L策勵。勇猛攢求。於下木上。㝡初生𤏙。
001_0830_b_06L次𤏙增長。熱氣上衝。次倍增盛。其烟
001_0830_b_07L遂發。次無焰火。欻然流出。火出無間。
001_0830_b_08L發生猛焰。猛焰生已。便能造作火所作
001_0830_b_09L事。如下木上。初所生𤏙。其𤏙善根。當
001_0830_b_10L知亦爾。燒諸煩惱。無漏法火。生前相
001_0830_b_11L故。如𤏙增長。熱氣上衝。其頂善根。當
001_0830_b_12L知亦爾。如次烟發。其順諦忍。當知亦
001_0830_b_13L爾。如無烟火。欻然流出。世第一法當
001_0830_b_14L知亦爾。如火無間發生猛焰。世第一法。
001_0830_b_15L所攝五力。無間所生。出世無漏聖法。
001_0830_b_16L當知亦爾故。第四明階位者。如一道章。
001_0830_b_17L已廣分別。故今此中不重出也。四善根
001_0830_b_18L義略說如是。釋中有二。初正釋文。後
001_0830_b_19L重分別。重分別中卽有二句。初句順明。
001_0830_b_20L後句反顯。若人已下解脫分種。則次四
001_0830_b_21L位得決擇分。若人未下解脫分種。是則
001_0830_b_22L不如此決擇力。是謂順明反顯意也。
001_0830_b_23L次說以下明七覺分。亦先發起。
001_0830_b_24L頌中六句。約五義說。言依分者。初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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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0_c_01L각覺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자체의 분지”란 택법각분이다. 각覺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출리出離의 분지”란 정진각분精進覺分이다. 타파하는 것인 각覺의 혜慧는 장애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공덕의 분지”란 희각분이다. 실상實相을 깨달으면 환희가 생기기 때문이다. “3종의 혹惑을 멸함의 분지이네.”란 의猗, 정定, 사捨를 말한다. 혹惑의 장애를 멸해서 각覺의 성취를 돕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1구는 세 부류(의猗·정定·사捨)를 나타낸다. 『대법론』에서 “염念이란 의지처의 분지이다. 염念을 잡아 두어 선법들을 망실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택법擇法이란 자체의 분지이다. 각覺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정진精進이란 출리의 분지이다. 이 세력에 의해 도달해야 할 곳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喜란 이익의 분지이다. 이 세력에 의해 몸이 쾌적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안輕安, 정定, 사捨는 불염오不染汚의 분지이다. 이 불염오로부터 이 불염오에 의해서 각覺 자체가 불염오가 되기 때문이다. 그 순서대로 경안에 의해 불염오가 된다. 이것에 의해 추중의 과실이 제멸되기 때문이다. 정定에 의해 불염오가 된다. 정定에 의해 ‘의지처인 몸이 전환(轉依)’하기 때문이다. 사捨는 불염오의 본체이다. 탐貪, 우憂 같은 불염오의 위位를 제멸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주석은 넷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각覺의 계위를 밝히는 것이고, 둘째는 이름을 풀이하는 것이고, 셋째는 송문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이고, 넷째는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첫째, 계위를 밝힌다. 견도의 위位에서 최초로 도리道理를 깨닫기 때문에 각覺의 분지를 세운다. 둘째, 이름을 풀이하는 구절에서 먼저 각覺의 이름을 풀이한다. “분별이 없는 여여如如의 지智를 각覺이라 한다.”란, 이승二乘에 의거한다면 사전도四顚倒의 분별이 없는 여여의 지이고, 보살에 의거한다면 일체의 분별이 없는 여여의 지이다. 다음에 분分의 이름을 풀이한다. “사事와 법法을 같이해서 동반자가 되는 것을 분分의 의미라 한다.”란, -
001_0830_c_01L覺分。覺所依故。自體分者。擇法覺分。
001_0830_c_02L覺自性故。出離分者。精進覺分。能摧
001_0830_c_03L覺慧。令出障故。功德分者。是喜覺分。
001_0830_c_04L由覺實相。生歡喜故。三種滅4)或 [37] 分者。
001_0830_c_05L謂猗定捨。由滅*或障。助成覺故。後之
001_0830_c_06L二句顯三差別。對法論云。念者是所依
001_0830_c_07L支。由繫念故。令諸善法皆不忘失。擇
001_0830_c_08L法者是自體支。是覺自相故。精進者。
001_0830_c_09L是出離支。由此勢力。能到所到故。喜
001_0830_c_10L者。是利益支。由此勢力。身調適故。安
001_0830_c_11L定捨者。是不染汚支。由此不染汚故。
001_0830_c_12L依此不染汚故。體是不染汚故。如其次
001_0830_c_13L第。由安故不染汚。由此能除麤重過故。
001_0830_c_14L依定故不染汚。依止於定得轉依故。捨
001_0830_c_15L是不染汚體。永除貪憂。不染汚位。爲
001_0830_c_16L自性故。
001_0830_c_17L釋中有四。初明覺位。次釋名義。三正
001_0830_c_18L釋文。四問發起。初明位者。見道位中。
001_0830_c_19L始覺道理故。立覺分也。第二之中。先
001_0830_c_20L釋覺名。無分別如如智是名覺者。若約
001_0830_c_21L二乘。無四倒分別之如如智。就菩薩無
001_0830_c_22L一切分別之如如智。次釋分義。同事法
001_0830_c_23L「聖」疑「望」。「是」疑剩。「若」疑「差」。
001_0830_c_24L「或」通「惑」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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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1_a_01L범부의 사事가 전환해서 성자의 법法이 될 때 같이 하나의 취지가 되어 서로 도와 성취하기 때문이다. “이 7법 중” 이하는 송문을 그대로 끌어들여 풀이하는 것이다. “왜 이 3법을 염오가 없고 장애가 없는 분지라고 말하는가?” 이하는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논 왜 이 3법을 염오가 없고 장애가 없는 분지라고 말하는가?
因緣依處故 원인이기에, 의지처이기에
自性故言說 자체이기에 설하네 ≺9cd≻
장애가 없고 염오가 없음의 원인이 의猗이다. 혹惑의 장애는 추중한 행行의 원인이기 때문이고, 이 의猗는 추중한 원인에 대해 대치가 되기 때문이다. 의지처는 선정禪定이다. 자체는 사각분捨覺分이다.
소 송의 2구는 세 부류를 밝히고 있다. “원인”이란 혹惑을 멸하는 원인이다. 이것은 의각분猗覺分으로 곧 경안이다. 추중의 원인과 정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지처”란 혹惑을 제멸함의 의지처이다. 무염오의 이 각분은 선정禪定에 의지해서 ‘의지처인 몸의 전환(轉依)’을 얻기 때문이다. “자체”란 사각분이다. 사捨는 혹惑의 장애를 제멸함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이기에 설하네.”란 이 세 종류에 의해 혹惑을 제멸하는 의미가 성립하기 때문에 세 종류를 혹惑을 제멸함의 분지라고 설한 것이다.
주석은 순서대로 이 세 종류의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첫째 의猗를 풀이하는 구절의 “혹惑의 장애는 추중한 행의 원인이 된다.(惑障爲重行作因)”란 반대가 되는 것(所對)35의 원인을 나타낸 것이다. 종자의 추중을 혹惑의 장애라 한다. 그래서 “혹의 장애는 추중(惑障重)”이라 말한 것이다. 이 추중은 현행現行의 혹惑에 대해 원인이 되기 때문에 “행의 원인이 된다.(爲行作因)”고 말한 것이다. 이 경우 “위爲” 자는 “중重” 아래에 놓여야 한다.36 “이 의猗는 추중한 원인에 대해 대치가 되기 때문이다.”란, 의猗는 경안이다. 추중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혹惑의 원인을 제멸할 수 있다. 다른 문장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6) 팔정도
논 다음에 도분道分을 설명한다. 이 법은 어떻게 안립하는가?
分決及令至 분한을 판별함, 또 도달하게 함
令他信三種 타인에게 믿게 함인 3종
對治不助法 (도를) 돕지 않는 법을 대치함이니
說道有八分 도道에 8종의 분지가 있다고 설하네 ≺10≻
수습도修習道의 계위에 도분을 안립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견도見道의 분한을 판별함이 정견이다. 이 견見은 세간의 정견이다. 출세간의 정견 ‘이후에 얻는 것(後得)’이다. 이 지智에 의해 자기가 얻을 도道와 결과를 판별한다(決定分別). 타인을 도달하게 함의 분지란 정사유와 정언正言이다. 발기發起가 있는 말(語言)에 의해 타인에게 알게 하고 얻게 한다. 타인에게 믿게 함의 분지는 3종이 있다. 정언, 정업, 정명이다.
소 “다음에 도분道分을 설명한다.” 이하는 팔정도를 밝히는 것이다. 또한 우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송은 4종의 의미에 의거해서 8종의 의미를 세우는 것을 바로 밝히는 것이다. 그다음 1송은 뒤의 2종의 의미에 의거해서 6종의 구분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분한分限을 판별해서 앎”이란 정견正見이다. 이를테면 후득지後得智는 얻은 분한에 대해 판별해서 알기 때문이다. 또 이전에 증득한 것을 분명하게 판별하기 때문이다. “또 도달하게 함”이란 정사正思와 정어正語이다. 사思는 의업意業이고 어語는 구업口業이다. 이 2종의 정업正業에 의해 타인을 정도正道에 도달하게 하기 때문이다. -
001_0831_a_01L明是名分義者。於轉凡事成聖法中。同
001_0831_a_02L爲一趣。相助而成故。此七以下正釋本
001_0831_a_03L文。云何以下徵問發起。
001_0831_a_04L頌中二句明三差別。言因緣者。滅*或
001_0831_a_05L因緣。此猗覺分。卽是輕安。與麤重因。
001_0831_a_06L正相反故。言依處者。滅*或依處。是之
001_0831_a_07L覺分依於理定得轉依故。自性故者。是
001_0831_a_08L捨覺分。捨離*或障之自性故。故言說
001_0831_a_09L者。由此三種滅*或義成。故說三種爲
001_0831_a_10L滅*或分也。
001_0831_a_11L釋中次第釋此三義。釋初中。言*或障
001_0831_a_12L爲重行住 [1] 因者。顯所對因。種子麤重
001_0831_a_13L名爲*或鄣。故言*或鄣重。卽此麤重爲
001_0831_a_14L現行*或而作因緣。故言爲行住因。此
001_0831_a_15L中爲字應在重下也。言此猗與麤重因
001_0831_a_16L對治故者。猗是輕安。反對麤重。是故
001_0831_a_17L能爲滅或因也。餘文可知。
001_0831_a_18L次說以下。明八正道。亦先發起。
001_0831_a_19L頌中有二。前之一頌正約四義明立八
001_0831_a_20L意。其次一頌約後二義顯六差別。初中
001_0831_a_21L言分決者。卽是正見。謂後得智於所得
001_0831_a_22L分決了知故。又復分明決了先所證故。
001_0831_a_23L及令至者。正思正語。思是意業。語是
001_0831_a_24L口業。由此二種正業。令他至正道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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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1_b_01L“타인에게 믿게 함인 3종”이란 정어, 정업 그리고 정명正命이다. “정업”이란 신업身業이다. 이 신업과 구업은 크게 나누면 둘이 된다. 만약 무진無瞋과 무치無癡에 의지해서 일어나면 정어와 정업으로 세운다. 만약 무탐無貪의 선근善根에 의지해서 일어나면 별도로 정명이라 한다. 사명邪命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지도론』에서 “5종의 사명을 여의기에 정명이라 한다. 무엇을 5종이라 하는가? 첫째, 수행을 하는 어떤 사람이 명리와 명예를 위해 괴이한 일을 속여 보여 준다. 둘째, 명리와 명예를 위해 스스로 공덕을 말한다. 셋째, 명리와 명예를 위해 길흉의 상을 점쳐 사람들에게 말해 준다. 넷째, 명리와 명예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 권위를 보여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겁을 먹고 놀라게 한다. 다섯째, 명리와 명예를 위해 얻은 공양을 칭찬해서 말해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하게 한다. 바르지 못한 인연에 의해 생활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명이라 한다.”고 한다. “도를 돕지 않는 법을 대치함”이란 정근正勤,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이 3종은 3종의 장애(障)를 대치하기 때문이다. 이 4종의 의미에 의지해서 8도분道分을 세우기 때문에 “도道에 8종의 분지가 있다.”고 설한 것이다. 이 8종 중 정어 1종은 두 능력37이 모두 있다.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설하고 다른 곳에서는 설하지 않는다. 그래서 둘 중의 하나를 설하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우선 계위의 대지를 밝힌다. “수습도修習道의 계위에 도분을 안립한다는 것을 나타낸다.”란, 수도修道의 계위에 후득지가 있다. 세간의 정견이 분한을 판별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송문을 그대로 끌어와서 풀이하는 부분에서 앞의 3종의 의미를 풀이한다. 최초의 의미를 풀이하는 부분에 네 구절이 있다. 첫째 구절의 “견도見道의 분한을 판별함이 정견이다.”란, 송을 다시 거론하며 출세간의 후득後得인 정견을 배속하는 것이다. 자체의 견도를 연하여 판별(決定分別)해서 그 분한을 알기에 “견도의 분한을 판별함”이라 말한 것이다. 둘째 구절 “이 견見은 세간의 정견이다.”란 본체를 바로 제시하는 것이다. 셋째 구절 “출세간의 정견 이후에 얻는 것이다.”란 원인에 배대해서 분별하는 것이다. -
001_0831_b_01L令他信三種者。亦是正語。及與正業正
001_0831_b_02L命。言正業者。卽是身業。此身口業。大
001_0831_b_03L分有二。若從無嗔無痴而起。立爲正語。
001_0831_b_04L及與正業。若依無貪善根所起。別名正
001_0831_b_05L命。反*耶命故。如智度說。離五*耶命。
001_0831_b_06L故名正命。何等爲五。一者若行者爲利
001_0831_b_07L養故。詐現奇特。二者爲利養故。自說
001_0831_b_08L功德。三者爲利養故。占相吉凶。而爲
001_0831_b_09L人說。四者爲利養故。高聲現威。令人
001_0831_b_10L畏驚。五者爲利養故。稱說所得供養。
001_0831_b_11L以動人心。*耶因緣活命故。名爲*耶命
001_0831_b_12L也。對治不助法者。卽是正懃正念正定。
001_0831_b_13L以此三種治三鄣故。由此四義立八道
001_0831_b_14L分。故言說道有八分也。此八種中正語
001_0831_b_15L一種。通有二能。故爾處說。其餘不爾。
001_0831_b_16L故隨一也。
001_0831_b_17L釋中有二。先明位地。修道位中顯立道
001_0831_b_18L分者。於修道中。有後得智。世間正見
001_0831_b_19L分決義故。正釋文中。釋前三義。釋初
001_0831_b_20L義中卽有四句。初言見道分決分是正
001_0831_b_21L見者。牒偈屬當。後得正見。緣自見道。
001_0831_b_22L決定分別。知其分齊。故言見道分決分
001_0831_b_23L也。第二句言此見世間正見者。正出體
001_0831_b_24L相。第三句言出世正見後得者。對因分
-
001_0831_c_01L“이 지智에 의해” 이하는 넷째 구절인데 “분한을 판별함”을 풀이하는 것이다. “자기가 얻을 도道”란 알아야 할 견도를 다시 거론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란 견혹見惑38을 끊어 얻은 무위無爲이다. 이 도道와 결과에 대해서 얻은 바의 분한에 따라 판별하기 때문에 정견을 “분한을 판별함”이라 한 것이다. “타인을 도달하게 함” 이하는 송의 “도달하게 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타인에게 알게 하고 얻게 한다.”란, 안의 정사正思에 의지해서 정어正語를 발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그 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타인을 행行에 따라서 도를 얻게 한다. 그래서 이 둘을 “도달하게 하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타인에게 믿게 함” 이하는 셋째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수를 들어 이름을 나열하면서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논 이 3법은 순서대로,
見戒及知足 봄(見), 계戒, 만족할 줄 아는 것이
應知令他信 타인에게 믿게 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11ab≻
타인에게 믿게 함의 분지는 세 경우이다. 정언正言에 의해, 곧 말을 해 주고, 서로 논쟁하며 바른 주장을 펴고, 서로 논리를 펴서 주장하여 이 사람에게는 지智가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믿게 한다고 한 것이다. 정업正業에 의지해서 타인에게 계戒를 지킨다는 것을 믿게 한다. 교법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명正命에 의해 타인에게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을 믿게 한다. 교법에 맞게, 분량에 맞게 의복 등 4종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보며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만족할 줄 알고 재물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을 믿게 한다고 한 것이다. 번뇌를 대치함의 분지란 3종이니 정근, 정념, 정정이다.
소 송은 2구로 되어 있다. 세 부류를 밝히고 있다. “봄(見)”이란 올바르게 말하기 때문이다. 안의 올바른 봄(正見)을 표현하기 때문에 표현되는 것에 의거해서 “봄(見)”이라고 한 것이다. “계戒”란 정업正業이다.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이란 정명正命이다. 이 3종의 행行에 의해 타인에게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타인에게 믿게 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라고 말한 것이다. 『대법론』에서 “정어正語, 정업, 정명은 타인에게 믿게 하는 분지이다. 그 순서대로, 이理를 증득한 사람에게는 봄(見), 계戒, 정명의 청정함이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가? 정어에 의해 자기가 증득한 대로 잘 문답하고 논하고 논의하고 논증한다. 이로부터 봄(見)의 청정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정업에 의해 감과 옴, 나아감과 멈춤에 올바른 행동을 갖춘다. 이로부터 계의 청정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정명에 의해 교법에 맞게 붓다가 허락한 옷과 발우 같은 생활필수품을 구걸한다. 이로부터 생활(命)의 청정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타인에게 믿게 함의 분지는 세 경우이다.”란 아래의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정언正言에 의해” 이하는 위의 3종의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다. “지智가 있다.”란 -
001_0831_c_01L別。因此以下是第四句釋分決義。自所
001_0831_c_02L得道者。是牒所知見道。言及果者。謂
001_0831_c_03L見*或斷所得無爲。於此道果隨所得分
001_0831_c_04L決了分別。故說正見爲分決也。令他以
001_0831_c_05L下釋令至義。能令他知及得者。依內正
001_0831_c_06L思發起正語。故能令他知其有道。及能
001_0831_c_07L令他隨行得道。故說此二爲令至也。令
001_0831_c_08L他信下釋第三義。擧數列名。發起下
001_0831_c_09L文。
001_0831_c_10L頌中二句。顯三差別見者。由正說故。
001_0831_c_11L表內正見。故從所表名爲見也。或者正
001_0831_c_12L業知之正命。由此三行。令他起信。故
001_0831_c_13L言應知令他信也。對法論說。正語正業
001_0831_c_14L正命。是令他信支。如其次第。令他於
001_0831_c_15L證理者。決定信者。見於正命淸淨性故。
001_0831_c_16L所以者何。由正語故。隨自所證。1)菩 [38] 能
001_0831_c_17L問答。論議決擇。由此了知有見淸淨。
001_0831_c_18L由正業故。往來進止。正行具足。由此
001_0831_c_19L了知有戒淸淨。由正命故。如法乞求
001_0831_c_20L佛所聽許。衣鉢資具。由此了知有命淸
001_0831_c_21L淨也。
001_0831_c_22L釋中有二。初言令他信分者三處者。是
001_0831_c_23L釋下句。依正以下釋上三義。初中言有
001_0831_c_24L「菩」疑「若」。
-
001_0832_a_01L송에 표현된 “봄(見)”을 바로 풀이한 것이다. “정업正業에 의지해서” 이하는 다음의 “계戒”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정명正命에 의해” 이하는 송의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이것은 세 구절로 되어 있다. 첫째 구절 “타인에게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을 믿게 한다.”란 구를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교법에 맞지 않는 물건은 삼가 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재물을 가볍게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교법에 맞는 물건은 분량을 지나치게 취하지 않기 때문에 “만족할 줄 안다.”고 말한 것이다. 둘째 구절은 위의 의미를 반복해서 나타낸 것이다. “교법에 맞게 의복 등 4종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보며 행동한다.”란 “재물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을 풀이한 것이다. “분량에 맞게 의복 등 4종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보며 행동한다.”란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을 풀이한 것이다. 4종의 두 행동39의 “생활(命)에 필요한 것(緣)”이란 의복, 음식, 침구, 의약이다. “그래서 타인에게……믿게 한다.” 이하는 셋째 매듭짓는 구절이다. “번뇌를 대치함의 분지란” 이하는 넷째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수를 들어 이름을 나열하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논 이 3법은 순서대로,
大惑及小惑 대혹, 또 소혹
自在障對治 자재장을 대치하네 ≺11cd≻
도道를 돕지 않는 번뇌에 3종이 있다. 첫째, 수습도에서 끊게 되는 번뇌이다. 이를 대혹大惑이라 한다. 둘째, 마음의 침몰沈沒과 도기掉起의 번뇌이다. 이를 소혹小惑이라 한다. 셋째, 자재장自在障인데, 월등한 품류의 공덕이 발현하는 것을 장애하는 것이다. 제1의 번뇌는 정근正勤이 그것을 대치한다. 왜 이와 같은가? 정근의 수습에 의해 도가 성취되기 때문이다. 제2의 번뇌는 정념正念이 그것을 대치한다. 적정寂靜의 상에 거처한다. 만약 정념이 적정의 상에 바르게 거처한다면 침몰과 도기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제3의 번뇌는 정정正定이 그것을 대치한다. 선정에 의지해서 육신통의 공덕을 발현하기 때문이다.
소 송은 2구로 되어 있다. 세 부류를 밝힌다. “대혹大惑”이란 근본번뇌이니 정근正勤에 의해 대치된다. “또 소혹小惑”이란 수번뇌이니 정념正念에 의해 대치된다. “자재장自在障”이란 육신통六神通에 대한 장애이니 정정正定에 의해 대치된다. 아래의 “대치하네”란 위의 3종의 장애(障)을 대치하는 것이니 3종의 대치를 모두 나타낸다. 『대법론』에서 “정정진正精進이란 번뇌의 장애를 청정하게 하는 분지이다. 이것에 의해 일체의 결結을 영원히 끊기 때문이다. 정념正念이란 수번뇌의 장애를 청정하게 하는 분지이다. 이것에 의해 올바른 멈춤(止), 들어 올림(擧)의 상 등을 망실하지 않아 혼침惛沈과 도거掉擧 등의 수번뇌를 영원히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정正定이란 가장 월등한 공덕에 대한 장애를 청정하게 하는 분지이다. 이로부터 신통神通 등 무량한 공덕을 끌어와 일어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주석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3종의 장애를 풀이하는 것이고, 뒷부분인 “첫째” 이하는 장애에 배대해서 대치를 밝히는 것이다. 앞부분의 “도道를 돕지 않는 번뇌에 3종이 있다.”란 이 3종이 각각 번뇌의 장애와 육신통 등에 대한 장애라는 것을 밝힌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 세 논사의 학설이 있다. 어떤 논사는 “무지無知”를 말하고, 어떤 논사는 “정을 얻지 못함”을 말하고, 어떤 논사는 “정定에 대해 자재롭지 못함”을 말한다. -
001_0832_a_01L智者。正釋頌中所表見也。正依業下。釋
001_0832_a_02L次戒義。依正命下釋知足義。此中三句。
001_0832_a_03L初言他得信輕財知足者。是略表句。於
001_0832_a_04L非法物。無1)知 [39] 重心。故言輕財。於如法
001_0832_a_05L物。不過量取。故名知足。第二句者重
001_0832_a_06L顯上義。如法行見衣服等四。是釋輕財。
001_0832_a_07L如量行見衣服等四。是釋知足。四二命
001_0832_a_08L緣者。衣服飮食臥具醫藥也。故令以下。
001_0832_a_09L第三結句。煩惱以下明第四義。擧數列
001_0832_a_10L名。發起下文。
001_0832_a_11L頌中二句顯三差別。言大*或者。根本
001_0832_a_12L煩惱。正勤所治。及小惑者。是隨煩惱。
001_0832_a_13L正念所治。自在鄣者。是六通鄣。正定
001_0832_a_14L所治。下言對治者。對上三鄣。總顯三
001_0832_a_15L治。對法說云。正精進者。是淨煩惱鄣
001_0832_a_16L支。由此永斷一切結故。正念者是淨隨
001_0832_a_17L煩惱鄣支。由此不忘失。正止擧相等。
001_0832_a_18L永不容受2)汎 [40] 掉等隨煩惱故。正定者能
001_0832_a_19L淨最勝功德鄣支。由此引發神通等無
001_0832_a_20L量勝功德故。
001_0832_a_21L釋中有二。初釋三鄣。第一以下對鄣明
001_0832_a_22L治。第一中言非助煩惱有三種者。明此
001_0832_a_23L三種皆是煩惱六通等障。婆沙論中有
001_0832_a_24L三師說。有說無知。有說不得。有說於
-
001_0832_b_01L이와 같은 세 학설은 모두 이치가 있다. 지금 이 논에서는 첫째 학설을 말한다. 무지이기에 번뇌라 하는 것이다. “수습도에서 끊게 되는 번뇌를 대혹大惑이라 한다.”란, 견도見道에서 끊게 되는 번뇌도 대혹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도분道分에 의해 대치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단지 수도修道에서 끊게 되는 번뇌인 탐貪, 진瞋 등을 말했을 뿐이다. 둘째, 셋째 구절이 나타내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1의 번뇌는” 이하는 뒷부분인데 장애에 배대해서 대치를 밝히는 것이다. 순서대로 셋을 말한다.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2) 대치를 합해서 말함
논 이 대치를 수습함을 만약 간략하게 말하면 3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隨不倒有倒 전도되지 않음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있는 것
隨顛倒不倒 전도됨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없는 것
無倒無隨倒 전도됨이 없고 전도됨을 따르지 않는 것이
修對治三種 대치를 수습함의 3종이네 ≺12≻
대치를 수습함에는 3종이 있다. 무엇이 3종인가? 첫째는 전도되지 않은 법을 따르지만 전도됨과 뒤섞여 있는 것, 둘째는 전도됨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없는 것, 셋째는 전도됨이 없고 전도되지 않은 법을 따르는 것이다. 순서대로 범부의 계위, 유학성자의 계위, 무학성자의 계위에 있다.
소 이 품品(대치수습품對治修習品) 안에는 두 단락이 있는데, 대치를 하나하나 밝히는 것은 앞에서 끝났다. 이하는 둘째 대치를 합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는데, 앞의 1송은 계위에 의거해서 분별하는 것이고, 그 후의 2구는 사람의 유형에 배대해서 분별하는 것이다. 첫째 부분의 “이 대치를 수습함을” 이하는 아래의 본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송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3구는 3종의 계위를 나누어서 밝히는 것이고, 아래의 1구는 수를 들면서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제1구 “전도되지 않음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있는 것”이란 범부의 계위를 말한다. 만약 이승二乘에 의거한다면 정심관停心觀에서 세제일법에 이르기까지이고, 만약 보살에 의거한다면 십신十信 이상 십회향十廻向이 다할 때까지이다. 견도見道를 따르기에 “전도되지 않음을 따르는 것”이다. 아직 견혹見惑을 여의지 않았기에 “전도됨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제2구 “전도됨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없는 것”은 유학有學의 계위를 말한다. 만약 이승에 의거한다면 고인苦忍 이후 금강金剛에 이르기까지이고, 만약 보살에 의거한다면 최초의 대지(初地) 이상 내지 등각等覺까지를 말한다. 혹惑의 종자를 아직 끊지 않았기 때문에 “전도됨을 따르는 것”이다. 무분별을 얻기 때문에 “전도됨이 없는 것”이라 말한 것이다. 제3구 “전도됨이 없고 전도됨을 따르지 않는 것”이란 아라한과 여래의 대지를 말한다. 견혹을 이미 여의었기 때문에 “전도됨이 없는 것”이라 말한다. 수혹修惑(수도修道에서 끊게 되는 번뇌)을 영원히 끊었기 때문에 “전도됨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의 구는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먼저 송의 마지막 구를 풀이한다. “무엇이 3종인가?” 이하는 -
001_0832_b_01L定不得自在。如是三說。皆有道理。今
001_0832_b_02L此論中。且說初義。是無知故。說名煩
001_0832_b_03L惱。修斷煩惱名大惑者。見道所斷亦是
001_0832_b_04L大惑。今說道分所對治故。但說脩斷貪
001_0832_b_05L瞋等耳。第二第三文顯可知。第一煩惱
001_0832_b_06L以下第二對鄣明治。次第說三。文相可
001_0832_b_07L見。
001_0832_b_08L[總說對治]於此品內。有二段中。別明對治。竟在
001_0832_b_09L於前。此下第二總說對治。於中有二。
001_0832_b_10L前之一頌。約位分別。其後二句。對人分
001_0832_b_11L別。
001_0832_b_12L就第一中。此脩習下。發起下文。頌中有
001_0832_b_13L二。初之三句別顯三位。下之一句擧數
001_0832_b_14L總結。初中言隨不倒有倒者。謂凡夫位。
001_0832_b_15L若約二乘。從*亭心觀。至世第一法。若
001_0832_b_16L就菩薩。十信以上盡十廻向。隨順見道。
001_0832_b_17L故隨不倒。未離見*或。故言有倒。隨顚
001_0832_b_18L倒不倒者。謂有學位。若約二乘。苦忍
001_0832_b_19L以去。乃至金剛。若就菩薩。初地以上
001_0832_b_20L乃至等覺。*或種未盡。故隨顚倒。得無
001_0832_b_21L分別。故言不倒。無倒無隨倒者。謂阿
001_0832_b_22L羅漢及如來地。見*或已離。故言無倒。
001_0832_b_23L脩*或永盡。故無隨倒。下句總結。文相
001_0832_b_24L可知。釋中有二。先釋下句。何者以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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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2_c_01L앞의 3구를 풀이한다. 순서대로 아래에서 3종의 계위를 배속한다. 문장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보살이” 이하는 사람의 유형에 배대해서 분별한다. 또한 우선 아래의 본문을 일으킨다.
논 보살이 대치를 수습하는 것은 (이승과) 차이가 있다. 무엇인가?
境界及思惟 경계, 또 사유함
至得有差別 얻음에 차이가 있네 ≺13ab≻
성문과 벽지불이라면 자상속의 몸 등에 대한 염처念處의 법들이 그 경계이다. 만약 보살이라면 자상속과 타상속의 몸 등에 대한 염처의 법들이 그 경계이다. 성문과 벽지불은 무상 등의 상들에 의해 몸 등의 법들을 사유한다. 만약 보살들이라면 무생無生에 의해 도리道理를 얻고자 사유하고 관찰한다. 만약 성문과 연각이 사념처 등의 법들을 수습한다면 몸 등의 법들을 여의기 위해서이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은 법들을 수습한다면 (몸 등의 법들을) 여의기 위해서 수습하는 것도 아니고, 여의지 않기 위해서 수습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무주처열반을 얻기 위해서 수습할 뿐이다.
소 송의 2구는 3종의 차이를 밝힌 것이다. “경계”란 소연경을 말한다. “또 사유함”이란 수행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얻음”이란 얻는 결과를 말한다. 이 3종에 있어서 대승과 소승이 같지 않기에 “차이가 있네.”라고 말한다.
주석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자상속의 몸 등에 대한 염처念處의 법들이 그 경계이다”란, 실제를 논한다면 일승一乘 또한 밖의 몸 및 안과 밖의 몸을 여읜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자기 세계의 안을 연할 뿐 타방 세계는 두루 연하지 않는다. 그들이 좁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자상속의 몸 등”이라고 말한 것이다. 둘째 “보살들이라면 무생無生에 의해 도리道理를 얻고자”란, 그들은 생멸 등의 상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이理의 근원을 얻는다. 그래서 “도리를 얻고자”라고 말한 것이다. 셋째 “몸 등의 법들을 여의기 위해서”란, 몸 등을 멸해서 ‘적정寂靜에 거처함’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이승二乘이 오직 자기의 몸을 위해 적정에 머무는 것을 얻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보살은 여의기 위해서 수습하는 것도 아니고”란 이승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항상 생사에 있으면서 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이다. “여의지 않기 위해서 수습하는 것도 아니다.”란 범부와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안의 마음의 장애들을 여의기 때문이다. “단지 무주처열반을 얻기 위해서”란 범부의 집착을 여의어 유전流轉에 머물지 않고, 이승의 집착과 달리 적정에 머물지 않기에 이를 무주처열반이라 한다. “대치를 수습함에 대해 말했다.” 이하는 앞을 매듭짓고 뒤를 일으키는 것이다.
제2편 「수주품修住品」논 대치를 수습함에 대해 말했다. 수습함의 계위란 무엇인가?
다섯째, 수습의 거주처에 관한 품(修住品第五)
修住有四種 수습의 거주처에 4종이 있네
因入行至得 원인, 들어감, 행行, 얻음
有作不作意 지음이 있음, 지음이 없음, 뜻
有上亦無上 위가 있음, 또 위가 없음 ≺1≻
願樂位入位 원함의 계위, 들어감의 계위
出位受記位 출리出離의 계위, 수기受記의 계위
說者位灌位 설하는 자의 계위, 관정灌頂의 계위
至位功德位 도달함의 계위, 공덕의 계위≺2≻
作事位已說 해야 할 일의 계위가 설해졌네 ≺3a≻
수습의 거주처에는 18종의 계위가 있다. 무엇이 18종의 계위인가? 첫째는 원인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어떤 사람이 이미 자성自性에 머물고 있을 때이다. 둘째는 들어감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이미 발심發心했을 때이다. 셋째는 행行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발심에서 아직 결과를 얻지 않았을 때까지이다. 넷째는 결과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이미 얻었을 때이다. 다섯째는 공용功用이 있는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유학성인이다. 여섯째는 공용이 없는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무학성인이다. 일곱째는 월등한 공덕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행行을 구해서 육신통을 얻은 사람이다. 여덟째는 위가 있음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성문 등의 계위를 넘어섰지만 아직 최초의 대지로 들어가지 않은 보살인이다. 아홉째는 위가 없음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부처여래이다. 이 계위 후에 다시 다른 계위가 없기 때문이다. 열째는 원함(願樂)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보살인이 일체의 원함을 행하는 계위에 있어서이다. 열한째는 들어감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최초의 보살의 대지이다. 열두째는 출리出離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최초의 대지 이후의 6종의 대지이다. 열셋째는 수기受記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제8의 대지이다. 열넷째는 설함에 능한 스승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제9의 대지이다. 열다섯째는 관정灌頂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제10의 대지이다. 열여섯째는 얻음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부처의 법신이다. 열일곱째는 공덕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부처의 응신應身이다. 열여덟째는 해야 할 일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로, 모든 부처의 화신化身이다. 모든 거주처는 무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 “수습의 거주처에 관한 품(修住品)”이란, “수습修習”은 앞에서 말한 도품道品의 수행修行이다. “거주처”란 수행에 의해 건립되는 계위(位)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기에 “거주처(住)”라 한다. -
001_0832_c_01L釋上三句。如次第下屬當三位。隨文可
001_0832_c_02L知。
001_0832_c_03L菩薩以下對人分別。亦先發起。頌中二
001_0832_c_04L句。明三差別。言境界者。謂所緣境。及
001_0832_c_05L思惟者。謂所脩行。言至得者。謂所得
001_0832_c_06L果。於此三中。大小不同。故言有差別
001_0832_c_07L也。
001_0832_c_08L釋中卽三。初中言自相續身等念處是
001_0832_c_09L其境界者。實論一乘。亦離外身。及內
001_0832_c_10L外身。然其但緣自世界內。不能普緣他
001_0832_c_11L方世界。爲顯其狹。故說自身等也。第
001_0832_c_12L二中言菩薩無生得道理者。以其不取
001_0832_c_13L生滅等相。得理原故。名得道理。第三
001_0832_c_14L中言爲滅離身諸法者。爲滅身等。得寂
001_0832_c_15L靜處。是明二乘。唯爲自身。住於寂靜。
001_0832_c_16L以爲至得。菩薩不爲滅離故脩者。簡異
001_0832_c_17L二乘。常在生死。度群生故。非不爲滅
001_0832_c_18L離者。簡異凡夫。於內心中。離諸鄣故。
001_0832_c_19L但爲至得無住處涅槃者。離凡夫執。不
001_0832_c_20L住流轉。異二乘著。不住寂靜。是名無
001_0832_c_21L住處涅槃也。脩習以下結前起後也。
001_0832_c_22L脩住品者。脩是前說。道品之行。住是
001_0832_c_23L依行建立之位。行人所住。故名目住。
001_0832_c_24L「知」疑「殷」。「汎」疑「沈」。
-
001_0833_a_01L여기서 수습에 의지해서 거주처를 건립하는 것을 바로 나타내기에 “수습의 거주처에 관한 품”이라 한다. 이 품에는 3송 반이 있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의 3송은 계위의 상을 하나하나 밝히는 것이고, 뒤의 2구는 사람의 유형에 의거하여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제1장 계위의 상을 하나하나 밝힘앞은 또한 둘로 되어 있다. 앞의 2송과 1구는 수행修行에 의지해서 4종의 계위의 차이를 세우는 것이고, 뒤의 3구는 법계法界에 의거해서 3종의 계위가 같지 않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1. 수행에 의지해서 4종의 계위의 차이를 세움앞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처음의 1구는 수數를 들어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다음의 7구와 석 자40는 4종의 계위를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고, 마지막의 두 자41는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처음 합해서 표방하는 부분의 “수습의 거주처에 4종이 있네.”란 아래에서 말하는 “18종의 계위가 있다.”이다. 안립安立하는 의미에 오직 4종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4종이 있네.”라고 말한 것이다. 무엇을 4종이라 하는가? 첫째 앞의 7종42은 공통되는 계위를 안립한다. 삼승三乘에 공통되기 때문이다. 다음에 있는 2종43은 공통되지 않는 계위를 안립한다. 2종의 승乘의 거처44가 공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음의 6종45은 전후의 계위를 안립한다. 전후에 6종을 안립하기 때문이다. 최후의 3종46은 동시의 계위를 안립한다. 동시에 3종을 설하기 때문이다. 도품道品의 수행에 공통되는 것과 공통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앞의 둘을 안립한다. 원인의 수행과 결과의 공덕에 점漸이 있고 돈頓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뒤의 둘을 안립한다. 이것이 4종의 계위를 안립하는 의미이다.
본문은 넷으로 되어 있다. 처음의 3구47는 공통되는 계위를 안립하고, 다음의 1구48는 공통되지 않는 계위를 안립하고, 그다음의 3구49는 전후의 계위를 안립하고, 마지막의 1구와 남은 1구50는 동시의 계위를 안립한다.
첫째 단락의 공통되는 계위 중에 7종의 계위를 안립한다. “원인”이란 첫째 원인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삼승三乘의 종성種性을 말한다. 앞으로는 무시無始를 취하고 뒤로는 초발심初發心을 제외한다. 그 중간에 오직 원인인 것이 있을 뿐이다. 아직 수행의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원인의 계위라 한다. “들어감”이란 둘째 들어감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삼승의 사람들이 그 종성에 따라서 이미 초발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행行”이란 셋째 행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
001_0833_a_01L此中正顯依脩立住。是故名爲脩住品
001_0833_a_02L也。
001_0833_a_03L此品之中。有三頌半。於中有二。前之
001_0833_a_04L三頌。別明位相。1)後 [41] 二句。 約人總結。初
001_0833_a_05L中亦二。二頌一句。依脩行立四位差別。
001_0833_a_06L後之三句。約法界明三位不同。[立四位差別]初中有
001_0833_a_07L三。在前一句擧數總標。次七句三字別
001_0833_a_08L顯四位。最後二字是總結也。初總標
001_0833_a_09L言脩住有四種。謂下所說有十八位。安
001_0833_a_10L立之意。唯有四種。故言有四。何等爲
001_0833_a_11L四。一者前之七種。立共通位。共通三
001_0833_a_12L乘故。次有二種。立不共位。不共二處
001_0833_a_13L故。其次六種立前後位。前後立六故。
001_0833_a_14L最後三種。立同時位。同時說三故。爲
001_0833_a_15L顯道品脩行有共不共。故立前二。爲顯
001_0833_a_16L因行果德有漸有頓。故立後二。是謂安
001_0833_a_17L立四種位意。文中卽四。初之二句立共
001_0833_a_18L通位。次有一句立不共位。其次三句立
001_0833_a_19L前後位。後一句餘。立同時位。初共位
001_0833_a_20L中。卽立七位因者。第一因位脩住。謂
001_0833_a_21L三乘種性。前取無始。後除發心。於其
001_0833_a_22L中間。唯有因性。未得行果。故名因位
001_0833_a_23L入者。第二入位脩住。謂三乘人隨其種
001_0833_a_24L性。已能趣入初發心故。行者第三行位
-
001_0833_b_01L삼승의 사람들이 초발심 이후 세제일법에 이르기까지 다시 그 방편에 의지해서 여실한 행을 수습하기 때문이다. “얻음”이란 넷째 결과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삼승의 사람들이 견도위見道位에 들어가 이에 최초로 출세간의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지음이 있음”이란 다섯째이니, 삼승의 사람들이 수도위修道位에 있으면서 아직 바라는 바에 도달하지 못해 공용功用을 짓기 때문이다. “지음이 없음”이란 여섯째이니, 삼승의 사람들이 무학위無學位에 도달해 이미 결과를 얻어 작용作用이 그쳤기 때문이다. “뜻(意)”이란 일곱째 월등한 공덕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육도六道를 얻어 뜻대로 전전하기 때문이다. 이 계위는 앞의 유학과 무학에 통한다.
둘째 단락에서 간략하게 2종의 계위를 안립한다. “위가 있음”이란, ‘대지에 들어가기 이전의 보살(地前菩薩)’은 공통되지 않는 수행에 의지해서 이미 이승二乘의 모든 계위에 나아갔고, 그 이승과 비교할 때 증상增上된 공덕이 있다. 이 보살에게 증상된 수행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위가 있음”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증상된 수행은 아직 궁극의 것이 아니다. 그 월등한 수행은 위(上)에 수습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위가 있음”이라 한 것이다. 이 두 의미에 의해서 “위가 있음”의 계위를 안립한다. 무엇 때문에 단지 ‘대지에 들어가기 이전(地前)’의 계위만을 안립하는가? 보살이 범부의 계위에 있을 때 이미 이승의 성자의 결과의 계위를 넘어섰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위가 없음”이란 여래의 대지이다. 보살과 비교한 것이다. 보살은 비록 이승을 넘어서기는 했으나 아직 궁극이 아니기에 위(上)에 수습해야 할 것이 있다. 그래서 여래의 대지를 “위가 없음”의 계위로 안립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원만해서 다시 위(上)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이 불과佛果는 가장 높은 계위이다. 아만我慢의 습기를 영원히 끊었기에 위(上)의 상相이 전연 있지 않다. 그래서 이를 “위가 없음”의 계위라 한 것이다. 어떤 경의 송에서 “위(上)의 상相이 있지 않기에 ‘위가 없음’이라 부르네.”라고 한다. 이 두 의미에 의지해서 “위가 없음”의 계위라 한다. “위가 있음”을 안립하는 것은 이승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위가 없음”을 안립하는 것은 보살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이 두 의미에 의지해서 공통되지 않은 계위를 안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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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3_b_01L脩住。謂三乘人發心以後。及2)乃 [42] 至世
001_0833_b_02L第一法以還。隨其方便。脩如行故。至
001_0833_b_03L得者。第四果位脩住。謂三乘人入見道
001_0833_b_04L位。方始至得出世果故。有住第五。謂
001_0833_b_05L三乘人在脩道位。未至所望。作功用故。
001_0833_b_06L無作第六。謂三乘人至無學位。已果所
001_0833_b_07L得。息作用故。意者。第七勝德位脩。住
001_0833_b_08L得六道隨意轉故。此位通前學無學也。
001_0833_b_09L第二段中略立二位。言有上者。地前菩
001_0833_b_10L薩依不共行。已趣二乘。一切位地。對
001_0833_b_11L彼二乘。無增上德。顯此菩薩有增上行。
001_0833_b_12L故名有上。然此上行未是究竟。其勝行
001_0833_b_13L有上可脩。故名有上。依此二義。立有
001_0833_b_14L上位。何故但立地前位者。爲顯菩薩在
001_0833_b_15L凡位時已超二乘聖果位故。言無上者。
001_0833_b_16L是如來地。對諸菩薩。雖過二乘。而未
001_0833_b_17L究竟。有上可脩。故立如來。爲無上位。
001_0833_b_18L究竟圓滿。更無上故。又此佛果最極上
001_0833_b_19L位。能於我慢習氣永盡。故於上相。都
001_0833_b_20L無所在。以之故名爲無上位。如經頌曰。
001_0833_b_21L上相無所有故。號爲無上。依此二義。
001_0833_b_22L名無上位。立有上者。爲異二乘。立無
001_0833_b_23L上者。爲簡菩薩。由此二義。立不共位
001_0833_b_24L也。
-
001_0833_c_01L셋째 단락에서 6종의 계위를 안립한다. “원함(願樂)의 계위”란 ‘대지에 들어가기 이전(地前)’의 40심四十心의 계위이다. 1도道를 증득하는 업業을 원해서 만행萬行을 수습하기 때문이다. “들어감의 계위”란 최초의 대지이다. 보살이 이미 견도에 들어가 불가佛家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출리出離의 계위”란 다음의 6종의 대지이다. 도道를 점점 더 수습해서 장애들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수기受記의 계위”란 제8의 대지이다. 결정코 퇴보하는 일이 없어서 부처의 기별記別을 받기 때문이다. “설하는 자의 계위”란 제9의 대지이다. 걸림 없는 변설辨說의 능력을 얻어 법을 잘 설하기 때문이다. “관정灌頂의 계위”란 제10의 대지이다. 보살의 수행이 원만해서 부처의 계위를 받기 때문이다. 기별을 준 시방의 부처들이 쏟아 내는 광명이 보살의 정수리로 들어가 부처의 계위를 주는 일이 마치 왕이 왕위를 받을 때 사방의 바다의 물을 취해 그 정수리에 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6종의 계위는 계위의 오르고 내림에 전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넷째 단락에서 3종의 계위를 안립한다. “도달함의 계위”란 결과의 대지인 법신法身이다. 스스로 왕래하여 지극한 얻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공덕의 계위”란 수용신受用身이다. 만행萬行의 공功에 의해 만덕萬德을 받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의 계위”란 변화신變化身이다. 시방의 세계에 편만遍滿하며 8종의 상相을 화현하기 때문이다. 이 3종의 계위는 결과를 구분한 것이어서 전후가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설해졌네”란 셋째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주석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수를 들어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둘째는 수를 다시 들며 하나하나 풀이하는 것이다. 여기서 순서대로 18종의 계위를 풀이한다. 제7의 “월등한 공덕의 계위”란 송의 “뜻(意)”을 풀이한 것이다. 월등한 공덕이 있을 때 “뜻대로 함(如意)”을 얻기 때문이다. 제8의 “성문 등의 계위를 넘어섰지만”은 증상된 수행이 있다는 의미에 의거해서 “위가 있음”이란 말을 풀이한 것이다. “아직 최초의 대지에 들어가지 않은 보살인”이란 위로 전진할 수 있다는 의미에 의거해서 “위가 있음”이란 말을 풀이한 것이다. -
001_0833_c_01L第三段中。安立六位願樂位者。謂在地
001_0833_c_02L前四十心位。願證一道。業脩萬行故。
001_0833_c_03L言入位者。初地菩薩已入見道。生佛家
001_0833_c_04L故。言出位者。謂次六地漸增脩道。出
001_0833_c_05L諸鄣故。受記位者。謂第八地決定無退。
001_0833_c_06L受佛記故。說者位者是第九地。得無礙
001_0833_c_07L辨。善說法故。灌頂位者。是第十地。菩
001_0833_c_08L薩行滿。受佛位故。記十方佛所放光明。
001_0833_c_09L入菩薩頂。以授佛位。事同於王受位之
001_0833_c_10L時。取四海水。灌其頂故。此六位者。顯
001_0833_c_11L位階降有前後也。
001_0833_c_12L第四段中安立三位。言至位者。果地法
001_0833_c_13L身。從自往來。到至得故。功德位者。是
001_0833_c_14L受用身。依萬行功受萬德故。住事位事
001_0833_c_15L者。是變化身。遍十方界。化八相故。此
001_0833_c_16L三住者。顯果差別。無前後也。言已說
001_0833_c_17L者。第三總結也。
001_0833_c_18L釋中有三。一者擧數總標。二者牒數別
001_0833_c_19L解。於中次第釋十八位。第七中言勝
001_0833_c_20L德位者。是釋頌中意字。由有勝德。得
001_0833_c_21L如意故。第八中言過聲聞等位者。是約
001_0833_c_22L有增上行之義。釋有上名。未入初地菩
001_0833_c_23L薩3)有 [43] 約有其上可進之義。釋有上名也。
001_0833_c_24L「後」下疑脫「之」。「乃」疑剩。「有」疑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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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4_a_01L제9의 “위가 없음”을 풀이할 때는 오직 한 의미에 의거해서 “위가 없음”을 풀이한 것이다. 다른 주석문은 앞에 준해서 이해하면 된다. “모든 거주처는” 이하는 셋째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이는 송의 “설해졌네”라는 문장을 풀이한 것이다.
2. 법계에 의거해서 3종의 계위가 같지 않음을 밝힘논 이제 단지 축약해서 말하면,
法界復有三 법계에 다시 3종이 있네
不淨不淨淨 청정하지 않음,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
清淨如次第 청정함이 순서대로이네 ≺3cd≻
만약 이 계위들을 축약해서 말하면 셋이 있다. 첫째는 청정하지 않음의 계위인 거주처로, 원인의 계위에서 행行의 계위까지이다. 둘째는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의 계위인 거주처로, 유학성인의 계위이다. 셋째는 청정함의 계위인 거주처로, 무학성인의 계위이다.
소 이하는 둘째 법계法界의 계위를 밝힌 것이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다. 진여법계眞如法界의 본체는 잡염雜染이 없으나 단지 객진客塵에 의해서 3종의 계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법계에 다시 3종이 있네.”라고 말한 것이다. “청정하지 않음”이란 범부의 계위에 있어서이다. 혹惑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정하지 않음과 청정함”이란 유학성자의 계위에 있어서이다. 수혹修惑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나 견혹見惑은 이미 끊어졌기 때문이다. “청정함”이란 무학의 계위에 있어서이다. 견혹과 수혹 두 혹惑이 궁극적으로 끊어졌기 때문이다. “순서대로이네”란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처음은 제1구를 풀이하는 것이고, “첫째는 청정하지 않음” 이하는 다음의 2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앞의 4종의 계위 중 첫째인 공통되는 계위에 의거해서 셋을 구별하여 풀이하는 것이다. 법계는 삼승三乘에 두루 통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기에 다른 문門에 의거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제2장 사람의 유형에 의거해서 합해서 매듭지음논
此中安立人 이것에 사람을 안립한다는 것을
應知如道理 이치대로 알아야 하네 ≺4ab≻
이 계위의 차이에 의해 이치대로 범부와 성인의 차이가 안립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자성의 계위에 있다.”, “이 사람은 이미 들어감의 계위에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이다.
소 이 품 안의 두 단락 중에서 계위의 상을 하나하나 밝히는 것은 이전까지 다 마쳤다. 이하 반의 송은 사람의 유형에 의거해서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이것에 사람을 안립한다.”란 이 계위의 구별에 따라서 다른 유형의 사람을 안립하는 것이다. “이치대로 알아야 하네.”란 이치에 부합하게 사람의 유형을 안립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권하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풀이하는 것이고, “이 사람은” 이하는 상을 하나하나 안립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사람은 자성의 계위에 있다.”란 제1의 계위에 의거해서 최초의 사람의 유형을 나타낸다. “이 사람은 이미 들어감의 계위에 있다.”란 제2의 계위에 의거해서 사람을 안립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것들이다.”란 예를 들어 후의 계위인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나타낸다. “이제까지 수습의 계위에 대해 말했다. 무엇이 결과를 얻음인가?”란 앞의 것을 매듭짓고 뒤의 것을 일으키는 것이다.
제3편 「득과품得果品」 -
001_0834_a_01L釋無上中。唯約一義。釋無上也。此餘
001_0834_a_02L釋文。准前可解。一切以下第三總結。
001_0834_a_03L卽釋頌中已說文也。
001_0834_a_04L[約法界明三位不同]此下第二明法界位。初句總標。下卽別
001_0834_a_05L顯。眞如法界。自性無染。但依客塵。以
001_0834_a_06L顯三位。故言法界復有三也。言不淨者。
001_0834_a_07L在凡夫位。於諸*或種。無所斷故。不淨
001_0834_a_08L淨者。有覺聖位。脩*或未盡。見*或盡
001_0834_a_09L故。言淸淨者。在無覺位。見脩二*或究
001_0834_a_10L竟滅故。如次第者。是總結也。
001_0834_a_11L釋中卽二。先釋初句。不淨以下釋次二
001_0834_a_12L句。前四位中。約初共位。釋三差別。爲
001_0834_a_13L顯法界普通三乘。是故不就餘門說
001_0834_a_14L也。
001_0834_a_15L[約人總結]於此品內有二段中。別明位相。竟在於
001_0834_a_16L前。此下半頌。約人總結。此中安立人
001_0834_a_17L者。隨此位別。安立別人。應知如道理者。
001_0834_a_18L勸知順理安立人也。釋中有二。先卽總
001_0834_a_19L釋。此中以下別顯立相。言自性中住者。
001_0834_a_20L依第一位以顯初人。此人已入住者。是
001_0834_a_21L顯第二位中立人。如是等者。例顯後位
001_0834_a_22L諸餘人也。脩位已說。何者得果者。結
001_0834_a_23L前生後也。
001_0834_a_24L得果品者依前脩住。顯得果相。是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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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4_b_01L논 이제까지 수습함의 계위에 대해 말했다. 무엇이 결과를 얻음인가?
여섯째, 결과를 얻음에 관한 품(得果品第六)
器果及報果 기器인 결과, 또 보報인 결과
此是增上果 이것은 증상增上인 결과이네
愛樂及增長 욕구(愛樂), 또 증장增長
淸淨果次第 청정淸淨인 결과가 순서대로이네 ≺1≻
기器인 결과란 과보果報인데, 선근에 상응하는 것이다. 보報인 결과란 기器인 결과의 증상 때문에 선근이 최상품이다. 욕구(愛樂)인 결과란 숙세에 자주 수습했기 때문에 선법을 욕구한다. 증장增長인 결과란 현세에 자주 공덕의 선근을 수습하기 때문에 선근이 원만하게 되는 것이다. 청정淸淨인 결과란 장애를 끊는 것이다. 이 계위의 결과는 순서대로 5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 “결과를 얻음에 관한 품(得果品)”이란, 앞의 수습의 거주처에 의거해서 결과를 얻음의 상相을 보여 주기 위해 “결과를 얻음에 관한 품”이라 한 것이다. 이 품에 2송 반이 있는데,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2송과 1구는 결과의 상을 나누어서 보여 주는 것이고, 마지막의 1구는 설명이 끝난 뒤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첫째 단락 또한 둘로 되어 있다. 앞의 1송은 원인에 배대해서 5종의 결과가 같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뒤의 1송과 1구는 계위에 의거해서 10종의 결과가 구별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중 앞의 것에 대해서 간략하게 그 의미를 밝힌다. 5종의 결과의 의미를 3종의 구句로 분별한다. 첫째 이름을 나열하고, 둘째 본체의 상을 밝히고, 셋째 원인에 배대해서 분별한다.
첫째, 이름을 나열한다. 『유가사지론』의 설에 의거하면 첫째 이숙과異熟果, 둘째 등류과等流果, 셋째 이계과離繫果, 넷째 사용과士用果, 다섯째 증상과增上果이다. 이것은 총체적인 문에 의거해서 잡염과 청정을 섞어 말한 것이다. 지금 이 『중변분별론』의 설에 의거하면 첫째는 보과報果이니, 이는 이숙과이다. 둘째는 증상과이니, 그 논의 명칭과 다르지 않다, 셋째는 수류과隨流果이니, 이는 등류과이다. 넷째는 공용과功用果이니, 이는 사용과이다. 다섯째는 상리과相離果이니, 이는 이계과이다. 이는 개별적인 문에 의거해서 오직 선善의 결과를 말할 뿐이기 때문에 선에 따라서 순서를 일으켜 말한 것이다. 무엇인가? 숙세의 선업에 의해 초감된 보과는 선법의 기器이기 때문에 최초에 말한 것이다. 이 보과의 증상력에 의지해서 선근善根을 발하는데 이것이 증상과이다. 최초에 발한 이후 선세先世에 수습했기 때문에 월등한 선을 욕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등류과이다. 이 현재세의 욕구와 공용功用의 세력에 의해 선근이 원만하게 되는데 이것이 공용과이다. 원만하게 수습하기 때문에 장애(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다섯째 상리과를 건립한다.
둘째, 본체의 상을 제시한다. 가령 『유가사지론』 「보살지 역종성품力種性品」에서 “불선법은 악취惡趣에서 이숙과를 받고 선의 유루법은 선취善趣에서 이숙과를 받는다. 이를 이숙과라 한다. 불선법을 수습했기 때문에 불선법에 즐겁게 머물고 불선법이 증장한다. 선법을 수습했기 때문에 선법에 즐겁게 머물고 선법이 증장한다. -
001_0834_b_01L名爲得果品也。
001_0834_b_02L於此品內。有二頌半。分作二段。二頌
001_0834_b_03L一句別顯果相。最後一句說已總結。初
001_0834_b_04L中亦二。前之一頌。對因以明五果不同。
001_0834_b_05L後一頌一句約位以顯十果差別。此中
001_0834_b_06L在前略明其義。五果之義三句分別。初
001_0834_b_07L列名字。次明體相。其第三者。對因分
001_0834_b_08L別。列名字者。依瑜伽說。一異熟果。二
001_0834_b_09L等流果。三離繫果。四士用果。五增上
001_0834_b_10L果。此就通門。染淨雜說。今此論說。一
001_0834_b_11L名報果是異熟果。二增上果不異彼名。
001_0834_b_12L三隨流果是等流果。四功用果是士用
001_0834_b_13L果。五相離果是離繫果。此約別門。唯
001_0834_b_14L說善果。故隨善起。次第而說。何者。宿
001_0834_b_15L世善業所感報果。作善法器。故在初說。
001_0834_b_16L依此報果增上力故。得發善根。是增上
001_0834_b_17L果始起以後。由先世習愛樂勝善。是等
001_0834_b_18L流果。由此現在愛樂功力。善根圓滿。
001_0834_b_19L是功用果。圓滿脩故。能離諸鄣。是故
001_0834_b_20L第五立相離果。第二出體相者。如菩薩
001_0834_b_21L地力種性品說云。諸不善法。於諸惡趣
001_0834_b_22L受異熟果。善有漏法。於諸善趣受異熟
001_0834_b_23L果。是名異熟果。習不善。故樂住不善
001_0834_b_24L法。不善法增脩習善。故樂住善法。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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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4_c_01L혹은 선세의 업과 유사하게 후세의 결과가 이에 따라 전기轉起한다. 이를 등류과라 한다. 팔분지의 성도聖道로써 번뇌들을 끊는다. 이를 이계과라 한다. 만약 이생異生이라면 세속의 도道로써 번뇌들을 끊지만, 궁극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계과라 하지 않는다. 어떤 부류는 현세의 법에 있어서 전문적인 일 중 하나에 의지해서 사람의 작용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농업이나 상업의 일, 서화나 산수나 점복 등의 일이다. 이것에 의해 농사 등 재리財利 등의 결과를 성취하기에 이것을 사용과라 한다. 안식 등은 안근의 증상과이다. 내지 의식 등은 의근意根의 증상과이다. 중생의 몸이 흩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은 명근命根의 증상과이다. 22근은 각각 자기의 증상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일체가 증상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이 중 “선세의 업과 유사하게 후세의 결과가 이에 따라 전기한다.”란, 가령 살생이 원인이 되어 악취의 이숙과를 받고 후에 인취人趣에 태어났을 때 단명短命의 결과를 받는다. 또 가령 물건을 훔친 것이 원인이 되어 악취에 떨어지고 후에 인취에 태어났을 때 빈궁의 결과를 받는다. 이와 같은 것들이 등류과에 속한다. 다른 문장들은 분명하니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오과五果의 본체의 상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셋째, 원인에 배대해서 분별한다. 이는 10종의 원인에 배대해서 그 구별을 보여 주는 것을 말한다. 이숙과는 인발인引發因에 배대한다. 증상과는 심과 심소법이 대상을 같이하는 원인에 대해서이다. 선과 불선을 얻는 것은 인발인이다. 등류과를 얻는 것은 생기인生起因이다. 사용과를 얻는 것은 인발인이다. 이계과를 얻는 것은 인발인이다. 이것 이외의 다른 원인들이 얻는 결과는 대개는 증상과에 속한다. 『유가사지론』 「사소성결택思所成決擇」에서 “또 선세에 지은 업과 번뇌는 삼계三界의 이숙과를 성숙하게 한다. -
001_0834_c_01L法增長。或似先業。後果隨轉。是名等
001_0834_c_02L流果。八支聖道滅諸煩惱。名離繫果。
001_0834_c_03L若諸異生以世間道滅諸煩惱。不究竟
001_0834_c_04L故。非離繫果。諸有一類。於現法中。依
001_0834_c_05L正隨一工巧業處。起士夫用。所謂農作
001_0834_c_06L商賈事工。出書算數占卜等事。由此成
001_0834_c_07L辦諸稼穡等財利等果。是名士用果。若
001_0834_c_08L眼識等是眼根等增上果。衆生等果。是
001_0834_c_09L名士用果。若眼識等。是眼根身分不壞
001_0834_c_10L不散。是命根增上果。二十二根各各能
001_0834_c_11L起自增上果。當知一切名增上果。此中
001_0834_c_12L言或似先業後果隨轉者。如因煞生。受
001_0834_c_13L於惡趣異熟果已。後生人趣。受短命果。
001_0834_c_14L由盜物故。墮惡趣已。後生人中。受貧
001_0834_c_15L窮果。諸如是等。等流果攝。餘文分明。
001_0834_c_16L尋之可知。五果體相。略明如是。第三
001_0834_c_17L1)封 [44] 因分別者。謂對十因。顯其差別。異
001_0834_c_18L熟果是引發因。增上果中望心心法。是
001_0834_c_19L同事因。得善不善是引發因。得等流果。
001_0834_c_20L是生起因。得士用果是引發因。得離繫
001_0834_c_21L果是引發因。此餘諸因所得之果。多分
001_0834_c_22L入於增上果攝。如瑜伽論。思所成決擇
001_0834_c_23L中說。又先所住諸業煩惱。於三界中異
001_0834_c_24L「封」疑「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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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5_a_01L이 이숙과는 업과 번뇌의 인발인이 원인이기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또 육식신六識身은 안眼과 색色, 내지 의意와 법法이 증상연이 되어 대상을 같이하는 원인이기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또 불선법은 나쁜 친구와 가깝게 지내고, 옳지 않은 법을 듣고, 바르게 사유하지 않는 것이 인발인이기 때문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이것과 상반되는 3종의 인발인이 일체의 선법을 생기게 하니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원인들은 모두 각각의 증상과이기 때문에 결과를 갖는 법이다. 선과 불선과 무기無記의 법들의 종자는 해를 입지 않는다. 그 일체의 법들은 모두 생기인을 발생하게 하기 때문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이 생기인은 모두 각각의 등류과이기 때문에 결과를 갖는 법이다. 또 염오染汚의 지속은 그릇된 정진을 발생하게 하고 결과가 없게 수고해서 우憂와 고苦의 거주처를 발생하게 한다. 불염오不染汚의 지속은 바른 정진을 발생하게 하고 결과가 있게 수고해서 희喜와 낙樂의 지속을 발생하게 한다. 인발인이기 때문에 원인이 있는 법이다. 그 원인의 법은 모두 각각의 사용과이기 때문에 결과가 있는 법이다. 또 세간의 도道는 이욕離欲과 출세간의 성도聖道에 속한 것에 나아가서 열반을 증득한다. 그것은 인발인이기 때문에 원인을 갖는 법이다. 출세간의 도는 이계離繫의 증상과이기 때문에 결과를 갖는 법이다. 궁극의 이계과이기 때문이다. 만약 세간의 도라면 궁극의 이계과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여기에 인용하는 문장들은 의미에 따라 취한 것이기에 하나하나가 반드시 그 순서대로인 것은 아니다. 다섯째 결과의 상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다.
다음으로 본문을 따라가며 있는 대로 풀이한다. 최초에 “기과器果”란 과보의 결과이다. 숙세에 수습한 선근善根이 얻는 바의 과보이다. 선행善行을 수습한 것에 수순해서 도道의 기器를 받기 때문에 “기과”라 하는 것이다. 이 과보의 결과는 선도善道와 악도惡道 모두이다. -
001_0835_a_01L熟果熟。此異熟果因業煩惱。引發因故。
001_0835_a_02L名有因法。又六識身以從眼色。乃至意
001_0835_a_03L法爲增上緣。同事因故。名有因法。又不
001_0835_a_04L善法。由近惡友。聞非正法。不正思惟。
001_0835_a_05L引發因故。名有因法。與此相違三種引
001_0835_a_06L發因。起一切善法。當知亦爾。卽此諸
001_0835_a_07L因。皆由各別增上果故。名有果法。若善
001_0835_a_08L不善無記諸法所有種子。未被損害。彼
001_0835_a_09L一切法皆是能生生起因故。名有因法。
001_0835_a_10L此生起因皆由各別等流果故。名有果
001_0835_a_11L法。又染汚住生*耶精進。無果劬勞。生
001_0835_a_12L憂苦住。不染汚住生正精進。有果劬勞。
001_0835_a_13L生喜樂住。彼由引發因故。名有因法。
001_0835_a_14L卽彼因法皆由各別士用果故。名有果
001_0835_a_15L法。又世間道。趣於離欲及出世法。聖
001_0835_a_16L道所攝。能證涅槃。彼由引發因故。名
001_0835_a_17L有因法。卽出世道。由離繫增上果故。
001_0835_a_18L名有果法。謂由究竟離繫果故。若世間
001_0835_a_19L道非由究竟離繫果故。此所引文隨義
001_0835_a_20L類取。未必一一如彼次第。五果之相略
001_0835_a_21L說如是。
001_0835_a_22L次正消文。初中言器果者。是果報果。
001_0835_a_23L宿習善根所得果報。順脩善行。爲受道
001_0835_a_24L器。故名器果。此果報果通善惡道。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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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5_b_01L지금은 수순하는 결과를 밝히는 것이기에 선도를 취한다. “보과報果”란 증상과이다. 월등한 선근을 말한다. 기器인 보報의 세력의 증상增上에 의해 발생한 것이기에 원인을 따라 이름을 세워 “보과”라 한 것이다. 다음의 “이것은 증상과이네.”란 최초의 결과와 혼동할까 염려해서 본래의 것에 의지하여 별도로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이 증상과는 일체의 법일 수 있으나 지금은 선법에 의거해서 이 결과를 건립하는 것이기에 오직 기器인 보報의 증상에 의해 발생한 것을 취한다. “욕구(愛樂)”란 수류과이다. 그 선세先世에 오랫동안 수습한 선근에 의해 후세後世에 그 흐름을 따라 선법을 욕구하기 때문이다. 이 수류과는 삼성三性(선·불선·무기) 모두일 수 있으나 지금은 수습의 결과를 밝히는 것이기에 오직 선법만을 취한 것이다. “증장增長”이란 공용과이다. 현재세에 근면한 공용功用의 세력에 의해 선근이 증장하고 원만하게 되기 때문이다. “청정淸淨인 결과”란 상리과이다. 수행이 원만해서 장애(障)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순서대로이네”란 이 기器 등 5종의 결과의 전후를 보과 등 5종의 결과의 순서에 의해 건립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의지해서 발생하는 순서이기 때문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처음은 5종의 결과를 풀이하는 것이고 “이 계위의 결과는” 이하는 순서를 풀이하는 것이다. 기과器果를 풀이하는 부분에서 “과보果報”란 기器의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선善과 상응하는 것”이란 기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둘째 부분에서 “기器인 결과의 증상 때문에”란, 발생하게 하는 연緣을 든다면 이것은 “보報”이다. “선근이 최상품이다.”란 기과에 의해 발생한 선善을 나타낸 것이다. 결과의 본체를 바로 제시한 것이다. 셋째 부분에서 “숙세에 자주 수습했기 때문에”란 앞의 원인을 든 것이다. “선법을 욕구한다.”란 결과의 본체를 바로 제시한 것이다. 넷째와 다섯째는 문장이 표현하는 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계위의 결과는” 이하는 송의 “순서대로이네”를 풀이해서 말한 것이다. 이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논
上上及初果 상상上上, 또 최초의 결과
數習究竟果 자주 수습함, 완성함의 결과
隨順及對治 수순함, 또 대치함
相離及勝位 벗어남, 또 월등한 계위 ≺2≻
有上無上故 위가 있음, 위가 없음이기에
略說果如是 축약해서 결과를 말하면 이와 같네 ≺3ab≻
만약 축약해서 결과를 말하면 10종이 있다. ① 첫째 상상上上의 결과란 자성으로부터 발심, 수행에 이르기까지 후후後後의 순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② 둘째 최초의 결과란 최초로 출세간의 법들을 얻는 것이다. ③ 셋째 자주 수습함의 결과란 최초의 결과 이후 유학의 계위에 있어서이다. ④ 궁극의 결과란 무학의 법들이다. ⑤ 수순함의 결과란, 원인이 되기 때문에 상상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⑥ 대치함의 결과란 끊음의 도道이니, 이것에 의지해서 최초의 결과를 얻는다. 이 중 최초의 도를 대치함의 결과라 한다. ⑦ 벗어남(相離)의 결과라 한다. 자주 수습함의 결과와 원만함의 결과이다. 혹惑의 장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유학과 무학의 성인의 결과이다. ⑧ 월등한 계위의 결과란 신통 등 공덕들이다. ⑨ 위가 있음의 결과란 보살의 대지이다. 다른 승乘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⑩ 위가 없음의 결과란 여래의 대지이다. 이와 같은 4종의 결과는 원만함의 결과를 분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축약해서 말하면 이만큼 많지만, 만약 상세히 말한다면 무한하다.
소 이하는 둘째 계위에 의거해서 10종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중 앞의 4종은 간략하게 결과를 말하는 것이고, 뒤의 6종은 상세하게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앞의 4종의 결과를 열어 6종의 결과로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001_0835_b_01L明順果。故取善道。言報果者。是增上
001_0835_b_02L果。謂勝善根。由器報力。增上所起。從
001_0835_b_03L因立名。名爲報果。次言此是增上果者。
001_0835_b_04L恐濫初果。依本名別。此增上果通一切
001_0835_b_05L法。今就善法立此果故。唯取器報增上
001_0835_b_06L所起也。言愛果者。是隨流果。由其先
001_0835_b_07L世。長習善根。後隨彼流。愛樂善法故。
001_0835_b_08L此隨流果。普通三性。今明脩果。唯取
001_0835_b_09L善法也。言增長者。是功用果。由現在
001_0835_b_10L世懃功用力。善根增長。得圓滿故。淸
001_0835_b_11L淨果者。是相離果。由行圓滿。出離鄣
001_0835_b_12L故。言次第者。立此器等五果前後。依
001_0835_b_13L報果等。五果次第。由是相依。生起次
001_0835_b_14L第也。
001_0835_b_15L釋中有二。初釋五果。此立以下釋次第
001_0835_b_16L也。器果中。言果報者。是出器體。與善
001_0835_b_17L相應者。是釋器義。第二中言器果增上
001_0835_b_18L故者。擧能起緣。卽是報也。善根最上
001_0835_b_19L品者。顯1)一 [45] 所起善。正出果體也。第三
001_0835_b_20L中言宿世數習故者。是擧前因。愛樂善
001_0835_b_21L法者。正出果體也。第四第五。文顯可
001_0835_b_22L知。此立以下釋次第言。亦可知也。
001_0835_b_23L此下第二約位顯十。於中前四是略說
001_0835_b_24L果。其後六者。是廣說果。開前四果。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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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5_c_01L또 앞의 4종의 결과는 상상上上의 결과이다. 하하下下의 원인에 상대해서 상상의 결과를 건립하기 때문이다. 그 후의 6종의 결과는 수순隨順의 결과이다. 둘과 둘이 서로 수순해서 세 쌍을 건립하기 때문이다. 최초에 “상상上上의 결과”란 제1의 결과이다. 실제로는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이나 단지 최초의 것에다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을 건립했을 뿐이다. 그 후의 셋에 다시 개별적인 것을 지칭하는 이름을 건립한다. 이 제1의 결과는 들어감과 수행함의 계위에 있다. 들어감의 계위는 원인의 계위의 위(上)이고, 수행함의 계위는 들어감의 계위의 위(上)이다. 아래의 계위에 상대해서 결과가 되기에 “상상上上의 결과”라 이름하는 것이다. 수습의 계위 중 하나인 원인의 계위는 오직 종성種性일 뿐 아직 수행을 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를 건립하지 않는다. “최초의 결과(初果)”란 제2의 결과이다. 얻음(至得)의 계위에 있다. 최초로 출세간의 법을 얻기 때문에 최초의 결과라 하는 것이다. “자주 수습함의 결과”란 제3의 결과이다. 유학有學의 계위에 있다. 수행을 가해서 힘을 들여 앞으로 나아가며 수습하기에 “자주 수습함의 결과(數習果)”라 하는 것이다. “궁극의 결과”란 제4의 결과이다. 무학無學의 계위에 있다. 무학과無學果이기 때문에 “궁극”이라 한 것이다. 이하 3구는 뒤의 6종의 결과를 밝히는 것이다. “수순함의 결과”란 앞의 넷 중 최초의 “상상上上의 결과”이다. 이 결과는 바로 견도의 방편이다. 그것에 수순하기 때문에 “수순함의 결과”라 한 것이다. 이 중 세 쌍은 모두 수순함의 결과이다. 단지 최초의 것이기에 이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을 받았을 뿐이다. “대치함의 결과”란 앞의 넷 중 제2의 “최초의 결과(初果)”이다. 전의 방편에 수순해서 최초로 견도를 얻는다. 앞의 시기에 잠복해 있는 혹惑의 종자를 영원히 끊기 때문에 “대치함의 결과(對治果)”라 한 것이다. “상을 여읨의 결과(相離果)”란 앞의 넷 중 뒤의 두 결과이다. 유학과 무학의 도道는 장애(障)의 상을 여의고 반드시 월등한 덕을 발기하기 때문에 “상을 여읨(相離)”이라 한 것이다. “월등한 덕의 결과”란 그 계위 중 육신통 등이다. 그 장애를 여읨에 수순해서 이 월등한 덕을 성취한다. 그래서 이 둘51을 또한 “수순함의 결과”라 한다. 이제까지의 결과들은 공통되는 계위에 의거한 것이고 이하의 두 결과는 공통되지 않은 계위에 의거한 것이다. -
001_0835_c_01L別六故。又前四果是上上果。望下下因
001_0835_c_02L立上上果故。其後六果。是隨順果。二
001_0835_c_03L二相順。立三雙故。初中言上上果者。
001_0835_c_04L是第一果。實是通名。但從最初。以立
001_0835_c_05L通名。其後三中更立別目。此第一果在
001_0835_c_06L入行位。入爲因上。行爲入上。望下爲
001_0835_c_07L果。名上上果。因位脩住唯是種性。未
001_0835_c_08L發脩行。故不立果。言初果者。是第二
001_0835_c_09L果。在至得位。始得出世。故名初果。言
001_0835_c_10L數習者。是第三果。在有作位。加行功
001_0835_c_11L進脩。名數習果。究竟果者。是第四果。
001_0835_c_12L在無住位。是無學果。故名究竟。此下
001_0835_c_13L三句明後六果。言隨順者。是前四中。
001_0835_c_14L初上上果。此果正是見道方便。隨順彼
001_0835_c_15L故。名隨順果。此中三雙。皆是隨順。但
001_0835_c_16L從最初受此通名也。言對治者。是前四
001_0835_c_17L中第二初果。順前方便。始得見道。永
001_0835_c_18L斷前時所伏*或種。是故名爲對治果也。
001_0835_c_19L言相離者。前四之中。後之二果。學無
001_0835_c_20L學道相離諸鄣。須發勝德。故名相離。
001_0835_c_21L言勝德者。卽彼位中六神通等。順脩彼
001_0835_c_22L離鄣。成此勝德。是故此二亦隨順也。
001_0835_c_23L上來諸果約共位立。此下二果在不共
001_0835_c_24L「一」疑剩或有脫文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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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6_a_01L“위가 있음의 결과”란 보살의 대지에 있다. 이것은 제3의 전후의 계위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위가 없음의 결과”란 여래의 대지를 말한다. 이것은 제4의 동시의 계위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위가 있음과 위가 없음 또한 서로 수순하기 때문에 이 세 쌍을 “수순함의 결과”라 한다. 이하의 1구는 둘째 합해서 매듭짓는 것이다.
주석은 둘로 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본문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이고, 둘째 부분은 요약해서 구분하는 것이다. 첫째 부분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본문을 따라가며 풀이하는 것이다. 뒤는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10종의 결과를 풀이하는 것이고, 뒤는 송의 매듭짓는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앞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본문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이고, 뒤는 의미를 분별하는 것이다. 주석문에 “자성으로부터 발심”이란 아래의 자성自性으로부터 위의 발심發心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에 이르기까지”란 아래의 발심으로부터 그 위의 수행修行에 이르기까지를 의미한다. 이것은 ‘상상上上의 결과’의 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후후後後의 순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란 ‘후후後後’로 ‘상상上上’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이를테면 발심의 계위는 자성의 후後이고 그 수행의 계위는 발심의 후後이다. 이 후후後後에 의거해서 ‘상상上上의 결과’를 건립한 것이다. 자성은 후가 아니기 때문에 결과를 건립하지 않는다.다음의 3종의 결과를 풀이하는 문장의 의미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순함의 결과를 풀이하는 부분 중 “원인이 되기 때문에”란 수순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즉 제1의 결과는 제2의 결과에 대해 원인이 되기 때문에 수순함이라 한다. “상상上上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란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대치함의 결과를 풀이하는 부분에 “끊음의 도道이니”란 그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끊어서 제멸하는 도이기에 끊음의 도라고 한다. “이것에 의지해서 최초의 결과를 얻는다.”란 이 수순함에 의지해서 견도의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의 결과에 상대해서 수순함의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이 중 최초의 도를 대치함의 결과라 한다.”란 결과 자체를 들어서 그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상리과相離果를 풀이하는 중에 “벗어남(相離)의 결과”란 그 이름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다. “자주 수습함의 결과와 원만함의 결과”란 그것의 본체를 제시한 것이다. 이를테면 앞의 넷 중 뒤의 둘을 본체로 한다. -
001_0836_a_01L位。言有上者。在菩薩地。是約第三前
001_0836_a_02L後位說。言無上者。謂如來地。是約第
001_0836_a_03L四同時位說。有上無上亦相隨順故。此
001_0836_a_04L三雙名隨順果也。此下一句第二總結。
001_0836_a_05L釋中有二。一者正釋本文。二者總集分
001_0836_a_06L別。初中亦二。先卽總標。後隨文釋。此
001_0836_a_07L中亦二。先釋十果。後釋結句。初中亦
001_0836_a_08L二。先正釋文。次分別義。釋文中。言從
001_0836_a_09L自性發心者。從下自性。得上發心也。
001_0836_a_10L乃至脩行者。從下發心乃至其上脩行。
001_0836_a_11L此顯上上果體相也。應知後後次第者。
001_0836_a_12L此以後後釋上上義。謂發心位是自性
001_0836_a_13L後。其脩行位是發心後。約此後後立上
001_0836_a_14L上果。自性非後。故不立果也。釋次三
001_0836_a_15L果。文相可知。釋隨順中。言爲因緣故
001_0836_a_16L者。是釋隨順義。卽第一果與第二果。
001_0836_a_17L作因緣故。名爲隨順。言應知上果者。
001_0836_a_18L是出體也。釋對治中。言是滅道者。出
001_0836_a_19L其體相。斷滅之道。故名滅道。言因此
001_0836_a_20L得初果者。因此隨順。得見道果。是對
001_0836_a_21L前果。顯隨順義。言此中初道名對治果
001_0836_a_22L者。是擧果體。以1)富 [46] 其名也。釋相離中
001_0836_a_23L言相離果者。是牒其名。言數習果圓滿
001_0836_a_24L果者。是出其體。謂前四中。後二爲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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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6_b_01L원만함이란 궁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혹惑의 장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란 “벗어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순서대로 유학과 무학의 성인의 결과”란 사람의 유형에 의거해서 그 결과의 계위를 나타낸 것이다.다음의 3종의 결과를 풀이하는 문장의 의미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하는 거듭 의미를 분별한 것이다. “이와 같은 4종의 결과”란 첫째는 제4의 결과로 궁극의 결과이고, 둘째는 제7의 결과로 벗어남의 결과이고, 셋째는 제8의 결과로 월등한 계위의 결과이고, 넷째는 제10의 결과로 위가 없음의 결과이다. 이 4종의 결과는 모두 원만함의 결과의 계위를 구분한 것이기 때문에 “원만함의 결과를 분별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에 준해서 그 다른 6종의 결과를 논하여 원인을 구분할 수 있는데,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같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같게 하지 않기 위해서란 4종의 결과 등은 동일한 계위의 결과라는 것을 나타내고, 6종의 결과는 이에 따라 계위의 원인을 구분하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축약해서 말하면” 이하는 그 송의 매듭짓는 구를 풀이하는 것이다. “축약해서 말하면 이만큼 많지만”이란 송문을 있는 대로 풀이한 것이다. 혹은 5종이고 혹은 10종이기 때문에 많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상세히 말한다면 무한하다.”란 매듭짓는 구의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이를테면 매듭짓는 구의 “축약해서 결과를 말하면”이란 상세하게 말하면 무한한 수의 결과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논 이 중 대치를 수습함의 의미를 요약한다. 식별함(覺悟)의 수습, 희박하게 하는 수습, 대치를 성숙하게 하는 수습, 위의 것의 수습, 밀접하게 합하는 수습은 지智가 경계에 도달해 한집이 되기 때문이다. 고급한 품류의 수습, 월등한 품류를 얻는 수습, 최초에 일어나는 수습, 중간을 행하는 수습, 최후의 수습, 위가 있음의 수습, 위가 없음의 수습은 경계에 더할 바가 없고, 사량思量에 집集이 없고, 얻음에 더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소 이제까지 첫째 본문을 있는 대로 풀이하는 것을 마쳤다. 이하는 둘째 요약해서 구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둘로 되어 있다. 앞은 바로 요약하는 것이고, 뒤는 완전하게 매듭짓는 것이다. 앞은 셋으로 되어 있다. 첫째 대치를 요약하는 것이고, 둘째 수습의 계위를 요약하는 것이고, 셋째 결과를 얻음을 요약하는 것이다. 첫째는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나누어서 요약하는 것이다. 나누어서 요약하는 부분 중 「대치에 관한 품」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에서는 12종의 수습을 열거한다. “식별함(覺悟)의 수습”이란 사념처이다. 본체는 지혜이다. 무명無明을 여의기 때문이다. 『섭대승론』에서 이것을 “현시함의 수습”이라 설하고 있다. 무명의 어둠을 제멸해서 경계의 인식을 현현하게 하기 때문이다. “희박하게 하는 수습”이란 사정근이다. 2종의 선善을 근면하게 수습해서 2종의 악惡을 희박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깎아 내는 수습”이라 하고 있다. “대치를 성숙하게 하는 수습”이란 사여의족이다. -
001_0836_b_01L圓滿卽是究竟義故。言爲遠離*或鄣故
001_0836_b_02L者。釋相離義。言如次第有學無學諸聖
001_0836_b_03L人果者。此是約人顯其果位也。釋次三
001_0836_b_04L果。文相可知。如是以下重分別義。言
001_0836_b_05L如是四果者。一者第四名究竟果。二者
001_0836_b_06L第七名相離果。三者第八名勝位果。四
001_0836_b_07L者第十名無上果。此四種果皆顯圓滿
001_0836_b_08L果位差別。故言爲分別圓滿果故也。准
001_0836_b_09L此而論其餘六果。爲分別因。而不說者。
001_0836_b_10L非令同故。非令同者。四果等顯一位之
001_0836_b_11L果。六果隨顯別位因故。爲略說下釋其
001_0836_b_12L結句。言爲略說如是多者。是正釋文。
001_0836_b_13L或五或十。故言多也。言若廣說則無量
001_0836_b_14L者。是顯結意。謂結句言略說意者。爲
001_0836_b_15L顯廣說有無量果也。
001_0836_b_16L上來第一正釋文竟。此下第二總集分
001_0836_b_17L別。於中有二。初正集義。後結究竟。初
001_0836_b_18L中有三。先集對治。次集脩位。後集得
001_0836_b_19L果。初中亦二。總標。別2)集 [47] 。別*集之中。
001_0836_b_20L對上品說。列十二脩。覺悟脩者。是四
001_0836_b_21L念處。體是智慧。離無明故。攝論說此
001_0836_b_22L名顯示脩。除無明闇。顯了境故。令薄
001_0836_b_23L脩者。是四正懃。懃脩二善。薄二惡故。
001_0836_b_24L彼論名爲損3)滅 [48] 脩也。熟治脩者。四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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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6_c_01L본체는 정려靜慮이다. 대치의 도를 성취하기(成就治道)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대치를 성취하게 하는 수습(治成修)”이라 하고 있다. “위의 것의 수습”이란 오근五根이다. 위의 계위를 일으켜서 오력五力의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뒤의 것을 행하는 수습”이라 하고 있다. “밀접하게 합하는 수습”이란 오력이다. 수행과 진리가 합해서 번뇌를 제압하기 때문이다. “지智가 경계에 도달해 한집이 되기 때문이다.”란 “밀접하게 합함”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그 논에서는 “상응하는 수습”이라 하고 있다. “고급한 품류의 수습”이란 칠각지이다. 최초로 출세간에 들어갔기에 세간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 “월등한 지智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월등한 품류를 얻는 수습”이란 팔성도이다. 수도修道에 진입했기에 고급한 품류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상상上上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최초에 일어나는 수습”이란 범부의 계위이다. 앞의 송에서 “전도되지 않음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있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최초 시기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중간을 행하는 수습”이란 유학有學의 성스러운 계위를 말한다. 앞에서 “전도됨을 따르지만 전도됨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논에서는 “중간 시기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최후의 수습”이란 무학無學의 성스러운 계위이다. 앞의 송에서 “전도됨이 없고 전도됨을 따르는 것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 논에서는 “최후 시기의 수습”이라 하고 있다. “위가 있는 수습”이란 이승二乘의 수습이다. “위가 없는 수습”이란 보살의 수습이다. 앞의 송에서 “경계와 사유思惟와 얻음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경계에 더할 바가 없고” 이하는 그 3종의 의미를 들어 “위가 없음”을 풀이한 것이다. “사량思量에 집集이 없다.”란 보살의 사유는 상相을 파척했기에 행行에 얻음이 없다. 그래서 “집集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승이 집취集取, 고苦, 무상無相 등의 상相을 사유하는 것에 상대한 것이다.
논 수습의 거주처의 의미를 요약한다. 수습의 거주처를 성취할 것이다. 거주처란 ① 이 유형의 사람은 자성自性에 거주한다. ② 일을 시작함의 수습의 거주처란, 초발심에서 수행의 계위까지이다. ③ 가장 청정한 거주처라 이름하기에 가장 청정한 계위의 거주처, ④ 장엄이 있는 계위의 거주처는 10종의 대지에 편만하기 때문이다. ⑤ 위가 없음의 계위인 거주처.
소 이하 둘째 수습의 거주처의 의미를 요약한다. 이것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나누어서 밝히는 것이다. 간략하게 5종의 계위를 들어 수습의 거주처를 요약한다.
첫째 중 -
001_0836_c_01L意足。體是靜慮。成就治道故。彼論名
001_0836_c_02L爲治成脩也。上事者脩。卽是五根。爲
001_0836_c_03L起上位。五力事能故。彼論名爲後行脩
001_0836_c_04L也。密合脩者。卽是五力。行與理合。能
001_0836_c_05L勝煩惱故。言智到境一家故者。釋密合
001_0836_c_06L義。彼論名爲相應脩也。上品脩者。是
001_0836_c_07L七覺分。始入出世上於世間故。彼論名
001_0836_c_08L爲勝智脩也。勝品脩者。是八聖道。進
001_0836_c_09L入脩道。勝於上品故。彼論名爲上上脩
001_0836_c_10L也。初發脩者。是凡夫位。如前頌言。隨
001_0836_c_11L不倒有倒故。彼論名爲初際脩也。中行
001_0836_c_12L脩者。有學聖位。如前頌言。隨顚倒不
001_0836_c_13L倒故。彼論名爲中際脩也。最後脩者。
001_0836_c_14L無學聖位。如前頌言。無倒無隨倒故。
001_0836_c_15L彼論名爲後際脩也。有上脩者。是二乘
001_0836_c_16L脩。無上脩者。是菩薩脩。如前頌言。境
001_0836_c_17L界及思惟至得有差別故。境界無勝以
001_0836_c_18L下。擧彼三義。釋無上也。言無集者。菩
001_0836_c_19L薩思惟。破折諸相行無所得。故言無集。
001_0836_c_20L對二乘思集取苦無常等相也。
001_0836_c_21L此下第二集脩住義。於中亦二。總標別
001_0836_c_22L明。略擧五位。集諸脩住。第一中言應
001_0836_c_23L「富」疑「當」。「集」疑「釋」次同。「滅」疑
001_0836_c_24L「減」。
-
001_0837_a_01L“수습의 거주처를 성취할 것이다.”란 그 이름을 다시 거론한 것이다. “이 유형의 사람은 자성自性에 거주한다.”란 사람의 유형을 들어 계위를 배속한 것이다. 앞에서 명명한 “원인의 계위인 수습의 거주처”이다. 아직 성취하지 않았을지라도 성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취할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둘째 중 “일을 시작함의 수습의 거주처”란 그 이름을 다시 거론한 것이다. “발심에서 수행까지이다.”란 그 계위를 배당한 것이다. 앞에서 “들어감의 계위”, “수행의 계위”라 한 것이다.
셋째 중 “가장 청정한 계위라 이름하기에”란 먼저 앞의 계위를 다시 거론한 것이다. 이를테면 앞의 제4를 얻음의 계위라 한다. “얻음”이란 이름이 법신法身의 계위와 같기 때문에 “가장 청정한 계위”라 한 것이다. 다음에 “가장 청정한 계위의 거주처”란 그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이 계위는 본체가 가장 청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지 이름을 가장 청정한 것이라 했을 뿐이기 때문에 “가장 청정한 계위의 거주처”라 한 것이다.
넷째 중 “장엄이 있는 계위의 거주처”란 그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10종의 대지에 편만하기 때문에”란 장엄의 의미를 풀이한 것이다. 10종의 대지에 10종의 법계와 10종의 도度 등 유위와 무위의 공덕이 편만하기 때문에 “장엄이 있는 계위의 수습의 거주처”라 한 것이다.
다섯째 중 “위가 없음의 계위인 거주처”란 그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이미 앞에서 보여 주었기 때문에 다시 설명하지 않겠다. 이 5종의 계위에 의해 앞에서 말한 18종의 계위와, 이어서 말한 법계의 3종의 계위를 모두 포섭한다. 각 경우에 따라 서로 포섭하고 포섭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하 셋째 그 결과의 의미를 요약한다. 이것은 다시 둘로 되어 있다. 앞은 합해서 표방하는 것이고, 뒤는 나누어서 요약하는 것이다. 나누어서 요약하는 부분에서 6종의 결과를 밝힌다. 앞은 그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고, 뒤는 그 특징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포괄하는 결과”란 앞의 5종의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그 ‘보과報果’ 등 5종의 결과에 모든 결과가 포섭되어 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또 ‘기과器果’ 등 5종의 결과 안에 이어서 말한 10종의 결과가 남김없이 포섭되기 때문이다. 이 두 의미 때문에 “포괄하는 결과”라 말한 것이다. 둘째 “가장 월등한 결과”란 그 10종의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그 5종의 결과를 두루 포섭하는 것 중에서 가장 월등한 것을 간추려 -
001_0837_a_01L成脩住者。是牒其名。此人住自性中者。
001_0837_a_02L擧人屬位。卽是前名。因住脩住。雖未
001_0837_a_03L成就。有應成性故。名應成也。第二中
001_0837_a_04L言作事脩住者。是牒其名。後發心乃至
001_0837_a_05L脩行者。屬當其位。卽是前名入位行位
001_0837_a_06L也。第三中言名最淨位者。先牒前位。
001_0837_a_07L謂前第四名至得位。至得之名。同法身
001_0837_a_08L位。是故名爲最淨位。次言最淨位者。
001_0837_a_09L是立其名。欲顯此位。非體最淨。但名
001_0837_a_10L最淨故。名爲最淨住也。第四中言有莊
001_0837_a_11L嚴位住者。是立其名。遍滿十地故者。
001_0837_a_12L釋莊嚴義。於十1)他 [49] 中。十種法界。及十
001_0837_a_13L度等。有爲無爲。功德遍滿。是故名爲
001_0837_a_14L有莊嚴位脩住。第五中言無上位住者。
001_0837_a_15L是立其名。義已顯前。故不更說。以此
001_0837_a_16L五位。總攝上說。十八種位。及次所說
001_0837_a_17L法界三位。隨其所應。相攝應知。
001_0837_a_18L此下第三*集其果義。於中亦二。總標
001_0837_a_19L別*集別*集之中。明六種果。先列其名。
001_0837_a_20L後辨其相。一攝持果者*集前五果。彼
001_0837_a_21L報果等五果之中。攝一切果。無不盡故。
001_0837_a_22L又器果等五果之內盡攝。次說十種果
001_0837_a_23L故。以是二義。名攝持果。二最勝果者。
001_0837_a_24L*集彼十果。就彼普攝五果之內。簡取
-
001_0837_b_01L이 10종의 결과를 건립한 것이기에 “가장 월등한 결과”라 한다. 그다음의 2종의 결과는 5종의 결과를 다시 나타내고, 후의 2종의 결과는 10종의 결과를 다시 나타낸 것이다. 셋째 “숙세에 수습함의 결과”란 5종의 결과 중 초과初果, 보과는 숙세에 선근을 수습해서 얻은 과보이기 때문이다. 넷째 “상상上上을 인출引出하는 결과”란 5종의 결과 중 후의 4종의 결과이다. 보과에서 증상과增上果를 인출하고, 내지 공용과功用果에서 상리과相離果를 인출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간략한 결과”란 10종의 결과 중 앞의 4종의 결과에 있다.
여섯째 “상세한 결과”란 10종의 결과 중 후의 6종의 결과이다. 간략함과 상세함의 의미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이 중” 이하는 순서대로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다. “포괄하는 결과란 5종의 결과이다.”란 “최초의 결과(初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의미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다른 결과들은 이 5종의 결과를 구분한 것이다.”란 “가장 월등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후에 말한 10종의 결과를 “다른 결과들”이라 한 것이다. 5종의 결과 중 가장 그것이 월등하기 때문에 “5종의 결과를 구분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숙세에 수습을 집적했기 때문에 과보의 결과라 한다.”란 “숙세에 수습함의 결과(是顯數習果)”이다. 5종의 결과 중 최초의 것이다. “상상上上을 인출하기 때문에 4종의 다른 결과가 있다.”란 상상을 인출하는 결과는 5종의 결과 중 뒤의 4종이다. “만약 간략하게 말한다면 ‘상상上上의 결과’에 4종이 있다.”란 간략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10종의 결과 중 앞의 4종의 결과에 있다. 통괄의 의미에 의거해서 “상상의 결과에 4종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상세하게 말한다면 수순함의 결과에 6종이 있다.”란 상세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10종의 결과 중 뒤의 6종의 결과이다. 이 또한 통괄의 의미에 의거해서 “수순함의 결과에 6종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 4종의 결과에 대해 구별해서 상세하게 말하기 때문에”란 상세한 결과의 이름을 풀이한 것이다. 앞의 4종의 결과에 의거하여 6종의 결과를 구별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뒤의 6종을 “상세한 결과”라 한 것이다.
논 결과의 의미를 요약한다. 첫째 포괄하는 결과, 둘째 가장 월등한 결과, 셋째 숙세에 수습함의 결과, 넷째 상상上上을 인출引出하는 결과, 다섯째 간략한 결과, 여섯째 상세한 결과이다. 이 중 포괄하는 결과란 5종의 결과이다. 다른 결과들은 이 5종의 결과를 구분한 것이다. 숙세에 집적했기 때문에 과보의 결과라 한다. 상상上上을 인출하기 때문에 4종의 다른 결과가 있다. 만약 간략하게 말한다면 상상上上의 결과에 4종이 있다. 만약 상세하게 말한다면 수순함의 결과에 6종이 있다. 이 4종의 결과에 대해 구별해서 상세하게 말하기 때문에 『중변분별론』 중 이 장(處)은 네 번째이다. 세 품品이 있는데 첫째 대치에 관한 품, 둘째 수습의 거주처에 관한 품, 셋째 결과를 얻음에 관한 품이다. 이제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던 것을 마친다.
소 “『중변분별론』” 이하는 총합해서 완전하게 매듭짓는 것이다. “이 장(處)은 네 번째에 있다.”란 -
001_0837_b_01L最勝。立此十果。是故名爲最勝果也。
001_0837_b_02L其次二果重顯五果。後之二果重顯十
001_0837_b_03L果。三數習果者。顯五果中初果報果。
001_0837_b_04L數習善根。所得報故。四上上引出果者。
001_0837_b_05L顯五果內後之四果。於報果上。出增上
001_0837_b_06L果。乃至功用果上引出相離果故。五略
001_0837_b_07L果者。顯十果內在前四果。六廣果者。
001_0837_b_08L顯十果中後之六果。略廣之義。如前已
001_0837_b_09L說。此中以下次第顯相。言攝持果者是
001_0837_b_10L五種果者。是顯初果。義如前說。言餘
001_0837_b_11L果是五種果別異者。顯最勝果。後說十
001_0837_b_12L果。名爲餘果。五果之中。最其殊勝故。
001_0837_b_13L言是五果之別果也。言宿世所集故名
001_0837_b_14L果報果者。是顯數習果。五果之初也。
001_0837_b_15L言上上引出故有四種果者。是上上引
001_0837_b_16L出果。卽是五中後四也。言若略說上上
001_0837_b_17L果有四種者。是顯略果。卽是十中在前
001_0837_b_18L四果。約通義故。說上上果有四種也。
001_0837_b_19L言若廣說隨順果有六者。是顯廣果。卽
001_0837_b_20L是十中後六種果。亦就通義。故言隨順
001_0837_b_21L果有六也。是四種果分別廣說故者。釋
001_0837_b_22L廣果名。就前四果。分別說六。故後六
001_0837_b_23L種名廣果也。
001_0837_b_24L中邊以下。總結究竟。言此處有四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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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7_c_01L총체적인 상을 들어 말한 것이다. 대치함, 수습의 거주처, 결과를 얻음 이 세 품을 합해서 한 장이 된다. 수행에 의지해서 계위를 건립하고, 계위에 의지해서 결과를 건립한다. 문장의 형세가 서로를 타서 단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론釋論의 논주(세친)는 이 세 품을 합해서 한 장에 의미를 집결해 놓았다. 이 의미 때문에 이 장에 다다르면 네 장이 된다. 첫째 상相, 둘째 장애, 셋째 진실, 넷째 수행과 거주처와 결과이다. 이 때문에 “이 장은 네 번째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네 번째의 장 안에서 구분하면 3종의 의미가 있다. 구분한 대로 품을 건립하기 때문에 “세 품”이라 말한 것이다.
중변분별론소 권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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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837_c_01L總相而言。對治脩住得果三品。合爲一
001_0837_c_02L處。以依行立位。就位立果。文勢相乘。
001_0837_c_03L無隔絕故。故繹論主合此三品。一處
001_0837_c_04L*集義。由是義故。至於此處。則有四處。
001_0837_c_05L一相。二鄣。三眞實。其第四者。謂行住
001_0837_c_06L果。以之故言。此處有四。第四處內別
001_0837_c_07L有三義。隨別立品。故言三品也。
001_0837_c_08L中邊疏卷第三。
001_0837_c_09L「他」疑「地」{編}。
- 1){底}續藏經。第一編七十五套一册。
- 2)「分別論」補入{編}。
- 3)「新羅元曉撰」補入{編}。
- 4)論卷下。
- 5)▣疑「初」。
- 6)「說」原本字體未詳。
- 7)「成」疑剩。
- 8)「修」疑「循」次同。
- 1)「耶」通「邪」下同。
- 2)「知」疑「如」{編}。
- 1)「心」下疑脫「住」。
- 2)「樂」疑「閑」。
- 1)「第」疑「等」。
- 2)「人」疑「入」。
- 1)「東」疑剩。
- 2)「喩」疑「瑜」{編}。
- 1)「忘」疑「妄」{編}。
- 2)「相」疑剩。
- 3)「眞」疑「其」。
- 4)「或」通「惑」次同。
- 1)「劣」疑「聚」次同。
- 2)「後前」疑倒{編}。
- 1)「者」疑「於」。
- 2)▣▣疑「斷若」。
- 3)「知」疑「如」次同。
- 4)「海」疑「誨」或「顯」。
- 5)▣疑「亦」。
- 1)「勝」疑「牒」。
- 1)「根」疑「粮」。
- 1)「無」疑「爲」。
- 2)「明」上疑脫「以」。
- 3)▣▣疑「怯畏」。
- 4)「中」疑剩。
- 1)「亭」疑「停」次同。
- 2)「來」一作「成」。
- 3)「是」疑「足」。
- 1)「聖」疑「望」。
- 2)「是」疑剩。
- 3)「若」疑「差」。
- 4)「或」通「惑」次同。
- 1)「菩」疑「若」。
- 1)「知」疑「殷」。
- 2)「汎」疑「沈」。
- 1)「後」下疑脫「之」。
- 2)「乃」疑剩。
- 3)「有」疑剩。
- 1)「封」疑「對」。
- 1)「一」疑剩或有脫文歟。
- 1)「富」疑「當」。
- 2)「集」疑「釋」次同。
- 3)「滅」疑「減」。
- 1)「他」疑「地」{編}。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박인성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