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무량수경연의술문찬(無量壽經連義述文贊) / 無量壽經連義述文賛卷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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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경연의술문찬無量壽經連義述文贊 권하卷下

2. 중생의 왕생의 인과를 밝힘

1) 범부와 소승의 왕생

⑴ 정정취에 머무는 것을 밝혀 중생이 앙모하여 구하게 함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중생이 그 국토에 왕생하면 모두 정정취正定聚에 머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부처님의 국토에는 여러 사정취邪定聚와 부정취不定聚는 없기 때문이다.”
經曰。 佛告阿難。 其有衆生。 生彼國者。 皆悉住於正定之聚。 所以者何。 彼佛國中。 無諸邪聚及不定聚者。

두 번째로 중생의 왕생의 인과를 밝힌 것이다. 곧 중생을 섭수하는 서원에 나아가 왕생을 펼친 것이다. 왕생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범부와 소승의 왕생이고, 둘째 대성大聖의 왕생이며, 셋째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쌍으로 밝혀 범부와 소승의 왕생을 권한 것이고, 넷째 그 국토의 뛰어남을 찬탄하여 대성으로 하여금 구하게 한 것이다. 처음에 또한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정정취에 머무는 것을 밝혀 중생이 앙모하여 구하게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열반법을 성취할 성품을 갖춘 것을 “정정취”라 하고, 열반법을 성취할 성품이 없는 것을 “사정취”라 하며, 이 두 가지를 여읜 것을 “부정취”라 한다.≻1)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종성이 있는 것과 종성이 없는 것을 여의고서 다시 중생취衆生聚는 없으니, 응당 오직 두 가지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대승법에서는) 선취善趣2) 이전을 “사정취”라 하고, 선취위善趣位에서 거듭 물러나고 거듭 나아가는 것을 “부정취”라 하며, 습종성習種性3) 이후에 분위分位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을 “정정취”라 한다. 이승법二乘法(소승법) (중 비담종毘曇宗에서는) 외범外凡4)의 지위에서 항상 〔삼유三有(삼계)에〕 빠지는 것을 “사정취”라 하고, (칠방편위七方便位5) 가운데) 앞의 다섯 방편에 해당하여 (삼유에서 나오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는 것을6)) “부정취”라 하며, 인법忍法7) 이상으로 (삼유에서 나와 견고하게 머물러 물러나지 않는 것을8)) “정정취”라 한다. 그러므로 그 국토에 태어나는 사람은 삼승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가리지 않고 모두 정정취에 머무니, 다시 나머지 취聚가 없기 때문이다.≻9)라고 했는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그 삼취三聚의 뜻이 여러 교리에 어긋나니, 이치대로 생각해야 한다. (앞의 주장에서) 선취 이전(십신 이전)을 이미 사정취라고 했으니, (경에서 말한 것처럼) 만약 그 국토에 태어날 경우 바로 정정취에 머무는 것이라면, (그 국토에 태어나는 이는) 응당 십신十信을 넘어서서 바로 습종성習種性(십해)에 들어가야 하는데, 반드시 이러한 뜻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 국토에 태어나서 바로 습종성위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허물은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시 그 국토에 부정취가 있는 것이 되어 (경에서 말한 것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002_0058_a_02L無量壽經連義述文賛卷下

002_0058_a_03L

002_0058_a_04L釋璟興撰

002_0058_a_05L
經曰佛告阿難至及不定聚者

002_0058_a_06L
述云第二辨衆生往生因果 [229] 卽遂攝
002_0058_a_07L衆生願而申往生往生有四一凡小
002_0058_a_08L往生二大聖往生三雙以得失勸凡小
002_0058_a_09L四歎彼土勝令大聖求初又有三
002_0058_a_10L此初彰正定令物仰求也
有說有涅
002_0058_a_11L槃法名正定聚無涅槃法名邪定聚
002_0058_a_12L離此二者名不定聚非也離有種姓
002_0058_a_13L無種姓外更無衆生聚應唯二故
002_0058_a_14L善趣已前名爲邪定善趣位中
002_0058_a_15L退數進名爲不定習種已去分位不
002_0058_a_16L退名爲正定如其二乘外凡常沒
002_0058_a_17L爲邪定前六 [230] 方便名爲不定忍法以
002_0058_a_18L名爲正定故生彼國者勿問三乘
002_0058_a_19L皆住正定更無餘聚故此亦不然
002_0058_a_20L三聚義違諸敎理應如理思善趣已
002_0058_a_21L旣名邪正若生彼土卽住正定者
002_0058_a_22L應越十信卽入習種必無此義故
002_0058_a_23L生彼土不卽入習種位故無此咎者
002_0058_a_24L有彼土不定聚故
有說依中邊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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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중변론』(『중변분별론』)에 의하면, 정위습기正位習起는 이미 초지初地에 있는 것10)이기 때문에 이 가운데 보살인 왕생자는 오직 초지 이상에 해당한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오직 보살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경에서 “(어떤 중생이 그 국토에 왕생하면) 모두 (정정취에 머문다.)”라고 한 것에 어긋나기 때문이고, 또한 부정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정정취에 머문다.”라고 한 것은, 『소경小經』11)에서 “모두 아비발치阿鞞跋致(ⓢ avinivartanīya)이다.”12)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인데, 아비발치는 곧 불퇴不退이기 때문이다. 『본업경本業經』(『보살영락본업경』) 등에 따르면 십해十解13)의 제7심14) 이후의 여러 계위가 여기에 해당한다.15) 비록 그 아래의 계위에 해당하는 이가 있다고 해도 뛰어난 것을 좇아서 “모두 아비발치에 해당한다.”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이미 제7심 이상을 불퇴라고 말했으면 곧 그 아래의 계위는 모두 불퇴위不退位가 아니니, 응당 부정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곧 다른 가르침에서 설한 삼취는 모두 예토와 관련된 것이니, (예토에는) 이 삼취가 있기 때문이다. 정토에 왕생하면 범부와 성인을 가리지 않고 결정코 열반을 향하고 결정코 선행에 나아가며, 결정코 선도를 낳고, 결정코 육도六度를 행하며, 결정코 해탈을 얻기 때문에, 오직 정정취만 있고 나머지 둘은 없다.

⑵ 여러 부처님께서 찬탄하심을 들어 중생이 정토에 왕생하려는 마음을 증대하도록 함

“시방세계의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불여래께서 모두 함께 무량수불의 위신과 공덕의 불가사의를 칭찬하신다. 어떤 중생이라도 그 명호를 듣고 신심을 일으키고 기뻐하며 한 생각만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하여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소원하면 바로 왕생하여 불퇴전의 지위에 머무는데, 오직 오역죄를 지은 이와 정법을 비방한 이는 제외한다.”
經曰。 十方恒沙諸佛如來。 皆共讚歎無量壽佛威神功德不可思議。 諸有衆生。 聞其名號。 信心歡喜。 乃至一念。 至心迴向。 願生彼國。 即得往生。 住不退轉。 唯除五逆誹謗正法者。

이것은 두 번째로 여러 부처님께서 찬탄하심을 들어 중생으로 하여금 정토에 왕생하려는 마음을 증대하도록 한 것이다. 여러 부처님께서 이미 함께 찬탄하셨고, 명호를 듣는 이는 왕생하고자 하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설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 경(『무량수경』)에서는 정정취에 의거했기 때문에 오역죄를 지은 이와 정법을 비방한 이를 제외했다. 『관무량수경』에서는 사정취의 왕생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오역죄를 지은이도 또한 왕생한다.”16)라고 했다.≻라고 했는데, 이는 옳지 않다. 말한 것과 같이 하품하생17)에 해당하는 사람이 그 정토에 왕생한다면 정정취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비록 오역죄를 지었더라도 십육관十六觀18)을 닦으면 왕생할 수 있으니, 이것이 곧 그 경(『관무량수경』)의 뜻이다. 십육관을 닦지 않으면 비록 다른 선을 지었더라도 반드시 왕생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경(『무량수경』)에서는 제외한 것이다.≻19)라고 했는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하품하생도 또한 십육관을 닦아야 하는 것은 반드시 그 경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문장은 앞에서20) 이미 해석했기 때문에

002_0058_b_01L位習起旣在初地故此中菩薩往生
002_0058_b_02L唯是初地已上者非也若唯菩薩
002_0058_b_03L卽違經云皆悉故亦應有不定聚故
002_0058_b_04L有說住正定聚者卽同小經中皆是阿
002_0058_b_05L鞞跋致阿鞞跋致卽不退故依本業
002_0058_b_06L十解第七心已去諸位是也雖有
002_0058_b_07L下位從勝言皆是故此亦不然旣第
002_0058_b_08L七心已上名不退者卽諸下位非不退
002_0058_b_09L應有不定故
今卽餘敎所說三
002_0058_b_10L1) [101] 皆是穢土有此三*乘故若生淨
002_0058_b_11L不問凡聖定向涅槃定趣善行定生
002_0058_b_12L善道定行六度定得解脫故唯有正
002_0058_b_13L定聚而無餘二也

002_0058_b_14L
經曰十方恒沙至誹謗正法者

002_0058_b_15L
述云此第二擧諸佛歎令增物生去心
002_0058_b_16L諸佛說旣共歎聞名欲生必得往
002_0058_b_17L生故有說此經據正定聚故除逆謗
002_0058_b_18L觀經中邪定聚所生故五逆亦生
002_0058_b_19L非也若如所言下下生人生彼淨土
002_0058_b_20L應非正定故有說雖作五逆若修十
002_0058_b_21L六觀卽得往生卽彼經意也若不能
002_0058_b_22L修十六觀者雖作餘善必不得生故此
002_0058_b_23L經除之此亦非也下品下生亦修十
002_0058_b_24L六觀必違彼經故今卽此文前已釋

002_0058_c_01L다시 풀이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앞에서 “열 번 칭념(十念)하기에 이르기까지”라고 했고, 여기에서 “한 생각만이라도(一念)”라고 한 것은, 가장 적은 숫자와 가장 많은 숫자를 가지고 (상황에 따라) 서로 적절한 것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⑶ 왕생의 원인을 펼쳐 사람들이 수행하여 왕생하게 함

① 총괄적으로 나타냄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시방세계의 모든 하늘과 인민으로서 지극한 마음으로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소원하는 이는 무릇 세 무리가 있다.”
經曰。 佛告阿難。 十方世界。 諸天人民。 其有至心。 願生彼國。 凡有其三輩者。

이것은 세 번째로 왕생의 원인을 펼쳐 사람들로 하여금 수행하여 왕생하게 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총괄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세 무리”는 모두 타수용토他受用土에 왕생하기 때문에 『관무량수경』에서 변화토變化土에 태어나는 구품21)의 중생과는 같지 않다. (이 경의 하배下輩를 설하는 부분에서) “가령(假使) 여러 가지 공덕을 짓지 못한 경우에도(假使不能作諸功德)”라고 한 것은, 가설假設(실제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2) (같은 부분에서) “열 번의 생각에 이르기까지”라고 한 것에서 (열 번의 생각은) 또한 『미륵소문경』에서 설한 십념十念23)이기 때문이다.≻24)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설령(假使)”이라는 말은, 설령 (온갖 공덕을 짓지 못한 경우에도) 나머지 공덕이 보리심을 발하게 하기 때문에 경에서 “설령”이라고 한 것이다. 응당 다른 말과 같이 이것도 또한 진실한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륵소문경』에서 설한) 열 가지 생각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미륵소문경』에서) 곧 범부의 생각이 아니라고 했는데,25) 어째서 본 경에서 상배上輩와 중배中輩에 대해서는 열 가지 생각을 설하지 않고 오직 하배下輩를 설하는 곳에서만 열 가지 생각을 설한 것인가.
지금 곧 『관무량수경』의 구품을 합한 것이 『무량수경』의 세 무리이기 때문에 그 뜻에 차이가 없으니 힐난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관무량수경』에서 중품상생과 중품중생의 두 품은 모두 사문이 되고, 또한 진불眞佛을 친견하지만 대심大心을 발하지는 않고, 중품하생의 한 부류의 중생은 사문이 되지 않고, 전혀 부처님을 친견하지 않으며, 대심을 발하지도 않는다.26) 그런데 이 경의 중배는 사문이 되지 않고 화불化佛을 친견하며 보리심을 발한다. 뜻이 반드시 서로 어긋나는 것은 중배 안에도 여러 부류가 있는데 두 경이 각각 그 한 부류를 말했기 때문이니 어긋남이 없다.
그런데 (이 경에서 중배를 설명하면서) “마땅히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여”라고 한 것은, 그곳에 왕생하는 이는 반드시 대심을 발해야 함을 나타내어 (성문과 연각의) 정성定性27)이 왕생할 수 없는 것과 간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서로 어긋나는 문장도 모두 이러한 부류이다.
어떤 사람은 ≺왕생하지만 세 무리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본 경의 뒤에 나오는 문장에서 ‘다섯 가지 지혜28)를 의심하는 사람이 의심하는 마음으로 온갖 공덕을 닦고 또한 죄복은 믿기 때문에 약간 선의 근본을 닦으며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소원함’29)이라고 했는데,

002_0058_c_01L故不須更解而前十念此言一念者
002_0058_c_02L最少極多互綺擧故不相違

002_0058_c_03L
經曰佛告阿難至有其三輩者

002_0058_c_04L
述云此第三申往生因令人修生有二
002_0058_c_05L此初總標也有說此中三輩皆生他
002_0058_c_06L受用土故不同觀經生變化土之九
002_0058_c_07L品也假使不能作 [231] 功德是假設故
002_0058_c_08L亦是彌勒所問之所說故非也

002_0058_c_09L使之言縱餘功德令發菩提心故經言
002_0058_c_10L假使應如餘言亦是實說故又若十
002_0058_c_11L卽非凡夫念如何於上中二輩
002_0058_c_12L唯在下輩故
今卽合彼九品爲此
002_0058_c_13L三輩故其義無異不應難言彼經
002_0058_c_14L上中中二品皆作沙門2) [102] 眞佛
002_0058_c_15L發大心中下一生不作沙門都不見
002_0058_c_16L不發大心而此中輩非作沙門
002_0058_c_17L見化佛發菩提心義必相違者中輩
002_0058_c_18L之內自有多類二經各談其一無違
002_0058_c_19L而言當發菩提心者欲顯生彼必發大
002_0058_c_20L以簡定性不得生故餘相違文
002_0058_c_21L此類也
有說更有往生而非三輩
002_0058_c_22L下文中疑五智人疑惑心中修諸功德
002_0058_c_23L亦信罪福少修善本願生彼土以信
002_0058_c_24L「乘」疑「聚」次同「是」作「見」{甲}

002_0059_a_01L이 사람은 믿음이 결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앞의 여섯 품에 속하지 않고, 복을 닦은 것이 적기 때문에 뒤의 세 품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구품에 포섭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백연본과 지겸본에서 모두 ‘중배에 해당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의심하여 머뭇거리면서 믿지 않으니, 비록 그 국토에 왕생하더라도 그 성城30)에 머물러 5백 년 동안 지내면서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고 경을 듣지도 못하며 성인을 만나지 못한다’31)라고 했으니, 반드시 (다섯 가지) 지혜를 의심하는 범부를 구품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네 가지 지혜32)에 대한 의심을 끊지 못하면 비록 그 국토에 왕생하더라도 변지에 태어난다. 이들은 별도로 한 부류를 형성하며 구품에 포섭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망령되게 의혹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33)라고 했는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두 경34)에서 설하기를 “중배와 하배는 (변지에 있는) 보배로 만든 성에 머물면서 5백 년을 채워야 한다.”35)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 경(『무량수경』)에서 “(다섯 가지) 지혜를 의심하는 범부가 (5백 년 동안) 머무는 보배 궁전도 또한 변지에 있다.”36)라고 한 것과 상응하기 때문에 (다섯 가지 지혜를 의심하는 범부도 구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곧 경에서 “(중배와 하배는) 거처하는 집은 땅에 있어서 마음대로 높고 크게 하거나 허공에 있게 할 수 없고, 다시 아미타불과의 거리가 매우 멀다.”37)라고 한 것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불지佛智를 의심하는 사람”은 곧 이 경(『무량수경』)의 중배에 속하고, 『관무량수경』의 중품에 속한다. 그러므로 백연본과 지겸본에서 “중배는 (비록 출가하여 사문이 되지는 않더라도) 계율을 수지하고 보시하며 (사문에게) 공양하고 절을 짓고 탑을 일으킨다. (그런데) 나중에 (이러한 선행이 후세에 복을 낳는 것과 극락정토가 있다는 것과 그 국토에 왕생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일으켜 믿지 않는다. 그 사람이 잠시 믿고 잠시 믿지 않으면서도 그 선행을 계속하여 왕생하기를 원하면, 비록 그 국토에 태어나더라도 무량수불의 처소 앞에 이를 수는 없고, 곧 길에서 무량수불국의 변지에 저절로 생겨난 보배로 만든 성을 보고 그곳에서 5백 세를 살면서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 법을 듣는 것 등을 하지 못하며 지낸다.”38)라고 했는데, 이는 법호본에서 “불지를 의심하는 사람”39)이라고 한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백연본과 지겸본에서 “하배도 또한 (무량수불의 처소 앞에 이르지 못하고) 길가에 있는 성에 머물면서 5백 년 동안 부처님을 친견할 수 없다.”40)라고 했는데, 어떻게 불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오직 중배에만 속하고 하배에는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중배와 불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수행의 인因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오직 중품에 속하고 하배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또한 하배가 받는 과보가 중품과 비슷하기 때문에 불지를 의심하는 부류에 포섭된다.

002_0059_a_01L不定故非前六少修福故亦非後三
002_0059_a_02L由此不入不九品所攝此亦不然帛謙
002_0059_a_03L皆云中輩之人1) [103] 疑不信雖生彼土
002_0059_a_04L在其城中於五百年不見佛不聞經
002_0059_a_05L見聖必不可言疑智凡夫不在九品
002_0059_a_06L
有說不決2) [104] [232] 雖生彼國而在邊
002_0059_a_07L別是一類非九品攝是故不應妄
002_0059_a_08L生疑惑此亦不然二經所說中下之
002_0059_a_09L所止寶城旣五百應如此經疑智
002_0059_a_10L凡夫所在寶宮殿亦是邊地故不爾
002_0059_a_11L便違經云所居舍宅在地不能令隨意
002_0059_a_12L高大在虛空中復去阿彌陀佛甚大
002_0059_a_13L遠故
有說疑佛智人卽此中輩觀經
002_0059_a_14L中品故帛謙經中輩云持戒布施
002_0059_a_15L食沙門作寺起塔後疑不信其人
002_0059_a_16L信暫不信續結其善願得往生雖生
002_0059_a_17L彼國不得前至無量壽佛所3) [105] 道見
002_0059_a_18L佛國界邊自然寶城於五百歲不得
002_0059_a_19L見佛聞法等故不應非法護經中疑
002_0059_a_20L佛智人故此亦不然帛謙下輩亦在
002_0059_a_21L路城於五百年不得見佛如何疑智
002_0059_a_22L唯在中輩而非下耶若言中輩疑智
002_0059_a_23L修因相似故4) [106] 屬中品而非下者
002_0059_a_24L亦可下輩受果似中品故攝疑佛智

002_0059_b_01L과果가 비록 서로 비슷하지만 불지를 의심하는 부류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중배와 수행의) 인因이 같다고 해서 어찌 불지를 의심하는 사람을 같은 부류로 받아들이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또한 ≺(‘불지를 의심한 사람’이) 그 경(『관무량수경』)에서 설한 구품 가운데 중품상생에 속한다.≻라고 한다면, 이치상 반드시 그렇지 않다. 『관무량수경』의 중품상생과 이 경(『무량수경』)의 불지를 의심한 사람은 연꽃이 피고 부처님을 친견하며 법을 듣고 이익을 얻는 것41) 등이 모두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중품상생에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허물이 없다.≻라고 한다면, 어찌 중품하생도 또한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불지를 의심한 사람에 포섭된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곧 부처님의 다섯 가지 지혜를 의심하는 사람은 중품하생과 하품상생의 두 가지 생生에 포섭된다. 이로 말미암아 백연본과 지겸본에서 뒤의 두 무리, 곧 중배와 하배는 모두 “성에 머물러 5백 년 동안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 법을 듣는 것, 성인을 친견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삼배三輩이건 구품이건 모두 넓은 것과 좁은 것의 구별이 없이 왕생하는 중생을 모두 포섭한 것이다.42)
그런데 『관무량수경』의 삼품은 선을 집적한 것을 상품, 악을 그치는 것을 중품, 악을 짓는 것을 하품이라 하였다. 그 사이에 좀 더 상세한 것은 응당 이치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무량수경』에서 세 무리의 차별은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몸과 마음이 다르다. 마음은 곧 모두 보리심을 발하고 아미타불의 명호를 오로지 칭념하니, 여러 측면에서 동일하다. 몸은 곧 출가하는 이는 상배이고, 세속에 있는 이는 중배와 하배이다.
둘째, 인因을 닦는 것이 다르다. 온갖 행行을 모두 닦는 이는 상배이고, 적은 부분의 복을 닦는 이는 중배이며, 그 부처님을 칭념하되, 열 번 칭념하거나 한 번 칭념하는 이는 하배이다.
셋째, 왕생의 연緣이 다르다. 미타와 관음의 진신眞身이 와서 맞이하는 이는 상배이고, 화신化身이 맞이하는 이는 중품이며, 꿈속에서 불신佛身을 보는 이는 하품이다.
백연본에서 세 무리의 차별은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몸과 마음의 차이이다. 곧 (몸은) 출가하고 (마음은) 보리심을 발한 이는 상배이고, (몸은) 세속에 살면서 (마음은) 지극히 정성스런 마음인 이는 중배와 하배이다.
둘째, 수행의 차이이다. 곧 온갖 행을 모두 닦고 꿈에 여러 성인을 보는 이는 상배이고, 적은 부분의 선을 닦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루 낮과 밤 동안 끊는 일이 없으며 꿈에 여러 성인을 친견하는 이는 중배이며, 오직 애욕과 분노를 끊고 부처님을 칭념하기를 열흘 낮과 밤 동안 끊어지는 일이 없는 것만 행하는 이는 하배이다.
셋째,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 다른데, 곧 『무량수경』의 세 종류와 같다.43)
넷째, 과를 받는 것이 다르다. 곧 그 국토에 왕생하여 아유월阿維越(不退轉)의 지위에 이르고,

002_0059_b_01L果雖相似不攝疑智因雖復同何容疑
002_0059_b_02L
又彼所言九品之內屬於中上
002_0059_b_03L必不然觀經中中上此經疑智華開
002_0059_b_04L見佛聞法獲利皆不同故若言中上
002_0059_b_05L自有多種故無此過者豈不中下亦有
002_0059_b_06L多種故攝疑智故今卽疑佛五智
002_0059_b_07L下下上二生所攝由此帛謙後之二
002_0059_b_08L皆言在城於五百年不得見佛聞法
002_0059_b_09L見聖故若三輩若九品皆無寬狹
002_0059_b_10L往生盡
然彼三品集善爲上止惡爲
002_0059_b_11L造惡爲下其間委悉應如理思
002_0059_b_12L中三輩別有三義一身心異心卽俱
002_0059_b_13L發菩提之心專念彌陀從多同也
002_0059_b_14L卽出家爲上在俗爲中下二修因異
002_0059_b_15L卽具修諸行爲上少分修福爲中稱念
002_0059_b_16L彼佛十念一念爲下三生緣異卽彌
002_0059_b_17L陀觀音眞身來迎爲上化身迎接爲中
002_0059_b_18L夢見佛身爲下帛延三輩別有四義
002_0059_b_19L一身心異卽出家發菩提心爲上
002_0059_b_20L俗至誠心爲中下二修行異卽備修
002_0059_b_21L衆行夢見諸聖爲上少分修善日夜不
002_0059_b_22L絕夢見諸聖爲中唯斷愛怒念佛十日
002_0059_b_23L十夜不絕爲下三見佛異卽同此三
002_0059_b_24L種也四受果異卽生彼土作阿維越

002_0059_c_01L머무는 집은 허공에 있으며, 부처님과 가까운 곳에 사는 이는 상배이다. 길가에 있는 보배로 만든 성에 머물고 거주하는 집은 땅에 있으며 부처님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이는 중배와 하배이다.44)
지겸본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비록 동일하지만 다른 부분도 있으니, “그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지만, 여러 가지 색으로 장엄한 비단 휘장을 거는 것, 불사佛寺를 짓는 것, 탑을 일으키는 것, 사문에게 공양하는 것 등을 할 수 없는 이가 있어서 애욕과 분노를 끊고 재계齋戒하여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고 한마음으로 염불하기를 열흘 동안 끊이지 않게 하면, 이를 하배라고 한다.”45)라고 했을 뿐이다.
저 두 경46)을 법호본과 대조하면 상배는 비록 같지만 중배와 하배는 곧 다르다. 저 두 경의 두 품은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어서 도의道意(菩提心)를 일으키지 못하고, 이 경(법호본)에서의 두 무리는 모두 도심道心(菩提心)을 발하니, 결정코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마도 그 범본에는 비록 두 내용이 모두 있는데, 백연과 지겸은 단지 왕생을 의심하고 잠시 믿기도 하는 것만을 번역하였고, 법호는 오직 청정한 믿음으로 인因을 닦는 것만을 번역한 것이니, (법호가 그렇게 한 것은) 부처님의 다섯 가지 지혜를 의심하는 사람에 대한 것은 (『무량수경』의) 뒷부분에서 그 허물을 보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말은 비록 모순이기는 하지만 이치는 반드시 다른 것은 아니다.
세 무리의 수행의 계위의 차별을 해석하려고 했으나 또한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기 때문에 다시 논하지 않는다.

② 개별적으로 풀이함

가. 상배

가) 바로 풀이함

㉮ 본유의 단계에서 인을 닦음

“상배란 집을 버리고 욕망을 버리고 사문이 되어 보리심을 발하고 한결같이 오로지 무량수불을 생각하면서 온갖 공덕을 닦으며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소원하는 사람이다.”
經曰。 其上輩者。 捨家棄欲。 而作沙門。 發菩提心。 一向專念無量壽佛。 修諸功德。 願生彼國者。

이것은 나중에 개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상배를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바로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본유本有47)의 단계에서 인因을 닦는 것이다.

㉯ 사유의 단계에서 상相이 나타남

“이들 중생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무량수불께서 여러 대중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나고,”
經曰。 此等衆生。 臨壽終時。 無量壽佛。 與諸大衆。 現其人前者。

이것은 두 번째로 사유死有48)의 단계에서 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 중유의 단계에서 부처님을 따름

“바로 그 부처님을 따라 그 국토에 왕생하는데,”
經曰。 即隨彼佛。 往生其國者。

이것은 세 번째로 중유中有49)의 단계에서 부처님을 따르는 것이다.

㉱ 생유의 단계에서 이익을 얻음

“문득 칠보로 이루어진 꽃 속에서 저절로 화생化生50)하여 불퇴전의 지위에 머물고 지혜롭고 용맹스러우며 신통력에 의해 자유자재함을 얻는다.”
經曰。 便於七寶華中。 自然化生。 住不退轉。 智慧勇猛。 神通自在者。

이것은 네 번째로 생유生有51)의 단계에서 이익을 얻는 것이다.

002_0059_c_01L宅舍在空去佛亦近爲上路止寶城舍
002_0059_c_02L宅在地去佛大遠爲中下
支謙經中
002_0059_c_03L從多雖同而有異者欲生彼國 [233] 懸雜繪
002_0059_c_04L作佛寺起塔飯食沙門者當斷愛
002_0059_c_05L齋戒淸淨一心念佛十日不絕爲下
002_0059_c_06L輩耳將彼二經對法護本上輩雖同
002_0059_c_07L中下卽異彼之二品疑心在懷不發
002_0059_c_08L道意此中二輩皆發道心決定信故
002_0059_c_09L以有此參差者蓋彼梵本雖復備有
002_0059_c_10L但翻疑信往生之者法護唯譯淨信
002_0059_c_11L修因其疑智人在後示過故言雖鉾
002_0059_c_12L理必無異欲釋三輩行位之別
002_0059_c_13L如前解故不復論

002_0059_c_14L
經曰其上輩者至願生彼國者

002_0059_c_15L
述云此後別釋有三此初釋上輩
002_0059_c_16L此初正釋有四此初本有修因也

002_0059_c_17L
經曰此等衆生至現其人前者

002_0059_c_18L
述云此第二死有相顯也

002_0059_c_19L
經曰卽隨彼佛往生其國者

002_0059_c_20L
述云此第三中有逐佛也

002_0059_c_21L
經曰便於七寶至神通自在者

002_0059_c_22L
述云此第四生有獲益也
有說此三
002_0059_c_23L「孤」異作「狐」「四」異作「曰」「還」漢吳
002_0059_c_24L二譯共作「便」
「雖」異作「唯」

002_0060_a_01L
어떤 사람은 ≺이 세 무리는 그 차례대로 구품 중 상품중생ㆍ중품상생ㆍ하품하생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그 경(『관무량수경』)에서 말한 “(상품중생은) 일칠일을 지나서 불퇴전을 얻는다.”52)라고 했다.≻53)라고 했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불퇴전의 지위에 머물고”라고 한 것은, 곧 초지 이상의 불퇴전의 지위이니, 『관무량수경』에서 ‘무생인無生忍을 깨닫는 것’과 ‘백법명百法明(온갖 법을 밝게 아는 것)을 얻는 것’은 모두 초지初地54)이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했는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그 경에서 “(상품중생은) 왕생하여 (7일을 지나면) 불퇴전을 얻고, 1소겁을 지나면 무생인을 얻는다.”55)라고 했는데, 반드시 불퇴전을 곧 초지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곧 상품의 삼생三生은 비록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 십신十信에 들어가 무생인을 얻고 백명문百明門을 깨닫기 때문에 “불퇴전의 지위에 머물고”라고 했다.

나) 권하면서 맺음

“그러므로 아난아, 어떤 중생이 지금 세상에서 무량수불을 친견하려면 반드시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고 공덕을 닦으면서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經曰。 是故。 阿難。 其有衆生。 欲於今世。 見無量壽佛。 應發無上菩提之心。 修行功德。 願生彼國者。

이것은 나중에 권하면서 맺은 것이다.

나. 중배

가) 총괄적으로 나타낸 것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중배란 시방세계의 여러 하늘과 인민이 지극한 마음으로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면서”
經曰。 佛告阿難。 其中輩者。 十方世界。 諸天人民。 其有至心。 願生彼國者。

이것은 두 번째로 중배를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총괄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나) 개별적으로 풀이함

㉮ 본유의 단계에서 인을 닦음

“비록 사문이 되어 크게 공덕을 닦는 일은 행할 수 없을지라도,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고 한결같이 오로지 무량수불을 생각하면서 얼마간의 선을 닦고 재계齋戒를 받들어 지니며 탑과 불상을 건립하고 사문에게 공양하며 비단 휘장을 걸고 등불을 켜며 꽃을 뿌리고 향을 태워서 이것을 회향하여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소원하는 사람이다.”
經曰。 雖不能行作沙門大修功德。 當發無上菩提之心。 一向專念無量壽佛。 多少修善。 奉持齋戒。 起立塔像。 飯食沙門。 懸繒然燈。 散華燒香。 以此迴向。 願生彼國者。

이것은 나중에 개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본유의 단계에서 인因을 닦는 것이다.

㉯ 사유의 단계에서 상이 나타남

“그 사람은 임종할 때 무량수불이 그 몸을 변화하여 나투는데, 광명과 상호가 모두 진불眞佛과 같은 모습으로 여러 대중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나니,”
經曰。 其人臨終。 無量壽佛。 化現其身。 光明相好。 具如眞佛。 與諸大衆。 現其人前者。

이것은 두 번째로 사유의 단계에서 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 중유의 단계에서 왕생하여 나아감

“바로 화불化佛을 따라 그 국토에 왕생하여,”
經曰。 即隨化佛。 往生其國者。

이것은 세 번째로 중유의 단계에서 왕생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 생유의 단계에서 이익을 얻음

“불퇴전의 지위에 머물고 공덕과 지혜는 상배의 다음에 해당한다.”
經曰。 住不退轉。 功德智慧。 次如上輩者也者。

이것은 네 번째로 생유의 단계에서 이익을 얻는 것이다.
『관무량수경』에 따르면 (중배의) 상ㆍ중ㆍ하의 경우에 모두 “미타가 스스로 그 앞에 나툰다.”라고 말하였고, 진신眞身인지 화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56) (이 경은 화신임을 밝혔다.)

002_0060_a_01L如其次第卽九品中上中中上下下
002_0060_a_02L故彼經云經一七日得不退轉非也
002_0060_a_03L有說此言住不退轉卽初地已上不退
002_0060_a_04L轉位觀經所言悟無生忍得百法明
002_0060_a_05L皆初地故此亦非也彼經中生得不
002_0060_a_06L退已經一小劫得無生忍必不可言
002_0060_a_07L不退轉卽初地故今卽上品三生
002_0060_a_08L有遲疾皆入十信得無生忍悟百明門
002_0060_a_09L故云住不退

002_0060_a_10L
經曰是故阿難至願生彼國者

002_0060_a_11L
述云此後結勸也

002_0060_a_12L
經曰佛告阿難至願生彼國者

002_0060_a_13L
述云此第二釋中輩有二此初總標
002_0060_a_14L

002_0060_a_15L
經曰雖不能行至願生彼國者

002_0060_a_16L
述云此後別釋有四此初本有修因
002_0060_a_17L

002_0060_a_18L
經曰其人臨終至現其人前者

002_0060_a_19L
述云此第二死有相現也

002_0060_a_20L
經曰卽隨化佛往生其國者

002_0060_a_21L
述云此第三中有往趣也

002_0060_a_22L
經曰住不退轉至如上輩者也者

002_0060_a_23L
述云此第四生有獲利也依觀經
002_0060_a_24L中下皆云彌陀自現其前不言眞化

002_0060_b_01L그러므로 이 문장은 이치를 다하였다.

다. 하배

가) 총괄적으로 나타냄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하배란 시방세계의 여러 하늘과 인민이 지극한 마음으로 그 국토에 왕생하고자 하여”
經曰。 佛語阿難。 其下輩者。 十方世界。 諸天人民。 其有至心。 欲生彼國者。

이것은 세 번째로 하배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총괄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나) 개별적으로 풀이함

㉮ 본유의 단계에서 인을 닦음

“가령 온갖 공덕을 지을 수는 없더라도,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여 한결같이 뜻을 오로지하여 열 번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무량수불을 칭념하고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며, 혹은 심오한 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고 즐거워하며 의혹을 일으키지 않고 한 생각이라도 그 부처님을 칭념하면서 지극히 정성스런 마음으로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經曰。 假使不能作諸功德。 當發無上菩提之心。 一向專意。 乃至十念。 念無量壽佛。 願生其國。 若聞深法。 歡喜信樂。 不生疑惑。 乃至一念。 念於彼佛。 以至誠心。 願生彼國者。

이것은 나중에 개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본유의 단계에서 인因을 닦는 것이다.
“보리심을 발하여”란 정성定性의 이승二乘이 끝내 대승으로 향하지 못하는 것과 간별하기 위한 것이니, 『관무량수경』의 글과 어긋나지 않는다.

㉯ 사유의 단계에서 상이 나타남

“이 사람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꿈에 그 부처님을 친견하고”
經曰。 此人臨終。 夢見彼佛者。

이것은 두 번째로 사유의 단계에서 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 생유의 단계에서 이익을 얻음

“또한 왕생하는데, 공덕과 지혜는 중배의 다음에 해당한다.”
57)得往生。 功德智慧。 次如中輩者也58)

이것은 세 번째로 생유의 단계에서 이익을 얻는 것이다. 『관무량수경』의 구품을 끌어다가 개별적으로 배대하여 풀이해야 하지만 번거로울 것을 염려하여 갖추어서 기록하지 않는다.

2) 대보살의 왕생

⑴ 간략하게 나타냄

① 여러 부처님이 함께 찬탄함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량수불은 위신威神이 다함이 없어 시방세계의 한량없고 가없는 불가사의한 여러 불ㆍ여래께서 그분을 칭찬하고 찬탄하지 않음이 없다.”
經曰。 佛告阿難。 無量壽佛。 威神無極。 十方世界。 無量無邊。 不可思議。 諸佛如來。 莫不稱歎於彼者。

두 번째로 대보살大菩薩의 왕생59)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간략하게 나타낸 것이고, 나중은 자세하게 게송으로 밝힌 것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여러 부처님이 함께 찬탄하는 것이다.

② 뛰어난 성인이 함께 왕생함

“동방에 있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불국토의 한량없고 셀 수 없는 모든 보살의 무리가 모두 왕생하여 무량수불의 처소를 방문하여 공경하고 공양하고, 이를 모든 보살 대중과 성문 대중까지 이르도록 하며, 경법을 듣고 그 도를 유포하여 교화한다. 남방ㆍ서방ㆍ북방ㆍ사유四維60)ㆍ상ㆍ하 등의 보살도 또한 역시 이와 같이 한다.”
經曰。 東方恒沙佛國。 無量無數。 諸菩薩衆。 皆悉往。 詣無量壽佛所。 恭敬供養。 及諸菩薩聲聞大衆。 聽受經法。 宣布道化。 南西北方四維上下。 亦復如是者。

이것은 나중에 뛰어난 성인이 함께 왕생하는 것이다.
총괄적으로 말하자면 범부와 소승인으로 하여금 왕생하고자 하는 뜻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니, 그러므로 그 국토의 뛰어남을 나타내야 했던 것이다.

⑵ 자세하게 게송으로 밝힘

① 글의 종류를 구분함

이때 세존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經曰。 爾時世尊。 而說頌曰者。

두 번째로 자세하게 게송으로 밝힌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글의 종류를 구분한 것이다.

② 바로 게송으로 밝힘

가. 뛰어난 성인이 함께 왕생하는 것을 게송으로 밝힘

가) 뛰어난 성인이 모두 왕생함

㉮ 동방의 뛰어난 성인이 왕생하는 것을 게송으로 밝힘


동방의 여러 불국토
그 수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은데
그 국토에 거주하는 보살의 무리
왕생하여 무량각無量覺61)을 찾아뵙네.

經曰。 東方諸佛國。 其數如恒沙。 彼土菩薩衆。 往覲無量覺者。

이것은 나중에 바로 게송으로 밝힌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뛰어난 성인이 함께 왕생하는 것을 게송으로 밝힌 것이니, 곧 15게송이다. 나중은 여러 부처님께서 모두 찬탄한 것을 게송으로 밝힌 것이니, 곧 15게송이다.

002_0060_b_01L此文盡理

002_0060_b_02L
經曰佛語阿難至欲生彼國者

002_0060_b_03L
述云第三釋下輩有二此初總摽也

002_0060_b_04L
經曰假使不能至願生彼國者

002_0060_b_05L
述云此後別釋有三此初本有修因
002_0060_b_06L當發菩提心者卽簡定性終不向
002_0060_b_07L故不違觀經之文

002_0060_b_08L
經曰此人臨終夢見彼佛者

002_0060_b_09L
述云此第二死有相現也
[234] 得往生
002_0060_b_10L至如中輩者也 [235]
述云此第三生有得利
002_0060_b_11L將彼九品應別配釋恐言煩故不
002_0060_b_12L須備錄

002_0060_b_13L
經曰佛告阿難至稱歎於彼者

002_0060_b_14L
述云第二大菩薩往生有二初略標
002_0060_b_15L後廣頌初又有二此初諸佛共歎也

002_0060_b_16L
經曰東方恒沙至亦復如是者

002_0060_b_17L
述云此後勝聖共生也總而言之
002_0060_b_18L令凡小增欲生之意故須顯彼國土之
002_0060_b_19L

002_0060_b_20L
經曰爾時世尊而說頌曰者

002_0060_b_21L
述云第二廣頌有二此初1) [107] [236] 文也

002_0060_b_22L
經曰東方諸佛國至往覲無量覺者

002_0060_b_23L
述云此後正頌有二初頌勝聖共生
002_0060_b_24L卽十五頌也後頌諸佛皆歎卽十五

002_0060_c_01L처음에 또한 세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뛰어난 성인이 모두 왕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동방의 뛰어난 성인이 왕생하는 것을 게송으로 밝힌 것이다.
“근覲”은 만나 뵙는 것이니, “제후가 천자를 만나 뵙는 것을 근覲이라 한다.”62)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 다른 방위의 뛰어난 성인이 왕생함


남방ㆍ서방ㆍ북방ㆍ사유
상ㆍ하도 또한 그러하여
그 국토에 거주하는 보살의 무리
왕생하여 무량각을 찾아뵙네.

經曰。 南西北四維。 上下亦復然。 彼土菩薩衆。 往覲無量覺者。

이것은 나중에 다른 방위의 뛰어난 성인이 왕생하는 것이다.

나) 공양하고 공경하여 복을 닦음

㉮ 외사에 의해 공양함


일체의 모든 보살이
각각 하늘의 미묘한 꽃과
보배로운 향과 가장 값비싼 옷을 가져와
무량각께 공양하네.

모두 하늘의 음악 연주하여
조화롭고 아름다운 음을 내고
노래를 부르며 가장 뛰어나고 존귀한 분을 찬탄하여
무량각께 공양하네.

經曰。 一切諸菩薩。 各齎天妙華。 寶香無價衣。 供養無量覺。 咸然奏天樂。 暢發和雅音。 歌歎最勝尊。 供養無量覺者。

이것은 두 번째로 공양하고 공경하여 복을 닦는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외사外事에 의해 공양하는 것63)이다.

㉯ 내업에 의해 공양하고 공경함


신통력을 온전히 이루고 지혜를 통달하여
깊은 문에서 노닐고 심오한 법을 증득하여 들어가셨네.
공덕장功德藏을 온전히 갖추고
미묘한 지혜는 짝할 이 없네.

해처럼 밝은 지혜로 세간을 비추어
구름처럼 가득 덮은 생사윤회의 길 쓸어 없애시니
공경하는 마음으로 세 번 돌고
위없는 존귀한 분께 머리를 조아려 예배드리네.

經曰。 究達神通慧。 遊入深法門。 具足功德藏。 妙智無等倫。 慧日照世間。 消除生死雲。 恭敬遶三匝。 稽首無上尊者。

이것은 다음에 내업內業64)에 의해 공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구究”란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究竟)이고, “달達”이란 통달하는 것이다. 신통력이든 지혜든 궁극의 경지까지 도달하고 통달하였기 때문에 “신통력”과 “지혜”라고 했다. 곧 신통력은 궁극의 경지에 도달했고, 지혜는 통달했다는 뜻이다.
방관傍觀(얽매임이 없이 보는 것)을 “유遊”라고 하고, 근원을 궁구하는 것을 “입入”이라 한다. “심법深法”이란 곧 지혜가 들어가는 대상이고, “심문深門”이란 신통력이 노니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곧 신통력과 지혜가 쌍을 이룬 것이다.
복행福行을 원만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공덕장을 온전히 갖추고”라고 했고, 혜행慧行이 뛰어나게 미묘하기 때문에 “미묘한 지혜는 짝할 이 없네.”라고 했다. 복福은 지혜의 자량이고, 지혜는 복의 길이다. 그러므로 곧 복덕과 지혜가 쌍을 이룬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두 쌍은 모두 부처님의 자덕自德을 찬탄한 것이다.≻65)라고 했는데, 옳지 않으니, 신통력은 중생을 교화하는 미묘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말하기를 ≺지혜는 신통력의 근본이고, 신통력은 지혜의 작용이다.≻66)라고 했는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신통력은 이미 세속지世俗智이니, 반드시 체體와 용用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해처럼 밝은 지혜”란 비유에 의해 이름을 붙인 것이다. 미혹(惑)ㆍ업業ㆍ고통(苦)67) 등의 세 가지가 능히 허공과 같은 진여의 경계와 해와 달과 같은 지혜를 덮는 것이 곧 구름이 허공과 해와 달을 덮는 것과 같기 때문에 “구름처럼 가득 덮은 생사윤회의 길”이라 하였다. 부처님의 지혜는 진여의 경계를 통달하여 능히 자신과 타인의 미혹과 업과 고통의 장애를 제거하기 때문에 “해처럼 밝은 지혜”라고 했고,

002_0060_c_01L頌也初又有三初勝聖皆生有二
002_0060_c_02L此初頌東方往生也覲者見也諸候
002_0060_c_03L見天子曰覲是也

002_0060_c_04L
經曰南西北四維至往覲無量覺者

002_0060_c_05L
述云此後餘方往生也

002_0060_c_06L
經曰一切諸菩薩至供養無量覺者

002_0060_c_07L
述云此第二供敬修福有三此初外
002_0060_c_08L事供養也

002_0060_c_09L
經曰究達神通慧至稽首無上尊者

002_0060_c_10L
述云此次內業供敬也究者究竟
002_0060_c_11L者洞達若通若智究竟洞達故云神通
002_0060_c_12L則神通究竟智慧洞達義也傍觀
002_0060_c_13L曰遊窮原稱入深法者卽智所入
002_0060_c_14L門者卽通所遊故卽通智雙也福行
002_0060_c_15L圓備故具功德藏慧行殊妙故智無
002_0060_c_16L等倫福是慧資慧是福道故卽福智
002_0060_c_17L雙也
有說此之二雙皆歎佛自德
002_0060_c_18L通是化物之妙術故又彼所言
002_0060_c_19L爲通本通是智用亦非也通旣世俗
002_0060_c_20L必有體用故慧日者卽從喩之名
002_0060_c_21L惑業苦三能覆眞空及智日月卽同雲
002_0060_c_22L覆虛空日月故云生死雲佛智達眞
002_0060_c_23L能除自他惑業苦障故云慧日令生
002_0060_c_24L「璅」異作「繅」ㆍ作「琑」{甲}

002_0061_a_01L사물에 대한 이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세간을 비추어”라고 했다.

㉰ 국토를 보고 기뻐하며 구함


저 장엄한 정토
미묘하고 생각과 의론으로 헤아리기 어려움을 보고
그로 인해 무량심無量心을 일으키고
자신의 국토도 또한 그렇게 될 것을 서원하네.

經曰。 見彼嚴淨土。 微妙難思議。 因發無量心。 願我國亦然者。

이것은 세 번째로 국토를 보고 기뻐하며 구하는 것이다. “무량심”이란 사무량심四無量心68)이다.

다) 법을 듣고 지혜를 일으키는 것을 게송으로 밝힘

㉮ 상을 나투어 발기함


때맞추어 무량존無量尊(무량수불)께서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시며
입에서 헤아릴 수 없는 광명을 내어
시방의 국토를 두루 비추시네.
그 광명 되돌아와 몸을 감싸고
세 번 돌아 정수리로 들어가네.

經曰。 應時無量尊。 動容發欣笑。 口出無數光。 遍照十方國。 迴光圍遶身。 三匝從頂入者。

이것은 세 번째로 법을 듣고 지혜를 일으키는 것을 게송으로 밝힌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상相을 나투어 발기發起(발하여 일어나도록 한 것)한 것이다.
“두루 비추시네.”란 중생을 구제함에 있어서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몸을 감싸고”란 덕을 쌓음이 원만하기 때문이고, “세 번 돌아”란 반드시 두 대사大士69)를 겸하기 때문이며, “정수리로 들어가네.”란 곧 (아미타불이) 삼존三尊70) 중 가장 상위이기 때문이다.

㉯ 대중이 보고 기쁜 마음을 일으킴


일체의 사람과 하늘의 무리
뛰어오를 듯한 마음으로 모두 기뻐하네.

經曰。 一切人天衆。 踊躍皆歡喜者。

두 번째로 대중이 보고 기쁜 마음을 일으킨 것이다.

㉰ 관음보살이 말씀해 주실 것을 요청함


대사 관세음이
옷을 다듬고 머리를 숙여 예배드리며 물어
아뢰기를 부처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미소를 지으시나이까?
원하옵건대 그 뜻을 설해 주소서 하니,

經曰。 大士觀世音。 整服稽首問。 白佛何緣笑。 唯然願說意者。

이것은 세 번째로 관음보살이 말씀해 주실 것을 요청한 것이다.

㉱ 여래께서 요청에 응하여 대답함

ㄱ. 간략하게 허락하고 명령한 것을 나타냄


천둥처럼 큰 청정한 음성
여덟 가지 음音으로 미묘한 소리를 내어 대답하시네.
바로 보살에게 수기授記를 주려는 것이니
이제 말하는 것을 그대는 자세히 잘 들어라.

經曰。 梵聲猶雷震。 八音暢妙響。 當授菩薩記。 今說仁諦聽者。

이것은 네 번째로 여래께서 요청에 응하여 대답하신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간략하게 허락하고 명령한 것을 나타낸 것이다.
“청정한 음성”이란 총괄적으로 든 것이다.
“여덟 가지 음”이란 개별적으로 찬탄한 것이니, 『범마유경梵摩喩經』에서 “첫째, 가장 훌륭한 소리이니, 소리가 애잔하고 미묘하기 때문이다. 둘째,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리이니, 말이 분명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 조화로운 소리이니, 큰 소리와 작은 소리가 적중함을 얻기 때문이다. 넷째, 유연한 소리이니, 소리가 부드럽고 가볍기 때문이다. 다섯째, 오류가 없는 소리이니, 말에 착오나 과실이 없기 때문이다. 여섯째, 여인과 같지 않은 소리이니, 소리가 웅장하고 밝기 때문이다. 일곱째, 존귀하고 지혜로운 소리이니, 말이 위엄과 엄숙함이 있기 때문이다. 여덟째, 깊이 있고 멀리까지 울리는 소리이니, 소리가 깊고 멀리까지 울리기 때문이다.”71)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미묘한 음성으로 관음보살에게 대답했기 때문에 “미묘한 소리를 내어 대답하시네.”라고 했다.

ㄴ. 질문한 것에 바로 대답함

ㄱ) 소원에 따라 성불할 것임을 수기함


시방에서 온 정사正士들
나는 그 소원 모두 알고 있네.
장엄한 정토에 뜻을 두고 추구하여
수기를 받고 미래세에 성불하리라.

經曰。 十方來正士。 吾悉知彼願。 志求嚴淨土。 受決當作佛者。


002_0061_a_01L物解故云照世間

002_0061_a_02L
經曰見彼嚴淨土至願我國亦然者

002_0061_a_03L
述云此第三見土欣求也無量心者
002_0061_a_04L卽四無量心也

002_0061_a_05L
經曰應時無量尊至三匝從頂入者

002_0061_a_06L
述云此第三頌聞法生智有四此初
002_0061_a_07L現相發起也遍照者濟之無二故
002_0061_a_08L身者集德圓滿故三匝者必兼二大
002_0061_a_09L士故頂入者卽三尊中爲上故

002_0061_a_10L
經曰一切人天衆踊躍皆歡喜者

002_0061_a_11L
述云第二衆見生喜也

002_0061_a_12L
經曰大士觀世音至唯然願說意者

002_0061_a_13L
述云此第三觀音請說也

002_0061_a_14L
經曰梵聲猶雷震至今說仁諦聽者

002_0061_a_15L
述云此第四如來酬請有二此初略
002_0061_a_16L標許勅也梵聲者總擧八音者別歎
002_0061_a_17L如梵摩喩經中說一最好聲聲哀妙
002_0061_a_18L二易了聲言辨了故三調和聲
002_0061_a_19L小得中故四柔煗聲1) [108] 輕故
002_0061_a_20L不誤聲言無錯失故六不女聲聲雄
002_0061_a_21L朗故七尊慧聲言有威肅故八深遠
002_0061_a_22L [109] 2)遠故以此妙音酬觀音故云暢
002_0061_a_23L妙響

002_0061_a_24L
經曰十方來正士至受決當作佛者

002_0061_b_01L
이것은 나중에 질문한 것에 바로 대답한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소원에 따라 성불할 것임을 수기한 것이다.

ㄴ) 지혜와 소원을 들어 국토를 얻을 것을 수기함


일체법이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며
메아리와 같음을 깨달아 알고
모든 미묘한 소원을 원만하게 갖추어
반드시 이와 같은 국토를 이룩하리라.

經曰。 覺了一切法。 猶如夢幻響。 滿足諸妙願。 必成如是剎者。

이것은 두 번째로 지혜와 소원을 들어 국토를 얻을 것을 수기한 것이다.

ㄷ) 지혜와 실천행을 따라 성불할 것임을 수기함


법이 번개와 같고 그림자와 같음을 알고
보살도를 완성하며
온갖 공덕의 근본을 갖추어
수기를 받고 미래세에 성불하리라.

經曰。 智法如電影。 究竟菩薩道。 具諸功德本。 受決當作佛者。

이것은 세 번째로 지혜와 실천행을 따라 성불할 것임을 수기한 것이다.

ㄹ) 지혜와 서원을 들어 국토를 이룩할 것을 수기함


제법의 성품에 통달하여
일체가 공이고 무아無我임을 알고
오로지 청정한 불토를 추구하여
반드시 이와 같은 국토를 이룩하리라.

經曰。 通達諸法性。 一切空無我。 專求淨佛土。 必成如是剎者。

이것은 네 번째로 지혜와 서원을 들어 국토를 이룩할 것을 수기한 것이다.
(앞에서 설한) ‘법이 꿈ㆍ번개 등과 같은 것을 아는 것’은 곧 세속제世俗諦72)를 대상으로 한 지혜이고, (여기에서 설한) ‘법의 성품이 공이라는 것을 통달하는 것’은 곧 승의제勝義諦73)를 대상으로 한 지혜이다.

나. 여러 부처님이 찬탄한 것을 게송으로 밝힘

가) 다른 부처님께서 함께 찬탄한 것을 게송으로 밝힘

㉮ 법을 듣고 국토를 얻는 것을 찬탄함


모든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말씀하셨네.
안양국安養國(극락세계)의 부처님을 찾아뵙고
법을 듣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행하면
속히 청정처(정토)를 얻으리.

經曰。 諸佛告菩薩。 令覲安養佛。 聞法樂受行。 疾得清淨處者。

두 번째로 여러 부처님이 찬탄한 것을 게송으로 밝힌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다른 부처님께서 함께 찬탄한 것을 게송으로 밝힌 것이니, 곧 다섯 게송이다. 나중은 석가불이 스스로 찬탄한 것을 게송으로 밝힌 것이니, 곧 열 게송이다. 처음에 또한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법을 듣고 국토를 얻는 것을 찬탄한 것이다.

㉯ 신통력을 얻고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찬탄함


그 장엄하고 청정한 국토에 이르러
속히 신통력을 얻고
반드시 무량존께
수기를 받아 등각等覺을 이루리.

經曰。 至彼嚴淨國。 便速得神通。 必於無量尊。 受記成等覺者。

이것은 두 번째로 신통력을 얻고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찬탄한 것이다. 곧 앞에서 “바로 보살에게 수기를 주려는 것이니”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 명호를 듣고 불퇴전의 지위에 도달하는 것을 찬탄함


그 부처님께서 세운 본원의 힘으로
명호를 듣고 왕생하고자 하면
모두 그 국토에 이르러
저절로 불퇴전의 지위에 도달하리.

經曰。 其佛本願力。 聞名欲往生。 皆悉到彼國。 自致不退轉者。

이것은 세 번째로 명호를 듣고 불퇴전의 지위에 도달하는 것을 찬탄한 것이다. 곧 앞에서 “정정취正定聚에 머문다.”라고 한 것이다.

㉱ 서원을 세우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을 찬탄함


보살은 지극한 서원을 일으켜
자신의 국토가 극락세계와 다름이 없기를,
일체의 중생을 두루 생각하여 제도하기를,
명성이 시방세계에 두루 드러나기를 서원하리.

억 분의 여래 받들어 섬기기 위해
날아서 여러 국토를 두루 다니며
공경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갔다가
다시 안양국으로 돌아오리.

經曰。 菩薩興至願。 願己國無異。 普念度一切。 名顯達十方。 奉事億如來。 飛化遍諸剎。 恭敬歡喜去。 還到安養國者。

이것은 네 번째로 서원을 세우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을 찬탄한 것이다.
서원에 의해 얻으려는 국토는 아미타불의 국토와 같기 때문에 “자신의 국토가 극락세계와 다름이 없기를”이라고 했으니, 곧 정토를 구하는 서원이다. 부처가 되었을 때 덕스러운 명호가 멀리 두루 들리도록 할 것을 서원했기 때문에 “명성이 시방세계에 두루 드러나기를”이라고 했으니,

002_0061_b_01L
述云此後正答所問有四此初逐願
002_0061_b_02L記成佛也

002_0061_b_03L
經曰覺了一切法至必成如是刹者

002_0061_b_04L
述云此第二擧智願記獲土也

002_0061_b_05L
經曰智法如電影至受決當作佛者

002_0061_b_06L
述云此第三逐智行記成佛也

002_0061_b_07L
經曰通達諸法性至必成如是刹者

002_0061_b_08L
述云此第四擧智願記成土也智法
002_0061_b_09L如夢電等卽世俗諦智通達法性空
002_0061_b_10L卽勝義諦智

002_0061_b_11L
經曰諸佛告菩薩至疾得淸淨處者

002_0061_b_12L
述云第二頌諸佛歎有二初頌餘佛
002_0061_b_13L共歎卽五頌也後頌釋迦自歎卽十
002_0061_b_14L頌也初又有四此初聞法得土歎也

002_0061_b_15L
經曰至彼嚴淨國至受記成等覺者

002_0061_b_16L
述云此第二得通成覺歎卽前當授
002_0061_b_17L菩薩記是也

002_0061_b_18L
經曰其佛本願力至自致不退轉者

002_0061_b_19L
述云此第三聞名不退歎卽前住正
002_0061_b_20L定聚也

002_0061_b_21L
經曰菩薩興至願至還到安養國者

002_0061_b_22L
述云此第四逐願供佛歎也願所得
002_0061_b_23L如彌陀國故云國無異卽求淨土
002_0061_b_24L願也願作佛時德名遠聞故云名顯

002_0061_c_01L곧 불신을 구하는 서원이다.

나) 석가불이 스스로 찬탄함

㉮ 경의 믿기 어려움을 찬탄함

ㄱ. 선행을 쌓아야 들을 수 있는 것으로 경의 미묘함을 찬탄함


선의 근본을 쌓지 못한 이는
이 경을 들을 수 없고
청정하게 계를 지킨 이라야
이 경을 얻어 들으리.

經曰。 若人無善本。 不得聞此經。 清淨有戒者。 乃獲聞此經者。

두 번째로 석가불께서 스스로 찬탄하신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경의 믿기 어려움을 찬탄한 것이고, 다음은 부처님의 지혜가 생각에 의해 헤아리기 어려움을 찬탄한 것이며, 나중은 권하여 보리심을 발하게 한 것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선행을 쌓아야 들을 수 있는 것으로 경의 미묘함을 찬탄한 것이다.


ㄴ. 악행을 쌓은 이는 믿고 듣기 어려운 것으로 경의 깊고 무거움을 찬탄함


일찍이 세존을 뵌 이는
이 일을 믿고
겸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고 받들어 행하며
뛰어오를 듯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리.

교만하고 삿되며 게으른 이는
이 법을 믿기 어려우니
과거세에 여러 부처님을 뵌 이라야
이와 같은 가르침 즐거운 마음으로 들으리.

經曰。 曾更見世尊。 則能信此事。 謙敬聞奉行。 踊躍大歡喜。 憍慢弊懈怠。 難以信此法。 宿世見諸佛。 樂聽如是敎者。

이것은 나중에 악행을 쌓은 이는 믿고 듣기 어려운 것으로 경의 깊고 무거움을 찬탄한 것이다.
(앞에서 경의) 미묘함을 찬탄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버리고 선을 닦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여기에서 경의) 깊고 무거움을 찬탄한 것은 가볍게 여기고 비방하는 마음을 버리고 믿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이다.

㉯ 부처님의 지혜가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찬탄함

ㄱ. 부처님만이 홀로 분명하게 깨달으신 것을 찬탄함


성문이든 보살이든
성인이신 부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으니
날 때부터 눈먼 이가
길을 가면서 사람들을 인도하려는 것과 같네.

여래의 지혜는 바다와 같아
깊고 넓으며 바닥을 알 수 없네.
이승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부처님만이 홀로 분명하게 깨달으신 것이네.

經曰。 聲聞或菩薩。 莫能究聖心。 譬如從生盲。 欲行開導人。 如來智慧海。 深廣無涯底。 二乘非所測。 唯佛獨明了者。

두 번째로 부처님의 지혜가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찬탄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이승二乘의 지혜를 마주하여 부처님만이 홀로 분명하게 깨달으신 것을 찬탄한 것이다.

ㄴ. 여러 성인의 지혜를 마주하여 지혜가 깊고 청정함을 찬탄함


가령 모든 사람이
온전하게 모두 도를 얻어
청정한 지혜로 본래 공한 것임을 알고
억겁 동안 부처님의 지혜를 생각하면서

온 힘을 다하여 극진히 강설하여도
수명이 다하도록 알지 못하니
부처님의 지혜는 한계도 없고 끝도 없으며
이와 같이 청정한 경지에 이르렀네.

經曰。 假使一切人。 具足皆得道。 淨慧知本空。 億劫思佛智。 窮力極講說。 盡壽猶不知。 佛慧無邊際。 如是致清淨者。

이것은 나중에 여러 성인의 지혜를 마주하여 지혜가 깊고 청정함을 찬탄한 것이다.
“도를 얻어”란 실천행이 뛰어난 것이고, ‘공의 이치에 통달한 것’은 깨달음이 깊은 것이며,
“억겁”이란 시간의 장구함을 말한 것이다.
“온 힘을 다하여(窮力)”란 강설이 지극한 것이다. “한계도 없고(無邊)”란 (공간적으로) 시방세계까지 다하는 것이고, “끝도 없으며(無際)”란 (시간적으로) 삼세(三際)를 다하는 것이다. “청정”이란 장애를 다한 것이니, 곧 궁극적으로 청정하여 장애가 다한 도과道果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려움을 찬탄한 것이다.

㉰ 권하여 서원을 구하게 함74)

ㄱ. 듣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구할 것을 권함


수명을 얻어 살아가는 것 매우 어려웁고
부처님 계신 세상 또한 만나기 어려우며
믿음과 지혜를 지닌 이가 되는 것도 어려우니
법을 듣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구해야 하리.

經曰。 壽命甚難得。 佛世亦難値。 人有信慧難。 若聞精勤75)求者。

세 번째로 권하여 서원을 구하게 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듣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구할 것을 권한 것이다. 이미 세 가지 어려운 일을 여의었으니 헛되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명”은 도道의 의지처이고, “부처님”은 뛰어난 인연이며, “믿음”은 행위의 근본이기 때문에 치우치게 이 세 가지를 설한 것이다.


002_0061_c_01L十方卽求佛身願也

002_0061_c_02L
經曰若人無善3) [110] [237] 乃獲聞此經者

002_0061_c_03L
述云第二釋迦自歎有三初歎經難
002_0061_c_04L次佛智難思後勸使發心初又有
002_0061_c_05L此初以有善聞歎經微妙也

002_0061_c_06L
經曰曾更見世尊至樂聽如是敎者

002_0061_c_07L
述云此後有惡不信聞以歎經深重也
002_0061_c_08L歎微妙者令人捨惡以修善故歎深
002_0061_c_09L重者令去輕謗生信樂故

002_0061_c_10L
經曰聲聞或菩薩至唯佛獨明了者

002_0061_c_11L
述云第二佛智難思有二此初對二
002_0061_c_12L乘智歎佛獨了也

002_0061_c_13L
經曰假使一切人至如是致淸淨者

002_0061_c_14L
述云此後對諸聖智歎智深淨也
002_0061_c_15L道者行勝達空者解深億劫者時久
002_0061_c_16L窮力者說極無邊者盡十方無際者
002_0061_c_17L窮三際淸淨者障盡卽窮至淸淨障
002_0061_c_18L盡道果故歎難思也

002_0061_c_19L
經曰壽命甚難得至若聞精勤求者

002_0061_c_20L
述云第三勸令求願有三此初勸聞
002_0061_c_21L勤求也旣離三難不容空過故壽是
002_0061_c_22L道依佛爲勝緣信卽行本故偏說之

002_0061_c_23L「濡」疑「軟」{甲}「遠」上疑脫「深」「本」下
002_0061_c_24L疑脫「至」

002_0062_a_01L
ㄴ. 바로 보리심을 발할 것을 권함


법을 듣고 잊지 않으며
부처님을 뵙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큰 기쁨으로 여기면
나의 착하고 친근한 벗이니
그러므로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經曰。 聞法能不忘。 見敬得大慶。 則我善親友。 是故當發意者。

이것은 다음에 바로 보리심을 발할 것을 권한 것이다.
곧 아미타불의 말씀을 잊지 않고, 또한 그 부처님을 뵙고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내고 이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면 석가불의 말씀을 수순하여 행하여 석가불에게 포섭되기 때문에 “나의 착하고 (친근한) 벗”이라고 하였다.

ㄷ.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을 권함


설령 온 세계가 화염에 휩싸일지라도
기필코 헤쳐 나가 법을 듣고
반드시 불도佛道를 이루어
생사의 세계 떠도는 이 널리 구제해야 하리.

經曰。 設滿世界火。 必過要聞法。 會當成佛道。 廣度生死流者。

이것은 나중에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을 권한 것이다.

3) 칭찬과 꾸짖음, 얻는 것과 잃는 것에 의해 범부와 소승에게 권함76)

⑴ 그 국토의 뛰어나고 미묘함을 찬탄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으로 구하게 함

① 뛰어난 즐거움을 자세하게 찬탄함

가. 수명이 길고 오램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국토의 보살은 모두 필경 일생보처一生補處의 경지에 도달하는데, 그 본원에 있어서 중생을 위해 큰 서원의 공덕으로 스스로를 장엄하고 일체중생을 두루 제도하여 해탈시키려는 뜻을 지닌 이는 제외한다.”77)
經曰。 佛告阿難。 彼國菩薩。 皆當究竟一生補處。 除其本願。 爲衆生故。 以弘誓功德。 而自莊嚴。 普欲度脫一切衆生者。

세 번째로 칭찬과 꾸짖음, 얻는 것과 잃는 것에 의해 범부와 소승에게 권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그 국토의 뛰어나고 미묘함을 찬탄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즐거운 마음으로 구하게 한 것이고, 다음은 이 국토의 더러움을 펼쳐 사람들로 하여금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버리도록 한 것이며, 나중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쌍으로 밝혀 중생78)으로 하여금 닦을 것은 닦고 버릴 것은 버리게 한 것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뛰어난 즐거움을 자세하게 찬탄한 것이고, 나중은 권하여 왕생하게 한 것이다. 처음에 또한 여덟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수명이 길고 오랜 것이다.
“일생一生”이란 오생五生79) 가운데 최후생最後生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권權과 실實의 관점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실實의 관점에서 보자면 곧 마혜수라지처摩醯首羅智處80)에 태어나는 것81)이다. 권權의 관점에도 또한 두 가지 구별이 있다. 예토에 있어서는 곧 염부제에 태어나는 것을 일생一生이라 하고, 정토에 왕생함에 있어서는 곧 성불을 위해 태어남을 일생이라 한다. 지금 실實을 간별하고자 하기 때문에 또한 “보처補處”라고 했다.
혹시 어떤 사람이 의심을 일으켜 ‘그 국토의 보살이 모두 보처82)를 얻는다면 유행하면서 교화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본원을 세운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간에 요절하는 일이 없다’고 하여 의심을 풀었다.

나. 광명이 뛰어나게 미묘함

가) 광명이 가지런하지 않음을 나타냄

“아난아, 그 국토에 머무는 모든 성문중은 몸에서 쏟아지는 광명이 1심尋이고, 보살은 몸에서 쏟아지는 광명이 백 유순을 비춘다. 두 보살이 있어서 가장 존귀하고 제일가는데, 위대한 덕과 신령한 힘에 의해 쏟아지는 광명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춘다.”
經曰。 阿難。 彼國中。 諸聲聞衆。 身光一尋。 菩薩光明。 照百由旬。 有二菩薩。 最尊第一。 威神光明。 普照三千大千世界者。

이것은 두 번째로 광명이 뛰어나게 미묘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광명이 가지런하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옥편玉篇』83)에서 말하기를 “1심尋은 여덟 자(尺)이다.”라고 했다. 또한 “일곱 자이다.”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은 것 같으니, 그렇다면 (1심은 일곱 자에 해당하는) 인刃84)과 같은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 아난의 질문에 따라 다시 펼침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 두 보살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첫째 관세음觀世音이고, 둘째 대세지大勢至이다.85) 이 두 보살은 이 국토에서 보살행을 닦고 목숨을 마친 후 전화轉化하여 그 국토에 태어났다.”
經曰。 阿難白佛。 彼二菩薩。 其號云何。 佛言。 一名觀世音。 二名大勢至。 是二菩薩。 於此國土。 修菩薩行。 命終轉化。 生彼國者。


002_0062_a_01L
經曰聞法能不忘至是故當發意者

002_0062_a_02L
述云此次正勸發心也卽不忘彌陀
002_0062_a_03L所說亦見彼佛心生敬重以爲大喜
002_0062_a_04L行順釋迦釋迦所攝故云我善友

002_0062_a_05L
經曰設滿世界火至廣1) [111] [238] 生死流者

002_0062_a_06L
述云此後勸心不退也

002_0062_a_07L
經曰佛告阿難至一切衆生者

002_0062_a_08L
述云第三褒貶得失以勸凡小有三
002_0062_a_09L初歎彼土勝妙令物欣求次申此方
002_0062_a_10L穢惡使人厭捨後雙彰得失令有脩
002_0062_a_11L初又有二初廣歎勝樂後勸令往
002_0062_a_12L初又有八此初壽命長遠也
002_0062_a_13L生者卽五生之中最後生權實不定
002_0062_a_14L實卽摩醯首羅智處之生權亦有二
002_0062_a_15L若在穢土卽閻浮提生名爲一生
002_0062_a_16L若生淨土卽成佛之生名爲一生
002_0062_a_17L欲簡實故亦云補處或有疑言彼土
002_0062_a_18L菩薩若皆補處不應遊化故釋除本
002_0062_a_19L皆無中夭

002_0062_a_20L
經曰阿難彼國至大千世界者

002_0062_a_21L
述云此第二光明殊妙有二此初標
002_0062_a_22L光參差也玉篇云一尋八尺也又云
002_0062_a_23L七尺此似非也應同刄故

002_0062_a_24L
經曰阿難白佛至化生彼國者

002_0062_b_01L
이것은 나중에 아난의 질문에 따라 다시 펼친 것이다.
이미 “이 국토에서 보살행을 닦고”라고 했으니, 곧 무쟁왕無諍王이 (두 보살이 보살행을 닦는) 이 세계에 있었고, 보해寶海도 또한 그러했음을 알 수 있다.

다. 신체의 모습이 원만하게 갖추어짐

“아난아, 어떤 중생이 그 국토에 태어나면 모두 서른두 가지 모습(三十二相)86)을 갖춘다.”
經曰。 阿難。 其有衆生。 生彼國者。 皆悉具足三十二相者。

이것은 세 번째로 신체의 모습이 원만하게 갖추어진 것이다.
수호隨好87)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설하지 않았다.

라. 지덕智德이 뛰어나게 미묘함

“지혜를 원만하게 이루어 제법에 깊이 들어가고, 요도要道를 궁구하여 미묘한 뜻에 통달하며, 신통력을 얻어 걸림이 없고, 제근諸根이 분명하고 날카롭다. 이 가운데 둔근鈍根은 두 가지 인忍을 성취하고, 이근利根은 헤아릴 수 없는 무생법인을 얻는다.”
經曰。 智慧成滿。 深入諸法。 究暢要妙。 神通無礙。 諸根明利。 其鈍根者。 成就二忍。 其利根者。 得不可計無生法忍者。

이것은 네 번째로 지덕이 뛰어나게 미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법성을 증득하기 때문에 “제법에 깊이 들어가고”라고 했고, 교전敎詮을 궁구하여 통달하기 때문에 “요도를 궁구하여 미묘한 뜻에 통달했으며”라고 했다.≻88)라고 했는데, 이것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중생이 그곳에 왕생하여 이러한 두 가지 지혜89)를 얻는다면 응당 범부와 소승은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곧 “제법에 깊이 들어가고”란 소전所詮(언어에 의해 드러내려고 한 의미)을 깨닫기 때문이고, “요도를 (궁구하여) 미묘한 뜻에 통달했으며”란 능전能詮(언어 자체)을 닫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제근諸根”은 신信 등의 다섯 가지90)이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신근 등의 다섯 가지라고 한다면 곧 둔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지금 곧 육근六根이다.
어떤 사람은 ≺“두 가지 인”이란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의 두 가지 인91)이고, 또한 다섯 가지 인忍92) 중에서는 처음의 두 가지인 복인伏忍과 신인信忍이며, “무생인無生忍(무생법인)”이란 곧 (다섯 가지 인 중) 네 번째 인忍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아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무생법인은 곧 생인과 법인 (중 법인이기) 때문이고, (다섯 가지 인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는) 순인順忍을 넘어서 갑자기 무생인을 설할 별도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곧 중품과 하품의 사람은 오직 음향인音響忍과 유순인柔順忍93)의 두 가지 인을 얻고, 상품에 속하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법에 대해 무생인을 얻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이라 했다.
이미 이근과 둔근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범지凡地일 것이기 때문에 근성根性이 날카로운 것과 둔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94)

마. 그 국토의 중생이 영원히 악취를 여의는 것을 밝힘

“또한 그 보살은 성불할 때까지 다시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신통이 자유자재하며 항상 과거세의 일을 빠짐없이 아는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다른 세상의 오탁악세五濁惡世에 태어나 그곳의 중생과 같은 모습을 나투어 보이려는 이는 제외되니, 예컨대 나의 국토의 보살들95)과 같은 경우이다.”
經曰。 又彼菩薩。 乃至成佛。 不更惡趣。 神通自在。 常識宿命。 除生他方。 五濁惡世。 示現同彼。 如我國也者。

이것은 다섯 번째로 그 국토의 중생이 영원히 악취를 여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바. 그 국토의 중생이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을 일으킨 것을 밝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국토의 보살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밥 한 끼 먹을 시간에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를 방문하여 여러 불세존을 공경하고 공양한다. 마음이 생각하는 것을 따라 꽃ㆍ향ㆍ기악伎樂ㆍ비단 덮개ㆍ당기ㆍ번기 등의 헤아릴 수 없고 한량없는 공양에 필요한 물품이 저절로 생겨나 생각에 응하여 바로 이르는데, 진귀하고 미묘하고 빼어나서 세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득 여러 부처님ㆍ보살 대중ㆍ성문 대중에게 받들어 뿌리면 허공에서 변화하여 꽃 덮개를 이루며 광명이 빛나고 향기가 두루 퍼진다. 그 꽃은 둘레가 4백 리 되는 것도 있고, 이와 같이 점차 배로 증가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덮는 것도 있는데, 먼저 공양하고 나중에 공양한 것의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변화하여 없어진다. 그 여러 보살은 모두 기뻐하며 허공에서 함께 천악天樂을 연주하면서 미묘한 음을 내어 부처님의 덕을 노래로 찬탄하고, 경법經法을 듣고 수지하여 한량없이 기뻐한다. 부처님께 공양하고 나서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홀연히 가볍게 날아서 그 본국으로 돌아온다.”
經曰。 佛告阿難。 彼國菩薩。 承佛威神。 一食之頃。 往詣十方無量世界。 恭敬供養諸佛世尊。 隨心所念。 華香伎樂繒蓋幢幡。 無數無量供養之具。 自然化生。 應念即至。 珍妙殊特。 非世所有。 輒以奉散諸佛菩薩聲聞大衆。 在虛空中。 化成華蓋。 光色昱爍。 香氣普熏。 其華周圓四百里者。 如是轉倍。 乃覆三千大千世界。 隨其前後。 以次化沒。 其諸菩薩。 僉然欣悅。 於虛空中。 共奏天樂。 以微妙音。 歌歎佛德。 聽受經法。 歡喜無量。 供養佛已。 未食之前。 忽然輕擧。 還其本國。

이것은 여섯 번째로 그 국토의 중생이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을 일으킨 것을 밝힌 것이다.

사. 그 국토의 중생이 법을 듣고 공양이 끊이지 않는 것을 밝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량수불께서 여러 성문 대중과 보살 대중을 위해 법을 설할 때 모두 칠보 강당에 모인 가운데 도교道敎를 자세히 설하고 미묘한 법을 연설하니 기뻐하면서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 도를 얻지 못하는 이가 없다. 그때 바로 사방에서 저절로 바람이 일어나 보배 나무에 두루 불면 다섯 가지 음성96)이 일어나고, 한량없는 미묘한 꽃이 비처럼 떨어져 바람을 따라 두루 퍼지면서 저절로 공양한다. 이와 같은 일이 끊어지는 일이 없어 일체의 하늘이 모두 천상의 백천 가지 꽃과 향ㆍ만 가지의 기악을 가지고 와서 그 부처님과 보살 대중과 성문 대중에게 공양하여 꽃과 향을 두루 뿌리고 온갖 음악을 연주하는데, 앞서 오거나 뒤에 오거나 하면서 서로 열어 주고 피해 주어 (끊어지는 일이 없게 한다.) 이때의 기쁨과 즐거움은 말로 다할 수 없다.”
97)語阿難。 無量壽佛。 爲諸聲聞菩薩大衆。 班宣法時。 都悉集會七寶講堂。 廣宣道敎。 演暢妙法。 莫不歡喜。 心解得道。 即時四方。 自然風起。 普吹寶樹。 出五音聲。 雨無量妙華。 隨風周遍。 自然供養。 如是不絕。 一切諸天。 皆齎天上百千華香萬種伎樂。 供養其佛及諸菩薩聲聞大衆。 普散華香。 奏諸音樂。 前後來往。 更相開避。 當斯之時。 熙98)怡快樂。 不可勝言。

이것은 일곱 번째로 그 국토의 중생이 법을 듣고 공양이 끊이지 않는 것을 밝힌 것이다.
“희이凞怡”는 『설문說文』에서는 “화평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和悅)이다.”라고 했고, 『방언』에서는 “‘이怡’는 기쁜 것(喜)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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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云此後逐難更申也卽言於此土
002_0062_b_02L修菩薩行卽知無諍王在於此方
002_0062_b_03L海亦然

002_0062_b_04L
經曰阿難其有至三十二相者

002_0062_b_05L
述云此第三身相備足也隨好不定
002_0062_b_06L故不說之

002_0062_b_07L
經曰智慧成滿至無生法忍者

002_0062_b_08L
述云此第四智德勝妙也有說證會
002_0062_b_09L法性故云深入諸法窮達妙 [239] 故云
002_0062_b_10L究暢要妙此必不然衆生生彼得此
002_0062_b_11L二智應無凡小故今即入諸法者
002_0062_b_12L所詮故暢要妙者閑能詮故也
有說
002_0062_b_13L諸根卽信等五非也信等卽鈍根故
002_0062_b_14L今卽六根也
有說二忍者卽生法二
002_0062_b_15L又五忍中之初二種無生忍者
002_0062_b_16L第四忍此恐不然無生法忍卽生法
002_0062_b_17L忍故超於順忍忽說無生無別所以
002_0062_b_18L今卽中下之人唯得音響柔順二
002_0062_b_19L上品之屬於不可數法得無生忍
002_0062_b_20L故云不可計旣有利鈍必是凡地
002_0062_b_21L而非根性利鈍也

002_0062_b_22L
經曰又彼菩薩至如我國也者

002_0062_b_23L
2) [112] [240] 3) [113] [241] 如是四反積地四寸也 [242]
002_0062_b_24L說文和悅也方言怡喜也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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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행덕行德을 원만하게 갖춤

가) 개별적으로 찬탄함

㉮ 실천행을 닦음에 허물을 여읨

ㄱ. 교화를 행함에 허물을 여읨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나는 여러 보살들은 강설을 할 수 있는데 항상 정법正法을 연설하고, (아미타불의) 지혜에 수순하여 (성인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고 (바른 이치를) 잃어버리는 것도 없다.”
99)語阿難。 生彼佛國諸菩薩等。 所可講說。 常宣正法。 隨順智慧。 無違無失者。

이것은 여덟 번째로 행덕을 원만하게 갖춘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개별적으로 찬탄한 것이고, 나중은 총괄적으로 맺은 것이다. 처음에 또한 일곱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실천행을 닦음에 허물을 여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교화를 행함에 허물을 여의는 것이니, 곧 미타불의 지혜에 수순하기 때문이다.

ㄴ. 자신을 위한 실천행에 있어서 허물이 없음

ㄱ) 자신을 위한 실천행을 닦음

㉠ 보시행을 닦음

“그 국토의 모든 사물에 대해 아소我所100)의 마음이 없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
經曰。 於其國土。 所有萬物。 無我所心。 無染著心者。

이것은 두 번째로 자신을 위한 실천행에 있어서 허물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자신을 위한 실천행을 닦는 것이다. 여기에 여섯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보시행布施行을 닦는 것이다.
견번뇌見煩惱101)를 여의었기 때문에 “아소의 마음이 없고”라고 했고, 애번뇌愛煩惱102)를 여의었기 때문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 계행을 닦음

“가고 오며 나아가고 머무는데 정情에 얽매이지 않고 뜻대로 자유자재하며, 친근하게 여기거나 소원하게 여기는 것이 없으며, 남도 없고 나도 없으며, 겨루는 일도 없고 다투는 일도 없다.”
經曰。 去來進止。 情無所係。 隨意自在。 無所適莫。 無彼無我。 無競無訟者。

이것은 두 번째로 계행을 닦는 것이다.
몸의 허물을 여의었기 때문에 “가고 오며 나아가고 머무는데 정情에 얽매이지 않고 뜻대로 자유자재하며”라고 했고, 뜻의 허물을 여의었기 때문에 “친근하게 여기거나 소원하게 여기는 것이 없으며, 남도 없고 나도 없으며”라고 하였다.
위位 법사는 ≺“적適”이란 가는 것(往)이고, “막莫”이란 머무는 것(止)이다.≻103)라고 했는데, 이와 같다면 응당 거지去止(가거나 머무는 것)와 같기 때문에 몸의 허물을 여읜 것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 오직 『논어論語』104)에서 “천하에 친근히 여기는 것도 없고 소원하게 여기는 것도 없다.”105)라고 했는데, “적適”은 친근한 것이고, “막莫”은 소원한 것이다.
입의 허물을 여의었기 때문에 “겨루는 일도 없고 다투는 일도 없다.”라고 하였으니, 남과 나의 분별심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겨루고 다투는 일이 있지 않다.

㉢ 인행을 닦음

“중생에 대해 큰 자비를 내어 넉넉한 이익을 주려는 마음을 얻어 부드럽게 대하고 조복시키며,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으며, 번뇌를 여의어 청정하다.”
經曰。 於諸衆生。 得大慈悲饒益之心。 柔軟調伏。 無忿恨心。 離蓋清淨者。

이것은 세 번째로 인행忍行을 닦는 것이다.
분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부드럽고, 교만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조복시킨다. 분노가 이미 일어나지 않으니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그친다. 이로 말미암아 또한 다섯 가지 번뇌106)를 여의어 청정해진다.

㉣ 근행을 닦음

“게으름이 없는 마음, 평등하게 실천하는 마음, 뛰어난 경지에 나아가려는 마음, 두텁게 추구하는 마음,”
經曰。 無有107)108)怠心。 等心。 勝心。 深心者。


002_0062_c_01L
經曰佛告阿難至無違無失者

002_0062_c_02L
述云此第八行德圓備有二初別歎
002_0062_c_03L後總結初又有七此初行修離過
002_0062_c_04L此初化行離過卽順彌陀佛智慧
002_0062_c_05L故也

002_0062_c_06L
經曰於其國土至無染著心者

002_0062_c_07L
述曰此第二自行無失有二此初修
002_0062_c_08L自行有六此初修施行也離見故無
002_0062_c_09L我所心離愛故無染著心

002_0062_c_10L
經曰去來進止至無競無訟者

002_0062_c_11L
述云此第二修戒行也離身過故去
002_0062_c_12L來進止情無所係隨意自在離意過
002_0062_c_13L無所適莫無彼無我位法師云適者往
002_0062_c_14L莫者止也若爾應同去止離身過
002_0062_c_15L今唯論語於天下無所適莫也適親
002_0062_c_16L莫疎也離口過故無競無訟彼我
002_0062_c_17L俱已故無有競訟

002_0062_c_18L
經曰於諸衆生至離蓋淸淨者

002_0062_c_19L
述云此第三修忍行也無瞋恚故柔
002_0062_c_20L無憍慢故調伏瞋恚旣不起忿恨
002_0062_c_21L斯止由此亦離五蓋淸淨

002_0062_c_22L
經曰無有 [244] [245] 至勝心深心者

002_0062_c_23L「度」經作「渡」「云」下疑有脫文「第」
002_0062_c_24L下異有「七」

002_0063_a_01L
이것은 네 번째로 근행勤行을 닦는 것이다.
선을 구하기를 그치지 않기 때문에 “게으름이 없는 마음”이라 했고, 어떤 실천행도 닦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평등하게 실천하는 마음”이라 했으며, 아래의 경지에서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뛰어난 경지에 나아가려는 마음”이라고 했고, 물러나거나 굴복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두텁게 추구하는 마음”이라 했다.

㉤ 정행을 닦음

“선정의 마음,”
經曰。 定心者。

이것은 다섯 번째로 정행定行(禪定行)을 닦는 것이다.
모든 산란함을 여의기 때문에 “선정의 마음”이라고 했다.

㉥ 혜행을 닦음

“법을 사랑하고 법을 즐거워하며 법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109)法樂法喜法之心者。

이것은 여섯 번째로 혜행慧行(智慧行)을 닦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애愛”란 욕구(欲)이고, “락樂”이란 믿음(信)이며, “희喜”란 탐하는 것(貪)이다.≻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애愛”란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완성한 것과 관련된 것이고, “락樂”이란 들었을 때이니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며), “희喜”란 구할 때이니 (처음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다.)≻110)라고 했는데, 두 가지 해석 모두 옳지 않다. (처음 해석은) 욕구(欲)ㆍ믿음(信) 등은 곧 보시ㆍ계 등의 권속이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음 해석은) 마지막 단계에서부터 처음 단계를 향하는 것으로 풀이할 별도의 이유가 없으니, 그 차례대로 (처음ㆍ중간ㆍ마지막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곧 문혜聞慧에 의해 애착하고 즐거워하기 때문에 “법을 사랑하고”라고 했고, 사혜思慧에 의해 미착味著(탐착)하기 때문에 “법을 즐거워하며”라고 했으며, 수혜修慧에 의해 정신을 윤택하게 하기 때문에 “법을 기뻐하는 마음”이라고 했다.111)

ㄴ) 허물을 여읨

“모든 번뇌를 멸하고 악취의 업을 짓는 마음을 여의어”
經曰。 滅諸煩惱。 離惡趣心者。

이것은 두 번째로 허물을 여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因이 다했기 때문에 번뇌를 소멸하고, 과果가 다했기 때문에 악취의 업을 짓는 마음을 여의었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과果는 오직 마음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곧 혹惑을 여의었기 때문에 번뇌를 여의었고, 업이 다했기 때문에 악취의 업을 짓는 마음을 여읜 것이다.

ㄷ. 총괄적으로 맺음

“일체의 보살이 행해야 할 것을 모두 행하여 이룬다.”
經曰。 究竟一切菩薩所行者。

이것은 세 번째로 총괄적으로 맺은 것이다.

㉯ 덕을 이루어 원만하게 갖춤

ㄱ. 총괄적으로 찬탄함

“한량없는 공덕을 원만하게 갖추어 성취한다.”
經曰。 具足成就無量功德者。

이것은 두 번째로 덕을 이루어 원만하게 갖춘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총괄적으로 찬탄한 것이다.


002_0063_a_01L
述云此第四修勤行也求善不息
002_0063_a_02L無懈怠心無行不修故云等心無下
002_0063_a_03L故云勝心無退屈故云深心

002_0063_a_04L
經曰定心者

002_0063_a_05L
述云此第五修定行也離諸散亂
002_0063_a_06L云定心
[246] 法樂法喜法之心者
述云
002_0063_a_07L此第六修慧行也有說愛是欲樂是
002_0063_a_08L喜是貪有說愛是終成樂是聞時
002_0063_a_09L喜是求時二俱不然欲信等卽施戒
002_0063_a_10L等眷屬行故以終向始無別所以
002_0063_a_11L其次第故今卽聞慧愛樂故云愛法
002_0063_a_12L慧味著故云樂法修慧潤神故云喜 [247]

002_0063_a_13L
經曰滅諸煩惱離惡趣心者

002_0063_a_14L
述云此第二離過有說因盡故滅煩
002_0063_a_15L果盡故離惡趣心非也果非唯心
002_0063_a_16L今卽離惑故離煩惱業盡故離惡
002_0063_a_17L趣心

002_0063_a_18L
經曰究竟一切菩薩所行者

002_0063_a_19L
述云此第三總結也

002_0063_a_20L
經曰具足成就無量功德者

002_0063_a_21L
述云此第二成德圓備有二此初總
002_0063_a_22L歎也

002_0063_a_23L
經曰得深禪定至覺了法性者

002_0063_a_24L
述云此後別歎有二此初成自德也

002_0063_b_01L
ㄴ. 개별적으로 찬탄함

ㄱ) 자신의 덕을 이룸

“심오한 선禪ㆍ정定ㆍ온갖 신통ㆍ명明ㆍ혜慧를 얻고, 칠각七覺112)에 뜻을 두어 노닌다. 마음을 다하여 불법을 닦음으로써 육안肉眼을 얻어 맑게 꿰뚫어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천안天眼을 얻어 모든 것에 통달하여 그 미치는 범위가 무량하고 무한하며, 법안法眼을 얻어 관찰하여 온갖 도道를 궁극의 경지까지 통달하고, 혜안慧眼을 얻어 참된 것을 보고 피안에 도달하며, 불안佛眼을 얻어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고 법성을 깨닫는다.”
經曰。 得深禪定。 諸通明慧。 遊志七覺。 修心佛法。 肉眼清徹。 靡不分了。 天眼通達。 無量無限。 法眼觀察。 究竟諸道。 慧眼見眞。 能度彼岸。 佛眼具足。 覺了法性者。

이것은 나중에 개별적으로 찬탄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자신의 덕(自德)을 이룬 것이다.
선ㆍ정ㆍ통ㆍ명ㆍ혜ㆍ칠각이란 이미 성취한 덕이다. “선”이란 사선四禪113)이고, “정”이란 사공四空114)이며, “통”이란 육통六通이고, “명”이란 삼명三明이며, “혜”란 삼혜三慧이며, “칠각”은 또한 견도위見道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불덕佛德을 추구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여 불법을 닦음으로써”라고 했다. 추구해야 할 덕이란, 그 덕이 비록 한량없지만 간략하게 오안五眼을 들었다.
“육안”과 “천안”의 두 가지 눈은 정색淨色115)을 체로 삼는다. 그 국토에서는 육안으로 무수한 세계의 모든 색을 꿰뚫어 보기 때문에 “맑게 꿰뚫어”라고 했다. 보는 것이 자세하고 진실되기 때문에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육안”은 내색內色을 보는 것을 장애한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맑게 꿰뚫어 분명하게 알고”라고 한 것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금 곧 현재의 색상色像을 비추어 보는 것을 “육안”이라 하고, 정定에 의해 발현된 눈으로 중생이 이 세상에서 죽어 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천안”이라 한다. (천안은) 보는 대상이 넓고 많기 때문에 “무량하고”라고 했고, 길고 멀기 때문에 “무한하며”라고 했다.
“법안”은 곧 유지有智(有에 대한 지혜)를 체로 삼는데, 중생의 근기ㆍ욕구ㆍ품성ㆍ마음과 모든 불법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법안”이라 한다. 삼승도법三乘道法의 차별을 두루 알기 때문에 “온갖 도道를 궁극의 경지까지 통달하고”라고 했다.
“혜안”은 곧 공지空智(공에 대한 지혜)를 체로 삼는데, 참된 공의 이치를 비추기 때문에 “참된 것을 보고”라고 했다. 진리의 근원을 궁구하기 때문에 “피안에 도달하며”라고 했다. “도度”란 도달하는 것(至)이다.
“불안”에 두 가지가 있는데, 총괄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을 말한다. 개별적인 것은 곧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체로 하고, 어떤 법도 비추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고”라고 했고, 또한 불성佛性을 보기 때문에 “법성을 깨닫는다.”라고 했다. 총괄적인 것은 곧 앞의 네 가지 눈은 (개별적인 것으로) 부처님께서 얻은 것이어서 (모두 불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계를 관찰하기를 두루 다하기 때문에 “완전히 갖추고”라고 했고, 또한 불안이 진실여래장眞實如來藏 가운데 불공실성不空實性을 볼 수 있는 것을 “법성을 깨닫는다.”라고 했다.

ㄴ) 교화의 덕을 이룸

“무애지無礙智로 중생을 위해 연설한다.”
經曰。 以無礙智。 爲人演說者。

이것은 나중에 교화의 덕을 이루는 것이니, 곧 사무애변四無礙辯으로 중생을 위해 설법하는 것이다.

㉰ 닦아야 할 것을 실천하는 것을 원만하게 갖춤

ㄱ. 닦아야 할 것을 실천함

“삼계가 공하여 있는 것이 없음을 평등하게 관찰하고 불법을 구하는 데 뜻을 두며, 온갖 변재를 갖추어 중생이 지닌 번뇌의 근심을 없앤다.”
經曰。 等觀三界。 空無所有。 志求佛法。 具諸辯才。 除滅衆生。 煩惱之患者。


002_0063_b_01L禪定通明慧七覺者旣成之德禪者
002_0063_b_02L四禪定者四空通者六通明者三明
002_0063_b_03L者三慧七覺亦在見道位故進求佛
002_0063_b_04L德故修心佛法所求之德德雖無量
002_0063_b_05L略擧五眼
肉天二眼皆以淨色爲體
002_0063_b_06L彼土肉眼通見無數世界諸色故云淸
002_0063_b_07L所見審實故無不了有說肉眼見
002_0063_b_08L障內色非也違淸徹明了故今卽照
002_0063_b_09L矚現在色像名爲肉眼依定所發眼
002_0063_b_10L能見衆生死此生彼故名天眼所見
002_0063_b_11L廣多故云無量亦長遠故云無限

002_0063_b_12L卽以有智爲體能見衆生根欲性心
002_0063_b_13L及諸佛法故名法眼普知三乘道法
002_0063_b_14L差別故云究竟諸道慧眼卽以空智
002_0063_b_15L爲體照眞空理故云見眞窮眞理之
002_0063_b_16L故云度彼岸度者至也佛眼自有
002_0063_b_17L所謂總別別卽一切種智爲體
002_0063_b_18L法不照故云具足亦見佛性故云覺
002_0063_b_19L法性總卽前四眼佛之所得觀境
002_0063_b_20L1) [114] [248] 故云具足 [249]

002_0063_b_21L
經曰以無礙智爲人演說者

002_0063_b_22L
述云此後成化德卽四無礙辯爲物
002_0063_b_23L說法也

002_0063_b_24L
經曰等觀三界至煩惱之患者

002_0063_c_01L
이것은 세 번째로 닦아야 할 것을 실천하는 것을 원만하게 갖춘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닦아야 할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삼계가 공하여 있는 것이 없음을 (평등하게) 관찰하고”란 생사生死를 버리는 실천행이다. 욕계 등의 삼계에는 어떤 계도 공이 아닌 것이 있지 않기 때문에 “평등하게 관찰하고”라고 했다.
“불법을 구하는 데 뜻을 두며”란 즐거운 마음으로 보리를 구하기 위한 실천행을 행하는 것이다. “온갖 변재를 갖추어”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덕이니, 사변四辯(사무애변) 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 “번뇌의 근심을 없앤다.”란 다른 사람을 교화하는 이익이다.

ㄴ. 닦아야 할 것을 성취함

ㄱ) 자신의 실천행을 성취함

㉠ 해解와 행行을 함께 이룸

“여래로부터 출생한 것에 대해 법여여法如如를 깨닫고, 습習과 멸滅의 음성 방편을 잘 알며, 세속과 관련된 말을 좋아하지 않고 기꺼이 정론正論에 마음을 둔다. 온갖 선의 근본을 닦고 불도를 숭상하는 데 뜻을 두며, 일체법이 모두 적멸한 것임을 알아 생신生身과 번뇌의 두 가지의 남은 것을 모두 다한다.”
經曰。 從如來生。 解法如如。 善知習滅音聲方便。 不欣世語。 樂在正論。 修諸善本。 志崇佛道。 知一切法。 皆悉寂滅。 生身煩惱。 二餘俱盡者。

이것은 나중에 닦아야 할 것을 성취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자신의 실천행을 성취한 것이다.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해解와 행行을 함께 이룬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래로부터 출생한 것에 대해 법여여를 깨닫고”란 그 이해理解이고, “선을 익히는 음성과 악을 멸하는 음성을 잘 알고 방편을 잘 구사하며”116)란 그 교해敎解이다. 해解는 여래의 교화로 말미암아 출생하고, 일체법이 모두 곧 여如임을 깨닫기 때문에 “여래로부터 출생한 것에 대해 법여여를 깨닫고”라고 했다. 선을 익히는 가르침을 “습음성習音聲”이라 하고, 악을 멸하는 가르침을 “멸음성滅音聲”이라 하며, 이것을 잘 이해하고 교묘한 지혜를 구사하는 것을 “선지방편善知方便”이라 한다.≻117)라고 했는데, 이것은 다하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다. 교해도 또한 부처님의 교화로부터 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습習”은 곧 집제集諦인데 의미상 또한 고제苦諦를 겸하고, “멸滅”은 곧 멸제滅諦인데 도제道諦를 포함한 말이니, 원인과 결과로서 서로 교섭하기 때문이다.118) 사제四諦를 설한 가르침이 곧 “음성 방편”이다.≻라고 했는데,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집제는 비록 반드시 고제라는 결과를 낳지만, 고제는 집제를 원인으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멸제와 도제는 유위有爲(도제)와 무위無爲(멸제)의 차이가 있으니, 집제와 멸제로서 고제와 도제를 섭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곧 “여래로부터 출생한 것에 대해”란 곧 총괄적으로 보살이 해解를 얻은 근거를 나타낸 것이다. “법여여法如如를 깨닫고”란 곧 개별적으로 비안립진제非安立眞諦를 깨달은 지智를 펼친 것이고, “습習과 멸滅의 (음성 방편을) 잘 알며”란 곧 개별적으로 안립제安立諦를 깨달은 깨달음(解)을 밝힌 것이다.

002_0063_c_01L
述云此第三行修具足有二此初修
002_0063_c_02L行也觀三界空無者卽捨生死行
002_0063_c_03L等三界無有一界而不空者故云等觀
002_0063_c_04L志求佛法者卽欣菩提行具辯才者
002_0063_c_05L卽利他之德所謂四辯等滅煩惱患
002_0063_c_06L化他之益

002_0063_c_07L
經曰從如來生至二餘俱盡者

002_0063_c_08L
述云此後修成有二此初自行成
002_0063_c_09L有二此初解行雙成也
有說從如來
002_0063_c_10L生解法如如者是其理解善知習滅
002_0063_c_11L方便者是其敎解解由如來敎化而
002_0063_c_12L解一切法皆卽如故云從如來生解
002_0063_c_13L法如如習善之敎名習音聲滅惡之
002_0063_c_14L名滅音聲於此善解巧知故云善
002_0063_c_15L知方便此猶不盡敎解亦從佛化生
002_0063_c_16L
有說習卽集諦意亦兼苦滅卽滅
002_0063_c_17L含道之言因果相涉故說四諦之
002_0063_c_18L卽音聲方便此亦不然集雖必苦
002_0063_c_19L苦有非集滅之與道爲無爲異不可
002_0063_c_20L以集滅而攝苦道故
今卽從如來生
002_0063_c_21L卽總顯菩薩獲解之所由解法如
002_0063_c_22L如者卽別申悟非安立眞之智善智 [250]
002_0063_c_23L習滅者卽別辨悟安立諦之解習滅
002_0063_c_24L「同」疑「周」

002_0064_a_01L“습과 멸”이란 염오의 원인(染因)과 청정함의 결과(淨果)를 든 것으로, (원인인 습에는 고苦가 빠져 있고, 결과인 멸에는 도道가 빠져 있기 때문에) 다하지 않은 말이다. 진여에 계합하여 온갖 상相을 끊었으나 사제를 설함은 오직 교敎로써 시설한 것이기 때문에 “음성 방편”이라 했다.
성교聖敎를 능히 잘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세속과 관련된 말을 좋아하지 않고 기꺼이 정론에 마음을 둔다.”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입의 네 가지 허물119)을 여의었기 때문에 “세속과 관련된 말을 좋아하지 않고”라고 했고, 사성언四聖言120)을 짓기 때문에 “기꺼이 정론에 마음을 둔다”라고 했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생각건대 진실로 성언이 반드시 정론正論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곧 해解를 이루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121)
“불도를 숭상하는 데 뜻을 두며”란 보리를 구하는 마음이고, “일체법이 (모두) 적멸한 것임을 알아”란 대치對治를 닦는 행이며, “두 가지의 남은 것을 모두 다한다.”란 장애와 고통을 제거하는 행이다.
어떤 사람은 ≺“생신生身”은 과보로서의 몸이 남은 것이고, “번뇌”는 분단생사分段生死의 원인인 미혹이 남은 것이다. (분단생사의 몸은) 초지初地에서 다하니, (그 이후에 받는) 변역생사變易生死의 몸에서 (생신과 번뇌의) 두 가지의 남은 것이 다하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번뇌와 습기에 대해서 “두 가지의 나머지가 모두 다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두 가지 해석 모두 옳지 않다.
앞의 칠지七地에서도122) 또한 분단생사의 몸을 받기 때문이고, 번뇌의 남은 습기를 여습餘習이라 하니, 반드시 번뇌는 아니기 때문이다. (앞의 두 가지 해석을) 차례대로 비판한 것이다.123)
지금 곧 “생신”은 과보果報이고, “번뇌”는 고통의 원인이다. 인과의 두 가지의 나머지를 모두 이미 다했기 때문이다.
곧 행行을 이루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124)

㉡ 해와 행을 아울러 닦음

“매우 심오한 법을 듣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항상 수행한다.”
經曰。 聞甚深法。 心不疑懼。 常能修行者。

이것은 나중에 해解와 행行을 아울러 닦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심오한 법을 능히 이해하기 때문에 “의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라고 했고, 심오한 법에 능히 들어가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라고 했다.≻125)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들어가는 것(入)”은 곧 “이해하는 것(解)”이기 때문이다.
지금 곧 심오한 가르침(敎)을 능히 믿기 때문에 “의심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라고 했고, 심오한 뜻(義)을 능히 이해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라고 했다. 해解를 부지런히 닦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항상 수행한다.”란 곧 행行을 부지런히 닦는 것이다. 듣고 반드시 수습함에 있어서 잠시도 틈이 없기 때문에 “항상 수행한다.”라고 했다.

ㄴ) 교화하는 행위를 성취함

“그 대비大悲는 심원하고 미묘하여 덮고 싣지 않는 것이 없다.”
經曰。 其大悲者。 深遠微妙。 靡不覆載者。

이것은 나중에 교화하는 행위를 성취한 것이다.
“심원하고 미묘하여”란 마음이 깊고 무거운 것을 찬탄한 것이다. “덮고 싣지 않는 것이 없다.”란 구제의 범위가 두루하고 넓은 것을 찬탄한 것이다.

002_0064_a_01L擧染因淨果不盡之言眞絕衆相
002_0064_a_02L而說四諦唯敎施設故云音聲方便
002_0064_a_03L由於聖敎能善解故不欣世語樂在
002_0064_a_04L正論有說離口四過故不欣世語
002_0064_a_05L四聖言故樂在正論非也想實聖言
002_0064_a_06L必非正論故卽解成是也
崇佛道者
002_0064_a_07L求菩提之心知法寂滅者修對治之
002_0064_a_08L二餘俱盡者除障苦之行有說
002_0064_a_09L身是報餘煩惱是分段之餘初地上
002_0064_a_10L變易二餘當盡故有說煩惱及習
002_0064_a_11L二餘俱盡二俱不然前七地中亦受
002_0064_a_12L分段煩惱餘氣名爲餘習必非煩惱故
002_0064_a_13L如其次第今卽生身在報煩惱苦因
002_0064_a_14L因果二餘皆已盡故卽行成是也

002_0064_a_15L
經曰聞甚深法至常能修行者

002_0064_a_16L
述云此後解行並修也有說於深能
002_0064_a_17L故不疑於深能入故不懼非也入亦
002_0064_a_18L解故今卽能信深敎故不疑能解深
002_0064_a_19L故不懼進修解是也常修行者
002_0064_a_20L進修行也聞必修習而無間故云常
002_0064_a_21L

002_0064_a_22L
經曰其大悲者至靡不覆載者

002_0064_a_23L
述云此後化行成也深遠微妙者
002_0064_a_24L心深重靡不覆載者嘆濟普廣非唯

002_0064_b_01L오직 자비의 그늘을 드리울 뿐만 아니라, 또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에 “싣는다”고 한 것이다.

㉱ 덕을 성취함이 기이하고 뛰어남

ㄱ. 자신의 덕을 이룸

ㄱ) 선을 모음에 있어서 뛰어남

㉠ 지智와 단斷을 짝함

“(믿음과 이해가) 궁극에 이르러 일승一乘에 대한 지혜에 의해 피안에 이른다.”
經曰。 究竟一乘。 至126)于彼岸者。

이것은 네 번째로 덕을 성취함이 기이하고 뛰어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자신의 덕을 이룬 것이고, 나중은 교화의 덕을 이룬 것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선을 모음에 있어서 뛰어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 짝이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지智와 단斷을 짝한 것이다.
“일승”이란 곧 지智이니, 비록 삼승이 있지만 그 궁극적인 것은 두 가지가 없기 때문에 “일승”이라 했다.
어떤 사람은 ≺이 일승을 궁극적인 경지까지 통달하는 것을 “구경究竟”이라 하고, 열반의 과果에 이르기 때문에 “피안에 이른다.”라고 했다.≻127)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일승을 궁극적인 경지까지 통달하여 열반에 이르렀다면 보살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곧 믿음과 이해가 궁극에 이르렀기 때문에 “궁극에 이르러”라고 했다. “피안”이란 곧 단斷이다. 이미 단을 얻어 지혜를 장애하는 것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피안에 이른다.”라고 했다.

㉡ 이理와 교敎를 짝함

“의심의 그물을 끊어 지혜가 마음에서 나오고, 부처님의 교법을 모두 포괄하여 벗어난 것이 없다.”
經曰。 決斷疑網。 慧由心出。 於佛敎法。 該羅無外者。

이것은 다음에 이理와 교敎를 짝한 것이다.
진실을 드러내어 거짓을 제거하기 때문에 “의심의 그물을 끊어”라고 했다. 참된 이해는 속(中)에서 발현하기 때문에 “지혜가 마음에서 나오고”라고 했다. “마음”이란 중실中實의 뜻이기 때문이니, 곧 이치(理)를 증득하는 지혜이다. 통달하여 남은 것이 없기 때문에 “모두 포괄하여 벗어난 것이 없다.”라고 했으니, 곧 가르침(敎)을 통달하여 이해하는 것(解)이다.
어떤 사람은 ≺무아無我를 아는 지혜는 밖으로부터 오지 않기 때문에 “지혜가 마음에서 나오고”라고 했고, 가르침을 아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포괄하여 벗어난 것이 없다.”라고 했다.≻라고 했는데, 이는 미진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무아의 지혜는 부처님의 교화로부터 출생하여 마음에 나타난 것이니, 가르침이란 정교성正敎性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출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곧 “마음”이란 중실中實이고, “무외無外”란 남음이 없는 것이니, 곧 가르침에 의한 지혜이다.

㉢ 정定과 혜慧를 짝함

“지혜는 큰 바다와 같고, 삼매는 산왕山王과 같으며, 지혜의 빛이 밝고 깨끗함은 해와 달을 넘어서고, 깨끗한 법이 온전히 갖추어져 원만함은 설산雪山과 같다.”
經曰。 智慧如大海。 三昧如山王。 慧光明淨。 超踰日月。 清白之法。 具足圓滿。 猶如雪山者。

이것은 나중에 정定과 혜慧를 짝한 것이다.
지혜는 바다처럼 깊고 넓으며, 선정은 산처럼 높고 빼어나기 때문이다. 지혜의 작용으로 밝고 깨끗함이 해와 달을 넘어서고,

002_0064_b_01L悲蔭亦令出死故云載也

002_0064_b_02L
經曰究竟一乘 [251] 于彼岸者

002_0064_b_03L
述云此第四成德奇勝有二初成自
002_0064_b_04L後成化德初又有二此初集善勝
002_0064_b_05L有三對此初智斷對也一乘者卽智
002_0064_b_06L雖有三乘其極無二故云一乘有說
002_0064_b_07L於此一乘窮名究竟至涅槃果故至
002_0064_b_08L于彼岸非也若窮一乘至涅槃者
002_0064_b_09L非菩薩故今卽信解斯極故云究竟
002_0064_b_10L彼岸者卽斷旣得斷智障無爲故云
002_0064_b_11L至彼岸

002_0064_b_12L
經曰決斷疑網至該羅無外者

002_0064_b_13L
述云此次理敎對也顯實以除妄
002_0064_b_14L云斷疑網眞解發中故慧由心出
002_0064_b_15L者中實義故卽證理慧也達之無餘
002_0064_b_16L故該無外卽達敎解也有說知無我
002_0064_b_17L不從外來故慧由心出知敎從心
002_0064_b_18L故該羅無外此猶未盡無我慧
002_0064_b_19L佛化生現心上敎非正敎性故不可
002_0064_b_20L從心出現卽知心者中實無外者
002_0064_b_21L無餘卽敎智也

002_0064_b_22L
經曰智慧如大海至猶如雪山者

002_0064_b_23L
述云此後定慧對也慧深廣如海
002_0064_b_24L高勝如山故慧用明淨超日月定能

002_0064_c_01L선정의 공능으로 덕을 원만하게 함이 설산처럼 깨끗하기 때문이다.

ㄴ) 장애를 제거함에 있어서 뛰어남

㉠ 총괄적으로 나타냄

“모든 공덕을 비추어 모두 동일하게 청정한 경지를 얻는다.”
經曰。 照諸功德。 等一淨故者。

이것은 나중에 장애를 제거함에 있어서 뛰어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총괄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위位 법사는 ≺이하 20구절이 있는데 모두 지혜의 공능을 밝힌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지혜는 반드시 선정을 여의지 않기 때문에 선정과 지혜 모두 포괄하여 장애를 여의는 것에 있어서 뛰어난 것을 설한 것이다.
한 가지 덕이라도 염오를 여의지 않은 것이 있지 않기 때문에 “모두 동일하게 청정한 경지를 얻는다.”라고 했다.

㉡ 개별적으로 풀이함

“대지와 같으니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차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고, 깨끗한 물과 같으니 진로塵勞128)에 의한 온갖 구염垢染을 씻어 없애기 때문이다. 타오르는 불길과 같으니 일체의 번뇌의 땔감을 태워 없애기 때문이고, 거센 바람과 같으니 어느 세계를 가든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허공과 같으니 일체의 유有129)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고, 연꽃과 같으니 모든 세간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다.”
經曰。 猶如大地。 淨穢好惡。 無異心故。 猶如淨水。 洗除塵勞。 諸垢染故。 猶如火王。 燒滅一切煩惱薪故。 猶如大風。 行諸世界。 無障閡故。 猶如虛空。 於一切有。 無所著故。 猶如蓮華。 於諸世間。 無染污故者。

이것은 나중에 개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 짝이 있다.

a. 소인과 소기를 짝함

처음은 소인所因과 소기所起를 짝한 것이다. 곧 “차별하는 마음”이란 이장二障130)의 소인所因인 비리작의非理作意131)이고, “구염”이란 차례대로 작의作意132)하여 소기所起(원인에 의해 일어난 것)한 지장智障과 혹장惑障이기 때문이다.

b. 능의와 소의를 짝함

다음은 능의能依와 소의所依를 짝한 것이다. 곧 “번뇌”와 “장애”란 그 차례대로 혹惑ㆍ지智의 이장二障의 능의와 소의이기 때문이다.

c. 무착과 무염을 짝함

나중은 무착無著과 무염無染을 짝한 것이다. 곧 ‘삼유에 집착하는 것’은 또한 소지장이고, ‘물드는 것(染汚)’은 오직 혹장이기 때문이다.

ㄴ. 교화의 덕을 이룸

“큰 수레와 같으니 군맹을 실어서 생사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고, 겹겹이 쌓인 구름과 같으니 큰 법의 우레를 울려 아직 깨닫지 못한 이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며, 큰비와 같으니 감로법을 뿌려 중생을 적셔 주기 때문이다. 금강으로 이루어진 산과 같으니 온갖 마구니와 외도가 동요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범천왕과 같으니 모든 선법에 있어서 가장 으뜸이 되기 때문이다. 니구류수尼拘類樹와 같으니 모든 것을 두루 덮기 때문이고, 우담발화와 같으니 희유하여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시조와 같으니 위엄으로 외도를 항복시키기 때문이고, 떼지어 노니는 짐승과 같으니 감추어 쌓아 두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소 왕(牛王)과 같으니 이길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코끼리 왕과 같으니 잘 조복시키기 때문이다. 사자 왕과 같으니 두려워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허공처럼 넓으니 대자大慈를 일으켜 평등하게 구제하기 때문이다.”
經曰。 猶如大乘。 運載群萌。 出生死故。 猶如重雲。 震大法雷。 覺未覺故。 猶如大雨。 雨甘露法。 潤衆生故。 如金剛山。 衆魔外道。 不能動故。 如梵天王。 於諸善法。 最上首故。 如尼拘類樹。 普覆一切故。 如優曇鉢華。 希有難遇故。 如金翅鳥。 威伏外道故。 如衆遊禽。 無所藏積故。 猶如牛王。 無能勝故。 猶如象王。 善調伏故。 如師子王。 無所畏故。 曠若虛空。 大慈等故者。

두 번째로 교화의 덕을 이룬 것이다. 여기에 13구절이 있는데 간략하게 여섯 가지 짝을 지었다.

ㄱ) 범부의 지위에서 벗어나는 것과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짝함

첫째, 범부의 지위에서 벗어나는 것과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짝하였으니, 곧 처음의 세 구절이 이것이다.
“승乘”이란 수레이다. “군맹”이란 범부와 이승이다. 범부와 소승(이승)을 운반하여 분단생사와 변역생사를 벗어나게 하니, 권교權敎와 실교實敎를 들려주어 선의 싹을 윤택하게 하기 때문이다.

ㄴ) 삿된 것을 버리는 것과 선에 나아가는 것을 짝함

둘째, 삿된 것을 버리는 것과 선에 나아가는 것을 짝하였으니, 곧 다음의 두 구절이 이것이다.

ㄷ) 두루 덮는 것과 희유하여 친견하기 어려운 것을 짝함

셋째, 두루 덮는 것과 희유하여 친견하기 어려운 것을 짝하였으니, 곧 다음의 두 구절이 이것이다.

ㄹ) 삿된 것을 꺾는 것과 바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짝함

넷째, 삿된 것을 꺾는 것과 바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짝하였으니, 곧 다음의 두 구절이 이것이다.
“감추어 쌓아 두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란 곧 성인의 종성이기 때문이다.

ㅁ) 이길 수 없는 것과 오염시킬 수 없는 것을 짝함

다섯째, 이길 수 없는 것과 오염시킬 수 없는 것을 짝하였으니, 곧 다음의 두 구절이 이것이다. 어떤 선善도 이길 수 있는 것이 없고, 모든 오염을 조복시키기 때문이다.

ㅂ) 두려움이 없는 것과 연민이 있는 것을 짝함

여섯째, 두려움이 없고 연민이 있는 것을 짝하였으니, 곧 다음의 두 구절이 이것이다. 어떤 삿된 것도 두렵게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즐거울 날이 없기 때문이다.

㉲ 닦아야 할 것을 실천하여 뛰어난 곳으로 나아감

ㄱ. 자분행을 닦음

“질투심을 꺾어 없애니 남을 이기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고, 오로지 법을 구하는 것을 즐겨 하면서 매우 만족하는 마음을 내는 일이 없다. 항상 널리 설하고자 하면서 지치거나 게으른 마음을 내는 일이 없다. 법의 북을 치고 법의 깃발을 세우며, 지혜의 해로 비추어 어리석음의 어둠을 제거한다. 스스로 육화경六和敬133)을 닦는다.”
經曰。 摧滅嫉心。 不望勝故。 專樂求法。 心無厭足。 常欲廣說。 志無疲倦。 擊法鼓。 建法幢。 曜慧日。 除癡闇。 修六和敬者。


002_0064_c_01L滿德如雪山故

002_0064_c_02L
經曰照諸功德等一淨故者

002_0064_c_03L
述云此後除障勝有二此初總標也
002_0064_c_04L位法師云下有二十句皆辨慧能
002_0064_c_05L慧必不離定故說定慧離障者勝
002_0064_c_06L有一德而不離染故云等一淨

002_0064_c_07L
經曰猶如大地至無染汚故者

002_0064_c_08L
述云此後別釋有三對
初所因所起
002_0064_c_09L卽異心是二障所因非理作意
002_0064_c_10L如次作意所起智惑障故
次能依
002_0064_c_11L所依對卽煩惱障礙如其次第惑智
002_0064_c_12L二障能所依故
後無著無染對卽於
002_0064_c_13L三有著亦所智障染汚唯惑故

002_0064_c_14L
經曰猶如大乘至大慈等故者

002_0064_c_15L
述云第二化德成有十三句略作六對

002_0064_c_16L
一出凡入聖對卽初三 [252] 乘者車也
002_0064_c_17L群萌者凡夫二乘運凡小而出二死
002_0064_c_18L聞權實而潤善芽故
二却邪就善對
002_0064_c_19L卽次二句也
三普覆希見對卽次二
002_0064_c_20L句也
四摧邪歸正對卽次二句無所
002_0064_c_21L藏積卽聖種故
五無勝無染對卽次
002_0064_c_22L二句無善能勝調諸染故
六無畏有
002_0064_c_23L憐對卽後二句無邪可畏憐無樂故

002_0064_c_24L
經曰摧滅嫉心至修六和敬者

002_0065_a_01L
이것은 다섯 번째로 닦아야 할 것을 실천하여 뛰어난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자분행自分行을 닦는 것이고, 나중은 승진勝進을 수행하는 것이다.

ㄱ) 방편을 닦음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방편을 닦는 것이다.
“질투심을 꺾어 없애는 것”은 곧 이타利他의 방편이니, 질투하는 마음이 있으면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을 구하며 만족하는 일이 없는 것”은 곧 자리自利의 방편이니, 더 이상 구함을 싫어하여 만족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부지런히 닦지 않기 때문이다.

ㄴ) 부지런히 정행을 닦음

나중에 부지런히 정행正行을 닦는 것이니, 곧 항상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다.
“항상 널리 설하고자 하는 것” 등은 이타행利他行이니, 부지런히 닦으면서 지치거나 게으른 마음을 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널리 설하고자 하는 것”은 설하는 마음이 뛰어난 것이다.
“법의 북을 치고” 등은 곧 설한 내용이 뛰어난 것이다. “지혜의 해로 비추어” 등은 이익을 주는 것이 뛰어난 것이니, 세 가지의 지혜의 해로 비추어 어리석음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육화경”이란 곧 자리행自利行이니, 신ㆍ구ㆍ의 등의 세 가지 업과 견見ㆍ계戒ㆍ이利 등을 모두 함께하기 때문에, 곧 서로 친애하고 공경하여 정情에 어긋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육화경”이라 했다.

ㄴ. 승진행을 닦음

“항상 법시法施를 행하고, 용맹스러운 마음으로 정진하여 물러나거나 약해지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세상의 등불이 되고 가장 뛰어난 복전이 되며, 항상 도사導師가 되어 평등하게 대하여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차별하여 대하는 일이 없으며, 오직 정도正道를 좋아하고 그 이외의 것에 대해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모든 욕망의 가시를 뿌리 뽑아 군생을 편안하게 하고 공덕이 뛰어나 존경하지 않음이 없으며, 삼구三垢(三毒)의 장애를 멸하고 온갖 신통을 노닌다.”
經曰。 常行法施。 志勇精進。 心不退弱。 爲世燈明。 最勝福田。 常爲師導。134) 等無憎愛。 唯樂正道。 無餘欣慼。135) 拔諸欲刺。 以安群生。 功德殊勝。 莫不尊敬。 滅三垢障。 遊諸神通者。

두 번째로 승진행을 닦는 것이다. 여기에 세 단계가 있다.

ㄱ) 승진의 시작 단계

처음은 승진의 시작 단계이다.
곧 “항상 법시를 행하는 것”은 이타利他의 시작이고, “용맹스러운 마음으로 정진하여 물러나거나 약해지지 않는 것”이란 자리自利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ㄴ) 승진의 중간 단계

다음은 승진의 중간 단계이다.
“세상의 등불이 되고 가장 뛰어난 복전이 되는 것”은 이타의 중간 단계이다. 중생으로 하여금 이해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등불이 되고”라고 했고,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선을 낳을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복전이 되며”라고 했으며, 지혜에 의해 어리석음을 열어 주고 교화하기 때문에 “도사가 되어”라고 했고, 복덕과 이로움을 주는 데 있어서 차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평등하게 대하여)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차별하여 대하는 일이 없으며”라고 했다.
“(오직 정)도를 좋아하고 (그 이외의 것에 대해)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일이 없는 것”은 곧 자리의 중간 단계에서 선을 닦는 것이기 때문에 “(정)도를 좋아하고”라고 했고, 허물을 제거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것에 대해 (좋아하거나 슬퍼하는 일이) 없다.”라고 했다.

ㄷ) 승진의 수행을 완성함

나중은 승진의 수행을 완성한 것이다.
곧 “욕망의 가시를 뿌리 뽑는 것” 등은 이타행을 성취한 것이다. 교화하여 허물을 여의게 하기 때문에 “중생을 편안하게 하고”라고 했고, 이들을 이끌어 선을 좇게 하기 때문에 “(공)덕이 뛰어나 모두가 존경한다.”라고 했다.
“삼구의 (장애를) 멸하고” 등은 곧 자행自行을 성취한 것이다. 탐욕ㆍ분노 등의 (“삼구”를) 멸하기 때문에 단행斷行을 성취하고, 신통력이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행덕行德을 성취한다.
어떤 사람은 ≺“삼구”란 곧 번뇌ㆍ업業ㆍ고苦이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002_0065_a_01L
述云此第五行修增進有二初自分
002_0065_a_02L行修後勝進修行
初又有二初行修
002_0065_a_03L方便摧滅嫉心卽利他方便若有嫉
002_0065_a_04L不能利物故求法無足卽自利方
002_0065_a_05L有厭足者必不進修故
後勤修正
002_0065_a_06L卽常正行常欲廣說等利他行
002_0065_a_07L心無疲惓故欲廣說說心勝也擊法
002_0065_a_08L鼓等卽所說勝也曜慧日等所利勝
002_0065_a_09L照三慧日以除愚癡故修六和敬者
002_0065_a_10L卽自利行修三業見戒利皆同故
002_0065_a_11L相親敬情無乖異故云六和敬

002_0065_a_12L
經曰常行法施至遊諸神通者

002_0065_a_13L
述云第二勝進行修有三階
初勝進
002_0065_a_14L卽常行法施利他始志勇不弱自利
002_0065_a_15L始故
次勝進中爲燈明福田等利他
002_0065_a_16L中也能生物解故云世燈明亦生
002_0065_a_17L人善故云勝福田以慧開化故云導
002_0065_a_18L福利無差故無1) [115] 樂道無欣慼
002_0065_a_19L卽自利中修善故云樂道除過故無
002_0065_a_20L
後勝進修成卽拔欲刺等利他行
002_0065_a_21L化令離過故以安群生導之從善
002_0065_a_22L故德勝尊敬滅三垢等卽自行成
002_0065_a_23L貪瞋等故斷行成遊戲神通故行德
002_0065_a_24L成也有說三垢卽煩惱業苦非也

002_0065_b_01L업과 고는 아직 반드시 구垢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모든 힘을 원만하게 갖춤

ㄱ. 자신이 힘을 갖춤

“인因의 힘과 연緣의 힘, 의意의 힘과 원願의 힘, 방편의 힘인 상常의 힘과 선善의 힘, 정定의 힘과 혜慧의 힘, 다문多聞의 힘과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의 힘, 정념正念의 힘과 정관正觀의 힘, 온갖 신통의 힘과 명明의 힘,”
經曰。 因力緣力。 意力願力。 方便之力。 常力善力。 定力慧力。 多聞之力。 施戒忍辱。 精進禪定。 智慧之力。 正念止136)觀。 諸通明力者。

이것은 여섯 번째로 모든 힘을 원만하게 갖춘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자신이 힘을 갖춘 것이다. 여기에 일곱 가지 짝이 있다.

ㄱ) 인과 연을 짝함

첫째, 인因과 연緣을 짝한 것이니, 곧 “인의 힘과 연의 힘”이다. 숙세의 선근을 “인의 힘”이라 하고, 선우善友를 친근히 하여 법을 듣는 것을 “연의 힘”이라 하기 때문이다.

ㄴ) 의와 원을 짝함

둘째, 의意와 원願을 짝한 것이니, 곧 “의의 힘과 원의 힘”이다.
어떤 사람은 ≺불도를 추구하는 마음을 “의의 힘”이라 하고, 실천행을 일으키려는 서원을 “원의 힘”이라 한다.≻137)라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보리심을 발한 것을 “의의 힘”이라 하고, 불과佛果를 희구하는 것을 “원의 힘”이라 한다.≻라고 했는데, 두 가지 모두 옳지 않다. 불도를 구하는 것과 실천행을 일으킬 것을 서원한 것은 말은 다르지만 뜻은 동일하기 때문이고, 보리심을 발하는 것은 곧 불과를 희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례대로 앞의 것은 첫 번째 해석에 대한 비판이고, 뒤의 것은 두 번째 해석에 대한 비판이다. 지금 곧 여리작의如理作意138)를 “의의 힘”이라 하고, 보리를 구하는 마음을 “원의 힘”이라 한다.

ㄷ) 총괄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을 짝함

셋째, 총總과 별別을 짝한 것이다. 곧 “방편의 힘”은 총괄적인 것이고, “상의 힘과 선의 힘”은 개별적인 것이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수행하기 때문에 “상의 힘”이라 하고, 악법이 들어설 틈이 없기 때문에 “선의 힘”이라 한다. 곧 이 두 가지 힘은 가행加行139)인 선교방편善巧方便이기 때문에 “방편의 힘”이라 한 것이다.

ㄹ) 지와 관을 짝함

넷째, 지止와 관觀을 짝한 것이다. 지행止行을 이루기 때문에 “정의 힘”이라 하고, 관행觀行을 이루기 때문에 “혜의 힘”이라 한다.

ㅁ) 들어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짝함

다섯째, 들어서 아는 것(聞)과 실천하는 것(行)을 짝한 것이다. “다문의 힘”은 수행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고, “보시” 등의 육도六度는 닦아야 할 실천행이기 때문이다.

ㅂ) 염과 정을 짝함

여섯째, 염念과 정定을 짝한 것이다. 곧 상相을 쫓아내는 염念은 “정념의 힘”이고, 산란함을 제거하여 진실을 증득하는 것은 “정관의 힘”이기 때문이다.
어떤 판본에서는 “정념지관正念止觀”이라 했기 때문에, 위 법사는 ≺“지”는 정定이고 “관”은 혜慧이다.≻라고 했는데, “정관”이 옳다.

ㅅ) 통과 명을 짝함

일곱째, 통通과 명明을 짝한 것이다. 곧 “통의 힘”이란 육통六通이고, “명의 힘”이란 삼명三明이기 때문이다.

ㄴ. 교화의 행위를 성취함

“법대로 모든 중생을 조복시키는 힘,”
經曰。 如法調伏諸衆生力者。

다음에 교화의 행위를 성취한 것이다.


002_0065_b_01L苦未必垢故

002_0065_b_02L
經曰因力緣力至諸通明力者

002_0065_b_03L
述云此第六諸力備足有三此初自
002_0065_b_04L力備有七雙
一因緣雙卽因力緣力
002_0065_b_05L宿世善根名因力親近善友而聞法
002_0065_b_06L緣力故
二意願雙卽意力願力
002_0065_b_07L求佛之心名意力起行之願名願力
002_0065_b_08L有說發菩提心名意力希求佛果名願
002_0065_b_09L二俱不然求願起行言別義一故
002_0065_b_10L發菩提心卽希佛果故如其次第
002_0065_b_11L卽如理作意名意力求菩提心名爲願
002_0065_b_12L
三總別雙卽方便力者總也常力
002_0065_b_13L善力者別也無間脩故常力惡法不
002_0065_b_14L間故善力卽此二力加行善巧故云
002_0065_b_15L方便力
四止觀雙 [253] 止行成故名定
002_0065_b_16L觀行成故云慧力
五聞行雙卽多
002_0065_b_17L聞力是脩行之解施等六度是所修行
002_0065_b_18L
六念定雙卽遣相之念是正念力
002_0065_b_19L除亂證實是正觀力故或有本云正
002_0065_b_20L [254] 止觀故位法師解止是定觀是慧
002_0065_b_21L正觀應是
七通明雙卽通力者六通
002_0065_b_22L明力者三明故

002_0065_b_23L
經曰如法調伏諸衆生力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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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云次化行成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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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총괄적으로 맺음

“이와 같은 모든 힘을 다 원만하게 갖춘다.”
經曰。 如是等力。 一切具足者。

이것은 나중에 총괄적으로 맺은 것이다.

㉴ 모든 덕이 뛰어남

ㄱ. 자신의 덕이 뛰어남

“몸의 상호와 공덕과 변재를 원만하게 갖추고 장엄하여 함께 짝할 이가 없으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한다.”
經曰。 身色相好。 功德辯才。 具足莊嚴。 無與等者。 恭敬供養。 無量諸佛者。

이것은 일곱 번째로 모든 덕이 뛰어난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자신의 덕이 뛰어난 것이다.

ㄴ. 모든 부처님께 수순하여 행함

“항상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칭찬하는 대상이 된다.”
經曰。 常爲諸佛。 所共稱嘆者。

이것은 두 번째로 모든 부처님께 수순하여 행하는 것이다.

ㄷ. 해와 행을 궁구하여 원만하게 이룸

“보살이 행해야 할 모든 바라밀을 궁극의 경지까지 도달하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삼매를 닦아 불생불멸의 모든 삼매문을 얻는다.”
經曰。 究竟菩薩諸波羅蜜。 修空無相無願三昧。 不生不滅。 諸三昧門者。

이것은 세 번째로 해解와 행行을 궁구하여 원만하게 이룬 것이니, 곧 “육도六度(육바라밀)”를 행이라 하고, “삼매”를 해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제법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곧 불멸임을 알고, 제법이 소멸하는 것을 보면 곧 불생임을 안다. 그러므로 “불생불멸”이라 했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이미 법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소멸할 것을 알기 때문이니, (『성유식론』에서) “생겨난 것은 소멸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 방향으로 답변(一向記)했기 때문이다.”140)라고 했다.141)
지금 곧 아我ㆍ법法이 “공”하고, 공하기 때문에 “무상”이며, 무상이기 때문에 “무원”이니, 이것으로 인해 생멸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ㄹ. 수행하여 이승을 넘어섬

“성문과 연각의 지위를 멀리 여읜다.”
經曰。 遠離聲聞緣覺之地者。

이것은 네 번째로 수행하여 이승을 넘어서는 것이다.

나) 찬탄을 맺음

“아난아, 그곳의 보살은 이러한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다. 나는 단지 너를 위해 간략히 말했을 뿐이니, 자세하게 말한다면 백천만겁이 지난다고 해도 다 할 수 없다.”
經曰。 阿難。 彼諸菩薩。 成就如是無量功德。 我但爲汝。 略言之耳。 若廣說者。 百千萬劫。 不能窮盡者。

이것은 두 번째로 찬탄을 맺은 것이다.

② 사람들에게 왕생을 권함

가. 사람과 국토의 뛰어남을 맺음

가) 사람의 덕이 뛰어남을 맺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과 여러 하늘과 사람 등에게 말씀하셨다.
“무량수국의 성문과 보살이 갖춘 공덕과 지혜는 말로 헤아릴 수 없다.”
經曰。 佛告彌勒菩薩諸天人等。 無量壽國。 聲聞菩薩。 功德智慧。 不可稱說者。

두 번째로 사람들에게 왕생을 권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사람과 국토의 뛰어남을 맺은 것이고, 나중은 바로 왕생을 권한 것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사람의 덕이 뛰어남을 맺은 것이다.

나) 국토의 즐거움이 뛰어남을 맺음

“또한 그 국토는 미묘하고 안락하며 청정함이 이와 같다.”
經曰。 又其國土。 微妙安樂。 清淨若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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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曰如是等力一切具足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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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云此後總結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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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曰身色相好至無量諸佛者

002_0065_c_04L
述云此第七諸德殊勝有四此初自
002_0065_c_05L德殊勝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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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曰常爲諸佛所共稱嘆者

002_0065_c_07L
述曰此第二行順諸佛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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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曰究竟菩薩至諸三昧門者

002_0065_c_09L
述云此第三解行究滿卽六度爲行
002_0065_c_10L三昧爲解故有說見諸法生卽知不
002_0065_c_11L見諸法滅卽知不生故云不生滅
002_0065_c_12L旣見法生必知滅故生者歸滅
002_0065_c_13L向記故今卽我法空空故無相無相
002_0065_c_14L故無願由此不見有生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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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曰遠離聲聞緣覺之地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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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云此第四行超二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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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曰阿難彼諸菩薩至不能窮盡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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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云此第二結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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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曰佛告彌勒至不可稱說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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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云第二勸人往生有二初結人土
002_0065_c_21L後正勸往生初又有二此初結人
002_0065_c_22L德勝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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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曰又其國土至淸淨若此

002_0065_c_24L「增」疑「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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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중에 국토의 즐거움이 뛰어남을 맺은 것이다.

나. 바로 왕생을 권함

가) 바로 왕생을 권함

“어찌 힘을 다하여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인가. 도리에 의해 저절로 왕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행덕行德이 현저해져서 귀함과 천함을 가리지 않고 모두 왕생한다. (그 국토에서) 모든 것을 통달하여 변제가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 마땅히 각각 부지런히 정진하고 노력하면서 스스로 이것을 구하면, 반드시 누대의 업을 벗어나고 끊어서 (예토를) 버리고 안양국(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단박에 오악도五惡道를 끊고 악도가 저절로 닫히며, 도道에 오르니 (그 도는) 궁극이 없다.”
經曰。 何不力爲善。 念道之自然。 著於無上下。 洞達無邊際。 宜各勤精進。 努力自求之。 必得超絕去。 往生安養國。 橫截五惡趣。142) 惡道自然閉。 昇道無窮極者。

두 번째로 바로 왕생을 권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바로 왕생을 권한 것이다.
“어찌 힘을 다하여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인가.”란 왕생의 인因을 닦을 것을 권한 것이다. “력力”이란 힘을 다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스럽고 국토는 미묘하니 어찌 힘을 다하여 선을 행하고 왕생할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력力”이란 부지런히 힘쓰는 것이다.
“도리에 의해 저절로 왕생하는 것을 생각하면”이란 얻어야 할 이익을 닦는 것이다. 원인인 선이 이미 이루어지면 저절로 과果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저절로 왕생하는 것을 생각하면”이라고 했다. 오직 도리를 생각함으로써 행덕이 현저하여 귀함과 천함을 가리지 않고 모두 왕생할 수 있기 때문에 “행덕이 현저해져서 귀함과 천함을 가리지 않고”라고 했다. 명호(字)를 칭념하여 오랫동안 독송하면 흘러서 여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통달洞達”이란 꿰뚫어 이해하고 철저하게 아는 것이고, “변제가 없는 것”이란 실상實相은 삼제三際(과거ㆍ현재ㆍ미래)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상은 이미 정토의 근본이니, 왕생하는 이는 그 근원을 궁구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철저히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실상의 근원을 궁구하는 것은 범부가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오직 성인께서 (중생의 소원에) 응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곧 그 국토에 왕생하면 신령스러운 지혜에 의해 모든 것을 통달하여 변제가 있지 않기 때문에 (“통달무변제”라고 한 것이다.)
“거去”란 버리는 것이니, 예토를 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오악도”란 삼도三途(지옥ㆍ아귀ㆍ축생)ㆍ비천非天(아수라)ㆍ여인이니, 여인은 악취惡趣의 근본이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또 아래 문장에서 ≺오악五惡이란 곧 오도五道라고 한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여인취女人趣라는 명칭을 설한 것은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이고, 오악은 원인이니 (업인業因의 결과로 태어나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취趣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곧 사람과 하늘은 비록 선취善趣이지만, 정토를 상대할 때는 또한 악도이기 때문에 〔오도五道(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하늘)를〕 “오악도”라고 했다.
이 예토에서 먼저 견혹見惑을 끊어 삼도의 인과를 여의고, 나중에 수혹修惑을 끊어 사람과 하늘의 인과를 끊는다. 이렇게 해서 정토에 왕생하면 오도의 인과를 단박에 버리기 때문에 “단박에 끊고”라고 했다. “끊는 것”은 그 과果이고, “저절로 닫히는 것”은 그 인因이다. 획득한 도가 깊고 넓기 때문에 “궁극이 없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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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云此後結土樂勝也

002_0066_a_02L
經曰何不力爲至昇道無窮極者

002_0066_a_03L
述云第二正勸往生有二此初直勸
002_0066_a_04L往生也何不力爲善者勸脩往生之
002_0066_a_05L力者盡力人聖國妙詎不盡力
002_0066_a_06L善願生故又力者力勵道之自然者
002_0066_a_07L脩所得之利因善旣成1) [116] [255] 自獲果
002_0066_a_08L云念自然唯能念道行德著不簡貴
002_0066_a_09L皆得往生故云著於無上下念字
002_0066_a_10L長讀流至此故
有說洞達者洞解了
002_0066_a_11L無邊際者實相非三際可尋故
002_0066_a_12L實相旣是淨土之本往生者要須窮
002_0066_a_13L其原故須解達非也窮實相之原
002_0066_a_14L凡夫所能往生淨土唯應聖故今卽
002_0066_a_15L得生彼土神智洞達無有邊際故
002_0066_a_16L者棄棄穢土故
有說五惡道者三途
002_0066_a_17L非天及以女人女人是惡趣本故
002_0066_a_18L下文五惡卽名五道非也無有處說
002_0066_a_19L名女人趣故五惡是因不可言趣故
002_0066_a_20L今卽人天雖名善趣對於淨土亦名惡
002_0066_a_21L云五惡道在此穢土先斷見惑
002_0066_a_22L三途因果後斷修惑絕人天因果
002_0066_a_23L生淨土五道頓捨故云橫截截者其
002_0066_a_24L自閉其因獲道深廣故無窮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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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마음 아파하고 탄식하며 거듭해서 왕생을 권함

“쉽게 왕생할 수 있으나 왕생하는 사람이 없구나. 그 국토는 어기고 거스르지 않는데 (그 자신이) 저절로 (오랜 업에 의해 왕생하지 못하게) 끌어당기는 것이다. 어찌 세속의 일을 버리고 부지런히 실천하여 도덕을 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게 하면 매우 긴 수명을 얻을 수 있고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 다하여 끝나는 일이 없다.”
經曰。 易往而無人。 其國不逆違。 自然之所牽。 何不棄世事。 勤行求道德。 可獲極長生。 壽樂無有極者。

이것은 나중에 마음 아파하고 탄식하며 거듭해서 (왕생을 권한 것)143)이다.
인因을 닦으면 곧 왕생하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으나”라고 했다. 어떤 사람도 인因을 닦지 않아 왕생하는 이가 드물기 때문에 “왕생하는 사람이 없구나.”라고 했다.
인을 닦아 왕생을 구하면 끝내 어기고 거스르지 않기 때문에 “그 국토는 어기고 거스르지 않는데”라고 했으니, 곧 앞에서 “쉽게 왕생할 수 있으나”라고 한 것과 연관된다. 오랫동안 되풀이하여 쌓인 번뇌(纏蓋)가 저절로 끌어당기고 묶어 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저절로 끌어당기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앞에서 “왕생하는 사람이 없구나.”라고 한 것과 연관된다.
어떤 사람은 ≺인因이 원만하고 과果가 성숙해지면 공용을 빌리지 않아도 저절로 (아미타불께서) 불러서 (극락정토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저절로 끌어당긴다.”라고 했다.≻라고 했는데, 이치상으로 볼 때 또한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타당하다.
“도덕”이란 인因이고,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과果이다. “수壽”란 이익을 누리는 것(受)이다.
정토왕생의 인을 닦는 것과 도솔천 왕생의 인을 닦는 것은 어느 것이 어려운가?
어떤 사람은 ≺도솔천은 계界에 속박되어 있고,144) 정토는 계에 속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토에 태어나는 것이 도솔천에 태어나는 것보다 쉽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무릇 “계界”란 생사유전하는 곳이고, 서방정토란 (그것을) 벗어나고 여읜 곳이기 때문이다. 생사유전과 관련된 세계에 태어나는 업을 닦는 것이 어렵고, (그것을) 벗어나고 여의는 원인을 행하는 것이 쉽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바른 이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예로부터 여러 덕망 있는 사람들이 도솔천의 업을 지은 것은 모두 서방정토는 왕생하기 어렵기 때문에 감히 그 업을 짓지 않은 것이다.≻145)라고 했다.
지금 일곱 가지 뜻으로 서방에 왕생하는 것이 쉽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적으로 단지 조금만 닦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관무량수경』에서 “하품상생ㆍ하품중생ㆍ하품하생의 중생은 임종할 때 (부처님의 명호를) 한 번 생각했든 열 번 생각했든 모두 왕생할 수 있다.”146)라고 했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하시기 때문이다. 곧 『칭찬정토불섭수경』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하신다.”147) 등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셋째, 광명을 비추어 섭수하기 때문이다. 곧 『관무량수경』에서 “(낱낱의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 부처님의 명호를 칭념하는 중생을 섭취하여 버리지 않는다.”148)라고 했기 때문이다.
넷째, 부처님의 본원을 타기 때문이다. 곧 이 경(『무량수경』)에서 설한 아미타불의 사십팔원이라는 큰 서원이 이것이다.
다섯째, 그 국토의 성중聖衆이 와서 맞이하기 때문이다. 곧 앞의 문장에서 “나의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데 와서 맞이하지 않는다면 정각을 취하지 않겠다.”149)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여섯째, 모두가 염불하여 왕생하는 것을 돕기 때문이다. 곧 임종할 때 함께 염불왕생을 위해 수행하는 이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염불하여 보내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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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曰易往而無人至壽樂無窮極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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述云此後傷嘆重也修因卽住 [256] 故易
002_0066_b_03L無人修因往生者尠故無人修因
002_0066_b_04L求生終不違逆故國不逆違卽前易往
002_0066_b_05L久習纏蓋自然爲之牽縛不往
002_0066_b_06L自然所牽卽前無人也有說因滿果
002_0066_b_07L不假功用自然招致故自然所牽
002_0066_b_08L義亦可也道德者因壽樂者果壽者
002_0066_b_09L受也
修淨土及兜率因何者爲難
002_0066_b_10L有說兜率是界淨土非繫故生淨
002_0066_b_11L易於兜率非也夫言界者是流轉
002_0066_b_12L之處西方淨土是出離之所故難修
002_0066_b_13L流轉業易行出離之因必違正理故

002_0066_b_14L有說古來諸德作兜率業者咸以西方
002_0066_b_15L難生故不敢作今以七義證西方易
002_0066_b_16L一時但少修故卽觀經云下三品
002_0066_b_17L臨命終時一念十念悉得生故二諸
002_0066_b_18L佛護念故卽稱讃經曰 [257] 方諸佛護念
002_0066_b_19L是也三光明攝受故卽觀經云
002_0066_b_20L佛衆生攝取不捨也四乘佛本願故
002_0066_b_21L卽此經云阿彌陀佛四十八願弘誓
002_0066_b_22L五彼聖來迎故卽上文云願生我
002_0066_b_23L若不來迎者不取正覺也六凡助
002_0066_b_24L念故謂臨命終時諸同行者相助念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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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성인께서 왕생하는 것이 쉽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곧 이 경의 문장에서 “쉽게 왕생할 수 있으나 왕생하는 사람이 없구나. 그 국토는 어기고 거스르지 않는데”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제 이러한 해석을 보면 비록 신령스럽고 색다르기는 하지만 이치상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미륵도 서원을 세우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 하늘에 태어나는 이가 있으면 미륵이 광명을 쏘아 와서 맞이하는 것은 미타와 같기 때문이며, 한 번 덕호를 칭념해도 오히려 하늘에 태어나거늘 하물며 또한 열 번 칭념함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며, 함께 도솔천 왕생을 위해 수행하는 이들이 또한 반드시 서로 돕기 때문인데, 이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정토왕생이 더 쉽다고 하는 주장의 근거로 삼기는 부족한 면이 있다.)
“왕생하는 사람이 없구나.”라고 말했기 때문에 (서방정토의 왕생은 어렵다.) 또한 “없구나”라고 설한 것은 별시別時의 뜻이니, 게으른 중생150)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중생이라도 그 업을 지니지 않은 이가 없기 때문이니, 일찍이 왕생했고 미래에도 역시 왕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쉽고 도솔천에 태어나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쉽게 태어날 수 있다면 과果는 반드시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곧 서방정토에 태어나는 것은 비록 또한 매우 어렵지만 오로지 왕생을 추구하여 부처님의 명호를 한 번 칭념하거나 열 번 칭념하거나 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으니, 태어나기 어려운 가운데에 쉬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수적인 의미에 대한 논의는 그만두고 본문을 풀이해야 할 것이다.

⑵ 사바세계의 더러움과 악을 펼쳐 사람들로 하여금 싫어하여 버리게 함

① 번뇌의 허물을 나타냄

가. 탐욕의 허물을 나타냄

가) 총괄적으로 나타냄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풍속이 경박하여 급하지 않은 일을 함께 다툰다.”
經曰。 然世人薄俗。 共諍不急之事者。

사바세계의 더러움과 악을 펼쳐 사람들로 하여금 싫어하여 버리게 한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번뇌의 허물을 나타낸 것이고, 둘째 권하여 닦아서 버리게 한 것이며, 셋째 죄업의 허물을 펼친 것이고, 넷째 거듭하여 권하여 닦아서 버리게 한 것이다. 처음에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탐욕의 허물을 밝혔고, 다음은 분노의 허물을 보였으며, 나중은 어리석음의 허물을 밝혔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총괄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급急”이란 마음을 빼앗겨 멍한 모양(糸+急)이고, 또한 급박한 것이다. 세속인은 풍속이 경박하여 탐욕심으로 현세의 급하게 하지 않아야 할 오욕을 함께 다투기 때문이다.

나) 개별적으로 풀이함

㉮ 총괄적으로 탐욕의 허물을 드러냄

ㄱ. 추구의 고통

“이러한 혹독한 악과 극렬한 고통이 가득한 곳에서 자신을 괴롭혀 가며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데 힘써 스스로에게 공급하여 구제한다. 존귀한 사람도 없고 비천한 사람도 없으며, 가난한 사람도 없고 부유한 사람도 없이 (모두 빠짐없이)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인을 위해 함께 재물을 위해 근심하니, 재물이 있는 사람이든 재물이 없는 사람이든 똑같이 그러하여 근심하는 마음은 같아서 영혈營血이 막힐 정도로 근심하고 괴로워한다. 빈번히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여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마음이 달려가고 부림받아 편안할 때가 있지 않다.”
經曰。 於此劇惡極苦之中。 勤身營務。 以自給濟。 無尊無卑。 無貧無富。 少長男女。 共憂錢財。 有無同然。 憂思適等。 屏營愁苦。 累念積慮。 爲心走使。 無有安時者。


002_0066_c_01L七聖說易生故卽此文云易往而
002_0066_c_02L無人其國不逆也
今觀此解雖復靈
002_0066_c_03L理必不然彌勒不應無誓願故
002_0066_c_04L生彼天彌勒放光來迎同彌陀故
002_0066_c_05L稱德號尙得生天況亦十念故同行
002_0066_c_06L亦必相助故而不說
言無人故亦無
002_0066_c_07L說處是別時之意而爲化懈怠故
002_0066_c_08L一衆生不有彼業故曾所生故當亦
002_0066_c_09L生故諸有智者必不可言易生淨土
002_0066_c_10L非兜率也若易生者果必非勝故
002_0066_c_11L卽生西方土雖復甚難專求往生一念
002_0066_c_12L十念皆得往生可謂難生中之易也
002_0066_c_13L傍義且止應釋本文

002_0066_c_14L
經曰然世人薄俗至不急之事者

002_0066_c_15L
述云第二申娑婆穢惡令人厭捨有四
002_0066_c_16L一顯煩惱過二勸令脩捨三申罪業過
002_0066_c_17L四重勸脩捨初又有三初辨貪過
002_0066_c_18L示瞋過後愚癡過初又有二初總標
002_0066_c_19L急者2) [117] 3) [118] 世俗之人
002_0066_c_20L於風俗以貪欲心共諍現世不可急五
002_0066_c_21L欲之事故

002_0066_c_22L
經曰於此劇惡極苦之中至無有安時
002_0066_c_23L

002_0066_c_24L「不」異作「可」」與「惚」通「逈」疑
002_0066_c_25L「迫」

002_0067_a_01L
이것은 나중에 개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괄적으로 탐욕의 허물을 드러낸 것이고, 나중은 개별적으로 탐욕의 허물을 밝힌 것이다. 처음에 또한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추구의 고통을 나타낸 것이다.
“근勤”이란 괴롭히는 것이고, “영營”이란 보호하는 것(護)이고, 공급하는 것(給)이며, 돕는 것(資)이다. 곧 자신을 위해서 구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존귀한 사람도 없고 비천한 사람도 없으며, 가난한 사람도 없고 부유한 사람도 없이”란 구하는 주체가 되는 사람이고,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인”이란 위하는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곧 다른 사람을 위해서 구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재물이 있는 사람은 잃을 것을 두려워하고, 재물이 없는 사람은 얻고자 하니, 근심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재물이 있는 사람이든 재물이 없는 사람이든 똑같이 그러하여”라고 했다. “적適”이란 내乃(바로, 곧)이다. “병屏”이란 닫히고 막히는 것이고, “영營”이란 혈기血氣의 이름이니, 지나치게 근심하면 기氣가 막혀 숨쉬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곧 마음의 고통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마음이 달려가고 부림받아”란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향해 달려가고, 눈에 무엇이 낀 사람(翳眼)이 허공의 꽃을 잡으려고 손짓함이, 모두 물을 갈망하는 마음 (때문에) 병으로 인해 꽃이 보이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고 좇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곧 신체의 고통을 나타낸 것이다.

ㄴ. 수호의 고통

“밭이 있으면 밭을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을 걱정하며, 소ㆍ말 등의 육축151)과 노비ㆍ돈ㆍ옷ㆍ음식 등의 온갖 생활 도구(什物)에 대해서도 또한 함께 이것을 근심하며, 거듭 생각하고 거듭 한탄하면서 근심하고 두려워한다.”
經曰。 有田憂田。 有宅憂宅。 牛馬六畜奴婢錢財衣食什物。 復共憂之。 重思累息。 憂念愁怖者。

이것은 다음으로 수호의 고통이다.
어떤 사람은 ≺“십什”이란 밑천이 되는 것(資)이다. 재가자에게 있어서는 십물什物이니, 곧 밭ㆍ집ㆍ소ㆍ말ㆍ돈ㆍ옷ㆍ음식ㆍ육축ㆍ노비이다.
출가자는 곧 육물六物152)이다. (또한) 자신에게 제공하는 것이 허락된 것은 곧 백일물百一物153)이다.≻라고 했다. 비록 두 가지 해석이 있지만 모두 근거가 없다.
지금 곧 의정義淨의 『남해기귀내전』에 의거하니, 곧 “어떤 사람이 삼의십물三衣什物154)이라고 한 것은, 생각건대 역자가 의역하여 분리하여 두 가지로 만든 것이고, 범본에 의지한 것은 아니다. (곧 13지구에서) 별도로 삼의三衣를 (묶어서) 말하고, 열 가지 물건은 쪼개어 열었다.…(중략)…‘십什’을 훈독하여 잡雜이라 한 것은 앞에서 설한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중략)…십삼두다十三杜多155)는 오직 상품의 수행자를 위해 제정한 것이고, 십삼자구十三資具156)는 중품과 하품의 수행자를 겸한 것으로 생각된다.…(중략)…(중생의 근기에 의거하여) 자신에게 제공하는 것이 허용된 백일물은 (사부四部에 있어서는)157) 율문律文에 보이지 않는다.158) 경經에 비록 이러한 말이 있을지라도 별시의別時意라고 보아야 한다.159)…(중략)…또한 서방에서 세속의 관리와 귀하고 뛰어난 사람이 입는 의복은 오직 백첩白疊160) 한 쌍이 있고, 가난하고 천한 부류는 단지 한 벌의 거친 베옷이 있다. 출가하여 불법을 따르는 대중은 단지 삼의육물三衣六物을 비축하고,

002_0067_a_01L
述云此後別釋有二初總顯貪過
002_0067_a_02L別辨貪過初又有三此初1) [119] 求苦
002_0067_a_03L勤者苦也營者護也給者資也
002_0067_a_04L爲身故求也無尊卑貧富者能求之
002_0067_a_05L少長男女者所爲之人卽爲他故
002_0067_a_06L求也有者恐失無者欲得憂之無異
002_0067_a_07L有無同然適者乃也屏者閉塞
002_0067_a_08L者血氣之名也若强憂慮者氣塞難
002_0067_a_09L息故卽心苦也爲心走使者如渴鹿
002_0067_a_10L逐於陽炎翳眼弄於空華皆爲愛水之
002_0067_a_11L不了病華而走馳故卽身苦也

002_0067_a_12L
經曰有田憂田至憂念愁怖者

002_0067_a_13L
述云此次守護苦也有說什者資也
002_0067_a_14L在俗什物卽田宅牛馬錢財衣食六畜
002_0067_a_15L奴婢也出家卽六物也許供身者
002_0067_a_16L百一也雖有二解皆無據准
今卽准
002_0067_a_17L淨傳有云三衣2) [120] 物者蓋是譯者之
002_0067_a_18L離分 [258] 爲二處不依梵本別道三衣
002_0067_a_19L折開十物訓什爲雜未符先旨故 [259]
002_0067_a_20L三杜多唯制上行十三資具蓋兼中下
002_0067_a_21L供身百一未見律文經雖有言應是
002_0067_a_22L別時之意由此 [260] 西方俗侶官人貴勝
002_0067_a_23L所著衣服唯有白疊一雙貧賤之流
002_0067_a_24L祇有一箇 [261] 出家法衆但畜三衣六物

002_0067_b_01L풍요로운 장자라야 비로소 십삼자구를 사용할 수 있다.”161)라고 하였다.

ㄷ. 산실의 고통

ㄱ) 재물을 잃는 고통

“뜻하지 않게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수재水災와 화재火災를 만나고, 도둑에 의해 약탈당하며, 원수인 집안의 보복을 당하고, 빚쟁이의 독촉을 받아 불에 타고 물에 떠내려가며 빼앗기고 흩어지며 없어진다. 근심과 고통으로 마음이 어지러운데 벗어나는 때는 있지 않다. 분노하는 마음이 맺혀 근심이 떠나지 않는데, 그 마음이 굳어지고 뜻이 고착되어 끝내 벗어날 수 없다.”
經曰。 橫爲非常。 水火盜賊。 怨家債主。 焚漂劫奪。 消散磨滅。 憂毒忪忪。 無有解時。 結憤心中。 不離憂惱。 心堅意固。 適無縱捨者。

이것은 나중에 산실散失의 고통을 밝힌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재물을 잃는 고통이다.
“종忪”지止와 용容, 중衆과 종從, 두 가지의 반절이다.은 두려움에 마음이 어지럽게 동요하는 것이다.

ㄴ) 신체를 잃는 고통

“혹은 이러한 것과 관련된 일로 말미암아 꺾이고 부서져 몸이 없어지고 목숨을 마치기에 이르러 이것을 버리고 떠나도 누구도 따르는 이가 없다.”
經曰。 或坐摧碎。 身亡命終。 棄捐之去。 莫誰隨者者。

이것은 나중에 신체를 잃는 고통을 밝힌 것이다.
“누구도 따르는 이가 없다.”란 곧 한 명도 좇는 중생이 없다는 뜻이다.

㉯ 개별적으로 탐욕의 허물을 보임

ㄱ. 부유함과 귀함에 의탁하여 탐욕의 허물을 펼침

“존귀하고 세력이 있는 부유한 사람도 또한 이러한 근심이 있다. 온갖 일을 근심하고 두려워하니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이와 같다. 온갖 종류의 한寒(두려움에 의한 떨림)과 열熱(고통에 의한 타오름)을 맺으면서 늘상 고통과 함께 지낸다.”
經曰。 尊貴豪富。 亦有斯患。 憂懼萬端。 勤苦若此。 結衆寒熱。 與痛共居162)者。

이것은 두 번째로 개별적으로 탐욕의 허물을 보인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부유함과 귀함에 의탁하여 탐욕의 허물을 펼친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寒”은 팔한지옥八寒地獄이고, “열熱”은 팔열지옥八熱地獄이다. 팔한지옥과 팔열지옥 등의 고통을 받는 것이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고통과 함께 지낸다.”라고 했다. “통痛”이란 (지옥의 과보로서) 감수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현세의 몸이 후세에 받는 (지옥의) 고통과 더불어 “함께 지낸다.”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곧 “한寒”은 두려움에 의해 몸이 떨리는 것이고, “열熱”은 고통에 의해 몸이 타오르는 것이니, “고통과 함께 지낸다.”라는 말이 성립한다.
어떤 경본에서는 “임종할 때 한기寒氣와 열기熱氣가 있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은 것 같다.

ㄴ. 빈궁한 것에 의거하여 탐욕의 허물을 보임

ㄱ) 현세에서의 고통을 보임

“빈궁하고 하열한 이는 부족하여 늘 지닌 것이 없다. 밭이 없으면 또한 밭을 가지려고 걱정하고, 집이 없으면 또한 집을 가지려고 걱정하며, 소ㆍ말 등의 육축ㆍ노비ㆍ돈ㆍ옷ㆍ음식 등의 생활 도구가 없으면 또한 이것을 가지려고 걱정한다. 오로지 추구하여 하나를 가지면 또한 다른 하나가 부족하고, 이것을 가졌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세상의 최상의 부귀를) 동등하게 가지려고 애쓴다. 오로지 추구하여 바라는 것을 모두 가졌다고 해도 곧 다시 부서지고 흩어진다. 이와 같아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다시 구하려고 애쓰지만 때맞추어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생각하며 애써도 보탬이 되지 않고, 몸과 마음은 모두 지치며, 앉으나 서나 불안하다. 근심스런 생각이 서로 따르며 (그치지 않아)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이와 같다. 또한 온갖 종류의 한寒과 열熱을 맺으면서 늘 고통과 함께 지낸다. 어떤 때는 이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요절한다.”
經曰。 貧窮下劣。 困乏常無。 無田。 亦憂欲有田。 無宅。 亦憂欲有宅。 無牛馬六畜奴婢錢財衣食什物。 亦憂欲有之。 適有一復少一。 有是少是。 思有齊等。 適欲具有。 便復糜散。 如是憂苦。 當復求索。 不能時得。 思想無益。 身心俱勞。 坐起不安。 憂念相隨。 勤苦若此。 亦結衆寒熱。 與痛共俱。 或時坐之。 終身夭命者。

이것은 나중에 빈궁한 것에 의거하여 탐욕의 허물을 보인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현세에서의 고통을 보인 것이다.
“하나를 가지면 (또한) 다른 하나가 부족하니”란 밭을 가졌지만 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졌지만 이것은 부족하다고 하면서”란 비록 밭을 가졌지만 (그 정도의 크기로는)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동등하게 가지려고 애쓴다.”란 (세상의 최상의) 부귀를 동등하게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다. “미糜”란 부서지는 것이다.

ㄴ) 후세에서의 고통을 보임

“선을 실천하고 도道를 행하며 덕德에 나아가는 것은 하려 하지 않고 지내다가 목숨을 마치고 몸이 죽으면 홀로 먼 길을 떠나는데, 향하여 나아가는 곳은 있지만 (그곳이) 선도善道인지 악도惡道인지조차 아는 이가 없다.”
經曰。 不肯爲善行道進德。 壽終身死。 當獨遠去。 有所趣向。 善惡之道。 莫能知者。163)

이것은 나중에 후세에서의 고통을 보인 것이다.

나. 분노의 허물을 나타냄

가) 원한을 맺어 서로 보복함

“세간의 인민은 부자, 형제, 부부, 부부(家室)의 친가 친척과 외가 친척이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며, 서로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으며,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서로 주고받아 통하게 하고, 탐욕을 내거나 아까워하지 않으며, 말씨와 얼굴빛을 늘 온화하게 하여 서로 어기거나 어그러지는 일이 없이 지낸다. 어느 날 갑자기 다투는 마음이 일어 분노하는 일이 생기니, 현재 세상에서는 한恨스러운 마음을 내어 미미하게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지만, 후세에 이르러 점점 심해져서 큰 원망을 이루기에 이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세간의 일로서 거듭해서 서로 괴롭히고 해를 입히면 비록 즉시 그것에 상응하여 급박하게 서로 파괴하는 일은 없지만, 독毒을 품고 노기怒氣를 쌓아가면서 분노가 정신에 맺히고 저절로 반드시 기록되어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모두 미래세에 함께 태어나 다시 서로 보복한다.”
經曰。 世間人民。 父子兄弟夫婦。 家室中外親屬。 當相敬愛。 無相憎嫉。 有無相通。 無得貪惜。 言色常和。 莫相違戾。 或時心諍。 有所恚怒。 今世恨意。 微相憎嫉。 後世轉劇。 至成大怨。 所以者何。 世間之事。 更相患害。 雖不即時。 應急相破。 然含毒畜怒。 結憤精神。 自然剋識。 不得相離。 皆當對生。 更相報復者。

두 번째로 분노의 허물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원한을 맺어 서로 보복하는 것이다.

002_0067_b_01L樂盈長者方用十三資具

002_0067_b_02L
經曰橫爲非常至適無縱捨者

002_0067_b_03L
述云此後散失苦有二此初失財苦
002_0067_b_04L止容衆
從二反
懼心亂動也

002_0067_b_05L
經曰或坐摧碎至莫誰隨者者

002_0067_b_06L
述云此後失身苦也莫誰隨者卽無
002_0067_b_07L一從物之意也

002_0067_b_08L
經曰尊貴豪富至與痛共居者

002_0067_b_09L
述云此第二別示貪過有二此初寄
002_0067_b_10L富貴以申貪過也有說寒謂八寒地
002_0067_b_11L熱謂八熱地獄受寒熱等苦尋常
002_0067_b_12L故與痛共俱痛者受也此恐非也
002_0067_b_13L現身與後苦不可言俱故今卽寒恐
002_0067_b_14L熱惱與痛共俱或有經本臨終寒熱
002_0067_b_15L恐訛也

002_0067_b_16L
經曰貧窮下劣至終身夭命者

002_0067_b_17L
述云此後據貧窮以示貪過有二
002_0067_b_18L初示現苦也有一少一者有田少宅
002_0067_b_19L有是少是者雖有田而不足故
002_0067_b_20L有齊者思齊富貴故糜者敗也

002_0067_b_21L
經曰不肯爲善至莫能知者

002_0067_b_22L
述云此後顯後苦也

002_0067_b_23L
經曰世間人民至更相報復者

002_0067_b_24L
述云第二顯嗔過有三此初結怨相

002_0067_c_01L
“가실家室”이란 남편이 아내를 일컬어 “가”라고 하고, 아내가 남편을 일컬어 “실”이라 한다. 비록 이러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진실로 옳지 않은 것 같다. 뒤에서 다시 풀이하기로 한다.
“무無”란 불不이다. “환患”이란 괴롭히는 것(惱)이다. “정신”이란 곧 종자식種子識164)이다. “극剋”이란 반드시(要)라는 뜻이다. “지識”란 기록하는 것(記)이다. 앞에서 한恨을 맺은 것으로 말미암아 원수를 이루는데, 그 과정은 종자가 과果를 이끄는 것이고, 별다른 공용을 빌리지 않기 때문에 “저절로”라고 했다. “복復”이란 갚는 것(酬)이다.

나) 이별은 쉽고 만남은 어려움

“인간은 세간의 애욕 속에서 홀로 태어나고 홀로 죽으며 홀로 가고 홀로 온다. 행위한 것(行業)에 따라 고통과 즐거움의 땅에 이르는데, 자신이 스스로 이러한 고통과 즐거움을 받을 뿐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취와 악취의 중생은 변화하여 재앙을 받는 곳과 복덕을 누리는 곳에 달리 태어나 머물기도 한다.165) 과거세에 거스르는 행위를 하고 닦은 업에 따라 그 과보가 엄연히 기다리고 있는데 홀로 나아가서 들어가야 하니, 그렇게 해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이르고 나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선과 악이 저절로 (기억되고) 행위한 것을 따라서 태어난다. 그윽하고 아득하게 이별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내는데 가는 길이 같지 않아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다. 매우 어렵고 지극히 어려우니 다시 서로 만날 수 있겠는가.”
經曰。 人在世間愛欲之中。 獨生獨死。 獨去獨來。 當行至趣苦樂之地。 身自當之。 無有代者。 善惡變化。 殃福異處。 宿豫嚴待。 當獨趣入。 遠到他所。 莫能見者。 善惡自然。 追行所生。 窈窈冥冥。 別離久長。 道路不同。 會見無期。 甚難甚難。 復得相値者。

이것은 다음으로 이별은 쉽고 만남은 어려운 것이다.
“당當”이란 따르는 것(逐)이고, “행行”이란 업業이다. “자당自當”이란 자신이 받는 것이다. “선변화善變化”란 곧 (선취에서 변화하여) 악취의 과보를 받는 것이고, “악변화惡變化”란 (악취에서 변화하여) 선취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예豫”란 거스르는 것이고, “엄嚴”이란 닦는 것이니, 과거세에 거스르는 행위를 하고 선악의 업을 닦은 것으로 말미암아 고락의 과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엄嚴”이란 엄연한 것이니, 곧 과거세에 지은 선악의 업에 따라 지옥ㆍ천당의 과보가 엄연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요요窈窈”란 중유中有의 시기이고, “명명冥冥”이란 생유生有의 시기이다.

다) 수행하고 세속의 일을 버릴 것을 권함

“어찌 온갖 세속의 일을 버리고 각각 강건한 때에 노력하여 선을 부지런히 닦으며 세간에서 벗어나려는 서원을 세우고 정진하지 않는 것인가. 이렇게 하면 매우 오랜 삶을 얻을 수 있는데 어찌하여 도를 구하지 않으면서 어디에 머물 것을 바라고, 어떤 즐거움을 누리려는 것인가.”
經曰。 何不棄衆事。 各曼强健時。 努力勤修善。 精進願度世。 可得極長生。 如何不求道。 安所須待。 欲何樂乎者。

이것은 나중에 수행하고 세속의 일을 버릴 것을 권한 것이다.
“만曼”은 만萬이라고 읽고, 뜻은 급及(미치다, 이르다)이다. 또한 만蔓마馬와 안安의 반절이다. 이라고도 하니, 길게 늘어진 모양인데, 여기에서의 뜻은 아니다.
“대待”란 머무는 것(停)이다.
위 법사는 ≺무슨 일을 기다리고, 어떤 원락願樂을 바라는 것인가. 어떤 즐거움을 누리려는 것인가?≻라고 했는데, 뜻에 있어서 또한 옳다.

다. 어리석음의 허물을 나타냄

가) 스스로 바른 믿음이 없음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선을 지으면 선을 얻고 도를 행하면 도를 얻는 것을 믿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고 은혜를 베풀면 복을 얻는 것을 믿지 않는다. 선악의 일을 도무지 믿지 않고 이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끝내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이러한 (불신不信으로) 말미암아 또한 자신의 견해에만 사로잡혀서 살아갈 뿐이다.”
經曰。 如是世人。 不信作善得善爲道得道。 不信人死更生惠施得福。 善惡之事。 都不信之。 謂之不然。 終無有是。 但坐此故。 且自見166)者。

세 번째로 어리석음의 허물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스스로 바른 믿음이 없는 것이다.
“좌坐”란 유由이다. 불신으로 말미암아 오로지 자신의 견해에만 집착하니, 곧 그 과실이다.


002_0067_c_01L報也家室者夫稱於婦曰家婦稱於
002_0067_c_02L夫曰室雖有此言良恐非也下之更
002_0067_c_03L無者不也患者惱也精神者卽
002_0067_c_04L種子識剋者要也識者記也由前
002_0067_c_05L結恨成怨種子引果不假功用故云
002_0067_c_06L自然復者酬也

002_0067_c_07L
經曰人在世間至復得相値者

002_0067_c_08L
述云此次別易會難也當者逐也
002_0067_c_09L者業也自當者卽自受也善變化者
002_0067_c_10L卽惡趣報惡變化者卽善趣報豫者
002_0067_c_11L逆也嚴者脩也由宿世逆修善惡之
002_0067_c_12L苦樂報而待故又嚴者嚴然卽隨
002_0067_c_13L宿善惡地獄天堂嚴然而待也窈窈
002_0067_c_14L卽中有之時冥冥者卽生有之時

002_0067_c_15L
經曰何不棄衆事至欲何樂乎者

002_0067_c_16L
述云此後勸令脩捨也曼音萬及也
002_0067_c_17L亦作蔓馬安
延長貌也非此中義
002_0067_c_18L者停也位法師云待何事欲何願樂
002_0067_c_19L欲何快樂義亦可也

002_0067_c_20L
經曰如是世人至且自見者

002_0067_c_21L
述云第三顯癡過有三此初自無正
002_0067_c_22L信也坐者由也由不信故專執自見
002_0067_c_23L卽其失也

002_0067_c_24L「推」與「逈」音通「十」原本作「什」

002_0068_a_01L
나) 선조의 믿음이 없는 삶을 이어 받아서 익힘

“다시 서로 우러러보며 먼저 행하거나 뒤에 따라 행하거나 하면서 똑같이 행동한다.167) 전전하면서 서로 이어받아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계승한다.168) 앞선 세대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전에 선을 행하지 않고 도덕을 알지 못하며, 색근色根이 우둔하고 성품이 어두우며, 마음은 막히고 의근意根은 닫혀 버리니, 이로 인해 생사윤회의 세계(趣)와 그 원인이 되는 선악의 도道를 스스로 알지 못하고, 이것과 관련된 말을 해 주는 사람도 없이 살면서 길흉화복을 다투어 각각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그 행위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169)
經曰。 更相瞻視。 先後同然。 轉相承受。 父餘敎令。 先人祖父。 素不爲善。 不識道德。 身愚神闇。 心塞意閉。 死生之趣。 善惡之道。 自不能見。 無有語者。 吉凶禍福。 競各作之。 無一怪也者。

이것은 다음에 선조의 믿음이 없는 삶을 이어받아서 익힌 것이다.
“령令”은 또한 교敎이다. “소素”란 석昔(예전에, 앞서)이다.
“선을 행하지 않고”란 행위가 없는 것이고, “도덕을 알지 못하여”란 이해가 없는 것이다.
“신身”이란 색근色根이고, “신神”이란 성性이다. “심心”이란 과果이며, “의意”란 의근意根이다.
“취趣”란 과果이고, “도道”란 인因이다. 곧 세상을 벗어나는 것과 선악의 인과를 모두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 하나 그 행위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란 곧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행하는 것이다.

다) 바로 어리석음의 허물을 펼침

㉮ 아버지와 아들을 짝하여 그 허물을 나타냄

“생사의 변함없는 도리는 전전하고 서로 이어가면서 이루어진다. 그 속에서 혹은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울고 혹은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여 울며, 형제와 부부도 번갈아 가며170) 서로의 죽음을 슬퍼하여 운다. 서로 어긋나서 선취善趣에 오르기도 하고 악취惡趣에 떨어지기도 한다. 영원하고 근본이 될 만한 것은 없으니, 모두 지나가 버리고 영원히 보존할 수는 없다. 이러한 도리를 가르쳐 열어서 인도하여도 믿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므로 생사의 세계를 윤회하여 그치는 날이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사람은 미혹에 빠져 막고 거부하며 경법을 믿지 않는다. 앞날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고, 각각 자신의 뜻대로 즐기려고 한다. 어리석음으로 애욕에 미혹되어 도덕에 통달하지 못하고, 미혹으로 분노에 매몰되고, 재색財色을 얻으려고 이리처럼 탐낸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도를 얻지 못하고 다시 악취의 고통을 받는다. 생사윤회가 끝나는 일이 없으니 슬프구나. 매우 불쌍히 여길 만한 일이다.”
經曰。 生死常道。 轉相嗣立。 或父哭子。 或子哭父。 兄弟夫婦。 更相哭泣。 顚倒上下。 無常根本。 皆當過去。 不可常保。 敎語開導。 信之者少。 是以生死流轉。 無有休止。 如此之人。 曚171)冥抵突。 不信經法。 心無遠慮。 各欲快意。 癡惑於愛欲。 不達於道德。 迷沒於瞋怒。 貪狼於財色。 坐之不得道。 當更惡趣苦。 生死無窮已。 哀哉。 甚可傷者。

이것은 나중에 바로 어리석음의 허물을 펼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아버지와 아들을 짝하여 그 허물을 드러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젊은 사람은 일찍 죽고, 늙은 사람은 나중에 죽기 때문에 “전도”라고 했고, 상인上人이나 하인下人에 상관없이 죽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에 “상하”라고 했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말한 대로라면 “전도된 형태로 죽는데 상인이나 하인을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곧 “전도”란 서로 어긋나는 것을 의미한다. “상上”이란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하下”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도五道가 서로 어긋나서 혹은 선취에 오르고 혹은 악취에 떨어지기 때문에 “상하”라고 하였다.
“영원하고 근본이 될 만한 것은 없으니”란 한결같고 영원하고 본질적인 업業이 없는 것이다. “당當”이란 받는 것이다.
“몽蒙”이란 또한 몽曚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모莫와 공公의 반절이다. 가리어 밝지 않은 것이다. “명冥”명鳴과 앙央의 반절이다.은 어두워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몽曚”은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이다. (“몽명”이란) 또한 몽외曚뒤의 글자는 우牛와 대對의 반절이다.라고 하니 배내 귀머거리이고, 또한 몽롱蒙籠뒤의 글자는 로盧와 강江의 반절이다.이라고 하니, 명료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저抵”도都와 례禮의 반절이다.는 거부하는 것(拒)이고, 막는 것(摧)이다. “돌突”도徒와 골骨의 반절이다.은 부딪치는 것이다. “이리”란 탐욕의 허물을 나타낸 것이다.

㉯ 친척을 짝하여 허물을 드러냄

ㄱ. 연모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음

“어떤 때는 가족(家室)인 부자ㆍ형제ㆍ부부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살아남으면 번갈아 가며 서로 슬퍼한다. 은애하고 사모하여 근심스런 생각이 심신을 묶고 마음은 비통하고 집착하는 마음 여전하니, 이렇게 갈마들면서 서로 연모한다. 이렇게 하면서 날이 가고 해가 다해도 벗어나지 못한다. 도덕을 가르쳐도 마음이 밝게 열리지 않고 은혜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며 정욕을 여의지 않는다. 어리석고 막혀서 어리석음에 가려지니, 깊이 생각하고 깊이 헤아리며 마음을 스스로 바르게 다잡아서 오로지 정밀하게 도를 행하고 세속의 일을 끊어 내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이렇게 지내는 사이에 세월이 빨리 흘러 마지막 날에 이르고, 주어진 수명을 마쳐 다하도록 도를 얻지 못해도 어찌할 수 없다.”
經曰。 或時。 家室。172) 父子兄弟夫婦。 一死一生。 更相哀愍。 恩愛思慕。 憂念結縛。 心意痛著。 迭相顧戀。 窮日卒歲。 無有解已。 敎語道德。 心不開明。 思想恩好。 不離情欲。 惛曚閉塞。 愚惑所覆。 不能深思熟計。 心自端政。 專精行道。 決斷世事。 便旋至竟。 年壽終盡。 不能得道。 無可奈何者。

이것은 나중에 친척을 짝하여 허물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연모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예기禮記』에서 “30세이면 장壯이라고 하는데 실室을 갖는다.”라고 했고,

002_0068_a_01L
經曰更相瞻視至無一怪也者

002_0068_a_02L
述云此次承習無信也令亦敎也
002_0068_a_03L者昔也不爲善者無行不識道德者
002_0068_a_04L無解身者色根神者性也心者果也
002_0068_a_05L意者根也趣者果也道者因也卽世
002_0068_a_06L出善惡因果皆不能知無一怪者
002_0068_a_07L無怪行也

002_0068_a_08L
經曰生死常道至甚可傷者

002_0068_a_09L
述云此後正申癡過有二此初對父
002_0068_a_10L子以顯其過也有說少者早夭老者
002_0068_a_11L後死故云顚倒不報上下死之同然
002_0068_a_12L故云上下非也若如所言應云顚倒
002_0068_a_13L不報上人下人故今卽顚倒者卽相
002_0068_a_14L錯之義上者上昇下者下墜故
002_0068_a_15L道相錯或昇善趣或墜惡趣故云上下

002_0068_a_16L
無常根本者卽無一常本之業當者
002_0068_a_17L受也蒙又作曚莫公
[262] 蒙覆不明也
002_0068_a_18L鳴央
暗昧無知也曚有眸子而無
002_0068_a_19L見也又曚下牛
對反
生聾又蒙籠盧 [263]
002_0068_a_20L [264] 蒙籠 [265] 謂不明了也都禮
拒也摧
002_0068_a_21L徒骨
觸冒也狼者貪過也

002_0068_a_22L
經曰或時家室至無可奈何者

002_0068_a_23L
述云此後對親戚以顯過有二此初
002_0068_a_24L戀著不能解也禮記三十壯有室

002_0068_b_01L현공玄公(鄭玄)173)이 (주석하기를) “‘실室을 갖는다’라는 것은 아내를 갖는 것이다.”라고 했다. 생각건대 『논어』에서 “유由174)는 (도의 단계를 비유하면) 마루(堂)에 올랐고 아직 방(室)에는 들어오지 않은 상태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의 실室과 의미가 상통하는 것 같다.)
“졸卒”이란 마치는 것이다. “편선便旋”이란 빠른 것이다.

ㄴ. 악을 지어 고통의 과보를 받음

ㄱ) 탐욕을 일으켜 세상일을 추구함

“온통 더럽고 어리석고 어지러운 가운데 모두 애욕을 탐한다. 도를 알지 못하는 이는 많고, 이를 깨달은 이는 적어 세간사에만 바쁘고 즐겨 의지할 만한 이는 없다. 지위가 높은 이거나 낮은 이거나,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고통을 감수하며 바쁘게 힘써 추구한다.”
經曰。 總猥憒擾。 皆貪愛欲。 惑道者衆。 悟之者寡。 世間怱怱。 無可聊賴。 尊卑上下。 貧富貴賤。 勤苦怱務者。

이것은 나중에 악을 지어 고통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탐욕을 일으켜 세상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외猥”오烏와 죄罪의 반절이다.는 더러운 것(惡)이다. 『자림字林』에서는 “중衆이다.”라고 했고, 『광아廣雅』에서는 “돈頓이다.”라고 했다. 또한 잡雜이라는 뜻도 있다. “우擾”란 어지러운 것이다.
“총怱”은 또한 종忪이라고도 하는데, 고문古文에서는 종伀지之와 용容의 반절이다.이라 했다. 『방언方言』에서 “‘정종佂伀’은 황급한 것이다.”라고 했다. “뢰賴”락洛과 대代의 반절이다.란 『효경孝經』에서 “한 사람에게 경사慶事(착한 일)가 있으면 온 백성이 이것에 의지하여 덕을 본다.”라고 했고, 그 주석에서 “‘뢰賴’는 몽蒙(은덕을 입는 것)이다.”라고 했다. “료聊”란 즐거운 것(甘)이다.

ㄴ) 분노를 일으켜 살해함

“이 과정에서 각각 살해하려는 독기를 품는데 악한 기운이 깊어지면서 망령되이 일을 일으켜 온 세상을 거스르고 인심人心을 좇지 않는다.”
經曰。 各懷殺毒。 惡氣窈冥。 爲妄興事。 違逆天地。 不從人心者。

이것은 두 번째로 분노를 일으켜 살해하는 것이다.

ㄷ) 고통의 과보에서 벗어나기 어려움

“(과거세에 지은 죄의 힘으로) 저절로 비법非法과 악연惡緣을 불러 모으고, 앞선 것을 따라서 이것과 함께하고, 이어서 멋대로 그렇게 행위하는 것을 허락하여 그 죄의 극단까지 도달한다. 그 수명이 다하기 전에 바로 목숨을 빼앗겨 악도에 떨어져 오랜 세월 고통을 당한다. 그 세계를 전전하며 수천억 겁이 지나도 빠져나올 기약이 없다.”
經曰。 自然非惡。 先隨與之。 恣聽所爲。 待其罪極。 其壽未盡。 便頓奪之。 下入惡道。 累世勤苦。 展轉其中。 數千億劫。 無有出期者。

이것은 세 번째로 고통의 과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악을 지은 사람은 과거에 지은 죄의 힘이 저절로 비법과 악연을 불러 모아 이것을 따르고 함께하기 때문에 “저절로 비법과 악연을 불러 모으고, 앞선 것을 따라서 이것과 함께하고”라고 했다. “멋대로 그렇게 행위하는 것을 허락하여”란 곧 악을 짓는 것이 자유자재하여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다.
“대待”란 또한 지至(도달하다)라고도 한다.

ㄹ) 마음 아파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싫어하는 마음을 내게 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매우 슬프고 불쌍해할 만한 일이다.”
經曰。 痛不可言。 甚可哀愍者。

이것은 네 번째로 마음 아파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싫어하는 마음을 내게 한 것이다.

② 사람들에게 권하여 수행하고 버리게 함

가. 바로 수행하고 버릴 것을 권함

가) 권하여 수행하게 함

부처님께서 미륵보살과 여러 하늘과 사람 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 세간의 일을 말했다. 사람들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도를 얻지 못한다. 잘 생각하여 온갖 악을 멀리 여의며 선한 것을 택하여 부지런히 행하라. 애욕과 영화는 영원히 보존할 수 없다. 모두 결국에는 떠나가고 마는 것이니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그러한 시간이 이르렀을 때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지극한 마음으로 안락국에 태어나기를 소원하는 사람은 밝게 통달하는 지혜와 뛰어난 공덕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경계經戒(계율)를 이지러뜨리고 어기며 (착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뒤에 서 있는 일을 하지 말라.”
經曰。 佛告彌勒菩薩諸天人等。 我今語汝世間之事。 人用是故。 坐不得道。 當熟思計。 遠離衆惡。 擇其善者。 勤而行之。 愛欲榮華。 不可常保。 皆當別離。 無可樂者。 曼佛在世。 當勤精進。 其有至心。 願生安樂國者。 可得智慧明達。 功德殊勝。 勿得隨心所欲。 虧負經戒。 在人後也者。

이것은 두 번째로 사람들에게 권하여 수행하고 버리게 한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바로 수행하고 버릴 것을 권한 것이고, 둘째 미륵이 깨달은 것이며, 셋째 거듭해서 수행하고 버릴 것을 권한 것이고, 넷째 거듭해서 미륵이 깨달은 것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권하여 수행하게 한 것이다. 하늘과 인간으로 하여금 빨리 좇아서 수행하고 버리게 하기 위해서 다시 미륵을 마주하여 이것을 권해야 한 것이다.
“세간의 일”이란 곧 앞에서 설한 삼독三毒(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과 관련된 일이다. “용用”이란 이以(~ 때문에)이고, “좌坐”란 유由(말미암다)이다.

002_0068_b_01L公曰有室有妻也蓋論語由也升堂
002_0068_b_02L未入室也卒者終也便旋者疾

002_0068_b_03L
經曰總猥憒擾至勤苦怱務者

002_0068_b_04L
述云此後造惡受苦報有四此初發
002_0068_b_05L貪追求也烏罪
惡也字林衆也廣雅
002_0068_b_06L頓也又雜也擾者亂也怱又作忪
002_0068_b_07L之容
方言 [266] [267] 遑遽洛代

002_0068_b_08L
經曰 [268] 一人有慶兆民賴之

002_0068_b_09L
1) [121] [269] 賴蒙也聊者甘也

002_0068_b_10L
經曰各懷殺毒至不從人心者

002_0068_b_11L
述云此第二起嗔殺害也

002_0068_b_12L
經曰自然非惡至無有出期者

002_0068_b_13L
述云此第三苦報難出也作惡之人
002_0068_b_14L宿罪之力自然招集非法惡緣隨而與
002_0068_b_15L故云自然非惡先隨與之恣聽者
002_0068_b_16L卽作惡自在無懼之義待亦作至

002_0068_b_17L
經曰痛不可言甚可哀愍者

002_0068_b_18L
述云此第四傷令生厭也

002_0068_b_19L
經曰佛告彌勒至在人後也者

002_0068_b_20L
述云此第二勸人脩捨有四一正勸
002_0068_b_21L脩捨二彌勒領解三重勸脩捨四重彌
002_0068_b_22L勒領解初又有二此初勸令修行也
002_0068_b_23L欲令天人疾從脩捨故更對彌勒而須
002_0068_b_24L勸之世間事者卽前三毒之事用者

002_0068_c_01L세상 사람들은 이 삼독과 관련된 일 때문에 진여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도를 떠나 멀어지기 때문에 “도를 얻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부負”란 위違(어기는 것)이다.

나) 권하여 청문하게 함

“만약 경법에 대해 의심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모두 부처님께 물어도 좋다. 너희들을 위해 설명해 줄 것이다.”
經曰。 儻有疑意。 不解經者。 可具問佛。 當爲說之者。

이것은 나중에 권하여 청문請問하게 한 것이다.
“당儻”은 약若(만약)이고, 설設(가령, 만약)이다.

나. 미륵의 깨달음

가)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수순함

미륵보살이 무릎을 꿇어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위신이 존중하고, 하신 말씀은 즐겁고 선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사무치게 이것을 생각했더니, 세상 사람들은 진실로 이와 같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經曰。 彌勒菩薩。 長跪白言。 佛威神尊重。 所說快善。 聽佛經語。 貫心思之。 世人實爾。 如佛所言者。

두 번째로 (미륵이) 깨달은 것이다. 여기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수순한 것이다.
“관貫”이란 통通이다. 마음에 사무치게 이것을 생각했더니 세상 사람들은 진실로 삼독과 관련된 일을 따르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도를 얻지 못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 부처님께서 드리운 자비의 이익을 깨달음

“이제 부처님께서 자비와 연민으로 대도大道를 나타내 보임으로써 저희의 귀가 열리고 눈이 밝아져서 길이 해탈을 얻게 되었으니,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여러 하늘과 인민과 땅을 기어 다니는 미물까지도 모두 자애로운 은혜를 받아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經曰。 今佛慈愍。 顯示大道。 耳目開明。 長得度脫。 聞佛所說。 莫不歡喜。 諸天人民。 蠕動之類。 皆蒙慈恩。 解脫憂苦者。

이것은 두 번째로 부처님의 자비의 이익을 깨달은 것이다.

다) 부처님의 말씀이 심오하고 선함을 찬탄함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은 매우 심오하고 매우 훌륭하며, 지혜에 의해 밝게 보아 팔방과 상하 그리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일을 두루 알아 끝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經曰。 佛語敎誡。 甚深甚善。 智慧明見。 八方上下。 去來今事。 莫不究暢者。

이것은 세 번째로 부처님의 말씀이 심오하고 훌륭한 것을 찬탄한 것이다.
“매우 심오하고 (매우) 훌륭하며”란 가르침의 이익이 심오함을 찬탄한 것이다.
“지혜에 의해 밝게 보아”란 지혜가 두루 통달한 것을 찬탄한 것이다. 공간적으로 시방에 통달하기 때문에 “팔방과 상하”라고 했고, 시간적으로 삼세에 통하기 때문에 “과거ㆍ미래ㆍ현재”라고 했으니, 끝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할 만하다.

라) 거듭해서 부처님의 은혜를 깨달음

“지금 저희들이 은혜를 입고 해탈하게 된 까닭은 모두 부처님께서 전생에 불도를 구할 때 겸허하게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도달한 것이니, (그 결과) 은혜와 공덕이 (중생을) 두루 덮은 것입니다.175) (그 자신은) 복록은 드높고 광명은 환히 비추며, 공의 이치에 통달하여 남은 것이 있지 않으며, (중생에 대해서는) 열반의 도를 열어 들어가게 하고, 경전의 온갖 이치를 가르쳐서 익히게 하며, (성품이 견고하여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은) 위엄 있는 덕으로 제어하여 저항하는 마음을 없애고 성인의 교화에 귀의하게 하며, (성품이 착하고 유연한 중생은 자비에 의해 섭수하여) 시방세계의 중생이 감동하는데, 그 숫자는 다함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176) 부처님께서는 법왕으로서 존귀함이 온갖 성인을 넘어서는 분이시니, 모든 하늘과 사람의 스승이 되어 중생이 마음으로 소원하는 것에 따라 모두 도를 얻게 하십니다.”
經曰。 今我衆等。 所以蒙得度脫。 皆佛前世求道之時。 謙苦所致。 恩德普覆。 福祿巍巍。 光明徹照。 達空無極。 開入泥洹。 敎授典攬。 威制消化。 感動十方。 無窮無極。 佛爲法王。 尊超衆聖。 普爲一切天人之師。 隨心所願。 皆令得道者。

이것은 네 번째로 거듭해서 부처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이다.
“겸허하게 고통을 감수함으로써”란 원인이고, “은혜와 공덕”이란 결과이다. “겸謙”은 또한 각恪이라고도 하는데, 고문古文에서는 각愙고苦와 각各의 반절이다.이라 했다. 『자림』에서 “각恪은 공경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겸謙”이란 자신을 낮추는 말이다. “고苦”란 고행이다.
“복록은 드높고 광명은 환히 비추며”란 스스로 얻은 복이 뛰어난 것이고, “공의 이치에 통달하여 남은 것이 있지 않으며”란 스스로 얻은 지혜가 뛰어난 것이다.
“열반의 도를 열어 들어가게 하고”란 중생을 교화하여 멸滅(열반)을 얻게 한 것이고, “경전의 온갖 이치를 가르쳐 익히게 하며(敎授典攬)”란 가르쳐서 도를 닦게 하는 것이다. “전典”이란 상常이니, 상도常道를 펼쳤기 때문이다. 『광아廣雅』에서 “전典은 주主이다.”라고 하였다. “람攬”이란 손에 두고서 살피는 것이고,

002_0068_c_01L以也坐者由也世人以是三毒事不得
002_0068_c_02L歸眞去道遠故云不得道負者違也

002_0068_c_03L
經曰儻有疑意至當爲說之者

002_0068_c_04L
述云此後勸令請問也儻若也設也

002_0068_c_05L
經曰彌勒菩薩至如佛所言者

002_0068_c_06L
述云第二領解有五此初信順佛語
002_0068_c_07L貫者通也通心思之世人實隨三
002_0068_c_08L毒之事坐不得道如佛說故

002_0068_c_09L
經曰今佛慈愍至解脫憂苦者

002_0068_c_10L
述云此第二領佛慈利也

002_0068_c_11L
經曰佛語敎誡至莫不究暢者

002_0068_c_12L
述云此第三歎說深善也甚深善者
002_0068_c_13L歎敎利深智慧明見者歎智普達
002_0068_c_14L達十方故八方上下竪通三世故去來
002_0068_c_15L可謂莫不究暢

002_0068_c_16L
經曰今我衆等至皆令得道者

002_0068_c_17L
述云此第四重領佛恩也謙苦者因
002_0068_c_18L恩德者果也 [270] 又作恪古文
002_0068_c_19L2) [122]
字林恪恭敬也謙者退己之言
002_0068_c_20L苦者苦行福祿光明者自福殊勝
002_0068_c_21L空無極者自智殊勝開入泥洹者
002_0068_c_22L物獲滅敎授典攬者敎令修道典者
002_0068_c_23L常也申常道故廣雅典主也攬者
002_0068_c_24L「註」疑「述」{編}「若」疑「苦」

002_0069_a_01L또한 취하는 것이다. 상도常道와 관련하여 이치를 취하기 때문에 “전람典攬”이라 한다. 여기에서의 뜻은 도법道法을 열어 인도하기 때문에 “교수敎授”라고 하고, 이 경전으로 온갖 뜻을 취하여 그들로 하여금 익히게 하기 때문에 “전람”이라 한다. 곧 지혜에 의해 교화한 것이다.
성품이 견고하여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은 위엄 있는 덕으로 제어하여 그들로 하여금 저항하는 마음을 없애고 항복하고 성인의 교화에 귀의하여 좇도록 하기 때문에 “위엄 있는 덕으로 제어하여 저항하는 마음을 없애고 성인의 교화에 귀의하게 하며”라고 하였다. 착하고 유연한 중생은 자비의 힘으로 섭취하기 때문에 “시방세계의 중생이 감동하는데”라고 했고, 연緣이 있으면 바로 포섭하기 때문에 “다함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곧 복덕에 의해 교화한 것이다.

마)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펼침

“이제 부처님을 만나 뵙고 다시 무량수불에 대한 말씀을 들었으니 기쁘지 않음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마음이 열리고 밝아졌습니다.”
經曰。 今得値佛。 復聞無量壽聲。 靡不歡喜。 心得開明者。

이것은 다섯 번째로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펼친 것이다.

다. 거듭해서 수행하고 버릴 것을 권함

가) 깨달은 내용을 찬탄하고 인가함

㉮ 앞에서 미륵이 부처님의 교설을 찬탄한 것을 인가함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말한 것이 옳다.”
經曰。 佛告彌勒。 汝言。 是也者。

세 번째로 거듭해서 수행하고 버릴 것을 권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깨달은 내용을 찬탄하고 인가한 것이고, 다음은 바로 수행할 것을 권한 것이며, 나중은 의혹을 버리도록 권한 것이다. 처음에 또한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앞에서 (미륵이) 부처님의 교설을 찬탄한 것을 인가한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즐거운 것177)이고, 매우 심오하고 매우 훌륭한 것178)”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하기 때문에 “옳다”라고 한 것이다.

㉯ (앞에서 미륵이)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을 깨달은 것을 찬탄함

ㄱ. 바로 부처님을 만나는 것의 어려움을 밝혀서 찬탄함

“만약 부처님을 자애하고 공경하는 이가 있다면 진실로 큰 선善을 쌓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야 다시 부처님이 출현하실 것이다.”
經曰。 若有慈敬於佛者。 實爲大善。 天下久久。 乃復有佛者。

이것은 다음에 (앞에서 미륵이)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을 깨달은 것을 찬탄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바로 부처님을 만나는 것의 어려움을 밝혀서 찬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석가불 자신을 만나는 것의 어려움을 펼친 것이다.≻179)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부復”라고 말했으니, 반드시 미래의 존재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곧 미륵이 성불할 때를 나타낸 것이다.

ㄴ. (석가불) 자신이 교화하여 이익을 준 것을 펼침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부처가 되어 경법을 연설하고 도교를 펼쳐서 유포하여 온갖 의심의 그물을 끊고 애욕의 뿌리(本)를 뽑았으며, 온갖 악의 근원(源)을 막았다. 삼계를 유유자적하게 노닐며 교화함에 있어서 구애받는 것이 없었고, 경전의 핵심적인 뜻을 취하여 지혜를 얻게 하고 온갖 도리의 요체를 알게 하였다. 강유綱維(계율)를 제시하여 행위를 제어하고 (바른 것과 삿된 것을) 밝게 드러내어 분명하게 알도록 하며, 오취五趣의 중생에게 도리를 열어 보임으로써 아직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네어 생사를 끊고 바로 열반에 들어가게 하였다.”
經曰。 我今。 於此世作佛。 演說經法。 宣布道敎。 斷諸疑網。 拔愛欲之本。 杜衆惡之源。 遊步三界。 無所拘礙。 典攬智慧。 衆道之要。 執持綱維。 昭然分明。 開示五趣。 度未度者。 決正生死涅槃180)之道者。

이것은 나중에 (석가불) 자신이 교화하여 이익을 준 것을 펼친 것이다. 곧 수왕樹王(보리수) 아래에서 불도를 이루어 날원捺苑(녹야원)에서 법륜을 굴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처음으로 진여陳如181)의 의심을 끊었기 때문에 “온갖 의심의 그물을 끊고”라고 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의심을 끊으셨으니, 진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곧 “의심을 끊고 애욕을 뽑았으며”란 번뇌를 여의도록 한 것이고,

002_0069_a_01L之在手又取也常道攬理故云典攬
002_0069_a_02L此中意言道法開導故云敎授以此
002_0069_a_03L經典要攬衆義令其習故云典攬
002_0069_a_04L智化也剛强衆生威德制御令其消
002_0069_a_05L歸從聖化故云威制消化善軟衆
002_0069_a_06L慈力攝取故感十方有緣斯攝
002_0069_a_07L無窮極卽福化也

002_0069_a_08L
經曰今得値佛至心得開明者

002_0069_a_09L
述云此第五申自喜慶也

002_0069_a_10L
經曰佛告彌勒汝言是也者

002_0069_a_11L
述曰第三重勸脩捨有三初嘆印領
002_0069_a_12L次正勸修行後勸捨疑惑初又有
002_0069_a_13L此初印前嘆說也佛說快甚深甚
002_0069_a_14L言當其理故曰是也

002_0069_a_15L
經曰若有慈敬至乃復有佛者

002_0069_a_16L
述云此次嘆領荷恩有二此初正嘆
002_0069_a_17L彰佛難値也有說申己難値非也
002_0069_a_18L必是顯當有故今卽標彌勒成佛
002_0069_a_19L之時也

002_0069_a_20L
經曰我今於此世至涅槃之道者

002_0069_a_21L
述云此後申己化益卽樹王成道捺苑
002_0069_a_22L轉法輪也有說創斷陳如之疑故言
002_0069_a_23L斷諸疑網者非也佛決物疑非局陳
002_0069_a_24L如故
今卽斷疑拔欲者令離煩惱

002_0069_b_01L“온갖 악의 근원을 막았다.”란 악업을 여의게 한 것이다. “두杜”란 막는 것이다. 의심과 애욕은 이혹利惑과 둔혹鈍惑이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뿌리”라고 했고, 악업은 총고總苦와 별고別苦가 흘러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근원(源, 물이 발원하는 곳)”이라 했다. 곧 구업口業에 의거한 교화가 이것이다.
하늘과 인간을 통틀어서 오직 부처님만 홀로 존귀하기 때문에 “삼계를 유유자적하게 노닐며”라고 했다. 중생을 교화함이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구애받는 것이 없었고”라고 했다. 곧 신업身業에 의한 교화이다.
경전을 잘 풀이하여 온갖 뜻에서 핵심을 취하도록 하기 때문에 “경전의 핵심적인 뜻을 취하여 지혜를 얻게 하고”라고 했고, 삼승이 행하는 도를 갖추어서 풀이했기 때문에 “온갖 도리의 요체”라고 했다. 곧 의업意業에 의한 교화이다.
“강유綱維”란 강기綱紀182)와 같은 부류이다. 계율을 제정하여 대중을 제어하기 때문에 “행위를 제어하고”라고 했다. 바른 것을 드러내어 삿된 것을 간별하기 때문에 “밝게 드러내어 분명하게 알도록 하며”라고 했다. 온갖 중생을 널리 교화하기 때문에 “오도의 중생에게 도리를 열어 보임으로써”라고 했다. 고통의 바다를 넘게 하기 때문에 “아직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네어”라고 했다. 생사를 끊어서 벗어나게 하고, 열반을 열어서 들어가게 한다. 곧 가르쳐서 널리 교화하는 것이다.

㉰ (석가불께서 미륵이)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듣게 된 것을 기뻐함

ㄱ. 미륵과 관련된 일의 시종을 펼침

“미륵이여, 마땅히 알라. 그대는 무수겁無數劫 동안 보살행을 닦으면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했으니,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인해 도를 얻어 열반에 이른 중생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經曰。 彌勒當知。 汝從無數劫來。 修菩薩行。 欲度衆生。 其已久遠。 從汝得道。 至于泥洹。 不可稱數者。

이것은 나중에 (석가불께서 미륵이)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듣게 된 것을 기뻐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미륵과 관련된 일의 시종을 펼친 것이다.

ㄴ. 중생과 관련된 일의 본말을 나타냄

“그대와 시방의 여러 하늘과 인민과 일체의 사중四衆183)은 영겁永劫 동안 오도五道를 전전하면서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 고통에 시달려 왔는데, 그 실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經曰。 汝及十方諸天人民一切四衆。 永劫已來。 展轉五道。 憂畏勤苦。 不可具言者。

이것은 다음에 중생과 관련된 일의 본말을 나타낸 것이다.
“영永”이란 길다(長)는 뜻이다.

ㄷ. 여래께서 바로 기뻐함

“지금 세상에 이르러서도 생사는 끊어지지 않았는데, 부처님을 만나 경법을 듣고 또한 다시 무량수불에 대한 말씀을 들었으니, 즐겁구나. 매우 훌륭한 일이다. 내가 그대를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
經曰。 乃至今世。 生死不絕。 與佛相値。 聽受經法。 又復得聞無量壽佛。 快哉甚善。 吾助汝184)喜者。

이것은 나중에 여래께서 바로 기뻐하신 것이다. 오래되고 먼 원인을 빌어서 부처님을 만나서 법을 들었으니, 곧 기뻐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 수행을 권함

㉮ 바로 수행하고 버릴 것을 권함

“그대는 지금 또한 스스로 태어나고 죽으며 늙는 것에 의한 내적인 고통(病苦)185)과 외적인 고통(痛苦)186)을 싫어해야 한다. (생사윤회하는 이 몸은) 더러운 액체가 흘러나오는 청정하지 않은 것으로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니 스스로 끊어 버려야 한다.187) 몸을 단정하게 하고 바르게 행하여 온갖 선을 더욱 많이 지어야 한다. 자신을 닦아 몸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의 때를 씻어 없애며, 언행은 충실하고 믿을 만하여 겉과 속이 상응하게 해야 한다. 사람이 능히 스스로를 제도하고 나면 전전하면서 서로 건져 주고 구제하며 정성스럽고 깨끗한 마음으로 서원을 일으켜 추구하고 선의 근본을 쌓아야 한다.”
經曰。 汝今亦可自厭生死老病痛苦。 惡露不淨。 無可樂者。 宜自決斷。 端身正行。 益作諸善。 修己潔體。 洗除心垢。 言行忠信。 表裏相應。 人能自度。 轉相拯濟。 精明求願。 積累善本者。

두 번째로 수행할 것을 권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바로 수행하고 버릴 것을 권한 것이다.
“병病”이란 내적인 고통이고, “통痛”이란 외적인 고통이다.

㉯ 이익을 들어 수행하게 함

“비록 일생 동안 애쓰며 힘들어 하겠지만 그 모든 것은 잠깐이면 지나가고 다음 생에 무량수불의 국토에 태어나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 다함이 없으며, 길이 도덕과 계합하고 밝게 빛나는 지혜와 계합하여 영원히 생사의 근본을 뿌리 뽑고, 또한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 등과 같은 고뇌에 의해 근심하는 일이 없으며, 1겁, 백 겁, 천만억 겁을 살고자 하면 뜻대로 자유자재하게 그만큼의 수명을 얻을 수 있다. (정토에서는) 모든 것이 의도적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니 열반의 도에 버금간다.”
經曰。 雖一世勤苦苦。 須臾之間。 後生無量壽佛國。 快樂無極。 長與道德合明。 永拔生死根本。 無復貪恚愚癡苦惱之患。 欲壽一劫百劫千萬億劫。 自在隨意。 皆可得之。 無爲自然。 次於涅槃188)之道者。


002_0069_b_01L衆惡源者令離惡業杜者塞也疑愛
002_0069_b_02L是利鈍惑之所由故言本也惡業
002_0069_b_03L總別苦之所流故云源也卽口業化
002_0069_b_04L是也
天上人間唯佛獨尊故遊步三
002_0069_b_05L化之縱任故無所拘礙卽身業化
002_0069_b_06L
善閑 [271] 經典要攬衆義故典攬智慧
002_0069_b_07L備解三乘所行之道故衆道之要
002_0069_b_08L意業化也
綱維者猶綱紀之屬制戒
002_0069_b_09L御衆故云執持顯正以簡邪故照 [272]
002_0069_b_10L分明廣化群品故開示五道令越苦
002_0069_b_11L故度未度決生死而令出 [273] 涅槃
002_0069_b_12L而令入卽敎之弘化也

002_0069_b_13L
經曰彌勒當知至不可稱數者

002_0069_b_14L
述云此後慶値佛聞法有三此初申
002_0069_b_15L彌勒始終也

002_0069_b_16L
經曰汝及十方至不可具言者

002_0069_b_17L
述云此次標衆生本末也永者長也

002_0069_b_18L
經曰乃至今世至吾助汝喜者

002_0069_b_19L
述云此後如來正慶也藉久遠因
002_0069_b_20L佛聞法卽可慶喜故

002_0069_b_21L
經曰汝今亦可至積累善本者

002_0069_b_22L
述云第二勸修行有二此初正勸脩
002_0069_b_23L捨也病者內苦痛者外苦

002_0069_b_24L
經曰雖一世勤苦至涅槃 [274] 之道者

002_0069_c_01L
이것은 나중에 이익을 들어 수행하게 한 것이다.
몸이 복덕과 함께하기 때문에 “도덕과 계합하고”라고 했고, 마음이 지혜와 함께하기 때문에 “밝게 빛나는 지혜와 계합하여”라고 했다.

다) 의혹을 버릴 것을 권함

“너희들은 각각 정진하여 마음에 세운 소원을 이룰 것을 추구하고, 의혹을 일으키고 도중에 후회하여 스스로 허물이 되는 일을 지음으로써 극락정토의 변지에 있는 칠보로 이루어진 궁전에 태어나 5백 세 동안 온갖 불행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經曰。 汝等。 宜各精進。 求心所願。 無得疑惑。 中悔。 自爲過咎。 生彼邊地。 七寶宮殿。 五百歲中。 受諸厄也者。

이것은 세 번째로 의혹을 버릴 것을 권한 것이다.
백연본과 지겸본에서 중배와 하배를 밝히면서 (도중에 의심하는 사람에 대해서) 모두 말하기를 “그 부처님의 국토에 왕생하지만 아미타불의 처소 바로 앞에 이르지는 못한다. 곧 국토의 변지에서 칠보로 이루어진 성을 보고 기뻐하면서 그 성에 머물며, 바로 칠보로 이루어진 연못에 있는 연꽃 속에 화생하여 저절로 장대해져서 이곳에서 5백 세 동안 머문다. 그 성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2천 리이고, 성안에는 또한 칠보로 이루어진 집이 있으며, 집 안에는 모두 칠보로 이루어진 욕지浴池가 있고, 욕지에는 또한 연꽃이 있다.”189)라고 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칠보로 이루어진 궁전”이라고 한 것은 그 성안에 있는 보배로 이루어진 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성에서 즐거움을 누린다고 하면서 이 경(『무량수경』)에서 그 성에서의 즐거움을 “도리천忉利天과 같다.”190)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온갖 불행을 겪는다.”라고 한 것은, 삼보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에서 설한 것에 의지하여 그 국토에도 또한 우근憂根이 있다고 하면, “온갖 불행”이란 곧 우수憂受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세간의 수受는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고苦라고 하지는 않는다. 만약 정토는 몸과 마음이 유연하여 우수가 없다고 설한 것에 따르면, 오직 염厭과 함께하는 것일 뿐이니, 세간에서 벗어나고 세간을 버렸으니 근심과 슬픔(憂慼)이 없기 때문이다.
근심이 있건 근심이 있지 않건 모두 부처님을 친견하는 데 장애가 되는데, 이러한 허물은 의혹에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경계하고 권장하기를 “의혹을 일으키고 도중에 후회하여 (스스로) 허물이 되는 일을 지음으로써 (극락정토의 변지邊地에 있는 칠보로 이루어진 궁전에 태어나 5백 세 동안 온갖 불행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라) (거듭해서) 미륵이 깨달은 것

미륵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의 귀중한 가르침을 받았으니 오로지 정밀하게 닦고 배워 가르치신 대로 받들어 행하며 감히 의심하는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
經曰。 彌勒白言。 受佛重誨。 專精修學。 如敎奉行。 不敢有疑者。

이것은 네 번째로 미륵이 깨달은 것이다.
“받들어 행하며”란 앞에서 수행을 권하는 말씀을 깨달았으니, 자신이 받들어 행할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의심하는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란 의심을 버릴 것을 권한 것을 깨달았으니, 스스로 의심하지 않을 것을 펼친 것이다.

③ 자세하게 업의 고통을 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싫어하여 버리게 함

가. 앞에서 미륵이 깨닫고 받들어 행한 것을 찬탄함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르게 하여 온갖 악을 짓지 않는다면 이는 매우 지극한 덕을 쌓는 것이다. 그것은 시방세계에서 짝할 것이 없는 가장 뛰어난 일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거주하는 하늘과 사람의 부류는 (뛰어난 업의 과보로 인해) 저절로 선을 행하고 두루 악을 행하지 않으니, 가르침을 열어 교화하기가 쉽기 때문이다.”191)
經曰。 佛告彌勒。 汝等。 能於此世。 端心正意。 不作衆惡。 甚爲至德。 十方世界。 最無倫匹。 所以者何。 諸佛國土天人之類。 自然作善。 不大爲惡。 易可開化者。


002_0069_c_01L
述云此後擧利令修也身與福俱
002_0069_c_02L道德合心與智俱故云合明

002_0069_c_03L
經曰汝等宜各至受諸厄也者

002_0069_c_04L
述云此第三勸捨疑惑也帛謙本中
002_0069_c_05L辨中下輩皆云生彼佛國不能前至彌
002_0069_c_06L陀佛所便見國界邊七寶城喜止其
002_0069_c_07L卽於七寶池蓮華化生自然長大
002_0069_c_08L於是間五百歲其城縱廣各二千里
002_0069_c_09L城中亦有七寶舍宅宅中皆有七寶浴
002_0069_c_10L浴池中亦有蓮華故此中言七寶
002_0069_c_11L宮殿者蓋彼城內寶舍宅也彼城受
002_0069_c_12L此經曰如忉利天而受諸厄者
002_0069_c_13L能見聞三寶故1) [123] 此說彼土亦有
002_0069_c_14L憂根者諸厄卽憂受而出世受故不
002_0069_c_15L名苦2) [124] 諸說淨土身心柔軟無憂受
002_0069_c_16L唯是厭俱世出世捨非憂慼故
002_0069_c_17L憂非憂皆障見佛咎從疑惑故誡勸
002_0069_c_18L無得疑惑中悔爲過

002_0069_c_19L
經曰彌勒白言至不敢有疑者

002_0069_c_20L
述云此第四彌勒領解也奉行者
002_0069_c_21L前勸脩之言彰已 [275] 奉行不疑者領勸
002_0069_c_22L捨疑申自不疑

002_0069_c_23L
經曰佛告彌勒至易可開化者

002_0069_c_24L「作」疑「依」「苦」疑「若」

002_0070_a_01L
세 번째로 자세하게 업의 고통을 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싫어하여 버리게 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앞에서 깨달은 것과 받들어 행한 것을 찬탄한 것이고, 나중은 바로 업의 고통을 펼친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곧 미륵이 깨닫고 받들어 행한 것을 찬탄한 것이다.

나. 바로 업의 고통을 펼쳐서 싫어하여 버리도록 함

가) 간략하게 풀이함

㉮ 버리게 하고 여의게 함

“지금 내가 이 세간에서 부처가 되어 오악五惡ㆍ오통五痛ㆍ오소五燒에 처하여 그것으로 인해 매우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군생들을 만났으니, 이러한 중생을 교화하여 오악을 버리게 하고 오통을 떠나게 하며 오소를 여의게 할 것이며,”
經曰。 今我於此世間作佛。 處於五惡五痛五燒之中。 爲最劇苦。 敎化群生。 令捨五惡。 令去五痛。 令離五燒者。

두 번째로 바로 업의 고통을 펼쳐서 싫어하여 버리게 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간략하게 풀이한 것이고, 다음은 개별적으로 풀이한 것이며, 나중은 총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처음에 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버리게 하고 여의게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오악은 원인이고, 통痛ㆍ소燒는 결과이다. 오악은 곧 오계五戒에 의해 방호해야 하는 것이다. 몸에 의해 짓는 세 가지 그릇된 행위인 살생ㆍ도둑질ㆍ음란한 행위 등이 차례대로 세 가지가 되고, 입으로 짓는 네 가지 그릇된 행위인 양설兩說(이간질)ㆍ악구惡口(추악한 말)ㆍ망어妄語(거짓말)ㆍ기어綺語(꾸미는 말) 등을 합하여 네 번째가 되며, 음주飮酒가 다섯 번째가 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원인에 대한 되갚음으로 오통五痛을 받는다. “통”이란 고수苦受(고통의 감수 작용)이고, “소燒”란 고구苦具(고통을 주는 도구)이다. “통”이든 “소”이든 모두 지옥의 과보이다. 그러므로 앞의 문장에서 “임종할 때 한寒과 열熱이라는 (지옥의 과보가) 생겨나고 고통이 함께한다.”192)라고 했다.≻라고 하고, 마침내 다른 학자가 “≺오통은 인간 세상에서 받고, 오소는 지옥에서 받는 것이다.≻”193)라고 한 것을 힐책하기를 ≺이것은 경의 문구를 매우 잘못 판별하여 문장을 해치고 뜻을 상하게 한 것이다. 바로 “통”은 고수苦受이고, “소”는 고구苦具로 (상호 보완적인 것이어서) 인간 세상에서는 통은 감수하지만 고구苦具는 없고, 지옥에는 고구苦具는 있지만 통은 없는 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악을 지으면 먼저 악도惡道에 들어가 과보를 받고, 나중에 인간 세상에 태어나기 때문에 지옥에서 통ㆍ소의 과보를 받고 나서 그렇게 한 후에 인간 세상에 태어나 나머지 과보로서의 고통을 받는다.≻라고 했다.
이것은 아마도 옳지 않은 것 같다. “오악은 곧 오계에 의해 방호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 (옳다면 오계 중) 불망어계不妄語戒는 오직 망어만을 방호하는 것인데, 어찌 “입으로 짓는 네 가지 그릇된 행위인 양설兩說ㆍ악구惡口ㆍ망어妄語ㆍ기어綺語 등을 합하여 네 번째가 되며”라고 한 것을 바른 이치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194)
또한 “‘통’은 반드시 고구苦具를 겸하는 것이니, ‘소’에 어떻게 고수苦受가 없겠는가. 그러므로 인간 세상에는 고수는 있지만 고구는 없고, 지옥에는 고구는 있지만 고수는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통’과 ‘소’는 모두 지옥의 과보이다.)”라고 (주장했는데), 또한 예컨대 아사세왕阿闍世王195)이 그 부왕을 죽이고 나서 현세에서 온갖 고통을 받은 것과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반드시 먼저 (지옥에서) 통痛ㆍ소燒의 고통을 받고, 나중에 (인간 세상에서) 나머지 고통을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드시 그 주장이 타당하다면) 경에서 “화보華報”196)라고 한 것은, 응당 허언虛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도리어 비판의 대상이 된 주장197)을 그대로 둔다.

002_0070_a_01L
述云第三廣擧業苦令人厭捨有二
002_0070_a_02L初嘆前解行後正申業苦此初卽嘆
002_0070_a_03L彌勒領解奉行也

002_0070_a_04L
經曰今我於此至令離五燒者

002_0070_a_05L
述云第二正申業苦而令厭捨有三
002_0070_a_06L初略釋次別釋後總釋初又有二
002_0070_a_07L初令捨令離也有說五惡爲因痛燒
002_0070_a_08L爲果 [276] 五戒所防身三非爲三口四 [277]
002_0070_a_09L爲第四飮酒爲第五酬此五因卽受
002_0070_a_10L五痛痛者苦受燒者苦具若痛若燒
002_0070_a_11L皆地獄報故前文云臨終寒熱與痛
002_0070_a_12L苦俱遂彈餘家五痛人中受五燒在
002_0070_a_13L地獄云此太錯判經文害文傷義
002_0070_a_14L由不了痛是苦受燒是苦具不可人
002_0070_a_15L中受痛而無苦具地獄有苦具而無痛
002_0070_a_16L又作五惡先入惡道後生人中故
002_0070_a_17L地獄受痛燒報已然後生人受餘報苦

002_0070_a_18L
此恐不然若言五惡卽五戒所防者
002_0070_a_19L不妄語戒唯防妄語如何口四爲第四
002_0070_a_20L應正理耶又痛必兼具燒如何無
002_0070_a_21L故不可言人中有受而無具地獄
002_0070_a_22L有具而無受又如闍王殺其父王已
002_0070_a_23L現受衆苦必不可言先受痛燒後受
002_0070_a_24L餘苦經曰華報應成虛言故今還存

002_0070_b_01L
살생ㆍ도둑질ㆍ음란한 행위ㆍ망어ㆍ음주는 오악이고, 오통은 화보華報이니, 현세에서 왕법王法에 의해 감옥에 갇히고 몸은 액난을 만나는 것을 오통이라 하며, 삼악도에서 받는 과보를 오소라고 한다. 이러한 뜻이 아니라면 곧 (이 경에서) “세상에는 상도常道가 있고 왕법王法에 따라 치죄하기 위한 감옥이 있다.”라고 한 것 등의 여러 문장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 지니게 하고 얻도록 함

“그 뜻을 항복시켜 오선五善을 지니고 그에 따른 복덕을 얻으며, 세간에서 벗어나 장수하고 열반의 도를 얻게 할 것이다.”
經曰。 降化其意。 令持五善。 獲其福德。 度世長壽。 泥洹之道者。

이것은 나중에 지니게 하고 얻도록 한 것이다.
“오선”이란 오악을 방호하는 계이다. 오계를 수지함으로 말미암아 현세에서 온갖 고통을 없애기 때문에 “복덕을 얻으며”라고 했으니, 이것은 오통을 뒤집은 것이다.
후세에 서방 극락정토에 태어나 끝내 열반을 얻기 때문에 “세간에서 벗어나 장수하고 (열반의 도를 얻게 할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것은 오소五燒를 뒤집은 것이다.

나) 개별적으로 풀이함

㉮ 질문

ㄱ. 버리고 여의어야 할 것에 대해 질문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오악이고 무엇이 오통이며 무엇이 오소인가?”
經曰。 佛言。 何等爲五惡。 何等五痛。 何等五燒者。

두 번째로 개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질문한 것이고, 나중은 풀이한 것이다. 처음에 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버리고 여의어야 할 것에 대해 질문한 것이다.

ㄴ. 지니고 얻어야 할 것에 대해 질문함

“무엇이 오악을 소멸시키고 오선을 지녀 그에 따른 복덕을 누리게 하며, 세간에서 벗어나 장수하고 열반의 도를 얻도록 하는 것인가?”
經曰。 何等消化五惡。 令持五善。 獲其福德。 度世長壽。 涅槃之道者。

이것은 나중에 지니고 얻어야 할 것에 대해 질문한 것이다.

㉯ 풀이함

ㄱ. 살생을 풀이함

ㄱ) 버리고 여의어야 할 것을 풀이함

㉠ 첩하고 풀이함

a. 악을 풀이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 악은 다음과 같다. 여러 하늘과 인민과 땅을 기어 다니는 미물이 온갖 악을 행하려고 하며, 모두 그렇게 하지 않는 이가 없다. 강자가 약자를 굴복시키고 전전하면서 연쇄적으로198) 죽이고 해친다. 또한 잔인하게 해치고 살육하고 갈마들면서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기도 한다. 선을 닦을 줄 모르고, 악하고 어긋나며 도리를 지키는 일이 없으니, 나중에 재앙과 벌을 받아 저절로 향하여 나아가는데, 신명神明이 (그의 행위를) 기록하여 죄를 범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빈궁한 사람과 하천한 사람과 걸식하는 사람과 부모가 없는 사람, 자녀가 없는 사람과 귀머거리, 소경과 벙어리인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과 포악한 사람이 있고, 허약하거나 미쳤거나 모자란 부류의 사람이 있기에 이른다. 또 존귀한 사람과 세력이 있는 부유한 사람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과 현명한 사람이 있는데, 모두 과거세에 자애로운 마음을 지니고 효도하여 선을 닦고 덕을 쌓음으로써 이룬 것이다.”
經曰。 佛言。 其一惡者。 諸天人民蠕動之類。 欲爲衆惡。 莫不皆然。 强者伏弱。 轉相剋賊。 殘害殺戮。 迭相呑噬。 不知修善。 惡逆無道。 後受殃罰。 自然趣向。 神明記識。 犯者不赦。 故有貧窮。 下賤。 乞匃。 孤獨。 聾盲。 瘖啞。 愚癡。 憋惡。 至有尫狂不逮之屬。 又有尊貴。 豪富。 高才。 明達。 皆由宿世。 慈孝修善。 積德所致者。

두 번째로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살생을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버리고 여의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고, 나중은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처음에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첩牒(내걸어 놓는 것)하고 풀이하였고, 다음은 총괄적으로 맺었으며, 나중은 비유에 의탁하여 허물을 드러내었다. 처음에 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악을 풀이한 것이다.
“극剋”이란 죽이는 것이고, “적賊”이란 해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신명”이란 곧 동생同生과 동명同名이다. 동생은 오른쪽 어깨에서 악한 행위를 기록하고, 동명은 왼쪽 어깨에서 착한 행위를 기록한다. 그러므로 “기록하여”라고 했다.≻199)라고 했는데, 이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업의 과보에 의해 취趣(윤회의 세계인 六道를 일컫는 말)를 감感하는 것은 천신天神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곧 도리어 (천신과) 동일한 형태로 정신이 새기고 기록하는 것이니, 종자식種子識(아뢰야식)의 공능으로 그것이 없어지지 않는 것을 “기록하여”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孤”란 부모가 없는 것이고,

002_0070_b_01L所彈之義邪婬妄語飮酒是其
002_0070_b_02L五惡五痛華報現閉王法身遭厄難
002_0070_b_03L名爲五痛三途果報名爲五燒不爾
002_0070_b_04L便違世有常道王法牢獄等諸文故

002_0070_b_05L
經曰降化其意至涅槃之道者

002_0070_b_06L
述云此後令持令得也五善卽防五
002_0070_b_07L惡之戒由持五戒現無衆苦故獲福
002_0070_b_08L反五痛也後生西方終爲涅槃故
002_0070_b_09L度世長壽卽反五燒也

002_0070_b_10L
經曰佛言何等至何等五燒者

002_0070_b_11L
述云第二別釋有二初問後釋初又
002_0070_b_12L有二此初問所捨離也

002_0070_b_13L
經曰何等消化至涅槃 [278] 之道者

002_0070_b_14L
述云此後問所持得也

002_0070_b_15L
經曰佛言其一惡者至積德所致者

002_0070_b_16L
述云第二釋有五此初釋殺生有二
002_0070_b_17L初釋所捨離後釋所持得初又有三
002_0070_b_18L初牒釋次總結後寄喩顯過初又有
002_0070_b_19L此初釋惡也剋者殺也賊者害也
002_0070_b_20L有說神明者卽同生同1) [125] 同生在右
002_0070_b_21L記所作惡同名在左肩記所作善
002_0070_b_22L云記識此恐非也業報感2) [126] 非神所
002_0070_b_23L堪故今卽還同精神剋識以種子識
002_0070_b_24L功能不亡名記識故
孤者無父母

002_0070_c_01L“독獨”이란 자녀가 없는 것이다.
“왕尫”오烏와 황皇의 반절이다.은 야윈 것(羸)이고, 약한 것(弱)이다. 『통속문通俗文』200)에서 “키가 작고 체구가 작은 것을 ‘왕’이라 한다.”라고 했다. “광狂”기其와 망亡의 반절이다.은 본성이 변질된 것을 뜻한다. 또한 어지러운 것(亂)이다.

b. 통을 풀이함

“세상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도리가 있고, 왕법에 의해 치죄하는 감옥이 있지만 두려워하고 삼가하지 않고 악을 지어 죄의 길에 들어감으로써 그 재앙과 벌을 받는데, 벗어나기를 희망해도 벗어나기 어렵다. 세간에는 이렇게 눈앞에 명백하게 드러난 일이 있다.”
經曰。 世有常道。 王法牢獄。 不肯畏慎。 爲惡入罪。 受其殃罰。 求望解脫。 難得定者。

이것은 다음에 통을 풀이한 것이다.

c. 소를 풀이함

“수명을 마치고 후세에는 더욱 깊고 더욱 심해진다. 그 어둡고 그윽한 곳으로 들어가 현세의 몸을 벗고 새로운 몸을 받아 태어나는데, 비유컨대 왕법에 의해 고통스럽고 무거운 형벌을 받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저절로 삼악도에 태어나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몸을 굴려서 바꾸어201) 형체를 고치고 도道(생사윤회의 세계)를 바꾸어서 태어나는데, 받는 수명은 길거나 짧다. 혼신정식魂神精識202)이 저절로 이것에 나아가니 오직 지니고 향할 뿐이다. 서로 좇아 함께 태어나고 다시 서로 보복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재앙을 부르는 악업이 아직 다하지 않으면 서로 헤어질 수도 없다. 그 속을 전전하면서 빠져나올 기약이 있지 않다. 벗어나기 어렵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저절로 이러한 인과응보의 도리가 있다. 비록 (업을 행하는) 바로 그때 갑자기 상응하여 선도善道와 악도惡道에 이르지는 않을지라도 반드시 이러한 과보에 도달한다.”
經曰。 世間有此目前現203)事。204) 壽終後世。 尤深尤劇。 入其幽冥。 轉生受身。 譬如王法。 痛苦極刑。 故有自然三塗無量苦惱。 轉貿其身。 改形易道。 所受壽命。 或長或短。 魂神精識。 自然趣之。 當獨値向。 相從共生。 更相報復。 無有止已。 殃惡未盡。 不得相離。 展轉其中。 無有出期。 難得解脫。 痛不可言。 天地之間。 自然有是。 雖不即時卒暴。 應至善惡之道。 會當歸之者。

이것은 나중에 소를 풀이한 것이다.
“무貿”모莫와 후候의 반절이다.는 『삼창三倉』에서는 “바꾸는 것(換易)이다.”라고 했다. “졸포卒暴”란 갑자기라는 뜻이고, “회당會當”이란 반드시라는 뜻이며, “귀지歸之”란 도달한다(至)는 뜻이다.

㉡ 총괄적으로 맺음

“이것을 첫 번째 큰 악, 첫 번째 통, 첫 번째 소라고 하는데,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이와 같다.”
經曰。 是爲大惡。 一痛。 一燒。 勤苦如是者。

이것은 두 번째로 (총괄적으로) 맺은 것이다.

㉢ (비유에 의탁하여) 허물을 드러냄

“비유컨대 큰불이 사람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經曰。 譬如大火。 焚燒人身者。

이것은 세 번째로 (비유에 의탁하여) 허물을 드러낸 것이다.

ㄴ)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함

“사람이 이러한 속에서도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며 바르게 행동하여 홀로 모든 선을 행하고 온갖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자신만이 홀로 벗어나서 그에 따르는 복덕을 얻고 세간에서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열반의 도를 얻으니, 이것을 첫 번째 큰 선이라 한다.”
經曰。 人能於中。 一心制意。 端身正行。 獨作諸善。 不爲衆惡者。 身獨度脫。 獲其福德。 度世上天。 泥洹之道。 爲一大善也者。

이것은 두 번째로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ㄴ. 도둑질을 풀이함

ㄱ) 여의어야 할 것을 풀이함

㉠ 첩하고 풀이함

a. 악을 풀이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두 번째 악은 다음과 같다. 세간의 인민은 부자이든 형제이든 가정(室家)의 부부이든 전혀 의리가 없고 법도에 수순하지 않는다. 사치하고 탐닉하며(婬), 교만하고 방종하며, 각각 자신이 즐거워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 마음을 내버려 두어 제멋대로 행동하고 번갈아서 서로를 속인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으로 하는 말이 각각 다르고, 말과 생각에 진실이 없다. 거짓된 말로 미혹시키고 아양을 떨며 충실하지 못하다. 교묘한 말로 아첨하면서 비위를 맞추고, 현명한 이를 질투하고 착한 사람을 비방하여 원망의 대상과 삿된 견해를 지닌 사람으로 몰아넣는다. 임금(主上)은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신하를 임용하고, 신하는 자유자재하게 기관機關(방편)을 거짓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낸다. 법도를 짓밟는 일을 능히 행하고, 그 형세를 헤아려 안다. 임금의 지위에 있는 이가 바르지 않으니 그러한 신하에 의해 기만당하고, 망령되게 충성스럽고 선량한 신하를 잃어버림으로써 천심天心을 벗어난다. 신하는 그 임금을 기만하고, 자식은 그 아버지를 기만하며, 형제와 부부, 친가(中)와 외가(外)의 친척과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번갈아서 서로 속인다. 각각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품은 채 자신을 두텁게 하려 하고, 탐내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한다. 존귀한 이나 비천한 이나,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마음은 모두 똑같이 그러하다. 집안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망치면서도 앞뒤를 돌아보지 않으니, 끝내는 친가와 외가의 친척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것으로 인해 파멸한다. 어떤 때는 가족(室家),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知識), 큰 마을(鄕)ㆍ작은 마을(黨)ㆍ저잣거리(市)ㆍ아주 작은 마을(里) 등의 어리석은 사람과 야인野人이 전전하면서 함께 마음을 맞추어 일을 하지만, 번갈아서 서로 이익을 얻기 위해 해쳐서 분노를 일으키고 원한을 맺는다. 넉넉하게 지녔어도 아까워하면서 베풀어 주려 하지 않는다. 재보財寶를 사랑하면서 탐욕은 더욱 깊어지니 마음은 고달프고 몸은 고통스럽다. 이와 같이 지내면서 죽음의 순간에 이르지만 믿고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홀로 왔다가 홀로 갈 뿐 어느 누구 하나 따르는 이는 없다. 선악(의 업業에 의한) 화복禍福(이라는 과보가 생겨나니,) 명命(업)을 좇아 태어나서, 혹은 즐거운 곳에 머물고, 혹은 고통스러운 곳에 들어간다. 그러한 후에야 비로소 후회하지만 바로 그때 다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세간의 인민은, 마음은 어리석고 지혜가 적어 착한 것을 보면 미워하고 비방할 뿐이고, 사모하면서 그러한 행위를 따르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악행을 행하려 하며 망령되게 비법非法을 짓고, 항상 도둑과 같은 마음을 품어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자신이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소유한 것이 흩어져 다 없어지면 다시 구하려고 찾아 나설 뿐이다. 마음이 바르지 않아 다른 사람의 낯빛을 살피며 두려워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생각하지 않고 일이 일어나야만 비로소 후회한다.”
經曰。 佛言。 其二惡者。 世間人民。 父子兄弟。 室家夫婦。 都無義理。 不順法度。 奢婬憍縱。 各欲快意。 任心自恣。 更相欺惑。 心口各異。 言念無實。 佞諂不忠。 巧言諛媚。 嫉賢謗善。 陷入怨枉。 主上不明。 任用臣下。 臣下自在。 機僞多端。 踐度能行。 知其形勢。 在位不正。 爲其所欺。 妄損忠良。 不當天心。 臣欺其君。 子欺其父。 兄弟夫婦。 中外知識。 更相欺誑。 各懷貪欲瞋恚愚癡。 欲自厚己。 欲貪多有。 尊卑上下。 心俱同然。 破家亡身。 不顧前後。 親屬內外。 坐之而滅。 或時。 室家知識。 鄕黨市里。 愚民野人。 轉共從事。 更相利害。 忿成怨結。 富有慳惜。 不肯施與。 愛寶貪重。 心勞身苦。 如是至竟。 無所恃怙。 獨來獨去。 無一隨者。 善惡禍福。 追命所生。 或在樂處。 或入苦毒。 然後乃悔。 當復何及。 世間人民。 心愚少智。 見善憎謗。 不思慕及。 但欲爲惡。 妄作非法。 常懷盜心。 悕望他利。 消散糜盡。 而復求索。 邪心不正。 懼人有色。 不豫思計。 事至乃悔者。

이것은 두 번째로 도둑질을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여의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첩하고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악을 풀이한 것이다.
“도度”란 정해진 기준(量)이고, 법칙(則)이다. 번갈아서 서로 도둑질하기 때문에 “의리가 없고”라고 했고, 이치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재물을 구하기 때문에 “법도에 수순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탐내는 마음을 제어하지 않기 때문에 “사치하고”라고 하였고, 재물에 탐닉하여 얻고자 하기 때문에 “탐닉하며”라고 했다.
비록 마음속에는 욕망이 있지만 입으로는 만족한다고 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으로 하는 말이 다르고”라고 하였다.
입으로는 착한 말을 하고 마음으로는 악한 생각을 품기 때문에 “거짓된 말로 미혹시키고”라고 했고, 자신의 본성을 덮어서 감추기 때문에 “아양을 떨며”라고 했으며, 행위에 믿음이 없기 때문에 “충실하지 못하다.”라고 했다.
“유諛”란 뜻이 거짓된 것이고, “미媚”란 모습이 거짓된 것이며, “왕枉”이란 어긋나는 것이고,

002_0070_c_01L者無子女烏皇
羸也弱也 [279]
002_0070_c_02L小目 [280] 其亡
變性意也又亂也

002_0070_c_03L
經曰世有常道至難得3) [127] [281] [282]

002_0070_c_04L
述曰此次釋痛也

002_0070_c_05L
經曰世間有此至會當歸之者

002_0070_c_06L
述云此後釋燒也貿莫候
三倉換易
002_0070_c_07L暴者忽也會當者必也歸之者至
002_0070_c_08L

002_0070_c_09L
經曰是爲 [283] 大惡至勤苦如是者

002_0070_c_10L
述云此第二結也

002_0070_c_11L
經曰譬如大火焚燒人身者

002_0070_c_12L
述云此第三顯過也

002_0070_c_13L
經曰人能於中至爲一大善也者

002_0070_c_14L
述云此第二釋所持得也

002_0070_c_15L
經曰佛言其二至事至乃悔者

002_0070_c_16L
述云此第二釋盜有二初釋所離
002_0070_c_17L此初牒釋有三此初釋惡也

002_0070_c_18L者量也則也更相盜竊故無義理
002_0070_c_19L理求財故不順流軌 [284] 不勒貪心故云
002_0070_c_20L耽財欲得故云婬雖有心欲而言
002_0070_c_21L故心口異口出善言心懷惡計
002_0070_c_22L云佞覆藏自性故云諂爲行無信
002_0070_c_23L云不忠4) [128] 者意妄媚者狀妄
002_0070_c_24L「生」疑「名」「起」疑「趣」「定」疑「免」
002_0070_c_25L「諭」疑「謏」

002_0071_a_01L“도度”란 법규로 정해진 기준(法量)이며, “기機”란 기관機關이다. 곧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낯빛으로 임금의 뜻을 왜곡되게 취하여 기관을 거짓으로 만드는 일을 행하고, 임금의 형세를 헤아려 (비위만 맞출 뿐) 바른 간언을 펼치지 않는 것이 이것이다.
“향鄕”이란 1만 2천5백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을 지칭하는 단위이고, “당黨”이란 5백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을 지칭하는 단위이며, “시市”란 상품의 교환과 무역이 이루어지는 곳에 형성된 거주지를 지칭하는 단위이고, 다섯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을 린隣이라 하고, 린隣에 해당하는 구역이 다섯이면 “리里”이다.
“야인野人”이란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선배들(先進)은 예악禮樂에 있어서 이른바 야인이고, 후배들(後進)은 예악에 있어서 이른바 군자君子이다.”205)라고 했고, 그 주석에서 포씨包氏206)가 말하기를 “(야인은) 고상하지 못하고 천한 것(鄙陋)을 말한다.”라고 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교郊의 외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야野”라고 하고, 읍邑의 외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교郊라고 한다.
“종사從事”란 서로 마음이 맞는 것이다. “지경至竟”이란 죽는 것이다. “선악”이란 인因이고, “화복”이란 과果이다. “추追”란 다시 취하는 것(還取)이고, “명命”이란 불러서 끌어당기는 것(招引)이니, 선악의 인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나아가 지금의 과果가 일어난다. 또한 “추追”란 쫓는 것(逐)이고, “명命”이란 업業이니, 선악의 업을 좇아 태어나기 때문이다. 후자가 옳다.

b. 통을 풀이함

“지금 세상에서 현재 왕법에 의해 치죄하는 감옥이 있어서 죄에 따라 향하여 나아가서 그 재앙과 벌을 받는다.”
經曰。 今世。 現有王法牢獄。 隨罪趣向。 受其殃罰者。

이것은 다음에 통을 풀이한 것이다.

c. 소를 풀이함

“그 이전 세상에서 도덕을 믿지 않고 선의 근본을 닦지 않은 것으로 인해 지금 세상에서 다시 악행을 행하였으니, 천신天神이 반드시 기록하여 그 명적名籍을 구별함으로써 목숨을 마치고 신神이 떠나가면 악도에 떨어져 들어간다. 그러므로 저절로 삼악도에 태어나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그 속을 전전하면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빠져나올 기약이 없으니, 벗어나기 어렵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經曰。 因其前世。 不信道德。 不修善本。 今復爲惡。 天神剋識。 別其名籍。 壽終神逝。 下入惡道。 故有自然三塗無量苦惱。 展轉其中。 世世累劫。 無有出期。 難得解脫。 痛不可言者。

이것은 나중에 소를 풀이한 것이다.

㉡ 맺음

“이것을 두 번째 큰 악이고, 두 번째 통痛이며, 두 번째 소燒라고 하는데,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이와 같다.”
經曰。 是爲二大惡。 二痛。 二燒。 勤苦如是者。

이것은 두 번째로 맺은 것이다.

㉢ 허물을 드러냄

“비유컨대 큰불이 사람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經曰。 譬如大火。 焚燒人身者。

이것은 세 번째로 허물을 드러낸 것이다.

ㄴ)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함

“사람이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며 바르게 행동하여 홀로 모든 선을 행하고 온갖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자신만이 홀로 벗어나서 그에 따르는 복덕을 얻고, 세간에서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열반의 도를 얻으니, 이것을 두 번째 큰 선이라 한다.”
經曰。 人能於中。 一心制意。 端身正行。 獨作諸善。 不爲衆惡者。 身獨度脫。 獲其福德。 度世上天。 泥洹之道。 是爲二大善也者。

이것은 두 번째로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ㄷ. 음란한 행위를 풀이함

ㄱ) 버려야 할 것을 풀이함

㉠ 첩하고 풀이함

a. 악을 풀이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세 번째 악은 다음과 같다. 세간의 인민은 서로 이전에 지은 인에 의거하여 살아가면서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거주하는데, 그곳에 머무는 햇수와 수명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위로는 현명한 이ㆍ장자長者ㆍ존귀한 이ㆍ세력이 있는 부유한 이가 있고, 아래로는 빈궁한 이ㆍ하천한 이ㆍ겁약하고 하열한 이ㆍ어리석은 이가 있다. 이 가운데 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 항상 삿되고 악한 마음을 품는다. 단지 음란하고 즐기는 것만 생각하여 번뇌가 마음속에 가득 차고, 애욕에 의해 교란되어 앉으나 서나 편안하지 않다. 탐욕스런 마음으로 (자신의 것은) 견고하게 지키고 아끼면서 단지 (남의 것을) 헛되이 얻고자 한다.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이를 비껴 보고 곁눈질하면서 삿된 태도로 외부의 대상을 향해 방일한 행동을 일삼으며, 자신의 아내는 싫어하고 사사로이 망령되게 출입하며, 집안의 재물을 탕진하면서 비법非法을 일삼는다. 서로 약속하고 무리지어 모여 군대(師)를 일으켜 서로 정벌을 일삼고, 공격하고 협박하면서 살육하고, 공공연히 옳지 않은 도리로 빼앗는다. 악한 마음으로 밖의 것을 탐하여 스스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생산적 활동은 하지 않고, 도둑질을 일삼아 몰래 엿보면서 얻고자 하고, 실제로 욕망에 따라 움직임으로써 도둑질을 성사시킨다. 공포스럽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며 핍박하고 협박하여 빼앗은 것을 자신의 처자에게 준다. 자기 멋대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온 힘을 다하여 즐거움을 누린다. 혹은 친족에게도 존귀한 이나 비천한 이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하니, 가족의 외가와 친가의 친척들이 모두 근심하고 고통스러워한다.”
經曰。 佛言。 其三惡者。 世間人民。 相因寄生。 共居天地之間。 處年壽命。 無能幾何。 上有賢明長者尊貴豪富。 下有貧窮斯賤尫劣愚夫。 中有不善之人。 常懷邪惡。 但念婬妷。 煩滿胸中。 愛欲交亂。 坐起不安。 貪意守惜。 但欲唐得。 眄睞細色。 邪態外逸。 自妻厭憎。 私妄出入。 費損家財。 事爲非法。 交結聚會。 興師相伐。 攻劫殺戮。 强奪不道。 惡心在外。 不自修業。 盜竊趣得。 欲擊成事。 恐熱迫愶。 歸給妻子。 恣心快意。 極身作樂。 或於親屬。 不避尊卑。 家室中外。 患而苦之者。

이것은 세 번째로 음란한 행위를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버려야 할 것을 풀이하였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첩하고 풀이한 것이다.

002_0071_a_01L者橫也度者法量機者機關卽巧言
002_0071_a_02L令色曲取君意能行機僞知君形勢
002_0071_a_03L申正諫是也
鄕者一萬二千五百家
002_0071_a_04L黨者五百家市者交易所居五家爲
002_0071_a_05L隣五爲里野人者孔子曰先進
002_0071_a_06L禮樂謂野人後進於禮樂謂君子也
002_0071_a_07L包氏曰謂鄙陋也郊外曰野邑外謂
002_0071_a_08L從事者相稱也至竟者死也
002_0071_a_09L惡者因禍福者果追者還取命者招
002_0071_a_10L善惡因成必進今果起也又追者
002_0071_a_11L逐也命者業也逐善惡業以所生故
002_0071_a_12L後者是也

002_0071_a_13L
經曰今世現有至受其殃罰者

002_0071_a_14L
述云此次釋痛也

002_0071_a_15L
經曰因其前世至痛不可言者

002_0071_a_16L
述云此後釋燒也

002_0071_a_17L
經曰是爲二大惡至勤苦如是者

002_0071_a_18L
述云此第二結也

002_0071_a_19L
經曰譬如大火焚燒人身者

002_0071_a_20L
述云此第三顯過也

002_0071_a_21L
經曰人能於中至爲二大善也者

002_0071_a_22L
述云此第二釋所持得也

002_0071_a_23L
經曰佛言其三惡至患而苦之者

002_0071_a_24L
述云此第三釋邪婬有二初釋所捨

002_0071_b_01L여기에 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악을 풀이한 것이다.
“처處”란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일妷”여與와 일一의 반절이다.은 즐기는 것(樂)이다. “당唐”이란 헛된 것(虛)이다.
“면眄”면眠과 견見의 반절이다.은 『설문』에서 “비껴보는 것(邪視)이다.”라고 했다. 또한 혜盻해奚와 예詣의 반절이다.라고도 하는데, 『설문』에서 “흘겨보는 것(恨視)이다.”라고 했다.
“래睞”력力과 대代의 반절이다.는 『설문』에서 “눈동자가 바르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고, 『창힐편蒼頡篇』에서 “몰래 보는 것(內視)이다.”라고 했으니, 곁눈질하는 것(傍視)이다. “세색細色”이란 아름다운 용모이다.
“태態”란 고문古文에는 “태㑷”타他와 대代의 반절이다.라고도 쓰는데, 태도(姿)라는 뜻으로, 사람과 상황을 대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결結”이란 약속하는 것이다.
“사師”소所와 기飢의 반절이다.란 4천 명의 병사를 묶어 군軍이라 하고, 2천5백 명의 병사를 묶어 “사”라고 한다. “사”에는 열두 필의 말이 소속된다. 5백 명을 려旅라고 한다.
“강탈强奪”이란 공공연하게 겁박하여 빼앗는 것이다. “부도不道”란 좌도左道(옳지 않은 도리)로 물건을 취하는 것이다.
가난해도 재물을 얻으려는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고”라고 했고, 밖의 것을 가져오려는 마음만을 품기 때문에 “악한 마음으로 밖의 것을 탐하여”라고 했다.
“절竊”이란 사사롭고 은밀한 것이고, “취趣”란 사람이 알지 못하는 틈을 엿보아서 다른 사람의 재물을 얻을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은 물건을 들어서 본래 있었던 장소에서 이동하면 그것을 “도盜”라고 한다.
“격擊”이란 사마표司馬彪207)가 주석에서 말하기를 “‘격擊’은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공恐”이란 공포이고, “열熱”이란 뇌열惱熱이며, 고통을 주는 도구로 몸을 핍박하는 것을 “박迫”이라 하고, 위협하여 사람을 능멸하는 것을 “협愶”이라 한다.

b. 통을 풀이함

“또한 다시 왕법에 의해 공포된 금지령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經曰。 亦復不畏王法禁令者。

이것은 다음에 통을 풀이한 것이다.

c. 소를 풀이함

“이와 같은 악은 사람과 귀신에게 알려지고, 해와 달이 밝게 비추어 보며, 신명神明이 기록한다. 그러므로 저절로 삼악도에 태어나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그 속을 전전하면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빠져나올 기약이 없으니, 벗어나기 어렵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經曰。 如是之惡。 著於人鬼。 日月照見。 神明記識。 故有自然三塗無量苦惱。 展轉其中。 世世累劫。 無有出期。 難得解脫。 痛不可言者。

이것은 나중에 소를 풀이한 것이다.
“저著”란 숨어서 행한 것은 귀신에게, 공개적으로 행한 것은 사람에게 모두 알려지는 것을 말한다.208)

㉡ 맺음

“이것을 세 번째 큰 악이고, 세 번째 통이며, 세 번째 소라고 하는데,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이와 같다.”
經曰。 是爲三大惡。 三痛。 三燒。 勤苦如是者。

이것은 두 번째로 맺은 것이다.

㉢ 허물을 드러냄

“비유컨대 큰불이 사람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經曰。 譬如大火。 焚燒人身者。

이것은 세 번째로 허물을 드러낸 것이다.

ㄴ)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함

“사람이 능히 이러한 속에서도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며 바르게 행동하여 홀로 모든 선을 행하고 온갖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자신만이 홀로 벗어나서 그에 따르는 복덕을 얻고, 세간에서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열반의 도를 얻으니, 이것을 세 번째 큰 선이라 한다.”
經曰。 人能於中。 一心制意。 端身正行。 獨作諸善。 不爲衆惡者。 身獨度脫。 獲其福德。 度世上天。 泥洹之道。 是爲三大善也者。


002_0071_b_01L有三初牒釋又有三此初釋惡也
002_0071_b_02L1)處者天天者性 [129] 又妷與一
樂也
002_0071_b_03L者虛也眄者眠見
[285] 說文邪視也又下
002_0071_b_04L戾五戾反說文 [286] 恨視也力代
說文
002_0071_b_05L子不正也蒼頡篇內視也傍視也
002_0071_b_06L色者好色也古文他代
意恣 [287]
002_0071_b_07L謂能度人情狀也結者期也所飢

002_0071_b_08L四千人爲軍二千五百人爲師師十
002_0071_b_09L二匹馬也五百人爲旅也强奪者
002_0071_b_10L然劫取不道者左道取物貧無產業
002_0071_b_11L故不自修業唯外懷攝故惡心在外
002_0071_b_12L竊者私隱趣者伺人不覺以求他物
002_0071_b_13L擧之離本曰盜擊者司馬彪曰擊動
002_0071_b_14L恐者恐怖熱者惱熱苦具逼身曰
002_0071_b_15L以威凌物曰愶

002_0071_b_16L
經曰亦復不畏王法禁令者

002_0071_b_17L
述云此次釋痛也

002_0071_b_18L
經曰如是之惡至痛不可言者

002_0071_b_19L
述云此後釋燒也著者著同幽明也

002_0071_b_20L
經曰是爲三大惡至勤苦如是者

002_0071_b_21L
述云此第二結也

002_0071_b_22L
經曰譬如大火焚燒人身者

002_0071_b_23L
述云此第三顯過也

002_0071_b_24L
經曰人能於中至爲三大善也者

002_0071_c_01L
이것은 두 번째로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ㄹ. 거짓말을 풀이함

ㄱ) 여의어야 할 것을 풀이함

㉠ 첩하고 풀이함

a. 악을 풀이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네 번째 악은 다음과 같다. 세간의 인민은 선을 닦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전전하며 서로 가르치면서 함께 온갖 악을 짓는다. 이간질하고 추악한 말을 하며, 거짓말을 하고 꾸미는 말을 일삼는다. 그리하여 남을 헐뜯고 해쳐 싸움과 분란을 일으키고, 착한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말을 일삼으며, 현명한 사람을 무너뜨린다. 부부끼리 즐거움을 누리고, 부모에게는 효도하지 않으며, 스승과 어른을 업신여기고, 친구 사이에도 믿음이 없어서 성실을 얻기 어렵다. 자신을 높고 귀하게 여겨 위대하다고 말하고, 자신이 도道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며, 멋대로 위세를 부리면서 다른 사람을 침범하고 업신여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행위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여 악행을 하고도 부끄러움이 없다. 스스로 강건하다고 여겨 그것에 의해 다른 사람이 공경하고 어려워하는 마음을 내도록 하려고 한다. 천지신명(하늘과 땅의 모든 신)과 해와 달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행을 하려고 하지 않으니 항복시키고 교화하는 것이 어렵다. 스스로를 매우 높고 크게 여기며 그러한 형세가 영원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없이 항상 교만한 마음을 품고 지낸다.”
經曰。 佛言。 其四惡者。 世間人民。 不念修善。 轉相敎令。 共爲衆惡。 兩舌惡口。 妄言綺語。 讒賊鬪亂。 憎嫉善人。 敗壞賢明。 於傍快喜。 不孝二親。 輕慢師長。 朋友無信。 難得誠實。 尊貴自大。 謂己有道。 橫行威勢。 侵易於人。 不能自知。 爲惡無恥。 自以强健。 欲人敬難。 不畏天地神明日月。 不肯作善。 難可降化。 自用偃蹇。 謂可常爾。 無所憂懼。 常懷憍209)者。

이것은 네 번째로 거짓말을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여의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첩하고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악을 풀이한 것이다.
“방傍”이란 부부이다. “이易”이移와 치致의 반절이다.는 업신여기는 것이다.
“건蹇”거居와 면免의 반절이다.은 『좌전左傳』210)에서 “언건偃蹇”이라 했는데, (주석서에서) “교만하고 업신여기는 것(驕傲)이다.”라고 했고,211) 『광아廣雅』에서는 “(언건은) 매우 교만한 것(大嬌)이다.”라고 했으니, 스스로를 높고 크게 여기는 모양을 말한다. 『석명釋名』212)에서 “‘언’은 쉬면서 누워 있는 것이니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건’은 절뚝거리는 것이니, 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선 전자의 뜻이다.)213)

b. 통을 풀이함

“이와 같은 모든 악은 천신이 기록한다. 그 전생에 지은 약간의 복덕에 의지하여 (전생에 지은) 작은 선이 그를 붙들고 가까이하면서 현세의 그를 보호하고 돕기는 하지만, 현세에 악행을 행하며 복덕이 다 소멸하면, 모든 선한 신神과 귀鬼는 각각 그를 떠나 버리고 그 자신만이 홀로 쓸쓸하게 남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다.”
經曰。 如是衆惡。 天神記識。 賴其前世。 頗作福德。 小善扶接。 營護助之。 今世爲惡。 福德盡滅。 諸善神鬼。 各去離之。 身獨空立。 無所復依者。

이것은 다음에 통痛을 풀이한 것이다.
“천신”이란 호세천護世天214)이다. 그가 행한 악한 일을 기록하여 (도리천의 주재자인) 제석천에게 아뢰어 악한 일을 적는 장부에 기록하기 때문에 “기록한다”라고 하였다.

c. 소를 풀이함

“수명이 다하면 자신이 했던 온갖 악이 자신에게 돌아와 저절로 닥치고 (귀신이) 재촉하면서 함께 나아가 악도에 이른다. 또한 그 명적名籍이 신명神明에 기록되어 있어서 재앙이 그를 끌어당기면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죄의 과보가 저절로 이루어져 어떤 부분도 버리거나 여의는 일이 없다. 단지 이전에 행한 것에 의해 불가마 속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이 꺾이고 부수어지며 정신은 고통에 시달린다. 이러한 일을 당하고 나서야 후회한들 또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도天道와 같은 업은 (그 과보가 명백하게) 저절로 이루어져 어긋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저절로 삼악도에 태어나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그 속을 전전하면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빠져나올 기약이 없으니, 벗어나기 어렵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經曰。 壽命終盡。 諸惡所歸。 自然迫促。 共趣頓之。 又其名籍。 記在神明。 殃咎牽引。 當往趣向。 罪報自然。 無從捨離。 但得前行。 入於火鑊。 身心摧碎。 精神痛苦。 當斯之時。 悔復何及。 天道自然。 不得蹉跌。 故有自然三塗無量苦惱。 展轉其中。 世世累劫。 無有出期。 難得解脫。 痛不可言者。

이것은 나중에 소燒를 풀이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명언종자名言種子215)는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賴耶神)에 있는데, 이것으로 말미암아 업종자業種子가 인생引生하면 반드시 향하여 나아가는 곳이 있기 때문에 “명적名籍(명언종자)이 신명神明(아뢰야식)에 기록되어 있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해석자 자신이 (앞의 문장을 해석하면서) ≺호세천신護世天神이 주재자인 제석천에게 아뢰어 악한 일을 적는 장부에 기록한다.≻라고 하여 (나의 입장과 동일한 견해를 보인 것에) 어긋나기 때문에 (옳지 않다.) 지금 곧 수명이 다할 때 악업이 이끌고 귀신이 재촉하면서 끌어당겨 장차 악도에 들어가는데 그 명적에 따라 해당되는 곳에 가서 고통스러운 과보를 받는 것이다.
“돈頓”이란 이르는 것(至)이다. “종從”이란 처處(부분)이다. “득得”이란 의지하는 것(依)이다.
어떤 사람은 ≺“천도天道”란 천하天下의 도道이다.≻라고 했는데, 옳지 않은 것 같다. 고통의 과보는 반드시 천하의 도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곧 “천天”이란 업業이니, 여기에서 악업의 도道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천리天理와 같은 업(業天)”216)이라고 한 것도 이것과 같은 의미일 것으로 생각된다. “자연自然”이란 명백한 모습이다.
“차蹉천千과 아阿의 반절이다.질跌도徒와 결結의 반절이다.”이란,

002_0071_c_01L
述云此第二釋所持得也

002_0071_c_02L
經曰佛言其四惡至常懷憍者

002_0071_c_03L
述云此第四釋妄語有二初釋所離
002_0071_c_04L有三初牒釋有三此初釋惡也
002_0071_c_05L者夫婦易神 [288] 致反 [289] 輕侮也居免

002_0071_c_06L偃蹇驕傲也廣雅大嬌 [290] 謂自高
002_0071_c_07L大貌也釋名云偃偃 [291] 息而臥不執事
002_0071_c_08L蹇跛蹇也 [292] 不能作事也

002_0071_c_09L
經曰如是衆惡至無所復依者

002_0071_c_10L
述云此次釋痛也天神卽護世天錄
002_0071_c_11L其作惡奏上帝釋記在惡籍故云記
002_0071_c_12L

002_0071_c_13L
經曰壽命終盡至痛不可言者

002_0071_c_14L
述云此後釋燒也有說名言種子
002_0071_c_15L賴耶神業種引生必有趣向故云名籍
002_0071_c_16L在神明卽違自許護世天神奏上帝
002_0071_c_17L記在惡籍故今卽壽命盡時惡業
002_0071_c_18L所引鬼神促攝將入惡道逐其名籍
002_0071_c_19L往受苦報頓者至也從者處也得者
002_0071_c_20L依也有說天道者卽天下之道恐非
002_0071_c_21L苦報未必在天下故今卽天者
002_0071_c_22L惡業之道故瑜伽亦云業天蓋同
002_0071_c_23L此矣自然者明了狀千阿
徒結

002_0071_c_24L「處者天天者性」疑有脫文

002_0072_a_01L『통속문』에서 “발을 잘못 디디는 것을 ‘질’이라 한다.”라고 했고, 『광아』에서 “(‘질’은) 어긋나는 것이고(差), 또한 넘어지는 것(偃)이다.”라고 했다. (“부득차질不得蹉跌”이라고 한 것은) 업보業報의 운수運數가 끝내 어그러짐이 없기 때문이니, 곧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 총괄적으로 맺음

“이것을 네 번째 큰 악이고, 네 번째 통痛이며, 네 번째 소燒라고 하는데,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이와 같다.”
經曰。 是爲四大惡。 四痛。 四燒。 勤苦如是者。


이것은 두 번째로 맺은 것이다.

㉢ 허물을 드러냄

“비유컨대 큰불이 사람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經曰。 譬如大火。 焚燒人身者。

이것은 세 번째로 허물을 드러낸 것이다.

ㄴ)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함

“사람이 능히 이러한 속에서도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며 바르게 행동하여 홀로 모든 선을 행하고 온갖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자신만이 홀로 벗어나서 그에 따르는 복덕을 얻고, 세간에서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열반의 도를 얻으니, 이것을 네 번째 큰 선이라 한다.”
經曰。 人能於中。 一心制意。 端身正行。 獨作諸善。 不爲衆惡者。 身獨度脫。 獲其福德。 度世上天泥洹之道。 是爲大善也者。

이것은 두 번째로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ㅁ. 음주를 풀이함

ㄱ) 여의어야 할 것을 풀이함

㉠ 첩하고 풀이함

a. 악을 풀이함

a) 악을 지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다섯 번째 악은 다음과 같다. 세간의 인민은 배회하면서 게으름을 피우고 선을 짓고 몸을 다스리며 업을 닦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족과 권속은 굶주림과 추위로 괴로워하고, 부모님이 가르치면 눈을 부릅뜨고 분노하고 말대꾸하여 불화不和에 빠지게 한다. 말씀하신 명령은 따르지 않고 어긋나고 반역하기를 마치 원수를 대하는 것처럼 하니 자식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취하는 것과 베푸는 것에 절도가 없으니 많은 사람이 함께 근심거리로 여기고 싫어한다. 은혜를 등지고 의리를 어기며 보상하려는 마음은 있지도 않으니, 빈궁하여 고달픈 신세로 전락해도 다시는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공공연하게 죄를 지어 멋대로 남의 것을 빼앗고 방자하게 돌아다니며 습관적으로 자주 멋대로 취득하여 자신에게 베풀고 공급한다. 술에 탐닉하고 미색에 빠지며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절도가 없다.”
經曰。 佛言。 其五惡者。 世間人民。 徙倚懈惰。 不肯作善。 治身修業。 家室眷屬。 飢寒困苦。 父母敎誨。 瞋目怒譍。 言令不和。 違戾反逆。 譬如怨家。 不如無子。 取與無節。 衆共患厭。 負恩違義。 無有報償之心。 貧窮困乏。 不能復得。 辜較縱奪。 放恣遊散。 串數唐得。 用自振給。 耽酒嗜美。 飲食無度者。

이것은 다섯 번째로 음주를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여의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첩하고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악을 짓는 것이다.
“사의徙倚”란 배회徘徊와 같은 말이고, 또한 머물 곳을 잃은 모습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처음의 해석을 따라야 한다. “의倚”는 그 음이 의依이다.
“고辜”고古와 호胡의 반절이다.는 『이아爾雅』에서 “죄罪이다.”라고 하였다. “교較”구苟와 학學의 반절이다.란 거칠고 간략한 것(粗略)이다. 『광아廣雅』에서는 “밝은 것(明)이고, 나타나는 것(見)이다.”라고 했으니, 환하게 드러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위 법사는 ≺“고辜”란 죄이고, “교較”란 어떤 간격이 없이 바로 나오는 것(直)이며, “탈奪”이란 도둑질하는 것이다. 어떤 간격도 없이 죄를 지어 바로 돌연히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치고 이것을 즐거워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했는데, “교”를 어떤 간격이 없이 바로 나오는 것(直)이라고 한 해석은 어느 곳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산散”이란 돌아다니는 것(行)이다. “진振”이란 은혜를 베푸는 것(惠)이다. 풍부한 사람의 것을 덜어서 빈곤한 사람에게 보충해 주는 것이니, 진賑(구휼하다)도 또한 같은 의미이다. 관慣(익숙한 것)은 “관串”과 같다.

b) 악의 허물을 밝힘

“마음을 멋대로 풀어헤쳐 방탕하고 방일하게 살아가며, 아둔하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며, 남을 밀어뜨리고 업신여긴다. 인정人情을 알지 못하고 강제로 억눌러 제압하고자 한다. 어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싫어한다. 의리도 없고 예의도 없으며,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고 새겨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한 행위를 알고 있지만 충고하여 깨닫게 할 수는 없다. 육친과 권속이 생활해 나가는 데 필요한 물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걱정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은혜도 생각하지 않고 스승과 벗과의 의리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마음은 항상 악한 것만 생각하고, 입으로는 항상 추악한 말을 내뱉으며, 몸은 항상 악을 행하니, 일찍이 어떤 선도 행한 적이 없다. 옛 성인과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법經法을 믿지 않고, 도道를 실천하여 세간을 넘어 열반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죽은 뒤에 신명神明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믿지 않고, 선을 행하면 선한 과보를 얻고 악을 행하면 악한 과보를 얻는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진인眞人(아라한)을 살해하고 중승衆僧을 교란시키려고 하며, 부모와 형제와 권속을 해치려고 하니, 육친이 증오하면서 그가 죽는 것을 바란다.”
經曰。 肆心蕩逸。 魯扈抵突。 不識人情。 强欲抑制。 見人有善。 憎嫉惡之。 無義無禮。 無所顧錄。 自用職217)當。 不可諫曉。 六親眷屬。 所資有無。 不能憂念。 不惟父母之恩。 不存師友之義。 心常念惡。 口常言惡。 身常行惡。 曾無一善。 不信先聖諸佛經法。 不信行道可得度世。 不信死後神明更生。 不信作善得善爲惡得惡。 欲殺眞人。 鬪亂衆僧。 欲害父母。 兄弟眷屬。 六親憎惡。 願令其死者。

이것은 나중에 악의 허물을 밝힌 것이다.
“사肆”란 펼치는 것(申)이다.
어떤 사람은 ≺“노호魯扈”란 강직하게 자신의 할 일을 실행하는 의지이고, “저돌抵突”이란 부딪쳐 엇나가며 거부하고 침범하여 업신여기는 마음이다.≻라고 했는데, 어떤 것을 근거로 했는지 알 수 없다.
“로魯”력力과 고古의 반절이다.란 공안국孔安國218)이 『논어論語』 주석서에서 말하기를 “둔한 것(鈍)이다.”라고 했다. “호扈”호胡와 고古의 반절이다.는 『한서음의漢書音義』219)에서

002_0072_a_01L通俗文失躡曰跌廣雅差也亦偃也
002_0072_a_02L業報運數終不參差故卽不違之義

002_0072_a_03L
經曰是爲四大惡至勤苦如是者

002_0072_a_04L
述云此第二結也

002_0072_a_05L
經曰譬如大火焚燒人身者

002_0072_a_06L
述云此第三顯過也

002_0072_a_07L
經曰人能於中至爲 [293] 大善也者

002_0072_a_08L
述云此第二釋所持得也

002_0072_a_09L
經曰佛言其五惡至飮食無度者

002_0072_a_10L
述云此第五釋飮酒有二初釋所離
002_0072_a_11L有三初牒釋有三此初釋惡有二
002_0072_a_12L此初造惡也徙倚者猶徘徊也又失
002_0072_a_13L所之狀宜從初也倚依音古胡
爾雅
002_0072_a_14L罪也1) [130] 學反 [294] 粗略也廣雅明也
002_0072_a_15L見也謂較然易見也位法師云辜者
002_0072_a_16L罪也較者直也奪者盜也2)貞罪直
002_0072_a_17L [131] [295] 盜人財物以爲快意未知較直
002_0072_a_18L於何處散者行也振者惠也損富補
002_0072_a_19L賑亦同慣串同也

002_0072_a_20L
經曰肆心蕩逸至願令其死者

002_0072_a_21L
述云此後惡過也肆者申也有說
002_0072_a_22L是强直自用之志抵突是觸誤侵
002_0072_a_23L陵之懷未知從何力古
孔安國云
002_0072_a_24L鈍也3)方言何也 [132] 胡古
漢書音義曰

002_0072_b_01L“자기 마음대로 날뛰는 것(跋扈)이다.”라고 했으니,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설종薛綜220)은 “용감하고 씩씩한 모양이다.(勇健貌)”라고 했다. 또한 노호虜扈라고도 하는데 멋대로 이치에 거슬리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로虜’는 사람을 획득하는 것이니, 전투하여 포로로 만들어서 얻는 것이다.
“육친六親”이란, 어떤 사람은 ≺아버지의 친척에 세 부류가 있고 어머니의 친척에 세 부류가 있으니 합해서 육친이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혹은 세속의 언어 용법을 인용하여 설명하기도 하는데 확정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응소應劭221)는 “아버지ㆍ어머니ㆍ손위 형제ㆍ손아래 형제ㆍ아내ㆍ자식 등이다.”222)라고 했고, 왕필王弼223)은 “아버지ㆍ어머니ㆍ손위 형제ㆍ손아래 형제ㆍ남편ㆍ아내 등이다.”224)라고 했는데, 모두 지송持頌할 때 “아버지의 육친과 어머니의 육친”225)이라고 하는 것에 위배된다.226)
“식당識當”이란 아는 것(認)이다. 어떤 판본에서는 “직당職當”이라고 하였고, 그 뜻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감행하는 것(敢)을 말하는데, 진실로 이것은 잘못된 것 같다.

b. 통을 풀이함

“이와 같이 세간 사람들은 마음과 뜻이 모두 그러하다. 어리석고 몽매하면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긴다. 태어나도 좇아서 온 곳을 알지 못하고, 죽어도 향하여 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 어질지 않고 수순하지 않으며, 천지의 도리에 어긋나는 악한 행위를 일삼는다. 그렇게 살면서도 요행을 바라면서 오래 살 것을 추구하지만 결국에는 죽음으로 돌아간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가르쳐서 선을 생각하도록 하고, 선취善趣와 악취惡趣를 생사윤회함이 자신이 지은 업에 의해 저절로 인과응보의 관계 속에 얽혀 있는 것을 열어서 보여주어도 이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애써서 말을 해 주어도 그에게는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마음은 닫히고 막혔으며, 뜻은 열리고 이해함이 없다.”
經曰。 如是世人。 心意俱然。 愚癡曚昧。 而自以智慧。 不知生所從來。 死所趣向。 不仁不順。 惡逆天地。 而於其中。 悕望僥倖。 欲求長生。 會當歸死。 慈心敎誨。 令其念善。 開示生死善惡之趣。 自然有是。 而不肯信之。 苦心與語。 無益其人。 心中閉塞。 意不開解者。

이것은 다음에 통을 풀이한 것이다.
“요僥”오五와 조彫 그리고 고古와 요遶 두 가지의 반절이다.는 만나기를 구하는 것(徼遇)이니, 친근하게 만날 것을 추구하는 것이고, “행倖”호胡와 경耿의 반절이다.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얻는 것이다.

c. 소를 풀이함

“존귀한 목숨이 다하려고 할 때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후회와 (사후의 과보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한다. 일찍이 선을 닦는 일을 하지 않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후회하니,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지의 사이에 오도五道가 분명하게 존재하니, 광대하고 심원하며 거대하며 아득하다. 선행과 악행에 따라 과보가 상응하니, 재앙과 복이 상응하여 잇는다. 자신이 스스로 이것을 감당해야 하고 누구도 대신할 사람은 없으니, 이것은 이치에 의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행한 것에 상응하여 재앙이 그 명命을 따르는데 벗어나거나 버릴 수 없다. 선인善人은 선을 행하여 즐거운 곳에서 즐거운 곳으로 들어가고, 지혜로운 사람에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들어간다. 악인惡人은 악을 행하여 고통스러운 곳에서 고통스러운 곳으로 들어가고, 어리석은 사람에서 어리석은 사람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이치를 누가 능히 알 수 있는가. 오직 부처님만 알 뿐이다. 가르침을 설하여 열어 보여도 믿고 행하는 사람은 적다. 생사윤회는 그칠 날이 없고 악도는 끊어질 날이 없다. 이와 같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의 행태는 모두 다 진술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므로 저절로 삼악도에 태어나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그 속을 전전하면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빠져나올 기약이 없으니, 벗어나기 어렵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經曰。 大命將終。 悔懼交至。 不豫修善。 臨窮方悔。 悔之於後。 將何及乎。 天地之間。 五道分明。 恢廓窈窕。 浩浩茫茫。 善惡報應。 禍福相承。 身自當之。 無誰代者。 數之自然。 應其所行。 殃咎追命。 無得縱捨。 善人行善。 從樂入樂。 從明入明。 惡人行惡。 從苦入苦。 從冥入冥。 誰能知者。 獨佛知耳。 敎語開示。 信用者少。 生死不休。 惡道不絕。 如是世人。 難可具盡。 故有自然三塗無量苦惱。 展轉其中。 世世累劫。 無有出期。 難得解脫。 痛不可言者。

이것은 나중에 소燒를 풀이한 것이다.
“명命”이란 천天ㆍ지地ㆍ수壽(수명) 등 삼대三大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대大”라고 했다. “요조窈窕”란 심원한 모양이고, “호호浩浩”란 물이 크고 넓게 흐르는 모양이며, “망망茫茫”이란 아득하고 가물가물한 모양이다. “수數”란 이치로서의 수數이다.

㉡ 맺음

“이것을 다섯 번째 큰 악이고, 다섯 번째 통이며, 다섯 번째 소라고 하는데,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이와 같다.”
經曰。 是爲五大惡。 五痛。 五燒。 勤苦如是者。


술 이것은 두 번째로 맺은 것이다.

㉢ 허물을 드러냄

“비유컨대 큰불이 사람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經曰。 譬如大火。 焚燒人身。

이것은 세 번째로 허물을 드러낸 것이다.

ㄴ)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함

“사람이 능히 이러한 속에서도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르게 하며, 말과 행동이 서로 일치하고, 짓는 것에 있어서 지극히 정성스러우며, 말하는 것에 있어서 진실 그대로 말하고, 마음과 말이 구르지 않게 하여,227) 홀로 모든 선을 행하고 온갖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자신만이 홀로 벗어나서 그에 따르는 복덕을 얻고, 세간에서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열반의 도를 얻으니, 이것을 다섯 번째 큰 선이라 한다.”
經曰。 人能於中。 一心制意。 端身正念。 言行相副。 所作至誠。 所語如語。 心口不轉。 獨作諸善。 不爲衆惡者。 身獨度脫。 獲其福德。 度世上天泥洹之道。 是爲228)大善也者。

이것은 두 번째로 지니고 얻어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부副”란 돕는 것(助)이고, 칭합稱合하는 것이다.

다) 총괄적으로 풀이함

㉮ 여의어야 할 것을 총괄적으로 풀이함

ㄱ. 총괄적으로 나타냄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짓는 다섯 가지 악에 의해 고통을 받는 것이 이와 같다. 다섯 가지 통과 다섯 가지 소가 전전하면서 서로 생겨난다.”
經曰。 佛告彌勒。 吾語汝等。 是世五惡。 勤苦若此。 五痛五燒。 展轉相生者。


002_0072_b_01L跋扈自縱恣也薛綜曰勇健貌
002_0072_b_02L作虜扈謂縱橫行也虜人獲也
002_0072_b_03L而俘獲也六親者有說父親有三
002_0072_b_04L親有三合有六親或有引世語以申
002_0072_b_05L難定應劭云父母兄弟妻子王弼云
002_0072_b_06L父母兄弟夫婦皆違持頌云父之六
002_0072_b_07L母之六親識當者認也有作職當
002_0072_b_08L傳謂敢也良恐訛之

002_0072_b_09L
經曰如是世人至意不開解者

002_0072_b_10L
述云此次釋痛也五彫古
遶二反
徼遇也
002_0072_b_11L謂求親遇也胡耿
非其所得而謂 [296]
002_0072_b_12L

002_0072_b_13L
經曰大命將終至痛不可言者

002_0072_b_14L
述云此後釋燒也命是天地壽三大
002_0072_b_15L中之一故云大窈窕者幽冥貌浩浩
002_0072_b_16L大水貌茫茫者冥昧貌數者理數

002_0072_b_17L
經曰是爲五大惡至勤苦如是者

002_0072_b_18L
述云此第二結也

002_0072_b_19L
經曰譬如大火焚燒人身

002_0072_b_20L
述云此第三顯過也

002_0072_b_21L
經曰人能於中至爲 [297] 大善也者

002_0072_b_22L
述云此第二釋所持得也副者助也
002_0072_b_23L稱也

002_0072_b_24L
經曰佛告彌勒至展轉相生者

002_0072_c_01L
세 번째로 총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여의어야 할 것을 총괄적으로 풀이했고, 나중은 얻어야 할 것을 총괄적으로 풀이했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총괄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ㄴ. 개별적으로 풀이함

ㄱ) 악으로부터 통과 소가 생겨남

“단지 온갖 악을 짓고 선의 근본은 닦지 않으니, 모두 저절로 온갖 악취에 들어간다. 혹은 현재 세상에서 먼저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한 벌로서 병에 걸려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 없고 살려고 해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처한다. 이렇게 해서 죄악이 초래하는 결과를 대중에게 보이고 이것을 뚜렷이 보도록 한다.”
經曰。 但作衆惡。 不修善本。 皆悉自然。 入諸惡趣。 或其今世。 先被殃病。 求死不得。 求生不得。 罪惡所招。 示衆見之者。

이것은 나중에 개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악으로부터 통과 소가 생겨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온갖 악을 짓고”란 곧 다섯 가지 악이고, “악취에 들어간다.”란 곧 다섯 가지 소이며, “자신이 지은 업에 대한 벌로서 병에 걸려”란 곧 다섯 가지 통이다.

ㄴ) 소로부터 악과 통이 생겨남

㉠ 다섯 가지 소

“몸이 죽으면 자신이 행한 것에 따라서 삼악도에 들어가 지독한 고통에 한량없이 시달리며 그 몸이 불태워진다.”
經曰。 身死隨行。 入三惡道。 苦毒無量。 自相燋然者。

이것은 나중에 소에 의해 악과 통이 생겨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다섯 가지 소를 밝힌 것이다.
“행行”이란 업業이다.

㉡ 소로부터 악이 생겨남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 (세상에 태어나면) 함께 원한이 맺힌 마음을 지으니 작고 미미한 것에서 일어나 마침내 큰 악을 이루고,229) 모두 재물과 색色(女色)에 탐욕스럽게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베풀지 못하며,230) 어리석음과 욕망에 의해 다그침을 받아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로 생각하고,231) 번뇌의 결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돈독히 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 싸우면서 자신의 행위를 살피고 기록하는 일이 없으며,232) 부귀와 영화가 때맞추어 찾아오면 즐거운 마음으로 누리면서 인욕忍辱을 행하지 못하고 선을 닦는 것에도 힘쓰지 않는데 위세가 거의 없어지면서 이것도 따라서 닳아서 없어진다.”233)
經曰。 至其久後。 共作怨結。 從小微起。 遂成大惡。 皆由貪著財色。 不能施惠。 癡欲所迫。 隨心思想。 煩惱結縛。 無有解已。 厚己諍利。 無所省錄。 富貴榮華。 當時快意。 不能忍辱。 不務修善。 威勢無幾。 隨以磨滅者。

이것은 다음에 소로부터 악이 생겨나는 것이다.
“성省”이란 살피는 것이다.

㉢ 악으로부터 통이 생겨남

“몸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고통에 시달리는데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이어져 나중에는 더욱 크게 고통을 받는다. 천도天道가 펼쳐지면서 저절로 (지은 업의 과보가) 지은 대로 드러나며 법의 그물이 드리워지는데, 높은 사람이나 하천한 사람이나 모두 그 업에 상응하는 (과보를 받는다.) 그때 중생은 외롭고 바쁘게 과보로서의 세계로 들어간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 왔으니, 애통하구나. 마음 아파할 만한 일이다.”
經曰。 身坐勞苦。 久後大劇。 天道施張。 自然糺擧。 綱紀羅網。 上下相應。 焭焭忪忪。 當入其中。 古今有是。 痛哉。 可傷者。

이것은 나중에 악으로부터 통이 생겨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좌坐”란 또한 말미암는 것(由)이고, 받는 것(受)이다. 고통이 증가하여 그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이어져 (나중에는) 더욱 크게 고통을 받는다.”라고 했다.
업과 그에 상응하는 과보의 이치는 다시 별도로 짓는 이가 없기 때문에 “천도가 펼쳐지면서”라고 했고, 악을 지으면 반드시 드러나기 때문에 “저절로 (지은 업의 과보가) 지은 대로 드러나며”라고 하였다.
“규糺”는 또한 규糾당唐과 유由의 반절이다.라고도 하고, 『결의決疑』에서 “세 가닥을 합쳐서 만든 줄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이런 뜻이 아니다. 지금은 그대로 따르는 것(約), 지은 것에 한정되는 것(限)이라는 뜻이다. “규糺”란 고체古體이다. 몸에 법망法網이 닥쳐오기 때문에 “법의 그물이 드리워지는데”라고 했다.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법을 좇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높은 사람이나 하천한 사람이나 모두 그 업에 상응하는 과보를 받는다.”라고 했다. 죄라는 것은 그것을 지은 사람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어서 어떤 사람도 짝하여 배웅할 수 없기 때문에 “외롭고(煢)”라고 했다. “종종忪忪”이란 바쁜 것(怱)이다. “경煢”은 고문古文에서는 경儝ㆍ경惸 등과 같이 쓰이고, 그 음은 거巨와 영營의 반절이며, 뜻은 고독한 것(獨)이고, 외로운 것(單)이다.


002_0072_c_01L
述云第三總釋有二初總釋所離
002_0072_c_02L總釋所得初又有二此初總標也

002_0072_c_03L
經曰但作衆惡至示衆見之者

002_0072_c_04L
述云此後別釋有二此初從惡生痛
002_0072_c_05L燒也作衆惡者卽五惡入惡趣者卽
002_0072_c_06L五燒被殃病者卽五痛

002_0072_c_07L
經曰身死隨行至自相燋然者

002_0072_c_08L
述云此後從燒生惡痛有三此初五
002_0072_c_09L燒也行者業也

002_0072_c_10L
經曰至其久後至隨以磨滅者

002_0072_c_11L
述云此次從燒生惡也省者察也

002_0072_c_12L
經曰身坐勞苦至痛哉可傷者

002_0072_c_13L
述云此後從惡生痛也亦由也
002_0072_c_14L苦增不止故云久大劇業果之理
002_0072_c_15L更無作者故云天道施張造惡必彰
002_0072_c_16L故自糺擧糺亦糾唐由
決疑云三合繩
002_0072_c_17L非此中意今約也限也糺是
002_0072_c_18L古體也身當法網故云綱紀羅網
002_0072_c_19L賤勿不從法故上下相應罪者歸之
002_0072_c_20L無人伴送故云煢忪忪者怱也
002_0072_c_21L [298] 4) [133] 營反獨也單也

002_0072_c_22L「苞」疑「苟」「貞罪直突」更勘(「貞」疑「負」)
002_0072_c_23L
「方言何也」今按方言曰曾何也等非是釋魯字
002_0072_c_24L更詳
「臣」疑「巨」

002_0073_a_01L
㉯ 지녀야 할 것을 풀이함

ㄱ. 자신의 슬픔을 드러냄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실상이 이와 같으니 부처님께서는 모두 이것을 슬퍼하신다.”
經曰。 佛語彌勒。 世間如是。 佛皆哀之者。

두 번째로 지녀야 할 것을 풀이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맺으면서 자신의 슬픔을 나타낸 것이다.

ㄴ. 바로 교화의 이익을 펼침

“위신력으로 온갖 악을 꺾어서 소멸시키고 모두 선에 나아가게 하며, 번잡한 생각을 버리고 경계經戒를 받들어 지니며 도법道法을 받아서 행하게 하여 어긋나고 잃어버리는 일이 없게 함으로써, 끝내 세간에서 벗어나 열반의 도를 얻게 한다.”
經曰。 以威神力。 摧滅衆惡。 悉令就善。 棄捐所思。 奉持經戒。 受行道法。 無所違失。 終得度世涅槃之道者。

이것은 나중에 바로 교화의 이익을 펼친 것이다.
“악을 (꺾어서) 소멸시키고 (모두) 선에 나아가게 하며”라고 한 것은 세간의 선을 닦게 하는 것이고, “번잡한 생각을 버리고 (경계를 받들어 지니며) 도법을 받아서 행하게 하여”라고 한 것은 출세간의 선을 닦게 하는 것이다.

④ 사람들에게 닦고 버릴 것을 권함

가. 부처님께서 닦고 버릴 것을 권함

가) 이치로써 바로 권함

㉮ 바로 닦고 버릴 것을 권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지금 이 세상에 사는 모든 하늘과 인민과 후세의 인간들은 부처님의 경어經語를 얻으면 이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마음을 바로잡고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 임금은 선을 행하여 그 백성을 이끌고 교화하며, 이렇게 전전하면서 서로 명령을 전하여 각각 스스로 삿된 것을 바로잡고 바른 것을 지켜야 한다. 성인을 존중하고 착한 사람을 공경하며 어질고 자애로우며 널리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감히 이지러뜨리거나 등져서는 안 된다. 세간에서 벗어날 것을 추구해야 하고, 생사윤회와 온갖 악의 근본이 되는 것을 뽑아서 끊고 삼악도라는 한량없는 근심과 두려움과 고통의 도를 여의어야 한다.”
經曰。 佛言。 汝今諸天人民及後世人。 得佛經語。 當熟思之。 能於其中。 端心正行。 主上爲善。 率化其下。 轉相勅令。 各自端守。 尊聖敬善。 仁慈博愛。 佛語敎誨。 無敢虧負。 當求度世。 拔斷生死衆惡之本。 當離三塗無量憂畏苦痛之道者。

네 번째로 사람들에게 닦고 버릴 것을 권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부처님께서 닦고 버릴 것을 권한 것이고, 나중은 미륵이 깨달은 것이다. 처음에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이치로써 바로 권한 것이고, 다음은 현재 교화하시는 모습을 들어서 권한 것이며, 나중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화도 소멸하는 것을 들어서 권한 것이다. 처음에 또한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바로 닦고 버릴 것을 권한 것이다.
“단수端守”란 삿된 것을 바로잡고 바른 것을 지키기 때문이다.

㉯ 비교 대상을 설정하여 찬탄함으로써 닦게 함

ㄱ. 미타의 정토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뛰어남을 찬탄함으로써 닦게 함

“너희들은 이에 널리 덕의 근본을 심어야 한다. 은혜를 베풀고 불도에서 금하는 것을 범하지 말며, 욕됨을 참고 정진하며,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지혜를 개발하며,234) 이렇게 전전하면서 서로 교화하여 덕을 짓고 선을 세워야 한다.235)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바르게 하며, 재계齋戒하여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해야 한다.236) 이렇게 하루 낮과 하루 밤 동안 행위하는 것은 무량수국에서 백 년 동안 선을 행하는 것보다 뛰어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부처님의 국토는 의도적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저절로 모두 온갖 선을 쌓게 되며 털끝만큼의 악도 없기 때문이다.”
經曰。 汝等。 於是。 廣植德本。 布恩施惠。 勿犯道禁。 忍辱精進。 一心智慧。 轉相敎化。 爲德立善。 正心正意。 齋戒清淨。 一日一夜。 勝在無量壽國爲善百歲。 所以者何。 彼佛國土。 無爲自然。 皆積衆善。 無髮毛237)之惡者。

이것은 나중에 비교 대상을 설정하여 찬탄함으로써 닦게 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미타의 정토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뛰어남을 찬탄하여 닦게 한 것이다.
“보시 등의 여섯 가지 바라밀(六度)을 닦는 것”238)은 곧 자리행自利行이고, “전전하면서 서로 교화하여 (덕을 짓고) 선을 세우는 것”은 곧 이타행利他行이니, 선을 행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바르게 하며) 재계하는 것”은 곧 선에 머무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은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하루만 행하더라도 서방국토에서 백 년 동안 선을 행한 것보다 뛰어난 것이다. 그런데 『칭찬정토불섭수경』에서 “그 국토에 태어나면 빨리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239) 라고 한 것은, 그곳에서는 닦지 않는 때가 없기 때문이고, 이곳에서는 선을 닦는 때가 적기 때문이니,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ㄴ. 다른 불국토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뛰어남을 찬탄함으로써 닦게 함

“여기에서 열흘 낮과 열흘 밤 동안 선을 닦는 것은, 다른 세계의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서 천년 동안 선을 행하는 것보다 뛰어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세계의 부처님의 국토는 선을 행하는 이가 많고 악을 행하는 이는 적으며, 복덕이 저절로 이루어져 악을 지을 만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지만, 오직 이 세상에는 악을 짓는 일이 많고 복덕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으며, 고통스럽게 욕망을 추구하고 전전하면서 서로 속이며, 마음은 수고롭게 움직이고 몸은 고달프게 돌아다니며 고통(의 물)을 마시고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독을 먹으니, 이와 같은 일에 바삐 힘쓰면서 일찍이 편안하게 쉬는 때가 없기 때문이다.”
經曰。 於此。 修善十日十夜。 勝於他方諸佛國土爲善千歲。 所以者何。 他方佛國。 爲善者多。 爲惡者少。 福德自然。 無造惡之地。 唯此間。 多惡。 無有自然。 勤苦求欲。 轉相欺殆。 心勞形困。 飲苦食毒。 如是怱務。 未嘗寧息者。

이것은 나중에 다른 불국토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뛰어남을 찬탄함으로써 닦게 한 것이다. 곧 상위에 있는 뛰어난 국토를 마주하여 비교하고 뛰어남을 찬탄함으로써 수행의 의지를 북돋우게 하는 것이다.
“태殆”란 위태로운 것(危)이고, 다하는 것(盡)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뜻은 그 세속적 어법에 있으니, 속이는 것을 말한다.

나) 현재 교화하여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을 들어 닦을 것을 권함


002_0073_a_01L
經曰佛語彌勒至佛皆哀之者

002_0073_a_02L
述云第二釋所持有二此初結彰己
002_0073_a_03L悲也

002_0073_a_04L
經曰以威神力至涅槃 [299] 之道者

002_0073_a_05L
述云此後正申化益也滅惡就善者
002_0073_a_06L令修世善棄思受道者修出世善

002_0073_a_07L
經曰佛言汝今至苦痛之道者

002_0073_a_08L
述云第四勸人脩捨有二初佛勸脩
002_0073_a_09L後彌勒領解初又有三初以理正
002_0073_a_10L次擧現化勸後以化滅勸初又有
002_0073_a_11L此初正勸脩棄也端守者匡邪守
002_0073_a_12L正故

002_0073_a_13L
經曰汝等於是至無髮毛 [300] 之惡者

002_0073_a_14L
述云此後對歎令脩有二此初對彌
002_0073_a_15L陀土歎勝令修也施等六度卽自利
002_0073_a_16L [301] 轉化立善卽利他行行善是也
002_0073_a_17L正心齋戒卽止善也此修難成故
002_0073_a_18L一日勝西方國百年之善而稱讃云
002_0073_a_19L生彼國疾得無上菩提者彼無時不修
002_0073_a_20L此修善時少故不相違也

002_0073_a_21L
經曰於此修善至未嘗寧息者

002_0073_a_22L
述云此後對餘佛土歎勝令修也
002_0073_a_23L望上位所居勝土挍量歎勝令增修意
002_0073_a_24L殆者危也盡也今此中意存其俗語

002_0073_b_01L
㉮ 선을 닦아 이익을 얻게 함

“나는 너희 하늘과 인간의 무리를 불쌍히 여기어 마음을 다해 가르쳐 깨우치게 하고 선을 닦게 하며, 근기에 따라 열고 이끌어 경법을 주어 받들어 실천하지 않음이 없게 하며, 그것을 이룰 것을 소원하면 모두 도를 증득하게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방문하신 나라의 읍과 구丘240) 등의 작은 고을마다 교화를 입지 않은 곳이 없게 하여 천하는 화순하고 해와 달은 청명하며, 바람과 비는 때맞추어 일어나고 재난과 돌림병은 일어나지 않으며, 나라는 풍요롭고 백성은 평안하며, 무기는 쓸모가 없고 덕을 숭상하고 인仁을 일으키며, 예의와 겸양을 부지런히 닦게 할 것이다.”
經曰。 吾哀汝等天人之類。 苦心誨喻。 敎令修善。 隨器開導。 授與經法。 莫不承用。 在意所願。 皆令得道。 佛所遊履。 國邑丘聚。 靡不蒙化。 天下和順。 日月清明。 風雨以時。 災厲不起。 國豐民安。 兵戈無用。 崇德興仁。 務修禮讓者。

이것은 두 번째로 현재 교화하여 이익을 얻게하는 것을 들어 닦을 것을 권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선을 닦아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읍邑”이란 『주례周禮』241)에서 “네 개의 정井을 합쳐서 읍邑이라 한다.”라고 했고, (이에 대한 정현의 주석에)242) “사방이 2리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례』에서)243) “구부九夫를 정井이라 하니, 사방이 1리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설문說文』에서는 “여덟 가구가 1정井이다.”라고 했다.
“취락聚落”244)이란 작은 고을(小鄉)을 “취聚”라 하고, 『광아廣雅』에서 “‘락落’은 거주하는 것(居)이다.”라고 했으니, 사람이 모여서 거주하는 곳을 말한다.
“려厲”력力과 제制의 반절이다.는 전염병(疫厲)이니,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그 병이 서로에게 옮겨지는 것이다. 『석명釋名』에서 “병의 기운이 유행하여 사람들에게 침투하는 것이다.”245)라고 했다.
“과戈”거居와 화和의 반절이다.란 끝이 뭉툭한 창으로 길이는 10척 6촌 혹은 6척 6촌이다.

㉯ 악을 소멸시키고 고통을 여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여러 하늘과 인민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하다. 지금 내가 이 세상에서 부처가 되었으니, 다섯 가지 악을 항복시켜 없애고, 다섯 가지 통을 소멸하여 없애며, 다섯 가지 소를 끊어서 없애고, 선으로 악을 공격하여 생사의 고통을 뿌리 뽑으며, 다섯 가지 덕을 얻고, 무위의 안락한 세계에 오르게 할 것이다.”
經曰。 佛言。 我哀愍汝等諸天人民。 甚於父母念子。 今我於此世作佛。 降化五惡。 消除五痛。 絕滅五燒。 以善攻惡。 拔生死之苦。 令獲五德。 昇無爲之安者。

이것은 나중에 악을 소멸시키고 고통을 여의는 것이다.
다섯 가지 악을 소멸시키기 때문에 다섯 가지 덕을 얻는 것이고, 통과 소를 여의기 때문에 무위의 안락한 세계로 오르는 것이다.

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교화하신 가르침이 사라져 가는 것을 들어서 닦을 것을 권함

㉮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가르침이 사라져 가는 것을 나타냄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경도經道가 점점 소멸하고, 인민은 아첨과 거짓을 일삼고 다시 온갖 악을 행하여, 다섯 가지 소와 다섯 가지 통이 다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일어나고, 오랫동안 쉬지 않고 이어지면서 더욱 고통이 심해질 것이니, (그 실상을) 모두 말할 수 없다. 나는 단지 너희를 위해 간략하게 이것을 말했을 뿐이다.”
經曰。 吾去世後。 經道漸滅。 人民諂僞。 復爲衆惡。 五燒五痛。 還如前法。 久後轉劇。 不可悉說。 我但爲汝。 略言之耳者。

이것은 세 번째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교화하신 가르침이 사라져 가는 것을 들어서 닦을 것을 권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부처님(聖)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가르침이 사라져 가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실悉”은 모두 갖추는 것(備)이다.

㉯ 사람들에게 권하여 닦게 함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각자 이것에 대해 잘 생각하고, 전전하면서 서로 가르쳐서 부처님의 경법대로 하고 위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經曰。 佛語彌勒。 汝等各善思之。 轉相敎誡。 如佛經法。 無得犯也者。

이것은 나중에 사람들에게 권하여 닦게 한 것이다.

나. 미륵이 깨달은 것

이에 미륵보살이 합장을 하고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매우 옳은 것이니, 세상 사람은 진실로 그러합니다. 여래께서 두루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모두 구제하여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귀중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감히 어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經曰。 於是。 彌勒菩薩。 合掌白言。 佛所說。 甚善。 世人實爾。 如來。 普慈哀愍。 悉令度脫。 受佛重誨。 不敢違失者。

이것은 두 번째로 미륵이 깨달은 것이다.
“매우 옳은 것이니, (세상 사람은) 진실로 그러합니다.”란 깨달은 것이고, “감히 어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란 받들어 행하는 것이다. “감히 ~하지 않는다.”란 두려워하는 것이다.

⑶ 칭찬과 꾸짖음, 얻는 것과 잃는 것에 의해 중생으로 하여금 닦을 것은 닦고 버릴 것은 버리게 함246)

①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명하여 아미타불께 예배하게 함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무량수불께 예배하도록 하라. 시방세계에 있는 국토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항상 함께 그 부처님의 집착이 없고 걸림이 없음을 칭양하고 찬탄하고 계신다.”
經曰。 佛告阿難。 汝起更整衣服。 合掌恭敬。 禮無量壽佛。 十方國土諸佛如來。 常共稱揚讚歎。 彼佛無著無礙247)者。

세 번째로 칭찬과 꾸짖음, 얻는 것(이익)과 잃는 것(손해)에 의해 중생(物)으로 하여금 닦을 것은 닦고 버릴 것은 버리게 한 것이다.

002_0073_b_01L言欺之也

002_0073_b_02L
經曰吾哀汝等至務修禮讓者

002_0073_b_03L
述云此第二擧現化益以勸修有二
002_0073_b_04L此初修善得益也邑者周禮四井爲
002_0073_b_05L方二里也九夫爲井方一里也
002_0073_b_06L八家一井也聚落者小鄕曰聚
002_0073_b_07L居也謂人所聚居也力制
疫厲
002_0073_b_08L人病相注也釋名云病氣流行中
002_0073_b_09L人也居和
平頭戟長十尺六寸或六
002_0073_b_10L尺六寸也

002_0073_b_11L
經曰佛言我哀至無爲之安者

002_0073_b_12L
述云此後滅惡離苦也滅五惡故
002_0073_b_13L五德離痛燒故昇無爲之安樂

002_0073_b_14L
經曰吾去世後至略言之耳者

002_0073_b_15L
述云此第三以滅化損以勸修有二
002_0073_b_16L此初彰去聖後損也悉者備也

002_0073_b_17L
經曰佛語 [302] 彌勒至無得犯也者

002_0073_b_18L
述云此後勸人使修也

002_0073_b_19L
經曰於是彌勒至不敢違失者

002_0073_b_20L
述云此第二彌勒領解也甚苦 [303] 實爾
002_0073_b_21L領解不敢違失者奉行不敢者
002_0073_b_22L

002_0073_b_23L
經曰佛告阿難至無著無礙者

002_0073_b_24L
述云第三褒貶得失令物脩棄有五

002_0073_c_01L여기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명하여 아미타불께 예배하게 한 것이다.
미륵은 영향중影響衆248)을 대표하고, 아난은 당기중當機衆249)을 대표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오직 이 두 대성大聖을 마주하고 설함으로써 중생에게 권하여 정토왕생의 인因을 닦도록 한 것이다.

② 아난이 명을 받들어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그 국토와 그곳의 중생을 보여줄 것을 청함

이에 아난이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몸을 바르게 하고 서쪽을 향하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합장하고 오체투지五體投地250)하여 무량수불께 예배드리고 세존께 말씀드렸다.
“원하옵건대 저 부처님의 안락국토(極樂淨土)와 보살ㆍ성문의 무리를 보여 주소서.”
經曰。 於是。 阿難起。 整衣服。 正身西面。 恭敬合掌。 五體投地。 禮無量壽佛。 白言世尊。 願見彼佛安樂國土及諸菩薩聲聞之衆者。

이것은 두 번째로 아난이 명을 받들어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그 국토와 그곳의 중생을) 보여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국토”란 거주하는 곳이고, “무리”란 교화의 대상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겸하여 요청한 것이다.

③ 그 부처님께서 광명을 쏘아 요청에 응하여 볼 수 있게 함

이 말을 하고 나자 바로 무량수불께서 큰 광명을 쏘아 일체의 모든 부처님 세계를 두루 비추시니, 금강위산과 수미산왕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모든 산과 모든 존재가 다 같은 색을 띄며 빛났다. 비유컨대 마치 겁수劫水251)가 세계를 가득 채우면 그 속에 만물이 잠겨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고 크고 넓게 퍼져 오직 큰물만 보이는 것처럼, 그 부처님의 광명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성문ㆍ보살 등이 쏘는 일체의 광명이 모두 숨어 버리고 오직 부처님의 광명만 보였다.
經曰。 說是語已。 即時。 無量壽佛。 放大光明。 普照一切諸佛世界。 金剛圍山。 須彌山王。 大小諸山。 一切所有。 皆同一色。 譬如劫水。 彌滿世界。 其中萬物。 沈沒不現。 滉瀁浩汗。 唯見大水。 彼佛光明。 亦復如是。 聲聞菩薩。 一切光明。 皆悉隱蔽。 唯見佛光252)者。

이것은 세 번째로 그 부처님께서 광명을 쏘아 요청에 응하여 볼 수 있게 하신 것이다.
“황양滉瀁”이란 물이 모인 모양이니, 호탕浩蕩(아주 넓어서 끝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汗”하下와 단旦의 반절이다.이란 열기에 의해 덥혀서 발생하는 액체이다. 또한 오污(汙와 같은 글자)오烏와 와臥의 반절이다.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는 더러운 것이 사물에 묻는 것으로, 『설문說文』에서 “예穢(더러운 것, 더럽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앞의 것을 따라야 옳다. 지금 “호한浩汗”이란 물이 넓게 퍼진 모양을 가리킨다.

④ 광명을 따라 그 국토의 이익과 손해를 갖추어서 봄

그때 아난이 곧 무량수불을 보았더니, 위덕이 수미산왕이 모든 세계에서 가장 높이 솟아오른 것처럼 뛰어나게 높고, 상호에서 나툰 광명은 밝게 비추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 법회에 모인 사부의 대중이 동시에 모두 보았고, 저 국토의 대중이 이 국토를 보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았다.
經曰。 爾時。 阿難。 即見無量壽佛。 威德巍巍。 如須彌山王。 高出一切諸世界上。 相好光明。 靡不照耀。 此會四衆。 一時悉見。 彼見此土。 亦復如是者。

이것은 네 번째로 광명을 따라 그 국토의 이익과 손해를 갖추어서 본 것이다.
이 국토의 대중이 저 국토를 보는 것과 저 국토의 대중이 사바세계를 보는 것은 밝음과 어둠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앞에서 이미 풀이한 것과 같다.

⑤ 이익과 손해를 밝혀서 구하도록 하고 버리도록 함

가. 이익을 밝혀 구하도록 함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과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국토를 보라. 땅 위에서부터 정거천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존재하는 미묘하게 장엄하고 청정한 모습의 저절로 생겨난 사물을 모두 보았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예, 이미 보았습니다.”
“너희들은 다시 무량수불께서 큰 음성을 일체 세계에 선포하여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을 들었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예, 이미 들었습니다.”
“그 나라의 인민은 백천 유순의 칠보궁전을 타고 걸림이 없이 시방세계에 두루 이르러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는데, 너희들은 다시 보았느냐?”
대답했다.
“이미 보았습니다.”
經曰。 爾時。 佛告阿難及慈氏菩薩。 汝見彼國。 從地已上。 至淨居天。 其中所有。 微妙嚴淨。 自然之物。 爲悉見不。 阿難。 對曰。 唯然。 已見。 汝寧復聞。 無量壽佛。 大音。 宣布一切世界。 化衆生不。 阿難。 對曰。 唯然。 已聞。 彼國人民。 乘百千由旬七寶宮殿。 無所障礙。 遍至十方。 供養諸佛。 汝復見不。 對曰。 已見者。

이것은 다섯 번째로 이익과 손해를 밝혀서 구하도록 하고 버리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이익을 밝혀 구하게 한 것으로 세 번의 질문과 답변이 있다.
여러 곳에서 “정토에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없다.”라고 한 것은, 곧 이 문장에서 “땅 위에서부터 정거천에 이르기까지”라고 한 것과 어긋난다.
백연본에서 “(떨어진 꽃이 바람에 쓸려 가면) 여러 형태의 부처님의 국토, 곧 제1 사천왕천에서부터 36천에 이르기까지의 국토에 거주하는 여러 보살과 아라한과 천인이 모두 허공에서 두루 함께

002_0073_c_01L此初佛命阿難禮彌陀佛也彌勒
002_0073_c_02L影響衆之主阿難爲當機宜 [304] 之首故
002_0073_c_03L佛唯對此二大聖勸物令修淨土之因

002_0073_c_04L
經曰於是阿難至聲聞之 [305] 衆者

002_0073_c_05L
述云此第二阿難承命禮佛以求見也
002_0073_c_06L土是所居衆是所化故兼之也

002_0073_c_07L
經曰說是語已至唯見佛光 [306]

002_0073_c_08L
述云此第三彼佛放光應請令見
002_0073_c_09L瀁者積水貌猶浩蕩也汗者熱氣所
002_0073_c_10L蒸液也下旦
[307] 又汚烏臥
泥著物也
002_0073_c_11L穢也宜從初也今言浩汗者布水
002_0073_c_12L

002_0073_c_13L
經曰爾時阿難至亦復如是者

002_0073_c_14L
述云此第四尋光備見彼土得失也
002_0073_c_15L此衆見彼土彼土見娑婆明昧有異
002_0073_c_16L前已解

002_0073_c_17L
經曰爾時佛告至對曰已見者

002_0073_c_18L
述云此第五彰 1) [134] 失令求令捨有二
002_0073_c_19L此初彰2) [135] 令求有三問答也諸說
002_0073_c_20L無天地異者卽違此文從地以上
002_0073_c_21L至淨居天然帛延經云 [308] 諸佛國中
002_0073_c_22L從第一四天王上至三十六天上諸菩
002_0073_c_23L阿羅漢天人皆復於虛空中大共
002_0073_c_24L「彼」疑「得」「德」疑「得」

002_0074_a_01L온갖 기악을 지어 (공양한다.)”253)라고 했고, 그 아래 문장에서 “(꽃이 시들면 바람이 불어와 시들은 꽃이 없어지는데 이렇게 네 차례 반복하면) 제1 사천왕천의 여러 천인과 제2 도리천의 여러 천인과 제3천의 여러 천인과 제4천의 여러 천인과 제5천의 여러 천인과 제6천의 여러 천인과 제7 범천의 여러 천인과 위로 제16천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천의 천인과 위로 36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천인이 (천상의 물건을 가지고 내려와 무량청정불께 공양한다.)”254)라고 했다.
지겸본에서도 또한 “곧 여러 형태의 부처님의 국토, 곧 제1 사천왕천에서부터 32천의 여러 천인에 이르기까지의 국토”255)라고 했고, 뒤의 문장에서 “아미타불께서 여러 보살과 아라한을 위해 경을 설하였고, 보살ㆍ아라한과 여러 하늘과 인민이 무앙수에 달하는데, 이들이 모두 아미타불의 처소로 날아와서 법을 듣고 기뻐하였으며, 곧 제1 사천왕천과 제2 도리천과 위로 32천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천인이 각각 하늘에 갖추어져 있는 온갖 종류의 저절로 생겨난 물건을 지니고…(중략)…내려와서 아미타불을 위해 예배드리고 부처님과 여러 보살과 아라한에게 공양했다.”256)라고 했다.
이 두 경에 준하면 여러 세계에 모두 36천과 32천이 있다. 비록 또한 동일한 저본을 번역하였다고 해도 번역한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밀엄경密嚴經』에 따르면 26천이 있으니, 여섯 가지 욕계의 하늘(六欲天)이 있고, 범천에 열 가지 하늘이 있으며, 정거천에 다섯 가지 하늘이 있고, 무색천無色天과 네 가지 무상천無想天이 있는 것을 말한다.257) 그러므로 그 경의 게송에서 말하기를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와 무상無想 등의 천궁天宮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모두 넘어서 밀엄토密嚴土258)에 의지하여 머무시네.”259)라고 하였다.
『본업경本業經』에 따르면 28천이 있으니, 곧 욕계에 여섯 하늘이 있고, (색계의 네 가지) 선禪에 각각 네 가지 하늘이 있으며, 정거천은 한 가지가 있고, 무상천은 설하지 않고 대정천大靜天을 더해서 집어넣었고, 무색계에 네 가지 하늘이 있는 것이다.260)
『화엄경』에 따르면 32천이 있으니, 욕계에 여섯 하늘이 있고, 색계의 초선初禪에 다섯 가지 하늘이 있으며, 그 위의 세 가지 선禪261)에 각각 네 가지 하늘이 있고, 정거천에 또한 다섯 가지 하늘이 있으며, 무색계에 네 가지 하늘이 있는 것을 말하니, 무상천은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62)
총괄적으로 말하자면,

002_0074_a_01L衆音伎樂下云則第一四天王諸天
002_0074_a_02L第二忉利天上諸天人第三天上諸
002_0074_a_03L天人第四天上諸天人第五天上諸天
002_0074_a_04L第六天上諸天人第七梵天上諸天
002_0074_a_05L上至第十六天上諸天人上至三十
002_0074_a_06L六天上諸天人支謙經亦云卽諸佛
002_0074_a_07L國中從第一四天上至三十二 [309] 天上諸
002_0074_a_08L天人後云阿彌陀佛爲諸菩薩阿羅
002_0074_a_09L說經菩薩阿羅漢及諸天人民
002_0074_a_10L央數皆飛到阿彌陀佛所聞法歡喜
002_0074_a_11L卽第一四天王第二忉利天上至三十
002_0074_a_12L [310] 天上諸天人各持天上萬種自然之
002_0074_a_13L來下爲阿彌陀佛作禮供養佛及諸
002_0074_a_14L菩薩阿羅漢准此二經諸界世中
002_0074_a_15L有三十六天及三十三 [311] 雖復一本
002_0074_a_16L譯家異故
依密嚴經有二十六天
002_0074_a_17L六欲天梵天有十淨居有五無色及有
002_0074_a_18L四無想天故彼頌曰欲色無色界
002_0074_a_19L想等天宮佛超過彼已而依密嚴住
002_0074_a_20L依本業經有二十八天卽欲界有六
002_0074_a_21L禪各有四淨居爲一不說無想加大靜
002_0074_a_22L及無色四也依華嚴經有三十二
002_0074_a_23L謂六欲天初禪有五上三各四
002_0074_a_24L居亦五及四無色不說無想故總而

002_0074_b_01L지겸본은 곧 『화엄경』과 같은 부류이다. 그러므로 비록 무상천과 대정천을 설하지 않았지만 32천이 있다. 그러나 백연본에서 “36천이 있다.”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지겸본을 가지고 백연본을 검토하면 백연본에 오류가 많기 때문이다.
비록 무색계의 여러 하늘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욕계와 색계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시 별도의 처소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 오직 묻기를 “정거천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존재하는 일체의 청정하게 장엄한 (사물을 모두 보았느냐?)”라고 한 것이다.263) 비록 (경에 따르면 정토에) 정거천이 있기는 하지만 정성나함定性那含264)은 반드시 정토에 왕생하지 않는다.265)
그런데 『대승밀엄경』에서 “(밀엄의 미묘한 선정에 의해) 혹은 욕자재천欲自在天(타화자재천)과 색계의 하늘에 태어나고, 무상궁無想宮과 아가니타처阿迦尼吒處,266) 공처空處ㆍ식처識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태어나네. 이러한 모든 자리에서 점차 탐욕을 제거하고 그곳에 머물지만 구경이 아니므로 밀엄 세계에 찾아와 태어나네.”267)라고 한 것은, 저 밀엄 국토는 이미 십지十地의 보살이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니,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대승밀엄경』의) 앞의 문장에서 “정거천의 여러 하늘과 아가니타의 나계 범왕螺髻梵王이 함께 한 곳에 모여 모두 이 국토의 부처님과 보살에 대해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었다.”268)라고 했으니, 그러므로 저 하늘이 밀엄토에 태어났다면 곧 보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론에서 벗어난 논의는 그만두고 본문을 풀이해야 할 것이다.

나. 그 국토에서 손실을 보는 것을 드러내어 싫어하게 하고 버리게 함

가) 그 국토에 태생하는 이의 손실을 나타냄

㉮ 질문에 의탁하여 그곳에 태생의 형태로 왕생하는 이의 과보를 나타냄

“그 국토의 인민으로 태생에 의해 왕생하는 이도 있는데 너희는 보았느냐?”
대답했다.
“이미 보았습니다.”
“그곳에 태생에 의해 왕생한 이들이 거주하는 궁전은 혹은 백 유순이고, 혹은 5백 유순이며, 각각 그 속에서 살면서 온갖 쾌락을 누리는데, 도리천에서처럼 그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經曰。 彼國人民。 有胎生者。 汝復見不。 對曰已見。 其胎生者。 所處宮殿。 或百由旬。 或五百由旬。 各於其中。 受諸快樂。 如忉利天上。 皆自然者。

이것은 나중에 그 국토에서 손실을 보는 것을 드러내어 싫어하게 하고 버리게 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그곳에 태생의 형태로 왕생함으로써 받는 손실을 밝혔고, 나중은 권하여 닦고 버리려는 뜻을 일으키게 하였다. 처음에 또한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질문에 의탁하여 그곳에 태생의 형태로 왕생하는 이의 과보를 나타낸 것이다.
“백 유순”이란 곧 하배로서 부처님의 (다섯 가지 지혜를) 의심하는 사람이 태어나는 궁전이고, “5백 유순”이란 중배로서 (부처님의 다섯 가지) 지혜를 의심하는 사람이 머무는 궁전이다.269)
담연본과 지겸본에서는 중배이든 하배이든 모두 “2천 리가 되는 성城”270)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간략하게 제시하고 (실제의 모습을) 다하지 않은 말인 것 같다.

002_0074_b_01L言之支謙本卽同華嚴故雖不說無
002_0074_b_02L想大靜有三十二而帛延云三十六
002_0074_b_03L蓋是訛也將其謙本撿帛延經
002_0074_b_04L經多訛故
雖有無色天而依欲色住
002_0074_b_05L無別處故今唯問乃至淨居所有莊
002_0074_b_06L雖有淨居天而定性那含必不生
002_0074_b_07L淨土
而密嚴云或生欲自在及以色
002_0074_b_08L界天乃至無想宮阿迦尼吒處空識無
002_0074_b_09L所有非想非非想如是諸地中漸次
002_0074_b_10L除貪欲住彼非究竟尋來生密嚴者
002_0074_b_11L彼密嚴之土旣十地菩薩所生之處
002_0074_b_12L故不相違前文自云淨居諸天與阿
002_0074_b_13L加尼吒螺髻梵王同會一處咸於此
002_0074_b_14L土佛及菩薩生希有心故卽知彼天
002_0074_b_15L生密嚴土是菩薩也傍論且止應釋
002_0074_b_16L本文

002_0074_b_17L
經曰彼國人民至亦皆自然者

002_0074_b_18L
述云此後顯彼土失令厭令捨有二
002_0074_b_19L初彰彼胎生之失後勸發脩捨之意
002_0074_b_20L初又有四此初寄問彰彼胎生之果
002_0074_b_21L百由旬者卽下輩疑佛所生之宮
002_0074_b_22L五百由旬者卽中輩疑智所止之宮
002_0074_b_23L而帛謙經若中若下皆云二千里城者
002_0074_b_24L蓋是略擧不盡之言不爾中下輩

002_0074_c_01L그렇지 않다면 중배와 하배는 차이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이 더 뛰어나다. 크기의 넓고 좁음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뒤에서) “5백 세 (동안 변지의 궁전에 머문다.)”라고 한 것은, 곧 이 세계에서의 햇수이다. 그러므로 다른 번역본에서는 모두 “이 세상에서 5백 세 동안 머문다.”271)라고 했다.

㉯ 원인을 마주하여 결과를 나타냄

ㄱ. 질문

그때 자씨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因과 어떤 연緣으로 그 국토에 왕생하는 인민이 태생하기도 하고, 화생하기도 하는 것입니까?”
經曰。 爾時。 慈氏菩薩。 白佛言。 世尊。 何因何緣。 彼國人民。 胎生化生者。

이것은 둘째 원인을 마주하여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질문한 것이다. 곧 바로 태생의 원인을 묻고 겸하여 화생의 원인을 물었다.

ㄴ. 부처님께서 질문에 답변함

ㄱ) 태생의 인과에 대한 질문에 답변함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중생은 의심하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공덕을 닦고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원한다. 곧 불지佛智와 부사의지不思議智와 불가칭지不可稱智와 대승광지大乘廣智와 무등무륜최상승지無等無倫最上勝智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지혜를 의심하여 믿지 않지만, 죄복의 인과는 믿기 때문에 선의 근본을 닦고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중생은 그 (국토의 변지에 있는) 궁전에 태어나 5백 세를 살면서 영원히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고, 경법經法을 듣지 못하며, 보살과 성문 등의 성중聖衆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국토에서 이것을 태생이라 한다.”
經曰。 佛告慈氏。 若有衆生。 以疑惑心。 修諸功德。 願生彼國。 不了佛智。 不思議智。 不可稱智。 大乘廣智。 無等無倫最上勝智。 於此諸智。 疑惑不信。 然猶信罪福。 修習善本。 願生其國。 此諸衆生。 生彼宮殿。 壽五百歲。 常不見佛不聞經法。 不見菩薩聲聞聖衆。 是故。 於彼國土。 謂之胎生者。

이것은 두 번째로 부처님께서 질문에 답변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태생의 인과因果에 대한 질문에 답변했다.272)
오직 총괄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니 허물은 앞의 해석과 같다. 진실로 또한 차례에 있어서도 여러 논서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불지”란 곧 총괄적으로 나타낸 것이고, 그 뒤의 네 가지 지혜는 그것을 나눈 것이다. 그러므로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부사의지”라 하고, 평등성지平等性智를 “불가칭지”라 하며, 묘관찰지妙觀察智를 “대승광지”라고 하고, 성소작지成所作智273)를 “무등무륜최상승지”라 한다.≻274)라고 했는데, 이것도 옳지 않다. 뒤의 네 가지 지혜가 그 차례대로 대원경지 등의 네 가지 지혜와 같다는 것은 성교聖敎에 수순하지만 네 가지 지혜를 모두 불지佛智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니,275) 평등성지와 묘관찰지의 두 가지 지혜에 상응하는 심품心品은 보살도 또한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다섯 가지 지혜는 차례대로 저 『불지경佛地經』에서 설한 다섯 가지 법(五法)276)이 여기에 해당한다.277) 곧 (여기에서 설한) 청정법계淸淨法界를 불지佛智라고 할 수 있으니, 지혜를 얻도록 하는 대상이 되는 것(智處)과 지혜 자체의 성품(智性)을 모두 지智라고 하기 때문이다.278)
어떤 사람은 ‘아미타불께서 비록 큰 서원을 세웠더라도 중생은 만품萬品에 이르는데, 이들을 접인接引(인도하여 섭수하는 것)하여 시방세계의 하늘과 인간을 그 국토에 태어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의심하기 때문에 “불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아미타불은 이미 일진법계一眞法界를 증득하여 어떤 덕도 원만하게 갖추지 않음이 없다. 모든 근심을 다 없앨 때까지, 미래세가 다할 때까지 그 덕은 다하지 않으며, 본원本願에 칭합하게 영접한다. 그러므로 연緣이 있는 중생은 모두 그 국토에 태어난다. 의심의 그물을 펼쳐서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된다.
대원경지를 “부사의지”라고 한다.

002_0074_c_01L無參差故此文爲勝量之大小思之
002_0074_c_02L可會五百歲卽此方年數故餘本
002_0074_c_03L於是間五百歲也

002_0074_c_04L
經曰爾時慈氏至胎生化生者

002_0074_c_05L
述云此第二對因顯果有二此初問
002_0074_c_06L卽正問胎生之因兼其化生也

002_0074_c_07L
經曰佛告慈氏至謂之胎生者

002_0074_c_08L
1)唯總別違理 [136] [312] 過同前解良亦次第
002_0074_c_09L諸論故有說佛智卽總標四智區故
002_0074_c_10L大圓鏡智名不思議智平等性智名不
002_0074_c_11L可稱智妙觀察智名大乘廣智成所作
002_0074_c_12L名無等無倫最上勝智此亦不然
002_0074_c_13L後之四智如其次第鏡等四智隨順聖
002_0074_c_14L不應四智皆名佛智故平等妙觀
002_0074_c_15L二智心品菩薩亦得故故此五智
002_0074_c_16L其次第彼佛地經中五法是也淸淨
002_0074_c_17L法界名爲佛智智處智性皆名智故

002_0074_c_18L
有疑彌陀雖有弘誓衆生萬品頗能
002_0074_c_19L接引十方天人令生彼國故云不了佛
002_0074_c_20L彌陀旣證一眞法界無德不圓
002_0074_c_21L患悉盡盡當際而不竭稱本願而迎
002_0074_c_22L故有緣衆生皆生彼土不可以疑
002_0074_c_23L網經懷也
大圓鏡智名不思議智
002_0074_c_24L「唯總別違理」疑此下次上有闕文更勘

002_0075_a_01L
어떤 사람은 경에서 “선악과 그에 따른 죄복은 (저울처럼 정확하게 상응하여) 무거운 것을 먼저 끌어당긴다.”279)라고 하는 말을 듣고 바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하면 반드시 그 국토에 태어난다는 것을 의심하여 항상 온갖 악을 지어 악한 마음이 깊고 무거워지면, 아미타불의 명호를 열 번 칭념하기를 끊이지 않고 이어간다고 해도 그 미미한 선으로 온갖 죄를 소멸시켜서 그 국토에 왕생하여 정정취에 들어가고 끝내 퇴전하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부사의지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이것을 설한 것은) “부사의지”는 큰 위력이 있어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경계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때문이다. 그대는 한 면의 거울에 어떤 상像도 나타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듣지 않았는가. 어찌 한 지혜의 힘(대원경지)으로 온갖 죄업의 장애를 소멸시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인가. 또한 만 근斤이나 되는 털도 작은 불에 의해 태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가 여기에도 적용된다.280) 그러므로 열 번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하면 생각마다 개별적으로 80억의 생사의 죄를 소멸시키니, (이러한 실천행에 의해)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는 것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평등성지를 “불가칭지”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불지佛智는 법에 있어서 (모든 명칭을) 아득하게 끊었다는 말을 듣고 의심하여 말하기를 “명칭은 반드시 서로 마주하는 것이 있으니 불각不覺을 마주하여 각覺이라 한다. 어떻게 (불지가) 모든 명칭을 현묘하게 끊었는데 염불에 의해 많은 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다. 이제 이러한 의심을 풀이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불가칭지를 갖추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평등성지는 이공二空(아공ㆍ법공)의 이치를 증득하고, 경계와 지혜가 평등하며, 칭설稱說을 아득하게 끊은 것이다. 그리하여 명칭으로 명칭을 좇고 현지玄旨를 드러낸다. 뜻을 깨달은 이는 말이 없다. 경계가 이미 불가칭不可稱이니 지혜도 또 불가칭이라고 할 수 있다. 불가칭이기 때문에 염불하는 사람은 많은 복을 얻는다. 이로 말미암아 의심의 그물을 펼쳐서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
묘관찰지를 “대승광지”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염불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의심을 일으켜 말하기를 “과거와 현재의 여러 부처님께서 비록 한량없이 많이 계셨지만 중생을 구제하기를 다하지 못했는데, 한 부처님께서 능히 중생을 다 제도하신다면 다시 다른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어떻게 아미타불을 칭념하면 모두 그 국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한다. 그러므로 “대승광지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묘관찰지는 항상 지혜와 자비를 머금고 연緣이 있는 모든 중생을 실어서 날라 열반에 들어가게 하지 않음이 없다. 단지 중생이 각각 복속되는 것이 있으니, 복속된 이는 비록 다하지만 복속되지 않는 이는 남아 있다.

002_0075_a_01L經說善惡罪福重者先引 [313] 便疑稱念
002_0075_a_02L彌陀佛名必生彼土言恒作諸惡
002_0075_a_03L心深重不應十念相續微善能滅諸罪
002_0075_a_04L而往生彼入正定聚畢不退轉故云
002_0075_a_05L不了不思議智不思議智有大威力
002_0075_a_06L非思量境故汝不聞乎一面之鏡
002_0075_a_07L像不現詎疑一智力消諸罪障又如
002_0075_a_08L毫毛萬斤少火能焚故十念稱佛
002_0075_a_09L能除八十億劫生死之罪往生淨
002_0075_a_10L有何可怪也
平等性智名不可稱
002_0075_a_11L有聞佛智於法懸絕懷疑而言
002_0075_a_12L必相待待不覺而名覺有何懸絕念
002_0075_a_13L獲多福今釋此疑顯佛有不可稱智
002_0075_a_14L平等性智證二空理境智平等玄絕稱
002_0075_a_15L而以名遣名而詮玄旨悟旨者亡
002_0075_a_16L境旣不可稱智可言不可稱不可
002_0075_a_17L稱故念者福多由此不可疑網在懷

002_0075_a_18L
妙觀察智名大乘廣智有聞念佛皆
002_0075_a_19L得往生而起疑言過現諸佛雖復無量
002_0075_a_20L濟生不盡一佛能度衆生盡不應更
002_0075_a_21L有餘佛化生如何念彌陀佛者皆生
002_0075_a_22L彼土故云不了大乘廣智妙觀察智
002_0075_a_23L常含智悲於諸有緣無不運載而入涅
002_0075_a_24L但諸衆生各有所屬屬者雖盡

002_0075_b_01L그러므로 다시 다른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여 교화하여 이익을 주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염불하면 모두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는 것은 그 뜻이 여기에 있다.
성소작지를 “무등무륜최상승지”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여래께서 십사불가기사十四不可記事281)에 답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곧 부처님에 대해 의심을 일으켜 “일체제법을 두루 알지 못한다. 이미 이렇게 뛰어난 공용이 없다면 염불한들 어떤 복이 있겠는가.”라고 한다. 그러므로 “무등(무륜최상승)지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성소작지는 육진六塵282)을 두루 반연하는 것이 범부와 같지 않기 때문에 “무등無等(동등한 것이 없는 것)”이라 하고, 비록 모든 경계를 통섭하지만 항상 미묘한 선정(妙定)의 상태에 있는 것이 이승二乘이 선정에 들어간 것과 나온 것이 그 상태가 동일하지 않은 것과 같지 않기 때문에283) “무륜無倫(동등한 것이 없는 것)”이라고 하며, 두 가지 장애(二障 : 번뇌장ㆍ소지장)를 모두 다하고 삼업三業을 발하여 사기론四記論284)으로 교화하는 것이, 보살들이 능히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최상승”이라고 한다. “최상승”이란 그 차례대로 3아승기겁 동안 수행한 것을 간별하기 위한 때문이다.
여래께서 난문難問에 답변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네 가지 일에 답변하는 것은 오직 희론戲論만 있을 뿐이니, 알면서도 답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은 그 복덕이 결정코 적지 않다. 이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지혜를 의심하면 비록 그 국토에 태어나도 변지에 태어나 성인의 교화를 받지 못하니, 정토에 태생하여 변지에 떨어지는 일이 생겨나게 하는 이러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

ㄴ) 겸하여 화생의 인과에 대한 질문에 답변함

“어떤 중생이 불지佛智 내지 무등무륜최상승지無等無倫最上勝智를 분명히 믿고 온갖 공덕을 지으며 신심信心을 갖고 회향하면, 이 중생은 칠보로 된 꽃 속에서 저절로 화생하여 가부좌를 틀고 앉는데, 순식간에 신체의 모습과 광명과 지혜와 공덕이 여러 보살과 같아져서 모든 것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經曰。 若有衆生。 明信佛智。 乃至勝智。 作諸功德。 信心迴向。 此諸衆生。 於七寶華中。 自然化生。 跏趺而坐。 須臾之頃。 身相光明。 智慧功德。 如諸菩薩。 具足成就者。

이것은 나중에 겸하여 화생의 인과에 (대한 질문에) 답변한 것이다.

㉰ (화생하는 이와) 비교하여 (태생하는 이가) 하열함을 나타냄

ㄱ. 화생의 뛰어남을 찬탄함

“또한 자씨보살이여, 타방 세계의 불국토에 있는 여러 대보살도 발심하여 무량수불을 친견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며, 여러 보살과 성문의 무리에게도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그 보살은 목숨을 마친 후 무량수국에 태어나 칠보로 된 꽃 속에서 저절로 화생한다. 미륵이여, 마땅히 알라. 그곳에 화생하는 이는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經曰。 復次。 慈氏。 他方佛國。 諸大菩薩。 發心。 欲見無量壽佛恭敬供養。 及諸菩薩聲聞之衆。 彼菩薩等。 命終。 得生無量壽國。 於七寶華中。 自然化生。 彌勒。 當知。 彼化生者。 智慧勝故者。

이것은 세 번째로 (화생하는 이와) 비교하여 (태생하는 이가) 하열함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화생의 뛰어남을 찬탄한 것이다.

ㄴ. 태생하는 이의 하열함을 나타냄

“그곳에 태생하는 이는 모두 지혜가 없다. 그곳에서 5백 세를 사는 동안 항상 부처님을 보지 못하고, 경법을 듣지 못하며, 보살과 성문의 무리도 보지 못한다. 이로 말미암아 부처님께 공양할 수도 없고, 보살의 법칙과 의식도 알지 못하며, 공덕을 수습하지도 못한다.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과거세에 지혜가 없어서 (부처님의 지혜에 대해) 의심을 일으키고, 그 의심에 집착함으로써 이러한 결과를 받은 것이다.”
經曰。 其胎生者。 皆無智慧。 於五百歲中。 常不見佛。 不聞經法。 不見菩薩諸聲聞衆。 無由供養於佛。 不知菩薩法式。 不得修習功德。 當知。 此人。 宿世之時。 無有智慧。 疑惑。 所致者。

이것은 다음에 태생하는 이의 하열함을 나타낸 것이다.
“혹惑”이란 집착하는 것(執)이다.

㉱ 비유에 의지하여 허물을 펼침

ㄱ. 비유를 세우고 반문함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전륜성왕에게 별도로 칠보로 된 궁전의 방이 있어 온갖 장엄구로 장엄하고 장막을 드리운 책상을 만들고 온갖 비단 깃발을 걸어놓았는데, 여러 소왕자小王子가 왕에게 죄를 지어서 바로 그 궁전의 방에 집어넣고 금으로 만든 쇠사슬로 묶어 놓고 음식과 옷과 책상과 침구와 꽃과 향기와 기악을 공급하기를 전륜성왕과 같이 하여 모자라는 것이 없게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여러 왕자는 그곳에 머무는 것을 즐거워하겠느냐?”
經曰。 佛語彌勒。 譬如轉輪聖王。 別有七寶宮室。 種種莊嚴。 張設床帳。 懸諸繒幡。 若有諸小王子。 得罪於王。 輒內彼宮中。 繫以金鎖。 供給飲食衣服床褥華香伎樂。 如轉輪王。 無所乏少。 於意云何。 此諸王子。 寧樂彼處不者。

이것은 네 번째로 비유에 의지하여 허물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002_0075_b_01L屬猶在故更有餘佛出世化益由此
002_0075_b_02L念佛皆生淨土意在玆也
成所作 [314]
002_0075_b_03L無等無倫最上勝智有聞如來不答
002_0075_b_04L十四不可記事便疑於佛不能遍知
002_0075_b_05L一切諸法旣無勝用念有何福故云
002_0075_b_06L不了無等倫智成所作智遍緣六塵
002_0075_b_07L不同凡夫故云無等雖達萬境常在
002_0075_b_08L妙定非如二乘入出不同故云無倫
002_0075_b_09L二障都盡發三業化作四記論非諸
002_0075_b_10L菩薩之所能爲故云最上勝最上勝
002_0075_b_11L如其次第簡三祇劫故如來答難
002_0075_b_12L必有利益答十四事唯有戲論知而
002_0075_b_13L不答故念之者福定非少由此疑佛
002_0075_b_14L雖生彼國而在邊地不被聖化
002_0075_b_15L若胎生宜之應捨

002_0075_b_16L
經曰若有衆生至具足成就者

002_0075_b_17L
述云此後兼答化生因果也

002_0075_b_18L
經曰復次慈氏至智慧勝故者

002_0075_b_19L
述云此第三挍量顯劣有二此初歎
002_0075_b_20L化生之勝也

002_0075_b_21L
經曰其胎生者至疑惑所致者

002_0075_b_22L
述云此次顯胎生之劣也惑者執也

002_0075_b_23L
經曰佛語 [315] 彌勒至樂彼處不者

002_0075_b_24L
述云此第四寄喩申過有三此初立

002_0075_c_01L이것은 처음에 비유를 세우고 반문한 것이다.

ㄴ. 미륵이 수순하여 답변함

미륵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단지 온갖 방편으로 여러 가지 큰 힘을 구하여 스스로 벗어나려고 할 것입니다.”
經曰。 對曰。 不也。 但種種方便。 求諸大力。 欲自免出者。

이것은 다음에 미륵이 수순하여 답변한 것이다.

ㄷ. 여래께서 허물을 펼침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중생도 또한 이와 같다. 부처님의 지혜를 의심했기 때문에 그 궁전에 태어나서 형벌도 없고 한 생각도 악한 일과 관련되는 일이 없이 지내며, 단지 5백 세를 사는 동안 삼보三寶를 보지 못하여 공양하고 온갖 선의 근본을 닦는 일을 하지 못하기만 할 뿐인데도, 이를 고통스럽게 여겨서 비록 다른 즐거움이 있을지라도 오히려 그곳에 사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經曰。 佛告彌勒。 此諸衆生。 亦復如是。 以疑惑佛智故。 生彼宮殿。 無有刑罰。 乃至一念惡事。 但於五百歲中。 不見三寶。 不得供養修諸善本。 以此爲苦。 雖有餘樂。 猶不樂彼處者。

이것은 세 번째로 여래께서 허물을 펼치신 것이다.

나) 권하여 닦고 버리게 함

㉮ 바로 권하여 닦게 하고 버리게 함

“이 중생이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를 알아 깊이 스스로 후회하고 그곳에서 떠날 것을 추구하면, 바로 뜻대로 되어 무량수불의 처소로 가서 공경하고 공양하며, 또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다른 부처님의 처소에도 두루 도달하여 온갖 공덕을 닦는다.”
經曰。 若此衆生。 識其本罪。 深自悔責。 求離彼處。 即得如意。 往詣無量壽佛所。 恭敬供養。 亦得遍至無量無數諸餘佛所。 修諸功德者。

둘째, 권하여 닦고 버리게 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바로 권하여 닦게 하고 버리게 한 것이다.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를 알아”란 과거에 부처님의 다섯 가지 지혜를 의심한 죄를 아는 것이다. “깊이 스스로 후회하고”란 (이러한 마음을 일으킴으로써) 바로 보배 궁전이라는 처소를 떠나기 때문이다.285)

㉯ 닦고 배울 것을 권하면서 맺음

“미륵이여, 마땅히 알라. 보살로서 의혹을 일으키는 이는 큰 이익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를 분명하게 믿어야 한다.”
經曰。 彌勒。 當知。 其有菩薩生疑惑者。 爲失大利。 是故。 應當明信諸佛無上智慧者。

이것은 나중에 닦고 배울 것을 권하면서 맺은 것이다.

4) 거듭해서 대보살이 서방에 왕생하는 것을 펼쳐서 그 왕생의 뜻을 증대함286)

⑴ 질문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세계에는 몇 명의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오른 보살이 있어서 그 부처님의 국토에 왕생하는 것입니까?”
經曰。 彌勒菩薩。 白佛言。 世尊。 於此世界。 有幾所不退菩薩。 生彼佛國者。

네 번째로 거듭해서 대보살이 서방에 왕생하는 것을 펼쳐서 그 왕생의 뜻을 증대하게 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질문한 것이다.

⑵ 답변

① 사바세계의 보살이 그 국토에 왕생하는 것을 나타냄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계에는 67억의 불퇴전의 지위에 도달한 보살이 있어서 그 국토에 왕생할 것이다. 낱낱의 보살은 이미 일찍이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였고, (공덕과 지혜는) 미륵의 그것과 가깝다. 여러 소행보살小行菩薩287)과 작은 공덕을 수습한 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모두 왕생한다.”
經曰。 佛告彌勒。 於此世界。 有六十七億不退菩薩。 往生彼國。 一一菩薩。 已曾供養無數諸佛。 次如彌勒者也。 諸小行菩薩。 及修習少功德者。 不可稱計。 皆當往生者。

나중에 답변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사바세계의 보살이 그 국토에 왕생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② 다른 방위의 불국토에 있는 보살이 그 국토에 왕생하는 것을 펼침

가. 총괄적으로 표함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단지 나의 국토에 있는 보살들만 그 국토에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위의 불국토에 있는 보살들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을 것이다.”
經曰。 佛告彌勒。 不但我剎諸菩薩等。 往生彼國。 他方佛土。 亦復如是者。

이것은 나중에 다른 방위의 불국토에 있는 보살이 그 국토에 왕생하는 것을 펼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총괄적으로 표한 것이다.

나. 개별적으로 서술함

“그 첫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원조遠照인데 그 국토에 180억의 보살이 있고, 그 두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보장寶藏인데 그 국토에 90억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세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무량음無量音인데 그 국토에 120억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네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감로미甘露味인데 그 국토에 250억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다섯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용승龍勝인데 그 국토에 14억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여섯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승력勝力인데 그곳에 1만 4천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일곱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사자師子인데 그곳에 5백억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여덟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이구광離垢光인데 그곳에 80억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아홉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덕수德首인데 그 국토에 60억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열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묘덕산妙德山인데 그 국토에 60억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열한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인왕人王인데 그 국토에 10억의 보살이 있어서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열두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무상화無上華인데 그 국토에 헤아릴 수 없고 칭량할 수 없는 여러 보살의 무리가 있다. 그들은 모두 불퇴전의 지위에 도달하고 지혜롭고 용맹정진하며 이미 일찍이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여 7일 만에 바로 백천억 겁 동안 대사大士(보살)가 닦아야 할 견고한 법을 섭취하였다. 이들 보살이 모두 왕생할 것이다. 그 열세 번째 부처님의 명호는 무외無畏인데 그 국토에 790억의 대보살의 무리가 있고, 여러 소보살과 비구는 칭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모두 왕생할 것이다.”
經曰。 其第一佛名曰遠照。 彼有百八十億菩薩。 其第二佛名曰寶藏。 彼有九十億菩薩。 皆當往生。 其第三佛名曰無量音。 彼有二百二十億菩薩。 皆當往生。 其第四佛名曰甘露味。 彼有二百五十億菩薩。 皆當往生。 其第五佛名曰龍勝。 彼有十四億菩薩。 皆當往生。 其第六佛名曰勝力。 彼有萬四千菩薩。 皆當往生。 其第七佛名曰師子。 彼有五百億菩薩。 皆當往生。 其第八佛名曰離垢光。 彼有八十億菩薩。 皆當往生。 其第九佛名曰德首。 彼有六十億菩薩。 皆當往生。 其第十佛名曰妙德山。 彼有六十億菩薩。 皆當往生。 其第十一佛名曰人王。 彼有十億菩薩。 皆當往生。 其第十二佛名曰無上華。 彼有無數不可稱計諸菩薩衆。 皆不退轉。 智慧勇猛。 已曾供養無量諸佛。 於七日中。 即能攝取百千億劫大士所修堅固之法。 斯等菩薩。 皆當往生。 其第十三佛名曰無畏。 彼有七百九十億大菩薩衆。 諸小菩薩及比丘等。 不可稱計。 皆當往生者。

이것은 다음에 개별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다. 왕생하는 이가 많음을 나타내어 즐겨 구하려는 뜻을 증대하게 함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단지 이 열네 분의 부처님의 국토에 머무는 여러 보살들만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부처님의 국토에서 왕생하는 이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매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내가 단지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의 명호와 보살과 비구로서 그 국토에 왕생하는 이들을 설하기를, 밤낮으로 쉬지 않고 1겁 동안 한다고 해도 끝을 낼 수 없을 정도인데, 나는 이제 그대를 위해 간략하게 이것을 설했을 뿐이다.”
經曰。 佛語彌勒。 不但此十四佛國中。 諸菩薩等。 當往生也。 十方世界無量佛國。 其往生者。 亦復如是。 甚多無數。 我但說十方諸佛名號及菩薩比丘生彼國者。 晝夜一劫。 尚未能竟。 我今爲汝。 略說之耳者。


002_0075_c_01L喩反問也

002_0075_c_02L
經曰對曰不也至欲自免 [316] 出者

002_0075_c_03L
述云此次彌勒順答也

002_0075_c_04L
經曰佛告彌勒至不樂彼處者

002_0075_c_05L
述云此第三如來申過也

002_0075_c_06L
經曰若此衆生至修諸功德者

002_0075_c_07L
述云第二勸令脩捨有二此初正勸
002_0075_c_08L令修令捨也識其本罪者識本疑惑
002_0075_c_09L佛五智之罪深自悔責卽離寶宮之處
002_0075_c_10L

002_0075_c_11L
經曰彌勒當知至無上智慧者

002_0075_c_12L
述曰此後結勸修學也

002_0075_c_13L
經曰彌勒菩薩至彼佛國者

002_0075_c_14L
述云第四重申大菩薩往生西方增其
002_0075_c_15L往生之意有二此初問也

002_0075_c_16L
經曰佛告彌勒至皆當往生者

002_0075_c_17L
述云後答有二此初顯娑婆菩薩生
002_0075_c_18L彼土也

002_0075_c_19L
經曰佛告彌勒至亦復如是者

002_0075_c_20L
述云此後乘申餘方往生有三此初
002_0075_c_21L總標也

002_0075_c_22L
經曰其第一佛至皆當往生者

002_0075_c_23L
述云此次別叙也

002_0075_c_24L
經曰佛語彌勒至略說之耳者

002_0076_a_01L
이것은 나중에 왕생하는 이가 많음을 나타내어 즐겨 구하려는 뜻을 증대하게 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열세 개의 국토를 서술했지만 사바세계를 함께 묶었기 때문에 “열네 분(의 부처님의 국토)”라고 한 것이다.
처음에 아난이 (부처님께 평소와 달리 더욱 빼어난 상相을 지닌) 안색을 보이신 이유를 질문한 것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여래께서 여러 보살로서 정토에 왕생하는 부류를 서술하면서 마쳤다. 문답광설분問答廣說分을 나타내는 것을 여기에서 마쳤다.
제3장 문설희행분
제1절 경을 찬탄하여 배울 것을 권함

1. 듣는 것을 찬탄하고 행할 것을 권함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한 생각이라도 그렇게 하기에 이르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큰 이익을 얻을 것이니, 곧 위없는 공덕을 온전히 갖춘다. 그러므로 미륵이여, 설령 큰불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우며 타오른다고 하더라도 기필코 이 불길을 뚫고 나가서 이 경법을 듣고 기뻐하여 믿고 즐거워하며 수지하고 독송하며 설한 대로 수행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보살이 이 경을 듣고자 해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생이 이 경법을 들으면 위없는 도에서 끝내 퇴전하지 않는 지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여 믿고 받아들이며 지니고 염송하며 설한 대로 행해야 한다.”
經曰。 佛語彌勒。 其有得聞彼佛名號。 歡喜踊躍。 乃至一念。 當知。 此人。 爲得大利。 則是具足無上功德。 是故。 彌勒。 設有大火充滿三千大千世界。 要當過此。 聞是經法。 歡喜信樂。 受持讀誦。 如說修行。 所以者何。 多有菩薩。 欲聞此經。 而不能得。 若有衆生。 聞此經者。 於無上道。 終不退轉。 是故。 應當專心信受持誦說行者。

세 번째로 문설희행분聞說喜行分(설법을 듣고 기뻐한 부분)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경을 찬탄하여 배울 것을 권했고, 둘째 교설의 이익을 밝혔으며, 셋째 서상瑞相을 보여 믿게 하였고, 넷째 대중이 기뻐한 것을 나타냈다. 처음에 또한 다섯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듣는 것을 찬탄하고 행할 것을 권한 것이다.

2. 중생에게 의심을 없앨 것을 권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모든 중생을 위해 이 경법을 설하여 무량수불과 그 국토와 관련된 모든 것을 보게 하고, 정토행을 실천하는 이는 모두 이것을 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내가 열반에 든 후 다시 의심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經曰。 佛言。 吾今爲諸衆生。 說此經法。 令見無量壽佛及其國土一切所有。 所當爲者。 皆可求之。 無得以我滅度之後。 復生疑惑者。

이것은 두 번째로 중생에게 의심을 없앨 것을 권한 것이다.

3. 경이 두루 구제함을 찬탄함

“미래세에 경도經道가 멸하여 없어질 것인데, 나는 자비에 의해 중생을 불쌍히 여겨 특히 이 경만을 남겨 두고 백 년 동안 더 머물러 있게 할 것이다. 어떤 중생이 이 경을 지니고 실천하면 소원하는 대로 모두 열반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經曰。 當來之世。 經道滅盡。 我以慈悲哀愍。 特留此經。 止住百歲。 其有衆生。 値斯經者。 隨意所願。 皆可得度者。

이것은 세 번째로 경이 두루 구제함을 찬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석가불의 가르침이 정법시대 5백 년, 상법像法시대 천 년, 말법시대 만 년 등을 걸쳐 일체의 기간288)이 모두 지났기 때문에 “멸하여 없어질 것인데”라고 했다. 법이 비록 멸할지라도 부처님께서 자비심으로 고통 받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오직 이 경만을 남겨 두어 백 년 동안 중생을 제도하게 한 것이다.≻289)라고 했는데, 이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오직 『법주기法住記』290)만이 아니라 여러 성교聖敎에 어긋나며, 일에 있어서도 또한 다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법주기』에 의거하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무상법無上法을 열여섯 분의 대아라한과 여러 권속에게 부촉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보호하고 수지하여 멸하여 없어지는 일이 없게 하도록 하셨다. 아울러 그 몸을 여러 시주에게 베풀고 참된 복전이 되어 그 시주하는 이들로 하여금 큰 과보를 얻게 할 것을 명하셨다. 이른바 빈두로賓頭盧 등의 열여섯 분의 대아라한이 정법을 보호하고 수지하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다.…(중략)…이 남섬부주南贍部州에서 사람의 수명이 점점 짧아져서 10세에 이르면 도병겁刀兵劫291)이 일어나 투쟁하며 서로 살육하니, 불법은 이때 잠시 멸하여 없어진다.
도병겁이 지난 후에

002_0076_a_01L
述云此後類顯往生者多令增欣求之
002_0076_a_02L意也叙十三國而通娑婆故云十四

002_0076_a_03L
從初阿難問佛顏終乎如來叙諸菩薩
002_0076_a_04L往生之屬顯問答廣說分訖

002_0076_a_05L[聞說喜行分]
經曰佛語彌勒至持誦說行者

002_0076_a_06L
述云第三聞說喜行分有四一歎經
002_0076_a_07L勸學二彰說利益三示相令信四顯衆
002_0076_a_08L喜行初又有五此初歎聞勸行也

002_0076_a_09L
經曰佛言吾今爲諸衆生至復生疑惑
002_0076_a_10L

002_0076_a_11L
述云此第二勸物除疑也

002_0076_a_12L
經曰當來之世至皆可得度者

002_0076_a_13L
述云此第二歎經普濟也有說釋迦
002_0076_a_14L正法五百年像法千年末法萬歲一切
002_0076_a_15L皆過故云滅盡法雖滅已佛以慈悲
002_0076_a_16L憐苦衆生獨留此經百歲濟度此恐不
002_0076_a_17L非唯法住 [317] 違諸聖敎事亦未盡故

002_0076_a_18L
今依法住記云
佛滅度時以無上法
002_0076_a_19L囑十六大阿羅漢幷諸眷屬令其護持
002_0076_a_20L使不滅沒及勅其身與諸施主作眞
002_0076_a_21L福田令彼施者得大果報所謂賓頭
002_0076_a_22L盧等如是十六大阿羅漢護持正法
002_0076_a_23L益有情至此南贍部州人壽極長
002_0076_a_24L於十歲刀兵劫起爭相誅戮佛法
002_0076_a_25L當暫滅沒刀兵劫後人壽漸增

002_0076_b_01L사람의 수명이 점점 증가하여 백 세가 되는 단계에 이르면 이 주洲에 사는 사람들이 이전에 도병刀兵292)으로 서로 해치며 고통 받았던 것과 같은 형태의 삶을 싫어하고 다시 선을 닦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때 열여섯 분의 아라한이 여러 권속과 함께 다시 인간 세상으로 오셔서 무상정법無上正法을 칭양하고 현설顯說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출가하게 하고, 모든 중생을 위해 이익이 되는 일을 하신다. 이와 같이 하여 이 주에 사는 사람의 수명이 6만 세에 이르렀을 때 무상정법이 세간에 유행하고 번성하여 그치는 일이 없어진다. 후에 사람의 수명이 7만세에 이르렀을 때 무상정법이 비로소 영원히 멸하여 없어진다.
그때 이 열여섯 분의 아라한이 여러 권속과 함께 이 주의 어떤 지역에 모두 와서 모인다. 그리고 신통력으로 온갖 칠보를 사용하여 솔도파窣堵波293)를 만들되, 위엄 있고 아름다우며, 높고 크게 짓는다. 그리고 석가여래의 모든 유신遺身294)을 그 안에 모두 모아 둔다. 그때 열여섯 분의 대아라한은 여러 권속과 함께 솔도파의 주위를 돌면서 향과 꽃으로 공경하고 공양하며 찬탄하는데 이렇게 백천 번을 솔도파의 주위를 돌고 나서 우러르며 예배하기를 마치고 모두 허공으로 올라가 솔도파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세존ㆍ석가ㆍ여래ㆍ응應ㆍ정등각正等覺께 공경하고 예배드립니다. 저희들은 교칙을 받들어 정법을 보호하고 수지하여 여러 하늘과 인간에게 온갖 이익을 베풀었습니다. 법장法藏은 이미 소멸하였고, 연緣이 있는 중생은 이미 두루 제도하였습니다. 이제 물러나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
이 말을 하고 나서 일시에 모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든다. 앞서 정해진 서원의 힘으로 불이 일어나 몸을 태우는데, 마치 등불이 모든 것을 태워서 없애는 것과 같이 뼈조차 남지 않는다. 그때 솔도파는 곧 땅으로 꺼져 들어가서 금륜金輪295)의 변제에 이르러서야 멈추어서 머문다. 그때 석가모니의 무상정법은 이 삼천대천세계에서 영원히 소멸하여 나타나지 않는다. 이로부터 잠시의 틈도 없이 이 불국토에 7만 구지俱胝의 독각이 일시에 출현하는데, 사람들의 수명이 8만 세가 될 때 독각인 성중은 다시 모두 멸하여 없어진다.

002_0076_b_01L百歲位此洲人等厭前刀兵殘害苦惱
002_0076_b_02L復樂修善時此十六大阿羅漢與諸
002_0076_b_03L眷屬復來人中稱揚顯說無上正法
002_0076_b_04L度無量衆令其出家爲諸有情作饒益
002_0076_b_05L如是乃至此洲人壽六萬歲時
002_0076_b_06L上正法流行世間熾然不息後至人
002_0076_b_07L七萬歲時無上正法方永滅沒
002_0076_b_08L此十六大阿羅漢與諸眷屬於此洲地
002_0076_b_09L俱來集會以神通力用諸七寶造窣
002_0076_b_10L堵波嚴麗高廣釋迦如來所有遺身
002_0076_b_11L都集其內爾時十六大阿羅漢與諸
002_0076_b_12L眷屬遶窣堵波以香華持用供養恭
002_0076_b_13L讃歎遶百千匝瞻仰禮已俱昇虛
002_0076_b_14L向窣堵波作如是言敬禮世尊釋
002_0076_b_15L迦如來應正等覺我受敎勅護持正
002_0076_b_16L及與天人作諸饒益法藏已沒
002_0076_b_17L緣已周今辭滅度說是語已一時俱
002_0076_b_18L入無餘涅槃 [318] 先定願力火起焚身
002_0076_b_19L如燈炎滅骸骨無遺時窣堵波便陷
002_0076_b_20L入地至金輪際方乃停住爾時世尊
002_0076_b_21L釋迦牟尼無上正法於此三千大千世
002_0076_b_22L永滅不現從此無間此佛土中
002_0076_b_23L七萬俱胝獨覺一時出現至人壽量
002_0076_b_24L八萬歲時獨覺聖衆復皆滅沒次後

002_0076_c_01L뒤를 이어서 미륵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신다.296)
이것(『법주기』)에 의해 이 경(『무량수경』)의 본문에서 설한 것에 대해 말해 보자면, 사람의 수명이 7만 세가 되었을 때 무상법륜이 비로소 영원히 멸하여 없어지기 때문에 “경도가 멸하여 없어질 것인데”라고 한 것이다. 열여섯 분의 대성大聖이 열반을 취할 때 솔도파가 곧 땅에 빠져 들어가고 (이로써 완전히 멸하여 없어지는 것이다.)
“특特”이란 홀로(獨)라는 뜻이다. 『대열반경大涅槃經』에서는 불성을 자세하게 설하였는데, 성교聖敎 중에 심오한 것이어서 성인을 따라 앞서 없어진다. 이 경은 오직 정토를 열어 사람들로 하여금 왕생할 것을 추구하게 하니, 범부를 구제하는 것 가운데 요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홀로 백 세 동안 남겨 둔다. 기연機緣의 마땅함이 이미 차이가 있으니 없어지고 소멸하는 것에 전후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수는 없다.
“소원하는 대로 모두 열반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곧 이 경을 남겨 둠으로써 얻는 이익이다. 법이 멸하여 다한 후에도 들으면 오히려 이익을 얻어 정토와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또한 지금 듣는 사람에 있어서랴.

4. 경을 듣는 것의 어려움을 찬탄하여 공경하고 소중하게 여기도록 함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 세상에 계시는 때는 만나기 어렵고 친견하기도 어렵다. 여러 부처님의 경도經道는 얻기 어렵고 듣기도 어렵다. 보살의 뛰어난 법인 여러 바라밀을 듣는 것도 또한 어렵다. 선지식을 만나 법을 듣고 능히 행하는 것, 이것도 또한 어렵다. 이 경을 듣고 믿고 즐거워하며 수지하는 것과 같은 것은 어려운 일 중에도 어려운 일이니 이것을 넘어서는 어려움이란 없다.”
經曰。 是佛語彌勒。 如來興世。 難値難見。 諸佛經道。 難得難聞。 菩薩勝法。 諸波羅蜜。 得聞亦難。 遇善知識。 聞法能行。 此亦爲難。 若聞斯經。 信樂受持。 難中之難。 無過此難者。

이것은 네 번째로 경을 듣는 것(의 어려움)을 찬탄하여 공경하고 소중하게 여기도록 한 것이다.

5. 닦고 배울 것을 권하면서 맺음

“그러므로 나의 법에서 이와 같이 지었고, 이와 같이 설하였으며, 이와 같이 가르쳤다. 응당 믿고 수순하여 법대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經曰。 是故。 我法。 如是作。 如是說。 如是敎。 應當信順。 如法修行者。

이것은 다섯 번째로 닦고 배울 것을 권하면서 맺은 것이다.
“나의 법”이란 곧 이 경을 가리키고, “이와 같이 지었고”란 곧 이 경에서 아미타불께서 서원에 따라 수행하여 불신佛身을 이루고 불지佛智를 이룬 것을 설한 것을 말하며, “이와 같이 설하였으며”란 앞에서 중생을 위해 설한 것이고, “이와 같이 가르쳤다”란 앞에서 사람들을 가르쳐서 왕생하게 한 것을 말한다.
제2절 교설의 이익을 밝힘

1. 서원을 발하는 이익

그때 세존께서 이 경법을 설하시니 한량없는 중생이 모두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얻으려는 마음을 발하였다.
經曰。 爾時。 世尊。 說此經法。 無量衆生。 皆發無上正覺之心者。

두 번째로 교설의 이익을 밝혔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처음에 서원을 발하는 이익297)이다.

2. 성문과를 얻는 이익

1만 2천 나유타의 사람은 법안이 청정해짐을 얻었고, 22억의 여러 하늘과 인민은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었으며, 80만의 비구는 번뇌를 다하고 실상을 깨달았다.
經曰。 萬二千那由他人。 得清淨法眼。 二十二億諸天人民。 得阿那含果。 八十萬比丘。 漏盡意解者。

이것은 다음에 성문과聲聞果298)를 얻는 이익이다.
“법안이 청정해짐”이란 곧 예류과預流果이다.

002_0076_c_01L彌勒如來出世
以此言之當人壽
002_0076_c_02L萬歲時無上正法方永滅沒故云經道
002_0076_c_03L滅盡十六大聖取滅度時窣堵波
002_0076_c_04L陷入地特者獨也大涅槃經廣顯佛
002_0076_c_05L聖敎中深逐聖人而先沒此經
002_0076_c_06L唯開淨土令人求生濟凡中之要
002_0076_c_07L獨留百歲機宜旣異沒滅前後不可
002_0076_c_08L致怪所願皆得者卽留之利益也
002_0076_c_09L滅盡後聞尙獲利往生淨土況亦今
002_0076_c_10L聞者矣

002_0076_c_11L
經曰1) [137] 佛語彌勒至無過此難者

002_0076_c_12L
述云此第四歎聞而令敬重也

002_0076_c_13L
經曰是故我法至如法修行者

002_0076_c_14L
述云此第五結勸修學也我法者
002_0076_c_15L此經也如是作者卽此經說彌陀
002_0076_c_16L願修行成身成智也如是說者上爲
002_0076_c_17L衆生之所說也如是敎者前敎人令
002_0076_c_18L往生也

002_0076_c_19L
經曰爾時世尊至正覺之心者

002_0076_c_20L
述云第二彰說利益有三此初發願
002_0076_c_21L益也

002_0076_c_22L
經曰萬二千那由他人至漏盡意解者

002_0076_c_23L
述云此次聲聞益也法眼淨者卽預
002_0076_c_24L「是」疑剩

002_0077_a_01L“번뇌를 다하고”란 장애가 다하는 것이고, “실상을 깨달았다(意解)”란 지혜가 원만해지는 것이니, (아라한과를 얻는 것을 말한다.299)) 대중은 이 세계가 더럽고 싫어할 만한 것이라는 말을 듣기 때문에 성문과를 얻는 것이다.

3. 보살과를 얻는 이익

40억의 보살이 불퇴전의 지위를 얻고 큰 서원의 공덕으로 스스로를 장엄하여 미래세에는 반드시 정각을 이루게 되었다.
經曰。 四十億菩薩。 得不退轉。 以弘誓功德。 而自莊嚴。 於將來世。 當成正覺者

이것은 나중에 보살과菩薩果를 얻는 이익이다. 아미타불께서 이룬 덕이 광대함을 듣기 때문에 “불퇴전의 지위를 얻고”라고 했다. 이 국토가 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을 듣고 제도하고자 하는 서원을 세우기 때문에 “큰 서원의 공덕으로 스스로를 장엄하여”라고 했다.
제3절 서상을 보여 믿게 함
그때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 형태로 진동하고, 큰 광명이 시방의 국토를 두루 비추었으며, 백천의 음악이 저절로 울려 퍼지고, 한량없는 미묘한 꽃이 어지럽게 떨어져 내렸다.
經曰。 爾時。 三千大千世界。 六種震動。 大光。 普照十方國土。 百千音樂。 自然而作。 無量妙華。 紛紛而降者。

이것은 세 번째로 서상瑞相을 보여 믿게 한 것이다.
“분분芬芬”이란 어지럽게 떨어지는 모양이다.
제4절 대중이 기뻐함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시고 나자 미륵보살과 시방세계에서 온 여러 보살의 무리와 장로 아난과 여러 대성문 등의 일체의 대중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다.
經曰。 佛說經已。 彌勒菩薩。 及十方來諸菩薩衆。 長老阿難。 諸大聲聞。 一切大衆。 聞佛所說。 靡不歡喜者。

이것은 네 번째로 대중이 기뻐한 것이다.

002_0077_a_01L流果也漏盡者障盡意解者智滿
002_0077_a_02L此方穢惡可厭故得聲聞之果

002_0077_a_03L
經曰四十億菩薩至當成正覺者

002_0077_a_04L
述云此後菩薩利也聞彌陀佛成德
002_0077_a_05L廣大故得不退轉聞此土多惡誓欲
002_0077_a_06L濟度故以弘誓德而自莊嚴

002_0077_a_07L
經曰爾時三千至芬芬而降者

002_0077_a_08L
述云此第三示相令信也芬芬者
002_0077_a_09L墜之狀也

002_0077_a_10L
經曰佛說經已至靡不歡喜者

002_0077_a_11L
述云此第四大衆喜行也

002_0077_a_12L
無量壽經連義述文賛卷下終
  1. 1)법장法藏의 『華嚴經探玄記』 권14(T35, 369c17)에 나온다.
  2. 2)선취善趣 : 앞에서 설한 경흥의 주석에 따르면 선취는 십신十信이다.
  3. 3)습종성習種性 : 공관을 수습하여 견혹과 사혹을 무너뜨리는 계위의 보살. 『菩薩瓔珞本業經』에서 보살이 인因에서 과果에 이르는 행위行位를 여섯 종성으로 분류한 것 중 제1에 해당한다. 나머지 다섯 종성은 제2 성종성性種性, 제3 도종성道種性, 제4 성종성聖種性, 제 5등각성等覺性, 제6 묘각성妙覺性 등이다. 앞의 네 가지 종성을 보살 수행의 52계위에 배대하면, 차례대로 십해十解(十住)ㆍ십행十行ㆍ십회향十迴向ㆍ십지十地 등이다.
  4. 4)외범外凡 : 범부의 계위를 둘로 나눈 것 중 하나. 다른 하나는 내범內凡이다. 외범은 불도를 수행하지만 아직 정리正理를 마주하여 유사한 지해智解도 발생하지 못한 단계이고, 내범은 유사한 지해가 발생한 단계이다.
  5. 5)칠방편위七方便位 : 견도見道에 들어가기 이전에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해 여러 방편을 실천하는 일곱 가지 계위. 칠현위七賢位라고도 한다. 차례대로 나열하면, 오정심五停心→별상념처別相念處→총상념처總相念處이상 셋은 삼현위三賢位라고 함→난煖→정頂→인忍→세제일법世第一法이상 넷은 사선근위四善根位라고 함 등이다.
  6. 6)혜원이 『大般涅槃經義記』 권9(T37, 853c29)에서 “小乘法中。 五停心觀。 乃至煗頂。 名出已沒。”이라고 한 것을 참조하여 보충하였다.
  7. 7)인법忍法 : 칠방편위 중 여섯 번째에 해당한다. 앞의 주석을 참조할 것.
  8. 8)혜원이 『大般涅槃經義記』 권9(T37, 854a1)에서 “忍世第一。 名出已住。”라고 한 것을 참조하여 보충하였다.
  9. 9)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07a15)에서 제시한 것이다.
  10. 10)『中邊分別論』 권하(T31, 463c14)에서 “生起聖道。 名入正位習起。”라고 했다.
  11. 11)『소경小經』 : 『阿彌陀經』의 다른 이름. 이 경은 정토삼부경, 곧 『無量壽經』ㆍ『觀無量壽經』ㆍ『阿彌陀經』 가운데 가장 짧기 때문에 『소경』이라 한다.
  12. 12)『阿彌陀經』(T12, 347b4)에서 “극락정토에 중생이 태어나면 모두 아비발치이다.(極樂國土衆生生者。 皆是阿鞞跋致。)”라고 한 것을 말한다.
  13. 13)십해十解 : 보살 수행의 52계위 중 제11위~20위에 해당하는 계위. 십주十住라고도 한다.
  14. 14)제7심 : 제7 불퇴주不退住를 가리킨다. 보살 수행 52계위 중 제17에 해당하는 계위. 『法門名義集』(T54, 201b28)에서 “일곱째 불퇴주이니, 공과 유가 둘이 아님을 통찰하여 견고하고 참된 이해를 증득하기 때문에 불퇴주라 한다.(七不退住。 空有不二。 得堅固眞解。 故曰不退住。)”라고 하였다.
  15. 15)『菩薩瓔珞本業經』 권상(T24, 1014c4)에서 “出到第七住。 常住不退。 自此七住以前。 名爲退分。”이라 했다.
  16. 16)『觀無量壽經』(T12, 346a12)에서 하품하생을 설명하면서 오역죄를 지은 중생도 극락왕생함을 밝힌 것을 말한다.
  17. 17)하품하생 : 중생의 근기를 극락왕생하는 형태에 따라 아홉으로 구분한 것 중 제9에 속하는 것. 오역죄 등의 온갖 악업을 지은 중생이다.
  18. 18)십육관十六觀 : 염불 수행자가 아미타불의 몸과 정토와 관련된 열여섯 가지의 내용을 관찰함으로써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 『觀無量壽經』에서 설한 것이다.
  19. 19)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07b11)에서 제시한 것이다.
  20. 20)사십팔원 중 제18 섭상품원攝上品願에서 주석한 내용을 가리킨다.
  21. 21)구품 : 상배上輩에 상품상생ㆍ상품중생ㆍ상품하생 등의 셋이 있고, 중배中輩에 중품상생ㆍ중품중생ㆍ중품하생 등의 셋이 있으며, 하배下輩에 하품상생ㆍ하품중생ㆍ하품하생 등의 셋이 있어서 모두 구품이 된다.
  22. 22)『無量壽經』에서의 하배는 실제로 온갖 공덕을 짓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해당하는 상황이 있을 경우를 상정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觀無量壽經』에서 하배가 실제로 온갖 공덕을 짓지 않은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말이다.
  23. 23)본서 권중의 주석에서 ‘『彌勒所問經』에서 설한 십념’을 설명한 것을 참조할 것.
  24. 24)『彌勒所問經』에서 십념은 범부의 생각이 아니라고 했으니, 『無量壽經』의 ‘열 번의 생각’이 『彌勒所問經』의 ‘십념’이라면, 『無量壽經』의 하배는 실제로 『觀無量壽經』의 하배보다는 뛰어난 것이어서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다.
  25. 25)본서 권중의 주석에서 ‘『彌勒所問經』에서 설한 십념’을 설명한 것을 참조할 것.
  26. 26)『觀無量壽經』(T12, 345b8).
  27. 27)(성문과 연각의) 정성定性 : 대심을 발해야 한다고 했으므로 정성이승定性二乘, 곧 성문의 정성과 연각의 정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28. 28)다섯 가지 지혜 : 불지佛智ㆍ부사의지不思議智ㆍ불가칭지不可稱智ㆍ대승광지大乘廣智ㆍ무등무륜최상승지無等無倫最上勝智 등을 일컫는 말. 구체적인 내용은 뒤의 본문에 대한 경흥의 주석을 참조할 것.
  29. 29)『無量壽經』 권하(T12, 278a22)에서 극락정토에 태생胎生하는 경우를 설명한 부분이다. 곧 “佛告慈氏。 若有衆生。 以疑惑心。 修諸功德。 願生彼國。 不了佛智。 不思議智。 不可稱智。 大乘廣智。 無等無倫最上勝智。 於此諸智。 疑惑不信。 然猶信罪福。 修習善本。 願生其國。 此諸衆生。 生彼宮殿。 壽五百歲。 常不見佛。 不聞經法。 不見菩薩聲聞聖衆。 是故。 於彼國土。 謂之胎生。”이라고 하였다.
  30. 30)그 성城 : 극락정토의 변지에 있는 칠보로 이루어진 성을 말한다. 자세한 것은 뒤에 나오는 경의 본문과 경흥의 주석을 참조할 것.
  31. 31)『無量淸淨平等覺經』 권3(T12, 292a5). 『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권하(T12, 310a15).
  32. 32)네 가지 지혜 : 원효는 다섯 가지 지혜에 대해, 제1 불지는 총괄적인 것이고, 나머지 네 가지 지혜는 개별적인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네 가지 지혜’라고 한 것이다. 경흥은 원효의 관점을 따르지 않고 다섯 가지 지혜 모두를 개별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앞의 주석을 참조할 것.
  33. 33)원효가 『兩卷無量壽經宗要』(T37, 131b24)에서 제시한 것이다.
  34. 34)두 경 : 백연본과 지겸본을 일컫는 말이다.
  35. 35)『無量淸淨平等覺經』 권3(T12, 292b16). 『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권하(T12, 310b25).
  36. 36)『無量壽經』 권하(T12, 278a22).
  37. 37)『無量淸淨平等覺經』 권3(T12, 292b18)ㆍ(T12, 292c21). 『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권하(T12, 310b28)ㆍ(T12, 311a2).
  38. 38)『無量淸淨平等覺經』 권3(T12, 292a5)ㆍ『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권하(T12, 310a15)에서 중배를 설명한 부분을 요약한 것.
  39. 39)『無量壽經』 권하(T12, 278a22).
  40. 40)『無量淸淨平等覺經』 권3(T12, 292b29)ㆍ『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권하(T12, 310c10)에서 하배를 설명한 부분을 참조할 것.
  41. 41)『觀無量壽經』(T12, 345b8)에서 중품상생을 설명한 내용을 요약한 것. 불지를 의심한 사람의 과보와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둘을 동일하게 볼 수 없음을 주장한 것이다.
  42. 42)이것을 떠나 별도로 왕생의 부류가 있지 않다는 말이다.
  43. 43)앞에서 왕생의 연緣의 차이를 제시한 것을 참조할 것.
  44. 44)백연본의 세 무리는 『無量淸淨平等覺經』 권3(T12, 291c16)을 요약한 것이다.
  45. 45)『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권상(T12, 310c10)을 요약한 것이다.
  46. 46)두 경 : 지겸본과 백연본을 가리킨다.
  47. 47)본유本有 : ⓢ pūrva-kāla-bhava. 한 번의 윤회 과정을 존재의 양태에 따라 넷으로 나눈 것 중 하나. 태어난 이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48. 48)사유死有 : ⓢ maraṇa-bhava. 한 번의 윤회 과정을 존재의 양태에 따라 넷으로 나눈 것 중 하나. 죽는 순간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49. 49)중유中有 : ⓢ antarā-bhava. 한 번의 윤회 과정을 존재의 양태에 따라 넷으로 나눈 것 중 하나.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사이의 존재, 곧 사유死有와 생유生有 사이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50. 50)화생化生 : 극락에 왕생하는 사람은 그 탄생의 양태에 따라 태생胎生과 화생으로 나눌 수 있다. 부처님의 지력智力을 믿는 사람은 구품의 행업行業에 따라 각각 연꽃 속에 태어나며, 신상身相의 광명을 일시에 구족하므로 화생이라고 한다. 이에 상대하여 태생은 부처님의 타력他力을 의심하여 자력으로 염불하는 이가 변지邊地의 궁전에 태어나서 5백 세 동안 삼보를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태생하는 사람이 모태 안에 갇혀서 해와 달을 볼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태생이라고 한다.
  51. 51)생유生有 : ⓢ upapatti-bhava. 한 번의 윤회 과정을 존재의 양태에 따라 넷으로 나눈 것 중 하나. 태어나는 순간, 즉 모태에 탁태托胎ㆍ결생結生하는 찰나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52. 52)『觀無量壽佛經』(T12, 345a18).
  53. 53)『觀無量壽經』에서 불퇴전의 지위를 상품중생이라고 했고, 『無量壽經』에서 상배가 불퇴전의 지위라고 했으니, 상품중생은 곧 상배라고 할 수 있다는 말. 이 견해의 제창자는 알 수 없다. 다만 길장은 『無量壽經義疏』(T37, 122b12)에서 상배는 상품상생, 중배는 중품상생과 중품중생, 하배는 하품하생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54. 54)『觀無量壽經』(T12, 345b4)과 같은 책(T12, 345a20)을 참조할 것.
  55. 55)『觀無量壽經』(T12, 345a18).
  56. 56)『觀無量壽經』(T12, 345c8)에 따르면 중품상생과 중품중생은 “미타가 스스로 그 앞에 나툰다.”라고 하고, 진신인지 화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품하생은 부처님께서 맞이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경흥이 중품하생을 포함시킨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 법위의 『無量壽經義疏』 권하(H2, 15b10)에 “『觀無量壽經』에 의거하면 그(중배) 상품과 중품의 두 품은 모두 ‘아미타불께서 스스로 나툰다.’라고 했을 뿐이고 진신인지 화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품에서는 부처님께서 맞이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여기(『無量壽經』)에서는 (중배에 대해) 화신이 와서 맞이하고 진신이 아님을 밝혔다. 『觀無量壽經』에서 이미 진신인지 화신인지를 말하지 않았으니 이 글을 바른 것으로 삼는다.〔依觀經。 其上中六(二)品。 皆言彌陀佛自現。 不言眞化。 然下品中。 不言佛迎。 此中。 明化身來迎。 非眞身。 觀經。 旣不言眞化。 似(以)此文爲正。〕”라고 한 것이 바른 것 같다.
  57. 57)‘亦’ 앞에 ‘經曰’이 누락되었다.
  58. 58)‘也’ 뒤에 ‘者’가 누락되었다.
  59. 59)대보살大菩薩의 왕생 : 앞의 분과에서는 “대성의 왕생”이라 하였다.
  60. 60)사유四維 : 서북ㆍ서남ㆍ동북ㆍ동남 등의 네 방위를 이른다.
  61. 61)무량각無量覺 : ⓢ Amitābha-buddha. 무량수불의 다른 의역어이다.
  62. 62)경흥은 출처를 밝히지 않았는데, 『禮記』 「曲禮」에 나오는 말이다.
  63. 63)외사外事에 의해 공양하는 것 : 꽃ㆍ향 등과 같은 외적인 물건으로 공양하는 것.
  64. 64)내업內業 : 혜원은 『無量壽經義疏』 권상(T37, 108b14)에서 이 부분을 내사공양內事供養으로 분과하고, “뒤의 내사공양 가운데 처음의 한 게송 반은 입으로 찬탄하여 공양한 것이고, 뒤의 반 게송은 몸으로 공경하여 공양한 것이다.(後內事中。 初一偈半。 口歎供養。 後之半偈。 身敬供養。)”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내사란 내업과 같다.
  65. 65)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08b15)에서 “입으로 찬탄한 것 가운데 앞의 한 게송은 부처님의 자덕을 찬탄한 것이고, 뒤의 반 게송은 부처님의 이타利他를 찬탄한 것이다.(就口歎中。 前之一偈。 歎佛自德。 後之半偈。 歎佛利他。)”라고 한 것을 말한다.
  66. 66)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08b18)에서 제시한 것이다.
  67. 67)『成唯識論』 권8(T31, 43b19)에서 “또한 생사의 상속은 미혹ㆍ업ㆍ고통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업을 일으켜 생사를 윤택하게 하는 번뇌를 미혹이라 한다. 능히 후유後有를 감感하는 모든 업을 업이라 한다. 업에 의해 끌려 나온 온갖 고통을 고통이라 한다. 미혹ㆍ업ㆍ고통의 종자를 모두 습기習氣라고 한다. 앞의 두 가지 습기는 생사의 고통의 증상연增上緣이 되니, 도와서 고통을 낳기 때문이다. 세 번째 습기는 생사의 고통에 대하여 능작인연能作因緣이 되니, 직접적으로 고통을 낳기 때문이다.(復次。 生死相續。 由惑業苦。 發業潤生煩惱名惑。 能感後有諸業名業。 業所引生衆苦名苦。 惑業苦種。 皆名習氣。 前二習氣。 與生死苦。 爲增上緣。 助生苦故。 第三習氣。 望生死苦。 能作因緣。 親生苦故。)”라고 하였다.
  68. 68)사무량심四無量心 : 불ㆍ보살이 한량없는 중생을 두루 제도하여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의 정신. 첫째, 자무량慈無量(ⓢ maitrī-apramāṇa)이니, 무량한 중생을 대상으로 그들이 즐거움(樂)을 얻도록 하는 법을 사유하며, 자등지慈等至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둘째, 비무량悲無量(ⓢ karuṇā-apramāṇa)이니, 무량한 중생을 대상으로 그들이 괴로움을 벗어나도록 하는 법을 사유하며, 비등지悲等至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셋째, 희무량喜無量(ⓢ muditā-apramāṇa)이니, 무량한 중생이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고 내심 깊이 희열을 느낀다고 사유하며, 희등지喜等至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넷째, 사무량捨無量(ⓢ upekṣā-apramāṇa)이니, 무량한 중생이 모두 평등하고 멀거나 가까운 등의 차별이 없다고 사유하며 사등지捨等至로 들어가는 것이다.
  69. 69)두 대사大士 : 아미타불의 협시 보살인 관세음觀世音과 대세지大勢至를 가리킨다.
  70. 70)삼존三尊 : 갖추어서 미타삼존彌陀三尊이라 한다. 아미타불과 그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ㆍ대세지보살 등을 합하여 일컫는 말이다.
  71. 71)『梵摩渝經』(T1, 884b23)에서 “聲有八種。 最好聲。 易了聲。 濡軟聲。 和調聲。 尊慧聲。 不誤聲。 深妙聲。 不女聲。”이라 했다. 책명의 ‘渝’는 ‘喩’라고도 쓴다. 각 소리에 대한 해석은 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08c5)에서 설명한 것과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72. 72)세속제世俗諦 : 세속적인 관점에서의 진리. 속제俗諦라고도 한다.
  73. 73)승의제勝義諦 : 궁극적인 관점에서의 진리. 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도 한다.
  74. 74)앞의 분과에서는 ‘권하여 보리심을 발하게 한 것’이라고 했다.
  75. 75)강승개본에 따르면 ‘勤’은 ‘進’이다.
  76. 76)앞의 분과에서는 ‘셋째,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쌍으로 밝혀 범부와 소승의 왕생을 권한 것’이라 했다.
  77. 77)아미타불의 사십팔원 중 제22 섭타국보살원이 성취된 것을 말한다.
  78. 78)중생 : 해당 원문은 ‘有’이다. 뒤의 해당 분과에서는 ‘物’이라 했다. ‘유’란 존재를 일컫는 말로 중생과 동일하게 보아도 무방한 것 같다.
  79. 79)오생五生 : 보살이 받는 다섯 가지 형태의 생生. 『菩薩地持經』 권10(T30, 953a19)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식고생息苦生이니, 굶주림에 허덕이는 세상에 큰 물고기 등의 몸을 받아 태어나 그 살로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것과 같은 형태의 생을 받는 것을 말한다. 둘째, 수류생隨類生이니, 보살이 제도의 대상이 되는 일체중생에 대해 그들의 부류에 따라 그와 같은 몸을 받아 태어나 그들을 제도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승생勝生이니 보살이 성품에 따라 그에 합당한 몸을 받아 태어나 수명ㆍ형색 등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뛰어난 과보를 받는 것을 말한다. 넷째, 증상생增上生이니 초지에서 십지에 이르기까지 태어나는 곳마다 자유자재하게 생을 받되, 가장 기특한 형태의 몸을 받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최후생이니 크샤트리아나 바라문의 집안에 태어나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 일체의 불사佛事를 행하는 최후로 생사하는 몸을 받는 것을 말한다.
  80. 80)마혜수라지처摩醯首羅智處 : ‘마혜수라’는 힌두교의 시바신이 불교의 호법신으로 흡수된 것으로 대자재천大自在天이라 의역한다. 색계 제4 선천禪天의 맨 위에 있는 색구경천色究竟天에 머문다. 따라서 ‘마혜수라지처’는 곧 색구경천을 가리킨다. 제10지의 보살은 성불할 때 색구경천으로 가서 대보련화에 앉아 정각을 이룬다.
  81. 81)『十地經論』 권1(T26, 125b29)에서 “보살의 극진함이란 법신이 심ㆍ의ㆍ식을 떠나 오직 지혜에 의지하는 것이니, 경에서 법신ㆍ지신智身이라 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이익이란 (하나는) 현세에서의 과보로서 받는 이익이니 불위佛位를 잇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후세에서의 과보로서 받는 이익이니 마혜수라지처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경에서 ‘바로 일체의 불위를 받는다’라고 했기 때문이고, ‘일체 세간의 가장 높고 큰 몸을 얻는다’라고 했기 때문이다.(菩薩盡者。 法身離心意識。 唯智依止。 如經法身智身故。 二種利益者。 現報利益。 受佛位故。 後報利益。 摩醯首羅智處生故。 如經正受一切佛位故。 得一切世間最高大身故。)”라고 한 것을 참조할 것.
  82. 82)한 번 생을 받으면 그 생에서 성불하여 이전의 부처님을 이어서 공석이었던 부처님의 지위를 이어받을 것이 예정된 지위이다.
  83. 83)『옥편玉篇』 : 육조시대 양梁나라 고야왕顧野王이 543년에 완성한 자전. 당ㆍ송 때 개산改刪하였다.
  84. 84)인刃 : 길이의 단위. 인仞과 통하는 글자이다. 출처에 따라 일곱 자 혹은 여덟 자라고 했는데, 경흥은 일곱 자의 설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곧 1심이 일곱 자라면 일곱 자에 해당하는 단위인 인과 차별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여덟 자가 타당하다는 말이다. 『一切經音義』 권22(T54, 444b18)에서 “七仞。 仞如胤反。 何承纂要云。 七尺曰仞。 小雅曰。 四尺曰仞。”이라고 한 것을 참조할 것.
  85. 85)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셋을 합쳐 미타삼존彌陀三尊이라 한다.
  86. 86)서른두 가지 모습(三十二相) : 부처님ㆍ전륜성왕 등과 같은 뛰어난 이가 갖추고 있는 서른두 가지 뛰어난 상. 예컨대 족하안평립상足下安平立相은 발바닥이 평평하고 유연하여 발을 땅에 대면 밀착되어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을 말하고, 족하이륜상足下二輪相은 양 발바닥(또는 양 손바닥)에 천 폭의 바퀴 무늬가 있는 것을 말한다. 고대인도의 이상적인 군주인 전륜성왕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을 둘러싼 당시 점술과 관상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이다.
  87. 87)수호隨好 : 보살이 갖추고 있는 여든 가지 뛰어난 모습. 팔십종호八十種好라고도 한다. 삼십이상은 눈에 띄는 모습인 것에 비해 팔십수호는 미세하고 은밀하게 잘 드러나지 않는 모습을 가리킨다.
  88. 88)慧遠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09c2)에서 “一智慧成滿。 深入諸法。 證會法性。 究暢要妙。 窮達敎詮。”이라고 했다.
  89. 89)두 가지 지혜 : 전자는 이치를 관찰하는 지혜(理智)이고, 후자는 교설을 아는 지혜(敎智)이다.
  90. 90)신信 등의 다섯 가지 : 신근信根ㆍ진근進根(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 등의 다섯 가지 무루근無漏根을 가리키는 말.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서른일곱 가지 수행방법(三十七道品) 중 제4에 해당한다. 이 다섯 가지는 번뇌를 항복시키고 성도에 들어가는 것에 있어서 증상 작용을 한다. 일체의 선법을 낳는 근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근’이라 한다. ‘근’은 증상ㆍ출생 등의 뜻이 있다.
  91. 91)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의 두 가지 인 : 첫째, 생인은 중생인衆生忍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인’은 참고 견디는 것을 뜻한다. 보살이 일체의 중생에 대해 분노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대하는 것, 중생이 온갖 해악을 가해도 참고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 중생이 온갖 공경심을 표하면서 공양하여도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 등을 말한다. 둘째, 법인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인’은 편안히 머무는 것을 뜻한다. ‘무생법’이란 본래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을 가리킨다. 지금은 단지 불생不生에 나아가서 말하기 때문에 ‘무생’이라 한 것이다. 보살이 무생의 법을 인가認可하여 편안하게 머물면서 움직이지 않고 물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92. 92)다섯 가지 인 : 첫째, 복인伏忍이니, 지전地前의 삼현三賢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직 무루無漏를 얻지 못하고, 번뇌를 아직 끊지 못하고, 단지 번뇌를 조복시켜 일어나지 않게만 한 것. 삼현위 중 십주는 하품, 십행은 중품, 십회향은 상품이다. 둘째, 신인信忍이니, 지상地上의 보살이 무루신無漏信을 얻어 의심하지 않는 것에 수순하는 것. 그 가운데 초지는 하품, 제2지는 중품, 제3지는 상품이다. 셋째, 순인順忍이니, 보살이 보리도菩提道에 수순하여 무생無生의 과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 가운데 제4지는 하품, 제5지는 중품, 제6지는 상품이다. 넷째, 무생인無生忍이니, 보살이 망혹妄惑이 이미 다하여 제법이 모두 불생不生임을 깨닫는 것. 그 가운데 제7지는 하품, 제8지는 중품, 제9지는 상품이다. 다섯째, 적멸인寂滅忍이니, 제혹諸惑을 끊어서 다하고, 청정하고 무위無爲하여 맑고 고요한 것. 그 가운데 제10지는 하품, 부처님은 상품이다.
  93. 93)음향인音響忍과 유순인柔順忍 : 차례대로 삼법인三法忍 중 제1과 제2에 해당하는 것이다. 삼법인이란, 세 가지 형태로 진리를 깨닫고 인가하여 지혜로운 마음으로 진리에 머물러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첫째, 음향인이란 진실한 법을 들어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믿고 이해하며, 받아 지니고 그대로 따라 들어가며, 닦아 익혀 편안히 머무는 것이다. 둘째, 유순인이란 진리에 수순하여 자신의 생각에 의지하여 깊이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셋째, 무생법인이란 진리에 계합하여 모든 법이 생겨나는 것도 없고 소멸하는 것도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94. 94)본문의 둔근과 이근은 이미 정토에 왕생했으니 모두 이근임을 전제로 하고, 그 안에서 다시 상품ㆍ중품ㆍ하품의 구분이 있어서 앞의 상품을 이근, 뒤의 중품과 하품을 둔근이라고 한 것이라는 말이다.
  95. 95)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09c8)에서 “釋迦自說。 如我國中諸菩薩也。”라고 한 것을 참조하여 풀었다.
  96. 96)다섯 가지 음성 : 궁宮ㆍ상商ㆍ각角ㆍ치徵ㆍ우羽 등의 다섯 가지 기본음을 가리킨다.
  97. 97)‘佛’ 앞에 ‘經曰’이 누락되었다.
  98. 98)경흥의 주석에 따르면 ‘熙’는 ‘凞’이다. 뜻은 동일하다.
  99. 99)‘佛’ 앞에 ‘經曰’이 누락되었다.
  100. 100)아소我所 : 자신 이외의 대상에 대해 나의 소유라고 여기고 집착하는 것.
  101. 101)견번뇌見煩惱 : 견혹見惑이라고도 한다. 아견我見ㆍ사견邪見 등과 같이 일체의 이치(理)에 미혹하여 생겨난 번뇌이다.
  102. 102)애번뇌愛煩惱 : 애혹愛惑이라고도 한다. ‘愛’는 ‘著’이라고도 한다. 탐욕ㆍ진에 등과 같이 일체의 사실(事)에 미혹하여 생겨난 번뇌이다.
  103. 103)복원본인 『韓佛全』의 『無量壽經義疏』에는 본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104. 104)『논어論語』 : 유교의 근본 경전.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담은 어록이다.
  105. 105)『論語』에서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라고 하였다.
  106. 106)다섯 가지 번뇌 : 마음의 본성을 덮어 선법을 낳지 못하게 하는 다섯 가지 번뇌. 첫째, 탐욕개貪欲蓋이니, 오욕五欲의 경계에 집착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다. 둘째, 진에개瞋恚蓋이니, 정情을 거스르는 경계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셋째, 혼면개惛眠蓋이니, 마음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넷째, 도거악작개掉擧惡作蓋이니, 도거란 선정 중에 마음을 들뜨게 하는 마음 작용이고, 악작이란 후회하는 마음 작용으로, 두 가지 모두 마음을 불안정하게 하는 마음 작용이다. 다섯째, 의개疑蓋이니, 법에 대해 머뭇거리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107. 107)강승개본에 따르면 ‘有’는 잉자이다.
  108. 108)경흥의 주석에 따르면 ‘厭’은 ‘懈’이다.
  109. 109)‘愛’ 앞에 ‘經曰’이 누락되었다.
  110. 110)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0a12)에서 제시한 것이다.
  111. 111)경전에서 전래되는 교설을 듣고서 믿고 받아들여 생겨나는 지혜를 문혜라고 하고, 이를 계기로 다시 교설의 의미와 이치를 사유함으로써 생겨나는 지혜를 사혜라고 하며, 나아가 실제로 명상 수행을 함으로써 얻는 지혜를 수혜라고 한다. 문혜는 항상 ‘말’에 의지하여 그 뜻을 추구함으로써 생겨난 지혜이다. 사혜는 때로는 ‘말’에 의지하고 때로는 말에 의지하지 않고 그 ‘의미’를 이해하여 생겨난 지혜이다. 이 단계에서는 말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는 하지만, 아직 말에 구애되지 않고 자재하게 그 의미를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수혜는 ‘말’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궁극적 ‘의미’만을 인식 대상으로 하여 성취된 지혜이다.
  112. 112)칠각七覺 :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돕는 일곱 가지 부분. 칠각지七覺支라고도 한다. 염각지念覺支ㆍ택법각지擇法覺支ㆍ정진각지精進覺支ㆍ희각지喜覺支ㆍ경안각지輕安覺支ㆍ정각지定覺支ㆍ사각지捨覺支 등을 말한다.
  113. 113)사선四禪 : 색계의 사선천四禪天에 태어나는 원인이 되는 네 가지 선을 일컫는 말. 사정려四靜慮라고도 한다. 어느 것이든 고요함과 헤아림, 지止와 관觀이 균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색계의 선정에 대해서만 ‘정려’라는 이름을 붙인다.
  114. 114)사공四空 : 무색계의 네 가지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 되는 네 가지 정定을 일컫는 말. 사무색정四無色定이라고도 한다. 공무변처ㆍ식무변처ㆍ무소유처ㆍ비상비비상처 등의 네 가지 정이다. 어느 것이든 색의 개념이 배제된 선정이기 때문에 무색정이라 한다.
  115. 115)정색淨色 : 근根은 세분하면 부진근扶塵根과 승의근勝義根의 둘로 나눌 수 있다. 승의근은 정색淨色(미세한 물질)으로 이루어졌고, 부진근은 추현색麁顯色으로 이루어졌다. 부진근은 오근五根의 외형, 곧 대상을 취하여 인식을 일으키는 당체가 아니고, 그것을 돕는 물질적 형상이다. 승의근은 감각을 발생하고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실체이다.
  116. 116)혜원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의 주석에 근거하여 본문을 풀이했다. 상기 본문의 풀이는 경흥의 주석에 근거한 것이어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117. 117)문장이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은 혜원의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0b25)에서 “從如來生解法如如。 是其理解。 解由如來敎化出生。 是故。 說之從如來生。 空同曰如。 解知一切萬法皆如。 名解如如。 善知習等。 是其敎解。 習善之敎。 名習音聲。 滅惡之敎。 名滅音聲。 菩薩。 於此。 悉能善解。 故名善知。 於中巧知。 故曰方便。”이라고 한 것과 거의 같다.
  118. 118)집제를 원인으로 하여 고제의 결과가 생겨나고, 도제를 원인으로 하여 멸제의 결과가 생겨나기 때문에 집제에 고제가 포함되고, 멸제에 도제가 포함된다는 말이다.
  119. 119)입의 네 가지 허물 : 거짓말(妄語)ㆍ이간질하는 말(離間語)ㆍ악어惡語(粗惡한 말로 타인을 해치는 것)ㆍ꾸민 말(綺語) 등이다.
  120. 120)사성언四聖言 : 네 가지의 성스러운 말. 첫째, 안식眼識으로 받아들이고 깨닫는 것을 ‘본 것’이라 하는데, 안식으로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직 깨닫지도 못하여 이러한 사실을 숨기지 않고, “나는 보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이식耳識으로 받아들이고 깨닫는 것을 ‘들은 것’이라 하는데, 이식으로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직 깨닫지도 못하여 이러한 사실을 숨기지 않고, “나는 듣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 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 등으로 받아들이고 깨닫는 것을 ‘알아차린 것(所覺)’이라 하는데, 안식으로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직 깨닫지도 못하여 이러한 사실을 숨기지 않고,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넷째, 의식意識으로 받아들이고 깨닫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하는데, 아직 의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직 깨닫지도 못하여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고,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121. 121)본문의 “여래로부터 출생한~마음을 둔다.”가 해解를 이루는 부분임을 나타낸 말이다.
  122. 122)보살 십지 중 제1 환희지歡喜地에서부터 제7 원행지遠行地에 이르기까지의 일곱 가지 계위를 가리킨다.
  123. 123)전자는 첫 번째 해석에 대한 비판이고, 후자는 두 번째 해석에 대한 비판이라는 말이다.
  124. 124)본문의 “온갖 선의~모두 다한다.”가 행行을 이루는 부분임을 나타낸 말이다.
  125. 125)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0c7)에서 제시한 것이다.
  126. 126)생략 표시가 아니고 본문이기 때문에 현행 『韓佛全』에서 작은 글씨로 쓰인 것은 큰 글자로 바꾸어야 한다.
  127. 127)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0c26)에서 제시한 것이다.
  128. 128)진로塵勞 : 번뇌의 원인이 되는 대상 경계. 중생을 어지럽히고 수고롭게 하기 때문에 ‘勞’라고 했다.
  129. 129)일체의 유有 : 욕유欲有(욕계의 존재)ㆍ색유色有(색계의 존재)ㆍ무색유無色有(무색계의 존재) 등의 삼유를 가리킨다.
  130. 130)이장二障 : 궁극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끊어야 할 두 가지 장애. 첫째, 번뇌장煩惱障이니, 중생의 몸과 마음을 어지럽혀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고 생사윤회하게 만드는 모든 번뇌를 가리킨다. 혹장惑障이라고도 한다. 둘째, 소지장所知障이니, 알아야 할 경계를 가려 바른 지혜를 낳는 것을 장애하는 모든 번뇌를 가리킨다. 지장智障ㆍ지애智礙 등이라고도 한다. 『成唯識論』 권1(T31, 1a8)에서 본 논서는 두 가지 장애를 끊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고, 아집我執에 의해 번뇌장이 생겨나고, 법집法執에 의해 소지장이 생겨나며, 번뇌장을 끊음으로 인해 해탈을 증득하고 소지장을 끊음으로 인해 대보리大菩提를 증득한다고 하였다.
  131. 131)비리작의非理作意 :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 이치에 어긋나는 사유분별을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분별을 가리킨다.
  132. 132)작의作意 : 마음으로 하여금 경각警覺하게 하는 것, 곧 의욕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133. 133)육화경六和敬 : 불도를 닦는 수행자들이 서로 행해야 할 여섯 가지 형태의 화경和敬(조화를 이루고 공경하는 것)을 일컫는 말. 곧 신화경身和敬(예배 등을 함께하는 것)ㆍ구화경口和敬(讚詠 등을 함께하는 것)ㆍ의화경意和敬(信心 등을 함께하는 것)ㆍ계화경戒和敬(戒法을 함께하는 것)ㆍ견화경見和敬(견해를 함께하는 것)ㆍ이화경利和敬(옷ㆍ음식 등의 이익을 함께하는 것) 등이다.
  134. 134)『大正藏』 강승개본의 미주에서 유포본에서는 ‘師導’를 ‘導師’라고 했다고 하였다. 경흥의 주석에 따르면 경흥의 대본에도 역시 ‘導師’라고 했다.
  135. 135)『大正藏』 강승개본의 미주에 따르면 유포본에서는 ‘慼’을 ‘戚’이라 하였다고 했다.
  136. 136)『大正藏』 강승개본의 미주에 따르면 유포본에서는 ‘止’를 ‘正’이라 하였다고 했다. 경흥의 주석에 따르면 그 대본에서는 ‘正’이라고 했다.
  137. 137)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1b13)에서 제시한 것이다.
  138. 138)여리작의如理作意 :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생각을 말한다.
  139. 139)가행加行 : 공용을 더하는 것. 정행正行에 상대하는 예비적 행위이다.
  140. 140)『成唯識論』 권10(T31, 57c8).
  141. 141)부처님께서는 생겨난 것의 소멸 여부에 대해서는 반드시 소멸하는 것이라고 했고, 경우에 따라서 소멸할 수도 있고 소멸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답변하지는 않았으니, 생겨난 것을 보고 소멸하지 않음을 안다는 말은 옳지 않다는 말이다. 전자와 같은 답변을 일향기一向記라고 하고, 후자의 방식으로 답변하는 것을 분별기分別記라고 하는데, 생겨난 것의 소멸 여부에 대한 질문은 불교의 진리에 의거할 때 분별기로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모든 죽은 사람은 전부 다시 태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을 경우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는 다시 태어나지만 번뇌가 다한 이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데, 이것을 분별기라고 한다.
  142. 142)경흥의 주석에 의거할 때 ‘趣’는 ‘道’이다. 강승개본의 미주에서 다른 판본에서는 ‘道’라고 했음을 밝혔다.
  143. 143)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2a11)에서 “第三重勸往生”이라고 분과한 것을 참조하여 문장을 보태어 풀었다.
  144. 144)도솔천은 욕계에 속하는 여섯 하늘 중 네 번째 하늘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여전히 업에 의해 생사윤회하는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145. 145)『釋淨土群疑論』 권4(T47, 53b28)에서 “問曰。 諸有學者。 咸知西方勝於兜率百千萬倍。 然恐淨土是彼殊方。 諸願生人。 恐難得往。 是以古今盛德碩學高僧。 咸謂難生。 作兜率業。”이라 했다.
  146. 146)『觀無量壽經』(T12, 345c10)의 하배관下輩觀에서 설한 것을 요약한 것이다.
  147. 147)『稱讚淨土佛攝受經』(T12, 350a20)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하시는 것을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48. 148)『觀無量壽經』(T12, 343b26).
  149. 149)사십팔원 중 제19 섭중품원攝中品願을 취의 요약한 것이다.
  150. 150)극락왕생의 용이성을 믿고 수행을 게을리 하는 중생을 가리킨다.
  151. 151)육축 : 집에서 기르는 대표적인 여섯 가지 동물. 곧 소ㆍ말ㆍ양ㆍ돼지ㆍ개ㆍ닭 등이다.
  152. 152)육물六物 : 출가자가 반드시 지니고 다녀야 할 것으로 제정된 여섯 가지 소지품. 이는 불도를 수행하려는 목적에 적합한 최소한의 생활 도구라는 제한 속에서 선별된 것이다. 출처에 따라 여섯 가지 물건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승가리僧伽梨ㆍ울다라승鬱多羅僧ㆍ안타회安陀會ㆍ발우ㆍ니사단尼師壇ㆍ녹수낭漉水囊 등을 말한다. 앞의 세 가지를 묶어서 삼의三衣라고 하기 때문에 삼의육물三衣六物이라고도 한다. 승가리는 입궁入宮ㆍ탁발 등을 행할 때 입는 옷으로 일종의 정장과 같은 것이다. 울다라승은 예배ㆍ포살 등을 행할 때 입는 옷이고, 안타회는 일상생활에서 일할 때 혹은 잠잘 때 입는 옷이다. 발우는 공양할 때 사용하는 그릇이다. 니사단은 좌구坐具ㆍ부구敷具 등이라고도 하는데, 앉거나 누울 때 땅에 까는 용도로 쓰는 장방형의 천을 말한다. 녹수낭은 물을 거르는 주머니로, 본의 아니게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를 먹어 살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니고 다니도록 하였다.
  153. 153)백일물百一物 : 육물 이외에 생활에 필요한 온갖 도구를 가리키는 말. 온갖 필요한 물품 중 하나만 비축하는 것이 허용된 것. 『釋氏要覽』 권중(T54, 278c26)에서 “백일물에서 (‘백’)이란 대체적으로 말한 것으로 (‘백’이라는 숫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薩婆多論』(T23, 535c22)에서 ‘백물은 각각 한 가지씩 비축할 수 있다’라고 했다.(百一物。 大概之辭也。 薩婆多論云。 百物各可蓄一也。)”라고 했다. 『薩婆多論』은 유부의 율전인 『十誦律』에 대한 주석서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갖춘 이름은 『薩婆多毘尼毘婆沙』이다.
  154. 154)삼의십물三衣什物 : 구마라집이 한역한 『仁王般若波羅蜜經』 권하(T8, 830a6)에서 “三衣什物”이라 했다.
  155. 155)십삼두다十三杜多 : 율장에서는 보통 십이두타를 설하였다. 단 『瑜伽師地論』 권25(T30, 422a9)에서 “① 늘 약속된 집에서 걸식하는 것(常期乞食), ② 마을에 들어가 분별하지 않고 차례대로 걸식하는 것(次第乞食), ③ 한 번 앉은 자리에서 한 번만 먹는 것(但一坐食), ④ 먼저 적절한 분량의 음식을 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난 후에 먹는 것(先止後食), ⑤ 단지 삼의三衣만 지니는 것, ⑥ 단지 솜털(毳)옷만 지니는 것, ⑦ 분소의糞掃衣를 입는 것, ⑧ 아란야에 머무는 것, ⑨ 항상 나무 밑에 거주하는 것, ⑩ 항상 맨땅에 머무는 것, ⑪ 항상 무덤가에 머무는 것, ⑫ 등을 기대거나 걸터앉거나 하지 않고 항상 단정하게 앉아 있는 것, ⑬ 좌구를 깔았던 곳은 수리하거나 하지 않고 항상 앉았던 그대로 유지하는 것 등이다.”라고 하여 십삼두타를 제시했고, 『解脫道論』(T32, 404b27)에도 “옷과 관련된 것 두 가지, 곧 ① 분소의를 입는 것, ② 삼의만 지니는 것 등이다. 걸식과 관련된 것 다섯 가지, 곧 ③ 걸식, ④ 차제걸식, ⑤ 일좌식, ⑥ 절량식, ⑦ 시후불식 등이다. 좌와坐臥와 관련된 것 다섯 가지, 곧 ⑧ 무사처좌, ⑨ 수하좌, ⑩ 노지좌, ⑪ 총간좌, ⑫ 우득처좌 등이다. 용맹과 관련된 것 한 가지, 곧 ⑬ 상좌불와이다.”라고 하여 십삼두타를 제시하였다.(有十三法。 二法衣相應。 謂糞掃衣及三衣。 五法乞食相應。 謂乞食。 次第乞食。 一坐食。 節量食。 時後不食。 五法坐臥相應。 一無事處坐。 二樹下坐。 三露地坐。 四塚間坐。 五遇得處坐。 一勇猛相應。 有一種。 謂常坐不臥。) ‘두타’는 ⓢ dhūta의 음사어로 두타頭陀라고도 음사하고, 기제棄除ㆍ사태沙汰ㆍ제견除遣 등으로 의역한다. 범어의 원래 뜻은 흔들어 떨어 버리다는 뜻을 가진 동사 어근 √dhū에서 파생한 것으로 흔들리다, 동요되다 등의 뜻이지만 심신에 묻은 때를 떨어 없애 버린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곧 마음을 닦아 의ㆍ식ㆍ주에 대한 탐욕을 떨어버리는 수행을 가리킨다.
  156. 156)십삼자구十三資具 : 비구의 생활을 돕는 열세 가지 생활 도구. 첫째 승가리이고, 둘째 울다라승이며, 셋째 안타회이고, 넷째 니사단이며, 다섯째 군裙(하반신을 덮는 내의)이고, 여섯째 부군副裙(裙의 일종)이며, 일곱째 승기지僧祇支(겨드랑이를 덮는 옷)이고, 여덟째 부승기지副僧祇支(승기지의 일종)이며, 아홉째 식신건拭身巾(몸을 닦는 수건)이고, 열 번째 식면건拭面巾(얼굴을 닦는 수건)이며, 열한 번째 삭발의剃髮衣(삭발할 때 입는 옷)이고, 열두 번째 개창건蓋瘡巾(종기를 덮는 수건)이며, 열세 번째 약자구의藥資具衣(병이 걸렸을 때 약과 교환하기 위한 衣布)이다.
  157. 157)‘(사부四部에 있어서는)’은 분명한 이해를 위해 『釋氏要覽』 본문에 의거하여 생략된 부분을 추가한 것이다.
  158. 158)‘율문’이란 사부의 율전, 곧 살바다부薩婆多部(有部) 소속 율전인 『十誦律』, 담무덕부曇無德部(法藏部) 소속 율전인 『四分律』, 대중부大衆部 소속 율전인 『摩訶僧祇律』, 미사새부彌沙塞部(化地部) 소속 율전인 『五分律』 등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데 『十誦律』 권57(T23, 424a22)에서는 “百一物”에 해당하는 옷을 보시를 받아 비축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옷 중 하나라고 하였다.(七種衣不作淨施得畜。 僧伽梨。 欝多羅僧。 安陀會。 雨浴衣。 覆瘡衣。 尼師壇。 及餘百一物。) 그러므로 율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말과는 어긋나는 것 같다.
  159. 159)생략된 부분에 따르면 재가자의 경우에도 그 절반도 얻어서 쓰지 못하는데, 출가자가 백물을 각각 하나씩 비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별시의란 이미 서술한 것처럼 방편적으로 시설한 것일 뿐이고, 일반론으로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160. 160)백첩白疊 : 목면에서 나는 꽃으로 만든 하얗고 부드러운 면포를 가리킨다.
  161. 161)『南海寄歸內法傳』 권2(T54, 212c7~214b4).
  162. 162)『大正藏』 강승개본에서 ‘居’를 ‘俱’라고 했고, 경흥의 주석에 의거하더라도 ‘俱’라고 해야 한다.
  163. 163)원문에 ‘者’가 있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은’의 의미에서 집어넣은 ‘者’와 별도로 ‘者’ 뒤에 ‘者’가 추가되어야 한다.
  164. 164)종자식種子識 : ⓢ sarva-bīja-vijñāna. 종자식이란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다른 이름이다. 일체법의 종자를 집지執持하여 잃지 않는 식識이라는 뜻이다.
  165. 165)“善惡變化。 殃福異處”를, 길장은 『無量壽經義疏』(T37, 123c10)에서 “‘선악변화善惡變化’란 악인惡因은 고苦를 얻고 선인善因은 낙樂을 얻어 그 과보가 앞에서 지은 것과 성격을 달리하는 것을 말한다.(善惡變化者。 惡因得苦。 善因得樂。 其報易前也。)”라고 하여 현세에서 지은 선업과 악업이 다음 생에서는 그것과 성질을 달리하는 형태로 변화하여 차례대로 복福(樂)과 앙殃(苦)을 받는 것을 뜻하는 말로 풀었는데, 이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166. 166)강승개본에 따르면 ‘見’ 뒤에 ‘之’가 누락되었다.
  167. 167)혜원의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2b21)에 따르면, 이것은 “타인의 생각을 본받아 익히는 것(效習他人)”이다.
  168. 168)혜원의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2b23)에 따르면, 이것은 “자식이 무지하여 아버지의 잘못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明子無知受父邪言)”이다.
  169. 169)혜원의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2b24)에 따르면, 이것은 “아버지의 어리석음이 자식의 무지를 이루는 것을 제시한 것(擧父癡頑成子無知)”이다. 혜원은 또한 이 부분을 네 구절로 나누었다. 첫째, “할어버지와 아버지는 이전에 선을 행하지 않고”란 그 행위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둘째, “도덕을 알지 못하여”란 그 이해가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색근이 우둔하고 성품이 어두우며, 마음은 막히고 의근은 닫혀 버리니, 이로 인해 생사윤회의 세계와 그 원인이 되는 선악의 도를 스스로 알지 못하고, 이것과 관련된 말을 해 주는 사람도 없이 살면서”란 거듭해서 이해가 없음을 밝혔다. 앞의 구절에서 이해가 없음은 출세간의 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고, 이 구절에서의 이해가 없음은 세간의 선악의 인과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생사윤회의 세계를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란 과를 알지 못하는 것이고, “그 원인이 되는 선악의 도를 스스로 알지 못하고”란 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과에 대해 스스로 알지 못하는데 어느 누구도 이것과 관련된 말을 해 주는 이가 없기 때문에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다. 넷째, “길흉회복을 다투어 각각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그 행위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란 거듭해서 행위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앞의 구절에서의 행위가 없는 것은 선을 짓지 않는 것을 나타낸 것이고. 이 구절에서의 짓지 않음은 그 악을 지음을 밝힌 것이다. 자신이 악을 짓고, 다른 사람이 말해 주는 일도 없으니, 영원히 못한다.
  170. 170)형이 아우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우가 형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남편이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내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171. 171)경흥의 주석에 따르면 ‘曚’은 ‘蒙’이다.
  172. 172)『大正藏』 강승개본에 따르면 ‘家室’은 ‘室家’이다. 양자가 뜻은 동일하다.
  173. 173)현공玄公 :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로 경서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174. 174)유由 :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의 이름으로 그 성은 중仲이다.
  175. 175)혜원은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3a20)에서 이 부분은 “부처님의 덕을 총괄적으로 제시한 것(總擧佛德)”이라 했다. 이 부분에 대한 경흥의 해석은, 그 의도가 혜원과 일치하는데 내용이 소략하기 때문에 혜원의 분과를 소개하여 내용을 명료하게 해 보았다.
  176. 176)혜원은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3a20)에서 이 부분은 “개별적으로 부처님의 덕을 나타낸 것(別以顯之)”이라 했다.
  177. 177)앞에서 “부처님은 위신이 존중하고, 하신 말씀은 즐겁고 선한 것입니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178. 178)앞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은 매우 심오하고 매우 훌륭하며”라고 한 것을 말한다.
  179. 179)혜원은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3b12)에서 “자신을 만나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이다.(彰已難値陳如。)”라고 했다. 본문에서 ‘已’는 ‘己’의 오자인 것 같다.
  180. 180)강승개본에서는 ‘涅槃’을 ‘泥洹’이라 했다.
  181. 181)진여陳如 : ⓢ Ājñāta-Kauṇḍinya. 갖추어서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라고 하고, 보통 교진여憍陳如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제도하신 다섯 비구 중 한 사람으로, 교진여는 이 다섯 중에서도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었다.
  182. 182)강기綱紀 : 그물의 벼릿줄을 ‘강’이라 하고, 가는 줄을 ‘기’라 한다. 만물의 근본이 되는 도리가 갖는 공능을, 벼릿줄과 가는 줄에 의해 그물이 서로 엉키지 않고 잘 펼쳐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183. 183)사중四衆 : 네 부류의 무리라는 뜻인데 문맥에 따라 그 구성 내용은 일정하지 않다.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비구ㆍ비구니 등의 출가 제자와 우바새ㆍ우바이 등의 재가 신자를 합하여 일컫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184. 184)강승개본에서는 ‘汝’를 ‘爾’라고 했다.
  185. 185)내적인 고통(病苦) : 경흥이 주석에서, ‘병病’은 생ㆍ노ㆍ사에 의한 내적인 고통을 총괄하는 것이고, ‘통痛’은 외적인 고통을 총괄하는 것으로 풀이한 것에 따른 해석이다. 그러나 생ㆍ노ㆍ사ㆍ병은 네 가지의 고통으로 개별화해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곧 혜원은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3c11)에서 “생ㆍ노ㆍ병ㆍ사는 내고內苦이고, 통고痛苦는 외고外苦이다.(生老病死。 是其內苦。 言痛苦者。 是其外苦。)”라고 했다.
  186. 186)외적인 고통(痛苦) : 경흥은 정신적 고통을 내적인 고통, 신체적 고통을 외적인 고통이라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적인 고통과 외적인 고통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길장은 『法華義疏』 권5(T34, 523b21)에서 “외적인 고통이란 추위ㆍ더위ㆍ매를 맞는 것ㆍ꾸짖음을 당하는 것 등이고, 내적인 고통이란 사대가 고르게 조절되지 못하여 각 대마다 101가지 병에 걸려 (모두 404가지 병에 걸리는 것이다.)(外苦者。 謂寒熱打罵。 內苦者。 謂四大不調。 百一病惱也。)”라고 했다.
  187. 187)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3c10)에서 “그대는~싫어해야 한다.”라는 것은 싫어하는 마음을 낼 것을 권한 것이라 했고, “더러운 액체가~끊어 버려야 한다.”라는 것은 허물을 드러내어 버리게 한 것이라 했다.(汝可自厭生老病等。 勸生厭心。 生老病死。 是其內苦。 言痛苦者。 是其外苦。 惡露不淨。 無可樂者。 宜自決斷。 彰過令捨。) 이것에 의거하여 단락을 여기에서 끊었다.
  188. 188)강승개본에서는 ‘涅槃’을 ‘泥洹’이라 했다.
  189. 189)백연본과 거의 일치하는 지루가참의 『無量淸淨平等覺經』 권3(T12, 292a25). 지겸의 『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권하(T12, 310b6.)
  190. 190)『無量壽經』 권하(T12, 278a20). 뒤에 해당 문장이 나온다.
  191. 191)“여러 부처님의~쉽기 때문이다.”라고 한 부분은, 문맥이 모호하여 해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 경흥은 별도로 주석하지 않았다. 혜원은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4a14)에서 “‘여러 부처님의 국토에 거주하는 하늘과 사람의 부류는 저절로 선을 행하고 두루 악을 행하지 않으니, 가르침을 열어 교화하기가 쉽기 때문이다’란 쉬운 것을 들어 어려움을 나타낸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이루는 것이 더욱 뛰어난 것이라는 뜻이다.(諸佛國土。 自然作善。 不大爲惡。 易可開化。 擧易顯難。 成此爲勝。)”라고 했고, 길장은 『無量壽經義疏』(T37, 124a14)에서 “‘짝할 것이 없는 가장 뛰어난 일이다’란 희유한 것을 이루는 것을 찬탄한 것이다. 다른 국토에서는 대부분 뛰어난 인연이 있고, 또한 다시 선행의 과보가 강렬하고 수승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 쉽지만 이 국토에서는 이 두 가지 인연이 없어서 선을 닦는 것이 곧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희유한 것이라고 한다.(最無倫匹者。 成其希有之歎也。 明他土中。 多有勝緣。 又復善報强勝。 作善爲易。 此土。 無此二緣。 修善即難。 故名希有也。)”라고 하였다. 두 가지 해석의 대의는 사바세계를 제외한 다른 국토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조건이 뛰어나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 쉽지만, 사바세계는 선을 행하는 것이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에 이런 조건 속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더욱 훌륭한 일임을 밝힌 것이라고 풀이한 점에서는 일치한다.
  192. 192)앞에서 경흥이 “結衆寒熱”을 풀이하면서 다른 경본에서 ‘臨終寒熱’이라 한 사례를 제시하고, 옳지 않다고 한 것을 참조할 것.
  193. 193)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4a20)에서 “이 오악을 지음으로써 현세에서 왕법에 의해 치죄治罪를 받아 몸에 액난이 닥치는 것을 오통이라 하고 이 오악으로 인해 미래세에 삼악도에서 과보를 받는 것을 오소라고 한다.(造此五惡。 於現世中。 王法治罪。 身遭厄難。 名爲五痛。 以此五惡。 於未來世。 三途受報。 說爲五燒。)”라고 하였다.
  194. 194)오계에는 망어妄語만 포함되는데, 나머지 세 가지를 오계에 상응시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말이다.
  195. 195)아사세왕阿闍世王 : ‘아사세’는 ⓢ Ajātaśatru의 음사어. 줄여서 사세闍世라고 한다. 부처님 재세 시 인도 마가다국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온몸에 종기가 번져 고생하다가 부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참회함으로써 병을 고친 후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교의 강력한 외호자가 되었다.
  196. 196)화보華報 : 열매를 맺기 직전에 피는 꽃과 같은 형태의 과보. 곧 어떤 업의 과보를 받기 전에 받는 또 다른 형태의 과보를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불살생의 계율을 준수함으로써 장수하는 것은 화보이고, 열반의 과를 얻는 것은 과보이다. 또한 남의 음식을 빼앗아 굶주리게 하는 업을 지음으로써 늘 굶주리는 아귀로 태어나는 것은 화보이고, 지옥에 태어나는 것은 과보이다. 화보는 현세와 다음 생에 두루 적용된다. 『菩薩本生鬘論』 권4(T3, 344a17)ㆍ『雜藏經』(T17, 557c15) 등을 참조할 것.
  197. 197)앞에서 어떤 사람의 주장에서 그의 비판의 대상으로 제시된 혜원의 입장을 가리킨다.
  198. 198)약자와 강자의 연쇄 고리 속에서 점점 더욱 강한 것이 앞에서의 강자를 해치는 구조를 설명한 것이다.
  199. 199)문장이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의미상으로는 길장이 『無量壽經義疏』(T37, 124a29)에서 풀이한 것과 내용이 같다. 두 신에 대해서 『華嚴經』 권44(T9, 680b29)에서 “예컨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두 종류의 하늘이 있어 항상 따라다니면서 시위하는데, 첫째는 동생이고, 둘째는 동명이다. 이 하늘은 항상 사람을 보지만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여래의 신변도 또한 이와 같아서 성문은 알거나 보지 못하고, 오직 보살이라야만 볼 수 있다.(如人從生。 有二種天。 常隨侍衛。 一曰同生。 二曰同名。 天常見人。 人不見天。 如來神變。 亦復如是。 非諸聲聞。 所能知見。 唯諸菩薩。 乃能覩見。)”라고 하였다.
  200. 200)『통속문通俗文』 : 동한東漢 말기 복건服虔이 찬술한 중국 고대에 성립된 속어 사전이다.
  201. 201)예컨대 지옥도의 중생의 몸에서 아귀도의 중생의 몸으로 형태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202. 202)혼신정식魂神精識 : 혼신과 정식은 체는 동일하고 이름만 다르다. 윤회의 주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203. 203)『大正藏』 강승개본의 미주에 따르면 유포본에서는 ‘現’을 ‘見’이라 하였다고 했다.
  204. 204)‘世間有此目前現事’는 내용상 현세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경흥의 주석에 의거할 때 “통”의 범주에 들어가는 내용이고, 따라서 앞의 단락에 들어가야 한다.
  205. 205)『論語』에서 “子曰。 先進。 於禮樂。 野人也。 後進。 於禮樂。 君子也。 如用之。 則吾從先進。”라고 한 것을 취의 요약한 것이다.
  206. 206)포씨包氏 : 한漢나라 때 유학자 포함包咸을 가리킨다. 저술은 전하지 않고 다른 학자의 집주에 인용된 형태로 일부가 전한다.
  207. 207)사마표司馬彪 : 243~306. 서진西晉의 사학자, 문학가. 저술로 『莊子註』ㆍ『九州春秋』ㆍ『續漢書』 등이 있다.
  208. 208)의적의 『無量壽經述義記』(H2, 346b5)에 “謂顯中作者。 著於人。 隱中作者。 著於鬼。 故俗典云。 爲不善於顯明之中。 人得而誅之。 爲不善於幽闇之中。 鬼得而誅之。”라고 한 것을 참조하였다.
  209. 209)강승개본에 따르면 ‘憍’ 뒤에 ‘慢’이 누락되었다. 술
  210. 210)『좌전左傳』 : 갖추어서 『春秋左氏傳』이라 한다. 『春秋』는 B.C. 722~481, 곧 노魯나라 십이공十二公의 24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고, 『春秋左氏傳』은 이에 대한 삼대 주석서 중 하나로 공자와 동시대인인 노나라의 사관史官 좌구명左邱明이 찬술을 시작하여 후세에 보충한 것으로 전해진다.
  211. 211)『左傳』에서는 “偃蹇”이라고만 했고, “驕傲”는 없다. 『一切經音義』 권24(T54, 458c7)에서 “杜註。 左傳云。 偃蹇。 憍傲也。”라고 한 것을 참조할 때 두예杜預(222~284)의 『左傳註』에서 “偃蹇”을 풀이한 것이다.
  212. 212)『석명釋名』 : 후한後漢 말기 유희劉熙가 지은 사전. 중국 최초로 독음에 근거해 어원을 파헤친 사전으로 한자의 최초 용례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213. 213)이상 ‘언건’을 해석한 부분은 『一切經音義』 권7(T54, 359c21)에서 “偃蹇居免紀偃巨偃三反。 左傳。 偃蹇。 驕傲也。 廣雅。 偃蹇。 夭撟也。 謂自高大皃也。 釋名。 偃。 息而臥。 不執事也。 蹇。 跛蹇也。 病不能作事。 今託似此也。 撟音几小反。 經文從人作。”이라고 한 것과 문장이 거의 일치한다. 후자는 본문과 무관한 해석인데 집어넣은 것은 인용문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214. 214)호세천護世天 : 사천하四天下를 수호하는 네 천왕. 곧 사천왕四天王(동방의 持國天王, 남방의 增長天王, 서방의 廣目天王, 북방의 多聞天王)을 가리킨다.
  215. 215)명언종자名言種子 : 언어적인 분별 활동에 의해 훈습되어 이루어진 종자를 일컫는 말이다.
  216. 216)『瑜伽師地論』 권9(T30, 318c13)에서 “보살은 대비심으로 일체의 빈궁하고 곤란하고 고통스러우며 업천에 의해 고통 받는 중생을 관찰하여 음식과 재물과 곡식을 쌓아놓은 창고를 풀어 모두 충족시켜 준다.(若諸菩薩。 以大悲心。 觀察一切貧窮困苦業天所惱衆生。 施以飮食財穀庫藏。 皆令充足。)”라고 하였고, 『瑜伽論記』 권3(T42, 360c2)에서 “‘업천’이란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선ㆍ악이 천리天理(천하의 도리)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업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업을 천이라고 한 것이다.(業天者。 世人。 多以善惡。 由天理。 實由業。 說業名天。)”라고 하였다.
  217. 217)『大正藏』 미주에 에 따르면 ‘識’이라고 하였다고 했다. 경흥의 주석에 의거하면 ‘識’이다.
  218. 218)공안국孔安國 : 공자의 12대손으로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학자이다. 저술로 『古文孝經傳』ㆍ『論語訓解』 등이 있다.
  219. 219)『한서음의漢書音義』 : 『漢書』에 대한 주석서. 이 명칭으로 전하는 저서는 매우 많다. 『一切經音義』에서 인용하고 있는 저자로는 위소韋昭ㆍ소해蕭該ㆍ응소應劭 등이 있다.
  220. 220)설종薛綜 : 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관료, 학자. 자는 숙사叔師. 저술로 『楚辭章句』가 있다.
  221. 221)응소應劭 :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관료, 학자. 자는 중원仲遠. 저술로 『漢官儀』ㆍ『禮儀故事』ㆍ『風俗通』ㆍ『中漢集序』ㆍ『漢書注』 등이 있다.
  222. 222)응소의 『漢書注』에 나오는 글이다.
  223. 223)왕필王弼 : 226~249. 중국 위魏나라 때의 학자. 자는 보사輔嗣. 하안何晏과 함께 위진현학魏晉玄學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저술로 『老子』ㆍ『周易』에 대한 주석이 있다.
  224. 224)왕필의 『老子道德經注』에 나오는 글이다.
  225. 225)『慈悲道場懺法』 권5(T45, 943b25)ㆍ『往生禮讚偈』(T47, 447a29) 등에서 “父母六親”이라고 한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226. 226)『大乘本生心地觀經淺註』 권3(X20, 960a23)에 따르면 육친에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자신을 중심으로 했을 때의 육친이니, 곧 아버지ㆍ어머니ㆍ손위 남자 형제ㆍ손아래 남자 형제ㆍ손위 여자 형제ㆍ손아래 여자 형제 등이다. 둘째, 아버지와 관련된 육친이니, 곧 큰아버지ㆍ작은아버지ㆍ손위 형제ㆍ손아래 형제ㆍ자식(子)ㆍ손자(孫) 등이다. 셋째, 어머니와 관련된 육친이니, 곧 고모ㆍ이모ㆍ손위 형제ㆍ손아래 형제ㆍ자식ㆍ손자 등이다.
  227. 227)작자 미상의 돈황본 『無量壽經義記』 권하(T85, 247c8)에서 “‘사람이 능히 이러한 속에서도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란 십선十善을 닦아 뜻에 있어서 탐ㆍ진ㆍ치를 제어하는 것이며, ‘몸을 단정히 하고 생각을 바르게 하며’란 몸으로 살생ㆍ도둑질ㆍ음란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며, ‘말과 행동이 서로 일치하고’란 불망어不妄語를 행하는 것이고, ‘짓는 것에 있어서 지극히 정성스러우며’란 불기어不綺語를 행하는 것이며, ‘말하는 것에 있어서 진실 그대로 말하고’란 불양설不兩舌을 행하는 것이고, ‘마음과 생각이 구르지 않게 하여’란 불악구不惡口를 행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228. 228)강승개본에 따르면 ‘爲’ 뒤에 ‘五’가 누락되었다.
  229. 229)혜원의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4c18)에 따르면 살생악殺生惡을 설명한 것이다.
  230. 230)혜원의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4c19)에 따르면 겁도악劫盜惡을 설명한 것이다.
  231. 231)혜원의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4c20)에 따르면 사음악邪婬惡을 설명한 것이다.
  232. 232)혜원의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4c20)에 따르면 망어악妄語惡을 설명한 것이다.
  233. 233)혜원의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4c21)에 따르면 음주악飲酒惡을 설명한 것이다.
  234. 234)경흥과 혜원의 주석에 의거하여 육바라밀과 상응하는 형태로 풀이하였다. 뒤의 주석을 참조할 것.
  235. 235)경흥의 주석에 따르면 여기까지는 선을 행하는 것이어서 동일한 범주로 묶인다.
  236. 236)경흥의 주석에 따르면 이 부분은 선에 머무는 것이다.
  237. 237)강승개본에 따르면 ‘髮毛’는 ‘毛髮’이다.
  238. 238)혜원은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5a17)에서 “개별적으로 든 것 가운데 처음은 육바라밀을 들었으니 이것은 자리행이다. ‘은혜를 베푸는 것’은 단도檀度(보시바라밀)이고, ‘(불도에서 금하는 것을) 범하지 않는 것’은 계도戒度이며, ‘욕됨을 참는 것’은 인도忍度이고 ‘정진하는 것’은 진도進度이며,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은 선도禪度이고, ‘지혜’는 지도智度이다.(別中。 初擧六波羅蜜。 是自利行。 布恩檀度。 勿犯戒度。 忍辱忍度。 精進進度。 一心禪度。 智慧慧度。)”라고 하여 해당 문장을 육바라밀에 배대하였다. 경흥은 이러한 세부적인 해석은 생략했지만 이 문장은 그가 혜원과 동일한 입장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39. 239)『稱讚淨土佛攝受經』(T12, 349c29)의 취의 요약이다.
  240. 240)『周禮』에서 “네 개의 읍을 구라고 한다.(四邑爲丘。)”라고 했고, 그에 대한 정현의 주석에서 “‘구’는 사방이 4리이다.(丘方四里。)”라고 했다.
  241. 241)『주례周禮』 : 삼례三禮 중의 하나. 삼례란 『禮記』(각종 예절과 그 원리를 설명한 것), 『儀禮』(士의 각종 예절을 기록해 놓은 것), 『周禮』 등이다. 『周禮』는 국가의 행정 제도를 구상한 것으로 주周 왕실의 관직 제도와 전국시대戰國時代 각 국의 제도를 기록하였다.
  242. 242)이 부분은 정현의 주석에 나오는 문장이므로 그 출처를 보충했다.
  243. 243)이 부분은 『周禮』에 나오는 문장이므로 그 출처를 보충했다.
  244. 244)취락聚落 : 원문에서는 “聚”라고만 했다. 『大正藏』에서도 달리 쓰인 판본의 사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흥이 임의로 “聚”를 “聚落”이라고 썼을 수도 있고, 경흥이 “丘”에 대해 주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흥의 대본에서는 “丘聚”가 “취락”이라고 쓰여 있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는 다른 판본의 사례가 전하지 않기 때문에 경흥이 임의로 “취락”이라고 한 것으로 보고 풀이했다.
  245. 245)『釋名』에서 “厲。 疾氣也。 中人如磨厲傷物也。”라고 했다.
  246. 246)앞의 분과에서는 ‘나중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쌍으로 밝혀 중생으로 하여금 닦을 것은 닦고 버릴 것은 버리게 한 것’이라고 했다.
  247. 247)『大正藏』 강승개본에 따르면 ‘礙’는 ‘閡’이다.
  248. 248)영향중影響衆 : 부처님께서 설법하는 회상에 참여하여 청법하는 네 부류의 대중 가운데 하나. 타방 세계에 있는 불국토에서 와서 부처님의 교화를 돕는 부처님과 보살. 이미 과거에 도과道果를 원만하게 이루었지만 그러한 모습을 숨기고 당기중當機衆의 형상을 시현한다. 마치 그림자(影)가 형체를 따르는 것처럼, 혹은 메아리(響)가 소리에 응하는 것처럼 법왕이신 부처님을 보좌하여 법좌法座를 장엄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249. 249)당기중當機衆 : 부처님께서 설법하는 회상에 참여하여 청법하는 네 부류의 대중 가운데 하나. 과거세로부터 쌓은 인연이 무르익어 설법을 들으면 그 회좌會座에서 깨달음을 얻는 대중을 가리킨다.
  250. 250)오체투지五體投地 : 최상의 공경을 나타내는 인사법. 오체를 모두 땅에 던져서 예배드리는 것. ‘오체’란 두 손, 두 무릎, 정수리 등이다.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다음에 왼 무릎을 땅에 대며, 두 팔꿈치를 땅에 대고, 두 손바닥을 펼쳐서 뒤집어서 이마 위로 올리며, 그 뒤에 정수리를 땅에 대는 것이다.
  251. 251)겁수劫水 : 괴겁壞劫의 마지막에 일어나는 세 가지 큰 재앙(大三災:劫火ㆍ劫水ㆍ劫風)의 하나. 괴겁은 20개의 소겁小劫으로 나뉘는데, 이 중에서 마지막 소겁, 곧 세계가 멸망할 때 일어나는 큰물에 의한 재앙을 말한다. 혹은 이러한 재앙의 시기에 생겨나는 큰물을 가리킨다.
  252. 252)강승개본에 따르면 ‘光’ 뒤에 ‘明耀顯赫’이 누락되었다.
  253. 253)『無量淸淨平等覺經』 권2(T12, 287a14).
  254. 254)『無量淸淨平等覺經』 권2(T12, 287c6).
  255. 255)『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T12, 306c22).
  256. 256)『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T12, 307b2).
  257. 257)이러한 분류와 합치하는 내용을 경전이나 여타 주석서에서는 찾을 수 없다. 『大乘密嚴經』에서도 구체적으로 스물여섯 가지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에 의거해도 구체적인 하늘의 명칭은 밝힐 수 없다.
  258. 258)밀엄토密嚴土 : 밀교에서 설하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정토를 가리킨다. 신身ㆍ구口ㆍ의意 등의 삼밀三密에 의해 장엄한 국토라는 뜻이다.
  259. 259)『大乘密嚴經』 권상(T16, 729c24).
  260. 260)『菩薩瓔珞本業經』 권상(T24, 1011a1)에서 “上有二十八天……四天王。 忉利天。 焰天。 兜術天。 不憍樂天。 化應聲天。 梵天。 梵衆天。 梵輔天。 大梵天。 水行天。 水微天。 水無量天。 水音天。 約淨天。 無相天。 遍淨天淨。 光明天。 守妙天。 微妙天。 極妙天。 福果天。 果勝天。 大靜天。 空住天。 識住天。 無所有住天。 非想非無想住天。”이라고 하였다.
  261. 261)세 가지 선禪 : 색계의 이선二禪ㆍ삼선三禪ㆍ사선四禪 등을 가리킨다.
  262. 262)『華嚴經』 권12(T9, 477b1)에서 “四天王。 三十三天。 夜摩天。 兜率陀天。 化樂天。 他化自在天。 梵天。 梵身天。 梵輔天。 梵眷屬天。 大梵天。 光天。 少光天。 無量光天。 光音天。 淨天。 少淨天。 無量淨天。 遍淨天。 密身天。 少密身天。 無量密身天。 密果天。 不煩天。 不熱天。 善現天。 善見天。 色究竟天。”이라고 했다.
  263. 263)정거천은 색계의 마지막에 있는 하늘이다. 따라서 정거천만 제시한 것은 정토에는 무색계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겨날 수 있지만, 무색계를 제외한 것은 아님을 설명한 것이다.
  264. 264)정성나함定性那含 : 성문 사과 중 제3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는 것이 결정된 사람. ‘나함’은 아나함阿那含(ⓢ anāgāmin, 不還)을 줄인 음사어이다.
  265. 265)오정거천은 바로 아나함과를 얻은 성자가 태어나는 곳이고, 정토는 그 이상의 수행을 성취한 수행자가 왕생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266. 266)아가니타처阿迦尼吒處 :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 Akaniṣṭha-deva)이라고도 한다. 오정거천의 최상위, 곧 색계의 최상위이기 때문에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하고, 색계의 구경이기 때문에 색구경천色究竟天이라고도 한다.
  267. 267)『大乘密嚴經』 권중(T16, 735b4).
  268. 268)『大乘密嚴經』 권중(T16, 732a20).
  269. 269)앞에서 경흥 자신이 “그러므로 이제 곧 부처님의 다섯 가지 지혜를 의심하는 사람은 중품하생과 상품하생의 두 가지 생生에 포섭된다.”라고 한 말을 참조할 것.
  270. 270)중배와 하배는 차례대로 『無量淸淨平等覺經』 권3(T12, 292b1)과 같은 책 권3(T12, 292c15) 및 『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권하(T12, 310b11)와 같은 책 권하(T12, 310c25)를 참조할 것.
  271. 271)『無量淸淨平等覺經』 권3(T12, 292b1)ㆍ『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권하(T12, 310b10).
  272. 272)이 부분은 그 분과의 내용이 혜원이 『無量壽經義疏』에서 제시한 것과 같다. 따라서 문맥상 누락된 부분을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5b20)에서 “第二段中。 初彌勒問。 何因何緣。 彼國人民。 胎生化生。 正辨胎生。 約化顯之。 爲是通問。 下佛答之。”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273. 273)성소작지成所作智 : 대원경지ㆍ평등성지ㆍ묘관찰지ㆍ성소작지 등은 불과佛果를 증득함으로써 얻는 네 가지 지혜이다. 첫째, 대원경지란 거울과 같은 지혜이다. 아뢰야식 안에서 모든 오염이 제거되어 마음이 깨끗하게 닦인 거울처럼 된 상태이다. 따라서 사물을 주체와 객체가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 둘째, 평등성지란 평등한 본성을 보는 지혜이다. 말나식에서 근원적인 자아의식의 작용이 없어져서 자신과 타인이 평등하다고 보는 지혜이다. 이로써 대자비를 일으켜 중생을 구제하는 활동에 나아간다. 셋째, 묘관찰지는 관찰하는 지혜이다. 의식의 개별적이고 개념적인 인식 상태가 변화하여 모든 사물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설법하여 중생을 구제한다. 넷째, 성소작지란 해야 할 일을 해서 마치는 지혜이다. 안식 내지 신식身識의 감각 작용적인 상태가 변화한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장소에서 온갖 형태의 변화신變化身을 나툰다.
  274. 274)불지를 총괄적인 것으로 보고 나머지 네 가지 지혜를 개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원효의 『兩卷無量壽經宗要』(T37, 130b3) 및 『遊心安樂道』(T47, 112a23)에서 제시한 것과 같다. 다만 뒤의 네 가지 지혜를 불과를 증득함으로써 얻는 네 가지 지혜에 배대한 내용은 차이가 있다. 곧 원효는 “부사의지성소작지ㆍ불가창지묘관찰지ㆍ대승광지평등성지ㆍ무등무륜최상승지대원경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주장에 온전히 일치하는 학자는 알 수 없다. 참고로 경흥은 네 가지 지혜의 배대 관계에 있어서는 비판의 대상이 된 학자의 설을 따라서, “부사의지대원경지ㆍ불가칭지평등성지ㆍ대승광지묘관찰지ㆍ무등무륜최상승지성소작지”라고 하였다.
  275. 275)경흥의 비판의 초점이 불지를 총괄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에 있다면, 혜원도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5b27)에서 “여기에서 처음에 ‘불지를 알지 못하고’라고 했는데, 이 구절은 총괄적인 것이다. ‘부사의지 등을 알지 못하고’란 개별적인 것이다. 불지는 매우 깊어서 다른 사람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부사(의)지라고 하고, 불지는 매우 많아 언설로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칭지라고 하며, 모든 법문을 끝까지 다 알기 때문에 대승광지라고 하며, 그 지위가 높고 빼어나기 때문에 무등(무)륜최상승지라고 한다.(於中。 初言不了佛智。 此句。 是總。 不思等。 別。 佛智淵深。 餘不能測。 名不思智。 佛智衆多。 非言能盡。 言不可稱。 於諸法門。 知之窮盡。 名爲廣智。 位分高出。 名無等倫最上勝智。)”라고 하여 불지를 네 가지 지혜를 총괄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276. 276)『佛地經』(T16, 721a1)에서 “有五種法。 攝大覺地。 何等爲五。 所謂。 淸淨法界。 大圓鏡智。 平等性智。 妙觀察智。 成所作智。”라고 하였다.
  277. 277)다섯 가지 지혜를 『佛地經』의 다섯 가지 법과 연결한 것은, 전의轉依에 대한 유식학파의 두 가지 입장 중 하나와 관련된 것으로 실질적으로 이 학파의 전의설의 주류가 된 것이다. 안혜安慧는 유구공성有垢空性이 무구공성無垢空性으로 된 것을 청정법계라고 하고, 네 가지 지혜를 분명히 팔식八識과의 관계에서 거론한다. 또한 친광親光은 『佛地經論』에서 스승인 호법護法의 학설에 의해 『佛地經』의 다섯 가지 법을 주석하였다. 호법은 『成唯識論』에서 전의의 결과를 대열반과 대보리로 나누는데, 전자는 청정법계에, 후자는 네 가지 지혜에 해당한다.(요코야마 고우이츠 지음, 묘주 옮김, 『유식철학』, 경서원, 1997, p.236)
  278. 278)지처란 깨달음의 대상인 청정법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불지를 청정법계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불지는 지혜인데 어떻게 지처와 같은지에 대한 난문難問을 스스로 예상하여 깨달음의 대상에 대해서도 지智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음을 설한 것이다.
  279. 279)『兩卷無量壽經宗要』(T37, 130b29)에서 “如佛經說。 善惡業道。 罪福無朽。 重者先牽。”, 『無量壽經優婆提舍願生偈註』 권상(T40, 834b13)에서 “業道經言。 業道如秤。 重者先牽。”, 『略論安樂淨土義』(T47, 2b3)에서 “經言。 業道如秤。 重者先牽。”, 『安樂集』 권상(T47, 10c16)에서 “大乘經云。 業道如秤。 重處先牽。”라고 했는데, 해당 경전은 분명하지 않다. 정토부 경전 이외에 업의 이치를 설한 경전을 일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앞의 책은 모두 그 뒤를 이어서 온갖 악한 행위와 열 번 동안 상속하면서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한 것은 경에서 선악에 상응하는 죄복의 과보가 저울처럼 준엄한 이치를 설한 것에 의거할 때, 전자가 무겁고 후자는 가벼운 것이기 때문에 전자가 우선적으로 과보에 적용되어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고 하여 십념염불十念念佛에 의해 정토에 왕생하는 가르침에 대해 의심을 일으키는 사람의 사례를 들고, 이러한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 부사의지를 설한 것이라고 하였다. 경흥 역시 동일한 입장을 보인다.
  280. 280)의심하는 주장에 대한 경흥의 반론의 의미가 현재 문장만으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저술에 의해 이 부분을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효의 『兩卷無量壽經宗要』(T37, 130c6)에서 “가까운 것을 먼 것으로 하고 먼 것을 가까운 것으로 하며, 무거운 것을 가벼운 것으로 하고 가벼운 것을 무거운 것으로 할 수 있다. 비록 진실로 이러한 일이 있지만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단지 우러르며 믿어야 한다. 경에서 설한 것을 자신의 얕은 지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믿음을 내게 하고자 하여 일로써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비유컨대 천년 동안 땔감을 쌓아 높이가 100리나 되어도 콩알만 한 불에 타면 하루 만에 모두 사라지는 것과 같은데, (이것에 대해) 천년 동안 쌓아 온 섶이 어떻게 하루 만에 다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앉은뱅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부지런히 걸으면 여러 날을 지나서야 1유순의 거리에 도달하지만, 다른 사람의 배를 타고 바람과 돛의 힘에 의지하면 하루 만에 천 리를 가는 것과 같으니, (이것에 대해) 앉은뱅이의 몸으로 어떻게 하루에 천 리를 갈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세간의 뱃사공의 몸으로도 오히려 이와 같이 생각을 넘어서는 일을 행하는데 어찌 하물며 여래 법왕의 힘으로 부사의한 일을 하지 못하겠는가.(能以近爲遠。 以遠爲近。 以重爲輕。 以輕爲重。 雖實有是事。 而非思量境。 所以直應仰信。 經說不可以自淺識思惟。 若欲生信。 應以事況。 譬如千年積薪。 其高百里。 豆許火燒。 一日都盡。 可言千年之積薪。 如何一日盡耶。 又如躄者。 自力勤行。 要逕多日。 至一由旬。 若寄他船。 因風帆勢。 一日之間。 能至千里。 可言躄者之身。 云何一日至千里耶。 世間船師之身。 尚作如是絕慮之事。 何況如來法王之勢。 而不能作不思議事耶。)”라고 하였다. 계량적으로 보자면 온갖 악을 저지른 것과 십념염불은 전자는 무겁고 후자는 가볍지만, 부처님께서는 가벼운 것을 무거운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고, 이러한 힘의 원천이 바로 부사의지라는 말이다. 이는 담란曇鸞의 『略論安樂淨土義』(T47, 2b10)과 비유 및 취지가 거의 동일하다. 둘째, 담란의 『無量壽經優婆提舍願生偈註』 권상(T40, 834b22)에서 “계량적으로 보자면 전자는 무겁고 후자는 가볍지만, 정토왕생에 있어서 계량적인 것은 관련이 없고, 그 행위 주체의 작용과 관련된 마음ㆍ연緣ㆍ결정 등이 중요한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실질적으로는 전자는 가볍고 후자는 무겁다. 그러므로 인용된 경의 내용과 정토부 경전의 주장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281. 281)십사불가기사十四不可記事 : 부처님께서 답변하지 않으신 열네 가지 질문. ① 세간과 자아는 상주하는가, ② 무상한가, ③ 상주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④ 상주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은가, ⑤ 끝이 있는가, ⑥ 끝이 없는가, ⑦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⑧ 끝이 있지 않기도 하고 없지 않기도 한가, ⑨ 부처님은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영혼과 신체는 동일한가, 다른가 하는 등이다. 부처님의 이러한 태도의 이유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는 크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이러한 주제에 대한 논의는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이라는 불교의 이상을 실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주제는 형이상학적 문제로서 인식이나 경험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고, 따라서 어떤 논의를 통해서도 정답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셋째, 실재는 이성적 사유를 넘어선 것이라는 판단에 기초하여 이성의 독단적 진행을 폐기하는 비판주의적 입장을 드러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282. 282)육진六塵 : 육근六根(眼根ㆍ耳根ㆍ鼻根ㆍ舌根ㆍ身根ㆍ意根 : 인식 기관)이 취하는 여섯 가지 대상. 육경六境이라고도 한다. 색진色塵ㆍ성진聲塵ㆍ향진香塵ㆍ미진味塵ㆍ촉진觸塵ㆍ법진法塵 등을 가리킨다. 여섯 가지 대상은 먼지가 사람을 오염시키는 것처럼 중생의 마음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진塵(먼지)’이라 한다. 또한 마음의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외진外塵이라고도 한다.
  283. 283)담란의 『略論安樂淨土義』(T47, 3b23)에서 “성문과 벽지불은 알려고 하는 것이 있으면 선정에 들어가야 비로소 알고, 선정에서 나오면 알지 못한다. 또한 아는 것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 부처님은 여실삼매를 얻어 항상 깊은 선정에 있지만, 만법의 차별화된 모습과 차별을 넘어선 모습을 두루 비추어 안다. 법을 깊이 통달한 것에 짝할 이가 없기 때문에 ‘무륜’이라 한다.(聲聞辟支佛。 欲有所知。 入定方知。 出定不知。 又知亦有限。 佛得如實三昧。 常在深定。 而遍知照萬法二與無二。 深法非倫。 故言無倫。)”라고 한 것을 참조할 것.
  284. 284)사기론四記論 : 일정한 질문에 대답할 때 문제의 성질에 따라 달리 대답하는 것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 첫째, 일향기一向記이니, 주어진 질문이 지극히 당연하여 직접 긍정하는 방식으로 답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모든 중생은 언젠가는 죽는가?”라고 질문하면, 바로 “모든 중생은 죽지 않을 수 없다.”라고 답변하는 것이다. 둘째, 분별기分別記이니, 질문을 자세하게 분석한 후에 긍정 또는 부정의 형식으로 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죽은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살아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번뇌가 남아 있는 사람은 다시 윤회하여 살아나고, 그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셋째, 반힐기反詰記이니, 먼저 상대방에게 반문하여 그 과정에서 답을 알도록 하는 것, 또는 반문에 의해 질문의 뜻을 분명하게 정립한 다음에 대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은 뛰어난가, 열등한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먼저 “어떤 입장에서 하는 말인가?”라고 반문한 후 “하늘에 비해서는 열등하고, 악취에 비해서는 뛰어나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넷째, 사치기捨置記이니,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어서 응답할 수 없거나 대답할 가치가 없을 경우 버려두고 대답하지 않거나, 그 잘못을 일깨워 주는 답변을 해 주는 것, 또는 상대방에게 응답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온五蘊과 중생은 같은가, 다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중생은 실체로 존재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같다거나 다르다는 본질이 없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말한다. 또는 “세계는 공간적으로 한계가 있는가, 무한한가?”라는 등의 질문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시고(無記) 침묵하신 것과 같다.
  285. 285)길장의 『無量壽經義疏』(T37, 125a21)에서 “‘깊이 스스로 후회하고’란 반드시 한 가지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고, 후회하면 벗어날 수 있지만 후회하지 않으면 반드시 5백 세를 채워야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深自悔責者。 明不必一種。 若能悔即出。 不悔。 必滿五百歲。)”라고 한 것을 참조할 것.
  286. 286)앞의 분과에서는 ‘그 국토의 뛰어남을 찬탄하여 대성으로 하여금 구하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287. 287)소행보살小行菩薩 : 의적의 『無量壽經述義記』(H2, 349c16)에서는 십신十信의 지위에 오른 보살이라고 했다. 이것은 보살의 수행 계위에 의거할 때 상대적으로 최초에 해당하는 십신을 ‘소행’이라 할 수 있는 것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釋淨土群疑論』 권1(T47, 31b19)에서 “彼地前諸小行菩薩等”이라고 하여 지전地前의 보살이라 했다. 또한 『無量壽經義記』(T85, 248c22)에서는 “諸小行菩薩者。 諸言不一。 此小行菩薩。 是住下三十心人。”이라고 하여 『梵網經』에서 설한 사십심, 곧 십발취十發趣ㆍ십장양十長養ㆍ십금강十金剛ㆍ십지十地 등에서 앞의 삼십심이라고 했다. 사십심은 차례대로, 십해(십신)ㆍ십행ㆍ십회향에 배대되기 때문에 지전의 보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 점에서 『釋淨土群疑論』과 입장이 같다.
  288. 288)정법ㆍ상법ㆍ말법 등은 부처님의 교법이 세상에 머무는 기간을 그 양태의 변천에 따라 세 시기로 나눈 것이다. 정법시대란 교법에 의해 수행하면 능히 불과를 증득하는 시기를 말한다. 상법시대란 교법도 있고 수행자도 있지만 대부분 불과를 증득하지 못하는 시기를 말한다. 말법시대란 교법이 세상에 드리워져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기는 하지만 수행하지도 않고 따라서 불과를 증득할 수도 없는 시기를 말한다. 세 시기에 해당하는 기간은 경론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289. 289)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6a16)에서 제시한 것이다.
  290. 290)『법주기法住記』 : 갖추어서 『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입멸하고 800년이 지난 후 출현한 아라한 난제밀다라가 부처님께 정법을 부촉받은 16나한이 세상에 머물면서 불법을 호지하는 것에 대해 설한 것이다. 당나라 654년 현장玄奘이 한역했다.
  291. 291)도병겁刀兵劫 : 중겁 말기에 일어나는 소삼재小三災의 하나. 분노로 말미암아 서로 해치려는 마음에서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것마다 무기가 되어 서로를 해치고 죽이는 재난이다. 7일 밤낮 동안 계속되며, 인구가 1만여 명으로 줄어들어서야 비로소 자비심을 일으켜 끝이 나고, 이후 다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292. 292)도병刀兵 : ⓢ śastra. 범어의 원뜻은 자르는 도구, 곧 칼을 의미한다. 칼과 병정이라는 뜻에서 변하여 무기 또는 전쟁을 의미한다.
  293. 293)솔도파窣堵波 : ⓢ stūpa의 음사어. 불사리佛舍利ㆍ경전 등을 담아 두기 위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린 건축물. 줄여서 탑파塔婆ㆍ탑塔 등이라고도 한다
  294. 294)유신遺身 : ⓢ śarīra의 의역어. 음사어는 사리舍利이다. 죽은 사람의 시신ㆍ유골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295. 295)금륜金輪 : 우주의 형성은 먼저 텅 빈 공간, 곧 허공에 중생의 업력이 작동하여 바람이 부는데, 그 바람의 밀도가 더해 가면서 원반 모습의 견고한 대기층, 곧 풍륜風輪이 이루어진다. 다음에 풍륜의 상공에 구름이 응집되고, 그 구름이 비가 되어 풍륜 위에 떨어져 쌓임으로써 물의 층, 곧 수륜水輪이 형성된다. 다음에 중생의 업력에 의해 부는 바람으로 인해 풍륜이 응고되어 상층의 7분의 2는 황금의 층, 곧 금륜이 된다. 이 금륜의 표면이 대지이고, 대지 위에는 다시 산ㆍ강 등의 기세간이 형성되니, 이것을 자연계라고 한다.
  296. 296)『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T49, 13a3)의 취의 요약이다.
  297. 297)보리심을 발한 것과 서원의 관계가 급작스러운 감이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6b16)에서 “아미타불께서 서원을 발하고 수행하여 부처님이 되어 정토를 이루고 중생을 섭수하여 교화한 것을 듣고 이것과 같이 되기를 서원하는 것을 ‘정각을 얻으려는 마음’이라 한다.(聞彌陀佛。 發願修行。 得佛淨土。 攝化衆生。 願與同之。 名正覺心。)”라고 한 것을 참조할 것.
  298. 298)성문과聲聞果 : 성문이 수행하여 얻는 과果. 이를 네 단계로 분류하여 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며, 그 네 가지는 수다원과須陀洹果(ⓢsrotāpatti-phala)ㆍ사다함과斯陀含果(ⓢsakṛdāgāmi-phala)ㆍ아나함과阿那含果(ⓢanāgāmi-phala)ㆍ아라한과阿羅漢果(ⓢ arahat-phala) 등이며, 의역어는 차례대로 예류과預流果ㆍ일래과一來果ㆍ불환과不還果ㆍ무학과無學果(應供果) 등이다.
  299. 299)본문에는 없지만 뜻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혜원이 『無量壽經義疏』 권하(T37, 116b19)에서 “여기에서 처음에 ‘법안이 청정해진다’라고 한 것은 수다원을 이루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사진제四眞諦를 보는 것을 법안이 청정해지는 것이라 한다. 다음에 아나함과를 얻고, 나중에 아라한과를 얻는다.(於中。 初言得淨法眼。 成須陀洹。 見四眞諦。 名淨法眼。 次得那含。 後得羅漢。)”라고 한 것을 참조하여 보충하였다. 경흥이 분과한 명칭을 고려할 때 그 의도는 혜원과 동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 1)「乘」疑「聚」次同。
  2. 2)「是」作「見」{甲}。
  3. 1)「孤」異作「狐」。
  4. 2)「四」異作「曰」。
  5. 3)「還」漢吳二譯共作「便」。
  6. 4)「雖」異作「唯」。
  7. 1)「璅」異作「繅」ㆍ作「琑」{甲}。
  8. 1)「濡」疑「軟」{甲}。
  9. 2)「遠」上疑脫「深」。
  10. 3)「本」下疑脫「至」。
  11. 1)「度」經作「渡」。
  12. 2)「云」下疑有脫文。
  13. 3)「第」下異有「七」。
  14. 1)「同」疑「周」。
  15. 1)「增」疑「憎」。
  16. 1)「不」異作「可」。
  17. 2)」與「惚」通。
  18. 3)「逈」疑「迫」。
  19. 1)「推」與「逈」音通。
  20. 2)「十」原本作「什」。
  21. 1)「註」疑「述」{編}。
  22. 2)「若」疑「苦」。
  23. 1)「作」疑「依」。
  24. 2)「苦」疑「若」。
  25. 1)「生」疑「名」。
  26. 2)「起」疑「趣」。
  27. 3)「定」疑「免」。
  28. 4)「諭」疑「謏」。
  29. 1)「處者天天者性」疑有脫文。
  30. 1)「苞」疑「苟」。
  31. 2)「貞罪直突」更勘(「貞」疑「負」)。
  32. 3)「方言何也」今按方言曰曾何也等非是釋魯字更詳。
  33. 4)「臣」疑「巨」。
  34. 1)「彼」疑「得」。
  35. 2)「德」疑「得」。
  36. 1)「唯總別違理」疑此下次上有闕文更勘。
  37. 1)「是」疑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