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화엄일승성불묘의(華嚴一乘成佛妙義) / [華嚴一乘成佛妙義 本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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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일승성불묘의華嚴一乘成佛妙義]
제1편 성불의 종류
제1문 가운데 성불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다. 계위에 의한 성불, 실천에 의한 성불, 원리적 성불이다. 그러므로 『소疏』 3권에서 “『화엄경』 전체에 준해서 의의를 보자면 세 가지 성불이 있다. 첫째, 계위의 측면이다. 둘째, 실천의 측면이다. 셋째, 원리의 측면이다.”1)라고 하였다.
제1장 계위에 의한 성불
첫째, 계위의 측면이다. 종교삼승의 10주 등 오위에 의거하여 이 성불을 밝힌다. 그러므로 본 『소』에서 “육상 방편으로써 보자면, 즉 10신의 마지막 마음(終心)인 승진분勝進分2) 이후 10해十解의 첫 계위에 들어가서 바로 성불한다.

003_0719_c_17L[華嚴一乘成佛妙義 本文]
[成佛種類]
第一門中成佛有三位行理佛故疏
003_0719_c_18L三云義准上下一部經意有三成佛
003_0719_c_19L者約位二者約行三者約理
[第一階位成佛]
初約位
003_0719_c_20L寄終敎三乘十住等五位明此成佛
003_0719_c_21L故本疏云以六相方便卽十信終心勝
003_0719_c_22L進分後入十解初位卽成佛以此是三
003_0719_c_23L{底}續藏經第二編八套四册 {甲}新修大藏經第
003_0719_c_24L四十五卷(底本)
「義」下底本有「卷一」編者
003_0719_c_25L除之

003_0720_a_01L이것은 삼승종교의 불퇴위가 되기 때문에 일승의 육상으로써 융섭하니, 즉 모든 계위를 갖추어 부처의 경지(佛果)에 이른다.”3)라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초발심주가 곧 총상이며 제2주 등은 별상이다. 제2주 등은 똑같이 발심의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에 동상이라고 이름한다. 제2주 등은 각각 서로 상대하고 있으므로 이상異相이라고 이름한다. 제2주 등에 의해 총상으로서의 발심의가 성립하므로 성상이라고 이름한다. 제2주 등은 각각 자신의 법에 머물러서 항상 짓지 않으므로 괴상이라고 한다. 따라서 별상으로서의 제2주 등이 총상인 발심의 계위로 수렴되므로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지경론』 제2권에 “믿음의 계위(信地)에 있는 보살과 불가사의 불법에 이르기까지 더불어 동일한 연기의 장에 존재하기 때문에 육상의 총ㆍ별 등 의미로써 그것을 총괄하는 것이다.”4)라고 설해져 있다. 『오교장』에서 “원인과 결과는 동시이며, 서로 포용하고 즉응하여 각각이 일체를 포섭하여 서로 중심(主)이 되고, 주변(伴)이 됨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깊이 잘 생각하여 이와 같은 것에 의심이 없어야 한다.”5)라고 하였다. 믿음의 계위(信地)라 함은 믿음과 실천의 단계를 말한다. 이것은 10지 전의 삼현위三賢位이다.『소疏』 제9권의 두 가지 해석 중에 한 가지 해석일 뿐이다.6)

어째서 믿음의 계위에 의거하여 성취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소疏』 제4권에서 “종교에 입각하면 이 믿음은 단지 10주위十住位의 방편으로서 자체적인 별도의 계위는 없다. 그러므로 『본업경本業經』에서 ‘아직 주위住位에 오르기 전에 이 열 가지 마음이 있다’7)라고 한다. 또 『인왕경仁王經』에서 단지 삼현과 10성十聖을 말할 뿐,8) (10신을 포함한) 사현四賢을 말하지는 않는다. 또 이 『화엄경』의 뒤 사위에서는 모두 삼매에 들어가서 나온 뒤에 열 가지 명칭을 열거하고, 열 가지 의의 등을 변설하였다. 오직 믿음의 단계에서는 이와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있다.”9)라고 하였다.
1. 초발심성불의 의미
‘초발심위에서 성불한다’라는 것은, 다섯 계위가 서로 포함하여 성립하는 것인가, 여섯 계위가 서로 포함하여 성립하는 것인가?
여섯 계위를 열어 서로 포함하여 성립한다. 10신이 초주에 포함되고, 다섯 계위가 서로 포함하여 성립한다. ‘여섯 계위를 열어 서로 포함하여 성립한다’라는 것은, 『오교장』 하권에서 “첫째, 계위에 맞추어 드러내는 것이다. 즉 처음 10신으로부터 부처의 계위에 이르기까지 여섯 계위가 같지 않으나, 한 계위를 얻음에 따라 일체의 계위를 얻는다.

003_0720_a_01L乘終敎不退之位故以一乘六相融攝
003_0720_a_02L卽具諸位至佛果也
初發心住卽是
003_0720_a_03L總相第二住等是別相也第二住等
003_0720_a_04L帶發心義故名爲同相第二住等然各
003_0720_a_05L互無 [2] 卽名異相依第二住等成總發心
003_0720_a_06L名成相第二住等各住自法常不作
003_0720_a_07L卽名壞相故別第二住等攝總發心
003_0720_a_08L卽成佛也故地論二云以信地菩薩
003_0720_a_09L乃至與不思議佛法 [3] 爲一緣起以六相
003_0720_a_10L總別等義而用括之章云明知因果俱
003_0720_a_11L相容卽 [4] 各攝一切互爲主伴深須思
003_0720_a_12L此事不疑言信地者卽信行地
003_0720_a_13L地前三賢位疏第九卷有二
釋中一釋耳也
何不言依信
003_0720_a_14L位成疏第四云若約終敎此信但
003_0720_a_15L是十住位之方便自無別位故本業經
003_0720_a_16L未上位 [5] 前有此十心又仁王但言
003_0720_a_17L三賢十聖不言四也又此經中後四位
003_0720_a_18L皆有入定出已列十名辨十義等
003_0720_a_19L信中無此故得知也
初發心位成
003_0720_a_20L佛者若五位相攝成若六位相攝成
003_0720_a_21L開六位相攝成十信攝初住五位
003_0720_a_22L相攝成開六位相攝成者五敎下卷云
003_0720_a_23L一約寄位顯謂始從十信乃至佛果
003_0720_a_24L位不同隨得一位得一切位何以故

003_0720_b_01L왜냐하면 여섯 계위의 양상에 의해 취하기 때문이며, 중심과 주변의 관계이기 때문이며, 상입相入하기 때문이며, 상즉相卽하기 때문이며, 원융圓融하기 때문이다.”10)라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초발심의 계위가 중심이 될 때 나머지 전후의 계위는 주변이 되고, 나아가 부처의 계위가 중심이 될 때는 나머지 앞에 있는 계위들은 주변이 된다. 상입은 작용에 근거를 두고, 상즉은 본체에 근거를 둔다. 원융은 본체와 작용에 걸림이 없는 것이다. 모든 계위가 서로 포섭한다고 설하는 것은 『소疏』 제5권에서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다라니문의 연기가 서로 포섭하기 때문이다. 둘째, 보현보살의 보리심이 여섯 계위 전체에 걸쳐 편만하기 때문이다. 셋째, 존재의 본성(法性)에 시작과 끝이 없기 때문이다.”11)
이 세 가지는 총상이다.12) 하권의 다섯 가지는 별상이다.13) 총상과 별상을 합하면 여덟 가지가 된다.
‘다라니’는 총지總持이다. 계위와 계위가 상호 포함하기 때문에 총지라고 이름하였다. 보현의 60가지 실천14)이 여섯 계위의 실천행이다.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여섯 계위 전체를 갖춘다’라고 말한 것이다.
생각하건대 비록 일승 보현의 실천에 대해 하나의 실천이 다름 아닌 일체의 실천 등이라 말하더라도, 종교의 계위에 맞추어 보면 한 계위가 일체의 계위 등이 된다. 즉 이 실천은 신만信滿의 실천이 성취된 것에 맞추면 실천의 성불(行成佛)이 되고, 10주 등의 계위가 성립하는 것에 맞추면 계위의 성불(位成佛)이 된다. 이것이 핵심이다.

지금 초발심위를 부처라고 이름하는 것은, 의거하는 원리(理)가 평등하기 때문에 초발심이 다름 아닌 부처라고 말하는 것인가?
『소疏』 5권에서 “(초발심위가) 다름 아닌 부처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해석하길, 혹은 원인 가운데 결과를 설하는 것이라고 한다. 혹은 이해(解)15)가 부처의 경계와 같다고 하며, 혹은 원리가 평등함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16) 삼승교에 근거하면 위와 같이 설할 수 있다. 지금 상하의 문을 살펴보니, 일승원교에 근거하면 처음과 끝이 서로 포함하고 원만하게 융합하고 걸림이 없어 처음을 얻음이 곧 끝(을 얻음)이고, 끝을 궁구하는 것이 바로 시작을 추구하는 것이다.”17)라고 하였다.또한 앞에서 세 가지를 설했기 때문이다.18) 그러므로 원리와 지혜(理智), 실천과 계위(行位) 등이 총체적으로 원만하게 융합하고 걸림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초발심에 전후 여섯 계위를 전부 포함하여 부처를 이룬다는 것은, 포함되는 대상(所攝)을 따라서 부처라 이름한 것인가, 포함하는 주체(能攝)를 곧 부처라고 이름한 것인가?
『요기要記』19)와 같다.
2. 초발심성불의 일곱 가지 경증 및 교증

1) 첫째에서 넷째까지의 증문

이 계위에서 성불한다고 주장하였는데, 혹시 전거가 되는 문장이 있는가?

003_0720_b_01L由以六位相取 [6] 主伴故相入故
003_0720_b_02L卽故圓融故
初發心位爲主時
003_0720_b_03L前後位爲伴乃至佛果爲主時餘前前
003_0720_b_04L位爲伴相入約用相卽約體圓融
003_0720_b_05L者體用無礙說此諸位相攝疏第五
003_0720_b_06L卷在三故也一由陀羅尼門緣起相攝
003_0720_b_07L二由普賢菩提心遍該六位故
003_0720_b_08L由法性無始終故此三故是總下卷五
003_0720_b_09L故是別總別合八故陀羅尼者是總持
003_0720_b_10L位位互相攝故名爲總持普賢六十行
003_0720_b_11L是卽六位行如前記之故云該六位
003_0720_b_12L雖一乘普賢行一行卽一切行等
003_0720_b_13L終敎位地見之一位卽一切位等卽此
003_0720_b_14L行寄信滿行成名行成佛寄住等位成
003_0720_b_15L名位成佛是要節 [7]
今初發心位
003_0720_b_16L名佛者所依理平等故言初發心卽佛
003_0720_b_17L疏五云卽是佛者有人釋或云因
003_0720_b_18L中說果或云解同佛境或云約理平等
003_0720_b_19L若約三乘敎亦得如上說今尋上下文
003_0720_b_20L約一乘圓敎始終相攝圓融無礙得始
003_0720_b_21L卽是 [8] 窮終方原始乃說上
三故
故知理智行
003_0720_b_22L位等總圓融無礙
今初發心該攝前
003_0720_b_23L後位成佛者隨所攝名佛若能攝卽名
003_0720_b_24L如要記也
立此位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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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거가 되는 문장은 하나가 아니다. 『오교장』에 일곱 가지 문장이 있다.20) 처음의 세 문장과 다섯 번째 문장은, 즉 공통으로 전거가 되는 것이고, 나머지 세 문장은 개별적으로 초발심위에서 부처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일곱 가지 문장’이라는 것은, (첫째,) ‘하나의 지에서 모든 지를 포섭한다’라는 것21)이다. 둘째, ‘하나가 곧 많음이고, 많음이 곧 하나임을 아는 것’이다.22) 셋째, 『경』 31권에서 “불가언설만큼의 불가설不可說 법이 일체불가설의 시간 동안 충만하며, 불가언설만큼의 제 겁劫 가운데 불가설불가설의 법을 설함이 가히 다함이 없다.”23)라고 말하는 것이다.『신경』 45권과 동일하다. 넷째, 『경』 제10권『신경』 제17권24)에서 “일체 중생심은 다 분별하여 알 수 있다.중생의 마음과 행위는 헤아려 알 수 있다. 일체 국토의 미진도 오히려 그 수를 셀 수 있다.국토의 미진 역시 그렇다.”라고 하였다.

2) 다섯째 증문

다섯째, 『십지경론』에서 “믿음의 계위의 보살과……(중략)……사려분별을 초월한 불법이 동일한 연기의 장에 있으므로 육상의 총상ㆍ별상 등의 뜻으로써 그것을 총괄한다.”25)라고 하였다. 이것은 뜻을 취한 문장이다. 그 바른 문장을 지시한다면, 어떤 사람은 “『십지경론』 제3권의 실천을 헤아려 비교하는 문장이다. 그러므로 『십지경론』 문장에서 ‘『경』에서 말하기를, 믿음을 (성취한) 자는 제불여래가 본래 행위하여 들어가는 곳……(중략)……사려분별을 초월한 불법, 가운데도 없고, 끝도 없는 여래 경계의 일어남, 한량없는 실천의 문으로 모든 여래 경계에 들어감을 믿는 것이다’라고 했다.”26)라고 하였다.
『지사指事』에서 비판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오류와 과실이 심하다. 왜냐하면 저 실천을 헤아려 비교하는 장에서는 육상을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거기에서는 단지 믿음의 실천행만을 이야기하고, 믿음의 계위에 대해서는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장을 경증으로 인용하여 초발심위에서 불과위에 도달하는 의미를 증명한다 해도 초지 위에서 불과를 증득하는 의미는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심히 그르다.”27)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제1권에서 열 가지 들어감(十入)을 설하는 문장이다. 『오교장』에 인용되었기 때문이다. 저 문장에서는 일체 보살의 사려분별을 초월한 불법과……(중략)……구체적으로 설했다.”라고 하였다. 즉 생각하자면,28) 지전의 신지信地 보살부터 불과로서의 사려분별을 초월한 불법은 동일한 연기의 장에 있고, 육상의 방법으로 하면 원만하게 융합하고 상즉하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계위 가운데 각각 여섯 계위를 포함하고,

003_0720_c_01L有所依文證文非一五敎在七文
003_0720_c_02L初三文及第五文卽是通證餘三文別證
003_0720_c_03L初發心位成佛言七文者在於一地等
003_0720_c_04L知一卽多多卽一三經三十一卷云
003_0720_c_05L可言說不可說充滿一切說不可言說
003_0720_c_06L諸劫中說不可說不可說不可盡新四十
五同

003_0720_c_07L四經第十云新十
一切衆生心悉可分別
003_0720_c_08L衆生心行
可數知
一切刹微塵尙可算其數國土
微塵
003_0720_c_09L亦復
十地論云以信地菩薩乃至與不
003_0720_c_10L思議佛法爲一緣起以六相總別等義
003_0720_c_11L而用括之此得意文指其正文有云
003_0720_c_12L第三卷行1) [1] [9] 量文故彼文云經曰
003_0720_c_13L者信諸佛如來本所 [10] 行入乃至不思議
003_0720_c_14L佛法無中無邊如來境界起無量行門
003_0720_c_15L諸如來境界入指事破云是甚謬失
003_0720_c_16L以者何彼行*交量中不說六相故
003_0720_c_17L彼但說信行不說信地故又引此證
003_0720_c_18L證初發心位到佛果位義 [11] 初地位證
003_0720_c_19L得佛果義是故甚非也有云第一卷
003_0720_c_20L說十入文是章所引故彼文云一切菩
003_0720_c_21L薩不思議佛法乃至廣說卽案云地前
003_0720_c_22L信地菩薩及佛果不思議佛法爲一緣起
003_0720_c_23L以六相方便圓融相卽故一一位中各攝
003_0720_c_24L「交」當作「校」次同

003_0721_a_01L하나하나의 계위가 가득 찬 경지에서 모두 불과에 이른다.

3) 여섯째에서 일곱째 증문

여섯째, ‘초발심 보살이 다름 아닌 부처이기 때문에’29)라는 등이다. 일곱째, 『경』 제9권『신경』 7권에서 “이와 같이 관찰하는 자는 적은 방편으로 빨리 일체 제불공덕을 얻을 수 있으며, 늘 둘이 아닌 법의 모습을 기쁘게 관찰하니, 이런 것이 여기에 있다.만약 모든 보살이 능히 이와 같은 관찰과 실천에 상응하면, 모든 법에 상대적 견해를 내지 않아 일체 불법이 빨리 앞에 나타남을 얻을 수 있다. 처음 발심할 때 즉시 정각을 성취하여아뇩보리를 바로 얻어 일체법의 진실한 성품을 알며마음에 즉한 자성을, 지혜의 몸을 만족하니지혜의 몸을 성취하니, 다른 사람에 의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30)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관찰한다는 것은 어떤 관찰들을 말하는가?
바로 위의 문장에서 “대자비의 마음을 갖추어 자라게 하고 중생을 다 분별하면서도 중생을 버리지 않으며, 적멸도 버리지 않으며, 위없이 훌륭한 업을 행하여도 과보를 바라지 않는다. 일체법을 허깨비 같고, 꿈 같고, 번갯불 같고, 메아리 같고, 임시로 만든 것처럼 관찰한다.”31)라고 말하였다. 『소疏』 5권에서 “정문正問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범행을 수행하는 것, 둘째는 계위를 성취하는 것, 셋째는 불과를 얻는 것을 물었다.”32)라고 하였다. 즉 『경』에서 “어떤 방편으로 범행을 수습하여 보살십주도의 경지를 만족하여 무상無上의 평등한 깨달음에 빨리 성취하는가?”33)라고 하였다. “셋째 가운데 둘이 있다. 처음은 법이고, 다음은 비유이다.34) 그리고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가운데 둘이 있다. 첫째는 앞의 둘을 내 보임(牒)이고, 둘째는 뒤를 일으킴이다. 뒤를 일으킴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적은 원인으로 큰 결과를 얻음을 나타내었다. 그 가운데 각기 둘이 있다. 처음은 드러냄(標)이고, 다음은 해석(釋)이다. 처음 드러냄 가운데 ‘적은 방편’은 원인이고, ‘빨리 얻음’이라는 등은 결과이다. 어떻게 해서 적은 원인으로 큰 결과를 빨리 얻을 수 있는가를 해석하여 항상 자비와 지혜, 공과 유가 똑같아서 상대적인 법이 없음을 기쁘게 관찰하므로 빨리 얻는다고 풀이하였다. 그러므로 ‘이런 것이 여기에 있다’라고 한 것이다.”35)라고 하였다. 나머지는 『광기廣記』36)에 인용된 바와 같다.
제2장 실천에 의한 성불
둘째는 실천에 의한 성불이다. 『소』 제3권에서 “실천에 입각하면 전체적으로 계위에 의거하지 않는다. 자분自分과 승진분勝進分의 궁극에 이르면 곧 부처의 경지(佛果)에 이른다. 운운.”37)라고 하였다. 『오교장』 하권에서는 “믿음이 성취되기 때문에 실천의 부처이며, 계위의 부처가 아니다. 운운.”38)라고 하였다.
1. 실천에 의한 성불의 두 가지 뜻

1) 일승 그대로의 공덕

계위에 의거하지 않는다면, 여러 문장에서 무엇 때문에 ‘열 가지 믿음이 가득 참에 맞추어 나머지 뒤의 계위를 포함하여 곧 성불한다’라고 하는가?

003_0721_a_01L六位一一位滿皆到佛果
六初發心菩
003_0721_a_02L薩卽是佛故等七經第九卷云新十
如是
003_0721_a_03L觀者以小 [12] 方便疾得一切諸佛功德
003_0721_a_04L樂觀察無二法相斯有是處若諸菩薩能爲
如是觀行相應
003_0721_a_05L於諸法中不生二解
一切佛法疾得現前
初發心時便成正覺即得
阿耨
003_0721_a_06L
知一切法眞實之性即心
自性
具足慧身

003_0721_a_07L
不由他悟
如是觀者何等觀
003_0721_a_08L上文云具足長養大慈悲心悉分別衆
003_0721_a_09L生而不捨衆生亦不捨寂滅行無上
003_0721_a_10L不求果報觀一切法如幻如夢如電
003_0721_a_11L如響如化疏五云正問有三初問修
003_0721_a_12L梵行二成位三得果卽經云云何方
003_0721_a_13L1) [2] [13] 修習梵行具足菩薩十住道地
003_0721_a_14L成無上平等菩提第三內二初法後喩
003_0721_a_15L乃至答第三問中二初牒前二起後
003_0721_a_16L後中兩重顯少因得大果於中各二
003_0721_a_17L先標後釋初標中以少方便是因疾得
003_0721_a_18L等是果釋中何以小因而疾得大果
003_0721_a_19L以常樂觀悲智空有等無二法故是故
003_0721_a_20L疾得云斯有是處也餘如廣記引

003_0721_a_21L第二行成佛
疏第三云 [14] 約行總不依位
003_0721_a_22L自分勝進究竟卽至佛果云云章下卷云
003_0721_a_23L由信成故是行佛非位佛云云
若不依
003_0721_a_24L何諸文言寄十信滿攝後後位卽成佛

003_0721_b_01L
대개 실천에 의한 성불은 두 가지 뜻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일승의 체體 그대로의 공덕에 근거한다. 둘째는 문門에 맞추어 주는 방법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소疏』 4권에서 “원교에 입각하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만약 보현 자체의 법에 의거하면 일체는 전부 계위가 없다. 법에 맞추는 것에 근거하면, 즉 종교의 차원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믿음이 가득 차(信滿) 계위에 들어가는 때에 일체 모든 계위를 함께 포함한다. 이 가운데 모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다. 이것은 실천에 의해 계위를 포섭하기 때문이다.”39)라고 하였다. 『소疏』 제3권의 문장은 첫 번째 의미에 근거한 설이며, 나머지 문장은 두 번째 의미에 근거한 것이다.
첫 번째, ‘보현의 체 그대로의 공덕’이라 함은, 『소疏』 4권에서 “믿음이 가득 참으로써 이 현수의 계위를 성취하기 때문에 보현보살의 광대한 삼업과 똑같이 원인과 결과를 전부 아우르고, 모든 곳에 편만하며, 언제나 다하도록 항상 가없는 법계의 큰 작용을 짓는다. 이것은 항상 성취함이 되며, 양상 그대로 논하는 것으로서 모든 계위에 의거하지 않는다. 지금은 믿음의 문 가운데 드러냄을 기준한 것이니, 즉 믿음으로 수렴함에 속하는 것이다.”40)라고 한 것이다.

(1) 보현의 60가지 실천

또 위의 문에서 “혹은 오직 보현의 체 그대로의 덕에 입각해서 변설했다. 「보현행품」에서 설한 바와 같다.”41)라고 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보현품」에는 60가지 실천이 있다. 이것은 즉 하나의 실천이 일체의 실천이고, 일체의 실천이 하나의 실천이어서 겹겹이 다함이 없기 때문에 저 위지位地의 차근차근 올라감에 의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疏』 16권에서 “둘째, 보현행을 변설하는 가운데 먼저 치료 대상(所治)이 광대하여 백천 가지의 장애가 있음과 치료하는 주체(能治)가 광대하여 60가지 실천이 있음을 밝혔다. 또 장애되는 법계가 인다라망처럼 중중으로 되어 있으며, 장애함과 장애됨이 같게 하는 것이 또한 모두 다함이 없다.”42)라고 한 것이다.

(2) 자분과 승진분

‘자분ㆍ승진분’이라 말하는 것은, 『소疏』 제2권에서 “그러나 이 부분에는 통틀어 칠중七重의 설이 있다. 첫째는 한 실천에 생生과 숙熟이 나뉨에 입각한다. 둘째는 두 가지 실천에 입각한다. 보시행이 성취된 이후에 계를 닦는 것 등과 같다. 셋째는 두 가지 이익에 입각하여 나눈다. 넷째는 실천과 계위에 입각하여 계위를 얻음으로써 승진분이 된다. 다섯째는 비교된 경위와 증득된 경위에 입각하여 나눈다. 여섯째는 두 가지 계위에 입각한다. 즉 앞의 계위를 이미 성취하여 자분이 되고, 뒤의 계위로 더 나아가므로 승진분이 된다. 일곱째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이다.

003_0721_b_01L凡行成佛可有二義一約一乘
003_0721_b_02L當體德二約寄門故疏四云若約圓
003_0721_b_03L敎有二義若依普賢自法一切皆無位
003_0721_b_04L若約寄法 [15] 則同終敎然信滿入位之際
003_0721_b_05L通攝一切 [16] 諸位皆在此中無不具足
003_0721_b_06L則約行攝位故也疏第三文約初義說
003_0721_b_07L餘文約後義
就初義普賢當體德者
003_0721_b_08L四云以信滿成此賢首位故同普賢等
003_0721_b_09L廣大三業該因及果遍一切處盡一切
003_0721_b_10L常作無邊法界大用此爲恒成 [17]
003_0721_b_11L相而論不依諸位今約信門之中顯現
003_0721_b_12L則屬信收 [18]
又上文云或唯約普賢當體
003_0721_b_13L德辨如普賢行品說案普賢品有六十
003_0721_b_14L此卽一行卽一切行一切行卽一行
003_0721_b_15L重重無盡故不依彼位地漸次故疏十
003_0721_b_16L六云第二辨普賢行中先明所治廣大
003_0721_b_17L有百千障能治廣大有六十行又以所
003_0721_b_18L障法界如帝網重重令能障同所 [19] 亦皆
003_0721_b_19L無盡
言自分勝進分者疏第二卷云
003_0721_b_20L然此分通說有七重一約一行生熟分
003_0721_b_21L二約二行如施行已成後修戒等三約
003_0721_b_22L二利以分四就行位以得位爲勝進
003_0721_b_23L約比 [20] 證以分六約二位謂前位已成爲
003_0721_b_24L自分趣向後位爲勝進七就因果因成

003_0721_c_01L원인은 자분을 성취하고, 결과에 들어가 승진분이 된다.”43)라고 하였다. 지금 이 일곱 번째는 보현의 원인圓因에 해당하니, 성기性起의 현묘한 결과를 이루어 나아가기 때문이다.44) 그러므로 『소疏』의 문장에서 “원인과 결과를 다 아우른다.”45)라고 말한 것이다.

2) 믿음이 가득 참

둘째 의미 중에서 지금 ‘믿음이 가득 참(信滿)’이라는 것은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것은 10신에 공통되는 명칭인가, 아니면 제10신을 믿음이 가득 찬 것이라 이름하는가?
10신에 공통되는 명칭이다. 왜 그런가 하면, 아직 계위에 들어가기 전에는 차례대로 10신의 마음(十信心)을 수습하고, 또한 다시 1겁, 2겁, 3겁 가운데 열 가지 마음을 더욱더 수습하고, 초주위에 들어감을 만심滿心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소疏』 4권에서 “만약 종교에 입각하면, 이 믿음은 다만 10주위의 방편일 뿐으로 스스로는 별도의 계위가 없다. 그러므로 『본업경』에서 ‘아직 주住에 올라가기 전에 열 가지 마음의 명칭이 있다. 이른바 첫째 신심信心, 둘째 염심念心, 셋째 정진심精進心, 넷째 혜심慧心, 다섯째 정심定心, 여섯째 불퇴심不退心,46) 일곱째 회향심廻向心, 여덟째 호심護心, 아홉째 계심戒心, 열째 원심願心이다. 이 마음을 더욱더 수행하기를 1겁, 2겁, 3겁에 이르러 이에 초주위 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 마음과 마음에 열 가지로 증가함이 있어 백법명문百法明門47)을 성취하는 것을 습종성習種性에 들어간다고 이름한다’48)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계위가 없으며, 단지 방편으로서의 실천인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49)

‘그 1겁, 2겁, 3겁’은 만 겁 안의 겁인가, 아니면 만 겁 바깥의 겁인가?
만 겁 안의 겁이다. 그러므로 『기신론소』에서 “‘『본업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이것은 신상 보살로 만 겁 동안 열 가지 계법을 실천하여 마땅히 10신의 마음에 들어가 초주위에 든다’50)라고 하였다. 해석하여 말하면, 이 중에 ‘초주위에 들어간다’라는 것은, 즉 십주초발심주위이다. 이 계위에 이르러 마침내 불퇴의 신심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또한 ‘10신심에 들어감’이라고 이름하는 것으로,

003_0721_c_01L自分2) [3] [21] 果勝進今此第七當普賢圓因
003_0721_c_02L成趣性起妙果故故疏文言該因及果

003_0721_c_03L
就後義今信滿者3) [4] [22] 通十信
003_0721_c_04L若第十信名爲信滿通十信名
003_0721_c_05L未入位前次第修習十信心亦更
003_0721_c_06L一二三劫增修十心入初住位名爲滿心
003_0721_c_07L故疏四云若約終敎此信但是十住位
003_0721_c_08L之方便自無別位故本業經云未上住
003_0721_c_09L有此十心名字謂一信心二念心
003_0721_c_10L三精進心四慧心五定心六不退
003_0721_c_11L廻向心八護心九戒心十願心增修
003_0721_c_12L是心一劫二劫三劫乃得入初住中 [23]
003_0721_c_13L有十增成名百法明門名入習種性中
003_0721_c_14L故知無位但是方便行也
其一二三
003_0721_c_15L劫者萬劫內劫若外劫耶萬劫內劫
003_0721_c_16L故起信論疏云如本業經云是信相菩
003_0721_c_17L於十千劫行十戒法當入十信心
003_0721_c_18L初住位釋云此中言入初住位者
003_0721_c_19L十住初發心住位也以至此位方得不
003_0721_c_20L退信心是故亦名入十信心非謂十解
003_0721_c_21L以前之十信也旣言十千劫入初住
003_0721_c_22L不言十千餘故知內劫
十信滿
003_0721_c_23L初發心住有何差別此無差別
003_0721_c_24L「何」疑「得」「八」疑「入」「所」一作「無」

003_0722_a_01L10해 이전의 10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51)라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이미 ‘만 겁에 초주위에 들었다’라고 하고, ‘만여’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만 겁 내의 겁임을 알 수 있다.
2. 10신 만심과 초발심주의 차이
10신이 가득 찬 마음과 초발심주는 어떻게 다른가?
차이가 없다. 『기신론소』에서 “10해 이전의 10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52)라는 등을 말하였다. 또한 『소疏』 제4권에서 “이것은 믿음의 끝에 입각한 것이고, 저것은 초주에 나아간 것이다. 그러므로 차이가 없다.”53)라고 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10신의 마지막 마음에서 성불한다는 것은 계위의 성불이 되어야 할 터인데, 어째서 실천의 성불이라고 했는가?
추구하는 의도가 다를 뿐 본체는 다르지 않다. 생각하건대 물러나지 않는 계위階位를 곧 위位라고 이름한 것이다. 신심의 실천이라는 의미를 행行이라고 이름한다.
3. 종교삼승과 일승성불의 차이
54) 종교삼승에서 10신 만심滿心에 팔상성불을 나타내는 것과 일승의 신만성불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삼승은 이 계위에서 성불을 보일 때, 그 뒤의 여러 위에서는 모두 자재하지 못하다. 아직 성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며, 단지 계위에 올라 잠시 교화를 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다. 일승은 그렇지 않다. 초발심위 가운데서 이러한 작용을 일으켰을 때, 뒤의 여러 계위에서도 나란히 동시에 일어나 모두 부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며, 진실한 실천이기 때문이며, 여섯 계위를 모두 아우르기 때문이다.

일승과 삼승의 뜻이 이렇게 다르다. 어째서 동일하게 믿음이 가득 찬 승진분상에서 이러한 작용을 일으킨다고 하는가?
방편으로 이러한 일승의 신만성불을 드러내고, 그것을 쉽게 믿고 받아 지니게 하기 위해서 먼저 삼승교에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4. 일승문에서 성불의 의미
일승문에서는 이미 하나의 계위 가운데 모든 계위가 있고, 또 믿음이 가득 찬 마음에서 바로 부처의 지위를 얻는다면, 어째서 다시 뒤의 여러 계위를 또 설해야만 하는가?
뒤에서 여러 계위를 설하는 것은, 곧 처음 가운데 일체이다. 처음이 그런 것처럼 뒤의 계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55)

만약 처음이 곧 뒤를 갖추고 있으므로 처음을 얻는 것이 곧 뒤를 얻는다는 것이라면, 또한 뒤도 처음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뒤를 얻지 못하는 이상 처음도 얻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실은 그렇다. 다만 처음을 얻고도 뒤를 얻지 못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뒤의 계위를 얻었다면 분명히 첫 계위도 얻은 것이다.56)

어떻게 첫 계위를 얻는 것이 뒤의 계위도 다 얻게 되는 것인가?
일승 그대로의 공덕으로 말하면, 하나의 실천 가운데 법계의 실천을 아우르며, 모든 실천을 수행하는 것이 역시 한 실천을 아우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가 곧 많음 등이 되는 실천이다. 종교 계위의 양상에 맞추어 보자면,

003_0722_a_01L起信論疏云非謂十解以前十信云云
003_0722_a_02L又疏第四云此約信終彼就住初
003_0722_a_03L無二也
若爾十信終心成佛卽位成
003_0722_a_04L何名行成佛此義望異彼體不
003_0722_a_05L不退階位卽名爲位信心行義
003_0722_a_06L名爲行也
終敎三乘十信滿心現八
003_0722_a_07L相成佛與此一乘信滿成佛有何差
003_0722_a_08L彼於此位示成佛時於後諸位
003_0722_a_09L皆不自在以未得故但是當 [24] 蹔起
003_0722_a_10L化故此則不爾於初位中起此用時
003_0722_a_11L於後諸位並同時起皆已得故是實行
003_0722_a_12L該六位故
一乘三乘義如是別
003_0722_a_13L同信滿勝進分上起此用耶爲欲方
003_0722_a_14L顯此一乘信滿成佛令易信受故於
003_0722_a_15L [25] 先作是說
就一乘門旣一位中
003_0722_a_16L有一切位及信滿心卽得佛者何須更
003_0722_a_17L說後1)位諸 [5] [26] 後說諸位卽是初中
003_0722_a_18L之一切也如初後亦爾
若卽 [27] 具後
003_0722_a_19L得初卽得後者亦可後亦具初 [28] 不得
003_0722_a_20L應亦不得初耶實爾但以得初
003_0722_a_21L無不得後故是故以得後位必得初
003_0722_a_22L
何得初位後皆得耶一乘當
003_0722_a_23L修一行中該法界行修一切行亦該
003_0722_a_24L一行此一卽多等行寄終敎位相

003_0722_b_01L한 계위를 얻음에 따라서 저 일체의 계위를 일시에 모두 얻어 자재하고 걸림이 없다.57)

무엇 때문에 일승의 실천은 저 하나의 실천 가운데 모든 실천을 수행하며, 또한 모든 실천 가운데 하나의 실천을 수행하는가?
일체법이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고, 번개와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임시로 만든 것과 같다고 관찰하기 때문에 하나의 실천이 그대로 모든 실천 등이 된다. 그러므로 「범행품」에서 “일체법이 허깨비와 같으며……(중략)……임시로 만든 것과 같다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자는 적은 방편으로 빨리 일체제불의 공덕을 얻으며……(중략)……처음 발심하는 때에 바로 정각을 성취한다.”58)라는 등으로 말하였다.
생각하건대 우선 첫 번째(如幻)와 두 번째 비유(如夢)에 근거하면, 환술사가 부리는 환술의 힘으로 허깨비 같은 천(巾) 하나로써 큰 산 및 크고 작은 축생 등 갖가지 형태를 만든다. 이 하나의 큰 산은 전부 하나의 천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크고 작은 축생 역시 마찬가지다. 본체가 이미 둘이 아니니, 저 모습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하나의 작은 축생을 들든, 큰 산을 들든 전체 모두가 다 이와 같이 이해되는 것이다.
무명을 만드는 환술사59)가 부리는 환술력에 의해 허깨비 같은 하나의 법계로 여러 의타기성의 갖가지 형태를 만드니,60) 하나의 티끌 전체가 하나의 법계이므로 큰 산 등을 이룬다. 그러므로 하나의 티끌이 허깨비와 같아 큰 산 등의 모든 법이 다 포함된다고 관찰한다. 그러므로 한 법을 들면 법계의 모든 법이 모두 다 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실천이 반드시 모든 실천이며, 모든 실천이 곧 하나의 실천이 된다.
그러므로 「십인품」30권에서 “이 보살이 모든 법은 다 허깨비와 같음을 깊이 알아 들어가 연기법을 관찰하니 하나의 존재 가운데에 많은 존재를 이해하며, 많은 존재 가운데 하나의 존재를 명료히 이해한다.”61)라는 등을 말하였다. 또 『경』에서 “혹은 잠깐(須臾)의 시간을 나타내어 백 년을 짓고, 환력의 자재로움으로 세간을 기쁘게 한다.”62)라고 말하였다.
‘꿈과 같다’라는 비유는, 사람이, 꿈속에서 소년이 노인이 되어 머무르는 것을 보는 바와 같다. 그러나 깨어나는 것은 찰나이다. 꿈과 같이 제법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경』에서 “꿈을 꿀 때는, 즉 한 해가 지나가지만, 깨어나면 곧 잠깐의 시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비록 무량하다지만 한 찰나에 포섭된다.”63)라고 설하였다. 그러므로 일념의 실천이 곧 무량겁의 실천임을 알 수 있다.64)

003_0722_b_01L隨得一位彼一切位一時皆得自在
003_0722_b_02L無礙
何一乘行被一行中修一切行
003_0722_b_03L一切行中亦修一行觀一切法如幻
003_0722_b_04L如夢如電如響如化等故一行卽一切
003_0722_b_05L行等故梵行品云觀一切法如幻乃至
003_0722_b_06L如化如是觀者以小方便疾得一切諸
003_0722_b_07L佛功德乃至初發心時便成正覺等

003_0722_b_08L且約初二喩幻師述 [29] 幻一巾而作大
003_0722_b_09L及大小畜等種種形類此一大山
003_0722_b_10L一巾成大小畜亦然體旣無二彼相
003_0722_b_11L何異故擧一小畜大山擧體皆悉所取
003_0722_b_12L如此無明幻師述力幻一法界作諸依
003_0722_b_13L他種種形類一塵全是一法界成大山
003_0722_b_14L然故觀一塵爲如幻大山等諸法
003_0722_b_15L悉所攝故隨擧一法法界諸法皆悉所
003_0722_b_16L故一行必一切行一切行卽是一行

003_0722_b_17L
故十忍品云
此菩薩深入諸法皆悉
003_0722_b_18L如幻觀緣起法於一法中解衆多法
003_0722_b_19L衆多法中解了一法云云又經云或現
003_0722_b_20L須臾作百年幻力自在悅世間如夢喩
003_0722_b_21L如人夢中見少年至老者住然覺是
003_0722_b_22L刹那如夢諸法亦復如是故經云處夢
003_0722_b_23L謂經年 [30] 乃須臾2) [6] [31] 故時雖無量攝
003_0722_b_24L在一刹那故知一念行卽無量劫行

003_0722_c_01L시간에 입각하면 이미 그러하며, 나머지 공간 등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일승의 현묘한 뜻은 오직 여기에 의미를 둔다. 그러므로 첫 계위를 얻었을 때 나머지 계위 역시 동시에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65) 만약 첫 계위를 얻었을 때 모든 계위를 얻는다면, 무엇 때문에 여러 경론에서 여러 계위의 단계와 순서를 설했는가?
이 경 가운데 여러 위를 설정할 때 두 가지 선교 방편이 있다. 첫째는 차별의 양상을 교문에 나아가 설하는 입장이다. 교문에 나아가 계위의 전후를 나누고 삼승에 맞추는 것이니, 이것은 삼승을 끌어들이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교이다. 둘째는 본체를 진실 존재에 즉하여 설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는 계위의 전후가 서로 포섭하고 원만하게 융합하며 자재하여 삼승과는 다르다. 이것은 별교이다. 다만 교문을 움직이지 않고 항상 상즉하며, 상즉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항상 전후가 있다. 그러므로 두 가지 뜻이 융합되고 통해 있어 서로 어긋남이 없다.
5. 별교 자체의 성불론
만약 이 믿음 등의 첫 교문이 곧 일체라면, 무엇 때문에 신위의 초심에 바로 증득함이 없이 가득 찬 마음 등을 설하는가?
별교 자체의 입장에서는 계위에 의거하여 성립하는 것이 없다. 지금은 삼승종교의 계위에 맞추어 설한 것이다. 저 삼승교 가운데서는 믿음이 가득 찬 불퇴의 계위에 이르러 드디어 보살의 계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저 얻어 들어가는 계위에 맞추어 일시에 이 일체 전후 모든 계위의 실천과 양상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첫 마음(信初心)에서는 증득함을 설하지 않는다. 아직 불퇴를 얻지 못했다면 계위의 양상을 이루지 못하고, 단지 실천할 뿐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가득 찬 불퇴의 계위에서 처음으로 보살의 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득 찬 마음이라고 설했다면, 10주의 계위에서 성불한다(住位成佛)고 해야 할 터인데, 무엇 때문에 신만성불이라고 하는가?
믿음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천의 부처(行佛)이지 계위의 부처(位佛)가 아니기 때문이다.이상은 『오교장』 하권의 문장이다.66)
6. 실천에 의한 성불론의 증문
어떤 문장으로써 이와 같은 성불론을 내세우는가?
초발심 보살의 저 일념 공덕 등운운은 이 문장에 의거하여 세워졌다. 그러므로 『현수품소』에서 말하기를, “이것은 『기신론』의 세 가지 발심 가운데 최초 믿음이 성취한 후의 발심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初)’이라고 한 것이다. 또 같은 아래의 문장인 초발심주 및 「발심공덕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믿음의 끝(信終)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 보살이 초주에 나아가는 것으로 둘이 아니다.”67)라고 하였다. 또 『소疏』 18권에서 말하기를,

003_0722_c_01L時已然餘處等亦然一乘妙義唯此留
003_0722_c_02L故得初位時同時皆得
若得初位
003_0722_c_03L得一切位何諸經論說諸位階降次第
003_0722_c_04L以此經中安立諸位有二善巧一約
003_0722_c_05L相就門分位前後寄同三乘引彼便故 [32]
003_0722_c_06L是同敎也二約體就法前後相入圓融
003_0722_c_07L自在異彼三乘是別敎也但以不移門
003_0722_c_08L而恒相卽不壞相卽而恒前後是故二
003_0722_c_09L義融通不相違也
若此信等初門卽
003_0722_c_10L一切者何不 [33] 信位初心卽得而說滿心
003_0722_c_11L等耶若自別敎則不依位成今寄三
003_0722_c_12L乘終敎位說以彼敎中信滿不退方得
003_0722_c_13L入位今卽寄彼得入位處一時得此一
003_0722_c_14L切前後諸位行相是故不於信初心說
003_0722_c_15L以未得不退 [34] 成位相但是行故

003_0722_c_16L滿不退方入位故說滿心者應住位成
003_0722_c_17L何名信滿由信成故是行佛
003_0722_c_18L位佛也
卷文
依何等文立此成佛
003_0722_c_19L初發心菩薩彼一念功德等云云依此文
003_0722_c_20L立故賢首品疏云此是起信論三種發
003_0722_c_21L心中當最初信成就發心故云初也
003_0722_c_22L下文初發心住及發心功德品此約信
003_0722_c_23L彼就住初故無二也又疏十八云
003_0722_c_24L「位諸」疑寫倒□疑「頃」

003_0723_a_01L“만약 실천으로써 계위를 포함하면, 즉 10신이 가득 찬 마음에서 성불한다. 「현수품」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이 한 길만큼은 이 원교가 아니고서는 다른 곳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일승의 종지에 대한 단 하나의 예이다.”68)라고 하였다.
『기신론소』에서 “믿음이 성취된 발심(信成就發心)이라는 것은, 계위가 10주에 있으면서 10신을 겸한다. 10신의 계위 가운데 수습하여 신심이 성취된 후에 결정심決定心을 발하여 곧 10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발심주라고 한다. 즉 10신의 실천이 가득 찬 것을 믿음의 성취라고 이름하며, 10주의 처음으로 진입하기 때문에 발심이라고 한다.”69)라고 하였다.

무엇 때문에 이 품의 발심이 믿음의 끝에 근거한 설이 되는가?
「현수품」에서 10신의 실천을 설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이 가득 참에 근거한 설이 된다.
7. 신만 보살의 공덕
무엇 때문에 이 믿음이 가득 찬 보살의 실천과 공덕이 깊고 넓으며 가이없다고 말하는가?
『소疏』에서 “네 가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초심이지만, 지금 이 공덕은 광대무변하다. 첫째, 처하는 곳의 어려움이다. 즉 생사 고뇌처에서 능히 발심하여 공덕을 생함이 넓다. 둘째, 시기의 어려움이다. 즉 오래전에 이미 발심하고 오로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어려움이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지금은 이것과 반대이기 때문에 공덕을 생함이 많다.70) 셋째, 경계의 어려움이다. 능히 이 무한한 보리를 구하여 마음으로 경계를 따르기 때문에 광대하다. 넷째, 마음의 어려움이다. 발심하여 나아가고 후퇴함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공덕을 생함이 넓지 않다. 지금은 즉 이것과 반대이기에 광대하다.”71)라고 하였다.
8. 일승성불에 걸리는 시간
『향상문답香象問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입법계품초』의 문장에서 “첫 보리심 법문 가운데 믿음의 법문을 얻고 만 겁에 이르러 성불한다고 한 것은, 실천의 부처이지 계위의 부처가 아니다.”72)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일승의 입장에서 실천의 부처가 성취될 때 만 겁이 걸린다는 말인가, 삼승의 입장에서 실천의 부처가 성취될 때를 말하는가?
여러 삼승교의 입장에서 만 겁 가운데 10신의 실천이 가득 찼을 때 다시 일승의 실천의 부처가 완성된 곳임을 시현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삼승의 만불滿佛이 아닐 뿐 아니라, 일승 실천으로의 부처가 완성된 것도 아니다. 다만 만 겁은 변함이 없다. 이 만 겁으로부터 불가설불가설 겁에 비로소 실천의 부처가 가득 차서 완성된다.

003_0723_a_01L若以行攝位卽十信滿心成佛如賢首
003_0723_a_02L品說此之一轍非此圓敎餘處總無
003_0723_a_03L正是一乘宗之□例起信論疏云信成
003_0723_a_04L就發心者 [35] 在十住兼取十信十信位
003_0723_a_05L中修習信心成就發決定心卽入十住
003_0723_a_06L初心名發心住卽十信行滿名信成就
003_0723_a_07L進入十住 [36] 之初故云發心
何此品發
003_0723_a_08L約信終說賢首品說十信行
003_0723_a_09L約信滿說
何此信滿菩薩行德深廣
003_0723_a_10L無邊疏云有四種難故雖是初心
003_0723_a_11L [37] 此功德廣大無邊一處難謂於生死
003_0723_a_12L苦惱之處而能發心此生德廣也二時
003_0723_a_13L謂久已發心一向不動未足爲難
003_0723_a_14L則反此故生德多也三境難謂能求此
003_0723_a_15L無限菩提以心從境故廣大也四心難
003_0723_a_16L謂若發心進退不定生德不廣今則久 [38]
003_0723_a_17L此廣大也
香象問答云 [39] [40] 1) [7] [41]
003_0723_a_18L菩提心法門中得信法門至十千劫成
003_0723_a_19L佛者行佛非位佛等者此約一乘行佛
003_0723_a_20L成時2) [8] [42] 逕十千耶爲三乘行佛成時
003_0723_a_21L*道耶諸三乘敎中十千劫中十信行
003_0723_a_22L滿更示現一乘行佛滿之處耳非三乘
003_0723_a_23L滿佛亦非一乘行佛滿 [43] 但十千劫不動
003_0723_a_24L此十千劫不可說不可說劫方行佛滿成

003_0723_b_01L이와 같이 8만 겁 등 내지 1겁, 2겁에 이른다는 등의 의미는 예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73)이상은 『문답』의 내용이다.
제3장 원리적 성불
셋째는 원리적 성불이다. 『소疏』 제3권에서 “셋째는 원리(理)에 근거하니, 즉 일체중생이 함께 이미 성취하여 마쳤으며, 다시 새로이 성취하지 않는다. 나머지 양상이 모두 다했기 때문이다.”74)라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일체중생은 모두 진여(眞)를 본체로 삼는다. 그 체성 그대로 차별상을 논하지만,75) 그 양상은 모두 사라져 일미로서 평등하다. 그러므로 총체적인 부처가 먼저이다.
1. 부처의 정의
부처는 깨달은 자이고, 중생은 계위에 미혹되었다. 어째서 일미一味이며, 진여를 본체로 삼기 때문에 모두 총체적으로 부처라 하는가?
단 하나의 진리를 본체로 삼는다면 중생은 저 진리 위의 양상으로 역시 전혀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중생은 깨달은 자이고, 불신佛身에서 나타난 것이다. 저 부처가 변해 나타나는 중생은 능히 나타난 불신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성불하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2. 원리적 성불의 근거
이 일승의 성불은 오직 원리(理)에 근거한 설인가, 아니면 현상(事)에도 공통되는가?
원리와 현상에 공통되는 설이다. 생각하건대 부처의 소의所依가 되는 도리를 원리라고 하며, 능의能依가 되는 지혜(智) 등 여러 공덕은 다 현상이라 이름한다. 이 원리와 현상을 합한 것을 불신佛身이라고 한다. 이러한 불신이 나타난 바이기 때문에 능의와 소의가 같으며, 원리와 현상을 모두 갖춘 것이다.
3. 원리적 성불과 발심 수행의 관계
만약 그렇다면 일체중생이 발심 수행하여 성취하는가?
발심 수행하여 성취한다. 우선 석가불에 근거하면, 석가의 초발심에 일체중생을 포섭하여 모두 발심하여 마친다. 또한 저 무수대겁의 난행과 고행의 수행문을 포섭하여 모두 수행하여 마친다. 보리수 아래의 성불하는 법문을 포섭하여 모두 성불을 마친다. 그리고 열반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부처가 그러한 것처럼, 시방삼세 모든 부처의 법문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앞서 또 앞서 성취하여 마치고, 뒤에 계속해서 새로이 또 새로이 성취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타나는 부처와 같이, 나타내지는 중생이 단 하나의 뜻도 결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계위 역시 다 갖추는 것이다.

부처의 법문으로 포섭하여 일체중생의 발심과 수행 등이 모두 끝났으며,

003_0723_b_01L如是八萬劫等乃至一劫二劫到等之
003_0723_b_02L例可3) [9] [44]

003_0723_b_03L第三理成佛
疏第三卷云三約理則一
003_0723_b_04L切衆生並已成竟更不新成以餘相皆
003_0723_b_05L盡故意云一切衆生皆眞爲體隨其
003_0723_b_06L體性論差別相其相皆盡一味平等
003_0723_b_07L故先總佛
佛者是覺者衆生迷位
003_0723_b_08L以一味眞爲體故皆總是佛以一眞
003_0723_b_09L理爲體衆生彼上相亦都無差別是故
003_0723_b_10L一切衆生覺者佛身所現彼所現衆生
003_0723_b_11L同能現佛身故故衆生無不成佛

003_0723_b_12L此一乘成佛唯約理說若通事說
003_0723_b_13L通理事說佛所依理名爲理也能依
003_0723_b_14L智等諸功德皆名事此理事合名爲佛
003_0723_b_15L此佛身所現故能同所而具足理事

003_0723_b_16L
若爾一切衆生發心修行成發心
003_0723_b_17L修行成且約釋迦佛釋迦初發心
003_0723_b_18L一切衆生皆發心竟亦攝彼無數大劫
003_0723_b_19L難行苦行修行門皆修行竟攝菩提樹
003_0723_b_20L下成佛門皆成佛竟乃至涅槃亦復如
003_0723_b_21L如一佛爾攝十方三世諸佛門亦然
003_0723_b_22L故先先成竟後後新新亦成此如能現
003_0723_b_23L所現衆生無闕一義故諸位亦具足
003_0723_b_24L
何知攝佛門見一切衆生發心修

003_0723_c_01L또한 이후 계속해서 발심하고 수행하며 성불에 이르는 것을 보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경』 37권에서 “불자야, 여래의 몸 가운데서 일체중생이 보리심을 발하고 보살행을 닦아 등정각을 성취함을 다 보며, 나아가 일체중생의 적멸과 열반도 이와 같음을 본다.”76)라고 하였다. 또 32권에서 “일체제불은 일체중생을 조복調伏하고 교화하기 때문에 찰나찰나 가운데 등정각을 성취한다. 먼저 제불의 정법을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며, 또한 학지學地에 머물지 아니하고 정각을 성취하는 것이다.”77)라고 하였다.78)
『소疏』 제16권에서 첫 문장을 해석하면서 “아래는 인과를 드러내는 문을 밝혔다.이것은 표문이다.79) 보리신이 중생과 같기 때문에 중생이 모두 그 가운데 나타난다. 저곳에서 나타나는 중생(所現)이 능히 나타내는 부처(能現)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생이 성불하지 않음이 없다. 원교의 경우라면, 즉 일체중생이 함께 모두 옛날부터 발심 또한 끝났으며, 수행 역시 끝났으며, 성불 역시 다 마쳤으며, 나아가 새로이 성취할 것 없이 원리와 현상을 완성한다. ‘내지열반乃至涅槃’80)이라고 하는 것은 팔상八相81)의 처음에서 끝을 거론하기 때문이다.”82)라고 하였다.

이 처음의 문장을 해석함에 몇 가지 원인이 있는가?
『경』에서는 열 가지 원인으로써 해석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모두 다 하나의 본성(一性)이니 본성이 없기(無性) 때문이며, 양상도 없고, (양상의) 다함도 없고, 태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기 때문이며, 아我는 나라는 본성이 없기 때문이며, 중생은 중생이라는 본성이 없기 때문이며, 각覺은 깨달을 바가 없기 때문이며, 법계는 자성이 없기 때문이며, 허공계도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83)라고 하였다. 『소疏』에서 “어째서 중생이 보리성과 동일한가? 요약하면 열 가지 원인으로써 이 의미를 해석하여 증명한다. 첫째, 중생이 보리에 의지하므로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리와 동일하여 정각 등을 성취한다. 둘째, 자체로 염오된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 다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 본래 태어남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새로이 멸함이 없기 때문이다. 위의 네 가지는 동일한 구이다.

003_0723_c_01L行等皆竟亦後後發心修行乃至成佛
003_0723_c_02L經三十七云佛子如來身中悉見
003_0723_c_03L一切衆生發菩提心修菩薩行成等正
003_0723_c_04L乃至見一切衆生寂滅涅槃亦復如
003_0723_c_05L又三十二卷云一切諸佛調伏敎化
003_0723_c_06L一切衆生故於念念中成等正覺非不
003_0723_c_07L先覺諸佛正法亦不住學地而成正覺

003_0723_c_08L
疏第十六解初文云下明現因果門此標
文也

003_0723_c_09L以菩提身等衆生故是悉於中現以彼
003_0723_c_10L所現同能現故是故衆生無不成佛
003_0723_c_11L圓敎卽一切衆生並悉舊來發心亦竟
003_0723_c_12L行亦竟成佛亦竟更無新成具足理事
003_0723_c_13L言乃至涅槃者於八相中擧初 [45] 乃至末
003_0723_c_14L
釋此初文有幾因耶經以十因
003_0723_c_15L故經文云皆悉一性以無性故無相
003_0723_c_16L無盡無生無滅故我非我性故衆生非
003_0723_c_17L衆生性故覺無所覺故法界無自性故
003_0723_c_18L虗空界無自性故疏云何以衆生同菩
003_0723_c_19L提性略以十因釋成此義一以衆生
003_0723_c_20L於菩提無自性故是故同於菩提成正
003_0723_c_21L覺等二無自染相故三無所盡故
003_0723_c_22L本來不生故五亦無新滅故上四同爲
003_0723_c_23L「約」疑「初」「道」疑「節」次同「知思」
003_0723_c_24L疑倒

003_0724_a_01L여섯째, 나라는 본성은 자체로 공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뭇 조건에 의한 생겨남은 생겨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덟째, 각지覺智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깨달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아홉째, 의거할 바의 법계는 또한 본성이 없기 때문이다. 열째, 본성인 공의 세계에는 체성이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84)라고 하였다.
4. 모든 것에는 본성이 없다
어째서 이와 같이 동등하게 모든 것에 본성이 없음을 깨닫는가?
다음과 같이 『경』에서 결론을 맺으면서 “이와 같이 일체가 본성이 없고, 무진의 지혜임과 자연의 지혜임과 일체 여래가 무극대비無極大悲로 중생을 구제하고 있음을 동등하게 깨닫는다.”85)라고 하였다. 『소疏』에서 “아래의 총결 가운데 ‘다함없는 지혜(無盡智)’라는 것은, 비추는 작용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지혜(自然智)’라는 것은 특별한 능력(功用)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극대비’라는 것은 동체섭화同體攝化하기 때문이다.”86)라고 하였다. ‘동체섭화’라는 것은, 『기신론』에서 “중생의 외적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차별된 조건이며, 둘째는 평등한 조건이다. 평등한 조건이라는 것은 일체제불과 보살이 모두 일체중생을 구제하여 해탈하도록 서원하여 자연히 중생을 훈습하여 항상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보살과 중생의 본성이 같다(同體)고 인식하는 지혜의 힘이 있기 때문에 중생이 견문해야 하는 것에 따라 작용을 나타낸다. 이른바 중생은 삼매에 의거하여 평등을 얻어 모든 부처님을 보기 때문이다.”87)라고 하였다. 『소疏』에서 “‘그 가운데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서원한다’라는 것은 평등심이다. ‘자연’ 등이라 함은 항상 작용함으로써 근기에 응해 주는 것이다. ‘동체同體의 지력智力으로’라는 것은 항상된 작용(常用)을 해설한 것이다. ‘견문해야 하는 것에 따른다’라는 것은, 그 작용의 양상(用相)을 드러낸 것이다. 둘째는 근기에 대해서 평등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을 밝힌다. 즉 10주 이후 모든 보살 등은 삼매의 힘에 의해서 여러 부처님이 몸의 크기가 평등하고 피차 구분된 양상이 없음을 보기 때문에 평등견이라고 말하는 것이다.”88)라고 말하였다.
5. 구래성불과 현재불성불89)
모든 중생이 다 성불하였다면 무엇 때문에 현재의 중생들은 바로 부처가 되지 못하는가?
그것은 권교의 관점일 뿐 원교의 근기에 대해 “옛날부터 성불하였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다.

근기의 보는 바가 어떻게 같지 않은가?
만약 인천위의 사람이라면 사람과 존재의 두 자아인 실체(實物)를 갖추었다고 보고, 소승교에서는 이 중생은 한 덩어리가 된 오온의 실법으로서 본래 사람이 없다고 본다.

003_0724_a_01L一句六我性自空故七衆緣之生非是
003_0724_a_02L生故八設起覺智無所覺故九所依
003_0724_a_03L法界亦無性故十本性空界無體性故

003_0724_a_04L
何如是等覺一切無性次經結云
003_0724_a_05L如是等覺一切無性無盡智自然智
003_0724_a_06L切如來無極大悲度脫衆生疏云下總
003_0724_a_07L結中無盡智者照用無限故自然智者
003_0724_a_08L不徒功用故無極大悲者同體攝化故
003_0724_a_09L同體攝化者起信論云衆生外緣有二
003_0724_a_10L一差別緣二平等 [46] 平等者一切諸
003_0724_a_11L佛菩薩皆願度脫一切衆生自然熏習
003_0724_a_12L恒常不捨以同體智力故隨應見聞
003_0724_a_13L現作業所謂衆生依於三昧乃得平等
003_0724_a_14L見諸佛故疏云於中願度生者平等心
003_0724_a_15L自然等者常用應機以同體智力者
003_0724_a_16L釋成常用也隨應等者顯其用相二明
003_0724_a_17L對機顯平等義謂十住已去諸菩薩等
003_0724_a_18L依三昧力悉見諸佛身量平等無有彼
003_0724_a_19L此分齊之相故云平等見也
一切
003_0724_a_20L衆生皆成佛者何現有衆生不卽佛耶
003_0724_a_21L此權所見不同於圓敎機舊來成佛

003_0724_a_22L
何機所見不同若於人天位者 [47]
003_0724_a_23L足人法二我實物若小乘敎中看此衆
003_0724_a_24L唯是一聚五蘊實法本來無人

003_0724_b_01L대승초교에서는 오직 표상(識)이 나타난 바로서 허깨비처럼 있는 듯하여 있는 그대로, 즉 공이며, 사람도 없고 존재도 없다. 종교終敎에서는 모두가 여래장연기로써 본체 그대로 여여하여 항상된 덕을 갖춘다. 즉 이것이 바로 중생이기 때문에 『부증불감경』에서 “중생은 곧 법신이며, 법신이 곧 중생이다. 중생과 법신은 의미는 하나이나 명칭이 다르다.”90)라고 말하였다. 해석해서 말하면, 이 종(종교)에서는 도리에 근거하기 때문에 중생이 곧 부처인 것이다. 돈교에서는 중생의 모습이 본래 다 없어져 이성만이 본래 드러난다. 뛰어나게 스스로 드러나니, 다시 기다릴 바가 없기 때문에 바로 부처가 된다거나 되지 못한다 등을 말할 수 없다. 유마의 침묵의 의미 등과 같다.『소疏』의 문장이다.91) 그러므로 보는 바가 다르다.
당신은 지금 처음의 인천위 가운데서 저 중생을 관찰하고 있으니, 양상 그대로 공임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다시 원교의 양상을 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 중생이 존재함을 보는 것이고, 나는 저 설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성불을 설하는 것이다. 다만 편견(情)을 깨뜨리면 법계는 원만하게 드러나니 일체중생이 성불하는 것을92) 궁극적 교화라고 이름한다. 다른 교의 주장과 다르기 때문에 아래에서 결론을 맺으면서 ‘여래의 무극대비로 중생을 구제한다’93)라고 말하는 것이다.
6. 법성융통문
해석과 결론의 문장에 준하면 원리에 근거하여 설한 것과 비슷한데, 무엇 때문에 드러냄(標) 가운데 발심 등 오위의 원인이 있고, 성불 등 팔상의 결과가 있는 것인가?94)
이것은 법성이 융통하는 문으로써 해석한 것이다. 즉 현상은 원리를 따름으로써 이로써 융통하기 때문이며, 상즉상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교설 가운데서 생하지 않음(無生)을 관찰하는 것은 오직 이성만을 비추는 것이다. 이 원교 가운데는 모든 불보살법을 만족한다. 교설의 핵심에 의하여 생각하라.95)
7. 정각의 자재
『소疏』 제15권에서 경전을 해석하여 “일곱째, 정각의 자재에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문장에 따른 해석이다. 즉 모든 부처님96)은 각각 스스로 교화할 대상을 조복시켜 교화하기 위해 각각 정각을 성취함을 보인다. 그러므로 ‘염념念念’이라고 한다. 단지 한 부처님만이 이미 각각 성취했음을 보인 것이 아니며, 먼저 깨닫지 못하여 지금 이에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먼저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다’ 등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화신의 작용을 드러낸 것이다.

003_0724_b_01L大乘初敎唯識所現如幻似有當相卽
003_0724_b_02L無人無法若約終敎並是如來藏緣
003_0724_b_03L擧體卽如具恒沙德乃是衆生故
003_0724_b_04L不增不減經云衆生卽法身法身卽
003_0724_b_05L衆生衆生法身義一名異解云此宗
003_0724_b_06L約理衆生卽是佛若約頓敎衆生相本
003_0724_b_07L來盡理性本來顯 [48] 然自露更無所待
003_0724_b_08L不可說卽佛不卽 [49] 等也如淨名杜默
003_0724_b_09L之意等
故所見異
汝今就初人天位
003_0724_b_10L觀彼衆生當相卽空猶亦不得況復
003_0724_b_11L得見圓敎中事是故汝見現有衆生
003_0724_b_12L不約彼說此成佛但令情見若破法界
003_0724_b_13L圓現一切衆生成佛者名究竟敎化
003_0724_b_14L同餘宗故下結中名如來無極大悲度
003_0724_b_15L脫衆生
准釋結文似約理說何故標
003_0724_b_16L有發心等五位因成佛等八相果
003_0724_b_17L此是以法性融通門釋謂事隨理以融
003_0724_b_18L通故得相卽相入故也又餘敎中觀
003_0724_b_19L無生唯照理性此圓敎中具足一切佛
003_0724_b_20L菩薩 [50] 依宗思 [51]
疏第十五解後 [52] 經云
003_0724_b_21L七正覺自在中有二釋一隨文釋謂一
003_0724_b_22L切各爲調化自所化故各各示成正覺
003_0724_b_23L故云念念非是一佛旣各示成非先不
003_0724_b_24L今乃始覺故云非不先覺等此是現

003_0724_c_01L
둘째는 의미에 따른 해석이다. 한 부처가 이미 일체중생에 편만하고, 시방의 미진이 삼세에 두루하며, 염념ㆍ동시ㆍ전후에 다 같이 정각을 성취한다. 이것은 즉 실제의 성취이며, 화신이 아니다. 다만 성취하지 못하면 즉 그만이지만, 성취하면 즉 옛날부터 성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다’ 등이라 한 것이다. 삼세를 다하여 포섭하고, 과거에 성취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학지에 머물지 않는다’ 등이라 한 것이다. 이것은 교설의 핵심에 준하여 생각할 수 있다.”97)라고 하였다.
8. 세 가지 성불의 관계

1) 세 가지 성불의 포함 관계

이 세 가지 성불은 혹시 서로 통하는가, 아니면 각각 다른가?
원리적 성불은 위의 두 성불에 통하나, 위의 두 성불은 서로 통하지 못한다.

어떻게 원리적 성불이 위의 두 성불에 통하는가?
믿음이 가득 차면 모든 계위를 포함한다. 또한 원리와 현상 간의 융통에 근거하여 10주 등을 설하여 모든 계위를 포함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오교장』 문장에서 “이 무진은 모두 다 첫 관문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에서 ‘초발심 보살의 일념공덕해 등 내지 또 말하기를, 초발심에 이르러 곧 정각을 성취한다’라고 했다.”98)라고 하였다.

2) 일승성불과 삼승성불의 차이

위에서 일념에 즉 부처가 된다고 하였는데, 삼승 가운데 이미 이러한 의미가 있다. 이것과 어떻게 다른가?
삼승은 원리를 전제하여 일념에 곧 부처가 된다고 한 것이다. 지금 이 일승은 모든 교리와 의의, 원리와 현상, 원인과 결과 등 위의 모든 법문을 바로 증득하고 완전하게 갖춘다. 또한 모든 중생과 더불어 모두 함께 동시, 동시에 부처가 되고, 뒤에도 능히 새로이 또 새로이 미혹을 끊는다. 또한 학지學地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정각을 성취하고 10불을 구족하여 끝없이 역방향과 순방향의 공덕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인다라ㆍ미세ㆍ9세ㆍ10세 등에 이르러 모든 계위에 두루 통한다. 즉 10신의 마지막 마음 이후에 10해ㆍ10행ㆍ10회향ㆍ10지 및 불지 등 동시에 두루 성취하고 전후가 없으며 일체를 원만히 갖춘다. 그러므로 일념과 10만 겁은 다름이 없다.99)


003_0724_c_01L化身用
二就義釋一佛卽遍一切衆生
003_0724_c_02L周十方微塵盡三世念念同時前後
003_0724_c_03L成正覺此則實成非化但以不成則已
003_0724_c_04L成則舊來成故云非不先覺等以攝三
003_0724_c_05L世盡故1) [10] [53] 不成故云不住學地等
003_0724_c_06L [54] 准宗思之
此三種成佛若互通耶
003_0724_c_07L若各別理成佛可通上二上二不
003_0724_c_08L
何理成佛通上二成佛信滿攝
003_0724_c_09L諸位亦約理事融通說住等攝諸位亦
003_0724_c_10L故章文云然此無盡皆悉在初門中
003_0724_c_11L故此經初發心菩薩一念功德海等
003_0724_c_12L乃至又云2) [11] [55] 初發心時便成正覺

003_0724_c_13L上言一念卽作佛者三乘中已有此義
003_0724_c_14L與此何別三乘望理爲一念卽作佛
003_0724_c_15L今此一乘卽得具足一切敎義理事因 [56]
003_0724_c_16L如上一切法門及與一切衆生皆悉
003_0724_c_17L同時3)同時 [12] [57] 作佛後能 [58] 新新斷惑亦不住
003_0724_c_18L學地而成正覺具足十佛以顯無盡逆
003_0724_c_19L順德故及因陀羅微4) [13] [59] 九世十世等
003_0724_c_20L通諸位謂十信終心已去十解十行十
003_0724_c_21L迴向十地及佛地等同時遍成無有前後
003_0724_c_22L具足一切耳然此一念與百千劫無有
003_0724_c_23L「過」更勘「至」疑剩「同時」疑剩
003_0724_c_24L「網」疑「細」

003_0725_a_01L
3) 세 가지 성불이 있는 이유

만약 그렇다면, 두 가지 성불을 세울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세 가지 성불을 세웠는가?
처음의 둘(실천의 성불, 계위의 성불)은 범위가 좁고, 뒤의 하나는 넓다. 그러므로 별도로 세운다. 무엇인가 하면, 원리적 성불은 믿음이 가득 차기 전의 범부에도 통하며, 처음의 둘은 신만 및 10주 등에 한정되기 때문에 넓고 좁음이 있다.
제2편 반드시 성불하는 사람을 분별하는 문(辨定得人門)
제1장 세 가지 성불을 얻는 사람들의 동이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세 가지 성불을 얻는 사람에 동이가 있음을 밝힌다. 둘째, 빨리 성불하는 사람의 부류가 같지 않음을 밝힌다.
처음 세 가지의 성불로 능히 얻는 사람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실천을 믿음의 문에 맞추기 때문에 이것은 실천의 성불이다. 주住 등에 맞출 때는 다름 아닌 계위의 성불이다. 이것은 원리와 현상이 즉입卽入하는 부처이므로 원리적 성불이라 이름한다. 이 때문에 동일하다.
그러므로 『소疏』 권4에서 “ 아직 이 노사나불이 어느 계위의 부처인지 알 수 없다. 만약 믿음의 법을 설하면, 다름 아닌 신信 가운데 부처이며, 나머지 계위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이것에 준하여 알 수 있다.”100)라고 하였다. 그러나 원리적 성불은 나머지 일체 범부 및 비정非情 등에도 통하므로 다르다.
제2장 빨리 성불하는 부류
1. 총론
다음은 빨리 성불하는 부류에 대해서 밝힌다. 총 4인이 있다. 첫째는 세계성 등의 열 가지 세계신 가운데에 의거하며, 윤왕輪王의101) 아들로서 현재의 몸 그대로 성불한다. 보장엄 동자 등과 같다. 둘째는 천자의 몸이 뛰어남에 의거하면, 삼악도로부터 벗어나 도솔천에 태어나서 현재의 몸 그대로 성불한다. 셋째는 염부제의 뛰어난 공덕신에 의거하면, 선재 등이 현재의 몸 그대로 보현행의 궁극에 달해 후에 태어나 부처를 본다. 넷째, 『법화경』에 의거하면, 용녀의 몸으로써 남방에 가서 성불하니, 뜻은 미혹을 남긴 몸으로 빨리 성불을 얻는 것에 해당한다.『공목장』 권4의 문장이다.102)
2. 『청구기』의 일생성불론 비판
『청구기靑丘記』103)에서 말했다.
‘현신성불現身成佛’ 등이라 함은 (다음과 같다.)

보장엄 동자는 두 부처의 세계를 지나 미진수겁 동안 수행하여 성불하였다. 무엇 때문에 일생성불이라고 하는가?
이 사람은 분단신104) 그대로 성불하기 때문에 일생성불이다.

어떤 문장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법장 스님이

003_0725_a_01L異也
若爾可立二成佛何立三成
003_0725_a_02L初二狹後一寬故別立也何者
003_0725_a_03L理成佛亦通信滿以前一切凡位初二
003_0725_a_04L限信滿及住等故有此寬狹耳

003_0725_a_05L第二辨定得人門
[三成佛能得之人同異]
於中有二一明
三種
003_0725_a_06L成佛能得人別
二出疾成佛人類不同

003_0725_a_07L
初中三成佛能得之人或同或異何者
003_0725_a_08L且一人行寄信門故是行成佛寄住等
003_0725_a_09L卽位成佛此卽理事卽入佛故名理
003_0725_a_10L成佛是故同也
故疏四云問未知
003_0725_a_11L舍那佛是何位中佛若說信法卽信
003_0725_a_12L中佛餘位亦爾准此知也然理成佛
003_0725_a_13L通餘一切凡夫及非情等故是異也

003_0725_a_14L
疾成佛類
總有四人一依世界性等
003_0725_a_15L十世界身輪王子現身成佛如普莊嚴
003_0725_a_16L童子等二者依天子身勝從三惡道
003_0725_a_17L1) [14] [60] 率天現身成佛三者依閻浮提勝功
003_0725_a_18L德身如善財等現身究竟普賢之行
003_0725_a_19L生卽見佛四者依法華經龍女之身
003_0725_a_20L方成佛義當留惑之身疾得成佛孔目第
四文也

003_0725_a_21L
靑丘記云十 [61] 現身成佛等者普莊嚴
003_0725_a_22L童子逕二佛世界塵數劫修成佛何故
003_0725_a_23L一生成佛此人分段身卽成佛故
003_0725_a_24L一生成佛以何文爲證答藏師云

003_0725_b_01L“계위에 기준을 두면, 10신의 마지막 마음인 승진분 후에 10해에 들어가서 곧 성불과를 얻는다.”105)라고 하였다. 해석하면, “10신의 마지막 마음이 곧 성불이다.”라는 등이니, 그렇기 때문에 일생성불임을 알 수 있다.
‘도솔천자가 현재의 몸 그대로 성불한다’라는 것은, 이 사람은 과거에 경문을 들었기 때문에 삼악도에 떨어져서도 저 선근으로 몸이 소상광명小相光明을 입어 지옥으로부터 도솔천에 태어난다. 이 천신은 해행신이다. 그 몸 그대로 성불하기 때문에 일생성불이다. 또 선재동자는 일생 동안 선지식을 찾아다녀 만났으니, 그것이 다름 아닌 성불이다. ‘용녀의 몸이 남방에 가서 성불한다’라는 것은, 이 사람은 또한 화엄의 가르침에 의거하면 미혹을 남겨 용녀의 몸을 얻은 것이며, 곧 그 몸으로 성불하기 때문에 일생성불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 이 『청구기』의 뜻을 살펴보면, 보장엄 동자가 현재의 몸 그대로 성불하는 것이 분단으로서의 일생이라 하는 것은, 경문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 경문을 고찰하면, 한 기간에 현재의 몸으로 일승을 이해하기 때문이며, 이것은 즉 해행생解行生 가운데 실천의 양상이기 때문이다. 『오교장』 하권에서 말하기를, “또한 저 경지에서는 한 찰나 가운데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중생을 교화하여 일시에 모두 이구삼매106)의 일부가 나타나는107) 경지까지 이른다. 나머지 찰나찰나 가운데에서도 모두 이와 같다. 이것은 삼생 가운데 해행위 안의 실천의 양상이다.”108)라고 하였다. 그러나 분단생은 견문 등의 생에 공통되므로 (『청구기』의 설은) 해행생이 아니다.
3. 보장엄 동자

1) 보장엄 동자의 명칭 해석

무엇 때문에 이 동자를 보장엄普莊嚴이라고 하는가?
덕이 법계에 두루하는 것이 ‘보普’이고, 보편적인 덕으로 서로 장식하는 것이 ‘꾸밈(嚴)’이다. 보편적인(普) 장식(嚴)이며, 보편적이라는 것은 곧 장식이어서 보엄普嚴의 동자이고, 보엄普嚴이 곧 동자이다.109) 『신경』에서는 대위광 태자大威光太子라고 한다. 지금 이 『화엄경』(60권본) 가운데 태자(第一子)를 공덕승功德勝이라고 이름한다. 지금 이 동자는 제3 왕자이다.110) 두 『소』(『수현기』ㆍ『탐현기』)에는 해석이 없으므로111) 나머지 문장을 통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부왕과 태자는 복의 측면(福分)이다. 이 동자는 혜의 측면(慧分)이기 때문에 도의 근기가 된다.112)

2) 윤왕의 아들인 이유

왜 이 왕자를 세계성의 윤왕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소疏』 제3권에서

003_0725_b_01L一約位十信終心勝進分後入十解卽成
003_0725_b_02L佛果等解云十信終心卽成佛等
003_0725_b_03L知一生成佛
兜率天子2) [15] [62] 身成佛者
003_0725_b_04L此人過去由聞經故3) [16] [63] 三惡道而以彼
003_0725_b_05L善根身承小相光明從地獄出生兜率天
003_0725_b_06L此天身是解行身此身卽成佛故一生
003_0725_b_07L成佛又善財童子一生逕知識遇卽成
003_0725_b_08L佛也龍女之身南方成佛者此人亦依
003_0725_b_09L華嚴敎則留惑得龍女身卽是身成佛
003_0725_b_10L云一生成佛
今案此記意普莊嚴童
003_0725_b_11L現身成佛是分段一生者4) [17] [64] 不順文
003_0725_b_12L何者案經文一期現身解一乘故此則
003_0725_b_13L解行生中行相故五敎下卷云又彼能
003_0725_b_14L於一念中化不可說不可說衆生一時
003_0725_b_15L皆至離垢三昧前餘念念中皆亦如是
003_0725_b_16L乃至是此 [65] 前三生中解行位內之行相也
003_0725_b_17L分段生是通見聞等故非此生也

003_0725_b_18L且何此童子名普莊嚴德周法界曰
003_0725_b_19L普德交飾爲嚴普之嚴普卽嚴普嚴
003_0725_b_20L之童子普嚴卽童子新本名大威光太
003_0725_b_21L今此本中太子名功德勝今此童子
003_0725_b_22L第三王子二疏無釋可勘餘文父王及
003_0725_b_23L太子福分此童子慧分故爲道器

003_0725_b_24L此王子名世界性輪王之子疏第三

003_0725_c_01L“이 가운데 세계성이라 함은 세계를 쌓아 ‘성性’을 이루고, ‘성’을 쌓아 ‘해海’를 이루는 등이니, 위에서 인용한 『지도론』의 설과 같다.113) 또한 이 아래 문장에 ‘세계해 가운데 세계성이 있다. 세계성 가운데 한 세계 등이 있다’ 하니, 그러므로 ‘성’을 쌓음을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성’이라 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앞의 여러 세계를 비추어 보아 여러 떠도는 부류를 포섭하여 ‘성’을 모아 성취함이다. 오랜 습관으로 성품이 형성되는 것 등과 같다. 둘째는 뒤의 ‘해’ 등에 대비해서 원인의 뜻이 된다. 그러므로 역시 ‘성’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114)라고 하였다.

3) 세계의 명칭이 ‘성性’으로 통일되지 않는 이유

115) ‘계’를 쌓아 ‘성’을 이룬다면, ‘계’도 역시 인의因義가 된다. 무엇 때문에 ‘성’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계는) 융합하여 맺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첫 번째 의미가 없다.

열 가지 세계 가운데 ‘해’를 뒤의 세계에 대비하자면, 나머지 세계를 쌓아 이루는데 무엇 때문에 ‘성’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처음으로 쌓아 맺어 포섭하여 이미 ‘성’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뒤에 다른 뜻을 열고 전변하여 별호를 세웠기 때문에 ‘성’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위에서 『지도론』을 인용하여 “종교에 의하면, 『지도론』에서 ‘삼천대천세계를 일수一數로 하고 숫자를 세어 항하수의 모래만큼에 이르기까지를 1세계성이라고 한다. 이 성性을 세어 또 항사에 이르기까지를 1세계해라고 한다. 이것을 세어서 또 항사에 이르기까지를 1세계종世界種이라 한다. 이것을 세어서 또 무량항사에 이르기까지를 1불세계가 교화할 영역이라고 한다’116)라고 했다.”라고 하였다.117)
또 “삼천대천세계 밖에 따로 열 가지 세계가 있으니, 세계성世界性ㆍ세계해世界海ㆍ세계륜世界輪ㆍ세계원世界圓ㆍ세계분世界分ㆍ세계선世界旋ㆍ세계전世界轉ㆍ세계연화世界蓮華ㆍ세계수미世界須彌ㆍ세계상世界相이다. 이것들은 만 명의 아들(萬子) 이후의 윤왕 경계에 해당한다.”118)라고 하였다.

4) 윤왕의 아들 수

무엇 때문에 이 보장엄 동자는 만 명의 아들 이후의 윤왕의 아들에 해당하는가?
이미 경문에 2만 5천 아들이라고 했다.119) 그러므로 만 명의 아들 이후의 윤왕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간정기』 3권에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혹자는 말하기를, ‘왕자 5백 인’이라 함은 별본120)에 ‘2만 5천 인’이라고 한다. 『영락경』을 고찰하니, 금륜왕은 천 명의 복이 있는 아들이 있고,

003_0725_c_01L此中世界性者謂積世界成性積性
003_0725_c_02L成海等如上所引智論說又此下文
003_0725_c_03L世界海中有世界性世界性中有一世
003_0725_c_04L界等故知積性也何故名性者有二義
003_0725_c_05L一望前諸界攝諸流類結成性如久
003_0725_c_06L習成性等二望後海等有爲因義故亦
003_0725_c_07L得名性
積界成性界亦因義何不名
003_0725_c_08L無融結故闕初義也
十世界中
003_0725_c_09L望於後亦積成餘界何不名性
003_0725_c_10L積結攝已得性名後開異義轉立別號
003_0725_c_11L不名性也上引智論云若依終敎
003_0725_c_12L如智論中以三千大千世界爲一數
003_0725_c_13L至恒沙爲一世界性數此性復至恒沙
003_0725_c_14L爲一世界海數此復至恒沙爲一世界
003_0725_c_15L數此復至無量恒沙爲一佛世界所
003_0725_c_16L化分齊又云三千界外別有十世界性
003_0725_c_17L海輪圓分旋轉蓮須相此等當萬子已
003_0725_c_18L輪王境界
何如此普莊嚴童子
003_0725_c_19L萬子已去輪王之子已經文言二萬
003_0725_c_20L五千子故知萬子已去輪王子刊定記
003_0725_c_21L有二釋一云言王子五百人別本云
003_0725_c_22L二萬五千人者案瓔珞經金輪王千輻 [66]
003_0725_c_23L「兜」上入「生」見□ 疑「現」「隨」疑「墮」
003_0725_c_24L
「恣」疑「恐」

003_0726_a_01L나아가 제10지 보살은 모두 2만의 아들이 있다.121) 해석하면 제10지 보살은 시현하여 왕이 된다. 마땅히 ‘2만 5천’은 없다. 희견왕이 거느려도 아직 바라밀선안불波羅蜜善眼佛122)이 있는 곳을 보지 못한 것을 보건대 오히려 제2지에도 이르지 못했으니, 아마도 2만 5천은 잘못된 것이리라. 둘째, 경전마다 교설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도리에 역시 과실이 없다.”123)라고 하였다.

5) 회통

지금 말하자면, 뒤의 본 『소疏』를 따라 (『간정기』의) 첫 해석이 문에 어긋남을 회통한다. ‘경’이라 말함은 저 삼승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에서 말하였다.

『열반경』 가운데 일체 윤왕은 모두 천 명의 아들로 정해져124) 증가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이 가운데에서 이것과 같지 않는가?
저 왕은 사천하 가운데의 윤왕으로 삼승에 근거한다. 이 왕은 세계성의 윤왕이기 때문에 저것보다 넓고 자세하니, 백정보망 등이 항사 금륜왕의 복으로 감感하는 바와 같다. 이것은 일승에 근거한 설이므로 같지 않다.125)
이제 내가 『경』을 고찰하건대 본 『소』가 설하는 바에는 크게 도리가 있다. 무엇 때문인가? 부인의 수는 『신경』과 『진경』이 똑같이 3만 7천이라고 하였다.126) 역시 동일하게 사람의 수명이 2소겁127)이라고 하였다. 소겁이라는 것은 기基의 『법화소』 2권에서 “다름 아닌 일, 월, 연 등을 겁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소小’라고 이름한다.”128)라고 하였다. 원효 화상의 『겁의』129)에서는 “‘『대론』에서는 ‘시時, 절節, 세歲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소겁이라고 한다’130)라고 말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미 많은 시기 가운데 3만여 부인을 두었으니, 어째서 2만여의 아들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삼승인의 수명이 8만 세 시에 윤왕이 출세함과는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4. 도솔천자

1) 도솔천자의 계위

혹자는 둘째의 도솔천자는 어느 계위에서 성불하는가라고 물었다.131)
둘째의 도솔천자에 대해서 답한다.

이 천자가 지옥에 떨어진 후 하늘에서 출생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에서 “다만 전도되어 어리석음에 얽매여 있으므로 지옥신을 얻었다.”132)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서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선지식을 만났기 때문에, 사나불의 위신력 때문에 이 천상에 태어난 것이다.”133)라고 하였다.

2) 도솔천자의 이익

(1) 지옥의 이익

이 천자는 어떤 이익을 얻는가?
134) 크게 두 가지 이익이 있다.

003_0726_a_01L乃至第十地菩薩皆二萬子釋曰
003_0726_a_02L十地菩薩 [67] 現爲王當無二萬五千 [68]
003_0726_a_03L喜見統領及未見波羅蜜善眼佛前
003_0726_a_04L未至第二地恐二萬五千誤也二云約
003_0726_a_05L敎說異理亦無失
今云後順本疏
003_0726_a_06L初釋違文云經彼約三乘故疏云
003_0726_a_07L涅槃中一切輪王皆定千子不增不減
003_0726_a_08L何故1) [18] [69] 乃不同耶彼是王四天下之
003_0726_a_09L輪王約三乘說此是王世界性之輪王
003_0726_a_10L2) [19] [70] 於彼如白淨3) [20] [71] 網等以恒沙
003_0726_a_11L金輪王福所感此約一乘說不同也

003_0726_a_12L私案經本疏所說太有道理何者夫人
003_0726_a_13L數新古本共言三萬七千亦同言人壽
003_0726_a_14L二小劫言小劫者基法華疏二云卽以
003_0726_a_15L日月年等爲劫故名爲小元曉和尙劫
003_0726_a_16L義云大論云時節歲無量 [72] 名爲小劫
003_0726_a_17L旣多時中4) [21] 三萬餘夫人何可無二萬
003_0726_a_18L餘子故知與三乘人壽八萬歲時輪王
003_0726_a_19L出世全別
或問第二5) [22] [73] 天子何位成佛

003_0726_a_20L
答第二兜率天子
此天子墮地獄
003_0726_a_21L出生天何經云但以顚倒愚癡纒故
003_0726_a_22L得地獄身又云以不放逸故於諸佛所
003_0726_a_23L種善根故遇善知識故舍那6) [23] [74] 力故
003_0726_a_24L生此天上
此天子有何得益大有

003_0726_b_01L첫째, 지옥의 이익이다. 둘째, 천상의 이익이다. 첫째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고통을 제거하는 이익이다. 둘째는 열 가지 육근135)의 청정함을 얻는 이익이다. 천상의 이익 가운데 역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교설을 듣고 획득하는 이익이다. 둘째는 전하고 유통하는(傳通) 이익이다. 그러므로 천상의 이익은 지옥의 이익을 포함한다. 지옥신이 빛을 받아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疏』에서 “지옥을 비춰 천상에 태어나는 한 이익”136)이라고 했다.

(2) 천상의 이익

그렇다면 이것은 천상에 태어나는 이익이므로 고통을 제거하는 것으로 수렴되는가, 근의 청정함으로 수렴되는가?
두 가지에 다 수렴된다. 왜냐하면 고통을 제거하고 청정한 감각기관으로서 비로소 하늘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이익인가? 『소疏』에서 “나머지 이익을 뛰어넘는다.”137)라고 하였다.
138) 『소疏』에서 “지옥을 비춰 하늘에 태어나는 한 가지 이익 때문에 나머지를 뛰어넘는다.”139)라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고통을 제거하고 하늘에 태어나는 등이 한 가지 이익이기 때문에 나머지를 뛰어넘는다고 한 것이다.

① 교설을 듣는 이익

가) 첫째부터 셋째 이익

둘째, 천상의 이익 가운데 첫째의 교설을 듣는 이익이라는 것은 그 가운데 네 가지가 있다.140) 첫째는 나머지 도솔천자가 얻는 이익이다. 둘째는 욕계 육천의 천자가 얻는 육욕 천자의 이익이다. 셋째는 천녀가 얻는 이익이다. 넷째는 마땅한 근기로서의 천자가 얻는 이익이다. 첫째 이익은 『경』에서 “이 법을 설할 때 백천만억 나유타의 불찰 미진수 제 세계 가운데의 도솔천자가 모두 무생법인을 얻는다.”141)라고 하였다. 둘째 이익은 무량무변 아승지의 욕계의 모든 천자가 다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다.142) 셋째 이익은 욕계 육천 가운데 일체의 천녀가 여자를 버리고 남자가 되어 불퇴전의 보리 마음을 얻는 것이다.143)

나) 넷째 이익

㉮ 넷째 이익 가운데 첫째 이익

넷째 이익(當幾天子益)은 그 가운데 네 가지 이익이 있다. 첫째는 계위를 갖추는 이익(攝位益)144)이다. 보현이 선근을 회향함을 듣고 전부 10지의 여러 힘으로 장엄을 얻고 삼매를 완성한다.145) ‘선근을 회향한다’ 함은 「이세간품」 55권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보살은 열 가지 선근의 회향이 있다. 첫째, 내 선근을 선지식의 서원과 같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취함은 별도로 성취함이 아니다. 둘째, 마음을 같게 하는 것이다. 셋째, 실천을 같게 하는 것이다. 넷째, 선근을 같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평등을 같게 하는 것이다. 여섯째, 생각을 같게 하는 것이다. 일곱째, 청정함을 같게 하는 것이다. 여덟째, 머무는 바를 같게 하는 것이다. 아홉째, 성취하여 가득하게 함을 같게 하는 것이다.

003_0726_b_01L二益一地獄益二天上益初中有二
003_0726_b_02L一除苦益二得十種六根淨益天上益
003_0726_b_03L亦有二種一聞敎獲益二傳通之益
003_0726_b_04L然生天益攝地獄益何者地獄身被光
003_0726_b_05L得益故故疏文云照獄生天一益

003_0726_b_06L若爾此生天益爲收除苦爲收根淨
003_0726_b_07L通二收何以故依除苦淨根方生天故

003_0726_b_08L
何此益疏云越於餘益疏云
003_0726_b_09L獄生天一益故越餘也除苦生天等
003_0726_b_10L爲一益故名越餘也
第二天上益中
003_0726_b_11L敎益者於中有四一餘兜率天益二欲
003_0726_b_12L天益三天女益四當機天子益初益
003_0726_b_13L經云說是法時百千萬億那由他佛
003_0726_b_14L刹微塵數諸世界中兜率天子皆得無生
003_0726_b_15L法忍第二益者無量無邊阿僧祇欲界
003_0726_b_16L諸天子皆發菩提心第三益者六欲天
003_0726_b_17L一切天女捨女爲7) [24] [75] 得不退轉菩提
003_0726_b_18L之心
第四益者於中四益一攝位益
003_0726_b_19L謂聞普賢迴向善根悉得十地諸力莊嚴
003_0726_b_20L具足三昧迴向善根者案離世間品五
003_0726_b_21L十五云菩薩有十善根迴向一以我善
003_0726_b_22L根同善智識願如是成就莫別成就
003_0726_b_23L同心三同行四同善根五同平等
003_0726_b_24L同念七同淸淨八同所住九同成滿

003_0726_c_01L열째, 무너지지 않음을 같게 하는 것이다.”146)하나하나의 상하의 문은 모두 첫 문장에 갖추어져 있다.
『소疏』에서 “자기의 선근을 가지고 선우를 따라 같게 하기 때문이다. 처음과 둘째는 마음을 같게 하는 것이다.『약소』에서는 처음과 둘째는 서원의 마음을 같게 하는 것이다.147) 다음 하나는 실천을 같게 하는 것이다. 다음 둘은 수행을 같게 하는 것이다.동일하게 현상과 원리를 수행함이다.148) 다음 둘은 다스림을 같게 하는 것이다. 즉 올바른 생각으로 능히 다스림이 현전하면, 청정하여 다스려질 대상이 이미 없어진다.올바른 생각은 능히 다스림이며, 청정은 다스려짐 자체이기 때문이다.149) 다음 하나는 계위를 같게 하는 것이다. 뒤의 둘은 증득을 같게 하는 것이다.”150)라고 하였다.뒤 둘은 동일하게 구경을 얻는다.151)
‘여러 힘으로 장엄한다’라는 것은 명확히 해석한 문장이 없다. 그러나 『소疏』 16권에서 “무진의 다라니력을 얻음을 ‘여러 힘을 성취한다’라고 한다. 일승에 의거하면 10신 이후의 보살이 이것이며, 삼승에 의거하면 8지 이상이 이 법을 능히 받을 수 있다.”152)라고 하였다. 이것에 준하여 명백히 알 수 있다. ‘10지의 여러 힘’이라고 함은 삼승문에 맞추어 주는 것에 입각한 설이다.

㉯ 넷째 이익 가운데 둘째부터 넷째 이익

둘째는 실천이 성취되는 이익이다. 즉 중생계 등이 선한 몸ㆍ입ㆍ뜻의 업을 모두 성취하는 것이다.153) 즉 위의 법계 삼업을 참회하는 글이 이것이다.154)
셋째는 장애를 소멸하는 이익이다. 즉 8만 4천 번뇌업장을 소멸하고 모두 청정을 얻는다. 즉 아래 문장에서 향을 공양함에 대해서 듣고 8만 4천 번뇌 등이 소멸하는 것이 이것을 말한다.155)
넷째는 부처님을 보는 이익(見佛益)이다. 백천만억 나유타 불찰 미진수의 칠보 연화를 보는 것이니, 하나하나의 꽃 위에 모두 보살이 결가부좌를 하고 대광명을 발하는 것을 보고, 그 광명 가운데 중생계 등의 모든 부처님이 결가부좌하여 구제해야 할 대상을 위하여 설법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156) 그러나 총결하는 문장에서 “오히려 이구삼매의 약간은 아직 능히 보지 못한다.”157)라고 하였다. 『간정기』 가운데 삼매익을 열었는데, 다섯 번째 이익에 해당한다.158)

다) 지옥에서 이익을 얻는 부류와 이익의 종류

이들 네 부류159)는 모두 지옥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제4 부류(當機天子)가 지옥에서 이익을 얻는 부류이다.

지옥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에 의거하면 두 가지 이익이 있다. 즉 당왕幢王의 광명으로 이익을 얻고,160) 천계진찰의 지옥 중생이 청정광명으로 이익을 얻는다.161)

003_0726_c_01L十同不壞一一上下文
具如初文
疏云以已 [76] 善根順同
003_0726_c_02L善友故云也初二同心略疏初二
同願心
次一同
003_0726_c_03L次二同修同修事
理也
8) [25] [77] 同治謂正念能
003_0726_c_04L治現前淸淨所治已離正念能治故
淸淨所治故
次一
003_0726_c_05L同位後二同證後二同
得究竟
諸力莊嚴者無明
003_0726_c_06L釋文然疏十六云得無盡陀羅尼力
003_0726_c_07L成就諸力若約一乘十信已去菩薩是
003_0726_c_08L若三乘八地已上能受此法准此明
003_0726_c_09L十地諸力者是約寄門說
二行成益
003_0726_c_10L謂皆悉成就衆生界等善身口意業卽上
003_0726_c_11L法界三業懺悔文是也三滅障益卽滅
003_0726_c_12L一切障皆得淸淨卽下文中聞供養香
003_0726_c_13L八萬四千煩惱等滅是謂之也四見佛
003_0726_c_14L見百千萬億那由佗佛刹微塵數七
003_0726_c_15L寶蓮華一一華上皆見菩薩結跏趺坐
003_0726_c_16L放大光明彼光明中見衆生界等諸佛
003_0726_c_17L結跏趺坐隨所應度而爲說法然總結
003_0726_c_18L文云猶未能見離三昧 [78] 之少分也刊定
003_0726_c_19L記中開三昧益爲五益也
此等四類
003_0726_c_20L皆地獄得益人不然第四類是地獄
003_0726_c_21L得益人也
約地獄得益人有二益
003_0726_c_22L幢王光所益千界塵刹地獄衆生淸淨
003_0726_c_23L「中」上疑脫「此」「細」更勘「梵」疑「寶」
003_0726_c_24L
「在」疑「有」「兜」下疑脫「率」「成」疑
003_0726_c_25L「威」
「界」疑「男」「次」下疑脫「二」

003_0727_a_01L그 지옥 중생은 60억 나유타 불찰 미진수 세계의 지옥 중생 가운데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두 부류에 공통된다.

이 두 부류의 천자는 마땅한 근기인으로서 앞의 세 부류에는 속하지 않는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옛날에 보법을 견문하여 금강종을 심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사나불의 광명을 만나 궁극적인 원인의 계위를 빨리 이해한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 두 부류가 일승의 근기이다.

만약 그렇다면, 첫 세 부류는 어느 계위의 이익을 얻는가?
『소疏』에서 “이 두 부류는 10지 이전의 이익이다.”162)라고 하였다.

② 천상의 이익 가운데 전통익傳通益

전통익의 종류

(두 번째 천상의 이익 가운데) 둘째의 전하고 유통하는 이익(傳通益)에 다시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꽃의 이익(華益)이니, 널리 모든 부처를 보기 때문이다. 둘째는 향의 이익(香益)이니, 널리 번뇌의 장애를 소멸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산개의 이익(蓋益)이니, 널리 대행大行을 성취하기 때문이다.163)
생각하건대 바른 근기인 도솔천자 하나하나의 모공에 중생계와 같이 많은 묘한 꽃구름을 화작化作하여 사나불을 공양한다. 즉 이 천자는 향화를 뿌려 하나하나의 꽃 가운데 모든 여래를 본다. 그때 저 향운은 무량 불찰 미진수 세계의 중생을 널리 훈습한다. 그 향을 입는 자는 향화를 심어 8만 4천 번뇌 업장을 모두 다 제거하고 자재광명의 선근을 완전히 갖춘다. 산개를 보는 자는 한 항하사 전륜성왕이 얻은 선근을 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164)

나) 전통익의 실천

왜 이 이익을 전통익이라고 이름하며, 다함없는 실천을 성취하는가?165)
처음에 천자가 올린 꽃ㆍ향ㆍ산개를 본 후 뒤에 얻는 이익이 무진하다. 생각하건대 천자가 스스로 공양한 하나하나의 꽃 가운데 모든 여래를 보고, 천자가 공양한 향으로 장애를 없애는 이익을 수많은 중생이 얻는 것이다. 여러 중생 등이 천자가 공양한 구름같이 많은 산개를 보고 1항사나 되는 윤왕의 선근을 심는다. 이 윤왕은 만다라자재광명을 놓는다. 모든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 모두 보살의 10지를 얻는다. 이 윤왕은 또 주라마니광명을 놓는 것이니, 보는 자는 모두 보살의 10지를 얻고 모두 무량지광명을 얻고, 16근을 얻어

003_0727_a_01L光所益六十億那由佗佛刹塵數界地
003_0727_a_02L獄衆生之中何類通二類
此二類
003_0727_a_03L天子名當機人非初三類此二類人
003_0727_a_04L昔見聞普法殖金剛種故今値舍那光
003_0727_a_05L速解窮因位餘人不然故此二類爲一
003_0727_a_06L乘機
若爾初三類得何地益疏云
003_0727_a_07L此二地前益
第二傳通益更有三種
003_0727_a_08L華益廣見諸佛故一香益廣滅惑障故
003_0727_a_09L三蓋益廣成大行故意正機兜率天子
003_0727_a_10L一一毛孔化作衆生界等妙華香蓋雲 [79]
003_0727_a_11L養舍那佛卽此天子散香花已一一花
003_0727_a_12L中見諸如來時彼香雲普熏無量佛刹
003_0727_a_13L塵數世界衆生其蒙香者八萬四千煩
003_0727_a_14L惱業障皆悉除滅具足自在光明善根
003_0727_a_15L若見蓋者種一恒河沙轉輪聖王所殖善
003_0727_a_16L廣如經說
何此益名傳通成無
003_0727_a_17L盡行見初天子所供芲 [80] 香蓋後後得
003_0727_a_18L益無盡天子自所供一一華中見諸
003_0727_a_19L如來塵數衆生蒙天子所供香得滅障
003_0727_a_20L有諸衆生見此天子所供蓋雲種一
003_0727_a_21L恒沙輪王善根此輪王放曼陀羅自在
003_0727_a_22L有諸衆生遇此光明皆得菩薩十地
003_0727_a_23L此輪王亦放周羅摩尼光見者皆得菩
003_0727_a_24L薩十地悉得無量智光得十六根成就

003_0727_b_01L청정한 힘의 삼매를 성취한다.166) 이것은 곧 하나가 양상을 따를 때 하나의 광명력으로 전하고 유통하여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실천을 성취하는 것이다. 나머지 양상의 광명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소疏』에서 “이로써 그 반대를 생각해 보건대 총괄적으로 여래의 하나의 소상 가운데는 하나의 광명의 힘이 있다. 하나의 광명이 이미 그러하니 나머지 광명도 역시 그러하다. 하나의 소상이 이미 그러하니 나머지 소상 역시 그러하다. 소상이 그러하니 그 나머지 대상해 등은 불가설불가설이다. 문장의 의미는 이와 같으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등의 중생이 모두 선업을 수행한다’라고 말한 것은 과거 전생에 일승을 견문하였음을 밝히는 것이니, 보현의 선근을 닦았기 때문이다.”167)라고 하였다.

다) 1항사 윤왕의 계위168)

저 1항사 윤왕위라는 것은 어떤 계위인가?
10지위이다. 그러므로 『소疏』에서 “이 천자의 모공에서 나온 향기 나는 천개 등은 다시 중생을 이익되게 하여 윤왕을 얻게 하므로 또한 10지이다.”169)라고 하였다.

라) 1항사 윤왕으로 명칭한 이유

무엇 때문에 2 등 항사 윤왕이라 하지 않고 1항사라고 하는가?
『소疏』에서 “처음에 이 법계의 법문이라는 산개를 밝혔다. 그러므로 1항사 윤왕의 선근을 얻는 것이다. 모두 백정보망 등과 같다. 이것은 세계성 가운데 만 명의 아들 이후의 윤왕이다. 애견선혜왕 등과 같으니, 금륜왕의 천 명의 아들들이 다스리는 4주洲 등이 아니다.170) 즉 1항사의 백정보망윤왕의 선근이니, 잠시 이 산개를 보고 단박에 성취하는 것이다.”171)라고 하였다.
5. 선재동자

1) 명칭 해석

셋째, 선재동자이다. 선재는 이 복에 대한 응보로 인하여 재보의 상이 일어난 것이므로 선재란 이름을 세운 것이다. 즉 선은 원인이고, 재물은 과보이다. 또 도리에 순응하는 재보를 얻었으므로 선재라 한다. 또 태어났을 때 보물이 나타남을 재라 하며, 뒤에 그 행덕을 찬탄하는 것을 선이라 한다. 선현善現과 공생空生 등172)과 같다. 또 『지도론』에서 ‘상제常啼(항상 움)’173)의 이름 등을 해석했으니, 이에 준하여 알 수 있다.
둘째는174) 그 덕행을 찬탄하는 가운데 10구는 5대가 된다. 첫째, 일찍이 부처에게 공양하여 선근을 심었다. 이 선재는 일찍이 숙세에 해탈분175)의 선근을 심었음을 밝혔다. 둘째, 즐겁고 청정한 마음으로 친구와 가까이한다.

003_0727_b_01L淨力三昧此卽一隨相一光明力傳通
003_0727_b_02L成如是無量行餘相光亦然
故疏云
003_0727_b_03L以此却推總是如來一小相中一光明力
003_0727_b_04L一光旣爾餘光亦然一小相旣爾
003_0727_b_05L小相亦然小相旣爾其餘大相海等
003_0727_b_06L不可說不可說也文意如此思之
003_0727_b_07L [81] [82] 衆生悉先修善者明宿有見聞一
003_0727_b_08L乘修普賢善根故
其一恒沙輪王
003_0727_b_09L位者是何位十地位故疏云此天
003_0727_b_10L子毛孔所出香華蓋等復益衆生令得
003_0727_b_11L輪王亦是十地
何不言二等恒沙輪
003_0727_b_12L言一恒沙疏云初明見此法界
003_0727_b_13L法門之蓋故得一恒沙輪王善根皆如
003_0727_b_14L白淨寶網等此是世界性中萬子已去
003_0727_b_15L輪王如愛見善慧王等非是金輪千子
003_0727_b_16L王四洲等謂一恒沙箇白淨寶網輪王
003_0727_b_17L善根蹔見此蓋頓得成就

003_0727_b_18L
第三善財童子言善財者由此福報
003_0727_b_19L寶相起立善財名卽善爲因財爲果
003_0727_b_20L得此順道之財故曰善財又生時寶現
003_0727_b_21L爲財後歎其行德爲善如善現空生等
003_0727_b_22L又智論釋常啼名等准此可知二歎其
003_0727_b_23L德行中十句爲五對初曾供佛種善
003_0727_b_24L此善財已曾宿種解脫分善根也二樂

003_0727_c_01L셋째, 삼업을 수행한다. 넷째, 결과로서의 법을 구하여 수행한다. 다섯째, 마음이 청정하며 실천을 갖춘다. 마음에 다른 생각이 없기 때문에 청정함이 공과 같다. 또한 번뇌 등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소疏』 18권의 문장이다.176)

이 동자는 왕자인가, 장자의 아들인가?

『경』에서는 단지 5백 동자라고만 했다. 즉 선재 등은 그 부모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집에 칠보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자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177) 궁전의 안이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자는 아니다. 비록 왕자는 아니지만, 이미 칠보를 감득했기 때문에 『공목장』 등에서 염부제의 뛰어난 몸이라고 한 것이다.178)

2) 선지식을 찾는 의미

무엇 때문에 이 동자는 선지식을 찾아 구하고, 다른 사람은 찾지 않는가?
이 사람의 과거 선근 때문에 지금 선우를 찾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이 동자는 이미 과거의 제불을 공양하여 선근을 깊이 심었으며, 항상 청정을 즐기고 선지식과 가까이하며, 몸ㆍ뜻ㆍ말을 청정히 하고 보살도를 수행하며, 일체지를 구한다.”179) 라고 하였다.

문수가 그를 가르쳐 선우를 만나게 하였다. 그 ‘의도(所表)’는 무엇인가?
『소疏』에서 일곱 가지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첫째, 궤범이 되기 때문이다. 즉 법을 구하고, 법을 설하는 궤범이다. 둘째, 실천의 조건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즉 실천을 성취하는 핵심은 좋은 친구가 우선이 되지 않음이 없다. 셋째, 교만한 견해(見慢)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선재 등의 신학 보살이 스스로의 교만 및 집착하는 견해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넷째, 실천을 성취함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선우의 실천 및 구법행을 구하기 때문이다.180) 다섯째, 계위에 맞추어 드러내기 때문이다. 널리 선우에 맞추어 믿음 등의 다섯 계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깊고 넓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불법의 깊고 넓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계위의 궁극에 달했더라도 ‘나는 오직 하나의 법문만을 안다’181)라고 말한다. 선재는 만일 계위가 지에 이른다 해도 ‘나는 아직 무엇이 보살행 등인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일곱째,182) 연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선재와 선우는 동일하게 하나의 연기를 성립한다. 능입과 소입에 두 가지 양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우 이외에 선재가 없기 때문에

003_0727_c_01L淨近友三三業修四求修果法五心淨
003_0727_c_02L具行以心無異念故淨如空又無現煩
003_0727_c_03L惱等故疏十八
文也
此童子爲王子爲長者
003_0727_c_04L經文但言有五百童子謂善財等
003_0727_c_05L明其父母然准其宅內有七大寶藏
003_0727_c_06L可長者子不言宮內故非王子也雖非
003_0727_c_07L王子旣感得七寶故孔目等說閻浮提
003_0727_c_08L勝身
何此童子求善知識餘人不
003_0727_c_09L此人過去善根故今亦求善友
003_0727_c_10L故經云此童子者已曾供養過去諸佛
003_0727_c_11L深種善根常樂淸淨近善知識身口意
003_0727_c_12L淨修菩薩道求一切智
文殊敎之
003_0727_c_13L求善友若有所表疏說七故一爲
003_0727_c_14L軌範故謂求法說法軌範二行緣勝故
003_0727_c_15L謂成行之要莫不以良友爲先三破見
003_0727_c_16L [83] 令善財等新學菩薩破自憍慢及
003_0727_c_17L1) [26] [84] 見故四寄成行故卽求善友行及
003_0727_c_18L求法行五寄顯位故廣寄善友顯信等
003_0727_c_19L五位六顯深廣故表佛法深廣故
003_0727_c_20L位極稱我唯知此一法門善財設位至
003_0727_c_21L登位 [85] 我未知云何菩薩行等 [86] 顯緣
003_0727_c_22L起故善財與善友同成一緣起以能入
003_0727_c_23L所入無二相故是故無善友之外善財
003_0727_c_24L「報」疑「執」

003_0728_a_01L일이 곧 일체임을 드러내어 선재가 모든 계위를 편력함을 밝힌다. 선재 이외에 선우가 없으므로 일체가 다름 아닌 하나임을 드러내어 여러 계위가 성취됨이 선재에 있음을 밝힌다.”183)

3) 선우의 의미

선우의 의미는 무엇인가?
184) (통론하면) 여기에는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사람이다. 둘째, 법이다. 셋째, 합하여 변설함이다. 첫째 가운데는 여섯이 있다. 첫째, 어떤 사람이 있어 능히 괴로움으로부터 구제해도 선을 수행할 것을 권하지 않으면 참 선우가 아니다. 둘째, 비록 세속의 선행을 닦도록 권하여 악도를 면해도, 세간을 벗어남을 지향할 것을 권하지 않으면 참된 선우가 아니다. 셋째, 비록 이승의 실천185)을 닦는다 해도 보살도를 권하지 않으면 참된 선우가 아니다. 넷째, 비록 보살도를 수행하여도 오히려 상이 있는 선(相善186) )이 존재하면 참된 선우가 아니다. 다섯째, 반드시 중생이 무상행을 수행할 것을 권하는 것이 참된 선우이다. 여섯째, 반드시 보현행법을 갖추도록 권하는 것이 다름 아닌 구경의 선지식이다.
둘째, 법이다. 선지식에 역시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천법이다. 둘째는 이승법이다. 셋째는 초교의 법이다. 넷째는 종교의 법이다. 다섯째는 돈교의 법이다. 여섯째는 원교의 법이다. 이와 같은 법으로써 바른 실천을 완성하기 때문에 선우라고 이름한다.
셋째, 합하여 변설함이다. 그 가운데 여섯 가지가 있다. 위의 육위법에 각 하나의 문을 설한다. 이로써 조건에 부합하는 근기(機緣)에게 법을 주는 것으로, 즉 인人과 법을 쌍으로 변설한다.
둘째는 별도로 아래 문장의 여러 선지식을 변설하면,187) 모두 앞의 세 가지를 갖춘다. 이 세 가지 위(사람ㆍ법ㆍ합) 가운데 각각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소疏』 18권에서 설한 바와 같다. 그러나 여러 지식의 숫자에 대해서는 다른 설이 있다. 『소疏』 18권과 『강목』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188)

4) 선재동자와 삼생

이 동자에 근거하여 나누는 삼생은 무엇인가?
원교의 사상에 의하면 세 가지 계위가 있다. 첫째, 견문위이다. 즉 이것은 선재의 전생신(次前生身189))이다. 이와 같은 보현법을 견문하기 때문이며, 저 해탈분의 선근을 성취하기 때문이다.190) 그러므로 덕을 찬탄하는 문에서 “이 동자는 이미 과거 제불에게 공양하여 깊이 선근을 심었다.”191)라고 하였다.
또 「성기품」37권의 문장에서는, “무엇을 보살이 여래 있는 곳에서 견문하고, 공경하고, 공양하여 심은 선근을 지견한다고 하는가? 이 보살은 선근이 모두 다 헛되지 않으며,

003_0728_a_01L彰一卽一切明善財歷諸位也無善
003_0728_a_02L財之外善友故顯一切卽一明多位成
003_0728_a_03L在於善財也
善友義云何此有
003_0728_a_04L三類一人二法三合辨初中有六
003_0728_a_05L一有人雖能濟苦不勸修善非眞善友
003_0728_a_06L二雖勸修世善免於惡道不勸向出世
003_0728_a_07L亦非眞友三雖修二行非勸菩薩道 [87]
003_0728_a_08L雖修菩薩道猶存相善 [88] 五要勸衆生
003_0728_a_09L無相行爲眞善友六要勸令具普賢行
003_0728_a_10L方究竟眞善知識
二法善知識亦有
003_0728_a_11L六重一人天法二二乘法三初敎法
003_0728_a_12L四終敎法五頓敎法六圓敎法依此
003_0728_a_13L等法成正行故名爲善友
三合辨中
003_0728_a_14L有六重於上六位法各說一門以授機
003_0728_a_15L緣則人法雙辨也
二別辨下文諸善知
003_0728_a_16L皆具前三此三位中各具三義如疏
003_0728_a_17L十八然諸知識數有異說如疏十八本
003_0728_a_18L及綱 [89] 目說
約此童子分三生何
003_0728_a_19L圓敎宗有其三位一見聞位卽是善財
003_0728_a_20L次前生身見聞如此普賢法故成彼解
003_0728_a_21L脫分善根故故歎德文云此童子者
003_0728_a_22L曾供養過去諸佛深種善根又性起品
003_0728_a_23L三十
七文
何菩薩知見 [90] 如來所見聞敬供
003_0728_a_24L所種善根此菩薩是善根皆悉不虛

003_0728_b_01L공덕이 끝이 없고, 일체의 애착을 떠나 끝내 해탈한다. 과보가 헛되지 않고 모든 서원을 만족하여 일체 유위법 가운데 끝내 다함이 없다. 능히 무위에 수순하는 것으로 지혜로 삼아 모든 부처의 지혜를 미래의 끝까지 일으킨다.”192)라고 하였다. 그 부처의 경지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광기』와 같다.193)
둘째, 해행생이다. 즉 단박에 이와 같은 오위의 실천법을 수행하니, 선재가 이 생에 성취하여 보현위에 이르는 것이 이것이다.『소疏』의 문이다.194) 또 도솔천자 등이 악도로부터 나온 후 일생에, 즉 이구삼매의 전에 이르러 열 가지 눈과 열 가지 귀 등의 경계를 얻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소상품」의 설과 같다.『오교장』의 문장이다.195)
셋째, 증과해생이다.196) 즉 인위의 궁극에서 결과의 바다와 완전히 같아지는 것이다. 선재의 다음 생이 이것이다.『소疏』의 문장이다.197) 즉 『경』에서 미륵보살이 선재에게 고하길, “내가 미래세에 깨달음을 성취할 때 네가 마땅히 나를 볼 것이니라.”198)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렇게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의 전후에 근거하여 두 계위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위는 단지 원인이 원만하고, 결과는 뒤의 계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나를 볼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오교장』의 문장이다.199)
살펴보건대 바로 『경』 제60권에 “내가 저 가운데서 수명이 다한 후에 하생하여 정각을 성취할 때 너와 문수가 함께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200)라고 말한 문장이다. 이에 대한 해석에 세 가지가 있다.
“혹자는, 내가 미래에 성불할 때 또한 이 화엄을 설한다. 저 때에 역시 문수와 선재에게 설해지는 법이 있기 때문에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혹자는, 내가 성불할 때 너와 문수도 함께 와서 나를 도와 법의 교화를 선양한다고 하였다. 혹자는, 법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즉 선재는 무엇 때문에 위에서는 부처님 회상에서 함께 여러 선지식을 구하고 부처를 구하지 않았는가 하면, 선재의 금생은 원인을 닦는 몸이고, 결과를 아직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처가 있는 곳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결과를 성취하면 원인과 멀어지기 때문에 마땅히 부처를 볼 것이라고 설한 것이라 하였다.”201)
이 세 사람은 문장의 양상에 의해 삼생을 나누었지만, 이 삼생은 법이 생함에 의거하였다는 점에서 세 사람이 말한 것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향상문답』 하권에서202) “또한 『공목장』에서 『화엄경』 가운데

003_0728_b_01L德無盡離一切愛究竟解脫果報不虛
003_0728_b_02L滿足諸願於一切有爲法中不可窮盡
003_0728_b_03L而能隨順無爲智慧起諸佛智究竟未
003_0728_b_04L來際其諸佛地具如廣記
二解行生
003_0728_b_05L頓修如此五位行法如善財此生所成
003_0728_b_06L至普賢位者是
又兜率天子等從惡道
003_0728_b_07L出已一生卽至 [91] 離垢三昧前得十眼十
003_0728_b_08L耳等境界廣如小相品說五敎
三證果
003_0728_b_09L海生卽因位窮終1) [27] [92] 同果海善財來
003_0728_b_10L生是也
謂經文如彌勒告善財言我
003_0728_b_11L當來世成覺時汝當見我如是等當知
003_0728_b_12L此約因果前後分二位故是故前位
003_0728_b_13L是因圓果在後位故說當見我五敎

003_0728_b_14L正經文第六十云我於彼中壽終下生
003_0728_b_15L成正覺時汝及文殊俱得見我釋有三
003_0728_b_16L一云我當來成佛時亦說此華嚴
003_0728_b_17L彼時亦有文殊善財所說之法故云也
003_0728_b_18L二云我成佛時汝與文殊俱來助我宣
003_0728_b_19L揚法化三爲表法謂善財何故上於佛
003_0728_b_20L [93] 求諸善知識2) [28] [94] 佛者以善財此
003_0728_b_21L是修因之身未成果故不至佛所
003_0728_b_22L謂不求但成果隔因故說當見佛此三
003_0728_b_23L是就文相分三生若依法生三人皆
003_0728_b_24L
故香象問答下云又孔目云華嚴

003_0728_c_01L성불하는 것에 다섯이 있다. 그 가운데 보장엄 동자 등 두 사람은 현신성불 등이니, 무엇으로 그 양상을 알 수 있는가? 보장엄 동자는 즉 현신 가운데 부처를 만나 법을 듣고 믿고 이해하며, 자분과 승진분의 위계에서 여러 삼매문 등으로, 즉 믿음이 가득 찬 부처를 성취함을 알 수 있다. 또 도솔천자 등은 이미 현재의 몸 가운데 이구삼매의 일부와 나아가 모든 공덕 등을 속히 얻으므로 현재의 몸 그대로 성불함을 알 수 있다. 선재동자는 이미 현재의 몸으로 보현보살 지식에 이르렀기에 미륵 지식이 ‘당래세에 내가 성불할 때 네가 나를 볼 것’이라고 했으니, 그러므로 다음 생 가운데 성불함을 알 수 있다. 이것 등은 단지 문장의 양상에 근거한 것이다. 견문 등의 삼위에 근거하여 삼생이 되므로 이와 같이 설했을 뿐이다.
진실에 근거하면 모두 함께 동일하여 다만 일신 가운데 성불하는 것이다. 일신이라 함은 법성신으로 별도의 분단신 등은 없다.203) 수연하여 성불을 나타내면 곧 삼승교와 동일하다. 만약 일승교의 진실한 법에 의거하면, 매 찰나찰나에 부처 등을 성취한다. 앞의 설 등과 같다.”204)라고 하였다.『소疏』 20권의 문이다.205)

보장엄 동자, 도솔천자의 후생을 과해생이라고 하는가?
『요기』의 설과 같다.206)

5) 세 사람의 계위

위의 세 사람은 모두 결정적으로 어느 계위를 갖춘 보살인가?
『소疏』18권에서 “이 선재는 어느 계위의 보살인가? 『경』에서는 정확한 단정이 없으므로 계위의 양상을 밝히기 어렵다. 혹자는 지상 보살이라고 판단하여 뒤에 발심한다 해도 네 가지 발심 가운데 뒤의 두 계위에 해당한다고 한다.207) 또 『논』 가운데 세 가지 발심 내의 증발심이다.208) 혹자는 이것은 실보實報인 범부인데, 단지 신심이 있어 능히 선우를 구한다고 한다. 지금은 마땅히 선취인 믿음(信) 가운데의 실천인에 준하여 해석한다.”209)라고 하였다.

003_0728_c_01L經中成佛有五中普莊嚴童子等3) [29]
003_0728_c_02L現身成佛等云何知其相普莊嚴童
003_0728_c_03L卽現身中値佛聞法得信解自分勝
003_0728_c_04L進位法 [95] 三昧門等卽知成信滿佛等
003_0728_c_05L兜率天子等旣現身中得離垢三昧少分
003_0728_c_06L4) [30] [96] 諸功德等故知現身成佛善財童
003_0728_c_07L旣現身至普賢菩薩知識而彌勒知
003_0728_c_08L識言當來我成佛時汝見我故知後生
003_0728_c_09L中成佛此等只約文相據見聞等三位
003_0728_c_10L爲三生故作如是說耳約實共皆同
003_0728_c_11L但以一身中成佛言一身者法性身
003_0728_c_12L別分段等身若隨緣現成佛卽同三乘
003_0728_c_13L敎也約一乘敎實法念念每成佛等5) [31] [97]
003_0728_c_14L前說疏二
十文
普莊嚴童子兜率天子 [98]
003_0728_c_15L後生名果海生答如要記說
上三
003_0728_c_16L人具定何位菩薩
此善財是何
003_0728_c_17L位菩薩經無正斷位相難明或有
003_0728_c_18L爲地上菩薩6) [32] [99] 發心卽是四種發
003_0728_c_19L心中後二位也又是論中三發心內
003_0728_c_20L發心也或有說是實報凡夫但有信心
003_0728_c_21L能求善友今更准釋應善趣信 [100] 中行人
003_0728_c_22L「僣」疑「潜」「不」下入「至」見「二」一作
003_0728_c_23L「三」
「還」更勘「如」作「加」(誤植矣{編})
003_0728_c_24L{甲}
「後」疑「復」

003_0729_a_01L
도솔천자ㆍ보장엄 동자는 10주 보살이기 때문에 『공목장』 제2권에서도 똑같이 현신성불을 설했다. ‘보장엄 동자도 역시 선취’라고 함은 아직 초발심에 들어가기 전으로 10신위이기 때문이다. 하권에서는 “삼현 이전으로 단지 선취라고 이름할 뿐 종성이라고 이름하지 않는다.”210)라고 하였다.

10신 만심의 초발심위에 이르지 않고서 어떻게 오위를 얻을 수 있는가?
믿음의 위에 나아가 이미 일승을 이해했기 때문에 원인의 계위로서의 구경일 뿐이다. 『소疏』 3권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211)

선재가 믿음의 계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12) 『소疏』의 아래 문장에서 “만약 그렇다면 선재는 결정적으로 어느 계위에 해당하는가? 어느 위인가를 말하자면, 믿음의 계위에 있으면 신위이고, 머무는 계위에 있으면 주위이다. 하나의 몸으로써 오위를 역방한다.”213)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계위를 얻음에 따라 저 계위를 설한다. 진실된 도리(理實)로써 말하자면, 위의 『소疏』의 문과 같이 신위의 보살이다.
6. 용녀

1) 용녀의 계위

넷째, 용녀이다. 자은의 『법화소』에서 “『화엄경』에서 설한 10신 보살의 팔상성도에 대해서는, 지금 혹자는 이것을 설하여 대중에게 권하여 보인 것이라고 하였다. 『가야산정경』에서 정광淨光천자가 발심이 몇 종류인가를 물었다. 문수가 네 가지라고 대답하였다. 첫째는 증발심이다. 초지에 증입한다. 둘째는 행발심이다. 다음의 6지이다. 셋째는 불퇴발심이다. 8지, 9지이다. 넷째는 일생보처발심이다. 제10지이다. 지금 이 용녀는, 혹자는 네 번째 발심으로 변해서 용녀가 되었다고 한다. 어려서 법화를 능히 공부하여 빨리 보리에 이르렀다. 대중에게 권하고 장려하였으나 실제가 아니다.”214)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10주 보살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몸 그대로 성불하였기 때문이다. 이 여자는 또한 전전생이 견문위이고, 바로 앞이 해행생이며, 증과생이 지금 생이다. 즉 이 경문에 따르면 용궁에서 문수의 가르침을 받아 일승을 이해하였다. “지적이 문수에게 물었다. ‘많은 중생들이 부지런히 정진하고, 이 경대로 수행하면 빨리 부처가 됩니까?’ 문수가 대답했다. ‘사갈라 용녀가 있어……(중략)……찰나경에 보리심을 발해 불퇴전을 얻었다.……(중략)……

003_0729_a_01L兜率天子普莊嚴童子十住菩薩故
003_0729_a_02L目第二同說現身成佛普嚴亦言善趣
003_0729_a_03L未入初發心以前十信位故下卷云
003_0729_a_04L三賢之前但名善趣不名種姓
未至
003_0729_a_05L十信滿心初發心位何得五位
003_0729_a_06L信位已解一乘故因位究竟耳如疏三
003_0729_a_07L
善財是信位何疏下文云若爾
003_0729_a_08L善財定是何位謂是何位以在信是信
003_0729_a_09L在住是住位一身曆 [101] 五位故隨得說
003_0729_a_10L彼位理實如上疏文是信位菩薩
第四
003_0729_a_11L龍女慈恩法華疏云華嚴經說十信菩
003_0729_a_12L薩八相成道今或說此勸示衆人伽耶
003_0729_a_13L山頂經淨光天子問有幾發心文殊答
003_0729_a_14L有四一證 [102] 發心證入初地二行發心
003_0729_a_15L六地三不退發心八九地四一生補處
003_0729_a_16L發心1) [33] 謂第十地今此龍女或卽第四
003_0729_a_17L發心化爲龍女小而能學法華速得菩
003_0729_a_18L勸奬衆人非爲實爾然今意十住菩
003_0729_a_19L何以故現身成佛故此女亦前前
003_0729_a_20L生見聞位次前生彼解行生2)證果生
003_0729_a_21L此生 [34] 卽此3) [35] 經文龍宮被文殊敎解一
003_0729_a_22L智積問文殊云頗有衆生勤加精進
003_0729_a_23L修行此經速得佛不文殊答云有娑竭
003_0729_a_24L羅龍女乃至於刹那頃發菩提心得不

003_0729_b_01L남방 세계에 가서 등정각을 얻는다.’”215)라고 한 것은 증과해생이다.

2) 용녀의 현신성불

① 현생 성불

이 사람이 불과를 현생에 얻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십현장」에서 “지금 부처가 된다는 것은, 다만 첫 번째 견문으로부터 제2생에 이르러 해행을 성취하며, 해행위 최후의 마음에 인위가 궁극에 가득 찬 자는 제3생에 구경, 자재, 원융의 결과를 바로 얻는다. 이 원인의 체는 결과에 의해 성취되기 때문이다. 다만 원인의 계위가 가득 찬 자는 승진의 위계로 나아가 결과의 바다와 일체가 된다. 이것은 증득한 경계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용녀와 보장엄 동자, 선재동자, 도솔천자 등이 제3생 가운데 곧 저 결과를 얻어냈다는 의미와 같다.”216)라고 하였다.

② 번뇌를 남긴 몸

무엇 때문에 이 여자를 번뇌를 남긴 몸이라고 하는가?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번뇌를 남겨 용녀가 되었다.

어떻게 지전 보살이기 때문에 번뇌를 남겼다고 알 수 있는가?
『오교장』 하권에서 “그러나 저 지전 삼현위 가운데 첫 번째 계위에 이른 후에, 즉 이승지에는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번뇌장에 대해서 자재롭게 능히 끊으며, 고의로 남겨 끊지 않으니, 소지장 등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217)라고 하였다.
제3편 교설의 차별을 드러내는 문(顯敎差別門)
『공목장』 제3권에 의거하여 여섯 교설의 차별을 드러낸다.218)
제1장 인천승의 성불
첫째, 인천승의 교설이다. 여기에 세 가지 성불이 있다. 한 부처가 삼악도로부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몸을 저들과 다르게 나타낸다. 삼악도 밖에서 바로 불신을 성취함이니, 부처님이 검은 코끼리 다리와 몸을 나타냄 등과 같다.219) 『신라기新羅記』에서 “부처님이 검은 코끼리 다리와 몸을 나타내어 지옥의 끝(地獄邊)에 무애를 행함을 보이므로 그것을 기뻐하여 선근을 심는다.”220)라고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한 부처가 삼악도로부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중략)……즉 불신을 성취한다.”라는 등을 말한 것이다.221)
둘째는 인간 세상의 중생을 이끌기 위하여 부처님의 몸이 존재함을 나타낸 것이니, 부처님이 제위 장자를 위해 수목신의 몸을 나타낸 것 등과 같다.222) 『신라기』에서 “부처님이 처음 성도하여 강이 합쳐진(合河) 강가223)의 나무 아래서 16척신224)을 보이셨고,

003_0729_b_01L退轉乃至往南方世界成等正覺者
003_0729_b_02L果海生
何知此人生得佛果十玄
003_0729_b_03L今言作佛者但初從 [103] 見聞已去乃至
003_0729_b_04L第二生卽成解行解行終心因位窮滿
003_0729_b_05L於第三生卽得彼究竟自在圓融果
003_0729_b_06L由此因體依果成故但因位 [104] 滿者
003_0729_b_07L [105] 4) [36] [106] 於果海中也爲是證境界故
003_0729_b_08L可說耳 [107] 此如龍女及普莊嚴童子善財
003_0729_b_09L童子 [108] 兜率天子等於三生中卽剋 [109] 彼果
003_0729_b_10L
何此女名留惑身爲利生故
003_0729_b_11L留煩惱成龍女
何知地前菩薩故留
003_0729_b_12L煩惱五敎下卷云然彼地前三賢位
003_0729_b_13L中初旣卽 [110] 不墮二乘地故於煩惱障
003_0729_b_14L在能斷留故不斷爲除智障等故

003_0729_b_15L第三顯敎差別門
依孔目第三顯六敎
003_0729_b_16L差別

003_0729_b_17L第一人天乘敎
此有三成佛一佛爲救
003_0729_b_18L三惡道現身異彼三惡道外卽成佛身
003_0729_b_19L如佛現黑象脚等新羅記云佛現黑象
003_0729_b_20L脚身見地獄邊無礙行故欣之植善根
003_0729_b_21L約此義故云一佛爲救三惡道乃至卽
003_0729_b_22L成佛身等也
二爲引人趣現在佛身
003_0729_b_23L佛爲提謂長者現樹神身等記云佛初
003_0729_b_24L成道其合河邊樹下示十六尺身及現

003_0729_c_01L상호를 완전하게 갖추신 몸을 나타내어 모든 상인 등이 이 불신을 보고, 그것을 신성시하고 받들 때 선근을 심는 사람이 되니, 부처님은 이런 사람을 이끌기 위해 성불의 몸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하였다.225)
셋째는 인천을 이끌기 위해 그 성스러운 몸 등을 나타냄과 같다. 부처님이 성인임을 알고 공양하여 세간의 복을 성취하는 것이 이것이다.226) 『신라기』에서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 계실 적에 범천이 알고 부처님을 공양하였다. 그러나 부처는 7일 동안 침묵하였다. 이에 더욱더 범천이 설법을 청하였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제이칠일에 설법하실 때 많은 사람이 선근을 심었다. 따라서 ‘인천을 이끌기 위해……(중략)……사람 등이 부처님이 성인임을 아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등으로 말한 것이다.
제2장 이승의 성불
1. 지地에 근거함
둘째, 이승 가운데 일곱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지地에 근거한다. 즉 삼계의 9지, 10지, 11지 등 외에 저 부처의 지위를 성취한다.227) 9지라는 것은 사선四禪, 사무색 및 욕계지이다. 10지라는 것은 초미지정初未至定과 중간선中間禪228)과 사선과 사무색이다. 11지라는 것은 위의 10지에 욕계를 더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론』 20권에서 “삼해탈문229)은 9지 가운데 있다. 사선과 미도지선未到地禪ㆍ중간선ㆍ삼무색이니, 번뇌가 없는 성품(無漏性)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삼해탈은 오직 무루이며, 삼삼매230)는 (유루ㆍ무루) 두 가지에 공통한다. 그러므로 삼매와 해탈이라는 두 가지 명칭이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교설은 11지에 존재하니, 6지사근본四根本ㆍ초미지初未至ㆍ중간선中間禪이다.와 삼무색과 욕계 및 유정지有頂地이다. 만약 유루有漏이면 11지에 매여 있지만, 무루는 매여 있지 않다.”231)라고 하였다. 23권에서는 “이 무상상無常想이라는 것은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여 무루라면 9지에 있고 유루라면 11지에 있다.”232)라고 하였다.
2. 계위에 근거함
둘째, 계위에 근거한다. 견도ㆍ수도의 배움 이외에 곧 저 부처를 성취한다.233) 『신라기』에서 “부처님이 나무 아래에 있을 때, 육행의 등지도等智道234)

003_0729_c_01L相好具足身諸商人等見此佛身爲神
003_0729_c_02L之奉時 [111] 根人爲引是人現成佛身也

003_0729_c_03L
三引 [112] 人天爲現其聖身等5) [37] [113] 佛是聖
003_0729_c_04L興供養成世間福者是記云佛在樹下
003_0729_c_05L梵天知供養佛而佛嘿然七日6) [38]
003_0729_c_06L梵天請說法故佛第二七日說法時
003_0729_c_07L人種善根故云爲引人天乃至如人等
003_0729_c_08L知佛是聖等也

003_0729_c_09L[第二二乘成佛]
第二二乘中有其七義一約地謂三界
003_0729_c_10L九地十地十一地等外卽成其佛言九
003_0729_c_11L地者四禪四無色及欲界地十地者
003_0729_c_12L是初未至中間禪四禪四無色十一地
003_0729_c_13L上十加欲界故智論二十云三解
003_0729_c_14L脫門在九地中四禪未到地禪中間
003_0729_c_15L無色無漏性故或有說者三脫唯無漏
003_0729_c_16L三三昧通二以是故三昧解脫有二名
003_0729_c_17L如是說者在十一地六地四根本初未
中間禪也

003_0729_c_18L無色欲界及有頂地若有漏者繫在十
003_0729_c_19L一地無漏者不繫二十三云是無常
003_0729_c_20L [114] 亦有漏亦無漏 [115] 在九地若有漏在十
003_0729_c_21L一地
二約位見修學已外卽學 [116] 成其佛
003_0729_c_22L記云佛在樹下六行等智通 [117] 7) [39]
003_0729_c_23L「心」疑剩「證果生此生」疑「此生證果生」
003_0729_c_24L
「即」疑剩「役」疑「沒」「如」孔目作
003_0729_c_25L「知」
「更」疑「受」「悲」疑「非」次同

003_0730_a_01L비상지 이전 아래 삼공처(三無色)에서 번뇌를 함께 조복하며, 견도의 무루를 일으킬 때 앞 단계에서 조복할 수혹을 함께 끊고,235) 비상지 9품의 수혹을 끊는 구무간, 구해탈로 견도에서 끊어야 할 번뇌를 끊고 사제의 도리를 증득하는 것이 제16심인 견도이다.236) 비상지 가운데 제8 해탈 이전은 모두 수도이다. 오직 제9 해탈만이 무학도이다.”라고 하였다.
3. 실천에 근거함
셋째는 실천에 근거한다. 유학有學을 벗어나서 무학의 몸 가운데, 곧 부처를 현성한다.237)
4. 보살행에 근거함

1) 33심

넷째는 보살행에 근거한다. 33심 이후, 곧 저 부처를 성취한다.238) 『신라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33심은 팔인ㆍ팔지ㆍ구무간ㆍ팔해탈이다. 앞에서 계위에 근거하여 풀이할 때 끝난 이야기이다. 무엇 때문에 다시 풀이하는가?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의미에 근거하여 성불을 밝혔다. 여기서는 단지 석가보살이 성불하는 법칙을 밝히기 때문에 다시 풀이한 것이다.계위의 마음으로 계위를 얻는 시간의 의미를 같이 밝혔지만, 계위의 마음은 이미 열고 닫음이 같지 않다. 이러한 차별을 밝히기 위하여 별도로 풀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가?
보살은 단지 33심을 수행하며, 다른 것을 닦아 성불하는 의미는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여타와 공통되지 않는다. 성문의 경우 일정하지 않다. 즉 차례를 밟아 나가는 사람은 178념 가운데 성불하는 사람이며, 오직 견도ㆍ수도ㆍ무학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견도와 수도에 입각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다.지금 이 『공목장』에서 설한 견도ㆍ수도는 보살에 근거한 설이다. 보살은 그렇지 않다. 오직 33심이기 때문에 여타와 공통되지 않는다.

2) 178념

차례를 밟아 나가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178념을 수행하여 성불하는가?239)
9지 가운데 하나하나의 지에 9품 번뇌가 있고, 여기에 무간도와 해탈도를 갖춘다. 그러므로 162념이 된다. 이 가운데 팔인과 팔지를 더하기 때문에 178념이다.

이와 같은 178념이 견도와 수도에 포함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견도에 팔인과 팔지가 포함되기 때문에 178념이 있다.

003_0730_a_01L地以還下三空煩惱俱伏起見道無漏
003_0730_a_02L前所伏修惑俱斷也斷*悲想地九品
003_0730_a_03L修惑之九無間九解脫斷見所斷煩惱
003_0730_a_04L證四諦理爲第十六心見道也*悲想
003_0730_a_05L地第八解脫以還俱爲修道也唯第九
003_0730_a_06L解脫爲無學道也
三者約行離學已外
003_0730_a_07L無學身中卽現成佛
四者約菩薩行
003_0730_a_08L十三心外卽成其佛記云三十三心
003_0730_a_09L八忍八智九無間八解脫前約位釋時
003_0730_a_10L何故更釋耶前約通一切人義
003_0730_a_11L明成佛也此唯明釋迦菩薩成佛軌則
003_0730_a_12L故更別釋也雖位心同明時義位心旣已
合不同明此差別故別釋也

003_0730_a_13L何故如是菩薩唯是修三十三心
003_0730_a_14L無修餘成佛義故此不共於餘也聲聞
003_0730_a_15L不定謂次第人百七十八念中有成佛
003_0730_a_16L之人而唯無出見修無學故約見修
003_0730_a_17L一切人也今此孔目所說見
約菩薩說也
菩薩不爾
003_0730_a_18L三十三心故唯不共於餘中也
次第
003_0730_a_19L何故修百七十八念成佛九地中
003_0730_a_20L一一地有九品煩惱具無間解脫故得
003_0730_a_21L百六十二念此中加八忍八智故有百
003_0730_a_22L七十八念
1)如是念攝於見修云何答
003_0730_a_23L見道攝八忍八智 [40] [118] 故有百七十八念 [119]
003_0730_a_24L是念攝於見修云何見道攝八忍八

003_0730_b_01L9와 9를 곱하면 81품 번뇌 가운데 제81품의 번뇌를 끊는 해탈이 무학도이다. 나머지는 모두 수도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견도와 수도 이외에서 곧 성불한다’라는 것은 함께 일체 가운데 통하는 것이다.
5. 시간에 근거함
다섯째, 시간에 근거한다. 소승의 60겁은 3승지 외가 되며, 그때, 곧 부처를 성취한다.240) 『공목장』 4권에서 “소승은 60겁으로 대겁아승지를 삼으며, 소승은 이 3승지를 지나 부처가 될 수 있다.”241)라고 하였다. 『신라기』에서 “소승 가운데의 아승지는 60겁 가운데 제52겁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오직 1겁이 아승지이다. 이것은 80소겁 가운데 공겁의 20을 제외하고 60겁이라 한 것이다. 이 60겁 가운데 제53 소겁이 아승지이다. 64겁 가운데 1겁이란 반 겁이다. 그러므로 총 80소겁이 1겁이다. ‘총 64겁이 1겁이다’242)라는 것은, 이것은 대겁이므로 더 공부해야 할 것이다.”243)라고 하였다.

1) 『오교장』설

『오교장』 하권에서 “상근기는 부처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3아승지겁을 정확히 채워야 한다. 이 가운데 겁수는 화재겁과 수재겁244) 등의 1겁을 취해서 1수로 한다. 그 1겁이 10회 반복된 것을 2수로 한다. 이와 같이 계속해서 제60수에 달하는 것이 1아승지이다. 이것에 의거해서 3아승지를 헤아리는 것이다.”245)라고 하였다.

2) 원효의 『겁의』

원효 스님의 『겁의劫義』에서는 “제8의 성문장을 밝히는 가운데 20풍겁 가운데 하나하나의 겁을 따라 제1수로 삼는다. 이 1수가 10회에 이른 것을 제2수로 한다. 즉 제2를 수로 하여 10회에 이르러 제3수가 되는데, 즉 백 겁에 해당한다. 백 겁은 이 3수로써 1로 삼는다. 이 1수로부터 10수에 이르는 것이 제4수이다. 즉 천 겁에 해당한다. 즉 이 4수로써 10회에 이르러 제5수가 된다. 즉 만 겁에 해당한다. 즉 이 제5수로 1수로 하여 이 1수로부터 10회에 이르는 것이 제6수이다. 즉 억 겁에 해당한다. 이 제6수를 1수로 하여

003_0730_b_01L智也九九八十一品煩惱中斷第八十
003_0730_b_02L一品煩惱之解脫爲無學道也餘皆攝
003_0730_b_03L於修道故見修已外卽成佛者並通一
003_0730_b_04L切中也
五者約時小乘六十劫成三僧
003_0730_b_05L祗外卽成孔目四云小乘以六十劫
003_0730_b_06L大劫阿僧祗小乘經此三僧祗得作佛
003_0730_b_07L其佛 [120] 記云小乘中阿僧祇有六十劫中
003_0730_b_08L約第五十二劫故唯是一劫爲阿僧祇
003_0730_b_09L此於八十小劫中除空劫二十云六
003_0730_b_10L十劫也此六十劫中第五十三小劫
003_0730_b_11L阿僧祇也六十四劫中一劫者是半劫
003_0730_b_12L總八十小劫爲一劫也總六十四劫
003_0730_b_13L爲一劫者是大劫更可學
五敎下卷
003_0730_b_14L上根者謂佛定滿三僧祇劫此中劫數
003_0730_b_15L取水火等一劫爲一數十个一 [121] 爲第二
003_0730_b_16L如是展轉至第六十爲一阿僧祇
003_0730_b_17L此以數三 [122] 僧祇也
曉劫義云第八明聲
003_0730_b_18L聞藏中二十風劫中隨一一劫爲第一
003_0730_b_19L從此一數至十爲第二數卽以第二
003_0730_b_20L爲數至十爲第三數卽當百劫卽以三
003_0730_b_21L數爲一從此一數至十爲第四數卽當
003_0730_b_22L千劫卽以第四從一爲數至十爲第五數
003_0730_b_23L卽當萬劫卽以第五數爲一數從此一
003_0730_b_24L數至十爲第六數卽當億劫以第六數

003_0730_c_01L1수로부터 10에 이르러 제7수가 된다. 즉 10억 겁에 해당한다. 이 제7수를 1수로 하여 이 1수가 10에 이르러 제8수가 된다. 즉 우리말로 백억이다. 범어로는 구지俱胝라 한다. 이와 같이 계속해서 제60대수에 이르러 1대승지겁이라고 한다. 이 3단의 수이기 때문에 대승지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구사론』에서 ‘80중대겁, 대겁삼무수’라고 한다.”246)라고 하였다.

3) 3아승지와 무수

제8에서 말하는 3대승지를 무엇 때문에 무수無數라고 말하는가?
수법의 계산으로 한다면 그 수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무수 등이라고 한다. 이것에 준하면 뒤의 두 스승(법장과 원효)의 설이 해당한다. 『공목장』의 “60겁이 성립한다.”247)라는 등은 60겁으로 1승지를 성립한다. 뒤의 2승지, 3승지도 역시 그러하다. 위 『신라기』의 문장은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파사론』과 『구사론』 등의 논서를 참조하여야 할 것이다.

4) 성불의 시기

대체로 성불의 수행에는 몇 가지 시기가 있는가?
하권에서 “또한 『파사론』 등에 의하면, 보살의 성불에는 두 종류의 몸이 있다. 첫째는 법신이다. 둘째는 생신이다. 법신은, 즉 계신 등 오분신을 말한다. 이 법신을 수행하여 얻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네 종류의 시간이 있다. 첫째, 3아승지겁 동안 번뇌를 지닌 사바라밀248)을 수행하는 시기이다. 둘째, 백 겁 동안 뛰어난 모습을 갖추려는 행위를 실천하는 시기이다. 셋째, 출가하고 고행하여 선정을 닦는 시기이다. 넷째,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성취하는 시기이다. 생신生身이라 함은 다만 백 겁 동안 뛰어난 모습을 갖추는 행위를 실천하여 최후의 몸에 가야성의 정반왕가에 태어나는 응보를 얻은 몸으로 마가다국에서 깨달음에 이른 그 몸을 말한다.”249)라고 하였다.
『신라기』에 아래와 같은 문답이 있다.

3아승지겁 동안에 번뇌가 있는 사바라밀을 수행할 때 어떤 몸으로 수행하는가?
견도의 무루를 발하기 이전 모두 범부의 몸을 갖추었을 때의 일이다. 과거시인

003_0730_c_01L爲一數從一數至十爲第六數卽當十
003_0730_c_02L億劫以第六數爲一數從一數至十爲
003_0730_c_03L第七數卽當十億劫 [123] 以第七數爲一數
003_0730_c_04L從一數至十爲第八數卽當此間百億
003_0730_c_05L梵名爲俱胝如此轉數至第六十大數
003_0730_c_06L [124] 一大僧祇劫以此三段數故云大僧
003_0730_c_07L祇劫故俱舍云八十中大劫大劫三無
003_0730_c_08L
第八云三大僧祇何故云無數乎
003_0730_c_09L若以在數法算不可知其數故云無
003_0730_c_10L數等准此後二師說孔目六十劫成等
003_0730_c_11L六十劫成一僧祇後二亦然上記
003_0730_c_12L文未見所以可勘婆娑俱舍等論

003_0730_c_13L凡成佛修行有幾何時下卷云
003_0730_c_14L依婆娑等菩薩成佛有二身一法身
003_0730_c_15L生身法身者謂戒 [125] 等五分修此法身
003_0730_c_16L有四時 [126] 僧祇劫修有漏四波羅蜜
003_0730_c_17L於百劫修相好業時出家苦行
003_0730_c_18L修禪定時菩提樹下成正覺時生身
003_0730_c_19L但百劫修相好業於最後身伽耶城
003_0730_c_20L淨飯王家受生報身於摩伽陀國而登
003_0730_c_21L覺道
記云三僧祇劫中修有漏四
003_0730_c_22L波羅蜜時在何身修耶未發見道
003_0730_c_23L無漏以前皆有凡夫身具事也過去時
003_0730_c_24L「如是…智」十七字疑衍文{甲}

003_0731_a_01L3아승지겁 가운데 번뇌가 있는 사바라밀을 수행하고, 다음 백 겁 가운데 특별히 응보를 받을 수 있게 뛰어난 모습을 갖추는 행위를 실천하고, 다음 생에 도솔천 가운데 천 겁 동안 부처의 위의를 배운다. 그리고 나서 왕궁 가운데 태어나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삼고, 다음으로 태자가 되어 알라라 카라마 외도를 스승으로 삼고 올바른 삼매(正定)를 배운 후에 다음으로 보리수 아래 앉아 인시寅時에 육행의 등지도等智道로써 삼계 가운데 무소유처250) 이전의 수혹을 함께 조복하고, 견도 무루를 일으킬 때 이전에 조복시킨 번뇌를 모두 끊어도 네 가지 결과 중 세 가지 결과를 얻을 수 없었지만, 이를 넘어 세 번째 아나함과를 얻고서는 동시에 비상지 9품의 수혹을 끊어 아라한과를 얻으니, 인시에 바로 성도할 수 있다.

5) 견도에서의 번뇌 조복

육행의 등지도等智道로써는 무엇 때문에 견도에서 끊어야 할 번뇌를 조복하지 못하는가?
위를 기뻐하고 아래를 싫어하며 세속사를 조건으로 하는 도리이기 때문에 견도에서 끊어야 할 번뇌인 장제障諦를 조복하지 못한 것이나, 깨달음의 방편(覺道方便)251)을 드러내어 견도에서 끊어야 할 번뇌를 조복한다. 또한 뛰어난 것을 좋아하고, 열등한 도를 싫어한다. 즉 생사는 열등하고, 또한 도는 뛰어나므로 여기에 도리가 있는 것이다. 이 도리를 조건으로 할 때 견도의 장애인 번뇌를 조복한다.

견도 무루는 어떤 계위에 의해서 일어나는가?
진견도眞見道를 일으킨다면, 소승과 대승이 다 같이 제4 변제정252)에 의해 일어난다. 상견도相見道를 일으킨다면, 『지지론』에서 말하기를, “삼의와 오의로 생한다.”253)라고 하였다. 삼이라는 것은, 지제현관智諦現觀정체지ㆍ변지제현관遍智諦現觀후득지ㆍ구경현관究竟現觀이다. 다섯 가지에 의해 생한다는 것은 네 가지 근본선과 미지정未至定이니, 그러므로 상견도는 다섯 가지 삼매(五定)에 의하여 일어난다. 소승에서 말하기를, “중간선을 더해 여섯 가지 삼매에 의거하여 상견도를 일으킨다.”라고 했다. 총설하면, 비록 별설이 있다 해도, 혜해탈인慧解脫人은 삼매의 장애를 끊지 못하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결국 근본정에 의하여 견도를 일으킨다.

6) 『본업경』과 소승의 수행 차이

『본업경』에서 말하는 백 겁 동안 뛰어난 상호를 실천함과

003_0731_a_01L三僧祇劫中修有漏四波羅蜜次百劫
003_0731_a_02L修別報相好業次生兜率天中千劫
003_0731_a_03L學佛威儀然後生王宮中摩耶夫人爲
003_0731_a_04L次成太子1) [41] [127] [128] 伽藍外道爲師
003_0731_a_05L習正定次座於樹下寅時以六行等智
003_0731_a_06L而三界中無所有處以還修惑俱伏
003_0731_a_07L起見道無流時前所伏煩惱俱斷不得
003_0731_a_08L初三果越得第三那含果耶同時斷*悲
003_0731_a_09L想地九品修惑得阿羅果寅時卽得成
003_0731_a_10L
[129] 六行等智道何故不伏見所斷惑
003_0731_a_11L欣上厭下緣世俗事之道故不伏障
003_0731_a_12L諦之見所斷煩惱顯覺道方便得伏見
003_0731_a_13L所斷煩惱又欣勝厭劣道謂生死是
003_0731_a_14L亦道勝於此之有理緣此理時伏見
003_0731_a_15L道障煩惱
見道無漏者依何位起
003_0731_a_16L若起眞見道者小乘大乘並依第四邊
003_0731_a_17L際定起也若起相見道者地持論云
003_0731_a_18L依五生所言三者智諦現觀正諦 [130]
遍智
003_0731_a_19L諦現觀後得
究竟現觀言依五生者
003_0731_a_20L根本禪未至定是故相見道依五定起
003_0731_a_21L小乘云加中間禪依六定起相見道也
003_0731_a_22L總說雖然若別說者慧解脫人不斷定
003_0731_a_23L無知故是此人方依根本定起見道
003_0731_a_24L
本業2) [42] 百劫修相好業

003_0731_b_01L소승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 『경』의 뜻은 소승을 깨우치려 하였기 때문이며, 그대가 3아승지 가운데 번뇌가 있는 사바라밀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나는 10지 이전이 1아승지이고, 초지부터 7지까지가 2아승지이며, 8지부터 제10지까지가 3아승지라고 본다. 이 3아승지를 채워 금강유정이 지금 앞에 드러날 때 바야흐로 백 겁, 천 겁, 항사겁 가운데 뛰어난 모습을 갖추기 위한 행위를 수행한 것이다.
6. 생사에 근거함
여섯째는 생사에 근거한다. 최후 분단신 가운데 그 부처를 성취하는 것이다.254) 하권에서 “만약 소승에 의거하면, 다만 분단신만이 있어 구경위에 이른다. 부처 역시 동일하니, 이것은 실제 응보로서의 몸이고, 화신이 아니다.”255)라고 하였다.
7. 소승 12주에 의거함

1) 『오교장』의 견해

일곱째는 소승의 12주에 의거한다. 최상인 제12주에 아라한이 머무르니, 즉 부처와 동일하다.256) 하권에서 “여러 교설 가운데 모두 세 가지 의의로써 간략히 설명한다. 첫째는 계위의 양상을 밝힌다. 둘째는 불퇴를 변설한다. 셋째는 실천의 양상을 밝힌다. 첫째, 소승에 의하면 네 가지 계위가 있다. 방편위ㆍ견도위ㆍ수도위ㆍ구경위이다. 또 소승의 12주를 구경위로 삼는다. 불퇴는, 이 가운데서 수행하여 인위忍位에 이르러 불퇴를 얻기 때문이다. 그 실천의 양상은 또한 저 여러 논에서 설한 바와 같다.”257)라고 하였다.

2) 소승의 견불

『종남문답』258)에서 “소승교에 의하면 색신불의 32상 등을 본다. 즉 이것은 실제로 보는 것으로 안근과 경계가 동시에 상응하여 실제의 색상을 보는 것을 견불이라고 한다.”259)라고 하였다. “소승불은 두 가지를 갖춘다. 첫째는 생신이고, 둘째는 화신불이다.”260) “둘 다 수행하여 생한 것으로 자비 사랑의 실천으로 성불하며, 일시에 단지 보살 한 사람만의 자비와 사랑의 실천으로써 33심에 의해서 차례대로 부처가 된다. 나머지 것을 보는 행자는 부처가 되지 못하며, 두 가지 열반을 얻어 무여열반에 주한다.”261) “단지 한 사람만의 성불일 뿐 나머지 사람의 성불은 전후가 같지 않다. 유정을 교화하면 뒤에 부처를 이룬다. 시방불이 없기 때문이다.”262)
“세계가 성립하고 무너지는 대겁과

003_0731_b_01L小乘有何別此經意者爲曉小乘
003_0731_b_02L汝三僧祇中修有漏四波羅蜜 [131]
003_0731_b_03L地前爲一僧祇初地至七地爲二僧
003_0731_b_04L八地至第十地爲三僧祇滿此三僧
003_0731_b_05L祇後金剛喩定現在前時方得百劫千
003_0731_b_06L劫恒沙劫中修相好業也
六者約生死
003_0731_b_07L最後分段身上卽成其佛下卷云
003_0731_b_08L依小乘但有分段身至究竟位佛亦同
003_0731_b_09L是實非化
七者依小乘十二住
003_0731_b_10L十二最上阿羅漢住則是同佛下卷云
003_0731_b_11L於諸敎中皆以三義略示一明位相
003_0731_b_12L [132] 不退三明行相初者依小乘有四位
003_0731_b_13L謂方便見修及究竟又說小乘十二住
003_0731_b_14L以爲究竟 [133] 退者此中修行至忍位
003_0731_b_15L不退故也其行相亦如彼諸論說
終南
003_0731_b_16L問答云若依小乘敎見色身佛三十二
003_0731_b_17L相等卽是實見眼根與境同時相應
003_0731_b_18L實色相名爲見佛小乘佛有二一生身
003_0731_b_19L二化身佛並修生慈悲愛行成也於一
003_0731_b_20L時中但菩薩一人慈悲愛行依三十三
003_0731_b_21L次第作佛餘見行者並不作佛伹得
003_0731_b_22L二種涅槃住無餘也但一人成佛若餘
003_0731_b_23L人成佛前後不同若敎化有情後時作
003_0731_b_24L由無十方佛故
世界成壞大劫滿

003_0731_c_01L3아승지의 시간을 채우고 결정적으로 성불한다.”263) “일념성불이 없다는 것은 타방불이 없는 것이다. 만일 있다면, 즉 이 세계의 부처가 저 세계에 가서 변화한 것이다.”264)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는 이 섬부주의 실제 부처의 어머니이다. 다른 세계에는 실제로 없다. 그곳의 부처는 화신이기 때문이다.”265) “그러므로 불보살 등은 모든 감각기관을 서로 만들지만, 단지 변화하여 성립한 것으로 본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266) “한 사람은 한 세계에 의거하며, 일심에 의거하여 차례대로 성불한다. 원인과 결과가 서로 일치하는 것은 직접 지각으로만 알 수 있다. 다만 번뇌를 끊는 원인과 결과에 다함과 다하지 못함의 차이가 있다.”267) “모든 보리분법은 총체적으로 응보를 받는 실천이다. 발심의 처음으로부터 차례로 수행하여 성불하기를 원할 때 10지의 마지막 마음에 이르기까지 백 겁 동안 뛰어난 모습을 갖추는 특별한 행위를 별도로 수행함을 밝힌다. 이것은 실제의 몸으로써 변화된 몸이 아니다.”268) “다만 보리분의 행위를 닦는 것으로 물러남이 있음을 없앤 자는 모두 다 성불하며 성불하지 못함이 없다.”269) “사람의 모습으로 부처를 삼으며, 일체지 등은, 즉 법에 속한다.”270)

3) 소승의 종성

『오교장』 하권에서 “만약 소승에 의하면, 종성에 여섯 가지가 있다. 즉 쉽게 후퇴하는 자, 후퇴를 두려워하여 괴로워하는 자, 얻은 법을 지키는 자, 얻은 법에 안주하는 자, 노력하여 수행하는 자, 부동의 경지에 달한 자이다. 부동의 경지에 달한 근기에는 3품이 있다. 상ㆍ중ㆍ하 차례대로 삼승인에 해당한다. 비록 이 가운데 부처 한 사람만이 종성이 있다고 설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저 대보리성이 아니다. 부처의 공덕에서 미래세가 다할 때까지 큰 작용을 일으킨다는 등을 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 가운데는 부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체중생은 모두 대보리성이 있다고 설하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271)라고 하였다.
제3장 초교회심교문初敎迴心敎門에 근거함
1. 지위에 근거함
“셋째는 초교회심교문에 근거하여 여덟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지위地位에 근거한 것이다. 즉 건혜지(마른 지혜의 지위) 등 10지이며, 제10지 가운데 바로 부처를 성취한다. 동일하게 10지에서 성불하는 이유는 부처 아래 동일한 인위가 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설하였다.”272) 『기』에서 “『법경론』273)에서 ‘소승의 마음을 이끌어 대승의 실천을 열어 발하여

003_0731_c_01L三僧祇定得成佛無一念成佛者無他
003_0731_c_02L方佛假使有者卽是此方佛往彼變化
003_0731_c_03L佛母摩耶此瞻部洲是實佛母餘世界
003_0731_c_04L卽無實也爲佛是化故佛菩薩等
003_0731_c_05L根相作但變化成非改性也一人依一
003_0731_c_06L人依 [134] 一界依一心次第成佛因果相稱
003_0731_c_07L現量可知但斷惑因果盡不盡別諸菩
003_0731_c_08L提分總報業從發心初始次第修明臨
003_0731_c_09L欲成佛十地終心百劫別修相好別業
003_0731_c_10L是實非化但修菩提分業除有退者
003_0731_c_11L悉成佛無不成佛以人相爲佛一切智
003_0731_c_12L卽屬於法
五敎下卷云若依小乘種
003_0731_c_13L性有六 [135] 謂退昇進不動不動性
003_0731_c_14L中有三品上中下如次三乘人也雖於
003_0731_c_15L此中說佛一人有種性然非是彼大菩
003_0731_c_16L提性以於佛功德不說盡未來際起大
003_0731_c_17L用等故是故當知於此敎中除佛一
003_0731_c_18L餘一切衆生皆不說有大菩提性

003_0731_c_19L第三約初迴心敎門
有其八義一約地
003_0731_c_20L謂乾慧地等十地第十地中卽成佛
003_0731_c_21L所以同十地成佛者爲佛下同因位故
003_0731_c_22L作此說記云法鏡論云引小心開發
003_0731_c_23L「我」疑「何」「經」疑「疏」

003_0732_a_01L대승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소승의 이해에 대해 집착(解守)하는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 해석하면 건혜지 등의 10지를 건립하는 뜻은, 소승의 이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대승 가운데 들어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1) 『법경론』의 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건혜지 등이라고 했는가?
공에 대해 아직 깨달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을 이롭게 하지 못해 건혜지(마른 지혜의 지위)라고 한다. 말하자면 건혜지 단계에서의 공의 이치는, 진액은 물과 같다는 정도이다.274) 그러므로 공의 이치를 깨달은 후 드디어 지혜의 마음이 증장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성지性地라 함은 공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이해로써 번뇌를 누르고, 이해가 굳건하여 고침이 없기 때문에 성지라고 한다. 셋째, 팔인지八人地라 함은, 진실과 유사의 사제법을 이해하기 때문에, 사제 가운데 하나하나의 제에 두 사람이 되기 때문에 팔인八忍이 되어 팔인지가 된다. 하나하나의 제 가운데 이인二忍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욕계 고제 가운데 고인이며, 그 위 두 세계 고제 가운데는 고류인苦類忍이 있다. 나머지 삼제 가운데도 이에 준한다. 팔인八忍이라 함은 모두 무간無間이다. 이 팔인에 인용된 ‘팔’이라 함은, 이것은 해탈이다. 넷째, 견지見地라 함은, 팔인으로 인해서 여덟 지를 얻고, 제16심을 원만히 하기 때문에 사제의 평등한 도리를 보며 견지라고 한다. 다섯째, 박지薄地라고 함은, 견지로부터 수도의 지혜를 일으켜 욕계 9품의 수혹 가운데 첫 6품을 끊고, 뒤의 3품을 그치므로 박지라고 한다. 여섯째, 이욕지離欲地라 함은 뒤의 3품의 수혹을 모두 없애기 때문에 욕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욕지라고 한다. 일곱째, 이판지已辦地라 함은, 삼계의 번뇌(結)가 끝내 다하므로 아라한과를 얻는다. 그러므로 이판지라고 한다. 뒤의 3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법경론』의 설명을 정리한 것이다.

2) 혜경慧鏡 대덕이 설명하는 『법경론』설

(1) 삼승의 10지

건혜지 등의 10지는 삼승이 공통으로 수행하는 10지이다. 무엇 때문에 이 장(『공목장』)275)에서는 초교회심교 가운데 건혜 등의 10지를 설했으며, 『오십요문답』 가운데서는 처음에는 육도의 원인과 결과를 세웠고, 다음에는 우법이승愚法二乘276)을 밝혔으며, 다음은 소승 및 회심 소승불을 밝혔고, 다음은 일승 오위의 만심불滿心佛을 밝혔고,

003_0732_a_01L大行1) [43] 怖向忘遣解守也解云立乾
003_0732_a_02L慧等十地意令捨小乘解守入大乘中
003_0732_a_03L故也
若爾何故爲乾慧地等耶
003_0732_a_04L未成空覺解故不令利爲乾慧地謂空
003_0732_a_05L津液如水故覺空方得智心增長也

003_0732_a_06L
二性地者由解空故以此解伏結
003_0732_a_07L堅不改故云性地也三八人地者由解
003_0732_a_08L眞似四諦故四諦中一一諦二人故
003_0732_a_09L八忍爲八人地一一諦中二忍故欲界
003_0732_a_10L苦諦中苦忍上二界苦諦中苦類忍
003_0732_a_11L三諦中准之也八忍者希 [136] 無間也此八
003_0732_a_12L忍所引八者是解脫也四見地者由此
003_0732_a_13L八忍故得八地滿第十六心故見四諦
003_0732_a_14L平等理是故云見地也五薄地者
003_0732_a_15L見地起修道智斷欲界九品修惑中初
003_0732_a_16L六品止後三品故云薄地六離欲地
003_0732_a_17L後三品修惑皆盡故不還欲界是故
003_0732_a_18L云離欲地也七已辦地者三界結2) [44]
003_0732_a_19L盡故得阿羅漢果是故云已辦 [137] 地也
003_0732_a_20L三地可知也上來括法鏡論意也

003_0732_a_21L乾慧等十地三乘共行十地何故此章
003_0732_a_22L初敎迴心敎中說乾慧十地五十要
003_0732_a_23L問答中初立六道因果次明愚法二乘
003_0732_a_24L次明小乘及迴心小乘佛次明一乘五

003_0732_b_01L건혜 등의 10지를 세웠으며, 마지막에 직진 보살을 밝히는 17문 차제를 세웠는가?277)
혜경慧鏡278) 대덕이 “이 삼승이 함께 실천하는 10지를 건립하는 근본은 법름法懍 스님이 서술한 것이다. 저 스님은 계위에 기준함으로써 세 번 반복하여 해석하였다.

① 삼승별교의 10지

즉 첫째는 삼승별교의 10지를 해석했다. 둘째는 별교의 10지를 모아 통교위通敎位 가운데 들어가게 하였다.279) 셋째는 통교의 10지를 통종위通宗位 가운데 들어가게 하였다. 초위初位에 의한다면 외범의 끝에 본성의 공함이 계위에 가까워(性空隣位280) ) 그 가운데 건혜지를 설한다.이것은 오정심관五停心觀281)이 될 수 있다. 성지性地라 함은, 즉 총상념처와 별상념처 및 사선근과 더불어 합하여 오방편위로 성지가 된다. 이 오방편 중 총별의 이념처 가운데 동일하게 본성의 공함을 관찰하며, 후에 사선근 가운데서 법공을 분별하여 관찰한다. 그러므로 총별 이념처를 합하여 하나로 한다. 팔인지八人地라 함은 고인위苦忍位에서 세운다. 견지見地라 함은 수다원의 견도위에서 세운다. 박지薄地라 함은 사다함위에서 세운다. 이욕지離欲地라 함은 아나함위에서 세운다. 이판지已辦地라 함은 아라한위에서 세운다. 이 칠지는 성문승 가운데 벽지불지에 속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보살위라 함은 이 별교 가운데 30심의 계위를 설하지 않고, 다만 10주에 근거하는 것이다. 4보살 가운데 초주를 신발의주新發意住라고 한다. 제2주부터 제6주까지는 이름하여 구행도지久行道地라고 한다. 제7주에서 제9주까지는 아비발치지阿毘跋致地282)라고 이름한다. 제10주를 이름하여 일생보처위라고 한다. 나아가 등각인 금강심283)은 설하지 않고 제10주로써 마지막으로 한다. 이것은 즉 장륙의 색상을 가진 실재의 성불이다.

② 통교의 10지

두 번째이다. 별교의 부처는, 즉 자취를 가린 부처(覆跡之佛)이다.284) 그러므로 물러나 통교 10신에 있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10신에 들어가게 한다.

003_0732_b_01L位滿心佛然立乾慧等十地最後立直
003_0732_b_02L進菩薩十七門次第慧鏡德云 [138]
003_0732_b_03L建立三乘共行十地之本當是法標 [139]
003_0732_b_04L所述彼師准位以三反釋
謂一釋三乘
003_0732_b_05L別敎十地二會別敎十地入通敎位中
003_0732_b_06L三會通敎十地入通宗位中若依初位
003_0732_b_07L外凡終性空隣位中說乾慧地此五停
心觀
003_0732_b_08L
性地者謂總想念處別想念處及與
003_0732_b_09L善四根 [140] 合此五方便位爲性地也此五
003_0732_b_10L方便中總別二念處中同觀性空後四
003_0732_b_11L善根中辨觀法空故合總別二念處
003_0732_b_12L一也八人地者立於苦忍位也見地
003_0732_b_13L立於須陀洹見道位也薄地者
003_0732_b_14L於斯陀含位也離欲地者立於阿那含
003_0732_b_15L位也已辦地者立阿羅漢位此七地
003_0732_b_16L屬聲聞乘中辟支佛地者可知也
003_0732_b_17L菩薩位者此別敎中未說三十心位
003_0732_b_18L約十住唯於四菩薩謂初住名爲新發
003_0732_b_19L意住第二住至第六住名爲久行道地
003_0732_b_20L第七住至第九住名爲阿毗跋致地
003_0732_b_21L十住名爲一生補處位更等覺金剛心
003_0732_b_22L不說以第十住爲終也此卽是丈六色
003_0732_b_23L相之實佛成也
第二番者別敎之佛
003_0732_b_24L是覆跡之佛故退在通敎十信令入十

003_0732_c_01L이승의 오과285)는 10신 전에 있어 10신위 가운데 들어가게 한다.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승의 오과는 10주에 두지 않고 오히려 10신 초심에 있는가?
『인왕경』에서 “습종의 초심 가운데 이미 이승을 넘어섰다.”286)라고 한다. 그러므로 10주에 두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방편 가운데 설해진 성지와 건혜지는 함께 물러나 10신 앞의 범부위 가운데 안주한다. 이와 같이 별교의 10지를 모아 통교에 들어가도록 하고자 하여 삼승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10지를 세웠다. 이미 이것은 통교이니, 드디어 불도의 장원長遠함을 알게 되어서 다시 삼현과 10지를 지나도록 수행하여 드디어 성불한다. 그러므로 통교의 10신은, 즉 5품 제자五品弟子 계위287)에 있다. 즉 성문 사과와 벽지불과를 합하여 오과라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보살의 사위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습종은 새로 발심하는 보살이 되고, 성종과 도종은 구행도久行道이며, 초지 이상은 함께 아비발치이고, 등각은 일생보처이며, 묘각은 보살이다.

통교로 별교를 모으고, 별교위를 빌려서 통교에 준한 것이 이러하다. 직접 통교로부터 삼승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10지를 설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승의 오과를 모아 통교 10신위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건혜지라고 한다. 삼현위는 성지이다. 초지에 들어가는 가까운 방편이 팔인지八忍地이다. 초지를 견지라고 한다. 2지는 사다함이고 박지라고 한다. 3지와 4지의 두 지를 이욕지라고 한다. 5지는 제관諦觀에 상응한다. 그러므로 아라한이라고 이름하니, 이판지이다. 6지는 인연을 관찰함이다. 그러므로 벽지불지라고 이름한다. 등각에 이르러 보살지라고 이름한다.

003_0732_c_01L信也二乘五果者安十信前令入十
003_0732_c_02L信位中也
若爾何故二乘五果不安
003_0732_c_03L十住3) [45] 在十信初心仁王經云習種
003_0732_c_04L初心中旣出過二乘故知不安十住也
003_0732_c_05L五方便中所說性地乾慧地並退安於信
003_0732_c_06L前凡位中會如是別敎十地而爲欲令
003_0732_c_07L入通敎故立三乘共行十地旣是通敎
003_0732_c_08L方得知佛道長遠更逕三賢十地修方
003_0732_c_09L得成佛是故通敎十信卽有五品弟子
003_0732_c_10L謂聲聞四果辟支佛果爲五
若爾
003_0732_c_11L薩四位云何准習種爲新發意菩薩
003_0732_c_12L性種道種爲久行道初地已上並阿毗
003_0732_c_13L跋致等覺是一生補處妙覺是菩薩也

003_0732_c_14L
以通敎會別敎會別敎 [141] 而假別敎位
003_0732_c_15L准通敎中如是直自通敎說三乘共行
003_0732_c_16L十地云何會二乘五果入於通敎十
003_0732_c_17L信位中名爲乾慧地三賢位是性地 [142]
003_0732_c_18L初地中近方便名爲八忍地初地名爲
003_0732_c_19L見地二地是斯陀含名爲薄地三四二
003_0732_c_20L地名爲離欲地五地與諦觀相應故名
003_0732_c_21L爲阿羅漢已辦地六地是因緣觀故名
003_0732_c_22L爲辟支佛地至等覺名爲菩薩地妙覺
003_0732_c_23L「命」疑「令」「竟」上疑脫「究」「雖」疑
003_0732_c_24L「還」

003_0733_a_01L묘각을 이름하여 불지라고 이름한다.

③ 통종의 10지

가) 통종의 10신과 10주위

세 번째는 통교의 장애를 끊고 더러움이 다하여 얻은 불과佛果는 다시 물러나 통종의 10신 가운데 안주하는 것이다. 통교의 10지는 물러나 통종의 10주위인 5품 제자에 안주한다. 즉 수다원에 향向과 과果가 있기 때문에 차례대로 초주와 2주에 준한다. 그리고 제5품 제자에 이르러 벽지불이라고 한다. 이것도 역시 향과 과가 있다. 그러므로 제9에서 제10주까지에 준한다.

나) 10신만심과 5품 제자위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 불과는 통종의 10신만심 가운데 세우고, 통교 10지는 10주 5품 제자에 두었는가?
실제에 근거하자면, 5품 제자와 부처는 별도의 양상이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직 통교에 의거하여 그 교설의 불과위에 이르렀을 때 물러나 믿음이 가득 찬 마음에 안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부처가 물러날 때 끝내 그 성性을 물러나게 하니, 5품 제자와 역시 동일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실제로 물러난 신만의 부처(信滿佛)이고, 이름을 바꾸어 완전히 수행하는데, 10신을 실천할 때는 성문이 되며, 또 10주 보살이 되는 것에 대한 상세한 것은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 통종의 10주행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통교의 부처로부터 물러나 신만 가운데 세울 때, 오직 통종교에 의해 10주행을 수행하게 하고, 다시 통종의 10신을 수행하게 하지 않는가?
그 승이니 교니 하는 것은 진실한 교설이 아니다. 통종에 들어가 비로소 진실하게 되기 때문에 그 불과에 이르러, 즉 통종을 믿게 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승의 불과와 통종의 신信의 단계는 같다. 초지 가운데 일승에 대한 믿음을 일으킬 때 곧 초지에서 일승에 대한 믿음을 성취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라) 별교삼승ㆍ통교ㆍ통종의 관계

무엇 때문에 별교삼승의 부처가 다시 통교의 믿음을 수행하는가?
거기에서는 34념288)에 성불이 있다고 가르친다. 모두 이 사실을 설하므로 실제의 부처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실제의 부처라 해도 오히려 통교의 믿음을 수행하게 하니, 이 (통종의) 일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별교불과에 이른 사람을 다시 (통종)대승의 믿음을 수행하게 함이 없는 것이다.

통종은 저 종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재차 이 실천을 닦게 하는 것인가?
10신十信 가운데 처음의 다섯은 믿음 등의 오근이다.

003_0733_a_01L名爲佛地
第三番者斷通敎障染盡
003_0733_a_02L所得佛果還退安於通宗十信中也
003_0733_a_03L敎十地退安於通宗十住位五品弟子
003_0733_a_04L謂須陀洹有向果故如次准於初二住
003_0733_a_05L乃至第五品弟子名辟支佛此亦有
003_0733_a_06L向果故准於第九第十二 [143] 住中

003_0733_a_07L何故其佛果立於通宗十信滿心中
003_0733_a_08L通敎十地爲十住五品弟子約實
003_0733_a_09L弟子及與佛不別相續唯依通敎
003_0733_a_10L至於其敎佛果位而退安信滿心故實
003_0733_a_11L佛退時竟而退其性爲五品弟子立 [144]
003_0733_a_12L是故此人實退信滿之佛轉名全修
003_0733_a_13L信行時爲聲聞又爲十住菩薩細可
003_0733_a_14L思也
若爾何故退通敎佛立信滿中
003_0733_a_15L唯被通宗敎令修十住行更不令修通
003_0733_a_16L宗十信其乘敎不實說通宗方得
003_0733_a_17L爲實時有於其佛果卽信通宗是故其
003_0733_a_18L乘佛果與通宗信一如類初地中起一
003_0733_a_19L乘信時卽其初地成就一乘信也

003_0733_a_20L故別敎三乘佛更修通敎信彼敎三
003_0733_a_21L十四念有成佛皆說此事有實佛信故
003_0733_a_22L其人實佛還令修通敎信而莫信此事
003_0733_a_23L無至別敎佛果人更令修大乘信也

003_0733_a_24L
通宗勝於彼宗更修此行十信中

003_0733_b_01L이 오근의를 증장시키는 가운데 다섯 가지 마음을 세운다. 만약 실제에 근거하면, 그 다섯 가지 마음 가운데 법체를 완전하게 갖춘다. 통교를 실천하는 자는 세간의 믿음 등의 오근을 갖추되,289) 일시에 완전히 갖춘다. 만약 아직 앞에서 말한 오근을 갖추지 않은 직진의 실천자(直進行者)는 만 겁을 지나 드디어 10신의 실천을 닦을 수 있어 이 신심을 성취한다.

그렇다면 별교삼승은 소승의 출세 오근을 갖춘다. 그러므로 통교에 이끌릴 때, 곧 신심이 성취되는 것인가?
소승근과 대승근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5품 제자는 이미 10주의 실천을 닦을 때이다. 어떤 의미가 있어 성문의 명칭을 부여하는가?
이 사람은 통종의 교설에 이끌려 수행하기 때문이며, 소리를 듣고 실천하는 성문이기 때문이다. 이 의미에 따라 성문제자가 된다. 오직 하나의 진심 도리의 의미를 이해함에 근거를 두면 10신의 보살이다.

이미 장애와 더러움을 끊고 부처가 되었다. 무엇 때문에 물러나 통종의 10신의 처음 가운데 안착하는가?
그대가 세운 불과는 나의 10신위이며, 팔상성도로 펼친 변화불이 된다. 실제의 부처가 되기 위해 물러나 다시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통종의 순서 가운데서 삼승이 함께 수행하는 형상을 세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수다원 계위에 오른 사람은 오방편을 짓는다. 그것은 즉 10신의 세 가지 계위이다. 즉 『대집경』290)에서 말하기를, 10신에 3품이 있다고 했다. 즉 첫째는 하품으로 건혜지乾慧地이다. 둘째는 중품으로 수신지隨信地291)이다. 셋째는 상품으로 법행지法行地이다. 즉 중품과 상품은 성지性地이다. 다음 두 주住는 박지薄地이다. 즉 제3과 제4의 두 주이다. 나아가 제10주에 이르러 벽지불지가 된다. 만약 계위에 준하면 성종性種은 새로 뜻을 발한 것이며, 도종道種은 구행久行이고, 초지 이상은 아비발치(不退)이며, 등각은 일생보처이며, 묘각은 불지이다.

마) 자체의 통종에 근거함

만약 자체의 통종에 근거하면, 10신은 외범이므로 건혜지이다. 습종위는 두 가지에 공통된다. 즉 만약 돈교로부터 들어가는 자는 5품 제자를 세운다. 보살위의 도리를 감추고 10주로써 건혜지로 삼는 것이다.

003_0733_b_01L初五是信等五根增此五根義中立五
003_0733_b_02L約實其五中具足法體通敎行者
003_0733_b_03L具世間信等五根一時具足若未具前
003_0733_b_04L五根直進行者逕十千劫方得修十信
003_0733_b_05L成就此信心
若爾別敎三乘具小
003_0733_b_06L乘出世五根故被通敎時卽信心成就
003_0733_b_07L小乘根及大乘根不異
若爾此五
003_0733_b_08L弟子旣修十住行時以何義故與聲聞
003_0733_b_09L此人被通宗敎修行故聞音起
003_0733_b_10L行聲聞故約此義爲聲聞弟子若唯
003_0733_b_11L約解一眞心道理之義者是十信菩薩
003_0733_b_12L
[145] 斷障染成佛何故退安通宗十信
003_0733_b_13L初中汝所立佛果此吾十信位
003_0733_b_14L相成道所放變化佛 [146] 爲實佛故退還令
003_0733_b_15L
若爾會通宗次第中作三乘共
003_0733_b_16L行形相如何須陀洹人作五方便
003_0733_b_17L爲十信三位謂大集經云十信爲三品
003_0733_b_18L謂一下品爲乾慧二中品爲隨信地
003_0733_b_19L上品爲法行地謂中上品爲性地也
003_0733_b_20L二住爲薄地謂第三第四二住也乃至
003_0733_b_21L第十住爲辟支佛地若准位者性種爲
003_0733_b_22L新發意道種爲久行初地已上爲阿毘
003_0733_b_23L跋致也等覺爲一生補處妙覺爲佛地

003_0733_b_24L
若約自通宗者十信爲外凡故乾慧

003_0733_c_01L성종과 도종의 두 위는 초지에 들어가는 가까운 방편이기 때문에 팔인지이다. 초지, 2지, 3지는 신인信忍이다. 그러므로 수다원이라고 이름하며, 견지見地로 삼는다. 4지, 5지, 6지는 순인順忍이다. 그러므로 사다함이라 이름하며, 박지로 삼는다. 7지, 8지, 9지는 무생인이다. 그러므로 아나함으로 이름하여 이욕지離欲地로 삼는다. 제10지는 적멸인寂滅忍 하품이다. 그러므로 아라한으로 이름하여 이판지已辦地로 삼는다. 등각은 벽지불지이다. 앞의 모든 위의 공통된 이름이 보살지이다. 묘각을 이름하여 불지라 한다. 위는 법경론사法鏡論師의 설을 집약한 것이다.

3) 지엄智儼설ㆍ『법경론』설ㆍ불타삼장설의 관계

지엄 화상의 의도는 저 스승의 의도에 세 가지 반복된 교설이 있는 것과 동일하다. 즉 삼승이 함께 실천하는 10지를 말하자면, 5품 제자위에는 원교가 없으니, 이승이라는 명칭으로 일승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소승 가운데 오직 다 석가보살만이 성불에 들고 나머지 성불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함께 실천하는 10지를 세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릇 함께 실천하는 10지를 세우는 의도는, 일체 소승인을 이끌어 대승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답』292)의 의도 역시 똑같이 (소승과 일승에서는) 함께 실천하는 10지의 종류를 세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저 소승 및 일승을 밝히고, 시교ㆍ종교ㆍ돈교 삼교를 공통되게 처음에 회심의를 세운 것이다. 시교ㆍ종교ㆍ돈교 삼교의 직진의를 합하여 다음에 세운다. 지금 이 『공목장』에서는 실제에 근거하여 비록 종교에 공통되면서도 초회심의 발심에 근거하여 건혜 등 10지를 설한 것이다. 돈교에 삼승이 함께 실천하는 10지가 있으나 별도의 계위 순서가 분명하지 않다. 그러므로 삼승에 공통된 10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소疏』의 문장에서 돈교에 또한 건혜 등 10지를 지어서 세우는 까닭을 말하기를, “이 10지는 일승의 작용이며 삼승의 들어갈 곳이다.”293)라고 하였는가? 이것은 즉 일승 역시 함께 실천하는 10지를 세운다는 것인가?

003_0733_c_01L習種位通二謂若從頓敎而入者
003_0733_c_02L五品弟子隱菩薩位道理以十住爲乾
003_0733_c_03L慧地性種道種二位入初地近方便
003_0733_c_04L爲八忍地初二三地是信忍故名須
003_0733_c_05L陀洹爲見地四五六地是順忍故名斯
003_0733_c_06L陀含爲薄地七八九地是無生忍故名
003_0733_c_07L阿那含爲離欲地第十地是寂滅忍下
003_0733_c_08L故名阿羅漢爲已辦地等覺爲辟支
003_0733_c_09L佛地通名前諸位爲菩薩地名妙覺
003_0733_c_10L佛地上來括法鏡論師意
儼和上意 [147]
003_0733_c_11L師義有三重敎謂三乘共行十地者
003_0733_c_12L子無圓敎所以者何二乘名無入一乘
003_0733_c_13L者故又小乘中唯一釋迦菩薩成佛
003_0733_c_14L餘無成佛者故也不立共行十地故
003_0733_c_15L立共行十地意引一切小乘人爲入大
003_0733_c_16L乘故是故問答意同不立共行十地類
003_0733_c_17L故先明小乘及一乘通始終頓三敎之
003_0733_c_18L迴心義立初也始終頓三敎直進義
003_0733_c_19L來立次也今此章意約實雖通終敎
003_0733_c_20L約初迴心發說乾慧等十地頓敎有三
003_0733_c_21L乘共行十地而不明別位次第故不用
003_0733_c_22L三乘共十地
若爾何故疏文頓敎復
003_0733_c_23L作立乾慧等十地之所以而云此十地
003_0733_c_24L是一乘所用是三乘所入耶是卽一乘

003_0734_a_01L
동교일승이다. 지智에 근거하기 때문에 동교일승의 작용(所用)이다. 별교는 직접적인 근기에 입각하기 때문에, 소승인에게는 일승이 없기 때문에 함께 실천하는 10지를 세우지 않는다. 동교일승의 작용으로 하위의 교설 가운데서 함께 실천하는 10지를 세워 근기를 인도하는 것은 모두 일승이 하게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 근거해서 함께 실천하는 10지가 있으니,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법름 스님은 불타 삼장을 의지하여 스승으로 삼았다. 이 삼장이 세운 통종대승은 여래장 진심 도리가 최상의 단계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 『능가경』ㆍ『인왕경』ㆍ『화엄경』을 포함한다. 별교삼승은 육식으로써 궤칙을 삼는다. 수행하여 성불하여서는 통교에 회입한다. 통교는 망식으로 궤칙을 삼는다. 수행하고 성불하여서는 통종의 여래장 진심에 의거하여 위계에 의하여 다시 수행하여 깨닫도록 한다. 지엄 스님의 뜻은 불타 삼장의 통종대승은 삼승이 아닌 화엄일승이라는 것이다.
아래 시교는 통교대승에 포함되며, 이 통교에 의해 수행하여 실천을 성취하는 자는 저 일승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수용신으로서의 부처는 가명 보살이 된다. 이 스님의 의도에 대해서는 논쟁이 없었다. 그러므로 자수용신으로서의 부처는 가명 보살이라 이름한다. 법장 스님의 뜻은 가장 둔한 근기의 사람(極鈍根人)이라도 초지를 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수용신으로서의 부처를 가명 보살이라고 이름한다거나, 또는 초지 전의 보살을 가명 보살이라고 이름함으로써 이와 같은 쟁론이 있게 되었다.

불타 삼장은 『능가경』에서 설해진 설통대승說通大乘과 통종대승通宗大乘에 의거하였다. 그러므로 통종 등의 교를 세웠다. 무엇 때문에 지엄 스님은 『능가경』이 통종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는가?
문장은 『능가경』에 의거하여 의의로 하였지만, 뜻의 의취294)는 『화엄경』을 취하여 통종으로 하였다. 이 스님의 생각은 이런 점에서 불타 삼장의 뜻과 공통된다.

4) 삼승이 함께 실천하는 10지

‘부처는 아래의 인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이승二乘을 끌어들이고자 할 때 부처는 10지에 자리한다. 이것 외에 저 이승은 부처를 구하지 않는다.

003_0734_a_01L亦立共行十地耶同敎一乘約智故
003_0734_a_02L同敎一乘所用約別敎直機故小乘人
003_0734_a_03L無一乘故不立共行十地同敎一乘所
003_0734_a_04L引下敎中立共行十地之機者皆是
003_0734_a_05L一乘所令故約此義有共行十地可思
003_0734_a_06L之也
又法標 [148] 依佛陀三藏爲師此三
003_0734_a_07L藏所立通宗大乘明如來藏眞心道理爲
003_0734_a_08L故此中皆攝楞伽仁王華嚴以別敎
003_0734_a_09L三乘六識爲軌則修成佛迴入通敎
003_0734_a_10L敎以妄識爲軌則修成佛依通宗如來
003_0734_a_11L藏眞心依位地更令修覺儼師意者
003_0734_a_12L三藏通宗大乘是三乘外華嚴一乘也

003_0734_a_13L
下始敎攝於通敎大乘依此通敎修成
003_0734_a_14L行者不信彼一乘故名自受用身佛爲
003_0734_a_15L假名菩薩此師義中無諍論故自受用
003_0734_a_16L身佛名假名菩薩藏師義中1) [46] 極鈍根
003_0734_a_17L不過初地故名自受用身佛爲假名
003_0734_a_18L菩薩又初地之前菩薩名假名菩薩
003_0734_a_19L此諍論
佛陀三藏依楞伽經所說
003_0734_a_20L通大乘通宗大乘故立通宗等敎
003_0734_a_21L故嚴師楞伽經不攝通宗中文依楞
003_0734_a_22L伽經而義意趣取華嚴爲通宗此師如
003_0734_a_23L通三藏義也
爲佛下因 [149] 位故者爲欲
003_0734_a_24L引二乘時佛在十地已外彼二乘不爲

003_0734_b_01L그러므로 아래의 인위 가운데 불지를 세우는 것이다.
또 하권에서 “또한 (이승을 위하여) 건혜지 등의 10지를 설하며, 제9지를 보살지라고 하고, 제10지를 불지라고 하는 것은, 이승이 위를 바라보고 아직 만족하지 않아 점차 수행하여 불과에 이르도록 이끌고자 함이다. 또 저 불과가 10지 외에 있지 않고, 역시 동일하게 10지 가운데 있는 것은 저 이승을 이끌기 위해 방편으로 저 (이승과) 동일하게 한 것이다. 이승인은 현재의 몸 그대로 성인의 결과를 얻기 때문에 뒤에 두지 않는 것이다.”295)라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10지는 건혜지 등의 10지이다.
2. 삼계에 근거함
둘째, 삼계에 근거한다. (삼계의) 9지, 10지, 11지 등 이외에 곧 그 부처를 성취한다.296)
3. 계위에 근거함
셋째, 계위에 근거한다. 견도ㆍ수도 이외에 성불한다.297) 하권에서 “다만 견도ㆍ수도 등의 사위와 9지 등은 소승과 명칭이 같다. 또는 오위가 있다. 즉 견도 전 7방편 내에서 나누어 앞의 세 가지를 자량위로써 (견도에 대해서) 먼 방편으로 하고, 뒤의 사선근으로 가행위로 삼아 가까운 방편으로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이름은 앞과 같다.”298)라고 하였다.
4. 실천에 근거함
넷째, 실천에 근거한다. 학學 이외에 무학의 아라한 계위에서 곧 그 부처를 성취한다.299)
5. 시기에 근거함
다섯째, 시기에 근거한다. 대승에 의하면, 3아승지 외에 곧 그 부처를 성취한다.300) 겁수에 대해서는 『오교장』 하권에 있는 바와 같다. 또한 『공목장』 제4권에서 “대승의에서는 구리狗梨301)로부터 그 이후 100구를 성취하여 1수受라고 한다. 1수 이후를 1아승지라고 한다. 이것은 대수 10수數 가운데 제1수이다. 삼승대승의 부처는 오직 한 방위만의 부처가 교화하는 의미이다. 이 3대겁을 지나 수도하여 성불을 얻는다.”302)라고 하였다.
6. 보살행에 근거함
여섯째는 보살행에 근거한다. 33심 외에 곧 그 부처를 이룬다.303)
7. 무분별 공리에 근거함
일곱째, 무분별의 공리에 근거한다. 일념에 곧 그 부처를 성취한다.304) 『기記』에서 “회심교 가운데 의타법이 존재하며, 이것은 있는 듯한 양상(似有相)으로서 본성은 공하다. 이 본성이 공한 것이 임시의 양상인 것에 근거하면, 공의 도리는 진여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8. 생사에 근거함
여덟째는 생사에 근거한다. 최후의 분단신상에 곧 그 부처를 성취한다.305) 이것은 화신에 근거한다.

003_0734_b_01L求佛故下因位中立佛地也
又下卷云
003_0734_b_02L又亦爲說 [150] 乾慧等十地第九名菩薩地
003_0734_b_03L第十名佛地者欲引二乘望上不足
003_0734_b_04L次修行至佛果故又彼佛果 [151] 不在十地
003_0734_b_05L [152] 同在地中者以引彼故方便同彼
003_0734_b_06L以二乘人於現身上得聖果故不在後
003_0734_b_07L十地者乾慧等十地
二約三界
003_0734_b_08L2)十地 [47] [153] 十一地等已外卽成其佛
三約
003_0734_b_09L3) [48] [154] 已外卽成4) [49] [155] 下卷云但有見
003_0734_b_10L修等四位及九地等名同小乘或云五
003_0734_b_11L謂見道前七方便內分前三種爲資
003_0734_b_12L粮位以遠方 [156] 便故後四善根爲加行位
003_0734_b_13L是近方便故餘名同前
四約行學已外
003_0734_b_14L無學羅漢位卽成其佛
五約時依大乘
003_0734_b_15L三僧祇外卽成其佛劫數如下卷又孔
003_0734_b_16L目第四云大乘義從狗 [157] 梨已去成一百
003_0734_b_17L句名一受一受已去名一阿僧祇此是
003_0734_b_18L大數十數中第一數也三乘大乘佛
003_0734_b_19L一方佛化儀經此三大劫修道得成佛

003_0734_b_20L
六約菩薩行三十5) [50] [158] 三心外卽成其佛

003_0734_b_21L
七約無分別空理一念卽成其佛記云
003_0734_b_22L迴心敎中存依他法似有相而性是空
003_0734_b_23L約此性空之假相空理不爲眞如理

003_0734_b_24L約生死最後分段身上卽成其佛此約

003_0734_c_01L보신에 근거하면, 분단신 후에, 곧 그 부처를 성취한다. 『기記』에서 “‘보신에 근거한다’라는 것은 분단신을 멸하여 그 후에 성불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권에서 “시교 가운데 근거하면 회심한 성문을 위하여 분단신으로 구경위에 도달한다고 설한다. 부처(佛身)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의 보신이 아니다.”306)라고 하였다.
제4장 초교 직진위에 근거함
1. 계위에 근거함
초교의 직진위에 근거하면 일곱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계위에 근거한다. 처음 10신위 등으로부터, 또는 환희지 등에서 10지까지를 만족한 후에 그 부처를 성취한다. 이것은 부처의 경계인 분단신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307) 『기記』에서 “이것은 『본업경』의 뜻이다. 즉 백 겁 동안 뛰어난 모습을 갖추기 위한 행위에 감응한 바이기 때문이다. 행위에 감응한 바의 측면에서 분단이라고 이름한다. 원인의 계위에서 번뇌가 있는 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사취308)를 조건으로 하여 얻은 분단신이다.”라고 하였다.
2. 다시 계위에 근거함
둘째, 다시 계위에 근거한다. 환희지로부터 제9지를 다하고, 제10지에서 곧 물러나지 않으므로 그 부처를 성취한다. 이것 또한 하위의 성문에 대한 것이다. 하신下身에서 성불하므로 이 설을 지었다.309)
3. 도리에 근거함
셋째, 도리에 근거한다. 진여는 무분별공이므로 일념에 곧 그 부처를 성취한다.310)
4. 10지 이후 일념성불의에 근거함
넷째, 10지 이후에 근거하니, 일념에 결과를 증득하여 그 부처를 성취한다.311) 『십현문』에서 “만약 대승의 일념성불의를 밝힌다면 대체로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조건을 모아 진실한 본성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많고 적음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일념성불의를 밝히는 것이다. 『대품경』 「일념품」에서 설한 것이 이것이다. 둘째는 많은 실천이 이미 가득 차 최후념을 취하므로 성불한다고 이름한다. 사람이 멀리 갈 때 맨 뒤 마지막 걸음으로 도달한 것으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역시 분용의 연기이며 3아승지겁의 수행도를 밝히는 것이다. 10지 이전은 1아승지겁이다. 초지에서 7지까지는 2아승지이다. 8지에서 10지는 3아승지이다.312) 그러나 역시 정해지지 않았으니, 그 때문에 일념성불이 있는 것이다.

003_0734_c_01L化身若約報身分段身後卽成其佛
003_0734_c_02L約報身者滅分段身後成佛也下卷
003_0734_c_03L若始敎中爲迴 [159] 聲聞亦說分段至究
003_0734_c_04L [160] 佛身亦爾 [161] 是化非實也

003_0734_c_05L第四約初敎已 [162] 直進位
有其七門一約位
003_0734_c_06L從十信位等乃至從歡喜地等滿足十
003_0734_c_07L地外卽成其佛此由佛境分段身故
003_0734_c_08L此本業經意謂百劫修相好業所感
003_0734_c_09L業所感邊名爲分段不如因位有漏
003_0734_c_10L業爲因四取爲緣所得分段身也
二復
003_0734_c_11L約位從歡喜地盡第九地於第十地
003_0734_c_12L退 [163] 成其佛此亦爲對聲聞下位於下身
003_0734_c_13L成佛故作此說
三約理 [164] 如無分別空
003_0734_c_14L一念卽成其佛
四約十地後一念證果
003_0734_c_15L卽成其佛玄門云若大乘明一念佛 [165]
003_0734_c_16L佛義者凡有二種一者會緣以入實
003_0734_c_17L無多小故明一念成佛如大品經一念
003_0734_c_18L品義是也三者行行旣滿取最後念
003_0734_c_19L爲成佛如人遠行以後步爲到此亦分
003_0734_c_20L6) [51] [166] 緣起而明三僧祇劫修道地前是一
003_0734_c_21L僧祇劫初地至七地是二僧祇八地至
003_0734_c_22L十地是三僧祇然亦不定爲有一念成
003_0734_c_23L「耳」更勘「十地」孔目無「彼」孔目
003_0734_c_24L作「修」
「佛」上孔目有「其」「忍」孔目無
003_0734_c_25L
「因」疑「用」

003_0735_a_01L그러므로 정해지지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313)라고 했다.
『종남문답』에서 “첫째, 깨달음의 도리로 말미암아 계위가 완전할 때 오직 일념이기 때문이다. 둘째, 조건을 모아 진실을 따를 때 법성에는 많음과 적음, 길고 짧음이 없다. 하나가 성립하면 즉 모든 것이 성립하며, 모든 것이 성립하면 하나가 성립하기 때문이다.”314)라고 하였다. 이것은 앞(『십현문』)의 두 가지 의미와 역으로 되어 있다. 『종남문답』의 (첫 번째는) 『공목장』 앞(約理)의 의미에 해당하고, 뒤의 것은 『공목장』의 이 뜻에 해당한다.
5. 시기에 근거함
다섯째, 시기에 근거한다. 대승은 3아승지 후에 곧 그 부처를 성취한다.315)
6. 실천에 근거함
여섯째, 실천에 근거한다. 구경의 무학에서 그 부처를 성취한다.316)
7. 대승 12주에 근거함
일곱째, 대승의 12주에 근거하니, 최고위인 제12주에 보살이 머문 후에 곧 그 부처를 성취한다.317) 『종남문답』에서 “만약 삼승시교에 의거하면, 즉 반은 성불하고, 반은 성불하지 못한다. 만약 직진교와 회심교 두 사람의 경우, 수행하여 만 겁을 가득 채운 후에 감임지에 머문다면, 모두 성불한다. 만약 이 위에 이르지 못하면 곧 일천제와 더불어 계위와 동일하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성불하지 못한다. 이것은 계위에 근거한 말이다.”318)라고 하였다.
제5장 시교의 삼신불
1. 화신불

1) 부처님의 어머니

“만약 부처님의 어머니라면, 하나의 삼천세계에 있는 부처 등은 모두 화신불이다. 마야의 권속 등은 역시 진실한 몸이 아니다. 제3 천계에도 역시 별도의 부처가 있으며 화불의 의미는 앞과 같다. 정토 가운데에 부처님의 어머니 등의 여러 권속이 있는 것도 역시 오직 화불일 뿐이다. 이것은 법문의 화불로서 팔상의 화불이 아니다.319) 만약 백 겁 동안 뛰어난 모습을 갖추는 행위를 닦는(修相好業) 자는 화불로서 진실한 부처가 아니다.이상은 오직 시교에 근거한다.320)라고 하였다.

2) 중생 성불의 전후

“만약 일체중생이 성불을 이루는 순서에 대해서라면, 시방세계 다 부처가 있기 때문에 동시에 타처에서도 성불한다. 만약 타방의 유정이라면 교화하는 자, 교화되는 자가 동시에 성불할 수 있으니, 나가고 물러나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321)라고 하였다.

3) 타방불의 응화

“타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의 응화에 대해서라면 시방 정토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실제의 보신(實報)으로 변화함이 없다. 만약 방편으로 일으킨 것이라면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유정의 근기로 하여금 변화를 알게 하는 것은, 즉 화불에 포섭된다. 만약 색구경처 및 보리수 아래라면 두 부처가 상대하며, 거기엔 두 가지 뜻이 있다.

003_0735_a_01L故明知不定人 [167]
終南問答云一由覺
003_0735_a_02L理位滿足時唯一念故二會緣從實時
003_0735_a_03L法性無多非 [168] 長短一成卽一切成一切
003_0735_a_04L成卽一成故此逆次前二義當孔目上
003_0735_a_05L後義當孔目此義
五約時大乘三僧
003_0735_a_06L祇後卽成其佛
六約行究竟無學卽成
003_0735_a_07L其佛
七約大乘十二住於第十二最上
003_0735_a_08L菩薩住後卽成其佛終南問答云若依
003_0735_a_09L三乘始敎卽半成佛半不成佛若直進
003_0735_a_10L及迴心二人修行滿十千劫住堪任地
003_0735_a_11L並皆成佛若未至此位卽與一闡底
003_0735_a_12L位同如此人等並皆不成佛此據位
003_0735_a_13L
第五始敎三神佛
若佛母者於一三千所有佛等並是
003_0735_a_14L化佛摩耶眷屬等亦卽非實諸三千界
003_0735_a_15L亦有別佛化義同前淨土之中 [169]
003_0735_a_16L母等諸眷屬者亦唯是化佛是法門 [170]
003_0735_a_17L八相化也若百劫修相好業者是化非
003_0735_a_18L已上唯
約始敎
若一切衆生佛 [171] 前後者有十方
003_0735_a_19L佛故得同時他處成佛若化 [172] 有情亦得
003_0735_a_20L能化所化同時成佛爲進退不定故

003_0735_a_21L他方諸佛應化者十方淨土所有諸佛
003_0735_a_22L並是實報無有變化若權起不定始終
003_0735_a_23L令有情機知變化者卽屬化攝若色究
003_0735_a_24L竟處及菩提樹下二佛相對有其兩義

003_0735_b_01L첫째는 화신으로써 보신을 나타낸다. 즉 보리수 아래에서 연화장세계해 가운데의 부처를 드러낸다. 이것은 보신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신으로써 화신을 드러낸다. 색구경처를 들어 높고 큰 몸을 성취하여 보리수 아래에 몸을 드러낸 것이니, 이것은 화불의 의미이다.”322)라고 하였다. 이상의 문장은 시교와 종교에 공통된다. 지금 이 문장의 처음은 (시교ㆍ종교) 2교의 두 가지 의미에 통한다.
2. 보신불
이하는 일승의 보신과 시교의 보신으로서 화신에 대비되는 교설이다. 그러므로 『소疏』 제3권에서 “시교에 의하면 색계의 꼭대기에서 소승을 이끌기 위해 같은 세계에서 설한다. 종교에 의하면 삼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열반경』323)에서 ‘서방정토는 여기서 32항하사 불토를 떠나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무승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석가불이 보불로서 이룩한 불정토이다.”324)라고 하였다. “여러 근기가 상입하는 양상이라면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본성에 의거함이다. 즉 대승보살ㆍ연각ㆍ성문이다. 만약 깨달음을 나타내는 것에 의거하면 총체적으로 대승보살인이라고 한다. 지금은 본성을 포섭하여 대승을 따른 것이므로 간략할 뿐이다. 즉 변화와 ‘본성을 고침’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성립한다.”325)라고 하였다.
3. 시교의 성불 여부

1) 수도修道에 의거함

수도에 의하여 성불과 불성불을 밝힌다면, “실제로 수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모두 다 성불하지만, 다른 근기에 대해서라면 성불하지 못함을 드러내며, 올바른 도리에 근거하면 성불과 성불하지 않음이 없다.”326) “부처의 모습이라면 덕도 있고 사람의 형상도 있는 것이 부처님의 형상이다.”327) 이와 같은 문장의 의미는 시교과 종교에 통한다.

2) 종성 차별에 의거함

종성 차별에 대해서라면, 『오교장』에서 “시교라면, 즉 번뇌가 있는 무상법에서 종성을 세우기 때문에 곧 일체유정에 편만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오종성 가운데 곧 종성이 없는 중생이 일부 있다. 그러므로 『현양론』328)에서 ‘무엇이 종성 차별인가. 오종의 도리로써 일체의 바탕(界)의 차별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또는 말하기를, 오직 현재세에만 열반에 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등등 구체적으로 설했다. 그러므로 법이 그렇기 때문에 시작도 없는 때부터 일체 유정에는 오종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제5 종성은 출세 공덕의 원인이 없다.

003_0735_b_01L一以化顯報卽樹下顯蓮華藏世界海
003_0735_b_02L中佛是報故也二以報顯化擧色究竟
003_0735_b_03L處成高大身顯菩提樹下是化義也
003_0735_b_04L上文是通始終敎今此文初通二敎兩
003_0735_b_05L
已下以一乘報始敎報身望化說也
003_0735_b_06L故疏第三云若始敎在色界頂爲引小
003_0735_b_07L同界說若依終敎不在三界如涅槃
003_0735_b_08L西方去此三十二恒河沙佛土有世界
003_0735_b_09L名無勝是釋迦佛報佛淨土若諸根相
003_0735_b_10L入相者有二義一據本性卽大乘菩薩
003_0735_b_11L緣覺聲聞若依現覺 [173] 總名大乘菩薩人
003_0735_b_12L今攝本性從大乘簡耳卽變化改性二
003_0735_b_13L皆成也
若修道成佛不成佛者實行
003_0735_b_14L修道皆悉成佛若對異機現不成佛
003_0735_b_15L約正理無成不成若佛相貌者亦德亦
003_0735_b_16L人相是佛相貌此等文意通始終敎

003_0735_b_17L
若種性差別者五敎云一約始敎
003_0735_b_18L就有爲無常法立種性故則不能遍一
003_0735_b_19L切有情故五種性中卽有一分無性衆
003_0735_b_20L故顯揚論云云何種性差別五種
003_0735_b_21L道理 [174] 切界差別可得故乃至云唯現
003_0735_b_22L在世非般涅槃不應理故乃至廣說
003_0735_b_23L是故當知由法爾故無始時來一切有
003_0735_b_24L情有五種性第五種性無有出世功德

003_0735_c_01L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번뇌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은 도리로 모든 부처가 유정을 이롭고 즐겁게 하는 공덕이 완전히 끊어진 적이 없다. 그 종성이 있다는 것은 『유가론』에서 ‘종성에 또한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본성에 주하는 것, 둘째는 수행으로 성취된 것이다’329)라고 하였다.”330)라고 했다. 그 내용은 『오교장』에서 구체적으로 설했다.
또 “삼승시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소승과 다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종성을 지닌다. 그러나 아직 저 소승과 완전히 다르지 않아 일부분의 종성이 없는 중생을 허용한다. 그러므로 『논論』331) 가운데 권교로서 완전하지 못한 설로 판정했다.”332)라고 하였다.
제6장 대승종교의 성불
1. 계위에 근거함
대승종교에 근거하면 열 가지 항목이 있다. 첫째는 계위에 근거하는 것이니, 10신의 실천으로부터 환희지 등 10지를 가득 채운 후에 곧 부처를 성취한다.333)
2. 10지에 근거함
둘째, 환희지 등의 초지에서 제9지를 다함에 이르고, 제10지 가운데 그 부처를 성취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는 성문에 대하기 위하여 범부의 몸으로 결과를 증득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설을 만들었다. 이것은 변화불의 성취에 해당하며 진실한 성불에 해당하지 않는다.334) 『기記』에서 “『범망경』 상권 가운데 ‘열째는 체성으로 불경계지에 들어간다’335)라고 하였다. 이 문장에 의거하여 제10지 가운데 성불함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3. 계위에 근거함
셋째, 계위에 근거한다. 첫째 환희지로부터 제3지에 이르기까지 이는 세간의 모습으로서 삼계와 동일하다. 제4지 이후 제7지의 모습은 번뇌가 없음과 동일하다. 세간신 가운데 저 삼승의 번뇌가 흐르지 않는 공덕을 얻었기에 “세간을 벗어났다.”라고 한다.336) 『기記』에서 “의지하는 몸이 분단신과 동일함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세간이고, 제4지에서 처음으로 출세의 공덕을 얻는 것이니, 이 덕에 근거해서 ‘세간을 벗어났다’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제8지에서 제10지에 이르기까지를 ‘출출세’라고 하여 즉 성불을 얻는다.”337) 『신라기』에서 “이 의거하는 몸은 동일하게 변역신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제8지에서 법신을 성취한다.”라고 하였다.
『기記』에서 “『십지경론』과 『기신론』의 의도와 해석에 근거한다. 즉 『기신론』에서 ‘색자재지에 의거한다’ 하였다.338) 그러므로 10신이 서로 짓는 의의를 성취한다. 『십지경론』에서 ‘삼세간에서 자재하기 때문에 열 가지 자재를 얻는다’339)라고 하였다. 이 계위(不動地)에 근거하기 때문에 이 계위에서 처음으로 성불한다. 이와 같이 8지 가운데 무생인을 증득하므로 법신을 성취하는 것이다.

003_0735_c_01L故永不滅度由是道理諸佛利樂有
003_0735_c_02L情功德無有斷盡其有種性者 [175] 瑜伽
003_0735_c_03L論云種性亦有二種一本性住二習
003_0735_c_04L所成廣如彼說
又云若三乘始敎中
003_0735_c_05L漸異小乘故說多人有性猶未全異彼
003_0735_c_06L故許一分無性是故論中判爲權施不
003_0735_c_07L了說也
[第六大乘終敎成佛]
約大乘終敎有其十門一者約
003_0735_c_08L從十信行乃至歡喜等十地滿後
003_0735_c_09L1) [52] [176]
二者從歡喜等初地至盡第九
003_0735_c_10L於第十地中卽成其佛如梵網經所
003_0735_c_11L說者是此爲對聲聞現凡身上得於果
003_0735_c_12L故作此說此當變化佛成非當實成
003_0735_c_13L記云上卷2) [53] 經中云第十體性入佛
003_0735_c_14L境界地依此文故知第十地中成佛也

003_0735_c_15L
三者是約位從初歡喜地至第三地
003_0735_c_16L世間相同三界第四地已去第七地相
003_0735_c_17L同無流於世間身中得彼三乘無流德
003_0735_c_18L名爲出世記云約所依身同分段故
003_0735_c_19L世間而第四地初得出世德故約此德
003_0735_c_20L爲出世也第八此 [177] 至第十地名出出世
003_0735_c_21L卽得成佛記云是所依身同成變易故
003_0735_c_22L第八地成法身
記云約十地論起信論意釋
起信論云依色自在地故成十
003_0735_c_23L身相作義十地論云三世間自在故得十自在約此
位故此位初成佛也如是第八地中證無生忍故
003_0735_c_24L「其」上當有「成」「梵」下疑脫「網」

003_0736_a_01L제9지 가운데 49무애변재로써 근기에 응하여 법을 설한다.340) 그러므로 응신이다. 제10지 가운데는 운우雲雨의 법을 설한다. 그러므로 화신을 성취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제9지는 응신을 성취한다. 제10지는 화신을 성취한다. 이것은 10지 가운데 별도의 지상地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설이 되었다.”341)
4. 일념성불
넷째는 일념성불이다. 무분별 진리에 의거하여 이와 같은 설을 지었다.342)
5. 증득에 근거함
다섯째는 증득에 의거한다. 이로써 일념성불을 밝힌다. 초지 가운데의 일념으로 증득하기 때문이다.343)
6. 10지 후 일념
여섯째는 10지 후의 일념으로 결과를 증득하는 것을 일념성불이라고 한다. 위의 제 일념은 이른바 무념이다.344)
7. 시기에 근거함
일곱째는 시기에 의거한다. 즉 대승은 3아승지 이후에 곧 부처가 된다.345) 하권에서 “둘째, 3아승지가 일정하지 않으니, 여기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나머지 잡다한 세계에도 통하기 때문이다. 『승천왕경』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둘째는 부처님의 공덕이 한량없기 때문이다. 『보운경』에서 ‘선남자여, 보살은 여래 경계를 능히 사유할 수 없고, 헤아릴 수도 없다. 다만 낮고 가까운 곳에 있는 중생들을 위하여 3아승지의 수행을 쌓아 얻는 보리를 설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 발심 이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라고 하였다. 해석하면, 이 가운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라고 한 것은 아승지겁이지만, 단지 3아승지인 것은 아니다.”346)라고 하였다.

무엇 때문에 앞의 교설에서는 3아승지를 정하면서 이 가운데는 일정한 것과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
앞의 가르침은 초보의 중생을 위해서이고, 이 가르침은 숙련된 중생을 위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방편으로 점점 저 삼승을 권하여 일승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에 이 설을 지었다.347)
8. 실천에 근거함
여덟째, 실천에 근거한다. 금강심 후에 일체지의 지혜를 얻으니, 곧 부처이다.348)
9. 생사에 근거함
아홉째, 생사에 근거한다. 일곱 가지 생사를 멸한 후에 곧 저 부처가 되는 것이다.349)

1) 일곱 가지 생사

『기記』에서 말하였다.
“즉 분단은 세 가지 존재이고, 변역은 네 가지 생사이기 때문에 일곱 가지 생사라고 한다. 이 의미에 근거하기 때문에 의상 대덕께서 ‘일곱 가지 고제’350)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양섭론』에서 ‘삼종의 집제는, 즉 피부ㆍ육체ㆍ마음의 번뇌이고, 일곱 가지 고제는 삼계의 분단이 셋이고, 변역에 넷이어서 일곱 가지이다’351)라고 하였다.

2) 변역생사

① 변역생사의 네 가지

『보성론』에서 ‘변역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 연상緣相, 둘째 인상因相,

003_0736_a_01L法身也第九地中四十九無礙辨才應機說法
故成應身也第十地中雲雨法說故成化身也

003_0736_a_02L九地成應身第十地成化身此爲於十
003_0736_a_03L地中別地相故作是說
四者一念成佛
003_0736_a_04L約無分別眞理故作是說
第五約證
003_0736_a_05L明一念成佛於初地中一念證故
六於
003_0736_a_06L十地後一念證果名一念成佛上諸一
003_0736_a_07L念者所謂無念也
七約時者謂大乘三
003_0736_a_08L乘三僧祇後卽是佛下卷云二不定三 [178]
003_0736_a_09L僧祇此有二義一爲 [179] 通餘雜類世界故
003_0736_a_10L如勝天王經說二據佛德 [180] 無限量故
003_0736_a_11L寶雲經云善男子菩薩不能思議如來
003_0736_a_12L境界不可思量但爲淺近衆生說三僧
003_0736_a_13L祇修集所得菩提而實發心已來不可
003_0736_a_14L計數解云此中不可計數阿僧祇劫
003_0736_a_15L但三也
何故前敎定三僧祇此中乃
003_0736_a_16L定不定耶前敎生故此敎熟故
003_0736_a_17L便漸漸勸彼三乘向一乘故作是說也

003_0736_a_18L
八約行金剛心後得一切智智卽是佛

003_0736_a_19L
九約生死 [181] 七種生死後卽是其佛

003_0736_a_20L謂分段三有 [182] 易四生死故云七種生
003_0736_a_21L約此義故相德云七種苦諦也故梁
003_0736_a_22L論云三種集諦謂皮肉心七種苦諦
003_0736_a_23L三界分段爲三變易有四故有七種

003_0736_a_24L性論云變易有四一緣相二因相

003_0736_b_01L셋째 생상生相, 넷째 괴상壞相이다’352)라고 하였다. 『불성론』에서는 ‘첫째 방편, 둘째 인연, 셋째 유유有有, 넷째 무유無有이다’353)라고 하였다. 『무상의경』에서는 ‘삼계 가운데 네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첫째 번뇌난, 둘째 업난, 셋째 생보난生報難, 넷째 과실난過失難이다. 무명주지로 일어난 인연생사는 업난과 같다. 무명주지로 일어난 유유생사는 생보난과 같다. 무명주지로 일어난 무유생사는 과실난과 같다’354)라고 하였다.355)

② 방편생사

해석하면356) 『승만경』에 의하면 오주종자357)를 오주지라고 이름한다.358) 오주지에 의하여 현행이 일어남을 오주기五住起라고 이름한다. 무명주지의 종자에 의해 일어난 현행의 법집으로서의 무명이 변역생사의 방편이므로 방편생사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불성론』에서 ‘방편생사라는 것은 무명주지가 능히 새로운 무류업無流業을 생기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무명이 행을 낳는 것과 같다’359)라고 하였다.

③ 인연생사

둘째, 인연생사이다. 무명주지의 연에 의하여 무루업을 발하는 것은 변역생사이다. 친히 바탕이 되어 조력하므로 인연생사라고 이름한다.360) 이 앞의 두 생사는 올바른 변역이 아니며, 변역을 위하여 방편 및 인연이 되기 때문에 또한 생사라고 이름한다. 삼계 가운데 혹업은 분단의 방편인연이어서 또한 분단생사라고도 함과 같다. 그러므로 『양섭론』에서 ‘고제와 집제는 생사라고 통칭한다’361)라고 하였다.

④ 유유생사

셋째, 유유생사이다. 무루업에 의거하여 유루업을 도움으로 인해 이끌리는 변역생사를 유유생사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불성론』에서 ‘유유생사라는 것은 무명주지를 방편으로 하고, 번뇌가 없는 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세 성인362)이 의지대로 태어난 몸이다.

003_0736_b_01L三生相四壞相佛性論云一方便
003_0736_b_02L因緣三有有四無有無上依經云
003_0736_b_03L界中有四難一煩惱難二業難三生
003_0736_b_04L報難四過失難無明住地緣起 [183] 因緣生
003_0736_b_05L如業難無明住地緣起有有生死
003_0736_b_06L生報難無明住地緣起無有生死如過
003_0736_b_07L失難
解云依勝鬘經五住種子名五住
003_0736_b_08L依五住地起於現行名五住起依無
003_0736_b_09L明住他 [184] 種子緣起現行法執無明是變
003_0736_b_10L易生死方便名方便生死故佛性論云
003_0736_b_11L方便生死者是無明住地能生新無流業
003_0736_b_12L譬如無明生行
二因緣者依無明住地
003_0736_b_13L發無流業是變易生死親資 [185] 因緣
003_0736_b_14L生死此前二生死非正變易以與變易
003_0736_b_15L爲方便及因緣亦名生死如三界中惑
003_0736_b_16L是分段方便因緣亦名分段生死
003_0736_b_17L梁攝論云 [186] 集通名生死 [187]
三有有者
003_0736_b_18L無流業是業名爲因緣生死此前二生
003_0736_b_19L死非正變易以與變易爲方便及因緣
003_0736_b_20L1)亦生死如三界中惑業是分段生死
003_0736_b_21L梁論云苦集通名生死三有有者
003_0736_b_22L無流業資有流業所引變易生死名有
003_0736_b_23L有生死故佛性論云有有生死者是無
003_0736_b_24L明住地爲方便無流業爲因三種聖人

003_0736_c_01L비유하면 사취를 조건으로 하고 번뇌가 있는 행위를 원인으로 하여 삼계 안에 태어나는 몸과 같다’363)라고 하였다.

⑤ 무유생사

넷째, 무유라 함은, 이것은 변역생사의 최후신이기 때문에 무유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불성론』에서 ‘무유생사라 함은 삼종 성인이 의생신의 최후의 몸을 조건으로 하는 불가사의한 물러나 떨어짐(退墮364) )이다. 비유하면 태어남이 조건이 되어 죽음 등의 과실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한다.”

3) 세 가지 의생신

(1) 『승만경』을 둘러싼 해석

무엇이 세 가지 성인인가?
『승만경』에서 “무명을 조건으로 번뇌가 없는 행위를 원인으로 하여 아라한ㆍ벽지불ㆍ대력보살의 삼종 의생신이 생기하여 10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365)라고 하였다. 『능가경』 제5권에서 “삼종 의생신이 있다. 첫째는 삼매를 즐기는 의생신이다. 즉 제3지, 제4지, 제5지에 해당한다. 둘째는 제법의 양상을 진실대로 아는 의생신이다. 즉 제8지에 해당한다. 셋째는 갖가지로 짓지 않는 행위를 하는 의생신이다.”366)라고 하였다.

① 첫째 스님 해석

여러 스님의 해석이 같지 않다. 첫째 스님은, “삼학에 근거하여 지를 나눈다. 3지가 정(삼매)이다. 만약 육도에 근거하면 5지가 정(삼매)이다. 그러므로 3지, 4지, 5지를 삼매를 즐기고 받는 의생신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제6지에는 반야가 현전한다. 그러므로 6지, 7지, 8지는 여러 실천을 여실히 깨닫고 아는 의생신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므로 제8이라는 것은 그 끝을 든 것이다. 9지 이상을 갖가지로 짓지 않는 행위를 하는 의생신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② 둘째 스님 해석

둘째 스님은, “첫째는 초지와 2지를 생략했기 때문에 3지, 4지, 5지이다. 둘째도 역시 6지와 7지를 생략했기 때문에 제8지이다. 진실한 도리로 말하자면, 첫째는 앞의 5지에 통하고, 둘째는 6지, 7지, 8지의 3지에 통하며, 셋째는 9지, 10지의 두 지에 통한다.”라고 하였다.

③ 셋째 스님 해석

셋째 스님은, “순서대로 두 번째는 제8지에 있다. 즉 첫째는 7지 이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직 3지, 4지, 5지만 말한 것은 이 가운데 전후를 생략한 것이다.

003_0736_c_01L意所生身譬如四取爲緣有流業爲
003_0736_c_02L三界內生身
四無有者是變易生
003_0736_c_03L死最後身故名無有故佛性論云
003_0736_c_04L有生死者是三種聖人意生身最後身爲
003_0736_c_05L是不可思惟 [188] 退墮譬如生爲緣死等
003_0736_c_06L爲過失
何者是三種聖人答勝鬘經
003_0736_c_07L無明爲緣無流業因生阿羅漢辟支
003_0736_c_08L大力菩薩三種意生身在地上故
003_0736_c_09L伽經第五卷云有三種意生身一者三
003_0736_c_10L昧樂意生身謂第三第四第五地二者
003_0736_c_11L如實知諸法相意生身謂於第八地
003_0736_c_12L者種類無作行意生身
諸師釋不同
003_0736_c_13L師云約三學別地三地是定若約六
003_0736_c_14L五地是定故云三四五名三昧樂受
003_0736_c_15L意生身第六地般2) [54] [189] 若現前故六七
003_0736_c_16L八地名如實覺知諸行智意生身而言
003_0736_c_17L第八者擧其終也九地已上名種類無
003_0736_c_18L作行意生身
第二師云第一略初二地
003_0736_c_19L言三四五第二亦略初二故云第八
003_0736_c_20L理實而言第一通前五地第二通
003_0736_c_21L六七八三地第三通九十二地
第三師
003_0736_c_22L次第二於第八地則知第一七地已
003_0736_c_23L而唯云三四五者此中略先 [190] 後也
003_0736_c_24L「亦」下疑脫「名」「槃」疑剩

003_0737_a_01L진실로써 말하면, 첫째는 앞의 7지에 통하고, 둘째는 오직 제8지이며, 셋째는 9지와 10지 두 지에 있다.”라고 하였다.

(2) 『능가경』 등에 대한 해석

또 4권 『능가경』에서는 “첫째는 삼매를 즐겁게 받는 의생신이다.”라고 하였다. 지금은 『불성론』에 의거하였다.367) 진제 스님의 『승만경석』에서는 “세 가지 의생신이라 함은, 이것은 삼승종성의 성인으로 초지 이상에 들어가서 의생신을 받는다. 그러므로 ‘세 가지 의생신’이라고 이름한다.”368)라고 하였다. 이것은 『능가경』 가운데 ‘삼매락’ 등의 세 가지 의생신이 아니다.

(3) 『불성론』 등에 대한 해석

그러므로 『불성론』에서 “유유생사라 함은 세 성인이 의도한 대로 생기한 몸이다. 무유생사라 함은 세 성인이 의도한 대로 생기한 최후신이 의지하는 생이다.”369)라고 하였다. 『양섭론』에서는 8지 이상이 유유생사라고 했다.370) 금강보살은 무유생사이다. 이 두 생사는 이미 『불성론』에서 모두 삼종 성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삼승종성이 8지 이상에 이르러 유유생사를 받음을 알 수 있다. 본래의 종성으로부터 이름한 것으로, 아라한ㆍ벽지불ㆍ대력보살이라고 이름하였다.

(4) 7권 『능가경』에 대한 해석

그러므로 『능가경』 제7권에서 “대혜야, 성문과 벽지불은 제8지 보살지 가운데서 적멸삼매락문을 즐거워하는 집착에 취하여 오직 자심이 보는 것을 능히 잘 알지 못한다. 자상과 동상이 훈습의 장애에 떨어지기 때문이며, 인무아견의 과실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분별심으로써 열반이라 하니, 제법이 적멸함을 능히 알 수 없다.”371)라고 하였다.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성문ㆍ벽지불이 제8지의 적멸락문에 들었다고 설하였습니다. 여래는, 또 이것이 다만 자심의 분별임을 성문ㆍ벽지불이 알지 못한다고 설하였습니다. 또 설하시기를, 성문은 인무아를 얻고 법무아공을 얻지 못한다고 설하셨습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 성문ㆍ벽지불은 역시 아직 초지의 법을 능히 증득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어째서 8지 적멸락문일 수 있겠습니까?”372)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했다. 성문에는 두 부류가 있다. 제8지 적멸문에 들어갔다고 하는 것은, 먼저 보살행을 닦은 자가 성문지에 떨어지고, 다시 본심에 의거하여 보살행을 수행하여 동일하게 제8지 적멸문에 들어가니,

003_0737_a_01L實而言第一通前七地第二唯第八地
003_0737_a_02L第三九十二地
又四卷楞伽云第一名
003_0737_a_03L三昧樂受1) [55] [191] 生身今依佛性論眞諦
003_0737_a_04L師釋勝鬘經三種意生身者是三乘種
003_0737_a_05L性聖人入初地已上受意生身故名三
003_0737_a_06L非是楞伽經中三昧樂等三種意生
003_0737_a_07L身也
故佛地 [192] 論云有有生死者是三種
003_0737_a_08L聖人意2) [56] 無有生死者是三種聖
003_0737_a_09L人意所生最後身依生梁論八地已上
003_0737_a_10L是有有生死金剛菩薩是無有生死
003_0737_a_11L二生死旣佛性論皆言三種聖人故知
003_0737_a_12L三乘種姓至八地已上受有有生死
003_0737_a_13L本種姓爲名名羅漢辟支大力菩薩

003_0737_a_14L楞伽經第七卷云大慧聲聞辟支佛
003_0737_a_15L第八地菩薩中樂著寂滅三昧樂門醉
003_0737_a_16L不能善知唯息 [193] [194] 自相同相熏習
003_0737_a_17L障礙故隨人無我見過故以分別心
003_0737_a_18L爲涅槃而不能知諸法寂滅大慧菩薩
003_0737_a_19L白佛言世尊說聲聞辟支佛入第八地
003_0737_a_20L寂滅樂門如來3) [57] 聲聞辟支佛不知
003_0737_a_21L但是自心分別*後說聲聞得人無我
003_0737_a_22L而不得法無我空若如是說聲聞辟支
003_0737_a_23L [195] 未能證初地之法何況八地寂滅
003_0737_a_24L樂門
佛告大慧聲聞有二4) [196] [58] [197] 八地

003_0737_b_01L증상만의 적멸성문이 아니다. 저 적멸성문은 능히 보살행에 들어가지 못하며, 일찍이 삼계유심을 알지 못하며, 일찍이 보살의 여러 법을 닦지 못했으며, 아직 일찍이 여러 바라밀과 10지의 실천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적멸성문은 능히 저 보살의 행위가 되는 적멸락문을 증득할 수 없다.”373)

4) 생사의 명칭을 갖는 이유

무엇 때문에 생사라는 이름을 얻는가?
통틀어 변역생사라고 이름하는 것은 전변하고 바뀌는 것이다. 태어남이건 죽음이건 다 함께 양상에 따른 명칭이다. 다른 이름으로 방편인연이라고 한다. 이 둘은 작용에 근거한다. 유유와 무유는 뒤(방편인연)에 대하여 이름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성론』에서 “유유생사는 상류374)의 아나함인이 제2생 가운데 반열반하는 것과 같이 일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유유라고 이름한다. 무유생사는 변역역사의 최후신이다. 그러므로 다시 생사가 없다. 그러므로 무유라고 이름한다.”라고 하였다.

5) 계위에 근거한 판단

(1) 돈오와 점오에 근거함

계위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만약 돈오에 근거하면 8지 이상은 변역생사를 받는다. 이 이상에서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수용하거나 다시 분단생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점오의 경우라면, 7지 이전에 역시 변역신을 받는다. 만약 네 가지에 입각하고, 공통됨에 의거하여 말하자면, 계위마다 모두 ‘유’이다.

(2) 별도의 계위에 근거함

별도의 계위에 의거하면 오직 『양섭론』에 의거한다. 22무명과 11추보十一麁報375)를 감하는 가운데 처음 8무명은 네 가지 조잡하고 거친 것을 감득한다. 이것이 방편생사이다. 그러므로 방편은 앞의 4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6무명은 3추중을 감득한다. 이것은 인연생사이다. 그러므로 인연은 5지, 6지, 7지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다음 6무명은 3추중을 감득한다. 이것은 유유생사이다. 그러므로 유유는 8지, 9지, 10지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다음 2무명은 1추중을 감한다. 이것은 무유생사이다.

003_0737_b_01L寂滅門者此是先修菩薩行者 [198] 聲聞
003_0737_b_02L還依本心修菩薩行同入八地寂滅
003_0737_b_03L非增上慢寂滅聲聞以彼不能入菩
003_0737_b_04L薩行未曾覺知三界唯心未曾修行菩
003_0737_b_05L薩諸法未曾修行諸波羅蜜十地之 [199]
003_0737_b_06L是故決定寂滅聲聞不能證彼菩薩所行
003_0737_b_07L寂滅樂門
何故得生死名通名變
003_0737_b_08L易生死者轉變改易若生若死並是
003_0737_b_09L就相爲名別名方便因緣此二約用
003_0737_b_10L有有無有對後爲名故佛性論云有有
003_0737_b_11L生死如上流般 [200] 阿那含人於第二生中
003_0737_b_12L般涅槃者餘有一生故故名有有 [201] 無有
003_0737_b_13L生死是變易生死最後身故復更無生
003_0737_b_14L死故名無有也
約位判云何
003_0737_b_15L若約頓悟八地已上受變易生由此已
003_0737_b_16L煩惱不起無容更受分段生故若漸
003_0737_b_17L悟者七地已還亦受變易若約四種
003_0737_b_18L通而言位位皆有
若據位別唯依梁論
003_0737_b_19L二十二無明感十一麁報中初八無月 [202]
003_0737_b_20L感四麁重是方便生死故知方便在前
003_0737_b_21L四地次六無明感三麁重是因緣生死
003_0737_b_22L故知因緣在五六七地次六無明感三
003_0737_b_23L麁重是有有生死故知有有在八九十
003_0737_b_24L次二無明感一麁重是無有生死

003_0737_c_01L그러므로 무유는 금강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방편 및 인연 그리고 유유생사는 스스로의 지에서 일어나 스스로의 지에서 끊는다. 무유생사의 장애는 불지인 금강에서 끊는다. 그런 이유는 10지는 유학의 계위이기 때문이며 자체의 지위에 있는 장애를 자체의 지위에서 끊는다. 불지는 무학의 계위이기 때문에 불지의 장애는 금강위에서 끊는다.

① 추보麁報와 변역

앞의 설과 같이 방편 및 인연이, 즉 변역이 된다면, 방편 및 인연은 올바른 생사가 아니다. 무엇 때문에 감득하는 추중보가 변역이 되는가?
만약 점오일 경우라면 방편 인연위 가운데, 즉 분단은 추충보라고 이름한다. 만약 뒤의 설에 대해서라면, 처음의 4지는 범부와 양상이 같다. 무명이 증강하여 8지 이상과 멀어지므로 변역생사는 저것의 방편이 된다. 5지, 6지, 7지는 이승 및 처음 수행하는 보살이 무류도를 닦는 것과 양상이 같다. 또한 8지 이상이 감하는 변역신으로써 자조인資助因으로 삼는다. 뒤의 2종은 바른 변역신의 체와 같다. 혜원 스님이 “두 가지 생사를 설함에 각각 6중이 있다. 분단 6중이라 함은 악도 3중과 선도 3중이다.”376)라고 하였다.

② 분단 6중

가) 악도 3중

악도 3중은 무엇인가?
첫째, 범부가 받는 분단은 악업을 원인으로 하며, 사주지四住地를 조건으로 한다. 둘째, 10신이 받는 분단은 악업을 원인으로 하고, 사주지를 조건으로 하며, 비원悲願을 따라 도와줌(隨助377))으로 한다. 셋째, 종성 이상이면 곧 초지에서 받는 분단신은 악업을 원인으로 하고, 비원을 바른 조건으로 하며, 사주지를 따라 도와줌으로 삼는다. 이 3중에 근거하여 악도분단을 삼는다.378)

나) 선도 3중

선도 3중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범부와 이승과 대승의 10신이 받는 분단신은 선업을 원인으로 하고, 4주지를 조건으로 한다.

003_0737_c_01L故知無有是金剛位若是方便及因緣
003_0737_c_02L幷有有生死自地起自地斷若無有生
003_0737_c_03L死障佛地金剛斷所以爾者十地是學
003_0737_c_04L位故自地障自地斷佛地無學位故
003_0737_c_05L地障金剛斷
若如前說方便因緣
003_0737_c_06L是變易方便因緣非正生死何故皆言
003_0737_c_07L所感麁重報是變易耶若是漸悟
003_0737_c_08L便因緣位中卽是分段名麁重報若望
003_0737_c_09L後說初之四地相同凡夫無明增强
003_0737_c_10L與八地已上變易生死爲其方便五六
003_0737_c_11L七地相同二乘及初修菩薩修無流道
003_0737_c_12L亦與八地已上所感變易爲資助因也
003_0737_c_13L若後二種正變易體慧遠師云說二生
003_0737_c_14L各有六重所言分段六重者惡道
003_0737_c_15L三重與善道三重也
惡道三重如何
003_0737_c_16L一凡夫所受分段惡業爲因四住地
003_0737_c_17L爲緣二十信所受分段惡業爲因四住
003_0737_c_18L地爲緣悲願爲隨助三種性已上
003_0737_c_19L至初地所受分段惡業爲因悲願爲正
003_0737_c_20L四住地爲隨助約此三重爲惡道分
003_0737_c_21L
善道三重分段如何一凡夫二
003_0737_c_22L乘大乘十信所受分段善業爲因四住
003_0737_c_23L「樂」疑剩「所」下疑脫「生」「後」疑「復」
003_0737_c_24L次同
「八」疑「入」

003_0738_a_01L둘째, 종성해행위에서 받는 분단신은 선업을 원인으로 하고 4주지를 바른 조건으로 삼고, 비원을 따라 도와줌으로 삼는다. 셋째 지상에서 받는 분단신은 선업을 원인으로 하고, 비원을 정연으로 하며, 사주지를 따라 도와줌으로 삼는다. 이 3중에 근거하여 선도분단으로 삼는다.379)

③ 변역 6중

변역생사의 6중이라 하는 것은 사식事識의 3중과 망식妄識의 3중이다.380)

가) 사식事識 3중 변역

사식事識의 3중 변역이란 무엇인가?
첫째, 아라한ㆍ벽지불이 받는 변역은 사식 가운데 생공관을 원인으로, 무명주지를 조건으로 한다. 둘째, 종성해행이 받는 변역은 사식 가운데 법공관을 바른 원인으로, 무명주지를 조건으로 한다. 셋째, 지상에서 받는 변역은 사식 가운데서는 유무에 대해서 망상을 쉬는 이해를 바른 원인으로 삼고, 무명주지를 조건으로 한다.381)

나) 망식妄識 3중 변역

이 3중에 근거할 때 망식 가운데 3중 변역생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지전이 받는 변역은 망식 가운데 일체 망상이 진실한 관찰에 의지함을 원인으로 삼고, 무명주지를 조건으로 삼는다. 셋째, 8지 이상이 받는 변역은 망식 가운데 오직 진실이어서 망이 없고 상을 쉬는 관으로 정인으로 삼으며, 무명주지를 조건으로 한다.382) 이 3중에 근거하면 망식 가운데 3중의 변역생사가 된다.
하권에서 “종교에 의거하면, 지전에 번뇌를 남겨 분단신을 받는다. 초지 가운데 일체 번뇌를 일으키는 종자(使種)를 영원히 끊는다. 또한 저 후천적인 것(分別)과 선천적인 것(俱生)을 구분하지 않는다. 소지장 가운데 또한 일부분의 거친 종류의 번뇌(正使)383)를 끊는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변역신을 받아 금강위에 이른다.”384)라고 하였다.
10. 『대승동성경』에 의거함

1) 세 가지 10지와 10지의 양상

열째는 『대승동성경』에 의거하여 세 가지 10지가 있다. 성문 10지, 연각 10지, 불 10지이다. 소승을 끌어들여 대승종교의 의도에 맞추려고 이와 같은 설을 지었다. 그 10지의 명칭 등은 『소疏』에 상세하게 설해 놓았다.385)

003_0738_a_01L地爲緣二種性解行所受分段善業爲
003_0738_a_02L四住地爲正緣悲願爲隨助三地
003_0738_a_03L上所受分段善業爲因悲願爲正緣
003_0738_a_04L住地爲隨助約此三重爲善道分段

003_0738_a_05L言變易生死六重者事識三重及妄識
003_0738_a_06L三重
事識三重變易如何一阿羅
003_0738_a_07L漢辟支佛所受變易事識中生空觀爲因
003_0738_a_08L無明住地爲緣二種性解行所受變易
003_0738_a_09L事識中法空觀爲正因無明住地爲緣
003_0738_a_10L三地上所受變易事識中非有無息相之
003_0738_a_11L解爲正因無明住地爲緣
1) [59] 此三重
003_0738_a_12L爲事 [203] 識中三重變易生死如何
003_0738_a_13L地前所受變影妄識中一切妄想依眞
003_0738_a_14L觀以爲因無明住地以爲緣 [204] 三八地
003_0738_a_15L已上所受變易妄識中唯眞無妄息想
003_0738_a_16L觀以爲正因無明住地爲緣約此三重
003_0738_a_17L爲妄識中三重變易生死下卷云
003_0738_a_18L依終敎地前留惑受分段身於初地中
003_0738_a_19L永斷一切煩惱使種亦不分彼分別俱
003_0738_a_20L [60] 所知障中 [205] 斷一分麁品正使
003_0738_a_21L故地上受變易身至金剛位
十者依
003_0738_a_22L大乘同性經有三種十地聲聞十地
003_0738_a_23L覺十地佛十地2) [61] [206] 引小乘同於大
003_0738_a_24L乘終敎之義故作此說其十地名等

003_0738_b_01L또한 10지의 양상에 대한 차별은 『양섭론』 「수시장修時章」에 대한 해석에 자세하다.386)

2) 『신라기』의 해석

『기記』에서 “저 『대승동성경』은 또한 『일체불행입지비로자나장설경一切佛行入智毘盧遮那藏說經』이라고도 이름한다. 두 권 가운데 첫째 권이다. 「수시장」이라는 것은, 여기서는 저 『섭대승론』 제11권 「수시장」 제5로부터 인용하였다.”라고 하였다. 저 『섭대승론』387)에서 “만약 진여를 보면, 바로 청정의행지에 들어간다. 초지로부터 10지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이와 같은 명칭을 얻는다. 청정의행인에는 네 부류가 있다. 첫째는 공통됨으로부터 명칭을 세웠으니 청정의행淸淨意行이라고 하였다. 뒤의 셋은 각각 명칭을 세웠으니, 즉 유상행ㆍ무상행ㆍ무공용행을 말한다.

(1) 청정의인의 세 계위

이 청정의인은 6지 이전부터 유상행이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7지는 무상행으로 공용이 있다. 그리고 청정의인이 8지에 들어가면 무상행이 있지만, 무공용은 아직 성취되지 못하였다. 8지가 완전하게 가득 차면 8지에서 무상행과 무공용행이 이미 성취된다. 9지와 10지에서는 무상행과 무공용행이 아직 가득 성취되지 못한다. 제3 아승지겁에 이르러 이 무상행과 무공용행이 곧 성취된다. 비유하자면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의 세 계위를 만들어 세워 다섯 사람으로 삼는 것과 같다.

(2) 세 계위의 다섯 사람

세 계위는 왜 만들어 다섯 사람으로 세우는가? 계위의 차별로 인하여 다섯 사람이 성립한다. 처음의 방편에서 수다원에 이르기까지가 1인이다. 집집마다는 제2인이다. 사다함이 제3인이다. 1종자가 제4인이다. 아나함이 제5인이다. 보살위도 마찬가지이다. 초지가 제1위이다. 2지부터 7지까지가 제2위이다. 8지부터 제10지까지가 제3위이다. 또한 5인을 만들어 세울 수도 있다. 방편으로부터 초지까지가 제1인이다. 2지부터 4지까지가 제2인이다. 5지부터 6지가 제3인이다. 7지가 제4인이다.

003_0738_b_01L如疏說又有差別十地相廣如梁論
003_0738_b_02L修時章釋
記云彼經亦名一切佛行入
003_0738_b_03L智毘盧遮那藏說經有二卷中引初卷
003_0738_b_04L修時章者此引彼論第十一卷修時
003_0738_b_05L章第五如彼論云若見眞如卽入淸淨
003_0738_b_06L意行地從初地至十地同得此名淸淨
003_0738_b_07L意行人自有四種初一從道 [207] 立名謂淸
003_0738_b_08L淨意行後三從別立名謂有相行無相
003_0738_b_09L行無功用行
此淸淨意人從第六地以
003_0738_b_10L說名有相行乃至第七地是無相行
003_0738_b_11L有功用乃至若3) [62] [208] 入八地有無相行
003_0738_b_12L功用未成就若八地圓滿於八地無相
003_0738_b_13L行無功用已成於九地十地無相行無
003_0738_b_14L功用未成滿第三阿僧祇劫此無相無
003_0738_b_15L功用乃成譬如須陀洹斯陀含阿那含
003_0738_b_16L三位製立爲五人
若三位云何製立爲
003_0738_b_17L五人由位差別故成五人從初方便至
003_0738_b_18L須陀洹爲第一人家家爲第二人斯陀
003_0738_b_19L含爲第三人一種子爲第四人阿那含
003_0738_b_20L爲第五人菩薩位爾初地爲第一位
003_0738_b_21L從二地至七地爲第二位八地至第十
003_0738_b_22L地爲第三位亦得製立爲五人從方便
003_0738_b_23L至初地爲第一人從二地至四地爲第
003_0738_b_24L二人五地至六地爲第三人七地爲第

003_0738_c_01L8지부터 10지까지가 제5인이다.”388)라고 한 것과 같다.
해석하여 말한다.389) 이것은 성문승의 과果에 근거하여 10지를 풀이한 것으로, 타인이 10지 가운데의 차별에 대해 해석한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공목장』에서 이 「수시장」의 문장을 인용하여 삼승 10지가 차별되어 같지 않음을 드러냈다.

(3) 혜경 대덕의 「수시장」 해석

만약 그렇다면 이 10지에 준하여 해석하는 뜻이 무엇인가?
혜경惠鏡 대덕390)이 말하기를, “방편으로부터 수다원에 이르기까지 첫째 사람을 초지인으로 한다는 것은 동일하게 도류道類를 보기 때문이다. 집집마다(家家)라는 것은, 이것은 사람이 죽고 나서 하늘에 태어나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가운데 집에서 집으로 전전하기 때문에 집집마다라고 한 것이다. 제2지 가운데 수혹修惑에 대해서는 무루지로써 수행한다. 4지에 이르면 다시 저 무루지를 얻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의에 준거하여 집집마다라고 한 것이다. 5지, 6지는 무상행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다. 그러므로 유상행은 가볍다. 오직 박지薄地의 사람이다. 제7지 가운데는 유상행을 떠났다. 오직 공용위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직 반생을 받는 것에 준한다. 8지 이상은 공용이 있음을 떠났다. 그러므로 이미 욕심을 떠난 사람에 준하니,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11. 정과 비정의 작불
‘정과 비정의 작불’이라 함은, 『문답』에서 “만약 삼승종교에 의하면, 즉 일체 유정중생이 모두 다 성불한다. 다른 성인의 지혜로 말미암아 본유 불성 및 행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초목 등은 제외한다. 『열반경』에서 설한 바와 같다.”391)라고 하였다.

1) 성불하는 곳

성불하는 곳에 대해서라면, 『종남문답』에서 “만약 종교삼승이라면, 삼천 등의 동류 세계에서 성불을 나타내는 것은 나란히 화불이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대지도론』에서 설한 성불 세계는 구체적으로는 『소疏』에서 인용한 바와 같다.392) 모두 화불의 변화하는 경계임을 알 수 있으니, 많은 곳에서 몸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것은 변화이다. 마혜수라천신 역시 변화하여 지은 것이다.

003_0738_c_01L四人八地至十地爲第五人
解云
003_0738_c_02L約聲聞乘果釋十地者顯他人釋十地
003_0738_c_03L中別故此章引此文顯三乘十地差別
003_0738_c_04L不同
若爾與此十地准釋意云何
003_0738_c_05L惠鏡德云從方便至須陀洹爲第一人
003_0738_c_06L爲初地人者是同見道類故家家者
003_0738_c_07L此從人死生於天中還亦至人中如從
003_0738_c_08L家至家故云家家第二地中修惑時
003_0738_c_09L無流智而修行至四地中還得彼無流
003_0738_c_10L故約此義准家家也五地六地
003_0738_c_11L於無相中最勝故有相行薄唯薄地人也
003_0738_c_12L第七地中離有相行唯有功用位故
003_0738_c_13L受半生4) [63] 八地已上離有功用
003_0738_c_14L准已離欲人可知也
情非情作佛者
003_0738_c_15L答云若依三乘終敎卽一切有情衆生
003_0738_c_16L皆悉成佛由他聖智顯本有佛性及行
003_0738_c_17L性故除其草木等如涅槃經說
若成
003_0738_c_18L佛處者終南5) [64] [209] 答云若終敎三乘
003_0738_c_19L三千等同類世界現佛成 [210] 並是化佛
003_0738_c_20L何以知之大智度論成佛世界廣引如
003_0738_c_21L得知並6) [65] 化佛化境多處現身故
003_0738_c_22L化也摩醯首羅天身亦是化作由權現
003_0738_c_23L「約」上疑脫「問」「攝」或「招」歟原字不明
003_0738_c_24L
「人」疑剩「准」更勘「問」補入「是」
003_0738_c_25L下問答有「一佛」

003_0739_a_01L염부제 보리수 아래에 방편으로 나투었으므로 화불이다. 연화장계에 존재하는 부처는 실보實報이다. 체體ㆍ상相ㆍ용用을 통해 시방 정토에 나타나는 부처는 보불이다. 모든 친속들은 법문이니, 이 사바세계의 작은 근기와 수습을 다 마친 중생을 이끌기 위해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승무량수경』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393)라고 하였다.

2) 상호업相好業을 닦음에 근거함

“뛰어난 모습을 갖추는 행위를 닦는다면, 종교 및 직진 보살에 의거하면 모두 발심으로부터 함께 수행한다. 10지의 끝 이후에는 특별히 백겁 동안 뛰어난 신체적 특징을 갖추는 행위가 없다.”394)라고 하였다. 하권에서 “이 종교 가운데 진실한 실천을 논함에 발심의 마음으로부터 복덕과 지혜를 함께 수행하기 때문에 성불할 때는 별도로 수행하는 것이 없다.”395)라고 하였다.

3) 종성 차별

종성에 대해서라면, 하권에서 “즉 진여성에 의거하여 종성을 세웠다. 그러므로 즉 모든 중생이 두루 다 본래 불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도론』에서 ‘하얀 돌에는 은의 성질이 있다. 황금에는 금의 성질이 있다. 물은 습한 성질이며, 불은 뜨거운 성질이다. 모든 중생에게는 열반의 성품이 있다’396)라고 하였다. 일체의 망식은 스스로 진실의 본성에 귀일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열반경』에서 ‘중생도 또한 그러해서 모두 마음이 있다. 무릇 마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미래에 아뇩보리를 성취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로 나는 항상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397)라고 설한 바와 같다.”398)라고 하였다.

399) 어떤 사람이 비판하기를, “모든 마음이 있는 자가 모두 미래에 보리를 얻는다면, 부처도 역시 마음이 있어 역시 마땅히 미래에 성불할 것이다. 부처도 마음이 있는데 더 이상 깨달음을 얻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즉 무성의 중생도 비록 마음이 있지만 역시 미래에 깨닫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경』 가운데 이미 자체적으로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 단지 중생에게 마음이 있다고 했지, 부처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곳곳에서 생을 받는 것을 중생이라 이름하며 부처와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하권에서 설한 바와 같다. 계위에 대해서도 하권에서 설한 바와 같다.
제7장 돈교에 근거함
넷째는 돈교에 근거하여 다만 한 가지 문만을 밝힌다. 이른바 양상이 없음이다. 왜냐하면 일행삼매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저 일미진여로 성취된 것을 타기 때문에

003_0739_a_01L閻浮菩提樹下是故化佛蓮華藏界所
003_0739_a_02L有佛者是實報也通體相用十方淨土
003_0739_a_03L所現佛者是報佛也所有親屬是法門
003_0739_a_04L爲現引此娑婆小根畢習衆生故
003_0739_a_05L大乘無量壽經說
若修相好業若依終
003_0739_a_06L敎及直進菩薩並從發心以來一切並
003_0739_a_07L十地終1) [66] 無別百劫修相好業
003_0739_a_08L卷云此終敎中論其實行從發意卽
003_0739_a_09L慧雙修故成佛時無別修也
若種性者
003_0739_a_10L下卷云卽就眞如性中立種性故則遍
003_0739_a_11L一切衆生皆悉有性故智論云白石有
003_0739_a_12L銀性黃石有金性水是濕性火是熱性
003_0739_a_13L一切衆生有涅槃性以一切妄識無不
003_0739_a_14L可歸自眞性故如經說言衆生亦爾
003_0739_a_15L皆有心凡有心者定當得成阿耨菩提
003_0739_a_16L以是義故我常宣說一切衆生悉有佛
003_0739_a_17L
如有難云若諸有心悉當 [211] 得菩提
003_0739_a_18L佛亦有心亦應當得若言佛雖有心
003_0739_a_19L更非當得是則無性衆生雖是有 [212]
003_0739_a_20L非當得經中已自爲 [213] 簡濫故但云衆
003_0739_a_21L生有心不云佛也 [214] 以處處受生 [215] 衆生
003_0739_a_22L不同佛也廣如彼說位地亦如下卷說

003_0739_a_23L[第七約頓敎]
第四約頓敎明唯有一門所謂無相
003_0739_a_24L何以故由成2) [67] 三昧乘彼3) [68] [216] 昧眞如

003_0739_b_01L많은 다른 양상의 문이 존재한다고 설할 수 없다. 성불도 이와 같다. 일체를 함께 떠난 것을 부처라고 한다.400)
1. 수행하는 시기에 근거함
‘수행하는 시기에 대해서는’이라 함은, 『공목장』에서 “돈교에 의하면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다.”401)라고 함이다. 종성에 대해서는 하권에서 “오직 하나의 진여로서 언어와 양상을 떠난 것을 종성이라고 한다. 나아가 본성과 습성의 차이를 구분하지도 않는다. 일체의 존재에는 두 가지 양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법무행경』에서 ‘무엇 때문에 이것을 종성이라고 하는가 하면, 문수사리여, 일체중생은 모두 한 가지 양상을 지닌다. 그러므로 끝내 태어남이 없으며, 모든 명칭을 떠나 있어 하나이거나 다르거나 하는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종성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했다.”402)라고 하였다.
2. 실천에 근거함
또 ‘행위’의 경우, “일체의 실천과 계위도 모두 설할 수 없다. 양상을 떠나 있기 때문이며, 일념조차 생기하지 않을 때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실천과 계위의 구별 등 양상을 보려 하면, 즉 전도된 견해가 되기 때문이다. 언어를 빌려 표현한다면, 『능가경』에서 ‘초지가 즉 8지이며’, 또는 ‘무소유이니 무슨 수행의 단계가 있겠는가’라는 등을 설하는 것과 같다.”403)라고 하였다. ‘의거하는 몸’이라면, “일체의 실천과 계위에 대해 설할 수 없으므로 그 의거가 되는 몸에 대한 분류도 역시 이것에 준하여 알 수 있다.”404)라고 하였다.
제8장 일승에 근거함
1. 별교에 근거함
다섯째, 일승의에 근거한다는 것은 10신의 마지막 마음과 내지 10해위ㆍ10행위ㆍ10회향위ㆍ10지위에서 모두 성불함이다. 또한 제10지에서도 별도로 성불함이다. 법보주라法寶周羅 선지식 가운데서 설한 바와 같다. 왜냐하면 일승의에서는 삼승 및 소승 등을 이끌어 하위에 동일화해서 하신下身 가운데 성불한다. 또 8지 이상에서 바로 성불하니, 이 계위에서 무애불의 일체신을 성취함과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별교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다.405)
『기記』에서 “『경』 49권에서 ‘그 집은 광대하여 10중十重의 여덟 문이 있다고 말했다’, 또는 ‘제9중에 보처 보살이 그 가운데 충만함을 보며, 제10중에 일체 여래가 그 가운데 충만함을 본다’406)라고 하였다. 해석하면 8문은 팔성도이다.

003_0739_b_01L所成故不可說有諸異相門4) [69]
003_0739_b_02L一切俱離是名佛也
若修時者孔目云
003_0739_b_03L若頓敎義卽不可說若種性者下卷云
003_0739_b_04L唯一眞如離言絕相名爲種性而亦不
003_0739_b_05L分性習之異以一切法無二相故是故
003_0739_b_06L諸法無行經云云何是事名爲種性
003_0739_b_07L殊師利一切衆生皆是一相畢竟不生
003_0739_b_08L離諸名字一異不可得故是名種性

003_0739_b_09L行位者一切行位皆不可說以離相故
003_0739_b_10L一念不生卽至 [217] 佛故若見行位差別等
003_0739_b_11L卽是倒 [218] 若寄言顯者如楞伽云
003_0739_b_12L地卽八地乃至云無有所 [219] 何次等
003_0739_b_13L5) [70] [220] 若所依身者一切行位旣不可說
003_0739_b_14L所依身分亦准此知

003_0739_b_15L[第八約一乘]
第五約一乘義者十信終心乃至十6) [71]
003_0739_b_16L十行十迴向十地皆成佛又在第十
003_0739_b_17L亦別成佛 [221] 如法寶周羅善知識中說
003_0739_b_18L何以故一乘之義爲引三及小乘等
003_0739_b_19L於下位及下身中得成佛又八地已上
003_0739_b_20L卽成佛如於此位成無礙佛一切身故
003_0739_b_21L此據別敎言
記云經四十九云
003_0739_b_22L宅廣大十重八門乃至云見第九重補
003_0739_b_23L處菩薩充滿其中見第十重一切如來
003_0739_b_24L充滿其中解云八門謂八聖道也

003_0739_c_01L10중은 10지이다. 이미 제10지 가운데 모든 여래가 그 가운데 충만하기 때문에 또한 제10지에서도 별도로 성불한다.”라고 하였다. 『광소』 19권을 고찰하면 세 가지 해석이 있다.407) 첫째는 옛 스님에 의하면, 10중 가운데 8중 안에서 8과 9를 연다.408) 나머지 중重은 차례대로 초지부터 등각ㆍ묘각에 배대한다.409) 그러므로 『소疏』에서 “아홉째 보처 등이라는 것은 10지의 수직위受職位는 또한 등각위임을 밝힌 것이다. 열째, 일체 여래라는 것은 묘각위이다. ‘초발심으로부터’ 등은 원인을 수렴하여 결과를 성취함을 밝힌다.”410)라고 하였다. 『공목장』은 옛 스님의 해석에 의거한 설이다.
『소疏』의 둘째 해석에서는 10행위에 배대하였다. 셋째는 전체적으로 계위에 근거하지 않는 설이라고 해석했다. 10이 무진을 나타내는 것은 『소疏』의 설과 같다. 이 지식은 제5 무치란행無癡亂行 선지식이다. ‘법보주라法寶周羅’라는 것은, 『소疏』에서 말하기를, “이것은 정계이다. 즉 법으로써 사람을 이룬다. 보물은 정계이다. ‘천축본’에서, ‘법을 지닌 장자를 말하며, 보주라寶周羅라고 이름한다’라고 했으니, 그 삼매의 작용이 매우 존귀한 모습임을 드러내었다.”411)라고 하였다.
2. 동교에 근거함
만약 동교에 의거하여 설하면, 즉 앞의 4승에서 밝히는 도리를 포함한다. 일체는 모두 일승의 의미이다. 문장은 비록 같으나 의미는 모두 다르다. 이와 같은 것들의 존재의 차별상은 10지를 지키기 위해서이니, 방편문을 따라 갖가지 설을 지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10지 가운데서 증상만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412) 『기記』에서 “삼승인은 반드시 10지를 지나 드디어 부처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증상만이 되지만, 이 증상만을 여의게 하려고 계위마다 부처를 성취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3. 육상에 근거함
또 육상 총별의 뜻에 의거한다. 즉 이것은 일승이다. 양상에 따라 별도로 세운 항포의가 삼승이다.

003_0739_c_01L重謂十地旣第十地中一切如來充滿
003_0739_c_02L其中故云又在第十地亦別成佛也
003_0739_c_03L廣疏十九卷有三釋初依7) [72] [222] 十重
003_0739_c_04L中八重內開八九餘重如次配初地乃
003_0739_c_05L至等覺妙覺故疏云九補處等者明十
003_0739_c_06L地受職位等亦是等覺位十一切如來
003_0739_c_07L者妙覺位從初發心等明攝因成果
003_0739_c_08L目依此釋意說
疏第二釋配十行位
003_0739_c_09L三釋總不約位說十顯無盡其如疏也
003_0739_c_10L此知識是第五無癡亂行善知識也
003_0739_c_11L寶周羅者疏云此云頂髻卽以法成
003_0739_c_12L寶爲頂髻天竺本云有法長者
003_0739_c_13L寶周羅顯其定用可貴尊極之相
若據
003_0739_c_14L同敎說卽攝前四乘所明道理一切皆
003_0739_c_15L是一乘之義文雖是同而義皆別如此
003_0739_c_16L等法差別相者爲護十地故隨方便門
003_0739_c_17L種種說8) [73] [223] 諸衆生於十地中離增上慢
003_0739_c_18L記云三乘人定逕十地方得成佛故爲
003_0739_c_19L增上慢而爲欲令離此增上慢故位位
003_0739_c_20L卽得佛成 [224]

003_0739_c_21L
又依六相總別義卽是一乘隨相別布
003_0739_c_22L「敎」問答作「後」「行」上孔目有「一」
003_0739_c_23L「一」下疑脫「行三」
「亦」孔目作「佛亦如」
003_0739_c_24L
「等」疑剩「後」孔目作「解」「右」疑「古」
003_0739_c_25L
「今」疑「令」

003_0740_a_01L이것은 교설의 측면에 근거한 설이다. 저 일승 10지의 법은 저 삼세를 다하여 이미 구경에 통한다. 이것은 증득의 측면에 의한 설이다.413)
『기記』에서 “이 10지의 작용에 있어 육상연기 다라니법이라는 것은, 곧 무애자재한 10지이기 때문에 일승이다. 만약 법공지法空智의 분위分位에 따라 뛰어남과 열등함으로써 벗어나 10지가 되는 것은 곧 삼승이다. ‘이것은 교설의 측면에 의한 설이다’라는 것은, 육상의 교설을 이용한 것이다. 지금 존재의 연기를 드디어 얻는 것이 일승이라는 것은, 교설의 측면에서 해석한 것이다. 증득의 측면에 근거한다면, 자재함이 삼세를 다하여 구경처에 통하기 때문에 증위가 된다.”라고 하였다.
4. 정과 비정의 작불에 근거함
정情과 비정非情의 작불의 경우에는 『문답』에서 “일승의에 의거하면 일체중생은 의보와 정보에 공통되게 모두 성불한다. 『화엄경』의 설과 같다. 이 의미로써 위의 사구의四句義를 판단하면, 사구의는 일승공교로서 별교가 아니다.”414)라고 하였다. ‘성불의 전후’라면, “찰나찰나 가운데서 성불하여 모두 교화할 유정을 다 교화한다. 여러 계위 가운데 10주 이후 내지 보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생계를 다하며, 계위를 성취하고 편만하여 전후가 없다. 동일한 연기로서의 큰 나무이기 때문이다.”415)라고 하였다. ‘성불의 시기의 경우’라면, “일승의에 의거하면, 성불의 시절은 모두 정해지지 않는다. 시방세계의 시절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인다라 세계 등은 모두 미래의 응보로서의 계위에 근거하여 유위의 모든 겁이 상작416)하고 상입하는 것 등을 설하기 때문에 시간이 정해짐이 없으며, 또한 시간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417)라고 하였다.
하권에서 “일체 시간분은 모두 불확정적이다. 왜냐하면 모든 겁은 상입하기 때문이며, 상즉하기 때문이며, 모든 인다라 등의 여러 세계에 모두 통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각각 장소에 응하여 한순간 혹은 무량겁 등을 성취하나, 시간적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418)라고 하였다. 『공목장』 4권에서 “일승의 경우는 즉 무량겁이다. 왜냐하면 일승에 의하면 일체중생은 이미 성불을 마쳤으며,

003_0740_a_01L卽是三乘此約敎分說其一乘十地
003_0740_a_02L之法盡其三世已通究竟此據證說

003_0740_a_03L於此十地用六相緣起陀羅尼法者
003_0740_a_04L卽是無礙自在十地故爲一乘也若隨
003_0740_a_05L法空智分位用勝劣出爲十地者卽是
003_0740_a_06L三乘此約敎分說者用六相敎今法緣
003_0740_a_07L方得爲一乘者此約敎分而釋若約
003_0740_a_08L證分者自在盡三世通究竟處爲證位也

003_0740_a_09L
若情非情作佛者問答云依一乘義
003_0740_a_10L一切衆生通依及正並皆成佛如華嚴
003_0740_a_11L經說以此義准上四句義卽是一乘共
003_0740_a_12L非別敎也若成佛前後者於念念中
003_0740_a_13L成佛皆盡所化有情在諸位中十住已
003_0740_a_14L乃至菩提皆盡衆生界成位遍滿
003_0740_a_15L有前後爲同一緣起大樹故若成佛時
003_0740_a_16L依一乘義成佛時節並皆不定爲十
003_0740_a_17L方世界時節不同因陀羅世界等並據
003_0740_a_18L當分報位說有爲諸劫相作及相入等
003_0740_a_19L故無定時仍不違時法也
下卷云
003_0740_a_20L切時分皆悉不定何以故 [225] 諸劫相入
003_0740_a_21L相卽故該通一切因陀羅等諸世界
003_0740_a_22L仍各隨處成一念或無量劫等不違
003_0740_a_23L時法也孔目四云若一乘義卽無盡劫
003_0740_a_24L何以 [226] 爲依一乘一切衆生已成佛竟

003_0740_b_01L중생은 다시 새롭게 성불하기 때문이다. 또한 배우는 경지에 머물지 않고 정각을 성취한다. 이 한량없는 시간에 의거하기 때문에 무진이다. 이 의의와 교리가 흥기한 것은 10지의 공덕을 비교하고 헤아려 저 믿음을 나게 하는 것에 있다. 또한 수법數法은 10지의 공덕에 통해 있다.”419)라고 하였다.
5. 타방불의 응화 등에 근거함
타방불의 응화의 경우라면, “일승에 의하면 10불이 있어 실천의 측면에 의거하여 설하며, 수생 및 본유의를 나누지 않는다. 만약 대도를 체해體解하면, 체는 바로 모든 것의 체이고, 상은 모든 것의 상이며, 용은 모든 것의 용이다. 모든 방향에 출현하는 부처는, 이름이든 뜻이든 모두 석가해인에 의하여 나타나며, 다른 부처가 아니다.”420) 부처의 어머니 경우라면, “일승에 의하면 모든 제불은 석가불의 해인삼매력에 있다. 이 의미에 준하여 모든 식구 등이 모두 동일하다. 체ㆍ상ㆍ용의 의미 및 변화 및 본성을 바꾸는 것은 이것에 준하여 알 수 있다.”421)
유정의 육근이 상입하고 상작하는 경우라면, “일승교에 의거하면 변화와 본성을 바꾸는 것은 모두 연기 본래의 존재법에 의거하여 현현하며, 역시 변화하거나 고칠 만한 별도의 본성이 없다. 만약 나타나거나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앞과 같이 화불의 영역에 속한다.
6. 일승의 체에 근거함
나아가 일승의 체에 의하면, 저 범부신이 있고, 다시 체의 덕이 있다.”422) 인과를 구별하자면, “일승에 의하면, 모든 성불의 원인과 결과의 영역은 두루하여, 즉 인다라ㆍ비밀ㆍ미세 등 모든 영역의 경계에 통하며, 삼세간의 영역을 다하여 두루하다. 『화엄경』의 보현문에 준함과 같다. 모든 수행과 단혹 등의 원인과 결과의 두 계위는 모두 다함과 다하지 못함이 있다.”423)
수도하여 성불하는 것은, “일승교에 의하면, 모두 보살의 근기(前機)에 대해서는 성불하여야 하면 매번 성불하고, 모두 새로이 번뇌를 끊어 성불하며, 또한 배움의 경지에 머물지 않고 성불한다. 성불하지 못하는 근기라면 항상 성불하지 못한다. 큰 바다와 같이 모든 계위 가운데에서 넘치거나 가득 참이 없기 때문이다. 즉 『능가경』의 보살 일천제424)가 이것이다. 다양한 병에 걸린 근기에 대해서는,

003_0740_b_01L爲衆生新 [227] 成佛亦不住學地而成正覺
003_0740_b_02L據此不限時分故無盡也此義敎與
003_0740_b_03L1) [74] [228] 量十地德生其信也又數法是通十
003_0740_b_04L地德
若他方佛應化者若依一乘但有
003_0740_b_05L十佛依行分說不分修生及本有義
003_0740_b_06L體解大道體卽一切種體相卽一切種
003_0740_b_07L用卽一切種用也諸方現佛若名若
003_0740_b_08L皆依釋迦海印現無別佛也若佛母
003_0740_b_09L若依一乘所有諸佛在釋迦佛海印
003_0740_b_10L定力以此義准諸眷屬等皆悉同然
003_0740_b_11L相用義及變化改性等准此可知也

003_0740_b_12L情根相入相作者依一乘敎變化改性
003_0740_b_13L並依緣起本法顯現亦無別性可變可
003_0740_b_14L若現若爲者同前化攝也
仍一乘之
003_0740_b_15L有彼凡有身復有體 [229] 若因果差別
003_0740_b_16L若依一乘所有成佛因果分齊遍量
003_0740_b_17L卽通因陀羅秘密微細一切境分齊
003_0740_b_18L三世間分齊遍量如華嚴經普賢門准
003_0740_b_19L所有修行斷惑等因果二位皆盡不
003_0740_b_20L盡也
若修道成佛者依一乘敎皆對前
003_0740_b_21L若須成佛卽數數成皆新斷結成佛
003_0740_b_22L亦不住覺地成佛若對不成機卽常不
003_0740_b_23L由如大海於諸位中無有溢滿
003_0740_b_24L楞伽經菩薩一闡提是若對異病機

003_0740_c_01L곧 성불하고 혹은 성불하지 못하고가 없다. 보현에 대해서는 곧 성불하기도 하고 성불하지 못하기도 한다.”425) 부처의 모습이라면, “일승교에 의하면, 이것은 덕이고 양상이며, 덕이 아니기도 하고, 상이 아니기도 하다. 연기의 도리로 말미암아 역ㆍ순과 작ㆍ부작의를 갖추기 때문이다.”426) 종성의 실천과 계위의 의지하는 몸 등은 하권427)에서 설한 것과 같다.
제4편 빨리 성불하는 종류
『공목장』 권제4에서 “또한 미륵 선지식의 문장에 의하면 여러 불보살은 무량겁이 걸려서 깨닫는데, 선재는 한 생에 전부 증득한다. 이에 대해 『화엄경』에 따르면, 빨리 성불하는 데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뛰어난 몸에 의해 견문위로부터 뒤의 일생에 이구삼매에 이르고, 그 다음 몸에 바로 성불한다. 둘째, 견문에 의해 생을 거쳐 빨리 극복한다. 셋째, 일시에 빨리 성불한다. 넷째, 일념에 빨리 성불한다. 다섯째, 무념에 의해 빨리 성불한다.”라고 하였다.428)
제1장 첫째의 네 가지
첫째에는 네 가지가 있다.앞 장에서 설한 바와 같다.
제2장 견문에 의하여 생을 거쳐 빨리 극복함
둘째, ‘견문에 의해 생을 거쳐 빨리 극복한다’라는 것은, 초지 가운데 보이는 세 시기의 이익과 같다. 첫째는 듣는 때(聞時)의 이익, 둘째는 수행할 때의 이익, 셋째는 전생轉生 때의 이익이다. 즉 『십지경론』에서 “모든 여래와 보살이 가호하는 이 사람은 능히 이와 같은 미묘한 법을 듣고 수지한다. 이것이 듣는 때의 이익이다. 지地마다 그 청정무구함을 차례로 완성하고 부처의 열 가지 신력을 증득해서 무상의 깨달음을 성취한다. 이것이 수행할 때의 이익이다. 대해나 겁진화劫盡火 중에 있더라도 굳게 믿어 의심이 없다면 반드시 이 『경』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전생轉生 때의 이익이다.”429)라고 하였다.430)
생각하건대 신행의 계위(信行地)에 있는 보살이, 금강장보살이 설한 이러한 수승한 법을 듣고 수지하면, 곧 모든 부처님의 가호를 얻고 모든 삿된 것에서 벗어난다. 이것을 듣는 때의 이익이라 한다. 이 수승한 법을 듣고 나서

003_0740_c_01L無成不成若對普賢卽亦成不成若佛
003_0740_c_02L相貌者依一乘敎是德是相是非德是
003_0740_c_03L2)相非 [75] [230] 由緣起理具足逆順作不作義故
003_0740_c_04L種性行位所依身等如下卷說

003_0740_c_05L第四疾得成佛種類門
孔目第四云
003_0740_c_06L依彌勒文諸佛菩薩無量劫3) [76] [231] 善財一
003_0740_c_07L生皆得者依華嚴經疾得成佛有其五
003_0740_c_08L一依勝身從見聞位後一生至離垢
003_0740_c_09L後身卽成佛二依見聞逕生疾尅
003_0740_c_10L依一時疾得成佛四依一念疾得成佛
003_0740_c_11L五依無念疾得成4) [77] [232]
初義有四
如上
門也

003_0740_c_12L二依見聞逕生疾尅者
如初地中有三
003_0740_c_13L時益一聞時益二修行時益三轉生
003_0740_c_14L時益故地論云是諸如來加護於諸菩
003_0740_c_15L此人能聞持如是微妙法此是聞時
003_0740_c_16L諸地淨無垢漸次而滿足證佛十
003_0740_c_17L種力成無上菩提此是修行時益雖在
003_0740_c_18L於大海及劫盡火中決定信無疑必得聞
003_0740_c_19L此經5)展生 [78] [233]
信行地菩薩聞持
003_0740_c_20L此金剛藏所說勝法卽得諸佛加護
003_0740_c_21L諸魔事此爲聞時益6)聞旣 [79] 此勝法漸
003_0740_c_22L「救」疑「敎」「相非」疑倒「悟」疑「修」
003_0740_c_23L
「成」疑剩「展生」當作「轉生時」「聞旣」
003_0740_c_24L疑倒

003_0741_a_01L차례로 10지의 모든 행을 닦고 완성하여 깨달음을 성취한다. 이것을 수행할 때의 이익이라 한다. 혹은 부정취不定趣의 중생이 있어 이 미묘한 10지의 법을 듣고 금강의 종자를 심는다면, 비록 선도나 악도의 난처431)에 태어나 많은 겁을 거친다 하더라도 그는 난처 가운데 반드시 이 『경』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을 전생 때의 이익이라 한다.

만약 이와 같이 여러 생을 거친다고 하면, 무엇을 일러 빨리 성불한다고 하는가?
‘여러 생을 거친다’라는 것은 삼승문에 따른 해석이다. 일승을 깨달았을 경우에 빨리 성불함이다. 따라서 『일승십현문』432)에서 “ 오래 수행하여 비로소 증득한다고 설한 바 있는데, 무엇을 한 찰나에 얻는다고 말하는가? 오래 선근을 수행한다는 것은 삼승교에 해당한다. 삼승으로부터 일승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한 찰나에 시작과 끝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설하는 초발심시(변성정각) 운운 이하는, 선재가 문수의 거처에서 발심하여 선지식을 찾아 111성을 편력했지만 그것이 일념에 보현보살을 본 것과 같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연기의 큰 바다를 이해하면 어찌 일념에 성불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제3장 일시에 빨리 성불함
셋째, ‘일시에 빨리 성불한다’라는 것은, 선재동자가 선지식의 거처에서 일시에 보현법을 얻은 것과 같다.433) 이것은 마지막 선지식에 관하여 설한 것이다. 위에 인용한 『십현문』의 내용과 같이 이 선지식(보현보살)에 이르러서는 이미 보현법을 얻었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가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疏』 제20에서 “(오상五相 선지식 가운데) 제5의 현인광대상顯因廣大相 선지식은, 앞의 비춤과 도리가 둘이 아님을 가지고 깊고 깊음을 드러내 드디어 성불의 광대한 원인을 감수하기 때문이다.”434)라고 하였다. (보현보살이) 도량에 있어서 여래 앞에 있는 것은 보현과 불과佛果와 같음을 보이는 것이다. 인위와 과위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신에 충만하다고 한 것은 보현신을 설명한 것이다. 그 아래에 열세 가지435)를 설했는데, 모든 부처님과 동등한 것으로 이것은 원인의 계위(因位)가 원만하여 더 이상 닦을 것이 없으므로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선지식을 구하여 원인을 수행하는 것을 변설하지 않는 것이다. 보현위를 마친다.”436)
따라서 이것은 원리적 성불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003_0741_a_01L次修滿十地諸行乃至成菩提是名修
003_0741_a_02L行時益或有不定趣衆生聞此十地微
003_0741_a_03L妙法殖金剛種雖生善道惡道難處
003_0741_a_04L多劫數彼難處中必得聞 [80] 此經此名轉
003_0741_a_05L生時益
若爾已逕多生何言疾成
003_0741_a_06L經多生是三乘門意悟入一乘
003_0741_a_07L疾成佛故玄門云問旣言久修始得
003_0741_a_08L云何言一念得耶答言久修善根者
003_0741_a_09L卽在三乘敎攝從三乘入一乘卽是一
003_0741_a_10L念始終具足故經云初發心時等乃至
003_0741_a_11L下明善財從文殊發心求善知識逕歷
003_0741_a_12L百一十城已而不如一念得見普賢菩
003_0741_a_13L薩故知得入此緣起大海一念豈不成
003_0741_a_14L佛耶
三依一時疾得成佛者
如善財童
003_0741_a_15L於知識處一時之間獲普賢法此約
003_0741_a_16L最後善知識說如次上所引玄門文意
003_0741_a_17L至此善友也已得普賢法故因果無二
003_0741_a_18L故疏第二十云第五顯因廣大相知識
003_0741_a_19L以前照理無二顯甚深方堪成佛廣大
003_0741_a_20L之因故在道場如來前者表普賢齊佛
003_0741_a_21L果故因果位同故
又云一身充 [234] 滿明普
003_0741_a_22L賢身下有十三種等於諸佛此是因位
003_0741_a_23L圓滿更無所修是故但云與諸佛等
003_0741_a_24L辨更求知識修因普賢位竟故知此約

003_0741_b_01L원인과 결과가 둘이 아니므로 일시에 성불하는 것이다. 이 선취善趣에서 실천하는 사람은 아직 믿음의 가득 참이나 초주 등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실천의 성불 혹은 계위의 성불이 아니다.
제4장 일념성불
“넷째, 한 찰나에 빨리 성불한다는 것은 보현법에 계합하여 한 찰나에 성불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속제의 찰나에 의한다.”437) 이 또한 선재 등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 앞에서는 설법을 듣는 때에 근거하여 성불을 설했는데, 이것은 찰나를 들어 염념성불의 내용을 설한 것이다. 이것은 원리적 성불이다. 그러므로 취함에 따라 자재하니, 속제에 의해 한 찰나를 설하는 것이다.
제5장 무념성불
“다섯째, 무념으로 빨리 성불함이란, 모든 법은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으므로 이와 같이 이해하는 사람이야말로 참 부처를 보기 때문이다.”438) 『신라기』에서 “혹자는 유마에 입각하여 한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 바로 부처라고 하였다. 여기에서의 의미는 그렇지 않다. 속제념俗諦念은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무념성불이다. ‘일체법이 태어나지 않음’ 등은 「승야마천궁품」의 문장이니,439) 문장이 나온 곳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제5편 문답으로 분별함(答分別門)
제1장 부처와 중생의 동일성
화엄종의 의도(宗意)와 같이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라고 한다면, 부처와 중생 간에 무슨 차별이 있는가?
440) 동일한 연기법이기 때문에 부처라고 할 때는 전적으로 부처이고 달리 중생은 없으며, 중생이라고 할 때는 오직 전적으로 중생이고 또한 달리 부처는 없다. 만약 전적으로 부처가 아니고 전적으로 중생이 아니라면 연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생도 없고 부처 또한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일체법은 진여(一如)로 이루어지는 연기법이다. 그러므로 서로 전체를 포함하여 비로소 중생문을 세우기 때문에 전적으로 중생이 되며, 그러한 전제에서 부처의 문을 세우기 때문에 모두 부처가 된다. 그러므로 교화의 주체인 부처와 교화의 대상인 중생은 없는 것이 아니다.

441) 부처는 전적으로 깨달은 자이고, 중생은 전적으로 미혹된 자이다. 만약 부처가 중생과 마찬가지라고 하면 오직 미혹뿐인데 어찌 교화의 주체인 부처가 있는가? 또한 중생이 부처와 마찬가지라고 하면 오직 전적으로 깨달은 자일 뿐인데, 어찌 교화의 대상인 중생이 있는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교화의 주체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교화의 주체와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의 의미로 생각하건대 전적으로 중생이기 때문에 교화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부처이기 때문에 교화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003_0741_b_01L理成佛因果無二故一時成佛此善
003_0741_b_02L趣行人未入信滿及初住等故非行成
003_0741_b_03L位成佛
四依一念疾得成佛者
如契
003_0741_b_04L普賢法一念卽成佛此依俗諦念也
003_0741_b_05L亦約善財等上約聞說法時說成佛
003_0741_b_06L取念1)念成佛義是理成佛故隨取
003_0741_b_07L自在依俗諦說一念
五無念疾得成佛
003_0741_b_08L
一切法不生一切法不滅若能如
003_0741_b_09L是解是人見眞佛故記云有云約維
003_0741_b_10L一念不生卽是佛此義不然同是俗
003_0741_b_11L諦念卽是無生故云無念成佛一切法
003_0741_b_12L不生等者是昇夜摩天宮文可尋文處

003_0741_b_13L第五問答分別門
宗意
一切衆生皆
003_0741_b_14L是佛時
佛與衆生有何差別同一緣
003_0741_b_15L起法故佛時全佛無別衆生衆生時全
003_0741_b_16L唯衆生亦無別佛若非全佛非全衆生
003_0741_b_17L緣起不成故無衆生亦無佛一切法是
003_0741_b_18L一如所成緣起法故互全攝方立衆生
003_0741_b_19L門故全衆生佛門故皆佛故非無彼
003_0741_b_20L能化佛所化衆生
佛全覺人衆全惑
003_0741_b_21L若佛與衆生一者唯是惑耳何有能
003_0741_b_22L亦衆生與佛一者但全覺人何有所
003_0741_b_23L有二義一無能化所化二有能
003_0741_b_24L化所化初義意全衆生故無能化全是

003_0741_c_01L뒤의 의미로 생각하건대 전적으로 양자가 성립하기 때문에 교화의 주체와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연기의 무장무애법은 한 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필요에 따라 모두 가능하다. 허공이 허공을 교화하는 것처럼 교화의 주체와 교화의 대상은 걸림이 없다. 그러나 집착을 고집하는 유정이 능히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442) 부처가 미혹되어 있는 중생을 볼 때 미혹된 마음(惑心)으로써 보는가, 깨달은 지혜(覺智)로써 보는가? 만약 미혹된 마음으로써 본다면 미혹으로는 올바르게 볼 수 없는데, 어찌 제대로 볼 수 있겠는가? 만약 깨달은 지혜로써 본다면 깨달음은 봄과 앎(見知)을 벗어나는데 어찌 본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미혹으로써도 보고 깨달음으로써도 본다. 둘째는 미혹으로써도 깨달음으로써도 다 본다는 행위를 얻을 수 없다. 첫 번째의 뜻은 귀신은 귀신을 보지만 사람은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미혹을 미혹으로써는 보지만 깨달음으로써는 볼 수 없다. 마치 그루터기가 귀신으로 보임과 같다. 이것은 미혹됨이다. 귀신이 귀신을 보는 것은 미혹이 아니다. 이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미혹으로 미혹을 보는 것은 또한 깨달음이기에 미혹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처는 “나는 너와 다르지 않다.”443)라고 설하였는데, 네가 스스로 구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깨달은 자, ‘너’는 미혹된 집착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혹과 깨달음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뒤의 뜻은, 미혹은 여기서 견見의 의미이기 때문에 미혹으로써 보는 것이 아니며, 미혹으로써 미혹을 보기 때문에 깨달음으로써 보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이미 깨달은 자인데 어찌 번뇌로써 번뇌를 보는가?
깨달음과 번뇌는 본체가 둘이 아니고, 깨달음이 스스로의 미혹된 견해에 맡긴 것을 미혹이라고 이름할 뿐이다. 자세한 것은 『향상문답』444)과 같다.
제2장 일성일체성一成一切成의 의미
하나가 성립하면 일체가 성립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사람에 근거한 것이고, 한 가지는 계위에 근거한 것이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향상문답』에서 “연기하는 사람에 근거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곧 일체의 사람인 것이 한 사람이고, 일체의 사람이 곧 한 사람인 것이 일체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행으로 말하자면, 한 가지 수행이 일체 수행이고, 일체 수행이 한 가지 수행이기 때문에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445)라고 하였다.

현재 한 사람이 수행할 때 다른 사람은 수행하지 않는 것은 또한 한 사람이 나머지 사람이 아님을 나타내는데, 어째서 그러한가?
네가 보는 것은 변계소집일 뿐이다.

003_0741_c_01L佛故無所化後義意全作二故有能所
003_0741_c_02L何者緣起無障無礙法定不有一
003_0741_c_03L隨須皆得如虛空化虛空能化所化
003_0741_c_04L無障礙然非所執情能所及也
佛見
003_0741_c_05L迷惑衆生時若以惑心見若以覺智見
003_0741_c_06L若以惑心見者惑非善見何能見
003_0741_c_07L以覺智見者覺絕見知何可能見
003_0741_c_08L有二義一惑見覺見二俱不得見
003_0741_c_09L義意如鬼鬼見人不見惑以惑見覺不
003_0741_c_10L如於杌見鬼是迷惑鬼見鬼非惑
003_0741_c_11L此義亦然惑見惑亦覺非惑是故佛言
003_0741_c_12L我與汝不異汝自爲別此意我者覺人
003_0741_c_13L汝者迷執故知惑覺不異也後義意
003_0741_c_14L此見義故非惑見以惑見惑故非覺見

003_0741_c_15L
佛旣覺者何以惑見惑覺惑體無
003_0741_c_16L而覺任自惑見名爲惑耳具如香
003_0741_c_17L象問答
一成一切成其義何

003_0741_c_18L有二義一約人一約位初義問答云
003_0741_c_19L約緣起人說故一人卽一切人是一人
003_0741_c_20L一切人卽一人是一切人故修言亦然
003_0741_c_21L一修一切修一切修一修故同得云也

003_0741_c_22L
現一人修而餘不修亦一人非餘人
003_0741_c_23L何得爲爾汝所見但是遍計耳
003_0741_c_24L「念」疑剩

003_0742_a_01L네가 연기緣起 존재 법칙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족히 말할 것이 못 된다.446)
뒤의 의미(계위에 입각함)에 대해서는 「육상의장」에서 “실천의 덕(行德)은 하나가 이루어지면 일체가 이루어진다. 이성理性은 하나가 드러나면 일체가 드러난다. 보편과 개별(普別)이 구족하고 처음과 끝이 모두 같다. 그러므로 ‘초발심할 때 바로 정각을 성취한다.’”라는 등을 말하였다.447) 『소疏』 권1도 이와 같다.448)
제3장 삼승인의 성불 계위
삼승의 사람은 어느 계위에 이르러 일승에 진입해서 성불하는가?
『오교장』 상권에서 “자신의 계위 가운데 구경처에 이른 뒤 모두 별교일승에 진입한다.”449)라고 한다. 이것이 출세의 결과를 얻은 곳으로서 자위구경처自位究竟處이다. 보살에 근거하면, 또 삼현위가 출세의 이익을 얻는 곳이니, 구체적으로는 「일승의」450)와 같다.
제4장 현재불와 미래불의 관계
451) 현재세의 한 사람이 미래세에서 성불할 수 있다면, 현재의 내 몸을 교화해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인가?
교화하여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의 사람이 수행하여 저 부처를 증득하는데, 어째서 그 부처는 현재의 나를 교화하여 수행하게 하는가?
저 부처가 교화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내 몸이 성불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저 부처가 교화하여 비로소 내가 수행하여 성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연기의 도리에 따르면, 저 부처가 아니면 지금의 내 몸이 없고, 지금의 내 몸이 아니면 저 부처가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다. 현재와 같이 곧 과거를 다하도록 역시 그러하다.

미래불이 현재나 과거에 있는 사람과 상즉하는데, 그 과거나 현재에 있는 사람은 이미 성불했는가, 아직 하지 못했는가?
이미 성불했다. 미래불과 동일한 연기법이기 때문이다.
제5장 교화의 의미
1. 미래불의 교화

1) 교화의 이유

그렇다면 부처는 무엇 때문에 교화하는가?
과거나 현재에 있는 사람은 미래불에 대비할 때 동일한 본체이며, 다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불은 현재나 과거 등에 있는 사람을 교화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교화할 수 없다. (교화의 대상이) 교화 주체의 밖에 있기 때문에 자기의 교화 대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452) 밖의 사람을 교화할 수 있는데, 어째서 다른 사람은 교화하지 못한다고 하는가?
만약 교화의 주체와 대상에 차별이 있다면 연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은 교화하지 못한다.

자신이 이미 부처인데

003_0742_a_01L [235] 緣起之法不足言也
後義者六相義
003_0742_a_02L章云行德卽一成一切成理性卽一顯
003_0742_a_03L一切顯普別具足始終皆齊初發心時
003_0742_a_04L便成正覺等疏一亦同
[三乘人成佛階位]
三乘人極
003_0742_a_05L至何位進入一乘卽成佛五敎上云
003_0742_a_06L至自位究竟處故後皆進入別敎一乘
003_0742_a_07L此各得出世果處爲自位究竟處約菩
003_0742_a_08L又三賢位是得出世益處具如一乘
003_0742_a_09L
一人現在世是人未來世可成
003_0742_a_10L化現在我身令修行化令修行

003_0742_a_11L
現在人修行可得彼何其佛化現
003_0742_a_12L我令修行彼佛不化者今吾身不
003_0742_a_13L得作佛故彼佛化時方吾能修行成彼
003_0742_a_14L緣起道理非彼佛時卽無今吾身
003_0742_a_15L非今吾身時無彼佛故知爾也如對今
003_0742_a_16L乃至盡過去際亦然
未來佛是現在
003_0742_a_17L及過去人相卽者彼過現人已成佛
003_0742_a_18L已成與未來佛同一緣起法故

003_0742_a_19L[敎化意味]
若爾唯佛何爲化過現人望未來
003_0742_a_20L是同一體非他人故未來佛化現等
003_0742_a_21L若他人者不得化所以者何能化
003_0742_a_22L外有故非自所化
可化外人何言他
003_0742_a_23L人者不得化若能化所化差別者
003_0742_a_24L起不成故不得化自外他人
自旣

003_0742_b_01L무엇 때문에 교화하는가?
부처이기 때문에 교화한다. 만약 부처가 아니라면 계속 교화한다 하더라도 성불하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부처가 아닐 때는 교화하지 못하는가?
일체중생은 본래 성불해 있으나, 자신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화하여 이 도리를 알게 하는 것을 교화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실다운 교화에는 교화의 대상이 없으며, 실로 이루는 바가 없다.

2) 타인의 교화

그렇다면 단지 교화에는 전혀 타인을 교화한다는 뜻이 없는가?
타인을 교화한다는 것도 가능하다. 타인이 아니면 자기가 없기 때문이다. 자타自他는 조건에 의해 성립하며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자기를 보고 타인을 온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은 중생을 포섭할 수 없다.

3) 교화의 4구 분별

이러한 교화의 여부 및 자타 등에 근거해서 4구로 분별하면 어떻게 되는가?453)
자기를 교화하는가? 그렇지 않다. 타자가 아니면 자기가 없기 때문이다.
타자를 교화하는가? 그렇지 않다. 교화의 대상이 부처이기 때문이다.
자타를 함께 교화하는가? 그렇지 않다. 두 가지에 대한 집착이 함께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④ ) 자타 모두 교화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두 가지 집착을 떠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옳지 않음(非)’을 부정하는 4구로써 집執과 현顯을 보이는 4구이다. 삼성문에 준하면 알 수 있다.454) 자타에 근거하면 또한 이렇게 세 가지의 4구가 있으니, 위에 준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4) 미래불 교화의 전거

미래불이 오히려 현재의 자신을 교화한다는 것에는 근거가 되는 문장이 있는가?
근거가 되는 문장이 있다. 『영락경』 중455)에 제8지 보살이 “자기 자신 미래의 과(當果)를 보고, 모든 부처가 머리를 쓰다듬어 법을 설한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이미 여러 경전에서 자주 설하듯이 “삼세 부처에 예배하여 모든 죄업을 멸한다.” 하니, 미래의 모든 부처의 교화가 어찌 끝이 있겠는가?

5) 미래불에 대한 예배

타인이 수행을 마쳐 성불하여 미래세를 다하여 또한 성불하는 것이니, (타인의) 미래불에 예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저 자기의 당래불에 예배한다고 하는가?
타불에 예배하는 것은 없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타불은 멀고 자불은 가깝다. 어째서인가? 무릇 제불은 중생을 위해서 불덕을 설한다. 생각하건대 중생으로 하여금 스스로도 또한 저 불과佛果를 얻게 하고자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이 미래세에 얻을 과덕果德을 스스로 깨닫고, 그것을 획득하게 하고자 신명을 아끼지 않고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003_0742_b_01L何用爲化是佛故化若非是佛
003_0742_b_02L終日化不得成佛
何自非佛時不得
003_0742_b_03L一切衆生本來成佛而不知自
003_0742_b_04L卽佛故化令知此理名爲化之 [236] 故實
003_0742_b_05L化無所化實無所成
若爾但乃化
003_0742_b_06L都無化他之義亦得化他非化 [237]
003_0742_b_07L自故以自他緣成無分別故是故佛能
003_0742_b_08L見自全他故他無攝物
約此化
003_0742_b_09L化及自他等分別四句何1) [81] [238] 問化自
003_0742_b_10L答不也非他無自故問化他答不
003_0742_b_11L化是佛故問自他共化答不也
003_0742_b_12L二執不並故2) [82] [239] 不化答二離執故
003_0742_b_13L遣非四句示執顯四句淮三性門可知
003_0742_b_14L約自他亦可有此三四句准上可知

003_0742_b_15L
未來佛還化現在自身者有所依文
003_0742_b_16L有所依文故瓔珞經中第八地菩薩
003_0742_b_17L自身 [240] 己身當果諸佛摩頂說法故
003_0742_b_18L其說炳然可知又旣諸經經每云三世
003_0742_b_19L佛拜故諸罪業滅未來諸佛者何爲3) [83] [241]
003_0742_b_20L
他人修行已成佛窮來際亦可
003_0742_b_21L說之言拜未來何言拜彼自當成佛
003_0742_b_22L拜他佛之義非無雖然他佛遠自佛
003_0742_b_23L何者汎諸佛爲衆生說佛德爲欲
003_0742_b_24L令衆生自亦得彼果故令修行是故衆

003_0742_c_01L타불의 결과를 얻고자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확히는 지금의 내가 발심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부처는 다만 내 미래과를 이미 성취한 부처로서 타자의 부처가 아니다. 이러한 뜻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타인이 있어 이미 성불하면 나의 미래과로서의 부처이다. 무슨 까닭인가? 타인이 성불할 때 삼세 부처의 평등한 과를 얻기 때문이다. 또한 내 미래과로서의 부처는 곧 타인이 지금 성불한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내가 미래의 부처를 증득하면 곧 삼세 부처의 평등법을 얻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서로 평등하다. 평등무차별한 과덕이 모두 지금의 나를 교화하여 수행시키는 뜻이 역시 없지 않다. 서로에게 지금 내 몸 전체가 존재함이니 여래장불 등이 이것이다. 지금 나는, 즉 나의 본성을 조건으로 하니, 부처는 바로 나이다. 그럼에도 알지 못하기에 슬퍼하고 의심한다. 발심하고 지심으로 수행하여 미혹을 돌리길 원하기에 그러므로 저 교화할 대상을 보는 것이다. 나의 부처는 바로 내 전체로서의 부처이다. 멀리서 타불을 구하지 말라. 이 의미는 깊으니 관행을 실천하는 자의 대강요이다.
2. 나의 본성불
또 이 나의 본성불(性佛)이라는 것은 바로 일체 법계에서 유정ㆍ무정 가운데 전체가 곧 하나라도 나의 부처 아님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능히 자체불에 대해서 예배할 수 있으면 어떤 것이라도 짓지 못할 것이 없다. 이것 역시 깊은 대강요이다. 항상 사유해야 한다. 만약 이런 사유처럼 실천하여 얻은 자는 일체의 시간과 공간 가운데서 단 한 시간과 한 공간에서라도 삼독의 번뇌를 일으키는 경우가 없다. 이것은 일승에 들어가는 관법이다. 삼세제불도 이 실천법을 닦아 성불한 것이다.456)

003_0742_c_01L證自當來所得之果德爲欲得彼故
003_0742_c_02L4) [84] [242] 身命修行非爲得他佛果故修行
003_0742_c_03L是故正今吾令發心修行5)佛祖 [85] [243] 吾當果
003_0742_c_04L已成佛非他佛也此義不疑恠也
又有
003_0742_c_05L他已成佛卽是自當果佛所以者何
003_0742_c_06L成佛時卽得三世佛平等果故又吾當
003_0742_c_07L果佛卽是他今成佛所以者何吾得當
003_0742_c_08L卽得三世佛平等法故如是展轉更
003_0742_c_09L互平等平等無差別果德皆化今吾令
003_0742_c_10L修行其義亦非無故也互有今吾身
003_0742_c_11L全體如來藏佛等是也今吾卽緣吾性
003_0742_c_12L佛卽吾而不知故悲恠發至心修行
003_0742_c_13L返迷是故其觀化吾佛卽是吾體佛
003_0742_c_14L非遠心他佛此義甚正觀行者大要也

003_0742_c_15L
又此吾性佛者卽於一切法界有情無
003_0742_c_16L情中全全卽在無非一物吾體佛故
003_0742_c_17L能拜自體佛者無物不所作此亦甚大
003_0742_c_18L要也常可思6) [86] [244] 若行如是思得者
003_0742_c_19L一切時一切處中7)無一處 [87] 中無一處一
003_0742_c_20L時起三毒煩惱之義此卽入一乘之觀
003_0742_c_21L方便三世佛無非此行修成佛者也
003_0742_c_22L「答」下疑脫答文「共」上當有「問」「畢」
003_0742_c_23L疑「異」
「借」疑「惜」「佛祖」下恐文錯亂
003_0742_c_24L
「性」疑「惟」「無一處中」疑剩

003_0743_a_01L자세한 것은 『향상문답』과 같다.
제6장 정과 비정의 작불
1. 종성에 의한 해석
일체의 유정과 비정이 모두 불성이 있어 성불하는가?
교설에 따라 같지 않다. 소승에서는 오직 부처 한 사람만이 부처의 종성을 가지며, 나머지는 종성이 없다. 시교문은 유위의 무상법에 근거하여 종성을 세우므로 모든 존재를 망라하지는 않는다. 종교는 진성으로써 종성을 세우므로 모든 존재에 본성이 있다. 돈교문은 오진 진여로서 언어를 떠나고 양상을 끊은 것만을 종種이라 하고, 성종성과 습종성을 나누지 않는다. 일승문에 따르면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방편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여러 교설이 밝히는 종성은 모두 중심과 수반을 구족하여 핵심 사상(宗)을 이룬다. 동교이기 때문이며, 방편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별교에 따르면 종성은 심오하며, 원인과 결과가 둘이 아니다. 의보와 정보 및 삼세간을 다하여 공통되며, 일체의 원리와 현상, 이해와 실천 등을 모두 포함한다. 자세한 것은 하권457)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2. 종성과 불성
이러한 여러 교설이 설하는 모든 종성은 원리(理)의 불성인가, 실천(行)의 불성인가?
두 가지에 다 통한다. 무엇을 두 불성이라 하는가? 하나의 본체(體)에 두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권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일승문에 있어서 유성ㆍ무성ㆍ유정ㆍ비정이 모두 성불한다는 것은 오성 차별을 설하는 교설과 어떻게 회통하는가?
『오교장』 하권에서 “『논』 자체에 해석이 있다. 그러므로 『보성론』에서 이르기를, ‘앞에서 일천제는 열반성이 없어 열반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뜻이 무엇인가? 대승을 비방하는 원인을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슨 뜻을 밝히는 것인가? 대승을 비방하는 마음을 돌이키고 하는 것이니, 무량한 시간이 걸리므로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이다. 저들 일천체들도 실로 청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458)라는 등을 말하였다.”459)라고 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부정성을 세울 수 있을 뿐인데 무슨 본성(性)을 세우는가?
육바라밀을 닦으면서 충분히 반복해서 수행을 마치고 감임주堪任住460)의 계위에 도달한 후 보살종성이 성립한다. 소승의 실천행(小行)을 수습한다면 인위忍位에 도달해서 성문성을 이룬다. 그러므로 『대지도론』에서 “난ㆍ정ㆍ인 등을 성지性地라 이름한다.”461)라고 하였다. 독각은 이에 준해서 알아라. 만약 세 가지 실천에 있어서 하나에 따라 수행하고 본위本位에 이르지 않았을 경우에는

003_0743_a_01L如香象1) [88]
[情非情作佛]
一切情非情皆有佛
003_0743_a_02L性成佛約敎不同小乘唯佛一人有
003_0743_a_03L佛種性餘無種性始敎門約有爲無常
003_0743_a_04L立種性故不遍一切終敎爲眞性
003_0743_a_05L種性故一切有性頓敎門唯眞如離言
003_0743_a_06L絕相名爲種不分性習約一乘門有二
003_0743_a_07L一攝方便故諸敎所明種性並皆具
003_0743_a_08L足主伴成宗以同敎故攝方便故
003_0743_a_09L據別敎種性甚深因果無二通依及正
003_0743_a_10L盡三世間該收一切理事解行等廣如
003_0743_a_11L下卷說
此諸敎所說有無 [245] 種性
003_0743_a_12L理佛性爲行佛性通二何者二佛
003_0743_a_13L性一體二義故如下卷說
就一乘
003_0743_a_14L有性無性有情非情皆成佛者說五
003_0743_a_15L性差別敎何會下卷云論自有釋
003_0743_a_16L寶性論云向說闡 [246] 無涅槃性不入
003_0743_a_17L涅槃者此義云何爲欲示顯謗大乘因
003_0743_a_18L此明何義爲欲迴轉誹謗大乘心
003_0743_a_19L依無量時故作是說以彼 [247] 彼實有淸淨
003_0743_a_20L性故等
若爾唯可立不定性何立
003_0743_a_21L修六度串習行已位到堪任住
003_0743_a_22L菩薩種性若習小行到於忍位成聲聞
003_0743_a_23L故智論云燸頂忍等名爲性地獨覺
003_0743_a_24L准知若於三行隨一修行未至本位

003_0743_b_01L부정종성을 세운다. 만약 세 가지 실천에 있어서 어느 것도 수행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무종성을 세운다.462)
3. 종성의 4구 분별
종성에 대한 4구 분별은 무엇인가?
『오십요문답』에서 “만약 불성이 천제인에게 있고 선근인에게는 없다면, 그것은 실천에 근거하여 종성을 논한 것이다. 혹은 불성이 선근인에게 있고 천제인에게 없다면, 그것은 계위에 근거하여 종성을 논한 것이다. 혹은 불성을 양자가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원인에 근거하여 종성을 논한 것이다. 혹은 불성을 양자가 모두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결과에 근거하여 종성을 논한 것이다.”463)라고 하였다.

일천제의 의미는 현재의 선근이 되는 원인을 끊었다는 것인데, 어떻게 선성善性을 실천할 수 있는가?
이것은 계위에 근거한 설이다. 이 세상에서 선근을 내어 구제할 수 있는 자는 현행의 선성을 갖는다. 저 세상에서 선근을 내어 현재는 구할 수 없는 자는 원인을 실천하는 종자를 갖는다. 이러한 뜻은 성문의 주장과 같지 않다. 이 네 가지 계위는 모두 성득性得 및 수득修得의 두 가지 불성을 갖추고 있다. 어째서인가? 이 두 가지 불성은 신해信解 정심처淨心處의 설과 같아 서로에게 연유하여 성립한다. 성득 및 수득의 두 가지 불성은 처음도 아니고, 중간이나 마지막도 아니다. 앞 가운데 뒤를 취하기 때문이다. 또 경문으로 증명하건대 여래장은 직진 보살의 근기를 위한 설이며, 불성은 아주 성숙한 성문 근기를 위한 설이다. 여기에서 밝히는 여래장과 불성은 여러 의의에 근거하면 같지 않다고 하더라도, 모두 동교일승의 의미이다. 어째서인가? 보법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보법으로 성취되기 때문이다.464)
4. 이종성
본성주 종성과 습소성 종성은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가?
조건이 성숙한 근기(機緣)에 따르므로 전후가 일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향상문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본유ㆍ수생 등의 4구 가운데 수행본유修生本有와 본유수생本有修生의 두 구가 있다. 이것은 연기법에 따르기 때문에 본유가 아니면 수생이 없으며, 수생이 아니면 본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구는 인연법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오직 본유만이거나 수생만이라고 하는

003_0743_b_01L立爲不定種性若於三行全未修行
003_0743_b_02L爾時立爲無有種性
約種性分別四
003_0743_b_03L句何終南問答云或有佛性闡提
003_0743_b_04L人有善根人無謂約行辨性也或有佛
003_0743_b_05L善根人有闡提人無謂約位辨性也
003_0743_b_06L或有佛性二人俱有謂約因辨性也
003_0743_b_07L或有佛性二人俱無謂約果辨性也

003_0743_b_08L
闡提之義斷現善根因何有行善性
003_0743_b_09L此約位語此世生善根可救者
003_0743_b_10L現行善性他世生善根現不可救者
003_0743_b_11L行因種子此義不同聲聞宗此之四位
003_0743_b_12L皆具性得及修得二佛性也何以故
003_0743_b_13L之二性同於信解淨心處說故相由成
003_0743_b_14L故也性得及修得二種佛性非初非中
003_0743_b_15L前中後取故又驗經文如來藏爲直
003_0743_b_16L進菩薩機說佛性爲淳熟聲聞機說
003_0743_b_17L中所明如來藏佛性雖約諸義差別不同
003_0743_b_18L皆是同敎一乘義也何以故爲成普法
003_0743_b_19L普法所成故
本性住性習所成
003_0743_b_20L種性何前何後隨機緣前後不定
003_0743_b_21L香象問答云本有修生等四句中
003_0743_b_22L修生本有本有修生二句其卽緣起
003_0743_b_23L法故非本有無修生非修生無本有
003_0743_b_24L二句因緣法可解唯本有但修生此二

003_0743_c_01L이 두 구는 어떠한 인연법인가? 만약 수생에 의하지 않고도 본유가 있다고 하면, 습종성 이전에 본유가 있다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성자는 근기의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4구는 모두 보편적인 설이다. 조건이 성숙한(機緣) 중생이 있어 성종을 앞으로 삼고, 습종을 뒤의 이익으로 삼으면, 즉 본유가 앞이고, 수생이 뒤라고 설한다. 중생이 있어 수생을 앞으로 삼고 본유를 뒤의 이익으로 삼으면, 즉 성종은 뒤이고, 습종은 앞이라고 설한다. 단지 근기의 정도에 따라 말하는 것뿐이지 법에 고정되어 전후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법에는 전후가 없기 때문에 임의로 선후에 해당할 뿐이다. 그러므로 여러 성교의 설에 전후가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말과 같이 취하는 자는 본유 전에 법이 있다고 결정하기 때문에 인연의 취지를 잃고 그 뜻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저 사람과 같지 않다.”465)
나머지의 일체 법문도 모두 그러하다. 교설의 연유를 이해하고 교법의 진실한 본성을 이해해야 한다.
『화엄일승십현성불묘의』 1권.

사본寫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때는 오쵸(應長) 원년(1311) 9월 28일 동대사 계단원에서 존승원의 사본에 가점과 반점을 완료하였다. 다만 문자가 흐트러져 극히 알기 어려운 글자가 많다. 뒤에 이것을 보는 사람은 글자를 바로잡아 주시길 바란다. 소비구 지츠엔(實圓).”
교호(享保) 3년(1718)인 무술년 8월 9일 조슌(依淨)이 작업을 마쳤다. 허가를 얻어 고쳐서 베꼈다. 위 건의 원본은 지칸(觀國) 국사의 속가 조카 제자인 선명당 지츠엔(實圓)의 소장본이다. 잠깐 보아도 어魚와 노魯, 풍風과 봉鳳처럼 잘못된 자가 아주 많다. 뒤에 보는 군자가 대저 그것을 생각하시기를.
현수 후세 사문 국가의 도적466) 쇼쿠(性空).세수 29세, 법랍 19세이다.

003_0743_c_01L爲因緣法乎若非由修生而有本有
003_0743_c_02L與習種以前有本有之義有何別2) [89]
003_0743_c_03L聖者能見機益故四句皆普 [248] 若有
003_0743_c_04L機緣衆生□以性種爲前習種爲後利益
003_0743_c_05L旣說本有前有修生後若有衆生以修
003_0743_c_06L生爲前本有爲後利益卽說性種爲後
003_0743_c_07L習種爲前但隨機處中說耳勿見法定
003_0743_c_08L有前後以其法無前後故卽善當於先後
003_0743_c_09L是故諸聖敎之說前後不定然而
003_0743_c_10L如言取者定本有前有法故失因緣旨違
003_0743_c_11L3) [90] 意故與彼人不同耳餘一切法門
003_0743_c_12L皆爾須解敎所由又解法實性也

003_0743_c_13L
華嚴一乘十玄成佛妙義一卷

003_0743_c_14L
寫本云

003_0743_c_15L
于時應長元年九月二十八日於東大寺戒壇
003_0743_c_16L以尊勝院之御本加反點了但文字散散
003_0743_c_17L極不審多有後覽者可有交定候也小比丘
003_0743_c_18L實圓

003_0743_c_19L
享保三龍集戊戌仲秋初九天依淨俊成業
003_0743_c_20L許可而繕寫之上件本者示觀國師俗甥之
003_0743_c_21L神足禪明房實圓之御本也乍然文字魚魯
003_0743_c_22L風鳳之謬尤多後覽君子夫思之矣

003_0743_c_23L
賢首嗣祖勤息國賊性空露命二九歲
夏㵧一九歲

003_0743_c_24L「答」上疑脫「問」「云」疑「乎」「其」問
003_0743_c_25L答作「聖」
  1. 1)『탐현기』 권3 「노사나불품석盧舍那佛品釋」(T35, 166b)에서 취의한 것이다.
  2. 2)승진분勝進分 : 한 계위를 자분과 승진분으로 나눈다. 이 가운데 자분은 자체의 경계이고, 승진분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직전의 경계이다.
  3. 3)『탐현기』 권3 「노사나불품석」(T35, 166b).
  4. 4)『오교장』의 의리분제義理分齊 중 「십현연기무애의十玄緣起無礙義」(T45, 505c)에서 인용하였다. 『오교장』에서 『십지경론』으로부터 취의한 문장이다.
  5. 5)『오교장』에서 인용하였다.(T45, 505c9)
  6. 6)『탐현기』 권9 「십지품十地品」(T35, 281a)에서는 ‘신행지信行地’를 10지 이전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10지 이후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해석은 10지 이전이다. 법상法上의 『십지론의소』 권1(T85, 761c) 참조.
  7. 7)『본업경』(T24, 1011c).
  8. 8)『인왕경』(T8, 827b; 828a~b)에 보인다.
  9. 9)『탐현기』 권4 「보살명난품석菩薩明難品釋」(T35, 176a).
  10. 10)『오교장』의 소전차별所詮差別 중 「제3 행위차별行位差別」(T45, 489b).
  11. 11)『탐현기』 권5 「초발심공덕품석初發心功德品釋」(T35, 206b).
  12. 12)『탐현기』에서는 ‘초발심시변성정각’으로 시작하는 「범행품」의 첫 문에 대한 설명으로 해석한다.
  13. 13)하권의 다섯 가지는 위에서 설한 내용으로, “① 여섯 계위의 양상에 의해 취하기 때문이며, ② 중심과 주변의 관계이기 때문이며, ③ 상입하기 때문이며, ④ 상즉하기 때문이며, ⑤ 원융하기 때문이다.”를 가리킨다.
  14. 14)60가지 실천 : 『경』 「보현보살행품」의 60가지 실천문을 가리킨다. 『공목장』 「보현행품보현장」(T45, 580b) 참조.
  15. 15)이해(解) : 이 ‘解’에 대해서 ‘해의 계위’라고 본 해석이 있다.(해주 옮김, 『법계도기총수록』, 동국대출판부, 2014, p.155) 본 해석에서는 ‘보살의 이해’ 정도로 보았다.
  16. 16)이 문장을 ‘원리에 근거하여 평등함을 설한다’라고도 볼 수 있다.(해주 옮김, 『법계도기총수록』, 동국대출판부, 2014, p.155) 그런데 ‘이평등理平等’이라는 용어는 『탐현기』에 여섯 번 사용되며, 그중에 두 번은 ‘원리의 평등’으로 해석되는 구문이다. 본 해석은 ‘초발심 보살이 부처이다’라는 것은 이미 ‘동일함’이고, 그 동일함이 ‘원리가 평등함에 근거한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카모토 유키오(坂本幸男)역, 『국역일체경』 경소부 7(東京; 大東出版社) 해당 부분의 독법에 따랐음을 밝힌다.
  17. 17)『탐현기』 권5 「초발심공덕품석初發心功德品釋」(T35, 206a~b). ‘窮과’ ‘原’을 둘 다 동사로 풀었다. 그러나 ‘是終’과 ‘原始’를 대구로 풀이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18. 18)앞에서 설한 “첫째, 다라니문의 연기가 서로 포섭하기 때문이다. 둘째, 보현보살의 보리심이 여섯 계위 전체에 걸쳐 편만하기 때문이다. 셋째, 존재의 본성(法性)에 시작과 끝이 없기 때문이다.”를 가리킨다.
  19. 19)『요기要記』 : 『성불묘의』에 두 번 언급된다. 이는 특정 문단을 지칭하는 것일 수 있고, 문헌 명칭일 수도 있다. 본 서에서는 ‘문헌 명칭’으로 보았다. 가령 ‘如要記說’이라고 하는 경우 ‘說’ 자가 있기 때문에 이 경우 『요기』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어떤 문헌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20. 20)『오교장』의 의리분제義理分齊 「제3 십현연기무애의十玄緣起無礙義」 가운데 ‘제3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T45, 505b~c)에 나온다.
  21. 21)“한 지에서 모든 지의 공덕을 널리 포섭한다. 그러므로 하나가 곧 일체를 얻는다.(在於一地。 普攝一切諸地功德也。 是故得一。 即得一切。)”라는 첫 문장(T45, 505b12)은 60권본 『화엄경』(T9, 395b)에 나온다.
  22. 22)『오교장』(T45, 505b).
  23. 23)『오교장』(T45, 505c). 『화엄경』은 「심왕보살문아승지품心王菩薩問阿僧祇品」(T9, 586c)의 “불가언설불가설의 시간이 일체불가설의 시간에 충만하며, 불가언설의 모든 겁 가운데 불가설불가진의 시간을 설한다.(不可言説不可説。 充滿一切不可説。 不可言説諸劫中。 説不可説不可盡)”로 견등이 『경』을 직접 확인하였다. 그런데 60권본 『화엄경』(T9, 586c)의 현존본은 31권이 아닌 29권이다. 따라서 견등이 보았던 60경본 『화엄경』의 분권이 현재의 분권과 달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경문과 비교했을 때 『성불묘의』의 ‘説不可説不可説不可盡’ 가운데 ‘不可說’ 3자는 연문衍文으로 볼 수도 있고, 또는 견등이 의도적으로 반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4. 24)60권본 『화엄경』(T9, 458b) 9권. 80권본 『화엄경』(T10, 95a)은 17권이다. 역시 60권본 『화엄경』의 권수가 다르다.
  25. 25)『십지경론』(T26, 124c~125a)에서 취의한 것이나, 원문은 『오교장』(T45, 505c)에서 인용한 것이다.
  26. 26)이 문장은 『십지경론』(T26,141b)에 있으나, 실은 주료(壽靈), 『오교장지사』(T72, 245a)의 ‘有人’으로부터 취의한 것이다.
  27. 27)주료(壽靈), 『오교장지사』(T72, 245a)에서 교차 인용하고 있다.
  28. 28)이 문장은 『오교장지사』(T72, 245a)의 견해이다.
  29. 29)『화엄경』 권9 「초발심보살공덕품初發心菩薩功德品」(T9, 452c).
  30. 30)60권본 『화엄경』 권8(T9, 449c). 괄호 안은 80권본 『화엄경』 권16(T10, 89a)의 문장이다.
  31. 31)『화엄경』(T9, 449c) ‘소방편少方便’을 설하는 『경』의 문장 바로 앞 단락의 문장이다.
  32. 32)『탐현기』 「범행품석梵行品釋」(T35, 201b).
  33. 33)『경』(T9, 449a).
  34. 34)여기서부터 다시 『탐현기』(T35, 202b~c)에서 인용하였다. 위 정문正問 가운데 두 번째 계위를 성취하는 것을 묻는 것에 대해서 답하는 것으로, 여기에 세 가지 답이 있으며, 세 번째 답 가운데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 가운데 ‘법’은 답 처음 문장 가운데 “중생을 다 분별하면서도 중생을 버리지 않으며, 적멸도 버리지 않으며, 위없이 훌륭한 업을 행하여도, 과보를 바라지 않는다.(悉分別衆生而不捨衆生。 亦不捨寂滅。 行無上業。 不求果報)”(T9, 449c)까지이고, ‘비유’는 그 다음 문장을 가리킨다.
  35. 35)여기까지는 양중 해석 가운데 첫 번째 해석이다. 『경』 「범행품」 끝부분의 ‘菩薩摩訶薩如是觀者’부터 ‘斯有是處’(T9, 449c)까지의 문장을 가리킨다.
  36. 36)『광기廣記』 : 『탐현기』를 지칭한다. ‘나머지’는 적은 원인으로 불과를 얻는 것에 대한 두 가지 해석 가운데 두 번째를 가리킨다. 즉 「범행품」 경문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다.
  37. 37)『탐현기』 「노사나불품석」(T35, 166b).
  38. 38)『오교장』 소전차별所詮差別 중 「제3 행위차별行位差別」(T45, 490b).
  39. 39)『탐현기』 권4 「보살명난품석」(T35, 176a).
  40. 40)『탐현기』 권4 「현수보살품석」(T35, 188c).
  41. 41)『탐현기』 권4 「현수보살품석」(T35, 187a).
  42. 42)『탐현기』 권16 「보현보살행품석」(T35, 403c~404a).
  43. 43)『탐현기』 권2 「세간정안품석世間淨眼品釋」(T35, 133b).
  44. 44)교넨(凝然), 『오교장통로기』(T72, 528a)에서 ‘成佛義云’이라고 하여 이 부분을 인용한다.
  45. 45)『탐현기』(T35, 188c).
  46. 46)『탐현기』(T35, 176a)에 따라 ‘心’을 추가하여 해석하였다.
  47. 47)백법명문百法明門 : 열 가지 마음에 각기 열 가지가 있어 모두 백 가지가 된다.
  48. 48)『본업경』(T24, 1011c).
  49. 49)『탐현기』 권4 「보살명난품석菩薩明難品釋」(T35, 176a).
  50. 50)『본업경』(T24, 1021b).
  51. 51)법장, 『대승기신론의기』(T44, 278b)를 인용하였다. 참고로 『의기』의 이 부분은 원효, 『기신론소』(T44, 220a)의 문장을 답습하였다.
  52. 52)『대승기신론의기』(T44, 278b).
  53. 53)『탐현기』(T35, 187a).
  54. 54)이하 네 문답은 『오교장』(T45, 490a)의 문답을 인용한 것이다.
  55. 55)뒤의 계위라고 해도 이미 처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이며, 뒤의 계위 속에도 처음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56. 56)『오교장』(T45, 490a)에는 “그러므로 아직 뒤를 얻음이 없으면 처음도 얻을 수 없다.(故無有未得後。 而不得初也。)”로 부정형으로 문장이 구성되어 있다. 견등은 의도적으로 긍정형으로 고쳤다.
  57. 57)이 뜻은 종교에서 말하는 불퇴위의 명칭을 빌려서 이야기하면, 실은 일승에서는 하나의 명칭에 모든 계위를 통틀어 갖춘다는 의미이다.
  58. 58)『화엄경』(T9, 449c).
  59. 59)무명을 만드는 환술사(無明幻師) : 『탐현기』 권15 「십인품석十忍品釋」(T35, 384c)의 설명에 따르면, “환술사의 환술은 능히 인연을 일으킴에 비유하니, 무명 등과 같다.(幻師及術。 喻能起因緣。 如無明等)”라고 한다. 한편 ‘무명환사’라는 표현은 지의의 저술에 자주 보인다. 지의는 『법화경현의』(T34, 723b)에서 “무명의 환술을 무너뜨리면, 중도의 환술이 성립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여래가 대환술사라고 하였다.(無明幻破。 中道幻成。 故經言。 如來是大幻師。)”라고 하여 환술사의 힘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에 대해서 설명한다.
  60. 60)『탐현기』 권15 「십인품석」(T35, 384c)에 따르면 환술로 만들어진 토끼의 모습은 의타기성에 비유된다.
  61. 61)『화엄경』 권28(T9, 580c).
  62. 62)『화엄경』(T9, 439b)에 “주야가 잠깐 사이임을 시현하며, 혹은 잠깐 사이에 백 년을 나타낸다. 저것에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있어 환술사의 힘으로 자재롭게 세간을 기쁘게 한다.(示現晝夜須臾頃。 或現須臾作百年。 彼有貪欲瞋恚癡。幻力自在悦世間。)”로 되어 있다. 경문 가운데서 2구와 4구만을 끌어다 쓰는 인용 패턴은 『탐현기』(T35, 385b)와 『지귀』(T45, 595a)에서 볼 수 있다.
  63. 63)본 게송은 무성, 『섭대승론석』(T31, 419a)에서 ‘여유송언如有頌言’으로 소개되었다. 이 게송은 『성불묘의』 이전의 저술로서는 법장의 『탐현기』ㆍ『의기』(T44, 259b)와 태현의 『대승기신론내의약탐기』(T44, 415a)에 인용된다.
  64. 64)게이가(景雅), 『금사자장감문金師子章勘文』(T73, 715c)에서는 이 부분을 인용하고 나서 『성불묘의』에서 법장과 징관의 해석을 의지해서 이와 같은 해석을 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성불묘의』에 징관의 영향은 보이지 않는다.
  65. 65)이하 세 문답은 『오교장』(T45, 490a)으로부터 인용하였다.
  66. 66)『오교장』 소전차별의 가운데 「행위차별」(T45, 490b)을 가리킨다.
  67. 67)『탐현기』(T35, 187a).
  68. 68)『탐현기』 권18 「입법계품석」(T35, 461a).
  69. 69)법장, 『기신론의기』(T44, 278a).
  70. 70)『탐현기』(『국역일체경』, 경소부 7) 73쪽 주 12에서 삼승교의 10신은 만 겁 등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발심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쉽고, 일승의 초발심이 어렵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71. 71)『탐현기』 「현수보살품석」(T35, 186c).
  72. 72)지엄의 『입법계품초』로 보이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73. 73)『화엄경문답』(T45, 612a). ‘향상香象’은 일본에서 전해지는 법장의 아호雅號이다. 지금은 의상의 강의록으로 판명된 『화엄경문답』이 당시에는 법장의 저술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최근 연구서로 『화엄경문답을 둘러싼 제 문제』(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편, 씨아이알, 2012) 참조. 원문에서 보듯이 ‘滿佛’과 ‘佛滿’이 섞여 있다. 둘 다 ‘滿佛’이 되어야 할 것이다.
  74. 74)『탐현기』(T35, 166b).
  75. 75)그 체성 그대로 차별상을 논하지만(隨其體性。 論差別相。) : 이것은 화엄종의 주장과는 달리 이해될 수 있는 문장이다. 뒤의 문답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견등의 의도는 진여로서의 체성이 내재된 중생들이 그대로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한 양상을 논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隨’가 ‘依’가 된다면 의미가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76. 76)『화엄경』 권35 「보왕여래성기품寶王如來性起品」(T9, 627a).
  77. 77)『화엄경』 권30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T9, 594a).
  78. 78)이 문답은 『화엄경』을 인용하지만, 사상적 근거는 지엄의 『공목장』 권4(T45, 576b) 「아승지품시겁장阿僧祇品時劫章」에 있다. “일승의 뜻은, 즉 무한한 겁에 즉한다. 왜냐하면 일승에 의거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이 이미 성불해 마친 것이다. 또한 중생들이 새롭게 새롭게 성불하기 때문에 역시 배우는 계위에 머물지 않고 정각을 성취한다.(若一乘義。 即無盡劫。 何以故。 爲依一乘。 一切衆生。 已成佛竟。 復爲衆生新新成佛。 亦不住學地。 而成正覺。)” 이와 같이 성불을 새롭게 성취한다는 사상은 지엄의 같은 책, 「융회삼승결현명일승지묘취融會三乘決顯明一乘之妙趣」(T45, 586c)에서 무한성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일승법의 뜻은 일체중생과 무한의 동시에 성불하며, 뒤에도 무한히 모두 새롭게 새롭게 미혹을 끊어 배우는 계위에 머물지 않고 정각을 성취한다.(一乘法義。 成佛共一切衆生。 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同時成佛。 後後後後後後後後後後。 皆新新斷惑。 亦不住學地。 而成正覺也。)” 특히 “배우는 계위에 머물지 않고 정각을 성취한다.(不住學地。 而成正覺。)”라는 『화엄경』 문구에 대해서는 『수현기』에는 주석이 없고, 최만년의 『공목장』에서 주석하게 된다. 이것은 지엄이 만년에 화엄일승의 원만성과 무한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79. 79)『탐현기』에 따르면 이 문장 안에 표방(標)ㆍ해석(釋)ㆍ맺음(結)이 있으며, 원문의 ‘標文也’는 뒤에 나오는 문구, 즉 『탐현기』의 ‘以菩提’부터 ‘不成佛’을 지시한다.
  80. 80)팔상八相 : 『화엄경』 「보왕여래성기품」(T9, 626c)의 “그리고 일체중생이 적멸열반함을 본다.(乃至見一切衆生寂滅涅槃)”를 지시한다.
  81. 81)『화엄경』 「보왕여래성기품」(T9, 626c)에서는 일체중생이 보리심을 발하고, 보살행을 실천하고, 정각을 얻고, 열반에 드는 것을 설하는데, 법장이 이것을 팔상으로 해석하였다.
  82. 82)『탐현기』 「보왕여래성기품석」(T35, 413b~c)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다.
  83. 83)『화엄경』(T9, 627a).
  84. 84)『탐현기』 「보왕여래성기품석寶王如來性起品釋」(T35, 413c~414a).
  85. 85)『화엄경』(T9, 627a).
  86. 86)『탐현기』 「보왕여래성기품석」(T35, 414a).
  87. 87)『기신론』(T32, 587a).
  88. 88)『대승기신론의기』(T44, 272c).
  89. 89)이하 세 문답은 『탐현기』(T35, 413c~414a)에서 취의한 것이다.
  90. 90)『부증불감경』(T16, 467b),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중생계를 떠나지 않고 법신이 존재하며, 법신을 떠나지 않고 중생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중생계는 곧 법신이며, 법신은 곧 중생계이다. 사리불이여, 이 두 법은 의미는 하나이나 명칭이 다르다.(是故舍利弗。 不離衆生界有法身。 不離法身有衆生界。 衆生界即法身。 法身即衆生界。 舍利弗。 此二法者。 義一名異。)”로부터 취의한 것이다.
  91. 91)『탐현기』 「성기품석」(T35, 413c).
  92. 92)『탐현기』에서는 ‘모든 중생이 성불하지 못함이 없음을’이라고 이중부정을 통해 긍정을 나타냈다.
  93. 93)『경』(T9, 627a).
  94. 94)『탐현기』에서는 표방(標)ㆍ해석(釋)ㆍ맺음(結)으로 설명하는데, 위 설명까지는 ‘표방’이며, 해석과 맺음은 그 위의 문답에서 이미 인용하였다. 『성불묘의』에서 인용한 『탐현기』 해석과 맺음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해석’에서는 ‘동일한 진성’을 강조하면서 중생과 보리의 동일성을 열 가지 원인으로 약술하고 있다. 그리고 맺음에서는 무진지와 자연지와 무극대비의 작용을 논하고 있다.(T35, 415a) 질문은 이들 내용에 대해서 원리에 근거한 설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표방’에서 법장은 중생의 성불은 별교일승의 입장에서 보면 현상과 원리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 『탐현기』에서 문답을 통해 이와 같은 ‘해석’과 ‘맺음’의 설명을 볼 경우 ‘표방’은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문을 제시한 것이다.
  95. 95)문부터 여기까지는 『탐현기』 권16 「성기품석」(T35, 414a)으로부터 인용하였다.
  96. 96)『탐현기』를 따라 ‘佛’ 자를 넣어 해석했다.
  97. 97)『탐현기』 권15 「부사의품석」(T35, 395a).
  98. 98)『오교장』(T45, 505b).
  99. 99)『오교장』(T45, 506a)의 문답을 인용한 것이다.
  100. 100)『탐현기』(T35, 167b).
  101. 101)윤왕輪王 : 보장엄 동자는 경전상에서는 염광성焰光城 가운데 애견선혜왕愛見善慧王의 둘째 아들이다. 여기서는 애견선혜왕을 윤왕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카모토 유키오의 『탐현기』 주석에 따르면, 이 왕은 백정보망륜왕白淨寶網輪王에 해당하는 복덕을 지니고 있다. 즉 철륜왕ㆍ동륜왕ㆍ은륜왕ㆍ금륜왕이 10지전의 위계인 것에 대해서 이 윤왕은 10지의 위에 해당한다.(『탐현기』 제3권 「노사나불품석」, 『국역일체경』, 366쪽, 주 12) 『화엄경』 「여래상해품如來相海品」에는 ‘백정보망전륜왕’, ‘백정보망전륜성왕’ 등으로 표현된다. 한편 『탐현기』 「불승야마천궁자재품석佛昇夜摩天宮自在品釋」(T35, 229b)과 「불소상광명공덕품석佛小相光明功德品釋」(T35, 402b)에 따르면, 만 명 이상의 자식이 있는 10지 보살의 계위에 속한다. 왕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그와 동등한 위계를 표현하는 윤왕의 명칭으로 사용한 예이다.
  102. 102)『공목장』(T45, 585c).
  103. 103)『청구기青丘記』 : 신라 진숭珍崇의 『공목장기』로 추정된다. 『신라기新羅記』로도 인용된다. 최연식, 「진숭의 『공목장기』 일문逸文에 대한 연구」, 『천태학연구』 14집, 2002년 참조.
  104. 104)분단신分段身 : 지엄의 『수현기』(T35, 49c)에서 ‘범부가 삼계에서 행위하여 얻은(彼凡時三界業所得)’ 몸이며, 혜원의 『대승의장』(T44, 617a)에 따르면, ‘알 수 없는 때부터 완전하지 못한 행위의 과보(無始來有漏業果)’로 얻은 몸을 말한다. 현세에 사는 우리들은 분단신의 몸이다.
  105. 105)『탐현기』(T35, 166b).
  106. 106)이구삼매 : 이에 대해서 『탐현기』(T35, 401b~c)에서는 계위에 근거하여 두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는 원인을 실천하는 마지막 단계에 입각한다. 즉 이때는 제10 법운지를 얻은 것과 같다. 두 가지 장애의 미세한 번뇌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둘째는 결과를 얻는 처음에 입각한다. 이 문장과 같다. 현재 성불하려고 할 때 도솔천자가 천상에서 이구삼매에 머물러 능히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번뇌를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一約因終。 如第十法雲地菩薩所得。 離自二障微細垢故。 二約果初。 如此文是。 將現成佛在此天上。 住此三昧。 能利衆生。 令離垢故。)”
  107. 107)나타나는(前) : ‘현전現前’으로 해석한 선학의 견해들도 있다.(木村淸孝, 『화엄오교장』, 『대승불전』 7, 중국ㆍ일본편, 中央公論社) 그러나 뒤의 도솔천자에 대해 설명하는 『경문』(T9, 606b)에서는 “이구삼매의 일부분을 보지 못한 것(猶未能見。 離垢三昧之少分。)”으로 표현한다.
  108. 108)『오교장』(T45, 489c).
  109. 109)『탐현기』(T35, 165c)로부터 취의한 것이다.
  110. 110)『경』에는 제2 왕자로 나온다. 『화엄경』(T9, 417a)에 “그 첫째 아들은 공덕승이라 이름하고, 차남은 보장엄 동자라 이름하였다.(其第一子名功德勝。 次名普莊嚴童子。)”라고 되어 있다.
  111. 111)제1자인 공덕승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뜻이 통하지만, 문맥상으로는 불분명하다.
  112. 112)『탐현기』(T35, 165c)로부터 취의한 것이다.
  113. 113)『탐현기』(T35, 158a) 가운데 세계의 종류를 교판적으로 밝히는 부분을 지시한다.
  114. 114)『탐현기』(T35, 164c)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115. 115)이하의 두 문답도 『탐현기』(T35, 164c)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116. 116)『지도론』 권50(T25, 418c).
  117. 117)『탐현기』(T35, 158a).
  118. 118)『탐현기』(T35, 158b).
  119. 119)『경』(T9, 417a).
  120. 120)『신경』(T10, 54c)에 “별본에 2만 5천 인이라고 한다.(別本云二萬五千人)”라는 협주가 있다.
  121. 121)각 왕과 계위에 대한 근거는 『영락경瓔珞經』(T24, 1016a)에 자세히 나와 있다.
  122. 122)『신경』(T10, 56b)에 따르면, 바라밀선안장엄왕波羅蜜善眼莊嚴王이다.
  123. 123)『간정기』(X3, 634a)에서 취의하였다.
  124. 124)남본 『열반경』(T12, 680b; 785a).
  125. 125)『탐현기』(T35, 165c).
  126. 126)60권본 『화엄경』(T9, 417a), 80권본 『화엄경』(T10, 54c).
  127. 127)80권본 『화엄경』(T10, 56b)에서만 나온다.
  128. 128)『묘법연화경현찬』(T34, 691c).
  129. 129)『겁의劫義』 : 현존하지 않는다. 일본 가마쿠라 시대 승 단에이(湛睿), 『화엄오교장찬석華嚴五敎章纂釋』 하권, 제8(『日佛全』 12, 192쪽)에서는 ‘원효사겁파장元曉師劫波章’을 인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에도 시대 승 호탄(鳳潭)의 『화엄오교장광진초華嚴五敎章匡眞鈔』(T73, 553b)에도 ‘원효겁파장元曉劫波章’으로 인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일본 『대정신수대장경』 데이타 베이스(sat)를 검색하면, 사이센(濟暹)의 『대일경주심품소사기大日經住心品疏私記』(T58, 701a), 사이센의 『오상성신의문답초五相成身義問答抄』(T78, 111b), 조슌(貞舜)의 『종요백원안립宗要柏原案立』(T74, 501a)에 ‘겁장劫章’으로 인용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한편 일본의 『동역전등목록東域傳燈目録』(T55, 1161c)에는 ‘겁의일권 분황사현륭방본劫義一卷芬皇寺玄隆房本’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신라 분황사 승려 현륭이 소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130. 130)『대지도론』(T25, 339c).
  131. 131)제2 도솔천자에 대한 내용 전체가 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이를 무시한다.
  132. 132)『경』(T9, 605a).
  133. 133)『경』(T9, 605a).
  134. 134)이 부분은 교넨(凝然)이 『오교장통로기』(T72, 525b)에서 원용하였다.
  135. 135)열 가지 육근六根 : 천태 지의의 저술 등에 초주 보살이 얻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화엄류의 문헌에서는 볼 수 없는 용어이다.
  136. 136)『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佛小相光明功德品釋」(T35, 401a).
  137. 137)『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1a).
  138. 138)문맥상 답이 탈락된 것으로 보아 답을 보입하였다.
  139. 139)『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1a).
  140. 140)이하 『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2a)으로부터 취의하였다.
  141. 141)『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6b).
  142. 142)『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6b).
  143. 143)『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6b).
  144. 144)『탐현기』의 ‘득위익得位益’(T35, 402a)에 해당한다.
  145. 145)『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6b).
  146. 146)『경』 권55(T10, 292c).
  147. 147)『간정기』 권14 「이세간품석離世間品釋」(X3, 854b).
  148. 148)『간정기』 권14 「이세간품석」(X3, 854b).
  149. 149)『간정기』 권14 「이세간품석」(X3, 854b).
  150. 150)『탐현기』 권17 「이세간품석」(T35, 430a). 『탐현기』에서는 ‘같다(同)’에 대해서 이 보살의 선근회향과 선지식의 선근이 일체로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동’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151. 151)『간정기』 권14 「이세간품석」(X3, 854b).
  152. 152)『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7b).
  153. 153)『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5c).
  154. 154)『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5c)의 회과悔過(잘못을 뉘우침)에 관한 다음과 같은 문장을 가리킨다. “의청정으로써 위의계에 머물러 일체 업장ㆍ번뇌장ㆍ보장ㆍ사견장의 잘못을 뉘우치고, 법계ㆍ허공계ㆍ중생계 등의 선한 입ㆍ몸ㆍ뜻의 업으로써, 중생계와 같은 몸, 중생계와 같은 머리, 중생계와 같은 혀로써 네 가지 장애에 대해서 잘못을 뉘우친다.(令意清淨。 住威儀戒。 悔過一切業障。 煩惱障。 報障。 邪見障。 以法界。 虛空界。 衆生界等。 善身口意業。 以衆生界等身。 衆生界等頭。 衆生界等舌。 悔過四障。)”
  155. 155)『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6b)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가리킨다. “이때 여러 천자의 하나하나의 모공 가운데서 중생계와 같은 묘향화운을 변화시켜 만들어 노사나불을 공양하며……2만 1천 등의 행번뇌, 이러한 모든 번뇌가 모두 다 소멸한다.(爾時。 諸天子於一一毛孔。 化作眾生界等妙香華雲。 供養盧舍那佛……二萬一千等行煩惱。 此諸煩惱皆悉除滅。)
  156. 156)『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6b).
  157. 157)『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6b). 『공목장』 권1 「일승삼승의장一乘三乘義章」(T45, 537b)에서도 백정보망전륜왕의 위계는 오직 이구삼매의 약간밖에 아직 얻지 못했다고 한다.
  158. 158)『간정기』 권13 「여래수호광명공덕품석」(X3, 825a)에 따르면, 다섯째 이익은 많은 불보살을 보는 이익이다.(五見衆多佛菩薩) 그 여섯째 이익이, “여섯째, 아직 똑같은 이익의 영역을 나타내지 못한 것과 같다. 비록 10지를 얻었지만, 아직 구경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약간의 힘을 아직 나타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六而猶未現等益分齊。 謂雖得十地。 當未究竟故。 云未現少分之力。)”이다. 『간정기』의 이것으로 보면,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이익이 각각 『탐현기』의 넷째와 총결문總結文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159. 159)네 부류 : 천상의 이익 가운데 교설을 듣는 이익을 얻는 네 가지를 말한다. 차례대로 여도설천익餘兜率天益ㆍ욕천익欲天益ㆍ천녀익天女益ㆍ당기천자익當機天子益이다.
  160. 160)『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5a). “또한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대광명을 놓는데, 그 이름을 당왕이라고 한다.(又菩薩摩訶薩於兜率天。 放大光明。 名曰幢王。)” 『경』에서는 당왕이라는 광명에 비추이면 목숨이 다한 후에 도솔천에 태어난다고 한다.
  161. 161)『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5a). “여래의 천폭륜 가운데 묘광명이 있어 이름이 보조왕이며, 저 해왕의 수형호처에서 모두 40광의 대광명을 발하니 청정공덕이라 하여 이 공덕으로 60억 나유타 불찰 미진수 세계를 널리 비춘다고 한다.(如來足下千輻輪中有妙光明。 名普照王。 於彼海王隨形好處。 悉放四十廣大光明。 一名清淨功德。 普照六十億那由他佛剎微塵數世界。)” 이 광명에 대한 표현으로 생각된다. 호好는 미세한 모습이다. 상相은 거친 모습이기 때문에 ‘호’라고 하는 것이다. 『대지도론』(T25, 274c)에 “상은 거칠고 호는 미세하다. 중생은 부처를 봄에 그 상으로 보지만, 호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相麁而好細。 衆生見佛則見其相。 好則難見故。)”라고 한다.
  162. 162)『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2a). 그런데 이렇게 되면 첫째 부류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는 셈이 된다. 『탐현기』에서는 첫째 부류에 대해서 “첫째, 나머지 도솔천자가 무생법인을 얻는 이익이다. 혹은 초지, 혹은 8지에 해당한다.(一餘兜率天子得忍益。 或當初地或是八地。)”라고 한다. 이것을 더해야 답이 될 것이다.
  163. 163)『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2b).
  164. 164)『경』 권32 「불소상광명공덕품」(T9, 606b).
  165. 165)『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1b)에서는 “하나하나의 털구멍으로부터”라는 경문에 대해서 “이익을 얻어 전하고 유통함으로써 무진행을 성취하는 것을 밝힌다.”라고 주석하고 있다.
  166. 166)주라마니周羅摩尼ㆍ득정력삼매得淨力三昧는 『화엄경지귀』(T45, 596b)의 문장이다.
  167. 167)『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2c).
  168. 168)전하고 유통하는 이익의 주체인 1항사 동안에 선근을 심은 전륜성왕에 대한 설명이다. 경전에는 백정보망전륜왕白淨寶網轉輪王으로 나온다.
  169. 169)『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2c).
  170. 170)『영락경』(T24, 1016a)에 따르면 금륜왕은 천 명의 자식이 있으며, 사천하四天下에 머문다.
  171. 171)『탐현기』 권16 「불소상광명공덕품석」(T35, 402b).
  172. 172)둘 다 수보리를 지칭한다.
  173. 173)『지도론』 권96 「석살타파륜품釋薩陀波崙品」(T25, 732a). “문 무엇 때문에 살타파륜薩陀波崙이라고 이름하였는가?살타薩陀는 중국 말로 ‘상’이고, 파륜은 ‘체’이다.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인가, 인연으로 얻은 이름인가? 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어렸을 때부터 기쁘게 울어서 이름을 상제라고 하였다고 한다.(問曰。 何以名薩陀波崙。薩陀。 秦言常。 波崙名啼。爲是父母與作名字。 是因緣得名字。 答曰。 有人言。 以其小時喜啼。 故名常啼。)”
  174. 174)『탐현기』(T35, 453c)에서는 선재를 관찰하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로 분과한다. 그중 첫째가 현생의 뛰어난 것을 보는 것이고, 둘째는 숙세의 인연으로 쌓은 덕행을 살피는 것이다.(初觀其現生勝事。 二此童子者下。 察其宿因德行。) 여기서의 둘째는 후자에 해당한다.
  175. 175)해탈분 : 순해탈분으로서 여기에는 학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대체로 해탈의 원인(分)이 되는 수행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176. 176)『탐현기』 권18 「입법계품석入法界品釋」(T35, 453c~454a).
  177. 177)『경』 45권 「입법계품」(T9, 688a). “또 5백 동자가 있는데, 그 이름이 선재동자ㆍ선행 동자ㆍ선계 동자……이다. 처음 수태할 때 그 집 안에 칠보로 된 창고가 있었다.(復有五百童子。 其名曰。 善財童子。 善行童子。 善戒童子。……初受胎時。 於其宅內。 有七大寶藏。)”
  178. 178)『공목장』 권4 「석사십오지식문중의장釋四十五知識文中意章」(T45, 585c), “셋째는 염부제의 뛰어난 공덕신에 의한다. 선재 등이 현신에 필경 보현의 실천을 함과 같다.(三者。 依閻浮提勝功德身。 如善財等現身。 究竟普賢之行。)”라고 되어 있는 것을 지시한다.
  179. 179)『경』 권45 「입법계품」(T9, 688b).
  180. 180)이 부분의 『탐현기』 원문은, “문 이 선재가 한 법문을 얻어 수행을 성취하기에 족한데 무엇 때문에 수습하기 위하여 이에 편력함을 싫어하지 않는가? 답 즉 이 널리 구함에 보살의 일과 선우의 실천과 법을 구하는 실천을 성취하는 것이다.(問。 此善財得一法門。 足成修行。 何不修習。 乃遊歷無厭。 答。 即此廣求。 成就菩薩事。 善友行。 及求法行。)”이다. ‘不’은 대곡대원록본大谷大元錄本에 따라 ‘爲’로 해석한다. 『국역일체경』 경소부 10, 302쪽 주 76을 참조하였다.
  181. 181)『경』(T9, 691c).
  182. 182)일곱 가지라고 했지만, 『탐현기』에는 여덟 가지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곱 가지 항목만이 있다. 현존본의 빠진 부분이 『탐현기』 갑본에는 네 번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견등이 본 것은 일곱 가지 항목이 있는 본이었을 것이다.
  183. 183)『탐현기』 권18 「입법계품석」(T35, 455a~b).
  184. 184)답은 『탐현기』 권18 「입법계품석」(T35, 455b~c)에서 취의한 것이다.
  185. 185)『탐현기』에는 “셋째, 이승의 출세선행을 닦아서 삼계의 고통을 면한다 해도(雖修二乘出世善行。 免三界苦。)”로 되어 있어, ‘二行’은 이승의 실천임을 알 수 있다.
  186. 186)상선相善 :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일본 료추(良忠), 『선택전홍결의초選擇傳弘决疑鈔』(D42, 38a)에서 “똑같이 모습이 있는 것으로써 집착을 하므로 상선이라고 한다.(同以有相爲所執。 故云相善也。)”라는 것처럼 집착의 상이 있는 선의 의미로 보인다.
  187. 187)『탐현기』(T35, 455b)에서는 ‘선지식’을 통과 별로 해석하였다. 지금까지가 통론이고, 여기서부터가 별론이다. 견등의 『성불묘의』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없이 바로 통론을 인용하였다. “둘째, 선지식을 해석하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통론이고, 나중은 별론이다. 참 선지식을 통론하면 세 부류가 있다. 사람ㆍ법ㆍ사람과 법을 합하여 변설함이다.(第二釋知識義者有二。 先通後別。 通論真善知識。 有其三類。 一人。 二法。 三人法合辨。)”
  188. 188)『탐현기』 권18 「입법계품석」(T35, 450c); 『문의강목』(T35, 501a).
  189. 189)차전생신次前生身 : ‘전전생신前前生身’과 대가 되는 표현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생신에 해당한다.
  190. 190)『탐현기』 권18 「입법계품석」(T35, 454a).
  191. 191)『경』 「입법계품」(T9, 688a).
  192. 192)『경』 권36 「보왕여래성기품」(T9, 629b).
  193. 193)『탐현기』 어디를 가리키는지 불분명하다.
  194. 194)『탐현기』 권18 「입법계품석」(T35, 454a).
  195. 195)『오교장』 권2(T45, 489c).
  196. 196)『탐현기』에는 ‘증입위證入位’, 『오교장』에는 ‘증과해위證果海位’로 되어 있다.
  197. 197)『탐현기』 권16 「보왕여래성기품석」(T35, 454a).
  198. 198)『경』 「입법계품」(T9, 783b)에서 취의한 것이다. 아래에 인용문이 나온다.
  199. 199)『오교장』 권2(T45, 489c).
  200. 200)『경』 권60(T9, 783b). 이 경문을 경증으로 제시한 것은 일본 나라 시대 화엄종 승려 주료(壽靈)의 『오교장지사五敎章指事』가 처음이다. 그리고 이어 『탐현기』의 세 가지 해석을 제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견등이 『지사指事』를 참고하여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료가 『탐현기』에 나오는 제3석을 지지한 것과는 달리 견등은 세 가지 견해가 동일하다고 본 점이 다르다.
  201. 201)『탐현기』 권20 「입법계품석」(T35, 490a).
  202. 202)이 부분부터 『화엄경문답』으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문답』 본문에 ‘問’이 생략되어 있는데, 견등이 그대로 인용하였다.
  203. 203)별도의 분단신 등은 없다(無別分段身) : 분단신의 존재성이 부정된 표현이다. 『성불묘의』 제5 문답분별에서 “부처일 때 전체가 부처이며, 중생과 구별이 없다.(佛時全佛。 無別衆生。)”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別’은 ‘달리’ 또는 ‘별도의’라는 의미가 되어 ‘별도의 중생이 없다’로 해석된다.
  204. 204)『화엄경문답』 권하(T45, 612b).
  205. 205)『탐현기』 권20 「입법계품석」(T35, 490a)인 듯하다.
  206. 206)『공목장』 「석사십오지식문중의장」을 지시하는 듯하다.
  207. 207)보리류지菩提流支역, 『가야산정경伽耶山頂經』(T14, 485a)의 네 가지 발심을 지칭한다. “문수사리가 답하여 말하였다.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네 가지 마음이 있어서 능히 원인을 성취하고, 결과를 성취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면, 초발심ㆍ행발심ㆍ불퇴발심ㆍ일생보처발심이다.(文殊師利答言。 天子。 諸菩薩摩訶薩有四種心。 能成就因。 能成就果。 何等爲四。 一者。 初發心。 二者。 行發心。 三者。 不退發心。 四者。 一生補處發心。)”라고 하였으므로 불퇴발심과 일생보처발심을 말한다.
  208. 208)『대승기신론』(T32, 580b)에 따르면,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ㆍ해행발심解行發心ㆍ증발심證發心이 있다.
  209. 209)『탐현기』 권18(T35, 454a).
  210. 210)『오교장』 권2(T45, 486a).
  211. 211)『탐현기』 「노사나불품석」을 지칭한다.
  212. 212)답이 탈락된 것으로 보인다.
  213. 213)『탐현기』(T35, 454a).
  214. 214)『법화현찬』 권9(T34, 816c).
  215. 215)『법화경』 권4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T9, 35b).
  216. 216)『오교장』 「십현연기무애법문의」(T45, 505c).
  217. 217)『오교장』(T45, 493c).
  218. 218)『공목장』 권3 「제육회십지품초명십지장第六會十地品初明十地章」(T45, 560c)에서는 오승(인천승ㆍ이승ㆍ점오승ㆍ돈오승ㆍ일승)을 분류한 후에 이 가운데 점오승에 초교회심ㆍ초교직진위ㆍ대승종교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견등은 오교판 위에 인천승을 포함하여 6교라고 하였다. 그런데 초교직진위와 대승종교 사이에 초교회심과 초교직진위를 아우르는 장을 설정했다. 따라서 실제로는 8장으로 서술된다고 볼 수 있다.
  219. 219)『공목장』(T45, 560c).
  220. 220)진숭의 『공목장기』이다. 최연식, 「진숭의 『공목장기』 일문에 대한 연구」, 『천태학연구』 14집, 2002년 참조. 현재 『성불묘의』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사본 『화엄십현의사기華嚴十玄義私記』에 일문이 남아 있다.
  221. 221)바로 위 『공목장』의 문장을 지시한다. 본 인천승의 내용에 대해서는 『탐현기』 「세간정안품석」(T35, 130b, 『국역일체경』 각주 154) 참조. 기타 『공목십지장약전孔目十地章略箋』(『일불전』 7453쪽) 참조. 『화엄공목장초』 제3권 상(『일불전』, 7111쪽) 참조.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T15, 660b; 662a)에서는 “부처님의 색신이 검은 코끼리의 다리와 같이 보인다.(見佛色身。 如黑象脚。)”라고 하였다.
  222. 222)『공목장』(T45, 560c).
  223. 223)강이 합쳐진(合河) 강가 : ‘강이 합쳐진 곳(合河)’은 ‘니련선하’를 말하는 듯하다. 『잡아함경雜阿含經』 권제39(T2, 286b)에 “니련선하 가의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고 오래지 않아(尼連禪河側。 於菩提樹下。 成佛未久。)”라는 표현이 있다.
  224. 224)16척신 : 뒤의 ‘상호구족신’과 관련된다면 16장 크기의 몸을 말하는 듯하다. 『법원주림法苑珠林』 권10(T53, 405a)에서 “상호구족신은 신장이 16장이다.(相好具足身。 長十六丈。)”라고 하였다. 그러나 쇼센(聖詮)의 『화엄오교장심의초華嚴五教章深意鈔』(T73, 72c)에 인용된 『성불묘의』에서는 ‘亦六十六釋’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示十六尺’의 오사이다. 따라서 원래 ‘丈’이 아니라 ‘尺’이었음을 알 수 있다. 쇼센은 묘에(明惠, 1173~1232)에게 『구사론』과 『인명론』을 전수했으므로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225. 225)한편 경흥憬興의 『삼미륵경소三彌勒經疏』(T38, 325c)에는 석가신의 장육척을 16척으로 설명한다.(是故。 釋迦身。 長丈六。 計十六尺。)
  226. 226)『공목장』(T45, 560c).
  227. 227)『공목장』(T45, 560c).
  228. 228)삼계 9지의 교설에 따르면, 욕계ㆍ색계 사정려와 무색계 사무색정이 있다. 이것을 지地라고 한 것인데, 각 지에는 근분정과 근본정이 있다. 그런데 초정려에만 근분정 대신에 미지정이 있다. 또 초선의 근본정과 제2선의 근분정 사이에 중간선이 있다. 이를 합하면 11지가 된다.
  229. 229)삼해탈문 :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해탈문을 의미한다. 『반야경』 등에 산견된다.
  230. 230)삼삼매 :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 삼매를 의미한다. 『반야경』ㆍ『열반경』 등에 산견된다.
  231. 231)『지도론』 권20(T25, 207a).
  232. 232)『지도론』(T25, 229c).
  233. 233)『공목장』(T45, 560c).
  234. 234)육행六行의 등지도等智道 : 신태神泰, 『구사론소俱舍論疏』(X53, 42b)에는 “혹은 범부가 세간의 육행의 등지도로써 소의所依의 몸 가운데 번뇌 종자를 눌러 없애 미혹이 생기는 것에 가까이함이 없게 하는 공능이니, 또한 단이라고도 이름한다.(或凡夫用世間六行等智道。 損伏所依身中煩惱種子。 無近生惑功能。 亦名爲斷。)”라고 되어 있다. 이로써 세간의 수행임을 알 수 있다. 『대승의장』 「금강삼매의」(T44, 642a)에서는 “무엇이 육행인가? 아래로는 고이며 추이며 장애임을 관찰하고, 위로는 지(靜)이며 묘이며 벗어남이라고 관찰하는 것이 합하여 여섯이다.(何者六行。 觀察下地。 爲苦麁障。 觀察上地。 爲止妙出。 合爲六也。)”라고 한다. 육행에 대해서는 『아비달마잡집론』(T31, 769c)도 함께 참조.
  235. 235)위 『신라기』의 주장은 아래 『섭론장』의 주장과 비슷하다. 『섭론장』에서 “범부들은 세속의 여섯 가지 실천으로 욕계의 견혹과 수혹의 두 가지 미혹을 총괄적으로 끊고, 나아가 삼공(三無色) 이전의 두 가지 미혹을 총괄적으로 끊기에 이르며, 아울러 영원히 끊는 것이다. 성인은 자기 세계의 견혹와 수혹을 따로 끊는다. 처음은 견혹을 끊고, 뒤에 수혹을 끊는다. 비로소 욕계에서 비상처에 이르러 또한 견혹과 수혹을 영원히 끊는다.(凡夫之人。 世俗六行。 總斷欲界見修二惑。 乃至總斷三空已還。 並是永斷。 聖人別斷界内見修。 先斷見諦。 後斷修惑。 始自欲界乃至非想。 亦是永斷。)”(T85, 1037a)라고 하였다.
  236. 236)본 문장에 해당하는 원문대로의 해석은 의미상 무리가 있는 듯하지만 현재로서는 문구에 충실하게 번역해 둔다. 16심은 팔인과 팔지를 합한 것이며, 구체적인 명칭은 『구사론』(T29, 121c) 참조.
  237. 237)『공목장』(T45, 560c).
  238. 238)『공목장』(T45, 560c).
  239. 239)이른바 178념 성불에 대한 전거는 미상이다.
  240. 240)『공목장』(T45, 560c).
  241. 241)『공목장』 권4(T45, 576b).
  242. 242)혜원의 『유마의기』(T38, 514b)에는 “이 가운데 대개 64겁이 있어 합하여 1겁이니, 이름하여 대라고 한다.(是中凡有六十四劫。 合爲一劫。 名之爲大。)”라고 되어 있고, 법보의 『구사론소』(T41, 622b)에는 “총 64겁이 1현겁이다.(總六十四劫爲一賢劫)”라고 되어 있다.
  243. 243)『신라기』의 겁수에 대한 논의가 어떤 문헌을 근거로 했는지 알 수 없으며, 계산법에 대해서도 알기 어렵다. 문장대로 해석하였을 뿐임을 밝힌다.
  244. 244)화재겁火災劫과 수재겁水災劫 : 괴겁壞劫 때 일어나는 재앙이다.
  245. 245)『오교장』(T45, 490b).
  246. 246)『구사론』(T29, 62c).
  247. 247)『공목장』(T45, 560c).
  248. 248)사바라밀 : 육바라밀 중 보시 등 앞의 사바라밀을 가리킨다.
  249. 249)『오교장』(T45, 490b).
  250. 250)무색계의 4처 중 세 번째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이전이다.
  251. 251)깨달음의 방편(覺道方便) : 이 표현은 80권본 『화엄경』(T10, 305b)에 처음 나온다.
  252. 252)제4 변제정邊際定 : 색계의 제4선의 마지막 색구경천정을 말한다. 도섬道暹의 『법화경문구보정기法華經文句輔正記』(X28, 651a)에 “변제정이라는 것은 제4 선정이다. 사선의 끝이 곧 색구경천이다.(邊際定者。 第四禪定也。 四禪之極。 即色究竟天定也。)”라고 되어 있다.
  253. 253)『지지론』에서는 찾을 수 없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권제10(T30, 328b)에서는 여섯 종류의 현관을 수행할 때 ‘여섯’에 대해서 ‘사현관思現觀ㆍ신현관信現觀ㆍ계현관戒現觀ㆍ현관지제현관現觀智諦現觀ㆍ현관변지제현관現觀邊智諦現觀ㆍ구경현관究竟現觀’으로 설명한다. 또한 기基의 『잡집론술기雜集論述記』(X48, 126c)에서는 ‘삼의’와 ‘오의’에 대해서 서방의 해석을 인용하여 삼의는 ‘지제현관智諦現觀ㆍ변현관邊現觀ㆍ계현관戒現觀’, ‘오의’는 ‘초미지부터 제4선(初未至乃至第四禪)’이라고 한다.
  254. 254)『공목장』(T45, 560c).
  255. 255)『오교장』(T45, 491a).
  256. 256)『공목장』(T45, 560c).
  257. 257)『오교장』(T45, 488a).
  258. 258)『종남문답』 : 지엄의 『오십요문답』의 별칭이다. 주료(壽靈), 『오교장지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259. 259)『오십요문답』(T45, 519a).
  260. 260)『오십요문답』(T45, 519b).
  261. 261)『오십요문답』(T45, 519c).
  262. 262)『오십요문답』(T45, 519c).
  263. 263)『오십요문답』(T45, 519c).
  264. 264)『오십요문답』(T45, 519c~520a).
  265. 265)『오십요문답』(T45, 520a).
  266. 266)『오십요문답』(T45, 520b).
  267. 267)『오십요문답』(T45, 520b).
  268. 268)『오십요문답』(T45, 520c).
  269. 269)『오십요문답』(T45, 520c).
  270. 270)『오십요문답』(T45, 521a).
  271. 271)『오교장』(T45, 485b).
  272. 272)『공목장』(T45, 560c).
  273. 273)『법경론』에 대해서는 김천학金天鶴, 이케다 마사노리(池田將則) 정리, 「름懍 『법경론法鏡論』」, 『장외지론종문헌집성속집藏外地論宗文獻集成續集』(금강대학교불교문화연구소, 2013) 참조.
  274. 274)지의智顗의 『인왕호국반야경소仁王護國般若經疏』(T33, 261a)에서는 “지혜가 있어도 선정의 물을 얻지 못한 것을 건혜지라고 한다.(雖有智慧。 不得禪定水。 故名乾慧地。)”라고 했고, 길장吉藏의 『대품경의소大品經義疏』(X24, 309a)에서도 “아직 삼매의 물을 얻지 못한 때(乾慧地者。 未得定水。)”라고 하였으며, 혜균慧均의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X46, 646c)에서도 “공리空理에는 삼매의 물이 적어서 고갈되는 것을 면치 못하므로 건혜지라고 한다.(空理。 定水少。 不免乾枯。 故名乾慧地也。)”라고 하였다.
  275. 275)질문에서 ‘此章中’이란 표현을 써서 『공목장』에 근거를 둔 질문임을 알게 했다. 이 문답도 『신라기』에서의 인용임을 알 수 있다.
  276. 276)우법이승愚法二乘 : 대승으로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삼계화택 속의 이승을 말한다.
  277. 277)『오십요문답』(T45, 522b)에 나오는 17문 차제로, 부연 설명하면 세간육도世間六道 6문, 성문聲聞ㆍ연각縁覺 2문, 소승 가운데 부처와 초교회심교 가운데 소승의 부처 2문, 10신 이후 10지까지 5문, 건혜지 등 10지 1문, 직진 보살이 10지 후에 부처가 되고, 그 처음 일념에 정각을 얻는 것 1문으로 총 17문이 된다. 이것에 대해서는 삼승과 소승에 해당하는 문이라고 한다.
  278. 278)혜경慧鏡 : 『의천록』에 있는 『기신론기』 3권의 저자 혜경일 것이다. 시대는 원효와 법장 사이의 인물이다.
  279. 279)지론종의 교판 가운데 하나로 삼종교판인 별교삼승ㆍ통교ㆍ통종대승에 입각한 서술 방식이다. 지론종의 삼종교판에 대해서는 이케다 마사노리(池田將則) 정리, 교리집성문헌敎理集成文獻 S.4303(『地論宗藏外文獻集成』,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2012)의 해제 참조.
  280. 280)성공린위性空隣位 : 이케다 마사노리(池田將則) 정리, 『교리집성문헌敎理集成文獻』, “금강심보살은 ‘부처의 이해에 버금간다.’ 능히 어두운 도리를 끊어 무지가 다하는 것은 무구라고 이름한다.(金剛心菩薩‘隣佛’之解。 能断奄理無知塵。 故名無垢。)”, “무엇 때문에 법운지라고 하는가 하면, 이미 자취가 부처와 버금가기 때문이다.(何故名法雲者。 既迹隣大覺。)”(『地論宗藏外文獻集成』,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2012, p.296 p.130)
  281. 281)오정심관五停心觀 : 『공목장』 권2 「명법품초립오정심관장明法品初立五停心觀章」(T45, 552b)에는 부정관不淨觀ㆍ자비관(慈心觀)ㆍ연기관緣起觀ㆍ안반념관安般念觀ㆍ계분별관界分別觀으로 되어 있다.
  282. 282)아비발치지阿毘跋致地 :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T54, 399c)에서는 ‘아유월치阿惟越致’를 아비발치阿毘跋致라고도 하며, 중국에서 불퇴전不退轉이라 한다고 했다. 『번범어翻梵語』(T54, 992a)에서는 아비파제 보살阿毘婆帝菩薩은 아비발치阿毘跋致이며, 불퇴不退라 번역한다고 했고, 『십주단결경十住斷結經』 제1권에 나온다고 하였다.
  283. 283)금강심 : 아오키 다카시(靑木隆) 정리, 「법계도法界圖」에서 “제6 등각……또한 금강심이라고 이름한다.(第六等覺。……又一名金剛心。)”(『地論宗藏外文獻集成』,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2012, p.590)라고 하여 등각을 금강심이라고 한다.
  284. 284)자취를 가린 부처(覆跡之佛) : 지의智顗의 『법화현의法華玄義』(T33, 799a)에 “자취를 가리고 근본을 드러내는 것이니, 또한 근기에 응하여 많이 바로잡는다. 자취에 집착하여 근본에 장애가 되면 가려서 집착하지 않게 한다.(覆迹顯本者。 亦約機應。 多端。 若執迹障本。 故覆令不執。)”라고 되어 있다. 결국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285. 285)이승의 오과五果 : 아라한과阿羅漢果 다음에 벽지불과辟支佛果를 더한 것이다. 『대명삼장법수大明三藏法數』(P182, 86a) 참조. “오과회심『열반경』에 나온다., 오과는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ㆍ벽지불이 증득한 결과이다.(五果回心。出涅槃經。 五果。 須陀洹。 斯陀含。 阿那含。 阿羅漢。 辟支佛所證之果也。)”
  286. 286)『인왕경仁王經』(T8, 826b). “이미 이승의 모든 선의 계위를 넘었다.(已超過二乘一切善地)”
  287. 287)5품 제자五品弟子 계위 : 천태 지의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서 10신위를 일컫는다. 그러나 『법경론』에서는 교판敎判에 따라 10주위十住位가 되기도 한다.
  288. 288)34념 : 견도십육심見道十六心ㆍ구무간도九無間道ㆍ구해탈도九解脱道를 말한다. 앞에서 말한 보살의 33심은 이 가운데 제9 해탈을 뺀 것임을 알 수 있다.
  289. 289)통교가 어느 경전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다. 『열반경』(T12, 562b)에 두세 번 이러한 표현이 나온다. “중생은 모두 믿음 등의 오근이 있다. 이로써 일천제들이 영원히 미혹을 단멸시키기 때문이다.(衆生悉有信等五根。 而一闡提輩永斷滅故。)” 『법경론』에 따르면 10신 중 다섯 번째까지이며, 구체적으로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으로 『반야경』 계통의 경전에 여기저기 보인다.
  290. 290)『대집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전거가 불분명하다.
  291. 291)‘수신지隨信地’와 뒤에 나오는 ‘법행지法行地’라는 용어는 『증계대승경證契大乘經』(T16, 661b)에 나온다. 한편 원측의 『인왕경소』(T33, 371c)에는 성문 10지의 명칭으로 나온다. 주삼귀행지住三歸行地ㆍ수신행지隨信行地ㆍ수법행지隨法行地ㆍ선범부지善凡夫地ㆍ학계지學戒地ㆍ제8 인지人地ㆍ수다원지須陀洹地ㆍ사다함지斯陀含地ㆍ아나함지阿那含地ㆍ아라한지阿羅漢地의 10지이다.
  292. 292)『오십요문답』일 것이다. 인용 출처 미상.
  293. 293)『수현기』(T35, 51b).
  294. 294)‘文’과 ‘義意趣’는 『반야경』의 ‘文義意趣’에서 유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95. 295)『오교장』(T45, 488b).
  296. 296)『공목장』(T45, 560c)
  297. 297)『공목장』(T45, 560c)
  298. 298)『오교장』(T45, 488a).
  299. 299)『공목장』(T45, 560c).
  300. 300)『공목장』(T45, 560c).
  301. 301)『화엄경』(T9, 568a)에서 “백천백천을 1구리라고 한다.(百千百千名一拘梨)”라고 하였다. 1조에 해당한다.
  302. 302)『공목장』(T45, 576b).
  303. 303)『공목장』(T45, 560c)
  304. 304)『공목장』(T45, 560c).
  305. 305)『공목장』(T45, 560c).
  306. 306)『오교장』(T45, 491a; 488a).
  307. 307)『공목장』(T45, 560c).
  308. 308)사취四取 : 『대방등대집경』(T13, 13a)에는 욕취欲取ㆍ유취有取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로 되어 있다. 길장의 『법화현론』(T34, 428b)에서는 생사의 인연에 두 가지가 있으며, 그 첫째가 유루업을 원인으로 하고, 사취를 연으로 한다고 하였다. 『대승사론현의기』(X46, 616a)에서는 이와 같은 설이 『승만경』에서 비롯한다고 하였다.
  309. 309)『공목장』(T45, 560c).
  310. 310)『공목장』(T45, 560c).
  311. 311)『공목장』(T45, 560c).
  312. 312)『섭대승론장』에서는 『섭대승론』 「수시장」(T85, 1018c)을 전거로 하여 이와 같은 설을 주장하고 있다. “10지 이전의 1대겁승지에 피부의 번뇌를 끊고, 초지부터 7지까지의 제2 대겁아승지에 육체의 번뇌를 끊고, 8지에서 10지에 이르는 제3 대겁승지에 마음의 번뇌를 끊는다.(地前一大劫僧祇斷皮煩惱。 初地至七地第二大劫阿僧祇斷肉煩惱。 八地至十地第三大劫阿僧祇斷心煩惱。)”
  313. 313)『일승십현문』(T45, 518a).
  314. 314)『오십요문답』(T45, 520a).
  315. 315)『공목장』(T45, 561a).
  316. 316)『공목장』(T45, 561a).
  317. 317)『공목장』(T45, 561a).
  318. 318)『오십요문답』 「삼중생작불의三衆生作佛義 십조림후석十稠林後釋」(T45, 519c).
  319. 319)『오십요문답』 「칠불모권속의七佛母眷屬義 후마야중석後摩耶中釋」(T45, 520a).
  320. 320)『오십요문답』 「십제교수도총별의十諸教修道總別義 제십지초이구삼매설第十地初離垢三昧說」(T45, 520c)에서 취의한 것이다.
  321. 321)『오십요문답』 「사성불전후의四成佛前後義 사십무애변후석四十無礙辨後釋」(T45, 519c)에서 취의한 것이다.
  322. 322)『오십요문답』 「육타방불성화의六他方佛成化義」(T45, 520a)에서 취의한 것이다.
  323. 323)『열반경』(T12, 752c).
  324. 324)『탐현기』(T35, 158a).
  325. 325)『오십요문답』 「팔불정근의八佛情根義 제2품 초청중석初請中釋」(T45, 520b)에서 취의한 것이다.
  326. 326)『오십요문답』 「십일성불불성불의十一成佛不成佛義 조림후석稠林後釋」(T45, 520c)에서 취의한 것이다.
  327. 327)『오십요문답』 「십이불상모의十二佛相貌義 제3 지식중석知識中釋」(T45, 521a)에서 취의한 것이다.
  328. 328)『현양론』(T31, 581a).
  329. 329)『유가론』(T30, 478c).
  330. 330)『오교장』(T45, 485c).
  331. 331)『오교장』(T45, 486c)에 따르면 『불성론』을 가리킨다.
  332. 332)『오교장』(T45, 487a).
  333. 333)『공목장』(T45, 561a)
  334. 334)『공목장』(T45, 561a).
  335. 335)『범망경』(T24, 998a).
  336. 336)『공목장』(T45, 561a).
  337. 337)『공목장』(T45, 561a).
  338. 338)『기신론』(T32, 577c).
  339. 339)『십지경론』 10권 부동지不動地(T26, 183c)에서 “『논』에서 이르길, ‘자재를 얻는다’라는 것은, 보살이 이와 같이 환경 세계ㆍ중생 세계ㆍ지정각 세계에서 세 가지 자재행을 수행하기 때문에 열 가지 자재를 얻는 것이다.(論曰。 得自在者。 是菩薩如是修行。 器世間。 衆生世間。 智正覺世間。 三種自在行故。 得十自在。)”라고 하였다.
  340. 340)『대승장엄경론』(T31, 659b)에서 “능히 운우의 법과 같기 때문에 법운지라고 한다.(由能如雲雨法故。 名法雲地。)”라고 하였다. 참고로 이 문장은 원측의 『해심밀경소』, 법장의 『탐현기』 등에도 인용되지만, 화신과는 관련 짓지 않는다.
  341. 341)『공목장』(T45, 561a).
  342. 342)『공목장』(T45, 561a).
  343. 343)『공목장』(T45, 561a).
  344. 344)『공목장』(T45, 561a).
  345. 345)『공목장』(T45, 561a).
  346. 346)『오교장』(T45, 490c)으로부터 발췌 인용하였다.
  347. 347)『오교장』(T45, 491c).
  348. 348)『공목장』(T45, 561a).
  349. 349)『공목장』(T45, 561a).
  350. 350)『법계도』(T45, 712c). 한편 『법계도기총수록』(T45, 750b)에서는 「법기法記」에서 ‘칠종고제七種苦諦’를 주석하면서, 이것이 일곱 가지 생사로서 분단생사에 세 가지가 있고, 변역생사에 네 가지가 있다 하고, 변역생사의 네 가지에 대해서 방편생사方便生死ㆍ인연생사因緣生死ㆍ유유생사有有生死ㆍ무유생사無有生死를 들고 있다.
  351. 351)진제역, 『섭대승론석』에서 피부ㆍ육체ㆍ마음은 번뇌가 깊어지는 단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섭대승론석』에서 같은 문장을 찾을 수 없다. 이와 관련된 문장으로(T31, 174a), “『논』에서 말한다. 출세의 최청정 법계에서 유출하기 때문이다. 『석』에서 말한다. 일곱 가지 고제를 벗어나 세 가지 집제를 멸하기 때문에 출세라고 이름한다.(論曰。 出世最清淨法界流出故。 釋曰。 出七種苦諦。 滅三種集諦故名出世。)”라고 함을 들 수 있다. 한편 『대승현론』(T45, 47b)에서는 “섭론사가 ‘일곱 가지 생사가 있어 삼계의 분단생사에 세 가지, 변역생사에 네 가지가 있다’라고 하였다.(攝論師云。 有七種生死。 三界分段爲三種。 變易有四種。)”라고 하였다. 뒤에도 이어지지만 이러한 문장은 『신라기』에서 인용한 것이고, 견등이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352. 352)『보성론』(T31, 830b)에서는 네 가지 장애를 거론하면서 이 네 가지를 들고 있다.
  353. 353)『불성론』(T31, 799a)에서는 네 가지 장애(怨障)로 이 네 가지 생사를 들고 있다.
  354. 354)『무상의경』(T16, 472b).
  355. 355)이 부분은 쇼센(聖詮)의 『화엄오교장심의초華嚴五教章深意鈔』(T73, 50a~51a)에서 이후 장문을 인용하고 있다. 따라서 아래 역시 『신라기』로부터 인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 장이 전부 『신라기』로부터 인용한 것일 것이다.
  356. 356)『기記』의 해석이다.
  357. 357)오주종자 : 이 용어는 돈황본 『섭대승의장』(T85), 길장의 『승만보굴勝鬘寶窟』(T37)에서만 확인된다.
  358. 358)‘지地’와 ‘기起’의 차이는 『탐현기』(T35, 205b)에서 “지地와 기起를 분별하면, 초구는 오주기五住起이며, 후구는 오주지五住地이다.(地起分別。 初句是五住起。 後句是五住地也。)”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탐현기』 「초발심공덕품석」에 나오며, 초구는 ‘일체번뇌一切煩惱’, 후구는 ‘근본번뇌根本煩惱’를 가리킨다.
  359. 359)『불성론』(T31, 799a).
  360. 360)원문의 ‘因緣生死’ 앞에 ‘名爲’를 넣어 해석했다.
  361. 361)『섭대승론석』(T31, 248b).
  362. 362)세 성인 : 『불성론』에 따르면, 세 성인은 성문聲聞ㆍ독각獨覺ㆍ대력보살大力菩薩이다.
  363. 363)『불성론』(T31, 799a).
  364. 364)퇴타退墮 : ‘죽음’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김성철 역주, 『불성론』(씨아이알, 2013) p.142 참조. 이것은 『보성론』의 ‘불가사의변역사不可思議變易死’를 따른 번역이다.
  365. 365)『승만경』 권1 「일승장」(T12, 220a).
  366. 366)보리류지菩提留支역, 10권 『입능가경入楞伽經』(T16, 540b)과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역, 4권 『능가경』(T16, 497c)을 합친 설명이다.
  367. 367)『불성론』에는 이러한 명칭이 없다.
  368. 368)진제의 『승만경석』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369. 369)『불성론』(T31, 799a)으로부터 취의하였다.
  370. 370)『섭대승론석』(T31, 226c).
  371. 371)『능가경』(T16, 555a).
  372. 372)『능가경』(T16, 555b).
  373. 373)『능가경』(T16, 555b~c).
  374. 374)상류 : 아나함은 불환위不還位(성위의 제3위)이다. 그 생에서 열반을 얻지 못하면 다시 상위上位에서 존재(有)를 반복하는 것을 상류라고 한다. 다카사키 지키도(高崎直道), 『불성론佛性論』〔『신국역대장경』 논집부 2(大藏出版, 2005), p.103〕과 진제眞諦역,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T29, 276b)의 “‘상류上流’라는 것은 위로 가서 생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수생처인데 그 가운데서 반열반하지 못한다. ‘류’는 실천의 의미이다.(上流者。 往上受生。 是受生處。 於中不般涅槃。 流者行義。)”를 참조.
  375. 375)『양섭론』 「수상장修相章」(T31, 225c)에 자세한 언급이 있다.
  376. 376)『대승의장』 「이종생사의」(T44, 616b)로부터 취의한 것이다.
  377. 377)수조隨助 : ‘隨助’는 ‘隨而佐助’의 간략한 형태로 보인다. 『대승의장』 「십이인연의」(T44, 551c) 참조.
  378. 378)『대승의장』 「이종생사의」(T44, 617c); 「십이인연의」(T44, 551b).
  379. 379)『대승의장』 「이종생사의」(T44, 617c); 「십이인연의」(T44, 551b)로부터 달의적으로 인용하였다.
  380. 380)『대승의장』 「이종생사의」(T44, 616a)로부터 달의적으로 취의하였다.
  381. 381)『대승의장』 「이종생사의」(T44, 617c)에서는 사식 가운데 변역에 대해서 세 가지 계위를 설정한다. 여기에서 취의한 것이다.
  382. 382)『대승의장』 「이종생사의」(T44, 617c)에서는 망식의 변역에 대해서 세 가지 계위를 설정한다. 여기에서 취의한 것이다.
  383. 383)번뇌(正使) : 번뇌의 주체, 현재 나타나 있는 번뇌를 의미한다.(『불교어대사전』 축쇄판, 동경서적, 699쪽)
  384. 384)『오교장』(T45, 492a).
  385. 385)『수현기』나 『탐현기』 둘 다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386. 386)『공목장』(T45, 561a).
  387. 387)『섭대승론석』 「수시장修時章」(T31, 229c~230a)에서 장문을 인용하였다.
  388. 388)여기까지가 「수시장修時章」의 인용이다.
  389. 389)『신라기』의 해석이다. 뒤의 혜경 대덕의 해석도 견등이 『신라기』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390. 390)혜경惠鏡 대덕 : 혜경 대덕의 『섭대승론』 주석서일 가능성도 있다.
  391. 391)『오십요문답』 「삼중생작불의 십조림후석」(T45, 519c).
  392. 392)『수현기』 「노사나불품석」(T35, 24b)의 삼승에 입각하여 『대지도론』을 인용한 부분을 지칭한다.
  393. 393)『오십요문답』 「칠불모권속의 후마야중석」(T45, 520b).
  394. 394)『오십요문답』 「십제교수도총별의 제십지초이구삼매설」(T45, 520c).
  395. 395)『오교장』(T45, 490c).
  396. 396)『지도론』(T25, 298b).
  397. 397)『열반경』(T12, 524c).
  398. 398)『오교장』(T45, 486b).
  399. 399)문답은 『오교장』(T45, 486c)으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400. 400)『공목장』(T45, 561a).
  401. 401)『공목장』(T45, 576b).
  402. 402)『오교장』(T45, 487c).
  403. 403)『오교장』(T45, 489b).
  404. 404)『오교장』(T45, 492b).
  405. 405)『공목장』(T45, 561a).
  406. 406)『경』 권48(T9, 706c~707a).
  407. 407)『탐현기』(T35, 466a~b)에 따르면, ‘옛 스승의 해석’, ‘10행위에 기준을 둔 해석’, ‘보살의 행에 기준을 둔 해석’ 등 세 가지 해석이 있다.
  408. 408)8중에 대해서는, 『화엄경』(T9, 707a)에 따르면, “8중은 상주하는 보살이 그 가운데 충만하고, 모든 신통을 갖추어 일체 국토에 편만하고, 모든 중생과 모든 법계를 비추며, 법신을 함께 갖추어 모든 부처를 찾음에 장애가 없고, 모두가 능히 모은 불법을 수지한다.(八重常住菩薩充滿其中。 具諸神通。 遍一切剎。 照一切衆生。 一切法界。 具足法身。 詣一切佛。 無所障礙。 悉能受持一切佛法。)”라고 되어 있지만, 여기서 다시 8, 9를 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문으로는 알 수 없다.
  409. 409)『탐현기』(T35, 466a).
  410. 410)『탐현기』(T35, 466a~b)
  411. 411)『탐현기』(T35, 465c~466a).
  412. 412)『공목장』(T45, 561b).
  413. 413)『공목장』(T45, 561b).
  414. 414)『오십요문답』 「삼중생작불의 십조림후석」(T45, 519c).
  415. 415)『오십요문답』 「사성불전후의 사십무애변후석」(T45, 519c).
  416. 416)상작相作 : ‘상입相入’과 비슷한 뜻으로 작용의 면에 중심을 둔 말이다.
  417. 417)『오십요문답』 「오일념성불의五一念成佛義 역사십무애변후석亦四十無礙辨後釋」(T45, 520a).
  418. 418)『오교장』(T45, 491a).
  419. 419)『공목장』 「아승지품시겁장阿僧祇品時劫章」(T45, 576b).
  420. 420)『오십요문답』 「육타방불성화의 제이품초운집품중석」(T45, 520a).
  421. 421)『오십요문답』 「칠불모권속의 후마야중석」(T45, 520b).
  422. 422)『오십요문답』 「팔불정근의 제이품초청중석」(T45, 520b).
  423. 423)『오십요문답』 「구불보살인과통국의 노사나품후석」(T45, 520c).
  424. 424)『능가경』에 따르면, 보살 일천제는 일체법이 본래 열반에 들어 있음을 통찰하고 열반에 들지 않을 뿐이다. 선근을 끊은 일천제와는 전혀 다르다.
  425. 425)『오십요문답』 「십일성불불성불의 조림후석」(T45, 520c).
  426. 426)『오십요문답』 「십이불상모의 제삼지식중석」(T45, 521a).
  427. 427)『오교장』 「소전차별의」 가운데 제2 종성의를 지칭한다.
  428. 428)『공목장』(T45, 585c).
  429. 429)『십지경론』(T26, 132a).
  430. 430)『공목장』(T45, 585c).
  431. 431)『십지경론』 「전생시익轉生時益」(T26, 132a)의 설명에 나오는 구문으로부터 취의하였다. “악도와 선도와 난처에 태어나서도 반드시 이 법을 듣는다.(惡道善道難處生。 必得聞此法。)”
  432. 432)『일승십현문』(T45, 518a).
  433. 433)『공목장』(T45, 585c).
  434. 434)『탐현기』 「입법계품석」(T35, 490c).
  435. 435)열세 가지 : 경문(T9, 786a)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열세 가지가 부처님과 동일하다. 일체세계찰一切世界剎ㆍ신身ㆍ행行ㆍ정각正覺ㆍ자재력自在力ㆍ전법륜轉法輪ㆍ모든 변재(諸辯才)ㆍ묘음성妙音聲ㆍ방편ㆍ무외력無畏力ㆍ불소주佛所住ㆍ대자비大慈悲ㆍ부사의법문자재력不思議法門自在力. 즉 부처님과 열세 가지에 있어 동일하다고 설명한 문장이다.
  436. 436)『탐현기』 「입법계품석」(T35, 491c).
  437. 437)『공목장』(T45, 585c).
  438. 438)『공목장』(T45, 585c).
  439. 439)『경』 「야마천궁보살설게품」(T9, 464b), “모든 법은 태어나지 않으며, 또한 멸하지도 않는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이해하면 이 사람은 여래를 보는 것이다.(一切法無生。 亦復無有滅。 若能如是解。 斯人覩如來。)”를 지시하는 듯하다.
  440. 440)『화엄경문답』(T45, 600b)에서 달의적으로 취의하였다.
  441. 441)본 문답은 『화엄경문답』(T45, 600b)에서 달의적으로 취의하였다.
  442. 442)본 문답은 『화엄경문답』(T45, 600b)에서 달의적으로 취의하였다.
  443. 443)『법화경』(T9, 17b), “지금 나와 그대는 곧 다르지 않다.(今我與汝。 便爲不異。)”
  444. 444)위 문답에서 취의한 내용이다.
  445. 445)『화엄경문답』(T45, 600b).
  446. 446)『화엄경문답』(T45, 600b).
  447. 447)『오교장』(T45, 507c).
  448. 448)『탐현기』 1권(T35, 123a)에서 설하는 의리분제에 과한 구문을 가리키는 듯하다.
  449. 449)『오교장』(T45, 477b).
  450. 450)「일승의」 : 『오교장』 「건립일승의」를 지칭하는 듯하다.
  451. 451)『화엄경문답』(T45, 604b) 이후 ‘「향상문답」과 같다’까지는 견등이 『화엄경문답』의 내용을 소화하여 재구성한 문답이다. 필요한 부분만 전거를 붙인다.
  452. 452)『화엄경문답』(T45, 604c)의 ‘또한 상대방을 교화할 수 있다(亦得化他)’라는 주장을 고려한 질문이다.
  453. 453)『화엄경문답』(T45, 604c)에서는 사구를 구체적으로 예시하지 않았다. 답은 견등의 창안이다. 사구를 명확히 보이기 위해 ①, ②, ③, ④의 번호를 필자가 붙여 놓았다.
  454. 454)『오교장』 「삼성동이의」에서는 삼성의 4구를 설한다. 그래서 세 가지 4구가 된다.
  455. 455)『영락본업경』(T24, 1018a).
  456. 456)『화엄경문답』(T45, 604c).
  457. 457)『오교장』 「종성차별」.
  458. 458)『보성론』(T31, 831b).
  459. 459)『오교장』(T45, 486c).
  460. 460)감임주堪任住 : 수행을 감당해낼 수 있는 계위를 말한다. 소승의 인위忍位와 마찬가지이다.
  461. 461)『대지도론』(T25, 721a).
  462. 462)『오교장』(T45, 486b).
  463. 463)『오십요문답』(T45, 534b).
  464. 464)『오십요문답』(T45, 534b).
  465. 465)『화엄경문답』(T45, 610a).
  466. 466)일본의 니치렌(日然)이 타종을 비판하는 글 가운데 “진언종은 국가를 망하게 하고, 선종은 천마이며, 염불종은 무간지옥에 떨어지며 율종은 국가의 도적이다.(真言亡國。 禪天魔。 念佛無間。 律國賊。)”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국가의 도적이라고 한 것은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1. 1){底}續藏經。第二編八套四册 {甲}新修大藏經第四十五卷(底本)。
  2. 2)「義」下底本有「卷一」編者除之。
  3. 1)「交」當作「校」次同。
  4. 1)「何」疑「得」。
  5. 2)「八」疑「入」。
  6. 3)「所」一作「無」。
  7. 1)「位諸」疑寫倒。
  8. 2)□疑「頃」。
  9. 1)「約」疑「初」。
  10. 2)「道」疑「節」次同。
  11. 3)「知思」疑倒。
  12. 1)「過」更勘。
  13. 2)「至」疑剩。
  14. 3)「同時」疑剩。
  15. 4)「網」疑「細」。
  16. 1)「兜」上入「生」見。
  17. 2)□ 疑「現」。
  18. 3)「隨」疑「墮」。
  19. 4)「恣」疑「恐」。
  20. 1)「中」上疑脫「此」。
  21. 2)「細」更勘。
  22. 3)「梵」疑「寶」。
  23. 4)「在」疑「有」。
  24. 5)「兜」下疑脫「率」。
  25. 6)「成」疑「威」。
  26. 7)「界」疑「男」。
  27. 8)「次」下疑脫「二」。
  28. 1)「報」疑「執」。
  29. 1)「僣」疑「潜」。
  30. 2)「不」下入「至」見。
  31. 3)「二」一作「三」。
  32. 4)「還」更勘。
  33. 5)「如」作「加」(誤植矣{編}){甲}。
  34. 6)「後」疑「復」。
  35. 1)「心」疑剩。
  36. 2)「證果生此生」疑「此生證果生」。
  37. 3)「即」疑剩。
  38. 4)「役」疑「沒」。
  39. 5)「如」孔目作「知」。
  40. 6)「更」疑「受」。
  41. 7)「悲」疑「非」次同。
  42. 1)「如是…智」十七字疑衍文{甲}。
  43. 1)「我」疑「何」。
  44. 2)「經」疑「疏」。
  45. 1)「命」疑「令」。
  46. 2)「竟」上疑脫「究」。
  47. 3)「雖」疑「還」。
  48. 1)「耳」更勘。
  49. 2)「十地」孔目無。
  50. 3)「彼」孔目作「修」。
  51. 4)「佛」上孔目有「其」。
  52. 5)「忍」孔目無。
  53. 6)「因」疑「用」。
  54. 1)「其」上當有「成」。
  55. 2)「梵」下疑脫「網」。
  56. 1)「亦」下疑脫「名」。
  57. 2)「槃」疑剩。
  58. 1)「樂」疑剩。
  59. 2)「所」下疑脫「生」。
  60. 3)「後」疑「復」次同。
  61. 4)「八」疑「入」。
  62. 1)「約」上疑脫「問」。
  63. 2)「攝」或「招」歟原字不明。
  64. 3)「人」疑剩。
  65. 4)「准」更勘。
  66. 5)「問」補入。
  67. 6)「是」下問答有「一佛」。
  68. 1)「敎」問答作「後」。
  69. 2)「行」上孔目有「一」。
  70. 3)「一」下疑脫「行三」。
  71. 4)「亦」孔目作「佛亦如」。
  72. 5)「等」疑剩。
  73. 6)「後」孔目作「解」。
  74. 7)「右」疑「古」。
  75. 8)「今」疑「令」。
  76. 1)「救」疑「敎」。
  77. 2)「相非」疑倒。
  78. 3)「悟」疑「修」。
  79. 4)「成」疑剩。
  80. 5)「展生」當作「轉生時」。
  81. 6)「聞旣」疑倒。
  82. 1)「念」疑剩。
  83. 1)「答」下疑脫答文。
  84. 2)「共」上當有「問」。
  85. 3)「畢」疑「異」。
  86. 4)「借」疑「惜」。
  87. 5)「佛祖」下恐文錯亂。
  88. 6)「性」疑「惟」。
  89. 7)「無一處中」疑剩。
  90. 1)「答」上疑脫「問」。
  91. 2)「云」疑「乎」。
  92. 3)「其」問答作「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