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 / 大覺國師外集卷第三

ABC_BJ_H0063_T_003

004_0571_a_01L
대각국사외집 제3권大覺國師外集卷第三

서書
송나라 사문 유성이 보낸 글2수(大宋沙門有誠書)二首
송나라 사문 인악이 보낸 글(大宋沙門仁岳書)
송나라 사문 정원이 보낸 글5수(大宋沙門淨源書)五首
송나라 사문 원소가 보낸 글2수(大宋沙門元炤書)二首
송나라 사문 희변이 보낸 글(大宋沙門希辯書)
송나라 사문 유성이 보낸 글2수

제일
유성有誠은 아룁니다. 14일에 삼가 향기로운 서한을 받고 참으로 후의에 감사하였습니다. 이 늙은이는 졸렬하여 보잘 것이 없으니, 어떻게 이런 은혜를 감당하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황상에게 주달하여 이미 동남으로 유학하는 요청을 허락받았다고 하였습니다.1) 이제 진정한 선지식을 참알할 날이 있게 되었으니, 거듭 축하하여 마지않습니다.
그런데 허명한 바탕이야말로 천고의 성현이 변함없이 걸어온 길로서, 지혜의 바다와 복덕의 산을 한 걸음마다 오르고 건너시니, 우러러 연모하는 지극한 심정을 뭐라고 말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현수의 비문을 특별히 은혜롭게 보내 주셨으므로 향불을 피우고 열람하니 더욱 느껴지는 점이 많습니다. 또 『묘리원성관妙理圓成觀』2) 1권과 『강장전康藏傳』3) 1권과 『화엄지귀華嚴旨歸』4) 1권을 보여 주셨는데, 여기에도 판본이 있으니 한 번 검열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상 3권과 능파綾帕5) 1조를 보내니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가을 날씨가 약간 쌀쌀해지기 시작하니, 남쪽으로 유학하는 도정에 불법을 위해 몸을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제이

004_0571_a_01L

004_0571_a_02L大覺國師外集卷第三

004_0571_a_03L

004_0571_a_04L

004_0571_a_05L
大宋沙門有誠書 二首

004_0571_a_06L大宋沙門仁岳書

004_0571_a_07L大宋沙門淨源書 五首

004_0571_a_08L大宋沙門元炤書 二首

004_0571_a_09L大宋沙門希辯書

004_0571_a_10L

004_0571_a_11L大宋沙門有誠書 二首

004_0571_a_12L第一

004_0571_a_13L
有誠啓十四日跪受芳緘頂荷厚意
004_0571_a_14L老拙無狀以何克當切承上達宸聰
004_0571_a_15L已遂東南之請眞善知識參叩有日矣
004_0571_a_16L奉賀奉賀然夫虛明之地千古同途
004_0571_a_17L慧海福山步步登涉仰戀之至難以
004_0571_a_18L喩名賢首碑文特辱流惠焚香披覽
004_0571_a_19L感悟尤多又承借示妙理圓成觀一卷
004_0571_a_20L康藏傳一卷華嚴旨歸一卷此中有本
004_0571_a_21L請留檢閱卷三第一張已上三卷并1) [17]
004_0571_a_22L帕一條隨此咨納秋中2)▣▣ [18] 3) [19]
004_0571_a_23L惟希以法自重

004_0571_a_24L第二

004_0571_b_01L
유성有誠은 아룁니다. 며칠 동안 자안을 뵙지 못했습니다. 서늘한 가을날에 기거起居가 편안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던 차에 마침 친서를 받고 보니 은혜로운 말씀이 과분하게 간곡해서 여러 차례 펼쳐 보며 음미하는 동안 참으로 고마운 생각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현수전』을 보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는 평소의 소망과 완전히 부합하는 일입니다. 저는 몇 년 이래로 본종本宗과 관련된 자료를 채집하였습니다. 진晉으로부터 당唐에 이르기까지 오교五敎의 제조諸祖가 장소章疏를 저술하기도 하고, 신의神義를 강해講解하기도 하였는바, 이를 일가一家의 전문傳文으로 정리하고 대교大敎를 선양해 보고자 하였습니다만, 문집文集이 윤락淪落하여 정본正本을 구하기 어려운 데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찬집纂集하는 일을 아직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제 상인上人으로부터 『화엄전華嚴傳』 5권을 얻고, 또 『강장신전康藏新傳』 1권을 얻고 보니, 족히 귀감龜鑑으로 삼을 만하여 우회愚懷가 조금 유쾌해졌습니다. 모두 듣지 못한 것을 얻었으니, 뛸 듯이 기쁜 심정을 어떻게 가눌 수 있겠습니까.
최근에 가지고 오신 『장소목록章疏目錄』 1권을 보여 주셨기에 향을 피우고 손을 씻고 열람하면서 찬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상인께서 법을 전하려는 마음과 도를 배우려는 뜻을 잠시도 잊지 않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또 연구를 정밀하게 하고 재술이 풍부하여 넉넉하기만 하니, 각황(부처)이 부촉하여 말법 시대의 좋은 보필자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토록 성의를 지니고서 극진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상인은 왕자의 후예로서 역량이 미칠 수 있을 것이니, 타일에 간행하고 유포함으로써 법등이 서로 이어지며 온 누리를 환히 비치게 한다면 그 이익이 매우 클 것입니다.
규봉의 『원각대소圓覺大疏』는 경사京師에서는 판본板本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 전당錢塘의 원사源師(정원)와 절우浙右의 제방諸方의 교원敎院을 심방尋訪해서 유식唯識을 발명發明하고 화엄華嚴을 윤관綸貫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초序鈔 중에 원유源由를 약설略說하였을 뿐 세상에 전본全本이 전하지 않는 까닭에 여기에서 일찍이 찾아보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화엄구회예문華嚴九會禮文』은 인본印本과 석본石本이 조금 다릅니다. 문자는 비록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대법大法을 찬양하며 미래의 인연을 맺으려 한 점에서 보면, 작자作者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본조에서 치사致仕한 장 소사張小師가 지난번 조정에 있을 당시에 직접 소사疏詞를 지어

004_0571_b_01L
有誠啓累日不頂奉慈顏秋凉忻承
004_0571_b_02L禪燕無惱適蒙親翰惠諭過勤披味
004_0571_b_03L再四仰荷誠4) [20] 首傳極感垂示冥
004_0571_b_04L夙心數年來採集本5) [21] [12] 晋及唐
004_0571_b_05L五敎諸6) [22] 著述章疏或講解神▣
004_0571_b_06L [13] 爲一家傳文且欲助揚大敎其如文
004_0571_b_07L集淪落難求正本以此纂集未成
004_0571_b_08L得上人花嚴傳五卷又得康藏新傳一
004_0571_b_09L足爲龜鑑7)▣▣ [23] 皆得所未聞
004_0571_b_10L豈勝慶躍比承示及帶來章疏目錄一
004_0571_b_11L焚盥周覽仰讃無窮以斯足見上
004_0571_b_12L傳法之心學道之志頃食不忘矣
004_0571_b_13L而又硏論精傳才術富贍自非覺皇囑
004_0571_b_14L爲末法之良弼其何以存誠而極於
004_0571_b_15L此乎上人王者之後力可及矣它日
004_0571_b_16L如能刊印流布俾燈燈卷三第二張
004_0571_b_17L照耀華宇則其利愽哉圭峯
004_0571_b_18L覺大疏京師未聞有本錢塘源師
004_0571_b_19L浙右諸方敎院可以尋訪發明唯識
004_0571_b_20L貫花嚴然序鈔中略說源由世闕全
004_0571_b_21L此甞搜索終未遂志花嚴九會札 [14]
004_0571_b_22L印本與右 [15] 本小異雖不成文字
004_0571_b_23L欲讃揚大法用結來因非無愧於作者
004_0571_b_24L并本朝致政張小師頃在朝日親製疏

004_0571_c_01L산승山僧에게 대경大經을 한 번 부연敷衍하도록 명하였는데, 호사자好事者가 그것을 돌에 새겼습니다. 이에 따라 각각 양본兩本을 바치게 되었으니, 한 번 검열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그리고 신수神秀 법사의 『화엄묘리원성관華嚴妙理圓成觀』 3권을 아침저녁으로 한 번 보시도록 그 전문傳文과 함께 절하고 올립니다.
송나라 사문 인악이 보낸 글
인악은 죄송하게도 그동안 문안을 올리지 못해서 날로 괴로운 생각만 더해집니다. 따뜻한 계절도 저물어 가는 이때에 기거起居가 모두 편안하신지요. 상군上郡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찬미하는 말을 많이 듣곤 하는데, 경서를 펼치고 대중에게 고하는 것이 제방諸方과 다르게 뛰어난 것은 실로 법문이 훨씬 넉넉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나는 당棠에 거하면서 문을 닫고 있습니다만, 늙음과 질병이 함께 이르렀으니, 정답게 대면할 날을 생각하면 또 언제쯤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자小子가 가는 편에 급히 나의 뜻을 적어 보냅니다.
송나라 사문 정원이 보낸 글5수

제일
제안하신 일이 매우 바람직해서 나의 마음이 매우 위로됩니다. 오늘 재齋를 지낸 뒤에 먼저 상부祥符6)의 왕자전王子殿에서 분향焚香하고 바로 편복遍福으로 함께 가서 사리舍利를 참배參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주객主客7)에게 대략 말해 두었습니다. 개강開講의 규식規式은 그대가 잘 알아서 행할 만하면 행하도록 하십시오. 내일 얼른 승천承天8)으로 들어가서 아침저녁으로 제조諸祖의 심오한 문의를 토론하며 불은을 함께 갚을 일이 무척 기대됩니다. 말이 여기에까지 미치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겠습니까.

004_0571_c_01L命山僧敷演大經一遍好事者爲之
004_0571_c_02L刊石因此各呈納兩本幸冀檢至
004_0571_c_03L秀法師花嚴妙理圓成觀三卷略假
004_0571_c_04L一觀朝夕同傳文拜納次

004_0571_c_05L

004_0571_c_06L大宋沙門仁岳書

004_0571_c_07L
仁岳祇竦曏闕修問日增勞蘊暄序
004_0571_c_08L云暮素履冲恬每上郡人來稔聞善
004_0571_c_09L譽敷經籲衆偉異諸方固法門之多裕
004_0571_c_10L走居棠揜關老病兼至靜思欵晤
004_0571_c_11L知復何時小子去遽此抒意卷三第三
004_0571_c_12L

004_0571_c_13L

004_0571_c_14L大宋沙門淨源書 五首

004_0571_c_15L第一

004_0571_c_16L
所示之事甚善甚善頗慰鄙懷耳今日
004_0571_c_17L8) [24] 先來祥符王子殿內燒香便同
004_0571_c_18L去遍福瞻9) [25] 舍利如何略白主客開講
004_0571_c_19L規式吾子詳之可行方行也來日早
004_0571_c_20L入承天貴得旦夕啇較諸祖深文奥
004_0571_c_21L同報佛恩言及于玆寧不感懷耶

004_0571_c_22L▣疑「讀」{編}▣▣疑「微凉」{編}▣疑「遊」
004_0571_c_23L{編}
▣ ▣疑「深賢」{編}▣疑「宗」{編}
004_0571_c_24L▣疑「祖或」{編}
▣▣疑「愜愚」{編}▣疑「後」
004_0571_c_25L{編}
▣疑「禮」{編}

004_0572_a_01L
제이
근래에 듣건대 화엄 대교를 강수하신다 하니, 기쁘고 위로되는 마음이 가슴속에 교차됩니다. 수로手爐와 종불椶拂 각 1병柄, 정건淨巾과 안욕按褥 각 1조條를 함께 부치고, 절구絶句 1수首를 직접 써서 전수傳授의 인연을 짓고자 합니다. 율계납명律溪臘茗과 천동산명天童山茗을 각각 1기器씩 강하講下에 드립니다.
예전에 천친天親의 논문論文과 지자智者·자은慈恩의 2소疏를 가지고 『법화경』을 주해註解하려고 하였는데, 마침 주지住持하며 강설講說하느라 붓을 잡을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일昨日에 보여 주신 귀국貴國의 교승수목敎乘數目 사이에 승예僧叡 법사의 주본註本 7권과 길장吉藏·원효元曉·경흥憬興·현일玄一·신웅神雄·태현太賢 등 제덕諸德이 찬술撰述한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내년 봄에 본조本朝에 제문諸文을 가지고 오게 한 뒤에 한 곳에 회동會同해서 그 글들을 공동으로 모아 널리 유통시킨다면, 이 또한 큰 공덕으로서 대용大用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는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니니, 거듭 부탁드립니다.
제삼
정원은 승통僧統 철자哲資에게 답서答書를 올립니다. 거년去年에 양 주객楊主客(주객원외랑 양걸)이 사명四明에서 돌아올 적에 대장大將 홍보洪保와 함께 와서 그대의 글 두 통을 전해 주었습니다. 구법求法의 간절함을 곡진히 서술하고 이별의 심정을 갖추 개진하였으므로, 두 번 세 번 엎드려 읽으면서 희비가 교차하였습니다. 오래전부터 먹물에 붓을 적셔서 답서를 올리려고 하면서도, 산과 바다로 멀리 가로막혀 제때에 안부를 묻지 못했으니, 마음속에 맺힌 생각이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국왕에게 글을 올려 계림雞林의 제공諸公에 대해 언급하고 국왕 태후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금자경金字經 삼부三部를 특별히 보시하신 것은 혜인원慧因院 한 사찰을 진호鎭護해 주신 것일 뿐만이 아니요, 양절兩浙의 유불儒佛 모두가 공경히 그 은사恩賜를 받은 것인데, 마침 노쇠한 몸에 질병이 겹친 탓으로 감사의 글을 끝내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여름철 막바지에 부디 날씨에 유의하면서 강수講授하여 상계像季의 여망輿望에 부응해 주십시오.

004_0572_a_01L第二

004_0572_a_02L
近聞講授花嚴大敎忻慰之願交集于
004_0572_a_03L合附手爐椶拂各一柄淨巾按褥
004_0572_a_04L各一條仍親寫絶句一首以作傳授之
004_0572_a_05L律溪臘茗天童山茗各一器講下
004_0572_a_06L麁點向時欲以天親論文智者慈恩
004_0572_a_07L二疏箋于法花經屬住持講訓未暇
004_0572_a_08L執筆昨示貴國敎乘數目其間有叡法
004_0572_a_09L師注本七卷并吉藏元曉憬興玄一神
004_0572_a_10L雄大賢卷三第四張諸德撰述等文
004_0572_a_11L來春得至本朝賫取諸文共會一處
004_0572_a_12L同集其辭以廣流通玆亦宏功式助
004_0572_a_13L大用非小緣耳奉囑奉囑

004_0572_a_14L第三

004_0572_a_15L
淨源書答僧統哲資去年楊主客自四
004_0572_a_16L明回并大將洪保至領吾子書二通
004_0572_a_17L曲敍求法之懇具陳違離之情俯讀再
004_0572_a_18L悲喜交至久欲修染以答來音
004_0572_a_19L以山海遐阻不及時發訊問而思系之
004_0572_a_20L心可量也又欲上國王書洎雞林諸公
004_0572_a_21L并謝國王太后特施金字經三部非唯
004_0572_a_22L光鎭慧因一寺抑亦兩浙緇儒欽玩
004_0572_a_23L受其賜也屬以衰老所病未遂敍感耳
004_0572_a_24L夏末冝以順時講授以副像季之望

004_0572_b_01L
제사
정원은 아룁니다.
지난번에 서 도강徐都綱이 돌아오는 편에 서한을 비롯해서 은합銀合(銀盒)에 담은 차와 수정주水精珠 3과顆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강연講筵을 열어 인도하시자 사방의 생도生徒가 한꺼번에 몰려온 사실도 알았습니다. …(결락)….
송나라 사문 원소가 보낸 글9)2수

제일
…(결락)… 이를 이어 사리의 글과 가 상공賈相公이 주석한 『금강경』 및 『유교경절요遺敎經節要』 7부를 자응慈應과 낙진樂眞에게 부쳤으니, 강습하시면서 각각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밖에 심회를 어떻게 필설로 다하겠습니까.
제이
정원淨源의 유서遺書를 위곡委曲히 고려高麗 법자法子 승통僧統에게 부칩니다. 유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천남泉南 사람입니다. 소싯적에 경사京師에서 노닐 적에 진신搢紳들과 함께 유학儒學을 익히며 진사進士의 과업에 힘썼습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영고성쇠榮枯盛衰가 나뉘는 것을 보니, 거울 속의 영상影象과 같고 꿈속의 일과 같기에 마침내 유자儒者의 길을 버리고 불자佛者의 길로 나아가 부도浮圖의 도를 익혔습니다.
그리하여 『화엄華嚴』으로부터 시작해서 제부諸部에 통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현수賢首 등 제조諸祖를 특히 좋아하며 전술傳述할 뜻을 두고는, 마침내 논소論疏를 절요節要하고 경문經文을 주해註解하며 여러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무릇 소주蘇州를 비롯해서 항주杭州·호주湖州·수주秀州 등지에서 강석講席을 열어 문생門生이 수백 인에 이르렀지만 오도吾道를 드날린 자는 20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숙세夙世에 선본善本을 심어 왕위王位를 과감히 버리고 불법佛法을 숭상하며 널리 펴고 있습니다.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성품을 타고나서 재주와 식견이 밝고 성대한 이는, 온 천하의 치도緇徒 중에서 그대 한 사람뿐일 것입니다. 내가 찬술撰述한 것을 보고는 멀리서 존경하는 마음을 내어 해동海東에서 경파鯨波를 건너 송나라에 들어와 스승으로 섬기는 예법을 행하고 조문祖門의 공렬功烈을 일으키며 현수賢首의 광염光焰을 빛나게 하였으니, 이러한 일을 그대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아, 나는 『화엄華嚴』을 으뜸으로 여겼으며, 늙어서는 『법화法華』를 주석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경전은 불교의 표리表裏요 시종始終의 절창絶唱이라고 할 것인데,

004_0572_b_01L第四

004_0572_b_02L
淨源啓向者徐都綱廻領書4) [26] 銀合
004_0572_b_03L盛茶水2) [27] 珠三顆兼知啓迪講筵
004_0572_b_04L方生徒輻湊座卷三第六張缺落

004_0572_b_05L[大宋沙門元炤書]

004_0572_b_06L第一
記繼之闍梨書賈相公注金剛經洎遺
004_0572_b_07L敎經節要七部附慈應樂眞已下習講
004_0572_b_08L各冝檢至其餘心緖筆舌奚書

004_0572_b_09L第二

004_0572_b_10L
3)▣▣ [28] 遺書委曲寄高麗法子僧統
004_0572_b_11L泉南人也少遊京師與搢紳交習儒
004_0572_b_12L務進士業一旦觀榮衰之分若鏡
004_0572_b_13L若夢寐遂棄儒就釋習浮圖道
004_0572_b_14L由花嚴洎通諸部悅賢首諸祖有傳
004_0572_b_15L述之意遂節疏注經及諸製撰凡自
004_0572_b_16L蘇及杭湖秀等處講暢開帷門生及數
004_0572_b_17L百人而洪揚吾道不二十人而已
004_0572_b_18L吾子夙植善本果棄王位事佛洪經
004_0572_b_19L有生知乏 [16] 才識明茂擧天下緇倫
004_0572_b_20L一人而已見吾撰述遙生尊峯乃自
004_0572_b_21L海東越鯨波入宋行師事之禮興祖
004_0572_b_22L門之烈生賢首之光焰非吾子而誰
004_0572_b_23L嗚呼吾首於花嚴老注法花二經爲
004_0572_b_24L佛敎之表裏始終卷三第七張之絶唱

004_0572_c_01L내가 이를 다할 수 있었으니, 어찌 숙원夙願을 이룬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피곤하고 기운이 위태하니, 나이가 벌써 78세입니다. 이에 11월 말에 붓을 잡고 글 한 통을 써서 경질經帙 안에 부착하여 문인門人에게 당부하며 그대 승통僧統에게 부치도록 하였으니, 이는 결별決別의 정을 표하고자 해서입니다. 그리고 『법화法華』의 주석을 12권으로 분리하고, 묘경妙經을 정서淨書하여 부쳐 보내게 하였으니, 나를 위해 자세히 교열校閱하고 개판開板하여 무궁히 유통流通하게 해 주신다면, 이것이 어찌 내 마음속의 소원일 뿐이겠습니까. 우리 부처님의 소회素懷를 펴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그대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전년에 술사術士를 의지해서 사원의 서북쪽 모퉁이에 무덤 하나 만들 자리를 잡아 놓았으니, 이는 오늘의 쓰임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오고 가는 자취를 준비해 두는 것은 오도吾道에서 숭상하는 바가 아닙니다. 아, 일단 교적敎迹을 세웠다고는 하나, 뒤를 잇는 자들이 반드시 나올 것이니, 먼저 세웠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후예를 돕고 우리의 도를 선양함에 있어서는 역시 법자法子의 힘이 기대됩니다.
내가 강마을에 거하면서 근년에 대왕전하大王殿下로부터 외로운 자취를 기억해 주시는 은혜를 입었으므로 항상 의지하며 앙모仰慕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식으로 계사啓辭를 갖추어 영결永訣하는 인사를 드릴 틈이 없기에 다만 바른 도의 정치를 하며 삼보三寶를 부조扶助하시기를 기원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또한 결과적으로는 춘송椿松과 같은 장수長壽를 비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일에 정성을 다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그대가 또 이 세상에서 모쪼록 오래도록 수명을 누리는 가운데 오종吾宗을 드날리고 불일佛日을 빛나게 해 준다면 천하에 그런 다행이 없을 것입니다.
그대 나라의 여러 학자들을 일일이 거명擧名하지는 못합니다마는, 부디 함께 잘 섭심攝心하여 지도至道를 잊음이 없이 화엄도량華嚴道場 안에서 모두 상등上等의 과위果位를 이루기를 기대하면서 붓을 적셔 결별을 고합니다. …(결락)….
근기根機가 영리靈利한 사람은 점차 바름을 회복하였지만, 수주守株10)하는 자는 자기를 비방한다고 생각하여 원수처럼 비난하였으므로, 자민慈愍11)과 계주戒珠12)가 지기知己를 만나지 못한 것과 같은 처지를 매양 탄식하였습니다.

004_0572_c_01L吾得而畢之豈非夙志之幸乎然心疲
004_0572_c_02L氣殆行年七十有八十有一月末
004_0572_c_03L觚爲書一通留着經帙內附門人
004_0572_c_04L吾子僧統決別於此所注法花離爲
004_0572_c_05L一十二卷使其旋寫妙經附去請爲
004_0572_c_06L吾詳校開板流之無窮豈惟吾心之
004_0572_c_07L願乎抑亦暢吾佛之懷非吾子而誰
004_0572_c_08L爲耶前年憑術士卜院之西北隅
004_0572_c_09L一墳穴俟今日之用然備去來之迹
004_0572_c_10L非吾道所尙旣立敎迹相踵于後
004_0572_c_11L必有其先立者於吾何益哉亦期助吾
004_0572_c_12L揚吾道在法子之力也吾於江鄕
004_0572_c_13L近年叨大王殿下齒記孤迹常所依仰
004_0572_c_14L今不遑備牋啓奉違惟祈以道爲治
004_0572_c_15L助三寶得非佑椿松之壽耶切祈致誠
004_0572_c_16L幸也吾子願世齡遠大光闡吾宗
004_0572_c_17L日光輝天下幸甚汝黨諸學者不一
004_0572_c_18L一列名幸同善攝無忘4) [29] 永期花
004_0572_c_19L嚴場中俱成上果含毫決別卷三
004_0572_c_20L第九張缺落


004_0572_c_21L靈利者稍稍復正守株者以爲謗己
004_0572_c_22L相非如寇讎每嗟慈愍戒珠不遇知己
004_0572_c_23L▣疑「并」{編}▣疑「精」{編}▣▣疑「淨源」
004_0572_c_24L{編}
▣疑「至」{編}

004_0573_a_01L계주는 분하고 답답한 심정을 호소할 곳이 없었으므로, “기필코 부처님을 찾아뵙고서 이렇게 된 시초에 대해서 여쭤 보아야겠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는데,13) 이는 극언極言이라고 할 것입니다. 몸을 잊고 법을 책임져야 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경에 이르기를 “차라리 천 개의 칼과 만 개의 몽둥이로 자기 몸을 두드려 맞을지언정, 불법을 깨뜨리는 소리를 한마디라도 차마 듣지 못한다.”14)라고 하였습니다. 아, 나를 알아줄 사람은 오직 우리 스님밖에 없습니다.
송나라 사문 희변이 보낸 글
우右 희변은 아룁니다.
일찍이 석량산石梁山의 사원에서 빙설氷雪의 자태에 직접 인사를 드린 것은 행운이요, 설두강雪竇江 물가에서 법인法印을 모시지 못한 것은 후회스럽습니다. 화운花雲이 가리고 비치매 항상 태양을 받드는 마음을 품고, 한서寒暑가 바뀌고 변하매 매양 현인을 사모하는 뜻이 쌓여 갑니다.
삼가 생각건대, 승통僧統 홍진우세弘眞祐世 대법사大法師께서는, 그 지혜는 무위無爲에 근본하고 성품은 절학絶學으로 말미암아서15) 공空과 유有를 일견一見으로 가지런히 하고, 범凡과 성聖의 이도二途를 막았습니다. 이에 자운慈雲을 널리 펼치고 법요法要를 크게 베푸시며, 종조宗祖의 혜등慧燈의 불꽃을 계승하여 우몽愚懞의 장야長夜의 어둠을 깨뜨리시니, 사중四衆이 돌아가 의지하고 만령萬靈이 모두 찬양합니다.
희변은 기뻐 춤추며 환희하고 머리를 조아려 귀명歸命하면서 그지없이 격절激切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대각국사외집 제3권大覺國師外集卷第三

004_0573_a_01L憤懣欝噎無所告訴故日 [17] 期遂見佛
004_0573_a_02L以評攸始斯極言也忘身荷法今正
004_0573_a_03L是時經云寜以千刀萬杖打拍我身
004_0573_a_04L不忍一聞破法之聲知我者唯吾
004_0573_a_05L師耳

004_0573_a_06L

004_0573_a_07L大宋沙門希辯書

004_0573_a_08L
右希辯啓蚤者石梁山寺幸親禮於
004_0573_a_09L氷姿雪竇江湄悔失陪於法印花雲
004_0573_a_10L擁映常懷捧日之心寒暑變遷每積
004_0573_a_11L思賢之志恭惟僧統弘眞祐世大法師
004_0573_a_12L智本無爲性由絕學齊空有於一見
004_0573_a_13L杜凡聖於二途玆者廣布慈雲大宣
004_0573_a_14L法要續宗祖慧燈之焰開愚懞長夜之
004_0573_a_15L四衆有歸萬靈咸賛希辯慶舞忻
004_0573_a_16L扣首歸命無任激切之至

004_0573_a_17L大覺國師外集卷第三卷三第一○張

004_0573_a_18L
  1. 1)삼가 …… 하였습니다 : 의천이 송나라 황제 철종哲宗에게 상주上奏하여 윤허를 받고, 절강浙江 항주杭州의 혜인사慧因寺에 주석하는 화엄의 학승 정원淨源을 찾아가게 된 것을 말한다.
  2. 2)『묘리원성관妙理圓成觀』 : 화엄과 관련된 저술인 것으로 보인다.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권1에 『묘리원성관妙理圓成觀』 3권과 『대화엄경소大華嚴經疏』 30권이 신수神秀의 저술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신수는 남종선南宗禪의 혜능慧能에 대칭되는 북종선北宗禪의 신수神秀가 아니고, 중국 화엄종 계열에 속하는 학승學僧으로,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고 여겨진다. 본서 「대각국사문집」 제16권 ≺신참 학도 치수에게 보인 글(示新叅學徒緇秀)≻에, 두순杜順과 지엄智儼과 법장法藏의 전법傳法에 대해 논하고 나서, “그 뒤에 일종一宗의 제사諸師가 저술한 것을 보면 이 삼관三觀으로 귀경龜鏡을 삼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회계會稽 가상사嘉祥寺의 신수神秀 법사가 『화엄소華嚴疏』에서 ≺선복송漩澓頌≻을 인용하며 ‘두순杜順 선사가 일경 속의 일체지요, 일체지 속의 제법계라’고 말한 것이야말로 대교大敎의 선복漩澓이다. 그리고 탐현探玄의 묘색妙賾이나 지상至相의 십문十門과 같은 것도 모두 가르침을 받은 곳이 있으니, 독창적으로 그 뜻을 밝힌 것이 아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종지宗旨를 밝히고자 한다’라고 한 것이다.(厥後一宗諸師。凡有著撰。未嘗不以三觀爲龜鏡故。會稽嘉祥寺神秀法師。花嚴疏中。引漩澓頌云。順禪師曰。於一境中一切智。一切智中諸法界。斯乃大敎之漩澓也。且如探玄妙賾。至相十門。皆稟有所從。義非孤超。今具述之。以明宗意也。)”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회계會稽 가상사嘉祥寺의 신수 법사가 바로 『묘리원성관』이라는 화엄학 논서의 저자라고 생각된다.
  3. 3)『강장전康藏傳』 : 현수賢首 법장의 전기傳記를 말한다. 그의 선조가 강거국康居國 사람으로, 속성俗性이 강씨康氏이기 때문에 그를 강장康藏 국사라고 부른다.
  4. 4)『화엄지귀華嚴旨歸』 : 현수의 저술이다. 화엄 교리의 기초라 할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과 그 교리를 집대성했다고 할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요 저작물로, 그의 나이 49세 때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5. 5)능파綾帕 :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두건이라는 뜻이다.
  6. 6)상부祥符 : 항주杭州의 대중상부사大中祥符寺를 가리킨다.
  7. 7)주객主客 : 중국 조정에서 의천의 송반送伴으로 특별히 차임差任한 상서주객원외랑尙書主客員外郞 양걸楊傑을 말한다.
  8. 8)승천承天 : 항주의 승천사承天寺를 가리킨다.
  9. 9)송나라 …… 보낸 글 : 이 부분은 대본에 제목이 없으나, 목차를 참고해 볼 때 ≺대송사문원소서大宋沙門元炤書≻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기에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 목차에는 정원이 보낸 제사와 제오의 글이 이 앞에 수록되었는데, 제사의 거의 대부분과 제오의 전문이 결락되어 내용을 상고할 수가 없다.
  10. 10)수주守株 : 그루터기를 지킨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만을 고수하며 변통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교敎를 무시하고 선禪을 치켜세우는 풍조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을 적에 토끼 한 마리가 달아나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서 목이 부러져 죽자, 이때부터 일손을 놓고는 그 그루터기만 지켜보며 토끼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으나 토끼는 끝내 다시 오지 않았다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가 『한비자韓非子』 「오두五蠹」에 나온다.
  11. 11)자민慈愍 : 자민삼장慈愍三藏으로 일컬어진 당나라 정토종淨土宗의 승려 혜일慧日을 말한다.
  12. 12)계주戒珠 : 송나라 승려로, 복당福唐의 비산 묵자飛山黙子라고 일컬어졌다. 『별전심법의別傳心法議』를 지어 선종禪宗의 이른바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설을 배척하였는데, 의천이 여기에 발문跋文을 써서 “근세에 중국에서 행해지는 선종의 장구를 보면 이단에 저촉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해동의 인사가 중국에 사람이 없다고 의심한 까닭이다. 그런데 비산의 높은 의논을 보고는 호법 보살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比世中國所行禪宗章句。多涉異端。此所以海東人師疑華夏無人。及見飛山高議。乃知有護法菩薩焉。)”라고 하고, 또 “백 세 뒤에 말법을 주지하는 것이 어찌 우리 계주 공이 힘쓴 덕분이 아니겠는가.(百世之下。住持末法者。豈不賴珠公力乎。)”라고 하는 등, 적극적으로 그의 주장에 동조하며 그의 노력을 평가하였다.
  13. 13)기필코 …… 하였는데 : 계주戒珠의 『별전심법의別傳心法議』 뒤에 부록으로 수록된 「제회요선사문祭懷要禪師文」에 “선종에 속한 사람들이 근력을 닦지도 않고 정혜를 익히지도 않으면서 마구 고함을 치고 꾸짖는가 하면, 몽둥이로 패고 때리는 등 정신없이 광패한 짓을 저지르며 죽을 때까지 일컬을 것이 없다는 말씀을 스님께서 누차 나에게 들려주며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가 이 말씀을 이미 가슴속에 담아 두고 있으니, 어찌 감히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기필코 부처님을 찾아뵙고서 이렇게 된 시초에 대해서 여쭤 보아야겠습니다.(根力罔修。定惠闇習。乃呵乃▣。乃棒乃捶。狂悖昏昏。畢死無謂。凡師此言。疊以誨我。我既藏之。孰敢忘之。期遂見佛。以評攸始。)”라는 말이 나온다. 이렇게 된 시초에 대해서 물어보겠다는 것은, 예컨대 석가모니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염화시중拈花示衆했을 적에 대중이 모두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오직 가섭迦葉만이 파안미소破顔微笑를 짓자, 석가가 “나에게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열반묘심涅槃妙心·실상무상實相無相·미묘법문微妙法門·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부촉하노라.”라고 했다는 등의 이른바 선종에서 주장하는 교외별전 삼처전심三處傳心 등의 주장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부처님께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는 말이다.
  14. 14)차라리 …… 못한다 : 『범망경梵網經』 권2에 “보살은 외도와 악인이 악언으로 불계를 비방하는 것을 들을 때면, 마치 3백 개의 송곳이 심장을 찌르고, 천 개의 칼과 만 개의 몽둥이가 자기 몸을 두드리는 것과 다름없이 느낀다. 그래서 차라리 지옥에 들어가서 백겁의 세월을 견딜지언정 불계를 깨뜨리는 악언의 소리를 한마디라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자기가 불계를 깨뜨리고 남에게 불법을 깨뜨리는 인연을 짓게 해서야 되겠는가.(菩薩聞外道惡人以惡言謗佛戒時。如三百鉾刺心。千刀萬杖打拍其身等無有異。寧自入地獄經百劫。而不用一聞惡言破佛戒之聲。而況自破佛戒。教人破法因緣。)”라는 말이 나온다.
  15. 15)그 지혜는 …… 말미암아서 : 참고로 당나라 선승 영가 현각이 지은 『증도가』 첫 머리에 “그대는 배움의 길도 이미 끊어진 가운데 아무 할 일도 없이 그저 한가하기만 한 도인을 보지 못했는가.(君不見。絶學無爲閑道人。)”라는 말이 나온다.
  1. 1)▣疑「讀」{編}。
  2. 2)▣▣疑「微凉」{編}。
  3. 3)▣疑「遊」{編}。
  4. 4)▣ ▣疑「深。賢」{編}。
  5. 5)▣疑「宗」{編}。
  6. 6)▣▣疑「祖。或」{編}。
  7. 7)▣▣疑「愜愚」{編}。
  8. 8)▣疑「後」{編}。
  9. 9)▣疑「禮」{編}。
  10. 1)▣疑「并」{編}。
  11. 2)▣疑「精」{編}。
  12. 3)▣▣疑「淨源」{編}。
  13. 4)▣疑「至」{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