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 [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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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대저 대도大道는 도라고 하지 않지만, 이를 얻으면 사람들이 크게 여기고, 상덕上德은 덕이라고 하지 않지만, 이를 행하면 사람들이 위로 여긴다. 누가 부도지도不道之道와 부덕지덕不德之德 알아서 인간 세상에 행할 수 있겠는가.
우리 스님은 어려서부터 풍채가 비범하였으며,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법호法號는 유정惟政이요, 자字는 이환離幻이며, 사명四溟과 종봉鍾峯은 그의 당호堂號이다. 영남嶺南에서 태어나 한수漢水 북쪽에서 자랐으며, 방장方丈과 봉래蓬萊와 묘향妙香 등의 산들은 스님이 모두 평생에 유희游戱한 곳이다.
늦은 나이에 서산 대사西山大師에게서 법法을 얻고는, 그동안 왕복하던 길에서 수레의 방향을 돌려 예전의 잘못을 단박에 깨달았으니, 천강남청茜絳藍靑55)으로 비유하기에 또한 충분하였다. 이로부터 낭괄囊括 습명襲明하며 도리로 자기를 제어하였으므로,56) 사람 중에서 이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국가의 운세가 막히는 때를 만나 해도海島의 왜적이 분수를 모르고 날뛰어 삼경三京(서울과 개성과 평양)이 함락되니, 난여鑾輿(임금의 수레)가 서리와 이슬을 맞고 묘사廟社(종묘와 사직)가 바람과 먼지에 휩쓸리게 되었다. 하늘 아래 어느 땅에 있든 간에 임금의 신하 아닌 사람이 없고 보면, 스님도 칼을 짚고 종군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왜적에 항거하여 출입하며 스스로 송운松雲이라고 일컬으면서, 부전不戰으로 싸움을 하고 무사無事로 일을 하여 행군하되 행렬이 없는 듯하고 휘두르되 팔이 없는 듯이 하였으며, 쳐부수되 상대가 없는 듯하고 무기를 쥐어도 무기가 없는 듯이 하였다. 8년 동안의 전쟁에서 흰 칼날이 앞에서 교차했어도 죽음을 보기를 사는 것처럼 여겼으니,

008_0077_c_10L[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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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夫大道不道 [25] 而得之則人大之上德不
008_0077_c_12L而行之則人上之孰能知不道之道不
008_0077_c_13L德之德而行乎人世也哉吾師也夙挺風
008_0077_c_14L妙年出家法號惟政字曰離幻四溟
008_0077_c_15L鍾峯其軒號也生於嶺南長於漢北
008_0077_c_16L丈蓬萊妙香諸山皆平生游戱處也晩年
008_0077_c_17L得法於西山大師回車復路頓覺前非
008_0077_c_18L茜絳藍靑亦足爲喩從此囊括襲明
008_0077_c_19L理自勝人莫得以知焉遭値國運之否
008_0077_c_20L海賊匪茹侵陷三京鑾輿霜露廟社風
008_0077_c_21L普天率土莫非王臣則師亦杖劔從
008_0077_c_22L思報國恩抗賊出入自稱松雲以不
008_0077_c_23L戰爲戰以無事爲事行無行攘無臂 [60]
008_0077_c_24L無敵執無兵八年干戈白刃交前視死
008_0077_c_25L「苖」與「苗」義通{編}此雷默堂跋文 {乙丙}雨
008_0077_c_26L本無有

008_0078_a_01L실로 부동심不動心의 소유자라고 할 만하였다.
사명使命을 받들고 일본에 갈 적에 파도가 흉용洶湧하였으나, 말하지 않고도 지휘하여 그 땅을 휩쓸어 버린 뒤에 마침내 편안하고 태평하게 돌아왔으니, 대도大道를 쥐고 갔다(執大象而往)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57) 위에서 말한바 부도지도不道之道와 부덕지덕不德之德을 오직 스님이 깊이 알고서 시행했다고 할 것이니, 내가 어떻게 그런 줄을 아느냐 하면, 바로 이 때문이다.
아! 살아 있는 자는 죽게 마련이니, 살기만 하고 죽지 않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도덕경』에 이르기를 “몸은 죽어도 망각되지 않는 자는 오래 사는 것이다.”58)라고 하였다. 이 말이 옳은가, 그렇지 아니한가. 스님이 입적하실 때에도 범상하지 않았는데, 다비茶毗를 행하던 날에는 팔방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모두 여상如喪의 탄식59)을 발하고 애모哀慕하며 혼절昏絶하기도 하였다. 도를 지닌 이가 세상을 떠나면 그 법도가 이와 같아서 그런 것이니, 부도浮屠를 세우고 영당影堂을 짓는 것은 스님의 본의本意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나도 서산西山의 문하에 있으면서 스님과 함께 출입한 것이 여러 해 되었는데, 금란金蘭60)이 먼저 떠나고 공蛩이 거蚷를 잃었으니,61) 비록 아양峨洋의 노래가 있다 한들 누구를 위해 다시 연주하겠는가. 아! 슬프다. 이 사람을 위해서 애통해하지 않고서 누구를 위해 애통해하겠는가?62)
스님이 지은 잡록雜錄은 모두 어떤 상황을 당하여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붓 가는 대로 휘두른 것일 뿐이니, 이는 형산荊山에 옥돌이 하도 흔해서 까치에게 옥돌을 집어 던지는 것63)과 같다고나 하겠다. 문인門人 혜구惠球 등이 망실亡失하고 남은 것 중에서 간신히 약간의 시문을 얻어 공인工人들을 모아 간행하게 하고는 나에게 글을 요청하였다. 이에 내가 재주 없는 것도 잊어버리고서 우선 그 시말始末을 서술하게 되었으니, 황견유부黃絹幼婦의 문사文辭64)는 뒷날 작자作者인 군자君子가 써 주시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명나라 만력萬曆 임자년(1612, 광해군 4) 맹하孟夏(4월) 재생백哉生魄(16일)에 뇌묵당雷默堂(處英)은 삼가 발문을 짓다.

아! 우리 서산과 사명 두 분의 대사는 실로 선가禪家의 종주요, 도류道流의 의표가 되는 분들이다. 그 전법의 연원의 조예의 천심에 대해서는 후생이 감히 만에 하나도 엿볼 수 없는 점이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설자說者들이 이미 상세히 논하였다.
가는 곳마다 음영吟詠하며 저작著作한 잡록雜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데, 혹 병화에 유실되고 남은 것들을 겨우 주워 모았으니, 이는 태산에 터럭 하나 정도라고나 하겠다.
당시에 문인들이

008_0078_a_01L若生可謂不動心也奉使日本波濤洶湧
008_0078_a_02L指顧不言厥土風靡畢竟安平泰而還
008_0078_a_03L不曰執大象而往耶向所謂不道之道
008_0078_a_04L德之德唯師之所深知而所施行者也
008_0078_a_05L何以知其然哉以此嗚呼生者死之徒生
008_0078_a_06L而不死可得乎道德經云死而不亡者
008_0078_a_07L壽也其然邪不然邪師之告寂也豈其
008_0078_a_08L凡哉闍維之日八表雲臻哀慕頓絶
008_0078_a_09L興如喪之嘆有道者之去世也法如是故
008_0078_a_10L立浮屠建影堂者非師之本意也
008_0078_a_11L亦在西山門下與師同爲出入者積有年
008_0078_a_12L金蘭先逝蛩失其蚷雖有峨洋爲誰
008_0078_a_13L更奏嗚呼痛哉非夫人之爲慟其誰哉
008_0078_a_14L師所著雜錄皆臨機不徑意而信1) [26]
008_0078_a_15L如荊山人之抵鵲也門人惠球等
008_0078_a_16L失之餘僅得若干篇鳩工繡梓請余爲
008_0078_a_17L忘其不才姑敍其始末而其黃絹幼
008_0078_a_18L婦之辤以俟作者之君子

008_0078_a_19L
旹皇明萬曆壬子孟夏哉生魄雷默
008_0078_a_20L堂謹跋

008_0078_a_21L
008_0078_a_22L
嗚呼惟我西山四溟兩大師實禪家之宗
008_0078_a_23L而道流之表也其傳法淵源造詣淺深
008_0078_a_24L有非後生之窺闖其萬一而說者已能詳
008_0078_a_25L之矣其所著作雜錄之隨遇而吟詠者
008_0078_a_26L知其幾許篇章而或遺失於兵火中僅存
008_0078_a_27L於掇拾之餘者一毫芒於泰山耳當時門

008_0078_b_01L문단의 거장들에게 질정을 받고 간행할 것을 모의하여 세상에 반포하였다. 부화浮華한 글을 세상에 드러내 밝히는 것이 두 분 대사의 본래의 뜻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서 문장의 일단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판본이 이지러져서, 한 세상을 빛내며 만인의 입에 오르내리던 글이 마침내 인멸湮滅되어 전해질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분 대사의 덕업이 문사文辭 사이에 드러난 것을 추적하여 그 미지微旨를 밝힐 길이 없게 되었으니, 어찌 불도로서 탄식할 일이 아니겠으며, 장래의 수치스러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이에 몇 명의 동지들과 함께 우리의 역량이 모자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서 공인들을 모아 중간함으로써 길이 불후不朽하게 되기를 도모하였다.
아! 천도는 주성周星(歲星)이 반드시 되돌아오는 이치가 있으니, 사문斯文의 흥망도 어쩌면 기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 뒤에 보는 자들도 이에 대해서 감회가 있을 것이다.
임진년 8월 일에 문인 공봉산인公峯山人 성일性一은 삼가 적다.

008_0078_b_01L人軰相與就正於詞林伯謀諸綉榟
008_0078_b_02L布於世則耀姱詞曭朗雖非兩大師素願
008_0078_b_03L可見文章之緖餘矣不幸歲久板本刓缺
008_0078_b_04L使輝映乎一世膾炙乎萬口者遂就湮滅
008_0078_b_05L而無傳則兩大師德業之發於文辭間者
008_0078_b_06L無所尋逐而闡其微旨豈非緇徒之歎惜
008_0078_b_07L而爲將來之羞也耶玆與若干同志不計
008_0078_b_08L蚊山之負鳩工重刊永圖不朽天道
008_0078_b_09L周星理有必反斯文興喪或者有待
008_0078_b_10L之覽者亦將有感於此也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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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壬辰仲秋日門人公峯山人性一
008_0078_b_12L謹誌

008_0078_b_13L「茟」通用「筆」{編}
  1. 55)천강남청茜絳藍靑 : 쪽(藍)과 꼭두서니(茜)에서 나온 청색과 홍색이 쪽과 꼭두서니보다 더 진하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능가할 정도로 재능이 워낙 출중한 것을 비유하는 말인데, 제자가 스승보다 낫게 되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도 흔히 쓰인다.
  2. 56)낭괄囊括 습명襲明하며~자기를 제어하였으므로 : 사명당이 뛰어난 재능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며, 정대한 도리에 입각해서 행동했다는 말이다. 낭괄囊括은 주머니를 여민다는 뜻으로, 속에 감추어 두고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 혹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괄낭括囊이라고도 한다. 『周易』 「坤卦」 육사六四에 “주머니 끈을 묶듯이 하면 허물도 없고 칭찬도 없을 것이다.(括囊无咎无譽)”라는 말이 나온다. 습명襲明은 자기의 밝은 지혜를 덮어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 타인을 포용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老子』 27장에 “성인은 언제나 타인을 포용하여 잘 돌보기 때문에 버려지는 자가 없고, 물건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물건이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을 습명이라고 한다.(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라는 말이 나온다. 또 한유韓愈가 친하게 지낸 노승 태전太顚에 대해서 “형해를 도외시하고 도리에 입각하여 자신을 제어하며 외물外物의 침해를 받지 않는 사람(能外形骸。 以理自勝。 不爲事物侵亂。)”이라고 평한 말이 「與孟簡尙書書」라는 글에 나온다.
  3. 57)마침내 편안하고~하지 않겠는가 : 참고로 『老子』 35장에 “대도大道를 쥐고 천하에 가면, 어디를 가더라도 해를 받지 않고 편안하며 태평하다.(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라는 말이 나온다.
  4. 58)몸은 죽어도~사는 것이다 : 『老子』 33장에 나오는 말이다.
  5. 59)여상如喪의 탄식 : 여상은 여상고비如喪考妣의 준말로, 백성들이 마치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사명당의 죽음을 슬퍼하며 탄식했다는 말이다. 『書經』 「舜典」의 “임금이 세상을 떠나자 백성이 마치 부모의 상을 당한 것처럼 삼년복을 입었고, 천하에 음악 소리가 끊어져 조용하였다.(帝乃殂落。 百姓如喪考妣三載。 四海遏密八音。)”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6. 60)금란金蘭 : 쇠와 난초라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붕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周易』 「繫辭 上傳」의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쇠도 자를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의 말에서는 난초 향기가 풍겨 나온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7. 61)공蛩이 거蚷를 잃었으니 : 단짝으로 지내던 사람을 잃었다는 말이다. 공공거허蛩蛩距虛라는 전설 속의 기이한 짐승이 있는데, 이 두 짐승은 상호 유사하게 생긴 데다가 항상 떨어지지 않고 붙어살면서 서로를 도와준다고 한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시에 “시종일관 거허와 공공처럼 함께 살고 싶은데, 맹동야孟東野는 머리를 돌려 보지도 않는구나.(願得終始如鉅蛩。 東野不廻頭。)”라는 구절이 보인다. 『韓昌黎集』 권5 「醉留東野」. 일설에는 공공과 거허가 두 짐승이 아니라 한 짐승이라고도 한다. 거허距虛는 蚷虛 혹은 岠虛라고 쓰기도 한다.
  8. 62)이 사람을~위해 애통해하겠는가 : 뇌묵당雷默堂 처영處英이 사명당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공자가 제자 안연顔淵의 죽음을 슬퍼한 것에 비유한 것이다. 안연이 죽자 공자가 곡하며 매우 애통해하였는데, 종자從者가 “선생님께서 너무 애통해하십니다.(子慟矣)”라고 하니, 공자가 “내가 너무 애통해하느냐? 하지만 이 사람을 위해 애통해하지 않고서 누구를 위해 애통해하겠느냐?(有慟乎。 非夫人之爲慟。 而誰爲。)”라고 말한 내용이 『論語』 「先進」에 보인다.
  9. 63)형산荊山에 옥돌이~던지는 것 : 사명당은 아무렇게나 썼어도 사람들은 그 글을 모두 귀한 보배처럼 여겼다는 말이다. 참고로 한漢나라 환관桓寬의 『鹽鐵論』 「崇禮」에 “남월 지방에서는 공작의 깃털을 문호에다 마구 꼽아놓고, 곤산 주변에서는 옥돌을 까마귀와 까치에게 마구 집어던진다.(南越以孔雀珥門戶。 崐山之旁以玉璞抵烏鵲。)”라는 말이 나온다.
  10. 64)황견유부黃絹幼婦의 문사文辭 : 절묘하게 잘 지은 문장을 말한다.
  1. 1)「苖」與「苗」義通{編}。
  2. 2)此雷默堂跋文 {乙丙}雨本無有。
  3. 1)「茟」通用「筆」{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