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송운대사분충서난록(松雲大師奮忠紓難錄) / 奮忠紓難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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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충서난록 서문
송운 대사의 임진왜란 관련 사적을 야사野史와 소기小記에서 뒤섞어 뽑아 놓은 것이 있으나 모두 소략踈略하여 완비되지 못해서, 대사의 충의忠義 대절大節을 세상에 드러내 밝힐 수가 없었으므로 내가 항상 병으로 여겼다. 그러던 차에 대사의 법손인 남붕이, 대사가 손수 기록한 일기를 가지고 나에게 와서 보여 주었는데, 그 이름을 ‘골계도滑稽圖’라고 하였다.
대개 이 기록은 병화兵火로 불탄 나머지 거의 없어지고 남은 가운데에서 얻은 까닭에 다시 정리해 볼 수도 없었고, 또 그 이름을 붙인 것이 걸맞지 않기에 내가 제목을 고쳐서 ‘분충서난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신군申君 유한維翰8)에게 교정과 산삭刪削을 부탁하고, 다른 설도 첨부하여 참작할 수 있게 하였는데, 신 군이 이와 함께 권미卷尾에 발문跋文을 붙이기까지 하였으니, 이렇게 해서 대사의 시종始終이 조리 정연하여 볼 만한 점이 있게 되었다.
얼마 있다가 남붕이 와서 고하기를, “장차 이것을 판각하여 오래 전해지도록 꾀하려 하는데, 공의 한마디 중한 말씀을 얻어서 머리말로 삼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세번 네번 거듭 청하면서 끝내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 보건대, 대사가 수립한 공적이 워낙 탁월하니 어찌 나의 말을 기다려서 더 중해지기야 하겠는가마는, 그래도 내가 평소에 대사를 흠모하였고, 남붕의 청이 또 이처럼 매우 근실하니, 끝내 사양할 수 없는 점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마지못해 한마디 하게 되었다.
석가釋家(佛家)의 유파流派는 임금과 어버이를 버리고 인간 세상을 도피하여 전례典禮는 도외시하고 공적空寂만을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 법을 얻는 것이 정밀해질수록 오도吾道와 배치되는 것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유가儒家에서 심각하게 거부하며 힘껏 배척하는 것이다.
그러나 송운 대사는 왜구가 기승을 부리던 날을 당하여 하찮은 일개 승려의 신분으로 산림에서 몸을 빼어 불법을 부르짖으며 왜적을 토벌하였고, 또 은밀히 조정의 유지有旨를 받들고 적진에 들어가서 허실을 탐색하였다. 그러다가 대난이 가까스로 진정되자

008_0079_a_01L1)奮忠紓難錄序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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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雲師壬辰事蹟襍出於野史小記
008_0079_a_04L皆踈略不備使師之忠義大節
008_0079_a_05L以章顯於世余常病之師之法孫有南
008_0079_a_06L鵬者以師手錄日記就示余而名之
008_0079_a_07L曰滑稽圖盖是錄得之於兵火灰燼
008_0079_a_08L之餘零落菫存無復詮次且其命名
008_0079_a_09L不稱余故改題曰奮忠紓難錄而屬申
008_0079_a_10L君維翰釐正增刪附以他設 [1] 可叅互者
008_0079_a_11L而申君仍有跋文於卷尾於是師之始
008_0079_a_12L終有條理可見矣旣而鵬來諗曰將以
008_0079_a_13L是付之剞劂圖所以壽其傳願得公一
008_0079_a_14L言之重以弁其首其請至三四斷斷不
008_0079_a_15L余以爲師之所立固自卓爾則何
008_0079_a_16L待余言而增重也雖然余於慕之雅矣
008_0079_a_17L而鵬之請又如是甚勤有不可終辭者
008_0079_a_18L乃强爲之言曰釋家者流棄君親而
008_0079_a_19L逃人世外典禮而貴空寂得其法彌精
008_0079_a_20L而背於吾道者益深儒家所以深觝而
008_0079_a_21L力排者然雲師當倭寇滔天之日
008_0079_a_22L眇然一緇禿挺身山林倡法討賊已
008_0079_a_23L又陰受朝旨入賊陣調得虛實逮夫大

008_0079_b_01L이번에는 삼가 임금의 명을 받들고 멀리 거친 바다를 건너간 뒤에 저장抵掌하고 입담立談하며9) 교만한 남쪽 오랑캐를 굴복시켜 그 못된 마음을 바꾸게 함으로써 변방을 안정시키고 국가를 편안하게 하였으니,10) 그 충성과 그 공적이 어찌 너무나도 위대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청정淸正의 물음에 대하여, “우리나라에 다른 보배는 없고, 오직 장군의 머리를 보배로 여긴다.”11)라고 대답한 이 말이야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늠연凜然히 머리칼이 곤두서게 하여 청정이 머리를 굽히고 경탄敬憚하면서 끝내 칼날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 왜왕을 권유하여 수천의 포로 된 백성들을 호랑虎狼의 입에서 구해내었다. 이처럼 준조樽俎의 사이에서 어모禦侮를 하고,12) 장고掌股의 위에서 적을 희롱한 것13)이, 마치 불도씨佛圖氏가 석호石虎를 갈매기로 삼은 것14)과 거의 흡사해서 철검과 포환 속에서도 태연자약하였으니, 진정 불력佛力을 깊이 자뢰資賴하고서 환술幻術을 잘하여 기능이 많은 자15)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에 끼어들 수가 있겠는가.
아, 대사가 병란으로 어지러운 때에 의병을 일으키고, 위태하고 어려운 날에 있는 힘껏 노력한 것이 그 집안의 자비慈悲 적멸寂滅의 법문法門과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하여 널리 생령生靈을 제도함에 어디를 가도 도道가 아닌 것이 없고 보면, 진여眞如의 정법에 종내 또 무슨 해가 되겠는가.
급기야 대사가 남쪽에서 돌아왔을 적에 조정이 관직으로 상을 주려 하자, 마침내 옷깃을 떨치고 영원히 돌아가서 가야산 속에 자취를 감추고는, 공명功名과 영리榮利 때문에 그 계율을 바꾸지 않았으니, 파 옹坡翁이 부처의 심법을 얻은 자16)라고 말한 것에 대사가 실로 해당된다고 하겠다.
대사가 일단 보수菩樹(佛道)의 업業에 전념한 이상에는, 세상일을 경륜經綸하는 것은 대사의 장기長技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소문을 두 차례 올리면서 조목별로 진달한 내용을 보게 되면, 모두 당시의 병통을 지적하고 기의機宜에 맞게 하였으며, 또 그 문사文辭가 진솔하고 간박簡朴하여 수식을 가하지 않아도 저절로 법도가 있어서 외울 만하였으니, 선천적으로 자질이 고명하여 도와 서로 가까운 자가 아니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는가. 아, 또한 기이한 일이라고 하겠다.
황마黃馬(무오년, 1738, 영조 14) 맹추孟秋(7월)에 청사淸沙 김중례金仲禮17)는 서序하다.

008_0079_b_01L難甫㝎祇奉君命遠涉鯨海抵掌立
008_0079_b_02L制伏驕蠻俾能革心 [2] 邊輯寧邦
008_0079_b_03L其忠與功豈不甚偉也哉況其對
008_0079_b_04L淸正之問我國無寶寶將軍之首
008_0079_b_05L言也使人凜然髮竪而淸正俛首敬憚
008_0079_b_06L終不敢露刀又能勸誘其王得全數千
008_0079_b_07L俘民於虎狼之口禦侮於撙 [3] 抏敵於
008_0079_b_08L掌股殆若佛圖氏之鷗鳥石虎而夷然
008_0079_b_09L自得於鐵劍砲丸之中苟非深資佛力
008_0079_b_10L善幻多技能者惡足以與於此乎
008_0079_b_11L之起義於搶攘之際勉力於危難之日
008_0079_b_12L似若相戾於渠家慈悲寂滅之法門
008_0079_b_13L而現佛在世普濟生靈無徃而非道
008_0079_b_14L終亦何害於眞如正法也及其自南還
008_0079_b_15L朝廷欲賞之以官遂拂衣長歸泯跡於
008_0079_b_16L伽倻山中不以功名榮利而變其戒律
008_0079_b_17L坡翁所謂得佛心法者師實有之矣
008_0079_b_18L旣專於菩樹之業則意其世務經綸非
008_0079_b_19L師所長而及觀其兩䟽條陳皆中時病
008_0079_b_20L而適機宜又其文辭眞率簡朴不施
008_0079_b_21L雕采而自有法度可誦非其天資高明
008_0079_b_22L於道相近者庸得然乎亦可異也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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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馬孟秋淸沙金仲禮序

008_0079_b_24L題名編者補入此序文底本無有依甲本補
008_0079_b_25L入{編}
  1. 8)신 군申君 유한維翰 : 1681년 밀양에서 출생하였으며 호는 청천靑泉이다. 1719년 제술관製述官으로서 통신사 일행을 따라 일본을 다녀왔으며, 저서로 『海游錄』ㆍ『청천집』 등이 있다.
  2. 9)저장抵掌하고 입담立談하며 : 손뼉을 치면서 금방 담판을 짓는다는 뜻으로, 통쾌하게 논리적으로 압도하며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전국시대에 소진蘇秦이 조왕趙王을 만나서 손뼉을 치며 대담을 하였다(抵掌而談)는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秦策」 1. 입담은 서서 이야기를 끝낸다는 뜻으로, 대화를 곧바로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3. 10)변방을 안정시키고~편안하게 하였으니(款邊輯寧邦家) : 참고로 관변款邊은 관새款塞와 같은 말로, 변방의 관문을 두드린다는 뜻인데, 외족外族이 찾아와서 복종하며 통호通好를 청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집녕방가輯寧邦家는 『書經』 「湯誥」에서 나온 문자이다.
  4. 11)이 말은 허균의 「유명조선국 자통광제존자 사명당 송운 대사 석장 비명 병서」에 처음 인용된 이후 인구에 회자되었다.
  5. 12)준조樽俎의 사이에서 어모禦侮를 하고 : 무력武力으로 하지 않고 준조樽俎, 즉 연회 석상에서 담화하며 적을 제압한다는 뜻인데, 보통 외교 담판에서 승리하는 것을 말한다. 어모禦侮는 절충折衝과 같은 말로 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것을 말한다.
  6. 13)장고掌股의 위에서~희롱한 것 :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주무르는 것을 말한다. 장고는 손바닥과 넓적다리를 말한다. 참고로 『國語』 「吳語」에 “대부 종種은 용기가 있고 모략을 잘하니, 장차 오나라를 장고의 위에 두고 희롱하며 자기의 뜻을 펼 것이다.(大夫種勇而善謀。 將還玩吳國於股掌之上以得其志。)”라는 말이 나온다.
  7. 14)불도씨佛圖氏가 석호石虎를~삼은 것 : 고승이 도력을 발휘하여 한 나라의 최고의 권력자를 자기 마음대로 요리하는 것을 말한다. 불도씨는 불도징佛圖澄을 가리킨다. 그는 천축 혹은 구자국龜玆國 출신으로, 서진西晉 영가永嘉 연간에 중국에 건너와서 신통력을 발휘하며 후조後趙의 황제인 석륵石勒과 석호石虎의 귀의를 받았던 명승이다. 그가 석호와 어울려 노닌다는 말을 듣고는, 지도림支道林이 “징 공이 석호를 바닷가에서 어부와 함께 노니는 갈매기로 삼았구나.(澄以石虎爲海鷗鳥)”라고 평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言語」.
  8. 15)환술幻術을 잘하여~많은 자 : 참고로 한유韓愈가 불교 승려에 대하여 선의의 해학적인 표현으로,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불도를 닦는 사람들은 환술幻術을 잘하여 기능이 많다고 하더라.(然吾聞。 浮屠人善幻。 多技能。)”라고 말한 대목이 그의 「送高閑上人序」에 보인다.
  9. 16)부처의 심법을 얻은 자 :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한漢나라 명제明帝와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형식적으로 불교를 숭상하였을 뿐 실제로는 부처의 뜻과 어긋났다고 비판한 뒤에, 송宋나라 인종仁宗을 그들과 비교하여 칭찬하면서 “이분이야말로 부처의 심법을 얻은 자라고 할 것이니, 고금에 걸쳐 단 한 사람뿐이다.(此所謂得佛心法者。 古今一人而已。)”라고 말한 기록이 전한다. 『東坡全集』 권86 「宸奎閣碑」.
  10. 17)김중례金仲禮 : 김재로金在魯(1682~1759)이다. 그의 호는 청사淸沙이고, 자는 중례이다. 참고로 나이는 신유한申維翰보다 한 살 어리지만, 문과文科 급제는 숙종 36년(1710)으로 신유한보다 3년 빠르다. 네 차례나 영의정을 지닌 명재상이다.
  1. 1)題名編者補入。此序文。底本無有。依甲本補入{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