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사경지험기(四經持驗紀) / 四經持驗紀卷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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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지험기四經持驗紀 권4
백암 성총 모음(栢庵性聰集)
관세음지험기觀世音持驗紀
진晋 시녕산始寧山 사문 축법의竺法義는 여러 경전을 정밀히 연구하였고, 학업하는 제자가 항상 100여 명을 헤아렸다. 함안咸安 2년(372) 심장병이 생겼는데 치료를 해도 효험이 없어 달이 갈수록 상태가 심각해졌다. 축법의는 병중에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했다. 그러자 갑자기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 배를 갈라 창자와 위를 꺼내더니 깨끗이 씻어 다시 집어넣었다. 꿈에서 깨자 병이 나았다. 송宋 상서령尙書令 부량傅亮이 그 사실을 기록하였는데 항상 이렇게 말하고는 하였다.
“나는 돌아가신 부친과 법의法義 공이 함께 노니는 자리에서 매번 관세음보살의 신기한 기적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치고 숙연히 믿고 우러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 사문 축법순竺法純은 산음山陰 현의사顯義寺 주지이다. 원흥元興 연중(402~404)에 한창 사찰의 전각을 새로 지으면서 다른 읍으로 가 목재를 사 오게 되었다. 배가 태호太湖를 지나오는데 해질 무렵 폭풍이 몰아치더니 파도가 산처럼 일어났다. 법순이 탄 배는 작았고, 물이 들어와 순식간에 위험한 지경에 처하였다. 이에 한뜻으로 『관세음경』을 염송하며 신령한 도움을 기도하자 갑자기 큰 배가 잠깐 사이에 물살을 타고 내려와 앞에 닿았다. 그렇게 함께 뱃머리를 잡아당기고 끌어올려 사람들이 모두 건너고 나서 돌아보았더니 작은 배는 이미 침몰한 뒤였다. 큰 배는 물결 따라 거침없이 나아가 잠깐 사이에 언덕에 도달하였다. 그땐 이미 밤에 접어들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졌을 시각인데 이 배가 어떻게 있었을까? 분명 이는 보살의 신비한 힘이 미친 것이리라.
진의 석개달釋開達이 융안隆安 2년(398)에 겪은 일이다. 그해 큰 기근이 들어 강족羌族 오랑캐가 매일같이 사람을 죽여 음식으로 삼자 해를 입는 사람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석개달은 그때 마침 둔덕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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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544_c_02L1)四經持驗紀卷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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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544_c_04L栢庵性聰集

008_0544_c_05L觀世音持驗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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晋始寧山沙門竺法義精硏衆典弟子
008_0544_c_07L受業常百餘人咸安二年感心氣疾
008_0544_c_08L療治不效積月困殆義病中常至心
008_0544_c_09L存念觀世音忽夢一人爲之破腹出膓
008_0544_c_10L洗淨還納之寤而病愈宋尙書令
008_0544_c_11L傅亮爲紀其事常云吾先君與義公遊
008_0544_c_12L每聞說觀音神異聽者無不肅然信
008_0544_c_13L

008_0544_c_14L
晋沙門竺法純住持山陰顯義寺元興
008_0544_c_15L中鼎新寺殿至他邑買材木舟經太湖
008_0544_c_16L日暮暴風波浪如山純船小水入
008_0544_c_17L在瞬息乃一意誦觀世音經以祈靈佑
008_0544_c_18L俄有大船泛流至前因共扳舷而上
008_0544_c_19L衆甫度盡回視向小舟已覆沒矣
008_0544_c_20L舟隨波皷蕩頃刻達岸時已入夜
008_0544_c_21L旅久絕何得此舟信是菩薩神力所致

008_0544_c_22L
晋釋開達隆安二年歲大饑羌胡日
008_0544_c_23L殺人而食害者不可勝計達時適登壟
008_0544_c_24L題名及撰者名補入{編}

008_0545_a_01L감초甘草를 캐다가 강족에게 잡혀 한 목책 속에 갇히게 되었고, 먼저 목책에 갇혀 있던 10여 명은 모두 잡아먹혔다. 석개달은 잡히던 순간부터 속으로 『관음경』 염송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음날이면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강족에게 들이닥쳤고, 노기를 떨치며 포효하자 강족이 모두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호랑이는 이빨로 물어뜯어 목책 한 곳에 사람이 통과해 빠져나올 수 있도록 구멍을 만들어 놓고는 바로 사라졌다. 석개달은 처음 호랑이가 목책을 물어뜯는 것을 보았을 때 분명 자신을 해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목책이 뚫렸는데도 들어오지 않자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여겼다. 결국 그 구멍으로 도망쳐 나와 밤에는 걷고 낮에는 숨어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다.
진 상산常山의 석도태釋道泰가 의희義熈 연중(405~418)에 겪은 일이다. 한번은 꿈에 사람이 나타나 “그대의 수명은 마흔둘에 끝난다.”고 하였다. 석도태는 깨어나 두려워하였고, 그해가 되자 병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 분명히 죽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옷과 발우 등 살림살이를 모두 나눠 주며 복을 지었다. 그러자 한 벗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62억 보살에게 공양하는 것과 관세음보살을 한 번 부르는 것은 복이 같아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들었네. 그대는 왜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지 않는가? 반드시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것이네.”
석도태는 깨달은 바가 있어 드디어 정성을 다해 염송하였고, 4일 밤낮을 오로지하며 끊어짐이 없었다. 그러자 홀연히 앉아 있는 곳 휘장 아래로 빛이 보였는데 문밖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쳐다보니 관세음보살이 멀리 서 있고 발등 사이에 금빛이 찬란했다. 석도태는 재빨리 휘장을 걷고 머리 조아려 예배하였는데, 예배를 올리고 나자 다시 보이지 않았다. 놀라움과 기쁨에 땀이 비 오듯 흘렀고 곧바로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그는 앓던 병이 단박에 치유되었고 과연 수명이 연장되었다.
진의 사문 홍만洪滿이 처음 속가에서 지낼 때 일이다.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에 걸려 양쪽 다리가 오그라들자 스스로 이미 폐인이 되었다 생각하고는 오로지 아침저녁으로 관세음보살만 염송하며 제도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자 깨끗한 물을 담은 병을 지닌 한 스님이 홀연히 나타나 앞에 섰다. 홍만이 물었다.
“스님께선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러자 그 스님이 대답했다.
“네가 늘 간절히 그리워하기에 찾아온 것이다. 네 다리의 병은 고칠 수 있으니 내가 치료해 주리라.”
홍만은 말씀대로 고쳐 달라고 청하였다. 그리고 무릎에서 마치 몇 마디의 못을 뽑아내는 듯한 통증을 느꼈을 뿐인데 병이 나았다.

008_0545_a_01L採甘草爲羌所執置一柵中先在柵
008_0545_a_02L十餘人皆爲所噉達自被執便默誦
008_0545_a_03L觀音經不懈明日當見殺及晨忽有一
008_0545_a_04L突逼羣羌奮怒號吼羌咸駭怖遁
008_0545_a_05L虎乃嚙柵木成一缺可容人過便去
008_0545_a_06L達初見虎嚙柵謂必見害旣柵穿不入
008_0545_a_07L心疑其異遂從缺中逃出夜行晝伏
008_0545_a_08L竟得脫免

008_0545_a_09L
晋常山釋導泰義熈中嘗夢人告曰
008_0545_a_10L壽終四十二矣泰悟而懼至是年遇病
008_0545_a_11L自分必盡悉以衣鉢之資分施作福
008_0545_a_12L一友謂曰吾聞供養六十二億菩薩
008_0545_a_13L一稱觀世音福同無異君何不至心歸
008_0545_a_14L必可增壽泰感悟遂虔誦四日夜
008_0545_a_15L專精不絕忽所坐帷下有光明從戶外
008_0545_a_16L而入見觀音遙立足趺間金色朗然
008_0545_a_17L泰亟褰帷叩禮已不復見驚喜流汗
008_0545_a_18L便覺體輕所患頓愈果獲延年

008_0545_a_19L
晋沙門洪滿初在俗時因染時疾
008_0545_a_20L脚攣躄自念已成廢人唯旦夕誦念觀
008_0545_a_21L音求度忽見一僧執淨瓶前立滿問
008_0545_a_22L師從何來僧答曰以汝常相懇
008_0545_a_23L來耳汝足患可脫吾爲療之滿如言
008_0545_a_24L求治但覺膝上如拔去數寸釘遂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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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축장서竺長舒는 본래 천축天笁 사람이며 『관음경』을 오로지 염송하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 후에 오吳 땅에 거주하였는데 사는 읍이 화재를 만났고, 나란히 선 이웃집 기둥과 건물이 서로 붙어 있어 모두 불에 탔다. 장서의 집은 바람이 불어오는 아래쪽에 있었고 불길 또한 맹렬했다. 그러나 장서가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자 갑자기 바람이 돌더니 불이 꺼졌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기이하다며 놀랐다. 이때 어떤 못된 소년이 기이한 영험임을 의심하고는 바람이 거센 밤을 기다렸다가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 그 집을 태워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불을 붙인 장작더미를 네 차례나 던졌지만 모두 꺼져 버렸다. 소년은 그제야 그 신비한 힘에 마음으로 절복하고, 다음날 아침 머리를 조아리고 잘못을 사과하였다. 그러자 장서가 말하였다.
“내가 무슨 신비한 힘이 있겠는가. 항상 『관음경』을 염송하며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재난이 있을 때마다 곧 벗어났던 것뿐이라네.”
진 낭야瑯琊의 왕민王珉은 아들이 없었는데, 아내가 관세음보살에게 후사를 잇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었다. 왕민이 길을 가다가 한 호승胡僧을 만나 그를 매우 공경하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죽으면 반드시 그대의 아들이 되리라.”
오래지 않아 그 스님은 죽었고, 왕민의 아내는 정말 임신을 하였다. 또한 태어나 젖먹이 시절에 말을 하였고, 서역의 범음梵音을 이해하였으며, 총명하고 영특하기가 보통 사람을 뛰어넘고 그릇과 도량이 범상치 않았다. 그가 곧 진의 상서尙書 왕홍명王洪明이다. 그의 어릴 때 이름은 아련阿練이며, 전생에 있었던 일을 서술하였는데 역력하고 분명하였다.
진의 두전竇傳은 하내河內 사람이다. 영화永和 연중(345~356)에 병주幷州 자사 고창高昌과 기주冀州 자사 여호呂護가 각각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사이가 좋지 못했다. 두전은 고창에게 임용되었고, 여호가 기병대를 파견해 습격하는 바람에 동료 일곱 명과 함께 붙잡혔다. 모두 한 감옥에 갇혀 형틀에 자물쇠가 채워졌고, 아주 단단히 묶였으며, 판결 나는 날 그들을 죽일 예정이었다. 사문 지도산支道山이 당시 여호의 군영에 있었는데, 그는 예전에 두전과 서로 알던 사이였다. 두전이 잡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살피러 찾아오자 두전이 지도산에게 말하였다.
“지금 목숨이 경각에 놓였습니다. 저를 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도산이 말하였다.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한다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입니다.”
두전은 드디어 온 마음을 다해 속으로 염하였다. 무려 사흘 밤낮을 그렇게 하자 형틀에 채운 자물쇠가 갑자기 저절로 풀렸다. 두전은 ‘동료들이 형틀에 묶여 있는데 어찌 혼자 도망칠 수 있겠는가?’ 생각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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晋竺長舒本天笁人專誦觀音經爲業
008_0545_b_02L後居吳中邑遭回祿比隣棟宇相接
008_0545_b_03L皆焚長舒家正屬下風火勢猛烈
008_0545_b_04L舒一心念觀世音倐忽風回火滅合邑
008_0545_b_05L驚異時有惡少年訝其靈異俟風急
008_0545_b_06L束薪放火欲燒燬之凡四投皆滅
008_0545_b_07L少年始心折其神力至明叩頭謝過
008_0545_b_08L云我何神力恒誦觀音經不懈每有難
008_0545_b_09L輒免耳

008_0545_b_10L
晋瑯琊王珉無子妻嘗懇禱觀世音
008_0545_b_11L求嗣後珉路行逢一胡僧甚敬之
008_0545_b_12L曰我死當爲汝子未幾僧亡珉妻果有
008_0545_b_13L及生甫能言即解西域梵音聦頴
008_0545_b_14L過人 [8] 度不凡即晋尙書王洪明也
008_0545_b_15L小名阿練叙前生時事歷歷分明

008_0545_b_16L
晋竇傳河內人永和中并州刺史高昌
008_0545_b_17L冀州刺史呂護各擁部曲不睦傳爲昌
008_0545_b_18L所任用護遣騎襲擊被執同伴七人
008_0545_b_19L共繫一獄鎻械甚嚴剋日將殺之
008_0545_b_20L門支道山時在護營中先與傳相識
008_0545_b_21L聞其被禁徃候之傳謂山曰今命在
008_0545_b_22L頃刻能相救乎山曰若能至心念觀世
008_0545_b_23L必有感應傳遂專心默念凡三晝
008_0545_b_24L鎻械忽自解傳念同伴桎梏何忍

008_0545_c_01L다시 “보살의 신력으로 널리 구제하사 모두 벗어나게 하소서.” 하고 간절히 청하였다. 그 말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의 형틀도 모두 차례차례 풀렸다. 드디어 밤을 틈타 문을 열고 탈출했는데 알아차리는 순경巡警이 없었다. 성을 벗어나 10여 리를 가자 날이 밝아 어떤 숲에 함께 숨었다. 잠깐 사이에 추격자들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와 샅샅이 수색하였다. 그러나 두전 등이 숨은 곳 1무畝1) 정도까지는 끝내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 결국 재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 모두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법을 공경하고 믿으며 받들었다. 지도산이 그 후 강을 건너 찾아오자 감사함을 표하고 그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진秦의 서의徐義는 고륙高陸 사람이며 어려서부터 법을 믿었다. 부견符堅의 상서尙書로 있을 때 부견의 말단 병사가 봉기를 일으켰다. 적들은 서의를 붙잡아 해를 가하려 하였고, 그의 양쪽 발을 땅에 묻고 머리카락을 나무에 묶어 두었다. 서의는 한밤중에 관세음보살을 오로지 생각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러자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 “지금 일이 이리 다급한데 잠을 잘 겨를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서의가 깜짝 놀라 깨어 보니 지키고 있던 자들이 모두 피로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이에 시험 삼아 한번 몸을 크게 움직여 보자 손과 머리카락이 홀연히 풀렸고 다리 역시 풀 수 있었다. 재빨리 100여 보를 도망쳐서는 풀 더미 속에 몸을 숨기자 추격자들이 달려와 하늘의 별처럼 횃불을 펼치고 찾았다. 하지만 끝내 발견하는 자가 없었다. 날이 밝아 적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업사鄴寺에 투신해 화를 면하게 되었다.
진秦의 필람畢覽은 동평東平 사람이며 평소에 관세음보살을 섬겼다. 후에 모용수慕容垂를 따라 북쪽으로 정벌을 나서 오랑캐들을 섬멸하다가 홀로 말을 타고 숨을 곳을 찾아 도망치게 되었다. 오랑캐의 추격대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필람은 지극정성으로 보살의 명호를 염하여 결국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다 깊은 산으로 들어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되자 또다시 온 마음으로 보살에게 귀의하였다. 그러자 한밤중에 법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은 한 스님이 나타나 길을 가르쳐 주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송宋 문제文帝가 드실 음식으로 닭을 삶자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소리가 솥에서 들렸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처량하였다. 감재監宰가 이를 보고하자 황제가 사신을 파견해 검사해 보았더니 과연 사실이었다. 이에 “불도佛道의 신비한 힘이 이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을 내 몰랐구나.” 하며 탄식하고는

008_0545_c_01L獨去復懇菩薩神力普濟當令俱免
008_0545_c_02L言畢餘人皆以次解脫遂乘夜啓戶而
008_0545_c_03L巡警莫有覺者踰城行十餘里
008_0545_c_04L明共隱一林中須臾追者四出搜覔殆
008_0545_c_05L惟傳等所隱畝許地竟無至者
008_0545_c_06L得免難衆還鄕里咸敬信奉法道山
008_0545_c_07L後過江爲謝敷具說其事

008_0545_c_08L
堅末兵革蜂起賊獲義將加害乃埋其
008_0545_c_09L兩足編髮於樹義夜中專念觀世音
008_0545_c_10L有頃夢一人謂曰今事亟矣尙睱眠耶
008_0545_c_11L義驚覺見守防者並疲而寢乃試自
008_0545_c_12L奮動手髮忽解 [9] 亦得脫亟遁去
008_0545_c_13L百餘步隱叢草中追者馳至火炬星
008_0545_c_14L竟無見者天明賊散皈投鄴寺乃
008_0545_c_15L

008_0545_c_16L
秦畢覽東平人素崇事觀音後隨慕
008_0545_c_17L容垂北征沒虜單騎奔竄虜追將及
008_0545_c_18L覽至誠持念菩薩名號卒得脫免因入
008_0545_c_19L深山迷惑失道又專心皈向中夜見
008_0545_c_20L一僧法服持錫示以途徑乃得還家

008_0545_c_21L
宋文帝御膳烹雞子忽聞鼎中羣呼
008_0545_c_22L觀世音菩薩悽愴之甚監宰以聞
008_0545_c_23L遣驗之果然嘆曰吾不知佛道神力

008_0546_a_01L“지금부터는 닭을 사용하지 말라.”라고 칙령을 내렸다.
송의 사문 축혜경竺惠慶은 광릉廣陵 사람이고 경행經行하며 지혜를 닦았다. 원가元嘉 12년(435) 형양荊楊에 홍수가 났을 때 혜경은 여산廬山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배가 강에 이르자 폭풍이 갑자기 일어났다. 동료 여행객들이 탄 배는 이미 포구에 정박했으나 혜경이 탄 배만은 강 한가운데서 표류하게 되었다. 바람은 심하고 물결이 용솟음쳐 꼭 뒤집어엎을 기세이자 혜경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정성스럽게 『관세음경』을 염송하였다. 강가에 있던 사람들이 멀리서 그 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수십 명이 언덕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폭풍을 안고 강물을 거슬러 배 전체가 건너왔다.
송 장간사長干寺 석담영釋曇頴은 회계會稽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계행을 엄격하게 지켰고 경전 10만여 단어를 염송하였는데, 밝고 유쾌한 목소리로 크게 노래하는 것이 타고난 절창이었다. 그는 항상 종기를 앓았는데 아무리 치료해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방에 관음상을 모시고 아침저녁 예배하며 이 질병을 치유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그러자 하루는 홀연히 뱀이 나타나더니 지붕에서 쥐 한 마리를 땅에 떨어뜨렸는데 끈적끈적한 액체가 온몸에 가득했다. 이미 죽은 모습이었지만 담영이 살펴보았더니 쥐는 살아 있었다. 담영은 곧 대나무를 가져다 끈적이는 액체를 긁어내었고, “뱀이 삼킨 쥐는 창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에 결국 그 액체를 종기에 발랐다. 쥐는 얼마 후 살아났고 이틀 밤을 자고 나자 종기가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서야 뱀이 쥐를 주었던 것이 정성 어린 기도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후에 그는 명성이 멀리까지 전해져 임금의 공양을 받았다.
송의 복만수伏萬壽는 평창平昌 사람이다. 원가元嘉 19년(442) 광릉廣陵에 있으면서 위부참군衛府叅軍이 되었는데 휴가를 청해 주州로 돌아오게 되었다. 4경에 강을 건너기 시작할 때는 긴 파도에 물살도 잔잔했는데 중간쯤 오자 바람이 화살처럼 불어 닥쳤다. 이때 칠흑같이 캄캄하기까지 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만수는 법을 받들어 오직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에게 목숨을 맡기고 입으로 염불을 끊임없이 했다. 그러자 곧바로 배에 탔던 사람들이 동시에 북쪽 언덕에 있는 불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흡사 마을에서 나오는 불빛 같았다. 배를 돌려 그곳을 향해 나아가 아침이 오기 전에 닿을 수 있었다.

008_0546_a_01L能若是敕自今不得用雞子

008_0546_a_02L
宋沙門竺惠慶廣陵人經行修明
008_0546_a_03L嘉十二年荊楊大水惠慶將入廬山
008_0546_a_04L船至江而暴風忽起同旅已得依浦
008_0546_a_05L惠慶船飄颺江心風急浪湧勢必淪
008_0546_a_06L惠慶正心誠誦觀世音經洲際之
008_0546_a_07L望見其舫迎飈截流如有數十人
008_0546_a_08L牽挽及岸全舟獲濟

008_0546_a_09L
宋長干寺釋曇頴會稽人少出家
008_0546_a_10L持戒行誦經十餘萬言宣唱明朗
008_0546_a_11L然獨絕常患癬疾積治不除室供觀
008_0546_a_12L音像晨夕禮拜求愈此疾一日忽見
008_0546_a_13L有蛇在屋一鼠墜地涎沫遍身狀如
008_0546_a_14L已死頴候鼠活即取竹刮除涎沫
008_0546_a_15L聞蛇所呑鼠能療瘡疾遂以涎傳癬
008_0546_a_16L鼠尋活信宿之間瘡痍頓盡方悟蛇
008_0546_a_17L之與鼠乃是誠祈所致後名傳遐邇
008_0546_a_18L國君供養

008_0546_a_19L
宋伏萬壽平昌人元嘉十九年在廣
008_0546_a_20L陵爲衛府叅軍乞假還州四更初涉江
008_0546_a_21L長波安流至中而風起如箭時尙昏黑
008_0546_a_22L不知所向萬壽奉法唯一心皈命觀世
008_0546_a_23L念不絶口倐爾與舡中人同覩北
008_0546_a_24L岸有光狀如村火廻舡趍之未旦而

008_0546_b_01L그러나 그 언덕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다들 불을 피운 집이 전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때서야 부처님의 힘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송의 차車씨 어머니의 일이다. 그의 아들이 여릉왕廬陵王 청범靑汎의 난을 만나 포로로 잡혀 적의 군영에 갇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평소 부처님을 받들었다. 이 일로 부처님 전에 등잔 일곱 개를 밝히고, 밤이면 온 마음을 다해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아들이 재난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와 같이 하며 해를 넘겼는데 그의 아들이 틈을 타 남쪽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낮이면 숨고 밤이면 걸으며 혼자 몸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맬 때마다 일곱 가닥 불빛이 앞에 나타나곤 하였다. 그러나 마을이 있나 싶어 도움을 요청하려고 달려가 보면 끝내 다다를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이레 밤을 걷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집에 도착하였다. 그의 어머니를 보니 여전히 부처님 전에 엎드려 회향하고 있었는데 일곱 개의 등잔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서야 앞에 있었던 일들을 깨닫고, 그것이 부처님의 힘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자는 다시 만나 목숨을 마칠 때까지 귀의하였다.
오吳나라 사람 육휘陸暉는 감옥에 묶여 죽을 것이 분명했다. 이에 집안사람들에게 관음상을 조성하고 죽음을 면하게 해 주십사 기도하게 하였다. 형을 집행하면서 칼을 세 번이나 바꿨지만 그 칼들이 모두 부러져 버렸다. 관리가 그에게 물었더니, 그가 “아마도 이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힘 덕분인 듯싶습니다.” 하기에 그의 집에 가서 법상法像을 살펴보았더니 목에 칼자국이 세 군데 있었다. 그래서 상소를 올리고 그를 용서하였다.
사준史雋은 문장과 학식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으나 도교道敎를 받들며 불교를 업신여겼다. 항상 사람들에게 “부처는 오랑캐들의 신이니 받들기에 부족하다.”라고 말하고, 존상尊像을 볼 때마다 곧 경솔하게 꾸짖고는 하였다. 그 후 양쪽 발이 병으로 굳어 버려 의자를 내려올 수 없게 되었고, 의사도 기도도 모두 효험이 없었다. 그의 벗 조문趙文이란 사람이 말하였다.
“이 병은 자비의 큰 힘이 아니면 나을 수 없네. 마음을 일으켜 관음상을 조성하고 그분께 한번 기도해 보게. 반드시 감응할 것일세.”
사준은 병이 위급했던 까닭에 친구의 말대로 관음상을 주조하였다. 상이 완성되자 홀연히 관세음보살이 그의 방으로 내려오는 꿈을 꾸게 되었고, 과연 차도가 있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사준은 잘못을 뉘우치고 법을 믿었다.
위魏의 사문 도집道集은 수양서산壽陽西山을 가다 도적에게 붙잡혔다. 나무에 그를 묶고 죽이려 하자 도집은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그만두지 않았다.

008_0546_b_01L問彼岸人皆云更盡無燃火者
008_0546_b_02L知佛力焉

008_0546_b_03L
宋車母者其子遭廬陵王靑汎之難
008_0546_b_04L虜所得陷賊營中母在家素奉佛
008_0546_b_05L燃燈七盞於佛前夜專心念觀世音
008_0546_b_06L子得脫如是經年其子乘隙南奔
008_0546_b_07L伏夜行隻身迷向每見火光七道在前
008_0546_b_08L疑爲村落欲趍投之終不可至如是
008_0546_b_09L七日夜不覺到家見其母猶伏佛前
008_0546_b_10L回向七燈煌煌始悟前因知是佛力
008_0546_b_11L母子重逢皈依畢命

008_0546_b_12L
吳人陸暉繫獄分死乃令家人造觀
008_0546_b_13L音像祈禱免死臨刑連易三刀其刀
008_0546_b_14L皆折官問之荅云恐是觀音慈力
008_0546_b_15L看法像項上有三刀痕因奏宥之

008_0546_b_16L
史雋文學過人奉道慢佛常語人云
008_0546_b_17L佛是胡神不足事也每見尊像輒輕
008_0546_b_18L誚之後雙足病攣不能下榻醫禱俱
008_0546_b_19L無效驗友人趙文謂曰此病非慈悲大
008_0546_b_20L不能救試發心造觀音像祈之必
008_0546_b_21L雋以病急如言鑄像像成忽夢觀
008_0546_b_22L音降其室果得差雋由此悔過信法

008_0546_b_23L
魏沙門道集行壽陽西山爲賊所獲
008_0546_b_24L縛之於樹將殺之集念觀世音守死

008_0546_c_01L칼을 꺼내 여러 차례 내려쳤는데 손상되는 곳이 전혀 없자 도적들은 공포에 떨며 달아났다. 도집은 그래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사문 법선法禪은 산길을 가다 도적을 만나게 되자 오로지 관세음보살만 염하였다. 도적이 활을 당겨 그를 쏘았으나 화살이 그를 상하게 할 수 없었다. 도적은 결국 활을 땅에 던지고 정성을 다해 귀의하였다.
수隋 개황開皇 초(581)의 일이다.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양주揚州 스님은 『열반경』을 달달 염송하며 스스로 자신의 학업을 우쭐해하였고, 기주歧州 동산東山의 사미는 『관세음경』을 염송하였다. 두 사람 모두 갑자기 죽어 명부에 이르자, 왕은 사미를 금좌金座에 모시고 매우 공경하면서 『열반경』을 염송한 스님은 은좌銀座에 모시고 예의도 간단히 생략하였다. 『열반경』을 염송한 스님이 불평하며 사미가 머무는 곳을 물었다. 이미 다시 살아난 뒤에 스님은 남쪽에서 기주로 찾아가 사미를 방문하고 그 일에 대해 묻게 되었다. 그러자 사미가 말하였다.
“매번 『관음경』을 펼칠 때마다 반드시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향을 사르며 주문과 서원을 마친 뒤에야 염송하기를 감히 태만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사과하며 말했다.
“내 죄가 깊구나. 나는 『열반경』을 염송하면서 위의를 단정히 하지 않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명왕이 예의를 차림에 있어 더하고 덜했던 까닭이었구나.”
당唐 석자각釋自覺은 진주眞州에 살며 관세음보살을 인연해 아미타불을 뵙게 해 달라고 항상 발원하였다. 이에 49자 높이의 관음상을 주조하였고, 완성되자 지극한 마음으로 축원하였다. 그러자 야밤 3경에 홀연히 두 가닥 금빛 광명이 보이더니 부처님께서 나타나 그 빛 속에서 아래로 내려오셨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서 따라왔다. 부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자각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서원을 지키며 바꾸지 말라. 만물을 이롭게 하는 걸 우선으로 하면 보배로운 연못이 태어날 곳이 되리니, 누구든 소원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11년 후 7월 보름 저녁, 천왕天王 같은 모습의 한 사람이 구름 사이로 몸을 나타내 자각에게 말하였다.
“안양安養(極樂)으로 갈 때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관음상 앞에서 결가부좌하고 천화하였다.
당 성선사聖善寺 승려 도헌道憲은 개원開元 연중(713~741)에 강주江州 대운사大雲寺 주지로 있으면서 법려法侶들의 칭송을 받았다.

008_0546_c_01L不輟及引刀屢斫皆無傷損賊怖走
008_0546_c_02L集因得脫又沙門法禪山行逢賊
008_0546_c_03L念觀音賊挽弓射之箭不能傷遂投
008_0546_c_04L弓於地皈誠焉

008_0546_c_05L
隋開皇初有揚州僧逸其名誦通涅
008_0546_c_06L自矜其業歧州東山沙彌誦觀世
008_0546_c_07L音經二人俱暴死至冥府王處沙彌
008_0546_c_08L金座甚敬之處涅槃僧銀座禮稍弛
008_0546_c_09L僧不平問沙彌住處旣甦從南至岐
008_0546_c_10L訪得沙彌詢其事沙彌云每啓觀音
008_0546_c_11L必衣淨衣燒名香咒願畢乃誦
008_0546_c_12L不敢怠僧謝曰吾罪深矣所誦涅槃
008_0546_c_13L威儀不整身心未淨此冥王禮貌崇減
008_0546_c_14L所由分也

008_0546_c_15L
唐釋自覺住眞州常發願願因觀音
008_0546_c_16L得見阿彌陀佛於是鑄觀音像高四十
008_0546_c_17L九尺旣成至心祝願夜三更忽有金
008_0546_c_18L光二道見佛自光中而下觀音勢至
008_0546_c_19L左右隨之佛垂手摩覺頂曰守願勿易
008_0546_c_20L利物爲先寶池生處孰不如願後十
008_0546_c_21L一年七月望夕見一人形如天王現身
008_0546_c_22L雲間謂覺曰安養之期至矣遂於觀
008_0546_c_23L音像前趺坐而化

008_0546_c_24L
唐聖善寺僧道憲開元中住持江州大

008_0547_a_01L당시 자사刺史 원 모元某가 관세음보살상 일곱 축을 그리고 싶어 하였고, 도헌이 여러 차례 해 본 일이라 여겨 그에게 위임하였다. 도헌은 화공들에게 재계한 다음 그림을 그리게 하고, 모든 채색에 있어 아교 대신 전부 유두향乳頭香을 사용하게 하여 최고로 아름답게 장엄하자 원 모가 매우 기쁘게 여겼다. 일이 끝나자 예녕預寧으로 찾아가 나무를 베어 문수당文殊堂을 지었고, 조성이 끝나 돌아오는 길에 어쩌다 강물에 떨어지고 말았다. 강의 물살이 급해 동행하던 이들이 건지려 했으나 건지지 못하였다. 도헌은 물에 떨어졌을 때 곧 관세음보살을 생각했다. 그러자 강바닥에서 기이한 빛이 보이더니 그림으로 그렸던 일곱 보살이 모두 앞에 나타나 도헌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그저 나무아미타불만 염하라. 그러면 이 액난이 곧 풀릴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물 위로 솟아올랐는데 옷과 신발이 젖어 있지 않았다. 지금 대운사에 일곱 보살상이 현존하고 있고, 아울러 그림이 물에 떨어졌던 사건의 기이한 영험도 기록되어 있다.
당의 석지익釋智益은 장사長沙 사람이고 성은 오吳씨이다. 일찍이 남쪽 오랑캐를 정벌하는 군졸로 있으면서 고기잡이를 좋아하는 성품이라 하얀 거북 한 마리를 잡아 삶아 먹게 되었다. 그러자 온몸에 종기가 돋더니 온통 문드러져 눈썹과 수염이며 손가락, 발가락이 남김없이 떨어져 버렸다. 절규하며 아직은 죽지 않은 목숨이라 안남시安南市에서 걸식하고 있을 때였다. 한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기며 말하였다.
“네가 마음을 돌이켜 관음대비주觀音大悲呪를 염하겠다면 내가 말로 가르쳐 주리라. 만약 열심히 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군졸은 그분의 말에 따라 배우고 일심으로 염송하였다. 그때부터 종기와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하더니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생겨났다. 완전히 치유되자 결국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복파伏波 장군의 고택에 정사를 건립해 주지를 지냈다.
당의 잠문본岑文本은 자가 경인景仁이고 극양棘陽 사람이며,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고 「보문품普門品」을 염송하였다. 한번은 배를 타고 오강吳江으로 가다가 중류에서 배가 뒤집혀 사람들이 모두 익사하게 되었다. 문본 역시 물에 빠졌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보문품」을 염송할 수 있으니 물에 빠지는 액난을 면해 주리라.”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이와 같이 세 번 들리더니 드디어 수면으로 떠올라 잠깐 사이에 언덕에 닿았다.

008_0547_a_01L雲寺法侶稱之時刺史元某欲畫觀
008_0547_a_02L世音七軸以憲練行委之憲令畫工
008_0547_a_03L齋戒運筆諸綵色悉以乳頭香代膠
008_0547_a_04L極莊嚴元深嘉之事畢徃預寧斫木
008_0547_a_05L造文殊堂排成將還忽然墮水
008_0547_a_06L流湍急同行欲拯不及憲墮水之際
008_0547_a_07L便思念觀世音見水底有異光所畫七
008_0547_a_08L菩薩俱在前謂憲曰爾但念南無阿彌
008_0547_a_09L陀佛此厄即解頃出水上衣履不濕
008_0547_a_10L今大雲寺七菩薩像現在兼畫落水事
008_0547_a_11L以誌其異

008_0547_a_12L
唐釋智益長沙人姓吳甞爲征蠻卒
008_0547_a_13L性好漁獵因得一白龜烹而食之
008_0547_a_14L遍身患瘡悉皆潰爛眉鬚手足指
008_0547_a_15L落無餘號呼未即死行乞於安南市中
008_0547_a_16L有一僧見而哀之謂曰汝可回心念觀
008_0547_a_17L音大悲呪吾當口授若能精進必獲
008_0547_a_18L善報卒依言受之一心念誦自是瘡
008_0547_a_19L痍漸復手指皆生旣平愈遂削髮爲
008_0547_a_20L於伏波將軍故宅建立精舍住持焉

008_0547_a_21L
唐岑文本字景仁棘陽人少信佛誦
008_0547_a_22L普門品嘗乘舟徃吳江中流舟覆
008_0547_a_23L俱溺死文本亦沒水中俄聞有人云
008_0547_a_24L能誦普門品水難應免如是者三

008_0547_b_01L하루는 집에서 재齋를 열자 한 스님이 뒤에 떠나며 말하였다.
“천하가 바야흐로 어지러워지고 있지만 그대는 좋은 인연 덕분에 다행히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태평성대를 만나 부유하고 귀한 사람이 되리라.”
말이 끝나자 그는 사라졌다. 재를 거두는 자리에서는 또 그릇 속에서 사리 두 알을 얻었다. 후에 그는 당 왕조에 출사하여 중서령中書令을 지냈다.
당 무덕武德 연중(618~626)의 일이다. 예천醴泉 사람 서선재徐善才는 항상 재계를 지키며 『관세음경』 염송을 천 번 넘게 하였다. 일찍이 경성京城으로 가서 연흥사延興寺를 짓는 공덕을 쌓고 돌아오는 길에 오랑캐 도적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붙잡은 한인漢人들을 모두 큰 절벽으로 끌고 가 죽이려고 하였다. 선재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오로지 『관음경』만 빠르게 염송하였다. 죽임을 당할 때 그는 전혀 느끼지 못했고, 밤이 되어서야 자신이 깊은 계곡 나뭇가지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절벽의 높이는 300여 척이나 되었다. 그러나 손으로 정수리를 만져 보자 미미한 통증만 느껴질 뿐 상처가 없었다. 천천히 나무에서 내려와 돌고 돌아 남쪽으로 약 수십 리를 걷자 날이 밝았고, 도적들과는 이미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완琬 법사가 이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 정관貞觀 연중(627~649)의 일이다. 하남河南의 동웅董雄은 대리승大理丞으로 있다가 이선동李仙童 사건에 연좌되었다. 임금은 진노하여 시어侍御 위종韋悰에게 당장 국문하게 하였고, 대리大理 이경현李敬玄과 사직司直 왕흔王忻 등 수십 명과 함께 옥에 갇히게 되었다. 동웅은 오로지 「보문품」을 염송하였는데 하루 30번을 염송하고 밤에도 쉬지 않았다. 그러자 형틀에 채운 자물쇠가 홀연히 저절로 풀렸고, 깜짝 놀라 감옥을 지키는 사람에게 알렸다. 그 밤에 감찰어사監察御史 장수일張守一이 숙직하다가 직접 살펴보고는 매우 괴이하게 여기며 다시 자물쇠를 채우고 단단히 봉한 뒤에 떠났다. 동웅이 다시 경을 염송하자 5경에 자물쇠가 다시 풀려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는데, 봉하면서 붙여 놓았던 글씨는 그대로였다. 관청 안팎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고, 사건도 무난히 해결되어 같은 방에 갇혔던 죄수들이 모두 방면되었다.
당 인덕麟德 연중(664~665)의 일이다. 경사京師 영흥방永興坊의 허엄許儼은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았다.

008_0547_b_01L浮水面須臾抵岸一日於家設齋
008_0547_b_02L僧後去謂曰天下方亂君以善緣
008_0547_b_03L不及難終逢太平致富貴言訖不見
008_0547_b_04L及徹齋復於椀得舍利二粒後仕唐爲
008_0547_b_05L中書令

008_0547_b_06L
唐武德中醴泉人徐善才常齋戒誦觀
008_0547_b_07L世音經逾數千遍曾徃京城延興寺
008_0547_b_08L修營功德皈時道逢胡賊將所掠漢人
008_0547_b_09L併向洪崖殺之善才知不免唯疾念觀
008_0547_b_10L音經當殺時了不自覺至夜方知身
008_0547_b_11L在深澗樹枝上去崖三百餘尺以手摩
008_0547_b_12L覺微痛而無傷漸下樹循循南行
008_0547_b_13L約數十里天曉去賊已遠得路還家
008_0547_b_14L琬法師嘗說其事

008_0547_b_15L
唐貞觀中河南董雄爲大理丞坐李仙
008_0547_b_16L童事上震怒使侍御韋悰鞠問甚急
008_0547_b_17L大理李敬玄司直王忻等數十人同繫
008_0547_b_18L雄專念普門品日誦三十遍夜亦
008_0547_b_19L不息枷鎻忽自解驚告守者其夜監
008_0547_b_20L察御史張守一直宿親視甚怪之
008_0547_b_21L鎻嚴封而去雄仍誦經五更鎻復解
008_0547_b_22L落地有聲而封題如故臺中內外聞者
008_0547_b_23L奇之事平同室囚俱獲免

008_0547_b_24L
唐麟德中京師永興坊許儼取魚爲業

008_0547_c_01L그러다 후에 병을 앓았는데 캄캄한 것이 죽은 듯하고, 몸이 불덩이처럼 붉었으며, 고통은 숯으로 지지는 것보다 더했다. 그가 스스로 말했다.
“화차가 달려들어 몸을 태우는 것만 보이는구나. 명부의 관리들이 물고기를 잡은 업의 무거움을 꾸짖고 현생으로 돌려보내 죗값을 받게 하는 것이다.”
며칠을 경과하며 살아났다 죽었다 하자 친척들이 공덕을 짓도록 권하였다. 그래서 관음상 두 구를 조성하여 공양하고 참회하였으며, 더불어 온 가족에게 담박한 음식만 먹도록 명하였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 병이 차도가 있었다.
당의 성규成珪는 천보天寶 초(742)에 장사위長沙尉로 있었고, 그의 부대가 하남河南으로 교목橋木을 운송하게 되었다. 막 양주揚州에 도착했을 때 바람을 만나 강물에 유실된 것이 매우 많았다. 주사州司는 그가 몰래 팔아먹은 것이라고 여겼고, 성규는 지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맘대로 사용했다고 거짓으로 인정하였다. 주사는 이 사건을 담부潭府로 넘겼다. 당시 반경천班景倩이 담부에 있었는데 그는 엄격히 사찰하는 관리였다. 그가 교리校理 양근楊覲을 양주로 파견해 성규를 잡아오게 하였다. 양근은 뇌물을 요구하며 법에도 없는 가혹한 형벌을 가하였다. 형틀에 자물쇠를 채우고 선실에 집어넣고는 사방에서 못질을 하고 음식을 넣어 줄 작은 구멍만 열어 두었다. 성규는 ‘담부에 도착하면 죽을 게 분명하다’라고 생각하고는 양주를 출발하는 날부터 곧 “고난을 구제하시는 관세음보살이여!” 하고 화살처럼 빠르게 마음속으로 염송하였다. 늘 하루에 한 끼만 먹었고, 혹은 먹지 않고서 물만 마시며 청정히 재계하였다. 그렇게 10여 일이 지나 저주滁州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음과 입으로 간절하고 지극하게 염송하는데 형틀에 채운 자물쇠가 저절로 열렸다. 이에 살펴보니 밤은 깊고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그는 못을 뽑고 제거해 선창을 나와서는 양근을 불렀다.
“네가 나를 어찌하겠느냐?”
양근이 깜짝 놀라 일어나서 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성규는 “내 차라리 강의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내질지언정 어찌 너희들 손에 달게 죽으랴.” 하고는 곧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처음 강바닥에 닿자마자 떠오르는 나무토막을 만나 그것을 끌어안고 수면에 뜰 수 있었으며, 물결에 의지해 노탄蘆灘까지 떠밀려 왔다. 날이 밝아 마을에 투신하자 거주하는 백성들이 그를 저주滁州로 송치하였다. 그곳 관료들은 모두 놀라고 감탄하였으며, 여정에 필요한 경비를 대신 마련하고는 성규에게 도성으로 들어가서 어사대御史臺에서 일의 잘못됨을 피력하라고 권하였다. 양근은 성규를 잃어버리고 나서 일시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흩어져 버렸으며, 이 일로 역시 출가하였다.

008_0547_c_01L後患疾冥然若死身赤如火痛踰炭
008_0547_c_02L自云但見火車來燒身冥官責其取
008_0547_c_03L魚業重遣現生受罪已經數日乍生
008_0547_c_04L乍死親戚勸作功德遂造觀音像兩軀
008_0547_c_05L供養懴悔仍令合家茹素未幾病遂差

008_0547_c_06L
唐成珪天寶初爲長沙尉部送河南
008_0547_c_07L橋木始至揚州遭風水遺失甚衆
008_0547_c_08L司謂其盗賣拷掠難堪妄承破用州司
008_0547_c_09L轉帖潭府時班景情爲潭府嚴察之吏
008_0547_c_10L遣校楊覲至揚執珪覲欲婪賄
008_0547_c_11L刑逼勒以鏁枷附於船梁四面釘塞
008_0547_c_12L唯開小孔通食珪意若至潭府必死
008_0547_c_13L揚州日便矢心念救苦觀世音菩薩
008_0547_c_14L一日一食或不食但飮水淸齋經十
008_0547_c_15L餘日至滁口心口念誦懇至枷鏁忽
008_0547_c_16L然自開乃伺夜深舟人盡臥拔除所
008_0547_c_17L出艙呼覲曰汝如我何覲驚起問
008_0547_c_18L何得至此珪曰我寧葬江魚腹中豈甘
008_0547_c_19L死汝軰手耶即跳入水初至江底
008_0547_c_20L一浮木抱之得浮水面憑浪送入蘆灘
008_0547_c_21L天明投村落中居民送至滁州官寮悉
008_0547_c_22L爲驚嘆代具行李途費勸珪入京
008_0547_c_23L御史臺申枉覲旣失珪一時潰散
008_0547_c_24L此亦出家焉

008_0548_a_01L
당의 왕기王琦는 태원太原 사람이며 형양滎陽에 거주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냄새나고 핏물이 비치는 음식은 먹지 않았다. 대력大曆 초(766)에는 구주 사호衢州司戶가 되었다. 『관음경』 지송하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라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자주 중병을 앓았어도 경을 풍송하면 낫지 않는 적이 없었다. 또 염송할 때마다 짐승과 기이한 형상을 한 귀신들이 나타나 괴롭히려 하였지만 왕기의 마음이 반듯했기 때문에 침범할 수 없어 스스로 소멸하고는 하였다.
당 형양衡陽의 한 선비는 나이가 많도록 자식이 없어 자손을 기원하며 안 가 본 곳이 없었다. 그러다 홀연히 『백의관음경白衣觀音經』을 가진 한 노스님을 만났고, 그가 그것을 주며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수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으로 원하는 바에 따라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자식을 원한다면 곧 지혜로운 아들을 낳을 것이며, 하얀 태의胎衣에 겹겹이 싸여 태어나는 이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부부는 정성을 다해 한 장藏을 수년에 걸쳐 원만히 염송하였다. 그러자 세 아들을 낳았는데 과연 하얀 태의에 겹겹이 싸여 태어나는 이적이 있었다. 형양 태수가 직접 그 일을 목격하고는 거듭 인쇄하여 보시하면서 그 역시 자손을 기원하였다. 그러자 그해를 넘기지 않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당의 맹지검孟知儉은 병주幷州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병으로 갑자기 죽었는데 평상시처럼 관아가 보여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곳에서 옛날에 알던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관리가 되어 있었다. 그가 “어쩌다 왔느냐?”며 모든 사정을 알려 주었기에 그때서야 자신이 간 곳이 명부라는 걸 알았다. 관리가 장부를 검토하면서 말했다.
“그대는 평생 복을 지은 과보가 없으니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지검이 말하였다.
“저는 일생 『심경心經』과 『관음경』을 많이 염송하였습니다. 비록 그 횟수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약 3만, 4만 번은 될 겁니다.”
관리가 과연 장부를 검토해 그 사실을 발견하고는 명부의 왕에게 아뢰어 풀려나 돌아오게 되었다. 관리가 “그대의 앞길을 알고 싶은가?” 하고 물으면서 장부를 그에게 보여주었는데, 위쪽에 “지검知儉에게 합당한 운세는 출세하여 조주 참군曹州叅軍이 되고, 등주 사창鄧州司倉으로 옮겨 갈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고는 곧 덮어 버리며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어느 컴컴한 동굴로 들어가자 드디어 살아났다. 그의 운이라는 게 어떤 일인지 알지 못했는데 얼마 후 양식을 운송할 자를 모집한다는 칙령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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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王琦太原人居滎陽自童孺不茹
008_0548_a_02L葷血大曆初爲衢州司戶性喜持誦
008_0548_a_03L觀音經由少及長數患重病諷經無
008_0548_a_04L不差愈又誦時每有異類奇授 [10] 之鬼
008_0548_a_05L來相觸惱以琦心正不能干犯自致
008_0548_a_06L消滅

008_0548_a_07L
唐衡陽一士人年高無子祈嗣靡所不
008_0548_a_08L忽遇老僧持白衣觀音經授之曰
008_0548_a_09L佛說此經有能授持隨心所願獲福
008_0548_a_10L無量若欲求子即生慧智之男有白
008_0548_a_11L衣重包之異於是夫婦竭誠誦滿一藏
008_0548_a_12L數年遂生三子果有白衣重包衡陽太
008_0548_a_13L親覩其事重爲印施亦以祈嗣
008_0548_a_14L逾年生一子

008_0548_a_15L
唐孟知儉并州人少時病忽亡見衙
008_0548_a_16L府如常時不知其死逢故人爲吏謂曰
008_0548_a_17L因何得來具告知始知所至爲冥途
008_0548_a_18L吏爲檢籍曰君平生無福果何以得還
008_0548_a_19L知儉曰我一生誦多心經及觀音經
008_0548_a_20L雖不紀數約三四萬遍吏果檢獲之
008_0548_a_21L爲白冥王放還吏問欲知爾前程乎
008_0548_a_22L遂以簿示之上載知儉合運出身爲曹
008_0548_a_23L州叅軍轉鄧州司倉即掩却不許看
008_0548_a_24L引入一黑坑遂活不知運是何事尋有

008_0548_b_01L그 일에 선발되어 조주 참군의 직위가 주어졌다가 등주 사창으로 옮겨 갔다. 또 진주 판사晋州判司로 뽑혔는데 그곳에 도착하지 못하고 죽었다.
당의 이흔李昕은 천수천안주千手千眼呪를 훌륭히 지송하였다. 어떤 사람이 학질이 걸려 이흔이 그를 위해 주문을 외워 준 적이 있다. 그러자 그 귀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에게 “내 본래 당신에게 큰 곤욕을 치르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씨네 열넷째 아들이 무서워 감히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겠구나.”라고 하였으니, 열넷째는 바로 이흔이다. 이흔의 집은 동군東郡에 있었고, 그가 하남河南을 여행할 때였다. 그의 여동생이 질병에 걸려 죽었다가 며칠 만에 다시 살아나 말하였다.
“처음에 여러 사람들에게 붙잡혀 무덤 사이로 끌려 들어가자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씨네 열넷째 아들의 여동생이다. 그가 지금 하남에서 돌아오는 길인데 곧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여동생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분명 신주神呪로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할 것이다. 차라리 일찌감치 돌려보내는 것만 못하다.’”
여동생이 살아나자 이흔 역시 집에 도착하였다.
당의 도림령桃林令 한광조韓光祚가 가솔을 거느리고 임지로 가다가 화산묘華山廟를 지나는 길에 수레에서 내려 참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묘에 들어서자 애첩이 갑자기 죽어 버렸다. 무당을 시켜 신에게 간청하게 하자 무당이 말하였다.
“삼랑三郞이 당신의 첩을 데려가려 합니다. 간청해 일단 화를 면했지만 현縣에 도착하면 결국 그녀를 잡아갈 것입니다.”
광조는 임지에 도착하자마자 대장장이를 불러 첩을 위해 금으로 관세음보살상을 주조하게 하였고, 이 액난을 면하게 되기를 바랐다. 5일 후 첩이 다시 갑자기 죽었다가 한나절 만에 다시 살아나 말하였다.
“화산부군華山府君으로 가자 마차와 기병을 갖추고는 맞이하려고 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때 금빛이 번쩍이는 한 스님이 나타나 그 앞을 막아서자 마차와 기병들이 감히 그분을 넘어서지 못하고 모두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광조는 이 일로 더욱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송宋의 경사京師 사람 적즙翟楫이 호주湖州 사안진四安鎭에 거주할 때 일이다. 나이 50에 자식이 없어 관음상을 그려 정성을 다해 기도하자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꿈에 흰옷을 입은 부인이 나타나 한 아이를 그릇에 담아 주었는데 자태가 매우 아름답고 빼어났다. 그러나 그 아이를 안으려 하자 소 한 마리가 그 사이를 가로막아 결국 아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한 달을 채 키우지 못했다.

008_0548_b_01L敇募運糧因選授曹州叅軍轉鄧州司
008_0548_b_02L倉去任又選晋州判司未至而卒

008_0548_b_03L
唐李昕善持千手千眼呪有人患瘧
008_0548_b_04L昕呪之其鬼見形謂人曰我本欲大困
008_0548_b_05L辱君爲懼李十四郞不敢復來矣
008_0548_b_06L四郞即昕也昕家在東郡客遊河南
008_0548_b_07L其妹染疾死數日回生云初被數人
008_0548_b_08L引入墓間中一人云此李十四郞妹
008_0548_b_09L今從河南還將至家彼善人也如聞
008_0548_b_10L吾等取其妹必以神呪窘我等不如早
008_0548_b_11L送還之女括昕亦到舍

008_0548_b_12L
唐桃林令韓光祚携家之官途經華山
008_0548_b_13L下車謁焉入廟而愛妾暴死令巫
008_0548_b_14L請於神巫言三郞欲取汝妾旣請且
008_0548_b_15L至縣終當取之光祚到任乃召金
008_0548_b_16L爲妾鑄金爲觀世音像求免此難
008_0548_b_17L五日妾復暴卒半日方甦云適華山府
008_0548_b_18L備車騎來迎出門有一僧金色遮其
008_0548_b_19L車騎畏不敢過因之散去光祚由
008_0548_b_20L是益信

008_0548_b_21L
宋京師人翟楫居湖州四安鎭五十無
008_0548_b_22L繪觀音像虔禱其妻方娠夢白衣
008_0548_b_23L婦人以盤送一兒姿甚韶秀欲抱取
008_0548_b_24L一牛橫隔其中竟不可得旣生男

008_0548_c_01L다시 더욱 정성을 다해 기도하자 그의 꿈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는 소고기를 먹으면서 어찌 이러는가?”
적즙은 송연하여 결국 온 집안사람들이 다시는 먹지 않겠노라 맹세하였다. 그리고 예전의 그 부인이 아이를 보내 주는 꿈을 꾸었다. 과연 아들을 낳았고 후에 존귀한 사람이 되었다. 극부克復2)가 살펴보니, 대사大士가 아이를 보내는데 결국 소 한 마리가 장애가 되었었다. 어찌 대사의 신비한 힘이 소 한 마리를 당하지 못하겠는가. 진실로 그 사람의 선한 복덕의 힘이 악업의 힘을 대적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잘못을 끝까지 뉘우치고 결국 아들을 얻었으니, 곧 대사가 자비한 영험을 드러냄이 더욱 기이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마음을 씻고 잘못을 고치는 것이 바로 구원하는 땅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겠다.
송 율수溧水의 유집兪集이 선화宣和 연중(1119~1125)에 흥화위興化尉로 부임하게 되었다. 가족들을 거느리고 뱃길로 가는데 회수淮水에는 조개가 많아 배에 탄 사람들이 매일같이 그것을 사서 먹었다. 유집은 그것을 보고 곧바로 조개를 사서 강에다 풀어 주었다. 한번은 매우 무거운 한 광주리의 조개를 많은 사람들이 삶아 먹으려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유집이 배나 되는 가격으로 배상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그 조개들은 결국 모두 솥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자 갑자기 솥에서 큰소리가 나더니 불꽃이 솟아올랐다. 배에 탄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솥을 열어 살펴보자 큰 조개 하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껍질 사이에서 관세음보살상이 나타났고, 그 곁에는 대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 상호는 단정하고 엄숙했으며, 옷이며 관冠과 영락 또 대나무의 잎과 가지와 줄기가 모두 미세한 구슬을 엮어 만든 것이었다. 유집은 배에 탄 사람들에게 모두 부처님을 염송하며 죄를 뉘우치게 하였고, 조개껍질을 취하여 집으로 돌아와 받들어 모셨다.
송 순희淳熈 말년(1189)에 건창建昌의 주졸走卒 양량楊亮이 병이 들었는데 부절符節을 든 두 관리가 나타나 추포하더니 양량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잠깐 사이에 관부官府에 도착하자 왕이 물었다.
“살아 있을 때 어떤 공덕을 지었느냐?”
“이 몸이 주졸의 군역을 받들어 차사差使를 만날 때마다 가도록 정해진 거리를 감히 어기지 않았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 일을 물은 것이 아니다. 그런 것 말고 어떤 음덕이 있느냐?”
양량은 그곳이 명부의 관아라는 걸 비로소 깨닫고 말하였다.
“그저 『관세음경』을 염송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시 물었다.
“경전은 염송했고, 그럼 과거에 어떤 좋은 일을 했느냐?”

008_0548_c_01L彌月不育又禱加虔有聞其夢者
008_0548_c_02L楫曰子嗜牛肉豈爲是歟楫悚然
008_0548_c_03L誓擧家不復食仍夢前婦人送兒至
008_0548_c_04L果生男後貴顯克復按大士送兒
008_0548_c_05L爲一牛作梗豈大士神力不及一牛
008_0548_c_06L實其人之善福力不敵惡業力耳究竟
008_0548_c_07L悔禍而卒得子則大士之慈悲靈顯
008_0548_c_08L奇矣然則洗心改過乃承受救度之地
008_0548_c_09L

008_0548_c_10L
宋溧水兪集宣和中赴任興化尉
008_0548_c_11L家舟行淮上多䖫蛤舟人日買食之
008_0548_c_12L集見輒買放諸江偶見一筐甚重衆欲
008_0548_c_13L烹食集倍價償之不可遂置諸釜中
008_0548_c_14L忽大聲從釜起光焰上騰舟人恐
008_0548_c_15L視之一大䖫裂開殼間現觀世音像
008_0548_c_16L傍有竹兩竽相好端嚴衣冠瓔珞
008_0548_c_17L竹葉枝幹皆細珠綴成集令舟中皆誦
008_0548_c_18L佛悔罪取殻皈家供奉焉

008_0548_c_19L
宋淳熈末建昌走卒楊亮病見兩吏持
008_0548_c_20L符追已亮與之俱出俄到官府王問
008_0548_c_21L生時有何功德對曰身供趍走之役
008_0548_c_22L遇差使不敢違程限王曰不問此事
008_0548_c_23L別有何陰隲亮始悟爲冥司曰但念得
008_0548_c_24L觀世音經又問旣誦經曾行若何善事

008_0549_a_01L
“소인에게 어찌 자랑할 만한 착한 일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그저 본분을 지킬 줄 알고 사람을 해치지 않았을 뿐입니다.”
왕은 장부를 검사해 보도록 명령하였고, 진술이 사실로 드러나자 드디어 다시 살아나게 하였다.
송 건녕建寧 사람 뇌성간賴省幹의 점술사는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자였다. 평소 요술을 부렸고, 사람을 죽여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항상 절浙 지역에서 열 살 남짓의 소녀들을 찾아내 그들을 양육하여 공물로 바치는 데 사용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불서佛書를 염송하기 좋아하여 소녀는 그녀를 따라 습관처럼 『심경心經』을 염송하였다. 차례에 따라 이 소녀가 제사에 바쳐지게 되었다. 그들은 소녀를 깨끗이 씻고 아름답게 장식한 다음 빈방에 넣었다. 그리고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떠나가 버렸다. 소녀는 분명 죽을 것이라 판단하고는 일심으로 경을 염송하였다. 한밤중이 되자 어떤 물건이 하늘에서 창을 통해 내려왔는데 그 빛이 번쩍번쩍하였다. 너무 무서워 급히 게제주揭諦呪를 염하자 소녀의 입에서 홀연히 빛이 나왔다. 그 물건은 뒷걸음질 치더니 앞으로 나오려다가 다시 물러났다. 한참 있자 입에서 나온 빛이 점점 커지더니 이 물건을 쏘았다. 그러자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땅에 널브러졌다. 그 방은 길 가까이 있었다. 마침 밤 순찰을 돌던 병사가 그곳을 지나다가 “사람 죽여요.”라는 여인의 큰 비명 소리를 듣게 되었다. 병사는 소속 부대에 보고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인솔해 벽을 부수고 소녀를 구출하였다. 그때 거대한 흰 구렁이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에 뇌성간과 집안사람들을 체포하고 국문해 죄를 자백받고는 얼굴에 죄명을 새겨 해외로 유배시켰다. 그 집안을 기재하면 지금 첨안詹安의 무거택撫居宅이다.
송 장효순張孝純에게 손자가 있었는데 다섯 살이 되자 걷지를 못했다. 누군가 그에게 일러 주었다.
“얼마 전에 경기 지역에 사는 한 농부가 넓적다리와 발에 병이 들어 오래도록 앓았는데, 그저 매일같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지송하며 그치지 않자 드디어 관세음보살이 화현하는 감응을 입게 되었답니다. 그때 이런 사구게를 남겼답니다.

大智發于心    큰 지혜는 마음에서 일어나나니
于心無所尋    마음에서 찾을 것 없으면
成就一切義    일체의 뜻을 성취하여
無古亦無今    예도 없고 지금도 없으리라.

농부가 이 게송을 꼬박 100일 동안 염송하자 고질병이 단번에 나았답니다.”
효순은 드디어 그의 손자와 유모에게 재계하면서 이 게송을 지송하게 하였고, 3개월이 지나자 씩씩한 걸음걸이가 평상시처럼 돌아왔다. 넓적다리와 발이 아픈 아이가 이 게송을 염송하면 모두 효험이 있었다.
송의 도관원외랑都官員外郞 여굉呂宏과 아내 오吳씨 부부는 각기 재계를 청정히 지키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밝게 깨달은 자들이다.

008_0549_a_01L對曰小人郍得一善可稱但知守本分
008_0549_a_02L不害人耳王命檢籍如所言遂得再生

008_0549_a_03L
宋建寧人賴省幹之卜天下知名素挾
008_0549_a_04L妖術殺人祭鬼常於浙中覔十餘歲
008_0549_a_05L童女養以供用其母喜誦佛書女隨
008_0549_a_06L之習念心經嗣此女當輪祭沐浴裝飾
008_0549_a_07L納空室中鎻其戶而去女自分必死
008_0549_a_08L一心誦經夜半覺有物自天窓下光燁
008_0549_a_09L燁然怖甚急念揭諦呪女口中忽有光
008_0549_a_10L此物逡巡欲進復却良久口中光漸
008_0549_a_11L出射此物鏗然有聲仆地其室近
008_0549_a_12L値夜巡卒過女大呌殺人卒報所
008_0549_a_13L率衆破壁取女見一大白蠎死矣
008_0549_a_14L捕賴及家人鞠問伏辜黥配海外
008_0549_a_15L其家今爲詹安撫居宅

008_0549_a_16L
宋張孝純有孫五歲不能行或告之曰
008_0549_a_17L頃推甸間一農夫病腿足甚久但日持
008_0549_a_18L觀世音名號不輟遂感觀音示現因留
008_0549_a_19L四句偈曰大智發于心于心無所尋
008_0549_a_20L成就一切義無古亦無今農夫誦偈滿
008_0549_a_21L百日痼病頓愈孝純遂敎其孫及乳母
008_0549_a_22L齋戒持誦三月而步武如常兒患腿足
008_0549_a_23L誦之皆驗

008_0549_a_24L
宋都官員外郞呂宏妻吳氏夫婦各齊

008_0549_b_01L오씨는 관세음보살을 정성을 다해 모시면서 영험한 감응이 있었다. 매일 깨끗한 방에 병과 항아리 수십 개를 줄지어 늘어놓고 물을 가득 담고는 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주문을 염송하였는데, 그러면 곧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방광放光하고 그 빛이 병과 항아리로 들어갔다. 병으로 고생하던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많이들 치유되었고, 주문을 외운 그 물은 여러 해를 두어도 상하지 않았으며 큰 추위에도 얼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를 관음현군觀音縣君이라 불렀다. 그에게 두 시녀가 있었는데 그들 역시 정토의 업을 닦았다. 그중 한 사람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엄격하게 계율을 받들었다. 간혹 한 달 내내 음식을 먹지 않고 오씨가 주문을 외운 관음정수觀音淨水 한 잔만 마시곤 하였는데, 그러면 홀연히 부처님과 보살들이 목전에 나타나고는 하였다. 그렇게 3년 만에 왕생하였다.
송의 정鄭씨는 전당錢塘 사람이다. 그는 『관음경』 염송을 일과로 삼았고 염불을 쉬지 않았다. 후에 병석에 있다가 목욕하기를 원하더니, 목욕이 끝나자 서쪽을 향해 앉아 집안사람들에게 물었다.
“경쇠 소리가 들리는가? 정토의 여러 성인들께서 이렇게 오셨구나.”
그러고 나서 합장한 채 기쁨에 넘치며 말하였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오셨다. 관세음보살은 손에 금대를 들었고, 여래께서 나를 맞아 자리에 오르게 하시는구나.”
그러더니 곧바로 입적하였다.
원元 평강平江의 승려 혜공惠恭은 위장이 뒤집어지는 병을 앓아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밤에 고양이 한 마리가 뱃속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었는데, 이때부터 병이 나날이 심해지고 생선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혜공은 이것이 업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드디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100만 번 염송하고 매일 대비주大悲呪를 108번 지송하겠다는 뜻을 일으켰다. 그 후 다시 꿈에 어느 산중에 갔다가 한 도인을 만났는데 그가 “내가 너에게 약을 주리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조롱 속에 담긴 닭 한 마리를 가지고 앞으로 왔다. 그러자 고양이가 스님의 입에서 뛰어나오더니 곧장 닭을 잡으려고 조롱 속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라 깨어나자 병이 순식간에 치유되었다.
원의 남경南京 대녕방大寧坊의 왕옥王玉은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다. 지원至元 2년 을축년(1265)에 벗인 마馬 공의 술집 신단 앞에서 『백의관음경白衣觀音經』을 보고 “이 경은 어디서 난 건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마 공이 말했다.
“경신년(1260) 봄에

008_0549_b_01L戒淸修䁱悟佛理吳虔事觀音有靈感
008_0549_b_02L每於淨室列置瓶缶數十以水注滿
008_0549_b_03L手持楊枝誦呪輒見觀音放光入瓶缶
008_0549_b_04L病苦者飮水多愈所呪水積歲不
008_0549_b_05L大寒不凍世號觀音縣君有二侍
008_0549_b_06L亦修淨業其一奉戒嚴苦或終月
008_0549_b_07L不食但日飮吳所呪觀音淨水一盞
008_0549_b_08L而忽見佛及菩薩在目前三年得徃生
008_0549_b_09L

008_0549_b_10L
宋鄭氏錢塘人日課觀音經念佛不
008_0549_b_11L後病中索浴浴畢西向坐問家人
008_0549_b_12L聞磬聲乎淨土諸聖且至已而合
008_0549_b_13L掌喜躍曰佛菩薩來觀音手執金臺
008_0549_b_14L如來接我登座遂奄然而寂

008_0549_b_15L
元平江僧惠恭病翻胃不能飮食
008_0549_b_16L夢一猫入腹從此病日甚思食魚
008_0549_b_17L自知是業報遂發意誦觀音菩薩百萬
008_0549_b_18L日持大悲呪百八遍後復夢至山中
008_0549_b_19L遇道人曰吾與汝藥俄有靑衣童子
008_0549_b_20L籠一雞至前猫自僧口躍出經入籠摛
008_0549_b_21L驚覺而病頓愈

008_0549_b_22L
元南京大寧坊王玉年踰四十無子
008_0549_b_23L元二年乙丑於友人馬公酌家神前
008_0549_b_24L白衣觀音經問此經何來馬云庚申春

008_0549_c_01L대군大軍이 남인南人을 잡아 남쪽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 집에 머물렀지. 그때 흘리고 간 것이네.”
왕옥이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온 마음을 다해 지송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묘년(1267) 4월 14일 밤에 그의 장모 유劉씨의 꿈에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사람이 어린아이를 하나 데리고 와서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성인의 종을 주려고 왔다.”
유씨가 받아 안고 황홀해하다가 잠에서 깨었다. 다음날 사시에 아내 장張씨가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신비한 기운이 빼어나고 과연 하얀 태의에 싸여 태어나는 기이함이 있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성승노聖僧奴라고 하였다. 부부는 드디어 500권을 간행 배포하여 아이를 보내준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원을 세웠다.
만력萬曆 경인년(1590)에 원료범袁了凡 공이 자손을 기원하는 진실한 전詮들을 판각하면서 이 경도 실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경의 주문은 원래 대장경에서 나왔으니 이름은 수심다라니隨心陀羅尼이다. 이를 수지하는 자는 기원하는 일체를 모두 만족한다. 만일 자식을 원해 이 경을 지송한다면 하얀 태의에 겹겹이 싸여 태어나는 영험이 왕왕 있었으며, 신령한 감응이 매우 많아 모두 기재할 수 없다.”
원의 도陶씨네 열여섯째는 상숙常熟 서촌徐村 사람이다. 나이 스물여섯에 혼자가 되었고 자식도 없었다. 그는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며 항상 「관음보문품觀音普門品」을 지송하였다. 그러다 홀연히 흰옷을 입은 사람이 손에 든 하얀 연꽃 한 송이를 주어 그것을 먹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깬 후 마음과 정신이 자못 기이하였다. 이어 자그마한 전각 하나를 단장해 서쪽을 향해 『아미타경』을 염송하고 염불하였다. 그렇게 3년을 하자 부처님께서 광명을 나타내셨고, 경함經函 위에 구슬 크기만 한 불덩어리가 보였다. 도씨가 경을 태우면 어쩌나 싶어 손으로 내려쳤는데 사리였다. 그렇게 사리 한 알을 얻었다. 죽을 때 화불化佛이 찾아와 영접하였고, 대중과 이별한 후 서거하였다.
명明 태종太宗 영락永樂 15년(1417) 가을 9월 12일 황제가 불경을 반포하여 대보은사大報恩寺에 이르렀다. 그날 밤 절의 탑에서 보배 구슬 같은 사리의 광명이 보였으며, 13일에는 오색의 털 같은 빛이 나타났다. 대신들이 운집하여 받든 날에는 천불과 관세음보살과 나한羅漢의 오묘한 모습이 모두 모였다.

008_0549_c_01L大軍南還擄帶南人止宿本家遺下
008_0549_c_02L而去玉取回專心持誦不怠丁卯歲
008_0549_c_03L四月十四夜岳母劉氏夢白衣人頭戴
008_0549_c_04L金冠携一童子來曰吾與汝送聖奴來
008_0549_c_05L劉氏接抱恍然而寤明日巳時妻張
008_0549_c_06L氏生一男神氣聳秀果有白衣之異
008_0549_c_07L即名子曰聖僧奴夫婦遂發願刊施五
008_0549_c_08L百卷以酬抱送之恩萬曆庚寅袁公
008_0549_c_09L了凡刻祈嗣眞詮載此經云經況原
008_0549_c_10L出大藏名隨心陀羅尼受持者一切祈
008_0549_c_11L悉令滿足若求子持誦此經徃徃
008_0549_c_12L獲白衣重包之驗靈應甚多不具載

008_0549_c_13L
元陶氏十六娘常熟徐村人年二十六
008_0549_c_14L寡居無子願生淨土恒持念觀音普門
008_0549_c_15L忽夢白衣人手挈白蓮花一朶
008_0549_c_16L食之覺後心神頗異嗣裝一小閣西
008_0549_c_17L向誦彌陀經念佛甫三年見佛現光明
008_0549_c_18L經凾上有火團如彈子大氏恐燒經
008_0549_c_19L手撲之乃得舍利一顆終時化佛來迎
008_0549_c_20L別衆而去

008_0549_c_21L
明太宗 [11] 永樂十五年秋九月十二日
008_0549_c_22L頒佛經至大報恩寺是夜寺塔見舍
008_0549_c_23L利光如寶珠十三日現五色毫光
008_0549_c_24L雲捧日千佛觀音菩薩羅漢妙相畢集

008_0550_a_01L이어 반포한 불전佛典이 회안淮安에 이르러 나눠 주자 또 오색의 둥근 광명이 목격되었으며, 고운 빛깔의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고 구름 사이로 보살ㆍ나한ㆍ하늘나라 꽃ㆍ보배 탑ㆍ용ㆍ봉황ㆍ사자ㆍ코끼리가 나타났으며, 또 붉은 새와 새하얀 학들이 원을 그리며 선회하였다. 이에 군신들이 표表를 올려 칭찬하고 축하하자 황제가 크게 기뻐하였다.
명 온주溫州의 의승醫僧 법정法程은 자가 무왕無枉이다. 어려서 장님이 되었는데, 온갖 방법으로 치료해 보아도 낫지 않자 그저 밤낮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만 염송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15년에 꿈에 보살이 나타나 그를 부르며 앞으로 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어떤 물건이 그의 발을 붙잡기라도 한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자 보살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대는 전생에 뜸을 뜨는 사람이었다. 실수로 사람의 눈을 손상시켰으니 금생에 그 과보를 받아야만 한다. 내 너의 성심을 불쌍히 여겨 의식만큼은 풍족하게 해 주리라.”
그리고는 품 안을 더듬더니 보배 구슬을 한 움큼 집어 그에게 주었다. 깨어난 뒤로 그의 의술이 크게 알려져 옷과 발우가 매우 풍족해졌으며, 그 후 오랜 수명을 누렸다.
명의 유곡현劉谷賢은 황주黃州 사람이며 호분좌위군虎賁左衛軍 소속이다. 일찍이 태감太監 정화鄭和를 따라 해외의 수많은 나라에 사신을 다녀왔다. 배가 대해양大海洋을 지날 때였다. 유곡현이 갑자기 발이 미끄러져 물에 떨어졌는데 그때 바람을 안은 돛이 쏜살 같아 그를 구할 수가 없었다. 정화는 사람들에게 돛대 위로 올라가 살펴보라 명하였다. 그러자 멀리 한 사람이 파도 속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이 감감하게 보였다. 그러나 거리가 수십 리는 되어 모두들 다시 살아날 도리가 없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유곡현이 배를 따라와 배에 탄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며 도구를 사용해 그를 끌어올렸는데, 그때 한 길(丈) 남짓의 큰 물고기를 보았고 갑자기 사라졌다.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기자 유곡현이 말하였다.
“이 물고기가 나를 이곳까지 싣고 왔습니다. 물에 가라앉으려 할 때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물고기가 곧바로 지느러미로 부축해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물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물었다.
“그대는 평소 어떤 좋은 일을 했기에 이런 과보를 받게 된 것인가?”
그러자 유곡현이 말하였다.
“그저 『관음경』만을 염송했을 뿐입니다.”
명 복주福州 남대사南臺寺에서 소조塑造 관음상觀音像을 새로 조성하면서 그 예전의 것을 헐어 버리려고 하였다.

008_0550_a_01L續頒佛曲 [12] 至淮安給散又覩五色圓光
008_0550_a_02L彩雲滿天雲中現菩薩羅漢天花寶塔
008_0550_a_03L龍鳳獅象又有紅鳥白鶴盤旋飛繞
008_0550_a_04L羣臣上表稱賀上大嘉悅

008_0550_a_05L
明溫州醫僧法程字無枉少瞽百端
008_0550_a_06L治之不愈但晝夜誦觀世音名號如是
008_0550_a_07L十五年夢中聞菩薩呼之使前若有物
008_0550_a_08L縶其足不可動菩薩嘆曰汝前世爲
008_0550_a_09L灸師誤損人眼今生當受此報吾憐
008_0550_a_10L汝誠心當使衣食豊足遂探懷中
008_0550_a_11L寶珠滿手與之旣寤醫道大行衣鉢
008_0550_a_12L甚富後享高壽

008_0550_a_13L
明劉谷賢黃州人隷虎賁左衛軍
008_0550_a_14L從太監鄭和使海外諸番國舟經大海
008_0550_a_15L劉忽失脚墮水時風帆迅駛不可
008_0550_a_16L救援和令人升桅竿望之遙見一人隱
008_0550_a_17L隱出沒波濤中相去數十里咸謂無復
008_0550_a_18L生理須臾劉追及舟舟中人大喜
008_0550_a_19L以物引上見大魚長丈餘悠然而去
008_0550_a_20L人皆異之劉曰此魚載我至此將沒者
008_0550_a_21L數次魚輒以鬐鬣負起故水不入口
008_0550_a_22L舟中人問爾平生有何善果致得此報
008_0550_a_23L劉云但念觀音經耳

008_0550_a_24L
明福州南臺寺塑觀音像將毁其舊

008_0550_b_01L그러자 소조하던 장인 임 옹林翁이 그것을 얻어서 집으로 돌아와 섬겼다. 그리고 수개월 후 배를 몰고 바다로 들어갔는데 배가 파손되어 빠지게 되었다. 그는 급히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말하였다.
“제가 예전에 보살님을 구했는데 보살께서 어찌 저를 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몸이 곧 저절로 떴고, 판자 하나를 만나 그것에 올라탔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파도 속에서 약 100여 리를 조류를 따라 작은 포구로 흘러 들어갔다. 그곳에서 잃어버렸던 물건 한 상자를 찾아 그것을 밑천 삼아 돌아올 수 있었다. 이에 사람들이 관세음보살이 도운 것이라고 여겼다.
명 심견천沈見泉의 조상이 여리黎里 나중사羅重寺를 유람하다가 후전後殿이 무너져 관세음보살 머리에 삿갓을 씌워 놓은 것을 보았다. 이에 탄식하며 말하였다.
“보살께서는 자비로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전각을 중수하기를 발원하오니, 원하옵건대 저의 자손 가운데 한둘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족하겠습니다.”
돌아가 그의 부인과 상의하자 부인이 말하였다.
“지금 쌀 수백 석이 있으니 속히 은전으로 바꾸십시오. 혼자 힘으로도 이 공덕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기둥이며 건물이 법다운 모습을 갖춰 새로 지은 것처럼 환해졌다. 그의 손자 요중堯中과 증손 몽두夢斗가 차례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명의 왕응길王應吉은 평소에 정성을 다해 관세음보살을 섬겼다. 만력萬曆 임인년(1602)에 사신을 받들어 동쪽으로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가던 길에서 마을로 돌아왔고, 목에 가래가 걸리고 화끈거리는 질병을 앓아 물이나 미음도 삼킬 수 없었다. 7일째 되던 날 꿈속에서였다. 그가 어깨에 메는 가마를 타고 대하호大河滸를 순방하는데 갑자기 앞에 가던 사람이 발을 삐끗하여 왕응길이 거꾸러지며 물속에 빠져 버렸다. 그러자 물고기와 갑각류 등 갖가지 종류가 앞에 나타났다. 그때 그는 ‘이런 종류를 내가 예전에 먹었기 때문에 지금 재난을 만난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꿈인 듯 생시인 듯 어떤 사람이 왕응길을 부축해 언덕으로 올라왔다. 그곳엔 붉은 해가 허공에 떠 있고 관음대사觀音大士가 바위에 기대앉아 있었다. 왕응길이 손으로 옷을 만져 보았더니 젖지 않았다. 이에 머리를 조아려 감사드리자 대사가 말하였다.
“너희 집안이 대대로 나를 받들었기에 구해 주러 온 것이다. 다만 살생한 업이 너무 많아 이런 병에 걸리게 된 것이니, 만약 살생을 금한다면 곧 치유될 것이다.”
왕응길이 말하였다.
“널리 제도하시는 자비의 힘을 받들어 이 몸은 마음을 삼가겠습니다. 어찌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깨어나 보니 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008_0550_b_01L塑工林翁求歸事之後數月操舟入海
008_0550_b_02L舟壞而溺急呼觀音曰我嘗救菩薩
008_0550_b_03L菩薩寧不救我語訖身便自浮得一板
008_0550_b_04L乘之驚濤自天約行百餘里隨流入
008_0550_b_05L小浦中獲遺物一笥頗有所資而皈
008_0550_b_06L人以爲觀音之助

008_0550_b_07L
明沈見泉祖遊黎里羅重寺見後殿毁
008_0550_b_08L觀音首頂箬笠嘆曰菩薩慈悲
008_0550_b_09L與人智慧某願重修此殿求吾子孫
008_0550_b_10L有一二護書者足矣皈謀之婦婦曰今
008_0550_b_11L有米數百石速易銀獨力完此功德可
008_0550_b_12L不曰棟宇法相煥然鼎新其孫堯
008_0550_b_13L曾孫夢斗相繼登第

008_0550_b_14L
明王應吉泰虔奉觀世音萬曆壬寅
008_0550_b_15L奉使東行便道還里患痰火疾水漿
008_0550_b_16L不能咽者七日夢乘肩輿循大河滸
008_0550_b_17L忽前人失足王顚墮水中鱗甲之類
008_0550_b_18L種種見前因念此類我嘗啖之今爲
008_0550_b_19L難矣恍惚若有人挾王起崖上則赤
008_0550_b_20L日當空觀音大士倚巖而坐王以手
008_0550_b_21L捫衣不濕因叩謝大士謂曰汝家世
008_0550_b_22L奉我故來相救但殺業頗多致有是
008_0550_b_23L若戒殺即愈王曰承慈力普度
008_0550_b_24L夙心也敢不遵命倐然而覺身汗如

008_0550_c_01L이때부터 살생을 경계하겠다고 마음으로 맹세하였고, 스스로 『영계살충언靈戒殺衷言』을 지어 그때의 일을 기록하였다.
명 만력萬曆 연간(1573~1620)의 일이다. 평호平湖 육오대陸五臺 상서尙書의 하인이 사람과 싸우다 그만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두려움에 떨며 공에게 살려 달라고 간청하자 공이 말하였다.
“살인은 국법에 저촉되는 것이다. 내 어찌 인정에 이끌려 너의 죄를 면해 줄 수 있겠느냐. 너는 감옥에 있으면서 3년 동안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온 마음을 다해 염송해야 마땅하다. 그러면 내가 너를 구해 주리라.”
그는 명을 받들어 때때로 지송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겨우 1년 만에 사면되어 석방되었다.
명 오군吳郡의 서명보徐明甫는 초楚의 관청에 머물다가 결국 집안을 이주하였다. 그는 학문을 좋아하고 행실이 돈독하였다. 자식들에게 책을 읽도록 가르치고, 평소 관음대사觀音大士 한 축軸을 받들며 온 정성을 다해 예경하였다. 그의 아들 이름은 광鑛인데 열 살 남짓에 갑자기 재앙 같은 질병에 걸리고 말았다. 부부는 대사 앞에서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였다. 그러자 7일째 밤 꿈에 보살이 나타나 말하였다.
“걱정하지 말라. 너의 아들은 내일 아침 일어날 수 있으리라.”
갑자기 탁자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고, 놀라서 깨어나 살펴보니 공물을 올렸던 대사의 안석 앞의 과자며 온갖 그릇들이 모두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검사해 보니 손상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아들이 가는 목소리로 “보살께서 저를 구하셨습니다. 보살께서 저를 구하셨습니다.” 하며 중얼거렸다. 아들을 부르며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날이 밝아 그 까닭을 묻자 아들이 말하였다.
“어제 한밤중에 한참 어지러워 혼절하던 순간, 대사께서 나타나 침상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부르더니 ‘내 너를 구하리라’ 하고는 물을 한 병 주면서 마시라고 하셨는데 얼음처럼 차가워 뼈가 아릴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곧 온몸에 땀이 나더니 상쾌해졌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병이 과연 치유되었다. 그 후 그의 아들은 만력萬曆 병진년(1616)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명 상숙엄상常熟嚴尙 보징寶徴은 자가 도철道徹이며 문정공文靖公의 둘째 아들이다. 나이 30에 아들이 없었고, 길흉을 점치는 사람도 후사를 잇기 어렵겠다고 추측하였다. 그는 두 명의 첩을 두었는데 둘 다 미모가 빼어나지 못했고, 용모와 성품도 질박하고 어눌해 사람들이 다투어 비웃었다. 우연히 사돈집을 지나다

008_0550_c_01L自後遂盟心戒殺自作紀靈戒殺衷
008_0550_c_02L誌其事

008_0550_c_03L
明萬曆間平湖陸五臺尙書有僕與人
008_0550_c_04L爭毆悞傷人死懼而求救于公公曰
008_0550_c_05L殺人者抵國法也我豈能徇情爲汝
008_0550_c_06L求免汝在獄中宜專心誦觀音菩薩名
008_0550_c_07L號三年我來救汝其人奉命時時持
008_0550_c_08L念不怠纔一年遇赦而出

008_0550_c_09L
明吳郡徐明甫赴舘於楚遂徒家焉
008_0550_c_10L好學篤行敎子讀書素供觀音大士一
008_0550_c_11L禮敬甚虔子名鑛十餘歲忽遘危
008_0550_c_12L夫妻於大士前晨夕叩禱至七日
008_0550_c_13L夢菩薩告曰無憂汝子明旦可起也
008_0550_c_14L忽聞有聲震桌上驚而寤起視所供大
008_0550_c_15L士几前菓碟諸器俱墜地撿之無一
008_0550_c_16L損者子口中喃喃微聲喚曰菩薩救我
008_0550_c_17L菩薩救我問之不應天明詢其故
008_0550_c_18L曰昨夜半正憒絕間見大士至臥榻間
008_0550_c_19L呼男曰吾救汝乃以水一甌命飮之
008_0550_c_20L氷凉徹骨遂擧體得汗而爽耳不數日
008_0550_c_21L病果愈後子成萬曆丙辰進士

008_0550_c_22L
明常熟嚴尙寶徴字道徹文靖公仲子
008_0550_c_23L年三十無子日者推爲艱嗣置兩妾
008_0550_c_24L俱不選色容質朴陋人爭笑之偶過

008_0551_a_01L한 시녀侍女를 보았는데 시집갈 나이가 찼는데도 머리를 기르지 않고 있었다. 그 까닭을 묻자 주인이 말하였다.
“벙어리라 끝내 사람 구실 못할 겁니다.”
도철이 측은해 하며 말하였다.
“아우가 머리를 기르게 한다면 내가 그녀와 혼인하리다.”
사돈집에서 믿으려 하지 않자 도철은 곧 약속하였고, 다음 해 과연 그녀를 받아들였다. 문정공이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 아들이 하는 일은 하늘의 도에 꼭 맞구나. 분명 후사가 있으리라.”
그리고 세 첩 모두 자식을 나았다. 도철은 평소 백의다라니白衣陀羅尼를 염송하였으며, 또 불살생계를 엄격히 지켰다. 자식을 얻을 때마다 겹겹의 태의에 싸여 태어나는 기이함이 많았고, 후에 가문이 번창해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이 끊이지 않았으니 진실로 후덕함이 도운 것이다.
명의 효자 팽유원彭有源은 자가 신우信宇며 호광湖廣 익양益陽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정성을 다해 대사大士의 『삼관경三官經』 등을 염송하며 부모의 장수를 기원하였다. 언젠가 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지자 팔의 살을 베어 치료하였고, 10년을 넘게 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어 어머니 오吳씨를 모시면서 가난한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힘껏 맛있는 음식들을 마련하였다. 숭정崇禎 병자년(1636) 가을에 어머니는 병이 위독해 일어나지 못하였고, 또 종기가 손바닥을 뚫어 그 고통이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팽유원은 밤낮으로 걱정하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대사가 “어머니의 수명이 거의 다했지만 사람의 간을 먹으면 나을 수도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를 살펴보니 어머니가 정말 양의 간을 먹고 싶어 하였다. 팽유원이 “이것은 보살께서 나를 일깨워 주신 것이다.”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간을 꺼내 어머니를 구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밤이 되자 스님과 여러 성인들이 나타나고 번기와 당기가 앞에 펼쳐졌다. 팽유원이 깜짝 놀라 깨어 보니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이에 몸을 씻고 머리 숙여 예배하고는 손을 들어 심장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 폐와 간이 이쯤에 있지 짐작하고는 칼로 스스로 찔렀다. 한 번 가르자 피가 줄줄 흘렀고, 두 번 가르자 막膜이 벌어졌으며, 서너 번 가르자 뼈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 여섯 번 칼질을 하자 심장이 나왔다. 드디어 심장을 따라 폐가 나왔고, 폐를 따라 간이 나왔다. 이때 그 통증으로 초죽음이 되어 혼절하였고, 잠시 후 겨우 다시 살아나 그때서야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오자 그는 속히 간을 삶아 어머니에게 올리게 하였다.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좋아하며 젓가락질을 하였고, 병이 곧 씻은 듯이 나았다. 이 일이 알려져 원근에서 찬탄하며 그의 폐를 살펴보았는데

008_0551_a_01L姻家見一侍女年及笲未蓄髮問其
008_0551_a_02L云以瘖故終成廢人道徹惻然曰
008_0551_a_03L第令畜髮吾將娶之其姻家未敢信
008_0551_a_04L道徹即爲申約踰年果納焉文靖聞之
008_0551_a_05L喜云吾兒所行允合天道必有後繼
008_0551_a_06L三妾皆生子道徹素誦白衣陀羅尼
008_0551_a_07L堅持不殺戒凡擧子多重胞之異
008_0551_a_08L子姓繁昌靑雲接踵誠厚德所培也

008_0551_a_09L
明彭孝子有源字信宇湖廣益陽人
008_0551_a_10L幼即虔誦大士三官諸經以祈親壽
008_0551_a_11L嘗病篤刲臂肉療之踰十年父卒
008_0551_a_12L母吳氏家貧勉具甘旨崇禎丙子秋
008_0551_a_13L母疾篤不能起又疽穿手掌痛不能忍
008_0551_a_14L源日夕憂思夜夢大士諭以母壽將盡
008_0551_a_15L得人肝服之猶可愈晨起視母母正
008_0551_a_16L思羊肝源曰是菩薩啓我也乃垂涕跪
008_0551_a_17L願剖肝救母至夜見大師諸聖
008_0551_a_18L幢而前源驚醒汗下如雨乃澡身頂禮
008_0551_a_19L擧手捫心約得肺肝所在持刀自刺
008_0551_a_20L一剖而血迸二剖而膜開三四剖砉然
008_0551_a_21L有聲迨六剖而心出遂緣心得肺
008_0551_a_22L肺得肝時痛幾殞絶矣頃之稍甦
008_0551_a_23L呼妻至令速煮肝進母母不知欣爲下
008_0551_a_24L病即霍然而愈事聞遠近賛嘆

008_0551_b_01L섬뜩하게도 밖으로 나와 있었고 상처의 입구가 봉합되지를 않았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신에게 기도하자 대사가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이 효자의 폐를 다시 넣어 주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말세라 인仁과 효孝를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기에 100일 동안 밖에 꺼내 두어 세상 사람 모두 보게 하고 싶구나.”
효렴왕孝廉王 문남文南이 그 사실을 전하였다.
명의 형과刑科 이청李淸은 자가 심수心水이고 광릉廣陵 사람이다. 처음에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천연두로 죽자 강안姜安 사람인 어머니가 추모하며 애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백의관음경』을 염송하며 후사가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오래지 않아 심수心水가 소흥紹興 지역을 돌며 감사를 하는데 꿈에 한 부인이 아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왔다. 얼굴을 보니 마마 자국이 있었고 거의 나아 딱지가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부인이 심수에게 “구름과 같고 달과 같다.”고 말하였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 기이하게 여겼다. 새벽에 일어나자 마침 아무개가 관음상을 수놓아 선물하였는데 꿈에서처럼 아기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위에 시를 한 수 적어 놓았는데 첫머리에 “채색 구름 향기롭게 맴도는 곳에 바다는 하늘까지 파도가 치고(彩雲香繞海天潮)”라는 구절이 있고, 마지막에는 “돌아오니 붉은 계수나무가 달빛 속에 나부끼네.(還來丹桂月中飄)”라는 구절이 있어 ‘구름’과 ‘달’이라 했던 두 글자가 꼭 들어맞았다. 이때 부인이 아이를 잉태했고 과연 자식을 낳았다.
명 숭정崇禎 신사년(1641)의 일이다. 당도현當塗縣 관우官圩에 산동山東의 한 앉은뱅이가 찾아와 손으로 발을 대신하며 시정에서 걸식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혐오하였다. 앉은뱅이는 비록 병들긴 했지만 기개가 있어 욕을 먹으면 곧 불평하고는 하였다. 그는 당교암塘橋菴에 수곡水谷이라는 수행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 걸식하기 너무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수곡이 말하였다.
“그대는 발심하여 출가할 수 있겠는가? 자비의 큰 힘에 의지한다면 혹 시주가 있을지도 모른다.”
앉은뱅이는 그를 따라 드디어 머리를 깎고 재계를 받았다. 비록 걸식했지만 냄새나고 핏물이 비치는 음식은 먹지 않았으며, 모욕을 당하더라도 조용히 참으며 받아들였다. 수곡은 또 그에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송하고 아울러 준제주準提呪를 지송하도록 가르쳤다. 수지한 지 2년이 넘어 무자년(1648) 가을에 홀연히 꿈에 한 노파가 나타나 그를 부르더니, “너는 일어나라, 너는 일어나라.”라고 하였다. 앉은뱅이가 “저는 바로 앉은뱅이입니다.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노파가 그의 양다리를 손으로 쭉 찢었다. 그러자 펴지는 게 느껴지면서 다시 말리지 않았다.

008_0551_b_01L其肺稜稜出在外瘡口未合衆爲禱
008_0551_b_02L於神大士示夢曰是孝子肺收之無
008_0551_b_03L末世鮮仁孝者欲出之百日令世
008_0551_b_04L人遍觀之耳孝廉王文南傳其事

008_0551_b_05L
明刑科李淸字心水廣陵人初有一
008_0551_b_06L子痘殤母姜安人追悼不已日誦白
008_0551_b_07L衣觀音經爲子祈嗣未幾心水査盤紹
008_0551_b_08L夢一婦人抱兒入室面帶痘痂
008_0551_b_09L將愈而落者語心水云如雲如月
008_0551_b_10L而異之晨起適某生以繡觀音贈
008_0551_b_11L兒如夢上題一詩起有彩雲香繞海天
008_0551_b_12L末有還來丹桂月中飄之句恰應雲
008_0551_b_13L月二字時夫人甫孕果生子

008_0551_b_14L
明崇禎辛巳當塗縣官圩有山東一癱
008_0551_b_15L子至以手代足乞食於市人多厭之
008_0551_b_16L癱者雖病而負氣被詈罵輒不平聞塘
008_0551_b_17L橋菴有修行僧曰水谷徃訴以乞食艱
008_0551_b_18L難之苦谷曰汝能發心出家仗慈悲大
008_0551_b_19L或有施主癱者從之遂剃髮受齋
008_0551_b_20L雖行乞不茹葷血雖被辱罵安忍
008_0551_b_21L而受谷又敎之念觀世音名號兼持準
008_0551_b_22L提呪受持踰二年戊子秋忽夜夢一老
008_0551_b_23L嫗呼之曰汝起汝起癱者云我是癱
008_0551_b_24L何能起老嫗以手扯其兩足覺直

008_0551_c_01L새벽에 일어나 보니 뻣뻣하게 굳었던 다리의 병이 드디어 나아 그 자리에서 머리를 당당히 들고 걸으며 만덕을 감추는 한 명의 스님이 되어 있었다. 그는 반애半崖라는 호를 가지게 되었고, 드디어 공양하는 자도 생겼다.
명 홍무洪武 연간(1368~1398)의 일이다. 길안吉安 여릉현廬陵縣의 용자휘龍子翬는 부인 소蕭씨와 부부의 정을 돈독히 하며 자식을 간절히 원하였다. 기묘년(1399) 10월에 그의 여동생 숙유淑柔가 『백의오인심경白衣五印心經』을 얻어 부인과 함께 읽었다. 그러다 권말에 기록된 후사를 기원했던 사적과 여러 가지 영험을 읽게 되었다. 소씨는 두려워하더니 공경하고 믿게 되었으며, 재계를 지키며 경을 염송하겠다고 발원하였다. 아울러 『백의경白衣經』을 천 권 보시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다음 해 8월 16일 용모가 맑고 수려한 아들 하나를 얻어 이름을 계생桂生이라 하였으니, 과연 기도한 바와 부합하였다.
또 선덕宣德 4년(1429)에 창덕부彰德府 장귀張貴는 회왕淮王을 따라 나라를 다니다 광동廣東에서 『백의경』을 얻었다. 6년 만에 마을로 돌아와 아내 전씨와 함께 경을 보시하겠다고 발심하고 후사를 기원하였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 아들을 얻었는데 경을 보시하겠다는 원은 시행하지 못했다. 그러자 아이가 열두 살에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 부부는 애통한 마음으로 지난 일을 후회하며 향을 사르고 경건하게 기도하였고, 경을 1,500권 보시하였다. 정사년丁巳年3) 2월에 다시 아들 하나를 낳았으니 경을 지송한 영험이 이와 같이 분명하다.
대청大淸의 석행인釋行仁은 자가 지일指一이고, 하남河南의 광산光山 장張씨이다. 약관의 나이에 백록동白鹿洞에서 독서하다가 기이한 승려를 만났는데, 그가 경계하며 말하였다.
“그대에게 큰 재난이 있을 것이다. 대비하신 성인의 명호를 지송한다면 벗어날 수 있으리라.”
이에 스님은 재빨리 마음으로 수지하였다. 숭정崇禎 신사년(1641)에 도적 떼 헌獻씨가 현을 파괴하고 도륙하였는데, 스님 차례에 이르자 칼이 갑자기 저절로 부러졌다. 도적이 기이하게 여겨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결국 머리를 깎았고, 갑신년(1644)에 금릉金陵에 닿아 천화매千華昧 화상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그런 다음 군사들이 곳곳에 즐비한 것을 보고는 동쪽 곤산崑山으로 갔고, 그곳 깨끗한 방에서 『법화경』과 『금강경』 등을 강설하자 승려와 속인들이 귀의하며 우러렀다. 임진년(1652) 정월 2일에 단정히 앉아 게송을 설하고 천화하였다.

008_0551_c_01L而不拳晨起癱病遂愈居然一昻藏之
008_0551_c_02L僧矣取號曰半岸遂有供養之者

008_0551_c_03L
明洪武間吉安廬陵縣龍子翬同室蕭
008_0551_c_04L篤於伉儷求子甚艱己卯十月其
008_0551_c_05L妹淑柔得白衣五印心經與嫂同覽
008_0551_c_06L見卷末所嗣事跡種種靈驗蕭氏悚然
008_0551_c_07L敬信發願持齋誦經併許施白衣經千
008_0551_c_08L次年八月十六日擧一子形容淸
008_0551_c_09L名桂生果符所禱又宣德四年
008_0551_c_10L德府張貴隨淮王之國於廣東得白衣
008_0551_c_11L六年皈里偕妻田氏發心施經求
008_0551_c_12L未幾得男經願未酬十二歲忽病
008_0551_c_13L夫婦痛心追悔焚香虔禱施經一
008_0551_c_14L千五百卷丁巳二月復生一子持驗
008_0551_c_15L彰彰如是

008_0551_c_16L
太淸釋行仁字指一河南光山張氏
008_0551_c_17L弱冠讀書白鹿洞遇異僧戒曰子有大
008_0551_c_18L能持大悲聖號可解師矢心受持
008_0551_c_19L崇禎辛巳獻冦破縣屠戮及師刃忽
008_0551_c_20L自斷賊異之得不死遂薙髮甲申抵
008_0551_c_21L金陵從千華昧和尙受具戒已見戎
008_0551_c_22L馬充斥乃東至崑山於淨室講法華
008_0551_c_23L金剛等經緇素皈仰壬辰正月二日
008_0551_c_24L端坐說偈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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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大淸의 휘상徽商 정백린程伯鱗은 오랫동안 양주楊州에 거주하였고, 관음대사觀音大士를 매우 경건하게 섬겼다. 을유년 여름에 군대가 양성楊城을 지나게 되자 정백린은 대사에게 구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자 꿈에 대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너희 집 열일곱 명 가운데 열여섯은 모두 재난을 면하게 되리라. 그러나 너만큼은 운수가 정해져 있어 도망칠 수 없다.”
정백린이 잠에서 깨어 또다시 간절하게 기도하자 거듭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너는 전생에 왕마자王麻子를 스물여섯 번이나 칼로 내려쳐 죽였으니 이제 그에게 갚아야만 한다. 집안사람 열여섯은 동쪽 행랑채에 있게 하고, 너는 홀로 중앙 건물에서 그를 기다려 집안사람들에게 누를 끼치지 말라.”
정백린은 그 말을 믿었다. 5일이 지난 후 병사가 문에 다다르자 정백린이 맞이하며 물었다.
“그대가 왕마자인가? 내가 그대에게 스물여섯 번의 칼질을 빚졌으니 나를 죽여도 좋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와는 본래 원한이 없다.”
병사가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너는 어떻게 내 성과 이름을 알았는가?”
정백린이 꿈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자 병사가 감탄하며 말하였다.
“그대가 전생에 나를 스물여섯 번 칼질하여 죽였기에 내가 금생에 그대에게 앙갚음하게 된 것이라면, 내가 지금 그대를 죽인다면 그대가 다음 생에 또 나에게 앙갚음하지 않겠는가.”
이에 칼등으로 정백린을 스물여섯 번 내려치고는 그를 용서하였다.당의지唐宜之가 (말하기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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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淸徽啇 [13] 程伯鱗久居楊州事觀音大
008_0552_a_02L士甚虔乙酉夏兵過楊城程禱大士求
008_0552_a_03L夢大士謂曰汝家十七人十六口
008_0552_a_04L俱得免惟汝在數不可逃也程醒
008_0552_a_05L復懇禱仍夢云汝前生殺王麻子
008_0552_a_06L十六刀今須償彼可令家中十六口
008_0552_a_07L並住東廂汝獨在中堂候之勿貽累家
008_0552_a_08L程信之越五日兵至門程迎問曰
008_0552_a_09L汝即王麻子乎我欠汝二十六刀可殺
008_0552_a_10L否則與汝本無仇也兵驚曰汝何
008_0552_a_11L以知我姓名程具告以夢兵嘆曰
008_0552_a_12L前世殺我二十六刀致我今世報汝
008_0552_a_13L今殺汝汝來世不又報我乎乃以刀背
008_0552_a_14L斫程二十六下而宥之唐宜之

008_0552_a_15L
觀世音持驗紀終
  1. 1)무畝 : 6척 사방을 보步, 100보를 무畝라 한다.
  2. 2) 극부克復 : 『觀音經持驗紀』를 편찬한 주극부周克復의 자칭이다.
  3. 3) 정사년丁巳年 : 정사년은 1437년이다. 선덕 4년(1429)에 경을 입수했다는 앞의 기사와 또 아이가 12세에 죽었다는 기사를 고려할 때 정사년이라 한 것은 오류이다. 선덕 4년, 즉 1429년에 경을 입수하여 6년 만에 귀향해 바로 아들을 얻었다고 했으니, 자식이 태어난 해는 1435년이나 1436년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아이가 12세에 죽었다고 하였으므로 죽은 해는 1446년이나 1447년으로 추정된다. 이를 고려할 때 혹 ‘정묘丁卯’의 오자가 아닐까 추측된다. 정묘년은 1447년이다.
  4. 4) 당의지唐宜之 : 사람 이름이다. 이 책의 저본인 주극부가 편집한 『觀音經持驗紀』(X78, 106a)에 이 영험담에 대한 당의지의 평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당의지의 평은 생략하고 ‘당의지唐宜之’라는 이름만 기재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도리어 혼란을 주고 있다. 생략하거나 아니면 당의지의 평을 첨부했어야 옳다. 참고로 당의지의 평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唐宜之曰。 紀此事有三意。 一者。 見菩薩大悲。 能回定業。 二者。 見宿業既熟。 難脫如是。 從今以往。 愼勿再造將來之新業。 三者。 見目前所受。 悉是往因。 宜歡喜領受。 不當怨尤。 亦不必苦苦以趨避亂心也。 又曰。 凡虔奉觀世音者。 其人必篤信因果。 一生善事必多。 惡事必少。 善念必多。 惡念必少。 此身心不與惡爲緣。 所以惡報可滅。 豈偶然哉。 出己求書。”
  1. 1)題名及撰者名。補入{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