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연주기회편(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連珠記會編) / 般若波羅蜜多心經略䟽 連珠記會編卷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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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다심경략소연주기회편 제2권(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連珠記會編 卷第二)
당나라 번경 사문 법장이 소䟽를 짓다.
송나라 옥봉 사문 사회가 기記를 짓다.
해동국 사문 명안이 회편하다.

반야바라밀다심경

4) 제목을 해석함

넷째, 제목을 해석한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1) 장章을 읊음

첫째, 장을 읊는다.

넷째, 제목을 해석한다.

(2) 뜻을 연설함

둘째, 뜻을 연설한다. 여기에 셋이 있다.

① 교敎와 의義의 구분

첫째, 교敎와 의義의 구분이다. 여기에 둘이 있다.

가) 표현과 뜻의 구분

첫째, 표현과 뜻의 구분이다.

또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교敎와 의義의 둘로 나눈다. 말하자면 “반야심般若心”은 언어적 표현의 대상인 의義이고, “경經”이라는 한 글자는 언어적 표현인 교敎이다.

“말하자면 반야심은”이라 한 것은 표방하여 거론한 것이고, “언어적 표현의 대상인 의義이고”는 판별하여 해석한 것이다. 이 제목 중에서 ‘심’과 ‘반야’라는 말은 모두 표현의 대상인 법에 속한다고 판별한 것이니, 곧 뒤의 “걸림 없는 마음(無罣礙心)”이다. 불공不空1)이 한역한 경에서는, “보살에게는 반야바라밀다의 마음이 있으니, 이름하여 보편지장普徧智藏이라 한다.……(중략)……색의 성품이 공이고 공의 성품이 색이다.”2) 등이라고 했으니, 곧 마음이 표현의 대상인 법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규산 종밀은 말하기를, “법장 화상은 『반야심경소』에서 표현의 대상이라는 뜻으로 ‘심’이라는 글자를 해석하였으니, 그 뜻은 반야의 마음이 만법의 바탕이기 때문에 ‘심’이라고 한다는 것을 말한다.”3)라 하였고, 견실심堅實心(진여심·여래장심)의 작용으로 함께 묶어서 (『원각경』의) 원각묘심圓覺妙心을 해석하였다.4) 또 간별하여 말하기를, “(이는) 연려심緣慮心(대상을 반연하여 사유 작용을 하는 안식 등의 팔식)·집기심執起心(종자를 쌓아 현행을 일으키는 제8식)의 뜻과는 같지 않다.”5)라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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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180_a_02L般若波羅蜜多心經略䟽
009_0180_a_03L連珠記會編卷第二

009_0180_a_04L

009_0180_a_05L唐翻經沙門法藏述䟽

009_0180_a_06L宋玉峯沙門師會述記

009_0180_a_07L海東國沙門明眼會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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般若波羅蜜多心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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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四釋題三 初唱章

009_0180_a_10L
[䟽]第四釋題者

009_0180_a_11L
[記]二演義三 初分敎義二 初辨詮
009_0180_a_12L

009_0180_a_13L
[䟽]亦有三 初敎義分二 謂般若心
009_0180_a_14L是所詮之義 經之一字 是能詮之敎

009_0180_a_15L
[記]謂般若心者 標擧也 是所詮之
009_0180_a_16L義者 判釋也 判此題中心及般若
009_0180_a_17L1)之言 皆屬所詮之法 即下無罣
009_0180_a_18L礙心也 不空譯云 菩薩有般若波
009_0180_a_19L羅蜜多心 名普徧智藏 乃至色性
009_0180_a_20L是空 空性是色等 即心是所詮法
009_0180_a_21L明矣 圭山曰 藏和尙般若心經䟽
009_0180_a_22L作所詮義釋心字 意云般若之心
009_0180_a_23L是萬法之體 故云心也 會同堅實
009_0180_a_24L用 釋圓覺妙心 揀云不同緣慮執

009_0180_b_01L또 말하기를, “육단심肉團心(心臟)과 같은 거칠고 얕은 마음과 다르다는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6)라고 했다.
그러므로 (반야심을) ‘“언어적 표현의 대상인 의義”라고 했다.

“경이라는” 등이란, 앞의 ‘반야심’을 언어에 의해 표현하는 것이다. 『불지경론』에서 말하기를, “능히 꿰고 능히 포섭하므로 경이라 이름한다.”7)라고 했고, 또 말하기를, “여기서는 불타의 경지를 널리 설하여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으니, 표현된 뜻에 의거하여 『불지경』이라 이름했음을 알아야 한다.”8)라고 했으니, 표현의 수단(能詮)과 표현된 뜻(所詮)으로 경의 제목을 해석한 것은 본래 (『불지경론』의 저자인) 친광親光(6세기 중엽)에게서 나왔다. 그런데 천태승인 사명 지례四明知禮9)는 “불타의 이치에 크게 위배된다.”10)라고 말하였다. 천태 지의天台智顗11)는 (10신十信 이전의) 5품 제자위弟子位12)에 위치하지만 친광은 (10지十地 중 초지인) 등지登地 보살이니, 위격을 비교해 보면 서로 요원한 차이가 있다. 마치 하나의 가벼운 티끌과 큰 땅덩어리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데, 도리어 저것이 옳고 이것이 그르다고 하니, 그 가당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심’이 비유적으로 해석된다면, 곧 ‘심경’의 두 글자가 표현의 수단인 교敎일 것이다.

나) 맺으면서 이합離合을 보임

둘째, 맺으면서 이합離合(육합석)을 보인다.

곧 반야를 표현하는 경이라는 것이니, 뜻에 의거하여 이름을 세웠다.

“곧 (반야를)” 등이란, 표현의 대상인 뜻에 의거하여 표현의 수단인 이름을 세운 것이다. 삼마사三摩娑13)로 해석하면, 의주석依主釋으로 이름을 얻은 것이고, 보로살사성補盧殺娑聲14)인 속성屬聲으로 이름을 받은 것이다.

② 법과 비유로 나눔

둘째, 법과 비유로 나눈다. 여기에 둘이 있다.

가) 표현의 대상을 기준 삼아 법을 가리킴

첫째, 표현의 대상을 기준 삼아 법을 가리킨다.

둘째, 표현의 대상인 뜻을 법과 비유의 두 가지로 나눈다. 말하자면 “반야바라밀다”가 표현의 대상인 법이다.

위의 표현의 대상인 의義에서 다시 ‘심’ 자를 취하여 표현의 수단인 교敎의 우수함을 비유한다. 오로지 반야바라밀다만이 표현의 대상인 법이기 때문이다. 비유된 것이라 하지 않고 “표현의 대상”이라 했으니, 실상반야와 관조반야는 비유의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로지 14행의 문자반야가 비유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단 (14행의 문자반야는) 끌어내어진 비유라고만 말하지

009_0180_b_01L起之義 又曰肉團麁淺 不必揀也
009_0180_b_02L故云所詮之義 經之等者 詮上般
009_0180_b_03L若心也 佛地論云 能貫能攝 故
009_0180_b_04L名經 又曰應知此中 宣說佛地
009_0180_b_05L饒益有情 依所詮義 名佛地經
009_0180_b_06L且能所詮 釋經題者 本出親光
009_0180_b_07L而四明禮公乃言 大違佛理 智者
009_0180_b_08L位居五品 親光登地菩薩 位望相
009_0180_b_09L遼 如一輕塵較大地土 而輒是彼
009_0180_b_10L非此 不知其可也 若心作喩釋
009_0180_b_11L即心經二字 是能詮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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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結離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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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䟽]即能詮般若之經 依義立名

009_0180_b_14L
[記]即能等者 依所詮義 立能詮名
009_0180_b_15L三摩娑釋 依主得名 補盧沙聲
009_0180_b_16L屬聲受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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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㭊法喩二 初約所詮指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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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䟽]二就所詮義中法喩分二 謂般若
009_0180_b_19L等 是所詮之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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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就上所詮義中 復取心字 以喩
009_0180_b_21L能詮敎勝 唯般若等 是所詮之法
009_0180_b_22L故 不言所喩 復云所詮 是知實
009_0180_b_23L相觀照非所喩也 獨將一十四行
009_0180_b_24L文字般若爲所喩故 但言所引之

009_0180_c_01L비유의 주체라 말하지는 않는다.

나) 표현의 수단으로 비유를 끌어낸 것을 찬탄함

둘째, 표현의 수단으로 비유를 끌어낸 것을 찬탄한다.

‘심’이라는 한 글자는 끌어내어진 비유이니, 곧 반야를 설한 경전 안에서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미묘한 뜻을 통합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심장이 주재하는 것이고, 중요한 것으로써 지극한 것을 통섭하는 근본이 됨을 비유한 것이다.

이것은 번역자의 의도를 말한 것이고, 소주인 법장이 직접적으로 제시한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자은 규기慈恩窺基15)가 말하기를, “‘반야바라밀다’는 『대반야경』에 통하는 명칭이고, ‘심경’은 이 경전의 개별적 명칭이니, 『대반야경』의 핵심이 되는 경전(般若之心經)인 것이다.”16)라 했고, 초당사 종밀은 말하기를, “또한 ‘표현의 주체인 가르침’에서 그 뜻을 해석하기를, 이 반 지紙의 경전은 『대반야경』 600권의 중심이라는 것이다.”17)라고 했다. (역자의 의도에 따르면 여기에서의 ‘심’은) 곧 흘리타야紇利陁耶(hṛdaya)이니, 육단심이라 의역한다. 이것을 끌어내어 비유로 삼아 이 간략한 경전이 대부大部(『대반야경』)의 심장임을 비유한 것이다. 곧 문자반야가 소유所喩(비유의 주체)이고, 심이라는 한 글자는 능유能喩(비유의 수단)이다. “곧 반야” 이하는 (비유와) 법을 합하여 요점을 드러낸 것이니, 600권 20만 게송의 중심(內)이라는 말이다.

“중요하고~통합한 것이다.”란,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에서 말하기를, “정교롭고 은미한 것을 분석·종합하고, 기강이 되는 도리들을 엮으면 사건이 비록 만 가지 형상이더라도 색이 곧 공이라는 것으로 통일되고, 길이 천 갈래로 갈라지더라도 지혜도 없으며 아울러 얻음도 없다는 것으로 관통된다. 자세한 문장에 숨겨져 있는 뜻을 가려내었으니, 곧은 마음을 표방하여 이것(심)을 이름으로 삼는다.”18)라고 했다.
“사람에게는 심장이(況人心藏)~비유한 것이다.”란 다음과 같다. ‘황況’은 비유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 몸의 여러 부분에서 심장이 그 주인 노릇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경에서 “심장은 제왕과 같다.”19)라고 하였다. (심장으로) 이 간략한 경전에 비유하였으니, (이 경은) 오직 미묘하고 가장 중요한 것만 말한 것이다. 나머지 장기와 육부六腑는 자세히 설한 경전을 비유한 것이어서 겸하여 이승에 미치고, 또 얕은 방편까지 갖추니, 어찌 이 경전과 같겠는가? 중도中道가 녹아들어 있으니

009_0180_c_01L喩 不言能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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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歎能詮以引喩

009_0180_c_03L
[䟽]心之一字 是所引之喩 即般若內
009_0180_c_04L統要衷之妙義 況人心藏 爲主爲要
009_0180_c_05L統極之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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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此乃譯人之意 非䟽主正義 故
009_0180_c_07L慈恩云 般若波羅蜜多者 大經之
009_0180_c_08L通名 心經者 此經之別稱 般若
009_0180_c_09L之心經也 草堂曰 亦作能詮敎釋
009_0180_c_10L意云此半紙之經 是六百卷之中
009_0180_c_11L也 即紇利陁耶 此云肉團心 引
009_0180_c_12L而爲喩 喩此略經 是大部之心
009_0180_c_13L藏也 即文字般若 是所喩 心之
009_0180_c_14L一字 是能喩也 即般下法合以彰
009_0180_c_15L要 謂六百卷二十萬頌之內也 統
009_0180_c_16L要等者 幽讃曰 甄綜精微 纂集綱
009_0180_c_17L賾 事雖萬墓 統即色而爲空 道
009_0180_c_18L縱千門 貫無智而兼得 採廣文之
009_0180_c_19L秘旨 標貞心以爲稱也 況人等者
009_0180_c_20L況 譬也 如人百體 心爲其主 故
009_0180_c_21L經云 心如帝王 喩此略經 唯談
009_0180_c_22L妙最 餘藏六腑 喩廣說經 兼被
009_0180_c_23L二乘 亦該權淺 豈似此經 中道

009_0180_c_24L「之」欄外筆書改作「等」{編}

009_0181_a_01L종교終敎이기도 하고 돈교이기도 하다. 문장은 간략하지만 뜻이 깊어 심오한 뜻을 모두 담아낸다. 그러므로 “지극한 것을 통섭하는 근본”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심’에 대한 광범한 논의로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 흘리타야紇利陁耶이다. 곧 육단심이다. 둘째, 연려심緣慮心이다. 팔식이 모두 자체의 대상에 의존하여 사려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질다質多20)이다. 집기심集起心을 말한다. 곧 제8식이 모든 종자를 모아 현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넷째, 건율타乾栗陁21)이다. 견실심堅實心이라고 의역한다. 표현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네 번째의 견실심에 해당하니, 법을 기준으로 삼아 심을 해석한 것이다. 표현의 주체라는 점에서 해석하면 첫 번째의 육단심에 해당하니, 비유를 기준으로 삼아 심을 해석한 것이다. 규산 종밀은 당나라 때 스님이었으며, 뒷사람들은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천착하기만 한 것이 분명하다. 근래 악 공嶽公이라는 사람은 소주인 법장에 대해 법을 기준으로 하여 심을 해석할 줄 몰랐다고 하였다. 비루하구나!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면서 하늘이 작다고 하는구나.

③ 체와 용을 밝힘

셋째, 체와 용을 밝힌다. 여기에 둘이 있다.

가) 명칭을 번역하여 체體를 드러냄

첫째, 명칭을 번역하여 체를 드러낸다.

셋째, 앞에서 말한 표현의 대상인 법은 체體와 용用의 둘로 나눈다. 곧 반야는 체이니, 지혜라 의역한다. 곧 신령한 깨달음이 깊어서 참된 근원을 오묘하게 증험한 것이다.

곧 앞에서 말한 표현의 대상인 법에 대한 것이지 비유의 대상인 문자반야에 대한 것이 아니다.
“체體와 용用의 둘로 나눈다.”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체와 용에는 다양한 부문이 있지만 간략히 세 가지 뜻으로 밝힌다. 첫째, 적멸寂滅의 체와 관조觀照의 용이니, 곧 실상반야와 관조반야가 체와 용이 된다. 『방광반야경』에서 말하기를, “반야에는 유의 모습이 없고 생멸의 모습이 없다.”22)라고 했으니, 이것은 적멸의 체에는 모습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에서 “반야에는 아는 바도 없고 보는 바도 없다.”23)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관조의 용에는 앎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둘째, 권지權智와 실지實智의 두 가지 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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鎔融 唯終唯頓 文略義深 括盡
009_0181_a_02L玄奧 故云統極之本 然汎論心者
009_0181_a_03L有其四種 一紇利陁耶 即肉團心
009_0181_a_04L二緣慮心 謂八識 俱能緣慮自分
009_0181_a_05L境故 三質多 謂集起心 即第八
009_0181_a_06L識 集諸種子 起現行故 四乾栗陁
009_0181_a_07L此云堅實心 若作所詮 則當第四
009_0181_a_08L堅實 約法以解心也 作能詮釋
009_0181_a_09L則當第一肉團 約喩以解心也 且
009_0181_a_10L圭山出自大唐 非後人救過而穿
009_0181_a_11L鑿也 顯矣 近代嶽公而謂䟽主
009_0181_a_12L不知約法以解心陋㦲 坐井而觀
009_0181_a_13L天曰 天小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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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明體用二 初翻名以顯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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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䟽]三就前法中有體用分二 謂般若
009_0181_a_16L是體 此云智慧 即神悟玄奧 妙證
009_0181_a_17L眞源也

009_0181_a_18L
[記]即就前所詮法中 非所喩文子
009_0181_a_19L般若中也 體用分二者 然體用多
009_0181_a_20L門 略明三義 一寂體照用 則實
009_0181_a_21L相觀照爲體用也 放光云 般若無
009_0181_a_22L所有相 無生滅相 此明寂體無相
009_0181_a_23L也 道行云 般若無所知 無所見
009_0181_a_24L此顯照用無知也 二權實二智 以

009_0181_b_01L체용을 나누는 것이다. 실지는 진여를 관조하여 안으로 비추지만 비추는 체가 없다. 권지는 세속에 교섭하여 바깥으로 호응하지만 사려의 작용이 없다. 셋째, 곧바로 대승에 나아가 체와 용을 밝힌다. 곧 해당하는 법을 포함한 것이 체이고, 실어 나르는 공능이 용이다. 소주인 법장은 말하기를, “체와 용을 합하여 설하므로 대승이라 한다.”24)라고 했으니, 체대體大·상대相大·용대用大의 3대와 자운自運·운타運他의 2운이 곧 그 뜻이다.

또 소주인 법장은 승乘의 체를 밝히면서 “무분별지와 의지의 대상이 되는 진여는 갈마들면서 겸한 것이 되기도 하고 직접적인 것이 되기도 하며, (겸하여) 여타의 수승한 수행을 섭수하여서 승의 체성으로 삼는다.”라고 했고, 업용業用을 밝히면서는 “세 가지 불성25)을 기준으로 할 때 자성주불성自性住佛性은 태워지는 바(所乘)이고, 인출불성引出佛性은 태우는 것(能乘)이고, 지득과불성至得果佛性은 이르게 되는 곳(所至處)이다.”라고 했으며, 또 “원인을 옮겨 과보를 이룬다는 등의 뜻을 기준으로 삼아 승의 업용으로 삼는다.”26)라고 했다.27) 그런데 지금 이 소에서는 피안에 이르는 것(바라밀다)이 용이고, 진원을 증험하는 것(반야)이 체라 한다. 직접적으로는 세 번째(‘곧바로 대승에 나아가는 것’)를 쓰고, 앞의 두 가지를 겸한 것이다. 만약 (생사의 허물을) 뒤집어서 다하는 것을 용으로 삼고 근원을 관조하는 것을 체로 삼는다면 두 번째와 세 번째를 모두 쓰고, 첫 번째를 갖춘 것이다.

“반야” 등은 범어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곧 신령한” 등은 다음과 같다. 신령스럽게 알아 측량할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하고, 모든 허망함에 대한 초탈을 ‘오悟’라 하며, 언어적 표현으로부터 넘어서 있는 것을 ‘현玄’이라 하고, 형상으로 보이는 장소를 벗어나 있는 것을 ‘오奧’라 한다. 얻는 바도 없고 앎도 없는 반야로써 성품과 형상에서 벗어나 있는 참된 근원에 계합하니, 본래적 깨달음은 스스로 알며 비춤의 주체는 홀로 선다. 앎을 끊어 버려야 주관과 객관을 모두 잊어버리며, 본래적 마음이 곧바로 나타나는 것은 다른 깨달음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증험함을 “오묘하게”라고 했다. 만약 참된 근원을 실상반야로 삼는다면 반야는 단지 관조반야나 문자반야만 가리킨다. 만약 하나의 법에 다양한 이름이 있다는 것에 의거하면 이치와 지혜가 서로 출현하여 지혜 바깥에 진여가 없으므로 참된 근원이 곧 반야이고, 또 진여 바깥에 지혜가 없으므로 지혜가 곧 참된 근원이다.


009_0181_b_01L分體用 實智照眞內鑑 而無知體
009_0181_b_02L也 權智涉俗外應 而無慮用也
009_0181_b_03L三直趣大乘 以明體用 則以當法
009_0181_b_04L包含爲體 運載功能爲用 䟽主曰
009_0181_b_05L體用合說 故云大乘 三大二運
009_0181_b_06L即其義也 又䟽主明乘體中 則以
009_0181_b_07L無分別智所依眞如 互爲兼正 攝
009_0181_b_08L餘勝行爲乘體 性明業用中 乃約
009_0181_b_09L三佛性中 自性爲所乘 引出爲能
009_0181_b_10L乘 至得果爲所至處 又約運因成
009_0181_b_11L果等義爲乘業用 然今此䟽 乃取
009_0181_b_12L到岸爲用 證眞爲體 正用第三兼
009_0181_b_13L之前二 若以翻盡爲用 照源作體
009_0181_b_14L則通用二三該之 第一般若等者
009_0181_b_15L譯梵成唐 即神等者 靈知不測曰
009_0181_b_16L神 頴脫衆妄曰悟 超名言之表曰
009_0181_b_17L玄 出相見之鄕稱奧 以無得無智
009_0181_b_18L之般若 會契離性離相之眞源 本
009_0181_b_19L覺自知 照體獨立 絕知會 忘能
009_0181_b_20L所 本心挻現 不由他悟 故證而
009_0181_b_21L稱妙也 若以眞源爲實相 則般若
009_0181_b_22L但目觀照文字 若約一法多名 則
009_0181_b_23L理智互出 以無智外之如 故眞源
009_0181_b_24L即般若 亦無如外之智 故智慧即

009_0181_c_01L
나) 범어를 회집하여 작용을 밝힘

둘째, 범어를 회집하여 작용을 밝힌다.

“바라밀다”28)는 용이니, 의역하여 도피안到彼岸이라 한다. 곧 이 묘혜妙慧로 말미암아 생사의 허물을 뒤집어서 다하고 진공의 경계에 이른다. 곧 피안에 도달하지 못하는 지혜와 간별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이름을 삼는다.

“바라밀다”란 범어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이다. 이미 저 언덕에 도달하는 행위를 작용으로 삼았으니, 바로 인을 운용하여 과를 이루는 행위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이 묘혜妙慧로 말미암아”란, 수행을 운용하여 증장시키는 것이다. 둘째, “생사의 허물을 (뒤집어서) 다하고”란, 미혹을 운용하여 소멸시키는 것이다. 셋째, “진공의 경계”란, 이치를 운용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처음의 하나는 능동적으로 한 것이고, 뒤의 둘은 결과적으로 된 것이다. 또 곧 『대승아비달마잡집론』의 세 가지 전의轉依의 뜻이니, “첫째로 마음의 전의이니, 참된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둘째로 도道의 전의이니, 수행이 점점 증장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끊음의 전의이니, 미혹의 장애가 소멸되기 때문이다.”29)라고 했다. 또 『대승기신론』에서 말하기를, “화합식和合識을 파괴한 것”이라고 한 것이 전의된 소멸이고, “법신을 현현시킨 것”이라고 한 것이 전의된 나타남이며, “지혜가 순박하고 깨끗한 것”이라고 한 것이 전의된 증장이다.30) 단 소승은 차례에 들어가지 않으니, “피안에 도달하지 못하는 지혜”라고 하여 방편의 소승과 간별하였다.

(3) 결론적 해석

셋째, 결론적 해석이다.

말하자면 체가 곧 용이고 법인 비유이고 의義인 교敎이므로 이러한 제목을 세웠을 따름이다.

처음의 하나는 지업석持業釋이고, 뒤의 둘은 의주석依主釋이다. “이러한 제목을 세웠다.”란 불공不空의 번역본에 근거하면 곧 설법의 주인에 의해 세웠을 따름이다.31)

관자재보살이

5) 문장을 해석함

다섯째, 문장을 해석한 것이니, 소䟽에는 셋이 있다.

(1) 경문을 읊고 장章을 표명함

첫째, 경문을 읊고 장을 표명한다.

이하는 다섯째로 문장을 해석함이다.


009_0181_c_01L眞源矣

009_0181_c_02L
二會梵以彰用

009_0181_c_03L
[䟽]波羅蜜多 是用 此云到彼岸 即
009_0181_c_04L由斯妙慧 翻生死過 盡至眞空之際
009_0181_c_05L即簡不到彼岸之慧 故以爲名

009_0181_c_06L
[記]波羅者 譯梵成唐 旣以到岸爲
009_0181_c_07L用 正約運因成果也 而義有三
009_0181_c_08L一由斯妙慧者 運行令增也 二生
009_0181_c_09L死過盡者 運惑令滅也 三眞空際
009_0181_c_10L者 運理令顯也 初一是能 後二
009_0181_c_11L是所 又即雜集三轉依義 一心轉
009_0181_c_12L眞性現故 二道轉 行漸增故 三
009_0181_c_13L斷轉 惑障滅故 又起信云 破和
009_0181_c_14L合識 是轉滅 顯現法身 是轉現
009_0181_c_15L智淳淨 是轉增 但小不次不到之
009_0181_c_16L慧 揀權小也

009_0181_c_17L
三結釋

009_0181_c_18L
[䟽]謂體即用故 法之喩故 義之敎故
009_0181_c_19L立斯名耳

009_0181_c_20L
[記]初一持業 後二依主 立斯名者
009_0181_c_21L據不空譯本 即說主立耳

009_0181_c_22L
觀自在菩薩

009_0181_c_23L
[記]五解文䟽三 初唱經標章

009_0181_c_24L
[䟽]自下第五解文

009_0182_a_01L
그런데 여기에서 한 부의 경(『반야심경』)을 모두 읊고 이것을 판석하고, 과목에 따라 해석하는 자리에서 다시 파생된 과목을 내세워야 경문에 대해 뜻을 이해하는 데 편리할 것이다. 지금 소는 간략한 것을 좇아 단지 개별적으로 읊은 것을 둔다. 그렇지 않았다면 판석을 앞에 두었어야 하는데, 어떤 판본에서는 이렇게 하여 고르게 배치하고 자세하게 진술하였다. 여기에서의 사례는 또한 이와 같기 때문에 감히 경솔하게 고치지 않는다.

(2) 갖춘 것과 빠진 것에 대해 뜻을 회통함

둘째, 갖춘 것과 빠진 것에 대해 뜻을 회통한다.

이것은 기왕에 ‘심경心經’이므로 서분과 유통분이 없다.

그런데 이 경전의 여섯 개의 번역본32)에서 서분·정종분·유통분의 3분과가 있고 없음은 번역자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것은, 말이 간략하다는 뜻이다. 자은 규기가 말하기를, “『대반야경』에서 오묘하고 가장 뛰어난 것을 채록하여 별도로 이 경을 내었다. (『대반야경』에 실린) 3분三分 2서二序33)가 그러므로 모두 빠졌다.”34)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번역본들은 대부분 갖추었다.

(3) 장문을 열어 해석함

셋째, 장문을 열어 해석한다. 여기에 둘이 있다.

① 총·별로 열어서 판별함

첫째, 총·별로 열어서 판별한다. 여기에 둘이 있다.

가) 총분

첫째, 총분이다. 여기에 둘이 있다.

㉮ 경전을 판별함

첫째, 경전을 판별한다.

본문은 둘로 나뉜다. 처음은 현료반야顯了般若이고, 후반부의 “곧 주문을 설하여 말한다.” 이하에서는 비밀의 반야를 밝힌다.

㉯ 뜻을 나타냄

둘째, 뜻을 나타낸다.

왜 이 두 가지를 분별하는가? 말하자면 드러내어 명료히 하고 분명하게 설하여 지혜로운 이해를 낳아 번뇌장을 소멸시키며, 주문으로 비밀스럽게 말함으로써 외워서 복을 낳고 죄업장을 소멸하게 한다. 번뇌장과 죄업장의 두 가지 장애를 소멸시키고 지혜장엄智慧莊嚴과 복덕장엄福德莊嚴의 두 가지 장엄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한다.

“왜”란 질문의 형식을 빌어 설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드러내어 명료히 하고”란, 미혹을 소멸시키려면 반드시 이해를 열어야 하고, 이해를 여는 것은 드러내어 설하는 것에 달려 있다. 주문을 외우는 것은 복을 낳고 장애를 제거함을 뜻하고 기약하는 것이니, 그런 연후에야 복덕이 생긴다. 경전에서 두 가지로 나누어 담론하니, 이것을 닦는 것에 의해 복덕과 지혜를 장엄하기 때문에

009_0182_a_01L
[記]然此當通唱一經 而判釋之 隨
009_0182_a_02L科釋處 再唱子科 經文於義即便
009_0182_a_03L今䟽從略 但存別唱 不然則判釋
009_0182_a_04L居前 或本作此 安布以廣陳 中
009_0182_a_05L例亦如此 故不敢率易改動

009_0182_a_06L
二會義具闕

009_0182_a_07L
[䟽]此旣心經 是以無序及流通也

009_0182_a_08L
[記]然此經六譯三分 有無譯人意
009_0182_a_09L樂 今此云者 是語略之之意也
009_0182_a_10L慈恩曰 錄出大經妙最 別出此經
009_0182_a_11L三分二序 故皆遺闕 然餘譯多具
009_0182_a_12L三開章演釋二 初摠別開判二 初
009_0182_a_13L摠分二 初判經

009_0182_a_14L
[䟽]文中分二 初顯了般若 後即說呪
009_0182_a_15L曰下 明秘密般若

009_0182_a_16L
[記]二顯意

009_0182_a_17L
[䟽]何以辨此二者 謂顯了明說 令生
009_0182_a_18L慧解 滅煩惱障 以呪秘密言 令誦
009_0182_a_19L生福 滅罪業障 爲滅二障 成二嚴
009_0182_a_20L故 說此二分

009_0182_a_21L
[記]何以者 假問令說也 謂顯等者
009_0182_a_22L滅惑要須開解 開解在於顯1)說呪
009_0182_a_23L詛 志期生福障除 然後福生 經
009_0182_a_24L談二分 依修而福慧等嚴 故云

009_0182_b_01L“드러내어 명료히 하고……”라 하였다. 무릇 관정주灌頂呪를 외워 대비大悲에 의해 업을 씻는다는 말이 매우 잘 드러난 것이고, 수능엄주首楞嚴呪를 외워 뜻대로 죄를 씻는다는 글이 자못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고산 지원孤山智圓은 말하기를, “현료반야와 비밀반야는 근기와 함께한다. 마음이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 바로 설한 것이 신주神呪이다.”35)라고 했다. 정情이 미혹된 이를 위한 가르침을 비밀반야라고 판정하여 마침내 교설에 있어서 심오함과 얕음을 없앴고, 사람에 있어서 이근기와 둔근기의 차별을 없앴다. 또한 원의를 곡해하여 와전했으니, 누가 공연히 봉황의 깃털처럼 걸출한 것에 대해 왈가왈부한 것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어찌 비밀반야에 칭합하는 해석이라 하겠는가. 하물며 (자신의 저술에서) 이 『소』(법장의 소)를 온전히 초출하고, 근거 없는 말을 뒤섞어서 속이고 떠벌렸으니, 열 부의 『소』를 지어 경을 통하게 했다고 하는 것36)도 또한 터무니없는 명성인 것이다. 강남 지방에서는 『우란분경』을 초출하여 의소義䟽를 냈는데, 이 경전도 (저 의소에 의해) 마음이 어지럽혀지니, 가운데에서 가장자리까지 모두 미사여구만 있지 실제로 그 맛을 알기는 어려웠다.

나) 별판別判

둘째, 별판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 경전에 대한 판별

첫째, 경전에 대한 판별이다.

앞의 해당하는 문장에는 또 둘이 있다. 첫째, 간략히 강요를 표명하는 부분이다.37) 둘째, “사리자여,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이하는 실상의 뜻을 자세히 진술하는 부분이다.

“간략히 강요를 표명하는”이라는 것은, 참된 마음인 공이 이 가르침의 강령이다. 그러므로 불타의 설법을 옮기는 제자들이 근본되는 뜻을 표명하는 것이다. 불공不空의 번역에서 말하기를, “관자재보살이 아뢰어 말하기를, ‘저는 이 모임에서 모든 보살의 보편적인 지혜의 창고인 반야바라밀다심을 설하고자 합니다’라고 하여 불타의 청허를 받고 혜광삼매慧光三昧38)에 들어 오온의 공함을 관조하고 고액을 제도하였다.”39)라고 했으니, 이 경전의 근본된 뜻이다. 그러므로 간략히 표명한 것이다. “실상의 뜻을 자세히 진술하는”이란, 색과 공이 서로 통하고 성性과 상相이 융통하여 그것이 얕은 방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뜻을 나타냄

둘째, 뜻을 나타낸 것이다.

뜻이 갑자기 드러나는 것이 아니므로 먼저 간략히 표명하고, 간략히 하여서 갖추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009_0182_b_01L顯了等也 夫灌頂大悲滌業之辭
009_0182_b_02L甚顯 首楞如意雪罪之文頗明 孤
009_0182_b_03L山乃謂顯祕之與機心好異引 直
009_0182_b_04L說爲神咒 判情迷作祕2)密 遂使
009_0182_b_05L敎闕淺深 人無利鈍 且郢書燕說
009_0182_b_06L誰曰不空 獻替鳳毛 豈稱秘密 況
009_0182_b_07L乃全鈔本䟽 雜以浮辭謾誇 十䟽
009_0182_b_08L通經 是亦浪名 江表鈔盂蘭而服
009_0182_b_09L義䟽 斯經乃欺心中邊 皆甜實難
009_0182_b_10L其味

009_0182_b_11L
二別判二 初判經

009_0182_b_12L
[䟽]就前文中亦二 初略標綱要分二
009_0182_b_13L從舍利子色不異空下 明廣陳實義
009_0182_b_14L

009_0182_b_15L
[記]略標綱要者 眞心之空 斯敎喉
009_0182_b_16L衿 是3)故經家 標爲義本 不空譯
009_0182_b_17L云 菩薩白言 我欲於此會中 說
009_0182_b_18L諸菩薩普徧智 藏般若波羅蜜多
009_0182_b_19L心 蒙佛聽許 入慧光㝎 照五蘊
009_0182_b_20L空 度苦厄等 一經宗本 故略標之
009_0182_b_21L廣陳實義者 色空交徹 性相融通
009_0182_b_22L事非權淺故云爾也

009_0182_b_23L
二顯意

009_0182_b_24L
[䟽]以義非頓顯 故先略標 非略能具

009_0182_c_01L다음에 자세히 해석하였다. 또 앞에서는 수행에 근거하여 간략히 표명하였고, 뒤에서는 이해에 나가 자세히 진술하였다.

첫 번째에는 자세함과 간략함을 기준으로 하였고, 두 번째에는 이해와 수행을 기준으로 한다. 간략한 것은, 곧 선정 중에서 관조하는 것이니 자리행自利行이 아니겠는가. 자세한 것은, 곧 선정에서 일어나 선양하여 근기에 맞게 분명히 변론하는 것이니, 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열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경전은 약본이다. 곧 별역본에 있는 서분의 문장으로 번역자가 교묘하게 중국인에게 맞추었으니,40) 모두 별상수다라別相修多羅41)에 속한다. 약본은 광본을 위한 것이고, 또 광본은 약본에 수렴된다.

② 부문에 따라 해석함

둘째, 부문에 따라 해석한다. 여기에 둘이 있다.

가) 현료반야顯了般若

첫째, 현료반야이다. 여기에 둘이 있다.

㉮ 강요를 간략히 표명하는 부분

첫째, 강요를 간략히 표명하는 부분이다. 여기에 셋이 있다.

ㄱ. 과목을 나눔

첫째, 과목을 나눈다.

앞부분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관조하는 사람이다. 둘째, 수행의 대상을 수행함이다. 셋째, 관조 수행의 대상이다. 넷째, 관행의 이익을 밝히는 것이다.42)

네 번째 과목명(明能觀利益)에 대해 대부분 법사들의 주석본에서는 단지 ‘명이익明利益’이라고 했지 ‘능관能觀’이란 말이 없다. 내 소견으로는, 베끼는 사람이 착오로 인해 뒤에 ‘능能’ 자를 넣었을 뿐이다.

ㄴ. 경전을 따라가며 해석함

둘째, 경전을 따라가며 해석한다. 여기에 넷이 있다.

ㄱ) 관조하는 사람

첫째, 관조하는 사람이니, 소에 둘이 있다.

(ㄱ) 단락을 표명하고 경전을 지목함

첫째, 단락을 표명하고 경전을 지목한다.

다음으로 첫째, 관조하는 사람이다. “관자재보살”이란 관조하는 사람이다.

첫 구절은 단락을 표명한 것이고, 다음 구절은 경전을 첩문牒文43)한 것이다. “관조하는 사람”이란 표명하여 지목한 것이다. “관자재”란 다음과 같다. 진국 사문 징관이 말하기를, “(관자재란) 신·구·의 삼업으로 귀의하고 10지 보살의 10신통44)으로 근기에 따라 보응하여 남김 없이 비추어 보고

009_0182_c_01L故次廣釋 又前據行略標 後即就解
009_0182_c_02L廣陳

009_0182_c_03L
[記]初約廣略 二約解行者 略乃定
009_0182_c_04L中照見得非自利行乎 廣則起定
009_0182_c_05L宣揚對機明辨 開彼解爲 然今經
009_0182_c_06L略分 則別譯序分之文 譯者之妙
009_0182_c_07L巧 應秦人而皆別相修多羅攝 略
009_0182_c_08L爲廣本 亦本略收

009_0182_c_09L
二依門作釋二 初顯了般若二 初
009_0182_c_10L略標綱要分三 初科分

009_0182_c_11L
[䟽]前中有四 一能觀人 二所行行
009_0182_c_12L三觀行境 四明能觀利益

009_0182_c_13L
[記]第四科名 諸師註本 但云明利
009_0182_c_14L益 無能觀之言 以愚所見 傳寫
009_0182_c_15L之家 悞下能字耳

009_0182_c_16L
二隨釋經四 一能觀人䟽二 初標
009_0182_c_17L章指經

009_0182_c_18L
[䟽]且初能觀人 觀自在菩薩者 能觀
009_0182_c_19L人也

009_0182_c_20L
[記]初句標章 次句牒經 能觀人者
009_0182_c_21L4)標指也 言觀自在者 鎭國曰 三
009_0182_c_22L業歸依 十通隨應 鑑無遺照 益
009_0182_c_23L「說」欄外筆書改作「談」{編}「密」欄外筆書
009_0182_c_24L改作「宣」{編}
「故」欄外筆書改作「以」{編}
009_0182_c_25L「標指」欄外筆書改作「指示」{編}

009_0183_a_01L이익이 골고루 미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45)라고 했다. 그런데 혹은 관세음이라고도 한다. 범어 파로지저婆盧枳底(ⓢ avalokita)는 ‘관세觀世’라 의역하고, 습벌라濕伐羅(ⓢ īśvara)는 ‘자재自在’라 의역하며, (만약 범어가) 섭벌다攝伐多(ⓢ svara)이면 ‘음音’이라 의역한다.46) 범본에는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이름으로 번역한다. 그런데 『법화경』에서 “그 음성을 관찰하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한다.”47)라고 했으니, 곧 관세음이다. 그런데 저 『법화경』에서는 “첫 번째 어업語業으로 칭명하면 일곱 가지 재난48)이 사라지고, 두 번째 신업身業으로 예배하면 두 가지 서원49)을 만족시킬 수 있고, 세 번째 의업意業으로 마음에 모시면 탐욕貪慾·진에嗔恚·우치愚癡의 삼독심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50)라고 하였으니, 곧 자재의 뜻이다. 지금 대부분 관세음이라 하는 것은 어업의 사용이 많아서 감응이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에서는 뜻의 원만함을 취하여 “관자재”라 했다. 자은 규기는 10자재51)를 설하였는데, 번거로울까 하여 수록하지 않았다.

(ㄴ) 이름에 따라 뜻을 설명함

둘째, 이름에 따라 뜻을 설명하니, 여기에 둘이 있다.

㉠ 개별적 명칭을 해석함

첫째, 개별적 명칭(‘관자재’)을 해석한다.

이사무애의 경지에서 관조하여 자재의 경지에 이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을 세운다. 또 근기를 관조하여 가서 구제함이 자재하여 걸림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앞의 해석은 지혜의 관점에 의거한 것이고, 뒤의 해석은 자비의 관점에 의거한 것이다.

“이사” 등이란, 나뉠 수 없는 이법理法이 하나의 티끌에 원만하게 포섭됨을 참으로 관조하면 본래 분한이 있는 사법事法이 온전히 법계에 편재하니, 이법과 사법이 원융하여 걸림이 없다. 광대하고 깊디깊은 삼매인 자주삼마지自住三摩地52)에 들었을 때 이와 같이 해탈하니, 이리하여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증험한 대로 설한다. 그러므로 “관조하여 자재의 경지에 이른다.”라고 하였다. “또 근기를 관조하여”란, 14무외十四無畏53)와 32신三十二身54)이 모두 본래 오묘하고 원만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 통명을 해석함

둘째, 통명(‘보살’)을 해석한다.

“보菩”는 보리菩提(ⓢ bodhi)이니, 각覺이라 의역한다. “살薩”은 살타薩埵(ⓢ sattva)이니, 중생이라 의역한다. 말하자면 이 사람은 지혜를 가지고서 위로는 보리를 추구하고,

009_0183_a_01L無不周 然或云觀世音 梵云婆盧
009_0183_a_02L1)□ 此云觀世 濕伐羅此云自
009_0183_a_03L在 若云攝伐多 此云音 梵本有二
009_0183_a_04L故 譯有二名 而法華云 觀其音
009_0183_a_05L聲 皆得解脫 即觀世音 然彼經
009_0183_a_06L初語業稱名 滅除七灾 二身業
009_0183_a_07L禮拜 能滿二願 三意業存念 淨
009_0183_a_08L除三毒 即自在義 今多稱觀世音
009_0183_a_09L者 語業用多感易成故 經取義圓
009_0183_a_10L云 觀自在 慈恩說十自在 恐煩
009_0183_a_11L不錄 二依名演義二 初解別名

009_0183_a_12L
[䟽]謂於理事無閡之境 觀達自在 故
009_0183_a_13L立此名 又觀機徃救 自在無閡 故
009_0183_a_14L以爲名焉 前釋就智 後釋就悲

009_0183_a_15L
[記]理事等者 良以觀不可分之理
009_0183_a_16L圓攝一塵中 本分限之事 全徧法
009_0183_a_17L界內 理事圓融 無所罣礙 廣大
009_0183_a_18L甚深三昧 自住三摩地時 解脫
009_0183_a_19L若斯 是以從三昧起 如證而說
009_0183_a_20L故云觀達自在等也 又觀等者 十
009_0183_a_21L四無畏 三十二身 皆本妙圓通也

009_0183_a_22L
二釋通名

009_0183_a_23L
[䟽]菩謂菩提 此謂之覺 薩者 薩埵
009_0183_a_24L此曰衆生 謂此人以智上求菩提 用

009_0183_b_01L자비를 가지고서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 대상에 따라 이름을 얻은 것이다.

위로는 보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것은 범어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ㄴ) 수행의 대상을 수행함

둘째, 수행의 대상을 수행하는 것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읖는 것이다.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

(ㄴ) 뜻을 설명함

둘째, 뜻을 설명하는 것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법의 관점에서 얕은 수행을 간별함

첫째, 법의 관점에서 얕은 수행을 간별한다.

둘째, 수행의 대상을 수행하는 것을 밝혔다. 말하자면 반야의 오묘한 수행이다. 여기에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얕은 수행이다. 곧 인공人空의 반야이다. 둘째, 깊은 수행이다. 곧 법공法空의 반야이다. 지금 얕은 수행을 가려내어 깊은 수행과 구별한다. 그러므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한다.”라고 하였다.

“오묘한 수행이 두 가지”라는 것은, 곧 두 가지 공의 수행이다. 인人에 대한 아집이 어디에도 없어서 진여가 드러난 것을 인공이라 이름한다. 법에 대한 아집이 어디에도 없어서 진여가 드러난 것을 법공이라 이름한다. 진여는 드러나는 대상이고, 지혜는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인·법 두 가지에 대한 집착이 공하여 없으니, 그러므로 ‘이공二空’이라 한다. 태일산太一山의 지엄智儼55)이 말하기를, “인공은 소승에 통하지만 아직 청정하지 않고 삼승三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청정하다. 법공은 삼승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청정하지 않고 일승一乘에 이르러서야 궁극적으로 청정하다.”56)라고 했다.

㉡ 때에 기준하여 깊은 수행을 드러냄

둘째, 때에 기준하여 깊은 수행을 드러낸다.

“때”란 말하자면, 이 관자재보살은 어떤 때에는 이승과 함께 인공관人空觀에 들어가기도 하기 때문에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마땅히 성문의 몸으로 득도할 이에게 (관자재보살은) 곧 성문의 몸으로 나타나 설법한다.”57)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러한 때가 아니기 때문에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라 한 것이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보살의 보편지장普徧智藏의 마음을 설하고자 한다.”58)라고 했으니, 이승二乘에 감응하는 때가 아니다. 그런데 소주인 법장은 형양 정 공59)의 요청에 따르고 번역자의 식견에 화합하고자 대승으로 소승을 간별하여 통일된 이치를 간략하게 드러내었다. 반야의 때는 (소승교·대승시교·대승종교·돈교·원교의) 5교와 (점교·돈교·원교의) 3교를 관통하고 방편과 실상을 설명하여

009_0183_b_01L悲下救衆生 從境得名故

009_0183_b_02L
[記]上求下化 翻梵成唐矣
009_0183_b_03L二所行行二 初唱經

009_0183_b_04L
行深般若波羅蜜多時

009_0183_b_05L
[記]二演義二 初就法以揀淺

009_0183_b_06L
[䟽]二明所行之行 謂般若妙行 有其
009_0183_b_07L二種 一淺 即人空般若 二深 即法
009_0183_b_08L空般若 今揀淺異深 故云行深般若

009_0183_b_09L
[記]妙行二者 即二空行也 人我執
009_0183_b_10L無處所顯眞如 名人空 法我執無
009_0183_b_11L處所顯眞如 名法空 如爲所顯
009_0183_b_12L智爲能顯 二執空無 故名二空
009_0183_b_13L太一云 人空通小乘而未淸淨 三
009_0183_b_14L乘方淸淨 法空在三乘而未淸淨
009_0183_b_15L至一乘究竟淸淨

009_0183_b_16L
二約時以顯深

009_0183_b_17L
[䟽]言時者 謂此菩薩 有時亦同二乘
009_0183_b_18L入人空觀 故法華云 應以聲聞身得
009_0183_b_19L度者 即現聲聞身等 今非彼時 故
009_0183_b_20L云行深時也

009_0183_b_21L
[記]別譯云 欲說菩薩普徧智藏心
009_0183_b_22L非應二乘時也 然䟽主 循滎陽之
009_0183_b_23L請 恊譯者知見 以大揀小 略顯
009_0183_b_24L一理 般若時 貫五三敎 詮權實

009_0183_c_01L얕은 것에 상대하여 깊은 것을 논하니, 취지가 많은 뜻을 갖춘다.

청량 징관은 『대반야경』의 「반야이취분」의 한 단락의 경문을 인용하여60) 두 가지 뜻이 깊고 얕음이 현격하게 차이가 남을 밝혔다. (먼저 인용한 부분에서), “「반야이취분」은 『대반야경』의 제578권에 해당한다. 『대반야경』 「반야이취분」에서 말하기를, ‘어느 때 세존은 일체의 희론이 없는 법을 설하는 여래의 모습으로 모든 보살들을 위해 반야의 깊고 깊은 이취理趣의 윤자輪字법문을 널리 설하여 말하기를, 일체법은 공이니 자성이 없기 때문이고, 일체법은 무상無相이니 여러 모습들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며, 일체법은 무원無願이니 원하여 추구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고, 일체법은 적정寂靜이니 영원히 적멸하기 때문이며, 일체법은 무상無常이니 항상된 성품이 없기 때문이고, 일체법은 무락無樂이니 즐거울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며, 일체법은 무아無我이니 자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일체법은 무정無淨이니 깨끗하다는 특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며, 일체법은 불가득不可得이니 그 특징을 미루어 살펴봐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61)라고 했다.”62)라고 했고, 『화엄경수소연의초』에서 (풀이하기를,) “윗글은 본성공의 이취를 드러낸 것이다.”63)라고 했다.

(또 먼저 인용한 부분에서) “또 『대반야경』 「반야이취분」에서 말하기를, ‘어느 때 세존이 다시 장법藏法에 머무는 모든 여래의 모습에 의거하여 보살들을 위해 반야바라밀다를 설하셨으니, 모든 유정이 머물러 두루 원만하다고 하는 매우 깊은 이취의 승장勝藏 법문이었다. 말하자면 모든 유정은 모두 여래장如來藏이니, 보현보살의 체성이 두루하기 때문이요, 모든 중생은 모두가 금강장金剛藏이니, 금강장보살64)이 관정灌頂함을 받았기 때문이요, 모든 유정은 모두 정법장正法藏이니, 모두 다 바른 말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요, 모든 유정은 모두 묘업장妙業藏이니, 온갖 사업이 모두 가행加行에 의거하기 때문이다’65)라고 했다.”66)라고 하고, 『화엄경수소연의초』에서 (풀이하기를,) “앞에서는 유인 법이 유가 아님을 밝혔고, 뒤에서는 무인 법이 무가 아님을 밝혔다. 비유비무가 중도의 이취이다.”67)라고 했다.


009_0183_c_01L對淺論深 旨該多義 淸凉引理趣
009_0183_c_02L般若一段經文 用彰二義 深淺懸
009_0183_c_03L絕 理趣分當五百七十八 經云爾
009_0183_c_04L時世尊 依一切無戱論法 說如來
009_0183_c_05L之相 爲諸菩薩 宣說般若甚深理
009_0183_c_06L趣輪字法門 謂一切法空 無自性
009_0183_c_07L故 一切法無相 離衆相故 一切
009_0183_c_08L法無願 無所願求故 一切法寂靜
009_0183_c_09L永寂滅故 一切法無常 無常性故
009_0183_c_10L一切法無樂 非可樂故 一切法無
009_0183_c_11L我 不自在故 一切法無淨 離淨
009_0183_c_12L相故 一切法不可得 推尋其相不
009_0183_c_13L可得故 鈔曰此上顯性空理趣 又
009_0183_c_14L經云 爾時世尊 復依一切住持藏
009_0183_c_15L法 說如來之相 爲諸菩薩 宣說
009_0183_c_16L般若 一切有情 住持遍滿甚深理
009_0183_c_17L趣勝藏法門 謂一切有情 皆如來
009_0183_c_18L藏 普賢菩薩自體遍故 一切衆生
009_0183_c_19L皆金剛藏 以金剛藏所灌灑故 一
009_0183_c_20L切衆生 皆正法藏 一切皆依正
009_0183_c_21L語轉故 一切衆生 皆玅業藏 一
009_0183_c_22L切事業加行依故 鈔曰前明有法
009_0183_c_23L非有 後明無法不無 非有非無
009_0183_c_24L□欄外筆書改作「底」{編}

009_0184_a_01L
앞의 것이 모두 (두 가지 뜻이 깊고 얕음이 현격하게 차이가 남을 밝힌) 그 문장이다. 유인 법이 유가 아니라는 것은 본성공의 이취이니, 그 뜻은 대승시교인 공종에 해당한다. 무인 법이 무가 아니고 중도의 이취라는 그 뜻이, (5교에서) 뒤의 세 가지 진실교의 이취에 통한다. 지금은 비밀의 뜻을 채택하여 진실교에 포섭되니, 이치가 뒤의 뜻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라고 한 것이다. 또 반야는 뜻에 있어서 5교를 갖춘다. 지금 경전에서는 핵심을 취하면서 상대적으로 얕고 깊은 뜻을 갖추어 논하여 이치가 성립하지 않음이 없다. 번다할까 하여 서술하지 않았다.
위에서는 소에 따라 깊은 것으로 얕은 것을 간별하기만 하였지만, 지금은 소 이외에 내 생각을 하나의 이해 방식으로서 보조해 보자면, 바로 혜광慧光삼매는 광대하고 너무나도 깊어서 법을 근원된 밑바닥까지 궁구하여 그 바탕을 생각할 수 없지만 보살은 여기에 나아간다. 그러므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한다.”라고 한 것이다. 이치대로 증험하여 이치의 궁극을 관조하는 것이 이러한 때에 해당한다. 이에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라고 했을 따름이다. 원래 경전의 뜻에는 반드시 간별하여 (대승을) 드러내는 뜻이 없지만, 소주인 법장은 또 번역자(현장)가 삼승의 종지에 의거하여 대승으로 소승을 간별하는 것을 뜻으로 삼은 것에 따라 이렇게 해석했을 따름이다.

ㄷ) 관조 수행의 대상

셋째, 관조 수행의 대상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 것이다.

오온이 모두 공임을 비추어 보고

(ㄴ) 해석

둘째, 해석이다.

셋째, 관조 수행의 대상을 밝히니, 오온의 자성이 모두 공임을 완벽히 아는 것을 말한다. 곧 두 가지 공의 이치가 깊은 지혜에 의해 알려지는 것이다.

“관조 수행의 대상(觀行境)”이란 다음과 같다. 진국 사문 징관은 말하기를, “오온이란 몸과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수행인이 만약 몸과 마음의 참됨과 거짓됨을 알지 못하면 어찌 제대로 깨달을 수 있겠는가? 참과 거짓의 뿌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모든 수행이 헛되게 된다.”68)라고 했다. 이리하여 보살이 큰마음을 위하여 비밀스럽고 긴요한 법을 펼치고자 하여 혜광대정(혜광대삼매)에 들어 생각을 떠난 밝은 지혜와 진리에

009_0184_a_01L是中道理趣 上皆彼文有法非有
009_0184_a_02L是性空理趣 義當始敎空宗無法
009_0184_a_03L不無中道理趣 義通後三實敎理
009_0184_a_04L趣 今採其秘旨 實敎所攝 理當
009_0184_a_05L後義 故云行深時也 又般若義具
009_0184_a_06L五敎 今經撮其樞要 相望備論淺
009_0184_a_07L深 理無不可 恐繁不叙 上皆順
009_0184_a_08L䟽以深揀淺 今於䟽外 率愚以助
009_0184_a_09L一解 輒謂慧光三昧 廣大甚深窮
009_0184_a_10L法源底 當體難思 菩薩1)進此 故
009_0184_a_11L云行深 如理而證 照理究竟 當
009_0184_a_12L斯之時 乃曰行深時耳 原夫經意
009_0184_a_13L未必須俟揀顯 䟽主且順譯人 三
009_0184_a_14L乘宗旨 大以揀小爲義 作此釋耳
009_0184_a_15L三觀行境二 初唱經

009_0184_a_16L
照見五蘊皆空

009_0184_a_17L
[記]二演釋

009_0184_a_18L
[䟽]三明觀行境 謂達見五蘊自性皆
009_0184_a_19L空 即二空理 深慧所見也

009_0184_a_20L
[記]觀行境者 鎭國曰 五蘊者 身
009_0184_a_21L心之異名 行人若不識身心眞妄
009_0184_a_22L何能懸契 不達眞妄之本 諸行徒
009_0184_a_23L施 是以菩薩 欲爲大心 宣秘要
009_0184_a_24L法 入慧光大㝎 以離念之明智

009_0184_b_01L투철한 지혜의 눈으로 오온의 자성이 공이어서 일어나는 바가 없고, 바탕 그 자체가 곧 진여임을 통달하고, 그렇게 한 후에 삼매에서 일어나서 추자(사리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69)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오온이 공이라고 통달하는 것을 관조 수행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깊은 지혜로 오온의 성품이 공임을 관조하니, 오온의 성품이 공임을 관조함에 있어서, 이것을 마주하여 관조를 일으키기 때문에 “경境”이라 한다. 만약 반야를 완성하면 경境이 곧 수행된 바이다. 진국 사문 징관이 말하기를, “반야의 경우 실상이 있다고 해도 지혜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수행의 대상의 경우 수행의 주체이든 수행의 대상이든 모두 수행의 대상이다. 모든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경우 관조의 주체와 관조의 대상은 모두 수행의 대상이다.”70)라고 했다.

“두 가지 공의 이치”란, 진국 사문 징관이 말하기를, “삶과 죽음의 뿌리는 인人·법에 대한 두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의 총상摠相을 알지 못하므로 인아人我가 실제로 있다고 분별하며, 오온의 자상自相을 알지 못하므로 법아法我가 실제로 있다고 분별한다. 지혜의 눈으로 비추어 알면 오온이 화합하여 짐짓 인이라 이름하나, 하나하나 자세히 관조하면 단지 오온임을 알 뿐 인아의 상을 구해 보아도 결코 얻을 수 없다. 먼저 색온을 관조함은 몸을 관조하여 분명히 본 것이니, 견고하면 땅이고, 축축하면 물이며, 따뜻하면 불이고, 움직이면 바람이다. 나머지 사온四蘊을 관조함은 마음을 관조하는 것이니, 받아들이는 것이 수受이고, 상相을 취하는 것이 상想이며, 조작하는 것이 행行이고, 구별하는 것이 식識이다. 이 몸과 마음에 의거하여 분명하게 자세히 관조하면 단지 오온임을 알 뿐 인아의 상을 구해 보아도 결코 얻을 수 없으니, 인공人空이라 한다. 하나하나의 온을 관조해 보면 모두 인연에 따라 발생하여 전혀 자성이 없다. 온의 상을 구해 보아도 얻을 수 없으면 오온이 모두 공이니, 법공法空이라 한다.”71)라고 했다. 그러므로 오온을 비추어 보면 두 가지 공의 이치가 드러난다.


009_0184_b_01L徹法之慧目 洞達五蘊自性 空無
009_0184_b_02L所起 當體即如 然後從三昧起 告
009_0184_b_03L鶖子曰 應如是學故 以達五蘊空
009_0184_b_04L爲觀行境 然以深慧 觀蘊性空
009_0184_b_05L對之起觀 故名爲境 若成般若
009_0184_b_06L境即所行 鎭國曰 如般若中 雖
009_0184_b_07L有實相 爲成智慧 所行境中 若
009_0184_b_08L能若所 皆是所行 如諸菩薩 行
009_0184_b_09L深般若 能觀所觀 皆所行行 二
009_0184_b_10L空理者 鎭國曰 生死之本 莫過
009_0184_b_11L人法二執 迷身心摠相故 計人我
009_0184_b_12L爲實有 迷五蘊自相故 計法我爲
009_0184_b_13L實有 智眼照知 五蘊和合 假名
009_0184_b_14L爲人 一一諦觀 但見五蘊 求人
009_0184_b_15L我相 終不可得 先觀色蘊 是觀
009_0184_b_16L身了知 堅則地 潤則水 煖則火
009_0184_b_17L動則風 觀餘四蘊 則是觀心了知
009_0184_b_18L領納爲受 取相爲想 造作爲行 了
009_0184_b_19L別爲識 依此身心 諦觀分明 但
009_0184_b_20L見五蘊 求人我相 終不可得 名
009_0184_b_21L爲人空 若觀一一蘊 皆從緣生
009_0184_b_22L都無自性 求蘊相不可得 則五蘊
009_0184_b_23L皆空 名爲法空 是以照五蘊 而
009_0184_b_24L二空理現

009_0184_c_01L
ㄹ) 이익에 대한 설명

넷째, 이익에 대한 설명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일체의 고액을 벗어난다.

(ㄴ) 해석

둘째, 해석이다.

넷째, 이익을 밝히는 것이다. 진공을 증험하면 고뇌가 사라지고, 분단分段과 변역變易의 두 종류 생사72)를 멀리 벗어나서 보리와 열반의 궁극적 낙과樂果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고액을 벗어난다.”라고 하였다.

무릇 “일체의 고액”은 두 가지 생사로 수렴된다. 지금 진공을 알면 제도되어 버린다. 왜 그런가? 청량 징관은 말하기를, “인공관人空觀의 수행을 타고 분단생사를 벗어나면 영원히 열반에 머무르고, 두 가지 공관의 수행을 타고 인아와 법아를 쌍으로 관조하면 필경 공이어서 실체가 없다. 곧 모든 두려움을 벗어나 일체의 고액을 벗어나고 변역생사를 벗어나는 것을 구경해탈이라 한다.”73)라고 했다. “고苦”는 5고와 8고를 말하고, “변역생사”는 인연 등의 네 종류의 생사74)를 말한다. 유식唯識 등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이 관행에 의거하면 궁극의 낙과를 얻으리니, 불타의 공덕이 공이겠는가?

ㄷ. 통틀어서 맺음

셋째, 통틀어서 맺는다.

위에서 간략하게 (강요를) 표명하는 부분을 마쳤다.

㉯ 진실된 뜻을 자세히 진술하는 부분

둘째, 진실된 뜻을 자세히 진술하는 부분이니, 여기에 다섯이 있다.

ㄱ. 외도의 의심을 불식시킴

첫째, 외도의 의심을 불식시킨다.

이 과목을 지은 까닭은, 형양 정 공과의 절실한 인연으로 이 경전을 오랫동안 독송하였고, 앞서 이미 번역자의 설명을 익숙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소주인 법장은 그 듣고 본 것에 따라 이런 말을 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자은 규기는 말하기를, “지금 색과 공이 서로 드러난다고 설한 것은, 뜻을 더욱 분명하게 하고 의심과 집착을 논파하기 위해서이다.

009_0184_c_01L
四明利益二 初唱經

009_0184_c_02L
度一切苦厄

009_0184_c_03L
[記]二演釋

009_0184_c_04L
[䟽]四明利益 謂證見眞空 苦惱斯盡
009_0184_c_05L當得遠離分段變易二種生死 證菩
009_0184_c_06L提湼槃究竟樂果 故云度一切苦厄
009_0184_c_07L

009_0184_c_08L
[記]夫一切苦厄 二死收盡 今見眞
009_0184_c_09L空 度已盡矣 何者 淸凉曰 乘人
009_0184_c_10L空觀行 出分段生死 永處湼槃
009_0184_c_11L乘二空觀行 雙照人法二我 畢竟
009_0184_c_12L空無所有 則離諸怖畏 度一切苦
009_0184_c_13L厄 出變易生死 名究竟解脫 苦
009_0184_c_14L謂五苦八苦 變易謂因緣等四種
009_0184_c_15L生死 如唯識等說 依此觀行 得
009_0184_c_16L究竟樂果 佛德空乎

009_0184_c_17L
三通結

009_0184_c_18L
[䟽]上來略標竟

009_0184_c_19L
[記]二廣陳實義分五 初拂外疑 作
009_0184_c_20L此科者 切緣鄭公 久誦此經 先
009_0184_c_21L已熟聞譯者之說 是以䟽主 順其
009_0184_c_22L聞見 有此云耳 故慈恩云 今說色
009_0184_c_23L空互相顯者 令義增明 破疑執故

009_0184_c_24L「進」欄外筆書改作「逝」{編}

009_0185_a_01L첫째, 이승二乘의 의도는 좁고 열등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즐기지 못한다. 둘째, 대승에서도 전도되게 추구하여 의혹을 일으키기에 이른다.”75) 등이라고 했다. 진실로 소주인 법장과 경전의 종지가 아니므로 곧바로 올바른 뜻을 드러내는 과목을 두어 근본된 뜻에 따라 경전의 뜻을 해석하여 통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사리자여,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도 색과 다르지 않다.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

청량 징관은 말하기를, “색은 법상法相의 머리이고, 오온의 처음이다. 그러므로 모든 경론에서는 무릇 통일된 뜻을 설하니, 모두 먼저 색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대반야경』에서는 색 이상에서부터 일체종지 이하까지 80여 개의 과목76)이 모두 색을 사례로 삼는다. 간략하게 법을 정리하면 10대十對를 벗어나지 않는다. 의지처가 되는 것의 바탕은 공이 아님이 없다.”77)라고 했다. 이리하여 여러 조사들은 모두 진공의 이법과 환색幻色 등의 사법을 말하여 결국 열 가지 부문의 무애78)로 풀어낸 것이다.

ㄴ) 해석

둘째, 해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총괄적 판별

첫째, 총괄적 판별이다.

이하 둘째로 진실한 뜻을 자세히 진술한 부분을 밝힌다. 여기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외도의 의심을 불식시킨다. 둘째, 법체를 드러낸다. 셋째, 여의는 것을 밝힌다. 넷째, 얻음에 대해 설명한다. 다섯째, 우수한 능력에 대해 결론적으로 찬탄한다.

이것은 『약소』의 문맥을 과단하여 경을 읊음 앞에 둔 것이다. 『약소』에서는 생략을 좇아서 두루 읊는 부분을 두지 않았다. 이미 위와 같으니, 알 수 있으리라.

(ㄴ) 개별적 해석

둘째, 개별적 해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해석 방식을 총괄적으로 보임

첫째, 해석 방식을 총괄적으로 보인다.

첫째 단락의 문장에는 네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정면으로 소승의 의심을 제거한다. 둘째, 겸하여 보살의 의심을 푼다. 셋째, 곧바로 올바른 뜻을 드러낸다. 넷째, 관조 수행에 나아가 해석한다.


009_0185_a_01L
一者二乘作意狹劣 不樂利他 二
009_0185_a_02L者於大乘中 顚倒推求 及起疑惑
009_0185_a_03L等 實非䟽主及經宗旨故 有便顯
009_0185_a_04L正義之科 方順本宗釋通經意 於
009_0185_a_05L中二 初唱經

009_0185_a_06L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即是
009_0185_a_07L空 空即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009_0185_a_08L
[記]淸凉曰 色即法相之首 五蘊之
009_0185_a_09L初 故諸經論 凡說一義 皆先約
009_0185_a_10L色故 大般若等 從色已上 種智
009_0185_a_11L已還 八十餘科 皆將色例 若略
009_0185_a_12L收法 不出十對 所依體事 無不
009_0185_a_13L即空 是以諸祖 皆云眞空之理
009_0185_a_14L幻色等事 遂以釋成十門無礙也

009_0185_a_15L
二作釋二 初1)判總

009_0185_a_16L
[䟽]自下第二明廣陳實義分 於中有
009_0185_a_17L五 一拂外疑 二顯法體 三明所離
009_0185_a_18L四辨所得 五結歎勝能

009_0185_a_19L
[記]此科䟽文理 在唱經之前 䟽中
009_0185_a_20L從略不存通唱 已如上會

009_0185_a_21L
二釋別二 初捴示釋儀

009_0185_a_22L
[䟽]初段文有四釋 一正去小乘疑 二
009_0185_a_23L兼釋菩薩疑 三便顯正義 四就觀行
009_0185_a_24L

009_0185_b_01L
“문장에는 네 가지 해석이 있다.”란, 곧 경을 읊은 이 한 문장을 모두 네 가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무릇 문장에 네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 의심의 대상인 법에 네 가지의 해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하다면 사리자에게도 네 가지 설명이 따르게 되지만, 뜻에는 동일하지 않은 점이 있다. 만약 네 가지 해석이 총괄적으로 모두 의심의 대상인 법에 속한다면 경전의 종지에 우매하여 깊은 뜻을 잃어버린 것이 된다. 큰 과목(외도의 의심을 불식시킴)은 처음의 두 가지 뜻을 좇아 이름을 세운 것이다.

㉡ 장을 내세우고 특징을 드러냄

둘째, 장을 내세우고 특징을 드러내니, 여기에 넷이 있다.

a. 정면으로 소승의 의심을 제거함

첫째, 정면으로 소승의 의심을 제거하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의심하는 사람을 거론함

첫째, 의심하는 사람을 거론한다.

처음에 “사리자여”라고 한 것은, 의심하는 사람을 거론한 것이다. ‘사리’는 새의 이름으로 추로조鶖鷺鳥라 의역한다. 그 사람의 어머니는 총명하고 날래어 저 새의 눈과 같았으니, 그래서 그 이름을 지었다. 그녀의 아들이니 어머니와 연관하여 불렀으므로 ‘추자鶖子’라 하였다. 이리하여 어머니는 새(鳥)로 인해 이름 지었고, 아들은 어머니와 연관하여 이름 지었다. 총명한 지혜가 제일이어서 상수上首로 표명되었다. 그러므로 그를 상대하여 의심을 풀어 준 것이다.

“사리자” 이하는 경문을 첩문牒文한 것이고, “의심하는 사람을 거론한 것이다.”라는 것은 해설이다. ‘사리’ 이하는 이름을 얻게 된 인연이니, 춘앵春鶯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총명한 지혜가” 이하에서는 덕을 찬탄하여 그에게 일러 준 까닭을 해석하였다. 이역본 경전에서 설하는 바에 따르면 “불타가 영취산에서 대비구중 백천 명과 더불어 계셨다.”79)라고 했지만, 지금 (이 역본은) 오직 그에게 일렀기 때문에 “상수”라고 하였다.

b) 의심을 풀어냄

둘째, 의심을 풀어내는 것이니, 여기에 셋이 있다.

(a) 유여有餘의 지위

첫째, 유여의 지위80)이다.

그가 의심하기를, “우리 소승의 유여위에서는 오온에 인아人我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법공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한다. 지금 해석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의 종지인 오온에 인아가 없다 함은 온이 공한 것이라 하니, 온이 스스로 공한 것은 아니다.81) 그러므로 오온은 공과 다른 것이 된다.”라고 했다. 지금 밝히자면 오온의 자성은 본래 공이니,

009_0185_b_01L
[記]文有四釋者 則此一唱經文 通
009_0185_b_02L作四釋 盖文含四義故也 非於所
009_0185_b_03L疑法中 有四釋也 是則鶖子 亦
009_0185_b_04L隨四說 義有不同 若捴四釋 皆
009_0185_b_05L屬所疑法 則陸沉經宗 失於深旨
009_0185_b_06L矣 大科從初二義 以立其名

009_0185_b_07L
二唱章顯相四 初正去小乘疑二
009_0185_b_08L初擧疑人

009_0185_b_09L
[䟽]初中言舍利子者 擧疑人也 舍利
009_0185_b_10L是鳥名 此翻爲鶖鷺鳥 以其人母
009_0185_b_11L聡悟迅疾 如彼鳥眼 因立其名 是
009_0185_b_12L彼之子 連母爲號 故曰鶖子 是則
009_0185_b_13L母因鳥名 子連母號 聡慧第一 標
009_0185_b_14L爲上首 故對之釋疑也

009_0185_b_15L
[記]言舍下牒經擧疑人者 判釋也
009_0185_b_16L舍利下出得名之緣 亦翻春鶯 聡
009_0185_b_17L慧下歎德 以釋對告之由 異譯經
009_0185_b_18L說 佛在鷲山 與大比丘衆 滿千
009_0185_b_19L百人 今特告之 故曰上首

009_0185_b_20L
二對釋疑三 初有餘位

009_0185_b_21L
[䟽]彼疑云 我小乘有餘位中 見蘊無
009_0185_b_22L人 亦云法空 與此何別 今釋云 汝
009_0185_b_23L宗蘊中無人 名蘊空 非蘊自空 是
009_0185_b_24L則蘊異於空 今明諸蘊自性本空而

009_0185_c_01L그들과 같지 않다. 그러므로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등이라 했다.

처음에 의심을 거론하니, 그가 대승에서 공의 이치를 설법하는 것을 듣고 이러한 의심을 낸 것이다. “유여”란 태일산太一山 지엄智儼이 말하기를, “신체와 지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82)라고 했다. “오온에 인아人我가 없다고 본다.”란, 오온에는 인아人我가 없으니, 인공人空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뒤에서 바로 의심하여 말하기를, “그 대승의 법공과 차별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지금 해석하여” 이하에서는 서로 다른 점을 드러낸다. “오온에 인아가 없다 함은”이라는 것은, 평상 위에 사람이 없더라도 평상은 결코 없는 것이 아니니, 오온에 인아가 없더라도 오온이 어찌 공이겠는가? 곧 공과 오온은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 밝히자면” 이하에서는 경전을 들어 의심을 견책하였다.

(b) 무여의 지위

둘째, 무여의 지위이다.

또 의심하여 말하기를, “우리 소승에서 무여의 지위에 들면 신체와 지혜가 모두 사라지니, 공이라거나 색이 없음이라거나 하는 것 등이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한다. 해석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의 종지는 색이지 공이 아니니, 색이 소멸하고 나서야 공이다.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않다. 색이 곧 공이지, 색이 멸한 공이 아니다. 그러므로 저들과 같지 않다.”라고 한다.

태일산 지엄은 말하기를, “무여의 신체와 지혜는 같은 법수만큼 소멸한 무위법을 본체로 삼는다.”83)라고 했다. 처음에 의심을 거론하여, “이 지위에서 신체와 지혜가 모두 사라지니, (이것이) 색이나 마음 등의 온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너희들의 종지는……”은 소승의 석색관㭊色觀이니, 색이 사라지고 나서야 공이라는 것이다. 대승은 체색관體色觀이니, 색이 곧 공이지 색을 소멸시켜 공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대승시교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는” 이하는 경전을 들어 해석하고 견책한 것이다.

(c) 통틀어서 결론을 보임

셋째, 통틀어서 결론을 보인다.

이승의 의심은 이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아가 그 의심들을 풀었다.

b. 겸하여 보살의 의심을 풀어냄

둘째, 겸하여 보살의 의심을 풀어낸다.


009_0185_c_01L不同彼 故云色不異空等

009_0185_c_02L
[記]初擧疑 彼聞大乘說法空理 而
009_0185_c_03L生此疑 有餘者 太一云 有餘身
009_0185_c_04L智故 見蘊無人者 蘊中無我 顯人
009_0185_c_05L空故 亦云下正疑 與彼大乘法空
009_0185_c_06L無別 今釋下顯異相 蘊中等者
009_0185_c_07L牀上無人 牀固非無 蘊中無人
009_0185_c_08L蘊豈空耶 則空與蘊異 今明下以
009_0185_c_09L經遣疑 二無餘位

009_0185_c_10L
[䟽]又疑云 我小乘中 入無餘位 身
009_0185_c_11L智俱盡 亦空無色等 與此何別 釋
009_0185_c_12L云汝宗即色非空 滅色方空 今則
009_0185_c_13L不爾 色即是空 非色滅空 故不同
009_0185_c_14L

009_0185_c_15L
[記]太一曰 無餘身智故同 數滅無
009_0185_c_16L爲爲體 初擧疑 此位身智俱盡
009_0185_c_17L無色心等蘊故 汝宗等者 以小乘
009_0185_c_18L㭊色觀 色盡方空 大乘體色觀
009_0185_c_19L色即是空 非滅色明空 如始敎說
009_0185_c_20L今則下以經釋遣

009_0185_c_21L
三通結示

009_0185_c_22L
[䟽]以二乘疑 不出此二 故就釋之

009_0185_c_23L
[記]二兼釋菩薩疑

009_0185_c_24L「判總」底本欄外有註曰「判總疑總判之倒」{編}

009_0186_a_01L
둘째, 겸하여 보살의 의심을 풀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통틀어서 해석한 것이다. “사리자여” 이하의 한 단락의 경문은, 이치가 마땅히 경을 읊은 자리에 있으니, 의심하는 사람이라는 과목을 거론해야 하지만, 소에서는 생략하여 의심하는 사람을 지목하지 않았는데, 곧 사리자일 뿐이다. 그런데 『보성론』을 인용하여 의심한 사람을 거론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소에서 “보살(의 의심)”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추자(사리자)라고 하는 것인가? 소주인 법장은, “이들이 모두 이미 삼승 가운데 있다.”84)라고 했으니, 사리자 등의 지위도 모두 삼승이다. 태일산 지엄이 말하기를, “사리불의 몸은 불법에서의 뜻이 지혜가 총명하다는 지위에 해당한다.”85)라 했고, 또 말하기를, “그 지위는 돈오의 성숙한 가르침에 있으면서 뜻이 초교初敎에도 통한다.”86)라고 했다. 또 일승으로 회심한 성문은 본래 뿌리를 기준으로 하면 성문이라 하고, 현재 배우는 법에 근거하면 보살이라 한다. 소의 문장에는 세 가지가 있다.

a) 표방

첫째, 표방이다.

『보성론』에 의거하여 말하자면, 공에 대한 혼란된 생각을 가진 보살에게는 세 종류의 의심이 있었다.87)

b) (논을) 나열하고 해석함

둘째, (논을) 나열하고 해석한다.

첫째, 공은 색과 다르다고 의심하여 색 바깥에서 공을 취한다. 지금 색은 공과 다르지 않다고 밝혀 저 의심을 끊는다. 둘째, 공이 색을 소멸시킨다고 의심하여 단멸의 공을 취한다. 지금 색이 곧 공이어서 색이 소멸된 공이 아님을 밝혀 저 의심을 끊는다. 셋째, 공이 사물이라고 의심하여 공이 있다고 집착한다. 지금 공이 곧 색이어서 공으로 공을 취해서는 안 됨을 밝혀 저 의심을 끊는다.

c) 결론을 보임

셋째, 결론을 보인다.

세 가지 의심이 사라지면 진공은 저절로 드러난다.

그런데 지금 세 가지 의심을 나열한 것은 경문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징관의 『화엄법계현경』과 순서가 다르다.88)

009_0186_a_01L
[䟽]二兼釋菩薩疑者

009_0186_a_02L
[記]是亦通釋 舍利下一段經文 理
009_0186_a_03L當亦有唱經 擧疑人之科 䟽略不
009_0186_a_04L指疑人 即舍利子耳 而謂引論擧
009_0186_a_05L疑人者 非也 然䟽云 菩薩何以
009_0186_a_06L鶖子者 䟽主曰 此等皆是已在
009_0186_a_07L三乘中 則鶖子等位 皆三乘 太
009_0186_a_08L一曰 舍利弗身 在佛法中 義當
009_0186_a_09L聰明位 又曰其位 在於頓悟熟敎
009_0186_a_10L義通初敎 又回心聲聞 約本則名
009_0186_a_11L聲聞 據現學法 則名菩薩 䟽文
009_0186_a_12L有三 一標擧

009_0186_a_13L
[䟽]依寶性論云 空亂意菩薩 有三種
009_0186_a_14L

009_0186_a_15L
[記]二列釋

009_0186_a_16L
[䟽]一疑空異色 取色外空 今明色不
009_0186_a_17L異空 以斷彼疑 二疑空滅色 取
009_0186_a_18L斷滅空 今明色即是空 非色滅空
009_0186_a_19L以斷彼疑 三疑空是物 取空爲有
009_0186_a_20L今明空即是色 不可以空取空 以
009_0186_a_21L斷彼疑

009_0186_a_22L
[記]三結示

009_0186_a_23L
[䟽]三疑旣盡 眞空自顯也

009_0186_a_24L
[記]然今列三疑 以順經文 故與玄

009_0186_b_01L그런데 규봉 종밀은 『주화엄법계관문』에서 주석을 생략하고, 뜻이 관심觀心을 목표로 삼아 제시하는 데 있지, 마음대로 인용하고자 한 것은 아니므로 “반드시 회통할 필요는 없다.”89)라고 하였다.

c. 곧바로 올바른 뜻을 드러냄

셋째, 곧바로 올바른 뜻을 드러낸다.

참으로 색과 공의 무애無礙·상즉相即·원통圓通이라는 것이 이 경전이 말하는 올바른 이치이다. 그러므로 “곧바로 올바른 뜻을 드러낸다.”라고 하니, 의심을 풀어내는 뜻도 뜻의 부문을 겸하여 갖는다. 경전에도 두 단락이 있으니, “사리자”란 일러 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올바른 뜻을 드러냄에서,

a) 공과 유로 성립하는 까닭을 드러냄

첫째, 공과 유로 성립하는 까닭을 드러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무애인 까닭을 정면으로 드러냄

첫째, 무애인 까닭을 정면으로 드러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표방하고 (뜻을) 보임

첫째, (과명을) 표방하고 (뜻을) 보인다.

셋째, “곧바로 올바른 뜻을 드러낸다.”란, 단지 색과 공의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세 가지 뜻이 있다.

“곧바로 (올바른 뜻을) 드러낸다.”는, 과목의 이름을 첩문하는 것이다. “단지 색과” 이하에서는 뜻을 드러내 보인다. 경전에서 색과 공이 서로 같아서 서로 다름이 없다고 설하는 이유는, 참으로 이 세 가지 뜻을 갖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을 얻는 것이지만 단멸의 공은 아니며, 유이지만 결정된 유는 아니다. 공이지만 온전한 유이어서 곧 유를 가지고 공을 변론하며, 유이지만 온전한 공이어서 곧 공으로 유를 변론한다. 진공과 묘색은 있음과 없음이 무애하고 숨고 드러남이 원융하여 한맛으로서 의존하는 바가 없다. 진국 사문 징관은 또 말하기를, “연기의 사법과 본성공의 이법이라는 두 가지 상호 관계에는 세 가지의 뜻이 있다. 이 세 가지 뜻으로 인해 이사무애理事無礙를 이룬다.”90)라고 하였다. 그 까닭은 드러내었지만 또한 단지 이 세 가지 부문과 네 가지 뜻만을 설하였다.91) 소주인 법장은 이 경전을 받들어 해석하여 이 단락의 경문의 뜻은 넓고 깊어 열 가지 부문의 이사무애를 갖추며, 이것이 이 경전의 진실된 뜻으로서 가장 높은 근본이라 한다. 아래의 ‘여의는 것을 밝힘’과 ‘법체를 드러냄’은 모두 곧 묘유에 상즉하는 진공일 따름이다. 이 이하 두 과목의 소의 문장에 대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미혹하니, 이 경전을 억압하여 방편이고 얕은 것이라고 하면서

009_0186_b_01L鏡不次 而圭峯略註 意存的示觀
009_0186_b_02L心 不欲衍引 故云石必和會 三
009_0186_b_03L便顯正義 良以色空無礙 相即圓
009_0186_b_04L通 乃斯經所詮正理 故云便顯
009_0186_b_05L正義 釋疑之義 義門兼有經亦二
009_0186_b_06L段 舍利子者 對告人也 所顯義中
009_0186_b_07L一彰所以 釋成空有二 初正顯無
009_0186_b_08L礙因由二 初標示

009_0186_b_09L
[䟽]三便顯正義者 但色空相望 有其
009_0186_b_10L三義

009_0186_b_11L
[記]便顯下牒科名 但色下示義所
009_0186_b_12L以 經說色空相 即互無異者 良
009_0186_b_13L由具此三義故 得空非斷空 有非
009_0186_b_14L㝎有 空而全有 即有以辨於空 有
009_0186_b_15L而全空 即空而辨於有 眞空妙色
009_0186_b_16L存亡無礙 隱顯圓融 一味無寄也
009_0186_b_17L鎭國又曰 緣起之事 與性空之理
009_0186_b_18L二互相望 有乎三義 由此三義
009_0186_b_19L成於理事無礙 彰其所以 亦但說
009_0186_b_20L此三門四義 䟽主仰釋斯經 則此
009_0186_b_21L段經 文義淵奧 具足十門理事無
009_0186_b_22L礙 是一經實義之宗本也 下明所
009_0186_b_23L離顯法體 皆即妙有之眞空耳 此
009_0186_b_24L下二科䟽文 今古同迷 乃將斯經

009_0186_c_01L종종 법을 훼방하는 일을 면하지 못하였다. 진국 사문 징관 대화상이 문장에 맞추어 해석하여 문구가 밝게 알려지니, 지금 약술한다.92)

ⓑ 특성을 해석함

둘째, 특성을 해석한다.

첫째, 서로 위배한다는 뜻이다. 아래 문장에서 “공에는 색이 없다.” 등이라고 한다. 공은 색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색에는 공이 없다.”라고 해야 하니, 색은 공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반드시 서로 없애기 때문이다. 둘째, 서로 장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색은 가환假幻이므로 색은 결코 공을 장애하지 않고, 공은 참이므로 공은 결코 환색幻色을 장애하지 않는다. 색을 장애하면 곧 단공斷空이지 진공이 아니기 때문이고, 공을 장애하면 곧 실색實色이지 환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서로 만들어 준다는 뜻을 밝힌다. 이 환색이 바탕을 거론하여 공이 아니라고 한다면 환색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진공도 그러하다. 위에서 설명한 바에 따라 알아야 한다.

저 문장에서 “‘서로 위배한다’란, 경전에서 ‘공에는 색이 없다’라고 했으니, 공은 색을 해치기 때문이다. 또한 ‘색에는 공이 없다’라고 해야 하니, 색은 공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반드시 서로 없애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곧 (이사무애 10문十門 중에서) 제5 이리탈사문以理奪事門, 제6 사능은리문事能隱理門, 제9 진리비사문眞理非事門, 제10 사법비리문事法非理門의 네 가지 부문이다. 뒤의 두 가지 뜻은 모두 동일하다. 이 소에서는 단지 불상애不相礙의 뜻이라 하였지만, (『정원신역화엄경소』에서는 불상애의에 대한) 마지막 문장에서 “이것은 곧 제7, 제8의 사리상즉事理相即의 두 가지 문(眞理卽事門과 事法卽理門)이다.”93)라 했다. “서로 만들어 준다는 뜻(相作義)”에서 “위에서 설명한 바에 따라 알아야 한다.(準上應知)”까지에 대해서, 아래에서는 “이것은 곧 제3, 제4 의리성사문依理成事門과 사능현리문事能現理門이다. 처음의 (이편어사문理遍於事門과 사편어리문事遍於理門의) 두 가지 부문은, 곧 두루 본체적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니, 또한 서로 장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94)라 한다. 해석하여 말한다. 처음의 두 가지 부문이란, 곧 서로 편재한다는 (이편어사문과 사편어리문의) 두 가지 부문이니, 문구가 모두 동일하다. 그러므로 갖추어 쓰지 않는다. 『정원신역화엄경소』 제1권 하반부에 구비되어 있는 것과 같다.

009_0186_c_01L抑爲權淺 徃徃不免謗法矣 鎭國
009_0186_c_02L大和尙 循文解釋 辭句曉然 今
009_0186_c_03L略出之

009_0186_c_04L
二釋相

009_0186_c_05L
[䟽]一相違義 下文云 空中無色等
009_0186_c_06L以空害色故 準此應云 色中無空
009_0186_c_07L以色違空故 若以互存 必互亡故
009_0186_c_08L二不相閡義 謂以色是幻 色必不閡
009_0186_c_09L空 以空是眞 空必不妨幻色 若閡
009_0186_c_10L於色 即是斷空 非眞空故 若閡於
009_0186_c_11L空 即是實色 非幻色故 三明相作
009_0186_c_12L義 謂若此幻色 擧體非空 不成幻
009_0186_c_13L色 眞空亦爾 準上應知

009_0186_c_14L
[記]彼文云 言相違者 經云空中無
009_0186_c_15L色 以空害色故 亦應云 色中無
009_0186_c_16L空 以色違空故 若互相存 必互
009_0186_c_17L相亡故 即五六九十四門 後二義
009_0186_c_18L全同 此䟽但不相礙義 末文云
009_0186_c_19L此即七八 事理相即 二門相作義
009_0186_c_20L至準上應知 下云此即三四 依理
009_0186_c_21L成事 事能顯理門也 其初二門
009_0186_c_22L即通顯體相 亦不相礙義 釋曰言
009_0186_c_23L初二門者 即相徧二門 文句全同
009_0186_c_24L故不備書 具如貞元 第一之下眞

009_0187_a_01L“진공도 그러하다.”란, 위에서는 색의 공에 대한 관계를 가지고 상작의相作義를 이룬다. 공의 색에 대한 관계의 경우도 상작의의 뜻이 그러하다.

(b) 원만한 소통의 까닭을 단계적으로 보임

둘째, 원만한 소통의 까닭을 단계적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색이 곧 공이기 때문에 마침내 색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대품경』에서 “제법이 공하지 않으면 곧 도道도 없고 과보도 없다.”95)라고 했고, 『중론』에서 “공의 뜻이 있기 때문에 일체법이 성립할 수 있다.”96)라고 했다. 그러므로 진공도 이러하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란 위에서 이어진다는 용어이다. 위의 세 가지 뜻에 걸림이 없기 때문에 진공과 묘색이 각각 네 가지 뜻을 갖추어 공과 색의 원만한 소통을 이룩한다. 진국 사문 징관은 말하기를, “또 위의 세 가지 뜻으로 말미암아 모든 공과 유의 법은 두루 네 가지 뜻을 갖는다.”97)라고 했다. 대승시교에서 말해지는 진제의 공은, 비록 색에 상즉하는 공이라 하더라도 네 가지 뜻과 세 가지 부문을 갖추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참으로 유를 말하는 경우에서는 곧 법집法執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땅히 이 경전에서 말해지는 색에 상즉하는 공과 공에 상즉하는 색이 각각 네 가지 부문과 세 가지 뜻을 갖춤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쌍으로 존재하고 쌍으로 사라지며, 거스르거나 따르고 숨거나 드러난다. 덕을 갖추어 자재하니, 공의 종지를 남용함이 없다. 그릇되게 설하여 유로 삼으면 진제는 공이 된다. 진국 사문 징관은 법성종法性宗을 설하니, 공에 상즉하는 색이 묘색이고 색에 상즉하는 공이 진공이다. 이리하여 유 아닌 유와 공 아닌 공이 덕을 갖춘 공과 유이다. 우리의 조사인 법장은 구절에 따라 해석하였지만, 고정된 집착이 있을까 두려워도 감히 번다함을 피하려 하지 않고, 마침내 갖추어 기록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 묘색에 대한 진공의 관계

첫째, 묘색에 대한 진공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진공에는 통틀어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자기를 폐지하고 남을 이루는 뜻이다. 공이 곧 색이므로 곧 색이 나타나고 공은 숨는다.

009_0187_a_01L空亦爾者 上以色望於空 而成相
009_0187_a_02L作 若空望於色 作義亦爾 二躡
009_0187_a_03L示圓通所以

009_0187_a_04L
[䟽]是故由色即空 方得有色 故大品
009_0187_a_05L云 若諸法不空 即無道無果等 中
009_0187_a_06L論云 以有空義故 一切法得成故
009_0187_a_07L眞空亦爾 準上應知

009_0187_a_08L
[記]是故者 躡上之辭 由上三義無
009_0187_a_09L礙故 令眞空妙色 各具四義 而
009_0187_a_10L成空色圓通 鎭國曰 又由上三
009_0187_a_11L義 諸空有法 通有四義 當知始
009_0187_a_12L敎所詮眞諦之空 雖云即色之空
009_0187_a_13L不具四義三門 良由若言其有 即
009_0187_a_14L是法執未盡故 當深究此經所詮
009_0187_a_15L即色之空 即空之色 各具四門三
009_0187_a_16L義 雙存雙泯 逆順隱顯 具德自
009_0187_a_17L在 無濫空宗 妄說爲有 眞諦是
009_0187_a_18L空 鎭國說性宗 即空之色爲妙色
009_0187_a_19L即色之空爲眞空 是則非有之有
009_0187_a_20L非空之空 爲具德之空有也 吾祖
009_0187_a_21L隨句牒釋 恐有固執不敢避繁 遂
009_0187_a_22L具書之 於中二 一眞空望妙色

009_0187_a_23L
[䟽]是故眞空 通有四義 一廢己成他
009_0187_a_24L義 以空即是色故 即色現空隱也

009_0187_b_01L둘째, 남을 없애고 자기를 드러내는 뜻이다. 색이 공이므로 곧 색은 다하고 공이 나타난다. 셋째, 자기와 남이 모두 보존되는 뜻이다. 숨고 드러남이 둘이 아닌 것이 진공이므로 말하자면 공과 다르지 않은 색을 환색이라 하여 색이 보존되고, 색과 다르지 않은 공을 진공이라 하여 공이 드러난다. 서로 장애하지 않아 둘이 모두 보존된다. 넷째, 자기와 남을 모두 없애는 뜻이다. 본체 상에서 서로 같으니, 자타 모두를 빼앗아 없애어 두 가지 극단을 끊는다.

저 문장에서 “첫째, 자기를 폐지하고 남을 이루는 뜻이다. 공이 곧 색이므로 곧 색이 나타나고 공은 숨는다.”라 한 것은, 곧 제3 의리성사문依理成事門이고, “둘째, 남을 없애고 자기를 드러내는 뜻이다. 색이 공이므로 곧 색은 다하고 공이 나타난다.”라 한 것은, 곧 제8 사법즉리문事法即理門이며, “셋째, 자기와 남이 모두 보존되는 뜻이다. 숨고 드러남이 둘이 아닌 것이 진공이므로 말하자면 공과 다르지 않은 색을 환색이라 하여 색이 보존되고, 색과 다르지 않은 공을 진공이라 하여 공이 드러난다. 서로 장애하지 않아 둘이 모두 보존된다.”라 한 것은, 곧 제9 진리비사문眞理非事門이고, “넷째, 자기와 남을 모두 없애는 뜻이다. 본체 상에서 서로 같으니, 자타 모두를 빼앗아 없애어 두 가지 극단을 끊는다.”라 한 것은, 곧 제5 이리탈사문以理奪事門이다. 위의 네 가지 뜻은 모두 색에 대한 공의 관계이다.

ⓑ 진공에 대한 묘색의 관계

둘째, 진공에 대한 묘색의 관계이다.

공에 대한 색의 관계에도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남을 드러내고 자기를 없애는 것이다. 둘째, 자기를 드러내고 남을 숨기는 것이다. 셋째, 모두 보존하는 것이다. 넷째, 모두 없애는 것이다. 모두 앞을 기준하여 생각하라.

처음에 색을 자기라 하고 공을 남이라 함을 표시하였다. 그러므로 앞의 부문과 다르다. 첫째로 남을 드러내고 자기를 없애는 뜻은 곧 제4 사능현리문事能顯理門이고,

009_0187_b_01L二泯他顯己義 以色是空故 即色盡
009_0187_b_02L空現也 三自他俱存義 以隱顯無二
009_0187_b_03L是眞空故 謂色不異空爲幻色 色存
009_0187_b_04L也 空不異色名眞空 空顯也 以互
009_0187_b_05L不相礙 二俱存也 四自他俱泯義
009_0187_b_06L以擧體相即 全奪兩亡 絕二邊故

009_0187_b_07L
[記]彼文云 一廢己成他義 以空即
009_0187_b_08L色故 即色現而空隱也 即是第三
009_0187_b_09L依理成事門 二泯他顯己義 以色
009_0187_b_10L即空故 即色盡空顯也 即第八事
009_0187_b_11L法即理門 三自他俱存義 以隱顯
009_0187_b_12L無二 是眞空故 謂不異空爲幻色
009_0187_b_13L色存也 不異色名眞空 空顯也
009_0187_b_14L以互不相異二 俱存也 即是第九
009_0187_b_15L眞理非事門 四自他俱泯義 以擧
009_0187_b_16L體相即 全奪兩亡 絕二邊故 即
009_0187_b_17L第五以理奪事門 上之四義 並空
009_0187_b_18L望於色

009_0187_b_19L
二妙色望眞宗

009_0187_b_20L
[䟽]色望於空 亦有四義 一顯他自盡
009_0187_b_21L二自顯隱他 三俱存 四俱泯 並準
009_0187_b_22L前思之

009_0187_b_23L
[記]初標示以色爲自 以空爲他 故
009_0187_b_24L異前門 一顯他自盡義 即是第四

009_0187_c_01L둘째로 자기를 드러내고 남을 숨기는 뜻은 곧 제7 진리즉사문眞理即事門이며, 셋째로 모두 보존하는 뜻은 곧 제10 사법비리문事法非理門이고, 넷째로 모두 없애는 뜻은 곧 제6 사능은리문事能隱理門이다. “모두 앞을 기준하여 생각하라.”라는 것을 설명해 보자. 첫 번째에서 색이 곧 공이므로 곧 공이 나타나고, 색은 숨는다. 참으로 공이라는 남이 드러나고, 색이라는 자기가 없어지므로 사법에는 이법을 나타내는 공능이 있는 것이다. 나머지 셋도 알 수 있다. 또 앞의 네 가지 부문은 반드시 뒤의 네 가지 부문을 동반하고, 뒤의 네 가지 부문은 반드시 앞의 네 가지 부문을 동반한다. 합하면 통하게 되니, 네 가지 부문은 유를 온전히 하는 공과 공을 온전히 하는 유가 된다. 그러므로 네 가지 부문으로 통합된다.

b) 원만한 소통을 깨달아 경의 종지를 결론적으로 보임

둘째, 원만한 소통을 깨달아 경의 종지를 결론적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환색은 있고 없음에 걸림이 없고, 진공은 숨고 드러남에 자재하다. 합하면 한맛으로 원만히 소통되어 의존하지 않으니, 이것이 그 법이다.

“이리하여”란 앞을 이어 주는 용어이다. 색에는 남을 드러내고 자기를 없애는 등 생각할 수 없이 깊은 덕이 있으므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장애가 없다. 덕을 갖춘 공은 숨을 수도 있고 드러날 수도 있어 거스르거나 따름이 자재하다. 그러므로 환유에 상즉하는 진공과 진공에 상즉하는 환유는 원묘하고 융통하여 다른 모습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합하면 한맛으로 원만히 소통되어 의존하지 않으니”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말해져야 할 바의 그 법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도 색과 다르지 않다.” 등이라고 하였다.

상위相違이고 무애無礙이며 상작相作인 까닭은 연기법에 네 가지 뜻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인연으로 발생하므로 유이다. 둘째, 인연으로 발생하므로 공이다. 셋째, 자성이 없으므로 유이다.

009_0187_c_01L事能顯理門 二自顯他義 即是
009_0187_c_02L第七眞理即事門 三俱存義 即是
009_0187_c_03L第十事法非理門 四俱泯義 即是
009_0187_c_04L第六事能隱理門 並準前思之者
009_0187_c_05L一以色即是空故 即空現而色隱
009_0187_c_06L也 良由顯空之他 盡色之自 故
009_0187_c_07L事有現1)空之能也 餘三可知 又
009_0187_c_08L有前四門 必帶後四門 有後四門
009_0187_c_09L必帶前四門 合則通爲四門全有
009_0187_c_10L之空 全空之有 故通合爲四

009_0187_c_11L
二會圓通結示經宗

009_0187_c_12L
[䟽]是則幻色存亡無閡 眞空隱顯自
009_0187_c_13L在 合爲一味圓通無寄 是其法也

009_0187_c_14L
[記]是則者 承前之語也 由色有顯
009_0187_c_15L他自盡等 不思議玄奧之德 故能
009_0187_c_16L或存或亡 無有障礙 具德之空
009_0187_c_17L或隱或顯 逆順自在故 即幻有之
009_0187_c_18L眞空 即眞空之幻有 圓妙融通
009_0187_c_19L無有異相 故云合爲一味圓通無
009_0187_c_20L寄 是其所詮之法 故經云 色不異
009_0187_c_21L空 空不異色等也 所以相違無礙
009_0187_c_22L及相作者 以緣起法有四義故 一
009_0187_c_23L緣生故有 二緣生故空 三無性故
009_0187_c_24L「空」欄外筆書改作「理」{編}

009_0188_a_01L넷째, 자성이 없으므로 공이다. 첫 번째와 네 번째의 두 가지 뜻은 구별되므로 상위의 뜻을 갖는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상작의 뜻을 가지니, 말하자면 (두 번째의) 인연으로 발생하므로 공이니 곧 유는 공에서 만들어지고, (세 번째의) 자성이 없으므로 유이니 곧 공은 유에서 만들어진다. 위의 네 가지 뜻은 동일한 연기이니, 불상애不相礙의 뜻을 갖는다. 또 처음의 두 가지 뜻에서는 공에 대한 유의 관계에 있어서 네 가지 뜻을 이룬다. 뒤의 두 가지 뜻에서는 유에 대한 공의 관계에 있어서 네 가지 뜻을 이룬다. 말하자면 자성이 없으므로 유이어서 자기를 폐지하고 남을 이루는 뜻을 갖고, 자성이 없으므로 공이어서 남을 없애고 자기를 드러내는 뜻을 갖는다. 위의 두 가지 뜻에는 장애가 없으므로 모두 보존하는 뜻을 갖는다. 위의 두 가지 뜻은 서로 형성하므로 자기와 남을 모두 없애는 뜻을 갖는다. 공에 대한 유의 관계도 네 가지 뜻에 준거한다.

또 자성이 없고 인연으로 발생하므로 유이니 상견常見이나 유견有見이 아닌 유가 곧 환유가 되고, 자성이 없고 인연으로 발생하므로 공이라면 단견斷見이나 무견無見이 아닌 공이 진공이 된다. 환유는 곧 유 아닌 유이고, 진공은 곧 공 아닌 공이니,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님이 중도의 뜻이다. 유와 비유非有가 둘이 아니어서 바로 환유이고, 공과 비공非空이 둘이 아니어서 바로 진공이기 때문이다. 또 비공非空과 유는 둘이 아니어서 하나의 환유가 되고, 공과 비유는 둘이 아니어서 하나의 진공이 된다. 또 환유와 진공은 둘이 아니어서 한맛의 법이 된다. 위 내용은 모두 진국 화상 징관이 이 한 과목의 경의 종지에 대한 소의 문장을 가지고 저 이사무애법계를 해석한 것이니,98) 곧 이 경의 올바른 뜻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이 해석에 의하면 이 경의 분제는 바로 원교圓敎 중의 동교同敎에 해당한다. 여기서 오로지 쌍으로 보존하는 뜻을 취한다면

009_0188_a_01L有 四無性故空 由初及四二義別
009_0188_a_02L故有相違義 由二及三有相作義
009_0188_a_03L謂緣生故空 則有作於空 無性故
009_0188_a_04L有 即空作於有 由上四義 同一
009_0188_a_05L緣起 有不相礙義 又由初二義
009_0188_a_06L有有望於空 而成四義 由後二義
009_0188_a_07L有空望於有而成四義 謂由無性
009_0188_a_08L故有有廢己成他義 由無性故空
009_0188_a_09L有泯他顯己義 由上二義無礙故
009_0188_a_10L有俱存義 由上二義相形故 有自
009_0188_a_11L他俱泯義 有望於空四義準之 又
009_0188_a_12L以無性緣生故有 則非常見有見
009_0188_a_13L之有爲幻有 無性緣生故空 則非
009_0188_a_14L斷見無見之空爲眞空 幻有即是
009_0188_a_15L不有有 眞空即是不空空 非空非
009_0188_a_16L有 是中道義 以有與非有無二
009_0188_a_17L方爲幻有 空與非空無二 1)爲眞
009_0188_a_18L空故2)有非空與有無二爲一幻有
009_0188_a_19L空與非有無二 爲一眞空 又幻有
009_0188_a_20L與眞空無二 爲一味法 上來並是
009_0188_a_21L鎭國和尙 將此一科經旨䟽文 釋
009_0188_a_22L彼理事無礙法界 則此經正義 於
009_0188_a_23L斯可見 若依此釋 斯經分齊 正
009_0188_a_24L當圓中同敎 於中若唯取雙存義

009_0188_b_01L종교終敎에 해당하고, 오로지 모두 없애는 뜻을 취한다면 돈교頓敎에 해당한다. 경의 문장을 적절히 소속시키려 한다면, 앞에서 인용된 『화엄법계현경』에서처럼 (쌍존雙存과 구민俱泯의) 두 가지 뜻은, 또한 종교와 돈교에 해당한다. 또 (아래의) ‘여의는 것을 밝힘’의 과목에서 마지막 단락의 문답한 대목과 아울러 법상개합法相開合한 부문에서 보면, 소에서는 곧 이 경전이 시종 색과 공의 서로 갈마듦과 이치와 사법의 장애 없음과 중도의 깊은 취지를 말한다고 본다. 소주인 법장의 깊은 충심을 헤아려 보면 (법장은) 경문의 한 글자를 가지고 억압하여 (『반야심경』을) 방편인 얕은 가르침으로 삼는 것을 쉽게 긍정하지 않았다. 하물며 아래에서 다시 ‘얻는 것을 밝힘’의 한 과목을 두어 불덕의 원만함과 상주함을 드러내었음에랴. 이러한 뜻으로 인해 소주인 법장은 (앞에서 교의 소속을 밝힐 때) “실교實敎에 포함된다.”라고 교판했던 것이다. 이에 우리 화엄가의 5교 중 뒤의 3교는 합하여 하나의 실교이니, 그 이치가 매우 분명하다.

d. 관행觀行의 관점을 통한 해석

넷째, 관행의 관점을 통한 해석이다.

앞에서는 증험과 관조의 대상을 기준으로 하였고, 지금은 증험하고 관조하는 지혜에 나아가 경의 문장을 해석한다. 여기에도 ‘경을 일러 주는 대상(對告)’ 등의 과목이 있겠지만, 소에서는 생략하고 내지 않는다. 문장에는 세 가지가 있다.

a) 지관양륜

첫째, 지관양륜이다.

넷째, 관행의 관점을 통한 해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색이 곧 공임을 관조하여 지止의 수행을 이루고, 공이 곧 색임을 관조하여 관觀의 수행을 이룬다. 공과 색은 둘이 아님이 한순간 단박에 나타나니, 곧 지와 관이 함께 행해지면 마침내 구경究竟이다.

“첫째, 색이 곧 공임을 관조하여……”는 경의 세 번째 구절이다. 『보책寶册』99)에서 말하기를, “‘지止’라 하는 것은, 말하자면 일체의 경계상을 그치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곧 유식의 도리를 깨달아 외부의 경계상을 파척하면 경계상이 이미 그쳐 분별하는 바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지’라 한다.100) 색은 외부의 경계이고, 색이 공임을 관조한다. 그러므로 지止의 수행을 이룬다. 『대승기신론』에서 또 말하기를, “이 삼매에 의거하면 법계의 온전한 특성을 알게 되니, 곧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한다.

009_0188_b_01L當終敎 唯取俱泯 則當頓敎 若
009_0188_b_02L欲屬當經文 如前所引玄鏡二義
009_0188_b_03L亦當終頓 又以明所離末文 問答
009_0188_b_04L并法相 開合䟽語 則一經始終
009_0188_b_05L皆談色空 交徹理事 無礙中道
009_0188_b_06L玄旨精考 䟽主深衷未易 肯將䟽
009_0188_b_07L文一字 抑爲權淺 況下更有明所
009_0188_b_08L得一科 顯佛德圓常乎 由斯等義
009_0188_b_09L是故䟽主判云 實敎所攝 乃將今
009_0188_b_10L家五敎 後三合爲一實 其理甚明
009_0188_b_11L四就觀行釋 前約所證所觀之境
009_0188_b_12L今就能證能觀之智 以釋經文 於
009_0188_b_13L中亦有對告等 科䟽略不出 文三
009_0188_b_14L初止觀兩輪

009_0188_b_15L
[䟽]四就觀行釋者有三 一觀色即空
009_0188_b_16L以成止行 觀空即色 以成觀行 空
009_0188_b_17L色無二 一念頓現 即止觀俱行 方
009_0188_b_18L爲究竟

009_0188_b_19L
[記]一觀色等者 經第3)二句也 寶
009_0188_b_20L册云 所言止者 謂止一切境界相
009_0188_b_21L即以覺慧唯識道理 破外塵相 塵
009_0188_b_22L相旣止 無所分別 故云止 色是
009_0188_b_23L外塵 觀之即空 故成止行 論又云
009_0188_b_24L依是三昧 則知法界一相 即名一

009_0188_c_01L진여가 삼매의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101)라고 했고, 『문수반야경』에서 말하기를, “무엇을 일행삼매라 하는가? 불타가 말한다. 법계의 온전한 모습이 법계마다 맞아떨어지니, 이를 일행삼매라 한다. 일행삼매에 든다는 것은 항하사 모래알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 법계의 무차별상을 다 아는 것이다.……(이하 생략)102)…….”103)라고 했으니, 진여삼매가 이러한 헤아릴 수 없는 삼매를 발생시킨다. 『문수반야경』은 곧 이 경의 광문廣文이다.

“공이 곧 색임을 관조하여……”란, 『대승기신론』에서 “‘관觀’이라 하는 것은, 말하자면 인연의 생멸상을 분별하는 것이니, 비파사나관의 뜻을 수순하기 때문이다.”104)라고 했으니, 곧 경의 네 번째 구절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제법에 대한 승의의 이취理趣와 모든 무량한 안주의 이취와 세속의 묘혜를 ‘관觀’이라 함을 알아야 한다.”105)라고 했다. 공이 곧 색임을 관조하여 세속을 안립하는 것이다. 공과 색이 둘이 아니니, 곧 둘이 다르지 않다는 구절이다. 색이 실체적인 색이 아니어서 바탕을 거론하면 진공임을 보고, 공이 단멸의 공이 아니어서 바탕을 거론하면 환색임을 본다. 정情(육근)과 진塵(육경)을 비우면 공과 색이 장애가 없고, 지해智解를 없애면 마음과 대상이 모두 계합하니, 지관이 쌍으로 행해지는 것이 구경究竟이라 할 수 있다. 『석마하연론』에서 말하기를, “정定이 때에 맞으면 저 관觀이 순조롭고, 관이 때에 맞으면 저 정이 순조로우니, 구족되고 구족되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전개된다.”106)라고 하였다.

b) 머무르지 않는 도道

둘째, 머무르지 않는 도이다.


009_0188_c_01L行三昧 當知眞如 是三昧根本
009_0188_c_02L文殊般若經云 云何名一行三昧
009_0188_c_03L佛言法界一相 繫緣法界 是名一
009_0188_c_04L行三昧 入一行三昧者 盡知河沙
009_0188_c_05L諸佛法界無差別相 乃至廣說 眞
009_0188_c_06L如三昧 能生此等無量三昧 文殊
009_0188_c_07L般若 即此經之廣文也 觀空等者
009_0188_c_08L論云所言觀者 謂分別因緣生滅
009_0188_c_09L相 隨順毘鉢舍那觀義故 即經第
009_0188_c_10L4)三句 瑜伽云 若於諸法 勝義理
009_0188_c_11L趣 及諸無量 安住理趣 世俗妙
009_0188_c_12L慧 當知名觀 觀空即色 乃安立世
009_0188_c_13L俗矣 空色無二 即二不異句也 見
009_0188_c_14L色非實色 擧體是眞空 見空非斷
009_0188_c_15L空 擧體是幻色 廓情塵而空色無
009_0188_c_16L礙 泯智解而心境俱冥 可謂止觀
009_0188_c_17L雙行爲究竟也 論云㝎隨5)時彼觀
009_0188_c_18L則順 觀隨時中彼定即順 具足具
009_0188_c_19L足不離轉故

009_0188_c_20L
6)二不住道

009_0188_c_21L「爲」底本欄外有註曰「爲字上疑落方字」{編}
009_0188_c_22L「有」底本欄外有註曰「有字疑又字誤」{編}
009_0188_c_23L「二」底本欄外有註曰「二字疑三字誤」{編}

009_0188_c_24L「三」欄外筆書改作「四」{編}
「時彼」底本欄外
009_0188_c_25L有註曰「時彼間疑脫中字」{編}
「二」欄外筆書
009_0188_c_26L改作「次」{編}

009_0189_a_01L
둘째, 색이 곧 공임을 보아 위대한 지혜를 이루어 생사에 머무르지 않고, 공이 곧 색임을 보아 위대한 자비를 이루어 열반에 머무르지 않는다. 색과 공의 경계가 둘이 아니고 자비와 지혜의 생각이 다르지 않으니, 무주처행을 이룬다.

“색이 곧 공임을 보아……”란, 『대승기신론』에서 “일체법이 본래 발생하지 않았음을 관조하여 허망한 견해에서 벗어나 생사에 머무르지 않는다.”107)라고 하였으니, 지혜이다. “공이 곧 색임을 보아……”란, 『대승기신론』에서 “일체법이 인연의 화합이어서 업의 과보가 상실되지 않음을 관조하여 위대한 자비를 일으키고, 모든 복덕을 닦아 중생을 교화하여 열반에 머무르지 않는다.”108)라고 하였으니, 자비이다. “색과 공의 경계가 둘이 아니고”란, 둘이 다르지 않다는 구절이다. “자비와 지혜의 생각이 다르지 않으니”를 설명해 보자. 자비에 상즉하는 지혜로 저 중생에 상즉하는 공을 관조하고, 지혜에 상즉하는 자비로 공에 상즉하는 중생을 교화하니, 법성에 따라 두 가지 극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주처행을 이룬다.”라고 한다. 진국 사문 징관은 말하기를, “위대한 지혜는 자리自利이므로 범부와 다르고, 위대한 자비는 이타利他이므로 소승과 다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인도하여 머무르지 않는 도를 이룬다.”109)라고 했다.

c) 일심삼관一心三觀

셋째, 일심삼관이다.

셋째, 지자 대사는 『영락경』에 의거하여 일심삼관의 뜻을 세웠다. 첫째, 가명에서 공으로 들어가는 관이니, 색이 곧 공임을 말한다. 둘째, 공에서 가명으로 들어가는 관이니, 공이 곧 색임을 말한다. 셋째, 공과 가명이 평등한 관이니, 색과 공이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그런데 “『영락경』에 의거하여”란 다음과 같다. 지자 대사가 말하기를, “차제삼관次第三觀110)과 일심중삼관一心中三觀(一心三觀)이 있다. 가명에서 공으로 들어가는 관으로 이제관이라고도 하고, 공에서 가명으로 들어가는 관으로 평등관이라고도 한다. 이 두 가지 공관을 방편으로 삼아 제일의제관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이름들은 『영락경』111)에 나온다.”라고 하였다.
그(지자)가 뜻을 해석하여 말하기를,

009_0189_a_01L
[䟽]二見色即空 成大智而不住生死
009_0189_a_02L見空即色 成大悲而不住湼槃 以色
009_0189_a_03L空境不二 悲智念不殊 成無住處行

009_0189_a_04L
[記]見色等者 論曰觀一切法 自性
009_0189_a_05L無生 離於妄見 不住生死 智也
009_0189_a_06L見空等者 論曰觀一切法 因緣和
009_0189_a_07L合 業果不失 起於大悲 修諸福
009_0189_a_08L德 攝化衆生 不住湼槃 悲也 色
009_0189_a_09L空下二不異句 悲智念不殊者 即
009_0189_a_10L悲之智 觀彼即生之空 即智之悲
009_0189_a_11L以化即空之生 隨順法性 不住二
009_0189_a_12L邊 故云成無住處行 鎭國曰 大
009_0189_a_13L智自利異凡 大悲利他異小 此二
009_0189_a_14L相導 成不住道

009_0189_a_15L
1)三一心三觀

009_0189_a_16L
[䟽]三智者大師 依瓔絡經 立一心三
009_0189_a_17L觀義 一從假入空觀 謂色即是空故
009_0189_a_18L二從空入假觀 謂空即是色故 三空
009_0189_a_19L假平等觀 謂色空無異故

009_0189_a_20L
[記]而言依瓔珞經者 智者云 有次
009_0189_a_21L第三觀 一心中三觀 從假入空觀
009_0189_a_22L亦名二諦觀 從空入假觀 亦名平
009_0189_a_23L等觀 二空觀 爲方便得入第一義
009_0189_a_24L諦觀 此名出瓔珞經 彼釋意云

009_0189_b_01L“가명은 허망의 속제이고, 공은 진실한 진제이다. 지금 가명을 제거하고 참된 것에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므로 ‘가명에서 공으로 들어가는 관(從假入空觀)’이라 한다. 가명은 공에 들어가는 언어이니, 먼저 반드시 가명을 관조하여 가명이 허망한 것인 줄 알아야 참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관’이라 한다. ‘공에서 가명으로 들어가는 관’이란 공에 머무른다면 이승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불법을 이루지 못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공을 관조하지만 공에 머무르지 않아 가명에 들어가니, 병을 알고 약을 알아 병에 따라 약을 주어 먹을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공에서 가명으로 들어가는 관’이라 한다. 그런데 ‘평등’이란 앞(이제관)을 마주하여 평등이라 칭한 것이다. 앞에서는 가명을 파척하여 공을 이용했고, 지금은 공을 파척하여 가명을 이용했으니, 파척과 이용이 이제 균등하다. 그러므로 ‘평등관’이라 한다. ‘두 가지 공을 방편으로 삼는 것’은, 첫째로 공인 생사를 관조하는 것과 둘째로 공인 열반을 관조하는 것이니, 이 두 가지 공을 쌍으로 부정하는(遮) 방편으로 삼는다. 처음의 종가입공관으로는 공을 이용하고, 다음의 종공입가관으로는 가명을 이용하며, 이 두 가지 용用을 쌍으로 긍정하는(照) 방편으로 삼아 마음마다 일체지一切智의 바다에 귀의하여 이제를 쌍으로 관조한다. 이것이 차제삼관이다. ‘일심삼관’이란, 이것은 『석마하연론』에 나온다. 『석마하연론』에서 ‘세 가지 지혜112)는 실로 한 마음에 있다’113)라고 하였다. 단지 1관으로 3관을 얻고, 1제로 3제를 관조한다. 그러므로 ‘일심삼관’이라 한다. 내지 이 관조를 완성할 때 일심삼지一心三智를 증험한다.”114)라고 했다.

여기에 기준하면 삼관의 이름은 본래 『영락경』에서 나왔고, 논에서는 일심으로 이들을 융합하여 ‘일심삼관’이라 했기 때문에 “『영락경』에 의거한다.”라고 하였다. 논은 경을 으뜸으로 삼고 사람은 논을 계승하니, 근본적인 것에 의거하여 말했기에 경에 의거하여 세웠다고 했을 뿐임을 알아야 한다. 문장에서 처음에는 색을 알아 공으로 돌아감을 관조하고,

009_0189_b_01L假是虛妄俗諦 空是審實眞諦 今
009_0189_b_02L欲去假歸眞 故言從假入空觀 假
009_0189_b_03L是入空之詮 先須觀假知假 虛妄
009_0189_b_04L而得會眞 故言二諦觀 從空入假
009_0189_b_05L觀者 若住於空 與二乘何異 不成
009_0189_b_06L佛法 不益衆生 是故觀空 不住
009_0189_b_07L於空 而入於假 知病識藥 應病
009_0189_b_08L授藥 令得服行 故名從空入假觀
009_0189_b_09L而言平等者 望前稱平等 前破假
009_0189_b_10L用空 今破空用假 破用旣均 故
009_0189_b_11L言平等觀 二空爲方便者 初觀空
009_0189_b_12L生死 次觀空湼槃 此之二空 爲
009_0189_b_13L雙遮之方便 初觀用空 次觀用假
009_0189_b_14L此之二用 爲雙照之方便 心心趣
009_0189_b_15L歸薩婆若海 雙照二諦也 是爲次
009_0189_b_16L第三觀

009_0189_b_17L
一心三觀者 此出釋論 論云三智
009_0189_b_18L實在一心中 得只一觀而三觀 觀
009_0189_b_19L於一諦而三諦 故名一心三觀 乃
009_0189_b_20L至此觀成時 證一心三智 準此即
009_0189_b_21L三觀之名 本出瓔珞 論以一心融
009_0189_b_22L之 名一心三觀 故云依瓔珞經
009_0189_b_23L當知論宗於經 人承於論 就本而
009_0189_b_24L言 依經立耳 文中初觀會色歸空

009_0189_c_01L다음으로 공을 밝혀 색에 상즉함을 관조하며, 마지막으로는 곧 공과 색이 장애가 없으니, 없어지고 끊어져 의지할 바 없는 것이 중도제일의제관이라는 것이다. 청량 징관은 “공과 유가 둘이 아님을 진공으로 삼고, 가명을 파괴하지 않는 것을 곧 가관假觀으로 삼으며, 위의 공과 가명을 합하여 중도로 삼는다.”115)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에서 “공과 가명은 평등하다.”라고 하였으니, 논파하지 않아 작용이 균등한 것이며, 또 차례를 가지고 차례로 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전후의 관조를 설할 때 3관과 1심은 상즉하니, 경에서는 보편적인 여래장심을 말한다. 그러므로 일심삼관이라 한다. 『화엄법계현경』에서 말하기를, “색이 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속제가 진제와 다르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진제가 속제와 다르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다. 색과 공이 상즉한다는 것은 중도를 밝히는 것이다.”116)라고 했다. 두 분 조사가 경을 안배함이 같지 않으니, 경의 뜻이 융통되면서도 각각 표현 방식이 자유분방한 것임을 알아라.

ㄴ. 법체法體를 드러냄

큰 문단으로 두 번째인 법체를 드러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총괄적 해석

첫째, 총괄적 해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 것이다.

사리자여, 제법의 공의 특성은

(ㄴ) 해석

둘째, 해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총괄적으로 과목의 이름을 나열함

첫째, 총괄적으로 과목의 이름을 나열한다.

둘째, 법체를 드러내니, 여기에 둘이 있다. 먼저 총괄하고, 나중에 구별한다. 지금은 처음이다.

㉡ 뜻에 의거하여 해석함

둘째, 뜻에 의거하여 해석하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경을 해석함

첫째, 경을 해석한다.

“제법의 공의 특성은”이란, 온蘊 등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제법”이라 하고, 이 공의 상태를 드러내기 때문에 “공의 특성”이라 한 것이다.

“온 등(蘊等)”이란 온·처·계 3과三科와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견見·식識의 칠대七大 등의 법이다. “공의 상태(空狀)”란, 곧 제일의공의 형상形相과 체상體狀이다. 들소의 뿔로 만든 타호唾壺(가래나 침뱉는 그릇)의 모습과는 같지 않고,117) 오히려 고원한 본성에 더 가깝다. 내면적인 것은 성性이고, 외면적인 것은 상相이다. 참으로 진공은 인연에 따라 제법을 드러내니,

009_0189_c_01L次觀明空即色 後即空色無礙 泯
009_0189_c_02L絕無寄 中道第一義諦觀也 淸凉
009_0189_c_03L曰 空如不二爲眞空 不壞假名即
009_0189_c_04L爲假觀 合上空假爲中道 故䟽云
009_0189_c_05L空假平等 非破用均也 又可以次
009_0189_c_06L顯不次也 謂說之前後觀時 三一
009_0189_c_07L相即 經詮普徧藏心 故名一心三
009_0189_c_08L觀 玄鏡云 色不異空 明俗不異
009_0189_c_09L眞 空不異色 明眞不異俗 色空相
009_0189_c_10L即 明是中道 二祖配經不同 則
009_0189_c_11L知經意融通 亦各任放辯才也
009_0189_c_12L大文第二顯法體二 先總二 初
009_0189_c_13L唱經

009_0189_c_14L
舍利子 是諸法空相

009_0189_c_15L
[記]二作釋二 初摠列科名

009_0189_c_16L
[䟽]第二顯法體 於中有二 先摠後別
009_0189_c_17L今初也

009_0189_c_18L
[記]二依義演釋二 初釋經

009_0189_c_19L
[䟽]言是諸法空相者 謂蘊等非一 故
009_0189_c_20L云諸法 顯此空狀 故云空相

009_0189_c_21L
[記]蘊等者 謂三科七大等法 空狀
009_0189_c_22L者 即第一義空形相體狀也 不同
009_0189_c_23L角犎垂壺之相 負近致遠之性 內
009_0189_c_24L爲性 外爲相也 良以眞空隨緣

009_0189_c_25L「三」欄外筆書改作「後」{編}

009_0190_a_01L인연에서만 공의 이치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제법을 기준으로 하여 공의 특성을 밝히는 것이다.

b. 논서를 인용함

둘째, 논서를 인용한다.

『중변분별론』에서 “둘이 없지만 이 없음은 있다. 이 둘을 공의 특성이라 한다.”118)라고 했다. “둘이 없지만”이라고 한 것은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있음이 없다는 것이고, “이 없음은 있다.”라고 한 것은, 능취와 소취의 없음은 있다는 것이다. 이 둘과 둘이 아님을 공의 특성이라 한다.

처음에 게송을 인용했는데, 『십이문론종치의기』에서도 이 게송을 인용하여, “둘이 없지만 이 없음은 있다. 이 둘을 중도라 한다.”119)라고 하였다. “‘둘이 없지만’이라고 한 것은” 이하는 문장을 인용하여 풀이한 것이다. 또 『십이문론종치의기』에서는 “이 유와 저 무에 대해 둘이 없음은 중도이다.”120)라 했고, 또 “여기서 이 무가 있다는 것은 단지 저 유가 없다는 것이다.”121)라 하였다. 『화엄경탐현기』에서 말하기를, “첫째, 허망한 것을 제거한다. 둘째, 참된 것을 따른다. 또 첫째로 자성은 영원히 없음을 알지만, 둘째로 실상은 불멸이다. 또 앞에서는 그것이 있지 않음을 알고, 나중에는 그것이 없지 않음을 증험한다.”122)라고 했다. 그러므로 “둘이 없지만 이 없음은 있다. 이 둘을 공의 특성이라 한다.”라고 한 것이다.

진국 사문 징관이 말하기를, “허망법의 유는 없지만 허망법의 무는 있다. 그런데 유와 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고정된 자성으로서의 유와 무이다. 둘째, 진공과 묘유이다. 허망법의 유가 없으면 고정된 자성의 유가 없는 것이니 단멸의 무가 아니다. 허망법의 무가 있음은 진공인 무이니 곧 묘유이다. 그러므로 허망을 거론하여 참된 것을 취한다면 허망된 유와 참된 공이니, 삼론에서의 설과 같다. 공과 유를 상대적으로 변론하면 허망된 공과 참된 유이니, 『열반경』에서 밝힌 바와 같다.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있음이 없다’란, 허망법의 유가 없는 것이다. ‘능취와 소취의 없음은 있다’란, 허망법의 무가 있는 것이다.”123)라 했고, 또 말하기를, “마침내 연기의 상相이 다하지 않음이 없고,

009_0190_a_01L
而現諸法 要在緣中 方顯空理
009_0190_a_02L故約諸法而空相

009_0190_a_03L
二引論

009_0190_a_04L
[䟽]中邊論云 無二有此無是二名空
009_0190_a_05L相 言無二者 無能取所取有 言有
009_0190_a_06L此無者 有能取所取無 是二不二
009_0190_a_07L名爲空相

009_0190_a_08L
[記]初引頌 宗致亦引此頌 則云無
009_0190_a_09L二有此無是二名中道 言無下引
009_0190_a_10L釋文義記 又曰此有彼無 無二爲
009_0190_a_11L中道 又曰此中有此無者 只是無
009_0190_a_12L彼有也 探玄云 一遣妄 二順眞
009_0190_a_13L又初會性永無二實相不滅 又前
009_0190_a_14L了其不有 後證其不無 故云無二
009_0190_a_15L有此無是二名空相也 鎭國云 無
009_0190_a_16L妄法之有 有妄法之無 然有無有
009_0190_a_17L二 一㝎性有無 二眞空妙有 無妄
009_0190_a_18L法之有 則無㝎性之有 非斷無矣
009_0190_a_19L有妄法之無 是眞空之無 便爲妙
009_0190_a_20L有 是故若擧妄取眞 則妄有眞空
009_0190_a_21L如三論說 若空有對辨 則妄空眞
009_0190_a_22L有 如湼槃明無能取所取有者 則
009_0190_a_23L無妄法之有也 有能取所取無者
009_0190_a_24L則有妄法之無也 又曰遂令緣起

009_0190_b_01L자성이 없는 이치는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124)라고 했다.

ㄴ) 개별적 해석

둘째, 개별적 해석이니, 여기에 셋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발생도 아니고 소멸도 아니며,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경에서는 여섯 가지 부정을 밝힌다. 그런데 『중론』에서 말하기를, “발생도 아니고 소멸도 아니다. 상주도 아니고 단멸도 아니다. 같음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다. 옴도 아니고 감도 아니다.”125)라고 했으니, 이것은 여덟 가지 부정을 밝힌 것이다. 청량 징관은 말하기를, “불생불멸의 함의가 무궁무진함을 밝히고자 간략히 여덟 가지 부정을 거론한다.”126)라고 했고, 또 말하기를, “그런데 불생 등은 불법의 본체이고 올바른 가르침의 요지이어서 의미가 무궁무진하니, 해석에 많은 통로가 있지만 간략히 하나나 둘로 개진했다.”127)라고 했다. 이리하여 현수 법장과 청량 징관은 경境·행行과 통通·별別로 이 뜻을 해석하였으니, 법을 논파하여 이치를 드러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았다. 『중론』에서는 “발생도 아니고 소멸도 아니니, 이미 일체법을 모두 논파했다.”128)라고 했다. 또 여섯 가지 부정, 여덟 가지 부정, 열 가지 부정으로 뜻을 드러냄이 무궁무진한 것에 기준한다면, 경과 논에 다르게 나오더라도 굳이 다시 회통할 필요는 없다. 전개되는 방식을 말한다면 서로 원인이 되고 서로 성립시키니, 옴도 아니고 감도 아님으로 말미암아 같음도 아니고 다름도 아님을 얻고, 발생도 아니고 소멸도 아님으로 말미암아 상주도 아니고 단멸도 아님을 얻는 것이니, 회통하여도 위배됨이 없다. 자세한 것은 두 분 조사가 설한 것과 같다. 번다할 것 같아 기록하지 않았다.

(ㄴ) 해석 방식

둘째, 해석 방식이다.

둘째, 개별적으로 드러냄에는 세 가지 쌍으로 여섯 가지 부정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취위석就位釋이고, 둘째는 취법석就法釋이며, 셋째는 취관행석就觀行釋이다.

(ㄷ) 해석

셋째, 해석이니, 여기에 셋이 있다.

㉠ 취위석就位釋

첫째, 취위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직접 해석함

첫째, 직접 해석한다.

먼저 지위에 나아가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불생불멸에 대해서이다. 견도 이전의 범부의 지위에서는 이른바 모든 범부들이 여기서 죽고 저기서 태어나 오랜 겁을 유전하니,

009_0190_b_01L之相 相無不盡 無性之理 理無
009_0190_b_02L不現

009_0190_b_03L
後別三 初唱經

009_0190_b_04L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009_0190_b_05L
[記]經明六不 而中論云 不生亦不
009_0190_b_06L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
009_0190_b_07L來亦不去 此明八不 淸凉曰 欲
009_0190_b_08L明不生不滅 含義無盡 略擧八不
009_0190_b_09L又曰然不生等 佛法之體 正敎之
009_0190_b_10L要 義味無盡 釋有多門 略伸一
009_0190_b_11L兩 是以賢首淸凉 約境行通別
009_0190_b_12L以釋斯義 破法顯理 此爲最要
009_0190_b_13L中論曰 不生不滅 已摠破一切法
009_0190_b_14L又六八十不 若約顯義無盡 則經
009_0190_b_15L論異出 不必更會 若言展轉 相
009_0190_b_16L因互成 由不來去 得非一異 由
009_0190_b_17L不生滅 得不斷常 會亦無違 備
009_0190_b_18L如二祖 恐繁不錄

009_0190_b_19L
二釋儀

009_0190_b_20L
[䟽]二別顯中 有三對六不 然有三釋
009_0190_b_21L一就位釋 二就法釋 三就觀行釋

009_0190_b_22L
[記]三演釋三 一就位釋二 初直釋

009_0190_b_23L
[䟽]初就位釋者 一不生不滅 在道前
009_0190_b_24L凡位 謂諸凡夫 死此生彼 流轉長

009_0190_c_01L이것이 생멸의 지위이다. 진공은 이것을 벗어나므로 불생불멸이라 한다. 둘째, 불구부정不垢不淨에 대해서이다. 견도·수도 중(道中)에 있는 보살들의 지위에서는 이른바 모든 보살은, 장애인 오염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깨끗한 수행을 이미 닦았으나, 구정垢淨의 지위라 한다. 진공은 이것을 벗어나므로 불구부정이라 한다. 셋째, 부증불감에 대해서이다. 견도·수도 이후의 불과佛果의 지위에서는 생사에 미혹한 장애가 옛날에는 아직 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하였으니, 이것이 손감損減이다. 만 가지 복덕을 닦아서 발생함이 옛날에는 아직 원만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원만하니, 이것은 증익增益이다. 진공은 이것을 벗어나므로 부증불감이라 한다.

“견도 이전(道前)”이란, 소주인 법장이 말하기를 견도 이전이라 하였다. “범부”란 내외의 두 가지 범부129)이다. 지금 특성에 나아가 일반적인 것을 드러내니, 외범外凡인 잡염 중생의 지위에서 설하는 것이다. 『대승법계무차별론』에서 말하기를, “진리의 근원은 끝이 없는데 번뇌장에 얽매이는 바가 되니, 무시이래 생사윤회 중에서 생멸 유전하는 것을 중생 세계라 한다.”130)라 했다. 그러므로 “이른바 모든 범부들이……이것이 생멸의 지위이다.”라고 했다. 제일의공의 본성은 생멸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에서 불不로써 생멸을 부정한 것이다. 이리하여 법장의 소에서는 “진공은 이것을 벗어난다.”라고 하였다.

“견도·수도 중(道中)”이란 견도와 수도의 두 가지이니, 10지十地의 지위이다. 소주인 법장이 말하기를, “10지를 견도와 수도라 설한다.”131)라고 했다. 그러므로 “보살들의 지위”라 했다. “장애인 오염이……”란, 치유의 주체와 대상인 수행과 장애를 기준으로 삼아 더러움과 깨끗함을 나눈 것이다. 소주인 법장은 또 말하기를, “이미 장애를 끊었으므로 깨끗하다고 하고, 끊음이 미진하므로 더럽다고 한다. 또 깨끗한 덕을 닦아서 일으키는 것을 깨끗하다고 하고, 깨끗한 덕이 아직 원만하지 않아 오히려 장애에 걸리므로 더럽다고 한다. 또 앞의 지위와 다르므로 깨끗하다고 하고, 뒤의 지위와 다르므로 더럽다고 한다.”132)라고 했다. 진공은 이것을 벗어나므로 경에서 깨끗함과 더러움을 부정한 것이다. “견도·수도 이후의 불과의 지위”란 구경의 지위이다. “지금은 다하였으니”라는 것에 대해, 소주인 법장은

009_0190_c_01L劫 是生滅位 眞空離此 故云不生
009_0190_c_02L不滅也 二不垢不淨者 在道中菩薩
009_0190_c_03L等位 謂諸菩薩 障染未盡 淨行已
009_0190_c_04L修 名垢淨位 眞空離此 故名不垢
009_0190_c_05L不淨 三不增不減者 在道後佛果位
009_0190_c_06L中 生死惑障 昔未盡而今盡 是減
009_0190_c_07L也 修生萬德 昔未圓而今圓 是增
009_0190_c_08L也 眞空離此 故云不增不減

009_0190_c_09L
[記]道前者 䟽主云 謂見道前也
009_0190_c_10L凡者 內外二凡 今就相顯遍 從
009_0190_c_11L外凡雜染衆生位說 論曰爲本際
009_0190_c_12L無邊煩惱藏所縛 從無始來 生死
009_0190_c_13L趣中 生滅流轉 名衆生界 故云謂
009_0190_c_14L凡夫等 是生滅位 第一義空性非
009_0190_c_15L生滅 故經以不不之 是以䟽言眞
009_0190_c_16L空離此等也 道中者 見修二道十
009_0190_c_17L地位中也 䟽主曰 又以十地說爲
009_0190_c_18L見修 故云菩薩等位 障染等者 此
009_0190_c_19L約能所治障行 以分垢淨 䟽主又
009_0190_c_20L云 已斷障故名淨 斷未盡故名垢
009_0190_c_21L又修起淨德名淨 淨德未圓猶帶
009_0190_c_22L障故名垢 又異前位故名淨 異後
009_0190_c_23L位故名垢 眞空離此故 經不之道
009_0190_c_24L後等者 究竟位也 今盡者 䟽主

009_0191_a_01L“습기가 또한 다하였다.”라 했고, “만 가지 복덕을……지금은 원만하니”라는 것에 대해, 소주인 법장은 “복덕의 지혜가 원만하므로 최고의 깨끗함이다.”라고 했다.133) 이것은 모두 오염과 청정을 서로 번갈아 인연에 따라 닦는 것이다. 이 성품이 진공을 깨달으면 이러한 것들이 있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두 그것들을 부정한다. 『수능엄경』에서 말하기를, “어찌 여기서 다시 다른 것들을 허용하겠는가?”134)라고 했다.

b. 논서를 인용함

둘째, 논서를 인용한 것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불성론』을 인용함

첫째, 『불성론』을 인용한다.

또 『불성론』에서 세 종류의 불성을 세운다. 첫째, 견도 이전을 자성주불성自性住佛性이라 한다. 둘째, 견도·수도 사이를 인출불성引出佛性이라 한다. 셋째, 견도·수도 이후를 지득과불성至得果佛性이라 한다.135) 불성은 오로지 하나이지만 지위에 나아가면 세 가지로 나뉜다. 지금 진공에는 다름이 없지만 또한 지위에 나아가면 다르게 나뉜다.

먼저 총괄적으로 표방하였으니, 곧 저 논서의 제2권 제3 현체분顯體分의 삼인품三因品이다. 『불성론』 ‘삼인품’에서 말하기를, “다음으로 불성의 체에는 세 종류가 있다. 세 가지 불성이 포섭되는 뜻이니,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 이른바 세 가지 원인이 세 종류의 불성이다. 세 가지 원인이란, 첫째로 응득인應得因이고, 둘째로 가행인加行因이고, 셋째로 원만인圓滿因이다. 첫 번째 것은, 곧 두 가지 공에 의해 드러난 진여이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보리심을 얻고, 마침내 견도·수도 이후의 법신에 이르기 때문이다. 둘째, 가행인이란 보리심을 말하니, 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37조도품과 10도十度와 10지十地를 얻고, 마침내 견도·수도 이후의 법신에 이른다. 셋째, 원만인이란 곧 가행인이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일체를 모두 얻는다. 세 종류의 불성이란, 응득인에서 세 가지 불성을 갖춘다. 첫째, 주자성성住自性性이다. 둘째, 인출성引出性이다. 셋째, 지득성至得性이다.”136)라고 했다.

청량 징관이 말하기를, “주자성성이란 견도 이전의 범부의 지위를 말한다. 인출성이란 발심 이상으로부터 유학有學의 성위聖位에서 다한다.

009_0191_a_01L
曰 習氣亦盡也 萬德今圓者 䟽
009_0191_a_02L主曰 福智圓滿最極淨也 此皆染
009_0191_a_03L淨相翻緣修 若此性覺眞空 不容
009_0191_a_04L有 是故摠不之 首楞云 云何是
009_0191_a_05L中更容他物

009_0191_a_06L
二引論二 初引佛性論

009_0191_a_07L
[䟽]又佛性論中 立三種佛性 一道前
009_0191_a_08L名自性住佛性 二道中 名引出佛性
009_0191_a_09L三道後 名至得果佛性 佛性唯一 就
009_0191_a_10L位分三 今眞空無異 亦就位分異

009_0191_a_11L
[記]先捴標 即彼論第二卷第三顯
009_0191_a_12L體分三因品 論云復次佛性 體有
009_0191_a_13L三種 三性所攝義 應知三種者
009_0191_a_14L所謂三因 三種佛性 三因者 一
009_0191_a_15L應得因 二加行因 三圓滿因 初
009_0191_a_16L即二空所顯眞如 由此應得菩提
009_0191_a_17L心 乃至道後法身故 二加行因者
009_0191_a_18L謂菩提心 由此心故 得三十七品
009_0191_a_19L十度十地 乃至道後法身 三圓滿
009_0191_a_20L因者 即加行因 由此得一切滿三
009_0191_a_21L種佛性者 應得因中具有三性 一
009_0191_a_22L住自性性 二引出性 三至得性 淸
009_0191_a_23L凉曰 住自性性者 謂道前凡夫位
009_0191_a_24L引出性者 從發心已上窮有學聖

009_0191_b_01L지득성이란 무학無學의 성위이다.”137)라고 했다. “발심 이상”이란 (진여를 이해하여 수행하는 보살의) 지위를 얻기 이전을 기준으로 하면 해행발심解行發心138)에 해당하고, 견도의 지위를 기준으로 설하면 증발심證發心139)인 것이다. 소주인 법장은 또 말하기를, “자성주불성이란 잡염의 중생의 지위이니, 더러움이 있는 진여이다. 인출불성은 보살의 지위이니, 더러움과 깨끗함이 있는 진여이다. 지득불성은 곧 더러움이 없는 진여이다.”140)라고 했다. “진공에는” 등이란, 앞의 세 가지 지위에 나아가므로 발생 등의 성품이 있지만 공을 깨달으면 조금도 없다고 밝힌 것이다.

b) 『대승법계무차별론』을 인용함

둘째, 『대승법계무차별론』을 인용한다.

또 『대승법계무차별론』에서 처음에 염위染位라 하였고, 다음에 염정위染淨位라 하였고, 마지막에 순정위純淨位라 하였으니,141) 모두 이와 똑같다.

『대승법계무차별론』의 지위를 나누는 단락에서 설한 것과 같다.

㉡ 취법석就法釋

둘째, 취법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해석하여 구별함

첫째, 해석하여 구별한다.

둘째, 취법석을 설명해 보자. 말하자면 이 진공은 곧 색에 상즉하긴 하더라도 색은 인연에 따라 일어나지만 진공은 발생함이 없으며, 색은 인연에 따라 소실되지만 진공은 소멸함이 없다. 또 흐름에 따라 오염되지도 않고, 장애가 다해도 깨끗해지지도 않는다. 또 장애가 다해도 감소하지 않고, 복덕이 가득해도 증가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진공은” 등이란, 구슬은 청색이나 황색으로 나타나더라도 구슬이 청색이나 황색을 발생시키지는 않고, 갑자기 사라지더라도 구슬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또 흐름에 따라” 등이란, 마치 꽃이 허공에 피어도 허공이 꽃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고, 꽃이 제거되어 허공이 명증해도 허공에 깨끗함이 더해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또 장애가 다해도” 등이란, 더러움이 다하여 상대할 것이 제거되었으니 곧 상대할 더러움이 없는 것이다. 무엇이 감소하겠는가? 복덕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것에는 닦을 바가 없고, 또한 성취할 바가 없다는 것이니, 무엇이 증가하겠는가?

b. 회집하여 총괄함

둘째, 회집하여 총괄한다.


009_0191_b_01L位 至得性者 無學聖位 言發心
009_0191_b_02L已上者 若約得位已去 則當解行
009_0191_b_03L發心 若約見道位說 則當發心也
009_0191_b_04L䟽主又曰 自性1)□佛性者 雜染
009_0191_b_05L衆生位中 有垢眞如 引出性 菩
009_0191_b_06L薩位 垢淨眞如 至得性 即無垢
009_0191_b_07L眞如 眞空等者 就前三位故有生
009_0191_b_08L等性空覺 明無若干也

009_0191_b_09L
二引無差論

009_0191_b_10L
[䟽]又法界無差別論中 初名染位 次
009_0191_b_11L名染淨位 後名純淨位 皆同此也

009_0191_b_12L
[記]如彼分位門說
009_0191_b_13L二就法釋二 初釋別

009_0191_b_14L
[䟽]二就法釋者 謂此眞空 雖即色等
009_0191_b_15L然色從緣起 眞空不生 色從緣謝
009_0191_b_16L眞空不滅 又隨流不染 出障非淨
009_0191_b_17L又障盡非減 德滿不增

009_0191_b_18L
[記]謂此等者 珠現靑黃 而珠不生
009_0191_b_19L靑黃 遽亡而珠不滅 又隨等者
009_0191_b_20L如華華空 空不生華 華去空澄
009_0191_b_21L空不加淨 障盡等者 垢盡對除
009_0191_b_22L即無對垢 將誰減乎 德不增者
009_0191_b_23L於此無修 亦無成就 其何增耶

009_0191_b_24L
二會捴

009_0191_c_01L
이 발생과 소멸 등은 ‘유위 법상有爲法相’이니, 이것을 뒤집어서 진공의 특성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공상空相’이라 한다.

모든 의식은 훈습되고 망념은 분별하므로 색 등의 발생이 있다. 그러므로 모두 유위이다. 진공은 이것을 벗어난다. 그러므로 반대로 저것을 논파하여 공의 특성을 드러낸다.

㉢ 취관행석就觀行釋

셋째, 취관행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정면적인 해석

첫째, 정면적인 해석이다.

셋째, 취관행석이란 삼성三性에 대해 삼무성관三無性觀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삼성에 대해” 등이란 표방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삼무성을 갖추어 말하자면,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이다. 여기에 둘이 있다.

a) 삼무성三無性에 대한 설명

첫째, 삼무성에 대한 설명이다.

첫째, 변계소집성에서는 무상관無相觀을 짓는다. 말하자면 저것은 곧 공이므로 생멸한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의타기성에서는 무생관無生觀을 짓는다. 말하자면 다른 것에 의존하여 오염되거나 청정한 것은 인연에 따라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원성실성에서는 무성관無性觀을 짓는다. 말하자면 앞의 두 가지는 있지 않지만 감소하지 않고, (원성실성에 대한) 관지觀智는 비추어 나타나지만 증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또 속박되어 있으면서 장애를 벗어나도 성품에는 증감이 없다.

첫째, 변계소집성에서 무상관을 짓는다는 것이니, 변계소집성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무상無相을 곧 드러낸다. 그러므로 『유식삼십론송』에서 “이 삼성에 의거하여 저 삼무성을 설한다.”142)라고 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변계소집성이 없다면 어찌 무상을 알겠는가. “말하자면 저것은” 등이란, 변계소집의 법에 대해 어리석은 중생들은 있다고 여기지만 도리를 알면 없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을 관조해 보면 발생하거나 소멸했다고 할 만한 것이 없다.

009_0191_c_01L
[䟽]此生滅等 是有爲法相 翻此以顯
009_0191_c_02L眞空之相 故云空相也

009_0191_c_03L
[記]諸識熏習故 妄念分別故 有色
009_0191_c_04L等生 是故皆有爲也 眞空離此故
009_0191_c_05L翻破彼顯空相也

009_0191_c_06L
三就觀行釋二 初正釋

009_0191_c_07L
[䟽]三就觀行釋者 謂於三性 立三無
009_0191_c_08L性觀

009_0191_c_09L
[記]謂於等者 標指也 具言三無性
009_0191_c_10L者 謂相無自性性 生無自性性
009_0191_c_11L勝義無自性性 於中二 初對三無
009_0191_c_12L性說

009_0191_c_13L
[䟽]一於徧計所執性 作無相觀 謂彼
009_0191_c_14L即空無可生滅 二於依他起生 作無
009_0191_c_15L生觀 謂依他染淨從緣無性 三於圓
009_0191_c_16L成實性 作無性觀 謂前二不有而非
009_0191_c_17L減 觀智照現而不增 又在纒出障
009_0191_c_18L性無增減

009_0191_c_19L
[記]一於徧計作無相觀 由無徧計
009_0191_c_20L方顯無相 故唯識云 依此三性
009_0191_c_21L說彼三無性 是知若無徧計 安知
009_0191_c_22L無相 謂彼等者 徧計之法 妄情
009_0191_c_23L謂有道理 是無古今 觀之無可生
009_0191_c_24L□欄外筆書改作「住」{編}

009_0192_a_01L“둘째, 의타기성에서는” 등이란, 오염이나 청정의 법은 인연에 따라 발생한다고 하지만 발생이란 있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일체법에는 옴이 없다. 그러므로 발생이 있지 않다. 발생이 있지 않으므로 소멸도 얻을 수 없다.”143)라고 했다. 이미 본래 발생이 없는데 어찌 더러움과 깨끗함이 있겠는가? 세 번째의 원성실성에서 “앞의 두 가지는 있지 않지만”이란, 말하자면 의타기성과 변계소집성이다. 이것은 공종과 성종의 뜻에 기준하여 설한 것이다. 법상종에서는 단지 변계소집성만 없다. 또 아래에서는 본성에 기준하여 원성실성을 거듭 해석하였다.

b) 해당되는 성품을 직접적으로 설명함

둘째, 해당되는 성품을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또 허망법에는 생멸이 없고, 연기에는 오염과 청정이 없고, 진공에는 증감이 없다.

변계소집성이란, 자성이 본래 스스로 없으니, 어찌 생멸이 있겠는가? 인연으로 발생하면 곧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으면 곧 공인데, 어찌 오염이나 청정이 있겠는가? 공의 바다를 깨달아 알면 허공이 되니, 본성이 평등한데 무엇이 증가하고 감소하겠는가? 진국 사문 징관은 말하기를, “별도로 삼성에 대해 각각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해당되는 성품을 직접적으로 설하는 것이다. 둘째, 해당되는 성품을 두 가지 뜻으로 설하는 것이다. 셋째, 삼무성에 대해 설하는 것이다.”144)라고 했다. 지금 (허망법에 대한) 처음의 뜻과 (진공에 대한) 마지막의 두 가지 뜻에 상즉한다면 올바름을 드러내어 통하겠지만, 분리하여 해석한다면 그 이치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b. 회집하여 총괄함

둘째, 회집하여 총괄한다.

이 삼무성으로 저 진공의 특성을 드러낸다.

알 만하리라.

ㄷ. 여의는 것을 밝힘

큰 문단으로 세 번째인 여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에 둘이 있다.

ㄱ) 정면으로 경전의 뜻을 해석함

첫째, 정면으로 경전의 뜻을 해석하니, 여기에 넷이 있다.

(ㄱ) 법상개합문法相開合門

첫째, 법상개합문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그러므로 공에는 색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고,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009_0192_a_01L滅 二於等者 染淨之法 從因緣
009_0192_a_02L生 無有生故 故經云 一切法無來
009_0192_a_03L是故無有生 以生無有故 滅亦不
009_0192_a_04L可得 旣本無生 將何垢淨 三圓
009_0192_a_05L成中 言前二不有者 謂依計也
009_0192_a_06L此約空性二宗義說 若法相宗 但
009_0192_a_07L無徧計 又下約本性 重釋圓成也

009_0192_a_08L
二直就當性說

009_0192_a_09L
[䟽]又妄法無生滅 緣起非染淨 眞空
009_0192_a_10L無增減

009_0192_a_11L
[記]徧計性者 性本自無 何有生滅
009_0192_a_12L緣生即無性 無性即空 奚染淨之
009_0192_a_13L有 覺明空海而爲虛空 平等本性
009_0192_a_14L孰增減耶 鎭國曰 別約三性中
009_0192_a_15L各有三釋 一直就當性說 二約
009_0192_a_16L當性二義說 三對三無性說 今即
009_0192_a_17L初後二義顯正作通別釋者 未見
009_0192_a_18L其理

009_0192_a_19L
二會捴

009_0192_a_20L
[䟽]以此三無性 顯彼眞空相

009_0192_a_21L
[記]可知

009_0192_a_22L
大文第三明所離二 初正釋經義
009_0192_a_23L四 初法相開合門二 初唱經

009_0192_a_24L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

009_0192_b_01L색·성·향·미·촉·법도 없고, 안계에서 의식계까지도 없다.

㉡ 판석判釋

둘째, 판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총괄적 판별

첫째, 총괄적 판별이다.

셋째, 여의는 것을 밝힌다. 그런데 진공으로 벗어남에 있어서 법을 차례대로 밟아 감에 여러 부분이 있지만, 통틀어 간략히 네 가지가 있다. 첫째로 법상개합문法相開合門, 둘째로 연기역순문緣起逆順門, 셋째로 염정인과문染淨因果門, 넷째로 경지능소문境智能所門이다.

“그런데 진공으로” 등이란, 진공은 허망법을 벗어날 수 있는 진여이다. 밟아 가야 할 것이 곧 벗어나야 할 것이니, 고정된 실유인 성품을 가진 오온 등의 망염법妄染法이다. 공이어서 없다고 하는 것은 곧 이 망염법이 없는 것이니, 공이 아닌 진여의 이치가 없지는 않은 것이다. 통틀어 간략히 네 가지가 있다. 자세히 설하면 80여 과목의 법상145)이 있다. “개합開合”이란, 온·처·계를 근根(근기)에 따라 나누고 합하는 것이다.

b. 개별적 해석

둘째, 개별적 해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경전의 뜻이 중도로 회통함을 보임

첫째, 경전의 뜻이 중도로 회통함을 보인다.

첫째, (경에서) “그러므로 공空에는”이란, 앞에서 말한 ‘불생불멸 등의 진공에서’라는 것이다. (경에서) “색이 없고” 등이란, 저 진공에는 오온 등의 법이 없으니, 이것은 상위문相違門의 차원이다. 그러므로 ‘없다’라고 한다. 이치는 실제로는 모두 색 등을 파괴하지 않으니, 자성공自性空은 파괴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모두 이것에 준하여 알아라.

“첫째, (경에서) 그러므로 공에는”이란, 참으로 제일의공에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공인 오온 등의 제법과 고정된 실유의 자성에는 유와 무의 상위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저 법들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상위문의 차원이다.” 이하에서는 중도로 회통한다. 곧 앞에서는 상위의相違義이니, 지금 “‘없다’라고 한다.”라는 것은, 공이 색을 해치므로 여기에는 색이 없다는 것이다. “색 등을 파괴하지 않으니”라는 것은,

009_0192_b_01L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
009_0192_b_02L至無意識界

009_0192_b_03L
[記]二判釋二 初總判

009_0192_b_04L
[䟽]第三明所離 然眞空所離 歷法多
009_0192_b_05L門 統略有四 一法相開合門 二緣
009_0192_b_06L起逆順門 三染淨因果門 四境智能
009_0192_b_07L所門

009_0192_b_08L
[記]然眞等者 眞空是能離妄法之
009_0192_b_09L眞如也 所歷乃所離 㝎實有性蘊
009_0192_b_10L等 妄染之法也 云空無者 即無
009_0192_b_11L此染法 非無不空眞如理也 統略
009_0192_b_12L有四 廣說則八十餘科法相 開合
009_0192_b_13L者 則蘊界處隨根開合也

009_0192_b_14L
二別釋二 初示經意會中道

009_0192_b_15L
[䟽]初是故空中者 是前不生不滅等
009_0192_b_16L眞空中故 無色等者 彼眞空中無五
009_0192_b_17L蘊等法 此就相違門 故云無也 理
009_0192_b_18L實皆悉不壞色等 以自性空 不待壞
009_0192_b_19L故 下並準知

009_0192_b_20L
[記]初是等者 良以第一義空無性
009_0192_b_21L故 空蘊等諸法 㝎實有性 有無
009_0192_b_22L相違 是故此中無彼等法 此就下
009_0192_b_23L會中道 即前相違義也 今云無者
009_0192_b_24L以空害色 故中無色也 不壞色者

009_0192_c_01L곧 불상애의不相礙義와 상작의相作義이다. 공은 진공이므로 환색을 방애하지 않는다. 색을 장애하면 진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성공은” 등이란, 인연에 말미암기 때문에 유이니, 유가 오면 곧 무이므로 파괴됨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달하지 못한 채 말하다 보면 단지 공의 이치만 드러내고 아직 묘유에 상즉함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

b) 법상法相으로 개합開合을 드러냄

둘째, 법상으로 개합을 드러낸다.

여기서 오온은 곧 색을 합하여 하나로 만들고 심을 나누어 넷으로 만든 것이다. 둘째, “안·이·비·설·신·의도 없고”란 12처가 공이어서 없는 것이다. 12처는 심을 합하여 한 개 반이 되니, 말하자면 의처意處 전부와 법처法處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색을 나누어 열 개 반이 되니, 말하자면 오근과 오경의 10처와 법처 일부분(法處所攝色)146이다. 셋째, “안계에서” 등이란, 18계는 공이어서 없다는 것이다. 18계에서 곧 색과 심을 모두 나누는146) 것은 위에 기준하여 알 수 있다. 이 세 가지 과목을 해석하는 것은 『대법對法』(『아비달마잡집론』) 등의 논서에 갖추어져 있다.

처음에 오온을 밝히니, 또한 오음이라고도 한다.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오음장」에서 말하기를, “ 온의 뜻은 무엇인가? 존재하는 모든 색은 과거이든 미래이든 현재이든, 안이든 밖이든, 매끄럽든 거칠든, 멀든 가깝든, 우수하든 열악하든 저 일체를 간략히 설하면 색온은 적취積聚의 뜻이다. 그러므로 마치 재화가 쌓이는 것과 같으니, 곧 식온에 이르기까지이다.”147)라고 했다. 이 물음은 이름을 얻은 까닭을 드러낸다. 또 “고苦의 특성은 광대廣大이다. 그러므로 온이라 한다. 경에서 순수하고 광대한 고온苦蘊이 모인 것과 같다고 한 것과 같다. 온의 뜻은 무엇이고, 실유實有는 몇 가지가 실유이며, 무슨 뜻으로 실유를 관찰하는가? 이 여타의 근과 경은 실유의 뜻이다. 일체가 모두 실유이니,

009_0192_c_01L即不相礙相作義也 空是眞空 不
009_0192_c_02L妨幻色 若礙於色 非眞空故 自
009_0192_c_03L性等者 由從緣故有 有來即無
009_0192_c_04L故不待壞 近古不達 而謂但顯空
009_0192_c_05L理 未曉全即妙有也

009_0192_c_06L
二就法相顯開合

009_0192_c_07L
[䟽]此中五蘊 即合色爲一 開心爲四
009_0192_c_08L二無眼等者 空無十二處 十二處
009_0192_c_09L即合心爲一半 謂意處全及法處一
009_0192_c_10L分 開色爲十半 謂五根五境 爲十
009_0192_c_11L處及法處一分 三無眼界等者 空無
009_0192_c_12L十八界 十八界中 即色心俱開 準上
009_0192_c_13L可知 釋此三科 具如對法等論也

009_0192_c_14L
[記]初明五蘊 亦云五陰 陰章曰
009_0192_c_15L問蘊義云何 答諸所有色 去1)
009_0192_c_16L現在 內外細麁 遠近勝劣 彼一
009_0192_c_17L切略說色蘊積聚義 故如財貨積
009_0192_c_18L聚 乃至識蘊 此問顯得名也 又
009_0192_c_19L苦相廣大 故名爲蘊 如經純大衆
009_0192_c_20L苦蘊集故等 又問蘊義云何 實
009_0192_c_21L2)旣是實 有爲何義故觀實有耶
009_0192_c_22L答此餘根境 是實有義 一切皆實
009_0192_c_23L「來」欄外筆書改作「未」{編}「旣」欄外筆書
009_0192_c_24L改作「幾」ㆍ底本欄外有註曰「幾字疑旣字誤」
009_0192_c_25L{編}

009_0193_a_01L실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 실유를 관찰한다. 이 온의 뜻은 성문에서는 곧 실제이고, 대승시교에서는 곧 공이며, 대승종교에서는 곧 진여이고, 돈교에서는 설할 수 없는 것이며, 일승에서는 곧 법계이다.”148)라고 했다.

“둘째,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이하는 공인 12처에 대한 것이다.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십이처장十二處章」에서 말하기를, “10색계十色界는 곧 10색처十色處이다.”149)라고 했다. 저것은 반(법처소섭색)을 말하지 않고 생략한 것이다. 「십이처장」에서 물어 말하기를, “처處의 뜻은 무엇인가? 답한다. 식識이 생장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처의 뜻은 종자의 뜻을 포함함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셋째, 안계에서” 이하는 세 번째로 공인 18계에 대한 것이다. 「십팔계장十八界章」에서 말하기를, “어떻게 계를 건립하는가? 말하자면 색온은 곧 10계인 안 등의 오근계와 색 등의 오경계 및 법처 일부분(법처소섭색)이다. 수온·상온·행온은 곧 법계의 나머지 일부분이다. 식온은 일곱 개의 식계識界이니, 말하자면 안 등의 육식과 의계이다.”150)라고 했다. 그러므로 “색과 심을 모두 나누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서른여섯 가지로 관찰하는 것은 뜻을 또한 알 수 있다. 「십팔계장」에서 “ 계界의 뜻은 무엇인가? 일체법종자의 뜻이다. 말하자면 아뢰야식에 의지한 제법종자를 계라고 이름한다. 계는 원인의 뜻이기 때문이다. 또 자기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 계의 뜻이다.”151)라고 했다. 자세한 뜻은 그곳에서 해석했다. “이 (세 가지 과목을 해석하는)” 이하는 자세히 설한 곳을 밝힌 것이다.

(ㄴ) 연기역순문緣起逆順門

둘째, 연기역순문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내지 노사도 없고 노사가 다함도 없다.

이것은 곧 연기관이다. 진국 사문 징관은 말하기를, “연기의 깊은 뜻은 불타의 가르침의 으뜸되는 바이니, 수레와 지혜가 단계적으로 차이가 나고, 얕고 깊음이 여러 종류이다. 용수가 말하기를, ‘인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내인內因이고, 둘째는 외인外因이니, 외인은 곧 물이나 흙이나 곡식의 씨앗이고, 내인은 곧 12인연이다’152)라 하였다. 지금 곧바로 내인을 변론하는 것이다.

009_0193_a_01L有 爲捨執着實有故 觀察實有
009_0193_a_02L此蘊義 聲聞即實 初敎即空 終
009_0193_a_03L敎即如 頓敎不可說 一乘即法界
009_0193_a_04L二無下空十二處也 處章云 十色
009_0193_a_05L界即十色處 彼不言半略也 章問
009_0193_a_06L曰 處義云何 答識生長門義 是
009_0193_a_07L處義 當知是種子義攝 三無眼下
009_0193_a_08L三空十八界 界章曰 云何建立
009_0193_a_09L界謂色蘊 即十界 眼等五根界
009_0193_a_10L色等五境界 及法處一分 受想行
009_0193_a_11L蘊 即法界一分 識蘊七識界 謂
009_0193_a_12L眼等六識及意界故 故云色心俱
009_0193_a_13L開 有作三六觀者 義亦可見 章
009_0193_a_14L問界義云何 答一切法種子義 謂
009_0193_a_15L依阿賴耶識中諸法種子說 名界
009_0193_a_16L界是因義故 又能持自相義 是界
009_0193_a_17L義 廣義彼說 釋此下指廣

009_0193_a_18L
二緣起逆順門二 初唱經

009_0193_a_19L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
009_0193_a_20L無老死盡

009_0193_a_21L
[記]此即緣起觀也 鎭國云 緣起深
009_0193_a_22L義 佛敎所宗 乘智階差 淺深多種
009_0193_a_23L龍樹曰 因緣有二 一內 二外 外
009_0193_a_24L即水土穀牙 內即十二因緣 今正

009_0193_b_01L그런데 외인은 내인으로 말미암아 변화하니, 본말이 서로 수렴된다. 총괄적으로 법계를 포함하니, 하나의 광대한 연기인 것이다.”153)라 했다. 『화엄경』의 문장에서는 간략히 열 겹으로 설하여 성상性相을 궁구하여 다함이 없는 일승一乘의 뜻을 드러내니, 자세한 것은 저 『화엄경』의 주소註疏에서 설한 것과 같다.154) 삼승에서의 연기도 10문十門으로 갖추어지니, 『영락경』에서 삼승에서의 지혜로 관조하여 각각 자체적인 결과를 얻는 것155)과 같다. 자세한 설은 여타의 것과 같다.

㉡ 해석

둘째, 해석이다.

둘째, 연기역순문을 밝힌다. “무명도 없고”란, 무명을 순관順觀하는 유전문流轉門에서는 그 성품이 공이기 때문에 무명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란, 무명을 역관逆觀하는 환멸문還滅門에서는 진공이므로 무명이 다함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첫 지분을 거론한 것이니, 중간의 열 개의 지분은 모두 이에 기준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지乃至”라고 한다. 마지막 한 지분은 말하자면 노사老死 또한 유전문과 환멸문이 모두 공이라는 것이다.

저 열 가지 부문은 모두 역관과 순관을 갖춘다. 역관에서는 인연이 소멸하고 순관에서는 인연이 발생한다. 여기서는 유전과 환멸을 기준으로 하여 순관과 역관을 삼으니, 곧 생사를 역관하거나 생사를 순관하는 것이다. 무명이 행行에 의존한다고 하는 등은 생사를 순관하는 것이다.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한다고 하는 등은 생사를 역관하는 것이다. 순관이 곧 유전문이고, 역관이 곧 환멸문이다. 두 가지 부문에서 각각 역관과 순관을 설하는 경우는 『화엄경탐현기』 제10권에 갖추어져 있다. “그 성품이” 등이란 (혹惑·업業·고苦의) 3도三道의 성품이 공이므로 인연으로 법이 발생하는 것이니, 발생에는 발생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명을 역관하는” 등이란 발생이 있지 않으므로 소멸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제법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상寂滅相이다.”156)라고 했다. 그러므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첫 지분을) 거론한 것이니” 이하는 나머지 지분을 사례로 든 것이다.


009_0193_b_01L辨內 然外由內變 本末相收 捴
009_0193_b_02L含法界 一大緣起 大經文內 略
009_0193_b_03L說十重 窮究性相 以顯無盡一乘
009_0193_b_04L之義 廣如彼䟽 三乘緣起 亦具
009_0193_b_05L十門 如瓔珞經 三乘之智觀之各
009_0193_b_06L得自果 廣說如餘

009_0193_b_07L
二作釋

009_0193_b_08L
[䟽]二明緣起逆順門 無無明者 順觀
009_0193_b_09L無明流轉門 以其性空 故云無無明
009_0193_b_10L也 亦無無明盡 逆觀無明還滅門
009_0193_b_11L以眞空故 無可盡也 此擧初支 中
009_0193_b_12L間十支 皆應準此 故云乃至 末後
009_0193_b_13L一支 謂老死亦流轉還滅皆空也

009_0193_b_14L
[記]彼之十門 皆具逆順 逆則緣
009_0193_b_15L滅 順則緣生 此約流轉還滅 以
009_0193_b_16L爲逆順 即逆生死 順生死也 若
009_0193_b_17L言無明緣行等 順生死也 無明滅
009_0193_b_18L故行滅等 逆生死也 順即流轉門
009_0193_b_19L逆乃還滅門 若二門各說逆順 具
009_0193_b_20L如探玄第十 以其等者 三道性空
009_0193_b_21L故 因緣生法 生無有生故 逆觀
009_0193_b_22L等者 以生無有故 滅亦不可得
009_0193_b_23L經云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故
009_0193_b_24L無可盡 此擧下例餘支

009_0193_c_01L
(ㄷ) 염정인과문染淨因果門

셋째, 염정인과문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고·집·멸·도도 없고

사성제四聖諦이다. “성聖”이란 올바름이다. 무루無漏의 정법을 얻어 마음에 두기 때문이다. “제諦”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진리가 진실한 것이다. 이것은 대상을 기준으로 하여 변론한 것이다. 설해진 특성과 같이 벗어날 것이 아니고 진실하며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간과 출세간의 두 종류의 인연이니, 반드시 허망함과 상실됨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진리를 자세히 고찰한 것이다. 이것은 지혜의 관점에서 밝힌 것이다. 성스러운 지혜가 저 진리를 관조하면 자세하여 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범부는 고와 집을 갖고 있더라도 진실하게 고찰하지 못하여 진리라 칭할 수 없다. 전도됨이 없는 성스러운 지혜는 대상을 자세히 안다. 그러므로 “성제聖諦”라 한다. 『유가사지론』에서 “두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제諦라 한다. 첫째, 법성 때문이다. 둘째, 우수한 지해智解 때문이다.”157)라고 했다. 범부는 처음의 법성은 있지만 뒤의 우수한 지해가 없다. 성인은 두 가지를 갖추기 때문에 “성제聖諦”라고 치우쳐 호칭한다. 법성은 진리가 진실한 것이고, 우수한 지해는 곧 진리를 자세히 고찰하는 것이다.

㉡ 해석

둘째, 해석이다.

셋째, 염정인과문이다. 고와 집은 세간의 인과이다. 말하자면 고는 생사의 과보이니, 먼저 거론하여 염오심厭惡心을 발생시킨다. 집은 저 고의 원인이니, 말하자면 번뇌의 업이다. 고를 염오하고 집을 끊는 것이다. 앞의 것은 과보이고 뒤의 것은 원인이기 때문이다. 멸과 도는 출세간의 인과이다. 멸은 열반의 과보이다. 먼저 거론하여 기뻐하게 한다. 도는 저 멸의 원인이니, 말하자면 팔정도이다. 닦고 난 후에는 모두 공이어서 있지 않다.

“세간의 인과”란 사제의 뜻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대승과 소승의 사법事法과 이법理法에 통하지만 구족함이 같지 않으니, 12인연은 단지 사법만 있지 이법이 없으며, 명칭은 자세하나 사법은 간략하여 사법도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009_0193_c_01L
三染淨因果門二 初唱經

009_0193_c_02L
無苦集滅道

009_0193_c_03L
[記]四聖諦也 聖者 正也 無漏正
009_0193_c_04L法 得在心故 諦有二義 一者諦
009_0193_c_05L實 此約境辨如所說相 不捨離故
009_0193_c_06L眞實故 決㝎故 謂世出世二種因
009_0193_c_07L緣 必無虛妄差失故 二審諦 此
009_0193_c_08L就智明 聖智觀彼 審不虛故 凡
009_0193_c_09L夫雖有苦集 而不審實 不得稱諦
009_0193_c_10L無倒聖智 審知境故 故名聖諦
009_0193_c_11L瑜伽云 由二緣故 名諦 一法性
009_0193_c_12L故 二勝解故 凡夫有初無後 聖
009_0193_c_13L具二故 偏稱聖諦 法性是諦實
009_0193_c_14L勝解即審諦

009_0193_c_15L
二作釋

009_0193_c_16L
[䟽]三染淨因果門 苦集是世間因果
009_0193_c_17L謂苦是生死報 先擧令生厭 集是彼
009_0193_c_18L因 謂是煩惱業 厭苦斷集 先果後
009_0193_c_19L因故也 滅道是出世間因果 滅是湼
009_0193_c_20L槃果 先擧令欣 道是彼因 謂八正
009_0193_c_21L道 修之於後 皆空無有也

009_0193_c_22L
[記]言世間因果者 欲顯四諦義 通
009_0193_c_23L大小事理 具足不同 十二因緣
009_0193_c_24L但事而無理 名廣而事略 事亦不

009_0194_a_01L단지 고와 집만 있지 도가 없기 때문이다. 육바라밀은 단지 출세간을 드러낼 뿐 세간이 없다. 지금 고와 집이 세간의 인과라고 말하는 것은, 사제가 구족상具足相을 포함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알아야 할 바와 끊어야 할 바가 바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고는” 이하는 진리의 체상體相을 나타낸 것이다. 핍박을 고라 이름한다. 다른 이름으로 해석하더라도 또한 특성을 변론하는 것이니, 심신을 핍박하는 것이 고의 행상行相이기 때문이다. “생사의 과보이니”란 고의 체를 가리킨다. 체는 곧 유루有漏의 색과 심이니, 업에 의해 초감招感된 과보이다. “집은 저 고의 원인이니”란, 쌓여서 늘어나는 것을 집이라 하니, 또한 명칭의 특성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번뇌의 업이다.”는 체를 나타낸 것이다. “고를 염오하고 집을 끊는 것이다.”란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 교법이 나타난 뜻이다.

앞은 오염된 인과이고, “멸과 도는” 등이란 청정한 인과이다. “멸은 열반의 과보이다.”란, 적정寂靜을 멸이라 이름하니, 명칭의 특성을 드러낸 것이다. 열반이란 체를 나타낸 것이다. “도는” 등이란 곧 지관止觀이나 팔정도 등이다. “기뻐하게 한다.” 등이란 가르침의 뜻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특성을 기준으로 설한 것이니, 대승과 소승에 공통된다. 『대지도론』에서 소승은 고·집·도 세 가지가 유의 특성이고, 멸은 무의 특성이라 하지만, 대승에서는 네 가지 모두가 무의 특성이라고 하였다. “모두 공이어서”란, 곧 공이고 진여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태 지의에게는 네 가지의 사제가 있다. 첫째, 생멸이다. 둘째, 무생이다. 셋째, 무량이다. 넷째, 무작이다.158) 묶으면 오로지 성性과 상相이다. 상은 생멸과 무량으로 나뉘고, 성은 무생과 무작으로 나뉜다.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실제를 소급하니, 지금 경전에서 네 가지로 갖춘다.

가르침의 내용을 기준으로 하면 바로 무작 사제에 해당하고, 겸하여 무생 사제를 포섭한다. 왜 그런가? 고를 이해하기만 하면 고는 없으니, 고성제라 한다. 집을 이해하면 화합이 없고, 멸을 이해하면 멸이 없고, 도를 이해하면 도가 없다.

009_0194_a_01L具 但有苦集而無道故 六波羅蜜
009_0194_a_02L但顯出世間 而無世間 今言苦集
009_0194_a_03L是世間因果 顯四諦包含具足相
009_0194_a_04L也 所知所斷 無改易故 謂苦是
009_0194_a_05L下出諦體相也 逼迫名苦 雖釋別
009_0194_a_06L名 亦即辨相 逼迫身心 是苦行相
009_0194_a_07L故 是生死報者 指體也 體即有
009_0194_a_08L漏色心業所招報也 集是彼因者
009_0194_a_09L積集增長 名集 亦是出名相也
009_0194_a_10L謂是等者 出體也 厭苦斷集 能
009_0194_a_11L化敎法出興意也 上是染因果 滅
009_0194_a_12L道等者 淨因果也 滅是湼槃者
009_0194_a_13L寂靜名滅 顯名相也 湼槃者 出
009_0194_a_14L體也 道等者 即是止觀八正道等
009_0194_a_15L今欣等者 示敎意也 此約相說
009_0194_a_16L通大小乘 智論云 小乘三是有相
009_0194_a_17L滅是無相 大乘四皆無相 皆空者
009_0194_a_18L即空即如也 然天台有四四諦 一
009_0194_a_19L生滅 二無生 三無量 四無作 束
009_0194_a_20L之唯性相 相開生滅無量 性開無
009_0194_a_21L生無作 若以名必召實 今經具四
009_0194_a_22L若約所詮 正當無作 兼攝無生
009_0194_a_23L何者 若但解苦無苦 名苦聖諦
009_0194_a_24L解集無和合 解滅無滅 解道無道

009_0194_b_01L인연因緣·등무간연等無間緣·소연연所緣緣·증상연增上緣의 4연으로 발생함을 통달하면 공이니, 무생 사제에 해당한다. 오온과 12입처가 모두 진여임을 알아차리면 버려야 할 고가 없고, 무명의 번뇌가 곧 보리이므로 끊어야 할 집이 없으며, 생사가 곧 열반이므로 증험해야 할 멸이 없고, 극단의 그릇됨이 모두 중도의 올바름이므로 닦아야 할 도가 없다. 고도 없고 집도 없으므로 세간이 없고, 멸도 없고 도도 없으므로 출세간이 없다.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므로 동일한 중도이다. 또 버려야 할 고가 없어서 공이 아니므로 버려야 할 것이 있지 않다. 체가 곧 진여이므로 진여 바깥에 고가 없으니, 어디에 버릴 것이 있겠는가?

이 구절은 진여를 언급한 것이다. 진여는 오히려 공과 유사하긴 하지만, 집集에서 무명의 번뇌는 모두 곧 보리이니, 어찌 앞의 공과 같겠는가? 보리의 체 바깥에 별도로 끊어야 할 것이 없어서 무생 사제와 같지 않으니, 공에는 끊어야 할 것이 없다. 앞에서라면 공에는 꽃이 없으니, 어찌 꽃을 딴다고 하겠는가? 지금이라면 색이 곧 공이므로 파도가 곧 물이어서 파도를 제거할 수 없으니, 색을 소멸시키는 것과는 같지 않다. 생사가 곧 열반이니, 체가 공인 것도 아니고 생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극단과 그릇됨이 모두 중도中道이고, 정도正道이다. 극단의 바깥으로 벗어나 별도로 중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릇됨의 바깥으로 벗어나 별도로 정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극단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릇됨이 없는 것도 아니니, 닦아야 할 것도 없다. 곧 지금의 경전은 원만하게 소통되고 장애가 없는 한맛의 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작 사제에 해당한다.

(ㄹ) 경지능소문境智能所門

넷째, 경지능소문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지혜도 없으며 얻음도 없다.

㉡ 해석

둘째, 해석이다.

넷째, 경지능소문이다. 공에는 앞에 제법이 없을 뿐 아니라 공의 지혜를 아는 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혜도 없으며”라고 한다. 곧 이렇게 알려진 공의 이치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얻음도 없다.”라고 한다.


009_0194_b_01L達四緣生故空 則當無生 若了陰
009_0194_b_02L入皆如 無苦可捨 無明塵勞 即
009_0194_b_03L是菩提 無集可斷 生死即湼槃
009_0194_b_04L無滅可證 邊邪皆中正 無道可修
009_0194_b_05L無苦無集 即無世間 無滅無道
009_0194_b_06L即無出世間 不取不捨 同一中道
009_0194_b_07L又無苦可捨 非是空故 無有可捨
009_0194_b_08L以體即如 如外無苦 何所捨耶
009_0194_b_09L此句言如 如尙似空 集中無明塵
009_0194_b_10L勞 皆即菩提 豈同前空 菩提體
009_0194_b_11L外 無別可斷 不同無生 空無可
009_0194_b_12L斷 前則空中無花 云何摘 今則
009_0194_b_13L色即是空 波即是水 不可除波
009_0194_b_14L非同滅色 生死即湼槃 非是體空
009_0194_b_15L無可生滅 邊邪皆中正 非離邊外
009_0194_b_16L別有中道 非離邪外 別有正道
009_0194_b_17L亦非無邊無邪無可修也 即是今
009_0194_b_18L經圓通無礙一味法也 故當無作
009_0194_b_19L第四境智能所門二 初唱經

009_0194_b_20L
無智 亦無得

009_0194_b_21L
[記]二作釋

009_0194_b_22L
[䟽]四境智能所門 非但空中無前諸
009_0194_b_23L法 彼知空智 亦不可得 故云無智也
009_0194_b_24L即此所知空理 亦不可得 故云無得

009_0194_c_01L
“공의 지혜를 아는 것도” 등이란, 『원각경圓覺經』에서 말하기를, “만약 깨달음이 있다고 설한다면 오히려 아직 환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159)라고 했다. 그러므로 지혜가 없다. “알려진” 등이란, 『원각경』에서 말하기를, “본래부터 보리와 열반은 없다.”160)라 했고, 또 『대반야경』에서 말하기를, “설사 다시 어떤 법이 있어 보리와 열반을 탁월하게 뛰어넘더라도 나는 또한 꿈 같고 허깨비 같다고 설한다.”161)라고 했으며, 『대반야경』 「문수사리분文殊師利分」에서 말하기를, “나의 본성을 안다는 것은 곧 법이 없음을 아는 것이고, 법이 없음을 안다는 것은 곧 경계가 없는 것이다. 경계가 없으면 곧 의지할 바가 없고, 의지할 바가 없으면 곧 머무를 바가 없으며, 머무를 바가 없으면 곧 평등함에 머무른다. 평등함에 머무르면 능能과 소所가 없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다고 한다.”162)라고 했다.

진국 사문 징관이 말하기를, “내가 곧 법성이니, 다시 증험해 들어가지 않는다. 법성에 자성이 없는데, 다시 어디로 들어가겠는가?”163)라 했고, 또 말하기를, “그런데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위의 두 구절에서는 하나인 성품은 나뉘지 않으므로 능能과 소所가 없음을 밝혔다. 마치 하나의 손가락이 스스로 만질 수 없는 것과 같다. 둘째, 법성에는 자성이 없으니, 다시 어디로 들어가겠는가? 법성이 공임을 밝히므로 들어가는 주체도, 들어가는 대상도 없다. 또 마치 허공과 같아서 허공에는 머무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164)라고 했다. 「문수사리분」에서 또 말하기를, “불타가 문수에게 고하였다. 너는 어찌 불법을 추구하지 않는가? 문수는 말한다. 세존이여, 지금 불법이 아닌 법이 있다고 보지 않는데, 무엇을 추구하겠습니까?”165)라고 했다. 이것은 곧 하나인 법성의 뜻이다. 불타가 또 물어 말하기를, “너는 불법을 이미 성취했는가?”라고 했다. 문수가 말하기를, “제가 불법이라 할 만한 법을 전혀 보지 못하였는데, 무엇을 성취하겠습니까?”166)라고 했다. 이것은 곧 법성이 공이라는 뜻이다. 불타가 또 묻기를, “네가 어찌 법성에 집착하지 않음을 얻지 않는가?”라고 했다. 문수가 답하여 말하기를, “저는 법성에 집착하지 않는데, 어찌 법성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다시 법성에 집착하지 않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167)라고 했다.

009_0194_c_01L

009_0194_c_02L
[記]知空等者 經云若說有覺 猶未
009_0194_c_03L離幻 是故無智所知等者 經云本
009_0194_c_04L無菩提及與湼槃 又經云 設更有
009_0194_c_05L法勝 過菩提湼槃 我亦說如夢如
009_0194_c_06L幻 文殊般若分云 若知我性 即
009_0194_c_07L知無法 若知無法 即無境界 若
009_0194_c_08L無境界 即無所依 若無所依 即
009_0194_c_09L無所住 若無所住 即住平等 若
009_0194_c_10L住平等 則無能所 故曰無住 鎭
009_0194_c_11L國曰 我即法性 更不證入 法性
009_0194_c_12L無性 復何所入 又曰然有二意 一
009_0194_c_13L上二句 明一性不分 故無能所
009_0194_c_14L猶如一指 不能自觸 二法性無性
009_0194_c_15L復何所入 明性空故 無能所入
009_0194_c_16L亦如虛空 不住虛空 文殊分又云
009_0194_c_17L佛告文殊 汝於佛法 豈不趣求
009_0194_c_18L文殊言 世尊 我今不見有法非佛
009_0194_c_19L法者 何所趣求 此即一性意也
009_0194_c_20L佛又問云 汝於佛法 已成就耶
009_0194_c_21L文殊言 我都不見法 可名佛法
009_0194_c_22L何所成就 此即性空意也 佛又問
009_0194_c_23L汝豈不得無着性耶 文殊答曰 我
009_0194_c_24L則無着性 豈無着性 復得無着性

009_0195_a_01L이것은 곧 내가 곧 법성이어서 다시 증험하여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하나인 진여에 무슨 능과 소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모두 지금의 경전의 광문이다.

ㄴ) 문답으로 뜻을 드러냄

둘째, 문답으로 뜻을 드러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소승의 전철을 밟는 물음

첫째, 소승의 전철을 밟는 물음이다.

앞에서 “공이 곧 색” 등이라고 하여 색 등이 없어지지 않음을 밝혔는데, 왜 이 문장에서는 ‘일체가 모두 없다’라고 하는가? 어찌 이 공은 색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의 문장은 하나이지만 뜻에 의하면 두 가지의 물음이 있다. 첫째는 앞과 뒤가 상위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금 색을 소멸시킨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앞에서 의심을 불식시키는 중에 공이 곧 색이어서 색은 존재한다고 하였다. 지금 모두 없다고 하므로 서로 위배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승이 통달하지 못하여 지금 색을 소멸시킨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ㄴ) 경전의 취지에 원만히 소통하는 대답

둘째, 경전의 취지에 원만히 소통하는 대답이다.

앞에서 비록 존재함을 장애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일찍이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 지금 여기서는 모두 사라지지만 일찍이 성립하지 않은 적이 없다.

“존재함을 장애하지 않는다.”란, 청량 징관이 말하기를, “공에 상즉하는 색은 묘색妙色이기 때문이다.”168)라고 하였으니, 존재함을 장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색에 상즉하는 공은 진공이니, 일찍이 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모두 사라지지만”이란 색에 상즉하는 공이다. “일찍이 성립하지 않은 적이 없다.”란 공에 상즉하는 색이다. 진국 사문 징관은, “반야는 4구를 파괴하지 않으니, 어찌 묘유가 없겠는가?”169)라고 했다. “존재함을 장애하지 않는다.”는 것과 “일찍이 성립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은 유의 구절이고, “모두 사라진다.”는 것과 “일찍이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은 무의 구절이다. 두 가지를 합하고자 하면 양립하기도 하지만 드러난 모습을 없애고자 하면 함께 부정되기도 한다. 유라면 묘유妙有이고 무라면 진무眞無이니, 어찌 정면으로 하나인 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대품경』에서 말하기를, “제법은 있는 바가 없지만 이와 같이 이러한 무는 있다.”170)라고 했다.

009_0195_a_01L此即我即法性 更不證入 唯一如
009_0195_a_02L如 何有能所得㦲 此皆今經之廣
009_0195_a_03L文也

009_0195_a_04L
二問答顯宗二 初異乘躡跡問

009_0195_a_05L
[䟽]問前云空即是色等 明色等不亡
009_0195_a_06L何以此文一切皆無 豈非此空是滅
009_0195_a_07L色耶

009_0195_a_08L
[記]此中文雖一道義 有二問 一即
009_0195_a_09L前後相違 二則疑今滅色 前拂疑
009_0195_a_10L中 空即是色 色存也 今云都無
009_0195_a_11L故似相違 二乘不達疑 今滅色也

009_0195_a_12L
二經旨圓通答

009_0195_a_13L
[䟽]答前雖不閡存 而未嘗不盡 今此
009_0195_a_14L都亡 未嘗不立

009_0195_a_15L
[記]不礙存者 淸凉曰 即空之色爲
009_0195_a_16L妙色故 不礙存也 即色之空爲眞
009_0195_a_17L空 未甞不盡矣 今此都亡即色之
009_0195_a_18L空也 未嘗不立即空之色也 鎭國
009_0195_a_19L曰 般若不壞四句 豈無妙有 不
009_0195_a_20L礙存 未嘗不立 有句也 都亡未嘗
009_0195_a_21L不盡 無句也 合二則兩亦 形奪則
009_0195_a_22L俱非 有則妙有 無則眞無 豈非
009_0195_a_23L正詮一性㦲

009_0195_a_24L
[䟽]故大品云 諸法無所有 如是有此

009_0195_b_01L이것은 있는 바가 없음에 나아가 앞의 것이 이와 같이 있음을 증거한 것이다.

“『대품경』에서” 이하에서는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제법은 있는 바가 없지만”이란 곧 허망법인 유는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없다는 무의 구절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무는 있다.”란 허망법의 없음이 있다는 것이니, 이것은 아직 성립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유의 구절이다. “이것은 있는 바가 없음에 나아가”란, 곧 벗어나야 할 대상인 고정된 본성을 지닌 실유가 없다는 것이다. “앞의 것이 이와 같이 있음을 증거한 것이다.”란, 공에 상즉하는 유이고, 불가사의한 유이다.

또 앞에서는 상작문相作門에 나아간 것이고, 여기서는 상해문相害門에 나아간 것이다. 하나의 법에 두 가지 뜻이니, 상황에 따라 설함에 위배됨이 없다.

“또 앞에서는” 이하는, ‘현정의顯正義’ 중에서 (상위의相違義·불상애의不相閡義·상작의相作義의) 세 가지의 뜻이다. “하나의 법”이란 한맛의 차별 없는 법이다. “두 가지 뜻”이란 곧 공과 유의 두 가지 부문이다. “상황에 따라 설함에 위배됨이 없다.”란 서로 융합하여 서로 옳다는 것이니, 공종空宗에서 공은 곧 진실이고, 유는 곧 허망이라는 것과는 같지 않다. 청량 징관은 “성공性空은 대승시교·돈교·대승종교에 통한다. 묘유妙有는 곧 실교實敎이다. 공과 유에 통한다면 두 가지는 서로 투철하여 덕을 갖추니, 곧 원교圓敎이다.”171)라고 했다.

ㄹ. 얻는 것을 밝힘

넷째, 얻는 것을 밝힌다.

이 경전에는 큰 과목으로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의심을 끊어 믿음을 낸다. 다음으로 이치를 드러내어 올바로 이해하도록 한다. 셋째, 수행을 일으켜 미혹을 끊는다. 넷째, 얻는 것을 밝혀 과보를 드러낸다. 다섯째, 법을 찬탄하여 덕을 찬양한다. 이리하여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받고, 닦음에 따라 반드시 증험함이 일도一道의 시종이니, 어찌 단지 ‘장애를 벗어남’이라는 하나의 과목만으로 중생의 망정의 헤아림을 끊어낼 수 있겠는가? 경가經家(아난 등과 같은 경전의 결집자)가 교법을 설하여 보여 행자가 이해하게 하는데 이치 가운데 이러한 것은 없다. 곧 공종을 억압하여 방편의 대승시교(權始)에 돌아간다고 설하고, 이 (‘얻는 것을 밝힘’의) 과목에서, (번뇌장과 소지장의) 두 가지가 전의된 (보리·열반의) 묘과妙果에서는,

009_0195_b_01L無 此就無所有 前據如是有

009_0195_b_02L
[記]大品下引證諸法無所有 即無
009_0195_b_03L妄法之有 是都亡無句也 如是有
009_0195_b_04L此 乃則有妄法之無 是未甞不立
009_0195_b_05L有句也 此就等者 即所離中無㝎
009_0195_b_06L性實有也 前據如是有者 即空之
009_0195_b_07L有 不思議之有也

009_0195_b_08L
[䟽]又前就相作門 此就相害門 一法
009_0195_b_09L二義 隨說無違

009_0195_b_10L
[記]又前下顯正義中三義也 一法
009_0195_b_11L者 一味無差別法也 二義 即空
009_0195_b_12L有二門 隨說無違者 互融相是
009_0195_b_13L不同空宗 空即是眞 有即爲妄
009_0195_b_14L淸凉曰 性空通於初頓終敎 妙有
009_0195_b_15L即是實敎 若通於空有 二互交徹
009_0195_b_16L具德即是圓敎

009_0195_b_17L
第四明所得 此經大科有五 初則
009_0195_b_18L斷疑以生信 次則顯理令正解 三
009_0195_b_19L則起行而斷惑 四明所得以顯果
009_0195_b_20L五乃歎法以讃德 是則當機禀敎
009_0195_b_21L依修克證 一道始終 豈可但將所
009_0195_b_22L離一科 斷除衆生情計 經家說示
009_0195_b_23L行者令解 理中無此 便謂說空
009_0195_b_24L抑歸權始 不觀此科 二轉依果

009_0195_c_01L얻는 것이 없음이 위대한 얻음임을 관조하지 않는다면, 근기에 따라 이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얻은 바가 반야라고 통틀어 논한다면, 비록 방편과 진실이 있더라도 모두 삼승인이 얻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대품경』에서 “중생 중에 성문승의 성격으로 결정된 자는 이 법을 듣고 나서 속히 스스로 무루無漏의 지위를 증득할 수 있고, 내지 위가 없는 수레의 성격으로 결정된 자는 이 법을 듣고 나서 속히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증득한다.”172) 등이라 했고, 또 소주인 법장은 “반야는 또한 이승을 위한 것이니, 참으로 법화 이전 아직 모임을 파하기 전에 두루 삼승의 법을 설하여 삼승의 이익을 갖추어 얻는 것이다.”173)라고 했다. 지금 경전에서는 비록 대승을 설하더라도 겸하여 저 의심을 끊고자 그러한 진행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둘이 있다.

ㄱ) 앞에서 무소득을 첩문하여 뒤의 소득을 일으킴

첫째, 앞에서 무소득을 첩문하여 뒤의 소득을 일으키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얻는 바가 없는 까닭에

(ㄴ) 판석判釋

둘째, 판석이다.

넷째, 얻는 이익에 대한 설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앞을 잇고 뒤를 일으킴이다. 둘째, 얻는 바를 바로 밝힘이다. 지금은 첫째이다. “얻는 바가 없는 까닭에(以無所得故)”란 앞을 잇고 뒤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以’란 말미암음이다. ‘고故’란 원인이다. 앞의 얻는 바가 없음을 원인으로 삼아 뒤에 얻는 바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품경』에서는 “얻는 바가 없으므로 얻는다.”라고 하였다.

“‘얻는 바가 없는 까닭에’란” 이하는, 경의 앞 내용을 이어서 과목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지혜도 없으며 얻음도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원인이 되는 수행을 거쳐 이로 말미암아 과보를 얻는다. 이와 같다면 앞에서는 장애를 벗어남에 대한 설명으로 미혹을 끊고, 지금은 얻는 이익에 대한 설명으로 과보를 증험한다. 청량 징관은 “무소득이 곧 반야의 특성이다.”174)라고 했으니, 반야를 얻는다는 것은 얻음이 없는 지혜이기 때문에 마침내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품경』을 인용하여 얻음이 없으므로 얻는 것이라고 한다.

009_0195_c_01L無得而大得 當機獲益耶 然此所
009_0195_c_02L得 若通論般若 雖有權實 皆爲
009_0195_c_03L三人所得 故經云 若有情類於聲
009_0195_c_04L聞乘性決㝎者 聞此法已 速能證
009_0195_c_05L得自無漏地 乃至於無上乘性決
009_0195_c_06L㝎者 聞此法已 速證無上正等
009_0195_c_07L菩提等 又䟽主曰 般若亦爲二乘
009_0195_c_08L良以法華之前 未經破會 通說三
009_0195_c_09L乘法 具獲三乘益 今經雖唯說大
009_0195_c_10L兼斷彼疑 與其進也 於中二 初
009_0195_c_11L牒前起後二 初唱經

009_0195_c_12L
以無所得故

009_0195_c_13L
[記]二判釋

009_0195_c_14L
[䟽]第四明其所得有二 初牒前起後
009_0195_c_15L二正明所得 今初也 言以無所得故
009_0195_c_16L者 牒前起後也 以者 由也 故者
009_0195_c_17L因也 由前無所得爲因 令後有所得
009_0195_c_18L也 大品云 無所得故而得

009_0195_c_19L
[記]言以下牒經科釋也 前云無智
009_0195_c_20L亦無得 故今躡爲因行 由是而得
009_0195_c_21L果 如是則前明所離 是斷惑 今
009_0195_c_22L明所得 是證果也 淸凉曰 無所
009_0195_c_23L得 即般若相 由得般若 無得智
009_0195_c_24L慧 故方得也 故引大品無得而得

009_0196_a_01L『대품경』에서 또 말하기를, “무소득을 방편으로 삼는다.”175)라 했고, 조사 징관은 “사법과 이법에도 생사와 열반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곧 이사무애는 방편이다.”176)라고 했으며, 소주인 법장은 “진공을 관조하기 때문에 마침내 모든 수행을 이룬다. 그러므로 10바라밀 등의 수행이 모두 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보리 등의 과보가 모두 공으로 말미암아 성립한다. 그러므로 이 진공으로부터 머무름이 없이 제법을 건립한다. 또 제법이 서로 일치하고 서로 넘나들 수 있게 하니, 가로막음이 없고 걸림이 없는 것 등은 모두 이 부문의 위대한 작용이다.”177)라고 했다.

또 얻음이 없다는 것은 반드시 흔적이 없어야 하니, 공적하게 깨끗이 제거되어야 비로소 무득이라 한다. 청량 징관은 말하기를, “상相은 있지만 성性은 없음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여러 종파의 이론에 대부분 이 설명이 있다. 자성은 공이지만 법은 공이 아니다. 법상종의 경우 단지 변계소집성만이 없는 것이지 의타기성은 없지 않다. 삼론을 배웠더라도 뜻을 얻지 못한 자들이 또한 말하기를, 법은 자성이 없으므로 공이라 설해도 상相은 공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 설명하자면 자성이 없지만 인연으로 발생하므로 유이니, 체가 있지만 공이다. 인연으로 발생하지만 자성이 없으므로 공이니, 공이지만 항상 유이다. 서로 투철하여야만 비로소 진공묘유이니, 그 말이 크게는 같지만 취지에 다름이 있다.”178)라고 했다. 정관貞觀 이래 아직도 이것이 통달되지 못하였다.

ㄴ) 얻는 것을 정면으로 밝힘

둘째, 얻는 것을 바로 밝히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장애를 끊는 과보를 얻음에 대해 밝힘

첫째, 장애를 끊는 과보를 얻음에 대해 밝히니, 여기에 둘이 있다.

㉠ 사람을 거론하고 법에 의거함

첫째, 사람을 거론하고 법에 의거하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거하므로

b. 판석

둘째, 판석이다.

둘째, 얻는 바를 바로 밝힘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보살은 열반이라는 끊음의 과보를 얻음을 밝힌다. 나중에 모든 불타는 보리라는 지혜의 과보를 얻음을 밝힌다. 앞의 것에는 또 두 가지가 있다.

009_0196_a_01L
大品又云 以無所得而爲方便 祖
009_0196_a_02L曰若不住事理生死湼槃 則事理
009_0196_a_03L無礙之方便也 䟽主曰 由觀眞空
009_0196_a_04L方成諸行 是故十度等行 皆由空
009_0196_a_05L成 菩提等果 皆由空立 是故從
009_0196_a_06L此眞空無住 建立諸法 又令諸法
009_0196_a_07L得相即相入 無障無礙等 並是此
009_0196_a_08L門之大用也 又無得者 要須足跡
009_0196_a_09L不存 蕩然淨掃 方云無得 淸凉
009_0196_a_10L曰 非但相有性無 而已謂諸宗計
009_0196_a_11L多有此說 但空自性 不空於法
009_0196_a_12L如法相宗 但無徧計 非無依他
009_0196_a_13L設學三論 不得意者 亦云法無自
009_0196_a_14L性 故說爲空 則令相不空矣 今
009_0196_a_15L無性緣生故有 有體即空 緣生無
009_0196_a_16L性故空 空而常有 要互交徹 方
009_0196_a_17L是眞空妙有 其言大同而旨有異
009_0196_a_18L政觀以來 尙不達此

009_0196_a_19L
二正明所得二 先明得斷果二 初
009_0196_a_20L擧人依法二 初唱經

009_0196_a_21L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009_0196_a_22L
[記]二判釋

009_0196_a_23L
[䟽]二正明所得有二 先明菩薩得湼
009_0196_a_24L槃斷果 後明諸佛得菩提智果 前中

009_0196_b_01L먼저 사람을 거론하고 법에 의거한다. 나중에 장애를 끊어 과보를 얻는다. 지금은 먼저의 것이다. “보살(菩提薩埵)”이란 사람을 거론한 것이다. 뜻은 앞의 ‘(보살이라는) 통명通名을 해석함’에서와 같다. “반야바라밀다에 의거하므로(依般若波羅蜜多故)”란 이 법에 의거하여 행함을 밝힌 것이다. ‘고故’란 뒤를 일으키는 것이다.

“끊음의 과보”란 끊어서 드러난 바이기 때문이다. “이 법에 의거하여 행함을 밝힌 것이다.”란, 곧 앞에서의 무득無得인 반야 지혜의 법에 의거하여 행한다는 것이다. 반야가 없다면 나머지 바라밀로는 모두 피안에 도달하지 못한다.

㉡ 장애를 끊어 과보를 얻음

둘째, 장애를 끊어 과보를 얻음이니, 여기에 셋이 있다.

a. 수행이 완성됨

첫째, 수행이 완성됨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마음에 장애가 없다.

b) 해석

둘째, 해석이다.

둘째, 장애를 끊어 과보를 얻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수행이 완성됨이다. 둘째, 장애를 끊음이다. 셋째, 과보를 얻음이다. 지금은 첫 번째이다. “마음에 장애가 없다.”란, 수행이 완성된 것이니, 말하자면 미혹이 마음을 장애하지 않는 것이고, 경계가 지혜를 장애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 과목을 판별하고, 다음에 (앞의 경문을) 이어서 해석한다. “수행이 완성됨이다.”란 총괄적으로 보인 것이다. “말하자면 미혹이” 이하는 별도로 드러낸 것이니, 말하자면 번뇌장煩惱障이 마음을 장애하여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므로 업을 지어 윤회하고, 소지장所知障이 지혜를 장애하여 지혜가 해탈하지 못하므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제법의 본성과 특성을 통달하지 못하면 이리저리 삼계를 벗어나더라도 아래의 수레에 머물러 성불할 수 없다. 지금 반야의 깊은 지혜를 얻으면 두 가지 장애의 씨앗이 드러나 모두 없어지니, 두 가지의 해탈을 얻는다. 그러므로 “장애하지 않는 것이고” 등이라 한다.

b. 장애를 끊음

둘째, 장애를 끊음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장애가 없으므로 공포도 있지 않으며 전도되고 꿈 같은 생각을 멀리 떠나

b) 해석

둘째, 해석이다.

둘째, 장애를 끊음이다. “장애가 없으므로”란 앞을 잇고 뒤를 일으키는 것이다.

009_0196_b_01L亦二 先擧人依法 後斷障得果 今
009_0196_b_02L初也 言菩提薩埵者 擧人也 義如
009_0196_b_03L前解 依般若波羅蜜多故者 明依此
009_0196_b_04L法行也 故者 起後也

009_0196_b_05L
[記]言斷果者 斷所顯故 明依等者
009_0196_b_06L即依前無得般若智慧法行也 若
009_0196_b_07L無般若 餘度皆不到岸

009_0196_b_08L
二斷障得果三 初行成二 初唱經

009_0196_b_09L
心無罣閡

009_0196_b_10L
[記]二作釋

009_0196_b_11L
[䟽]二斷障得果中有三 初行成 二斷
009_0196_b_12L障 三得果 今初也 言心無罣閡者
009_0196_b_13L行成也 謂惑不閡心故 境不閡智故

009_0196_b_14L
[記]初科判 次牒釋 行成者 總示
009_0196_b_15L謂惑下別顯 謂煩惱障障心 心不
009_0196_b_16L解脫故 造業輪轉 所知障障慧
009_0196_b_17L慧不解脫故 不了自心 不達諸法
009_0196_b_18L性相 縱出三界 亦滯下乘 不得
009_0196_b_19L成佛 今得般若深慧 二障種現俱
009_0196_b_20L亡 得二解脫 故不礙等也

009_0196_b_21L
二斷障二 初唱經

009_0196_b_22L
無罣閡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009_0196_b_23L
[記]二作釋

009_0196_b_24L
[䟽]二斷障也 言無罣閡故 牒前起後

009_0196_c_01L“공포도 있지 않으며”란, 바깥으로 마귀와 원수에 대한 공포가 없는 것이니, 곧 악연惡緣이 쉬는 것이다. “전도되고 꿈 같은 생각을 멀리 떠나”란, 안으로 미혹된 장애의 전도됨이 없는 것이니, 곧 악인惡因이 다하는 것이다.

“마귀와 원수에 대한 공포”란, 천마天魔와 외도外道가 모습을 나타내 수행자를 두렵게 하는 것이니, 자세한 것은 『대승기신론』의 본말本末에서 설한 것과 같다.179) “전도되고 꿈 같은 생각을”이란 생生·주住·이異·멸滅이다. 소주인 법장은, 꿈을 예로 들어 해석하였는데, 모두 중생을 잠들게 할 수 있으니, 나와 나의 것에 대해 깨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꿈에 나타난 경계가 없지만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므로 전도라 한다. 본래 청정한 마음이 무명에 의해 잠들게 되니, 사상四相에 대한 꿈이 모든 번뇌를 일으킨다. 지금 반야의 지혜라는 태양을 얻으면 번뇌의 꿈을 깨뜨려서 제법이 공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므로 “악인惡因이 다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c. 열반의 과보를 얻음

셋째, 열반의 과보를 얻음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구경究竟의 열반에 이른다.

b) 해석

둘째, 해석이다.

셋째, 열반의 과보를 얻음이다. 열반은 원적圓寂이라 의역하니, 말하자면 덕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는 것을 원圓이라 하고, 장애가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적寂이라 한다. 소승에게 화성化城180)을 방편으로 세워 준 것과는 구별된다. 지금은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상주한다. 그러므로 “구경究竟”이라 한다. 또 지혜가 능히 궁극적으로 열반의 끝까지 이르게 됨을 풀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경”이라 한다.

초반부에서 범어를 중국어로 번역했다. “덕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란, 무주처대반열반無住處大般湼槃에는 상常·낙樂·아我·정淨 등의 다함이 없는 덕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가르침이 일어남(敎興)’에서는, “불타의 수승한 공덕을 드러내어 깨끗한 믿음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으니, 보리와 열반의 과보를 얻게 하기 때문이다. 얻음이 없으므로

009_0196_c_01L也 無有恐怖者 外無魔寃之怖 即
009_0196_c_02L惡緣息也 遠離顚倒夢想者 內無惑
009_0196_c_03L障之倒 即惡因盡也

009_0196_c_04L
[記]言魔寃之怖者 天魔外道 現形
009_0196_c_05L而怖行者 廣如起信本末論說 顚
009_0196_c_06L倒夢想者 生住異滅 䟽主例釋以
009_0196_c_07L夢 皆能眠衆生 於我我所中而不
009_0196_c_08L覺知故 夢所見境 無而謂有 故名
009_0196_c_09L顚倒 由本淨心 爲無明所眠 夢於
009_0196_c_10L四相 起諸煩惱 今得般若智 日破
009_0196_c_11L煩惱夢 了諸法空 故云惡因盡也

009_0196_c_12L
三得果二 初唱經

009_0196_c_13L
究竟湼槃

009_0196_c_14L
[記]二作釋

009_0196_c_15L
[䟽]三得果也 湼槃此云圓寂 謂德無
009_0196_c_16L不備稱圓 障無不盡稱寂 簡異小乘
009_0196_c_17L化城權立 今則一得永常 故云究竟
009_0196_c_18L又釋智能究竟 窮盡湼槃之際 故云
009_0196_c_19L究竟也

009_0196_c_20L
[記]初翻梵成華 德無不備者 無住
009_0196_c_21L處大般湼槃 具足常等無盡德也
009_0196_c_22L敎興中云 顯佛勝德 生淨信故
009_0196_c_23L1)今得菩提湼槃果故 不同無得
009_0196_c_24L「今」底本欄外有註曰「今字疑令字誤」{編}

009_0197_a_01L곧 참된 불타의 덕은 공이라 한 것과는 같지 않다. 조사가 문장에서 이를 인용하여 불타의 덕이 공임을 드러내었던 것은, 곧 지광 논사에 대한 앞선 기록에 따라 이미 알 수 있다.181) “장애가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란 미혹의 장애는 본래 진여이니, 다할 수 있는 다함이 없고, 끊을 수 있는 끊음이 없다는 것이다. “소승에게 화성化城을” 이하에서는 “구경究竟”이라는 말을 해석하였다. 단지 소승과 구별하는 것이라면 삼장 법사 자은 규기에 따른다.182) “또 지혜가 능히” 등이란, 참된 흐름의 수행이 아니면 진리에 계합할 수 없고, 참된 수행에 아직 도달한 적이 없으면 참된 것으로부터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실상에 상즉하는 관법으로 저 지혜에 상즉하는 진여를 비추어 증험하니, 마치 구슬이 빛을 내어 빛이 다시 스스로를 비추는 것과 같다. 이치를 궁구하여 본성을 다하니, 그러므로 “구경”이라 한다. 이것은 우리 종파에 근거하여 해석한 것이다.

(ㄴ) 모든 불타가 지혜의 과보를 얻음

둘째, 모든 불타가 지혜의 과보를 얻음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사람을 거론하고 법에 의거함

첫째, 사람을 거론하고 법에 의거하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삼세의 모든 불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거하므로

b. 해석

둘째, 해석이다.

둘째, 보리라는 지혜의 과보를 얻음을 밝힌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사람을 거론하고 법에 의거함이다. 둘째, 과보를 얻음을 밝힘이다. 지금은 첫 번째이니, 말하자면 삼세의 모든 불타에게는 다시 다른 길이 없고, 오로지 이 하나의 문門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에 의거하므로”라고 한다.

『능엄경』에서 말하기를, “하나의 문으로 뛰어넘어 오묘하게 장엄하는 길이다.”183)라고 했다.

㉡ 과보를 얻음을 정면으로 밝힘

둘째, 과보를 얻음을 정면으로 밝히니, 여기에 둘이 있다.

a.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었다.

b. 해석

둘째, 해석이다.

둘째, 과보를 얻음을 바로 밝힘이다. “아뇩다라阿耨多羅”는 위가 없다(無上)는 것이다. “삼먁三藐”은 올바르다(正)는 것이다. 다음으로 “삼三”은 평등하다(等)는 것이다.

009_0197_a_01L乃眞佛德空也 祖文引此顯佛德
009_0197_a_02L空者 乃順智光前記 已會障無不
009_0197_a_03L盡者 惑障本如 無盡可盡 無斷
009_0197_a_04L可斷 簡異下釋究竟言 但簡小乘
009_0197_a_05L順慈恩三藏也 又釋等者 非眞流
009_0197_a_06L之行 無以契眞 未有適眞之行
009_0197_a_07L不從眞起 今以即實相之觀 照證
009_0197_a_08L彼即智之如 如珠發光 光還自照
009_0197_a_09L窮理盡性 故名究竟 此據自宗釋
009_0197_a_10L

009_0197_a_11L
二諸佛得智果二 初舉人依法二
009_0197_a_12L初唱經

009_0197_a_13L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009_0197_a_14L
[記]二作釋

009_0197_a_15L
[䟽]第二明得菩提智果 於中有二 初
009_0197_a_16L擧人依法 二明得果 今初也 謂三
009_0197_a_17L世諸佛 更無異路 唯此一門 故云
009_0197_a_18L依般若波羅蜜多故也

009_0197_a_19L
[記]經云一門超出妙莊嚴路

009_0197_a_20L
二正明得果二 初唱經

009_0197_a_21L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009_0197_a_22L
[記]二演釋

009_0197_a_23L
[䟽]二正明得果也 阿耨多羅 此云無
009_0197_a_24L上也 三藐者 此云正也 次三者 此

009_0197_b_01L“보리菩提”는 깨달음(覺)이라는 것이다. 곧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다. 깨달음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정각正覺이니, 곧 여리지如理智로 진제를 올바로 관조하는 것이다. 둘째, 등각等覺이니, 여량지如量智로 속제를 두루 관조하는 것이다. 모두 지극하여 끝이 없다. 그러므로 “위가 있지 않다.”라고 한다. 여기까지로 ‘얻는 것을 밝힘’이 끝났다.

초반부에서 범어를 중국어로 번역했다. “깨달음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이하에서는 뜻을 해석한다. 여리지如理智로 진제를 관조하니, 이치 바깥으로는 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각正覺이라 한다. 여량지如量智로 속제를 관조하니, 저 본성과 특성들에 따라 두루 관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각等覺이라 한다. “지극하여 끝이 없다.”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어 저 아래의 수레와 아래의 지위를 넘은 것이다. 그러므로 “위가 있지 않다.”라고 한다. “여기까지로” 이하는 결론지은 것이다.

ㅁ. 반야의 우수한 능력에 대한 결론적 찬탄

큰 문단으로 다섯 번째인 우수한 능력에 대한 결론적 찬탄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우수한 덕에 대한 개별적 찬탄

첫째, 우수한 덕에 대한 개별적 찬탄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고,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임을 알아라.

(ㄴ) 해석

둘째, 해석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앞을 이어서 뒤를 일으킴

첫째, 앞을 이어서 뒤를 일으킨다.

다섯째, 우수한 능력을 결론적으로 찬탄함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개별적인 찬탄이고, 이후에 총결이다. 지금은 첫 번째이다. “그러므로……알아라.”라고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뒤를 일으킨 것이다. 불타와 보살은 모두 반야에 의거하므로 보리와 열반의 과보를 얻는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고” 등이라는 것을 알아라.

“불타와 보살은” 이하에서는 경전의 뜻을 드러낸다.

㉡ 간략히 네 가지 덕을 찬탄함

둘째, 간략히 네 가지 덕을 찬탄하니, 여기에 셋이 있다.

a. 취법석就法釋

첫째, 취법석이다.

우수한 능력을 찬탄하니, 간략히 네 가지 덕을 찬탄한다. 그런데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법의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첫째, 장애를 제거하여 공허하지 않은 것을 신주神呪라 한다.

009_0197_b_01L云等也 菩提此云覺也 即無上正等
009_0197_b_02L覺也 覺有二義 一正覺 即如理智
009_0197_b_03L正觀眞諦 二等覺 即如量智 徧觀
009_0197_b_04L俗諦 皆至極無邊 故云無有上也
009_0197_b_05L上來所得竟

009_0197_b_06L
[記]初翻梵成唐 覺有下釋義 如理
009_0197_b_07L智觀眞 非行理外 故云正覺 如
009_0197_b_08L量智觀俗 如彼性相遍觀察故 故
009_0197_b_09L云等覺 至極無邊者 得一切種智
009_0197_b_10L過彼下乘下位 故無有上 上來下
009_0197_b_11L結也

009_0197_b_12L
大文第五結歎勝能二 先別歎勝
009_0197_b_13L德二 初唱經

009_0197_b_14L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
009_0197_b_15L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009_0197_b_16L
[記]二演釋二 初牒前起後

009_0197_b_17L
[䟽]第五結歎勝能 於中有二 一別歎
009_0197_b_18L後摠結 今初也言故知者 牒前起
009_0197_b_19L後也 由佛菩薩 皆依般若 得菩提
009_0197_b_20L湼槃果 故知般若是大神呪等

009_0197_b_21L
[記]由佛下顯經意
009_0197_b_22L二略歎四德三 一就法釋

009_0197_b_23L
[䟽]歎其勝能 略歎四德 然有三釋
009_0197_b_24L一就法釋 一除障不虛 名爲神呪 二

009_0197_c_01L둘째, 지혜로 성찰하여 어둡지 않은 것을 명주明呪라 한다. 셋째, 다시 더 이상의 허물이 없는 것을 무상주無上呪라 한다. 넷째, 홀로 걸출하여 비할 바 없는 것을 무등등주無等等呪라 한다.

b. 약공능석約功能釋

둘째, 약공능석이다.

둘째, 공능을 기준으로 한 해석이다. 첫째, 번뇌를 깨뜨릴 수 있다. 둘째, 무명을 깨뜨릴 수 있다. 셋째, 원인인 수행을 원만하게 한다. 넷째, 과보인 덕을 원만하게 한다.

수행이 원만하므로 더 이상의 허물이 없다. 덕이 원만하므로 견줄 수 없음과 평등함이 함께한다.

c. 취위석就位釋

셋째, 취위석이다.

셋째, 지위의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첫째, 범부를 초과함이다. 둘째, 소승을 초월함이다. 셋째, 원인을 초월함이다. 넷째, 과보에 대해 평등함이다. 말하자면 홀로 걸출한 지위가 서로 평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등등”이라 한다. 『십지경론十地經論』에서 “‘무등’이란, 말하자면 불타는 여타의 중생에 비해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등’이라 하는 것은 이 법신과 저 법신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왜 단지 무등이라고만 설하지 않는가? 평등한 정각正覺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기 때문이다.”184라고 했다.

『십지경론』을 인용한 부분에서 “여타의 중생에 비해” 이하에서는, “무등”의 자구를 해석한 것이고, “다시 ‘등’이라 하는 것은” 이하에서는, 뒤의 “등”이라는 말을 해석한 것이다.

ㄴ) 우수한 능력에 대한 총괄적 결론

둘째, 우수한 능력에 대한 총괄적 결론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일체의 고통을 제거할 수 있으니,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ㄴ) 해석

둘째, 해석이다.

둘째, 우수한 능력을 총괄적으로 결론짓는다. 말하자면 3고三苦와 8고 등이므로 “일체의 고통”이라 한다. 또 분단생사와 변역생사 또한 “일체의 고통”이라 한다. 결정적으로 고통을 제거하였으므로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라고 한다. 여기까지 자세함과 간략함이 같지는 않았지만 ‘현료반야’의 단락을 총괄적으로 밝혀 끝냈다.


009_0197_c_01L智鑑無昧 名爲明呪 三更無加過
009_0197_c_02L名無上呪 四獨絕無倫 名無等等呪

009_0197_c_03L
[記]二約功能釋

009_0197_c_04L
[䟽]二約功能釋 一能破煩惱 二能破
009_0197_c_05L無明 三令因行滿 四令果德圓

009_0197_c_06L
[記]行滿故 無有過上 德圓故 與
009_0197_c_07L無等齊等也

009_0197_c_08L
1)二就位釋

009_0197_c_09L
[䟽]三就位釋 一過凡 二越小 三超
009_0197_c_10L因 四齊果 謂無等之位 互相齊等
009_0197_c_11L故云無等等 十地論云 無等者 謂
009_0197_c_12L佛比餘衆生 彼非等故 重言等者
009_0197_c_13L此彼法身等故 何故不但說無等耶
009_0197_c_14L示現等正覺故

009_0197_c_15L
[記]引論中比餘下 釋無等字 重言
009_0197_c_16L等下 釋後等言也

009_0197_c_17L
二捴結勝能二 初唱經

009_0197_c_18L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009_0197_c_19L
[記]二作釋

009_0197_c_20L
[䟽]二捴結勝能 謂三苦八苦等 故云
009_0197_c_21L一切苦也 又分段變易 亦云一切苦
009_0197_c_22L也 除苦決㝎 故云眞實不虛也 上
009_0197_c_23L來廣略不同 捴明顯了般若竟

009_0197_c_24L「二」欄外筆書改作「三」{編}

009_0198_a_01L
“변역생사”란 방편생사方便生死·인연생사因緣生死·유유생사有有生死·무유생사無有生死185)이다. “여기까지” 이하에서는 단락을 결론지은 것이다.

나) 비밀반야秘密般若

둘째, 비밀반야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 앞을 이어서 뒤를 일으킴

첫째, 앞을 이어서 뒤를 일으키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한다. 곧 주문을 설하여 말한다.

ㄴ. 판석

둘째, 판석이다.

아래부터 두 번째 단락으로 비밀의 반야를 밝힌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앞을 잇고 뒤를 일으킨다. 둘째, 바로 주문의 말을 설한다. 지금은 첫 번째이다. 앞에서 가장 신비한 주문이라 하였는데, 아직 주문의 말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지금 설하는 것이다.

“앞에서 가장 신비한 주문이라 하였는데”라 한 것은 앞을 잇는 것이고, “아직 주문의 말을” 이하에서는 뒤를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앞의 과목은 ‘우수한 능력에 대한 결론적 찬탄’이었고, ‘우수한 능력에 대한 결론적 찬탄’ 이전은 ‘현료반야’였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경전의 뜻이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앞과 뒤를 꿰어 통하게 하려는 것이다.

㉯ 주문의 말을 정면으로 설함

첫째, 주문의 말을 정면으로 설하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경을 읊음

첫째, 경을 읊는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ㄴ. 소어䟽語

둘째, 소어이니, 여기에 둘이 있다.

ㄱ) 이치상으로는 해석할 수 없음

첫째, 이치상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둘째, 바로 주문의 말을 설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해석할 수 없음이니, 모든 불타의 비밀의 말은 인위因位에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단지 외워 지니면 장애가 제거되고 복덕이 증가되리니, 또한 억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모든 불타의” 등이란, 모든 불타의 심인心印을 아래의 지위에서는 측량하지 못하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ㄴ) 근기에 따라 억지로 해석함

둘째, 근기에 따라 억지로 해석한다.

둘째, 억지로 해석하고자 한다면, “아제”란 거去라고 의역하니, ‘건너가다’를 말한다.

009_0198_a_01L
[記]變易者 方便生死 因緣生死
009_0198_a_02L有有生死 無有生死也 上來下結
009_0198_a_03L分齊

009_0198_a_04L
二秘密般若二 初牒前起後二 初
009_0198_a_05L唱經

009_0198_a_06L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即說呪曰

009_0198_a_07L
[記]二判釋

009_0198_a_08L
[䟽]自下第二段 明秘密般若 於中有
009_0198_a_09L二 初牒前起後 二正說呪詞 今初也
009_0198_a_10L前云是大神呪 未顯呪詞故 今說之

009_0198_a_11L
[記]言前云者 牒前 未顯下 起後
009_0198_a_12L也 然前科結歎 歎前顯了 今云
009_0198_a_13L爾者 經意多含 貫前通後也

009_0198_a_14L
二正說呪詞二 初唱經

009_0198_a_15L
羯帝羯帝波羅羯帝波羅僧羯帝菩提薩
009_0198_a_16L婆訶

009_0198_a_17L
[記]二䟽語二 初理不可釋

009_0198_a_18L
[䟽]二正說呪詞 此有二義 一不可釋
009_0198_a_19L以是諸佛秘語 非因位所解 但當誦
009_0198_a_20L持除障增福 亦不須强釋也

009_0198_a_21L
[記]是諸等者 以諸佛心印 下位不
009_0198_a_22L測 故不須釋

009_0198_a_23L
二應機强釋

009_0198_a_24L
[䟽]二若欲强釋者 羯諦者 此云去也

009_0198_b_01L곧 깊은 지혜의 공능이다. “아제”를 거듭 말하는 것은 자기와 남을 건너가게 하는 것이다. “바라아제”에서 ‘바라’란 피안이라 한역하니, 곧 도달해야 할 곳으로 건너간다는 것이다. “바라승아제”에서 ‘승’이란 ‘모두’, ‘두루’라는 뜻이니, 곧 나와 남이 모두 건너가서 모두 피안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모지”라 한 것은 어떤 피안에 이른 것이니, 위대한 깨달음의 자리를 말한다. “사바하”라 한 것은 속질速疾이라 의역하니, 앞에서 지어진 것이 빨리 성취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소주인 법장은 정 공의 요청에 응하여 억지로 해석했다. 그런데 비록 비밀이어서 설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인연이 있으므로 말이 아니지만 말할 수도 있다. 문수의 다섯 자 주문186)과 같아서 반야계 경전들과 『대지도론』 등에 해석이 있다. 『대지도론』에서 “아阿 자는 실상문實相門이다.”187)라고 했으니, 세 종류의 반야를 나타낸 것이다. 문자와 서로 떨어지지 않음이 곧 명자名字반야이고, 반야바라밀의 문에 들어가는 것이 곧 관조반야이고, 불생不生 등을 깨닫는 것이 곧 실상반야이다. 『대품경』에서 “아阿 자는 일체법이 애초부터 불생不生이라는 것이다.”188)라 했고, 『대지도론』에서 해석하여 “보살이 일체의 법 중에서 아阿 자를 들으면 즉시로 뜻에 따르니, 이른바 일체법은 애초부터 불생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아제阿提’189)는 중국어로 ‘애초에’이고, ‘아뇩바타阿耨波陁’190)는 중국어로 ‘불생’이기 때문이다.”191)라고 했다.

『대품경』에서 “라囉 자는 일체법이 번뇌를 벗어남을 깨달은 것이다.”192)라 했고, 『대지도론』에서 “라囉 자를 들으면 곧 뜻에 따라 일체법이 번뇌를 떠난 특성임을 안다. ‘라사囉闍’는 중국어로 ‘티끌’이기 때문이다.”193)라고 했다. 『대품경』에서 “‘바波’는 제일의第一義라는 것이다.”194)라 했고, 『대지도론』에서 “바波 자를 들으면 곧 일체법이 제일의에 들어감을 안다.

009_0198_b_01L度也 即深慧功能 重言羯諦者 自
009_0198_b_02L度度他也 波羅羯諦者 波羅此云彼
009_0198_b_03L岸 即度所到處也 波羅僧羯諦者
009_0198_b_04L僧者 捴也溥也 即謂自他溥度 捴
009_0198_b_05L到彼岸也 言菩提者 至何等彼岸
009_0198_b_06L謂大菩提處也 言薩婆訶者 此云速
009_0198_b_07L疾 令前所作 速疾成就故也

009_0198_b_08L
[記]䟽主應鄭公之請而强釋也 然
009_0198_b_09L雖云秘密不可說 有因緣故 亦可
009_0198_b_10L無言而言 如文殊五字呪 而般若
009_0198_b_11L等經 大智度論 皆有解釋 智論
009_0198_b_12L曰 阿字是實相門 則顯三種般若
009_0198_b_13L不相捨離字 即名字般若 入般若
009_0198_b_14L波羅蜜門 即觀照般若 悟不生等
009_0198_b_15L即實相般若 大品云 阿字門 一
009_0198_b_16L切法 初不生故 智論釋云 若菩
009_0198_b_17L薩 一切諸法中 聞阿字 即時隨
009_0198_b_18L義 所謂一切法 從初來不生相
009_0198_b_19L以阿提 秦言初故 阿耨波陁 秦
009_0198_b_20L言不生故 大品云 囉字 悟一切
009_0198_b_21L法 離塵垢故 論云若聞囉字 即
009_0198_b_22L隨義 知一切法 離垢相 以囉闍
009_0198_b_23L秦言垢故 大品云 波者 第一義
009_0198_b_24L故 論云若聞波字 即知一切法

009_0198_c_01L‘바라말타波羅末陁’195)는 중국어로 ‘제일의’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대품반야경』에서 차遮 자는 수행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라 했고, 『대지도론』에서 “차遮 자를 들으면 즉시로 일체법에서 모든 수행은 다 수행이 아님을 안다. ‘차리야遮利夜’196)는 중국어로 ‘수행’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대품경』에서 “나자문那字門은 제법이 이름에서 벗어나 성품과 특성을 얻지도 잃지도 않는다는 것이다.”197)라 했고, 『대지도론』에서 “나那 자를 들으면 곧 일체법이 잃음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음을 안다. ‘나那’198)는 중국어로 ‘아님(不)’이기 때문이다.”199)라고 했다. 그러므로 인연이 있으면 억지로 해석할 수도 있음을 알아라.
제3장 경찬하고 회향함(三慶讃回向)
셋째, 경찬하고 회향함이다.

간략한 해석을 마치고 술회하여 게송으로 말한다. 반야는 깊고도 멀어

찬탄이다.

오랜 겁 동안 만나기가 어려우니,

지금 만난 것을 경하한다.

분수에 따라 찬탄하고 해석하니

겸양이다.

참된 반야의 뜻(眞宗)을 알기를 바란다.

진실한 경계로 회향한다. 그런데 “진종眞宗”이라 한 것은 반야의 참된 뜻을 말하니, 또한 불법의 위대한 뜻이다.

009_0198_c_01L入第一義 以波羅末陁 秦言第一
009_0198_c_02L義故 大品云 遮字 修不可得 論
009_0198_c_03L云若聞遮字 即時知一切法 諸行
009_0198_c_04L皆悉非行 以遮利夜 秦言行故
009_0198_c_05L大品云 那字門 諸法離名 性相
009_0198_c_06L不得不失故 論云若聞那字 即知
009_0198_c_07L一切法 不失不來不去 以那 秦
009_0198_c_08L言不故 故知1)不因緣 亦可强釋

009_0198_c_09L
三慶讃回向

009_0198_c_10L
[䟽]略釋絕筆述懷頌曰

009_0198_c_11L
般若深邃

009_0198_c_12L
[記]讃也

009_0198_c_13L
[䟽]累劫難逢

009_0198_c_14L
[記]慶今逢

009_0198_c_15L
[䟽]隨分讚釋

009_0198_c_16L
[記]謙也

009_0198_c_17L
[䟽]冀會眞宗

009_0198_c_18L
[記]回向實際也 而言眞宗者 謂般
009_0198_c_19L若眞宗 亦佛法大宗也

009_0198_c_20L
009_0198_c_21L
略䟽跋

009_0198_c_22L
法藏 長安二年 於京淸禪寺 翻經之
009_0198_c_23L暇 屬司禮部兼檢校雍州長史滎陽
009_0198_c_24L「不」底本欄外有註曰「不字疑有字誤」{編}

009_0199_a_01L鄭公 淸簡成性 忠孝自心 金柯玉
009_0199_a_02L葉之芳葩 九刊三王之重寄 羽儀朝
009_0199_a_03L序 城壍法門 始自靑衿 迄于白首
009_0199_a_04L持此心經數千萬徧 心游妙義 口誦
009_0199_a_05L靈文 再三慇懃 令出略䟽 輙以蠡
009_0199_a_06L管 詎測高深云爾
  1. 1)불공不空(705~774) : 불공금강不空金剛의 약칭. 범명 Amoghavajra. 당나라 시대 밀교 경전의 역경자이자 밀교의 제6대조이다. 인도 사자국에서 태어났으며, 중국에 도래한 시기는 720년이다.
  2. 2)본문이 일치하는 것은 『보편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普遍智藏般若波羅蜜多心經』(T8, 849a)인데, 법월法月(653~743)이 중역重譯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불공이 한역했다고 하는 『연주기』의 내용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3. 3)종밀宗密, 『원각경략소초圓覺經略疏鈔』 권7(X9, 890b).
  4. 4)종밀, 『원각경략소초』 권7(X9, 890b). 앞의 글을 이어서 이러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5. 5)종밀, 『원각경략소초』 권7(X9, 890b).
  6. 6)종밀, 『원각경략소초』 권7(X9, 890b).
  7. 7)친광親光, 『불지경론佛地經論』 권1(T26, 291b).
  8. 8)친광, 『불지경론』 권1(T26, 291b).
  9. 9)사명 지례四明知禮(960~1028) : 중국 북송北宋 때의 천태승으로 당나라 말기 이후 쇠퇴해 있던 천태종의 중흥에 힘썼다.
  10. 10)지례知禮, 『관무량수불경소묘종초觀無量壽佛經疏妙宗鈔』(T37, 198c).
  11. 11)천태 지의天台智顗(538~597) : 수나라 때 천태종의 개산조. 자는 덕안德安, 시호는 지자智者이다.
  12. 12)5품 제자위弟子位 : 보살이 수행하는 52계위五十二階位 중 처음의 10위十位가 10신十信인데, 5품 제자위는 10신 이전의 5종 계급으로 외범위外凡位에 해당한다. 열거하면, ① 수희품隨喜品, ② 독송품讀誦品, ③ 설법품說法品, ④ 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 ⑤ 정행육도품正行六度品이다.
  13. 13)삼마사三摩娑 : 범어 samāsa의 음차어로서, 뜻으로는 복합어라는 말이다. 범어에서는 복합어를 해석하는 방법에 여섯 가지가 있어서, 육합석六合釋 내지 육종석六種釋이라 말한다. 그중에 하나인 의사석依士釋이나 의주석依主釋은 모두 tat-puruṣa(소유복합어)를 가리키는데, “의사석”에서 ‘사’는 ‘puruṣa’의 음차어 사부士夫(자음도치되어 있음)를 취한 것이고, “의주석”의 ‘주’는 번역어로 생각된다. ‘반야’와 ‘심경’이 합해진 복합어인 ‘반야심경’의 의미를 의주석(의사석)으로 해석하면, 그 사이에는 속격(소유격)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반야의 심경’이라는 뜻이 된다.
  14. 14)보로살사성補盧殺娑聲 : ‘補盧殺娑’는 ‘puruṣasya’의 음차어이다. 범어에서 명사·대명사·형용사·수사의 어미가 8종으로 변화하는 8전성八轉聲 중 제6 속성屬聲의 변화를 나타낼 때 대표적으로 드는 사례. 속격屬格이라고도 하며, 오늘날의 소유격에 해당한다. 원문에는 ‘補盧沙’로 되어 있는데, 그렇게 음차하기도 했던 것 같다. “여섯째, 보로살사는 속성이다.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속하는 것과 같으므로 속屬이라 한다.(六補盧殺娑。 是所屬聲。 如奴屬主。 故云屬也。)”(『翻譯名義集』 권4, T54, 1124b)
  15. 15)자은 규기慈恩窺基(632~682) : 당나라 때 현장玄奘의 제자로서 역경과 저술에 힘썼으며, 중국 법상종의 시조라 일컬어진다. 그의 학덕을 기려 백본소주百本䟽主, 백본논사百本論師라 불렀다.
  16. 16)규기窺基,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般若波羅蜜多心經幽贊』 권상(T33, 524a).
  17. 17)종밀, 『원각경략소초』 권7(X9, 890b).
  18. 18)규기,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 권상(T33, 524a~b).
  19. 19)『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 권6(T54, 1152b) 등에 따르면 『제위경提謂經』에 나오는 말이다.
  20. 20)질다質多 : 범어로 citta이다.
  21. 21)건율타乾栗陁 : 범어로 hṛdaya이다.
  22. 22)『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 권11(T8, 77b).
  23. 23)출처를 알 수 없다.
  24. 24)이상 세 글은 모두 법장法藏의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 권1(T44, 287c)에 나오는 내용을 취의 요약한 것이다.
  25. 25)세 가지 불성(三佛性) : 견도 이전의 범부위 등의 세 가지 계위에 의거하여 불성을 셋으로 나눈 것. 자성주불성自性住佛性·인출불성引出佛性·지득과불성至得果佛性을 말한다. 자성주불성은 견도 이전의 범부위로서 아직 불도를 닦지 않았지만 불성을 본래 구비하고 있는 단계이고, 인출불성은 발심 이후 유학有學의 성위聖位로서 수행을 통해 구비하고 있는 불성을 인출하는 단계이며, 지득과불성은 무학無學의 성위로서 구경의 과보에 도달한 단계이다.
  26. 26)『대승기신론별기』 권1(T44. 287c20)에서 “체성을 밝히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직접적으로는 무분별지를 승의 체로 삼고, 겸하면 곧 의지의 대상이 되는 진여와 여타의 수승한 행 등을 섭수한다. 둘째, 직접적으로는 진여를 승의체로 삼고, 지혜 등은 또한 겸하여 섭수한다. 그것들 모두가 진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明體性有二。 一正以無分別智爲乘體。 兼即攝所依眞如及餘勝行等。 二正以眞如爲乘體。 智等亦兼攝。 以彼皆爲眞所成故。)”라고 한 것을 취의 요약한 것이다.
  27. 27)앞의 세 가지 인용문은 법장法藏의 『대승기신론별기』 권1(T44, 287c~288a)의 내용에 해당한다.
  28. 28)범어로 pāramitā이다.
  29. 29)안혜安慧,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권10(T31, 742c).
  30. 30)『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권상(T32, 576c). 본문의 내용을 세 가지 전의에 배대한 것이다.
  31. 31)앞에서 법월 역본을 인용하면서 “보살에게 반야바라밀다심이 있으니 보편지장이라 한다.”라고 한 것을 참조할 것. 설법주인 관자재보살이 지닌 반야바라밀다심을 설하였기에 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 했다는 말인 것 같다. 현재 전하는 『반야심경』의 역본 중에는 불공 역본은 없다.
  32. 32)여섯 개의 번역본(六譯) : 현장玄奘역 『반야바라밀다심경』 이외에, ① 구마라집鳩摩羅什역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摩訶般若波羅蜜大明呪經』, ② 보리류지菩提流支역 『반야바라밀다나제경般若波羅蜜多那提經』, ③ 반야般若·이언利言역 『반야바라밀다심경』, ④ 법월法月역, 『보편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普遍智藏般若波羅蜜多心經』, ⑤ 지혜륜智慧輪역 『반야바라밀다심경』, ⑥ 시호施護역 『성불모반야바라밀다경聖佛母般若波羅蜜多經』을 말한다.
  33. 33)3분三分 2서二序 : 3분이란 서분·정종분·유통분인데, 본 경에는 서분과 유통분이 빠졌다. 2서란 서분을 다시 증신서證信序(통서)와 발기서發起序(별서)로 나눈 것이다. 증신서는 경전의 처음에서 “이와 같이(信) 나는 들었다(聞). 어느 때(時) 부처님께서(主) ~에서(處) ~와 함께(衆) 계셨다.”라고 서술한 구절을 가리키는 말로, 여섯 가지 측면에서 해당 경전이 거짓이 없고 완전한 것임을 증명하여 사람들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발기서는 경전의 앞부분에 해당 경전을 설법하게 된 인연을 설한 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본 경에는 증신서와 발기서가 모두 없다.
  34. 34)규기,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 권상(T33, 524a).
  35. 35)고산 지원의 『반야심경소般若心經疏』(X26, 737b)에서 “正說分二。 一顯了般若。 二秘密般若。 所以有此二者。 隨機不同。 或聞顯歡喜。 或聞秘適悅。 生善破惡。 入理皆然。 故知。 顯秘之談。 俱爲發生妙慧也。”라고 한 것을 참조할 것.
  36. 36)고산 지원(976~1022)이 『문수반야경소文殊般若經疏』·『유교경소遺敎經疏』·『반야심경소般若心經疏』·『서응경소瑞應經疏』·『사십이장경주四十二章經注』·『부사의법문경소不思議法門經疏』·『무량의경소無量義經疏』·『관보현행법경소觀普賢行法經疏』·『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수능엄경소首楞嚴經疏』라는 열 부의 저술을 지어 대중을 가르쳤으므로 세인이 미칭하여 ‘십본소주十本疏主’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37. 37)“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반야바라밀다심경』, T8, 848c)에 해당한다.
  38. 38)혜광삼매慧光三昧 : 『보편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T8, 849a)에서는 이 혜광삼매의 힘으로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였다고 한다.(於是觀自在菩薩摩訶薩蒙佛聽許。 所護念。 於慧光三昧正受。 入此定已。 三昧力行深般若波羅蜜多時。 見五蘊自性皆空。)
  39. 39)『보편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T8, 849a).
  40. 40)“관자재보살~도일체고액”의 강요 부분은, 본래 광본 『반야심경』에서는 서분에 소속되어 있다. 서분에서 경전 편찬자가 『반야심경』의 전체 뜻을 핵심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이 약본 『반야심경』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뒤의 광진실의분에 바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41. 41)별상수다라別相修多羅 : 총상總相수다라의 대칭. 한 경전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 총상수다라라면, 별상수다라는 한 경전 내의 특정한 부분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는 아난阿難이 경전을 결집할 때 앞뒤의 상황이나 대화를 연결시키기 위해 삽입한 부분을 가리킨다.
  42. 42)『기』에서 ‘能’을 오사로 보았는데, 뒤의 거듭 언급하는 부분에서 법장 자신도 ‘能’을 집어넣지 않고 있으므로 『기』의 입장을 따라 번역했다.
  43. 43)첩문牒文 : 앞서 제시된 경문의 내용을 다시 거론하는 일.
  44. 44)10신통 : 10명十明이라고도 한다. 10지 보살이 갖추는 열 가지의 신통. 타심지명他心智明·천안지명天眼智明·숙명지명宿命智明·미래제지명未來際智明·천이지명天耳智明·신력지명神力智明·분별언음지명分別言音智明·색신장엄지명色身莊嚴智明·진실지명眞實智明·멸정지명滅定智明.
  45. 45)징관澄觀, 『정원신역화엄경소貞元新譯華嚴經疏』 권7(X5, 136a).
  46. 46)‘관자재보살’의 범어는 avalokiteśvara인데,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분절分節하는 것이 가능하다. 첫째는, avalokita+iśvara인데, ‘관자재보살’이라 의역한 것이다. 둘째는, avalokita+svara인데, ‘관세음보살’이라 의역한 것이다. avalokita가 곧 ‘관세觀世’라 한 것은 잘못이다. avalokita에는 ‘세世’의 의미는 없다. ava+√lok(보다. 관찰하다)의 과거수동분사 형태일 뿐이다.
  47. 47)『법화경法華經』 권7(T9, 56c).
  48. 48)일곱 가지 재난(七灾) : 또는 칠난七難. 화난火難·수난水難·나찰난羅刹難·도장난刀杖難·귀난鬼難·가쇄난枷鎖難·원적난怨賊難.
  49. 49)두 가지 서원(二願) : 아들을 낳고자 하는 원과 딸을 낳고자 하는 원. 보통 이구二求라고 말한다.
  50. 50)『법화경』 권7(T9, 56c).
  51. 51)10자재十自在 :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에 근거. 명命자재·심心자재·재財자재·업業자재·생生자재·원願자재·신해信解자재·여의如意자재·지智자재·법法자재. 규기의 『반야심경유찬』 권상(T33, 524b) 참조.
  52. 52)자주삼마지自住三摩地 : 『능엄경』 권2(T19, 112b)에 근거. 자선子璿, 『수능엄의소주경首楞嚴義疏注經』 권2(T39, 851c)에 따르면 업식業識을 벗어나 자타의 상이 없는 법계 일상法界一相의 불지견이라 한다.
  53. 53)14무외十四無畏 : 『능엄경』에 근거. 관세음보살의 신력에 의해 중생들이 얻게 되는 열네 종류의 공덕.
  54. 54)32신三十二身 : 『대지도론』에 근거. 불타의 응화신應化身이 갖추는 서른두 종류의 훌륭한 용모.
  55. 55)지엄智儼(602~668) : 당나라 때 스님. 화엄종의 제2조이다. 호는 지상 대사至相大師·운화 존자雲華尊者 등이다.
  56. 56)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華嚴經內章門等雜孔目』 권3(T45, 568b).
  57. 57)『법화경』 권7(T9, 57a).
  58. 58)『보편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T8, 849a).
  59. 59)본 서 제1권 주 13 ‘정 공鄭公’ 참고.
  60. 60)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 권25(T36, 189a) 이하.
  61. 61)『대반야경大般若經』 권578(T7, 988b~c)
  62. 62)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25(T36, 189a)
  63. 63)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25(T36, 189a).
  64. 64)금강장金剛藏보살 : 허공장虛空藏보살과 같은 몸으로서, 허공장보살의 관정 명호. 밀교계 경전인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대교왕경金剛頂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大教王經』에 따르면, 금강삼매에 든 세존이 중생 구제의 원을 성취하고자 금강장보살에게 관정하는데, 이때 금강장보살은, “이것은 모든 불타가 유정계를 관정하는 것이다. 나의 손바닥에 수여하고 보배를 보배 가운데에 안립한다.(此是一切佛。 灌頂有情界。 授與我手掌。 寶安於寶中。)”(권상, T18, 210a)라는 내용의 게송을 읊는다.
  65. 65)『대반야경』 권578(T7, 990b).
  66. 66)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25(T36, 189b).
  67. 67)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25(T36, 189b).
  68. 68)징관, 『오온관五蘊觀』 권1(X58, 425c).
  69. 69)『보편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T8, 849a).
  70. 70)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88(T36, 683a).
  71. 71)징관, 『오온관』 권1(X58, 425b).
  72. 72)분단分段과 변역變易의 두 종류 생사 : 분단생사는 육도六道로 윤회하는 범부들의 생사이고, 변역생사는 삼계에 생사하는 몸을 여읜 뒤로 성불하기까지의 성자聖者가 받는 삼계 밖의 생사이다.
  73. 73)징관, 『오온관』 권1(X58, 425b).
  74. 74)네 종류의 생사 : 방편생사·인연생사·유유有有생사·무유無有생사. 유유생사는 아직 무명을 끊지 못하여 한 번의 생사를 더 받아야 하는 생사인 반면, 무유생사는 무명을 영원히 다하여 후유後有를 받을 필요가 없는 생사라 하여 무후無後생사라 하기도 한다. 『섭대승론攝大乘論』에 나온다.
  75. 75)규기, 『반야바라밀다심경유찬』 권하(T33, 537c).
  76. 76)80여 개의 과목 : 81과八十一科 또는 81법을 말한다. 『대반야경』에서 설하는 법문을 색·심·오온·12입·18계·사제·12인연·18공·육도六度·사지四智 등의 과목으로 구분하여 합산한 것이다.
  77. 77)징관, 『화엄법계현경華嚴法界玄鏡』 권상(T45, 674a).
  78. 78)열 가지 부문의 무애 : 이사무애 10문을 말한다. 화엄의 삼법계관인 진공관眞空觀·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에서 이사무애 10문을 열거하면, ① 이편어사문理遍於事門, ② 사편어리문事遍於理門, ③ 의리성사문依理成事門, ④ 사능현리문事能顯理門, ⑤ 이리탈사문以理奪事門, ⑥ 사능은리문事能隱理門, ⑦ 진리즉사문眞理卽事門, ⑧ 사법즉리문事法卽理門, ⑨ 진리비사문眞理非事門, ⑩ 사법비리문事法非理門이다.
  79. 79)『보편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T8, 849a).
  80. 80)유여의 지위 : 번뇌를 추구하여 아직 다 소멸시키지 못한 지위.
  81. 81)‘온이 공한 것’과 ‘온이 스스로 공한 것’ : ‘온이 공한 것’은 오온의 화합물이 공이라는 의미이고, ‘온이 스스로 공한 것’은 오온의 자성이 공이라는 것이다.
  82. 82)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권4(T45, 581b).
  83. 83)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권4(T45, 581b).
  84. 84)법장法藏, 『화엄일승교의분제장華嚴一乘教義分齊章』 권1(T45, 484a).
  85. 85)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권4(T45, 583c).
  86. 86)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권4(T45, 583c).
  87. 87)견혜堅慧, 『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 권4(T31, 840a) 이하의 내용에 해당한다.
  88. 88)징관, 『화엄법계현경』 권상(T45, 673a)에서는, 취단멸공取斷滅空·취색외공取色外空·취공위유取空爲有의 순서로 되어 있다.
  89. 89)종밀宗密, 『주화엄법계관문注華嚴法界觀門』 권1(T45, 685a).
  90. 90)징관, 『정원신역화엄경소』 권1(X5, 57c).
  91. 91)징관은 『정원신역화엄경소』 권1(X5, 57c~58a)에서 아래에서 나오는 상위의相違義·불상애의不相礙義·상작의相作義의 세 가지 뜻 이외에 폐기성타의廢己成他義·민타현기의泯他顯己義·자타구존의自他俱存義·자타구민의自他俱泯義라는 네 가지 뜻도 제시하고 있다.
  92. 92)징관, 『정원신역화엄경소』 권1(X5, 57c) 이하에서 징관은, 두순의 법계관法界觀 중 하나인 열 가지 부문의 이사무애관을 상위의·불상애의·상작의의 세 부문으로 재배당하여 해석하고 있는데, 아래 이어지는 기문記文에서는 이 징관의 해석을 차용하고 있다.
  93. 93)징관, 『정원신역화엄경소』 권1(X5, 57c).
  94. 94)징관, 『정원신역화엄경소』 권1(X5, 57c).
  95. 95)『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권26(T8, 407b).
  96. 96)『중론中論』 권4(T30, 33a).
  97. 97)징관, 『정원신역화엄경소』 권1(X5, 57c). ‘네 가지 뜻’에 대해서는 본 서 제2권 주 91 참고.
  98. 98)징관, 『정원신역화엄경소』 권1(X5, 57c~58b)의 내용에 해당한다.
  99. 99)『보책寶册』 :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T32, 592c)에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보책』이라 했다.
  100. 100)곧 유식의~‘지’라 한다 : 법장法藏,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 권하 말(T44, 282c)에서 『대승기신론』 본문을 해석한 것이다.
  101. 101)『대승기신론』 권1(T32, 582b).
  102. 102)이하 생략 : 원문은 ‘乃至廣說’로서 ‘내지 자세하게 설했다’라는 뜻인데, 문맥에 의거하여 ‘이하 생략’이라 번역했다.
  103. 103)『문수사리소설마하반야바라밀경文殊師利所說摩訶般若波羅蜜經』 권하(T8, 731a~b).
  104. 104)『대승기신론』 권1(T32, 582a).
  105. 105)미륵彌勒,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권45(T30, 539c).
  106. 106)용수龍樹,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 권8(T32, 655b).
  107. 107)『대승기신론』 권1(T32, 580c).
  108. 108)『대승기신론』 권1(T32, 580c).
  109. 109)징관, 『화엄경소』 권37(T35, 790b).
  110. 110)차제삼관次第三觀 : 천태 화법化法 4교 중 별교의 관법. 별상삼관別相三觀이라고도 한다. 차례대로 공·가·중의 삼관을 닦는 것을 말한다.
  111. 111)『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 권상, T24, 1014b 이하.
  112. 112)세 가지 지혜(三智) : 일체지一切智·도종지道種智·일체종지一切種智. 지의는 종가입공이제관이 완성되어 일체지를 증험하고, 종공입가평등관이 완성되어 도종지를 증험하며, 중도제일의제관이 완성되어 일체종지를 증험한다고 하여 3지를 3관에 배당하였다.(지의, 『觀無量壽佛經疏』 권1, T37, 187b~c)
  113. 113)『석마하연론』(T32, 608c)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다. 곧 “所謂顯示一切諸眾生自性清淨心。 從無始已來。 具足三智。 圓滿四德。 無所闕失故。”라고 했다. 그런데 현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석마하연론』은 지의 이후에 용수龍樹에 가탁하여 성립된 논서이다. 따라서 『관무량수불경소』가 지의의 저술이라면 여기에 인용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 밖에 『대지도론』 역시 『석론』이라고 불리는데, 본문과 일치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
  114. 114)지의智顗, 『관무량수불경소佛說觀無量壽佛經疏』 권1(T37, 187b~c).
  115. 115)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62(T36, 493c).
  116. 116)징관, 『화엄법계현경』 권상(T45, 675b).
  117. 117)『금강반야소金剛般若疏』 권1(T33, 85c)를 참조하여 풀었다.
  118. 118)천친天親,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권상(T31, 452b).
  119. 119)법장, 『십이문론종치의기』 권상(T42, 217a).
  120. 120)법장, 『십이문론종치의기』 권상(T42, 217a).
  121. 121)법장, 『십이문론종치의기』 권상(T42, 217a).
  122. 122)법장,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권2(T35, 131c).
  123. 123)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31(T36, 240a).
  124. 124)징관, 『화엄경소』 권14(T35, 603c).
  125. 125)『중론』 권1(T30, 1b).
  126. 126)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20(T36, 153c).
  127. 127)징관, 『화엄경소』 권6(T35, 542b).
  128. 128)『중론』 권1(T30, 1c).
  129. 129)두 가지 범부(二凡) : 외범과 내범. 외범은 단지 교법을 듣고 믿는 자로서 소승의 3현三賢과 대승의 10신十信의 지위에 해당하고, 내범은 교법을 올바로 수행하여 견도의 성위聖位에 가까운 자로서 소승의 4선근四善根과 대승의 10주十住의 지위에 해당한다.
  130. 130)견혜堅慧, 『대승법계무차별론大乘法界無差別論』 권1(T31, 893a).
  131. 131)법장, 『화엄일승교의분제장』 권2(T45, 488b).
  132. 132)법장法藏, 『대승법계무차별론소大乘法界無差別論疏』 권1(T44, 68a).
  133. 133)법장, 『대승법계무차별론소』 권1(T44, 68a).
  134. 134)『수능엄경首楞嚴經』 권5(T19, 124c).
  135. 135)제2권 주 25 ‘세 가지 불성’ 참고.
  136. 136)천친天親, 『불성론佛性論』 권2(T31, 794a).
  137. 137)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35(T36, 269a).
  138. 138)해행발심解行發心 : 보살의 수행 도위에서 발생하는 세 종류의 보리심 중 두 번째 보리심. 첫 번째인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은, 보살의 수행 계위인 10신十信·10주十住·10행十行·10회향十廻向·10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의 52위 가운데 10신의 수행이 원만하여 신심信心이 성취된 지위이며, 두 번째인 해행발심은 진여의 이치를 이해하고, 그에 상응하는 육바라밀을 수행하는 보살의 발심으로 견도 이전인 10주에서 10회향까지의 지위에 해당한다.
  139. 139)증발심證發心 : 보살의 세 종류의 보리심 중 세 번째 보리심. 초지에서 제10지에 증입하는 발보리심.
  140. 140)법장, 『대승법계무차별론소』 권1(T44, 68a).
  141. 141)견혜, 『대승법계무차별론』 권1(T31, 893a).
  142. 142)세친世親, 『유식삼십론송唯識三十論頌』 권1(T31, 61a).
  143. 143)『화엄경』 권19(T10, 100c).
  144. 144)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20(T36, 152c).
  145. 145)80여 과목의 법상 : 제2권 주 76 ‘80여 개의 과목’ 참고.
  146. 146)법처 일부분(法處所攝色) : 소승불교의 극미極微나 무표색無表色과 같은 개념이 확대, 발전된 것으로 유식사상에서 법처에 속하는 색법으로 간주된 개념이다. 법처소섭색은 다시 극략색極略色·극형색極逈色·수소인색受所引色·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정중소인색定中所引色으로 세분된다.
  147. 147)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권1(T45, 541c).
  148. 148)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권1(T45, 542a).
  149. 149)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권1(T45, 542c).
  150. 150)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권1(T45, 542a).
  151. 151)지엄, 『화엄경내장문등잡공목』 권1(T45, 542c).
  152. 152)용수龍樹, 『십이문론十二門論』 권1(T30, 159c~160a).
  153. 153)징관, 『화엄경소』 권39(T35, 802b).
  154. 154)십현문十玄門 또는 일승십현문, 십현연기무애법문을 말한다. 사사무애법계의 특성을 10문으로 표시한 것이다. 지엄이 일승십현문一乘十玄門을 설한 이래, 법장은 『화엄오교장』 및 『화엄경탐현기』에서 그 설을 계승하였으며, 징관도 『화엄경소초현담華嚴經疏鈔玄談』에서 조술하였다. ①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②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③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④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 ⑤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 ⑥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 ⑦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 ⑧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⑨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 ⑩ 탁사현법생해문托事顯法生解門.
  155. 155)『보살영락본업경』에서는 12연기에 대한 10종의 관조를 설한다. “이른바 열 가지 12인연이다. 열 가지로 조망해 보면, 첫째는 아견我見의 12인연이고, 둘째는 마음이 12인연이 되는 것이며, 셋째는 무명의 12인연이고, 넷째는 서로 연유하는 12인연이며, 다섯째는 도와서 성립하는 12인연이고, 여섯째는 신·구·의 삼업의 12인연이며, 일곱째는 삼세의 12인연이고, 여덟째는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인 3고의 12인연이며, 아홉째는 본성이 공한 12인연이고, 열째는 인연으로 생겨나는 12인연이다. 역관과 순관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을 나타내니, 모든 불국토에 들어가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所謂十十二因緣。 十種照。 一我見十二緣。 二心爲十二緣。 三無明十二緣。 四相緣由十二緣。 五助成十二緣。 六三業十二緣。 七三世十二緣。 八三苦十二緣。 九性空十二緣。 十緣生十二緣。 逆順觀故現無量身。 入一切佛土化一切眾生故。)”(권상, T24, 1015a)
  156. 156)『법화경』 권1(T9, 8b).
  157. 157)미륵, 『유가사지론』 권95(T30, 845a~b).
  158. 158)지의智顗, 『사교의四敎義』 권2(T46, 725b~c). 앞의 네 가지를 네 종류의 사제라 한다. ① 생멸 사제는 삼장교의 뜻이고, ② 무생 사제는 대승과 소승을 회통하는 통교의 뜻이며, ③ 무량 사제는 오로지 보살 수행의 도리로서 별교의 뜻이고, ④ 무작 사제는 불타의 경계로서 원교의 뜻이다.
  159. 159)『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권1(T17, 914a).
  160. 160)『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1(T17, 915c).
  161. 161)『대반야경』 권82(T5, 458c).
  162. 162)『대반야경』 권575(T7, 970a).
  163. 163)징관, 『화엄경소』 권13(T35, 596b).
  164. 164)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29(T36, 224b).
  165. 165)『대반야경』 권574(T7, 966b).
  166. 166)『대반야경』 권574(T7, 966b).
  167. 167)『대반야경』 권574(T7, 966b).
  168. 168)징관, 『화엄경소』 권46(T35, 851b).
  169. 169)징관, 『화엄경소』 권1(T35, 509a).
  170. 170)『마하반야바라밀경』 권3(T8, 238c).
  171. 171)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14(T36, 105b).
  172. 172)『대반야경』 권593(T7, 1066a~b).
  173. 173)법장, 『화엄일승교의분제장』 권1(T45, 479b).
  174. 174)징관, 『화엄경소』 권57(T35, 953a).
  175. 175)『대반야경』 권3(T5, 12a).
  176. 176)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33(T36, 256b).
  177. 177)법장, 『십이문론종치의기』 권상(T42, 217c).
  178. 178)징관, 『화엄경수소연의초』 권75(T36, 595b~c).
  179. 179)『대승기신론』 권1(T32, 582b).
  180. 180)화성化城 : 법화 7유七喩 중 하나. 화성은 소승의 열반을 비유한 것이다. 여래의 소승 법문은 하근기의 중생들로 하여금 구경 일승의 열반에 도달하도록 돕기 위한 방편 설법이라는 것이다.
  181. 181)앞서 ‘가르침이 일어남(敎興)’의 항목에서 불타의 공덕에 대한 지광과 법장의 이해 차이를 대비시킨 적이 있다. 말하자면 지광은 불덕을 공이라 하고, 법장은 상·낙·아·정의 불덕을 긍정한다.
  182. 182)법상종의 자은 규기는 법화사상에 관해서도 『묘법연화경현찬妙法蓮華經玄贊』(T34) 10권을 저술하였는데, 여기 도처에서 ‘화성유’를 해설하고 있다.
  183. 183)『수능엄경』 권1(T19, 107a).
  184. 185)방편생사方便生死·인연생사因緣生死·유유생사有有生死·무유생사無有生死 : 초지 이전의 방편생사부터 여래지의 무유생사까지 변역생사를 보살의 계위에 따라 네 종류로 나눈 것이다.
  185. 186)문수의 다섯 자 주문(文殊五字呪) : 아阿·라羅·파波·차遮·나那의 다섯 자. 『금강정경유가문수사리보살법金剛頂經瑜伽文殊師利菩薩法』(T20, 705a)에 따르면, 아阿·라囉·파跛·자者·낭曩이다.
  186. 187)『대지도론大智度論』 권42(T25, 367a)의 취의 요약.
  187. 188)『대반야경』 권53(T5, 302b).
  188. 189)범어로는 ati이다.
  189. 190)범어로는 anutpatta이다.
  190. 191)『대지도론』 권48(T25, 408b).
  191. 192)『대반야경』 권53(T5, 302b).
  192. 193)『대지도론』 권48(T25, 408b).
  193. 194)『대반야경』 권53(T5, 302b).
  194. 195)범어로 paraṁārtha이다.
  195. 196)범어로 carya이다.
  196. 197)『대반야경』 권53(T5, 302b).
  197. 198)범어로 na이다.
  198. 199)『대지도론』 권48(T25, 408b).
  1. 1)「之」欄外筆書改作「等」{編}。
  2. 1)「說」欄外筆書改作「談」{編}。
  3. 2)「密」欄外筆書改作「宣」{編}。
  4. 3)「故」欄外筆書改作「以」{編}。
  5. 4)「標指」欄外筆書改作「指示」{編}。
  6. 1)□欄外筆書改作「底」{編}。
  7. 1)「進」欄外筆書改作「逝」{編}。
  8. 1)「判總」底本欄外有註曰「判總疑總判之倒」{編}。
  9. 1)「空」欄外筆書改作「理」{編}。
  10. 1)「爲」底本欄外有註曰「爲字上疑落方字」{編}。
  11. 2)「有」底本欄外有註曰「有字疑又字誤」{編}。
  12. 3)「二」底本欄外有註曰「二字疑三字誤」{編}。
  13. 4)「三」欄外筆書改作「四」{編}。
  14. 5)「時彼」底本欄外有註曰「時彼間疑脫中字」{編}。
  15. 6)「二」欄外筆書改作「次」{編}。
  16. 1)「三」欄外筆書改作「後」{編}。
  17. 1)□欄外筆書改作「住」{編}。
  18. 1)「來」欄外筆書改作「未」{編}。
  19. 2)「旣」欄外筆書改作「幾」ㆍ底本欄外有註曰「幾字疑旣字誤」{編}。
  20. 1)「今」底本欄外有註曰「今字疑令字誤」{編}。
  21. 1)「二」欄外筆書改作「三」{編}。
  22. 1)「不」底本欄外有註曰「不字疑有字誤」{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