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무용당유고(無用堂遺稿) / 無用堂集下

ABC_BJ_H0189_T_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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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당유고 하無用堂遺稿 下
문文
요청에 응하지 않으며 답한 글
저번에 과분하게 불러 주시는 은총을 입고 감격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 것이 분명하니 쓸모없는 곳에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비록 성대한 자리에 말석末席으로나마 끼어 보고 싶어도, 19인157)이 눈짓하며 비웃을 테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형들도 어찌 나를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錐)으로 여겨서 첫손가락에 꼽으며 불렀겠습니까.
내가 예전에 바랑을 메고 단교斷橋의 시장을 지날 적에 소금 장수가 뛰어나오더니 내 옷자락을 끌면서 “나에게 소금을 파시오, 나에게 소금을 파시오.”라고 하였습니다. 내 바랑 속에 그런 물건이 있는지 그가 어떻게 참으로 알았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마음속으로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끝내 거절하였겠습니까. 나는 법계法界를 짊어질 힘이 없는데, 형들이 만에 하나라도 나에게 그렇게 기대한다면, 소금 장수의 이 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더구나 화엄華嚴의 대교大敎는 대기大機의 소유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을 쌓은 보살이라고 할지라도 오히려 물이 말라서 헐떡거리는 물고기(曝鱗)에 비교될 것인데, 지금 육군六群158)보다도 몇 십 층이나 더 아래에 있는지도 모를 자들이 80권 『화엄경華嚴經』을 몇 달 안에 후딱 해치우려 하다니, 어쩌면 이토록 허술하고 경솔하게 행한단 말입니까.
꿈속에서 천만리의 강산을 답사한 자가 꿈을 깨고 나서 혹 방불하게 상상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화엄』을 모두 읽었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 자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까지 한다면, 이것은 두 번이나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나는 비유하자면 절뚝거리는 노둔한 말과 같으니, 어떻게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일생을 기약하더라도 힘이 부족할 것이니, 따라서 나와 같은 비천한 자는 법석法席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게다가 나는 체질이 허약하고 기운이 부족해서 10여 년 이래로 뒷방에 혼자 거하며 앉고 눕고 하는 모든 일을 오직 내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하루아침에 많은 대중 사이에 끼어서

009_0350_c_01L無用堂集下

009_0350_c_02L

009_0350_c_03L1)

009_0350_c_04L答未赴書

009_0350_c_05L
日者過蒙寵召感幸極矣然而吾無用
009_0350_c_06L的正宜自置於無用之地縱欲末其妙
009_0350_c_07L奈十九人之目笑何諸兄豈以演
009_0350_c_08L爲囊中錐屈初指而招之耶吾昔者擔
009_0350_c_09L囊而過斷橋市賣鹽者趍出牽衣曰
009_0350_c_10L貨吾鹽貨吾鹽渠豈眞知囊中有其物
009_0350_c_11L心有其意則胡然而終拒之耶吾無負
009_0350_c_12L法界之力而諸兄之萬一於吾何異此
009_0350_c_13L況此大敎大機所擔以菩薩之積行
009_0350_c_14L猶比於曝鱗今下六群不知其幾十
009_0350_c_15L層者獵盡八十卷經於數月之中
009_0350_c_16L其草率若是夢踏江山千萬里者覺後
009_0350_c_17L或有彷彿想像也然而曰吾盡讀華嚴
009_0350_c_18L自負於心又誇於人此兩也吾譬馬
009_0350_c_19L蹇駑何及一日千里者正期一生猶不
009_0350_c_20L以此如吾之鄙勿汚法席可也
009_0350_c_21L又吾質弱氣少十餘年來獨處後室
009_0350_c_22L坐臥凡百惟心之適若一旦虱其廣衆
009_0350_c_23L「文」編者補入

009_0351_a_01L나의 옛날 습관을 버리고 사람들의 새로운 취향을 따르게 한다면, 이는 비유컨대 원거鶢鶋를 종고鐘鼓의 음악소리로 즐겁게 해주고,159) 원숭이에게 주공周公의 옷을 입히는 것과 같아서160) 여자餘子처럼 옛 걸음걸이를 잃게 되고,161) 한유韓愈처럼 광질狂疾이 발작할 것이 분명합니다.162)
봄과 여름이 어떤 초목도 살리려 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썩고 마른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고, 가을과 겨울이 어떤 초목도 죽이려 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소나무와 잣나무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시四時를 주관하는 것이 천지天地이지만, 이런 천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형들이 또 나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천 사람도 많은 것이 아니고 한 사람도 적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쪼록 형들은 적임자를 구하시고 나머지는 바라지 마십시오. 그저 귀를 어지럽히기만 하였으니,163) 한번 웃어 주시기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최 정언에게 부친 글
비록 합하閤下의 풍색風色을 뵙지는 못하였습니다만, 선사先師가 살아 계실 적에 합하의 형제를 극구 칭찬하면서 “당세當世의 유아儒雅한 선비로서 존경할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풍도風度와 의기義氣가 높지 않다면 도道가 다른 자로 하여금 이와 같이 마음속으로 진정 열복悅服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때 귀로 놀라고 마음속으로 감동하면서 한번 두 분의 자리에 배석陪席하여 고론高論을 듣고 싶었습니다마는, 뜻한 대로 되지 못한 채 학사學士께서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얼마 뒤에 선사가 또 그 뒤를 이었으니, 세상일이 다 틀려 버려서 그저 통곡하는 심정일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합하만 남아 있고 또 다행히 인근隣近에 머무시는 만큼, 의리로 보면 응당 정신없이 달려가서 인사를 올려야 할 것인데, 이처럼 머뭇거리고만 있으니 그 죄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근래에 듣건대 합하의 행차가 산정山庭에까지 왔다가 돌아갔다고 하는데, 흥이 다해서(興盡) 그냥 돌아가신 것입니까?164) 깊은 숲 속에 앉아 있는 자로서는 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빈도貧道의 죄가 아닙니다. 합하께서는 양찰해 주십시오.
합하께서 만약 “조수鳥獸와 함께 사는 자165)가 비록 인정人情에 가깝지 않다고는 하더라도, 내가 그의 스승과 면교面交166)의 사이가 아닌 만큼, 그는 벌써 오래전에 나의 뜰에 와서 인사를 올려야 했을 것이다. 내가 그의 처소에 찾아가기 전에는 그가 나를 모르는 것처럼 한다면,

009_0351_a_01L之間而背己之舊逐人之新則譬如
009_0351_a_02L樂鷄鶋 [5] 而鍾皷之聲衣猿狙以周公之
009_0351_a_03L餘子之失故行韓愈之發狂疾快 [6]
009_0351_a_04L春夏之於草木無不欲生也而無可奈
009_0351_a_05L何者枯朽是已秋冬之於草木無不欲
009_0351_a_06L殺也而無可奈何者松栢是已主四
009_0351_a_07L時者天地也而天地尙不可奈何則諸
009_0351_a_08L兄之於吾亦奈何㦲千人不多一人
009_0351_a_09L不少望須諸兄求其人勿望餘徒亂耳
009_0351_a_10L一笑伏惟

009_0351_a_11L

009_0351_a_12L寄崔正言書

009_0351_a_13L
雖未奉閤下風色先師在時盛稱閤下
009_0351_a_14L昆季曰當世儒雅可敬若非風義之高
009_0351_a_15L能使道不同者心悅誠服如是其時耳
009_0351_a_16L驚心動願一陪二妙高論而未及如
009_0351_a_17L學士先逝先師俄繼世事已矣堪爲
009_0351_a_18L痛哭今則閤下惟存幸及隣近義當
009_0351_a_19L顚倒奔拜而因循若此罪戾多矣
009_0351_a_20L聞行色及於山庭而返無乃興盡而然
009_0351_a_21L坐深林者實不知也此則非貧道
009_0351_a_22L之罪矣閤下恕之閤下若曰鳥獸同群
009_0351_a_23L雖不近人情我與其師面交 [7] 渠可
009_0351_a_24L拜我庭久矣而未我至渠所而渠若不

009_0351_b_01L그는 마음을 잃고 실성失性한 자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나를 우습게 보고 거만하게 구는 것일 터인데, 옛날 혜원惠遠이나 태전太顚167)이 어찌 고승이 아니었던가.”라고 책망하신다면, 빈도의 죄가 물에 얼음이 붙는 것처럼 더 중해질 것이기에 이렇게 사연을 갖추어 사뢰는 것입니다.
지금 장마철 무더위가 물러가는 때에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삼가 사모하는 심정이 간절해집니다. 빈도는 본성이 매우 졸렬해서 보내고 맞는 데에 게으른 데다 선사先師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로는 온갖 생각이 모두 재로 변하였습니다.
새처럼 빠른 광음光陰은 사람을 다그쳐서 노사老死의 구덩이 속에 거꾸로 떨어뜨리는데, 이런 삶을 큰 즐거움으로 생각한다면 실로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앞길에 예비할 양식으로는 마음을 수습하고 고요히 생각해서 급히 서방의 성자聖者(아미타불)를 부르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만 길의 대갱大坑 속에서 끌어올려 저 칠보七寶의 연화蓮花 위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이것 말고는 달리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합하께서는 천 척尺의 독목교獨木橋 위를 지날 때 붙들어 줄 수 있는 물건을 예비해 두셨습니까. 이러한 때를 당하여 세간에 있는 것들은 모두 나를 밀어서 떨어뜨리는 위험한 물건들밖에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서방 정토를 생각하며 백업白業(善業)을 닦는 길밖에 없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쇠지팡이인 것입니다.
옛날에 백 향산白香山(白居易)과 장 승상張丞相(張商英)과 황 태사黃太史(黃庭堅)의 무리가 노년에 이르러 모두 서방 정토를 생각하며 발원하는 글을 지었으니, 이는 본받을 만한 일입니다. 합하께서 혹 “나는 유자儒者이지 이단異端이 아니다.”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백 향산의 무리도 어찌 유자가 아니었겠습니까.
합하가 비록 지금의 세상에 거하고 있지만, 모습도 예스럽고 마음도 예스러우며 행동도 모두 옛사람의 도와 일치하여 효도에 힘을 모두 바치고 충성에 목숨을 모두 바치고 있습니다. 향리鄕里에 거하면 향리에서 그 선善을 일컫고,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들이 그 덕을 구가謳歌합니다. 10년 동안 칼을 갈아서 단지 닭 잡는 일에 시험했는데도, 백 리里가 태고太古처럼 되어 희황羲皇 이전의 사람으로 높이 누워 지내게 되었습니다.168) 만약 추상秋霜 같은 그 칼날을 가지고 촉룡燭龍과 운붕雲鵬에 시험한다면, 신물神物이 다시는 칼집 속에서 울지 않을 것인데, 생각하면 아쉽기만 합니다.169)
지난번에 한 한미寒微한 선비가 와서 합하를 칭찬하기를, “이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있지 않았던 분(生民以來未有也)170)이라서 퇴임退任하신 뒤에 더욱 몹시 그리워지기에 구리로 초상을 만들어 봉안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그 선비는 바로 그 지방의 사람이었습니다. 옛날에 자후子厚(柳宗元)가 유주 자사柳州刺史가 되었는데,

009_0351_b_01L渠必喪心失性者不然簡慢者
009_0351_b_02L遠太顚豈非高僧則貧道之罪如水
009_0351_b_03L加氷故具此白即此霖暑退養起居
009_0351_b_04L若何伏慕殷摰貧道素性甚拙懶於
009_0351_b_05L將迎加以自哭先師以來萬慮都灰
009_0351_b_06L光陰鳥速迫促人倒墜於老死坑中
009_0351_b_07L以爲大樂實可畏也前道資粮莫若
009_0351_b_08L收心靜慮急呼西方聖者極我萬丈大
009_0351_b_09L登彼七寶蓮花上非此莫能不知
009_0351_b_10L閤下已備過千尺獨木橋上扶衛之物乎
009_0351_b_11L及此也世間所有盡是推我落險之具
009_0351_b_12L可恃惟一念西白業耳此乃眞我所柱
009_0351_b_13L底鐵杖也昔者白香山張承相 [8] 黃太史
009_0351_b_14L之徒及其老也皆有發願念西之文
009_0351_b_15L其可則也閤下若曰我儒者不爲異
009_0351_b_16L白香山之類豈不是儒者閤下雖
009_0351_b_17L處今世乎㒵古心古所行皆合古人之
009_0351_b_18L道也孝則竭力忠則盡命居鄕而鄕
009_0351_b_19L稱其善子民而民歌其德十年磨劒
009_0351_b_20L但試一鷄而百里太古高臥羲皇若以
009_0351_b_21L霜刃當其燭龍雲鵬則神物不復吼於
009_0351_b_22L匣中矣惜㦲頃有一寒士來稱閤下曰
009_0351_b_23L生民以來未有也是以去後思益甚
009_0351_b_24L鑄肖像而奉之士縣人也昔土子厚爲

009_0351_c_01L그는 죽은 뒤에야 사당에 초상화가 걸렸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저것과 비교해 본다면 합하는 유주보다도 훨씬 훌륭하다고 하겠습니다.
합하께서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 정토에 회향한다면, 구품九品의 연지蓮池171)에서 자금紫金의 빛나는 몸을 지니고서 조촐하게 금강대金剛臺 위에 우뚝 설 분이 합하가 아니고 또 누구이겠습니까. 합하는 힘쓰십시오.
한번도 합하를 만나 뵙지 못한 처지에서 먼저 이와 같이 간곡히 말씀을 드리며 피할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여러 해 동안 사모해 온 정성 때문이요, 또 사람이 형편없다고 해서 그 사람의 좋은 말까지 버리지 않는다(不以人廢言)172)는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합하께서는 자세히 살펴 주소서. 그리고 절구絶句 한 수를 바치는바, 이는 뜻을 말한 것일 뿐이니, 어찌 시라고 말할 수야 있겠습니까.
임 교리에게 올린 글
봄날이 돌아왔습니다. 왕래하는 인편을 통해 삼가 합하의 병세가 조금 나아져서 한가히 산사山寺에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얻으신 것이 필시 많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빈도貧道는 마음공부가 점점 처음보다 못해지고 쇠한 백발만 늘어갈 뿐입니다. 이 몸이 재가 되기 전에 다시 한번 합하를 뵙고서 지난날 미진했던 소회所懷를 죄다 털어놓고 싶은데, 합하는 병으로 왕림하지 못하고 빈도는 늙어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니, 이 소원이 끝내 수포로 돌아갈까 걱정입니다.
매양 지주地主와 만나 이야기하면서 합하의 풍류가 유아儒雅한 것을 찬탄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명부明府도 수석정水石亭에 초청하여 만나고 싶은데 지금까지 실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역시 하나의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이 정자를 노래한 명공名公의 작품이 꽤 많은데, 아직까지 합하의 보타寶唾(귀한 시문)를 얻지 못해서 사람들이 또한 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건강이 요즘 회복되셨으면 어찌하여 한번 붓을 휘두르는 일을 아끼시어 이 임천林泉의 한 빛을 감손減損시키십니까.
『춘추春秋』와 『전국책戰國策』과 『국어國語』가 산중에 없는데, 합하처럼 나를 아껴 주는 분이 아니면 그 누가 한번 볼 수 있게 해주겠습니까. 해解가 올 적에 어깨에 잔뜩 메고 오게 해주신다면 그런 행운이 없겠습니다. 갖추지 못하고 이만 줄입니다.

009_0351_c_01L柳州沒後爲廟像持此較彼賢於柳
009_0351_c_02L州遠矣閤下以忠君孝親仁民愛物之
009_0351_c_03L回向淨土則九品蓮池以紫金身
009_0351_c_04L瑩然屹立於金剛臺上者非閤下而誰
009_0351_c_05L閤下勉之未曾一奉閤下而先此忉怛
009_0351_c_06L若是而不知所避者正以多年慕用之
009_0351_c_07L而亦聞不以人廢言之訓惟閤下詳
009_0351_c_08L垂察焉又獻一絕言志耳烏足云詩

009_0351_c_09L

009_0351_c_10L上林校理書

009_0351_c_11L
春廻因徃來便伏聞閤下病候少間
009_0351_c_12L閑寓山寺中靜裡所獲必多矣貧道心
009_0351_c_13L上工夫漸落初而多得衰白而已未灰
009_0351_c_14L前欲再奉閤下攄盡徃日未盡之懷
009_0351_c_15L而閤下病未臨貧道老未進第恐此願
009_0351_c_16L終歸虛牝耳每與地主會話未甞不嘆
009_0351_c_17L美閤下之風流儒雅明府亦欲邀會水
009_0351_c_18L石亭上至今未果亦一恨也亭詠名
009_0351_c_19L公之作頗多而未獲閤下之寶唾人亦
009_0351_c_20L欠之體候近若平復則何靳一揮
009_0351_c_21L却林泉之一色乎春秋戰國策國語
009_0351_c_22L中所無若非閤下之愛我孰使一玩乎
009_0351_c_23L解之來使之赬肩則幸莫大焉不具伏
009_0351_c_24L

009_0352_a_01L
황 부사에게 올린 글
작일昨日에 풍색風色을 뵙게 된 것은 실로 천행天幸이었는데, 만나고 헤어짐이 무상無常하여 임하林下를 또 적막하게 하였으니, 이 한림李翰林이 “보는 날은 적고 이별의 날이 많다.(見少離別多)”173)라고 읊은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깃발을 돌려 떠나신 뒤에 합하께서 백성을 임하여 정사를 행하심에 신명神明이 도울 것이라고 여겨지는바, 삼가 마음속으로 환희하고 있습니다.
빈도貧道가 수석정水石亭 위에 조용히 앉아 있노라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모두가 정신을 수습하고 성정性情을 기르는 성색聲色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가운데에서 얻어지는 것을 혼자서 즐길 수 있을 뿐, 합하와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예로부터 명인名人과 달사達士가 임하의 사람과 친하게 지낸 경우가 많은데, 합하가 그 일을 이었으니 합하 역시 옛사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조만간 합하가 임 교리林校理의 손을 이끌고 수석정 위에 앉아서 이 즐거움을 나눈다면, 백련의 고회高會174)만이 과거의 역사에서 아름다움을 독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직 이렇게 되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졸시拙詩는 글 속의 미진한 소회所懷를 대신 개진한 것이니, 한번 봐 주십시오. 삼가 백성을 위해 몸을 보중하시기를 축원하며, 송구한 마음으로 두서없이 올립니다.
임 교리에게 올린 글
삼가 생각건대 성제聖制(服制)가 비록 끝나기는 하였으나, 효사孝思는 다하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반드시 신명神明이 도와주실 것인바, 멀리 앙모仰慕하는 마음이 실로 배가倍加됩니다.
산인山人은 올해 나이가 67세이니, 거의 다한 목숨이 아침 아니면 저녁에 끝날 것인데, 다만 걱정은 합하를 다시 뵙기 전에 뼈가 먼저 재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듣건대 상국上國에 빙문聘問하는 사명을 받으셨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장유壯遊도 겸하는 것이 될 것이니, 축하할 일입니다. 나처럼 졸렬한 자는 탄환과 같은 한 구역175)도 다 돌아다니지 못했으니, 또한 부럽기만 합니다.
이 참판李叅判 광좌光佐씨는 지금 무슨 관직에 있으며, 또 어느 곳에 있는지요? 답서를 주실 때 알려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일찍이 조계曹溪에서 모시고 고론高論을 듣는 행운을 얻은 뒤로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노졸老拙이 먼저 옛날 노닐던 곳에 와서

009_0352_a_01L上黃府使書

009_0352_a_02L
昨奉風色實是天幸離合無常却敎
009_0352_a_03L林下又寂寞李翰林所詠見少離別多
009_0352_a_04L正謂此也伏想返旆後閤下臨民
009_0352_a_05L政履神相伏喜殷摯貧道靜坐水石亭
009_0352_a_06L眼所見耳所聞者盡是怡神養性之
009_0352_a_07L聲色此中所得只可自樂而恨未與
009_0352_a_08L閤下共之耳自古名人達士與林下人
009_0352_a_09L相好者衆而閤下繼之亦古人矣
009_0352_a_10L晩閤下挽林校理坐水石亭上分享
009_0352_a_11L此樂則白連高會不獨專美於前日也
009_0352_a_12L惟此之望耳拙詩替陳書中未盡之懷
009_0352_a_13L伏乞鑑之伏祝爲民珎攝悚仄不次
009_0352_a_14L伏惟

009_0352_a_15L

009_0352_a_16L上林校理

009_0352_a_17L
伏想聖制雖終而孝思不匱必有神相
009_0352_a_18L遠仰實倍山人今年六十七幾盡之命
009_0352_a_19L非朝即夕唯恐未及再奉閤下而骨先
009_0352_a_20L灰也聞有聘上國之命其然乎若然
009_0352_a_21L則亦兼壯遊可賀也如拙彈丸一區脚
009_0352_a_22L未周亦可羨也李叅判光佐氏今在
009_0352_a_23L何官亦在何處回書及之伏望曾於曹
009_0352_a_24L溪幸陪高論倐過十年老拙先到舊

009_0352_b_01L다시 찾아 주시기를 눈이 빠지게 고대苦待한 것이 지금 벌써 오륙 년이나 되었습니다.
언제 한 사람 본 적이나 있으리오(何曾見一人)176)라는 탄식은 고금을 막론하고 매한가지인 모양입니다. 이는 바로 눈이 높은 낭군郎君이 어여쁜 신부를 향하는 그 마음이, 진흙에 붙은 버들개지처럼 요지부동인데도, 늙고 추한 옛날의 처妻가 만에 하나라도 요행히 예뻐해 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어쩌면 이토록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지 못한단 말입니까.
삼가 봄추위에 몸을 보중하시기를 빌며 종이가 짧아서 이만 줄입니다.
김 수사에게 부친 글
그동안 가뭄과 장마가 이어지면서 무더위가 심하였는데, 모르겠습니다만 시봉하는 이 외에 잠자고 먹는 것은 어떠하십니까?
계축년에 한번 얼굴을 보고 나서 잊지 못하는 정이 피차 서로 같을 것인데, 산인山人은 산을 내려가지 못하고, 세객世客은 세상을 나오지 않아 지금까지 다시 만날 인연을 맺지 못했으니 탄식할 만한 일입니다.
홀연히 듣건대 달 속의 계수나무 가지를 거의 꺾으려다가 실패했다177)고 하였는데, 가지는 높고 팔은 짧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애석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중인衆人이 바라는 마음이 멀리 구만리 정도일 뿐만이 아닌 상황에서 지금 거의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축하할 일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하늘이 기운을 보충해 주고 팔을 길게 하여 높다란 첫 번째의 가지를 꺾게 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금일의 작은 실패가 후일의 큰 소득이 될 것이니, 역시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족하는 어찌하여 슬퍼하십니까. 기뻐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또 듣건대 족하가 『장자莊子』에 힘을 써서 과거科擧의 글을 지으려 한다고 하였는데, 한편으로는 족하를 위해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족하를 위해 서글픈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장자는 옛날의 신묘막측神妙莫測한 사람입니다. 그는 도가 크고 지혜가 밝아서 천지를 작게 여기고 일월을 어둡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 언론言論이 활달하고 문장文章이 걸출해서 중니仲尼의 인仁이나 백이伯夷의 의義도 비웃음을 면치 못하였는데,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경우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으므로 스스로 도룡屠龍178)의 탄식을 발하였던 것입니다. 옛날에도 그러하였는데, 하물며 지금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지금 만약 장자의 웅변雄辯과 대론大論을 가지고

009_0352_b_01L遊處苦待再訪而眼欲穿今已五六年
009_0352_b_02L何曾見一人之歎無古今一也
009_0352_b_03L政如高眼郞君於嬋妍新婦心如粘泥
009_0352_b_04L之絮而老醜舊婦僥倖萬一之憐
009_0352_b_05L其不自量也伏祈春寒好自珎攝
009_0352_b_06L短不旣

009_0352_b_07L

009_0352_b_08L寄金秀士

009_0352_b_09L
邇來旱雨相連蒸溽甚未知侍外眠
009_0352_b_10L食何如癸丑年一面之情彼此相同
009_0352_b_11L而山人不下山世客不出世因緣不再
009_0352_b_12L合至今可歎忽聞月中桂幾折而未
009_0352_b_13L無乃枝高手短而然耶可惜衆人所望
009_0352_b_14L不趐如九萬里之遠而今其庶幾可賀
009_0352_b_15L豈非天充其氣長其手使高折第
009_0352_b_16L一枝耶然則今日小失後日大得
009_0352_b_17L可賀也足下奚悲宜喜之也又聞足下
009_0352_b_18L用力於莊子爲科擧之文一爲足下喜
009_0352_b_19L一爲足下悲何者莊子古之神妙不測
009_0352_b_20L之人其道大其智明以天地爲小
009_0352_b_21L日月爲昏故其言論濶文章屹仲尼之
009_0352_b_22L伯夷之義不免所笑而況他乎
009_0352_b_23L以當時焉不見知於人自發屠龍之歎
009_0352_b_24L自古尙然而況今乎今若以莊子之雄

009_0352_c_01L천하를 누르려 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듣고서 괴이하게 여길 것이 분명합니다. 어찌 괴이하게 여길 뿐이겠습니까. 또 따라서 그르다고 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몸을 어떻게 세울 수가 있겠으며, 이름을 어떻게 드날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족하를 위해서 한번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렇긴 하지만 장자의 정수精髓를 얻기만 하면, 담담한 경지에서 마음을 노닐고 적막한 세계에 기운을 맞추어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의 광막한 들판에서 소요逍遙하고 방황할 것이며,179) 만승천자萬乘天子의 높은 지위를 헌신짝 버리듯 하고 천금千金을 지푸라기처럼 여겨 돌아보지 않으면서180) 하늘의 군자君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녹록한 공명功名 따위를 내려다보는 것이 어찌 원추鵷鶵가 썩은 쥐를 대하는 정도181)일 뿐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족하를 위해서 한번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렇긴 하지만 족하의 뜻이 어찌 여기에 있기야 하겠습니까. 그저 그 꽃을 채취하여 꿀이나 만들고, 그 애벌레를 길들여서 벌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 그렇다면 족하의 뜻이 작다고 할 것이니, 하늘의 군자는 될 수가 없고 사람의 군자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비록 그렇긴 하지만 몸을 세우고 이름을 드날려 부모님을 드러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의 시작인데 족하가 그 일을 이로써 행하려 하고,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모두 부모님이 남겨 주신 것인 만큼 감히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인데 족하가 그 일을 이로써 행하려 하니,182) 아, 그렇다면 족하의 훌륭함이 산인山人보다도 훨씬 뛰어나다고 할 것입니다.
산인은 자벌레처럼 암혈巖穴에 몸을 굽히고서 지기志氣가 말라비틀어진 채 단지 부서진 몸뚱이만 보존하고 있을 뿐인데, 족하는 만에 하나라도 고인이 불쌍하게 여겨지지는 않습니까. 만약 치소緇素(僧俗)의 신분을 혐의하지 않고서 구름을 헤치고 한번 찾아 준다면, 그런대로 한나절의 한가함183)을 얻을 것이요, 임하林下도 적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한없이 주절대다가 그만 중언부언 늘어놓고 말았습니다.
최 상국에게 부쳐 올린 글
모某는 백암栢庵의 문도입니다. 천 리 밖에 있는 몸이라서 합하의 발치에 나아가 인사드리지는 못하였습니다만, 이전부터 동강 공東岡公이 백암을 깊이 사랑한 것이 도陶가 원遠을 사랑하고 소蘇가 요寥를 사랑한 것184)보다 훨씬 더하였기에 마음속으로 합하의 문에 달려간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봄날도 저물려 하는 이때에 상국相國 합하께서는 체후體候가 어떠하신지요? 삼가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기만 합니다.

009_0352_c_01L辯大論扼於天下則天下之人聞而
009_0352_c_02L恠之必矣豈惟恠之又從而非矣
009_0352_c_03L則身可立乎名可揚乎然則爲足下一
009_0352_c_04L悲者非乎雖然得莊子之髓凝心於淡 [9]
009_0352_c_05L合氣於漠逍遙乎彷徨乎無有鄕廣漠
009_0352_c_06L屣萬乘芥千金而爲天之君子則其
009_0352_c_07L下視碌碌功名何趐鵷鶵之腐鼠也
009_0352_c_08L則爲足下一喜者非乎雖然足下之志
009_0352_c_09L豈有此㦲不過採其花而成蜜呪其虫
009_0352_c_10L而成蜂而已足下之志小㦲不得爲
009_0352_c_11L天之君子而爲人之君子者乎雖然立
009_0352_c_12L身場名以顯於父母孝之始也而足
009_0352_c_13L下以之身體髮膚父母之遺體不敢毁
009_0352_c_14L孝之終也而足下以之足下之
009_0352_c_15L賢於山人遠矣山人蠖屈巖竇
009_0352_c_16L氣焦拳只存朽然形殼萬一爲故人憐
009_0352_c_17L倘不以緇素爲嫌而披雲一訪
009_0352_c_18L庶得半日閑而林下不寂寞矣葛藤未
009_0352_c_19L不免重說偈言

009_0352_c_20L

009_0352_c_21L寄上崔相國書

009_0352_c_22L
某栢庵之役雖在千里之外未望閤下
009_0352_c_23L之履而自先東岡公愛栢庵之深
009_0352_c_24L於陶之遠蘇之寥故心徃閤下之門久
009_0352_c_25L伏未審春事欲暮相國閤下體履

009_0353_a_01L
모는 죄역罪逆이 심중深重한 탓으로 헤아릴 수 없는 화禍를 참혹하게 당하였습니다. 백암이 지난해 7월 25일 밤 초저녁에 홀연히 세상을 떠났으니, 그 비통한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 사뢸 수 있겠습니까. 서거逝去한 뒤에 밤마다 계속해서 광서光瑞가 있었으며, 7일째 되는 날 화욕火浴(茶毗)을 행하던 밤에는 그 서기瑞氣가 더욱 커져서 한 줄기 백기白氣가 마치 한 필匹의 누인 명주처럼 남북으로 뻗쳤는데 이 광경을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보았습니다.
또 그로부터 사흘 뒤에 유골遺骨을 수습하던 날에 한 조각의 영골靈骨을 소나무 위에서 얻었으므로 금년 늦봄이나 초여름에 탑을 세워서 봉안하려고 기약하고 있습니다. 의리상 즉시 급히 치달려 고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마는, 일이 어긋나고 길이 멀어서 지금에야 인편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정례情禮가 땅을 씻은 듯 없어졌으니, 아홉 번 죽더라도 어찌 원망하겠습니까.
몇 년 전에 현랑군賢郎君(최 상국의 아들)이 국사國事로 호남湖南을 검찰檢察하면서 송광사松廣寺에 행차하여 제가 백암의 문도로 그곳의 암자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명소命召한 뒤에 동강 공이 백암을 사랑했던 옛일을 간절히 말하며 쉬지 않고 친절히 일러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 말을 들으매 귀가 뚫리고 눈이 뜨이면서 마음이 절로 열리고 손이 절로 합해졌습니다.
제가 후생後生이라서 비록 동강 공을 모실 수도 없었고 합하를 뵙지도 못하였습니다마는, 삼가 현랑군의 점잖은 모습과 호탕한 기상을 접하고는 마치 두 분 선생을 뵙는 것만 같았으니, 그 기쁨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선사의 유고遺稿가 거의 10여 편에 이르는데 흩어져 없어진 나머지 겨우 몇 편만 얻었기에 이 중에서 정선精選하여 간행하려고 합니다. 지금 이 원고를 올리오니 합하께서 보시고 근정斤正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런 뒤에 서문序文을 지어 첫머리에 올린다면, 저로서는 세상에 있을 때나 세상을 떠난 뒤에 모두 합하의 선물을 받아 영광이 극에 이를 것입니다. 이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은혜로서 서방 정토에 가 계신 영혼도 깊이 감격할 것이니, 비록 몸을 갈아서 가루가 되게 하더라도 이 깊은 은혜를 만분의 일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존엄하신 안전案前을 이와 같이 귀찮게 해 드리며 그 죄를 피할 줄 모르는 것은, 합하께서 선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이 몸도 역시 사랑하며 죄를 주지 않으실 것을 전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황송해서 다 아뢰지 못합니다. 양찰해 주십시오.

009_0353_a_01L若何伏慕殷摯某罪逆深重慘遭不惻
009_0353_a_02L之禍栢庵年前七月念五夜未半
009_0353_a_03L然歸盡其爲慘痛何可盡白逝後連
009_0353_a_04L夜有光瑞而第七日火浴之夜其瑞益
009_0353_a_05L一道白氣如一匹練亘于南北
009_0353_a_06L近皆覩且又越三日收骨之日得一
009_0353_a_07L片靈骨于松樹上期以今年春末夏初
009_0353_a_08L立塔而封之義當即傳馳告而事乖道
009_0353_a_09L今始仍便情禮掃地九死何悔
009_0353_a_10L年賢郞君以國事檢湖南臨松寺
009_0353_a_11L演以栢庵之役在其庵命召而恳語東
009_0353_a_12L岡公愛栢庵之故亹亹不厭觀其貌
009_0353_a_13L其言耳爽目活心自開而手自合矣
009_0353_a_14L演後生雖未及陪東岡公亦未奉閤下
009_0353_a_15L而謹獲雅貌浩氣如拜二先生矣其爲
009_0353_a_16L欣幸可量先師遺稿幾至十餘篇
009_0353_a_17L散亡之餘僅得數篇欲擇其精者
009_0353_a_18L梫榟故今此呈上伏乞閤下斤正何
009_0353_a_19L然後文其序弁其首則先師在世
009_0353_a_20L即世得閤下之賜榮光極矣是兩也
009_0353_a_21L已西之靈亦有深感雖碎身粉骨而難
009_0353_a_22L報其深惠於萬一尊嚴之前若此煩
009_0353_a_23L而不知避罪者專恃閤下愛先師之
009_0353_a_24L亦愛演而不之罪耳餘惶悚不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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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의 원에게 올린 글
전일에 만나 뵌 것은 실로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는데, 호로병 속의 건곤乾坤은 비록 한가해도 꿈속의 일월은 매우 바빠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만났다가 헤어지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 하겠습니까. 이를 비유한다면 비선飛仙이 잠시 머물러 옥치玉齒를 반쯤 열어 웃어 보이고는 학가鶴駕를 다시 되돌려 눈을 쳐들기도 전에 벌써 아득한 운애雲靄 사이로 사라졌다고나 할까요.
남겨 주신 새 시를 때때로 다시 읊으며 음미하노라면 어금니와 뺨에서 향기가 돋아나니, 이것을 가지고 우러러 사모하는 괴로움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지금 꾀꼬리 노랫소리가 점점 매끄러워지고 보리밭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하니, 공무公務의 여가에 정신을 툭툭 털어 버리고 마음속에 청산녹수靑山綠水를 모두 담고서 소요逍遙하시리라 여겨집니다.
빈도는 대중을 훈도訓導하는 이외에 다른 일이 없고, 날마다 하는 공부는 그저 방심放心을 수습하는 것일 뿐입니다. 산인散人의 종적은 그야말로 규방閨房에 깊이 들어앉은 처자處子와 같아서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스스로 나아갈 길이 전혀 없으니, 힘을 내어 찾아뵙고자 해도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요행히 하늘이 오마五馬185)를 등라藤蘿의 산길로 돌아오게 해준다면 임하林下도 적막하지 않겠기에 한 장의 거친 글씨와 조잡한 말로 미진한 회포를 다시 펴게 되었습니다. 공무公務의 여가에 한번 돌아보아 주신다면 그런 행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머지는 황송해서 이만 줄입니다. 양찰해 주십시오.
호남 방백에게 삼가 올린 글
정월에 소사미小沙彌가 올라가는 편에 편지 한 통을 닦아 올렸는데, 문지기가 가로막는 바람에 전달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으니 매우 아쉽습니다.
지금은 하늘과 땅이 서로 소통하여 만물이 번성하는 때입니다. 삼가 합하의 기후氣候도 시절과 함께 화창하리라 생각하니 적이 위로됩니다.

009_0353_b_01L伏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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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53_b_03L上谷城倅

009_0353_b_04L
頃日之奉實爲天與壺裡乾坤雖閑
009_0353_b_05L而夢中日月甚忙其奈離合石火電光
009_0353_b_06L譬如飛仙暫駐玉齒半啓而鶴駕
009_0353_b_07L還擧未及擡眼已入杳靄間矣所留
009_0353_b_08L新詩時復諷詠牙頰生香以此少寬
009_0353_b_09L瞻注之勞耳伏想此時鶯歌漸滑
009_0353_b_10L浪初起公餘抖擻精神括盡靑山綠
009_0353_b_11L水於方寸上而逍遙焉貧道訓蒸徒
009_0353_b_12L外無餘事日用工夫只在收放心而已
009_0353_b_13L散人蹤跡正如深閨處子然雖有見人
009_0353_b_14L之心而雅無自進之道縱欲强謁
009_0353_b_15L可得乎幸天復回五馬於蘿逕則林下
009_0353_b_16L不寂寞矣一紙荒草蕪詞再伸未盡之
009_0353_b_17L公隙倘垂一顧則何幸如之餘惶
009_0353_b_18L悚不宣伏惟

009_0353_b_19L

009_0353_b_20L謹上湖南方伯

009_0353_b_21L
首月中憑小沙彌上去便奉修一札
009_0353_b_22L爲閽者所攘未達空還深用慨然
009_0353_b_23L則地天交泰萬物雍熙恭審閤下氣
009_0353_b_24L候與時和舒伏慰殷摯貧道年前臘月

009_0353_c_01L
빈도는 지난해 섣달에 송광사로 옮기고 나서 다시 한 봄을 맞았는데, 선송禪頌을 폐하지 않게 된 것은 합하께서 외호外護해 주신 은사恩賜 덕분이기에 더욱 감사하고 있습니다.
승가僧家의 고민거리에 대해서 일찍이 조목별로 세밀하게 말씀드렸는데, 합하께서 천근한 말도 자세히 살피기를 좋아하시어186) 소경이 볼 수 있게 하고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게 해주셨으니, 인인仁人 군자君子가 아니고서야 천지처럼 곡진히 이루어 주는 대도大度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베풀어 주겠습니까. 하나의 집이 무너지는 것을 붙들어 주고 한 사내가 물에 빠진 것을 건져 주어도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는데, 더구나 이처럼 지극하게 배려해 주어 봄날에 온갖 꽃이 피는 것처럼 해주셨음이겠습니까. 1천 산에 환희의 기운이 떠 있고, 1만 골에 기쁨의 소리가 들끓으니, 어찌 유독 희황羲黃의 시대187)만 태평한 세상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혹 왼쪽 눈은 다시 밝아졌어도 오른쪽 눈은 여전히 어두워서 옛날의 온전한 눈으로 되돌아가지 못할까 하는 걱정도 있는데, 합하께서 만약 한쪽 눈으로 충분하다면서 금비金鎞188)를 다시 들지 않으신다면, 아, 마침내 반쪽짜리 인간으로 그치고 말 것이니, 이를 어떡합니까. 하지만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어찌 그렇게야 하겠습니까. 이런 것은 치아痴兒의 철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날마다 봄철에 순행巡行하실 때 다시 풍색風色을 뵐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는데, 누가 이 일을 가로막아서 가을을 기약하게 되었단 말입니까.
졸렬한 율시 두 수를 지난겨울에 지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빈도의 생각을 말한 것일 뿐이니, 베로 만든 북이 어떻게 뇌문雷門에 어울리겠습니까.189) 삼가 원하옵건대 창생蒼生을 위하여 몸을 보중하소서. 나머지는 황송하여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양찰해 주십시오.
이 석사에게 답한 글
날마다 풍색風色을 뵙기를 바라던 차에 귀한 서찰을 먼저 받고 보니, 갈매기(海鶴)와 같은 한가한 모습을 뵙는 것만 같습니다.
빈도貧道는 시천詩川190) 선생이 석사碩士에게 친족의 어른이신 것만 들었는데, 지금 와서 석사가 빗자루를 든 제자191)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세히 알았습니다. 선생의 도가 오늘날 이처럼 떨어지지 않을 것을 어찌 생각하였겠습니까.
선생과 선사先師의 친분은 도혜陶惠와 한전韓顚192)과 비교되니, 여기에 어찌 고금古今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아, 선사가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선생이 또 그 뒤를 따랐는데, 남겨 주신 향기 넘치는 시문들이 분명히 흰 종이 위에 담겨 있으므로

009_0353_c_01L移棲松寺又得一春而不廢禪頌
009_0353_c_02L賴閤下外護之賜尤爲拜感僧瘼曾爲
009_0353_c_03L條分縷柝而閤下好察邇言使盲者得
009_0353_c_04L跛者能行若非仁人君子則天地
009_0353_c_05L曲成之大度焉至是一室之傾扶一夫
009_0353_c_06L之溺援人皆得稱焉況此至矣之及
009_0353_c_07L如春行萬卉者乎千山喜氣浮萬壑歡
009_0353_c_08L聲咽豈獨羲黃之際爲太平之世歟
009_0353_c_09L或恐左眼再明右眼猶暗未復昔日之
009_0353_c_10L閤下若曰一眼足矣金鎞不再擧焉
009_0353_c_11L則嗚呼奈何終作半介人而止耳然而
009_0353_c_12L父母之於子豈其然乎此痴兒之妄度
009_0353_c_13L日望行春再奉風色誰爲尼之
009_0353_c_14L以爲期惡詩二律已搆前冬而今始
009_0353_c_15L仰塵言志而已布皷豈合於雷門
009_0353_c_16L乞爲蒼生珎毖餘惶悚不具伏惟

009_0353_c_17L

009_0353_c_18L答李碩士

009_0353_c_19L
日望風色而華札先及宛奉海鶴閑姿
009_0353_c_20L貧道但聞詩川先生於碩士姓長而今
009_0353_c_21L詳亦爲操篲之役豈意先生之道不
009_0353_c_22L墜於今日乎先生之與先師相好較諸
009_0353_c_23L陶惠韓顚奚古奚今先師先逝
009_0353_c_24L生亦繼而留與賸馥明明存紙素上

009_0354_a_01L때때로 무릎을 꿇고 봉독奉讀하노라면 눈물이 뺨을 적시곤 합니다. 그리고 선생의 문하에는 석사가 건재하니, 선생이 비록 지하에 계시더라도 눈을 감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불초不肖 연演은 선사의 방 안을 엿보지도 못했는데, 석사가 이처럼 과분하게 칭찬하시다니, 이는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장詩章은 우리 집안의 군더더기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옛날에 득도得道한 분들이 혹 자신의 경지를 노래하다 보면 저절로 음률에 맞곤 하였으니, 노능盧能이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無一物)고 읊은 것193)이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연演은 선사께서 돌아가신 뒤로 흥사興思가 갑자기 없어지고 나이도 많이 들어 쇠하였으니, 마음을 맑게 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나의 변치 않는 근본 자리로 되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만약 아침에 읊고 저녁에 지껄이면서 저 도필리刀筆吏처럼 문필文筆을 일삼는다면, 식견이 높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간혹 어떤 경계를 접하고 인연을 만나서 서자西子가 이마 찡그리는 것을 본뜨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194) 산중에 글 짓는 사람이 매우 적은 관계로 뜻하지 않은 칭찬을 귀로 듣기도 합니다만, 매양 마음속으로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얼굴이 절로 붉어지곤 합니다.
석사가 거론한 조문석사朝聞夕死195)의 설은 내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을 먼저 말한 것인데, 이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의 별주부에게, “나의 즐거운 이 우물 속으로 들어와서 왜 구경하려 하지 않는가?”라고 말한 것196)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나도 세속에 있을 적에는 선유씨先儒氏의 설을 읽기도 하였고, 청운靑雲 위에 오른 사람의 말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 모두가 석사의 설과 같았는데,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잠을 자다가도 크게 소리 내어 웃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쪽의 가르침은, 깊고 깊은 것도 우리 가르침의 얕고 얕은 것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석사는 깊고 얕음이 어떠한지 깊이 따져 보지도 않고서 오히려 시동尸童과 축관祝官이 제기祭器를 뛰어넘어 와 주방에서 베고 삶는 일을 대신하려 하고 있으니,197) 너무 지나치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고명高明한 인사도 나이가 젊어 기운이 왕성할 때에는 마음으로 비난하고 입으로 비평하면서 못하는 일이 없다가 늘그막에 이르러 홀연히 달식達識의 고론高論을 듣고는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석사가 지금은 고집을 부리지만, 후일 숭악 전崇岳顚과 황벽 운黃檗運198)의 부름을 받고 일어나 꿈에서 깰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009_0354_a_01L則時跪奉讀涕泗交頥先生之門碩
009_0354_a_02L士在先生雖地下乎可以瞑目矣
009_0354_a_03L肖演未窺先師之室而碩士過越稱
009_0354_a_04L道若是不敢當不敢當詩章乃吾家餘
009_0354_a_05L古之得道之士或詠歌其所蘊
009_0354_a_06L自合音律如盧能之本來無一物之類
009_0354_a_07L是也演自哭先師以來興思頓落
009_0354_a_08L又衰邁可以淸心靜慮復吾其不變之
009_0354_a_09L若朝吟暮噪而事持鉛槧如刀筆
009_0354_a_10L之吏則爲見笑於大方之家必矣或觸
009_0354_a_11L境逢緣不獲已效西子之嚬而山中乏
009_0354_a_12L人之甚故不虞之譽入耳每心自愧而
009_0354_a_13L面自赤矣碩士之朝聞夕死之說余欲
009_0354_a_14L說之而先焉何異井蛙向海鼈曰吾樂
009_0354_a_15L何不入觀之說耶余亦在俗時
009_0354_a_16L先儒氏之說而或逢雲上人說如碩士
009_0354_a_17L之說我今而思之則寐中亦大笑一聲
009_0354_a_18L彼敎之深深不及吾敎之淺淺而碩士
009_0354_a_19L不深討淺深之如何而反欲以尸祝越
009_0354_a_20L樽爼而代割烹不已過乎古之高明之
009_0354_a_21L年少氣盛時心非口議無所不至
009_0354_a_22L及其晩暮忽聞達識高論而悔前非者
009_0354_a_23L徃徃有之碩士之今日固也安知後
009_0354_a_24L日爲崇岳顚黃蘗 [10] 運之喚起而夢初廻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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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二敎(불교와 유교)의 심천深淺에 대해서 입으로 말하자면 장황해지고 붓으로 쓰자면 번거로우니, 다음에 만나는 날로 미루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등록傳燈錄』은 청하신 대로 보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깜깜한 길에 명월주明月珠를 던져 주면 모두 칼을 뽑으려 하면서 노려보는 법이니,199) 석사의 천하가 크게 밝아진 뒤에 보내 드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봄날이 점점 따뜻해지는 이때에 잠자고 밥 먹는 것이 한결같으시기를 바라며, 나머지는 지침서에 쓰인 대로 석사께서 잘 살펴 행하시리라 믿습니다.
백암 화상 문집 서문
옛사람은 글을 조박糟粕200)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글을 귀하게 여길 것이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아,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인이요 만류萬類의 근원으로서 유래한 시초가 없고 형체가 있지도 않다. 무릇 상相이 있는 것들은 모두 무상無相의 그림자라고 할 것인데, 글 또한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흐름을 거슬러 근원을 찾고, 싹을 통해 뿌리를 찾는 것이 무방하다면, 우주 사이에 없을 수 없는 것이 또한 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삼교三敎의 성인聖人이 무상無相의 몸을 가지고 무언無言의 가르침을 설하여 인간 세상에 남겨 준 것인데, 그것이 지금까지도 쇠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표준이 셋이 있으니, 덕을 세우는 것(立德)과 공을 세우는 것(立功)과 말을 세우는 것(立言)이 그것이다.201)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공과 말이 있게 마련인데, 이처럼 세 가지를 모두 겸하여 지닐 수 있는 것은 성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예로부터 말을 세우는 사람은 일반一斑202)이라도 엿보고서 문장을 이루는 것이니, 그러고 보면 이것도 공언空言은 아닌 것이다. 달마達磨가 비록 문자를 배격하며 본성을 밝혔으나, 그래도 선경禪經과 선게禪偈가 있었고 보면, 다른 것이야 더 논할 것이 없다고 하겠다.
경희慶喜203)가 대장경大藏經을 결집結集한 뒤에 수명친착樹鳴親着204)이 논論을 짓고, 외장관밀外長觀密205)이 소疏를 지어 곡조를 발하며 삼킨 것을 토해냈으니, 이는 모두 도道를 드러낸 도구들이었다.
그러다가 다섯 종파206)로 나뉨에 미쳐서는 단도單刀와 일구一口로 불조佛祖를 죽이고 삼키면서 염고拈古하기도 하고 송고頌古하기도 하였는데, 그 기세가 불타오르듯 하고(燀爀) 삼엄森嚴하여 사람의 귀와 눈에 우레와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이로 말미암아 귀머거리와 소경의 눈과 귀가 밝아져서

009_0354_b_01L二敎深淺言之長也筆之煩矣可以
009_0354_b_02L留在他日一面傳燈錄切欲如敎而暗
009_0354_b_03L中明月必爲按劍者所顧待其碩士之
009_0354_b_04L天下大明然後進之亦未脫 [11] 春日
009_0354_b_05L漸暄眠食如宜餘在叙惟碩士察此

009_0354_b_06L

009_0354_b_07L栢庵和尙文序

009_0354_b_08L
古人以書爲糟粕然則書之不足貴也
009_0354_b_09L必矣心也一身之主萬類之源
009_0354_b_10L其來無始其體沒形凡有相者皆無
009_0354_b_11L相之影書亦相類也不妨尋流而得源
009_0354_b_12L因苗而識根則宇宙間不可無者亦書
009_0354_b_13L是以三敎聖人以無相之身說無
009_0354_b_14L言之敎留與人間至今不衰世有標
009_0354_b_15L準三曰立德曰立功曰立言有德者
009_0354_b_16L必有功與言也則兼三而有之者非聖
009_0354_b_17L莫能古來立言之士莫不窺一班 [12] 而成
009_0354_b_18L章焉則亦非空言也達磨雖云彈文明
009_0354_b_19L而亦有禪經及禪偈也則其他不足
009_0354_b_20L論矣自慶喜蘊結大藏而後樹鳴親着
009_0354_b_21L之爲論外長觀密之爲䟽發其引
009_0354_b_22L其含皆現道之具也施及宗分五派也
009_0354_b_23L單刀一口殺呑佛祖而或拈或頌
009_0354_b_24L爀森嚴雷電人耳目因此而聾盲聰明

009_0354_c_01L다시 청천백일靑天白日을 보고 유수고산流水高山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를 통해 살펴본다면 귀할 것 없는 물건이 또한 귀한 물건이 되었다고 하겠다.
아, 석문釋門의 주석柱石인 우리 선사先師는 부모를 여읜 곤궁한 처지에서 묘령妙齡에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걸치셨다. 교해敎海의 물결이 쇠한 것을 탄식하고, 선등禪燈의 불꽃이 꺼진 것을 개탄하여 노심초사하며 불조佛祖의 피육골수皮肉骨髓를 파헤치는 일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그리고 외전外典에도 통달하고 문장도 여사餘事로 하여 솥의 세 발을 이루고 수레의 두 바퀴를 이루었으므로 당시에 문인文人 달사達士가 도연명陶淵明과 혜원慧遠의 관계에 비기고, 교연皎然과 육우陸羽207)의 재림再臨이라 여겨 서로 창화唱和하며 주고받아 주옥 같은 시편詩篇이 가득하였는데, 비단옷을 안에 입고 다시 홑옷을 걸쳤으나 날로 드러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208)
우리 동방의 공문空門(佛門)에서 문장으로 근세에 울린 자는 서산西山(休靜)과 백곡白谷(處能)인데, 서산은 도道가 문文보다 뛰어났고, 백곡은 문이 도보다 뛰어났다. 선사가 살아 계실 적에 언급하기를, “백곡은 비유하자면 하나의 큰 가람伽藍과도 같다. 대전大殿과 층각層閣이 첩첩이 솟아서 새가 나래를 펼치고 꿩이 날아가는 듯하여(鳥斯革翬斯飛)209) 사람의 눈을 번쩍 뜨게 하고 마음을 뒤흔드는데, 그 사이에 구유와 헛간과 방앗간과 창고와 부엌과 뒷간 등이 끼어 있다. 내 속에도 하나의 오래된 전각殿閣이 있으니, 이루離婁210)가 먹줄을 독찰督察하고 장백匠伯이 도끼를 휘둘렀으며,211) 승요僧繇212)가 기린의 뿔과 봉황의 부리213)를 달여 서촉西蜀의 단청丹靑214)과 섞어서 교묘하게 솜씨를 발휘하였으므로 천전天殿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용궁龍宮이 바다에서 솟아난 듯하여 사람들이 하루 종일 에워싸고 구경하면서도 싫어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확론確論이다. 옛날에 “사람들은 어찌하여 자신을 알지 못하는가?”라고 하였는데, 선사는 자신을 알았으며, 자부한 것이 또한 이와 같았다.
옛날에 중니仲尼가 요순堯舜을 조술祖述하였는데, 재아宰我가 중니의 도덕과 문장을 칭하면서 “요순보다 훨씬 뛰어나다.(賢於堯舜遠矣)”215)라고 하였다. 선사가 취미翠微(守初)의 뒤를 이었지만 나도 선사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려 하는데, 자기가 좋아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아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맹씨孟氏도 이미 말한 바 있다.
아, 옛사람은 문언文言을 도道의 찌꺼기 정도로 여겼다. 그렇다면 이를 막고 끊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009_0354_c_01L復覩靑天白日更賞流水高山迹此觀
009_0354_c_02L不足貴者亦足貴也哀我先師
009_0354_c_03L門柱石困於孤艱而妙齡薙染嘆敎
009_0354_c_04L海之波頹慨禪燈之焰滅苦心勞慮
009_0354_c_05L刮佛祖之皮肉骨髓以爲己任而傍通
009_0354_c_06L外典餘事文章鼎成而足三車行而
009_0354_c_07L輪二一時文人達士擬陶於慧再陸
009_0354_c_08L乎皎唱去和來珠璣滿篇錦已衣矣
009_0354_c_09L綗雖尙之其奈日章何我東空門中
009_0354_c_10L以文章鳴於近世者西山與白谷西山
009_0354_c_11L道勝文白谷文勝道先師在時語及
009_0354_c_12L白谷比如一大伽藍大殿層閣
009_0354_c_13L疊聳出鳥斯革翬斯飛令人目活心搖
009_0354_c_14L而槽廠碓坊庫厨溷厠與其間我中
009_0354_c_15L有一古殿離婁督繩匠伯運斤僧繇
009_0354_c_16L以獜角鳳觜之煮和於西蜀丹靑而逞
009_0354_c_17L其巧妙焉却疑天殿飛墜虬宮涌出
009_0354_c_18L使人環而觀之終日而不厭此確論也
009_0354_c_19L古曰人豈不自知先師自知矣其自負
009_0354_c_20L也亦如此昔者仲尼祖述堯舜而宰
009_0354_c_21L我稱仲尼之道德文章曰賢於堯舜遠
009_0354_c_22L先師翠微之後余於先師亦云
009_0354_c_23L不阿好孟氏已言之矣古之人
009_0354_c_24L文言爲道之緖餘則杜之絕之可也

009_0355_a_01L조박糟粕이 비록 주마酒麻의 찌꺼기이긴 하지만, 주마만 있고 조박이 없을 리는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조精粗와 내외內外와 본말本末이 있는 것은 어떤 것마다 모두 그러하니, 조粗를 통해 정精으로 나아가고 외外를 통해 내內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精과 내內가 있으면 조粗와 외外가 따르게 마련이니,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옛사람이 조粗인 줄 알면서도 버리지 않았고, 선사 또한 그러하였는데, 나의 대에 와서 끊어 버리고 전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옛사람을 어기고 선사를 배반하는 것이다. 옛사람을 어기고 선사를 배반하면서 하늘을 머리에 이고 발로 땅을 밟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선사의 유고遺稿를 취집하고 보니 시詩와 문文이 거의 7~8권이나 되었다. 그런데 모두 간행하려니 감당할 힘이 없기에, 또 중니가 시서詩書를 정리한 방식을 따라 가장 정밀한 것만을 가려서 상편과 하편으로 만든 다음 판각에 부쳤는데, 지금쯤 서방에 계실 영혼께서 수긍하실지 어떨지 모르겠다.
선사께서 만약 “연演아, 너는 단지 나의 흔적만 알지, 나의 근본은 모르는구나. 나에게는 글자가 없는 광대한 한 권의 경經이 있는데, 너는 그것도 새겼느냐. 어찌 이 몇 권의 글만 여기에서 흘러나왔겠느냐. 삼장三藏 십이부十二部216)와 유교ㆍ도교의 제서諸書도 이와 같고, 사성육범四聖六凡217)과 산하대지와 삼라만상도 모두 이와 같으니라. 이와 같을진대 이와 같은 여러 가지를 나의 면목이라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나의 면목이 아니라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제자는 “예, 알았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심경소기회편』의 서문
이 종이 반 장의 경經으로 말하면, 글자 수는 적고 글은 간략하지만 6백 권의 중심에 거하여 모든 반야般若의 뜻을 끌어안고 큰 장교藏敎의 이치를 아우르고 있으니, 제불諸佛의 모태요 만법의 근원이라고 이를 만하다.
그러므로 관음대사觀音大士가 부처의 신력神力을 받들고 광대한 뜻을 간략히 설하여 이 세상에 남겨둠으로써 칠중七衆218)의 입술과 혀 위에 구르도록 한 것이다. 비록 『화엄華嚴』이 일체경一切經의 종원宗源이라고 말을 하지만,

009_0355_a_01L未者何㦲糟粕雖酒麻之餘而獨有酒
009_0355_a_02L麻無糟粕理之必無也然則精粗內外
009_0355_a_03L本末物物皆然自粗而及精由外而
009_0355_a_04L之內有此精內粗外隨之其可舍之
009_0355_a_05L古人知粗而不去先師亦然至於余絕
009_0355_a_06L而不傳是違古背師違古背師而頂天
009_0355_a_07L足地乎肆以裒集先師遺稿詩若文
009_0355_a_08L幾至七八卷欲盡剞劂則力之難堪
009_0355_a_09L又且則仲尼删詩書而止撮精最者
009_0355_a_10L下篇附諸板上抑未知已西之靈
009_0355_a_11L頷也否先師若曰爾徒知我迹
009_0355_a_12L知我本我有廣大沒字經一卷爾亦刻
009_0355_a_13L此否豈獨此數卷文從此流出三藏十
009_0355_a_14L二部儒道諸書亦如是乃至四聖六
009_0355_a_15L山河大地森羅萬像亦如是若如
009_0355_a_16L如是種種謂吾面目非吾弟子
009_0355_a_17L吾面目亦非吾弟子弟子曰唯

009_0355_a_18L

009_0355_a_19L1)心經䟽記會編序

009_0355_a_20L
此半紙經字少文略而居六百卷之中
009_0355_a_21L包括諸般若之義攝盡大藏敎之理
009_0355_a_22L可謂諸佛之母萬法之源肆以觀音大
009_0355_a_23L承佛神力略說廣義留諸世界
009_0355_a_24L轉於七衆唇舌上雖云華嚴爲一切經

009_0355_b_01L많이 지송持誦하는 것으로는 이 경經보다 더한 것이 없다.
만약 풍부한 뜻을 간략하게 표현하여 상相을 없애고 공空을 밝히며, 헛것을 보는 눈알의 백태白苔를 긁어내고 나비로 변한 꿈에서 깨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와 같이 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옥돌의 온윤溫潤한 속성에 대해서 겉을 보는 사람은 많아도 속을 아는 사람은 드문 법이니, 이것이 바로 현수賢首의 주각註脚219)과 옥봉玉峰의 연주連珠220)가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된 까닭이라고 하겠다.
아문我門의 사형師兄인 석실 공石室公(明眼)이 다행히 현수의 소疏와 옥봉의 기記를 얻고는, 소疏를 통해 경經을 알고 기記를 통해 소疏를 아는 것이, 마치 가지를 통해 줄기를 알고 줄기를 통해 뿌리를 아는 것과 같음을 기뻐하였다. 그러나 기記가 유독 별행別行으로 처리되어 보는 이들이 병으로 여기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는 이를 한데 모아 편집하였다. 그리고 이를 장차 출판하여 일국一國에 공개함으로써 심오한 경의 뜻이 남김없이 심목心目 사이에 활짝 드러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친절히 유도하였으니, 실로 그 뜻이 도저到底하다고 하겠다.
옛날에 책 공策公이 석벽石壁의 기記를 규봉圭峯의 소疏에 연결하여 『금강경金剛經』의 대의大義가 천년 뒤에까지 환히 빛나도록 하였는데,221) 석실石室의 마음이 곧 책 공의 마음과 같다고 할 것이니, 오늘날의 일을 옛일과 비교한다면 누가 앞이고 누가 뒤라 하겠는가.
공이 연演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고서 나에게 교증校證을 상의하며 그 전말顚末을 쓰도록 청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 송무松茂를 기뻐한 나머지 손을 다칠 것도 잊고서 감히 일빈一嚬을 흉내 내었다.222)
『신간 범음집산보』의 서문
범음梵音의 유래는 조위曹魏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223) 우리 동방은 진감 노인眞鑑老人이 중화中華에 들어가 배우고 돌아온 뒤로부터 옥천玉泉224)의 유향遺響이 우레가 치고 산이 응하듯 하면서 누추한 개구리 소리가 한 번 변하여 지나支那와 인도印度의 그것과 방불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 법도가 무너지고 사람이 성글어지면서 소리도 자연히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감히 포고布鼓를 가지고 천뢰天雷에 대드는 자가 횡행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으니,225) 이것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방장方丈(지리산)의 음音이 온 나라를 뒤덮는다 해도 어떻게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겠는가.

009_0355_b_01L之宗源而誦持之盛莫尙於此若非
009_0355_b_02L義豊文略蕩相明空刮見花之翳
009_0355_b_03L化蝶之夢焉得如是也㦲然而石裏温
009_0355_b_04L觀者雖多知者鮮矣此賢首之注
009_0355_b_05L玉峰之連珠不獲已而作也我門
009_0355_b_06L兄石室公幸得䟽若記喜其䟽以通經
009_0355_b_07L記以通䟽政如因枝得幹因幹得根
009_0355_b_08L而慨乎記獨別行觀者病之故會而編
009_0355_b_09L將附剞劂氏公諸一國使深經奧義
009_0355_b_10L豁然頓現於心目之間開牗可畏之心
009_0355_b_11L實謂到矣昔策公係石壁記於圭峰䟽
009_0355_b_12L使金剛大義煥然乎千載之後石室之
009_0355_b_13L乃策公之心也引今較古孰先孰
009_0355_b_14L公不以演爲鄙諅余校證而爲叙其
009_0355_b_15L顚末故余悅其松茂忘其手傷敢效
009_0355_b_16L一嚬

009_0355_b_17L

009_0355_b_18L新刊梵音集删補序

009_0355_b_19L
梵音之作權輿於曺魏而我東眞鑑老
009_0355_b_20L入中華模還而後玉泉遺響雷振山應
009_0355_b_21L蛙音之陋一變而彷彿乎支那印度焉
009_0355_b_22L今則法墜人踈音亦隨之敢以布皷搪
009_0355_b_23L揬天雷者滔滔皆是可言㦲然而方
009_0355_b_24L丈之音蔽一國耳堪傾乎其所詠句

009_0355_c_01L노래하는 게구偈句를 보면 선법률禪法律 삼장三藏 가운데에서 뽑은 것이 많고, 간혹 그 시대의 명언名彦의 손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입으로 가르치고 손으로 전하는 과정에서 오언烏焉226)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제성諸聖을 속일 수야 있겠는가. 크고 작은 자리를 베풀어 불천佛天과 신기神祇를 공양할 즈음에 제성諸聖이 만약 그 잘못을 알기라도 한다면 어떤 사람이 입을 열 수 있겠는가. 아, 생각하면 두려운 일이다.
모某 상인上人은 방장方丈의 무리이다. 그 사람됨이 단정하고 그 소리가 웅장하니, 그중 뛰어난 자라고 이를 만하다. 그 성교聲敎의 물결이 무너진 것을 개탄하고는, 마음속으로 다른 유파流派들을 모아 와전되고 어긋난 점을 바로잡으려 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여러 성도聲徒 중에 걸출한 자를 청하여 번잡한 것을 깎아내고 빠뜨린 것을 보충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잘된 것은 그대로 두고 잘못된 것을 고쳐서 분류한 뒤에 3축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고증考證을 청하고 그 전말顚末을 쓰게 하였는데, 내가 자격이 없다고 굳이 사양하였으나, 그 사람의 청이 워낙 완강해서 내가 이웃 사람들이 달아날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서 감히 서자西子를 본받게 되었다.227)
『중간 선문염송설화』 서문
과거 승국勝國(고려)에서는 국조國朝가 선법禪法을 간성干城으로 삼아 외적의 침입을 막고 국가의 명운을 연장하였다. 당시에 선법이 성행한 것은 중국에 못지않았다.
그러므로 산성散聖 목우 옹牧牛翁(知訥)의 사법嗣法 제자인 무의자無衣子 심 공諶公(慧諶)이, 선문禪門의 호걸들이 본사本師(釋尊)의 가르침 및 가섭迦葉 이하가 보여 준 것 중에서 혹 염고拈古하고 송고頌古하거나, 혹 대어代語하고 별어別語한 것 가운데 어록語錄에 산재한 자료를 취집하여 30권으로 편집하고는 『염송대별략拈頌代別略』이라고 제목을 붙여서 학자들에게 제공하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은미하고 간략한 데다 내외의 제서諸書에서 많이 나온 까닭에 식견이 부족한 사람들로 하여금 아득해서 알 수 없다고 오히려 비방하게 하는 허물을 면치 못하였다.
그래서 귀곡龜谷 운 공雲公(覺雲)이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는 별도로 설화說話를 첨가하여 설명하였다.

009_0355_c_01L則多摭於禪法律三藏之中或出於
009_0355_c_02L當其時名彥之手而口訓手傳烏焉莫
009_0355_c_03L人雖欺聖可欺乎小大設筵供佛
009_0355_c_04L天神祗之際諸聖若見其過則人無開
009_0355_c_05L口者可畏㦲某上人方丈之徒
009_0355_c_06L人端其音雄可謂拔萃者慨其聲敎波
009_0355_c_07L心欲會其異執正其訛舛而不自
009_0355_c_08L期以請諸聲徒之傑然者删其繁
009_0355_c_09L補其闕是者仍之非者改之分爲三
009_0355_c_10L旣又乞余考證而序其顚末余以
009_0355_c_11L不才讓之固而之人之請堅其甚
009_0355_c_12L不顧隣人之走敢效西子爲

009_0355_c_13L

009_0355_c_14L2)重刊禪門拈頌說話序

009_0355_c_15L
徃在勝國國朝以禪法爲干城禦寇兵
009_0355_c_16L延國祚當時禪法之盛不在中國之下
009_0355_c_17L是以散聖牧牛翁之嗣法無衣子諶公
009_0355_c_18L裒其禪門諸傑之或拈或頌或代或別
009_0355_c_19L於本師所說及自迦葉以下所示者
009_0355_c_20L在語錄底編錄爲三道卷文目之曰拈
009_0355_c_21L頌代別略也以貽學者而其語隱略
009_0355_c_22L又多出於內外諸書反使管見者未免
009_0355_c_23L謗蒼蒼之愆故龜谷雲公㦖焉別爲說
009_0355_c_24L此序文已載於本書卷九(一七○頁){編}
009_0355_c_25L序文已載於本書卷五(三頁){編}

009_0356_a_01L송宋나라 사람이 뽑아 올린 것이 묘苗에게는 해가 되겠지만, 수모水母의 입장에서는 새우의 조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니,228) 후진後進에게 도움이 되는 점이 실로 적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판본이 당세에 성행하였으나, 산하가 한번 뒤바뀌면서 나라와 함께 없어지고 말았다. 아, 그로부터는 학자들이 이 책을 구해 보기가 무척 어렵게 되었다.
이에 미천彌天 노인229)이 북산北山을 주지主持하면서 오래도록 개탄하다가 다행히 한 곳에서 고본古本을 얻어 향산香山의 절에서 판각하려 하였는데, 이곳에서 향산과의 거리가 몇 천 리나 되었으므로 남방에 있는 자들이 이를 병으로 여겼다. 그래서 얼마 뒤에 설암자雪巖子 붕 공鵬公이 자기 아버지의 소를 먹이려고 북쪽에서 남으로 왔으니, 월저月渚가 바로 그의 법부法父였다.
붕 공은 그 역사役事를 팔영산八影山 능가사楞伽寺에서 일으켰다. 능가사는 오늘날의 사찰이지만 승가의 규범은 고찰古刹을 능가하였다. 상기尙機와 의헌義軒은 그 사원의 거벽巨擘이었는데, 상기가 그 일을 감독하면서 의헌과 함께 상의하며 참여하였다. 붕 공의 계도戒徒 약간 명이 그 비용을 대고, 또 사저寺儲를 출연出捐하여 아홉 길의 산을 쌓으면서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는 일이 없게 하였다.230) 그리하여 이로부터 남북이 한목소리를 내고 부자가 풍도를 같이하게 되었으니, 붕 공이야말로 잘 계승한 사람(善繼者)이라고 이를 만하다.231)
아, 이 일이 끝나기도 전에 붕 공이 급하게도 세상을 떠남으로써, 또 안로安老로 하여금 나를 망하게 한다(喪予)232)는 비통한 심정을 느끼게 하였으니, 슬픈 일이다.
능가楞伽의 제공諸公이 선림禪林의 조락凋落을 개탄하면서 처음 제창提唱한 자가 스러진 뒤에도 이 일을 완성하여 이처럼 남은 한이 없게 하였으니, 이는 총림叢林의 일대 성사盛事라고 할 것이다. 아, 붕 공이 의도했던 것도 다른 데에 있지 않고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하겠다.
영남로 곤양군 봉명산 직조암 신축 모연문
불법佛法은 청정하고 고원高遠해서 세속과 함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009_0356_a_01L話而明之宋人之揠在苗雖害而水母
009_0356_a_02L之待於蝦最要其爲後進之助也固不
009_0356_a_03L淺淺矣然其板本盛行當世山河一
009_0356_a_04L與國俱亡嗚呼自是厥後學者之
009_0356_a_05L得見此書也甚難爰有彌天老主北山
009_0356_a_06L慨然久之幸得古本於一處刻諸香山
009_0356_a_07L此去香山里幾千乎在南者病焉
009_0356_a_08L而雪巖子鵬公欲食其父之牛自北而
009_0356_a_09L月渚其法父也鵬也駕其役於八
009_0356_a_10L影之楞伽楞伽今刹也而僧範邁古
009_0356_a_11L機義軒院之巨擘者機董其事共軒謀
009_0356_a_12L而與鵬公之戒徒若干軰供其費又出
009_0356_a_13L寺儲成其九仞之高而無一簣之虧
009_0356_a_14L而後南北一聲父子同風鵬也其可
009_0356_a_15L謂善繼者歟鵬之逝也趣不待此
009_0356_a_16L事之了又使安老奄起喪予之慟哀㦲
009_0356_a_17L楞伽諸公慨禪林之彫落告厥於唱者
009_0356_a_18L已焉之後而使無遺恨若此此叢林之
009_0356_a_19L一大盛事乎鵬之嗾不於他者
009_0356_a_20L在斯歟其在斯歟

009_0356_a_21L

009_0356_a_22L嶺南路昆陽郡鳳鳴山直照庵新成
009_0356_a_23L募緣文

009_0356_a_24L
佛法淸淨高遠不可以與俗同故剃其

009_0356_b_01L운림雲林에 처하여 형체를 고목枯木처럼 하고 생각을 불 꺼진 재처럼 하면서 토굴을 파고 흩어져 살며 인간 세상을 완전히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다가 말세에 인人과 법法이 쇠퇴함에 미쳐 백장 대사百丈大士233)가 동우棟宇를 경영하여 노병老病을 편히 쉬게 하였는데, 이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건물의 규모를 크고 넓게 하며 다투어 제천諸天234)을 세움으로써 선禪을 닦는 자가 그곳에서 안거하게 하고 선善을 좋아하는 자가 복의 씨앗을 심도록 하였으니, 그 복리福利가 미치는 바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서봉사棲鳳寺는 연기 국사烟起國師가 창건한 옛 도량이다. 거기에서 남쪽으로 백 보쯤 걸어가면 유명한 절터 하나가 나오는데, 옛 모습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 오래되었다. 이는 어쩌면 때가 돌아오지 않고 적임자를 얻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대사大師 한 사람이 방장산方丈山에서 와서 여름 몇 철 동안 이곳에 석장錫杖을 걸었는데, 법호法號를 광밀廣密이라고 하였다. 사원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에게 청하기를, “우리 대사의 재능과 덕이야말로 이 난야蘭若를 여유 있게 경영할 수 있을 것이니, 근골筋骨의 수고로움을 잊으시고 이 불후의 공을 이루어 주소서.”라고 하니, 대사가 고사固辭하지 않고 그 말을 따랐다. 이는 시기가 돌아오고 적임자를 얻은 것이니, 하늘에서 화당華堂이 떨어지고 땅에서 보전寶殿이 솟아나와 여우와 토끼가 뛰어놀던 곳에 엄연儼然히 절간이 서게 될 것을 미리 점칠 수 있겠다.
무용자無用子가 비록 이 산과 이 절의 승개勝槩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대사大事가 장차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니, 멀리서도 기쁘기에 이 한마디 말을 지어 단문檀門에 두루 고하게 함으로써 힘닿는 대로 보시하게끔 하였다. 보시는 십도十度235) 중의 으뜸이니, 어찌 소홀히 해서야 되겠는가. 이와 함께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락하기를 축원하는 바이다.
단교 모연문
도강徒杠은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고, 여량輿梁은 수레도 통행이 가능하니, 여량의 다리가 좋을 것이다. 나무는 썩기 쉽고 돌은 부서지지 않으니, 돌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지개다리는 구멍이 둥글고 커서 큰물이 밀려와도 물의 충격이 작으니, 무지개다리가 좋을 것이다. 돌로 만들고 무지개다리로 하여 오래 견디도록 하려면, 이를 완성함에 수고와 비용이 매우 많이 들 것이니,

009_0356_b_01L鬚髮處其雲林枯乎形灰乎慮穴土
009_0356_b_02L星居而大忘人世焉逮及世末人法
009_0356_b_03L替怠百丈大士營其棟宇以安老病
009_0356_b_04L自是以後廣堂大厦竸搆諸天使修
009_0356_b_05L禪者安其居樂善者植其福其爲福
009_0356_b_06L利之所覃烏可量㦲棲鳳寺者烟起
009_0356_b_07L國師所創古道場也南行百步外有一
009_0356_b_08L名基而未復古者久豈非時未還人未
009_0356_b_09L得而然耶有一大師自方丈來掛錫
009_0356_b_10L數夏者法號廣密合院異口同請
009_0356_b_11L我大師之才與德可以營此蘭若而有
009_0356_b_12L餘裕忘其筋骨之勞而成此不朽之功
009_0356_b_13L師不固辭而從之時還而人得天墜華
009_0356_b_14L地湧寶殿儼立於狐兎之場預可
009_0356_b_15L占矣無用子雖未見之山之寺之勝槩
009_0356_b_16L而遙喜大事將成草此一言使遍告檀
009_0356_b_17L隨力而施施爲十度之首其可忽
009_0356_b_18L祝曰國泰平民安樂

009_0356_b_19L

009_0356_b_20L斷橋募緣文

009_0356_b_21L
徒杠人獨過輿梁車大行則輿梁可乎
009_0356_b_22L木易朽石難壞則石可乎虹孔圓且大
009_0356_b_23L涇流雖涘而水之擊小則虹可乎
009_0356_b_24L而虹而長且久則成之也勞費甚大

009_0356_c_01L한 사람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요, 하루 만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교斷橋는 부사浮槎(樂安의 옛 이름)의 동문洞門에 있다. 큰 냇물이 쏟아져 내려와 성낸 물결을 맞아들이는데, 그 넓이는 화살이 날아갈 만한 거리이고, 그 깊이는 한 길 남짓 된다. 여기에 또 개펄이라서 발이 잘 빠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건너가기도(揭厲)236) 어렵고 말 역시 머뭇거릴 뿐 건너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습性習 상인上人이 사람들을 건네주려는 마음을 선뜻 내면서 저 썩기 쉬운 다리를 피하고 오래 견딜 수 있는 다리를 지향하였다. 그리하여 그 산을 깎아내어 길이 귀천貴賤과 인축人畜으로 하여금 모두 차안此岸을 떠나 피안彼岸에 오르게 하고자 하였으니, 어찌 위대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터럭 하나로는 공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잔질을 많이 하면 바다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믿을 것이 하늘이겠는가, 땅이겠는가. 하늘이 덮어 주고 땅이 실어 준다 하더라도, 일의 성패는 그 책임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사품四品의 사람 중에 사士가 으뜸을 차지하는바, 고명高明한 지혜로 그 풍도를 들으면 기뻐하겠기에 이렇게 사연을 갖추어 고하게 되었다. 보시를 하는 것은 집에 재물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속으로 믿느냐 비웃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태안사 봉서암 신축 모연문
태안사泰安寺는 신라 혜철 국사慧徹國師가 창건한 절이다. 많은 세월 속에 누차 병화兵火를 겪은 끝에 꿩이 날고 새가 나래를 치는 듯한(翬飛鳥革)237) 건물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여우와 토끼의 놀이터가 된 것이 언제인지 성상星霜을 기억할 수도 없다. 그리하여 국로國老의 귀비龜碑와 안탑雁塔도 글자가 파묻힌 채 땅에 엎드려 있고, 이끼에 뒤덮인 채 하늘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 뒤에 방포方袍238)의 무리가, 고인古人의 유적이 오래도록 가시덤불 속에 묻혀 있음을 깊이 개탄하고는, 약간의 전당殿堂을 겨우 짓고서 지금까지 이어 왔는데, 골이 깊고 세상과 멀어 거승居僧이 매우 적기만 하니, 퇴락하고 피폐한 그 정상은 차마 입에 올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예로부터 땅을 잘 고르는 자가 말하기를, “이곳은 하늘이 아끼고 땅이 숨긴 곳인데, 다행히도 혜철 국로國老에게 간파되어 성대히 총림叢林을 이루었다. 그 전성시대에는 소위 봉서암鳳瑞庵이 안산案山의 뿌리에서 제압하여 마치 봉황이 상화相和하는 것처럼

009_0356_c_01L非一人之獨任非一日之可爲也斷橋
009_0356_c_02L浮槎之洞門大川下注怒潮迎入
009_0356_c_03L濶一箭過其深一丈餘泥且濃人難
009_0356_c_04L揭厲馬亦躑躅是以性習上人頓發
009_0356_c_05L濟人之心而厭彼易朽欣其堅且久
009_0356_c_06L剷諸他山永使貴賤人畜離此岸而登
009_0356_c_07L彼岸豈不偉㦲然一毛難毬衆勺成
009_0356_c_08L則所恃天乎地乎天雖覆地雖載
009_0356_c_09L事之成壞責在乎人人之品有四
009_0356_c_10L士冠于首可以高明之智聞其風而悅
009_0356_c_11L故具此白施之爲不在家之有無
009_0356_c_12L心之信笑

009_0356_c_13L

009_0356_c_14L泰安寺鳳瑞庵新建募緣文

009_0356_c_15L
泰安寺者羅朝慧徹國師之所剏也
009_0356_c_16L歷年所屢經兵火翬飛鳥革之構
009_0356_c_17L爲灰燼狐兎戱走之場不記星霜
009_0356_c_18L老之龜碑鴈塔字沒而伏地苔封而指
009_0356_c_19L天而已厥後方袍之徒深慨古人之遺
009_0356_c_20L久埋榛莾之中僅構若干殿堂
009_0356_c_21L流至于今洞邃世遠居僧甚少其彫
009_0356_c_22L弊之狀不忍齒錄古來擇地者曰
009_0356_c_23L處天之慳地之秘而幸爲徹老之所破
009_0356_c_24L蔚爲叢林方其全盛時所謂鳳瑞庵

009_0357_a_01L주빈主賓이 상응하였다. 지금은 주主가 그 빈賓을 잃고 봉鳳이 그 황凰을 잃었으니, 적막하게 된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이 말이 매우 이치에 맞지만, 누가 손에 침을 뱉고 마음속으로 맹세하면서 서원한 대로 실천하며 그 책임을 떠맡으려 하겠는가. 그래서 지금까지 머뭇거리기만 하였으니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변변찮은 일개 납자衲子로서 대원왕大願王239)을 발하여 흥복興復의 거조를 일으키려 하는데, 일은 크고 힘은 미약한 것이 그야말로 우로愚老가 산을 옮기고 정위精衛가 바다를 메우려는 것240)과 같다. 이것이 비록 역량을 헤아리지 않은 하나의 일이긴 하나, 그래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인과因果의 도리를 잘 아는 단신檀信들이 어느 곳에나 바둑알과 별처럼 널려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손수 선실禪室을 구하면 백 가지 진식珍食이 손을 대는 대로 현성現成할 것이니, 복을 구하고 죄를 뉘우치려 한다면 이 일을 놔두고서 또 무엇을 하겠는가. 아무리 적어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요,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을 것이다. 왕국의 기틀이 공고해지고 성상의 수명이 유구하기를 우러러 축원하는 바이다.
조계산 송광사 함청각 단청 모연문
송광사松廣寺는 해동의 유명한 일대 가람으로서 온 나라 사람들이 귀천을 막론하고 한번 가서 보지 못하면 평생의 한으로 여기고 있는 터이다. 그 이유는 열여섯 분 성인聖人241)의 유적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요, 침계루枕溪樓와 임경당臨鏡堂과 함청각含淸閣의 삼절三絶이 솥발처럼 옥계玉溪 위에 높이 임하여 꿩이 날고 새가 나래를 치는 듯한(翬飛鳥革) 건물의 그림자를 명경지수明鏡止水 속에 드리우고 있고, 금슬과 같은 솔바람과 시냇물 소리가 유객遊客의 귀를 상쾌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무릇 복선福善을 공문空門에 심으려고 한다면, 이곳을 놔두고 또 어디로 가겠는가.
사승寺僧이, 함청각이 나무다리 위에 있는 만큼 쉽게 썩을 염려가 있다 하여 돌로 무지개다리를 만든 다음 그 위에 다시 새롭게 세우니, 경상景像이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여기에 만약 승요僧繇242)의 묘한 솜씨를 가하여 새로운 건물의 얼굴을 생기 있게 단장한다면, 보는 이들의 눈이 번쩍 뜨이고 마음이 흔들려

009_0357_a_01L壓于案山之根主賔相應若鳳凰之相
009_0357_a_02L今則主失其賔鳳失其凰其爲岑
009_0357_a_03L不亦宜乎此語甚爲當理而誰能
009_0357_a_04L唾手矢心服其言而擔其任耶因循至
009_0357_a_05L實可歎也故我一壞衲發大願王
009_0357_a_06L擬作興復之擧事大力微政如愚老移
009_0357_a_07L精衛塡海雖是不量力之一事而不
009_0357_a_08L生怖畏者正以知因識果檀信碁布星
009_0357_a_09L羅於在在處處耳手構禪室百般珎食
009_0357_a_10L隨手現成則夫欲邀福懺罪者捨此奚
009_0357_a_11L少少非厭多多益善仰祝王碁 [13]
009_0357_a_12L聖壽悠久

009_0357_a_13L

009_0357_a_14L曹溪山松廣寺含淸閣丹雘募緣說

009_0357_a_15L
松廣寺爲海東一大名藍而合國人無
009_0357_a_16L貴賤不得一見爲生平恨者非獨十
009_0357_a_17L六聖之遺躅尙存抑亦枕溪樓臨鏡堂
009_0357_a_18L含淸閣三絕鐺足高臨玉溪之上
009_0357_a_19L翬飛鳥革之影印於明鏡之中松琴澗
009_0357_a_20L瑟之聲爽諸遊客之耳凡欲種福善
009_0357_a_21L於空門者捨此而焉徃也㦲寺僧以
009_0357_a_22L含淸閣據木橋上易朽爲慊石以虹
009_0357_a_23L更新其上景像倍簁於前若加以
009_0357_a_24L僧繇妙手活畫新構之面則觀者目活

009_0357_b_01L마치 옥경玉京 위의 십이루十二樓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빈도가 그 책임을 떠맡았으나 비용은 많이 드는데 역량은 부족해서 혼자 마련하기 어렵기에 많은 털을 빌려서 공(毬)을 만들고자 한다. 만약 선善을 좋아하는 분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일대 호사好事를 이룰 수가 있겠는가.
힘이 닿는 대로 보시하여 불후不朽의 선인善因을 함께 맺으시기를 삼가 바라는 바이다. 인과가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은 바로 형체와 그림자, 그릇과 거푸집의 관계와 같으니,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인하여 축원하는 바이다.
태안사 삼일암 신축 모연문
선사禪舍의 시작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우리 만정각자滿淨覺者(世尊)가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로 서천西天에 자취를 응했을 적에 사위국의 급고 장자給孤長者가 고산高山처럼 우러러보며 겸금兼金을 태자의 땅에 깔고서 천중천에게 정사를 헌납하였다.243)
이 일이 있은 뒤로부터 아전鵝殿이 새처럼 날개를 펴고 앙려鴦廬가 꿩이 날아가듯 세워져서 마음을 닦는 인사들이 각기 있을 곳을 얻게 됨은 물론이요, 재물을 보시하는 자들이 복을 구하고 죄를 참회하게 되었다.
이 삼일암三日庵이 비록 옛터는 아니지만, 앞 봉우리들이 겹겹이 절을 하고 청룡靑龍과 백호白虎가 층층이 보듬고 있으니 실로 수도하도록 잘 도와줄 곳이다. 그래서 내가 변변찮지만 몇 칸의 선실禪室을 엮어서 운유雲遊의 상사上士로 하여금 송광사 상사당上舍堂의 인연244)과 같이 사흘 동안 앉아서 마음을 밝히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심 깊은 단나檀那는 유한한 재물을 아끼지 말고 무궁한 복을 이루시기를 삼가 바라노니, 이와 같은 행운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바람은 화순하고 비는 제때에 내리며,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해지기를 삼가 축원하는 바이다.
백운암 불전 모연문
불전佛殿을 지은 것은 백장 화상百丈和尙이 총림을 건치建置한 때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그 제도가 크게 유포되었는바, 이는 거찰巨刹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난야蘭若에도 역시 그러하였다.

009_0357_b_01L心搖如在玉京上十二樓矣是以貧道
009_0357_b_02L荷其任擧嬴力詘難以獨辦須假衆毛
009_0357_b_03L以成毬若非諸樂善之士何以畢竟一
009_0357_b_04L大好事乎伏望隨力隨施共結不朽之
009_0357_b_05L因果不忒正如影之形器之模然
009_0357_b_06L何曾疑焉因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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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57_b_08L泰安寺三日庵新建募緣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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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舍之始其來久矣我滿淨覺者以三
009_0357_b_10L十二八十種應跡西天舍衛國給孤長
009_0357_b_11L仰止高山布兼金於太子之地獻精
009_0357_b_12L舍於天中天自是厥後鵝殿鳥革
009_0357_b_13L廬翬飛修心之士各得其所而使施
009_0357_b_14L財者邀福懺罪焉此三日庵者雖非
009_0357_b_15L舊址而前峰疊揖龍虎層抱實是助
009_0357_b_16L道之處也故我無似欲結數間禪室使
009_0357_b_17L雲遊上士坐三日而明心如松廣寺上
009_0357_b_18L舍堂之緣伏願有信檀那莫靳有限之
009_0357_b_19L以成無窮之福何幸如之伏祝風
009_0357_b_20L和雨順國泰民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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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57_b_22L白雲庵佛殿募緣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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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殿之作始於百丈和尙建置叢林
009_0357_b_24L自是其制大布非獨巨刹蘭若亦爾

009_0357_c_01L그래서 보시를 행하여 복전을 가꾸시라고 권유하게 되었다.
백운암은 용문사 동부洞府 위에 있다. 흉년에 도적이 불을 질러서 소실되었는데, 우선 좌우의 두 건물만 세웠을 뿐, 불전은 지금까지 착수하지 못하였다.
지금 모 상인上人이 이를 개탄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졌으니, 그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큰 집은 하나의 재목으로 지탱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삼가 바라건대 여러 단나檀那들은 각각 힘이 닿는 대로 보시함으로써 당래에 대복大福의 과보를 받을 인연을 함께 맺도록 하시라. 이 밖에 또 무슨 말을 하겠는가.
성기암 상량문
산악이 신령한 기운을 내려 성인을 잉태하니 이구尼丘245)가 구해九垓(九州)에 날고, 영우靈祐가 위산潙山을 얻어 선문禪門을 여니 동산桐山246)이 팔로八路(八道)에 행해졌도다.
하늘이 아낀 것을 간파하고 땅이 숨긴 것을 열었나니, 일을 주관한 상인上人은 6척의 작은 체구에 삼명三命247)의 뛰어난 기예를 지녔도다.
방에 경쇠만 매달린 적취積翠의 백 년 인생이라 해도, 뱃속에 우레 소리 자주 들리는 삼순구우三旬九遇는 어떻게 해야 하나.248)
벌은 꽃을 채취하여 꿀을 만들고, 까치는 가지를 물어다 둥지를 트나니, 집집마다 억지로 웃고 곳곳마다 꼬리를 흔들도다.
백련白蓮의 정사精舍는 동림東林 원 법사遠法師249)의 높은 정취요, 벽운碧雲의 정거淨居는 서악西岳 휴 상인休上人250)의 맑은 운치로다.
오늘날의 그림자와 메아리는 바로 옛사람의 형체와 소리일 터, 길상한 땅이 길상한 사람을 만나고, 신령이 숨긴 곳이 신인神人의 눈에 드러났도다.
창을 돌이켜 잡고 방에 들어오는 것을 혜철 국사惠哲國師는 보지 못하였으나, 사람이 하늘을 이기기도 하나니 옥황상제가 막을 수 없었도다.251)
공수公輸252)가 도끼를 휘두르고 이루離婁253)가 먹줄을 살폈나니, 대부大夫의 양재良材254)를 죄다 들이고 금강金剛의 이기利器를 모두 썼도다.
각각 제자리에 거하여 높고 곧은 기둥들(覺覺之楹)255)을 서로 마주하고, 그 몸을 홀로 바르게 하여 겹겹이 바위가 쌓인 산(巖巖之石)256)에 외로이 섰도다.
불일佛日에 비한다면 황공하다 하겠지만, 오산鰲山(삼신산)과는 어깨를 견줄 수 있으리니, 원앙元央의 날개를 덮어서 쉬게 하고, 무지개 허리를 비껴서 들 만하도다.

009_0357_c_01L此化緣植福田之勸也白雲庵在龍門
009_0357_c_02L寺洞府上凶歲爲賊火所焚先構左右
009_0357_c_03L兩堂而未及佛殿今也某上人慨之
009_0357_c_04L荷重擔其力大矣然而大厦非一木之
009_0357_c_05L所支伏乞諸檀那各隨力而施之
009_0357_c_06L結當來得大福報之因此外更何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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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57_c_08L聖祈庵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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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降靈而孕聖尼丘飛九垓祐得潙而
009_0357_c_10L開禪桐山行八路天慳旣破地秘方
009_0357_c_11L幹事上人六尺短軀三命長伎
009_0357_c_12L磬懸於積翠雖百年一期膓雷鳴於多
009_0357_c_13L奈三旬九遇蜂採花而成蜜鵲含
009_0357_c_14L枝而爲巢家家强顏處處搖尾白蓮
009_0357_c_15L精舍東林遠法師之高情碧雲淨居西
009_0357_c_16L岳休上人之淸致即今日之影響乃古
009_0357_c_17L人之形聲吉地遇於吉人神秘暢於神
009_0357_c_18L戈返入室哲國師之未曾窺人亦
009_0357_c_19L勝天玉上帝之不能禦公輸運斧
009_0357_c_20L屢督繩材盡大夫之良器皆金剛之利
009_0357_c_21L各據本位相對覺覺之楹獨善其身
009_0357_c_22L孤立巖巖之石雖膽喪於佛日庶肩比
009_0357_c_23L於鰲山元央之翼蔽且休螮蝀之腰
009_0357_c_24L橫可擧

009_0358_a_01L
拋樑東          들보 동쪽에 떡을 던지세나
金烏飛出白雲中      금오257)가 흰 구름 속에 날아오르네
曼殊三月羞難掩      만수258)가 삼월에 부끄러움 숨기지 못해
應是朝朝滿面紅      아침마다 얼굴 가득 붉게 물들인다오
南            들보 남쪽에 떡을 던지세나
地擎奇巖護此庵      땅이 기암 떠받들어 이 암자를 호위하네
獨立千秋腰不屈      천추에 홀로 서서 허리를 굽히지 않나니
一如增慢一如男      증상만增上慢 같기도 하고 사나이 같기도 하고
西            들보 서쪽에 떡을 던지세나
島外靑山散不齊      섬 밖에 푸른 산이 흩어져 들쭉날쭉
栢樹庭前雖不立      잣나무가 뜰 앞에 서 있지 않아도
祖師來意已全提      조사가 온 뜻이 완전히 드러났네259)
北            들보 북쪽에 떡을 던지세나
俯視蜂房何錯落      승방僧房을 굽어보니 어찌 저리도 촘촘한지
鳥革翬飛豈爾功      조혁휘비260)가 어찌 그대들 공이리오
毫光蓋覆兒孫力      부처님이 자손들을 돌보아주신 덕분이지
上            들보 위쪽에 떡을 던지세나
靑天九萬無塵坱      푸른 하늘 구만리에 티끌이 하나 없네
高懸日月照無方      높이 달린 일월이 비추지 않는 곳 없나니
鐵圍山間胡不徃      철위산261) 사이에도 어찌 가지 않으리오
下            들보 아래쪽에 떡을 던지세나
地輪之次金輪也      지륜의 그 다음은 금륜262)이로세
可憐八熱八寒徒      가련해라 팔열과 팔한지옥의 무리여
盡是當年非法者      모두 당년에 비법자263)였으리니
삼가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에는 창 앞의 범도 착해지고, 뜰 위에 연꽃이 피어나는 가운데 밥이나 먹고 똥만 채우는 비실거리는 파리 떼는 화염 속에 쓸어버려지고, 얼음 창자 무쇠 안목의 선객禪客들만 꽃향기 좇는 나비처럼 찾아오시기를.
매학당梅鶴堂의 기문
매학당의 주인이 산수山水 가운데 고요하고 한산한 땅에 초헌草軒 한 채를 엮어 놓고는, 처사處士의 혼264)을 불러다 섬돌 위에 안치하고, 청전靑田의 깃265)을 불러다 층계 아래에서 기르니, 아래와 위의 자태가 모두 한가하고 그 빛이 희디희었다. 매화가 피고 지는 그 속에 오히려 출처를 신중히 하는 자세가 엿보이고, 학의 노래와 춤 속에도 현포玄圃266)에서의 즐거움이 여전하니, 어찌 백설白雪의 백白과 백옥白玉의 백白처럼 색만 희다뿐이겠는가.267) 주인이 이물二物을 가지고 일당一堂을 이름 지은 그 이면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
주인은 세속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람이다. 안씨顔氏의 단사표음簞食瓢飮268)의 즐거움을 우러르며 똑같이 될 것을 생각하고, 유자孺子의 탁영탁족濯纓濯足269)의 노래를 듣고서 거스르지 않는 자이니, 이 집을 저 매화와 학으로 이름 지은 것도 허황된 일이 아니요, 서로 어울린다고 하겠다.
아, 주인이 소유한 것이 어찌 매화와 학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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拋樑東金烏飛出白雲中曼殊三月羞
009_0358_a_02L難掩應是朝朝滿面紅地擎奇巖護
009_0358_a_03L此庵獨立千秋腰不屈一如增慢一如
009_0358_a_04L西島外靑山散不齊栢樹庭前雖不
009_0358_a_05L祖師來意已全提俯視蜂房何錯
009_0358_a_06L鳥革翬飛豈爾功毫光盖覆兒孫力
009_0358_a_07L靑天九萬無塵坱高懸日月照無方
009_0358_a_08L鐵圍山間胡不徃地輪之次金輪也
009_0358_a_09L可憐八熱八寒徒盡是當年非法者

009_0358_a_10L
伏願上樑之後窓前虎善庭上蓮生
009_0358_a_11L飯帒屎囊掃蹇蠅於火焰氷膓鐵眼
009_0358_a_12L引好蝶於花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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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58_a_14L梅鶴堂記

009_0358_a_15L
梅鶴堂主人於山水中靜散地結一草
009_0358_a_16L招處士之魂安於階上喚靑田之翮
009_0358_a_17L籠於階下下上閑姿鶴鶴其色爰開
009_0358_a_18L爰落尙有出處之態載歌載舞不改
009_0358_a_19L玄圃之樂豈如白雪之白白玉之白
009_0358_a_20L但白者㦲主人之以二物名一堂
009_0358_a_21L深旨㦲主人拔俗者仰顏氏簞食瓢飮
009_0358_a_22L之樂而思齊耳孺子濯纓濯足之歌而
009_0358_a_23L不逆者名此堂以彼物非浮也稱也
009_0358_a_24L主人所有豈獨梅鶴而已㦲若其

009_0358_b_01L가령 그 큰 산이 밖에서 에워싸고 작은 산이 안에서 보듬고 있는 것은 주인의 성곽城郭이 되고, 소소蕭蕭한 대나무 소리와 석석淅淅한 솔바람 소리는 주인의 금슬琴瑟이 되고, 우르릉 쾅쾅 쏟아지는 폭포는 주인의 종고鍾鼓가 되고, 삼삼森森히 벌여 선 나무숲은 주인의 병장屛障이 되고, 둥글고 매끈한 비단 돌은 주인의 베개가 되고, 맑고 투명한 옛 못은 주인의 거울이 되고, 희고 조촐한 산 달(山月)은 주인의 등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중일엄一重一掩은 주인의 폐부肺腑가 되고, 산새와 산꽃은 주인의 우우友于가 될 것이며,270) 긴 하늘과 두터운 땅은 주인의 이불과 요가 되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주인의 붕우가 될 것이다.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주인의 배를 채우는 것은 물가의 아기 고사리요, 주인의 입을 헹구는 것은 바위틈의 옥 같은 샘물이요, 주인의 눈이 트이게 하는 것은 지는 노을과 조각구름이다.
그러고 보면 번거롭게 경영할 것도 없이 백 년의 생애가 풍족하고, 고달프게 시달릴 것도 없이 일신一身의 기거가 편안하다. 피곤하면 잠자고 배고프면 밥 먹으며, 추우면 옷을 입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면서 저절로 무위無爲하고 무사한 하나의 한가하고 한가한 사람이 될 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으며 어찌 후련하지 않겠는가.
호중壺中의 천지271)라서 세인은 알지 못하고, 귤리橘裏의 건곤乾坤272)이라서 제왕도 수세收稅하지 못하나니, 그렇다면 녹수綠水와 청산을 뺏을 자가 누구이겠으며, 청풍과 명월을 다툴 자가 누구이겠는가. 여기에서 웅경조신熊經鳥伸273)하고, 여기에서 탄하복기呑霞服氣274)하다가 천년 뒤에 세상이 싫어지면, 손은 섬돌 위 옥 같은 매화의 가지를 붙잡고, 몸은 층계 아래 눈 같은 깃털의 학에 올라타고서 구만리 구름 너머 저 높은 하늘로 표연飄然히 날아가리니, 십이경루十二瓊樓에 여유로이(于焉) 앉아 있을 자가 바로 주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주인이 이 집의 이름을 이렇게 짓고, 객이 이 집의 기문記文을 이렇게 지은 것도 참으로 후인後人에게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綠水靑山         녹수綠水와 청산은
天地所有         천지의 소유인데
而主人有之        주인이 소유하였고
雪鶴氷梅         설학雪鶴과 빙매氷梅는
羽人所主         우인羽人(신선)이 주관하는데
而主人主之        주인이 주관을 하고 있으니
主人主人         주인이여 주인이여
人外人也夫        그대는 사람 사는 세상 밖의 사람이로다

009_0358_b_01L大山外擁小山內抱者主人之城郭也
009_0358_b_02L竹聲蕭蕭松聲浙浙者主人之琴瑟也
009_0358_b_03L殷殷雷瀑主人之鍾皷也森森列樹
009_0358_b_04L主人之屏障也團圓錦石主人之枕也
009_0358_b_05L澄淸古潭主人之鏡也皎潔山月
009_0358_b_06L人之燈也一重一掩主人之肺腑也
009_0358_b_07L山鳥山花主人之友于也長天厚地
009_0358_b_08L主人之衾席也淸風明月主人之朋友
009_0358_b_09L至若望主人之腹者澗眉兒蕨也
009_0358_b_10L主人之口者石罅瑤泉也活主人之目
009_0358_b_11L落霞斷雲也然則無所營營而百年
009_0358_b_12L之生涯足無所役役而一身之起居安
009_0358_b_13L困來眠飢來食寒則衣渴則飮自作
009_0358_b_14L無爲無事一箇閑閑人也豈不快㦲
009_0358_b_15L不暢㦲壺中天地世人不知橘裡乾坤
009_0358_b_16L帝王不收則綠水靑山奪之者誰
009_0358_b_17L風明月爭之者誰熊經鳥伸於斯呑霞
009_0358_b_18L服氣於斯千載厭世手把階上玉梅枝
009_0358_b_19L身騎階下雪翎鶴九萬雲霄飄然而擧
009_0358_b_20L十二瓊樓于焉而坐者非主人歟
009_0358_b_21L則主人之名此堂客之記此堂誠不愧
009_0358_b_22L於後人矣乃爲歌曰綠水靑山天地所
009_0358_b_23L而主人有之雪鶴氷梅羽人所主
009_0358_b_24L而主人主之主人主人人外人也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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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선암사 영성루의 기문
언관彦寬과 영민英敏 두 장로가 마음과 힘을 함께 합쳐 복福을 구하고 선善을 향하는 집을 찾아다니며 근골筋骨을 수고한 결과, 선암사仙巖寺 대웅전 앞에 큰 누각 하나를 지어 기어이 낙성落成하고야 말았다. 이에 강남江南의 과객過客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 신라시대에 대각 국로大覺國老가 이 절을 창시한 이래로 거의 1천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275) 송골매처럼 빠르고 날쌘 자들이 간혹 있었지만, 이 사원에 이 누각을 세웠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니, 그러고 보면 이 사원이 마치 사람의 몸에서 한 부분이 빠진 것처럼 지내온 지도 오래되었다고 하겠다.
무릇 천지의 물건은 모두 뭔가를 의지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붕새는 바람의 힘이 불어난 뒤에야 구만리 하늘로 치솟는 날개를 떨칠 수 있고, 천리마는 백락伯樂을 만난 뒤에야 천 리를 치달리는 발을 펼 수가 있으며, 신룡神龍은 운우雲雨를 얻은 뒤에야 하늘에 오르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의지함이 없이 이루어지는 이치는 없으니, 그렇다면 이 사원만 있고 이 누대가 없을 수 있겠으며, 이 누대가 없이 이 사원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아, 이 누대가 지금에야 있게 되고 옛날에는 없었으니, 옛사람이 오늘날의 사람보다 못한 것이며, 오늘날의 사람이 옛사람보다 나은 것인가. 대각 국로는 그 깨달음을 크게 얻은 뒤에 그 이름을 얻었을 것이니, 그렇다면 남보다 뛰어난 것이 구만리나 높을 뿐만이 아닐 것인데, 이 누대를 짓지 않음으로써 이 사원에 1천여 년 동안이나 흠이 있게 한 것은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추측컨대 대각이 두 장로를 1천여 년이나 오래 기다린 것은 언 대사彦大師가 3백 년 뒤의 비의非衣를 기다린 것과 같다고 할 것인가?276) 그러나 저기에는 기록이 있고 여기에는 없으니 분명히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 이 사찰이 이 누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사람이 몸을 갖춘 것과 같고, 이 누각이 이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붕새와 바람, 신룡과 구름의 관계와도 같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찰이 이루어진 것은 누각에 있고,

009_0358_c_01L曹溪山仙巖寺迎聖樓記

009_0358_c_02L
彥寬英敏二長老同心并力苦骨勞筋
009_0358_c_03L於求福向善家於仙巖寺大雄殿前
009_0358_c_04L一大樓落成而後已江南過客曰未是
009_0358_c_05L有也自羅朝大覺國老創始而來
009_0358_c_06L所幾至千有餘其間俊若鷹快若鷂者
009_0358_c_07L時或有之而未聞有立此樓於此寺
009_0358_c_08L此寺之正如人身上欠一體而來久矣
009_0358_c_09L凡天地之物皆有所待而後成故鳥之
009_0358_c_10L鵬也而培風然後能奮九萬之翼馬之
009_0358_c_11L騏也而伯樂然後能展千里之足龍之
009_0358_c_12L靈也而雲雨而後能爲上下于天是故
009_0358_c_13L無其待而成者無其理焉然則有此寺
009_0358_c_14L而無此樓可乎無此樓而成此寺可乎
009_0358_c_15L此樓也始於今而無於古古之人下
009_0358_c_16L於今人乎今之人賢於古人乎大覺國
009_0358_c_17L大其覺而後得其名則出乎人上
009_0358_c_18L不趐九萬之高而不爲此樓使此寺帶
009_0358_c_19L一玷於千有餘年大可恠也意以推之
009_0358_c_20L大覺之待二老於千有餘年之久如彥
009_0358_c_21L大師之待非衣於三百年之後者耶
009_0358_c_22L彼有誌而此無難明論也此寺此樓
009_0358_c_23L以成如人之具體然此樓此人以成
009_0358_c_24L如鵬之風龍之雲然然則寺之成在乎

009_0359_a_01L누각이 이루어진 것은 사람에 있다고 할 것인데, 사람이 이루어지는 것은 과연 어디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런데 이 누각 위에 올라서면 잘 드는 칼과 긴 창이 늠름하고 열렬烈烈하게 용정龍旌과 준여隼旟의 깃발 사이에 빽빽이 도열해 서 있어서 공중에 나는 새들도 지나갈 수 없을 것 같기도 한데, 이는 팔면의 산들이 모두 날카로운 봉우리들이기 때문에 자연히 드는 느낌이다. 또 산 위의 한 쌍의 백룡白龍이 골짜기의 구슬 하나를 내려다보고는 두 길로 나뉘어 머리를 들고 꼬리를 떨치며 치달릴 적에 전후로 우열이 없는 까닭에 그 구슬을 두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몸을 합쳐서 가는 것 같기도 한데, 이는 동서의 두 시냇물이 마지막에 하나의 시냇물로 합쳐지는 것을 볼 때의 느낌이다. 이런 경치가 그중에서 큰 것이고, 그 밖의 허다한 풍물에 대해서는 이루 다 거론할 수가 없다.
이 누대의 공사는 신유년(1681, 숙종 7) 봄에 시작해서 그 해 봄에 마쳤다. 어찌 그리도 빨랐던가. 이는 또한 온 사원이 취한 보거輔車의 형세277)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성迎聖이라고 이름을 걸어 놓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기에서 운수雲水(衲子)의 자리를 베풀고, 여기에서 경음鯨音을 떨치고, 여기에서 어범魚梵을 진동하고, 여기에서 사성四聖278)을 영접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이 이름을 지은 자는 누구인가. 이 절의 주지인 약휴若休라는 사람이다. 그가 나에게 청하기에 이렇게 기문을 지은 것이다.”
양성당의 기문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사는 것은 하얀 망아지가 담장의 틈 사이를 지나가는 것과 같다.279) 그럼에도 파초와 같은 연약한 체질을 가지고 금석金石과 같은 견고한 계책을 세우면서 쌓기만 하고 흩으려 하지 않는다. 어찌 흩으려 하지 않을 뿐이겠는가. 또 쌓은 위에 더욱 쌓아 가면서 아무리 쌓여도 싫어할 줄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작은 물건이라도 얻으면 기뻐해 마지않고, 하나의 작은 물건이라도 잃으면 슬퍼해 마지않는다. 그런 사람은 가련하다고 할 것이다. 고금을 살펴볼 때 여기에서 벗어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만약 이 몸이 나그네와 같음을 생각하여 저 재물에 매이는 것을 두려워하며, 재물이 없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나에게 있는 것을 스스로 흩으면서 봉황의 날개를 떨쳐 정사精舍에 잠시 깃들었다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鳥行)280) 쾌활한 납자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호쾌한 사람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 건물을 지은 대사의 사람됨을 알 수 있으니,

009_0359_a_01L樓之成在乎人人之成在於何所
009_0359_a_02L若其如快劍長戟凛凛烈烈森然儼立
009_0359_a_03L於龍㫌隼旟之間而飛鳥不能過者
009_0359_a_04L面群峰皆銳峰者也又如山上雙白龍
009_0359_a_05L賭一珠於壑分二道驤首奮尾而奔
009_0359_a_06L無强後無鈍故挾其珠於兩腋之間
009_0359_a_07L合體而去者東西二溪終一溪者也
009_0359_a_08L其大者其餘許多風物不可縷擧
009_0359_a_09L之成始於辛酉春終於其年秋何其
009_0359_a_10L速歟亦乃擧寺輔車之勢而然也揭號
009_0359_a_11L迎聖者何設雲水於斯振鯨音於斯
009_0359_a_12L動魚梵於斯迎四聖於斯故云名
009_0359_a_13L名者誰此寺住持名若休者惎余爲記

009_0359_a_14L

009_0359_a_15L養性堂記

009_0359_a_16L
人生天地間猶白駒之過隙乎以芭蕉
009_0359_a_17L之質作金石之計積聚而不散乎豈唯
009_0359_a_18L不散又從而愈積乎愈積而愈不厭乎
009_0359_a_19L得一小物以欣欣乎失一小物而戚戚
009_0359_a_20L其人乎可憐乎詳乎古今出乎此
009_0359_a_21L者幾乎如有念此身如寄畏彼財爲
009_0359_a_22L不厲彼無自破我有奮鳳翼精舍
009_0359_a_23L鳥行快衲者以若人爲何人乎快人
009_0359_a_24L乎非乎然則作此堂大師乎其爲人可

009_0359_b_01L이런 인물을 저 가련한 사람과 비교한다면, 몇 층이나 높으며 몇 리나 멀다고 할 것인가.
감인堪忍(사바세계)의 세상은 괴롭고 안양安養 극락세계의 세계는 즐겁다. 하루 저녁에 종기를 터뜨리고서281) 이 세상을 떠나 저 세계로 가는 것이 슬픈 일이겠는가. 양성養性은 종오 대사宗悟大師의 법호이며 당호堂號이다.
승평부 대광산 용문사의 새로 그린 용화회에 대한 기문
우리 본사 석가불의 좌보처인 미륵대사彌勒大士는 부처가 멸도한 뒤에 도솔천兜率天에 상생上生하여 본사가 했던 것처럼 상호相好282)의 복업福業을 닦고 있다가 미래에 감겁減劫283)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수명이 8만 세일 적에 바라문의 집에 하생한 뒤에 출가하여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도를 이루고는 삼회三會의 설법을 통해 사람들을 무수히 제도할 것이다.284)
익翊 장로가 그 풍도를 듣고 기뻐한 나머지, 소매 속에 글을 넣고 다니며 화연化緣285)을 하는 한편 화사畫師인 치일致一 비구를 불러 미륵대사가 하생하고 출가하고 성도하고 설법하는 모습을 비롯해서 그 좌우보처左右補處와 여러 대제자들과 인천人天 팔부八部 대중이 에워싸고 설법을 듣는 장면을 수십 폭 저포苧布 위에 그리게 한 뒤에 극락대전極樂大殿의 오른쪽 벽 위에 엄연儼然히 걸어 놓음으로써 한 번 보거나 한 번 예배하는 자들 모두가 수승한 인연을 맺게 하였으니, 장로의 마음이야말로 보살의 마음이라고 하겠다.
내가 당시에 은봉隱峰의 소암小庵에 있다가 이 말을 듣고 무한히 기뻐하였는데, 일을 끝내고 나서 장로가 몇 장의 초지草紙를 손에 들고 나를 찾아와서는 간절히 말하였다.
“일이 끝났으니 이를 기록해서 보는 자들로 하여금 누가 화연化緣을 했고, 누가 보시를 하였으며, 증사證師는 누구이고, 화사畫師는 누구이며, 몇 년 몇 월에 시작을 하고 일을 마쳤으며, 시화施化와 찬훼讚毁의 인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신자는 더욱 믿게 하고 불신자는 믿음을 내게 한다면, 이것도 하나의 교화 사업이 될 것이다. 이는 나의 공을 자랑하려 해서도 아니요, 스님의 글솜씨를 뽐내려 해서도 아니니, 스님은 힘써 주기 바란다. 스님이 이미 권소勸疏를 지었는데

009_0359_b_01L知乎持譬彼可憐者高幾層遠幾里乎
009_0359_b_02L堪忍兮苦安養兮樂一夕決疣捨此
009_0359_b_03L而彼悲乎養性宗悟大師之法號堂號
009_0359_b_04L

009_0359_b_05L

009_0359_b_06L昇平府大光山龍門寺新畫龍華會
009_0359_b_07L

009_0359_b_08L
我本師釋迦佛左補處彌勒大士佛滅
009_0359_b_09L度後上生兜率修相好業如本師然
009_0359_b_10L於未來減刼中人壽八萬歲時下生波
009_0359_b_11L羅門家出家成道龍華樹下三會說
009_0359_b_12L度人無數翊長老聞其風而悅之
009_0359_b_13L袖䟽化緣召畫師致一比丘 [14] 得其大
009_0359_b_14L士下生出家成道說法之儀及其左右
009_0359_b_15L補諸大弟子人天八部圍繞聽法之狀
009_0359_b_16L于數十幅苧布上儼垂極樂大殿右壁
009_0359_b_17L使一瞻一禮者皆結勝因長老之
009_0359_b_18L即菩薩之心也予時在隱峰小庵
009_0359_b_19L隨喜無限事竟長老手持數張草紙
009_0359_b_20L予曰事畢矣可記之使目之者知其
009_0359_b_21L某化緣某施財證師某畫師某及其
009_0359_b_22L年月始卒施化讃毁之因果敎有信
009_0359_b_23L者增信無信生信則此亦化事耳
009_0359_b_24L非誇我功非衒師文師其勉之師已

009_0359_c_01L지금 또 기문記文까지 지어 준다면, 이는 금상첨화라고 할 것이다. 비록 한 자의 베나 한 말의 곡식을 희사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보시하는 것이 크다고 할 것이니, 어찌 사양하겠는가?”
내가 크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훌륭하다, 장로의 말씀이여. 장로의 거조擧措가 크기도 하다. 과거의 부처에 대해서 곡진하게 그린 것은 세상에 많이 있지만, 미래의 부처를 예상해서 그린 것은 내가 아직 보지 못하였으니, 장로의 희유한 경광耿光이 묻히게 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로는 몇 년 전에 본사의 팔상성도상八相成道相286)을 모사模寫하여 전각에 안치하였는데, 그때 내가 기문을 지은 바가 있다. 또 불전佛殿 앞의 광명석경光明石檠과 재齋를 올릴 때 필요한 난경卵鏡ㆍ욕기浴器와, 소대疏臺와 사로使路에서 각각 첩하帖下한 단의壇衣 등을 장로가 모두 갖추었으니, 장로의 공이 많기도 하다. 경에 이르기를, ‘불상을 맥麥의 크기만큼 만들더라도 무량한 복을 얻는다(造像如麥。 獲福無量。)’287)라고 하였는데, 장로가 만든 것이 맥麥보다 몇 배나 더하고 그 수도 한둘이 아니니, 그 복이 무량하고 또 무량하다고 하겠다. 세간과 출세간의 대복大福을 오직 마음속에 구하는 대로 받을 것인데,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 세간은 공중에 화살을 쏘는 것이요, 출세간은 금강을 먹는 것이다.288)
장로가 말하였다.
“부처를 조성함은 부처를 구하고자 함이니,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는가?”
이에 내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장로가 구하는 것이 크니, 내가 기문을 짓는 것도 행운이라고 하겠다.”
장로가 빙그레 웃었다.
아, 장로가 권소勸疏를 메고 다닌 것이 갑신년(1704, 숙종 30) 늦가을인데, 그 이듬해인 을유년 봄에 일을 완료하였으니,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뒤에 장로의 풍도를 사모하는 자들이 장로가 행한 일을 행하고 장로가 구한 것을 구한다면, 장로의 도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후인들은 힘쓸지어다.
장로의 법자法字는 정익精翊이요, 부사浮槎289) 사람이다. 승평부昇平府 조계산曹溪山 송광사松廣寺로 출가하였다가 이 절로 옮겨 온 것이 지금 수십 년이다.
승평부 대광산 은봉암의 기문

009_0359_c_01L作勸䟽今又記之則此兩也雖不捨
009_0359_c_02L一尺布一斗粟而其施大矣奚讓予破
009_0359_c_03L顏曰善㦲長老長老之擧大矣㦲
009_0359_c_04L盡已過佛世多有之預擬未來者
009_0359_c_05L未之見也長老稀有耿光不可埋也
009_0359_c_06L獨此長老於數年前模本師八相成道
009_0359_c_07L之相閣以安之予已記焉又於佛殿
009_0359_c_08L前光明石檠設齋時所需卵鏡浴器
009_0359_c_09L䟽臺使路各帖下壇衣長老皆備焉
009_0359_c_10L老之功多矣經云造像如麥獲福無量
009_0359_c_11L長老所造過於麥幾倍厥數又非一
009_0359_c_12L則其福無量上又無量矣於世出世
009_0359_c_13L大福報惟心之求奚取焉世箭射空
009_0359_c_14L出世食金剛長老曰造佛求佛豈有
009_0359_c_15L他㦲予曰然則長老之求大矣予之記
009_0359_c_16L幸也長老莞爾長老荷勸䟽於甲申
009_0359_c_17L秋末越明年乙酉春斷手若非幹事之
009_0359_c_18L能若是乎後之慕長老之風者
009_0359_c_19L長老之爲求長老之求則長老之道
009_0359_c_20L終古不墜後人勗之㦲長老法字精翊
009_0359_c_21L浮槎人出家昇平府曹溪山松廣寺
009_0359_c_22L移此寺方數十年

009_0359_c_23L

009_0359_c_24L昇平府大光山隱峰庵記

009_0360_a_01L
내가 영천암靈泉庵에서 대중을 흩어 버리고는,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면서 나의 진성眞性을 기를 만한 소쇄蕭灑한 작은 암자를 찾다가 이 암자가 내 눈에 들어오기에 내려와서 거주하였다.
그 이듬해에 초안初安 장로가 낙포樂浦 어구에서 단교斷橋를 경영하여 돌로 무지개다리를 놓고 있다가 내가 이곳으로 옮겨 왔다는 말을 듣고는, 노쇠한 다리로 걷지 못하고 나귀를 타고 와서 나에게 감사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 암자를 세우고 10여 년 동안 스승을 봉양하였는데, 스승이 돌아가셔서 화욕火浴(茶毗)을 봉행하고는, 나도 연로하였으므로 여기에서 일생을 마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업풍業風에 나부낀 나머지 스스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서 이 암자를 비워 두었는데, 지금 대사가 채워 주셨으니, 이런 다행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이 암자를 경영한 것은 나의 스승이나 나의 몸을 위해서만이 아니요, 또한 백업白業(善業)을 닦는 분들도 편안히 해 드리려는 것이었는데, 지금 그대로 되었으니, 이는 나의 행운입니다.
만약 생계를 꾸리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자가 여기에 산다면, 여기에서 술을 마시고 여기에서 매질을 하며 속문俗文을 읽거나 성내고 화내는 등 온갖 소음騷音이 내 암자를 오염시킬 뿐 선송禪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터인데, 지금 그 일을 면하였으니, 이는 암자의 행운입니다.
이 암자를 만들면서 나는 나의 심사心思를 애태우고 나의 근골筋骨을 고단하게 하였습니다. 앞에 기둥을 세우지 않은 것은 드나들 적에 걸림이 없게 하려 함이요, 뒤에 온돌을 놓은 것은 앉고 누울 때 따뜻하게 하려 함입니다. 이쪽의 꽃은 누가 심고 풀은 누가 옮겼겠습니까. 저쪽의 대臺도 내가 쌓았고 나무도 내가 심었습니다.
바위 위의 외로운 솔을 내 몸처럼 보호하고 난간 앞의 삼연森然한 대나무를 상족上足(제자)처럼 아꼈으니, 이는 상설霜雪을 깔보면서 지조를 변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대절大節과 유사함을 취한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복사꽃을 심고 앞에 오얏꽃을 심어 자르지도 말고 휘지도 말게 한 것(勿翦勿拜)290)은, 말이 없어도 길이 이루어지는 것291)이 마치 천지가 중도를 지키며 만물을 기르는 것과 같음을 중히 여겼기 때문이요, 왼쪽에 감나무를 심고 오른쪽에 배나무를 심어 흙을 쌓고 돌을 쌓은 것은, 목마름을 가시게 하고 배고픔을 면하게 하는 것이 마치 보살이 자기 살을 베어 굶주린 자를 구제한 것과 비슷함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날마다 쓰는 집물什物은 타인의 재화를 빌리기도 하고 나의 힘을 수고롭게 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은 죄다 우리 스님에게 속한 것이니, 남의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나의 것으로 받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심은 것은 북돋워 주고 기울어지는 것은 붙들어 주며,

009_0360_a_01L
予自靈泉庵散衆搜蕭灑小庵不高不
009_0360_a_02L可以養吾眞者而此庵入予眼
009_0360_a_03L下居之明年楚安長老方在樂浦口
009_0360_a_04L營斷橋虹以石聞予移此脚老不能行
009_0360_a_05L騎驢而來謝予曰吾卓此庵奉養師
009_0360_a_06L十餘年師卒火浴吾亦年老欲於此
009_0360_a_07L終吾年偶爲業風所飄不自安空此庵
009_0360_a_08L今大師實焉何幸如之吾之營此
009_0360_a_09L獨爲吾之師爲吾之身亦欲安修白業
009_0360_a_10L而今得之吾之幸也若治產業
009_0360_a_11L群童者居之則酒於斯橽於斯讀俗
009_0360_a_12L嗔怒雜音撼吾庵而不聞禪頌之聲
009_0360_a_13L今免焉庵之幸也此庵之成焦吾心
009_0360_a_14L勞吾筋骨前無柱欲其出入無梗
009_0360_a_15L後有藏欲其坐臥有温這邊花誰栽
009_0360_a_16L草誰移那邊臺吾築樹吾植石上孤松
009_0360_a_17L護之如吾身檻前森竹愛之如上足
009_0360_a_18L取其傲霜雪而不變類君子之大節
009_0360_a_19L於後李於前而勿剪勿拜多其無言
009_0360_a_20L成徑若天地之守中養物杮於左
009_0360_a_21L於右而築土築石愛其止渴充飢
009_0360_a_22L菩薩之割肉濟餓自餘日用什物或假
009_0360_a_23L他財或勞吾力如斯凡百盡屬吾師
009_0360_a_24L毋想他物括爲我有栽者培之傾者

009_0360_b_01L지붕이 새면 기와를 덮어 주고 벽의 흙이 떨어지면 흙손질을 해주십시오. 내 부처님에게 예배하고 내 단월檀越을 축원해 주며, 나의 방에 앉아서 나의 북을 치고, 나의 암자에 거하여 나의 뜻을 따라 주신다면, 나의 노고도 위로받을 수 있고 시주施主의 은혜도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내 암자의 기문을 지어서 여기에 거하는 자를 깨우치고 지나가는 자에게 알려 주신다면, 이것도 하나의 멋진 일이 될 것이니, 정려靜慮를 어지럽히는 일이라고 사양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 암자를 경영하여 낙성한 것은 정묘년(1687, 숙종 13)이요, 부처님을 조각하고 그린 것은 기사년(1689, 숙종 15)입니다. 대략적인 내용이 이와 같습니다.”
이에 내가 말하였다.
“잘 알았습니다. 내가 비록 재주는 없지만, 장로의 청이 간절하니, 어찌 글솜씨가 없다고 하여 굳이 사양하겠습니까. 장로의 말을 가지고 장로의 암자에 기문으로 써도 충분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써서 기문으로 삼고, 사운四韻의 율시 한 수를 지어서 아래에 붙였다.
곡성현 통명산 운흥사 원통암 창건 기문
원통圓通은 관음觀音의 또 다른 이름이다. 관음대사가 이문耳門(귀)을 통해 원통의 도를 얻었기 때문에 그렇게 칭하는 것이다. 관세음觀世音이라는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어느 곳에나 몸을 나투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통을 구원해 주니, 이 암자가 원통의 편액을 내걸고 관음의 상像을 봉안한 것이 어찌 아무 뜻 없이 한 일이겠는가.
지난 계미년(1703, 숙종 29)에 도인道人 유신裕信이 무하無何292)에서 와서 이 형승形勝을 보고는 자기의 소유를 모두 털어내어 도를 수련하는 이들이 머물러 쉴 장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석해釋海 상인上人이 그 뒤를 이어 모연募緣을 해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의 승상勝相을 각화刻畫하여 봉안하였으니, 이는 상인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암자가 비록 이루어졌다 해도 그 주인이 없으면 원통의 뜻이 어디에 있겠으며, 상像을 비록 만들었다 해도 의거할 곳이 없다면 관자재의 몸이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 두 사람의 마음이 합해져서 하나의 암자가 명실상부하게 된 것이다.
이 암자와 이 상이 비록 무너지더라도, 이 상인 두 사람의 공업功業은 하늘이 없어지도록 썩지 않고 전해질 것이니, 원통이란 이 이름도 앞으로 관음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009_0360_b_01L扶之屋漏瓦焉壁墜圬焉禮吾佛而
009_0360_b_02L祝吾檀坐吾室而擊吾皷居吾庵而順
009_0360_b_03L吾意則吾勞可慰施恩可報又記吾
009_0360_b_04L使居者警過者知此亦一勝事也
009_0360_b_05L勿以亂靜慮爲解庵之經之成之丁卯
009_0360_b_06L佛之雕之畫之己巳大略如斯予曰諾
009_0360_b_07L予雖不才長老之請恳豈可以少文牢
009_0360_b_08L可以長老之言記長老之庵足矣
009_0360_b_09L書而爲記又搆四韻一律附于左

009_0360_b_10L

009_0360_b_11L谷城縣通明山雲興寺圓通庵新剏
009_0360_b_12L

009_0360_b_13L
圓通者觀音之異號也大士於耳門
009_0360_b_14L得圓通之道觀世號音刹刹現身聲聲
009_0360_b_15L救苦而庵以圓通爲扁主以觀音爲像
009_0360_b_16L豈徒然㦲去癸未道人裕信自無
009_0360_b_17L何來觀此形勝盡罄己所有以爲鍊
009_0360_b_18L道者栖止之所而釋海上人從而募
009_0360_b_19L刻畫自在勝相以安之二上之心一
009_0360_b_20L庵雖成而無其主則圓通之義安在
009_0360_b_21L像雖設而無其據則自在之身何寄
009_0360_b_22L可以闕一也二人合心一庵之名實
009_0360_b_23L此庵此像雖壞此二上人之功業
009_0360_b_24L天不朽而獲圓通之號將與觀音等

009_0360_c_01L
뒤에 여기에 거하는 자들이 두 상인의 마음을 체득하고, 한 보살의 도를 사모하여 귀 기울여 들을 적에 들리는 것만 듣지 않고 소리 나는 것만 소리로 여기지 않는다면, 원통이 저절로 출현하리니, 도가 어찌 사람을 가리겠는가. 그렇다면 두 상인의 소망도 이루어지고 한 보살도 얼굴에 미소를 지으리니, 아무쪼록 힘쓸지어다.
그 밖에 이 암자의 규모나 멋있는 경치에 대해서는 오는 자들이 눈으로 볼 것이니 생략하기로 하고, 절구絶句 한 수를 여기에 덧붙인다.
조계산 송광선원 수석정의 기문
갑오년(1714, 숙종 40) 여름에 내가 목수로 하여금 선원禪院에서 가까운 동쪽 시냇가에 겨우 한 칸 되는 작은 정자를 짓게 하고는 수석水石이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어째서 그 이름을 취한 것인가.
물(水)과 돌(石)은 내가 평생토록 사랑하는 것이다. 돌은 단단하면서 고요하니, 내가 이를 통해서 마음을 보존하고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요, 물은 흘러가면서 맑으니, 내가 이를 통해서 외물에 대응하며 걸림이 없게 하고자 함이다. 청풍과 명월도 내가 좋아하는 바이지만 항상 있지는 않다. 항상 있는 것은 바로 물과 돌인 것이다.
여름철 오뉴월에 날씨가 한창 가물어 금석金石이 녹아 흐르려 할 때, 내가 샘물에 목욕을 하고 정자에 올라앉아 수석을 굽어보노라면 청량한 기운이 사방에서 밀려오나니, 먼 곳에서는 무성한 나무숲의 짙은 그늘이요, 가까운 곳에서는 흰 돌과 찬 못이다. 내가 이에 비로소 가슴속이 시원해지면서 온갖 생각이 구름처럼 흩어지고 본심이 달처럼 환해지는 것이다.
부자夫子가 곡굉曲肱293)을 한 것이 그냥 곡굉한 것이 아니요, 증점曾點이 영귀詠歸294)를 한 것이 그냥 영귀한 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겠노니, 나의 마음 위에 참다운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는 이 정자만 한 것이 없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잘 모르는 자는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세상을 우습게 본다고 비평하니, 슬픈 일이다.
그렇다면 나를 알 수 있고(知我) 나를 죄줄 수 있는 것(罪我)295)이 바로 이 정자에 있다고 할 것이니, 정자여 정자여, 너는 나에게 공씨孔氏의 『춘추』와도 같구나. 옛말에 “나를 아는 자는 드물다.(知我者稀)”296)라고 하였는데, 정말 드문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사운四韻의 시를 지어서 이 뜻을 부치는 바이다.

009_0360_c_01L之居此者體二上人之心慕一菩薩
009_0360_c_02L之道當聒耳之際不聞於聞不聲於
009_0360_c_03L則圓通自現矣道豈擇人也㦲
009_0360_c_04L則二上人之望塞一菩薩之顏解矣
009_0360_c_05L之㦲自餘結搆之牢境致之富來者
009_0360_c_06L有眼可略也又爲一絕

009_0360_c_07L

009_0360_c_08L曹溪山松廣禪院水石亭記

009_0360_c_09L
甲午夏余使工搆小亭于院近東溪上
009_0360_c_10L僅一間扁之曰水石奚取焉水石
009_0360_c_11L之平生所愛者石堅而靜吾以欲存心
009_0360_c_12L而不動水流而淸吾以欲應物而無滯
009_0360_c_13L淸風明月亦我之所愛也不常有
009_0360_c_14L有其水石乎夏五六月天亢旱金石
009_0360_c_15L欲流余浴乎泉登亭而坐臨水石也
009_0360_c_16L淸凉四來遠者茂樹濃陰近者白石寒
009_0360_c_17L余於是焉胸中灑然萬慮雲散
009_0360_c_18L心如月始知夫子之曲肱非徒曲肱
009_0360_c_19L曾點之詠歸非徒詠歸矣起予心上眞
009_0360_c_20L莫此亭若也而昧者以爲肆志而
009_0360_c_21L輕世悲夫然則知我罪我在乎亭
009_0360_c_22L乎亭乎汝如孔氏之春秋歟古曰知我
009_0360_c_23L者稀宜其稀矣詩以繫之四韻也

009_0361_a_01L
경상도 양산 통도사 성골 영탑 및 호남 구례 화엄사 장륙상을 중수하고 경찬한 소
사바계 승금주勝金洲 해동 조선국 경상도 양산군 취서산 통도사의 부처님을 받드는 제자 모는, 호남로 방장산 화엄사의 신축한 2층 보전寶殿에 세 분 여래와 네 분 보살의 초상을 만들어 봉안하는 한편, 또 이 산의 이 사원에 본사의 성골聖骨 영탑靈塔을 중수하고 조각과 회화의 일을 모두 끝낸 뒤에 이 달 모일에 경찬慶讚하는 수륙水陸 삼일재三日齋를 경건히 베풀고, 여러 공양할 도구를 엄숙히 갖추어 화엄회상華嚴會上의 무진삼보해無盡三寶海에 우러러 바치며, 애오라지 하정下情을 다음과 같이 진달합니다.
“주변周遍과 상락常樂과 원융을 설하는 법法은 비로毘盧의 많은 몸이 흩어진 것이고,297) 불상과 사탑寺塔과 사원을 만든 공은 언우齴齲의 큰 입이 일갈을 하였습니다.298) 그렇긴 하지만 몇 겹의 화장華藏299)이 하나의 가람의 입 속에 모두 들어와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제자는 귀목龜木 속에서 사람의 몸을 얻고, 침개針芥 위에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300) 교의敎義의 물결이 바다를 뒤치지만, 난발亂髮과 산사散絲를 막을 수 없으니 어찌합니까. 현로玄路의 새가 공중을 날지만, 춘빙春氷과 설인雪刃을 밟을 수도 있나니, 운구雲衢에서 날개가 부러진 학이요, 용문龍門에서 아가미를 쪼이는 잉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유상有相 유루有漏의 인因을 지었으니, 위인爲人 위기爲己의 업業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나에게 베풀라(施我施我)라고 한 것은, 바로 포대布袋301)의 청광淸狂이 아니겠습니까. 너에게 돌아간다(反而反而)302)라고 한 것은, 또한 증씨曾氏의 격어格語입니다.
공수工倕303)의 손을 빌리고 폐우蔽牛의 거목304)을 베어서 2층의 보전寶殿을 방장산 남쪽 언덕에 세우니, 삼여래三如來와 사보살四菩薩의 묘상妙相이 찬연하고, 우禹의 도끼305)를 얻고 진秦의 채찍306)을 빌려 3급의 옥탑玉塔을 취서鷲棲의 동쪽 기슭에 닦으니, 팔금강八金剛과 제천신諸天神의 위용이 늠연합니다. 기특하기 그지없나니 9년에 세 번을 지나갔고,307) 이와 같이 노력해서 한 조각 땅에 당간幢竿 하나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흘 낮 사흘 밤의 일재一齋를 베풀어 삼가 시방 십처의 삼보를 청하니,

009_0361_a_01L慶尙道梁山通度寺聖骨靈塔及湖
009_0361_a_02L南求禮華嚴寺丈六重修慶讃䟽

009_0361_a_03L
娑婆界勝金洲海東朝鮮國慶尙道梁山
009_0361_a_04L郡鷲棲山通度寺奉佛弟子於湖南
009_0361_a_05L路方丈山華嚴寺新建二層寶殿造奉
009_0361_a_06L三如來四菩薩肖像又於此山是寺
009_0361_a_07L修本師聖骨靈塔及鐫石繪事訖以今
009_0361_a_08L月某日敬設慶讃水陸三日齋嚴備諸
009_0361_a_09L供養具仰獻華嚴會上無盡三寶海
009_0361_a_10L陳下情者伏以說遍說常說融之法
009_0361_a_11L毘盧之多身造佛造塔造寺之功破齴
009_0361_a_12L齲之大口然幾重之華藏呑一枝之伽
009_0361_a_13L伏念弟子龜木裡得人身針芥上
009_0361_a_14L爲佛子敎義波翻海奈亂髮散絲之難
009_0361_a_15L玄路鳥飛空或春氷雪刃之可蹈
009_0361_a_16L雲衢折翼之鶴龍門曝腮之魚故作有
009_0361_a_17L相有漏之因可謂爲人爲己之業施我
009_0361_a_18L施我無乃布帒 [15] 之淸狂反而反而
009_0361_a_19L是曾氏之格語假倕手斫蔽牛建二層
009_0361_a_20L寶殿於方丈南崖三如來四菩薩之妙
009_0361_a_21L相燦爾得禹斧借秦鞭修三級玉塔於
009_0361_a_22L鷲棲東麓八金剛諸天神之威容凛然
009_0361_a_23L嘉之嘉之九年三過如是如是片地
009_0361_a_24L一竿肆設晝三夜三之一齋敬請方十

009_0361_b_01L구름은 옥립玉粒을 찌고 안개는 향연香煙을 일으킵니다. 구슬이 창명滄溟에서 나오니 사람마다 보배를 손에 쥐고, 꽃비가 벽락碧落에서 쏟아지니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납니다. 웅장하게 진동하는 범음梵音은 어산魚山에서 막 내려오는 듯하고, 엄숙하게 장식한 보련寶輦은 옥경玉京에서 지금 강림하는가 싶습니다.
중건괘重乾卦(4월)가 임하매 꽃이 지기 시작하고 버들이 한창 푸르며, 단양절端陽節(단오절)이 가까우매 구름이 타는 듯하고 보리가 알을 뱁니다.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온화하여 꾀꼬리가 노래하고 제비가 춤을 추니, 색깔마다 공양하는 색깔이요 소리마다 찬패讚唄하는 소리입니다. 화장華藏이 사바세계의 밖이 아닌지라 고락을 서로 비추어 주고, 중생이 제성諸聖과 멀지 않은지라 염정染淨이 상호 통합니다. 공양하는 도구는 보잘 것이 없어도 법계에 주변周遍하기를 기원하나니, 물건은 비록 미세해도 정성은 지극하고, 사람은 비록 많아도 마음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십찰十刹에 전해지는 낙락한 원음圓音을 귀머거리가 듣고서 귀가 뚫리고, 시방에 사무치는 당당한 묘상妙相을 소경이 보고서 눈을 뜰 수 있도록, 저 조감藻鑑의 밝음을 돌이키시어 이 근훤芹暄308)의 정성을 살펴 주소서.
또 원하옵건대 이 공덕을 굴려 여러 단나檀那에게 향하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용루龍樓에 요풍堯風이 불어 하늘이 무너지도록 살게 해주시고, 봉각鳳閣에 순일舜日이 걸려 땅이 재가 되도록 살게 해주시며, 옥엽玉葉과 금지金枝도 대춘大椿이 시들어 떨어질 때까지 더욱 무성하게 하고, 선원璇源과 선파璿派도 창해가 말라서 없어질 때까지 길이 흐르게 해주소서. 교야郊野에서 나이를 잊은 늙은이나 강구康衢(번화한 길)에서 목마를 탄 어린이나, 친하든 친하지 않든 수명이 이미 같으니, 보시를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그 복록에 무슨 구분이 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위와 같은 중생들 모두 사람의 수명이 8만 년이 될 적에 이사理事와 사사事事의 장애障碍가 없는 법계를 속히 증득하고, 용화龍華의 첫 번째 법회에서 찰진刹塵과 진진塵塵의 헤아릴 수 없는 신운身雲309)을 환히 보게 하소서. 팔릉八稜의 옥호玉毫를 우러러보며 한 장의 정소情疏를 삼가 올리나이다.”
맹인경찬소

009_0361_b_01L處十之三寶雲蒸玉粒霧起香烟
009_0361_b_02L出滄溟人人握寶花雨碧落步步生
009_0361_b_03L雄徹梵音訝自魚山而始下嚴餙
009_0361_b_04L寶輦疑從玉京而初來重乾卦臨
009_0361_b_05L始落而柳方綠端陽節近雲欲燃而麥
009_0361_b_06L初胎日暖風和鶯歌燕舞色色供養
009_0361_b_07L聲聲讃唄聲華藏不外於娑婆
009_0361_b_08L樂交徹衆生何遠於諸聖染淨融通
009_0361_b_09L則供具之零星庶法界之周遍物雖微
009_0361_b_10L而誠大人雖衆而心同伏願諺十刹落
009_0361_b_11L落圓音聾者聞而得耳極十方堂堂妙
009_0361_b_12L盲者見而開眸廻彼藻鑑之明
009_0361_b_13L此芹暄之悃抑願轉斯功德向諸檀那
009_0361_b_14L龍樓扇堯風與天齊傾之壽鳳閣掛舜
009_0361_b_15L同地共灰之年玉葉金枝大椿凋
009_0361_b_16L零而益茂璇源璿派滄海枯渴而長流
009_0361_b_17L郊野忘之之老康衢戴之之童壽旣等
009_0361_b_18L於親不親福何分於施非施然後如上
009_0361_b_19L群品人壽八萬年速證理事事事無障
009_0361_b_20L碍之法界龍華初一會頓見刹塵塵塵
009_0361_b_21L不思議之身雲仰對八棱玉毫謹宣一
009_0361_b_22L紙情䟽

009_0361_b_23L

009_0361_b_24L盲人慶讃䟽

009_0361_c_01L
삼각三覺310)의 본사本師는 항상 광명을 발하며 끝없이 혁혁赫赫한데, 두 눈이 소경인 제자는 긴 밤을 깨닫지 못한 채 침침沈沈하기만 합니다. 체성은 비록 같다고 해도 상용相用이 천지처럼 현격하니 이를 어찌합니까.
삼가 생각건대 제자는 어린 나이에 속세를 벗어나서 늘그막에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인과는 마음에서 말미암는 것이니, 너에게서 나온 것은 반드시 너에게로 돌아간다고 하겠지만, 회린悔吝은 움직임에서 생기는 것이니,311) 진眞을 등졌다가 진眞에 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래의 일이야 좇을 수 있다고 해도, 기왕의 일이야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마음속으로 혼자 회한悔恨에 젖기보다는, 부처님 앞에 참회하며 죄를 씻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이에 길일을 가림에 때마침 천중절天中節(단오절)을 맞이하였고, 승지를 결계結界312)함에 다행히 동리산桐裏山을 얻었습니다. 공양을 올리는 의식을 간략히 마련하고, 죄를 참회하는 자리를 아울러 베풀었는바, 제물은 변변찮아도 마음은 극진하니, 중생의 성의가 지극하면 성인께서도 조림照臨하시리라 믿습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저 영취산 섭삼귀일攝三歸一313)의 모임에 참여하셨던 불보살의 성인聖人들과 오과사향五果四向314)의 존자들께서는 이 간절한 마음을 살피시어 무거운 죄를 씻어 주시고, 눈알에 덮인 백태를 긁어내어 눈앞의 막힌 길이 열리게 해주소서. 그리고 현재 과거의 부모와 구족이 모든 속박을 벗어나 소요하게 해주시고, 상하의 귀옥鬼獄과 삼도三途가 모진 고통에서 벗어나 쾌락을 누리게 해주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며 삼가 글을 지어 올리나이다.
야소夜疏
제불이 시방세계에 편만하여 방편의 문을 크게 열었건만, 군생群生은 온갖 의혹을 품고 있어 혹업惑業의 길에 갈래가 많습니다. 자비를 앙망하는 물이 만약 맑으면, 사랑으로 조응照應하는 달이 즉시 비출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제자는 지혜의 안목을 잃은 위에 육신의 시력마저 침침해졌습니다. 큰 길이 매우 평탄한데도 몇 번이나 첩경捷徑에 들어가서 걸음이 군색하였고, 흰 해가 무척 밝은데도 오직 흑암黑暗만 보이기에 슬픈 생각뿐입니다. 다생에 지은 인연이 필시 잘못된 것이라서 이생에 받는 업보가 이와 같을 것이고 보면, 울면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니, 참회하며 그 죄를 씻어야만 할 것입니다. 재장齋場을 일단 마련함에 기도하는 마음이 이와 함께 모두 깨끗해지고, 공구供具를 바야흐로 시설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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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覺本師常光無斷而赫赫雙盲弟子
009_0361_c_02L長夜不曉而沉沉雖體性之雷同奈相
009_0361_c_03L用之天隔伏念弟子童年脫俗老境
009_0361_c_04L損明因果由心必出爾而反爾悔吝
009_0361_c_05L生動或背眞而合眞來者可追徃矣
009_0361_c_06L何及徒自悔恨於心上曷若懺洗於佛
009_0361_c_07L肆以捐吉佳辰適會天中之節
009_0361_c_08L界勝地幸得桐裡之山略伸進供之儀
009_0361_c_09L兼設懺愆之席物雖輕而心重凡必誠
009_0361_c_10L而聖臨伏望彼靈鷲山攝三歸一之會
009_0361_c_11L佛菩薩聖果五向四之尊照斯虔恳之
009_0361_c_12L洗此深重之罪刮即在眼膜開轉
009_0361_c_13L身路梗現過父母九族脫覊鎻而逍遙
009_0361_c_14L上下鬼獄三途罷酸辛而快樂無任恳
009_0361_c_15L禱之至謹䟽以聞

009_0361_c_16L

009_0361_c_17L夜䟽

009_0361_c_18L
諸佛遍十方方便之門大啓群生抱萬
009_0361_c_19L惑業之路多分悲仰之水若淸
009_0361_c_20L應之月即印伏念弟子慧目旣失
009_0361_c_21L眼又昏大道甚夷幾入捷徑而窘步
009_0361_c_22L白日孔皎惟見黑暗以悲懷多生作因
009_0361_c_23L必非此世受報如是悔泣何及懺洗
009_0361_c_24L可爲齋場旣開虔心與之俱淨供具

009_0362_a_01L지주持呪하고 관심觀心하는 일이 이로 인해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시방 법계는 끝나는 데가 없고, 삼보 자존慈尊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우니, 마음은 소청召請의 성운聲韻을 들으시고, 몸은 청정한 재연齋筵으로 달려오시어 저로 하여금 육신이 재가 되기 전에 다시 청천靑天의 백일白日을 보게 해주시고, 비단 덮개가 뚫린(穿縠) 뒤에315) 옥호玉毫의 금광金光을 볼 수 있게 해주소서. 그리고 부모 친척들과 사승寺僧 및 다른 이들도 모두 고취苦趣를 벗어나 일제히 낙방樂邦에 오르게 해주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누지 못한 채 삼가 글을 지어 올리옵니다.
중소中疏
한 분의 보살과 열 분의 명왕冥王은 유취幽趣(저승) 중의 존귀한 분이시요, 고독한 몸에 두 눈이 안 보이는 자는 인세人世 위의 가련한 존재입니다. 부디 저 건인健人께서는 이 병물病物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삼가 생각건대 제자는 본디 비사毘舍(평민) 출신으로서 지금은 비구의 신분인데, 젊었을 적에는 기백이 씩씩해서 용부勇夫도 눈 아래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늘그막에 실명을 하자 삼척동자도 면전에서 나를 기롱하곤 하니, 이는 스스로 취한 것이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닙니다.
이에 참회하는 자리를 베풀어 속마음을 토로하게 되었는데, 당대當代의 교주敎主와 시방에 편만한 제존諸尊이 이미 강림하여 공양을 받으셨으니, 이제는 고통을 구제하는 대사님과 죄를 다스리는 열성列聖께서 감응하여 향을 맡으실 차례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여 씻음으로써 미래의 길이 열려 통하게 해주시고, 우로雨露의 은혜를 골고루 내려 메마른 생령生靈이 똑같이 적시게 해주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면서 삼가 글을 지어 아룁니다.
혜공당 소상재의 야소
육취六趣316)의 고달픈 수레바퀴를 멎게 함은 제불의 능사能事요, 삼보의 자애로운 집을 우러러봄은 중생의 비심悲心입니다. 나무가 마르면 봄이 할 일이 없고, 강물이 맑으면 달이 인印을 칩니다.
삼가 생각건대 세상을 떠난 영혼은 부처님의 밝은 가르침을 전한 분으로 나에게는 계사戒師가 됩니다. 나이는 여든을 넘겼으니 단수短壽 중의 장수요, 몸은 사대와 오음이 흩어졌으니 전음前陰 밖의 후음後陰입니다.

009_0362_a_01L方設呪觀爲之轉多伏望十方法界無
009_0362_a_02L三寶慈尊難筭心聞召請之韻
009_0362_a_03L赴淸淨之筵使我未灰之前復見靑天
009_0362_a_04L白日穿縠之後得覩玉毫金光父母諸
009_0362_a_05L師僧餘類咸脫苦趣齊登樂邦
009_0362_a_06L任恳禱之至謹䟽以聞

009_0362_a_07L

009_0362_a_08L中䟽

009_0362_a_09L
一菩薩十冥王幽趣中爲尊爲貴獨孤
009_0362_a_10L身雙盲者人世上可矜可憐哿彼健人
009_0362_a_11L哀此病物伏念弟子世本毘舍身今
009_0362_a_12L比丘少壯氣雄勇夫入乎眼底老大
009_0362_a_13L明失尺奚欺其面前是自取之非天
009_0362_a_14L降矣肆開懺席乃展誠心當代敎主
009_0362_a_15L遍方諸尊已降臨而受供救苦大士
009_0362_a_16L治罪列聖次赴會而聞香伏望俾懺滌
009_0362_a_17L前非使開通來路雨露均被枯槁同
009_0362_a_18L無任恳禱之至謹䟽以聞

009_0362_a_19L

009_0362_a_20L慧空堂典祥齋夜䟽

009_0362_a_21L
極六趣之苦輪諸佛能事仰三寶之慈
009_0362_a_22L衆生悲心樹枯春閑江澄月印
009_0362_a_23L念逝靈傳佛明誨在我戒師年八十
009_0362_a_24L短壽中長壽身四五散前陰外後

009_0362_b_01L
현재의 마음에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업業은 헤아리기 어려운 법입니다. 그래서 천발薦拔(薦度)하는 의식을 준행하여 보새蒲塞317)의 공양을 간략히 설행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단심丹心을 바친 것에 대해서는 시방이 모두 알고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외로운 달이 오직 밝은 것은 다행히 밤새도록 비가 오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은 덕분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시방 제성諸聖께서는 타인의 마음을 환히 살펴 본국을 잠시 잊으시고, 나의 간절한 정성을 비추어 나의 모해模楷(戒師)를 인도해 주소서. 그리하여 칠중항수七重行樹와 칠중나망七重羅網과 칠중난순七重欄楯이 사보四寶로 이루어진 가운데에서318) 소요逍遙하고 쾌락하며 무량한 수명을 누리게 해주시고, 상품 금강과 중품 황금과 하품 연화의 삼대三臺가 솟아오른 가운데에서319) 적정寂靜하고 안한安閒한 기쁨이 다함이 없게 해주소서.

009_0362_b_01L現在心雖無非過去業則難測
009_0362_b_02L遵薦拔之式略設蒲塞之供群心盡丹
009_0362_b_03L庶幾十方之悉知悉見孤月惟白幸賴
009_0362_b_04L一夜之不雨不風伏願十方諸聖洞鑑
009_0362_b_05L他心暫捨本國照我誠恳引我楷模
009_0362_b_06L七重行樹七重羅網七重欄楯四寶成
009_0362_b_07L逍遙快樂以無量壽上品金剛中品黃
009_0362_b_08L金下品蓮花三臺湧寂靜安閑而不盡
009_0362_b_09L無任恳禱之至謹䟽以聞

009_0362_b_10L

009_0362_b_11L晝䟽

009_0362_b_12L
逈出諸聖上具十號之大師高居衆經
009_0362_b_13L唯一乘之妙典慈與樂而不着
009_0362_b_14L拔苦而無爲盍歸依乎叵度量也
009_0362_b_15L念弟子等被緇脫白雖本師之深恩
009_0362_b_16L受戒登壇乃羯磨之厚蔭未及期頤十
009_0362_b_17L餘歲奄歸冥漠一日朝追薦弟子誠
009_0362_b_18L拔救佛法力恭惟蓮花妙典時乃說之
009_0362_b_19L極談釋迦慈尊世斯稀之大聖佛非
009_0362_b_20L相而相相法無言而言言濟苦海航
009_0362_b_21L破迷夢磬人多而心一齋又設於周年
009_0362_b_22L世熱而法凉魂反歸於樂國伏願靈山
009_0362_b_23L會上三大尊寶哀我徒之後進三三
009_0362_b_24L品中引我師之前途金金臺上無任

009_0362_c_01L간절히 기도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누지 못한 채 삼가 소疏를 올려 아룁니다.
주소晝疏
모든 성인 위에 멀리 뛰어난 분은 십호十號320)를 갖춘 대사大士이시고, 여러 경전 위에 높이 거하는 것은 오직 일승의 묘전妙典입니다. 자애의 마음으로 즐거움을 주면서도 집착을 하지 않고, 비원悲願을 세워 고해苦海에서 건져 주면서도 의식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귀의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제자 등이 치의緇衣를 입고 백의白衣를 벗은 것은, 비록 본사本師의 깊은 은혜 덕분이라고 할지라도, 계단戒壇에 올라 계율을 받은 것은 바로 갈마아사리羯磨阿闍梨(戒師)의 두터운 은덕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이期頤(백 세)에서 10여 세를 채우지 못하고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명막冥漠(冥府)으로 돌아갔으니, 명복을 비는 것은 제자의 정성이요, 구제해 주는 것은 불법의 힘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연화蓮花의 오묘한 경전은 때에 맞게 설하신 지극한 말씀이요, 석가 종족의 인자한 어르신은 세상에 희유한 위대한 성인이십니다. 부처는 상相이 아니지만 상相으로 나타내 보여 주고, 불법은 말이 아니지만 말로 드러내 알려 주니, 고해를 건네주는 선박이요 미몽迷夢을 깨뜨리는 경쇠입니다. 사람은 많아도 마음이 하나라서 일주기를 맞아 재齋를 또 베풀었습니다. 세상은 뜨거워도 불법은 시원하니 혼이 극락으로 돌아가리라 믿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삼대三大 존보尊寶께서는 우리들 후진後進이 삼삼품三三品321) 가운데 있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은사恩師의 앞길을 금금대金金臺 위로 인도해 주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누지 못한 채 삼가 글을 올려 아룁니다.
개흥사 수륙재의 주소
영취靈鷲의 금색상金色相은 하늘 위와 아래에 유일하여 짝이 없는 지존이시요, 묘법의 연화경蓮華經은 부처가 있든 없든 언제나 한결같이 변치 않는 경전이니, 귀의하는 자는 큰 이익이 있고, 우러르는 자는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제자 등은 중 같으면서도 중이 아니요, 속俗이면서도 속이 아닙니다. 개흥사에서 머리를 깎았으니 다른 산에 회상會上이 있는 줄 어찌 알겠습니까. 환화幻化의 몸에 삿갓을 씌웠을 뿐, 자기 마음이 무슨 물건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복을 비는 것이 유루有漏이긴 합니다만, 사람을 교화하는 공이 실로 없지 않기에 비에 목욕하고 바람에 빗질하면서 힘줄을 피곤하게 하고 뼈를 괴롭혔습니다. 산에서 들에서 누가 보시하고 누가 보시하지 않는지 어찌 헤아렸겠습니까. 곡식을 주거나 돈을 주거나 어느 것이 많고 어느 것이 적은지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수륙水陸의 대회大會를 마련하고 경외敬畏의 작은 마음을 일으켰나니, 구름이 바다 위에 피어오르는 시절이요, 보리가 익어 가는 천중天中(단오)의 계절입니다. 나는 구름과 춤추는 제비는 번개幡蓋와 나란히 나부끼고, 우짖는 새와 노래하는 꾀꼬리는 각패角貝(소라)와 음향을 같이합니다.
향화香花와 다과茶果가 초초楚楚하고 종경鍾磬과 어범魚梵이 융융融融한 가운데 날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며, 옷은 검고 마음은 붉습니다. 영산靈山의 삼보를 청하며 여러 가지 공양거리를 올렸으니, 오늘의 일심을 살피시어 연여輦轝를 타고 함께 강림하시리라 믿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여러 단나檀那는 생전에 복록을 더하고 수명을 늘이며, 사후에 지옥을 벗어나 천상에 오르게 해주시고, 남은 물결이 적시는 곳에 고류苦類 모두 즐겁게 해주소서.
야소夜疏
제불은 자비하여 구름이 혜일慧日을 덮어도 더욱 밝고, 중생은 탐애貪愛하여 물로 고화苦火를 뿌려도 더욱 타오릅니다. 그러니 어찌 귀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009_0362_c_01L恳禱之至謹䟽以聞

009_0362_c_02L

009_0362_c_03L開興寺水陸齋晝䟽

009_0362_c_04L
靈鷲金色相天上天下獨一無伴之尊
009_0362_c_05L妙法蓮華經佛有佛無常恒不易之典
009_0362_c_06L歸之者有大益仰之者不唐旃伏念弟
009_0362_c_07L子等似僧何僧是俗非俗落髮開興
009_0362_c_08L豈知他山之有園着笠幻化身
009_0362_c_09L識自心之何物營福雖是有漏化人實
009_0362_c_10L非無功沐雨櫛風勞筋苦骨於山於
009_0362_c_11L豈料阿誰施阿誰不或糓或錢不擇
009_0362_c_12L何者多何者少修設水陸之大會興起
009_0362_c_13L敬畏之小心雲蒸海上之時麥熟天中
009_0362_c_14L之節飛雲舞燕與幡盖而齊飄呌鳥
009_0362_c_15L歌鶯共角貝而同響香花茶果之楚楚
009_0362_c_16L鍾磬魚梵之隆隆日淸風凉衣黑心赤
009_0362_c_17L請靈山之三寶獻供具多般鑑今日之
009_0362_c_18L一心御輦輿同降伏願諸檀那生增
009_0362_c_19L福而益壽死脫獄而登天餘波所沾
009_0362_c_20L苦類咸樂

009_0362_c_21L

009_0362_c_22L夜䟽

009_0362_c_23L
諸佛慈悲雲蔭慧日而益明衆生貪愛
009_0362_c_24L水灑苦火而增燃盍師盍歸叵耐叵耐

009_0363_a_01L
삼가 생각건대 수륙재水陸齋는 양 무제梁武帝가 그 물결을 일으키고, 경희慶喜가 그 근원을 열었나니,322) 이는 곧 삼도三途의 우물물을 긷는 두레박줄이요, 구천九天의 전당에 오르는 층계라고 할 것입니다.
이에 힘을 다해 경영하면서 다섯 번 꽃이 지는 것을 보았고, 애써 재물을 모아 재를 베풀었나니 사방에서 듣고 구름처럼 모였습니다. 절기는 천중天中(단오)을 열고, 동산은 해변을 차지한 가운데 달빛은 맑은 낮보다 밝고, 밤기운은 높은 가을보다 청량합니다.
향화香花와 다반茶飯 등 각종 공양거리가 등촉燈燭 속에 삼엄森嚴하고, 증병證秉(證義秉法)과 법선法禪(敎禪) 등 여러 사문들이 번개幡蓋 아래 제정齊整하였으니, 물건마다 부처님을 공양하는 도구요, 사람마다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시방의 제성諸聖은 이 도량에 강림하시어 이 성적誠赤(丹心)을 받아 주소서. 그리하여 여러 단나檀那는 생전에 복기福基가 견고하고 명위命位가 높아지며, 모든 사원은 지금 이후로 도념道念이 일어나고 진려塵慮는 사라지게 해주소서. 그리고 지옥에서는 연꽃이 피어나고 아귀餓鬼에서는 불이 꺼지며, 축생은 서로 죽이려는 생각을 잊고 수라修羅는 서로 싸우려는 생각을 쉬게 하소서.
중소中疏
명천冥天의 시왕十王은 위에서 조감藻鑑의 밝은 지혜를 지니셨는데, 인계忍界(사바세계)의 군생群生은 밑에서 불나비와 같은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킵니다. 만약 살아 있을 적에 복을 닦는다면, 몸이 죽은 뒤에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어느 곳에서 오든지 간에 각각 금전의 채무가 있는데, 빈손인 우리가 무엇을 바치겠습니까. 다투어 옥부玉府에서 빌리다 보면 남은 빚을 갚지 못할 것인데, 지금 만약 팔짱만 끼고 있다면 뒤에 반드시 난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다해 삼가 자리를 마련하고, 예수禮數에 맞게 향을 피워 올립니다. 안이 모나고 밖이 둥근 것은 천지의 형체를 본뜬 것이요, 여기에 모으고 저기에 쌓은 것은 산악이 우뚝 선 것과 비슷합니다. 이와 함께 정결한 옥립玉粒을 바치고, 또 아름다운 화과花果를 올리나니, 향불 연기가 골짜기에 가득하고 범패 음악이 공중을 뒤흔듭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지장자성존地藏慈聖尊께서는 도명道明과 무독無毒323)의 이반二伴을 데리고 함께 강림하시고, 염라 대황제閻羅大皇帝께서는 진광秦廣과 초강初江324) 등 구왕九王과 함께 나란히 내려오시어 나의 정성을 살펴 주시고 나의 공양을 받아 주소서. 또 바라옵건대 제조諸曹의 판관과 그 밖의 여러 권속들도

009_0363_a_01L恭惟水陸齋者梁武皷浪慶喜開源
009_0363_a_02L汲三途之井索登九天之堂階肆竭力
009_0363_a_03L而經營五見花落困聚財而修設
009_0363_a_04L聞雲臻節啓天中園占海上月色明於
009_0363_a_05L淸晝夜氣凉於高秋香花茶飯諸供養
009_0363_a_06L燈燭裡森嚴證秉法禪衆沙門幡盖下
009_0363_a_07L齊整物物供佛之具人人敬佛之心
009_0363_a_08L伏願十方諸聖降此道場受此誠赤
009_0363_a_09L諸檀生之前福基固而命位屹合院今
009_0363_a_10L以後道念興而塵慮消地獄蓮生
009_0363_a_11L鬼火滅畜生忘其互殺脩羅息其相爭

009_0363_a_12L

009_0363_a_13L中䟽

009_0363_a_14L
冥天十王尊抱藻鑑之明智忍界群生
009_0363_a_15L下起燈蛾之愚心倘修福於生前
009_0363_a_16L免苦於身後伏念人生斯世自來何途
009_0363_a_17L各責金錢空手何獻爭貸玉府遺債
009_0363_a_18L未還今若恝然後必難矣故竭力而敬
009_0363_a_19L乃如數而焚呈內方外圓象天地
009_0363_a_20L之形體此堆彼積似山岳之嶪峩
009_0363_a_21L獻玉粒之精又隨花果之美香烟滿壑
009_0363_a_22L梵樂掀空伏願地藏慈聖尊與道明無
009_0363_a_23L毒二伴以同降閻羅大皇帝共秦廣初
009_0363_a_24L江九王以齊臨鑑我虔誠受我供養

009_0363_b_01L각각 위열位列에 따라 똑같이 자비를 내려 주소서.
황공하게도 제물祭物이 정결하지 못하여 거룩한 행사에 맞지 않겠습니다만, 어리석고 서툴러서 미진한 점을 이해하시며 범부의 행위를 허물하지 않으시리라고 믿습니다. 이상 속마음을 토로하며 삼가 글을 올립니다.
찬불소讚佛疏
정해년(1707, 숙종 33) 모월 모일에 부처님을 모시는 제자인 지택智擇과 여원조呂圓照 등은 단나檀那의 화연化緣을 널리 모아 석가여래 및 제화提花(然燈佛)와 미륵의 삼대 존상尊像을 삼가 조성하였기에 공구供具를 간략히 진설하고 속마음을 모두 토로하며, 일체 단월檀越과 망부모亡父母ㆍ제친諸親 및 육도六途 중생과 함께 지금 십사十事325)의 가운데에 있더라도 뜻한 대로 몸을 돌려 구련九蓮(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해주시기를 발원하나이다.
불법의 경지가 높고 깊지만 뿌리에 나아가 싹을 볼 수 있으며, 범부의 식견이 낮고 얕지만 흐름을 거슬러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찌 멀다고 하겠습니까. 여기가 바로 그곳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제자 등으로서, 머리를 깎은 승려는 절간 안에서 세월을 보내고, 수염을 기른 거사는 속세에서 살아가는바, 비구의 이름이 외람되어 범 가죽에 양의 체질인 것이 스스로 부끄럽고, 바새波塞(優波塞)의 실상에 어긋나서 사나운 새가 봉황을 흉내 낸다고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구만리 아래에서 음광飮光(迦葉)을 우러러 바라보고, 삼천계三千界 가까이에서 정명淨名(維摩)을 사모하나니, 그릇은 금옥이 아니어도 법은 바로 제호입니다. 조각爪刻과 보찬寶鑽의 희성戱誠이 이미 이루어졌는데, 이소泥塑와 목조木雕의 정박精朴이 어찌 지금 없겠습니까.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삼존불三尊佛이 각기 자리를 달리하였으니, 권화勸化한 자는 노력을 이바지하고, 보시한 자는 재물을 베풀었습니다. 털을 모아 공을 만들었으니 저 사람의 생각으로 발을 폈다고 할 만하고, 사람을 인해 일을 이루었으니 다른 이의 술로 생색을 냈다고도 하겠습니다.
백옥의 산이 오묘하고 청련靑蓮의 바다가 향기로우니, 아련히 도리천忉利天에서 다시 내려온 듯하고, 방불하게 금강좌金剛座에 처음 오른 듯합니다. 진흙 뭉치와 흙덩어리가 모두 빛을 발하니 1천 집안이 하나의 화광火光임을 비로소 알겠고, 표주박과 동아박이 모두 법을 설하니 1만 구멍이

009_0363_b_01L抑願諸曺判官餘諸眷屬等各隨位列
009_0363_b_02L等起慈悲恐物儀之不精雖未稱聖擧
009_0363_b_03L恕愚踈之未盡庶不罪凡爲表宣謹
009_0363_b_04L

009_0363_b_05L

009_0363_b_06L讃佛䟽

009_0363_b_07L
丁亥某月某日奉佛弟子智擇呂圓照
009_0363_b_08L廣募檀緣敬造釋迦如來及提花彌
009_0363_b_09L勒三大尊像畢略陳供具傾膓倒腹
009_0363_b_10L願與一切檀越及亡父母諸親六途含生
009_0363_b_11L即在十事如意轉身九蓮化徃者
009_0363_b_12L道高且深乃即根以示苗凡識卑又
009_0363_b_13L盖尋流以得源其可遠乎祗者是也
009_0363_b_14L伏念弟子等無髮內紹存髯外生
009_0363_b_15L濫比丘 [16] 慚虎皮之羊質實乖波塞
009_0363_b_16L人譏鷙翰之鳳鳴望飮光九萬低慕淨
009_0363_b_17L名三千近器非金玉法是醍醐爪刻
009_0363_b_18L寶鑚之戱誠旣已成矣泥塑木雕之精
009_0363_b_19L胡今闕焉二人同心三尊異位
009_0363_b_20L者勞力施者損財會毛爲毬可謂彼
009_0363_b_21L懷以伸足因人成事亦曰他酒以生顏
009_0363_b_22L白玉妙山靑蓮香海依俙忉我天還下
009_0363_b_23L彷彿金剛座初昇泥團土塊盡放光
009_0363_b_24L知千家一火瓢子冬爪皆說法方覺萬

009_0363_c_01L같은 바람임을 이제야 깨닫겠습니다.
금불金佛의 자태가 이미 임한 만큼 근훤芹暄의 정성을 바쳐야 할 것이니, 마음마다 대추처럼 붉고 물건마다 구름처럼 피어납니다. 사탕수수의 줄기도 맛있어 하는 것은, 비록 장주莊周가 나비로 변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326) 눈동자의 영상이 이토록 질박한 것은 섭 공葉公이 용을 좋아하는 것327)이 아닙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지금의 이 오묘한 인연을 바탕으로 나중에 수승한 과보를 받도록 해주소서. 보시를 했거나 권화勸化를 했거나 육친六親과 육도六途의 생령들이 각자 고통에서 벗어나 의신依身ㆍ법신法身ㆍ보신報身으로 쾌락을 향유하게 하고, 길이 진리를 증득하여 여리如理ㆍ도리道理ㆍ의리義理에 원만히 통달하게 하소서. 저 창궁蒼穹은 다함이 있어도 이 소원은 다함이 없습니다. 옥호玉毫를 응시하면서 변변찮은 글을 지어 잠시 아룁니다.
일로一路의 승려 등을 대신하여 몇 년 동안 해마다 두 번씩 종이를 별무別貿하게 해준 것을 사례한 계문
머리에 붙은 불을 꺼 주신 것이 진정 한두 번의 반락般樂이 아니요, 눈 안의 가시를 빼 주신 것이 실로 50여 년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에게 감사하겠습니까. 나를 학대한 사람이요, 나를 가엾게 여긴 분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중들은 마음을 헤아리면 미려彌戾328)요, 정수리를 만지면 사문沙門입니다. 나래를 치고 목을 빼는 것이 꿩이 미련하게 화를 자초하는 일이긴 하지만, 마음속으로 기꺼이 활을 쏘게 한다면 그것이 어찌 대인大人의 인자한 마음이겠습니까. 설령 하나의 입(一口)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열 손(十手)이 응해 줄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많은 발(多足)이 넘어지는 것을 어떻게 한 손(獨掌)으로 붙들어 주겠습니까.
더구나 이 별무別貿로 말하면 병정丙丁의 해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요, 무기戊己 이후에 와서는 면할 수 없게 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처음의 근원에서는 술잔 하나를 띄울 만하다가, 나중에는 물이 불어나 정수리까지 빠지게 되었으니, 이는 사나운 불길에 마른 장작을 가하고, 힘없는 종에게 무거운 짐을 더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비록 높이 날아가고 싶어도 하늘과 땅에 하나의 큰 그물이 두루 깔렸고, 만약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 하면 양쪽의 불이 동쪽과 서쪽에서 핍박을 합니다. 구천九天에 울부짖어도 무슨 말을 해주겠습니까. 십지十地를 두드려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저 애만 태울 뿐이니, 팔을 걷어붙인들 또 어찌하겠습니까.
그런데 절름발이가 길을 걸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두 다리가 갑자기 펴지고, 소경이 물건을 볼 희망이 끊어졌다가 두 눈이 홀연히 열릴 줄이야 어찌 생각하였겠습니까.

009_0363_c_01L竅同風金容旣臨 [17] 誠可獻心心如
009_0363_c_02L物物同雲蔗草莖亦佳雖是莊周
009_0363_c_03L之化蝶瞳子影何質即非葉公之好龍
009_0363_c_04L伏願今將妙因緣畢獲勝果報若施若
009_0363_c_05L六親六途各脫苦依身法身報身
009_0363_c_06L以快樂永證眞以理道理義理以圓通
009_0363_c_07L彼蒼有窮此願無盡玉毫凝對蕪辭
009_0363_c_08L暫陳

009_0363_c_09L

009_0363_c_10L代一路髠首等謝積年歲二度別貿
009_0363_c_11L紙啓

009_0363_c_12L
荷救頭然固非一二般樂被拔眼刺
009_0363_c_13L實是五十餘年怨誰恩誰虐我憐我
009_0363_c_14L伏念僧等揣心彌戾摩頂沙門皷翼
009_0363_c_15L引頸緃愚雉之禍的甘心勸矢豈大
009_0363_c_16L人之仁心設一口之攸求非十手之所
009_0363_c_17L況多足之顚蹶何獨掌以奉承矧此
009_0363_c_18L別貿丙丁以前未曾有者戊己以後
009_0363_c_19L不可離之於源濫觴及流沒頂加燥
009_0363_c_20L薪於猛火添重擔於弱奚雖欲高飛
009_0363_c_21L徧一網於天地若將堅住逼兩火於東
009_0363_c_22L西呌九天而何言叩十地而不應
009_0363_c_23L心而已扼腕奈何豈意跛不期於行途
009_0363_c_24L雙脚頓展盲絕望於見物兩眼忽開

009_0364_a_01L어두움이 끝나자 밝음이 찾아오고, 오래도록 굽힌 끝에 마침내 펴졌으니, 하늘에 귀가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땅도 신령스럽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는 대개 순상巡相 합하께서 구중九重의 윤언綸言(왕명)을 받들어 일방의 민망民望을 들어주는 행운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합하께서는 고륜孤輪의 벽월璧月을 매달아 천 강의 맑은 물결에 인印을 치시고, 맹수의 각아角牙를 부러뜨려 넘어지려는 물그릇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하여 찬 골짜기에 푸른 풀이 돋아나게 하고 마른나무에 붉은 꽃이 피게 하였으니, 어찌 머리 기른 세상 사람들만 진세塵世에서 자라처럼 손뼉을 치겠습니까.329) 또한 수염을 깎은 승려들도 연하煙霞 속에서 참새처럼 뛰고 있습니다. 이 덕을 칭송하자면, 말이 길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중들이 어찌 감히 머리를 조아리고 감사를 드리며 은혜를 알고서 은혜에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이보다 더 강할 수 없는 분을 법도로 삼을 것이요,330) 저 푸른 대나무를 바라보며 문채 빛나는 군자를 생각할 것입니다.331)
곡성의 원에게 올린 글
빈도 모는 아룁니다. 지난번에 왕림해 주시는 영광을 입고 아울러 시를 지어 주시는 은혜까지 받았는데, 처지가 혐의스러워 아직도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서 애오라지 하정下情을 진달 드립니다.
병든 이 몸을 잊지 않고서 과분하게 자모慈母처럼 친히 찾아 주셨고, 가냘픈 풀줄기의 청을 거부하지 않고서 큰 종소리로 속히 응해 주셨으니,332) 이 두 가지 일만으로도 이미 많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빈도는 덕이 노성老成하지도 않고 재주는 어린아이의 장난에 불과합니다. 초파리가 단지 안에서 살면서 그 천지가 크다고 하는 것과 같고, 메추라기가 쑥대 아래에서 노닐면서 그 일월이 밝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일은 꽃의 미소에 부치고, 숲 속의 흥은 새의 노랫소리에서 찾습니다. 여름 벌레가 삼동의 얼음을 알지는 못합니다마는, 아침 버섯은 또한 반일의 목숨에 절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개 명부明府 합하께서 구문九門의 윤발綸綍(왕명)을 받아 일국의 변방의 근심을 나누어 맡고, 백 리의 고을을 다스리며 사민四民의 밖인 승려에게까지 은혜를 내리는 때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와운臥雲의 풀을 눕히고,333) 비碑는 행로行路의 입술에 새겨집니다.334) 합하께서는 사람에 맞게 사람을 가르치시고, 새에 맞게 새를 기르고 계십니다.335) 더군다나 천년 된 산목散木이

009_0364_a_01L暗極而明來屈久而伸至始知天乃有
009_0364_a_02L方覺地亦含靈此盖伏遇巡相閤
009_0364_a_03L奉九重之綸言塞一方民望掛孤
009_0364_a_04L輪之壁 [18] 印千江波澄折猛獸之角牙
009_0364_a_05L扶欹器之傾覆寒谷草綠枯樹花紅
009_0364_a_06L豈獨有髮之徒鰲抃於塵世抑亦無鬚
009_0364_a_07L之類雀躍於烟霞德可稱焉言之長
009_0364_a_08L僧等敢不頓首稽首知恩報恩
009_0364_a_09L止高山無競維人之則瞻彼淥 [19]
009_0364_a_10L斐君子之思

009_0364_a_11L

009_0364_a_12L上谷城倅

009_0364_a_13L
貧道某言頃奉辱臨兼蒙報珮而地
009_0364_a_14L猶未躬謝聊陳下情者

009_0364_a_15L
難忘病息過蒙慈母之親臨不拒寸筳
009_0364_a_16L深荷巨鍾之速應此其兩也不亦多乎
009_0364_a_17L伏念貧道德非老成才是兒戱䤈鷄
009_0364_a_18L得其所甕裡之乾坤大㦲斥鷃樂於斯
009_0364_a_19L蓬底之日月明矣世事寄花微笑林興
009_0364_a_20L倩鳥高歌夏虫雖未曉三冬之氷朝菌
009_0364_a_21L亦自足半日之壽此盖伏遇明府閤下
009_0364_a_22L九門承綍憂分一國之邊百里專城
009_0364_a_23L波及四民之外風偃臥雲之草碑鐫行
009_0364_a_24L路之唇以人敎人以鳥養鳥況復千

009_0364_b_01L늘그막에 대장大匠의 돌봄을 받고, 한 곡조의 파가巴歌가 뜻밖에도 백설白雪의 화답을 얻었음이겠습니까.336) 빈궁한 사람이 갑자기 횡재를 하고, 마른나무에 다시 꽃이 피었습니다.
원량元亮은 백련白蓮의 정사精舍를 찾아갔고,337) 동파東坡는 금산金山에 옥대玉帶를 두었습니다.338) 부석鳧舃의 그림자가 사라졌어도 좌석의 여향은 남아 있고,339) 보게寶偈(수령의 시)의 빛이 흘러넘치며 경패瓊珮로 영원한 우호를 다짐하니, 녹수綠水의 물소리는 더욱 청랑하고 청산의 빛은 갑절이나 새롭습니다.
그 덕德이야말로 푸른 하늘에 견줄 만하니, 그 은혜를 어느 날인들 감히 잊겠습니까. 그러니 빈도가 감히 새벽에 향을 피우고 저녁에 등을 켜면서 하늘과 수명이 같기를 축원하지 않겠으며, 요堯임금의 태양과 순舜임금의 바람 아래 백성과 함께 즐기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지극히 격동되는 심정을 금하지 못하면서 변변찮은 시를 함께 올립니다.
강남의 부백에게 올린 계문
아가위와 배와 귤과 유자는 맛이 서로 다르지만 모두 사람들의 입에 맞고,340) 공자와 석가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은 도道가 서로 다르지만 모두 하나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이단이라고 해서 공격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단지 해로울 뿐입니다.341)
삼가 생각건대 산승은 어느 날 저녁에 옷깃을 떨친 뒤로 구름 속에 누워서 1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마디 외로운 지팡이로 마노馬奴의 행색行色을 대신하고, 천 군데 터진 하나의 누더기로 한서寒暑의 생애를 함께하였습니다. 몇 마디 맑은 경쇠 소리요, 한 줄기 피어오르는 향연입니다. 호리병 속에 하늘과 땅이 있으니342) 부귀는 뜬구름과 같고, 산중에 달력이 없으니 꽃과 잎사귀로 봄가을을 점칩니다.
하나의 성품을 기르는 것이 어찌 거문고이겠습니까. 1만 세상사를 깨부수는 것도 술이 아닙니다. 남곽南郭이 궤안几案에 기댄 것을 사모하고, 북산北山의 마름 옷 불사른 것을 비웃나니, 세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임하林下에서 나를 잃는 것(喪我)이 낫지 않겠습니까.343)
학이 푸른 하늘에서 세 번 소리하니 1만 가닥의 청풍이요, 용이 차가운 못에서 한 번 읊으니 둥근 바퀴의 명월입니다. 세상 걱정은 뜬구름과 함께 흩어지고, 선정의 마음은 흐르는 물과 함께 맑아지나니, 부생浮生인 이 삶은 일 없는 것(無事)이 좋은 일(好事)입니다. 자벌레(尺蠖)의 굽힘을 배운다면 뒷날 펴는 일이 어찌 없겠습니까. 용사龍蛇의 칩거蟄居를 본받으며 이 몸의 보존을 도모할 따름입니다.
삼가 듣건대 합하는 총명이 어떤 사람보다도 뛰어나고,

009_0364_b_01L年散木晩被大匠之收一曲巴歌
009_0364_b_02L獲白雪之和貧兒暴雷 [20] 枯樹還榮
009_0364_b_03L亮訪精舍白蓮東坡留金山玉帶
009_0364_b_04L舃滅影遺坐席之餘香寶偈流光
009_0364_b_05L瓊珮以永好聲添綠水色倍靑山
009_0364_b_06L可比之蒼蒼恩敢忘乎日日貧道敢不
009_0364_b_07L晨香夕火祝共天齊年堯日舜風
009_0364_b_08L與民同樂無任激切之至并惡詩以聞

009_0364_b_09L

009_0364_b_10L上江南府伯啓

009_0364_b_11L
柤梨橘柚之味不同皆可衆口孔釋楊
009_0364_b_12L墨之道相反都是一心何以攻爲斯害
009_0364_b_13L也已伏念山僧衣拂一夕雲臥十年
009_0364_b_14L九節孤笻代馬奴之行色千瘡一衲
009_0364_b_15L并寒暑之生涯數聲淸磬一炷名香
009_0364_b_16L壺裡有乾坤等浮雲於富貴山中無歷
009_0364_b_17L占花葉於春秋養一性者豈琴
009_0364_b_18L萬事者非酒慕南郭之隱几笑北山之
009_0364_b_19L焚芰與其世間成人曷若林下喪我
009_0364_b_20L三聲於碧落萬縷淸風龍一吟於寒潭
009_0364_b_21L一輪明月世慮與浮雲俱散禪心共
009_0364_b_22L流水齊淸浮生此生無事好事屈學
009_0364_b_23L尺蠖豈無他日之伸㦲蟄斆龍蛇
009_0364_b_24L圖此身之存也伏聞閤下聰明人出

009_0364_c_01L한번 보고 아는 것이 천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도道는 공자와 주공周公을 각곡刻鵠344)하였으니 하늘에 오르는 것도 오히려 쉽고, 재주는 양웅楊雄과 사마상여司馬相如와 말고삐를 나란히 하였으니 조충雕蟲345) 따위를 어찌 일삼겠습니까. 월계月桂가 아무리 높다 해도 호수好手에게는 힘들지 않았습니다.346)
그러므로 단정학丹頂鶴은 선폭仙瀑에서 이마가 더욱 붉어지고, 잉어는 용문龍門에서 꼬리를 태웠습니다.347) 몇 년 동안이나 표범으로 오운五雲에 잠복했다가 오늘에 이르러 붕새로 만 리의 하늘을 날았습니다.348) 남쪽 하늘 백 리에는 일마다 백성을 위한 걱정이요, 북쪽 대궐 구중九重에는 마음마다 나라를 위한 충성입니다.
인적이 고요하여 바람이 방에 들어오니, 아전의 그림자가 드문 때요, 거문고 소리가 청랑하여 달이 창을 엿보니, 세상일을 잊은 밤입니다.349) 이런 때에 도잠陶潛은 슬며시 혜원惠遠이 그리워지고, 한유韓愈는 태전太顚이 더욱 생각나게 마련입니다.350)
도道는 갈림길에서 나뉘어 창과 방패처럼 서로 배치된다 할지라도, 생生은 일세一歲를 같이하였으니 나무와 돌이 똑같이 산의 기초가 되고 있다(木石同壇)351)고 말할 만합니다. 유형과 무형이 각자 태극을 갖추었고,352) 1족足과 백 족이 고루 천기天機를 발동합니다.353) 그러므로 달사達士는 물결을 같이하고, 성인聖人은 모난 곳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보건대 천지에도 시是와 비非가 있습니다. 혹은 검고 혹은 누르니 어찌하여 그 색이 각각 다른 것이며, 하나는 덮고 하나는 실으니 어찌하여 그 공이 완전하지 않은 것입니까. 어찌 천지만 그러하겠습니까. 모든 존재가 그러합니다. 다르다는 입장에서 보면 수거數車에 무거無車요,354) 같다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이 일물입니다.355)
삼가 바라옵건대 합하께서는 나를 좋게 봐 주시고 나를 버리지 마소서. 그리하여 물고기처럼 강호 속에서 서로들 잊고356) 형해形骸의 밖에서 단금斷金을 이룬다면,357) 암혈에 살며 산골 물을 마셔도 굶주린 범의 재앙을 면할 수 있고, 발을 드리운 높은 대문 안에서도 속이 뜨거워지는 병이 없을 것입니다.358) 이 어찌 귀천을 잊은 담담한 우정이라고만 하겠습니까. 또한 인덕을 도와주는 순수한 교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詩는 자신의 뜻을 읊는 것이라고 하였으니,359) 어찌 이에 대해서 시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부휴당의 제문(祭浮休堂文)
有德不孤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古人言之         옛날 사람도 말씀하셨지요360)
旣得其右         오른쪽에 벌써 이웃을 얻었나니
秋月是友         바로 추월당 벗님이요
又得其左         왼쪽에 또 이웃을 얻었나니
栢庵其孫         백암 법손法孫이라오

009_0364_c_01L甞知天開道刻鵠於孔周登天反易
009_0364_c_02L才連鑣於楊馬雕虫胡爲月桂雖高
009_0364_c_03L手不起是用鶴添朱於仙瀑魚燒尾
009_0364_c_04L於龍門幾年豹潜五雲今日鵬擧萬里
009_0364_c_05L南天百里事事憂民北闕九重心心
009_0364_c_06L報國人寂風入室吏影稀之時琴淸
009_0364_c_07L月窺窓世事忘之夜於是陶潜潜懷惠
009_0364_c_08L韓愈愈憶太顚道分殊歧雖云矛
009_0364_c_09L盾相背生同一歲可謂木石同壇
009_0364_c_10L形無形各具太極一足百足均動天
009_0364_c_11L是以達士同波聖人無角吾觀天
009_0364_c_12L亦有是非或玄或黃何其色之各
009_0364_c_13L一覆一載胡厥功之不全豈獨此
009_0364_c_14L物皆然矣自其異者而視數車無車
009_0364_c_15L自其同者而觀萬物一物伏望閤下
009_0364_c_16L我好矣莫吾棄㦲魚忘江湖之中
009_0364_c_17L斷形骸之外則巖居水飮可免餓虎之
009_0364_c_18L懸簿高門庶無內熱之病豈獨曰
009_0364_c_19L忘貴忘賤之淡友亦可云輔仁輔德之
009_0364_c_20L素交詩言志㦲胡可已也

009_0364_c_21L

009_0364_c_22L祭浮休堂文

009_0364_c_23L
有德不孤古人言之旣得其右

009_0364_c_24L秋月是友又得其左栢庵其孫

009_0365_a_01L數般薄奠         몇 가지 변변찮은 제물이지만
三老共臨         삼로가 함께 조림照臨해 주소서
백암당의 제문(栢庵堂)
生身父母         몸을 낳아 주신 분은 부모님이요
噵心師友         마음 인도하신 분은 스승님과 벗
執侍多年         여러 해 가까이 모시는 동안
聞所未聞         듣지 못한 것을 들려주셨으니
恩深巨海         그 은혜가 바다보다 깊건마는
報未微塵         그 보답은 티끌보다 못합니다
人生七十         사람이 일흔까지 사는 것이
古雖云稀         예로부터 드물다고 말을 하지만361)
奄藏狂言         느닷없이 광언을 숨기셨으니
我安適歸         저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요362)
敢造石龕         감히 석감을 조성하여
敬奉遺骨         삼가 유골을 모셨습니다만
靈豈即此         영이 어찌 여기에 오겠습니까
亦旣離此         역시 벌써 여기를 떠났을 텐데
不即不離         오지도 떠나지도 않는
是何面目         그것은 무슨 면목입니까
추월당의 제문(秋月堂)
念佛三昧         염불 삼매에 드신
其迹猶存         그 자취 아직도 남아 있나니
石累以四         돌탑이 사층으로 포개어져서
次第漸小         차례차례 점점 작아진다오
本自天然         본래부터 그렇게 생겼으니
何假雕琢         쪼고 새길 필요나 있으리오
獨立巖崖         바위 언덕에 홀로 서 계시다가
漸得其隣         차츰 그 이웃을 얻으셨나니
三老團圞         삼로께서 단란하게 어울리시며
共話無生         함께 무생363)을 얘기하신다면
不亦樂乎         또한 즐겁지 않으리이까
伏惟尙饗         아무쪼록 흠향하시옵소서
행장行狀
무용당 대선사의 행장
선사의 법휘法諱는 수연秀演이요, 자字는 무용無用이다. 원근의 치소緇素(僧俗)가 모두 무용으로 헌호軒號를 삼았기 때문에 그대로 호를 삼았다. 속성은 오씨吳氏요, 용안龍安 사람이다.
고려 태위太尉 문양공文襄公 연총延寵의 후예로, 세계世系가 끊이지 않고 내려왔다. 아조我朝에 이르러 증조 하몽下蒙은 관직이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정의급무안등현감行旌義及務安等縣監에 이르렀으며, 조부 응정應鼎은 관직이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순천부사行順天府使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좌윤漢城左尹에 이르렀다.
부친 섬무暹武는 절행節行으로 벽단첨사碧團僉使가 되었다. 누런 무늬의 대충大蟲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공중에 올라가다가 조금 뒤에 다시 떨어져

009_0365_a_01L數般薄奠三老共臨

009_0365_a_02L

009_0365_a_03L栢庵堂

009_0365_a_04L
生身父母噵心師友執侍多年

009_0365_a_05L聞所未聞恩深巨海報未微塵

009_0365_a_06L人生七十古雖云稀奄藏狂言

009_0365_a_07L我安適歸敢造石龕敬奉遺骨

009_0365_a_08L靈豈即此亦旣離此不即不離

009_0365_a_09L是何面目

009_0365_a_10L

009_0365_a_11L秋月堂

009_0365_a_12L
念佛三昧其迹猶存石累以四

009_0365_a_13L次第漸小本自天然何假雕琢

009_0365_a_14L獨立巖崖漸得其隣三老團圞

009_0365_a_15L共話無生不亦樂乎伏惟尙饗

009_0365_a_16L[行狀]

009_0365_a_17L無用堂大禪師行狀

009_0365_a_18L
師法諱秀演字無用遐邇緇素咸稱
009_0365_a_19L以無用爲軒號故仍以爲號俗姓吳氏
009_0365_a_20L龍安人也高麗太尉文襄公延寵之裔
009_0365_a_21L係世不絕逮至我朝曾祖下蒙官至
009_0365_a_22L通訓大夫行㫌義及務安等縣監祖應
009_0365_a_23L官至通政大夫行順天府使贈嘉善
009_0365_a_24L大夫漢城左尹父暹武節行碧團僉使
009_0365_a_25L夢一黃章大虫蜿蜒上空少選還墜

009_0365_b_01L방 주위를 몇 겹으로 에워싸는 꿈을 꾸고 선사를 배어 순치順治 8년(1651, 효종 2) 신묘년 3월 13일 경인일庚寅日에 선사를 낳았다. 선사는 태어날 적에 특이하게도 체구가 깔끔하고 두각頭角이 우뚝 솟았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말수가 적었다.
나이가 갓 여덟 살이 되었을 적에 처음으로 서사書史에 들어가서 한두 번 읽고는 곧바로 배송背誦하였으며, 그 뜻을 남김없이 알아내었다. 아, 나이 13세에 느닷없이 부모를 여의고 오직 형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곤궁하고 외로운 처지에서도 삼분오전三墳五典과 제자백가諸子百家 등을 모두 수집하여 열람하면서 글귀를 뽑아 글이나 짓는 작태는 조금도 없었으므로 이로 인해 이름이 원근에 널리 퍼졌다.
나이 19세가 되자 덧없는 인생이 순식간임을 살피고서 출가할 큰 뜻을 내었다. 그리하여 하루아침에 형에게 알리지도 않고 빠져나와 남쪽 길을 향하다가 우연히 조계산 송광사에 들어가서 혜관 노사惠寬老師에게 출가하였으며, 그 산의 혜공慧空 대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선사는 체격이 장대하고 얼굴이 방정하였으며, 가슴속이 쇄락灑落하고 남의 장단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직 도道만을 따르고 명리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문을 닫고 조용히 지내었다.
나이 22세가 되었을 적에 양사養師가 “예로부터 대도大道를 통하고 심원心源을 깨닫는 자는 선禪과 교敎를 병행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선문에만 전념한다면 그것이 이치상 옳겠는가?”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번연翻然히 태도를 고쳤다. 처음에 침굉枕肱의 문하에 나아가서 한번 현음玄音을 듣고는 다시 일러 주지 않아도 통달하였으므로, 침굉이 “원돈圓頓의 법계가 온전히 너에게 있다.”라고 찬탄하였다. 다시 옷을 떨치고 백운산의 백운암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정혜定慧를 닦았다.
26세에 침굉의 부탁을 받고 조계의 은적암으로 백암栢庵을 찾아갔는데, 백암이 한번 보고는 크게 기특하게 여겨 문도에게 “이 사람은 고현古賢의 자리를 빼앗고 금선金仙의 문을 활짝 열 것이다.”라고 말하니, 문도가 모두 경외하였다. 선사가 이로 인해 여기에 주석하였는데, 경經을 가지고 토론할 때마다 의견이 합치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새로 깨닫게 되는 점도 더욱 많았다. 그래서 몇 년 사이에 장경藏經을 모두 섭렵하고는 용문산으로 이주하여

009_0365_b_01L繞室數匝因以有娠以順治八年辛卯
009_0365_b_02L三月十三日庚寅誕生而有異軀體鮮
009_0365_b_03L頭角嶄然 [21] 而聰慧少言語也
009_0365_b_04L甫初八始入書史一二讀輒背誦
009_0365_b_05L其旨無蘊餘年至十三奄違考妣
009_0365_b_06L唯兄是依窮困無賴之中三墳五典
009_0365_b_07L諸子百家遍閱蒐盡而稍無尋章摘句
009_0365_b_08L之態以此名播遠邇年及十九相浮
009_0365_b_09L生之須臾發出家之大意一朝不告兄
009_0365_b_10L而躱展向南邁偶入曺溪之松社
009_0365_b_11L惠寬老師出家受具于山之釋慧空大
009_0365_b_12L爲人體長大面方正胷次灑落
009_0365_b_13L說人長短唯道是從不嗜名利掩關
009_0365_b_14L宴默年及二十二養師曰自古通大
009_0365_b_15L悟心源者不過禪敎雙行獨顓禪
009_0365_b_16L於理可乎於是翻然改操初謁枕
009_0365_b_17L肱之門一聽玄音不再周能演枕肱
009_0365_b_18L圓頓法界全在汝矣拂衣入白雲
009_0365_b_19L山上白雲習定均慧者有一年矣
009_0365_b_20L十六承枕肱之囑謁栢庵于曺溪之隱
009_0365_b_21L寂蘭若一見而大奇之語門徒曰
009_0365_b_22L奪古賢席敞金仙門徒皆敬顒師因
009_0365_b_23L以駐錫執經問難無不吻合者新悟
009_0365_b_24L尤多故數年之間涉盡藏經移駐於

009_0365_c_01L다시 내관內關을 수련하였다.
경신년(1680, 숙종 6) 가을에 금화동金華洞 신불암新佛庵에 먼저 거하고 있던 선교의 참학들이 매우 간절히 요청하자 선사가 그 인연에 응하였는데, 새로 참여한 자들이 또 많아서 그 장소가 비좁았으므로 본사本寺의 미타전彌陀殿으로 이주하였다.
또 임술년(1682, 숙종 8) 가을에는 선암사의 요청에 응하고, 계해년(1683, 숙종 9) 여름에는 또 송광사의 요청에 응하였다. 정筳을 쥔 자364)들이 많아질수록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되자, 밤중에 희양산의 옛 거처인 백운암으로 몸을 피해 정혜의 수행에 더욱 힘썼다.
또 이듬해 봄에는 팔영산 제칠봉 아래로 석장을 옮긴 뒤에 하나의 빈터를 얻어 띠 풀을 베어서 지붕을 얹고는 선관禪關을 정밀히 닦아 혜해慧解가 더욱 빛났다. 병인년(1686, 숙종 12)에는 또 대중의 청을 어기기 어려워서 본사의 능인전으로 옮겨 거하였다.
무진년(1688, 숙종 14)에 조계로 가서 백암을 재차 참알參謁하고는 『화엄소초華嚴疏鈔』를 받아 자세히 탐구하고 은미한 뜻을 찾아내어 그 정수를 모두 터득하였다. 기사년(1689, 숙종 15) 봄에 백암이 징광사로 가서 『화엄연의華嚴演義』 및 『대명법수大明法數』ㆍ『간정기刊定記』ㆍ정토서淨土書 등을 간행하여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을 열어 주려고 할 때 선사도 함께 그 일을 도왔다.
또 임신년(1692, 숙종 18) 봄에 선암사의 선오禪伍가 백암을 청하여 화엄회를 크게 베풀자 사부대중이 노루를 쫓듯 몰려갔는데 선사도 따라갔다. 그해 늦겨울에 백암이 방호方壺(지리산)로 거처를 옮기자 선사도 본사의 창파각滄波閣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때 대중의 숫자가 1백 인을 채웠다. 갑술년(1694, 숙종 20) 봄에 요청에 응해 송광사 은적암에 머물렀다. 기묘년(1699, 숙종 25)에 요청을 받고 동리산으로 갔다.
경진년(1700, 숙종 26) 7월에 백암이 지리산 신흥사에 머물다가 입적하자, 선사가 부음을 듣고 달려가 곡哭하였다. 초칠일에 화욕火浴을 거행하고 나서 대중이 강석講席을 이어받기를 청했으나 선사가 겸양하며 거절하였는데, 대중이 더욱 간절히 청하자 비로소 개당開堂을 허락하였다.
이듬해 봄에 칠불암으로 전입하였는데 선려禪侶와 의학義學들이 더욱 많이 몰려왔다. 그래서 낮에는 강의하고 밤에는 참선하면서 남을 지도하고 자기를 다스리는 일을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갑신년(1704, 숙종 30) 봄에 갑자기 대중을 물리치며 말하기를, “부질없이 혀를 놀리기보다는 전심專心으로 염불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고는,

009_0365_c_01L龍門山更硎內關庚申之秋禪敎叅
009_0365_c_02L先住金華洞新佛庵者請邀至恳
009_0365_c_03L赴緣從之新叅輩亦衆嫌其窄移住本
009_0365_c_04L寺彌陁殿又壬戌秋赴仙寺之請癸亥
009_0365_c_05L又赴松寺之請執筳者愈多煩於
009_0365_c_06L己事宵遁曦陽之白雲舊蘭若益增均
009_0365_c_07L又明年春移錫于八影山第七峰下
009_0365_c_08L得一墟斬茅置屋精修禪關慧角重曜
009_0365_c_09L丙富亦難違衆移止本寺能仁殿戊辰
009_0365_c_10L詣曺溪再叅栢庵受華嚴䟽鈔搜抉
009_0365_c_11L而索隱盡得其髓己巳春栢庵赴澄
009_0365_c_12L剞劂華嚴演義及大明數刊㝎記淨
009_0365_c_13L土書等欲開人天眼目師亦相之又壬
009_0365_c_14L申春仙寺禪伍邀栢庵大設華嚴會
009_0365_c_15L四部之衆逐麏相至師亦隨之其季冬
009_0365_c_16L栢庵移入方壺師移住本寺之滄波閣
009_0365_c_17L衆滿百指甲戌春酬請于松寺之隱寂
009_0365_c_18L己卯赴桐山之請庚辰秋七月栢庵住
009_0365_c_19L智異山神興寺入寂聞訃奔哭初七火
009_0365_c_20L浴之後衆請繼席撝謙不居衆請益
009_0365_c_21L乃許開堂明年春轉入七佛庵
009_0365_c_22L侶義學之並臻者尤多晝設講夜入禪
009_0365_c_23L接人治己昒昕匪懈甲申春遽爾退
009_0365_c_24L衆曰徒自饒舌豈若是專心念佛乎

009_0366_a_01L옷자락을 떨치고서 용문龍門의 은봉암에 거하였다. 이로부터 가르치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하는 등 일정하게 따르는 기준이 전혀 없었는데, 학도가 추종하는 것이 마치 새들이 난새가 날아가는 대로 따라다니는 것과 같았다.
경인년(1710, 숙종 36) 봄에 산양山陽의 개흥사에서 조계의 옛 절로 돌아왔다. 그리고 날마다 강송講誦하는 여가에 사원의 동쪽 시냇가에 손수 대臺를 쌓고 수석정水石亭이라는 정자를 세우고는 서문을 지어 그 이름을 해석하였는데, 간략하게 말하면, “돌은 단단하면서 고요하니, 내가 이를 통해서 마음을 보존하고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요, 물은 흘러가면서 맑으니, 내가 이를 통해서 외물에 대응하며 걸림이 없게 하고자 함이다.(石堅而靜。 吾以欲存心而不動。 水流而淸。 吾以欲應物而無滯。)”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는 바로 어떤 상황을 당하든 간에 잡았다 놓았다 하며 무애자재하게 외물에 응하는 도리로서, 전현前賢의 광채를 배태胚胎하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것이었다.
기해년(1719, 숙종 45) 봄에 호남과 영남의 여러 사찰에서 거의 3백여 명에 이르는, 남의 사범師範이 되고 이름을 내걸 만한 자들이 대거 이곳에 모여 화엄과 선문에 대해서 강의해 주기를 청하니, 사양하기를, “나 자신이 바르지 못한데 어떻게 남을 바르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양을 하면 할수록 더욱 독실하게 청하였으므로 법좌에 올라 불자拂子를 휘두르며 심오한 뜻을 설파함에 낙락한 원음圓音이 중중무진하게 서로 비치자 강회講會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습복慴伏하였으니, 이 어찌 비인秘印을 전해 받아 허리에 차고 임제臨濟의 종풍을 크게 드날린 것이 아니겠는가.
아, 여름이 끝날 무렵에 미질微疾을 보이더니 앉아 있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하였다. 겨울철 10월에 양공良工을 불러 미타彌陀 삼존상三尊像을 개금改金하게 하고는, 17일 병진일 우중禺中(오전 10시경)에 전심으로 염불을 하다가 왼발을 오른쪽 무릎에 얹고 서거하니, 보령報齡이 69세요, 좌하坐夏가 51세였다.
초칠일 임술일에 절의 백호白虎(우측 산) 밖 오도치悟道峙 아래에서 다비를 행하였다. 장례식에 치소緇素(僧俗)가 모두 모였으며, 상감喪龕(장례)의 의식에 번여幡旟와 모정旄旌의 깃발이 이처럼 성대한 것은 일찍이 없던 일이었다. 불길이 바야흐로 일어날 때에 상운祥雲이 홀연히 피어나며 임만林巒의 색깔이 변하였으므로 보는 자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이듬해 경자년(1720, 숙종 46) 봄에 문인 낭형朗烱 등이 돌을 쪼아 절의 백호 밖 고봉원高峰原 위에 탑을 세웠으니, 이곳은 바로 선사의 옆이었다.

009_0366_a_01L拂袖而居龍門之隱峰庵自此或作或
009_0366_a_02L終無常准學徒之追從如衆鳥之隨
009_0366_a_03L翔鸞焉庚寅春自山陽之開興廻曺
009_0366_a_04L溪之古社日用講誦之餘院之東溪上
009_0366_a_05L手築臺置亭曰水石序以釋其名
009_0366_a_06L曰石堅而靜吾以欲存心而不動水流
009_0366_a_07L而淸吾以欲應物而無滯此是臨機縱
009_0366_a_08L奪自在應物之道胚胎前光彜範後來
009_0366_a_09L者也己亥春湖嶺諸刹爲人師範者
009_0366_a_10L及名可名者僅三百餘大會于此
009_0366_a_11L講華嚴及禪門辭曰以吾非正烏能正
009_0366_a_12L讓益堅請益篤昇座揮1) [1] 說破
009_0366_a_13L粤旨落落圓音重重交映一會莫不慴
009_0366_a_14L此豈非傳佩秘印大闡臨濟宗風者
009_0366_a_15L嗚呼夏末示微疾或坐或臥冬十
009_0366_a_16L月召良工重煥彌陁三金像十七日丙
009_0366_a_17L辰日至禺中專心念佛以左足加右
009_0366_a_18L膝而逝報齡六十九坐夏五十一也
009_0366_a_19L初七日壬戌茶毘于寺之白虎外悟道
009_0366_a_20L峙下會葬者緇素畢至而喪龕之儀
009_0366_a_21L幡旟旄㫌之盛未甞有也火方發祥雲
009_0366_a_22L倐起林巒變色見者異之越明年庚
009_0366_a_23L子春門人朗烱等琢石竪塔于寺之白
009_0366_a_24L虎外高峰原上即先師之側也當世搢

009_0366_b_01L
그 당시 진신搢紳의 인사로서 교유하지 않은 자가 드물었는데, 그중에서도 영상 이 공李公 광좌光佐, 대사성大司成 최 공崔公 창대昌大, 참판 이 공李公 진유眞儒, 교리校理 임 공林公 상덕象德, 최 양양崔襄陽 계옹季翁, 김삼연金三淵 창흡昌翕, 황 순천黃順天 익재益再 등과 가장 친하게 지내었다.
참선하는 여가에 또 곧잘 게송을 읊고 글을 지은 것들이 허다한데, 그중에서 정요精要한 것만을 약간 간추려서 판각하였다. 선사에게 수업을 받고서 각각 가죽(皮)과 살(肉)과 정수(髓)를 얻어 남의 사범師範이 되거나 암혈에 깊이 숨어 자기 한 몸을 선하게 하는 제자들이 또한 많은데, 그 이름은 여기에 번거롭게 나열하지 않는다.
소승 약탄若坦(影海, 1668~1754)은 일찍부터 선사의 문지방을 드나들며 자주 귀한 말씀을 듣고 이 도道에 들어올 줄을 안 자이니, 어느 것 하나도 선사께서 귀를 끌어당겨 일러 주시고 손바닥을 가리켜 보여 주신 가르침 아닌 것이 없다. 그러고 보면 그 은혜는 천지와 같았고, 그 정은 골육보다도 더하였으니, 은정恩情이 그러하다면 비록 금수라도 목숨을 바쳐서 그 덕에 보답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눈물을 훔치고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보고 들은 자료를 모아 간행하려 하면서 삼가 이 행장을 쓰는 바이다.
옹정雍正 2년(1724, 영조 원년) 갑진 납월臘月 일
전라도 순천부 조계산 송광사에서 소장한 목판본

009_0366_b_01L紳之士鮮不與善唯領相李公

009_0366_b_02L司成崔公
叅判李公
校理林公

009_0366_b_03L崔襄陽
金三淵
[22]
黃順天
最爲相
009_0366_b_04L禪餘又善偈頌若綴文者許多
009_0366_b_05L止撮精要者如干附諸板上受業弟子
009_0366_b_06L各得皮肉髓爲人師範者及深藏岩穴
009_0366_b_07L獨善其身者亦多而煩不列若坦早遊
009_0366_b_08L先師之閫域亟承謦咳知入此道者
009_0366_b_09L莫非提耳指掌之誨也然則恩同天地
009_0366_b_10L情逾骨肉恩情所至雖禽獸不以死
009_0366_b_11L圖報德者鮮矣故抆涕之餘摭其世人
009_0366_b_12L之所共見聞者仍之繡梓焉謹狀

009_0366_b_13L
009_0366_b_14L
雍正二年甲辰臘月全羅道順天
009_0366_b_15L府曺溪山松廣寺留板

009_0366_b_16L」疑「麈」{編}
  1. 157)19인 : 20인 중 모수毛遂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로, 보통 용렬하고 녹록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전국시대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이 진秦나라의 침략을 당하여 초楚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러 갈 적에 수행원 20인 중에 1인이 부족하였다. 이때 문객인 모수가 자기가 가겠다고 자천自薦하니, 평원군이 모수에게 “현사의 처세를 비유하자면,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들어 있어서 그 끝을 당장에 볼 수 있는 것과 같은데, 지금 당신이 나의 문하에 있었던 3년 동안 아무도 당신을 칭송한 것이 없으니, 이는 당신에게 특별한 것이 없는 것이다.(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 左右未有所稱誦。 勝未有所聞。 是先生無所有也。)”라고 하자, 모수가 “가령 내가 진작 주머니 속에 들어갈 수만 있었다면 송곳 자루까지 다 나왔을 것이요, 그 끝만 보일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라고 답변하였다. 이에 평원군이 모수와 함께 가기로 결정하니, 다른 19인이 서로들 눈짓하며 모수를 비웃었는데(十九人相與目笑之), 결국에는 모수가 초나라에 가서 단독으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초왕楚王과의 맹약盟約을 성사시킨 고사가 전한다.(『史記』 「平原君虞卿列傳」)
  2. 158)육군六群 : 육군비구六群比丘의 준말로, 당파를 지어 악행을 행한 여섯 명의 비구를 가리킨다. 육중필추六衆苾芻라고도 한다. 석존釋尊이 계율을 여러 가지로 많이 만들게 된 것은 대부분 이들 때문이라고 한다. 『四分律』 권22에 실려 있는 이들의 이름은 난타難陀ㆍ발난타跋難陀ㆍ가류타이迦留陀夷ㆍ천나闡那ㆍ아설가阿說迦ㆍ불나발弗那跋 등이다.
  3. 159)원거鶢鶋를 종고鐘鼓의 음악소리로 즐겁게 해주고 : 원거鶢鶋는 해조海鳥의 이름이다. 원거爰居라고도 한다. 이 새가 노魯나라 교외郊外에 날아와 앉자 임금이 그 새를 정중히 모셔다가 종묘宗廟에서 환영연을 베풀면서 순舜임금의 소악韶樂을 연주하고, 소ㆍ양ㆍ돼지 고기의 요리로 대접하니, 그 새는 눈이 부시고 근심과 슬픔이 교차하여 고기 한 점도 먹지 못하고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한 채 3일 만에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장자』 「至樂」에 나온다.
  4. 160)원숭이에게 주공周公의~것과 같아서 : 『장자』 「天運」에 “지금 원숭이를 데려와 주공의 옷을 입히면, 그는 반드시 물어뜯고 찢어발겨서 죄다 없애 버린 뒤에야 만족할 것이다.(今取猨狙而衣以周公之服。 彼必齕齧挽裂。 盡去而後慊。)”라는 말이 나온다.
  5. 161)여자餘子처럼 옛 걸음걸이를 잃게 되고 : 연燕나라 수릉壽陵 땅의 소년이 조趙나라 서울 한단邯鄲에 가서 그곳의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채 본래의 자기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린 나머지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한단학보邯鄲學步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莊子』 「秋水」) 여자餘子는 미성년자를 뜻한다.
  6. 162)한유韓愈처럼 광질狂疾이 발작할 것이 분명합니다 : 한유의 「上張僕射書」에 “옛사람이 ‘사람마다 각자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를 억지로 행하게 하면 반드시 광질이 발작해서, 위로는 공무公務를 받들어 행할 수가 없어 은덕에 보답할 도리를 잊게 될 것이요, 아래로는 자립할 수가 없어 평소에 먹은 마음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古人有言曰。 人各有能有不能。 若此者。 非愈之所能也。 抑而行之。 必發狂疾。 上無以承事于公。 忘其將所以報德者。 下無以自立。 喪失其所以爲心。)”라는 말이 나온다. 『古文眞寶』 후집後集 권2에 수록되어 있다.
  7. 163)그저 귀를 어지럽히기만 하였으니 : 참고로 『장자』 「天地」에 “다섯 가지 소리가 귀를 어지럽혀서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五聲亂耳。 使耳不聰。)”라는 말이 나온다.
  8. 164)흥이 다해서 그냥 돌아가신 것입니까 : 진晉나라 왕휘지王徽之가 폭설이 내린 달 밝은 밤에 산음山陰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좌사左思의 〈招隱詩〉를 읊다가 불현듯 섬계剡溪에 있는 벗 대규戴逵가 보고 싶어지자, 밤새도록 배를 몰고 그 집 앞에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서 그냥 돌아왔다.(乘興而行。 興盡而返。)”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世說新語』 「任誕」)
  9. 165)조수鳥獸와 함께 사는 자 : 은자隱者나 승려 등 방외인方外人을 비유하는 말이다. 『논어』 「微子」에 “조수와는 함께 살 수가 없다. 내가 사람의 무리와 함께하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라고 말하면서 은자인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을 비판한 공자의 탄식이 나온다.
  10. 166)면교面交 :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겉치레의 형식적인 사귐을 말한다.
  11. 167)혜원惠遠이나 태전太顚 : 유자儒者와 교유한 불승佛僧들이다. 혜원은 동진東晉의 고승으로,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승속僧俗 18인과 더불어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고 도연명陶淵明 등과 교유하였으며, 태전은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있을 적에 친하게 지내었던 노승이다. 혜원은 혜원慧遠이라고도 한다.
  12. 168)10년 동안~지내게 되었습니다 :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어 평화로운 고장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칼을 갈아서 닭을 잡는다는 것은 지방을 다스리는 일을 비유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을 때, 조그마한 고을에서 예악禮樂의 정사를 펼치는 것을 보고는, 공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割雞焉用牛刀)”라고 농담으로 말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論語』 「陽貨」) 또 이백李白의 시에 “이곳 백 리의 고을만은 태고시대처럼 순박하여 흥겹게 희황 이전의 사람으로 누워 지낸다.(百里獨太古。 陶然臥羲皇。)”라는 구절이 나온다.(『李太白集』 권10 〈經亂離後 天恩流夜郎 憶舊遊書懷 贈江夏韋太守良宰〉) 희황羲皇은 상고시대의 복희씨伏羲氏를 말하는데,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글에 “오뉴월 여름철에 북창 아래에 누워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희황 이전의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다.(五六月中。 北窓下臥。 遇凉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는 구절이 나온다.(『陶淵明集』 권7 「與子儼等疏」)
  13. 169)만약 추상秋霜~아쉽기만 합니다 : 조정에 들어가면 재상으로서 경륜을 발휘하여 멋있게 국정을 운영할 것인데 지금 그렇지 못하여 아쉽다는 말이다. 전욱顓頊이 예영曳影이라는 명검을 써서 사방을 정벌하였는데, 그 검을 사용하지 않고 상자 속에 보관하고 있을 때에는 용과 범이 신음하는 듯한 소리(如龍虎之吟)가 새어 나왔다는 전설이 전한다.(『拾遺記』 「顓頊」) 촉룡燭龍은 촛불을 입에 물고 비춰 주는 용이라는 뜻이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天問〉에 “태양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을 텐데 촉룡이 어째서 비춰 주는가.(日安不到。 燭龍何照。)”라는 말이 나오는데, 후한後漢 왕일王逸이 해설하기를, “하늘의 서북쪽에 해가 없는 어둠의 나라가 있는데, 그곳은 용이 촛불을 입에 물고 비춰 준다.(天之西北有幽冥無日之國。 有龍銜燭而照之也。)”라고 하였다. 운붕雲鵬은 구름 높이 치솟아 날아가는 대붕大鵬이라는 말이다.
  14. 170)이 세상에~않았던 분(生民以來未有也) : 최 정언이 공자와 같은 인물이라는 뜻으로 잔뜩 치켜세워 준 해학적인 표현이다. 공자의 제자인 재아宰我와 자공子貢과 유약有若이 “이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공자와 같은 분은 계시지 않았다.(生民以來未有孔子也)”라고 말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맹자孟子가 그들의 지적 수준으로 볼 때 성인을 알기에 충분했을 것이요, 또 자기들이 좋아하는 분이라고 해서 굳이 아첨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말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려고 길게 설명한 내용이 『맹자』 「公孫丑」 상에 나온다.
  15. 171)구품九品의 연지蓮池 : 극락정토에 왕생할 때 아홉 등급으로 나뉘는 연지蓮池를 말한다. 『觀無量壽經』에 의하면, 아홉 등급은 중생의 근기를 상품ㆍ중품ㆍ하품으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상생上生ㆍ중생中生ㆍ하생下生으로 나눈 것인데, 이에 따라 왕생하는 정토도 구품의 정토로 나뉘고, 이들을 맞는 아미타불阿彌陀佛도 구품의 미타로 나뉘고, 수인手印도 구품의 수인으로 나뉘고, 염불하는 방법도 구품의 염불로 나뉜다고 한다. 이 구품 왕생 중에서 상품 상생의 경우는 그가 임종할 때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금강대金剛臺를 가지고 와서 그를 영접한다고 한다.
  16. 172)사람이 형편없다고~버리지 않는다(不以人廢言) : 『논어』 「衛靈公」에 “군자는 말만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이 형편없다고 해서 그 사람의 좋은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17. 173)보는 날은~날이 많다(見少離別多) : 이백의 시에 “가고 오는 슬픔 어찌할거나. 보는 날은 적고 이별의 날이 많으니.(去來悲如何。 見少離別多。)”라는 말이 나온다.(『李太白集』 권3 〈長干行〉) 이 한림李翰林은 이백의 별칭이다.
  18. 174)백련白蓮의 고회高會 :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慧遠이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유유민劉遺民ㆍ뇌차종雷次宗 등 명유名儒를 비롯하여 승속僧俗의 18현賢과 함께 서방 정토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염불 결사結社를 맺은 고사를 말하는데, 그 절의 못에 백련白蓮이 있었으므로 백련사白蓮社 혹은 연사蓮社라고도 칭한다.(『蓮社高賢傳』 「慧遠法師」)
  19. 175)탄환과 같은 한 구역 : 우리나라가 중국에 비해서 비좁은 것을 비유한 말이다. 탄환은 흑자탄환黑子彈丸의 준말로, 매우 작은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북주北周 유신庾信이 지은 「哀江南賦」의 “땅은 검은 사마귀만 하고, 성은 탄환과 같다.(地惟黑子。 城猶彈丸。)”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20. 176)언제 한~적이나 있으리오(何曾見一人) : 고관들이 벼슬을 그만두고 산속에 들어와서 한가히 지내겠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정작 그 말을 실천하여 절간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당나라 시승詩僧 영철靈徹이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있을 적에 강서江西의 홍주 자사洪州刺史 위단韋丹이 칠언절구의 시를 보내 산림에 귀은歸隱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영철이 역시 칠언절구로 답하였는데, 그 3구와 4구에 “만나는 이마다 벼슬 관두고 떠나겠다 말하지만, 숲 속에서 언제 한 사람 본 적이나 있으리오.(相逢盡道休官去。 林下何曾見一人。)”라는 표현이 나온다.(『雲溪友議』 권중 「思歸隱」)
  21. 177)달 속의~꺾으려다가 실패했다 : 문과文科에 응시하여 급제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현량대책賢良對策에서 장원壯元을 한 극선郤詵에게 진 무제晉武帝가 소감을 묻자, 극선이 “계수나무 숲의 가지 하나를 꺾고, 곤륜산崑崙山의 옥돌 한 조각을 쥐었다.”라고 답변하였는데, 월궁月宮에 계수나무가 있다는 전설을 여기에 덧붙여서 과거 급제를 ‘월궁절계月宮折桂’로 비유하곤 한다.(『晉書』 권52 「郤詵傳」)
  22. 178)도룡屠龍 : 용 잡는 기술을 써 보지 못했다는 도룡무용屠龍無用의 준말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할 때 쓰는 말이다. 『장자』 「列御寇」의 “주평만이 지리익에게서 용 잡는 기술을 배웠는데, 천금의 가산家産을 다 쏟으면서 3년 만에 그 기예를 완전히 익혔지만, 그 기교를 발휘해 볼 곳이 없었다.(朱泙漫學屠龍於支離益。 單千金之家。 三年技成。 而無所用其巧。)”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3. 179)담담한 경지에서~방황할 것이며 : 『장자』 「應帝王」에 “그대가 마음을 담담한 경지에서 노닐고, 기운을 적막한 세계에 맞추어 모든 일을 자연에 따르게 하며 사심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천하는 잘 다스려질 것이다.(汝遊心於淡。 合氣於漠。 順物自然而無容私焉。 而天下治矣。)”라는 말이 나오고, 「逍遙遊」에 “지금 그대가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쓸모가 없다고 걱정한다면, 어찌하여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의 광막한 들판에다 심어 놓고, 그 옆에서 하는 일 없이 방황하고, 그 아래에서 누워 지내며 소요하지 않는 것인가?(今子有大樹。 患其無用。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 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라는 말이 나온다.
  24. 180)만승천자萬乘天子의 높은~돌아보지 않으면서 : 남조南朝 송宋의 공치규孔稚珪가 지은 「北山移文」에 “세상 밖에 우뚝 높이 솟고, 연하의 밖에 맑고 깨끗해서 천금을 지푸라기처럼 여겨 돌아보지 않고, 만승천자의 높은 지위를 헌신짝 버리듯 한다.(亭亭物表。 皎皎霞外。 芥千金而不盼。 屣萬乘其如脫。)”라는 말이 나온다.
  25. 181)원추鵷鶵가 썩은 쥐를 대하는 정도 : 원추는 지인至人을, 썩은 쥐는 세상의 공명功名을 비유한 말인데, 앞의 각주 108 참조.
  26. 182)몸을 세우고~행하려 하니 : 『孝經』 「開宗明義章」에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요, 자신의 몸을 바르게 세우고 바른 도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날림으로써 부모님을 드러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는 말이 나오는데, 무용당이 효의 시작과 마지막을 뒤바꿔서 서술한 것이 주목된다.
  27. 183)한나절의 한가함 : 당唐나라 이섭李涉이 지은 〈題鶴林寺僧舍〉라는 시의 “절간을 지나다가 스님과 만나 나눈 얘기, 떠도는 몸 한나절의 한가함을 또 얻었네.(因過竹院逢僧話。 又得浮生半日閑。)”라는 명구를 인용한 것이다.
  28. 184)도陶가 원遠을~사랑한 것 : 도연명陶淵明과 혜원慧遠, 소동파蘇東坡와 참료자參寥子의 친분을 말한다.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이 도연명에게 술을 마시게 해주겠다고 하여 도연명을 동림사로 유인한 고사가 있으며, 또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그 위에 눕곤 해서 패인 흔적이 남게 되었다는 이른바 연명취석淵明醉石도 여산에 있다고 한다.(『蓮社高賢傳』 「惠遠法師」, 『朱子語類』 권138) 참료자는 송宋나라의 저명한 시승詩僧인 도잠道潛의 호이다. 소동파와 절친한 관계를 맺고 시를 주고받았으며, 『三寥子詩集』이 세상에 전한다.
  29. 185)오마五馬 : 지방 수령을 비유하는 말인데, 앞의 각주 59 참조.
  30. 186)천근한 말도 자세히 살피기를 좋아하시어 : 『중용』의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천근한 말도 자세히 살피기를 좋아하였으며, 남의 잘못을 숨겨 주고 잘한 점을 치켜세워 주었다.(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라는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31. 187)희황羲黃의 시대 : 희황은 고대 전설에 나오는 복희씨伏羲氏와 황제黃帝의 병칭으로, 이상적인 태평 시대를 뜻한다.
  32. 188)금비金鎞 : 안과 수술용 쇠칼을 가리킨다. 옛날 인도의 양의良醫가 금비를 가지고 맹인의 눈알에 덮인 희끄무레한 백태를 긁어내어 광명을 되찾게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涅槃經』 권8에 나온다.
  33. 189)베로 만든~뇌문雷門에 어울리겠습니까 : 무용당 자신의 시는 베로 만든 북(布鼓)과 같아서 뇌문의 북과 같은 방백의 시와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다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한漢나라 왕존王尊이 동평왕東平王의 상相이 되었을 때, 왕 앞에서 태부太傅가 〈相鼠〉라는 시를 강론하는 것을 보고는, “소리도 안 나는 베 북을 가지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큰 북이 걸려 있는 뇌문 앞을 지나가지 마라.(毋持布鼓過雷門)”라고 하면서, 변변찮은 재주로 자기 앞에서 뽐내지 말라는 뜻으로 힐난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뇌문은 회계會稽의 성문을 가리키는데, 뇌문 위에 걸린 북은 소리가 커서 낙양洛陽에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漢書』 「王尊傳」)
  34. 190)시천詩川 : 이후원李厚遠(1598~1660)의 호이다. 둔촌遁村 이집李集의 10대손으로, 이집의 문집 『遁村雜詠』을 개간하였으며, 문집으로 『詩川集』이 있다. 이덕수李德壽의 『西堂私載』에 『시천집』의 서문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 처사 이 공李公이 보성寶城의 시천에 은거하여 임천林泉의 낙을 즐겼다는 말이 나온다.
  35. 191)빗자루를 든 제자 : 빗자루 운운은 축신祝腎의 제자 전개지田開之가 “저는 빗자루를 들고 문간과 뜰이나 쓸 뿐이었으니, 선생님에게 무엇을 들었겠습니까.(開之操拔篲以侍門庭。 亦何聞於夫子。)”라고 한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莊子』 「達生」)
  36. 192)도혜陶惠와 한전韓顚 : 도연명陶淵明과 혜원惠遠, 한유韓愈와 태전太顚의 친분을 말하는데, 앞의 각주 167 참조.
  37. 193)노능盧能이 본래~읊은 것 : 중국 불교 선종禪宗의 오조五祖인 홍인 선사弘忍禪師의 상좌 신수神秀가 “몸은 바로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떨고 닦아서 먼지가 일지 않게 해야 한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拂拭勤。 勿使惹塵埃。)”라고 게偈를 짓자, 혜능慧能이 이를 반박하여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요, 명경은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먼지가 어디에서 일어난단 말인가.(菩提本非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게를 지어 읊은 고사가 『六祖壇經』에 나온다. 혜능의 속성이 노씨盧氏이기 때문에 노능盧能이라고도 한다.
  38. 194)서자西子가 이마~경우도 있는데 : 무용당이 실력은 없이 다른 사람의 시문이나 모방해서 짓는다는 뜻으로 인용한 말이다.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미인 서시西施가 가슴이 아파서 이마를 찌푸리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느낀 추녀醜女가 자기도 이를 흉내 내어 얼굴을 찡그리며 다니자 사람들이 모두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장자』 「天運」에 나온다.
  39. 195)조문석사朝聞夕死 : 『논어』 「里仁」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40. 196)우물 안~말한 것 : 『장자』 「秋水」에 이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41. 197)시동尸童과 축관祝官이~하고 있으니 : 분수를 모르고 주제넘게 행동한다는 말이다. 『장자』 「逍遙遊」의 “요리하는 사람이 주방에서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시동이나 축관이 제기를 뛰어넘어 와서 그 일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庖人雖不治庖。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42. 198)숭악 전崇岳顚과 황벽 운黃檗運 : 숭악은 남송南宋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승려인 송원松源을 가리키고, 황벽黃檗은 당나라의 선승禪僧인 희운希運을 가리킨다. 육유陸游가 송원의 탑명塔銘을 짓고, 배휴裵休가 희운의 어록을 정리한 고사가 유명하다. 숭악과 전顚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43. 199)깜깜한 길에~노려보는 법이니 :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서 오히려 시기하고 모함할 우려가 있다는 말이다. 한나라 추양鄒陽이 모함을 받고 투옥된 뒤에 옥중에서 상소한 글 가운데 “깜깜한 길을 비춰 주려고 명월주와 야광벽을 던져 주면, 모두가 칼을 뽑으려 하면서 노려본다.(明月之珠。 夜光之璧。 以闇投人於道路。 人無不按劍相眄者。)”라는 대목이 나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史記』 「魯仲連鄒陽列傳」)
  44. 200)조박糟粕 : 술 찌꺼기라는 말이다. 조백糟魄이라고도 한다. 제 환공齊桓公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윤편輪扁이 “왕이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술 찌꺼기이다.(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而夫。)”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莊子』 「天道」)
  45. 201)세상에 표준이~것(立言)이 그것이다 : 『春秋左氏傳』 「襄公」 24년에 “덕을 세우는 것이 최상이요, 공을 세우는 것이 그 다음이요, 말을 세우는 것이 그 다음인데, 이 세 가지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를 일러 썩지 않는다고 한다.(太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라는 이른바 삼불후三不朽에 대한 말이 나온다.
  46. 202)일반一斑 : 표범 무늬 중의 하나의 반점斑點이라는 뜻으로, 전체는 못 되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식견을 갖춘 것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소년 시절에 도박 놀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훈수를 하다가, “대롱으로 표범을 보고는 그 반점 하나를 보는 식이다.(管中窺豹。 見一斑。)”라고 비평을 받은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世說新語』 「方正」)
  47. 203)경희慶喜 : 범어 Ānanda의 의역인데, 음역은 아난阿難, 혹은 아난다阿難陀이다. 불타의 십대 제자 중 하나로,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일컬어지는데, 불경은 모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如是我聞)”라는 그의 말로 시작된다.
  48. 204)수명친착樹鳴親着 : 인도의 논사인 용수龍樹ㆍ마명馬鳴ㆍ세친世親ㆍ무착無着의 합칭이다.
  49. 205)외장관밀外長觀密 : 외外와 장長은 미상이다. 글자가 잘못되지 않았나 의심되기도 한다. 관觀과 밀密은 중국 화엄종의 4조와 5조인 당나라 청량 징관淸涼澄觀과 규봉 종밀圭峯宗密을 말하는 듯하다.
  50. 206)다섯 종파 : 중국 선종禪宗의 오가五家, 즉 위앙종潙仰宗ㆍ임제종臨濟宗ㆍ운문종雲門宗ㆍ법안종法眼宗ㆍ조동종曹洞宗을 말한다.
  51. 207)교연皎然과 육우陸羽 : 교연은 당대唐代의 저명한 시승詩僧이다. 장성長城 사씨謝氏의 아들로, 사영운謝靈運의 10세손이라고 하며, 호주湖州의 저산杼山에 거하였으므로 저산으로 칭해지기도 하였다. 육우는 당나라의 은자隱者로 『茶經』 3편의 저술을 남겨 다성茶聖과 다신茶神으로 추앙을 받았으며, 교연과는 치소망년지교緇素忘年之交를 맺고 막역하게 지내었다.
  52. 208)비단옷을 안에~수가 없었다 : 무용당은 자신의 문채가 드러나지 않도록 속에 감췄으나 시간이 갈수록 명성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中庸』 33장에 “『시경』에 ‘비단옷을 입고 겉에 홑옷을 걸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싫어해서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은은하게 날로 빛이 나는 반면에, 소인의 도는 산뜻한 듯하지만 날로 빛이 바래는 것이다.(詩曰。 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라는 말이 나온다.
  53. 209)새가 나래를~날아가는 듯하여(鳥斯革翬斯飛) : 건물이 웅장하고 화려한 것을 뜻하는 표현인데, 『시경』 「小雅」 〈斯干〉의 “추녀가 마치 새가 나래를 펼치는 듯, 꿩이 날아가는 듯하였다.(如鳥斯革。 如翬斯飛。)”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54. 210)이루離婁 : 황제黃帝 때에 백 보步 앞에서 추호秋毫의 끝을 알아보고, 천 리의 침봉鍼鋒을 알아볼 정도로 눈이 밝았다는 사람의 이름이다. 이주離朱라고도 한다.
  55. 211)장백匠伯이 도끼를 휘둘렀으며 : 영郢이라는 지역의 장석匠石이 도끼를 휘둘러서 사람의 코끝에 살짝 묻힌 하얀 흙만 교묘하게 떼어내고 사람은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흙을 묻힌 사람은 가만히 서서 미동微動도 하지 않았다는 운근성풍運斤成風의 이야기가 『장자』 「徐无鬼」에 나온다.
  56. 212)승요僧繇 :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화공畫工 장승요張僧繇를 가리킨다. 양 무제梁武帝가 절을 꾸미려고 그에게 단청을 하게 하였는데, 네 마리 용 가운데 눈동자의 점을 찍은 두 마리는 곧바로 날아가 버리고 눈동자를 찍지 않은 두 마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화룡점정畫龍點睛의 고사가 전한다.(『歷代名畫記』 「張僧繇」)
  57. 213)기린의 뿔과 봉황의 부리 : 최상급의 아교를 말한다. 서해 봉린주鳳麟洲에 사는 봉황의 부리(鳳喙)와 기린의 뿔(麟角)을 합쳐서 달여 만든 속현교續絃膠라는 아교풀은 궁노弓弩의 끊어진 줄도 다시는 끊어지지 않게 단단히 이을 수 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海內十洲記』, 『博物志』 권3)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기린 뿔과 봉의 부리를 세상이 알지 못하는데, 아교풀 달여 줄 이으면 기이함 절로 드러나네.(麟角鳳觜世莫識。 煎膠續弦奇自見。)”라는 말이 나온다.(『杜少陵詩集』 권3 〈病後遇王倚飲贈歌〉)
  58. 214)서촉西蜀의 단청丹靑 : 최상급의 채색 물감을 말한다. 이사李斯의 「上秦皇逐客書」에, 반드시 진秦나라의 산물만 고집한다면 “서촉에서 생산되는 단청이 진나라에서는 채색으로 쓰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西蜀丹靑不爲采)”라는 말이 나온다.
  59. 215)옛날에 중니仲尼가~훨씬 뛰어나다(賢於堯舜遠矣) : 공자가 멀리 요임금과 순임금을 조종祖宗으로 받들어 계승하고, 가까이로는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법도를 드러내 밝혔다(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는 말이 『중용』에 나온다. 또 『맹자』 「公孫丑」 상에, 재아宰我와 자공子貢과 유약有若의 지혜가 비록 낮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승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공자에게 아부하며 영합하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汚不至阿其所好)라고 맹자가 전제한 뒤에 본문에 나오는 재아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60. 216)십이부十二部 : 십이부경十二部經, 즉 불경을 형식과 내용에 따라 열두 종으로 분류한 것으로, 계경契經ㆍ응송應頌ㆍ기별記別ㆍ풍송諷頌ㆍ자설自說ㆍ인연因緣ㆍ비유譬喩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ㆍ방광方廣ㆍ희법希法ㆍ논의論議 등을 말하는데, 십이분경十二分經 혹은 십이분교十二分敎라고도 한다.
  61. 217)사성육범四聖六凡 : 십계十界를 가리킨다. 십계는 미迷와 오悟, 즉 범부凡夫와 성자聖者의 두 종류로 나뉘는데, 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修羅ㆍ인간ㆍ천상 등 육계六界를 육범六凡이라 하여 유위有爲의 과보에 소속시키고, 성문聲聞ㆍ연각緣覺ㆍ보살菩薩ㆍ불佛 등 사계四界를 사성四聖이라 하여 무위無爲의 과보에 소속시킨다. 또 불을 제외한 구계九界를 인因으로 하고, 불의 일계一界를 과果로 하여 구인일과九因一果라고 칭하기도 한다.
  62. 218)칠중七衆 : 부처를 따르는 일곱 부류의 제자라는 뜻으로,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式叉摩那ㆍ사미沙彌ㆍ사미니沙彌尼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를 가리키는데, 이 중에서 우바새와 우바이는 재가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출가인이다.
  63. 219)현수賢首의 주각註脚 : 당나라 현수 법장賢首法藏의 『般若波羅蜜多心經略疏』 1권을 말한다. 줄여서 『般若心經略疏』라고도 한다.
  64. 220)옥봉玉峰의 연주連珠 : 남송南宋 옥봉사회玉峰師會가 현수賢首의 『略疏』를 다시 주석한 『般若心經略疏連珠記』 2권을 말한다.
  65. 221)책 공策公이~빛나도록 하였는데 : 책 공은 누구인지 미상이다. 당나라 규봉 종밀圭峯宗密이 금강경 해설서로 『金剛般若經疏論纂要』 2권을 지었다.
  66. 222)내가 그~흉내 내었다 : 글을 잘 써 줄 사람도 많겠지만 사형師兄과의 정리情理를 생각해서 부족한 솜씨나마 이렇게 서문을 쓰게 되었다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송무松茂는 『시경』 「小雅」 〈斯干〉의 “대나무가 꽉 들어찬 듯, 소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듯, 형과 아우가 서로 좋아하도다.(如竹苞矣。 如松茂矣。 兄及弟矣。 式相好矣。)”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한 것이다. 손을 다친다는 것은 『노자』 74장의 “뛰어난 목수 대신 나무를 깎는다면, 손을 다치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夫代大匠斲者。 希有不傷其手矣。)”라는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일빈一嚬은 한 번 찡그린다는 뜻인데, 앞의 각주 194 참조.
  67. 223)범음梵音의 유래는~거슬러 올라간다 : 조위曹魏의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이 어산魚山에서 노닐 적에 암곡巖谷 사이에서 송경誦經하는 소리를 듣고는 감동한 나머지 그 음절을 모사摹寫하여 범패梵唄를 지었다고 한다. 어산은 산동성山東省 동아현東阿縣 서쪽에 있는데, 어산魚山 혹은 오산吾山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유래하여 범패를 어범漁梵 혹은 어패漁唄라고도 한다.(『法苑珠林』 권36, 「佛祖歷代通載』 권6, 『釋氏稽古略』 권1)
  68. 224)옥천玉泉 : 지리산 옥천사玉泉寺에 주석하며 『魚山九鑑』을 지은 신라 진감眞鑑 선사 혜조慧照를 말한다. 앞의 각주 52 참조. 최치원崔致遠의 『孤雲集』 제2권 「眞監和尙碑銘」에 “선사는 본디 범패를 잘하였다. 그 음성은 마치 금옥金玉이 울리는 것 같았는데, 측조側調로 날리는 소리가 상쾌하고도 애잔하여 제천諸天의 신神들을 환희하게 할 정도여서 길이 먼 곳까지 유전流傳될 만한 것이었다. 이를 배우는 자들이 당우堂宇에 가득하였는데, 선사는 싫증을 내지 않고 이들을 정성껏 가르쳤다. 그래서 지금까지 동국東國에서 어산魚山 범패의 묘음妙音을 익히는 자들이 다투어 코를 막는 것(掩鼻)처럼 하면서 옥천玉泉의 여향餘響을 본받고 있으니, 이 어찌 성문聲聞으로 제도濟度하는 교화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이 나온다.
  69. 225)포고布鼓를 가지고~되고 말았으니 : 자격이 없는 자가 오히려 실력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덤벼들며 설치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앞의 각주 189 참조.
  70. 226)오언烏焉 : 글자의 모양이 서로 비슷해서 착오를 빚기 쉽기 때문에 베껴 쓰거나 전달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잘못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71. 227)이웃 사람들이~본받게 되었다 : 무용당이 실력도 없이 서문을 쓰게 되었다는 뜻으로 인용한 고사인데, 앞의 각주 194 참조.
  72. 228)송宋나라 사람이~무엇보다도 중요하니 : 알기 쉽게 해주려고 해설을 덧붙이는 것이 본래의 선지禪旨에는 어긋난다고 할 수 있으나, 둔근鈍根 중생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뜻으로 비유한 말이다. 어떤 송나라 사람이 밭의 싹을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위로 뽑아 올렸다는 알묘조장揠苗助長의 이야기가 『맹자』 「公孫丑」 하에 나온다. 수모水母는 해파리이다. 해파리는 이목耳目이 없으므로 사람을 피할 줄 모르는데, 해파리에 의지하여 붙어사는 새우가 사람을 보고는 놀라기 때문에 물속으로 들어가 피한다는 수모목하水母目蝦의 이야기가 진晉나라 곽박郭璞의 「江賦」에 나온다.
  73. 229)미천彌天 노인 : 미천은 진晉나라 고승 도안道安의 별명인데(앞의 각주 24 참조), 여기서는 조선 숙종肅宗 때의 승려인 월저 도안月渚道安(1638~1715)을 가리킨다. 그의 제자에 설암 추붕雪巖秋鵬(1651~1706)이 있다. 본문의 붕 공은 추붕을 가리킨다.
  74. 230)아홉 길의~없게 하였다 : 유종有終의 미를 거두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말이다. 『書經』 「旅獒」의 “밤낮으로 혹시라도 부지런하지 않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작은 행실을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에 누를 끼친 결과, 마치 아홉 길의 산을 쌓아 올리다가 한 삼태기의 흙을 덜 부어 망쳐 버리는 것처럼 될 것이다.(夙夜罔或不勤。 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75. 231)붕 공이야말로~이를 만하다 : 추붕秋鵬이 효자처럼 은사인 도안道安의 뜻을 잘 계승하여 발전시켰다는 말이다. 『중용』의 “효라고 하는 것은 선인의 뜻을 잘 계승하고 그 사업을 잘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76. 232)나를 망하게 한다(喪予) : 애제자를 잃은 슬픔을 비유하는 말이다. 안연顔淵이 죽었을 때, 공자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다.(天喪予)”라고 탄식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論語』 「先進」)
  77. 233)백장 대사百丈大士 : 당나라 백장 회해百丈懷海(720~814)를 가리킨다. 선종禪宗이 형성되던 초기에 선림禪林에 제도나 의식이 없었는데, 백장이 총림叢林을 건립하면서 법당法堂ㆍ승당僧堂ㆍ방장方丈 등의 제도를 만들고, 동서東序ㆍ요원寮元ㆍ당주堂主ㆍ화주化主 등 승려의 각종 직무를 규정하였다. 이것을 『百丈淸規』라고 한다.
  78. 234)제천諸天 : 불교 사원이나 암자의 별칭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나무 덩굴 저 너머에 응당 암자가 있으련만, 깜깜해진 뒤에나 겨우 꼭대기에 오르겠군.(諸天合在藤蘿外。 昏黑應須到上頭。)”이라는 구절이 나온다.(『杜少陵詩集』 권12 〈涪城縣香積寺官閣〉)
  79. 235)십도十度 : 십바라밀十波羅蜜을 가리킨다. 보시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ㆍ정려靜慮ㆍ지혜의 육바라밀六波羅蜜에, 방편ㆍ원願ㆍ역力ㆍ지智의 바라밀을 더한 것이다. 십승행十勝行이라고도 한다.
  80. 236)게려揭厲 : 사람이 냇물을 건너가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시경』 「邶風」 〈匏有苦葉〉에 “허리띠에 찰 정도로 물이 깊으면 옷 입은 채로 건너가고, 물이 무릎 아래 정도로 차면 바지를 걷고 건너간다.(深則厲。 淺則揭。)”라는 말이 나온다.
  81. 237)꿩이 날고~치는 듯한(翬飛鳥革) : 장려壯麗한 건축물을 표현하는 말인데, 앞의 각주 209 참조.
  82. 238)방포方袍 : 방포객方袍客의 준말로, 승려를 가리킨다. 방포는 방형方形으로 된 비구의 가사를 가리킨다. 방복方服이라고도 한다.
  83. 239)대원왕大願王 :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열 가지 대원大願과 같은 큰 서원을 뜻한다.
  84. 240)우로愚老가 산을~메우려는 것 : 우공이산愚公移山과 정위전해精衛塡海의 설화를 인용한 것으로,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무모한 계책을 말할 때 쓰는 비유이다. 북산北山의 우 공愚公이 앞에 산이 가로막혀 통행이 불편하였으므로 가족들과 함께 산을 옮기려고 매일 흙을 퍼 나르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산신령이 비웃었으나 자자손손 대대로 이 일을 행하겠다는 우 공의 뜻을 알고는 천제天帝에게 보고하자, 이에 감동한 천제가 신력의 소유자인 과아씨夸娥氏를 내려보내 그 산을 등에 업고 다른 곳에 옮기게 했다는 이야기가 『列子』 「湯問」에 나온다. 또 염제炎帝의 막내딸이 동해에서 노닐다가 익사한 뒤에 한을 품고 정위精衛라는 작은 새가 되어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우려고 했다는 전설이 『山海經』 「北山經」에 나온다.
  85. 241)열여섯 분 성인聖人 : 송광사의 이른바 열여섯 국사國師를 말하는데, 차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보조普照 국사 지눌知訥(1158~1210), ② 진각眞覺 국사 혜심慧諶(1178~1234), ③ 청진淸眞 국사 몽여夢如(?~1252), ④ 진명眞明 국사 혼원混元(1191~1271), ⑤ 원오圓悟 국사 천영天英(1215~1286), ⑥ 원감圓鑑 국사 충지沖止(1226~1292), ⑦ 자정慈靜 국사, ⑧ 자각慈覺 국사, ⑨ 담당湛堂 국사, ⑩ 혜감慧鑑 국사 만항萬恆(1249~1319), ⑪ 자원慈圓 국사, ⑫ 혜각慧覺 국사, ⑬ 각진覺眞 국사 복구復丘(1270~1355), ⑭ 정혜淨慧 국사, ⑮ 홍진弘眞 국사, ⑯ 고봉高峰 국사 법장法藏(1350~1428).
  86. 242)승요僧繇 : 남북조시대의 유명한 화가 장승요張僧繇를 가리킨다. 앞의 각주 212 참조.
  87. 243)사위국의 급고~정사를 헌납하였다 : 기원정사祇園精舍의 고사를 말한 것이다. 인도 사위성의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석가의 설법을 듣고 매우 경모敬慕한 나머지 정사를 세워 주려고 기타 태자祇陀太子의 원림園林을 구매하려고 하자, 태자가 장난삼아서 “황금을 이 땅에 가득 깔면 팔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수달 장자가 집에 있는 황금을 코끼리에 싣고 와서 그 땅에 가득 깔자, 태자가 감동하여 그 땅을 매도하는 한편 자기도 원園 중의 임목林木을 희사하여 마침내 기원정사를 건립하였다. 수달 장자는 급고독給孤獨 장자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는데, 이 정사가 기타 태자와 그의 후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정사는 왕사성王舍城의 죽림정사竹林精舍와 함께 불교 최초의 양대 정사로 꼽힌다. 겸금兼金은 보통의 금보다 갑절의 값이 나가는 상품의 금을 말한다. 천중천은 제천諸天 중의 가장 수승한 자라는 뜻으로, 부처의 존호의 하나이다. 천인중존天人中尊·천중왕天中王·초신超神·신중지신神中之神·천인사天人師 등으로 칭하기도 한다.
  88. 244)송광사 상사당上舍堂의 인연 : 수선사修禪社 제9대 담당湛堂 국사가 송광사 상사당에서 암자 곁의 예천醴泉을 마시며 선정을 닦은 끝에 사흘 만에 견성했다는 전설을 말한다. 그래서 그 암자를 삼일암三日庵이라 하고, 샘 이름도 삼일영천三日靈泉이라고 했다 한다.
  89. 245)이구尼丘 : 산동山東 곡부曲阜에 있는 산 이름인데, 여기서는 공자의 별칭으로 쓰였다. 공자의 부모가 이곳에서 기도하여 공자를 낳았다(禱於尼丘得孔子)는 기록이 『史記』 「孔子世家」에 나온다. 그래서 공자의 이름을 구丘라 하고, 자字를 중니仲尼로 했다고 한다.
  90. 246)동산桐山 :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桐裏山을 가리킨다. 신라 혜철 국사惠哲國師(785~861)가 헌덕왕憲德王 6년(814)에 당나라에 가서 서당 지장西堂地藏의 심인心印을 받고 문성왕文聖王 1년(839)에 돌아와 전남 곡성谷城 동리산桐裏山 태안사泰安寺에서 개당開堂하고 동리산파桐裏山派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혜철惠哲은 혜철慧徹로, 태안사泰安寺는 태안사大安寺로 쓰기도 하고, 동리산桐裏山은 봉두산鳳頭山으로 칭해지기도 한다. 성기암聖祈庵은 태안사에 속한 암자이다.
  91. 247)삼명三命 : 술수가術數家들이 이야기하는 수명受命ㆍ조명遭命ㆍ수명隨命을 말한다. 수명受命은 연수年壽를 뜻하고, 조명遭命은 선善을 행하다가 흉화凶禍를 만나는 것을 말하고, 수명隨命은 선악에 따른 보답을 말한다.
  92. 248)방에 경쇠만~해야 하나 : 원래 산속에서 청빈하게 살아야 하는 승려의 생활이라고는 하나 끼니를 자주 거르는 배고픔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방 안에 아무것도 없이 경쇠만 달랑 매달려 있는 것 같다는 실여현경室如懸磬의 고사가 『춘추좌씨전』 「僖公」 26년조에 나오는데, 매우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곤 한다. 적취積翠는 푸르름이 쌓였다는 뜻으로, 청산靑山을 가리킨다. 삼순구우三旬九遇는 삼순구식三旬九食과 같다. 자사子思가 30일 동안 밥을 아홉 번 먹었다는 삼순구식의 고사가 『說苑』 「立節」에 나온다. 또 도잠陶潛의 시에 “30일 동안 아홉 번 끼니를 떼우고, 10년에 한 번 관을 썼다네.(三旬九遇食。 十年著一冠。)”라는 말이 나온다.(『陶淵明集』 권4 〈擬古〉)
  93. 249)동림東林 원 법사遠法師 :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慧遠을 말하는데, 앞의 각주 174 참조.
  94. 250)서악西岳 휴 상인休上人 : 당말唐末 오대五代의 승려인 관휴貫休(823~912)를 가리킨다. 그는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능했으며, 특히 그의 필체를 세상에서 강체姜體라고 불렀다. 그는 속성이 강씨姜氏이다. 선월 대사禪月大師와 득득 화상得得和尙이라는 별호가 있으며, 『西岳集』과 『禪月集』이 전한다. 『古文眞寶』 전집前集 7권에 〈古意〉라는 제목의 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全唐詩』 권829 〈寄馮使君〉이라는 제목의 오언율시 1구, 2구에 “벽운의 저물녘에 단정히 앉아 있노라니, 예쁜 새가 붉은 꽃에 목 놓아 우네.(端居碧雲暮。 好鳥啼紅芳。)”라는 말이 나온다.
  95. 251)창을 돌이켜~수 없었도다 : 혜철 국사 당대에는 스승을 능가할 만한 진정한 후계자가 나오지 않았으나, 그 뒤에 성황을 이루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파桐裏山派를 이루었다는 말이다. 창을 잡고 들어온다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능가하는 안목을 지녔다는 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과 비슷한 말이다. 후한後漢의 하휴何休가 『春秋』의 삼전三傳에 대해서 저술을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그 내용을 반박하여 수정을 가하자, 하휴가 “강성이 나의 방에 들어와서는, 나의 창을 잡고서 나를 치는구나.(康成入吾室。 操吾矛以伐我乎。)”라고 감탄하였던 고사가 전한다.(『後漢書』 「鄭玄傳」) 강성은 정현의 자字이다. 또 『史記』 「伍子胥列傳」에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역시 사람을 능히 이기는 법이다.(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라는 말이 나오는데, 소식蘇軾이 이를 인용하여 “人衆者勝天。 天定亦勝人。”이라는 시구로 표현하면서 더욱 유명한 격언이 되었다.(『蘇東坡詩集』 권45 〈用前韻 再和孫志擧〉)
  96. 252)공수公輸 :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교공巧工 공수반公輸般을 가리킨다. 공수반公輸班 혹은 노반魯班이라고도 한다.
  97. 253)이루離婁 : 눈 밝은 사람의 별칭으로서, 앞의 각주 210 참조.
  98. 254)대부大夫의 양재良材 : 양질의 목재를 뜻한다. 대부는 오대부五大夫의 준말이다. 진시황秦始皇이 태산에 올라가 봉선封禪의 제사를 올리고 나서 홀연히 폭풍우를 만나자 소나무 아래로 피했는데, 그 소나무가 공을 세웠다고 하여 오대부五大夫의 작위를 내려 봉했다는 ‘대부송大夫松’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史記』 「秦始皇本紀」)
  99. 255)높고 곧은 기둥들(覺覺之楹) : 『시경』 「小雅」 〈斯干〉의 “평평하고 반듯한 뜰 위에 높고 곧은 기둥이 섰도다.(殖殖其庭。 有覺其楹。)”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100. 256)겹겹이 바위가 쌓인 산(巖巖之石) : 『시경』 「소아」 〈節南山〉의 “우뚝 솟은 저 남산이여, 바윗돌이 겹겹이 쌓여 있도다.(節彼南山。 維石巖巖。)”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101. 257)금오金烏 : 태양의 별칭이다.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금 까마귀가 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102. 258)만수曼殊 : 네 가지 천화天華 중 하나인 만수사화曼殊沙華를 가리킨다. 부처가 『法華經』을 설하려고 삼매三昧에 들었을 적에 하늘에서 만다라화曼陀羅華ㆍ마하만다라화摩訶曼陀羅華ㆍ만수사화曼殊沙華ㆍ마하만수사화摩訶曼殊沙華 등 네 종류의 꽃이 무수히 떨어졌다고 한다. 그 꽃이 선백색鮮白色으로 유연柔軟하여 이를 보는 자들이 악업을 끊을 수 있다고 하는데, 남조南朝 양대梁代의 법운法雲이 지은 『法華義記』 권1에는 만수사화를 적단화赤團花라고 번역하였다.
  103. 259)잣나무가 뜰~완전히 드러났네 :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의 화두를 인용한 것인데, 앞의 각주 46 참조.
  104. 260)조혁휘비鳥革翬飛 : 새가 나래를 치고 꿩이 날아간다는 뜻으로, 웅장한 건물을 비유하는 말인데, 앞의 각주 209 참조.
  105. 261)철위산鐵圍山 : 우주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말한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이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주위를 팔산八山과 팔해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가장 바깥에 있는 쇠로 만들어진 산이 바로 철위산이라고 한다.
  106. 262)금륜金輪 : 지층地層의 가장 아래에 있다고 하는 금강륜金剛輪을 말한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기세간器世間은 업력業力에 의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풍륜風輪ㆍ수륜水輪ㆍ금륜金輪의 삼륜三輪으로 구성되는데, 금륜은 두께가 3억 2만 유순由旬이고, 직경은 12억 3450유순인 황금층黃金層이라고 한다.
  107. 263)비법자非法者 : 속세의 탐욕에 빠져서 불법을 범한 자들이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이름만 선승禪僧일 뿐 제대로 수도하지 않고 거드름 부리는 승려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전생에 나태하여 선禪을 닦는 시늉만 하며 사욕邪慾에 사로잡혀 바라문婆羅門 여자인 제위提韋의 공양만 받고 재물과 돈만 구하는가 하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고 속이며 기만하던 다섯 승려가 죽은 뒤에 지옥에 떨어져서 8천 겁劫이 지나서야 다시 남근男根과 여근女根이 없는 둔근鈍根의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오천제라五闡提羅의 이야기가 『未曾有因緣經』 권하에 나온다.
  108. 264)처사處士의 혼 : 매화를 가리킨다. 처사는 북송北宋의 은사隱士인 임포林逋를 가리킨다. 임포는 항주杭州 전당錢塘 사람으로,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초막을 짓고는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숨어 살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일컬었는데, 그가 매화를 읊은 〈山園小梅〉 시에 “맑고 얕은 물 위에 성긴 그림자 가로 비끼고, 황혼녘 달빛 속에 은은한 향기 떠도누나.(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라는 명구名句가 나온다.
  109. 265)청전靑田의 깃 : 학을 가리킨다. 청전은 중국 영가군永嘉郡에 있는 유명한 백학白鶴의 생산지이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드높이 날던 청전의 백학이여, 답답하게 새장에 갇혀 사누나.(軒軒靑田鶴。 鬱鬱在樊籠。)”라는 말이 나온다.(『蘇東坡詩集』 권12 〈僧惠勤初罷僧職〉)
  110. 266)현포玄圃 : 곤륜산崑崙山 정상에 있다는 신선의 거처를 말한다. 그 위에는 금대金臺 옥루玉樓와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해 있다고 하는데, 보통 선경仙境의 뜻으로 쓰인다. 현포懸圃 혹은 현포縣圃라고도 한다.
  111. 267)백설白雪의 백白과~색만 희다뿐이겠는가 : 맹자가 고자告子와 성性에 대해 논하면서 “백우의 백이 백설의 백과 같으며, 백설의 백이 백옥의 백과 같은가?(白羽之白也。 猶白雪之白。 白雪之白。 猶白玉之白與。)”라고 물은 대목을 발췌하여 인용한 것이다.
  112. 268)단사표음簞食瓢飮 :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말한다. 『논어』 「옹야」에 “어질다, 안회顔回여.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을 마시며 누항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근심하며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낙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라고 칭찬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113. 269)탁영탁족濯纓濯足 : 앞의 각주 34 참조.
  114. 270)일중일엄一重一掩은 주인의~될 것이며 : 중첩한 산봉우리는 친지親知와 같고, 산새와 산꽃은 형제와 같다는 말이다. 일중일엄은 한 번 겹치고 한 번 감싼다는 뜻으로, 산봉우리가 조밀하게 겹겹이 둘러싼 것을 말한다. 폐부肺腑는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말하고, 우우友于는 『書經』 「君奭」의 ‘우애하는 형제(友于兄弟)’에서 나온 말로, 형제를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시에 “일중일엄은 나의 폐부요, 산새와 산꽃은 나의 우우로세.(一重一掩吾肺腑。 山鳥山花共友于。)”라는 말이 나온다.(『杜少陵詩集』 권22 〈嶽麓山道林二寺行〉)
  115. 271)호중壺中의 천지 : 호리병 속의 선경仙境이라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술사術士인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에서 약을 파는 선인仙人 호공壺公의 총애를 받아 그의 호리병 속으로 들어갔더니, 그 안에 일월이 걸려 있고, 선경인 별천지가 펼쳐져 있더라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後漢書』 「方術傳」 하 〈費長房〉)
  116. 272)귤리橘裏의 건곤乾坤 : 귤 속의 세상이라는 뜻으로, 보통은 위기圍棊의 즐거움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신선과 같은 생활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촉蜀나라 파공인巴邛人의 귤원橘園에서 항아리 크기의 귤을 수확하여 쪼개 보니, 그 속에서 두 노인이 바둑을 두다가 “귤 속의 즐거움이 상산보다 못하지 않다.(橘中之樂不減商山)”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당나라 우승유牛僧孺의 『玄怪錄』 「巴邛人」에 나온다.
  117. 273)웅경조신熊經鳥伸 : 고대古代 도인양생법導引養生法의 일종으로, 곰이 나무에 올라가서 가지에 매달리거나, 새가 날아가며 목을 길게 빼고 다리를 뻗는 것 같은 동작으로 체조하는 것을 말한다.
  118. 274)탄하복기呑霞服氣 : 자연의 청정한 기운을 들이마시며 호흡을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漢書』 「司馬相如傳」 하에 “밤이슬을 마시고 아침 놀을 먹는다.(呼吸沆瀣兮餐朝霞)”라는 말이 나온다.
  119. 275)신라시대에 대각~흐르는 동안 : 선암사仙巖寺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원년(742)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고려 선종宣宗 9년(1092)에 대각大覺 국사가 중건하였다. 원문은 “自羅朝大覺國老。 創始而來。 年所幾至千有餘。”로 되어 있는데, 우선 원문에 따라 번역하였으나, 이 대목은 원문에 착오가 있는 듯하다. 일단 대각 국로를 대각 국사 의천義天으로 본다면 ‘羅朝’는 응당 ‘麗朝’가 되어야 할 것이고, ‘羅朝’가 맞는다면 ‘大覺國老’는 ‘道詵國老’의 잘못이 아닐까 한다.
  120. 276)언 대사彦大師가~할 것인가 : 언 대사는 동진東晉의 승려 담언曇彦을 말한다. 그는 허순許詢과 함께 탑을 쌓다가 허순이 먼저 죽고 나서 12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가 “2백 년 뒤에 비의가 나와서 비석에 새겨 기록할 것이다.(二百年後以待非衣刻石記之)”라고 예언하였는데, 나중에 당나라 재상 배휴裴休가 불법佛法에 귀의하여 그 말대로 했다는 이야기가 『金石史』 권2 「唐圭峯禪師碑」에 나온다. ‘非衣’는 ‘裴’의 파자破字이다. 3백 년이라고 한 것은 2백 년의 잘못으로, 무용당의 착오가 아닌가 한다.
  121. 277)보거輔車의 형세 : 상호 의지하며 힘을 합쳐서 돕는 것을 말한다. “덧방나무와 수레바퀴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게 된다.(輔車相依。 脣亡齒寒。)”라는 속담에서 나온 말이다.(『春秋左氏傳』 「僖公」 5년) 덧방나무는 짐이 떨어지지 않도록 수레의 양쪽 가장자리에 덧대어 세운 나무를 가리킨다.
  122. 278)사성四聖 : 보통은 성문聲聞ㆍ연각緣覺ㆍ보살菩薩ㆍ불佛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선암사가 선찰禪刹인 점을 감안할 때 선종에서 예불할 때의 사존四尊인 아미타불阿彌陀佛ㆍ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ㆍ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ㆍ대해중보살大海衆菩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123. 279)사람이 천지~것과 같다 : 인생이 너무도 빨리 허무하게 흘러가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 「知北游」에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사는 것은 마치 하얀 망아지가 담장의 틈 사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일 따름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라는 말이 나온다.
  124. 280)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鳥行) : 『장자』 「天地」의 “성인은 메추라기처럼 거처가 일정하지 않고 새 새끼처럼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닐 뿐 자취를 전혀 남기지 않는다.(夫聖人鶉居而鷇食。 鳥行而無彰。)”라는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125. 281)종기를 터뜨리고서 : 삶을 마감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이다. 『장자』 「大宗師」의 “그들은 삶을 혹이나 무사마귀처럼 여기고, 죽음을 붓거나 곪은 종기가 터지는 것으로 여긴다.(彼以生爲附贅縣疣。 以死爲決疣潰癰。)”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126. 282)상호相好 : 부처의 이른바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를 말한다. 삼십이상은 서른두 종류의 현저한 특징을 말하고, 팔십종호는 여든 가지의 미세한 특징을 말하는데, 『大智度論』 권4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성불하기 위해 장구한 세월과 각종 수행의 계위階位를 거치는 것을 역겁성불歷劫成佛이라고 칭하는데, 그중에 상호의 업業을 닦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127. 283)감겁減劫 : 인간의 수명은 백 년마다 1세씩 줄어드는데, 8만 세부터 점점 감소해서 10세까지 되는 기간을 감겁이라고 한다. 증겁增劫은 그 반대이다.
  128. 284)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제도할 것이다 : 현재 도솔천의 내원內院에 있는 미륵보살이 앞으로 56억 7천만 년이 지나면 이 땅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한 뒤에 3회의 법회를 열어 중생을 구원하는데, 제1회에선 96억, 제2회에선 94억, 제3회에선 92억 등 과거 석가모니불의 교법 아래에서 득도하지 못한 중생들을 상중하 삼근三根으로 구별하여 모두 제도한다고 한다. 이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혹은 미륵삼회彌勒三會ㆍ자존삼회慈尊三會라고 한다.
  129. 285)화연化緣 : 인연 있는 자를 교화한다는 뜻으로, 신도에게 보시를 권유하는 것을 말한다. 모화募化 혹은 구화求化ㆍ봉가奉加ㆍ모연募緣ㆍ권연勸緣이라고도 한다.
  130. 286)팔상성도상八相成道相 : 부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출현하여 나타내어 보이는 여덟 가지 모습으로, 여러 설이 있으나 보통 강도솔상降兜率相ㆍ탁태상託胎相ㆍ강생상降生相ㆍ출가상出家相ㆍ항마상降魔相ㆍ성도상成道相ㆍ설법상說法相ㆍ열반상涅槃相을 꼽는다. 석가팔상釋迦八相ㆍ여래팔상如來八相이라고도 하며, 혹은 줄여서 팔상八相이라고 한다.
  131. 287)불상을 맥麥의~복을 얻는다(造像如麥。 獲福無量。) : 『釋門歸敬儀』 권1 「濟時護法篇」과 『緇門警訓』 권4 「住持三寶」에 경문으로 인용되어 나온다. 맥麥은 고대 인도의 길이 단위로, 보리 한 알 정도의 길이에 해당한다. 『俱舍論』 권12와 『大唐西域記』 권2 등에 의하면, 7맥이 1지절指節과 같고, 24지절이 1주肘와 같고, 4주가 1궁弓과 같은데, 1주는 즉 2책수磔手이고, 1책수는 약 23cm에 해당한다고 한다.
  132. 288)세간은 공중에~먹는 것이다 : 세간의 복은 마치 허공에 쏘는 화살과 같아서 힘이 다하면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출세간의 복은 썩지 않는 금강석金剛石을 먹는 것과 같아서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이다. 『화엄경』 52권 「如來出現品」에 “비유컨대 장부가 약간이라도 금강을 먹으면 끝까지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譬如丈夫。 食少金剛。 終竟不消。)”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 이른바 식금강食金剛의 비유가 나온다. 또 『雲笈七籤』 권70 「內丹決法」 〈還丹內象金鑰匙〉에 “사람의 삶은 마치 화살을 공중에 쏘았을 때 힘이 다하면 다시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人之生如箭射空。 力盡還墜。)”라는 말이 나온다.
  133. 289)부사浮槎 : 전남 순천시 낙안읍의 옛 이름이다.
  134. 290)자르지도 말고~한 것(勿翦勿拜) : 주周나라 소백召伯, 즉 소공召公 석奭의 덕정德政을 찬미한 『시경』 「小雅」 〈甘棠〉의 “무성한 감당나무를 자르지도 말고 휘지도 말라. 소백이 머무셨던 곳이니라.(蔽芾甘棠。 勿翦勿拜。 召伯所說。)”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135. 291)말이 없어도 길이 이루어지는 것 : 사마천司馬遷이 이광李廣의 인품을 흠모하여 “복사꽃과 오얏꽃은 말이 없지만 사람들이 알고서 찾아오기 때문에 그 아래에 자연히 길이 이루어진다.(桃李不言。 下自成蹊。)”라고 평한 글을 인용한 것이다.(『史記』 「李將軍列傳」) 이광은 흉노가 비장군飛將軍이라고 무서워하면서 감히 침입을 하지 못했던 한 무제漢武帝 때의 명장이다.
  136. 292)무하無何 :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준말로,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이라는 뜻이다. 『장자』 「逍遙遊」의 “지금 자네가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쓸모가 없다고 걱정한다면, 어찌하여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의 광막한 들판에다 심어 놓고, 그 옆에서 하는 일 없이 방황하고, 그 아래에서 누워 지내며 소요하지 않는 것인가?(今子有大樹。 患其無用。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 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137. 293)곡굉曲肱 : 팔을 베고 눕는다는 뜻으로, 안빈낙도의 즐거움을 말한다. 『논어』 「述而」에 “나물밥에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눕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나니, 떳떳하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라고 한 공자의 말이 나온다.
  138. 294)영귀詠歸 : 노래하며 돌아온다는 뜻으로, 자연 속에서 한껏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육칠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그 기상에 감탄을 하며 “나는 점과 함께하겠다.(吾與點也)”라고 허여했던 고사가 『논어』 「先進」에 나온다.
  139. 295)나를 알~있는 것(罪我) : 공자가 『春秋』를 지었는데, 『춘추』는 천자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공자가 “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도 이 『춘추』이고, 나를 죄줄 수 있는 것도 이 『춘추』이다.(知我者其惟春秋乎。 罪我者其惟春秋乎。)”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맹자』 「滕文公」 하에 나온다.
  140. 296)나를 아는 자는 드물다(知我者稀) : 노자의 『道德經』 70장에 “나를 아는 자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존귀한 것이다.(知我者希。 則我者貴。)”라는 말이 나온다.
  141. 297)주변周遍과 상락常樂과~흩어진 것이고 : 무변법계無邊法界에서 상락아정常樂我靜의 원융한 화엄의 도리를 설하고 있는 것은, 법신法身인 비로자나毘盧遮那의 몸이 일一에서 다多로 화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비로자나가 주변미진찰해周遍微塵刹海에 시현하여 항상 십처十處에서 『華嚴大經』을 설한다는 설변십처說遍十處의 설명이 당나라 청량 징관淸涼澄觀의 『華嚴經隨疏演義鈔』에 나온다.
  142. 298)불상佛像과 사탑寺塔과~일갈을 하였습니다 : 불심천자佛心天子로 일컬어지는 양 무제梁武帝가 보리달마菩提達磨를 만나서 “내가 사원을 많이 세우고 승려들을 많이 출가시켰는데, 무슨 공덕이 있는가?(朕起寺度僧。 有何功德。)”라고 묻자, 달마가 “아무 공덕도 없다.(無功德)”라고 답변한 내용이 『碧巖錄』 제1칙 평창評唱에 나온다. 언우齴齲는 뻐드렁니에 충치 먹은 사람이라는 말로, 달마의 별칭이다. 『벽암록』의 「三敎老人序」에 “언우가 중국에 건너와서 오직 심인만을 전하고 문자를 세우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齴齲來東單傳心印。 不立文字固也。)”라는 말이 나온다.
  143. 299)화장華藏 :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준말로, 석가의 진신眞身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정토를 가리킨다.
  144. 300)제자는 귀목龜木~제자가 되었습니다 : 사람으로 태어나서 불법을 만난 것이 크나큰 행운이라는 말이다. 귀목龜木은 『열반경』 권20 「高貴德王菩隡品」의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려운 것이 우담발화 같은데 내가 지금 이미 얻었고, 여래를 만나기 어려운 것이 우담발화보다 더한데 내가 지금 이미 만났으며, 청정한 법보를 보고 듣는 것이 어려운데 내가 지금 이미 들었으니, 비유컨대 눈먼 거북이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의 구멍을 만난 것과 같다.(人身難得如優曇花。 我今已得。 如來難值過優曇花。 我今已值。 清淨法寶難得見聞。 我今已聞。 猶如盲龜值浮木孔。)”라는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침개針芥는 바늘과 겨자씨라는 뜻으로, 역시 서로 만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땅 위에 바늘 하나를 세워 놓고 하늘 위에서 겨자씨 한 알을 떨어뜨려 바늘에 꿰는 것처럼 불법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南本涅槃經』 「純陀品」)
  145. 301)포대布袋 : 오대五代 양梁 때의 승려인 포대 화상布袋和尙을 말한다. 자칭 계차契此라고 하고, 또 장정자長汀子라는 호를 가졌으며, 세상에서 미륵보살의 화신이라고 칭했는데, 항상 지팡이 끝에 자루(布袋) 하나를 매달고 다니면서 물건을 가진 사람을 보면 구걸하며 보시를 권하곤 했으므로 사람들이 포대 화상이라고 불렀다 한다.(『宋高僧傳』 권21, 『佛祖統紀』 권43)
  146. 302)너에게 돌아간다(反而反而) : 『맹자』 「梁惠王」 하에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出乎爾者。 反乎爾者。)”라는 증자曾子의 말이 인용되어 나온다. 본문의 ‘反而’는 ‘反爾’와 같다.
  147. 303)공수工倕 : 수倕는 고대 교장巧匠의 이름이다. 요堯임금의 부름을 받고 백공百工의 우두머리가 되었기 때문에 공수라 칭했다 한다. 『장자』 「達生」에 “공수가 줄을 그으면 그림쇠와 곱자를 쓴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은 줄을 긋는 재료와 하나가 되어 사심으로 분별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전일해서 막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工倕旋而蓋規矩。 指與物化而不以心稽。 故其靈臺一而不桎。)”라는 말이 나온다.
  148. 304)폐우蔽牛의 거목 : 그늘이 소를 가릴 만큼 큰 나무라는 뜻이다. 『장자』 「人間世」에 “장석이 제나라로 가다가 곡원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사당의 나무를 보았는데, 그 그늘이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만큼 컸으며, 굵기는 백 아름이나 되었다.(匠石之齊。 至於曲轅。 見櫟社樹。 其大蔽數千牛。 絜之百圍。)”라는 말이 나온다.
  149. 305)우禹의 도끼 : 고대에 우禹가 치산치수治山治水할 때 손에 쥐고 휘둘렀던 도끼라는 말이다.
  150. 306)진秦의 채찍 : 앞의 각주 139 참조.
  151. 307)기특하기 그지없나니~번을 지나갔고 : 한눈을 팔지 않고 이 공사에 모든 심력을 기울였다는 말이다. 우禹와 직稷이 난세를 평정할 적에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 지나갔어도 들어가지 않았다.(三過其門而不入)”라는 말이 『맹자』 「離婁」 하에 나온다.
  152. 308)근훤芹暄 : 미나리와 햇볕이라는 말로, 성의만 지극할 뿐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는 뜻의 겸사로 쓰이는 말이다. 옛날 시골 사람이 미나리 맛이 기막히다면서 윗사람에게 바쳤다가 조소를 당한 헌근獻芹의 고사와, 따뜻한 햇볕을 임금에게 바치면 중상重賞을 받을 것이라면서 기뻐했다는 헌훤獻暄의 고사를 합친 것이다.
  153. 309)신운身雲 : 구름이 끝없이 피어나는 것처럼 무량하고 무수하고 무변한 불신佛身을 비유하는 말이다. 화엄종에서는 비로자나가 삼세간에 걸쳐 열 가지 무애無碍를 갖추고 있다는 십신구족융삼세간十身具足融三世間의 법계신운설法界身雲說을 제기하고 있다.
  154. 310)삼각三覺 : 자신이 깨닫는 자각自覺, 남을 깨닫게 하는 각타覺他, 지행知行이 일치하는 각행원만覺行圓滿을 가리킨다.
  155. 311)회린悔吝은 움직임에서 생기는 것이니 : 『주역』 「繫辭傳」 하에 “길흉과 회린은 움직임에서 생기는 것이다.(吉凶悔吝者。 生乎動者。)”라는 말이 나온다.
  156. 312)결계結界 : 안거하여 결속하며 수행에 정진하기 위해서 경계를 획정한 지역이라는 뜻의 불교 용어로, 도량의 구역이라는 말과 같은데, 여기서는 그러한 도량을 물색하였다는 뜻으로 쓰였다.
  157. 313)섭삼귀일攝三歸一 : 회삼귀일會三歸一과 같은 말로, 삼승三乘을 개회開會하여 일승一乘에 귀결시킨다는 말이다. 부처가 영취산에서 설했다는 『법화경』 「火宅喩」에 양거羊車ㆍ녹거鹿車ㆍ우거牛車의 삼거三車와 대백우거大白牛車가 나오는데, 천태종과 화엄종에서는 삼거를 성문승聲門乘ㆍ연각승緣覺乘ㆍ보살승菩薩乘의 삼승이라 하고, 대백우거를 일승이라 하여 삼승은 모두 일승을 위한 방편 교설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개권현실開權顯實 혹은 폐권립실廢權立實이라고도 한다. 한편 가상嘉祥과 자은慈恩 등은 우거가 바로 대백우거라고 하여 사거四車의 설을 부인하며, 삼승 중의 보살승이 바로 불승佛乘이라는 설을 개진하여 성문과 연각의 이승이 보살승에 귀입한다는 회이귀일會二歸一의 설을 주장한다.
  158. 314)오과사향五果四向 : 사향은 성문의 사과인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아나함과阿那含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를 말하고, 오과는 여기에 벽지불辟支佛, 즉 독각과獨覺果를 더한 것이다.
  159. 315)비단 덮개가 뚫린(穿縠) 뒤에 : 사후死後와 같은 말이다. 『七女觀經』 권1에 “비유컨대 참새가 병 속에 들어와서 비단 덮개로 그 입구를 막았는데, 그 비단 덮개가 뚫려 참새가 날아가면 신명이 받은 대로 따라가는 것과 같다.(如雀在甁中。 羅縠覆其口。 縠穿雀飛去。 神明隨所受。)”라는 말이 나오고, 『三論玄義』 권1에도 이 말을 인용하면서 “비단 덮개가 뚫려 참새가 날아가는 것처럼 육체가 무너지면 정신이 달아나는 것이다.(縠穿雀飛去。 形壞而神走。)”라고 하였다.
  160. 316)육취六趣 : 중생이 각자 지은 업에 따라서 윤회한다는 천상ㆍ인간ㆍ수라修羅ㆍ지옥ㆍ아귀餓鬼ㆍ축생을 말하며, 육도六道라고도 한다.
  161. 317)보새蒲塞 : 범어 upāsaka의 음역인 이보새伊蒲塞의 준말로, 오계를 받은 재가 남자 불교 신도를 말한다. 우바새優婆塞라고도 하며, 근사남近事男ㆍ근선남近善男ㆍ청신남淸信男ㆍ청신사淸信士 등으로 의역된다. 여자 신도는 우바이優婆夷라고 한다. 『佛本行集經』 권32에 의하면, 불타가 성도한 뒤에 차리니가差梨尼迦 수림樹林에서 결가부좌하고 있을 때 북천축에서 온 제위提謂와 바리波利의 두 상주商主 형제가 불타에게 공양하고 계를 받아 최초의 이보새가 되었다고 한다.
  162. 318)칠중항수七重行樹와 칠중나망七重羅網과~이루어진 가운데에서 :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阿彌陀經』 권1에 “또 사리불아, 극락국토에는 칠중난순과 칠중나망과 칠중항수가 모두 사보로 이루어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데, 이 때문에 그 나라를 극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又舍利弗。 極樂國土。 七重欄楯。 七重羅網。 七重行樹。 皆是四賓。 周匝圍繞。 是故彼國名爲極樂。)”라는 말이 나온다. 칠중항수는 일곱 겹으로 줄지어 선 나무라는 뜻이고, 나망羅網은 금실로 꿰어진 보배 그물이라는 뜻이고, 난순欄楯은 직선과 곡선의 난간을 말하고, 사보四寶는 금ㆍ은ㆍ유리ㆍ파려玻鑗를 말한다.
  163. 319)상품 금강과~솟아오른 가운데에서 : 서방 정토에 왕생할 적에 중생의 근기를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그들이 임종할 때 관세음보살 등 중성衆聖이 각각 다른 연대蓮臺를 가지고 와서 영접한다고 하는데, 『觀無量壽經』에 의하면, 상품 상생에서 하품 하생까지 순서대로 금강대金剛臺ㆍ자금대紫金臺ㆍ금련화金蓮華ㆍ연화대蓮華臺ㆍ칠보연화七寶蓮華ㆍ보련화寶蓮華ㆍ연화蓮華ㆍ금련화金蓮華에 태워 극락으로 데려간다고 한다. 이를 구품연대九品蓮臺라고 하는데, 이 중 중품 하생의 경우는 생략되어 있다. 앞의 각주 171 참조.
  164. 320)십호十號 : 여래십호如來十號, 즉 부처의 열 가지 별칭으로, 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佛ㆍ세존世尊을 말한다.
  165. 321)삼삼품三三品 : 구품의 맨 아래에 있는 둔근 중생이라는 뜻인데, 앞의 각주 171, 319 참조.
  166. 322)수륙재水陸齋는 양 무제梁武帝가~근원을 열었나니 : 수륙재는 아난阿難의 고사로부터 시작되었고, 양 무제가 이를 중흥하여 발전시켰다는 말이다.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 있는 고혼孤魂과 아귀餓鬼에게 재식齋食을 베풀어 공양하는 법회를 말한다. 당나라 불공不空이 번역한 『救拔焰口餓鬼陀羅尼經』에 의하면, 밤중에 선정禪定을 닦고 있는 아난에게 염구焰口라는 아귀가 다가와서 아난이 앞으로 사흘 뒤에 죽어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질 것이라면서 수많은 아귀 등에게 각각 1휘(斛)의 음식을 보시하고 삼보에 공양하면 그 재앙을 면할 수 있다고 하자, 아난이 부처에게 이 일을 사뢰니, 부처가 다라니陀羅尼 하나를 주는 한편 시식施食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또 『事物紀原』 권8에 의하면, 불심천자佛心天子로 칭해지는 양 무제 소연蕭衍의 꿈에 신승神僧이 나타나서 수륙재를 베풀어 육도六道 사생四生의 중생을 구제하라고 하였는데, 세상에 그 의식儀式을 설명한 글이 없자 무제가 직접 경론을 열람하여 아난의 고사를 찾아내고는 이에 의거하여 스스로 찬집撰集해서 천감天監 7년(508)에 금산사金山寺에서 수륙재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경희慶喜는 아난의 별칭이고, 염구焰口는 면연귀왕面然鬼王이라고도 한다. 수륙재를 거행한 시기에 대해서 『佛祖統紀』 권33에는 천감 4년이라 하여 이견을 보이고 있다.
  167. 323)도명道明과 무독無毒 :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협시夾侍이다. 지장전地藏殿은 중앙에 지장보살을 안치하고, 좌우에 도명 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로 봉안하며, 다시 그 좌우에 명부冥府의 시왕을 안치한다.
  168. 324)진광秦廣과 초강初江 : 명부 시왕에 속한 왕의 이름이다. 시왕은 저승에서 망자亡者의 죄업을 판결하는 열 명의 판관을 말한다. 사람이 죽어서 명부에 가면, 초칠일에는 진광왕秦廣王, 이칠일에는 초강왕初江王, 삼칠일에는 송제왕宋帝王, 사칠일에는 오관왕五官王, 오칠일에는 염라왕閻羅王, 육칠일에는 변성왕變成王, 칠칠일에는 태산왕泰山王, 1백 일에는 평등왕平等王, 1주년에는 도시왕都市王, 3주년에는 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 앞에 차례로 나아가서 생전에 지은 선업과 악업을 심판받는다고 한다.
  169. 325)십사十事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을 뜻하는데, 보통 십악十惡을 가리켜 말한다. 『四十二章經』 권1에 “중생은 십사로 선을 짓기도 하고 악을 짓기도 한다. 무엇을 십이라 하는가. 몸이 셋, 입이 넷, 뜻이 셋이다. 몸이 셋이란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사음邪淫을 말하고, 입이 넷이란 양설兩舌ㆍ악매惡罵ㆍ망언妄言ㆍ기어綺語를 말하고, 뜻이 셋이란 탐욕貪欲ㆍ진에瞋恚ㆍ사견邪見을 말한다.(衆生以十事爲善。 亦以十事爲惡。 何等爲十。 身三口四意三。 身三者殺盜淫。 口四者兩舌惡罵妄言綺語。 意三者嫉恚癡。)”라는 말이 나온다. 이 십악을 범하지 않는 것이 십선十善이다.
  170. 326)사탕수수의 줄기도~것이라고 하더라도 : 맛없는 것도 맛있게 먹는 것처럼 고통 속의 사바세계를 즐거워하는 것은 꿈속에서 즐거워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사탕수수 운운은, 진晉나라 고개지顧愷之가 사탕수수(甘蔗)를 먹을 때 맛좋은 뿌리 부분은 놔두고 가느다란 가지 부분부터 맛보자,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으니, “점점 더 좋은 맛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漸至佳境)”라고 대답한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世說新語』 「排調」) 장주莊周 운운은 호접몽蝴蝶夢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인데, 앞의 각주 137 참조.
  171. 327)섭 공葉公이 용을 좋아하는 것 : 가짜가 진짜 흉내를 내는 것을 비유하는 섭 공 호룡葉公好龍의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서, 앞의 각주 132 참조.
  172. 328)미려彌戾 : 범어 Mleccha의 음역인 미려차彌戾車의 준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변방의 비천한 종족이라는 뜻이다. 미리차彌離車ㆍ멸례차篾隸車ㆍ밀렬차蜜列車ㆍ의례차宜例車라고도 하며, 하천종下賤種ㆍ구탁종垢濁種ㆍ악중악惡中惡ㆍ노중노奴中奴 등으로 의역된다.
  173. 329)자라처럼 손뼉을 치겠습니까 : 동해의 큰 자라가 신산神山인 봉래산蓬萊山을 머리에 이고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鼇戴山抃)는 『楚辭』 「天問」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174. 330)높은 산을~삼을 것이요 : 사표師表가 될 분으로 그지없이 존경하며 우러러 사모한다는 말이다. 『시경』 「小雅」 〈車舝〉에 “높은 산은 누구나 우러러보게 마련이고, 큰 길은 누구나 함께 걸어가게 마련이다.(高山仰止。 景行行之)”라는 말이 나오고, 「大雅」 〈抑〉에 “이보다 더 강할 수 없는 사람인지라 사방이 법도로 삼으며, 곧고 큰 덕행인지라 사방의 나라가 순종한다.(無競維人。 四方其訓之。 有覺德行。 四國順之。)”라는 말이 나온다.
  175. 331)저 푸른~생각할 것입니다 : 순찰사의 은덕을 고마워하며 찬양한다는 말이다. 『시경』 「衛風」 〈淇澳〉은 위衛나라 사람이 위 무공衛武公의 높은 덕을 아름답게 여겨 부른 노래인데, 그중에 “저 기수 가 후미진 곳을 보니, 푸른 대나무가 아름답도다. 문채 빛나는 우리 군자여, 짐승의 골각骨角을 끊고 갈 듯, 옥석을 쪼고 갈 듯하도다.(瞻彼淇澳。 綠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는 말이 나온다.
  176. 332)가냘픈 풀줄기의~응해 주셨으니 : 풀줄기는 무용당 자신을, 큰 종소리는 곡성의 원을 비유한 것인데,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이 지은 「答客難」의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바가지로 퍼서 바닷물을 재며, 풀줄기로 종을 치는 격이다.(以筦窺天。 以蠡測海。 以筳撞鍾。)”라는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文選』 권45)
  177. 333)바람은 와운臥雲의 풀을 눕히고 : 산속에 숨어 사는 승려들도 수령의 은혜에 감복하고 있다는 말이다. 『논어』 「顔淵」의 “다스리는 자의 행동은 바람과 같고, 다스림을 받는 자의 행동은 풀과 같다. 풀 위에 바람이 불어오면 풀은 한쪽으로 눕게 마련이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와운臥雲은 구름 속에 누워 있다는 뜻으로, 은거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178. 334)비碑는 행로行路의 입술에 새겨집니다 : 굳이 송덕비를 세워 기념할 필요도 없이 벌써 행인들의 입과 입으로 그 덕망이 파다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179. 335)새에 맞게 새를 기르고 계십니다 : 고을 수령이 승려에게 적절한 대우를 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원거爰居라는 해조海鳥가 노魯나라 교외에 날아와 앉자 임금이 그 새를 정중히 모셔다가 종묘에서 환영연을 베풀면서 순舜임금의 소악韶樂을 연주하고 진수성찬을 대접하니, 그 새는 눈이 부시고 근심과 슬픔이 교차하여 고기 한 점도 먹지 못하고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한 채 3일 만에 죽고 말았다는데, 이에 대해서 “이는 자기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 아니다. 대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면 깊은 숲에 살게 하고, 넓은 고원에서 노닐게 해야 한다.(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夫以鳥養養鳥者。 宜栖之深林。 遊之壇陸。)”라고 비평한 내용이 『장자』 「至樂」에 나온다.
  180. 336)천년 된~화답을 얻었음이겠습니까 : 산목散木과 파가巴歌는 무용당 자신을, 대장大匠과 백설白雪은 고을 수령을 비유한 것이다. 산목은 크기만 할 뿐 아무 쓸모가 없어서 어떤 목수도 돌아보지 않는 나무라는 뜻인데, 『장자』 「소요유」와 「인간세」에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파가巴歌는 파인巴人의 노래라는 뜻으로, 저속한 대중가요를 가리킨다. 춘추시대에 초楚나라에서 어떤 나그네가 하리下里와 파인巴人의 속요俗謠를 부르니 수천 명이 따라 불렀고, 양아陽阿와 해로薤露의 노래를 부르니 몇 백 명이 따라 불렀는데, 고상한 양춘陽春과 백설白雪의 가곡을 부르니 몇 십 명밖에는 따라 부르지 못했다는 고사가 전한다.(『文選』 권23 「宋玉對楚王問」)
  181. 337)원량元亮은 백련白蓮의 정사精舍를 찾아갔고 : 도잠陶潛이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慧遠과 교유한 것을 가리킨다. 원량은 도잠의 자이다. 앞의 각주 167, 184 참조.
  182. 338)동파東坡는 금산金山에 옥대玉帶를 두었습니다 : 소식蘇軾이 불인 선사佛印禪師 요원了元과 방외지교方外之交를 맺은 것을 가리킨다. 불인이 금산사金山寺에 주석하고 있을 때 동파가 찾아가니, 불인이 “여기에는 앉을 자리가 없는데 거사는 무슨 일로 왔는가?(此間無座榻。 居士來此作甚麽。)”라고 묻자, 동파가 “잠시 불인의 사대를 빌려서 앉을까 한다.(暫借佛印四大爲座榻)”라고 하였다. 이에 불인이 “산승의 질문에 거사가 대답하면 앉게 해주겠지만, 대답을 못 하면 허리에 찬 옥대를 내놓아야 한다.(山僧有一問。 居士若道得卽請坐。 道不得卽輸腰下玉帶子。)”라고 하니, 동파가 좋다고 승낙하였다. 그 옥대는 신종 황제神宗皇帝가 상으로 하사한 것이었다. 불인이 동파에게 묻기를, “산승의 사대는 본래 공하고, 오음도 있지 않은데, 거사는 어디에 앉으려는가?(山僧四大本空五。 陰非有。 居士向甚麽處坐。)”라고 하니, 동파가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불인이 시자를 불러 동파의 옥대를 산문에 보관하여 법보로 삼게 하고, 누더기 가사 한 벌을 동파에게 내주게 하였다고 한다.(『五燈會元』 권16 「開先暹禪師法嗣」) 그리고 이 내용을 소재로 하여 동파가 지은 칠언율시 두 수가 『소동파시집』 권24에 〈옥대를 요원了元 장로에게 시주하니, 장로가 가사로 보답하기에 차운하여 두 수를 짓다(以玉帶施元長老。 元以衲裙相報。 次韻二首。)〉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183. 339)부석鳧舃의 그림자가~남아 있고 : 수령이 다녀간 뒤에도 그의 아름다운 향기가 계속 남아 있다는 말이다. 부석은 오리 속의 신발이라는 뜻으로, 고을 수령을 비유하는 말인데, 후한後漢 왕교王喬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섭현葉縣의 현령으로 있으면서 매월 삭망朔望 때마다 먼 길을 거기車騎도 없이 항상 조정에 나오곤 하였는데, 임금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태사太史로 하여금 탐지하게 한 결과, 그가 올 때마다 동남쪽에서 두 마리의 오리(雙鳧)가 날아왔으므로 그물을 쳐서 이를 잡고 보니, 바로 상서령尙書令 때 하사받았던 신발(舃)이 그 속에 있더라는 전설이 전한다.(『後漢書』 「方術傳」 상 〈王喬傳〉)
  184. 340)아가위와 배와~입에 맞고 : 『장자』 「天運」의 “삼황오제의 예의와 법도를 비유한다면,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의 열매와 같다고 할까. 그 열매의 맛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입에 맞는 것이다. 따라서 예의와 법도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할 수 있다.(故譬三皇五帝之禮義法度。 其猶柤梨橘柚邪。 其味相反。 而皆可於口。 故禮義法度者。 應時而變者也。)”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185. 341)그러니 어찌~해로울 뿐입니다 : 『논어』 「爲政」에 “攻乎異端。 斯害也已。”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일반적으로는 “이단의 학술을 알려고 애쓰면 해가 될 뿐이다.”라고 해석을 하는데, 무용당은 ‘攻’을 전공專攻의 뜻으로 보지 않고, 공격한다는 뜻으로 보아 “이단이라고 하여 공격한다면 해로울 뿐이다.”라고 해석을 하였다.
  186. 342)호리병 속에 하늘과 땅이 있으니 : 별천지의 선경仙境을 말하는데, 앞의 각주 271 참조.
  187. 343)남곽南郭이 궤안几案에~낫지 않겠습니까 : 세상에서 영화를 좇기보다는 출가하여 진리를 찾는 생활이 더 마음에 든다는 말이다. 나를 잃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리고 일체 물아의 경계를 떠난 자유로운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장자』 「제물론」 첫 장에 남곽자기南郭子綦가 궤안에 기대어 “지금 내가 나를 잃었는데, 네가 그것을 알았단 말이냐?(吾喪我。 汝知之乎。)”라고 제자인 안성자유顔成子游에게 말한 구절이 나온다. 또 남조南朝 제齊의 공치규孔稚珪가 산속에서 함께 은자 생활을 하다가 벼슬길에 나선 주옹周顒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지은 「北山移文」에 “그동안 입고 있던 마름 옷을 불살라 버리고 연잎 옷을 찢어 버린 채 먼지 낀 얼굴을 치켜들고서 속된 모습으로 마구 달려 나갔네.(焚芰製而裂荷衣。 抗塵容而走俗狀。)”라고 비평한 말이 나온다.
  188. 344)각곡刻鵠 : 본받는다는 말로 각곡류목刻鵠類鶩에서 유래하였다. 따오기와 집오리는 생김새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따오기를 새기다가 잘못되어도 집오리같이 되는 것처럼 훌륭한 사람을 본받아 배우면 그 사람만큼은 못 될지라도 착한 사람이 됨을 이르는 말이다.(『後漢書』 권24 「馬援傳」)
  189. 345)조충雕蟲 : 조충전각雕蟲篆刻의 준말로, 벌레 모양이나 전서篆書를 새기는 것처럼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문장을 꾸미기나 하는 작은 기예라는 뜻이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法言』 권2 「吾子」에, “부賦라는 것은 동자 시절에나 했던 조충전각과 같은 일로서, 장부가 되어서는 하지 않았다.(賦者。 童子雕蟲篆刻。 壯夫不爲也。)”라는 말이 나온다.
  190. 346)월계月桂가 아무리~힘들지 않았습니다 : 과거에서 거뜬히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하였다는 말이다. 월계는 과거 급제를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극선郤詵이 과거에 장원급제한 뒤에 월계수 가지를 꺾었다고 자칭했던 월궁절계月宮折桂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晋書』 권52 「郤詵傳」) 호수好手는 뛰어난 솜씨라는 말이다.
  191. 347)잉어는 용문龍門에서 꼬리를 태웠습니다 :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을 비유한 말이다. 황하 상류에 세 계단으로 된 폭포가 있는데, 이를 용문龍門이라고 한다. 잉어와 같은 큰 물고기가 이 밑에까지 와서 그 폭포를 뛰어올라야만 용이 되는데, 이때 우레가 쳐서 그 꼬리를 번갯불로 태워 없애 준다는 전설이 있다.
  192. 348)몇 년~하늘을 날았습니다 : 조정에서 내직內職으로 근무하다가 외직을 맡아 방백方伯으로 부임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표범 내용은, 남산南山의 검은 표범이 운무雲霧가 짙게 끼어 있는 동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도 자신의 아름다운 털 무늬를 보존하기 위하여 산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남산현표南山玄豹의 고사를 변용한 것이다.(『列女傳』 권2 「陶答子妻」) 오운五雲은 오색 채운彩雲과 같은 말로, 제왕의 대궐 혹은 조정을 뜻한다.
  193. 349)인적이 고요하여~잊은 밤입니다 : 이백의 시에 “거문고 소리 청랑하여 달이 문을 엿보고, 인적이 고요하여 바람이 방에 들어오네.(琴淸月當戶。 人寂風入室。)”라는 말이 나온다.(『李太白集』 권8 〈贈淸漳明府姪聿〉)
  194. 350)도잠陶潛은 슬며시~생각나게 마련입니다 : 유사儒士와 불승佛僧의 교유를 말하는데, 앞의 각주 167, 184 참조.
  195. 351)나무와 돌이~되고 있다(木石同壇) : 나무와 돌이 각기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산의 일부분으로 함께 속해 있는 것처럼, 무용당의 불교와 방백의 유교도 똑같이 도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장자』 「則陽」에 “큰 늪지대에 견주어 본다면, 백 가지 재목이 모두 그 속에 함께 들어 있고, 큰 산에 비유해 본다면 나무와 돌이 똑같이 산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比於大澤。 百材皆度。 觀於大山。 木石同壇。)”라는 말이 나온다.
  196. 352)유형과 무형이 각자 태극을 갖추었고 : 송대宋代 성리학性理學의 이일분수理一分殊 사상과 직결되는 이른바 일태극설一太極說을 말하는데, 『朱子語類』 권94에 “물건마다 하나의 태극을 지니고 있고, 사람마다 하나의 태극을 지니고 있다.(物物有一太極。 人人有一太極。)”라는 주희朱熹의 명제命題가 나오고, 또 『近思錄』 권1 「道體」 〈太極圖說〉 부분에도 “만물이 하나의 태극이다.(萬物一太極)”라는 말과 “하나의 존재 속에 하나의 태극이 각각 구비되어 있다.(一物各具一太極)”라는 주희의 주석이 보인다.
  197. 353)1족과 백 족이 고루 천기天機를 발동합니다 : 외발 짐승 기虁와 발이 많은 노래기(蚿)를 등장시켜서 천기의 자연스러운 발동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이 『장자』 「秋水」에 나온다.
  198. 354)수거數車에 무거無車요 : 폭輻ㆍ윤輪ㆍ곡轂ㆍ형衡 등의 부품이 모여서 하나의 수레를 이루는데, 만약 다른 부품들을 따로 나누어 생각하면 수레라는 전체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道德經』 하상공河上公 판본 39장에 “수레의 부품 하나하나를 거론하면 수레라는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數車無車)”라는 말이 나온다.
  199. 355)같다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이 일물입니다 : 『장자』 「德充符」에 “다르다는 입장에서 보면 간담처럼 가까운 것도 초월처럼 멀리 느껴지고, 같다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이 모두 하나이다.(自其異者視之。 肝膽楚越也。 自其同者視之。 萬物皆一也。)”라는 말이 나온다.
  200. 356)물고기처럼 강호 속에서 서로들 잊고 : 대도大道의 자연 안에서 각자 자유를 만끽하며 유유자적하게 노니는 것을 말한다. 『장자』 「大宗師」의 “물이 바짝 말라 물고기들이 땅바닥에 처하게 되면, 서로들 김을 내뿜어 축축하게 해주고 서로들 거품으로 적셔 주지만, 그보다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 잊고 사느니만 못하다.(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01. 357)형해形骸의 밖에서 단금斷金을 이룬다면 : 신분의 차이를 떠난 방외지교方外之交를 가리킨다. 단금斷金은 쇠도 자를 수 있다는 말로, 진정한 우정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역』 「繫辭傳」 상의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쇠도 자를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의 말에서는 난초 향기가 풍겨 나온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02. 358)암혈에 살며~없을 것입니다 : 산골 절간에 거하는 무용당이나 고대광실에 거하는 방백이나 무사히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장자』 「達生」의 “노나라의 선표라는 은자는 암혈에 살며 사람들과 이해를 다투지 않아 나이 70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낯빛을 하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굶주린 범을 만나는 바람에 그 굶주린 범에게 잡아먹혔고, 장의라는 사람은 높은 문에 발을 드리운 곳에 분주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나이 40에 속이 뜨거운 병을 앓아 죽고 말았다. 선표는 내면을 잘 길렀으나 그 바깥인 몸을 범에게 잡아먹혔고, 장의는 바깥을 잘 길렀으나 그 안을 병에게 공격당했다.(魯有單豹者。 巖居而水飮。 不與民共利。 行年七十而猶有嬰兒之色。 不幸遇餓虎。 餓虎殺而食之。 有張毅者。 高門縣薄。 無不走也。 行年四十而有內熱之病以死。 豹養其內而虎食其外。 毅養其外而病攻其內。)”라는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속이 뜨거운 병(內熱)이라는 것은 노심초사하며 애를 태우는 것을 비유한 말로, 『장자』 「인간세」의 “내가 아침에 명령을 받고 나서 저녁에 얼음물을 마셨으니, 이는 나의 몸속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吾朝受命而夕飮冰。 我其內熱與。)”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203. 359)시詩는 자신의~것이라고 하였으니 : 『서경』 「舜典」에 “시는 자신의 뜻을 읊은 것이요, 노래는 읊은 그 말을 길고 짧게 조절하며 늘인 것이다.(詩言志。 歌永言。)”라는 말이 나온다.
  204. 360)덕이 있으면~사람도 말씀하셨지요 : 『논어』 「里仁」에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205. 361)사람이 일흔까지~말을 하지만 : 두보의 “외상 술값이야 세상 어디나 보통 있는 일이지만, 일흔까지 사는 사람은 예로부터 보기 드물다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라는 시구에서 나온 것이다.(『杜少陵詩集』 권6 〈曲江〉)
  206. 362)느닷없이 광언狂言을~돌아가야 하나요 : 백암이 홀연히 세상을 떠났으므로 무용당이 귀의할 곳을 잃었다는 말이다. 광언은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이라는 뜻으로, 지언至言을 가리킨다. 『장자』 「知北遊」에, 노용길老龍吉이라는 도인道人이 죽었을 때 신농神農이, “선생님이 나를 깨우쳐 줄 지극한 말씀을 들려주지 않고 돌아가셨다.(夫子無所發予之狂言而死矣夫)”라고 말하고, 엄강弇堈이, “지극한 말씀을 가슴속에 숨기고서 세상을 떠났다.(藏其狂言而死)”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207. 363)무생無生 : 생멸이 없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도리를 뜻하는 불교의 용어이다.
  208. 364)정筳을 쥔 자 : 가르침을 청하는 자들을 말한다.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의 「答客難」에 “가냘픈 풀을 쥐고서 종을 치는 격이다.(以筳撞鍾)”라는 말이 나오고, 『禮記』 「學記」에 “질문에 잘 응하는 자는 종을 치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작게 두드리면 작게 울려 주고, 크게 두드리면 크게 울려 준다.(善待問者如撞鍾。 叩之以小者小鳴。 叩之以大者則大鳴。)”라는 말이 나온다.
  1. 1)「文」編者補入。
  2. 1)此序文。已載於本書卷九(一七○頁){編}。
  3. 2)此序文。已載於本書卷五(三頁){編}。
  4. 1)」疑「麈」{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