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 / 林下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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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록 서林下錄序
참선 수행을 하는 이들은 ‘천지는 작은 티끌이요, 죽고 사는 것도 물거품 같은 허깨비일 뿐이다.’라고 하면서, 삼계三界의 밖으로 벗어나 초월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끼고 보호하여 절대 잃어서는 안 될 것이 꼭 하나 있으니, 그것은 법을 전하고 가르침을 베푸는 도구, 곧 문사文辭이다. 세상에 유포된 불교의 경전은 팔만대장경에 이를 만큼 많다. 이 모두가 여러 부처님이 설법하신 한결같은 법문과, 마음과 마음으로 묵묵히 약속되어 전해진 요지를 기록한 것이며, 또 그 문도들이 서로 소疏를 쓰고 주석을 달아 증거를 밝혀 만세토록 전할 보장寶藏이 되게 한 것이다. 이 어찌 중생을 널리 구제할 커다란 교화가 아니겠는가.
연담 대사는 남쪽 지방의 큰스님이다. 스님이 사자좌에 앉아 해조음을 내시면 사람과 천인이 마치 영산회靈山會와 같이 모여들어 에워쌌다고 한다. 어느 날 대사의 법제자인 순絢이라는 스님을 소개 받았는데, 순 스님은 연담 대사가 지은 시문 두 권을 내게 보여 주면서, 서문 한마디를 써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이켜 보건대, 나는 불교인이 아니니 어떻게 선학禪學을 알겠는가. 다만 그 책을 열어 보고는 이윽고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진실로 세상에 전할 만하구나. 참으로 대사가 아끼고 보호하려 할 만하구나.”
문집에는 여러 종류 문체의 글들이 두루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요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현묘한 이치를 설명하고 불법을 논할 때에 반복하여 꼭 집어서 뜻을 이해시키는 것은 『연화경蓮花經』의 비유와 같았고, 여러 인연을 모아서 좋은 과보를 권할 때에 그 방법을 열어 인도하는 것은 마치 자비의 배로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았으며, 임금과 부모를 사랑하면서 명복을 빌 때에 윤리에 근본하는 것은 또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과 같았다. 그의 시는 진솔하며 순박하고 꾸밈이 없었으니 성정性情이 무르익어 저절로 나온 것이었다. 총괄하여 논하자면, 그의 글은 여러 부처님의 마음을 얻어서

010_0214_b_06L林下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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治禪者謂天地微塵死生泡幻而欲
010_0214_b_09L超脫三界之外然獨其珍護而不敢失
010_0214_b_10L傳法設敎之具爾文辭是已彼內
010_0214_b_11L典之流布寰宇者至八萬經之多是皆
010_0214_b_12L千佛一法心心印傳之旨而其徒又相
010_0214_b_13L與疏釋而證明之爲萬歲寶藏豈非以
010_0214_b_14L普濟衆生之大敎化歟蓮潭師南方之
010_0214_b_15L高釋也踞獅座吐潮音人天之圍繞者
010_0214_b_16L如靈山會焉一日介其法弟絢上人者
010_0214_b_17L眎其所著詩文二卷求余一言爲叙
010_0214_b_18L余非禪者安知禪學第閱之旣曰固
010_0214_b_19L可傳也固師之欲珍護之也其文衆體
010_0214_b_20L俱備而其大要譚玄旨而演眞乘則反
010_0214_b_21L復拈示如蓮華喩募諸緣而勸善果
010_0214_b_22L則開導方便如慈海航愛君親而薦冥
010_0214_b_23L則原本倫理如恩重經其有韵之
010_0214_b_24L眞朴不雕性情煉熳總而論則得

010_0214_c_01L그 남은 부분을 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의 글이 불교 경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리라. 그러니 어찌 이 글을 세상에서 없어지게 버려 둘 수 있겠는가.
지금 나에게 한마디 서문을 써 줘야만 이 책이 소중하게 되겠다며 글을 부탁하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바로 도에 있는 것이라. 대사를 어찌 저 태전太顚이나 초初처럼 벼슬아치들의 문자에 의지하여 한때 이름을 날린 자들에게 비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순 스님에게 내 대신 이 말을 전해 달라고 당부하였었는데, 벌써 스님이나 나나 둘 다 늙어 버렸구나. 한번 보림암寶林庵에 찾아가 대사에게 그 정신 바짝 차리고 수행했던 성성법惺惺法을 묻고, 우리 유학의 심법心法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되는구나.
무오년18) 4월 해좌노인海左老人 정법정丁法正19)이 서문을 쓰다.
또(又)
사람들은 스님이 지은 시에는 나물이나 죽순과 같이 거친 기운이 서려 있다고 하면서 싫어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시인들의 고정된 관념에서 나온 말일 뿐이다. 스님들은 교묘하게 꾸미는 말을 스스로 경계하고, 더구나 시를 짓는 일은 스님의 본분도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나물밥을 먹으면서도 나물 기운이라곤 없는 그런 것을 좋다고 하겠는가. 그래서야 스님들이 어떻게 시를 짓겠는가. 그러나 이치와 정취로 논할 것 같으면, 벽운碧雲20)이란 말은 탕湯 상인으로부터 시작되어 여러 생 동안에 한산寒山 21)과 습득拾得22)의 게송 구절에까지 연루되었던 것으로, 재미난 놀이(遊戱) 가운데 하나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시라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교묘하여도 그만 졸렬하여도 그만인 것이어서, 지금 이미 흔하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담 유일과 같은 분의 시는 어디에도 매이거나 묶인 곳이 없이 유희삼매遊戱三昧를 발현하니, 어찌 더욱 기이하다 않겠는가.
유일 스님이 평소에 불법을 가르치는 곳에 두루 다니실 때에는 마치 고래가 큰 물결을 타고 동쪽에서 솟았다가 서쪽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같았고, 노년이 되어 선관禪觀에 들자 마치 매가 하늘을 지날 때에 다른 참새 무리가 물결치듯이 도망치는 것과 같았다. 이런 까닭에 스님의 시는 천기天機를 통달하여 막히거나 걸림이 없고, 그렇기에 교묘한 시구를 애써 지어내지 않아도 저절로 교묘하여 넓고도 끝이 없게 된 것이다.
스님에게 시를 써 달라고 와서 청하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급하게 왼쪽 사람에게 지어 주고 오른쪽 사람에게 불러 주고 하였는데, 마치 예전에 지어 둔 시를 그냥 외워 주는 듯하였다.

010_0214_c_01L之諸佛心傳之緖餘而雖謂之羽翼內
010_0214_c_02L典可也是烏可使泯晦哉其待余言
010_0214_c_03L而爲重重在道也豈與夫顚初輩藉薦
010_0214_c_04L紳文字爲夸耀一時者譬歟謂絢上人
010_0214_c_05L爲我語而師余老矣恨不得一造寶林
010_0214_c_06L庵中問師惺惺法視吾儒心法何如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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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午孟夏海左老人丁法正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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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嫌僧詩有蔬筍氣此正詩人習氣
010_0214_c_13L語爾僧自以綺語爲戒工詩尙非僧事
010_0214_c_14L况以啖是物而無其氣爲賢也然則僧
010_0214_c_15L何以詩爲曰然以理趣論碧雲一語
010_0214_c_16L自是湯上人多生帶累寒拾句偈不妨
010_0214_c_17L爲游戱中一事有亦可無亦可工亦
010_0214_c_18L拙亦可今旣有之矣無所帶累
010_0214_c_19L發現游戱三昧如蓮潭一公者豈不尤
010_0214_c_20L奇乎一公平日周流敎海如鯨魚跨 [1]
010_0214_c_21L東涌西沒晩入禪觀如鷂子經天
010_0214_c_22L羣雀波奔故其爲詩天機通透無所
010_0214_c_23L罣碍不期工而自工廣愽無涯涘
010_0214_c_24L之求之日十百羣而左拈右呼如誦

010_0215_a_01L그러나 짓는 시마다 중도中道를 떠나지 않았고 상도常道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넓고 넓어 넉넉하게 여유가 있었다.23) 비유하자면 비로누각毘盧樓閣에 있는 그 많은 대문과 창문들이 미륵불이 한 번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에 일제히 열리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갖추어지지 않은 거라곤 없는 것과도 같다. 이 어찌 성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만일 성률과 대구를 가지고 스님의 시를 논한다면, 이는 백시伯時24)가 말을 그릴 때에 오랫동안 쌓인 깊은 생각을 요구하고, 노직魯直25)이 사詞를 지을 때에 반드시 아름답기를 기대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어떻게 공의 도를 그렇게 논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경산 종고徑山宗杲26) 선사가 일찍이 이런 말을 하였었다.
“선善을 좋아하고 사邪를 싫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다 갖추고 태어나니,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은 충성과 의리로 가득찬 사대부士大夫와 마찬가지이다.”
지금 유일 스님의 문장을 보니, 세상의 교화를 떠받쳐 높이고 요임금과 공자의 도를 우러러 권장하고 있다. 그의 임금과 나라를 기리고 애모하는 말들은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니, 불교의 다른 여러 책들에 즐비한 그 판에 박은 듯한 말들과는 사뭇 다르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일이라.
이제 그의 문도가 이 책을 간행하여 세상에 유포하려는 때에 내가 짐짓 그를 위하여 기뻐 찬탄하여 마지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정사년27) 여름 수관거사水觀居士 이충익李忠翊28)이 서문을 쓰다.

010_0215_a_01L宿搆不離中見不畔常道恢恢乎有
010_0215_a_02L餘刃焉譬如毘盧樓閣衆多門戶於彌
010_0215_a_03L勒一彈指聲劃然俱開於其中間之所
010_0215_a_04L瞻覩無所不具詎不盛矣乎哉若以
010_0215_a_05L聲對論公詩是語伯時以畫馬 [2] 要積想
010_0215_a_06L而期魯直之詞必妍艶也 [3] 豈所以論於
010_0215_a_07L公之道者昔徑山果甞言已好善惡邪
010_0215_a_08L之心與生俱生愛君憂國與忠義士
010_0215_a_09L大夫等今觀一公之文扶崇世敎
010_0215_a_10L奘堯孔其所頌禱愛慕於君國者
010_0215_a_11L自至誠非同梵音諸書備例板定語洵
010_0215_a_12L足敬也今其門徒之刊布也余故爲之
010_0215_a_13L隨喜讃歎而不能已也如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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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丁巳夏水觀居士序李忠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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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무오년 : 서기 1798년이다. 연담 스님은 1799년에 입적하였다.
  2. 19)정법정丁法正 :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범조丁範祖(1723~1801)를 말한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호는 해좌海左이다. 문집으로 『海左集』이 있다.
  3. 20)벽운碧雲 : 남조 송宋의 시승인 혜휴惠休의 시 중에 “일모벽운합日暮碧雲合”이라는 명구名句가 있다. 혜휴의 속성이 탕湯이다.
  4. 21)한산寒山 : 당대唐代의 저명한 시승으로, 절강성浙江省 천태산天台山 한암寒巖에 살았으므로 한산자寒山子 또는 한산이라고 불렸다. 국청사國淸寺 승 습득拾得과 교류하였다. 시창게詩唱偈를 잘하여 300여 수의 시를 남겼는데, 후인들이 『寒山子詩集』 3권으로 엮었다.
  5. 22)습득拾得 : 당대唐代 정관貞觀 연간의 고승高僧이다. 본래 고아였으나, 한산寒山의 스승인 풍간豐干이 거두어 양육하였으므로 습득이라 불려졌다. 한산과 교유하였으며, 게사偈詞가 『寒山集』에 수록되어 있다.
  6. 23)넓고 넓어~여유가 있었다 : 『莊子』 「養生主」에 “지금 내가 칼을 잡은 지 19년이나 되고 잡은 소도 수천 마리를 헤아리는데, 칼날이 지금 숫돌에서 금방 꺼낸 것처럼 시퍼렇게 날카롭다. 소의 마디와 마디 사이에는 틈이 있고 나의 칼날에는 두께가 없으니, 두께가 없는 것을 그 틈 사이에 밀어 넣으면 그 공간이 널찍해서 칼을 놀릴 적에 반드시 여유가 있게 마련이다.(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硎。 彼節者有間。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間。 恢恢乎其於遊刃。 必有餘地矣。 )”라는 고사가 나온다. 소를 잡는 백정의 기술이 뛰어나면 소를 많이 잡더라도 칼날이 무뎌지지 않고 항상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후대에 여인餘刃이라는 말로 여유 있게 처사하는 능력을 비유한다.
  7. 24)백시伯時 : 송나라 때 서주인舒州人 이백시李伯時를 말한다. 이름은 공린公麟이고, 자가 백시이다. 원우元祐 진사로 사주 녹사참군泗州錄事參軍이 되었다. 시를 잘하여 기자奇字를 많이 알고, 더욱이 산수와 불상을 잘 그려서 산수는 이사훈李思訓과 같고 불상은 오도자吳道子에 가깝다고 알려졌다. 만년에는 용면산장龍眠山莊에 들어가 거처하였으므로 용면산인龍眠山人이라 호를 하였다.
  8. 25)노직魯直 :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자가 노직, 호는 산곡山谷이다. 서예의 대가로, 저서 『黃山谷集』이 있다.
  9. 26)경산 종고徑山宗杲(1089~1163) : 송나라 때 항주杭州 경산徑山에 살던 불일佛日 선사로, 이름은 종고宗杲이며, 자는 대혜大慧이다. 시호는 보각普覺, 탑명은 보광寶光이다. 저서로 『大慧語錄』 12권과 『大慧法語』 3권 등이 전한다.
  10. 27)정사년 : 서기 1797년이다. 연담 스님은 1799년에 입적하였다.
  11. 28)이충익李忠翊(1744~1816) :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초원椒園, 자는 우신虞臣이다. 정제두鄭齊斗의 학통을 계승·연구하였고, 공안파公安派의 성령문학에 기본을 두고 있다. 또 유학 이외에 노장老莊·선불禪佛에도 해박하였으며, 시와 음악 및 서화書畵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저서로 『答韓生書』, 『椒園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