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인악집(仁嶽集) / 仁嶽集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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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악집 제3권(仁嶽集卷之三)
서書
홍 사군에게 올림(上洪使君)
처음 공산公山에서 뵙고 돌보아 주시는 것이 특히 풍성하고 후해서 차고 넘치도록 얻고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하물며 한 부副의 아름다운 문장을 보내주시니 길이 산문山門의 변하지 않는 안색顔色이 되었습니다. 옥대玉帶를 남겨주신 것이 어찌 많겠습니까만 제가 어떻게 그것을 얻었는지 부끄럽습니다. 저의 거처로 돌아가 더욱 감동하여 읊조렸습니다. 겨울날이 추워지려 하는데 부모님을 모시는 여가에 공무를 보시는 몸과 정신이 편안하신지요? 그립고 그립습니다. 내려 주신 정성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바위에 깃들어 표주박으로 물을 마시니 분수에 족합니다. 때로 법려들과 『금강경』과 『원각경』을 강할 뿐이니 아름다운 시에 감히 화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억지로 화운하는 것은 다만 맑은 글을 더럽힐 뿐이며, 일찍이 졸저(覆瓿)89)도 영광스러운 일이니 삼가 소승의 행동거리로 대신할 따름입니다.
판관 이숙 공에게 올리는 글(上判官李公漵書)
귀인과 이별하고90) 산봉우리 달이 세 번 굽었습니다. 덕의를 추송하니 도야陶冶해 주심을 어찌 감히 잊겠습니까?
삼가 문안드립니다. 극심한 가뭄에 정치를 하시는 몸의 안부가 어떠하신지요? 간절히 그리워합니다. 편지를 주신 정성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질병이 침범하고 뜻과 일이 조잡하고 데면데면하여 하루 종일 마음 쓰는 것이 없습니다. 초목으로 돌아가는 것을 면하지 못할 뿐입니다. 동쪽 개울에 제방을 쌓는 일은 몹시 수고스럽고 염려가 되지만 진실로 마땅하니 만 길이나 되는 큰 파도가 없을 것입니다. 읍민들에 있어서는 그것이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는 줄 알겠습니다. 보리가 황폐해지고 모가 물러진 것이 이와 같은데 어찌 판관(分憂)께서 견디겠습니까? 원림園林이 절로 편안하여 도끼와 자귀를 들이지 않으니 비로소 이봉異封이 추한 모습인 줄 알겠습니다. 오히려 이 화유化囿 중의 물건도 이러한데

010_0415_c_02L仁嶽集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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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415_c_05L上洪使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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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謁於公山眷與特隆厚盎然有得服
010_0415_c_07L之而南矣況有一副瓊章永作山門百
010_0415_c_08L年顏色玉帶之鎭奚足多也但愧不
010_0415_c_09L肖何以得此歸伏窮崖尤復感誦
010_0415_c_10L日欲寒伏惟舞綵餘睱視篆體候神相
010_0415_c_11L萬安伏伏慕慕不任下誠沾巖栖瓢
010_0415_c_12L於分足矣時與法侶講論金剛圓
010_0415_c_13L覺而已佳詩不敢逋債强此扳和適足
010_0415_c_14L浼淸甞覆瓿亦榮謹替闍黎仰伸起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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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415_c_16L上判官李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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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違㫌棨山月三彎追誦德儀敢忘
010_0415_c_18L陶鑄謹伏問亢旱政躰候若何區區
010_0415_c_19L伏慕不任下誠沾疾病侵陵志業鹵
010_0415_c_20L莽悠汎終日無所用心未免爲草木之
010_0415_c_21L歸耳東川築役大勞盛慮而其固則
010_0415_c_22L無萬丈洪濤其在邑民樂成可知
010_0415_c_23L而麥荒秧苦如此何堪分憂園林自妥
010_0415_c_24L斧斤不入始覺異封醜狀猶是化囿中

010_0416_a_01L이 불초한 저까지 돌아보아 주시니 어떻게 이것을 얻겠습니까? 우러러 어진 정사를 기리며 갚을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병든 몸이 열기를 두려워하여 뵙기를 도모하지 못하나이다. 삼가 백성들을 위하여 자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 명부에게 올리는 글(上朴明府書)
저번의 관아에서 만나 뵙고 밤을 새우면서 배화陪話하고는 보고 느끼는 사이에 얻은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저는 궁벽한 산골의 천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은혜를 입었는지요? 큰 군자의 앞에서 발길을 돌린 뒤에 더욱 덕을 연모하고 계시는 곳을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이든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극심한 가뭄이 이렇게 혹독한데 삼가 사무를 보시는 몸과 정신이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몹시 그립고 그립습니다. 편지를 내려 주신 정성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대구 용연사의 부탁을 받은 것이 여러 번이어서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오늘 23일에 길을 떠나는 애초에 문으로 달려가 안부를 묻고 인사를 하려 하였으나 삼가 수레가 봉래산으로 행차하여 아직 관아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비록 그렇게 하고 싶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물녘 돌아오는 길에 걸음마다 머리를 돌리고 바라보았습니다. 삼가 백성들의 운명을 위하여 자중하시기를 바랍니다.
눌촌에게 답하는 글세 통(答訥村書)
깊은 산에 병으로 누워 한 해가 다시 저물었습니다. 오늘과 옛날을 돌아다보니 온갖 감정이 교대로 모입니다. 봉峰 스님께서 소매에서 당신의 편지(淸翰)를 전해주기에 벌떡 일어나 소리 내어 읽기를 몇 차례 하니 갑자기 고질병이 있는 줄도 잊었습니다. 하물며 당신의 몸이 진중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떤 기쁨이 그와 같겠습니까? 편지에서 물으신 것은 부처님의 지극한 이론이 아닙니다. 대저 일심一心은 만법萬法의 근원이 되어 하늘은 이것으로써 덮어주고 땅은 이것으로써 실어주며, 나아가 해와 달과 별과 산과 내와 밀물과 썰물과 깃 달린 것과

010_0416_a_01L顧茲無似何以得此仰頌仁政
010_0416_a_02L知攸報病骨㤼熱未圖衹謁伏祝爲
010_0416_a_03L民自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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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416_a_05L上朴明府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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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來獲奉牙旌陪話終宵觀感之間
010_0416_a_07L所得實多自惟窮山賤子何以得此
010_0416_a_08L於大君子之前旋馭以後益復戀德
010_0416_a_09L瞻望鈴閣何日可忘亢旱此酷伏惟
010_0416_a_10L視篆氣體候神相萬安伏慕區區
010_0416_a_11L任下誠沾被大丘龍淵寺之請至於再
010_0416_a_12L拒之不得茲以今二十三日啓行
010_0416_a_13L初擬趍走門郊以候以辭伏聞冠蓋
010_0416_a_14L作蓬萊之行尙未還衙雖欲云云
010_0416_a_15L無奈何夕陽歸路步步回首伏祝爲
010_0416_a_16L民命自重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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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416_a_18L答訥村書

010_0416_a_19L
臥病雲山歲復暮矣俯仰今古百感
010_0416_a_20L交集峰師袖傳淸翰蹶然而起諷咏
010_0416_a_21L數回頓失沈痾所在况審尊軆珍毖
010_0416_a_22L何喜如之書中所問此非佛氏之極論
010_0416_a_23L而大抵一心爲萬法之源天以之覆
010_0416_a_24L以之載以至日月星辰山川潮汐

010_0416_b_01L털 달린 것과 비늘 있는 것과 껍질 있는 것과 삼라만상이 이를 말미암아 세워지고 이에 의지하여 운행됩니다. 꽃이 붉고 대나무가 파란 것은 타고난 그대로의 면목(天眞面目) 아님이 없습니다.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는 것은 모두 저절로 그러한 정신(自然精神)입니다. 비유하자면 밝은 거울로 모양을 비추면 모양마다 모두 거울이고 순금으로 물건을 만들면 그릇마다 모두 금인 것과 같습니다. 까마귀는 날마다 물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검으니 검은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고, 고니는 날마다 목욕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희니 흰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닭은 추워지면 나무에 오르고 오리는 추우면 물에 내려가니 어떤 힘을 받들겠습니까? 소는 코뚜레를 하고 말은 재갈을 물리는 것은 그 자연스러움을 따른 것입니다. 그 상相으로는 낱낱이 모두 헛된 것이니 평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 성性으로는 낱낱이 모두 참된 것이니 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일심을 깨달으면 만법이 거울에 마주한 것 같고, 일심을 미혹하면 만법이 담벼락을 마주한 것 같음입니다. 만법에 통달하고자 한다면 먼저 일심을 밝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찌 반고盤古 등이 해와 달을 하늘의 안목眼目으로 삼아서 양陽을 해라 하고 음陰을 달이라 하며,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서 밀물과 썰물을 땅이 숨 쉬는 것으로 여겨서 아침에는 밀물이라 하고 저녁에는 썰물이라 하는 설과 같겠습니까? 각기 한 물건에 나아가 한 가지 이치를 미룬 것입니다. 편지를 보내신 뜻에 당부하신 것이 매우 간절함을 보았기에 자세히 비루한 견해를 감히 늘어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대방가大方家에게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내년 봄 원일元日에 다시 초복初服을 손질하신다니 심히 축하드리고 축하드립니다.
또(又)
연이어 편지로 안부를 물어주시니 어찌 기쁨과 송구함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심한 추위에 몸 건강히 잘 계신다는 것을 알았으니 기쁨과 위안이 끝이 없습니다. 저는 고독히 자신만을 지키면서 온갖 것을 알지 못하니 구허자의 종류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을 말하려고 합니다. 이는 이미 간절한 물음을 받았기에 침묵할 수 없어서입니다. 한번 평소에 터득한 것으로

010_0416_b_01L毛鱗介萬像森羅由之而建立依之
010_0416_b_02L而運行花紅竹翠莫非天眞面目
010_0416_b_03L飛魚躍渾是自然精神譬之明鏡現像
010_0416_b_04L像像皆鏡純金鑄器器器皆金烏不
010_0416_b_05L待日染而黑則不必詰其所以黑鵠不
010_0416_b_06L待日浴而白則不必詰其所以白鷄寒
010_0416_b_07L上樹鴨寒下水承誰力也牛之穿鼻
010_0416_b_08L馬之絡首因其自然以其相也則一
010_0416_b_09L一皆虛無可雌黃以其性也則一一
010_0416_b_10L皆眞不必雌黃所以悟一心萬法臨鏡
010_0416_b_11L迷一心萬法面墻欲達萬法先明一心
010_0416_b_12L然則豈如盤古等紀以日月爲天之眼
010_0416_b_13L而陽曰日陰曰月皇極經世以潮
010_0416_b_14L汐爲地之喘息而早曰潮晩曰汐等
010_0416_b_15L各就一物上便推一理來者哉來書
010_0416_b_16L之意所以見囑者甚勤區區鄙見
010_0416_b_17L敢不陳其將見笑于大方之家歟承以
010_0416_b_18L明春元日將復修初服甚甚賀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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疊辱書存曷勝欣悚且審慄烈軆度
010_0416_b_22L榮衛喜慰亡量某塊然自守百不知
010_0416_b_23L未免拘墟之流而乃欲語氷之及哉
010_0416_b_24L然旣荷勤問不可緘默試以所得於平

010_0416_c_01L논해보겠습니다.
기氣는 아득한 태허太虛에서 날아서 오르고 내려 그친 적이 없습니다. 이는 동정動靜의 기틀이고 강유剛柔의 관건이어서 나누어지면 위와 아래와 맑음과 흐림이 되고 합해지면 바람과 비와 서리와 이슬이 됩니다. 엉기면 사람과 산과 내의 형질形質이 되고 흩어지면 술지게미와 잿더미의 찌꺼기가 됩니다. 그것이 그러한 까닭은 모두 이치 때문입니다. 우선 솔개나 물고기에 나아가 살펴봅시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노는 것은 기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어떤 한 사물이 있어 저들이 이와 같게 할까요? 날게 하고 뛰게 하는 것은 이치입니다. 이것을 종류로 하여 미루면 사물마다 모두 그러함을 볼 수 있습니다. 천지에 가득 찬 것은 한 물건도 성性 안에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사물들은 많지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아가 일상 생활하는 사이에 모든 행동이 지극한 이치 아님이 없습니다. 들고 나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 모두 오묘한 도리입니다. 이것은 모두 도리道理의 근본이나 그사이에 한 터럭의 사의私意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스스로 그러하다(自然)고 합니다. 그러니 저절로 그러한 그러함 이외에 또 그러함의 그러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이미 의義에 있기 때문에 이理라 하고 하늘에 있으면 명命이라 하고 사람에 있으면 성性이라 하며 몸을 주관하는 것을 심心이라 하니 심과 이는 두 개의 사물로 나눌 수 없습니다. 대개 사람과 사물이 생길 때 함께 이 성性을 얻으니 그것을 이어서 잘하는 것은 성입니다. 호랑이나 이리가 먹이를 사로잡아 먹고 도척과 장교가 방자하고 사나움이 어찌 그 성의 본연本然이겠습니까? 다만 기질을 받은 것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또한 그것을 성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물에 비유하면 물이 흐리다고 해서 그것을 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며 나아가 물짐승 뭍짐승 날짐승 들짐승이 머리를 고치고 얼굴을 바꾸는 것은 다만 음양陰陽이 서로 변화하는 것일 뿐입니다. 맹자는 “지혜에서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천착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사물의 이치는 스스로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만약 작은 지혜를 써서 천착하여 스스로 사사로이 하면

010_0416_c_01L日者論之氣蟒然太虛飛揚升降
010_0416_c_02L甞止息此動靜之機剛柔之關判而
010_0416_c_03L爲上下淸濁合而爲風雨霜露凝則爲
010_0416_c_04L人物山川之形質散則爲糟粕煨燼之
010_0416_c_05L査滓而其所以然者則皆理也且就
010_0416_c_06L鳶魚上看鳶之飛魚之躍氣也而必
010_0416_c_07L有一箇什麽物事使得他如此則其所
010_0416_c_08L以飛所以躍者理也類此推之物物
010_0416_c_09L皆然可見充滿天地者無一物不在性
010_0416_c_10L夫物芸芸一言蔽之不其然乎
010_0416_c_11L至日用之間動容周旋無非至理
010_0416_c_12L入語默捴是妙道此皆道理之本然不
010_0416_c_13L容一毫私意於其間故謂之自然則非
010_0416_c_14L自然之然以外又有所以然之然也
010_0416_c_15L旣在義故曰理而在天曰命在人曰
010_0416_c_16L主於身曰心則心與理不可分作
010_0416_c_17L二物看蓋人物之生同得此性則繼
010_0416_c_18L之者善是性也虎狼之搏噬蹠蹻之
010_0416_c_19L恣睢豈其性之本然特氣禀之所爲
010_0416_c_20L惡亦不可不謂之性也譬之水不可以
010_0416_c_21L水之濁者不爲之水也至若水陸飛走
010_0416_c_22L之改頭換面特陰陽之互相變化耳
010_0416_c_23L氏有云所惡於智者爲其鑿也蓋事物
010_0416_c_24L之理莫非自然若用小智鑿而自私

010_0417_a_01L아마 성품을 해쳐 도리어 지혜롭지 않음이 될 것입니다. 군자의 도는 가까워서 비록 불초한 이라도 지知에 참여하여 실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남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멀면 비록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물어야 합니까? 군자의 걱정은 앎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단지 아비가 되어서는 자애에 머물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에 머물며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에 머물고 젊은이가 되어서는 공손함에 머물며 벗이 되어서는 믿음에 머뭅니다. 일상 생활하는 사이에 일을 따라 각기 그 마땅함을 얻을 뿐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당신께서 평소 옛날에 익히 밝히고 힘써 행하시던 것이니 어찌 저의 적료寂廖한 말을 기다리겠습니까?
우리 불가에 이르러서는 이기理氣를 말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만을 말합니다. 대개 마음은 하나의 공적이고 함께하는(公共) 사물이라서 내가 그것을 사사로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음은 원만하고 청정하여 큰 허공과 같고 큰 바다와 같습니다. 성품은 비록 일체 상이 아니지만 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저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사람과 사물과 산과 내와 삼라만상은 모두 마음의 상입니다. 합하여 말하면 만법은 모두 일심一心이요 나누어서 말하면 법마다 각기 모두 일심을 갖추고 있습니다. 육도윤회에 이르러서는 모두 그 업력에 끌리는 것이지 본래 마음이 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또한 마음이 아니라고 이를 수도 없습니다. 중생도 마음이요 부처도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고니의 흰색에 나아가 고니가 흰 까닭을 추구할 필요도 없고, 까마귀의 검은색에 나아가 까마귀가 까만 까닭을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판단한다면 고니가 흰 것은 마음이요 까마귀가 검은 것도 마음입니다. 일심이 밝아지고 나면 만법은 저절로 밝아집니다. 이것은 돈오頓悟의 설이 있는 이유입니다. 만법은 모두 공하여 일심에 돌아갑니다. 일심이라는 명칭도 억지로 세운 것일 뿐입니다. 그 실제實際를 말하자면 현묘하고도 현묘하여 이름으로 규정지을 수 없고 말로도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다루게 할 수도 없고

010_0417_a_01L則恐害於性而反爲不智也君子之道
010_0417_a_02L近則雖不肖可以與知能行焉此則不
010_0417_a_03L必問人遠則雖聖人有所不知不能焉
010_0417_a_04L此則當欲問誰君子之患非知之艱
010_0417_a_05L特行之艱耳只是爲父止慈爲子止孝
010_0417_a_06L爲臣止忠爲小者止悌爲朋友止信
010_0417_a_07L於日用動靜之間隨事各得其當而已
010_0417_a_08L此必左右平昔所以講明力行者何待
010_0417_a_09L某寂寥語也至於吾佛氏則不言理
010_0417_a_10L而專言心蓋心者一公共底物事
010_0417_a_11L非我得而私之也是心圓滿淸淨如太
010_0417_a_12L虛空焉如大溟渤焉性則雖非一切相
010_0417_a_13L而得爲一切彼天地日月人物山川
010_0417_a_14L萬像森羅皆心之相也合而言之
010_0417_a_15L法皆一心分而言之法法上各具一心
010_0417_a_16L至於六道輪回則皆其業力所牽
010_0417_a_17L本非心之所爲也然亦不可謂非心
010_0417_a_18L亦心也佛亦心也然則不必就鵠白上
010_0417_a_19L推鵠之所以白就烏黑上推烏之所以
010_0417_a_20L而一言斷之曰鵠白心也烏黑
010_0417_a_21L心也一心旣明萬法自彰此所以有
010_0417_a_22L頓悟之說也萬法皆空歸於一心
010_0417_a_23L心之稱亦强立耳語其實際則玄之
010_0417_a_24L又玄名不可名說不可說敎別人下

010_0417_b_01L반드시 자신이 스스로 하고자 하고 스스로 먹어야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정명淨名이 문수文殊를 대하여 침묵한 것과 선서善逝께서 가섭迦葉에게 비밀히 전한 것은 모두 이 때문입니다.
고명高明께서 이것을 보시고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면 각기 들은 바를 따르고 각기 아는 바를 행할 뿐입니다. 다시 같기를 구함에 바람이 없습니다. 근래에 추위가 혹독해서 고질병이 다시 도졌습니다. 봉사를 지체하고 회피하고 태만한 것을 장차 꾸짖으신다면 과연 엄한 질책을 받들 것이니 어찌하여야 속죄할 수 있을런지요?
또(又)
매번 편지를 주시니 번번이 부끄러움을 더합니다. 부처님께서 “지금 내 이 몸은 사대四大가 화합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대개 피부와 근골처럼 견고하고 만져지는 것은 지대地大라고 하고 침이나 피나 콧물이나 눈물처럼 흘러가는 것은 수대水大라 하며 따뜻한 기운은 화대火大이고 움직이는 것은 풍대風大입니다. 인연因緣이 합하면 이 몸이 생겨나고 인연이 흩어지면 이 몸이 멸합니다. 어찌 사람만 그렇겠습니까? 사물이 모두 그러할 뿐입니다. 총괄하여 말하자면 인연에서 생기지 않는 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저 만법이란 이미 연에서 생겨서 원래 자체自體가 없고 오직 하나의 진심眞心일 뿐이어서 우뚝하게 드러납니다. 비유하자면 거울 속에 있는 여러 상은 물건을 대하면 나타나고 물건이 가면 사라집니다. 나타남과 나타나지 않음도 오직 하나의 밝은 거울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대는 비록 마음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삼천대천세계에 천당天堂은 수미산의 위쪽에 있고 지옥은 철위산鐵圍山 사이에 있으니 내가 그것을 못 본다고 해서 없다고 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만약 저 부처의 말은 어찌 믿겠냐고 한다면 중원仲遠이 중추中秋에 천궁天宮에 오르고 안복顏卜이 지하에서 문랑文郞을 닦았다는 것을 또 어찌 지적하여 말합니까? 저 또한 부처가 말한 것입니까? 반드시 내가 직접 본 뒤에 비로소 믿을 수 있다면 『산해경山海經』에 실린 갈라진 혀에 머리가 세 개인 것과

010_0417_b_01L手不得須是自家自肯自契始得
010_0417_b_02L名之默對文殊善逝之密傳迦葉皆以
010_0417_b_03L是耳高明見此能信得及否如曰不然
010_0417_b_04L各遵所聞各行所知而已無復可望於
010_0417_b_05L求同也近因寒劇宿痾復作奉謝嵇
010_0417_b_06L方訟逋慢果承嚴誅何當得贖

010_0417_b_07L

010_0417_b_08L

010_0417_b_09L
每一擎書輒增感怍佛云我今此身
010_0417_b_10L四大和合蓋皮膚筋骨有堅礙者
010_0417_b_11L地大唾血涕淚有流行者名水大
010_0417_b_12L氣爲火大動轉爲風大因緣合則此身
010_0417_b_13L因緣離則此身滅豈獨人哉物皆
010_0417_b_14L然耳統而言之未曾有一法不從因緣
010_0417_b_15L大抵萬法旣從緣生元無自體
010_0417_b_16L一眞心挺然現露譬之鏡中諸像
010_0417_b_17L對則現物謝則亡現亦無現唯一明
010_0417_b_18L然則四大雖目爲心可也三千大
010_0417_b_19L天堂在須彌之上地獄在鐵圍之間
010_0417_b_20L不可以我之不見而謂之無也如曰彼
010_0417_b_21L一佛之言奚足信也則仲遠之中秋上
010_0417_b_22L天宮顏卜之地下修文郞又何指而言
010_0417_b_23L彼亦佛言歟必我親見然後方可
010_0417_b_24L取信如山海經所載岐舌三首及不

010_0417_c_01L불사등국을 한위(漢晋) 때의 유자들이 그것을 말하거나 기술한 것이 적지 않은데 이것은 모두 그릇된 것입니까?
우리 석가께서는 수련이 지극하여 온갖 얽매는 것이 다하여 일진一眞만이 드러났으니 고요하고 잠잠하며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어서 감응하면 마침내 통합니다. 여기에 천백억 화신化身이 성대히 많아집니다. 바라보면 앞에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 있어서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본체에 나아가 본다면 오직 하나의 진신眞身일 뿐이요 작용에 나아가 본다면 천백억도 족히 많지 않습니다. 한가위 때의 달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만 리 창공에 오직 하나의 달뿐이지만 그림자는 백 개의 강에 떨어집니다. 이에 백 개의 달그림자가 있게 됩니다.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이요 만 개의 강에 만 개의 달이나, 달 역시 무심無心하여 천 개가 되고 만 개가 됩니다. 근본을 가지고 본다면 그것을 한 개의 달이라고 해야 되고 그림자를 가지고 본다면 그것을 천 개나 만 개의 달이라고 해야 합니다. 진신을 비유하자면 근본인 달이요 화신을 비유하자면 그림자인 달입니다. 저것을 끌어다 이것을 증명하니 하나는 근본이요 만 가지는 갈라진 것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위대하여 저절로 변화하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성스러워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하는데 이와 같은 것이 있는지요?
죽헌 홍 대아에게 드림(與竹軒洪大雅)
‘행차(華旆)가 오고 가자 설산雪山이 그 때문에 가벼워지고 무거워졌다.’는 두보의 시구는 과연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옥대玉帶를 남겨주신 것을 어찌 족히 말하겠습니까? 하물며 모시고 노닌 여러 날 동안 평소 듣지 못했던 것을 더욱 많이 들었습니다. 심성이기心性理氣의 설에 대해서는 판단하여 결정함이 강물이 흐르듯 하여 비록 스스로 노사숙유라고 할지라도 입을 떡 벌리고 삼십 리는 물러날 것입니다. 그러하니 도를 들음이 빠른 것이 이와 같군요? 참으로 실천하실 줄 알기를 바랍니다. 단지 문사文辭로써 그치지 않는다면 그 진보를 장차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을 공경하고 탄복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010_0417_c_01L死等國漢晋間諸儒頗有稱述之者
010_0417_c_02L此皆非歟我釋迦修鍊之極萬累都盡
010_0417_c_03L一眞獨露寂焉默焉無形無聲而感
010_0417_c_04L則遂通於是乎有千百億化身之紛紜
010_0417_c_05L瞻之在前忽焉在後固難得而測
010_0417_c_06L就軆上看唯一眞身而已就用中
010_0417_c_07L千百億不足多也曷甞觀中秋之月
010_0417_c_08L萬里蒼穹唯一輪月而影落百川
010_0417_c_09L於焉有百箇之影月矣千江千月萬江
010_0417_c_10L萬月而月亦無心乎爲千爲萬也
010_0417_c_11L本則謂之一月可也以影則謂之千萬
010_0417_c_12L月可也眞身譬則本月化身譬則影月
010_0417_c_13L援彼證此一本萬殊不其然乎大而
010_0417_c_14L化之之謂聖聖而不可測之之謂神
010_0417_c_15L如是夫

010_0417_c_16L

010_0417_c_17L與竹軒洪大雅

010_0417_c_18L
華旆去來雪山爲之輕重老杜之詩
010_0417_c_19L果非虛語區區玉帶之鎭何足道哉
010_0417_c_20L况陪遊數日益聞所不聞其於心性理
010_0417_c_21L氣之說剖決如流雖自謂老師宿儒
010_0417_c_22L亦當口呿而退三舍則聞道之早其如
010_0417_c_23L是乎倘眞知宲踐不但以文辭而已
010_0417_c_24L則其進殆將不可量矣爲之欽服不已

010_0418_a_01L요즘 몹시 추우니 몸을 더욱 소중히 여기기 바랍니다. 삼가 위로가 됩니다. 작은 정성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멍하니 궁벽한 산에 앉아서 홀로 한 해가 저무는 느낌이 많을 뿐입니다.
명성재 홍 공에게 답함두 통(答明誠齋洪公)
홀로 깊은 산에서 숨어 원숭이 무리같이 사슴을 벗 삼으니 모습은 토목 같고 세상에 버려진 사람입니다. 대군자께서 무슨 이유로 기억해 주시는지요? 갑자기 여러 통의 긴 편지를 받고 보내신 뜻이 아울러 진중하였으니 못난 제가 어떻게 이런 은혜를 얻었는지 돌아봅니다. 삼가 받들고 꿇어앉아 읽으며 그 때문에 조심스럽고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마땅히 산문에 남겨 길이 우호로 삼아야 합니다. 봄추위가 매섭다고 생각되는데 삼가 부모님을 모시는 여가에 몸과 정신이 아주 건강하시다는 것을 살폈으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내려 주신 정성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재주가 본래 보통 이하로 세상과 멀리하였기에 마침내 절에 귀의하였습니다. 풀로 옷을 만들어 입고 목피로 연명하는 것이 분수에 충분합니다. 면벽하고자 하지만 소림小林에 부끄러움이 있고 경전을 연구하고자 하지만 한갓 옛 종이나 뚫고 있습니다. 작년과 금년을 멋대로 보내어 점점 거백옥伯玉의 지비지년知非之年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이 몸을 헤아리건대 기량이 부족하여 아는 것이 없고 장차 초목과 함께 돌아가 다할 뿐이니 어찌 초연히 깨달아 상승上乘의 등급에 들어가길 바라겠습니까? 지금 대군자께서 제가 이런 줄 모르시고 갑자기 끌어다가 함께 유가와 불가의 깊은 뜻을 논하여 천 백 년을 이끌어다가 진여眞如에 오르려 하십니다. 이는 나찰국羅刹國 사람에게 갑자기 중국말을 배우게 하려는 것과 같으니 비록 날마다 종아리를 치고 말하기를 구하여도 그가 할 수 없음을 알 것입니다. 장님이 어찌 문장文章을 보는 데에 참여할 수 있고 귀머거리가 어떻게 음악을 듣는 데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가령 곁에다 끌어다 놓고 억지로 하게 하여도 한두 마디도 토해낼 수 없는데 어찌 군자의 마음에 부합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불러 주셨으니 속히 감히 바람이 불듯이 달려가서 명령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산비가 개자마자

010_0418_a_01L比日慄烈伏惟棣候益加珍衛伏慰
010_0418_a_02L任微誠沾塊坐窮山獨多歲暮之感耳

010_0418_a_03L

010_0418_a_04L答明誠齋洪公

010_0418_a_05L
塊伏深山盟猿友鹿形骸土木世所
010_0418_a_06L棄矣大君子何由記知遽辱長牋累幅
010_0418_a_07L寄意兼重顧茲無似何以獲此拜領
010_0418_a_08L跪讀爲之踧踖不安唯當留鎭山門
010_0418_a_09L永以爲好也春寒料峭伏審省餘軆候
010_0418_a_10L神相萬康伏喜區區不任下誠沾材
010_0418_a_11L本凡下與世抹摋遂歸林下草衣木
010_0418_a_12L食於分足矣欲面壁則有愧少林欲開
010_0418_a_13L經則徒鑚故紙往年今年恁地過了
010_0418_a_14L看看逗到伯玉知非之年矣自分此身
010_0418_a_15L儱侗無知將與草木同歸澌盡而已
010_0418_a_16L尙何望超然玄悟得入上乘之科耶
010_0418_a_17L大君子不知沾如此遽欲引而與論儒
010_0418_a_18L釋之深趣扢揚千百載以上眞如
010_0418_a_19L羅刹國人而驟學中華語雖日撻而求
010_0418_a_20L知其無能爲矣瞽何以與文章之觀
010_0418_a_21L聾何以與鍾鼓爲聽假令致之座側而
010_0418_a_22L其所不能吐出一二說話亦何以有
010_0418_a_23L當於君子之心耶雖然旣蒙芳速敢不
010_0418_a_24L趨走下風以聽進止山雨稍霽謹當

010_0418_b_01L삼가 공손히 이 정성을 이루겠습니다.
또(又)
산에서 쓸쓸히 살고 진흙상처럼 앉았다가 홀연히 편지를 받고서 꿇어앉아 서너 번 읽고는 저도 모르게 마음과 눈이 맑아졌습니다. 마치 모시고 자리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기쁨을 다하는 여가에 몸이 아주 편안하시다고 들으니 삼가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내려 주신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산의 굽이진 곳에 살고 몸은 마른 등나무 같으니 이른바 넓고 장엄한 가풍으로 단지 세 칸 띳집과 후미진 곳에 백운이 있을 뿐입니다. 보건대 군자의 학문은 넉넉하고 덕은 이루어졌으나 매번 겸손하여 고개를 낮추고 한 걸음 물러서 겸연쩍게 자만하지 않는 뜻이 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 자신에게 해당하지만 번번이 꺼려 받지 않으니 그 진보를 볼 수 있습니다.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자가 있다면 그를 공경하고 복종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마음을 맑히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 비록 진실로 선가禪家 본래의 공부이나 저는 이러한 일에 매번 욕되게 써 힘을 다할 것이 없으니 무엇을 가지고 군자에게 아뢰어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바라겠습니까? 스스로 이러한 가르침을 받들어 두려워 벌벌 떠는 것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고덕古德께서 “여색을 똥처럼 보고 재물을 뱀 같이 보라.”라고 하셨는데, 저는 아마도 장차 일이 있을 때 혹 비슷하게도 못하는 자입니다. 군자께서 천근한 말로 하지 않고 혹 더욱 살핀다면 비록 맑은 마음의 기술이 아니더라도 실로 욕망을 제어하는 방법이 됩니다. 그것을 밖에서 제어하여 그 안을 편안하게 하면 욕망은 이미 적어지고 마음은 스스로 맑아질 것입니다. 이미 하문을 입었으니 자질구레한 말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감히 이 번거롭게 여쭙는 것은 달 아래 등불을 더하는 것이라고 이를 수 있으니 진실로 또한 송구스럽습니다. 봄 구경을 하자는 약속이 앞서 이미 있었기에 지금에 이 편지를 받은 실망을 어떤 말로 하겠습니까? ‘반은 모래사장에 들어갔고 반은 구름에 들어갔다’라는 시는

010_0418_b_01L翼如以遂此誠矣

010_0418_b_02L

010_0418_b_03L

010_0418_b_04L
山居寂寥坐如泥塑忽承頫覆跪讀
010_0418_b_05L三四不覺心眼淸明怳若陪在座下
010_0418_b_06L面承敎誨也仍伏審承顏盡歡之餘
010_0418_b_07L體氣萬安伏喜區區不任下誠沾棲
010_0418_b_08L在巖阿身若枯藤所謂廣嚴家風
010_0418_b_09L有三間茅屋一塢白雲耳竊觀君子
010_0418_b_10L學之優矣德之成矣而每執謙低一
010_0418_b_11L退一步歉然有不自滿之意見人
010_0418_b_12L稱說實當於己輒諱而不受可見其
010_0418_b_13L當有不易量者矣爲之欽服不已
010_0418_b_14L淸心寡欲雖誠禪家本色工夫而沾於
010_0418_b_15L此段事每苦無以致力尙何持以告君
010_0418_b_16L子要作他山之石耶自承此敎不勝悚
010_0418_b_17L但古德有言見色如糞見財如蛇
010_0418_b_18L是沾蓋將有事焉而未能或髣髴者也
010_0418_b_19L君子不以邇言而或加察焉雖非淸心
010_0418_b_20L之術實爲制欲之方制之於外以安
010_0418_b_21L其內欲旣寡而心自淸矣旣荷下問
010_0418_b_22L不避猥屑敢此煩禀可謂月下添燈
010_0418_b_23L良亦悚矣賞春已有前期而今承此示
010_0418_b_24L失望何言半入沙場半入雲之詩

010_0418_c_01L이는 절구絶句인데 젊은 시절에 과연 이미 어느 곳에서 전편을 보았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세 번째 구절인 ‘멀리서 밤마다 포단에서 꿈꾸는 줄 안다’는 구절만이 기억나고 위의 두 구는 역시 잊었습니다. 혹 시를 짓는 승려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역시 모르니 상고할 길이 없을 뿐입니다.
서 대아에게 답함(答徐大雅)
연사蓮社에서 모시고 노닐던 일이 갑자기 지난 과거가 된 뒤에 정처 없이 떠돌며 안정되지 않아서 멀리서 당신께서 계신 곳을 바라보니 구름과 진흙처럼 멀 뿐만이 아니라 성아盛雅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기억하며 손수 편지를 보내주시니, 받들어 보고는 놀랍고 기뻤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하물며 종이에 가득한 말과 뜻이 위로하고 가르치고 되풀이하여 타일러서 흡사 모시고 책상 아래서 직접 자애로운 가르침을 받드는 것 같아 더더욱 감동하고 감동하였습니다. 다만 편지가 유월 보름에 나왔는데 이번 달 십삼일에 비로소 손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어찌 그리 지체되었습니까? 오래되도록 홍교洪喬91)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은 또한 다행일 따름입니다. 한 해가 저물려고 하니 삼가 몸과 정신이 복되고 제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만 미천한 생각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자취가 한미하고 재주가 산만하여 세상에서 견줄 것이 없고 여러 계단이 길을 막는 가운데 평탄하지 못한 일도 많아 절로 들어왔습니다. 낙토樂土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 칸 깨끗한 방에 맑은 향 하나를 피우고 누우면 아늑하고 일어나면 흡족하며 도토리를 줍고 계곡물을 떠먹으니 입에 풀칠하기에 충분합니다. 경전을 외고 염불을 하면 마음을 씻기에 충분하니 산 밖에 다시 무슨 일이 있는 줄 모릅니다. 짐승들과 짝하니 진실로 달게 여기는 것이고 부귀와 행락 역시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삼가 고명高明께서는 자질이 아름다우신데 학문에 힘씀도 많으니 의리義理로서 가슴을 적시어 과거 공부와 이학理學 두 가지를 해나가신다면 진실로 벼슬하는 것과 배우는 것이 서로 도움이 되어 곤궁해도 길러지고 영달해도 베풀어지니 어디를 간들 불가하겠습니까? 지극히 빌고 빕니다. 산야로 떨어져 있어 심부름꾼을 찾기 어려워

010_0418_c_01L是絕句少時果已得見全篇於何處
010_0418_c_02L以今思之記得第三句遙知夜夜蒲團
010_0418_c_03L夢之句而上二句則亦忘却矣或問諸
010_0418_c_04L韻釋而亦不知無從可考耳

010_0418_c_05L

010_0418_c_06L答徐大雅

010_0418_c_07L
蓮社陪遊忽焉陳跡伊后萍蹤飄泊不
010_0418_c_08L遙望門屏不啻雲泥不謂盛雅
010_0418_c_09L爾記錄辱枉手滋奉領驚喜莫知所
010_0418_c_10L從得況滿紙辭旨慰誨諄複宛如侍
010_0418_c_11L在床下面承慈誨尤尤感感但書出
010_0418_c_12L六月望日而於今月十三日始見入手
010_0418_c_13L何其沉滯許久不歸洪喬蓋亦幸耳
010_0418_c_14L歲色垂暮伏惟體履神福慰漽不任微
010_0418_c_15L沾跡寒材散於世無所比數墑塡
010_0418_c_16L途中事多轗軻歸來林下樂土在此
010_0418_c_17L半間淨室一炷淸香臥則居居起則
010_0418_c_18L于于拾橡掬溪足以糊口誦經念佛
010_0418_c_19L足以洗心不知山外更有何事鳥獸同
010_0418_c_20L固所甘焉富貴行樂亦非願也
010_0418_c_21L惟高明天資旣美學力又多須以義
010_0418_c_22L浸灌胷中科業理學兩下做去
010_0418_c_23L眞是仕學相資窮養達施何往不可
010_0418_c_24L至禱至禱山野隔絕便价難討此亦

010_0419_a_01L이것도 바람결에 띄우는 것이니 어느 때에 당신께 닿을지 모르겠습니다.
김 대아에게 답함(答金大雅)
여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하여 그리웠는데 보내주신 자세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해구海口에서 돌아와 몸이 연이어 길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욱 위로되고 마음이 놓입니다. 저는 여름 사이에 거듭 중제重制를 만났으니 침통함을 어찌 말로 하겠습니까? 반년 동안 바닷가에서 경영하여 세운 일이 얼마쯤 됩니까? 풍토가 달라서 수고롭고 피곤한 일이 많았겠지만, 성대히 지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간행한 뒤에 벽 사이에 올리니 찬연히 산빛과 물빛과 똑같이 아름다워 이로부터 용산龍山이 많은 안색顔色을 더하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다행입니까? 여러 해 동안 나그네로 북풍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그리움이 많습니다. 승은 공이 아니라면 쓸쓸해질 것입니다. 만일 이 계획이 이루어진다면 혹은 눈을 씻음(拭靑)92)에 단계가 있을 것이나 미리 기뻐하며 기대합니다.
화담 대사께 답함(答花潭大師)
가까이 있으면서 막히는 일이 많아 우러러 탄식하기를 부지런히 하였는데 삼가 편지를 받들고는 법후法候를 보중하심을 기쁘게 살폈습니다. 저는 여러 법려法侶들과 『화엄경』을 강론할 뿐입니다. 윤玧은 때마침 왔다가 때마침 가니 이는 학자들의 항상 있는 일입니다. 편지를 보내신 뜻은 저를 새장에 끌어들임을 이르는 듯하니 어째서입니까? 구름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은 본래 산에는 상관이 없고 새가 갔다 왔다 하는 것을 어찌 나무에게 묻겠습니까? 만약 이러한 뜻을 살피셨다면 생각건대 반드시 저를 탓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번 웃기에 좋습니다.
경암당에게 줌(與鏡庵堂)
기억하건대 신해辛亥년 여름에 영원사靈源寺의 상례喪禮에 갔다가 구연소九淵所에 이르러 돌아가신 화상의 영정에 참배하였습니다. 벽송碧松을 경유하여 만나고 싶었으나 우리 형님께서 일이 있어 칠불사七佛寺에 가셨기에 제봉題鳳을 면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 서운하고 아쉬워서

010_0419_a_01L因風轉達者未知幾時得澈丌下也

010_0419_a_02L

010_0419_a_03L答金大雅

010_0419_a_04L
經夏阻晤令人馳想即奉委字凭諦
010_0419_a_05L還自海口體履連吉尤慰且漽沾夏
010_0419_a_06L間荐遭重制沈痛何言半載海上營立
010_0419_a_07L幾許風土旣異想多勞憊盛作今已
010_0419_a_08L揭刊登諸壁間燦然與山光水色齊媚
010_0419_a_09L自此龍山添淂多少顏色何幸何幸
010_0419_a_10L數載客捿北風多思早晩瓶鉢非公則
010_0419_a_11L瑟倘遂此計或者拭靑有階預用欣𨀣

010_0419_a_12L

010_0419_a_13L答花潭大師

010_0419_a_14L
咫尺多阻瞻咏方勤伏奉手滋喜審
010_0419_a_15L法候葆重沾方與多少法侶講論華嚴
010_0419_a_16L玧也適來適去自是學者家常事
010_0419_a_17L來書之意似謂我籠引何哉雲起雲
010_0419_a_18L本不關山鳥去鳥來何須問樹
010_0419_a_19L體這般意思必不𠻲我矣好笑

010_0419_a_20L

010_0419_a_21L與鏡庵堂

010_0419_a_22L
記辛亥夏赴靈源喪至九淵所省先
010_0419_a_23L和上影下徑由碧松欲揩靑接吾兄
010_0419_a_24L有事適七佛不免題鳳而返歸來悵

010_0419_b_01L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말로 그때 형께서 암자에 돌아왔는지요? 암자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까? 가끔 방장산方丈山에서 오는 이들을 만나는데 법석法席의 아름다움을 성대히 칭하고 명성이 자자하여 그치지 않습니다. 대저 형께서는 전세에 무슨 복업福業을 지었길래 중생들이 귀의하는 힘을 얻었습니까? 이에 자신에게 있는 것같이 할 뿐만이 아니라 한 마음으로 흠모합니다. 가을날 청량하여 법체法體는 더욱 편안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우는 몸을 돌보는 이치에 어두워 작년에는 병 때문에 거의 죽을 뻔하였습니다. 다행히 약과 자양물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수행의 길에 아직 힘을 얻지 못해서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워 탄식합니다. 학문에 정진하는 데에 자애하셔서 멀리서 그리워하는 이를 위로해 주십시오.
영파당에게 줌(與影波堂)
진연塵筵에 나아가 배알하는 것은 저의 밤낮의 소원이었는데 이에 오륙 개월이 지났으니 이것이 어찌 문과 난간 사이의 후생後生의 직분이겠습니까? 몹시 두렵고 송구스러워 엄한 질책을 기다립니다. 삼가 여름 장마에 법체와 정신이 편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저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암자에 일이 있어서 한 달 동안 일을 감독하고서 완공을 아뢴 것이 어찌 그리도 빠른지 용과 천신이 도움을 내림이 아님이 없어서 법력法力으론 방법이 없을 뿐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도량이 일신되어 황금빛과 푸른빛이 비쳐서 운암雲菴이 이로부터 안색이 다양해졌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요사이 마음이 자못 나빠 열흘 동안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그래서 하례하는 편지가 지금까지 미루게 되었으니 더욱 죄송합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보경당에게 줌(與寶鏡堂)
세 가지 같은 고통을 만난 뒤에 돌아갈 때 다시 이틀 밤을 베개를 나란히 하였으니 이것은 진실로 평생 얻기 쉽지 않은 훌륭한 일이었습니다. 돌아가 고향 산에 누우니

010_0419_b_01L有不可言果不知其時兄歸菴菴人
010_0419_b_02L能道得此語否往往逢着自方丈來者
010_0419_b_03L盛稱法席之美藉藉不已大抵兄前世
010_0419_b_04L作何福業得衆生依歸之力至此一心
010_0419_b_05L欽慕不趐若自己有之秋日淸凉想法
010_0419_b_06L躰益安弟昧於攝理往年以病幾不
010_0419_b_07L免死幸賴藥餌之扶復起爲人此則
010_0419_b_08L於修行路上未得力故耳愧歎愧歎
010_0419_b_09L惟進學自愛以慰遐想

010_0419_b_10L

010_0419_b_11L與影波堂

010_0419_b_12L
往拜塵筵此其晝宵之願而於焉過了
010_0419_b_13L五六月此豈門闌間後生之職耶深自
010_0419_b_14L汗悚方俟嚴誅伏惟暑雨法候神相
010_0419_b_15L萬重伏慰區區庵中有事浹月監蕫
010_0419_b_16L奏功何速莫非龍天垂佑法力無方耳
010_0419_b_17L伏想道場一新金碧照映雲菴自此多
010_0419_b_18L顏色矣何幸何幸沾近日心懷頗惡
010_0419_b_19L浹旬杜門所以尺書之賀至此遷就
010_0419_b_20L尤用恐懼餘不備

010_0419_b_21L

010_0419_b_22L與寶鏡堂

010_0419_b_23L
旣見得三同苦臨歸復兩宵聯枕
010_0419_b_24L此誠平生不易得底勝事歸臥故山

010_0419_c_01L더욱 우러름을 더합니다. 삼가 정무 보시는 몸 연이어 진중하고 복되기를 바랍니다. 도량은 청정하다 하시니 위로되고 안심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의 건강이 조금 소생했으나 쇠하고 늙음이 날로 심해서 쾌척했다가 다시 더디어지는 것 같으니 제가 근심한들 어찌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봄에 임금님께서 방문하실 때 들어가 모실 것이니 그 영광되고 총애됨을 어떻게 감당하시렵니까? 이미 그 지위에 있으니 팔도(八域)의 승려들을 보호할 것을 생각하여 우리 불도를 실추시키지 말 것을 지극히 빌고 빕니다. 마침 인편이 있어서 잠시 안부를 묻는 편지를 부칩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석봉 대사께 답함(答石峰大師)
헤어진 지 오래되어 우러러 그리워함이 쌓였는데 갑자기 편지를 받으니 어찌 감격과 위로를 이기겠습니까? 하물며 서늘한 가을날에 법후法候가 진중함을 살폈으니 삼가 경하하고 경하합니다. 저는 여러 해 병으로 누웠다가 이제 비로소 떨치고 일어났으나 남은 증상이 널리 남아 있어 때를 타고 간혹 도지니 스스로 가련하게 여긴들 어쩌겠습니까? 편지를 보니 또 정공淨供을 지었다하니 요즘 세상에 선을 하는 데에 용감하여 날이 부족한 사람은 오직 스님 한 분 뿐일 것입니다. 몹시 부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저에게 축문祝文을 짓게 하셨는데 스님의 훌륭한 솜씨로 직접 붓을 대지 않으시고 귀머거리나 장님 같은 이에게 빌리고자 함은 어째서입니까? 저는 본래 학문이 천박한데 오랫동안 고질병을 앓고 나서 정신도 없어서 아무리 하고자 하여도 미천합니다. 다만 성대한 가르침을 거듭 어겼기에 우선 이렇게 지어 책임을 때웁니다. 글과 생각이 졸렬하고 비루하여 큰일을 선양하기에 부족할 뿐이니 한 번 보시고 버리든 취하든 하십시오. 해산물을 주시니 성의에 깊이 고개 숙이며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불사佛事를 이행利行함에 하늘의 도움(冥佑)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성파당에게 답함두 통(答聖坡堂)

010_0419_c_01L增瞻仰伏惟政候連嚮珍福道場淸
010_0419_c_02L慰漽區區沾間關歸來親候少蘇
010_0419_c_03L然衰耄日甚快復似遲私悶奈何
010_0419_c_04L念春中大駕俯臨應被入侍矣其爲光
010_0419_c_05L何以奉當旣在其位思庇八域緇
010_0419_c_06L庶使吾道不墜於地也至至祝祝
010_0419_c_07L適因順便暫此附候餘不宣

010_0419_c_08L

010_0419_c_09L答石峰大師

010_0419_c_10L
違誨許久方積瞻慕忽辱書示曷勝
010_0419_c_11L感慰矧審秋凉法候珍重伏伏賀賀
010_0419_c_12L沾數年臥病今始振作而餘症彌留
010_0419_c_13L乘時或作自憐奈何又營淨供
010_0419_c_14L今之世其勇於爲善惟日不足惟師
010_0419_c_15L主一人耳不勝健羨之至俯敎祝文
010_0419_c_16L以師主之大手不自下筆及欲借於䏊
010_0419_c_17L何哉沾本以膚學重經沈疾精神
010_0419_c_18L澌盡雖欲云云亦末矣但重違盛敎
010_0419_c_19L聊此塞責文思拙陋恐不足以揄揚大
010_0419_c_20L事耳惟一覽而去取之海味之惠
010_0419_c_21L領盛誼珍謝無已所祝利行佛事
010_0419_c_22L得冥佑

010_0419_c_23L

010_0419_c_24L答聖坡堂

010_0420_a_01L작년 가을에 방문해 주셨는데 마침 교묘히 어긋나서 글만 써놓고 가게 했으니 아쉽고 허전한 저의 마음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뜻밖에 먼저 긴 편지를 주시고 종이 가득 자상하게 말씀하시니 흡사 마주 앉아 담소하는 듯합니다. 연말에 법후法候가 편안하고 진중하셨다는 것을 알았는데 부디 조금 더 보살피십시오. ‘듣는 무리는 천 개의 돌이요, 손에 든 총채(談柄)는 소나무 가지이다.’라고 한 것은 옛사람의 말이 아닙니까? 이 말로써 자신을 위로합니다. 아우 역시 대중을 떠날 마음이 있습니다. 전해온 무딘 도끼를 근래에 남에게 주었습니다. 봄이 되면 봉래산蓬萊山 일만 이천 봉우리 사이를 유람하여 가슴을 씻어 낸 뒤에 제자들과 작은 모임을 팔공산에서 결성하여 한결같이 마음 관찰함을 만년晩年의 공안公案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소 인편이 급하여 이만 줄입니다.
또(又)
요즘 안부를 묻지 못해 간절히 우러르고 염려하였는데 갑자기 편지를 주시니 어찌 기쁨과 위로를 이기겠습니까? 하물며 삼복더위에 법후께서 평상을 회복하여 강의와 연마를 그치지 않으시니 어찌 기뻐 껑충껑충 뛰지 않겠습니까? 저는 새로운 거처가 적적하여 모든 일이 용산龍山만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만난 곳을 따라 편안하게 여겨야하니 한때의 득실得失이 어찌 마음에 개입하겠습니까? 법려法侶가 조금 모여 엄연히 모임을 이루었다 말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괴이한 일입니다. 주珠 형의 방문은 더욱 뜻밖의 일이니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즐거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는 극심한 가뭄에 법을 위하여 자애自愛하시기를 빌며 이만 줄입니다.
금파당에게 답함(答琴波堂)
당신의 아우를 만나 보내신 편지를 받아보니 그 기쁨을 손으로 움켜잡을 정도입니다. 하물며 정월 초하루(履端)에 부모님을 모신 것 외에 법후가 복을 더하셨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새해의 상황이 예년과 같아 달리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징澄이 법의 깃발을 세운 것은 위로는 어버이를 위로할 뿐만이 아니라

010_0420_a_01L
昨秋枉顧適値巧違致令題凡此心
010_0420_a_02L悵失曷可勝道即此匪意先辱長牋
010_0420_a_03L滿紙諄複宛接談笑凭審殘臘法候
010_0420_a_04L安重第少請益聽徒千箇石談柄一
010_0420_a_05L枝松非古人之語耶須以是自慰
010_0420_a_06L亦有謝衆之意傳來鈯斧近已授人矣
010_0420_a_07L當俟開春遊玩蓬萊萬二千峰之間
010_0420_a_08L盪心胷然後歸與二三子結小社於公
010_0420_a_09L一以觀心爲晩年公案不知可乎
010_0420_a_10L多少便遽不宣

010_0420_a_11L

010_0420_a_12L

010_0420_a_13L
比闕奉候方切瞻係忽辱書示曷勝
010_0420_a_14L欣慰況審庚炎法候復常講磨不輟
010_0420_a_15L何等爵躍沾新棲牢落凡百不類龍山
010_0420_a_16L然亦當隨遇而安之一時得失何足介
010_0420_a_17L不謂法侶稍集儼然成會還是怪
010_0420_a_18L珠兄之訪尤是不意自遠之樂
010_0420_a_19L不可勝言餘祈亢旱爲法自愛不宣

010_0420_a_20L

010_0420_a_21L答琴波堂

010_0420_a_22L
即對賢弟奉接情字其喜可掬況審
010_0420_a_23L履端侍外法候增福何等雀躍沾新
010_0420_a_24L狀如舊不足他喩澄之建幢不惟上慰

010_0420_b_01L역시 아래로 많은 사람의 기대를 따르는 것이니 때가 지극하고 일이 적합합니다. 멀리 산기슭에 있는 버려진 사람도 잣나무가 기뻐하는 사사로움(栢悅之私)93)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잔치하는 저녁에 끝자리에 참석하여 그 즐거움을 함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뿐입니다. 머지않아 달려가 직접 위문할 것이니 그 사이 법을 위하여 자중하십시오. 나머지는 등불이 어두워 휘갈겨 씁니다. 이만 줄입니다.
장 처사에게 줌두 통(與張處士)
작년에 두 번 편지를 보냈는데 전해지지 않았는지요? 영남 밖 궁벽한 곳에서 홀로 또 새봄을 맞이하면서 당신께서 하늘가 한 귀퉁이에 있기에 우러러 바라봅니다. 화창한 봄날에 도를 닦으시는 몸 복을 더하시고 행行과 연蓮 두 도인도 모두 편안하십니까? 염불삼매는 점차 불교의 근본(蔗本)에 들어갔습니까? 갖가지로 위로하고 빕니다. 저는 어른을 모시는 상황은 우선 편안하나 기玘라는 아이가 좋지 못한 일에 말려들어 이 고통으로 근심하고 번민하여 날을 보내고 있으니 무슨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한평생 세상일의 괴로움이 불타오르는 듯하니 시끄러운 속에서 힘을 붙여 나아가야 합니다. 방龐 거사가 “물건마다 취하고 버릴 것이 아니요, 곳곳마다 따르거나 어기지 말라.”고 한 것은 어찌 이러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지극히 빌고 빕니다. 얻은 아이는 아주 잘 자랍니까? 매번 그리워할 때마다 구름에 쌓인 산이 천리千里라서 다시 만날 기약이 없으니 편지를 대하고는 암담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련保鍊하셔서 노년을 편안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또(又)
용주사에서의 모임과 은석사銀石寺에서의 전별은 모두 삼생三生의 기이한 인연으로 추억할 때마다 어찌 아쉽고 슬픈 마음을 이기겠습니까? 영체는 어떠하신지요? 당신과 행行도인道人과 연蓮도인은 모두 아름다운 상서를 얻어 고요히 연화세계蓮花世界를 관찰하고 깊이 염불법문念佛法門에 들어갔습니까? 세속 세상은 신기루와 같고

010_0420_b_01L慈情亦乃下從輿望時之至矣事之得
010_0420_b_02L遐陬棄物亦不勝栢悅之私而獨
010_0420_b_03L恨慶宴之夕不得叅末席與同其樂耳
010_0420_b_04L不久當走面慰其間爲法自重餘燈暗
010_0420_b_05L胡草不宣

010_0420_b_06L

010_0420_b_07L與張處士

010_0420_b_08L
昨年兩度書不洪喬否嶺外窮獨
010_0420_b_09L見新春瞻望高人在天一方敢問韶
010_0420_b_10L道體增祉及行蓮兩道人均獲佳
010_0420_b_11L而念佛三昧漸入蔗本否種種慰
010_0420_b_12L拙侍狀姑安而玘兒犯染方此苦
010_0420_b_13L痛憂悶度日有甚好狀百年塵勞
010_0420_b_14L火熾然須從閙裡着力做去龎老所
010_0420_b_15L頭頭非取捨處處勿張乖者豈非這
010_0420_b_16L箇道理耶至至禱禱得兒好好長去否
010_0420_b_17L每入戀中雲山千里重逢無期臨書
010_0420_b_18L悵黯不知所言乞惟保鍊以安晩節

010_0420_b_19L

010_0420_b_20L

010_0420_b_21L
龍珠之會銀石之餞儘是三生奇緣
010_0420_b_22L每每追憶曷勝悵黯爲問令軆與行
010_0420_b_23L道人蓮道人均獲佳祥而能靜觀蓮花
010_0420_b_24L世界深入念佛法門否塵世如幻

010_0420_c_01L거품 같은 삶은 꿈과 같으니 내 마음을 다시 그사이에 머물러 둘 필요가 있을까요? 비야毘耶 노인94)이 대가大家들과 단란하게 앉아서 함께 무생화無生話를 말한 것은 천고의 귀감이니 이것은 어찌 당신께서 오늘날 힘쓸 바가 아니겠습니까? 책을 베껴 쓰라고 한 일은 봄에 일이 많아 아직 이루지 못했으니 나중에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 길이 천 리나 떨어져 있어 한 번 만나서 웃을 길이 없습니다. 편지를 쓰려니 목이 멥니다.
성 총섭에게 줌(與性棇攝)
여관에서 한 번 뵈었는데 정성껏 진심으로 대해 주시니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있는 사이 같았습니다. 그러나 못난 제가 어떻게 그런 대접을 받았는지 부끄럽습니다. 돌아가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요즘 정무를 보시는 생활이 어떠하신지요? 몹시 그리워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건강이 조금 괜찮아졌지만 엄자산崦嵫山95)의 저문 빛이라 남은 날이 얼마겠습니까? 기쁨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이제 비로소 동화사 가까이 살게 되어 학도들을 가르칩니다. 오로지 마음을 편히 하는 것을 말년의 방편으로 삼을 뿐입니다. 어찌 일소一笑에 부치겠습니까?
청 승통에게 답함(答淸僧統) 두 통
한 번 동화사에 들어온 뒤로 용산龍山과는 점점 멀어져서 때로 당신께서 머무시는 곳을 가리키며 말을 하였습니다. 뜻밖에 편지를 받고는 비로소 추위에 부모님을 모시는 여가에 몸의 상황이 더 좋아지셨다는 것을 알았으니 기쁘고 마음이 놓입니다. 저는 동쪽으로 잠깐 갔다 서쪽으로 잠깐 갔다가 하여 앉은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이 어지러우니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지나다 들르겠다고 하신 말씀은 깊이 돌보아 주심을 입은 것입니다. 속히 석장을 짚고 저에게 들르시어 식양息壤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게 하소서. 바라고 바랍니다. 나머지는 조만간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이렇게 쓰고 이만 줄입니다.

010_0420_c_01L生若夢不必將吾心想復留於其間也
010_0420_c_02L毘耶老人大家團欒坐共說無生話者
010_0420_c_03L是爲千古規模此豈非尊公今日所當
010_0420_c_04L勉者耶所敎寫册事春來多事姑未
010_0420_c_05L當待後便送呈矣道隔千里無由
010_0420_c_06L一笑臨書於邑

010_0420_c_07L

010_0420_c_08L與性捴攝

010_0420_c_09L
以逆旅中一見而慇勤待以腹心恰如
010_0420_c_10L舊相識者然愧此無似何以得此
010_0420_c_11L來銘佩不審邇來任候何似瞻慕之
010_0420_c_12L無以爲心沾親候雖得少可而崦
010_0420_c_13L嵫暮色餘日幾何喜懼交集今始近
010_0420_c_14L棲桐華揮遣學徒一以安心爲末後
010_0420_c_15L方便耳何當一笑

010_0420_c_16L

010_0420_c_17L答淸僧統

010_0420_c_18L
一入桐藪龍山漸遠時指仙庄以爲
010_0420_c_19L言匪意情字入手披審始寒侍外躰況
010_0420_c_20L增珍區區欣瀉拙乍東乍西坐席不
010_0420_c_21L憒憒何道歷枉之示深荷眷及幸
010_0420_c_22L速扶錫過我毋使息壤有慚色也
010_0420_c_23L餘在早晏面陳姑此不宣

010_0421_a_01L
또(又)
팔공산에 낙엽이 지니 한번 모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삼가 당신께서는 때에 맞게 스스로 편안하시기를 바라며 간절한 저의 마음은 자나 깨나 맺힌 듯합니다. 저는 새로운 거처가 자못 안온하고 법중法衆도 모여서 생각건대 이번 겨울은 잘 보낼 것 같습니다만, 흉년이 이와 같으니 앞으로의 생활이 또한 걱정입니다. 저번에 보내주신 향이香茸는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현賢 아이가 이제 돌아가 뵈올 것이니 생각건대 서로 만나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겨울에는 눈이 오기 쉬우니 오래 머물게 하지 말고 속히 보내십시오. 나머지는 현이가 가면 반드시 하나하나 말할 것입니다. 우선 이렇게 쓰고 이만 줄입니다.
각 승통에게 줌(與覺僧統)
헤어지고 어느새 이번 겨울도 반이 지났는데 부들방석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그대를 찾아가는 꿈을 꾸었네. 정성이 가득한 편지 한 통이 멀리서 와서 마음을 위로하니 비로소 정이 깊은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네. 하물며 그대의 상황이 저절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욱 기쁘고 마음이 놓이네. 나는 우선 병이 없고 법려法侶들도 많이 모여 문지방이 적막하지 않으니 다행일 뿐이네. 농사가 흉년이 들어 그대의 처치處置도 좋다고 생각되니 이것을 위안으로 삼을 뿐이네. 나머지는 이만 줄이네.
용암 대사께 드림(與龍巖大師)
열悅 스님께서 지난번에 방문하셨을 때 마침 산 밖으로 나가서 맞이할 수 없어서 감격과 부끄러움이 교차했습니다. 이후에 연이어 몹시 바빠 감사할 겨를이 없어서 더욱 한탄하였습니다. 새봄에 스님의 몸은 건강하신지요? 삼가 간절히 그리워합니다. 저는 그럭저럭 예전의 상황과 같으니 그 다행을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지금 새해를 맞이하여 달려가 문안해야 하지만 강의에 매인 몸이라 우선 그 정성을 이루지 못하니

010_0421_a_01L

010_0421_a_02L
公山落木一倍瞻思伏惟令履以時
010_0421_a_03L自安區區之私窹寐如結拙新棲頗
010_0421_a_04L法衆又集可占好過今冬而但歲
010_0421_a_05L荒如此前頭計活亦自關心耳曩日
010_0421_a_06L香茸之惠不勝珍謝賢兒方此歸
010_0421_a_07L想有剖梨之喜冬日易雪毋使久留
010_0421_a_08L從速起送餘賢去必一一言之姑此不
010_0421_a_09L

010_0421_a_10L

010_0421_a_11L與覺僧統

010_0421_a_12L
分手忽焉今冬又半蒲團有夢不覺渡
010_0421_a_13L慇懃一幅遠來慰意始覺繾緖不
010_0421_a_14L我獨也矧審爲況自佳尤用欣釋
010_0421_a_15L姑無疾病而法侶大集門闌頗不寂寞
010_0421_a_16L非不幸耳年事値歉君之處置亦以
010_0421_a_17L自好以是爲慰耳餘不宣

010_0421_a_18L

010_0421_a_19L與龍巖大師

010_0421_a_20L
悅師頃有委訪而適出山外不能迎拜
010_0421_a_21L感怍交集伊後連次忙甚不及奉謝
010_0421_a_22L尤用恨歎未審新春師主氣候康健
010_0421_a_23L伏慕區區沾粗遣宿狀伏幸何喩
010_0421_a_24L當歲首宜乎走省而講役在身姑未

010_0421_b_01L한탄하는 것을 어찌 그치겠습니까? 이 안부 편지로 대신합니다. 삼가 법수法壽가 끝이 없어 저희의 기대에 부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머지는 송구스러워 이만 줄입니다.
동화사 승통에게 답함(答桐華寺僧統)
뜻밖에 편지를 받고는 심한 가뭄에 정무를 보시는 생활이 평탄하고 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위안 되고 향하는 마음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이 무더위에 고질병이 다시 도져 멍하니 앉아만 있습니다. 불러 주시니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깊이 가르침에 따르고자 하나 이 산에서 탁발한 지가 여섯 달이 못 되어 절에 피해를 많이 끼치니 결단코 버리고 떠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많은 학도學徒들이 모두 도가 낮은 사람들로 길이 멀고 험하다고 해서 한 사람도 쫓으려는 이가 없습니다. 제가 어찌 차마 홀로 가겠습니까? 일이 되어가는 상황이 그러하니 명령을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옛정을 생각하니 도리어 부끄러움만 더합니다.
이 대아에게 답함(答李大雅)
댁을 한 번 방문한 뒤로 지금 삼 년이 되었습니다. 고상한 모습을 우러러 사모하여 어느 날인들 잊었겠습니까? 뜻밖에 우연히 아드님(玉胤)을 대하고 편지를 받아보고는 날마다 부모님을 모시는 존체의 안부가 더욱 중한 줄 알았으니 무엇이 이처럼 기쁘고 근심이 씻긴 듯하겠습니까? 저는 명아주와 비름으로 장을 채우느라 섭생을 잘못하여 병이 가슴과 배에 들어와 없애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여러 해 동안 낫질 않으니 온갖 생각이 꿈같습니다. 이제 동학들을 보내고 외딴곳을 찾아서 조리하고자 하지만 병의 뿌리가 깊어 뽑기가 어렵습니다. 열흘 누웠다 하루만 일어나 편안한 날이 늘 적어 정말 괴롭습니다. 부탁하신 일은 힘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병세가 이러하니 따르고 싶지만 손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또 인정이 아니니 어떻게 처리하면 좋습니까? 이에 우러러 여쭈오니 자세히 헤아려주십시오. 병을 무릅쓰고 되는대로 쓰느라 예를 갖추지 못합니다.

010_0421_b_01L遂誠伏恨曷已謹此替候伏祝法壽
010_0421_b_02L無疆以副下情餘皇恐不偹

010_0421_b_03L

010_0421_b_04L答桐華寺僧統

010_0421_b_05L
料外承墨靠審亢旱政履平迪及閤
010_0421_b_06L寺渾安慰傃不任沾當此酷暑宿疾
010_0421_b_07L更作悶悶第坐承寵招不勝感激
010_0421_b_08L欲赴敎而托鉢茲山未逾六月多貽
010_0421_b_09L寺弊決難舍去加以多少學徒皆下
010_0421_b_10L道人以道途隔險無一人願從吾何
010_0421_b_11L忍獨去事勢如許坐負盛命揆諸舊
010_0421_b_12L徒增慚靦

010_0421_b_13L

010_0421_b_14L答李大雅

010_0421_b_15L
仙庄一奉于今三載瞻戀雅範何日
010_0421_b_16L忘之即茲謂外偶對玉胤仍拜惠書
010_0421_b_17L披審即日省下軆履增重何等喜浣
010_0421_b_18L沾藜莧之膓不善攝生病入心腹
010_0421_b_19L去不得數年沈綿萬慮如夢今則謝
010_0421_b_20L遣學儕占討僻陬自欲將理而根深難
010_0421_b_21L十臥一起寧日常少苦哉苦哉
010_0421_b_22L托非不辛勤病勢如許欲從不可麾之
010_0421_b_23L則又非人情何以處之爲當茲以仰禀
010_0421_b_24L望須細加酌量力疾胡謝不具

010_0421_c_01L
조 대아에게 답함(答趙大雅)
발우 하나로 쓸쓸히 한 해를 보내고 돌아와 비로소 팔공산이 나에게 분수에 맞는 줄 알았습니다. 보내신 진중한 편지를 이즈음 받아보았습니다. 뜻밖에 보잘것없는 저를 염두에 두고 계시다 하시니 지극히 감동하여 그 말을 읊조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새해를 맞이하여 체후가 널리 복을 누리시는 줄 알았으니 저는 기뻐서 아랫사람으로서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우연히 서울에 들렀다가 그릇 추대를 받아 불사佛事를 맡았고 임금님의 포상까지 입었습니다. 분수를 헤아려 조심했으나 아래로 실추시킴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이 산에 들어오셨다 하시니 계신 곳이 아주 가까워 조만간 방문하려고 합니다. 과연 문지기가 화를 내지 않을런지요? 나머지는 마침 손님이 방문하여 간략하게 답장을 씁니다.
김 생에게 답함(答金生)
편지를 받아보니 유가와 불가를 널리 섭렵해 억양抑揚이 대단하여 바로 일단문장一段文章이었습니다. 가령 유하혜柳下惠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반드시 한 수는 양보할 것입니다.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제가 이러한 좋은 법을 얻었으니 지극히 다행입니다. 선유先儒들은 “도道는 육경六經에 있으니 다른 데서 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지금 임금님의 교화가 널리 흡족하여 미천한 자도 선발하여 등용하니 진실로 천년에 한 번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은 운명의 길에 어긋나는 것이 많고 상란喪亂이 닥쳐 스스로 살길이 없어서 산에 들어왔습니다.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두보가 “본래 가섭에게 의지했으니, 어찌 악전에게 의탁했겠느냐?”96)라고 한 것은 이놈의 지금 마음을 잘 표현했습니다. 이제 머리털은 듬성듬성하여 비록 뭐라고 하고 싶으나 슬프게도 미치지 못합니다. 오직 가사와 물병과 발우를 대하고 앉아서 법륜을 굴리면서 산기슭에서 임금님의 장수를 축원할 뿐이고 미천한 몸을 초목에 맡기면 충분합니다.

010_0421_c_01L答趙大雅

010_0421_c_02L
一鉢蕭條閱歲歸來始覺公山於我有
010_0421_c_03L敎墨珍重際茲下及不意土木形
010_0421_c_04L骸辱在盛念上至此感誦之極不知
010_0421_c_05L所喩矧伏審履端棣候均饗珍嘏
010_0421_c_06L區驩慶不任下情沾偶到京華謬膺
010_0421_c_07L推薦句當佛事至蒙天褒揆分踧踖
010_0421_c_08L不勝隕越于下旣入茲山門墻孔邇
010_0421_c_09L早晏欲扣月下果不遭閽者之怒耶
010_0421_c_10L適被客撓草草裁謝

010_0421_c_11L

010_0421_c_12L答金生時範

010_0421_c_13L
承叙及出入儒釋抑揚多端直是一
010_0421_c_14L段文章 使柳下復生必將讓一頭矣
010_0421_c_15L不緣半面獲此良規至幸至幸先儒
010_0421_c_16L有言道在六經不可他求況今聖化
010_0421_c_17L溥冾明揚側陋誠千載一時而如沾
010_0421_c_18L命途多舛喪亂中來無以自資遂歸
010_0421_c_19L林下拚了一生老杜所謂本自依迦葉
010_0421_c_20L何曾藉偓佺者得此漢今日心事也
010_0421_c_21L則髮種種矣雖欲云云嗚呼莫逮
010_0421_c_22L當袈裟瓶鉢坐轉法輪祝聖壽於岡陵
010_0421_c_23L付微軀於草木足矣

010_0422_a_01L
최 상사의 편지에 답함(答崔上舍書)
시와 서문을 받고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살펴보니 글의 뜻이 몹시 지극하고 가르치고 타이르는 것이 자못 부지런하였습니다. 궁벽한 산에 사는 천한 저는 세상에 버려졌습니다.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제가 이렇게 성대한 선물을 얻었으니 참으로 행운입니다. 상자에 보관하여 길이 우호로 삼겠습니다. 다만 칭찬이 지나쳐 도림道林97)에게 비유하셨는데 천박하고 졸렬한 제가 받들 수 있는 분이 아니니 당세에 어찌 다시 이런 스님이 있겠습니까? 산이나 들에 사는 이들은 본래 사율詞律에 밝지 못하고 또 이런 일에 공부도 없습니다. 거듭 시구를 요구하시는 것을 저버릴까 감히 이렇게 운을 맞춥니다. 다만 당신의 감상을 더럽히기에 족하니 장독 덮개로 쓰인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요즘 팔에 종기 때문에 글자를 쓰기 어려워 답장 편지가 이렇게 늦어졌으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병든 몸이라 더위가 두려워 직접 가지 못하고 아사리阿闍梨를98) 대신 보내니 두려워 죄를 기다립니다. 이만 줄입니다.
정 사미에게 줌(與定沙彌)
용연사에 있을 때 나중에 한번 만나자고 했는데 끝내 계획이 어긋나 이렇게 멀리 떨어져 묵묵히 남산을 대하고 얼굴이 애틋할 즈음에 문안 편지를 받았네. 올해 상황이 저절로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참으로 다행일세. 다만 그대의 재주와 그릇이 모두 넉넉하여 진보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하루아침에 내려가 종이 만드는 일꾼이 되어 공손히 일을 하고 있으니 남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기네. 의지할 바인 비록 젊은 시절(東隅)을 놓쳤지만 노년(桑楡)도 늦은 것이 아니네.99) 하물며 물건은 반드시 변화를 겪어야 재질이 강해지는 것인데 사람도 반드시 어려움을 겪어야 지혜가 밝아지네. 그대가 이에 따라 분발하여 이후에 노력한다면 오늘의 근골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것도 동량棟梁이 비바람과 서리와 이슬을 겪는 것일세. 천만번 기억해 주게나.

010_0422_a_01L答崔上舍書

010_0422_a_02L
承惠詩并序且驚且喜莫知所從得
010_0422_a_03L伏窺詞旨甚摯誨諭頗勤自惟窮山賤
010_0422_a_04L世所棄矣不緣半面獲此盛貺
010_0422_a_05L幸至幸當藏之巾衍永以爲好也
010_0422_a_06L揄揚太過至比道林則非謭劣所可承
010_0422_a_07L當世豈復有此僧乎山野本不曉詞律
010_0422_a_08L又於此箇路上無工夫重孤盛索敢此
010_0422_a_09L扳和適足溷雅賞耳覆瓿爲幸比患臂
010_0422_a_10L艱於書字所以稽謝至此汗悚不
010_0422_a_11L病骨㤼暑不能躬造替以闍梨
010_0422_a_12L懼俟罪不宣

010_0422_a_13L

010_0422_a_14L與定沙彌

010_0422_a_15L
在龍淵日謂當一見畢竟失計有此
010_0422_a_16L遠離默對南山眉宇依依際收存札
010_0422_a_17L以知年來爲况自好甚甚幸幸但汝
010_0422_a_18L才器俱優將有步趣而今一朝降爲
010_0422_a_19L紙丁歛手受役人所共惜所賴雖失
010_0422_a_20L東隅桑楡非晩何况物必受變而材强
010_0422_a_21L人必涉難而智明汝能因此激憤向後
010_0422_a_22L努力則今日之所以勞筋骨苦心慮者
010_0422_a_23L亦棟樑之風雨霜露耳千萬記取

010_0422_b_01L
구연당에게 줌(與九淵堂)
소식이 막힌 지 문득 육칠 년이 되었습니다. 아득히 바라보는 눈길은 늘 방장산의 안개와 노을이 흐릿한 곳에 있었습니다. 계체戒體를 보중하며 교화하는 일도 잘 되는지요? 저의 위로를 어찌 예삿일에 비교하겠습니까? 아우는 본디 세속에 적합한 운치가 없어서 한갓 팔공산의 평범한 인물일 뿐이니 어찌 족히 말하겠습니까? 생각건대 지리산의 여러 강주講主들은 모두 늙었으니 크게 외치며 강단에 올라 후배들을 지도할 이는 형을 버리고 누가 쓸고 닦겠습니까? 스스로 힘써서 아우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경암鏡庵 형은 어디에 계십니까? 따르는 법려法侶 역시 얼마쯤 됩니까? 매번 걱정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설월당에게 줌(與雪月堂)
여름을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가을이 되니 더욱 생각이 납니다. 삼가 이때 법후가 맑고 아름다운지요? 간절히 우러러 위문하며 비천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저번에 환성사環城寺에서 머물다가 자리가 따뜻해지지 않았는데 또 동화사로 옮겼습니다. 모든 일이 어지러운데 다른 것이야 어찌 말씀드리겠습니까? 다만 한 해 농사가 흉년을 만났는데 바닷가 마을은 더욱 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연 이러한 걱정이 선념禪念을 동요시키지나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벗 기玘는 경학에 힘을 쏟아 큰 진보가 있는데 일찍 하지 못한 것을 한탄합니다. 바라건대 스님은 돌아오라는 생각(倚門之思)100)으로 혹 그의 뜻을 뺏지는 마시고 마음껏 유학遊學하게 하여서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자리(玉成之地)101)에 이르게 함이 어떻습니까? 매번 한 번 얼굴을 뵙는 것이 소원이지만 거리가 멀어서 쉽게 기약할 수 없습니다. 편지에 임하여 더욱 우울함을 느낍니다. 봄에 해산물을 보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고마움이 끝이 없습니다.

010_0422_b_01L與九淵堂

010_0422_b_02L
音塵阻隔居然六七年所悠悠望眼
010_0422_b_03L長在方丈烟霞縹緲之間矣敢問戒軆
010_0422_b_04L葆重化噵如宜區區之慰豈比常品
010_0422_b_05L弟本無適俗之韻不過爲公山一尋常
010_0422_b_06L人物耳何足說哉計今智異山中諸講
010_0422_b_07L皆老矣其大呼登壇指揮後生
010_0422_b_08L兄而誰刷整自勉毋孤弟區區之望也
010_0422_b_09L鏡庵兄今安在法侶之追隨亦幾許
010_0422_b_10L在耿耿中餘不宣

010_0422_b_11L

010_0422_b_12L與雪月堂

010_0422_b_13L
經夏無聞入秋尤想伏惟辰下法候淸
010_0422_b_14L區區慰仰不任鄙悰此向棲環城
010_0422_b_15L席未及暖又移桐藪凡百憒憒他
010_0422_b_16L足奉喩第年事値歉想海邑尤甚
010_0422_b_17L未知此等憂患其亦動禪念不得耶
010_0422_b_18L友肆力經學大有步趣旋恨其不早
010_0422_b_19L望師主勿以倚門之思而或奪渠志
010_0422_b_20L使得恣意游學以至玉成之地爲如何
010_0422_b_21L每願一者面展而雲樹蒼茫不可
010_0422_b_22L易期臨書尤覺邑邑春間海味之惠
010_0422_b_23L迨用感賀珍謝無已

010_0422_c_01L
은사님의 소상에 사람들에게 염불로 도울 것을 청함(恩師小祥請人念助)
죄인 의첨 등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아룁니다. 의첨 등은 죄역罪逆이 매우 깊은데도 스스로 죽어 없어지지도 못하고 화가 돌아가신 스승님에게 미쳤습니다. 오장五臟이 무너지고 울부짖고 머리를 조아려도 미칠 수가 없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첫 기제가 곧 닥쳤으니 바로 이번 달 28일입니다. 비와 이슬이 내려 축축해졌으니(雨露旣濡)102) 감정이 살아계신 듯 절실합니다. 한갓 슬퍼하기만 하면 무익하니 천도해야 마땅합니다. 이에 깨끗한 곡식을 갖추어 현복玄福을 구하고자 하니 삼가 제자들은(小子) 박하고 미미한 정성이라도 행합니다. 성인을 돌리는 데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옛사람이 “뭇사람이 입김을 불어대면 산을 움직이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衆喣漂山, 十斫顚木)”103)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일은 만약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루어질 수 있으니 감히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며 우러러 자문慈門에 고합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스님들께서는 사람을 건진다는 마음으로 염불법문을 행하고 당일이 되기를 기다려 밝은 등불을 달고 깨끗한 대중을 불러 모아 함께 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저녁부터 새벽까지 그 소리를 천만번 왼다면 혹 그 부처님을 감동시켜 우리 스승님을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스님들이 실로 불보不報의 땅에 덕을 베푸는 것이니 그것은 소자에 있어서는 진실로 살아서는 목숨을 바치고 죽어서는 띠풀을 묶는 은혜를 이기지 못할 뿐입니다. 슬픔과 병이 몸에 있어서 직접 청할 길이 없으니 더욱 목이 멥니다. 경황이 없어 두서가 없습니다. 삼가 소䟽를 올립니다.
성상聖上 21년 정사丁巳 유화流火 윤월일閏月日에 모계문인慕溪門人 희문喜聞이 삼가 글씨를 썼다.
인악 화상 행장仁嶽和上行狀
화상의 휘諱는 의첨義沾이고 자字는 자의子宜이고 호號는 인악仁嶽이다. 고려의

010_0422_c_01L恩師小祥請人念助

010_0422_c_02L
罪人沾等稽顙再拜言沾等罪逆深重
010_0422_c_03L不自死滅禍延先師五內分崩叫叩
010_0422_c_04L莫逮轉眄之頃初朞已迫乃今月二
010_0422_c_05L十八日也雨露旣濡感切如存徒哀
010_0422_c_06L無益惟薦是宜茲辦淨粒欲求玄福
010_0422_c_07L而伏念小子行薄誠微回聖無術
010_0422_c_08L人有言衆泃漂山十斫顚木今日之
010_0422_c_09L倘蒙群援庶拯斯溺敢此泣血
010_0422_c_10L告慈門伏願師主以濟人心行用念
010_0422_c_11L佛法門待到本日獻供明燈召聚淨
010_0422_c_12L共誦彌陁自昏及晨千萬其聲
010_0422_c_13L或可感彼佛而導我師矣此則師主
010_0422_c_14L實施德於不報之地而其在小子良不
010_0422_c_15L勝隕結之私耳哀疚在躬末由面請
010_0422_c_16L只增哽塞荒迷不次謹䟽

010_0422_c_17L
仁嶽集卷之三

010_0422_c_18L
010_0422_c_19L
聖上二十一年丁巳流火閏月日慕溪門人
010_0422_c_20L喜聞謹書

010_0422_c_21L

010_0422_c_22L1)仁嶽和上行狀

010_0422_c_23L
和上諱義沾字子宜號仁嶽高麗開
010_0422_c_24L「仁」右側行間底本有「附錄」編者除之

010_0423_a_01L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 대광사공大匡司空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 이능일李能一 공의 23세손이다. 영조英祖 병인丙寅년 9월 9일에 달주達州 인흥촌仁興村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에 향학鄕學에 들어가 『소학小學』을 읽었는데 그 뜻을 깊이 이해하여 한번 들으면 백 가지 행실에 통하였고 그 책을 세 번 읽자 암송하여 재주와 명성이 인근 마을에 펴졌다. 재주뿐만이 아니라 사람됨이 더욱 기이하여 마을 사람들이 다투어 그를 도와주었고 이루지 못할까 염려하였다. 열다섯에 『시경』과 『서경』과 『주역』을 다 읽었고 글을 잘 지어 당시 명성이 선비들에게 펴졌다. 하늘이 내린 인재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열여덟에 마을의 여러 자제들과 용연사龍淵寺에 나아가 학업을 익힐 때 승려들이 위의威儀가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갑자기 감동이 있었다. 가선헌嘉善軒 공에게 의지하여 출가하고 벽봉碧峯 화상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화상이 그를 깊이 그릇으로 여겨 『금강경』과 『능엄경』으로 가르치고 하여금 서암西嶽ㆍ추파秋波ㆍ농암聾巖 등 여러 유명한 스님을 차례로 참례하게 하여 더욱 그 학문을 밝히게 하였다. 또 무자戊子년 봄에 화상을 다시 만나 가사와 바리때(信具)를 받고서 강당에 올랐으니 그때가 나이 스물세 살이었다. 그 계파는 임제臨濟 선사의 34세손이고 서산西山 대사의 8세손이며 상봉霜峯 선사의 5세손이다. 하루는 “나는 설파雪坡 화상이 우리나라 화엄의 종주라고 들었으나 아직 나아가 참례하지 못했다. 이는 내가 유감으로 여기는 바이다.”라고 하셨다. 마침내 폐백을 가지고 가서 영원정사靈源精舍에서 배알하였다. 설파 화상이 갑자기 손을 잡고 기뻐하시면서 “나 역시 스님과 함께하기를 오래전부터 바랐네. 어찌 그리 늦었는가?”라고 하셨다. 이에 『잡화경雜華經』104)을 강의하자 여덟 달 만에 끝을 보았고 이어서 『선문염송禪門拈頌』으로 마음의 찌꺼기를 녹여내었다. 얼마 뒤에 선제禪弟가 되길 원하자 화상이 “좋다.”라고 하고 또 “스님은 진중하여 오늘날에는 동량棟梁이고 후세에는 모범이 될 것이니 우리의 도道가 얼마나 다행입니까?”라고 하였다. 돌아가 비슬산ㆍ팔공산ㆍ학산ㆍ용산ㆍ불령산 등 여러 산에서 교화를 행하셨으니 번거로워 다 기록할 수 없다.

010_0423_a_01L國壁上功臣大匡司空星山府院君李公
010_0423_a_02L諱能一之二十三世孫也英廟丙寅九
010_0423_a_03L月九日生於達州仁興村八歲入鄕學
010_0423_a_04L讀小學深奧其旨一聞則透百行
010_0423_a_05L書三讀便誦才聞及於鄰邑非直才也
010_0423_a_06L人也尤奇鄕人爭資之惟恐不成
010_0423_a_07L十五讀盡詩書易善屬文爲時名下士
010_0423_a_08L非天才豈能如是乎十八歲與鄕
010_0423_a_09L谷諸子就於龍淵寺肄業見僧之濟濟
010_0423_a_10L心忽有感依嘉善軒公落紺受戒具于
010_0423_a_11L碧峯和上和上深器之敎之以金剛楞
010_0423_a_12L嚴等經而使之轉叅西嶽秋波聾巖等
010_0423_a_13L諸名師益明其學又以戊子春再會
010_0423_a_14L於和上受信具而登堂時年二十三
010_0423_a_15L其派系則於臨濟三十四世於西山八
010_0423_a_16L霜峯之五世孫也一日曰吾聞雪
010_0423_a_17L坡和上東國華嚴宗也而未及進叅
010_0423_a_18L吾所憾遂勢贄而往拜於靈源精舍
010_0423_a_19L上輙手而悅曰吾亦欲與師久矣何晩
010_0423_a_20L仍講雜華八閱月而見終繼之而禪
010_0423_a_21L消融其査滓旣而願爲禪弟和上
010_0423_a_22L曰諾且曰惟師珍重當今之棟樑
010_0423_a_23L世之規矩吾道其幸哉歸而行化於瑟
010_0423_a_24L山公山鶴山龍山佛靈等諸山而煩不

010_0423_b_01L스님은 부여받은 성품이 넉넉하고 거동은 항상 느긋하셨으며 조금도 걱정하는 용모가 없으셨다. 그분을 뵙는 이는 마음으로 기뻐하여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일상의 독실함에 이르러서는 남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셨으니 비록 옛 어진 스님들에 비교한다면 그럴만한 이가 누구겠는가? 밤에는 참선하여 침소에 드는 것은 오직 두 시간뿐이었다. 낮에는 강하였는데 그 사람의 높낮이를 따라 자상하게 일러주어 쉽게 이해하여 통달하지 못하는 폐단이 없게 하였다. 심지어 세속의 유학자들이 복희씨의 『주역』을 들고 배우러 오는 이가 많았는데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으셨다. 이 누가 이렇게 하게 한 것인가? 지금 부처님의 도가 점점 미약해져 세상에서 불교를 배우는 이가 거의 없는데도 여러 지방에서 경전의 뜻을 연마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의하지 않았는데도 함께 모인 자들이 항상 백 명이 넘어서 영산靈山의 옛 자취와 비슷하였다. 애석하구나! 때를 만나지 못함이여. 만약 전성기에 태어나셨다면 교화한 대중이 어찌 오늘날의 숫자에 그치겠는가?
경술庚戌년에 조정에서 새로 용주사龍珠寺를 짓고 불상을 만들라고 명하였다. 임금님이 “당세의 이름난 승려를 뽑아서 그 일을 주관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셨다. 이때 스님이 그 증명 법사가 되어 불복장원문佛腹藏願文을 지었다. 주상께서 그 글을 가져다 보시고 칭찬하기를 그치지 않으면서 “어찌 승려이면서 글에 능숙한 이가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느냐?”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은지恩旨를 내리셨다. 이것은 송운松雲105)과 벽암碧庵 이후에 없었던 일이니, 귀중함이 또한 어떠하겠는가? 그 뒤에 임금님이 얼굴을 대하는 꿈을 자주 꾸었으니자세한 것은 시집에 보인다 어찌 성은에 깊이 감동하여 어느 때이고 감히 잊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성상聖上 병진丙辰년 5월 15일에 돌아가셨으니 세수(報年)는 51세이고 법랍法臘은 34세였다. 아! 이러한 덕이 있으면서도 이처럼 장수하시지 못하셨구나. 어찌 하늘이 우리 도를 떨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서로 “인악 스님이 돌아가셨으니 산중의 일은 끝났다.”라고 한다. 심한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그 대략이다.

010_0423_b_01L能盡錄師賦性混厚動靜常見舒泰
010_0423_b_02L少無戚戚之容見之者莫不心悅而口
010_0423_b_03L至於日用之篤實誨人之不倦
010_0423_b_04L比於古賢師可也何者夜而叅禪
010_0423_b_05L寢只一更而已晝則說講隨其高下
010_0423_b_06L諄諄告之令易入而無未達之弊甚之
010_0423_b_07L於俗儒之以羲易來學者多而亦無厭
010_0423_b_08L色也是孰使之然歟方今佛道寢微
010_0423_b_09L世幾無學佛者而諸路之欲磨鍊經旨
010_0423_b_10L不謀同聚者常百餘人彷彿然靈山故
010_0423_b_11L惜乎其時之不遭也若使生於全盛
010_0423_b_12L之時化衆豈止今日而已哉歲庚戌自
010_0423_b_13L朝家新置龍珠寺命造佛像上曰擇
010_0423_b_14L選當世之名僧以主厥事可矣時師爲
010_0423_b_15L其證師作佛腹藏願文主上取而覽
010_0423_b_16L稱善不已曰豈意釋而有能文者乎
010_0423_b_17L乃以恩旨錫之此則松雲碧庵以後
010_0423_b_18L未有之事貴重當復何如其後夢對天
010_0423_b_19L顏數矣詳見
詩集
豈深感聖恩無時敢忘而
010_0423_b_20L然歟沒於聖上丙辰午月旬五日報年
010_0423_b_21L五十一法臘三十四嗚呼有如是之
010_0423_b_22L而如是其不壽也豈天欲使吾道不
010_0423_b_23L振耶行路相謂曰仁嶽師逝山中已
010_0423_b_24L夫甚者至涕泣不能言此其大略

010_0423_c_01L만약 돌아가실 때의 신령스러운 상서와 기이한 자취라면 다 적을 수 없다.
제자 성안聖岸이 삼가 짓는다.

010_0423_c_01L至若寄歸之靈瑞異跡不欲盡述

010_0423_c_02L
弟子聖岸謹撰
  1. 89)졸저(覆瓿) : 부부覆瓿는 장독 뚜껑을 덮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이다.
  2. 90)귀인과 이별하고 : 정계旌棨는 관원官員이 출행出行할 때에 의장儀仗으로 사용하는 기旗와 나무로 만든 창인데, 귀인貴人이 길을 떠나는 뜻으로 쓰인다.
  3. 91)홍교洪喬 : 진晉 나라 은홍교殷洪喬가 예장 태수豫章太守가 되었을 때 남의 편지 100여 통을 부탁받아 가지고 가다가, 도중에서 모두 물에 띄워 버리고 말하기를, “은홍교가 편지 전하는 우인郵人이 되지 않겠다.” 하여, ‘홍교척수洪喬擲水’란 문자가 전한다.
  4. 92)식청拭靑 : 식청拭靑은 푸른 눈을 비빈다는 뜻이다. 진晉나라 완적阮籍이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청안靑眼을 뜨고 미운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을 떴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籍傳』
  5. 93) 백열지사栢悅之私 : 백열栢悅은 잣나무의 기쁨이란 뜻으로 친구의 행운을 기뻐함을 비유한다. 육기陸機의 「탄서부歎逝賦」에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지초가 불에 타면 혜초가 탄식을 한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歎.)”라고 하였다.
  6. 94)비야毘耶 노인 ; 유마維摩(Vimalakīrti) 거사는 음역으로는 비마라힐毘摩羅詰ㆍ유마힐維摩詰이라고 하고 한역으로는 무구칭無垢稱ㆍ정명淨名이라고도 한다. 유마가 비사리성毘舍離城(Vaiaśālī)의 장자長者였기 때문에 유마를 비야毘耶 노인이라고도 한다. 비야는 비사리의 약칭이다.
  7. 95)엄자산崦嵫山 :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산으로 해가 지는 곳이라고 한다. 말년末年이나 노년老年을 비유한다.
  8. 96)본래 가섭에게~의탁했겠느냐 : 두보杜甫의 「추일기부영회봉기정감이빈객일백운秋日夔府詠懷奉寄鄭監李賓客一百韻」에 나오는 구절이다. 악전偓佺은 고대 전설상의 선인仙人의 이름이다.
  9. 97)도림道林 : 지둔支遁이다.
  10. 98)아사리阿闍梨 : 범어로는 ācārya이다. 아사리阿舍梨, 아사리阿闍梨, 아기리阿祇利, 아차리야阿遮利耶라고도 한다. 줄여서 사리闍梨라고 한다. 제자들을 가르쳐 행위가 단정하고 올바름에 맞게 하며 자신도 제자들의 모범이 될 수 있기에 도사導師라고 한다. 여기서는 스님이란 뜻으로 쓰였다.
  11. 99)젊은 시절(東隅)을~늦은 것이 아니네. : 이것은 ‘동우에서 잃었지만 상유에서 거둔다.(失之東隅, 收之桑楡)’에서 온 말이다. 동우東隅는 해가 뜨는 곳으로 인생의 초년을 뜻하고 상유桑楡는 해가 지는 곳으로 인생의 만년을 뜻한다.
  12. 100)의문지사倚門之思 : 대문에 기대어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란 뜻이다. 이 말은 왕손가王孫賈의 모친이 “네가 아침에 나가 늦게 돌아오면 나는 문에 기대어 바라보고, 네가 저녁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여문에 기대어 바라본다(女朝出而晩來, 則吾倚門而望, 女暮出而不還, 則吾倚閭而望)”고 한 데서 의문倚門 혹은 의려倚閭는 부모가 자식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이르게 되었다.
  13. 101)옥성지지玉成之地 : 옥성玉成은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부귀와 윤택은 나의 삶을 두텁게 하고자 함이요, 가난과 천함과 근심 걱정은 너희들을 옥처럼 아껴 완성시키려 함이다(富貴福澤, 將厚吾之生也. 貧賤憂戚, 庸玉女於成也)”라고 하여 후에 완성한다는 뜻이 되었다.
  14. 102)우로기유雨露旣濡 : 『예기』의 「제의祭義」편에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그것을 밟아보고 반드시 슬픈 마음이 생기니, 이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땅이 축축해지면 군자가 그것을 밟아보고 반드시 놀라고 두려운 마음이 생겨 마치 죽은 부모를 곧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5. 103)뭇사람이 입김을~나무 없다(衆喣漂山, 十斫顚木) : 중후표산衆喣漂山 : 『한서漢書』 「중산정왕류승전中山靖王劉勝傳」에 “뭇사람이 입김을 불어대면 산을 움직이고 모깃소리가 모이면 우렛소리를 이룬다.(衆喣漂山, 聚蟁成靁.)”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십작전목十斫顚木은 십작목무불절十斫木無不折에서 온 말이다.
  16. 104)잡화경雜華經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17. 105)송운松雲 :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이다.
  1. 1)「仁」右側行間底本有「附錄」編者除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