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경암집(鏡巖集) / 鏡巖集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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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집 발鏡巖集跋
신라와 고려 시대에 불교가 크게 흥성하고 명승이 배출되었으나, 혹은 빈말에 의탁하여 명리를 훔치고 혹은 이단의 학술을 끼고 보고 듣는 자를 현혹시켜 그 본래면목을 잃지 않은 자가 거의 드물었다. 본조本朝에 이르러 유학을 숭상하고 성인의 도를 높여 양종의 승과를 파하고 승니僧尼의 도첩을 혁파하였다. 이로부터 삭발하여 승복을 입는 자가 대부분 농상을 게을리하고 부역을 회피하여 한가히 노는 무뢰배들이었다. 눈과 귀는 불경의 한 구절도 알지 못하니 부처를 배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선비로서 세상에 불우한 자가 때때로 불문에 기탁하여 마음에 맹세하고 고행하며 힘써 내전을 연구하여 말이 윤리에 위배되지 않아 이로써 자성을 보고 이로써 대중을 교화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선비의 불행이요 불씨佛氏의 행운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말하기를, “불씨의 학문이 더욱 높을수록 (성인의 도가) 더욱 무너지고 더욱 굽힐수록 (성인의 도가) 더욱 드러난다.”고 한 것이다. 여와 선생이 일찍이 나에게 말하기를, “추파 스님의 시문은 소순蔬筍의 기미128)가 없고 충군애친의 의리에 대해 정성스러운 마음이 그치지 않으니,

010_0455_b_14L2)鏡巖集跋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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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麗之際竺敎大興名僧輩出而或托
010_0455_b_16L空言而盜竊名利或挾異術而眩耀觀
010_0455_b_17L不失其本來面目者幾希洎本朝崇儒
010_0455_b_18L尊道罷兩宗科革僧尼度牒自是薙髮
010_0455_b_19L被緇者率多惰農桑逃賦役無賴遊閒之
010_0455_b_20L耳目不識貝多一葉其可曰學佛云乎
010_0455_b_21L然而士有不遇於世者徃徃托迹於斯
010_0455_b_22L乃誓心苦行力治內典爲言不背於倫彜
010_0455_b_23L以是見性以是化衆此固士之不幸
010_0455_b_24L氏之幸也故君子曰佛氏之學愈尊而
010_0455_b_25L愈壞愈絀而愈顯餘窩先生嘗爲余言
010_0455_b_26L秋波師詩文無蔬筍氣於忠君愛親之義

010_0455_c_01L이는 참으로 불우한 선비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그 글을 읽을 때에 “교목의 한 잎이 기림에 날아 들어갔다.(喬木一葉。 飛入祇林。)”는 말에 이르자, 여러 번 읽으며 탄식하고 한번 만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였다. 지난번에 방장산의 팔관 스님이 그 선사의 유고를 지니고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나의 스승의 이름은 응윤이요 호는 경암으로, 추파의 뛰어난 제자이니 그대가 한마디 말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하니 나는 의리상 사양할 수 없었다.
삼가 살피건대, 스님의 속성은 민閔으로 영남의 거족이다. 9세에 경사를 통하고 또 시를 지을 수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집안의 어려움을 만나 방장산에 들어가 추파에게 배워 일찍 의발을 전수받았다. 늘그막에는 좌선하며 날마다 불경을 송독하고 염불하여 드디어 양종의 영수가 되었다. 세 번 무차대회를 열어 사부대중이 우러르고 예를 올리는 자가 만 명을 헤아리니, 비록 신라·고려의 명승이라도 이보다 나을 수는 없었다. 스님은 이미 이치를 돈오하였으니 문장 또한 이치에 닿았다. 「오효자전」과 「박열부전」은 유가의 문장과 매우 흡사하다. 또 그가 고향 사람에게 준 시편에서 곤궁하고 외로운 모습을 서술한 것은 추파가 척전陟顚에게 고해 준 말이요, 함양 자사子舍에게 준 편지에서 “재주를 지닌 선비는 은둔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은 추파가 김 동자金童子를 격려하는 뜻이었으니, 스님은 추파를 잘 배운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스님과 추파의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하여 이 문로門路를 열어 대중으로 하여금 마하반야가 이와 같고 다만 공허적멸에 그칠 뿐이 아님을 알게 하였으니, 두 스님이 불씨에 세운 공이 크다. 이 때문에 나는 두 스님의 처한 바를 가만히 슬퍼하고 거듭 불씨를 위하여 축하하는 것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이조 좌랑吏曹佐郞 겸兼 실록 기주관實錄記注官 완산完山 이재기李在璣가 발문을 쓰다.

010_0455_c_01L拳拳不已此眞不遇士也及余讀其書
010_0455_c_02L至于喬木一葉飛入祗林之語爲之三復
010_0455_c_03L歎咜恨未之一見也日方丈山人八關
010_0455_c_04L袖其先師遺藳謁余曰吾師名應允
010_0455_c_05L巖其號秋波高足弟子子其可無一言乎
010_0455_c_06L余義不敢辭謹按師俗姓閔亦嶠南鉅
010_0455_c_07L九歲通經史又能作韻語未幾遭家
010_0455_c_08L入方丈山中從秋波學早受衣鉢之
010_0455_c_09L暮䄵坐禪日誦經念佛遂爲兩宗領袖
010_0455_c_10L三設無遮大會四衆之瞻禮者以萬數
010_0455_c_11L雖羅麗名僧莫之過也師旣頓悟於理
010_0455_c_12L文亦理到傳吳孝子朴烈婦酷似儒家語
010_0455_c_13L且其贈鄕人詩叙其窮阨孤苦之狀者
010_0455_c_14L波所以告陟顚之語也貽咸陽子舍書曰
010_0455_c_15L負才之士不可隱遯者秋波所以勉金童
010_0455_c_16L子之義也師其善學秋波者也師與秋波
010_0455_c_17L心心相傳開此門路使大衆知摩訶般
010_0455_c_18L如是不如是祗是空虛寂滅而止耳
010_0455_c_19L二師有功於佛氏大矣故余竊悲二師所
010_0455_c_20L而重爲佛氏賀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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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吏曹佐郞兼實錄記注官
010_0455_c_22L山李在璣跋

010_0455_c_23L此影贊底本在卷頭(序文之後) 編者移置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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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跋文底本在卷頭(影贊之後) 編者移
010_0455_c_25L置於此
  1. 128)소순蔬筍의 기미 : 채식을 하는 사람이 지은 시를 말한다. 소식이 일찍이 도잠陶潛의 시를 평하여 “한 점 소순의 기미가 없다.”라고 일컬었다. 『宋人軼事彙編』.
  1. 1)此影贊。底本在卷頭(序文之後) 編者移置於此。
  2. 2)此跋文。底本在卷頭(影贊之後) 編者移置於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