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정토감주(淨土紺珠) / 自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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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自敘
기묘년(1879) 가을 내가 법당산法幢山에 주석할 때 밤에 산 위에 뜬 달은 흰빛을 토하고 향 연기는 푸른 산을 둘러 한 평상에 결가부좌하고 앉자 온갖 소리가 모두 고요하였다. 어떤 나그네가 문을 두드리고 표연히 들어와 읍하며 말하였다.
“우리 스님은 임제臨濟14)를 종주로 받들어 큰 법을 메고 있으며 예좌猊座15)에 앉아 불자(麈拂)를 쥔 채로 한 보광명지普光明智16)를 잡아 자유자재로 봉할棒喝하기를 40년 넘게 했는데, 문하의 뛰어난 제자 중에 작가作家17)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으니 필시 문풍이 높고 험준하여 잡고 오르려고 해도 계단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말세의 근기가 깨우칠 힘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파병杷柄18)이 여기에 그쳐서 그런 것입니까? 인연과 법이 아직 익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까? 고덕古德께서 ‘일방적으로 근본적인 가르침(宗敎)만 거양하면 법당 앞에 풀이 한 길이나 자라날 것이다’19)라고 하였으니 어찌 구름 속에서 내려와 쉽고 간단한 방편으로 근기에 맞게 이끌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말하였다.
“그 설을 듣고 싶소.”
나그네가 말하였다.
“‘시방十方세계에 계신 여래께서 중생을 불쌍히 여겨 어미가 자식을 생각하듯 하지만 만일 자식이 도망간다면 생각한들 어찌 하겠는가? 자식이 어미 생각하기를 어미가 자식을 생각할 때처럼 한다면 어미와 자식이 여러 생生을 지내더라도 서로 어긋나거나 멀리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일 중생이 마음에 부처님을 기억하고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현재에나 미래에나 반드시 부처님을 볼 것이며, 부처님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 방편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터득하여 마음이 열린다.’20)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대원통大圓通21)이 갠지스강의 모래알 같은 겁에서 시작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염불삼매念佛三昧란 무엇인가? 생각이 전일하고 상想이 고요함을 이른다. 생각이 전일하면 뜻이 하나가 되어 어지럽지 않으며, 상이 고요하면 기氣가 비고 신神이 밝아진다. 기가 비면 지혜는 그 비춤을 편안히 하며, 신이 밝아지면 그윽하여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두 가지는 바로 자연의 현부玄符22)로서 하나로 모아 쓰임을 지극히 한다. 수행을 빌려 신神을 응집하고 익힘을 쌓아 성품을 옮긴다.’23)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연사蓮社24)의 결집이 진단震丹25)에서 시작하였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011_0826_b_02L自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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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826_b_04L
歲己卯秋余方駐錫于法幢時夜山月
011_0826_b_05L吐白篆煙縈靑一榻趺坐萬籟俱寂
011_0826_b_06L有客叩扄飄然入揖曰吾師宗承臨濟
011_0826_b_07L荷擔大法據猊座秉麈拂拈一普光
011_0826_b_08L明智橫竪棒喝四十餘年法筵雄徒
011_0826_b_09L未聞有一人作家者必是門風高峻
011_0826_b_10L攀無級耶季世根機承當無力耶 [1]
011_0826_b_11L柄止此耶緣法未熟耶古德云一向
011_0826_b_12L擧揚宗敎法堂前草深一丈何不按下
011_0826_b_13L雲頭以簡易方便隨機接引乎余曰
011_0826_b_14L願聞其說客曰十方如來憐念衆生
011_0826_b_15L如母憶子若子逃逝雖憶何爲子若
011_0826_b_16L憶母如母憶時母子歷生不相違遠
011_0826_b_17L若衆生心憶佛念佛現前當來必定
011_0826_b_18L見佛去佛不遠不假方便自得心開
011_0826_b_19L此見大圓通之剏自沙劫也念佛三
011_0826_b_20L昧者何思專想寂之謂思專則志一
011_0826_b_21L不撓想寂則氣虛神朗氣虛則智恬其
011_0826_b_22L神朗則無幽不徹斯二乃是自然之
011_0826_b_23L玄符會一而致用假修以凝神積習
011_0826_b_24L以移性者是蓮社結集之始于震丹也

011_0826_c_01L뒤를 이은 역대 종사宗師로 염불을 외친 이가 십백十百이고, 서쪽 즐거운 나라에 왕생한 이도 만천萬千입니다.
만일 염불하는 사람이 신심信心이 순수하고 지극하며 정인正因이 늠름하여 생사를 거듭하여 생각하고 윤회를 절실히 생각하면 허망한 연緣은 구름처럼 흩어지고 어지러운 상想은 얼음 녹듯 사라질 것입니다. 부처님 이름을 한번 부르는 것을 들어 보이면 바로 그 자리에 다시는 다른 견해가 없을 것입니다. 부처에 즉한 염불(卽佛之念)은 칼끝이 예리한 태아검太阿劍26)을 옆에 차고 수레에 오른 것과 같으며, 염불에 즉한 부처(卽念之佛)는 큰 화륜火輪이 불똥을 튕기며 활활 타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만물을 닿게 하면 불에 타고 접촉하면 다칩니다. 오랫동안 하여 염불이 이루어지면 염불 밖에 다른 부처가 없고, 부처 외에 다른 염불이 없어서 몸과 마음이 일치하여 주체와 객체 두 가지를 다 잊으니 생사의 닫힌 문(蟄戶)을 부수는 우레이고 미망迷妄의 어두운 거리를 밝히는 해와 달이라 할 만합니다.
만약 이처럼 곧장 공부해 간다면 선禪과 정토가 어찌 갈리겠습니까? 두 가지의 수증修證이 결국에는 하나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스님은 어찌 이 정토 법문을 가지고 인연 있는 이를 거두어 교화해서 힘써 동류들과 함께 갈 것(彙征)27)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이 『감주紺珠』를 보여 주었다. 나그네는 열람한 뒤에 말하였다.
“지금에야 스님이 자비를 드리우느라 고심한 줄 알겠습니다. 말학末學이 천박하고 용렬하여 감히 방자하게 떠벌렸습니다.”
나그네는 절을 하고 물러났다. 이로 인해 나그네의 질문을 기록하여 서문으로 삼고 또 게송을 맨다.

過去已受無盡苦  과거에 이미 다함없는 고통을 받았고
現在今受無窮苦  현재에도 끝없는 고통을 받고 있으며
未來當受無限苦  미래에도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니
百千萬劫難可數  백천만 겁으로도 헤아리기 어려우리라.
惟有一門可超昇  하나의 문門만이 뛰어넘을 수 있으니
念佛徃生安樂刹  염불하면 안락국에 왕생하고
親見如來無量壽  여래 무량수불無量壽佛을 직접 뵈옵고
得聞微妙眞正法  미묘하고 참된 바른 법을 들을 수 있으리라.
頓悟無上佛菩提  위없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돈오하고
智慧神通悉具足  지혜와 신통을 다 구족하며
徃來遊戱十方界  시방세계에 왕래하고 유희하여
供養諸佛受記莂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수기를 얻으리라.

011_0826_c_01L嗣後歷代宗師唱演者十百正西樂邦
011_0826_c_02L徃生者萬千若人信心純至正因凛然
011_0826_c_03L重念生死切思輪轉妄緣雲散亂想
011_0826_c_04L氷消擧起一聲佛號直下更無異見
011_0826_c_05L卽佛之念如太阿鋒橫按當軒卽念之
011_0826_c_06L如大火輪星騰燄熾使萬物嬰之
011_0826_c_07L則燎觸之則傷久久念成念外無別
011_0826_c_08L佛外無別念身心一致能所兩忘
011_0826_c_09L可謂破生死蟄戶之雷霆燭迷妄幽衢
011_0826_c_10L之日月倘能如是驀直做去禪淨何甞
011_0826_c_11L二修證究竟歸一者也吾師何不以
011_0826_c_12L此淨土法門攝化有緣勉思彙征乎
011_0826_c_13L余默然良久示此紺珠客披覽已曰
011_0826_c_14L而今以後知師之垂慈苦心末學淺劣
011_0826_c_15L敢肆嘐嘐拜謝而退因綴錄客問
011_0826_c_16L爲之引又系以偈曰

011_0826_c_17L過去已受無盡苦現在今受無窮苦

011_0826_c_18L未來當受無限苦百千萬劫難可數

011_0826_c_19L惟有一門可超昇念佛徃生安樂刹

011_0826_c_20L親見如來無量壽得聞微妙眞正法

011_0826_c_21L頓悟無上佛菩提智慧神通悉具足

011_0826_c_22L徃來遊戱十方界供養諸佛受記莂

011_0826_c_23L{底}光緖八年淨願寺開刊本(國立圖書館所藏)
011_0826_c_24L{甲}續藏經第二編十五套二册

011_0827_a_01L回入娑婆度羣品  사바세계로 되돌아와 중생들 제도하여
以報佛恩之萬一  부처님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갚는다면
是則名爲善男子  이를 선남자善男子라 이름하고
亦得名爲大解脫  대해탈大解脫이라 할 수도 있고
可得名爲大夫丈  대장부大夫丈라 할 수 있으며
方得名爲大菩薩  비로소 대보살大菩薩이라 할 수 있도다.
淨土法要以數彙  정토의 법요法要를 숫자로 모았으니
見聞咸證勝妙樂  보고 듣는 이들이 다 훌륭하고 묘한 즐거움 증득하고
白毫祥光徧大千  백호白毫의 상서로운 광명이 대천세계大千世界28)를 비추어
泥犁翻成藕華國  지옥이 변하여 우화국藕華國29)을 이루리라.

 광서光緒 5년30) 기묘己卯 초가을에 법당산 혜정사慧定寺 허주당虛舟堂 덕진德眞 쓰다.

011_0827_a_01L回入娑婆度羣品以報佛恩之萬一

011_0827_a_02L是則名爲善男子亦得名爲大解脫

011_0827_a_03L可得名爲大丈夫方得名爲大菩薩

011_0827_a_04L淨土法要以數彙見聞咸證勝妙樂

011_0827_a_05L白毫祥光徧大千泥犁翻成藕華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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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六 [2] 年己卯孟秋法幢山慧定寺
011_0827_a_07L虛舟堂德眞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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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임제臨濟 : 당나라 때의 스님 의현義玄(?~867)을 가리킨다. 속성은 형邢씨이고, 조주 남화 사람이다. 임제종臨濟宗의 개조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고 불교를 좋아하였다. 출가한 후 제방諸方에 다니면서 경론을 두루 탐구하고 계율에도 정통하였다. 황벽 희운黃蘗希運의 법을 이었다. 삼현삼요三玄三要와 사료간四料簡 등의 기법機法을 시설하여 도중徒衆을 접인하고 기봉機鋒이 초준峭峻하여 세상에 이름이 높았다. 학인들을 제접하여 교화할 때 매번 큰소리로 꾸짖어 큰 기용機用을 드러냈으므로 세상에서 덕산봉德山棒ㆍ임제할臨濟喝이라고 하였다. 함통 8년 4월에 입적하였다. 시호는 혜조선사慧照禪師이다. 저서로는 『臨濟慧照禪師語錄』 1권이 있다.
  2. 15)예좌猊座 : 사자 모양으로 만든 자리로 법사가 앉는 자리를 말한다.
  3. 16)보광명지普光明智 :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는 광명 같은 지혜라는 뜻. 『華嚴經』에 나오는 용어로 부처님의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가리킨다.
  4. 17)작가作家 : 불법의 진실한 뜻을 체득하여 대중을 제도하는 솜씨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5. 18)파병欛柄 : 파비巴鼻(소의 코를 고삐로 잡아 빼듯이 학인을 이끄는 수단 또는 근거)와 같은 말로 요점ㆍ목표ㆍ기준점ㆍ안목ㆍ증거ㆍ수단ㆍ근거 등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6. 19)『景德傳燈錄』 권10(T51, 274a)에 따르면 남전 보원南泉普願의 제자인 장사 경잠長沙景岑이 한 말이다.
  7. 20)『楞嚴經』 5권(T19, 128a).
  8. 21)대원통大圓通 : 염불 수행의 가르침을 일컫는 말이다.
  9. 22)현부玄符 : 하늘의 상서로운 조짐을 말한다. 현玄은 검정색으로 『周易』에서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天玄而地黃)”라고 한 말에 근거하여 하늘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부符는 상서로운 조짐을 말한다.
  10. 23)『廣弘明集』 권30 「念佛三昧詩集序」(T52, 351b). 단 이 책에서는 ‘夫稱’이라 한 것을 본서에서는 ‘念佛’이라 하였고, 또 ‘分’이라고 한 것을 ‘撓’라고 하였다.
  11. 24)연사蓮社 : 염불 수행의 결사를 가리키는 말. 갖추어서 백련사白蓮社ㆍ백련화사白蓮華社라고 한다. 동진의 혜원이 처음 창건한 이래로 이러한 성격을 지닌 결사를 모두 연사라고 한다.
  12. 25)진단震丹 : ⓢ Cīna-sthāna의 음역어. 지나支那라고도 한다. 인도 등에서 중국을 지칭하던 이름. ⓢ cīna는 사유思惟라고 의역하고, ⓢ sthāna는 주처住處라고 의역한다.
  13. 26)태아검太阿劍 : 춘추시대 오나라 장인 간장干將이 만든 명검의 이름. 초왕楚王이 장인을 수소문하여 만들게 한 세 개의 명검 중 하나이다. 나머지 두 개는 용천龍泉과 상시上市이다.
  14. 27)동류들과 함께 갈 것(彙征) : ‘휘정彙征’은 『周易』 태괘泰卦에서 “초구는 엉켜 있는 띠풀의 뿌리를 뽑는 것과 같아 동류들과 함께 감이니, 길하다.(初九。拔茅茹。以其彙征。吉。)”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15. 28)대천세계大千世界 : 갖추어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부처님의 교화가 미치는 영역과 관련된 용어. 수미세계須彌世界를 1천 개 합친 것을 소천세계小千世界, 소천세계를 1천 개 합친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 중천세계를 1천 개 합친 것을 대천세계大千世界라고 한다. 여기에서 소천세계는 1천 개를 한 번 합쳐서 성립된 것이므로 일천세계一千世界라고도 하고, 중천세계는 1천 개를 두 번 합쳐서 성립된 것이므로 이천세계二千世界라고도 하며, 대천세계는 1천 개를 세 번 합쳐서 성립된 것이므로 삼천세계라고도 한다.
  16. 29)우화국藕華國 : 극락의 다른 표현으로 연화국蓮華國과 같은 말이다. ‘우화’는 화우華藕라고도 하며 연꽃을 가리킨다.
  17. 30)광서光緒 5년 : 원문의 ‘광서 6년’은 1880년으로 경진庚辰이나, 기묘己卯는 1879년이므로 광서 5년이라야 맞는다.
  1. 1){底}光緖八年淨願寺開刊本(國立圖書館所藏)。{甲}續藏經第二編十五套二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