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 / 曹溪高僧傳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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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
조계고승전 서문(曹溪高僧傳序)
고승전高僧傳은 명승전名僧傳이라고도 하는데 도덕으로 이름 높은 스님들의 기록이다. 이 승전이 지어진 것은 당송唐宋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당의 의정義淨, 혜교惠皎, 보창寶唱이 각기 10권을 저술하였고, 송의 지륜智輪과 찬녕贊寧이 또한 10권, 도선道宣이 31권, 금金 세종이 직접 지은 것(御製)이 40권으로 합쳐서 100여 권 세상에 유통되었으니, 모두 도가 높은 이름난 승려들의 전기를 기록한 것이다.1) 해동海東의 경우에는 신라와 고려(羅麗)에서 명승이 배출되어 뛰어난 여러 현인들이 중국(震旦)에 비견되는데 처음에는 그들의 전기가 없었다. 오직 신라에 『신승전神僧傳』이 있었는데 원효元曉의 저술이고 고려에는 『학승전學僧傳』이 있었으니 담악曇噩의 저작이다.2) 삼국에 이르러 비로소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이 있었는데 각훈覺訓이 지은 것이다.3) 조선(李朝)에 미쳐서는 이러한 승전조차 없다가 근래에 범해梵海(覺岸)가 찬술한 『동사전東師傳(東師列傳)』이 있었으니 모두가 도리에 통하는 바른 안목(通方正眼)이며 불가의 전등을 이은 것(佛門續燈)이다. 선종의 오종五宗 종파를 가리지 않고 구산九山의 유파를 따지지 않으니, 이것이 이른바 “관문에 의지해 지키니(據關防) 함께 나아오는구나.(來者同趣)4)”라는 말이다. 다만 이 승전은 오로지 조계종曹溪宗의 고승전이다. 어떤 까닭으로 그러한가? 우리 보조 국사(佛日老, 普照知訥)는 구산의 장벽을 열고 선교종禪敎宗을 만들었으며 제가諸家의 유파를 융합하여 조계종을 세웠다. 이로부터 구산이 변하여 하나의 도道가 되고 양가가 합쳐져 하나의 종宗이 되었으니 조계종의 취지가 넓고도 큰데 간략한 기록이나마 없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본종의 개창주에서 시작하여 본종의 유파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여러 책들을 열람하여 어떤 산문이건 간에 다만 이 조계종과 관련이 있으면 함께 넣어 수록하였다.

012_0381_a_01L[曹溪高僧傳]

012_0381_a_02L1)曹溪高僧傳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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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僧傳者亦云名僧傳卽道德高名之
012_0381_a_05L師僧錄也此傳之作始於唐宋之代
012_0381_a_06L唐之義淨惠皎寶唱各述十卷宋之智
012_0381_a_07L輪贊寧亦十卷道宣卅一卷金世宗
012_0381_a_08L御製四十卷合百餘𡰳行于世而盡
012_0381_a_09L是道高名僧之傳錄也若海東則羅麗
012_0381_a_10L名僧輩出矯矯群賢比肩於震旦
012_0381_a_11L原無其傳唯羅有神僧傳元曉所述
012_0381_a_12L麗有學僧傳曇噩所作至於三國
012_0381_a_13L有海東高僧傳覺訓所述及李朝亦
012_0381_a_14L無此傳而近有東師傳梵海所撰
012_0381_a_15L皆爲通方正眼佛門續燈也不揀五
012_0381_a_16L宗之派不問九山之流卽所謂據關坊
012_0381_a_17L而來者同趣歟唯此傳者但曹溪宗之
012_0381_a_18L高僧傳也曷故然也卽吾佛日老
012_0381_a_19L九山之障壁爲禪敎宗融諸家之派流
012_0381_a_20L立曹溪宗自是九山變爲一道兩家
012_0381_a_21L合爲一宗曹溪宗之趣廣且大矣
012_0381_a_22L無略錄可乎哉由是始於本宗之剏主
012_0381_a_23L終於本宗之派流者一一閱於群篇
012_0381_a_24L論何山而唯關是宗者并入而錄之

012_0381_b_01L그리고 비명과 행장이 있는 이는 원본에 의거해 기록을 요약하였고 행장이나 기록이 없으면 다만 항목에 따라 나란히 적어 놓았다. 현재에 이르러 이름난 승려는 내가 추천해서 행장을 지었으니 후학들의 평가를 기다린다(待可畏). 그러나 당송과 신라, 고려와 같은 문장文章 사업을 도모한 것이 아니고 종주가 장벽을 열고 종파를 세운 은혜에 보답하기만을 바랄 뿐이며, 여러 조사들의 높은 도와 이름난 덕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희망할 뿐이다. 뒤에 이 글을 읽는 이가 마침내 전등을 기록하여 결국 원본을 완성하기를 기원한다.
불기(釋元) 2947년 경신(1920) 1월(孟春) 상순(上浣)에 기록자가 조계산 다송실茶松室에서 쓰다.5)

012_0381_b_01L而有銘狀者依本略錄無狀錄則但
012_0381_b_02L依項列錄至於現見爲名僧者自推而
012_0381_b_03L成狀以待可畏也然而非圖唐宋羅麗
012_0381_b_04L文章事業也庶冀宗主之闢障立宗之
012_0381_b_05L報恩祗望諸祖之道高德名之不朽也
012_0381_b_06L後之覽者續記傳燈竟成原帙祝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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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元二九四七庚申孟春上浣錄者
012_0381_b_08L書于曹溪山茶松室中

012_0381_b_09L{底}松廣寺所藏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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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혜교惠皎와 보창寶唱은 남조의 양나라에서 활동한 승려로서 각각 『高僧傳』과 『名僧傳』을 지었다. 당의 의정義淨은 『大唐西域求法高僧傳』, 도선道宣은 『續高僧傳』을 찬하였으며 송의 찬녕贊寧과 제자 지륜智輪은 『宋高僧傳』을 펴냈다. 금의 5대 황제인 세종(完顔雍)이 찬술한 승전의 명칭은 확인되지 않는다.
  2. 2)『神僧傳』은 원효의 저술이 아니며 명 세종(永樂帝)의 명으로 1419년에 완성된 책이다. 또한 담악曇噩이 썼다는 『學僧傳』도 고려의 승전이 아니다.
  3. 3)『海東高僧傳』은 1215년(고려 고종 2) 각훈覺訓이 편찬한 책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승전이며, 불교 도입부터 당시까지 고승들의 전기를 수록하였다. 현재 2권 1책만 전하여 삼국시대의 승전 일부만 확인되지만 『三國遺事』에도 많이 인용되는 등 이후 불교사 인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 책이다.
  4. 4)함께 나아오는구나(來者同趣) : 종밀宗密의 『禪源諸詮集都序』 서문(裵休 述)에 나오는 언구이다. 「禪源諸詮集都序敍」(T48, 398c4) 참조.
  5. 5)서문을 쓴 이는 본서의 편저자인 금명 보정錦溟寶鼎(1861~1930)이다. 그는 송광사 승려로서 『茶松文藁』를 비롯한 수많은 저술을 남겼고, 부휴계浮休系의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보조 유풍普照遺風의 계승을 표방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본서의 해제를 참고하기 바란다.
  1. 1){底}松廣寺所藏筆寫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