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楞伽阿跋多羅寶經卷第四

ABC_IT_K0159_T_004
010_0818_c_01L
능가아발다라보경 제4권
010_0818_c_01L楞伽阿跋多羅寶經卷第四


송 구나발타라 한역
최윤옥 번역
010_0818_c_02L宋天竺三藏求那跋陁羅譯


4. 모든 부처님께서 마음에 대해 말씀하신 품
010_0818_c_03L一切佛語心品之四

이때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저를 위해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저를 비롯한 나머지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의 자성(自性)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을 깨우치는 일도 잘할 것입니다.”
010_0818_c_04L爾時大慧菩薩白佛言世尊唯願爲說三藐三佛陁我及餘菩薩摩訶薩善於如來自性自覺覺他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묻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물어라. 내가 너희를 위해 묻는 대로 말해 주겠다.”
010_0818_c_07L佛告大慧恣所欲問我當爲汝隨所問說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짓습니까[作], 짓지 않습니까[不作]? 사(事)입니까, 인(因)입니까? 형상[相]입니까, 형상이 나타내는 것[所相]입니까? 깨닫는 자[覺]입니까, 깨달은 것[所覺]입니까? 이와 같은 말의 구절들은 다른 것입니까, 다르지 않은 것입니까?”
010_0818_c_08L大慧白佛言世尊如來應供等正覺爲作爲不作耶爲事耶爲因耶爲相耶爲所相耶爲說耶爲所說耶爲覺耶爲所覺耶如是等辭句爲異爲不異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이러한 말에 대해 사(事)도 아니고 인(因)도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모두 허물이 있기 때문이다.
010_0818_c_12L佛告大慧如來應供等正覺於如是等辭句非事非因所以者何俱有過
대혜야, 만일 여래가 사(事)라면, 혹 짓기도 하고 혹은 무상(無常)하기도 할 것이니, 무상이기 때문에 모든 사는 반드시 여래이어야 할 것이다. 이는 나와 모든 부처가 원치 않는 것이다. 만일 지어진 것[所作]이 아니라면,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방편이 공(空)하여 토끼의 뿔과 같고 반대의 아들[般大之子:石女之子]과 같을 것이니,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다.
010_0818_c_15L大慧若如來是事者或作或無常無常故一切事應是如來我及諸佛皆所不欲若非所作者無所得故便則空同於兔角般大之子以無所有故
대혜야, 만일 사(事)와 인(因)이 없다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닐 것이며, 만일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면 4구를 벗어날 것이다. 4구란 곧 세상의 언설(言說)이니, 만약 4구를 벗어난다면 4구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취하는 것이다. 모든 여래의 구의(句義)도 이와 같다.
010_0818_c_19L大慧若無事無因者則非有非若非有非無則出於四句四句者是世閒言說若出四句者則不墮四不墮故智者所取一切如來句義亦如是
010_0819_a_02L지혜로운 이[慧者]는 마땅히 알라. 모든 법은 무아(無我)라고 내가 말한 것과 같다. 이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아성(我性)이 없으므로 곧 무아라는 것이다. 모든 법에는 자성(自性)이 있고 타성(他性)이 없으니, 마치 소나 말과 같은 경우이다.
010_0819_a_02L慧者當知如我所說一切法無我當知此義無我性是無我一切法有自性無他性如牛馬
대혜야, 마치 소는 말의 성품이 아니고, 말은 소의 성품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그 자상(自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대혜야, 모든 법은 자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무아는 어리석은 범부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닐 뿐이니, 망상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은 공해서 생기는 것도 없고 자성도 없으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010_0819_a_04L大慧譬如非牛馬性馬牛性其實非有非無非無自相如是大慧一切諸法非無自相有自相但非無我愚夫之所能以妄想故如是一切法空無生自性當如是知
이와 같이 여래와 음(陰)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만약 음과 다르지 않다면 무상(無常)이어야 할 것이며, 다르다면 방편(方便)이 공할 것이다. 만약 두 가지라면 반드시 다름이 있어야 하니, 마치 소의 뿔이 서로 닮은 까닭에 다르지 않으며 길고 짧은 차별이 있으므로 다름이 있는 것과 같다. 모든 법도 역시 이와 같다. 대혜야, 마치 소의 오른쪽 뿔이 왼쪽 뿔과 다르고 왼쪽 뿔이 오른쪽 뿔과 다른 것처럼, 이와 같이 길고 짧은 것과 여러 가지 모습이 각각 다르다.
010_0819_a_09L如是如來與陰非異非不異若不異陰者應是無常若異方便則空若二者應有異如牛角相似故不異長短差別故有異一切法亦如是大慧如牛右角異左角左角異右角如是長短種種色各各異
대혜야, 여래는 음(陰)ㆍ계(界)ㆍ입(入)과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며, 이와 같이 여래와 해탈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와 같으므로 여래를 ‘해탈’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한다. 만일 여래가 해탈과 다르다면 물질의 모습[色相]으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며, 물질의 모습으로 이루어지므로 무상해야 할 것이다. 만일 다르지 않다면, 수행자(修行者)가 모습을 얻어도 분별이 없어야 할 것이나 수행자는 분별을 본다.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智]와 이염(爾炎)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010_0819_a_14L如來於陰非異非不異如是如來解脫非異非不異如是如來以解脫名說若如來異解脫者應色相色相成故應無常若不異者修行者得相應無分別而修行者見分別是故非異非不異如是智及爾炎異非不異
010_0819_b_02L 대혜야, 지혜와 이염이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므로, 상(常)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며, 짓는 자도 아니고 지어진 것도 아니며, 유위(有爲)도 아니고 무위(無爲)도 아니며, 깨닫는 이도 아니고 깨달은 것도 아니며, 형상도 아니고 형상이 나타내는 것도 아니며, 음(陰)도 아니고 음과 다른 것도 아니며, 말하는 자도 아니고 말하는 것도 아니며,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함께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하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 모든 양(量)을 벗어난다.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양(量)이라고 한다.
010_0819_a_21L大慧智及爾炎非異非不異者非常非無常非作非所作非有爲非無爲非覺非所覺非相非所相非陰非異陰非說非所說非一非異非俱非不俱非一非異非俱非不俱悉離一切量見聞覺識識名爲量
모든 양을 벗어나면 말이 없고, 말이 없으면 생기는 것이 없고, 생기는 것이 없으면 적멸(寂滅)하고, 적멸하면 자성열반(自性涅槃)이다. 자성열반이면 사(事)도 없고 인(因)도 없으며, 사도 없고 인도 없으면 반연하는 것이 없고, 반연하는 것이 없으면 모든 거짓을 벗어나며, 모든 거짓을 벗어나게 되면 곧 여래이니, 여래가 바로 이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이다.
010_0819_b_03L離一切量無言說無言說則無生無生則無滅無滅則寂滅寂滅則自性涅槃自性涅槃則無事無因無事無因則無攀無攀緣則出過一切虛僞出過一切虛僞則是如來如來則是三藐三佛陁
대혜야, 이를 삼먁삼불타라고 하니, 불타란 모든 감관[根]과 양(量)을 벗어난 것이다.”
010_0819_b_09L大慧是名三藐三佛陁佛陁者離一切根量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19_b_10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모든 감관[根]과 양(量)을 다 벗어나며
사(事)도 없고 인(因)도 없으며
깨달은 자와 깨달음을 이미 벗어났고
형상과 형상이 나타내는 것도 벗어났다.
010_0819_b_11L悉離諸根量
無事亦無因
已離覺所覺
亦離相所相

음(陰)과 연(緣)과 등정각(等正覺)
그 같고 다름을 볼 자 없으니
보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분별할까.
010_0819_b_13L陰緣等正覺
一異莫能見
若無有見者
云何而分別

짓는 것도 아니고 짓지 않는 것도 아니며
사(事)도 아니고 인(因)도 아니며
음도 아니고 음에 있는 것도 아니며
여러 다른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010_0819_b_14L非作非不作
非事亦非因
非陰不在陰
亦非有餘雜

또한 모든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며
저 망상(妄想)으로 보는 것들
또한 없는 것도 아닌 줄 알아야 하니
이 법은 본래 법 자체가 그런 것이다.
010_0819_b_15L亦非有諸性
如彼妄想見
當知亦非無
此法法自爾

있는 까닭에 없는 것이 있으며
없는 까닭에 있는 것이 있으니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말고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말라.
010_0819_b_17L以有故有無
以無故有有
若無不應受
若有不應想

나[我]라 하고 내가 아니라 하며
말로 헤아려 방황하다가
두 극단에 빠져서는
자신도 무너뜨리고 세상도 무너뜨린다.
010_0819_b_18L或於我非我
言說量留連
沈溺於二邊
自壞壞世閒

모든 허물을 해탈하고
나를 바르게 관찰하여 통하면
이를 올바른 관찰[正觀]이라 하니
대도사(大導師)를 헐뜯지 않는 것이다.
010_0819_b_19L解脫一切過
正觀察我通
是名爲正觀
不毀大導師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수다라(修多羅)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받아들인다고 말씀하셨고, 또 불생불멸이 곧 여래의 다른 명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성품이 없으므로 불생불멸이라고 하셨습니까, 아니면 여래의 다른 명칭입니까?”
010_0819_b_21L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世尊如世尊說修多羅攝受不生不滅又世尊不生不滅是如來異名云何世尊爲無性故說不生不滅爲是如來異
010_0819_c_02L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모든 법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말한 것은 있다는 견해와 없다는 견해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010_0819_c_03L佛告大慧我說一切法不生不滅有無品不現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법이 생기지 않는다면, 법을 받아들인다는 일조차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름[名字] 중에 법이 있다면,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010_0819_c_04L大慧白佛言世尊若一切法不生者則攝受法不可得一切法不生故若名字中有法者惟願爲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너를 위해 분별하여 설명하겠다.”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010_0819_c_07L佛告大慧善哉善哉諦聽善思念吾當爲汝分別解說大慧白佛言唯然受教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如來)는 성품이 없는 것이 아니며, 또한 생기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모든 법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연을 기다리지 않으므로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며, 또한 뜻이 없는 것도 아니다.’
010_0819_c_09L佛告大慧我說如來非無亦非不生不滅攝一切法亦不待緣故不生不滅亦非無義
대혜야, 나는 ‘뜻대로 태어나는 법신여래[意生法身]’라는 여래의 명호를 말하였다. 그것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不生], 모든 외도와 성문과 연각과 7주(住) 보살은 그 경계가 아니다. 대혜야, 저 ‘생기지 않는 것[不生]’이란 곧 여래의 다른 이름이다.
010_0819_c_11L大慧我說意生法身如來名號彼不生者一切外道聲聞緣覺七住菩薩非其境界大慧彼不生卽如來異名
대혜야, 이는 마치 인다라(因陀羅)와 석가(釋迦)와 불란타라(不蘭陀羅)와 같이 모든 물건들 하나하나 각각에 여러 이름이 있으나 또한 여러 이름에 따라 여러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자성(自性)이 없는 것도 아닌 것과 같다.
010_0819_c_14L大慧譬如因陁羅釋迦不蘭陁羅如是等諸物一一各有多名亦非多名而有多性非無自性
이와 같이 대혜야, 나는 이 사가(娑呵)세계사가는 번역하면 ‘참을 수 있다≺能忍≻’는 뜻이다.에서 3아승기(阿僧祇) 백천 개의 명호가 있으나, 어리석은 범부는 제각기 내 이름을 말하는 걸 들으면서도 나 여래의 이름인 줄 알지 못한다.
010_0819_c_17L如是大慧我於此娑呵世娑呵譯言能忍有三阿僧祇百千名號愚夫悉聞各說我名而不解我如來異名
대혜야, 혹 어떤 중생은 나를 여래(如來)로 알고, 어떤 중생은 일체지를 가진 이[一切智者]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부처[佛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세상을 구원하는 이[救世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스스로 깨닫는 이[自覺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인도하는 스승[導師者]이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널리 인도하는 이[廣導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모두를 인도하는 이[一切導者]라고 안다. 어떤 중생은 선인자(仙人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범자(梵者)라고 알고,
010_0819_c_19L大慧或有衆生知我如來者有知一切智者有知佛者有知救世者有知自覺者有知導師者有知廣導者知一切導者有知仙人者有知梵者
010_0820_a_02L 어떤 중생은 비뉴자(毘紐者)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자재자(自在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승자(勝者)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가비라자(迦毘羅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진실변자(眞實邊者)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달[月]이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해[日]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생자(生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무생자(無生者)라고 안다. 어떤 중생은 무멸자(無滅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공자(空者)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여여자(如如者)라고 알고,
010_0819_c_23L有知毘紐者有知自在者有知勝者有知迦毘羅者有知眞實邊者有知月者有知日者有知生者有知無生有知無滅者有知空者有知如如
어떤 중생은 제자(諦者)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실제자(實際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법성자(法性者)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열반자(涅槃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상자(常者)라고 안다. 어떤 중생은 평등자(平等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불이자(不二者)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모습이 없는 이[無相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해탈자(解脫者)라고 알며, 어떤 중생은 도자(道者)라고 알고, 어떤 중생은 뜻대로 태어나는 이[意生者]라고 안다.
010_0820_a_05L有知諦者有知實際者有知法性有知涅槃者有知常者有知平等有知不二者有知無相者有知解脫者有知道者有知意生者
대혜야, 이와 같은 3아승기 백천 개의 명호가 있으니,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다. 이 세계와 다른 세계에서 모두 다 나를 아는 것이, 마치 물에 비친 달이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는 것과 같다. 저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나를 알 수 없으니, 두 극단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010_0820_a_08L大慧是等三阿僧祇百千名號不增不減此及餘世界皆悉知我如水中月出不入彼諸愚夫不能知我墮二邊
그러므로 모두 나를 공경하고 공양하지만 말이 뜻하는 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름을 분별하지 못하며, 스스로 통할 줄을 모르고, 온갖 말과 글귀에 집착하여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말에서 ‘성품이 없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여래 명호의 차별이 인다라(因陀羅)와 석가(釋迦)와 불란타라(不蘭陀羅)와 같은 줄 모르며, 스스로 통달해 마지막 도달해야 할 곳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는 모든 법에 있어서 말하는 데 따라 계착한다.
010_0820_a_12L然悉恭敬供養於我而不善解知辭句義趣不分別名不解自通計著種種言說章句於不生不滅作無性不知如來名號差如因陁羅釋不蘭陁羅不解自通會歸終極於一切法隨說計著
대혜야,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뜻은 말과 같아서 뜻과 말은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뜻은 몸체가 없기 때문에 말 이외에는 다른 뜻이 없으므로 오직 말에 그치는 것이다.’
010_0820_a_17L大慧彼諸癡人作如是言義如言說義說無異所以者何謂義無身故言說之外更無餘義止言說
대혜야, 저들은 악(惡)이 지혜를 태워 말의 자성(自性)을 모르고, 말은 생기고 없어지지만 뜻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대혜야, 말은 문자에 치우치나 뜻은 치우치지 않는다. 성품과 성품 아닌 것을 벗어나기 때문이며, 생김이 없고 또한 몸[身]이 없기 때문이다. 대혜야, 여래는 문자에 치우친 법을 말하지 않는다. 문자는 있음과 없음[有無]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문자에 치우치지 않는 경우는 제외한다.
010_0820_a_20L大慧彼惡燒智不知言說自不知言說生滅義不生滅大慧切言說墮於文字義則不墮離性非性故無受生亦無身故大慧如來不說墮文字法文字有無不可得故除不墮文字
010_0820_b_02L대혜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는 문자에 치우친 법을 말한다’고 한다면 이는 망령된 말이다. 왜냐하면 법(法)은 문자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혜야, 나를 비롯한 모든 부처와 보살들은 한 자[一字]도 말하지 않고 한 자도 대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은 문자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익을 주는 뜻[義]과 말[言說]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말이란 중생의 망상이기 때문이다.
010_0820_b_02L大慧若有說言如來說墮文字法者此則妄說法離文字故是故大慧我等諸佛及諸菩薩不說一字荅一字所以者何法離文字故非不饒益義說言說者衆生妄想故
대혜야, 만약 모든 법을 말하지 않는다면 교법(敎法)이 무너질 것이니, 교법이 무너지면 모든 부처나 보살이나 연각이나 성문이 없을 것이며, 만약 없다면 누가 누구를 위해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대혜야, 보살마하살은 말에 집착하지 말고,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적절한 방편을 써서 자세히 경법(經法)을 설명해야 한다. 중생들의 희망이나 번뇌는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모든 부처는 저 갖가지로 다르게 이해하는 중생들을 위해, 모든 법을 설명해서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을 벗어나라고 할 뿐이요, 자각성지처(自覺聖智處)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010_0820_b_06L大慧不說一切法者教法則壞教法壞者則無諸佛菩薩緣覺聲聞若無者說爲誰是故大慧菩薩摩訶薩莫著言說隨宜方便廣說經法以衆生悕望煩惱不一故我及諸佛爲彼種種異解衆生而說諸法令離心意識不爲得自覺聖智處
대혜야, 모든 법에는 소유(所有)가 없으니, 자심(自心)의 현량(現量)인 줄 깨달아 두 가지 망상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뜻에 의지해야지 문자에 의지하진 말아야 한다.
010_0820_b_13L大慧於一切法無所有覺自心現量離二妄想菩薩摩訶薩依於義不依文字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문자에 의지하다면 스스로 제일의(第一義)를 무너뜨리고, 또한 다른 사람을 깨우치게 할 수도 없으며, 악견(惡見)에 치우쳐 상속(相續)하면서도 대중을 위해 연설하고, 모든 법과 모든 지위와 모든 모습을 명료하게 잘 알지 못하며, 또한 글의 장(章)과 구(句)도 알지 못한다. 만약 모든 법과 모든 지위를 잘 알고, 글의 장과 구에 통달하고, 성품과 뜻[意]을 충분히 알면, 이 사람은 올바른 무상(無相)의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거워할 수 있으며, 평등한 대승(大乘)을 중생에게 세워 줄 것이다.
010_0820_b_15L若善男子善女人依文字者自壞第一義亦不能覺他墮惡見相續而爲衆說不善了知一切法一切地一切相不知章句若善一切法一切地一切通達章句具足性義彼則能以正無相樂而自娛樂平等大乘建立衆
010_0820_c_02L대혜야, 대승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든 부처와 보살과 연각과 성문을 받아들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든 중생을 받아들이며, 모든 중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법(正法)을 받아들이고, 정법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부처의 종자[佛種]가 끊어지지 않게 하며, 부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사람은 수승한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명료하게 알 수 있다.
010_0820_b_22L大慧攝受大乘者則攝受諸佛緣覺聲聞攝受諸佛菩薩緣覺聞者則攝受一切衆生攝受一切衆生者則攝受正法攝受正法者則佛種不斷佛種不斷者則能了知得殊勝入處
수승한 깨달음을 얻을 줄 아는 보살마하살은 항상 화생(化生)하고, 대승을 건립하며 열 가지 자재력(自在力)으로 여러 가지 몸[色像]을 나타내고, 중생의 종류[形類]나 희망하거나 번뇌하는 모든 모습에 통달하여 여실하게 설법할 것이다. 여실한 것은 다르지 않은 것이며, 여실한 것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모습이니, 모든 허위(虛僞)가 그친다. 이를 여실하다고 한다.
010_0820_c_04L知得殊勝入處菩薩摩訶薩常得化生建立大乘十自在力現衆色像通達衆生形類悕望煩惱諸相如實說法如實者不異如實者不來不去相一切虛僞息是名如實
대혜야, 선남자ㆍ선여인은 말하는 대로 받아들여 계착해선 안 된다. 진실이란 명자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대혜야, 마치 어리석은 사람에게 손가락으로 물건을 가리켜 보이면, 어리석은 사람은 손가락만 보고 진실한 뜻은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말이라는 손가락에 따라 받아들이고 계착하여 끝내 이를 버리지 못한다. 따라서 말이라는 손가락을 떠난 제일의 진실한 뜻을 끝내 얻을 수 없다.
010_0820_c_08L大慧善男子善女人不應攝受隨說計著眞實者離名字故大慧如爲愚夫以指指物愚夫觀指不得實義如是愚隨言說指攝受計著至竟不捨不能得離言說指第一實義
대혜야, 이는 마치 어린 아기에게는 익힌 음식을 먹여야 되고 날 것을 먹여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만약 날 것을 먹이면 곧 탈이 나게 된다. 이는 차례대로 방편을 써 성숙시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010_0820_c_13L大慧如嬰兒應食熟食不應食生若食生則令發狂不知次第方便熟故
대혜야, 이와 같이 불생불멸(不生不滅)은 방편을 써서 수행하지 않으면 불선(不善)이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방편을 잘 닦아야 하니, 손가락 끝을 보는 것처럼 말을 좇진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대혜야, 진실한 뜻을 얻으려면 방편을 잘 닦아야 한다. 진실한 뜻은 미묘하고 적정(寂靜)한 것이며, 이는 열반의 인(因)이다. 말은 망상과 합하고 망상은 생사를 모은다.
010_0820_c_15L如是不生不滅不方便修則爲不是故應當善修方便莫隨言說視指端是故大慧於眞實義當方便眞實義者微妙寂靜是涅槃因說者妄想合妄想者集生死
010_0821_a_02L대혜야, 진실한 뜻은 다문(多聞)으로부터 얻는다. 대혜야, 다문이란 뜻을 잘 아는 것을 말하지,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뜻을 잘 알면 어떤 외도의 경론(經論)에도 떨어지지 않으니, 자신도 떨어지지 않고 남도 떨어지지 않게 한다. 이를 대덕다문(大德多聞)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뜻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들은 것이 많은 사람을 가까이해야 하니, 이는 뜻을 잘 아는 사람을 말한다. 반드시 많이 들어서 뜻을 잘 아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하며, 이와 어긋나 말에 계착하는 사람은 멀리해야 한다.”
010_0820_c_20L大慧義者從多聞者得大慧多聞者謂善於義非善言說善義者不隨一切外道經論身自不隨亦不令他隨是則名曰大德多聞是故欲求義者當親近多聞所謂善義者當親近多聞所謂善義與此相違計著言說應當遠離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생김도 없고 없어짐도 없음을 드러내 보여 주셨으나, 특별할 것도 기이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외도가 말하는 인(因) 역시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며, 세존께서도 허공은 수(數)ㆍ연(緣)ㆍ멸(滅)이 아니고 열반계(涅槃界)는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010_0821_a_03L爾時大慧菩薩復承佛威神而白佛世尊世尊顯示不生不滅無有奇所以者何一切外道因亦不生不世尊亦說虛空非數緣滅及涅槃界不生不滅
세존이시여, 외도도 ‘인(因)으로 모든 세상이 생긴다’고 하고, 세존께서도 ‘무명(無明)과 애착[愛]과 업(業)과 망상(妄想)이 연(緣)이 되어 모든 세상이 생겼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인이라 하고 우리는 연이라 하여 이름의 차이는 있으나, 외물(外物)의 인연인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외도의 논과 차별이 없으십니다.
010_0821_a_08L世尊外道說因生諸世世尊亦說無明愛業妄想爲緣諸世閒彼因此緣名差別耳外物因緣亦如是如是世尊與外道論無有差
외도도 ‘미진(微塵)ㆍ승묘(勝妙)ㆍ자재천(自在天)ㆍ중생주(衆生主) 등, 이와 같은 아홉 가지 물질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하고, 세존께서도 ‘모든 성품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외도도 ‘4대(大)는 무너지지 않으며, 자성(自性)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4대는 항상 존재한다. 이 4대가 모든 중생 세계에 두루 흐르는데 자성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고, 세존께서 하신 말씀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특별하고 기이할 것이 없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010_0821_a_12L微塵勝妙自在衆生主等如是九物不生不滅世尊亦說一切性不生不有無不可得外道亦說四大不壞自性不生不滅四大常是四大乃至周流諸趣不捨自性世尊所說亦復如是是故我言無有奇特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모든 외도보다 더 훌륭하고 기이한 이유를 차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차이가 없다면, 모든 외도도 역시 부처일 것이니,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한 세계에 여러 부처가 출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나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한 세계에 많은 부처가 있어야만 할 것이니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010_0821_a_17L惟願世尊爲說差別所以奇特勝諸外道若無差別者一切外道皆亦是佛以不生不滅故而世尊說一世界中多佛出世者無有是處如向所說一世界中應有多佛無差別故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한 것은 외도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 왜냐하면 저 모든 외도들은 성자성(性自性)이 있다 여기고서 생기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모습을 얻으나, 나는 이와 같은 있다거나 없다는 견해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010_0821_a_22L佛告大慧我說不生不滅不同外道不生不滅所以者何彼諸外道有性自性得不生不變相我不如是墮有無品
010_0821_b_02L 대혜야, 내 말은 있다거나 없다[有無]는 견해를 벗어나고, 생김과 없어짐[生滅]을 벗어나며, 성품도 아니고[非性]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非無性] 것이다. 마치 온갖 환(幻)과 꿈이 나타나는 것과 같으므로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성품이 없다는 것인가? 물질[色]에는 받아들일 만한 자성상(自性相)이 없는 것을 말하니,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며, 받아들이기도 하고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010_0821_b_02L大慧我者離有無品離生滅非性非無性如種種幻夢現故非無性云何無性謂色無自性相攝受現不現故攝不攝故
그러므로 모든 성품은 성품이 없으며, 또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자심(自心)의 현량(現量)인 줄 깨닫기만 하면 망상이 일어나지 않아 안온하고 쾌락하며,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이 영원히 그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망상으로 일을 만드는 것이지 모든 현성(賢聖)은 그렇지 않다.
010_0821_b_05L以是故一切性無性非無性但覺自心現量妄想不生安隱快樂世事永愚癡凡夫妄想作事非諸賢聖
진실하지 않은 망상은 건달바(乾闥婆)의 성(城)이나 요술로 나타난 사람과 같다. 대혜야, 건달바성과 요술로 만든 사람인 갖가지 중생들이 사고팔고 들고 나는 것이다. 어리석은 범부는 망상으로 정말로 들고 난다고 생각하나 실제로는 나가는 사람도 없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으니, 그것은 망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010_0821_b_08L實妄想如揵闥婆城及幻化人大慧如揵闥婆城及幻化人種種衆生商賈出入愚夫妄想謂眞出入而實無有出者入者但彼妄想故
이와 같이 대혜야, 어리석은 범부들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견해를 일으키지만 그들 역시 유위(有爲)도 무위(無爲)도 없다. 마치 요술로 만든 사람이 생긴 것처럼 실제로는 생김이나 없어짐이 없고 성품도 성품이 없음도 없으니, 무소유(無所有)이기 때문이다. 모든 법도 이와 같아서 생김과 없어짐을 벗어난다.
010_0821_b_12L如是大慧愚癡凡夫起不生不滅彼亦無有有爲無爲如幻人生其實無有若生若性無性無所有故一切法亦如是離於生滅
어리석은 범부는 진실이 아닌 것에 떨어져 생기고 없어진다는 망상을 일으키지만 모든 성현은 그렇지 않다. 여실하지 못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성자성(性自性)과 같은 경우 망상과 또한 다르지 않다. 만약 다르다고 하면 모든 성자성에 계착하여 적정(寂靜)함을 보지 못하고, 적정함을 보지 못하면 끝내 망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010_0821_b_16L愚癡凡夫墮不如實起生滅妄想非諸賢聖不如實者不爾性自性妄想亦不異若異妄想者著一切性自性不見寂靜不見寂靜終不離妄想
그러므로 대혜야, 모습이 없다는 견해[無相見]가 모습이 아니라는 견해[非相見]보다 훌륭하다. 모습이란 생(生)을 받는 인(因)인 까닭에 훌륭하지 않은 것이다. 대혜야, 모습이 없으면[無相] 망상이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없어지지도 않으므로, 나는 열반이라고 말한다. 대혜야, 열반이란 진실한 이치에 대한 견해와 같으니, 이전의 망상과 심법(心法)ㆍ심수법(心數法)을 벗어나 여래의 자각성지(自覺聖智)를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열반이라고 말한다.”
010_0821_b_20L是故大慧無相見勝非相見相者受生因故不勝大慧相者妄想不生不起不滅我說涅槃大慧涅槃者如眞實義見離先妄想心心數法逮得如來自覺聖智我說是涅槃
010_0821_c_02L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21_c_02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저 생긴다는 논(論)을 없애려고
생기지 않는다는 뜻을 건립(建立)하였으니
나는 이러한 법을 말하나
어리석은 범부는 알지 못한다.
010_0821_c_03L滅除彼生論
建立不生義
我說如是法
愚夫不能知

모든 법은 생기지 않아
성품도 없고 소유(所有)도 없으니
건달바성ㆍ환ㆍ꿈과 같아
성품이 있다고들 하지만 인(因)이 없고
생김이 없고 자성도 없으니
무슨 인으로 공(空)을 설할까.
010_0821_c_05L一切法不生
無性無所有
乾闥婆幻夢
有性者無因
無生無自性
何因空當說

화합을 벗어나면
깨달아 아는 성품도 나타나지 않으니
따라서 공하여 생기지 않는 것을
나는 자성이 없다고 말한다.
010_0821_c_07L以離於和合
覺知性不現
是故空不生
我說無自性

낱낱이 화합해
성품이 나타나지만 있는 것 아니니
분석하면 화합도 없어
외도의 견해와 같은 것이 아니다.
010_0821_c_08L謂一一和合
性現而非有
分扸無和合
非如外道見

환이나 꿈이나 눈병에 아른거리는 머리카락
아지랑이나 건달바성처럼
이 세상 갖가지 일
인(因) 없이 모습이 나타난다.
010_0821_c_09L夢幻及垂髮
野馬乾闥婆
世閒種種事
無因而相現

인이 있다는 논(論)을 꺾으려고
생김이 없다는 논리 편 것인데
생김이 없다고 선언하는 자들
법의 흐름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구나.
010_0821_c_11L折伏有因論
申暢無生義
申暢無生者
法流永不斷

인이 없다고 맹렬히 주장하며
모든 외도를 두렵게 하니
어떻게, 무엇을 인하여
저것은 어떤 까닭으로 생기며
어느 곳에서 화합하는가 하며
인이 없다고 주장한다.
010_0821_c_12L熾然無因論
恐怖諸外道
云何何所因
彼以何故生
於何處和合
而作無因論

유위법(有爲法)을 관찰하면
인이 없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니니
저 생멸을 주장하던 사람들
그들의 소견(所見)이 이로써 없어진다.
010_0821_c_14L觀察有爲法
非無因有因
彼生滅論者
所見從是滅

왜 생김이 없다고 하고
성품이 없다고 하는가?
모든 연(緣)을 돌아보면
무생(無生)이라 이름붙일 법이 있는가?
010_0821_c_15L云何爲無生
爲是無性耶
爲顧視諸緣
有法名無生

이름에는 뜻이 없을 수 없으나
오직 분별하는 말일 뿐이니
성품이 없으므로 생김이 없다는 것 아니고
또한 모든 연을 돌아본다는 것도 아니며
성품이 있어 이름을 붙인 것도 아니고
이름 역시 뜻이 없는 것도 아니다.
010_0821_c_17L名不應無義
惟爲分別說
非無性無生
亦非顧諸緣
非有性而名
名亦非無義

일체 모든 외도와
성문과 연각
7주(住) 보살의 경계가 아니니
이를 무생(無生)의 모습이라 한다.
010_0821_c_19L一切諸外道
聲聞及緣覺
七住非境界
是名無生相

모든 인연을 멀리 벗어나고
또한 모든 사(事)도 벗어나며
오직 미세한 마음[微心]만 머물 뿐
생각하는 자와 생각하는 대상 모두 벗어나
그 몸이 이에 따라 전변(轉變)하는 것
나는 이것을 무생이라 한다.
010_0821_c_20L遠離諸因緣
亦離一切事
惟有微心住
想所想俱離
其身隨轉變
我說是無生

바깥에 성품도 성품 없음도 없고
또한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도 없어
모든 견해를 끊어 없애면
나는 이것을 무생이라 한다.
010_0821_c_22L無外性無性
亦無心攝受
斷除一切見
我說是無生

이와 같이 자성은 없는 것이니
공(空) 등을 잘 분별해야 한다.
공하므로 공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생김이 없으므로 공이라고 말한다.
010_0821_c_23L如是無自性
空等應分別
非空故說空
無生故說空
010_0822_a_02L
여러 인연이 화합하여
생김이 있고 없어짐이 있으니
모든 인연을 벗어나면
따로 생김과 없어짐도 없다.
010_0822_a_02L因緣數和合
則有生有滅
離諸因緣數
無別有生滅

인연을 버리고 벗어나면
다시 다른 성품이 없으니
같음과 다름을 말하면
이는 외도의 망상이다.
010_0822_a_03L捨離因緣數
更無有異性
若言一異者
是外道妄想

있음[有]과 없음[無]의 성품 생기지 않으니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수(數)가 전변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는 모두 얻을 수 없다.
010_0822_a_04L有無性不生
非有亦非無
除其數轉變
是悉不可得

단지 모든 세속법이 있어
전전하며 사슬이 될 뿐이니
저 인연의 사슬을 벗어나면
생긴다는 뜻을 얻을 수 없다.
010_0822_a_06L但有諸俗數
展轉爲鉤鎖
離彼因緣鎖
生義不可得

생김은 성품이 없어 일어나지 않으므로
모든 외도의 허물을 벗어나지만
연(緣)의 사슬만 말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확실히 알지 못한다.
010_0822_a_07L生無性不起
離諸外道過
但說緣鉤鎖
凡愚不能了

연의 사슬을 벗어나
따로 성품의 생김이 있다고 하면
이는 곧 무인론(無因論)이니
사슬[鉤鎖]의 뜻을 깨뜨리는 것이다.
010_0822_a_08L若離緣鉤鎖
別有生性者
是則無因論
破壞鉤鎖義

등불이 여러 형상을 비추듯
사슬이 나타남도 그러하거늘
이는 곧 사슬을 벗어나
따로 다시 모든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010_0822_a_10L如燈顯衆像
鉤鎖現若然
是則離鉤鎖
別更有諸性

성품도 없고 생김도 없어
허공(虛空)의 자성과 같으니
사슬을 벗어나면
지혜[慧]가 분별할 것도 없도다.
010_0822_a_11L無性無有生
如虛空自性
若離於鉤鎖
慧無所分別

다시 다른 무생(無生)이 있으니
현성(賢聖)이 얻는 법이다.
저 생김이란 무생이니‘저 생김’이란 4상(相)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곧 무생인(無生忍)이다.
010_0822_a_12L復有餘無生
賢聖所得法
彼生無生者彼生是四相生
是則無生忍

만약 모든 세상 사람이
사슬을 관찰하여
모두 사슬을 벗어난다면
이로부터 삼매(三昧)를 얻으리라.
010_0822_a_14L若使諸世閒
觀察鉤鎖者
一切離鉤鎖
從是得三昧

어리석음과 애착과 모든 업 등
이는 곧 안의 사슬이며
찬(攢)ㆍ수(燧)ㆍ진흙덩이ㆍ바퀴
종자 등을 바깥의 사슬이라 한다.
010_0822_a_15L癡愛諸業等
是則內鉤鎖
攢燧泥團輪
種子等名外

만약 다른 성품이 있어
인연으로 생긴다면
저 사슬의 뜻이 아닐 것이니
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010_0822_a_16L若使有他性
而從因緣生
彼非鉤鎖義
是則不成就

만일 생기는 것이 자성이 없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사슬이 될까?
전전하며 서로 생기기 때문이니
인연의 이치인 줄 알라.
010_0822_a_18L若生無自性
彼爲誰鉤鎖
展轉相生故
當知因緣義

생긴 것에 다른 성품이 있어
인연으로 생긴다면
저것은 사슬의 뜻이 아니니
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010_0822_a_19L使生有他性
而從因緣生
彼非鉤鎖義
是則不成就

딱딱함ㆍ축축함ㆍ따뜻함ㆍ움직임 이런 법은
어리석은 사람이 망상을 내는 것
수(數)를 떠나 다른 법이 없으면
이를 성품이 없다고 말한다.
010_0822_a_20L堅濕煖動法
凡愚生妄想
離數無異法
是則說無性

의사가 많은 병을 치료함에
여러 가지 논(論)이 없으나
병이 각기 다르기에
온갖 치료법을 쓰는 것과 같다.
010_0822_a_22L如醫療衆病
無有若干論
以病差別故
爲設種種治

나도 저 중생을 위해
모든 번뇌를 없애려고
그 근기의 우열을 알아
저들에게 건너는 문[度門]을 말한다.
010_0822_a_23L我爲彼衆生
破壞諸煩惱
知其根優劣
爲彼說度門
010_0822_b_02L
번뇌의 뿌리가 다를 뿐
갖가지 법이 있는 것 아니기에
오직 1승법(乘法)만 말하니
이것을 곧 대승이라 한다.
010_0822_a_24L非煩惱根異
而有種種法
唯說一乘法
是則爲大乘

이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든 외도들이 다 무상(無常)이라는 망상을 일으키는데, 세존께서도 역시 ‘모든 행(行)은 무상하니, 이것이 생멸법(生滅法)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뜻은 무엇입니까? 그릇된 것입니까, 바른 것입니까? 몇 종류의 무상이 있습니까?”
010_0822_b_03L爾時大慧菩薩摩訶薩復白佛言一切外道皆起無常妄想世尊亦說一切行無常是生滅法此義云何爲邪爲正爲有幾種無常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외도에는 일곱 종류의 무상이 있으니, 이는 내가 설한 법이 아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그들은 ‘만들고 나서 버리니, 이것을 무상이라고 한다’고 말하고, 또 ‘형처(形處)가 무너지니 이를 무상이라고 한다’고 말하고, ‘바로 물질[色]이 곧 무상이다’고 말한다.
010_0822_b_07L佛告大慧一切外道有七種無常非我法也等爲七彼有說言作已而捨是名無有說形處壞是名無常有說卽色是無常
‘물질이 전변(轉變)하는 중간을 무상이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틈이 없이 스스로 흩어지고 무너지는 것이 마치 우유와 낙(酪) 등과 같아서 전변하는 중간은 볼 수 없으나, 무상하여 모든 성품을 무너뜨리고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또 ‘성품이 무상하다’고 말하고, ‘성품[性]과 성품 없음[無性]이 무상하다’고 말하며, ‘모든 법은 생기지 않으므로 무상하여 모든 법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010_0822_b_11L有說色轉變中閒是名無常無閒自之散壞如乳酪等轉變中閒不可見無常毀壞一切性轉有說性無常有說性無性無常有說一切法不生無常入一切法
대혜야, ‘성품과 성품 없음이 무상하다’는 것은 4대(大)와 4대로 만들어진 것들은 자상(自相)이 무너지고, 4대의 자성(自性)은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 ‘생기지 않으므로 무상하다’는 것은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다. 모든 법은 있든 없든 생기지 않으므로 미진(微塵)까지 쪼개어도 볼 수가 없다. 이것은 생기지 않는다는 이치이며 생긴다는 것이 아니다. 이를 ‘생기지 않으므로 무상한 모습’이라고 한다. 만일 이를 깨닫지 못하면 모든 외도에 떨어져 무상하다는 뜻을 일으킨다.
010_0822_b_15L大慧性無性無常者謂四大及所造自相壞四大自性不可得不生彼不生無常者非常無一切法有無不生分扸乃至微塵不可見是不生義非生是名不生無常相若不覺此者墮一切外道生無常義
대혜야, ‘성품이 무상하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망상이니, 영원한 성품도 아니고 무상한 성품도 아니다. 왜냐하면 무상(無常)의 자성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010_0822_b_21L大慧性無常者是自心妄想常無常性所以者何謂無常自性不
010_0822_c_02L 대혜야, 이것이 바로 모든 성품과 성품 없음이 무상한 일[無常事]이라는 것이다. 무상을 제외하고는 모든 법의 성품을 성품이 없게 하는 것은 없다. 마치 몽둥이나 기와나 돌로 모든 물건을 깨뜨릴지라도 현전(現前)에서 각각 다르지 않음을 보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성품의 무상한 일’이다. 짓는 자와 지어진 것에 차별이 있는 것이 무상(無常)이고 이것이 사(事)라는 게 아니다. ‘짓는 자와 지어진 것에 다름이 없다’는 것은 모든 성품이 영원하여 인성(因性)이 없다는 것이다.
010_0822_b_23L大慧此是一切性無性無常事無常無有能令一切法性無性者杖瓦石破壞諸物現見各各不異性無常事非作所作有差別此是無此是事作所作無異者一切性常無因性
대혜야, 모든 성품과 성품 없음에는 인(因)이 있으나, 이는 어리석은 범부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슷하지 않은 것들이 인이 되어서 사(事)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만일 생긴다면 모든 성품은 다 무상할 것이다. 비슷하지 않은 것과 사(事)가 짓는 자와 지어진 것이 되지만 따로 다른 것이 없는데 모두들 다른 것이 있다고 본다.
010_0822_c_05L大慧一切性無性有因非凡愚所知非因不相似事生若生者切性悉皆無常是不相似事作所作無有別異而悉見有異
만일 성품이 무상하다면 짓는 인[作因]의 성품과 상(相)에 떨어진다. 만일 떨어진다면 모든 성품이 구경(究竟)이 아닐 것이며, 모든 성품이 짓는 인[作因]의 상(相)에 떨어진다면 무상 자체가 무상해야만 할 것이니, 무상도 무상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품이 무상하지 않다면 반드시 이것은 상(常)이어야 한다. 만일 무상이 모든 성에 들어간다면 반드시 3세에 떨어질 것이다. 저 과거의 물질이 무너졌으므로 미래에 생기지 않을 것이며, 물질이 생기지 않으므로 현재의 물질도 무너지는 모습과 함께할 것이다.
010_0822_c_08L若性無常墮作因性相若墮者一切性不究竟一切性作因相墮者自無常應無常無常無常故一切性不無常應是常若無常入一切性者應墮三世彼過去色與壞俱未來不生色不生故在色與壞相俱
물질이란 4대(大)가 모여진 차별이나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의 자성(自性)은 무너지지 않으니, 다르거나 다르지 않은 것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모든 외도의 4대는 무너지지 않으므로, 모든 3유(有)의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이 가는 곳마다 생기는 것과 없어지는 것이 있음을 안다.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을 벗어나면, 모든 외도가 어느 것을 무상(無常)하다고 생각하겠느냐? 4대는 생겨나지 않으니 자성의 모습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010_0822_c_14L色者四大積集差別四大及造色自性不壞離異不異故一切外道一切四大不壞一切三有四大及造色在所知有生滅離四大造色一切外道於何所思惟無常大不生自性相不壞故
처음 만든 자[始造]를 벗어나면, 무상이란 4대 안에 다시 다른 4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각각 다른 모습의 제 모습이니, 차별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저것이 차별이 없으므로 이것들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으니, 두 가지 방편을 짓지 않는다. 이것이 무상인 줄을 알아야 한다.
010_0822_c_19L離始造無常非四大復有異四大各各異相相故非差別可得彼無差別斯等不更造二方便不作當知是無常
010_0823_a_02L저 ‘형처(形處)가 무너져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이 무너지지 않아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혜야, ‘마지막까지’라 함은 쪼개어 미진이 되기까지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이 무너지는 것을 관찰하면 형처(形處)가 다르게 보이거나, 길고 짧은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니, 이는 4대가 아니다. 4대는 무너지지 않는다. 형처가 무너지는 것이 나타나면 수론(數論)에 치우치게 된다.
010_0822_c_22L彼形處壞無常者謂四大及造色不壞竟不壞大慧竟者分扸乃至微塵觀察壞四大及造色形處異見長短不可得非四大四大不壞形處壞現在數論
‘물질이 무상하다’는 것은 물질이 곧 무상한 것을 말한다. 저것은 형처(形處)가 무상한 것이지 4대가 무상한 것이 아니다. 만약 4대가 무상하다고 하면 세속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속의 말로는 ‘성품이 아니다[非性]’라고 하는 것이니, 이는 세론(世論)에 떨어진다.
010_0823_a_04L色卽無常者謂色卽是無常彼則形處無常非四大若四大無常非俗數言說世俗言說非性者墮世論
모든 성품을 보면 단지 말만 있을 뿐인데, 자기 모습이 전변(轉變)하여 무상한 것을 생기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는 물질이 성품과 다른 것으로 나타나므로 4대가 아니라고 한다. 마치 금으로 장엄구(莊嚴具)를 만들어 모습이 변해 나타나면, 이는 금의 성품이 파괴된 것이 아니고 단지 장엄구로 모양만 변한 것과 같다. 처소(處所)가 파괴되는 것도 이와 같다.
010_0823_a_07L見一切性但有言說不見自相生轉變無常者謂色異性現非四如金作莊嚴具轉變現非金性壞但莊嚴具處所壞
나머지 성품이 전변되는 것 등도 역시 이와 같다. 이와 같은 등의 온갖 외도의 무상하다는 견해는 망상이다, 불이 4대를 태울 때 자상(自相)은 타지 않는다. 각각의 자상이 서로 무너진다면 4대와 만들어진 물질은 반드시 끊어져야 할 것이다.
010_0823_a_10L如是餘性轉變等亦如是如是等種種外道無常見妄想火燒四大時自相不燒各各自相相壞者四大造色應斷
대혜야, 내가 설한 법은 일어나되[起],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다. 왜냐하면 바깥 경계의 성품은 결정(決定)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3유(有)와 미세한 마음만 말할 뿐, 갖가지 모습의 생김과 없어짐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010_0823_a_13L大慧我法起非常非無常所以者何謂外性不決定故惟說三有微心不說種種相有生有滅
4대가 화합하는데 차별이 있으니, 4대와 4대로 만들어진 물질이기 때문이다. 망상에 두 가지 일이 있으니,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두 가지가 망상인 줄을 알고, 바깥 경계의 성품이 있다거나 성품이 없다는 두 가지 견해를 벗어나 자심 현량의 망상인 줄 깨닫는 자는, 생각해서 행(行)을 지어 행을 짓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성품이 있다거나 성품이 없다는 망상을 벗어난다. 세간과 출세간에서 가장 높은 모든 법이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어서 자심의 현량인 줄 깨닫지 못하고, 두 극단에 떨어져 악한 견해가 끊임없이 계속되는데도 모든 외도들은 자기의 망상을 깨닫지 못한다.
010_0823_a_16L四大合會差別四大及造色故妄想二種事攝所攝知二種妄想離外性無性二種見覺自心現量想者思想作行生非不作行離心性無性妄想世間出世間上上一切法非常非無常不覺自心現量墮二邊惡見相續一切外道不覺自妄想
이것은 범부가 근본이 없어 세간과 출세간의 가장 높은 법이라고 하며 말에 따라 망상을 일으키는 것이니, 어리석은 범부가 깨달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010_0823_a_22L凡夫無有根本謂世閒出世閒上上法從說妄想生非凡愚所覺
이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23_a_24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010_0823_b_02L
처음 만든 자를 멀리 벗어나고
또한 형처(形處)가 다르다며
성품과 물질이 무상하다고 하니
이는 외도의 어리석은 망상이다.
010_0823_b_02L遠離於始造
及與形處異
性與色無常
外道愚妄想

모든 성품이란 무너짐이 없는 것
크고 큰 자성(自性)이 머무르는데
외도는 무상하다고 생각하며
온갖 견해에 빠진다.
010_0823_b_04L諸性無有壞
大大自性住
外道無常想
沒在種種見

저 모든 외도들
없다고 하고 생긴다거나 없어진다고 하는데
크고 큰 성품은 스스로 영원하니
무엇을 무상하다고 생각하는가?
010_0823_b_05L彼諸外道等
無若生若滅
大大性自常
何謂無常想

모든 것은 오직 심량(心量)이니
두 가지 마음이 유전(流轉)하며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것일 뿐
나[我]도 나의 것[我所]도 없다.
010_0823_b_06L一切唯心量
二種心流轉
攝受及所攝
無有我我所

범천(梵天)이 뿌리가 되어
가지가 되어 두루 덮듯이
내가 말한 것도 이와 같아
오직 저 심량(心量)일 뿐이다.
010_0823_b_08L梵天爲樹根
枝條普周遍
如是我所說
惟是彼心量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모든 보살과 성문과 연각이 멸정수(滅正受)에 이르고 상속하는 차례를 말씀해 주십시오. 만약 멸정수의 상속하는 차례를 잘 알면 저를 비롯한 나머지 보살들은 끝내 멸정수의 즐거움이라는 문(門)을 망령되게 버리지 않을 것이며, 모든 성문이나 연각이나 외도의 어리석음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010_0823_b_09L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世尊惟願爲說一切菩薩聲聞緣覺滅正受次第相續若善於滅正受次第相續相我及餘菩薩終不妄捨滅正受樂不墮一切聲聞緣覺外道愚癡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희를 위해 말하겠다.”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010_0823_b_14L告大慧諦聽諦聽善思念之當爲汝大慧白佛言世尊惟願爲說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6지(地)에서 보살마하살과 성문과 연각이 멸정수에 들기 시작한다. 제7지의 보살마하살은 생각마다 정수(正受)에 들어서 모든 성자성(性自性)의 모습을 벗어나는 정수에 드니, 성문이나 연각과는 다르다.
010_0823_b_16L佛告大慧六地起菩薩摩訶薩及聲聞入滅正受第七地菩薩摩訶薩念正受離一切性自性相正受非聲緣覺
모든 성문과 연각은 있다는 생각에 치우쳐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행하며 멸정수에 든다. 그러므로 7지는 염정수(念正受)가 아니니, 모든 법의 차별 없는 모습을 얻는 것은 그 분(分)이 아니어서 모든 상성(相性)을 얻고, 일체법선불선성상정수(一切法善不善性相正受)를 깨달을 뿐이다. 그러므로 7지는 선념정수(善念正受)가 없다.
010_0823_b_20L諸聲聞緣覺墮有行攝所攝相滅正受是故七地非念正受得一切法無差別相非分得種種相性一切法善不善性相正受是故七地無善念正受
010_0823_c_02L대혜야, 8지 보살과 성문과 연각은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의 망상된 모습이 없어진다. 초지(初地)에서 7지에 이르는 보살마하살은 삼계가 심ㆍ의ㆍ의식의 양(量)임을 관찰하고 나와 나의 것을 벗어나지만, 자기 망상을 닦아 바깥 경계의 성품이라는 온갖 모습에 떨어진다. 어리석은 범부는 두 가지 자기 마음 즉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으므로, 무지(無知)로 향하면서 끝없는 옛날부터 허물과 악과 거짓된 습기에 의해 훈습된 것인 줄 깨닫지 못한다.
010_0823_b_24L大慧八地菩薩及聲聞緣覺意識妄想相滅初地乃至七地菩薩摩訶薩觀三界心意識離我我所自妄想修墮外性種種愚夫二種自心攝所攝向無知覺無始過惡虛僞習氣所薰
대혜야, 8지 보살마하살은 성문과 연각의 열반이니, 보살이란 삼매각(三昧覺)의 보호를 받으므로, 삼매문(三昧門)을 즐기고 열반에는 들지 않는다. 만일 보호받지 않는다면, 여래지(如來地)를 만족하지 못하고 모든 중생을 위한 모든 일을 버릴 것이므로 부처의 종자가 끊어지리라. 모든 부처님 세존이 여래의 불가사의하고 한량없는 공덕을 보여 주는데도 성문과 연각은 삼매문에서 얻은 즐거움에 이끌려 열반이라는 생각을 한다.
010_0823_c_06L大慧地菩薩摩訶薩聲聞緣覺涅槃菩薩三昧覺所持是故三昧門樂不般涅槃若不持者如來地不滿足棄捨一切爲衆生事佛種則斷諸佛世尊爲示如來不可思議無量功德聲聞緣覺三昧門得樂所牽故作涅槃想
대혜야, 내가 나눈 7지는 심ㆍ의ㆍ의식의 모습을 잘 닦고, 나와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들,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 생멸하는 것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잘 닦아 4무애(無碍)의 확고한 힘을 가진 삼매문에 능통해 지위가 차례로 상속하고 도품법(道品法)에 들어가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자상과 공상을 깨닫지 못하거나 7지를 잘 알지 못하여 외도의 그릇된 길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위를 차례로 세운 것이다.
010_0823_c_12L大慧我分部七地善修心意識相善修我我所攝受人法無我生滅自共相善四無㝵決定力三昧門地次第相續入道品法不令菩薩摩訶薩不覺自共相不善七地墮外道邪徑立地次第
대혜야, 저것이 실은 생멸이 없는 것이니, 자심(自心)의 현량(現量)일 뿐이다. 차례로 상속하는 지위와 삼계의 온갖 행을 어리석은 범부는 깨달을 수 없다. 어리석은 범부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은, 나와 모든 부처가 말한 지위의 차례와 상속과 그리고 삼계의 갖가지 행을 말한다.
010_0823_c_18L大慧彼實無有若生若滅除自心現量所謂地次第相續及三界種種行愚夫所不覺愚夫所不覺謂我及諸佛說地次第相續及說三界種種行
또 대혜야, 성문이나 연각이나 제8 보살지(菩薩地)에서는 멸삼매(滅三昧)의 즐거움이라는 술에 취해 자심의 현량임을 능통하지 못하고, 자상과 공상의 습기에 가리며, 인(人)과 법(法)이 무아(無我)여서 모두 법에 포섭된다는 견해에 떨어져 망상으로 열반이라는 생각을 하니, 적멸한 지혜의 깨달음이 아니다.
010_0823_c_22L復次大慧聲聞緣覺八菩薩地滅三昧樂門醉所醉不善自心現量自共相習氣所障墮人法無我法攝受見妄想涅槃想非寂滅智慧覺
010_0824_a_02L 대혜야, 보살이란 멸삼매문(滅三昧門)의 즐거움을 보고도 본원(本願)으로 불쌍히 여겨 커다란 자비심을 성취해 10무진구(無盡句)를 분별해 알며, 망상으로 열반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이미 열반이라는 망상이 생기지 않는 까닭에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망상을 벗어난다. 자심의 현량을 명료하게 깨달아 모든 법에 대해 망상이 생기지 않으므로 심ㆍ의ㆍ의식으로 바깥 경계의 성자성(性自性)의 모습에 계착하는 망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010_0824_a_03L大慧菩薩者見滅三昧門樂本願哀愍大悲成就知分別十無盡不妄想涅槃想彼已涅槃妄想不生故離攝所攝妄想覺了自心現量一切諸法妄想不生不墮心意識外性自性相計著妄想
불법(佛法)의 인(因)이 아니면 지혜가 생기지 않으니, 지혜를 따라야 여래의 자각지(自覺地)에 태어날 수 있다. 마치 사람이 꿈에서 방편(方便)으로 물을 건너다가 미처 건너기 전에 깨어나서 ‘바른 방편인가, 그릇된 방편인가’를 생각하지만 바른 것도 아니고 그릇된 것도 아닌 것과 같다. 그 밖에 끝없는 옛날부터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의 인(因)이 되는 것은 생각이므로, 온갖 습기와 온갖 형처가 생각이 있고 없는 데 따라, 심ㆍ의ㆍ의식의 꿈에 나타난다.
010_0824_a_08L非佛法因不隨智慧生得如來自覺地如人夢中方便度水未度而覺覺已思惟正爲邪非正非邪餘無始見聞覺識因想種種習氣種種形處墮有無想意識夢現
대혜야,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제8 보살지에서 망상이 생기는 것을 본다. 초지(初地)에서 점점 나아가 제7지(地)에 이를 때까지는 ‘모든 법은 환(幻)과 같다’는 등의 방편을 알아 받아들이고 받아들여지는 마음의 망상의 행을 건넌다. 그러고 나서 불법(佛法)의 방편을 써서 얻지 못한 사람을 얻게 한다.
010_0824_a_13L大慧如是菩薩摩訶於第八菩薩地見妄想生從初地轉進至第七地見一切法如幻等便度攝所攝心妄想行已作佛法方便未得者令得
대혜야, 이것이 곧 보살의 열반이니, 방편이라는 생각을 품지 않고 심ㆍ의ㆍ의식을 벗어나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대혜야, 제일의(第一義)에는 상속하는 차례가 없으니, 모든 망상이 없는 것을 적멸한 법이라고 한다.”
010_0824_a_17L大慧此是菩薩涅槃方便不懷離心意識得無生法忍大慧於第一義無次第相續說無所有妄想寂滅法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24_a_20L爾時世尊欲重宣此而說偈言

심량(心量)이 없는 것
여기에 머물면 불지(佛地)에 이른다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
3세의 모든 부처님이 말한다.
010_0824_a_21L心量無所有
此住及佛地
去來及現在
三世諸佛說

심량의 지위는 제7지이고
소유(所有)가 없는 것은 제8지이니
두 지위를 주(住)라 하고
불지(佛地)를 최승(最勝)이라 한다.
010_0824_a_23L心量地第七
無所有第八
二地名爲住
佛地名最勝

스스로 깨닫는 지혜와 깨끗함
이것이 곧 나의 자리이니
자재(自在)하고 가장 훌륭한 곳
청정하고 묘하게 장엄하였다.
010_0824_a_24L自覺智及淨
此則是我地
自在最勝處
淸淨妙莊嚴
010_0824_b_02L
왕성한 불꽃처럼 밝게 비치니
광명이 모든 곳에 두루 이르며
타오르는 불꽃 눈을 상하게 하지 않고
두루 돌며 3유(有)를 교화하네.
010_0824_b_02L照曜如盛火
光明悉遍至
熾炎不壞目
周輪化三有

현재의 3유를 교화시키고
혹 과거에도 교화해
거기에서 승(乘)을 연설하니
모두 이 여래지(如來地)이다.
010_0824_b_04L化現在三有
或有先時化
於彼演說乘
皆是如來地

10지가 곧 초지(初地)가 되고
초지가 곧 8지가 되며
제9지가 곧 7지가 되고
7지 역시 다시 8지가 된다.
010_0824_b_05L十地則爲初
初則爲八地
第九則爲七
七亦復爲八

제2지가 제3지가 되고
제4지가 제5지가 되며
제3지가 제6지가 되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무슨 차례 있겠는가.
010_0824_b_06L第二爲第三
第四爲第五
第三爲第六
無所有何次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영원합니까[常], 무상합니까[無常]?”
010_0824_b_08L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世尊如來應供等正覺爲常無常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상(常)도 아니고 무상(無常)도 아니니, 둘 다 허물이 있다. 상(常)에는 짓는 자[作者]가 있다는 허물이 있다. 상이란 모든 외도가 ‘짓는 자[作者]는 만들어진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상(常)이기도 하고 비상(非常)이기도 하니, 짓는 자는 항상 있다는 허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여래가 무상하다면 짓는 자가 무상하다는 허물이 있다. 음(陰)은 형상과 형상이 나타내는 것의 본성이 없으므로 음이 무너지면 끝나야 할 것이나, 여래는 끝나지 않는다.
010_0824_b_10L佛告大慧應供等正覺非常非無常謂二俱有過常者有作主過常者一切外道說作者無所作是故如來常非常作常有過故若如來無常者有作無常過陰所相相無性陰壞則應斷如來不斷
대혜야, 모든 지어진 것[所作]은 무상하여 병(甁)이나 옷[衣] 등과 같다고 하면, 모두 다 영원하다[常]는 허물은 없다. 그러나 일체지(一切智)의 여러 가지 방편에는 의(義)가 없다는 허물이 있으니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며, 모든 지어진 것[所作]은 반드시 이 여래이어야 할 것이니 차별된 인성(因性)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혜야, 여래는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다.
010_0824_b_16L大慧一切所作皆無常甁衣等一切皆無常過一切智衆具方便應無義以所作故一切所作皆應是如來無差別因性故是故大慧如來非常非無常
또 대혜야, 여래는 허공과 같은 상이 아니다. 허공과 같은 상이라면, 자각성지(自覺聖智)의 여러 가닥이 의(義)가 없다는 허물이 있다. 대혜야, 이는 마치 허공이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닌 것과 같아, 상과 무상, 같음과 다름, 함께함과 함께하지 않음을 벗어나니, 상이라거나 무상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으며 따라서 여래는 상이 아니다.
010_0824_b_20L復次大慧如來非如虛空常如虛空常者自覺聖智衆具無義過大慧譬如虛空非常非無離常無常一異俱不俱常無常過故不可說是故如來非常
010_0824_c_02L 또 대혜야, 만약 여래가 생김이 없어서 상이라면, 이는 마치 토끼나 말 등의 뿔과 같을 것이니, 생김이 없어서 상이기 때문에 방편에 의(義)가 없는 허물이 된다. 생김이 없으므로 상이라는 허물이 있기 때문에, 여래는 상이 아니다.
010_0824_b_24L復次大慧若如來無生常者如兔馬等角以無生常故方便無義以無生常過故如來非常
또 대혜야, 다시 다른 일이 있어 여래가 상인 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얻은 지혜가 영원한 까닭에 여래는 상이다. 대혜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건 세상에 출현하지 않건 간에 법은 끝내 일정하게 머물며, 성문이나 연각이나 모든 부처님 여래는 무간(無間)에 머물지 허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어리석은 범부가 깨달을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010_0824_c_04L復次大慧更有餘事知如來常所以者何謂無閒所得智常如來常大慧若如來出世若不出世法畢定住聲聞緣覺諸佛如來無閒不住虛空亦非愚夫之所覺知
대혜야, 여래가 얻은 지혜는 곧 반야(般若)로 훈습된 것이다. 대혜야, 여래는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이나 저 모든 음(陰)ㆍ계(界)ㆍ입처(入處)에 의해 훈습된 것이 아니다. 대혜야, 모든 3유는 다 진실하지 않은 망상(妄想)으로 생긴 것이나, 여래는 진실하지 않고 헛된 망상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010_0824_c_08L如來所得智是般若所熏大慧來非心意識彼諸陰入處所熏大慧一切三有皆是不實妄想所生如來不從不實虛妄想生
대혜야, 두 가지 법 때문에 상과 무상이 있으니, 불이(不二)가 아니다. 불이란 적정(寂靜)이니, 모든 법의 두 가지 생기는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다.
010_0824_c_12L大慧以二法故有常無常非不二不二者寂靜一切法無二生相故是故如來應供等正覺非常非無常
대혜야, 말로써 분별이 생기므로 곧 상과 무상이라는 허물이 있으니, 분별각(分別覺)이 없어지면 어리석은 사람의 상이라거나 무상이라는 견해를 벗어난다. 적정한 지혜[慧]는 영원히 상과 무상을 벗어나니 상이나 무상에 훈습되는 것이 아니다.”
010_0824_c_15L大慧乃至言說分別生則有常無常過分別覺滅者則離愚夫常無常見寂靜慧者離常無常非常無常熏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24_c_18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중구무의(衆具無義)란
생(生)함이 상(常)이건 무상(無常)이건 허물이라는 말이니
분별각(分別覺)이 없다면
영원히 상과 무상을 벗어나리라.
010_0824_c_19L衆具無義者
生常無常過
若無分別覺
永離常無常

그 세운 종(宗)에 따라
여러 많은 뜻이 있게 되니
자심의 현량을 평등하게 보라.
말로는 얻을 수 없느니라.
010_0824_c_21L從其所立宗
則有衆雜義
等觀自心量
言說不可得
010_0825_a_02L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다시 저희를 위해 음(陰)ㆍ계(界)ㆍ입(入)의 생김과 없어짐을 말씀해 주십시오. 내[我]가 없다면 누가 생기고, 누가 없어집니까? 어리석은 범부는 생기고 없어지는 데 의지하므로 고통이 다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열반을 알지 못합니다.”
010_0824_c_22L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世尊惟願世尊更爲我說陰界入生滅彼無有誰生誰滅愚夫者依於生滅不覺苦盡不識涅槃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자세히 들어라. 너를 위해 말하겠다.”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010_0825_a_03L佛言善哉諦聽當爲汝說大慧白佛言唯然受教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장(藏)이 선(善)과 불선(不善)의 인(因)이니, 능히 두루 모든 중생취(衆生趣)를 만들어 낸다. 이는 마치 광대가 변화로 모든 중생취를 나타내는 것과 같아 나와 나의 것을 벗어나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에 세 가지 연(緣)이 화합한다는 방편이 생겼는데, 외도가 깨닫지 못하고 짓는 자[作者]라고 계착한다.
010_0825_a_04L佛告大如來之藏是善不善因能遍興造一切趣生譬如伎兒變現諸趣我我所不覺彼故三緣和合方便而外道不覺計著作者
끝없는 옛날부터 거짓된 악습(惡習)에 훈습된 것을 식장(識藏)이라 하니, 무명주지(無明住地)를 일으키고 7식(識)과 함께하며 마치 바다와 물결같이 몸이 항상 생겨 끊이지 않는다. 무상의 허물을 벗어나 있고 나[我]라는 주장을 벗어나 있어 자성(自性)이 무구(無垢)하여 끝내 청정(淸淨)하다. 그 밖의 다른 식(識)들은 생김이 있고 없어짐이 있으니, 의(意)와 의식(意識) 등 생각마다 일곱 가지가 있다.
010_0825_a_08L爲無始虛僞惡習所薰名爲識藏生無明住地七識俱如海浪身常生不斷離無常離於我論自性無垢畢竟淸淨諸餘識有生有滅意識等念念有
진실하지 않은 망상으로 인하여 모든 경계의 온갖 형처(形處)를 취하여 이름이나 모습에 계착하면, 자기 마음이 나타내는 물질의 모습인 줄 깨닫지 못하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깨닫지 못하며, 해탈에 이르지 못하고, 이름과 모습의 모든 얽매임에서 삶을 탐하고 탐욕을 내게 된다. 인(因)이건 반연(攀緣)이건 저 모든 느끼는 감관[受根]이 없어지면 차례로 생기지 않으며, 자기 마음의 망상을 없애면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지 못하여 멸수상정수(滅受想正受)와 제4선(禪)에 들어가며, 진제해탈(眞諦解脫)을 잘 이룬다. 수행하는 사람이 해탈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벗어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不離不轉]을 여래장식장(如來藏識藏)이라고 한다.
010_0825_a_13L因不實妄想取諸境界種種形處計著名相不覺自心所現色相不覺苦樂不至解脫名相諸纏貪生生貪若因若攀緣彼諸受根滅次第不生除自心妄想不知苦樂入滅受想正第四禪善眞諦解脫修行者作解脫想不離不轉名如來藏識藏
7식은 유전하되 없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이 되어 반연한 모든 식에 생기기 때문이니, 성문이나 연각의 수행하는 경계가 아니다. 무아(無我)를 깨닫지 못하고 자상과 공상을 받아들이면 음(陰)ㆍ계(界)ㆍ입(入)이 생긴다. 여래장(如來藏)을 보면 다섯 가지 법의 자성(自性)과 인(人)과 법(法)이 무아여서 없어지며, 지위가 차례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므로 나머지 외도의 견해로는 경동(傾動)시킬 수 없다. 이를 보살이 부동지(不動地)에 머무는 것이라고 하니, 열 가지 삼매도문(三昧道門)의 즐거움을 얻고 삼매각(三昧覺)에 의해 유지된다.
010_0825_a_19L七識流轉不滅所以者何彼因攀緣諸識生故非聲聞緣覺修行境界不覺無自共相攝受生陰界入見如來藏法自性人法無我則滅地次第相續轉進餘外道見不能傾動是名住菩薩不動地得十三昧道門樂三昧覺所持
010_0825_b_02L 부사의한 불법의 원(願)을 관찰하고는 삼매문(三昧門)의 즐거움과 실제(實際)를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깨닫는 성인(聖人)의 무리로 향한다. 모든 성문이나 연각, 외도가 수행하는 모든 도(道)와는 같지 않으니, 10현성(賢聖)의 종성(種性)의 도와 뜻대로 나타나는 몸과 지혜를 얻어 삼매행(三昧行)을 벗어난다.
010_0825_b_03L觀察不思議佛法自願不受三昧門樂及實際向自覺聖趣不共一切聲聞緣覺及諸外道所修行道十賢聖種性道及身智意生離三昧
그러므로 대혜야, 보살마하살이 훌륭하게 전진하기를 구한다면 장식(藏識)인 여래장을 깨끗이 해야 한다. 대혜야, 만일 식장(識藏)이 없다면 여래장은 생김과 없어짐이 없을 것이다. 대혜야, 그러나 범부와 성인은 모두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이 있으니, 수행자는 스스로 깨달은 성인의 무리 속으로 나아가, 현재의 법에 즐거이 머물며[現法樂住] 방편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010_0825_b_07L是故大慧菩薩摩訶薩欲求勝進當淨如來藏及藏識名大慧若無識藏名如來藏者則無生滅大慧諸凡聖悉有生滅修行者自覺聖趣現法樂住不捨方便
대혜야, 이 여래장식장(如來藏識藏)은 모든 성문이나 연각이 심상(心想)으로 보는 것이다. 비록 자성이 청정하나 객진(客塵)에 덮인 까닭에 오히려 청정하지 못한 것을 보니, 모든 여래의 경지는 아니다. 대혜야, 여래에겐 현전(現前)의 경계가 마치 손바닥 안에 있는 아마륵(阿摩勒) 열매를 보는 것과 같다.
010_0825_b_11L大慧此如來藏識藏一切聲聞緣覺心想所見雖自性淨客塵所覆故猶見不淨非諸如大慧如來者現前境界猶如掌中視阿摩勒果
대혜야, 나는 이 뜻을 신통력으로 건립하여, 승만부인(勝鬘夫人)과 예리한 지혜가 가득한 보살 등에게 식장인 여래장이 7식과 함께 생긴다는 사실을 널리 펴서 연설하게 하였다. 성문이 계착하여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를 보는 까닭에 승만부인이 부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아 여래의 경계를 설명한 것이니, 이는 성문이나 연각이나 외도의 경계가 아니다.
010_0825_b_15L大慧我於此義以神力建立令勝鬘夫人及利智滿足諸菩薩等宣揚演說如來藏及識藏名與七識俱生聲聞計著見人法無我故勝鬘夫人承佛威神說如來境界非聲緣覺及外道境界
여래장식장은 오직 부처와 그 밖의 예리한 지혜로 이치에 의지하는[依義] 보살 지혜의 경계이다. 그러므로 너를 비롯한 나머지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장식장을 열심히 배우고 닦아야 할 것이니, 듣고 깨닫는 것만으로 만족하다는 생각을 내지 말라.”
010_0825_b_20L如來藏識藏佛及餘利智依義菩薩智慧境界故汝及餘菩薩摩訶薩於如來藏識當勤修學莫但聞覺作知足想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25_b_23L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010_0825_c_02L
깊고 깊은 여래장(如來藏)
7식(識)과 함께하여
두 가지가 생(生)을 받아들이니
지혜로운 이는 멀리 벗어난다.
010_0825_b_24L甚深如來藏
而與七識俱
二種攝受生
智者則遠離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마음이 나타나니
끝없는 옛날부터 훈습되어 온 것
여실(如實)하게 관찰하면
모든 사(事)란, 실은 사가 없는 것이다.
010_0825_c_03L如鏡像現心
無始習所薰
如實觀察者
諸事悉無事

어리석은 사람, 달을 가리켜 보이면
손가락만 보고 달은 보지 못하니
명자(名字)에 계착하는 자는
나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
010_0825_c_04L如愚見指月
觀指不觀月
計著名字者
不見我眞實

마음은 광대 같고
뜻[意]은 광대의 조수[和伎者] 같으며
5식(識)으로 반려(伴侶)를 삼고
망상으로 구경꾼을 삼는다.
010_0825_c_05L心爲工伎兒
意如和伎者
五識爲伴侶
妄想觀伎衆

이때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다섯 가지 법의 자성식(自性識)과 두 가지 무아(無我)의 구경(究竟)의 차별된 모습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를 비롯한 나머지 보살마하살들은 모든 지위를 차례로 상속하면서 이 법을 분별하여 모든 불법(佛法)에 들어갈 것이며, 모든 불법에 들어가서는 여래께서 스스로 깨달은 지위에 이를 것입니다.”
010_0825_c_07L爾時大慧菩薩白佛言世尊惟願爲說五法自性二種無我究竟分別我及餘菩薩摩訶薩於一切地次第相續分別此法入一切佛法入一切佛法者乃至如來自覺地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010_0825_c_12L佛告大諦聽諦聽善思念之大慧白佛然受教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의 자성식과 두 가지 무아의 차별된 갈래의 모습이란, 이름[名]과 모습[相]과 망상(妄想)과 바른 지혜[正智]와 여여(如如)를 말한다. 만일 수행자가 수행하여 여래의 자각성취(自覺聖趣)에 들어간다면 단견(斷見)과 상견(常見), 유견(有見)과 무견(無見)을 벗어나고 현재법의 즐거움을 누리는 정수[現法樂正受]에 머물 것이다. 대혜야, 저 다섯 가지 법의 자성식과 두 가지 무아(無我)가 자기 마음이 나타낸 바깥 경계의 성품인 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범부의 망상 때문이니, 모든 성현(聖賢)의 경지는 아니다.”
010_0825_c_14L佛告大慧五法自性二無我分別趣相者謂名妄想正智若修行者修行入如來自覺聖趣離於斷常有無等見現法樂正受住現在前大慧不覺彼五法自性無我自心現外性凡夫妄想非諸賢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에게는 망상이 생기고, 모든 성현에게는 생기지 않습니까?”
010_0825_c_20L大慧白佛言世尊云何愚夫妄想非諸賢聖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범부는 세속법[俗數]의 이름과 모습에 계착하여 마음이 따라 흘러서 흩어지며, 흩어지고 난 후 온갖 모습과 형상을 보므로 나와 나의 것이라는 견해에 치우치며, 묘한 물질[妙色]을 희망하고 계착한다. 계착하고 나면 무지(無知)가 덮고 가려 염착(染着)을 일으키며, 염착하고 나면 탐욕과 성냄으로 지은 업이 쌓이고, 쌓이고 나면 망상에 스스로 얽히니 마치 누에가 고치를 짓는 것과 같다.
010_0825_c_21L佛告大慧愚夫計著俗數名相隨心流散流散已種種相像墮我我所見悕望計著妙色計著無知覆障生染著染著已貪恚所生業積集積集已妄想自纏如蠶作
010_0826_a_02L 생사의 바다와 모든 취(趣)의 광야에 떨어지는 것이 마치 우물의 도르래와 같건만, 어리석은 까닭에 환(幻)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물에 비친 달과 같이 자성(自性)이 나[我]와 나의 것[我所]을 벗어난 줄을 알지 못하고, 온갖 진실하지 못한 망상을 일으킨다. 형상과 형상이 나타내는 것, 생기고 머물고 없어짐을 벗어나건만 자심(自心)의 망상으로 일으키고, 자재천(自在天)이나 시절(時節)이나 미진(微塵)이나 승묘(勝妙)에서 생기는 것이 아닌데 어리석은 범부는 이름과 모습을 따라 유전(流轉)한다.
010_0826_a_03L墮生死海諸趣曠野如汲井輪愚癡故不能知如幻野馬水月自性離我我所起於一切不實妄想離相所相及生住滅從自心妄想生非自時節微塵勝妙生愚癡凡夫隨名相流
대혜야, 그 모습[相]이란 다음과 같다. 안식(眼識)이 비추는 것을 빛깔[色]이라 하고,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으로 비추는 것을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ㆍ법(法)이라고 하는 것이니, 이를 모습[相]이라고 한다.
010_0826_a_08L大慧彼相者眼識所照名爲色耳鼻舌身意識所照名爲聲香味觸是名爲相
대혜야, 저 망상이란 여러 가지 이름을 시설하여 모든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니, 코끼리나 말이나 수레나 걸어 다니는 남자나 여자 등의 이름[名]과 다름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을 망상이라고 한다.
010_0826_a_10L大慧彼妄想者施設衆顯示諸相如此不異象馬車步男女等名是名妄想
대혜야, 바른 지혜[正智]란 저 이름이나 모습을 얻을 수 없는 것이 마치 지나가는 손님과 같다고 여기는 것이다. 모든 식은 생기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고 항상 있지도 않으니, 모든 외도나 성문이나 연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010_0826_a_12L大慧正智者彼名相不可得猶如過客諸識不生不斷不常不墮一切外道聲聞緣覺之地
또 대혜야,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바른 지혜가 있음으로 이름이나 모습을 세우지 않으나, 이름과 모습을 세우지 않는 것도 아니다. 두 가지 소견, 즉 건립과 비방을 버리고 벗어나며, 이름과 모습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알면 이를 여여(如如)라고 한다.
010_0826_a_14L復次大慧菩薩摩訶薩以此正智立名相非不立名相捨離二見建立及誹謗知名相不生是名如如
대혜야, 여여에 머무는 보살마하살은 무소유(無所有)의 경계를 얻으므로 보살의 환희지(歡喜地)를 얻으며, 보살의 환희지를 얻고 나서 영원히 모든 외도의 나쁜 세계[惡趣]을 떠나 출세간의 세계에 바르게 머물고, 법상(法相)이 성숙하며, 환(幻)과 같은 모든 법을 분별하고, 법취상(法趣相)을 스스로 깨달아 모든 망령된 견해와 괴이한 모습을 여의며, 차례로 법운지(法雲地)까지 오르고 그 중간에 삼매(三昧)와 힘[力]과 자재(自在)와 신통(神通)을 열어서 편다.
010_0826_a_17L大慧菩薩摩訶薩住如如者得無所有境界故得菩薩歡喜地得菩薩歡喜地永離一切外道惡趣正住出世閒法相成熟分別幻等一切法自覺法趣相離諸妄見怪異相次第乃至法雲地於其中閒三昧力自在神通開敷
010_0826_b_02L 여래지(如來地)를 얻고 난 뒤에는 갖가지 변화로 두루 비추어 나타내 보임으로써 중생을 성숙시키니, 마치 물에 비치는 달과 같다. 구경(究竟)에 10무진구(無盡句)를 잘 만족하고 갖가지 뜻으로 이해하는 중생을 위해 분별하여 설법하며, 법신(法身)을 얻어 뜻으로 짓는 일[意所作]을 벗어난다. 이를 보살이 여여로 얻는 데에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010_0826_a_24L得如來地已種種變化圓照示現成熟衆生如水中月善究竟滿足十無盡句爲種種意解衆生分別說法身離意所作是名菩薩入如如所得
이때 대혜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세 가지 자성이 다섯 가지 법에 들어간다고 하십니까, 아니면 각각의 자상종(自相宗)이 있다고 하십니까?”
010_0826_b_05L爾時大慧菩薩白佛言世尊云何世尊爲三種自性入於五法爲各有自相宗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자성과 8식(識)과 두 가지 무아(無我)가 모두 다섯 가지 법에 들어간다.
대혜야, 저 이름[名]과 모습[相]은 망상자성(妄想自性)이다. 대혜야, 만약 저 망상에 의지해서 마음과 마음법이 생긴다면 이름이 동시에 생길 것이니, 마치 햇빛이 온갖 모습을 갖추었으나 각각 다르게 분별해서 가지는 것과 같다. 이를 연기자성(緣起自性)이라고 한다. 대혜야, 바른 지혜와 여여(如如)는 무너질 수 없으므로 성자성(成自性)이라고 한다.
010_0826_b_08L佛告大慧三種自性及八識種無我悉入五法大慧彼名及相妄想自性大慧若依彼妄想生心心名俱時生如日光俱種種相各別分別持是名緣起自性大慧正智如如者不可壞故名成自性
또 대혜야, 자기 마음이 나타내는 망상을 여덟 가지로 분별하니, 식장(識藏)과 의(意)와 의식(意識)과 다섯 가지 식신(識身)이다. 상(相)이란 진실하지 못한 모습을 분별하는 것이므로,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라는 두 가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없어지면 두 가지 무아(無我)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대혜야, 이 다섯 가지 법이란 성문이나 연각이나 보살이나 여래의 자각성지(自覺聖智)의 모든 지위에 상속하는 차례이니, 모든 불법(佛法)이 다 이 속에 들어간다.
010_0826_b_13L復次大慧自心現妄想八種分別謂識藏識及五識身相者不實相妄想故我所二攝受滅二無我生是故大慧此五法者聲聞緣覺菩薩如來自覺聖智諸地相續次第一切佛法悉入其中
또 대혜야, 다섯 가지 법이란 모습[相]과 이름[名]과 망상(妄想)과 여여(如如)와 바른 지혜[正智]이다.
010_0826_b_19L復次大慧五法者妄想正智
모습이란 처소(處所)와 형상(形相)과 색상(色像) 등이 나타나는 것이니, 이를 모습이라고 한다. 만일 저기에 이와 같은 모습이 있는데 병(甁) 등이라고 하면, 이것이 곧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이름이라고 한다. 여러 이름을 지어 모든 모습, 즉 병(甁) 등과 마음[心]과 마음법[心法] 등을 현시하면, 이것을 망상이라고 한다. 저 이름과 저 모습을 필경에 얻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깨달음[覺]도 없고 모든 법에 전전함이 없어, 진실하지 못한 망상을 벗어나는 것을 여여라고 한다.
010_0826_b_20L大慧相者若處所形相色像等現是名爲相若彼有如是相名爲甁等卽此非餘是說爲名施設衆名顯示諸相甁等心心法是名妄想名彼相畢竟不可得始終無覺於諸法無展轉離不實妄想是名如如
010_0826_c_02L 진실하고 결정적인 구경(究竟)의 자성(自性)을 얻을 수 없는 것, 이것이 진여(眞如)의 모습이니, 나와 모든 부처가 따라 들어가는 곳이다. 두루 중생을 위해 여실하게 연설하고, 저것을 시설하여 드러내 보여 정각에 들어가게 하며, 단절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망상을 일으키지 않게 하여 자각성취(自覺聖趣)를 따르게 하는 것이니, 모든 외도나 성문이나 연각은 얻을 수 없는 모습이다. 이를 바른 지혜라고 한다.
010_0826_c_02L實決定究竟自性不可得彼是如相我及諸佛隨順入處普爲衆生如實演說施設顯示於彼隨入正覺不斷不常妄想不起隨順自覺聖趣一切外道聲聞緣覺所不得相是名正智
대혜야, 이를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하니, 세 가지 자성과 여덟 가지 식과 두 가지 무아와 모든 불법이 이 가운데 들어간다. 그러므로 대혜야, 스스로 방편을 세워 배워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게 해야 한다.”
010_0826_c_07L大慧是名五法三種自性八識二種無我一切佛法悉入其中是故大慧當自方便學亦教他人勿隨於他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26_c_10L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다섯 가지 법과 세 가지 자성
여덟 가지 식(識)과
두 가지 무아(無我)
이 모두가 마하연(摩訶衍)에 포함된다.
010_0826_c_11L五法三自性
及與八種識
二種無有我
悉攝摩訶衍

이름[名]과 모습[相]과 헛된 망상은
자성의 두 가지 모습이며
바른 지혜와 여여(如如)
이것이 바로 성취한 모습이다.
010_0826_c_13L名相虛妄想
自性二種相
正智及如如
是則爲成相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구(句)에서는 과거의 부처님이 항하(恒河)의 모래 수만큼 많다고 하셨고, 미래와 현재도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습니까? 말씀대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니면 다른 뜻이 있습니까? 여래께서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해설해 주십시오.”
010_0826_c_14L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世尊如世尊所說句過去諸佛如恒河沙未來現在亦復如是云何世尊爲如說而爲更有餘義惟願如來哀愍解說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말한 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3세(世)의 모든 부처의 수가 항하의 모래 수와 같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세상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비유로써 말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범부는 상(常)에 계착하고 외도는 망상으로 악견(惡見)을 증장시켜 생사가 끝이 없다. 생사를 싫어하여 벗어나게 하고, 돌이켜 열심히 정진하여 훌륭한 곳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그들을 위해 모든 부처를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010_0826_c_18L佛告大慧莫如說而受三世諸佛量如恒河沙所以者何過世閒望非譬所譬以凡愚計常外道妄想長養惡見生死無窮欲令厭離生死趣轉勤勝進故爲彼說言諸佛易見
010_0827_a_02L 우담발화(優曇鉢華)처럼 보기 어렵다고 하여 방편을 구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또 교화할 사람을 보고 말하기를 ‘부처는 우담발화처럼 만나기 어려우니, 우담발화는 과거에 본 사람도 없었고 현재에 보는 사람도 없으며 미래에 볼 사람도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 여래란 세상에서 모두 볼 수 있으나 저절로 통달한다는 인식을 세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는 것이 우담발화와 같다고 한 것이다.
010_0826_c_23L非如優曇鉢華難得見故息方便求有時復觀諸受化者作是說言佛難値遇如優曇鉢華優曇鉢華無已見今見當見如來者世閒悉見不以建立自通故說言如來出世如優曇鉢華
대혜야, 저절로 통달한다는 것을 스스로 건립하는 것은 세상의 생각을 초월하므로, 저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이며, 자각성지(自覺聖智)의 경계여서 비유할 길이 없다. 진실로 여래는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비유할 수가 없다.
010_0827_a_05L自建立自通者過世閒望彼諸凡愚所不能信自覺聖智境界無以爲眞實如來過心意識所見之相不可爲譬
대혜야, 그러나 내가 비유하여 ‘부처는 항하의 모래 수와 같다’고 말한 것에는 잘못이 없다. 대혜야, 이는 마치 항하의 모래를 모든 물고기나 자라나 악어나 사자나 코끼리나 말이나 사람이나 짐승이 밟는다고 하여도 모래는 ‘저들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지 않아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자성도 청정하여 모든 더러움이 없다.
010_0827_a_09L大慧然我說譬佛如恒沙無有過咎大慧譬如恒沙一切魚鼈輸牧魔羅師子象馬人獸踐踏沙不念言彼惱亂我而生妄想自性淸淨無諸垢污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의 자각성지(自覺聖智)는 항하의 모래와 같이 큰 신통력이 있어 자재하다. 모든 외도나 모든 사람이나 짐승들이 괴롭혀도 여래는 생각을 일으켜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니, 여래는 고요하여 기억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여래의 본원(本願)이 삼매락(三昧樂)으로 중생을 안락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괴롭힘을 받는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항하의 모래 등과 같아서 다름이 없다. 또 탐욕과 성냄을 끊은 까닭이다.
010_0827_a_13L如來應供等正覺自覺聖智恒河大力神通自在等沙一切外道諸人獸等一切惱亂如來不念而生妄想如來寂然無有念想如來本以三昧樂安衆生故無有惱亂如恒沙等無有異又斷貪恚故
비유하면 항하의 모래는 땅의 자성이어서, 겁이 다해서 불탈 때 모든 땅[地]을 다 태워도 저 지대(地大)는 자성을 버리지 않으니, 화대(火大)와 함께 생기기 때문인 것과 같다. 그 밖의 어리석은 범부가 땅이 탄다는 생각을 하나 땅은 타지 않으니, 불의 인(因)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대혜야, 여래의 법신(法身)은 항하의 모래와 같아 무너지지 않는다.
010_0827_a_18L譬如恒沙是地自性劫盡燒時燒一切地而彼地大不捨自性與火大俱生故其餘愚夫作地燒想而地不燒以火因故如是大慧如來法身如恒沙不
대혜야, 이는 마치 항하의 모래가 한량없는 것처럼 여래의 광명 또한 이와 같이 한량이 없으니,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모든 부처와 대중을 두루 비추는 것이다.
010_0827_a_23L大慧譬如恒沙無有限量如來光亦復如是無有限量爲成熟衆生普照一切諸佛大衆
010_0827_b_02L대혜야, 이는 마치 항하의 모래 이외에 따로 다른 모래를 구한다면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대혜야, 여래ㆍ응공ㆍ등정각도 생사(生死)와 생멸(生滅)이 없으니, 이는 인연을 끊었기 때문이다.
010_0827_b_02L大慧譬如恒沙別求異沙永不可得如是大慧應供等正覺無生死生滅有因緣斷故
대혜야, 이는 마치 항하의 모래가 늘고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대혜야, 여래가 지혜로 중생을 성숙시키는 것도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으니, 신법(身法)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법이란 무너짐이 있으니, 여래의 법신은 이 신법이 아니다. 마치 항하의 모래를 눌러 짜도 기름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심하게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이 여래를 핍박하고 나아가 중생들이 열반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법계(法界)와 자삼매(自三昧)와 원락(願樂)을 버리지 않으니, 중생을 크게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다.
010_0827_b_05L大慧譬如恒河沙增減不可得知如是大慧如來智慧成熟衆生不增不減非身法故身法者有壞如來法非是身法如壓恒沙油不可得是一切極苦衆生逼迫如來乃至衆生未得涅槃不捨法界自三昧願樂以大悲故
대혜야, 이는 마치 항하의 모래가 물을 따라 흐르지 물이 없는 곳에서는 흐르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대혜야, 여래가 말한 모든 법도 열반을 따라 흐른다. 그러므로 ‘항하의 모래와 같다’고 말한다. 여래는 모든 가는 것[去]을 따라 유전(流轉)하지 않으니, 가는 것은 곧 무너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혜야, 생사의 근본 진리는 알 수 없으니, 까닭을 알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가는 것을 말하겠느냐? 대혜야, 가는 것이란 단절의 뜻이니, 어리석은 범부가 알지 못한다.”
010_0827_b_11L大慧譬如恒沙隨水而流無水也如是大慧如來所說一切諸隨涅槃流是故說言如恒河沙來不隨諸去流轉去是壞義故大慧生死本際不可知不知故云何說去大慧去者斷義而愚夫不知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이 생사의 근본 진리를 알 수 없다면, 어떻게 해탈을 알 수 있습니까?”
010_0827_b_16L大慧白佛言世尊若衆生生死本際不可知者云何解脫可知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끝없는 옛날부터의 거짓된 허물과 악(惡)과 망상과 습기의 인(因)이 없어지면, 자기 마음이 현전(現前)에 바깥 경계의 이치를 알아 망상의 몸이 바뀌고 해탈이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무변한데 그렇다고 전혀 소유(所有)가 없는 것은 아니니, 저 망상이 무변 등의 다른 이름을 짓기 때문이다. 안팎으로 관찰하여 망상을 벗어나면 달리 중생이 없을 것이니, 지혜나 이염(爾炎)과 같은 모든 법이 다 적정(寂靜)하리라. 자기 마음이 나타낸 망상임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망상이 생기니, 알면 곧 없어진다.”
010_0827_b_18L佛告大慧無始虛僞過惡妄想習氣因滅自心現知外義妄想身轉解脫不滅是故無邊非都無所有爲彼妄想作無邊等異名察內外離於妄想無異衆生智及爾一切諸法悉皆寂靜不識自心現妄想故妄想生若識則滅
이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27_b_24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010_0827_c_02L
모든 도사(導師)를 관찰하면
마치 항하의 모래 같아
무너지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또한 구경(究竟)도 아니니
이는 바로 평등한 것이다.
010_0827_c_02L觀察諸導師
猶如恒河沙
不壞亦不去
亦復不究竟
是則爲平等

모든 여래를 관찰하면
마치 항하의 모래와 같아서
모든 허물을 다 벗어나고
따라서 흐르나 본성(本性)은 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부처의 정각(正覺)이다.
010_0827_c_04L觀察諸如來
猶如恒沙等
悉離一切過
隨流而性常
是則佛正覺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희를 위해 일체 모든 법이 찰나(刹那)에 무너지는 모습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것이 모든 법의 찰나입니까?”
010_0827_c_06L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惟願爲說一切諸法剎那壞相世尊云何一切法剎那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희를 위해 말하겠다.”
010_0827_c_09L佛告大慧諦聽諦聽善思念當爲汝說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란 선(善)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不善]과 무기(無記),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유죄(有罪)와 무죄(無罪),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받아들이는 것[受]과 받아들이지 않는 것[不受]을 말한다.
010_0827_c_10L佛告大慧一切法者不善無記有爲無爲世閒出世閒有罪無罪有漏無漏不受
대혜야, 간략히 말하면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과 습기(習氣)이다. 이것은 5수음(受陰)의 인(因)이니, 이 심ㆍ의ㆍ의식과 습기가 어리석은 범부의 선(善)하거나 선하지 않은 망상을 자라나게 한다. 대혜야, 삼매락(三昧樂)과 삼매정수(三昧正受)를 닦아 현재법의 즐거움에 머무는 것[現法樂住]을 현성의 선한 무루[賢聖善無漏]라고 한다.
010_0827_c_12L大慧說心意識及習氣是五受陰因意識習氣長養凡愚善不善妄大慧修三昧樂三昧正受現法樂名爲賢聖善無漏
대혜야, 선(善)과 불선(不善)이란 여덟 가지 식(識)을 말한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여래장(如來藏)인 식장(識藏)과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과 다섯 가지 식신(識身)이니, 외도가 말하는 것이 아니다.
010_0827_c_16L大慧善不善者謂八識何等爲八謂如來藏名識藏意識及五識身非外道所說
대혜야, 다섯 가지 식신은 심ㆍ의ㆍ의식이 함께하여 선(善)과 불선(不善)이 서로 전전하여 변하고 무너지며, 끊임없이 흘러들어 무너지지 않는 몸이 생기며, 또한 생기고 없어진다. 자기 마음으로 나타나서 차례로 없어지고 다른 식(識)이 생기며 형상(形相)이 차별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는, 의식(意識)이 다섯 가지 식과 함께하는 것을 받아들여 상응하여 생기나 찰나도 머물지 않는다. 이것을 찰나라고 한다.
010_0827_c_18L五識身者意識俱善不善相展轉變壞相續流注不壞身生亦生亦滅不覺自心現次第滅餘識生形相差別攝受意識五識俱相應生剎那時不住名爲剎那
010_0828_a_02L 대혜야, 찰나란 식장(識藏)인 여래장과 의(意)가 함께하여 식(識)을 일으키는 습기이다. 이와 같은 것이 찰나이다. 번뇌가 없는 습기는 찰나가 아니다. 이는 어리석은 범부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찰나를 논하는 데 계착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이 찰나이면서 찰나가 아닌 줄 깨닫지 못하고, 단견(斷見)으로 무위법(無爲法)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010_0827_c_23L大慧剎那者名識藏如來藏意俱生識習氣剎那無漏習氣非剎那非凡愚所覺計著剎那論不覺一切法剎那非剎那以斷見壞無爲法
대혜야, 7식(識)은 유전하지 않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지 않으며, 열반의 인(因)이 아니다. 대혜야, 여래장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고, 더불어 인(因)이 되어 주며,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4주지(住地)와 무명주지(無明住地)에 빠진 어리석은 범부는 깨닫지 못하고 찰나에 망상으로 마음을 훈습한다.
010_0828_a_04L大慧七識不流轉不受苦非涅槃因大慧如來藏者受苦樂與因俱若生若滅四住地無明住地所凡愚不覺剎那見妄想勳心
또 대혜야, 금(金)이나 금강(金剛)이나 부처의 사리(舍利)와 같이 기이하고 특이한 성품을 얻어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대혜야, 만일 무간도(無間道)를 얻었는데 찰나가 있다면 성인은 성인이 아니어야 할 것이나, 성인이 아닌 적이 없다. 마치 금이나 금강이 비록 오랜 겁수(劫數)를 지나더라도 칭호(稱號)와 양(量)이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은데, 어찌 어리석은 범부는 나의 은밀한 설법을 잘 알지 못하고서 안팎의 모든 법에 대해 찰나라는 생각을 내는가?”
010_0828_a_07L復次大慧如金金剛佛舍利得奇特性不損壞大慧若得無閒有剎那者應非聖而聖未曾不聖如金金剛經劫數稱量不減云何凡愚不善於我隱覆之說於內外一切法作剎那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6바라밀(波羅蜜)을 만족하면 정각(正覺)을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여섯 가지입니까?”
010_0828_a_13L大慧菩薩復白佛言世尊如世尊六波羅蜜滿足得成正覺何等爲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밀에는 세 가지 차별이 있으니,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과 가장 높은 출세간[出世間上上]이다. 대혜야, 세간의 바라밀이란 나[我]와 나의 것을 계착하여 받아들이고, 극단에 치우친 견해를 받아들이며, 온갖 생(生)을 받는 곳에서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과 같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단바라밀(檀波羅蜜)을 만족하는 것이니, 지계[戒]ㆍ인욕[忍]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 바라밀 역시 이와 같다. 이로써 범부는 신통을 얻거나 범천(梵天)에 태어날 수 있다.
010_0828_a_15L佛告大慧波羅蜜有三種分別世閒出世閒出世閒上上大慧世閒波羅蜜者我我所攝受計著攝受二爲種種受生處樂色聲香味觸故滿足檀波羅蜜精進禪定智慧亦如是凡夫神通及生梵天
대혜야, 출세간바라밀이란 성문이나 연각이 열반을 받아들이는 데 떨어지기 때문에 여섯 가지 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니, 자기 자신이 즐겁기 위해 열반락(涅槃樂)을 구하는 것이다.
010_0828_a_20L大慧世閒波羅蜜者聲聞緣覺墮攝受涅槃故行六波羅蜜樂自己涅槃樂
가장 높은 출세간바라밀이란 자기 마음이 나타낸 망상을 헤아려 받아들인다는 것과 자기 마음이 둘이라는 것을 깨닫는 까닭에 망상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010_0828_a_22L世閒上上波羅蜜者覺自心現妄想量攝受及自心二故不生妄想
010_0828_b_02L 모든 갈래의 중생들을 거두어 주되 분(分)을 가리지 않고, 자기 마음이 물질의 모습에 계착하지 않으면서 모든 중생을 안락(安樂)하게 하기 위해 단바라밀을 행한다. 훌륭한 방편(方便)을 일으켜 곧 그것에 연(緣)하여 망상이 생기지 않도록 계율을 지키니, 이것이 시바라밀(尸波羅蜜)이다. 저 망상이 생기지 않도록 인내하여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여지는 것을 알게 되니, 이것이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이다.
010_0828_a_24L於諸趣攝受非分自心色相不計著爲安樂一切衆生故生檀波羅蜜起上方便卽於彼緣妄想不生戒是尸波羅卽彼妄想不生忍知攝所攝是羼提波羅蜜
초저녁부터 한밤중, 새벽까지 정진하는 방편과 수순하여 수행하는 방편으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이다. 망상이 모두 없어져 성문에 떨어지지 않고 열반을 받아들이니, 이것이 선바라밀(禪波羅蜜)이다. 자기 마음이 망상의 성품이 아닌 것을 지혜로 관찰하여 두 극단에 떨어지지 않고, 이전의 몸[先身]을 훌륭하게 변화시켜 무너뜨릴 수 없게 하며, 스스로 깨달은 성인의 세계를 얻으니, 이것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다.”
010_0828_b_06L初中後夜精勤方便隨順修行方便妄想不生是毘梨耶波羅妄想悉滅不墮聲聞涅槃攝受禪波羅蜜自心妄想非性智慧觀察不墮二邊先身轉勝而不可壞得自覺聖趣是般若波羅蜜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28_b_11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공(空)과 무상(無常)과 찰나(刹那)는
어리석은 범부가 망상으로 짓는 것
강물과 등불과 종자와 같은
그런 찰나라고 생각한다.
010_0828_b_12L空無常剎那
愚夫妄想作
如河燈種子
而作剎那想

찰나에 어지러운 번뇌가 그치고
적정하여 짓는 것을 벗어나
모든 법이 생기지 않으니
내가 찰나의 뜻을 말한다.
010_0828_b_14L剎那息煩亂
寂靜離所作
一切法不生
我說剎那義

물질은 생기면 곧 없어지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이를 말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상속하는 성품은
망상으로 훈습된 것이다.
010_0828_b_15L物生則有滅
不爲愚者說
無閒相續性
妄想之所勳

무명(無明)이 그 인(因)이 되고
마음이 그것을 따라 생기니
물질이 생기기 전에
중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010_0828_b_16L無明爲其因
心則從彼生
乃至色未生
中閒有何分

차례로 상속하여 없어지니
나머지 마음은 저것을 따라 생긴다.
물질이 머물지 않을 때
무엇에 연(緣)하여 생기겠는가?
010_0828_b_18L相續次第滅
餘心隨彼生
不住於色時
何所緣而生

저것을 따라서 생기므로
진실하지 않은 인에서 생기니
어찌 성취함이 없이
찰나가 무너지는 것을 알겠는가?
010_0828_b_19L以從彼生故
不如實因生
云何無所成
而知剎那壞

수행자의 정수(正受)와
금강과 불사리(佛舍利)
광음천(光音天) 궁전이
세상의 무너지지 않는 일이다.
010_0828_b_20L修行者正受
金剛佛舍利
光音天宮殿
世閒不壞事

정법(正法)에 머물러
여래의 지혜를 구족(具足)하면
비구가 평등을 얻으리니
어찌 찰나를 보겠는가?
010_0828_b_22L住於正法得
如來智具足
比丘得平等
云何見剎那

건달바성(乾闥婆城)과 환(幻) 등
그런 색(色)에 찰나는 없으니
진실하지 않은 색 등을
진실인 듯 본다.
010_0828_b_23L乾闥婆幻等
色無有剎那
於不實色等
視之若眞實
010_0828_c_02L
이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아라한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리라고 수기하셨으며, 모든 보살 등과 차별이 없다고 하셨고, 모든 중생들의 법으로는 열반에 들지 못한다고 하셨으니, 누가 불도(佛道)에 이릅니까?
010_0828_b_24L爾時大慧菩薩復白佛言世尊世尊記阿羅漢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與諸菩薩等無差別一切衆生法不涅槃誰至佛道
처음부터 부처가 되고부터 열반에 들기까지 그 중간에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았고 또 대답한 것도 없다고 하셨으며, 여래는 항상 정(定)하기 때문에 또한 생각도 없고 살피는 것도 없다고 하셨으며, 화불(化佛)이 변화로 불사(佛事)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식(識)이 찰나에 전전하여 무너지는 모습을 말씀하시며, 금강역사(金剛力士)가 항상 따라 시위(侍衛)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어찌하여 본제(本際)를 시설하지 않으시고 마(魔)와 마업(魔業)과 악업(惡業)과 과보를 나타내시며, 전차마납(旃遮摩納:旃遮摩那)과 손다리녀(孫陀利女)의 빈 발우를 내보이시어 악한 업장을 나타내십니까?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으셨으면서도 모든 허물을 떠나지 않으십니까?”
010_0828_c_05L從初得佛至般涅於其中閒不說一字亦無所荅來常定故亦無慮亦無察化佛化作佛事何故說識剎那展轉壞相金剛力士常隨侍衛不施設本際現魔魔惡業果報旃遮摩納孫陁利女鉢而出惡業障現云何如來得一切種智而不離諸過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희를 위해 말하겠다.”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010_0828_c_12L佛告大慧諦聽善思念之當爲汝說大慧白佛世尊唯然受教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위한 것이다. 이로써 보살행(菩薩行)으로 나아가도록 유인하기 위해서 설한 것이다. 이곳과 다른 세계에서 보살행을 닦는 사람들이 성문승의 열반을 좋아하므로 그들이 성문승을 떠나 대승으로 향하도록 하기 위해 화불(化佛)이 성문에게 수기를 한 것이니, 이는 법불(法佛)이 아니다.
010_0828_c_14L佛告大慧爲無餘涅槃故說誘進行菩薩行者故此及餘世界修菩薩行者樂聲聞乘涅槃爲令離聲聞乘進向大乘化佛授聲聞記非是法佛
대혜야,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성문에게 수기를 하고 보살과 다름없다고 한 것이다. 대혜야, 다름이 없다는 것은, 성문이나 연각이나 모든 부처님 여래가 번뇌장(煩惱障)을 끊고 해탈한다는 점에서 똑같기 때문이니, 지혜의 장애[智障]를 끊었다는 것은 아니다.
010_0828_c_18L大慧因是故記諸聲聞與菩薩不異大慧不異者聲聞諸佛如來煩惱障斷解脫一味智障斷
010_0829_a_02L 대혜야, 지혜의 장애란 법무아(法無我)를 보고는 수승하고 청정하다 여기는 것이니, 번뇌장은 먼저 인무아(人無我)를 보는 것을 익혔기 때문에 끊어진다. 7식이 없어지고, 법의 장애[法障]에서 해탈하며, 식장(識藏)의 습기가 없어지고, 구경에 청정하며, 본주법(本住法)에 인하기 때문에 전후가 성품이 아니며, 끝없는 본원(本願) 때문에 여래는 생각도 없고 살핌도 없이 법을 연설한다. 바른 지혜의 교화를 받기 때문이며, 기억하여 잊지 않으므로 생각도 없고 살핌도 없다.
010_0828_c_21L大慧智障者見法無我殊勝淸淨煩惱障者先習見人無我斷七識滅法障解脫識藏習滅究竟淸淨因本住法故前後非性無盡本願故如來無慮無察而演說法正智所化念不忘故無慮無察
4주지(住地)와 무명주지(無明住地)의 습기가 끊어지므로 두 가지 번뇌가 끊어지고, 두 가지 죽음을 벗어나며, 인무아와 법무아를 깨닫고 두 가지 장애를 끊는다.
010_0829_a_03L四住地無明住地習氣斷故二煩惱斷離二種死人法無我及二障斷
대혜야,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과 안식(眼識) 등, 일곱 가지 찰나습기(刹那習氣)의 인(因)을 벗어나고 선무루품(善無漏品)을 벗어나면 다시는 윤전(輪轉)하지 않는다. 대혜야, 여래장이란 열반의 법륜을 굴리는 것이니, 고락(苦樂)의 인(因)은 공연히 뜻을 어지럽힌다. 대혜야, 이는 어리석은 범부가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010_0829_a_05L大慧意識眼識等七剎那習氣因離善無漏品不復輪轉大慧如來藏者輪轉槃苦樂因空亂意大慧愚癡凡夫所不能覺
대혜야, 금강역사의 호위를 받는 것은 화불이니, 진짜 여래가 아니다. 대혜야, 진짜 여래란 모든 근량(根量)을 벗어나는 것이니, 모든 범부와 성문과 연각과 외도의 근량이 다 없어지고 현법낙주(現法樂住)의 무간법지인(無間法智忍)을 얻었기에, 금강역사의 호위를 받지 않는다. 모든 화불은 업으로 생기지 않는다. 화불이란 부처도 아니고 부처를 벗어나지도 않으며, 도공(陶工)의 바퀴 등으로 만들어진 질그릇같이 중생의 짓는 일을 모습으로 설법할 뿐이며, 스스로 통달한 것에서 스스로 깨달은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010_0829_a_09L大慧金剛力士所隨護者化佛耳非眞如來大慧眞如來者一切根量一切凡夫聲聞緣覺及外道根量悉滅得現法樂住無閒法智忍故非金剛力士所護一切化佛不從業生化化佛者非佛不離佛因陶家輪等衆生所作相而說法非自通處說自覺境界
또 대혜야, 어리석은 범부는 7식신(識身)이 없어진다는 것에 의지하여 단견(斷見)을 일으키고, 식장(識藏)을 깨닫지 못하므로 상견(常見)을 일으킨다. 자기의 망상 때문에 본제(本際)를 알지 못하고 자기의 망상인 지혜가 없어지는 까닭에 해탈한다. 4주지와 무명주지의 습기를 끊으므로 모든 허물이 끊어진다.”
010_0829_a_16L復次大慧愚夫依七識身滅起斷見不覺識藏故起常見自妄想故不知本際自妄想慧滅解脫四住地無明住地習氣斷故切過斷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29_a_20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3승(乘) 또한 승(乘)이 아니고
여래는 마멸(磨滅)하지 않는다.
모든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모든 허물과 악을 벗어나라는 것.
010_0829_a_21L三乘亦非乘
如來不磨滅
一切佛所說
說離諸過惡

모든 무간지(無間智)와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위해서
열등한 모든 사람을 유인해 나아가게 하니
그러므로 숨기고 덮어 말한다.
010_0829_a_23L爲諸無閒智
及無餘涅槃
誘進諸下劣
是故隱覆說

모든 부처가 일으킨 지혜로
분별해서 도(道)를 말하니
모든 승(乘)은 승이 아니며
그것은 열반이 아니다.
010_0829_a_24L諸佛所起智
卽分別說道
諸乘非爲乘
彼則非涅槃
010_0829_b_02L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그에 따른 소견(所見)
이것을 4주지(住地)라고 말하니
의식이 일어난 곳이며
식(識)의 집이고, 의(意)가 사는 곳이다.
010_0829_b_02L欲色有及見
說是四住地
意識之所起
識宅意所住

의(意)와 안식(眼識) 등이
끊어져 없어지는 것을 무상(無常)이라 말하고
혹 열반이라는 견해를 지어
항상 머문다고들 말한다.
010_0829_b_04L意及眼識等
斷滅說無常
或作涅槃見
而爲說常住

이때 대혜보살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010_0829_b_05L爾時大慧菩薩以偈問言

저 모든 보살 등이
불도(佛道)를 구하려는 뜻을 두면
술과 고기와 파 같은
음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010_0829_b_06L彼諸菩薩等
志求佛道者
酒肉及與蔥
飮食爲云何

무상존(無上尊)이시여
불쌍히 여겨 말씀해 주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이 욕심내어 집착하는 것
냄새나고 더러우며 명성을 얻지 못합니다.
010_0829_b_08L惟願無上尊
哀愍爲演說
愚夫所貪著
臭穢無名稱

범이나 이리가 즐겨 먹는 것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
먹으면 모든 허물이 생기고
먹지 않으면 복(福)과 선(善)이 되리니
먹고 먹지 않는 것의 죄와 복을
저희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010_0829_b_09L虎狼所甘嗜
云何而可食
食者生諸過
不食爲福善
惟願爲我說
食不食罪福

대혜보살이 게송으로 여쭈고 나서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고기를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의 공덕과 잘못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를 비롯한 모든 보살은 현재와 미래에 온갖 고기를 먹기를 희망하는 중생을 위해 분별하여 설법할 것입니다.
010_0829_b_11L大慧菩薩說偈問已復白佛言惟願世尊爲我等說食不食肉功德過惡我及諸菩薩於現在未來當爲種種悕望食肉衆生分別說法
저 중생들을 자심(慈心)으로 서로 향하게 할 것이며, 자심을 얻고 나서 각기 청정하고 명료한 지위에 머물러 속히 구경의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게 하겠으며, 성문이나 연각은 자기가 머무는 경지에 그치어 쉬고 난 뒤 다시 무상보리를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010_0829_b_15L令彼衆生慈心相向得慈心已各於住地淸淨明了疾得究竟無上菩提聲聞緣覺自地止息已亦復逮成無上菩提
악하고 그릇된 논법을 가진 모든 외도의 무리는 그릇된 소견과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으로 전도되고 계착합니다. 그런 그들도 오히려 이를 막는 법[遮法]이 있어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데, 하물며 여래께서는 세간을 구호하고 정법(正法)을 성취하셨는데 고기를 드시겠습니까?”
010_0829_b_18L邪論法諸外道輩邪見斷常顚倒計尚有遮法不聽食肉況復如來閒救護正法成就而食肉耶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희를 위해 말하겠다.”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010_0829_b_21L佛告大慧善哉善哉諦聽諦聽善思念之當爲汝說大慧白佛唯然受教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한량없는 인연이 있으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그러니 내가 지금 너희를 위해 간략히 설하겠다.
010_0829_b_23L佛告大慧有無量因緣不應食肉我今當爲汝略說
010_0829_c_02L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윤회하는 인연으로 항상 여섯 친척[六親]이 되니, 친척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당나귀나 노새나 낙타나 여우나 개나 소나 말이나 사람이나 짐승 등의 고기를 백정(白丁)이 섞어서 팔기 때문에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이는 부정(不淨)한 기분(氣分)으로 생겨서 자란 것이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010_0829_c_02L一切衆生從本已來展轉因緣常爲六親以親想故不應食肉驢騾駱駝狐狗牛馬人獸等肉屠者雜賣故不應食肉不淨氣分所生長故不應食肉
중생이 그 기운을 느끼면 모두 두려워하니, 개가 전다라(旃陀羅)나 담파(譚婆) 등을 보면 증오하고 놀라며 두려워하여 무리를 지어 짖는다. 그러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또 수행자로 하여금 자심(慈心)이 생기지 않게 하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어리석은 범부가 좋아하는 것이니, 냄새나고 더럽고 깨끗하지 못하여 좋은 명성이 없어지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010_0829_c_06L衆生聞氣生恐怖如旃陁羅及譚婆等狗見憎驚怖群吠故不應食肉又令修行者慈心不生故不應食肉凡愚所嗜臭穢不淨無善名稱故不應食肉
모든 주술이 성취되지 못하게 하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살생하는 사람은 그 형상만 보아도 식(識)을 일으켜 깊이 맛에 집착하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저 고기를 먹는 사람은 모든 하늘이 버리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입에서 냄새가 나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악몽을 많이 꾸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010_0829_c_10L諸呪術不成就故不應食肉以殺生見形起識深味著故不應食肉食肉者諸天所棄故不應食肉令口氣臭故不應食肉多惡夢故不應食
한적한 숲 속에서 범이나 이리가 냄새를 맡는 까닭에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음식을 먹는데 절도가 없어지게 되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수행자로 하여금 세상을 싫어하여 떠나려는 생각이 생기지 않게 하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나는 항상 ‘음식을 먹을 때는 아들의 고기를 먹는다고 생각하고, 약(藥)을 먹는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따라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옳지 않다.
010_0829_c_15L空閑林中虎狼聞香故不應食肉令飮食無節量故不應食肉令修行者不生厭離故不應食肉我常說言凡所飮食作食子肉想作服藥想故不應食肉聽食肉者無有是處
또 대혜야, 과거에 사자소타사(師子蘇陀娑)라는 왕이 있었다. 그가 온갖 고기를 먹고 사람 고기까지 먹게 되자, 신하와 백성은 감당하지 못하고 곧 모반하여 그 봉록(奉祿)을 끊었다. 고기 먹는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허물이 있으므로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010_0829_c_19L復次大慧過去有王名師子蘇陁娑食種種肉遂至食人臣民不堪卽便謀反斷其奉祿以食肉者有如是過故應食肉
010_0830_a_02L또 대혜야, 모든 살생하는 사람들은 재물의 이익을 위해 살생해서 팔며, 고기를 먹는 모든 어리석은 중생들은 돈을 그물삼아 온갖 고기를 잡아간다. 살생하는 사람은 재물로든 그물로든 하늘을 날고 물에 살고 육지에 사는 중생을 잡아 온갖 것을 살해하고 팔아서 이익을 구한다. 대혜야, 또한 가르치지 않고 구하지도 않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어육(魚肉)을 잡거나 먹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010_0829_c_23L復次大慧凡諸殺者爲財利故殺生屠販彼諸愚癡食肉衆生以錢爲網而捕諸肉彼殺生者若以財物若以鉤網取彼空行水陸衆生種種殺害屠販求利大慧亦無不教不求不想而有魚肉以是義故不應食肉
대혜야, 내가 언젠가 다섯 가지 고기를 먹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고, 혹은 열 가지를 규제하기도 했는데, 지금 이 경(經)에서는 모든 종류를 어느 때건 방편으로 허락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금한다. 대혜야,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먹는 것도 없는데 하물며 생선이나 고기를 먹겠느냐? 또한 남에게 가르치지도 않으니, 대비(大悲)를 앞세우는 까닭이다.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보므로 자식의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010_0830_a_06L大慧我有時說遮五種肉或制十種今於此經一切種一切時開除方便一切悉斷大慧如來應供等正覺尚無所況食魚肉亦不教人以大悲前行視一切衆生猶如一子是故不聽令食子肉
이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830_a_12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일찍이 모두 친속(親屬)이었으며
더럽고 깨끗하지 않은 것이 섞였다.
부정(不淨)한 곳에서 생기고 자랐으며
기운을 느끼면 모두 두려워한다.
010_0830_a_13L曾悉爲親屬
鄙穢不淨雜
不淨所生長
聞氣悉恐怖

모든 고기와 파
그리고 모든 부추와 마늘 등
온갖 방일(放逸)한 술을
수행자는 항상 멀리한다.
010_0830_a_15L一切肉與蔥
及諸韭蒜等
種種放逸酒
修行常遠離

또 항상 마유(麻油)와
모든 구멍 뚫린 상(床)을 멀리하니
저 작은 벌레들이
그 속에서 공포에 떨기 때문이다.
010_0830_a_16L亦常離麻油
及諸穿孔牀
以彼諸細虫
於中極恐怖

음식이 방일을 낳고
방일이 모든 각(覺)을 낳고
각에서 탐욕(貪欲)이 생기니
그러므로 먹지 말아야 한다.
010_0830_a_17L飮食生放逸
放逸生諸覺
從覺生貪欲
是故不應食

먹는 데서 탐욕이 생기고
탐욕이 마음을 미혹에 취하게 하고
미혹에 취함이 애욕(愛欲)을 길러
생사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010_0830_a_19L由食生貪欲
貪令心迷醉
迷醉長愛欲
生死不解脫

이익을 위해 중생을 죽이고
재물로 온갖 고기를 잡아들이니
두 가지 모두 악업(惡業)이므로
죽어서 규호옥(叫呼獄)에 떨어진다.
010_0830_a_20L爲利殺衆生
以財網諸肉
二俱是惡業
死墮叫呼獄

만일 가르침과 생각과 구함이 없다면
3정육(淨肉)도 없으니
저것은 까닭 없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먹으면 안 된다.
010_0830_a_21L若無教想求
則無三淨肉
彼非無因有
是故不應食

저 모든 수행자는
이런 까닭에 모두 멀리 벗어나야 하니
시방의 부처님 세존이
모두 다 꾸짖는 것이다.
010_0830_a_23L彼諸修行者
由是悉離遠
十方佛世尊
一切咸呵責

끝없이 윤회하며 서로 서로 잡아먹으니
죽으면 범이나 이리의 부류에 떨어지고
더러운 냄새가 혐오스러우며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어리석으리라.
010_0830_a_24L展轉更相食
死墮虎狼類
臭穢可厭惡
所生常愚癡
010_0830_b_02L
대부분 전타라(旃陀羅)나
사냥꾼, 담파(譚婆)의 종족으로 태어나고
혹은 다이니(陀夷尼)와
모든 육식성(肉食性)으로 태어난다.
010_0830_b_02L多生栴陁羅
獵師譚婆種
或生陁夷尼
及諸肉食性

나찰(羅刹)이나 고양이나 살쾡이 등
두루 이 가운데 태어나 돌다가
박상(縛象)과 대운(大雲)
앙굴리마라(央掘利魔羅)로 태어난다.
010_0830_b_04L羅剎猫狸等
遍於是中生
縛象與大雲
央掘利魔羅

이 『능가경(楞伽經)』에 이르러
나는 모든 고기를 먹지 못하게 제정하니
모든 부처와 보살
성문의 꾸지람 들으리라.
010_0830_b_05L及此楞伽經
我悉制斷肉
諸佛及菩薩
聲聞所呵責

먹고 참회하지 않으면
태어날 때마다 항상 어리석고 어두우니
먼저 견문의(見聞疑)를 말하고
다음에 모든 고기를 끊어라.
010_0830_b_06L食已無慚愧
生生常癡冥
先說見聞疑
已斷一切肉

망상으로 깨닫지 못해
고기 먹는 곳에 태어나며
저 탐욕의 허물이
성해탈(聖解脫)을 장애한다.
010_0830_b_08L妄想不覺知
故生食肉處
如彼貪欲過
障㝵聖解脫

술과 고기와 파와 부추와 마늘
모두 성도(聖道)를 장애하는데
미래의 중생들은
고기에 대해 어리석게 말하리라.
010_0830_b_09L酒肉蔥韭蒜
悉爲聖道障
未來世衆生
於肉愚癡說

이것은 깨끗해서 죄가 없다 말하고
우리가 먹는 것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하리니
먹으면서 약을 먹는다 생각하고
또한 자식의 고기를 먹는다 생각하라.
010_0830_b_10L言此淨無罪
佛聽我等食
食如服藥想
亦如食子肉

족한 줄 알아 싫어해 벗어날 생각하고
수행자는 걸식을 행하라.
자심(慈心)에 안주하면
항상 싫어해 벗어나게 된다고 나는 설했다.
010_0830_b_12L知足生厭離
修行行乞食
安住慈心者
我說常厭離

범과 늑대와 모든 악한 짐승들
항상 그와 함께 노닐고 멈추리니
온갖 피와 고기 먹으면
중생이 모두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자심으로 고기를 먹지 말라.
010_0830_b_13L虎狼諸惡獸
恒可同遊止
若食諸血肉
衆生悉恐怖
是故修行者
慈心不食肉

고기를 먹으면 자비심(慈悲心)이 없어
영원히 바른 해탈을 등지고
성인의 표상(表相)을 멀리하리니
그러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
010_0830_b_15L食肉無慈悲
永背正解脫
及違聖表相
是故不應食

범지종(梵志種)과
모든 수행처(修行處)와
지혜롭고 부귀한 집에 태어나는 것
이는 고기를 먹지 않은 까닭이다.
010_0830_b_16L得生梵志種
及諸修行處
智慧富貴家
斯由不食肉
楞伽阿跋多羅寶經卷第四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