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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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_0806_a_01L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제3권
013_0806_a_01L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卷第三
『중인도나란타대도량경(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이라고도 한다. 관정부(灌頂部)에서 따로 추려내었다.
013_0806_a_02L一名中印度那蘭陁大道場經於灌頂部錄出別行


반랄밀제 한역
현성주 번역
013_0806_a_03L唐天竺沙門般剌蜜帝譯



또 아난아, 어째서 6입(入)을 본래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곧 저 사람이 눈동자를 멍하게 뜨고 피로한 것은, 눈과 피로를 겸하여 보리의 마음도 함께 멍하여 피로를 일으킨 모양이니라.
밝음과 어둠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보는 작용을 일으키고 그 가운데 있으면서 이 경계의 모양[塵象]을 빨아들이는 작용을 보는 성질이라고 하며, 이 보는 성질은 밝음과 어둠의 두 경계를 떠나면 끝내 자체가 없느니라.
013_0806_a_04L復次阿難云何六入本如來藏妙眞如性阿難卽彼目精瞪發勞者兼目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明暗二種妄塵發見居中吸此塵象名爲見性此見離彼明暗二塵畢竟無體
이와 같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보는 작용은 밝음과 어둠에서 오지도 않고, 눈[根]에서 나오지도 않으며, 허공에서 생기지도 않는다.
그 까닭은 밝은 데서 온다면 어두울 때는 곧장 따라 사라져서 어둠을 볼 수 없어야 하고, 어두운 데서 온다면 밝을 때는 곧장 따라 사라져서 밝음을 볼 수 없어야 하며, 눈에서 나온다면 밝고 어둠과 상관없으니, 이러한 보는 정기는 본래 제 성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허공에서 생긴다면 앞에서 경계의 모양을 보았으니, 돌아와서는 당연히 눈을 보아야 한다. 또 허공이 제 스스로 보는 것이니, 네 눈의 보는 기능[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눈의 보는 기능[眼入]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6_a_09L如是阿難當知是見非明暗來非於根出不於空生何以故若從明來卽隨滅應非見暗若從暗來明卽隨應無見明若從根生必無明暗是見精本無自性若於空出前矚塵象歸當見根又空自觀何關汝入故當知眼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급히 귀를 꽉 막는다면, 귀의 감관[耳根]이 피로하여 머리 속에서 어떤 소리를 듣는 것은, 이 귀와 피로를 겸하여 보리의 마음도 함께 멍하여 피로를 일으킨 모양이니라.
소리의 움직임과 조용함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듣는 작용을 일으키고 그 가운데 있으면서 경계의 모양을 빨아들이는 작용을 듣는 성질이라고 하며, 이 듣는 성질은 소리의 움직임과 조용함의 두 경계를 떠나면 끝내 자체가 없느니라.
013_0806_a_16L阿難譬如有人以兩手指急塞其耳耳根勞故頭中作聲兼耳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動靜二種妄塵發聞居中吸此塵象名聽聞性此聞離彼動靜二塵畢竟無體
013_0806_b_01L이와 같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듣는 성질은 소리의 움직임과 조용한 데서 오지도 않고, 귀[根]에서 나오지도 않으며, 허공에서 생기지도 않는다.
그 까닭은 만일 듣는 성품이 조용한 데서 왔다면 움직일 때는 곧장 따라 사라져서, 소리의 움직임을 듣지 못해야 하고,만일 움직이는데서 왔다면 조용할 때는 곧장 따라 사라져서 조용함을 깨닫지 못해야 하며, 만일 귀에서 생긴다면 움직임과 조용함과 상관없으니, 이러한 듣는 자체는 본래 제 성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허공에서 나온다면 허공은 듣는 작용으로 성품을 이뤘으니 허공이 아니며, 또 허공이 제 스스로 들으니 너의 듣는 기능[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귀의 듣는 기능[耳入]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6_a_21L如是阿難當知是聞非動靜來非於根出不於空生何以故若從靜來動卽隨滅非聞動若從動來靜卽隨滅應無覺若從根生必無動靜如是聞體無自性若於空出有聞成性卽非虛又空自聞何關汝入是故當知耳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어떤 사람이 급히 코로 숨을 들이켜서 들이켠 숨을 조금 길게 끌어 피로해지면, 콧속에 서늘한 느낌이 생긴다. 이 느낌으로 인하여 통함과 막힘의 허와 실[虛實]과, 이와 같이 온갖 향기와 추한 기운들을 분별하는 것은, 이 코와 피로를 겸하여 보리의 마음도 함께 멍하여 피로를 일으킨 모양이니라.
통함과 막힘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냄새 맡는 작용을 일으키고 그 가운데 있으면서 이 경계의 모양을 빨아들이는 작용을 냄새 맡는 성품이라고 하며, 이 냄새 맡는 성질은 저 통함과 막힘의 두 경계를 떠나면 끝내 자체가 없느니라.
이와 같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냄새 맡는 작용은 통함과 막힘에서 오지도 않고, 코에서 나오지도 않으며, 허공에서 생기지도 않는다.
013_0806_b_06L阿難譬如有人急畜其鼻畜久成勞則於鼻中聞有冷觸因觸分別通塞虛實如是乃至諸香臭氣兼鼻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通塞二種妄塵發聞居中吸此塵象名嗅聞性此聞離彼通塞二塵畢竟無體當知是聞非通塞來非於根出不於空生
그 까닭은 만일 통한 데서 온다면 막힐 때는 냄새 맡는 작용이 사라지니 어떻게 막힘을 알겠으며, 만일 막힘 때문에 있다면 통할 때는 냄새 맡는 작용이 없으니, 어떻게 향기와 추한 냄새 등의 느낌을 밝히겠느냐. 만일 코에서 생긴다면 분명 통함과 막힘과 상관없으니, 이러한 냄새 맡는 기능은 본래 제 성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허공에서 온다면 이 냄새 맡는 작용은 돌아와서 네 코를 냄새 맡아야 하며, 또 허공 자체가 스스로 냄새를 맡는 것이니 네 코의 맡는 기능[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코의 맡는 기능[鼻入]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6_b_13L何以故若從通來塞自隨滅云何知如因塞有通則無聞云何發明香臭等觸若從根生必無通塞如是聞本無自性若從空出是聞自當迴嗅汝鼻空自有聞何關汝入是故當知鼻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013_0806_c_01L아난아,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조금 오래 핥았을 경우, 병 있는 사람은 쓴맛을 느끼고 병 없는 사람은 조금 단맛을 느낀다. 단맛과 쓴맛으로 혀의 감각이 나타나고 혀를 움직이지 않을 때는 항상 담담한 맛이 있는 것은, 이 혀와 피로를 겸하여 보리의 마음도 함께 멍하여 피로를 일으킨 모양이니라.
달고 쓴맛과 담담한 맛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맛보는 작용을 일으키고 그 가운데 있으면서,이 경계의 모양을 빨아들이는 작용을 맛보는 성질이라고 하며, 이 맛보는 성질은 달고 쓴맛과 담담한 맛의 두 경계를 떠나면 끝내 자체가 없느니라.
013_0806_b_19L阿難譬如有人以舌舐吻熟舐令勞其人若病則有苦味無病之人微有甜觸由甜與苦顯此舌根不動之時淡性常在兼舌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甜苦淡二種妄塵發知居中吸此塵象名知味性此知味性離彼甜苦及淡二塵畢竟無體
이와 같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달고 쓴맛과 담담한 맛은 달고 쓴맛에서 오지도 않고 담담한 맛 때문에 있지도 않으며, 또 혀에서 나오지도 않고 허공에서 생기지도 않는다.
그 까닭은 만일 달고 쓴맛에서 온다면 담담할 때는 맛보는 작용이 사라지니 어떻게 담담한 맛을 알겠으며, 만일 담담한 맛에서 왔다면 달고 쓴맛을 느낄 때는 담담한 맛이 없어지니 어떻게 달고 쓴 두 맛을 알겠느냐. 만일 혀에서 생긴다면 분명 달고 담담하고 쓴 경계와 상관없으니 이 맛을 아는 기능[知味根]은 제 성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허공에서 나온다면 허공 스스로 맛보는 것이지, 네 입이 맛보는 것이 아니다. 또 허공 자체가 맛보는 일이니 네 혀의 맛보는 기능[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혀의 맛보는 기능[舌入]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6_c_03L如是阿難當知如是嘗苦淡知非甜苦來非因淡有又非根出不於空生何以故甜苦來淡卽知滅云何知淡若從淡甜卽知亡復云何知甜苦二相從舌生必無甜淡及與苦塵斯知味根本無自性若於空出虛空自味非汝口知又空自知何關汝入是故當知舌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어떤 사람이 한쪽의 차가운 손으로 다른 쪽의 더운 손과 맞댈 경우, 차가운 기운이 더운 기운보다 많으면 더운 기운은 차가운 기운을 따라 차가워지고, 더운 기운이 많으면 차가운 기운은 더운 기운을 따라 더워진다. 이와 같이 이 맞대어 깨닫는 촉감이 뗄 때에는 떼는 줄을 아는 작용으로 나타나니, 끼어드는 기운[勢]이 이렇게 성립하는 것은, 피로한 촉감이 그 원인이며, 이 몸과 피로를 겸하여 보리의 마음도 함께 멍하여 피로를 일으킨 모양이니라.
떼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촉감을 일으키고 그 가운데 있으면서, 경계의 모양을 빨아들이는 작용을 촉감의 성질[知覺性]이라고 하며, 이 촉감 자체[知覺體]는 서로 떼고 합함의 어기고 따르는 두 경계를 떠나면 끝내 자체가 없느니라.
013_0806_c_11L阿難譬如有人以一冷手觸於熱手若冷勢多熱者從冷若熱功勝冷者成熱如是以此合覺之觸顯於離知涉勢若成因于勞觸兼身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離合二種妄塵發覺居中吸此塵象名知覺性知覺體離彼離合違順二塵畢竟無
013_0807_a_01L이와 같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촉감[覺]은 떼고 합함에서 오지도 않고, 어기고 따름에 있지도 않으며, 몸의 감관[根]에서 나오지도 않고, 또 허공에서 생기지도 않는다.
그 까닭은 만일 합할 때 온다면 뗄 때는 합함이 이미 사라지니 어떻게 떼는 작용을 알겠느냐. 어기고 따르는 두 모양도 마찬가지다. 만일 몸에서 나온다면 분명 떼고 합하고 어기고 따르는 네 가지 모양이 없으니, 네 몸의 감촉 기능은 원래 제 성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허공에서 나온다면 허공 스스로가 촉감이니 네 몸의 감촉 기능[身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몸의 감촉 기능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6_c_19L如是阿難當知是覺非離合來違順有不於根出又非空生何以故若合時來離當已滅云何覺離違順二相亦復如是若從根出必無離合違順四相則汝身知元無自性必於空出空自知覺何關汝入是故當知身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어떤 사람이 피곤하고 나른하여 잠이 들었다가 푹 자고 나서 깨었을 때, 경계를 보면 기억하고 기억을 잃으면 잊어버림이 바로 뒤바뀐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라. 이를 빨아들여 익히고 의식 가운데로 돌아가서 서로 뛰어넘지 않음을 의식의 인식 기능[意知根]이라고 하며, 이것은 의식과 피로를 겸하여 보리의 마음도 함께 멍하여 피로를 일으킨 모양이니라.
생기고 사라짐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아는 작용을 모으고 그 속에 있으면서 안의 경계[內塵; 곧 法塵]를 빨아들여 보고 들음이 흐름을 거슬러서 기억하거나 흐름이 미치지 못하는 곳의 잊는 작용을 지각하는 성질[知覺性]이라고 하며, 이 지각하는 성질은 자고 깨는 생멸의 두 경계를 떠나면 끝내 자체가 없느니라.
013_0807_a_02L阿難譬如有人勞倦則眠睡熟便寤覽塵斯憶失憶爲忘是其顚倒生住異滅吸習中歸不相踰越稱意知根兼意與勞同是菩提瞪發勞相因于生滅二種妄塵集知居中吸撮內塵見聞逆流流不及地名覺知性此覺知性離彼寤寐生滅二塵畢竟無體
이와 같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지각의 기능[覺知之根]은 자고 깸에서 오지도 않고, 생기고 사라지는 데에 있지도 않으며, 의식의 감관에서 나오지도 않고, 허공에서 생기지도 않는다.
그 까닭은 만일 잠깬 데서 온다면 잠잘 때는 곧 따라 사라져버리니 무엇으로 잠을 자며, 분명 생길 때 있다면 멸할 때는 같이 없는데 무엇이 멸하겠느냐. 만일 멸하는 데 있다면 생길 때는 곧 멸함이 없는데 무엇이 생기는 것을 알겠느냐. 만일 의식의 감관에서 나온다면 자고 깨는 두 모양은 몸의 열리고 닫힘을 따르는 것이니, 이 열리고 닫히는 두 체를 떠나면 이 지각작용은 허공 꽃과 같이 끝내 자체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 제 스스로 아는 일이니, 너의 의식작용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의식 기능[意入]은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7_a_09L如是阿難當知如是覺知之根非寤寐來非生滅有不於根出亦非空生何以故若從寤來寐卽隨滅將何爲必生時有滅卽同無令誰受滅從滅有生卽滅無孰知生者若從根寤寐二相隨身開合離斯二體覺知者同於空花畢竟無性若從空自是空知何關汝入是故當知意入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또 아난아, 어째서 12처소[處]를 본래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너는 또 이 기타원(祇陀園)의 나무와 숲과 샘과 못들을 보아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색이 눈의 보는 작용을 내겠느냐. 눈이 색의 모양을 내겠느냐.
013_0807_a_18L復次阿難云何十二處本如來藏妙眞如性阿難汝且觀此祇陁樹林及諸泉池於意云何此等爲是色生眼眼生色相
013_0807_b_01L아난아, 만일 또 눈[眼根]이 색의 모양을 낸다면 공(空)을 볼 때는 색이 아니니, 눈이 낸 색의 모양은 마땅히 소멸할 것이며, 소멸하면 드러낼 모양은 아무것도 없다. 색의 모양이 이미 없다면 무엇이 공의 본질을 밝히겠느냐. 눈이 공의 모양을 내는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만일 또 색의 경계[色塵]가 눈의 보는 작용을 낸다면 공(空)을 볼 때는 색이 아니니, 보는 작용은 곧 소멸할 것이며, 소멸해버리면 아무것도 없으니 무엇이 공과 색을 밝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보는 작용과 색과 공은 모두 처소가 없으니, 색과 보는 작용의 두 처소는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7_a_22L阿難若復眼根生色相見空非色色性應銷銷則顯發一切都無色相旣無誰明空質空亦如若復色塵生眼見者觀空非色卽銷亡亡則都無誰明空色是故當見與色空俱無處所卽色與見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또 이 기타원(祇陀園)에서 공양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식단으로 대중을 불러 모을 때는 종을 치니, 너는 그 때마다 앞뒤로 서로 이어지는 북소리와 종소리를 듣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들 소리가 귀가로 오겠느냐. 귀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가겠느냐.
아난아, 만일 소리가 귀가로 온다면, 내가 실라벌성(室羅筏城)에서 걸식(乞食)할 때는 기타림(祇陀林)에는 내가 없는 것과 같이, 이 소리가 분명 아난의 귀가로 와버린다면, 목련과 가섭은 함께 듣지 못해야 할 텐데, 어찌 더욱이 1,250 사문(沙門)이 한꺼번에 종소리를 듣고 다같이 공양할 곳으로 오는 것이냐.
013_0807_b_05L阿難汝更聽此祇陁園中食辦擊鼓衆集撞鍾鍾鼓音聲前後相續於意云何此等爲是聲來耳邊耳往聲處阿難若復此聲來於耳邊如我乞食室羅筏城在祇陁林則無有我此聲必來阿難耳處目連迦葉應不俱聞何況其中一千二百五十沙門一聞鍾聲同來食處
만일 네 귀가 저 소리 나는 곳으로 간다면, 내가 기타림(祇陀林)에 돌아와 머물 때는 실라벌성(室羅筏城)에는 내가 없는 것과 같이, 네가 북소리를 듣고 그 귀가 이미 북 치는 곳으로 가버린다면, 종소리가 겹쳐 나도 마땅히 함께 들을 수 없어야 하는데, 어찌 더욱이 그 가운데 코끼리와 말과 소와 양들의 여러 가지 소리들을 듣는 것이냐. 만일 오고 감이 없다면 듣는 작용도 없어야 하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듣는 작용과 소리는 모두 처소가 없으니 듣는 작용과 소리의 두 처소는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7_b_13L若復汝耳往彼聲邊如我歸住祇陁林中在室羅城則無有我汝聞鼓聲其耳已往擊鼓之處鍾聲齊出應不俱聞何況其中象馬牛羊種種音響若無來往亦復無聞是故當知聽與音聲俱無處所卽聽與聲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013_0807_c_01L아난아, 너는 또 이 향로의 전단향기를 맡아보아라. 이 향기는 비록 1수(銖)만 태울지라도 실라벌성의 40리 안에서는 동시에 향내를 맡느니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향기는 전단나무에서 나오겠느냐. 네 코에서 나오겠느냐. 허공에서 나오겠느냐.
아난아, 만일 이 향기가 네 코에서 나온다면, 코에서 생긴다는 말이니 당연히 코에서 나와야 하며,코는 전단이 아닌데 어떻게 콧속에 전단 기운이 있겠느냐. 네가 향내를 맡는다는 말은 당연히 코로 들어온다는 뜻이니, 콧속에서 나오는 향기를 맡는다고 말하면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013_0807_b_19L阿難汝又嗅此鑪中栴檀此香若復然於一銖室羅筏城四十里內同時聞氣於意云何此香爲復生栴檀木生於汝鼻爲生於空阿難若復此香生於汝鼻稱鼻所生當從鼻出鼻非栴檀云何鼻中有栴檀氣稱汝聞香當於鼻入鼻中出香說聞非義
만일 허공에서 난다면, 허공의 성질은 한결같으니 향기도 항상 있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향로에 마른 향나무를 태워야 하겠느냐.
만일 전단나무에서 난다면, 이 향의 본질은 타면서 연기가 나기 마련이니, 코가 향내를 맡을 적에 연기와 함께 맡아야 한다면, 그 연기가 허공으로 올라가서 채 멀리 퍼지기도 전에 40리 이내의 사람들은 어째서 이미 향내를 맡는 것이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향기와 코와 맡는 작용은 다 함께 처소가 없으니, 맡는 작용과 향기의 두 처소는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7_c_03L若生於空空性常恒香應常在何藉鑪中爇此枯木若生於木則此香質因爇成煙若鼻得聞合蒙煙氣其煙騰空未及遙遠四十里內云何已聞是故當知香臭與聞俱無處所卽嗅與香二處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너는 언제나 두 때에 대중과 함께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간혹 소락(酥酪)을 가장 잘 정제(精製)된 제호(醍醐)를 만나면 훌륭한 맛이라고 한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맛은 허공에서 생기느냐. 혀에서 나느냐. 음식에서 나느냐.
013_0807_c_09L阿難汝常二時衆中持鉢其閒或遇酥酪醍醐名爲上味於意云何此味爲復生於空中生於舌中爲生食中
아난아, 만일 이 맛이 네 혀에서 난다면 네 입 속에는 혀가 하나뿐이니, 그 혀가 일단 우유 맛이 되었다면, 검은 꿀[黑石蜜]을 먹어도 맛이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만일 맛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으며, 만일 달라진다면 혀는 여럿이 아닌데 어떻게 한 혀로 여러 맛을 다 알겠느냐.
만일 음식에서 난다면, 음식은 아는 작용이 없으니 어떻게 제 스스로 알겠으며, 또 음식이 제 스스로 안다면 남의 음식과 같으니,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맛을 안다고 하겠느냐.
013_0807_c_12L阿難若復此味生於汝舌在汝口中秖有一舌其舌爾時已成酥味遇黑石蜜應不推移若不變移不名知味若變移者舌非多體云何多味一舌之知若生於食食非有識云何自知又食自知卽同他食何預於汝名味之知
013_0808_a_01L만일 허공에서 생긴다면, 너는 허공을 씹어 보아라. 어떤 맛이 나느냐. 그 씹은 허공이 분명 짠맛이라면 이미 네 혀를 짜게 하였으니 네 얼굴도 짜야 한다 . 그러면 이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짠맛 속에 사는 바닷고기와 같이 조금도 싱거운 맛을 알지 못하리라. 만일 싱거운 맛을 모른다면 짠맛도 깨닫지 못해야 한다. 또 아무 맛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맛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맛과 혀와 맛보는 작용은 모두 처소가 없으니, 맛보는 작용과 맛은 둘 다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7_c_19L若生於空汝噉虛空當作何味必其虛空若作鹹味旣鹹汝舌亦鹹汝面則此界人同於海魚旣常受鹹了不知淡若不識淡亦不覺鹹必無所知云何名味是故當知味舌與嘗俱無處所卽嘗與味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너는 새벽마다 언제나 손으로 머리를 만지리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만져서 아는 것은 어느 쪽이 촉감을 아는 주체[能觸]이냐. 그 촉감을 아는 주체는 손에 있겠느냐. 머리에 있겠느냐.
만일 손에 있다면, 머리는 알지 못할텐데 어떻게 촉감이 성립되겠느냐. 만일 머리에 있다면 손에는 촉감이 없을 텐데, 어찌 촉감이라고 하겠느냐. 만일 각각 따로 있다면 너 아난에게 마땅히 두 몸이 있어야 하리라.
013_0808_a_02L阿難汝常晨朝以手摩頭於意云何此摩所知誰爲能觸能爲在手爲復在頭若在於手頭則無知云何成觸若在於頭手則無用云何名觸若各各有則汝阿難應有二身
만일 머리와 손에서 똑같이 한 촉감이 생긴다면, 손과 머리는 당연히 같은 일체(一體)가 되어야 한다. 만일 같은 일체라면 촉감은 성립되지 않으리라. 만일 다른 이체(二體)라면 촉감은 어느 쪽에 있겠느냐. 대는 쪽[能]에 있으면 닿는 쪽[所]에 있지 않을 것이며, 닿는 쪽에 있으면 대는 쪽에 있지 않으리라. 당연히 허공이 너에게 촉감을 주었다고도 못하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촉감을 아는 작용과 몸은 모두 처소가 없으니, 몸과 촉감은 둘 다 허망하여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8_a_07L若頭與手一觸所生則手與頭當爲一體若一體者觸則無成若二體者觸誰爲在能非所在所非能不應虛空與汝成是故當知覺觸與身俱無處所身與觸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너는 언제나 의식(意識) 가운데 인연하는 선과 악과 무기(無記)의 세 성질로 법칙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이 법은 마음과 일치한 상태에서 생기겠느냐. 마음을 벗어나서 따로 장소[方所]가 있겠느냐.
013_0808_a_12L阿難汝常意中所緣善無記三性生成法則此法爲復卽心所生爲當離心別有方所
아난아, 만일 마음과 일치 하다면, 법칙은 경계[塵]가 아니므로 마음의 인연대상이 아니니, 어떻게 처소가 성립되겠느냐.
만일 마음을 벗어나서 따로 장소가 있다면 법의 자성(自性)은 아는 작용이냐, 아는 작용이 아니냐. 아는 작용이라면 마음이라 하겠으나, 너와는 다르면서 경계도 아니니,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으리라. 너와 일치하면서 마음과도 일치 하다면, 어떻게 네 마음이 다시 너에게 둘이 되겠느냐.
013_0808_a_15L阿難若卽心者法則非塵非心所緣云何成處若離於心別有方所則法自性爲知非知知則名心異汝非塵同他心量卽汝卽心云何汝心更二於汝
013_0808_b_01L만일 아는 작용이 아니라면 이 법의 경계[塵]는 이미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떼고 합함과 차고 따뜻함과 허공의 모양도 아닌데, 어디에 있다고 하겠느냐. 이제 색과 허공에서 전혀 표시할 수 없고, 인간이 또 허공밖에 있다고 해서도 안 되고, 마음이 인연할 대상도 아니니, 법의 처소는 무엇으로 세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법칙과 마음은 모두 처소가 없으니, 뜻과 법은 둘 다 허망하여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8_a_20L若非知者此塵旣非色離合冷煖及虛空相當於何在今於色空都無表示不應人閒更有空外心非所緣處從誰立是故當知法則與心俱無處所則意與法二俱虛妄本非因緣非自然性
또 아난아, 어째서 18계(界)를 본래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네가 밝힌 대로 눈[眼]과 색(色)이 연(緣)이 되어 눈의 인식[眼識]이 생긴다면, 이 인식[識]이 눈 때문에 생긴다 하여 눈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색(色) 때문에 생긴다 하여 색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013_0808_b_02L復次阿難云何十八界本如來藏妙眞如性阿難如汝所明眼色爲緣生於眼識此識爲復因眼所生以眼爲因色所生以色爲界
아난아, 만일 이 인식이 눈 때문에 생긴다면, 눈 자체에는 이미 색(色)과 공(空)이 없어서 분별할 수 없는데, 너의 인식이 있다 한들 무엇을 상대로 작용하겠느냐. 또 너의 보는 작용은 푸르고 노랗고 붉고 흰 것이 아니니 표시할 길이 없는데, 무엇으로 경계를 세우겠느냐.
만일 이 인식이 색(色) 때문에 생긴다면, 공하여 색(色)이 없을 때에는 너의 인식도 마땅히 없어질 텐데, 허공의 성질을 어떻게 알겠느냐.
013_0808_b_06L阿難若因眼旣無色空無可分別縱有汝識欲將何用汝見又非靑黃赤白無所表示從何立界若因色生空無色時汝識應滅云何識知是虛空性
만일 색이 변할 때 네가 색의 모양[色相]이 변천하는 상태를 안다면, 너의 인식 자체는 변천한 일이 없는 것이니, 경계를 무엇으로 세우겠느냐.
또 색의 변천을 따라 인식이 변천한다면, 경계의 모양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며, 또 인식이 색을 따라 변천하지 않는다면 인식은 한결같으리라. 그러면 이미 색에서 생겼으니, 마땅히 허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게 되리라.
만일 두 가지를 겸하여 눈과 색이 함께 눈의 인식[眼識]을 낸다면, 눈과 색이 합해져 있을 때는 인식이 자리할 중간이 없을 것[離]이며, 눈과 색이 떨어져 있을 때는 눈과 색의 양쪽으로 갈라서 합해야 한다. 그러면 자체의 성품이 어지럽게 뒤섞일 텐데,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눈과 색이 연이 되어 눈의 인식경계[眼識界]가 생긴다고 하나, 세 곳은 전혀 있는 데가 없으니, 눈과 색과 색 경계의 셋은 다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8_b_10L若色變汝亦識其色相遷變汝識不遷從何立從變則變界相自無不變則旣從色生應不識知虛空所在兼二種眼色共生合則中離離則兩體性雜亂云何成界是故當知眼色爲緣生眼識界三處都無則眼與色及色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또 네가 밝힌 대로 귀와 소리가 연이 되어 귀의 인식[耳識]이 생긴다면, 이 인식이 귀 때문에 생긴다하여 귀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소리 때문에 생긴다하여 소리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013_0808_b_17L阿難又汝所明耳聲爲緣生於耳識此識爲復因耳所生以耳爲界因聲所生以聲爲界
013_0808_c_01L아난아, 만일 인식이 귀 때문에 생긴다면, 소리의 움직임과 조용한 두 모양이 이미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귀[根]에는 아는 작용이 성립되지 않는다. 분명 알 대상이 없으면 아는 작용도 오히려 성립될 수 없는데, 인식은 어떤 모양이겠느냐. 만일 귀의 듣는 작용을 취해서 인식이라 한다면, 소리의 움직임과 조용함이 없기 때문에 듣는 작용도 성립될 수 없는데, 어떻게 색(色)과 향(香)과 미(味)와 촉(觸)의 4진(塵)으로 섞여 짜인 귀의 형체를 인식의 경계라고 하겠으며,귀의 인식영역은 또 무엇으로 세우겠느냐.
013_0808_b_20L阿難若因耳生動靜二相旣不現前根不成知必無所知知尚無成識何形貌若取耳聞無動靜故聞無所成云何耳形雜色觸塵名爲識界則耳識界復從誰立
만일 소리에서 생긴다면, 인식이 소리 때문에 있으니, 듣는 작용과 관계가 없으며, 듣는 작용이 없으면 소리의 모양도 있는 자리가 없으리라. 인식이 소리에서 난다 하여 소리를 듣는 작용에 따라 소리 모양이 있다고 인정하면, 듣는 작용은 마땅히 인식 자체를 들어야 하리라. 인식 자체를 듣지 못한다면 소리의 경계가 아니며, 인식 자체를 듣는다면 소리와 똑같아서, 인식 자체가 이미 듣는 대상이 되었으니, 무엇이 인식 자체를 듣는 줄 알겠느냐. 만일 아는 작용이 없다면 결국 초목과 같으니, 당연히 소리와 듣는 작용이 섞여서 중간의 경계가 성립되지 않으리라. 경계의 중간자리가 없으면 안팎의 모양은 무엇으로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귀와 소리가 연이 되어 귀의 인식경계[耳識界]가 생긴다고 하나, 세 곳은 전혀 있는 데가 없으니. 귀와 소리와 소리 경계의 셋은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8_c_02L若生於聲識因聲有則不關聞無聞則亡聲相所在識從聲生許聲因聞而有聲相聞應聞識不聞非界聞則同聲識已被聞誰知聞識若無知者終如草木不應聲聞雜成中界界無中位則內外相復從何成是故當知耳聲爲緣生耳識界三處都無則耳與聲及聲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또 네가 밝힌 대로 코와 냄새[香]가 연이 되어 코의 인식[鼻識]이 생긴다면, 이 인식은 코 때문에 생긴다 하여 코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냄새[香] 때문에 생긴다 하여 냄새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013_0808_c_10L阿難又汝所明鼻香爲緣生於鼻識此識爲復因鼻所生以鼻爲界因香所生以香爲界
아난아, 만일 이 인식이 코 때문에 생긴다면 너는 마음속에 무엇을 코라고 생각하느냐. 쌍 손톱 모양의 살덩어리를 코라고 생각하느냐. 냄새를 맡아서 동요하는 성질을 코라고 생각하느냐.
만일 살덩어리를 가지고 코라고 한다면, 살덩어리[肉質]는 몸이고, 몸의 아는 작용은 촉감이니, 몸이라면 코가 아니며, 촉감이라면 경계[塵]이니라. 그러면 코는 오히려 이름이 없을 텐데 어떻게 경계를 세우겠느냐.
만일 냄새 맡는 작용을 가지고 코라고 한다면, 너는 마음속으로 무엇이 맡는다고 생각하느냐. 살덩어리가 맡는다고 한다면 살덩어리의 맡는 작용은 원래 촉감이지 코가 아니며, 허공이 맡는다고 한다면 허공이 제 스스로 맡는 것이니, 살덩어리는 마땅히 느끼지 못해야 하며, 허공이 맡는다면[如是] 마땅히 허공이 바로 네가 되고 네 몸은 알지 못해야 하며, 지금의 아난도 마땅히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냄새 자체[香]가 맡는다고 하면 맡는 작용은 저절로 냄새 자체에 속하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냐.
013_0808_c_13L阿難若因鼻生則汝心中以何爲鼻爲取肉形雙爪之相爲取嗅知動搖之性若取肉形肉質乃身身知卽觸名身非鼻名觸卽塵鼻尚無名云何立界若取嗅知又汝心中以何爲知以肉爲知則肉之知元觸非鼻以空爲知空則自知肉應非覺如是則應虛空是汝汝身非知今日阿難應無所在以香爲知知自屬香何預於汝
013_0809_a_01L만일 향냄새와 추한 냄새가 분명 네 코에서 난다면, 저 향내와 구린내의 두 가지 흐르는 기운은 이란(伊蘭; 臭木)나무와 전단(栴檀; 香木)나무에서 생기지 않으리라.이 두 나무[二物]가 없는데서 너는 스스로 코를 맡아보아라. 향내가 나느냐. 구린내가 나느냐. 구린내라면 향내가 아니며, 향내라면 분명 구린내가 아니다. 만일 향내와 구린내를 둘 다 맡는다면, 너 한 사람에게 마땅히 두 코가 있어야 하고, 또 나에게 도를 물을 때도 두 아난이 있어야 하니, 어느 쪽을 네 몸이라고 하겠느냐.
013_0808_c_22L若香臭氣必生汝鼻則彼香臭二種流氣不生伊蘭及栴檀木二物不來汝自嗅鼻爲香爲臭臭則非香香應非臭若香臭二俱能聞者則汝一人應有兩鼻對我問道有二阿難誰爲汝體
만일 코가 하나라면 향내와 구린내의 둘은 구분되지 않아서, 구린내가 이미 향내가 되고 향내가 또 구린내가 되어, 두 성질이 있지 않을 텐데 경계를 무엇으로 세우겠느냐.
만일 인식이 냄새[香] 때문에 생긴다면, 인식은 냄새 때문에 있으니, 마치 눈에 보는 작용이 있으나 제 눈을 볼 수 없듯이 냄새 때문에 인식이 있으므로 마땅히 냄새를 맡지 못해야 하리라. 인식이 냄새를 안다면 냄새에서 생긴 것이 아니며, 냄새를 알지 못한다면 인식이 아니니라.
013_0809_a_05L若鼻是一香臭無二臭旣爲香香復成臭二性不有界從誰立若因香生識因香有如眼有見不能觀眼因香有故應不知香知則非生不知非識
냄새가 맡는 작용을 근거로 있지 않다면, 냄새의 경계는 성립되지 않으며, 인식이 냄새를 알지 못한다면 인식의 경계[因界]는 냄새에서 건립되지 않는다. 이미 중간이 없고 안의 감관과 밖의 경계가 성립되지 않으니, 저 온갖 맡는 성질은 마침내 허망하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코와 냄새가 연이 되어 코의 인식경계[鼻識界]가 생긴다고 하나, 세 곳은 전혀 있는 데가 없으니, 코와 냄새와 냄새 경계의 셋은 다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9_a_09L香非知有香界不成識不知香因界則非從香建立旣無中閒不成內外彼諸聞性畢竟虛妄是故當知鼻香爲緣生鼻識界三處都無則鼻與香及香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또 네가 밝힌 대로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 혀의 인식[舌識]이 생긴다면, 이 인식은 혀 때문에 생긴다 하여 혀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맛 때문에 생긴다하여 맛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013_0809_a_13L阿難又汝所明舌味爲緣生於舌識此識爲復因舌所生以舌爲界因味所生以味爲界
아난아, 만일 인식이 혀 때문에 생긴다면, 세상의 감자(甘蔗)와 오매(烏梅)와 황련(黃連)과 석염(石鹽)과 세신(細辛)과 생강[薑]과 계피[桂]들은 모두 맛이 없으리라. 너는 스스로 혀를 맛보아라. 단맛이냐, 쓴맛이냐. 만일 혀의 성질[性]이 쓰다면 무엇이 와서 혀를 맛보겠느냐. 혀는 스스로 맛보지 못하는데 무엇이 지각하겠느냐. 혀의 성질이 쓰지 않다면 맛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데, 어떻게 경계를 세우겠느냐.
만일 인식이 맛 때문에 생긴다면, 인식[識] 자체가 맛이 되리라. 그러면 혀의 감관[舌根]이 스스로 맛보지 못함과 한가지니, 어찌 인식[識]이 맛인지 맛 아닌지를 알겠느냐.
013_0809_a_16L阿難若因舌生則諸世閒甘蔗烏梅黃連石鹽細辛薑桂都無有味汝自嘗舌爲甜爲苦若舌性苦誰來嘗舌舌不自嘗孰爲知覺舌性非苦味自不生云何立界若因味生識自爲味同於舌根應不自嘗云何識知是味非味
013_0809_b_01L또 일체 맛은 한 물건에서만 생기지 않으니, 맛이 이미 많이 생김으로 인식도 당연히 여러 체(體)라야 하리라. 인식의 체가 만일 하나이며 체가 분명 맛에서 생긴다면,짠맛과 담담한 맛과 단맛과 신맛과 화합한 맛과 본래 가진 맛[俱生]과 변하여 달라진 맛[諸變異]들은 똑같이 한 맛이 되어 분별이 없으리라. 이미 분별이 없다면 인식이라고 이름하지 못할 텐데, 어떻게 또 혀와 맛의 인식경계[舌味識界]라고 하겠느냐. 그렇다고 허공이 너의 심식(心識)을 내지는 않았으리라. 혀와 맛의 화합으로 난다면 곧 이 가운데는 원래 제 성품이 없을 텐데 어떻게 경계가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혀와 맛이 연이 되어 혀의 인식경계[舌識界]가 생긴다고 하나, 세 곳은 전혀 있는 데가 없으니, 혀와 맛과 혀 경계의 셋은 다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9_a_23L又一切味非一物生味旣多生識應多體識體若一體必味生鹹淡甘辛和合俱生諸變異相同爲一味應無分別分別旣無則不名識云何復名舌味識界不應虛空生汝心識舌味和合卽於是中元無自性云何界生是故當知舌味爲緣生舌識界三處都無則舌與味及舌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또 네가 밝힌 대로 몸과 닿음이 연이 되어 몸의 인식身識)이 생긴다면, 이 인식은 몸 때문에 생긴다 하여 몸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닿음 때문에 생긴다하여 닿음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013_0809_b_08L阿難又汝所明身觸爲緣生於身識此識爲復因身所生以身爲界因觸所生以觸爲界
아난아, 만일 인식이 몸 때문에 생긴다면, 분명 합하고 떼는[合離] 둘을 깨달아 아는 인연[二覺觀緣]이 없으니 몸이 무엇을 알겠느냐.
만일 인식이 닿음 때문에 생긴다면, 분명 네 몸이 없는데, 몸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어서 대고 뗌을 알겠느냐.
013_0809_b_11L阿難若因身生必無合離二覺觀緣身何所識若因觸生必無汝身誰有非身知合離者
아난아, 물체는 닿아도 알지 못하고, 몸이 아는 작용은 닿음에 있으니, 몸을 알리는 작용이 곧 닿음이며, 닿음을 아는 작용이 곧 몸이다. 따라서 인식이 닿음이면 몸이 아니며, 인식이 몸이면 닿음이 아니니, 몸과 닿음의 두 모양은 원래 처소가 없느니라. 또 닿음이 몸과 합하면 곧 몸 자체의 성품이며, 닿음이 몸을 떠나면 바로 허공과 같은 모양이니, 이렇게 안과 밖이 성립되지 않으면, 중간의 인식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또 중간의 인식이 성립되지 않으면 안과 밖의 성질이 공하여 없으니, 너의 인식이 생긴들 무엇으로 경계를 세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몸과 닿음이 연이 되어 몸의 인식경계[身識界]가 생긴다고 하나, 세 곳은 전혀 있는 데가 없으니, 몸과 닿음과 몸 경계의 셋은 다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9_b_14L阿難物不觸知身知有知身卽觸知觸卽身卽觸非身身非觸身觸二相元無處所合身卽爲身自體性離身卽是虛空等相外不成中云何立中不復立內外性卽汝識生從誰立界是故當知身觸爲緣生身識界三處都無則身與觸及身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아, 또 네가 밝힌 대로 뜻[意; 意根]과 법이 연이 되어 뜻의 인식[意識]이 생긴다면, 이 인식[識]은 뜻 때문에 생긴다 하여 뜻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법 때문에 생긴다 하여 법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013_0809_b_21L阿難又汝所明意法爲緣生於意識此識爲復因意所生以意爲界因法所生以法爲界
013_0809_c_01L아난아, 만일 인식이 뜻[意; 意根] 때문에 생긴다면, 네 뜻[意; 意根] 가운데 반드시 생각할 법[所思]이 있어야 너의 뜻을 밝히겠는데, 만일 앞에 법이 없다면 뜻이 생길 곳이 없으며, 인연을 떠나서는 형체가 없으니, 인식[識]이 무엇을 가지고 작용하겠느냐.
또 너의 식심(識心)이 온갖 사량[諸思量; 意根]과 요별을 겸한 성품[兼了別性]과 더불어 같겠느냐, 다르겠느냐. 뜻[意]과 같다면 그대로 뜻[意]이니, 무엇이 생기겠으며, 뜻과 다르다면 같지 않으니, 마땅히 인식할 곳이 없어야 하리라. 만일 인식할 곳이 없다면 어떻게 뜻에서 생긴다고 하겠으며, 만일 인식할 곳이 있다면 무엇이 인식을 낸 뜻이겠느냐. 같고 다름의 두 성질이 성립되지 않으면, 경계를 어떻게 세우겠느냐.
013_0809_c_01L阿難若因意生於汝意中必有所思發明汝意若無前法意無所生離緣無形識將何用又汝識心與諸思量兼了別性爲同爲異同意卽意云何所生異意不同應無所識若無所識云何意生若有所識云何識意唯同與異二性無成界云何立
만일 인식이 법 때문에 생긴다면, 세상의 모든 법은 다섯 경계[五塵]를 벗어나지 않으니, 너는 색법(色法)과 성법(聲法)과 향법(香法)과 미법(味法)과 촉법(觸法)을 보아라. 모양이 분명하여 제각기 다섯 감관을 상대할 뿐, 뜻이 거두는 법이 아니다. 너의 인식이 결코 법을 의지하여 생긴다면, 너는 이제 자세히 살펴보아라. 법 경계[法; 法塵]의 법은 어떤 모양이냐. 만일 색과 공[色空; 色法]과 움직이고 고요함[動靜; 聲法]과 통하고 막힘[通塞; 香法]과 합하고 뗌[合離; 觸法]과 생기고 사라짐[生滅; 味法]을 떠난다면 이 온갖 모양을 벗어나서는 끝내 얻을 것이 없느니라. 생긴다면 색과 공의 온갖 법이 생기고, 멸한다면 색과 공의 온갖 법이 멸할 뿐이다. 이미 원인 할 곳이 없는데 원인이 생겨 인식이 있다면, 어떤 형상이 되겠으며, 형상이 없다면 경계가 어떻게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뜻과 법이 연이 되어 뜻의 인식경계[意識界]가 생긴다고 하나, 세 곳은 전혀 있는 데가 없으니 뜻과 법과 뜻 경계의 셋은 다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니라.”
013_0809_c_08L若因法生世閒諸法不離五塵汝觀色法及諸聲法香法味法及與觸法相狀分明以對五根非意所攝汝識決定依於法生汝今諦觀法法何狀若離色空動靜通塞合離生滅越此諸相終無所得生則色空諸法等生滅則色空諸法等滅所因旣無因生有識作何形相相狀不有界云何生是故當知意法爲緣生意識界三處都無則意與法及意界三本非因緣非自然性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항상 화합하는 인연을 말씀하실 때마다 ‘일체 세상의 가지가지 변화는 다 4대(大)의 화합으로 나타난다[發明]’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여래께서는 인연과 자연을 모두 물리치십니까. 저는 지금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오니, 부디 가련하게 여기시고 중생들에게 희론법을 떠난 중도의 완전한 뜻[中道了義]을 열어 보여주옵소서.”
013_0809_c_18L阿難白佛言世尊如來常說和合因一切世閒種種變化皆因四大和合發明云何如來因緣自然二俱排我今不知斯義所屬唯垂哀愍示衆生中道了義無戲論法
013_0810_a_01L이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먼저 성문과 연각의 모든 소승 법을 싫어하여더없이 높은 깨달음을 열심히 구하려고 발심했기 때문에, 나는 방금 너를 위해서 가장 뛰어난 법[第一義諦]을 열어 보여줬는데도, 어째서 또 세상의 희론인 망상의 인연에 스스로 얽매는 것이냐. 네가 비록 들은 지식이 많을지라도, 마치 약을 말하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진실한 약이 있으나 분별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여래는 참으로 가련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나는 마땅히 너에게 분별하여 열어 보일 뿐 아니라, 미래에 대승(大乘)을 닦는 사람들에게도 실상(實相)을 통달케 하리라.”
그러자 아난은 말없이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고자 하였다.
013_0809_c_23L爾時世尊告阿難言汝先厭離聲聞緣覺諸小乘法發心勤求無上菩提故我今時爲汝開示第一義諦如何復將世閒戲論妄想因緣而自纏繞汝雖多聞如說藥人眞藥現前不能分別如來說爲眞可憐愍汝今諦聽吾當爲汝分別開示亦令當來修大乘者通達實相阿難默然承佛聖旨
“아난아, 네가 말한 대로 4대(大; 要素)의 화합으로 세상의 가지가지 변화가 나타난다면[發明], 아난아, 만일 저 요소[大]의 성질 자체가 화합이 아니라면, 모든 요소[諸大]와 섞여 어울릴 수 없음은 마치 허공이 모든 물체와 어울리지 않는 것과 같을 것이며, 만일 화합하는 성질이라면 한가지로 변화하여 시작과 끝을 서로 이루면서 생멸이 상속하여, 났다가 죽고 죽었다가 나며 나고 나며 죽고 죽기를 마치 불덩어리가 쉴 새 없이 돌 듯 반복하리라.
013_0810_a_08L阿難如汝所言四大和合發明世閒種種變化阿難若彼大性體非和合則不能與諸大雜和猶如虛空不和諸色若和合者同於變化始終相成生滅相續生死死生生生死死如旋火輪未有休息
아난아, 또 마치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얼음이 다시 물이 되듯 반복하느니라.
너는 흙의 성질을 보아라. 긁어서는 대지(大地)가 되고, 가늘어서는 미진(微塵)이 되었다가 인허진(鄰虛塵; 허공에 가까운 티끌)이 되느니라. 인허진은 저 극미한 물질의 가장자리[極微色邊際相]를 일곱 몫으로 쪼갠 것이며, 다시 인허진(鄰虛塵)을 쪼갠 것이 바로 완전한 허공의 성질이니라.
아난아, 만일 이 인허(鄰虛)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마땅히 허공이 색상(色相)을 출생시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너는 지금 ‘화합한 까닭에 세상의 온갖 변화하는 모양이 출생하는가’를 물었으니, 너는 또 이 점을 생각해보아라. 한 인허진은 얼마의 허공을 들여 화합해야만 생기겠느냐. 당연히 인허진이 합쳐서 인허진이 되지는 않으리라.
013_0810_a_14L阿難如水成冰冰還成水汝觀地性麤爲大地細爲微塵至鄰虛塵析彼極微色邊際相七分所成更析鄰虛卽實空性阿難若此鄰虛析成虛空當知虛空出生色相汝今問言由和合故出生世閒諸變化相汝且觀此一鄰虛塵用幾虛空和合而有不應鄰虛合成鄰虛
013_0810_b_01L또 인허진을 쪼개어 허공이 되려면 얼마의 색상(色相)을 들여 합해야만 허공이 되겠느냐. 만일 색과 합할 때라면 색과 합했으니 허공이 아니며, 만일 허공과 합할 때라면 허공과 합했으니 물질이 아니다. 색은 오히려 쪼갤 수 있겠으나, 허공을 어떻게 합하겠느냐.너는 원래 여래장(如來藏) 안에 성품이 색인 진실한 공[性色眞空]과 성품이 공인 진실한 색[性空眞色]이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능력[知量]에 응하는 줄을 모르고 있느니라.
업을 좇아 출현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과 자연의 본질로 잘못 알고 있느니라. 이것은 모두 이 인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여 헤아리는 작용이니, 단지 말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013_0810_a_21L又鄰虛塵析入空者用幾色相合成虛空若色合時合色非空若空合時合空非色色猶可析空云何合汝元不知如來藏中性色眞空性空眞色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아난아, 불의 성질은 자체[我]가 없으니 여러 인연에 의지하느라. 너는 성안의 식전(食前)의 집들을 보아라. 밥을 지으려고 불을 지필 때, 손에 불 거울[陽燧; 火鏡]을 들고 햇빛에서 불을 피우고 있느니라. 아난아, 이를 화합이라고 한다면, 너와 나와 1,250비구가 지금 화합하여 한 대중이 된 것과 같다. 대중으로는 비록 하나이지만 그 근본을 따져보면, 각자의 몸이 따로 있으며, 다들 태어난 씨족의 이름이 있으니, 사리불(舍利弗)은 바라문(婆羅門)족이고, 우루빈라(優樓頻羅)는 가섭파(迦葉波)족이며, 그리고 아난은 구담(瞿曇)족이다.
013_0810_b_06L阿難火性無我寄於諸緣汝觀城中未食之家欲炊爨時手執陽燧日前求火阿難名和合者如我與汝一千二百五十比丘今爲一衆衆雖爲一詰其根本各各有身皆有所生氏族名字如舍利弗婆羅門種優盧頻螺迦葉波種乃至阿難瞿曇種姓
아난아, 만일 이 불의 성질이 화합 때문에 생긴다면, 저 사람이 손에 거울을 잡고 해에서 불을 피울 때, 이 불은 거울에서 나오겠느냐. 쑥에서 나오겠느냐. 해에서 오겠느냐.
아난아 만일 해에서 온다면, 해가 스스로 네 손안의 쑥을 태웠으니, 해가 온 곳의 수풀들은 마땅히 불에 타야 한다.
만일 거울에서 나온다면, 스스로 거울에서 나와 쑥을 태웠는데, 어째서 거울은 녹지 않았느냐. 거울을 잡은 네 손도 오히려 뜨거운 기운이 없는데, 어찌 거울이 녹겠느냐.
013_0810_b_13L阿難若此火性因和合有彼手執鏡於日求火此火爲從鏡中而出爲從艾出爲於日來阿難若日來者自能燒汝手中之艾來處林木皆應受焚若鏡中出自能於鏡出然于艾鏡何不鎔紆汝手執尚無熱相云何融泮
013_0810_c_01L만일 쑥에서 생긴다면, 무엇 때문에 해와 거울과 빛을 빌려 서로 접촉해야만 불이 생기겠느냐.
너는 또 자세히 살펴보아라. 거울은 손에 잡혀 있고, 해는 하늘에서 오며, 쑥은 본래 땅에서 나는데, 불은 어느 곳으로부터 와서 여기를 지나가겠느냐. 해와 거울은 서로 멀리 떨어져서 어울리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으며, 불빛이 온 곳 없이 저절로 있다고도 하지 못한다.
너는 오히려 여래장 안에 성품이 불인 진실한 공과 성품이 공인 진실한 불이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능력에 응하는 줄을 모르고 있느니라.
013_0810_b_19L若生於艾何藉日鏡光明相接然後火生汝又諦觀鏡因手執日從天來艾本地生火從何方遊歷於此日鏡相遠非和非合不應火光無從自有汝猶不知如來藏中性火眞空性空眞火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
아난아, 마땅히 알라. 세상 사람이 한 곳에서 거울을 들고 불을 피우면 한 곳에 불이 생기고, 법계에서 두루 거울을 들고 불을 피우면 세상 가득 불이 일어나서 세상을 가득 채울 텐데, 어찌 따로 장소가 있겠느냐.
업(業)을 좇아서 출현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과 자연의 본질로 잘못 알고 있느니라. 이것은 다 이 인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여 헤아리는 작용이니, 단지 말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013_0810_c_03L阿難當知世人一處執鏡一處火生遍法界執滿世閒起起遍世閒寧有方所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아난아, 물의 성질은 일정하지 않아서 흐르고 그침이 한결같지 않느니라. 저 실라벌성(室羅筏城)의 선인(仙人) 가비라(迦毗羅)와 선인 작가라(斫迦羅)와 발두마(鉢頭摩)와 하살다(訶薩多)와 같은 여러 뛰어난 환술사[幻師]들이 달의 정기[太陰精]를 받아서 환술약[幻藥]을 만들 때, 그들은 보름날 밤중[白月晝]에 구슬 소반[方諸]을 손에 들고 달 속의 물을 받는다. 이 물은 구슬 소반에서 나오겠느냐. 허공 가운데 저절로 있겠느냐. 달에서 나오겠느냐.
013_0810_c_07L阿難水性不定流息無恒如室羅城迦毘羅仙斫迦羅仙及鉢頭摩訶薩多等諸大幻師求太陰精用和幻藥是諸師等於白月晝手執方諸承月中水此水爲復從珠中出空中自有爲從月來
만일 달에서 나온다면, 오히려 먼 곳인데도 구슬 소반에서 물이 나올 수 있게 하였으니, 거쳐 온 숲과 나무들은 다 당연히 물을 토해서 흘려보내야 한다. 흐른다면 무엇 때문에 구슬 소반에서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겠으며, 흐르지 않는다면 물이 달에서 흐르지 않음이 분명하다.
만일 구슬 소반에서 나온다면, 이 구슬 소반에서는 마땅히 항상 물이 나와야 할 텐데, 무엇 때문에 한밤중의 보름달을 기다려 물을 받겠느냐.
만일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본질은 끝이 없으니, 물도 마땅히 끝없이 흘러야 한다. 그러면 인간에서 하늘까지 모두 함께 물 속에 잠길 텐데, 어찌 물과 육지와 허공을 따로 행할 수 있겠느냐.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 달은 하늘에서 떠오르고, 구슬 소반은 손에 잡혀 있고, 구슬 안의 물을 받는 소반[盤]은 그 사람이 펴놓은 것인데, 물은 어디로부터 와서 여기까지 흘러들었느냐. 달과 구슬은 서로 멀리 떨어져서 어울리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으며, 물의 정기가 온 곳 없이 저절로 있다고도 하지 못한다.
013_0810_c_13L阿難若從月來尚能遠方令珠出水所經林木皆應吐流何待方珠所出不流明水非從月降若從珠出則此珠中常應流水何待中宵承白月晝若從空生空性無邊水當無際從人洎天皆同陷溺云何復有水陸空行汝更諦觀月從天陟珠因手持承珠水盤本人敷設水從何方流注於此月珠相遠非和非合不應水精無從自有
013_0811_a_01L너는 오히려 여래장 안에 성품이 물인 진실한 공과 성품이 공인 진실한 물이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능력에 응하는 이치를 모르고 있느니라.한 곳에서 구슬을 잡으면 한 곳에서 물이 나오고, 법계에서 두루 구슬을 잡으면, 법계에 가득 물이 생길 텐데, 어찌 따로 장소가 있겠느냐.
업(業)을 좇아서 출현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과 자연의 본질로 잘못 알고 있느니라. 이것은 다 이 인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여 헤아리는 작용이니, 단지 말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013_0810_c_22L汝尚不知如來藏中性水眞空性空眞水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一處執珠一處水出遍法界執滿法界生生滿世閒寧有方所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아난아, 바람의 성질은 자체가 없으니, 흔들리고 고요함이 한결같지 않다. 네가 항상 법의[衣]를 바로 고쳐 입고 대중의 모임에 들어갈 때마다 승가리 자락[僧伽梨角]이 흔들리면 그 흔들림이 옆 사람에게 닿아서 그 사람의 얼굴에 가벼운 바람이 스친다. 이 바람은 가사자락에서 나오겠느냐, 허공에서 일어나겠느냐.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기겠느냐.
013_0811_a_05L阿難風性無體動靜不常汝常整衣入於大衆僧伽梨角動及傍人則有微風拂彼人面此風爲復出袈裟角發於虛空生彼人面
이 바람이 만일 가사자락에서 나온다면, 너는 바로 바람을 입었으니, 그 옷은 펄럭이고 날리어 분명 너의 몸에서 떠나리라. 나는 지금 설법하면서 모임 가운데 법의를 드리웠으니, 너는 내 옷을 보아라. 바람이 어디에 있느냐. 당연히 내 옷 속에 바람을 감춰둔 자리가 있다고 하지는 않으리라.
만일 허공에서 생긴다면, 네 옷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어째서 나부낌이 없느냐. 허공은 항상 머무는 성질이니, 바람도 마땅히 항상 생겨야 한다. 만일 바람이 없을 때면 허공도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데, 없어진 바람은 볼 수 있겠으나, 없어진 허공은 어떤 모양이겠느냐. 만일 생멸이 있다면 허공이라 할 수 없고, 허공이라고 한다면 어찌 바람이 나오겠느냐.
만일 바람이 저절로 스친 상대의 얼굴에서 생겼다면, 상대의 얼굴에서 나왔으니, 마땅히 너를 스쳐야 한다. 너 자신이 옷을 고쳐 입었는데 어째서 거꾸로 상대를 스쳐간 것이냐.
013_0811_a_09L阿難此風若復出袈裟角汝乃披風其衣飛搖應離汝體我今說法會中垂衣汝看我衣風何所在不應衣中有藏風地若生虛空汝衣不動何因無拂空性常住風應常生若無風時虛空當滅滅風可見滅空何狀若有生滅不名虛空名爲虛空云何風出若風自生彼拂之面從彼面生當應拂汝自汝整衣云何倒拂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 옷을 고쳐 입은 것은 너이고, 얼굴은 저 사람에게 있으며, 허공은 고요하여 흔들려 흐르는 것과 상관이 없는데, 바람은 어디로부터 불어와서 여기를 흔드는 것이냐.
바람과 허공은 성질이 달라서 어울리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으며, 바람의 성질이 온 곳 없이 저절로 있다고도 하지 못한다.
너는 전혀 여래장 안에 성품이 바람인 진실한 공과 성품이 공인 진실한 바람이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능력에 응하는 이치를 모르고 있느니라.
013_0811_a_18L汝審諦觀整衣在汝面屬彼人虛空寂然不參流動風自誰方鼓動來此風空性隔非和非合不應風性無從自有汝宛不知如來藏中性風眞空性空眞風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
013_0811_b_01L아난아, 너 한 사람이 옷을 가볍게 펄럭이면 가벼운 바람이 일고 법계에서 두루 펄럭이면국토 가득 생겨서 세간에 두루 가득할 텐데, 어찌 따로 장소가 있겠느냐.
업(業)을 좇아서 출현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과 자연의 성질로 잘못 알고 있느니라. 이것은 모두 이 인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여 헤아리는 작용이니, 단지 말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013_0811_a_23L阿難如汝一人微動服衣有微風出遍法界拂滿國土生周遍世閒寧有方所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아난아, 허공의 성질은 형상이 없으므로 물체로 인하여 드러나느니라. 실라벌성 안에 강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찰제리[刹利]와 바라문(婆羅門)과 비사(毗舍)와 수타(首陀)와 전타라(旃陀羅)들이 살 집[安居]을 새로 세우려고 우물을 파서 물을 구할 때, 흙이 한 자쯤 나오면 그 자리에 한 자의 허공이 생기고, 이렇게 흙이 한 길 나오면 중간에 다시 한 길의 허공이 생기는데, 허공의 얕고 깊음은 나오는 흙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느니라. 이 허공은 흙 때문에 나오겠느냐, 파냄 때문에 나오겠느냐, 원인 없이 저절로 생기겠느냐.
013_0811_b_05L阿難空性無形因色顯發如室羅城去河遙處諸剎利種及婆羅門毘舍首陁兼頗羅墮旃陁羅等新立安居鑿井求水出土一尺於中則有一尺虛空如是乃至出土一丈中閒還得一丈虛空空虛淺深隨出多少此空爲當因土所出因鑿所有無因自生
아난아, 만일 이 허공이 원인 없이 저절로 생긴다면, 흙을 파기 전에는 어찌하여 막혀서 오직 대지(大地)만 볼 뿐, 멀리 환하게 통하지 않았느냐.
만일 흙 때문에 나온다면, 흙이 나올 때는 마땅히 들어가는 허공을 보아야 하며, 만일 흙이 먼저 나오는데 들어가는 허공이 없다면, 어찌 허공이 흙 때문에 나온다고 하겠느냐. 만일 나오고 들어가지 않는다면, 마땅히 허공과 흙은 원래 다른 원인이 없어야 한다. 다르지 않다면 같은 것인데, 흙이 나올 때 어째서 허공이 나오지 않느냐.
만일 파냄 때문에 나온다면, 파는 자체로 허공만 나오고 당연히 흙은 나오지 않아야 하며, 파냄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면, 팔 때마다 저절로 흙만 나와야 하는데, 어째서 허공을 보는 것이냐.
013_0811_b_12L阿難若復此空無因自生未鑿土前何不無㝵唯見大地迥無通達若因土出則土出時應見空入若土先出無空入者云何虛空因土而出若無出入則應空土元無異因無異則同則土出時空何不出若因鑿出則鑿出空應非出土不因鑿出鑿自出土云何見空
013_0811_c_01L너는 다시 조심하고 주의해서 자세히 관찰하여라. 파는 기구는 사람의 손에서 방향을 따라 운전(運轉)하고 흙은 땅을 따라 옮기는데, 이러한 허공은 무엇을 근거로 나오겠느냐. 파냄과 허공의 허(虛)와 실(實)은 서로 작용하지 않아서 어울리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으며, 허공이 온 곳 없이 저절로 나온다고도 하지 못한다.
만일 허공의 성질이 두루 원만하여 본래 동요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현재 눈앞의 흙과 물과 불과 바람과 함께 다섯 요소[五大]라고 하며, 성품이 진실하고 원만하고 융통한 여래장(如來藏)으로서 본래 생멸이 없는 자리이니라.
013_0811_b_20L汝更審諦諦審諦觀鑿從人手隨方運轉土因地移如是虛空因何所出鑿空虛實不相爲用非和非合不應虛空無從自出若此虛空性圓周遍本不動搖當知現前地水火風均名五大性眞圓融皆如來藏本無生滅
아난아, 너는 마음이 혼미하여 네 요소[四大]가 원래 여래장(如來藏)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바로 허공을 보아라. 나오겠느냐 들어가겠느냐,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겠느냐.
너는 전혀 여래장 안에 성품이 깨달음인 진실한 공과 성품이 공인 진실한 깨달음이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능력에 응하는 이치를 모르고 있느니라.
013_0811_c_03L阿難汝心昏迷不悟四大元如來藏當觀虛空爲出爲入爲非出入汝全不知如來藏中性覺眞空性空眞覺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
아난아, 한 우물이 공하면 허공이 한 우물만큼 생기듯 시방의 허공도 이와 같은데, 시방에 원만한 허공이 어찌 따로 장소가 있겠느냐.
업(業)을 좇아서 출현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과 자연의 본질로 잘못 알고 있느니라. 이것은 모두 이 인식하는 마음이 분별하여 헤아리는 작용이니, 단지 말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013_0811_c_07L阿難如一井空空生一井十方虛空亦復如是圓滿十方寧有方所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아난아, 눈의 보는 작용[見覺; 眼根을 시작으로 六根을 다 칭함]에는 아는 작용이 없으니, 색(色)과 공(空)을 따라서 아는 작용이 생기느니라. 네가 지금 기타림(祇陀林)에 있어도 아침이면 밝고 저녁이면 어두워지며, 가령 밤중일지라도 보름이면 밝고 그믐이면 캄캄하다. 이러한 밝고 어두운 경계를 따라 보는 작용이 가려내고 있으니, 이 보는 작용은 밝고 어두운 모양과 넓은 허공과 더불어 동일체(一體)이겠느냐. 동일체가 아니겠느냐. 혹은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겠느냐. 혹은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겠느냐.
013_0811_c_12L阿難見覺無知因色空有如汝今者在祇陁林朝明夕昏設居中宵白月則光黑月便暗則明暗等因見分析此見爲復與明暗相幷太虛空爲同一體爲非一體或同非同或異非異
만일 이 보는 작용이 밝음과 어둠과 넓은 허공과 더불어 원래 일체(一體)라면, 밝음과 어둠의 두 체는 서로 없어져서, 어두울 때는 밝음이 없고 밝을 때는 어둠이 없으리라. 만일 어둠과 일체라면 밝을 때는 보는 작용이 없을 것이며, 밝음과 일체라면 어두울 때는 보는 작용이 멸하리라, 이렇게 멸한다면 어떻게 밝음을 보고 어둠을 보겠느냐. 만일 어둠과 밝음은 다르나 보는 작용에 생멸이 없다면, 일체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013_0811_c_17L阿難此見若復與明與暗及與虛空元一體者則明與暗二體相亡暗時無明明時非暗若與暗一明則見亡必一於明暗時當滅滅則云何見明見暗若暗明殊見無生滅一云何成
013_0812_a_01L만일 이 보는 정기가 어둠과 밝음과 더불어 일체가 아니라면, 너는 밝음과 어둠과 허공을 떠나서 보는 작용의 근원(根元)을 가려내 보아라. 어떤 형상이 되겠느냐.밝음을 떠나고 어둠을 떠나고 허공을 떠나면, 이 보는 작용의 근원은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처럼 없을 것이며, 밝음과 어둠과 허공의 세 일과 모두 다르다니, 무엇으로 보는 작용을 세우겠느냐.
밝음과 어둠은 서로 등진 것인데, 어떻게 혹 동일하기도 하다고 하겠느냐. 밝음과 어둠과 허공의 셋을 떠나서는 보는 정기는 원래 없는데, 어떻게 다르기도 하다고 하겠느냐. 허공을 가려 나누고 보는 작용을 가려 나누려면 본래 경계선[邊畔]이 없는데, 어찌 동일하지 않기도 하다고 하겠느냐. 어둠을 보고 밝음을 보아도 성품은 변하여 옮기지 않는데, 어찌 다르지 않기도 하다고 하겠느냐.
013_0811_c_22L若此見精與暗與明非一體者汝離明暗及與虛空分析見元作何形相離明離暗及離虛空是見元同龜毛兔角明暗虛空三事俱異從何立見明暗相背云何或同離三元無云何或異分空分見本無邊畔云何非同見暗見明性非遷改云何非異
너는 더욱 자세히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펴서 깊이 관찰하여라. 밝음은 태양을 좇고 어둠은 그믐밤을 따르고, 통함은 허공에 속하고 막힘은 대지로 돌아가는데, 보는 정기는 무엇을 근거로 나오겠느냐. 보는 작용은 감각이며 허공은 완고하여 어울리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으며, 보는 정기가 온 곳 없이 저절로 나온다고도 하지 못한다.
만일 보고 듣고 아는 작용의 성품이 두루 원만하여 본래 흔들리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끝이 없고 움직이지 않는 허공과 흔들리는 흙과 물과 불과 바람과 함께 여섯 요소라고 하며, 성품이 진실하고 원만하고 융통한 여래장(如來藏)으로서 본래 생멸이 없는 자리이니라.
013_0812_a_06L汝更細審微細審詳審諦審觀明從太陽暗隨黑月通屬虛空擁歸大地如是見精因何所出見覺空頑非和非合不應見精無從自出若見聞知性圓周遍本不動搖當知無邊不動虛空幷其動搖地水火風均名六大性眞圓融皆如來藏本無生滅
아난아, 네 성품이 망상에 깊이 잠겨서 너의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작용이 본래 여래장(如來藏)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느니라. 너는 마땅히 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작용을 보아라. 생기겠느냐, 멸하겠느냐. 같겠느냐, 다르겠느냐. 생기지도 멸하지도 않겠느냐, 같지도 다르지도 않겠느냐.
너는 잠시도 여래장 안에 성품이 보는 작용인 깨달음의 밝음과 깨달음의 정기인 밝은 보는 작용이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한 가운데,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각자의 아는 능력에 응하는 이치를 모르고 있느니라.
013_0812_a_13L阿難汝性沈淪不悟汝之見聞覺知本如來藏汝當觀此見聞覺知爲生爲滅爲同爲異爲非生滅爲非同異汝曾不知如來藏中性見覺明覺精明見淸淨本然周遍法界隨衆生心應所知量
한 보는 근원[一見根]의 보는 작용이 법계에 두루 원만함과 같이, 듣는 작용[聽]과 맡는 작용[齅]과 맛보는 작용[嘗觸]과 닿는 작용[覺觸]과 인식작용[覺知]의 묘한 덕도 환하여 법계에 주변하고 시방 허공에 원만하니, 어찌 따로 장소가 있겠느냐.
업(業)을 좇아서 출현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과 자연의 본질로 잘못 알고 있느니라. 이것은 모두 이 인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여 헤아리는 작용이니, 단지 말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013_0812_a_18L如一見根見周法界聽嗅嘗觸覺觸覺知妙德瑩然遍周法界圓滿十虛寧有方所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013_0812_b_01L아난아, 인식 자체[識性]는 근원이 없으니, 여섯 가지 감관[根]과 대상[塵]을 따라서 허망하게 나오느니라.너는 지금 이 법회의 성중(聖衆)을 두루 눈으로 빙 둘러 보아라. 그 눈이 두루 보는 작용은 단지 거울 속의 모습이 따로 분별하지 않는 것과 같을 뿐이다.
너는 그 가운데를 인식해서 차례로 표하여 ‘이 사람은 문수요, 이 사람은 부루나요, 이 사람은 목건련이요, 이 사람은 수보리요, 이 사람은 사리불이다’라고 가리켜 보아라. 이 인식이 밝게 아는 작용은 보는 작용에서 생기겠느냐. 모양에서 생기겠느냐. 허공에서 생기겠느냐. 까닭 없이 불쑥 나오겠느냐.
013_0812_a_23L阿難識性無源因於六種根塵妄出汝今遍觀此會聖衆用目循歷其目周視但如鏡中無別分析汝識於中次第摽指此是文殊此富樓那此目乾連此須菩提此舍利弗此識了知爲生於見爲生於相爲生虛空爲無所因突然而出
만일 네 인식 자체가 보는 작용 가운데서 생긴다면, 밝음과 어둠과 물체와 허공과 관계가 없으니, 이 네 가지가 분명히 없다면 원래 너의 보는 성품도 없으리라. 보는 성품도 오히려 없는데 어디에서 인식이 일어나겠느냐.
만일 네 인식 자체[識性]가 모양에서 생긴다면, 보는 작용에서 생기지 않았으니, 이미 밝음을 볼 수 없고 어둠도 볼 수 없느니라. 밝음과 어둠을 볼 수 없다면 곧 물체와 허공도 없으니 저 모양들도 오히려 없을 텐데, 인식은 어디에서 일어나겠느냐.
만일 허공에서 생긴다면, 모양도 아니고 보는 작용도 아니니, 보는 작용이 아니면 분간하지 못해서 스스로 밝음과 어둠과 물체와 허공을 알지 못할 것이며, 모양이 아니면 인연이 사라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작용이 설자리가 없으리라. 이 모양도 아니고 보는 작용도 아닌 곳[二非]에 처한다면, 공이라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며, 있어도 물체와 같지 않으니, 너의 인식이 일어난들 무엇을 분별하고자 하겠느냐.
013_0812_b_07L阿難若汝識性生於見中如無明暗及與色空四種必無元無汝見見性尚無從何發識若汝識性生於相中不從見生旣不見明亦不見暗明暗不矚卽無色空彼相尚無識從何發若生於空非相非見非見無辯自不能知明暗色空非相滅緣見聞覺知無處安立處此二非空非同無有非同物縱發汝識欲何分別
만일 까닭 없이 불쑥 나온다면, 어째서 대낮[日中]에는 밝은 달을 인식하지 못하느냐.
너는 더욱 곰곰이 생각하여 세밀하게 살펴보아라. 보는 작용은 너의 눈동자에 맡기고 모양은 앞 경계에 미루고, 모양이 될 만한 것은 있는 것이 되고, 모양이 아닌 것은 없는 것이 되는데, 이러한 인식의 인연은 무엇을 근거로 나오는 것이냐.
인식은 움직이지만 보는 작용은 고요하여, 어울리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으며, 듣고 깨닫고 아는 작용도 이와 같으니, 인식의 연이 나온 곳 없이 나온다고도 하지 않아야 한다.
013_0812_b_16L若無所因突然而出何不日中別識明月汝更細微細詳審見託汝睛相椎前境可狀成有不相成無如是識緣因何所出識動見澄非和非合聞聽覺知亦復如是不應識緣無從自出
만일 이 인식하는 마음이 본래 온 곳이 없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분별[了別]하고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작용이 원만하고 고요하여 그 성품이 온 곳이 없으니, 저 허공과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을 겸하여 함께 일곱 요소라고 하며, 성품이 진실하고 원만하고 융통한 여래장으로서 생멸이 없는 자리이니라.
013_0812_b_21L若此識心本無所從當知了別見聞覺知圓滿湛然性非從所兼彼虛空地水火風均名七大性眞圓融皆如來藏本無生滅
013_0812_c_01L아난아, 너는 마음이거칠고 들떠서 보고 듣고 밝히고 아는 작용이 여래장(如來藏)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느니라. 너는 마땅히 이 여섯 곳의 인식하는 마음을 살펴보아라. 같겠느냐, 다르겠느냐. 공하겠느냐, 있겠느냐.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겠느냐, 공하지도 않고 있지도 않겠느냐.
너는 원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인식인 밝게 아는 작용과 깨달음의 밝음인 진실한 인식을 모르고 있느니라. 묘한 깨달음이 고요하여 법계에 두루 원만해서 시방 허공을 머금고 토하는데, 어찌 따로 생기는 장소가 있겠느냐.
업(業)을 좇아서 출현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무지하여 인연과 자연의 본질로 잘못 알고 있느니라. 이것은 모두 이 인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여 헤아리는 작용이니, 단지 말만 있을 뿐, 전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013_0812_c_01L阿難汝心麤浮不悟見聞發明了知本如來藏汝應觀此六處識心爲同爲異爲空爲有爲非同異爲非空有汝元不知如來藏中性識明知覺明眞識妙覺湛然遍周法界含吐十虛寧有方所循業發現世閒無知惑爲因緣及自然性皆是識心分別計度但有言說都無實義
이때 아난과 모든 대중은 여래의 미묘한 가르침을 받고 몸과 마음이 텅 비어 걸림 없는 경지에 들었다. 모든 대중은 각각 스스로 마음이 시방에 두루 원만해져서 시방 허공을 보니, 마치 손바닥 안에 든 잎사귀를 보는 듯하였다. 일체 세상의 온갖 물상들이 모두 다 보리의 묘하게 밝은 원래의 마음과 일치하니, 마음이 정기가 두루 원만하여 시방을 두루 다 싸안았다. 이 경지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되돌아보니, 저 시방 허공 가운데 작은 티끌이 있는 듯 없는 듯 나부끼는 것과 같았으며, 맑고 넓은 바다에 흐르는 한 물거품이 온 곳 없이 일고 꺼지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스스로 분명하게 알고 본래 묘한 마음이 영원히 머물러 멸하지 않는 법을 얻게 되자,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합장하여 처음으로 얻은 법의 고마움을 여래 앞에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013_0812_c_09L爾時阿難及諸大衆蒙佛如來微妙開示身心蕩然得無罣礙是諸大衆各各自知心遍十方見十方空如觀掌中所持葉物一切世閒諸所有物皆卽菩提妙明元心心精遍圓含裹十方反觀父母所生之身猶彼十方虛空之中吹一微塵若存若亡如湛巨海流一浮漚起滅無從了然自知獲本妙心常住不滅禮佛合掌得未曾有於如來前說偈讚佛

묘하고 고요한 총지로 부동하신 세존이시여
수능엄왕은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법입니다
억겁 동안 뒤바뀐 생각을 말끔히 씻어내시어
아승기겁 밟지 않고 법신을 얻게 하셨습니다.
013_0812_c_19L妙湛摠持不動尊
首楞嚴王世希有
銷我億劫顚倒想
不歷僧祇獲法身


저도 이제 거룩한 과위를 얻고 성불한 뒤에
다시 돌아와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렵니다
이 깊은 마음으로 많은 부처님들을 받들어서
그 무거운 부처님의 은혜를 갚으려 하옵니다.
013_0812_c_21L願今得果成寶王
還度如是恒沙衆
將此深心奉塵剎
是則名爲報佛恩
013_0813_a_01L

엎드려 세존께 청하오니 증명하여 주옵소서
굳은 서원으로 오탁악세에 먼저 들어가서
만일 한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한다면
열반에 들지 않고 끝까지 교화하렵니다.
013_0812_c_23L伏請世尊爲證明
五濁惡世誓先入
如一衆生未成佛
終不於此取泥洹


큰 용맹이시여 큰 힘이시여 큰 자비시여
더욱 깊이 살피시어 미세번뇌 끊게 하여
보다 일찍 깨달음의 정상에 오르게 하고
시방법계의 도량에서 교화토록 하옵소서
끝없이 넓은 허공 다하여 없어진 다 해도
금강처럼 견고한 마음 흔들리지 않으리다.
013_0813_a_02L大雄大力大慈悲
希更審除微細惑
令我早登無上覺
於十方界坐道場
舜若多性可銷亡
爍迦囉心無動轉
大佛頂萬行首楞嚴經卷第三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