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菩薩善戒經卷第二

ABC_IT_K0524_T_002
014_0173_c_01L보살선계경 제2권
014_0173_c_01L菩薩善戒經卷第二


구나발마 한역
최윤옥 번역
014_0173_c_02L宋罽賓三藏求那跋摩譯


5) 진실의품(眞實義品)
014_0173_c_03L菩薩地眞實義品第五
어떤 것을 진실의(眞實義)라 하는가? 진실의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성(法性)이고, 둘째는 법등(法等)이다.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류포(世流布)이고, 둘째는 방편유포(方便流布)이며, 셋째는 정번뇌장(淨煩惱障)이고, 넷째는 정지혜장(淨智慧障)이다.
014_0173_c_04L云何名眞實義眞實義者有二種一者法性二者法等復有四種一者世流布二者方便流布三者淨煩惱障者淨智慧障
어떤 것을 세류포라 하는가? 세간의 법은 그 이름을 같이한다. 즉 중생이 땅을 보면 참으로 그것이 땅인 줄로 알며 결코 그것을 불[火]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은 진실로 불로 여길 뿐 땅이라고 하지 않는다. 물과 바람,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의복ㆍ음식ㆍ영락(瓔珞)ㆍ기물(器物)ㆍ기악(伎樂)ㆍ명암ㆍ남녀ㆍ사택(舍宅)ㆍ전업(田業)ㆍ고락(苦樂)이 모두 그렇다. 고(苦)는 진실로 고일 뿐 결코 낙(樂)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낙은 진실로 낙일 뿐 결코 고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옳고 이것은 그르다 하여 정해지지 않은 것을 정한다. 세간의 모든 것은 예로부터 이처럼 이름과 모양이 전해 와서 저절로 아는 것이지 수집(修集)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세류포의 참된 뜻이다.
어떤 것을 방편유포라 하는가? 예를 들면 세간의 지인(智人)이 먼저 헤아려보고는 다음에 경서(經書)의 내용에 맞추어서 논의하는 것을 방편유포라 한다.
014_0173_c_08L云何名世流布世閒之法同其名號衆生見地眞實是地終不言火火眞實火不言是地水風聲香味觸衣服飮食瓔珞器物伎樂明闇男女舍宅田業苦樂苦眞實苦終不言樂樂眞實樂終不言苦此是此非定以不定一切世閒從昔已來傳此名相自然而知不從修集然後知也是名世流布眞實義也云何名方便流布如世智人先以籌量然後造作經書論議是名方便流布
어떤 것을 정번뇌장이라 하는가? 모든 성문과 벽지불 등이 무루지(無漏智)와 무루도(無漏道)로써 번뇌를 깨뜨려 무애지(無碍智)를 얻는데 이것을 정번뇌장이라 한다. 번뇌를 깨뜨리기 때문에 지혜가 밝고 청정하며, 지혜가 밝고 청정하기 때문에 신심(身心)에 걸림이 없다. 이것이 정지혜장의 참된 뜻이다.
014_0173_c_18L云何淨煩惱障一切聲聞辟支佛等以無漏智無漏道壞煩惱故得無㝵智名淨煩惱障以壞煩惱故智得明淨智慧淨故身心無㝵是名淨智慧障眞實義也
014_0174_a_01L다시 진실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진실을 사제(四諦)라고 하는데 이른바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이다. 이 사제를 보아서 참된 지혜를 얻는 것을 성문ㆍ벽지불이라 한다. 성문ㆍ벽지불은 오음(五陰)을 분별하여 관한다. 그래서 오음을 떠나서는 전혀 아(我)와 아소(我所)를 보지 않으며 12인연을 분관한다. 이 때문에 오음을 떠나서는 중생과 사부(士夫)를 보지 않는데, 이것이 정지혜장의 참된 뜻이다. 만일 지혜가 경계(境界)를 알지 못하면 지장(智長)이라 하며, 능히 지장을 깨뜨리고 경계를 아는 것이 정지혜장이란 이름의 참된 뜻이다. 참된 뜻이란 말하자면 부처님이나 보살이 모든 음입(陰入)ㆍ음계(陰界)를 깊이 보기 때문에, 아(我)는 아가 아니며[無我], 중생은 중생이 아니며, 사부(士夫)는 사부가 아님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정지장(淨智障)이라 한다.
014_0174_a_01L云何復名眞實眞實者名爲四諦所謂苦集滅道觀此四諦得實智慧是名聲聞辟支佛聲聞辟支佛分觀五陰是故離陰都不見我及以我所分觀十二因緣是故離陰不見衆生及以士夫是名淨智慧障眞實義也若智不能知境界者名曰智若能壞障知境界者名淨智障眞實義也眞實義者謂佛菩薩深觀一切陰入界故觀我無我衆生非衆士夫非士夫是名淨智障
모든 법계(法界)가 선설(宣說)할 수 없는 것임을 보며, 세제(世諦)를 알아 법계를 분별하며, 모든 법계의 진실한 성품을 아는 것을 무승혜(無勝慧)라 한다. 무승혜는 모든 장애를 깨뜨린다. 그래서 정지혜장 진실의라 한다. 진실의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有)이며, 둘째는 무(無)이다.
014_0174_a_11L觀諸法界不可宣說知世諦故分別法界諸法界眞實性故名無勝慧無勝慧者壞一切障是故名爲淨智慧障眞實義也眞實義者復有二種一者有者無
014_0174_b_01L유(有)는 이른바 세류포라 하는데, 세류포란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과,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과,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과,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과,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와 출법(出法)ㆍ멸법(滅法)ㆍ종연생법(從緣生法), 그리고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차세(此世)와 타세(他世)의 기간[日月], 견문과 지식으로 얻은 각관(覺觀) 및 수집(修集)ㆍ수지(受持)에서 열반까지이다. 이것을 세류포의 유(有)라 한다. 세간에서 말하는 유란 법성(法性)을 말하는 것이다. 무(無)는 세류포의 유(有)인 색(色)에서부터 열반까지가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므로 무라 하는 것이다. 중생들이 보기 때문에 유라 하며, 법성(法性)이 본래 없기 때문에 무라 한다.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말씀하신 유와 무는 이름의 진실이다. 진실을 중도(中道)라 하는 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이 중도이다. 중도를 무상도(無上道)라 한다. 이와 같은 중도로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장애를 깨뜨려 없앴기 때문에 일체지(一切智)라 하지만, 보살마하살은 아무리 이 같은 중도를 배운다 하더라도 아직도 장애가 남아있기 때문에 일체지란 이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014_0174_a_16L有者名世流布世流布者所謂色受想行識眼耳鼻舌身地水火風色聲香味觸善不善無記出法滅法從緣生法去來現在有爲無爲此世他世日月見聞識知所得覺觀修集受持乃至涅槃是名世流布有也閒有者所謂法性無者世流布有色乃至涅槃其性無故是名爲無生見故名之爲有法性本無名之爲諸佛如來所說有無名之眞實實者名爲中道非有非無名爲中道中道者名無上道如是中道諸佛世尊除壞障㝵是故名之爲一切智薩摩訶薩雖學如是中道猶有障㝵是故不得爲一切智
보살의 지혜는 방편이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인(因)이라 한다. 어째서인가? 보살마하살이 비록 중도의 지혜를 구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생사상(生死相)과 유ㆍ무ㆍ유포(流布)ㆍ무상불법(無上佛法)을 말하며, 비록 생사 중에 있다 하더라도 역시 능히 생사의 과환(過患)을 분명하게 알아서 마음에 싫어하거나 뉘우침이 없다. 만일 생사의 과환을 모르는 이라면 번뇌의 맺힘을 풀 수 없으며, 만일 마음에 싫어하는 이라면 중생을 교화하고 불법을 옹호해서 속히 열반을 얻을 수 없다. 만일 열반을 얻는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 중생들을 교화할 수 없는 이라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겠는가? 이 때문에 보살이 생사 중에 있으면서 보리의 도리를 닦으면, 열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열반을 구하지도 않는다. 보살이 만일 열반을 두려워하는 이라면 보리의 도리를 구족하게 장엄할 수 없으며, 또한 무량한 중생을 위하여 열반을 찬탄할 수 없고, 열반이 있는 곳에 대해 믿고 기뻐하여 전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보살은 열반이 있는 곳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014_0174_b_07L菩薩智慧爲方便故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因以故菩薩摩訶薩雖不具足中道智說生死相亦有亦無亦爲流布無上佛法雖在生死亦能了了知生死過患心無厭悔如其不知生死過者則不能得壞煩惱結若心厭者則不能得教化衆生護諸佛法疾得涅槃若得涅槃則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不教化諸衆生者云何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菩薩若在生死之中修菩提道不畏涅槃不求涅槃菩薩若畏於涅槃者則不能得具足莊嚴菩提之道亦不能爲無量衆生讚歎涅槃於涅槃所不生信喜專念之心是故菩薩於涅槃所不生怖畏
014_0174_c_01L만일 보살이 열반을 구하는 이로서 그 열반을 곧장 얻는다면, 그 얻은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서 불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보살로서 생사의 과환을 깊이 보지 못하고 혹시 이를 싫어해 멀리 하면서 열반을 두려워하거나 열반을 구하거나 한다면, 이를 보살이 선방편(善方便)이 없다고 한다. 만일 보살이 능히 생사의 과환을 깊이 관찰하고 기꺼이 그 안에 처하여 열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는다면, 이를 보살이 선방편이 있다고 한다. 선방편이란 제일의(第一義)의 공(空)이라고 푼다.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제일의공을 수집한 것을 보살계대방편(菩薩戒大方便)이라 하나니 여래의 무상지(無上智)를 얻었기 때문이다.
014_0174_b_23L若是菩薩求涅槃者卽能得之如其得者則不能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諸佛法教化衆生若是菩薩不能深觀生死過患或生厭離怖畏涅槃或求涅槃是名菩薩無善方便若是菩薩能深觀察生死過患樂處其中不畏涅槃不求涅槃是名菩薩有善方便善方便者解第一義空菩薩摩訶薩修集如是第一義空菩薩戒大方便也爲得如來無上智
014_0175_a_01L만일 이러한 보살계를 수집하여 진실지(眞實智)를 얻으면 모든 법이 아(我)와 아소(我所)가 없음을 지견(知見)해서 모든 법의 성품[性]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법에 대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또한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말해서 모든 법을 보매 그 마음이 평등하여 능히 크게 혜시(惠施)한다. 이 혜시의 인연으로 해서 세사(世事)를 잘 아는 것이니, 비록 세사를 배우더라도 마음에 싫어하지 않고 모두를 분명하게 알아서 커다란 염력(念力)을 얻는다. 비록 세사를 알더라도 교만한 마음이 없으니, 언제나 중생에게 인색한 생각을 갖지 않도록 가르치고, 공교로운 방편으로 중생에게 세간의 일을 잘 가르친다. 이는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보살은 이런 세간의 일에 대해 성실한 마음으로 수집하되, 싫어함이 없다. 만일 중생이 고뇌를 당하는 것을 볼 경우, 곧장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증장(增長)시킨다. 보살이 이처럼 선법을 증장하고 교만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중생들에 대하여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보살이 이처럼 지혜를 증장하고 교만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중생들의 온갖 사견(邪見)을 깨뜨린다. 보살이 만일 세간의 삼매와 출세간의 삼매를 얻어서 자신의 덕을 나타내지 않고 남의 공양을 받지 않으면 세간법의 더럽힘을 받지 않는다. 보살이 이때에 무량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하는 것을 보살계라 하며, 보살마하살이 가진 선법이 모두 보리도로 회향(廻向)하는 것을 보살계라 한다.
014_0174_c_10L若有修集是菩薩戒得眞實智見諸法無我我所知諸法性是故於法心無所著亦說世諦第一義諦一切法其心平等能大惠施以施因緣善知世事雖學世事心不厭悔得了知得大念力雖知世事心無憍常教衆生不生慳悋以巧方便善教衆生世閒之事爲令衆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菩薩於是世閒之事勤心修集無有厭悔若見衆生受苦惱時卽得增長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菩薩如是增長善法不生憍慢於諸衆生生憐愛心菩薩如是增長智慧不生憍慢破壞衆生種種邪見菩薩若得世閒三昧出世三昧不顯己德令他供養不爲世法之所污染菩薩爾時成就具足無量功德名菩薩戒菩薩摩訶薩所有善法以迴向菩提之道名菩薩戒
과거의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모두 보살의 금계를 성취한 데서 연유한다. 현재나 미래의 보살도 역시 이와 같다.
014_0175_a_05L過去菩薩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皆由成就菩薩禁戒未來現在亦復如是
보살마하살은 삼세(三世)의 모든 보살의 법을 수지(受持)하여 능히 불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보리의 도를 수행한다. 보리의 도를 위하기 때문에 신명을 아끼지 않는데, 신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 바로 보살계이다. 신명을 아끼는 이는 결코 보살의 금계를 얻을 수 없으며, 한 푼어치라도 재물을 아까워하는 이는 역시 보살의 금계를 얻을 수 없다.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몸을 받고 재물을 비축한다. 만일 이 두 가지에 대해 인색한 마음을 가진다면 가짜 보살이지 참된 의미의 보살이 아니다. 보살이 만일 재물과 신명을 아끼지 않을 수 있으면, 반드시 알라. 능히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으며, 능히 인욕(忍辱)을 행하며, 능히 진에(瞋恚)와 질투의 마음을 깨뜨려서 세상의 일을 잘 해결하는 방편을 분명히 알고, 능히 중생들이 가진 의심을 깨뜨리고 능히 스스로 보리의 인과를 증장하여 가지고 있는 여러 근[諸根]을 잘 조복해서 네 가지 전도[倒]에 치우치거나 동요되지 않으며, 능히 모든 법의 깊고 깊은 뜻을 풀이하고, 능히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얻어 구족하고, 오통(五通)과 사무애지(四無碍智)를 성취하고, 필경에는 능히 12인연을 보아서 보살의 일자지(一子地)에까지 이르게 되며, 능히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의 몸을 얻고 크게 자재한 무상열반을 얻어서 방편열반을 잘 열어 보인다.
014_0175_a_07L薩摩訶薩受持三世諸菩薩法能以佛法教化衆生至心修行菩提之道爲菩提道不惜身命不惜身命是菩薩戒惜身命者終不能得菩薩禁戒乃至悋惜一錢之物亦不能得菩薩禁戒菩薩摩訶薩爲衆生故受身畜若於是二生悋惜心假名菩薩非義菩薩菩薩若能不惜財命當知則能利益衆生能行忍辱能壞瞋恚嫉妒之心了知世事善解方便能壞衆生所有疑心能自增長菩提果因能調伏所有諸根不爲四倒之所傾能解諸法甚深之義能得具足四無量心成就五通四無㝵智畢竟能觀十二因緣逮得菩薩一子之地得常樂我淨之身得大自在無上涅善能開示方便涅槃
014_0175_b_01L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는 것은 모두 금계(禁戒)의 인연에 의하여 얻는 것이다. 보살마하살로서 보살계를 성취하여 구족한 자는 능히 모든 중생을 노복으로 부릴 수 있다. 만일 중생으로부터 발악이나 욕설이나 구타나 겁탈을 당하게 되면 자심(慈心)이 생기고, 만일 중생들의 무거운 번뇌를 보게 되면 연민심이 일어나 중생들의 번뇌를 깨뜨려 주려 한다. 마음을 써서 여러 좋은 방편들을 생각하며, 중생들에 대하여 간사하고 왜곡한 마음이 없이 그 능력에 따라 중생들에게 즐거움을 베풀고,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미움이나 원한을 갖지 않는다. 중생들의 번뇌나 미움의 마음을 깨뜨리려 하기 때문에 그 방편을 생각하며, 은혜를 알아서 은혜를 생각한다.
구하는 이가 없어도 먼저 알아서 베푼다. 만일 자기가 가진 것을 구하는 자에게 베풀지 않으면 보살의 금계를 성취할 수 없다. 구하는 자가 세 번을 와도 베풀지 않으면 이를 범중(犯重)이라 한다. 범하지 않는 자는 방편으로써 좋은 말로 위로하여 구하는 자로 하여금 원한을 갖지 않도록 한다.
014_0175_b_01L菩薩摩訶薩成就如是無量功德皆因禁戒因緣而得菩薩摩訶薩成就具足菩薩戒能爲一切衆生僕使若爲衆生之所瞋罵打害劫奪則生慈心若見衆生厚重煩惱發憐愍心爲欲破壞衆生煩惱繫心思惟諸善方便於諸衆生心無奸曲任力所能施衆生樂求恩報不懷瞋恨爲壞衆生瞋惱心思惟方便知恩念恩無有求者先意行施若己所有不施求者不得成就菩薩禁戒求者三至若不施者名犯重不犯者若以方便善語慰喩令彼求者不生恨心
구하는 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난이며, 둘째는 사견(邪見)이다. 가난한 자에게 베풀지 않으면 곧 죄를 얻지만 사견에 대하여 베풀지 않는 것은 범(犯)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범하지 않는 것을 선행이라 한다. 선행의 보살은 법계가 선설(宣說)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며, 계의 성품[性]을 알고 세류포(世流布)를 안다.
세류포란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이다. 색에서 열반까지는 진실이라 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이 색이란 유(有)도 아니며 무(無)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열반까지도 모두 유도 아니며 무도 아니다. 유도 아니며 무도 아닌 것을 어떻게 진실이라 하겠는가?
014_0175_b_14L求者二種一者貧窮二者邪見不施貧者則便得罪不施邪見則不名犯若不犯者是名善行善行菩薩諦知法界不可宣說知法界性知世流布世流布者色受想行識乃至涅槃色乃至涅槃不名眞實何以故而是色者非有非無至涅槃非有非無若非有無云何眞
014_0175_c_01L비유(非有)란 무엇인가? 중생은 거꾸로 알아서 색을 보고 나[我]라 하며, 열반까지를 모두 잘못 판단하여 나라 한다. 이것을 비유라 하는 것이다. 비무(非無)란 무엇인가? 세류포며, 허광(虛誑)이 아니며, 선설(宣說)할 수 있기 때문에 비무라 한다. 이런 것이기 때문에 비유며 비무다. 법을 말하는 것과 같이 유를 말한다면 한 법 가운데에도 무량한 이름이 상응하며, 이름이 무량하기 때문에 무량한 성품이 있다. 어째서인가? 하나하나의 법 가운데에 무량한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름을 무량명(無量名)이라 하는가? 예를 들면 색은 빛깔이란 하나의 법이지만, 또한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 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이고, 거칠고 미세하고, 볼 수 있고 볼 수 없고, 상대가 있고 상대가 없고, 껄끄럽고 매끄럽고, 가볍고 무거운 것 등을 말한다. 이런 이름들은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말을 하는데 따라서 있는 것들은 한 법 가운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相)이 있다. 따라서 밝혀 말할 수 있는 것이 실로 무정성(無定性)이다. 말로써 말하기 때문에 세상에 유포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말할 것도 없고 진실성도 없다. 일체의 모든 법이 역시 이와 같다. 가령 색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실성(實性)이 있는 것은 응당 청ㆍ황ㆍ적ㆍ백에서부터 경중에 이르기까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014_0175_b_22L云何非有衆生顚倒計色爲我至涅槃撗計爲我是名非有云何非世流布故不虛誑故可宣說故名非無以是故名非有非無如所說法如說有者一法之中應無量名量名故則有無量性何以故一一法中有無量名故云何名爲無量名耶如色一法亦說靑黃赤白長短方圓麤細可見不可見有對無對澀滑輕是名可說隨說有者應一法中有無量相所可宣說實無定性以言說故流布於世實無說者及眞實性切諸法亦復如是如其色中乃至涅槃有實性者不應說有靑黃赤白乃至輕重
만일 실성이 없다면 아직 유포(流布)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전해질 수 있다고 하겠는가? 유포성(流布性)이 있기 때문이니, 처음 비롯함이 없기 때문에 유포할 수 있다. 아직 색이 없을 때에도 유포가 있는 것이라면, 어떤 인연으로 색이 없을 때는 유포하지 않는 것인가? 말하자면 유포가 능히 색성(色性)을 짓는 것이니, 어찌 유포하면서 색의 무량성을 짓지 못하겠는가? 이 때문에 법성(法性)은 선설(宣說)할 수 없다.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가 역시 이와 같다.
014_0175_c_13L若無實性未流布時云何可以流布性有無有初始故可流布若未有色時有流布者以何因緣無色之時不流布耶如其流布能作色性者何故流布而不能作色無量性是故法性不可宣說如色受想行識乃至涅槃亦復如是
014_0176_a_01L불법을 멀리 벗어난 두 종류의 중생이 있는데, 불제자(佛弟子)가 아니라서 영구히 불법을 잃는 것이다. 첫째는 색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에 진실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세류포성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중생은 보살의 금계를 받아 지니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설사 받는다 하더라도 그 받은 것을 스승으로 삼지 못한다면 죄가 있는 것이다. 어째서 얻지 못한다고 하는가? 실법(實法)을 비방하여 비법(非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비록 받았다 해도 결코 금계를 얻지 못한다. 만약에 금계를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법 안에서 불제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멀리 불법을 떠났다고 한다. 보살계란 입으로 얻는 것이 아니며 입과 마음이 화합한 뒤에야 얻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중생은 도무지 실심(實心)이 없는데 어떻게 얻을 수 있다고 하겠는가? 만일 색에서 망녕되이 헤아려 집착을 일으킨다면 불법에서 보면 영원히 잃는 것이 된다. 만일 색이 곧 유포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이를 모든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중생은 영구히 불법을 잃는다. 이렇기 때문에 있느니 없느니 하고 선설(宣說)할 수 없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만일 오음(五陰)에 의한다면 나와 남[人]과 중생과 사부(士夫)가 있으며, 만일 오음이 없다면 이와 같은 이름들은 유포될 길이 없는 것이다.
014_0175_c_19L有二種人遠離佛法非佛弟子永失佛法一者說色乃至涅槃有眞實性二者不信世流布性如是二人不任受持菩薩禁戒如其受者受者不得師則有罪何故不得誹謗實法著非法故是故雖受終不得戒若不得戒云何得名在此法中爲佛弟子是故名爲遠離佛法菩薩戒者非口所得心口和合然後乃獲是二種人都無實心云何可得若於色中妄生計著於佛法中則爲永失若不信色是流布者是則名爲謗一切法是人則爲永失佛法是故不可宣說若有若無何以故如因五陰則有我人衆生士夫若無五陰是等名何由流布
색 또한 이와 같다. 색이 있기 때문에 갖가지 명자(名字)가 유포된다. 그렇지만 진실의 법에는 유포가 없으며 진실법을 떠나서도 또한 유포가 없다.
014_0176_a_11L色亦如是以有色故則有種種名字流布眞實之法無有流布離眞實法亦無流布
어리석은 자가 모든 법이 공(空)하다고 말한다면 큰 죄를 얻는다. 만일 대승경전 속에서 모든 법이 공하다고 말했다고 해도 역시 큰 죄를 얻는다. 대승경전의 뜻을 잘 해석하지 못하고 교만심이 생겨서 내가 잘 해석한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망녕되게 생각한 것을 남들에게 널리 말해도 역시 큰 죄를 얻는다. 만일 모든 법의 법성이 없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세상에 유포될 수 있겠는가? 역시 큰 죄를 얻는다. 어째서인가? 모든 법을 비방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법을 비방하는 것은 곧 외도(外道)인 부란나(富蘭那) 등의 진짜 제자가 되는 것이다. 부란나는 모든 법의 법성이 없다고 했지만 불법 중에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만일 누군가 모든 법이 공하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함께 지내고 함께 논의하면서 보살계를 펼치기에 적합한 이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함께 지내면서 보살계를 말한다면 큰 죄를 얻는다.
014_0176_a_13L愚癡之人說諸法空則得大罪若有說言大乘經中一切法空亦得大罪不能善解大乘經義生憍慢心言我善解其自心妄想思惟爲人廣說亦得大若言一切諸法性無云何得有流布於世亦得大罪何以故謗一切法謗一切法者卽是外道富蘭那等眞弟子也富蘭那謂諸法性無而佛法中亦有亦無若有人說一切法空當知是人不中共住共語論議布薩說戒若與共住乃至說戒則得大罪
014_0176_b_01L 어째서인가?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이익되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승경전에서 말하기를, ‘공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만도 못하다’고 하였다. 어째서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물질[色]을 나[我]라 말하고 나아가 식(識)을 나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견(我見)을 가진 이는 불법을 파괴하지 않지만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불법을 영구히 파괴하여 없어지게 한다. 아견을 일으키는 사람은 삼악(三惡)에 이르지 않지만,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널리 남들에게 말하는 이런 사람은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견을 가진 사람은 삼보(三寶)를 비방하지는 않지만 함부로 공을 말하는 사람은 삼보를 비방한다. 내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중생을 속이지 않으며, 실성(實性)을 비방하지 않으며, 법성을 해치지 않으며, 중생을 해치지 않으며, 해탈을 획득해서 남들에게 금계를 훼범(毁犯)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법을 비방하며, 실성(實性)을 이해하지 못하며, 법성(法性)을 이해하지 못하며, 해탈을 방해하며, 여러 중생들과 함께 나쁜 지식(知識)을 짓는다. 자신이 계(戒)를 지키지 못하고 남들에게 금계를 범하라고 가르친다. 언제나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다고 선설(宣說)하기를 즐긴다. 그리하여 여러 중생들의 지옥을 증장(增長)시킨다. 이렇기 때문에 무상불법(無上佛法)을 멀리 떠났다고 하는 것이다.
014_0176_b_01L何以故不解空義故是人不能自利利他是故大乘經說若不解空甚於癡人何以故愚癡之人說色是我至識是我有我見者不壞佛法不解空義永壞佛法破失滅沒生我見者不至三惡不解空義爲人廣說當知是人必到阿鼻有我見者不謗三寶說空者誹謗三寶說有我者不誑衆不謗實性不妨法性不妨衆生獲得解脫不教他人毀犯禁戒不解空者謗一切法不解實性不解法性於解脫與多衆生作惡知識自不持戒教人毀禁常樂宣說無作無受多衆生增長地獄以是義故名爲遠離無上佛法
어떤 것을 공(空)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나 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수공(受空)을 믿지 않고 공을 이해하지 못하고 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것을 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째서인가? 모든 법은 본성이 자공(自空)하여 인연공(因緣空)이 없다고 말하며, 모든 법이 또한 처소(處所)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처소가 없다면 어떻게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것을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014_0176_b_16L云何名爲不解空義有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不信受空不解於空不解於法是則名爲不解空義何以故說一切法本性自空無因緣空說一切法亦無處所無處所云何名空是名不解空
014_0176_c_01L어떤 것을 참으로 공의 뜻을 이해한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나 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모든 법에 성품이 없다고 하면 이것을 공이라 하며, 법은 또한 공한 것이 아니다 하면 이것을 공을 이해한다고 한다. 이렇게 이해하는 이는 뜻을 해치지 않으며 삼보를 비방하지 않는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해서 잘못됨이 없다고 한다.
어떤 것이 바른 이해인가? 예를 들어 색(色)을 말하는 색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온갖 모습과 성품이 없다는 것을 분별하면 이것이 색공(色空)이며, 색이 진실로 세상에 유포했다고 하면 이것이 불공(不空)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색을 말하는 하나의 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이 두 가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법이기도 하고 공이기도 하니, 결코 심중에서 망령되게 헤아려 집착을 일으켜선 안 된다. 이것을 참으로 공의 뜻을 이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승경전에서는 게송[偈]으로 말하였다.
014_0176_b_21L云何名爲眞解空義若比丘比丘尼優婆優婆夷說一切法中無有性故名爲空法亦不空是名解空如是解不妨於義不謗三寶是名正解無有錯謬云何正解如色說色乃至涅分別無有種種相性是名色空色眞實流布於世是名不空以是義說色一法亦有亦無解是二故亦法亦空終不於中妄生計著是名眞解空義是故大乘經中說偈

한 법이 많은 이름을 지녔지만
실법(實法) 중에는 없나니
법성(法性)을 잃지 않기 때문에
세간에 유포하여 간다네.
014_0176_c_08L一法有多名,
實法中則無,
不失法性故,
流布於世閒

색(色)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들이 있는데, 색에는 자성(自性)이 없다. 자성이 없는 것은 많은 이름도 없으니, 많은 이름이 있는 것을 유포(流布)라 한다. 이렇기 때문에 잡장(雜藏) 중에서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유포에 집착하지 않는다.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고 깨달아 아는 것으로 색명(色名)에서 열반명까지를 유포라 하는데,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끝내 이를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유포성(流布性)이 있기에 물들어 집착함이 생긴다. 어째서인가? 무너뜨리고 전도(顚倒)하기 때문이다. 물들어 집착함이 있는 것을 전도라 하지만 여래는 모든 악견(惡見)을 이미 끊었기 때문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는다.
보지 않으며, 말하지 않으며, 물들어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정견(正見)이라 한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가전연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전연아, 나의 제자는 지정(地定)ㆍ수화풍정(水火風定)ㆍ공정(空定)ㆍ식정(識定)ㆍ무소유정(無所有定)ㆍ비유상비무상정(非有想非無想定)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세계[此世]도 아니고 다른 세계[他世]도 아니며, 해도 아니고 달도 아니며, 보는 것도 아니고 듣는 것도 아니며, 헤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취하거나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각(覺)도 아니고 관(觀)도 아닌 것을 선정(禪定)이라 한다.”
014_0176_c_10L如色乃至涅槃則有多名色無自性無自性者則無多名有多名者名爲流布以是義故雜藏中說諸佛世尊不著流布若見若聞思惟覺知如色名乃至涅槃名名爲流布諸佛世尊終不說言有流布性而生染著何以壞顚倒故有染著者名爲顚倒來已斷一切惡見故不染著以不見不說不染著故名爲正見是故如來爲迦栴延比丘而作是說迦栴延弟子者不著地定水火風定空定無所有定非有想非無想定非此世非他世非日非月非見非聞非思非量非取非得非覺非觀是名禪定
014_0177_a_01L어떤 것을 일러 비구가 지정(地定)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는 지(地)에 대하여 지상(地相)을 짓지 않으며 각관에 이르기까지 각관상(覺觀相)을 짓지 않는다. 이것을 지정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각관에 이르기까지 역시 이와 같다.
014_0177_a_01L云何比丘不著地定比丘於地不作地相乃至覺觀不作覺觀相是則名爲不著地定乃至覺觀亦復如是
만일 비구가 능히 이처럼 선정을 수집(修集)한다면 즉시 여러 하늘ㆍ석천(釋天)ㆍ범천(梵天)과 시방의 모든 부처님 및 대보살의 찬탄을 받는다. 다들 나무대사(南無大士) 나무대사 하지만 나는 도무지 너희가 무슨 선정에 있으며 무슨 선정을 수집하는지 모르겠다. 만일 지상(地相)과 지명(地名)에 물들어 집착한다면, 반드시 알라. 그는 이름이 불수공(不修空)이며, 만일 색(色) 중의 명(名)과 상(相)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름이 수공(修空)으로 유포되기 때문에 지상과 지명을 선설(宣說)한다.
014_0177_a_04L有比丘能作如是修集定者卽爲諸釋天梵天十方諸佛及大菩薩之所讚歎南無大士南無大士咸作是言都不知汝在何定修集何定若有染著地相地名當知是人名不修空於色中不著名相是名修空爲流布故宣說地相及以地名
만일 색상과 색명에 물들어 집착하면 증장상(增長相)이라 하며, 색상과 색명을 깨뜨리면 방사상(放捨相)이라 한다. 증장도 방사도 하지 않는 것이 중도(中道)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상(相)을 수집하므로 지정(地定)에서 각관(覺觀)까지를 수행한 비구라 한다. 비구가 만일 이와 같이 선정을 수집하면 실상(實相)이라 한다. 실상이기 때문에 비구는 법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없으며, 모든 법의 성품은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비구는 언급하는 것이 없다. 만일 모든 법이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말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만일 말할 수가 없다면 어떻게 듣는다고 말하는가? 만일 말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모든 법이 선설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겠는가? 알 수 있기 때문에 말하여서 유포시키는 것이다.
014_0177_a_11L若著色相及以色名名增長相若壞色相及以色名放捨相不增不捨是名中道集如是二種相故是名比丘修集地定乃至覺觀若有比丘修是定者名實相以實相故比丘於法無所言以諸法性不可說故是故比丘無所言說若一切法無可說者云何說不可說若不可說云何得聞若不說不聞云何得知一切諸法不可宣說以可知故說令流布
014_0177_b_01L어리석은 이는 세류포(世流布)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므로 모든 법에서 여덟 가지의 오류를 일으킨다. 그 첫째는 성류(性謬)이며, 둘째는 분별류(分別謬)이며, 셋째는 취류(聚謬)이며, 넷째는 아류(我謬)이며, 다섯째는 아소류(我所謬)이며, 여섯째는 애류(愛謬)이며, 일곱째는 불애류(不愛謬)이며, 여덟째는 비애비불애류(非愛非不愛謬)이다. 이 여덟 가지 오류 중 처음의 세 가지 오류가 곧 모든 오류의 근본이다. 성(性)에 물들어 집착하고 명(名)에 물들어 집착하여 유포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로부터 전전(展轉)하여 한없는 오류를 일으킨다. 아류와 아소류를 아견(我見)이라 한다. 아견은 다시 제견(諸見)의 근본이 된다. 이 두 가지의 오류는 교만을 따라 생기기 때문에 교만은 제견의 근본이다. 뒤의 세 가지 오류는 삼독(三毒)을 따라 생긴다. 이 여덟 가지 오류가 모든 맺힌 번뇌를 섭취하여 모든 중생을 삼유(三有)에 회전하게 한다.
014_0177_a_21L愚癡之人不知不解世流布故於諸法中生八種謬一者性謬二者分別謬三者聚謬者我謬五者我所謬六者愛謬七者不愛謬八者非愛非不愛謬是八謬中初三種謬乃是一切諸謬根本性著名不解流布從此展轉生無量我我所謬名爲我見我見復是諸見根本是二種謬從憍慢生是故憍慢諸見根本後三謬者從三毒生八種謬攝取一切諸結煩惱令諸衆生迴轉三有
어떤 것을 성류라 하는가? 만일 색이 색상(色想)을 짓고, 나아가 중(重)이 중상(重想)을 지을 경우 이것을 성류라 한다. 어떤 것을 분별류라 하는가? 만일 색을 분별하여 이것은 색이고 이것은 색이 아니라고 하며, 이것은 볼 수 있고 이것은 볼 수 없다고 하며, 이것은 대(對)가 있고 이것은 대가 없다고 하면 이것을 분별류라 한다. 어떤 것을 취류라 하는가? 만일 색 중에서 나와 중생ㆍ사부(士夫)ㆍ수명(壽命)을 보고, 옥사(屋舍)ㆍ사중(四衆)ㆍ군려(軍旅)ㆍ의식(衣食)을 보고, 연화(蓮華)ㆍ거승(車乘)ㆍ수목(樹木)ㆍ적취(積聚)를 보아, 이런 것들 속에서 각기 하나의 상(相)을 짓는다면 이것을 취류라 한다.
014_0177_b_09L云何性謬若色作色想乃至重作重想是名性謬云何分別若分別色是色非色是可見是不可見是有對是無對是名分別謬何聚謬如於色中見我衆生士夫壽屋舍四衆軍旅衣食蓮華車乘樹木積聚如是等中各作一相是名聚
어떤 것을 일러 아류라 하며 아소류라 하는가? 유루(有漏) 중에서 나와 아소를 취하며, 무량세 중에서 항상 나와 아소를 헤아리는데 집착하여 취하면 이것을 아류라 하며 아소류라 한다. 어떤 것을 애류라 하는가? 정물(淨物) 중에서 탐하여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것을 애류라 한다. 어떤 것을 불애류라 하는가? 부정물(不淨物) 중에서 진에(瞋恚)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것을 불애류라 한다. 어떤 것을 비애비불애류라 하는가? 모든 정물 및 부정물 중에서 탐에(貪恚)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것을 비애비불애류라 한다. 이상이 여덟 가지 오류이다.
014_0177_b_16L云何名我我所謬於有漏中取我我所無量世中常生取著計我我所是名我我所謬云何愛謬於淨物中生貪著心是名愛謬云何不愛謬不淨物中生瞋恚心是名不愛謬何非愛非不愛謬於一切淨不淨物中生貪恚心是名非愛非不愛謬名八謬
014_0177_c_01L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이 여덟 가지 오류를 알 수 있는가? 네 가지 일을 응당 추구해야 한다. 어떤 것이 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추명(推名)이며, 둘째는 추물(推物)이며, 셋째는 추성(推性)이며, 넷째는 추분별(推分別)이다. 어떤 것을 추명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오직 이름의 이름됨만 알고 이름의 사물을 보지 못하면 이것을 추명이라 한다. 어떤 것을 추물이라 하는가? 오직 그것이 사물이란 것만 알고 그 나머지를 모르면 이것을 추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추성이라 하는가? 이름의 유포함을 아는 것을 추성이라 한다. 어떤 것을 추분별이라 하는가? 이름에서 사물을 보지 못하고 사물에서 이름을 보지 못하면 이것을 추분별이라 한다.
014_0177_b_23L菩薩摩訶薩云何能知是八種謬應推四事何等四一者推名者推物三者推性四者推分別云何推名菩薩摩訶薩唯知名名不見名是名推名云何推物唯知是物不知餘者是名推物云何推性知名流是名推性云何推分別名不見物物不見名是名推分別
보살마하살이 어째서 이름을 추구하는가? 이름과 실명(實名)을 알기 때문에 이름을 추구한다. 보살이 체관(諦觀)하는데 만일 색(色)의 이름이 없다면 어떻게 색을 말하며, 만일 색을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게 색을 관찰하며, 만일 색을 관찰할 수 없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는가? 이 때문에 보살이 이름을 알기를 추구한다. 보살이 어째서 사물을 추구하는가? 만일 사물이 없다면 어디에 이 이름이 있겠는가? 그리고 이 이름은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만일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찌 모든 법의 성품을 알게 된다고 말하겠는가? 이 때문에 보살이 사물을 추구한다. 보살이 어째서 성품을 추구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색성(色性)에서부터 나아가 열반성에 이르기까지를 알며, 색유포(色流布)에서부터 나아가 열반유포에 이르기까지를 안다. 어떤 것을 색성을 안다고 말하는가? 이 색성이란 거울 속의 모습ㆍ환술ㆍ변화ㆍ꿈ㆍ그림자ㆍ메아리ㆍ치열할 때의 불꽃 또는 물속의 달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을 성품을 추구한다고 한다.
014_0177_c_07L菩薩摩訶薩何故推名知名實名是故推名菩薩諦觀若無色名何由說色若不說色云何觀色若不觀色云何而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菩薩推求知菩薩何故推求於物若無物者誰有此名而此名者非不可說若不可云何得知諸法之性是故菩薩推求於物菩薩何故推求於性菩薩摩訶薩知於色性乃至涅槃性知色流布乃至涅槃流布云何名爲知於色知是色性如鏡中像幻化夢影響熱時之焰水中月形是名推性
014_0178_a_01L보살이 어째서 분별을 추구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름을 분별하고, 사물을 분별하고, 성품을 분별하고, 법을 분별하고, 비법(非法)을 분별하고, 유와 무, 시색(是色)과 비색(非色), 가견(可見)과 불가견(不可見)을 분별하면 이것을 분별이라 한다. 분별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이 때문에 보살이 분별을 추구한다.
보살마하살은 팔류(八謬)를 깨뜨리기 위해 이 네 가지 일을 추구한다. 보살이 어째서 이 팔류를 깨뜨리는가? 팔류는 사견(邪見)을 증장(增長)하는 인연이기 때문이다. 사견이 증장하기 때문에 번뇌가 증장하고, 번뇌가 증장하기 때문에 생사가 증장하고, 생사가 증장하기 때문에 십이인연이 증장한다. 보살이 만일 이와 같은 네 가지 일을 수집하면 사견을 끊어 없애고, 사견을 끊어 없애면 번뇌가 없어지고, 번뇌가 없어지면 생사가 없어지고, 생사가 없어지면 십이인연이 멸함을 알고, 십이인연이 멸함을 알면 무상도(無上道)를 닦고, 무상도를 닦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면 중생들의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오류를 능히 깨뜨리고 중생들이 능히 세류포를 알아서 진실의를 말하도록 가르친다. 만일 중생의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오류를 제거하여 없애면 대열반이라 한다. 능히 현세의 큰 자재함을 얻으며, 크게 신통함을 얻으며, 큰 방편을 얻으며, 큰 선정을 얻으며, 큰 일체지를 얻으며, 퇴전(退轉)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 곳을 구하여 얻으므로 이를 대열반이라 한다.
014_0177_c_19L菩薩何故推求分別菩薩摩訶薩若分別分別物分別性分別法分別非法分別有無是色非色可見不可見名分別以分別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菩薩推求分別菩薩摩訶薩爲壞八謬推是四事菩薩何故壞是八謬八謬因緣增長邪見邪見增故煩惱增長煩惱增長故生死增生死增長故十二因緣增長菩薩若修如是四事斷除邪見邪見斷故諸煩惱滅煩惱滅故生死滅生死滅故知十二因緣滅知十二因緣滅故修無上道修無上道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能壞衆生如是八謬能教衆生知世流布說眞實義若除衆生如是八謬名大涅槃能得現世大自在故得大神通故得大方便故得大禪定得大一切智故求得不退不墮處是名大涅槃
큰 자재함을 얻으면 보살마하살이 다섯 가지 일을 성취한다. 그 첫째는 마음에 적정(寂靜)함을 얻는 것이며, 둘째는 세간의 일과 출세간의 일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나고 죽는 가운데 처해 있어도 마음에 걱정이나 번뇌가 없는 것이며, 넷째는 여래의 깊고 깊은 비장(秘藏)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며, 다섯째는 보리의 마음을 깨뜨릴 자가 없는 것이다.
014_0178_a_16L得大自在菩薩摩訶薩成就五事一者心得寂靜二者了知世事及出世事三者爲衆生故處在生死心不愁惱四者了知如來甚深秘藏五者菩提之心無能壞者
014_0178_b_01L보살은 어째서 마음의 적정을 얻는가? 능히 현재 중생의 번뇌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적정을 얻는다. 중생을 조복(調伏)하여 불법을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세간의 일과 출세간의 일을 분명히 알며, 중생으로 하여금 이근(利根)을 얻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기꺼이 나고 죽는 가운데 처해서도 마음에 걱정이나 번뇌가 없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의심을 깨뜨리게 해서 여래의 깊고 깊은 비밀스런 뜻을 받아 지니고 독송해서 분명히 알도록 한다. 법을 비법(非法)이라고 말하면 능히 불법을 더럽히고 멸하며, 범(犯)을 비범(非犯)이라고 말하면 축생의 여덟 가지 부정한 사물을 받는다. 이러한 악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여래의 깊고 깊은 비밀스런 뜻을 받아 지녀 해설한다. 비록 외도(外道)의 미세한 글을 알아서 그 뜻의 취지를 논하여 풀이한다 하더라도 결코 보리의 마음을 깨뜨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일은 보살의 보리사(菩提事)를 섭취하는 것으로서 또한 오사(五事)라 하며, 또한 다섯 가지 공덕(功德)이라 한다. 어떤 것을 보리사라 하는가? 능히 자신을 이익되게 하여 중생을 조복하고, 불법을 수지하여 보살이 닦는 금계(禁戒)를 깨뜨리지 않고, 보리의 마음이 결코 기울거나 동요하지 않으며, 열심히 닦아 정진해서 사견(邪見)들을 깨뜨리고 삼승(三乘)의 도를 말하는 것이다. 보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일을 성취하는 데는 세 가지가 있으니 상ㆍ중ㆍ하이다. 두 가지를 구족하면 하(下)라 하고, 세 가지를 구족하면 중(中)이라 하고, 네 가지를 구족하면 상(上)이라 한다.
014_0178_a_20L薩何故心得寂靜能破現在衆生煩惱故心得寂靜爲調衆生得佛法故了知世事及出世事爲令衆生得利根故樂處生死心不愁惱爲令衆生破壞疑心受持讀誦了知如來甚深秘義法說非法能滅佛法污辱佛法犯說非犯受畜八種不淨之物爲擯如是諸惡人故受持解說如來秘密甚深之義雖知外道微細書論解其義趣終不破壞菩提之心如是五事攝取菩薩菩提之事亦名五事亦名五功德何等名爲菩提之事能自利益調伏衆生受持佛法不破菩薩所修禁戒菩提之心終不傾動懃修精進壞邪見等說三乘道菩薩成就如是五事有三種謂下具足二種是名爲下具足三種是名爲中若具四種是名爲上

6)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
014_0178_b_15L菩薩地不可思議品第六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불가사의라 말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자재삼매(自在三昧)를 얻어서 발심(發心)을 하면 이미 무량한 공덕을 얻은 것이며, 업(業)을 짓지 않고도 과보를 얻고, 성도(聖道)를 닦지 않고도 성심(聖心)을 얻는다.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 한다. 약간의 선업(善業)을 짓고도 큰 과보를 얻으며, 보리를 위하기 때문에 무량한 세월 동안 온갖 고행을 닦는다. 보살이 진실로 중생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능히 이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고행을 닦으며,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다는 것을 알아서 능히 받는 이를 짓는 이것을 보살의 불가사의라 한다.
014_0178_b_16L云何菩薩摩訶薩不可思議菩薩摩訶薩得自在三昧發心已得無量功不造作業而獲果報不修聖道而得聖心是名菩薩不可思議少作善業得大果報爲菩提故於無量世修諸苦行菩薩實知無有衆生而能爲之勤修苦行知無作者及無受者作受者是名菩薩不可思議
014_0178_c_01L불가사의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육통(六通) 불가사의이며, 둘째는 법(法)불가사의이며, 셋째는 공생(共生)불가사의이며, 넷째는 불공생(不共生)불가사의이며, 다섯째는 공불공(共不共)불가사의이다. 어떤 것을 육통이라 하는가? 신족(神足)ㆍ천이(天耳)ㆍ천안(天眼)ㆍ타심지(他心智)ㆍ숙명지(宿命智)ㆍ누진지(漏盡智)를 육통불가사의라 한다. 어떤 것을 법불가사의라 하는가? 법이란 단바라밀ㆍ시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법불가사의라 한다.
014_0178_c_01L不可思議有五種一者六通不可思議二者法不可思議三者共生不可思議四者不共生不可思議五者共不共不可思云何六通神足天耳天眼他心智宿命智漏盡智是名六通不可思議云何法不可思議法者所謂檀波羅尸波羅蜜羼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是名法不可思議
014_0179_a_01L어떤 것을 신통(神通)이라 하는가? 신통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변(變)이고, 둘째는 화(化)이다. 어떤 것을 변이라 하는가? 진동(振動)ㆍ출화(出火)ㆍ광명(光明)ㆍ시현(示現)ㆍ자전기신(自轉其身)ㆍ혹현거래(或現去來)ㆍ현종종색(現種種色)ㆍ대중은현(大衆隱顯)ㆍ장타신통(障他神通)ㆍ언사무애(言辭無恚)ㆍ시타억념(施他憶念)ㆍ시중환락(施衆歡樂)ㆍ방대광명(放大光明)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변신통(變神通)이라 한다. 어떤 것을 진동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자재삼매(自在三昧)를 얻어 능히 사택(舍宅)ㆍ취락(聚落)ㆍ촌읍(村邑)ㆍ성곽ㆍ국토를 움직이되, 사천하(四天下)에서부터 천세계(千世界)ㆍ이천세계ㆍ삼천대천세계ㆍ백 삼천대천세계ㆍ천 삼천대천세계ㆍ천만 삼천대천세계 더 나아가 무량무변세계까지 이르는 것을 진동이라 한다. 어떤 것을 출화(出火)라 하는가? 몸 위에서는 불을 내고 몸 아래서는 물을 내며, 몸 위에서는 물을 내고 몸 아래서는 불을 내며, 혹은 온 몸에 불을 내서 갖가지 색을 만들되, 청ㆍ황ㆍ적ㆍ백ㆍ자ㆍ흑의 파리(頗梨:수정)를 만드는 것을 출화라 한다. 어떤 것을 광명이라 하는가? 몸에서 광명을 내어 집과 취락ㆍ촌읍에서부터 무량무변의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를 가득 채우는 것을 광명이라 한다. 어떤 것을 시현(示現)이라 하는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지옥ㆍ축생ㆍ아귀ㆍ천인(天人)ㆍ잡류(雜類)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羅伽)를 나타내어 보여주며, 혹은 다시 시방세계의 무량무변한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무수한 모든 국토와 그 불신(佛身) 및 모든 대보살을 나타내어 보여주고,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말하여 모든 중생들이 듣고 알게 하는 것, 이것을 시현이라 한다.
014_0178_c_10L云何神通神通有二種者變二者化何等爲變振動出火示現自轉其身或現去來現種種大衆隱顯障他神通言辭無㝵他憶念施衆歡樂放大光明是名變神通云何震動菩薩摩訶薩得自在三昧能動舍宅聚落村邑城郭國土從四天下至千世界二千世界三千大千世界百三千大千世界千三千大千世界千萬三千大千世界乃至無量無邊世界是名震動云何出火身上出火身下出水身上出水身下出火或擧身出火作種種色靑黃赤白紫黑頗梨是名出火云何光明出光明充遍一舍聚落村邑乃至無量無邊三千大千世界是名光明何示現諸佛菩薩爲度衆生示現地獄畜生餓鬼雜類乾闥婆阿修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或復示現十方世界無量無邊恒河沙等諸佛國土及其佛身諸大菩薩說諸佛名令諸衆生皆悉聞知是名示現
어떤 것을 전(轉)이라 하는가? 모든 불보살이 자재삼매를 얻어 능히 땅을 바꾸어 불을 만들고 불을 바꾸어 물을 만들며 바람도 또한 이와 같이 하고, 색을 바꾸어 향을 만들고 향을 바꾸어 색을 만들며, 색ㆍ향ㆍ미ㆍ촉을 바꾸어 초목ㆍ의식(衣食)ㆍ영락(瓔珞)ㆍ기물(器物)ㆍ석패(石貝)ㆍ유리ㆍ진주ㆍ금은 등의 산을 만들고, 좋은 색을 나쁜 색으로 만들고 나쁜 색을 좋은 색으로 만드는 것, 이것을 전이라 한다.
어떤 것을 거래(去來)라 하는가? 혹은 범처(梵處)에 갔다가 범처에서 다시 돌아오며, 혹은 아가니타천 위에 갔다가 다시 거기서 돌아오며, 혹은 동쪽ㆍ남쪽ㆍ북쪽을 가는 등 사유상하(四維上下)에서부터 나아가 무량무변 세계에 이르기까지를 또한 모두 이와 같이 하며, 먼 것을 가깝게 만들고 가까운 것을 멀게 만들며, 수미산을 작은 먼지로 만들고 작은 먼지를 수미산으로 만드는 것, 이것을 거래라 한다.
014_0179_a_08L何爲轉諸佛菩薩得自在三昧能變地爲火變火爲水風亦如是變色爲變香爲色色香味觸變爲草木衣食瓔珞器物石貝琉璃眞珠金銀等好色作惡惡色作好是名爲轉何去來或往梵處從梵處還或往阿迦膩咤天上復從彼還或至東方南西北方四維上下乃至無量無邊世界皆亦如是遠能作近近能作遠令須彌如小微塵令小微塵如須彌是名去來
014_0179_b_01L어떤 것을 종종색(種種色)이라 하는가? 능히 자신을 나타내어 남녀나 크고 작은 아이들, 수림과 초목을 만드는 것, 이것을 종종색이라 한다. 어떤 것을 대중은현자재(大衆隱顯自在)라 하는가? 대중을 자기 몸 안에 받아들여도 마음이 두렵거나 몸에 지장을 받지 않으며, 이들 대중들이 모두 저마다 내왕한 처소를 모르고, 가끔 바라문 대중[婆羅門衆]에게 가서 그들과 같은 모습을 나타내면, 모습이 같고 옷이 같고 형질(形質)의 장단이 그들과 차이가 없고 음성도 구별이 없으며, 그들이 말하는 것도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도 말하며, 방편을 써서 그들을 잘 인도하고, 자신을 보여주고는 금방 없어져도 그들은 무엇이 나타났다가 없어졌는지, 인(人)인지 천(天)인지 모른다. 이들 바라문 대중처럼 찰리중(刹利衆)ㆍ대회중(大會衆)ㆍ장자중(長者衆)ㆍ사천왕중(四天王衆)ㆍ삼십삼천중(三十三天衆)ㆍ야마천중(夜摩天衆)ㆍ도솔타천중(兜率陀天衆)ㆍ화자재천중(化自在天衆)ㆍ타화자재천중(他化自在天衆)ㆍ범중(梵衆)ㆍ범사천중(梵師天衆)ㆍ대범천중(大梵天衆)ㆍ소광천중(少光天衆)ㆍ무량광천중(無量光天衆)ㆍ정광천중(淨光天衆)ㆍ소선천중(少善天衆)ㆍ대선천중(大善天衆)ㆍ무변선천중(無邊善天衆)ㆍ무운천중(無雲天衆)ㆍ복생천중(福生天衆)ㆍ광과천중(廣果天衆)ㆍ무난천중(無天衆)ㆍ무광천중(無誑天衆)ㆍ선견천중(善見天衆)ㆍ애견천중(愛見天衆)ㆍ아가니타천중(阿迦膩吒天衆)들이 또한 이와 같다. 이와 같은 여러 천중(天衆)들 속에서 잠깐 사이에 백 번을 나타났다가 백 번을 사라지며, 천 번을 나타났다가 천 번을 사라지며, 천만 번을 나타났다가 천만 번을 사라진다. 이런 것을 대중은현자재라 한다.
014_0179_a_19L云何種種色能現自身或作男女大小僮僕樹林草木是名種種色云何大衆隱顯自在能以大衆內己身中而心不怖身無妨㝵諸大衆各不自知來往處所或時往至婆羅門衆現同其像同色同衣形質脩短與彼無差音聲無別彼所說者亦能說之彼不能說亦能說之以方便善導其人示已卽滅彼衆不知何來何滅人耶天耶如婆羅門衆剎利衆大會衆長者衆四天王衆十三天衆夜摩天衆兜率陁天衆自在天衆他化自在天衆梵衆梵師天衆大梵天衆少光天衆無量光天淨光天衆少善天衆大善天衆邊善天衆無雲天衆福生天衆廣果天衆無煖天衆無誑天衆善見天衆愛見天衆阿迦膩咤天衆亦復如是於如是等諸天衆中一時之頃百出百沒千出千沒千萬出千萬沒是名大衆隱顯自在
어떤 것을 장타신통(障他神通)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불세존(佛世尊)을 제외하고는 동행(同行)ㆍ동성(同性)ㆍ동정(同定)이다. 후변생(後邊生)보살이 얻은 신통과 승여(勝餘) 내외의 모든 신통을 장타신통이라 한다. 어떤 것을 언사무애(言辭無礙)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설법을 할 때, 말이 끝이 없으며 의미가 끝이 없으며 요설(樂說)이 끝이 없으니 이것을 언사무애라 한다. 어떤 것을 시타억념(施他憶念)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설법을 할 때 무량 중생이 무량세에서 잃어버린 모든 생각들을 모두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을 시타억념이라 한다.
014_0179_b_16L云何障他神通菩薩摩訶薩除佛世尊同行同性同定後邊生菩薩所得神通勝餘內外一切神通是名障他神通云何言辭無㝵菩薩摩訶薩說法之時言辭無盡味無盡樂說無盡是名言辭無㝵何施他憶念菩薩摩訶薩說法之時無量衆生於無量世諸所失念悉令還憶是名施他憶念
014_0179_c_01L어떤 것을 시타환락(施他歡樂)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설법을 할 때 중생들의 신심(身心)을 안락케 해 번뇌장을 깨뜨리게 함으로써 듣는 이가 제삼선(第三禪)처럼 즐거워하고 사대(四大)의 모든 악이 일시에 소멸하여 모든 악귀들이 그들의 편익을 얻지 못하는 것을 시중환락(施衆歡樂)이라 한다.
014_0179_c_01L云何施他歡樂菩薩摩訶薩說法之時能令衆生身心安樂壞煩惱障聽者歡樂如第三四大諸患一時消滅諸惡鬼等不得其便是名施衆歡樂
어떤 것을 방대광명(放大光明)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큰 광명을 방출하여 시방의 무량세계를 두루 비추고, 지옥에 가서 지옥의 고통을 깨뜨리고, 방일천(放逸天)에 가서 인법(人法)을 교수(敎修)하여 인신(人身)을 얻어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오도록 하며, 시방세계의 무량 보살을 불러서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모아 중생을 가르치는 것을 방대광명이라 한다. 이런 것들을 변신통이라 하는데 법성(法性)을 회전시키기 때문에 변신통이라 하는 것이다.
014_0179_c_05L云何放大光菩薩摩訶薩放大光明遍照十方無量世界至地獄中壞地獄苦至放逸天教修人法令得人身來至佛所請召十方無量菩薩來集佛所教化衆生是名放大光明如是等事名變神通轉法性故名變神通
어떤 것을 화신통(化神通)이라 하는가? 사물이 없는데 사물을 만들어 내므로 화신통이라 한다. 몸으로 화하기도 하며 소리로 화하기도 한다. 화신(化身)은 자기몸을 닮기도 하고 다른 이의 몸을 닮기도 하는데 제근(諸根)이 구족한 경우도 있고 구족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나머지는 전(轉) 속에서 다시 또 변화하여 무량한 몸이 된다. 제불보살이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무량한 몸으로 화하여 무량한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다. 부처님이나 보살이 화신(化身)으로 두루 나타나는데 환(幻)인 경우도 있고 진실인 경우도 있다. 의식(衣食)ㆍ금은ㆍ유리ㆍ진주ㆍ파리(頗梨)ㆍ가패(珂貝)의 경우 또한 이와 같으니, 중생의 가난과 고통을 깨뜨리기 때문에 화신이라 한다.
014_0179_c_11L云何化神物無作物故名爲化若化身若化化身者或似己身或似他身有根具足不具足者餘如轉中又復化爲無量之身諸佛菩薩爲衆生故化無量身遍無量界有佛菩薩現遍化身或有如幻或有眞實衣食金銀琉璃眞珠頗梨珂貝亦復如是爲破衆生貧窮困苦是名化身
014_0180_a_01L화성(化聲)이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호성(好聲)ㆍ질성(疾聲)ㆍ묘성(妙聲)ㆍ자설의성(自說義聲)ㆍ타설의성(他說義聲)ㆍ무의성(無義聲)ㆍ설법성(說法聲)ㆍ교화성(敎化聲)으로 화하여 나타나는 이들 여러 소리가 중생들의 방일(放逸)한 마음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에 화성이라 한다. 부처님과 보살의 소리는 심원(深遠)하기가 천둥과 같으며, 가릉빈가(迦陵頻伽)새의 소리나 사람이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소리, 변만성(遍滿聲)ㆍ사유성(思惟聲)ㆍ요료성(了了聲)ㆍ이해성(易解聲)ㆍ희문성(喜聞聲)ㆍ무소착성(無所箚聲)ㆍ무가가성(無可呵聲)ㆍ무진성(無盡聲)과 같다. 보살마하살의 이와 같은 여러 소리들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천중(天衆)ㆍ인중(人衆)ㆍ성문중(聲聞衆)ㆍ벽지불중(辟支佛衆)ㆍ보살중이 가깝거나 멀거나 간에 빠짐없이 얻어 듣는다. 이러한 소리들에서 갖가지 법이 나와서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
014_0179_c_19L化聲者諸佛菩薩化現好聲疾聲妙聲自說義聲說義聲無義聲說法聲教化聲以是諸聲能壞衆生放逸之心是名化聲佛菩薩聲深遠如雷如迦陵頻伽聲人所愛樂聲遍滿聲思惟聲了了聲易解聲喜聞聲無所著聲無可呵聲無盡聲菩薩摩訶薩如是諸聲若三千大千世界所有天衆人衆聲聞衆辟支佛衆菩薩衆若近若遠悉得聞如是聲中出種種法利益衆生
자화성(自化聲)은 자설법(自說法)과 같은데 방일한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타화성(他化聲)은 부처님의 화신이 남을 위하여 설법하는 것과 같은데 방일한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다. 무의성(無義聲)은 허공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으며, 설법성(說法聲)은 어리석은 중생을 위한 것이며, 교화성은 방일한 자를 위하여 방일하지 않는 일을 증장(增長)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이처럼 신통한 일들을 화출(化出)하여 그 전전(展轉)이 무량하므로 이를 헤아려 칭할 수는 없다.
014_0180_a_06L化聲者如自說法爲放逸衆生故化聲者如佛化身爲他說法爲放逸衆生故無義聲者如虛空出聲說法聲者爲癡衆生故教化聲者爲放逸者增長不放逸故諸佛菩薩如是等化神通之事展轉無量不可稱計
이처럼 무량하여 칭계할 수 없는 신통과 변화는 두 가지 일을 위한 것이다. 그 첫째는 중생에게 신심(信心)이 생기게 하여 불법을 지향하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중생에게 무상복전(無上福田)을 보여주는 것이다.
014_0180_a_12L是無量不可稱計神通變化爲於二一者爲令衆生生於信心趣向佛法故二者爲示貧窮困苦衆生無上福田故
014_0180_b_01L어떤 것이 숙명지(宿命智)인가? 보살마하살이 숙세(宿世)로부터 이들 중생과 함께 공주공행(共住共行)함을 스스로 알며, 명자(名字) 및 타명자(他名字)를 스스로 알며, 자기 종성(種姓)과 다른 종성을 알며, 스스로 먹고 마시는 것과 다른 이가 먹고 마시는 것을 알며, 고락(苦樂)과 다른 이의 고락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보살이 이러한 숙세를 스스로 알고, 또한 그들을 교화하여 숙세를 알게 하고, 무량한 세간의 일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알게 하며, 또한 그들을 교화하여 무량세의 거친 것이나 미세한 것이나 모든 것을 알게 하니, 이것을 숙명지라 한다. 이 숙명지의 세력(勢力)을 쓰기 때문에 능히 본석(本昔)의 보살인연을 말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에 대해 현재에 신심(信心)이 생기도록 한다. 모든 보살의 본인연경(本因緣經)ㆍ사타가경ㆍ아부타나경(阿浮陀那經)을 말하고, 업인연(業因緣)의 악업과 선업을 말하여 중생의 상견(常見)과 무상견(無常見)을 깨뜨리므로 보살의 숙명지라 한다.
014_0180_a_16L云何宿命智菩薩摩訶薩自知宿世與如是等衆生共住共行識名字及他名字知自種姓及他種知自飮食及他飮食自知苦樂及他苦樂菩薩自知如是宿世亦能教他令知宿世自識乃至無量世事能教他識無量世若麤若細是名宿命智以是宿命智勢力故能說本昔菩薩因緣令諸衆生於佛法中現在生信說諸菩薩本因緣經闍陁伽經阿浮陁那經說業因緣惡業善業破衆生常見及無常見故是名菩薩宿命智
어떤 것을 천안(天眼)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청정한 천안으로 인안(人眼)을 넘어서서 모든 중생이 이승에서 죽어서 저승에 태어남을 보며,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중생의 선업ㆍ악업 등과 선악과를 분명히 보며, 늙든 젊든, 스스로 짓든 남을 시켜 짓든, 거칠든 가늘든, 인천의 모습[人天色]이든, 삼악도의 모습이든, 나아가 무량한 시방세계의 무량한 불토(佛土) 중생의 모습이든 간에 무량한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연설법시(演說法時)를 분명히 안다. 이것을 천안통(天眼通)이라 한다.
014_0180_b_05L云何天眼菩薩摩訶薩以淨天眼過於人眼見諸衆生死此生彼若好色若惡色若好若醜明見衆生善惡等業善惡果若老若少若自造作若教他作若麤若細若人天色三惡道色乃至無量十方世界無量佛土衆生之色明了無量十方諸佛演說法時是名天眼通
014_0180_c_01L어떤 것을 천이(天耳)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듣는 소리는 하늘 소리 같고 사람 소리 같고, 거룩한 소리 같고 거룩하지 않은 소리 같고, 거친 소리 같고 미세한 소리 같고 화성(化聲) 같고 실성(實聲) 같고, 먼 소리 같고 가까운 소리 같다. 하늘 소리란 욕천(欲天)으로부터 아가니타와 나아가 상방(上方) 무량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하늘의 음성을 모두 다 듣기 때문에 하늘 소리라 한다. 사람 소리란 시방 무량세계의 것이며, 거룩한 소리란 모든 부처님과 보살ㆍ성문ㆍ연각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불법을 선설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보시ㆍ지계의 선업을 찬탄해서 악업을 깨뜨리며, 불경을 독송하고 해설하며 베껴 쓴다면, 이것을 거룩한 소리라 한다. 거룩하지 않은 소리란, 이른바 거짓말ㆍ이간질하는 말ㆍ험악한 말ㆍ내용 없는 말 등의 말과, 아래로 삼악도에 이르고 위로 욕계(欲界)에 이르기까지에 있는 모든 하늘의 시방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네 가지 험악한 말을 거룩하지 않은 소리라 한다. 어떤 것이 조잡한 소리인가? 대중이 내는 소리[大衆聲]를 말한다. 대중이 내는 소리가 지옥성ㆍ뇌진성(雷震聲)ㆍ패성(貝聲)ㆍ고성(鼓聲)인 바, 이것이 조잡한 소리이다. 미세한 소리란 속삭거리는 소리ㆍ분명하지 않은 소리ㆍ타비라국성(陀毘羅國聲)ㆍ속특성(粟特聲)ㆍ월지성(月支聲)ㆍ대진성(大秦聲)ㆍ안식성(安息聲)ㆍ진단성(眞丹聲)ㆍ법사성(法沙聲)[법(法)은 거란본에서는 거(佉)로 되어 있다.]ㆍ나형성(裸形聲)ㆍ선비성(鮮卑聲)을 말하는 이와 같은 변지(邊地)의 소리를 미세한 소리라 한다. 어째서인가? 질투와 번뇌의 인연으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천이(天耳)를 성취하여 모든 중생들이 내는 선성(善聲)ㆍ찬탄ㆍ공경을 듣고, 불법을 가르쳐 안주케 해서 신심(信心)이 생기도록 하며, 널리 십이부경과 보살의 비장(秘藏)을 분별한다. 만일 나쁜 소리를 들으면 즉시 가책(呵責)하고 악업의 허물을 말해서 대치문(對治門)을 연다. 이것을 천이통(天耳通)이라 한다.
014_0180_b_12L云何天耳薩摩訶薩所聞音聲若天聲若人聲若聖聲若非聖聲若麤聲若細聲化聲若實聲若遠聲若近聲天聲者從欲天至阿迦尼咤乃至上方無量世界諸天音聲悉得聞之是名天聲人聲者所謂十方無量世界聖聲者謂諸佛菩薩聲聞緣覺爲化衆生宣說佛法若讚布施持戒善業破壞惡讀誦解說書寫佛經是名聖聲聖聲者所謂妄語兩舌惡口無義之下至三惡上至欲界所有諸天十方衆生有如是等四種惡口是名非聖聲云何麤聲謂大衆聲大衆生聲地獄聲雷震聲貝聲鼓聲是名麤聲細聲者謂竊語聲不了聲陁毘羅國粟特聲月支聲大秦聲安息聲丹聲丹本佉沙聲裸形聲鮮卑聲如是等邊地聲名爲細聲何以故嫉妒煩惱因緣得故菩薩成就如是天耳聞諸衆生所出善聲讚歎恭敬教住佛法令生信心廣爲分別十二部經菩薩秘藏若聞惡聲卽便呵責說惡業過開對治門是名天耳通
어떤 것을 타심지통(他心智通)이라 하는가? 보살이 시방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공번뇌심(共煩惱心)과 불공번뇌심, 번뇌계심(煩惱繫心) 및 불계심(不繫心), 선원심(善願心)과 악원심, 의심과 무의심(無疑心), 상심(上心)과 하심, 탐ㆍ에ㆍ치심, 욕계심ㆍ색계심과 무색계심, 나아가 모든 축생의 중생이 받는 고락심(苦樂心)과 무고무락심(無苦無樂心), 일심(一心)으로 한 중생을 보는 마음 및 일심으로 무량한 중생을 보는 마음을 타심지통이라 한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타심지통이 중생의 근기의 예리하고 둔함을 알고 중생의 모든 종성(種性)을 알기 때문에 이 중생이 선심이 있다는 것을 알면 곧 십이부경과 보살장을 연설(演說)하고, 악심이 있음을 알면 곧 가책하고 악업의 허물을 말한다. 이것을 보살의 타심지통이라 한다.
014_0180_c_12L云何他心智菩薩悉知十方世界所有衆生煩惱心不共煩惱心煩惱繫心及不繫心善願心惡願心疑心無疑心心下心貪恚癡心欲界心色無色界乃至一切畜生衆生受苦樂心無苦無樂心以一心觀一衆生心以一心觀無量衆生心是名他心智通諸佛菩薩他心智通爲知衆生利鈍根故爲知衆生諸種性故知是衆生有善心已卽爲演說十二部經及菩薩藏知惡心已卽便呵責說惡業過是名菩薩他心智通
014_0181_a_01L누진지통(漏盡智通)이란, 보살마하살이 번뇌를 끊기 위해 도를 수집(修集)하며, 스스로 번뇌를 깨뜨리기 위해 도를 수집하며, 중생들의 모든 번뇌를 깨뜨리기 위해 법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유루(有漏)의 교만한 중생을 깨뜨리고 비도(非道)로 도(道)를 가늠하는 중생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비록 중생을 위해 누(漏)가 다하는 법을 말해도 스스로는 누가 다한다고 하지 않으며, 비록 누가 다하지 않아도 물들어 더럽혀지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의 누진지통은 불가사의하니, 누진통을 닦아서 중생을 교화하여 교만을 깨뜨리기 때문에 누진통이라 한다.
014_0181_a_01L漏盡智通者菩薩摩訶薩爲斷煩惱故修集道自壞煩惱故修集道爲壞衆生諸煩惱故而爲說爲壞有漏憍慢衆生爲破非道計道衆生故菩薩摩訶薩雖爲衆生說盡漏法自不盡漏雖未盡漏不爲所菩薩摩訶薩漏盡智通不可思議修漏盡通爲化衆生壞憍慢故是名漏盡通
무엇을 법(法)이라 하는가? 단바라밀에서부터 반야바라밀에 이르기까지의 과(果)를 법이라 한다. 이 여섯 가지의 과에는 모두 네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도를 수집(修集)하는 것이며, 둘째는 보리를 장엄하는 것이며, 셋째는 자타를 이익되게 하는 것이며, 넷째는 후세의 대선과(大善果)를 얻는 것이다.
보살은 보시를 행하여 간탐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해서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하여 보시를 행하게 한다. 보시를 할 때 하고 싶어하고 보시를 한 뒤에는 기뻐하는 것을 자리(自利)라 하며, 중생의 기갈ㆍ고뇌ㆍ한열ㆍ공포를 끊어 없애는 것을 이타(利他)라 하며, 이 몸을 버리고 커다란 자재(自在)를 획득하여 재물이 넉넉하고 존귀한 것을 대과(大果)라 한다. 이상을 보살 보시의 네 가지 일이라 한다.
014_0181_a_09L云何爲法檀波羅蜜乃至般若波羅蜜果是名爲法是六種果凡有四事一者修集道故二者莊嚴菩提故三者自他利益故四者得後世大善果故菩薩行施破壞慳貪莊嚴菩提道攝取衆生爲菩提道令行布欲施施時施已歡喜是名自利除衆生飢渴苦惱寒熱恐怖是名利捨是身已獲大自在饒財尊貴名大果是名菩薩布施四事
014_0181_b_01L보살마하살은 금계를 수지하여 악계(惡戒)를 제멸(除滅)하고, 보리의 도를 장엄하여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금계를 수지하게 한다. 계에 대한 두려움을 깨뜨려 벗어남으로써 누워도 안락하고 깨어나도 안락하여 마음에 회한이 없이 기쁘고 즐거운 것을 자리(自利)라 하며, 모든 중생에 대하여 해치려는 마음이 없고 중생들에게 무외(無畏)를 베푸는 것을 이타(利他)라 한다.
계(戒)를 지키는 것으로 인해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받아서 도를 얻어 열반하는 것을 대과(大果)라 하며, 이상을 보살의 계를 지키는 네 가지 일이라 한다.
보살마하살은 인욕(忍辱)을 닦아 불인(不忍)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하여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인욕을 닦게 한다. 자신과 남을 포외(怖畏)로부터 멀리 떠나게 하면 이것을 자리이타(自利利他)라 한다.
인욕의 인연으로 진심(瞋心)이 없고 권속(眷屬)이 무너지지 않고 고뇌를 받지 않고, 마음에 회한이 없으니 이 육신을 버리고 나서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받아 도를 얻어 열반하면, 이를 대과(大果)라 한다. 이상을 보살 인욕의 네 가지 일이라 한다.
014_0181_a_18L菩薩摩訶薩受持禁戒除滅惡戒莊嚴菩提道攝取衆生爲菩提道令持禁戒破戒怖臥安覺安心無悔恨歡喜悅是名自利於諸衆生無有害心衆生無畏是名利他持戒故受人天樂得道涅槃是名大果是名菩薩持戒四事菩薩摩訶薩修於忍辱破壞不忍莊嚴菩提道攝取衆生爲菩提道令修忍辱若自若他遠離怖畏名自利利他以忍因緣無有瞋心屬不壞不受苦惱心無悔恨捨是身已受人天樂得道涅槃是名大果名菩薩忍辱四事
보살마하살은 열심히 닦고 정진해서 게으름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하여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닦아 정진하게 한다. 누워도 편안하고 깨어나도 편안해서 모든 번뇌를 떠나 선법을 증장(增長)하여 몸이 안락함을 받으면, 이것을 자리(自利)라 한다. 보살이 정진하여 중생을 번뇌하지 않게 하고 가매(呵罵)를 던져버리면 이것을 이타(利他)라 한다. 이 육신을 버리고 나서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받아 몸이 대력(大力)을 얻어 보리의 도를 획득하면, 이것을 대과(大果)라 하며, 이상을 보살이 정진하는 네 가지 일이라고 한다.
014_0181_b_08L菩薩摩訶薩勤修精進破壞懈怠莊嚴菩提道攝取衆爲菩提道令修精進臥安覺安離諸煩惱增長善法身受安樂是名自菩薩精進不惱衆生打擲呵罵名利他捨是身已受人天樂身得大力獲菩提道是名大果是名菩薩精進四事
보살은 선정을 닦아 난심(亂心)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해서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하여 선정을 닦게 한다. 현세에 낙을 받아 신심(身心)이 적정(寂靜)하면 이를 자리라 하며, 신심이 적정해서 중생을 번뇌하지 않게 하면 이것을 이타라 한다. 이 육신을 버리고 청정한 몸을 받아 안온(安隱)하고 쾌락하여 도를 얻어 열반하면 이것을 대과라 하며, 이상을 보살 선정의 네 가지 일이라 한다.
014_0181_b_15L菩薩修定壞破亂心莊嚴菩提道攝取衆生爲菩提道令修禪定現世受樂身心寂靜是名自利以身心靜故不惱衆生是名利他捨是身已受淸淨身安隱快樂得道涅槃名大果是名菩薩禪定四事
014_0181_c_01L보살마하살은 지혜를 성취하여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보리의 도를 장엄해서 사섭법(四攝法)으로써 중생을 섭취하고, 보리의 도를 위해 지혜를 수행하게 한다. 법계를 알아 몸이 안락을 받으면 이를 자리라 하며, 중생에게 능히 세간의 일과 출세간의 일을 가르치면 이를 이타라 한다. 능히 지혜와 번뇌의 두 장애를 깨뜨리면 이를 대과라 하며, 이상을 보살 지혜의 네 가지 일이라 한다.
014_0181_b_20L菩薩摩訶薩成就智慧破壞無明莊嚴菩提道以四攝法攝取衆生爲菩提道修行智慧以知法界故身受安樂是名自利能教衆生世閒之事及出世事是名利他能壞煩惱智慧二障是名大果是名菩薩智慧四事
공생불가사의(共生不可思議)란 보살마하살이 숙명지(宿命智)가 아닌 것으로 숙세(宿世)의 일을 기억하여 중생의 선업과 악업 등을 관찰함으로써 고통받는 자와 함께 하며 이익되게 하려는 것이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처하여 수명을 성취한 데는 세 가지의 뛰어남이 있다. 첫째는 수승(壽勝)이며, 둘째는 색승(色勝)이며, 셋째는 명칭승(名稱勝)이다. 처음 내려온 때 큰 광명을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어서 처음으로 모태(母胎)에 들어갈 때와 머물 때와 나올 때를 스스로 분명히 알았으며, 열 방면(方面)을 향하여 일곱 걸음을 걸을 때도 아무도 붙들어주는 사람이 없이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지금 이 몸은 최후변(最後邊)의 몸이다.”
014_0181_c_03L共生不可思議者菩薩摩訶薩非宿命智憶宿世事爲觀衆生善惡諸業同受苦者爲欲利益菩薩摩訶薩處兜率天就壽命有三事勝一者壽勝二者色三者名稱勝初下之時放大光明遍照十方了了自知始入母胞胎時住時出時於十方面行七步時無人扶侍作如是言我今此身是最後邊
014_0182_a_01L그리하여 여러 하늘의 귀신과 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가 온갖 꽃과 향과 미묘한 기악(伎樂)과 깃발과 덮개로써 공양을 드렸다. 삼십이상(三十二相)이 그 몸을 장엄하여 능승(能勝)할 자가 없고, 자선(慈善)의 힘으로 마병(魔兵)의 무리를 깨뜨리니, 몸 하나하나의 지절(支節)이 나라연이 얻은 대력(大力)과 같았다. 어린 나이에 세간의 일을 배우지 않고도 잘 알았으며, 스승 없이 배워도 저절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범천(梵天)이 중생들을 위해 바른 법륜(法輪)을 굴릴 것을 권청(勸請)하였고, 삼매(三昧)를 바로 받아들여서 천둥 소리를 진동하지 못하게 했다. 온갖 짐승들이 부모처럼 사랑하며 친부(親附)하였으며, 축생(畜生)이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서 음식을 봉양하였다. 운신(雲神)이 비를 내려 그 몸을 씻기고, 나무들이 가지를 늘여뜨려 그 몸을 가려주었다. 도를 성취하는 육 년 동안에 악마가 항상 엿보고 노렸으나 그 헛점[短處]을 찾지 못했다. 언제나 선정에 들어 염심(念心)을 이루었으며, 각관(覺觀)의 일어남과 멸함을 잘 요지(了知)하였다. 이것을 보살의 공생불가사의라 한다.
014_0181_c_11L諸天鬼神乾闥婆阿修羅迦樓羅那羅摩睺羅伽以諸華香微妙伎樂幡蓋供養三十二相#莊嚴其身無能勝者以慈善力壞魔兵衆一一支節同那羅延所得大力童齔之年不學世事而能知之無師而學自然而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梵天勸請爲諸衆生轉正法輪正受三昧雷聲震動不能令動諸獸親附愛如父母生奉食知佛心故雲神降雨洗浴其樹隨曲枝蔭翳其軀旣成道已六年之中魔常伺求不得其短常在禪定成就念心善能了知覺觀起滅名菩薩共生不可思議
불공생(不共生)은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는 것인 바, 마치 미친 사람이 여래를 보는 것으로 인해 다시 본심(本心)을 찾고, 소경이 눈을 뜨며, 도산(倒産)이 순산(順産)으로 바뀌고, 귀머거리가 소리를 듣고, 탐ㆍ진ㆍ치를 모두 멸하여 없애는 것과 같다. 이것을 불공생불가사의라 한다.
014_0182_a_02L不共生者欲利益一切衆生如彼狂人緣見如來還得本心盲者得眼倒產得順者得聽貪瞋癡者悉得除滅是名不共生不可思議
또 공생(共生)이란 여래가 행한 불가사의이니, 항상 사자왕(師子王)처럼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누웠으나 풀이나 잎이 어지러이 움직이는 것이 없었고 수람(隨藍)의 강한 바람도 옷자락을 흔들지 못했다. 발을 옮기어 걷는 모습이 사자왕이나 백아왕(白鵝王) 등과 같았으며, 걸으려고 할 때는 오른발을 먼저 떼었고, 가는 곳에는 언덕이나 웅덩이가 모두 평지가 되었다. 식사는 배를 가득 채우거나 지나침이 없이 밥알을 남겨 입에 두었다. 이것을 공생불가사의라 한다. 여래세존께서 열반하실 때는 땅이 진동하고 큰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었으며, 모두가 다 기악(伎樂)의 소리를 들었다. 이것을 공생불가사의라 한다.
014_0182_a_06L又共生者如來所行不可思議常右脅臥如師子王若草若葉無有動亂隨藍猛風不動衣服發足行步如師子王白鵝王等若欲行時先發右足所行之處高下皆平食無完過遺粒在口是名共生不可思議如來世尊入涅槃時大地震動放大光明遍十方界一切悉聞伎樂之音是名共生不可思議
무엇을 공(共)이라 하는가? 성문이나 연각은 불공(不共)이다. 성문과 연각의 불공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細)이며, 둘째는 행(行)이며, 셋째는 계(界)이다. 여래께서 모든 중생의 무량한 번뇌를 다 알아서 무량하게 대치(對治)하는데, 이를 세라 한다. 행이란 육통(六通)ㆍ육바라밀ㆍ법성(法性)ㆍ자생(自生)불가사의라고도 한다. 계란 모든 세간의 걸림없는 지혜인 이것이 계이다. 이상을 불공불가사의라 한다. 성문 신통(神通)은 이천세계와 가지런하며 연각 신통은 삼천대천세계와 가지런하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무량무변의 세계에 통하니, 이것을 불공(不共)이라 한다. 공(共)이란 위의 세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일체의 법을 말하는데, 이것을 공이라 한다.
014_0182_a_14L云何名爲聲聞緣覺不共聲聞緣覺不共有一者細二者行三者界如來悉知一切衆生無量煩惱無量對治是名爲細行者名爲六通六波羅蜜法性自生不可思議是名爲行界者一切世閒無㝵智慧是名爲界是名不共不可思議聲聞神通齊二千世界緣覺神通齊三千大千世界諸佛菩薩通達無量無邊世界是名不共除上三事餘一切法是名爲共
014_0182_b_01L이 때문에 성문과 벽지불 등이 아직도 부처님이나 보살과 함께 공하지 못할 것이니, 더구나 범부(凡夫)ㆍ인천(人天)ㆍ외도(外道)의 사견(邪見)이겠는가? 보살마하살의 육바라밀의 법성은 공생(共生)과 불공생(不共生)이며, 성문과 연각은 공법(共法)과 불공법이다. 이것을 불가사의라 한다.
014_0182_b_01L故聲聞辟支佛等尚不得與佛菩薩況凡夫人天外道邪見菩薩摩訶薩六波羅蜜法性共生不共生聲聞緣覺共法不共法是名不可思議
菩薩善戒經卷第二
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