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顯揚聖教論卷第三

ABC_IT_K0571_T_003
016_0019_a_01L현양성교론 제3권
016_0019_a_01L顯揚聖教論卷第三


무착 지음
현장 한역
016_0019_a_02L無著菩薩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제1 섭사품 ③
016_0019_a_04L攝事品第一之三

‘통달’은 일곱 가지 통달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글자를 통달함이니, 32글자에 대해서 분별이 없기 때문이고, 행하는 바 양상의 뜻을 여실히 깨달아 알며, 이전부터 마음의 더욱 향상된 법행(法行)에 대해서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이다. 둘째는 글자의 모양을 통달함이니, 사자(師字)의 형상인 모든 글자의 모습들에 대해서 분별이 있기 때문이고, 행하는 바 양상의 뜻을 여실히 깨닫아 아는 것이며,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1) 셋째는 능취(能取)를 통달함이니, 소연(所緣)에 상응하는 심법에 대해서 오직 요별의 양상을 깨달아 아는 것이며,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넷째는 소취(所取)를 통달함이니, 일체의 여러 식(識)의 경계에 대해서 오직 식의 영상(影相)의 양상을 여실히 깨달아 아는 것이며,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섯째는 계박을 통달함이니, 상박(相縛)2)과 추중박(麤重縛)3)에 대해서 여실히 깨달아 아는 것이며,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여섯째는 해탈을 통달함이니, 상박의 해탈과 추중박의 해탈에 대해서 여실히 깨달아 아는 것이며, 나머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일곱째는 법성을 통달함이니, 계박의 해탈과 아득한 옛적부터의 모든 행의 연기와 그것의 적멸인 진여ㆍ법성에 대해서 여실히 깨달아 아는 것이며, 이전부터 마음의 더욱 향상된 법행에 대해서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이다.
016_0019_a_05L通達者謂七種通達廣說如經通達謂於三十二字無分別故所行相義如實覺了先已於心增上法行善修治故字相通達謂於師子之形諸字相等有分別故所行相義實覺了餘如前說能取通達謂於所緣相應心法唯了別相如實覺了餘如前說所取通達謂於一切諸識境界唯識影相如實覺了餘如前繫縛通達謂於相縛及麤重縛如實覺了餘如前說解脫通達於相縛解脫及麤重縛解脫如實覺餘如前說法性通達謂於繫縛解脫無始世來諸行緣起及彼寂滅眞如法性如實覺了先已於心增上法行善修治故
016_0019_b_01L‘지(地)’는 보살의 10지(地)를 말한다.4) 자세히 말하면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극희지(極喜地)5)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마음의 더욱 향상된 법행에 대해서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의 성문ㆍ독각의 현관(現觀)6)을 벗어나서 모든 보살의 현관을 얻고, 최상의 현관을 올바로 증득했기 때문이다. 대보살들은 이 지위에서 더욱 향상된 기쁨에 머무나니, 이런 까닭에 이 지위를 극희지라고 이름한다.
둘째는 이구지(離垢地)7)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초지(初地)의 행을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 성문ㆍ독각의 지위를 벗어나서 지극히 청정하고 미묘한 시라(尸羅)의 무더기를 증득하고, 계를 미세하게 범하는 온갖 번뇌[垢]를 다스린다. 이런 까닭에 이 지위를 이구지라고 이름한다.
셋째는 발광지(發光地)8)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제2지를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의 성문ㆍ독각의 지위를 벗어나서 지극히 청정한 삼마지의 무더기를 증득하고, 큰 지혜의 광명이 의지할 바가 된다. 이런 까닭에 이 지위를 발광지라고 이름한다.
016_0019_a_21L地者謂菩薩十地廣說如經極喜謂諸菩薩住此地中先已於心上法行善修治故超過一切聲聞覺現觀得諸菩薩現觀由正證得無上現觀故諸大菩薩於此地中住增上喜是故此地名爲極喜離垢地謂諸菩薩住此地中先善修治初地行故超過一切聲聞獨覺地證得極淨妙尸羅薀對治一切微犯戒垢故此地名爲離垢發光地謂諸菩住此地中先善修治第二地故過一切聲聞獨覺地證得極淨三摩地薀大智光明之所依止是故此地名爲發光
016_0019_c_01L넷째는 염혜지(焰慧地)9)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제3지를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의 성문ㆍ독각의 지위를 벗어나서, 지극히 청정하고 모든 각분(覺分)을 반연하여 능히 법경(法境)을 취하여 미묘한 지혜의 무더기를 증득하고, 능히 현전에 모든 번뇌를 불태워버린다. 이런 까닭에 이 지위를 염혜지라고 이름한다.
다섯째는 극난승지(極難勝地)10)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제4지를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 성문ㆍ독각의 지위를 벗어나서, 지극히 청정하고 진리와 알아야 할 온갖 법을 반연하여 미묘한 지혜의 무더기를 증득하고, 지극히 어려움을 성취하여 유전(流轉)과 적멸에 머물지 않는 성도를 이룬다. 이런 까닭에 이 지위를 극난승지라고 이름한다.
여섯째는 현전지(現前地)11)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제5지를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 성문ㆍ독각의 지위를 벗어나서, 지극히 청정하고 지혜ㆍ지혜 아님의 두 가지로 짓는 온갖 행과 유전(流轉)ㆍ지식(止息)의 법경을 반연하여 미묘한 지혜의 무더기를 증득하고, 대부분 상(相)이 있고 자재롭게 상속하는 미묘한 지혜가 현전한다. 이런 까닭에 이 지위를 현전지라고 이름한다.
016_0019_b_13L焰慧地謂諸菩薩住此地中先善修治第三地故超過一切聲聞獨覺地證得極淨緣諸覺分取法境微妙慧薀能現前燒一切煩是故此地名爲焰慧極難勝地謂諸菩薩住此地中先善修治第四地故超過一切聲聞獨覺地證得極緣諦所知諸法微妙慧薀成極難不住流轉寂滅聖道是故此地極難勝現前地謂諸菩薩住此地先善修治第五地故超過一切聲獨覺地證得極淨緣智非智二種所作諸行流轉止息法境微妙慧薀多分有相任運相續妙智現前是故此地名爲現前
일곱째는 원행지(遠行地)12)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제6지를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 성문ㆍ독각의 지위를 벗어나서, 지극히 청정하고 미묘한 해탈ㆍ해탈지견(解脫智見)의 무더기를 증득하고, 이미 일체 현행하는 온갖 상(相)에서 해탈함에 멀리 들어간다. 이런 까닭에 이 지위를 원행지라고 이름한다.
여덟째는 부동지(不動地)13)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제7지를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 성문ㆍ독각의 지위를 벗어나서, 지극히 청정하고 미묘한 해탈ㆍ해탈지견의 무더기를 증득하고, 일체의 상(相)에 자재함에 대한 장애를 해탈함으로써 공용 없음이 자재롭게 상속하는 도(道)가 의지할 바가 된다.14) 이런 까닭에 이 지위를 부동지라고 이름한다.
아홉째는 선혜지(善慧地)15)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제8지를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 성문ㆍ독각의 지위를 벗어나서, 지극히 청정하고 미묘한 해탈ㆍ해탈지견의 무더기를 증득하고, 온갖 걸림없는 변재(辯才)의 장애를 해탈하고 허물없는 광대한 지혜가 의지할 바가 된다. 이런 까닭에 이 지위를 선혜지라고 이름한다.
열째는 법운지(法雲地)16)이다. 보살들이 이 지위에 머물러서는 이전부터 제9지를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에 일체 성문ㆍ독각의 지위를 벗어나서, 지극히 청정하고 미묘한 해탈ㆍ해탈지견의 무더기를 증득하고, 큰 신통 지혜를 일으킴에 대한 장애를 해탈하고 구름 같은 법신이 원만함이 의지할 바가 된다. 이런 까닭에 법운지라고 이름한다.
016_0019_c_04L遠行地謂諸菩薩住此地中先善修治第六地故超過一切聲聞獨覺地證得極淨微妙解解脫智見薀由已遠入一切現行諸相解脫是故此地名爲遠行動地謂諸菩薩住此地中先善修治第七地故超過一切聲聞獨覺地得極淨微妙解脫解脫智見薀解脫一切相自在障故得無功用任運相續道之所依止是故此地名爲不動善慧地謂諸菩薩住此地中先善修治第八地故超過一切聲聞獨覺證得極淨微妙解脫解脫智見薀解脫一切無㝵辯障無過廣慧之所依止是故此地名爲善慧法雲地謂諸菩薩住此地中先善修治第九地故超過一切聲聞獨覺地證得極微妙解脫解脫智見薀解脫發起大神通智障如雲法身圓滿所依故此地名爲法雲
016_0020_a_01L‘바라밀다(波羅蜜多)’17)는 열 가지 바라밀다를 말한다.18) 자세히 말하면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보시바라밀다[施波羅蜜多]이다. 보리심에 의지하고 자비가 우두머리가 되며, 열 가지 법행으로 도와 잘 닦고 다스리며, 일곱 가지 통달로써 견고한 뿌리가 된다. 혹은 재물에 의해서, 혹은 바른 법에 의해서, 혹은 두려움 없음에 의해서이다. 다섯 가지 공덕인 대아(大我)에 포섭되는 성질이다. 첫째는 집착이 없기 때문에 버리고, 둘째는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버리며, 셋째는 잃어버림이 없기 때문에 버리고, 넷째는 분별이 없기 때문에 버리며, 다섯째는 회향하기 때문에 버린다. 이러한 행으로 인하여 보살들은 생활도구로써 유정들을 포섭하며, 가까이 하고 많이 닦아 익힘으로써 그 자량(資糧)으로 하여금 원만하게 하여 장차 무상정변지(無上正遍知)의 과위를 이룬다.
016_0019_c_23L波羅蜜多者謂十波羅蜜多廣說如施波羅蜜多謂依菩提心悲爲導首十種法行助善修治七種通達爲堅固根或因資財或因正法或因無畏五種功德大我所攝性一無著故捨二不觀故捨三無失故捨四無分別故捨五迴向故捨由此行故諸菩薩以資生具攝諸有情及由親近多修習故令彼資糧圓滿當成無上正遍知果
보시바라밀다와 같이 지계바라밀다 나아가 지혜바라밀다에 대해서도 그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둘째는 지계바라밀다[戒波羅蜜多]이다. 혹은 불선(不善)을 쉬고 떠남에 의해서, 혹은 선법(善法)을 거두어 들임에 의해서, 혹은 유정을 이롭게 하는 율의계(律儀戒)에 속하는 신업ㆍ어업ㆍ의업의 성질에 의해서이다. 이러한 행으로 인하여 보살들이 성내지 않음과 고뇌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유정을 포섭한다.
셋째는 인욕바라밀다[忍波羅蜜多]이다. 혹은 남들이 이롭지 못하게 함을 참고 성내지 않는 성질에 의해서, 혹은 온갖 괴로움을 편안히 받아들여서 산란되지 않는 성질에 의해서, 혹은 모든 법을 자세히 관찰하는 바른 지혜의 성질에 의해서이다. 이런 행으로 인하여 보살들은 일체의 이롭지 못한 일들과 손해되는 일들을 참으면서 모든 유정을 포섭한다.
016_0020_a_10L如施波羅蜜多如是戒乃至慧應知此中差別者第二戒波羅蜜多謂或因息離不善或因攝受善法或因利益有情律儀戒所攝身意業性由此行故諸菩薩以不恚不惱攝諸有情第三忍波羅蜜多或因忍受他不饒益不恚性或因安受諸苦不亂性或因審察諸法正慧由此行故諸菩薩以忍受一切不饒益事及損害事攝諸有情
016_0020_b_01L넷째는 정진바라밀다[勤波羅蜜多]이다. 혹은 발심의 투구를 쓰게 됨에 의해서, 혹은 방편 가행(加行)에 의해서, 혹은 유정을 이롭게 하려는 계속되는 순수한 마음과 용맹한 성질에 의해서 일체의 선근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이런 행으로 인하여 보살들은 비록 아직 번뇌를 조복하지는 못했으나 능히 한결같이 모든 착한 일들을 전일하게 닦는다.
다섯째는 정려바라밀다(靜慮波羅蜜多)이다. 혹은 번뇌를 다스림에 의해서, 혹은 공덕을 일으킴에 의해서, 혹은 유정을 이롭게 하는 마음에 의해서 마음이 하나를 반연하는 상태[一緣性]에 머문다. 이런 행으로 인하여 보살들은 온갖 번뇌를 조복하여 현행하지 않는 법에 머무르게 된다.
여섯째는 혜바라밀다(慧波羅蜜多)이다. 혹은 번뇌를 다스림에 의해서, 혹은 공덕을 일으킴에 의해서, 혹은 유정을 이롭게 함에 의해서 모든 법을 간택하는 성질에 머문다. 이러한 행으로 인하여 보살들은 일체의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종자를 영원히 끊는다.
016_0020_a_19L第四勤波羅蜜多謂或因被發心鎧或因方便加行或因利益有情相續純熟心勇猛性爲欲引生一切善根由此行而諸菩薩雖未伏惑而能一向專修諸善第五靜慮波羅蜜多謂或因對治煩惱或因發起功德或因利益有情心住一緣性由此行故而諸菩伏諸煩惱令住不現行法第六慧波羅蜜多謂或因對治煩惱或因發起功德或因利益有情簡擇諸法性由此行故而諸菩薩永斷一切煩惱所知障種子
일곱째는 선교방편바라밀다(善巧方便波羅蜜多)이다. 보살들은 이 방편으로써 혹은 수순함에 의해서, 혹은 어김에 의해서, 혹은 의욕[意樂]과 같지 않음에 의해서, 혹은 은혜를 베풀고 은혜를 갚음에 의해서, 혹은 위엄과 핍박함에 의해서, 혹은 청정함에 의해서 세 가지 이익으로써 유정들을 포섭하여 갖가지 좋은 곳에서 수용하게 하고 조복하게 하며 편히 머무르도록 하고 성립되도록 한다.
여덟째는 서원바라밀다[願波羅蜜多]이다. 여러 보살 중에서 어느 하나를 수순함을 속성으로 삼나니, 게으름과 번뇌가 많기 때문이다. 드디어 바른 원을 세우고 온갖 착한 일을 닦되 “나는 미래에는 자성을 깨달아 얻고 용맹스럽고 바르게 정진하며 번뇌가 적어지게 하리라.”고 하나니, 이러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나머지 생에서도 그 일으켰던 것과 같이 구하고 그 원을 모두 이루게 되며, 착한 법을 닦음에 있어서 강성한 힘을 얻게 된다.
아홉째는 힘바라밀다[力波羅蜜多]이다. 모든 보살은 닦은 선법(善法)에 대해서 강성한 힘을 얻고 이 힘에 의지함으로 인하여 정려바라밀다를 빨리 일으키게 된다.
열째는 지바라밀다(智波羅蜜多)이다. 모든 보살은 보살장(菩薩藏)인 정려바라밀다에 속하는 법칙과 지(智)로 이끌어진 세간혜(世間慧)에 있어서 이 혜(慧)에 의하기 때문에 보살들이 출세간이고 분별없으며 유전과 적멸에 머물지 않는 도에 속하는 혜바라밀다를 능히 빨리 일으키게 된다.
016_0020_b_08L第七善巧方便波羅蜜多謂諸菩薩以此方便或由隨順或由違逆或由不同意樂或由作恩報恩或由威逼或由淸淨以三種利攝諸有情於種種善處令受令調令安住令成立第八願波羅蜜多諸菩薩中隨有其一爲性懈怠煩惱多故遂發正願而修諸善令我未來獲得自性勇猛正勤煩惱微薄由此因故於餘生中如所發求咸果其願於修善法得强盛力第九力波羅蜜謂諸菩薩由於所修善法得强盛依此力故速疾發起靜慮波羅蜜第十智波羅蜜多謂諸菩薩於菩薩藏靜慮波羅蜜多所攝法則智所引世閒慧依此慧故而諸菩薩速能發起出世無分別不住流轉寂滅道所攝慧波羅蜜多
016_0020_c_01L이와 같은 열 가지 바라밀다는 모든 지위에서 다 갖추어 닦아 익힌다. 만약 뛰어난 점에 있어서라면 보시바라밀다는 오직 초지(初地)에만 있게 되고, 나아가 지바라밀다는 제10지에 있다고 알아야 한다.
또한 다시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20_c_02L如是十波羅蜜多於一切地中皆具修習若增上者施波羅蜜多唯在初如其次第乃至智波羅蜜多在第十地應知復次頌曰

보살행과 포섭하는 일
그리고 저 다라니와
삼마지 등의 문과
온갖 한량없는 작의(作意)이네.
016_0020_c_06L菩薩行攝事
及彼陁羅尼
三摩地等門
諸無量作意

논하여 말한다. ‘보살행’이란 네 가지 보살행을 말한다. 자세히 말하면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피안에 이르는 행[到彼岸行]이다. 열 가지 바라밀다를 통틀어서 피안에 이르는 행이라고 말하나니, 모두 대승의 벗어남[出離]의 뜻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두루 깨달음의 행[遍覺分行]이다. 서른 일곱 가지 보리분법을 통틀어서 두루 깨달음의 행이라고 말하나니, 온갖 알아야 할 것[所知]을 여실히 깨달아 아는 뜻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신통의 행이다. 여섯 가지 신통을 통틀어서 신통의 행이라고 말하나니, 모두가 교화받을 유정계를 이끌고 포섭하여 성스러운 가르침을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들어오게 하는 뜻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유정을 성숙시키는 행이다. 네 가지 포섭하는 일[四攝事]을 통틀어서 유정을 성숙시키는 행이라고 말하나니, 만약 이미 성스러운 가르침에 들어왔으면 교화받을 유정계를 재물ㆍ법의 두 가지로써 포섭하여 받아들이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재물로써 포섭하는 것은, 섭수하는 방편을 도와서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법으로 포섭하는 것은, 올바로 섭수하여 전전함 및 수순하여 전전함의 방편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016_0020_c_08L論曰菩薩行者謂四種菩薩行廣說如經到彼岸行謂十波羅蜜多攝說爲到彼岸行皆是大乘出離義遍覺分行謂三十七菩提分法摠攝說爲遍覺分行如實覺了一切所知義故神通行謂六神通摠攝說爲神通行皆爲引攝所化有情界令生恭敬入聖教義故成熟有情謂四攝事摠攝說爲成熟有情行若已入聖教所化有情界以財法二種攝受義故此中財攝者謂助攝受方便令成熟故法攝者謂正攝受及隨轉方便令成熟故
016_0021_a_01L이와 같은 사섭사는 다섯 가지 포섭하는 행에 의지하므로 포섭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다섯 가지 포섭하는 일이란, 첫째는 자기에게 따르도록 포섭함이고, 둘째는 선(善)을 받아들이도록 포섭함이며, 셋째는 선(善)을 일으켜 바르게 정진하도록 포섭함이고, 넷째는 선을 성숙시키도록 포섭함이며, 다섯째는 잘 해탈하도록 포섭함이다.
‘포섭하는 일’이란 4섭사(攝事)를 말한다. 자세히 말하면 경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만약 그것을 풀어 설명하면 중생들을 성숙시키는 행(行)을 설명한 것과 같다.
016_0020_c_21L如是四攝事依五種攝行說爲攝事攝行者令附已攝二令受善攝三令起善正勤攝四令善成熟攝五令善解脫攝攝事者謂四攝事廣說如經若安立如安立成熟有情行應知
‘다라니문’이란 모든 보살의 한량없는 다라니문을 말한다. 자세히 말하면 경전에서와 같다. 다라니의 양상을 간략히 말한다면, 보살들이 글자의 종류를 성취하고 명칭[名身]ㆍ문구[句身]ㆍ글자[文身]를 통달하여 의미 그대로 자재하여 그와 같은 종류의 기억함과 지니는 힘을 얻는다. 기억하는 힘으로 말미암아 어느 글자든지 능히 나타내고 분별하여 온갖 종류의 더러움ㆍ청정의 의미를 연설할 수 있나니, 이런 까닭에 다라니문이라고 이름한다.
016_0021_a_03L陁羅尼門者謂諸菩薩無量陁羅尼廣說如經若欲略說陁羅尼相者謂諸菩薩成就字類通達於名如意自在得如是種類念持之力由念力故隨一字中而能顯示分別開演一切種染淨之義是故說名陁羅尼門
‘삼마지문’이란 모든 보살의 한량없는 삼마지문을 말한다. 자세히 말하면 경전에서와 같다. 간략히 말하면 또한 여덟 가지가 있으니, 초정려(初靜慮) 나아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이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 하나하나의 삼마지문에 의지해서 한량없는 삼마지를 내는데, 모든 성문과 독각들은 그 이름도 알지 못한다. 이 온갖 삼마지는 모두 시방세계의 일체 삼마지로 짓는 일을 건립하나니, 이런 까닭에 삼마지문이라고 이름한다.
016_0021_a_10L三摩地門者謂諸菩薩無量三摩地廣說如經若欲略說復有八種初靜慮乃至非想非非想處諸菩薩摩訶薩依此一一三摩地門出生無量三摩地諸聲聞獨覺不達其名諸三摩地悉能建立十方世界一切三摩地所作之事是故說名三摩地門
016_0021_b_01L‘한량없음에 대한 작의’란 다섯 가지 한량없음에 대한 작의를 말한다.19) 자세히 말하면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유정이 한량없다는 작의이다. 보살들은 더욱 향상된 법행(法行)으로 잘 닦고 다스린 바와 미묘한 작의로써,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속한 일체의 유정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갖가지 업보 차별의 양상을 사유하되, 혹은 발이 하나인 것ㆍ발이 둘인 것ㆍ발이 넷인 것ㆍ발이 많은 것, 혹은 유색(有色)20)ㆍ무색(無色)21), 혹은 유상(有想)22)ㆍ무상(無想)23)ㆍ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24), 혹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 혹은 지옥[那洛迦]25)ㆍ축생[傍生]26)ㆍ아귀세계[鬼趣]ㆍ인간ㆍ하늘, 혹은 난생(卵生)ㆍ습생(濕生)ㆍ태생(胎生)ㆍ화생(化生)27)을 사유하고서 이와 같은 유정의 유전(流轉)ㆍ이와 같은 유정의 환멸(還滅), 이와 같은 유정의 염오(染汚)ㆍ이와 같은 유정의 청정, 이와 같은 유정의 삿된 행ㆍ이와 같은 유정의 바른 행, 이와 같고 이와 같은 행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고 이와 같은 이숙(異熟)이 생긴다고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을 말한다.
016_0021_a_17L無量作意者謂五無量作意廣說如有情無量作意謂諸菩薩以增上法行所善修治微妙作意思惟十方無量世界所攝一切有情世閒可言說種種業報差別之相或一足二足四足多足或有色無色或有想非有想非無想或欲界色界無色或那洛迦傍生鬼趣或卵生濕生胎生化生旣思惟已如實了知如是有情轉如是有情還如是染污如是淸淨如是邪行如是正行如是如是行差別故如是如是諸異熟生
둘째는 세계가 한량없다는 작의이다. 보살들이..... 나아가28)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 즉 기세간(器世間)의 양상을 사유하고, 이미 사유하고서 이 세계의 염오와 이 세계의 청정을 여실히 알며, 모두 허깨비와 같아서 오직 허망분별의 그림자이고 거짓이며 참된 것이 아니고 겉모습을 따라 유전하며, 혹은 이루어지고 혹은 무너져서 갖가지 모습의 차별이 건립되며, 혹은 뛰어나고 혹은 하열하며, 혹은 거칠고 혹은 미세하며, 혹은 멀고 혹은 가까우며, 혹은 다시 분석되어 극미(極微)에 이르고, 혹은 넓거나 줄어들며, 혹은 나타나 변화되고 혹은 변하여 달라지며, 혹은 멀거나 가까우며, 혹은 숨거나 나타나는 것 등 이와 같은 사물들에 대해서 자재함을 얻고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다.
016_0021_b_06L世界無量作意謂諸菩薩乃至思惟十方無量世界器世閒相旣思惟如實了知此世界染此世界淨實了知皆如幻化唯是虛妄分別影虛僞不實隨相流轉或成或壞種形貌差別建立或勝或劣或麤或或遠或近或復分析至於極微於廣略或於現化或於變異或於遠或於隱顯如是等事而得自在實了知
016_0021_c_01L셋째는 법계가 한량없다는 작의이다. 보살들이..... 나아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의 일체 온갖 법의 자상(自相)29)과 공상(共相)30)을 사유하고, 이미 사유하고서 이 법은 물질이고 이 법은 물질이 아닌 것을 여실히 알고, 물질ㆍ물질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유견색(有見色)ㆍ무견색(無見色)31), 유대색(有對色)ㆍ무대색(無對色)32), 유루(有漏)ㆍ무루(無漏)33), 유위법ㆍ무위법, 선ㆍ불선ㆍ무기(無記), 과실 있음ㆍ과실 없음, 욕계의 계박[欲繫]ㆍ색계의 계박[色繫]ㆍ무색계의 계박[無色繫], 유학(有學)ㆍ무학(無學)ㆍ유학도 아니고 무학도 아님, 견도에서 끊어지는 번뇌[見斷]ㆍ수도에서 끊어지는 번뇌[修斷]ㆍ무학도에서 끊어지는 번뇌[無斷], 전법(轉法)ㆍ환법(還法)34), 염오법[染法]ㆍ청정법[淨法], 유전법(流轉法)ㆍ적멸법35), 이생(異生)36)의 법ㆍ현성(賢聖)의 법ㆍ성문의 법ㆍ독각의 법ㆍ여래의 법 등의 법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다.
016_0021_b_16L法界無量作意謂諸菩薩乃至思惟十方無量世界一切諸法自相共相旣思惟已如實了知此法是色此法非色如色非色如是有見無見有對無對有漏無漏有爲無爲不善無記有過失無過失欲繫無色繫無學非學非無學見斷修斷無斷轉法還法染法淨法流轉寂滅法異生法賢聖法聲聞法覺法如來法如是等法如實了知
넷째는 조복할 바가 한량없다는 작의이다. 보살들이..... 나아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서 교화받을 유정들의 갖가지 행과 갖가지 성품, 혹은 성문의 종성(種性) 혹은 독각의 종성 혹은 여래의 종성이나 이와 같은 따위의 조복할 종성들을 사유하고, 이미 사유하고서 조복할 바를 여실히 안다. 즉 “이는 약한 근기이고, 이는 중간 근기이며, 이는 예리한 근기이다. 이는 열등한 승해(勝解)이고, 이는 광대한 승해이다. 이것은 탐욕의 행이고 탐욕의 아세야(阿世耶)37)이며, 이것은 성냄의 행이고 성냄의 아세야이며, 이것은 어리석음의 행이고 어리석음의 아세야이다. 이것은 등분(等分)의 행이고 등분의 아세야이며, 이것은 승진(昇進)의 아세야이고, 이것은 승진이 아닌 아세야이며, 이것은 미약한 번뇌[塵垢]이고 어질고 착함의 아세야이다. 이것은 증성한 수면(隨眠)38)이며, 이것은 미약한 수면이고, 이것은 지극히 미세한 수면이며, 이것은 쇠약하고 줄어든 수면이고, 이것은 쇠약하거나 줄어들지 않은 수면이며, 이것은 완전한 수면이고, 이것은 불완전한 수면이다. 이는 자세히 설명해야 비로소 알고, 이는 대략 들어도 곧 알며, 이는 내쫓아 보내서 조복할 자이고, 이는 섭수해서 조복할 자이며, 이는 부드럽게 조복할 자이고, 이는 거칠게 조복할 자이며, 이는 부드러움과 거칠음으로 조복할 자이고, 이는 마땅히 놓아두어야 비로소 조복할 자이다.”라고, 그와 같은 것들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다.
016_0021_c_02L所調伏無量作意謂諸菩薩乃至思惟十方無量世界所化有情種種行種種性或聲聞種性或獨覺種性如來種性諸如是等所調種性旣思惟已如實了知所調伏者此軟根中根此利根此下劣勝解此廣大勝此貪行貪阿世耶此瞋行瞋阿世此癡行癡阿世耶此等分行等分阿世耶此升進阿世耶此不升進阿世耶此微薄塵垢賢善阿世耶此增盛隨眠此微薄隨眠此極細隨眠羸損隨眠此不羸損隨眠此全隨眠此不全隨眠此廣說方解此略聞卽此擯遣所調伏此攝受所調伏軟所調伏此麤所調伏此麤軟俱調此應捨置方乃調伏如是等處如實了知
016_0022_a_01L다섯째는 조복하는 방편이 한량없다는 작의이다. 모든 보살들이..... 나아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교화할 중생을 조복하는 방편을 사유하고, 이미 사유하고서 여실히 안다. 즉 “이는 비밀한 법을 설함으로써 비로소 조복할 수 있고, 이는 현요(顯了)한 법을 설함으로써 비로소 조복할 수 있겠다. 이는 섭수의 방편을 필요로 하고, 이는 절복(折伏)의 방편을 필요로 하겠다. 이는 전전(展轉)의 방편을 필요로 하겠고, 이는 따라서 전전하는 방편을 필요로 하며, 이는 마땅히 따라서 순응해야 하고, 이는 마땅히 거역해야 하겠다. 이는 동분(同分)이 아닌 아세야를 필요로 하겠고, 이는 마땅히 은혜를 베풀고 은혜를 갚는 것으로 해야 하며, 이는 마땅히 위엄을 보이고 위엄을 떨쳐야 하겠다. 이는 청정을 필요로 하겠고, 이는 기특한 신통 변화를 보이는 것을 필요로 하며, 이는 기특한 수기(授記)를 필요로 하겠다. 이는 기특한 가르침과 훈계를 보이는 것을 필요로 하겠고, 이는 갖가지 위세를 보이는 것을 필요로 하며, 이는 잘 유도하여 갖가지 지도를 보이는 것을 필요로 하겠다. 이는 거친 모습을 필요로 하겠고, 이는 부드러운 모습을 필요로 하며, 이는 거칠음과 부드러운 모습을 필요로 하고, 이는 놓아두는 것을 필요로 하겠다. 이는 법의 요점을 간략히 말함으로써 능히 조복시킬 수 있고, 이는 법의 요점을 자세히 말함으로써 비로소 능히 조복시킬 수 있겠다.”라고 그와 같은 방편들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또한 다시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21_c_19L調伏方便無量作意謂諸菩薩乃至思惟十方無量世界所化有情調伏方便旣思惟已如實了知此因說秘密之法方能調伏此因說顯了之法方能調伏此因攝受方便此因折伏方便此轉方便此隨轉方便此應隨順此應違逆此因不同分阿世耶此應作恩報恩此應示威奮此因淸淨此因示現奇特神變因示現奇特記別此因示現奇特教此因示現種種威勢此因善誘種種教授此因麤相此因軟相此因麤軟俱相此因捨置此因略說法要令調伏此因廣演法要方令調伏是等方便如實了知復次頌曰

진여에 대한 작의의 양상과
불가사의를 믿고 이해하는 것과
광대한 아세야이니
온갖 자수(自數)를 알아야 하네.
016_0022_a_10L眞如作意相
信解不思議
廣大阿世耶
應知諸自數

논하여 말한다. ‘진여에 대한 작의의 양상[眞如作意相]’이란 일곱 가지 편만한 진여39)를 반연하여 작의하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40) 첫째는 유전진여(流轉眞如)41)에 대한 작의이다. 말하자면 이미 진리를 본 보살들이 더욱 향상된 법행으로 잘 닦고 다스려서 염오법(染汚法)과 청정법을 작의할 때에, 모든 행(行)42)은 아득한 옛적부터 유전하는 진실된 성품임을 사유한다. 사유하고서는 원인이 없다는 견해43)와 평등이 아닌 원인이라는 견해44)를 여의게 된다.
둘째는 실상진여(實相眞如)45)에 대한 작의이다. 말하자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염오법ㆍ청정법의 원인에 대해서 모든 법은 중생의 무아성과 법의 무아성인 것을 사유하며, 사유하고서는 일체의 신견(身見)과 사유ㆍ분별의 갖가지 양상에 대한 작의가 다시는 현행하지 않는다.
016_0022_a_12L論曰眞如作意相者謂緣七種遍滿眞如作意廣說如經流轉眞如作謂已見諦諸菩薩以增上法行修治作意於染淨法時思惟諸行始世來流轉實性旣思惟已離無因及不平等因見實相眞如作意謂如前說乃至於染淨法因思惟諸衆生無我性及法無我性旣思惟一切身見及思惟分別衆相作意不復現行
016_0022_b_01L셋째는 유식진여(唯識眞如)46)에 대한 작의이다. 말하자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나아가 염오법ㆍ청정법의 의지처에 대해서 모든 법의 유식의 성품을 사유하며, 사유하고서는 “오직 마음이 오염되므로 중생이 오염되고, 오직 마음이 청정하므로 중생이 청정하다.”는 것을 여실히 분명히 안다.
넷째는 안립진여(安立眞如)47)에 대한 작의이다. 말하자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나아가 염오법의 체성에 대해서 고제(苦諦)를 사유하며, 사유하고서는 알게 하려고 유정을 위해 말씀한 것이다.
다섯째는 사행진여(邪行眞如)48)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나아가 염오법의 원인에 대해서 집제(集諦)를 사유하며, 사유하고서는 단멸시키려고 유정을 위해 말씀한 것이다.
여섯째는 청정진여49)에 대한 작의이다. 말하자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나아가 청정법의 체성에 대해서 멸제(滅諦)를 사유하며, 사유하고서는 증득하게 하려고 유정을 위해 말씀한 것이다.
일곱째는 정행진여(正行眞如)50)이다. 말하자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나아가 청정한 행에 대해서 도제(道諦)를 사유하며, 사유하고서는 닦게 하려고 유정을 위해 말씀한 것이다.
016_0022_a_22L唯識眞如作意謂如前乃至於染淨法所依思惟諸法唯識之性旣思惟已如實了知唯心染衆生染唯心淨故衆生淨安立眞如作意謂如前說乃至於染污法思惟苦諦旣思惟已欲令知故有情說邪行眞如作意謂如前說乃至於染污法因思惟集諦旣思惟欲令斷故爲有情說淸淨眞如作意謂如前說乃至於淸淨法體惟滅諦旣思惟已欲令證故爲有情正行眞如作意謂如前說乃至於淸淨行思惟道諦旣思惟已欲令修故爲有情說
‘불가사의를 믿고 이해하는 것’이란 보살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 이미 믿고 이해함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만일 이 믿고 이해하는 것의 양상을 간략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최고로 지극히 심오한 소지(所知)의 의미에 대해서 이미 10지(地)의 분상에 들어간 보살들과 여러 부처님의 행하시는 경계와 그리고 모든 불보살의 가장 지극히 광대한 위덕에 대해서 순수하고 곧은 믿음을 일으킨다. 이 생각하고 말하기 어려운 것은 헤아림의 경계가 아니니, 이미 요달하고서는 믿음과 이해를 일으키게 된다.
016_0022_b_12L信解不思議者謂諸菩薩於難思處已得信解廣說如經若欲略說此信解相謂於最極甚深所知之義已入地諸菩薩及諸如來所行境界及於諸佛菩薩最極廣大威德起淳直信此難思議非擬度境界旣了達已生信解
016_0022_c_01L‘광대한 아세야(阿世耶)’란 대아(大我)의 아세야와 광대하고 보편적인 아세야를 말한다. 대아의 아세야란, 보살들이 자신과 남들이 평등하다는 이해를 얻음으로써 유정들이 모두 해탈과 청정한 믿음ㆍ의욕을 얻게 하는 것을 말한다. 광대하고 보편적인 아세야란, 보살들이 유전(流轉)과 적멸에 대해서 분별이 없는 평등한 이해를 얻었기 때문에, 유정을 이롭게 하고자 두 가지51)에 모두 머물지 않는 청정한 믿음과 의욕을 갖는 것을 말한다.
016_0022_b_19L廣大阿世耶者謂大我阿世耶及廣普阿世耶大我阿世耶者謂諸菩薩由得自他平等解故爲諸有情皆得解脫淸淨信欲廣普阿世耶者謂諸菩薩於流轉寂滅得無分別平等解爲利有情二俱不住淸淨信欲
‘온갖 자수(自數)를 알아야 하네’라는 것은 갖가지 각분(覺分)의 자수를 마땅히 알아야 함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각분’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제 ‘보특가라’에 관하여 말하겠다.52)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22_c_02L應知諸自數者謂應知種種覺分自數如是已說覺分補特伽羅今當說頌曰

수신행(隨信行) 등 일곱 종류와
다시 여덟 종류를 알아야 하네.
그리고 일곱 번을 반복하는 것[極七返]이 있으며
퇴법(退法) 등 여섯 종류가 있네.
016_0022_c_05L隨信行等七
復八種應知
及極七返等
退法等有六

논하여 말한다. 보특가라(補特伽羅)53)에 많은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최초로 일곱 가지의 현성(賢聖)54)을 해석하겠다. ‘수신행 등 일곱 부류’를 말하자면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수신행(隨信行)55)이니, 말하자면 어떤 이가 성품이 부드러운 근기로서 순숙(純熟)되고 상속하여 옛적부터 항상 믿고 이해하고 실천했으며, 이 인연에 의해 이제 모든 진리에 대해서 믿고 이해하고 실천함에 따라서 진리의 관찰에 나아가는 경우이다.
둘째는 수법행(隨法行)56)이니, 말하자면 어떤 이가 성품이 예리한 근기로서 순숙되고 상속하여 옛적부터 항상 법을 간택하고 실천했으며, 이 인연에 의해 이제 모든 진리에 대해서 법을 간택하고 실천함에 따라서 진리의 관찰에 나아가는 경우이다.
016_0022_c_07L論曰補特伽羅當知多種今最初釋七種賢聖謂隨信行等七廣說如經隨信行謂如有一性是軟根純熟相續自昔已來恒信解行由此因緣今於諸諦隨信解行趣向諦觀法行謂如有一性是利根純熟相續自昔已來恒擇法行由此因緣今於諸諦隨擇法行趣向諦觀
셋째는 신해(信解)57)이니, 곧 수신행으로서 이미 거룩한 진리58)를 보는 경우이다.
넷째는 견지(見至)59)이니, 곧 수법행으로서 이미 거룩한 진리를 보는 경우이다.
다섯째는 신증(身證)60)이니, 8해탈(解脫)에 대해서 몸소 증득하여 구족하게 머물지만 아직 온갖 번뇌가 남김없이 모두 소멸되지는 않은 경우이다.
여섯째는 혜해탈(慧解脫)61)이니, 이미 온갖 번뇌가 남김없이 모두 소멸되었지만, 8해탈을 몸소 증득하여 구족하게 머물지는 못하는 경우이다.
일곱째는 구해탈(俱解脫)62)이니, 이미 온갖 번뇌가 남김없이 모두 소멸되었고, 또한 8해탈에 대해서도 몸소 증득하여 구족하게 머무는 경우이다.
016_0022_c_15L信解隨信行已見聖諦見至卽隨法行已見聖諦身證謂於八解脫身證具足住未得諸漏無餘盡滅慧解謂已得諸漏無餘盡滅未得八解脫身證具足住俱解脫謂已得諸漏無餘盡滅及於八解脫身證具足住
016_0023_a_01L‘여덟 가지’라 함은 예류과ㆍ예류향 등 여덟 부류를63)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예류향(預流向)64)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순숙되고 상속하여 일체 외도와 범부[異生]의 경지를 벗어나서 정성이생(正性離生)65)에 들어가며, 만약 아직 최초의 예류과를 얻지 못하면 끝내 중간에 요사(夭死)하는 일이 없는 경우이다.
둘째는 예류과(預流果)66)이다. 만약 승섭(勝攝)을 따른다면 세 가지 결박 번뇌[結]67)를 영원히 끊으며, 만약 전섭(全攝)이라면 일체의 견소단혹(見所斷惑)을 영원히 끊는다. 이 성자는 이미 사성제의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최초로 역류행과(逆流行果)68)를 증득한다.
셋째는 1래향(一來向)69)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는 혹은 세간도(世間道)70)로 욕계의 탐욕을 갑절이나 여의고 정성이생에 들어가며, 혹은 예류과가 욕계의 상품ㆍ중품의 미혹은 끊기 위해서 다스리는 행을 닦는 경우이다.
016_0022_c_21L八種者謂預流果向等八廣說如經預流向謂如有一純熟相續超過一切外異生地入正性離生若未證得初預流果終無中夭預流果隨勝攝永斷三結若全攝者永斷一切見所斷惑由此聖者已見諦故初證得逆流行果一來向謂如有或世閒道倍離欲界貪已趣入正性離生或預流果爲斷欲界上中品修對治行
넷째는 일래과(一來果)71)이다. 말하자면 혹은 욕망을 갑절이나 여의고 이미 정성이생에 들어간 연후에 증득되며, 혹은 예류과가 전진하여 욕계의 상품ㆍ중품의 미혹을 끊음으로써 얻나니, 곧 이 끊음에 의하여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미약하고 엷어졌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떻게 아는가? 헤아려 생각하고 작의(作意)함으로써 대상을 관찰할 때 마음이 평정[捨]를 일으켜서 익히 향하는 마음이 없고 익히 나아가는 마음이 없으며 익히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3독(毒)이 미약하고 엷어진 것이다.
다섯째는 불환향(不還向)72)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혹은 세간도로 먼저 욕계의 탐욕을 여의고서 정성이생에 나아가 들어가며, 혹은 일래과가 전진하여 욕계의 나머지 번뇌를 끊음으로써 다스리는 행을 닦는 경우이다.
여섯째는 불환과(不還果)73)이니, 혹은 먼저 탐욕을 떠나 정성이생에 들어간 연후에 증득하거나, 혹은 일래과가 욕계의 나머지 번뇌를 모두 끊음으로써 증득한다.
일곱째는 아라한향(阿羅漢向)74)이니, 어떤 유학(有學)이 이미 자취를 보고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경지의 번뇌를 끊기 위해서 다스리는 행을 닦는 경우이다.
여덟째는 아라한과(阿羅漢果)75)이니, 비상비비상처 경지의 온갖 번뇌를 영원히 끊음으로써 얻는다.
016_0023_a_08L一來果或倍離欲已入正性離生然後證得或預流果斷欲界上中品惑故得卽依此斷名微薄欲貪此云何知謂以籌慮作意觀察境時心生於捨無習向無習趣心無習著心應知是人三毒微薄不還向謂如有一或世閒先離欲界貪已趣入正性離生一來果進斷欲界餘煩惱故修對治不還果或先離欲入正性離生然後證得或一來果盡斷欲界餘煩惱故得阿羅漢向謂如有一學已見迹爲斷非想非非想地煩惱故對治行阿羅漢果謂永斷一切非想非非想地煩惱故得
016_0023_b_01L‘극칠반(極七返) 등’이란 최고로 일곱 번 반복하는 이 등을 말한다. 8생(生)76)에 의하여 건립하나니,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극칠반(極七返)77)이니, 곧 예류과가 성스러운 도를 잘 닦음으로써 혹은 하늘나라나 혹은 인간세상이나 혹은 하늘ㆍ인간세상에서 일곱 번 태어남을 받고 나서 괴로움의 끝을 다하게 됨을 말한다.
둘째는 가가(家家)78)이니, 곧 예류과가 성스러운 도를 잘 닦음으로써 혹은 하늘나라에 태어나거나 혹은 인간세상에 태어나서 집[家]으로부터 집에 이르러 괴로움의 끝을 다하게 됨을 말한다.
셋째는 1간(間)79)이니, 곧 일래과가 성스러운 도를 잘 닦음으로써 혹은 하늘나라에 태어나서 곧 그곳에서 반드시 적멸을 증득하며, 혹은 인간세상에 태어나서 곧 이곳에서 반드시 적멸을 증득함을 말한다.
넷째는 중간증적멸(中間證寂滅)80)이다. 곧 불환과가 이미 근본생결(根本生結)81)을 끊고 아직 취향생결(趣向生結)은 끊지 못했으나, 성스러운 도를 상품으로 닦아 익힌 힘 때문에 중유(中有)에 나서 곧 적멸을 증득한다. 혹은 태어날 곳에 나아가 향하지 않고 적멸을 증득하는 이도 있으며, 혹은 태어날 곳에 나아가 향하지만 본생(本生)에 이르지 않아서 적멸을 증득하는 이도 있다. 혹은 태어날 곳에 나아가 향하지 않고 적멸을 증득한 이도 있으며, 혹은 태어날 곳에 나아가 향하지만 본생에 이르지 않아서 적멸을 증득하는 이도 있다.
016_0023_a_22L極七返等者謂極七返等八依生建廣說如經極七返謂卽預流果由善修聖道故或於天上或於人閒或天上人閒受七有生已得盡苦際家家謂卽預流果由善修聖道故或生天上或生人閒從家至家得盡苦際一閒謂卽一來果由善修聖道故或生天上卽於彼處定證寂滅或生人閒卽於此處定證寂滅閒證寂滅謂卽不還果已斷根本生未斷趣向生結上品修習聖道力生中有中卽證寂滅或有不進向生處而證寂滅或有進向生處未至本生而證寂滅
다섯째는 생증적멸(生證寂滅)82)이다. 곧 불환과가 성스러운 도를 중품으로 닦아 익혔기 때문에 아직 두 가지 생결(生結)을83) 끊지 못했지만 어느 곳에 태어나든지 마음대로 하늘나라에 나서 처음 태어날 때에 곧 적멸을 증득함을 말한다.
여섯째는 무행증적멸(無行證寂滅)84)이다. 곧 이 성자는 작은 행을 하거나 또는 조금 정진해서 적멸을 증득한다. 그 외는 모두 앞에서와 같다.
일곱째는 유행증적멸(有行證寂滅)85)이다. 곧 불환과가 성스러운 도를 하품으로 닦아 익혔기 때문에 아직 두 가지 생결을 끊지 못했지만, 어느 곳에 태어나든지 마음대로 하늘나라에 나서 많은 행을 실천하고 많이 정진하여 적멸을 증득함을 말한다.
여덟째는 상류(上流)86)이다. 곧 불환과가 어느 곳에 태어나든지 마음대로 하늘나라에 나는데, 그곳에서는 능히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하지만 다시 전진하여 위의 경지에 태어나서 다른 몸으로 비로소 적멸을 증득함을 말한다.
016_0023_b_13L生證寂滅謂卽不還果中品習聖道故未斷二種生隨生一處意生天中初生之時證寂滅無行證寂滅卽此聖者少行已及少精進而證寂滅餘悉如有行證寂滅謂卽不還果下品修習聖道故未斷二結隨生一處生天中行多行已及多精進而證寂上流謂卽不還果隨生一處生天中於彼不能得諸漏盡復進生於餘身中方證寂滅
016_0023_c_01L‘퇴법(退法) 등 여섯 부류가 있네.’라는 것은 퇴법 등 여섯 가지 무학과(無學果)87)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퇴법(退法)88)이다. 이와 같이 유연한 근기[軟根]를 이룬 이는 스스로 해침을 생각하거나89) 스스로 해침을 생각하지 않거나 방일하거나 방일하지 않거나 간에 모두 현법낙주(現法樂住)90)와 세간의 공덕을 잃어버리고 감관을 단련하지 못하여 능히 수승한 품류의 공덕을 일으키지 못한다.
둘째는 사법(思法)91)이다. 그와 같이 유연한 근기를 이룬 이는 만약 스스로 해침을 생각할 때는 곧 능히 퇴전하지 않지만, 해침을 생각하지 않을 때는 곧 물러나 잃어버린다.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기를 “차라리 내가 모든 마군을 이길지언정 모든 마군이 나를 이기게 만들지는 않겠다.”라고 하며, 이와 같이 생각하고는 스스로 해침을 생각하지만 이 사람도 또한 감관을 단련하지 못하여 능히 수승한 품류의 공덕을 일으키지 못한다.
셋째는 호법(護法)92)이다. 이와 같이 유연한 근기를 이룬 이는 비록 스스로 해침을 생각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물러나거나 잃어버리지 않지만, 만약 마음이 방일하면 곧 물러나고 잃어버리며 능히 감관을 단련하지 못하여 능히 수승한 품류의 공덕을 일으키지 못한다.
016_0023_b_23L退法等有六者謂退法等六無學果廣說如經退法謂成就如是軟根若思自害不思自害若放逸若不放俱可退失現法樂住及世閒功德不能練根不能發起勝品功德謂成就如是軟根若思自害卽能不退不思害時卽可退失此人作是思惟寧使我勝諸魔不令諸魔勝我如是思已而思自害此亦不能練根不能發起勝品功德護法謂成就如是軟根雖不思自害不放逸故不退失若心放逸卽可退失不能練不能發起勝品功德
넷째는 주부동(住不動)93)이다. 이와 같이 유연한 근기를 이룬 이는 비록 스스로 해침을 생각하거나 방일을 행하지 않고 모두 물러나지 않지만, 능히 감관을 단련하지 못하고 능히 수승한 품류의 공덕을 일으키지 못한다.
다섯째는 감능통달(堪能通達)94)이다. 이와 같이 유연한 근기를 이룬 이는 감당하고 물러나지 않으며 능히 모든 감관을 단련하고 능히 수승한 품류의 공덕을 일으킨다.
여섯째는 부동법(不動法)95)이다. 이전부터 본성이 예리한 근기를 성취한 이 사람은 모든 선근에 대해서 이미 얻은 퇴법에 동요되지 않으며, 또한 수승한 공덕을 일으키는 것과 앞에서 말한 감관을 단련하는 일에 동요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부동법이라 이름한다.
또한 다시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23_c_13L住不動成就如是軟根雖不思自害及行放然皆不退不能練根不能發起勝品功德堪能通達謂成就如是軟堪能不退能練諸根及能發起勝品功德不動法謂從先來自性成就利根此人於諸善根不爲已得退法之所搖動亦不爲發勝功德及上練根之所動搖是故說名爲不動法復次頌曰

부드러운 근기 등 일곱 부류와
세속에 있는 이와 출가한 이며
성문승(聲聞乘) 등의 세 가지이며
구제할 수 있음과 구제할 수 없음이네.
016_0023_c_22L軟根等七種
在俗及出家
聲聞乘等三
可救不可救
016_0024_a_01L
‘부드러운 근기 등 일곱 부류’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유연한 근기[軟根]이니, 믿음 등 5근(根)96)을 성취하지만 혹은 자성이 유연하거나 혹은 증장하지 못하여 수승한 전진을 구할 때에 가행이 더디고 둔함을 말한다.
둘째는 예리한 근기[利根]이니, 마땅히 그와 상반된다고 알아야 한다.
셋째는 탐욕의 행이다. 말하자면 전생에 오랫동안 탐욕을 익혔고, 또한 탐욕을 다스리는 것을 닦아 익히지 못했으며, 이러한 인연 때문에 이 생에서 비록 열등[下劣]한 사랑스런 경계라도 만나면 역시 맹렬하게 계속되는 탐애를 일으켜서 여의기가 어렵고 싫어하기도 어려우며, 착한 법을 닦는 가행에는 더디고 둔하다.
탐욕의 행과 마찬가지로 네 번째 성냄의 행과 다섯 번째 어리석음의 행도 역시 그러하다. 이 중에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비록 적게 성낼만한 경계라도 만나면 역시 맹렬하게 계속되는 성냄을 일으키며, 비록 두드러지고 얕은 어리석음의 경계라도 만나면 역시 맹렬하게 계속되는 어리석음을 일으킨다.
016_0024_a_01L軟根等七種者軟根謂成就信等五根或自性軟或未增長求勝進時加行遲鈍第二利根應知反此謂於前世久習貪欲及不修習貪欲對治是因緣故於此生中雖逢下可愛境界亦起猛利相續貪愛離難厭於修善法加行遲鈍如貪行第四瞋行第五癡行亦爾此中差別雖逢微小可瞋境界亦起猛利續瞋恚雖逢麤淺可癡境界亦起猛相續愚癡
여섯째는 등분행(等分行)이다. 말하자면 전생에 상품(上品)의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익히지 않았으며, 설사 익힌 것이 있더라도 다시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이미 익혔으며, 이러한 인연 때문에 이 생에 사랑할만한 것 등 세 가지 경계를 만나게 되면 경계의 품류를 따라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번뇌를 일으키는데, 떠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떠나기 쉬운 것도 아니며, 싫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싫어하기 쉬운 것도 아니며, 착한 법을 닦는 데는 더디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다.
일곱째는 박진행(薄塵行)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과거 생에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오랫동안 자주 익혔지만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이미 닦아 익혔으며, 이러한 인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비록 수승하고 사랑할만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맹렬하게 계속되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번뇌를 능히 일으키지 않으며, 비록 혹 어느 때는 하품ㆍ중품을 일으키더라도 여의기 쉽고 싫어하기 쉬우며, 착한 법을 닦는 데는 가행이 빠르다.
016_0024_a_12L等分行謂於前世習上品貪欲設有習者復已修習彼對治法是因緣故於此生中可愛等三種境界隨境品類起貪癡三種纏惑非難離非易離非難厭非易厭於修善法不遲不速薄塵謂如有一於過去生不久數習貪然已修習彼對治法是因緣於此世中雖逢勝上可愛等境能不起猛利相續貪癡纏雖或時起下品中品然易離易厭於修善法加行速疾
016_0024_b_01L‘세속에 있는 이’란 집에 있는 속인을 말함이니, 다섯 가지 욕락을 수용하고 세속의 사업을 영위하면서 스스로 살아간다.
016_0024_a_23L在俗者謂處家白衣受用五欲營搆俗業以自活命
‘출가한 이’란 집을 떠난 사람의 위의(威儀)와 모습을 지니는 것을 말한다. 세속의 환경을 버리고 계율을 받아 지니면서 법답게 걸식하여 청정하게 스스로 살아간다.
016_0024_b_02L出家者謂持出家威儀相貌棄捨俗受持禁戒如法乞求淸淨自活
‘성문승 등의 세 가지’97)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성문승(聲聞乘)98)이니, 성문법의 속성에 머물러서 자신이 적멸을 증득하고자 하며, 바른 원을 세우고 방편행을 닦는다.
둘째는 독각승(獨覺乘)99)이니, 독각법의 속성에 머물러서 자신이 적멸을 증득하고자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바른 원을 세워서 방편행을 닦는다.
셋째는 대승(大乘)100)이니, 대승법의 속성에 머물러서 자신이나 남들까지 적멸을 증득하고자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101) 바른 원을 세워서 방편행을 닦는다.
016_0024_b_04L聲聞乘等三者聲聞乘謂住聲聞法性爲令自身證寂滅故發正願已修方便行獨覺乘謂住獨覺法性爲令自身證寂滅故不由師教發正願已修方便行大乘謂住大乘法爲令自他證寂滅故不由師教正願已修方便行
‘구제할 수 있음’이란 3승(乘)의 적멸의 법성(法性)이 있는 것을 말한다.
016_0024_b_11L可救者謂有三乘寂滅法性
‘구제할 수 없음’이란 삼승의 적멸의 법성이 없는 것을 말한다.102)
또한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24_b_12L不可救者謂無三乘寂滅法性復次頌曰

방편에 드는 것 등이 아홉 가지이고
태어남의 차별 때문에 두 가지이며
다시 모든 세계의 차별에 의하여
열세 가지가 된다고 알아야 하네.
016_0024_b_14L入方便等九
生差別故二
復由諸界別
應知十三種

논하여 말한다. ‘방편에 드는 것 등이 아홉 가지’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미 방편에 들어감이다. 말하자면 여래께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말씀하신 법과 비나야(毘奈耶)에 대해서 견고하고 청정한 믿음을 얻고, 이미 계율을 받아 지니며, 이미 바른 법을 듣고, 이미 평정[捨]을 증장하며, 이미 바른 견해를 갖춘 이다.
둘째는 아직 방편에 들어가지 못함이니, 마땅히 앞의 것과 상반된다고 알아야 한다.
셋째는 장애가 있음이다. 세 가지 장애103)가 있나니, 첫째는 번뇌장104)이고, 둘째는 업장(業障)105)이다. 셋째는 보장(報障)106)이니, 착한 법을 닦고 익히는 것을 장애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장애가 없음이니, 마땅히 앞의 것과 상반된다고 알아야 한다.
016_0024_b_16L論曰入方便等九者已入方便謂於如來自覺自說法毘柰耶得堅淨信已受尸羅已聞正法已增長捨已直正見第二未入方便應知反此謂有三障一煩惱障二業障三報由能障閡修習善法第四無障知反此
016_0024_c_01L다섯째는 아직 성숙되지 못함이다. 아직 선근(善根)이 마음을 도와서 상속됨을 얻지 못하여 능히 현재 법에서 진리를 보아 이법(理法)을 증득하지 못하며, 현재 법에서 하승(下乘)ㆍ중승(中乘)ㆍ상승(上乘)의 증득할 적멸을 얻지 못한다.
여섯째는 이미 성숙됨이니, 마땅히 앞의 것과 상반된다고 알아야 한다.
일곱째는 속박이 갖춰 있음이니, 이른바 범부[異生]를 말한다.
여덟째는 속박이 갖춰 있지 않음이니, 저 여섯 부류 유학(有學)의 성자 즉 예류과(預流果)로부터 제6 아라한향(阿羅漢向)까지를 말한다.
아홉째는 속박이 없음이니, 저 무학(無學)인 아라한과를 말한다.
016_0024_b_23L未成熟謂未得善根資心相續不能現法證見諦理不得現法上乘所證寂滅第六已成熟知反此具縛所謂異生不具縛謂彼六種有學聖者從預流果乃至第六阿羅漢向無縛謂彼無學阿羅漢果
‘태어남의 차별 때문에 두 가지’라고 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인간 세계[人趣]107)이니, 인간 세계에 태어나 인간 종류가 됨을 말한다. 둘째는 인간이 아닌 세계[非人趣]이니, 그 외의 세계인 지옥[那洛迦], 방생(傍生) 그리고 아귀[鬼趣], 하늘, 용(龍), 약차(藥叉)108), 아소락(阿素洛)109), 게로다(揭路茶)110), 긴날락(緊捺洛)111), 모호락가(牟呼洛伽)112) 등에 태어나는 부류의 차별을 말한다.
016_0024_c_06L生差別故二者人趣謂生人趣得人種類非人趣謂生餘趣那洛迦傍生及與鬼趣天龍藥叉素洛揭路荼緊捺洛牟呼洛伽等生類差別
‘다시 모든 세계의 차별에 의거해서 열 세 종류가 된다고 알아야 하네’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욕계의 범부[異生]이니, 욕계에 태어나 아직 사성제의 진리를 보지 못한 이를 말한다.
둘째는 욕계의 유학(有學)이니, 욕계에 태어나서 이미 성스러운 진리를 본 여섯 종류의 유학으로서 예류과(預流果)로부터 제6 아라한향까지를 말한다.
셋째는 욕계의 무학(無學)이니, 욕계에 태어난 아라한과를 말한다.
넷째는 색계의 범부이니, 색계에 태어나 아직 진리를 보지 못한 이를 말한다.
다섯째는 색계의 유학이니, 색계에 태어나 이미 성스러운 진리를 본 두 종류의 유학을 말한다. 첫째는 불환과(不還果)이고, 둘째는 아라한향이다.
여섯째는 색계의 무학이니, 색계에 태어난 아라한과를 말한다.
일곱째는 무색계의 범부이니, 무색계에 태어나 아직 진리를 보지 못한 이를 말한다.
여덟째는 무색계의 유학이니, 무색계에 태어나 이미 거룩한 진리를 본 두 종류의 유학을 말한다. 첫째는 불환과이고, 둘째는 아라한향이다.
아홉째는 무색계의 무학이니, 무색계에 태어난 아라한과를 말한다.
016_0024_c_10L復由諸界別應知十三種者欲界異生謂生欲界未見諦者欲界有謂生欲界已見聖諦六種有學從預流果乃至第六阿羅漢向界無學謂生欲界阿羅漢果色界異生謂生色界未見諦者色界有謂生色界已見聖諦二種有學不還果二阿羅漢向色界無學生色界阿羅漢果無色異生謂生無色未見諦者無色有學謂生無已見聖諦二種有學一不還果阿羅漢向無色無學謂生無色羅漢果
016_0025_a_01L열째는 욕계의 독각(獨覺)이니, 독각법의 속성에 머무는 이를 말한다. 전생에 혹은 아직 진리를 보지 못했거나 혹은 이미 진리를 보았으며, 이번에 욕계에 태어나 스승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고 과거 수행[因]113)의 힘에 의해 각분(覺分)의 법을 닦아 증득하여 일체의 결박 번뇌[結]가 영원히 없어진 이다. 이에 다시 두 부류가 있으니, 첫째는 갈가(竭伽)와 같이 홀로 행하는 이며,114) 둘째는 부중(部衆)에서 홀로 뛰어나게 행하는 이다.115)
열한째는 욕계의 보살이니, 욕계에 태어나 보살법의 속성에 머무는 이를 말한다. 자신과 남들로 하여금 적멸을 증득하게 하기 위해서 이미 바른 원을 세우고서 온갖 최상의 보리와 온갖 방편행을 닦고 익히는 이다.
열두째는 색계의 보살이니, 색계에 태어나 보살법의 속성에 머무는 이를 말한다. 색신이 없음[無色]을 멀리 떠나고 모든 정려(靜慮)를 닦아 자신과 남들로 하여금 적멸을 증득하게 하기 위해 이미 바른 원을 세우고 온갖 최상의 보리와 온갖 방편행을 닦고 익히는 이다.
열셋째는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여래이다. 말하자면 닦고 익힘에 의해서 유전(流轉)ㆍ적멸ㆍ분별 없는 도에 머물지 않으며,116)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해탈법신에 포섭되는 최상의 전의(轉依)를 증득하고, 시방의 모든 세계에 두루 행하여 일체 유정을 이롭게 하는 온갖 일들을 끊임없이 모두 하신다.
이상과 같이 ‘보특가라’에 대하여 설명했다. 이제 ‘증과[果]’에 관하여 말하겠다.117)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24_c_23L欲界獨覺謂住獨覺法性於前生中或未見諦或已見諦今生欲界不由師教依先因力修覺分法證得一切諸結永盡此復二種一如朅伽獨一而行二獨勝部衆而行欲界菩薩謂生欲界住菩薩法性爲令自他證寂滅故已發正願修習一切無上菩提諸方便行十二色界菩薩謂生色界中住菩薩法性遠離無色修諸靜慮爲令自他證寂滅故已發正願修習一切無上菩提諸方便行十三不可思議諸佛如來謂依修習不住流轉及與寂滅無分別道證得諸佛共有解脫法身所攝無上轉依遍行十方一切世界作一切有情一切利益事無有斷盡如是已說補特伽羅果今當說頌曰

과위의 단멸[果斷]에 다섯 가지가 있고
변지(遍知)와 청정,
정(淨), 과위[果], 계(界), 보리와
무학(無學)은 자수(自數)에 의거하네.
016_0025_a_16L果斷有五種
遍知及淸淨
菩提
無學由自數
016_0025_b_01L
논하여 말한다. ‘과위의 단멸에 다섯 가지가 있고’라 함은 모든 과위(果位)에서 끊어짐이 다섯 가지가 있음을 말한다. 첫째는 온갖 속박[纏]이 끊어짐이니, 네 가지 다스림으로 인하여 현행하는 모든 번뇌의 속박을 멀리 여읜다. 네 가지 다스림이란, 첫째는 산란을 다스리는 것이고, 둘째는 분명히 알아서 다스리는 것이며, 셋째는 열등[下劣]해지도록 다스리는 것이고, 넷째는 굴복시켜서 다스리는 것이다.
‘산란을 다스리는 것’이란 앞에서의 여덟 가지 미묘한 법의 행에서 방편으로 닦아 익히며, 혹은 다시 그 밖의 선정의 경지에서 선법(善法)을 방편으로 닦아 익히는 것이다. ‘분명히 알아서 다스리는 것’이란 아홉 번째의 법의 행에서 방편으로 닦아 익히는 것을 말한다. ‘열등해지도록 다스리는 것’이란 과거의 선근으로써 마음을 돕기 때문에 번뇌가 쇠퇴하고 미약해지는 것을 말한다. ‘굴복시켜서 다스리는 것’이란 세간도(世間道)에 의해 힘을 따라 번뇌의 종자를 억제하고 굴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수면(隨眠)이 끊어짐이니, 출세간도(出世間道)118)에 의해 힘을 따라 번뇌의 종자를 영원히 끊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탐욕을 영원히 멸하여 끊는 것이니, 수면혹(隨眠惑)을 영원히 끊음으로 인하여 탐욕의 번뇌가 끊어진다.
탐욕을 영원히 멸하여 끊는 것과 마찬가지로 넷째는 성냄을 영원히 멸하여 끊는 것이고, 다섯째는 어리석음을 영원히 멸하여 끊는 것이다. 마땅히 알라. 지극히 청정하고 잘 통달해서 보는 힘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事]의 번뇌가 궁극적으로 끊어지기 때문에 ‘영원히 멸하여 끊는다’고 말한다.
016_0025_a_18L論曰果斷有五種者謂諸果中斷有五種諸纏斷謂由四種對治故離現行諸煩惱纏四對治者一散亂對治二顯了對治三羸劣對治四摧伏對治散亂對治者謂於前八妙法行中方便修習或復於餘定地善法方便修習顯了對治者謂於第九法行方便修習羸劣對治者謂由先善根資助心故煩惱羸弱摧伏對治者謂由世閒道隨力制伏煩惱種子隨眠斷謂由出世閒道隨力永斷煩惱種子永盡貪斷謂由永斷隨眠惑故貪煩惱斷如永盡貪斷如是第四永盡瞋斷第五永盡癡斷應知由極淨善通達見力諸事煩惱畢竟斷名永盡斷
‘변지(遍知)’란 아홉 가지 변지119)를 말하나니, 모든 과위(果位)에 포섭되는 바 끊음에 의한 변지를 말한다. 첫째는 욕계의 계박을 고제(苦諦)ㆍ집제(集諦)를 보아 끊음으로써 결박 번뇌가 끊어지는 변지이니, 이 두 가지 진리는 유루(有漏)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색계ㆍ무색계의 계박을 고제ㆍ집제를 보아서 고제ㆍ집제를 보아 끊음으로써 결박 번뇌가 끊어지는 변지이니, 이 두 세계는 선정의 경지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욕계의 계박을 멸제(滅諦)를 보아 끊음으로써 결박 번뇌가 끊어지는 변지이니, 이것은 무루무위(無漏無爲)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색계ㆍ무색계의 계박을 멸제를 보아 끊음으로써 결박 번뇌가 끊어지는 변지이니, 이것은 더욱 향상된 선정의 경지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욕계의 계박을 도제(道諦)를 보아 끊음으로써 결박 번뇌가 끊어지는 변지이니, 이것은 무루유위(無漏有爲)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색계ㆍ무색계의 계박을 도제를 보아 끊음으로써 결박 번뇌가 끊어지는 변지이니, 이것은 더욱 향상된 선정의 경지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5순하분결(順下分結)120)이 끊어지는 변지이니, 하품(下品)의 세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색계의 탐욕이 모두 없어지는 변지이니, 중품(中品)의 세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무색계의 탐욕이 모두 없어지는 변지이니, 미묘한 세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016_0025_b_11L遍知者謂九遍知諸果所攝依斷遍知說欲繫見苦集所斷煩惱斷遍由此二諦有漏攝故色無色繫見苦及集所斷煩惱斷遍知由此二界定地攝故欲繫見滅所斷煩惱斷遍知由此無漏無爲攝故色無色繫見滅所斷煩惱斷遍知由此定地增上攝故欲繫見道所斷煩惱斷遍知由此無漏有爲攝故色無色繫見道所斷煩惱斷遍知由此定地增上攝故五順下分結斷遍知由出過下界故色貪盡遍知由出過中界故無色貪盡遍知由出過妙界故
016_0025_c_01L‘청정’이란 아홉 가지 청정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시라(尸羅=戒)의 청정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시라에 잘 안주하고 별해탈계(別解脫戒)121)를 잘 수호하며, 여법하고 위의(威儀)와 행하는 곳이 구족하며, 작은 죄에 대해서도 크게 두려워하며, 학처(學處)122)를 받아 배우는 것이다.
둘째는 마음의 청정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계율의 청정에 의지해서 욕심ㆍ악(惡)ㆍ불선법(不善法)을 멀리 여의는 것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으며, 초정려(初靜慮)ㆍ제2 정려ㆍ제3 정려ㆍ제4 정려에 구족하게 머무는 것이다.
셋째는 견해의 청정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마음의 청정을 구족하여 결백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모든 번뇌를 여의고 부동(不動)에 머물게 되며, 번뇌가 다한 지혜를 증득하기 위해서 여러 진리를 관찰하고서 “이것은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집기[集]123)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행인 도(道)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분명히 아는 것이다.
넷째는 의혹을 벗어난 청정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견해의 청정에 의지해서 부처님ㆍ교법ㆍ승단에 대하여 미혹이 없고 의심이 없는 것이다.
016_0025_c_02L淸淨者謂九種淸淨廣說如經羅淸淨謂如有一善住尸羅及善守護別解脫戒如法威儀行處具足小罪中見大怖畏受學學處心淸謂如有一依戒淸淨遠離欲惡不善法如前所說初靜慮第二第三四靜慮具足住見淸淨謂如有一具心淸淨鮮白無穢離諸煩惱得住不動爲欲證得漏盡智故觀察諸諦如實了知此苦聖諦此苦集聖諦苦滅聖諦此趣苦滅行道聖諦疑淸淨謂如有一依見淸淨於佛法無惑無疑
016_0026_a_01L다섯째는 도(道)와 도가 아닌 것을 아는 지견(智見)의 청정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의혹을 벗어난 청정에 의지해서 미묘한 지견을 얻어서 “오직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와 승단이 행하는 도(道)가 능히 벗어남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능히 괴로움을 다하고 괴로움의 끝을 증득한다. 만약 여러 외도가 말한 도라면 능히 괴로움을 다하지 못하고 괴로움의 끝을 증득하지 못한다.
여섯째는 행(行)을 아는 지견의 청정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도(道)와 도가 아닌 것을 아는 지견의 청정에 의지해서 미묘한 지견을 얻어서, 벗어남의 도에 하품(下品)ㆍ중품ㆍ상품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하품은 고지통행(苦遲通行)에 속하는 것이고, 중품은 고속통행(苦速通行)과 낙지통행(樂遲通行)에 속하는 것이며, 상품은 낙속통행(樂速通行)에 속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행과 단멸을 아는 지견의 청정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행을 아는 지견의 청정에 의지해서 미묘한 지견을 얻어서 “나는 마땅히 하품ㆍ중품의 행을 끊고 상품의 미묘하고 거룩한 행을 일으킨다”고 하는 것이다.
여덟째는 반연함이 없는 적멸의 청정이다. 말하자면 어떤 이가 행과 단멸을 아는 지견의 청정에 의지해서 남김없이 온갖 번뇌가 영원히 없어짐을 증득하는 것이다.
아홉째는 국토의 청정이다. 모든 부처님에게는 공통적으로 최상의 공능(功能)의 결과가 있어서 불가사의한 국토를 능히 나타내보이고, 지극히 청정한 부처님의 생각과 지극히 청정한 보살의 생각과 생각의 권속법(眷屬法)을 장엄하는 것을 말한다.
016_0025_c_15L道非道智見淸淨如有一依度疑淸淨得妙智見唯佛所說僧所行道能得出離此復云何謂能盡苦及證苦邊若諸外道所說之道不能盡苦及證苦邊行智見淸淨謂如有一依道非道智見淸淨得妙智見知出離道有下下者苦遲通行所攝中者苦速通行樂遲通行所攝上者樂速通行所攝斷智見淸淨謂如有一依行智見淸得妙智見謂我應斷下中之行爲發起上妙聖行無緣寂滅淸淨謂如有一依行斷智見淸淨證得無諸漏永盡國土淸淨謂諸佛共無上功能果能示現不可思議國土莊嚴極淨佛思及極淨菩薩思思眷屬法
‘정(淨)’이란 네 가지 증득의 청정[證淨]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부처님의 증득이 청정함이니, 이미 진리를 본 이가 여래의 처소에서 출세간의 믿음과 나중에 증득된 것에 잘 안주하고 세간의 믿음에도 잘 안주함을 말한다.
부처님의 증득이 청정함과 마찬가지로 제2의 법의 증득이 청정함과 제3의 승단의 증득이 청정함도 그러하다고 알아야 한다.
넷째는 성인이 좋아하는 계율을 증득함이 청정한 것이다. 이미 진리를 본 이가 결정코 짓지 않는 율의(律儀)를 이미 얻어서 성인이 좋아하는 계율에 있어서 출세간의 믿음과 나중에 증득된 것에 잘 안주하고 세간의 믿음에도 잘 안주함을 말한다.
016_0026_a_08L淨者謂四證淨廣說如經佛證淨謂已見諦者於如來所善住出世閒及後所得善住世閒信如佛證淨如是第二法證淨第三僧證淨應知聖所愛戒證淨謂已見諦者於已得決定不作律儀聖所愛戒所善住出世閒信及後所得善住世閒信
016_0026_b_01L‘과위[果]’란 네 가지 사문의 과위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예류(預流) 사문의 과위이다. 만약 뛰어난 것에 따르는 포섭[隨勝攝]이라면, 세 가지 결박 번뇌[結]가 영원히 끊어진 것이니, 신견(身見)과 계금취견(戒禁取見)과 의심[疑]이다. 만약 전체의 포섭[全分攝]이라면 견소단혹(見所斷惑)이 영원히 끊어진다. 그 끊어짐으로 인하여 예류과인 타락하지 않는 법을 얻어서 혹은 극칠반(極七返)이나 혹은 다시 가가(家家)를 한다.
둘째는 일래(一來) 사문의 과위이다. 만약 뛰어난 것에 따르는 포섭이라면, 세 가지 결박 번뇌가 영원히 끊어지고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옅어진다. 만약 전체의 포섭이라면 견소단혹이 영원히 끊어지고, 욕계에 계박된 상품ㆍ중품의 수소단혹(修所斷惑)이 영원히 끊어진다. 그 끊어짐으로 인하여 일래과를 얻으며, 혹은 다시 일간(一間)을 하다.
셋째는 불환(不還) 사문의 과위이다. 만약 뛰어난 것에 따르는 포섭이라면, 5순하분결(順下分結)이 영원히 끊어지나니 이른바 신견ㆍ계금취견ㆍ의심ㆍ탐욕ㆍ성냄이다. 만약 전체의 포섭이라면 견소단혹이 영원히 끊어지고, 나아가 욕계에 계박된 수소단혹이 영원히 끊어진다. 혹은 색계에 계박된 번뇌가 영원히 끊어지며, 혹은 무색계의 일부분의 번뇌가 영원히 끊어진다. 그 끊어짐으로 인하여 불환과를 얻으며, 혹은 중간적멸이고, 혹은 생적멸이며, 혹은 무행적멸이고, 혹은 유행적멸이며, 혹은 다시 상류(上流)한다.124)
넷째는 아라한 사문의 과위이다. 만약 뛰어난 것에 따르는 포섭이라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남김없이 영원히 끊어지고, 만약 전체의 포섭이라면 견소단혹ㆍ수소단혹이 모두 영원히 끊어진다. 그 끊음으로 인하여 아라한을 증득하여 온갖 번뇌가 남김없이 영원히 없어진다. 나아가서는 아라한의 여섯 가지 항상 머무는 법125)을 자세히 말한다.
016_0026_a_15L果者謂四沙門果廣說如經預流沙門果若隨勝攝三結永斷謂身見戒禁取及疑若全分攝一切見道所斷煩惱永斷由彼斷故得預流果墮落法或極七返或復家家一來沙門果若隨勝攝三結永斷薄貪若全分攝一切見道所斷煩惱永及欲界繫修道所斷上品中品煩惱永斷由彼斷故得一來果或復一不還沙門果若隨勝攝五順下分結永斷所謂身見戒禁取貪欲瞋恚若全分攝一切見道所斷煩惱永斷及欲界繫修道所斷煩惱永斷或色界繫煩惱永斷或無色界一分煩惱永斷由彼斷故得不還果或中閒寂滅或生寂滅或無行寂滅或有行寂滅或復上流阿羅漢沙門果若隨勝攝貪欲癡無餘永斷若全分攝見修所斷一切煩惱永斷無餘由彼斷故得阿羅漢諸漏永盡乃至廣說阿羅漢六恒住法
‘법계’란 세 가지 세계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단멸의 세계[斷界]이니, 견도에서 단멸되는 여러 행을 끊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떠남의 세계[離界]이니, 수도에서 단멸되는 여러 행을 여의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소멸의 세계[滅界]이니, 의지처와 포섭되는 것의 여러 행을 멸하는 것을 말한다.
016_0026_b_13L界者謂三種廣說如經斷界謂斷見道所斷諸行離界謂離修道所斷諸行滅界謂滅所依所攝諸行
‘보리’란 세 가지 보리를 말한다. 경전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첫째는 성문의 보리이니, 성문승(聲聞乘)의 전의(轉依)로 얻어진 적멸 및 적멸에 나아가는 도(道)이다. 둘째는 독각의 보리이니, 독각승의 전의로 얻어진 적멸 및 적멸에 나아가는 도이다. 셋째는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普提)이니, 이른바 대승의 전의로 얻어진 적멸과 적멸에 나아가는 도, 그리고 일체 유정에게 이익과 안락을 지어주는 도이다.
016_0026_b_16L菩提者謂三種菩提如經廣說聞菩提謂聲聞乘轉依所得寂滅趣寂滅道獨覺菩提謂獨覺乘依所得寂滅及趣寂滅道無上正等菩提所謂大乘轉依所得寂滅寂滅道及作一切有情利益安樂道
016_0026_c_01L‘무학(無學)’이란 무학의 법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무학의 바른 견해이니, 아라한이 괴로움에 대해서 괴로움이라고 사유하고, 나아가 도(道)에 대해서 도라고 사유하는 것이다. 무루 작의(作意)에 상응하는 택법(擇法)과 지극한 간택법(簡擇法) 등은 앞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무학의 바른 견해와 마찬가지로 그와 같이 나아가126) 제8인 바른 3마지(摩地)도 앞에서와 같이 알아야 한다.
아홉째는 무학의 바른 해탈이니, 모든 번뇌의 유루종자[麤重]를 여의고 무학의 마음에 번뇌장을 떠나서 조복하고 감당할만한 법을 말한다.
열째는 무학의 바른 지혜이니, 아라한의 진지(盡智)127)와 무생지(無生智)128)를 말한다.
016_0026_b_22L無學者謂十無學法廣說如經學正見謂阿羅漢於苦思惟苦乃至於道思惟道無漏作意相應擇法簡擇等如前廣說如無學正見如是乃至第八正三摩地如前應知無學正解脫謂離一切煩惱麤重無學心上離煩惱障調堪任法無學正智謂阿羅漢盡智及無生智
‘자수(自數)에 의거함’이란 앞에서 말한 증과가 각각 자수의 차별에 의거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한 다시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26_c_07L由自數者前所說果各由自數差別應知復次頌曰

끊음은 많은 원인 때문에 끊어지며
따르는 바를 끊음을 건립하고
작의와 의지함과 닦음으로 인하여
나아가 끊음의 순서를 얻네.
016_0026_c_09L斷多因故斷
建立斷所從
由作意依修
及得斷次第

논하여 말한다. ‘끊음은 많은 원인 때문에 끊어지며’라는 것은 끊음의 증과가 많은 원인 때문에 번뇌가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네 가지 원인으로 온갖 번뇌가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첫째는 의지처의 소멸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의지처의 전환 때문이며, 셋째는 반연된 대상[所緣]을 알기 때문이고, 넷째는 반연된 대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시 다섯 가지 원인이 있어서 온갖 번뇌를 끊는다. 첫째는 그것의 자체[體]를 알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것의 현상[事]129)을 알기 때문이며, 셋째는 그것의 과실을 알기 때문이고, 넷째는 그것의 반연을 피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그것의 다스리는 작의(作意)의 법을 닦기 때문이다.
다시 네 가지 원인이 있어서 번뇌가 끊어진다. 첫째는 의지처가 남김없이 소멸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의지처가 남김없이 전환되기 때문이며, 셋째는 다스림을 남김없이 닦기 때문이고, 넷째는 마음이 남김없이 해탈하기 때문이다.
016_0026_c_11L論曰斷多因故斷者斷果多因故惱斷謂四種因諸煩惱斷一所依滅二所依轉故三知所緣故四樂所緣故復有五因斷諸煩惱一知彼體二知彼事故三知彼過故四避彼緣故五修彼對治作意法故復有四煩惱已斷一依無餘滅故二依無餘轉故三對治無餘修故四心無餘解脫故
016_0027_a_01L‘따르는 바를 끊음을 건립하고’란 인식대상의 경계[所緣境]에 따라서 온갖 번뇌를 끊는 것을 말한다. 인식대상의 경계에 대해서 번뇌를 끊어서 이미 계박이 없기 때문에 여러 상응법도 역시 또한 따라서 끊는다. 미래ㆍ현재의 번뇌가 끊어질 수 있고, 유루종자[麤重]를 영원히 없애는 것을 ‘번뇌가 끊어짐’이라고 말한다.
‘작의로 인하여’라는 것은 진리를 통틀어서 반연하여 닦는 작의로 인하여 모든 번뇌가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의지함으로 인하여’라는 것은 일곱 가지 의정(依定)에 의지함으로 인하여 모든 번뇌를 끊는 것으로서 초정려로부터 나아가 제7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말한다.
016_0026_c_20L建立斷所從者謂從所緣境斷諸煩於所緣境斷煩惱已無繫縛故相應法亦復隨斷未來現在煩惱可永害麤重說煩惱斷由作意者由摠緣諦修作意故斷諸煩惱由依謂由依止七依定故斷諸煩惱初靜慮乃至第七無所有處
‘닦음으로 인하여’라는 것은 4념주(念住)와 4정단(正斷)을 닦으며 나아가 8성도지(聖道支)를 닦음으로써 번뇌가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016_0027_a_04L由修者謂修四念住及四正斷乃至修習八聖道支故斷煩惱
‘나아가 끊음의 순서를 얻음’이라는 것은 다섯 가지 순서가 있어서 모든 번뇌가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첫째는 먼저 견소단혹을 끊는 것이고, 둘째는 뒤에 수소단혹을 끊는 것이며, 셋째는 먼저 현행되는 온갖 번뇌들을 점차 조복하는 것이고, 넷째는 그러한 뒤에 일체의 번뇌를 영원히 끊는 것이며, 다섯째는 최후에 일체의 번뇌를 벗어나는 것이다.
또한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27_a_06L及得斷次第者有五種次第諸煩惱一先斷見道所斷煩惱二後斷修道所斷煩惱三先漸調伏諸現煩惱四然後永斷一切煩惱五最後超過一切煩惱復次頌曰

끊음의 차별을 알아야 하고
끊음의 양상과 이익도 알아야 하며
이와 같이 말한 바와 같아서
또한 많은 종류라고 알아야 하네.
016_0027_a_11L斷差別應知
及斷相利益
如是如所說
復應知多種

논하여 말한다. ‘끊음의 차별이 많은 종류라고 알아야 함’이란 다음과 같다. 모든 번뇌가 끊어짐은 많은 종류의 차별이 있나니, 모든 현행 번뇌[纏]의 끊어짐이 있고 수면(隨眠)의 끊어짐이 있는 것이 세간도(世間道)로 인하여 된 것이 있고, 출세간도로 인하여 된 것이 있으며, 성문승의 작의로 인하여 된 것이 있고, 독각승의 작의로 인하여 된 것이 있으며, 보살승의 작의로 인하여 된 것이 있고, 잠시 동안 끊어짐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끊어짐이 있다. 이와 같이 번뇌가 단멸됨의 차별들을 알아야 한다.
016_0027_a_13L論曰斷差別應知多種者諸煩惱斷多種差別謂有諸纏斷有隨眠斷由世閒道有由出世閒道有由聲聞乘作意有由獨覺乘作意有由菩薩乘作意有暫時斷有畢竟斷諸如是煩惱斷滅差別應知
016_0027_b_01L‘끊음의 양상과 이익도 또한 많은 종류라고 알아야 함’이란 다음과 같다. 모든 번뇌가 끊어지는 것이 많은 종류의 양상과 이익이 있다고 알아야 함을 말한다. 경전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말하자면 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보리에 나아가고, 이미 정법에 이르며, 정법에 임하고, 정법을 증득하여 알며, 근원을 증득하고, 근원을 두루 증득하며, 거룩한 지혜로 보는 것이 성취되고, 다시는 괴로움ㆍ즐거움 등의 법과 자신이 짓거나 남이 짓거나 자신과 남이 함께 짓거나 자신과 남이 함께 지음이 아닌 것을 계탁(計度)하지 않으며, 또한 다시는 모든 괴로움ㆍ즐거움이 원인 없이 생겨난다고 계탁하지 않는다. 다시는 방생(傍生)의 생명을 고의로 끊지 않고, 다시는 배울 바를 고의로 뛰어넘지 않으며, 다시는 무간업(無間業)130)을 일으키지 않고, 다시는 모든 외도의 스승을 구하거나 청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을 참다운 복전으로 여기지 않고, 다시는 그 외의 사문ㆍ바라문 등 삿된 무리의 얼굴을 우러러 바라보지 않으며, 다시는 저 삼세의 법에 대해서 의심을 내거나 의혹을 내지 않고, 다시는 저 제팔유보(第八有報)를 받지 않으며, 이와 같이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영원히 모든 번뇌를 없애고, 해야 할 바를 이미 했으며, 해야 할 바를 이미 끝내고는 아라한의 여섯 가지 항주법(恒住法)을 얻나니,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말하자면 여섯 가지 상속하여 머무는 법을 성취함이니, 만일 눈으로 빛깔ㆍ형태를 보더라도 마음에 근심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평정의 생각으로 바르게 알고,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과 의식의 법에서도 마음에 근심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평정의 생각으로 바르게 알며, 온갖 행하는 일마다 자신을 이익되게 하고, 남을 이익되게 하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세상을 연민히 여기며, 모든 하늘과 인간이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 등 이와 같이 번뇌가 영원히 끊어짐에 많은 종류의 양상과 이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016_0027_a_19L斷相利益復應知多種者諸煩惱斷有多種相利益應知如經廣說謂不墜墮法定趣菩提已至正法臨至正證解正法得證源底得遍證源底聖智見成就不復能計苦樂等法自他作及自他作及非自他二種共亦不復計諸苦及樂無因而生復故斷傍生等命不復故越諸所學不復能起五無閒業不復求請外道師亦不以彼爲眞福田不復瞻觀察餘沙門婆羅門等邪衆顏面不復於彼三世法中生疑生惑不復受彼第八有報如是證得阿羅漢果永盡諸漏已作所作所作已辦得阿羅漢六恒住法廣說如經謂成就六種相續住法若眼見色心不憂喜念正知如是耳若意識法不憂喜捨念正知諸所行行爲自利爲利益他爲利衆生爲樂衆生愍世閒爲諸天人得義利樂諸如是煩惱永斷有多種相利益應知
顯揚聖教論卷第三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첫 번째인 ‘글자를 통달함’에서 나온 “이전부터 마음의 더욱 향상된[增上] 법행(法行)에 대해서 잘 닦고 다스렸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가리킨다.
  2. 2)‘형상ㆍ상분(相分)에 의한 속박’이란 뜻으로서 ‘인식적인 속박’이 된다. 박(縛)은 번뇌의 이명(異名)이다. 번뇌가 유정의 마음을 속박해서 자재하지 못하게 하므로 ‘박(縛)’이라 부른다. 상박은 인식대상[所緣]의 상분(相分)이 인식주체[能緣]인 견분(見分)을 속박함을 말한다. 이로써 유정들은 객관세계의 형상이 환상과 같음을 알지 못한다.
  3. 3)‘유루종자(有漏種子)에 의한 속박’이란 뜻으로서 ‘존재적인 속박’이 된다. 추중(麤重)은 추강침중(麤强沈重)의 준말로서 ①아뢰야식에 함장되어 있는 유루종자 ②몸과 마음의 부자유성을 뜻한다. 이런 추중에 의한 속박을 추중박이라 한다.
  4. 4)보살의 수행 계위(階位)에서 10신(信)→10주(住)→10행(行)→10회향(廻向) 다음의 경지이다. 이 지위에서 온갖 중생들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대지가 만물을 품어 이롭게 함과 같으므로 땅에 비유해서 지(地)라고 부른다.
  5. 5)공(空)의 이치를 체득하여 깨달음의 눈이 열려서 진여ㆍ실성을 관조하기 시작한다. 비로소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어 크게 기쁜 마음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후천적인 번뇌는 소멸되어 일어나지 않고, 의식ㆍ말나식의 일부분이 반야의 지혜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환희지(歡喜地)로 번역하기도 한다.
  6. 6)현전(現前)에 진리를 관(觀)하는 지혜를 말한다.
  7. 7)잘못을 일으켜 계를 파하거나 번뇌를 더하는 마음을 여읜 자리이다.
  8. 8)선정에 의해 지혜의 빛을 얻어서 세 가지 지혜, 즉 들어서 이루는 지혜[聞慧]ㆍ사색하여 이루는 지혜[思慧]ㆍ선정을 닦아 이루는 지혜[修慧]를 닦아 진리가 밝혀지는 자리이다.
  9. 9)번뇌의 숲을 태우는 지혜의 불꽃이 치성하게 작용하는 자리이다.
  10. 10)난승지(難勝地)라고도 하며, 출세간의 지혜를 얻어서 자유자재한 방편을 갖고 구하기 어려운 중생을 제도하는 자리이다. 생사와 열반에 안주하지 않는 마음이 강해지게 된다.
  11. 11)반야바라밀다를 듣고서 큰 지혜가 눈앞에 나타나는 자리이다.
  12. 12)무상행(無相行)을 닦아서 마음의 작용이 세간을 뛰어넘은 자리이다. 생사와 열반의 경지에 자유롭게 출입한다. 이 시기에 위로는 구해야 할 보리(菩提)가 없고 아래로는 구원할 중생도 없다고 보아서 무상 적멸의 이치에 잠겨서 수행을 할 수 없게 될 염려가 있다. 이때 시방 제불이 일곱 가지 법으로 권장 책려하여 다시 수행의 용기를 분발시켜서 제8지에 나아가게 된다.
  13. 13)무상(無相)의 지혜가 끊임없이 일어나서 번뇌에 의해 결코 동요되지 않는 자리이다. 제7지에서 아집(我執)의 현행(現行)이 단절되어 제8지로 넘어가므로 아집에 의한 번뇌의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14. 14)제8 부동지부터는 아집(我執)이 더이상 현행하지 않으므로 더 이상 자각적인, 의식적인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저절로 수행이 되는 무공용의 경지가 된다. 공용(功用)이란 신체ㆍ입ㆍ의지로 짓는 동작ㆍ말ㆍ생각을 의미한다. 공용지(功用地)는 보살 십지 가운데 초지(初地)에서 제7지까지이다. 이 지위에 있는 보살은 이미 진여의 이치를 깨달았으나, 아직 가행(加行)의 공을 쌓아야 하므로 그렇게 부른다. 제7지에서 번뇌장이 정화되어 아집의 현행이 끊어지게 되며, 그리하여 보살이 제8지 이상의 경지가 되면 더 이상 의식적인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순일하게 진여에 계합하므로 무공용이 된다.
  15. 15)걸림없는 지혜의 힘으로 설법하고 이타행을 완성하므로 지혜의 작용이 자유자재한 자리이다.
  16. 16)대법신(大法身)을 얻어서 자재한 힘을 갖춘 자리이다. 구름[雲]은 지혜를, 구름 속에 함장되어 있는 비는 모든 다라니문과 삼마지문을 상징한다. 마치 구름 속에 함장되어 있는 비가 티끌을 씻어내고 만물의 생명을 돕듯이, 한 생각 사이에 두루 세계를 덮어서 큰 법의 비를 때맞게 내려서 중생 번뇌의 불꽃ㆍ 티끌을 소멸시키므로 법운지라고 이름한다.
  17. 17)범어 pāramita의 신역(新譯)이며, 구역에서는 바라밀(波羅蜜)이라 한다. ‘피안(彼岸:열반의 경지)에 이른 상태’ ‘궁극적인 것’ ‘완성’의 의미이다. 도피안(到彼岸)ㆍ도(到)로 의역한다.
  18. 18)10바라밀다 중에서 뒤의 4가지는 앞의 6가지를 돕는 짝이 된다. 즉 방편바라밀다는 보시ㆍ지계ㆍ인욕바라밀다를 돕고, 서원바라밀다는 정진바라밀다를 도우며, 힘바라밀다는 선정바라밀다를 돕고, 지혜바라밀다는 반야바라밀다를 돕는 짝이 된다.
  19. 19)『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제12권에서 다섯 가지 한량없음에 대하여 “첫째는 마땅히 교화하는 일이 한량없음이니, 모든 중생세계를 섭수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마땅히 청정하게 할 일이 한량없음이니, 모든 자연계[器世界]를 섭수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마땅히 증득할 일이 한량없음이니, 모든 법계를 섭수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마땅히 성취할 일이 한량없음이니, 일체의 교화할 중생들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마땅히 말씀할 일이 한량없음이니, 12부경(部經)으로 포섭하며 이는 중생을 교화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20. 20)물질적 신체인 색신(色身)이 있는 존재, 즉 욕계와 색계에 사는 존재를 말한다.
  21. 21)색신이 없는 존재, 즉 무색계에 사는 존재를 말한다.
  22. 22)여기서 상(想)은 표상작용을 가리킨다. 유상(有想)이란, 이와 같은 ‘표상작용이 있는 존재’ 즉 무상천(無想天)의 유정ㆍ비상비비상처의 유정 이외의 모든 유정이 이에 해당된다.
  23. 23)표상작용이 없는 존재 즉, 색계 제4천 중에서 무상천(無想天)의 유정을 가리킨다.
  24. 24)무색계의 제4천인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의 유정을 말한다.
  25. 25)범어 naraka의 음역이며 나락가(那落迦)ㆍ나락가(奈落迦)라고도 한다. 지옥(地獄)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나락(奈落)은 나락가의 전와(轉訛)이다.
  26. 26)방생(傍生)에서 방(傍)은 누운 것을 말하고, 생(生)은 생물이란 뜻이다. 곧 몸을 가로 눕히고 다니는 축생(畜生)을 말한다.
  27. 27)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업력에 의해 변화로써 홀연히 태어나는 출생방식을 말한다. 하늘이나 지옥 에 태어나는 경우, 중유(中有)나 겁초(劫初)에 태어나는 경우이다.
  28. 28)여기서 ‘나아가[乃至]’는 앞의 ‘유정이 한량없음에 대한 작의’의 설명 중에서 “향상된 법행으로 잘 닦고 다스린 바와 미묘한 작의로써”를 가리킨다. 이하 제5인 조복방편무량작의(調伏方便無量作意)까지 마찬가지다.
  29. 29)‘자체적인 양상’ 즉 일체법에 통하지 않고 오직 그 자체만의 고유한 특수한 양상을 말한다.
  30. 30)다른 법과 공통한 내용을 가지는 것예를 들면 유위법(有爲法)의 공상은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ㆍ공(空)
  31. 31)외면에 표현되지 않은 행위를 물질적 존재로 간주하여 말하는 것이다.
  32. 32)여기서 대(對)는 장애라는 뜻이다. 물질적으로 장애가 있는 것을 유대색(有對色)이라 하고, 장애가 없는 것을 무대색(無對色)이라 한다,
  33. 33)누(漏)는 범어 āsrava의 번역으로서 누설(漏泄)이란 뜻이며 번뇌의 이명(異名)이다. 번뇌가 있는 것을 유루(有漏)라고 하고, 번뇌가 없는 것을 무루(無漏)라고 한다. 번뇌를 수증(隨增)하는 것, 즉 번뇌에 수순하여 번뇌를 증장하는 것을 유루법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무루법이라 한다. 곧 4제(諦) 중에서 미혹의 결과와 원인인 고제(苦諦)ㆍ집제(集諦)의 제법(諸法)은 유루법이고, 깨달음의 결과와 원인인 멸제ㆍ도제의 제법은 무루법이다.
  34. 34)유전법(流轉法)과 환멸법(還滅法)의 준말이다. 유전(流轉, pravṛtti)은 천류(遷流)하여 전전(展轉)한다는 뜻으로서, 생사가 단절되지 않고 삼계 6도(道)를 계속해서 윤회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다시 미혹의 생사를 받지 않고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환멸(還滅)이라 한다. 유전에 속하는 쪽을 유전문(流轉門)ㆍ유전법이라 하고, 환멸에 속하는 것을 환멸문(還滅門)ㆍ환멸법이라 한다. 4제(諦) 중에서 고제ㆍ집제, 12연기(緣起)의 순관(順觀)은 유전문이고, 멸제ㆍ도제와 12연기의 역관(逆觀)은 환멸문에 속한다.
  35. 35)전법(轉法)ㆍ환법(還法)과 같은 개념이다.
  36. 36)이생(異生)은 범부의 이명(異名)이다. 범부들은 유루(有漏) 선업이나 악업을 지어서 하늘이나 인간 등 살기 좋은 세계[善趣]에 나거나, 지옥ㆍ아귀ㆍ축생 등 살기 괴로운 세계[惡趣]에 태어난다. 이처럼 태어나는 곳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에 이생이라고 한다.
  37. 37)범어 āśaya의 음역이며 의요(意樂)로 의역된다. 일에 대한 의욕, 또는 원력(願力)ㆍ원망(願望)을 의미한다.
  38. 38)유루(有漏) 종자를 말한다. 수(隨)는 수축(隨逐)이고, 면(眠)는 면복(眠伏)이란 뜻이다. 번뇌의 유루종자가 유정의 몸을 따라서 떠나지 않고 아뢰야식 중에 잠복ㆍ은복(隱伏)되어 있는 것을 비유한 용어이다.
  39. 39)진여(眞如, tathatā)는 사물의 여실(如實)한 모습, 사물ㆍ만유(萬有)의 본체로서 진실로 영원불변한 것이란 의미이다. 여여(如如)ㆍ여실(如實)ㆍ여(如) 등이라고도 한다. 7진여(眞如)라는 것은, 진여가 본래 차별이 없고 절대 평등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법여하에 따라 일곱 종류로 나눈 것이다. 이에 유전진여, 실상진여, 유식진여, 안립진여, 사행진여(邪行眞如), 청정진여, 정행진여(正行眞如)가 있다. 실상진여(實相眞如) 이외의 여섯 가지를 진여라고 일컫는 이유는, 그 각각의 이법(理法)이 그 자체 그대로 영원불변하기 때문이고, 또한 그 이법 자체는 실상진여의 나타난 모습의 종별(種別)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유전ㆍ안립ㆍ사행의 3진여는 불(佛)에 통하지 않는다. 또한 실상ㆍ유식ㆍ청정의 3진여는 근본지(根本智)의 경계이고, 나머지 네 가지는 후득지(後得智)의 경계이다. 또한 유전ㆍ안립ㆍ사행의 진여에 의거함으로써 모든 유정은 평등하고, 실상ㆍ요별의 진여에 의거함으로써 모든 법은 평등하며, 청정진여에 의거함으로써 모든 성문의 깨달음ㆍ독각의 깨달음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평등하고, 정행진여에 의거함으로써 바른 법을 듣고 모든 경계를 반연하는 뛰어난 지관(止觀)에 포섭되는 지혜가 평등하다.
  40. 40)7진여에 대하여 『해심밀경』 「분별유가품 」에서 “첫째는 유전진여이니 모든 유위법의 앞뒤가 없는 참다운 성품이고, 둘째는 상진여이니 모든 법의 보특가라무아의 성품과 법무아의 성품이며, 셋째는 요별진여이니 모든 유위법은 오직 식(識)의 성품인 것이고, 넷째는 안립진여이니 내가 말한 고성제이며, 다섯째는 사행진여이니 내가 말한 집성제이고, 여섯째는 청정진여이니 내가 말한 모든 멸성제이며, 일곱째는 정행진여이니 내가 말한 모든 도성제이다”라고 말한다.
  41. 41)유전(流轉)은 생멸변화하는 현상계를 가리킨다. 유전진여는 유위법유전(有爲法流轉)의 실성(實性)을 의미한다. 곧 생사윤회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음에 대한 진리, 연기(緣起)의 이법(理法)이다.
  42. 42)유위법의 행
  43. 43)무인견(無因見).인과(因果)의 법을 발본색원하는 견해.
  44. 44)불평등인견(不平等因見)
  45. 45)제법실성(諸法實性) 즉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끊은 경지에 나타나는 보특가라무아(補特伽羅無我)ㆍ법무아(法無我)의 실성(實性)을 가리킨다.
  46. 46)요별진여(了別眞如)라고도 한다. 염정법(染淨法)으로서의 유식(唯識)의 실성, 만법유식(萬法唯識)의 이법을 말한다.
  47. 47)사제 중에서 고제(苦諦)의 실성을 일컫는다. 고성제가 집성제라는 원인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안립이라 이름한다. 혹은 사성제가 모두 안립진여라고 할 수 있지만 고성제가 첫 번째에 있으므로 안립이라 한다.
  48. 48)집제(集諦)의 실성을 말한다.
  49. 49)멸제(滅諦)의 실성을 가리킨다.
  50. 50)도제(道諦)의 실성을 말한다.
  51. 51)열반과 생사의 세계를 가리킨다. 대비(大悲)이므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고, 대지(大智)이므로 생사의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52. 52)이하 9사(事) 중에서 일곱 번째로 보특가라에 관하여 수신행(隨信行) 등 7종 현성(賢聖), 4향사과(四向四果), 극칠반(極七返) 등 8부류, 퇴법(退法) 등 6종 아라한, 연근(軟根) 등 7부류, 재가인ㆍ출가인, 3승(乘), 구제할 수 있는 이와 할 수 없는 이의 순서로 설명한다.
  53. 53)범어 pudgala의 음역이다. 구역(舊譯:玄奘 이전)에서는 인(人) 또는 중생으로, 신역(新譯:현장 이후)에서는 삭취취(數取趣)로 의역되었다. 유정이 누누이[數] 5취(趣: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를 취착(取着)해서 윤회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유정 또는 유정의 자아를 가리킨다.
  54. 54)7성(聖)은 견도ㆍ수도ㆍ무학도의 성자를 일곱 부류로 나눈 것이다. 여기서 성(聖)은 정(正)의 뜻이니 정지(正智)로써 진리를 조견(照見)하는 견도(見道) 이상의 지위, 즉 4향사과(向四果)의 인성(人聖)을 이근(利根)ㆍ둔근(鈍根)의 근성(根性)에 따라 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ㆍ신해(信解)ㆍ견지(見至)ㆍ신증(身證)ㆍ혜해탈(慧解脫)ㆍ구해탈(俱解脫)의 일곱으로 분류한 것이다.
  55. 55)18유학(有學)의 하나이고, 27현성(賢聖)의 하나이다. 부처님이 설하신 교법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고 믿어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56. 56)다른 사람으로부터 듣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옳은 교법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이다.
  57. 57)둔근(鈍根)인 수신행(隨信行)이 뛰어난 지혜(곧 見)에 의해 도리를 증견(證見)함에 이른 경지이다.
  58. 58)사성제를 가리킨다.
  59. 59)이근(利根)의 수법행(隨法行)이 정의적(情意的)인 번뇌를 끊는 자리인 수도(修道)에 들어간 경지이다.
  60. 60)성문사과(聲聞四果)의 제3인 불환과(不還果)의 성자로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간 경지이다. 이 성자는 무심정(無心定)에 있으므로 열반과 흡사한 적정(寂靜)의 즐거움을 몸으로 깨달아 얻기 때문에 신증불환(身證不還)이라 부른다.
  61. 61)9무학(無學)의 하나이다. 아라한에 혜해탈(慧解脫)과 구해탈(俱解脫)의 구별이 있다. 혜해탈은 혜력(慧力)으로써 번뇌장(煩惱障)을 멀리 여읜 아라한이다. 참고로 말하면 번뇌장이란 번뇌의 장애, 즉 염오무지(染汚無知)로서 견혹(見惑)ㆍ수혹(修惑)이 능히 유정을 삼계에 계박하여 번요뇌란(煩擾惱亂)하는 것을 말하며, 아라한은 반드시 이 번뇌장을 끊는다.
  62. 62)9무학의 하나이다. 번뇌장을 여읜 혜해탈인(慧解脫人)이 다시 멸진정을 얻어 해탈장(解脫障)까지 멀리 여읜 경우의 아라한이다. 멸진정을 얻은 것이 심해탈(心解脫)을 의미하고, 따라서 마음과 지혜의 해탈을 모두 얻었기 때문에 구해탈(俱解脫)이라 부른다. 참고로 말하면 해탈장이란 정장(定障)으로서 불염오무지(不染汚無知)의 일부분이다. 그 체(體)는 열등한 지혜로서 열반의 증득을 장애하는 것은 아니므로, 아라한은 이것을 반드시 끊는 것은 아니다.
  63. 63)성문사과(聲聞四果)인 사향사과(四向四果)를 가리킨다. 곧 예류향(預流向), 예류과(預流果), 일래향(一來向), 일래과(一來果), 불환향(不還向), 불환과(不還果), 아라한향(阿羅漢向), 아라한과(阿羅漢果)의 총칭이다.
  64. 64)범어 srotāpattipratipannaka의 번역으로서 예류(預流)에 향하는 과정이다. 향(向)은 과(果)에 이르는 인도(因道)라는 뜻이다. 예류향은 예류과를 향하여 3계(界)의 견혹(見惑:88使)을 끊고 있는 견도(見道) 15심(心)의 사이를 말한다. 곧 견도에 들어가서 비로소 사성제를 명료하게 현관(現觀)하는 무루청정한 지혜의 눈을 얻는다.
  65. 65)견도위(見道位)의 이명(異名)이다. ‘정성(正性)’은 번뇌가 없는 성도[無漏聖道] 즉 열반ㆍ성도의 법성(法性)이 바르고 밝아서 그릇됨이 없음을 말한다. ‘이생(異生)’은 후천적인 번뇌[分別起煩惱]를 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성이생은 열반ㆍ법성을 찾아서 번뇌를 끊는 견도이다.
  66. 66)예류(預流)는 범어 srota-āpanna의 의역이며, 수다원(須陀洹)이라 음역하기도 한다. 견도(見道)에서 삼계의 견혹을 끊어버려서 바로 무루(無漏)의 성도(聖道)의 흐름에 들어간 자리이다. 유신견(有身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의(疑)를 극복한 경지이며, 초과(初果)라고도 부른다. 이 과위(果位)에 이르면 다시는 3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무퇴타법(無退墮法)이라고도 한다. 예류과의 성자는 4과(果) 중에서 가장 긴 미계(迷界)의 생을 거듭하는 자로서 인계(人界)와 천계(天界)를 7회 왕복하여 곧 14생을 얻는 가운데 장차 반드시 아라한과를 깨닫는다. 결코 제8의 생(生) 곧 제팔유(第八有)에 이르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이를 극칠반유(極七返有)ㆍ극칠반생(極七返生)이라 부른다.
  67. 67)결(結, bandhana)은 번뇌의 이명(異名)이다. 능히 괴로움과 화합하여 중생을 미혹의 경계에 결박한다는 뜻이다. 3결(結)은 예류과를 증득한 성자의 세 가지 번뇌로서 유신견결(有身見結)ㆍ계금취결(戒禁取結)ㆍ의결(疑結)을 말한다.
  68. 68)예류과(預流果)의 이명(異名)이다. 여기서 역류(逆流)는 범어 srotāpanna의 번역으로서 예류(預流)라고도 한다.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 깨달음의 길을 향하여 나아가서 성자의 지위에 들어간 사람이다.
  69. 69)일래과(一來果)에 취향(趣向)하는 자리이다. 욕계의 수혹(修惑) 9품(品: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 중에서 앞의 6품의 번뇌를 끊고 있는 경지이다.
  70. 70)유루도(有漏道)를 말한다.
  71. 71)일래(一來)는 범어 sakṛdāgāmin의 의역이며 사다함(斯陀含)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일래과(一來果)란 욕계의 수혹(修惑)에 9품이 있는데 앞의 6품까지의 번뇌를 끊어버린 성자의 지위를 말한다. 3결(結)을 끊어 탐ㆍ진ㆍ치가 적은 경지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이가 아직 끊을 수 없는 3품의 수혹을 끊기 위해서는 한 번 천계(天界)에 태어났다가 다시 인계(人界)에 와서 반열반(般涅槃)의 깨달음을 얻어야 하므로 일래(一來)라고 이름한다.
  72. 72)불환과에 향하는 경지로서, 일래과의 성자가 더 나아가 불환과에 이르려고 욕계의 수혹(修惑) 9품 중의 나머지 3품을 닦아 끊고 있는 자리이다.
  73. 73)불환(不還)은 범어 anāgāmin의 의역이며, 아나함(阿那含)ㆍ나함(那含)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욕계의 수혹(修惑) 9품 중의 나머지 3품을 끊어버려서 다시는 욕계에 돌아오지 않는 지위에 도달한 성자이다. 5하분결(下分結) 즉 3결(結)과 탐(貪)ㆍ진(瞋)을 끊은 자리이다. 이 지위의 성자에 대하여 다섯 가지 구별이 있다. 즉 ①중반(中般)ㆍ생반(生般)ㆍ유행반(有行般)ㆍ무행반(無行般)ㆍ상류반(上流般) ②앞의 5종에 현반(現般) ③앞의 6종과 무색반(無色般) ④앞의 7종과 부정반(不定般) ⑤속반(速般)ㆍ불속반(不速般)ㆍ경구반(經久般)ㆍ생반(生般)ㆍ유행반ㆍ무행반ㆍ전초반(全超般)ㆍ반초반(半超般)ㆍ변몰반(遍沒般)이다.
  74. 74)불환과의 성자가 남은 번뇌를 끊고 아라한과에 향하는 자리이다.
  75. 75)아라한(阿羅漢)은 범어 arhan의 음역이며, 응공(應供)ㆍ살적(殺賊)ㆍ불생(不生)ㆍ무생(無生)ㆍ응진(應眞)ㆍ진인(眞人) 등으로 의역한다. 성문사과 중에서 최후의 자리이므로 극과(極果)라고 하고, 여기에 도달하면 모든 것을 다 배워서 더 이상 배워야 할 일법(一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학(無學)ㆍ무학과(無學果)라고 부른다. 일체의 견혹(見惑)과 수혹(修惑)을 끊고 영원히 열반에 들어 다시는 생사의 미계(迷界)에 유전하지 않는 자리이다.
  76. 76)극칠반(極七返), 가가(家家), 일간(一間), 중반(中般), 생반(生般), 유행반(有行般, 무행반(無行般), 상류반(上流般)을 가리킨다. 예류과→일래향→일래과→불환향→불환과.
  77. 77)극칠유(極七有)ㆍ극칠생(極七生)이라고도 한다. 예류과(預流果)의 성자로 수혹(修惑)을 끊지 않은 성자가 욕계의 인간과 천상에 일곱 번 왕래하며 생을 받는 가운데 반드시 성도(聖道)를 성취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므로 극칠반이라 이름한다.
  78. 78)일래향(一來向)의 성자 중에서 욕계의 수혹(修惑)의 전삼품(前三品:上上ㆍ上中ㆍ上下) 혹은 전사품(前四品:上上ㆍ上中ㆍ上下ㆍ中上)을 끊은 이를 가가(家家)의 성자 또는 가가(家家)라고 부른다. 집[家]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서, 곧 인계(人界)에서 천계(天界)에 태어나 다시 천계에서 인계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욕계 9품의 수혹은 그 전체에 따라 욕계에 7대생(大生) 곧 인(人)ㆍ천(天)에 각각 7생을 얻게 된다. 욕계 9품의 수혹 중에서 이미 전3품의 수혹을 끊은 이는 나머지 6품의 수혹에 의해 3대생(大生:人ㆍ天 각 3생)을 얻으므로 3생가가(生家家)라고 한다. 이미 전4품의 수혹을 끊은 이는 나머지 5품의 수혹에 따라 2대생 곧 인ㆍ천에 각 2생을 받으므로 2생가가(生家家)라고 부른다. 삼생가가 중에서 천삼인삼(天三人三) 혹은 인3천3이나, 이생가가 중에서 천2인2 혹은 인2천2의 생을 받는 이를 등생가가(等生家家)라고 부른다. 삼생가가 중에서 천3인2 혹은 인3천2나, 이생가가 중에서 천2인1 혹은 인2천1의 생을 받는 이를 부등생가가(不等生家家)라고 한다. 이 중에서 천계(天界) 혹은 인계(人界)에 있어서 예류과의 깨달음을 얻어 가가(家家)의 성자가 되고 인계에서 아라한과에 이른 이를 인가가(人家家)라고 부른다.
  79. 79)불환향(不還向) 중에서 욕계 9품의 수혹(修惑) 중에서 7품 혹은 8품을 끊었지만 아직 1품 혹은 2품이 남아 있으므로 다시 욕계의 인계(人界) 혹은 천계(天界)에서 1생(生)을 받아야 하는 1간(間)ㆍ1종자(種子)ㆍ1종(種)이라 부른다. 1생 혹은 1품의 번뇌가 막히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80. 80)일반적으로 중반(中般)이라고 이름한다. ‘증적멸(證寂滅)’은 반열반(般涅槃)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불환과(不還果)를 다시 세분하여 5종(中般ㆍ生般ㆍ有行般ㆍ無行般ㆍ上流般)으로 나눈 것 중에 첫 번째이다. 불환과의 성자가 욕계에서 죽어 색계에 태어날 경우 거기에 이르는 중유(中有)의 자리에서 반열반(般涅槃)하는 경지이다.
  81. 81)결생(結生)은 윤회하면서 중유(中有)가 없어지고 모태에 다음 생을 위탁하는 것.
  82. 82)흔히 생반(生般)이라고 부른다. 색계에 태어나서 얼마 안되어 반열반하는 경우이다.
  83. 83)근본생결과 취향생결을 가리킨다.
  84. 84)일반적으로 무행반(無行般)이라 이름한다. 색계에 태어나 거기서 수행도 못하고 오랜 시간 뒤에 반열반하는 경우이다.
  85. 85)유행반(有行般)이라 부른다. 색계에 태어나 거기서 오랫동안 수행을 쌓고 반열반하는 경우이다.
  86. 86)상류반(上流般)이라 이름한다. 색계에 태어나 다시 차례로 위의 하늘에 올라가서 드디어 색계의 최고천(最高天)인 색구경천(色究竟天) 또는 무색계의 최고천인 유정천(有頂天)에 태어나 거기서 반열반하는 경우이다. 색구경천일 경우는 낙혜(樂慧)라고 하며, 유정천일 경우는 낙정(樂定)이라 이름한다. 색계는 지혜가 뛰어나고, 무색계는 정(定)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87. 87)아라한을 6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퇴법(退法)ㆍ사법(思法)ㆍ호법(護法)ㆍ안주법(安住法 또는 住不動)ㆍ감달법(堪達法 또는 堪能通達)ㆍ부동법(不動法) 아라한을 6종 아라한이라 한다. 이들 중에서 앞의 5종은 둔근(鈍根)으로서 좋은 연(緣)이 있는 때를 기다려서 정(定)에 들어가 번뇌를 해탈하기 때문에 시해탈(時解脫)이라 하고, 이미 얻은 아라한의 깨달음을 항상 애호해서 번뇌를 해탈하기 때문에 시애심해탈(時愛心解脫)이라고도 부른다. 뒤의 부동법 아라한은 이근(利根)으로서 때를 기다리지 않고 입정(入定)하여 해탈하기 때문에 불시해탈(不時解脫)이라 하고, 번뇌로 인해 아라한의 깨달음에서 퇴실(退失)하지 않고 해탈하기 때문에 부동심해탈(不動心解脫)이라고도 부른다.
  88. 88)퇴법아라한은 이미 얻은 아라한의 깨달음으로부터 퇴실(退失)하기 쉬운 둔근(鈍根)의 성자이다. 질병 등의 작은 연(緣)에 수혹(修惑)을 다시 일으켜서 증득한 과(果)를 퇴실하여 불환ㆍ일래ㆍ예류 등에 퇴타(退墮)하는 경우이다.
  89. 89)소득과(所得果)에서 퇴실할까 두려워하여 자해(自害)해서라도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고자 함을 말한다.
  90. 90)‘현전 법의 즐거움에 안주하는 선정’이란 뜻으로서 색계의 4근본정(根本定)에 한정된다. 『유식요의등(唯識了義燈)』 제5권에서 선정의 일곱 가지 다른 명칭으로서 등인(等引), 등지(等持), 등지(等至), 선나(禪那) 또는 정려(靜慮), 심일경성(心一境性), 현법낙주(現法樂住)를 들고 있다. 이 중에서 현법낙주는 현재세에서 현전법(現前法)의 즐거움에 편안히 머물러서 선정의 기쁨이 심신에 가득찬 상태를 말한다.
  91. 91)증득한 것을 혹시 잃을까 두려워 항상 자해(自害)해서라도 무여열반에 들려고 하는 둔근이다. 사상아라한(死相阿羅漢)이라고도 한다.
  92. 92)소득과(所得果)를 퇴실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이것을 방호(防護)하는 둔근의 성자이며 수상아라한(守相阿羅漢)이라고도 한다.
  93. 93)안주법(安住法) 아라한ㆍ주상(住相) 아라한이라고도 한다. 소득과에 안주하여 수승한 퇴연(退緣)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에 스스로 방호(防護)하지 않더라도 대개는 퇴실(退失)하지 않지만, 또한 승연(勝緣)이 없으면 나아가지 못하는 둔근의 아라한이다.
  94. 94)감달법(堪達法) 아라한ㆍ가진상(可進相) 아라한이라고도 하며, 증진(增進해서 빨리 다음의 부동법을 통달하는 둔근의 성자이다. 그 성품이 감능(堪能)하여 연근(練根)을 능히 닦아서 부동법에 이른다.
  95. 95)불괴상(不壞相) 아라한이라고도 한다. 근성(根性)이 가장 뛰어나서 어떤 역경(逆境)을 만나도 전혀 퇴동(退動)함이 없는 이근(利根)으로서, 진지(盡智) 후에 무생지(無生智)를 일으키는 성자이다.
  96. 96)믿음[信根], 정진[進根], 기억[念根], 선정[定根], 지혜[慧根]의 다섯 가지 무루근(無漏根)을 말한다. 이것들은 번뇌를 억누르고 바른 깨달음의 도(道)에 나아가게 하는 데 뛰어난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근(根)이라고 한다.
  97. 97)3승(乘)를 가리킨다. 삼승이란 중생의 성품이나 능력에 응해서 세 종류의 깨달음의 길이 있다는 것으로서, 성문승(聲聞乘)ㆍ독각승(獨覺乘)ㆍ대승(大乘)을 말한다. 성문ㆍ독각ㆍ보살에 대한 세 가지 교법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말하면 승(乘)은 범어 yāna의 번역으로서 ‘운전하여 건네주는 것[運度]’ ‘수레’라는 뜻이다. 중생들을 태우고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실어 나르는 것, 즉 불교ㆍ교법을 말한다. 대승(大乘)ㆍ소승(小乘)ㆍ1승(乘)ㆍ2승(乘)ㆍ3승(乘)ㆍ5승(乘) 등으로 사용된다. 원래는 1승(乘)ㆍ불승(佛乘:‘부처님 되는 교법’)ㆍ1불승(佛乘)으로서,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취지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즉 중생에게 불지견(佛知見)을 열어 보이고[開示] 깨달아 들어가게[悟入] 하기 위함인데,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방편으로 삼승을 열어 인도한다. 그러므로 불법 수행에는 삼승에 의한 세 가지 수행방식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유일한 입장인 1불승(佛乘)으로 돌아가야 한다.
  98. 98)성문 지위에 있는 이가 증과(證果)에 이르기 위하여 닦는 교법, 곧 4제법(諦法)을 말한다. 뒤에는 뜻이 변화되어 성문의 기류(機類)도 성문승이라고 이름한다. 성문(聲聞, śrāvaka)은 ‘소리를 듣는 사람’ 즉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이라는 뜻이다. 『아함경』의 이론문ㆍ실천문이 총합적으로 설해진 교설인 4성제(聖諦)를 닦으며 아라한을 목적으로 한다. 원래는 불재세시(佛在世時)의 제자를 가리키지만, 독각ㆍ보살에대해 이승ㆍ삼승의 하나로 열거할 때는 부처님의 교설에 따라 수행을 하지만 홀로 열반에 안주하고자 하는 자리(自利)를 목적으로 하는 출가수행자를 의미한다. 불제자 가운데 낮은 근기 또는 사성제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쌓아 4사문과(沙門果)를 깨닫고 마침내는 심신(心身)을 다 멸진(滅盡)하여 회신멸지(灰身滅智)의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승의장(大乘義章)』에서 성문의 명의(名義)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①여래의 교법을 듣고 그 이치를 관찰하여 해탈을 얻고자 한다. ②관찰하는 법에 따라 해석하여, 자아[我]ㆍ중생ㆍ인(人)은 오직 이름만 있고 실상이 없으므로 성(聲)이라 하고, 이 소리를 관찰함을 듣고서 무아(無我) 등의 뜻을 해석함을 문(聞)이라 한다. ③부처님이 설하신 1승(乘)의 법지(法旨)를 성(聲)이라 하고, 중생이 듣고 오해(悟解)하는 것을 문(聞)이라 한다.
  99. 99)독각(獨覺)의 경지에 있는 이가 증과(證果)에 이르기 위해 닦는 교법ㆍ수행법 또는 그러한 기류(機類)를 말한다. 독각(獨覺, pratyeka-buddha)은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을 열려고 하는 사람이다. 성문승과 달리 부처님의 설법을 직접 청문(聽聞)하지 않고, 스스로 홀로 자기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깨닫는 이다. 자연 현상을 관찰하여 연기(緣起)의 이치를 깨닫기 때문에 연각(緣覺)이라고도 이름한다. 12연기법을 관찰하며 벽지불(辟支佛)을 목적으로 한다. 타인을 교화하지 않고 홀로 열반의 경지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에, 대승에서는 이를 성문과 함께 소승(小乘)이라고 비판한다.
  100. 100)삼승인 경우는 이것을 일반적으로 보살승(菩薩乘)이라고 부른다. 본문에서는 앞에서 말한 성문승ㆍ독각승을 자신의 해탈만을 목적으로 하는 이기적인 소승(小乘)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표현했다. 소승(小乘, hīnayāna)이 자리(自利)에 치우치는 반면에, 대승(大乘, mahāyāna)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양면을 갖춘 보살도(菩薩道)이다. 6바라밀 등의 보살행을 닦으며 자각각타(自覺覺他)ㆍ자리이타의 길을 간다. 성불(成佛)을 목적으로 한다.
  101. 101)성문승처럼 보살행의 과정에서 선지식(善知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102. 102)1천제(闡提) 무성유정(無性有情)
  103. 103)3장(障)이란 성도(聖道) 및 그 앞단계(加行)인 선근(善根)을 방해하는 번뇌장ㆍ업장(業障)ㆍ보장(報障)의 세 가지 장애를 말하며, 3중장(重障)이라고도 한다.
  104. 104)번뇌로 인한 장애이다.
  105. 105)악업에 의해 생겨난 장애, 특히 5역죄(逆罪)로 인한 장애를 말한다.
  106. 106)이숙장(異熟障)이라고도 한다. 3악도(惡道), 북구로주(北拘盧洲), 무상천(無想天)의 과보를 받아 불법을 들을 수 없는 장애이다. 지옥ㆍ아귀는 고통이 매우 심하고, 축생은 어리석기 때문에 불법을 만나지 못한다. 북구로주는 인사주(人四洲)의 하나로서 수명이 천세(千歲)이고, 옷과 음식물 등이 저절로 갖추어지므로 괴로움을 잘 느끼지 못하여 구도심(求道心)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장애가 된다. 무상천은 장수천(長壽天)으로서 장수를 즐겨서 구도심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107. 107)취(趣)는 범어 gati의 번역어이며 도(道)라고도 한다. 중생이 자신이 지은 행위[業]에 의해 스스로 찾아서 또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생존의 상태 또는 그 세계를 말한다. 이에 5취(趣:5道), 6취(趣:6道), 선취(善趣:善道), 악취(惡趣:惡道) 등으로 분류된다. 육취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ㆍ하늘이고, 여기서 아수라를 제외하여 오취라고 한다. 육취설은 대승불교에서 많이 말하고, 부파불교에서는 오취설을 말한다. 오취설의 경우에서 아수라는 아귀ㆍ하늘 가운데 포함된다.
  108. 108)범어 yakṣa의 신역(新譯)이며, 일반적으로 야차(夜叉)라는 구역(舊譯)이 사용된다. 이에 천(天)야차ㆍ지(地)야차ㆍ허공야차의 3종이 있다. 천야차와 허공야차는 날아다니고, 지야차는 날지 못한다고 한다.
  109. 109)범어 asura의 신역이며, 흔히 아수라(阿修羅)라는 구역이 사용된다. 6도(道)의 하나이고 호법(護法) 8부중(部衆)의 하나이다. 참고로 말하면 인도 고대에서는 전투를 일삼는 일종의 귀신으로 간주되었고, 항상 제석천(帝釋天)과 싸우는 투쟁적인 악신(惡神)으로 여겼다.
  110. 110)범어 garuḍa의 신역이며, 구역은 가루라(迦樓羅)이다. 금시조(金翅鳥)로 의역한다. 독수리와 같은 사나운 새로서 용(龍)을 잡아 먹는다는 조류의 왕이다. 팔부중의 하나이다.
  111. 111)범어 kiṁnara의 신역이며, 구역은 긴나라(緊那羅)이다. 팔부중의 하나이며, 노래하고 춤추는 음악신이다. 그 모습은 말[馬]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다거나, 혹은 사람 머리에 새의 몸을 하는 등 일정하지 않다.
  112. 112)범어 mahoraga의 신역이며, 구역은 마후라가(摩睺羅伽)이다. 팔부중의 하나이다. 사신(蛇神)으로서 대망신(大蟒神)이라 의역한다.머리는 뱀이고 몸은 사람의 형상이다.
  113. 113)여기서 인(因)은 과거의 수행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인위(因位)는 보살이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으로 수행하는 동안의 지위를 말한다.
  114. 114)인각유독각(麟角喩獨覺)을 말한다. 갈가(竭伽)는 범어 khaḍga의 음역으로서 갈가(渴伽)라고도 한다. 서우(犀牛:무소ㆍ코뿔소)ㆍ인각(麟角)으로 의역한다. 독각에 인각유독각ㆍ부행독각(部行獨覺)의 2종이 있다. 여기서 인각유독각은 기린이 외뿔인 것처럼 홀로 닦아 도를 깨닫는 자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때에 홀로 태어나서 혹은 꽃이 날리거나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관찰하고 혹은 12연기의 도리를 관찰하여 독오(獨悟)함이 마치 기린이나 코뿔소가 외뿔[一角]인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인각유라고 한다.
  115. 115)부행독각(部行獨覺)을 말한다. 본래는 성문이던 자가 후에 아라한을 얻을 때에 부처님 처소를 떠나서 독오(獨悟)하는 성자이다. 이 성자는 성문승처럼 여러 명이 부처(部處)를 지어서 수행하기 때문에 부행독각이라 이름한다. 또는 4선근(善根)을 얻기까지는 부처님의 언교(言敎)에 의지하지만, 아라한을 증득할 때는 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 독각한다고 한다.
  116. 116)부처님의 무주열반(無住涅槃) 후득지(後得智)를 가리킨다.
  117. 117)이하 9사(事) 중에서 여덟 번째로 증과[果]에 관하여 과위의 단멸 5가지, 9변지(遍知), 9청정, 4가지 증득의 청정, 4사문의 과위, 단계ㆍ이계ㆍ멸계, 3종 보리, 무학의 10가지 법, 여러 원인으로 인하여 끊음, 끊음을 건립함, 작의ㆍ의지함ㆍ닦음을 인하여 끊음의 순서를 얻음, 끊음의 차별, 끊음의 양상과 이익 등의 순서로 설명한다.
  118. 118)생사의 미망(迷妄)을 초월한 도 견도(見道)를 가리킨다. 속세를 버리는 보리도(菩提道) 열반에 도달하기 위해 번뇌를 버리는 보리도.
  119. 119)9변지(遍知)는 견도ㆍ수도에서 9종의 번뇌를 끊고 얻는 4제경(諦境)을 두루 아는 9종의 변지(遍知)를 말한다. 변지에 지변지(智遍知)와 단변지(斷遍知)가 있다. 전자는 사제의 진리를 두루 아는 무루지(無漏智)이며 견도위(見道位)이다. 후자는 무루지로 번뇌를 끊는 것이며 수도위(修道位)이다. 모두 인위(因位)일뿐 과위(果位)가 아니므로 변지(遍知)라고 이름한다. 삼계 견도위에서 끊는 6종 단(斷)과 삼계 수도위에서 끊는 3종 단(斷)을 합하여 9종이 되므로 구변지라고 한다. 견도위에서 끊는 6종 단변지(斷遍知)는 욕계견고집단결진변지(欲界見苦集斷結盡遍知)ㆍ상이계견고집단결진변지(上二界見苦集斷結盡遍知)ㆍ욕계견멸단결진변지(欲界見滅斷結盡遍知)ㆍ상이계견멸단결진변지(上二界見滅斷結盡遍知)ㆍ욕계견도단결진변지(欲界見道斷結盡遍知)ㆍ상이계견도단결진변지(上二界見道斷結盡遍知)이며, 수도위에서 끊는 3종 단변지는 5순하분결진변지(順下分結盡遍知)ㆍ색계수도색수진변지(色界修道色受盡遍知)ㆍ무색계수도위(無色界修道位)의 일체결진변지(一切結盡遍知)이다.
  120. 120)5하분결(下分結)ㆍ순하분(順下分)이라고도 한다. 하분(下分)은 욕계를 가리키고, 결(結)은 번뇌의 이명(異名)이다. 삼계 중에서 가장 밑에 있는 욕계에서 중생을 얽어매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 곧 탐(貪)ㆍ진(瞋)ㆍ유신견(有身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의(疑)를 말한다. 이 오하분결이 있는 한 중생은 욕계에 살고, 이것을 끊으면 불환과를 얻는다.
  121. 121)별해탈율의(別解脫律儀)라고도 한다. 3종계(種戒:別解脫戒ㆍ靜慮生戒ㆍ無漏戒)의 하나이다. 5계ㆍ10계ㆍ구족계 등을 받아 지녀서 몸이나 입으로 짓는 악업을 각각 해탈하는 계법이다.
  122. 122)범어 śikṣāpada의 번역어로서 ‘배울만한 곳’이란 뜻이며, 곧 계율을 가리킨다. 계율은 비구ㆍ비구니가 배워 수행할 근본이므로 학처(學處)라고 이름한 것이다.
  123. 123)여기서 집(集)은 집기(集起)의 준말로서 모든 연(緣)이 모여서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
  124. 124)중반 생반 무행반 유행반 상류의 하나.
  125. 125)6항주법(恒住法)을 말한다.
  126. 126)제2 무학의 바른 사유[正思惟], 제3 바른 언어행동[正語], 제4 바른 신체행위[正業], 제5 바른 생계[正命], 제6 바른 정진[正精進], 제7 바른 기억[正念]을 가리킨다.
  127. 127)성문과(聲聞果) 10지(智) 중의 제9지이다. 번뇌를 단진(斷盡)했을 때에 생기는 자신(自信)의 지혜이다. 이미 일체의 번뇌를 다 끊어서 “나는 이미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으며, 멸(滅)을 깨닫고, 도(道)를 닦았다.”고 아는 지혜이다.
  128. 128)십지의 하나로서 아라한의 최극지(最極智)이다. 이미 미래의 고과(苦果)를 받지 않음을 확실히 자각하는 지혜이다. 이미 사성제를 체득했기 때문에 다시 체득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아는 지혜이다.
  129. 129)여기서 사(事)는 일체의 차별된 모습과 현상계를 가리킨다.
  130. 130)무간지옥에 떨어질 업 오무간업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