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顯揚聖教論卷第四

ABC_IT_K0571_T_004
016_0027_c_01L현양성교론 제4권
016_0027_c_01L顯揚聖教論卷第四


무착 지음
현장 한역
016_0027_c_02L無著菩薩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제1 섭사품 ④
016_0027_c_04L攝事品第一之四

이상과 같이 증과[果]에 대하여 설명했다. 이제 여러 ‘공덕’에 관하여 말하겠다.1)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27_c_05L如是已說果諸功德今當說頌曰

무량(無量)과 모든 해탈과
승처(勝處) 그리고 변처(遍處)와
무쟁(無諍)과 미묘한 원지(願智)와
걸림이 없는 이해[無㝵解]와 신통이네.
016_0027_c_06L無量諸解脫
勝處與遍處
無諍妙願智
無㝵解神通

논하여 말한다. ‘무량’이란 4무량심(無量心)2)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자무량(慈無量)3)이다. 인자한 마음과 함께 하여, 한 방면에서 원한이 없으며 미워함이 없고 손해 끼침이 없으며 넓고 크고 한량없이 아주 잘 닦아 익히고, 이와 같이 차례대로 나아가 시방의 일체 끝없는 세계에까지 의해(意解)가 두루 가득하며 구족하게 머무는 것을 말한다. ‘인자한 마음과 함께 함’이란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중생에게 즐거움의 인연[樂具]을 베풀어주려는 아세야(阿世耶)의 마음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원한이 없음’이란 곧 그것이 괴로움의 인연[苦具]4)을 가하려는 성냄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미워함이 없음’이란 곧 그것이 즐거움의 인연[樂具]을 장애하는 성냄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손해 끼침이 없음’이란 곧 그것이 옳지 못함을 일으키려는 성냄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016_0027_c_08L論曰無量者謂四無量廣說如經慈無量謂慈心俱無怨無憎無有損廣大無量極善修習於一方面是次第乃至十方一切無邊世界解遍滿具足住慈心俱者於無苦無衆生欲施樂具阿世耶心相應故無怨者卽彼對治欲加苦具瞋故憎者卽彼對治障㝵樂具瞋故無損害者卽彼對治欲與不宜瞋故
016_0028_a_01L‘넓음’이란 행해야 할 바를 본 것에 대한 작의(作意)이기 때문이다. ‘큰 것’이란 행해야 할 바를 들은 것에 대한 작의이기 때문이다. ‘한량없음’이란 행해야 할 바를 깨달아 안 것에 대한 작의이기 때문이다. ‘아주 잘 닦아 익힘’이란 자주 익혀서 상응함으로 인하여 모든 덮음 번뇌[盖]를 여의기 때문이다. ‘한 방면에서 이와 같이 차례대로 나아가 시방의 일체 끝없는 세계’라는 것은 기세간과 유정세간을 두루 반연하기 때문이다. ‘의해(意解)’라는 것은 의해로 사유하는 경계를 반연하기 때문이다. ‘두루 가득함’이란 끊임없는 유정의 경계를 반연하기 때문이다. ‘구족하게 머무는 것’이란 앞의 정려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016_0027_c_17L廣者於見所行作意故大者於聞所行作意故無量者於覺知所行作意故善修習者由串習相應離諸蓋故一方面如是次第乃至十方一切無邊世界者遍緣器世閒及有情世閒意解者緣意解思惟境界故遍滿緣無閒有情境界故具足住者前靜慮中說
둘째는 비무량(悲無量)5)이다. 연민의 마음과 함께 하여..... (나아가 자세히 말한다).6) ‘연민의 마음과 함께 함’이란 괴로움이 있는 중생에게 괴로움을 없애주려는 아세야(阿世耶)의 마음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원한이 없음’이란 곧 괴로움과 손해 끼침을 그것이 다스리기 때문이다. ‘미워함이 없음’이란 곧 괴로움과 손해 끼침을 장애하는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손해 끼침이 없음’이란 곧 좋지 못한 것과 기쁨ㆍ즐거움이 아닌 일을 가하려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28_a_03L悲無量謂悲心俱至廣說悲心俱者於有苦衆生欲拔具阿世耶心相應故無怨者卽彼對治與苦害故無憎者卽彼對治㝵拔苦害故無損害者卽彼對治與不宜不喜樂故餘如前說
셋째는 희무량(喜無量)7)이다. 기쁜 마음과 함께 하여..... (나아가 자세히 말한다). ‘기쁜 마음과 함께 함’이란 기쁨이 있는 중생에 대하여 그의 기쁨을 따라 기뻐하는 아세야의 마음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원한이 없음’이란 곧 괴로움의 원인을 주어서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게 하는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미워함이 없음’이란 곧 즐거움의 원인을 장애하여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게 하는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손해 끼침이 없음’이란 좋지 못한 일을 가하여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게 하는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28_a_08L喜無謂喜心俱乃至廣說喜心俱者有樂衆生隨喜彼樂阿世耶心相應無怨者卽彼對治欲與苦具不喜樂故無憎者卽彼對治障㝵樂具不喜樂故無損害者卽彼對治欲與不宜不喜樂故餘如前說
넷째는 사무량(捨無量)8)이다. 평등[捨]의 마음과 함께 하여..... (나아가 자세히 말한다). ‘평등의 마음과 함께 함’이란 염오(染汚)가 아닌 아세야의 마음으로 하여금 상응하게 하기 때문이다. ‘원한이 없음’이란 곧 탐욕과 성냄에 물들게 하는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미워함이 없음’이란 곧 장애를 다스리며 탐욕ㆍ성냄에 물드는 것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손해 끼침이 없음’이란 곧 뒤바뀜을 다스리며 탐욕과 성냄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28_a_14L捨無量捨心俱乃至廣說捨心俱者欲令不阿世耶心相應故無怨者卽彼對令染貪瞋故無憎者卽彼對治㝵除染貪瞋故無損害者卽彼對治顚倒不染貪及瞋故餘如前說
016_0028_b_01L이 4무량(無量)의 체성은 어떠한가? 자(慈)는 성냄 없는 선근으로써 체성을 삼고, 비(悲)는 손해 끼침이 없는 선근으로써 체성을 삼으며, 희(喜)는 질투가 없는 선근으로써 체성을 삼고, 사(捨)는 탐욕 없고 성냄 없는 선근으로써 체성을 삼는다. 모두 중생을 연민히 여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자무량이 오직 성냄이 없고, 다음의 두 가지 무량은 성냄 없음의 일부분이며, 사무량은 탐욕 없음과 성냄 없음의 일부분이다. 또한 다시 그것과 상응하는 등지(等持)9)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 아울러 그 권속이 모두 사무량의 자체이다. 마땅히 알라. 먼저 더욱 향상된 법의 행으로 인하여 마음을 잘 닦고 다스리며, 다시 청정한 정려(靜慮)에 의지하여 바야흐로 청정한 무량을 얻게 된다고 알아야 한다.
016_0028_a_19L此四無量體性云何?謂慈以無瞋善根爲體悲以不害善根爲體喜以不嫉善根爲體捨以無貪無瞋善根爲體皆是憐愍衆生法故於此四中慈唯無瞋次二無量無瞋一分捨是無貪無瞋一分又復與彼相應等持諸心心法幷彼眷屬皆是四無量體當知先由增上法行善修治心復依淸淨靜慮方得淸淨無量應知
‘모든 해탈’이란 8해탈(解脫)10)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물질 있음과 모든 물질을 관찰하는 해탈[有色諸色觀解脫]11)이다. ‘물질 있음’이란 유색정(有色定)12)에 의지하여 의해(意解)하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에서 그러한 물질은 승처(勝處) 중에서 스스로 분별한 것과 같다. ‘관찰’이란 모든 물질에 있어서 변화하고 자재함이 되기 때문이고, 의해하고 사유하여 그 모습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016_0028_b_05L諸解脫者謂八解脫廣說如經色諸色觀解脫有色者依有色定意解思惟故諸色者若色如勝處中自分別觀者於諸色中爲變化自在意解思惟顯示彼相故
둘째는 안으로 색상이 없고 밖으로 모든 물질이라고 관찰하는 해탈[內無色想外諸色觀解脫]13)이다. ‘안으로 색상(色想)이 없음’이란 무색정(無色定)14)에 의지하여 의해하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밖’이란 안근 등을 제외하고 그 외의 사물을 의해하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이라고 관찰함’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28_b_10L內無色想外諸色觀解脫內無色想者依無色定意解思惟故外者除眼等根解思惟餘色故諸色觀者如前說
셋째는 청정한 해탈을 몸소 증득하고 구족하게 머무는 해탈[淨解脫身作證具足住解脫]15)이다. ‘청정’이란 청정 미묘한 물질을 한결같이 의해하고 사유하여 더욱 향상된 안락주(安樂住)를 얻기 위한 때문이다. ‘해탈’이란 청정한 물질ㆍ청정하지 못한 물질의 작용[功用]과 장애를 해탈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몸소’라는 것은 의신(意身)이기 때문이고, ‘증득하고’라는 것은 지혜로써 끊음으로 인하여 증득함을 얻기 때문이며, ‘구족하게 머무름’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무색계의 여러 해탈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이 중에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온갖 종류의 선업(善業)이 자재함을 얻기 위한 까닭이고, 그 장애를 해탈하기 위한 까닭이다.
016_0028_b_13L淨解脫身作證具足住解脫淨者向意解思惟淨妙色爲得增上安樂住故解脫者解脫淨不淨色功用㝵心故身者意身故作證者由智斷得作證故具足住者如前說無色諸解脫如前分別此中差別者爲欲證得一切種身業自在故及爲解脫彼障故
016_0028_c_01L다시 그 빛과 물질을 없애고 가없는 허공이라는 의해(義解)와 사유를 짓기 때문에 제4 무변허공처해탈(無邊虛空處解脫)16)이라고 이름한다. 거룩한 신통17)과 무쟁(無諍)과 원지(願智)와 무애해(無㝵解) 등 여러 공덕을 일으키기 위한 까닭이고, 그 여러 공덕을 도와 일으켜서 마음의 자재로움을 증득하기 위한 까닭이며, 그 장애를 해탈하기 위한 까닭이다.
다시 가없는 식(識)이라는 의해와 사유를 짓기 때문에 제5 무변식처해탈(無邊識處解脫)18)이라고 이름한다. 수행자가 이와 같이 공덕을 일으키는 방편을 짓고서 제4 정려(靜慮)를 앞에 나타나게 하여 여러 공덕을 일으키나니, 가장 수승한 무루(無漏)를 증득하여 자재로움에 머물기 위한 까닭이고, 또한 그 장애를 해탈하기 위한 까닭이다.
016_0028_b_21L復除光色作無邊虛空意解思惟故名第四無邊虛空處解脫爲欲發起聖神通無諍願智無㝵辯等諸功德故又爲證得能助發起彼諸功德心自在故又爲解脫彼障故復作無邊識意解思惟故名第五無邊識處解脫行者作如是發起功德方便令第四靜慮起現在前發諸功德爲欲證得最勝無漏住自在故又爲解脫彼障故
다시 무소유라는 의해와 사유를 짓기 때문에 제6 무소유처해탈(無所有處解脫)19)이라고 이름한다. 최고의 첫째가는 존재를 증득하여 자재로움에 머물기 위한 까닭이고, 또한 그 장애를 해탈하기 위한 까닭이다.
다시 비상비비상이라는 의해와 사유를 짓기 때문에 제7 비상비비상처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20)이라고 이름한다. 가장 수승한 적정(寂靜)을 증득하여 자재로움에 머물기 위한 까닭이고, 또한 그 장애를 해탈하기 위한 까닭이다.
다시 비상비비상처의 마음으로부터 날숨ㆍ들숨을 그치고 반연(攀緣)함을 멸하는 것에 나아가기 때문에 제8 상수멸해탈(想受滅解脫)21)이라고 이름한다.
016_0028_c_07L復作無所有意解思惟名第六無所有處解脫爲欲證得最第一有住自在故又爲解脫彼障復作非想非非想意解思惟故第七非想非非想處解脫爲欲證得最勝寂靜住自在故又爲解脫彼障故復從非想非非想處心進止出入息滅攀緣故名第八想受滅解脫
016_0029_a_01L‘승처(勝處)’란 8승처22)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23) 안으로 색상(色想)이 있고 밖으로 모든 물질을 관찰하되 적다고 하며, 좋거나 나쁘거나 열등하거나 수승하거나간에 그 모든 물질에 대하여 수승하게 알고 수승하게 보며, 이와 같은 생각을 얻는 것을 첫 번째 승처라고 이름한다. ‘안으로 색상이 있음’이란 8해탈 중에서 말한 바와 같다. ‘밖으로’라는 것은 안근 등을 제외하고 그 외의 물질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을 관찰함’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적음’이란 생활도구가 물질에 포섭된다고 의해(意解)하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좋거나 나쁘거나’라는 것은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빛깔ㆍ형태[色]에 포섭되는 물질이라고 의해하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열등하거나 수승하거나’라는 것은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에 포섭되는 물질이라고 의해하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물질에 대하여 수승하게’라는 것은 능히 다스림과 다스려지는 것에 작의하고 사유하여, 장애하는 작용에 어지럽혀지지 않는 바이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사마타의 도(道)를 사용함이고, ‘본다’는 것은 비발사나의 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얻음’이란 진실로 수승한 것에 대해서 참으로 수승함을 얻게 되어 거만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고, 수승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참으로 수승하지 못하다고 얻게 되어 거만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016_0028_c_14L勝處者謂八勝處廣說如經內有色想外諸色觀少若好若惡若劣若於彼諸色勝知勝見得如是想初勝處內有色想者如解脫中說謂除眼等根顯餘色故諸色觀者如前說少者謂資具攝色意解思惟若好若惡者謂淨不淨色之所攝意解思惟故若劣若勝者謂淨觸之所攝色意解思惟故於彼諸色勝者謂能治所治作意思障㝵功用所不惱故知者用奢摩他道見者用毘鉢舍那道得如是想謂於實勝中得實勝無慢想故不勝中得實不勝無慢想故
둘째는24) 안으로 색상이 있고 밖으로 모든 물질을 관찰하되 많다고 하며..... 나아가25) 제2 승처라고 이름한다.
안으로 색상이 없는 것에서 적다고 관찰하거나 많다고 관찰하는 두 가지도 역시 그러하다.26) ‘안으로 색상이 있고 밖으로 모든 물질을 관찰함’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많음’이란 유정세간과 기세간(器世間)의 물질을 두루 사유함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섯째는27) 안으로 색상이 없고 밖으로 모든 물질을 관찰하되 청색이라고 하는 것이다. 청색이 드러남과 청색을 볼 수 있음과 청색의 광채인 것이 마치 오막가(烏莫迦) 꽃과 같고, 혹은 바라날사(婆羅痆斯)28)의 청색으로 염색한 옷의 빛깔과 같다.
이와 같이 황색ㆍ적색ㆍ백색도 모두 자세히 말해야 한다.29) 이 중에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황색은 갈니가라(羯尼迦羅)30) 꽃과 같고, 혹은 바라나사의 황색으로 염색한 옷 빛깔과 같다. 적색은 반두시바가(槃豆時縛迦) 꽃과 같고, 혹은 바라나사의 적색으로 염색한 옷 빛깔과 같다. 백색은 오사나(烏奢那)31) 별과 같고, 혹은 바라나사의 곱고 흰 옷 빛깔과 같다.
016_0029_a_05L內有色想外諸色觀多乃至名第二勝處內無色想中觀少觀多二種亦爾有色想外諸色觀者如前說多者示有情世閒器世閒色遍思惟故如前說內無色想外諸色觀靑靑可見靑光猶如烏莫迦花或如婆羅痆斯染靑衣色如是黃白色皆應廣說此中差別者黃色如羯尼迦羅花或如婆羅痆斯染黃衣色色如槃豆時縛迦花或如婆羅痆斯染赤衣色白色如烏奢那星或如婆羅痆斯鮮白衣色
016_0029_b_01L‘청색’이란 총체적인 말이고, ‘청색이 드러남’이란 생길 때부터의 청색을 말한다. ‘청색을 볼 수 있음’이란 화합하여 청색이 된 것을 말한다. ‘청색의 광채’란 그 두 가지에서 나온 곱고 깨끗한 광채의 청색을 말한다. 청색과 마찬가지로 황색ㆍ적색ㆍ백색도 또한 역시 그러해서 자세히 말해지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하나의 승처에서 두 가지 비유를 든 것은 바로 생래적인 것[俱生]ㆍ화합적인 것의 두 가지 빛깔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8승처는 세 가지 물질을 반연하는 해탈을 닦는 것에 의지처가 된다. 뒤의 네 가지 승처는 욕계의 하늘 빛깔과 색계의 빛깔을 의해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또한 다시 알아야 할 것은, 이 모든 승처는 아래 경지의 종자를 다스리기 위하여 좇아서 작의하고 사유하는 것이며, 자기 경지에서 다스릴 바를 다스리기 위해서 작의하거나 사유함이 아니라는 점이다.
016_0029_a_17L靑者謂摠句靑顯謂俱生靑靑可見者謂和合成靑靑光者謂彼二所出鮮淨光靑如靑白色亦復如是廣說應知如前說於一處說二譬喩者此顯俱和合二種色故此八勝處與修三種緣色解脫作所依止後四勝處意解思惟欲界天色及色界色又復應是諸勝處爲治下地種子隨逐作意思惟非爲對治自地所治作意思惟
‘변처(遍處)’는 10변처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말하자면 지변처(地遍處)에서 하나를 능히 분명히 알고 위ㆍ아래ㆍ옆에서도 두 가지가 없고 한량없다. 이와 같이 수변처(水遍處)ㆍ화변처(火遍處)ㆍ풍변처(風遍處)와 청변처(靑遍處)ㆍ황변처(黃遍處)ㆍ적변처(赤遍處)ㆍ백변처(白遍處)와 공무변처변처(空無邊處遍處)ㆍ식무변처변처(識無邊處遍處)에서의 위ㆍ아래ㆍ옆에서도 두 가지가 없고 한량없다.
016_0029_b_03L遍處者謂十遍處廣說如經謂地遍一能解了上下及傍無二無量是水風遍虛空識遍下及傍無二無量
‘지변처(地遍處)’는 다음과 같다. 물질의 의지처[所依]가 편만(遍滿)하므로 그 의지하는 것[能依]인 물질도 역시 편만하나니, 그것으로 인하여 증장하기 때문이다. ‘하나를 능히 분명히 알고’라는 것은 이 관찰을 능히 증득하는 보특가라를 말한다. ‘위ㆍ아래와 옆’이란 모든 방위와 4유(維)32)에 편만함을 말한다. ‘두 가지가 없음’이란 그 외의 모든 한계를 여의고, 잡염되지 않은 빛깔이 편만하기 때문이다. ‘한량없음’이란 한계의 모습이 없이 편만하기 때문이다.
016_0029_b_07L地遍處者由色所依遍滿故彼能依色亦遍滿由彼增長故一能解了者謂能證此觀補特伽羅上下及傍者謂遍滿諸方及四維故無二者離餘諸界及不雜顯色遍滿故
지변처와 마찬가지로 그 밖의 수변처(水遍處)ㆍ화변처(火遍處)ㆍ풍변처(風遍處)ㆍ청변처(靑遍處)ㆍ황변처(黃遍處)ㆍ적변처(赤遍處)ㆍ백변처(白遍處)도 역시 그처럼 그 상응하는 바와 같다.
‘허공변처(虛空遍處)’란 일체의 물질의 양상을 다스려서 작의(作意)하고 사유함이 편만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33)
‘식변처(識遍處)’란 한량없는 식을 반연하여 작의하고 사유함이 편만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29_b_12L無量者無有分齊相遍滿故如地遍處餘水白亦復如是如其所應虛空遍處者謂對治一切色相作意思惟遍滿故餘如前識遍處者謂緣無量識作意思惟遍滿故餘如前說
이 중에서 세 가지 해탈로 인하여 수승한 물질의 자재로움을 얻으며, 그것을 얻음으로 인하여 비로소 수승한 물질의 자재로움을 지극히 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무변처 이상에서는 편만함이 없나니34), 인식대상이 한량없는 형태에 의지하는 분별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라. 승처(勝處)와 변처(遍處)는 모든 해탈이 능히 청정하게 되는 도(道)이다. 모든 승처는 인식대상이 수승하기 때문이고, 모든 변처는 인식대상이 두루하기 때문에 능히 해탈로 하여금 청정하게 함을 알아야 한다.
016_0029_b_17L此中由三解脫故得勝色自在由得彼已方可說言勝色自在極成就故識處已上無有遍滿所緣無量形段依止分別遠離故應知勝處及與遍是諸解脫能淸淨道由諸勝處勝所緣故由諸遍處所緣遍故能令解脫淸淨應知
016_0029_c_01L‘무쟁(無諍)’이란 능히 다른 번뇌로부터 잘 수호하는 행에 이끌어지는 것으로서,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智見)의 성품에 포섭되며,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等持)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이 행으로 인하여 행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016_0029_c_01L無諍者謂能守護他煩惱行之所引攝無癡智見性及彼相應等持諸心心法由此行多所行故
‘미묘한 원지(願智)’란 3세(世)와 삼세 아닌 것에 포섭되는 소지법(所知法)에 대해서 남김없이 분명히 아는 것에 이끌어지는 것으로서,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에 포섭되며,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이 행으로 인하여 행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016_0029_c_04L妙願智者謂於三世及非世攝所知法中無餘如實了知之所引攝無癡智見性及彼相應等持諸心心法此行多所行故
‘무애해(無㝵解)’란 4무애해35)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법무애해(法無㝵解)36)이니, 온갖 종류의 일체법(一切法)의 차별된 명칭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깨닫는 것에 이끌어지는 것으로서,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에 포섭되며,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둘째는 의무애해(義無㝵解)37)이니, 온갖 종류의 일체법의 갖가지 양상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깨닫는 것에 이끌어지는 것으로서,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에 포섭되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38)
셋째는 훈사무애해(訓詞無㝵解)39)이니, 온갖 종류의 일체법을 훈석(訓釋)하는 말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깨닫는 것에 이끌어지는 것으로서,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에 포섭되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넷째는 변재무애해(辯才無㝵解)40)이니, 온갖 종류의 일체법을 통달함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깨닫는 것에 이끌어지는 것으로서,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에 포섭되며,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이 행으로 인하여 행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016_0029_c_08L無㝵解者謂四無閡解廣說如經法無㝵解謂於一切種一切法差別名中如實覺悟之所引攝無癡智見及彼相應等持諸心心法義無㝵解謂於一切種一切法種種相中如實覺悟之所引攝無癡智見性如前說訓詞無㝵解謂於一切種一切法訓釋詞中如實覺悟之所引攝無癡智見性餘如前說辯才無㝵解謂於一切種一切法通達中實覺悟之所引攝無癡智見性及彼相應等持諸心心法由此行多所行故
016_0030_a_01L‘신통(神通)’이란 6신통41)을 말한다. 경전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첫째는 신경지견작증통(神境智見作證通)42)이니, 온갖 종류의 신업(身業)을 나타내 보이는 것에 자재하고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이며, 나아가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이 행으로 인하여 행함에 결정된 경계가 많기 때문이다.
둘째는 천이지견작증통(天耳智見作證通)43)이니, 온갖 종류의 어업(語業)을 듣는 것에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44)
셋째는 심차별지견작증통(心差別智見作證通)45)이니, 온갖 종류의 다른 이의 마음 작용에 들어가는 것에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6_0029_c_20L神通者謂六神通如經廣說神境智見作證通謂爲示現一切種身業自在無癡智見性及彼相應等持諸心法由此行行多決定境界故天耳智見作證通謂爲隨聞一切種語業無癡智見性餘如前說心差別智見作證通謂爲入一切種他心行無癡智見性餘如前說
넷째는 숙주수념지견작증통(宿住隨念智見作證通)46)이니, 온갖 종류의 과거세의 윤회세계[趣]와 행에 들어가는 것에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섯째는 사생지견작증통(死生智見作證通)47)이니, 온갖 종류 유정의 윤회세계와 행에 들어가는 것에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여섯째는 누진지견작증통(漏盡智見作證通)48)이니, 온갖 번뇌를 벗어남과 괴로움을 남김없이 없앤 것에 들어감에 어리석음이 없는 지견의 성품이며,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이 행으로 인하여 행함에 결정된 경계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30_a_05L宿住隨念智見作證通謂爲入一切種前際趣行無癡智見性餘如前說死生智見作證通謂爲入一切種有情趣行無癡智見性餘如前說漏盡智見作證通謂爲入出離一切煩惱及無餘苦無癡智見性及彼相應等持諸心心法由此行行多決定境界故復次頌曰

모든 형상 좋음[相好]과 청정이며,
그리고 모든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畏]이고,
두호하지 않음[不護]과 염주(念住)이며
모든 습기를 영원히 끊음이네.
016_0030_a_13L諸相好淸淨
及諸力無畏
不護與念住
永斷諸習氣

논하여 말한다. ‘모든 형상[相]’이란 32대장부 형상49)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발[足]이 잘 이룩된 대장부상이다.50) 여래께서 보리의 자량(資糧)이 훌륭하게 원만하기 때문이고, 평등한 행을 구족하게 받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형상을 얻은 것이다. 이 형상으로 인하여 잠깐이라도 보게 되는 이는 곧 “여래는 대장부다운 발의 형상과 발의 표지[幖幟]51)와 발의 형태가, 잘 이룩된 발의 형상과 같다”고 믿게 된다.
이와 같아서 그 외의 모든 대장부상도 그 상응하는 바와 같이 모두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손에 있어서는 마땅히 손의 형상과 손의 표지와 손의 형태를 말할 것이며,52) 이와 같이 정수리53) 등과 그 외의 지절(支節)에 대해서도 각각 그 명칭에 따라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한다.
016_0030_a_15L論曰諸相者謂三十二大丈夫相說如經善安立足大丈夫相由如來菩提資糧善圓滿故具足受持平等行故感得此相由此相故有暫見卽信如來是大丈夫足相足幖幟足形貌如善安立足相如是諸餘大丈夫相如其所應盡當知謂於手中應說手相手幖幟手形貌如是於頭頂等所餘支節各隨其名應當廣說
016_0030_b_01L‘호(好)’는 80종호(種好)54)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이 모든 종호 등이 만약 구족상에 포섭되는 것이라면 「보살지(菩薩地) 」에서 말한 것과 같고, 만약 중생에게 마땅한 것을 따르고 수승한 형상에 포섭되는 것이라면 『대혜도경(大慧度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여러 종호를 자세히 분별하는 것이라면 「광분별상(廣分別相) 」에서 말한 것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016_0030_b_01L好者謂八十種好廣說如經是諸好若具足相攝如「菩薩地」中說若隨衆生所宜隨勝相攝如『大慧度經』說若廣分別諸好應知如廣分別相中說
‘청정’이란 네 가지의 온갖 양상이 청정함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의지(依止)의 청정이다. 여래께서 온갖 양상의 청정한 지혜와 온갖 양상의 청정한 (번뇌의) 단멸을 증득하심으로 인하여, 의지(依止)를 취하거나 머물거나 버림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자재하신 것을 말한다.
둘째는 경계의 청정이다. 여래께서 온갖 양상의 청정한 지혜와 온갖 양상의 청정한 단멸을 증득하심으로 인하여, 온갖 일의 변화 경계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자재하신 것을 말한다.
셋째는 마음의 청정이다. 여래께서 온갖 양상의 청정한 지혜와 온갖 양상의 청정한 단멸을 증득하심으로 인하여, 온갖 양상의 세간ㆍ출세간의 선근이 증장하는 마음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자재하신 것을 말한다.
넷째는 지혜의 청정이다. 여래께서 온갖 양상의 청정한 지혜와 온갖 양상의 청정한 단멸을 증득하심으로 인하여, 온갖 양상의 알아야 할 바[所知]에 대해서 집착이 없고 걸림 없는 지혜로 궁극적으로 가장 자재하신 것을 말한다.
016_0030_b_05L淸淨者謂四一切相淸淨廣說如經依止淸淨謂由如來證得一切相淸淨智及一切相淸淨斷故於依止取住捨中究竟無上自在境界淸謂由如來證得一切相淸淨智一切相淸淨斷故於一切事變化境界中究竟無上自在心淸淨謂由如來證得一切相淸淨智及一切相淸淨斷故於一切相世出世善根增長心中究竟無上自在智淸淨由如來證得一切相淸淨智及一切相淸淨斷故於一切相所知中無著無㝵智究竟無上自在
016_0030_c_01L‘모든 힘[力]’이란 여래의 10력55)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56)이니, 온갖 양상의 원인에 대하여 능히 사실 그대로 묻거나 말씀하시는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과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等持)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둘째는 자업지력(自業智力)57)이니, 온갖 양상이 각각 다른 처소에서 상속하여 일어나는 업과 얻어진 과보에 대해서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그 외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58)
셋째는 정려해탈삼마지삼마발지지력(靜慮解脫三摩地三摩鉢厎智力)59)이니, 온갖 양상을 섭수하는 세상의 청정한 공덕의 방편에 대해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넷째는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60)이니, 출세간의 공덕이 의지하는 온갖 양상의 교화할 유정의 근기의 차별에 대해서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다섯째는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61)이니, 온갖 양상의 교화할 유정의 아세야 차별에 대해서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여섯째는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62)이니, 온갖 양상의 교화할 유정의 수면(隨眠) 차별에 대해서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일곱째는 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63)이니, 온갖 양상의 교법[乘]의 벗어남의 차별에 대해서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여덟째는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64)이니, 온갖 양상의 과거세의 윤회세계의 차별에 대해서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아홉째는 사생지력(死生智力)65)이니, 온갖 양상의 미래세 윤회세계의 차별에 대해서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열째는 누진지력(漏盡智力)66)이니, 온갖 양상의 윤회세계ㆍ윤회 아닌 세계의 벗어남의 방편 차별에 대해서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과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마음과 마음 법을 말한다.
또 모든 힘 중에서 모든 것을 알맞게 말씀하시며 능히 실답게 묻거나 말씀하신다.
016_0030_b_18L諸力者謂如來十力廣說如經非處智力謂於一切相因果中能如實問記無㝵智性及彼相應等持諸心法自業智力謂於一切相別處所相續所起業及所得報中㝵智性餘如前說靜慮解脫三摩地三摩鉢底智力謂於攝受一切相世閒淸淨功德方便中無㝵智性如前說根上下智力謂於出世閒功德所依一切相所化有情根差別無㝵智性餘如前說種種勝解智力謂於一切相所化有情阿世耶差別中無㝵智性餘如前說種種界智力謂於一切相所化有情隨眠差別中無㝵智性餘如前說遍趣行智力謂於一切相乘出離差別中無㝵智性餘如前說宿住隨念智謂於一切相前際趣差別中無㝵智性餘如前說死生智力謂於一切相後際趣差別中無㝵智性餘如前說漏盡智力謂於一切相趣非趣出離方便差別中無㝵智性及彼相應等持諸心心法又諸力中一切應說能如實問記
016_0031_a_01L‘무외(無畏)’란 4무외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진실한 말씀으로 “‘나는 정등각자(正等覺者)이다.’라고 말하되, 만일 어떤 이가 힐난하여 ‘이 법에서 정등각이 아니다.’라고 말하더라도, 나는 이런 힐난에 대해서 바르게 보며 반연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런 까닭에 ‘두려움이 없음[無畏]’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여래께서 미묘하고 훌륭하며 청정한 ‘일체종지(一切種智)’67)를 증득하신 것을 말한다.
둘째는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진실한 말씀으로 “‘나는 모든 번뇌를 이미 다했다.’고 말하되, 만일 어떤 이가 힐난하여 ‘이와 같고 그와 같아서 온갖 번뇌를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이런 힐난에 대해서 바르게 보며 반연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런 까닭에 ‘두려움이 없음’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여래께서 미묘하고 훌륭하며 청정한 ‘온갖 종류의 단멸[一切種斷]’을 증득하신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 무외는 자리(自利)의 덕을 의지한다.
016_0030_c_19L無畏者謂四無畏廣說如經佛作誠言我是正等覺者若有難言於是法中不正等覺我於此難正見無緣是故無畏謂如來證得妙善淸淨一切種智故佛作誠言我諸漏已盡若有難言如是如是諸漏未盡我於此難正見無緣是故無畏謂如來證得妙善淸淨一切種斷故此二無畏依自利德
셋째는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진실한 말씀으로 “내가 제자들을 위해 장애가 되는 법을 말하여 ‘염오(染汚)는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되, 만일 어떤 이가 힐난하여 ‘염오라 하더라도 이 법을 익히면 능히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이런 힐난에 대해서 바르게 보며 반연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런 까닭에 ‘두려움이 없음’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여래께서 교화할 유정을 위해 온갖 종류의 다스려지는 법을 말씀하시는 것에 의한다.
넷째는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진실한 말씀으로 “내가 제자들을 위해 벗어나는 도를 말하여 ‘선정을 닦아 벗어나라.’고 하되, 만일 어떤 이가 힐난하여 ‘비록 이 도를 닦더라도 능히 벗어나지 못하며, 괴로움을 바르게 없애거나 괴로움의 끝을 증득하지 못한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이런 힐난에 대해서 바르게 보며 반연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런 까닭에 ‘두려움이 없음’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여래께서 교화할 중생을 위해 온갖 종류의 능히 다스리는 법을 말씀하시는 것에 의한다.
이 두 가지 무외는 이타(利他)의 덕에 의지한다.
016_0031_a_05L佛作誠言我爲弟子說障㝵法染必爲障若有難言染習此法不能爲障我於此難正見無緣故無畏謂依如來爲所化有情說一切種所對治法佛作誠言我爲弟子說出離道修定出離若有難言修此道不能出離不正盡苦及證苦我於此難正見無緣是故無畏依如來爲所化有情說一切種能對治法此二無畏依利他德
‘두호하지 않음[不護]’이란 3불호68)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첫째는 여래께서 현행(現行)하는 신업이 미묘하고 선(善)하며 청정하여 청정하지 않음이 없어서 현행하는 신업을 모름지기 덮고 감출 수가 있다. 이런 까닭에 ‘두호하지 않음’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온갖 종류로 항상 신업이 미묘하고 선하며 청정하기 때문에, 교화할 중생들을 위해 바로 설법하실 때에 능히 뛰어난 힘으로써 온갖 무리들을 항복시키고 섭수하는 것이다.
신업을 두호하지 않음과 같아서 그와 같이 둘째는 어업(語業)을 두호하지 않고, 셋째는 의업(意業)을 두호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016_0031_a_14L不護者謂三不護廣說如經如來現行身業妙善淸淨無不淸淨現行身業可須覆藏是故不護謂如來一切種一切時身業妙善淸淨故爲所化有情正說法時能以勝力折伏攝受一切徒衆如身業不護如是第二語業不護第三意業不護應知
‘염주(念住)’는 3념주69)를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이것은 곧 교화할 중생들을 섭수할 때에, 세 가지 무리의 행동 차이에 대해서 가장 뛰어난 평정[捨]인 애착하지 않음ㆍ성내지 않음ㆍ잡염되지 않는 마음의 성품에 머무르는 것이다.
016_0031_a_21L念住者謂三念住廣說如經此卽攝受所化衆時於三種徒衆行差別中住最勝捨不愛不恚不染心性
016_0031_b_01L‘모든 습기를 영원히 끊음’이란, 여래께서 아득한 옛적부터의 한량없고 수많은 대겁(大劫)의 생사를 벗어나서 자성을 증득하며, 좇아서 유전하지 않기 때문에 여래의 미묘하고 청정한 지혜로 단멸함을 증득하신 것을 말한다.
또한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31_b_01L永斷諸習氣者謂諸如來出離無始無量無數大劫生死爲證自性不隨轉故證得如來妙淨智斷復次頌曰

잃어버림이 없는 미묘한 법
그리고 여래의 대비(大悲)이며
부처님의 불공덕(不共德)의 법과
온갖 종류의 미묘한 지혜[一切種妙智]이네.
016_0031_b_04L無忘失妙法
及如來大悲
佛不共德法
一切種妙智

논하여 말한다. ‘잃어버림이 없는 미묘한 법’이란 다음과 같다. 온갖 종류의 교화할 모든 유정에게 베풀어야 할 온갖 일들이 그 시기를 놓치지 않음을 증득하기 위한 까닭에, 여래의 미묘하고 청정한 지혜로 단멸하는 것을 증득함을 말한다.
016_0031_b_06L論曰無忘失妙法者謂爲證一切種一切所化有情一切所作事不過時證得如來妙淨智斷
‘그리고 여래의 대비’란 네 가지 인연 때문에 ‘대비’라고 이름한다. 첫째는 온갖 종류의 미묘하고 선하며 청정한 전의(轉依)에 의지하여, 베풀어야 할 바가 성취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오랜 기간동안 닦아 익혀서 얻는 바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미묘하고 선하며 청정한 지혜로 이끄는 바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아주 깊고 견고하며 갖가지 견고한 온갖 양상의 괴로움의 경계를 반연하기 때문이다.
016_0031_b_09L及如來大悲者謂如來悲由四種因緣說名大悲依止一切種妙善淸淨轉依所作成就故長時修習所得故妙善淸淨智所引故緣極深固種種堅牢一切相苦境界故
‘부처님의 불공덕(不共德)의 법’이란 18불공불법(不共佛法)을 말한다. 자세한 설명은 경전에서와 같다. 일체의 성문ㆍ독각의 경지를 벗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건립함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여래에게 그릇된 허물의 업이 없는 것이니, 염오되지 않아서 그릇되게 범하는 허물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갑자기 사나운 소리를 내는 일이 없는 것이니, 염오되지 않아서 크게 웃거나 함부로 소리를 지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기억을 잃어버림이 없는 것이니, 염오되지 않아서 오랫동안 짓거나 오랫동안 설함에도 좇아서 기억하지 못함이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선정이 아닌 마음이 없는 것이니, 온갖 위의(威儀)와 다니고 머무는 일 등에서 작의(作意)하여 등지(等持)를 항상 따라서 전전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갖가지 상념이 없는 것이니, 유전(流轉)과 적멸에 대하여 분별없고 차별이 없는 지혜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선택하지 않고 버림이 없는 것이니, 궁극적으로 유정의 일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016_0031_b_14L佛不共德法者謂十八不共佛法說如經超過一切聲聞獨覺地故建立應知如來無誤失業謂無不染污誤犯失故無卒暴音謂無不染污高笑暴音故無忘失念謂無不染污久作久說不隨念故無不定心謂於一切威儀行住等中作意等持恒隨轉故無種種想謂於流轉寂滅中證得無分別無差別智故無不擇已捨謂究竟不捨有情事故
016_0031_c_01L일곱째는 의욕에 퇴전이 없는 것이니, 소지장(所知障)의 청정을 얻었기 때문이다. 의욕에 퇴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와 같이 여덟째는 정근(正勤)에 퇴전이 없고, 아홉째는 기억함에 퇴전이 없으며, 열째는 등지에 퇴전이 없고, 열한째는 지혜에 퇴전이 없으며, 열두째는 해탈ㆍ해탈지견(解脫智見)에 퇴전이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열셋째는 과거세에 대하여 집착이 없고 걸림 없는 지혜이니, 작의하려고 할 적에 곧 온갖 종류를 다 알기 때문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와 같이 열넷째는 미래에 대해서이고, 열다섯째는 현재에 대해서 집착이 없고 걸림 없는 지혜임을 알아야 한다. 열여섯째는 여래의 온갖 신업(身業)에는 지혜가 길잡이가 되어 지혜를 따라서 행하나니, 지혜가 일어남으로 인하여 언제나 훌륭한 방편을 섭수하기 때문이다. 신업과 마찬가지로 그와 같이 열일곱째 어업(語業)과, 열여덟째 의업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016_0031_c_01L欲無退謂得所知障淸淨故如欲無退如是八正勤無退九念無退等持無退十一慧無退十二解脫解脫智見無退應知十三於過去世無著無㝵智謂欲作意頃一切種知故如於過去如是十四於未來十五於現在無著無㝵智應知十六如來一切身業智爲導首隨智而行謂由智發起攝受於一切時善方便故如身如是十七語業十八意業應知
‘미묘한 일체종지(一切種智)’란 여래의 최고로 지극히 청정한 지혜로 단멸함을 증득하기 때문이다. 염오법ㆍ청정법의 온갖 종류ㆍ수(數)의 양상 차별에 대해서 걸림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나아가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또한 여래께서 무루계(無漏界)에 머무시어 모든 유정들에게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한 까닭에, 시방 국토에서 부처님이 탄생하심을 보이고, 몸을 나투어 말씀하시며, 마음에 행하는 바가 있고 널리 말씀하는 바가 있으며,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하고, 미묘한 법륜을 굴리며, 대적멸에 들어가는 것에 걸림 없는 지혜의 성품이며, 나아가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이니, 이것도 역시 ‘미묘한 일체종지’라고 이름한다.
016_0031_c_11L一切種妙智者謂證得如來最極淸淨智斷故謂於染污淸淨二法一切種數相差別中無㝵智性及彼相應等持諸心心法又復如來住無漏界作一切有情所作事故於十方土佛生有現身言說心有所行有所宣成等正覺轉妙法輪入大寂滅㝵智性及彼相應等持諸心心法亦名爲一切種妙智
또한 상호(相好) 등 모든 부처님의 공덕에 관하여 경전의 뜻을 해석하여 간략히 설명했거니와, 만일 자세히 분별한다면 「보살지(菩薩地) 」70)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상과 같이 아홉 가지 사실[九事]을 개별적으로 설명했다. 이제 종합적으로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31_c_20L又相好等諸佛功德爲釋經義略已示現若廣分別如『菩薩地』應知如是已別說九事摠分別今當說頌曰
016_0032_a_01L
마땅히 알라. 앞의 아홉 가지 사실에서
처음은 두 가지의 의지처가 되고
다음의 두 가지와 뒤의 여섯 가지는
잡염과 청정을 포섭하네.
016_0031_c_23L當知前九事
初爲二所依
次二後六種
攝雜染淸淨

잡염의 의지처와 차별 때문이고
청정의 반연할 바이기 때문이며
마음이 산란되게 흐르지 않기 때문이고
바르게 닦는 방편이기 때문이네.
016_0032_a_02L染依差別故
淸淨所緣故
心不流散故
正修方便故

그 지위의 차별이기 때문이고
언설 등의 원인이기 때문이며
그 증과의 공덕이기 때문이니
수(數)의 순서가 오직 그러하네.
016_0032_a_03L彼位差別故
言說等因故
彼果功德故
數次第唯爾

논하여 말한다. 앞에서 말한 아홉 가지 사실[九事] 중에서 ‘처음’의 ‘일체의 사실[一切事]’은 두 가지의 의지처가 되나니, 첫째는 잡염의 의지처이고, 둘째는 청정의 의지처이다.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의거해서 모든 잡염을 포섭하나니, 첫째는 ‘계(界)의 사실[事]’에 의거하고, 둘째는 ‘잡염의 사실’에 의거한다.
‘뒤의 여섯 가지 사실’에 의거해서 모든 청정을 포섭하나니, 첫째는 ‘진리[諦]의 사실’에 의거하고, 둘째는 ‘의지(依止)의 사실’에 의거하며, 셋째는 ‘각분(覺分)의 사실’에 의거하고, 넷째는 ‘중생의 사실’에 의거하며, 다섯째는 ‘증과의 사실에 의거하고, 여섯째는 ‘공덕의 사실’에 의거한다.
‘두 가지 사실에 의거해서 잡염을 포섭하는 것’에서는 잡염의 의지처이기 때문이고, 잡염의 차별이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사실에 의거해서 청정을 포섭하는 것’에서는 청정의 경계이기 때문이고, 경계에 대해서 마음이 산란되게 흐르지 않기 때문이며, 반연할 바의 경계에 대해서 산란되지 않고 바른 방편이기 때문이다.
016_0032_a_04L論曰前九事中初一切事爲二所依一雜染所依二淸淨所依由次二事攝諸雜染一由界事二由雜染事後六事攝諸淸淨一由諦事二由依止事三由覺分事四由衆生事五由果事六由功德事由二種事攝雜染雜染所依故雜染差別故由六種事攝淸淨中淸淨境界故於境界中心不流散故由不散亂於所緣境方便故
‘바른 방편’이란 지위의 차별이기 때문이고, 언설 등의 원인이기 때문이며, 바른 방편의 증과이기 때문이고, 그 증과의 공덕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지위의 차별이기 때문’과 ‘언설 등의 원인이기 때문’의 이 두 가지는 중생의 사실을 건립한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언설 등의 원인이기 때문’이란 말로 설명함이 쉽기 때문이고, 세간에 수순하기 때문이며,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때문이고, 자기와 남의 공덕과 허물을 성취함을 믿고 알도록 하기 위한 때문이다.
이 인연으로 인하여 이 아홉 가지 사실의 수(數)를 결정한 것이며, 나아가 순서를 결정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아홉 가지 일을 사량하려면 또한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한다.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32_a_14L正方便者位差別故及言說等因故正方便果故彼果功德故中位差別故言說等因故此二建立衆生事應知言說等因故者爲言說易故爲隨順世閒故爲避怖畏故令信知自他功德過惡成就故由是因緣此九種事數決定及次第決定應知爲欲思量如此九事復應廣說頌曰

생각하거나 헤아리려고 한다네. 한량없는
여러 문답의 차별을
부처님의 모든 말씀 그것은
사실[事]과 생각[想]에 포섭되네.
016_0032_a_22L欲思量無量
諸問答差別
由諸佛語言
事與想攝故
016_0032_b_01L
논하여 말한다. ‘만약 이상과 같은 아홉 가지 사실의 한량없는 문답의 차별을 사량하고자 하면’이란 다음과 같다. 두 가지 포섭에 의거해서 마땅히 사량할 수 있다. 첫째는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사실[事]에 포섭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생각[想]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사실에 포섭됨’이란 세 가지 경전에 의거함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증십경(增十經)』에 의거하고, 둘째는 『광의경(廣義經)』에 의거하며, 셋째는 『집이문경(集異門經)』에 의거한다.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생각[想]에 포섭됨’이란 네 가지 올타남(嗢拕南)71)의 가타(伽他)72)에 의거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32_b_01L論曰若欲思量如上九事無量問答差別者由二種攝故應可思量一由一切佛語言事攝故二由一切佛語言想攝故此中一切佛語言事攝者謂由三種經應知一由增十經二由廣義經三由集異門經一切佛語言想攝者由四種嗢拕南伽他何者爲四?頌曰

문구[句]와 미혹과 희론(戱論)이며
머무름[住]과 진실과 청정과 미묘함과
고요함[寂靜]과 성품과 도리이며
임시로 시설함과 현관(現觀)이네.
016_0032_b_09L迷惑戲論
眞實
寂靜道理
假施設現觀

방소(方所)와 상태[位]와 분별과
지음[作]과 집지(執持)와 증가[增]ㆍ감소[減]이고
어둠[闇]과 말씀[語]과 깨달아야 할 바[所覺]와 상품[上]이며
멀리 떠남[遠離]과 유전[轉]과 감추고 지킴[藏護]이네.
016_0032_b_11L方所分別
執持
所覺
遠離藏護

간택(揀擇)과 현행과
수면(睡眠)과 상속(相屬)과
온갖 양상의 포섭과 상응이며
말[說]과 임지(任持)와 순서이네.
016_0032_b_12L簡擇與現行
睡眠及相屬
諸相攝相應
任持次第

해야 할 바와 경계와 유가(瑜伽)와
사마타(奢摩他)와 관찰[觀]이며
모든 작의(作意)와 교수(敎授)와
덕과 보리와 성교(聖敎)이네.
016_0032_b_13L所作瑜伽
奢摩他與觀
諸作意教授
菩提聖教

논하여 말한다. ‘문구[句]’란 이른바 6처(處)의 한량없는 경계와 한량없는 방소와 한량없는 시설이다.
또한 세 가지 세계가 있나니 첫째는 욕계이고, 둘째는 색계이며, 셋째는 무색계이다.
또한 세 가지 세계가 있나니 첫째는 소천세계(小千世界)이고, 둘째는 중천세계이며, 셋째는 대천세계이다.
또한 네 가지 무리가 있나니 첫째는 재가(在家)의 무리이고, 둘째는 출가의 무리이며, 셋째는 오파색가(鄔波索迦)의 무리이고, 넷째는 사람이 아닌 무리이다.
016_0032_b_15L論曰句者所謂六處無量境界無量方所無量時節復有三界一欲界色界三無色界復有三界一小千世二中千世界三大千世界復有四一在家輩二出家輩三鄔波索迦四非人輩
016_0032_c_01L또한 세 가지 느낌[三受]이 있나니 괴로움의 느낌ㆍ즐거움의 느낌ㆍ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느낌이다.
또한 3세(世)가 있나니 과거세ㆍ미래세ㆍ현재세를 말한다.
또한 세 가지 보배[三寶]가 있나니 불보ㆍ법보ㆍ승보를 말한다.
또한 세 가지 법이 있나니 선법(善法)ㆍ불선법(不善法)ㆍ무기법(無記法)을 말한다.
또한 세 가지 잡염이 있나니 번뇌의 잡염ㆍ업의 잡염ㆍ태어남의 잡염을 말한다.
또한 네 가지 거룩한 진리가 있나니 고성제(苦聖諦)ㆍ집성제(集聖諦)ㆍ멸성제(滅聖諦)ㆍ도성제(道聖諦)를 말한다.
016_0032_b_21L復有三受謂苦受樂受不苦不樂受復有三世謂過去世來世現在世復有三寶謂佛寶法寶僧寶復有三法謂善法不善法無記復有三種雜染謂煩惱雜染業雜生雜染復有四聖諦謂苦
또한 아홉 가지 순서의 선정[九次第定]이 있나니 초정려(初靜慮) 나아가서는 멸수상정(滅受想定)을 말한다.
또한 37보리분법(菩提分法)이 있나니 4념주(念住)ㆍ4정단(正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성도지(聖道支)를 말한다.
또한 네 가지 사문의 증과가 있나니 예류과(預流果)ㆍ일래과(一來果)ㆍ불환과(不還果)와 가장 수승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말한다.
또한 가장 수승한 공덕이 있나니 한량없는 해탈ㆍ승처(勝處)ㆍ변처(遍處)ㆍ무쟁(無諍)ㆍ원지(願智)ㆍ무애변(無㝵辯)ㆍ6신통 등을 말한다.
016_0032_c_03L復有九次第定謂初靜慮乃至滅受想定復有三十七菩提分法謂念住正斷神足覺支道支復有四種沙門果謂預流果一來果不還果勝阿羅漢果復有衆多最勝功德無量解脫勝處遍處無諍願智無㝵六神通等
또한 널리 교법[乘]에 의지하여 다섯 가지 일[事]이 있나니, 첫째는 양상[相]이고, 둘째는 명칭[名]이며, 셋째는 분별이고, 넷째는 진여이며, 다섯째는 정지(正智)이다.
또한 두 가지 공의 성품이 있나니 첫째는 중생의 공한 성품이고, 둘째는 법의 공한 성품이다.
또한 두 가지 무아의 성품이 있나니 첫째는 중생의 무아의 성품이고, 둘째는 법의 무아의 성품이다.
또한 두 가지 끝을 멀리 여읜 중도의 행이 있나니 증익(增益) 쪽과 손감(損減) 쪽을 멀리 여읜 것을 말한다.
또한 네 가지 진실이 있나니 첫째는 세간이 이루는 바이고, 둘째는 도리가 이루는 바이며, 셋째는 번뇌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곳이고, 넷째는 소지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곳이다.
또한 네 가지 심사(尋思)가 있나니 명칭에 대한 심사[名尋思], 사물에 대한 심사, 자성가립에 대한 심사, 차별가립에 대한 심사를 말한다.
016_0032_c_10L復依廣乘有五種事二名三分別四眞如五正智復有二種空性一衆生空性二法空性有二種無我性一衆生無我性二法無我性復有遠離二邊處中之行遠離增益邊及損減邊復有四種眞一世閒所成二道理所成三煩惱障淨智所行處四所知障淨智所行復有四種尋思謂名尋思事尋思自性假立尋思差別假立尋思
016_0033_a_01L또한 네 가지 여실변지(如實遍智)가 있나니, 명칭에 대한 심사에서 이끌어진 것에 대한 여실변지, 사물에 대한 심사에서 이끌어진 것에 대한 여실변지, 자성가립에 대한 심사에서 이끌어진 것에 대한 여실변지, 차별가립에 대한 심사에서 이끌어진 것에 대한 여실변지를 말한다.
또한 세 가지 자성이 있나니 첫째는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이고, 둘째는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이며, 셋째는 원성실자성이다.
또한 세 가지 자성이 없는 성품이 있나니 첫째는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이고, 둘째는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이며, 셋째는 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이다.
또한 다섯 가지 양상의 대보리가 있나니, 자성이기 때문이고, 공용(功用)이기 때문이며, 방편이기 때문이고, 유전(流轉)이기 때문이며, 환멸(還滅)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섯 가지 대승(大乘)이 있나니 첫째는 종자이고, 둘째는 들어감[趣入]이며, 셋째는 순서이고, 넷째는 바른 전환이며, 다섯째는 바른 전환의 증과이다. 말하자면 최초에 발심하기 때문이고, 모든 유정에게 대비를 일으키기 때문이며, 바라밀다이기 때문이고, 포섭하는 일이기 때문이며, 자신과 남의 상속(相續)이 성숙되기 때문이다.
016_0032_c_19L復有四種如實遍智謂名尋思所引如實遍智事尋思所引如實遍智自性假立尋思所引如實遍智差別假立尋思所引如實遍智復有三種自性遍計所執自性二依他起自性三圓成實自性復有三種無自性性一相無自性性二生無自性性三勝義無自性性復有五相大菩提謂自性故功用故方便故轉故還故復有五種大乘一種子二趣入三次第四正轉五正轉果謂最初發心故於諸有情起大悲故波羅蜜多故攝事故自他相續成熟故
또한 다섯 가지 한량없다는 생각이 있나니, 첫째는 유정계가 한량없다는 생각이고, 둘째는 세계가 한량없다는 생각이며, 셋째는 법계가 한량없다는 생각이고, 넷째는 조복해야 할 세계가 한량없다는 생각이며, 다섯째는 조복해야 할 방편 세계가 한량없다는 생각이다.
또한 진실한 이치로 좇아서 이르는 것이 있나니, 온갖 한량없는 법 중에서 좇아서 이르는 진여 및 이 가운데의 지혜이다.
또한 불가사의한 위덕과 신해(信解)가 있고, 또한 장애 없는 지혜가 있으며, 또한 서른 두 가지의 대장부 형상과 80가지 수형호(隨形好)가 있고, 또한 네 가지 온갖 양상의 청정이 있다. 10력(力), 4무소외(無所畏), 3염주(念住), 3불호(不護), 대비(大悲), 잃어버림이 없는 법, 습기를 영원히 끊음, 미묘한 일체종지(一切種智)가 있다.
이상과 같이 말한 것은 대략 오직 두 가지이니, 첫째는 성문승에서 해석하는 문구이고, 둘째는 대승에서 해석하는 문구이다.
016_0033_a_09L復有五無量想一有情界無量想二世界無量想三法界無量想四所調伏界無量想五所調伏方便界無量想復有眞實義隨至於一切無量法中隨至眞如及此中復有不思議威德信解復有無障閡智復有三十二大丈夫相及八十種隨形好復有四種一切相淸淨四無所畏三念住三不護大悲忘失法永斷習氣一切種妙智如上所說略唯二種一聲聞乘中所釋句二大乘中所釋句
‘미혹(迷惑)’이란 네 가지 뒤바뀜[四顚倒]73)를 말한다. 첫째는 무상에 대해서 항상함이라고 여기는 뒤바뀜이고, 둘째는 괴로움에 대해서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뒤바뀜이며, 셋째는 청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청정함이라고 여기는 뒤바뀜이고, 넷째는 무아(無我)에 대해서 자아[我, ātman]라고 여기는 뒤바뀜이다.
‘희론(戱論)’이란 모든 번뇌, 잡염된 번뇌, 모든 온(薀)을 말한다.
016_0033_a_20L迷惑者謂四顚倒一於無常中計常顚倒二於苦中樂顚倒三於不淨中計淨顚倒四於無我中計我顚倒戲論者謂諸煩惱及雜煩惱諸薀
016_0033_b_01L‘머무름[住]’이란 4식주(識住)74)와 7식주(識住)75)를 말한다.
‘진실’이란 진여와 사성제를 말한다.
‘청정’이란 세 가지 청정한 성품을 말하나니, 첫째는 자체의 청정한 성품이고, 둘째는 경계의 청정한 성품이며, 셋째는 계위(階位)의 청정한 성품이다.
‘미묘함’이란 이른바 3보(寶)의 자리에서 수승하게 건립하기 때문에 ‘미묘함’이라 이름한다.
‘고요함[寂靜]’이란 스스로 착한 법을 하고자 하는 의욕과 나아가 온갖 보리분법, 그리고 증득된 과위이니, 모두 ‘고요함’이라고 이름한다.
‘성품’이란 모든 법의 양상 즉 자체적인 양상[自相]이나 공통적인 양상[共相]이나 가립된 양상이나 원인의 양상이나 결과의 양상이니, 총괄적으로 ‘성품’이라고 이름한다.
‘도리’란 모든 연기(緣起)와 네 가지 도리76)를 말한다.
‘임시로 시설함’이란 오직 법에 대해서 중생을 가립하고, 오직 양상에 대해서 모든 법을 가립함을 말한다.
‘현관(現觀)’이란 여섯 가지 현관을 말함이니, 앞으로 「성현관품(成現觀品) 」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다.
016_0033_b_01L住者謂四識住及七識住眞實者謂眞如及四聖諦淨者謂三種淨性一自體淨性二境界淨三階位淨性妙者所謂三寶處勝建立故名爲妙寂靜者謂自善法欲乃至一切菩提分法及所證果皆名寂靜性者謂諸法相若自相若共相若假立相若因相若果相摠名爲性道理者謂諸緣起及四道理假施設謂唯於法假立衆生及唯於相立諸法現觀者謂六種現觀如成現觀品當說
‘방소(方所)’란 이른바 색온(色薀)이다. ‘상태[位]’77)란 이른바 수온(受薀)이다. ‘분별’이란 이른바 상온(想薀)이다. ‘지음[作]’이란 모든 행온(行薀)을 말한다. ‘집지(執持)’란 이른바 식온(識薀)이다.
‘증가[增]’는 이에 두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번뇌의 증가이고, 둘째는 업의 증가이다. ‘증가’와 마찬가지로 ‘감소[減]’도 역시 두 가지가 있나니, 번뇌의 감소와 업의 감소이다.
‘어둠[闇]’이란 무명과 의혹을 말한다.
‘말씀[語]’이란 12(分)의 어취(語趣)로 설명하는 것이니, 이것을 ‘말씀’이라 이름한다.
‘깨달아야 할 바[所覺]’란 갖가지로 설해진 법과 의미이니, 이것을 ‘깨달아야 할 바’라고 이름한다.
‘상품[上]’이란 사문의 증과를 말한다.
‘멀리 여읨[遠離]’이란 다섯 가지 멀리 여위는 것을 말한다. 첫째는 악행을 멀리 여의는 것이고, 둘째는 음욕을 멀리 여의는 것이며, 셋째는 온갖 도구를 멀리 여의는 것이고, 넷째는 모임을 멀리 여의는 것이며, 다섯째는 번뇌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
‘유전[轉]’이란 이른바 삼계와 5취(趣)78)이다.
‘감추고 지킴[藏護]’이란 이른바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희구하며 현재에 집착하는 것이다.
016_0033_b_12L方所者所謂色薀位者所謂受薀別者所謂想薀作者謂諸行薀執持所謂識薀增者此有二種應知煩惱增二業增如增減亦二種謂煩惱減業減闇者謂無明語者謂十二分語趣說名爲語所覺者謂種種所說法義名爲所覺上者謂沙門果遠離者謂五種遠離一惡行遠離婬欲遠離三衆具遠離四聚會遠離五煩惱遠離轉者所謂三界及與五藏護者所謂戀過去希未來著現在
016_0033_c_01L‘간택(揀擇)’이란 이른바 일행(一行)의 순전구(順前句)ㆍ순후구(順後句), 사구(事句)ㆍ무사구(無事句), 색법(色法)ㆍ비색법(非色法), 유견색(有見色)ㆍ무견색(無見色), 유대색(有對色)ㆍ무대색(無對色), 유루(有漏)ㆍ무루(無漏), 유위(有爲)ㆍ무위(無爲), 유쟁(有諍)ㆍ무쟁(無諍), 맛들여 집착함이 있음ㆍ맛들여 집착함이 없음, 탐내어 즐김에 의한 것ㆍ벗어남에 의한 것, 세간ㆍ출세간, 포섭함ㆍ포섭하지 않음, 내부ㆍ외부, 거치름[麤]ㆍ미세한 것, 수승함ㆍ열등함, 먼 것ㆍ가까운 것, 반연할 바가 있음ㆍ반연할 바가 없음, 상응ㆍ불상응, 행이 있음ㆍ행이 없음, 의지처[所依]가 있음ㆍ의지처가 없음, 원인ㆍ원인 아닌 것, 결과ㆍ결과 아닌 것, 이숙(異熟)ㆍ이숙 아닌 것, 원인이 있음ㆍ원인이 없음, 결과가 있음ㆍ결과가 없음, 이숙이 있음ㆍ이숙이 없음, 집수(執受)가 있음ㆍ집수가 없음, 4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것ㆍ사대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 동분(同分)ㆍ그것의 동분, 위가 있음ㆍ위가 없음, 과거ㆍ미래ㆍ현재, 선(善)ㆍ불선ㆍ무기(無記), 욕계의 계박[欲繫]ㆍ색계의 계박[色繫]ㆍ무색계의 계박[無色繫], 유학(有學)ㆍ무학(無學)ㆍ유학도 아니고 무학도 아님, 견단(見斷)ㆍ수단(修斷)ㆍ무단(無斷)이다.
016_0033_b_23L簡擇者所謂一行順前句順後句無事句色法非色法有見無見對無對有漏無漏有爲無爲有諍無有味著無味著依耽嗜依出離閒出世閒攝屬不攝屬內外麤細遠近有所緣無所緣相應不相應有行無行有所依無所依因非因非果異熟非異熟有因無因有果無有異熟無異熟有執受無執受大種造非四大種造同分彼同分上無上過去未來現在善不善無記欲繫色繫無色繫學無學非學非無見斷修斷無斷
다시 4연(緣)79)이 있으니 첫째는 인연(因緣)80)이고, 둘째는 등무간연(等無間緣)81)이며, 셋째는 소연연(所緣緣)82)이고, 넷째는 증상연(增上緣)83)이다.
다시 4의(依)84)가 있으니 첫째는 법에 의지하고 중생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뜻에 의지하고 글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지혜에 의지하고 식(識)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4무량, 4염주(念住), 4정단(正斷), 4신족(神足), 5근(根), 5력(力), 7변각지(遍覺支), 8성도지(聖道支), 4종행(種行)85), 4법적(法迹), 사마타(奢摩他), 비발사나(毗鉢舍那), 증상계(增上戒), 증상심(增上心), 증상혜(增上慧), 해탈, 승처(勝處), 변처(遍處) 등이 있다.
016_0033_c_13L復有四緣一因緣二等無閒緣三所緣緣四增上緣有四依一依法不依衆生二依義不依文三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依智不依識復有四無量四念住正斷四神足五根五力七遍覺支聖道支四種行四法迹奢摩他毘鉢舍那增上戒增上心增上慧解脫遍處等
‘현행(現行)’이란 번뇌의 전(纏)86)을 말한다. ‘수면(睡眠)’이란 번뇌의 수면(隨眠)을 말한다.
016_0033_c_21L現行者謂煩惱纏睡眠者謂煩惱隨眠
016_0034_a_01L‘상속(相屬)’이란 이른바 6처(處)이니, 동일한 의지로서 서로 속한다고 알아야 한다. 또한 모든 법이 능히 법을 이끌어 포섭함이 있으니, 그것도 역시 전전히 상속함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한 모든 감관ㆍ경계가 능취(能取)ㆍ소취(所取)의 상속임을 알아야 한다.
‘온갖 양상의 포섭’에는 열한 가지 양상의 포섭이 있다. 첫째는 번갈아 서로 포섭함이고, 둘째는 계의 포섭[界攝]이며, 셋째는 양상의 포섭[相攝]이고, 넷째는 종류의 포섭[種類攝]이며, 다섯째는 분위의 포섭[分位攝]이고, 여섯째는 서로 여의지 않는 포섭이며, 일곱째는 시간의 포섭[時攝]이고, 여덟째는 방위의 포섭[方攝]이며, 아홉째는 일부분의 포섭[一分攝]이고, 열째는 전체의 포섭[全分攝]이며, 열한째는 승의의 포섭[勝義攝]이다.
016_0033_c_22L相屬者所謂六處同一依止相屬應知復有諸法能引攝法彼亦展轉相屬應知復有諸根能取所取相屬應知諸相攝者有十一種相攝一更互攝二界攝三相攝四種類攝五分位攝六不相離攝時攝八方攝九一分攝十全分攝一勝義攝
‘상응’이란 이른바 다섯 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다른 성품과 상응하여 ‘자성이 아닌 것’이고, 둘째는 다른 성품과 상응하는 것 중에서 상위(相違)하지 않는 법과 상응하여 ‘상위가 아닌 법’이며, 셋째는 상위하지 않는 법에 상응하는 것 중에서 하품(下品)ㆍ중품ㆍ상품으로 비슷하게 상응하여 ‘비슷하지 않음이 아닌 것’이고, 넷째는 하품ㆍ중품ㆍ상품으로 비슷하게 상응하는 것 중에서 동시에 상응하여 ‘동시가 아님이 아닌 것’이며, 다섯째는 동시에 상응하는 것 중에서 같은 경지에서 상응하여 ‘같은 경지가 아님이 아닌 것’이다.
016_0034_a_06L相應者所謂五種應知與他性相應非自性二於他性相應與不相違法相應非相違法三於不相違相應中上品相似相應非不相似四於下上品相似相應同時相應非不同時五於同時相應中同地相應非不同地
‘말[說]’이란 이른바 네 가지 언설이다. 첫째는 본 것을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들은 것을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감각한 것을 말하는 것이고, 넷째는 지각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87)
‘임지(任持)’란 이른바 4식(食)88)이니, 첫째는 단식(段食)이고, 둘째는 촉식(觸食)이며, 셋째는 의사식(意思食)이며, 넷째는 식식(識食)이다.
‘순서[次第]’란 이른바 다섯 가지 순서이니, 첫째는 유전(流轉)의 순서이고, 둘째는 해야 할 바를 성취함의 순서이며, 셋째는 설함의 순서이고, 넷째는 생겨남의 순서이며, 다섯째는 현관(現觀)의 순서이다.
016_0034_a_12L說者所謂四種言說一見言說二聞言說三覺言說四知言說任持者所謂四種食一段食二觸食三意思食四識食第者所謂五種次第一流轉次第成所作次第三說次第四生次第現觀次第
016_0034_b_01L‘해야 할 바[所作]’란 여덟 가지 해야 할 바를 말한다. 첫째는 의지(依止)의 소멸이고, 둘째는 의지의 전환이며, 셋째는 변지(遍知)의 반연할 바이고, 넷째는 희락(喜樂)의 반연할 바이며, 다섯째는 과위를 얻음이고, 여섯째는 욕망을 여읨이며, 일곱째는 감관을 전환함이고, 여덟째는 신통을 일으킴이다.
‘대상[境]’이란 네 가지 인식대상[所緣]을 말한다. 첫째는 두루함의 인식대상이고, 둘째는 행으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는 인식대상이며, 셋째는 뛰어난 방편의 인식대상이고, 넷째는 번뇌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는 인식대상이다.
‘유가(瑜伽)’ 이것은 혹은 네 가지이고 혹은 아홉 가지이다. 네 가지란 첫째는 믿음이고, 둘째는 의욕[欲]이며, 셋째는 바른 노력[正勤]이고, 넷째는 방편이다. 아홉 가지란 첫째는 세간도(世間道)이고, 둘째는 출세간도이며, 셋째는 방편도(方便道)이고, 넷째는 무간도(無間道)이며, 다섯째는 해탈도이고, 여섯째는 승진도(勝進道)89)이며, 일곱째는 하품도(下品道)이고, 여덟째는 중품도(中品道)이며, 아홉째는 상품도(上品道)이다.
‘사마타(奢摩他)’란 아홉 가지 심주[九種心住]를 말한다.
016_0034_a_18L所作者謂八種所作一依止滅二依止轉三遍知所緣四喜樂所緣五得果六離欲七轉根八發起神通境者謂四種所緣一遍所緣令行淨所緣三善巧所緣四令煩惱淨所緣瑜伽者此或四種或九種種者一信二欲三正勤四方便九種一世閒道二出世閒道三方便道四無閒道五解脫道六昇進道七下品道八中品道九上品道奢摩他者謂九種心住
‘관찰[觀]’이란 세 가지 일의 관찰[事觀]을 말하고, 혹은 네 가지 관찰을 말하며, 혹은 여섯 가지 일의 차별된 소연(所緣)을 관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세 가지 일의 관찰이란 첫째는 유상관(有相觀)이고, 둘째는 심구관(尋求觀)이며, 셋째는 심찰관(審察觀)90)이다. 네 가지란 첫째는 온갖 법을 간택(簡擇)하는 관찰이고, 둘째는 온갖 법을 지극히 간택하는 관찰이며, 셋째는 두루 셈하고 헤아리는 관찰이고, 넷째는 두루 심찰하는 관찰이다. 여섯 가지 일의 차별된 인식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란 첫째는 의소연관(義所緣觀)이고, 둘째는 사소연관(事所緣觀)이며, 셋째는 상소연관(相所緣觀)이고, 넷째는 분소연관(分所緣觀)이며, 다섯째는 시소연관(時所緣觀)이고, 여섯째는 도리소연관(道理所緣觀)이다.
016_0034_b_05L觀者謂三種事觀或四種觀或六事差別所緣觀應知三事觀者一有相觀二尋求觀三審察觀四種者一簡擇諸法觀二極簡擇諸法觀三遍籌量觀四遍審察觀六事差別所緣觀者一義所緣觀二事所緣觀三相所緣觀四分所緣觀五時所緣觀六道理所緣觀
‘모든 작의(作意)’란 일곱 가지 작의를 말한다. 첫째는 양상을 요달함의 작의이고, 둘째는 승해(勝解)의 작의이며, 셋째는 멀리 여읨의 작의이고, 넷째는 즐거움을 섭수하는 작의이며, 다섯째는 관찰함의 작의이고, 여섯째는 방편 구경(究竟)의 작의이며, 일곱째는 방편 구경의 증과인 작의이다.
‘교수(敎授)’란 다섯 가지 교수를 말한다. 첫째는 가르침의 교수이고, 둘째는 증득의 교수이며, 셋째는 순서를 따르는 교수이고, 넷째는 뒤바뀜이 없는 교수이며, 다섯째는 신통 변화의 교수이다.
‘덕(德)’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무량ㆍ해탈 등91) 온갖 공덕법이다.
016_0034_b_12L諸作意者七種作意一了相作意二勝解作意三遠離作意四攝樂作意五觀察作六方便究竟作意七方便究竟果作意教授者謂五種教授一教教授二證教授三隨次教授四不顚倒教五神變教授德者謂如前所說量解脫等諸功德法
016_0034_c_01L‘보리(菩提)’란 세 가지 보리를 말하나니, 첫째는 성문의 보리이고, 둘째는 독각의 보리이며, 셋째는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이다.92)
‘성교(聖敎)’란 다음과 같다. 귀의(歸依)93)를 주기도 하고, 학처(學處)를 만들며, 듣는 이에게 베풀어주며, 스승과 제자를 세우고, 보시에 대한 말ㆍ계율에 대한 말ㆍ하늘에 태어남에 대한 말을 세우며, 욕망에 대해 애착함을 꾸짖고, 욕망의 허물을 보이며, 잡염법과 청정법을 드러내어 말하고, 벗어남을 가르치며, 공덕을 칭찬하고, 온갖 청정법을 널리 말하는 것이다.
또한 다음의 게송에서 말한다.
016_0034_b_19L菩提者謂三種菩提一聲聞菩提二獨覺菩提三無上正等菩提聖教者謂授歸依制立學處施設聽者建立師資施論戒論生天之論訶欲愛味示欲過失顯說雜染及淸淨法教導出離稱讚功德廣說一切淸淨分法復次頌曰

만약 변지(遍知) 등의 공덕을
바르게 수행하고자 한다면
열 가지 법행(法行)과
여섯 가지 이취(理趣)에 의해서이네.
016_0034_c_02L若欲正修行
遍知等功德
由十種法行
及六種理趣

논하여 말한다. 만약 모든 수행자가 앞에서 말한 아홉 가지 사실[九事]에 대해서 변지(遍知)ㆍ영원히 단멸함ㆍ증득함ㆍ온갖 공덕을 닦고 모으는 것 등을 바르게 수행하고자 한다면, 열 가지 법행(法行)과 여섯 가지 이취(理趣)에 의해 마땅히 닦고 배워야 한다. 열 가지 법행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여섯 가지 이취는 첫째는 참다운 경계[眞義]에 관한 이취이고, 둘째는 증득에 관한 이취이며, 셋째는 지도함에 관한 이취이고,넷째는 양 극단을 여읜 것에 관한 이취이며, 다섯째는 불가사의에 관한 이취이고, 여섯째는 의욕[意樂]에 관한 이취이다.
016_0034_c_04L論曰若諸行者於前九事欲正修行遍知永斷作證修集諸功德等由十法行及六理趣應當修學十種法行已如前說六種理趣者一眞義理趣二證得理趣三教導理趣四離二邊理趣五不思議理趣六意樂理趣
顯揚聖教論卷第四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이하 9사(事) 중에서 마지막으로 여러 공덕에 관하여 4무량심, 8해탈, 8승처(勝處), 10변처(遍處), 무쟁(無諍), 원지(願智), 4무애해(無碍解), 6신통, 32상 80종호, 4청정, 4무외(無畏), 3불호(不護), 3염주(念住), 모든 습기를 영원히 끊음, 잃어버림 없는 미묘한 공덕, 대비(大悲), 불공덕법(不共德法),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순서로 설명한다.
  2. 2)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 즉 무량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苦)의 미혹을 없애주기 위해 자ㆍ비ㆍ희ㆍ사의 네 가지 마음을 일으켜, 혹은 자(慈) 등의 네 가지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4무량(無量)ㆍ4등심(等心)ㆍ4범주(梵住)ㆍ4범당(梵堂)이라고도 한다. 무량(無量)은 범어 apramāṇa의 번역이다. 한량없는 중생을 상대로 하고, 또한 한량없는 복과(福果)를 얻기 때문에 무량(無量)이라고 한다. 이것을 범주(梵住)ㆍ범당(梵堂)이라 부르는 것은, 이것을 닦음으로써 대범천(大梵天)에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3. 3)남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이다. 먼저 친한 사람부터 시작해서 널리 수많은 중생에게까지 미치게 한다.
  4. 4)고구(苦具)는 괴로움의 생성과 존립에 직접으로 인(因)이 되고 간접으로 연(緣)이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5. 5)남의 고통을 벗겨주려는 마음이다. 처음은 친한 이의 고통을 벗겨주려 하고 점차로 확대해서 다른 많은 사람에게까지 미친다.
  6. 6)앞의 자무량(慈無量)에 관한 설명 중에서 “한 방면에서 원한이 없으며 미워함이 없고 손해 끼침이 없으며 넓고 크고 한량없이 아주 잘 닦아 익히고, 이와 같이 차례대로 나아가 시방의 일체 끝없는 세계에까지 의해(意解)가 두루 가득하며 구족하게 머무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가리킨다. 이하 희무량(喜無量)과 사무량(捨無量)에서도 마찬가지다.
  7. 7)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해주는 마음이다.
  8. 8)중생을 평등하게 보아서 애증(愛憎)ㆍ원친(遠親)의 구별을 두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처음은 자기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에게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고 점차로 친한 이와 미운 이에게까지 그러한 마음을 일으킨다.
  9. 9)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머물게 하여 평등하게 계속하고 유지하는 것. 삼매와 동일하다.
  10. 10)여덟 가지 정(定)의 힘으로 탐착심을 버리는 것으로서 8배사(背捨)라고도 한다. 팔해탈은 8종의 관념이며, 이 관념에 의해서 5욕(欲)의 경계를 등지고, 그 탐하여 고집하는 마음을 버리기 때문에 배사(背捨)라 하고, 또한 이것으로 인하여 삼계의 번뇌를 끊고 아라한과를 증득하므로 해탈이라 한다.
  11. 11)색상(色想)이 내면의 마음에 있으므로 제거하기 위해 외경(外境)에 있는 부정관(不淨觀)을 수련하는 것이다. 색계 초선(初禪)에 의한다.
  12. 12)색신이 있는 세계의 선정으로서 욕계의 선정과 색계의 4선정(禪定)을 가리킨다.
  13. 13)내심(內心)의 색상(色想)은 사라졌으나 다시 이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부정관을 계속하는 것이다. 색계 제이선(第二禪)에 의한다.
  14. 14)무색계(無色界)의 선정으로서 색무변처정(色無邊處定),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말한다.
  15. 15)이전의 부정관의 마음을 버리고 외경의 색상에서 청정한 면을 관찰하여 탐욕이 생기지 않고 정해탈(淨解脫)을 몸에서 깨닫고 구족하여 머무는 것이다. 색계 제사선(第四禪)에 의한다.
  16. 16)물질적인 상(相)을 모두 멸하여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에 들어가는 것이다.
  17. 17)6신통을 말한다.
  18. 18)공무변심(空無邊心)을 버리고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에 들어가는 것이다.
  19. 19)식무변심(識無邊心)을 버리고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에 들어가는 것이다.
  20. 20)무소유심(無所有心)을 버리고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들어가는 것이다.
  21. 21)수(受)ㆍ상(想) 등을 버리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이다.
  22. 22)욕계의 색처(色處:볼 수 있는 대상, 곧 色想)를 관찰하고 이것을 이겨내서 탐심을 제거하는 8단계의 과정을 말한다. 8제입(除入)ㆍ8제처(除處)라고도 한다. 여덟 가지 중에서 앞의 넷은 모두 초선(初禪)과 제이선(第二禪)에 의한 것이고, 뒤의 넷은 제사선(第四禪)에 의한 것이다. 또한 ①과 ②는 8해탈의 제1에 해당하고, ③과 ④는 제2에, ⑤⑥⑦⑧은 제3에 해당한다. 8해탈은 탐심을 버릴 뿐 자재함을 얻지 못하는데, 8승처는 대경(對境)을 제복(制伏)하여 자재함을 얻는다는 차이가 있다.
  23. 23)색상(色想)이 내심(內心)에 있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 색처(色處)의 소분(少分)을 관찰하여 이를 이겨서 탐욕을 멸하는 것이다.
  24. 24)다시 색처(色處)의 다분(多分)에도 이겨내는 것이다.
  25. 25)앞의 제1 승처에 대한 설명 중에서 “좋거나 나쁘거나 열등하거나 수승하거나간에 그 모든 물질에 대하여 수승하게 알고 수승하게 보며, 이와 같은 생각을 얻는 것”이란 내용을 가리킨다.
  26. 26)셋째는 내심에 색처(色處)가 멸했으나 다시 색처의 소분(少分)을 관찰하여 이를 이겨내는 것이다. 넷째는 다시 이와 같이 색처의 다분(多分)도 이겨내는 것이다.
  27. 27)이와 같이 내심에 색상이 없고 다시 대상의 색채(色彩)의 청(靑)을 관찰하여 이겨내는 것이다.
  28. 28)범어 Vārhaspatya의 음역으로서 바라나사(波羅奈斯)ㆍ바라나(波羅奈) 등이라고도 한다. 중인도 갠지스강 유역의 국명(國名)으로서, 지금의 베나레스를 중심으로한 지방이다. 석존의 초전법륜(初轉法輪)의 땅인 녹야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29. 29)제6은 황(黃)을, 제7은 적(赤)을, 제8은 백(白)을 관찰하여 이것을 이겨냄을 말한다.
  30. 30)범어 karṇikāra의 음역이다. 인도에만 있는 나무로서 그 꽃과 햇잎이 대단히 아름답다.
  31. 31)범어 Uṣas의 음역이며 오사사(烏沙斯)라고도 한다. 별의 이름으로서 태백성(太白星)이라 번역한다.
  32. 32)네 가지의 중간의 방각. 동남과 동북과 서남과 서북을 말한다.
  33. 33)앞의 지변처(地遍處)에 관한 설명에서 “‘하나를 능히 분명히 알고’라는 것은 한계의 모습이 없이 편만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가리킨다. 다음의 식변처에서도 마찬가지다.
  34. 34)무소유처(無所有處)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가리킨다.
  35. 35)이 부분에서 ‘무애해(無㝵解)’를 ‘무애해(無閡解)’라 하여 ‘애(㝵)’ 대신에 ‘밖으로 닫을 애(閡)’로 판각되어 있다. 그러나 4무애해의 경우 일반적으로 ‘애(閡)’는 사용하지 않으며, 또한 위 본문 중의 다른 곳에서는 모두 ‘애(㝵)’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은 ‘애(㝵)’의 오자(誤字)인 듯 하다. 무애해(無碍解, pratisaṅivid)란 자유자재함 거리낌없는 이해능력(곧 智解) 및 언어적 표현능력(곧 辯才)을 말한다. 이에 네 종류가 있는데, 모두 지혜를 본질로 하는 까닭에 합해서 4무애지(無碍智)라 하고, 이해능력이란 점에서 4무애변(無碍辯)이라 한다. 간략히 4무애ㆍ4해(解)ㆍ4변(辯)이라 한다. 보살이 초지(初地)에서 부분을 얻고 제9지에서 넷을 얻으며, 불지(佛地)에서 비로소 모두 원만하게 완성한다고 한다.
  36. 36)법무애지(法無碍智)ㆍ법무애변(法無碍辯)이라고도 한다. 어떤 의미를 사리에 맞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자나 문장 등에 정통하여 무애자재한 지해변재(智解辯才)이다.
  37. 37)의무애지(義無碍智)ㆍ의무애변(義無碍辯)이라고도 한다. 문자나 문음(文音)에 의해 표현된 의미와 내용에 정통한 지해변재이다.
  38. 38)앞의 법무애해에 관한 설명 중에서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심왕법ㆍ 심소법을 말한다.”라는 내용을 가리킨다. 다음의 훈사무애해에서도 마찬가지다.
  39. 39)사무애해(詞無碍解)ㆍ사무애지(詞無碍智)ㆍ사무애변(詞無碍辯)이라고도 한다. 방언(方言:지방어)에 정통한 지해변재이다.
  40. 40)변무애지(辯無碍智)ㆍ변무애변ㆍ요설무애해(樂說無碍解)ㆍ요설무애지ㆍ요설무애변이라고도 한다. 바른 이치에 따라 걸림없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을 요설(樂說)이라 일컫는 것은, 상대방이 원하고 구하는 바에 따라 유창하게 설하고 스스로 기뻐서 설하기 때문이다.
  41. 41)불ㆍ보살이 가지고 있는 초인적인 여섯 가지 능력을 말한다.
  42. 42)일반적으로 신족통(神足通)이라고 한다. 때에 따라 크고 작은 몸을 나타내며 자유자재하게 날아다니는 신통력이다.
  43. 43)천이통(天耳通)이라 한다. 천이(天耳)에 상응하는 지혜로써 일체의 성경(聲境)을 증지(證知)하여 통달무애한 능력이다. 세간의 일체의 선악(善惡) 호오(好惡)의 말, 멀고 가까운 말, 여러 나라 각 지역의 말, 나아가 짐승과 귀신의 말에 이르기까지 듣지 못할 것이 없는 자유자재한 신통력이다.
  44. 44)앞의 신경지견작증통에 관한 설명에서 “나아가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 결정된 경계가 많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가리킨다. 이하 제5 사생지견작증통까지 마찬가지다.
  45. 45)타심통(他心通)이라 한다. 타인의 마음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선악을 모두 알아내는 지혜의 힘이다.
  46. 46)숙명통(宿命通)이라 한다. 전세(前世)의 일을 잘 아는 지혜의 힘이다.
  47. 47)천안통(天眼通)이라 한다. 자신과 남의 미래세의 생사 모습을 아는 것으로 본래는 색계에 나는 천인들이 수승하고 정묘(精妙)한 육신을 타고 난 바에 의해 얻어진 안근(眼根)으로 육도 중생들이 여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는 등을 통달무애하게 아는 지혜의 작용을 일컫는 말이었다.
  48. 48)누진통(漏盡通)이라 한다. 무명 번뇌를 끊음이 자유자재하며, 여실하게 사성제의 이치를 얻어 다시는 삼계에 미혹하지 않는 불가사의한 능력이다.
  49. 49)32상(相)ㆍ32대인상(大人相)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육신이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몸에 갖추어져 있는 거룩한 용모ㆍ형상 중에서 특히 현저하게 뛰어난 서른두 가지를 가려서 32상(相)이라 한다. 또한 여기에 80종호(種好)를 합해서 상호(相好)라고 한다.
  50. 50)족하안평립상(足下安平立相)이라 이름한다. 발 밑이 땅에 안주하여 밀착한 형상이다.
  51. 51)표치(幖幟)는 일반적으로 ‘표지(標識)’라고 한다. 다른 것과 구별하여 아는 데 필요한 표시나 특징을 말한다.
  52. 52)수족지만망상(手足指縵網相)이라 하여 수족지간(手足指間)에 물갈퀴가 있는 형상이다. 수유연상(手柔軟相)이라 하여 손이 매우 부드러운 형상이다. 천여녹왕상(腨如鹿王相)이라 하여 팔의 뼈가 녹왕(鹿王)처럼 섬호(纖好)한 형상이다. 정립수마슬상(正立手摩膝相)이라 하여 서면 양손이 무릎을 넘는 형상이다.
  53. 53)정계상(頂髻相) 또는 육계상(肉髻相)이라 한다. 정상(頂上)의 살이 상투 모양으로 융기(隆起)하여 있는 형상이다.
  54. 54)80수형호(隨形好)ㆍ80수호(隨好) 등이라고도 한다. 불ㆍ보살의 몸에 갖추고 있는 특수한 용모형상 중에서 현저하여 알 수 있는 32가지를 32상이라 하고, 미세은밀(微細隱密)하여 알 수 없는 것 80가지를 80종호라고 한다. 32상은 전륜성왕도 갖추고 있으나, 80종호는 불ㆍ보살만이 갖춘다고 한다. 예를 들면 걸음 걷는 것이 엄숙하여 사자와 같은 것, 걸음걸이가 편안하고 조용하여 지나치지도 않고 못미치지도 않아서 소의 걸음과 같은 것, 무릎이 묘하고 잘 생겨 견고하며 원만한 것 등이다.
  55. 55)여래만이 갖춘 10종의 지력(智力)으로서 부처님의 18불공법(不共法) 중의 10가지이다.
  56. 56)지시처비처지력(知是處非處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바른 도리와 그렇지 않은 도리를 여실히 판별(判別)하는 지력(智力)이다.
  57. 57)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선악업과 그 과보의 인과관계를 여실하게 아는 지력이다.
  58. 58)앞의 제1 지력(智力)에 관한 설명 중에서 “그것에 상응하는 등지(等持)의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라는 내용을 가리킨다. 이하 제9 지력까지 마찬가지다.
  59. 59)선정해탈지력(禪定解脫智力)ㆍ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ㆍ정려해탈등지등지발기잡염청정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發起雜染淸淨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여실히 모든 선정ㆍ삼마지의 순서나 천심(淺深)을 아는 지력이다. 즉 4선(禪)ㆍ8해탈ㆍ3삼매ㆍ8등지 등을 여실히 아는 힘이다.
  60. 60)지제근승열지력(知諸根勝劣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근기의 고하우열(高下優劣)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다.
  61. 61)지종종해지력(知種種解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여러 가지 의욕경향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다.
  62. 62)성지력(性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중생계와 그 성류(性類)ㆍ소질이나 그 행위 등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다.
  63. 63)지일체지처도지력(知一切至處道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어떤 수행에 의해 어떤 세계에 나아가는가, 인천(人天) 등의 모든 세계에 태어나는 행의 인과를 아는 지력이다.
  64. 64)지숙명무루지력(知宿命無漏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과거세의 여러 가지 일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다. 곧 숙명통이다.
  65. 65)지천안무애지력(知天眼無碍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천안을 갖고 중생의 미래, 사생(死生)의 시기, 미래생의 선악의 세계 등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다. 곧 천안통이다.
  66. 66)지영단승기지력(知永斷習氣智力) 등이라고도 한다. 스스로 모든 번뇌가 다하여 다음의 생존[後有]을 받지 않을 것을 알고, 또한 다른 사람이 번뇌를 끊는 것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다.
  67. 67)3지(智:一切智ㆍ道種智ㆍ一切種智)의 하나로서 부처님이 지니는 지혜이다. 모든 존재에 대하여 평등한 처지에서 다시 차별의 양상을 세밀히 알아내는 지혜이다.
  68. 68)여래의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삼업은 청정하여 과실(過失)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알지 못하게 감추어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한다. 곧 신불호(身不護), 어불호(語不護), 의불호(意不護)이다.
  69. 69)3념주(念住)는 부처님의 18불공법 중의 3가지이다. 부처님은 중생을 자식처럼 여기고 구제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모든 중생이 반드시 그러한 뜻에 응해주는 것은 아니다. 믿어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비방이나 가해(加害)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부처님은 정념정지(正念正智)에 머물러 흔들림이 없으니, 이것을 염주(念住)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든다. 제1염주는 중생이 부처님을 신봉하더라도 희심(喜心)을 일으키지 않고 정념에 머무는 것이다. 제2염주는 중생이 부처님을 불신하더라도 우심(憂心)을 일으키지 않고 정념에 머무는 것이다. 제3염주는 중생이 부처님을 신봉하거나 비방하더라도 희심과 우심을 일으키지 않고 정념에 머무는 것이다.
  70. 70)『유가사지론』의 「보살지 」를 가리킨다.
  71. 71)udāna의 음역으로 섭송(攝頌)이라 한역한다. 경ㆍ율ㆍ논을 말한 후 또는 말하는데 있어서 그 뜻이나 제목을 하나로 정리하여 송(頌)으로 한 것.
  72. 72)범어 gāthā의 음역으로서 가타(伽陀)ㆍ가타(迦陀)라고도 하며 풍송(諷誦)ㆍ게송(偈頌)ㆍ게(偈)로 의역한다. 운문의 형식을 취한 경문(經文)이다. 흔히 교설의 끝부분에 서술되어 있는데, 산문형식의 경문의 뜻을 중설(重說)하는 게송과 구별하여 고기송(孤起頌)으로 번역된다. 12분교(分敎:초기경전의 기본적인 12가지 형태)의 하나이다.
  73. 73)4도(倒)라고도 한다. 범부ㆍ외도ㆍ2승(乘) 등이 올바른 이치에 어긋나는 네 가지 뒤바뀐 견해를 품는 것을 말한다. ①범부의 4전도는, 생사계에 대하여 그것이 무상(無常)ㆍ무악(無樂)ㆍ무아(無我)ㆍ무정(無淨)인 것을 상(常)ㆍ락(樂)ㆍ아(我)ㆍ정(淨)이라고 망령되이 집착하는 것이다. ②이승의 4전도는, 열반계가 상ㆍ락ㆍ아ㆍ정인 것을 무상ㆍ무악ㆍ무아ㆍ무정이라고 망령되이 집착하는 것이다. 범부의 사도를 유위(有爲)의 4도(倒)라고 하고, 이 망견(妄見)에서 벗어난 것을 2승(乘)이라 하며, 이승의 사도는 무위의 사도라 한다. 보살은 이 두 가지 잘못된 견해를 여읜다.
  74. 74)색식주(色識住), 수식주(受識住), 상식주(想識住), 행식주(行識住)를 말한다. 5온(蘊) 중에서 색ㆍ수ㆍ상ㆍ행의 네 가지는 식(識)이 그것에 집착해서 머물며 식(識)의 주처(住處)가 되므로 4식주(識住)ㆍ4식처(識處)라고 한다.
  75. 75)7식처(識處)ㆍ7식지처(識止處)라고도 한다. 유정이 과보를 따라서 생을 받는 그 세계에 머무는 것을 그 심식(心識)이 좋아하는 7종의 처소라는 뜻이다. ①신이상이식주(身異想異識住):욕계의 인천(人天)과 겁초(劫初)를 제외한 초선천(初禪天) ②신이상일식주(身異想一識住):겁초(劫初)의 초선천 ③신일상이식주(身一想異識住):제이선천(第二禪天) ④신일상일식주(身一想一識住):제삼선천(第三禪天) ⑤공무변처식주(空無邊處識住):공무변처천 ⑥식무변처식주(識無邊處識住):식무변처천 ⑦무소유처식주(無所有處識住)
  76. 76)4종도리(種道理)는 관대도리(觀待道理), 작용도리, 증성도리(證成道理), 법이도리(法爾道理)를 말한다.
  77. 77)여기서의 위(位)는 범어 avasthā의 번역어로서 상태(狀態), 작용이란 뜻이다. 이런 용례를 든다면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 대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4대논사(大論師) 중 세우(世友)의 위부동설(位不同說, avasthā-pariṇāma)에서와 같다.
  78. 78)5도(道)라고도 한다. 중생이 윤회하는 다섯 세계 즉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天)이 있는 곳이다. 이에 아수라(阿修羅)를 더하여 6취(趣)라고도 이름한다.
  79. 79)정신과 물질의 모든 현상이 발생함에 있어서 그 연(緣)을 인연(因緣)ㆍ등무간연(等無間緣)ㆍ소연연(所緣緣)ㆍ증상연(增上緣)의 네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80. 80)범어 hetu-pratyaya의 번역이다. ‘인(因)이 되는 연(緣)’ ‘인 곧 연’이란 뜻이다. 직접적인 자기 결과를 인(因)으로 하고, 그 인(因)을 연(緣)으로 함을 말한다. 이에 능생(能生)의 종자와 능훈(能熏)의 현행과의 두 가지가 있다.
  81. 81)범어 samanantara-pratyaya의 번역이다. 심법(心法)에만 국한되고 다른 법에는 통하지 않는다. 심왕(心王)ㆍ심소(心所)가 전념(前念) 후념(後念)으로 옮겨 변할 때에, 전념에 없어진 마음이 길을 열어 뒤에 생기는 마음을 끌어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 즉 전찰나의 생각이 사라지면서 다음 찰나의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전념과 후념의 심왕ㆍ심소의 숫자는 비록 많거나 적거나 같지 않더라도 그 주체는 전후가 평등하여 하나이므로 ‘등(等)’이라 하고, 후념은 전념과의 사이에 비록 얼마의 시간이 경과하더라도 다른 마음이 그 사이를 뜨게 하지 않고 곧 생기므로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라한이 열반에 들려는 최후심(最後心)의 심왕ㆍ심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마음의 작용은 반드시 이 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82. 82)소연(所緣:心識의 對境)이 마음에 대해 연(緣)이 되어 활동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83. 83)범어 adhipati-pratyaya의 번역이다. 다른 법을 일으키는 데 강한 힘이 되고 그 활동을 증승(增勝)하게 하는 연(緣)이다. 예를 들면 안근은 안식을 일으키는 데 증상연이 된다. 이에 유력(有力) 증상연과 무력(無力) 증상연이 있다. 전자는 여력증상연(與力增上緣)이라고도 하며, 다른 법이 생겨나는 데 힘을 직접 주는 연이다. 후자는 부장증상연(不障增上緣)이라고도 하며, 다른 법이 생겨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연(緣)이다. 예를 들면 곡식에 온도와 비를 주는 것은 유력증상연이고, 폭풍이나 얼음이 없는 것은 무력증상연이다. 또한 히말라야산은 보기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같지만 이로 인하여 세계 기후의 변동을 가져오며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유력증상연이다. 선박의 통로에 암초가 있으면 막대한 장애가 되는데 다행이 이것이 없는 경우는 무력증상연이다.
  84. 84)사의사불의(四依四不依)의 준말로서 『남본열반경(南本涅槃經)』 제6권 등에 나온다. 의지하지 않으면 안될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4의(依)라 하고, 해서는 안될 네 가지를 4불의(不依)라고 한다. ①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불도(佛道)를 닦는 사람은 그 가르침을 따를 것이며, 그 가르침을 설하는 사람을 따라서는 안된다. ② 의의불의어(依義不依語):가르침의 뜻에 따라야 하며, 표현한 말이나 문장에 따라서는 안된다. ③ 의지불의식(依智不依識):참된 지혜에 따를 것이며, 미혹된 인간의 정식(情識)을 따라서는 안된다. ④ 의요의경불의불요의경(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가르침을 온전히 나타내고 있는 요의경에 따를 것이며 불요의경을 따라서는 안된다. 본문에서는 ③과 ④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85. 85)4종성행(種性行)이라고도 하며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제1권에 나온다. ①자성행(自性行):모든 보살이 본성 이래로 부모의 가르침에 따르고, 사문과 바라문을 존경하며, 가문의 친소존비(親疎尊卑)를 잘 알아서 공경하여 섬기는 것을 잃지 아니하여 10선(善)이 구족하며, 다시 나머지 선업을 행하는 것이다. ②원성행(願性行):모든 보살이 발원하기를 “나는 어느 때 성불하여 명호(名號)가 구족할까?”라고 하는 것 등이다. ③순성행(順性行):모든 보살이 6바라밀 등을 따라 수행하는 것이다. ④전성행(轉性行):석존이 연등불(燃燈佛)을 공양한 것을 인연하여 경전을 독송하며 범부에서 성인으로 전성(轉成)하는 것이다.
  86. 86)전(纏)은 범어 paryavasthāna의 번역으로서 현행적인, 현재 작용하는 번뇌를 가리킨다.
  87. 87)견문각지(見聞覺知)란 눈으로 빛깔ㆍ형태를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ㆍ혀ㆍ몸으로 각각 냄새ㆍ맛ㆍ촉감을 감각하고, 의지로 법을 아는 것을 말한다. 감각(感覺)ㆍ지각(知覺)의 기능인 6식(識)의 작용, 즉 안식(見), 이식(聞), 비식ㆍ설식ㆍ신식의 3식(覺), 의식(知)을 가리킨다.
  88. 88)‘네 가지 음식작용물’ 즉 중생의 신명(身命)을 유지시키는 단식ㆍ촉식ㆍ의사식ㆍ식식을 말한다. ①단식(段食, 團食)은 밥이나 나물 등처럼 형체가 있는 음식으로서, 이것을 쪼개고 으깨어[分分段段] 먹어서 능히 신명을 무너지지 않게 한다. ②촉식(觸食)에서 촉(觸)은 6식(識)에 상응하는 심소(心所)를 가리킨다. 사랑할만한 대상을 대할 때 희락의 쾌감을 일으켜 신체를 이롭게 하기 때문에 능히 음식작용물의 뜻이 있게 된다. ③의사식(意思食 또는 思食)에서 의사(意思)는 의식에 상응하는 사심소(思心所)를 말한다. 이 심소가 욕구[欲] 심소를 동반해서 사랑할만한 대상을 희구하여 심신을 자양(滋養)하기 때문에 음식작용물의 뜻이 있게 된다. ④식식(識食)은 앞의 세 가지 식(食)의 세력에 의해서 증장할 수 있고, 이 식이 모든 감관ㆍ4대(大)를 장양(長養)하기 때문에 음식작용물의 뜻이 있게 된다.
  89. 89)『고려대장경』에는 승진도(勝進道)의 ‘승’이 ‘승(昇)’으로 되어 있는데, ‘승(勝)’의 오자(誤字)인 듯하다. 다른 불전에서 승진도를 승(昇)으로 사용한 예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방편도ㆍ무간도ㆍ해탈도ㆍ승진도를 4도(道)라도 한다.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것이다. 방편도(方便道)는 번뇌를 끊음을 희구하여 닦는 예비적인 단계로서, 수행에 힘을 가하는 기간이므로 가행도(加行道)라고도 한다. 무간도(無間道)는 근기가 성숙하여 직접 번뇌를 끊고자 하는 단계로서 무애도(無碍道)라고도 한다. 해탈도는 확실히 진리를 깨닫고 해탈을 얻는 도이며, 무명 번뇌를 여읜 곳에 나타나는 진여를 얻고자 하는 찰나이다. 승진도(勝進道)는 다시 정진을 계속하여 열반에 나아가는 기간이다.
  90. 90)지관(止觀)을 닦을 때 조악(粗惡)함과 미세함에 따라 유상관(有相觀)ㆍ심구관(尋求觀)ㆍ사찰관(伺察觀)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유상관은 선정의 마음 위에 현현된 유분별영상을 사유하는 것이다. 심구관은 조악한 혜(慧)로써 사리(事理)를 살피는 것이다. 사찰관(伺察觀)은 정밀한 혜로써 사리를 관찰하는 것으로서 심찰관(審察觀)이라고도 한다. 사마타를 유상의 사마타, 심구의 사마타, 사찰의 사마타로 나누고, 위빠사나[觀]를 유상의 위빠사나, 심구의 위빠사나, 사찰의 위빠사나로 나눈다.
  91. 91)앞에서 설명한 4무량심, 8해탈, 8승처, 10변처를 말한다.
  92. 92)보리(菩提)는 범어 bodhi의 음역이며 각(覺)ㆍ지(智)ㆍ지(知)ㆍ도(道)로 의역한다. 성문ㆍ독각ㆍ불(佛)이 각각 그 과(果)에 따라 얻는 깨달음의 지혜를 성문보리ㆍ독각보리ㆍ무상정등보리라고 이름한다. 세 가지 보리 중에서 부처님의 보리가 더할나위 없는 최상최고의 궁극적인 것이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anuttara-samyak-saṁbodhi)라고 부르며 번역하여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ㆍ무상정등보리ㆍ무상보리(無上菩提)라고 한다.
  93. 93)3귀의계(歸依戒)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