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十住毘婆沙論卷第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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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주비바사론 제17권


용수 지음
후진 구마라집 한역


32. 해두타품 ②

다섯 가지의 비고 한가한 데의 설명같이
그 밖의 공덕 또한 그러하며
자신이 읽고 외며 다른 이를 가르친다면
비고 한가한 데를 버릴 수 있다.

아련야의 비구에게 다섯 가지의 분별이 있는데, 첫째 나쁜 뜻으로써 이양을 구하려 함이며, 둘째 어리석고 근기가 무딘 까닭에 아련야에 갔음이며, 셋째 미쳐서 뜻을 잃고 아련야를 지음이며, 넷째 두타의 행을 행하기 위하여 아련야를 지음이며, 다섯째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며 성현이 칭찬하기 때문에 아련야를 지음이다. 이 다섯 가지 아련야 중에 두타의 행을 행하기 위하여 아련야를 짓는 것과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며 성현이 칭찬하기 때문에 아련야를 짓는 이 두 가지는 좋은 것이지만, 그 밖의 세 가지는 꾸짖을 만하다.
다섯 가지로 아련야의 법을 분별하는 것처럼 나머지 열한 가지 두타의 행 역시 그와 같이 분별하며 알아야 한다.
【문】부처님께서 “만약 이미 아련야의 법을 받았으면 끝끝내 버리지 않아야 하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만약 인연이 있으면 버리고 떠날 수 있는가?

【답】경전을 읽고 외는 인연이라면
아련야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

만약 비구가 다른 이로부터 경전을 읽고 외움을 받으려 하거나 다른 이의 읽고 외움을 가르치려 하면, 아련야의 처소로부터 절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버리고 떠날 수 있다.

다른 이에게 읽고 외움을 가르칠 때에
이바지함을 바라지 않아야 하며
즉시 생각하되 부처님께서도
언제나 하시는 일이었다고 하라.

아련야의 비고 한가한 데서부터 와서 다른 이에게 읽고 외움을 가르친다면, 공경한 마음과 이바지하기를 바라지 않아야 하고 부처님을 생각하여야 하며, ‘부처님도 오히려 몸소 일을 하셨거든, 하물며 나이겠느냐’고 하라.
‘부처님을 생각한다’ 함은, 부처님은 바로 다타아가타삼먁삼불타(多陀阿伽陀三藐三佛陀)이며,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석제환인ㆍ사천왕ㆍ사람인 듯 아닌 듯한 따위가 공양하는 것이다. ‘온갖 중생들의 위없는 복의 밭이신데도 오히려 다른 이가 이바지하기를 바라지 않고 몸소 일을 하셨거든, 나는 이제 아직 아는 것이 없고 비로소 배움을 구하려 하면서 어떻게 다른 이의 이바지함을 받겠느냐’라고 하는 것이다.
또, 이런 생각을 하여야 한다.

나는 일체 중생들에게
잘 이바지하여야 하되
그들이 이바지하기를 바라지 않나니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까닭이다.

어떻게 하면 자기를 이롭게 하는가? 만약 이바지하기를 귀히 여기면 법보시의 공덕을 잃게 되고, 만약 이바지하기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곧 법보시의 공덕을 얻게 된다.
어떻게 하면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가? 만약 그가 이바지하기를 귀히 여기면서 가르쳐 읽고 외게 한다면, 그는 곧 생각하기를 ‘스승은 바로 세상의 이익 때문에 나를 가르치는 것이며 법 때문이 아니구나’라고 하면서, 이 사람이 만약 이 마음으로써 스승에게 이바지하게 된다면 큰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만약 법만을 공경하는 까닭에 스승을 존중하게 된다면 곧 큰 이익을 얻게 되리니, 이것을 다른 이를 이롭게 한다고 한다.

다른 이로부터 지혜를 구한다면
몸과 목숨을 아껴서는 안 된다.

만약 수행하는 이가 다른 이로부터 지혜를 구하려 하면, 몸과 목숨을 버려야 한다.
버린다 함은 지혜를 위하여 부지런한 마음으로 힘써 나아가며 스승을 공경하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문】무엇 때문에 지혜를 위하여 스승을 공경하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가?

【답】만약 한 글자와 한 마음으로
겁(劫)의 수효를 삼고서
이 논(論)을 말하는 스승을
공경하고자 한다면

모든 아첨과 간사한 맘 여의고
깊이 사랑하고 공경하기를
밤낮을 쉬지 않으면서
그러한 겁 동안을 다하여라.

스승이 가르치는 논의(論義)와 자수(字數)며 그러한 생각을 따라서 만약 법을 받는 이라면, 아첨과 간사한 마음이 없고 밤낮으로 공경하며 끝내 다름이 없이 한다. 비록 이와 같이 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스승에게서 이익을 받는 논의와 지혜의 은혜를 갚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제자로서 아첨과 간사한 마음을 여의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말며 교만을 깨뜨려야 한다.
만약 스승이 깔보고 업신여기기도 하며 공경하고 사랑하기도 하면, 마음에 달리함이 없이 깊이 사랑하는 마음과 제일의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야 하리니, 부모라는 마음을 내어야 하고, 큰 스승이라는 마음을 내어야 하고, 선지식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고,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갚기 어렵다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만약 스승이 허락한다면, 통상 행하는 일을 받들되 스승의 명령을 필요로 하지 말며, 그 밖의 일에도 곧 스승의 뜻을 바라보다가 일을 따라서 행한다.
스승이 사랑하고 중하게 여기면 따라서 사랑하고 중하게 여기며 스승으로 인하여 세상의 이익을 구하지 않아야 하고, 스승의 칭찬도 구하지 말고, 이름도 구하지 말고 다만 지혜와 법의 보배만을 구한다.
스승에게 잘못이 있으면 언제나 숨기고 감추어야 하며, 스승에게 허물이 있거나 뚜렷하게 드러나거나 하면 방편으로 가려 주어야 한다.
스승에게 공덕이 있으면 칭찬하고 드날리어 널리 퍼뜨리고 깊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즐겨 듣고 받아서 지니고 풀이하며 이치를 생각하면서 말씀대로 행한다.
자기의 이익과 남의 이익을 구하는 이는 약은 체하는 제자가 되지 말고, 큰 체하는 제자가 되지 말고, 때가 낀 제자가 되지 말고, 쇠약한 제자가 되지 말며, 이익 없는 제자가 되지도 말라.
이와 같은 등의 허물이 없고 착한 제자로서 법 중에 머무르기만 하고, 스승에게 이바지하는 것은 마치『반주경(般舟經)』에서의 말씀과 같다.
“부처님께서 발타바라(颰陀婆羅)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로서 이 삼매를 얻으려 하면,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면서 모든 스승에게 존중하는 마음과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야 하느니라.
또는 입으로부터 듣거나 경전에서 얻거나 간에 이 스승에게는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며 부모라는 마음과 선지식이라는 마음과 큰 스승이라는 마음을 내어야 하리니, 이와 같은 법을 말하여 보리를 돕게 하는 까닭이니라.
발타바라야, 보살의 도를 구하는 이거나 성문을 구하는 이거나 간에 스승으로부터 이 법을 읽고 외우게 되는 데에 깊이 공경하는 마음과 부모라는 마음과 선지식이라는 마음과 큰 스승이라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서, 이 법을 외우는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잊어버리지 않으며 오래 머물러서 없어지지 않게 하려 한다면 그렇게 되는 이치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발타바라야 공경하는 인연이 아닌 까닭에 부처님의 법은 곧 없어지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발타바라야, 만약 보살의 도를 구하는 이거나 성문을 구하는 이거나 간에 들음으로부터 이 법을 읽고 외우고 쓰고 베끼는 데에 공경하는 마음과 부모라는 마음과 선지식이라는 마음과 큰 스승이라는 마음을 낸다면 읽고 외우고 쓰고 베끼는 것에 아직 얻지 못한 이는 얻게 되고 이미 얻었으면 오래 머무르게 된다 함이 곧 이치에 맞으리라. 왜냐하면 공경하는 마음이었으므로 부처님의 법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발타바라야, 나는 이제 그대에게 말하리라, 이 스승에게는 깊이 공경하는 마음과 부모라는 마음과 선지식이라는 마음과 큰 스승이라는 마음을 내어야 하리니, 이것이 곧 나의 가르친 것을 따른 것이니라.’”


33. 조시라과품(助尸羅果品)3)

이와 같이 보살은 많이 듣기를 구하여 많이 들은 뜻을 안 뒤에 말씀대로 행하게 되는 까닭에 시라(尸羅)를 깨끗하게 할 수 있으며, 깨끗한 시라는 마땅히 닦고 행하여야 한다.
【문】어떠한 법으로 시라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

【답】몸과 입과 뜻의 업을 보호함과
또한 법을 보호할 수 없음과
끝끝내 나[我]라는 소견 및
그 밖의 소견과 뒤섞이지 않게 하며
살바야(薩婆若)에 회향하는 것
이 넷이 시라를 깨끗이 한다.

수행하는 이가 이 네 가지 법을 닦으면 시라는 저절로 깨끗해진다.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보호한다’ 함은 언제나 바른 생각으로 몸ㆍ입ㆍ뜻의 업과 사소한 죄에 이르기까지 잘못됨이 없게 하여야 하나니, 마치 거북과 자라가 언제나 머리와 발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이 사람은 깊이 공(空)을 즐기는 까닭에 첫째가는 이치[第一義] 중에서 또한 세 가지 업의 법을 보호할 수도 없다. 어떠한 사람이 비록 법공(法空)을 보았다 하더라도 말하자면 공을 아는 이는 존재한다 하나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나라는 소견ㆍ중생이라는 소견ㆍ사람이라는 소견ㆍ목숨이라는 소견ㆍ아는 이라는 소견과 뒤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살바야에 회향한다’ 함은 계율을 지닌 과보로써 다른 복은 구하지 않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 도만을 구하기 위해서이니, 이것이 네 가지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시라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 다음과 같다.

나와 내 것이라는 마음이 없고
없음 소견[斷見]ㆍ있음 소견[常見] 또한 없으며
뭇 인연의 법에 들어가면
곧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다.

‘나와 내 것이라는 마음이 없다’ 함은 나와 내 것이라는 마음을 탐내거나 집착하지 않고, 다만 이 마음은 허망하고 뒤바뀌어서 나[我]라는 법이 없는 줄만 아는 것이다.
‘없음 소견과 있음 소견이 없다’ 함은 없다 있다 하는 소견에는 허물이 많은 까닭이며, ‘뭇 인연의 법에 들어간다’ 함은 모든 법은 뭇 인연으로부터 나서 일정한 성품이 없는 줄 알고서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의 법은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다.

네 가지 성스러운 종자의 행[四聖種行]과
그리고 열두 가지의 두타를 행하고
또한 뭇 시끄러움을 즐기지 않으며
무엇 때문에 집을 떠났는가를 생각한다.

‘네 가지 성스러운 종자’라 함은, 이른바 의복을 얻으면 얻는 그대로 만족히 여기고, 음식을 얻으면 얻는 그대로 만족히 여기고, 방석과 침구를 얻으면 얻는 그대로 만족히 여기고, 끊기를 즐기며 닦고 행하기를 즐기는 것이다.
‘열두 가지의 두타’라 함은, 이른바 아련야의 법을 받으며, 걸식하는 법을 받으며, 누더기 옷을 입으며, 한 번만 앉으며, 언제나 앉아 있으며, 밥 먹은 뒤에는 때 아닐 적의 음식을 받지 않으며, 세 가지 옷만을 지니며, 솜털 옷을 입으며, 펴놓은 대로 앉으며, 나무 아래서 앉으며, 빈 땅에서 머무르며, 죽은 사람의 사이에 머무르는 것이다.
또한 ‘뭇 시끄러움을 즐기지 않는다’ 함은 집에 있는 이와 집을 떠난 이와 함께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비록 아련야의 법을 행한다 하더라도 아는 이가 많은 까닭에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하나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뭇 시끄러움을 즐기지 않는다고 하며, 딴 곳으로 가거나 마음에서 그들과 화합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집을 떠났는가’라고 함은 시라를 행하는 이는 생각하기를 ‘나는 무엇 때문에 집을 떠났을까?’하고 생각한 뒤에, 집을 떠난 일에 따라 성취시키기 위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네 가지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다. 이른바 다음과 같다.

다섯 가지 쌓임[五陰]은 나고 없어짐이 없고
여섯 가지 성품[六性]은 법의 성품[法性]과 같으며
여섯 가지 정(情)은 또한 공(空)하다고 보며
세속의 말에 집착하지 않나니
이와 같은 네 가지의 법은
또한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다.

‘다섯 가지 쌓임은 나고 없어짐이 없다’ 함은 다섯 가지 쌓임[陰]의 처음과 끝을 생각하는 까닭에 다섯 가지 쌓임은 나고 없어짐이 없다고 본다.
지(地) 등의 여섯 가지 성품은 법의 성품과 같은 것으로 보므로, 법의 성품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여섯 가지 성품도 얻을 수 없다.
여섯 가지 감정을 알아보면 비록 이는 괴로움과 즐거움 따위라 하더라도 심왕(心王)과 심수법(心數法)의 인연을 바른 지혜로써 미루어 찾건대 역시 이는 공한 것인 줄 알게 된다.
세 가지를 분명히 통달하면 모두가 이는 공한 것인 줄 알게 되나, 어떤 수행자가 공에 집착하면 도리어 도에 방해가 되나니, 그러므로 “공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세속의 말을 따르면 헛된 이름뿐이다. 이와 같은 법은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다.
【문】만약 그렇다면, 어찌하여 ‘다섯 가지 쌓임의 모든 법’이라 말하는가?
【답】공한 까닭이니, 다섯 가지 쌓임의 모든 법은 공이다. 맨 뒤에 ‘공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한 이 공 역시 버려야 하리니, 이와 같이 하면 삿되고 의심되는 법이 시라를 방해함이 없다.
【문】다섯 가지 쌓임의 모든 법은, 형상[相]이 있고 형상일 수 있으므로 틀림없이 있다. 빛깔[色]은 이는 괴로움의 형상이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깨닫는 것이 바로 느낌[受]의 형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실제로 이와 같은 여러 형상이 있거늘 어찌하여 ‘공(空)이 아니고, 공이 아님도 아니다’라고 말하는가?

【답】괴로움의 무너짐이 바로 빛깔의 형상[色相]이면
어떤 것이 이는 빛깔이 되는가?
괴로움[惱]이 바로 빛깔의 형상이면
형상을 여의고서 형상일 수 없다.

이 형상은 어디에 있는가?
형상이 없으면 형상일 수 없으며
세계는 마침내 존재함이 없어서
형상이 없는데 형상일 수 있는가?

형상과 그리고 형상일 수 있는 것은
합한 것도 아니고 합하지 않음도 아니며
그 온 데의 시초가 없고
가도 또한 이르는 데가 없는 것이다.

만약 합함과 합하지 않음이 있다면
형상과 형상일 수 있음을 이루고
이렇다면 곧 형상과
형상일 수 있는 형상을 잃게 되리라.

형상으로 형상일 수 있음을 이루면
형상 또한 스스로 이뤄지지 않으리니
형상이 스스로 이뤄질 수 없으면
어떻게 형상일 수 있음을 이루리오.

세계는 매우 불쌍하도다.
형상과 형상일 수 있음을 분별하여
여러 삿된 길에 헷갈렸으므로
삿된 스승에게 속임을 당한다.

형상과 형상일 수 있다 함은 곧 바로
형상이 없고 형상일 수 없음이니
이와 같이 하면 눈으로 보는 일을
어떻게 하여 알지 못하는가?

형상과 형상일 수 있음을 헤아림에 따라
이와 같은 쓸모없는 이론이 있나니
쓸모없는 이론을 일으키는 때를 따라
곧 번뇌가 따르게 된다.

또, 수행하는 이는 오지도 않고 가지고 않은 문으로써 모든 쌓임[陰]의 성품을 자세히 살피면 공에 들어간다. 다음의 말과 같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법은
나는 때에도 본래 온 데가 없고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법은
없어질 때에도 가는 데가 없다.

모든 음(陰)ㆍ계(界)ㆍ입(入)의 성품은
생겨나는 때에도 본래 온 데가 없고
없어질 때에도 가는 데가 없나니
부처님 법의 뜻도 이와 같도다.

불은 사람의 공력이 아니고
나무를 뚫는 데도 있지 않으며
합해지는 그 안에도 또한 없으나
합해짐으로 인하여 있는 것과 같다.

섶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꺼질 때에는 간 데가 없으며
연(緣)들이 합해진 까닭에 있다가
연들이 흩어지면 모두가 없다.

안식(眼識) 또한 이와 같아서
눈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빛깔 속에도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합해진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합해짐을 여의지도 않았으며
또한 딴 데서부터 온 것도 아니면서
합해짐으로 인하여 있게 되도다.

합하여짐과 흩어짐은 곧 없는 것이니
모든 법 또한 그와 같아서
나는 때에도 본래 온 데가 없고
없어지는 때에도 가는 데가 없다.

마치 저 용은 마음의 힘으로
검은 구름을 나타냄이 있으나
용의 몸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딴 곳에서 온 것도 아님과 같다.

이 큰 검은 구름은
비를 내려 세계를 가득 채우고
그런 뒤에 비로소 스러져버리지만
또한 가는 데도 없는 것이다.

구름의 오감이 없는 것처럼
모든 법 역시 그러하여서
나는 때에도 본래 온 데가 없고
없어지는 때에도 가는 데가 없다.

벽 위에 사람이 그려졌을 제
낱낱의 채색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합한 데에 있는 것도 아니며
벽 가운데에도 또한 없도다.

그림 그린 이에게도 또한 없으며
그림 그린 붓 안에도 또한 없으며
그 밖의 곳에서 온 것도 아니나
합해짐으로 인하여 있게 되도다.

합한 것이 흩어지면 없어지나니
모든 법 또한 그와 같아서
있을 때에도 본래 온 데가 없고
없을 때에도 가는 데가 없다.

등잔의 불꽃이 기름에 있지 않고
심지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며
그 밖의 곳에서 온 것도 아니나
기름과 심지로 인하여서 있다.

인연이 다하면 곧 없어지지만
없어지는 때에도 가는 데는 없나니
모든 법의 오고 가는 형상이
모두 또한 다시 그와 같도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다. 이른바 다음과 같다.

스스로가 몸을 헤아릴 수 있어서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낮추지 말지니
이 두 가지는 얻는 것이 없으므로
마음에서 의지하고 잘난 체함이 없으면서
모든 법의 평등함을 자세히 살피는
이 네 가지가 시라를 깨끗이 한다.

‘스스로가 몸을 헤아릴 수 있다’ 함은 수행하는 이가 생각하기를 ‘내 몸은 깨끗하지 못하고 무상하며 죽을 형상인데 무슨 값어치를 하겠느냐’ 하고,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제 몸을 높이고 남을 낮추어 보지 않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는 나와 내 것이 없음을 믿고 아는 까닭에 얻는 것이다.
‘의지한다’ 함은 이와 같은 법을 얻은 까닭에 마음이 가볍고 부드러워져서 법을 감당하여 받을 만하나니, 이 의지함의 즐거움으로써 마음에 제가 높은 체하지 않는다.
‘모든 법의 평등함을 자세히 살핀다’고 함은, 공으로써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의 법의 모두가 다 평등하여 위와 중간과 아래의 차별이 없음을 자세히 살핀다. 다음의 말과 같다.

만약 당연히 아래 것으로 인하여
중간과 위가 있다고 하면
아래 것은 중간과 위를 만들지 않았거늘
어떻게 아래 것으로 인하여 있으리오.
아래 것은 저절로 된 아래라 하면
중간과 위는 먼저부터 정해져 있으리.

만약 당연히 중간 것으로 인하여
아래와 위가 있다고 하면
중간 것은 아래와 위를 만들지 않았거늘
어떻게 중간 것으로 인하여 있으리오.
중간 것은 저절로 된 중간이라면
아래와 위는 먼저부터 정해져 있으리.

만약 당연히 위의 것으로 인하여
중간과 아래가 있다고 하면
위의 것은 중간과 아래를 만들지 않았거늘
어떻게 위의 것으로 인하여 있으리오.
위의 것은 저절로 된 위라고 하면
중간과 아래는 먼저부터 정해져 있으리.

아래 것으로 인하여 만들 수 없고
만들 수 없음으로도 인한 것이 아니니
만약 먼저부터 정해져 있었다면
아래 것으로 인한다고 해선 안 되며
만약 먼저부터 정해져 없었다면
어떻게 중간과 위가 성립되었으리오.

중간 것으로 인하여 만들 수 없고
만들 수 없음에도 인한 것이 아니니
만약 먼저부터 정해져 있었다면
중간 것으로 인한다고 해선 안 되며
만약 먼저부터 정해져 없었다면
어떻게 아래와 위가 성립되었으리오.

위 것으로 인하여 만들 수 없고
만들 수 없음에도 인한 것이 아니니
만약 먼저부터 정해져 있었다면
위 것으로 인한다고 해선 안 되며
만약 먼저부터 정해져 없었다면
어떻게 중간과 위가 성립되었으리오.

또, 공은 하나의 모양인 까닭에 모든 법은 다 평등하고 중생도 그와 같은 줄 자세히 살핀다. 다음의 말과 같다.

지혜로운 이는 공 가운데서
분별의 형상을 말하지 않으며
공은 하나여서 다름이 없나니
이와 같이 공을 보는 것이다.

이는 곧 부처님을 뵙는 것이 되며
부처님은 공과 다르지 않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하나라고 말하며
일체 중생도 하나라고 말한다.

온갖 법은 하나의 법이어서
상ㆍ중ㆍ하의 차별이 없으며
여러 불세존께서는
제 성품과 다른 성품을 여의시었다.

온갖 중생들도 또한
제 성품과 다른 성품을 여의었으며
온갖 법도 또한 그러하여
제 성품과 다른 성품을 여의었도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그 때문에 하나의 형상이라 이름하며
모든 부처님이 있다 하면 잘못이고
모든 부처님이 없다 해도 잘못이다.

모든 중생이 있다 하면 잘못이고
모든 부처님이 없다 해도 잘못이며
모든 법이 있다 하면 잘못이고
모든 법이 없다 해도 잘못이니
있고 없음은 여의 까닭에
그를 이름하여 평등이라 한다.

모든 불세존과
중생과 그리고 모든 법은
모두 취할 수 없으므로
모든 법의 평등이라 이름하게 된다.

온갖 부처님과 중생과
그리고 법은 차별이 없으며
분별할 수가 없는 까닭에
그를 이름하여 평등이라 한다.

모든 부처님과 중생과
아울러 온갖 법은
나고 머무르고 없어진[生住滅]데 들어가서
고요히 없어져서 있는 것이 없다.

또한 본디부터 온 데가 없고
또한 다시 간 데도 없으며
오고 가는 것이 없는 까닭에
그를 이름하여 평등이라 한다.

모든 부처님과 중생들이며
그리고 온갖 법은
모두가 다 있는 것이 없으며
온갖 있다는 길을 넘어섰도다.

이 세 가지는 바로 같지도 않고
또 다시 같지 않음도 아니며
같지 않고 같지 않음도 아니면서
같다 같지 않다 함이 아닌 것도 아니니
이와 같이 모든 법을 말하면
모두가 같아서 차별이 없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다. 다음의 말과 같다.

공을 잘 믿고 이해할 수 있으며
형상이 없는 법에 놀라지 않고
중생들을 크게 가엾이 여기며
나 없음을 능히 참나니
이와 같은 네 가지의 법이
또한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다.

수행하는 이가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고 다른 성품이 없음을 환히 통달하는 까닭에 공을 믿고 이해한다고 한다. 다음의 말과 같다.

온갖 있는 것의 법은
끝내 제 성품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
만약 뭇 인연에서 난다고 하면
다른 것으로부터 있어져야 한다.

제 성품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다른 데서부터 나리오.
제 성품이 이미 이루어지지 않거니
다른 성품도 또한 없는 것이다.

만약 제 성품에서 나는 것을 떠났다면
곧 제 성품이 없을 것이며
만약 제 성품을 여의었다면
곧 제 형상이 없는 것이다.

제 성품과 제 성품의 형상은
합해지는 까닭에 있는 것이 아니고
흩어지는 까닭에 없는 것이 아니며
두 가지는 반드시 있으면서 곧 없다.

다른 것이 법을 낼 수가 없고
제 것도 또한 낼 수 없으며
제 것과 다른 것이 또한 낼 수 없고
둘을 여의면 또한 나지 않나니
만약 제 것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다른 것으로부터 나리오.

세속의 법을 여의면
곧 제 것과 다른 것이 없으며
만약 다른 것이 다른 것으로부터 난다면
다른 것은 곧 제 바탕이 없나니
제 바탕이 없으면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떤 물건으로써 다른 것을 내리오.

제 바탕이 없는 까닭에
다른 것이 나는 것도 또한 없으며
네 가지가 모두 공(空)한 까닭에
법에는 결정코 나고 없어짐이 없다.

‘형상이 없는 법에 놀라지 않는다’ 함은 모든 형상의 멀리 여읨을 믿고 즐기는 까닭에 놀라지 않는다. 다음의 말과 같다.

온갖 것이 만약 형상이 없다면
온갖 것은 곧 형상이 있으며
적멸이 바로 형상이 없으면
곧 이는 있음의 법이 되리라.

만약 형상 없는 법을 살피면
형상 없음이 곧 형상이 되며
만약 형상 없음을 닦는다고 말하면
곧 형상 없음을 닦는 것이 아니다.

만약 모든 헤아림과 집착을 버리면
그를 이름하여 형상 없음이라 하며
이 집착을 버린다는 형상을 취(取)하면
곧 해탈이 없는 것이 된다.

무릇 취함이 있는 까닭에
취함으로 인하여 버림이 있나니
취함을 여의면 어떤 일을 취하리오.
그를 이름하여 버림이라 한다.

취한다 함은 소용되어 취하고
그리고 취할 수 있는 법이어서
같이 다 여의면 모두가 없으리니
이 모두를 적멸이라 한다.

만약 법의 형상이 그대로 이뤄지면
이는 곧 성품이 없는 것이 되며
만약 성품이 없는 것이라면
이는 곧 형상이 없는 것이다.

만약 법에 성품이 없으면
이는 곧 형상이 없는 것이니
어떻게 성품이 없다고 말하면서
곧 이름하여 형상이 없다 하는가

만약 있다 하고 없다고 하면
막기도 하고 또한 허락해야 하며
마음에선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여도
이는 곧 허물이 없는 것이다.

어디에 먼저 법이 있어서
뒤에는 없어지지 않는 것인가
어디에 먼저 불탐[然]이 있어서
뒤에는 꺼짐이 있는 것인가

이 형상 있음의 적멸이야말로
형상 없음의 적멸과 같으니
그러므로 적멸이란 말이 있고
그리고 적멸이라 말하는 것이다.

먼저부터 오면서 적멸이 아니고
또한 적멸이 아닌 것도 아니며
또한 적멸과 적멸이 아니라 함도 아니고
적멸과 적멸이 아님이 아닌 것도 아니다.

‘중생들을 크게 가엾이 여긴다’ 함은 중생은 한량없고 가가 없는[無邊] 까닭에 가엾이 여기는 마음 또한 넓고 크다. 또 모든 부처님의 법은 한량없고 가가 없고 그지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다. 가엾이 여김의 마음은 바로 모든 부처님 법의 근본이어서 큰 법을 능히 얻는 까닭에 크게 가엾이 여김이라 하며, 일체 중생에서 가장 크신 이를 부처님이라 하는데 부처님의 행하시는 일인 까닭에 크게 가엾이 여김이라 한다.
‘나 없음의 법을 참는다’고 함은 진실한 법을 믿고 즐기는 까닭에, 모든 부처님께서 다 하나의 열반의 길인 까닭에 나가 없는 법이라 한다. 만약 이 법 안에 들어가면 마음이 곧 참지 못해짐이 마치 작은 풀이 불에 들어가면 곧 타 없어지는 것과 같지만, 만약 순금이 불에 들어가면 견디고 참아 낼 수 있어서 잃음이 없는 것이 이와 같다.
만약 범부가 착한 뿌리를 닦고 익히지 않고서 나 없음의 가운데 들어가면 참아낼 수 없을뿐더러 곧 삿된 의심이 생기겠지만, 이 보살은 한량없는 세상으로부터 오면서 착한 뿌리를 닦아 익히고 지혜가 아주 날카로우며 모든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므로 비록 아직은 번뇌를 끊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나 없음의 법 가운데 들어가면 마음으로 능히 참고 받는다.
‘나 없음의 법’이라 함은 바로 5음ㆍ10계(界)ㆍ12입(入)과 12인연 등이며, 나를 깨뜨리는 인연은 먼저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시라를 깨끗이 하려면 이 네 가지의 법을 행하여야 한다.

네 가지가 있어서 시라를 깨뜨리되
시라를 지니는 것과 비슷하나니
수행하는 이는 정진하고
자제하며 삼가 범하지 말지니라.

『보정경(寶頂經)』의「가섭품(迦葉品)」에서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의 계율 깨뜨린 비구는 계율 지닌 비구와 비슷하니라.
무엇이 네 가지인가? 가섭아, 어떤 비구가 경전과 계율 중에 모두 잘 갖추어 행하면서도 나[我]가 있다고 말하면, 가섭아, 이것이 계율을 깨뜨렸는데도 계율을 지닌 것과 비슷하다고 하느니라.
또 가섭아, 어떤 비구가 계율의 경전을 외우고 지니며 계행을 수호하면서도 몸에 대한 고집에 움직이지 않고 여의지도 않으면, 이것이 계율을 깨뜨렸는데도 계율 지닌 것과 비슷하다고 하느니라.
또 가섭아, 어떤 비구가 열두 가지 두타를 갖추어 행하면서도 모든 법이 결정코 있다고 보면, 이것이 계율을 깨뜨렸는데도 계율 지닌 것과 비슷하다고 하느니라.
또 가섭아, 어떤 비구가 중생을 반연하여 인자한 마음을 행하면서도 모든 지어감[行]은 나는 형상이 없다고 함을 듣고 마음으로 곧 놀라고 두려워하면, 이것이 계율을 깨뜨렸는데도 계율 지닌 것과 비슷하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이 네 가지의 계율 깨뜨린 사람은 마치 계율을 지닌 것과 비슷하니라.”
다시 말하겠다.

세존께서 하신 말씀에
사문에게 네 가지 품류가 있는데
네 번째의 것은 하여야 하되
앞의 세 가지는 멀리 여의라 하셨다.

「가섭품」중에 네 가지의 비구를 말씀하셨는데, 네 번째의 사문은 배워야 하지만 세 가지는 하면 안 된다.
무엇이 네 가지냐 하면,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의 사문이 있나니, 첫째 형상만의 사문이며, 둘째 위의로 속이면서 괴이한 짓을 하는 사문이며, 셋째 이름과 이양을 탐내고 구하는 사문이며, 넷째 진실하게 행하는 사문이니라.
어떤 이를 형상과 모양만의 사문이라 하는가? 형상만의 사문과 모양만의 사문이 있으니, 이른바 승가리(僧伽梨)를 입고 수염과 머리칼을 깎았으며 검은 발우를 가졌으면서, 깨끗하지 못한 몸의 업과 깨끗하지 못한 입의 업과 깨끗하지 못한 뜻의 업을 행하며, 적멸을 구하지 않고 착함을 구하지 않으며 아끼고 탐내고 게으르면서 나쁜 법을 행하며, 계율을 깨뜨리고 도 닦기를 즐기지 않나니, 이를 형상과 모양만의 사문이라 하느니라.
어떤 이를 위의로 속이면서 괴이한 짓을 하는 사문이라 하는가? 네 가지 위의를 갖추고 자세하고 차분하며 옷과 밥은 얻는 그대로 하여 성인되는 종자의 행을 하며 집에 있는 이와 집을 떠난 이들과 함께 있지 않고 말이 적지만, 하는 일로써 사람의 뜻을 붙잡으려 하고 마음은 깨끗하지 못하며, 이와 같은 위의로 착함을 닦지 않고 적멸을 위하지 않으면서 모든 법은 결정코 있다고 보고 공(空)하여, 있는 것이 없는 법을 두려워하기를 마치 구덩이에 떨어지듯 하며, 공을 말한 이를 보면 원수라는 생각을 내나니, 이를 위의로 속이면서 괴이한 짓을 하는 사문이라 하느니라.
어떤 이를 이름과 이양을 탐내고 구하는 사문이라 하는가? 어떠한 사문이 억지로 계율을 지니기는 하나, 생각하기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가 계율 지니는 것을 알게 할까?’ 하고, 억지로 많이 듣기를 구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가 많이 들은 줄 알게 할까?’ 하고, 억지로 아련야의 법을 지으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가 욕심이 적고 족한 줄 알며, 멀리 여의는 법을 행하고 있음을 알게 할까?’ 하나니, 싫증내어 여의려는 마음이 아니고 번뇌를 없애려고 하지 않고 여덟 가지 바르고 거룩한 도를 구하지 않고 열반을 위하지 않으며, 일체 중생을 건지려 함이 아닌 까닭에, 이를 이름과 이양을 구하는 사문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이를 진실하게 행하는 사문이라 하는가? 어떠한 사문이 오히려 몸도 아끼지 않거든 하물며 이름과 이양을 아끼겠느냐. 모든 법이 공(空)하여 있는 것 없음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여 말씀대로 행하면서 오히려 열반도 탐내지 않으며 맑은 행[梵行]을 하거든 하물며 삼계를 탐내겠느냐. 오히려 공의 소견에도 집착하지 않거든 하물며 나[我]다, 사람이다, 중생이다, 목숨이다 라는 소견과 아는 이[知者]가 있다는 소견이며, 보는 이[見者]가 있다는 소견에 집착하겠느냐.
모든 번뇌 중에서 해탈을 구하고 바깥에서 구하지 않으며, 온갖 법은 본래 깨끗하여 때가 없음을 자세히 살피고 이 사람은 몸에 의지할 뿐 그 밖의 것에 의지하지 않으며, 모든 법이 참 모습[實相]이므로 오히려 법신도 탐내지 않거든 하물며 신이겠느냐.
법을 여의는 형상을 보고 말로써 하지 않으며, 오히려 함이 없는 성인들도 분별하지 않거든 하물며 뭇 사람들이겠느냐.
끊기 위해서가 아니고 닦고 익히기 위해서가 아닌 까닭에 나고 죽음을 미워하지도 않고 열반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속박이 없고 해탈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법은 결정코 형상이 없음을 알고 안 뒤에는 나고 죽음에도 오가지 않고 또한 없어지지도 않는다.
가섭아, 이를 진실한 행을 따르는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너희들은 부지런히 진실한 행을 행해야 하며, 사문으로서 이름에 해를 받지 말라.”
다시 말하겠다.

임금 등의 법을 위하여
시라를 지니지 말며
또한 나는 것 등에 의지하여
시라를 지니지 말라.

수행하는 이로서 시라를 깨끗이 하려면 임금 등의 법을 위해서는 안 된다. ‘임금 등의 법’이라 함은 부처님께서 정덕 역사(淨德力士)를 위하여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의 시라는 목숨을 잃는 인연에 이르는 한이 있더라도 오히려 계율을 깨뜨리지 않는다. 국왕 되기를 바라는 까닭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하늘에 나기를 바라는 까닭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석제환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며, 범천왕을 위해서가 아니며, 부자의 즐거움과 자재한 힘을 위하는 까닭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이름과 칭찬을 위하는 까닭이 아니며, 이양을 위하는 까닭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수명을 위하는 까닭이 아니며, 음식ㆍ의복ㆍ침구ㆍ의약 등의 살림하는 물건을 위하는 까닭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것 등의 법에 의지하지 않는다’ 함은 하늘과 사람에 태어나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을 의지하여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다른 이를 의지하여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이 세상을 의지하여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뒤 세상을 의지하여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빛깔을 의지하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의지하지 않으며, 눈을 의지하지 않고 감관[入]을 의지하지 않고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의지하는 까닭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욕심세계ㆍ형상세계ㆍ무형세계를 의지하는 까닭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지옥ㆍ축생ㆍ아귀ㆍ아수라의 나쁜 길을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하늘 안에서 가난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인간 가운데서 가난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문】만약 이와 같은 따위의 법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어떠한 법을 위하여 계율을 지니는 것인가?

【답】 3보(寶)가 오래오래 머무르게 하기 위해
그 때문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며
갖가지의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하여
그 때문에 계율을 지니는 것이다.

‘삼보가 오래오래 머무른다’ 함은 부처님의 종자를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며, 법 바퀴를 굴리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며, 성인들에게 포섭되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며,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며, 일체 중생들에게 편안과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며, 중생들을 편안하고 즐거운 곳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며, 선정을 닦기 위하여 계율을 지니며,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을 위하여 계율을 지니는 것이다. 이런 일은『정덕경(淨德經)』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것과 같다.

보살로서 이와 같이 할 수 있으면
시라를 성취하게 되며
열 가지의 이익과 그 밖의
갖가지의 이익을 잃지 않는다.

또 다시 네 가지의 어려운 곳[四難處]과
삿된 길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네 가지 잃음의 법[四失法]을 얻지 않고
네 가지 무너짐의 법[四壞法]을 만나지 않는다.

모든 부처님 등의 네 가지 법[四法]에
또 속이지 않음을 얻고
지옥에 떨어짐과
열 가지의 두려운 일들을 넘어설 수 있다.

‘열 가지의 이익을 잃지 않는다’ 함은 언제나 전륜성왕이 되는 것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그 가운데서 방일하지 않는 마음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석제환인이 되는 것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그 가운데서 방일하지 않는 마음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모든 부처님의 도 구하는 것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모든 보살 교화하는 일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요설변재(樂說變才)를 잃지 않으며, 언제나 여러 착한 뿌리와 복덕을 심어서 소원을 만족시키는 것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며 성현들에게 칭찬 받는 것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온갖 지혜를 빨리 두루 갖출 수 있는 것을 잃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열 가지 이익이다.
‘갖가지의 이익’이라 함은 가지가지의 공덕을 놓치지 않는 것이니, 경전에서의 말씀과 같다.
“보살이 계율을 잘 지키고 지니면 언제나 여러 하늘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여러 용왕들이 잘 보호하고 여러 사람들이 공양하며, 언제나 모든 부처님에게 염려함을 받으며, 언제나 세간의 큰 스승이 되어 중생을 가엾이 여기느니라.”
‘네 가지 어려운 곳과 삿된 길에 떨어지지 않는다’ 함은, 보살이 이와 같이 할 수 있으면 시라를 성취하는 이로서 네 가지의 어려운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첫째 부처님 없는 데에 태어나지 않으며, 둘째 삿된 소견 지닌 집에 태어나지 않으며, 셋째 장수천(長壽天)에 나지 않으며, 넷째 온갖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네 가지 잃지 않는 법을 얻는다’ 함은 첫째 보리심을 잃지 않으며, 둘째 부처님 생각함을 잃지 않으며, 셋째 언제나 많이 들으려 함을 잃지 않으며, 넷째 한량없는 세상 일 생각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네 가지 무너짐의 법을 만나지 않는다’ 함은 첫째 법의 무너짐을 만나지 않으며, 둘째 전쟁을 만나지 않으며, 셋째 악독한 것을 만나지 않으며, 넷째 굶주림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네 가지 속이지 않는 법을 얻는다’ 함은 첫째 시방의 부처님들을 속이지 않으며, 둘째 여러 하늘과 신들을 속이지 않으며, 셋째 중생을 속이지 않으며, 넷째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또, ‘열 가지 두려움을 넘어선다’ 함은 보살이 이와 같이 깨끗하게 계율을 지니면 지옥 따위에 떨어지는 열 가지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 지옥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으며, 둘째 축생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으며, 셋째 아귀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으며, 넷째 가난함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으며, 다섯째 헐뜯음과 꾸짖음과 악한 이름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으며, 일곱째 성문과 벽지불의 정위(正位)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으며, 여덟째 하늘ㆍ사람ㆍ용ㆍ귀신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으며, 아홉째 칼과 병사와 나쁜 독이며, 물ㆍ불ㆍ사자ㆍ범ㆍ이리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당하는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으며, 열째 삿된 소견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깨끗하게 계율을 지니면 모든 부처님의 법에 머무를 수 있나니, 이른바 마흔 가지 특수한 법으로 법 그릇이 될 만하다.


34. 찬계품(讚戒品)4)

보살이 이와 같이 시라를 깨끗이 지니면 갖가지의 공덕과 모든 이익을 거둘 수 있나니, 무진의보살의 말과 같다.
“또, 시라의 조그마한 부분을 간략하게 칭찬하겠다. 시라는 집을 떠난 사람에게 첫째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데이니 마치 나이 젊어서 부하고 귀하게 되어 가장 기뻐하고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으며, 선법을 더욱 자라게 할 수 있음은 마치 인자한 어머니가 아들을 기르는 것과 같으며, 쇠망함과 근심을 막고 보호할 수 있음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보호하는 것과 같다.
시라가 집을 떠난 이들의 온갖 큰 이익을 성취할 수 있게 함은 마치 속인에게 재물이 많은 것과 같으며, 시라가 온갖 괴로움을 구할 수 있게 함은 마치 순조로운 이치를 바르게 행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착한 사람에게 공경을 받게 함은 마치 은혜를 갚는 법과 같으며, 시라가 사람들에게 사랑하고 중하게 여겨짐은 마치 수명과 같으며, 시라가 지혜로운 이에게 귀하게 여겨짐은 마치 지혜와 같다.
해탈을 구하는 이가 시라를 잘 보호함은 마치 왕의 은밀한 일을 대신이 수호하는 것과 같으며, 도의 이익을 즐기는 이가 시라를 사랑하고 중히 여김은 마치 열반을 좋아하여 부처님의 법을 사랑하고 중히 여기는 것과 같으며, 지혜로운 사람이 시라를 잘 지킴은 마치 수명을 아끼는 이가 몸을 편안하게 법을 보호하여 죽을 때의 다급함을 구하는 것과 같다.
시라가 으뜸이 됨은 마치 급한 어려움이 닥쳤을 적에 잘 아는 벗을 만난 것과 같으며, 시라가 깨끗하게 어진 사람을 장엄함은 마치 귀한 집 딸이 부끄러워하면서 티가 없는 것과 같으며, 시라는 공덕의 처음 문이니 마치 아첨과 간사함이 없이 모든 착한 이익을 여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가장 맑은 행의 근본이니 마치 정직한 마음이 곧 바른 소견의 근본인 것과 같다.
여러 거룩한 분들의 법에 시라로써 근본을 삼음은 마치 중요한 지위를 구하는 데에 정직한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곧 공덕의 보배 가리임은 마치 방일하지 않는 것과 같고, 또한 마치 바른 생각이 모든 이익을 낼 수 있음과 같고, 또한 마치 어진 벗이 처음ㆍ중간 그리고 마지막이 다 좋은 것과 같다.
바른 법을 배우는 이가 지나치게 되지 않음은 마치 바다가 언제나 수평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곧 공덕의 머무르는 곳임은 마치 대지에 만물이 의지하는 것과도 같으며, 시라가 모든 착한 공덕을 더욱 불어나게 함은 마치 하늘에서 내린 비가 종자를 더욱 불어나게 하는 것과 같으며, 5근(根)을 이룰 수 있게 함은 마치 불이 물건을 익게 하는 것과 같으며, 모든 이익(利益)을 낼 수 있음은 마치 바람이 몸을 이루는 것과 같다.
시라가 온갖 도의 결과를 받을 수 있음은 마치 허공이 만물을 머금어 받아들이는 것과 같고 좋은 병(甁)이 원하는 대로 다 얻어지는 것과도 같고 맛있는 반찬이 모든 감관을 이롭게 하는 것과도 같으며, 시라는 모든 도를 잘 통달할 수 있게 하고 모든 감관이 깨끗하여 걸림이 없게 할 수 있으며, 지혜와 수명이 시라를 근본으로 삼음은 마치 몸과 목숨은 호흡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과 같다.
시라가 곧 최고의 의지할 곳임은 마치 백성이 왕을 의지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곧 이 모든 공덕의 주인임은 마치 군대의 대장과 같으며, 시라가 뭇 쾌락을 얻게 함은 마치 뜻을 따라서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알맞게 하는 것과 같고, 또 열반을 구하고 천상에 나는 것과도 같다.
시라가 곧 도를 배움에 소요되는 물품임은 마치 저 멀리 여행하는 이가 반드시 옷과 양식을 갖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사람을 거느리고 좋은 데로 가게 함은 마치 험한 길을 지나가는데 좋은 길잡이를 만난 것과 같으며, 시라가 사람을 건네서 나고 죽음으로부터 통과하게 함은 마치 단단한 배로써 큰 바다를 건너게 함과 같으며, 시라가 모든 번뇌의 근심을 없앨 수 있음은 마치 좋은 약으로 뭇 병을 없앨 수 있는 것과 같다.
시라의 무기로 악마와 도둑을 다룰 수 있음은 마치 좋은 병기로 적진을 상대할 수 있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사람을 데리고 갈 적에 여러 고통 되는 가운데를 따르면서 보호하며 버리지 아니함은 마치 사랑하고 친한 이가 어려움을 겪을 적에 버리지 않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뒤 세상의 어리석고 어둠을 비출 수 있음은 마치 큰 등의 광명으로 컴컴함을 없애는 것과 같다.
시라가 사람을 제도하여 모든 나쁜 길을 벗어나게 함은 마치 깊은 물을 건넘에 좋은 교량을 만난 것과 같으며, 시라가 번뇌 열의 급함을 없앨 수 있음은 마치 맑고 시원한 방에서 독한 열을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으며, 나쁜 갈래로 떨어지려는 것을 시라가 구제할 수 있음은 마치 용사가 칼을 가지고 사람의 두려움을 구제하는 것과 같다.
무릇 범부들로서 시라를 깊이 사랑해야 함은 마치 모든 보살이 진리의 훌륭한 것을 배우는 것과 같으며, 수행하는 이가 시라를 잘 행함은 마치 모든 보살이 버림[捨]의 훌륭한 것을 행하는 것과 같으며, 과위를 얻은 사람이 시라를 잘 닦음은 보살이 적멸의 훌륭한 것을 닦는 것과도 같으며, 시라를 보호하고 지녀서 사람에게 과위를 얻게 함은 마치 보살이 지혜의 훌륭한 것을 닦는 것과도 같다.
법을 무너뜨리지 않는 이가 시라를 깨끗이 할 수 있음은 마치 보살들이 깨끗하여 때가 없는 것과 같으며, 모든 나쁜 사람들이 시라를 버리고 여읨은 마치 저 아첨과 간사함이 정직한 마음을 버리고 여의는 것과 같으며, 방일한 사람이 시라를 행하지 아니함은 마치 간탐하는 이가 보시를 행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방일한 사람이 시라를 버리고 여읨은 마치 쓸모없는 논의를 하는 이가 적멸의 법을 여의는 것과 같으며, 어리석은 사람에게 시라가 없음은 마치 장님이 다섯 가지 빛깔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생각함이 없는 이가 시라를 버리고 멀리 함은 마치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여의고 열반을 버리며 멀리하는 것과 같으며, 몸을 잘 사랑하는 이가 시라를 깊이 즐김은 마치 아라한이 법을 깊이 사랑하고 즐기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괴로움 없는 선법을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음은 마치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면 착한 일 끊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시라가 모든 도의 결과에 머무르게 할 수 있음은 마치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법이 오래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는 마치 부처님께서 자신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모든 착한 공덕을 잘 보호함은 마치 왕이 때를 알아서 나라의 지경을 잘 보호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수행하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함은 마치 수다원의 과위와 같고, 때로 일을 하되 뒤에 곧 뉘우침이 없는 것과 같다.
시라가 마지막에 반드시 열반을 얻음은 마치 보살의 서원이 필경에는 부처님이 되는 것과 같으며, 시라는 마치 또한 좋은 밭과 좋은 못에 씨를 던져 놓으면 빨리 자라게 되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바로 바른 행의 원인임은 마치 때와 방소 등이 모든 일을 이루는 원인임을 아는 것과 같으며, 사람이 단정 엄숙하고 복덕이 있으며 지혜로우면 사람들에게 존경과 귀히 여김을 받는 것처럼, 시라도 그와 같아서 자기와 남의 공경을 받는다.
마치 복덕이 성숙될 때에 마음이 곧 편안하고 고요한 것처럼 시라도 마음에 편안하고 고요함을 얻고 모든 이익의 과보를 받게 하며, 시라가 수행하는 이를 기쁘게 함은 마치 좋은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곧 과실이 없고 두려움의 법이 없음은 마치 사람이 과실 없으면 마음이 곧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다.
시라는 사람에게 이 세상과 뒤의 세상에 두려움이 없고 모든 죄악이 없게 하며, 공양하고 칭찬하면서 시라를 지니는 이는 그 밖의 것에도 기뻐하고 스스로가 분수가 있음을 알며, 시라가 중생을 친근히 하고 사랑함은 마치 인자함의 선정을 닦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괴로움을 없앰은 마치 가엾이 여김의 선정을 닦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미움이 없고 사랑이 없음은 마치 평등[捨]의 선정을 닦는 것과 같다.
시라가 사람에게 미쁨을 받음은 마치 네 가지 착한 말[四種善語]이 사람에게 믿게 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즐거이 행해짐은 마치 세상의 법 중에 언제나 기뻐지는 마음과 같으며, 마치 많이 들음이 자유자재로 말하게 되는 원인인 것처럼 시라는 곧 말과 행이 서로가 응하는 원인이며, 시라가 바로 두려움 없음의 원인임은 마치 말 재주[辯才]에 두려움이 없는 것과 같다.
시라가 바로 명성의 원인임은 마치 모든 경전을 통달하면 좋은 이름이 있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바로 법을 구할 수 있음은 마치 쉽게 말을 같이 하는 이는 남에게 구제를 받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밝은 해탈의 법을 이룰 수 있음은 마치 하신 말씀대로 행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바로 모든 부처님의 형상임은 마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같다.
시라가 도 닦는 법을 도움은 마치 선정이 지혜를 돕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사람에게 두려움과 어려움이 없게 함은 마치 큰 담력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없게 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가 바로 모든 공덕의 무더기임은 마치 설산(雪山)의 보물이 쌓인 무더기와 같으며, 믿음[信] 등의 공덕과 여러 가지 있기 드문 일이 의지하고 머무를 수 있는 시라는 마치 큰 바다에 여러 가지 기이한 것이 있는 것과 같고 맛있는 과일이 나무를 의지하는 것과 같다.
시라가 사람에게 좋아하는 대로 결과를 줌은 마치 바른 지혜를 따르는 이는 행하는 대로 곧 얻어지는 것과 같으며, 시라는 물이 없되 깨끗하다고 하며, 시라는 곧 가장 으뜸가는 미묘한 향이지만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 중에서 나오지 않으며, 시라가 장엄하면 여러 보배 장식을 넘어서 언제나 그 몸에 머무르지만 물리칠 수 있는 이가 없다.
시라는 크게 즐겁지만 다섯 가지 욕심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고 뒤 세상에서도 여러 미묘한 즐거움의 과보를 받으며, 시라는 바로 온갖 세간의 하늘ㆍ사람ㆍ악마ㆍ범왕ㆍ사문ㆍ바라문 등이 찬탄하는 것이며, 시라는 몸 안을 쾌락하고 자재하게 하지만 다른 데서부터 얻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나고 열반하는 좋은 방편이며, 시라는 곧 이는 강을 믿고 똑바로 건너도 진창ㆍ함정ㆍ기와ㆍ돌ㆍ가시나무 따위가 없고 뜻대로 들어갈 수 있어서 잘 건너지며 걸림이 없다.
시라는 바로 보배 재물로서 여러 손해와 괴로움이 없으며, 시라는 바로 깨끗한 길이어서 무너뜨릴 수 있는 이가 없음이 마치 편편한 길을 가는 이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과 같으며, 시라는 바로 좋은 밭이어서 심지 않고 거두지 않는데도 저절로 열매를 얻으며, 시라는 바로 감로의 열매로서 나무와 풀에서 나는 것이 아니지만 향기와 맛이 견줄 데 없다.
시라는 바로 아름다운 꽃으로서 물과 뭍에서 난 것이 아니며 언제나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으며, 시라가 번뇌의 열을 없앰은 마치 찬물로 목욕하는 것과 같으며, 시라는 잘 수호하기가 모든 무기보다 뛰어나며, 시라를 행하는 이는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에 공경함을 받으며, 시라는 바로 자재한 곳이므로 다툼이 없다.
시라는 바로 좋은 보배로서 산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큰 바다로부터 나오지 않았으면서 보배 값어치는 한량없으며, 시라는 생활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대중에 들어가서의 두려움, 고문 받는 두려움, 나쁜 길에 떨어지리라는 두려움 등을 넘어서며, 시라는 이 세상과 뒤 세상에서 늘 사람을 따르고 쫓음은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다.”


35. 계보품(戒報品)5)

보살의 이구지(離垢地)의 깨끗함을 완전히 말하여 마쳤나니, 보살로서 이 지에 머무르면 언제나 전륜왕이 된다.
제2지는 10지 중에서 이구지라고 하나니, 간탐과 열 가지 악의 근본이 영원히 다하는 까닭에 이구지라 이름한다.
보살이 이구지 중에서는 깊이 시라바라밀을 행하나니, 이 보살이 만약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하면 이구지의 과보 인연 때문에 4천하의 전륜성왕이 되어 천 바퀴살의 금륜(金輪)을 얻는데, 갖가지 값진 보배로 그 바퀴 테를 장엄했고 순 유리로 바퀴통을 만들었다.
둘레 15리에는 백 가지의 야차신이 함께 수호하게 되고, 허공을 날아다니되 네 가지 병사들이 인도하며, 가볍고 씩씩하고 빠르기가 마치 금시조와 같고 바람과 같고 생각과 같다.
나아가는 곳이면 모든 환난이 없어지고 적과 도둑이 항복하고 모든 작은 왕들은 모두가 와서 돌아와 복종하며, 친척과 백성들은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
널리 비추어 밝히며, 성왕의 성바지는 가지가지의 꽃다발과 영락을 섞어 장식하고 다섯 가지 풍류가 항상 따르며, 기묘한 보배 일산으로써 그 위를 벌려 가린다.
다닐 때에는 갖가지 꽃과 향과 가루 전단이 언제나 비처럼 내려 공양하고, 새카만 침수향(沈水香)과 우두전단향(牛頭栴檀香)과 황전단향(黃栴檀香)을 태워서 그 몸에 바르며, 그 수레바퀴의 양 편에는 천녀가 흰 불자(拂子)를 붙잡고서 모시고 서며, 갖가지 값진 보배로 그 일산이 되고 그 수레바퀴는 여러 가지 있기 드문 일을 지니고 장엄되었나니, 이를 금륜보(金輪寶)가 완전히 갖추어졌다고 한다.
온갖 코끼리 형상은 몸이 크고 흰데, 마치 순은의 산에서 신령스럽고 큰 산이 제왕이 되어 나온 것 같이 큰 코끼리가 여럿의 안에서 허공을 날아다니며, 이라바나(伊羅婆那)ㆍ안사나왕(安闍那王)ㆍ마나(摩那) 등의 여러 큰 코끼리 왕을 모두 꺾고 물리칠 수 있나니, 이를 백상보(白象寶)가 완전히 갖추어졌다고 한다.
말의 형상과 빛깔은 마치 공작의 목과 같고 그 몸의 가볍고 날램이 마치 금시조가 날아다니매 거리낌이 없는 것과 같으니, 이를 마보(馬寶)라고 한다.
몸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질병이 없고 큰 세력이 있으며, 형체는 깨끗하고 생각은 깊고 멀며, 마음이 정직하여 부드럽고 지닌 계율이 견고하며, 깊이 왕을 공경하고 사랑하며, 갖가지의 경서와 기술을 통달하였나니, 이를 주병신보(主兵臣寶)라고 한다.
마치 재물 주인과 천왕(天王)처럼 부자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지고 천만억 종류의 여러 가지 보배가 묻힌 광이 언제나 따라 다니며 천만억 종류의 야차신들의 권속이 따라다니는데, 이는 모두가 전생에 행한 업의 과보며, 금ㆍ은ㆍ제청(帝靑)ㆍ대청(大靑)ㆍ금강ㆍ마라갈(魔羅竭)ㆍ자거ㆍ마노ㆍ산호ㆍ파리ㆍ마니ㆍ진주ㆍ유리 등의 갖가지 보물을 잘 알고 분별하며, 출입의 많고 적음을 모두 다 잘 알 수 있어서 마땅함을 따라 쓸 수 있고 왕의 소원을 채울 수 있나니, 이를 거사보(居士寶)라고 한다.
광명은 마치 해와 달이 16유순을 비추는 것과 같고 형상은 마치 큰 북과 같으며, 갖가지의 독충의 악한 기운과 질병의 고통을 없앨 수 있고 사람과 하늘이 보고서 희귀하게 여겨 사랑하지 않음이 없으며, 아름다운 꽃과 영락으로써 장엄이 되고 높은 당기에 걸려 있으며, 거룩한 광명이 기특하여 중생들에게 있기 드문 마음을 내어 큰 기쁨을 내게 하나니, 이를 주보(珠寶)라고 한다.
그 손톱은 붉으면서 얇고 그 형상은 길고 곧고 높고 불룩하며, 빛은 아름답고 번쩍여서 뚱뚱하지도 않고 파리하지도 않으며, 몸의 살은 균형이 잡히고 살갗은 두꺼우며 세밀하고 얇은 가죽은 고통스런 일을 견뎌내지 못하며, 몸의 편안하고 단단함은 마치 다라나무[多羅樹]와 같고 몸 위의 곳곳에 길(吉)의 글자가 분명하다. 좋은 나무의 무늬가 그려져서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미고 큰 코끼리ㆍ소ㆍ말 등이 그려진 무늬와 번기ㆍ일산의 무늬와 고기의 무늬와 동산이며 숲 등의 무늬가 그 몸 위에 나타나 있다.
복사뼈가 펀펀하여 나타나지 않고 발은 거북의 등과 같으며, 발 가장자리는 모두가 붉고 발뒤꿈치는 뚜렷하고 넓으며, 장딴지는 곧으면서 부드럽고 무릎은 둥글면서 나타나지 않으며, 넓적다리는 마치 금 기둥과 같고 파초나무와 같고 코끼리의 코와 같이 되어 부드럽고 아름다운 빛이 나면서 고르고 뚜렷하며 곧장 가로지른 무늬가 셋이 있다.
배는 균평하여 나타나지 않고 배꼽은 둥글면서 깊으며, 등골은 편편하면서 곧고 젖은 마치 빈바 열매[頻婆果]와 같고 또 두 쌍의 원앙새가 둥글게 일어서 있는 것과 같되 처지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산뜻하다.
또, 그 팔은 가늘고 곧고 둥글고 길면서 마디는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그 코는 똑바르게 되어 한편으로 쏠리거나 나오지 않았는데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면서 구멍은 가려져서 나타나지 않으며, 두 뺨은 깊은 데가 없이 뚜렷하면서 높지도 않고 양쪽은 다 가득히 찼으며, 이마는 바르고 길면서 좋게 그려진 무늬가 있다.
귀는 부드럽고 처졌는데 값을 칠 수 없는 귀걸이가 달렸으며, 이는 마치 진주의 꿰미와 같고 초승달과 같고 눈과 같고 흰 마노와 같으며, 입술은 마치 햇빛에 비치는 붉은 저녁놀과 같고 빈바 열매와 같으며, 위아래가 서로 맞닿아서 두껍지도 않고 얇지도 않음이 마치 붉은 진주 꿰미와 같다.
눈에는 희고 검은 눈동자의 두 빛깔이 분명하게 장엄되어 길고 넓은 광명이 맑고 깨끗하며, 그 속눈썹은 푸르고 빽빽하고 길면서 어지럽지 않으며, 눈썹 털은 두껍지도 않고 얇지도 않고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음이 마치 초승달과 같고 높게 굽으며 길면서 두 가장자리가 서로 똑같으며, 머리칼은 부드러우면서 가늘고 빛이 번지르르 하며 어지럽지 않다.
그 몸은 향기로워서 언제나 향기가 있음이 마치 갖가지 으뜸가는 좋은 향합을 열어 놓은 것과 같으며,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는 언제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전단 향기가 나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입 안에서는 항상 푸른 연꽃 향기가 있으며, 몸은 부드러워서 마치 가릉가(伽陵伽)와 같고 하늘의 옷처럼 매끄러운 일들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
마음은 아첨과 간사함이 없어서 곧고 미덥고 부끄러워하며 깊이 왕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때를 알고 방소를 알아서 방편을 잘 지니고 왕의 마음을 거두면서 앉고 일어나고 말하는 데에 왕의 뜻에 들며, 왕의 뜻을 따라 행하되 언제나 사랑스런 말을 함이 마치 세간에 덕스러운 여인이 좋은 것을 완전히 갖추어 있는 것과 같다.
빛깔은 마치 제로다마(提盧多摩) 천녀가 깨끗하고 분명한 것과 같고 15일 밤의 달과 같으며, 그림의 무늬가 빛나면서 나타남이 마치 제석의 부인 사지(舍脂)와 같으며, 하늘 옷을 입고 하늘의 꽃다발과 하늘의 향을 지니고 많은 하늘의 광명인 금 마니주로서 그 몸을 장식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풍류 잡히고 즐겁게 놀고 익살 하는 일 들을 잘 알며, 방편을 잘 지녀서 뜻을 따라 왕을 기쁘게 함이 온갖 여인들 중에서 이 여인이 으뜸이니, 이를 옥녀보(玉女寶)라고 한다.
또, 전륜성왕에게는 네 가지 뜻대로 되는 덕이 있나니, 첫째 빛깔 모습이 단정 엄숙하여 4천하에서 첫째이며 견줄 데 없음이며, 둘째 병들어 앓음이 없음이며, 셋째 인민들이 깊이 사랑함이며, 넷째 수명이 길고 오래인 것이다.
중생들을 가르쳐 열 가지 착한 업으로써 여러 하늘 궁전을 가득 차게 하고 아수라의 무리들을 줄이며, 모든 나쁜 길을 엷게 하여 착한 것을 더욱 불린다.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되는 일을 구하고 하는 일이 많이 있으며, 무기를 쓰지 않고 법으로써 다스리고 교화하며, 천자(天子)는 편안하고 즐거우며, 밖으로는 적국의 두려움이 없고 안으로는 음모의 두려움이 없다.
또, 그 나라 안에는 질병과 굶주림과 여러 재앙의 괴로운 일들이 없으며, 온갖 변두리의 임금은 모두가 돌아와 복종하고 권속들이 많이 있어서 빠르게 사람들을 포섭할 수 있으며, 다시는 나라 지경을 침해할 수가 없고 그 네 가지 병사들의 세력은 두루 갖추어졌으며, 모든 바라문과 거사며 평민들이 다 같이 사랑하고 공경한다.
감미롭고 향기로운 음식은 저절로 있어지고 나라의 경계는 날로 더하여 줄어짐이 없으며, 경서와 기술과 산수와 주문이며, 술수를 모두 다 받아 지녀서 교묘하게 논설할 수 있고 이치를 분별하며, 뭇 신하들은 두루 갖추고 모두 위엄과 덕을 지녔으며, 언제나 재물의 보시를 행하여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다.
천 명의 아들은 단정 엄숙하여 마치 천자들과 같이 위엄과 덕이 있고 용맹하고 씩씩하여 강한 적을 깨뜨릴 수 있으며, 살고 있는 궁전과 전각과 망루는 마치 사천왕과 제석의 훌륭한 궁전과 같으며, 왕의 가르침은 4천하에서는 깨뜨릴 수가 없고 오직 이 왕의 거룩한 모습만이 두루 갖추어진 까닭에 미칠 수 있는 이가 없다.
음성은 깊고 멀어서 듣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흩어지지 않고 어지럽지 않음이 마치 가라빈가새[迦羅頻伽鳥]의 아름답고 부드럽고 온화하고 맑은 소리가 듣는 이의 귀를 기쁘게 하는 것과 같으며, 권속들은 마음이 같아서 무너뜨릴 수가 없다.
살고 있는 곳의 땅과 물과 허공은 걸림이 없고 위력이 매우 왕성하여 큰일을 해 낼 수 있으며, 늙은이들을 문안하며 염려하고 사람을 속이지 않으며, 마음에 시샘이 없고 그릇된 법을 차마 하지 못하며, 성냄이 없고 위의(威儀)는 차분하면서 경솔하지 않으며, 말하는 것은 정성되고 진실하여 이간질을 하는 일이 없다.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지니면서 항상 착한 마음을 닦으며, 나아가고 머무름에 때를 알아서 방편을 잃지 않으며, 얼굴색은 기뻐하고 말은 언제나 웃음을 띠우며, 일찍이 눈썹을 찡그리고 나쁜 눈으로써 사람을 보는 일이 없다.
이익을 잃은 이에게는 이익을 지어 주고 이미 이익이 있는 이에게는 깊이 갚을 줄 알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품게 하며, 큰 지혜를 지니고 거룩한 덕이 높고 엄숙하면서 욕을 참을 수 있고 대장부로서의 모습과 그 성품은 매우 엄격하며, 여러 가지의 하는 일은 빨리 이룩하여 마치고 먼저 바르게 생각한 연후에 비로소 행한다.
왕에게는 법 눈[法眼]을 지녀서 하는 것이 아주 뛰어나고 잘 생각하는 이라야 비로소 그와 함께 일을 하며, 만약 맡을 이가 못되면 다시 현명한 이를 구하고 복과 덕과 재물을 잘 모으며, 깨끗하게 스스로가 맡고 지키면서 계율을 깨뜨리지 않는다.
재보가 많고 넉넉함이 마치 비사문(毘沙門) 천왕과 같고 큰 세력을 지님이 마치 하늘 제석과 같으며, 단정 엄숙하여 사랑할 만함이 마치 보름달과 같고 비출 수 있음은 마치 해와 같으며, 참을 수 있음은 땅과 같고 마음의 깊음은 마치 바다와 같으며, 괴로움과 즐거움에 기울거나 움직임을 받지 아니함은 마치 수미산을 바람이 요동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보배와 미묘한 일이 머무르는 곳이며, 모든 착한 복덕이 의지하는 곳 이며, 바로 일체세간에 친척들의 여러 괴로움이 돌아가는 곳이며, 돌아갈 데가 없으면 돌아갈 데가 되어 주고 집이 없으면 집이 되어 주고 두려움이 있는 이에게는 두려움을 없애 주나니, 전륜성왕에게는 이와 같은 등의 모습이 있다.

계율 깨뜨린 이를 전환시켜
선법에 머무르게 할 수 있나니
그 나머지의 행하는 일들은
초지 중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계율 깨뜨린 이를 전환시킨다’ 함은 중생들에게 나쁜 일을 버리고 착한 일을 행하여 편안하고 즐거운 일을 얻게 하는 것이다.
‘선법에 머무르게 한다’ 함은 중생들의 나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정화시켜서 착한 몸ㆍ입ㆍ뜻의 업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초지 중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함은, 이른바 모든 부처님을 뵙는 것과 모든 삼매를 얻는 것 등이다. 다만 거기서는 수백 가지였지만 이 지(地)에서는 수천 가지라는 차별이 있을 뿐이다.
016_0799_c_01L十住毘婆沙論卷第十七聖者龍樹造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解頭陁品之餘如五空閑說 餘功德亦爾 自讀誦教他得捨空閑處阿練若比丘有五種分別一以惡意欲求利養二愚癡鈍根故行阿練若三狂癡失意作阿練若四爲行頭陁行故作阿練若五以諸佛菩薩賢聖所稱讚故作阿練若於此五阿練若爲行頭陁行故作阿練若以諸佛菩薩賢聖所稱讚故作阿練若是二爲善餘三可呵如五種分別阿練若餘十一頭陁行亦應如是分別知問曰佛說若已受阿練若法終不應若有因緣得捨去不答曰讀誦經因緣 可捨阿練若若比丘欲從他受讀誦經法若欲教他讀誦#應從阿練若處來入塔寺是因緣可得捨離教他讀誦時 不應望供給 卽時應念佛佛常有所作阿練若從空閑處來教他讀誦不應求敬心供給應當念佛尚自有所作何況於我念佛者佛是多陁阿伽陁三藐三佛陁諸天乾闥婆阿修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釋提桓四天王非人所供養一切衆生旡上福田尚不求他供給身自執事我今未有所知始欲求學云何受他供給復應作是念我應善供給 一切諸衆生 不望彼供給自利利他故云何爲自利若貴供給則失法施功若不貴供給者則得法施功德何爲利他若貴彼供給而教令讀誦彼則生念師直以世利故而教誨不以法故是人若以是心供給師則不得大利若但恭敬法故尊重師者則得大利是名利他從他求智慧 應不惜身命若行者欲從他求智慧應捨身命爲智慧故勤心精進恭敬於師惜身命問曰何以故爲智慧恭敬師而不惜身命答曰若一字一心 以此爲劫數 恭敬於師所能說此論者 離諸諂曲心 深愛而恭敬晝夜不休息 盡於爾所劫隨師所教論義字數及爾所心念受法者心無諂曲不惜身命晝夜恭始終無異雖能如是猶不報師所益論議智慧之恩是故弟子應離諂曲心捨貪惜身命破於憍慢若師輕蔑及以敬愛心無有異當生深愛心第一恭敬心應生父母心應生大師應生善知識想應生能爲難事想應生難報心若師聽則受所常行事不須師勅餘事則相望師意隨事而師所愛重隨而愛重不應因師求於世利莫求師讚歎莫求名聞但求智慧法寶師有謬失常應隱藏若師過舋若彰露者當方便覆之師有功稱揚流布深心愛樂聽受持解惟義趣如所說行求自利利他者爲秸弟子莫爲大弟子莫爲垢弟子莫爲衰弟子莫爲無益弟子無如是等過但住善弟子法中供給於師如般舟經說佛告颰陁婆羅若菩薩欲得是三昧者應勤精進於諸師所生尊重心難遭心若從口聞若得經卷處於是師所應深心恭敬生父母心知識心大師心以能說如是法助菩提故颰陁婆羅若求菩薩道者若求聲聞者所從師讀誦是法處不生深恭敬父母心善知識心大師心能得誦利是法令不忘失久住不滅者無有是處何以故颰陁婆羅以不恭敬因緣故佛法則滅是故颰陁婆羅若求菩薩道者若求聲聞者於所從聞讀誦書寫是法處生恭敬心父母心善知識大師心者於所讀誦書寫未得者令得已得#久住則有是處何以故以恭敬心故佛法不滅是故颰陁婆羅我今告汝於是師所應生深恭敬心父母善知識心大師心是則隨我所教助尸羅果品第六如是菩薩爲求多聞知多聞義已說行故能令尸羅淸淨淸淨尸羅法應當修行問曰何等法能令尸羅淸答曰護身口意業 亦不得護法 終不令我見及以餘見雜 迴向薩婆若 此四淨尸羅行者修此四法尸羅自然淸淨護身意業者常應正念身意業乃至小罪不令錯謬譬如龜鼈常護頭足此人深樂空故於第一義中而亦不得護三業法有人雖見法空謂知空者在是故說不雜我見衆生見人見壽者見知者見迴向薩婆若者持戒果不求餘福但爲度一切衆生以求佛道是爲四復有四法能令尸羅淸所謂無我我所心 亦無斷常見 入於衆緣法則能淨尸羅無我我所心者不貪著我我所心知此心虛妄顚倒而無我法無斷常見者以斷常見多過故入衆緣法者諸法從衆緣生無有定性行於中道如是四法能淨尸羅復有四法能淨尸羅所謂行四聖種行 及十二頭陁 亦不樂衆鬧念何故出家四聖種者所謂趣得衣服而足趣得飮食而足趣得坐臥具而足樂斷修#行十二頭陁者所謂受阿練若法受乞食法糞掃衣一坐常坐食後不受非時飮食但有三衣毛毳衣隨敷坐樹下住空地住死人閒住亦不樂衆鬧者不與在家出家者和合有人雖行阿練若法多知多識故多人往來是故說不樂衆鬧若至餘處若心不與和合何故出家者行尸羅者作是念我何故而出家念已隨出家事欲成就故如所說行是爲四復有四能淨尸羅所謂五陰無生滅 六性如法性 見六情亦空不著世俗語 如是之四法 亦能淨尸羅五陰無生滅者思惟五陰本末故五陰無生滅者見地等六性如法性如法性不可得六性亦不可得知六情雖是苦樂等心心數法因緣以正智推求亦知是空了達三種皆知是有行者貪著於空則還妨道是故說莫貪著空隨於世俗說空名字是法者能淨尸羅問曰若爾者云何言五陰諸法答曰以空故五陰諸法最後言莫著於空者空亦應捨是無有邪疑法妨㝵尸羅問曰五陰諸法以有相可相故決定有如說色是苦惱相覺苦樂是受相現有如是等諸相云何言非空非不空答曰惱壞是色相 何等爲是色 若惱是色相離相無可相 此相在何處 無相無可相世界終無有 無相有可相 相與及可相非合非不合 其來無所從 去亦無所至若有合非合 成於相可相 如是則爲失相及可相相 以相成可相 相亦不自成相自不能成 云何成可相 世界甚可愍分別相可相 迷惑諸邪徑 邪師所欺誑相可相則是 無相無可相 如是眼見事如何不能知 隨計相可相 有如是戲論隨起戲論時 則隨煩惱處復次行者以不來不去門觀諸陰性入空如說生老病死法 生時無從來 生老病死法滅時無所去 諸陰界入性 生時無從來滅時無所去 佛法義如是 如火非人功亦不在鑽木 和合中亦無 而因和合有薪盡則火滅 滅時無所去 諸緣合故有緣散則皆無 眼識亦如是 不在於眼中不在於色中 亦不在中閒 不在和合中亦不離和合 亦不從餘來 而因和合有和合散則無 諸法亦如是 生時無從來滅時無所至 如彼龍心力 而有陰雲現不從龍身出 亦不餘處來 而此大陰雲雨流滿世界 然後乃消滅 亦無有去處如雲無來去 諸法亦如是 生時無從來滅時無所去 如壁上畫人 不在一一彩亦不在和合 壁中亦復無 畫師所亦無畫筆中亦無 不從餘處來 而因和合有和合散則無 諸法亦如是 有時無從來無時無所去 燈炎不在油 亦不從炷出亦不餘處來 而因油炷有 因緣盡則滅滅時無去處 諸法來去相 皆亦復如是復有四法能淨尸羅所謂能自思量身不自高下他此二無所得心猗無有慢觀諸法平等是四淨尸羅能自思量者行者作是念我身不淨無常死相爲何所直如是念已卽不自高下於他人信解身及他無我所故無所得猗者得如是法故心輕柔軟堪任受法以此猗樂心不自高觀諸法平等者以空觀有爲無爲法一切悉等無上下差別如說若當因於下 而有中上者 下不作中上云何因下有 下自作下者 中上先定有若當因於中 而有下上者 中不作下上云何因中有 中自作中者 下上先定有若當因於上 而有中下者 上不作中下云何因上有 上自作上者 中下先定有因下不得作 不因亦不得 若先定有者不應因於下 若先定無者 云何成中上因中不得作 不因亦不得 若先定有者不應因於中 若先定無者 云何成下上因上不得作 不因亦不得 若先定有者不應因於上 若先定無者 云何成中下復次以空一 相故觀諸法 皆平等生亦如是如說智者於空中 不說分別相 空一而無異能如是見空 是則爲見佛 佛不異空故說言諸佛一 一切衆生一 一切法一法無上中下別 一切佛世尊 離自性他性一切諸衆生 亦離自他性 一切法亦爾離自性他性 以是因緣故 是故名一相有諸佛則非 無諸佛亦非 有諸衆生非無諸衆生非 有諸法則非 無諸法亦非離於有無故 名之爲平等 一切佛世尊衆生及諸法 一切不可取 名諸法平等一切佛衆生 及法無差別 不可分別故名之爲平等 諸佛與衆生 幷及一切法入生住滅中 寂滅無所有 亦無所從來亦復無所去 以無來去故 名之爲平等諸佛與衆生 幷及一切法 悉皆無所有過一切有道 此三非是等 亦復非非等非等非非等 非非等不等 如是說諸法皆等無差別復有四法能淨尸羅如說善能信解空 不驚無相法 衆生中大悲能忍於無我 如是之四法 亦能淨尸羅行者了達諸法無自性無他性故爲信解空如說一切所有法 終不自性生 若從衆緣生則應從他有 不從自性生 云何從他生自性已不成 他性亦復無 若離自性生則無有自性 若離於自性 則無有自相自性自性相 不以合故有 不以散故無二定有則無 他不能生法 自亦不能生自他亦不能 離二亦不生 若無有自者云何從他生 離於世俗法 則無有自他若他從他生 他卽無自體 無體則非有以何物生他 以無自體故 他生亦復無四種皆空故 無法定生滅不驚無相者信樂遠離諸相故不驚如說一切若無相 一切卽有相 寂滅是無相卽爲是有法 若觀無相法 無相卽爲相若言修無相 卽非修無相 若捨諸計著名之爲無相 取是捨著相 則爲無解脫凡以有取故 因取而有捨 離取取何事名之以爲捨 取者所用取 及以可取法共離俱無有 是皆名寂滅 若法相因成此卽爲無性 若無有性者 此卽無有相若法無有性 此卽無相者 云何言無性卽名爲無相 若用有與無 亦遮亦應聽雖言心不著 是則無有過 何處先有法而後不滅者 何處先有然 而後有滅者此有相寂滅 同無相寂滅 是故寂滅語及寂滅語者 先來非寂滅 亦非不寂滅亦非寂不寂 非非寂不寂衆生中大悲者衆生無量無邊故心亦廣大復次諸佛法無量無邊無如虛空悲心是諸佛法根本能得大法故名爲大悲一切衆生中最大者名爲佛佛所行故名爲大悲忍無我法者信樂實法故諸佛皆一涅槃道故名爲無我法若入此法中心則不忍如小草入火則燒盡若眞金入能堪忍無失如是若凡夫人不修習善根入無我中不能堪忍卽生邪是菩薩無量世來修習善根智慧猛利諸佛護念雖未斷結使入無我法中心能忍受無我法者二因緣等諸法是破我因緣如先說是故欲淨尸羅當行此四法復次有四破尸羅 而似持尸羅 行者當精進自制愼莫爲寶頂經迦葉品中佛告迦葉四種破戒比丘似如持戒比丘何等四迦葉有比丘於經戒中盡能具行而說有迦葉是名破戒似如持戒復次有比丘誦持律經守護戒行於身見中不動不離是名破戒似如持戒復次迦葉有比丘具行十二頭陁見諸法定有是名破戒似如持戒迦葉有比丘緣衆生行慈心#聞諸行無生相心則驚畏是名破戒似如持戒迦葉此四破戒人似如持戒復次世尊之所說 沙門有四品 應爲第四者遠離前三種迦葉品中說四種比丘者應學第四沙門不應爲三何等爲四佛告迦葉有四種沙門一者形色相沙門二者威儀矯異沙門三者貪求名利沙門四者眞實行沙門云何名爲形色相沙門有沙門形沙門色相所謂著僧伽梨剃除鬚髮執持黑鉢而行不淨身業不淨口業不淨意業不求寂滅求善慳貪懈怠行惡法破戒不樂修道是名形色相沙門云何威儀矯異沙具四種威儀審諦安詳趣得衣食行聖種行不與在家出家和合少於語言以是所行欲取人意心不淸淨如此威儀不爲善不爲寂滅而見諸法定有於空無所有法畏如墮坑說空者生怨家想是名威儀矯異沙云何爲貪求名利沙門有沙門强能持戒作是念云何令人知我持强求多聞云何令人知我多聞作阿練若法云何令人知我是阿練强行少欲知足遠離云何令人知我少欲知足行遠離法非爲厭離心非爲滅煩惱故非以求八直聖道非爲涅槃故非度一切衆生故名求名利沙門云何眞實行沙門沙門尚不貪惜身何況惜名利聞諸法空無所有心大歡喜隨說而行不貪惜涅槃而行梵行何況貪惜三界尚不著空見何況著我壽者命者知者見者見於諸煩惱中而求解脫不於外求觀一切法本來淸淨無此人但依於身不依於餘以諸法實尚不貪法身何況色身見法離相以言說尚不分別無爲聖衆何況衆不爲斷不爲修習故不惡生死樂涅槃無縛無解知諸佛法無有定知已不往來生死亦復不滅迦葉是名隨眞實行沙門迦葉汝等應勤行眞實行沙門莫爲名字所害復次不爲王等法 而持於尸羅 亦不依生等而持於尸羅行者欲淨尸羅不應爲王等法王等法者佛爲淨德力士說善男子菩薩尸羅者乃至失命因緣猶不破戒期爲國王故持戒不期生天故持戒不期爲釋提桓因不爲梵天王不爲富樂自在力故持戒不爲名聞稱讚不爲利養故持戒不爲壽命故爲飮食衣服臥具醫藥資生物故不依生等法者不爲生天人持戒不自依持戒不依他持戒不依今世持戒不依後世持戒不依色不依受不依眼不依入不依耳意故持戒不依欲界色界無色界持戒不爲得脫地獄畜生餓鬼修羅惡道故持戒不爲畏天中貧故不爲畏人中貧故持戒不爲畏夜叉貧故持戒問曰若不爲如此等法爲何法故持戒答曰爲欲令三寶 久住故持戒 爲欲得種種利益故持戒三寶久住者爲不斷佛種故持戒爲轉法輪故持戒爲攝聖衆故持戒爲脫生老病死憂悲苦惱故持戒爲度一切衆生故持戒爲令一切衆生得安樂故持戒爲令衆生到安樂處故爲修禪定故持戒爲智慧解脫脫知見故持戒是事如淨德經中廣說菩薩能如是 成就於尸羅 不失於十利及餘種種利 亦復不墮於 四難處邪道不得四失法 不値四壞法 又得不欺誑諸佛等四法 能過墮地獄 十事諸怖畏不失於十利者不失常爲轉輪聖王常於彼中不失不放逸心不失常作釋提桓因常於彼中不失不放逸心常不失求諸佛道常不失諸菩薩所教化事常不失樂說辯才常不失種諸善根福德滿足所願常不失爲諸菩薩賢聖所讚常不失疾能具足一切智慧是爲十種種利者於種種功德不退失如經中說菩薩善守持常爲諸天所讚諸龍王善護諸人供養常爲諸佛所念常爲世間大師愍念衆生不墮四難處等#邪道者薩能如是成就尸羅者不墮四難處一不生無佛處二不生邪見家三不生長壽天四不墮一切惡道得四不失法者一不失菩提心二不失念佛三不失常求多聞四不失念無量世不値四壞法者一不値法壞二不値刀兵三不値惡毒四不値飢餓四不誑法者一不欺誑十方諸佛不欺誑諸天神等三不欺誑衆生不自欺誑身又過十怖畏者菩薩如是淸淨持戒能過墮地獄等十怖畏何等十一能過地獄怖畏二能過畜生怖畏三能過餓鬼怖畏四能過貧窮怖畏五能過誹謗呵罵惡名怖畏六能過諸煩惱所覆怖畏七能過聲辟支佛正位怖畏八能過天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摩睺羅伽等怖畏九能過刀兵水火師子虎狼他人所害怖畏能過邪見怖畏菩薩如是淨持於戒則能住諸佛法所謂四十不共法任爲法器讚戒品第七菩薩如是淨持尸羅能攝種種功德諸利如無盡意菩薩說復次略讚尸羅少分尸羅者是出家人第一所喜樂處如年少富貴最可喜樂能增長善法如慈母養子能防護衰患如父護子尸羅能成就諸出家者一切大利如白衣多財尸羅能救一切苦惱正行順理尸羅善人所敬如報恩法尸羅人所愛重猶如壽命尸羅智者所貴如智慧求解脫者善護尸羅王密事大臣守護樂道利者愛重尸如樂涅槃愛重佛法智慧之人善守尸羅如惜壽者護安身法救死時尸羅爲最如遇急難得善知識羅淸淨莊嚴賢人如貴家女慚愧無尸羅卽是功德之初門如不諂曲開諸善利尸羅最是梵行之本如直心則是正見之本諸大人法以尸羅爲本如求重位以直心爲本尸羅卽是功德寶𧂐如不放逸亦如正念能生諸亦如賢友初中後善學正法者得過越如海常限尸羅卽是功德住亦如大地萬物依止尸羅潤益諸善功德亦如天雨潤益種子能成五如火熟物能生諸利如風成身羅能受一切道果亦如虛空含受萬亦如吉甁隨願皆得亦如美膳益諸根尸羅善能通利諸道能令諸根淸淨無㝵智慧壽命以尸羅爲本猶如身命以氣息爲本尸羅卽是最上依處如民依王尸羅卽是諸功德主如軍大將尸羅得衆快樂如隨意婦能稱夫心若求涅槃及生天上尸羅卽是學道資用如彼遠行必持衣糧尸羅將人令至善處如經險路得善導師尸羅度人從生死過猶如牢舩得渡大海尸羅能滅諸煩惱患猶如良藥能消衆病尸羅器仗能御魔賊如善兵器能對敵陣如所愛親經難不捨尸羅將人諸衰惱中隨護不捨尸羅能照後世癡冥如大燈明能除黑闇尸羅度人出諸惡道如度深水得好橋梁尸羅能除煩惱熱急如淸涼室能除毒熱欲墮惡趣尸羅能救如勇士持刃救人怖畏諸凡夫應深愛尸羅如諸菩薩學諦勝處行者善行尸羅如諸菩薩行捨勝處得果之人善修尸羅亦如菩薩修滅勝處護持尸羅令人得果亦如菩薩修慧勝處不壞法者能淨尸羅如諸菩薩淸淨無垢諸惡人等捨離尸羅如彼諂曲捨離直心放逸之人不行尸羅如慳貪者不行惠施放逸之人捨離尸羅如戲論者離寂滅法愚癡之人無有尸羅猶如盲者不見五色無思惟者去尸羅遠如離八道去涅槃遠善愛身者深樂尸羅如阿羅漢深愛樂法尸羅能使無惱善法相續不斷如佛出世善事不絕尸羅能令諸道果住如佛神力令法久住尸羅如佛自利利人尸羅善護諸善功德如王知時能護國界尸羅安行者心如須陁洹果如時發事後則無悔羅究竟必得涅槃如菩薩願究竟得尸羅亦如良田好澤投之以種得增長尸羅是正行之因如知時方是成諸事因如人端嚴福德#智慧人所尊貴尸羅如是自他所敬如福德熟時心則安隱尸羅能使心得安隱受諸利報尸羅能令行者歡喜猶如好兒令父心悅尸羅則是無有過失無畏之法如人無過心則無畏尸羅令人今世後世無有怖畏無諸罪惡供養稱讚持尸羅者餘者亦喜自知有分尸羅親愛衆生如修慈定尸羅滅苦如修悲定尸羅與喜如修喜定尸羅無憎無愛如修捨定尸羅爲人所信如四種善語能令人信尸羅樂如世法中常歡喜心如多聞是樂說因尸羅則是言行相應因尸羅是無畏因如辯才無畏尸羅是名聞因如通諸經有好名稱尸羅是能救法如易與語者爲人所救尸羅能成明解脫法如隨所說行尸羅是諸佛相如阿耨多羅三藐三菩提尸羅助修道法如定助慧尸羅令人無所畏難如大心膽無所畏懼尸羅是諸功德聚處猶如雪山寶物積聚信等功德諸希有事所可依止尸羅猶如大海諸奇異亦如美果依止於樹尸羅與人隨所樂果如隨正智慧者如行卽得尸羅名爲無水而淨尸羅則是最上妙香不從根莖枝葉華果中出尸羅莊嚴過諸寶飾常住其身無能卻者尸羅大樂不從五欲生後世亦有諸妙樂報尸羅是一切世閒天沙門婆羅門所讚歎者尸羅快樂在身中不從他得生天涅槃之善方便尸羅卽是信河正濟無有泥陷刺蕀隨意可入善渡無㝵尸羅是寶財無諸衰惱尸羅是淨道無能壞猶如平路行旅無難尸羅是好田不種不穫自然獲實尸羅是甘露果不從樹草生香美無比尸羅是妙華不從水陸生常不萎壞尸羅除煩惱如冷水洗浴尸羅善守護勝諸刀行尸羅者不以人畏故而得恭敬尸羅是自在處無有諍競尸羅是好不從山生不從大海出而寶價無尸羅能過不活畏入衆畏考掠畏墮惡道畏尸羅常隨逐人今世後世如影隨形戒報品第八菩薩離垢地淸淨具說已菩薩住此常作轉輪王第二地於十地中爲離垢慳貪十惡根本永盡故名爲離垢菩薩於是地中深行尸羅波羅是菩薩若未離欲此地果報因緣作四天下轉輪聖王得千輻金輪種種珍寶莊嚴其輞眞琉璃爲轂圓十五里#百種夜叉神所共守護飛行虛空導四種兵輕健迅疾金翅鳥王如風如念所詣之處滅諸衰患降伏怨賊一切小王皆來歸伏親族人民莫不愛敬普能照明聖王姓族種種華鬘瓔珞閒錯莊挍五種伎樂常隨逐之以奇妙寶蓋羅覆其行時有種種華香碎末旃檀常雨供養燒眞黑沈水牛頭旃檀黃旃檀以塗其身其輪兩邊天女執持白拂侍立種種珍寶以爲其蓋其輪有種種希有之事而用莊嚴是名金輪寶具足一切象相身大而白如眞銀山出神獄大象衆中能飛行虛空羅婆那安闍那王摩那等諸大象王皆能摧卻是名白象寶具足馬相色如孔雀頸其體輕疾如金翅鳥王行無㝵是名馬寶貴家中生身無疾有大勢力形體淨潔憶念深遠心柔軟持戒堅固深敬愛王能通達種種經書技術是名主兵臣寶如財主天王富相具足千萬億種諸寶伏常隨逐行千萬億種諸夜叉神眷屬隨從皆是先世行業之報善知分帝靑大靑金剛摩羅竭車璖馬瑙珊瑚頗梨摩尼眞珠琉璃等種種寶物悉能善知出入多少隨宜能能滿王願是名居士寶光明如日照十六由旬形如大鼓能滅種種毒虫惡氣疾病苦痛人天見者莫不珍愛好華瓔珞以爲莊嚴處在高幢威光奇特能令衆生發希有心生大歡喜是名珠寶其手爪甲紅赤而薄其形脩直高隆潤澤不肥不瘦身肉次第肌膚厚實細密薄皮不堪苦事身安堅牢如多羅樹身上處處吉字明了吉樹文畫嚴莊其身象王牛王馬王畫文幡蓋文魚文園林等文其身上踝平不現足如龜背足邊俱足跟圓廣腨傭柔軟膝圓不現如金柱如芭蕉樹如象王鼻軟澤光傭圓而直撗文有三腹傭不現圓而深脊背平直乳如頻婆果如雙鴛鴦圓起不垂柔軟鮮淨又其臂纖傭圓且長節隱不現其鼻端直不偏現出不大不小孔覆不現兩頰不深滿不高兩邊俱滿額平而長有吉畫耳軟而垂著無價環齒如眞珠貫如月初生如雪如珂脣如丹霞如頻婆果上下相當不麤不細如赤眞珠眼白黑睛二色分明莊嚴長廣光明淸淨其睫靑緻長而不亂眉毛不不薄不高不下如月初生高曲而兩邊相似髮軟而細潤澤不亂身芬馨常有香氣如開種種上好香身諸毛孔常出眞妙栴檀名香悅人心口中常有靑蓮華香身體柔如伽陵伽天衣細滑之事一切具心無諂曲直信慚愧深愛敬王時知方善有方便攝取王心坐起言能得王意隨王意行常出愛語人閒德女衆好具足色如提盧多摩天女淸淨分明如月十五日畫文炳現如帝釋夫人舍脂著天衣天鬘天香多以天光明金摩尼珠莊挍其身知歌舞伎樂娛樂戲笑之事善有方便隨意能令王發歡喜一切女中女爲最是名玉女寶又轉輪聖王有四如意德一者色貌端嚴於四天下第一無比#二無病痛三人民深愛壽命長遠教誨衆生以十善業能令諸天宮殿充滿能減阿修羅衆能薄諸惡趣增益善處能爲衆生多求利有所施作不用兵杖以法治化下安樂外無敵國畏內無陰謀畏其國內無疫病飢餓及諸災蝗衰惱之事一切邊王皆所歸伏多有眷屬能疾攝人更無有能侵害國界其四種兵勢力具足諸婆羅門居士庶人皆共愛敬甘香美食自然而有國界日增無有損減善能通達經書技藝算數呪術皆悉受持巧能論說分別義趣群臣具足悉有威德常行財施無能及者千子端嚴如諸天子威德勇健能破强敵所住宮殿堂閣樓觀如四天王帝釋勝殿王所教誨無有能壞於四天下唯有此王威相具足無能及者音聲深遠易聽易解散不亂如迦羅頻伽鳥美軟和雅者悅耳眷屬同心不可沮壞所住之處地虛空無有障㝵威力猛盛堪大事念問耆老不欺誑人心無妒不忍非法無有瞋恨威儀安詳而不輕躁所言誠實未曾兩舌行施持常修善心進止知時不失方便色和悅言常含笑未曾皺眉惡眼視退失利者爲之作利已有利者令深知報懷慚愧心有大智慧威德尊嚴而能忍辱大丈夫相其性猛厲諸所爲事疾能成辦先正思量然後乃行王有法眼所爲殊勝善思量者乃與從事若不任者更求賢明善集福德財物淸淨能自防護不破禁戒多饒財寶如毘沙門王有大勢力如天帝釋端嚴可愛猶如滿月能照如日忍如地心深如海不爲苦樂之所傾如須彌山王風不能搖諸寶妙事之所住處諸善福德之所依止是諸一切世閒親族諸苦惱者之所歸趣無歸作歸無舍作舍有怖畏者能除怖畏轉輪聖王有如是等相能轉破戒者 令住於善法 其餘所行事如初地中說轉破戒者能令衆生捨惡行善得安樂事令住善法者能轉衆生惡身意業令行善身意業此事如初地中說所謂見諸佛得諸三昧但彼數百此地數千以爲差別十住毘婆沙論卷第十七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3)고려대장경에 의하면, 앞의 목차의 순서와 달리 ‘조시라과품제육(助尸羅果品第六)’으로 되어 있다.
  2. 4)고려대장경에 의하면, 앞의 목차의 순서와 달리 ‘찬계품제칠(讚戒品第七)’로 되어 있다.
  3. 5)고려대장경에 의하면, 앞의 목차의 순서와 달리 ‘계보품제팔(戒報品第八)’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