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弘明集卷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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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_0166_c_01L홍명집 제3권
033_0166_c_01L弘明集卷第三


4. 손작1)유도론2)孫綽喩道論
033_0166_c_02L梁楊都建初寺釋僧祐撰
孫綽喩道論
宗居士炳答何承天書難白黑論
孫綽喩道論

1
지극한 도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이 깨우쳐 말하고자 한다. 저 우주는 끝없이 광대하여 다양한 종류의 생명이 충만하고, 천만 번 변화하며 흔연히 일체가 되어 있다.3) 그러므로 한정된 지식만 갖춘 사람은 각기 자신의 견해에 제한된다. 예컨대 바다에 사는 게와 조개들은 육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4) 육지에 사는 새와 짐승들은 하천이나 바다의 형세를 모른다. 또한 우물 속에서 만족하는 개구리5)는 남명南溟에서 노니는 곤어[鯤]와 붕새[鵬]의 역량을 의심하고,6) 수척밖에 날지 못하는 척안斥鷃은 하늘을 나는 대붕大鵬의 힘을 의심하게 된다.7) 속세의 가르침에 속박되어 주공과 공자의 사적만 보는 사람은 지극한 덕을 지닌 최상의 존재가 요ㆍ순 임금이라고 보고, 가장 심원한 진리가 『노자』와 『역경』에 설명되어 있다고 본다. 저 초월적인 세계의 신비한 뜻과 심오한 세계를 비추는 현묘함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슬프다. 장보章甫의 관은 벌거벗고 사는 남쪽 오랑캐 땅에서는 사용되지 않고,8) 소하韶夏의 음악은 비속한 마을에서는 무시된다. 지극한 진리가 일상적인 관습에서 끊어지고, 위대한 도가 견식이 좁은 무리에게9) 부정된다.10) 길이 막혀서 길을 잃어버리고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 자들은 말로 감동시켜 깨우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 그 취지를 분명히 밝혀서 그 중 깨닫는 사람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033_0166_c_06L或有疑至道者喩之曰夫六合遐邈庶類殷充千變萬化渾然無端是以 有方之識各期所見鱗介之物不達皐壤之事毛羽之族不識流浪之勢自得於窞井者則怪遊溟之量翻翥於數仞者則疑沖天之力纏束世教之內肆觀周孔之迹謂至德窮於堯微言盡乎老易焉復睹夫方外之妙趣冥中之玄照乎悲夫章甫之委裸俗韶夏之棄鄙俚至眞絕於漫習大道廢於曲士也若窮迷而不遷者非辭喩之所感試明其旨庶乎有悟於其間者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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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처님은 도를 체득한 사람이고, 도는 중생[物]을 인도하는[導] 것이다.11) 중생이 감득하는 그대로 응하여 따르고, 이를 통해 무위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12) 무위하므로 허적虛寂하고 저절로 그러한 모습이 된다. 하지 못하는 일이 없으므로, 만물을 신비하게 교화해 간다. 만물을 구제하는 방법은 높고 낮음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교화 방법도 어느 때는 정묘하고 어느 때는 대범하게 된다. 뛰어난 이해력을 지닌 사람에게는 근원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그대로 순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재앙이 있음을 보여준다. 술을 방만하게 즐기는 사람은 형벌로 다스리고, 음란한 사람은 큰 벌을 받게 하고, 도적질한 사람은 죄를 주며, 삼벽오형三辟五刑13)을 범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이 왕이 정한 제도이고 위정자의 일치된 견해이다. 성왕이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들이 어질고 지혜롭다면, 앞에서 말한 죄인은 반드시 죄를 물어 바르게 하고 도망갈 여지가 없게 할 것이다. 간악한 인간이 사적인 욕망을 용납 받지 못하게 되면, 나라에는 법을 어기는 백성이 없게 되고 현명한 이들과 선한 이들은 반드시 표창 받게 될 것이다.
033_0166_c_19L夫佛也者體道者也道也者導物者應感順通無爲而無不爲者也故虛寂自然無不爲故神化萬物萬物之求卑高不同故訓致之術精或麤悟上識則擧其宗本不順者復其殃放酒者羅刑淄爲大罰盜者抵三辟五刑犯則無赦此王者之常宰牧之所同也若聖王御世百司明達則向之罪人必見窮測無逃形之地矣使奸惡者不得容其私則國無違民而賢賢之流必見旌敍矣
또 군주가 지혜롭고 신하가 공정하며 세상이 맑아지고 재판이 훌륭히 행해진다는 것은 선악이 올바른 위치를 얻고 옳고 그름이 남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물며 신명이 감찰하는 경우에 멀거나 가깝거나 은미하거나 심원하거나에 관계없이 총명하고 정직하게 나쁜 사람을 벌하고 착한 사람을 돕는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따라서 털끝만큼 작은 공적이나 작은 죄악이라도 인과응보의 필연성은 어긋날 수 없다.
033_0167_a_08L君明臣公世淸理治猶能令善惡得曲直不濫況神明所莅無遠近幽聰明正直罰惡祐善者哉故毫氂之功錙銖之舋報應之期不可得而差矣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화복의 증거는 모두 유래하는 원인이 있고 기록에 분명히 남아 있는데,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음모를 행한 가문이 자손이 번성하지 않고14) 3대에 걸쳐 장군이 되는 것을 도가에서 분명히 기피하는 것15)은 병사가 흉기이고16) 전쟁은 궤도詭道이며17) 많은 사람을 살해한 데서 온 것이 아니겠는가? 저 위과魏顆는 아버지 병이 괜찮을 때의 유언에 따르니 그 후 노인이 풀을 묶어 적의 장수를 죽이는 보은을 받았고,18) 자도子都는 신의를 지켜서 총기驄驥의 선물을 받았다.19) 제齊나라 양공襄公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죄를 씌워서 수레에서 떨어지는 화를 입었고,20) 진晉나라 혜공惠公은 예를 무시하여 한원韓原의 전쟁에서 패하여 죽을 고통을 받았다.21) 이러한 예들은 모두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응보를 행한 실증이다.
033_0167_a_13L歷觀古今禍福之證皆有由緣載籍昭然豈可掩哉何者陰謀之門子孫不昌三世之將道家明忌斯非兵凶戰危積殺之所致耶若夫魏顆從治而致結草之報子都守信而受驄驥之錫齊襄委罪故有墜車之禍晉惠棄禮故有弊韓之困斯皆死者報生之驗也
033_0167_b_01L또한 선맹宣孟이 예상翳桑에서 굶어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고,22) 표모漂母가 한신韓信의 배고픈 고통을 안타깝게 여겼다는 경우23)는, 모두 약간의 음식으로 오랜 굶주림을 해소해 준 것이다. 그로써 조선맹趙宣孟은 창을 거꾸로 하여 방어해 주는 도움을 받았고, 표모는 황금 천 냥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로 만을 얻은 것이고, 보응이 한 세대를 넘지 않고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르게 덕을 행하면, 경사스러운 일이 점차 밖으로 나타나게 된다. 음으로 행하면 양에서 빛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형세이다. 이것은 마치 곡물의 씨앗을 땅에 뿌리면 백 배의 수확을 거두는 것과 같아서 대지와 곡물은 인간에 대해서 무심하지만 이익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다.
033_0167_a_20L至於宣孟愍翳桑之飢漂母哀淮陰之憊竝以一飡拯其懸而趙蒙倒戈之祐母荷千金之賞斯一獲萬報不踰世故立德闇昧之而慶彰萬物之上陰行陽曜自然之勢譬猶灑粒於土壤而納百倍之地穀無情於人而自然之利至也

3
[문] 보응報應의 일이 참으로 증거가 있다면, 주공ㆍ공자의 가르침에서는 왜 살생을 금하지 않아서 소정묘少正卯는 처형되었고, 관숙管淑ㆍ채숙蔡叔 두 사람은 주살되었는가?
033_0167_b_03L或難曰報應之事誠皆有徵則周孔之何不去殺而少正正刑二叔伏誅耶
[답] 그대는 말로서의 가르침을 통달하고 있을 뿐 가르침의 정신은 체득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24) 그대는 성인에게 살생하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없다고 생각하는가? 다시 한번 답하겠다. 그대도 성인에게 살생하겠다는 마음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살생하겠다는 것은 본래 백성의 마음이기 때문이다.25)
033_0167_b_05L答曰客可謂達教聲而不體教情者謂聖人有殺心乎無也答曰誠知其無心於殺殺故百姓之心耳
시대가 변천하면, 사람들도 경박하고 순박함의 차이가 발생한다. 끈을 묶어 문자로 쓰던 상고 시대 이전은 고요한 평화의 시기였지만, 요순 시대가 되면 예법이 처음으로 일어나고, 하ㆍ은ㆍ주 3대가 되면 법 조문이 점차 확실하게 설치되었다. 그리하여 칼과 도끼가 엄격하여도 오히려 징벌을 가하지 못하고, 군신이 서로 망하게 하고 부자간에 서로 죽여서 약육강식의 격렬함이 승냥이와 호랑이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 성인은 사람의 감정이 죽이는 것을 하루아침에 그치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점차 이를 억제하여 적정함을 구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독사가 사람의 발을 물면 발을 잘라 육신을 보존하고, 악성의 종창이 몸에 생기면 잘라내어 생명을 구하는 것과 같다. 하나를 없애서 열을 보존하는 것은 일의 중요성을 헤아리는 것이다.
033_0167_b_08L夫時移世異物有薄純結繩之前然大和曁于唐虞禮法始興爰逮三刑罔滋彰刀斧雖嚴而猶不懲于君臣相滅父子相害呑噬之甚過於豺虎聖人知人情之固於殺不可一朝而息故漸抑以求厥中猶蝮蛇螫足斬之以全身癰疽附體決之以救命亡一以存十亦輕重之所㩲
033_0167_c_01L따라서 가을, 겨울에 형벌을 가하는 것은 만물이 조락하는 시절에 따라 죽이는 것이고,26) 봄ㆍ여름에 사냥을 하는 것은 새끼를 밴 동물을 포획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또한 삼구의 예[三驅之禮]27)에서는 짐승이 사냥꾼을 향해 오면 활을 쏘지 않고, 동물의 울음소리를 듣고 살아 있는 모습을 보면 그 고기가 있어도 먹지 않으며, 낚시는 해도 그물로 잡지 않고, 주살로 새를 쏘아도 보금자리에 있는 새는 쏘지 않으며,28) 곤충에 대해서도 항상 측은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또한 죄상을 잘 따져 사형을 면하게 하고,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은사를 베풀고, 형벌의 적용에 의문이 있을 때는 죄라고 여겨지는 마음이 있어도 가벼운 쪽으로 적용하고, 눈물을 머금고 사형의 집행을 명령하고 슬퍼하면서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양육하는 은혜의 정이 돈독한 것이고, 인애의 도를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일을 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오래되었으면서도 주재하지 않는다”29)고 하는 것이다. 덕을 끼치면서도 그 공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지 않고, 날마다 그 덕을 쓰면서도 만물은 이를 모른다.30) 이러한 예들에서 구해 보면, 그 귀결점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033_0167_b_16L刑依秋冬所以順時殺春蒐夏苗以簡胎乳三驅之禮禽來則韜弓聲睹生肉至不食釣而不網弋不射宿其於昆虫每加隱惻至於議獄緩眚災肆赦刑疑從輕寧失有罪涕授鉞哀矜勿喜生育之恩篤矣愛之道盡矣所謂爲而不恃長而不德被而功不在我日用而萬物不擧茲以求足以悟其歸矣

4
[문] 주공ㆍ공자는 시대에 맞추어 교화를 행하였고, 부처님은 일거에 살생을 없애고자 하였다. 어떻게 해야 포악한 사람을 징벌하고 간악한 행위를 억제하여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가?
033_0167_c_02L難曰周孔適時而殺佛欲頓去之何以懲暴止奸統理群生者哉
[답] 그렇지 않다. 주공ㆍ공자가 바로 부처님이고, 부처님이 바로 주공ㆍ공자이다. 생각건대 밖과 안에 서로 다른 명칭을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31) 그러므로 초월적 세계[皇]에서는 종교적 깨달음을 얻은 자[皇]가 되고, 정치적 세계[王]에서는 정치적 통솔자[王]가 되는 것이다.32)
033_0167_c_04L答曰不然周孔卽佛佛卽周孔蓋外內名之耳故在皇爲皇在王爲王
부처[佛]는 범어이고, 한역하면 깨달음[覺]이다. 깨달음이란 깨달은 중생을 말한다. 이것은 맹자가 성인을 ‘앞서 깨우친 자[先覺]’33)라고 한 것과 같다. 성인이 세상에 응대하여 만물에게 법도를 주는 것도 시대의 형편에 따라가는 것이다. 주공과 공자는 세상의 잘못된 폐단을 구하였고, 불교는 그 근본을 밝힌 것뿐이다. 둘 다 앞뒤로 맞아떨어지고, 그 취지는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밖을 다스리는 성인의 경우에는 그 일처리에 깊고 얕은 자취가 있는 것이다.34) 요ㆍ순 임금의 시대는 평화로웠으므로 두 임금은 선양禪讓이라는 평화적 수단을 높이 여겼다. 탕왕ㆍ무왕의 시대는 혼란스러웠으므로 두 임금은 무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묵묵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는 것35)과 노여움으로 무력에 의존하는 것36)은 호胡나라와 월越나라만큼 큰 차이가 있다.37)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생긴 원인에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38) 따라서 본말을 전도하여 생각하는 사람은 같은 것이라도 항상 두 가지로 보고, 도리에 순순히 따르는 사람은 무엇이든 하나가 아닌 경우가 없다.
033_0167_c_06L梵語晉訓覺也覺之爲義悟物之猶孟軻以聖人爲先覺其旨一也應世軌物蓋亦隨時周孔救極弊教明其本耳共爲首尾其致不殊如外聖有深淺之迹堯舜世夷故二后高讓湯武時難故兩軍揮戈淵默之與赫斯其迹則胡越然其所以迹何常有際哉故逆尋者每見其二順通者無往不一

5
[문] 주공ㆍ공자의 가르침은 효孝를 제일로 여긴다. 효는 덕의 극치39)이고 온갖 행위의 근본이다. 근본이 확립되면 방법이 생겨나고40) 신명神明에 통하게 된다.41) 따라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경우에 살아 계실 때는 봉양을 다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그 제사를 받든다.42)
033_0167_c_15L或難曰孔之教以孝爲首孝德之百行之本本立道生通于神明子之事親生則致其養沒則奉其祀
033_0168_a_01L3천이나 되는 죄 중에서 후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죄이다.43) 부모에게서 신체를 받으면 감히 손상시키거나 훼손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44) 그러므로 악정자춘樂正子春은 다리를 다치고는 평생 부끄러운 마음을 품고 살았다.45) 그런데 사문의 도는 나를 낳아 준 부모님 곁을 떠나 육친을 버리고 타인들이 사는 곳에 가서 머리를 깎고 하늘로부터 받은 용모를 상하게 한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기쁜 얼굴빛으로 봉양하지 않고,46) 돌아가신 후에는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이는 골육의 부모를 길가는 사람과 같이 여기는 것이다. 도리를 어기고 인정을 상하게 하는 일 중 이보다 심한 일은 없다. 그런데도 도를 넓히고 인애를 널리 행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수목의 뿌리를 잘라 놓고 가지와 줄기를 손보아서 수목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47) 피부가 없는데 털이 붙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48) 이 사문의 도는 세상의 가르침과 크게 다른데, 그대는 어떻게 해명하고자 하는가?
033_0167_c_18L三千之責莫大無後體之父母不敢夷毀是以樂正傷足終身含愧也沙門之道委離所生棄親卽疏刓剔鬚髮殘其天貌生廢色養終絕血食骨肉之親等之行路背理傷情莫此之甚而云弘道敷仁廣濟群生斯何異斬刈根本脩枝幹而言文穎碩茂未之聞見皮之不存毛將安附此大乖於世教子將何以祛之
[답] 이야말로 세속의 미혹한 견해이고 본말을 전도시킨 매우 잘못된 견해이다. 나는 개탄스러워서 이대로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저 부모와 자식이란 한 몸이고 운명을 같이한다. 따라서 어머니의손가락이 아프면 자식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아픈 것49)은 같은 기氣가 서로 감응하여 그 일치함에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식은 오직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최상의 효이다. 부모가 훌륭하게 되면 자식도 귀하게 되고, 자식이 귀하게 되면 부친도 존경을 받는다. 그러므로 효에서 중요한 것은 입신하여 도를 행하고 후세까지 이름을 떨쳐 그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다.50) 공손히 행동하며 부모의 소맷자락을 품에 안고 날마다 세 가지 짐승 고기51)를 봉양하는 것만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게 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하게 하는 것이 부모를 봉양하는 가장 영예로운 일에 가깝다.52)
033_0168_a_04L答曰此誠窮俗之甚所惑倒見之爲大謬諮嗟而不能嘿已者也夫父子一體惟命同之故母疾其指兒心懸駭者同氣之感也其同無閒矣故唯得其歡心孝之盡也父隆則子貴子貴則父尊故孝之爲貴貴能立身行道光厥親若匍匐懷䄂日御三牲而不能令萬物尊己擧世我賴以之養親其榮近矣
중도에 따르는 것을 법도로 삼고,53) 유순한 도를 지키는 것을 일상으로 삼으며,54) 육체와 명성을 다 초월하여 부모와 자신 모두를 잊어버리는 것이 부모를 봉양하는 도이다. 앞에서 이미 효의 근본을 다 밝혔지만, 다시 그대를 위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겠다.
033_0168_a_13L夫緣督以爲經守柔以爲形名兩絕親我交忘養親之道也旣已明其宗且復爲客言其次者

6
저 충忠과 효孝는 그 이름이 양립할 수 없다. 영고숙潁考叔은 정鄭나라 장공莊公에게 거역하였지만 순수한 효성으로 칭찬받았고,55) 석작石碏은 자기 자식을 살해하여 무인으로서의 절조를 온전히 지켰다.56) 전하는 글에는 자식이 벼슬할 수 있게 되면 부친은 자식에게 충忠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이름을 책策에 표기하고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갖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다.57) 그렇다면 조정에서 관의 갓끈을 매는 사람은 자식으로서의 도는 폐하게 된다.58) 이유는 무엇인가? 군주의 위급함을 보면 목숨을 던지고 나아가서 부모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그 이름이 역사가의 붓으로 쓰이고, 그 사적이 인륜의 가르침의 첫머리에 오게 되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들의 불효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속담에 “충신을 구하려면 반드시 효자 가문에서 찾는다”는 말이 있다.59) 이는 한편으로는 작은 결점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큰 도덕을 보전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033_0168_a_15L忠孝名不竝立穎叔違君書稱純孝石碏戮子武節乃全傳曰子之能仕教之忠策名委質二乃辟也然則結纓公朝者子道廢矣何則見危授命不顧親皆名注史筆事摽孝首記注者豈復以不孝爲罪故諺曰求忠臣必於孝子之門明其雖小違於此而大順於彼矣
033_0168_b_01L또한 우禹임금의 아버지 곤鯀은 죄를 지어 벽지로 추방되었지만, 우임금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만약 우임금이 요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개인적인 감정을 위해 공적인 것을 희생하였다면, 작은 선을 취한 것에 불과할 뿐 원대한 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주周나라 태백泰伯은 육친을 멀리 버리고 외국에서 생활하였고, 이국의 풍속인 단발과 문신을 하고 아버지의 임종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논어』에서는 그의 지극한 덕을 칭찬하였고, 사서에서는 ‘위대한 현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60) 그 까닭은 태백이 제왕의 존귀함을 무시하고 마음을 비우는 일을 중요하게 보전하여 세 차례나 천하를 양위한 공덕은 원대하고, 몸을 훼손한 잘못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오랑캐의 풍속을 크게 변혁시킨 훌륭한 가르침을 전할 수 있었다.
033_0168_a_23L且%(骨*玄)放遐裔而禹不告退若令委堯命以尋父屈至公於私斯一分之小善非大者遠者矣之泰伯遠棄骨肉託迹殊域祝髮文存亡不反而論稱至德書著大賢誠以其忽南面之尊保沖靈之貴讓之功遠而毀傷之過微也故能大革夷俗流風垂訓
백이ㆍ숙제는 모두 수양산 기슭에서 굶주려 죽고 고죽국孤竹國의 후사가 끊길 것을 염려하지 않았지만, 공자는 그들을 ‘어질고 현명한 사람’으로 간주하였다.61) 세상을 평가하는 이들을 어찌 덕을 어겼다고 할 수 있겠는가?
033_0168_b_07L齊同餓首陽之不恤孤竹之胤仲尼目之爲仁賢當者寧復可言悖德乎
양梁나라의 고행高行은 용모를 훼손하면서까지 절조를 지켰고, 송宋나라의 백희伯姬는 바른 도리에 따라 생명을 버렸다. 이들은 모두 열녀의 으뜸이라고 불렸고, 그 덕행이 부녀들의 귀감이 되었다. 고행과 백희 두 여인이 행한 도를 취하면 어리석은 패륜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보건대, 효도는 지켜야 할 행위의 중요성과 관계됨을 알 수 있다.
033_0168_b_09L梁之高行容守節宋之伯姬順理忘生竝名冠婦德範諸姬秉二婦之倫免愚悖之譏耳率此以談在乎所守之輕重可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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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옛날 부처님은 태자였을 때 나라를 버리고 도를 배웠다. 신체를 그대로 보전하며 도로 향하고자 하였지만, 세속에 구속될 것을 우려하여 삭발하고 옷을 바꾸어 입었다. 이것은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는 뜻을 밖으로 나타내 보인 것이고, 안으로는 수양하여 간소한 생활을 하려 한 것이다. 그리하여 화려한 궁전을 버리고 한적한 산림에 들어갔고,62) 왕의 곤룡포를 벗어버리고 짐승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63) 나뭇가지가 늘어진 곳을 집으로 삼고64) 풀을 엮어서 자리로 삼았다. 머리를 빗는 수고를 하지 않았고, 목욕하는 번거로움도 그쳐 버렸다.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억제하고, 욕망이 움직이는 문을 닫아 걸었다. 눈으로는 붉고 노란 색을 보지 않고,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끊었으며, 입으로는 달고 쓴 맛을 끊어 버리고, 뜻으로는 기쁨과 슬픔에 휩쓸리지 않았다. 마음이 번거로움에서 벗어났고, 가슴속에서는 오직 하나를 체득하여 혼백을 평정히 다스렸다.65) 마음속으로 안반법安般法66)을 생각하여 일一에는 수數, 이二에는 수隨, 삼三에는 지止, 사四에는 관觀, 오五에는 환還, 육六에는 정淨으로 하였다. 뜻을 세 번째와 네 번째에 두면서 12문門에 출입하였다.67) 선정禪定의 경지에 들어가서 묵묵히 말하지 않았고, 산처럼 정지하고 연못처럼 맑으며, 정신은 차가운 재와 같고, 형체는 썩은 나무와 같았다.68) 6년 동안 단좌하여 도를 성취하였고, 부처라고 불렸다.3달達하고 6통通한69) 경지에 서고 최상의 바른 깨달음[正覺]을 얻었던 것이다. 한 길 여섯 자의 우아한 몸은 찬란한 금색으로 빛나서 그 빛이 해와 달을 가렸고, 그 소리가 8풍風70)과 조화를 이루었다. 32상과 80종호를 갖추어서 신체는 여러 존재들이 될 만큼 충분히 신비하고 정신은 원만하였다.
033_0168_b_13L昔佛爲太子棄國學道欲全形以向道恐不免維縶故釋其鬚髮變其章服旣外示不反內脩簡易是捨華殿而卽曠林解龍衮以衣鹿遂垂條爲宇藉草爲茵去擳梳之息湯沐之煩頓馳騖之轡塞欲動之門目遏玄黃耳絕婬聲口忘甘苦意放休慼心去於累胸中抱一載平營魄內思安般一數二隨三止四觀五還六淨遊志三四出入十二門定拱默山停淵淡神若寒灰形猶枯端坐六年道成號佛三達六通覺無上雅身丈六金色焜曜光遏日聲協八風相三十二好姿八十偉群有神足無方
그리하여 부처님은 삼계 밖을 노닐며, 무궁한 경지에서 자유자재로 변화하였고, 천지를 뒤집어 엎고 산과 강을 옮겼다. 있다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신비하게 변화하였고, 마음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모두 못하는 경우가 없었다. 크나큰 법도로 사악한 사람들을 변화시켜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고, 온갖 마군들과 저급한 가르침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모두 따르고 복종하게 하였다.
033_0168_c_04L於是遊步三界之恣化無窮之境迴天儛地飛山結存亡儵忽神變緜邈意之所指往不通大範群邪遷之正路衆魔小靡不遵服
이때 하늘은 맑고 땅은 윤택하여 만물이 모두 올바른 도를 얻었다.71)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벌레까지도 영묘한 감로의 은혜를 받아 윤택해지고, 고목도 소생하여 꽃을 피웠다. 깨달음의 지혜에 빛나는 부처님은 태어난 본국으로 돌아가 널리 법을 폈고, 부왕도 감동하여 불법의 도량에 입문하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렇게 하여 부모님에게 영예를 안겨 드렸으니, 어떤 효행이 이와 같겠는가?
033_0168_c_08L于斯時也天淸地潤物咸亨蠢蠕之生浸毓靈液枯槁之改瘁爲榮還照本國廣敷法音王感悟亦昇道場以此榮親何孝如

8
그리고 부처님의 뒤를 잇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신봉하고 그 뛰어난 도를 널리 펼 것을 생각하였다.72) 이들은 모두 부모와 숭상하는 바가 다르지 않아서73) 부모님의 기뻐하는 마음을 받들고 난 뒤 출가했던 것이다. 형제가 있는 경우에는 다른 형제가 부모님을 대신 봉양하여 봉양을 완전히 폐하지 않음으로써74) 위대한 불도를 훌륭히 수행하면서도 육친의 애정을 그대로 보전할 수 있었다.75) 또한 죽은 자가 복록을 얻어서 천상계에 태어나도록 하기 때문에 조상의 제사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너와 나 모두를 착하게 하여 함께 잘 살 수 있는 도가 아니겠는가?76)
033_0168_c_12L於是後進之士被服弘訓思濟高皆由父母不異所尚承歡心而後動耳若有昆弟之親者則服養不廢旣得弘脩大業而恩紀不替且令逝沒者得福報以生天不復顧歆於世祀斯豈非兼善大通之道乎
저 동쪽 마을에서는 소를 잡아 훌륭한 공물로 제사지내고, 서쪽 마을에서는 약사禴祀의 질박한 공물로 지낸다.77) 은나라는 공물로 서직의 곡물을 아름답게 여겼지만, 주나라는 밝은 덕을 중시하였다.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흥성할 시기에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033_0168_c_17L夫東鄰宰西鄰禴祀殷羙黍稷周尚明德喪之期於茲著矣
033_0169_a_01L불교에는 12부경部經이 있는데, 그 중 4부部가 오직 효를 권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로써 간절한 의도가 지극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속의 사람들은 그 원류를 상세히 살펴보지 않고 강론에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쓸모없는 말과 허망한 논의로 비난과 공격을 일삼고 있다. 반딧불 같은 미천한 식견으로 일월성신과 같은 빛나는 진리를 의심하고, 풀잎의 이슬과 같은 빈약한 생각으로 깊고 넓은 바다의 광대함을 의심한다. 그리고 왜곡하여 비난하는 말을 논변이라고 생각하고, 무리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을 명예라고 생각한다. 이는 위대한 사람을 모멸하고 천명天命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78)
033_0168_c_19L佛有十二部經四部專以勸孝爲事慇懃之旨可謂至而俗人不詳其源流未涉其場肆便瞽言妄說輒生攻難以螢燭之見疑三光之盛芒隙之滴怪淵海之量以誣罔爲辯以果敢爲名可謂狎大人而侮天命者也


5. 난백흑론難白黑論
033_0169_a_02L宗居士炳答何承天書難白黑論

1) 하승천何承天이 종병宗炳에게 보내는 글79)
033_0169_a_03L何與宗書
지난번 현종중랑賢從中郞80)의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그 글에서 귀하는 서방정토의 불사에 종사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81) 현명한 분의 뜻은 높으니, 어찌 만겁의 수명을 지나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다만 우리의 짧은 생애로는 명령冥靈이라는 나무82)의 수명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치성사治城寺의 혜림慧琳 도인83)이 「백흑론白黑論」을 지어 승려들에게 배척받았는데,84) 총명한 군주85)께서 구원해 주셔서 바라이죄波羅夷罪를 간신히 면하게 되었습니다.86) 비구가 이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데, 흰옷 입은 속세의 불교신자가 어찌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까? 귀하께서 한번 백과 흑, 두 파 중 어느 쪽이 올바른가를 살펴 주십시오. 이러한 일에 저는 상당히 어두우니, 좋은 깨우침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승천 드림.
033_0169_a_04L近得賢從中郞書說足下勤西方法賢者志大豈以萬劫爲奢但恨短生無以測冥靈耳治城慧琳道人作白黑論乃爲衆僧所排擯賴蒙値明主善救得免波羅夷耳旣作比丘乃不應明此白徒亦何爲不言足下試尋二家誰爲長者吾甚昧然望有以佳悟何承天白

2) 종병의 답서
033_0169_a_12L宗答何書

1
보내 주신 혜림 도인의 「백흑론」은 문장과 논지가 다 훌륭하였습니다. 다만 제가 밝은 이치에 어두워서 아직 그 의미를 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033_0169_a_13L所送琳道人白黑論辭情致美但吾闇於照理猶未達其意
“죽음의 이치는 인간 세계의 일만으로는 다 나타낼 수 없다. 주공과 공자는 이 이치를 의심하였지만 논의하지 않았고, 석가모니는 논의하였지만 진실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87)
033_0169_a_15L旣云幽冥之不盡於人事周孔疑而不辯釋氏辯而不實
그렇다면 인간 세계의 일을 초월한 세계와 죽음의 이치에 대해서 확연히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뿐입니까, 아니면 신명이 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까? 만약 확연히 아무것도 없을 뿐이라면, 많은 성인들과 노자ㆍ장자는 무슨 까닭에 신神이 있다고 말하였겠습니까?88) 만약 신명이 있다면, 부처님의 말씀이 또 어떻게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하겠습니까?
033_0169_a_17L然則人事之表幽闇之理爲最廓然唯空爲猶有神明耶若廓然唯空衆聖莊老何故皆云有神有神明復何以斷其不實
033_0169_b_01L지금 서로 일상적인 인간의 영역에서 비근한 일을 헤아리는 것조차 착오가 많아서 재난에 빠지게 됩니다. 바둑과 장기 같은 잡기도 정신을 집중해서 연구해야 합니다. 살아 있다고 생각한 것이 다시 죽어 버리거나 죽었다고 여겼던 것이 실제로는 살아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근한 일 가운데에도 언제나 생각한 대로 되어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천지 밖과 억 겁의 시간을 넘은 아득한 세계에 관하여 부처님께서 논의하신 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만약 사실에 근거하여 실질을 얻지 못한 것이라면, 의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형체는 지극히 누추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실로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형체가 정신을 따르는데, 어떻게 둘 다 나란히 소멸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감응하면 성벽이 붕괴하고 서리가 내리며, 흰 무지개가 태양을 관통하고 태백성太白星이 묘昴를 침범하게 됩니다. 기금氣禁의 의사가 마음속에서 물과 불을 생각하면 환자의 신체에 차갑고 따뜻한 기운이 감응하게 됩니다.89) 지금도 지극히 밝은 지혜와 정밀한 뜻을 가지고 오직 성심으로 신명을 다한다면 감응하여 신체를 받고, 또한 7보寶의 정토淨土에 태어나게 됩니다. 어찌 진실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033_0169_a_20L如佛言相與共在常人之域料度近事猶多差錯以陷患禍及博弈麤藝注意硏或謂生更死謂死實生近事之中都未見有常得而無喪者何以決斷天地之外億劫之表冥冥之中必謂所辯不實耶若推據事不容得實則疑之可也今人形至麤人神實妙以形從神豈得齊終心之所感崩城隕霜白虹貫日太白入昴氣禁之醫心作水冷暖輒應況今以至明之智至精之志專誠妙徹感以受身更生於七寶之玉何爲不可實哉

2
또한 「백흑론」에서는, “나무를 미세하게 분석하여 텅 빈 것으로 보아도 울창하게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의 무성함을 손상시킬 수 없고, 건물의 구성 요소인 재목을 분석하여 집을 없다고 보아도 그 건축물의 장대한 아름다움을 덜어낼 수 없다.90) 조개무늬의 아름다운 비단91)은 알록달록한 색채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맛있는 국은 소금과 식초의 조미료에 따라 맛을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로 ‘본래 아무것도 없다[本來空無]’는 가르침을 막고자 하였지만, 글뜻이 옳지 않습니다.
033_0169_b_09L又云扸毫空無傷垂蔭之茂堆材虛空無損輪奐之美貝錦以繁彩發華和羹以鹽梅致旨以塞本無之教文不然矣
불경에서 말하는 ‘본무本無’는 여러 연緣들이 화합한 것들 모두가 공空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늘을 드리우거나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은 사물 나름대로의 유有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유의 진리[有諦]’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본성은 본래 무이기 때문에 ‘무의 진리[無諦]’라고 합니다. 나는 불교 이치를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학설은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033_0169_b_12L佛經所謂本無者非謂衆緣和合者皆空也垂蔭輪奐處物自可有耳故謂之性本無矣故謂之無諦吾雖不悉佛理謂此唱居然甚安
033_0169_c_01L옛날부터 천만 가지로 변화하며 존재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모두 공이 되어 버립니다. 기운이 왕성할 때는 어찌 항상 존재[常有]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실질이 필연적으로 공이므로 한순간에 공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이 또한 혜자惠子가 “만물은 생성되자마자 소멸되고, 태양이 정남에 갔을 때가 기울어지는 때이고, 죽는 것과 기울어진다는 사실은 항상 태어나거나 태양이 정남에 가기 이전부터 분명하다”92)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이치를 보지 못하고 오직 현재 있는 것만 보기 때문에, 제후齊侯는 상구씨爽鳩氏의 나머지 부분을 거두어들인다고 거짓으로 속여서 그 즐거움을 연모하고 있는 것입니다.93) 현명한 사람은 마음이 이치와 일치하므로, 안회顔回는 자주 쌀통이 빌 정도로 가난하였지만 있어도 없는 것같이 하고 가득 차도 없는 것같이 하였습니다.94) 그 이후의 사람들은 각각 기량의 깊고 얕은 차이에 따라 그 빈 것을 느꼈습니다. 후세로 갈수록 방종하여, 가령 지극한 가르침을 들어도 스스로 깨끗이 하지 못하고 애욕이나 경쟁의 미혹함에 기울게 되었습니다. 어찌 항상 조금이라도 비슷해질 수 없었겠습니까? 어찌 모닥불이 추위를 더하듯이, 좋아하고 즐기는 욕망을 더욱 깊게 변화시켰겠습니까? 또한 “무상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 도리어 갈망하는 감정을 증강시키고, 인생의 괴로움과 거짓을 서술하여 쾌락 추구에 진력하게 한다”고 말하였지만, 그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033_0169_b_16L自古千變萬化之有俄然皆已空矣當其盛有之豈不常有也必空之實故俄而得以空耶亦如惠子所謂物方生方死日方中方晲死晲之實恒豫明於未生未中之前矣愚者不睹其理唯見其有故齊侯攝爽鳩之餘僞而位戀其樂賢者心與理一故顏子庶乎屢有若無實若虛也自顏以下則各隨深淺而味其虛矣若又喩下縱不能自淸於至言以傾愛競之惑亦何常無髣髴於一毫豈當反以一大增塞而更令變嗜好之欲乎乃云明無常增渴廕之情陳苦僞篤競辰之慮言過矣

3
또한 “배를 골짜기에 감추어도 몰래 가져간다는 말95)이나 사람의 자취가 없는 시장에서는 말을 구하려 해도 얻을 수 없다는 논의96)가 중국에도 널리 유행하고 있지만, 심오한 이치가 아니므로 새삼스럽게 들춰내서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지 않는다. 그대는 이 이치를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분석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033_0169_c_07L又以舟壑唐肆之論已盈耳於中國非理之奧故不擧爲教本剖折此理更由指掌之民
배를 골짜기에 감추어도 몰래 가져간다고 하는 것은 불경에서 ‘현재는 머무르지 않는다’고 한 것에 해당됩니다. 참으로 진리를 밝히면, 다른 대상과 내가 항상 비어 있다는 것이 어찌 심오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생각건대 이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지 않았을 뿐입니다. 지공支公97)이 아직 부처님과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원래 중국에 있었던 학설이라고 하여 어떻게 그 지극한 가르침을 경시하겠습니까?
033_0169_c_09L夫舟壑潛佛經所謂現在不住矣誠能明之則物我常虛豈非理之奧耶蓋悟之者寡故不以爲教本耳支公所謂未與佛同也何爲以素聞於中國而蔑其至言哉又以效神光無徑寸之明驗靈變無纖介之實徒稱無量之壽孰見期頤之叟諸若此類皆謂於事不符

4
또한 “신비한 빛을 살펴보아도 지름이 한 치인 구슬만큼 빛이 없고, 영묘한 변화를 경험하여도 티끌만한 실질이 없다. 수명이 무량하다고 되풀이 말해도 누가 백 살 늙은이를 본 적이 있는가?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비한 빛이나 영묘한 변화, 무량한 수명은 모두 믿음이 지극한 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래 부처님의 정토淨土에 태어나서 직접 그 광명을 받고 수명이 무량으로 되는 것뿐입니다. 지금 삿된 견해에 빠지고 영명한 변화를 경시하는 자는 이치에서 천지만큼 떨어져 있는데, 무슨 까닭에 사실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033_0169_c_17L夫神光靈變及無量之壽皆由誠信幽奇故將生乎佛土親映光明其壽無量耳今沒於邪見慢誕靈化固天隔當何由睹其事之符乎
저 마음은 탐욕스럽지 않은 것이 10선善98)의 근본이 되므로, 밑으로는 지옥과 단절하고 위로는 천당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뜻에 따라 도를 실천하고, 이치에 따라 마음을 단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033_0169_c_20L心不貪欲爲十善之本故能俯絕地 仰生天堂卽亦服義蹈道理端心者
033_0170_a_01L현재 마음속에 경건한 신앙을 품고 있으므로 예배하고 죄를 반성하게 되고, 무상을 깨닫게 되므로 감정에 끌림이 없이 처자를 버리고 보시하는 것입니다. 어찌 백 배의 보상을 구하려고 하겠습니까? 또 어째서 “공손한 뜻에 따르지 않고, 아낌없는 감정에 편승하지 않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열반은 즐거움이 없는 상태를 즐거움으로 삼고, 법신法身은 신체가 없는 상태를 신체로 봅니다. 만약 본래 바라는 것에 근접하지 못했다면,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을 더하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만약 참으로 불교를 믿게 된다면, 즐거움을 탐하는 마음도 점차 없어지고 아무 이익이 없는 상태에서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이익을 다투는 풍속’과 관계가 있겠습니까?
033_0169_c_23L今內懷虔仰故禮拜悔罪達夫無故情無所悋委妻子而爲施豈有邀於百姓復何得乃云不由恭肅之不乘無悋之情泥洹以無樂爲法身以無身爲身若本不希擬可爲增耽逸之慮肇好奇之心若誠飡仰則耽逸稍除而獲利於無利矣又何問利競之俗乎

5
또한 “도는 무욕無欲에 있는데도 유욕有欲으로 구하려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이익만 추구하기 위하여 움직인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찌 그리 심하게 부처님을 비방합니까? 불교의 근본적인 취지는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이 모두 욕망에서 유래한다고 보고 12인연因緣을 분명히 말하여서 고상한 사람들에게 무생無生을 향하여 정신을 밝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를 희구하는 사람은 무욕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민중을 계도하는 데는 천당과 지옥이 모두 그림자와 메아리 같은 실질적인 영향이 있습니다. 우공于公이 인仁으로 백성들을 살리자 자손들이 제후에 봉해졌고, 엄연년嚴延年은 살생을 좋아하다가 주살되었습니다. 주살을 두려워하고 제후로 봉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살생을 버리고 인을 닦아야 합니다. 훌륭한 수행에 힘써서 천당을 희망하고, 5계戒를 조심스럽게 지켜서 지옥을 멀리하며,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이 있더라도 날마다 줄여서 무위에 이르는 깨끗한 길을 실천합니다. 이 또한 서쪽으로 나아가 영郢에 도착하기를 구하는 것으로, 어찌 이르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033_0170_a_07L又云道在無欲而以有欲要之俯仰之閒非利不動何誣佛之深哉夫佛家大趣自以八苦皆由欲來明言十二因緣使高妙之流朗神明於無生耳欲此道者謂有欲於無欲矣至於啓導麤近堂地獄皆有影嚮之實亦由于公以仁活招封嚴氏以好殺致誅畏誅而欲封者必捨殺而脩仁矣勵妙行以希天堂謹五戒以遠地獄雖有欲於可欲實踐日損之淸塗此亦西行而求郢何患其不至哉
033_0170_b_01L또한 “단청은 색채를 좋아하는 눈을 어지럽게 하고, 토목의 건축물은 장대함을 좋아하는 마음을 과시한다. 사적인 권력을 형성하고 당파의 세력을 결성하면서 마음을 엄격히 한다는 명예를 구하고, 경쟁의 뜻을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혐오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흑거머리같이 추한 일입니다. 법을 가볍게 정한다고 해도 그 폐해가 오히려 탐욕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99) 그러나 어떻게 부처님께서 탐욕하는 법을 정했다고 부처님을 모멸할 수 있습니까? 왕망王莽은 6경經을 훔쳐 제위를 찬탈하였고, 진시황제는 제후의 조회를 빌미로 삼아 아방궁을 지었습니다. 그렇다고 어찌 선왕의 예교에 죄를 물을 수 있겠습니까?
033_0170_a_18L又嫌丹靑眩媚彩之目土木誇好壯之心成私樹之結師黨之勢要厲精之譽肆凌競之志固黑蝗之醜或可謂作法於涼其弊猶貪耳何得乃慢佛云作法於貪耶王莽竊六經以篡帝位秦皇因覲朝而搆阿房寧可復罪先王之禮教哉

6
또한 “없는 것을 가르치고 모르는 것을 확실히 하는 자취는 그 핵심 취지가 보존되어야 한다. 내세를 보여 주는 것은 도교와 불교 사이에서 가려지고 잘못되었다”100)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득이 질문하고자 합니다. 그 본지는 무엇을 구하는 것입니까? 반드시 이익을 닦아서 선善으로 옮기고 이로써 그 본성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성인은 항상된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나아갔을 때 생기는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 것뿐입니다.101) 만약 신체가 죽으면 정신이 소멸하는 것이 사물의 참된 본성이라면, 당연히 소멸되는 본성에 대하여 주공ㆍ공자와 힘을 합쳐 가르침을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학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선으로 옮기는 실질이 어찌 순수하지 않겠습니까?
033_0170_b_02L又云宜廢顯晦之迹存其所要之旨示來生者蔽虧於道釋不得已請問其旨爲欲何要必欲使脩利遷以遂其性矣夫聖無常心就物之心以爲心耳若身死神滅是物之眞性但當卽其必滅之性與周孔幷力致使物無稟則遷善之實豈不純乎
어떻게 정신이 불멸하다는 학설과 불교 교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속이고, 머리를 깎고 살갗을 태우게 하고, 부부의 연을 끊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손들이 태어나지 않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 해로움이 이와 같은데, 본성을 다하게 하는 미덕을 해치는 일을 석가모니가 어떻게 부득이라도 행하겠습니까? 신앙이 없는 무리들은 이익을 닦아서 선으로 옮기지도 못합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역耆域ㆍ건타륵揵陀勒ㆍ이타밀夷陀密ㆍ축법승竺法乘ㆍ백법조帛法祖ㆍ축법호竺法護ㆍ우법란于法蘭ㆍ축법행竺法行ㆍ우도규于道邃ㆍ궐공측闕公則ㆍ불도징佛圖澄ㆍ시려밀尸黎蜜ㆍ곽문거郭文擧ㆍ석도안釋道安ㆍ지도림支道林ㆍ원화상(遠和上:慧遠)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정신이나 풍조가 혜림 비구에 뒤지지 않을 듯싶습니다. 어떻게 사람의 도리를 함부로 훼손하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의 교화로 인해 삭발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신령스러운 진실이 아득한 마음을 이끌어들여 신통하고 맑은 참된 업을 성취하였던 것입니다.
033_0170_b_08L何誑以不滅欺以佛理使燒祝髮膚絕其胖合所遏苗裔數不可量爲害若是以傷盡性之美釋氏何爲其不得已乎若不信之流亦不肯脩利而遷善矣夫信者則必耆域揵陁勒夷陁密竺法乘帛法祖竺法護于法蘭竺法行于道邃闕公則佛圖澄尸梨郭文擧釋道安支道林遠和上之倫矣神理風操似殊不在琳比丘之寧當妄有毀人理落簪於不實人之化哉皆靈奇之實引緜邈之心成神通淸眞之業耳
033_0170_c_01L귀하는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적어서 멀리까지 이 논지를 보냈습니다. 또한 세간에서 의심하였던 사람들도 모두 이것을 뛰어난 논지라고 감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력으로 대답하여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세간에서 불법에 대해 시비하는 것은 모두 인류의 흥망에 관한 큰 문제인데, 어떻게 서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데서 그칠 수 있겠습니까?102) 그리하여 나는 어리석은 생각을 다 짜내어서 「명불론」을 찬술하고 내 생각을 피력해 보았습니다. 이제 겨우 끝을 맺고 사람을 시켜 필사하게 하였는데, 이 편지를 다 마치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습니다. 나머지는 다시 편지를 쓸 때 보내 드리겠습니다. 종병 드림.
033_0170_b_20L足下藉其不信遠送此論且世之疑者咸亦妙之自力白答以塵露衆情夫世之然否佛法都是人興喪所大何得相與共以可否之間吾故罄其愚思制「明佛論」以自獻所懷始成已令人書寫不及此信晩更遣信可聞當付往也宗炳白

3) 균선론均善論의 해석에 대한 논란
033_0170_c_04L釋均善難
[하승천]
何承天

1
먼저 「균선론」을 보내고 아울러 고견을 물어 보았는데, 주의깊은 답변을 잘 받았습니다. 그 논지는 인류의 흥망에 관한 문제를 천명하는 것이므로, 옳은 것도 아니고 옳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중간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견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편견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넓은 바다에서 야광주를 구하였지만, 아직 얻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033_0170_c_05L前送「均善論」幷諮求雅旨來答周至及以爲茲理興喪宜明不可但處以可否之閒吾雖不能一切依附亦不甚執偏見但求夜光於巨海正自未得耳
생각건대 불교 경전은 아홉 가지 학파103)의 별파로서 도가道家ㆍ묵자墨子의 학설이 뒤섞여 있고, 자비로 보시한다는 점에서 중국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대인 군자는 인仁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104) 마음에 반드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으며, 형상과 수식으로 보통 사람들의 이목을 부드럽게 하려고 합니다. 불교가 나라에 손해를 끼치는 일은 미미하지만, 불교가 널리 이익을 주는 일은 잘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도 아홉 학파와 함께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호사가들이 출현하면서 공자의 가르침을 뛰어넘고 노자의 학설을 초월하여 오직 자기 자신만 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가르침의 근본을 구하지 않고 지엽적인 학설에 현혹된 것입니다. 참된 말을 아는 것105)은 언어를 잊은 사람들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만약 천당과 지옥의 응보설과 인연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징험만 믿고 감정을 억누르고 변변하지 못한 음식을 먹으며 예배에 모든 힘을 다 쓰면서 수많은 보물이 가득한 7보寶의 천개[蓋]에 덮여서 공양되고106) 수미등왕須彌燈王의 자리에 오르기107)를 바란다면, 이것은 순우곤淳于髡108)이 부리는 우스운 익살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033_0170_c_10L以爲佛經者善九流之別家以道慈悲愛施與中國不異大人君子仁爲己任心無億必且以形像彩飾將諧常人耳目其爲麋損尚微其所引益或著是以兼而存之至于好事者遂以爲超孔越老唯此爲貴斯未能求立言之本而眩惑於末說者也知其言者當俟忘言之人若唯取信天堂地獄之應因緣不滅之驗抑情菲食盡勤禮拜庶幾廕寶稱之蓋升彌燈之坐淳于生所以大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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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논의에 “많은 성인들과 노자ㆍ장자는 무슨 까닭에 신神이 있다고 말하였겠습니까? 만약 신명이 있다면, 부처님의 말씀이 또 어떻게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여기에 답하겠습니다.
이승에는 예악禮樂이 있고, 저승에는 귀신이 있습니다. 성왕의 가르침이 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그것이 있음을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내생에 보응이 있다면, 주공ㆍ공자가 어찌 침묵하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만약 어린 아기가 구덩이에 빠져 있다면 보통 사람도 놀라 당황할 텐데, 어찌 성인만 불쌍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033_0170_c_20L論云衆聖老莊皆云有神明復何以斷其不實如佛言答曰明有禮樂幽有鬼神聖王所以爲教初不昧其有也若果有來生報應孔寧當緘默無片言耶若夫嬰兒之臨坎凡人爲之駭怛聖者豈猶不仁哉
또한 귀하의 논의에 “인간의 형체는 지극히 누추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실로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형체가 정신을 따르는데, 어떻게 둘 다 나란히 소멸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형체와 정신이 서로 의지한다는 것을 옛날 사람들은 장작과 불의 관계에 비유하였습니다.109) 장작이 거의 다 타면 불이 약해지고, 장작이 다 타버리면 불도 꺼집니다. 아무리 정신이 신묘하다고 해도 어찌 홀로 전해질 수 있겠습니까?
033_0171_a_03L又云人形至麤人神實妙以形從神豈得齊終答曰形神相資古人譬以薪火薪弊火微薪盡火滅雖有其妙豈能獨傳
또한 당신의 논의에 “마음이 감응하면 성벽이 붕괴하고 서리가 내리며, 흰 무지개가 태양을 관통하고 태백성太白星이 묘昴를 침범하게 됩니다. 기금氣禁의 의사가 마음속에서 물과 불을 생각하면 환자의 신체에 차갑고 따뜻한 기운이 감응하게 됩니다. 지금도 지극히 밝은 지혜와 정밀한 뜻을 가지고 오직 성심으로 신명을 다한다면 감응하여 신체를 받고, 또한 7보寶의 정토淨土에 태어나게 됩니다. 어찌 진실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033_0171_a_06L心之所感崩城隕霜白虹貫日太白入昂氣禁之醫冷煖輒應專誠妙感以受身更生七寶之土何爲不可哉
이에 대해 답변하겠습니다.
성벽이 붕괴하고 서리가 내리며 태양을 관통하고 태백성이 묘를 침범한다는 말은 내생來生을 밝히는 비유가 아니므로, 여기에서 인용하기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또한 물과 불의 금기로 7보의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110)은 대장장이가 금을 녹이는 것을 보고 자기 스스로 주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결국 불가능한 것입니다.
033_0171_a_09L答曰崩城隕霜貫日入昂不明來生之譬非今論所宜引也又見水火之禁異其能生七寶之鄕猶觀大冶銷金冀其能自陶鑄終不可知也
또한 귀하의 논의에 “‘유의 진리’와 ‘무의 진리’의 학설은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옛날부터 천만 가지로 변화하며 존재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모두 공이 되어 버립니다. 기운이 왕성할 때는 어찌 항상 존재[常有]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실질이 필연적으로 공이므로 한순간에 공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그 이치를 보지 못하고 오직 현재 있는 것만 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033_0171_a_13L又曰諦無諦此唱居然甚安自古千變萬化之有俄然皆已空矣當其盛有之時豈不常有必空之實愚者不知其理唯見其有
여기에 답하겠습니다.
귀하가 논의하였듯이 기운이 왕성할 때에 이미 공이 되어 버리는 실질이 있다면, 사물은 항상 공이 될 것이고, 공과 사물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공과 유가 다르지 않다면,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호칭이 다른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옛날에 도라고 하는 것은 형체가 없고[無形] 아무 사물이 없으며[無事], 세상일과 떨어져서 고요히 지혜를 기르고 정신을 충족하게 한 것입니다. 어찌 유독 애욕을 제거하지 않고 전생의 인연만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오직 있는 것만 본다”는 입장이 어찌 잘못이겠습니까? 이러한 입장에서 제후를 비웃는 것은 바로 50보步 도망간 사람이 백 보 도망간 사람을 보고 비웃는 것과 같습니다.
033_0171_a_17L答曰如論云當其盛有之時已有必空之實然則卽物常空空物爲一矣令空有未殊而賢愚異稱何昔之所謂道者於形爲無形於事爲無事恬漠沖粹養智怡神豈獨愛欲未除宿緣是畏唯見其有豈復是以此嗤齊侯猶五十步笑百步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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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귀하의 논의에 “배를 골짜기에 감추어도 몰래 가져간다고 하는 것은 불경에서 ‘현재는 머무르지 않는다’고 한 것에 해당됩니다. 참으로 진리를 밝히면, 다른 대상과 내가 항상 비어 있다는 것이 어찌 심오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라는 것이 있습니다.
033_0171_a_23L又云舟壑潛謝佛經所謂現在不住誠能明之則物我常虛
이에 대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몰래 가져가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유에서 무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육신을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마음을 상하게 할 수는 없고, 집을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진실이 죽는 일은 없다”111)고 합니다. 가의賈誼도 “변화하여 다른 것이 되는데, 어찌 걱정할 필요가 있는가?”112)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죽음과 삶의 변화에 통달한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구하게 거취에 구애를 받고, 살아 있으면서 죽은 뒤의 일을 걱정하고, 마음은 무한한 수명에 얽매여서 천당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무리들이113) 항상 마음을 비운다[常虛]고 한 것은 이와 다릅니다.
033_0171_b_02L答曰潛謝不住豈非自生入死自有入無之謂乎故其言曰有駭形而無損心有旦宅而無憤死賈生亦云化爲異物又何足患此達乎死生之變者而區區去就在生慮死心繫無量志生天堂吾黨之常靈異於是焉
또한 귀하의 논의에 “신비한 빛이나 영묘한 변화, 무량한 수명은 모두 믿음이 지극한 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광명을 받고 지금 삿된 견해에 빠지고 영명한 변화를 경시하는 자는 이치에서 천지만큼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033_0171_b_08L神光靈變及無量之壽皆由誠信幽奇故映其明今沒於邪見理固天
이에 대해 답하겠습니다.
이 또한 귀하의 말을 따를 수 없습니다. 변화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부처님의 광명을 구하지만 믿음에서 구할 뿐입니다. 석가의 가르침을 구하는 것은 좋은 방편으로 다른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감응하는 징험이 있다면, 왜 이 영묘한 변화를 보여서 사견의 무리를 깨우치지 않습니까? 어째서 수천 수만의 방대한 교설은 아끼지 않으면서 잠깐 동안의 신비한 광명만 아끼는 것입니까? 변화에 대한 변론만 소리로 펼치고 결국 참된 지혜를 밝히는 일이 없으므로, 중생들은 평생 지쳐서 돌아갈 곳을 모릅니다. 어찌 슬프지 않습니까?
033_0171_b_11L答曰今亦不從慢化者求其光明但求之於誠信者耳尋釋迦之教善㩲救物若果應驗若斯何爲不見其靈變以曉邪見之徒豈獨不愛數十百萬之說而悋俄頃神光徒爲化聲之辯竟無明於眞智終年疲役不知所歸豈不哀哉
또한 귀하의 논의에 “현재 마음속에 경건한 신앙을 품고 있으므로 예배하고 죄를 반성하게 되고, 무상을 깨닫게 되므로 감정에 끌림이 없이 처자를 버리고 보시하는 것입니다. 어찌 백 배의 보상을 구하려고 하겠습니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033_0171_b_17L又云內懷虔仰故禮拜悔罪達夫無常故情無所悋委妻子而爲施豈有邀於百倍
이에 대해 답하겠습니다.
기술을 정교히 하여 일을 잘하는 것보다 탐욕을 제거하고 경쟁을 그만두는 편이 낫고, 계를 준수하여 죄를 씻고 참회하는 것보다 영화로운 일을 잘라 버리고 소박함을 보전하는 편이 낫습니다. 하물며 숭상하는 대상을 끌어들여 이익을 기원하고, 하늘의 권속을 잃어버리고 영예를 구하는 일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이러한 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지만, 나는 믿지 않습니다.
033_0171_b_19L答曰繁巧以興事未若除貪欲而息競戒以洗悔未若翦榮冀以全朴況乃誘所尚以祈利忘天屬以要譽謂之無邀吾不信也
033_0171_c_01L또한 귀하의 논의에 “열반은 즐거움이 없는 상태를 즐거움으로 삼고, 법신法身은 신체가 없는 상태를 신체로 봅니다. 만약 본래 바라는 것에 근접하지 못했다면, 즐거움을 탐하는 생각을 더하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만약 참으로 불교를 믿게 된다면, 즐거움을 탐하는 마음도 점차 없어지고 아무 이익이 없는 상태에서 이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033_0171_b_23L又云泥洹以無樂爲法身以無身爲身若誠能飡仰耽逸稍除獲利於無利矣
이에 대해 답하겠습니다.
열반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법신은 선에 접하는 것을 자신으로 봅니다. 이것이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과연 이익이 없는 상태로 귀착한다면, 수행에 힘쓰는 자는 무엇을 얻어서 아무 이익이 없는 상태를 획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육체와 정신이 다 함께 소멸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것은 귀하의 훌륭한 논의로도 명확히 해명될 수 없을 것입니다.
033_0171_c_02L答曰泥洹以離苦爲樂法身以接善爲身所以使飡仰之徒不能自絕耳果歸於無利勤者何獲而云獲於無利耶此乃形神俱盡之證恐非雅論所應明言
또한 귀하의 논의에 “불교의 도를 희구하는 사람은 무욕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민중을 계도하는 데는 천당과 지옥이 모두 그림자와 메아리 같은 실질적인 영향이 있습니다. 우공于公이 인仁으로 백성들을 살리자 자손들이 제후에 봉해졌고, 엄연년嚴延年은 살생을 좋아하다가 주살되었습니다. 주살을 두려워하고 제후로 봉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살생을 버리고 인을 닦아야 합니다. 훌륭한 수행에 힘써서 천당을 희망하고, 5계戒를 조심스럽게 지켜서 지옥을 멀리하며,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이 있더라도 날마다 줄여서 무위에 이르는 깨끗한 길을 실천합니다. 이 또한 서쪽으로 나아가 영郢에 도착하기를 구하는 것으로, 어찌 이르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습니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033_0171_c_07L又云欲此道者可謂有欲於無欲至若啓導麤近者有影嚮之實猶于公以仁活致封嚴氏以好殺致厲妙行以希天堂謹五戒以遠地雖有欲於可欲實踐日損之塗亦西行而求郢何患其不至
이에 대해 대답해 보겠습니다.
민중을 계도하는 데 응보가 있다는 것을 그림자와 메아리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훌륭하지 않습니까? 다만 그림자와 메아리는 반드시 형체와 소리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8자나 1길 6자의 짧은114) 형체에서 어떻게 8만 유순이나 되는 그림자가 생기겠습니까? 무욕을 욕망하여 막히는 것은 항상 욕망의 대상 때문에 막힌 것과 같습니다. 저 눈과 귀는 맡은 역할이 다르고, 기술과 예술은 작업이 다릅니다. 지엽적인 기술조차 실제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금속과 돌로 만든 악기가 잘 조화를 이루면 태산이 그 고상함을 표현할 수 없고, 기러기와 백조가 함께 모이면 깊은 가을이 그 뜻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욕망으로 무욕을 완성하고 날마다 이것을 줄이고 줄여서 무위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것은 서쪽으로 가서 영 땅을 찾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주 먼 길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033_0171_c_12L答曰謂麤近爲啓導比報應於影嚮不亦善乎但影嚮所因必稱形聲尋常之形安得八萬由旬之影乎所滯若有欲於無欲猶是常滯於所欲耳目殊司工藝異業末伎所存慮猶不竝是以金石克諧泰山不能呈其鴻鵠方集冥秋不能傳其旨而欲以有欲成無欲希望就日捐雖云西去郢茲遠如之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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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논의에 “만약 신체가 죽으면 정신이 소멸하는 것이 사물의 참된 본성이라면, 당연히 소멸되는 본성에 대하여 주공ㆍ공자와 힘을 합쳐 가르침을 베풀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정신이 불멸하다는 학설과 불교 교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속이고, 머리를 깎고 살갗을 태우게 하고, 부부의 연을 끊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손들이 태어나지 않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인간의 본성을 다하게 하는 미덕을 해칠 수 있습니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033_0171_c_21L又云若身死神是物之眞性但當與周孔幷力致教何爲誑以不滅欺以佛理使燒祝髮膚絕其胖合以傷盡性之義
033_0172_a_01L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민족과 오랑캐는 본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인은 하늘에서 맑고 조화로운 기氣를 품부 받아 인仁을 함축하고 의義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공과 공자는 본성과 습관에 대한 가르침을 밝히고 있습니다. 외국의 이방인들은 억세고 탐욕스러우며 사나운 본성을 받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다섯 가지 계율[五戒]의 과목을 엄격히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귀하가 “성인은 항상된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나아갔을 때 생기는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 것뿐입니다”라고 한 말의 내용입니다.
033_0172_a_01L答曰華戎自有不同何者中國之人稟氣淸和含仁抱義故周孔明性習之教外國之徒受性剛强貪欲忿戾故釋氏嚴五戒之來論所謂聖無常心就之物性
포악함을 징계하는 계율에는 지옥만한 것이 없고, 선한 일로 유도하는 권고로는 천당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잔혹한 뿌리를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은 중용中庸이 아닙니다. 주공ㆍ공자도 그렇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천성天性에 따르면서 아주 심한 부분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5형刑115)으로 간음과 도둑질을 명확히 막고, 「주고周誥」는 술의 폐악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116) 봄에 사냥할 때는 늪을 에워싸서 잡지 않고,117) 살아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죽이지 못하며,118) 5범犯119)과 3구驅120)의 예를 제정하여 낚싯대는 사용하더라도 그물은 쓰지 않습니다.121) 따라서 널리 인애仁愛가 전해지고, 돼지나 물고기에까지 은택이 미치고 있습니다. 가례嘉禮에는 항상 음식상이 있어서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고,122) 봄에는 밭을 갈고 가을에는 수확하여 양잠과 베 짜는 일이 그 적당한 시기를 잃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3령靈123)이 이르고, 온갖 귀신들이 모두 질서가 잡힙니다. 이러한 행위들이 어찌 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공관供灌의 상을 밝히고 의심스러운 법의 죄를 엄중히 하며 포재蒲宰124)의 질문을 서술하는 것을, 덕을 권하고 교화하는 근본으로 삼고, 향기 어린 답변을 부연하여 내생의 징험을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검은 옷을 입고 눈을 부릅뜨고 눈썹을 치켜 올리며125) 이 설을 비난하는 자는 그 마음가짐이 잘못된 것입니다.
033_0172_a_06L懲暴之戒莫若乎地獄誘善之歡莫美乎天堂將盡殘害之根非中庸之謂孔則不然順其天性去其甚淫盜著於五刑酒辜明乎「周誥」田不圍澤見生不忍死五犯三驅釣而不網是以仁愛普洽澤及豚魚禮有常俎老者得食肉春耕秋收織以時三靈格思百神咸祑方彼之所爲者豈不弘哉又甄供灌之賞疑法之罰述蒲宰之問爲勸化之本演焄蒿之答明來生之驗祗服盱衡而矜斯說者其處心亦悞矣

5
귀하의 논의에서는 “기역ㆍ건타륵ㆍ시려밀 등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정신이나 풍조가 혜림 비구에 뒤지지 않을 듯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하는 이미 “보통 사람으로는 비근한 일조차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하였으면서, 어째서 백 년 전의 일과 수천 리 밖의 일들에 대해 우열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혜림 비구와 같은 분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늘이 내린 영령[天靈]을 가지고 있어서 진위를 깊이 알고 계시는 듯합니다. 특히 경전을 공경하고 스승을 옹호하며 미혹한 학설을 숭배하는 일들은 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033_0172_a_17L論又稱尸梨之屬神理風操不在琳比丘後足下旣明常人不能料度近事今何以了其勝否於百年之前數千里之外耶若琳比丘者僧貇而天靈似夫深識眞僞殊不肯忌經護師崇飾幻說吾以是敬之
033_0172_b_01L손작孫綽이 일으킨 공론에서는, 축법호竺法護가 깊이 통달하였고, 우법란于法蘭이 순박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귀하는 중국의 어떤 인사에게 비교하려고 합니까?
초왕楚王 영英이 인사仁寺를 짓고 작융笮融이 굶주린 행인을 대접하는 것에 어찌 맑은 진리의 풍조가 따로 있겠습니까? 옛날 내가 동읍에 살고 있을 때, 도함道含이라는 사문126)이 오중吳中에서 오셨는데, 깊이 불교를 권하시는 모습에 참으로 간절한 면이 있었습니다. 3일간 머무르면서 나를 위하여 몸을 수련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인연, 죄와 복을 일으키고 사라지게 하는 징험을 설명하여 주었는데, 모두 사리에 맞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아침이 올 때까지 잠자는 것도 잊은 채 그 올바른 말을 경청하였습니다.
033_0172_a_23L孫興公論云法護之淵達于法蘭之純博足下欲比中土何士也及楚英之脩仁寺笮融之賙行饉寧復有淸眞風操乎昔在東邑有道含沙門自吳中來深見勸甚有懇誠因留三宿相爲說練形澄神之緣罪福起滅之驗皆有條貫吾拱聽讜言
나중에 물러나 생각해 보니, 선비가 입신양명하여127) 신의를 드러내고 도를 행하는 이유는 실로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에 의한 것입니다. 자로子路는 좋은 말을 듣고 아직 실천하지 못했을 때는 오직 좋은 말 듣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128) 내가 행할 일들도 많은데, 어떻게 갑자기 이것들을 버리고 저것(불교)에 힘쓰겠습니까? 또한 정의에 맞게 예문禮文129)으로 세워진 제도를 살펴보면 미래의 생명이 분에 넘치는 것임을 알게 되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치지 않는 슬픔을 궁구하면 이 육신을 다시 받아 태어나지 않기를 깨닫게 됩니다.
033_0172_b_06L申旦忘寢退以爲士以立身揚名著信行道者實賴周孔之本子路稱聞之而未之能行唯恐有聞吾所行者多矣何遽捨此而務又尋稱情立文之制知來生之爲究終身不已之哀悟受形之難
성인은 나의 스승이신데, 주공과 공자가 어찌 나를 속이겠습니까? 귀하의 간절한 청에 못 이겨 처음부터 끝까지 제 생각을 진술하였습니다. 큰 지혜를 가지신 덕망 높은 귀하는 사람을 가르치면서 싫증내지 않을 것130)이라고 생각하여 이 글에서 다 말하였습니다. 이전에 「명불론」을 보내 주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서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에 밝은 깨달음이 얻어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하승천이 삼가 씁니다.
033_0172_b_12L聖人我師周孔豈欺我哉緣足下情篤故具陳始末想耆舊大智誨人不倦於此未嘿耳前已遣取「明佛論」遲尋至冀或朗然於心何承天白

4) 하형양何衡陽에게 답하여 백흑론의 해석을 비판함[종병]
033_0172_b_15L答何衡陽難釋白黑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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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 주신 귀하의 견해는 삼가 잘 받았습니다. 그것은 불교의 교화를 억제하고 오직 유학의 가르침에만 뜻을 두고 있습니다. 의미는 명백히 드러나 있고, 뛰어난 문장으로 그동안의 사정을 밝혀 놓고 있습니다. 참으로 세상 사람들을 경계하고 채찍질하는 것으로,131) 중국의 아름다운 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033_0172_b_16L敬覽來論抑裁佛化畢志儒業意義撿著才筆辯覈善可以警策世情中區之美談也
033_0172_c_01L귀하의 뜻을 살펴보건대 불교의 법을 만든 사람이 성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법이 임시방편이고 실질이 없다고 보는 듯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이유로 불교가 실질이 없다고 보시는지요? 지금 서로 일의 크기를 단정해 보는 것만으로도 득실은 대략 절반의 비율이 됩니다. 신령스러운 변화는 현묘한 극치를 뛰어넘어 일어나고, 그 근원은 어둡고 아득한 세계에 뒤엉켜 있습니다. 신인神人이 손바닥을 가리키듯 말하는 일은 없습니다. 단지 분서갱유焚書坑儒 이후 불완전한 역사 기록만을 믿고 갑자기 신비한 변화를 없애 버리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033_0172_b_19L觀足下意非謂制佛法者非聖也但其法㩲而無實耳審竟何以了其無實今相與斷見事大計失得略半也靈化起於玄極之其故糾結於幽冥之中曾無神人指掌相語徒信史之闕文於焚燒之便欲以廢頓神化相助寒心也
저 성인이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을 다하여 천명에 도달한 사람132)입니다. 올바른 위치를 얻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그를 구덩이에 빠지게 한 것133)같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불멸한다고 속이고 성불의 학설로 기만하여 삭발하고 붉은 옷을 걸치고134)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손가락을 지지게 합니다. 또 천분天分으로 당연한 부모를 봉양하지 않고 부부와 부자의 도를 쓰지 않습니다. 불법이 전래되어 온 이래 사하沙河135) 서쪽의 36개국136)이 아직 중화中華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이 단서를 끊어 버린 사람들의 수가 억과 조를 헤아릴 것입니다. 동이東夷나 서강西羌137)에도 성인과 현인이 혹 있을 수 있습니다. 유여由余138)와 김일제金日磾139)와 같이 중국에 들어온 사람들은 장래에 살려고 해도 살 수 없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불법에 실질이 없다면, 구덩이에 밀어 넣는 것 같은 잔혹한 경우를 말로는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033_0172_c_02L聖人窮理盡性以至於命物有不得其所若已納之於隍今誑以不滅以成佛使髡首赭衣焚身然指不復用天分以養父母夫婦父子之道從佛法已來沙河以西三十六國末曁中絕此緖者億兆人矣東夷西羌或聖賢及由余日磾得來之類將生而不得生者多矣若使佛法無實隍之酷豈可勝言
또한 경전의 방편이 어떠한 도에 합치합니까? 잘못되고 굽은 것을 바르게 하고,140) 외국의 강경하고 사나운 백성들을 바르게 다스렸다고 말하고자 합니까? 사나운 부류의 사람들은 3장章의 간결한 법141)으로 상줄 사람은 상주고 벌할 사람은 눈앞에서 벌하여도142) 오히려 믿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 즉색卽色이나 본무本無ㆍ열반涅槃ㆍ법신法身ㆍ12인연因緣ㆍ미진겁수微塵劫數의 말로 다스려지겠습니까?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귀하가 말한 대로 “맑고 조화로운 기를 받아 어질고 정의로운 마음을 품은 무리들”인 것입니다. 맑고 조화로운 기를 자질로 삼아서 미언微言을 소통시키고, 정의로운 성품을 북돋아서 신묘한 행위143)를 닦게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맑게 비추고 법을 관하는 것[觀法]도 가능하게 됩니다. 법이 비추는 일도 모두 공하지만 도에 도달하는 것은 모두 불경에 기재되어 있고, 귀하께서도 믿고 있는 내용입니다. 근세近世의 신통력 있고 덕이 높은 사람들, 예컨대 손작孫綽이 찬가를 지은 8현賢144)이나 지도림支道林이 칭송한 5철哲145) 등은 모두 당시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손작ㆍ지도림 두 사람은 문필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것이 잘못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033_0172_c_11L及經之㩲爲合道而云欲以矯抂過正以治外國剛强忿戾之民乎夫忿戾之類約法三 交賞見罰尚不信懼寧當復以卽本無泥洹法身十二因緣微塵劫數之言以治之乎稟此訓者皆足下所謂稟氣淸和懷仁抱義之徒也淸和以疏微言厲義性以習妙行遂能澄照觀法法照俱空而至於道皆佛經所載而足下所信矣至若近世通神令德若孫興公所讚八賢道林所頌五哲皆時所共高故二子得以綴筆復何得其謂妄語乎
033_0173_a_01L손작은, 축법호竺法護가 깊이 통달하였고, 우법란于法蘭이 순박하다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상한 선비나 세속의 사람들과 관련이 없어서 이들을 누구에게 비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법란의 제자인 우도수于道邃는 그 스승에 미치지 못하지만, 손작은 “때때로 그들을 뛰어난 유파로 대한다”146)고 말합니다. 때로는 유문병庾文秉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축법호와 우법란 두 사람은 당연히 이들보다 뛰어났을 것입니다. 나는 혜림 비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세상의 논의도 다 알지는 못합니다. 만약 귀하가 유문병과 대등하다고 말한다면, 스스로 우도수에게 뒤지지 않을 수는 있지만 축법호와 우법란보다는 뒤떨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앞의 내 비평을 실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혜림 비구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늘이 내린 영령을 가지고 있어서 진위眞僞를 깊이 알고 있다면, 어찌 제석천帝釋天이 변화하여 나타나 격려하여 성불시킨 것이 꼭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백흑론」은 성실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033_0172_c_23L孫稱竺法護之淵達于法蘭之淳博吾不閑雅俗不知當比何士然法蘭弟子道邃未逮其師孫論云時以對勝謂庾文秉也是護蘭二公當又出吾都不識琳比丘又不悉世論足下謂與文秉等者自可不後道邃猶當後護蘭也前評未爲失言誠能僧貌天靈深識眞僞何必非天帝釋化作故激厲以成佛耶「白黑論」未可以爲誠實也

2
귀하가 보내 주신 글 중 “만약 내생에 보응이 있다면, 주공ㆍ공자가 어찌 침묵하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겠습니까?”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항상 편견 때문에 갖게 되는 의심입니다. 참으로 함께 해명해야 할 점입니다.
저 성신聖神은 깊은 곳에서 발생하고 느낌이 있은 뒤에 응하는 것이지, 사물에 앞서서 먼저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은ㆍ주 말엽에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임금을 시해하고 반역하는 일이 천하에 횡행하였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서 성인을 감응하게 한 것은 어지러움이었습니다. 따라서 6경經에 보이는 성인의 감응은 다스림뿐이었습니다.147) 그러므로 부처님의 말씀이 그때에는 중국에 없었습니다.
033_0173_a_10L來告所疑若實有來生報應孔何故默無片言此固偏見之恒疑也眞宜所共明夫聖神玄發感而後應非先物而唱者也當商之季民墜塗炭弒逆撗流擧世情而感聖者亂也故六經之應治而已矣是以無佛言焉
033_0173_b_01L유향劉向은 우공禹貢의 구주九州를 말하였는데, 모두 『산해경山海經』에 기재되어 있는 것을 서술하였습니다.148) “신독(申毒:인도)의 백성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사랑한다”149)고 하였고, 곽박郭璞은 이것이 인도를 가리키며 불교가 일어난 곳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곳을 오랑캐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많은 나라가 태허太虛에 별처럼 나열되어 있는데, 어느 곳이 중화中華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느낌을 미루어 갔기 때문에 부처님의 교화가 응한 것입니다. 인도의 거친 사람들은 잡다하게 어지러워서 포악한 군신이라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쪽(중국)의 뛰어난 점은 때에 따라 도를 생각하는 것이고, 불사佛事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수伊水와 낙수洛水150) 부근에서 법성法性을 품부 받아 태어난 사람이 있고, 주수洙水와 사수泗水151) 부근에서 진제眞際를 맛본 사람이 있다고 하여도, 사일史佚152)은 정치의 법도가 아니라고 하여 기록하지 않았고, 복상卜商153)은 유술儒術에 어긋난다고 하여 편찬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복벽複壁 중에 혹 외전外典154)이 보존되어 있었다고 하여도 진시황제에 의해 불태워졌기 때문에 주공과 공자가 불교에 대하여 한마디 말도 안 했는지 여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대체로 현묘하고 텅 빈 도와 신령스러운 신선의 일들은 세간의 전적 중에 없었던 적이 없고, 도에 관한 공자의 말은 멀리 장자의 여러 편명에서도 보입니다. 요지瑤池의 연宴155)이라는 것은 급군汲郡의 무덤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의 기록인 5경經이 천지 밖의 기이한 변화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033_0173_a_16L劉向稱禹貢九州述『山海』所記申毒之民偎人而愛人璞謂之天竺浮屠所興雖此之所夷然萬土星陳於太虛竟知孰爲華哉推其偎愛之感故浮屠之化應焉之麤者雜有亂虐君臣不治此之精隨時抱道佛事亦存雖可有稟法性於伊洛飡眞際於洙泗茍史佚以非治道而不書卜商以背儒述而不縱復或存於複璧之外典復爲秦王所燒周孔之無言未必審也夫玄虛之道靈仙之事世典未嘗無之夫子道言遠見莊周之篇瑤池之宴乃從汲冢中出然則然之五經未可以塞天表之奇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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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는 논박에서 또한 “사물은 항상 공이 될 것이고, 공과 사물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공과 유가 다르지 않다면,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호칭이 다른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셨습니다. 저 불경에서 말하듯, 현상이 공이고 별다른 공이 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유有이면서 공이라는 것뿐입니다. 유이므로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호칭이 다르고, 공이므로 온갖 다른 것들이 모두 공인 것입니다. 현상은 그 자체로 현상이 아니고, 현상이면서도 공인 것입니다.156) 인연이 합하여 유가 된 것이지, 본래 그 자체로 유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환영으로 만들어지고 꿈에서 본 것과 같지만, 유라고 하여도 유가 아닙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과거는 이미 사라져 버렸으며, 현재는 머무르지 않습니다. 또 정해진 유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몇 가지 의미는 모두 현묘한 성인이 밝힌 지극한 이치이므로, 말로 비판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이치를 통해 사물을 관찰해 보면, 나도 실제로 그 밝음을 깨달아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 없애고 청결한 생각을 더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 귀하는 어떻게 안주할 수 있습니까?
033_0173_b_07L難又曰若卽物常空物爲一空有未殊何得賢愚異稱夫佛經所稱卽色爲空無復異空者非謂無有有而空耳有也則賢愚異空也則萬異俱空夫色不自色色而空緣合而有本自無有皆如幻之所作夢之所見雖有非有將來未過去已滅現在不住又無定有此數義皆玄聖致極之理以言斥之誠難朗然由此觀物我亦實覺其昭所以曠焉增洗汰之淸也足下當何能安之
033_0173_c_01L또한 “형체와 정신이 서로 의지한다는 것을 옛날 사람들은 장작과 불의 관계로 비유하였습니다. 장작이 거의 다 타면 불이 약해지고, 장작이 다 타 버리면 불도 꺼집니다. 아무리 정신이 신묘하다고 해도 어찌 홀로 전해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셨습니다. 저 불은 장작에서 생겨났지만, 정신은 육체에서 생성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뜻에는 정밀한 것과 거친 것이 있는데, 이것이 감응하면 육체가 그에 따르는 것입니다. 정신은 극단으로 가면 육체를 초월하여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육체가 없이 정신이 존재하는 것을 ‘법신이 항상 머문다[法身常住]’고 합니다. 그러므로 범부에서 시작하여 여래에서 끝맺게 됩니다. 한평생 거친 것을 지향하더라도 의식은 만겁 동안 사라지는 일이 없으므로, 반드시 맑은 세계로 오르도록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배추벌레의 새끼가 있으면 나나니벌이 업어 가기도 하는데,157) 하물며 신명의 세계에서 제왕의 보배로운 덮개를 덮고 수미등왕須彌燈王의 권좌에 오르는 것을 어찌 기대하지 못하겠습니까?
033_0173_b_18L又云形神相資古人譬之薪火薪弊火微薪盡火滅雖有其妙豈能獨存夫火者薪之所生非形之所作意有精麤感而得形隨精神極則超形獨存無形而神存法身常住之謂也是以始自凡夫終則如來雖一生向麤茍有識向萬劫不必習以淸昇螟蛉有子蜾螺負之況在神明廕寶積之蓋升鐙王之座爲無期

4
또한 귀하께서는 “석가의 가르침을 구하는 것은 좋은 방편으로 다른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감응하는 징험이 있다면, 왜 이 영묘한 변화를 보여서 사견邪見의 무리를 깨우치지 않습니까? 어째서 수천 수만의 방대한 교설은 아끼지 않으면서 잠깐 동안의 신비한 광명만 아끼는 것입니까?”라고 의심하였습니다. 좋은 방편이라고 하지만 감응에 확실한 것과 애매한 것이 있는 것은 각자의 죄와 복에 의한 것입니다. 옛날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광명을 놓은 것은 모두 평소에 신묘한 정성을 쌓아서 신유神遊를 얻었기 때문입니다.158)
033_0173_c_04L又疑釋迦以善權救物豈獨不愛數十百萬之說而悋俄頃神光以曉邪見之徒夫雖云善㩲感應顯昧各依罪福佛爲衆又放光明皆素積妙誠故神遊
그때는 부처님께서 확실하게 드러나도록 말씀하셨기 때문에 교만한 자도 볼 수 있었지만, 광명을 발하는 것은 광명이 비치는 것을 살펴보는 것이므로 사악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지금 불경을 보면서도 그 자만심을 고치지 않는다면, 먼저 광명을 비추더라도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정성스럽고 신실한 현인의 경우에는 신비한 광명이 비추는 것을 홀로 분명히 감득할 수 있지만, 귀하는 또한 무슨 방법으로 이것을 알고 말하겠습니까? 이것을 삿된 말이라고 부를 뿐이겠지요. “별이 보이지 않아도, 밤이 밝았다”159)는 기록이 있는데, 그 시점을 고증해 보면 부처님께서 태어나서 광명을 발한 밤입니다. 관유안管幼安160)은 폭풍이 치는 밤에 바다에서 배를 탔습니다. 동료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관유안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고 그 빛이 비추는 대로 섬에 도착했습니다. 오직 문을 닫은 이들[闔門]만 구제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어느 것을 꼭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161)이 없고, 오직 선善에만 응하여 감응합니다. 왕상王祥162)이나 곽거郭巨163)와 같이 부처님에게서 감응 받은 경우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이것도 광명을 보인 증거입니다. 어떻게 귀하가 부처님을 본 적이 없다고 부처님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033_0173_c_09L若時言成已著之筌故慢者可光明發由觀照邪見無緣瞻灑睹經而不悛其慢先灑夫復何益誠信之賢獨朗神照足下復何由知之而言者會復謂妄說耳恒星不見夜明也考其年月卽佛生放光之夜管幼安風夜泛海同侶皆沒安於闇中見光投光赴島闔門獨濟夫佛無適莫唯善是應而致應若王祥巨之類不可稱說卽亦見光之符也足下未見便無佛哉
033_0174_a_01L또한 주공과 공자의 업적이 성대함을 서술하고, 그것이 부처님에 비해 크다고만 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치세는 군주의 성대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신만은 소멸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운행해 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일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만, 8고苦가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유학儒學의 업적에 힘써 한순간의 인생을 정리해 보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3감監의 난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의심하였고, 형제가 서로 살육하였습니다.164) 공자의 72명 제자 중에 학문이 높은 경지에 오르거나 심오한 경지에 이른 이들은 있었지만, 나이 50까지 산 사람은 몇 사람 없었습니다.165) 안회安回166)는 요절하였고, 염백우冉伯牛167)는 병으로 죽었으며, 자로子路168)는 형벌을 받아 죽었고, 재여宰予169)는 족형族刑을 당했으며, 자공子貢은 수염을 깎였습니다. 공자가 광匡과 진陳 땅에서 당한 고난170)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굶주림을 참으며 도를 널리 폈고 여러 제후국들을 방랑하였지만, 결국 무엇을 구제하였습니까? 불법에서 보자면, 오직 비애감만 남습니다. 이것이 어찌 세상 사람들의 숙연宿緣이 모인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033_0173_c_19L又陳周孔之盛唯方佛爲弘然此國治世君王之盛但精神無滅冥運而已一生瞬息之中八苦備有雖剋儒業以整俄頃而未幾已滅三監之難父子相疑兄弟相截七十二子雖復升堂入室五十者曾無數人顏夭冉疾由醯予賜滅其鬚匡陳之苦豈可勝言飢弘道諸國亂流竟何所救以佛法觀之唯見其哀豈非世物宿緣所萃
그가 미친 실제 이치도 깊고 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밖으로는 예악에 따르고, 안으로는 무생無生의 이치를 수양하여 정신을 열반의 경지에 오르게 하고, 억 겁의 세월을 한 해로 여긴다면, 이것이 어찌 참으로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후세까지 전해지지 않았고, 도리도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대체적인 사적을 근거로 하여 주공이나 공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께서 허망한 말씀을 하신다고 하는데, 『산해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언급한 곳이 대단히 많습니다. 곤륜昆崙의 산,171) 광도廣都의 들판,172) 헌원軒轅의 언덕173)이라는 죽지 않는 나라에서는 기후가 덥지도 춥지도 않으며, 봉황의 알을 먹고 감로수甘露水를 마시며,174) 간기玕琪의 나무 그늘 밑에 누워 주천수朱泉水를 마시고,175) 사람들은 모두 수천 살이 되어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禹임금의 아버지인 곤鯀의 영혼은 황웅黃熊으로 변화하여 우산羽山 밑의 연못에 들어갔고,176) 진晉나라 세자인 신생申生의 영혼은 종자인 호돌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177) 정鄭나라 백유伯有는 요괴가 되어서 복수하였다178)고 합니다. 좌구명左丘明이 전하고 있는 예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저쪽(중국)의 대략적인 사실을 이끌어다가 이쪽(부처님)의 정밀한 내용을 믿게 하는 내용입니다.
033_0174_a_06L若所被之實理於斯猶未爲深弘若使外率禮樂內脩無生澄神於泥洹之境以億劫爲當年豈不誠弘哉事不傳後理未可知幸勿據麤迹而周孔則不然也人皆謂佛妄語『山海經』說死而更生者甚衆崑崙之山廣都之埜軒轅所之之國氣不寒暑卵是食甘露是飮廕玕琪之樹歃朱泉之水人皆數千歲不死及化爲黃能入于羽淵申生伯有之類丘明所說亦不少矣皆可權此之麤以信彼之精者
033_0174_b_01L옛날에 도가 있는 사람은 불법을 듣고 옷깃을 바르게 여몄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것은 반드시 포성蒲城의 죽은 선비가 의관을 갖춘 것뿐이 아님179)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도가 아직 높지 않았기 때문인지요? 귀하께서 들으신 도가 높다면, 지금 바로 뚜렷이 달라지실 것180)으로 여겨집니다.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극靈極을 믿어 귀의하고 대략이나마 교계敎戒를 품부 받으면, 미진하더라도 충분히 감응할 수 있고, 감응하면 한층 더 상승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의혹을 벗어나는 영원한 좋은 계책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정신이 불멸한다는 실제 사실은 부처님 말씀과 같았는데도 정신은 등지고 마음은 상처를 입어 스스로 유사幽司181)에게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번 생애의 괴로움이 과거 생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경솔하게 자기 혼자 생각을 가지고 존귀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오만하다가 혹 스스로 환난을 초래하는 것182)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033_0174_a_17L承昔有道聞佛法而斂者必不啻作蒲城之死士可矣當由所聞者未高故耶足下所聞者高於今猶可豹變也人是精神物但使歸信靈極稟教戒縱復微薄亦足爲感感則彌豈非脫或不滅之良計耶不滅之實事如佛言而神背心毀自逆幽安知今生之苦毒者非往生之故爾耶輕以獨見傲尊神之訓恐或自貽伊阻也
불경에 “석가모니가 옛날 소승의 비구였을 때 대승 불교를 비난하였다. 이 때문에 여러 겁 동안 지옥의 고통을 맛보았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물며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또 어떻게 이 불경이 반드시 빈말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귀하가 비판하신 앞의 편지 중의 말씀은 혜림 도인이 쓴 내용에 기초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견해는 거칠게나마 다 말하였습니다. 또한 낱낱이 답변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지은 「명불론」에서 모든 사항마다 다 설명하고 있으므로, 지금 함께 보내 드립니다. 귀하께서는 애써 잘 살피셔서 충고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늙어 죽을 때까지 이렇게 글 쓰는 일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이 편지가 도착하거든 빨리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종병이 삼가 씁니다.
033_0174_b_03L佛經說釋迦文昔爲小乘比丘而毀大乘猶爲此備苦地獄經歷劫數都不信者耶復何以斷此經必虛乎足下所詰前書中語爲因琳道人章句耳其意旣已粗達不能復一二辯所制「明佛論」已事事有通今付往足下力爲善尋具告中否老將死以此續其盡耳此書至便倚索答殊不容悉宗炳白

5) 하승천이 다시 종병에게 답하는 글[하승천]
033_0174_b_12L何重答宗
033_0174_c_01L두 번째 편지와 「명불론」도 함께 잘 받았습니다. 그 논지의 전개가 항적項籍과 같이 면밀하여 한漢나라 고조高祖를 충분히 물리칠 정도인데, 하물며 저같이 연약한 사람에게는 어떻겠습니까? 귀하의 증명과 비유는 견고하고 명쾌하며, 문장은 깊이 있고 풍부하였습니다. 참으로 그 이익을 넓히고자 하여 평범한 사람까지 은혜를 미치는 것이 군자의 마음씀임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귀하께서는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논의로 그 가르침을 신비롭게 하셨으므로, 저는 입을 다물고 귀하의 아름다움을 완성시키는 것이 마땅합니다.183) 다만 평소에 외국의 일은 중국에서 힘써야 할 것과 다른 경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에서처럼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금 중국이나 외국이 똑같아야 한다면, 저의 견해는 천박한 것이 될 것입니다. 불민한 점을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마음에 남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 천지의 본성에 밝은 사람은 비현실적인 괴이한 학설에 미혹되지 않고, 융성하고 쇠퇴하는 도를 아는 사람은 이치를 벗어나는 교설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귀하의 논의가 좋은 방편에 의거하여 독실하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어찌 박학한 사람184)의 폐단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지 못하고, 서면상으로만 씁니다.
하승천이 올립니다.
033_0174_b_13L重告幷省大論置陣如項籍旣足以賊漢祖況弱士乎證譬堅明文辭淵誠欲廣其利釋施及凡民深知君子之用心也足下方欲影嚮以神其故宜緘默成人之美但常謂外國之事或非中華所務是以有前言耳果今中外宜同余則陋矣敢謝不敏雖然猶有所懷夫明天地性者不致惑於迂怪識盛衰之逕者不役心於理表儻令雅論不因善㩲篤誨皆由情發豈非通人之蔽哉未緣言對以代面何承天白
弘明集卷第三
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태원太原 사람으로 진晉의 문인이다. ‘박학선문博學善文’으로 유명하며, 허순許詢 등과 회계會稽의 산중에서 10여 년을 보냈다고 한다. 왕희王羲 등의 추천에 의해 관리로서 영가대수永嘉大守ㆍ산기상시散騎常侍ㆍ저작랑著作郞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수초부遂初賦』ㆍ『천태산부天台山賦』는 문학적 명성을 얻게 하여 일세를 풍미하였다. 범영기范榮期ㆍ습착치習鑿齒 등과의 교우로 알려졌고, 또한 불가에서는 지둔支遁 등과도 친교가 있었고, 기록에는 아주 유명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고승전』 4 「지둔전」) 유불儒佛의 일치를 정치 도덕의 측면에서 설명한 「유도론」 이외에 당시의 명승에 관해 논한 「도현론道賢論」도 저술하였다.(『진서』 56 참조)
  2. 2)「명불론明佛論」에서 언급하였듯이, 현행의 「유도론」에는 양梁 혜교慧皎의 『고승전』에 있는 「지둔전支遁傳」ㆍ「우도수전于道邃傳」 등에서 인용하는 「유도론」과 일치하고 있지 않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10권본인 「홍명집목록弘明集目錄」(『출삼장기집』 12, 대정장 55, 93)에는 제2권에 손작孫綽의 「유도론唯道論」, 종병宗炳의 「명불론」이 수록되어 있다.
  3. 3)『장자』 「재유在宥」.
  4. 4)『장자』 「지북유知北遊」.
  5. 5)『장자』 「추수秋水」.
  6. 6)『장자』 「소요유」.
  7. 7)앞의 주와 상동.
  8. 8)『장자』 「소요유」.
  9. 9)주 5와 상동.
  10. 10)『노자』 18.
  11. 11)「이혹론」 3.
  12. 12)『노자』 48 , 혜강嵇康의 『성무애락론聲無哀樂論』, 『예기』 「악기」, 『혜강집嵇康集』 참조.
  13. 13)『좌전』 소공 6, 『상서』 「여형呂刑」.
  14. 14)『사기』 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15. 15)『사기』 73 「왕전전王翦傳」, 『후한서』 49 「경엄전耿弇傳」의 논論.
  16. 16)『노자』 31.
  17. 17)『손자孫子』 「계편計篇」.
  18. 18)『좌전』 「선공宣公」 15년에 위과魏顆가 진秦의 군대를 물리치고 진의 역사力士인 두회杜回를 체포하였다는 문구가 수록되어 있다. 위과의 아버지 무자武子는 애첩이 있었고, 자신이 죽은 후에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것을 부탁하였으나 점차 자신의 병이 위독해지자 자신의 첩을 순장하도록 고쳤다. 그러나 위과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애첩을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다. 나중에 진군秦軍과 전쟁을 할 때, 한 노인이 풀을 묶어서 진나라 장수인 두회를 넘어뜨려 그를 체포하게 되었다. 그날 밤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앞서 풀을 묶어 도와준 사람이 바로 첩의 부친이었다고 말한 고사이다.
  19. 19)『열이기列異記』에 자도子都가 길에서 죽으려는 사람을 보고 안마하였기 때문에 이것에 감응하여 사후 총마驄馬가 되어 자도를 인도하여 경사京師를 거쳐 공부公府에 벽소辟召되게 하였다고 하는 고사이다.
  20. 20)『좌전』 「환공桓公」 18년조에 제후(齊侯:襄王)가 환공을 연회에 초청하여 공자公子 팽생彭生에게 명하여 수레에 환공을 태웠지만 그 안에서 환공이 죽게 되자 그 죄를 팽생에게 뒤집어씌웠기 때문에 팽생은 제인齊人의 손에 의해 살해 당했다. 또한 「장공莊公」 8년조에 팽생의 영혼이 양왕의 면전에 나타나자 이것을 두려워한 양왕이 수레에서 신발이 떨어져 잃어버렸고 나중에 살해되었다는 고사이다.
  21. 21)『좌전』 「희공僖公」 13년에 진晉에 기아가 있자 진秦 무공繆公은 곡식을 주었다고 한다. 15년에 진秦에 기아가 발생하자 진晉 혜공惠公은 곡식을 보내지 않고 공격하였으나 도리어 한원韓原에서 진秦의 포로로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사기』 39 「진세가」 참조)
  22. 22)『좌전』 「선공」 2년.
  23. 23)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유랑할 때, 굶주림에 지치자 표모가 한신에게 밥을 주었다. 나중에 한신이 출세하여 표모에게 천금千金을 하사하고 지난번의 예禮를 하였다는 고사이다.(『사기』 92 「회음후전」 참조)
  24. 24)『홍명집』 13 치초郄超의 「봉법요奉法要」에 “徇敎聲而不達敎情”이라는 말이 있다.
  25. 25)『장자』 「대종사」.
  26. 26)『좌전』 「양공襄公」 26년.
  27. 27)『주역』 「비괘比卦」.
  28. 28)『논어』 「술이述而」.
  29. 29)『노자』 10.
  30. 30)『주역』 「계사」 상.
  31. 31)밖은 정치적 세계이고, 안은 종교적 세계라고 할 수 있다.
  32. 32)『장자』 「재유在宥」.
  33. 33)『맹자』 「만장萬章」 하.
  34. 34)『홍명집』 5 「난단복론難袒服論」, 혜원慧遠의 「답난단복론答難袒服論」.
  35. 35)『장자』 「재유」.
  36. 36)『시경』 「대아황의大雅皇矣」.
  37. 37)『장자』 「덕충부德充符」.
  38. 38)『장자』 「천운天運」.
  39. 39)『효경』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40. 40)『논어』 「학이」.
  41. 41)『효경』 「감응장感應章」.
  42. 42)『예기』 「제통祭統」.
  43. 43)『효경』 「오형장五刑章」, 『맹자』 「이루」 상.
  44. 44)『효경』 「개종명의장」.
  45. 45)『예기』 「제의祭義」.
  46. 46)『논어』 「위정」.
  47. 47)『진서』 「지우전摯虞傳」.
  48. 48)『좌전』 「희공」 14년.
  49. 49)『수신기搜神記』.
  50. 50)『효경』 「개종명의장」.
  51. 51)소고기ㆍ양고기ㆍ돼지고기이다.
  52. 52)『장자』 「제물론」.
  53. 53)『장자』 「양생생養生生」. 중정中正에 몸을 둠으로써 몸과 삶을 보전하며 어버이에게 효양孝養을 다하며 천수를 보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54. 54)『노자』 52.
  55. 55)『좌전』 「은공」 원년元年. 장공莊公은 출산 때, 거꾸로 들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중仲이 그를 싫어하여 그의 동생인 공숙단(共叔段:大叔)으로 계승시키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나중에 공숙단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공共의 나라로 도망갔고, 장공은 그의 어머니를 성영城潁으로 이주시키고 황천黃泉에서 재회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한 장공은 마음에 안 됐음을 알면서 효행자인 영고숙潁考叔의 배려로 모자간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君子曰 潁考叔 純孝也”라는 구절이 수록되어 있는 고사이다.
  56. 56)『좌전』 「은공」 4년. 춘추위春秋衛의 대부였던 석작石碏은 위衛 환공桓公을 살해하여 자립한 주우州吁를 토벌하기 위해 방책을 써서 자신의 자식인 후厚와 주우를 진陳나라에 보내 은공에게 배알의 중개를 기도하였고, 별도로 사신을 보내 환공을 살해한 장본인으로 이 두 사람의 처벌을 진나라에 주청하였다. 이리하여 이 두 사람이 살해되었다는 내용이 전傳에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石碏純臣也 惡州吁而厚與焉 大義滅親 其是之謂乎.”
  57. 57)『좌전』 「희공」 23년.
  58. 58)『좌전』 「애공」 15년.
  59. 59)『후한서』 56 「위표전韋彪傳」.
  60. 60)『논어』 「태백泰伯」.
  61. 61)『논어』 「공야장」.
  62. 62)『혜강』 「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絶交書」.
  63. 63)『열자』 「천서天瑞」.
  64. 64)매병枚秉의 「유부柳賦」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상림부上林賦」 참조.
  65. 65)『노자』 10.
  66. 66)출식出息ㆍ입식入息을 헤아려 마음을 일경一境에 두어 어지러움을 물리치고 정관靜觀하여 정정正定으로 들어가는 관법觀法으로 ‘수식관數息觀’이라고도 한다. 이 관을 성취하기 위해 수數ㆍ수隨ㆍ지止ㆍ관觀ㆍ환還ㆍ정淨 등의 6묘문妙門이 있다. 『대비바사론大毗婆沙論』 26에 이와 관련된 설이 있지만 손작이 근거로 삼은 것은 아마도 오吳나라 지겸支謙이 번역한 『태자서응본기경太子瑞應本起經』 상(대정장 3, 476)인 듯하다.
  67. 67)12문門은 4선禪ㆍ4무량無量ㆍ4공정空定을 말한다. 관觀ㆍ연練ㆍ훈薰ㆍ수修의 4선, 자무량慈無量ㆍ비무량悲無量ㆍ희무량喜無量ㆍ사무량捨無量의 4무량심無量心, 공무변처空無邊處ㆍ식무변처識無邊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4공, 이상의 12문선門禪을 수득修得하여 앞의 근본정선根本淨禪으로서의 6묘문을 합쳐 불도의 성취로 나아가는 것이다.
  68. 68)『장자』 「제물론」과 「경상초庚桑楚」 참조.
  69. 69)3달達은 미래의 사생인과死生因果를 아는 천안天眼, 과거의 사생인과를 아는 숙명宿命, 현재의 번뇌를 알아 진단盡斷하는 누신漏神의 세 가지를 말하고, 6통通은 신족神足ㆍ천안ㆍ천이天耳ㆍ타심지증他心智證ㆍ숙명지증宿命智證ㆍ누신 등의 6신통을 말한다. 작용이 자재自在하여 걸림이 없는 불ㆍ보살 등의 신통력, 그렇기 때문에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70. 70)『여씨춘추呂氏春秋』 「유시有始」.
  71. 71)『주역』 「건괘乾卦」 상전象傳.
  72. 72)『시경』 「대아문왕지십사제大雅文王之什思齊」.
  73. 73)『유마경』 「제자품弟子品」(대정장 14, 541).
  74. 74)『문선文選』 14.
  75. 75)『촉지선생전蜀志先生傳』, 『남사괴은전南史蒯恩傳』, 『제민요술齊民要術』 참조.
  76. 76)『장자』 「대종사」.
  77. 77)『주역』 「기제旣濟」 구오九五.
  78. 78)『논어』 「계씨季氏」.
  79. 79)하승천何承天이 혜림慧琳의 「백흑론白黑論」을 첨가하여 종병宗炳에게 보낸 서한의 확실한 연월은 분명하지 않다. 『송서宋書』 64 「하승천전」에는 “不爲僕射殷景仁所平 出爲衡陽內史”라는 구절이 있고, 그 연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은경인殷景仁이 복사라는 지위에 있을 때였고, 『송서』 등에 의하면 이 시기는 원가元嘉 9년(432) 7월부터 원가 12년까지의 일로 된다. 하승천이 형양내사로 좌천된 것도 이 사이의 일로 추정된다. 혜림은 송宋 문제文帝의 신임을 받은 팽성사彭城寺 도연道淵의 제자로 여러 경과 노장을 즐겨 읽고, 배해俳諧ㆍ어소語笑를 좋아하여 『집集』 10권을 지었다고 한다. 『고승전』 7 「도연전」에서는 송宋 세조 효무제孝武帝의 신임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태조 문제文帝의 잘못된 기록으로 보이고, 안연지顔延之가 황제에게 진언하였기 때문에 황제는 혜림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저술한 「백흑론」이 영혼을 부정하고 신멸설을 서술하는 등 불교의 본뜻과 다른 점은 종병ㆍ안연지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는 것이다. 현재 그 전문全文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대요를 기록한 것이 『송서』 「외국전外國傳」 천축가비려국전天竺迦毗黎國傳에 남아 있다. 종병이 하승천으로부터 「백흑론」을 얻어서 이에 대한 의견을 서술한 「종답하서宗答何書」 중에 「백흑론」의 일부가 보인다. 또한 『광홍명집廣弘明集』 23(대정장 52, 265)에 「무구법강법사뢰武丘法綱法師誄」(원가 10년 11월 마침), 「신광사축도생법사뢰
  80. 80)종병을 지칭하는 듯하다.
  81. 81)종병宗炳이 여산廬山에 가서 혜원慧遠 밑에서 50여 일을 보낸 것은 「명불론」에도 기록되어 있다. 의희義熙 12년(416) 혜원이 입적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원가 10년(433)이라고 한다면 만 17세 이후가 되는 것이다. 혜원 밑에서 염불결사念佛結社의 일원으로 종병은 더욱이 정토의 업을 지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82. 82)『장자』 「소요유」.
  83. 83)치성사는 송宋의 도읍지인 강릉江陵에 있는 사찰.
  84. 84)『송서』 「외국전」 천축가비려국전.
  85. 85)송나라 문제文帝를 말한다.
  86. 86)송나라 문제가 혜림의 불교계 추방이라는 중벌을 구하였던 것은 『송서』 「외국전」 천축가비려국전의 문구로 알 수 있다. 바라이波羅夷는 불교 계율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로서 그 계를 범하게 되면 영구히 교단으로부터 추방당하여 다시는 비구가 될 수 없다.
  87. 87)『송서』 「외국전」 천축가비려국전.
  88. 88)『노자』 6과 『장자』 「소요유」 참조.
  89. 89)『포박자抱朴子』의 설이라고도 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90. 90)『예기』 「단궁檀弓」 하.
  91. 91)『시경』 「소아小雅」.
  92. 92)『장자』 「천하天下」.
  93. 93)『좌전』 「소공昭公」 20년조 일로서 제공齊公이 옛날부터 죽은 것이 없으면 어떻게 즐거운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에 비해 안자晏子가 옛날부터 죽은 것이 없다면 오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고, 혹은 상구씨爽鳩氏의 즐거움만이 있다고 대응한 것을 말한다.
  94. 94)『논어』 「선진」과 「태백」 참조.
  95. 95)『장자』 「대종사大宗師」에 나와 있는 일로 배를 산골짜기에 감추어 두고 안심하고 있을 때, 밤중에 힘센 사람이 와서 배를 훔쳐 달아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훔쳐 달아날 일도 없다는 뜻으로, 『장자』의 많은 설화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96. 96)『장자』 「전자방田子方」.
  97. 97)지둔支遁을 말한다.
  98. 98)불살생不殺生ㆍ불투도不偸盜ㆍ불사음不邪淫ㆍ불망어不妄語ㆍ불양설不兩舌ㆍ불악구不惡口ㆍ불기어不綺語ㆍ불탐욕不貪慾ㆍ부진에不瞋恚ㆍ불사견不邪見을 말한다.
  99. 99)『좌전』 「소공」 4년.
  100. 100)「백흑론白黑論」.
  101. 101)『노자』 32.
  102. 102)『논어』 「미자微子」.
  103. 103)유가儒家ㆍ도가道家ㆍ음양가陰陽家ㆍ법가法家ㆍ명가名家ㆍ묵가墨家ㆍ종횡가縱橫家ㆍ잡가雜家ㆍ농가農家이다.
  104. 104)『논어』 「태백」.
  105. 105)『좌전』 「양공襄公」 14년.
  106. 106)『유마경』 「불국품佛國品」(대정장 14, 537)에 비야리성毗耶離城 장자長者의 아들인 보적寶積이 5백 장자의 아들들과 함께 7보寶의 천개天蓋를 갖고 공양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107. 107)『유마경』 「부사의품不思議品」(대정장 14, 546)에 유마維摩의 장실丈室에 높이 8만 4천 유순由旬의 수미등왕불의 사자좌師子座를 모셨으며, 그 사자좌에는 새로 발심[新發意]한 보살과 대제자는 오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108. 108)『사기』 「활계열전滑稽列傳」에 보이는 순우곤이 학문에 뜻을 두기보다는 술을 너무 좋아하고 제齊의 위왕威王을 풍자하였다는 것은 유명하다.
  109. 109)『장자』 「양생주養生主」.
  110. 110)『장자』 「대종사」.
  111. 111)『장자』 「대종사」.
  112. 112)『문선』 13 「가의복조부賈誼鵩鳥賦」.
  113. 113)『논어』 「자로」.
  114. 114)『국어國語』 「주어周語」.
  115. 115)『상서』 「요전堯傳」에 “五刑有服”이라는 구절이 있고, 전傳에 “五刑墨劓剕宮大辟”이라는 다섯 가지가 있다.
  116. 116)『상서』 「주서주고周書酒誥」에 인민이 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모두 술에 기인한 것이고, 또한 제국의 멸망도 술에 원인이 있으므로 금주령이 나왔다고 한다.
  117. 117)『예기』 「곡례曲禮」 하.
  118. 118)『맹자』 「양혜왕梁惠王」 상.
  119. 119)『예기』 「왕제王制」.
  120. 120)『주역』 「비괘比卦」와 『한서』 「오행지五行志」 참조.
  121. 121)『논어』 「술이」.
  122. 122)『맹자』 「양혜왕」 상.
  123. 123)『문선』 「반고班固」.
  124. 124)『사기』 67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과 『논어』 「선진」 참조.
  125. 125)『한서』 「왕망전王莽傳」.
  126. 126)『고승전』 7 「승함전僧含傳」(대정장 50, 370).
  127. 127)『효경』 「개종명의장」.
  128. 128)『논어』 「공야장」.
  129. 129)『예기』 「삼년문三年問」.
  130. 130)『논어』 「술이」.
  131. 131)『문부文賦』.
  132. 132)『주역』 「설괘說卦」.
  133. 133)백기白起ㆍ항적項籍이 항복한 군사 60만을 묻어 죽였다는 일에 비유한 것이다. 종병宗炳은 ‘납황納隍의 혹酷’이라고도 한다. 또한 「하승천답안영가何承天答顔永嘉」에는 “橫成納隍之酷”이라는 구절이 있다.
  134. 134)『위서』 「석로지釋老志」.
  135. 135)신강성新疆省의 토로번吐魯番에 있다. 천산남록天山南麓에 근원하고, 남류南流하여 현동縣東에 이르며, 나중에 황하로 들어간다.
  136. 136)『한서』 「서역전西域傳」.
  137. 137)『맹자』 「이루」.
  138. 138)『사기』 「진본기秦本紀」. 유여由余의 조상은 진晉 사람으로 융戎으로 도망갔다가 후에 진秦 무공繆公에 항복하여 공을 세웠는데, 12국의 나라와 천여 리의 땅을 지배하여 나중에 서융의 패자가 되었다고 한다.
  139. 139)『한서』 68. 원래는 흉노인으로 한무제漢武帝에게 붙잡혀 보정輔政으로 되었다. 종병은, 김일제가 유여와 같이 중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융ㆍ동이로부터 온 성현이라고 주장한다.
  140. 140)『한서』 「제후왕표서諸侯王表序」.
  141. 141)『한서』 「고조기高祖紀」.
  142. 142)『문선』 53 「양생론養生論」.
  143. 143)불행佛行을 말한다.
  144. 144)손작이 지은 「도현론道賢論」에서는 ‘7승僧’을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비유하고, 여기서 말하는 ‘8현賢’은 원래 다른 승려를 말한다고 하였다. 당시 고승의 찬贊을 쓴 「명덕사문론明德沙門論」에서 찬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8현’ 승려는 도안道安ㆍ강승회康僧會ㆍ지효룡支孝龍ㆍ강법랑康法郞ㆍ원진元眞ㆍ우법위于法威ㆍ축법태竺法汰ㆍ축도일竺道壹이다.
  145. 145)누구를 5철哲이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고, 지둔支遁이 상찬像贊을 쓴 승려로는 축법호竺法護ㆍ우법란于法蘭ㆍ우도수于道邃 등이 있다.
  146. 146)『고승전』 4 「우도수전于道邃傳」(대정장 50, 350).
  147. 147)『장자』 「소요유」.
  148. 148)유향에 관한 이 설은 출전 미상이지만 유수劉秀의 『산해경山海經』 서序에 의하면 우禹는 9주州로 나누고, 땅에 따라 공貢을 지어 백익伯益이 그 사물의 좋고 나쁨을 매겨 『산해경』을 지었다고 한다. 『논형論衡』 11 「담천談天」, 동同 13 「별통別通」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149. 149)『산해경』 18.
  150. 150)『국어』 「주어周語」.
  151. 151)『예기』 「단궁」 상과 『사기』 「화식전貨殖傳」 참조.
  152. 152)주周의 사관史官 윤일尹逸을 말한다.
  153. 153)자하子夏의 성명으로 『시경』과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을 전하였다고 한다.
  154. 154)『한서』 「예문지藝文志」.
  155. 155)『목천자전穆天子傳』.
  156. 156)『조론肇論』 「부진공론不眞空論」.
  157. 157)『시경』 「소아」.
  158. 158)『열자』 「황제黃帝」와 『회남자』 참조.
  159. 159)『좌전』 「장공莊公」 7년.
  160. 160)『삼국지』 11.
  161. 161)『논어』 「이인里仁」.
  162. 162)『진서晉書』 33 「왕상전王祥傳」.
  163. 163)한나라 융려隆慮 사람이다. 삼형제 중의 첫째로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유산을 두 동생에게 전부 주었고, 더욱이 그는 한 푼의 재산도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아들을 낳자 그 아들로 인해 어머니에게 드릴 양식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그 아들을 땅에 묻으려고 할 때, 땅 속에서 “孝子郭巨 黃金一釜 以賜汝用”이라는 글귀와 함께 황금을 얻었다는 고사이다. 천보千寶의 『수신기搜神記』에 보이는 ‘24효孝’ 중의 한 사람이다.
  164. 164)『상서』 「금등金縢」.
  165. 165)『논어』 「선진」.
  166. 166)『공자가어』.
  167. 167)『사기』 67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과 『논어』 「옹야」 참조.
  168. 168)『예기』 「단궁」 상.
  169. 169)『사기』 67 「중니제자열전」.
  170. 170)『논어』 「자한」과 「위령공衛靈公」 참조.
  171. 171)『산해경』 「해내서경海內西經」 11.
  172. 172)『산해경』 「해내경海內經」.
  173. 173)『산해경』 「해내서경」 17.
  174. 174)『산해경』 「해내서경」 7.
  175. 175)『산해경』 「해내서경」 7.
  176. 176)『좌전』 「소공」 7년.
  177. 177)『좌전』 「희공」 10년.
  178. 178)『좌전』 「소공」 7년.
  179. 179)『사기』 67 「중니제자열전」.
  180. 180)『주역』 「혁괘革卦」.
  181. 181)혜원慧遠의 「명보응론明報應論」에도 “冥科幽司 應若影響”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옥에 있는 관리로 사후의 죄를 재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182. 182)『시경』 「패풍邶風」 웅치雄雉.
  183. 183)『논어』 「안연顔淵」.
  184. 184)『장자』 「추수秋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