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乘中觀釋論 卷第十八

ABC_IT_K1482_T_018
041_0170_a_01L대승중관석론 제18권
041_0170_a_01L大乘中觀釋論 卷第十八
안혜 지음
유정 등 한역
041_0170_a_02L安慧菩薩造
西天譯經三藏朝散大夫試鴻臚卿傳梵大師賜紫沙門臣法護等奉 詔譯
27. 관제견품(觀諸見品)
041_0170_a_04L觀諸見品第二十七
또 어떤 사람이 말한다. 승의제 가운데 중생이 상속하는 일이 있다. 이것은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있지 않은 것이 아니며, 상속하여 생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렇게 자체가 상속하는 것은 모두 꿈 등과 같다.
041_0170_a_05L復有人言勝義諦中有衆生相續見處故此非不有相續所起是故今此自體相續皆如夢等
【論】그대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 상속이 있으며 그것은 보이는 것이라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아래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041_0170_a_08L論者言如汝所說有其相續是見處此非道理如下頌言
【論】과거의 세상에 자아[我]가 있었다거나
혹은 자아가 없었다는 등의 네 가지
이 자아 등의 견해는
과거 세상에 의하여 일어난다.
041_0170_a_10L過去世有我
或無我等四
是我等諸見
依過去世起
【釋】지금 이것은 이와 같이하여 곧 세간(世間)이 항상하다는 등의 모든 견해를 일으킨다. 말하자면 세간은 항상하다거나, 세간은 항상하지 않다거나, 세간은 또한 항상하고 또한 항상하지 않다거나, 세간은 항상하지도 않고 항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견해는 세상의 온(蘊)을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의거하여 일어난다.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과거 세상이라는 것은 선제(先際)라고 이름한다.
041_0170_a_12L釋曰今此如是卽起世閒常等諸見謂世閒常世閒無常亦常亦無常常非無常如是諸見因見世蘊依過去起今此所說過去世者名爲先際
다음에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0_a_16L次下頌言
【論】또 미래의 세상에서
자아가 생기하는 일이 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041_0170_a_17L又於未來世
我不見有起
【釋】자아가 미래의 세상에서 생기하는가, 생기하지 않는가, 또한 생기하기도 하고 또한 생기하지 않는가, 생기하지도 않고 생기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와 같이하여 곧 한계[邊] 등의 여러 견해가 있게 된다. 말하자면 세간은 한계가 있는가, 세간은 한계가 없는가, 세간은 또한 한계가 있고 또한 한계가 없는가, 세간은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견해는 세간의 온(蘊)을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의거하여 일어난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래라는 것은 후제(後際)라고 이름한다.
041_0170_a_18L釋曰於未來世爲有起邪爲無起邪亦有亦無非有非無邪如是卽起邊等諸見謂世閒有邊世閒無邊亦有邊亦無邊非有邊非無邊如是諸見見世蘊依未來起此說未來名爲後際
041_0170_b_02L【論】여기에서 있다고 말하는 것은 승의제가 아니다. 승의제에서는 모든 견해가 모두 공하다고 말하는데, 다시 어떻게 존재하는 일이 있겠는가?
041_0170_b_02L論者言此言有者非勝義諦謂勝義諦中諸見皆空復云何有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이 의미를 입증한다.
041_0170_b_04L故下頌文證成此義
【論】저 과거 세상의 자아는
지금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041_0170_b_05L彼過去世我
非今世可有
【釋】어찌하여 그러한가? 이 중에서 말하는 것은, 과거의 세상은 곧 지금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지런히 힘써서 성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 시간과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며, 다른 업이 생하기 때문이다.
041_0170_b_06L釋曰何所以邪此中所言謂過去世卽非今世以無勤力而可成故又時世別故別業生故
수론사(數論師)가 말하는 것과 같이, 저 과거 세상이 곧 지금 세상이라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대 종파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진리[大諦]는, 신아(神我)1)가 과거 세상에 있었다면 지금 세상에는 있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차별이 없다면, 곧 원인과 결과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의미는 성립하지 못한다. 일체의 원인의 비유는 전부 자체가 없다. 모든 성립되어 있는 법은 그 당시나 그 당시가 아닌 때에도 원인의 모습이 머무르지 않으며, 또한 동시에 성립되어 있지도 않다. 이러한 의미는 분명하다.
041_0170_b_09L如數論師言彼過去世卽今世者此非道理汝宗大諦神我過去世者非今世有何以故差別故若無差別卽因果不異是義不成一切因喩而悉無體諸所成法非時相不住亦非同時而有所成是義顯明
또 다시 이 가운데 두 법이 화합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원인과 결과가 별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면, 곧 자체 중에서 부정한다. 어떻게 자체 중에서 짐짓 다른 성품을 부정하여 다르지 않다고 말하겠는가?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만약 자체 중에서 부정하는 바가 있다면, 이와 같이 마땅히 즐거움과 괴로움과 어리석은 성품으로 이루어져 화합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041_0170_b_15L又復此中二法不和合故若言因果無別異者卽自體中而有遮遣云何體中故遮異性而言不異此復云何若自體中有所遮遣如是應有樂苦癡性所成和合
만약 그렇다면 마땅히 그대가 말하는 최초로 본래 성립되어 있는 법은, 곧 즐거움과 괴로움과 어리석은 성품과 별다름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성품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즐거움과 괴로움과 어리석음이 별다름이 없다면, 그대가 말하는 최초의 진리는 어떻게 성립되어 각각 별다른가?
041_0170_b_19L若爾應汝最初本所成法卽是樂苦癡性無別何以故性無別故若樂苦癡無別異者汝最初諦何故所成而各異
041_0170_c_02L 또 다시 어찌하여 그대 종파에서 말하는 즐거움 등 및 근본적인 진리 등과 신아(神我) 등 중에서, 여러 근(根)의 대종(大種)2)들이 각각 자체가 있어 저 근본적인 진리 등이 각각 결과가 있겠는가? 이미 별다름이 있다고 허용한다면, 이와 같이 마땅히 결과가 생기하여 성립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또한 서로 오래 배양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러므로 괴로움과 즐거움 등 및 근본적인 진리 등이 각각 자체가 있음을 알 것이다. 그 즐거움 등이 원인이 있어 화합하기 때문이다. 또 동일하지 않은 때에 성립된 법 중에서는 어떤 것들이 원인이 있고 어떤 것들이 원인이 없는가? 이와 같이 지혜로운 자는 만들어지는 것에 대하여 이치답게 알아야 한다.
041_0170_b_23L又復何故汝宗樂等及大諦等我等中諸根大種各有自體彼大諦等各各有果旣容別異如是卽應果果成是義亦容互相長養故知樂等及大諦等各有自體以彼樂等有因和合故且非同時所成法中何等有因何等無因如是知者所作如理
만약 그대가 생각하여 말하기를, 즐거움 등의 법 가운데 모든 즐거움 등의 원인에 별다름이 있다면, 그 즐거움 등의 결과에도 또한 곧 별다름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의 두 법에는 별다름이 없지 않다. 만약 별다름이 없다면, 곧 이와 같이하여 생기하는 결과는 도리에 맞지 않는다. 왜냐 하면 원인과 결과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041_0170_c_06L若汝意謂樂等法中諸樂等因此有異者彼樂等果亦卽有異故非因果二法無別若無別者卽彼如是所起之果而無道理何以故因果無異故
또 차별되는 모든 원인의 자체가 만약 동일하다면, 곧 차별되는 결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결과로써 성립되는 모든 차별법에는 여러 가지 자체가 있어서, 동일한 결과가 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그대의 종파에서는 저 살타(薩埵)3) 등의 자성을 서로 결과법 중에서 능히 건립하는가? 서로 오래 배양하는 성품을 여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그 서로 오래 배양하는 법 중에서 생겨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041_0170_c_10L又差別諸因自體若一卽差別果自體不成以果所成諸差別法有多種一果不生故云何汝宗彼薩埵等自性互相於果法中能建立邪爲離互相長養性故何以故而彼互相長養法中無所生故
이 중에서 어떻게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근본적인 진리 등의 법이 이와 같이 오래 배양하여 곧 차례가 있겠는가? 만약 한 가지 법에 한 가지 공용(功用)이라면, 스스로의 역능(力能)을 여의고는 또한 서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며, 서로 오래 배양함으로써 그것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함께 생하는 자아 및 근본적인 진리 등이 그때에 생하여 결과의 의미를 성립할 것이다. 모든 오래 배양하는 것들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전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즐거움 등과 저 지대(地大)4) 등이 차례로 함께 생한다면, 모두 오래 배양할 일이 없다.
041_0170_c_16L此中云何如前所說大諦等法如是長養卽有次第一種法一種功用離自力能而亦互相不得成故以互長養彼無體故卽應如是同生我及大等於是時中生成果義諸長養等如前所說悉無體故如是樂等及彼地等次第同俱無長養
041_0171_a_02L또 다시 앞에서와 같이 저 지대 등의 법 및 살타 등은 총체적으로 모든 자체를 모아서 동일하게 머무르며 행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성립되어 판별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곧 지대 등의 모든 법이 서로 오래 배양하며, 나아가 결정적으로 지어진 사용(事用)은 화합 중에서 화합하여 성림되는 의미가 있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체가 없기 때문에 오래 배양하는 것도 또한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오래 배양하는 것을 여읜다면, 성립되는 결과의 법도 능히 건립할 수 없다.
041_0170_c_23L又復如前彼地等法及薩埵等總集諸體同一住持有所行同時成辦故若爾卽是地等諸法互相長養乃至決定所作事用於和合中不有和合所成之義謂彼無體長養亦無體若離長養所成果法不能建立
이와 같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만약 설명한 바와 같이 전부 능히 건립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은 살타라는 말은 라사달마(囉闍怛摩)5)와 함께 두 법이 나타내 보이며 행하는 것에는 이에 서로 어긋남이 있다. 왜냐 하면 살타의 공용이 능히 그 두 법을 오래 배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행하는 바가 모두 없기 때문이다.
041_0171_a_06L由如是故若如所說悉不能立如汝所說薩埵之言與彼囉闍怛摩二法開示所行乃有相違何以謂薩埵功用不能長養彼二法故決定所行皆不有故
만약 라사달마가 나타내 보이며 행하는 두 법이 결정적으로 있지 않다면, 이와 같이 결과가 생기하고 결과가 성립하는 일이 자체 중에서 모두 전부 부정되며, 다른 법이 화합하는 일도 자체 중에서 전부 또한 부정되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041_0171_a_10L若囉闍怛摩開示所行二法決定而不有者如是果果成於自體中皆悉遮遣異法和於自體中悉亦遮遣而不成故
이와 같다면 마땅히 즐거움과 괴로움과 어리석음의 결과도 또한 별다름이 없다. 왜냐 하면 즐거움과 괴로움과 어리석음의 결과에 별다름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으면 또한 마땅히 근본적인 진리와 신아의 결과 자체에 잘못이 있게 된다. 말하자면 즐거움과 괴로움과 어리석음의 법의 원인과 결과가 다름이 없다. 이렇게 원인과 결과의 두 법이 자체가 없다면, 어떻게 화합할 수 있겠는가?
041_0171_a_13L是卽應樂苦癡果亦無別異何以故樂苦癡果說有異故如是亦應大諦神我果體有過謂以樂苦癡法因果無異如是因果二法無體豈得和合
만약 법이 동일한 처소에서 별다름이 없다면, 곧 그와 같은 처소는 결정코 지은 것에 원인과 결과가 없을 것이다. 별다른 성품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에 원인의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다.
041_0171_a_17L若法一處無別異者卽如是處決定所作而無因果不有異性故此乃因義不成
일체의 사용(事用)이 일체에서 성립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 중에서 어떻게 살타(薩埵)의 자체가 그 사용 및 일체 결과가 있는가? 또 다시 무엇을 이름하여 일체의 일이 있다고 말하는가? 일체의 자체가 이와 같이 있다면, 곧 원인법이 있고 또 결과법이 있다는 것이다.
041_0171_a_20L一切事用一切所成此有何是中云何薩埵自體有其事用及一切果又復何名有一切事一切自如是有者卽是有因及有果法
041_0171_b_02L 만약 원인과 결과가 동일한 자체라고 말한다면, 모든 결박하는 원인이 곧 해탈하는 원인이며, 이와 같이 지혜가 있는 것은 곧 지혜가 없는 것이고, 이와 같이 일어나는 모습은 곧 앉는 모습이며, 이와 같이 좋은 곳에 태어나는 원인은 곧 나쁜 곳에 태어나는 원인일 것이다. 이와 같기 때문에 이것은 곧 그 원인과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041_0171_a_23L謂因果是一體者諸有縛因卽是解如是有智卽是無智如是起相卽是坐相如是善趣因卽是惡趣因如是故是卽無彼因果可見
또 다시 또한 마땅히 결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 이것들은 모두 여러 곳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곧 여래가 『아함(阿含)』 등에서 설하였다. ‘일체는 자체가 없다.’ 또 ‘이 색(色)은 상태가 큰 것에 의하지만 이로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일체 사물을 사용하여 일체가 성립되는 것은 전부 화합하지 않는다.
041_0171_b_04L又復亦應無縛無解此等皆如諸處廣說於如來阿含等中一切無體又此色依分位大無義利是故一切事用切所成悉不和合
또한 일체 사물을 사용하여 일체 결과의 자체가 각각 다르게 결정적으로 원인과 결과의 두 법이 화합하여 상속함이 없어서, 모든 사물의 사용에 있어서 결과의 자체도 또한 증득하는 바가 없다. 이러한 원인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차별에 별다른 상속이 생기할 수 없다. 말하는 바 일체(一切)라는 것은, 곧 말로 나타낸다[詮表]는 의미를 말한다. 그 말로 나타낸 것 중에도 또한 별다름이 없어서 성립되어 있는 바가 있지 않다.
041_0171_b_08L亦無一切事用切果體各別決定困果二法和合相於諸事用果體亦無所證由是因因果差別無異相續而可起故言一切者此說卽是詮表之義於詮表中亦非無異而有所成
만약 혹시 각각 별다로 경계를 결정하여 모든 근(根)의 작용을 모두 적적하게 그친다면, 그대의 종파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진리와 신아 등의 법도 또한 마땅히 결정되지 않아 원인과 결과의 자체가 없다. 그러므로 시기와 처소[時處)의 원인의 모습은 모두 결과의 이로움이 없다. 이미 전부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사물에서 일체가 성립되어 일체 처소에 두루하는 것이 만약 혹시 있다면, 이것은 또 무슨 의미로 또한 동시에 법이 성립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의미는 분명하다.
041_0171_b_13L若或各別決定境界諸根作用皆寂止者汝宗大諦神我等法亦應不定無因果體相皆無果利悉已遮故一切事一切所成徧一切處若或有此復何義亦非同時有法所成義顯明
만약 다시 다른 자체에 결과에 있지 않다면, 곧 일체 사물의 사용은 전부 얻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이미 명백하여 앞에서 부정하였으며, 전부 도리에 맞지 않는다.
041_0171_b_19L若復異體不有果者卽一切事用悉無所得此義旣明前所遮遣悉非道理
혹은 어떤 사람이 말한다. 육신[身]에는 비록 다름이 있지만 자아[我]는 하나이다. 자아가 있기 때문에 과거 세상 중에서 자아가 있었다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필경에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결정적으로 차별을 취하기 때문에, 이것은 취함[取]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아가 있어서 별다름으로 성립된다.
041_0171_b_21L或有人言身雖有異而我是一以有我故過去世中有我可得此說畢竟如是決定取差別故此說有取是故有我別異所成
041_0171_c_02L【論】취함에 별다름이 있다면, 이것은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혹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을 취하여 자아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041_0171_c_02L論者言取者別者此無差別何以故或謂決定異取有我者
아래의 게송에서 부정하여 말한다.
下頌遣言
【論】만약 혹은 취함을 여의고
다시 어떻게 자아가 있으리오.
또 다시 취함을 여의고
만들어지는 바가 있는 곳이 없다.
041_0171_c_04L若或離於取
復何有我邪
又復離於取
無處有所作
【釋】또한 온(蘊)이 이미 변천하여 파괴되고 나서 자아가 다시 성립되는 일이 있지 않다. 말하는 바 있다는 것은 의미를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취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자아가 있고, 자아가 있기 때문에 곧 자아의 소유가 있다. 이것이 곧 두 가지 분별을 건립하는 것으로서, 세 번째의 분별에는 다시 자체가 없다. 그 법의 자체는 취하여서 곧 자아에 상즉하지 않는다. 쌓여 모인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물체처럼 또한 별다르지도 않다.
041_0171_c_06L釋曰亦非有蘊旣變壞已我復有成所言有者謂成就義由取故有我有我故卽有我所此卽二種分別立第三分別而復無體彼法體者不卽我謂積集故如外物體亦非別
모든 존재하는 법의 자체는 만들어진 것이 파괴되고 나서 다시 생겨나는 일이 있다. 왜냐 하면 만약취하여 얻는 바가 있다면, 어떻게 그 만드는 자와 만드는 작업의 두 법의 차별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원인이 있는 자아를 얻을 수는 없다. 여기에서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증명된다. 또한 자아가 없지 않으나, 다만 자아를 부정하기 위하여 이에 자아가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041_0171_c_12L諸有法體所作壞已而復有來以故若取有所得云何有其作者業二法差別是故無因有我可得中如是廣說證成亦非無我但爲遮遣我故乃說無我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1_c_16L復次頌言
【論】취함이 곧 자아가 아니라는
이러한 의미는 이미 증명된다.
자아는 스스로 주재(主宰)함을 말하는데
다른 이의 주재함이 어떻게 있으리오.
041_0171_c_17L取不卽是我
此義已證成
我謂自主宰
他主宰何有
【釋】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자아가 만약 자체가 없다면, 곧 괴로움과 즐거움으로부터 전부 여의게 될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이에 선한 곳으로 해탈할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아어취(我語取)6)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041_0171_c_19L釋曰如佛所言我若無體卽於苦樂悉得捨離由是乃於善趣解脫今此遮遣我語取故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1_c_22L復次頌言
【論】만약 다시 취함과 다르다면
자아도 또한 얻을 수 없다.
취함을 능히 취하거나 취해진다 하여도
이것은 모두 취함과 다르지 않다.
041_0171_c_23L若復異於取
我亦不可得
能取所取取
此皆無異取
041_0172_a_02L【釋】어찌하여 얻을 수 없는가? 말하자면 취해지는 것 중에 능히 취하는 의미가 없다. 차별의 모습을 여의기 때문이다. 만약 능히 취함을 여의면, 또한 취해지는 것이 없다. 말하자면 취함을 여읨으로써 다른 취함이 없기 때문이다.
041_0172_a_02L釋曰何故不可得邪謂所取中無能取義離差別相故若離能取亦無所謂以離取無異取故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2_a_05L復次頌言
【論】말하는 바 바른 이치처럼
자아는 곧 취함이 아니다.
자아는 취함과 다르지도 않고
또한 결정코 없지도 않다.
041_0172_a_06L如所說正理
我不卽是取
我不異於取
亦不決定無
【釋】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2_a_08L復次頌言
【論】과거 세상에 자아가 있었다는 것은
지금 세상에서 얻을 수 없다.
과거 세상에 자아가 없다는 것도
또한 지금 세상에서 얻을 수 없다.
041_0172_a_09L過去世有我
非今世可得
過去世無我
亦非今可得
【釋】지금 이것을 증명하였다. 다시 어떠한 의미가 있겠는가?
041_0172_a_11L釋曰今此證成復何義邪
다시 다음의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2_a_12L次下頌言
【論】지금 세상과 과거 세상이
별다름을 얻을 수 없다.
만약 여기에 별다름이 있다면
세상의 연(緣)이 성립되지 않는 것을 보게 되리라.
041_0172_a_13L今世過去世
無別異可得
若此有別異
見世緣不成
【釋】만약 이것을 여의고 다름이 있을 수 있다면, 곧 저것을 여의고도 또한 다름이 있을 수 있다. 왜냐 하면 만약 이 세상이 저 세상과 다른데도 생기하는 것이 있다면, 곧 저 세상은 이와 같이 태어남은 있고 죽음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난 세상에서 죽음이 있어 지금 세상에서 태어남이 있는데, 지난 세상에서 만약 죽음이 없다면 지금 세상에서 또한 태어남이 없을 것이다. 지난 세상에서 죽음으로써 지금 세상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041_0172_a_15L釋曰若離於此有異可成卽離於彼亦異可成何以故若此世異彼有所起者卽彼如是有生無死謂前世有此世有生前若無死此亦無生前世死是此世生
또 어떤 사람이 말한다. 혹시 별다른 법이 별다른 성품이 있어, 그 법이 비록 파괴되어도 상속될 수 있지 않은가?
041_0172_a_20L復有人言或別異法有別異性彼法雖壞相續得成
041_0172_b_02L【論】지난 세상의 자아 자체가 만약 이미 단멸되었다면, 지금과 더불어 서로 어긋난다. 왜냐 하면 모든 업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또 이 사람이 원인을 만들고 저 사람이 결과를 받으면, 원인을 만드는 자가 다르고 결과를 받는 자가 다르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잘못이 있다.
041_0172_a_22L論者言先世我體若已斷者與此相何以故諸業壞故又此人造因人受果造因者異受果者異此如是皆有過失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2_b_03L復次頌言
【論】만약 지난 세상에서 업을 짓고
나중 세상에서 마땅히 결과를 받는다면,
이것이 만약 생하는 바가 없다면
이 중에는 잘못이 있다.
041_0172_b_04L若先世造業
後世當受果
此若無所生
是中有過失
【釋】만약 업을 다르게 짓고 과보를 다르게 받는다면,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72_b_06L釋曰若異作異受此非道理何所以
아래의 게송에서 대답하여 말한다.
下頌答言
【論】자아가 본래 조작하여 성립하여도
자체가 없으며 또한 병(甁)과 같다.
번뇌와 업의 원인은 공하니
생하는 것은 원인이 없기 때문이라.
041_0172_b_08L我本造作成
無體亦如甁
煩惱業因空
所生無因故
【釋】말하자면 지난 번으로 말미암아 쌓여 모인 것이 있기 때문이다.
041_0172_b_10L釋曰謂由先有所積集故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2_b_11L復次頌言
【論】과거에 이러한 견해를 일으켜
자아가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데,
이러한 두 가지는 함께 하거나 함께 하지 않거나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041_0172_b_12L過去起是見
我爲有爲無
此二俱不俱
是皆無所有
【釋】그 설명한 바와 같이 자세하게 진리를 관찰하여 보면, 이에 여러 가지로 그 의미를 나타내 보이겠지만, 이제는 이러한 것들을 부정한다. 미래에 의지하여 여러 견해를 일으켜서, 미래에 자아가 있다거나 혹은 없다거나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견해는 모두 과거의 경우와 동일하다. 그러한 후에 그것의 동일한 성품이나 다른 성품, 동일하고 다른 성품을 함께 하거나 함께 하지 않는 것 등을 여기에서 모두 그치라.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72_b_14L釋曰如其所說審諦觀察乃以多種開亦其義今此遮遣依止未來而起諸見未來有我或無我邪如是諸見皆同過去然後一性異性不俱等此中皆止此復云何
그러므로 아래의 게송에서 말한다.
故下頌言
【論】만약 하늘[天]이 곧 사람이라면
하늘의 존재는 이에 항상할 것이다.
그 존재는 곧 생하지 않은 것이라,
하늘의 존재는 항상하기 때문이다.
041_0172_b_19L若天卽是人
天有乃爲常
此有卽不生
天有是常故
【釋】이와 같이 존재하는 법 이것은 곧 생하지 않는다. 하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만약 법이 생하는 일이 있다면, 곧 그 항상함은 없다. 그러므로 미래의 세상에서 자아가 존재함을 보지 못하거나, 또는 자아가 없음을 보지 못하거나, 이것은 모두 잘못이다.
041_0172_b_21L釋曰如是有法此卽不生以天有故所以者何若法有生卽無其常是故未來世中不見有我亦不見無我俱有過
041_0172_c_02L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2_c_02L復次頌言
【論】만약 하늘과 사람이 다르다면
그 다름은 곧 항상하지 않음을 성립시킨다.
하늘과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상속하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041_0172_c_03L若天與人異
異卽成無常
天與人異故
相續無所有
【釋】만약 사람의 육신이 생한다면, 곧 하늘의 육신이 소멸될 것이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있겠는가?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바달다(提婆達多)와 연약달다(演若達多)7)의 두 명의 온(蘊)이 각각 달라서, 그 다른 성품 중에서 상속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041_0172_c_05L釋曰若人身生卽天身壞此云何有以異性故如提婆達多與演若達多二蘊各異於異性中卽不見有相續可得
또 어떤 사람이 말한다. 또한 하늘의 육신이 있고 또한 사람의 육신이 있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부정하여 말한다.
041_0172_c_09L復有人言亦有天身亦有人身故頌遣言
【論】만약 하늘이 한 부분이고
사람도 또한 한 부분이라면,
곧 항상함과 항상하지 않음의 둘이
한 곳에서 성립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
041_0172_c_11L若天是一分
人亦是一分
卽常無常二
成一處不然
【釋】만약 이와 같이 또한 하늘이고 또한 사람인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잘못이 있다. 그것은 곧 반쪽의 육신이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041_0172_c_13L釋曰若如是有亦天亦人者彼有過是卽半身有所成故
또 어떤 사람이 말한다. 이 중에는 항상하지도 않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닌 것[非常非無常]이 있을 수 있는가?
041_0172_c_15L復有人言此中非常非無常是可有邪
그러므로 게송에서 부정하여 말한다.
041_0172_c_16L故頌遣言
【論】만약 항상함과 항상하지 않음의
둘이 성립될 수 있다면,
항상하지도 않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닌 것도
원하는 바에 따라 마땅히 성립할 것이다.
041_0172_c_17L若常與無常
是二可成者
非常非無常
隨所欲應成
【釋】지금 이렇게 부정하여 말하는 것은 그 의미가 성립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는, 곧 그것이 이와 같이 거듭 다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만약 하늘의 세계라면 민간 세계에 어떻게 내려오는 일이 있겠으며, 만약 하늘이거나 만약 사람이거나 역시 또한 그 어떤 세계로 갈 수 있겠는가? 만약 혹시 그 하늘 등이 동등한 분량으로 존재한다면, 자아는 곧 시초가 없이 이에 항상 존재할 것이며, 한 가지 법이라도 오고 감이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041_0172_c_19L釋曰今此遮遣所說成義此中意者卽彼如是轉復難解何以故若天界人界何有所來若天若人亦復有其何趣可去若或有其天等同分我卽無始而乃有常非有一法來去可成
041_0173_a_02L 모든 중생 및 보특가라(補特伽羅)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부 이미 부정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설명하는 것도 또한 항상한 법을 얻을 수 없다. 도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고, 항상함이 있지 않기 때문이며, 또 다시 항상하는 법은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상하지 않은 것은 능히 성립될 수 없다. 또 다시 그 항상하고 항상하지 않은 법을 여의고, 다시 어떠한 법이 있어 생기할 수 있겠는가?
041_0172_c_24L所有衆生及補特伽羅如前所說已遮止是故此中所說亦無常法可以非道理故無有常故又復常法無對待因故是故無常不能有成復離彼常無常法復有何法而得起邪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3_a_07L復次頌言
【論】선제(先際)에 의하여 생기하는
항상함 등의 네 가지 견해는 없다.
중의 한계 등의 네 가지 견해는
자세히 관찰하여도 또한 모두 없다.
041_0173_a_08L依先際所起
常等四見無
後邊等四見
伺察亦皆無
【釋】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3_a_10L復次頌言
【論】만약 세간이 한계가 있다면
어떻게 나중의 세상이 존재하리오.
만약 세간이 한계가 없다면
어떻게 나중의 세상이 존재하리오.
041_0173_a_11L若世閒有邊
云何有後世
若世閒無邊
云何有後世
【釋】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비유하면 세간에서 불에 타버린 종자가 다시는 그것이 상속하여 화합하는 일이 있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또한 나중의 세상이 있을 수 없다. 한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종자의 종류가 만들어내는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계가 있음과 한계가 없음의 두 가지는 전부 존재하지 않는다.
041_0173_a_13L釋曰言有邊者譬如世閒焚燒種子不復有其相續和合是故亦無後世可有言無邊者亦無種類所作果故是故邊無邊二而悉不有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3_a_17L復次頌言
【論】이 모든 온(蘊)이 상속하는 것은
세간에서 불타는 등불의 불꽃과 같다.
그러므로 세간에
한계가 있다거나 한계가 없다는 것은 옳지 않다.
041_0173_a_18L此諸蘊相續
如世然燈焰
以是故世閒
邊無邊不然
【釋】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만약 먼저의 온이 이미 파괴되었다면, 그 온으로 인하여 나중의 온이 다시 생하지 않는다. 이것을 곧 설명하여 세간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온이 이미 소멸하면 화합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041_0173_a_20L釋曰此復云何若先蘊已壞不因是後蘊復生此卽說爲世閒有邊諸蘊已滅無和合故
만약 먼저의 온이 파괴되지 않았다고 하여도, 또한 그 온으로 인하지 않고서는 나중의 온이 생하지 않는다. 이것을 설하여 세간은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먼저의 온으로써는 일체의 상태에서 그 두 가지가 모두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간이 한계가 있다거나 한계가 없다는 것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041_0173_a_23L若先蘊不壞亦不因是蘊後蘊不生此卽說爲世閒無邊謂以先蘊一切分位二俱不見是故世閒有邊無邊此皆不有
041_0173_b_02L 또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041_0173_b_02L復次頌言
【論】만약 일부분은 한계가 있고
만약 일부분은 한계가 없다면,
한계가 있음과 한계가 없음이 함께하는 것이
세간에 있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041_0173_b_03L若一分有邊
若一分無邊
邊無邊共有
世閒非道理
【釋】만약 자아가 일부분이라 하여도 또한 얻을 수 없다. 이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041_0173_b_05L釋曰若我是一亦不可得此復云何
그러므로 게송에서 부정하여 말한다.
041_0173_b_06L故頌遣言
【論】어떻게 일부분을 취하는 자로서
일부분의 파괴됨이 있을 수 있으리오.
어떻게 일부분은 취해지는 것으로서
일부분은 파괴되지 않을 수 있으리오.
041_0173_b_07L云何一取者
一分是有壞
云何一所取
一分是不壞
【釋】파괴 및 파괴되지 않음이 각각 일부분이라는 것은 모두 도리에 맞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는, 만약 두 부분이라고 말하여도 또한 전부 부정한다는 것이다.
041_0173_b_09L釋曰壞及不壞各一分者皆非道理此中意者若言二分亦悉止遣
또 어떤 사람이 말한다.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마땅히 존재할 수 있는가?
041_0173_b_11L復有人言非有邊非無邊應可有邪
그러므로 게송에서 대답하여 말한다.
041_0173_b_12L故頌答言
【論】만약 한계가 있는 것과 한계가 없는 것의
이 둘이 성립될 수 있다면,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닌 것이
원하는 바에 파라서 마땅히 성립될 것이다.
041_0173_b_13L若有邊無邊
是二可成者
非有非無邊
隨所欲應成
【釋】여기에서 어찌하여 모름지기 부정해야 하는가? 말하자면 만약 얻는 바가 있다면 곧 잘못이 있게 되고, 그것이 혹시 없다면 또 다시 어찌하여 그와 같은가? 만약 결정코 얻는 바가 있다면, 이것은 곧 『중론(中論)』의 주장을 여의는 것이다.
041_0173_b_15L釋曰此中何故湏止遣邪謂若有所卽有過失其或無者又復云何是若有決定所得此卽離於『中論』所
만약 혹시 얻는 바가 없다면, 어찌하여 그 진실하고 진실하지 않은 법 가운데 부정하는 일이 있겠는가? 만약 그대가 즐겨하는 것이나 내지 중생이 얻는 바가 있다면, 곧 『중론』에서 설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어긋남이 있기 때문이다.
041_0173_b_19L若或無所得者云何於彼實不實法中有遮遣邪若汝所樂乃至衆生有所得者卽非『中論』所說有相違故
041_0173_c_02L 이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속제 중에서는 곧 얻는 바가 있지만, 승의제 중에서는 일체가 부정된다. 비록 얻는 바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 얻는 바는 또한 허용되어 성립되고 전부 부정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화합에 있어서 서로 어긋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곧 비량(比量)과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승의제 부분에서 각각 다름이 부정된다. 얻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041_0173_b_21L由此應知世俗諦中卽有所得勝義諦中一切遮遣雖言無所得於佗所得亦容有成非悉遮遣謂於和合有相違故若爾師於比量而不相違於勝義諦分各別遮遣有所得故
세속의 법에서는 조작되는 것을 여의지 않는다. 세속과 더불어 동일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모든 연으로 생하는 법과 서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결정코 진실로 얻는 바가 있다고 말한다면, 또한 도리에 맞지 않는다. 왜냐 하면 현량(見量)8)과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041_0173_c_03L俗法中非離所作謂與世俗一向義諸緣生法不相違故若謂定實有所得者亦非道理何以故見量相違
여기에 마땅히 질문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존재하는 부분 중에서 어떻게 서로 어긋나지 않겠는가?
041_0173_c_07L此中應問若爾於有分中豈不相
대답한다. 현량으로는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잘못이 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자체[自]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현량에 포섭되며, 이것은 곧 전도되지 않은 설명이다. 이것을 또 어떻게 능히 알 수 있겠는가?
041_0173_c_08L見量無所得故此無過失是故應知諸言自者皆見量攝此卽是爲不顚倒說此復云何能了知邪
말하자면 둘에 있어서 만약 그것이 둘이 아님을 안다면, 곧 허망함이 없다. 만약 현량(見量)과 비량(比量)의 법에서 현량과 비량의 의미를 요달한다면, 이것은 바른 설명이다.
041_0173_c_10L謂於二中若了不二卽無虛誑若於見量比量法中了達見量比量之義是爲正說
모든 상태 중에서 만약 미세하든 광대하든 일체의 의미에서 결정코 현량을 얻는다면, 그 현량지(見量智)9)는 일체의 원인 및 그 일체의 세속의 법에서 요달하지 못함이 없다. 그러나 일체에서 현량으로써 증득하는 바는, 모두 꿈이나 환상과 같고 건달바성 등과 같다. 만약 일체에 있어서 진실하지 않은 의미 중에서 모두 현량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바른 이치를 설한 것이다.
041_0173_c_13L於諸分位中若微細若廣多一切義門得決定見量者彼見量智於一切因及彼一切世俗法中無不了達然於一切以見量所證皆如夢幻乾闥婆城等若於一切不如實義中皆非見量此說正理
만약 형태나 나타나는 색깔 등의 취해지는 모습에 있어서, 먼저 익힌 관습인 여러 사념과 일에 대하여 꿈에서 보는 것처럼 한다면, 이것들은 모두 장님이 색깔을 보는 것과 같다. 이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간의 일체에서 이것과 저것의 취하는 바는 모두 꿈속의 일과 같다.
041_0173_c_18L若於形顯色等所取相中先所慣習諸思念事於夢所見此等皆如盲人觀色由此應知世閒一切此彼所取皆如夢中
예전에 익힌 관습과 잠자는 사람의 관습과 사념은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다만 예전에 익힌 사념으로부터 꿈에 가라앉아 버리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곧 세간의 일체가 없어져서 전부 얻는 바가 없다. 지금 생애에서 얻는 모습이 있어 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모두 꿈속의 일 등과 같다.
041_0173_c_21L昔慣習事及睡眠人慣習思念有何差別但從往昔習念而有沈於夢寐覺已卽無世閒一切悉無所得於見生中有所得相起分別者皆如夢等
041_0174_a_02L 만약 꿈속에서 보게 되는 색깔과 형상이 있다면, 이것은 또한 없는 것이 아니다. 또 과거의 생애에서 이미 일으킨 별다른 일체의 색깔과 형상과, 지금 생애의 꿈속에서 일으키는 것은 각각 다름이 있어 화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041_0174_a_02L若於夢中所見色像此亦非無又過去生中已起別異一切色像與見生中中起者而各有異不和合故
삼마지(三摩地)에서 생한 대종(大種)으로 성립된 삼마지의 경계가 상사한 것처럼, 형태와 색깔 등으로 성립된 것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일체의 경계는 진실함이 없으며, 모두 꿈 속의 의식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곧 비량(比量)의 이름이다. 비량의 의미처럼 서로 어긋남이 없다.
041_0174_a_06L如三摩地所生大種所成三摩地境界此相似者顯色等所成亦然是故一切境界無實皆是夢中意識所起此卽比量之名如比量義而不相違
이것을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면 증명된다. 여래가 설한 일체는 결정코 화합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세속과 승의에서 설한 일체는 그 세속제와 승의제에서 함께 서로 어긋남이 없다. 이제는 마땅히 그 모든 견해가 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래의 게송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증명된다.
041_0174_a_10L此如是等廣說證成如來決定一切所說無不和合是故世俗勝義一切所說於彼世俗勝義諦中俱不相違今此應知諸見不生下頌所說如是證成
【論】마땅히 일체의 법이 항상하다는 등은
모두 공성(空性)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연으로써
어떠한 곳에서 이러한 견해를 생하리오.
041_0174_a_14L當知一切法
常等皆空性
何人以何緣
何處生是見
【釋】이 중에도 또한 모든 견해에서 일으킨 일체의 경계와, 만드는 자와 만드는 업이 없다. 이러한 모든 법들은 모두 생합이 없다. 이와 같이 일체의 갖가지 분별에서 생하는 여러 견해는 많은 종류의 괴로움 및 많은 종류를 일으킨다. 만약 능히 그러한 종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세간에서 보편적으로 크게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켜 모두를 친한 벗처럼 여기게 된다.
041_0174_a_16L釋曰此中亦無諸見所起一切境界作者作業此等諸法皆是無生如是一切種種分別所生諸見起多種苦及多種類若能了知無種類已普徧世閒起大悲心皆如親友
총체적으로 결론지어 게송에서 말한다.
總結頌曰
【論】부처님은 세간을 위하여 모든 견해를 단절하고
일체의 미묘한 법을 잘 설하셨다.
자비롭고 연민의 마음의 일으키어 중생을 이롭게 하신
구담(瞿曇)10) 대성주(大聖主)께 머리 숙이나이다.
041_0174_a_21L佛爲世閒斷諸見
宣說一切微妙法
起悲愍心利衆生
稽首瞿曇大聖主
大乘中觀釋論卷第十八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ātman의 의역. 외도들이 말하는 자아. 여기서는 상캬학파에서 주장하는 25원리 중의 순수한 정신적 존재를 의미함.
  2. 2)제4 「관오온품(觀五蘊品)」의 주 4) 참조.
  3. 3)sattva의 음사.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여기서는 생명이 있는 유정(有情)과 중생(衆生)을 의미한다.
  4. 4)물질적 근본 질료인 사대(四大) 중의 흙[地]의 요소.
  5. 5)rajas-dharma(티끌, 경지 등의 거칠은 법)의 음사인 듯하다.
  6. 6)아견(我見)과 아만(我慢)에 집착하는 것.
  7. 7)제바달다와 마찬가지로 이 연약랄다(演若達多)도 흔한 사람들 중의 한 명에 불과하다. 우리말 식으로 박(朴) 아무개, 김(金) 아무개에 해당함.
  8. 8)인식 방법 중의 한 가지. 사물과 직접 접촉하여 지각하는 것.
  9. 9)직접 지각하여 아는 지혜.
  10. 10)Gotama의 음사. 가장 우수한 소[牛]라는 의미. 인도인의 성씨. 여기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지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