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華嚴經探玄記卷第三

ABC_IT_K1513_T_003
047_0495_b_01L화엄경탐현기 제3권

위국 법장 한역
노혜남 번역


2. 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

아래에서는 정종(正宗)을 밝힌다.
장차 이 경문을 해석하려 함에 네 문으로 분별한다. 첫째는 이름을 해석함[釋名]이요, 둘째는 온 뜻[來意]이요, 셋째는 종취(宗趣)요, 넷째는 본문을 해석함[釋文]이다.
처음 이름을 해석하는 가운데 ‘노사나’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번역으로, 혹은 3업이 원만하다고 말하고, 혹은 깨끗함이 원만하다고 말하며, 혹은 넓고 넓으며 엄숙하고 청정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 다시 범본을 견주어 보니 갖추어 말하면 비로사나(毘盧舍那)이다. ‘노사나’라고 하는 것은 여기 말로 번역하면 ‘광명조(光明照)’라고 한다. ‘비(毗)’라는 것은 여기 말로는 ‘변(遍)’이라고 하니, 이는 곧 광명 변조를 말한다. 이 가운데 광명에 대하여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혜의 광명[智光]이요, 다른 하나는 몸의 광명[身光]이다. 지혜의 광명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법을 비춤이니 이른바 진속(眞俗)을 모두 비추는 것이요, 또 하나는 기(機)를 비추는 것이니 말하자면 널리 중생[群品]에 응해 주는 것이다. 몸의 광명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항상 빛남[常光]이니 이를테면 원만하게 밝아서 걸림이 없는 것[圓明無礙]이요, 다른 하나는 광명을 뿜어내는 것[放光]이니 말하자면 빛으로써 놀라 깨닫게 함이다. 이 가운데 ‘변’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평만(平漫)의 변이니 걸림 없이 널리 두루하기[無礙普周]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중중의 변으로서 제석의 그물과 같이 거듭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가 원융하여 각각 전체에 두루함이요, 이 부분에 두루한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아래 경문에 이르기를 “불신(佛身)은 모든 법계에 충만하여 널리 일체 중생의 앞에 나타난다”고 하니, 이와 같은 것은 한량이 없으며 경문에 설한 것과 같다. 이 가운데 몸과 지혜가 걸림이 없기 때문에 몸의 광명은 곧 지혜의 광명[身光卽智光]이다. 두 번째 변은 걸림이 없으므로 평변이 곧 중중[平遍卽重重]이다. 광명과 두루함이 걸림이 없기 때문에 광명이 곧 변조이다. 두루 비추는 성품이 깨달음을 열게 한다. 이런 까닭에 이름하여 ‘불(佛)’이라고 한다. 이것은 아래 경문에서 세계해 등의 모든 일 하나하나가 모두 성품에 칭합하여 연기무애(緣起無礙)하여 어둠을 여의고 각조(覺照)함을 ‘광명[光]’이라고 칭하고, 법계에 널리 두루하지 못함이 없는 것을 ‘변’이라고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사나불은 보신(報身)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器) 등의 3종세간에 통하여 10신(身)을 갖추기 때문이다.
【문】 아래 경문에서 간략하게 5해(海)를 밝히고 널리 세계를 분별했거늘 무엇 때문에 「세계품」이라고 말하지 않고 곧 부처님의 이름으로 제목했는가?
【답】 고덕의 해석에 이르기를 “주(主)된 것을 따라서 이름했기 때문이다. 주가 뛰어난 까닭에 국토의 주인을 들어서 이것을 설하였다”라고 하니, 여기서 해석하건대 부처님은 3세간에 통하기 때문이다. 아래 경문에서의 국토 등은 곧 사나불이니, 10신 가운데 국토신(國土身) 등과 같다. 또 의(依)와 정(正)이 걸림이 없는 까닭에 표(標)와 석(釋)이 서로 들어서 경문을 꾸민 것이다. 또 5해(海) 가운데 불해(佛海)는 나머지 4해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도 또한 그러하다. 부처님이 뛰어난 까닭에 홀로 표하여 궤(軌)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렇게 이름하였고 나머지는 설하지 않았다.
둘째 온 뜻이란 것은 앞에서 이미 서(序)를 마침으로써 다음에 정종을 나타낸 것은 뜻의 차례이기 때문에 다음에 온 것이다.
셋째 종취란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이요, 둘째는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사람에도 또한 둘이 있으니, 하나는 교화의 주체[化主]이고 또 하나는 교화를 돕는 자[助化]이다. 각각 체(體)ㆍ상(相)ㆍ용(用)이 있으니, 주(主) 가운데 내증(內證)의 법지(法智)를 체로 삼고, 7일 동안 사유하여 해탈함을 상으로 삼고, 설(說)을 보탬을 용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둘이 아니요, 오직 이 하나의 과[一果]일 뿐이다. 조화(助化)에서는 선정에 드는 것을 체로 삼고, 가피를 입는 것을 상으로 삼고, 설(說)을 일으키는 것을 용으로 삼는다. 이 세 가지는 둘이 아니요, 오직 하나의 인[一因]일 뿐이다. 이 위는 ‘인’과 ‘과’가 융섭하여 둘이 아니요, 오직 이 하나의 인(人)뿐이다.
법에도 또한 둘이 있으니 하나는 의리(義理)를 기준으로 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교리의 일[敎事]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한 각각 체ㆍ상ㆍ용이 있다. 의리 가운데는 성해(性海)를 체로 삼고, 별덕(別德)을 상으로 삼고, 교리에 응하는 것을 용으로 삼는다. 이 세 가지는 둘이 아니요, 오직 하나의 의리일 뿐이다. 교리의 일 가운데 본분(本分) 안에서는 5해10지(五海十智)를 체로 삼고, 10세계와 화장세계를 상으로 삼고, 기(機)를 이익되게 하는 것을 용으로 삼는다. 이 셋은 둘이 아니어서 하나의 교리의 일이 된다. 이 위의 교와 의는 융섭하여 둘이 아닌 것을 하나의 법이라고 한다.
또 위의 인과 법이 다시 원융하여 둘이 아닌 것을 하나의 종취라고 한다. 이 4의(義)1)가 각각 셋2)이란 것은 첫째는 하나의 연기가 되어서 상즉하여 걸림이 없다. 이런 까닭에 혹은 오직 과(果)뿐이니, 모두가 곧 부처이기 때문이며, 혹은 오직 인(因)뿐이니 모두가 곧 보현이기 때문이다. 혹은 교(敎), 혹은 의(義), 혹은 인(人), 혹은 법(法), 혹은 체(體), 혹은 용(用), 혹은 주(主)의 체, 나아가 혹은 교의 용으로서 이 모두를 다 섭수하여 다하는 것임을 준하여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아래 여러 모임[諸會]의 종(宗)에도 모두 이러한 상(相)이 있다. 다만 법에 따라서 다를 뿐이다.
넷째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론 해석의 분제(分齊)와 생해(生解)의 방편을 통틀어 분별한[通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따로 본문을 해석한 것이다.
앞의 것에는 대략 열 가지 방편이 있으니, 첫째는 해석결택(解釋決擇)이요, 둘째는 석문방궤(釋文方軌)요, 셋째는 4종실단(種悉檀)이요, 넷째는 4의취(意趣)요, 다섯째는 4비밀(秘密)이요, 여섯째는 4도리(道理)요, 일곱째는 5력(力)이요, 여덟째는 6상(相)이요, 아홉째는 6석(釋)이요, 열째는 8성(聲)이다.
첫째 해석결택(解釋決擇)이라는 것은 『잡집론』 제15권에 의하면 “석결택이란 것은 능히 모든 경전의 종요(宗要)를 해석하여 그 뜻을 열어 밝히기 위한 것이다”라고 한다. 이 뜻을 고찰하여 말하면 저 속에는 대략 여섯 가지로 나누어야 한다. 자세히 나누면 열네 가지가 있다. 갖추어서는 저 논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제 간략하게 한 문(門)을 들겠다. 논에 이르기를 “섭석문(攝釋門)이라는 것은 ‘만약 이곳에서 모든 경의 연기와 소이(所以)와 구의(句義)와 차제(次第)와 의취(意趣)와 석난(釋難)을 선설한다’고 하니, 이를 살펴 이르기를 ‘연기와 소이라는 것은 교(敎)를 일으키게 된 까닭을 밝힌 것이요, 구의와 차제라는 것은 품회(品會)의 문의(文義)와 상생(相生)의 차례이며, 의취라는 것은 경의 종취를 밝힌 것이요, 석난이란 것은 외부의 방해와 환난[妨難]을 해석한 것이다. 나머지는 저 논에서와 같으니, 번거로움을 염려하여 서술하지 않는다.
둘째 석문방궤(釋文方軌)라는 것은 『섭론』 제5권에 이르기를 “만약 대승법의 해석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간략하게 3상(相)을 말미암아 그 해석을 지어야 한다. 첫째는 연기를 설함에 말미암는 것이요, 둘째는 연으로부터 생겨나는 법상을 설함에 말미암는 것이며, 셋째는 어의(語義)를 설함에 말미암는 것이다”라고 하니, 무성석(無性釋)에 이르기를 “모든 석(釋)을 지으려 하는 자로 하여금 해석의 도리를 열어 알게 하기 위하여 간략하게 ‘3상(相)에 말미암아서’라는 뜻을 설한다”라고 하며, 세친은 해석하여 이르기를 “이 3상으로 말미암아 그 응할 바를 따라서 일체 대승법의 해석을 지어야 한다”라고 하니, 상고하여 말하면 처음은 자성 연기를 설하여 의지할 대상의 근본이 되는 것을 말미암음이니 이는 곧 아뢰야식과 모든 법이 서로 연기가 되는 것이요, 둘째는 태어나게 된 전식(轉識)의 모든 법에 의하여 위에서 말한 3성(性)의 도리를 분별함이니 이를테면 의타(依他)에서 소집(所執)의 무(無)와 원성의 유(有)로 인한 득(得)과 부득과 견(見)과 불견이 동시에 평등함이다. 논에 갖추어 해석한 것과 같다. 이 두 문은 도리를 관하여 해석한 것이다. 셋째 어의(語義)를 설함에 말미암는다는 것은 이를테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의의(義意)를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덕처(德處)이니 이를테면 스물한 가지 불과의 뛰어난 공덕을 나타낸 것이다. 무성석(無性釋)에 이르기를 “이미 있는 것을 얻고 이미 원만하여 요익하는 까닭에 이름하여 덕(德)이라고 한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의처(義處)이니 이를테면 보살의 서른두 가지 행상(行相)을 나타낸 것이다. 무성석(無性釋)에 이르기를 “아직 있는 것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미 수순하여 나아가 구하는 까닭에 의(義)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이 두 가지 설은 다 처음 구로써 표했고 나머지 구로써 해석했다. 이것은 곧 말하는 자의 뜻을 관하여 해석한 것이다.
셋째 4실단(悉檀)이라는 것은 『지론(智論)』 제1권에 이르기를, 네 가지 실단이 있어서 모두 일체의 12부경(部經) 8만 4천의 법장(法藏)을 포함한다. 이는 모두 진실한 것으로서 서로 어김이 없다.
첫째는 세계 실단(世界悉檀)이니, 어떤 법이 인연을 따라서 화합하는 까닭에 있는 것이지만 별도의 성품은 없다. 비유하면 수레는 멍에[轅]ㆍ굴대[軸]ㆍ바퀴살[輻]ㆍ바퀴테[輞] 등이 화합하기 때문에 성립되었지만 별도의 수레가 없는 것과 같다.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5중(衆)이 화합한 까닭에 있는 것이지만 별도로 사람이 없다. 만약 세계 실단(世界悉檀)이 없다면 부처님은 곧 실어(實語)의 사람인데 어떻게 나는 천안으로써 모든 중생이 선악의 업을 따라서 여기에서 죽으면 저기에 태어남을 본다고 말하겠는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세계 실단으로 생겼으며 제일의 실단(第一義悉檀)이 아니니라.
둘째는 각각 위인 실단(各各爲人悉檀)이니 사람의 심행(心行)을 관하여 법을 설하되 한 법 가운데 혹은 듣고, 혹은 듣지 못한다. 단견의 사람을 위해서는 잡업(雜業)3)으로 인하여 세간에 섞여 나서[雜生] 잡촉(雜觸)4)을 얻고 잡수(雜受)5)를 얻는다는 것을 설한 것과 같다. 상견(常見)의 사람을 위해서는 사람은 접촉을 하는 일이 없고 또 사람은 느낌을 받는 일이 없음을 설한 것과 같은 것 등이다.
셋째는 대치 실단(對治悉檀)이니 대치는 있으나 실성(實性)은 없음이다. 신맛ㆍ짠맛 등이 풍병(風病)에는 약이라고 하지만 그 밖에 다른 병에는 약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부정(不淨) 등과 탐(貪) 등에도 그러하다. 이것에 준해 보아라.
넷째는 제일의 실단(第一義悉檀)이니 일체의 법성과 일체 언론의 차별이 모두 평등 일미(平等一味)이다.
해석하여 이르기를 “혹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있다고 설하고 승의(勝義)에는 없다고 한다. 제1의 설과 같다. 혹은 승의에서는 있지만 세계에서는 없다고 한다. 제4의 설과 같다. 혹은 다른 중생[異機]에 대해서는 있다고 설하고 나머지 중생[餘機]에 대해서는 없다고 설한다. 제2의 설과 같다. 혹은 이 병을 다스리는 데에는 요긴하지만 다른 병에는 요긴하지 않다. 제3의 설과 같다. 모두가 반드시 그 본뜻을 얻으면 법은 다 유용하지만 말에 따라서 혼돈하여 취하면 뜻을 잃고 비방을 이룰 것이다.
넷째 4의취(意趣)라는 것은 『잡집론』 제12권에 이르기를 “이 4의취로 말미암기 때문에 방광분(方廣分) 가운데 일체의 여래가 소유한 의취는 마땅히 따라서 결정한다”고 하며, 또 『장엄론(莊嚴論)』 제13권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설법은 네 가지 뜻[四意]을 여의지 않는다”고 하며, 『섭론(攝論)』 제5권에 이르기를 “이로써 모든 부처님의 언교(言敎)를 결료(決了)한다”고 하였다. 첫 번째로 평등 의취(平等意趣)라는 것은 “내가 옛적에 일찍이 저 때[時] 저 분(分)에 있었는데 그 때에 승관정등각자(勝觀正等覺者)라고 이름했다”고 말한 것과 같다. 무성석(無性釋)에 이르기를 “이를테면 ‘모든 부처는 자량(資糧) 등이 서로 닮음으로 말미암는 까닭에 저는 곧 나이다’라고 설하더라도 옛적의 비바시불(毘婆尸佛)이 곧 지금의 석가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하며, 『능가(楞伽)』에서는 4의(義)를 기준으로 해서 해석하였으니 “첫째는 글자[字]가 같고 둘째는 말[語]이 같으며, 셋째는 몸이 같고, 넷째는 법이 같은 까닭에 곧 저[彼]이다”라고 설하지만 실은 저것이라는 것은 잘못이다.
두 번째로 별시 의취(別時意趣)라는 것은 이를테면 “만약 다보여래(多寶如來)의 이름을 송하는 자는 문득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無上正等菩提]에 이미 얻어 결정하였으며, 또 오직 서원[願]만 발하여도 문득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성석(無性釋)에 이르기를 “이를테면 게을러서 법에 정근하여 배울 수 없는 자를 권하였으므로 이런 말을 한다 하니, 이 뜻은 선시(先時)의 선근을 장양하는 것으로써 세간 사람들이 다만 1전(錢)으로 말미암아서 천 냥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며, 또 『장엄론』에 해석하기를 “이는 다른 때에 생긴 것을 얻음으로 말미암는 까닭이다”라고 했다. 해석하여 이르기를 “뒤의 다른 때에 천 냥을 얻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세 번째로 별의 의취(別義意趣)라는 것은 “만약 이미 저곳에서 긍가(殑伽: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부처님을 만나 섬기면 대승법에 대하여 비로소 그 뜻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성석(無性釋)의 뜻에는 “증상 대승(證相大乘)을 기준으로 하고 교상 대승(敎相大乘)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장엄론』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모든 법은 자성이 없는 까닭이며 생겨남이 없는 까닭이다’라고 설하신 것과 같다”고 하였다. 해석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무생을 증득함을 기준으로 해서 설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네 번째로 보특가라의락 의취(補特伽羅意樂意趣)라는 것은 보특가라를 위해서 먼저 보시를 찬탄하고 뒤에 도리어 헐뜯는 것과 같다. 시라(尸羅)와 일분수(一分修)6)에 대해서도 마땅히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성석(無性釋)에 이르기를 “먼저 간탐한 자를 위해서 보시를 찬탄하고 뒤에 보시를 좋아하는 자를 위해서는 보시를 헐뜯는다. 나머지 계(戒)와 수(修)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였다. 『장엄론』에 이르기를 “조그만 선(善)을 얻어서 문득 만족하다고 하는 까닭에 찬탄하고 헐뜯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섯째 4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잡집론』에 이르기를 “이와 같은 네 가지는 대승 가운데 간략하게 여래께서 설하신 모든 것의 비밀한 도리를 포함한 것이다”라고 하며, 『양섭론(梁攝論)』 제6권에 이르기를 “여래께서 설하신 것은 4의(意)와 4의(依)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의(依)라는 것은 곧 밀(密)이다. 『무성섭론(無性攝論)』 제5권에 이르기를 “네 가지 의취(意趣)와 네 가지 비밀이란 것은 모든 부처님의 말씀을 마땅히 따라서 결료(決了)해야 한다”고 하였다.
첫 번째는 영입비밀(令入秘密)이니, 단멸(斷滅)을 두려워하는 유정을 교화하기 위하여 세속의 도리에 의지하여 성문승에서는 화생(化生)7) 등의 모든 유정이 있다고 설하고 대승에서는 마음은 항상하다고 설한다. 이는 곧 대소승에 있어서 인법(人法)이 있다고 설하는 것으로서 모두가 곧 비밀이다. 『장엄론』에 이르기를 “모든 성문을 가르쳐서 법의(法義)에 들게 하여 두려워하지 않음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색(色) 등은 곧 유(有)라고 설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는 상비밀(相秘密)이니, 이를테면 이곳에서 모든 법의 모양[相]을 설하여 세 가지 자성을 나타낸다. 무성석에 이르기를 “소지상(所知相)8)을 깨달아 들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니, 이것을 해석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비록 법상(法相)을 설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뜻은 세 가지 무성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 『장엄론』에 이르기를 “분별 등 세 가지의 자성은 무체(無體)와 무기(無起)와 자성 청정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법이라고 설한 때문이다”라고 하니, 해석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비록 3성(性)을 설한 것이지만 그 뜻은 3무성(無性)을 나타낸 것이다”고 하였으니,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대치비밀(對治秘密)이니, 이곳에서는 대치행(對治行)은 8만 4천 가지라고 말한다. 해석하여 이르기를 “무(無)에서 유(有)를 설하고 동(同)에서 이(異)를 설한 것 등은 모두가 곧 밀의(密意)이다. 교화할 대상인 유정의 장애를 대치하는 까닭에 이 8만 4천 등을 설한다”고 한다.
네 번째로 전변비밀(轉變秘密)이니, 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견고하지 못한 곳에서 견고하다고 깨닫고 전도에 곧 머무르며 지극한 번뇌에 고달파지면 최상의 보리를 얻는다”라고 하니, 무성석에 이르기를 “강강(剛强)과 유산(流散)을 이름하여 견(堅)이라고 말한다. 이 견(堅)이 아닌 까닭에 불견(不堅)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조유(調柔)와 산란함이 없는 선정[定]이다. 즉 이 가운데 견고한 지혜[慧]를 일으켜서 저는 견고하다고 깨닫는 것이다”라고 하니, 해석하여 이르기를 “흩어진 마음이 유동하는 것을 현(顯)에서는 불견(不堅)이라고 하고 흩어진 마음이 강강한 것을 비밀[密]에 나아가면 견(堅)이라고 한다. 선정의 마음이 경계를 지키는 것을 현(顯)에서는 견이라고 하고, 정심(定心)이 조유하는 것을 비밀에서는 불견이라고 한다. 만약 현료(顯了)를 취하면 산란에서 견고한 지혜를 일으킬 때는 곧 보리와는 멀더라도 여기에서 비밀을 취하여 정심에서 견고한 지혜를 일으킬 때는 곧 보리를 얻게 된다”고 하였다.
무성(無性)에 이르기를 “네 가지 전도에서 능히 안주하여 이것이 곧 전도인 줄 알아서 결정코 움직임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니, 해석하여 이르기를 “만약 현료를 취할 때는 곧 무상 등에서 상(常) 등을 헤아리는 4도(到) 가운데에 머무나니 어찌 보리를 얻겠는가. 여기서는 비밀을 취하여 이 상 등은 무상 등에서 횡계(橫計)하여 일으킨 것이라고 알고 있다. 결정코 이것을 아는 것을 이름하여 전도에 잘 머문다고 한다. 그러므로 능히 보리를 얻게 된다”고 하였다.
또 세친의 해석에 의하면 “이것은 능전도(能顚到) 가운데 잘 안주한다는 뜻이다. 무상 등에 대하여 곧 상(常)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름하여 전도라고 한다. 무상 등에서 무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능전도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뜻은 곧 저들이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뜻을 전도라고 하며, 여기에 안주하기 때문에 보리를 얻는다. 말한 바 심한 번뇌에 고달파한다라는 것은 무성석에 이르기를 “교화할 대상인 유정을 위하여 정진 구로(精進劬勞)해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라고 하니, 해석하여 말하기를 “만약 현료를 취하면 탐(貪)ㆍ진(瞋) 등이 수행자를 뇌란(惱亂)시키기 때문에 이것을 이름하여 번뇌라고 하나니 이런 사람은 곧 보리에서 멀어진다. 여기에서는 비밀을 취하여 정진 근고(精進勤苦)가 수행자를 피로하게 만드는 것을 또한 번뇌라고도 하나 이것은 곧 보리를 얻는다”고 하였다.
송(頌)에서 “생사에 처하여 오래도록 번뇌하는 것은 다만 대비(大悲)에 말미암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양(梁)과 위(魏)의 『섭론』과 세친의 『장엄』과 『대법』 등의 논에서 모두 이에 준거해 보면 가히 알 것이다.
여섯째 네 가지 도리라는 것은 『잡집론』 제11권에 이르기를 “계경(契經) 등의 법을 관찰하는 것을 분별함으로 인하여 마땅히 모든 법의 도리를 해석해야 한다. 도리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관대(觀待)의 도리요, 둘째는 작용의 도리이며, 셋째는 증성(證成)의 도리요, 넷째는 법이(法爾)의 도리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상고해 보면 관대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속제(俗諦)의 연기는 반드시 상대(相待)하므로 생겨나고 이는9) 곧 염정(染淨)에 통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진제(眞諦)의 이치는 요인(了因)을 기다려서 나타나니, 이것은 오직 청정[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두 번째로 작용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연기의 모든 법에 각각 업용(業用)이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진여 법계의 의지(依持) 등 작용이다.
세 번째로 증성(證成)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비량(比量)의 성립이요, 다른 하나는 현량(現量)의 성립이다.
네 번째로 법이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모든 연기의 법은 부처님께서 계실 때에도, 부처님께서 없을 때에도 성품[性]이 연(緣)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진여 법계는 성품 스스로가 평등함이다.
일곱째 5력(力)이라는 것은 『사익경(思益經)』 제2권에 “만일 사람으로서 능히 여래께서 설하신 문자ㆍ어언(語言)ㆍ장구(章句)를 통달하여 수순해서 어기지 않고 거슬리지 아니하며 화합하여 하나가 되어 그 의리(義理)를 따르고, 장구와 언사를 따르지 않고서도 언사가 응하는 모습을 잘 알면 여래는 무슨 말로써 설법할 것인가, 어떤 편의를 따라서 설법할 것인가, 어떤 방편으로써 설법할 것인가, 어떤 법문으로써 설법할 것인가, 어떤 대비(大悲)로써 설법할 것인가를 알 것이다. 범천이여, 만약 보살이 능히 여래는 이 5력으로써 설법하시는 것임을 알면 이 보살은 능히 불사를 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고하여 이르기를, 아래 경의 뜻을 차례로 자세하게 해석하겠다.
처음에 언설이라는 것은 여래가 삼세의 법과 구(垢)ㆍ정(淨)의 법과 세(世)ㆍ출세(出世)ㆍ유(流)ㆍ무류(無流) 등의 법을 설함에 있어서 이 언설은 환인(幻人)의 설과 같아서 결정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르기를, 설(說)은 허공과 같아서 생멸이 없는 까닭이니 이 언설은 설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이르기를, 이것을 여래의 언설이라고 한다.
두 번째 ‘편의를 따라서[隨宜]’라는 것은 여래께서 때로는 더러운 법[垢法]을 청정[淨]하다고 설하나니 더러운 법의 성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혹은 청정한 법을 더럽다고 설하나니 청정한 법에 탐착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르기를,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하니 물러날 것도 없고 생길 것도 없기 때문이며, 열반이 곧 생사라고 하니 탐착하기 때문이다. 실어(實語)는 곧 허망이니 어견(語見)을 생하기 때문이며, 허망이 곧 실어이니 증상만(增上慢)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래께서는 편의에 따르기 때문에 혹 스스로 설하시되 “나는 곧 상변(常邊)을 주장하는 사람이다”라고 하며, 나아가 자세히 설하셨다.
세 번째 방편이라는 것은 여래께서는 실제로 아(我)ㆍ인(人)ㆍ중생ㆍ수자(壽者)를 얻지 않고, 또한 보시도 하지 아니하며 아끼지도 않지만, 나아가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을 위하여 찬탄하시되 보시는 큰 부자[大富]가 되게 한다고 말씀하시며, 나아가 자세히 설하셨다.
네 번째 법문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6근 등 모든 법은 다 해탈문이다. 공(空)하여 나[我]도 없고 내 것[我所]도 없으니, 성품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자도 또한 그러하다.
다섯 번째 대비라는 것은 부처님께서는 서른두 가지 대비(大悲)를 쓰시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모든 법은 무아이거늘 중생은 그것을 믿지 않고 알지 못하므로 여래께서는 여기에서 대비를 일으키시며, 나아가 자세히 설하셨다.
상고하여 이르기를, 이상 다섯 가지 가운데 처음 하나는 능설(能說)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를테면 말없는 말로써 설하셨기 때문이요, 두 번째는 소설(所說)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를테면 법은 미오(迷悟)를 따라서 시비를 가리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소위(所爲)의 중생[機]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교묘한 방편으로써 무에서 유를 설한 것이요, 네 번째는 법의 자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본래 스스로 공한 것을 해탈문이라고 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능설의 마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중생[物]의 미혹함을 불쌍히 여겨서 설함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여덟째 6상(相)이라는 것은 『십지론』 제1권에 이르기를 “일체의 말한 바 열 구에는 모두 여섯 가지 상(相)의 문이 있으니, 첫째는 총상(總相)이요, 둘째는 별상(別相)이며, 셋째는 동상(同相)이요, 넷째는 이상(異相)이며, 다섯째는 성상(成相)이요, 여섯째는 괴상(壞相)이다”라고 하였으니 갖추어 해석한 것이 아래 「십지품」에서와 같다.
아홉째 6석(釋)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는 6합석(合釋)이라고도 한다.
첫 번째는 의주석(依主釋)이니 또한 의사(依士)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두 가지 법을 서로 바라봄에 가령 저 주인에 의지하여 그러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안식(眼識)에서 말한 것과 같다. 눈이 곧 식은 아니고 눈에 의지하는 식(識)인 까닭에 안식이라고 이름한다. 만약에 분리해서 말하면 눈[眼]은 곧 능견의 뜻이고 식은 곧 요별의 뜻이다. 지금 이것을 합해서 밝히기 때문에 합석이라고 한다. 만약 단법(單法)으로 이름한다면 6석으로 거둘 바가 아니다.
두 번째는 지업석(持業釋)이니 또한 동의석(同依釋)이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그 업용을 들어서 자체를 나타낸 것이니 장식(藏識)에서 말한 것과 같다. ‘장’은 곧 업용이고 ‘식’은 곧 그 체이니, 장이 곧 식이기 때문에 용을 가지고 체를 해석함이요, 다른 별체가 서로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두 법이 아니거늘 어찌 합석이라고 이름하겠는가. 체와 용은 떨어지지 아니하는 까닭에 합(合)이라고 이름한다.
세 번째는 유재석(有財釋)이니 또한 다재석(多財釋)이라고도 한다. 이를테면 소유한 물질에 따라서 그런 이름을 붙였으니, 불토(佛土)에서 설한 것과 같다. 토(土)는 곧 부처님의 소유이므로 이름하여 불토라고 한다.
네 번째는 상위석(相違釋)이니 이를테면 1구 가운데 많은 명언이 있어 각각 별도로 뜻을 설명한 것과 같다. 게(偈)에서 ‘부처와 법과 승(僧)’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의주와 지업 등에 비록 많은 말이 있으나 똑같이 하나의 뜻을 지목한 것과는 같지 않다.
다섯 번째는 인근석(隣近釋)이니 이를테면 가까운 것을 따라서 그 이름을 붙였으니, 4념처관(念處觀)과 같다. 실은 지혜[慧]로써 체를 삼았지만 염(念)과 서로 가까우므로 염처라고 이름하였다.
여섯 번째는 대수석(帶數釋)이니 이를테면 수(數)로써 뜻을 나타낸 것이며, 10지 등에서 설한 것과 같다. 모두 수를 따라서 뜻의 다름을 나타내었다.
【문】 이 6석으로 모든 법을 다 섭수하였는가, 그렇지 못하였는가?
【답】 모든 법이 이름을 얻는데는 간략하게 다섯 가지 예가 있다. 첫째는 떨어져 있는 것을 합함으로써 이름을 얻는 것이니, 이 6석과 같다. 둘째는 단법의 당체에 이름을 붙인 것이니, 신(信) 등과 같다. 이것은 직전(直詮)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셋째는 다른 이름이 없어서 칭호를 받은 것이니 무명(無明) 등과 같다. 이는 차전(遮詮)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넷째는 비슷한 종류[比類]로써 이름을 얻는 것이니 화엄(花嚴) 등과 같다. 비유를 따라서 이름을 나타낸 것이다. 다섯째는 모양이나 형태[相形]로 명호를 얻은 것이니, 대승은 소(小)에 형상함으로써 그 이름을 세운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6석은 다만 첫 문에 의거할 뿐이니, 만약 앞의 육과 뒤의 4석을 보태면 모두 10석이 된다.
간략하게 모든 법의 이름을 얻게 된 차이점을 말하였다.
열째 8성(聲)이니, 서국(西國)의 법에 의하면 만약 내외의 전적을 찾아 읽으려 한다면 성론(聲論)의 여덟 가지 전성[八轉聲]의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만약 분명히 알지 못할 때는 반드시 문의(文義)의 분제를 알 수 없다.
첫째는 보로사(補盧沙)이니 이것은 곧 가리키며 말하는[指陳] 소리로서 사람이 나무를 찍을 때 그 사람을 가리키면서 말하는 것과 같다.
둘째는 보로사(補盧私)이니 이것은 소작업(所作業)의 소리로서 작용하는 바 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
셋째는 보로사나(補盧崽拏)이니 이것은 능작구(能作具)의 소리로서 도끼로 쪼개는 것과 같다.
넷째는 보로사야(補盧沙耶)이니 이것은 할 바의 소리로서 사람을 위하여 쪼갬과 같다.
다섯째는 보로사다(補盧沙䫂, purusāt)이니 이는 소인(所因)의 소리이며 사람으로 인하여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여섯째는 보로살사(補盧殺娑)이니 이는 소속(所屬)의 소리이며 종이 주인에게 속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보로살(補盧鎩)이니 이는 소의(所依)의 소리로 손님이 주인에게 의지함과 같다.
『유가』 제2권에 위의 일곱 가지를 이름하여 7예구(例句)라고 하였다. 이것으로써 해석[解]을 일으키는 큰 예(例)가 되기 때문이다. 『성론(聲論)』의 8전(轉)은 위의 것에 또 헤보로사(▼(彳+ 契)補盧沙)를 더하니 호소(呼召)하는 소리이다.
그러나 이 여덟 가지 소리[八聲]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남자 소리요, 둘째는 여자 소리이며, 셋째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소리이다. 또한 이 위에서는 남자 소리를 기준으로 해서 설한 것이다. 범어에 장부(丈夫)를 이름하여 보로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또 이 여덟 가지 소리에 다시 각각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소리요, 둘째는 소리의 몸이며, 셋째는 많은 소리의 몸이다. 이리하여 스물네 가지 소리가 된다.
장부를 부르는데 스물네 가지가 있는 것과 같이 여자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소리에도 또한 각각 스물네 가지가 있으니 모두 합하면 일흔두 가지 소리가 된다. 모든 법을 지목함에 있어서도 이에 준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이러한 예가 흔하지 않다.
두 번째로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니 이 품에 2분(分)이 있다. 처음은 대중의청분(大衆疑請分)이요, 다음 ‘이시세존(爾時世尊)’ 아래는 여래현답분(如來現答分)이다.
앞의 것을 둘로 나누니 먼저 모든 모임[諸會]의 청문을 밝히고 나중에 이 경문[此文]을 해석한다.
앞의 것을 네 개의 문[四門]으로 나눈다.
첫째는 유무를 밝히는 것이니, 8회(會) 가운데 처음 두 회와 나중 두 회에는 있지만 나머지 회(會)에는 모두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초회(初會)는 과(果)를 표하여 인(因)을 일으키기 때문에 물음이 있고 제2회의 처음에는 인을 찾아 과에 이르게 하기 위한 까닭에 물음이 있다. 다만 인위(因位)에는 승침(昇沈)이 있으므로 5회(會)에 붙여서 답했다. 과위(果位)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에 당회(當會)에서 대답했다. 그러나 5회의 중간 모든 품(品) 안에 또 나머지 물음이 있는 것은 모두 이 당회에서 말한 법 가운데 차별을 나타내기 위하여 설을 따라서 문답한 것으로서 별도로 대위(大位)의 모양[相]을 물은 것은 아니다. 제7회에서는 인과가 순숙한 것을 밝힌 까닭에 물음이 있다. 이를테면 행수(行修)가 걸림이 없어서 6위를 한꺼번에 이룬 까닭에 당회에서 대답했다. 제8회에서는 성품에 칭합하는 인과를 밝혔기 때문에 물음이 있으니, 이를테면 함께 법계에 들어가서 차별이 없는 까닭에 또한 당회에서 대답했다.
둘째는 묻는 법이 같지 않은 것은 초회와 제8회는 과(果)뿐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인(因)도 있다. 다만 소신(所信)과 섭화(攝化)를 달리했을 뿐이다. 제2회와 제7회는 오직 인뿐이지만 부분적으로는 과도 있다. 다만 위(位)와 행(行)을 달리했을 뿐이다.
셋째는 질문한[能問] 사람이 같지 않은 것은 초회와 제8회는 각각 같고 다른[同異] 두 대중을 갖추어 똑같이 묻고 또 질문한 법은 대중이 함께 의지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2회는 오직 동생중(同生衆)만이 묻고 들어갈 지위[位]도 동생(同生)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제7회는 오직 한 사람만이 물었다. 조수(造修)의 행은 각각 따로 이루기 때문이다.
넷째는 청문(請問)의 의식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언념(言念)을 기준으로 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통별(通別)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첫 번째에서 널리 청(請)에 대하여 논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언청(言請)이요, 또 하나는 염청(念請)이다. 대답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말로써 대답했고 다른 하나는 상(相)을 보여서 대답하였다. 이 두 가지 문답에는 ‘여차(如次)’와 ‘급(及)’이 서로 얽혀서 4구(句)10)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혜(慧)11)를 이루기 위하여 이 두 가지 예가 있다. 처음 두 회(會)와 제8회는 오직 염청(念請)뿐이고 대답은 둘 다 통한다. 이를테면 부처님께서는 모습[相]을 보여 답하시고 보살은 말로써 대답한다. 부처님께 청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말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지혜는 의심을 알아서 신상(身相)으로 대답을 나타내어 자재함을 밝히기 위한 까닭이다. 제7회는 오직 말로만 청하고 말로만 대답했다. 행법(行法)은 말을 기준으로 해서 명료하게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보현을 대하여 물음을 일으키고 돌이켜 보현이 대답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통별이라는 것은 초회와 8회는 별도로 묻고 통틀어 대답했다. 제2회와 제7회는 별도로 묻고 별도로 답한 것임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본문을 해석한다는 것은 이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장행(長行)이고 나중은 중송(重頌)이다. 이 두 가지 차별은 큰 예로서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둔(利鈍)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를테면 둔근(鈍根)은 아직 깨닫지 못함으로써 다시 거듭 송(頌)한다.
둘째는 전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뒤에 온 사람은 아직 듣지 못하였음으로써 이들을 위하여 거듭 송한다.
셋째는 생숙(生熟)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완숙한 사람에게는 바로 설하여 문득 깨닫지만 미숙한 사람[生類]은 간곡하고 교묘하게[曲巧] 하여야 비로소 아는 까닭에 거듭 송한다.
넷째는 문(文)과 질(質)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혹 어떤 사람은 질직(質直)을 사랑함으로써 장행을 보이고, 혹 어떤 이는 문(文)을 좋아함으로써 게송의 미묘함을 보인다.
다섯째는 2지(持)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논에 이르기를 장행은 산설(散說)로써 정해(正解)를 생하게 하는 까닭에 뜻을 가지는 것[義持]을 성취하고 게송은 총섭하여 수지하기가 쉬운 까닭에 문을 가짐[文持]을 성취한다.
여섯째는 자성(資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를테면 다시 게송으로써 장행을 도와 나타내서 뜻을 명료하게 하는 까닭이다. 이상은 모든 경문의 중송에 통한다.
일곱째는 성원(成圓)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송 가운데서는 장행에 빠져 없는 것을 겸하여 나타냄으로써 앞에서 설한 바를 이루어 뜻을 원만하게 하는 까닭이다. 이것은 「발심공덕품(發心功德品)」의 게송 등과 같다.
여덟째는 체상(體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문(門)을 따라 모양에 의지하는 것으로써 장행으로 바로 설한 것이다. 이는 동교와 삼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체에 나아가서 원융함으로써 게송에서 교묘하게 나타내었다. 이는 별교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십행품(十行品)」의 게송 등과 같다.
아홉째는 통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장행으로 따로따로 가리키고 중송으로 통합하여 섭수했기 때문이다. 이 품의 세계 등 송문(頌文)과 같은 것이다.
열째는 심언(心言)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를테면 장행에서는 바로 마음으로 염하는 법을 나타냈고, 게송에서는 선시(宣示)하여 청(請)을 원만하게 한 것이다. 이는 오직 이 경문뿐이다.
또 어떤 뜻은 부처님의 설법에 법다운 두 가지 모습[二相]이 있으니, 이를테면 바로 계경에서 설하는 것과 반드시 기야(祇夜)의 중송이 있는 것이다.
아래 여러 품의 중송은 모두 이 열 가지 예[十例]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여기에 준하라.
이 장행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처음은 질문하는 사람을 표(標)한 것으로서 이를테면 동생(同生)과 이생(異生)이 함께 법계에 있었기 때문에 ‘다[咸]’라고 말했다. 언설은 일[事]을 드러내서 기(奇)를 나타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염심(念心)은 법에 들어가서 깊고 세밀함[深細]을 나타냈기 때문에 염(念)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청한 법을 밝히고, 세 번째 ‘유원(唯願)’ 이하는 청(請)을 매듭 지은 것이다.
청한 것[所請] 가운데 옛 말[古說]에 이르기를 “여기에 스물세 구가 있으니 둘로 나눈다. 처음 스물한 구는 과법(果法)에 대하여 물었고, 나중 두 구는 인행(因行)에 대하여 물었다. 앞에 것 중에서 아래 답 가운데 5해(海)에 준거해 보면 이 문을 다섯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열두 구는 불해(佛海)를 물었고, 다음 세 구는 이름과 같이 3해(海)를 물었고, 뒤의 여섯 구는 아래에 준거해 보면 근욕성해(根欲性海)에 해당한다. 다만 근욕이 갖지 아니함을 말미암아 능피(能被)의 연에 차이가 있음을 이룬다. 여기에서는 연(緣)을 들어서 근(根)을 나타냈고, 아래 경문에서는 근을 들어서 연을 나타냄으로써 이 좌우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제 다시 해석하면 이 가운데 서른다섯 구가 있는데 그것을 둘로 나눈다. 처음 삼십 구는 과법을 물었고, 뒤의 ‘일체 보살’ 이하 다섯 구는 인행을 물었다.
앞의 것에 나아가 셋으로 나누면, 처음 열 구는 부처님의 내덕영만(內德盈滿)의 덕을 물었고, 두 번째 ‘시현보리(示現菩提)’ 이하 열 구는 부처님의 외상현저(外相顯著)의 덕을 물었으며, 세 번째 ‘세계해’ 이하 열 구는 화용보주(化用普周)의 덕을 물었다.
첫 번째 가운데 처음 한 구는 총(總)이고, 나머지 아홉 구는 별(別)이다.
그 가운데 ‘하등시(何等是)’ 석 자는 삼십오 구를 모두 통했다. ‘일체제(一切諸)’ 석 자는 앞의 삼십 구에 통한다. 과(果)를 묻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에 이 경에서 맨 먼저 부처님의 과법을 물었는가. 이를테면 표치(標幟)인 까닭이며, 종귀(宗歸)인 까닭이며, 근본이 되기 때문이며, 덕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신심을 내게 하기 때문이며, 지남(指南)이기 때문이다. 경의 제목을 ‘불화엄(佛花嚴)’이라고 한 뜻이 여기에 있다.
여기에서 말한 불지(佛地)라는 것은 『불지론』 제1권에 이르기를 “청정 법계와 저 묘한 지혜[妙智]12)와 수용(受用)이 화합해서 한 맛[一味]이 되어 사(事) 등은 곧 부처님의 의지할 바요, 행할 것이며, 섭수할 것이 되기 때문에 불지(佛地)라고 한다”라고 하니, 이것을 해석하여 말하기를 곧 청정 법계를 의지할 바로 삼고, 묘한 지혜로 행할 바를 삼고, 나머지 공덕 등은 모두 섭수할 대상으로 삼나니, 곧 진리와 묘한 지혜의 걸림 없는 것으로 체를 삼는다.
『대승동성경(大乘同性經)』에 의하면, 부처님에게 열 가지 경지[十地]가 있으니 모든 보살과 이승이 행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을 열 가지 경지라고 하느냐 하면 첫째는 매우 깊고 알기 어려운 장명지덕지(藏明智德地)라고 하며, 나아가 열 번째는 비로자나 지해장지(毘盧遮那智海藏地)이다. 아래 「십지장(十地章)」에서 갖추어 해석한 것과 같다. 두 번째 불경계(佛境界)이니 아래 아홉 구는 모두 이 불지(佛地) 중에서 열어 나온[開出] 까닭에 곧 별구이다. 말하자면 청정 법계를 여는 것은 곧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경계이다. 혹은 소지(所知)를 총체적으로 거론하면 진속(眞俗)에 다 통한다.
아래 「성기품」에 이르기를 “모든 중생은 곧 여래의 경계이며, 나아가 제10에 경계가 아닌 경계라는 것은 여래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이 차별이 있는[分齊] 경계이기 때문이다. 「명난품(明難品)」에서 열 가지 불경계를 밝혀 말하되 “여래의 깊은 경계는 그 양(量)이 허공과 같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또 해석하면 통틀어 소지(所知)와 분제(分齊)의 경계가 있다. 아래 「부사의품」에서 “부처님에게 열 가지 비유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경계가 있다”고 말했다. 마땅히 아래 3처(處)의 경문을 찾아서 여기에서 갖추어 분별하라.
세 번째는 불지(佛持)이니 여기에도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정법계(淨法界)로서 모든 공덕을 주지(住持)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대원경지와 상응하는 정식(淨識)이니 이는 각각 능히 모든 공덕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후득지(後得智)이니 그 가운데 대다라니문은 무량의 모든 법해(法海)를 총지하는 까닭이요, 넷째는 이것은 십불 가운데 지불(持佛)이 수순하기 때문이다. 또 아래 제10지의 불력지(佛力持) 등 10지(持)이다. 또 「이세간품」 가운데에도 또한 10지(持)가 있으니, 처음 불지(佛持)로부터 나아가 제10 지지(智持)까지이다. 이 두 문 가운데서는 모두 처음 구로써 총(總)을 삼고 별(別)을 섭수하여 총에 들어가면 이것을 불지(佛持)라고 한다. 또 아래 「부사의품」에서 “부처님에게 열 가지 출생주지(出生住持)의 지혜가 있다”고 말한 것과 같으니, 이 모든 것을 마땅히 갖추어 찾아서 밝힐지어다.
네 번째는 아래 송문(頌文)에 준거해 보면, 그 가운데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佛無上智]’라는 한 구절이 빠졌다. 이것은 곧 아래 10지(智)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섯 번째는 불행(佛行)이니, 이것은 곧 대비로 중생을 섭수하는[大悲攝生] 행이요, 또 이 대지로 만들어 짓는[大智造作] 행이다. 이것은 모두 작위가 없는 작위로서 생각이 없이 일을 성취하는 것이니, 「성기품」의 무장애행(無障礙行)ㆍ여여행(如如行) 등이 곧 여래행이다. 이것은 곧 이승(二乘)의 공덕과는 다르다.
여섯 번째는 불력(佛力)이니 여기에 두 뜻이 있다. 하나는 남에게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능히 마군의 원적[魔怨]을 꺾어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따로 설한 것에 열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시처비처지력(是處非處智力) 등이다. 또 열 가지가 있으니 「부사의품」의 가장 뛰어난 힘인 대력(大力)과 무량력(無量力), 나아가 제10의 대력나라연당불소주법(大力那羅延幢佛所住法) 등과 같다.
일곱 번째 불무외(佛無畏)라는 것은 설하는 것을 겁내지 아니하는 까닭에 무외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외도(外道)들을 항복받은 공덕이니, 혹은 넷13)이요, 혹은 열14)이다. 「이세간품」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상 여기까지는 큰 지혜[大智]의 덕을 밝혔다.
여덟 번째는 불삼매(佛三昧)이니, 이를테면 사자분신(師子奮迅) 등의 작은 먼지처럼 많은 삼매해(三昧海)이니 대략 열 가지가 된다. 「불부사의품(佛不思議品)」15)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것은 큰 선정[大定]의 공덕을 밝힌 것이다.
아홉 번째는 불자재(佛自在)이니 이것은 선정[定]에 의지하여 무진한 신통을 발기하여 하는 것에 걸림이 없기 때문에 자재라고 말한다. 「부사의품」에 “부처님에게 열 가지 자재한 정법(正法)이 있다”고 하였고, 또 「이세간품」에 “열 가지 자재 등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 두 가지로써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신통의 공덕을 밝힌 것이다.
열 번째는 불승법(佛勝法)이니 이것은 뛰어난 공덕이 다른 이의 덕(德)16)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승법(勝法)이라고 말한다. 또 열 가지가 있으니 「부사의품」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것은 큰 복[大福]의 공덕을 밝힌 것이다.
이상 열 구는 안으로 덕이 가득 찬[內德盈滿] 것을 밝혀 마친다.
두 번째 외상현저(外相顯著) 가운데 첫 번째는 시현보리(示現菩提)이니, 이것은 이를테면 중생[機]을 대하여 큰 깨달음[大菩提]을 이룬 것을 나타내 보인 것을 말한다. 「성기품」의 보리를 이루는 곳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 「부사의품」에서도 똑같이 설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총체적인 구절이고, 아래 아홉 구는 개별적인 것이다. 6근17)과 3업이라는 것은 모두 보리를 성취하는 모양[相]이기 때문이다. 아래 「부사의품」과 「이세간품」에서 이 아홉 문의 하나하나마다 각각 열 문으로써 분별하여 설하였으니, 저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불광명(佛光明)이라는 것은 곧 신업이다. 나머지는 아울러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외상현저를 밝혀 마친다.
세 번째로 화용보주(化用普周)이니, 열 구 가운데 처음은 ‘세계해’이며 이것은 곧 변화 작용하는 곳이다. 염(染)과 정(淨)의 국토에 모두 통하니, 곧 십불의 국토신에 들어가 섭수한다. 간략하게 열 가지를 설하니, 이 품의 아래 경문에서 설한 것과 같다.
둘째는 ‘중생해’이니 이것은 곧 교화할 대상인 중생[機]이다. 추(麤)와 묘(妙)ㆍ공(空)과 유(有) 등에 모두 통하며 또한 10신(身)에 들어가 섭수한다. 또 「이세간품」에 열 가지의 입중생(入衆生) 등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셋째는 법계방편해(法界方便海)이니, 여기에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이성법계(理性法界)이니 이것은 앞의 중생과 세계 등이 의지해야 할 계(界)이다. 둘째 염사법계(染事法界)이니, 이를테면 저 교화해야 할 중생의 온(蘊)ㆍ계(界)의 법 등이다. 셋째 이구법계(離垢法界)이니, 이를테면 부처님께서 얻으신 가장 깨끗한 법[最淨法] 등이다. 넷째 정용법계(淨用法界)이니, 이를테면 부처님께서 중생을 섭수하는데 사용하는 선교(善巧)이다. 그러므로 방편이라 하나니, 「부사의품」에 “부처님에게 열 가지 법계가 있어 한량없고 끝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넷째는 아래의 송 가운데 준거해 보면 이 경문에 ‘조복해(調伏海)’가 결여되어 있다. 조복해라는 것은 곧 조복할 대상으로서 이는 근욕성해(根欲性海)에 섭수된다. 다만 송과 장행에 글쓴이들이 서로 써넣었거나 혹은 생략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불해(佛海)이니, 교화를 하시는 부처님이 하나뿐만이 아니라 바다와 같이 많음을 말한다. 이를테면 일체처에 두루하여 법륜을 굴리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바라밀해(波羅蜜海)이니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행법으로써 군기(群機)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저 교화를 받을 사람이 행할 행으로서 곧 교화를 받을 사람이 이룩해야 할 이익이다. 이를테면 10도(度:10바라밀) 등과 같은 것이다.
일곱째는 법문해(法門海)이니, 여기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부처님께서 시설하시는 교법으로써 저에게 통하여 유입(遊入)하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저 교화받을 사람이 행을 성취하여 이치[理]를 증득해 들어가는 법이다. 여기에 또한 열 가지가 있으니 「부사의품」에서 설한 것과 같다.
여덟째는 화신해(化身海)이니, 이것은 다른 중생[異機]에 따로 감응[感]하여 모습[相]을 나타내는 것이 다단(多端)함을 말한다. 모든 털구멍으로부터 화신의 구름을 낸다고 말한 것과 같다. 또 노사나불이 시방에 두루하여 모든 화신[化]의 장엄한 몸을 내는 것과 같다. 또 「이세간품」의 열 가지 변화 등과 같다.
아홉째는 불명호해(佛名號海)이니, 이것은 근기가 듣기 좋은 데 대한 명호는 하나가 아님을 말한다. 「명호품(名號品)」에 낱낱의 세계에 백억만 등이 있는 것과 같다.
열째는 불수량해(佛壽量海)이니, 중생의 길고 짧고 이지러지고 차는 많은 차이에 따라 응해 주는 것을 말한다. 간략하게 열 개의 위(位)가 있으니, 「수명품(壽命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상은 과(果)의 물음에 대한 일을 마친다.
두 번째로 인(因)에 대한 질문 가운데 다섯 구가 있다. 처음 한 구는 총이고, 아래 네 구는 별이다. 첫째는 10주(住)의 초발심주(初發心住) 등을 밝혔고, 둘째는 곧 10행(行) 가운데 10도(度)의 행이다. 셋째는 원(願)이니 곧 10회향의 대원(大願)이다. 넷째는 지혜장(智慧藏)이니, 이것은 곧 10지(地) 가운데는 지(智)로써 성품을 삼았으니 함섭(含攝)하고 온적(蘊積)한 까닭이다. 아래 「십지품」에서 보살을 똑같이 장(藏)이라고 이름한 것과 같다.
세 번째로 청(請)을 맺는 가운데 ‘유원자비(唯願慈悲)’라는 것은 부처님에게는 설하시는 원인이 있어서 피곤[疲倦]하지 않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방편이란 부처님께서 교묘하게 설하시어 알기 쉽게 나타내려 한 때문이다. 비(悲)로 말미암아 발심하고 교(巧)로 말미암아 앎[解]을 얻는다.
두 개의 송 가운데는 기특한 것을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에 상구(常口)로써 설하지 않으시고 의정(依正)에 걸림이 없음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에 공구(供具) 가운데로부터 설하였다. 곧 아래의 찰설(刹說)과 같다.
아홉 개의 송을 둘로 나누니, 처음 셋은 덕을 찬탄하여 청하였고 뒤의 여섯은 법을 들어 청한 것이다.
앞의 것 가운데 처음 둘은 부처님을 찬탄하여 청하였으니 설인(說因)18)을 갖춘 것을 밝혔기 때문이요, 뒤의 하나는 대중을 찬탄하여 청한 것이니 설연(說緣)을 갖춘 것을 밝혔기 때문이다. 앞의 것 중에 처음 하나는 부처님 자덕(自德)의 원만함을 나타내었다. 처음 반은 인이 과거에 다하였으므로 현과(現果)는 공(功)이 없는 것임을 밝혔고, 뒤의 반은 용이 미래제[來際]에 다하였으므로 생각 없이 널리 응한다. 구름[雲]이란 법우를 내리기 때문이며, 중생들을 윤택하게 하기 때문이며, 스스로 근본이 없기 때문이다. 뒤의 하나는 외화(外化)가 갖추어짐을 밝힌 것이다. 이를테면 처음 반은 악을 멸하여 선을 생기게 하며, 뒤의 반은 고통을 여의고 낙을 얻게 함이다. 또 처음은 열반을 얻게 하고 나중은 보리를 얻게 함이다.
두 번째 ‘무량(無量)’ 이하는 대중을 찬탄하여 청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 가운데 일심(一心)이라는 것은 마음에 다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합장(合掌)이라는 것은 몸에 오만[慢]과 게으름이 없는 것이다. 최승(最勝)을 관한다는 것은 염(念)에 안주하여 부처님께 향하는 것이다. 아래 반은 생각할 바를 모두 들어서 부처님의 개천(開闡)을 원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법을 들어서 청하는 것이니, 그 가운데 셋으로 나누면 처음 세 개의 송은 앞의 처음 열 구를 들어 말한 것이다. 그 가운데 처음 한 개의 송 가운데 여섯 구가 있으니, 첫째는 지(地)요, 둘째는 경(境)이요, 셋째는 지(持)요, 넷째는 지(智)요, 다섯째는 역(力)이요, 여섯째는 무외(無畏)이다. 아래 구는 청을 매듭 지은 것이다. 다음 한 송 가운데 세 구가 있으니, 첫째는 선정[定]이요 둘째는 행(行)이요 셋째는 자재(自在)이니 곧 신력(神力)이다. 아래 구는 설(說)을 청한 것이다. 뒤의 한 송은 뛰어난 법[勝法]을 송했다. 또한 보리 등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가히 알 것이다. 두 번째의 한 송은 제2의 열 구를 송했다. 3업은 6근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함께 송했다. 제3의 두 송은 제3의 열 구를 송했다. 처음 송 안에 5해(海)가 있고, 뒤의 송 가운데 2해(海)가 있다. 나머지 3해와 인(因)의 물음은 모두 섭수하기 때문에 무량 무변이라고 말한다. 아래 구는 청을 매듭 지은 것이다.
제2의 답상(答相) 가운데 고래(古來)로부터 여러 덕 높으신 분[諸德]들은 이 모든 물음을 가지고 아래의 모든 모임에 대한 대답이라고 하였지만, 이 판단은 아마 잘못된 듯하다. 제2회에는 스스로 따로 묻고 따로 대답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며, 네 번의 문답이 서로 섞이지 아니한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이 품에서 모든 것을 통틀어 대답했다. 아래의 설분(說分)에 과(果)와 인(因)의 두 설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 경문을 길게 나누면 열 개로 나눌 수가 있으니, 첫째는 면광집중분(面光集衆分)이요, 둘째는 호광시법분(毫光示法分)이요, 셋째는 법주입정분(法主入定分)이요, 넷째는 제불가지분(諸佛加持分)이요, 다섯째는 대중동청분(大衆同請分)이요, 여섯째는 정중약설분(定中略說分)이요, 일곱째는 기정성익분(起定成益分)이요, 여덟째는 모광찬덕분(毛光讚德分)이요, 아홉째는 허설령희분(許說令喜分)이요, 열째는 정진법해분(正陳法海分)이다.
처음 가운데 둘이 있으니 먼저는 광명을 놓음이요, 뒤는 대중을 모은 것이다.
앞의 것에 또한 둘이 있으니 먼저는 신광변각(身光遍覺)이요, 나중은 광어호소(光語呼召)이다. 이 둘은 또한 곧 위의 부처님의 광명과 음성에 대한 물음에 답한 것이다.
처음 가운데 또한 둘이 있으니 먼저는 이 빛이 저것을 비춤이요, 둘째 ‘저 모든 보살[彼諸菩薩]’ 이하는 빛을 찾아서 이것을 보는 것이다.
앞의 것 가운데 다섯 가지 뜻이 있다. 처음 ‘생각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의심을 깨달은 것으로서 장차 대답하려고 한 때문이니, 곧 방광(放光)하게 된 소인(所因)이다. 둘째는 빛의 출처를 밝힌 것이다. 면문(面門)이라는 것은 제덕(諸德)들께서 세 가지 해석이 있으니, 어떤 사람은 말하되 “곧 입[口]이다”라고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얼굴의 단정한 모습으로서 별도의 입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며, 광통사(光統師)는 말하기를 “코의 밑과 입 위의 중간이다”라고 하였다. 아래 시비(施鼻)의 경문에 준거해 보면 또한 거기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제 해석하겠다. 범어에 의하면 얼굴[面]과 입[口]을 합하여 문(門)이라고 하며 모두 목카(目佉, mukha)19)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목카를 면문(面門)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그 일[事]을 통틀어 거론한 것이다. 입이라는 것은 교도(敎道)가 멀리 입히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얼굴이라는 것은 바르게 중생[機]에 대향(對向)하는 것이다. 문(門)이라는 것은 법을 열어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齒]라는 것은 뛰어난 작용[勝用]이다. 이를테면 법미(法味)를 생각하여 맛보기[思咀] 때문이며, 의혹과 장애[惑障]를 다스리고 부수어 버리기 때문이다. 연기하여 덕을 갖추는 데는 서로 차별이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마다 각각 티끌처럼 많은 수[塵數]의 광명을 놓는다”라고 말했다. 셋째는 별도로 소출(所出)을 나타냄에 있어서 열 가지 문이 있지만, 통틀어 논하면 낱낱이 다 3세간에 통한다. 따로 밝힌 가운데 처음 여섯은 불해(佛海)이고, 다음 둘은 기해(器海)이며, 다음 하나는 중생해요, 뒤의 하나는 법계방편해(法界方便海)이다. 또 앞의 여덟은 의업기설륜(意業記說輪)이요, 다음 하나는 신업신통륜(身業神通輪)이며, 뒤의 하나는 어업정교륜(語業正敎輪)이다. 넷째는 권속을 거두어들임이요, 다섯째는 비추어야 할 곳이다. 이 가운데 방광(放光)에 대하여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모습을 나타내어 실제를 표하고, 둘째는 믿는 마음을 경기(驚起)시키며, 셋째는 조촉(照觸)하여 고통을 구원하며, 넷째는 대중을 모을 때 멀리 부르기 위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저 대중은 빛에 의하여 이것을 보고 모여야 할 장소를 안다.
송(頌) 가운데 아홉 게(偈) 반(半)이 있는데 여기에 네 가지 뜻이 있다. 처음 여섯 송 반은 부처님의 덕을 통틀어 들어서 가기를 권한 것이요, 다음 하나는 별도로 능설(能說)을 밝혀서 나아가 뵙기를 권했다. 다음 하나는 말씀하신 것을 따로 표하여 관(觀)하도록 권하였다. 뒤의 하나는 부처님의 덕을 통틀어 매듭 지어 깊고 넓은 것을 나타내었다. 이 네 개는 모두 뒤의 것으로 앞의 것을 해석한 것이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 것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덕을 들고 뒤에 ‘인존(人尊)’ 이하는 가기[往]를 권한 것이다. 앞의 것 가운데 세 가지 뜻이 있다. 처음 둘은 신업이니 그 중 하나는 체요 또 하나는 용이다. 다음 두 구는 의업이니 하나는 용이요 또 하나는 체이다. 뒤의 하나는 어업이다. 권하는 가운데 처음 반은 법 위하기를 권하고, 다음 반은 다중(多衆)을 권하였다. 다음 반은 흥공(興供)을 가르침이다. 비록 원음은 한꺼번에 설한다고 할지라도 9세(世)의 원해(願海)는 본법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일념이 아니다. 곧 아래에서 말씀하신 법문을 표한 것이다. 나머지 경문은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대중을 모으는 가운데 먼저 모든 모임을 밝힌 것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유무(有無)요, 둘째는 온 곳의 원근(遠近)이요, 셋째는 본처(本處)의 이름이 같지 아니함이요, 넷째는 게송으로써 찬탄함[偈歎]과 전후이다.
처음 것 가운데 6, 7의 두 회(會)에는 없으니, 증위(證位)와 행숙(行熟)은 함께 다 상(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여섯은 다 있으니 소위(所爲)를 가히 알 것이다. 무릇 새로운 대중을 모음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중생을 섭수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법을 증명하기 위함이며, 셋째는 공양을 일으키기 위함이며, 넷째는 대중의 원만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 원근(遠近)이라는 것은 처음 둘은 10찰진(刹塵)이요, 삼은 백, 사는 천(千), 오는 만(萬)이다. 지위를 점점 더해가기 때문이다.
여덟째 불가설을 지난다는 것은 증법(證法)의 깊음을 나타낸 때문이다.
세 번째 하나는 처(處)요, 둘째는 불(佛)이며, 셋째는 보살이요, 넷째는 공(供)의 다소이다. 아울러 모임[會]에 따라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네 번째 처음 둘은 게송으로써 찬탄함이 없으니 닦음[修]을 일으키는 시작이기 때문이요, 나머지 넷은 모두 있으니 법을 나타내는 위(位)가 더하는 까닭이다. 또 앞의 다섯은 선정[定] 앞에 모여서 닦음[修]에 따라 증득[證]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제8은 선정에 들고 난 뒤에 모이는 것이니, 증(證)에 의하여 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둘째 경문을 해석하는 가운데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장행(長行)과 게송이다.
처음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대중의 모임이요, 나중은 덕을 나타낸 것이다.
처음 가운데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모임이고 뒤는 매듭 지음이다.
처음의 것은 시방(十方)을 곧 10단(段)으로 하여 하나하나의 방위[方]마다 모두 일곱이 있으니, 첫째는 기해(器海)의 이름이요, 둘째는 세계의 이름이니 12불국토 등이다. 이 두 가지는 의지할 법상으로서 다만 통(通)과 별(別)을 달리할 뿐이다. 셋째는 부처님의 이름이고 넷째는 보살의 이름이니 이 두 가지는 곧 능입(能入)의 지혜[智]로서 다만 만(滿)과 분(分)을 달리할 뿐이다. 다섯째는 주반(主伴)이 함께 와서 덕을 갖춤이 원만한 것을 밝혔다. 여섯째는 흥공이니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은 순익(順益)의 뜻으로서, 이를테면 원인[因]은 결과[果]를 따르는 것을 말함이다. 일곱째는 본방(本方)에 의지하여 앉아서 흩어진 것을 거두어서 고요한 곳에 돌아가는 것을 밝혔다.
무슨 까닭으로 먼저 동방을 밝혔는가. 이를테면 개명(開明)의 시작을 나타내는 까닭이며 저 곳[彼方]을 따르는 까닭이며, 서역의 방의(方儀)에 동쪽을 상(上)으로 삼는 까닭에 그 당전(堂殿)은 모두 얼굴이 동쪽을 향하기 때문이다. 기원사(祇洹寺)ㆍ보리사(菩提寺)에 모두 얼굴이 동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과 같다. 여래가 설법할 때에도 다분히 얼굴을 동쪽으로 향하신다. 면문(面門)의 광명이 나오면 바로 곧 동쪽으로 향한다.
【문】 아래 경문에 “이 화장계는 가이 없다”라고 말했으니, 어찌하여 여기서는 동쪽만을 말하는가?
【답】 화장계는 이 변(邊)과 무변(無邊)이 둘이 아닌 까닭으로 무변이라고 이름한다. 아래에서 설한 것과 같이 “무변과 변이 둘이 아닌 까닭에 유변(有邊)이라고 이름한다”고 하니, 이 말과 같이 이는 곧 변을 무너뜨리지 않고 항상 무변하며 무변을 깨뜨리지 않고 항상 변(邊)하다. 만약 무변은 변에 어긋나고 변은 무변에 어긋난다고 말하면, 이는 정계로 미치는 바[情計所及]의 법으로서 바른 연기가 아니다. 이 변과 무변은 곧 동일한 사[一事]이기 때문에 둘 다 정계(情計)를 초월하나니, 그것은 마치 금과(錦窠)는 백선(白線)이 철편(徹編)하지만 자과(紫窠)에 섞이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자(紫) 등도 또한 그러하다. 또 백과(白窠)에는 자(紫)가 있으니 이 비단[錦]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만약에 흰 것[白] 가운데 자색이 없고 자선(紫線)이 이르지 아니하면 양편(兩編)은 곧 수(繡)일 뿐 비단이 아니다. 백과에는 자(紫)가 없이 곧 비단이 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만약 백(白)에 자(紫)가 나타나면 곧 무늬를 무너뜨려 비단이 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백(白)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자(紫)가 이루어질 수 있다. 백(白)이 없으면 자(紫)가 없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땅히 알라. 이 가운데 도리도 또한 그러하다. 생각하여서 여기에 준거해 보도록 하라.
【문】 만일 그렇다면 저 시방 세계는 이 화장인가 아닌가?
【답】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를테면 즉시(卽是)를 말미암는 까닭에 불시(不是)이다. 불시(不是)도 또한 그러하다. 위의 것에 준하여 이것을 생각해 보라. 왜냐하면 이 화장의 동쪽을 말미암는 까닭에 즉(卽)과 부즉(不卽)이 있다.
【문】 이 시방 세계 밖에 또 다른 경계[餘界]가 있는가, 없는가?
【답】 없다. 왜냐하면 화장으로써 주(主)를 삼을 때는 저 시방으로 반(伴)을 삼으니, 이 주와 반은 원융하여 널리 일체의 티끌 세계[塵道]에 두루하여 중중함이 마치 제망(帝網)과 같기 때문이며, 나머지도 다 이것과 다르지 아니하여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또 이 가운데 모든 공(供)은 모두가 곧 법문이다. 모양[相]을 따르면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묘보(妙寶)이니, 이는 곧 귀하다는[可貴] 뜻이다. 둘째는 수미(須彌)이니 뛰어나고 높다는[勝高] 뜻이다. 구름[雲]이라는 것은 곧 윤익(潤益)의 뜻이며, 비를 머금었다는 뜻이며, 은악(齗齶)의 뜻이다. 셋째는 해[日]이니 이는 곧 어두움을 없앤다는 뜻이다. 윤(輪)이란 것은 곧 구덕(具德)의 뜻이다. 넷째는 각(閣)이니 이는 중성(重成)의 뜻으로서 바른 지혜[正智]의 위에 비(悲) 등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다섯째는 꽃[花]이니 이것은 곧 청정[淨]의 뜻이고 개부(開敷)의 뜻이다. 여섯째 향운(香雲)이니 이는 계(戒) 등으로서 분방(芬芳)의 뜻이다. 일곱째는 자리[座]이니 이는 곧 섭익(攝益)의 뜻이다. 여덟째는 개(蓋)이니 곧 음부(蔭覆)의 뜻이다. 아홉째는 당(幢)이니 곧 독출(獨出)의 뜻이다. 열째는 수(樹)이니 이것은 곧 건립의 뜻이다. 나머지는 모두 여기에 준거해 보라.
또 법을 기준으로 하면 또한 열 가지 예가 있으니, 첫째는 혹 색법(色法)으로써 구름을 삼으니 보묘색운(寶妙色雲) 등과 같으며, 둘째는 큰 소리[大聲]로써 구름을 삼으니 묘음과 불덕(佛德)을 찬탄한 구름 등과 같다. 이것은 사(事)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셋째는 끝없는 불토로써 구름을 삼으니 열 가지 부사의불찰운(不思議佛刹雲)과 같다. 이것은 의보(依報)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넷째는 9세(世)의 이성(理性)으로써 구름을 삼음이니 삼세불의 법신광명운과 같다. 이것은 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다섯째는 부처님의 8상(相) 등으로써 구름을 삼으니 열 가지 부처님의 변화운(變化雲)과 같다. 이것은 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섯째는 무애해탈법문으로써 구름을 삼으니 열 가지 해탈개운(解脫蓋雲)과 같다. 이것은 부사의해탈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일곱째는 불소증(佛所證)의 경계로써 구름을 삼으니 열 가지 불경계운(佛境界雲)과 같다. 이것은 과(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덟째는 일체 보살의 행으로써 구름을 삼으니 열 가지 보살이 행해야 할 시현운(示現雲)과 같다. 이것은 인(因)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아홉째는 일체 중생의 욕락으로써 구름을 삼으니 열 가지 일체 중생의 낙불가진시현운(樂不可盡示現雲)과 같다. 이는 법기(法器)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열째는 부처님의 큰 서원을 나타냄으로써 구름을 삼으니 열 가지 일체제불소원시현운(一切諸佛所願示現雲)과 같다. 이것은 중생에 나아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하나하나마다 모두 열 가지씩의 문으로써 설하는 것은 끝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 위의 열 가지 뜻은 다 하나하나마다에 모든 법이 있어서 연기 무애하다. 이런 까닭에 혹은 사람, 혹은 법, 혹은 이(理), 혹은 사(事), 혹은 경(境), 혹은 행(行), 혹은 의(依), 혹은 정(正), 혹은 인(因), 혹은 과(果)로 한 것이다.
이 가운데서 하나하나의 공구(供具)마다 다 허공에 가득하다고 말하는 것은 본성(本性)이 공과 화합함으로써 모이더라도 잡되지 않은 것이 연기성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진리의 묘행은 사(事)에 나아가 이루어진다. 운화보(雲花寶) 등의 사(事)는 이(理)에 나아가서 법이 된다. 이것은 별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라.
두 번째로 매듭 지음[結] 가운데 첫째는 국토를 매듭 짓고, 둘째는 주(主), 셋째는 반(伴), 넷째는 공(供), 다섯째는 좌(坐)를 매듭 지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덕용(德用)을 나타낸 것이다. ‘차례로 앉는다’라는 것은 연기는 걸림이 없음으로 모이더라도 잡되지 않다. 그 가운데 둘이 있으니, 먼저는 덕체(德體)에 걸림이 없음을 밝히고 뒤의 ‘염념(念念)’ 이하는 묘용(妙用)의 뛰어난 이익이다.
앞의 것에서 용(用)을 통틀은 것 가운데 처음 구에 모두 여섯 겹[六重]의 무애가 있고, 아울러 배배(倍倍)해서 앞보다 많다. 첫째는 신광 무애(身光無碍)요, 둘째는 광인(光人) 무애이며, 셋째는 인법(人法) 무애요, 넷째는 진찰(塵刹) 무애이며, 다섯째는 의정(依正) 무애요, 여섯째는 화용(化用) 무애이다. 일념 가운데 한 세계에서 1불찰(佛刹) 미진수의 중생을 교화하는 것과 같다. 곧 이 생각 가운데 일체의 세계에서도 또한 이와 같이 교화한다. 일념에 이미 그러하면 나머지 일체의 염(念)에도 다 그러하다. 1찰(刹) 가운데서 이 진념(盡念)에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나타내는 것과 같이 나머지 일체의 찰에도 각각 따로 나타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한 티끌[塵] 가운데 이 일체 현불(現佛)의 세계가 있는 것과 같이 나머지 일체 진(塵)에도 각각 따로따로 또한 그러하다. 한 보살의 법문이 이 일체에 두루하여 찰진의 도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나머지 일체 보살의 법도 따로 두루함이 또한 그러하다. 한 빛[一光]이 이 일체 변진(遍塵)의 보살로부터 나오는 것과 같이 나머지 일체의 빛이 따로 나오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한 털구멍으로부터 이 일체의 보살을 내는 빛을 놓는 것과 같이 나머지 일체의 털구멍이 따로 내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위에서부터 여기까지 모두 한 보살의 몸 가운데의 일[事]을 밝혔다.
한 보살과 같이 일체도 또한 그러하다. 주(主)와 같이 반(伴)도 또한 그러하다. 이것은 중중무진하여 심언(心言)으로 능히 미칠 바가 아니다. 이는 곧 일승 법계의 법이연기(法爾緣起)의 실덕(實德)으로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아울러 곧 보현위(普賢位)의 덕이다. 보살이 이미 그러하니, 불과(佛果)의 ‘덕용’은 능히 비교할 것이 아니다. 준하여 생각하면 통할 수 있다.
둘째 용(用)의 이익 가운데 셋이 있으니, 처음은 소화(所化)의 대중[衆]을 표하고, 두 번째 ‘이몽(以夢)’ 이하는 능화(能化)의 법을 밝히며, 세 번째 ‘일념에[於一念]’ 이하는 교화의 이익을 가렸다.
능화 가운데 열 구가 있으니, 처음 아홉은 개별적으로 가리고 뒤의 하나는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아홉 가운데 첫째 ‘꿈과 같이 자재하다’라는 것은 즉실즉공(卽實卽空)인 까닭이며, 일념에 다법(多法)을 나타내는 까닭이다. 둘째는 깨끗한 까닭이며 교화[化]인 까닭이다. 셋째는 교의(敎義)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뛰어난 신통을 나타내어 귀의하게 하는 까닭이며, 두려워하여 법에 들어가게 하는 까닭이며, 모양[相]을 움직여 진(眞)에 돌아가게 하는 까닭이다. 다섯째는 원력섭생(願力攝生)의 까닭이며, 여섯째는 염음(染音)의 성(性)을 여읜 까닭이며, 염음의 정용(淨用)이기 때문이며, 정음(淨音)이 널리 거두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원음(圓音)이 널리 퍼져 내리기 때문이니, 법계의 머리와 입 등과 같다. 여덟째는 체용(體用)이 기(機)를 놀라게 하는 까닭이다. 아홉째는 원인(圓因)을 세우기 때문이다.
셋째 이익을 입는 것 중에 여섯 구가 있다. 해석에 4중(重)이 있으니 글에 다세(多勢)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심한 괴로움[重苦]을 여의게 함이요, 둘째는 출세의 기(器)를 이루게 함이며, 셋째는 이승 해탈의 과향(果向)의 10위(位)20)를 얻게 함이다. 이는 대승 가운데 이승(二乘)으로서 우법(愚法)은 아니다. 또 소승 가운데는 5정심관(停心觀)21)의 앞은 사정(邪定)이다.
『성실론(成實論)』에 의하면 난정(燸頂) 이상은 모두 바른 선정[正定]이라고 하니, 길이 물러나지 않는 까닭이다. 『비담(毘曇)』에 의하면 ‘인심(忍心)’ 이상에서 비로소 불퇴를 얻는다. 『지론』에 의할 것 같으면 견도(見道) 이상이라야 비로소 정정(正定)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되 “정위(正位)는 정정(正定)이라는 것은 견도 이상이라야 비로소 정위이다”라고 하였다. 부정(不定)이라 말하는 것은 곧 두 가지 중간을 부정(不定)이라고 이름한다. 넷째는 대승의 3현위(賢位)에 들어감이다. 다섯째는 10지(地)를 증득함이다. 여섯째는 불과를 이룸이니 이는 동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 처음 셋은 앞과 같고, 네 번째는 초교(初敎)에 들어가며, 다섯 번째는 종교(終敎)에 들어가며, 여섯 번째는 돈교(頓敎)에 들어간다. 이것은 병이 다하는 곳을 기준으로 해서 셋이라고 말한다. 또 처음은 인천(人天)이요, 다음 둘은 소승이며, 넷째는 점교(漸敎)요, 다섯째는 돈(頓)이며, 여섯째는 원(圓)이다. 이것은 과(果)를 기준으로 해서 원교를 나타냄에 네 가지를 설한 것이다. 또 처음은 인천(人天)이요, 다음 셋은 삼승(三乘)이며, 뒤의 하나는 일승이니, 인과(因果)를 둘로 나눈 것이다.
이 위는 모두 합하여 일념 가운데의 이익이다. 나머지 일체의 염(念)도 여기에 준하라.
송(頌) 가운데 열 개의 게(偈)가 있다. 처음 다섯은 총체적으로 보살의 덕을 찬탄하고, 뒤의 다섯은 앞의 법문을 송하였다. 처음 가운데 앞의 셋은 자분(自分)의 덕을 밝혔으니, 첫째는 자리(自利)요, 둘째는 화타(化他)요, 셋째는 득법(得法)이다. 뒤의 둘은 승진(勝進)이니, 첫째는 외익(外益)이요, 둘째는 내원(內圓)이다.
뒤의 다섯 중에 첫째는 현법(現法)이요, 둘째는 동찰(動刹)이며, 셋째는 신엄(身嚴)이요, 넷째는 입겁(入劫)이며, 다섯째는 설법(說法)이다. 이것들은 모두 이 위에서 털구멍 가운데의 일로서 송문(頌文)은 교묘하게 생략하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광시법주분(光示法主分)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이 세계[此界]이고 뒤는 통틀어 매듭 지음[結通]이다.
앞의 것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주(主)를 보이니 곧 교의(敎義)의 근원이요, 둘째 ‘어피(於彼)’ 이하는 법을 보인 것이니 곧 교의의 모습[相]이다.
처음 가운데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빛의 뜻을 밝힌 것이다. ‘무변불경(無邊佛境)’이라고 말한 것은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말해야 할 법을 알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곧 보현이다. 셋째는 부처님께서는 능히 설하지 못함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두 번째는 빛의 명상(名相)을 나타낸 것이니, 그 가운데 둘이 있다. 먼저는 광상(光相)을 밝혔으니, 미간(眉間)22)이라는 것은 중도 일승(中道一乘)의 법을 나타낸 것이다. ‘백호(白毫)’23)라고 한 것은 무류(無流)의 증도(證道)인 백정(白淨)의 법을 나타낸 것이다. 또 백(白)은 중색(衆色)의 근본이 되는 까닭에 이 일승이 모든 교의 근원이 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또 ‘호(毫)’라는 것은 긴 털이요, 또한 호모(毫毛)이다.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 의하면 “태자일 때에는 펼치면 길이가 다섯 자[尺]였으며, 나무 밑에 있을 때에는 길이가 1장(丈) 4척(尺) 5촌(寸)이었다. 성불해 마쳤을 때에는 이것을 놓으면 1장 5척이었다”라고 하니, 둥글게 말면 가을의 만월(滿月)과 같다. 분명히 드러나서 가설(珂雪)24)보다도 더 맑았다. 보색(寶色)이라는 것은 광의 체요, 등명(燈明)이라는 것은 광(光)의 용이다. 또 이(理)는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기 때문에 보색이라고 하고, 지(智)는 널리 비추는 것이기에 등명이라고 하였으며, 경(境)과 지(智)가 널리 이익되게 하는 까닭에 구름[雲]이라고 하였다. 또 마니(摩尼)와 같이 여러 가지 색[諸色]과 같기 때문이다. 둘째는 빛의 이름을 정함에 인인(因人)을 나타내기 위해서 보살이라고 이름했다. 세 번째 광(光)의 뛰어난 용[勝用]을 밝히는 가운데 첫째는 사(事)요, 두루한 것이며 넓은 것이다. 둘째는 이(理)요 바른 것[正]이며 깊은 것이다. 셋째는 설하게 된 원인을 밝힌 것이며, 큰 원력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넷째는 법문을 나타냈으니 대중으로 하여금 법이 보현문의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위의 경문에서는 이미 따로 보현을 비춘다고 말하지 않고, 무슨 까닭에 곧 현현(顯現)하여 대중에게 보인다고 말했는가. 위에서 비춘 것이 곧 보현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용을 거두어 근본[本]에 돌아가게 하는 가운데 호(毫)에서 나와서 발[足]로 들어가는 것은 위의 법으로써 아래에 전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고, 아래에 전하더라도 본(本)을 잃지 아니하는 것은 환입(還入)이다. 미간과 족하(足下)는 서로 다른 곳인데 무슨 까닭에 ‘환(還)’이라고 말하느냐고 한다면 상하가 둘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또 호광(毫光)이 보현을 비추는 것은 ‘과’가 ‘인’에 드리움을 밝히고 도리어 족하(足下)로 들어가는 것은 ‘인’이 ‘과’를 이루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로 법을 보인 것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 ‘연화’가 곧 소전(所詮)의 뜻임을 밝힌 것이요, 둘째 승음(勝音)은 곧 능전의 교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꽃에 앉는다는 것은 뜻에 맞추어 가면서 교를 베푸는 것이다.
처음 가운데 한 구는 총(總)이며, ‘어피(於彼)’라고 한 것은 장지(場地)요, 또한 상륜(相輪)이다. 연꽃이라는 것은 개부(開敷)의 뜻이요, 삼승의 물[水]을 낸다는 뜻이며, 물들지 않는다는 뜻이요, 미묘함을 나타낸 것이며 뭇 성인[衆聖]의 벌[蜂]이 채증(採證)하는 것이다. 둘째 보경(寶莖)이라는 것은 귀히 여길 만하다는 의미이며, 견고하다는 뜻이다. 셋째 장(藏)이라고 한 것은 함섭(含攝)의 뜻이요, 출생의 뜻이며, 덕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넷째 잎이라는 것은 부개(覆蓋)의 뜻이요, 넓고 커서 매우 깊다[廣大甚深]는 뜻으로서 법계에 두루하다. 향수(香鬚)라는 것은 분온(氛氳)하는 권속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염부단금(閻浮檀金)이라는 것은 곧 보배 가운데에 최고이기 때문이다. 금은 곧 귀한 모양[貴相]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호(毫)라고 한 것은 고출(高出)의 의미이다. 일곱째는 매듭 지음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법문이다. 만약 삼승을 기준으로 하면 이 사(事)에 의탁하여 따로 법을 표하지만 저 사(事)는 법에 즉(卽)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일승이라면 곧 저 사(事)가 바로 이 법이니, 즉 사가 현현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능전(能詮)을 나타내는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은 체를 표했고, 다음은 게송으로써 설상(說相)을 밝혔다.
앞의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교를 들었다. ‘부처님의 미간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증명[證]에 의해서 설(說)을 일으키는 것을 나타낸 것이며, 교는 부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마치 승류법계(勝流法界)와 같다. 또 논에 이르기를 “가장 청정한 법계로부터 흘러나오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보살을 낸다’는 것은 인인(因人)에 입히기 위한 까닭이다. ‘제법(諸法)’이라고 한 것은 곧 소전(所詮)이요 ‘승음(勝音)’이라고 한 것은 곧 능전(能詮)이다. 논에 이르기를 “계경(契經)은 문의(文義)로써 체를 삼는다”라고 하였다. 만약 일승에 의하면 이 보살은 이름에 즉해서 교의 체를 본다. 사람과 법이라고 한 것은 걸림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의 원만함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주반을 구족한다. 이치에 수순하는 까닭에 공경하여 에워싼다[敬遶]. 둘째는 뜻에 맞음으로 대(臺)와 수(鬚)에 앉는 것임을 밝혔다. 셋째는 뜻에 맞음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교로 하여금 성실하게 한다. 그러므로 덕을 찬탄하였다. 덕 가운데 4구가 있으니, 첫째는 아래로 군기(群機)에 맞추고, 둘째는 위로 부처님의 경계에 순하며, 셋째는 의해(義海)를 궁구하고 넷째는 불과에 돌아가게 함이다.
두 번째로 설상(說相)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은 승음(勝音)으로 교체의 뛰어남을 밝히고, 둘째는 염광(炎光)으로 교위(敎威)의 승용(勝用)을 밝혔다.
처음 가운데 세 게송이 있는데, 첫째는 한 부처님이 법계에 두루하되 도수(道樹)에 있는 것을 밝혔고, 둘째는 여러 부처님이 각각 법계에 두루하며 한가지로 한 털구멍에 앉아 있음을 밝혔으며, 셋째는 한 털구멍에서와 같이 일체도 또한 그러함을 밝히니 각각 주반을 구족하였다. 이 셋은 이와 같이 점차로 증광(增廣)한다. 또 해석하건댄 처음 하나는 노사나의 몸이 법계에 가득함을 밝히고, 뒤의 둘은 모공 가운데 한량없는 3세간을 나타내어 중중무진(重重無盡)함을 밝혔다.
두 번째로 교위(敎威) 가운데 ‘사자(師子)’라고 한 것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의리(義理)가 깊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에 빛이 비추는 것이요, 둘째는 이익되지 아니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불꽃[炎]이 의혹[惑]을 태운다. 셋째는 이학(異學)이 항복하지 아니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에 분신(奮迅)한다. 이 모두는 똑같이 교이기 때문에 또한 소리[音]라고 이름하였다.
송 가운데 앞에서는 법륜의 뜻을 밝혔고, 뒤에서는 경문을 해석했다.
앞의 것 가운데 전법륜(轉法輪)의 뜻을 간략하게 10문으로 나누니, 첫째는 석명(釋名)이요, 둘째는 변체(弁體)요, 셋째는 종류요, 넷째는 전상(轉相)이요, 다섯째는 분제(分齊)요, 여섯째는 전처(轉處)요, 일곱째는 전시(轉時)요, 여덟째는 전인(轉人)이요, 아홉째는 전기(轉機)요, 열째는 제문(諸門)이다.
첫째 석명(釋名)이라는 것은 법은 곧 궤지(軌持)의 뜻이니, 통틀어 네 가지가 있다. 이른바 교(敎)ㆍ이(理)ㆍ행(行)ㆍ과(果)이다. 윤(輪)은 곧 소성(所成)의 뜻으로서 또한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원만의 뜻이니 결감(缺減)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곧 구덕(具德)의 뜻이니 바퀴[轂]ㆍ바퀴살[輻]ㆍ덧바퀴[輞] 등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유용(有用)의 뜻이니, 이를테면 혹장(惑障)을 꺾어 구르기[嶊輾] 때문이다. 넷째는 전동(轉動)의 뜻이다. 이를테면 여기서부터 저기에 향하는 것이니, 곧 부처님으로부터 중생에 이르기 때문이다. 또한 저기로부터 여기에 향함이니, 곧 중생으로부터 불과에 이르는 까닭이다. 법은 곧 바퀴[輪]가 되니, 지업석이다. 또 바퀴는 곧 비유이니, 성왕(聖王)의 윤보(輪寶)와 같다. 이는 법의 바퀴인 까닭에 의주석(依主釋)이 된다.
둘째 체성(體性)이라는 것은 통틀어 논하면 교(敎) 등의 네 가지 법이 성(性)이 되지만 성을 이기면 오직 8정도(正道)만을 성(性)으로 삼는다. 계(戒)로써 바퀴를 삼으니,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을 말한다. 혜(慧)로써 바퀴살을 삼으니,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이다. 정(定)으로써 덧바퀴를 삼으니 이른바 정정(正定)이다. 나머지 정념(正念)ㆍ정정진(正精進)으로 장식함으로써 바퀴를 이룬다. 이것은 소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초교도 또한 같다. 또 오직 무분별지(無分別智)만으로써 법륜의 체를 삼는다. 또 오직 진리만을 성(性)으로 삼는다. 이는 종교(終敎)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혹은 이지(理智)가 함께 없어지고 교과(敎果)도 또한 없어져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는 것을 법륜의 체라고 한다. 이것은 돈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혹은 무진의 법계를 통틀어 섭수한다. 이를테면 인(人)ㆍ법(法)ㆍ교(敎)ㆍ의(義) 등 일체의 자재한 법문해(法門海)를 아울러 법륜의 체라고 한다. 제망이 중중하게 주반(主伴)을 구족한 것과 같다. 이것은 원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한 앞의 모든 위(位)를 섭수하여 이 가운데 다 갖출 때는 동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셋째 종류(種類)라는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먼저 소승 4제(諦) 아래에 각각 네 가지 뜻이 있다. 이를테면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 이 넷은 고제(苦諦)요, 인(因)ㆍ집(集)ㆍ유(有)ㆍ연(緣), 이 넷은 집제(集諦)이다. 멸(滅)ㆍ지(止)ㆍ묘(妙)ㆍ이(離), 이 넷은 멸제(滅諦)요, 도(道)ㆍ여(如)ㆍ적(迹)ㆍ승(乘), 이 넷은 도제(道諦)이다. 이 위의 십육 소지(所知)의 진리[諦]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만일 능지(能知)를 기준으로 하면 또한 각각 넷이 있으니, 안(眼)ㆍ지(智)ㆍ명(明)ㆍ각(覺)이다. 안(眼)이라는 것은 총체적으로 괴로움[苦] 등을 관하는 것을 말한다. 지(智)라는 것은 별도로 과거의 괴로움 등을 관하는 것이다. 명(明)이라는 것은 별도로 미래의 괴로움 등을 관하는 것이다. 각(覺)이라는 것은 별도로 현재의 괴로움 등을 관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4제에 각각 네 가지 뜻이 있다. 그러므로 십육을 이룬다. 『신대비바사론』 제79권에 이르기를 “안(眼)이라는 것은 법지인(法智忍)을 말하고, 지(智)라는 것은 모든 법지(法智)를 말한다. 명(明)이라는 것은 유지인(類智忍)을 말하는 것이요, 각(覺)이라는 것은 모든 유지(類智)를 말하는 것이다. 또 안이라는 것은 곧 관견(觀見)의 뜻이고, 지라는 것은 곧 결단의 뜻이며, 명이라는 것은 조요(照了)의 뜻이고, 각이라는 것은 이 경찰(警察)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3전(轉)25)하여 십육이 48행(行)의 법륜을 이룬다. 이것은 소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비바사론』에서 갖추어 설명한 것과 같다.
둘째 삼승 가운데 법륜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세 뜻이 있으니 첫째는 소승의 3전 4제와 같고 통틀어 3기(機)를 이익되게 하나니, 『밀적경(密跡經)』에서 밝힌 것과 같다. 이것은 곧 4제를 설하여 삼승을 갖춘 것이다. 3전(轉)이란 곧 공(空)과 상(常)과 정(淨)이니, 『유마경』에 이르기를 “세 번 법륜을 대천세계에 굴려도 그 바퀴[輪]는 본래 항상 청정하다”라고 하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초교(初敎)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둘째는 오직 대승만을 설함에 또한 3근(根)에도 통하는 것이니, 대소(大小)의 과를 얻음이다. 모든 대승경 가운데에서 설한 것과 같다. 혹은 모양[相]을 나누어 셋을 열면 전(轉)ㆍ조(照)ㆍ지(持) 등의 세 가지 법륜과 같다. 혹은 합하여 하나로 하니, 이를테면 오직 일실제(一實諦)이다. 상(上)은 종교(終敎)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셋째는 이언(離言)의 법륜이니 전(轉)과 부전(不轉)이 없고 사(四)ㆍ삼(三)ㆍ일(一)26)이 아니니, 가히 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돈교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셋째 일승의 법륜은 아래 경문에 준거하면 10제(諦)의 차별이 있으니, 설성제(說誠諦) 등을 말한다. 그것에 각각 10행이 있으니, 청정한 4무외(無畏)를 구족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다 합하면 1백 행의 법륜이 있다. 아래 경문에 준거하면 또한 10륜(輪)이 있으니, ‘과거의 원력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곧 열 번 백 행을 굴려서 천 법륜이 된다. 아울러 아래 경문을 찾아서 마땅히 널리 갖추어 나타낼 것이다. 어찌하여 모두 십(十)이라고 말하였는가. 무진을 나타내기 위한 까닭이다. 이는 곧 무진의 법계를 대법륜해라고 하여 항상 굴려서 휴식함이 없다.
넷째 전상(轉相)이라는 것은 소승의 3전(轉)27)에 둘이 있으니, 하나는 스스로를 위하여 굴림이니 초전(初轉)은 견도(見道)에 있어서 인상전(印相轉)이라고 하고, 다음 전[次轉]은 수도(修道)에 있어서 응작전(應作轉)이라고 하며, 후전은 무학도(無學道)에 있어서 이작전(已作轉)이라고 이름한다. 둘째 다른 이를 위하여 전(轉)하는 것이다. 처음은 시상전(示相轉)이라고 이름한다. 이는 곧 괴로움[苦] 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니, 교진여[陳如] 등으로 하여금 견도에 들게 함이다. 다음은 권지전(勸知轉)이라고 하니, 고(苦)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고, 집(集)은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이며, 멸(滅)은 마땅히 증득해야 할 것이고, 도(道)는 마땅히 닦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여 그로 하여금 수도에 들게 하였다. 뒤는 인증전(引證轉)이라고 하니, 이를테면 고(苦)는 내가 이미 알고 나아가 도(道)까지도 내가 이미 닦았다고 말하여 그로 하여금 무학도에 들게 함이다.
만약에 삼승 법륜이라면 또한 여기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앞의 말과 같다. 다만 의리(義理)에 차별이 있다. 보살의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면 『대품』 등의 경전에 준거하면 “이미 녹원에서 법륜을 굴릴 때 한량없는 중생이 보리심을 발한 것이며, 한량없는 보살은 초지(初地)를 얻은 것과 같고, 또 한량없는 일생(一生)의 보살은 일시에 성불한다”고 말한 것도 또한 마땅히 저 3전과 같다. 이것은 통(通)이고 별(別)이 아니니 별에 배합할 것이 아니다. 만약 일승에 의하면 끝없는 법계에 칭합하는 법륜을 굴려서 영향을 끼쳐야 할 중생과 동일한 법계로서 둘도 없고 다른 것도 없이 법과 같이 항상함이다. 무신(無新)의 변익(辯益)이란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다섯째 법륜의 분제를 밝히면 만약 소승이라면 한 뜻이 있다. 부처님께서 4제를 설하실 때 고(苦)와 무상(無常) 등 어음(語音)은 법륜에 들어서 거두어들이지만 ‘아난아, 비가 오느냐 안 오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은 세상의 말은 다 법륜이 아니다. 만약 삼승에서라면 부처님의 모든 말씀과 몸의 위의는 모두 다 법륜에 들어간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위의진지(威儀進止)는 불사 아닌 것이 없다”고 하니, 이로써 여기에 준거해 보라.
만약에 일승 가운데 통틀어 3세간이 함께 법륜에 든다면 일체 중생의 어언(語言)과 음성(音聲)도 또한 법륜에 들어간다. 국토의 법륜은 찰설(刹說) 등과 같으니, 여기에 준거해 보라.
여섯째 전처(轉處)라는 것은 소승은 오직 1사바(娑婆)와 백억 녹원 등의 처소[處]이다. 삼승은 혹은 1백억, 혹은 천 백억, 혹은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음을 한 부처님의 화경(化境)으로 삼는다. 일승은 널리 수형(樹形) 등의 세계와 나아가 화장(華藏)을 통하며 제망과 같이 중중한 주반이 있다. 경에 이르기를 “이것은 곧 노사나불이 항상 법륜을 굴리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일곱째 전시(轉時)라는 것은 소승과 삼승은 혹은 이칠일(二七日), 혹은 삼칠일(三七日), 또 혹은 육칠일, 혹은 칠칠일, 혹은 팔칠일, 혹은 오십칠일, 혹은 일 년 등이다. 이것은 모두가 곧 말교(末敎)로써 중생[機]에 따라서 보고 들음이 다를 뿐이다. 또한 전후를 서로 포함하는 등의 일도 없다. 일승은 본교이니 반드시 초시(初時) 제 이칠일에만 있고 또 다른 설[異說]은 없다. 인하여 전후에 각각 한량없는 겁 동안 생각생각 끊임없음을 하나하나의 생각[一一念中]에도 또한 각각 저 전후제의 겁을 포함한다. 또한 제망이 중중무진함과 같이 9세ㆍ10세의 소전(所轉)이다.
여덟째 전인(轉人)이라는 것은 앞은 주(主)이고 뒤는 반(伴)이다. 소승의 주(主)는 이를테면 석가의 생신(生身)과 화신불로서, 성문의 제자를 반(伴)으로 삼는다. 삼승의 주는 곧 삼신의 불로서, 성문과 보살을 반으로 삼는다. 이를테면 사리불 등과 같다. 일승의 주는 이를테면 노사나의 10신(身)이니, 보현 등의 보살로 반을 삼는다. 또한 제망과 같이 중중하게 나타남을 여기에 준거해 보라.
아홉째 전기(轉機)라는 것은 처음은 오직 소기(小機)를 위하고 다음은 통틀어 3기에 입히고 뒤는 오직 하나의 보기(普機)뿐이다. 여기에 준거해 보라.
열째 여러 문[諸門]이라는 것은 첫째 교와 염처(念處) 등을 법륜의 원인으로 삼는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성도를 얻기 때문이요, 둘째 복혜(福慧)의 만행(萬行)을 법륜의 권속으로 삼는 것이며, 셋째 진속 2제를 법륜의 경(境)으로 삼는 것이요, 넷째는 2장(障)의 사습(使習)이 곧 법륜의 끊는 바[所斷]이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보리 열반은 법륜의 과(果)이다. 여러 종파[諸宗]에서는 여기에 준거해 보라.
본문을 해석한다는 것은 송(頌) 가운데 열 개의 게(偈)가 있다. 이것을 넷으로 나누면, 처음 세 게송은 부처님의 법륜이 청정 광대함을 밝혔다. 이 가운데 처음 구는 교주(敎主)를 표했고 다음 구는 법륜의 청정함을 밝혔다. 청정이라는 것은 혹염(惑染)을 멸했기 때문이며, 청정한 이치[淨理]를 나타내기 때문이며, 교륜(敎輪)이 깨끗하기가 범륜(梵輪)과 같다. 아래는 법륜의 광대함을 밝혔는데, 여기에 6문이 있다. 처음 한 구는 교설(巧說)의 넓음이요, 두 번째 한 구는 설하는 사람의 넓음이다. 세 번째 두 구는 설하는 곳의 넓음이니, 가운데 국토해와 세계해를 한꺼번에 든 것은 이 둘은 서로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두 구는 설인(說因)의 넓음이니, 큰 원력으로 말미암아 설함으로써 미래제[來際]를 다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설시(說時)의 넓음이라고도 한다. 다섯째 두 구는 설기(說機)의 넓음이요, 여섯 번째 두 구는 언음(言音)의 넓음이다.
두 번째로 두 송이 있으니, 보현이 능히 널리 설법하는 것을 찬탄함이다. 하나는 부처님의 힘을 가피하기 때문에 어업(語業)으로 하여금 보변하게 하며, 또 하나는 신업이 이치[理]에 꼭 맞음으로 또한 두루 법을 비처럼 내림이다.
세 번째로 세 송이 있으니, 사나불이 설법함을 찬탄했다. 첫째는 어업(語業)이요, 둘째는 의업(意業)이니 빛을 냄이며, 셋째는 신업(身業)이다.
네 번째로 말후(末後)의 두 송은 삼세의 부처님도 또한 한가지로 설법하는 것을 찬탄한 것이다. 하나는 설법을 보였고, 다른 하나는 설법을 듣게 함이다.
아래 결통(結通)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위에 모인 대중이 시방세계에 통함을 맺었고, 다른 하나는 이미 법을 보인 뒤에 있어서 매듭 지을 때는 곧 법을 보임도 또한 시방에 통하는 것임을 안다.
시법주분(示法主分)을 마친다.
제3 법주입정분(法主入定分)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먼저는 여러 모임[諸會]을 요간(料簡)함이다. 그 가운데 넷이 있으니, 첫째 유무(有無)라는 것이 오직 제2회에서만 없는 것은 표할 법이 아직 위(位)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요, 다른 모임[餘會]은 표할 법이 위를 이루기 때문이다.
둘째 출(出)ㆍ불출(不出)이라는 것은 오직 제8만이 불출이니, 한번 법계를 증득하면 물러나거나 잃어버림이 없음을 표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교화[化]를 일으키는 것을 표하기 때문이다.
셋째 인과라는 것은 처음과 칠과 팔을 과정(果定)이라고 하니, 처음에 과를 설하기 때문이다. 칠은 행이 깊기 때문이고, 팔은 증(證)이 현묘하기 때문이며, 나머지는 다 인(因)을 설했기 때문이다. 또 해석하건대 제7 가운데 또한 통틀어 인의 뜻도 있으니, 화엄은 이 인행(因行)이 이루어져 장엄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 판단과 같다면 모두 4구가 있어야 한다. 혹은 오직 과뿐이니 처음과 팔을 말한다. 혹은 오직 인이니, 삼ㆍ사ㆍ오ㆍ육을 말한다. 혹은 인이기도 하고 또한 과이기도 하니, 제7을 말한다. 혹은 인도 아니요 과도 아니니, 제2를 말하는데 모두 없기 때문이다.
넷째 능입(能入)의 사람이라는 것은 오직 제8만을 부처님 스스로 드는 것이니, 법계에 해탈 자재해서 오직 부처님만이 다할 수 있음을 표현한 까닭이다. 처음은 비록 과를 설한다 할지라도 중생[物]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해서이며 칠은 행이 비록 깊다 할지라도 이 인인(因人)의 행인 까닭이다.
두 번째 경문을 해석한다는 것 가운데 둘이 있으니, 먼저는 차토(此土)이고 나중은 결통(結通)이다.
처음 가운데 부처님 앞에 앉았다는 것은 인과 과가 서로 여의지 않는 것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선정에 드느냐는 것은 증득하지 않으면 설하지 못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며, 가피를 받고자 하기 때문이며, 대중의 의심을 없애 주기 위한 까닭이다. 무엇 때문에 과정(果定)에 드는가. 과법(果法)을 설하기 위해서이다. 무엇 때문에 인인(因人)이 드는가. 인인에게 입히기 위해서이다.
정(淨)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자성정(自性淨)이요, 둘째는 치혹정(治惑淨)이요, 셋째는 선근정(善根淨)이요, 넷째는 익용정(益用淨)이다. 장(藏)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함섭(含攝)이요, 둘째는 온적(蘊積)이요, 셋째는 출생(出生)이요, 넷째는 무진(無盡)이다. 삼매(三昧)라는 것은 여기에서 등지(等持)라고 말한다. 부침(浮沈)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정혜(定慧)가 고르기 때문에 등(等)이라고 하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한 경계에 머물기 때문에 지(持)라고 이름한다. 법을 받아들여서 마음에 둠을 정수(正受)라고 한다. 이 가운데 정의 장[淨之藏]과 정즉장(淨卽藏)과 여래의 정장[如來之淨藏]과 여래즉정장(如來卽淨藏)과 정장의 삼매[淨藏之三昧]와 삼매즉정장(三昧卽淨藏)으로서 모두 두 가지로 해석한 것이니, 이것을 생각하여 보면 알 수 있다.
아래는 그 뜻을 해석하여 나타낸 것이다. 처음 구에서 여래를 해석하고 나중 구에서는 정장을 해석하였다. 이구(離垢)라는 것은 깨끗함이요, 만족이라는 것은 장(藏)이며, 허공이라는 것은 위의 두 가지를 비유한 것이다.
결통(結通)이라는 것은 이 경의 일체 처에서 설하여 총체적으로 1부(部)를 이루는 것이니, 이를테면 곧 일체 부(部)이다. 지금 우선 이 한 방위[一方] 가운데 일[事]을 거론한 것이다. 그 본부(本部)를 단정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주 문장의 끝에 일체를 조취(釣取)하여 본부를 결성(結成)함으로써 무진무진을 밝혔다.
이것으로 인하여 간략하게 들어가야 할 삼매의 분제 차별(分齊差別)을 밝히니, 그 가운데 10중(重)이 있다. 첫째는 일체 정(一切定)의 무애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분(起分) 가운데 “보현보살은 저 삼매로부터 일어날 때 세계 티끌 수와 같이 많은 삼매로부터 일어났다”라고 밝혔다. 해석하여 이르기를,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이 선정[定]은 많은 삼매를 함섭(含攝)하며, 또 다른 하나는 이 선정이 널리 많은 삼매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이 선정은 곧 저 티끌과 같은 삼매해(三昧海)이다.
둘째는 일체처의 무애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경문에 “보현보살이 이 세계에서 삼매를 정수(正受)할 때 진법계 허공계와 같은 일체 불찰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여기에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선정 가운데 시방세계를 포함하며, 다른 하나는 이 선정이 모든 진도(塵道)에 두루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일체시의 무애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기분(起分)에 “보현은 일체 삼세의 삼매로부터 일어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여기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선정이 삼세를 포함함과 널리 3제(際)에 들어감이다.
넷째는 이 위의 3중(重)을 융합하여 하나의 보현삼매 무애자재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설이 곧 한 선정[一定]이 되기 때문이며 서로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위의 티끌과 같은 삼매해 가운데 하나[一]를 따라서 일체의 모든 선정[定]을 갖춤이다. 각각 시방을 포함하여 삼세를 다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한 삼매와 같이 일체도 또한 그러하다.
일곱째는 한 티끌[一塵] 안을 따라서 곧 보현원명(普賢圓明)의 삼매를 볼 때 각각 시방을 섭수하여 또한 삼제를 다하는 것이다.
여덟째는 한 티끌 안에서와 같이 일체의 진도(塵道)도 다 또한 이와 같다.
아홉째는 일념 가운데를 따라서 곧 보현이 있는데 티끌과 같은 선정에 든다. 각각 진도(塵道)를 포함하여 시방의 세계를 다하고 또 9세ㆍ10세 등을 다한다.
열째는 일념 가운데서와 같이 나머지 염염(念念) 가운데에서도 전후제를 다하나니, 일체의 겁해(劫海)도 다 또한 이와 같다.
이와 같은 10중으로 법칙을 삼아 나머지 일체의 법 가운데에서도 일체의 위(位) 가운데와 또 교의(敎義)ㆍ이사(理事) 등을 여기에 준거하여 생각해 보라.
입정분(入定分)을 마친다.
제4 제불가지분(諸佛加持分)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여러 모임[諸會]을 가림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 유무라는 것은 이회ㆍ칠회ㆍ팔회의 세 모임에는 없으니, 이회는 지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이며 선정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칠회는 행(行)이 법에 의지함으로써 앞의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팔회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선정에 들어서 가피를 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모임은 이러하지 않으므로 모두 있다.
둘째는 부처님과의 원근(遠近)과 다소(多少), 그리고 그 이름이 다르므로 모두 글에서와 같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경문을 해석하는데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구가(口加)와 소위(所爲)이다. 둘째는 의가(意加)이고, 셋째는 신가(身加)이다. 또 처음은 설법하기를 권해서 변재를 더하고, 다음은 가만히 가피를 입혀서 지혜를 더하고, 나중은 이마를 어루만져 깨닫게 함이다.
그런데 가(加)와 찬(讚)이 서로 이루어서 네 구가 있다. 첫 구는 가피만 있고 찬탄하지는 않나니 부처님의 의(意)와 신(身), 2가(加)와 같다. 두 번째 구는 찬탄하지만 가피하지는 않나니, 모든 보살이 게송으로 찬탄한 것과 같다. 세 번째 구에는 또한 가피도 하고 찬탄도 함이니, 부처님의 구업과 같다. 네 번째 구는 가피함도 없고 찬탄함도 없으니 나머지 문장과 같다.
입[口]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가피하여 찬탄함[加讚]을 밝혔고, 둘째는 소위(所爲)를 해석한 것이다.
처음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모든 부처님이 본찰(本刹)을 움직이지 아니하고 몸을 여기에 나타내는 것을 밝혔다. 저것은 곧 이것으로서 저것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며, 먼 것이 곧 가까운 것이로되 먼 것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임을 밝혔다. 연기성(緣起性)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깊은 선정[深定]을 얻는 것을 찬탄함이다. 셋째는 선정[定]의 원인을 밝혔다. 처음은 타력(他力)이고 나중은 자력(自力)이다. 또 과력(果力)과 인력(因力)으로써 연기 합성(緣起合成)한 것이다. 또 ‘부처님의 본원’이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옛적에 일찍이 이 일[事]을 보고 인행(因行)시에 곧 서원을 발하여 지금에야 서원이 이루어진 것임을 밝혔다.
【문】 소위를 해석하는 가운데 무슨 뜻으로 가피하는가?
【답】 이 법을 설하기 위해서이다. 그 가운데 10구(句)가 있으니 처음 한 구는 총체적인 것으로서, 이를테면 일승의 법륜은 최초로 굴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법륜(果法輪)이기 때문에 부처라고 말한다. 별(別) 가운데 아홉이 있으니, 첫째는 소전(所轉)의 뜻으로 법륜의 체이다. 개(開)는 현(現)과 같다. 둘째 교묘히 굴려서 근원을 다한다는 것은 법륜의 모습[相]이다. 또 시방이란 것은 처소[處]를 결통(結通)함이다. 셋째 미묘하게 혹장을 제거한다는 것은 곧 법륜의 용(用)이다. 넷째 시방에 가지런히 굴린다는 것은 법륜의 처(處)이며, 또 국토해를 다함이다. 다섯째 인(因)을 굴려서 과(果)에 든다는 것은 법륜의 분제이다. 여섯째 한 문(門)에 일체의 과를 포함함은 법륜의 덕(德)이다. 일곱째 교묘하게 과를 즐기는 것은 곧 법륜의 경계이다. 여덟째 교묘하게 세속을 따르는 것은 법륜의 방편이다. 아홉째 근기[根]를 살펴서 법을 주는 것은 곧 법륜의 소피(所被)이다. 동(同)ㆍ이(異)ㆍ성(成)ㆍ괴(壞)는 이에 준하여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의가(意加)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가(加)이고 뒤는 석(釋)이다.
처음 가운데 하나는 총(總)이고 나머지는 별이다. 별 가운데 첫째는 법지(法智)를 증득한 것이니, 5해(海)의 지혜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무변이라고 말한다. 둘째는 진변지(盡遍智)이니, 5해를 궁진하여 3제(際)의 부처님을 모두 포함함이다. 셋째는 성괴지(成壞智)이니, 이를테면 5해의 집산(集散)이 또한 세계해이다. 넷째는 소화지(所化智)이니 5해가 염(染)을 기준으로 한 것도 또한 중생해이다. 다섯째는 이지(理智)이니, 이를테면 5해가 다 깊은 것도 또한 법계해이다. 여섯째는 삼매지(三昧智)이니, 이를테면 5해가 다 선정의 경계[定境]이다. 일곱째는 근욕지(根欲智)이다. 여덟째는 어변지(語辯智)요, 아홉째는 신변지(身遍智)이다. 열째는 원음지(圓音智)이니, 이것은 다 5해 등에 통한다. 여기에 준거해 보면 아래의 10지(智)와 매우 같다.
해석 가운데 먼저는 질문[徵]이고 뒤는 해석[釋]이다.
【문】 모든 부처님에게는 힘이 있고 자비가 있는데 무슨 까닭에 보현에게만 가피하시고 나머지는 가피하시지 않는가?
【답】 장자인 까닭이며, 대중의 우두머리인 까닭이며, 부처님의 원력을 다한 까닭이며, 본원이기 때문이며, 큰 덕[普德]을 갖춘 까닭이며, 정법(定法)을 얻었기 때문이며, 나머지 사람은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대체로 이 선정[定]이 있는 곳은 모든 부처님 법이 으레 다 저기에 모인 것이 바다가 으레 저 중류(衆流)를 거두어들임과 같다. 그러므로 법(法)이라고 말한다. 연기의 법문은 이수(理數)가 그러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모든 부처님은 지단(智斷)의 2덕(德)을 사람들에게 주셨다.
【문】 부처님은 어찌하여 스스로 설하지 않았는가?
【답】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설한 바가 이미 현묘함으로써 인인(因人)이 분(分)을 끊을까 두려워한 까닭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어찌하여 나머지 사람은 설하지 않는가. 보법(普法)을 설하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이 법을 설할 때는 반드시 모든 부처님을 갖추어 함께 설할 것을 밝혔다. 만약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하면 이치가 가피하여 줄 만한 것이 없고 문득 함께 설함을 어기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보현이 한 번 설하는 것이 곧 일체 부처님이 설하시는 것이다.
세 번째로 신가(身加) 가운데 무엇 때문에 만지느냐고 한 것은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며, 부처님의 위덕을 갖추게 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불신은 아직 반드시 여기에 온 것이 아니며, 손을 펼쳐도 아직 반드시 길게 뻗친 것도 아니며, 각각 이마에 부딪쳐도 아직도 반드시 서로 방해하지 아니하고 다 동시에 만져도 아직 반드시 앞과 뒤가 없으니 모두가 연기 자재 무애함이다. 이것을 생각하여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가지분(加持分)을 마친다.
제5 대중동청분(大衆同請分)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 장행은 곧 설하지 아니함을 괴이하게 여겨 뒤의 청을 일으킨 것이다. 또한 신(身)ㆍ의(意) 두 업(業)의 청(請)을 갖추니 공경은 신(身)이고 관찰은 의(意)이다. 두 가지가 모두 일심에 오로지 머무는 것이다. 뒤는 바른 어업[正語業]이다.
청(請) 가운데 위의 청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다른 이유는 보현에게 청한 까닭이며, 이 분이 설법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 여기에서는 신(新)ㆍ구(舊) 두 대중을 갖추었기 때문에 앞의 것과 같지 않다. 질문한 법은 전과 다르지 않으므로 따로 열거하지 않는다.
열 개의 송을 셋으로 나누니, 처음 여덟은 법주(法主)를 찬탄하여 청하였고, 다음 한 개의 송은 설해야 할 법을 들어 청했으며, 뒤의 한 송은 대중이 듣기 좋아함을 찬탄하여 청한 것이다.
처음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다섯 송은 전체적으로 보현의 덕을 찬탄하고, 뒤의 셋은 따로 설법의 덕을 찬탄하였다. 또한 앞에서는 설의 인(因)이 있음을 찬탄하였고, 뒤는 설의 과가 있음을 찬탄하였다. 앞의 것은 간략하게 보현의 열 가지 공덕을 나타내었다. 첫째 인행의 원(願)이 원만함이요, 둘째 과덕이 평등함이니, 처음 한 송은 이것을 나타내었다. 셋째 색신이 보변함이요, 넷째 복과 지혜가 깊고 넓음이니 제2의 한 송에서 나타내었다. 다섯째 널리 불해(佛海)를 보고, 여섯째 능히 티끌처럼 많은 세계를 나타내니 제3의 한 송(頌)에 이를 나타내었다. 일곱째 널리 때와 처소에 두루함이요, 여덟째 깊은 선정[深定]이 항상 나타남이니 제4의 한 송에 이를 나타내었다. 아홉째 체는 법계에 가득함이요, 열째 용(用)은 중생해에 두루함이니 곧 전자는 지혜[智]이고 후자는 비(悲)이다. 제5의 송에 나타내었다. 또 이러한 10덕을 포함해서 5대(對)가 되니, 첫째는 인과요, 둘째는 신지(身智)요, 셋째는 견현(見現)이요, 넷째는 심광(深廣)이요, 다섯째는 체용(體用)이다. 아래에 별도로 서로의 덕을 찬탄한 가운데 처음 송은 증단(證斷)을 인으로 삼아서 널리 두루하고 널리 설하신 것을 찬탄함이니, 처음 구는 이치를 증득함이요, 다음 구는 장애를 끊음이요, 또 다음 구는 널리 두루함이요, 아래 구는 널리 설함이다. 두 번째 한 송은 내외를 인으로 하여 능히 이익되게 하고 미묘하게 설한 것을 찬탄함이다. 이를테면 처음 구는 보현의 내증(內證)을 찬탄한 것이니 일체의 불덕해로부터 생하는 것이다. 다음 구는 밖으로 능히 널리 설법의 광명 구름을 놓는 것을 찬탄함이다. 다음 구는 능히 대중을 이익되게 하고 그 청정한 행[淨行]을 굳게 함을 찬탄한 것이다. 아래 구는 이것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능히 묘하게 부처님의 경계[佛境]를 설함이다. 세 번째 한 송은 깊은 행[深行]을 인으로 하여 능히 구름비와 같이 설법하는 것을 찬탄함이다. 이상 셋 가운데 만약 능설(能說)의 변(辯)을 기준으로 하면 첫째는 광설(廣說)이요, 둘째는 묘설(妙說)이요, 셋째는 돈설(頓說)이다. 만약에 소설(所說)을 기준으로 하면 첫째는 불법(佛法)이요, 둘째는 불경(佛境)이요, 셋째는 법계이다.
그 다음 아래의 한 송은 소설의 법을 밝혔다. 처음 한 구는 총(總)으로서 아래 경문의 화장계 등을 들었고, 다음 구는 아래 경문의 불엄정(佛嚴淨)의 사(事)를 들었다. 다음 구 가운데 능입(能入)은 곧 불해(佛海)ㆍ법계해이고 소입(所入)은 중생해ㆍ근욕해(根欲海)이다. 아래 구는 결청(結請)이다. 맨 마지막 한 송은 대중[衆]에게 두 가지 덕이 있어서 들을 만한 것을 찬탄함이니, 첫째는 낙욕(樂欲)이고, 둘째는 근기(根器)이다. 앞의 것 중에 또한 둘이 있으니, 첫째 몸은 오만과 게으름을 여의었기 때문에 ‘공경’이라고 말하고, 둘째 마음은 다른 생각을 여읜 까닭에 ‘보현을 본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근기 가운데 비록 일심으로 듣기를 좋아한다 할지라도 만약 지혜가 없으면 받아들일 수가 없다. 여기에 또한 둘이 있으니, 하나는 깊은 지혜[深智]가 깊은 이치를 통달한 때문이요, 둘째는 넓은 지혜[廣智]가 넓은 일을[廣事] 비추어 본 때문이다. 아래 구는 설법하기를 바라는 청을 매듭 지었다.
동청분(同請分)을 마친다.
제6 정내약설본분(定內略說本分) 가운데 둘이 있으니, 먼저는 5해를 관하고 나중은 10지(智)를 설함이다. 또 전자는 곧 소관(所觀)의 경계이고 후자는 곧 능관의 지혜이다. 또 전자는 곧 증(證)의 근본이고 후자는 곧 교(敎)의 근본이다.
무엇 때문에 선정을 일으키지 않고 설하는가. 말하자면 선정은 용(用)에 걸리지 않음을 밝혔기 때문이며, 법의 깊은 것을 기현(寄顯)한 까닭이며, 두 가지 다 합하여 행하기 때문이다.
처음 가운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경해(境海)가 깊으므로 관하는 것은 자력이 아님을 밝혔고, 뒤에는 바르게 법을 관하여 살핌이다.
5해를 간략히 10문으로 나눈다.
첫째는 의상(義相)을 밝힘이니, 이른바 무진원명성해장(無盡圓明性海藏) 가운데 이 다섯 가지 뜻을 나누었다. 첫째는 소의(所依)의 뜻으로서 일체를 통하나니 여기에 준거하라.
둘째는 맹발(萌發)28)의 뜻이며 적취(積聚)의 뜻이다. 셋째 궤용(軌用)29)의 뜻이요, 넷째 교별(巧別)의 뜻과 성별(性別)30)의 뜻이다. 다섯째 각원(覺圓)의 뜻이니 이 다섯 가지는 모두 하나가 곧 나머지 넷을 갖추며 아울러 심광(深廣)ㆍ무진(無盡)ㆍ구덕(具德)ㆍ난사(難思)인 까닭에 해(海)라고 말한다.
둘째는 염정(染淨)을 기준으로 한 것 중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별(別)이니, 혹 오직 정(淨)이니 불해를 말하는 것이요, 혹은 오직 염(染)이니 중생해를 말한다. 혹은 구(俱)이니 세계와 근욕을 말하는 것이요, 혹은 불구(不俱)이니 법계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통(通) 혹은 구정(俱淨)이니, 중생 등도 또한 반류(返流)31)하는 까닭이며 본정(本淨)이기 때문이다. 혹은 염(染)이니 부처 등도 또한 수연(隨緣)하기 때문이며, 혹은 함께 함, 혹은 함께 하지 않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여 준거하라.
셋째 이사(理事)를 기준으로 한 것 중에 또한 네 구가 있으니, 모두 포함한 것임을 알 것이다.
넷째는 인법(人法)을 기준으로 한 것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따로따로 말하면 중생과 부처는 곧 사람이요 법계는 법이다. 근욕도 또한 사람이며 또한 법이다. 세계는 사람도 아니고 법도 아니다. 두 번째 통틀어 말하면 또한 네 구를 갖추었으니, 모든 것을 포함하였음을 알 것이다.
다섯째는 인과에 의한 것에도 또한 둘이 있으니, 별(別) 중에 세계는 함께함이고 법계는 함께하지 아니함이다. 나머지 두 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통(通) 가운데도 또한 네 구가 있으니 생각하여 준거하라.
여섯째는 3세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일곱째는 경지(境智)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덟째는 의정(依正)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아홉째는 3보(寶)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위의 네 문(門)은 모두 통별(通別)의 구(句) 등이 있음을 생각하여 준하라.
열째는 융섭(融攝)을 기준으로 한 것 중에 둘이 있다. 먼저는 해(海)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를테면 세계가 곧 중생이다. 아래의 중생형세계(衆生形世界)라고 한 것과 같다. 세계는 곧 법계이니, 법계 불가괴(不可壞)의 연화세계해(蓮花世界海)와 같다. 세계해는 곧 근욕이다. 마음은 세계를 만든다고 말한 것과 같다. 세계가 곧 부처이니 국토신과 같다. 둘째 중생이 곧 세계라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앞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한 중생이 곧 법계이니 경에서 “이 법신이 5도(道)에 유전함을 이름하여 중생이라고 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또한 “중생이 곧 근욕이니 심(心)ㆍ심소(心所)에서 짓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또한 중생이 곧 부처이니, 이는 10신(身) 가운데 중생신(衆生身)이요, 또 중생이 곧 진(眞)이기 때문이다. 뒤의 3해(海)의 하나하나가 곧 나머지를 갖추는 것은 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지(智)에 의한 것 중에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먼저 따로 말하면 처음 세 가지 지혜는 곧 앞의 3해지(海智)요, 나중의 일곱 가지 지혜는 곧 뒤의 2해지(海智)이다. 둘째 통틀어서 말하면 1지(智)에 5해(海)가 있으며, 1해에 10지가 있어서 용융하므로 모두 거두어들이려고 생각한다.
5해는 매우 깊고 현묘한데[深玄] 반수(半數)에 붙여서 설함은 믿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10지(智)는 초추(稍麤)함이로되 10수(數)에 붙여서 설하는 것은 그 근본을 회통하는 까닭이다. 이런 까닭에 경계와 지혜는 다르지 아니하고 추(麤)와 묘(妙)는 항상 다르다. 이것은 일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 『해심밀경』에 “여래의 소행과 여래의 경계는 여기에서 어떤 차별이 있는가”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여래의 소행이라는 것은 일체종(一切種)의 여래가 함께 소유하는 한량없는 공덕중(功德衆)에 장엄되는 청정한 불토를 말한다. 여래의 경계라는 것은 이른바 일체종의 5계(界)의 차별이니, 이른바 유정계와 세계와 법계와 조복계와 조복방편계(調伏方便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지지(地持)』와 『유가(瑜伽)』도 또한 이 다섯을 이름하여 5무량(無量)이라고 이름하니, 이 다섯은 이미 여래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뒤에 지(智)를 설하여 회관지(廻觀智)라고 이름하니, 이는 삼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문】 이미 바다를 관하는데 어찌하여 바다를 설하지 않고 지혜[智]를 설하는가?
【답】 바다는 경계를 증명[證]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저를 설하고자 할지라도 곧 이 지혜를 설한 것이니, 사람이 절[寺]에 이르러서 탑을 보면 자기 마음에 훈습해 있어서 뒤에 집에 돌아가서 탑을 설명할 때에는 곧 이 마음을 설하고 저 탑을 설하지 않는 것과 같다.
【문】 이미 선정[定]에 있었으니 설할 수 있는데 뒤에 어찌하여 모름지기 일으켜야 하는가?
【답】 법에 붙이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선정에 있어서 바다를 관할 때는 이 마음 가운데 있으므로 가장 섬세하다. 10지(智)가 바다를 관할 때는 비록 선정 중에 있다 할지라도 말에 맡겨서 있기[寄在] 때문에 두 번째로 섬세하다. 설분(說分)이 가장 거친[麤] 것은 기(機)에 나아가기 때문이며 출정(出定)의 표시이다. 이는 곧 설(說)은 지(智)로써 근본을 삼고 지는 바다로써 근본을 삼음이니, 설은 지(智)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지는 이(理)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경문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는 지(智)를 의지함이요, 둘째는 설할 것을 허락함이요, 셋째는 설하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 가운데 불자(佛子)에 대하여 다섯 가지 뜻이 있으니, 『섭론』에서 “첫째는 대승을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종자로 삼는 것이요, 둘째는 반야를 어머니로 삼는 것이며, 셋째는 선정[定]을 태(胎)로 삼는 것이요, 넷째는 대비를 유모로 삼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부처님을 아버지로 삼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열 가지 뜻이 있으니, 아래 미륵지식처(彌勒知識處)에서 설한 것과 같다.
10지(智)라는 것은 첫째 성(成)이 곧 패(敗)임을 말미암아서 정(淨)을 이루나니, 패도 또한 그러하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머지 아홉 가지를 갖추므로 불사(不思)라고 이름한다. 이 불사의 구(句)는 아래 아홉 구에 두루하다.
둘째 가운데 중생이란 것은 공(空)과 유(有)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며, 유(類)가 많기 때문이며, 상즉(相卽)하기 때문이며, 상입(相入)하기 때문이며, 일체 법을 갖추기 때문이며, 근성이 많기 때문에 또한 불사이다. 또 계(界)라는 것은 곧 여래장(如來藏)이니, 연(緣)을 따라 중생이 되는 것을 기(起)라고 이름한다. 또 기(起)는 지(智) 가운데에 있다.
셋째 가운데 하나는 유위(有爲)를 기준으로 한 것이요, 둘은 무위(無爲), 셋은 구(俱), 넷은 불구(不俱)에 의한 것이다. 각각 염정(染淨)에 통하는 것임을 생각하여 준거하라. 근욕은 위의 두 가지 지혜 가운데 섭수되어 있고 또한 아래의 일곱 가지에도 포함되어 있으니, 위에서 질문한 가운데 밝힌 것과 같다. 아래 일곱 구는 불해(佛海)를 밝힌 것이다.
넷째 걸림이 없는 것이다.
다섯째 근기[根]에 맞추어서 주기 때문이며 널리 굴리기 때문이다. 여섯째 덕을 나타내는 것이요, 일곱째 광음(光音)이기 때문이며, 여덟째 3륜(輪)에 섭수되는 까닭이다. 아홉째 깊은 선정[深定]이기 때문에 상즉하고 또한 체와 용이 다 무너지지 아니한다. 열째 총체적으로 따로따로 밝힌 것들을 거두어 매듭 짓는다.
본분을 마친다.
제7 기정성익분(起定成益分)이니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먼저는 주반의 선정으로부터 일어남이니, 앞에서는 선정[定]이 용(用)에 의하여 장애되지 아니함을 밝힌 까닭에 10지(智)를 설했지만 여기서는 용이 선정을 장애하지 않는 것을 밝히므로 불괴(不壞)라고 말하니, 저 선정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무너뜨리는 않는가. 방편지로 말미암아 해석해 나타낸 까닭이다. 둘째는 이익을 일으키는 가운데 또 둘이 있다. 먼저는 안으로 유익함에 또한 둘이 있으니, 하나는 이 대중을 유익하게 함이다. 그 가운데 넷이 있으니, 첫째는 법체를 증득하고, 둘째는 증명에 의하여 교지(巧智)를 일으키는 것이며, 셋째는 지(智)에 의하여 묘변(妙辯)을 일으키는 것이며, 넷째 설에 단절이 없음이니 원력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결통하여 원(圓)을 나타냄이다. 둘째 바깥을 이익되게 하는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동(動)이고, 둘째는 익(益)이니, 이를테면 움직일 때는 두려워하여 여기에 돌아오게 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또 안선(安善)은 인이고 수락(授樂)은 과이다. 또 움직일 때는 무너뜨려서 여기에 돌아오게 하기 때문에 보배[寶]로써 장엄한다. 셋째 보배를 비처럼 내림이니, 이것은 곧 법문이다. 이것으로써 감(減)해진 십(十)32)이기 때문에 십이라고 표하면서도 칠(七)만을 열거했다.
제8 모광찬덕분(毛光讚德分)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 ‘일체 여래의 털구멍과 빛’ 등이란 것은 이 위의 능가(能加)의 불(佛)이다. 보현의 덕을 찬탄하여 구덕(具德)의 설법을 나타내고 대중으로 하여금 존중하여 갈앙(渴仰)이 생기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위의 광명찬탄음성지(光明讚歎音聲智)이다.
둘째 열네 송을 둘로 나누면 처음 여덟은 보현의 광대한 3업이 부처님의 근원[源底]을 다하는 것을 찬탄한 것이니, 그 가운데 처음 세 송은 몸[身]이요, 다음의 반은 말[語]이며, 다음의 두 송 반(半)은 뜻[意]이다. 이 가운데 처음 하나 반은 선정[定]이고, 뒤의 하나는 혜(慧)이다. 다음의 둘은 부처님의 근원을 다함이요, 뒤의 여섯은 체와 용이 두루하고 걸림이 없어서 중생[機]에 응함을 찬탄한 것이다. 이 가운데 처음 하나는 체가 두루함이니 보현의 몸이 이 모임에 있어서 곧 시방 무변의 세계의 하나하나마다 다 항상 저곳에 있음을 보지만 본래 당처(當處)에 있어서 몸은 나누어지지 아니하고 또한 오고감도 없다. 일체의 티끌 가운데 일체의 중생 몸 가운데서도 모두 또한 이와 같다. 중생 등은 곧 여(如)인 까닭에 이 보현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일승에 있어서는 부처님의 나라도 또한 보현과 같아서 원만히 두루하지만 지금 승(勝)에 나아가면 알기 쉽기 때문에 토(土)를 간별하고 이(理)를 기준으로 해서 삼승에 붙여 일승을 나타낼 뿐이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뒤의 다섯은 용을 밝힌 것이니, 첫 번째 송은 몸을 나타내고, 두 번째 송은 법을 나타내며, 세 번째 송은 정원(淨願)이요, 네 번째 송은 중생을 말하고, 다섯 번째 송은 현(現)과 지(知)이다.
제9 허설영희분(許說令喜分) 가운데 또한 두 가지가 있다.
먼저는 장행으로 뜻을 표함이니, 이를테면 앞에서 본분을 듣고 이미 환희를 생하였고 지금은 다시 설분을 허락하기 때문에 ‘거듭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송에서는 즐거운 일을 나타내었다. 이 가운데 열 개의 송이 있는데 세 부분으로 나누면, 처음 두 송 반은 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덕은 생각을 초월하므로 헤아릴 수 없음을 말했다. 이 가운데 첫째 송은 깊은 지혜[深智]에 의해서 설법한 것이요, 둘째 송은 국토를 장엄하여 중생을 조복하였다. 셋째 송의 반은 능화(能化)와 소화(所化)의 끝없어 헤아리기 어려움을 통틀어 매듭 지었다.
두 번째로 다섯 송 반이 있어서 중생을 경책하여 깨끗하게 하여 법기(法器)가 되게 함이다. 그 가운데 처음 반 송은 들을 수 없는 사람을 가려낸 것이니, 말하자면 ‘악을 좋아한다’라는 것은 악취(惡趣)33)의 인을 짓는 것이다. 유(有)에 집착하는 자는 설사 선업을 짓더라도 악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래 구는 아님[非]을 매듭 지음이니, 이를테면 ‘능히 알지 못한다’라는 것은 그릇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다음 한 송은 3력(力)을 갖추어야 비로소 그릇이 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니, 첫 구는 숙세의 선근력(善根力)이요, 둘째 구는 가까운 선우력(善友力)이며, 셋째 구는 부처님의 호념력(護念力)이다. 아래 구는 매듭 지어서 이 중생은 능히 상지(上智)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한 송은 7심(心)을 갖추어야 비로소 법을 들을 수 있음을 말했으니, 첫째는 직심(直心)으로 아첨[諂曲]을 여의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정심(淨心)으로 허물을 구하는 것 등을 여읜 까닭이다. 셋째는 자심(慈心)이니 물(物)을 이익되게 하기 위한 것이요, 넷째는 비심(悲心)이니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다섯째는 깊은 마음[深心]이니 수행을 위한 것이요, 여섯째는 신심(信心)이니 심법(深法)을 받는 것이다. 일곱째는 무염족심(無厭足心)이니 목말라 하는 마음을 채움이 없는 까닭이다. 아래 구는 매듭 지음이니, “저들은 이 법을 듣고 기뻐함이 한량없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2송 10문은 일체의 법을 들을 수 있는 그릇을 통틀어 분별한 것이다. 다음 두 송은 따로따로 이 대중을 거론한 것이다. 처음 하나는 4덕(德)을 갖추어서 부처님의 경계[佛境]를 알 수 있음을 밝혔으니, 첫째 보현의 땅에 머물고, 둘째 보현의 원(願)을 갖추고, 셋째 보현의 행을 행하고, 넷째 법계의 공(空)을 증득함이다. 아래 구에서 ‘부처님의 경계를 안다’고 한 것은 매듭 지음이다. 다음의 한 송은 이 대중이 현재 두 가지 이익을 얻는 것을 찬탄한 것이니, 하나는 현전의 부처님을 본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보(普)34) 방편을 얻은 것이다. 뒤의 한 송은 전체를 설한 것으로 다만 모든 중생이 불법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부처님의 힘이라는 것으로 맺은 것이다.
세 번째로 두 송이 있으니, 법을 들어서 설법할 것을 허락하고 관하는 것을 권하여 즐거워한 것이다. 처음 송은 법을 들어서 관할 것을 권함이니 부처님과 찰토(刹土)라는 것은 몸 안에 있기 때문에 대중에게 권하여 털구멍 속에서 관하게 한 것이요, 뒤의 한 송은 보안(普眼)을 갖추어야 비로소 이 법을 보게 되는 것임을 밝혔다. 아래 구는 설법할 것을 허락하고 듣는 것을 경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래 10안(眼) 가운데 제10의 보안이란 것은 평등한 법문에 의해서 법계를 보기 때문이다. 만약 통틀어 논한다면 10안을 다 갖춤을 이름하여 보(普)라고 한다.
제10 정진법해분(正陳法海分)이니, 그 가운데 먼저 제회(諸會)에서 능설의 사람이 다른 이유를 밝히면 오직 「승기(僧祗)」와 「소상(小相)」의 두 품만은 곧 불설이고 나머지는 모두 보살설이다. 표한 것은 아래의 해석과 같다.
또 『지론』에 의하면 다섯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불설이요, 둘째는 제자의 설이며, 셋째는 신선(神仙)의 설이요, 넷째는 제천(諸天)의 설이며, 다섯째는 변화의 설이다.
이것은 소리와 명구(名句) 등을 냄에 의한 것이니, 만약 수여(授與)를 바라보면 곧 정(情)과 비정(非情)에 통한다. 이것은 삼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 다섯 가지 설이 있으니 아래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불설과 보살의 설과 세계의 설과 중생의 설과 삼세 일체의 설을 보살은 분별하여 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3세간 등의 일체법과 통하니 일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경문 가운데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널리 세계해를 밝혀서 앞의 과에 대한 물음에 대답했고, 둘째 ‘내왕과운(乃往過云)’35) 이하는 앞의 인(因)에 대한 물음에 대답한 것이다. 첫 번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세계를 산설(散說)하고, 나중에 게송으로써 총지하였다.
이 중 앞의 것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10세계를 통틀어 논하고 뒤에는 화장계를 따로따로 분별했다. 다른 하나는 이 제10의 괴세계(壞世界)를 해석함이니 성(成)이 곧 괴(壞)이기 때문이다.
앞에 것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장문(章門)을 표열했고 나중은 문에 의하여 따로 해석했다.
처음 가운데 셋이 있으니, 첫째는 총설로서 고(告)하여 인증(引證)함이요, 둘째는 바르게 열 가지 이름을 열거했고, 셋째는 그 다함 없음을 매듭 지었다.
이 열 가지 가운데 처음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국토의 체는 모양[相]이 끊어졌으니 말을 말미암아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설세계(說世界)’라고 말한다. 4감지(堪智) 가운데 성(成)과 같으며, 아래의36)연생(緣生) 가운데 박관(縛觀)을 설하는 것과도 같다. 둘째 명언(名言)이 식을 훈습함으로 말미암아 국토를 나타냈기 때문에 설이라고 이름했다. 셋째 국토 중에 언음(言音)은 아래 게송 가운데에서 밝힌 것과 같다. 넷째 세계의 이름을 세움이 같지 아니한 까닭에 설이라고 한다. 처음 하나는 설(說)이 곧 세계이고 뒤의 셋은 설의 세계이요, 둘째는 연을 잡아 계(界)를 이룸이요, 셋째는 의(依)인 까닭에 오래됨을 얻음이요, 넷째는 외상(外狀)의 구분이며, 다섯째는 내체가 가득함이요, 여섯째는 덕상이 엄려(嚴麗)함이다. 일곱째는 이구(離垢)의 용이 청정함이요, 여덟째는 그릇이 깨끗함으로써 부처님이 출흥하심이며, 아홉째는 때[時]를 지남이 많고 적음이요, 열째는 연이 흩어지고 지음[作]을 떠나서 번다(繁多) 심오한 것을 한가지로 바다라고 이름하였다. 무릇 한 세계가 곧 이 열[十]을 갖춘다.
이제 통틀어 모든 세계해를 해석함에 간략하게 10문으로 나누겠다. 첫째는 종류요, 둘째는 거(居)하는 사람이며, 셋째는 명체(名體)요, 넷째는 염정(染淨)이며, 다섯째는 유(流)ㆍ무류(無流)요, 여섯째는 공(共)ㆍ불공(不共)이며, 일곱째는 세간ㆍ열반이요, 여덟째는 의(依)ㆍ정(正)이며, 아홉째는 인(人)ㆍ법(法)이요, 열째는 무애이다.
처음에 종류를 밝힌다는 것은 소승에서는 오직 한 유(類)의 사바 등 계(界)만 있고 따로 정토가 없다. 삼승에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머무시는 처소를 기준으로 하여 이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법성토(法性土)요, 둘째는 실덕토(實德土)이니 묘행 등을 말하는 것이요, 셋째는 색상토(色相土)이니 뛰어난 보배 등을 말한다. 뒤의 두 가지를 자수용토(自受用土)라고 한다. 이 셋은 섭화(攝化)의 처소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밝히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부처님께서 섭화하시는 처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여기에도 또한 셋이 있다. 첫째는 화신토에 둘이 있으니 하나는 염(染)으로서 이 사바 등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석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정(淨)이니 다른 곳의 화토(化土)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나머지 부처님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둘째는 변염토(變染土)이니 발가락으로 땅을 누른37) 것 등을 말한다. 셋째는 타수용토(他受用土)이니 18원만(圓滿) 등을 말한다. 처음 가운데 둘이 있으니, 만약 시교(始敎)에 의하면 오직 백억의 염부와 백억의 석가만 있어서 섭화의 경계가 된다. 만약 종교(終敎)에 의하면 『지론(智論)』에서와 같이 “삼천대천세계로써 한 수(數)를 삼고 이것을 헤아려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것[恒沙]에 이르는 것을 1세계성(世界性)이라고 하며, 이 성(性)을 헤아려서 다시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것에 이르는 것을 1세계해라고 하고, 이것을 헤아려서 다시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것에 이르는 것을 1세계종(世界種)이라고 하며, 이것을 헤아려서 다시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것에 이르는 것을 1불세계가 교화할 바의 분제(分齊)라고 한다”고 하였다. 그 수용토는 만약 시교에 의하면 색계의 꼭대기에 있으니 소승을 인도하기 위하여 같은 세계에 있어서 설하는 까닭이다. 만약 종교(終敎)에 의하면 삼계에 있지 않다. 『열반』에서 말한 것과 같이 “여기에서 서방으로 가기가 32항하사의 불토를 지나서 또 한 세계가 있으니 무승(無勝)이라고 한다”고 하니, 이것이 석가불(釋迦佛) 실보(實報)의 정토이다. 또 일체 수미루산(須彌樓山:수미산) 세계의 반간(畔間)에서 왕왕(往往) 하나의 청정한 불토를 두니, 이것은 보(報)와 화(化)에 통하는데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셋째는 일승에 의하면 둘이 있다. 하나는 과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십불의 자체인 국토해이다. 이것은 가히 설할 수 없는 것에 해당하며 연(緣)에 붙여서 십이라고 하였으니, 제2회에서 설한 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섭화의 처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로 수미산계와 수형(樹形)38) 등으로부터 나아가 일체 중생형세계해까지를 제1류라고 하고, 두 번째는 삼천계 밖에 별도로 10세계가 있으니, 첫째는 세계성(世界性)이요, 둘째는 세계해이며, 셋째는 세계륜이요, 넷째는 세계원만이며, 다섯째는 세계분별이요, 여섯째는 세계선(世界旋)이며, 일곱째는 세계전(世界轉)이요, 여덟째는 세계연화이며, 아홉째는 세계수미요, 열째는 세계상(世界相)이다. 이들은 만자(萬子)에서부터 윤왕경계(輪王境界)까지에 해당하니 제2류라고 하며, 세 번째는 10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이니 주반을 구족함이 제망 등과 같다.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서 제3류가 된다. 이 위의 3류는 모두 10사(事)를 으뜸으로 하여 세계를 이루고 있다. 첫째는 설세계해(說世界海)요, 둘째는 기구인연세계해(起具因緣世界海)요, 셋째는 주세계해(住世界海)요, 넷째는 형세계해(形世界海)요, 다섯째는 체세계해(體世界海)요, 여섯째는 장엄세계해요, 일곱째는 청정세계해요, 여덟째는 여래출세세계해(如來出世世界海)요, 아홉째는 겁세계해(劫世界海)요, 열째는 괴방편세계해(壞方便世界海)이다.
둘째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만약 소승이면 오직 유여의(有餘依)의 성인과 범부위(凡夫位)만이 거주한다.
삼승의 셋 가운데 처음 둘은 범부와 이승과 지전(地前)의 보살과 아울러 부처님의 화신이 거주한다. 뒤의 하나는 초지 이상의 보살과 부처님의 보신이 거주한다. 『해심밀경』에서 “3지(地)의 보살은 부처님의 정토에 태어난다”고 말한 것은 7지를 기준으로 해서 뜻을 밝힌 것이니, 곧 초지는 저곳의 제3에 해당된다. 또 『기신론』에서 “지전의 보살이 보신불을 볼 수 있다”고 허락한 것은, 종교(終敎)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삼매를 의지하여 봄이다.
일승은 세 가지 가운데서는 다분히 때[時]를 논하면 처음은 견문위(見聞位)요, 다음은 해행위(解行位)이며, 뒤는 향과위(向果位)이니, 통(通)임을 곧 알 수 있다. 3처(處)의 불신은 모두가 곧 십불이다.
셋째 명체(名體)라는 것은 세(世)는 곧 때[時]요, 계(界)는 분제(分齊)이니, 때 가운데 분제가 현현함을 상(相)에 따라서 이름한 것이다. 번다오적(繁多奧積)하고 깊고 넓어서 궁구하기 어려움을 똑같이 바다[海]라고 이름한다. 세계를 곧 바다로써 비유하였으므로 지업석이다.
만약 소승이라면 자모칠미(子母七微)39)와 색등사진(色等四塵)40)과 아울러 능조사대(能造四大)41)의 실색(實色)으로써 체를 삼는다.
만약 삼승에서라면 범부와 소승과 지전은 함께 아뢰야식으로 체를 삼는다. 지상에 대해서는 두 뜻이 있으니, 보토(報土)는 또한 한 가지로 아뢰야식을 체로 삼는다. 만약 2지(智)42)에 나타날 때에는 곧 유식지(唯識智)로써 체를 삼는다. 그러므로 『섭론』에 이르기를 “보살과 여래의 성유식지(成唯識智)43)는 나아가 정토의 체가 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만약 종교에 의한다면 함께 여래장 진여로써 체를 삼는다.
만약 일승이라면 다함 없는 법계는 3세간에 통함으로써 인(人)ㆍ법(法)ㆍ이(理)ㆍ사(事) 등 여러 행(行)은 상즉하여 서로 체가 되는 것이니, 준하여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넷째 염정이란 것은 만약 소승이라면 오직 염(染)뿐이다.
삼승에는 둘이 있으니 하나는 위(位)를 기준으로 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처음 가운데 4대(對)가 있어서 그 염정을 나타내었으니, 첫째는 인과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금강 이전 보살이 거주하는 곳을 과보토(果報土)라고 이름하고 정토라고 이름하지 않으니 과환(過患)이 다하지 않은 까닭이다. 오직 부처님 한 사람만이 사습(使習)44)을 다 끊었으므로 거(居)한 바를 정(淨)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인왕경(仁王經)』에 이르기를 “3현(賢)과 10성(聖)은 과보에 안주하고, 오직 부처님 한 사람만이 정토에 거주한다”라고 하였다.
둘째는 일향(一向)과 비일향(非一向)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8지 이상의 보살이 거주하는 곳을 정토라고 이름할 수 있으니, 한결같이[一向] 삼계의 일[事]을 벗어났기 때문이며 4구의 일향의 뜻을 구족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결같이 깨끗함[一向淨], 한결같이 즐거움[一向樂], 한결같이 잃어버림이 없음[一向無失], 한결같이 자재함[一向自在]이다. 7지 이전은 아직 정토라고 이름할 수 없으니, 한결같이 삼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원력으로 말미암아 벗어날 수 있는 사람도 4구의 일향(一向)을 구족하지 못한 까닭이다. 이른바 무류관지(無流觀智)는 간단이 있기 때문에 무실(無失) 등이 아니다. 이것은 『섭론』에 의하여 밝힌 것이다.
셋째는 순잡(純雜)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범부와 이승이 섞여 거주하는 곳[雜居處]을 정토라고 이름하지 아니하고 지상(地上) 보살이 태어난 곳을 정토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유가론』에 세계의 무량을 설하되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정(淨)과 부정(不淨)이다. 청정 세계에서는 나락가(那落伽)ㆍ방생(傍生)ㆍ아귀(餓鬼)는 없으며, 또한 욕계ㆍ색계ㆍ무색계도 없고 순전히 보살 대중만이 그 가운데 거주한다. 이런 까닭에 설하여 청정세계라 이름한다. 이미 제3지(地)에 든 보살은 원력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저기에서 생을 받지만 이생(異生)과 이생이 아닌 성문과 독각은 없다”고 하니, 해석하여 이르기를 이 제3지를 이미 정의락(淨意樂)이라고 이름하며 이것은 곧 환희지이니 7지를 기준으로 해서 밝혔기 때문이다.
넷째는 퇴(退)ㆍ불퇴(不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를테면 10주(住)에 들고 나서는 불퇴위로서 3현 보살이 태어난 곳을 이름하여 정토라고 한다. 그 가운데에 또한 4과(果)의 이승(二乘) 등이 있다. 아미타의 국토에 태어나면 거기서는 모두 바른 선정[正定]에 거주하는 것과 같다. 감임(堪任) 이환(已還)의 경모퇴위(輕毛退位)45) 3취(聚) 중생이 공생하는 곳은 정토라고 이름할 수 없고, 이 4대8의(四對八義) 가운데 처음은 과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오직 정(淨)이고, 나중은 퇴(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오직 염(染)이요, 중간은 상형(相形)이 있으므로 모두 염정에 통한다.
두 번째 법을 기준으로 한 것에서의 4구는 혹은 오직 정(淨)이니, 이를테면 위의 4문 가운데 상형하여 정을 취하는 까닭이며, 퇴위(退位)에 거하는 것도 자성정(自性淨)이기 때문이다. 혹은 오직 염(染)이니 이를테면 4문 가운데 상형하여 염을 취하는 까닭이며, 불과(佛果)도 연에 따르고 중생을 기준으로 해서 설하였기 때문이다. 『기신론』에 “염을 따르고 환(幻)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지은 것이다”라고 했다. 혹은 함께 함이니 앞의 두 뜻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함께 하지 아니하나니 두 뜻은 서로 융합하여 결정코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며 두 모습[二相]이 다하기 때문이다. 일승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유(類)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가운데에 초류(初類)는 염이고 후류는 정(淨)이며 중류(中類)는 두 가지에 모두 통한다.
두 번째는 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 가운데 혹은 함께 깨끗함이니 부처님께 즉(卽)하기 때문이요, 혹은 함께 물듦이니 중생에 즉(卽)하기 때문이다. 혹은 두 가지를 모두 갖추니 앞의 두 뜻은 서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함께하지 아니함이니 두 모습[二相]이 융합하여 두 모습을 다하기 때문이다. 위의 3류(類) 가운데 하나하나마다 모두 이 4구를 갖추나니, 이에 준거하여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유(流)ㆍ무류(無流)라는 것은 만약 소승이라면 오직 유루이다.
삼승에는 두 문이 있으니 하나는 수상문(隨相門)이요, 다른 하나는 융통문(融通門)이다. 처음 가운데 4구가 있다. 첫째는 오직 유류이니 이를테면 범부와 소승과 지전(地前) 보살의 소변토(所變土)요, 둘째는 오직 무류이니 이를테면 부처님께서 나타나신 국토이다. 셋째는 함께 함이니 이를테면 지상 보살의 2지(智)의 변화한 것과 아뢰야식이 나타낸 것이다. 이 둘은 비록 고(苦)ㆍ도(道) 2제(諦)에 섭수되는 것이나 따로 두 체(體)가 없고 다만 뜻이 다름을 따라서 섭수된 것이다. 넷째는 함께 함이 아니니, 이를테면 다 공(空)46)인 까닭이며 수(數)에 떨어지지 않음이다. 이 위[上]는 시교(始敎)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두 번째 융통에도 또한 4구가 있다. 첫째는 혹 일체가 다 무류이니, 나아가 범부위[凡位]도 또한 그러하다. 모든 유(流)의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경에 “색은 무류(無流)ㆍ무계(無繫)이며, 수ㆍ상ㆍ행ㆍ식도 무루ㆍ무계이며……(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이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혹 일체가 다 유류이며 나아가 부처님까지도 또한 그러하나니, 유(流)의 법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에 “모든 부처님은 3독(毒)ㆍ4도(倒)ㆍ5욕 등에 안주하여 아뇩보리를 얻으며……(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라고 한 것과 같다. 앞의 구는 유(流)의 무류와 다르지 않으므로 곧 무류라고 하며, 뒤의 구는 무류의 유(流)와 다르지 않으므로 곧 그 유류이다.47) 셋째는 함께함이니 앞의 두 뜻이 서로 여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함께하지 아니함이니 이는 다 얽매임[縛]과 벗어남[脫]의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경에 “색은 얽매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 수ㆍ상ㆍ행ㆍ식도 얽매임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며……(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라고 한 것과 같다.
일승 가운데 연기의 법계와 같이 만약 하나가 없다면 곧 일체는 이루어지지 아니하나니 서로 융합하여 걸림이 없다. 또한 4구를 갖추어 온전히 섭수함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여섯째 공(共)ㆍ불공(不共)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분제를 밝히고 나중에 의상(義相)을 나타내었다.
처음 가운데 한 세계를 따르는 것은 모두 유정(有情)이니, 이를테면 이숙식(異熟識)이 공상(共相)의 종자를 성숙하게 하는 힘을 말미암기 때문에 색(色) 등 기세간의 모양을 변사(變似)함이다.
【문】 무릇 한 세계에 몇 가지의 유정이 이숙식을 변현하는가?
【답】 『유신론』 가운데 3사(師)의 설이 있다. 처음의 사(師)가 말하기를 “일체의 유정이 계경의 설로써 일체 유정의 업증상(業增上)의 힘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다음 사(師)는 이 말을 깨뜨려 이르기를 “만약 그러하다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도 마땅히 진실로 이 잡예토(雜穢土)를 변이(變異)할 것이고 모든 이생(異生) 등도 마땅히 진실로 다른 세계와 이 세계[此界]의 모든 정묘(淨妙)한 국토를 변위(變爲)할 것이다. 또 성자가 유색(有色)을 염리(厭離)하여 무색계에 태어나는 자는 반드시 아래에 태어나지 아니하나니 이 국토[此土]를 변위한다 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세 가지의 커다란 과실이 있는 까닭에 일체 유정에 통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마땅히 현재 살고 있거나 앞으로 태어날 자의 저 이숙식(異熟識)이 이 세계를 변위한다고 말할 것이다. 경에 “일부분에 의해서 일체의 말을 설하되 모든 동업자(同業者)는 다 함께 변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뒤의 스승[後師]은 제2의 주장을 전파(傳破)하여 이르기를 “만약 그렇다면 기세계가 장차 무너지려고 할 때는 이미 현재 살고 있거나 앞으로 태어날 자는 없기 때문에 누구의 이숙식이 이 세계를 변위하는가. 또 모든 이생이 유색을 염리(厭離)하여 무색계에 태어날 때는 현재의 색신이 없음으로 미리 국토를 변위하는 것은 또 무슨 작용인가. 설사 색신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땅[異地]의 중생[器]과 거칠고 세밀한 차이가 현격함으로 서로 의지하지 못한다. 이것이 저것을 변위하는 것은 또한 무슨 이익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3종의 큰 허물이 있기 때문에 현재 살고 있거나 앞으로 태어날 사람은 모두 변함을 이루지 못한다. 이를테면 처음에 중생[器]이 장차 무너지려고 할 때 마땅히 태어날 사람과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을 함께 수용할 수 없고, 두 번째 만약 현재에 무색계의 몸을 받을 때는 이 세계에서 수용의 뜻이 없으며, 세 번째 설사 색계신이라 할지라도 이것과 추세(麤細)가 다르면 또한 의지하고 수용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이 세 가지는 모두 변화의 뜻이 없다. 만약 그러하다면 누구의 식이 변하는가. 정의(正義)를 마땅히 말하리니 “무릇 변화가 될 국토는 본래 색신의 의지와 수용이 된다. 그러므로 만약 몸에서 가져 쓸 수가 있을 때는 설령 타방의 자지(自地)에 태어날지라도 저의 식도 또한 이 국토를 변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세계가 장차 무너지려고 할 때에나 처음에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도 비록 유정이 없다고 할지라도 현재에 국토가 있다”라고 하니, 이 국토는 아울러 『유식론』에 의하여 밝힌 것이다.
두 번째로 공(共)ㆍ불공(不共)의 의상(義相)을 나타낸다는 것은 만약 소승에서라면 이미 극미한 것이 한가지로 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공(共)이다.
만약 삼승에서라면 4구가 있으니, 처음에 혹은 또한 오직 공뿐이다. 이를테면 저 의보(依報)는 비록 식을 여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식은 곧 별이고 토상(土相)은 곧 하나이다. 피피(彼彼)의 의식 가운데 공상(共相)의 종자가 한가지로 나타나는 것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4진(塵)을 잡아서 한가지로 한 기둥[柱]을 이룰 때 한 기둥의 모양은 4진을 여의지 않지만 4진을 따라서 4주(柱)가 있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이 가운데 도리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자수용토(自受用土)라면 부처님과 여러 부처님에게 한가지로 한 토(土)가 있다. 마치 법신이 모든 부처님께서 한가지로 의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이는 동일한 법성토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타수용토(他受用土)라면 또한 부처님과 보살이 함께 소유하는 것이다. 왕과 신하가 한 나라를 공유하는 것과 같다. 모든 잡염(雜染)의 국토도 또한 이 유정이 함께 지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다름이 없다.
둘째 혹은 불공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의과(依果)는 실제로 모두 불공이다. 각각 스스로의 본식 가운데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논에 이르기를 “다만48) 이 유정의 이숙식이 각각 동처(同處)를 변화시키되 서로 닮고 서로 장애하지 아니함에 여러 등불[燈明]과 같고 꿈이 많은 것과 같다. 인(因)의 유(類)는 같되49) 과의 모양[果相]은 서로 비슷해서 처소의 다름이 없음으로써 거짓 이름하여 ‘공(共)’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각각 다르다. 모든 부처님의 정토도 또한 이와 같다. 각기 다른 의식이 변하여 모든 법계에 두루하여 함께 처하여 서로 비슷한 것을 설하여 공(共)이라고 한다”라고 하니, 이를 해석하여 이르기를 “만약 어느 한 국토라도 의식을 따르지 않고 다름이 있다면 마음 밖에 법이 따로 있어서 유식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다. 논에 이르기를 “나는 의식이 인연한 바는 오직 의식의 나타난 것이라고 설한다”라고 하니, 그러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서 마땅히 모두가 자신의 의식이 변화된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각각 같지 아니하다.
셋째 역공역불공(亦共亦不共)이라는 것은 앞의 두 설은 서로 여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유가』에 이르기를 “외(外) 등의 여러 물질[諸物]은 혹은 불공분별(不共分別)을 인으로 삼기 때문이거나, 혹은 또 공분별을 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만약 공분별이 일으킨 것이라면 분별이 비록 없다고 할지라도 다른 이의 분별에 맡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의 분별은 마땅히 그 과가 없을 것이다. 그가 비록 멸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청정함을 얻는 것은 그 사[事] 가운데 바른 소견이 청정함이다. 비유하자면 중다(衆多)의 관행을 닦는 자가 하나의 사[一事] 가운데 선정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지혜[智]에 갖가지 한량없는 이견(異見)이 있는 것과 같다. 저도 또한 이와 같다”라고 하니, 해석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의보가 공분별을 따르는 것을 설한 것이다. 그 불공분별이라는 것은 앞의 제2에서와 같다. 이런 까닭에 밖의 기세계는 모두 이와 같은 두 뜻을 갖춤에 따라서 이루어지므로 둘 다 함께 존재한다”라고 하였다.
넷째 비공비불공(非共非不共)이라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앞의 두 설이 서로 형탈(形奪)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결정코 이를 취함을 따라서 한결같이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둘 다 그르다. 두 번째는 국토는 의식에 의지함을 말미암아 국토의 모습이 다하기 때문이며, 의식은 연을 좇아 일어남으로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는 까닭에 공과 불공의 성(性)과 상(相)을 모두 여의었으므로 가히 설할 수 없다.
이 위[上]는 만약 과보뢰야식(果報賴耶識)50)의 소변(所變) 등을 기준으로 하면 이는 초교(初敎)이다. 만약 여래장뢰야가 나타낸 것이라면 곧 종교(終敎)에 속한다. 만약 일체의 모습이 다하여 오직 한 정심(淨心)이 평등하고 평등해서 말을 여의고 생각을 끊으면 곧 돈교에 속한다.
만약 원교(圓敎)에 의하면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앞의 제교(諸敎)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이는 곧 끝없는 법계와 같아서 제망(帝網)처럼 중중으로 즉입(卽入)하여 걸림이 없고 주반을 구족함이 곧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뜻으로써 구함에 있어서도 또한 4구가 있다. 첫째는 혹은 오직 공(共)뿐이니, 동일한 법계인 까닭이며 상즉하는 까닭이다. 둘째는 혹은 오직 불공(不共)이니, 연기는 각별(各別)하기 때문이며 서로 잡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혹은 함께 함이니, 이상 두 뜻은 서로 떨어지지 아니하는 까닭이며 전체는 상즉해서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는 혹은 함께 하지 아니함이니, 두 모양[二相]이 없어지는 까닭이며 형탈하여 다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세간열반문(世間涅槃門)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수상(隨相)이요 둘째는 융통이다.
처음 가운데 4구가 있으니 첫째는 혹은 오직 세간이니 지전(地前)과 범위(凡位)가 거할 곳이요, 둘째는 혹은 오직 열반이니 모든 부처님의 과위(果位)로서 머무를 열반이다. 설사 자수용토라 할지라도 또한 이 대열반에 섭수될 수 있다. 셋째는 혹은 또한 세간이요 또한 열반이다. 『보성론』에 의하면 “무류법계(無流法界)에 의하면 세 가지 의생신(意生身)51)이 있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것은 무류선근(無流善根)이 지은 것을 따르는 까닭에 이름하여 세간이라고 하지만 이 유류의 업과 번뇌의 지음이 아니므로 또한 열반이라고 이름한다. 이 뜻을 말미암은 까닭에 『승만경』에 이르기를 “세존이시여, 유위세간이 있으며 무위세간이 있으며 유위열반이 있고 무위열반이 있습니다”라고 하니, 해석하여 이르기를 “유위세간이라는 것은 곧 범위(凡位)이고, 무위열반이라는 것은 곧 불과(佛果)이다. 유위열반과 무위세간이라는 것은 변역의 보(報)로서 바라는 바가 다른 까닭에 구구(俱句)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네 번째의 뜻에 준하건대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법계는 세간도 아니요 열반도 아니니 이는 이승의 열반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쌍림(雙林)의 열반도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융통이라는 것에도 또한 4구가 있다. 첫째는 혹은 오직 세간이니, 이를테면 부처님의 정토라고 할지라도 또한 이는 모두 기세간에 섭수되는 까닭이다. 둘째는 혹은 오직 열반이니, 이를테면 중생의 염토라 할지라도 모습[相]이 다하면 성(性)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는 함께 함이니 이(理)와 사(事)는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논에 이르기를 “세간과 열반은 털끝만큼도 차별이 없다”라고 하니,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둘도 없지만 둘이 함께 현전한다. 넷째는 털끝만큼도 분별이 없는 까닭에 둘이면서 둘이 없다. 형탈하여 함께 다하는 까닭에 함께하지 아니함이다. 경에 “여래는 생사를 보지 않고 열반을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으며, 또 이 경에서 “세간과 열반은 둘을 함께 얻을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일컫는 것이다.
여덟째 의정문(依正門)이라는 것은 만약 소승이라면 이것은 오직 의보뿐이다.
삼승 가운데는 기세간은 비록 이 본식과 대원경지가 나타낸 것이라고 할지라도 오직 의보에 섭수된다.
만약 원교에 의한다면 3세간에 통한다. 사나불에게 국토신 등이 있음으로 세계는 모두 불신(佛身)이다. 또 중생 모습의 세계 등이 있다. 이런 까닭에 중생은 곧 세계이다. 이것은 모두 의(依)와 정(正)이 혼융하여 걸림이 없기 때문이며, 상즉자재하기 때문이다.
아홉째 인법문(人法門)이라는 것은 소승은 인법이 아니다.
삼승에는 곧 법문의 뜻이 있을 수 있다.
일승은 갖추어져 있다. 이것은 부처와 보현과 중생이 평등하기 때문에 오직 이는 사람일 뿐이다. 혹은 모든 세계는 다 법문이기 때문이다. 경문에서 말한 것과 같이 “청정하고 미묘한 형태는 한량없는 바른 법의 문에 들어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세계 등이 다 이 법문인 것을 밝힌 것이다.
열째 무애문(無碍門)이라는 것은 소승의 세계는 오직 이 사상(事相)이니 위에서 다만 고(苦)ㆍ무상(無常)ㆍ공(空)ㆍ무아(無我) 등의 이치만 있다.
삼승 가운데 법성토는 오직 이(理)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事)이다. 그런데 위의 두 종(宗)은 이(理)와 사(事)가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아니함으로 이름하여 무애라고 한다. 만약 일승에서라면 간략하게 10중(重)이 있다. 첫째는 정사무애(情事無碍)이니, 이를테면 정에 응하여 현현하지만 사(事)는 정(情) 밖으로 벗어났다. 경문에 이르기를 “비유하자면 환(幻)은 방소가 없지만 모두 망상을 좇아서 생겨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둘째는 이사무애(理事無碍)이니, 이를테면 온전히 진성(眞性)과 같지만 세계의 모습[刹相]이 완연한 것이다. 경문에 이르기를 ‘법계 불가괴의 연화장세계해’ 등이라고 했다.
셋째는 상입무애(相入無碍)이니, 이를테면 경문에 이르기를 “한 불토로써 시방을 채우고 시방을 하나에 들이더라도 또한 남을 것이 없다”라고 했다.
넷째는 상즉무애(相卽無碍)이니, 이를테면 경문에 이르기를 “한량없는 세계가 곧 한 세계이다”라고 했다.
다섯째는 중현무애(重現無碍)이니, 이를테면 티끌 가운데 일체의 세계[刹]를 보고 세계 안의 티끌 가운데 세계를 보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이와 같이 중중함이 인다라망과 같은 것이다.
여섯째는 주반무애(主伴無碍)이니, 무릇 한 세계에는 반드시 일체가 있으니 그것으로 권속을 삼는 것이다.
일곱째는 체용무애(體用無碍)이니, 이를테면 한 찰해에 반드시 대용(大用)이 있어서 기에 나아가 법을 설하는 것이다.
여덟째는 은현무애(隱現無碍)이니, 이를테면 염정의 은현ㆍ이류(異類)의 은현 등이 있다. 연(緣)을 기준으로 해서 이것을 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홉째는 시처무애(時處無碍)이니, 이를테면 혹은 한 세계로 삼세의 겁을 나타내고 혹은 일념 속에 한량없는 세계를 나타내되 이와 같이 걸림이 없다.
열째는 성괴무애(成壞無碍)이니, 이를테면 성취함이 곧 붕괴됨이요 붕괴가 곧 성취이다.
무애는 현현함이 자재하여 알기 어렵고 정려(情慮)를 뛰어넘는다. 이 열 가지 무애는 동시에 구족함으로써 마땅히 6상(相)의 방편을 써서 이것을 회융(會融)한다.
10세계의 뜻을 간략하게 밝힌 것이 이와 같다. 모든 나머지 의상(義相)은 경문에 따라서 마땅히 드러날 것이다.
두 번째는 장(章)에 의하여 따로따로 해석하는 가운데 열 가지가 있다. 처음 하나는 해석하지 않고 나머지 아홉을 해석함으로써 곧 설이 되기 때문이다.
경문 가운데에 처음은 앞의 여덟을 해석하고 뒤에는 제10을 해석한다. 앞의 것 가운데 처음 일곱은 각각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장행과 송이다. 처음 문에는 송이 없다.
처음 중 장행 가운데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표(標)요, 둘째는 성(成)이요, 셋째는 변(辨)이요, 넷째는 결(結)이다.
‘일체 세계해’라는 것은 여기에 그와 같은 세 가지 유(類)가 있으니, 각각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已成)’ 등이라는 것은 첫째 이 모든 연으로써 삼세 일체의 세계를 통틀어 이룩하더라도 모든 세계의 이미[已)와 아직[未] 등이 서로 다른 것이다. 둘째 한 세계를 이룰 때 곧 삼세에 두루함이다. 앞의 것은 연이 통하더라도 계(界)는 서로 다르다. 뒤의 것은 계는 통하더라도 연은 다르니 생각하라. 이것은 일승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8연(緣)이란 첫째는 후득(後得)의 통혜(通慧)요, 둘째는 연기법이(緣起法爾)이며, 셋째는 소화(所化)의 업력이요, 넷째는 보살행이 원만하여 마땅히 저 세계에서 성불할 수 있을 때에는 곧 이 힘에 의해서 저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얻는 것이다. 다섯째는 보인력(普因力)이요, 여섯째는 보살이 남음이 없는 세계를 엄정(嚴淨)하기 때문에 원행을 닦을 때 세계는 원행을 따라서 무애용지(無碍容持)하는 까닭에 해탈자재라고 한다. 일곱째는 대각의 정인(正因)이요, 여덟째는 보원(普願)을 섭수하여 성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덟 가지 가운데 처음 넷은 권성(權成)이니 그것은 거친 모양[麤相]이 되기 때문에 또한 염(染)에도 통하는 것이다. 뒤의 넷은 실성(實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그것은 세밀한 모습[細相]이기 때문에 오직 청정할 뿐이다. 경에 “나의 이 국토는 항상 안온하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한 세계가 곧 추(麤)와 세(細)를 갖춘 까닭에 또 이 여덟 가지 가운데 총체적으로 4대(對)가 있다. 첫째 처음과 제7은 부처님을 기준으로 하여 권실(權實)을 밝혔고, 둘째 팔과 제5는 별도로 보현을 기준으로 해서 권실을 밝혔으니 제8은 곧 물(物)이기 때문이다. 셋째 제4와 제6은 통틀어 일체의 보살을 기준으로 해서 권실을 밝혔고, 넷째 제2와 제3은 이사(理事)를 기준으로 해서 권실을 삼았으니 업행은 연으로 이루어져서 실답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으로 요컨대 이와 같은 4연(緣)을 갖추었는가 하면, 이를테면 부처님은 교주가 되고 보현은 조화(助化)이며 보살과 중생은 소화(所化)이다. 처음 두 가지 가운데 만약 권이 없으면 생을 순숙하게 할 수 없고, 만약 실(實)이 없으면 진(眞)에 응할 수 없다. 뒤의 두 가지 가운데 처음은 중생의 업보에 연은 허망하지만 뒤에 반드시 의지할 진성(眞性)이 있다.
이와 같은 여덟 가지 티끌 수와 같이 많은 인연으로 한 세계를 이룸에 모두 서로 장애함이 없이 전체를 두루 섭수하였다. 또 모든 연이 짓는 것과 짓지 아니하는 것은 연기성과 같음으로 즉공(卽空)ㆍ즉유(卽有)ㆍ즉일(卽一)ㆍ즉다(卽多)로써 융합하여 분별이 없음을 생각하라. 나머지 하나하나의 세계도 여기에 준거하라.
20게송이 있으니, 이를 일곱으로 나눈다. 처음 네 게송은 부처님의 신력[佛神力]이다. 처음 게송은 세계[刹]이니 경지(鏡智)에 의해서 나타나고, 두 번째 송은 토(土)이니 행으로써 닦아 이룩하고, 셋째 게송은 보살을 교화함이고, 넷째 송은 중생을 깨닫게 함이다. 다음 네 송은 보살이 마땅히 도를 얻은 것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 게송의 위의 반[上半]은 행의 원인을 밝힌 것이고, 아래 반[下半]은 지혜[智]의 과를 밝혔다. 도(度)는 도(到)와 같다. 두 번째 게송의 상반은 국토의 원인을 밝혔고, 하반은 토의 과를 일으킨 것이다. 세 번째 게송의 상반은 의정(依正)의 원인을 성취함이요, 하반은 의정의 과경(果境)에 증입하는 것을 밝혔다. 네 번째 게송의 상반은 과가 넓음이요, 하반은 인의 오래됨을 밝혔다. 다음 두 송은 중생의 업력을 송하고, 그 다음 두 게송은 보살이 불토를 엄정하는 원행력(願行力)을 송하였고, 다음 두 게송은 보현의 선근력을 송하고, 다음 네 게송은 보현의 자재한 원력을 송하고, 다음 두 게송은 부처님의 의과(依果)를 송하였다. 그러므로 이 송은 총체적으로 연기의 다른 뜻을 통하였으니, 이는 곧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에 대해서는 별도로 송하지 않았다.
제2는 주(住)이다. 그 가운데 장행이 있는데 이 장행 안에 두 가지 뜻이 있다. 먼저는 수를 갖추어 표하였으니, 이를테면 무릇 한 세계는 곧 이와 같은 찰진이 의지할 것을 갖추었기 때문에 하나하나[一一]라고 말한다.
다음으로는 간략하게 일곱 가지 사[七事]를 열거하겠다. 첫째는 선정력(善淨力)에 의하여 머무는 것이요, 둘째는 무애에 의지하는 것이요, 셋째는 여의보(如意寶)와 혹은 일체에 의지한 것이며, 넷째는 통명(通明)에 의지하며, 다섯째는 연기력에 의하였고, 여섯째는 법신지(法身持)에 의하였으며, 일곱째는 법계원(法界願)에 의하였다. 『지론(智論)』에 의하면 마하(摩訶)는 대(大)라고 하고 나(那)는 무(無)라고 하며 가(伽)는 죄(罪)라고 이름하나니, 이것은 잃어버림이 없음을 기준으로 해서 해석한 것이다. 또는 혹 ‘대상(大象)’이라고 이름하니, 육지로 다니는 것[陸行] 가운데 힘이 가장 큰 것이다. 혹은 ‘대룡(大龍)’이라고도 이름하나니, 곧 물로 다니는 것[水行] 가운데 힘이 가장 큰 것이다. 또 처음은 잘 조복된 코끼리가 능히 군적(軍敵)을 격파하는 것과 같으니 자리(自利)를 기준으로 한 것이요, 뒤는 큰 용이 비를 내리는 것과 같으니 이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송 가운데 열여섯 개 반이 있으니 아홉으로 나눈다. 처음 한 송은 장엄에 의지하여 머무름을 송했고, 두 번째로 하나의 송은 허공에 머무름을 송했으며, 세 번째로 두 송은 보(寶)에 의지하여 머무름을 송했고, 네 번째로 하나의 송은 불광(佛光)을 송하였으니 이를테면 위신(威神)이 그것이다. 다섯 번째로 한 송은 역사(力士)를 송하고, 여섯 번째로 다섯 송은 위에서는 표(標) 가운데 찰진을 송했으나 여기에서는 오히려 생략하였다. 일곱 번째로 두 송은 환업(幻業)을 송했고 여덟 번째 한 송은 보현의 원력을 송했고 아홉 번째 두 송 반은 인다라망 안주의 상(相)을 통틀어 나타내었는데 처음 게(偈)는 한 티끌[一塵] 안에 의정(依正)을 나타내었고 뒤의 한 송 반은 많은 티끌[多塵]에 유(類)함을 알 수 있다.
제3은 형(形)이니, 이 속에 장행에서는 별도로 일곱 가지를 열거하겠다. 처음 네 가지와 일곱 가지는 미래 모양[當相]의 형상을 밝혔고, 오(五)와 육(六)의 두 가지는 비유를 기준으로 해서 형상을 나타내었다. 첫째 방(方)은 두(斗)와 같고, 둘째 원(圓)은 구슬[珠]과 같으며, 셋째 비방(非方)이란 것은 4유(維)52) 모양이요, 넷째 비원(非圓)이란 8우(隅) 모양을 말한다. 다섯째 물[水]이 회복(洄洑)하는 형상이요, 여섯째 꽃 모양이며, 일곱째 중생의 모양이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세계가 중생의 형상과 닮은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갖가지 중생이 모두 이 세계인 것이다. 몸[身] 속에 8만 호(戶)의 벌레가 있고 호(戶)마다 각각 9억의 벌레가 있다고 한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곧 세계이다. 아래 경문에 준거하면 또한 이 노사나불이 법륜을 굴리는 곳이다. 이런 까닭에 경문 가운데 다만 중생형이라고만 말하고 중생과 같은 형상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곧 중생으로써 세계를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하나하나의 형류(形類)는 모두 법계에 두루하였다.
송 가운데 열일곱 개 반이 있으니 이를 둘로 나눈다. 처음의 세 송은 바로 전문(前文)을 송한 것이요, 뒤의 열네 송 반은 세계의 덕용을 밝혔다.
앞의 것 중에 처음 한 송은 위의 총수(總數)를 송했고, 다음 한 송은 위의 다른 모양[別形]을 송했다. 다만 처음 넷만을 송하고 뒤의 셋은 생략했다. 『지론』에 의하면 마니주는 여덟 개의 모가 있으니, 이 우형(隅形)에 비유한 것이다. 뒤의 한 송 중에 위의 반은 인(因)이 다름을 나타냈고, 아래 반은 과상(果相)을 밝혔다. 두 번째 덕용을 둘로 나누니 처음의 여섯 반은 덕의 자재를 밝혔고 뒤의 ‘한 털구멍’ 이하는 용이 자재함을 밝혔다. 앞의 것 가운데 처음 셋은 부처님이 세계를 나타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중생[機]에 응할 수 있음을 밝혔다. 첫째는 체가 법문을 이루고, 둘째는 상(相)을 나타내어 중생에게 나아가게 하고, 셋째는 노사나의 광명이 비춤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소유이다. 뒤의 셋 반은 기가 바르게 응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차별을 이룰 것을 나타낸 것이다. 첫째는 기의 심업(心業)이 다름에 의하여 토를 감(感)함에 여러 가지 형태가 있고, 둘째는 불토는 자재하여 능히 감(感)에 따라서 이(異)를 나타낸다. 셋째는 비록 응하여 염정을 이룰지라도 법류(法流)는 끊지 못한 것이다. 넷째 아래 반은 업의 다문(多門)을 맺어서 감(感)하여 나타남이 헤아리기 어려움을 밝혔다.
두 번째는 세계의 자재를 밝힘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 넷은 의정이 자재함을 밝혔고, 다음 둘은 그 소인(所因)을 내고 뒤의 둘은 용(用)을 매듭 지어 주(主)에 돌아가게 했다. 처음 가운데 처음 둘은 털구멍에 세계를 나타내었고 부처님이 그 가운데서 대중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신 것이다. ‘털구멍[毛孔]’이라는 것은 곧 정보(正報)에 의보(依報)를 섭수하여 부처님이 도리어 스스로의 모공 안에 있는 것을 밝힌 것이다. 뒤의 둘은 티끌 안에 나타난 갖가지 형태의 세계이다. 부처님도 또한 그 가운데 있어서 존법륜(尊法輪)을 굴린다. ‘티끌[塵]’이라는 것은 곧 의보(依報)에 정보를 섭수하는 것이다. 두 번째 소인을 내는 가운데 무엇을 말미암아서 곧 자재를 용지(容持)할 수 있는가. 첫째 부처님의 서원이 자재한 힘에 말미암기 때문이며, 둘째 중생의 심업(心業)이 부사의를 말미암기 때문이다. 셋째 결귀(結歸) 중에 처음 하나는 티끌 안의 부처님을 들었고, 다음 반은 티끌 안의 세계를 들었으며, 아래 반은 바르게 매듭 지어서 주(主)에 돌아가게 한 것이다.
제4는 체(體)이니 장행 가운데 특별히 다섯 가지 뜻이 있다. 아울러 사(事)를 기준으로 해서 나타낸 것이다. 무릇 토체(土體)를 논함에 5중(重)이 있으니, 첫째는 진여(眞如)요, 둘째는 진지(眞智)요, 셋째는 본식(本識)이요, 넷째는 5진(塵)53)이요, 다섯째는 제사(諸事)54)이니 제사라는 것은 곧 법문이다. 장차 찬탄하려 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경문 가운데서 밝힌 것이다.
송 중에 열 가지 행(行)이 있다. 첫째는 보배 꽃을 체로 한 것이요, 둘째는 염(炎)과 공(空)을 체로 한 것이며, 셋째는 광명을 체로 하였고, 넷째는 전광(電光)과 원(願)을 체로 하였으며, 다섯째는 해[日]와 구슬[珠]을 체로 하였고, 여섯째는 보염(寶炎)과 변화를 체로 하였으며, 일곱째는 불화(佛化)를 체로 하였고, 여덟째는 심업의 일어남을 체로 하였으며, 혹은 업이 심해(心海)를 일으켜 국토를 이루고 혹은 심업이 국토를 일으키며, 혹은 망념을 체로 삼기도 한다. 아홉째는 불신(佛身)의 빛을 체로 삼았으며, 열째는 보현의 교화[化]와 서원[願]을 체로 삼았다. 이러한 것은 아울러 이 임방(任放)의 변재로써 설함에 있어서 차례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제5는 장엄이니 장행에서 따로 설명한 가운데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구름[雲]의 통상(通相)이요, 둘째는 염(染)의 업행이요, 셋째는 정(淨)의 인과(因果)요, 넷째는 결(結)이니 알 수 있다.
송에는 열 개의 게(偈)가 있으니 다섯55)으로 나눈다. 처음 하나의 게송은 위의 총수를 송했고, 다음 두 게송은 위의 구름이 장엄하는 것을 송했으며, 다음 하나의 게송은 위의 중생의 업이 장엄한 것을 송했고, 다음 다섯 게송은 위의 부처님께서 장엄하신 것을 송했다. 그 가운데 처음의 두 게송은 의(依)를 장엄했고 다음 한 개의 게송은 정(正)을 장엄하였으니, 부처님의 수는 중생과 같기 때문이요, 혹은 중생의 수가 부처님과 같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다음 두 게송은 잡(雜)을 장엄하였다. 뒤의 한 게송은 위의 보현이 장엄한 것을 송했다.
제6은 청정이니 별(別) 가운데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연(行緣)의 청정[淨]이요, 둘째는 자리의 청정이요, 셋째는 이타의 청정이요, 넷째는 행만(行滿)의 청정이요, 다섯째는 득위(得位)의 청정이다. 이는 모두 앞을 좇아서 뒤를 일으킨 것임을 알 수 있다. 무릇 국토의 청정을 논함에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당체정(當體淨)이니 정식(淨識)으로써 모양[相]을 삼는 것이요, 둘째는 사상정(事相淨)이니 정보(淨寶) 등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수용정(受用淨)이니 이 국토를 수용하여 의혹[惑]을 멸하고 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넷째는 주처중생정(住處衆生淨)이니, 덕 있는 중생이 이 세계에 가득한 까닭에 청정이라고 말했다. 다섯째는 주정(主淨)이니 이를테면 불토 등이다. 여섯째는 정행(淨行)의 인으로부터 생하는 까닭이다. 경문에서 “무량의 행해(行海)가 수집(修集)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정행(淨行)이 곧 국토이므로 청정이라고 말했으니, 행(行)으로써 의지를 삼는 까닭이다. 경문에서와 같이 알 수 있다.
게(偈)에 아홉 개의 송(頌)이 있으니 다섯으로 나눈다. 처음 한 게송은 위의 총수를 송했고, 다음의 한 게송은 착한 친구[善友]와 친함을 송했으며, 다음 두 게송은 위의 자리(自利)를 송했으니, 이른바 첫째는 삼매행(三昧行)이요, 둘째는 신인행(信忍行)이다. 다음 한 게송은 위의 이타(利他)를 송했고, 다음 두 게송은 위의 두 행(行)이 원만함을 송했으며, 다음 두 게송은 위의 득위(得位)의 이익을 송하였다.
제7은 부처님의 출세(出世)이다. 별(別) 가운데 3구(句)가 있으니, 처음은 몸을 나타내어 널리 두루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를테면 일신이 일체 차별이 있는 법계에 변만(遍滿)함으로써 하나하나의 처소마다 모두 몸을 온전히 나타냈고, 또한 몸을 나누지 않고 또한 한계[限分]가 없기 때문이다. 수명[壽]의 장단이라는 것은 수선다불(須扇多佛)이 아침에 성도해서 저녁에 입멸한 것과 가섭의 7일과 석가의 팔십 등은 단수(短壽)라고 말하고, 미륵의 8만과 미타의 극산(極算) 등은 장수(長壽)라고 한다. 모두 기감(機感)으로 말미암는 까닭에 그러함을 이룬다.
또 처음은 일체처에 나타남을 기준으로 한 것이요, 뒤의 두 구는 일체시에 나타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장단을 갖춘 까닭에 일체라고 한다.
【문】 만약 그러하다면 처소는 어찌하여 그렇지 아니한가?
【답】 차별이 있는 법계는 다소에 통하고 유무에 통하는 까닭에 변만(遍滿)이라고 말한다.
송에는 열 개의 게(偈)가 있으니 처음 세 개의 게송은 앞의 장행을 송했다. 처음 하나의 게송은 전체를 송했고, 다음 한 개의 게송은 몸이 두루함을 송했으며, 뒤의 한 개의 게송은 길고 짧음을 송했다. 뒤에 일곱 개의 게송이 있으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심이 무방(無方)하고 승용(勝用)함을 밝혔다. 이것을 일곱으로 나누니 처음의 한 게는 국토를 장엄하는 것의 다소요, 다음 한 게송은 승(乘)을 설하는 것의 다소요, 다음 한 게송은 생(生)을 구제하는 것의 다소요, 다음 한 게송은 화(化)를 나타내는 것의 광협(廣狹)이요, 다음 한 게송은 원음(圓音)이 널리 응하는 것이요, 다음 한 게송은 주반이 두루 충만한 것이요, 다음 한 게송은 자비의 바다[慈海]를 널리 나타내어 총체적으로 매듭 지음이다. 이 가운데 혹은 단수(短壽)로써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 혹은 장수로써 적은 중생을 제도하며, 혹은 장수로써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 혹은 단수로써 적은 중생을 제도함이 있다. 혹은 단수로써 소승을 설하고 혹은 위와 반(反)하기도 한다. 혹은 장수로써 다승(多乘)을 설하고 혹은 위와 반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것 등은 허공 법계와 같다. 모두 이 자해력(慈海力)이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제8 겁 가운데서는 생략하여 게송이 없다. 총설에 ‘티끌과 같은 겁에 머무른다[塵等劫住]’라는 것은 곧 하나하나의 세계마다 각각 티끌과 같은 겁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고 진실로 낱낱의 세계가 겁에 머무는 것이 같지 아니하며 장단의 차별이 티끌과 같다. ‘소위(所謂)’ 이하는 따로 두 문을 들고, ‘여시(如是)’ 이하는 총체적으로 차별의 겁을 매듭 지은 것이다. 그 뜻은 별도로 설한 것과 같다.
제9에 제10의 괴방편세계해(壞方便世界海)를 해석한다는 것은 다만 괴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成)이 곧 괴(壞)이니 모든 연은 각각 지음이 없기 때문이요 성품은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3재(災)의 무너짐[壞]이니, 이는 곧 사의 무너짐[事壞]이다. 이제 이 문(文) 가운데 처음의 뜻을 밝혔고, 아래 중송의 게송에서는 뒤의 뜻을 밝혔다. 또 해석하건대 처음은 곧 괴(壞)의 성(成)이고 뒤는 곧 성의 괴이니 괴이기 때문에 방편괴라고 한다. 또 뒤의 괴도 또한 연을 좇아서 무성(無性)이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 구괴(俱壞)를 필요로 하느냐[須]고 말하면 견심(見心)56)을 다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며, 성괴(成壞)는 원통(圓通)하기 때문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또한 처음은 곧 불성(不成)이기 때문에 성(成)을 이루고, 뒤는 곧 불괴(不壞)이기 때문에 괴를 이룬다. 이는 곧 괴와 성을 함께 이룸이거니 어찌하여 그렇지 아니한가?
【답】 이실(理實)은 응당 그러하다. 다만 이 문은 제10의 괴의 뜻을 해석하기 위하여 성(成)을 해석함이 아닌 까닭에 밝히지 않은 것이다.
경문 가운데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뜻을 들어서 총체적으로 고(告)함이니 이를테면 화장(花藏)을 분별하여 군기(群機)에 개시(開示)함이요, 다른 하나는 바르게 소설(所說)을 밝힌 것이다.
설 가운데 셋이 있으니, 처음엔 주(主)를 들어서 인(因)을 밝히고, 두 번째 ‘수미산의 미진과 같은 풍륜이 있다[有須彌塵等]’ 이하는 인(因)이 이룩할 과를 밝혔고, 세 번째 ‘이와 같은 부처님이 항상 법륜을 굴리는 곳이다[是佛常轉法輪處]’ 이하는 과(果)를 맺어서 주(主)에 속하게 함이다.
처음 가운데 셋이 있으니 먼저는 총체적으로 밝힘이니, 이를테면 처음 뜻을 발함[初發意]으로부터 곧 이 인(因)을 닦는데 인은 깊고 과는 두터운 것을 밝힌 것이다.
【문】 『유가론』에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3아승기야겁(阿僧企耶劫:阿僧祇劫)이 지나도록 수행하여 성불하되 더할 것도 없고 감할 것도 없다”고 설했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곧 아승기 개[箇]의 세계가 있으되 그 낱낱 세계를 모두 가루를 내어 티끌을 만들어서 한 티끌을 한 겁이라고 설하는가. 여기에 의거할 때는 곧 불가설 개[箇]의 아승기겁이 있다. 무슨 까닭에 같지 않는가?
【답】 저기서는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한 곳의 화의(化儀)에 의거하여 오직 이 수미산 세계에 나아가서 설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보운경(寶雲經)』에 이르기를 “나는 천근한 중생을 위하여 3아승기겁을 수행한다고 설했지만, 그러나 나는 실제로 무량 아승기겁을 수행한 것이다”라고 하니, 이것은 삼승을 회통하여 일승에 돌아감을 말한 것이다. 이 경문은 일승을 기준으로 해서 시방을 회통하고 인다라망과 수형(樹形) 등 여러 종류[諸類]의 세계를 설한 것이다. 또 법을 기준으로 해서 때[時]를 밝힘에 법이 다할 수 없으므로 때도 또한 다함이 없다. 경문 가운데서는 우선 10대수(大數) 가운데 초수(初數)만을 들어서 법으로 삼았지만 또한 곧 제망의 비유에 통하는 까닭에 이 또한 무진(無盡)이다.
【문】 만약 그러할진대 1겁이 곧 무진하거늘 어찌하여 다만 1겁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답】 여기에서는 무진무진하기 때문이다.
또 덕을 갖추지 아니함이 없는 것을 ‘엄(嚴)’이라고 말하고, ‘때[垢]’를 다 없애지 아니함이 없음을 청정[淨]이라고 말한다. 또 처음은 복과 지혜를 번갈아 꾸민 것이고, 뒤는 단덕(斷德)의 더러움을 여읜 것이다. 또 엄은 곧 정엄(淨嚴)이다.
별(別) 가운데에 무릇 국토의 원인을 논함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의인(依因)이니 진여와 정식(淨識)과 경지(鏡智)요, 다른 하나는 생인(生因)이니 이를테면 모든 오묘한 행과 서원[願]이다.
이제 뒤의 뜻을 기준으로 해서 간략히 세 가지를 진술하겠다. 첫째는 광복(廣福)이요, 둘째는 대원(大願)이요, 셋째는 묘행(妙行)이다. 처음 가운데 ‘하나하나의 겁[一一劫]’이라는 것은 때[時]의 넓음이다. 하나하나의 겁 가운데 티끌과 같이 수많은 부처님을 공양한다고 하는 것은 밭의 넓음[田廣]이다. 또 부처님이기 때문에 밭[田]이 매우 뛰어난[深勝] 것이다. 아래의 「십지품」에 준하면 마땅히 일체의 공양구[供俱]가 있으니 곧 공구의 넓음이다. 이상은 마음의 깊음이다. 마음이 곧 공(供)임은 마음의 넓음이다. 이 문(文)은 약(略)을 존(存)하기 때문이다. 『지론(地論)』에 준거하면 공경과 공양에 각각 세 가지가 있다. 마땅히 저 문(文)을 찾아보라. 『신금강반야론』 상권에 “또한 세 가지의 공양이 있으니 첫째는 좌우에 급시(給侍)함이요, 둘째는 필요로 하는 것을 엄숙히 갖춤[嚴辦]이며, 셋째는 법요(法要)를 여쭈어 계승함[詢承]이다”라고 했다.
두 번째 원(願) 가운데 ‘하나하나의 겁’이라는 것은 시(時)의 넓음이요, ‘하나하나의 불소(佛所)’라는 것은 승연(勝緣)의 넓음이다. ‘티끌과 같은 원(願)’이라는 것은 원의 넓음이니 이를테면 큰 서원으로써 스스로 이 과(果)를 이루기를 구하는[要] 것이 곧 요기(要期)의 원이다. 또 닦아야 할 복행(福行)은 이 과를 성취하기를 바라는 것이 곧 희수(悕須)의 원이다. 부처님을 대하여 넓음을 발하는 것을 수(修)라고 하고, 진실한 이염(離染)을 청정[淨]이라고 한다. 또 10대원 가운데 불국토를 깨끗이 하는 원과 나머지 모든 원은 마땅히 살펴서 이것을 논할 것이다.
세 번째 오묘한 행 가운데 수시(修時)의 광(廣)과 연심(緣深)의 광과 행사(行事)의 광을 알 만하다. 또한 연을 대하여 진조(進造)함을 수(修)라 하고, 수가 이루어져서 염(染)을 여의는 것을 정(淨)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10도(度)와 6도(度) 등의 행과 나아가 일체의 행이니 여기에 준거하라. 또 세 가지 행 가운데 처음은 스스로를 이익되게 함이요, 뒤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중간은 두 가지 이익[二利]에 모두 통한다. 또 네 가지 다(多)를 갖춤이니 곧 4수(修)이다. 첫째 진수겁(塵數劫)은 곧 시(時)의 다(多)이니 장시수(長時修)라고 하고, 둘째는 진수의 불소(佛所)는 곧 부처님께 공양함이 많은 것으로써 공경수(恭敬修)라고 한다. 셋째는 하나하나의 부처님마다 발한 원은 곧 원이 많음이니 무간수(無間修)라고 한다. 이를테면 원심(願心)이 상속함이다. 넷째는 진수의 행은 곧 행을 일으킴이 많음이니 무여수(無餘修)라고 한다.
둘째로는 성취한 과를 밝힘이니 이것을 둘로 나눈다. 먼저는 이 주(主)의 세계를 밝히고 나중에는 결통(結通)을 밝혔다.
앞의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본(本)의 세계를 의지처로 함을 나타내고 둘째는 ‘이 향수해 위에 세계성의 머무름이 있다[此香水海上有世界性住]’ 이하는 다음에 거듭 잡류세계성(雜類世界性)을 밝히고, 셋째는 ‘향수해를 낙광명(樂光明)이라고 이름한다’ 이하는 다시 거듭 12불국토와 7세계성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 본사의 부처님의 섭화 경계는 여러 교[諸敎]에서 설하는 분제와는 같지 않다.
만약 소승에서라면 다만 이 하나의 사바세계만이 있다.
만약 삼승이라면 둘이 있으니, 하나는 화신의 화경(化境)이니 이 사바 등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타수용신의 화경이니 열여덟 원만의 정토 등을 말한다.
만약 일승을 기준으로 하면 십불의 화경은 연화장장엄세계해이다.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연화대장세계(蓮華臺藏世界)로서 비록 법계에 두루하다 할지라도 지상(地上) 보살의 기(機)에 대해서 나타냄에 증감이 있다. 색정(色頂)에 맡겨 있어서[寄在] 오직 한 계(界)만을 설한다. 둘째는 이 변법계의 화장에 다름 아니며 열 가지를 설하여 무진을 나타냄이니 곧 무진 개의 화장이니 하나하나가 다 법계에 두루함이다. 셋째는 수형 등의 잡류세계니 하나하나마다 다 연화장이 있고 아울러 저 세계와 같아서 모두 법계에 두루하다. 각각 열 가지가 있어서 무진무진하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처음 하나는 동교일승을 기준으로 해서 밝혔고, 뒤의 두 가지는 별교를 기준으로 해서 나타내었다. 이제 이 경문 가운데에서는 수미산세계에 의거하여 화장을 밝혔기 때문에 풍륜(風輪)과 수륜(水輪)은 도리어 그것과 비슷하다. 믿고 알기[信解] 쉽기 때문이며 중생을 인(印)쳐서 이루기 때문이다.
처음 경문을 둘로 나눈다. 처음은 별도로 엄(嚴)의 상을 나타내었고, 뒤의 ‘하나하나마다’ 이하는 총체적으로 매듭 지음이다.
앞에 것 가운데 여섯 가지가 있다. 처음은 바람ㆍ물ㆍ꽃ㆍ땅을 근본이 의지할 것으로서 삼은 것을 밝혔고, 둘째는 땅 위의 산ㆍ바다57)의 장엄 등을 밝혔고, 셋째는 땅이 능히 영현(映現)하는 장엄이요, 넷째는 땅 위의 향수해의 장엄이며, 다섯째는 바다 사이의 향하(香河)의 장엄이요, 여섯째는 하간(河間)의 보배 나무의 장엄이다. 이 6단(段) 가운데 각각 둘이 있으니, 이를테면 장행과 게송이다.
초단의 장행 가운데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풍륜무애지(風輪無碍持)요, 둘째는 바람에 의지하여 향해가 있음[依風有香海]이요, 셋째는 바다에 의지하여 연꽃이 있음[依海有蓮花]이요, 넷째는 꽃에 의지하여 세계가 있음[依花有世界]이요, 다섯째는 세계에 의지하여 철위산이 있는 것[依界有圍山]이다.
먼저 글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총(總)이요, 다음은 별(別)이며, 나중은 결(結)이다. 별 가운데 앞의 일곱은 각각 보배 땅[寶地]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이를테면 하나의 풍륜 위에 하나의 보배 땅이 있고 이와 같은 차례로 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저 모든 보배 땅은 모두가 멀리 연꽃 위에 있다. 그런데 이 바람의 힘은 비록 연기문을 따라서 각각 다르지만 주(主)와 속(屬)이 걸림없이 주지(住持)하기 때문이니 이는 법성의 바람이다. 이 바람 가운데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걸림이 없는 뜻이요, 다른 하나는 유력(有力)의 뜻이다. 그러므로 연기를 이룬다. 보배의 땅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가귀(可貴)의 뜻이요 다른 하나는 의지(依持)의 뜻이다. 인법(人法)ㆍ해행(解行) 등의 법문도 여기에 준거하라. 여덟 번째 시간[時]을 가진다는 것은 시간은 법에 의하여 세워졌으므로 자체가 없는 까닭에 지(持)라고 설한다. 아홉 번째 수미산지(須彌山地)라는 것은 곧 아래 경문에서 가지고 있는 잡세계처의 일로써 멀리 주[主]가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열 번째 일체유(一切有)라는 것은 첫째는 모든 세계 가운데의 3유(有)58)이다. 둘째는 또한 이 보배 땅 위의 모든 장엄의 일을 통틀어 일체유라고 한다. 또 뜻으로써 구함에 앞의 일곱 가지는 차례로 세밀한 데[細]로부터 거친 데[麤]로 향하되 다만 모든 보배의 땅을 가지는 것에만 속하고 뒤의 셋은 점점 거칠어져서 아래 경문이 소지(所持)한 모든 세계성(世界性)과 4시(時)59)와 3유 등을 가진다. 또 이 가운데 가장 아래에 있는 풍륜은 초월하여 꽃 위의 보배 땅을 가지고 가장 위의 풍륜은 차례로 꽃 밑의 향수해를 가진 것은 상하가 용융하여 자재 무애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저 염토(染土)의 함렬해(鹹烈海)60)와 다르므로 향수해라고 한다. 향에 대하여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보훈(普熏)의 뜻이고 다른 하나는 분복(芬馥)의 뜻이다. 물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청정의 뜻이요 둘째는 세탁의 뜻이다. 바다에도 또한 두 뜻이 있으니, 하나는 깊고 넓음이요, 다른 하나는 덕을 갖춤이다. 또 열 가지 뜻이 있으니, 아래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주반을 갖춘 까닭에 일체라고 말한다.
꽃 가운데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처음 구는 뜻을 밝혔고 ‘큰 연꽃’이라는 것은 『양섭론』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세상의 연꽃이 진흙 속에 있더라도 물들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은 법계 진여가 세상에 있더라도 세간법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둘째는 연꽃의 성품이 스스로 개발하는 것과 같은 것은 진여 자성이 중생을 깨우쳐 주는 일에 비유했으니, 만약 증득할 때는 곧 자성이 개발된다. 셋째는 연꽃이 많은 벌에게 채취되는 것과 같은 것은 진여가 많은 성인에게 쓰여짐에 비유한 것이다. 넷째는 연꽃이 4덕(德), 즉 첫째는 향, 둘째는 깨끗함, 셋째는 유연, 넷째는 사랑스러움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진여의 4덕, 즉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에 비유했다. 이와 같은 것 등은 모두 의지(依止)의 뜻이 되는 까닭에 저 논에서도 ‘일부차(一復次)’를 기준으로 해서 해석하여 이르기를 “여래의 원력이 느끼는 바 대보연화왕(大寶蓮華王)은 정토를 의지할 곳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화장의 이름은 이것을 인하여 성립되었다. 아래 구에 향기로운 당기[香幢]라는 것은 뜻에 의하여 이름을 성립한 것이다. 그 이름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향에 두 뜻이 있는데 하나는 체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곧 분온(氛氳)의 뜻이요, 두 번째는 용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보훈(普熏)의 뜻이다. 둘째는 당기[幢]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체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곧 독출(獨出)의 뜻이요, 또 하나는 용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항복의 뜻이다. 제석의 당기 등과 같다. 셋째는 광명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어둠을 비춤이요, 또 하나는 법을 드러냄이다. 넷째는 장엄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구덕(具德)의 뜻이요, 다른 하나는 교식(交飾)의 뜻이다. 이 가운데 향이 곧 당기요, 향당(香幢)이 곧 광명이며, 광명이 곧 장엄이니 모두 지업석이다. 또 의주(依主)를 통함에 있어서도 여기에 준거해 보라.
아래의 소지(所持)를 밝히면 두 구가 있다. 처음 구 가운데 꽃에 대한 뜻은 앞에서와 같다. 장(藏)이라는 것은 함섭(含攝)의 뜻이요, 출생의 뜻이며, 구덕의 뜻이다. 이것을 통론하면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이 국토의 안에 일체의 인법(人法) 등 모든 법문을 함섭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일체의 나머지 세계를 함섭하기 때문이다. 아래 구의 금강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견고의 뜻이요, 다른 하나는 예리하다는 뜻이다. 산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높다는 뜻이요, 다른 하나는 고요하다는 뜻이다. 위요(圍遶)에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안으로 이익을 섭수한다는 뜻이요, 다른 하나는 밖으로 적을 막는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금강을 쓰면 외적의 장애가 능히 침범치 못하는 것이요, 안으로는 덕을 증장함이다.
게(偈) 중에 스무 개의 송(頌)이 있으니 둘로 나눈다. 처음 일곱은 간략하게 전문을 송하였고, 뒤의 열세 송은 승용(勝用)의 이익을 밝혔다.
앞의 것을 다섯으로 나누니, 처음 한 송은 과의 체용을 들었고, 다음 한 송은 앞의 인(因) 가운데 부처님께 공양올린 청정한 복덕[供佛淨福]을 송하였으며, 다음 두 송은 앞의 큰 서원[大願]을 송하였고, 다음 한 송은 앞의 과(果) 안의 바람이 보배 땅을 가지는 것을 송하였으며, 다음 두 송은 앞의 토인(土因)의 큰 서원을 송하였으니, 이것은 임방(任放)의 변재이기 때문에 설함에 있어서 차례를 기다리지 않았다.
두 번째 승용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여섯 송은 의보의 용에 대한 이익을 밝혔고, 뒤에 일곱 송은 정보의 용에 대한 이익을 밝혔다. 앞의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승용(勝用)을 밝힘에 있어서 네 송이 있다. 첫째 송은 세계광(世界光)이요, 둘째 송은 보살광이요, 셋째 송은 화색광(花色光)이요, 넷째 송은 정보광(淨寶光)이니, 아울러 지혜[智] 등 법의 광명이기 때문에 능히 법계를 가득히 비추는 것이다. 뒤에 두 송은 이익의 모습을 밝혔다. 처음 한 송은 의혹을 멸하여 덕을 이루는 것이요, 두 번째 송은 제망의 법계를 보는 것이다. 뒤에 정보의 용에 대한 이익 가운데 또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먼저 승용을 밝힌 것이니 여기에 두 송이 있다. 하나는 세계 밖의 불용(佛用)을 밝혔고, 다른 하나는 꽃 속의 불용을 밝혔다. 또 앞의 것은 구슬 가운데 보살이 시방에 두루함이요, 여기서는 곧 꽃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 중생계와 같음이니 의(依)와 정(正)이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아래에서는 이익의 모습을 밝혔다. 이 가운데 다섯이 있으니 첫째는 이익이 될 기(機)를 들었고, 둘째는 넓은 가르침을 일으킴이요, 셋째는 교묘히 중생을 조복함이며, 넷째는 자분(自分)에 안주하게 함이니 단덕(斷德)이요, 다섯째는 듣고 승진(勝進)하게 함이니 지덕(智德)이다.
【문】 어찌하여 부처님 등은 말로써 설법하지 않고 광명ㆍ구름 등으로 비유하여 설하시는가?
【답】 이것으로써 세계의 용을 밝혔기 때문에 그러하다.
【문】 만약 그러하다면 무엇 때문에 부처님의 빛 등을 분별하였는가?
【답】 의(依)와 정(正)은 원융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또한 세계[刹]가 된다.
【문】 이 가운데 뜻은 화장계를 밝혔거늘, 무슨 까닭에 모든 잡화(雜化)의 용을 설하였는가?
【답】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세계의 용이기 때문에 용을 밝혀서 체를 나타냄이요, 다른 하나는 화용(化用)이 의지가 되기 때문에 곧 세계가 된다.
【문】 무슨 까닭에 장행과 같지 않는가?
【답】 장행은 간략하게 표했고, 게송에서는 자세히 나타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산밑의 땅ㆍ바다의 장엄을 총체적으로 밝힌다는 것은 장행에 다섯 구절이 있다. 처음 두 구는 땅의 이름을 나타냈으니 이를테면 연화대의 표면을 보왕지(寶王地)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땅을 누르는 바다를 밝혔고, 셋째는 지상(地相)의 구덕(具德)이요, 넷째는 지체(地體)의 견고요, 다섯째는 지(地)의 승용을 밝혔다. 이 가운데 처음 구는 법보(法寶)를 내고, 뒤의 구는 지혜[智]를 일으켜서 비춘다.
송에는 열 개의 게가 있으니 둘로 나눈다. 처음 여섯은 중덕(衆德)의 장엄을 밝혔고, 뒤의 넷은 법행(法行)의 장엄을 밝혔다. 또 처음은 체(體)에 중덕(衆德)을 갖춤이요, 뒤는 묘용이 자재함을 밝혔다. 또 처음은 의(依)이고 뒤는 정(正)이다. 또 처음은 사상(事相)의 장엄이요, 뒤는 법리(法理)의 장엄이다. 또 처음은 법이요, 뒤는 사람이다. 또 처음은 앞의 글을 송했고, 뒤는 이의(異義)를 밝힌 것임을 아울러 알 수 있다.
처음 가운데 맨 먼저 한 송은 총체적으로 장엄의 원인을 밝혔고, 다음 두 송은 위의 산지(山地)를 송했다. 이 가운데에 처음 하나의 송은 표(標)이니 보륜(寶輪)과 향륜(香輪)을 산 위의 장엄이라 하고, 주륜(珠輪)과 중보(衆寶)를 산 아래의 의(依)라고 한다. 뒤의 한 송은 해석이니, 처음 두 구는 위의 보륜의 장엄을 해석하였고, 다음 한 구는 위의 향륜을 나타내었으며, 맨 아래 한 구는 장엄의 뜻을 가렸다. 범어로는 ‘착가라[斫迦羅)’라고 말하고, 여기서는 ‘윤위산(輪圍山)’이라고 말한다. 다음 하나의 게는 위의 체와 상의 장엄을 송하였으니, 이를테면 처음은 체이고 뒤는 상이다. 다음 하나의 게는 위의 향수해를 송했고, 다음 하나의 게는 위의 지(地)의 승용을 송했다. 또한 바닷가 보배 땅 위에 보배 나무가 있고 나무 밑의 자리 위에 불보살의 몸이 있다.
제2단 중에 네 개의 게송이 있으니, 처음 하나는 총체적으로 몸과 말의 법륜을 밝혔고, 다음 두 개의 게송은 따로따로 몸과 색ㆍ의(依)와 정(正)의 걸림이 없음을 밝혔다. 이 가운데 처음은 한 게송은 부처님께서 많은 장엄구 가운데에 나타나심이고, 다음은 많은 부처님이 한 장엄구 안에 나타남이니, 곧 중생을 조복하는 것을 법륜이라고 한다. 또 앞은 꽃[花]ㆍ향(香)ㆍ당기[幡]ㆍ일산[盖]의 가운데 보살이 법계에 가득함이니, 이는 곧 보배 당기[寶幢]와 보배 나무[寶樹] 장엄 가운데 온갖 모든 부처님 몸의 구름[身雲]이 시방에 가득함이요, 아울러 정(正)으로써 의(依)를 삼은 것이다. 뒤의 한 게송은 따로 위의 어법륜(語法輪)을 나타내었으니, 이것은 곧 찰설(刹說)이다. 이 위는 3세간을 통하여 원융하여 걸림이 없다. 한 문[一門]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갖추기 때문에 그러함을 이루었다.
또 이러한 여러 경문의 장행에서 설한 것은 곧 그 차례를 엮었고, 사(事)에 따라서 이해를 내게 했지만 게(偈)에서 송한 것은 곧 그 시종을 융합하여 원통 무애해서 법성에 순응함이다. 장행은 법으로써 중생에 나아갔고, 게송은 기(機)를 회통하여 법에 돌아가게 하였다. 문가(文家)들이 서로를 꾸미는 훌륭한 기교의 모습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 번째로 보배 구슬의 장엄에서 장행은 여섯 구로 되어 있다. 처음 구는 보배의 이름을 나타내었으니, 산을 외곽으로 삼아 세계가 그 중간에 있기 때문에 안[內]이라고 말한 것이지 산중에 있는 것을 안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불가괴(不可壞)라고 이름함에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체를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니 금강의 말니(末尼)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덕을 무너뜨릴 수 없음이니 많은 보배를 거두어서 함께 자기 가운데 있게 함이다. 많은 보배가 서로 깨뜨리지 않는 것은 상(相)이 없는 것으로써 서로 형탈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또한 무너뜨리지 아니함은 둘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용을 무너뜨릴 수 없음이니 물(物)을 비 내림이 다단(多端)함으로 서로 빼앗음이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영(映)을 무너뜨릴 수 없음이니 능히 여러 몸[多身]을 영현하여 빼앗거나 깨뜨릴 수 없고 나타나는 곳에 거듭 나타나더라도 서로 방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주(珠)의 승용을 밝힌 것이니 통철 명환(洞徹明煥)하기 때문에 능히 나타난다. 이 가운데 영(映)이라는 것은 곧 능현으로써 그림자를 소현으로 삼는다. 무슨 까닭에 부처님과 나머지 다른 세계를 나타내지 않는가. 이를테면 그것은 교화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어찌하여 마음과 생각을 나타내지 않는가. 이를테면 마음과 생각은 색법이 아니므로 나타낸 뜻이 없는 까닭이다. 셋째는 보배 꽃으로써 땅을 장엄하는 가운데 ‘……으로써 장엄한다[以爲莊嚴]’라는 것은, 위의 두 구는 모두 대지를 함께 장엄함이요, 넷째는 구름의 장엄이요, 다섯째는 향으로 장엄함이요, 여섯째는 삼세의 장엄이니, 이것은 이를테면 삼세 제불이 화장계를 장엄함이 모두 이와 같다는 뜻이다. 또한 이 장엄은 삼세가 같기 때문이다. 또 장엄하는 바 장(藏)61)의 체가 삼세에 통하기 때문이다. 비록 현세에서 한 송이 꽃으로써 장엄하더라도 장엄하는 것이 같은 것을 말미암기 때문에 곧 삼세에 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송이 꽃과 하나의 화만도 모두 삼세에 두루함을 안다. 삼세가 함께 나타날 때 각각 과거와 미래를 갖춤으로써 곧 9세를 다함이다. 또 ‘이(以)’자는 용(用)의 뜻과 같다. 비록 장엄하는 바 세계가 오직 일념에 있더라도 삼세 일체의 장엄구를 써서 장엄하기 때문에 곧 장엄하는 것은 능엄(能嚴)과 같으며 3제(際)에 두루하다. 또한 능소(能所)는 일념에 곧 9세를 갖추므로 상즉상입에 통한다. 그러므로 10세를 갖추어 다함이 없음을 나타낸다. 위의 네 번째 해석에서는 뒤의 셋을 뛰어나다고 했다.
송에는 열 개의 게가 있으니 넷으로 나눈다. 처음 게송의 하나 반은 위에서 말한 무너뜨릴 수 없는 마니(摩尼)를 송했고, 다음 게송 두 개 반은 보배 꽃으로 장엄함을 송했으며, 다음 하나의 게는 구름으로 장엄함을 송했고, 다음의 다섯 게송은 삼세의 세계로 장엄함을 송했다. 그 가운데 처음 한 게송은 땅에 삼세의 행을 나타냈고, 다음 하나는 지진(地塵)에 함께 세계가 들어가고, 다음 하나는 보살이 수용하는 장엄이요, 다음 하나는 불법(佛法) 체용의 장엄이요, 다음 하나는 보현의 서원과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서 능히 많은 세계에 들어감을 송했다.
네 번째로 향해(香海)의 장엄이니, 이 가운데 장행의 별(別)이 열네 구이다. 첫째는 향보(香寶)의 언덕이요, 둘째는 보배 그물의 덮개요, 셋째는 보배 물의 흐름이요, 넷째는 많은 꽃이 핌이요, 다섯째는 가루향으로써 물을 향기롭게 함이요, 여섯째는 부처님의 소리를 냄이요, 일곱째는 향이 널리 풍김이니 이를테면 교법이 널리 미치는 것이다. 여덟째는 보배의 계단 길이니 법에 들어가는 사다리이다. 아홉째는 구슬 난간[珠欄楯]이니 이를테면 밖의 잘못을 막고 안으로 덕을 지키는 것이다. 열째는 조수의 소리요, 열한 번째는 꽃의 각위(閣圍)요, 열두 번째는 화성(花城)이 밖을 둘러쌈이요, 열세 번째는 향화(香花)가 물에 퍼짐이요, 열네 번째는 향나무를 장엄함이니, 아울러 사(事)에 즉하고 법에 즉하리니, 이것을 준거하여 생각해 보라.
송에는 열 개의 게가 있으니, 처음 하나는 바다를 송했고, 두 번째는 보배 해안을 송하였으며, 세 번째는 물과 부처님의 음성을 송했고, 네 번째는 계단과 난간을 송했으며, 다섯 번째는 보배 나무를 송했고, 여섯 번째는 꽃이 피는 것을 송했으니, 분다리(分陀利, pundarika)는 여기 말로는 흰 연꽃[白蓮花]이다. 일곱 번째는 보배 그물을 송했고 여덟 번째는 화성(花城)을 송했으며, 아홉 번째 하나는 그 밖에 두루함을 송했고, 열 번째는 인(因)을 들어서 결론을 지었다.
다섯 번째로 향하(香河)로 장엄하는 것이니, 이 가운데 장행은 별(別) 가운데 세 구절이 있다. 처음 구는 꽃으로 덮음이요, 둘째 구는 출처요, 셋째 구는 흐름을 따름이다. 의(依)와 정(正)이 걸림이 없음으로 부처님으로부터 나옴이니, 바름[正]을 표하기 위한 까닭에 미간으로부터 나온다. 가르침의 강물[敎河]의 흐름과 윤택은 증지(證智)로부터 나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가르침에 진(眞)의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보왕(寶王)은 흐름에 따르더라도 진성(眞性)을 잃지 아니하나니, 곧 수연(隨緣)과 불변(不變)이 둘이 없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송에는 열 개의 게가 있으니, 첫 번째는 강물의 모습[河相]을 총체적으로 밝혔고, 두 번째는 낭떠러지의 장엄이요, 세 번째는 향수의 흐름이요, 네 번째는 회선(廻旋)하여 이르는 것이요, 다섯 번째는 용보(踊寶)의 스스로 비춤이며,62) 여섯 번째는 강물의 체가 널리 두루함이요, 일곱 번째는 그물이 인(因)의 닦음을 연설함이요, 여덟 번째는 언덕에서 과의 행을 들음이요, 아홉 번째는 강물의 용(用)이 인을 폄이요,63) 열 번째는 강물의 근원은 과를 좇는 것이다.
여섯 번째로 보배 나무에서 그 가운데 장행이 다섯 구절이다. 처음 구는 나무의 체를 밝힘이니, 이를테면 무류법(無流法)의 수풀, 나무 등으로 곧 중덕(衆德)을 건립하는 뜻이다. 두 번째는 보배 만64)이 덮음이니, 즉 대비(大慈)로 널리 덮음이다. 세 번째는 인력(因力)이 일어나는 것이요, 네 번째는 과덕의 가피가 이루어짐이며, 다섯 번째는 지극하게 장엄한 경지를 다함이다.
송에는 두 개의 게가 있으니, 처음 하나의 게송은 과행의 자재함을 송했고, 뒤의 하나는 인행이 일어난 바를 송했다. 또 이 두 송은 곧 나무이니 사람과 법이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총체적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이 가운데 분제의 경계가 많으니 따로 설하면 다하기 어려우므로 총괄하여 ‘일일(一一)’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 가운데 장엄하는 일은 오히려 많기 때문에 총괄하여 ‘티끌 수[塵數]’라고 말했다. 또 장엄은 따로 나타내기 어렵기 때문에 총괄하여 청정이라고 말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2 대단(大段)에서는 제2중(第二重)을 밝힌다. 앞의 연화대 안 모든 향해(香海)의 위에 가지고 있는 모든 잡세계성(雜世界性)에 의거한 것이다.
장행 가운데 처음은 총(總)이고 뒤는 별(別)이다. 별 가운데 먼저는 소의(所依)에 머무름이니 이 가운데 여섯이 있음을 밝혔고, 뒤는 능의(能依)의 형태에 아홉 가지가 있음을 나타내었다.
이 가운데 세계성(世界性)이라는 것은 세계를 쌓아서 성(性)을 이루고 성을 쌓아서 바다를 이루는 것이니, 위에서 인용한 것은 『지론(智論)』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 아래 경문에서 “세계해 가운데 세계성이 있고, 세계성 가운데 한 세계가 있다”고 말한 까닭에 쌓아서 이루어진 것임을 안다. 무슨 까닭에 성(性)이라고 이름하느냐 하면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앞의 모든 세계를 바라봄에 모든 유류(流類)를 포함하여 쌓아 맺어서 성(性)을 이루는 것이 오래도록 익혀서 성을 이루는 것과 같다.
둘째 뒤의 바다를 바라보면 인(因)의 뜻이 있기 때문에 또한 성(性)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다.
【문】 세계를 쌓아 성(性)을 이룬다면 계(界)도 또한 인의 뜻이 되거늘, 어찌하여 성이라고 이름하지 않는가?
【답】 융결(融結)함이 없는 까닭에 처음의 뜻을 궐하였기 때문이다.
【문】 10세계 가운데 바다를 뒤에 두더라도 또한 다른 세계[餘界]를 쌓아 이룰 수 있거늘, 어찌하여 성이라고 이름하지 않는가?
【답】 처음부터 쌓아 맺고 거두어서 이미 성(性)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므로 뒤에 다르다는 뜻[異義]을 깨닫고 바꾸어서[轉] 별호(別號)를 세웠으므로 성(性)이라고 이름하지 않았다.
송에는 열 개의 게가 있으니, 이를 넷으로 나눈다. 처음 두 게송은 위에서 말한 머무르는 형상[住形]에 대하여 송했고, 다음에 세 게송은 세계[刹]에 색성(色聲)의 장엄이 있음을 밝혔으며, 체덕(體德)의 원만하게 갖춤[圓備]을 나타내었다. 세 번째로 세 게송은 모든 찰토는 즉입무애함을 밝혀서 오묘한 용의 자재함을 나타내었다. 네 번째 두 게송은 3세간의 자재함을 밝혔으니, 곧 섭화의 뛰어난 작용은 의(依)와 정(正)이 걸림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제3 대단(大段)에서는 위를 향하여 널리 모든 세계를 가진다는 것을 밝혔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위의 바다와 바다 위의 꽃을 거듭 들었고, 두 번째는 세계와 성(性)을 가짐을 밝혔다.
이 가운데 열두 개의 불토와 일곱 개의 세계성을 제덕(諸德)들이 해석하되 화장세계 밖을 시방 국토라 하는데 그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마도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미 화장세계의 향해 가운데 연꽃을 취하여 가졌기 때문에 밖이 아님을 알겠거든, 더구나 아래 경문에서 매듭 지어 노사나에 속하게 하였기 때문에 또한 밖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가운데 대의는 여러 향해를 밝힌 것이다. 이 가운데 간략하게 한 바다를 들고 한 바다가 가진 시방 세계에는 간략하게 한 방위를 들었다. 한 방위가 이미 그렇게 설하더라도 다할 수 없으니, 나머지 방위도 이를 예로 하여 준거해 보라. 한 바다가 가진 시방은 다함이 없어서 모두 법계에 두루하고, 나머지 낱낱 바다에도 또한 모두 시방을 가져서 각각 법계에 두루하여 무애 원융, 무진 자재해서 곧 불가설불가설이다. 대의는 위와 같으니, 이것을 생각하라.
두 번째 가졌다고 한 것 중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처음은 한 방위이고 뒤는 시방을 매듭 지음이다. 앞의 것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열두 겹으로 쌓여있는 불토를 밝혔고, 뒤는 일곱 개의 세계성을 밝혔다. 이 열두 개의 불토를 어떤 사람은 12인연에 배대하고, 어떤 사람은 보살의 12주(住) 등에 배대하여 하나하나마다 이것을 해석하였지만 뜻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찌 12의 수가 같다고 해서 배대하여 해석하겠는가. 다만 이 경에서 밝힌 것은 다 마땅히 10수(數)로써 무진을 나타낸 것이다. 비록 12ㆍ7ㆍ8 등의 수가 있더라도 이는 모두 10에서 증감이 있을 뿐이다. 『지론(智論)』의 해석과 같으므로 도리어 10수로 했으니, 어찌 배대하겠는가. 더구나 의리(義理)가 또한 다름이겠는가. 또 이 경에서 말한 일사일토(一事一土)라 할지라도 다 법계에 두루하여 일체의 인법ㆍ교의ㆍ인과ㆍ이사 등 일체의 법문을 구족함으로써 다만 한 모양이 아니다. 그러므로 1문(門)으로써 해석할 수 없다. 상하의 여러 경문은 모두 여기에 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위에서부터 여기까지의 여러 문(文)은 무슨 까닭에 12가지 뜻으로써 해석하는가?
【답】 일체의 일(一)에 돌아가 해석했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이런 까닭에 혹은 일이라 할지라도 적은 것이 아니요, 또 혹은 다(多)라고 할지라도 많은 것도 아니다. 문을 이루기 위해서 이것을 전후에 펼쳤으니, 반드시 깊은 뜻을 얻어 많고 적은데 걸림이 없게 하라.
또 무릇 부처님과 세계의 이름을 성립한 것에 대하여 논하면 같지 않다. 간략하게 다섯 가지 모양[相]으로 말미암는다. 첫째는 혹 기감(機感)에 인한 것이요, 둘째는 혹은 부처님의 본원에 말미암았고, 셋째는 혹은 본행에 의지하였으며, 넷째는 혹 먼저 부처님의 기별이며, 다섯째는 혹은 법문을 표시함이다. 이 가운데 부처님과 세계가 의와 정이 원융하여 법의(法義)로써 이것을 소멸하여 없애야 한다. 티끌 수처럼 많은 향해와 세계성도 이에 준하여 해석해 보면 알 수 있다.
또 어떤 이의 뜻에는 이 위를 총괄하여 이중으로 하였으니, 처음은 이 부처님의 화장토와 이 부처님이 소지(所持)한 세계성을 밝혔고, 뒤의 ‘12불토로 좇아’ 이하는 다른 부처님의 국토도 세계성을 가진 것을 밝혀서 총괄하여 2대(對)로 하였다. 모름지기 이것을 생각하라. 결통(結通)과 결속(結屬)을 모두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거듭 송함[重頌] 가운데 칠십 송이 있다. 다만 다음 앞의 장행 가운데 일[事]만을 송했고 이 앞의 10세계해와 화장 등은 송하지 않았다. 거기에 각각 게(偈)가 있으니 거듭 송함을 마쳤다. 앞의 12불국토와 7세계성은 모두 통틀어 이 10해(海)의 뜻이 있기 때문이니, 이런 까닭에 게에서 송하여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저 장행과 광략(廣略)을 서로 꾸민다면 또한 앞의 여러 경문에서와 같다. 이것을 둘로 나누면 먼저 아홉 송은 전문(前文)을 총체적으로 송했고, 다음 나머지 송은 따로따로 앞의 열 가지 바다를 송했다.
처음 가운데 네 가지가 있으니, 처음 하나는 의지할 바 근본이 되는 화장(花藏)의 토해(土海)를 나타냈고, 다음 셋은 능의(能依) 이류(異類)의 여러 세계를 통틀어 밝혔으며, 다음 셋은 따로 간략하게 능의(能依) 세계의 형상을 나타냈고, 뒤의 둘은 불찰의 대용을 통틀어 들었다.
두 번째로 10해를 송한 경문이 열 가지가 된다.
처음 11게는 기구인연(起具因緣)세계해를 송하였고, 그 가운데 일곱 가지 인연이 있다. 처음 셋은 신력(神力)의 원인을 송하니 이 가운데 처음 하나는 근본에 나아가서 무너짐이 없고, 뒤의 둘은 말(末)을 따라서 이지러지고 가득 차는[虧盈] 것이다. 다음에 ‘종종의 나무에 의하여……과 같이’ 이하의 두 송은 업종(業種)의 인을 송하였다. 처음 하나는 보(報)가 다름이고, 뒤의 하나는 업이 다름이다. 세 번째 ‘비유하건대 여의보(如意寶)’ 이하 두 송은 원력의 인을 송했다. 처음 하나는 보배 구슬이 색을 나타내는 비유이고, 뒤의 하나는 용(龍)이 공중에 구름을 나타내는 비유이다. 네 번째 ‘마치 공교한 요술쟁이[幻師]와 같이’ 이하 하나는 환업의 인을 송함이요, 다섯 번째 ‘채색 그림[彩畫]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등의 한 송은 마음의 그림의 원인을 송했다. 여섯 번째 ‘중생의 마음이 같지 않다’ 등의 한 송은 망상의 인을 송했다. 일곱 번째 ‘마치 길잡이[導師]의……을 보는 것과 같이’ 등의 한 송은 심행(心行)의 원인을 송했다.
이 일곱 가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처음은 위신을 나타냈고, 두 번째는 종자(種子)요, 세 번째는 숙원력(宿願力)이요, 네 번째는 현행(現行)이요, 다섯 번째는 본식(本識)이 나타남이요, 여섯 번째는 전식(轉識)의 모습이요, 일곱 번째는 낙욕(樂欲)의 그릇이다. 그러므로 별(別)이 된다.
두 번째로 ‘한량없는 진주(眞珠)’ 이하 두 개의 송은 장엄세계해를 송하였다. 세 번째 ‘혹은 불찰지(佛刹地)가 있다’ 이하 네 개의 송은 염정세계해를 송하였다. 그 가운데 처음 하나는 오직 염(染)이고, 다음 둘은 염이기도 하고 또한 정이기도 하며[亦染亦淨], 뒤의 하나는 오직 정이다. 처음 하나는 중생이요, 다음 둘은 보살이며, 뒤의 하나는 모든 부처님이기 때문에 머무는 땅에 염정이 있게 함이다. 이 셋은 점차로 청정[淨]에 향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한 불국토 가운데’ 이하 네 송은 괴방편세계해를 송하였다. 또한 처음 하나는 오직 괴(壞)요, 다음 둘은 성이기도 하고 또한 괴이기도 하며[亦成亦壞], 뒤의 하나는 오직 성(成)으로서 괴(壞)가 없다. 염(染)은 괴하고 정(淨)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혹은 불찰의 일어남이 있다’ 이하 20송은 체(體)세계를 송하였다. 그 가운데 처음 여섯 송은 순염(純染)의 고(苦)를 체로 하고, 다음 네 송은 고락을 섞는 것을 체로 삼았으며, 뒤의 열 송은 순전히 깨끗한 즐거움을 체로 삼았다. 이 가운데 처음 다섯은 사(事)를 따라서 체를 밝혔고, 뒤의 다섯은 묘용이 자재함이다.
여섯 번째 ‘혹은 한량없는 불토’ 이하 세 송은 주(住)세계해를 송했다. 이 가운데 처음 하나는 능의(能依)의 형상을 들었고, 뒤의 둘은 소의(所依)의 주상(住相)을 나타내었다.
일곱 번째 ‘혹 사자좌와 같이’ 이하 세 송은 형(形)세계해를 송했다.
여덟 번째 ‘혹 수명이 1겁이다’ 이하 두 개의 송은 겁세계해를 송했다.
아홉 번째 ‘혹 국토에 부처님이 없다’ 이하 다섯 송은 불출세(佛出世)세계해를 송했다. 그 가운데 처음 하나는 총괄하여 표했고, 다음 둘은 화신이 시현하는 것을 밝혔으며, 다음 하나는 근기가 익으면 때[時]로써 나타나지 아니함이 없고, 뒤의 하나는 비기(非器)는 때로써 나타남이 없음을 밝혔다.
열 번째 ‘혹 세계[刹]는 극히 탁악(濁惡)하여’ 이하 일곱 송은 설(說)세계해를 송했다. 그 가운데 처음 둘은 악도(惡道)의 소리요, 다음 둘은 선도(善道)의 소리이며, 뒤의 셋은 법륜의 소리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서로 통하여 앞의 과에 대한 물음에 답하여 마쳤다.
아래로부터 제2 대단에 과를 얻는 인을 밝혀서 앞의 질문 가운데 일체 보살이 수행할 바다 등에 대한 물음에 답하였다. 또 해석하건대 앞의 모든 세계성 가운데 한 세계성을 열어서 안에 소유한 세 가지 세간과 5해(海) 등을 나타내었다.
경문을 넷으로 나누면, 첫째는 지나간 때[時]와 처소[處]를 들어 부처님이 세상에 나옴을 밝혀서 수행의 연(緣)으로 삼는다. 둘째 ‘저 염광성(炎光城)’ 이하는 보엄(普嚴)65) 동자를 밝혔으니 능히 수행하는 사람이다. 셋째 ‘동자는 부처님의……본다’ 이하는 연을 대하여 바르게 자분(自分)의 행을 닦아 성취하는 것을 밝혔고, 넷째 ‘저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이하는 다시 부처님을 보고 승진의 행을 성취함을 밝혔다.
처음 가운데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지나간 때를 들었고, 둘째는 지나간 처소를 밝혔으며, 셋째는 처소 가운데 장소[場]요, 넷째는 장(場)의 위에 부처님이 나옴이다. 두 번째 지나간 곳[往處]에 대해서도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해(海) 중에서 성(性)을 취함이며, 둘째는 성(性)의 안에 산림이요, 셋째는 수풀 동쪽의 뛰어난 성(城)이니, 이 가운데 처음은 의보가 뛰어나고 뒤는 사람의 무리가 뛰어남이다. 넷째는 권속의 성(城)이 장엄함이다. 세 번째 장(場)의 안에서는 처음은 장지(場地)이고 뒤는 화좌(花座)이다. 네 번째 부처님께서 나오신 가운데서는 처음은 부처님이 나옴이요, 뒤는 빛을 놓아 이익되게 함이다.
두 번째로 능히 수행하는 사람을 든 가운데 ‘왕(王)’이라는 것은 순리의 선혜(善慧)를 두어 중생[物]으로 하여금 애견(愛見)하게 함이다.
【문】 『열반경』에서 “일체의 윤왕(輪王)에게는 다 결정코 천(千)의 아들이 있어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다”고 말했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같지 아니한가?
【답】 저것은 이 사천하의 주인인 윤왕이니 삼승을 기준으로 해서 말했으나 여기서는 이 세계성에 주인인 윤왕이기 때문에 관대하여 그보다 깊고 상세함이 백정보망(白淨寶網)66) 등 1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금륜왕의 복으로써 느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일승을 기준으로 해서 설함으로써 같지 아니하다. 또 왕과 장자라는 것은 곧 복분(福分)이고, 동자는 혜분(慧分)이 된다. 이런 까닭에 도에 들어가는 그릇을 이룬다. 덕이 법계에 두루함을 ‘보(普)’라고 말하고, 보덕(普德)이 교차로 꾸미는 것을 ‘엄(嚴)’이라고 한다. 보의 엄과 보가 곧 엄(嚴)과, 보엄의 동자와 보엄이 곧 동자이다는 모두 두 가지 해석에 통한다. 오염을 여의고 정결하게 된 것은 도기(道器)가 됨을 나타낸 것이므로 동자라고 말하니 문수 등과 같다.
세 번째 자분의 행을 닦아 이루는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엔 부처님을 보아 선정[定]을 얻음을 자분(自分)의 처음이라고 하고, 뒤에 경을 듣고 선정을 얻음을 자분의 마지막을 이룬다고 한다.
앞의 것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자리로써 선정[定]을 얻음이요, 둘째는 게(偈)로써 권하여 다른 이를 교화함이며, 셋째는 왕이 기뻐서 게로써 고함이요, 넷째는 함께 한가지로 부처님께 나아감이다.
처음 가운데 ‘부처님의 공덕을 보는 것은 선근의 인연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에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부처님의 공덕을 보는 선근의 인연력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니, 이것은 곧 오직 경계의 힘에 속한다. 둘째는 부처님의 공덕을 보고 생겨나는 선근의 인연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선정을 얻는다. 셋째는 밖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보고 연을 삼으며, 안으로 스스로 옛적으로부터 소유한 선근을 인으로 삼아서 인과 연이 갖추어지기 때문에 선정을 얻게 함이다. 이 10정(定) 가운데 처음 다섯은 남을 이익되게 함을 이루기 위함이다. 첫째는 과법을 갖추고, 둘째는 보교(普巧)에 들고, 셋째는 교묘하게 엄숙한 그릇을 이루고, 넷째는 바르게 기를 이익되게 하고, 다섯째는 이익의 분제이다. 뒤의 다섯은 자리를 이루기 위함이니, 첫째는 가행(加行)을 이루고, 둘째는 정증(正證)에 들고, 셋째는 후지(後智)를 넓게 하고, 넷째는 열반에 순하고, 다섯째는 보리에 순함이다. 또 처음 하나는 총괄적이고 나머지 아홉은 따로 밝혔으니 대략 해석하여 보면 알 수 있다.
두 번째 널리 권하는 가운데 처음은 게(偈)를 설했고, 뒤에는 게의 소리의 분제이다. 게에서 처음 넷은 부처님의 덕은 만나기 어려움을 탄식하였고, 다음 셋은 만나서 뛰어난 이익을 이룸을 밝혔으며, 뒤의 하나는 매듭 지음이니 권하여 공양을 일으켰다.
셋째 왕이 기뻐서 게로써 고하는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왕이 듣고 환희함이요, 나중은 게의 조칙으로써 영을 내림이다. 이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 하나는 고(告)를 들어서 칙명했고, 다음 일곱은 장엄하여 뛰어난 공양을 갖추게67) 하였으며, 뒤의 하나는 생각을 일으켜서 부처님에게 나아가게 하였다.
넷째 함께 한가지로 부처님께 나아감이니, 처음은 왕과 안의 권속이고 뒤의 여덟 부류[部]는 밖의 권속이다.
두 번째로 경을 듣고 이익을 얻는 가운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에 경의 이름을 밝힌다는 것은 행은 능히 과를 나타냄으로써 과를 들어서 인을 취하기 때문에 현(現) 등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 뜻에 따르면 오직 인에 의거함이요, 또 이 부처님의 집회라는 것은 곧 현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곧 오직 과일 뿐이다. 이 가운데 ‘삼세’라는 것은 곧 셋의 현재68)이기 때문에 곧 9세ㆍ10세를 갖추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과거ㆍ미래는 이미 없을 터이니 어찌하여 현이라고 말하겠는가. 이는 곧 일승 원교이기 때문에 권속을 섭수하게 된다.
두 번째 동자가 이익을 얻는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엔 선정[定]을 얻으면 스스로의 이익이 되고 다음에는 게를 설하는 것은 다른 이를 교화하는 이익이다. 처음 가운데 네 가지 선정이 있으니, 첫째는 널리 경법(境法)을 갖추고, 둘째는 섭입하여 마음에 돌아가게 함이요, 셋째는 법에 계합하여 두려움이 없음이요, 넷째는 혜안(慧眼)이 원명함이다. 두 번째 이타(利他)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은 게송을 설했고 뒤는 이익을 얻음을 밝힌 것이다. 게 가운데 세 가지가 있다. 처음 하나는 총(總)이니 위의 반은 앞의 법안정(法眼定)을 송했고, 아래 반은 총체적으로 눈이 보는 바를 거론했다. 다음 일곱 개의 게송은 별(別)이니 부처님의 본생을 밝혔다. 부처님으로 말미암아서 보는 것이다. 뒤의 둘은 별(別)로 모든 부처님을 보고 중생을 위하여 인(因)을 닦아 이익을 얻게 함임을 알 수 있다. 셋째는 여래의 찬술이다. 아홉 개의 게송 가운데 다섯으로 나누면, 처음 하나는 총체적으로 동자를 찬탄하였고, 다음 둘은 별도로 정보(正報)를 기록했으며, 다음 둘은 별도로 의과(依果)를 기록했고, 다음 둘은 그 고행을 찬탄하였으며, 뒤의 둘은 총체적으로 의정(依正)을 기록하였다.
제4 대단의 승진행(勝進行)을 성취함이니, 그 가운데 둘이 있다.
처음에는 부처님을 들어 행함에 있어서 의지할 인연을 삼음이다. 그 가운데 먼저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부처님이 일어난다는 것은 행이 다르고 연이 다르기 때문이요, 동자의 보명(報命)이 아직 존재하는 것은 행이 상속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연에 의지하여 행을 이루는 이익이다. 그 가운데 둘이 있으니, 처음은 부처님을 보고 4정(定)을 얻으면 승진의 시작이 된다. 첫째 염불이라는 것은 『지론(地論)』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얻은 것과 같이 나도 또한 얻을 수 있음을 염불이라고 한다. 두 번째 보문(普門)에 들어서 이 해장(海藏)을 궁구하는 것이요, 세 번째 지지(智持)가 능전(能轉)이 되고 지법륜(智法輪)이 바로 소전을 이룬다. 네 번째 깊은 법[深法]이라는 것은 신(神)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둘째 경을 듣고 두 가지 선정[二定]을 얻는 것69)을 승진의 끝이라고 한다. 경의 이름이라는 것은 법계의 자성은 청정하므로 ‘때를 여읨[離垢]’이라고 말하고,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공덕을 갖춘 까닭에 ‘장엄’이라고 말한다. 앞70)은 과의 모습에 나아간 것이요, 여기에서는 과의 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자분으로부터 승진이 점점 깊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 선정 가운데 처음은 자리를 기준으로 한 것이요, 뒤는 이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 이 가운데 동자가 법을 얻은 것은 어떤 위(位)인가 하면, 상하 경의 뜻에 준거하건대 세 가지 성불이 있다. 첫째는 지위[位]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여섯 가지 모양의 방편[六相方便]을 쓴다면 곧 10신(信)의 마지막 마음[終心]의 승진분이 뒤의 10해(解)의 초위에 들 때 곧 성불하게 된다. 이것은 삼승종교(三乘終敎)의 불퇴위를 쓰는 까닭에 일승의 6상(相)으로써 융섭함이니, 곧 모든 위(位)를 갖추어 불과에 이르게 된다. 이런 까닭에 이 가운데 동자가 처음 부처님[初佛]을 보고 신위(信位)71)의 자분으로 삼으며 처음 경[初經]을 듣고 신위의 승진을 삼고 나중 부처님[後佛]을 보는 것은 해위(解位)의 처음72) 자분에 해당하고 나중 경[後經]을 들음을 해위의 처음의 승진을 삼으니, 모든 위를 포함하여 다 구족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모두 위에 의지하지 않고 다만 자분과 승진만이 구경(究竟)의 불과에 이르게 된다. 셋째는 이(理)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곧 모든 중생은 아울러 이미 이루어 마침으로써 다시 새롭게 이루지 않고 나머지 모습[相]은 다 없어졌기 때문이며 성덕(性德)은 본래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 뒤에 마땅히 모임[會]을 매듭 지을 것이니, 이를테면 저 동자라는 것은 지금의 모갑(某甲)이란 글자 등이다. 또 마땅히 땅을 움직이는 것과 꽃비가 내리는 것과 타방에서 와서 증명하는 것과 아울러 시방을 통틀어 매듭 지음과 또한 게(偈)로써 거듭 송하는 것 등이 있어야 한다. 다만 경이 전해짐이 다하지 않는 까닭에 아직은 없는 것이다.
【문】 이 모임은 이미 마쳤는데 어찌하여 대중 가운데 사람이 이익을 얻지 못하는가?
【답】 생략한 것이다. 네 가지 뜻을 말미암았기 때문에 따로 이익이 없다. 첫째는 앞의 세 가지 뜻 가운데 처음 두 가지 뜻을 말미암았으므로 동자의 이익된 모습을 설했고, 뒤의 한 뜻을 말미암은 까닭에 대중 가운데 따로 이익을 얻는 일이 없다. 둘째는 광통(光統)이 해석하여 이르기를 “이 경은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했을 때의 설법이니, 다만 일승 원교의 법륜의 체를 드러내어 모든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모든 가르침의 이익된 모습이 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밝히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셋째는 다만 교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축기(逐機)의 교를 설함이니 법을 섭수하여 중생[機]을 따르므로 중생들은 증진함이 있다. 분수[分]에 따라서 이익을 밝힌 것이다. 둘째는 법을 좇아 가르침이니 중생을 섭수하여 법과 함께할 때에 법에는 더하고 덜함이 없기 때문에 따로 이익이 없다. 넷째는 이 경은 마치 해가 뜰 때에 먼저 높은 산을 비추는 것과 같으므로 이미 중하(中下)의 근기가 없다. 그러므로 분수를 따르는 이익은 없다.
아래 경문의 모든 모임은 다 이에 준거하여 보면 알 수 있다.
제1회(第一會)를 해석하여 마친다.
047_0495_b_01L華嚴經探玄記卷第三 此盡第一會 魏國西寺沙門 法藏 述盧舍那佛品第二自下明正宗 將釋此文四門分別 一釋名二來意 三宗趣 四釋文 初釋名中盧舍那者古來譯或云三業滿或云淨滿或云廣搏嚴淨今更勘梵本具言毘盧舍那盧舍那者此飜名光明照毘者此云遍是謂光明遍照也中光明有二種一智光二身光智光亦二義照法謂眞俗雙鑑二照機謂普應群品身光亦二種一是常光謂圓明無㝵二放光謂以光驚此中遍者亦二種一平漫遍無㝵普周故重重遍如帝網重現故此二圓融各全體遍非是分遍是故下文云佛身充滿諸法界普現一切衆生前如是等無量如文說此中身智無㝵故身光卽智光二遍無㝵故平遍卽重重光遍無㝵故光明卽遍照遍照性開覺是故名爲佛此明下文世界海等諸事一一皆是稱性緣起無㝵離闇覺照稱光無不普周法界名遍此舍那佛非局報身以通器等三種世閒具十身故如下文中略明五海廣弁世界何故不云世界品乃題佛名耶古德釋云以從主爲名故以主勝故擧土主以說之今釋以佛通三世閒下文土等卽是舍那佛如十身中國土身等又以依正無㝵故是故標釋互擧文綺互也以五海中佛海卽具餘四海餘亦爾以佛勝故獨標爲軌故以爲名餘不說也 二來意者旣序已次顯正宗義次第故是故次來 三宗趣者有二一約人二約法人亦二一化主二助各有體相用主中內證法智爲體七日思惟解脫爲相加說爲用此三不二唯是一果助化中入定爲體蒙加爲相起說爲用此三不二唯是一因此上因果融攝不二唯是一人法中亦一約義理二約教事亦各有體相用義理中性海爲體別德爲相應教爲用此三不二唯一義理教事中本分內五海十智爲體十世界及花藏界爲相益機爲用此三不二爲一教事上教義融攝不二爲一法也又上人法復圓融不二爲一宗趣此四義各三爲一緣起相卽無是故或唯果以俱是佛故或唯因俱是普賢或教或義或人或法或體或用或主體乃至或教用竝皆攝盡准思可見下諸會宗皆有此相但隨法異耳 第四釋文中有二一通辨經論解釋分齊生解方便二別釋本文初中略有十種方便一解釋決擇二釋文方軌三四種悉四四意趣五四秘密六四道理七五力八六九六釋十八聲第一解釋決擇者依雜集論第十五云釋決擇者謂能解釋諸經宗要開發彼義故案云彼中略開六種廣有十四具如彼說今略擧一門攝釋門者謂若於是處宣說諸經緣起所以句義次第意趣釋難案云緣起所以者顯教起所因也句義次第者品會文義相生次第也趣者顯經宗趣也釋難者釋外妨難也餘如彼恐煩不述 第二釋文方軌者攝論第五云若有欲造大乘法釋略由三相應造其釋一由說緣起二由說從緣所生法相三由說語義性釋云爲欲開曉諸造釋者解釋道理故說略由三相等言世親釋云由此三相隨其所應造一切大乘法釋案云初由廣說自性緣起所依本卽阿賴耶識與諸法互爲緣起二依此所生轉識諸法於上分別三性道理謂於依他所執無圓成有得不得見不見同時等如論具此二門觀道理解釋三由說語義謂顯佛言下義意此有二種一德處謂顯佛果二十一種殊勝功德無性釋云已得在已圓滿饒益故名爲德二義處謂顯菩薩三十二行相無性釋云未得在已隨順趣求故名爲義此二所說皆以初句標餘句釋此是觀說者意解釋第三四悉檀者智論第一云有四悉檀摠攝一切十二部經八萬四千法藏皆悉是實無有相違一世界悉檀者有法從因緣和合故有無別性譬如車轅軸輻輞等和合故有無別車人亦如是衆和合故有無別人若無世界悉檀者佛是實語人云何言我以天眼見諸衆生隨善惡業此生彼當知是人以世界悉檀故非第一義悉二者各各爲人悉檀觀人心行而爲說法一法中或聽或不聽如爲斷見人說雜業故雜世閒得雜觸得雜受如爲常見人說無人得無人得受如是等三對治悉檀者對治則有實性則無如酸醎等於風病名藥餘病非藥淨等於貪等亦爾准之四第一義悉檀者一切法性一切言論差別皆悉平等一味解云或約世界說有勝義爲無如第一說或勝義爲有界爲無如第四說或對異機說有對餘機說無如第二說或治此病爲要於餘病爲非如第三皆須得其本意法悉有用隨言混取失意成 第四四意趣者雜集論第十二云由此四意趣故方廣分中一切如來所有意趣應隨決又莊嚴論第十三云諸佛說法不離四意論第五云以此決了一切諸佛言教一平等意謂如說言我昔曾於彼時彼分卽名勝觀正等覺者無性釋云謂一切佛由資糧等互相似故說彼卽我非昔毘婆尸佛卽今釋迦楞伽中約四義釋一字等二語等三身等四法等故說卽彼而實非彼二別時意趣謂如說言若誦多寶如來名者便於無上正等菩提已得決定由唯發願便得往生極樂世界無性釋云謂觀懈怠不能於法精懃學者故作是言此意長養先時善根如世閒說但由一錢而得於千莊嚴論釋此由別得生故解云以後別時得彼千也三別義意趣者謂如說言若已逢事爾所殑伽沙等佛於大乘法方能解義無性釋意約證相大乘不就教相大乘故作是說莊嚴論云如佛說一切無有自性故無生解云此約證無生四補特伽羅意樂意趣謂如爲一先讚布施後還毀呰尸羅及一分修當知亦爾無性釋云先爲慳貪讚歎布施後爲樂施毀呰布施餘戒修亦爾莊嚴論云由得少善便爲足故讚毀也第五四祕密者雜集論云如是四種於大乘中略攝如來一切所說秘密道理梁攝論第六云如來所說不出四意四依依卽密也無性攝論第五云四種意趣四種秘密一切佛言應隨決一令入秘密爲化怖斷有情依世俗道理聲聞乘中說有化生等諸有情於大乘中說心常等此則於大小乘說有人法竝是祕密莊嚴論云應知教諸聲聞入於法義令得不怖說色等是有故二相祕密謂於是處說諸法相顯三自性無性釋云爲令悟入所知相故解云此雖說法相意顯三無性故爲密也又莊嚴論云知於分別等三種自性無體無起自性淸淨說一切法故解云此雖說三性意顯三無性如次可知三對治祕密謂於是處說對治行八萬四千解云謂於無說有於同說異等皆是密意對治所化有情障故說此八萬四千等也四轉變祕密謂如頌曰覺不堅爲堅善住於顚倒極煩惱所惱得最上菩提無性釋云剛强流散說名爲堅非此堅故說名不堅卽是調柔無散亂卽於此中起堅固惠覺彼爲堅解云散心流動顯名不堅散心剛强就密名堅定心守境顯名爲堅定心調柔密名不堅若取顯了於散亂起堅固慧則遠菩提今取祕密於定心起堅固則得菩提也無性云謂於四顚倒善能安住知是顚倒決定無動解云若取顯了則住於無常等計常等四倒之中豈得菩提今取祕密此常等於無常等橫計而起決定知此名爲善巧住於顚倒故能得菩提也又世親釋云是於能顚倒中善安住義於無常等謂常等名顚倒於無常等謂無常等是能顚倒此義則倒彼所義名顚倒於此安住故得菩提言極煩惱所惱者無性釋云爲所化有情精進劬勞所疲倦解云若取顯爲貪瞋等惱亂行者名爲煩惱此則遠菩提今取祕密精進懃苦劬勞行者名煩惱此卽得菩提如頌處生死夂惱但由於大悲梁魏攝論及世親莊嚴對法等論竝准可 第六四種道理者雜集第十一因弁觀察契經等法應當解釋諸法道理道理有四一觀待道理二作用道理三證成道理四法爾道理案云觀待有二一俗諦緣起要相待生此通染二眞諦之理待了因顯此唯約淨二作用亦一緣起諸法各有業用二眞如法界依持等三證成亦二一比量成立二現量成立四法爾亦二一諸緣起法有佛無佛性從緣起二眞如法界性自平等第 七五力者思益經第二若人能於如來所說文字語言章句通達隨順不違不逆和合爲一隨其義理不隨章句言辭而善知言辭所應之相知如來以何語言說法以何隨宜說法以何方便說法以何法門說法以何大悲說法梵天若菩薩能知如來以是五力說法是菩薩能作佛事案云下經次第廣釋初言說者如來說三世法垢淨法世出世流無流等法是言說如幻人說無決定故乃至云說如虛空無生滅故當知是言說爲無所說乃至云是名如來言說二隨宜者如來或垢法說淨得垢法性故或淨法說垢貪著淨法故乃至云生死是涅槃無退無生故涅槃是生死以貪著實語是虛妄以生語見故虛妄是實語爲增上慢人故如來以隨宜故或自說我是說常邊者乃至廣說三方便者如來實不得我人衆生壽者亦不得施亦不得慳等乃至方便爲諸衆生讚說布施得大富等乃至廣說四法門者謂六根等諸法皆是解脫門以空無我無我所性自爾乃至文字亦爾五大悲者佛以三十二種大謂一切諸法無我而衆生不信不解如來於此而起大悲乃至廣說案云此上五種初一約能說謂以不言之言而說故二約所說謂法迷悟辨是非故三約所爲機以巧方便於無說有故四約法自體本來自空爲解脫門故五約能說之心爲愍物迷而起說故第八六相者十地論第一云一切所說十句皆有六種相門一摠相二別相三同相四異相五成相六壞相具釋如下十地品中 第九六釋者亦名六合一依主釋者亦 名依士謂兩法相望假依彼而立此名如說眼識非眼卽識以依眼之識名爲眼識若離言眼是能見義識是了別義此合辨故名合釋若單法爲名者非六釋所收二持業釋者亦名同依釋謂擧其業用以顯自體如說藏識藏是業用識是其體藏卽識故持用釋體非是別體相依旣非二法何名合釋以體用不離故名合也三有財釋者亦名多財謂從所有物以立其名如說佛土土是佛之所有名爲佛土也四相違釋者謂如一句中有多名言各別詮義如偈說於佛及法僧等非如依主持業等雖有多言同目一義也五鄰近釋謂從所近以立其名如四念處觀實以惠爲以與念相近名爲念處也六帶數釋者謂以數顯義如說十地等皆從數以顯義別也六釋攝法盡不荅凡諸法得名略有五例一離合得名如此六釋二單法當體立名如信等此約直詮三無他受稱如無明等此約遮詮四譬類得名如花嚴等從喩彰名五相形立號如大乘形小以立其名等是故六釋但據初門若於前六帖後四釋摠爲十釋略攝諸法得名差別第十八聲者依西國法若欲尋讀內外典籍解聲論八轉聲法若不明必不能知文義分齊一補盧沙此是直指陳聲如人斫樹指說其人二補盧私是所作業聲如所作斫樹三補盧崽拏是能作具聲如由斧斫四補盧沙耶是所爲如爲人斫五補盧沙䫂是所因聲如因人造舍等六補盧殺娑是所屬聲如奴屬主七補盧鎩是所依聲如客依主瑜伽第二名上七種七例句以是起解大例故聲論八轉更加禊補盧沙是呼召之聲然此八聲有其三種一男聲二女聲三非男非女聲此上且約男聲說之梵語名丈夫爲補盧沙故又此八聲復各三一聲二聲身三多聲身則爲二十四聲如喚丈夫有二十四女及非男女聲亦各有二十四有七十二種聲以目諸法可以准知然此方多無此例 第二釋文者此品有二分 初大衆疑請分 二爾時世尊下如來現答分 前中先明諸會請問後釋此文前中作四門 一明有無者於八會中初二後二有餘會皆無何以爾者謂初會標果起因故問第二會初爲尋因至果故問但爲因位昇沈寄於五會以答果位無差故當會答然五會中間諸品之內更有餘問者竝爲顯當會所說法中差別隨說問答是別問大位之相第七會中明因果純熟故有謂行修無㝵六位頓成故當會答也第八會中明稱性因果故有問謂俱入法界無差別亦當會答也二 所問法不同者初會第八唯果分有因但所信攝化爲異第二第七唯因分有果但位行爲異 三能問人不同者初及第八各具同異二衆齊問以所問法衆同依故二唯同生衆問以所入位同生勝故第七唯一人問以造修之行各別成故 四請問儀式者有二一約言念二約通別初中汎論請有二言請二念請荅亦二一言說答二示相答此二問荅如次及交絡成四句可知爲成三惠有斯二例初二會及第八唯念請答通二謂佛示相菩薩以言答以對佛興請不待言故明佛智領疑身相現答自在故也第七唯言請言答以行法約言明了顯故又對普賢興問還普賢答故也二通別者初會及八別問通答第二第七別問別答皆可知 二釋文者此中有二初長後重頌此二差別大例有十一約利鈍謂鈍根未悟更重爲頌二約前後以後來未聞爲之重頌三約生熟熟人直說便悟生類曲巧方知故重頌也四約文質或有愛質直示長行或有樂文示頌言美妙五約二持論云長行散說生正故義持成就偈頌摠攝易受持故文持成就六約資成謂更以偈頌資顯長行義明了故上通諸文重頌七約成圓以頌中兼顯長行闕無成前所說義圓滿故此如發心功德品偈等八約體相以從門約相長行直說此約同教及三乘以就體圓融偈頌巧顯此約別教此如十行品偈等九約通別以長行別指的重頌通該如此品世界等頌文是也十約心言謂長行直顯心所念法偈頌宣示令請圓滿此唯此文又有義凡佛說法法爾有二相謂直說契經必有祇夜重頌下諸品中重頌皆約此十例准之就此長行中有三初標能問人謂同生異生俱在法界故云咸也言說事彰非顯奇故念心入法顯深細故云念也二明所請法三唯願下結請所請中古說云此有二十三句分二初二十一句問果法後二句問因行前中准下荅中五此文爲五初十二句問佛海次三句如名問三海後六句准下當是根欲性海但由根欲不致能被之緣差異此中擧緣顯根下文擧根顯緣有斯左右今更釋此中有三十五句分二初三十句問果法後一切菩薩下五句問因行就前中分三初十句問佛內德盈滿德二從示現菩提下十句問佛外相顯著德三世界海下十句問化用普周德就初中初一句摠餘九別於中何等是三字貫三十五句一切諸三字通前三十句果問應知何故此經最初問佛果法謂標幟故宗歸故爲本故顯德故生信故指南故經首題佛花嚴者義存於此言佛地者地論第一云卽淸淨法界及彼妙智受用和合一味事等是佛所依所行所攝故名佛地解云卽以淨法界爲所依妙智爲所行餘功德等皆爲所攝卽以眞理妙智無㝵爲體依大乘同性佛有十地一切菩薩二乘所不能行何等爲一名甚深難知藏明智德地乃至第十名毘盧遮那智海藏地如下十地章具釋二佛境界者下九皆是佛地中開出故是別句謂開淸淨法界是佛所證之境或摠擧所知通於眞俗性起品云一切衆生#是如來境界乃至第十非境界境界是如來境界又亦是分齊境界故難品中明十種佛境云如來深境界其量齊虛空等又釋通有所知及分齊境下不思議品中佛有十種不可譬喩不可思議境等應尋下三處文於此具辨三佛持者有四義一以淨法界住持一切諸功德故二以大圓鏡智及相應淨識各能住持諸功德故三後得智中大陁羅尼門摠持無量諸法海故四是十佛中持佛隨順又下第十地佛力持等十持又離世間品中亦十持初佛持乃至第十智持此二文中皆以初句爲摠攝別入摠俱名佛持又如下不思議佛有十種出生住持智惠等竝應具尋弁之四者准下頌文此中次佛無上智一句此則是下十智等可知五佛行者是大悲攝生之行是大智造作之行此竝不作之作無思成事起品無障㝵行如如行等是如來行此是異二乘功德六佛力者有二義一不爲他所屈伏故二能摧壞魔怨故別說有十謂是處非處智力又有十種如不思議品最勝力大力無量力乃至第十大力那羅延幢佛所住法等七佛無畏者所說不怯故名無畏是伏外道功德或四或十如離世間品說上來明大智德八佛三昧謂師子奮迅等微塵數三昧海攝略爲十佛不思品說此明大定功德九佛自在者依定發起無盡神通所作無㝵故云自在不思議品佛有十種自在正法又離世間有十自在等竝可知此明神通功德十佛勝法者殊勝功德超過餘德故云勝法亦有十種如不思品說此明大福功德上十句明內德盈滿竟第二外相顯著中初示現菩提者謂對機示現成大菩提性起品成菩提處說又不思品亦說竝應知是摠句下九是別以六根三業皆是成菩提相下不思品及離世閒品此之九門一一各以十門辨說如彼應知佛光明是身業餘竝可知上來外相顯著竟第三化用普周十句中初世界海者是化用處也通染淨土卽入十佛國土身攝略說十種如此品下文說二衆生海者所化機也通麤妙空有等亦入十身攝又如離世間品十種入衆生等應知三法界方便海者此有四義一理性法界是前衆生及世界等所依之界二染事法界謂彼所化衆生蘊界法等三離垢法界謂佛所得最淨法等四淨用法界謂佛攝生所用善巧故云方便如不思品佛有十種法界無量無邊等應知四准下頌中此文欠調伏海調伏海卽是所調伏是根欲性海攝但頌與長行文家互有存略故也五佛海者能化之佛非一如海謂遍一切處而轉法輪故波羅蜜海者有二義一是佛所說行法以授群機故二是彼所化所行之行卽化所成益謂十度等七法門海亦二一是佛所設之教法通彼遊入故二是彼所化行成證理所入之法此亦有十如不思品說八化身海者異機別感現相多端如云諸毛孔出化身雲等又盧舍那佛遍十方出一切化莊嚴身等又離世間品十種變化等九佛名號海者對根宜聞名號非一如名號品一一世界有百億萬等十佛壽量海者機脩短虧盈萬差略有十位如壽命品說上來果問竟第二因問中五句初一句摠下四句別一明十住初發心住等二卽十行中十度行也三願者卽十迴向大願也四智惠藏者明十地中以智爲性含攝蘊積故如下地品菩薩同名藏等是也第三結請中唯願慈悲者明佛有說因不疲倦故方便者顯佛巧說令易解故由悲發心由巧得解二頌中爲顯奇故不以常口說依正無㝵故供具中說卽是下剎說耳九頌分初三歎德請後六擧法請前中初二歎佛請明具說因故後一歎衆請明具說緣故前中初一顯佛自德圓初半辨因盡過去現果無功半用窮來際無思普應雲者灑法雨故潤機緣自無本故後一明外化備謂初半令滅惡生後半令離苦得樂又初令得涅槃後令得菩二無量下明歎衆請中一心者心無異念故合掌者身無慢怠故觀最勝者住念向佛故半摠擧所念願佛開闡第二擧法請中分三初三頌擧前初十句於中初一頌內有六句一地二境三持四智五力六無畏下句結請次一頌中有三句一定二行三自在卽神力是也下句請說後一頌頌勝法亦是示現菩提等可知二一頌頌第二十句以三業不離六根故同頌第三二頌頌第三十句初頌內有五海後頌中有二海餘三海及因問摠攝故云無量無邊下句結請第二答相中古來諸德亦有將此諸問配下諸會中答之此判恐謬以第二會等自別有問別有答故四番問答不交雜故是故摠於此品竝通答也以下說分具果因二說故 就此文中長分有十 一面光集衆分 二毫光示法分三法主入定分 四諸佛加持分 五大衆同請分 六定中略說分 七起定成益分八毛光讚德分 九許說令喜分 十正陳法海分 初中二先放光後集衆前中亦二先身光遍覺二光語呼召此二亦卽答上佛光明音聲問也初中亦二先此光照彼二彼諸菩薩下尋光見此前中有五初知念者領疑也以將欲答故卽放光所因也二明光出處面門者諸德有三釋一云是口一云是面之正容非別口也光統師云鼻下口上中間是也准下施鼻文如所說今釋依梵語稱面及口幷門悉名目佉是故翻此目佉爲面門也故知此中通擧其事口者爲表教道遐被也面者正對向機也門者開法攝生也齒者勝用也謂思咀法味故治碎惑障故以緣起具德相差別故云一一各放塵數光也三別顯所出有十門通論一一皆通三世閒等別明初六佛海次二器海次一衆生海一法界方便海又前八意業記說輪次一身業神通輪後一語業正教輪四攝眷屬五所照處此中放光有四意一現相表實二驚起信心照觸救苦四爲集衆遠召是故彼衆依光睹此知所集處頌中九偈半有四義初六頌半通擧佛德以勸往次一別明能說以勸詣次一別標所說以勸觀後一通結佛德顯深廣此四皆以後釋前思之可見初中二先擧德後人尊下勸前中三初二身業一體一用次二意業一用一體後一語業勸中初半勸爲法次半勸多衆次半教興供雖圓音頓說九世願海然不壞本法故非一念也卽標下所說法門也餘文可知第二集衆中先明諸會有四義一有無二來處遠近三本處等名不同四偈歎及前後初中六七二會無以證位及行熟俱皆離相故餘六皆有所爲可知凡集新衆有四意一爲攝機二證法三爲興供四明衆圓第二遠近者初二十剎塵三百四千五萬以寄位漸增故八過不可說者顯證法深故第三者一處二佛三菩薩四供多少竝隨會應知第四者初二會無偈讚起修始故餘四皆有以顯法位增故又前五定前集以從修入證故第八定後集以依證起用二釋文中有二長行偈頌初中亦二先衆集二顯德初中亦二先集後結初中十方卽爲十一一方皆有七一器海名二剎名十二佛國土等此二是所依法相但通別爲異三佛名菩薩此二是能入智但滿分爲異五主伴俱來明具德圓滿六興供供佛是順益義謂因順果也七依本方坐明攝散歸靜何故先辨東方謂顯開明之始故順彼方故以西域方儀以東爲上其堂殿皆面向東如祇洹寺菩提寺皆面向如來說法亦多分面向東故面門光出正卽向東下文此華藏界無邊云何此中有東等以花藏界是邊無邊不二故名無邊如下無邊邊不二故名有邊如此說是則不壞邊而恒無邊不破無邊而恒邊若謂無邊乖於邊邊乖無邊是情計所及法非正緣起也以此邊無邊是一事故雙超情計也其猶錦窠白線徹編而不雜紫窠紫等亦爾又白窠有紫由是錦若白中無紫紫線不至兩編卽繡非錦也窠無紫由是錦故若白有紫現則壞文非錦也是故由白有紫得成白無紫無白亦爾當知此中道理亦爾思以准之若爾彼十方世界是花藏不答是不謂由卽是故不是不是亦爾上思之又何以故由是花藏東等故卽不卽也此十世界外更有餘界不無也何以故花藏爲主彼十方爲伴此主及伴圓融普遍一切塵道重重如帝網故餘皆卽此如虛空故此中諸供竝是法門隨相有十一妙寶是可貴二須彌是勝高義雲是潤益義含兩義齗齶三日是除闇義輪是具德義四閣是重成義如正智上起悲等五花是淨義開敷義六香雲是戒等芬芳義七座是攝益義八蓋是蔭覆義九幢是獨出義十樹是建立義餘竝准之又約法亦有十例一或以色法爲雲如寶妙色雲等二以大聲爲雲如妙音及歎佛德雲等此約事三以無盡佛土爲雲如十種不思議佛剎雲等此約依報四以九世理性爲雲如三世佛法身光明雲等此約體五以佛八相等爲雲如十種佛變化雲等此約用六以無㝵解脫法門爲雲如十種解脫蓋雲等此約不思解脫也七以佛所證境爲雲如十種佛境界雲等此約果八以一切菩薩行爲雲如十種菩薩所行示現雲等此約因九以一切衆生欲樂爲雲如十種一切衆生樂不可盡示現雲等此約法器十以現佛大願爲雲如十種一切諸佛所願示現雲此約赴機此等一一皆以十門說者爲顯無盡故也此上十義皆一一中有一切法緣起無㝵是故或人或法或理或事或境或行或依或正或因或果此中一一供具皆云滿虛空者明稱本性空集而不雜如緣起性也是故眞理妙行可卽事而成雲花寶等事可卽理而爲法此約別教思之第二結中一結土二主三伴四供五坐二現德用次第坐者緣起無㝵集而不雜也中二先明德體無㝵後念念下妙用勝益前中通用中初句㧾有六重無㝵竝倍倍多前一身光無㝵二光人無㝵三人法無㝵四塵剎無㝵五依正無㝵六化用無㝵如一念中於一世界化一佛剎塵數衆生卽此念中於一切世界如是化一念旣爾餘一切念悉皆然也如一剎中現此盡念三世諸佛餘一切剎各別所現亦如是也如一塵中有此一切現佛之剎餘一切塵各別亦爾如一菩薩法門遍此一切現剎塵餘一切菩薩法別遍亦爾如一光出此一切遍塵菩薩餘一切光別出亦爾如一毛孔放此一切出菩薩光餘一切毛別出亦爾上來㧾弁一菩薩身中事如一菩薩一切亦爾如主伴亦是則重重無盡非心言能及此是一乘法界法爾緣起實德非變化也此等竝是普賢位德菩薩旣爾佛果德用非此能比可准思通二用益中三初標所化衆二以夢下䎳能化法三於一念下弁化益能化中十句初九別弁後一㧾九中一夢自在者卽實卽空故一念現多法二淨故化故三教義故四顯勝神通令歸依怖令入法故動相歸眞故五願力攝生故染音性離故染音淨用故顯淨音普收故七圓音普降故如法界頭口等八體用驚機故九建圓因故三蒙益中有六句釋有四重以文含多勢故一令離重苦二堪成出世器三令得二乘解脫果向十位此大乘中二乘非愚法也又小乘中五停心觀前在耶定依成實煖頂已上悉名正定永不退故依毘曇忍心已上方得不退若依地論見道已上方名正定故彼云正位正定者見道已上方是正位言不定者此二中間名不定也四入大乘三賢位五證十地六成佛此約同教又初三同前四入初教五入終教六入頓教此約病盡處說三又初人天次二小四是漸教五頓六圓此約果顯圓說四又初次三三乘後二一乘因果分二也此上竝是一念中益餘一切念准之頌中十偈初五摠歎菩薩德後五頌前法門初中前三䎳自分德一自利二化他三得法後二勝進一外益二內後五中一現法二動剎三身嚴四入劫五說此等竝是上毛孔中事頌文巧略故也第二光示法主分中二初此界後結通前亦二初示主是教義源故二於彼下示法是教義相初中四初䎳光意言無邊佛境者有三意令知所說法故二卽是普賢故三顯佛非不能說故二顯光名相中二先䎳光相眉間表中道一乘法也白毫表無流證道白淨法也又白爲衆色本故表此一乘爲諸教源也又毫者是長毛也又是毫毛也依觀佛三昧海經云太子時舒長五尺樹下長一丈四尺五寸成佛已放之長一丈五尺圓卷如秋滿月分䎳皎淨珂雪色光體也燈䎳光用也又理可貴故名寶色普照故名燈䎳境智遍益故名雲也又如未尼同諸色故二立光名爲顯因人故名菩薩也弁光勝用中一事故遍故廣故二理故正故深三弁說因故由大願力方有說也四顯法門令衆知法從普賢門中出故上文旣不云別照普賢何故乃云顯現示衆者以上所照卽是普賢故四攝用歸本中毫出足入者表上法可以傳下傳下不失本故還入也眉間足下處別何故言還者顯上下無二故又毫光照普賢明果乘因還從足下入者䎳因成果也第二示法中二初弁蓮花是所詮義也二顯勝音是能詮教也坐花者稱義施教也初中一句摠於彼者場地也又是相輪也蓮花者開敷故出三乘水不染故微妙故衆聖蜂所採證故二寶莖者可貴故堅固故三藏者含攝故出生故具德故四葉者覆蓋故以廣大甚深故遍法界也五香鬚者氛氳眷屬故六閻浮檀金是寶中之上故金是貴相顯著故臺是高出故七結也此等竝法門也若約三乘託此事別表法然彼事非卽若此一乘卽彼事是此法仍有事顯現也顯能詮中二初標體二偈頌䎳說相前中三先擧教從佛眉閒出者表依證起說故教從佛出故如勝流法界又論云從最淸淨法界所流法也出菩薩者爲被因人故諸法是所詮勝音是能論云契經以文義爲體也若依一乘看此菩薩卽名見教體人法無㝵故顯教圓故具主伴順理故敬遶也二䎳稱義故坐臺鬚也三由稱義故令教誠實故歎德也德中四句一下愜群機二上順佛境三窮茲義海四令歸佛果說相中二初勝音明教體殊勝二炎光䎳教威勝用初中三頌一明一佛遍法界而在道樹多各遍法界之佛同坐一毛孔三如一毛一切亦爾各具主伴此三如是漸次增廣也又釋一明舍那身滿法界後二明毛孔中現無量三世閒重重無盡也二教威中師子者有三種不畏義理深故光照也二不畏不益故炎燒惑三不畏異學不降故奮迅也同是教故亦名音也 頌中初明法輪義後釋文前中轉法輪義略作十門一釋名二弁體三種類四轉相分齊六轉處七轉時八轉人九轉機十諸門一釋名者法是軌持義通有四種謂教理行果輪是所成義亦有四一圓滿義以離缺減故是具德義以轂輻輞等悉皆具故三有用義謂摧輾惑障故四轉動義謂從此向彼卽從佛至衆生故亦從彼向此卽從衆生至佛果故法卽是輪持業釋又輪是喩況如聖王輪寶卽法之輪故依主釋 二體性者通論教等四法爲性剋性唯八正道爲性以戒爲轂謂正語正業以惠爲輻謂正見正思惟以定爲輞謂正定餘正念正精進爲莊飾成輪此約小乘初教亦又唯以無分別智爲法輪體又唯眞理爲性此約終教或理智俱泯教果亦亡離言絕慮爲法輪體此約頓教或通攝無盡法界謂人法教義等一切自在法門海竝爲法輪體如帝網重重具足主伴等此約圓教亦卽攝前諸位此中皆具約同教也 三種類者有三初小乘四諦之下各有四義謂苦無常無我此四苦諦集有緣此四集諦滅止妙離此四滅諦道如迹乘此四道諦此上十六約所知諦若約能知亦各有四謂眼智明覺眼謂㧾觀苦等智謂別觀過去苦等明謂別觀未來苦等覺謂別觀現在苦等是故四諦各四故成十六新大毘婆娑論第七十九云眼者謂法智忍智者謂諸法智明者謂類智忍覺者謂諸類智又眼是觀見義智是決斷義明是照了義覺是警察義三轉十六成四十八行法輪此約小乘如毘婆娑論具說明三乘中法輪然有三義一同小乘三轉四諦通益三機如密迹經弁此則說四諦而具三乘又三轉卽空常淨維摩經云三轉法輪於大千其輪本來常淸淨此之謂也此約初教二唯說大乘亦通三根得大小果如諸大乘經中所說或分相開三如轉照持等三種法輪或合爲一謂唯一實諦上約終教三離言法輪無轉不轉非四三一不可說故此約頓教三一乘法輪准下文有十諦差別謂說誠諦等諦各十行謂具足淸淨四無畏等是故摠有一百行法輪准下亦有十輪謂過去願力故等卽十轉百行爲千法輪竝尋下文應廣具顯何以皆言十者顯無盡故此則無盡法界爲大法輪海常轉無休息也 四轉相者小乘三轉有二一爲自轉初轉在見道名印相轉次轉在修道名應作轉後轉在無學道名已作轉二爲他轉初名示相謂此是苦等令陳如等入於見道次名勸知轉謂苦應知集應斷滅應證道應修令彼入修道後名引證轉謂苦我已知乃至道我已修令彼入無學道若三乘法輪二同前說但義理差別約菩薩人者准大品等經旣言鹿園轉法輪時無量衆生發菩提心等無量菩薩得初地等量一生菩薩一時成佛此亦應彼三轉是通非不可別配若依一乘轉無盡稱法界法輪所被機同一法界無二無別法爾常恒無新弁益之謂也 五明法輪分齊者若小乘中有一佛說四諦苦無常等語音入法輪攝如問阿難天雨等如是世語皆非法輪若三乘中佛一切語及身威儀皆入法輪以無不益生故維摩經云諸佛威儀進止無非佛事以此准之若一乘中通三世閒俱入法輪一切衆生語言音聲亦入法輪國土法輪如剎說等准之 六轉處小乘唯一娑婆百億鹿園等處三乘或一百億或千百億或如恒沙爲一佛化境一乘遍通樹形等界乃至花藏猶如帝網重重主伴經云此是盧舍那佛常轉法輪處 七轉時者小乘三乘或二七日或三七日復或六七日或七七或八七日或五十七日或一年等此竝以是末教隨機見聞異耳亦無前後相攝等事一乘本教要在初時第二七日更無異說仍攝前後各無量劫念念無閒一一念中亦各攝彼前後際劫亦如帝網重重無盡九世十世之所轉也八轉人者先主後伴小乘主謂釋迦生身及化身佛聲聞弟子爲伴三乘主卽三身佛聲聞菩薩爲伴謂舍利弗等一乘主謂盧舍那十身賢等菩薩爲伴亦如帝網重現准之 九轉機初唯爲小機次通被三機後唯一普機准之十諸門者一教及念處等爲法輪因由此得聖道故二福惠萬行爲法輪眷屬三眞俗二諦爲法輪境四二障使習是法輪所斷五菩提涅槃是法輪果諸宗准之 釋文者頌中十偈分四初三明佛法輪淸淨廣大於中初句標教主句明法輪淸淨淸淨者滅惑染故現淨理故輪淨故如梵輪也下明法輪廣大自有六門一句巧說廣二一句說人廣三二句說處廣中國土海世界海雙擧者此二相成故也四二句說因廣謂由大願力說盡來際故亦名說時五二句說機廣六二句言音廣二有二頌普賢能遍說法一佛力加故令語業普遍二身業稱理亦遍雨法三有三頌歎舍那佛說法語業二意業出光也三身業四末後二頌歎三世佛亦同說法一令見說法二令聞說法下結通有二義一結上集衆通十方界二旣在示法結則知示法亦通十方示法主分竟也第三法主入定分於中二先料簡諸會中有四一有無者唯第二會無者以所表法未成位故餘會所表法位成故二出不出者唯第八不出以表一證法界無退失故餘表起化故三因果者初及七八爲果定以初說果故七行深故證玄故餘皆說因故又釋第七中亦通有因義以花嚴是因行成嚴故若如此判通有四句唯果初及八或唯因謂三四五六或亦因亦果謂第七或非因非果謂第二摠無也四能入人者唯第八佛自入表法界解脫自在唯佛窮故初雖說果爲令物信故七行雖深然是因人行二釋文者於中二先此土後結通初中於佛前坐者顯因果不相離故何故入定者顯非證不說故爲受加故除衆疑故何故入果定爲說果法故何故因人入爲被因人故淨有四義一自性淨二治惑淨三善根淨四益用淨藏有四義一含攝二蘊積三出生四無盡三昧此云等持離沈浮故定惠均故名等也心不散故住一境故名持也納法在心名爲正受此中淨之藏卽藏如來之淨藏如來卽淨藏淨藏之三昧昧卽淨藏皆二釋思之可見下釋顯其義初句釋如來後句釋淨藏離垢淨也滿足藏也虛空喩上二也結通者此經一切處說摠成一部一切部今且擧此一方中事恐斷其本部故於文末釣取一切結成本部以明無盡無盡也因此略明所入三昧分齊差別有十重一約一切定無㝵故起分中言普賢菩薩從彼三昧起從世界塵數等三昧起解云此有二義一此定含攝多三昧故二此定遍入多三昧故是故此定卽是塵等三昧海也二約一切處無㝵如此文云普賢菩薩於此世界三昧正受盡法界虛空界等一切佛剎亦復如是此亦二義一定中苞含十方剎故二此定遍於諸塵道故三約一切時無㝵如起分云普賢從一切三世三昧起此亦二義謂定含三世及遍入三際四此上三重融合爲一普賢三昧無㝵自在以此三說是一定故不相離故五於上塵等三昧海中一卽具一切諸定各苞十方盡三世故六如一三一切亦爾七隨一塵內卽見普賢圓明三昧各攝十方亦盡三際八如一塵內一切塵道皆亦如是九隨一念中卽有普賢入塵等定各苞塵道盡十方剎及窮九世十世等盡十如一念中餘念念中盡前後際一切劫海皆亦如是此十重爲則餘一切法中一切位中及教義理事等准此思之入定分竟 第四諸佛加持分中二先弁諸會有二初有無者二七八三會無以二位未成故無入定故七行依法不異前故八佛自入定不假加故餘會非此故皆有也佛遠近多少名異皆如文應知二釋文中三口加及所爲二意加三身加又初勸說以益辯次冥被以增智後摩頂而覺悟然加讚互成有四句一加而非讚如佛意身二加二讚而非加如諸菩薩偈讚等三亦加亦讚如佛口業四非加非讚如餘文也口中二初明加讚二釋所爲中三初明諸佛不移本剎而現身於此以明彼卽此而不壞彼故遠卽近而不壞遠故也如緣起性知之二讚得深定三明定因初他力後自又果力因力緣起合成也又佛本願者明佛往昔曾見是事因卽發願願今成也釋所爲中爲何義故加爲說此法故於中十句初一摠謂一乘法輪最初轉故以是果法輪故云佛也別中有九一所轉義法輪體也開猶現也二巧轉盡源法輪相也及十方者是結通處也三妙除惑障卽法輪用也四十方齊轉法輪處也又窮土海五轉因入果法輪分齊也六一門攝一切果法輪德也七巧令樂果卽法輪境也八巧隨世俗法輪方便也九審根授法卽法輪所被也異成壞准思知之二意加中二先加後釋初中一摠餘別別中一得法智謂五海智非一故云無邊等二盡邊智謂窮盡五海該三際佛三成壞智謂五海集散亦世界海也四所化智謂五海約染亦衆生海也五理智謂五海皆深亦法界海也六三昧智謂五海皆定境也七根欲智八語辯智九身遍智十圓音智此皆通五海等准之與下十智大同也釋中先徵後釋佛有力有悲何故唯加普賢不加餘耶以長子故衆首故盡佛願底故本願故普德具故定法故餘人不得故又凡有此定處諸佛法爾皆聚彼如海法爾攝彼衆流故云法也緣起法門理數爾也是故諸佛智斷亦得與人佛何不自說答有二意一所說旣玄恐因人絕分故若爾何不餘人說耶爲說普法故二明凡說此法必具一切諸佛共說若佛自說則理無加便乖共說是故普賢一說卽一切佛說也身加中何故摩者令覺故令具佛威德故此中佛身未必來此申手未必脩延各令觸頂未必相妨悉同時摩未必前後皆是緣起自在無㝵思之應知加持分竟 第五大衆同請分中二初長行怪不卽說以生後請亦是具身意二業謂恭敬身也觀察意也二俱專住一心也正語業請中與上請何別謂此別請普賢故知是說法主故又此具新舊二衆故不同前也所問之法不異前故不別列也十頌分三初八歎法主請二有一頌擧所說請後一頌歎衆樂聞請初中二先有五頌通歎普賢德後三頌別歎說法德亦卽前歎有說因後歎有說果前中略顯普賢十種功德一因行願滿二果德平等初一頌顯之三色身普遍四福智深廣第二一頌顯五普見佛海六能現塵剎第三一頌顯廣遍時處八深定常現第四一頌顯九體充法十用遍生海亦是前智後悲第五頌顯又此十德攝爲五對一因果二身智三見現四深廣五體用下別歎說德中初頌歎證斷爲因普周廣說謂初句證理次句斷障次句普周下句廣二一頌歎內外爲因能益妙說謂初句歎普賢內證一切佛德海生次句歎外能普放說法光雲次句歎能益衆生堅其淨行下句由此故能妙說佛境三一頌歎深行爲因能雲雨說法此上三中若約能說辯一廣說二妙說三頓說若約所說一佛法二佛境三法界次下一頌明所說法初一句摠擧下文花藏界等次句擧下文佛嚴淨事次句中能入是佛海法界海所入是衆生海及根欲海下句結請末後一頌歎衆有二德堪聞一樂欲二根器前中亦二一身離慢怠故云恭敬二心離異想故云觀普賢二根器中雖一心樂聞若無智惠不能領受此亦有一深智達深理故二廣智鑑廣事故下句結請願說同請分竟 第六定內略說本分中二先觀五海後說十智又前是所觀之境後是能觀之智又前是證本後是教本何故不起定而說耶謂明定不㝵用故寄顯法深故雙行故中二先明境海深故觀非自力二正觀審法海略作十門一弁義相謂於無盡圓明性海藏分茲五義一是所依義通一切准之二萌發義亦積聚義三軌用義四巧別義性別義五覺圓義此五皆一卽具餘四竝深廣無盡具德難故云海也二約染淨有二一別者或唯淨謂佛海或唯染謂衆生海或俱謂世界及根欲不俱謂法界二通者或俱淨以衆生等亦返流故本淨故或染以佛等亦隨緣故或俱或不俱思准之三約理事亦四句全攝可知四約人法有二先別者衆生及佛是人法界是法根欲人亦法世界非人非法二通者亦具四句全攝可知五約因果亦二別中世界俱法界不俱二句可知通中亦四句思准六約三世閒七約境智八約依正九約三寶此上四門皆有通別句等思准十約融攝有二先約海謂世界卽衆生如下衆生形世界世界卽法界如法界不可壞蓮花世界海世界海卽根欲如心作世界界卽佛如國土身二約衆生卽世界如前說卽法界如經卽此法身流轉五道名爲衆生卽根欲如心心所作故亦卽佛是十身中衆生身又衆生卽眞故後三海一一卽具餘皆思可見二約智中亦二先別初三智是前三海智後七智是後二海智二通者謂一智有五海一海有十智鎔融思攝五海深玄寄半數說者令易信十智稍麤寄十數說者會其本故是故境智不殊麤妙恒別此約一乘又如解深密經云來所行如來境界此何差別佛言如來所行一切種如來共有無量功德衆所莊嚴淸淨佛如來境界所謂一切種五界差別所謂有情界世界法界調伏界調伏方便界地持瑜伽亦此五爲五無量此五旣是如來境界故後說智名迴觀智此約三乘旣觀海何不說海而說智耶以海是證境故縱欲說彼卽是說智如人至寺觀塔熏在自心後歸家說塔卽是說心非彼塔也旣在定得說後何須起耶寄法故何者謂在定觀海此在心中最細也智觀海雖在定中然寄在言故次細也說分最就機故出定表示也是則說以智爲本智以海爲本以說依智成智依理起故文中三初據智二許說三明說意此中佛子有五義如攝論願樂大乘爲種子二般若爲母三定爲胎四大悲爲乳母五諸佛爲父又有十義如下彌勒知識處說十智者一由成卽敗故成淨也敗亦爾由此卽具餘九等故名不思也此不思句遍下九句二中以衆生空有不二故類多故相卽故相入故具一切法故根性多故故亦不思又界是如來藏隨緣作衆生名起也又起在智中也三中一約有爲二無爲三俱四不俱各通染淨思准之根欲攝在上二智中亦在下七如上問中弁下七句明佛海四無㝵故五稱根欲授故普轉故六顯德故七光音故八三輪攝故九深定故相卽及體用皆不壞也十以摠結別也分竟 第七起定成益分中二先起主伴定明定不㝵用故說十智此明用不㝵定故云不不壞彼定故也云何不壞以由方便智釋顯二起益中二先內益亦二初益此衆有四證法體二依證起巧智三依智起妙辯四說無斷絕謂由願力故也二結通顯圓二外益中三初動二益謂動時令恐返此故樂也又安善因授樂果又動時合壞返此故寶嚴三雨寶謂是法門也以是減十故標十列七也 第八毛光讚德分中二初一切如來毛孔及光等是上能加佛也讚普賢德顯具德說法令衆尊重生渴仰故也是上光明讚歎音聲智二十四頌中分初八歎普賢廣大三業盡佛源底於中初三次半語次二半意於中初一半定後一惠二盡佛源底後六歎體用普遍無㝵應機於中初一體遍謂普賢身在此會坐卽於十方無邊世界一一皆見常在處彼本來當處而身不分無來去一切塵中一切衆生身中皆亦如是衆生等卽如故是普賢也而實一乘佛國亦同普賢圓遍今就勝易解故簡土約理寄三乘顯一乘耳思之可見後五明用一現身二現法淨願四衆土五現智 第九許說令喜分中亦先長行摽意謂前聞本分已生歡喜今更許說分故云重喜二頌顯喜事於中有十頌分三初二頌半擧佛化德超情不測於中一深智說二嚴土調生後半通結能化所化無盡難測第二有五頌半誡衆令淨堪爲法器於中初半簡不能聞言樂惡者作惡趣因也著有者設作善業不求出離下句結非謂不能了等顯非器次一頌明具三力方堪爲器一宿善根力近善友力三佛護念力下句結云是等衆生能得上智次一頌具七心方堪聞法一直心離諂曲故二淨心離求過等故三慈心爲益物故悲心爲救生故五深心爲修行故六信心受深法故七無厭足心渴心無滿故下句結云彼聞此法喜無量也上來二頌十門通弁一切堪聞法器次二頌別擧此衆初一明具四德堪知佛一住普賢地二具普賢願三行普賢行四證法界空下句結知佛境次一頌歎此大衆現得二利一現前見佛二得普方便後一頌通結但諸衆生得聞佛法皆是佛力第三有二頌擧法許說勸觀令樂一擧法勸觀以佛及剎在身內勸衆令於毛孔中觀後一明具普眼方睹此下句許說誡聽可知下十眼中第十普眼者平等法門見法界故若通論摠具十眼名爲普 第十正陳法海分中先明諸會能說人異唯僧祇小相二品是佛說餘竝菩薩說所表下釋又依智論有五說一佛說二弟子說三神仙說四諸天說五變化說此據出聲名句等望授與卽通情非情此約三乘又有五說如說佛說菩薩說剎說衆生說三世一切說此通三世閒等一切法約一乘也文中二初廣弁世界海答前果問二從乃往過去下答前因問中二先散說世界後偈頌摠持前中二初通論十世界後別辨花藏界亦是釋第十壞世界成卽是壞故前中二先摽列章門二依門別解初中三先摠告引證二正列十名三結其無盡此十中初者有四義一以土體絕相由言方成故云說世界如四堪智中成也如下緣生中說縳觀等二由名言熏識現土故名說也三土中言音如下頌中弁四世界立名不同故云說也初一說卽世界後三說之界二攬緣成界三依故得夂四外狀區分五內體盈滿六德相嚴麗七離垢用淨八器淨佛興九經時多少十緣散離作皆繁多深奧同名海也凡一世界卽具此 今通釋諸世界海略作十門 一種類二居人 三名體 四染淨 五流無流共不共 七世閒涅槃 八依正 九人法十無㝵 初明種類者小乘唯有一類娑婆等界無別淨土三乘中有二一約佛自住處有三一法性土二實德土謂妙行等三色相土謂勝寶等後二爲自受用土此三非是攝化處故此中不弁也二約佛攝化處亦有三一化身土有二一染謂此娑婆等此約釋迦二淨謂餘方化土此約餘佛二變染土謂足指案地等三他受用土謂十八圓滿等初中二若依始教唯有百億閻浮百億釋迦爲攝化境若終教如智論以三千大千世界爲一數數至恒沙爲一世界性數此性復至恒沙爲一世界海數此復至恒沙爲一世界種數此復至無量恒沙爲一佛世界所化分齊其受用土若始教在色界頂引小乘同界說故若依終教不在三界如涅槃西方去此三十二恒河沙佛土有世界名無是釋迦佛實報淨土又於一切須彌樓山世界畔閒往往數有一淨佛土此通報化爲引衆生三依一乘有二一約果分十佛自體國土海當不可說寄緣說十如第二會說二約攝化處有三類一從須彌山界及樹形等已去乃至一切衆生形世界海爲第一類二三千界外別有十世界一世界性二世界海三世界輪四世界圓滿世界分別六世界旋七世界轉八世界蓮花世界須彌十世界相此等當萬子已去輪王境爲第二類三十蓮花藏莊嚴世界海具足主如帝網等是佛境界爲第三類此上三類通有十事爲首成世界一說世界海二起具因緣世界海三住世界海四形世界海五體世界海六莊嚴世界海七淸淨世界海八如來出世世界海九劫世界海十壞方便世界海 二所居人者若小乘唯有有餘依聖及凡位居也三乘三中初二通有凡夫二乘及地前菩薩幷佛化身居也後一初地上菩薩及佛報身居也解深密經中三地菩薩生佛淨土者彼約七地明義卽初地當彼第三也又起信論中許地前菩薩見報身佛者彼約終教依三昧見也一乘三中多分論時初見聞位次解行位後向果位通卽可知三處佛身同是十佛也 三名體者世是界是分齊謂於時中分齊顯現從相得名繁多奧積深廣難窮同名海也世界卽海從喩業釋也若小乘以子母七微及色等四塵幷能造四大實色爲體若三乘中凡小地前具以賴耶識爲體地上二義報土亦同賴耶識爲體者二智所現卽以唯識智爲體故攝論云菩薩及如來成唯識智乃至爲淨土體故若依終教以如來藏眞如爲體若一乘以無盡法界通三世閒人法理事等諸行相卽互爲其體准思可 四染淨者若小乘唯染三乘有二一約位約法初中有四對顯其染淨一約因果謂金剛已還菩薩所住名果報土不名淨土以過患未盡故唯佛一人使習都亡所居名淨是故仁王經云三賢十聖住果報唯佛一人居淨土二約一向非一向謂八地已上菩薩所住得名淨土以一向出三界事故具足四句一向義故謂一向淨一向樂一向無失一向自在七地已還未名淨土以非一向出三界故縱由願力而得出四句一向不具足故謂無流觀智有間斷故非無失等也此依攝論弁三約純雜謂凡夫二乘雜居之處不名淨土地上菩薩生處名淨故瑜伽論說世界無量有其二種謂淨不淨淸淨世界中無那落伽傍生餓鬼亦無欲界色界色界純菩薩衆於中止住是故說名淸淨世界入第三地菩薩由願力故於彼受生無有異生及非異生聲聞獨覺解云此第三地旣名淨意樂卽是歡喜地以約七地弁故四約退不退謂入十住已去不退位三賢菩薩生處名爲淨於中亦有四果二乘等如阿彌陁土生彼皆住正定等堪任已還輕毛退位三聚衆生共生之處不名淨土此四對八義中初約果唯淨約退唯染中間相形皆通染淨二約法四句者或唯淨謂於上四門中形取淨故退位所居自性淨故或唯染謂四門中相形取染故佛果隨緣約機說故起信論中名隨染業幻所作也俱由前二義不相離故或俱非以二義互融非定一故二相盡故一乘亦二初約類中初類染後類淨中類通二二約法中或俱淨以卽佛故或俱染卽衆生故或具二由前二義不相離故或不俱以二相融故二相盡故上三類中一一皆具此四句准思知之 第五流無流者若小乘唯有流三乘有二門一隨相門二融通門中四句一唯有流謂凡小地前所變土二唯無流謂佛所現土三俱謂地上菩薩二智所變及賴耶所現此二雖爲苦道二諦攝然無別二體但隨義異攝四俱非謂皆空故不墮數故此上約始教二融通中亦四句一或一切皆無流乃至凡位亦爾以離諸流性故如經云色無流無繫受識無流無繫乃至廣說二或一切皆有流乃至佛亦爾以不離流法故如經言諸佛安住三毒四倒五欲等中得阿耨菩提乃至廣前句不異流之無流故卽無流後句不異無流之流故卽其有流三俱以前二義不相離故四俱非以皆離縛脫性故如經言色無縛無脫識無縛無脫乃至廣說一乘中如緣起法界若無一卽一切不成互融無㝵亦具四句全攝可知思之 第六共不共者於中有二先明分齊後顯義相初中隨一世界皆是有情異熟識由共相種成熟力故變似色等器世閒凡一世界有幾有情異熟識變唯識論中有三師說初師說云一切有情以契經說一切有情業增上力所共起故次師破云若爾諸佛菩薩應實變爲此雜穢土諸異生等應實變爲他方此界諸淨妙土又聖者厭離有色生無色界必不下生變爲此土復何所用有此三種大過失故明不得通一切有情應說現居及當生者彼異熟識變爲此界經依少分說一切言諸同業者皆共變故後師傳破第二云若爾器世界將壞時旣無現居及當生者誰異熟識變爲此界又諸異生厭離有色生無色界現無色預變爲土此復何用設有色身與異地器細懸隔不相依持此變爲彼亦何所益亦由如此三種大過是故現居及當生者皆不成變初器將壞當生現居俱無受用二若現受無色界身而於此土無受用義三設有色界身與此麤細異亦無依持受用是故此三俱無變義爾誰識變耶正義應云凡所變土本爲色身依持受用故若於身可有持用設令生在他方自彼識亦得變爲此土故器世界將壞初成雖無有情而現有土此土竝依唯識論弁第二顯共不共義相者若小乘中旣是極微所共合成故唯是共若三乘中有四句初或亦唯共謂彼依報雖不離識而識是別土相是一由彼彼識中共相種子共所現故如攬四塵共成一柱柱之相不離四塵非隨四塵而有四柱當知此中道理亦爾若自受用土佛與諸佛共有一土猶如法身諸佛共依故以是同法性土故若他受用土亦佛與菩薩之所共有如王與臣共有一國諸雜染土亦是有情共業所現故無別也二如是依果實皆不共以各於自本識中現故論云但是有情異熟識各變同處相似不相障如衆燈明如多所夢因類是同果相相似所無別假名爲共實各有異諸佛淨土亦復如各別識變皆遍法界同處相似說名爲共若有一土不隨識別則心外有法不成唯識論云我說識所緣唯識所現故由是當知皆自識變故各不同三亦共亦不共者由前二說不相離故瑜伽云外等諸物或由不共分別爲因或復由共分別爲因若共分別之所起者分別雖無由他分別所任持故而不永滅若不爾者他之分別應無其果彼雖不滅得淸淨者於彼事中正見淸淨譬如衆多修觀行者於一事中由定心智種種無量異見可得彼亦如是解云此說依報迶共分別其不共分別同前第二故隨外器世界皆具如是二義而成故雙存也四非共非不共者有二義一由前二說互形奪隨定取一不可得故是故俱非二由土依識土相盡故識從緣起無自性故是故共與不共性相皆離不可說也此上若約果報賴耶識所變等卽是初教若如來藏賴耶所現卽屬終教若一切相盡唯一淨心平等平等離言絕慮卽屬頓教若依圓教有二義一如前諸教所說同無盡法界帝網重重卽入無㝵具足主伴屬此攝二以義求亦有四句一或唯共以同一法界故相卽故二或唯不共以緣起各別故相不雜故三或俱以上二義不相離故以全體相卽而不壞故四或俱非以二相泯故形奪盡故第七世閒涅槃門者有二初隨相二融通初中有四句一或唯世閒謂地前及凡位所居二或唯涅槃謂諸佛果位所住涅槃設自受用土亦得是彼大涅槃攝三或亦世閒亦涅槃依寶性等論依無流法界中有三種意生身應知彼因無流善根之所作故名爲世閒非是有流業煩惱作亦名涅槃依此義故勝鬘經云世尊有有爲世間有無爲世閒有有爲涅槃有無爲涅槃解云有爲世間是凡位無爲涅槃是佛果有爲涅槃無爲世閒是變易報所望異故屬俱句義准諸佛淸淨法界是非世閒非涅槃以非是二乘涅槃故又亦非雙林涅槃故二融通者亦四句一或唯世閒謂佛淨土亦悉是器世閒攝二或唯涅槃謂衆生染土亦相盡同性故或俱以理事無㝵故論云世閒與涅槃無毫氂差別以無別故無二而二雙現前也四以無毫分別故二而無二形奪俱盡故俱非也經云來不見生死不見涅槃又此經云世閒與涅槃二俱不可得此之謂也 第八依正門者若小乘是唯依報三乘中器世閒雖是本識及鏡智所現而唯依報攝若依圓教中通三世閒以舍那佛有國土身等是故世界悉是佛身又有衆生形世界等是故衆生卽世界此竝依正混融無㝵故也相卽自在故 第九人法門者小乘非人法三乘可有是法門義一乘具有是佛普賢及衆生等故唯是人或諸世界竝是法門故如文云淸淨妙形入於無量正法之門此明世界等悉是法門 第十無㝵門者小乘世界唯是事相於上但有苦無常空無我等理三乘中法性土唯理餘皆是事然上二宗理之與事非一非異名爲無㝵若一乘中略有十重一情事無㝵謂應情顯現事超情外文云喩如幻無方皆從妄想生二理事無㝵謂全同眞性而剎相宛然文云法界不可壞蓮花世界海等三相入無㝵謂文云以一佛土滿十方十方入一亦無餘等四相卽無㝵謂文云無量世界卽一世界五重現無㝵謂於一塵中見一切剎剎內塵中見剎亦爾如是重重如因陁羅網六主伴無㝵凡一世界必有一切以爲眷屬七體用無㝵一剎海必有大用赴機說法八隱顯無㝵謂染淨隱顯異類隱顯等約緣定之可知九時處無謂或於一剎現三世劫或一念中現無量剎如是無㝵十成壞無㝵謂成卽壞壞卽成等㝵顯現自在難知超過情慮此十無㝵同時具應以六相方便而會融之十世界義略弁如諸餘義相隨文當顯 第二依章別釋中內初一不釋以釋餘九卽爲說故文中初釋前八後釋第十前中初七各二謂長行及頌初文無頌初中長行內四一標二成三弁四結一切世界海者是彼三類各各非一故也已成等者一以此諸緣通成三世一切世界而諸世界已未等異二成一世界卽遍三世前緣通界別界通緣別思之此約一乘八緣中一後得通惠二緣起法爾三所化業力四菩薩行滿應於彼界而得成佛則由此力彼界得成五普因成也六菩薩爲嚴淨無餘剎故修願行剎隨願行無㝵容持故云解脫自在七大覺正因八普願攝然此八中初四是權成其麤相故亦通染四約實成其細相故唯是淨如經我此土常安隱等而一世界卽具麤細故也又此八中摠有四對一初及第七約佛明權實二八及第五別約普賢明權實以第八是爲物故三四及第六通約一切菩薩明權實四第二及三約理事爲權實以業行緣成不實故也何故要具如此四謂佛爲教主普賢是助化菩薩及衆生是所初二中若無㩲無以熟生若無實無以應眞後二中初衆生業報緣虛後必有所依眞性此八種等塵數因緣成一世界皆互無障㝵全體遍收作不作等如緣起性卽空卽有卽一卽多融無分別思之餘一一界准之頌中有二十分七初四頌前佛神力於中一剎依鏡智現土以行修成三化菩薩四悟衆生次四頌菩薩應得道力於中初上半明行因下半明智果猶到也二上半明土因下半起土果三上半依正因成下半明證入依正果境四上半果廣半因久次二頌衆生業力次二頌菩薩嚴淨佛土願行力次二頌普賢善根力次四頌普賢自在願力次二頌佛依果故也此頌摠通緣起異卽爲法如是故不別頌也 第二住中長行內二先具標數謂凡一世界卽具如是剎塵所依故云一一也二略列七事一依善淨力住依無㝵三依如意寶或一切四依通明五依緣起力六依法身持七依法界願依智論中摩訶名大那名無伽名罪此約無失義釋又云或名大象卽陸行中力大也或名大龍卽水行中力大也又初如善調象能破軍敵約自利也後如大龍降雨約利他也頌中十六半分九初一頌依莊嚴住二一頌虛空住三二頌依寶住四一頌佛光謂威神是也五一頌力士六五頌上標中剎塵依此猶略也七二頌幻業八一頌普賢願力九二頌半通顯因陁羅網安住相初偈一塵內現依正後一半類多塵可知 第三形內長行中別列七種初四及七當相弁形五六二種約喩顯狀一方如斗二圓若珠三非方是四維形四非圓是八隅形五水洄洑形六華形衆生形者謂有二義一有世界似衆生形二卽種種衆生皆是世界如身中八萬戶虫各有九億虫等此卽是世界准下文亦是舍那佛轉法輪處也是故文中但言衆生形不言如衆生形故知卽以衆生爲界也此等一一形類皆遍法頌中十七半分二初三正頌前文後十四半明剎德用前中初一頌上摠數次一頌上別形但頌初四略無後三依智論摩尼珠有八楞此隅形也後一上半顯因異下半明果相二德用分二初六半明德自在後一毛孔下明用自前中初三約佛顯剎明堪應機一體成法門二相顯臨機三舍那光照是佛所有也後三半約機正應顯成差別一機心業異感土多形佛土自在能隨感現異三雖應成染淨而法流不斷四下半結業多門感現難測二明剎自在中三初四明依正自在次二出其所因後二結用歸主初中初二毛孔現剎佛於彼中爲衆演毛孔卽明正報攝依佛還在自毛孔之內二塵內所現種種形界佛亦在中轉尊法輪塵是依報攝正等也二出所因中由何得此自在容持一由佛誓願自在力故二由衆生心業不思議故三結歸中初一擧塵內佛次半擧塵內下半正結歸主 第四體長行中別內五竝約事顯也凡論土體有五重一眞如二眞智本識四五塵五諸事諸事卽法門將爲歎故以文中弁也頌中十行一寶花體二炎空體光明體四電光及願體五日珠體六寶炎及化七佛化體八心業起體或業起心海成土或心業起土或妄念爲體九佛身光體十普賢化願體此等竝是任放辯才說不待次故也第五莊嚴長行內別中有四一雲通相二染業三淨因果四結可知頌中十偈分五初一頌上摠數次二偈頌雲嚴次一頌上衆生業嚴五頌上佛嚴於中初二嚴依次一嚴正謂佛數等衆生故也或衆生數等佛也次二雜嚴後一頌上普賢嚴 第六淸淨別中有五一行緣淨二自利淨三利他淨四行滿淨五得位淨皆從前起後可知汎論土淨有七一當體淨謂以淨識爲相等二事相淨謂淨寶等故三受用淨受用此土滅惑成德故四住處衆生淨謂有德衆生滿此世界故云淨也五主淨謂佛之土等六淨行因生故如文無量行海所修集等七淨行卽土故云淸淨以行爲依止故也如文可知偈中九頌分五初一偈頌上摠數次一頌親善次二頌上自利謂一三昧行二信忍行次一頌上利他次二頌上二行滿次二頌上得位益第七佛出世別中三句初約現身普遍謂以二身遍滿一切差別法界一一之處皆身全現不分身亦無限分故也壽長短者如須扇多佛旦成暮滅迦葉七日釋迦八十等此謂短壽勒八萬彌陁極算等爲長壽皆由機感故致然又初約一切處現後二句約一切時現謂長短具故爲一切也若爾處何不然差別法界遍多小通有無故云遍滿也頌中十偈初三頌前長行初一頌摠次一頌身遍後一頌脩短後有七偈明佛出現無方勝用此中分七初一嚴土多少次一說乘多小次一救生多少次一化現廣狹次一圓音普應次一主伴遍充次一慈海普現摠結也此中或短壽度多生或長壽度少生或長壽度多生或短壽度少生或短壽說少乘或反上或長壽說多或反上如是等與虛空法界等皆是慈海力所現故也 第八劫中略無偈頌摠中塵等劫住者非是一一世界各住塵等劫良以一一世界劫住不同長短差別如塵等也所謂下別擧二門有如是下摠結差別劫義如別說 第九釋第十壞方便世界海者但壞有二種一成卽壞以諸緣各無作故性自壞故二三災壞卽事壞也今此文中弁初下重頌偈中明後義故又釋初卽壞成後卽成壞壞故名方便壞也又以後壞亦從緣無性何故須俱壞者欲令見心盡故成壞圓通故若爾亦得初卽不成故成成後卽不壞故成此卽壞成俱成何不爾耶理實應爾但爲此文釋第十壞義非釋成故不弁也文中有二先擧意摠告謂分別花藏開示群機二正明所說中三初擧主弁因二有須彌塵等下明因所成果三是佛常轉法輪處結果屬主初中三先摠弁謂從初發意卽修此因明因深果厚也瑜伽論說一切諸佛要經三阿僧企耶劫行成佛無增無減何故此中乃說阿僧祇箇世一一世界竝末爲塵一塵爲一劫據此則有不可說箇阿僧祇劫何故不同耶彼約三乘據一方化儀唯就此須彌樓山世界說是故寶雲經云我爲淺衆生說三阿僧祇劫修行然我實於無量阿僧祇劫所修行也此是約會三乘歸一說此文約一乘該通十方因陁羅網等及樹形等諸類世界說又爲約法弁時以法無盡故時亦無盡文中且擧十大數中初數爲則卽通帝網喩故亦無盡也若爾一劫卽無盡何不但言一劫耶此中無盡無盡故也又德無不備曰嚴垢無不盡曰淨又初卽福智交飾後斷德離染又亦得嚴卽是淨嚴故也別中汎論土因有二種一依因謂眞如淨識及鏡智生因謂諸妙行願今約後義略陳三種一廣福二大願三妙行初中一一劫者時廣也一一劫中供塵等佛者田廣也又是佛故田深勝也下地品應有一切供具卽供具廣也以上心深心卽供心廣此文存略故耳准地論恭敬供養各有三種應尋彼文新金剛般若論上卷亦有三種供養一給侍左右二嚴辦所須三詢承法二願中一一劫時廣也一一佛所者勝緣廣塵等願願廣也謂以大誓自要要成此果要期願也又所修福行悕成此果卽悕須願也對佛發弘爲修眞實離染爲淨又十大願中淨佛國土願及餘諸願應尋論之三妙行中修時廣緣深廣行事廣可知亦對緣進造曰修修成離染爲淨謂十度六度等行乃至一切行准之又三中初自利後利他中閒通二利又亦可具四多卽四修一塵數劫卽時多爲長時修二塵數佛所卽供佛多爲恭敬修三一一佛所發願卽願多爲無間修謂願心相續也四塵數行卽起行多爲無餘修第二所成果中分二先明此主界後弁結通中有三 初顯本世界爲依持處 二從此香水海上有世界性住下明次重顯雜類世界性三從香水海名樂光明下更重弁十二佛國土七世界性然此本師佛攝化境界諸教分齊不若小乘中但有此一娑婆世界若三乘有二一化身化境謂此娑婆等二他受用身化境十八圓滿淨土等若約一乘十佛化境蓮花藏莊嚴世界海有三種一蓮花臺藏世界雖遍法對地上菩薩機現有增減寄在色頂唯說一二卽此遍法界之花藏說十顯無盡卽無盡箇花藏一一皆遍法界三樹形等雜類世界一皆有蓮花藏竝似彼界悉遍法界各各有十無盡無盡也此三中初一約同教一乘弁後二約別教顯耳今此文中據須彌山世界中弁花藏故是故風輪水輪還似彼也以易信解故機而成故 初文中分二初別顯嚴相後一一下摠結前中有六初弁風水花地爲根本所依二明地上山海嚴等三地能映現嚴四地上香海嚴五海閒香河嚴六河閒寶樹嚴此六段中各有二謂長行偈頌 就初段長行中有五風輪無㝵持二依風有香海三依海有蓮花依花有世界五依界有圍山初文有三初㧾別後結別中前七各持寶地中此有二義一謂一風輪上有一寶地如是次第二其諸寶地皆遠在蓮華上然此風力雖緣起門各別主屬無㝵住持故是法性風也此中風有二義一無㝵二有力義故成緣起也寶地亦二義一可貴二依持義人法解行等法門准之八持時者以時依法立無自體故說持也須彌山地是下文所持雜世界處事遙有所主故一切有者是諸世界中三有等也二亦得通是寶地上諸莊嚴事爲一切有又以義求前七次第從細向俱屬持諸寶地後三漸麤持下文所持諸世界性四時三有等又此中最下風輪超越持於花上寶地最上風輪鄰次持於花下香海者顯上下鎔融自在無㝵故爲異彼染土醎烈海言香水海也香有二義一普熏義二芬馥義水亦二義一淸淨義二洗濯義海亦二義一深二具德又有十義#如下說以具主伴故云一切也花中二初句弁義大蓮花者梁攝論中四一如世蓮花在泥不污譬法界眞如在世不爲世法所污二如蓮花性自開發譬眞如自性開悟衆生若證則自性開發三如蓮花爲群蜂所採譬眞如爲衆聖所用四如蓮花有四德二淨三柔軟四可愛譬眞如四德謂常樂我如此等竝爲依止義故也彼論又約一復次謂如來願力所感大寶蓮花王爲淨土作依止也花藏之名因此立也下句香幢等者依義立名名有四義一香有二義一約體是氛氳義二約用是普熏義二幢亦二義一約體是獨出二約用是降伏義如帝釋幢等三光明亦二一是照闇義二現法義四莊嚴亦二義一是具德義二交飾義此中香卽幢香幢卽光明明卽莊嚴皆持業釋亦通依主准之下明所持二句初句中花義同前藏是含攝義出生義具德義此中通論有二義一由此土內含攝一切人法等諸法門故二含攝一切諸餘剎故下句金剛亦二義一是堅義二利義山亦二義一是高義二靜義圍繞亦二義一是內攝益義二外防敵義謂以金剛外敵鄣不能侵內德增長也偈中二十頌分二初七略頌前文後十三明勝用利益前中分五初一頌擧果體用次一頌前因中供佛淨福次二頌前大願次一頌前果內風持寶地次二頌前土因大願以是任放弁才說不待次也第二勝用中二先六頌明依報用益後有七頌明正報用益前中二先明勝用有四頌一世界光二菩薩光三華色光四淨寶竝是智等法光故能充照法界後有二頌明益相初一滅惑成德二睹帝網法界後正報用益亦二先明勝用有二頌一明剎外佛用二明花內佛用又前珠中菩薩遍十方此則花中諸佛等衆生界依正無㝵故也下明益相於中五一擧所益機二興普教三巧調機四令住自分斷德五令聞勝進智德何不佛等語說法於光雲等說耶以此明剎用故爾也若爾何故弁佛光等耶以依正圓融故佛亦是剎此中意弁花藏界何故乃說諸雜化用耶有二義一以此是剎用故弁用顯體二卽此化用爲依止故卽是剎也何故與長行不同長行略標頌中廣顯故也 第二摠明山下地海嚴者長行五句初二句顯地名謂蓮花臺面爲寶王地二明地鎭海三地相具德四地體堅固五明地勝用於中初句出法寶後句起智照頌中十偈分二初六明衆德嚴後四明法行嚴又初是體備衆德後明妙用自在又初依後正又初事相嚴後法理嚴又初法後人又初頌前文後明異義竝可知初中前一摠弁嚴因次二頌上山地於中初一標謂寶輪香輪爲山上嚴珠輪衆寶爲山下依後一釋謂初二句釋上寶輪嚴次一句顯上香輪下一句弁莊嚴義梵云斫迦羅此云輪圍山也次一偈頌上體相二嚴謂初體後相次一偈頌上香水海次一偈頌上地勝用亦是海岸邊寶地上卽有寶樹下座上有佛菩薩之身也第二段中四偈初一摠明身語法輪次二別弁身色依正無㝵於中初一佛現多嚴具之中次多佛現一嚴具內調物爲法輪也又前花蓋中菩薩充法界此卽寶幢寶樹莊嚴中衆佛身雲滿十方竝以正爲依也後一偈別顯上語法輪此卽剎說也此上通三世間圓融無㝵隨入一門皆具一切故致然也又此等諸文長行所說卽編其次第令隨事生解偈中所頌卽融其始終圓通無㝵順於法性長行以法就機偈頌會機歸法文家綺互善巧之相應知 第三寶珠嚴內長行中六句初句顯寶名謂山爲外郭世界居中故云內也非在山中爲內名不可壞有四義一體不可壞謂金剛末尼故二德不可壞謂藏攝衆寶同在自中衆寶不相破以無相不相形奪故自亦不壞以無二故三用不可壞謂雨物多端無奪故四映不可壞謂能映現多身不可奪現處重現不相㝵故二弁珠勝用謂洞徹明煥故能現也此中映是能現影爲所現也何故不現佛等及餘剎耶謂彼非所化故若爾何不現心念耶謂非色法無現義故三寶花嚴地中以爲莊嚴者通上二句同嚴大地四雲嚴五香嚴六三世嚴者謂三世諸佛嚴花藏界皆與此同又亦此嚴同三世故也又所嚴藏體通三世故縱於現世以一花嚴由同所嚴故卽通三世知一花一鬘皆遍三世三世俱現各具過未卽該九世也又以猶用也縱所嚴剎唯在一念於三世一切嚴具而莊嚴故卽所嚴同能嚴而遍三際也又亦得能所一念卽含九世通相卽故具十世以顯無盡也於上四釋後三爲勝頌中十偈分四初一偈半頌上不壞摩尼次二偈半頌寶花嚴次一偈頌雲嚴次五偈頌三世剎嚴於中初一地現三世行次一地塵俱剎入次一菩薩受用嚴次一佛法體用嚴次一得普賢願及佛智者能入多剎 第四香海嚴中長行別內十四句一香寶岸二寶網覆三寶水流四衆花敷五末香其水六出佛音七香普熏謂教法所及也八寶階道謂入法階梯也九珠攔楯謂防外非守內德十潮浪聲十一花閣圍二花城周外十三香花布水十四香樹爲嚴卽事卽法可准思之頌中十偈初一頌海二頌寶岸三頌水及佛音四頌階及攔五頌寶樹頌花布分陁利此云白蓮花也七頌寶網八頌花城九一頌以圍其外十擧因結成 第五香河嚴內長行別中三句一花覆二出處三隨流以依正無㝵從佛出爲表正故眉間出謂教河流潤從證智出故也然教帶眞義故寶王隨流不失眞性卽隨緣不變無二是也頌中十偈摠明河相二涯岸莊嚴三香水流浪四迴㳬所五踊寶自照六河體普周七網演因修八岸聞果行九河用舒因十河原從果 第六寶樹中長行內五句一明樹體謂無流法林樹等卽衆德建立義也二寶鬘覆卽大慈普覆三因力所起四果德加成五極盡嚴際頌中二偈初一頌果行自在後一頌因行所起又此二頌卽是以人法無㝵故第二摠結中分齊境多別說難盡故摠云一一然於一中嚴事猶多故摠云塵數又嚴別難彰故通云淸淨可知第二大段明第二重依前蓮花臺內諸香海上所持諸雜世界性於長行中初摠後別別中先弁所依住有六後顯能依形有九此中世界性者謂積世界成性積性成海等如上所引智論又此下文於世界海中有世界性世界性中有一世界等故知積成也何故名性者有二義一望前諸界攝諸流類積結成性如夂習成性二望後海等有爲因義故亦得名性積界成性界亦因義何不名性無融結故闕初義十世界中海望於後亦積成餘界何不名初積結攝已得性名後開異義轉立別號不名性也頌中十偈分四初二偈頌上住形二有三偈明剎有色聲莊嚴顯體德圓備三有三偈明諸剎土卽入無㝵顯妙用自在四有二偈明三世閒自在卽顯攝化勝用依正無㝵也第三大段明向上廣持諸剎於中二初牒上海及海上花二弁持剎及性此中十二佛土七世界性有諸德釋爲花藏界外十方國土詳其文恐不然旣取花藏內香海中蓮花而持故知非況下文結屬舍那故亦非外但此中大意明衆香海中略擧一海一海所持十方剎中略擧一方一方旣爾說不可盡餘方例准一海所持十方無盡皆遍法界餘一一海皆持十方各遍法界無㝵圓融無盡自在卽不可說不可說也大意如此思之二所持中二初一方後結十方前中二先明十二重佛土後弁七世界性此十二佛土有人用配十二因緣有配菩薩十二住等一一釋之義恐不然豈以十二數同卽便配釋但此經所明皆應十數以顯無盡縱有十二七八等數皆是增減之十如智論釋還是十豈得配耶況義理又別又此經所說一事一土皆遍法界具足一切人法教義因果理事等一切法門非適一相故不可以一門釋耳上下諸文皆准此知若爾上來諸文何故皆以一二義等釋耶還以一切之一釋故無過是故或一不少或多不增爲成文故布之前後深須得意多小無㝵又汎論佛及剎立名不同略由五相一或因機感二或由佛本願三或依本行四或先佛記別五或 表示法門此中佛及剎土依正圓融可以法義而消息之塵數香海及世界性准釋可知又有義此上摠爲二重初辨此佛花藏土及所持世界性後從十二佛土下弁他佛土亦持世界性摠爲二對須思之結通及結屬竝可知 第二重頌中有七十頌但頌次前長行中事非是頌前十世界海及花藏等以彼各有偈重頌訖由前十二佛國土七世界性皆通有此十海義故是故偈中頌顯其狀彼長行綺互廣略亦同前諸文於中分二先九頌摠頌前文二餘頌別頌前中十海初中有四初一顯根本所依花藏土海次三摠弁能依異類諸剎次三別略顯能依剎形後二通擧佛剎大用第二頌十海中文則爲十初有十一偈起具因緣世界海於中有七因緣初三頌神力此中初一就本無壞後二隨末虧盈二如依種種下二頌頌業種因初一報異後一業殊譬如意寶下二頌頌願力因初一寶珠現色喩後一就現空雲喩四猶如工幻下一頌幻業因五如見彩畫等一頌頌心畫因六衆生心不同一頌頌妄想因七猶如見導師等一頌頌心行因此七何別者初是現威神二是種子三是宿願力四是現行五是本識現六是轉識相樂欲器故別也二無量眞珠下二頌頌莊嚴世界海三或有佛剎地下四頌頌染淨世界海中初一唯染次二亦染亦淨後一唯淨心初一衆生次二菩薩後一諸佛故令所居土有染淨此三漸次向淨故也四一佛國土中下四頌頌壞方便世界海亦初一唯壞次二亦成亦壞後一唯成無壞以染可壞淨常存故五或有佛剎起下二十頌頌體世界於中初六純染苦體次四雜苦樂體後十純淨樂體於中初五隨事弁體後五妙用自在六或無量佛土下三頌頌住世界海於中初一擧能依之形後二顯所依住相七或如師子座下三頌頌形世界海八或壽命一劫下二頌頌劫世界海九或國土無佛下五頌頌佛出世世界海於中初一摠標次二明化身示現次一機熟無時不現後一非器無時有現十或剎極濁惡下七頌頌說世界海中初二惡道聲次二善道聲後三法輪聲上來摠相通答於前果問竟自下第二大段弁得果之因答前問中一切菩薩所脩行海等問也又釋亦是於前諸世界性開一世界性中顯內所有三種世閒及五海文中分四 一擧往時處辨佛興世爲脩行 二從彼炎光城下明普嚴童子能脩行人三童子見佛下弁對緣正脩成自分行 四彼佛滅後下明後更見佛成勝進行 初中四擧往時二明往處三處中場四場上佛出第二往處中四一海中取性二性內山林三林東勝城於中初依報勝後人衆勝四眷屬城嚴第三場初場地後花座第四佛興中初佛出後放光利益 第二擧能脩行人中王有順理善惠令愛見問涅槃中一切王皆定千子不增不何故此中乃不同耶彼是主四天下之輪約三乘說此是主世界性之輪王故寬細於如白淨寶網等以一恒沙金輪王福所感約一乘說不同也又王及長子是福分童子爲惠分是故成入道之器德周法界曰普普德交飾爲嚴普之嚴普卽嚴普嚴之童子普嚴卽童竝通二釋離染貞潔素爲道器故云童子文殊等 第三修成自分行中二初見佛得定爲自分之始後聞經得定成自分之終前中有一自利得定二偈勸化他三王喜偈告四俱共詣佛初中見佛功德善根因緣故者有三釋一由見佛功德善根之因緣力此則唯屬境力也二由見佛功德所生善根因緣力故得定三由外見佛功德爲緣內自宿有善根爲因因緣具故令得定也此十定中初五爲成利他一具果法二入普巧三巧成嚴器四正益機五益分後五爲成自利一成加行二入正證三廣後四順涅槃五順菩提又初一摠餘九別略釋可知二普勸中初說偈後偈聲分齊偈中初四歎佛德難遇次三䎳遇成勝益後一結勸興供三王喜偈告中二初王聞歡喜後偈勅告令中三初一擧告宣告次七令嚴辦勝供後一令興念詣佛四俱共詣佛初王及內眷屬後八部外眷屬第二聞經得益中三初䎳說經名者行能現果擧果取因故云現等若從此義唯據因也又此佛集會卽爲顯現此則唯果此中三世是三現在故卽具九世十世也不爾過未旣如何說現是一乘圓教故攝眷屬耳二童子獲益中二初得定自利益二說偈化他益初中四定一普該境法二攝入歸心三契法無畏惠眼圓明二利他中二初說偈後䎳得益偈中初一㧾謂上半頌前法眼定下半摠擧眼所次七偈別弁佛本生由佛而得見後二別見諸佛而爲物脩因獲益可知第三如來讚述九偈中分五初一摠歎童子次二別記正報次二別記依果次二歎其苦行後二摠記依正第四大段成勝進行中二初擧佛爲行所依緣於中先佛滅後佛興者爲行異緣別故也童子報命猶存者爲行相續故也二依緣成行益中二初見佛得四定爲勝進之始一念佛者論云如佛所得我亦當得爲念佛也二入於普門窮茲海藏三智持爲能轉智法輪正成所轉四深法悅神故也二聞經得二定爲勝進之終經名者謂法界自性淸淨故云離垢具恒沙功德故曰莊嚴前就果相此中約果體者爲自分勝進漸深故也二定中初約自利後約利他此中童子得法是何位者義准上下經意有三種成佛一約位以六相方便卽十信終心勝進分後入十解初位卽成佛以此是三乘終教不退之位故以一乘六相融攝卽具諸位至佛果是故此中童子見初佛爲信位自分聞初經爲信位勝進見後佛當解位初自分聞後經爲解初勝進以攝諸位皆具足故二約行摠不依但自分勝進究竟卽至佛果三約理則一切衆生竝已成竟更不新成以餘相皆盡故性德本滿故此後應有結會謂彼童子者今其某甲字等亦應有動地雨花他方來證及結通十方幷偈重頌等但經來不盡故未有也此會旣何不衆中有人得益略由四意故無別益一於前三義中由初二義故說童子益相由後一義故衆中無別獲益二光統釋云此經佛初成道說但顯一乘圓教法輪體爲諸教之本教益相爲此益故不弁也三但教有二種一說逐機教攝法隨機機有增進隨分弁益二逐法攝機同法法無增損故無別益四此經猶如日出先照高山旣無中下之機故無隨分之益下文諸會竝准此知釋第一會竟華嚴經探玄記卷第三乙巳歲分司大藏都監彫造
  1. 1)4의(意)란 사람 가운데 과와 인과, 법 가운데 의리와 교사를 말한다.
  2. 2)셋이란 체ㆍ상ㆍ용을 말한다.
  3. 3)잡업(雜業)이란 유루의 선업과 불선업을 말한다.
  4. 4)잡촉(雜觸)이란 즐거운 일에도 부딪히고 괴로운 일에도 부딪히는 것을 말한다.
  5. 5)잡수(雜受)란 고수(苦受)ㆍ낙수(樂受) 등이다.
  6. 6)일분수(一分修)는 세간수(世間修)를 말한다.
  7. 7)화생(化生)은 태(胎)ㆍ난(卵)ㆍ습(濕)ㆍ화(化) 등의 유정을 말한다.
  8. 8)소지상(所知相)이란 세 가지 자성상[三自性相]을 말한다.
  9. 9)고려대장경에는 ‘차(此)’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인차(因此)’로 되어 있다.
  10. 10)4구(句)란 일문 일답과 일문 이답과 이문 일답과 이문 이답이다.
  11. 11)3혜(慧)란 언설은 문혜(問慧)를 이루고 생각[念]은 사혜(思慧)를 이루고 말과 생각이 합해서 수혜(修慧)를 이룬다.
  12. 12)저 묘한 지혜[妙智]는 『불지경론』에 대원경지(大圓鏡智)ㆍ평등성지(平等性智)ㆍ묘관찰지(妙觀察智)ㆍ성소작지(成所作智)라고 말했다.
  13. 13)넷이란 4무외(無畏)를 말하는 것이니, 첫째 일체지무소외(一切智無所畏)요, 둘째 누진무소외(漏盡無所畏)며, 셋째 설장도무소외(說障道無所畏)요, 넷째 설진고도무소외(說盡苦道無所畏)이다.
  14. 14)「이세간품」에 열 가지 무외를 설하고 있다. 『대정장』 9권, 625쪽 상단 참조.
  15. 15)신수대장경에는 ‘부사의품(不思議品)’으로 되어 있다.
  16. 16)다른 이의 덕(德)이란 불위(佛位) 이외의 성문 등의 지위를 말하며, 여덕(餘德)이란 여위의 덕(德)을 말한다.
  17. 17)6근(根)이란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를 말한다.
  18. 18)설인(說因)이란 부처님이 가진 설법의 인을 말하며, 설연(說緣)이란 것은 모든 보살과 같은 청중으로써의 연(緣)을 말한다.
  19. 19)목카(目佉, mukha)란 입[口]ㆍ낯[顔]ㆍ얼굴[面]ㆍ머리[頭]ㆍ문(門) 등의 뜻이다.
  20. 20)과향(果向)의 10위란 여기에 대해서 세 가지 설이 있다. 제1설은 「공목장(孔目章)」 1권에 12주를 설한 가운데 6ㆍ7ㆍ8을 합하여 하나로 하므로 10위가 된다. 제2설은 12주 가운데 제1주(住)는 3현(賢)이고 제2주는 4선근(善根)이니, 성위(聖位)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제거한다. 제3설은 성문의 4향(向)4과(果)와 연각의 1향1과를 합하여 ‘십’이라고 한다.
  21. 21)5정심관(停心觀)이란 부정관(不淨觀)ㆍ자비관(慈悲觀)ㆍ인연관(因緣觀)ㆍ계차별관(界差別觀)ㆍ수식관(數息觀)을 말하며, 이것은 수행의 초보이다.
  22. 22)미간(眉間)은 두 변[二邊]을 여읨을 표함이다.
  23. 23)백호(白毫)는 부처님의 32상 가운데 하나이다.
  24. 24)가설(珂雪)은 백마노이다.
  25. 25)3전(轉)이란 것은 “이것은 고성제(苦聖諦)이다. 이것은 마땅히 두루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이미 두루 알았다”라고 관(觀)하는 것을 3전(轉)이라고 한다.
  26. 26)사(四)란 4제(諦) 법륜이고, 삼(三)은 전(轉)ㆍ조(照)ㆍ지(持)이며, 일(一)은 일실제(一實諦) 법륜이다.
  27. 27)3전(轉)이란 『법화문구(法華文句)』에서는 3전을 견제(見諦)ㆍ사유(思惟)ㆍ무학(無學)의 3도(道)에 배합하고, 시전(示轉)ㆍ동전(動轉)ㆍ정전(証轉)에 배합하며, 또 시(示)와 교(敎)와 이희(利喜)에 배합한다. 또 성문은 3전, 연각은 재전(再轉), 보살은 1전(轉)이라고 말하며, 혹은 중생에 3근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3전이 있다고 말한다.
  28. 28)맹발(萌發)은 중생해의 생의 뜻을 해석한 것으로써 싹이 트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적취(積取)라는 것은 중(衆)을 해석한 것으로써 많은 인연이 모여진 것을 말한다.
  29. 29)궤용(軌用)이란 궤는 법이고 용은 업의 뜻이니, 곧 법계업해를 해석합이다.
  30. 30)성별(性別)은 제근(諸根)을 나타냄이니, 곧 욕락제근해를 해석한 것이다.
  31. 31)반류(返流)는 연기문을 논한 것이고 본정(本淨)은 성기(性起)를 논한 것이다.
  32. 32)감수십(減數十)이란 모자라는 십(十)이란 뜻이다. 『화엄경』의 원용무애한 사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원수(圓數)인 십으로써 표시하지만 실제에는 십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감수십이라고 한다. 지금 이 경문에서는 십중 보배왕 구름을 비처럼 내린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7종의 보왕운만을 열거하고 있다. 참고로 증수십(增數十)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십이 넘는 경우를 말한다.
  33. 33)악취란 지옥ㆍ아귀ㆍ축생을 말한다.
  34. 34)신수대장경에는 ‘보현(普賢)’이라 되어 있다.
  35. 35)신수대장경에는 ‘내왕과거(乃往過去)’로 되어 있다.
  36. 36)4감지(堪智)란 연(緣)과 법과 작(作)과 성(成)의 4지(智)를 말한다. 신역에서는 관대(觀待)ㆍ법이(法爾)ㆍ작용(作用)ㆍ증성(證成)의 네 가지 도리라고 말한다.
  37. 37)발가락으로 땅을 누른다는 것은 『유마경』 제1권 「불국품」에 “부처님이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니 즉시 삼천대천세계에 약간의 백천 진보로써 장엄하여 장식함이 비유하건대 보장엄불의 무량공덕 보장엄토와 같았다(寶莊嚴佛 無量功德 寶莊嚴土)”라고 말하였다.
  38. 38)수형(樹形)이란 『화엄경』 제4권에 세계의 모습으로서 나무 모양ㆍ누관(樓觀)의 형태ㆍ구름의 형태 등을 열거하고 있다.
  39. 39)자모칠미(子母七微)란 불교에서는 부모의 미(aṇu)와 자(子)의 미를 인정하지 않고 승론학파(勝論學派)에서만 이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도 물질의 단위로서 극미(paramāṇu)를 세운다. 중심에 1극미가 있고 육방에 6극미가 있어 합하여 7극미를 일미(一微, aṇu)라고 한다.
  40. 40)색등(色等) 4진(塵)은 색ㆍ향ㆍ미ㆍ촉의 4경(境)을 말한다. 성경(聲境)은 제외된다.
  41. 41)능조(能造) 4대(大)란 지ㆍ수ㆍ화ㆍ풍의 4계(界)를 말한다.
  42. 42)2지(智)란 근본지와 후득지(後得智)이다.
  43. 43)신수대장경에는 ‘유식지(唯識智)’로 되어 있다.
  44. 44)사습(使習)이란 십사 번뇌와 습기(習氣)를 말한다.
  45. 45)경모(輕毛)란 10신(信)의 위(位)에 있어 보살은 불도수행에 있어서 1진(進)1퇴(退)가 일정하지 않으므로 가벼운 털에 비유한 것이다.
  46. 46)고려대장경에는 ‘개공(皆空)’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개즉공(皆卽空)’으로 되어 있다.
  47. 47)고려대장경에는 ‘즉기유류(卽其有流)’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무류즉기유류(無流卽其有流)’로 되어 있다.
  48. 48)고려대장경에는 ‘단(但)’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구(俱)’로 되어 있다.
  49. 49)고려대장경에는 ‘인류시동(因類是同)’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인류시별(因類是別)’로 되어 있다.
  50. 50)과보뢰야식(果報賴耶識)이란 이숙과로서의 아뢰야식을 가리킨다.
  51. 51)세 가지 의생신(意生身, mano-maya-kāya)이란 변역생사(變易生死) 가운데의 세 가지로서 『승만경』 일승장에서는 아라한ㆍ벽지불ㆍ대력 보살의 세 가지 의생신을 열거하였고, 『능가경』에서는 삼매정수의생신(三昧正受意生身)ㆍ각법자성성의생신(覺法自性性意生身)ㆍ종종구생무행작의생신(種種俱生無行作意生身)을 말하고 있다.
  52. 52)4유(維)란 『간정기』에 삼각비방(三角非方)이라는 말이 있다.
  53. 53)5진(塵)이란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말한다.
  54. 54)제사(諸事)란 여기서는 경문의 일체보장엄(一切寶莊嚴)ㆍ일보(一寶)ㆍ금강견고지(金剛堅固地)ㆍ중향(衆香)ㆍ일주륜(日珠輪) 등의 5사(事)를 말한다.
  55. 55)다섯이란 일본의 『국역일체경』에서는 타본을 의지하여 여섯으로 고쳤다.
  56. 56)견심(見心)이란 사견심(邪見心)을 말한다.
  57. 57)고려대장경에는 ‘지상산해(地上山海)’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지산상해(地山上海)’로 되어 있다.
  58. 58)3유(有)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3유를 말함이니, 곧 삼계의 중생을 말한다.
  59. 59)4시(時)란 연ㆍ월ㆍ일ㆍ시를 말한다.
  60. 60)함렬해(鹹烈海)란 수미산을 중심으로 세계의 지산(持山)의 바깥쪽, 철위산의 안쪽에 있으며 찬물이 충만한 바다이다.
  61. 61)장(藏)이란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이다.
  62. 62)고려대장경에는 ‘용보자조(踊寶自照)’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용보자연(踊寶自然)’으로 되어 있다.
  63. 63)고려대장경에는 ‘하용서인(河用舒因)’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하주서인(河周舒因)’으로 되어 있다.
  64. 64)고려대장경에는 ‘보만(寶鬘)’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보만(寶幔)’으로 되어 있다.
  65. 65)신수대장경에는 ‘보장엄동자(普莊嚴童子)’로 되어 있다.
  66. 66)백정보망(白淨寶網)이란 철ㆍ동ㆍ은ㆍ금의 윤왕이 지전(地前)의 4위(位)에 배당됨에 대해서 10지의 위에 배당된다. 상세한 것은 「소상품」, 『탐혐기』 16권, 『오교장』 하권 등을 참조하라.
  67. 67)고려대장경에는 ‘판(辦)’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변(辨)’으로 되어 있다.
  68. 68)셋의 현재란 것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에 각각 현재가 있음으로 셋의 현재라고 한다. 즉 삼세에 각각 있음으로 9세가 되고 현전 일념을 합하면 10세가 된다.
  69. 69)고려대장경에는 ‘문경득이정(聞經得二定)’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문경득정(聞經得定)’으로 되어 있다.
  70. 70)고려대장경에는 ‘전취과상(前就果相)’으로 되어 있고, 신수대장경에는 ‘전경취과상(前經就果相)’으로 되어 있다.
  71. 71)신위(信位)란 10신의 만심을 말한다.
  72. 72)해위(解位)의 처음이란 것은 10주위의 초심(初心), 즉 초주(初住)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