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花嚴經探玄記卷第十八

ABC_IT_K1513_T_018
047_0769_b_01L화엄경탐현기 제18권


위국 법장 지음
김호성 번역


34. 입법계품(入法界品)①

이 품을 해석하는 데 네 가지 문이 있음은 앞에서와 같다.
첫째, 이름을 해석하는 데 셋이 있다.
첫째는 분명(分名)이다. 널리 선지식[勝友]에 의지하여 깊이 법계를 증득하므로 의인입증성덕분(依人入證成德分)1)이라 이름한다.
둘째는 회명(會名)이다. 장소를 기준으로 해서 기원중각회(祇洹重閣會)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이른바 이 법이 중생을 제도하고 거두어들임을 나타내는 까닭에 급고독원[給園]에 있는 것이며, 또한 자비가 근본지(根本智)에 의지하여 거듭 나는 모습을 나타내므로 중각에 있는 것이다.
셋째는 품명(品名)이다. ‘입(入)’은 들어가는 주체이니 이른바 깨달아서 증득하기 때문이고, ‘법계’는 들어가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법’에 세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自性)을 지니는 의미이며, 둘째는 궤칙(軌則)의 의미이고, 셋째는 의근(意根)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계(界)’에도 역시 세 가지 의미가 있다.2) 첫째는 인(因)의 뜻이니, 의지하여 성스러운 길을 생하기 때문이다. 『섭론』3)에서 “법계는 이른바 모든 청정한 법의 인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중변분별론』4)에서는 “성스러운 법의 인이 그 의미가 되기 때문에 법계라고 설하는 것이고, 성스러운 법은 이러한 대상에 의지하여 생하는 것이다. 이 중에 인(因)의 의미는 계(界)의 의미이다”라고 하였다. 둘째는 성(性)의 의미이니, 이른바 이는 모든 법이 의지하는 성품이기 때문이다. 이 경5)의 위 본문에서 “법계와 법성(法性)을 분별하는 것도 역시 그렇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분제(分齊)의 의미이니, 이른바 모든 연기가 서로 뒤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는 오직 의주석(依主釋)이며, 셋째는 오직 지업석(持業釋)이며, 둘째는 의주석과 지업석에 모두 통하는 것이다.6) 주체와 대상을 합하여 제목을 지었으므로 ‘입법계(入法界)’라고 말한다.
둘째,7) 내의(來意)이다.
첫째는 분래(分來)를 밝히는 것이다. 앞8)에서는 법에 의탁하여 닦아 나아감을 나타내었으나, 여기서는 사람에 의지하여 증득해 들어감을 분별하는 것이다. 의미의 차례이기 때문에 온 것이다.
회래(會來)와 품래(品來) 역시 이 설과 같다.
셋째,9) 종취(宗趣)를 밝히는 것이다. 역시 분(分)ㆍ회(會)ㆍ품(品) 등이 있음은 마찬가지인데, 이미 ‘입법계’를 밝혔으므로 곧 이로써 종을 삼는 것이다. 여기서는 셋으로 분별한다. 첫째는 뜻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둘째는 종류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셋째는 지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첫째 중에서 첫째는 들어가는 대상이 되는 법계의 뜻에 대해서 밝히는 것이니,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위의 법계이며, 둘째는 무위의 법계이고, 셋째는 유위이기도 하고 무위이기도 한 법계이며, 넷째는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닌 법계이고, 다섯째는 장애가 없는 법계이다.
첫째, 유위의 법계에 둘이 있다. 첫째는 본식(本識)10)이 능히 모든 법의 종자를 지니므로 법계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논11)에서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의 계(界) 등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는 인(因)의 뜻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둘째는 3세 모든 법의 차별과 변제(邊際)를 법계라고 이름한다. 「부사의품」12)에서 “모든 부처님께서 과거의 모든 법계가 다 남음이 없음을 아시고, 미래의 모든 법계가 다 남음이 없음을 아시며, 현재의 모든 법계가 다 남음이 없음을 아시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둘째, 무위의 법계에도 둘이 있다. 첫째는 성정문(性淨門)이니 범부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성품은 언제나 청정하기 때문이며, 진공(眞空)은 일미(一味)여서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구문(離垢門)이니 대치(對治)로 말미암아서 비로소 청정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행의 깊고 옅음에 따라서 열 가지로 나누기 때문이다.13)
셋째, 유위이기도 하고 무위이기도 한 법계에도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수상문(隨相門)이니, 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 및 다섯 가지 색14)과 여덟 가지 무위15)의 열여섯 가지 법은 오직 의식이 알 바이며 18계(界) 중에서 법계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무애문(無礙門)이다. 이른바 일심법계(一心法界)가 두 가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니, 첫째는 심진여문(心眞如門)이고, 둘째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16) 비록 이러한 두 가지가 모두 각기 일체 법을 다 거두어들이고 있으나, 그러한 두 가지 지위는 언제나 서로 뒤섞이지 않으니, 그것은 마치 물에 휩쓸린 파도가 고요한 것이 아니며 파도에 휩쓸린 물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십회향품」17)에서는 “무위의 세계에서 유위의 세계가 나오는 것이지만 또한 무위의 성품을 부수지 않으며, 유위의 세계에서 무위의 세계가 나오는 것이지만 또한 유위의 성품을 부수지도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넷째, 유위도 아니며 무위도 아닌 법계에도 역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형탈문(形奪門)이니 연은 이치를 떠난 연이 아니기 때문에 유위가 아니며, 이치는 연이 아닌 이치가 아니므로 무위도 아닌 것이다. 법체는 평등하니 형탈(形奪)하여 모두 소멸한 것이다. 『대품반야경』 제39권18)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법은 평등하니 유위법입니까, 무위법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유위법도 아니고 무위법도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유위법을 떠나서는 무위법을 가히 얻을 수 없으며, 무위법을 떠나서는 유위법을 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수보리야, 이것은 유위성(有爲性)이면서 무위성(無爲性)이니, 이 두 가지 법은 합하는 것도 아니며 흩어지는 것도 아니다’고 말씀하셨다.”
둘째는 무기문(無寄門)이다. 이 법계는 상(相)을 떠나고 성(性)을 떠나기 때문에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닌 것이다. 상을 떠남으로 말미암아서 유위가 아니며 성을 떠남으로 말미암아서 무위도 아닌 것이다. 또한 이것이 진제인 까닭에 유위가 아니며, 이것이 안립제(安立諦)가 아니므로 무위가 아닌 것이다. 또한 두 가지 명언(名言)19)이 능히 이르는 바가 아니므로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닌 것이다. 『해심밀경』 제1권20)에서는 “모든 법이라는 것은 간략히 두 종류가 있으니, 이른바 유위와 무위이다. 이 중의 유위는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무위 역시 무위도 아니며 유위도 아니다.”……(이하 자세한 것은 생략함)…….
다섯째, 장애가 없는 법계에도 둘이 있다. 첫째, 보섭문(普攝門)이니, 위의 네 가지에 대하여 하나를 따르면 곧 나머지 모두를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재(善財)가 혹은 산과 바다를 보며, 혹은 당우(堂宇)를 보는 것을 모두 ‘법계에 들어간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둘째, 원융문(圓融門)이다. 이치로써 일에 융합하기 때문에 모든 일21)에 한계[分齊]가 없는 것이니, 이른바 작은 먼지라고 해서 작은 것이 아니요 능히 열 가지 국토를 다 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국토[刹海]라고 해서 큰 것이 아니요 한 티끌에 들어가는 것이다. 일로써 이치에 융화하기 때문에 모든 이치에 한계가 없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하나와 전체가 걸림없는 것이라 말하며, 혹은 하나의 법계라고 말하며, 혹은 모든 법계라고 하는 것이다. 「성기품」22)에서는 “비유하면 모든 법계의 한계[分齊]는 가히 얻을 수 없으므로 일체는 일체가 아니며 보는 것도 아니며 취할 수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전체[諸]가 전체 아님을 밝히는 것이다. 「노사나품」23)에서는 “이러한 연화장세계해(蓮華藏世界海) 안의 하나하나의 티끌 중에서 모든 법계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가 하나가 아님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재가 혹은 잠시 손을 잡더라도 마침내 여러 겁을 지나고, 혹은 누각에 들어가서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본다고 하는 것이 모두 이러한 종류이다. 이상 다섯 가지 문의 열 가지 뜻은 들어가야 할 바 법계를 총체적으로 밝히는 것이니, 마땅히 총별(摠別)이 원융한 6상(相)으로써 그에 준해야 할 것이다.
둘째,24) 들어가는 주체를 밝히는 데도 역시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청정한 믿음, 둘째는 올바른 이해, 셋째는 수행, 넷째는 증득, 다섯째는 원만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는 앞에서 말한 들어가야 할 대상이 되는 법계의 다섯 가지인데, 거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나의 들어가는 주체에 따라서 다섯 가지 들어감의 대상에 통하는 것이며, 하나의 들어감의 대상에 따라서 다섯 가지 들어가는 주체에 다 통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다섯 가지 들어가는 주체는 그 차례와 같이 들어가야 할 대상의 다섯 가지 중에 각기 하나씩 들어가는 것이다. 또 이상 주체와 대상의 두 가지 뜻, 즉 열 가지는 걸림없이 원융하여 모두 한 덩어리[一團]25)가 되는 것이다. 장애가 없는 법계 역시 이러한 6상에 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26) 법계의 종류에도 역시 다섯 가지가 있다. 들어가야 할 대상과 들어가야 할 주체, 있음과 없음에 걸림없음을 일컫는다.
첫째, 들어가야 할 대상 중에 역시 다섯 겹이 있다. 첫째는 법의 법계이며, 둘째는 사람의 법계이고, 셋째는 사람과 법이 함께 원융한 법계이며, 넷째는 사람과 법이 함께 소멸한 법계이고, 다섯째는 장애가 없는 법계이다.
첫째 중에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법계(事法界)이니 열 겹의 거택(居宅)27) 등을 말하고, 둘째는 이법계(理法界)이니 일미(一味)여서 담연(湛然)함을 일컫는다. 셋째는 경법계(境法界)이니 알아야 할 분제(分齊) 등이고, 넷째는 행법계(行法界)이니 자비와 지혜가 넓고 깊은 것 등을 말한다. 다섯째는 체법계(體法界)이니 적멸하여 남이 없음을 일컫는 것이고, 여섯째는 용법계(用法界)이니 뛰어난 신통이 자재함을 일컫는 것이다. 일곱째는 순법계(順法界)이니 6바라밀을 바로 행함을 일컫는 것이고, 여덟째는 위법계(違法界)이니 5열(熱)28)과 중비(衆鞞)29) 등을 일컫는 것이다. 아홉째는 교법계(敎法界)이니 듣는바 언설 등이고, 열째는 의법계(義法界)이니 언표된 뜻 등이다. 이러한 열 가지 법계는 동일한 연기가 걸림없이 원융하여 하나가 일체를 갖추고 있는 것이니,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사람의 법계라는 것은 이 아래의 본문에 준하면 역시 열 가지가 있다. 이른바 인ㆍ천ㆍ남ㆍ여ㆍ재가ㆍ출가ㆍ외도ㆍ제신(諸神)ㆍ보살ㆍ불을 말하는 것이니, 이들은 모두 연기의 상분이니 서로 뒤섞여 있으면서도 혼잡스럽지는 않은 것이다. 선재가 보고 나서는 문득 법계에 들어가므로 사람의 법계라고 이름한다.
셋째, 사람과 법이 함께 원융한 법계라는 것은 앞의 10인(人)과 10법(法)이 동일한 연기인데 뜻에 따라서 서로 나누더라도 융섭하여 둘이 없으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사람과 법이 함께 소멸된 법계인데 이른바 평등한 과해(果海)가 언수(言數)를 떠나는 것이니 연기의 성상을 모두 다 설할 수 없는 것이다.
다섯째, 장애가 없는 법계라는 것은, 이른바 앞의 네 가지 구절에 부합하여 저 앞에서 말한 인법에 대하여 하나와 다름에 장애가 없으며, 있음과 없음에 걸림이 없고 자재하고 원융하니 이치와 같이 생각해 보라.
둘째,30) 들어가는 주체를 밝히는 데에도 다섯 겹이 있다. 첫째는 몸이며, 둘째는 지혜이고, 셋째는 둘 다이며, 넷째는 둘 다 아니고, 다섯째는 원만한 것이다. 이른바 누각에 들어가서 관하여 다시 합하는 것은 몸으로 증득하는 것이며, 가없는 이치와 일을 비추는 것은 지혜로 증득하는 것이다. 보현과 같이 두루하는 것은 둘 다 증득하는 것이고, 몸과 지혜가 상즉하면서도 둘 다 없어지는 것은 둘 다 함께 소멸하는 것이다. 하나와 다름ㆍ있음과 없음에 걸림없이 자재하며 원융한 것이다. 또한 「발심품」31)에서는 “매우 깊고 진실한 법성 묘한 지혜로 수순하여 들어가노니 가없는 불국토(佛國土)를 일념에 두루할 수 있네”라고 말하였다. 생각하면, 앞의 두 구절은 지혜가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며, 뒤의 두 구절은 몸이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몸과 지혜가 걸림이 없으므로 지혜가 이치에 들어가며 몸이 국토에 두루한 것이다. 나머지는 이에 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셋째는 들어가는 주체와 들어가야 할 대상이 혼융하여 둘이 없으며 한계가 나누어지지 않으니 뜻에 나아가 다름을 열지만 이치는 이에 혼잡스럽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는 주체와 대상이 차례로 미쳐서 통하는 것이니, 이치와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주체와 대상이 원융하며 형체를 빼앗아서 모두 다 소멸되는 것이다.
다섯째는 하나와 다름ㆍ있음과 없음에 걸림없이 구족한 것이다.
이상 종류를 기준으로 해서 분별하는 것을 마친다.
셋째,32) 지위를 기준으로 해서 법계에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33) 아래 본문에 준하면, 들어가야 할 대상인 법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으니 이른바 인과 과이다. 앞에서 말한 인법(因法)에 있어서는 모두 불과에서 거두어지는 것이 아님이 없다. 곧 여래의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가 나타내는 법계의 자재가 이것이다. 또한 앞의 인법에 대하여 모두 인위에 거두어지는 것 아님이 없는 것이니, 곧 문수ㆍ보현이 나타내는 법계의 법문이 이것이다. 이러한 인위 중에서 자세히 다섯으로 나누면, 신(信) 등 다섯 가지 지위의 법계이다. 이를 준하여 거두어들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들어가는 주체를 밝히는 것이다. 본문에 준하건대 역시 둘이 있다. 앞에서 말한 과위에 대하여는 모든 보살이 단박에 법계에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며, 앞에서 말한 인위에 대하여는 선재가 점차 법계에 들어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과가 이미 걸림없으므로 돈점(頓漸) 역시 원융한 것이다.34) 다만 가르침을 펴고 말씀35)을 이루는 것은 이러한 지위의 차별에 의지해서인 것이다.
넷째,36) 본문을 해석한다. 이 한 품을 크게 둘로 나눈다. 첫째는 본회(本會)를 밝히는 것이며, 둘째 ‘그때 문수사리동자가 선안주누각(善安住樓閣)으로부터 나와서’37) 이하는 말회(末會)를 밝히는 것이다. 역시 첫째는 과법계(果法界)를 밝히는 것이며, 둘째는 인법계(因法界)를 밝히는 것이다.
또한 첫째는 단박에 법계에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는 점차적으로 법계에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첫째는 총이고, 둘째는 별이다. 곧 본말이 원융하여 걸림이 없으니, 생각해 보라.
첫째, 본회는 크게 열로 나뉜다. 첫째는 서분(序分)이며, 둘째는 청분(請分)이다. 셋째는 삼매분(三昧分)이고, 넷째는 현정토분(現淨土分)이다. 다섯째는 집신중분(集新衆分)이며, 여섯째는 거열현승분(擧劣顯勝分)이다. 일곱째는 게송찬덕분(偈頌讚德分)이며, 여덟째는 보현개발분(普賢開發分)이다. 아홉째는 호광시익분(毫光示益分)이고, 열째는 문수술덕분(文殊述德分)이다.
첫째, 서분에 셋이 있다.
첫째, ‘그때 부처님께서……계시다’는 것은 지정각세간의 원만함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사위성 등’은 기세간의 원만함이고, 셋째 ‘5백 등……함께’라는 것은 중생세간의 원만함이다.
첫째의 본문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세간 중에 셋이 있으니 이른바 첫째는 성(城)이며, 둘째는 동산[園]이고, 셋째는 누각이다. 성의 이름을 갖추어서 말하면 ‘실라벌실제(室羅伐悉帝)’38)인데 잘못 줄여서 ‘사위’라고 일컬었던 것이다. 중국어로 번역하면 ‘문자성(聞者城)’이라 한다. 옛날에 노선인(老仙人)이 이곳에 머물렀고 다시 젊은 선인이 있었으니 ‘문자’라고 이름하였다. 그는 노선인의 처소에서 법의 요지를 듣고 받아들였다. 노선인이 죽은 뒤에 젊은 선인이 이곳에 성곽을 건립하였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원은 성의 남쪽에 있으니 3, 4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기(祇)’는 태자의 이름으로 갖추어 말하면 ‘서다(誓多)’39)이다. 중국어로는 ‘전승(戰勝)’이다. 또한 아버지가 없음을 고(孤)라 하고 자식이 없음을 ‘독(獨)’이라 하는데, 수달(須達)40) 장자가 이들에게 은혜로써 보시하고 베풀었으므로 ‘급고독(給孤獨)’이라 이름하였다. 그런데 장자가 금을 헤아려서 땅을 샀으며 태자가 나무를 보시하여 함께 이루었으니, 두 사람이 함께 가람을 세웠으므로 갖추어서 이름하였던 것이다. 원 안에 따로 누각이 있으니 법을 펴는 장소인데, 강당(講堂)이라 이름하였다. 체가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대(大)라고 하며, 덕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므로 엄(嚴)이라 말하고, 작용이 체에 의지하여 일어나므로 중각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셋째, 중생세간 중에도 역시 셋이 있다. 이른바 첫째는 보살이며, 둘째는 성문이고, 셋째는 여러 천왕이다.
첫째, 보살 중에도 역시 셋이 있다. 첫째는 수를 열거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며, 셋째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첫째,41) 이름 중에서는 먼저 ‘상수(上首)’의 두 사람42)을 표방하고 있으니 그들이 조화(助化)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해석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로 ‘보현’은 법계문(法界門)에 해당하는 것이니, 이는 들어가야 할 대상이다. ‘문수’는 반야문(般若門)에 해당하는 것이니, 이는 들어가는 주체이다. 저 인법계(人法界)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둘째, 보현(普賢)은 삼매가 자재한 것이며 문수(文殊)는 반야가 자재한 것이다. 셋째, 보현은 광대의 뜻을 밝히는 것이며, 문수는 심심(甚深)의 뜻을 밝히는 것이다. 깊음과 넓음이 한 짝이 되기 때문에 상수를 표방한 것이다.
둘째, 이름을 열거하는 중에 141위(位)가 있으니 열 명씩 14위가 있다. 첫째의 열[十]은 똑같이 ‘당(幢)’이라 이름하는데 행의 덕이 높이 뛰어남[高出]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둘째의 열은 똑같이 ‘단엄(端嚴)’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복과 지혜의 두 가지 장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열 중에서 하나가 빠져 있는 것은 감수(減數)이다. 셋째의 열은 똑같이 ‘장(藏)’이라 이름하는데 덕이 갖추어져서 포함되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넷째의 열은 똑같이 ‘안(眼)’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법계를 밝게 비추기 때문이다. 열 중에는 둘이 더 있으니 증수(增數)이기 때문이다. 다섯째의 열은 똑같이 ‘천관(天冠)’이라 이름한 것이니, 청정한 덕이 마음의 정수리에 덧씌워져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여섯째의 열은 똑같이 ‘주라(周羅)’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중국어로는 정계(頂髻)라고 말하는데 덕이 중하여 높이 존중받기 때문이다. 일곱째의 열은 똑같이 ‘광(光)’이라 이름하는데 14위 중에서는 각기 두 가지 뜻으로써 묘광(妙光)을 해석한다. 신지(身智)의 빛을 갖추어서 안팎을 비추기 때문이다. 여덟째의 열은 똑같이 ‘당(幢)’이라고 이름한다. 당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앞에서는 홀로 남[獨出]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며, 여기서는 항복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아홉째의 열은 똑같이 ‘음(音)’이라 이름하는데 아름다운 소리가 중생[機]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열째의 열은 똑같이 ‘상(上)’이라 이름하는데 덕이 무리를 넘어섬을 표하기 때문이다. 열한째의 열은 한 가지로 ‘묘덕(妙德)’이라 이름하는데 길상하여 뛰어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열두째의 열은 한 가지로 ‘왕(王)’이라 이름하는데 법에 자재하기 때문이다. 열 중에서 하나가 더 있으니, 또한 이는 증수이다. 열셋째의 열은 다시 한 가지로 ‘음(音)’이라 하는데 음에 두 가지 뜻이 있다. 앞에서는 음체가 미묘함을 밝힌 것이며, 여기서는 교묘하게 묘법을 설명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열 중에 하나가 더 있으니, 역시 증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열넷째의 열은 한 가지로 ‘각(覺)’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치를 비추고 근기를 살피기 때문이다. 열 중에 둘이 적으니 역시 감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등’은 맺음이다.
셋째,43) 덕을 찬탄하는 중에 열 구절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이러한 열 구절의 덕은 위의 여러 보살에 두루 통하는 것이니 하나하나 다 갖추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앞의 15위(位)의 덕을 따로 찬탄하는 것이다. 이른바 첫째 구절은 앞의 두 상수의 덕을 찬탄하는 것인데 보행(普行)과 보경(普境)으로써 모두 일체에 통하니, 그 둘은 똑같이 이러한 덕을 이루기 때문이다. 둘째, ‘무량한……를 지닌다’ 등은 앞에서 말한 10당(幢)과 10엄(嚴)의 두 가지 지위의 보살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른바 신당(身幢)이 홀로 빼어나 덕을 갖추고 단엄하여 능히 두루 이르기 때문이다. 셋째 ‘걸림없는……갖춘다’ 등은 10장(藏)과 10안(眼)의 두 가지 지위의 보살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른바 걸림없는 장(藏)을 갖추어서 청정한 눈으로 부처를 보기 때문이다. 넷째, ‘무량한……곳에 이른다’는 것은 10천관(天冠)과 10주라(周羅) 보살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른바 천관과 정발(頂髮)로써 스스로 몸을 장엄하는 것이 범왕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모든 부처님이 도를 이루는 장소에 이르러서 부처를 관찰하는 데에 쉼이 없으니 설법을 청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무량한 지혜광명’ 등은 10광(光)과 10당(幢) 보살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른바 지혜광명이 매우 깊은 법을 두루 비추기 때문이며, 또한 어리석음을 굴복하기 위해서이다. 여섯째, ‘무량한……에 있어서’ 등은 10음(音) 보살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른바 아름다운 음성과 맑은 변재로써 설함에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일곱째 ‘……를 구경한다’ 등은 10상(上)과 10묘덕(妙德)의 보살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른바 허공의 상지(上智)와 같아서 정경(淨境)의 묘덕(妙德)에 이르는 것이다. 여덟째 ‘의지하는 바가 없다’ 등은 10왕(王) 보살을 찬탄하는 것으로, 이른바 의지하는 바 없이 색을 나타내어 자재함을 왕이라 하니 역시 왕의 몸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아홉째 ‘……제멸(除滅)한다’ 등은 뒤의 10음(音) 보살을 찬탄하는 것으로, 이른바 안으로 지장(智障)을 떠나는 것이니 교묘하게 중생계를 분별함을 설하기 때문이다. 열째 ‘허공지(虛空智)’ 등은 10각(覺) 보살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른바 아함(阿含)의 빛을 놓아서 잘 깨달아 비추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러한 열 구절은 다섯 짝으로 거두어들일 수 있다. 첫째와 둘째가 하나의 짝이 되는 것이니, 첫째는 행덕이 안으로 충만한 것이며, 둘째는 다신(多身)이 밖으로 두루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둘이 하나의 짝이 되는데 첫째는 청정한 눈으로 부처님을 관찰하는 것이며, 둘째는 관찰함에 있어서 싫어하거나 만족해함이 없는 것이다. 그 다음 둘이 하나의 짝이 되는데 첫째는 안으로 지혜가 법을 비추는 것이며, 둘째는 변설이 다함없는 것이다. 그 다음 둘이 하나의 짝이 되는데 첫째는 안으로 지혜가 공(空)과 같으며, 둘째는 몸을 나타내서 두루 응하는 것이다. 그 다음 둘이 하나의 짝이 되는데 첫째는 안으로 지혜의 장애를 떠나는 것이며, 둘째는 밖으로 지혜의 빛을 연출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러한 열 구절 중에서 첫째 구절은 총이며, 나머지 아홉 구절은 별이다. 모두 보현행을 나타내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는 몸이 부처님을 찾는 것이 두루한 것이며, 둘째는 부처님을 뵙는 것이 두루한 것이다. 셋째는 봄에 있어서 쉬지 않는 것이 두루한 것이며, 넷째는 지혜가 이치를 비춤이 두루한 것이다. 다섯째는 변재가 여러 겁에 두루한 것이며, 여섯째는 여리지(如理智)가 청정한 것이 두루한 것이다. 일곱째는 여량지(如量智)가 몸을 나타내는 것이 두루하며, 여덟째는 장애를 끊음이 두루한 것이고, 아홉째는 빛을 비추는 것이 두루한 것이다. 모두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44) 성문중(聲聞衆) 중에 역시 둘이 있으니, 수를 드는 것과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첫째,45) ‘성문’이라 말하는 것은 『불지경론』46)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 성스러운 도에 들어가기 때문에 성문이라 이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유가론』 제82권47)에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법의 소리를 들으며, 또 능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정법의 소리를 듣게 하기 때문에 성문이라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大)’는 제4의 과(果)48)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부동종성(不動種姓)이기 때문이며, 모든 성문 중에서 가장 존귀하고 크기 때문이니, 마치 사리불과 같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모두 대승으로 회향하는 성문이기 때문에 ‘대(大)’라고 말한다. 『불지경론』49)에서는 “여실(如實)의 뜻은 모두 부정종성(不定種姓)의 성문이니 작은 과보를 얻고서는 대보리로 나아가기 때문에 ‘크다’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풀이해 말한다. 그가 아직 원교 1승의 보현법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래 본문50)에서는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위의 「성기품」51)에서 “성문과 연각은 이 경전을 듣지 못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또한 “만약 보살이 억나유타겁 동안 6바라밀을 행하여 도품(道品)의 선근을 심었다고 하더라도 이 경을 듣지 않거나 들어도 믿지 않는다면 이들은 가명(假名) 보살과 같다”52)고 한 것이 이를 일컫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들은 모두 대보살이 시현하여 성문을 지은 것이니 새로 번역한 『화엄부사의불경계분(華嚴不思議佛境界分)』53)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 법이 깊고 뛰어남을 나타내기 때문에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둘째, 덕을 찬탄하는 중의 열 구절은 넷으로 나뉜다.
첫째, 네 구절은 열반을 증득하고 생사를 버리는 것이니, 이른바 ‘진제(眞諦)를 깨닫는다’는 것은 견도(見道)이고, ‘여실(如實)의 제(際)를 증득한다’는 것은 수도(修道)이며, ‘깊이 법성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학도(無學道)이니 이로 말미암아서 이치를 증득하여 만족케 하기 때문이며, 분단(分段)을 내버리기 때문에 ‘생사의 바다를 떠난다’고 말하는 것이며, 또 생사를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떠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방편의 지혜가 없음으로 말미암아서 실제를 증득하는 것이다. 대비가 없음으로 말미암아서 생사를 내버리는 것이다.
둘째, 그 다음 두 구절은 공에 머물러서 맺음을 끊는 것이다. 첫째 ‘……허공……에 안주한다’는 것은, 이른바 이러한 인공(人空)의 이치 역시 여래의 두 가지 공54)의 이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여래의 경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직 이러한 분(分)에 계합하므로 안주(安住)라고 말하는 것이다. 뒤의 구절은 인공에 머무름으로 말미암아서 4주(住)의 미혹55)을 끊어 여의는 것이다. 이른바 9결(結)56)과 10사(使)57)가 서로 응하여 계박하는 것이다.
셋째, 그 다음 두 구절은 신통력이 자재한 것이다. 이른바 세상에 염오가 없기 때문에 ‘일체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고, 신통으로 두루 노닐기 때문에 ‘허공에 유행(遊行)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넷째, 그 다음 두 구절은 의심이 다하여 믿음이 견고한 것이다. 이른바 불괴의 믿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것은 모두 부처님의 매우 깊은 자재의 과법을 믿는 것이니, 이를 밝게 아는 것이 대보살이다.
셋째,58) 제천(諸天) 중에도 둘이 있으니 수를 들며,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덕을 찬탄하는 중의 열 구절은 다섯 짝이 된다.
첫째의 두 구절이 하나의 짝이 되는 것이니, 과거 인(因)의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른바 이미 과거불을 공양하며 오래도록 중생을 이익케 한 것이다. 그 아래로는 모두 현행(現行)의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둘째의 두 구절이 한 짝이 되는 것이니, 자비를 행하여 지혜에 들어가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른바 자비로운 생각은 간단없이 중생을 구제하여 지혜에 들어가는 것이다.
셋째의 두 구절이 한 짝이 되는 것이니, 염오에 있으면서 청정을 나타내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른바 염오된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서 부처님의 참되고 청정한 법을 내는 것이다.
넷째의 두 구절이 한 짝이 되는 것이니, 호지(護持)의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른바 과법(果法)을 보호하여 올바른 가르침이 유통케 하는 것이고, 인법(因法)을 지녀서 성품의 결정을 증득하는 것이다. 또한 밖으로 능히 법을 지니는 자를 수호하고 안으로 스스로 부처님의 진성(眞性)의 법을 받아 지니는 것이다.
다섯째, 두 구절이 한 짝이 되는 것이니, 가업(家業)의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른바 불가에 태어나서 불업(佛業)을 구하는 것이다. 일체지(一切智)의 인(因)을 이름하여 ‘지문(智門)’이라 하는 것이니, 능히 통하여 불지 (佛智)에 이르기 때문에 문(門)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상 서분을 마친다.
둘째,59) 청분(請分)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대중이 청하기를 염하는 것이며, 둘째는 청함의 대상을 염하는 것이고, 셋째는 청함이 나타나기를 염하는 것이다.
【문】 아래의 성문에 준하건대 모두 장님이나 귀머거리와 같은데 무엇 때문에 여기서는 의념(疑念)을 같이하는가?
【답】 의(意)60) 법사가 해석해서 말하였다. 이처(理處)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함께 의심할 수 있는 것이지만, 대심(大心)을 아직 쌓지 못했으므로 그 다음에 응하는61) 것이 아니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함께 기원(祇洹)에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똑같이 청하기를 염하는 것이고, 보안(普眼)을 아직 열지 못했으므로 장님 등과 같은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사실은 보살인데, 이렇게 함께 염함으로써 자취는 성문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님과 같은 것이다…….
청함의 대상 중에는 총체적으로 60구절이 있다. 옛 스님이 해석하였다. 처음의 30구절은 부처님께서 스스로 법계에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며, 뒤의 30구절은 부처님께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법계에 들어가도록 하신 것이다.
이제 해석한다. 60구절 중에 첫째 열 구절은 과법을 염하며 청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청함의 대상이 과임을 알 수 있는가? 이른바 다음 열 구절은 아래의 지위가 능히 측량할 수 없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미 아래 지위가 능히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제 청하고자 하는가? 이른바 다음 열 구절이 인연의 힘이 갖추어진다면 혹은 역시 알 수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비록 힘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더라도 이 대중에게 지력(知力)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른바 그 다음 열 구절은 이러한 대중의 근기와 힘이 갖추어짐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록 대중의 근기가 갖추어지더라도 만약 불력이 없다면 역시 능히 앎이 없으니, 이른바 그 다음 열 구절은 부처님의 이타(利他)의 인이 갖추어짐을 밝히는 것이다. 비록 이타의 인이 원만하다고 하더라도 만약 이타의 과용(果用)을 일으킴이 없다면 역시 알게 할 방도가 없다. 그 다음 열 구절은 과용이 중생을 거두어들임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연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청함을 맺어서 “오직 원하건대……나타나소서”62)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 중의 첫째 30구절은 법을 염하는 청이며, 둘째 30구절은 덕을 염하는 청이다.
첫째 중에서 첫째 열 구절은 바로 청하는 과법을 염하는 것이며, 둘째 열 구절은 깊고 그윽하여 헤아리기 어려움을 밝히는 것이고, 셋째 마지막 열 구절은 여러 가지 연이 모임을 밝히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중에 첫째는 자비와 지혜가 걸림없으며 공용(功用)이 없는 행을 묻는 것이니 「성기품」63)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둘째는 부처님 지혜로 알 바인 진속(眞俗)이 걸림없음을 묻는다. 역시 성기(性起)의 경계64) 중에 말하는 것과 같다. 셋째, 불지(佛地)에서 가없는 염혜(念慧)를 총지(摠持)하는 것이다. 또 10불 중의 지불(持佛)65)에서 분별하는 것과 같다. 또한 「부사의품」66)에서 설한 10지(持) 등과 같다. 넷째는 시처비처지(是處非處智) 등의 10력(力)이다. 또한 나라연당(那羅延幢) 등의 열 가지 큰 힘67)은 저 품과 같은 것이다. 다섯째는 4무외(無畏)와 10무외(無畏)68)이며, 여섯째는 사자분신(師子奮迅) 등의 가히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삼매의 바다이다. 일곱째는 이치와 공덕 및 모든 국토가 모두 여래의 몸과 지혜가 머무는 바이니, 역시 「부사의품」69)의 설과 같다. 여덟째는 수승한 공덕이니 초회(初會)70)와 2회(會)71)의 물음 중에서 ‘부처님의 뛰어난 법’이라 이름한 것은, 초회[彼]에서는 통틀어서 분별한 것이고 여기에서는 따로 복덕(福德)을 기준으로 해서 뛰어남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홉째는 3신(身)과 10신(身)의 원만한 모습이며, 열째는 4지(智)72)와 10지(智)73)의 여리지(如理智)ㆍ여량지(如量智)가 원융하게 비추는 것이다.
또 어떤 경본(經本)74)은 이 중에 다시 한 구절이 더 있는데 ‘여래의 법’이라 이름하였으니, 군더더기이거나 혹은 위의 여러 가지 구절을 맺는 것일 터이다.
또한 이러한 열 가지 물음과 앞의 초회에서 물은 과덕은 대체로 같다. 거기서는 거두어들이는 것이고, 여기서는 쓰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열 가지 중에서 첫째 하나는 총이며, 나머지 아홉은 별이다. 별 중에서 첫째 하나는 지혜의 덕이며, 그 다음 셋은 지혜의 작용의 덕이며, 그 다음 하나는 큰 선정의 덕이고, 그 다음 하나는 소의(所依)의 덕이며, 그 다음 하나는 뛰어난 복덕이고, 마지막 둘은 신지(身智)의 덕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아래의 지위는 헤아리지 못함이다. 이른바 앞의 열 가지 여래의 법 중에서 높기 때문에 능히 알지 못하는 것이며, 넓기 때문에 능히 건너지 못하는 것이고, 깊기 때문에 바닥을 얻지 못하며, 많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함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는 문혜(聞慧)의 경계가 아니다. 그윽하기 때문에 능히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며, 묘하기 때문에 능히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는 사혜(思慧)와 수혜(修慧)의 경계를 떠나는 것이다. 법계와 칭합하므로 능히 분별하지 못하며, 하나가 곧 일체이므로 능히 개발(開發)하지 못하는 것이고, 인지(因智)를 증득하지 못하므로 능히 밝힐[宣明] 수 없으며, 언어와 논의를 초과하므로 능히 해설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앞의 여섯은 세 가지 지혜를 떠나는 것이며, 뒤의 넷은 4변(辯)을 초과하는 것이다. 이른바 법변(法辯)은 능히 나누지 못하는 것이며, 의변(義辯)은 능히 열지 못하는 것이고, 사변(辭辯)은 능히 펴지 못하는 것이고, 요설변(樂說辯)은 능히 설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러한 열 가지는 앞의 열 종류에 배대하는 것이니, 차례로 매우 깊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준하여 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앞의 한 가지 뜻에 대하여 이러한 열 가지가 있다. 이 한 가지에도 역시 앞의 열 가지가 있는 것이니, 준하여 백 가지를 이루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연이 만나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 처음의 넷은 불력(佛力)으로 연을 삼는 것이며, 뒤의 여섯은 근력(根力)으로 인을 삼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중에서 ‘불지력(佛持力)’은 부처님의 가지력이다. 청련화(靑蓮花)보살을 가지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알게 하는 것이니 「부사의품」75)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둘째, ‘자재력(自在力)’은 회전(廻轉)함에 걸림없는 힘이다. 문수가 사리불로 변화하여 설함의 깊은 진리를 알게 하는 것과 같다. 셋째, ‘위신력(威神力)’은 비밀히 위력으로써 가호하여 덕을 알게 하는 것이니, 가섭으로 하여금 여래의 마음을 알게 하는 것과 같다. 넷째, ‘본원력(本願力)’은 부처님의 과거 본래의 서원력(誓願力)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깊은 덕을 알게 하는 것이다. 뒤의 여섯 중에서 첫째는 과거세의 여러 생 동안 선근을 심는 힘이며, 둘째는 다생(多生)에 1승의 선우를 친근히 하는 힘이다. 셋째는 현재에 깊이 청정한 신심에 투철한 힘이고, 넷째는 위의 뛰어난 법을 원하고 구하고자 하는 힘이다. 다섯째는 무명과 뒤섞이지 않고 진법(眞法)이 발하는 대보리심의 힘이고, 여섯째는 심심(深心)으로 오롯이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하여서 2승심(乘心)과 뒤섞이지 않는 힘이다. 이러한 열 가지 중에서 하나의 힘에 따라서 가히 알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둘, 혹은 셋, 내지 열 가지로 다함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76) 30구절은 덕을 염하면서 청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 열 구절은 근기가 덕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찬탄하는 것이며, 둘째 스무 구절은 부처님께서 능히 덕을 설하심을 찬탄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사량(思量)은 ‘의(意)’이니 많기 때문에 ‘갖가지’인 것이다. 생각으로부터 ‘욕(欲)’을 일으키며, 욕이 늘어남을 ‘해(解)’라고 이름하니, 곧 승해(勝解)의 인지(印持)이다. 아는 것에 의지하여 ‘말[語]’을 하는 것이니 지방에 따라서 말 역시 다르다. 머무는 행의 지위가 우열이 있어서 같지 않으므로 ‘지(地)’라고 말하는 것이다. 법을 받아들이는 근기에는 날카로움과 둔함ㆍ생소함과 성숙함에 세 가지[三品]가 같지 않으므로 ‘근(根)’이라 하는 것이다. 근에 따라서 업을 지으며 닦음에 있어서 같지 않으므로 ‘방편작업’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대상이 되는 경계와 모습이 하나가 아니므로 ‘경(境)’이라 말하는 것이다.
모두 불과를 연으로 삼는 차별에 의지하여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불광(佛光)에 의지하며, 혹은 설법 등으로 인하여 말하는 바를 즐거이 들음에 깊고 옅음과 넓고 간략함이 있어서 다소(多少)가 다르므로 ‘낙문법(樂聞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부처님께서 능히 설하심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 열은 부처님께서 인의 원만을 설함을 염하며, 둘째 열은 부처님께서 과덕이 갖추어짐을 설하는 것을 염한다.
첫째 열 중에서 첫째는 옛날에 처음 발한 보리심원(菩提心願)을 밝히며, 둘째는 원에 의지하여 행을 일으키기 때문에 ‘청정바라밀[淨波羅蜜]’이라 말한다. 셋째는 행이 이루어져서 지위에 들어가므로 ‘여러 가지 지위[諸地]’라고 말하고, 넷째는 지위에 의지하여 행을 이루므로 ‘만족행(滿足行)’이라 말한다. 다섯째는 총체적으로 여러 가지 행을 설하여 모두 두 가지 장엄을 갖추므로 ‘보살장엄(菩薩莊嚴)’이라 말하고, 여섯째는 따로 한 가지 행이 교묘하게 일체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분별한 것인데, 상호간에 장엄하기 때문에 ‘방편장엄(方便莊嚴)’이라 말한다. 일곱째는 자리행을 거두어들임을 따로 나타내는 것인데, 앞과 같이 ‘도장엄(道莊嚴)’이라 이름한다. 도는 인(因)의 뜻이니 통틀어서 과(果)에 이르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이타행의 교묘함과 다양함을 따로 밝히는 것이므로 ‘출생방편해[出方便海]’라고 이름한다. ‘장엄’의 뜻은 앞과 같다. 아홉째는 두 가지 이로움이 걸림없으니 모두 원융하여 구경에는 각기 일체를 포섭하여 보현행을 이루기 때문에 ‘자재장엄(自在莊嚴)’이라 말한다. 열째는 다겁에 걸쳐 몸을 받는 것이니, 언제나 뛰어난 행을 닦기 때문에 ‘본생해(本生海)’라고 말한다. 본생의 몸이 많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바다와 같은 많은 몸으로 수행하는 것이니, 행 역시 넓고 많기 때문이다.
둘째, 열은 부처님께서 과(果)가 갖추어짐을 설함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첫째는 앞에서 이미 인(因)이 원만하였는데 어찌 소득이 있겠는가? 이른바 ‘보리자재(菩提自在)’이다. 둘째는 이미 보리를 얻었으니 어떤 소용이 있겠는가? 이른바 ‘자재롭게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셋째는 어느 곳에서 굴리는가? 모든 ‘청정한 국토’이다. 넷째는 어떠한 이익을 굴리는가? 이른바 ‘중생계를 장엄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어떤 법을 굴리는가? 이른바 ‘법왕의 법’이다. 여섯째는 어떠한 지혜로써 굴리는가? 이른바 ‘도명(道明)’의 지혜이다. 일곱째는 부처님의 지혜가 법의 근기를 비추는 것이니, 어찌 깨달음으로 말미암는가? 이른바 ‘자재는 능히 중생의 처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들어가서 근기의 처소에 이르는 것이니, 어떻게 이익되는 바를 짓는가? 이른바 ‘복전’을 짓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무엇으로써 복을 이루는가? 이른바 ‘공덕의 달친(達嚫)’77)을 이룸을 설하는 것이다. 달친은 『파수론(婆須論)』78)에서는 단친(檀嚫)이라 되어 있으니, 중국어로는 ‘재시(財施)’라고 하는 것이며 해석79)에서는 “보시의 법을 달친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이타(利他)로 인도하므로 또한 ‘달(達)’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서역기』에서 “올바르게는 ‘달친나(達嚫拏)’라고 말하며, 혹은 타기니(駄器尼)라고도 한다. 중국어로는 ‘우(右)’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오른손을 써서 다른 사람이 베푸는 바를 받음으로써 그를 위해서 복을 낳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여기서는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공덕을 베푸심을 밝히는 것이므로 ‘공덕의 달친’이라 이름한다. 열째는 무엇을 써서 중생을 거두어들이는가? 이른바 ‘3륜(輪)’이다. 신업(身業)은 신통륜(神通輪)이니 의심을 깨뜨려서 믿음을 이루는 것이며, 어업(語業)은 정교륜(正敎輪)이니 미혹(迷惑)을 깨뜨려서 앎을 이루는 것이고, 의업(意業)은 억념륜(憶念輪)이니 맺음을 깨뜨려서 행을 이루는 것이다.
이하는 맺으며 청하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청분(請分)을 마친다.
셋째,80) 삼매분(三昧分)이다. 이 중에 ‘무엇 때문에 들어가는가?’라는 것은 앞의 물음은 원(願)이 구현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정(定)에 들어가서 법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무엇 때문에 앞의 여러 회에서는 대중을 모은 뒤에 정에 들어가는데 여기서는 거(居)함이 먼저인가? 해석하자면 앞에서는 상(相)으로부터 실(實)에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며, 여기서는 체(體)에 의지하여 작용[用]을 일으킴을 분별하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는 인인(因人)이 정에 들어가는 것이며, 여기서는 과위(果位)가 자재하기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 회에서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정에 들어가시는가? 법계의 해탈이 자재하여 오직 부처님만이 근원을 궁구함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본문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정에 들어가는 연이며, 둘째는 정에 들어가는 인이고, 셋째는 바로 정에 들어가는 것이며, 넷째는 정에 들어가는 뜻이다.
첫째 중에서 ‘마음이 염하는 바를 안다’는 것은 타심지(他心智)로써 앞에서 말한 의념(疑念)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곧 정에 들어가는 연이다.
둘째, 네 가지 대비81)로써 정에 들어가는 인을 밝히는 것이니, 이른바 정에 들어가서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이다. 요컨대 대비로써 근본을 삼기 때문에 인으로 삼는다. 첫째 ‘몸’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몸이니, 자비를 쌓아서 세우는 것이다. 곧 삼매가 의지하는 몸이다. 둘째 ‘문(門)’은, 그러나 부처님께는 대지(大智)ㆍ대정(大定)ㆍ대비(大悲) 등의 문이 있으니, 여기서는 중생을 이익케 하고자 하므로 오직 대비의 문에만 의지한다. 또한 이러한 대비의 문을 엶으로써 중생을 거두어들인다. 셋째, ‘수(首)’는 중생을 이익케 함을 밝히는 것이니, 모든 짓는 바가 모두 대비가 선도함으로써 머리가 된다. 넷째, ‘수순방편법(隨順方便法)은 비록 대비가 으뜸이 되지만 교묘한 방편이 없다면 대비의 법이 중생의 근기와 연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그로 하여금 한 가지로 법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넷은 역시 부처님으로부터 중생에게 향하는 점차(漸次)이다.
셋째, ‘바로 삼매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업(定業)의 작용을 밝히는 것이다. 비유로부터 이름하는 것이니, 이른바 마치 사자가 분신할 때에 모든 감각기관이 열리고 몸의 털이 다 일어나서 그 위세를 나타내고 포효하는 모습이 다른 짐승의 무리로 하여금 위세를 잃고 굴복케 하는 것이다. 사자 새끼로 하여금 그 용맹을 더하여 몸이 장대하게 되게 하는 것이니, 이제 부처님 역시 그렇다. 첫째는 대비법계의 몸을 떨치는 것이며, 둘째는 대비의 감각기관을 여는 것이고, 셋째는 비모(悲毛)의 선도(先導)를 세우는 것이고, 넷째는 근기에 응하는 위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법계의 법문을 포효하는 것은 2승의 모든 짐승으로 하여금 숨고 도망가게 하며 못 듣고 못 보게 하는 것이다. 보살과 불자는 백천의 삼매해(三昧海)와 다라니해(陀羅尼海)를 증장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슷하기 때문에 비유로 삼는다. 또한 「이세간품」의 열 가지 사자분신(師子奮迅)82)은 여기서 자세하게 논하였다.
넷째, ‘일체……로 하여금’ 이하는 정에 들어가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른바 이러한 법계의 청정한 법을 나타내는 것이니, 대중들로 하여금 다 보게 하기 때문에 ‘……법을 즐긴다’라고 이름한다.
삼매분을 마친다.
넷째,83) 현정토분(現淨土分)에 셋이 있다. 첫째는 기세간의 원만을 나타내는 것이고, 둘째는 지정각세간의 원만을 나타내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세간의 원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이 기원이 정토를 장엄함을 나타내며, 둘째는 시방세계가 다 함께 정토를 나타냄을 유추하여 맺는다.
첫째 중에 또 둘이 있으니, 첫째는 바로 장엄을 나타내며, 둘째는 소인(所因)을 낸다. 첫째 중에 셋이 있으니, 첫째는 중각의 장엄이며, 둘째는 원림(園林)의 장엄이고, 셋째는 허공의 장엄이다. 광통(光統)은 “허공을 장엄하는 것은 무위의 연기를 나타내며, 원림을 장엄하는 것은 유위의 연기를 나타내고, 중각을 장엄하는 것은 자체의 연기를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첫째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처소를 넓힘이 가없으니 ‘홀연히 넓어졌다’는 것은 이른바 방편의 입장에서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고, 정을 깨뜨려서 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둘째, 바로 장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에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금지(金地)이며, 둘째 ‘모든 마니’ 이하는 지상에 보배를 펼침을 밝힌 것이다. 셋째 ‘유리(琉璃)’ 이하는 각주(閣柱)를 밝히는 것이며, 넷째 ‘염부’ 이하는 바로 누각을 이룸을 밝히는 것이다. 다섯째 ‘마니(摩尼)’ 이하는 누각 위에서 망(網)을 펴는 것을 말하고, 여섯째는 보배 깃대를 세우는 것이다. 일곱째는 번기와 일산[幡蓋]을 내거는 것이며, 여덟째는 방광하여 법계를 비추는 것이다. 아홉째는 갖가지 보배로써 밖을 장엄하는 것이며, 열째는 사방의 계단[階道]을 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원림을 장엄하는 것이니, ‘불신력(佛神力)’은 소인(所因)이다. ‘홀연히 넓어진다’ 등은 넓은 곳을 나타내는 것이며, ‘중보(衆寶)’ 이하는 역시 열 가지 장엄이다. 첫째는 총구(摠句)이며, 둘째는 보배로써 땅에 펼치는 것이다. 셋째는 보배 담이며, 넷째는 보배 나무다. 다섯째는 향기로운 강이며, 여섯째는 누각이 많은 것이다. 일곱째는 빛으로 비추는 것이며, 여덟째는 보배가 땅을 장엄하는 것이다. 아홉째는 묘한 향을 내는 것이고, 열째는 보배 깃대를 세우는 것이니 열일곱 가지84)가 있다.
셋째는 허공을 장엄하는 데에 역시 열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늘의 보배 궁전이며, 둘째는 향내 나는 나무이다. 셋째는 수미산이며, 넷째는 보배 음악이다. 다섯째는 보배 나무이고, 여섯째는 보배 자리이다. 일곱째는 보배 상(像)이며, 여덟째는 구슬 망이다. 아홉째는 누각이고, 열째는 해탈음악이다.
둘째,85) 장엄의 인(因)을 내는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묻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부사의한 장엄이 있는 것인가? 둘째는 해석인데, 열 구절86)이 있다. 첫째는 이러한 여래의 부사의한 선근의 소생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이는 인(因)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둘째는 이것은 불과의 무류법(無流法)이기 때문이니, 이는 과체(果體)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하는 과의 작용을 따로 밝히는 것이다. 셋째는 총체적으로 신력(神力)을 거론하며, 넷째는 몸이 두루함을 따로 든다. 다섯째와 여섯째의 두 구절은 몸과 국토가 걸림없으며 미세하여 상입(相入)함을 밝힌다. 일곱째와 여덟째는 과거불을 나타내서 현재의 국토에 비춘다. 아홉째와 열째는 부처님을 내서 국토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상의 장엄은 모두 이와 같이 불과(佛果)의 체와 용이니 다른 지위에서 능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두 ‘부사의’라고 말한다. 이상은 한 곳의 기원(祇洹)을 마친다.
둘째,87) 종류를 맺는 중이다. ‘이러한 기수……과 같다’ 등은 이를 거론하는 것이다. ‘모든 법계’는 법계에 유추하여 통하니, 똑같이 이렇게 국토를 나타내는 것과 같다. 이곳은 거침[麤]을 따르는 것이니 수닷타[須達]가 짓는 바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세함에 의거하므로 이에 법계에 두루하다고 일컫는 것이며, 시방에 두루하며 3세에 다하는 것이다. 통하여서 국한됨에 걸림이 없으므로 수달이 새로이 지은 것이다. 거친 것이 미세함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짓는 바가 곧 미세하여 법계에 두루한 것이다. 언제나 영취산에 있는 것88)이나 안족(按足)89)이 나타내는 바와 같은 것은 모두 이러한 종류이다.
둘째,90) ‘여래가 충만하게’ 등은 지정각세간의 원만을 밝히는 것이니 이들은 모두 이렇게 나타내는 국토 안에 각기 여래가 있는 것이다. 모두 이에 이르러서 기원 중에 가득한 것이다.
셋째, 중생세간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보살이 충만한 것이며, 둘째는 열 가지 공양의 구름을 내리는 것이다.
이상 현정토분을 마친다.
다섯째,91) 집신중분(集新衆分)이다. 이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모인 대중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모두 여래의 위신력 때문이다’라는 것은 그 모인 인(因)을 해석한 것이다.
첫째 중에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따로 시방을 모으는 것이며, 둘째는 그 덕을 총체적으로 찬탄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시방은 곧 열 단락이 된다. 이 중에 첫째와 둘째 및 여섯째는 각기 아홉 가지가 있으며, 나머지 방위에는 열 가지가 있다.
첫째, 동방에는 아홉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모인 곳의 멀고 가까움이니, 이른바 ‘불가설(不可說) 불찰 미진 수와 같은 세계해를 지난다’는 것은 법의 심원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세계해가 있으니 ‘금강’ 등이라 이름하는 것은 의지하는 법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금강’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곧음이며, 둘째는 날카로움이다. ‘운(雲)’에도 역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두루한 것이며, 둘째는 윤택한 것이다. ‘명정(明淨)’에도 역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두루 비추는 것이며, 둘째는 염오를 떠나는 것이다. 이제 범본을 교감해 보니, 다만 여기서 명정이라 이름하는 말은 모두 산스크리트로는 비로차나(毘盧遮那, vairocana)라고 이름한다. ‘등(燈)’에도 역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어둠을 깨뜨리는 것이며, 둘째는 나타남을 비추는 것이다. ‘장엄(莊嚴)’에도 역시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일을 장식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치를 장엄하는 것이다. 셋째, ‘부처님을……라고 이름한다’ 등은 능히 의지하는 주체의 원만한 과보를 표방하는 것이다. 이른바 ‘명정’은 앞과 같다. ‘묘덕’은 산스크리트로 실리(室利, śri)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곧 길상(吉祥)의 뛰어난 덕이다. ‘왕’은 자재를 나타낸다. 넷째, 위의 보살의 이름92)을 표방하는 것이니, 능의(能依)의 분인(分因)을 나타낸다. ‘명정’은 앞과 같다. ‘원’은 자체의 대원(大願)이다. ‘광명’은 무명을 깨뜨려서 법계를 비추는 것이다. 다섯째는 권속이 함께 오는 것이다. 여섯째는 공양의 구름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른바 ‘천화(天花)’ 등의 일은 공양하여 허공에 가득한 것이다. 일곱째는 부처님을 뵙고 예배 공양하는 것이고, 여덟째는 본방(本方)93)에 누각(樓閣)과 화좌(花座)94)를 화작(化作)하고서 결가부좌하여 앉는 것이다. 아홉째 ‘……보배 그물이 몸을 덮는다’는 것은 뛰어난 덕이 스스로 장엄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아래로 다른 방위에 준하면 열째를 더해야 할 것이다. 계주(髻珠)나 천관(天冠)은 그 뛰어난 모습을 나타내니, 표치(標幟)가 되기 때문이다. 타방세계의 부처님 이름95) 등은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남방의 공양 중에서 ‘묘향(妙香)’ 등의 잡사(雜事)가 모든 불세계를 충만케 한다는 것은 이러한 것이 모두 법계의 법문에 칭합하여 이러한 공양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은 허공을 가득 채운다고 말하는 것이며, 혹은 법계에 두루하다고 하는 것이며, 혹은 모든 국토에 가득한 것이며, 혹은 중생계를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모두 장애가 없어서 뒤섞여도 잡란(雜亂)하지 않은 것이다.
서방의 공양 중에서 함께 ‘수미산운(須彌山雲)’이라 이름하는 것은 묘하고 높아서 덕을 갖추는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모든 법계에 충만하다’는 것은 행이 이치[理性]와 같기 때문이다. 모든 여래의 상호로써 수미산으로 삼는 것은 과덕이 묘하고 높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보살의 행하는 바를 ‘수미산’으로 하는 것은 인행(因行)이 높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람으로써 법과 같아지는 것이니 정보로써 의보와 같고, 과로써 인과 같아지는 것이니, 걸림없는 법계의 자재한 덕이다.
북방의 공양 중에 똑같이 옷으로써 공양하는 것은 참괴(慚愧)로써 몸을 장엄(莊嚴)하는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ㆍ법ㆍ가르침ㆍ뜻 등에 통하는 것이다.
동북방 중에서 똑같이 누각으로써 공양을 삼는 것은 무거운 위의가 계급을 높이 벗어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니, 역시 이(理)와 사(事) 등에 통한다.
동남방이 똑같이 원만한 빛[光雲]으로써 공양을 삼는 것은 몸에 패용하는 바이니 덕을 갖춘 뛰어난 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비록 내행(內行) 및 외사(外事)에 통한다 하더라도 본문 중에서 ‘부처님의 무견정상(無見頂相)’96)으로써 공양구를 삼는다는 것은 존귀의 극을 나타내는 것이니, 부처님으로써 부처님을 공양하여 미래제에 다함을 밝히기 때문이다.
서남방은 똑같이 모공(毛孔)에서 모든 ‘염운(炎雲)’을 내는데, 미혹의 땔감을 연소하여서 이치를 비추기 때문이다. 몸에서 이러한 염(炎)을 내는 것이다. 이에 ‘3세를 비춘다’는 것은 9세(世)의 연기가 관통함을 밝히기 때문이며, 모든 곳에 두루하고 모든 때에 두루하기 때문이다.
서북방은 똑같이 상호 및 모공에서 3세의 10신(身)97)을 내는 것이니, 세 가지 세간에 통하여 신업의 뛰어난 공능(功能)이 법계의 불과(佛果)의 대용(大用)과 같음을 밝힘으로써 공양구로 삼는 것이다.
하방은 똑같이 모공에서 열 가지 ‘음운(音雲)’을 내는데 어업의 자재를 밝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과덕이 중생의 근기에 응하여 법을 설함98)에 걸림없는 모습과 같아지는 것이다.
상방은 똑같이 6처(處) 안에서 3세의 부처님과 10바라밀 등의 행을 낸다. 인과가 원융한 것이니 의업의 자재를 밝히는 것이다.
이상 열 가지 지위의 공양구도 또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점점 깊어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두 원만교(圓滿敎) 중의 보살이니 불과를 같이하여서 자재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의 지위 및 2승 등은 능히 지견할 바가 아닌 것이다.
둘째,99) 덕을 찬탄하는 중에서 40구절이 있으니 셋으로 나눈다. 첫째 한 구절은 총체적으로 찬탄하는 것이며, 둘째 ‘3세……성취’ 아래 38구절은 따로 찬탄하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모든 보살’ 아래 한 구절은 찬탄하며 맺는 것이다.
별(別) 중에도 역시 셋이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의 3업을 거두어들임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대중 중에서’ 이하는 교화하는 지혜를 밝히는 것이고, 셋째는 세계의 지혜를 아는 것이다.
첫째 중에 역시 셋이 있다.
첫째, 네 구절은 어업의 자재를 밝히는 것이다. 첫째는 불안(佛眼)을 얻어서 법을 보는 것이고, 둘째는 능히 부처님의 굴리는 바를 굴리는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의 원음(圓音)을 거두어들이는 것이고, 넷째는 인을 초월하여 과에 이르는 것이다.
둘째, ‘생각생각 중에’ 아래 여섯 구절은 신업의 자재를 밝히는 것이다. 첫째는 생각생각마다 빈틈이 없이 모든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휴식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법계신운(法界身雲)의 하나가 일체에 두루함을 밝힌 것이다. 셋째는 능히 부처님 대중에게 청정한 법신을 나타내는 것이고, 넷째는 환통(幻通)의 힘이 먼지 중에서 국토를 나투는 것이다. 다섯째는 비록 부처님 처소에 있으면서도 중생을 교화하여 항상 때를 잃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몸의 모공에 있어서 법의 뇌음(雷音)을 내는 것이다. 『밀엄경』100) 중에서 “금강장보살은 몸에 두루하는 모공으로부터 동시에 소리를 내어서 묘법(妙法)을 설한다”고 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셋째, ‘중생계를 안다’ 아래 일곱 구절은 의업의 자재를 밝히는 것이다. 첫째는 중생의 연집(緣集)이 환(幻)과 같음을 아는 것이며,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작용이 번갯불과 같음을 아는 것이다. 셋째는 유취(有趣)가 실(實)을 나타냄이 꿈과 같음을 아는 것이며, 넷째는 과를 일으켜서 인을 갚는 것이 거울에 비친 형상과 같음을 아는 것이다. 다섯째는 중생이 상은 있어도 체가 없음이 아지랑이와 같음을 아는 것이며, 여섯째는 넓은 근기[廣器]가 현현하는 것이 변화와 같음을 아는 것이며, 일곱째 ‘구족’ 등은 아는 주체가 과지(果智)를 갖춤을 맺는 것이다.
이상 부처님의 3업과 같이하는 것을 마친다.
둘째,101) 중생의 3업을 거두어들이는 중에 열 구절을 셋으로 나눈다.
첫째 다섯 구절은 어업으로 중생을 거두어들임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는 결정코 선설(宣說)하는 것이며, 둘째는 변해(辯海)가 다함없는 것이다. 셋째는 중생의 언어와 같이하는 것이며, 넷째는 이치에 걸림이 없는 것이고, 다섯째는 다툼이 이렇게 다하는 것이다.
둘째, 두 구절이 있으니 신업으로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첫째, ‘통지(通智)를 갖춘다’는 것은, ‘통’은 지혜로써 성품을 삼기 때문이니 ‘묘지(妙智)’라고 이름한다. 둘째, ‘부지런한 행으로써 마를 꺾는다’는 것은 정진의 힘 때문에 마가 오래되었으나 항복받는 것이다. 또한 신통력으로써 삿되게102) 중생을 항복받는 것이다.
셋째, ‘……에 안주한다’ 아래 세 구절은 의업으로 중생을 거두어들임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는 뛰어난 지혜에 세 번103) 통달하는 것이며, 둘째는 세간에 처하되 염오가 없는 지혜이고, 셋째는 부처님의 원만한 과를 얻는 지혜이다.
셋째,104) ‘모든 유(有)가……을 안다’ 아래 열한 구절은 세계가 자재한 지혜를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와 둘째는 진제의 지혜를 밝히는 것이니, 첫째는 허망을 요달하는 것이며, 둘째 ‘깊이……에 들어간다’ 등은 진성(眞性)을 증득하는 것이다. 셋째는 여량지(如量智)가 두루 들어가는 것이니, 이른바 진(眞)을 고치지 않고서 속(俗)에 들어가기 때문에 ‘불괴지(不壞智)’라고 말하는 것이고, 넷째는 들어가서 회전(廻轉)하여 몸을 나타내는 것이 자재한 것이다. 다섯째는 동시에 나타내서 여러 곳에서 수생(受生)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방원(方圓) 등의 형상과 종류의 차별을 아는 것이다. 일곱째와 여덟째의 두 구절은 넓음과 좁음에 자재한 지혜를 밝히는 것이니, 역시 미세한 세계를 아는 지혜이다. 아홉째는 부처님께서 국토를 지님을 얻는 지혜이다. 몸은 능히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데에 머무는 것이니, 곧 기세간의 몸이다. 열째는 청정한 지혜가 시방을 비추는 것이며, 열한째는 자재하여 두루 널리하는 것이다.
맺는 글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래의 신력(神力)’이라는 것은 대중을 모으는 인이니, 이 문장은 마땅히 앞에 있어야 할 것인데, 다만 인도[西方]의 어법(語法)105)을 따랐기 때문에 여기서는 뒤에서 분별하는 것이다.
이상 집신중분(集新衆分)을 마친다.
여섯째,106) 거실현덕분(擧失顯德分)이니 그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능히 사람을 보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둘째는 보지 못하는 경계를 밝히는 것이며, 셋째는 보지 못하는 이유를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앞의 문장은 통틀어서 큰 수 5백을 열거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이제 따로 상수(上首)를 표방하기 때문에 10대 제자를 열거하는 것이다.
첫째,107) ‘사리불(舍利弗)’은 중국어로는 추자(鶖子)이니 산스크리트의 올바른 음은 ‘사리보저라(奢唎補咀羅, Śāriputra)’108)이다. ‘사리’는 중국어로는 ‘추’이니 곧 백 개의 혀를 가진 새와 같은 부류에 해당하는 것이다. 오(吳) 강승회(康僧會) 법사의 『육도집경』109) 중에서는 ‘추로자(鶖鷺子)’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어머니의 이름이니, 그 어머니가 변재에 뛰어남이 그 새와 같으며, 눈이 더욱더 밝고 날카롭기가 역시 그 새와 같으므로 비유를 따라서 이름한 것이다. ‘보저라’는 중국어로는 아들이다. 아들이 어머니를 따르는 것으로 이름을 삼은 것이다. 고역(古譯)에서 ‘신자(身子)’라고 한 것은 산스크리트에서 몸을 사리(舍利)라고 이름하니, 마치 부처님 몸이 사리로 분해된 것 같으나 여기서는 그런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 『지론』110) 중에는 “역시 과거에 발원하여 석가불의 제자가 되었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세운다. 논의를 잘 하므로 역시 우파제사(優波提舍, Upadeśa)111)라고도 이름한다”고 하였다.
둘째, ‘마하목련(摩訶目連)’은 산스크리트의 바른 발음으로는 ‘마하몰특가라(摩訶沒特伽羅, Mahā-maudgalyāyana)’이며, 중국어로는 대채숙씨(大採菽氏)이다. 옛날에 선인이 산의 고요한 곳에 머물면서 항상 녹두를 캐서 먹었으므로 성을 삼았는데 존자의 어머니가 그 족속이었으므로 어머니의 성을 취하여 그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큰 신통을 얻어서 다른 성씨들과 구별하는 까닭에 대채숙씨라고 말한다. 마하목련과 사리불 두 사람의 인연은 따로112) 설하는 바와 같다.
셋째, ‘마하가섭(摩訶迦葉)’은 산스크리트로 갖추어 말하면 ‘마하가섭파(摩訶迦葉波, Mahā-kśyapa)’이니, 중국어로는 대음광(大飮光)이다. 음광은 성(姓)이니, 바라문의 종성 중에 옛날에 선인이 있었는데 몸의 빛이 해와 달의 빛을 빼앗아 버렸다고 한다. 가섭은 이 씨족이므로 그로써 이름을 삼은 것이니, 가섭의 몸에서 나는 빛 역시 능히 해와 달의 빛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큰 부자인 장자의 아들이니, 큰 재물과 성(姓)을 버리고 출가하여 능히 욕심을 적게 하는 두타(頭陀)113)의 대행(大行)을 행하므로 대인의 아는 바가 된 것이다. 다른 가섭114)과 구별하기 위하여 ‘마하[大]’라고 이름하였다.
넷째, ‘이파다(離波多)’는 갖추어 말하면 힐려벌다(頡麗伐多, Revata)이다. 중국어로는 실성(室星)이니 북방의 별이다. 그에 제사지내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였으므로 말미암아 이름한 것이다. 또한 ‘아리파다(阿唎波多)’라고 이름한 것이니, 중국어로는 공양의 대상이라 말한다. 어떤 사람은 가화합(假和合)이라고도 이름한다. 곧 『지론』115) 중의 ‘두 귀신의 식사’는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다섯째, ‘수보리(須菩提)’는 바로 말하면 소포저(蘇蒱底, Subhūti)이며 중국어로는 선현(善現)이라 한다. 또한 선실(善實)이라고도 말하니, 옛날에 선길(善吉)이라 옮긴 것은 잘못이다.
여섯째, ‘아니로두(阿泥嚧豆)’는 바로 말하면 아니로타(阿泥嚧陀,Ani ruddha)이다. 니로타는 중국어로는 멸(滅)이고, 아(阿)는 없음을 말하는 것이니 곧 무멸(無滅)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당제(堂弟)이다.
일곱째, ‘난타(難陀, Nandika)’는 중국어로는 희본(喜本)이라 하니, 소를 기르는 사람이었다. 부처님에게 소를 기르는 열한 가지 방법116)을 물음으로 말미암아 부처님께서 일체지(一切智)를 갖추고 있음을 알아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성품이 지극히 총명하고 음성이 절묘하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기쁨을 듣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여덟째, ‘금비라(金毘羅)’라는 것은 바로 말하면 ‘겁비라(劫比羅,Kap phiṇa)’이니, 중국어로는 황(黃)이다. 이른바 옛날에 머리가 누런 선인이 있었는데, 그로 인하여 성(姓)을 삼은 것이니, 성을 좇아서 이름한 것이다.
아홉째, ‘가전연(迦旃延)’은 갖추어 말하면 ‘마하가다연나(摩訶迦多衍那, Mahā-kā-tyāyana)’이다. 이는 종성(種姓)의 이름이니, 중국어로는 ‘대전발종남(大剪髮種男)’이다. 바라문의 성이다. 옛날에 많은 선인이 산중의 고요한 곳에서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수염과 머리카락이 점점 길어졌는데 머리카락을 자르는 사람이 없었다. 바라문법에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나쁘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한 선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함께 와서 아버지를 뵙고서는 작은 아들이 이에 모든 선인을 위하여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던 것이다. 모든 선인이 보호하기를 원하여서 뒤에 선귀(仙貴)가 되었으니, 그 이후부터 이 종족을 전발(剪髮)이라 일컬었다. 존자의 몸은 남자의 위덕이 높았으므로 다른 종족과 구별하기 위해서 대전발종남이라 말하는 것이다. 또 인도에서는 어머니의 성을 취하는데, 중국에서는 아버지의 성을 나타내는 까닭에 남자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
열째,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이다. ‘부루나’는 바로 말하면 보랄나(補剌拏, Pūrṇa)이니, 중국어로는 만(滿)이라 한다. ‘미다라’는 바로 말하면 매달리예(梅呾唎曳, maitrāya)이니, 중국어로는 자(慈)이다. ‘니(尼, ṇī)’는 여성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불달라(弗呾羅, putra)’는 중국어로는 아들이니, 곧 자비가 가득한 여자[滿慈女]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를 따라서 그 이름을 지은 것은 사리불 등과 같다.
‘이와 같은’ 등은 그가 보지 못함을 맺는 것이다.
둘째,117) 보지 못하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법계의 불과를 보지 못함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는 법계의 보살을 보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 중에 열 구절이 있다. 위의 대중들이 염하는 청법(請法)과 다분히 같은 것이다.
【문】 만약 전적으로 그릇[器]이 없다면 앞에서 능히 같이 염할 수 없었을 것이며, 만약 그릇이 있다면 능히 염할 수 있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여기서는 보여도 보지 못하는가?
【답】 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앞에서는 능히 같이 염하였으나 눈이 아직 열리지 못하였으므로 보여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는 다만 스스로 3승의 불과를 염할 뿐이며 여기서는 1승을 보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열 구절 중에 첫째 하나는 총이니, 이른바 여래의 장애가 다하고 작용이 걸림없음을 나타내므로 ‘자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이하는 별이다. 첫째는 뛰어난 과위의 두 가지 장엄이며, 둘째는 과위의 영역 및 부처님의 알 바이다. 셋째는 작용이 많은 것이며, 넷째는 원음(圓音)의 결정(決定)이다. 다섯째는 추상(麤相)의 덕을 떠난 것이며, 여섯째는 생각 없음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위력이 자재한 것이며, 여덟째는 모든 부처님의 짓는 바를 지니는 것이고, 아홉째는 의지하는 청정한 국토이다. 이들은 모두 앞과 뒤에서 나타내는 몸과 국토 등의 일이다.
‘이와 같은’ 이하는 그가 보지 못함을 맺는 것이다.
둘째,118) ‘역시 또’ 이하는 보살중(菩薩衆)을 보지 못함을 밝힌다. 그 중에 역시 열이 있다. 첫째 ‘……큰 모임을 보지 못한다’119)는 것은 총이고, 아래 아홉은 별이다. 별 중의 첫째는 경계의 업용이 모여서 오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120)이며, 둘째는 권속의 오는 곳과 이 가운데의 궁전에 앉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니, 곧 앞에서 누각을 화작(化作)하는 것이 이것이다. 셋째는 가부좌ㆍ삼매ㆍ관찰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넷째는 보살이 짓는 공양구 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수기(受記)가 선(善)을 기른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보살이 받는 몸에 다섯 가지 몸121)이 있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보살의 원광(圓光) 등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보살이 모든 시방세계에 충만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고, 아홉째는 보살이 소유한 덕행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상의 아홉 가지 중에서 처음의 네 구절은 세부적으로 나누면 열 구절이 있으니, 앞의 ‘운집한 보살의 무리’를 해석한 것이며, 뒤의 다섯 구절 안에도 또한 열 구절이 있으니, 보현 등의 본중(本衆)을 해석한 것임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하는 총체적으로 보지 않음을 맺는 것이다.
셋째,122) 보지 못하는 이유를 해석하는 것이니, 둘이 있다. 첫째는 법이며, 둘째는 비유이다.
첫째 중에서도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인시(因時)에 그 인을 봄을 닦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함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역시 삼매의……없다’ 이하는 과시(果時)에 견분(見分)을 끊어서 없애므로 보지 못함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행이 열등하여 뛰어남에 미치지 못함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이러한 모든 공덕’ 이하는 뛰어남으로써 열등함을 지나는 것을 나타낸다. 셋째, ‘무엇 때문인가’ 이하는 뛰어나서 열등하지 않음을 해석하는 것이고, 넷째 ‘그러므로’ 이하는 열등하여 뛰어남을 보지 못함을 맺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첫째는 묻는 것이다. 만약 선근이 없으면 회(會)에 있음이 마땅하지 않으며, 만약 선근이 있다면 보지 못한다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므로 ‘무엇 때문인가’라고 말한 것이다.
이하는 해석하여 이루는 것이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해석하여 ‘선행이 있으므로 회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별이(別異)의 선행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범부와 같지 않으므로 선근이 있으며, 보살과 같지 않으므로 선근이 같지 않다.
둘째는 따로 해석하는 중에 열아홉 구절이 있다.
첫째, 열두 구절은 따로 앞에서 불과를 보지 않음을 해석한 것이니, 이 중에 첫째와 둘째 구절은 간략히 해석하는 것이다. 이른바 첫째를 해석하면 본래 대보리의 선근을 수습하지 않기 때문이며, ‘본래 능히 여래의 자재함을 보는 선근을 수습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별이(別異)’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이 없다면 부처를 능히 보지 못한다. 자재는 앞에서 말한 불과(佛果)의 열 구절 중에서 첫째 구절이 바로 이것이다. 둘째는 다만 열반에 들어갈 행을 닦기 때문에 ‘불국토를 깨끗이 하는 행을 닦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정토’는 앞의 열 가지 중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첫째를 거론하고 마지막을 거론하는 것이다. 가운데는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하는 자세히 해석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처음의 일곱 구절은 이타행을 닦지 않는 것이며, 그 다음의 세 구절은 스스로의 뛰어난 행을 닦지 않는 것이다. 역시 첫째는 협심(狹心)이며, 둘째는 열심(劣心)이다.
본문을 해석하는 것은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보살의……를 구하지 않는다’ 이하는 따로 보살을 보지 못하는 이유를 해석한다. 이 중에 일곱 구절이 있다. 첫째는 통명(通明)을 구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그러한 선(善)을 닦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그러한 원(願)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넷째와 다섯째는 법공(法空)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저 지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보안(普眼)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123) 뛰어남이 열등함을 지남을 나타낸다. 이 중에서는 위에서 말한 스무 가지의 능히 공덕을 닦지 못하는 법이 2승을 초과하여 함께 하지 않는 것을 밝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저 법은 이러한 닦음의 주체는 아니다. 저것을 능히 닦지 못하는 것이 인연이 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그것에 대하여 능히 보지 못한다. 이른바 눈이 능히 보지 못하며, 귀가 능히 듣지 못하고, 깨달음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며, 미루어서 능히 알지 못하고, 헤아려서 능히 깨닫지 못하며, 생각으로 능히 염하지 못하고, 지혜로 능히 관찰하지 못하며, 뜻으로 능히 생각하지 못한다.
셋째,124) 해석 중에서 첫째는 물어서 말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이와 같이 총체적으로 알지 못하는가? 총체적으로 가히 알지 못하는 바가 되기 때문에 능히 알지 못한다. 2승이 총체적으로 지혜가 없기 때문에 능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 때문인가’라고 말한 것이다. 아래 해석에서 ‘보살의 지혜 경계’라는 것은 총체적으로 가히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니, 깊은 지혜로 능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문의 지혜 경계가 아니다’라는 것은 또한 성문에게 지혜가 없기 때문이 아니며, 다만 지혜는 옅고 경계는 깊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 ‘그러므로’ 이하는 알지 못함을 매듭짓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인을 닦지 않았으므로 보지 못함을 밝히는 것을 마친다.
둘째,125) 과시(果時)에 분이 끊어졌으므로 보지 못함을 밝히는 것이다. 이른바 작은 과보를 얻기 때문에 이 법에 있어서 분이 끊어져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앞의 문장에서 다만 ‘능히 수습하지 못한다’ 등으로 말한다. 이제 이 문장 가운데서는 ‘삼매의……눈이……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라. 앞에서는 인시(因時)에 능히 닦지 못함을 기준으로 하였고, 여기서는 과위의 입장에서 총체적으로 분(分)이 없음에 나아갔다.
본문 가운데 셋이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열거하고, 둘째는 물으면서 해석하며, 셋째는 보지 못함을 매듭짓는다.
첫째 중에 열 구절이 있다. 첫째는 깊은 선정의 눈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얻는 법이 없는 것이다. 셋째는 대비의 공덕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이러한 처지(處智)가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큰 지혜의 눈이 없는 것이다. 이상은 스스로의 뛰어난 덕이 없는 것이다. 아래 다섯 구절은 이타의 덕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물어서 해석한다. 묻기를, “성문의 인과는 어찌 가히 부처님 경계 중의 1분(分)에 거두어지는 바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총체적으로 그러한 법이 없다고 말하는가? 만약 총체적으로 없다면 그와 범부는 어떤 차별이 있어서 ‘무엇 때문인가’라고 말하는가?” 하였다. 뜻을 해석한다. 삼계를 벗어나므로 범부와 같지 않으며, 방편에 머물러서 진실과는 어긋나므로 그러한 법이 없다. 네 가지 잃어버림이 있으므로 총체적으로 없는 것이다. 첫째는 거친 것을 벗어나지만 미세함을 떠나지 않으니, 이른바 다만 분단(分段)의 삼계를 벗어날 뿐 변역(變易)의 생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방편을 얻으면서 진실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는 적정에 머물러서 자비를 잃어버린 것이고, 넷째는 자신은 조복하나 중생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첫째는 허물을 떠나서 다함이 없는 것이며, 둘째는 법을 얻어서 깊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셋째는 대비심이 없는 것이며, 넷째는 4섭(攝)의 행이 없는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이하는 보지 못함을 매듭짓는 것이다.
이상 법설(法說)을 마친다.
【문】 어떤 경126)에서 “성문과 연각은 지혜가 있거나 없거나 모두 보살의 무생법인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으니 이미 그러한 보살이 얻은 바라면, 무엇 때문에 이 가운데서는 총체적으로 없다고 말하는가?
【답】 2승은 보살의 법인(法忍)이지만 보살은 2승이 알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경127)에서는 “그대들이 행하는 바가 보살도이다”라고 말하는가?
【답】 회심(廻心)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는 점오(漸悟)의 보살도이며 돈원(頓圓)은 아니다. 이는 돈원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분수가 아닌 것이다.
【문】 다만 가히 듣기만 하고 믿지 않는 것이니, 마치 『문수순행경』128) 중에서 5백의 성문이 듣고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 무엇 때문에 여기서는 총체적으로 듣거나 보지 못하는가?
【답】 저것은 3승 축기(逐機)의 설이기 때문에 역시 듣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제 여기서는 1승 축법(逐法)의 설이라 높이 벗어나기 때문에 능히 듣지 못하는 것이니, 그것은 마치 중양(重陽)이 허공을 아름답게 하고 우레를 발하여 소리를 떨치지만 개미 등의 종류는 능히 보고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문】 만약 그렇다면 2승은 마땅히 법계의 소섭(所攝)이 아닐 것이다.
【답】 법계가 넓기 때문에 2승을 포섭하지만 2승은 좁기 때문에 법계를 포섭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 법계의 연기는 한 티끌이 오히려 능히 모든 것을 포섭하는데, 무엇 때문에 2승은 좁으면서도 넓음을 포섭하지 않는가?
【답】 넓고 좁음이 서로 포섭함은 보살의 알 바이며, 2승은 이것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 포섭되지 않는다.
【문】 2승이 어찌 보살이 아는 법계가 아니겠는가? 무엇 때문에 포섭하지 못하는가?
【답】 이는 여기서 포섭하기 때문에 저기서는 지견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다.
【문】 만약 이것이 포섭한다면 마땅히 지견함이 보살중(菩薩衆)과 같을 수 있을 것이다.
【답】 법계의 연기에는 간략히 두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순연문(順緣門)이니 법을 이루는 인과 같은 것이다. 곧 불보살은 요컨대 지견하여 비로소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위연문(違緣門)이니 상위인(相違因)129) 등과 같다. 곧 2승의 무리는 요컨대 지견하지 못하여 바야흐로 이에 거두어질 뿐이다. 이러한 두 가지 연문(緣門)은 일어나는 법과 대조하여서는 모두 공력이 있으니, 그러므로 이와 같다. 연기가 거두어들이는 바는 견(見)과 불견(不見)이 서로 다르다.
【문】 만약 그렇다면 범부와 외도 역시 위연(違緣)인데 어찌하여 여기에 거두어지지 않는가?
【답】 그는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를 감당할 수 없으니, 마치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기 때문이다. 설사 다른 성문이라도 오히려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요컨대 사리불 등으로 모든 큰 성문을 유추하는 것이다. 혹 이 보살의 변화로 지은 바는 바야흐로 법의 뛰어남을 나타내니, 그러므로 이를 분별하는 것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성문 등은 이 법을 얻지 못하는가?
【답】 모두 법을 얻는다. 무엇 때문인가? 귀머거리나 장님이 연기(緣起)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로써 얻는 것이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문】 만약 얻을 수 있다면 마땅히 지견할 수 있는가?
【답】 만약 지견한다면 곧 얻지 못할 것이다. 이는 상위(相違)의 연기가 포섭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얻는다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지 않기 때문에 예가 될 수 없다. 바로 2승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문】 2승의 고덕(高德)이 오히려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다면 이제 범부가 어찌 받아 지닐 수 있겠는가?
【답】 과거의 범부였을 때 받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대면하더라도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도로 역시 그와 같을 것이니, 그러므로 다만 고덕(高德)과 2승이 귀머거리나 장님과 같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수지하여 믿음의 힘을 증장케 하고 뒤에 그것을 얻는 것이다.
둘째,130) 비유 중에는 열 가지 비유가 있어서 유추한다.
원(遠) 법사 등 여러 대덕들이 모두 열 가지 비유로써 앞에서 미혹한 불과(佛果)의 열 구절의 공덕에 배대하는 것이다. 오직 아홉째 두 하늘의 비유는 위의 둘째 여래장엄(如來莊嚴)을 비유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차례로 배대하여 해석한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러한 열 가지 중에 나아가 견과 불견을 분별하는 데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첫째ㆍ다섯째ㆍ열째의 세 가지는 2승이 불과의 공덕을 보지 못함을 비유한다. 둘째, 둘째ㆍ셋째ㆍ넷째의 세 가지는 보살이 능히 불과의 덕을 봄에 비유하며, 나머지 넷은 여래가 스스로 과덕을 보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니, 역시 2승 등의 법을 보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여기에 열 가지 별상(別相)이 있다.
첫째, 귀신을 항하에 대하는 비유[鬼對恒河喩]이니, 2승이 소지장(所知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뛰어난 경지를 보지 못함을 비유하는 것이다. 변(辨) 법사는 “‘아귀와 같다’는 것은, 2승의 사람은 보살법계행의 밥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아(餓)’라고 말한 것이다. ‘귀(鬼)’라는 것은 사람과 비슷하되 사람이 아닌 것이니, 2승이 얻는 열반은 비슷하면서도 진리가 아님을 비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형(裸形)’은 보살참괴행(菩薩慚愧行)의 옷이 없기 때문이다. ‘기갈(飢渴)’은 둘이 없는 이관(理觀)이 그 정신을 젖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을 들어서 태운다’는 것은, 4상(相)이 옮기는 바가 쉬지 않는 것이다. ‘독수(毒獸)가 핍박하는바’라는 것은 생사가 자기 마음이 지은 바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에 두려워하여 그것을 버리는 것이다. ‘항하에 이르러서 물을 구하여 마시고자’라는 것은 기원(祇洹)에 나아가서 해탈미(解脫味)의 물을 구하는 것이다. ‘혹은 고갈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오직 열반을 증득하여 끊어서 법신의 정토와 법계의 덕수(德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의 죄업의 장애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법집무명(法執無明)의 장애하는 바를 비유한 것이다. 이하는 비유를 종합하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깨달음을 꿈에 대하는 비유[覺對夢境喩]이니, 2승인은 열등함을 고수하여 뛰어남을 어그러뜨리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비유이며, 둘째는 법이다. 법 중에서 첫째는 총이며, 둘째는 별이며, 셋째는 매듭지음이다. 별 중에서 보살이 보는 데에 아홉 가지 인(因)을 내니, 그러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어리석은 사람을 설산에 대하는 비유[愚對雪山喩]이니, 2승인이 마음이 좁아서 자비가 없으므로 보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넷째, 주문으로써 숨겨진 보물을 본다는 비유[呪見伏藏喩]이니, 저 2승에게 청정한 지혜의 눈이 없기 때문에 보지 못함을 비유하는 것이다.
다섯째, 맹인이 보주에 이르는 비유[盲人至寶洲喩]이니, 2승이 청정한 눈이 없기 때문에 보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여섯째, 눈을 칠하여 몸을 숨기는 비유[塗眼隱身喩]이니, 저 2승에 깊은 지혜가 없으므로 보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일곱째, 일체처의 정이라는 비유[遍處定境喩]이니, 저 2승에게는 깊은 선정이 없으므로 보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비유 중에서 ‘천(天)’은 공처(空處)와 식처(識處)이며, ‘중생경계’는 청ㆍ황ㆍ적 ㆍ백이다.
여덟째, 몸을 덮어 가리고 스스로를 보는 비유[曀身自見喩]이니, 저 2승에게는 깊은 행이 없어서 보지 못함을 비유하는 것이다.
아홉째, 두 하늘131)이 사람을 따르는 비유[二天隨人喩]이니, 저 2승에게 비밀한 지혜가 없으므로 보지 못함을 비유하는 것이다.
열째, 멸진정에서는 봄이 없다는 비유[滅定無見喩]이니, 저 2승의 주위(住位)에서는 구함을 쉬기 때문에 보지 못함을 비유하는 것이다.
이상 총체적으로 거열현승분(擧劣顯勝分)을 설명한 것을 마친다.
일곱째,132) 게송찬덕분(偈頌讚德分)이다. 이 중에 시방 보살의 설이 곧 10단(段)이 된다.
첫째133) 중의 열 가지 게송을 둘로 나눈다. 첫째 아홉은 앞에서 말한 삼매의 작용을 서술함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마지막 하나는 작용의 의지하는 바를 맺는 것이니, 앞에서 말한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定]를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처음의 다섯은 부처님의 몸과 국토가 걸림없음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 하나는 자재이며, 그 다음 둘은 매우 깊은 것이며, 그 다음 둘은 광대한 것이다. 그 다음 넷은 보살의 여러 가지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앞에서 말한 운집(雲集)을 나타내는 것이며, 둘째는 원행(願行)이 깊은 것이고, 셋째는 2승을 초과하는 것이고, 넷째는 정혜(定慧)가 견고한 것이다.
둘째134) 게송은 여섯으로 나눈다. 처음의 둘은 대중이 덕을 갖춤을 찬탄하는 것이니, 첫째는 지위가 가득한 것이며, 둘째는 덕이 깊은 것이다. 그 다음 둘은 장소에 대중이 모임을 찬탄하는 것이며, 그 다음 하나는 장애를 끊고서 이치를 증득하는 것이다. 그 다음 둘은 움직이지 않고 널리 두루한 것이며, 그 다음 하나는 불력(佛力)에 귀의함을 매듭짓는 것이다. 마지막의 둘은 불법을 요달하는 것이니, 첫째는 뜻이며, 둘째는 가르침이다.
셋째135) 게송은 둘로 나눈다. 처음의 셋은 법을 설하는 것이니, 첫째는 부처님의 설법이 때에 응함을 찬탄하는 것이며, 둘째는 불력의 작용이 삿됨을 제거함을 찬탄하는 것이고, 셋째는 불법이 헤아림을 초월함을 찬탄하는 것이다. 뒤의 일곱은 비유이다. 이 중에 첫째는 지혜가 3제(際:3세)에 통달한다는 비유이며, 둘째는 무루의 덕이 원만한 비유이다. 셋째는 자재하게 두루 아는 비유이고, 넷째는 덕이 장애가 없는 비유이다. 다섯째는 법륜이 떠맡아진다는 비유이며, 여섯째는 걸림이 없어서 속히 두루한 비유이고, 일곱째는 지혜륜[智輪]이 근본이 된다는 비유이다.
넷째136) 게송 중에서 첫째는 큰 덕[德山]이 중생을 이익케 하는 비유이며, 둘째는 자비의 바다가 염(炎)을 제거하는 비유이며, 셋째는 행이 높아서 깊이 증득하는 비유이다. 넷째와 다섯째의 두 송은 지해(智海)가 출생한다는 비유임을 밝히는 것이다. 여섯째는 교묘하게 나타내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는 비유이고, 일곱째는 원에 따라서 마침내 이룬다는 비유이며, 여덟째는 종지(種智)가 두루 비춘다는 비유이다. 아홉째는 방위에 따라서 법을 나타낸다는 비유이며, 열째는 부처님의 청정한 뿌리를 본다는 비유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 열 가지 중에 첫째는 대복(大福)이며, 둘째는 대비(大悲)이고, 셋째는 대정(大定)이다. 넷째와 다섯째는 여리지며, 여섯째는 여량지이다. 일곱째는 자비의 작용이며, 여덟째는 종지(種智)이다. 아홉째는 대원경지(大圓鏡智)이며, 열째는 자비의 작용이다.
다섯째137) 게송은 넷으로 나눈다. 처음 하나는 이익을 보는 것을 찬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셋은 보살을 이익케 하는 것이니, 하나는 총체적으로 찬탄하는 것이며, 하나는 따로 법을 얻게 하는 것이고, 하나는 따로 행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다음 하나는 세 가지 세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다음 셋은 법을 나타내서 이익을 이루는 것이니, 하나는 능함을 거론하는 것이며, 하나는 널리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는 지혜를 이루는 것이다. 마지막 둘은 법륜이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이다.
여섯째138) 게송은 셋으로 나눈다. 처음의 셋은 범부와 소승은 능히 알지 못함을 밝히는 것이다. 그 다음 넷은 알지 못하는 덕을 밝히는 것이니, 첫째는 지혜가 깊은 것이며, 둘째는 복이 넓은 것이고, 셋째는 교묘하게 교화하는 것이며, 넷째는 덕의 법이다. 뒤의 셋은 능히 아는 주체의 덕을 나타내는 것이니, 첫째는 수행이며, 둘째는 나를 깨뜨리는 것이고, 셋째는 원이 원만한 것이다. 이렇게 능히 아는 것은 불덕(佛德)이 아니라면 총체적으로 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일곱째139) 게송은 셋으로 나눈다. 처음의 다섯은 불체(佛體)의 덕이 원만하게 갖추어짐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 하나는 총체적으로 몸이 청정함을 찬탄하는 것이며, 그 다음 둘은 만행으로써 인을 삼는 것이며, 그 다음 둘은 장애를 멸하고 덕을 이루는 것이다. 그 다음 셋은 묘한 작용이 헤아리기 어려움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 중에 첫째 하나는 색의 작용이며, 뒤의 둘은 지혜의 작용이며, 마지막 둘은 총체적으로 맺는 것이니, 첫째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여덟째140) 게송은 셋으로 나눈다. 처음의 둘은 지덕(智德)을 내는 것이니, 첫째는 들음에 의지하여 내는 것이며, 둘째는 마음에 의지하여 내는 것이다. 그 다음 셋은 견고한 행이니, 첫째는 정진행(精進行)이며, 둘째는 신지행(信智行)이고, 셋째는 회향행(廻向行)이다. 뒤의 다섯은 단덕(斷德)의 행이니 그 가운데서 첫째와 둘째는 염오를 떠나서 자리행을 이루는 것이며, 뒤의 셋은 염오를 떠나서 이타행을 이루는 것이다.
아홉째141) 게송은 넷으로 나눈다. 처음의 둘은 부처님 어업의 이익을 찬탄하는 것이며, 그 다음 둘은 신업의 이익이고, 그 다음 둘은 신업과 어업의 두 가지 이익이며, 마지막 넷은 이익과 견문(見聞)이다.
열째142) 열한 송이 있으니, 넷으로 나눈다. 처음의 둘은 부처님께서 보살을 이익케 하심을 찬탄하는 것이니, 첫째는 덕을 나타내서 보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법을 굴려서 듣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다섯은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하여 괴로움을 참으심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는 대비가 깊고 두터운 것이다. 그 다음 하나는 괴로움을 참는 까닭을 해석하는 것이고, 나머지 셋은 부처님을 뵙고 이익 이룸을 밝히는 것이다.
이상 게찬분(偈讚分)을 마친다.
이하에서는 여덟째,143) 보현개발분(普賢開發分)을 밝히는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믿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장행이며, 둘째는 게송이다.
첫째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설하는 뜻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는 능히 방편을 설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셋째는 설하는 영역을 분별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거듭……하고자’ 등은 앞에서는 교주(敎主)가 스스로 이러한 선정에 들어가서 널리 그 일을 나타냄을 밝히는 것이니, 법계를 개현(開現)한 것은 아직 언설이 없었으나 이제 보현이 말로써 널리 설하여 다시 거듭 앞의 선정을 열어서 법계를 나타나게 하여 밝게 비추었으니, 모든 보살로 하여금 함께 이러한 법에 들어가도록 하기 때문에 ‘거듭 연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법계와 같은……로써’ 이하는 능히 방편을 설함을 밝히는 것인데, 셋이 있다. 첫째는 총이며, 둘째는 별이고, 셋째는 매듭지음이다.
둘째,144) 별 중에서 열한 가지 방편으로써 말하는 것은 작용이다. 이러한 법계 등의 모든 방편을 씀으로써 열 가지로 여래의 삼매 덕을 널리 설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첫째, ‘법계와 같다’는 것은, 이른바 법계가 이미 가없음과 같으니 이러한 능히 설하는 방편도 역시 법계와 같으므로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와 같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분신삼매[奮迅定]의 업용이 광대하므로 다른 방편을 써서 능히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1개는 모두 장차 한계가 없는 법을 씀으로써 그것을 유추하는 것이다. 이 하나는 총구(摠句)이며, 나머지 열은 모두 법계의 별구(別句)이다. 이 중에서 ‘희망’은 시작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욕(欲)’은 마침에 의거한 것이다. ‘법광(法光)’은 능히 교화하는 주체의 법이며, ‘수시(隨時)’는 근기의 설익음과 성숙함의 때에 나아감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나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모든 보살을 위하여’ 이하는 나타내는 뜻을 맺는 것이다. 이른바 법계와 같은 방편으로써 모든 보살을 위하여 열 가지로 널리 사자분신삼매를 설하는 것이다. 허공계와 같은 방편 역시 열 가지 설이 있다. 나머지는 모두 이에 준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145)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인가?’ 이하는 설함의 대상이 되는 법을 밝히는 것이니 역시 열 가지가 있다.
앞의 능히 설함에 대조하면 두 가지 문(門)이 있다. 첫째,146) 차례로 앞의 열한 가지 방편에 배대하는 것이다. 이른바 앞의 방편은 그 차례와 같이 여기서 설하는 바를 설하는 것이므로 각기 하나씩 배대하나 오직 열째만 뒤의 두 가지 방편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앞의 열한 가지 방편은 하나하나가 모두 열 가지의 널리 설함을 갖고 있으니, 곧 백열 가지를 이루는 것이다. 자세히 생각하고 준하여 해석하면 의리를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열 가지는 어떻게 다른가? 첫째는 많은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는 것이며, 둘째는 여러 때에 설하는 것이다. 셋째는 여러 곳에 나타나는 것이며, 넷째는 많은 대중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다섯째는 일념이니, 이 하나는 앞의 청함을 염하는 중 처음 열 가지와 더불어 헤아려 생각할 수 있으니, 9세(世)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여섯째는 한 몸이 법계에 충만한 것이며, 일곱째는 의보(依報)의 대상 중에서 부처님 덕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여덟째는 의보이니, 티끌 가운데서 부처님의 자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앞과는 어떻게 다른가? 대상은 거칠고 티끌은 미세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다. 아홉째는 정보이니 모공이 소리를 내서 언제나 교화하는 것이고, 열째는 두루 도량에 앉아서 언제나 법륜을 굴리는 것이다. 이러한 열 가지는 모두 사자분신삼매의 덕이니 오히려 간략히 설한 것이다.
‘불자여’ 이하는 설하지 못한 것이 다시 또 많음을 나타낸다. ‘오직 여래지(如來智)의 경계’라는 것은 다시 많음이 있어서 보살이 능히 알 수 있는 바가 아님을 밝힌다.
둘째,147) ‘그때’ 이하는 그 중송(重頌)을 밝힌다. 본문 중에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뜻을 펴는 것이며, 둘째는 바로 읊는 것이다.
첫째,148) 뜻을 펴는 중에 ‘부처님의 힘을 잇는다’는 것은 스스로 능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여래를 관찰한다’는 것은 잇는 바가 있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대중을 관찰한다’는 것은 소위(所爲)가 있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나머지 구절은 그 설하는 바를 관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불과(佛果)의 차별의 덕이기 때문이다.
바로 읊는 중에서는 앞에서 말한 열 가지 법에 대하여 차례로 읊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하나하나의 모공 중에서’는 앞에서 말한 ‘모든 법계 중에서’를 읊는 것이다. 나머지 세 구절은 ‘부처님의 일어남’ 등을 읊는 것이다. 둘째 중에서 ‘청정한 법륜’은 앞에서 말한 모든 부처님의 설한 바를 읊은 것이며, 셋째 중에서 ‘가장 뛰어난 가부좌’는 앞에서 말한 현성정각(現成正覺)을 읊는 것이며, 넷째 중에서 ‘보살이 운집한다’ 등은 앞에서 말한 ‘대중이 모두……을 찾아뵙는다’ 등을 읊은 것이다. 다섯째 중에서 ‘모든 법계를 설한다’ 등은 앞에서 말한 ‘모든 법계에 충만하다’ 등을 읊은 것이고, 여섯째 중에서 ‘모든 부처님 국토에 나타나서 법계의 지혜 바다에 들어간다’ 등은 앞에서 말한 모든 세계해에 충만함을 읊는 것이다. 일곱째와 여덟째의 두 송 반은 앞에서 말한 일곱째 법을 읊는 것이니, ‘여래의 모든 경계에 안주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하나하나의 경계를 읊는 것이다. 또한 어떤 본(本)에서는 ‘모든 세계’라고 하고 있는데, 세계 또한 의보의 경계인 것이다. ‘여래지(如來地)에 안주한다’는 것은 자재한 공덕지(功德地)를 읊는 것이다. 중간은 모두 3세 부처님의 공덕법이다. 아홉째 중에서 처음의 두 구절은 앞에서 말한 아홉째 법을 읊는 것이며, 마지막 두 구절은 다시 여덟째 법을 읊는 것이다. 마지막 게송 중에 처음 두 구절은 앞에서 말한 두루 앉음을 읊는 것이며, 마지막 두 구절은 언제나 설함을 읊는 것이다.
이상 개발신분(開發信分)을 마친다.
이하는 아홉째149) 호광시익분(毫光示益分)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법계에 증입(證入)케 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 셋이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의 방광을 열거하여 법을 보이는 연으로 삼고, 둘째 ‘때에 기원림(祇洹林)’ 이하는 중생이 연에 의지하여 법을 보는 것을 밝히며, 셋째 ‘그 중생이 있어서’ 이하는 법을 보고서 이익 얻음을 분별하여 올바로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다섯 구절은, 첫째는 뜻을 표방하여서 보살의 인인(因人)으로 하여금 분수에 따라서 이러한 삼매를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 삼매 중에서 나타나는 일이 곧 대중이 앞에서 의심하여 물은 바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물음에 답하여 이러한 정(定)에 들어가는 것이니, 중생으로 하여금 역시 얻게 하여 비로소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다. 둘째, ‘백호광(白毫光)을 놓는다’는 것은 중도의 평등한 백정법계(白淨法界)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삼매가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작용이다. 셋째, ‘……법계……를 비춘다고 이름한다’는 것은 뜻에 의지하여 이름을 세우는 것이다. 이른바 3세의 법계의 법문을 비추어 나타내는 것이니, 모든 보살로 하여금 이러한 문을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넷째, 권속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주반(主伴)을 갖춤을 밝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시방……등을 비춘다’는 것은 거두어들여 교화하는 영역을 분별하는 것이다.
둘째, 중생들로 하여금 법계를 보게 하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능히 보는 사람을 거론하는 것이니, 이른바 ‘두루 운집하는’은 신구(新舊)의 두 가지 무리에 통하는 것이다.
둘째는 보는 대상인 법을 밝히는 중에도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이쪽 법계를 보는 것이며, 둘째는 미루어서 시방 법계를 보는 것이다.
첫째 중에도 둘이 있다. 첫째는 모든 세계 중에서 몸을 나투어서 설법하는 것을 보는 것이며, 둘째 ‘혹은 천궁……을 보며’ 이하는 모든 궁전 중에서 몸을 나투어서 설법함을 보는 것을 밝혔다.
첫째 중에서 첫째는 나타나는 처소를 거론하며, 둘째 ‘이와 같은 등’ 이하는 몸을 나투어서 법을 설함을 바로 밝힌다. 세 가지 세간을 갖추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천궁(天宮) 중에도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나타나는 처소가 곧 앞의 세계 중에서 다시 미세한 열 가지 궁전150)을 취한다. 둘째, ‘갖가지 몸’ 이하는 몸을 나투어서 법을 설함을 바로 밝히는 것이니, 역시 열 가지가 있다. 이 중에 ‘갖가지의 지(持)’는 의지(義持)이며, ‘교지(敎持)’는 법지(法持)이다. 이들이 나타내는 바는 모두 통틀어서 앞의 열 가지 구절의 의문에 답하는 것이다. 이른바 ‘부처님의 자재’ 등은 준하여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151) 시방을 미루어서 보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이것을 열거하여 저것에 미루는 것이고, 둘째는 자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152) 저것을 미루는 중에 첫째는 거칠게 시방세계를 유추하는 것이며, ‘모든 업이 일으키는 바이다’라는 것은 저 시방 중에서 기세간 및 중생세간 등이다. 모두 실보가 나타나는 바여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둘째는 세밀하게 모공을 유추하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자재를 나타내는 중에서 처음 한 구절은 광대한 현실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모공의 미세함 속에 있더라도 또한 3세ㆍ9세의 광대하고 무변한 중생계 등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니, 차별은 완연한 것이다. 그 다음 세 구절은 업용을 밝히는 것이니, 첫째는 그 마음을 비추는 것이며, 둘째는 몸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셋째는 법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마지막 한 구절은 신력(神力)을 맺는 것이다.
셋째153)는 법을 보아서 이익 얻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법을 보는 인연을 분별하는 것이며, 둘째는 얻는 이익을 분별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부처님에게 연(緣)이 있음을 기준으로 하면 숙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행이 이미 닦아졌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덕을 갖추어서 바야흐로 들어가는 것이다. 세 구절이 있으니, 첫째는 이타이며, 둘째는 자리이고, 셋째는 법에 들어가는 방편을 이루는 것이다.
둘째, 얻는바 이익을 밝히는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봄으로 말미암아서 법을 얻음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저 모든 보살’ 이하는 법으로 말미암아서 덕을 이룸을 밝히는 것이고, 셋째 ‘그때’ 이하는 덕으로 말미암아서 작용을 일으킴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 둘이 있다. 첫째 ‘……얻는다’ 아래 한 구절은 그 얻는 바를 표방하는 것이니, 이른바 불지(佛地)의 광대한 삼매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들이 모두 보현위(普賢位) 중의 여러 보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얻는 바는 점차(漸次)가 없는 것이므로 곧 구경이다.
둘째, ‘혹은……얻는다’ 이하는 그 얻는 바를 분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얻는 바를 표방하는 것이니, 간략히 열 가지를 열거한다. 이 중에 처음 여섯 가지는 보살행의 지위가 구경임을 얻는다는 것을 밝히고, 뒤의 넷은 불과(佛果)가 자재하여 원만함을 이룸을 얻는다는 것을 밝힌다.
둘째, ‘이러한 여러 보살’ 이하는 간략함을 맺어서 넓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수를 맺는 것이며, 둘째는 이름을 맺는 것이다.
이름 중에 열한 구절이 있는 것은 증수(增數)의 10이다. ‘어떻게 아는가?’라는 것은, 수를 맺는 중에 ‘열 가지 불가설’이라 말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첫째,154) ‘갖가지 길’이라는 것은 앞을 맺는 것이니, 법신이 지혜가 노니는 처소가 되므로 ‘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종류가 있어 같지 않으므로 ‘갖가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치로는 둘이 없는데 어찌 많다고 말하겠는가? 이른바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며, 능히 노니는 지혜가 얕고 깊음[淺深]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갖가지 문’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색신의 이류(異類)를 맺는 것이니, 다름을 표방하기 때문에 문(門)이라 말한다. 셋째, ‘갖가지 입(入)’이라는 것은 모든 행을 갖추어서 능히 증입함이 있음을 맺기 때문이다. 넷째, ‘갖가지 도(度)’라는 것은 모든 바라밀로 피안에 이르는 것을 맺기 때문이다. 다섯째, ‘방편’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정행(淨行)이 교묘하여 능히 원만함을 맺기 때문이다. 여섯째, ‘지(至)’라는 것은 보살의 구경지(究竟地)를 얻음을 맺기 때문이다. 일곱째, ‘방(方)’이라는 것은 보리가 자재하여 시방에 두루함을 맺기 때문이다. 여덟째, ‘광명’이라는 것은 삼매의 업용이 광명을 일으킴을 맺기 때문이다. 아홉째, ‘공덕’ 및 ‘구(具)’라고 하는 것은 모든 행의 지력(智力)을 맺기 때문이다. 열째, ‘자재’라는 것은 걸림 없는 변재를 맺기 때문이다.
셋째,155) ‘깊이 보살의……에 들어간다’ 이하는 다만 앞을 자세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구절은 얻는 삼매의 1문이며, 나머지는 유추하여 이에 준하라. 이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인(因)을 밝혀서 넓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156)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깊은 인위이니 자분의 궁극을 밝히는 것이고, 둘째 ‘여래의 바다……에 들어간다’ 이하는 묘하게 과해(果海)에 계합하는 것이니 승진의 원만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셋이 있다. 처음 한 구절은 총체적으로 표방하는 것이며, 둘째 ‘이른바’ 아래 백 가지는 따로 분별하는 것이고, 셋째 ‘이와 같은’ 이하는 간략함을 맺어서 넓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백 가지 삼매는 이상 열 가지 구절의 갖가지 중에 있어서 하나하나가 각기 이와 같은 백 가지 및 뒤의 넓음을 매듭지음이 있으니, 저 열 가지는 큰 단락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하는 따로 분별하기 때문이다. 이 위의 글은 수를 맺어서 ‘10불가설(不可說)’이라 말하고 있으나, 여기 아래에서는 맺으면서 곧바로 ‘불가설’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열 중의 하나[十中一]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러한 백은 다만 앞의 열 가지 중 갖가지 문(門)의 하나인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아래에서 맺어 말하기를 ‘불가설불찰미진[不可說刹塵]의 삼매문(三昧門)’이라 말하며, ‘도(道)’ 등이라 말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위의 본문157)에서 다만 ‘10불가설불찰미진 등의 묘한 공덕’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오직 삼매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 이러한 갖가지 문 안에서 다라니문 등의 무량한 여러 가지 문을 포함하고 있는데, 어째서 여기서는 오직 삼매문만을 분별하는 것인가?
【답】 처음에 ‘여래의 부사의한 자재삼매를 얻는다’고 표방해 말하므로 이를 취함으로써 그것을 널리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앞158)에서는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사자분신삼매에 안주케 하기 위하여’라고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이러한 문을 치우쳐 나타내는 것이다. 이치와 사실의 모든 문이 다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아래 본문159)에서 ‘하나하나가 모두 불가설 등의 대비법문(大悲法門)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은 이러한 종류이다.
또한 백 가지는 모두 업용이 다름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차별하여 이름을 세우는 것이다. 준하여 해석함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 첫째 하나160)는 의지하는 근본을 밝히는 것이다. 다함없는 행해(行海)로써 평등한 법계를 유추하는 것이며, 계박에서 벗어나서 구경에 원명(圓明)하게 덕을 갖추도록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그 지위에 거두어 돌아감[攝歸]을 밝히는 것이므로 ‘관찰사자분신보살삼매(觀察師子奮迅菩薩三昧)’161)라고 이름한다. 이상의 여러 가지 삼매는 모두 이러한 삼매를 향하기 때문에 ‘관찰’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지에서 얻는 바와 같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말한다. 중간의 여러 가지 이름은 뜻에 따라서 생각하여 해석해 보라.
둘째, ‘불과에 들어간다’162)는 것은 앞에서 얻은 인위의 궁극을 얻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해는 바야흐로 능히 나아가 들어가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 봄으로 말미암아서 법을 얻는 것을 마친다.
둘째,163) 법으로 말미암아서 덕을 이루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 자리가 광대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크게 자재한……나타낸다’ 이하는 바로 이루는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따로 나타내는 것이며, 둘째는 총체적으로 맺는 것이다.
첫째,164) 별 중에 10문이 있으니,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는 깊은 지혜의 덕을 성취하는 것이며, 둘째 ‘모두 중생을 위하여’ 이하는 법을 요달하여 스승이 되는 덕이다. 셋째 ‘적멸……을 즐긴다’ 이하는 연을 따라서 집착함이 없는 덕이며, 넷째 ‘장엄……안주한다’ 이하는 중생을 성취하는 덕이다. 다섯째 ‘모든 중생은……됨을 이해한다’ 이하는 이해가 깊어져서 행을 갖추는 덕이며, 여섯째 ‘10력을 갖춘다’ 이하는 법과 지를 얻어서 능한 덕이다. 일곱째 ‘교묘한 방편’ 이하는 교묘한 방편의 뛰어난 지혜의 덕이며, 여덟째 ‘모든 법의 걸림 없음을 얻는다’ 이하는 이지(理智)가 진리에 계합하는 덕이다. 아홉째 ‘청정한 법의 광명을 놓는다’ 이하는 중생을 거두어들여서 부처님을 뵙는 덕이다. 이 중에 첫째는 중생을 거두어들여서 이익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며, 둘째 ‘언제나……을 본다’ 이하는 부처를 보고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니, 제법은 자재하여 대소(大小)가 서로 포섭함을 분별하여 요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법에 있어서 다툼이 없는 경계를 얻는 것이다. 열째, ‘결정코 여래……를 요달한다’ 이하는 법의 원융한 덕을 비추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총체적으로 지녀서 법을 굴리는 덕이며, 둘째 ‘여래……를 성취한다’ 이하는 묘하게 부처님의 경계를 궁구하는 덕이다.
둘째, ‘저 모든’ 이하는 총체적으로 맺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이루는 바를 마친다.
셋째,165) 덕으로 말미암아서 작용을 일으킴을 밝히는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총이며, 둘째는 별이고, 셋째는 매듭지음이다.
첫째 중에서 ‘깊이……에 들어간다’ 등은 앞을 맺는 것이다. ‘몸 가운데’ 등은 작용을 일으키는 곳이며,166) ‘법력을 즐긴다’ 등은 작용의 인이고, ‘생각생각에’ 등은 총체적으로 작용의 모습을 거론하는 것이다.
둘째, 별 중의 열 가지 차별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맺음 중에서 ‘법력’은 여기서 얻은 법계의 법문의 힘이다.
이상 대단(大段)인 아홉째 시법성익분(示法成益分)에 대한 설명을 마친다.
이하는 열째167) 문수술덕분(文殊述德分)인데 그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찬탄을 서술하는 것이며, 둘째는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뜻을 서(序)하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바로 읊는 것이니 열세 송 반이 있는데 둘로 나뉜다.
첫째, 다섯 송은 기원 중에서 나타내는 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처음의 둘은 기원 중의 기세간의 자재한 작용을 찬탄하는 것이고, 그 다음 둘은 보살의 중생세간의 자재한 작용을 찬탄하는 것이며, 그 다음 하나는 지정각세간의 자재한 작용이다.
둘째, 나머지 송은 모든 보살 등이 법을 얻는 업용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처음 하나는 앞에서 말한 경계 중에서 내는 묘용(妙用)의 안에서 첫째 구절인 ‘3세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다’를 읊은 것이다. 그 다음 하나는 앞의 둘째 구절인 ‘……중생의 청정한 업의 과보를 설한다’ 등을 찬탄함을 읊는 것이다. 그 다음 하나는 ‘부처님의 화신의 구름[雲]을 낸다’ 등을 탁월하게 읊는 것이며, 그 다음 하나는 모든 부처님 국토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함을 읊는 것이다. 그 다음 하나는 마지막에 ‘전법(轉法)’ 등을 탁월하게 읊는 것이니, 곧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함이 이것이다. 그 다음 하나는 다시 ‘원행(願行)의 장엄’을 읊는 것이며, 그 다음 하나는 3세 부처님의 장엄한 도량운(道場雲) 등을 읊는 것이고, 마지막 한 송 반은 찬탄하는 보현행 등을 읊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기원림 중에서 당시에 나타났던 일인데, 이제 문수의 게송에서는 찬탄을 서술하여 분별하는 것이다.
둘째,168) 덕의 이익을 나타내는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얻는 행의 체를 밝히는 것이며, 둘째 ‘하나하나의 모공’ 이하는 얻는 행상(行相)을 밝히는 것이고, 셋째 ‘그 응하는 바에 따라서’ 이하는 행의 뛰어난 작용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는 부처님의 삼매로 비추기 때문에 이러한 대비를 얻어서 이타행의 체로 삼는 것이다.
둘째, 모공의 빛이 내는 존중신운(尊重身雲)은 대비의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뛰어난 작용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큰 작용이 법계에 가득 참을 분별한 것이다.
둘째, ‘불가설의……나타낸다’ 이하는 따로 자비의 작용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좋아함과 싫어함의 두 가지로 교화하는 것이며, 둘째 ‘혹은 모든 세계……에 있어서’ 이하는 10바라밀로써 교화하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 나타나는 곳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일체 중생을 위하여’ 이하는 바로 나타내는 10바라밀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처음 여섯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시회(時會)를 잘 알고’ 이하는 방편바라밀을 밝히는 것이고, 여덟째 ‘모두 능히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공양한다’는 이 한 구절은 원바라밀이다. 아홉째 ‘항복(降伏)’ 이하는 역바라밀이며, 열째 ‘모든……을 안다’ 이하는 지바라밀이다. 셋째, ‘이와 같은’ 이하는 법으로 교화를 이룸을 맺는 것이다.
셋째, ‘혹은 천궁에 나타낸다’ 이하는 3륜(輪)으로써 교화함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교화의 처소를 밝히는 것이며, 둘째 ‘대비(大悲)의 지혜’ 이하는 교화하는 마음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혹은 명호로써’ 이하는 교화의 행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광명(光明)’ 등은 신업의 신통륜(神通輪)이다. 나머지 둘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곳곳에……을 나타낸다’ 이하는 교화의 실을 밝히는 것이다. 이른바 이 보살은 비록 법계에 두루하여 교화의 작용으로 중생을 거두어들인다 하더라도 본래 이 부처님께서 중각 안의 좌상(座上)에서 떠나지 않으니, 이는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두루하고, 빈번하게 일어나면서도 언제나 적정함을 드러낸 것이다.
넷째, ‘혹은 화신의……을 내놓는다’ 이하는 세 가지 세간의 몸으로써 교화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첫째는 지정각세간의 몸으로써 교화하는 것이니, ‘둘이 없는’이라는 것은 함과 함이 없음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일신(一身)이 곧 일체이므로 둘이 없는 것이다. 둘째, ‘혹은 성문의……을 나타낸다’ 이하는 중생세간의 몸으로써 교화함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혹은 모든 성읍(城邑) 등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은 곧 기세간의 몸이다. ‘그 응함에 따라서’라는 것은 교화의 작용을 맺는 것이다.
다섯째, ‘혹은 갖가지……를 나타낸다’ 이하는 3업의 문으로써 교화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신업과 어업의 교화를 밝히는 것이며, 둘째 ‘갖가지 훌륭한 방법[巧術]’ 이하는 의업으로 교화함을 밝히는 것이며, 셋째 ‘모두……나타낸다’ 이하는 교화하는 처소를 맺는 것이다.
이상은 회의 처음으로부터 여기에 이르는 열 단락이 같지 않은 것이다. 총체적으로 본 회를 밝히는 것을 마친다.
둘째,169) ‘그때 문수’ 이하는 그 말회(末會)를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지말과 다르지 않은 근본이기 때문에 비록 거두어들이더라도 언제나 펼쳐져 있는 것이니, 곧 뒤의 본문이 이것이다. 둘째는 근본과 다르지 않은 지말이기 때문에 비록 펼치지만 언제나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곧 앞의 본문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본말이 걸림 없어서 함께 한 품이 되는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 통틀어서 해석하는데, 이 아래 본문을 간략히 열 가지로 짓는다. 첫째는 여러 가지 옛 학설을 서술하는 것이며, 둘째는 회수(會數)의 개합(開合)이다. 셋째는 회주(會主)의 다소(多少)이며, 넷째는 회의 명의(名義)를 정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두 가지 지위를 통틀어 거두어들이는 것이며, 여섯째는 다섯 가지 모습을 나누어 이루는 것이다. 일곱째는 원만하게 처음과 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며, 여덟째는 법계의 인류(人類)를 밝히는 것이다. 아홉째는 법계의 사의(事義)를 밝히는 것이며, 열째는 본문에 따라서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옛 학설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는 여러 가지 설이 극히 많으므로 갖추어 열거하기 어려워서 우선 한두 가지만 서술하기로 한다. 어떤 대가[一家]가 말하였다. 이 가운데 선지식은 45인이 있으니, 뒤의 문수를 헤아리지 않으면 44인(人)이 된다. 첫째 하나170)는 10신(信)의 선지식이며, 그 다음 40171)은 10주(住) 등 40위의 선지식이며, 그 다음 둘172)은 등각위의 선지식이며, 마지막 하나173)는 묘각위의 선지식이다. 옛날에는 빠진 문장174)을 메워 놓을 수 없었으므로 다만 44ㆍ45를 분별하였을 뿐이다. 광통 등의 여러 대덕들이 모두 이러한 설에 견해를 같이하였다.
다시 어떤 대가는 총체적으로 지위를 배대하지도 않고 과분을 내걸지도 않았다. 다만 여러 회에 따랐으며 본문에 의지하여 해석하였던 것이다. 곧 5대(臺)의 논175) 및 의(意) 법사 등이 모두 이러한 해석에 견해를 같이하였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첫째 견해는 본문에 조금 차이가 있으나, 둘째 견해는 뜻에 있어서 무방하다. 준하여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회수(會數)의 개합(開合)을 밝히는 것인데, 이 중에 여섯이 있다.
첫째, 거두어지는바 근기를 기준으로 해서는 오직 3회만 있으니, 첫째는 비구를 거두어들이는 회[攝比丘會]이며, 둘째는 용왕을 거두어들이는 회[攝龍王會]이며, 셋째는 선재를 거두어들이는 회[攝善財會]이다. ‘공덕운(功德雲)’ 이하는 모두 함께 셋째 회에 거두어지는 것이니, 거두어지는 근기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능히 교화하는 주체에 나아가서는 52회가 있으니, 이른바 처음의 셋176) 및 마지막의 제54 보문성(普門城)의 회는 모두 문수이며, 따로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51회는 각기 다른 사람의 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를 기준으로 해서는 오직 52회인 것이다.
셋째, 주체와 대상을 함께 분별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는 55회가 있으니, 이른바 선재에게 53회가 있으며, 비구 및 용에게 각기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주반(主伴)을 따로 나누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는 110회가 있으니, 아래 본문에서 분별하는 바와 같다.
다섯째, 산설(散說)이 의지하는 바를 기준으로 해서는 삼천대천세계의 티끌 수만큼 많은 회가 있으니, 뒤의 문수의 처소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이는 저 3승의 근기를 인용하여 분별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섯째, 만약 보현의 덕을 기준으로 하면 시방세계의 티끌 수만큼 많은 회가 있으니 아래177) 결론지어서 통틀어 말하는 곳에서 분별하는 바와 같다.
셋째,178) 회주(會主)의 다소를 밝히는 데 둘이 있다. 첫째 오직 사람에 나아가서만 설한다면 54인이 있으니, 이른바 55회 중에서 4회는 오직 한 사람, 즉 문수만 있기 때문이며, 또한 두 회에 각기 2인이 있으니, 이른바 변우(遍友)와 중예(衆藝) 및 동자(童子)와 동녀(童女)이다. 그러므로 회는 55회이지만 회주는 54인인 것이다. 둘째, 회를 기준으로 해서 사람을 나타낸다면 57인이 있다. 이른바 55회 중의 두 곳에서는 각기 하나씩 더해지는 것이니, 이른바 변우 등이다.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회의 명의(名義)를 정하는 것이다.
【문】 이러한 모든 회에는 모두 불설(佛說)이 없는데 어찌하여 경으로 삼는가?
【답】 이들은 모두 법을 전하는 보살이 결집의 당시에 법을 구하고 법을 설하였으니, 모든 보살의 일은 이상의 본 회에서 나타내는 ‘기원의 자재함’ 등의 법과 같은 것이요, 저 대중으로 하여금 보고 나서는 법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비록 부처님 말씀이 없다고 해서 어찌 경이 아니겠는가?
【문】 앞의 본 회 중에서도 부처님께서 비록 설함이 없지만 여러 가지로 나타내는 일이 모두 불회(佛會) 중에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는 원방(遠方)의 다른 곳에서 설한 것이다. 불설이 아니라면 다시 부처님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니, 어찌 예로 삼을 수 있겠는가?
【답】 비록 먼 곳에 있으나 본 회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언제나 부처님 앞에 있다는 것은 위의 본문 중의 기원림 안의 하나하나의 경계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 국토를 포섭하고 있는 것과 같으니, 하물며 이러한 여러 곳을 포섭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55회는 본 회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하나의 회로 이름하는 것이니, 「입법계품」이라 말하는 것이다.
【문】 이미 이러한 여러 곳은 모두 기원에 있으니, 아래 본문에서 선재가 마땅히 보현 및 부처님 대중이 이 중각에 있음을 보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금강도량(金剛道場)179)에 있음을 보는가?
【답】 보리수의 금강이 8회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리수를 움직이지 않고 여러 회처(會處)에 두루하여 지말을 찾으며 근본을 보는 것이니, 오히려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회의 처음에 보현 및 부처님께서 기원 중에 계시면서 다시 이동함이 없으면서도 보리수를 보니, 곧 이 기원이 역시 보리수 아래에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두 가지 지위를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이 55회가 두 분에게 거두어지는 것이다. 처음의 문수로부터 뒤의 문수에 이르는 것은 문수의 지위이니 반야문(般若門)에 속하며, 뒤의 보현의 일위(一位)는 법계문(法界門)에 속하는 것이다. 반야가 아니라면 법계에 들어감이 없으므로 선재가 처음에 문수를 뵙는 것이다.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반야를 나타냄이 없으므로 선재는 마지막에 보현을 뵙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분이 두 가지 지위에 의지하여 입법계(入法界)를 밝히는 것이다. 또한 앞의 문수는 곧 법계의 매우 깊은 뜻을 밝히는 것이며, 뒤의 보현은 법계의 광대한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덕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문】 앞에서도 역시 공덕운 등 다른 선지식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총체적으로 문수라고 말하는가?
【답】 모두 문수의 거두어들여 교화하는 덕 때문이며, 모두 문수의 지혜의 큰 바다로부터 세상에 나오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래 본문180)에서 혹은 “문수가 나에게 상염법(相黶法) 등을 가르쳤다”고 말하는 것이며, 미륵 역시 “그대는 이제 모든 선지식이 나의 처소에 옴을 본다”181)고 하였으니, 모두 문수사리의 섭수하는 바이다.이를 살펴보라. 그러므로 형체 있는 문수가 깨달음을 여는 첫째 연이 되는 것이고, 모양이 없는 묘덕(妙德)이 마침의 묘취(妙趣)가 되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 하나는 처음에 일어남을 선제(先際)에서 밝히는 것이며, 둘째 ‘공덕운’으로부터 그 이하는 잘 닦음을 중제(中際)에서 밝히는 것이고, 셋째 문수는 마지막으로 돌아감을 후제(後際)에서 밝히는 것이다. 이는 역시 일주(一周)의 행상(行相)일 뿐이다. 중제 중에서 처음의 40인은 위내(位內)의 행연(行緣)을 밝히는 것이다. 곧 40심위(心位)에 붙이는 것이다. 둘째의 열은 지위 후의 행연을 밝히는 것이니, 지위 밖에서 닦는 바이다.
여섯째, 다섯 가지 모습을 나눈다. 이 본문을 길게 분과(分科)하면 모두 5상(相)이 된다. 첫째는 기위수행상(寄位修行相)이니 41인이 있으며, 둘째 ‘마야부인’으로부터 그 이하는 9회(會)의 11인이 있으니 회연입실상(會緣入實相)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미륵의 한 사람은 섭덕성인상(攝德成因相)을 밝히는 것이며, 넷째 뒤의 문수 한 사람은 지조무이상(智照無二相)을 밝히는 것이고, 다섯째 보현의 일위(一位)는 현인광대상(顯因廣大相)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다섯 가지 모습은 역시 보살의 다섯 가지 행상이다. 첫째는 높은 행이며, 둘째는 큰 행이고, 셋째는 뛰어난 행이며, 넷째는 깊은 행이고, 다섯째는 넓은 행이다.
일곱째, 처음과 끝을 원만하게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이른바 이 여러 회의 차별위(差別位) 중에 하나하나가 각기 모든 문을 거두어들인다. 그러므로 한 지위에 곧 55 및 110 및 찰진(刹塵) 등이 있는 것이다. 하나와 같이 일체 역시 그렇다. 중중(重重)은 그에 준하라. 다만 법에 의탁하여 다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를 그 전후에 벌리는 것이다.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문】 만약 하나가 곧 일체를 갖추고 있다면 선재는 무엇 때문에 여러 지위를 거쳐야 하는가?
【답】 여기서 거치는 바는 모두 하나 가운데 일체이므로 하나를 내는 것이 아니다.
【문】 만약 이 하나 중의 일체라면 하나를 얻으면 곧 일체[多]182)를 얻는다. 그가 어찌 반드시 거쳐야 하는가?
【답】 하나를 얻는 것이 곧 많음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장애가 없는 것이다.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덟째, 법계의 인류(人類)에 둘이 있다. 첫째는 종류의 다름을 분별하는 것이며, 둘째는 뜻의 모습[義相]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비록 총체적으로 통틀어서 논해서 57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종류를 거두어들이면 다만 스물이 있을 뿐이니, 첫째는 보살, 둘째는 비구, 셋째는 비구니, 넷째는 우바새, 다섯째는 우바이, 여섯째는 동남, 일곱째는 동녀, 여덟째는 천자, 아홉째는 천녀, 열째는 외도이고, 열한째는 바라문, 열두째는 장자, 열셋째는 박사, 열넷째는 의사, 열다섯째는 뱃사공, 열여섯째는 국왕이며, 열일곱째는 선인, 열여덟째는 불모(佛母), 열아홉째는 불비(佛妃), 스무째는 신(神)이다.
둘째, 뜻의 모습을 나타내는 중에 네 구절이 있다.
첫째, 과(果)가 거두어들여 교화함을 기준으로 해서는 총체적으로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작용이니, 해인삼매가 나타내는 바이다.
둘째, 인(因)이 행을 이루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는 총체적으로 보살이 행을 이루고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다만 원력을 따라서 형체의 차별을 나타내어 모든 근기에 응하는 것이다.
셋째, 뜻을 기준으로 해서 덕을 나타내는 것이니 총체적으로 연기법계 중에서 인법문(人法門)에 거두어지는 것이다.
넷째, 모습을 기준으로 해서 다름을 분별하면 곧 보살의 다섯 가지 생[五生]183)에 거두어지는 것이다. 첫째는 괴로움을 쉬는 생이며, 둘째는 중생의 무리에 따르는 생이고, 셋째는 뛰어난 생이며, 넷째는 증상생(增上生)이고, 다섯째는 최후의 생이다. 이 중의 보살은 여섯이 있으니, 세 곳에서 몸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는 처음의 문수를 불모로 삼기 때문이고, 본래 연이 있기 때문이며, 첫째 지위가 열등하기 때문에 오직 한 사람인 것이다. 둘째, 중간에 점차 나아가서는 두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른바 관음(觀音)과 정취(正趣)이다. 셋째,184) 뒤의 지위가 원만함을 이루어서 덕의 뛰어남을 나타내기 때문에 세 사람을 갖추는 것이니, 이른바 미륵ㆍ문수 및 보현이다.
나머지 사람은 지위의 다름을 나타내는 것에 의지하니 본문에 이르면 마땅히 분별할 것이다.
아홉째,185) 법계의 사의(事義) 중에서 아래의 여러 지위에 통하는 것이니, 총체적으로 열 가지 문이 있는 것이다. 첫째는 정보의 법계이며, 둘째는 의보의 법계이다. 셋째는 현상의 법계이며, 넷째는 표의(表義)의 법계이다. 다섯째는 언설의 법계이고, 여섯째는 의리의 법계이다. 일곱째는 업용의 법계이고, 여덟째는 과거의 인을 설하는 법계이다. 아홉째는 자분을 맺는 법계이며, 열째는 승진분을 추천하는 법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 가지는 동일한 연기이니, 서로 융섭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어서 하나를 따라서 모두 갖추는 것이다. 아래 본문 중에서 갖춤과 갖추지 않음이 있으니, 본문에 따르면서 이에 준해야 할 것이다.
열째 본문을 해석한다. 여기서는 5상(相)에 의지해서 본문을 과분하여 해석하는[科釋] 것이다.
첫째, 기위수행상(寄位修行相) 중에 41명의 선지식이 있다. 그 중에 첫째 문수 한 사람만이 10신(信)의 선지식에 해당한다. 신(信)은 지위를 이루지 못하므로 열 사람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다. 나머지 넷186)은 지위를 이루므로 각기 열 사람이 있는 것이다.
첫째 중에 둘로 나눈다. 첫째는 능히 교화하는 주체를 일으키는 연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그때 존자……힘을……잇는다’ 이하는 그 교화하는 일을 이룸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 셋이 있다.
첫째, 주반(主伴)이 중각(重閣)을 나선다는 것은 근본에 의지하여 지말을 일으킴을 밝히는 것이다. 진여를 증득하여 망념을 떠나는 것을 ‘선안주(善安住)’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법계의 수가 거듭되므로 ‘누각’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증지(正證智)로부터 뒤의 묘지(妙智)를 일으키는 것을 ‘누각으로부터 나온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동행(同行)’은 지혜의 권속이기 때문이며 문수는 이러한 길상의 지혜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안의 권속이며, 나머지 ‘역사(力士)’ 등은 밖의 권속이다. ‘10천(天)’은 산스크리트로는 ‘제바(提婆, deva)’이니 중국어로는 ‘천’이라고 하며, 혹은 ‘신(神)’이라고도 한다. 위의 초회187) 중의 지신(地神)ㆍ하신(河神) 등과 같으니, 모두 법문(法門)의 신이다. 이름과 같이 준해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내보(內報)의 잡염(雜染)을 여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다음에 8왕(王)188)이 있는데 법의 자재를 표방하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두 문수의 위덕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둘째, 함께 부처님 앞에 이르는 것이다.
셋째, 공경하고 하직해 가는 것은 근기에 맞게 구제함을 밝히기 때문이다.
둘째,189) 교화를 이루는 일 중에 3회(會)190)가 있으니, 곧 세 단(段)이 된다.
첫째, 비구를 거두어들이는 회[攝比丘會]에 둘이 있다. 첫째는 몸의 위의로써 이익을 거두어들임을 밝히는 것이니, 곧 근기가 성숙하여 욕망을 일으키는 것이다. 둘째, ‘그때 문수사리가 여러……에게 고하여’ 이하는 어업으로 이익을 거두어들임을 밝히는 것이니, 곧바로 법문을 베푸는 것이다.
첫째 중에 일곱이 있다. 첫째는 뛰어난 연을 보는 것이며, 둘째는 뛰어난 염(念)을 일으키는 것이다. 셋째는 뛰어난 근기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며, 넷째는 뛰어난 경지를 보이는 것이다. 다섯째는 뛰어난 이익을 얻는 것이며, 여섯째는 뛰어난 사람을 참예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뛰어난 교화를 입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사리불은 지난 회(會)에서는 장님과 같았는데 무엇 때문에 여기서는 볼 수 있다고 말하는가? 해석한다. 본 회(會)를 내기 때문이며, 불력(佛力)을 잇기 때문이다.
둘째, ‘보고서’ 등은 근기가 성숙하였으므로 이러한 뛰어난 염을 짓는 것이다.
셋째, ‘그때’ 이하는 뛰어난 근기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총체적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6천의 비구’는 교화를 입는 근기이며, ‘스스로의 방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소승의 열반을 버림을 나타내는 것이다. ‘문수에게 향한다’는 것은 1승의 길에 나아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문수가 중각을 나서서 부처님과 헤어져 남쪽으로 유력(遊歷)하는 것은 교화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사리불이 방을 나서 부처님께 하직하고 남쪽으로 유행함은 조화(助化)이기 때문이다. 6천의 비구를 이끌어 들이는 것은 바로 교화의 대상인 것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사리불 역시 대보살인데 어찌하여 함께 중각에 있지는 않는가?
【답】 자취의 입장에서는 성문이기 때문에 그곳에 없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6천’ 이하는 따로 교화를 입는 근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수의 지위를 표방하는 것이다. ‘함께 행한다’는 것은 사리불과 함께 행한다는 것으로 위에서 문수는 동행(同行)의 보살과 같으니, 이 역시 그와 같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저 사리불처럼 모습으로는 성문을 나타내지만 덕으로는 실로 보살의 행이기 때문에 ‘함께’라고 말하는 것이다. ‘새롭게 집을 떠난’이라는 것은 아라한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요, 염습(染習)이 깊지 않아서 쉽게 돌릴 수 있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새롭게 소승의 분별심의 집을 나와서 이미 3승의 지위에 들어갔으니, 사리불이 3승 중의 법장(法將)이기 때문이다. 그를 이끌어 들여서 새롭게 벗어나는 것이다. 문수는 여기서는 1승의 법장이니 방편으로 그것을 이끄는 것이다.
둘째, ‘그 이름은’ 이하는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니, ‘비구’라는 것은 산스크리트191)에 세 가지 이름이 있다. 혹은 ‘비호(比呼)’라고 하며, 혹은 ‘필추(苾蒭)’라고도 하고, 혹은 ‘비구’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바로 번역한 것이 없다. 뜻을 번역하면 셋이 있으니, 이른바 포마(怖魔)ㆍ파악(破惡) 및 걸사(乞士)이다. 해석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미 일찍이’ 이하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니, 그 중에 여덟 구절이 있다. 첫째와 둘째 구절은 과거에 큰 인이 있음을 밝히는 것이며, 셋째 ‘성품이……을 즐기고’ 이하는 현재 깊은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넷째는 큰 원을 행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부처님의 뛰어난 경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법의 참모습을 요달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대비로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이고, 여덟째는 즐거이 불과를 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이하는 덕이 연으로 말미암음을 매듭짓는 것이다. 이른바 과거에 이미 문수가 거두어 보호함을 입었으나, 그러므로 금시에는 다시 구제하는 것이다.
넷째,192) ‘그때’ 이하는 뛰어난 경지를 보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 자분의 경지를 관찰하도록 권하는 데 여섯이 있다. 첫째는 몸의 빛이 뛰어남을 관찰케 하는 것이며, 둘째는 권속이 뛰어남이다. 셋째는 위의가 뛰어남이며, 넷째는 행처(行處)가 뛰어남이다. 다섯째는 의과(依果)가 뛰어남이며, 여섯째는 공양이 뛰어남이다.
둘째, ‘해지(海智)여’ 이하는 승진의 경계를 관찰하도록 권하는 것이니, 이른바 가지(加持)의 뛰어남이다.
다섯째,193) ‘그때’ 이하는 뛰어난 이익 얻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 ‘찬탄함을 듣고서 모두 기뻐한다’는 것은 총구(摠句)이다.
이하는 따로 열세 구절의 이익이 있으므로 환희하는 것이다. 이 중에 다섯으로 나누면, 첫째 다섯 구절은 장애를 떠난 이익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현재……을 뵙는다’ 아래 두 구절은 발심의 이익이다. 셋째, ‘재빨리……을 얻는다’ 아래 두 구절은 근기를 이루는 이익이며, 넷째 ‘장양(長養)한다’ 아래 세 구절은 행을 더하는 이익이다. 다섯째, ‘모두……을 본다’ 아래 한 구절은 부처님을 뵙는 이익이다.
여섯째, ‘그때에 모든 비구’ 이하는 선지식[勝人]을 찾아뵙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 ‘존자……에게 아뢴다’ 등은 뛰어난 욕락을 일으키는 것이고, 둘째 ‘……가서 찾아뵙는다’ 등은 온 뜻[來意]을 고하는 것이다.
일곱째, ‘그때 문수’ 이하는 뛰어난 교화를 입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 ‘코끼리가 고개를 돌리는……를 둘러본다’는 것은 섭수하는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비구가……으로 발에 예배한다’는 것은 정성스럽게 귀의하는 모습을 밝히는 것이며, ‘합장하고 선다’는 것은 설함을 듣는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하는 뛰어난 원으로 마음을 훈습하여 비로소 법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는 법을 알기를 원함으로써 열반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신상(身相) 등을 원함으로써 보리를 얻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사리불과 같다’는 것은 생공실상(生空實相)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석가’는 법공실상(法空實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사리불의 의지하는 바가 석가와 같다는 것은 곧 사리불을 거론하여 석가를 취하는 것이다.
이상 문수의 몸가짐으로써 교화하여 거두어들이는 것을 마친다.
이하는 둘째,194) 어업으로 법을 수여하는 것이니 본문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자분의 법을 수여하는 것이며, 둘째 ‘그때 문수’ 이하는 승진분의 법을 수여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법을 수여하는 것이며, 둘째 ‘저 모든 비구’ 이하는 이익 얻음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 셋이 있다. 첫째 경고(警告)하여 총체적으로 표방하는 것이며, 둘째 ‘무엇을’ 이하는 따로 행법을 나타내는 것이고, 셋째 ‘만약 선남자’ 이하는 이익을 들어서 닦음을 권하는 것이다.
둘째,195) 별 중에 열 가지로써 무진(無盡)을 나타내는 것이니 거두어들이면 다섯 짝이 된다. 처음의 둘이 한 짝이 되니, 이른바 대심(大心)으로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둘이 한 짝이 되니, 이른바 법을 구하여 행을 닦는 것이다. 그 다음 둘이 한 짝이 되니, 이른바 정(定)에 의지하여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작용은 곧 대비의 방편이다. 유(有)를 따라서 생을 받아서 정념(正念)을 잃지 않고 능히 생사에 오래 처하여 있으면서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이는 곧 저 2승의 생사를 두려워하는 소견과는 다른 것이다. 그 다음 둘이 한 짝이 되니, 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마지막 둘이 한 짝이 되니, 이른바 스스로 행하여 다른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앞의 여덟은 자분이며, 뒤의 둘은 승진분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익을 들어서 닦음을 권하는 것이니, 그 중에 열 가지 이익을 듦으로써 닦고 배움을 권하는 것이다. 첫째는 선을 생하는 이익이며, 둘째는 잡염을 떠나는 이익이다. 셋째 ‘초출(超出)한다’ 등은 소승을 벗어나는 이익이며, 넷째 ‘여래의……태어난다’ 등은 대승에 들어가는 이익이다. 다섯째 ‘구족한다’ 등은 대원의 이익이며, 여섯째 ‘보살행을 행한다’는 것은 행을 이루는 이익이다. 일곱째는 지위에 머무는 이익이며, 여덟째는 과를 이루는 이익이다. 아홉째는 마(魔)를 항복받는 이익이며, 열째는 외도를 제거하는 이익이다.
둘째,196) ‘저 모든’ 이하는 바로 법을 듣고서 이익 얻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법을 듣고서 정을 얻는 이익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이러한……을 얻는다’ 이하는 정으로 말미암아서 행이 이루어지는 이익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얻는바 정의 체를 밝히는 것이다. 보는 바가 허물을 지나기 때문에 ‘걸림 없는’이라 말하는 것이며, 보는 주체가 덮어 가림을 떠나므로 ‘청정한 눈’이라 말하는 것이다.
둘째, 그 이하는 업용을 밝히는 것이니,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현재의 걸림 없음을 보는 것이며, 둘째는 ‘또한 능히’ 이하는 과거와 미래가 걸림없음을 보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첫째는 정각 및 중생을 보는 것이며, 둘째는 기세간을 보는 것이다. 이른바 보이는 경계가 광대무변함을 밝히는 것이므로 ‘여래의 10안(眼)197)의 경계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는 앞에서 본 모든 부처님의 설을 듣는 것이며, 넷째는 타심통(他心通) 등으로써 앞에서 본 중생들의 근기와 욕망을 아는 것이다. 다섯째는 생사지통(生死智通)으로써 저 수생(受生) 등을 아는 것이다.
둘째, 과거와 미래를 아는 중에 여덟 가지 지위에 각기 ‘10’이라 말하는 것은 원수(圓數)에 응하여 다함없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둘째,198) 이러한 정을 얻음으로 말미암아서 행이 성립함을 밝힌다. 첫째는 구절로 얻는 마음을 표하는 것이다. 열199)을 갖춘다는 것은 넓어서 가없기 때문이다. ‘실제(實際)’라는 것은 깊어서 바닥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주반(主伴)의 정(定)이며, 셋째는 주반의 계(戒)이다. 넷째는 주반의 지(智)이며, 다섯째 ‘10명(明)’은 지혜의 작용이니 「십명품」200)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는 원교가 근기를 거두어들여서 단박에 큰 이익을 이루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대심을 세워서 10지 이후 10명의 작용을 얻는 것이다. 처음으로써 마침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위의 「발심공덕품」 및 「소상품」 등에서 설한 바와 같다. 다른 교(敎) 중에서는 이러한 일이 없는 것이다.
둘째,201) 승진분 중에도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가르쳐서 권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익을 얻는 것이다.
‘불사통명(不死通明)’은 대비(大悲)를 인으로 삼는 것이니, 업의 계박[業繫]을 떠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하니, 분단(分段)을 떠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하니, 통명의 작용이 휴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등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러한 인을 움직이지 않고서 과를 출생하기 때문이므로 ‘……여래……을 낳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한 곳을 떠나지 않고서 능히 불신(佛身)을 내서 시방세계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이는 불사통명의 힘이다. ‘모든 불법을 갖춘다’는 것은 과덕(果德)을 이루는 법을 밝히는 것이다.
이상 비구를 거두어들여서 법계에 들어가도록 하는 1회(會)를 밝히는 것을 마친다. 이 중에서 2승이 회심(廻心)하는 뜻202)을 밝히는 데 간략히 세 가지를 짓는다. 첫째는 회심의 유무를 밝히는 것이며, 둘째는 회심의 신위(身位)를 밝히는 것이고, 셋째는 회심의 지득(至得)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하는 둘째,203) 용왕을 거두어들여서 법계에 들어가도록 하는 회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앞을 맺으며 뒤를 일으키는 것이고, 둘째는 설법하는 곳을 분별하는 것이다. 셋째는 설하는 법을 분별하는 것이며, 넷째는 얻는 이익이다.
둘째204)의 처소에 대하여 변(辯) 법사는 “각성(覺城)은 본각(本覺)이며, 동(東)은 시각(始覺)이고, 대탑묘(大塔廟)는 시각이 본각을 깨닫는 것이다. 곧 이곳에서 설한 것이 두루 법계를 비춘다는 것은 곧 시각에서 본각을 깨닫는 곳이다. 마음을 깨닫는 데 처음이 없으니 본래 법계를 두루 비추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일조(日照) 삼장은 “이 성은 남천축에 있다. 성 동쪽의 대탑은 옛 부처님의 탑인데,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이미 이 탑이 있었다”고 하셨다. 삼장이 친히 그곳에 갔을 때, 그 탑은 매우 컸다. 동면(東面)에서 음악을 울리고 공양해도 서면(西面)에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있으니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곳곳에서 선재의 가사를 노래하고 있다. 이 성 안의 사람은 모두 해탈분(解脫分)의 선근이 있어서 도를 닦을 그릇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깨달을 가능성이 있는 자가 이 성 안에 있으므로 ‘각성’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각자(覺者)의 성을 이름하여 각성이라 한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본문 중에 이미 ‘과거의 여러 부처님께서 노닐고 머무시는 곳’이라고 하였으니, 부처님께서 이미 ‘각’이라고 이름하셨기 때문에 또한 각자(覺者)의 성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아래 본문에 준하여 해석하면, 성과 산과 장소 등이 갖고 있는 이름의 의미는 모두 법문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이니, 이른바 각(覺)이라는 것은 생사에 있어서 각찰(覺察)이 있음을 표방하기 때문이요, 성(城)은 적과 밖의 어려움을 막고 안으로 덕을 지키기 때문에 곧 각의 작용이 된다. 동(東)은 밝아옴의 시작이니 깨달음을 발하는 처음을 나타내며, 마지막 지위의 깨달음을 분별[簡]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탑묘’는 이 깨달음의 덕이 귀종(歸宗)하는 바임을 나타낸다. 만약 다른 교라면 처소를 의탁하여 법을 나타내더라도 처소가 곧 법인 것은 아니지만, 여기 원교에서는 의탁하는 처소가 곧 나타내는 법이다. 이름의 뜻이 곧 일[事]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에 준해 생각하라. 아래 본문의 장소의 의미는 모두 이와 같다.
셋째,205) 설하는 경은 언표하는 바에 따라서 이름을 세운 것이다. 이른바 지혜의 작용이 넓게 펼쳐지므로 ‘보조(普照)’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비추는 바가 깊고 넓으므로 ‘법계’라고 일컬으니, 곧 입법계(入法界)의 경인 것이다. 주반을 갖추는 것이 원교의 법문이다.
넷째, 이익을 얻는 중에 첫째는 나쁜 몸을 버리는 것이며, 둘째는 굳건하고 뛰어난 마음이다. 이는 역시 앞에서 말한 비구가 불퇴전의 보현의 보리심위(菩提心位)에 머무는 것과 같다.
제2회를 마친다.
이하는 셋째,206) 선재를 거두어들이는 회이다. 여기서는 통틀어서 분별하지만 아래 본문의 모습은 달라서 같지 않으니 간략히 열 가지를 짓는다. 첫째는 나아가 구함의 다름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는 닦아 들어가는 대중의 다름, 셋째는 방위를 보이는 바의 다름, 넷째는 장소를 보이는 것의 다름, 다섯째는 교문(敎問)의 다름, 여섯째는 찬탄과 찬탄하지 않음의 다름, 일곱째는 추천과 추천하지 않음의 다름, 여덟째는 맺음과 맺지 않음의 다름, 아홉째는 감과 가지 않음의 다름이며, 열째는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세 구절이 있다. 첫째, 문수가 스스로 각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중생의 근기가 처음에는 열등하여 발심하지 않으므로 거기에 나아가서 비로소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둘째, 공덕운 이하에는 선재가 가서 구함이 있으니 지위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근기가 점점 뛰어나기 때문이고, 이미 발심했기 때문이며, 선지식이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며, 법이 중하며 사람이 높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셋째, 마지막 보현 중에서는 선지식에 나아가지 않으며, 선재도 가지 않으니, 법계의 지위가 가득하며 오고 감이 없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둘째, 닦아 들어가는 대중이 다르다. 이 중에 오직 첫 번째 지위 안에서 세 가지 회에 네 가지 무리가 있으니, 닦음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지위는 오직 선재 한 사람뿐이다. 행이 다른 것은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 방위를 보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큰 지위에서는 셋이 있으니, 처음 10지 이전의 선지식은 남방에 많이 있으며,207) 10지의 지위208)에서는 방위가 없다. 10지 이후에도 역시 남방에 있는 선지식209)이 있다. 그 남방에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바름의 의미이니 지남(指南)의 설 등과 같다. 그 향하는 바가 삿되지 않음을 나타낸다. 둘째는 어둠을 등지고 밝음을 향하는 뜻이니, 장애를 버리고서 진리로 향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셋째는 증감(增減)을 떠나는 뜻이니, 마치 해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은 것이 증감의 모습이다. 남쪽은 양 극단을 다 떠나서 중도의 법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넷째는 생(生)의 의미이다. 이른바 남쪽은 그 양(陽)을 주로 한다는 것이 생의 뜻이다. 북쪽이 그 음(陰)을 주로 한다는 것은 멸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210) 이는 선재의 인행(因行)이 점점 더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생의 뜻을 나타내고, 여래의 열반에서 금관(金棺)에 북쪽으로 머리를 두는 것은 그 멸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넷 중에서 앞의 둘과 뒤의 하나는 10지 이전에서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증감을 떠나는 뜻은 10지 이후에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10지 중에는 정증지로써 상을 떠나기 때문에 남쪽으로써 나타내지 않으니, 10지 이후에는 업용을 나타내서 10지와 같아지지 않는다. 뒤의 문수가 나타냄이 있어도 방위가 없는 것은 반야에 가행이 있어도 증득함이 둘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고, 마지막의 보현에게는 나타내 보임이 없으며 방위도 없는 것은 법계의 덕이 원만하며 보편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넷째, 처소를 나타내는 것에 네 구절이 있다. 첫째 3현(賢)은 아직 증득하지 않고 여러 곳에서 산재(散在)하는 것이고, 둘째 10지 이상은 진리를 증득하여 불가(佛家)에 태어나기 때문에 부처님 대중 중에 많이 있는 것이다. 셋째 10지 이후에 작용을 일으키는 것 역시 흩어져서 연을 따르는 것이고, 넷째 보현은 인이 원만하여 과를 초래함을 나타내는 것이니 역시 부처님 처소에 있는 것이다.
다섯째, 보냄과 보내지 않음에 둘이 있으니, 처음과 마지막의 두 가지 지위는 가르쳐서 보냄이 없이 스스로 가서 이르는 것이다. 처음은 이른바 문수 스스로 가서 이르므로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 없는 것이며, 마지막은 보현이 두루하므로 눈이 열려서 스스로 보아서 이르는 것이다. 마지막의 문수는 반야 지혜가 이루어져서 스스로 법계를 보기 때문에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다른 지위에는 이러한 두 가지 뜻이 없으므로 모두 가르쳐서 보낸다. 또 만약 가르쳐서 보내지 않는다면 곧 모든 선지식이 스스로 자기에게 집착하리니 어찌 자행(自行)을 이루겠는가. 또 오직 하나만 안다고 말하니, 만약 가르쳐 보내지 않아서 다른 선지식을 구한다면 어찌 원만하게 갖추는 이익을 이루겠는가. 또한 만약 보내지 않는다면 어찌 하나의 지위엔들 합하겠는가. 나아가 뒤의 지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여섯째, 찬탄과 찬탄하지 않음 중에 셋이 있다.
처음의 문수는 역시 찬탄하기도 하고 찬탄하지 않기도 한다. 이른바 선재가 아직 발심하지 않았을 때는 다만 권유하여 발심토록 하기 때문에 찬탄하지 않는다. 뒤에 권유하여 발심토록 한 뒤에 비로소 찬탄하는 것이다. 중간의 선지식은 모두 찬탄함이 있으니 닦아 나아감을 발하기 때문이다. 찬탄하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은 마땅히 생략된 것이다.211)
뒤의 문수와 보현이 찬탄하지 않는 것은 지위가 원만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일곱째, 추천과 추천하지 않음 중에 둘이 있다.
이른바 모든 지위의 선지식에게는 모두 자분을 맺음이 있으며 우러러 승진분으로 추천함이 있으나 오직 첫째 하나212)와 뒤의 셋213)은 맺음도 없으며 추천함도 없으니 사람이 높고 덕이 원만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보냄이 있는가? 지위로 하여금 더해 감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며, 법문이 다름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나머지 지위는 맺음도 있으며 추천함도 있으니, 인행이 아직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보현 등이 어찌하여 부처님을 추천하지 않는가? 인위(因位)의 선우가 거두어들일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덟째, 맺음과 맺지 않음 중에 앞의 여러 가지 본문은 모두 맺고 통함이 없는 것이니 행이 구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뒤의 보현만이 시방을 통틀어 맺어서 티끌 수같이 많은 국토와 같다고 하였으니, 두루하기 때문이며 행이 원만하기 때문이고, 일이 궁극적이기 때문이다.
아홉째, 감과 가지 않음 중에서 오직 마지막 두 지위는 하직하고 떠남이 없기 때문이다. 문수는 상(相)을 떠났으므로 감이 없는 것이며, 보현은 덕이 원만함으로 감이 없는 것이다. 다른 지위는 이와 같지 않으니, 모두 하직하고 떠나감이 있는 것이다. 만약 떠나감이 없다면 한 스승을 지키는 것일 뿐이니 어찌 법계의 선지식을 두루 구할 수 있으며, 어찌 승진의 행을 이루겠는가.
열째,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각성의 선재를 거두어들이는 회[攝善財會]에 나아가서 10신(信)의 행을 이루게 하는 가운데 본문에 따로 넷이 있다. 첫째는 대중이 모임을 밝히는 것이니 교화를 받는 근기를 나타내는 것이고, 둘째는 근기를 관찰하여 방편을 설해 줌을 분별하는 것이며, 셋째는 수여하는 법을 바로 설하는 것이고, 넷째는 승진의 행을 이끌어 일으키는 것이다.
첫째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으로 열거하는 것이며, 둘째 ‘때에……있으니’ 이하는 따로 나타내는 것이다.
따로 나타내는 중에 네 가지 무리214)가 있다. ‘우바새’215)를 옛 번역에서는 ‘선숙남(善宿男)’이라 하였으며 오늘날의 번역에서는 ‘근사남(近事男)’이라 이름하니, 이른바 비구를 친근히 하여 모시기 때문이다. 여자 역시 이와 같다.216) 또한 ‘수달다(修達多, sudatta)’는 중국어로 ‘선시(善施)’라 이름하고, ‘파수달다(婆須達多)’는 중국어로 재시(財施)라 이름한다. ‘발타라(跋陀羅, bhadra)’는 중국어로 ‘현(賢)’이다. 나머지 이름은 이에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문수……각성의 사람이……을 안다’ 이하는 근기를 관찰하여 방편을 설해 줌을 밝히는 것이다. 그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설의(說意)를 통틀어서 표방하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을 관찰한다’ 이하는 따로 선재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중에 역시 둘이 있으니, 첫째는 그 현생(現生)의 뛰어난 일을 관찰하는 것이며, 둘째 ‘이 동자는’ 이하는 그의 과거의 인과 덕행을 관찰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표방하는 것이며, 둘째는 따로 나타내는 것이고, 셋째 ‘선명상사(善明相師)’ 이하는 총체적으로 맺는 것이다.f가
둘째,217) 별 중에서는 이러한 복보로 말미암아서 재보(財寶)의 상(相)이 일어난다. 선재라는 이름을 세우는 것은 곧 선을 인으로 삼고 재물을 과로 삼은 것이다. 또한 이렇게 도에 따르는 재물을 얻기 때문에 ‘선재’라고 말한다. 또 태어날 때에 보배가 나타나는 것을 재물로 삼고, 뒤에 그 행덕을 찬탄하는 것을 선으로 삼으니, 역시 선현(善現)과 공생(空生)218) 등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또한 『지론(智論)』219)에서 상제(常啼)의 이름을 해석하는 등은 이에 준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220) 그 덕행을 찬탄한다. 그 중의 열 구절은 다섯 짝이 된다. 첫째는 일찍이 부처님을 공양하여 선근을 심은 것은 선재가 이미 일찍이 옛날에 해탈분의 선근을 심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는 청정을 즐기면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셋째는 3업을 청정하게 닦는 것이다. 넷째는 과법을 구해서 닦는 것이다. 다섯째는 마음이 청정하여 행을 갖추는 것이다. 마음에 다른 생각이 없으므로 청정하기가 허공과 같은 것이다. 또한 번뇌 등을 나타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문】 여기 선재는 어떤 지위의 보살인가?
【답】 경에서는 바로 끊음이 없다면 위상을 밝히기가 어렵다. 어떤 이는 지상(地上)의 보살로 판단하기도 하니, 설사 뒤에 발심하더라도 곧 이는 네 가지 발심221) 중의 뒤의 두 가지 지위인 것이다. 또한 이는 『논』 중의 세 가지 발심222) 안의 증발심(證發心)이다. 어떤 이는 실보(實報)의 범부로서 다만 신심이 있어서 능히 선우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다시 준하여 해석하면 마땅히 선취(善趣)의 신(信) 중 수행인(修行人)이다. 원교(圓敎)의 종(宗)에 의지하면 세 가지 지위가 있다. 첫째는 견문위(見聞位)이니, 곧 선재가 다음 전생의 몸을 훔쳐서 이와 같은 보현의 법을 보고 듣기 때문에, 저 해탈분의 선근을 이루는 것이다. 덕을 찬탄하는 중에서 분별하는 것이 이것이다. 둘째는 해행위(解行位)이니, 이러한 5위의 행법을 단박에 닦는다. 마치 선재가 이 생에서 이루어서 보현의 지위에 이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셋째는 증입위(證入位)로서 곧 인위(因位)가 완전하게 마쳐지니 저절로 과해(果海)와 같은 것이다. 선재의 내생(來生)이 이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선재는 정히 어떤 지위인가? 어떤 지위인가라고 말하면, 신(信)에 있으면 신위이며 주(住)에 있으면 주위이니, 일신(一身)으로 5위(位)를 거친다. 있는 곳에 따라서 곧 그 지위가 일체에 두루하기 때문에 보현의 지위와 같은 것이다. 나머지 뜻은 종(宗)에 준하여 해석해 보라.
셋째,223) ‘문수는 코끼리왕이……돌리는 것과 같다’ 이하는 수여하는 법을 바로 설함을 밝히는 것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근기를 거두어들여서 설하는 것을 허락함을 밝힌다. 몸과 머리를 모두 돌리는 것이 코끼리왕과 같다224)는 것은 몸으로 섭수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관찰하여 스스로 본다는 것은 뜻으로 섭수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고, 고하여서 설함을 허락한다는 것은 말로써 섭수하는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곧……되다’ 이하는 바로 설하는 바를 설한다. 부처님의 과법을 설하여서 믿음을 이루도록 하기 때문이며, 그로 하여금 발심케 하여 이러한 과를 구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덟 구절 중에 첫째 구절은 총이며, 뒤의 일곱 구절은 별이다. 별 중에 처음의 셋은 묘한 작용으로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덕이다. 첫째는 중생을 위하여 세상에 나옴을 밝히며, 둘째는 빛을 놓아서 대중을 모으는 법이며, 셋째는 바로 설하는 법을 설한다. 뒤의 넷은 체(體)와 상(相)이 원만하게 갖추어지는 덕을 밝힌다. 이 중에 앞의 둘과 뒤의 둘은 각기 앞은 상이며, 뒤는 체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225) ‘그때 문수’ 이하는 승진분의 행을 이끌어 이루도록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문수가 남으로 가서 인발(引發)하는 것이며, 둘째는 선재가 따라가서 구제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며, 셋째는 문수가 코끼리와 같이 돌려서 섭수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첫째는 앞을 맺는 것이며, 둘째 ‘남방에 유행(遊行)한다’는 것은 뒤를 생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신위의 보리의 마음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므로 ‘환희’라 말한다. ‘과거의 선근을 나타내서 밝힌다’는 것은 저 과거에 닦은 선근이 현재의 보리심으로 말미암아서 다시 증장함을 얻어서 없어지지 않게 하므로 ‘나타내서 밝힌다’고 말하는 것이다. ‘본좌(本座) 등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각성을 떠나지 않고서 두루 유행함을 밝히기 때문이니, 위에서 보리수에서 일어나지 않고서 6천(天) 등에 이른다고 한 것과 같다. 위에서 이미 해석한 바와 같다. 만약 그렇다면, 동자 역시 문수와 같으니 가지 않고서도 여러 지위에 두루한 것이다.
이에 준하라.
둘째, 선재가 따라가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경가(經家)의 서사(敍事)이다.
둘째는 선재가 게송을 설하여 구제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으로 그 가운데 34송이 있으니 둘로 나눈다. 첫째 네 송은 스스로의 미혹함에 빠져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며, 둘째 30송은 문수의 덕을 찬탄하여 구제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 네 송은 통틀어서 모두 미혹ㆍ업 ㆍ괴로움의 셋을 갖추었으니 따로 셋으로 분별한다. 처음의 두 송은 미혹을 일으키는 것이며, 그 다음 한 송은 업을 짓는 것이고, 마지막 한 송은 괴로움이 전전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3유(有)’226) 등은 미혹을 일으키는 곳이고, ‘치암(癡闇)’ 등은 미혹을 일으키는 인이며, ‘악마’ 등은 미혹을 일으키는 연이며, ‘3독’ 등은 바로 미혹을 일으키는 것이다.
둘째,227) 업을 짓는 것 중에 첫째 두 구절은 바른 행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뒤의 두 구절은 삿된228) 행을 이루는 것이다.
셋째,229) 괴로움의 과보 중에 ‘간(慳)’ 등은 아귀의 인을 드는 것이며, 이하는 괴로움의 과보를 맺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230) 30송 중에 역시 둘이 있다. 첫째 아홉 송은 문수의 덕을 찬탄하고 그 액난을 구해 주기를 구하여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날 것을 바라는 것이다. 둘째, 스물한 송은 덕을 찬탄하여 법을 수여함을 구하는 것이고 행을 이루어서 과를 얻음을 희망하는 것이다. 또한 앞은 범부지(凡夫地)의 괴로움을 떠남을 바라는 것이고, 뒤는 2승의 즐거움을 떠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또한 앞은 열반 얻기를 희망하는 것이고, 둘째는 보리 얻음을 바라는 것이다.
첫째 중에 아홉 송은 문수의 아홉 가지 공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첫째는 비지(悲智)의 덕이며, 둘째는 자혜(慈慧)의 덕이다. 셋째는 법화(法化)의 덕이며, 넷째는 원을 원만케 하는 덕이다. 다섯째는 괴로움을 구제하는 덕이며, 여섯째는 자재의 덕이다. 일곱째는 역용(力用)의 덕이며, 여덟째는 선정(善淨)의 덕이고, 아홉째는 정안(淨眼)의 덕이다. 또한 앞의 여덟 및 뒤의 게송은 모두 처음의 세 구절에서 덕을 찬탄하는 것이고, 아래 한 구절에서 구제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둘째, ‘……멀리 여읜다’ 이하는 보리의 법을 구하는 것이다. 이 중에 넷으로 나눈다. 처음의 둘은 과법을 보여서 구하는 보리를 알게 함을 구하는 것이다. 그 다음 하나는 3세 모든 부처님을 뵙고 보리행을 이루는 연을 구하는 것이다. 그 다음 열일곱은 바로 능히 보리를 얻는 인행(因行)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 ‘승(乘)’이라 말하고, 혹은 ‘도(道)’라고 말한다. 마지막 하나는 청함을 매듭짓는 것이다.
인행 중에서 넷으로 나눈다. 첫째 다섯은 지비정(智悲定)이 덕을 거두어들임을 찬탄하는 것이고, 그 다음 셋은 10바라밀행의 원만한 덕을 찬탄하는 것이며, 그 다음 넷은 두 가지 이로움이 장애를 멸하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고, 마지막 다섯은 일에 따라서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셋째,231) 문수가 섭수(攝受)하는 중에 다섯으로 나눈다. 첫째 둘러보면서 선재를 찬탄하는 것은 수(受)의 모습을 밝히는 것이고, 둘째 ‘그러므로 선남자’ 이하는 선우(善友)를 가까이하며 보살행을 묻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셋째는 게송을 설하여 덕을 찬탄하여 그 마음으로 하여금 닦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넷째는 뒤의 지위를 지시하여 그로 하여금 취입케 하는 것이고, 다섯째 ‘때에 선재’ 이하는 들음을 기뻐하면서 사양하고 물러나서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구하는 것이다.
둘째,232) 선우를 가까이하여 보살행을 묻도록 가르치는 가운데 첫째는 선우를 가까이하라고 가르치는 것이요, 둘째는 행을 청해 묻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 중에 열 구절이 있으니 첫째 한 구절은 총이며, 뒤의 아홉 구절은 별이다.
별 중에 첫째는 처음 수행하는 법을 묻는 것이고, 둘째는 행이 원만함을 이루는 법을 묻는 것이다. 셋째는 청정하게 행을 다스리는 법을 묻는 것이며, 넷째는 청정하여 원만히 이루어진 법을 묻는 것이다. 다섯째는 행으로부터 행을 내는 법을 묻는 것이고, 여섯째는 행하는 바를 염지(念持)하는 도를 묻는 것이다. 일곱째는 그 차별의 경계를 반연하는 도를 묻는 것이고, 여덟째는 법을 증장하는 작용을 묻는 것이다. 아홉째는 보현행을 완성시킴을 묻는 것이다. 이는 역시 별(別)을 거두어서 보(普)를 이루는 행이다. 이상 아홉 가지는 모두 앞에 의지하여 뒤를 일으키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233) 게송 중에 열 송을 둘로 나눈다.
첫째 하나는 선재가 이미 이룬 행을 찬탄하여 기쁘게 하는 것이다.
뒤의 아홉은 보현행을 찬탄하여 닦게 하는 것이다. 처음의 하나는 대원을 발하는 것이 행의 근본이 됨을 가르치는 것이고, 그 다음 둘은 보현의 행을 들어서 그가 구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첫째는 행을 드는 것이고, 둘째는 구함을 권유하는 것이다. 뒤의 여섯은 보현의 행을 분별하여 닦도록 하는 것이다. 첫째는 법을 듣는 행이 많은 것이며, 둘째는 부처님을 뵙는 행이 많은 것이고, 셋째는 가르침에 수순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넷째는 일체처에서 행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일체시에서 행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큰 이익을 이루는 행이다. 이른바 저 보현의 명호를 듣는 어떤 중생은 오히려 저 행을 이루어서 대보리를 얻는 것이다.
이상 신위가 원만함을 이룬 것을 밝히는 것을 마친다.
넷째 뒤의 지위를 지시하는 것과 다섯째 듣는 것을 기뻐하면서 하직하고 물러난다는 이 두 단락의 글에 나아가 만약 회(會)를 기준으로 해서 나누면 곧 앞의 회에 속하는 것이다. 이는 전위(前位)의 선우가 설하기 때문이요, 만약 법을 기준으로 해서 나누면 곧 뒤의 지위234)에 속하니, 뒤의 지위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둘째,235) 이제 통틀어서 아래 본문의 여러 선지식을 분별하는 데 간략히 네 가지를 짓는다. 첫째는 선우를 구하는 뜻을 밝히는 것이고, 둘째 선지식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며, 셋째는 문단을 요간(料簡)하는 것이고, 넷째는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는 무엇 때문에 문수가 곧 일체를 위해서 선설(宣說)하지 않고서 선재로 하여금 널리 여러 곳을 순력(巡歷)하여 선우를 구하게 하는가? 해석해서 말한다. 뜻이 다양하지만 간략히 논하면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궤범(軌範)이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모든 보살이 부처님의 성스러운 법에서 항상 두 가지 행을 닦으니, 이른바 법을 구하고 법을 설하는 것이다. 경236)에서 “모든 보살이 법을 구함에 게으르지 않으며, 법을 설함에 인색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이 중에 이러한 두 가지 행을 나타내서 모든 중생에게 보이니, 그러므로 선재는 법을 구하는 묘한 모범을 이루는 것이고, 선우는 법을 설하는 훌륭한 규범을 나타내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러한 자취를 모범으로 삼아서 행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곧 불화(佛花)는 언제나 꽃피며 광엄(廣嚴)은 언제나 현저한 것이다.
둘째는 행연(行緣)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른바 행을 이루는 요체는 진실한 벗을 우선으로 삼지 않을 수 없으니, 마치 “아난이 ‘선지식은 범행(梵行)을 행하는 데 절반이다’라고 말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 선지식은 범행을 행하는 데 전부이다’라고 말씀하신 것”237)과 같다. 경238)에서는 “아사세왕이 만약 기바(耆婆)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음달 7일에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도를 얻는 데는 선우만 한 이가 없다’고 말한다”라고 했다. 또한 논239)에서 “가전연이 마땅히 지옥에 들어가야 할 제자로 하여금 성스러운 과보를 얻도록 했다”고 설한 것과 같다. 또한 경240)에서 “선지식은 큰 인연이다. 능히 그대들로 하여금 마땅히 부처님을 뵙게 하리라”고 하였으며, 또한 아래 본문241)에서 “선지식은 기특한 법이다” 등으로 말한 것이다. 이렇게 중요하게 쓰이고 있으므로 선재가 선지식을 구하여 만족함이 없는 것이다.
셋째는 견만(見慢)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선재 등의 신학 보살(新學菩薩)로 하여금 스스로의 교만과 집견(執見)을 깨뜨리기 때문이니, 그로 하여금 법을 구하는 데 남녀(男女)ㆍ장유(長幼)ㆍ귀천(貴賤)ㆍ도속(道俗)ㆍ존비(尊卑)ㆍ신천(神天)ㆍ외도(外道) 등을 가리지 않고 다만 몸을 낮추어서 욕을 당하면서도 법을 얻음에 힘쓰도록 하는 것이다. 경242)에서는 “법을 아는 자가 있다면 늙었거나 젊었거나 마땅히 공경하기를 마치 여러 천이 제석을 받들어 모시는 것과 같이 한다”고 하였다.
넷째243)는 행을 이루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문】 이러한 선재는 하나의 법문을 얻어도 수행을 이루는 데 족하거늘 어찌하여 닦지 않고 유력(遊歷)하는 것을 싫어함이 없는가?
【답】 이렇게 널리 구하는 것은 보살의 일과 선우의 행과 법을 구하는 행 등을 성취하는 것이다. 비록 법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이미 행을 이룬 것이거늘, 하물며 저 일찍이 얻지 못한 법을 얻어서 혜안이 밝게 열리고 진실한 법계를 봄에 있어서랴. 마치 『화수경(花手經)』244) 중에서 “법을 구함에 천 년이 되었으나 아직 들을 수 없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목숨을 버려서 불토(佛土)에 태어난다”는 등과 같다. 이것이 곧 그 얻는 법이다. 이른바 행을 얻는 법이기 때문이다.
【문】 어찌 공을 관찰하여 이치에 들어가지 않고 일을 좇아서 분주한가? 어찌 보살의 매우 깊은 행을 이루겠는가?
【답】 이는 일에 따르면서도 언제나 이치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루 노닐면서도 일찍이 감이 없었던 것이다.
【문】 만약 일찍이 가지 않으면서도 이에 두루 노닐 수 있었다면, 어찌 일찍이 가면서도 가지 않음이 없지 않았는가?
【답】 역시 비슷하다. 감과 가지 않음이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찌하여 자리에 있으면서 감이 있지 않은가? 풀이하면 감과 앉아 있음 역시 서로 비슷하니 둘 다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245) 지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른바 널리 선우에 의탁함으로써 신(信) 등의 다섯 가지 지위의 차별된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해당되는 본문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문】 무엇 때문에 선재는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하여서 법을 구하지 않는가?
【답】 인행이 원만하지 않아서 부처님께 이르지 못했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부처님 처소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246) 깊고 넓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른바 불법이 넓고 가없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모든 선지식은 비록 지위가 법운지(法雲地)에 이르러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나는 오직 이러한 하나의 법문만을 알고 있을 뿐이니, 어찌 능히 모든 큰 보살의 무량한 행상(行相)을 요달하겠는가’라고 말하니, 불법이 깊어서 바닥이 없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선재는 비록 지위가 등각의 지위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오히려 “나는 어떤 것이 보살의 행과 보살의 길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하물며 이제 번뇌에 얽매어 있는 선(善)이 적은 범부가 아는 것이 적음에도 문득 스스로 모든 불법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아만을 일으켜 스스로를 높이며 다른 사람을 능멸하겠는가. 부끄럽게도 알지도 못하면서 문득 경론(經論)을 추측으로 판단하여 스스로 구렁텅이에 빠지고 다른 사람도 구렁텅이에 빠지게 한다면 어찌 매우 슬프지 않겠는가.
일곱째,247) 연기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선재는 선우와 더불어 하나의 연기를 이루니 들어가는 주체와 들어감의 대상이 두 가지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우의 밖에 선재가 없기 때문에 하나가 곧 일체임을 드러내서 선재가 모든 지위를 거침을 밝히는 것이다. 선재 외에 선우가 없으므로 일체가 곧 하나임을 나타내서 여러 지위가 선재에게서 이루어짐을 밝히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서 거둠과 펼침이 자재하며 서로 원융하여 걸림이 없으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248) 선지식의 뜻을 해석하는 데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통이며, 둘째는 별이다.
통틀어서 진정한 선지식을 논하건대 세 가지 유형이 있으니 첫째는 사람을, 둘째는 법을, 셋째는 사람과 법을 함께 분별하는 것이다.
첫째의 사람 가운데 여섯이 있으니, 첫째는 어떤 사람이 비록 현재의 괴로움은 능히 제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선을 닦도록 권유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선우가 아니다. 둘째, 비록 세상의 선을 닦음을 권유하여 악취(惡趣)를 면한다 하더라도 출세간의 길을 향해서 닦도록 권유하지 않는다면 또한 진정한 선우가 아니다. 셋째, 비록 2승의 출세간의 선행을 닦아서 삼계의 괴로움을 면한다 하더라도 보살의 길을 행하도록 권유하지 않는다면 역시 진정한 선우가 아니다. 넷째, 비록 보살도를 닦아서 2승을 면하도록 권유하더라도 오히려 상(相)에 머무는 선이 있다면 역시 진정한 선우는 아니다. 다섯째, 요컨대 중생을 권유하여 무상행(無相行)을 닦게 하는 것이 비로소 진정한 선지식이다. 이는 『불장경(佛藏經)』249) 및 『지론(智論)』250) 등에 의지하여 분별한 것이다. 여섯째, 요컨대 보현의 행원을 갖추도록 권유하여야 비로소 구경의 진정한 선지식이라고 이름한다.
이상은 모두 행의 선지식이니, 행으로써 근기를 이끌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에게 속한다.
둘째의 법의 선지식에도 역시 여섯이 있으니, 첫째는 인천의 법이며, 둘째는 2승의 법이고, 셋째는 초교의 법이며, 넷째는 종교의 법이고, 다섯째는 돈교의 법이며, 여섯째는 원교의 법이다. 이러한 법에 의지하여 올바른 행을 이루므로 선우라고 이름하니, 다만 교의 방편과 진실에 따라 진정한 선우를 분별하는 것이다.
셋째의 사람과 법을 합하여 분별하는 중에도 역시 여섯이 있다. 이른바 이상의 여섯 가지 지위와 법에서 각기 한 문(門)을 설하고, 기연(機緣)을 수여함으로써 사람과 법을 함께 분별하는 것이다. 이는 선지식이 법을 설하여 사람에게 수여함을 이해하는 것이니, 앞의 지위의 진정한 선우 등과 같지 않은 것이다. 이에 준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아래의 본문은 위의 세 가지 지위의 여섯 가지 문[三位六門] 안에 통이 있으며 별이 있다. 통은 곧 여섯 가지가 다 있는 것이다. 별은 오직 마지막일 뿐이니, 모두 보현행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세간품」251)에 열 가지 선지식이 있으니 역시 여기서 그것을 서술[敍]한 것이다.
둘째,252) 따로 아래 본문의 모든 선지식을 분별하는 데 모두 앞의 세 가지를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지위 중에 각기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253) 사람 중에 셋이 있으니 첫째는 이름을 듣는 것을 방편으로 삼고, 둘째는 바로 사람을 보는 것을 법계를 얻음으로 삼고, 셋째 법을 묻는 것 등은 그 덕을 드러내는 것이다.
둘째, 법 중에 셋이 있다는 것은 첫째는 언교를 방편으로 삼는 것이며, 둘째는 지혜의 눈이 얻은 바를 법계를 얻음으로 삼고, 셋째는 통명(通明)의 업용으로써 그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
셋째는 사람과 법을 합하여 분별하는 가운데 첫째는 이름을 듣고서 처소에 이르는 것을 방편으로 삼으며, 둘째는 사람을 보고서 법을 얻는 것을 법계를 얻음으로 삼는 것이고, 셋째는 지난 인(因)을 설하는 것과 승진분을 추천하는 것으로써 그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래의 모든 선지식은 모두 이에 준하여 알아라.
셋째,254) 과문(科文)의 영역[分齊]을 밝히는 것이니, 수를 더해감에 열이 있다.
첫째, 총체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니 이른바 각기 하나의 지위이기 때문이다.
둘째, 원(遠) 법사에 의지하여 둘로 나누면 첫째는 선우를 친근히 하는 것이며, 둘째 ‘고하여 말한다’ 이하는 올바른 법을 들음을 맺은 것이다. 그 계념사유[繫念思] 및 설하는 바와 같이 행하는 것은 모두 들음 중에 거두어진다.
첫째,255) 선우를 가까이하는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선우에 대해서 듣는 것이며, 둘째는 선우를 구하는 것이고, 셋째는 선우를 보는 것이며, 넷째는 법을 청하여 묻는 것이다. 첫째의 선우에 대해서 듣는 중에도 넷이 있다. 첫째는 나라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니 통처(通處)이며, 둘째는 산의 이름이니 별처(別處)이다. 셋째는 선우의 이름이며, 넷째는 가서 뵙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둘째, 선우를 구하는 중에 셋이 있으니, 첫째는 처음으로 듣고서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며 둘째는 발에 예배하며 하직하고 떠나가는 것이고, 셋째는 점차 남행하여 선우를 찾아가는 것이다. 셋째의 선우를 뵙는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가서 뵙는 것이며, 둘째는 예배를 드리고 물러나 머무는 것이다. 넷째 청하여 묻는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이미 발심했다고 아뢴다256)는 것은 이미 근기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고, 둘째 ‘……알지 못한다’ 등은 행법을 묻는 것이며, 셋째 ‘나는……듣는다’ 등은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선우를 가까이하기를 청하는 것을 마친다.
둘째, 정법을 듣는 것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그 발심을 찬탄하는 것이며, 둘째는 바로 법을 설하는 것이다. 법을 설하는 중에 첫째는 증량(證量)의 법문을 설하는 것이며, 둘째 ‘우러러 추천한다’는 것은 교량(敎量)의 법문257)을 설하는 것이다. 이상의 과문(科文)은 여러 지위에서 대체로 같으나, 같지 않은 것이 조금 있다.
셋째,258)는 변 법사에 의지하여 셋으로 나누니, 첫째 ‘이름을 듣고서 찾는다’ 등은 가행위(加行位)이고, 둘째 그 설하는 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증(正證)의 법계이며, 셋째는 우러러 승진을 추천하는 것이니 후득위(後得位)이다.
넷째는 연(衍) 법사 등에 의지하여 네 가지 양(量)259)으로 나눈다. 첫째 ‘처음으로 이름을 듣는다’ 등은 교량(敎量)이며, 둘째 가르침에 의지하여 구하는 것은 신량(信量)이고, 셋째 저 의보와 정보를 보는 것은 비량(比量)이며, 넷째 그가 설하는 바를 듣는 것을 현량(現量)이라 한다. 이러한 넷은 곧 문(聞)ㆍ사(思)ㆍ수(修)ㆍ증(證)이다.
다섯째, 여러 대덕들이 다섯으로 나눈 것이니, 위의 넷째 현량 중에서 자분과 승진분의 두 가지 지위를 열었던 것이다. 나머지는 앞에서 분별한 바와 같다.
여섯째, 의(意) 법사 등에 의지하여 여섯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찾아뵙는 마음의 행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는 공손히 자문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는 스스로 알고 있는 바를 찬설(讚說)함으로써 선재에게 수여하는 것이고, 넷째는 자기가 알지 못함을 설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다시 지자(智者)를 보여서 가서 뵙도록 권유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하직하고 물러나 그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일곱째, 혹은 일곱으로 나누기도 하는 것이니, 여섯째 중의 둘째 안에서 먼저 보고 뒤에 공경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혹은 여덟으로 나누는 것이니, 여섯째 중의 세 번째에서 먼저 발심을 찬탄하고 뒤에 법을 설하는 것이다.
아홉째, 혹은 아홉으로 나누기도 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덟 가지 가운데 다섯째 안에서 먼저 지시하고 뒤에 가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열째, 혹은 열로 나누는 것이니, 위에서 말한 아홉째의 여섯째 안에서 먼저 공경을 드리고 뒤에 하직하고 가는 것이다. 이른바 첫째는 구하는 것이며, 둘째는 뵙는 것이고, 셋째는 예배하며, 넷째는 묻는 것이다. 다섯째는 찬탄하는 것이며, 여섯째는 설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추천하는 것이며, 여덟째는 가리키는 것이다. 아홉째는 공경하는 것이며, 열째는 가는 것이다.
이상 수를 더해가는 열 가지 중에서 처음의 다섯은 지위를 기준으로 해서 과분한 것이며, 뒤의 다섯은 회(會)를 기준으로 해서 과분한 것이다.
넷째,260)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제 우선 지위의 다섯 가지 분과에 의지하여 해석한다. 첫째는 법을 열거하여 닦기를 권하는 것이며, 둘째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취입(趣入)하는 것이다. 셋째는 추구하여 간택하는 것이며, 넷째는 올바로 법계를 얻는 것이고, 다섯째는 우러러 승진분을 추천하는 것이다.
여기 초위(初位) 발심주(發心住)의 선지식을 다섯으로 나눈다. 첫째는 권유함을 열거하는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장소의 이름이며, 둘째는 사람의 이름이고, 셋째는 묻기를 가르치는 것이며, 넷째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첫째, 장소 중에서 ‘나라’라는 것은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영역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만 여기 10주의 처음은 신지(信地)에서 기뻐하는 바이므로 ‘가락(可樂)’이라 이름한다. ‘산(山)’은 그 모습의 한가롭고 고요함을 따라서 성현이 머무는 바이니, 역시 삼매를 닦는 장소인 것이다. 만약 법을 기준으로 해서는 주위(住位)가 높아서 믿음의 지위를 벗어남을 표한다. ‘화합’이라 이름하는 것은 비구가 그 중에서 삼매를 얻어서 상응하기 때문에 화합이라 말하는 것이다. 또 선재로 하여금 주위(住位)와 상응토록 하는 것 역시 화합이라 이름한다. 또 변 법사는 “문훈(聞熏)과 해성(解性)이 화합하여 성인의 의지함[依]을 전성(轉成)하기 때문에 발심주에 들어가는 것이다”261)라고 말하였다.
둘째, 사람의 이름 중에서 비구의 뜻은 앞에서 해석한 바와 같다. 비로소 외도와 범부를 벗어나기 때문에, 비구로써 그것을 표방하는 것이다. 산스크리트 사본을 살펴보건대, 범어로는 미가실리(迷伽室利, Meghaśrī)이니 미가는 중국어로 운(雲)이며, 실리는 덕(德)이라 말한다. 그것을 따른다면 마땅히 운덕 비구라고 이름해야 할 것이다. 구름에는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두루하다는 뜻이고, 둘째는 윤택케 하는 뜻이며, 셋째는 덮어 주는 뜻이며, 넷째는 비를 내린다는 뜻이다. ‘덕’에도 역시 네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선정의 덕이며, 둘째는 복의 덕이고, 셋째는 자비의 덕이며, 넷째는 지혜의 덕이다. 구름의 네 가지 뜻에 차례대로 배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안(定眼)이 널리 열린 것이 구름과 같아서 부처님의 묘한 덕을 보니 대상과 지혜에 있어서 이름을 세우는 것이다. 또한 보안(普眼)이 부처님을 뵙는 일이 많기 때문에 구름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덕이 있기 때문에 그 같은 이름을 세운다.
이 경은 우존본(于尊本)262)이니 번역하여 ‘공덕운’이라 이름하더라도 뜻은 역시 서로 비슷하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그대는 거기에 찾아가서’ 이하는 가기를 권유하고 묻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물음 중에서 열 가지 물음은 앞과 같다. 그러므로 첫째ㆍ둘째……열째를 드는 것이다.
넷째, ‘선남자여’ 이하는 저 비구의 덕을 찬탄하여 그로 하여금 기쁘게 가도록 하는 것이다.
법을 들어서 닦음을 권유하는 것을 마친다.
둘째,263)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가는 것이다. 이 중에 ‘법을 듣고서 환희한다’는 것은 지향하는 바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비련(悲戀)’은 깊은 은혜를 짊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추구하여 간택하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 ‘……산에 오른다’는 것은 마음을 보고 지위에 오름을 밝히기 때문이고, 둘째 ‘그……에 있어서’ 이하는 진실한 뜻을 찾음을 밝히는 것이다. ‘7일(日)’은, 옛 학설에서는 일곱 가지 방편264)을 건너서 비로소 본래의 지위를 봄을 표방하는 것이다. 또한 역시 마땅히 저 산에서 먼저 몸과 말로 지은 일곱 가지 잘못을 청정히 하고, 그런 뒤에 진정한 선지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넷째, ‘그때 선재가 그……을 본다’ 이하는 바로 법계를 얻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다섯이 있다. 첫째는 사람을 보는 것이며, 둘째는 예배하는 것이고, 셋째는 자문하는 것이며, 넷째는 질문을 찬탄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바로 설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산정(山頂)에 있으며……을 본다’는 것은 이 주위(住位)가 후퇴하지 않음을 표방하는 것이다. ‘고요히 생각하며 경행한다’는 것은 반주삼매(般舟三昧)265) 등을 닦음을 밝히기 때문이며, 또한 일행삼매(一行三昧)266)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요히 생각한다는 것은 지(止)를 닦는 것이며, 경행한다는 것은 관(觀)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이는 『현호경(賢護經)』267) 등에서 설하는 사유제불현전삼매(思惟諸佛現前三昧)의 모습이다.
둘째, 예배 중에서 ‘오른쪽으로 돈다[右繞]’는 것은 지극히 존경하는 모습이다.
셋째, 자문 중에는 둘이 있다.
첫째, 이미 발심하였음을 아뢰는 것은 법기(法器)를 갖고 있음을 나타내어서 그로 하여금 쉽게 설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아직 알지 못하는 바를 묻는다는 것은 이미 법에 목마르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자비를 일으켜서 어서 설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아래 본문의 여러 곳은 모두 이 해석과 같다.
둘째,268) 물음 중에서 비록 앞에서 열 가지 물음을 가르쳤다고 하더라도 아래의 여러 지위 안에서는 대개 이러한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다. 범본을 의지하여 헤아리건대, 마땅히 “보살의 길에 대하여 마땅히 어떻게 배우며, 마땅히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이는 곧 먼저 알고 뒤에 행하는 것이다. 본문의 해당 부분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사가 능히 잘 설하신다[宣暢]고 들었다’는 것은, 범본에 의하면 마땅히 ‘나는 대사가 모든 보살에 대하여 잘 교수(敎授)하고 잘 교계(敎誡)한다고 들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이는 곧 교수로 말미암아서 앞에서 말한 이해를 이루는 것이고, 교계로 말미암아서 앞에서 말한 행을 이루는 것이다. 번역[傳譯]에 생략이 있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설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래의 여러 본문은 모두 이러한 해석과 같다.
넷째,269) 찬탄하며 묻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총이며, 둘째는 별이다. 별 중에 아홉 구절이 있으니 앞에서 가르친 바와 같다. 첫째와 둘째의 구절은 꼭 같으며, 나머지 구절은 두서가 없으니 셋째 ‘보살의 경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앞의 보살의 경지에 반연(攀緣)하는 것이고, 넷째 ‘출생한다’ 등은 역시 같다. 다섯째 ‘넓은 마음’은 앞에서 말한 증광(增廣) 등이고, 여섯째 ‘구족한다’ 등은 앞에서 말한 보현행을 갖추는 것이다. 일곱째 ‘수순한다’ 등은 앞에서 말한 만족 등이고, 여덟째 ‘생사……에서’ 등은 앞에서 말한 구경 등이다. 아홉째 ‘유위(有爲)’ 등은 앞에서 말한 청정(淸淨) 및 정념(正念) 등이다. 이들은 모두 타심지(他心智)로써 근기에 맞게 찬탄하는 것이다.
다섯째, ‘선남자여’ 이하는 바로 법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뜻을 보이는 것이며, 둘째 ‘나는 오직’ 이하는 이름을 매듭짓는 것이다.
첫째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얻는 법체(法體)를 밝히는 것이며, 둘째 ‘널리 비춘다’ 이하는 그 업용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해탈력’은 정(正) 법사가 “이는 발심주의 체(體)이니, 이른바 본해성(本解性)은 대승의 문훈습(聞熏習)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범부가 의지하는 바를 전환하여 그로 하여금 해탈을 얻도록 하기 때문에 해탈이라 이름한다. 이에 의지하여 증득해야 할 바를 능히 증득하는 지혜를 힘이라 이름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제 해석한다. 이는 정에 의지하여 발하는 작용이 걸림 없음을 해탈이라 일컫는 것이다. 부사의해탈 등과 같이 하나의 티끌에서도 많은 세계를 보는 것이다. 이제 이것 또한 그렇다. 이곳을 떠나지 않고서 시방 부처님의 의보와 정보의 차별을 보는 것이다. 이는 해탈의 역용일 뿐이다. ‘……혜안을 속히 얻는다’는 것은, 이러한 해탈에서는 능히 작은 곳이 광대함을 수용할 수 있으니, 한 곳에서 일체를 보는 것이다. 이제 둘 중에서 두루 능견(能見)을 취하고, 능치(能致)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있어서 이를 빨리 얻는다’고 말한다. 이는 정(定)이 얻는 법체(法體)를 가려내는 것이다.
둘째, 작용을 밝히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통이며, 둘째는 별이다.
첫째,270) 통틀어서 논한다. 이 눈은 모든 세계 등을 보는 것이지 다만 부처님만을 뵙는 것은 아니다. ‘널리 비춘다’ 등은 혜안(慧眼)을 해석하는 것이고, ‘경계가 걸림 없다’는 것은 방편을 해석한 것이며, ‘모든 장애를 제거한다’는 것은 청정을 해석한 것이다.
둘째, ‘모든 불화(佛化)’ 이하는 따로 부처님을 뵙는 것을 분별한다.
첫째는 보는 주체의 힘을 밝히는 것이니, 이른바 ‘다라니(陀羅尼, dhāraṇi)’라는 것은 중국어로는 총지(摠持)이니 염혜(念慧)로써 성품을 삼는다. 그러나 총지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법지(法持) 혹은 불지(佛持) 등이다. 여기서는 법지 등을 가려내기 때문에 불(佛)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 중에도 역시 법신ㆍ보신ㆍ화신이 있다. 여기서는 법신과 보신을 가려내고 다만 화불만 취하기 때문에 ‘모든 불화(佛化)’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부처님의 갖가지 형색 등은 모두 화신불이다.
둘째는 친견의 대상이 되는 부처님을 바로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불신을 뵙는 것이니 첫째는 동방(東方)을, 둘째는 아홉 방위를 미루어 헤아린다. 둘째, ‘갖가지’ 이하는 부처님의 작용을 뵙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부처님이 근기를 따라서 갖가지 의보와 정보를 나타냄을 보는 것이며, 둘째는 부처님이 중생에 대하여 결정코 법을 설함을 보는 것이다.
둘째,271) ‘선남자여’ 이하는 이름의 분제를 매듭짓는 것이다. ‘보문(普門)’은 별문(別門)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별문 중에 1방(方)ㆍ2방(方)ㆍ1불(佛)ㆍ2불(佛) 등을 뵙는 것이며, 모두 시방이라 칭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를 의지하지 않으므로 ‘보문’이라 이름한다. 이 문이 만약 열리면 두루 시방의 티끌 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을 두루 뵐 수 있으니, 본문에서 나타내는 바와 같다. ‘광명’은 뵙는 대상이 분명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문의 광명은 앞에서 말한 널리 비춘다는 것이다. ‘관찰’은 보는 바가 세심하기 때문이니, 이는 앞에서 말한 관찰이다. ‘정념(正念)’은 볼 때에 어지럽지 않기 때문이니, 이는 앞에서 말한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상은 능히 보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보는 대상이고, ‘삼매’는 저 보는 자가 의지하는 선정이다. 처음에 주위(住位)의 광명염불삼매(光272)明念佛三昧)에 들어가서 널리 부처님을 뵙는다는 것은, 부처님은 구경에 의지하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자분을 마친다. 부처님에 의지하여 비로소 다른 행을 이루기 때문이다.
다섯째,273) ‘어찌 능히……을 요달해 알겠는가’ 이하는 승진을 우러러 추천함을 밝히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총이며, 둘째는 별이다.
첫째 중에서 ‘어찌 능히……을 요달해 알겠는가’ 등은 스스로는 그에 대하여 실로 알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법을 알지 못하는가? 이른바 보살의 원만 등이니, 곧 지혜의 행이라 이름한다. 장애가 다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청정’이라 말하는 것이며, 덕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므로 ‘원만’이라 말하는 것이다.
둘째, ‘여러 대보살’ 이하는 따로 나타내는 것이니 스물한 가지가 있다. 각기 첫째는 얻는 정문(定門)을 드는 것이며, 둘째는 업용의 차별을 분별하는 것이다. 첫째 열은 염불(念佛)의 뛰어난 덕을 원만히 갖추었음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열한 구절은 염불의 묘용(妙用)이 자재하다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첫째274)는 부처님의 주반(主伴)의 의정(依正)을 모두 보기 때문에 ‘원만보조’라고 이름한다. 둘째275)는 부처님께서 중생으로 하여금 전도[倒]를 떠나는 덕이 생기도록 염하기 때문에 ‘청정’이라 말한다. 총 중에서 원(圓)과 정(淨)은 이에 의지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셋째276)는 부처님의 시처비처지(是處非處智) 등 10력(力)의 덕을 염(念)하는 것이니, 역시 대력나라연(大力那羅延) 등의 10력이다. 넷째277)는 부처님께서 법에 대하여 전도됨이 없음을 염한다. 능히 설하고 능히 수여하는 것은 역시 보살의 마음이니 법에 대하여 전도됨이 없기 때문에 능히 부처님을 뵙고서 법을 듣고 수지하는 것이다. 다섯째278)는 불해(佛海)의 지혜에 통달함으로써 여래를 분별하는 것이다. 능히 염하는 주체의 지혜를 기준으로 해서 이름한 것이다. 여섯째279)는 부처님의 미세한 경지를 염하는 것이니, 이른바 일념에 8상(相) 등을 갖추는 것이다. 전후에서 설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자재’라고 말한다. 아래 지위의 보살은 총체적으로 위 지위의 보살을 보지 못한다. 본다고 하더라도 능히 증입할 수 없으므로 이름하는 것이다. 일곱째280)는 부처님의 상주(常住)를 염하므로 ‘전도됨이 없는’이라고 말한다. 여덟째281)는 부처님께서 근기에 응하여서 일찍이 단절됨이 없었음을 염하는 것이므로 ‘수시(隨時)’ 등으로 말한다. 아홉째282)는 부처님께서 국토에 의지하여 몸을 나타냄을 염하는 것이고, 열째283)는 3세의 부처님을 다 염하는 것이다.
둘째, 묘용의 자재문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284)는 부처님께서 모든 차별 경계 중에 두루 가득함을 염하는 것이다. 둘째285)는 부처님의 열반하는 모습을 염하는 것이므로 ‘적정’이라 말한다. 셋째286)는 부처님께서 때[時]를 초월하면서도 때를 떠나지 않음을 염하는 것이다. 넷째287)는 부처님의 몸이 법계에 가득함을 염하는 것이므로 ‘광대’라 말한다. 다섯째288)는 부처님의 모공(毛孔)이 거듭 나타남을 염하는 것이다. 여섯째289)는 부처님께서 모든 곳에서 정각 이룸을 나타내기를 염하므로 ‘장엄’이라 이름한다. 일곱째290)는 부처님께서 빛을 비추어서 염오를 떠나 청정한 법륜을 굴리기를 염하는 것이다. 여덟째291)는 오직 마음으로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다. 아홉째292)는 염불로 말미암아서 짓는바 업을 보는 것이다. 마치 거울의 영상이 체(體)는 없으면서도 모습[相]이 있는 것과 같다. 염오에 집착함을 떠나기 때문에 ‘정업(淨業)’이라 말한다. 열째293)는 부처님의 수생(修生)의 공덕이 진여법계(眞如法界)를 장엄하기를 염하는 것이다. 열한째294)는 부처님의 큰 지혜 등의 공덕이 법계를 두루 비춤을 염하는 것이다.
10주의 제1위를 마친다.
둘째,295) 치지주(治地住)의 지위 중 다섯 가지 범주는 앞과 같다.
첫째, 법을 들어서 닦음을 권하는 것이다. 이 중에 앞에서 이미 스스로 알지 못함을 들고 있으니 누가 능히 아는가? 그러므로 여기서 뒤의 지위를 지시하여 닦아 들어가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이 중에 ‘해문(海門)’이라 한 것은, 이 나라는 남해에 가까이 있으니 성문(城門)이 바다를 향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또한 관해(觀海)의 문이 열려서 치지법계(治地法界)를 봄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비구’는 앞과 같다. ‘해운(海雲)296)은, 이 비구가 언제나 해안에 있으면 연기의 대해 및 저 바다 위에 인법(人法)의 장엄이 두루 덮고 있음이 구름과 같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 관찰의 대상으로부터 이름하는 것은 보리살타 등과 같다. 또 이 비구는 안으로 뛰어난 덕을 갖추어서 깊고 넓기가 바다와 같으며, 밖으로 모든 중생에 응하여 법을 내리는 것이 구름과 같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관찰의 대상이 되는 법계가 깊고 넓기가 바다와 같으며, 능히 관찰하는 주체의 큰 지혜가 두루함이 구름과 같다. 그러므로 대상과 지혜로부터 이름한다.297)
가기를 권하며 묻기를 가르치는 것은 앞과 같으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선남자여’ 이하는 그의 뛰어난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열 구절이 있으니 첫째 하나는 총이며, 나머지 아홉은 별이다.
‘인(因)의 선(善)을 갖춘다’는 것은 10지 이전의 선이고, ‘대지(大地)’는 10지이며, ‘대력(大力)’은 불지(佛地)이다. 그 다음 둘은 능히 인을 찬탄하여 증광하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 둘은 행원(行願)이 청정하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며, 그 다음 둘은 두 가지 이로움의 덕이 충만케 하는 것이다.
셋째, ‘때에 선재’ 이하는 공경을 드리고 하직해 가는 것이다.
둘째,298) ‘그때 선재’ 이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구함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마음에 법문을 염하는 것이다. 산란하게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며, 앞에서 얻은 바를 익히기 때문이며, 뒤의 지위를 희망하기 때문이고, 청정한 마음을 길이 기르기 때문임을 나타낸다. 둘째, 걸음[身步]을 점차로 옮겨서 뒤의 지위에 이르는 것이다.
셋째, 뵙고 나서 삼가 청하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공경을 드리는 것이며, 둘째는 아뢰어 청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자기의 뜻을 아뢰는 것이며, 둘째 ‘……을 알지 못합니다’ 이하는 바로 요구되는 바를 청하는 것이니 열 구절이 있다. 첫째 다섯 구절은 자행(自行)을 묻는 것이며, 둘째 다섯 구절은 이타행을 묻는 것이다. 하나하나에 각기 둘이 있으니, 이른바 범부를 등지고 부처를 향하는 것이며 생사를 버리고 불과를 향하는 것이다. 처음 하나는 전위(轉位)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나머지는 비유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그때 해운’ 이하는 법계를 내보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법기를 찬탄하여 법을 수여하는 방편으로 삼는 것이며, 둘째는 바로 법계를 보여서 그로 하여금 수학(修學)하도록 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 역시 둘이 있다.
첫째는 묻고 답하여서 살피고 정하는 것이다.
둘째 ‘선남자’ 이하는 바로 그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총체적으로 찬탄하는 것이며, 둘째 ‘보문……을 얻는다’ 이하는 따로 찬탄하는 것이다.
따로 찬탄하는 중에 첫째 열 구절은 능히 발하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른바 이러한 덕을 갖춘다는 것은 비로소 능히 발심하는 것이다. 둘째, ‘대비심’ 아래 열 구절은 발하는 마음의 덕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른바 이러한 열 가지 덕을 갖추는 것이 보리심이다.
첫째 중에서 첫째 ‘득(得)’ 자는 아래의 아홉 구절을 관철하는 것이며, 둘째 ‘자(者)’ 자는 역시 앞의 아홉 가지에 통하는 것이다. 그 첫째 ‘보문(普門)’과 ‘보조(普照)’ 등은 대체로 앞의 공덕운 처소에서 얻은 법이니, 또한 옛날부터 보현의 종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심(心) 중에는 증수(增數)로서 열한 가지299)가 있다. 처음의 넷은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마음이다. 첫째는 현재의 괴로움을 구하는 것이며, 둘째는 현재의 즐거움을 수여하는 것이고, 셋째는 장래의 괴로움을 멸하는 것이며, 넷째는 그러한 인을 제거하는 것이니 악업을 말한다. 그 다음 둘은 장애를 멸하는 마음이니 첫째는 번뇌장을 끊는 것이며, 둘째는 소지장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 다음 둘은 이치를 증득하는 마음이니 첫째는 정증지이며, 둘째는 후득지이다. 뒤의 셋은 부처님께 나아가는 마음이니 첫째는 불신(佛身)을 뵙는 것이며, 둘째는 부처님의 여량지(如量智)에 수순하는 것이고, 셋째는 부처님의 여리지(如理智)에 이르는 것이다.
둘째,300) ‘선남자’ 이하는 스스로의 법계를 보이는 것이니 이 중에 다섯이 있다. 첫째는 대해를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의 방편으로 삼는 것이고, 둘째는 법계의 걸림없는 의정(依正)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흐르는바 가없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넷째는 중생에게 전수하여 같이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섯째는 스스로 알고 있는 바를 맺는 것이니, 오직 하나만 알 뿐 나머지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12년(年)’은, 어떤 사람은 “12인연의 대해를 관찰하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보살의 12주(住)301)에 머물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이는 10주의 둘째이므로 ‘12’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바다를 관찰하는 중에 첫째 두 구절은 총체적으로 관찰의 대상과 관찰의 주체를 드는 것이며, 아래 열 구절은 따로 관찰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의 열 가지와 「십지품」302) 중의 대해(大海)의 열 가지 모습은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선남자여, 나는 이와 같이’ 이하는 거듭 헤아리고 살펴서 해문(海門)으로 하여금 열리게 하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을 짓고서’ 이하는 해문이 이미 열려서 법계의 의정을 봄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의보를 보는 것이고, 둘째는 정보를 보는 것이다.
첫째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연꽃’이 핌을 보는 것은 진정한 법계에 의지하여 정토가 집성(集成)함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백만의’ 이하는 겉모습의 장엄을 밝히는 것이다. 스무 구절이 있으니, 첫째 열한 구절은 중생세간의 장엄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아홉 구절은 기세간의 장엄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저 보련화’ 이하는 내는 인을 밝히는 것이니, 역시 지정각세간의 장엄이다. 이 중에 역시 열 구절이 있으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세간에 수순한다’ 이하는 맺으면서 다함없음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른바 진리에 의지하건대 오직 부처님 경계이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가히 설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방편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세간에 수순하여 설함도 역시 다함이 없는 것이다.
둘째303) ‘저 꽃 위를 보고서’ 이하는 정보의 불신(佛身)을 보는 것을 밝히는 것이니 스무 구절이 있다. 첫째 열 구절은 부처님의 과덕(果德)이 갖추어짐을 밝히는 것이며, 둘째 열 구절은 묘용이 자재함을 밝히는 것이다.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304) ‘때에……여래’ 이하는 흐르는바 가르침을 받아들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다섯이 있다.
첫째, ‘……의 정수리를 쓰다듬는다’는 것은 몸으로 가호하여 섭수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보안경(普眼經)305)……설한다’ 이하는 설하는 경법(經法)을 밝히는 것이다. ‘보안’은 언표하는 바를 따라서 명목으로 삼는 것이니, 이는 총체적인 이름이다. ‘오직 여래의 경계’ 이하는 열 가지 별명이다.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선남자여, 나는……부터’ 이하는 총체적으로 자기가 들은 바를 나타내는 것이다.
넷째, ‘가령’ 이하는 들은바 법이 넓음을 따로 분별하는 것이다.
다섯째, ‘나는 부처님 처소에서’ 이하는 스스로 널리 들은 지력(持力)을 갖고 있음을 따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열 가지 지력306) 중에서 모두 먼저, 듣는바 넓은 법을 드는 것이며, 뒤에서 능히 지니는 주체의 큰 힘을 분별하는 것이다. ‘큰 바다와 같은 먹’ 등으로 한 품(品)을 쓰더라도 다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 중에서 이러한 열 가지 지님[十持]은 저 「아승기품」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1200년에 하루하루 매일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보안경』은 곧 1승의 다함없는 수다라(修多羅)이기 때문이다.
넷째,307) ‘거기에 시방의……있다’ 이하는 중생에게 전수하여 한 가지로 이러한 법에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선남자’ 이하는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매듭짓는 것이다.
다섯째,308) ‘어찌 능히 다……을 알겠는가’ 이하는 승진분을 우러러 추천하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총체적으로 드는 것이며, 둘째 ‘무엇 때문인가’ 아래 열 구절은 따로 분별하는 것이다. 첫째 다섯은 자분의 행이며, 둘째 다섯은 불과의 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두 ‘해(海)’라고 말하는 것은, 이 비구가 다만 자기의 한 바다만 알 뿐이며, 다시 많은 바다가 있음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선지식을 추천하는 것이다.
둘째 치지주를 마친다.
셋째,309) 수행주(修行住)의 지위 중에도 역시 다섯이 있다.
첫째는 법을 들어서 닦음을 권유하는 것이다. 그 중에 ‘60유순’은, 옛사람이 “6바라밀행을 닦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해안국’은 이 나라가 해변에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산스크리트 사본에서는 ‘해안능가도(海岸楞伽道)’라고 이름하였으니, “이 나라는 모두 능가산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해 말하였다. 또한 뛰어난 법계의 피안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서는 해문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해안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선주(善住)’는 교묘하게 진리에 들어가 머무는 것이며, 또한 몸이 허공에 머물면서 행로(行路)에 걸림이 없으니 ‘선주’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가기를 권유하고, 묻기를 가르치며, 공손히 오른쪽으로 돌고 하직하며 물러나는 것 등은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략하므로 덕을 찬탄함이 없다.
둘째, ‘그때 선재’ 이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가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앞의 법을 억념하며 길을 따라서 가는 것이니 열 구절이 있다. 그 중에 처음에는 그가 가르친 법을 염하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그 뜻을 사유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법의 행을 수습하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깊이 들어가서 바로 증득하여 법을 거두어들이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다.
셋째, 뵙고서 삼가 청하는 중에 넷이 있다.
첫째, 그에 이르러서 그 의보를 보는 것을 추구한다.
둘째, ‘그……을 본다’ 이하는 정보를 봄을 밝히는 것이다. 지혜가 무상(無相)에 머묾으로써 몸은 허공에 노니는 것이다. 아래의 천(天) 등의 공양에 열 구절이 있으니, 권속의 행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그때 선재’ 이하는 친히 임하여 공경을 표하는 것이다.
넷째, ‘아뢰기를’ 이하는 자기의 청하는 뜻을 아뢰는 것이다. 첫째 열 구절은 법에 대하여 행을 일으킴을 묻는 것이고, 둘째 ‘나는 대성(大聖)……듣는다’ 아래 열 구절은 행이 뛰어난 작용을 일으킴을 묻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열 가지는 모두 미약함으로부터 현저함에 이르는 것이니,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열 가지 중에서 첫째 두 구절은 삼보를 떠나지 않는 행을 밝히는 것이며, 그 다음 ‘대원을 버리지 않는다’ 아래 두 구절은 두 가지 이로운 행을 밝히는 것이다. 그 다음 ‘불국토를 버리지 않는다’ 아래 두 구절은 부처님의 의보와 정보를 거두어들이는 행을 밝히는 것이고, 그 다음에 ‘유위를 떠나지 않는다’ 아래 두 구절은 자비와 지혜가 머무르지 않는 행을 밝히는 것이며, 마지막 ‘언제나……듣는다’ 아래 두 구절은 법을 거두어들이는 행을 밝히는 것이다.
넷째,310) ‘그때 선주’ 이하는 바로 법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 그가 법기를 발함을 찬탄하는 것이다.
둘째 ‘나는 이미……을 성취하였다’ 이하는 자기의 법계를 보인 것이다. 이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법문을 표방하는 것이니, 이른바 법계의 장애 없는 뜻을 증득하여 능히 일에 따름으로써 작용 역시 걸림 없는 것이다.
둘째, ‘나는 이미 닦아 익혔다’ 이하는 위의 법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는 위의 ‘성취’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니, 이른바 닦아 익혀서 명료하기 때문이다. ‘……얻는다’ 이하는 ‘무애’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른바 짓는 바를 비추는 것을 ‘걸림 없으며……지혜의 빛’이라 이름한다. 곧 열두 구절은 비추는 작용이 자재하여 걸림 없는 모습이다. ‘찰나(刹那, kṣaṇa)’는 중국어로 ‘염경(念頃)’이라 말하니, 손가락 한 번 튀길 사이에 60찰나가 있으며, 120찰나를 1달찰나(呾刹那, tat-kṣaṇa)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 사이는 순식간과 같다. 60달찰나를 1라바(羅婆, lava)라고 이름하고, 30라바를 1마후투로(摩睺妬路, muhūrta)라고 이름하니, 마후투로는 중국어로 ‘수유(須臾)’라고 말하며, 30마후투로는 하루[一日一夜]라고 이름한다.
‘무엇 때문인가’ 이하는 걸림없는 뜻을 해석하여 이루는 것이다. ‘무소유’라는 것은 이성(理性)에 칭합하기 때문이다. ‘지음이 없다’는 것은 공용이 없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 사본에는 ‘체성이 없으며 신력(神力)을 지음도 없음’을 이름한다.
셋째, ‘선남자여’ 이하는 법문의 업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통용(通用)을 드는 것이며, 둘째 ‘일념……에’ 이하는 속히 시방에 이르러서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여 법을 듣는 등의 행을 밝히고, 셋째 ‘만약 중생’ 이하는 중생을 이롭게 하여 공하게 하지 않는 행이다.
넷째, 이름을 맺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스크리트 사본에서 ‘득보속질불공초도구경무진보살해탈(得普速疾不空超度究竟無盡菩薩解脫)’이라 말하였으니, 해석해 말하면 속히 시방에 이르는 것을 ‘보질초도’라 이름하는 것이며, 부처님을 공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불공’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이 가없으므로 ‘구경무진’이라 말한다.
다섯째, 승진을 우러러 추천하는 것이니 그 가운데 둘이 있다. 첫째는 스무 가지의 정계(淨戒)를 따로 밝힌 것이요, 두 번째 ‘선남자야’ 이하는 총체적으로 헤아릴 수 없어서 모두 알 수 없음을 설한 것이다.
세 번째 수행주위를 마친다.
넷째,311) 생귀주(生貴住) 중에 다섯으로 나눔은 앞에서와 같다.
첫째, 법을 들면서 닦음을 권하는 것이다. 이 중에 나라는 통이며, 성(城)은 별이다.
‘자재’라고 이름하는 것은, 양의(良醫)가 여기에서 거두어들여 교화하는 것이 자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또한 이 지위 중의 종성은 존귀하여 불가에 태어남을 나타내므로 나라를 ‘자재’라고 이름하는 것이다.312)
성을 ‘주약(呪藥)’이라 이름한 것은, 이른바 이 성 중에서 삼매의 빛을 내어 무명의 어둠을 깨뜨리는 것이 주술로써 귀병(鬼病)을 제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윤자(輪字)의 법을 설하여 다른 번뇌를 깨뜨리는 것은 약으로써 다른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이 양의라는 것을 산스크리트 사본에서는 ‘달폐다(達閉多, dramiḍa)’313)라고 이름하였으니, 해석해서 말하면 이는 종족의 무리를 부르는 것으로 남천축에 있다. 중국의 오(吳)ㆍ초(楚) 등과 같은 무리이다. 다만 이 무리 중에서, 이 사람이 치료를 잘하기 때문에 능히 법약(法藥)으로써 미혹의 병을 잘 치료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땅히 무류위(無流位)에 해당하기 때문이며, 장애를 멸하고 뜻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미가(彌伽)’314)는, 중국어로는 구름으로 번역하니, 이른바 능히 법우(法雨)를 내려서 중생을 이익케 하므로 그렇게 이름한다. 간략하여 덕을 찬탄함이 없으니, 나머지는 앞에서 분별하는 바와 같다.
둘째, ‘그때 선재’ 이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가는 것이니, 앞에서 설한 법을 생각하여 성숙케 하며 원만케 하는 것이다. 열 구절 중에서 처음의 두 구절은 얻을 바와 갖출 바를 염하는 것이고, 그 다음 ‘……부처님을 바로 염한다’ 아래 두 구절은 귀의할 바와 떠날 바를 염하는 것이며, 그 다음 ‘선지식을 염한다’ 아래 두 구절은 구할 바와 제도할 바를 염하는 것이고, 그 다음 ‘모든……에 있어서’ 아래 두 구절은 번뇌를 보호하는 행을 밝히는 것이며, 뒤의 ‘모두 능히’ 아래 두 구절은 소승을 보호하는 행이니, 이로써 마음에 훈습하여 그 정행(正行)을 더하는 것이다.
‘점점……에 이른다’ 등은 나아가서 뒤의 처소에 이름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뵙고 공경하며 청함을 아뢰는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들어가서 의보를 보는 것이다.
둘째는 정보를 보는 것이다. 법당이 그 올바른 지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윤자장엄광경(輪字莊嚴光經)을 설한다’는 것은 설하는 교법을 밝히는 것이다. 어떤 사본에 ‘논(論)’자로 잘못 쓰고 있어서 여러 대덕들이 갖가지로 해석하고 있으나, 근래 두 가지 사본의 산스크리트 경을 교감해 보니, 모두 ‘윤(輪)’자로 되어 있었다. 청컨대 올바로 고치기를 바란다. 이른바 삼장(三藏)315)이 다음과 같이 해석하여 말씀하셨다.
“윤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자상(字相)을 기준으로 하면, 『능가경』316) 중에서 ‘자륜이 원만한 것이 마치 코끼리의 자취와 같다’고 한 것이다. 둘째 소전(所詮)을 기준으로 하면, 이치를 다하여 두루 갖춤이 수레바퀴와 같이 원만한 것이다. 셋째 작용을 기준으로 하면, 이른바 아래의 ‘말씀하는 바가 헛되지 않다’ 등은 전수(傳授)의 뜻과 미혹을 멸하는 뜻이 있음이 법륜 등과 같은 것이니, 곧 윤자(輪字)는 교법의 말로 나타남[詮示]이다. 장엄광은 행이니 장애를 제거함이 빛[光]이 되고, 이치를 증득함이 엄(嚴)이 되는 것이다.
셋째, ‘때에 선재’ 이하는 친근히 하면서 공경을 드리는 것이다.
넷째 ‘아뢰었다’ 이하는 정(情)을 아뢰어서 청하여 여쭈는 것이다. 물음 중에서는 처음의 두 구절을 총으로 삼고, 뒤의 열 구절은 별로 삼는다. 모두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317) ‘그때 양의(良醫)’ 이하는 법계를 보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법기(法器)를 공경하여 찬탄하는 것이며, 둘째는 자기의 법문을 수여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그의 발심을 헤아리는 것이다.
둘째는 공경히 예배하며 공양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예배하는가 하면, 옛 사람은 “법을 공경하며 사람을 존중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모든 제자가 법을 수행할 때는 법을 공경하므로 예를 차림을 밝히는 것이다”라고 해석하였으나 스승은 곧 그렇지 않아서 ‘이미 가르침에 통하는 덕이 있음’이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제자는 언제나 법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다만 몸으로 섬겨서는 예를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는 마음의 행이 밝혀지기 어렵기 때문에 모습을 나타내서 그것을 표방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도기(道器)를 공경하는 것이라 말하며, 또한 말학(末學)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이제 다시 해석한다. 보리심이 부처님의 인이 될 수 있으므로 그 과를 존중하여 그 인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경하는 것은 곧 보살행을 행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궤칙(軌則)을 나타내 보여서 대중으로 하여금 모방하여 배우게 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불과(佛果)의 대심(大心)은 족히 어렵지 않으나, 처음에 대심을 일으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경318)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발심과 필경(畢竟)의 둘은 다르지 않으나
이와 같은 두 가지 마음 중에서 발심이 더욱 어렵네.
스스로 아직 건너지 못했으나 먼저 다른 중생을 건너게 하므로
나는 초발심 보살에게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하는 것이네.

또한 이렇게도 해석한다. 이 마음은 희유하여서 능히 널리 출생하는 것이므로 경례하는 것이다. 새로 번역한 『법계무차별론(法界無差別論)』319)과 같으니, 보리심에 경례한다는 것은 세간 사람이 상현달이 처음 뜰 때[白分初月] 예배하면서도 만월(滿月)에는 예배하지 않음과 같다. 나타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만월은 이로 말미암기 때문이다.320)
셋째, ‘공경하고 존중하며’ 이하는 말 가운데 덕을 찬탄함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 열은 대심의 공능[功德能]을 찬탄하는 것이니, 처음의 둘은 불과(佛果)의 의정(依正)의 성품이 된다. ‘성품[性]’은 인(因)이니, 보리심이 인법(因法)이 되므로 모두 ‘성품’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 둘은 교화의 대상을 이루는 인이며, 그 다음 둘은 업행을 이루는 인이며, 그 다음 둘은 원지(願智)의 인이다. 이른바 원(願)은 언제나 유(有)에 따르고, 지혜는 언제나 욕망을 떠나는 것이다. 마지막 둘은 대과(大果)의 인이 되는 것이니, 이른바 보리와 열반이다.
둘째 ‘모든 부처님의……가 된다’ 아래 열 구절은 시왕(十王)을 위하여 공경하고 보호하는[敬護] 것이다.
셋째 ‘그는……안위하기 위하여’ 이하는 공경하고 보호함을 얻는 인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열 구절이 있으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321) ‘선남자여’ 이하는 대개 모든 보살의 뛰어난 덕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제시[法說]이며, 둘째 ‘보살이 대풍륜(大風輪)이……된다’ 아래 열세 구절은 비유를 기준으로 해서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 준하여 해석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322) ‘그때 양의’ 이하는 자기의 법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입에서 빛을 놓아 대중을 모으며, 법을 설하여 널리 이익케 하는 것이다. 둘째, 다시 본좌에 올라서 비로소 자기의 법계를 보이는 것이다.
【문】 앞에서 이미 예경하였는데, 여기서는 무엇 때문에 자리에 돌아오는가?
【답】 앞에서는 법을 수여하지 않았으니 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공경을 드림에 있어서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스승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니, 그러므로 자리에 돌아오는 것이다.
‘말하는 바가 헛되지 않다’는 것은, 말은 반드시 요익하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 사본에서 ‘득묘음다라니법문(得妙音陀羅尼法門)’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해석해서 말하면 곧 이 중에서 천룡(天龍) 등의 언어를 분별하여 안다는 것은 이것이다. 업용 및 이름을 매듭지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323) ‘어떻게 능히……을 설하는가’ 이하는 승진분을 우러러 추천하는 것이다. 그 중에 셋이 있다. 첫째 한 구절은 총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이며, 둘째 ‘저 모든 보살’ 이하는 따로 나타내는 것이다. 열 구절이 있으니 모두 언음(言音)과 자구(字句)와 시설(施設) 등이 번다하고 넓기가 바다와 같은 것이다. 승진분에 깊이 들어감은 자기가 능히 아는 바가 아니다. 셋째, ‘……을 얻는다’ 이하는 그가 얻는 깊고 미묘한 법을 맺는 것이다.
넷째의 생귀주를 마친다.
다섯째,324)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 중에 다섯으로 나눔은 앞에서와 같다.
첫째, 법을 들고 닦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이 중에 ‘주림(住林)’은 행의 덕이 건립함을 ‘숲[林]’이라 이름하고,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음을 ‘머문다[林]’고 일컫는다. 또한 이 장자는 대림장도(大林長道)의 장소에 머물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 삼매에 머무는 몸 안에 널리 부처님 경계의 의정(依正)의 인과를 나타내는 것이 숲과 같다. 장자를 ‘해탈’325)이라 이름한 것은 재물도 있으며 덕도 있으므로 ‘장자’라고 이름하고, 몸 안에 가없는 부처님 경계를 나타내서 선정의 작용이 자재하므로 ‘해탈’이라 이름한 것이다.
둘째, ‘그때 선재’ 이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 중에 첫째는 법의 훈수(熏修)를 염하는 것이고, 둘째 ‘이와 같이 염하고서’ 이하는 몸이 섭렵함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처음 한 구절은 총체적으로 앞의 법을 염하는 것이며, 둘째 ‘보살……에 들어간다’ 아래 여섯 구절은 이타행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보살의……견고히 한다’ 아래 열 구절은 자분의 행이 이루어짐을 밝히는 것이고, 넷째 ‘보안(普眼)……를 얻는다’ 아래 열 구절은 승진분의 행이 확립됨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몸이 노니는 중에 ‘12년’은, 옛사람이 “자분과 승진분에서 각기 6바라밀을 닦기 때문에 그렇게 표방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뒤에서 점점 뒤의 처소에 이르는 것이다.
셋째, 바로 공경하여 청하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 추구하여 간택하고 뵙고서 공경하는 것이다.
둘째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하는 뛰어난 욕락을 생하는 것이니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오랫동안 희망했으나 이제 비로소 뵙게 되기 때문이다. 아홉 구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아뢰었다’ 이하는 뜻을 아뢰어서 청해 묻는 것이다. 모든 본문이 먼저 모두 자기 힘으로 보리심을 발하였음을 서술하고, 그런 뒤에 법을 청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을 검토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법(大法)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보리심을 발해야 한다. 이 마음을 발하지 않는다면 법기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본문은 모두 먼저 반드시 발심하거나 혹은 선우가 거듭 묻는 것이니, 그런 뒤에 이를 설하여 불법의 큰 길로 삼는 것이다. 마땅히 생각하여 기억하라.
청함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스스로의 욕락(欲樂)을 아뢰는 것이며, 둘째 ‘저는 대성(大聖)의……듣습니다’ 이하는 덕을 찬탄하여 설함을 권유하는 것이고, 셋째 ‘오직 원하옵건대’ 이하는 청함을 맺으면서 설하도록 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 넷이 있다. 첫째 열 구절은 불보의 경계를 궁구(窮究)하고자 하는 것이며, 둘째 ‘모든 불법을 듣고서……하고자’ 아래 열 구절은 법보와 승보의 경계를 다 궁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각기 다섯 구절이 있으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인연……을 얻고자’ 아래 열 구절은 10장(藏)의 근원을 다 궁구하고자 함을 밝히는 것이며, 넷째 ‘모든 원을 원만히 하고자’ 아래 열 구절은 만행이 원만히 갖추어지도록 함을 밝히는 것이다. 한 구절이 빠져 있다.
둘째, ‘아뢰기를, 저는……듣습니다’ 이하는 덕을 찬탄하며 설함을 권유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능히 잘 가르쳐서 다른 보살로 하여금 장애를 떠나고 과를 얻게 함을 찬탄하는 것이고, 둘째 ‘그 마음’ 이하는 그 스스로의 마음이 언제나 청정하며 덕을 갖추고 있음을 찬탄하는 것이다.
셋째, ‘오직 원하옵건대’ 이하는 청함을 매듭짓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326) ‘때에 해탈 장자’ 이하는 법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선정에 들어가서 묵묵히 내보이는 것이고, 둘째는 선정에서 나와서 고하여 내보이는 것이며, 셋째는 오직 이 하나를 알고 있을 뿐임을 맺는 것이다.
첫째 중에 역시 셋이 있다.
첫째는 연(緣)을 갖추어서 정(定)에 들어가는 것이다. ‘문수……억념력(憶念力)’은 선재가 선우를 버리지 않는 힘이다. 국토를 거두어들이는 것327)은 대상을 따라서 이름을 삼는 것이다. ‘선지(旋持)’는 지혜로부터 이름하는 것이니, 저 국토를 거두어들여서 자기의 지혜에 따라 굴려서 함섭(含攝)하여 총체적으로 지니는 것이므로 이름하는 것이다.
둘째, ‘들어가서’ 이하는 법계의 업용의 걸림없는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몸 안에서 부처님을 나타내는 것이니, 세 가지 세간의 실보(實報)의 인과이다. 둘째, ‘혹은 한 국토에서’ 이하는 부처님의 8상(相)의 방편교화[權化]가 중생을 거두어들임을 나타내는 것을 밝힌다.
셋째, ‘선재……는 모두 듣는다’ 이하는 선재가 앞의 법계에 들어가서 저 몸 안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고, 또 저 몸 안에서 부처님의 신력(神力) 등을 봄을 밝힌다.
둘째,328) ‘그때 해탈’ 이하는 정에서 나와서 고하여 내보이는 것이다. 이 중에 역시 셋이 있다. 첫째는 법문의 체(體)를 열거하는 것이며, 둘째는 업용을 분별하는 것이고, 셋째는 닦음을 권해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 ‘무애(無礙)’에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하나하나의 여래에 각기 모든 걸림 없는 장엄을 갖추고 있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하나의 여래가 서로 두루하여 걸림없는 것이다. 셋째는 모든 여래의 장엄은 모두 이러한 장자의 몸 안에 들어가는 것이고, 넷째는 장자가 시방의 불해(佛海)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 넷을 갖추고 있으므로 ‘무애’라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법문을……얻어서’ 이하는 바로 업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간략히 시방의 각각 방위에 찰진(刹塵)의 부처님께서 계심을 보는 것이다.
둘째, ‘……만약 안락……를 보고자 한다면’ 이하는 마음을 따라서 모든 부처님을 널리 보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여기에 오시지 않으면서도 이로 하여금 보도록 하는 것이니, 이는 거기에 가지 않으면서 언제나 그것을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걸림 없는 것이다.
셋째, ‘모든……를 안다’ 이하는 왕래하지 않고서 지견(知見)하는 까닭을 해석한다. 그 중에 먼저 해석함에 다섯 가지 짝이 있다.
첫째 한 짝은 표방이고, 이하는 해석이다. 무엇을 좇아서 이르러 오는 바가 없다고 한다면 봄[見]의 주체와 봄의 대상이 모두 꿈속에 있으니 각기 자체(自體)가 없는 것이다. 어느 곳에 오는가 하면 꿈에 처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체를 기준으로 해서 해석하는 것이다.
둘째 짝 중에 ‘번갯불과 같다’ 등은 부처님의 대용(大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니,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물을 비추어서 그림자를 나타내는 것이니 근기에 응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어둠을 깨뜨리고 도를 보는 것이니 중생의 장애를 멸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가히 집지(執持)할 수 없는 것이니 상(相)을 떠남에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속히 멸하여 머물지 않으니, 세간에 거두어지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의 물이 맑고 고요하다면 능히 그 상(像)을 나타내는 것이니, 물은 가지 않으며 번갯불도 오지 않지만 상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의 여환대(如幻對) 중에서는 환심(幻心)이 걸림 없기 때문에 능히 걸림 없는 환불(幻佛)을 나타내는 것이다. 환신(幻身) 내에서 많은 환불을 나타내는 데 장애가 없는 것이다. 이는 연기상유문(緣起相由門) 중의 자재의 뜻이니, 준하여 생각해 보라.
넷째 여향대(如響對) 중에서는 위에서 들은 부처님의 설법하는 음성 등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안다’ 이하는 앎을 맺는 것이다. 증입(證入)하기 때문에 자재를 얻는다.
넷째,329)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이하는 통틀어서 맺는 것이다. 짓는 바가 모두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경계가 일체를 두루 원만히 하는 것이다. 다만 마음의 때[垢]로써 대하면 보이지 않으나, 만약 스스로의 마음을 닦아서 장애를 떠나고 정을 얻는다면 모든 부처님의 경계가 그 자리에서 문득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셋째,330) ‘그러므로 선남자여’ 이하는 그의 수학(修學)함을 권하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설한 바가 자심(自心)으로 말미암아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권함에 열 가지 법으로써 자기 마음을 닦는 것이니, 이른바 첫째는 선(善)으로써 마음을 기르는 것이고, 둘째는 법으로써 마음을 윤택케 하는 것이다. 셋째는 대상에 대하여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며, 넷째는 부지런함으로써 마음을 경책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정으로써 마음을 거두는 것이며, 여섯째는 지혜로써 마음을 씻는 것이다. 일곱째는 지혜로써 마음을 반조해 보는 것이며, 여덟째는 법으로써 마음을 순숙케 하는 것이다. 아홉째는 부처님 과보의 마음과 같아지는 것이며, 열째는 10력(力)으로 마음을 비추는 것이다.
이하는 자기는 오직 하나만 알 수 있을 뿐임을 매듭짓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는 승진분을 우러러 추천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 한 구절은 총이며, 그 다음 다섯 구절은 행의 체가 걸림없음을 따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 다음에 ‘모든 방위……에서’ 이하는 행의 작용이 자재함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본문의 우러러 추천함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곧 자기 법문의 안에서 다시 깊고 세밀함이 있으니 자기가 능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곧 이러한 본문 및 앞의 지위 등과 같은 것이다. 둘째는 다른 유(類)의 법문은 자기가 능히 알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추천하는 것이다. 앞의 제3주 중에서 보살계 등에 미루는 것과 같다. 아래 위의 모든 본문은 모두 여기에 준하여331)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주를 마친다.
여섯째,332) 정심주(正心住)이다.
첫째는 법을 들어서 닦음을 권유하는 것이다. 그 중에 나라를 ‘정(頂)’333)이라 이름한 것은, 이곳이 염부제의 가장 남쪽에 있기 때문에 ‘정’이라 말하는 것이요, 여섯째 반야의 궁극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해당(海幢)’334)은, 옛사람이 말하기를 “선정이 깊기가 바다와 같으며, 지혜가 뛰어나기가 당(幢)과 같다”라고 하였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선정의 몸이 홀로 벗어남을 ‘당(幢)’이라 이름하고, 업용이 많으므로 ‘바다[海]’라고 말하는 것이다.
공경하며 하직하고 물러나는 중에서 덕을 찬탄하며, 슬피 운다는 것은 이미 무시이래(無始以來)로 선우를 만나지 못했음을 슬퍼하는 것이며, 이제 심원(心原)에 계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반야문(般若門)을 지시한 것은 은혜를 입은 것이 깊기 때문이다.
둘째, ‘그때 선재’ 이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가는 것이니, 이른바 앞을 염하며 뒤로 나아가는 것이다.
염하는 중에 첫째 두 구절은 총이다. 그 아래 열 구절은 별이니, 첫째는 능히 들어가는 지혜이며, 둘째는 증득의 대상이 되는 이치이다. 셋째는 거두어지는 덕이며, 넷째는 일어나는 작용이다. 그 다음 넷은 찰해(刹海)를 요달해 아는 것이며, 마지막의 둘은 행원을 수지하는 것이다. 모두 해탈의 업용을 알기 어려우므로 한 가지로 ‘부사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셋째는 점차 나아가서 뒤에 이르는 것이다.
셋째,335) 뵙고 공경하며 청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저 의보를 보아서 추구하며 간택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보를 보고서 고요한 곳에서 선(禪)에 안주하는 것이다.
넷째, ‘삼매정수(三昧正受)’부터 이하는 바로 법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중에 일곱이 있다. 첫째는 법체를 분별하는 것이며, 둘째는 법계의 업용을 보이는 것이다. 셋째는 선재로 하여금 법계를 관찰하여 증득케 하는 것이고, 넷째는 선정에서 나와서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묻고 답하여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고, 여섯째는 묻고 답하여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일곱째는 오직 하나만 알고 있을 뿐임을 맺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몸이 편안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마음이 공적하여 깨달음이 없다’는 것은 7전식(轉識)은 이미 쉬고, 오직 제8식만이 몸을 지니는 것이다. 선정 이전 가행(加行)의 서원력 때문에 정신(定身)에 있어서 모든 업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원교라면 법계를 융섭하여 자재함이 걸림 없기 때문에 업용이 무방(無方)하면서도 일찍이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열네 가지가 있다.
첫째 ‘발바닥’에서 ‘장자’ 등 대중을 낸다는 것은 수행의 처음은 보시로써 으뜸을 삼음을 밝힌 것이다.
둘째, ‘양 무릎’으로부터 ‘찰리(刹利)’ 등을 낸다는 것은, 갖추어 말하면 찰제리(刹帝利, kṣatriya)이다. 찰(刹, kṣatra)은 중국어로는 ‘땅’이며,336) 제리(帝利, īya)337)는 중국어로는 ‘주(主)’이니 곧 왕 종성이다. 왕 종성은 복으로써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며, 바라문은 지혜로써 교화하여 인도하는 것이다.338)
셋째, ‘허리’에서 ‘선인(仙人)’을 낸다는 것은 단견과 상견에 많이 집착하기 때문에 ‘양쪽’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삼기장(三岐杖)’은 위에 있으면서 안거하는 것이며, ‘병(甁)을 지닌다’는 것은 깨끗하게 씻는 데 쓰는 것이다. 인도[西域]의 외도(外道)는 이러한 병과 지팡이를 많이 지니고 있다.
넷째, ‘옆구리’에서 ‘용’을 내는 것이다.
다섯째, ‘가슴의 덕(德)자’에서 ‘아수라’를 낸다.
여섯째, ‘등[背]’에서 ‘2승(乘)’을 낸다는 것은 대승의 정면과 서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탐착하기 때문에 자심관[慈觀]으로 다스리는 것이고, 무정물(無情物)에게 화를 내기 때문에 연기관(緣起觀)을 가르치는 것이며, 사견의 어리석음 때문에 교관(巧觀)339)을 가르치는 것이다. 법체에는 두 가지 아가 없다.
일곱째, ‘어깨’에서 ‘야차’340)를 내는 것이다.
여덟째, ‘배’에서 ‘긴나라’341) 등을 내는 것이다.
아홉째, ‘입’에서 ‘전륜성왕’을 내는 것이다.
열째, ‘두 눈’에서 ‘해[日]’를 내는 것이다.
열한째, ‘미간’에서 ‘제석(帝釋)’342)을 내는 것이다.
열두째, ‘이마’에서 ‘범왕’을 내는 것이다.
열셋째, ‘머리’에서 ‘보살’을 내는 것이니 10바라밀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열넷째, ‘정수리 위’에서 ‘부처’를 낸다는 것은 궁극적인 과가 존승(尊勝)함을 밝히기 때문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 열두 가지는 보살의 무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며, 둘째 스무 가지는 잡류의 무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첫째 ‘평등법(平等法)’은 도량의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불과를 이루어서 모든 옛 부처와 가지런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보문법(普門法)’은 인위(因位)가 이미 원만하니 별(別)을 거두어들여서 보(普)로 돌아가는 것이다.
셋째, ‘보장엄법(普莊嚴法)’은 관정(灌頂)과 수직(受職)으로써 두루 법문을 장엄하여 제9위(位)를 수여하여서 그로 하여금 수학케 하는 것이다.
넷째, ‘견고산법(堅固山法)’은 제8주 중에서 3업이 허물을 떠나서 움직이지 않음을 이루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부동지(不動地)의 보살을 버리지 않으면서 나아가 제9의 무애의 설법을 받아들이니, 그러므로 견고하기가 산과 같다는 것이다.
다섯째, ‘해장(海藏)’은 제8주의 무생장해(無生藏海)이니 제7주를 수여하여서 그로 하여금 수학케 하는 것이다.
여섯째, ‘보경계법(普境界法)’은 7주 중에서 선교(善巧)가 두루한 소연(所緣)의 경계 법주로써 제6주를 수여하여 그로 하여금 수학케 하는 것이다.
일곱째, ‘자성지음성법(自性地音聲法)’은 6주 중에 찬훼(讚毁)의 자성(自性)에 다만 언성(言聲)만 있어서 5주에 수여하는 것이니 그로 하여금 수학케 하는 것이다.
여덟째, ‘수순세간법(隨順世間法)’은 제4주로 하여금 5주의 세간에 따르는 5명(明)343) 등 법을 닦아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아홉째, ‘염리법(厭離法)’은 제3주로 하여금 세간을 염리케 해서 제4의 출세주(出世住)를 향해서 머물기 때문이다.
열째, ‘장양법장(長養法藏)’은 이로 하여금 제3주의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의 매우 깊은 법을 수지케 하기 때문이다.
열한째, ‘정진법(精進法)’은 이러한 초심(初心)을 경책하여 다시금 닦아 나아가서 뒤의 지위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열두째, ‘신행(信行)’은 앞의 신(信) 중의 보살을 무엇 때문에 보살이라 말하지 않는가 하면 지위를 이루지 않고344) 다만 행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무진법(無盡法)’은 보현의 가없는 행을 닦기 때문이다.
【문】 본문에 준하여 의지하건대, 10주의 원만함 뒤에 곧 도량에 이르러 부처를 이루어서 10행 등을 설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째서인가?
【답】 이는 보현의 10주가 뒤의 여러 지위를 거두어들여서 모두 이 중에 있는 것이다. 한 지위가 곧 일체 지위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한 지위가 원만히 된 뒤에는 곧 불지(佛地)에 이르는 것이다. 위와 같이 10행 등의 뒤에서 성불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이는 지위에서 지위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만약 행으로써 지위를 거두어들이면 곧 10신의 만심(滿心)에서 성불하는 것345)이니 「현수품」346)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이러한 하나의 길은 원교가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는 총체적으로 없는 것이다. 반드시 1승종(乘宗)의 대례(大例)인 것이다.
그 아래 스무 가지는 모든 하늘이 법계에 들어가는 그릇이 되는 것이니, 이는 세법(世法)이 아니다.
첫째, 색구경천(色究竟天)347)이 비록 장수한다 하더라도 마침내는 다함이 있음에 돌아가나 이제 법신평등(法身平等)의 다함없는 법을 설하는 것이다.
둘째, 초선천(初禪天)의 범왕(梵王)348)은 자비가 있어도 두루하지 않으니, 대자(大慈)를 설하여서 두루 중생을 덮는 것이다.
셋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349)은 비록 세간 중에서 큰 힘이 있더라도 마침내 멸해져서 없어짐에 돌아가니, 법신을 설하여 선근의 힘을 생하게 하는 것이다.
넷째, 정법의 깃대를 세우고 그의 사심(邪心)을 항복하는 것이다. 이 역시 타화자재천이 거두어들이는 바이다.
다섯째, 화락천(化樂天)350)이 스스로 낙구(樂具)를 화작(化作)하기를 염하니 정념(淨念)을 설하여서 법문(法門)을 염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섯째, 출세의 청정한 의요를 설하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집수(執手)의 염심(染心)을 멀리 여의게 하는 것이다.
일곱째, 야마천(夜摩天)의 즐거움은 마침내 무상(無常)으로 돌아가니 출세간 진법(眞法)의 환희를 설하는 것이다.
여덟째, 그가 지거(地居)351)의 유위(有爲)의 장엄에 집착하니 복지(福智)의 장엄이 성공(性空)임을 설하는 것이다.
아홉째, 이러한 야차로 하여금 악을 버리고 중생의 목숨을 보호하게 하므로 ‘환희’라고 말하는 것이다.
열째, 그의 권352)속인 여러 하늘이 자재롭지 않으니 출세간의 법락이 원만하여 다른 것에 소속되지 않음을 설하는 것이다.
열한째, 아수라의 대력은 하늘에 굴복되는 바이니 출세간의 법신은 대경물(大境物)이라도 다른 것이 능히 지날 수 없음을 설한다.
열두째, 저 금시조(金翅鳥)353)가 비록 힘이 있더라도 다만 한 세계에 노닐기 때문에 이제 법신의 금시조가 무량세계를 덮음을 설한 것이다.
열셋째, 긴나라는 즐거움을 짓지만 어리석게 집착하여 이익이 없으니 출세간의 뛰어난 지혜가 중생을 이익케 하여 자타가 함께 즐거워함을 설하는 것이다.
열넷째, 인왕(人王)은 세간의 5욕에 즐겨 집착하니, 욕망의 허물을 설하여 ‘불가락(不可樂)’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열다섯째, 용에게는 열사(熱沙)ㆍ금시조 등의 걱정354)이 있으니, 무아를 설하여 그로 하여금 환희케 하는 것이다.
열여섯째, 마후라가(摩睺羅伽)355)의 악성(惡性)은 일 중에서 다툼의 인을 좋아하는 것이니, 곧 매우 깊은 적정을 설하는 것이다.
열일곱째, 지옥은 괴로움이 핍박하고 마음이 어지러우니 법을 설하여서 마음을 편안케 하고 올바른 염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열여덟째, 지혜를 설하여 어리석음을 다스리는 것이다.356)
열아홉째, 염라왕357)의 처소에는 갖가지 괴로움이 다 갖추어져 있어 가히 두려워할 만하니, 법을 설하여 그것을 제거하므로 ‘무외(無畏)’라고 말하는 것이다.
스무째, 아귀는 기갈이 들어서 언제나 악을 희망하니 법을 설하여 그 반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하는 위에서 설하는 바를 맺는 것이다. 모두 출세간의 현성(賢聖)의 문을 향하며 방광(放光)으로 이익을 밝히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358) ‘그때 선재’ 이하는 선재가 관찰하여 법을 얻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 비구의 몸을 관찰하는 것은 사람의 법계를 증득함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저 삼매……을 염한다’ 이하는 법의 법계를 증득하는 것이니, 네 구절이 있다.
첫째 한 구절은 저 법체를 염하는 것이며, 둘째는 업용의 헤아리기 어려움을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는 그 대용(大用)이 깊고 넓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무량(無量)’이라 말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열네 곳의 소출(所出)이 넓고 많음을 밝히기 때문이고, ‘무작(無作)’이라 말하는 것은 공용(功用)을 짓지 않음을 밝혀서 그 매우 깊음을 나타내니, 넷째 ‘법계의……를 관찰한다’ 이하는 법이 일으키는 인을 밝히는 것이다. 이른바 ‘법계의 장엄지혜’는 인의 힘이며,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한다’는 것은 연의 힘이고, ‘……을 낸다’ 등은 짓는 일을 나타내는 것이다. 선재가 자세하게 그 근본을 얻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갖추어 알아야 할 것이다.
넷째,359) 선정에서 나와서 덕을 찬탄하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 선정에서 나온다는 것은 이익되는 일을 마친 것이다. ‘6월 6일’이라고 한 것은 제6주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때 선재’ 이하는 말 중에서 덕을 찬탄함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 열 구절은 삼매의 체가 깊고 넓어서 덕을 갖춤을 찬탄한 것이다. 둘째, ‘대성(大聖)이시여, 그에게는……있습니다’ 이하는 업용을 찬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아래에 말한 3도(途:3악도)와 인천(人天) 등을 구제함을 찬탄하는 것이고, 둘째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위의 보살을 이익케 하는 작용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른바 신행을 좇아서 끝내 도량 등에 이르는 것이다.
다섯째,360) 묻고 답하여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 답에는 세 가지 이름이 있다. 첫째는 총이니, ‘보안평등법문(普眼平等法門)’361)이라 이름하는 것은 법계를 보기 때문이다. 장애를 다하지 않음이 없으니 ‘사(捨)’라고 말하며, 이치를 증득하지 않음이 없으니 ‘득(得)’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둘째, ‘정반야(淨般若:淸淨光明般若波羅蜜經)’는 지혜를 기준으로 해서 장애를 떠나는 것이다.
셋째, ‘정엄(淨嚴:淸淨莊嚴普門)’은 경계를 기준으로 해서 증득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하는 서는 까닭을 해석하는 것이니, 진실로 이러한 덕이 그 여섯째 반야의 지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섯째,362) ‘대성이시여’ 이하는 묻고 답하여 업용을 분별하는 것이다. 답 중에 스물세 구절이 있다. 첫째, 여섯 구절은 기세간의 자재를 밝히는 것이고, 둘째 ‘모든 부처님을 본다’ 아래 열한 구절은 지정각세간의 자재를 밝히는 것이며, 셋째 ‘대비로 거두어들인다’ 아래 여섯 구절은 중생세간의 자재를 밝히는 것이다.
일곱째,363) 자기는 오직 하나만 알고 있음을 맺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364) 승진으로 우러러 추천하는 가운데 셋이 있으니, 첫째 한 구절은 총체적으로 추천하는 것이며, 둘째 ‘모두……깊이 들어간다’ 이하는 별이고, 셋째 ‘나는 아직도 능히……없다’ 이하는 능히 알지 못함을 맺는 것이다. 행을 쌓아서 덕을 이루는데 행을 아직 알지 못하니 하물며 이루는 덕에 있어서랴.
여섯째 주를 마친다.
일곱째,365) 불퇴주(不退住)이다.
첫째, 법을 들어서 닦음을 권유하는 것이다. 이 중에 ‘해조(海潮)’는 따로 머무는 곳을 나타내는 것이니 큰 바다에 가까워서 파도가 이르는 곳이다. 이는 일곱째 교묘한 방편[巧便]이 근기에 나아가서 작용함에 한계를 넘어서지 않음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원림(園林)’은 모든 행이 건립하는바 머무는 곳이고, ‘보장엄(普莊嚴)’은 뛰어난 덕이 원만하게 갖추어지는 것이다. ‘우바이(優婆夷)’는 자비의 모습이다. ‘휴사(休捨)’는 『지론(智論)』 제8권366)에서 ‘호사라(呼捨羅)’라고 이름하였다. 산스크리트 사본[天竺本]을 살펴보니, ‘아사(阿舍, Āśā)’라고 이름하였다. 중국어로 번역하면 ‘의락(意樂)’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또 ‘만원(滿願)’이라고도 이름하는 것이니 능히 모든 중생의 원을 원만히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가기를 권유하며 묻기를 가르치는 것이고, 셋째 ‘때에 선재’ 이하는 자기가 얻은 바를 감사하면서 공경하며 하직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둘째, ‘그때에 선재는 바로……를 염한다’ 이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공손히 인법(人法)을 염하는 것이며, 둘째 ‘또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그 뛰어난 덕의 몸을 뵙고서 점점 유행(遊行)하는 것이다.
셋째, ‘해조……에 이르러서’ 이하는 뵙고서 공손하게 청함을 밝힌다. 이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의보를 보는 것이며, 둘째는 정보를 보는 것이고, 셋째는 예배드리며, 넷째는 청함을 아뢰는 것이다.
첫째 중에는 열세 가지가 있어서 이 원림을 장엄하는 것이다. 첫째는 보배 담장이며, 둘째는 꽃나무이다. 셋째는 당(堂)이고, 넷째는 각(閣)이다. 다섯째는 전(殿)이며, 여섯째는 연못이다. 일곱째는 큰 궁전이 있는 것이며, 여덟째는 궁전 안에 열 가지 의자가 있는 것이다. 아홉째는 보배 장막[帳]이 의자를 덮는 것이며, 열째는 보배 그물이 장막을 덮는 것이다. 열한째는 광명이 두루 비치는 것이며, 열두째는 열 가지 전광(電光)이 있는 것이고, 열셋째는 백 가지 구름이 장엄하는 것이다.
둘째, ‘때에……우바이’ 이하는 정보의 장엄을 분별하는 것이다. 이 중에 셋이 있으니, 첫째는 뛰어난 덕으로 몸을 장엄하는 것이다. ‘길유라(吉由羅, keyūra)’367)는 중국어로 비인(臂印)이라고 말하며, 장엄이다. 둘째는 권속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셋째 ‘그……보는 것을……있다’ 이하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헛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그때’ 이하는 선재가 바로 예를 차림을 밝히는 것이다.
넷째, ‘아뢰었다’ 이하는 청함을 아뢰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368) ‘답하였다’ 이하는 바로 법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법문의 체용(體用)을 열거하는 것이며, 둘째는 인연의 두터움과 엷음을 밝히는 것이고, 셋째는 장차 오게 될 과[來果]의 멀고 가까움, 넷째는 법문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 중에 넷이 있다. 처음 한 구는 법문의 체를 드는 것이며, 둘째, ‘만약……을 보고 듣는다면’ 이하는 그 뛰어난 작용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동방의’ 이하는 부처님이 이익 입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넷째 ‘나는 이러한 대중에게’ 이하는 권속의 행이 이루어짐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지나간 인의 두터움과 엷음 중에서 첫째는 묻는 것이며, 둘째는 답하는 것이다. 답 중에 둘이 있으니, 첫째는 과거에 섬긴 모든 부처님을 드는 것으로 『열반경』369) 중에 8항(恒)의 불소(佛所)인데 이 지위 중에는 그보다 많다.
둘째, ‘……를 요달해 안다’ 아래 열 구절은 이루는 법계의 행덕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장차 오게 될 과의 멀고 가까움 중에서도 역시 먼저는 묻고 뒤에는 답하는 것이다. 답 중에 셋이 있으니, 첫째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발심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을 교화하고자’ 이하는 바로 제한이 없는 일을 짓기 위해서 발심하는 것이다. 이 중에 각기 열네 가지 일이 있으니, 서로 번역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이하는 스스로의 수행을 맺는 것이다. 제한이 없으므로 스스로 성불할 기약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어찌 가히 이루겠는가?
【답】 보살천제(菩薩闡提)370)도 역시 이루지 않기 때문이요, 중생은 모름지기 이루어서 역시 이룸을 나타내기 때문이니, 스스로 이치를 증득함에 비교하면 이룸과 이루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법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 중에 첫째는 물음이며 둘째는 답이다. 이른바 ‘이우안온당(離憂安隱幢)’은 대심(大心)은 다겁에 괴로움을 만나더라도 걱정이 없으며, 바른 행을 닦아서 안온하며 게으르지 않고, 큰 지혜가 홀로 빼어났으므로 ‘당’이라 말하는 것이다. 산스크리트 사본에서는 ‘무우건립당(無憂建立幢)’이라 이름하였다. ‘나는 오직’ 이하는 자기를 맺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371) 우러러 추천하는 중에 둘이 있다. 첫째 한 구절은 총체적으로 거론하는 것이며, 둘째 ‘모든 보살의 마음’ 아래 아홉 구절은 따로 행덕(行德)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이하는 총체적으로 맺는 것이다.
제7주를 마친다.
여덟째,372) 동진주(童眞住)이다.
첫째, 법을 들어서 닦기를 권하는 것이다. 나라를 ‘해조(海潮)’라고 이름한 것은, 비록 파도를 일으키지만 바다에는 증감(增減)이 없으니, 이 지위가 증감이 없는 법계를 얻음을 표방하는 것이다. 또한 이치를 증득하고 자비를 일으키는 것이 바다가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 앞의 처소와 같다는 것은 제7주 이상은 모두 보살임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선인(仙人)’은 여덟째 동진의 청결한 모습을 표방하는 것이다. 또한 순수하여 무루(無漏)임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직 반역신(反易身)373)임을 표방하기 때문에 8지(地)와 같은 것이다. ‘비목다라(毘目多羅)’는 산스크리트 사본에서는 ‘비목다라습구사(毘目多羅濕374)懼沙, Bhīṣmottaranirghoṣa)’라고 이름하였는데, 중국어로는 ‘최상무공포성(最上無恐怖聲)’으로 번역하였다. 위의 본문375)에서 부처님의 처소를 찬탄하여 “일체지(一切智)의 미묘한 소리로써 가없는 중생계를 안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러한 이름을 얻은 것이다.
둘째, 덕을 찬탄하고 가기를 권유하며 묻기를 가르치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선재가 은혜를 입고 나서 공경히 하직하는 말 중에 열한 구절이 있다. 그 중에 첫째 한 구절은 총376)이며, 다른 열 구절은 별이다. 첫째는 대승의 진실한 벗은 잠시 만나는 것도 역시 어려우니, 둘째 하물며 한 곳에서 오래도록 머무는 것이겠는가. 이 두 가지는 선우는 만나기 어려운 것인데 만났다는 것이다. 셋째, [비록 만나기 어려운 벗을 만났다고 하더라도]377) 만약 스스로 대승의 근기(根器)가 없으면 역시 이루지 못하므로 ‘보살의 근기를 얻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넷째는 비록 근기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정직한 진심(眞心)을 발하는 것 역시 어려운 것이다. 다섯째는 비록 이러한 인을 갖추었다고 해도 행을 같이하고 원을 같이하여 선지식과 함께하는 것은 다시 더욱 어렵다. 이러한 두378) 가지는 법기를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섯째는 바로 법신을 얻는 것은 증득하기 어려운 것이며, 일곱째는 바로 법신을 설하는 것은 듣기 어렵다. 이러한 둘은 법의(法義)를 얻기 어려운 것이다. 여덟째는 대심(大心)을 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고, 아홉째는 과지(果智)를 구함이 어려운 것이며, 열째는 대행(大行)을 기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셋은 마음의 행을 갖추기 어려운 것이다.
둘째,379) ‘그때’ 이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가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앞의 법을 염하는 것이니, 첫째 구절은 총이다. ‘마음은 능히……을 길이 기른다’ 아래 열 구절은 따로 염하는 바를 나타내는 것이다. 모두 ‘마음이 능히’라고 말하는 것은, 마음이 만약 청정하면 곧 행을 이루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르침에 수순하여 심법(心法)의 공능(功能)을 염하는 것이다. 처음의 둘은 마음을 행의 연으로 삼는 것이며, 그 다음 둘은 마음이 능히 행을 일으키는 것이고, 그 다음 둘은 마음이 능히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 둘은 마음이 능히 정혜(定慧)를 이루는 것이며, 마지막 둘은 마음이 능히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다.
둘째, ‘점점 유행하여’ 이하는 바로 뒤의 지위에 나아가서 추구하며 간택하는 것이다.
셋째,380) 뵙고 공경하며 청하는 중에 다섯이 있다. 첫째는 의보를 보는 것이며, 둘째 ‘그때 선재는 저……를 본다’ 이하는 정보를 봄을 밝히는 것이다.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등은 욕심이 적은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예를 차리는 중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는 공경의 극치인 것이다. 넷째, ‘선지식……을 염한다’ 이하는 뛰어난 염상(念想)을 일으키는 것이니 열 구절이 있다. 처음의 다섯 구절은 그가 능히 작성하는 인을 염하고, 뒤의 다섯 구절은 그가 비지(悲智)로써 교묘하게 운도(運度)함을 염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렇게 생각한다’ 이하는 공경하여 위요하며 청함을 아뢰는 것이다.
넷째, ‘때에 저 선인’ 이하는 법계를 보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발심을 찬탄하여 법을 수여하는 방편으로 삼는 것이니,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선인이 찬탄하는 데 열 구절이 있으니, 선재의 큰 뜻이 짓는 덕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권속이 공경하며 예배하고 찬탄하는 데 역시 열 구절이 있으니, 선재가 널리 중생을 이익케 함을 밝히는 것이다. 셋째, ‘때에 저 선인이 대중에게 고하여’ 이하는 대심이 장차 큰 과를 이룰 것을 맺으며 찬탄하는 것이다.
둘째, ‘선재에게 고하여’ 이하는 바로 법계를 수여하는 것이다. 이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법문의 이름381)과 체를 나타낸다. 이러한 지위 중에서 공용의 겉[表]을 높이 벗어나기 때문에 ‘당’이라 말한다. 그런데 상혹(相惑)에 움직이지 않으므로 ‘무괴(無壞)’라고 하는 것이다. ‘지혜’는 그 법의 체이다. 그러므로 산스크리트 사본에서는 ‘무능승당보살해탈(無能勝幢菩薩解脫)’이라 이름한다. 또한 이러한 선인의 정혜의 작용이 뛰어나서 굴함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둘째, 그 업용을 분별한다.
이 중에서 첫째 물음 중에서 ‘경계’라고 하는 것은 그 업용의 영역을 묻는 것이다.
‘곧 오른손을 편다’ 이하는 작용을 보여서 답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수리를 만지며 손을 잡는다’382)는 것은 가지(加持)의 모습이다. 이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넓은 곳에 들어가서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들음으로써 대행(大行)을 닦는다. 둘째, ‘혹은 스스로……를 본다’ 이하는 다시 오래도록 뛰어난 행을 닦는 것이다. 셋째, 법문으로 비추어서 이익을 얻는 모습을 밝히는 것이니, 열 구절 다섯 짝이 있다. 첫째 하나는 총이며, 둘째 넷은 별이다. 능히 비춘다는 것은 모두 무괴당(無壞幢)의 별의(別義)이다. 비춤으로 인하여 얻는 바는 모두 ‘명정장(明淨藏)’의 다른 덕이다. 이 명정은 범본에서 ‘비로자나장(毘盧遮那藏)’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두루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셋째, ‘……의 손을 놓는다’ 이하는 작용을 쉬고 근본으로 돌아감을 밝힌 것이다. 손을 놓는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나가서 관찰하게 하는 것이며, ‘다시 본처(本處)에 있다’는 것은 이곳을 옮기지 않고서 시방(十方)을 보기 때문이다. 처소가 이미 본처로 돌아오고 시간 역시 아직 하루를 지나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한 날 한 곳에서 단박에 시방의 다겁(多劫)의 행을 닦아 이루는 것이다. ‘이룬다’는 것은 모두 선우의 원교법문(圓敎法門)의 힘이다. 그러므로 선재가 1생에 구경위(究竟位)에 이른다는 것은 진실로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래 본문383)에서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무량겁에 닦은 것을 선재가 1생에 모두 다 얻는다”고 한 것은 역시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보현의 지위 중에서 혹은 무량한 불가설겁(不可說劫) 동안 닦는 것이지 오직 3아승기겁[三祇]만을 닦는 것은 아니다. 만약 법력으로써 가지(加持)하면 거쳐야 하는 시간은 혹 일생일념(一生一念)이며, 본래의 시간 등은 정해진 제한이 없는 것이니 준하여 통할 수 있다. ‘그대가 억념하는가?’라는 것은 관찰 중의 일을 묻는 것이며, ‘오직 그렇습니다’라는 것은 바로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다. ‘선지식력(善知識力)’은 뛰어난 지위의 가지이며 스스로의 힘이 아님을 나타내어 곧 그 까닭을 대답하는 것이다.
넷째, ‘나는 오직’ 이하는 자기가 아는 바를 맺는 것이다. 법을 수여함이 곧 다함을 밝히는 것이니, 다시 남기거나 아까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384) 승진분을 우러러 추천함에 셋이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추천하는 것이며, 둘째, ‘모든 위대한 보살’ 이하는 별이다. ‘일체 시륜(時輪)에 자재하다’는 것은, 옛사람이 “모든 시기(時機)에 있어서 3륜이 자재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또 가히 모든 시간에 있어서 회전(廻轉)이 자재하기 때문에 윤(輪)을 설하는 것이다. 셋째, ‘내가 어찌 능히’ 이하는 스스로의 분수가 아님을 맺는다.
제8주를 마친다.
아홉째385) 법왕자주(法王子住)이다.
첫째, 법을 들어서 닦음을 권한다. 이 중에 나라를 ‘진구(進求)’라고 이름하는 것은 도에 반하는 모습이다. 사람이 모두 등지고 버려서 이미 순용(順用)을 이루기 때문에 진구케 하는 것이다. 또한 도에 반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마땅히 태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하는 것이다. 산스크리트 사본에 의하면 ‘이사나(伊舍那, īṣaṇa)’라고 이름하는데, 중국어로는 광야(曠野)라고도 하며, 희구(悕求)라고도 이름한다. ‘바라문’은 범지(梵志)의 청정한 행이며, ‘방편명(方便命)’386)은 일에 따라서 방편으로써 생명을 삼기 때문에 칼이나 불로써도 능히 손상시키지 못한다. 또한 칼이나 불이 도(道)로 돌아옴으로써 방편으로 삼고, 정행(正行)이 상속(相續)하기 때문에 명(命)이라 일컫는다. 산스크리트 사본에서는 야인(野人)이라 하였다.
둘째, ‘그때 선재’ 이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가는 것이다. 이 중에도 역시 둘이 있다.387) 첫째는 앞의 법을 염하는 것이며, 둘째 ‘점점’ 등은 뒤의 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들은 역시 총체적으로 앞의 지위에 속한다. 이른바 첫째는 뵙고서 공경하며 청함을 아뢰는 것이니, 이는 선지식을 친근히 하는 것이다. 둘째 ‘고하였다’ 등은 총이니 정법을 듣는 것이다. 셋째는 앞의 법문을 염하는 것이니, 이는 계념사유(繫念思惟)하는 것이다. 넷째는 나아가서 뒤의 처소에 이르는 것이니, 이는 설한 바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총체적으로 네 가지 친근행(親近行)388)을 이루는 것이다.
첫째,389) 앞의 법을 염하는 중에 넷이 있다. 첫째는 앞에서 말한 무괴당(無壞幢)의 비춤으로 인하여 얻는 삼매 등의 법을 염하는 것이다. 이 중에 ‘성문……인(忍)’은 인공(人空)이며, ‘무생인(無生忍)’은 법공(法空)이다. 선재가 이곳에서 무생인을 얻는다는 것은 앞의 여덟째 주위(住位)의 이익이기 때문에 제8지(地)와 같다. 둘째, ‘언제나 보살행을 행한다’ 이하는 앞에서 말한 모든 부처님 처소에 노닐면서 이루는 뛰어난 행을 염하는 것이다. 셋째, ‘일념 사이에’ 이하는 앞에서 말한 모든 찰해(刹海)에 노니는 행을 염하는 것이다. 넷째, ‘또한 무량한……을 안다’ 이하는 앞에서 본 모든 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하는 행을 염하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본문에서 이루는 이익이 모두 이러한 억지법문(憶持法門)에 있는 것이다. 순숙(淳熟)한 명정(明淨)으로 하여금 구경(究竟)을 증회(證會)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처소에 이르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390) 뵙고 공경하며 청함에 셋이 있다. 첫째는 고행의 모습을 보는 것이며, 둘째는 예배하는 것이고, 셋째는 묻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사면의 불구덩이’라는 것은, 정(正) 법사가 “네 가지 무애지(無礙智)가 능히 미혹의 땔감을 불태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칼산[刀山]’은 진실로 무분별하여 망령된 알음알이를 내는 것이다. ‘그 산 위에서부터 스스로 불구덩이로 투신한다’는 것은 가행(加行)과 상응하는 의언분별(意言分別)의 연(緣)이니, 진(眞)과 증(證)을 대조하면, 진이 나타나고 망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도 해석한다. ‘불구덩이’라는 것은 근본반야(根本般若)이기 때문이다. 『지론(智論)』391)에서 “반야바라밀은 큰 불구덩이와 같아서 네 변(邊)에서 접촉할 수 없는 것이니, 4구(句)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해석해 말한다. 이러한 지혜의 불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번뇌의 땔감을 태워버리는 것이며, 둘째는 무명의 어둠을 깨뜨리는 것이고, 셋째는 선근을 성숙케 하는 것이며, 넷째는 이치를 증득함을 비추어 나타내는 것이다. ‘칼산’은 가행지(加行智)가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이 매우 빠르기[利] 때문이고, ‘높고 험하다[高峻]’라는 것은 곧 정증지(正證智)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로 뛰어내린다[投下]’라는 것은 그로부터 여기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칼은 단덕(斷德)이니 베지 못할 장애가 없기 때문이고, 불은 지덕(智德)이니 비추지 못할 이치가 없기 때문이다. ‘아래로 뛰어내린다’는 장애가 다하여 이치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구덩이와 칼산은 곧 법문이니 다시 표시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칼과 불의 모습은 있는가? 해석해서 말한다. 곧 이 모습과 비슷한 것이 바로 법문이요, 매우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바로 이 글의 뜻이다.
공경하며 청함을 아뢰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392) ‘답하였다’ 이하는 법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중에 여섯이 있다. 첫째, 법을 보여서 닦음을 권하는 것이고, 둘째 ‘선재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하는 이에 대하여 의심을 내는 것이다. 셋째 ‘이렇게 생각할 때’ 이하는 보살이 가피하여 권하는 것이고, 넷째 ‘……동자가 기특한……을 듣는다’ 이하는 의심을 제거하고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다. 다섯째 ‘칼산에 오른다’ 이하는 설하는 바와 같이 수행하여서 바로 법계를 증득하는 것이고, 여섯째 ‘내가 오직 이러한……을 이룬다’ 이하는 자기가 오직 하나임을 맺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만약 능히 이 칼산에 올라서 불구덩이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분별을 버려서 정증(正證)의 법계에 들어가도록 권하는 것이다. ‘보살의 행은……청정하다’는 것은 분별이 다했기 때문에 장애를 떠나서 청정한 것이다. 법계를 증득하기 때문에 보살행이 이루어지는데, 무엇 때문에 요컨대 이와 같은 법으로써 권하는 것이냐? 그 같은 견해를 깨뜨리기 때문이요, 보살의 깊고 비밀한 법을 이해하도록 하기 때문이요, 순상(順相)은 알기 쉬우나 역상(逆相)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알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에 반하는 것은 아래 위의 본문 중에서 총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이 지위는 사견과 같은 것이며, 둘째 ‘만족왕(滿足王)’은 성냄과 같은 것이며, 셋째 ‘바수밀(婆須密)’은 탐애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3독의 모습에는 모두 정법(正法)이 있는데,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현재의 모습이 곧 공에 즉하기 때문이다. 『제법무행경』393)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탐욕이 곧 도이니
성냄과 어리석음 역시 그렇네.
이러한 세 가지 일 중에
무량한 불법이 있네.

해석해 말한다. 이는 공에 즉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 세 가지 일이 그대로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교묘하게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불법을 설하는 것이지, 세 가지 일이 그대로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명경(淨名經)』394)에서 “먼저 욕망의 갈고리로써 이끌어 들인 뒤에 불지(佛智)에 들어가도록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셋째는 미혹을 두고서 생을 윤택케 하며 보살도를 기른다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불법이 있다고 설하는 것이지, 세 가지 일이 그대로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명경』395)에서 “모든 번뇌가 여래의 종자가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넷째는 그 모습 그대로 옳다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는 앞의 세 가지와 같지 않으니, 이는 극히 이해하기 어렵다. 부사의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본문이 이것이다.
둘째, 의심을 내는 중에 첫째 열두 구절은 현재 얻는 바를 염하여 의심을 내는 것이다. 도연(道緣)을 허물고서 정행(正行)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는 장차……아니다’ 이하는 장차 얻을 것을 염하여 의심을 내어서 내가 마땅히 얻을 것을 허물어서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악보살(惡菩薩)’은 실제로는 악마인데 거짓으로 보살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초심(初心)의 보살이 이미 본심에서 물러나서 질투하여 해치고자[妬害] 욕망하는 자를 악보살이라 이름한다. 마치 나귀보살ㆍ개보살 등과 같다.
셋째, 가지하며 권유하는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색계의 범천이 권유하는 것이며, 둘째는 욕계의 6천(天)이 권유하는 것이며, 셋째는 용신팔부(龍神八部)가 권하는 것이다.
첫째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선재에게 ‘이러한 생각을 짓지 말라’고 고하는 것은 총이니 의심하지 않도록 권하는 것이다. 둘째는 몸을 태우는 본의(本意)의 덕을 따로 찬탄하는 것이며, 셋째 ‘때에 모든 범천’ 이하는 이로 말미암아서 통틀어 교화하여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덕을 밝히는 것이다. ‘네 가지 도[四種道]’라는 것은 4무애지(無礙智)의 도이다.
둘째, ‘1만의 마(魔)’ 등은 6천(天) 중에서 ‘1만의 제천(諸天)’은 야마천이니, 도리(忉利)의 4천(天) 등과 더불어 설하는 것이다. ‘만다라화’396) 등은 크고 작은 흰 꽃이다.
‘이나반나용’397)은, ‘이나’는 나무이며 ‘반나’는 잎이다. 과거에 나무와 잎을 부수었기 때문에 용(龍) 중에 떨어졌으므로 이러한 이름을 세운 것이다. ‘난타’398) 등은 ‘환희극환희용(歡喜極歡喜龍)’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나머지의 권유함 등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399) 의혹을 제거하고 허물을 뉘우치는 중에 셋이 있다. 첫째는 진심(眞心)을 일으키는 것이며, 둘째는 예배하며 허물을 참회하는 것이다. 셋째는 게(偈)를 설하여 참회를 받아서 인도하는 것이다. 선재는 대인(大人)이니 무엇 때문에 의심하는가 하면, 모습이 도에 반하므로 이치상 반드시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삿됨과 옳음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권하는가 하면, 진실한 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시 진위(眞僞)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삿된 모습을 거부하는 것이며, 권하기 때문에 그 실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문】 만약 마왕이 이를 짓는다면 어찌하여 역시 이러한 권유를 나타내지 못하는가?
【답】 또한 앞의 선지식이 이 사람이 진실로 잘못인 것은 아니라고 지시하였으니, 하물며 권하는 중에 바로 마(魔)가 능히 할 바가 아님을 설했음이겠는가. 선재가 마를 초월하는 눈을 이미 얻었으니 어찌 보지 못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마가 아님을 알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의심을 내겠는가. 대 보살의 경계는 아직 능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법은 모름지기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니,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게송 중의 첫째 하나는 가르침에 수순하여 장애를 제거함을 권유하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인을 닦아서400) 과를 얻음을 권하는 것이다.
다섯째, 설한 바와 같이 수행하는 중에 셋이 있다. 첫째 ‘……안주삼매(安住三昧)를 얻는다’는 것은 가행정(加行定)이니, 이른바 산란과 혼동이 없는 지혜[無散動智]이니 칼로써 마땅히 베어야 하는 것인데, 이와 반하기 때문에 안주인 것이다. 둘째, ‘이미……에 이른다’는 것은 정증위(正證位)에 이르는 것이다. ‘적정’은 증득하는 이치이며, ‘안락’은 능히 증득하는 지혜이고, ‘조명’은 깨달음과 상응하여 역시 무명을 깨뜨리는 것이다. 불에 들어가서 마땅히 괴로움을 불태우는 것이니, 이와 반하므로 적정하며 안락한 것이다. 셋째, ‘아뢰었다’는 것은 후득지(後得智)로써 깨달음을 설함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일이 접촉한다’는 것은 증지(證智)가 이치와 융통하므로 ‘쾌락’이라 말하는 것이다.
여섯째, ‘나는 오직’ 이하는 이름을 매듭짓는 것이다. ‘무진(無盡)’은 지혜가 대정(大定)에 의지하여 법계를 두루 비추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또한 도에 반하는 작용이 법계에 두루하므로 ‘무진’이라 말하는 것이다. 산스크리트 사본에서는 ‘득보섭도량보살해탈(得普攝道場菩薩解脫)’이라 이름한다. 해석해 말한다. 다함없는 모든 중생계를 두루 거두어들이는 것이 위의 가지하여 권유하는 중에서 나타내는 것과 같다. 모두 불과를 향하게 하기 때문에 도량이라 말하는 것이다. 범본에서는 ‘비목차(毘目叉, vimokṣa)’라고 이름하는 것인데, 중국어로는 ‘해탈’이라 이름한다. 옛 번역에서는 ‘법문(法門)’이라 이름하였는데, 다만 출리(出離)를 얻음에 의지하므로 ‘문’이라 이름하였다. 곧 여기서는 해탈이라 이름한다. 또한 업용의 자재가 있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401) 승진분을 우러러 추천하는 것에 셋이 있다. 첫째 ‘명정법왕(明淨法王)’ 등의 한 구절은 총이며, 둘째 ‘……을 만족케 한다’ 이하는 별이고, 셋째 ‘이와 같은’ 등 이하는 맺음이다. 추천하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9주를 마친다.
열째402) 관정주(灌頂住)이다.
첫째, 법을 들어서 닦음을 권하는 것이다. 성(城)을 ‘사자분신(師子奮迅)’이라 이름하는 것은, 이른바 삼매의 덕용이 자재한 모습이다. ‘동녀(童女)’는 지위가 가득 차서 염오를 떠나는 정결한 모습이다. ‘미다라니(彌多羅尼, Maitrāyaṇī)’라는 것은 중국어로는 자녀(慈女)이니, 이른바 지혜의 덕은 안으로 원만하며 자비로운 모습은 밖으로 드날리기 때문에 이름하는 것이다. 산스크리트 사본에서 ‘미다라연나(彌多羅衍那)’라고 이름한 것은 중국어로는 ‘자구물(慈救物)’이라 말한다. 저 사본에서는 역시 “이 여자의 아버지를 사자당(師子幢)이라 이름한다”고 하였으니, 곧 왕녀이다. 지위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때 선재’ 이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가는 것이다. 이 중에 첫째는 앞의 법을 염하는 것이며, 둘째는 뒤의 처소로 나아가는 것이다.
첫째 중에서 첫째는 자분의 경계를 염하는 중에 진제(眞際) 등을 관찰하는 것이다. 둘째 ‘부처님……과……을 반드시 요달해 안다’ 이하는 승진분을 염함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과법’ 등은 점차로 뒤의 처소에 이르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403) 뵙고 공경하며 청하는 것이다. 이 중에 다섯이 있다. 첫째는 묻기를 추천하는 것이며, 둘째는 지시하는 것이고, 셋째는 들어가서 수승한 의보와 정보를 보는 것이다. ‘금색’은 가히 존귀한 모습이니, 지위가 가득함을 나타낸다. 넷째는 공경을 베푸는 것이며, 다섯째는 청함을 아뢰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답하였다’ 이하는 법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가운데 넷이 있다. 첫째는 법을 보여서 관찰토록 하는 것이며, 둘째는 관찰하고서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고, 셋째는 법의 업용을 분별하는 것이며, 넷째는 자기가 오직 하나만 알 뿐임을 매듭짓는 것이다.
첫째 중에 셋이 있다. 처음 한 구절은 법을 들어서 관찰을 권유하는 것이니, 곧 업용이 자재하여 법계에 의지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하나의……을 본다’ 이하는 바로 법계를 관찰하여 증득함을 밝히는 것이다. 간략히 분별하면 열 구절이 있으니, 하나하나는 이치[理實]가 가없는 것이다. 아래 본문404)의 “보현의 털구멍에서 티끌 수만큼 많은 국토를 나타낸다”는 것은 곧 정보가 의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에서는 곧 의보에서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모두 가없는 법계가 자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역시 기세간 내에서 지정각세간을 나타내는 것이니, 역시 인위 중에서 과법을 나타내는 것이다. 역시 체 중에서 용을 나타내는 것이니, 법ㆍ비유ㆍ합이 있다. 셋째, ‘모두 그녀의’ 이하는 법이 사람에게 속해 있음을 맺는 것이다. 역시 과가 인으로 말미암음을 맺는 것이다.
둘째, ‘그때 선재는……을 바로 염한다’ 이하는 법문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째는 묻는 것이며, 둘째는 답이다.
답 중에서 ‘반야’라고 이름한 것은 제10주의 지위가 지혜바라밀이 원만하기 때문이니, 곧 지혜가 자재하여 법계에 의지하는 것이다. ‘보장엄(普莊嚴)’은 지혜에 의지하여 작용을 일으켜서 덕을 갖춤이 원만한 것이니, 법운(法雲)이 나타내는 바와 같은 것이 곧 그 일이다. ‘저 모든 여래는 이문(異門)으로써 나로 하여금……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별(別)을 거두어서 보(普)로 돌아가기 때문이고, 일체가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며, 하나가 매우 깊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매우 많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셋째, ‘아뢰었다’ 이하는 업용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 중 첫째는 묻는 것이며, 둘째는 답하는 것이다.
답 중에 둘이 있다.
첫째는 법을 들어서 총체적으로 표방하는 것이다. ‘평등을 낳는 때’라는 것은 정증지에 상응하는 때를 밝히는 것이며, 법문의 체를 얻음을 밝히는 것이다. ‘보문(普門)을 얻는다’는 것은 총체적으로 얻는 업용을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다라니문(陀羅尼門)과 삼마제지문(三摩提地門)을 얻음으로써 법계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10주(住)와 10지(地)의 경위(境位)가 같기 때문에 법을 얻는 것 역시 서로 유사한 것이다.
둘째, ‘이른바’ 이하는 따로 얻은 바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간략히 열거하면, 총체적으로 116가지가 있는데, 열 가지 지위로 나눈다. 첫째 여덟 가지는 소지이사지(所知理事持)를 밝힌다. 둘째, ‘공덕’ 아래 열 가지는 행지(行持)를 밝힌다. 셋째, ‘업다라니’로부터 그 아래 여덟 가지는 업지(業持)를 밝힌다. 넷째, ‘선행삼매(善行三昧)’ 아래 여섯 가지는 정용지(定用持)를 밝힌다. 다섯째, ‘심해(心海)’ 아래 다섯 가지는 지타심지(知他心持)를 밝힌다. 여섯째, ‘발기중생(發起衆生)’ 아래 열한 가지는 지소화지(知所化持)를 밝힌다. 일곱째, ‘대비’ 아래 열다섯은 능화지(能化持)를 일으키는 것이다. 여덟째 ‘세계기(世界起)’ 아래 열일곱 가지는 지찰해자재지(知刹海自在持)이다. 아홉째, ‘분별불신(分別佛身)’ 아래 27가지는 지불해자재지(知佛海自在持)이다. 열째, ‘보리심색(菩提心色)’ 아래 열 가지는 지색해무애지(知色海無礙持)이다.
넷째,405) ‘나는 오직’ 이하는 스스로를 맺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승진분을 우러러 추천하는 중에 셋이 있다. 첫째 한 구절은 총체적으로 깊고 넓은 덕을 추천하는 것이다. 둘째, ‘……에 안주한다’ 아래 열 구절은 따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 중에 처음 두 구절은 행이 깊음을 밝히는 것이며, 그 다음 ‘어리석음을 떠난다’ 아래 두 구절은 지혜가 넓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 다음 ‘걸림없는……을 얻는다’ 이하는 안지(眼智)가 걸림없음을 밝히는 것이고, 그 다음 ‘모든 세간’ 아래 두 구절은 행이 견고함을 밝히는 것이다. 뒤의 ‘선교(善巧)’ 아래 두 구절은 교화의 자재를 밝히는 것이다. 셋째, ‘이와 같은’ 이하는 자기 분수가 아님을 매듭짓는 것이다.
이상은 10주이니, 총체적으로 10주를 밝히는 것을 마친다.
047_0769_b_01L花嚴經探玄記卷第十八 此盡十住知識 魏國西寺沙門 法藏 述入法界品第三十四 將釋此品四門同前初釋名有三一分名者謂廣依勝友深證法界故名依人入證成德分矣二會名約處名祇洹重閣會謂表此法濟物攝生故在給園又現悲依本智重出之相故在重閣三品名者入是能謂悟解證得故也法界是所入法有三義是持自性義二是軌則義三對意義界亦有三一是因義依生聖道故攝論云法界者謂是一切淨法因故又中邊論云聖法因爲義故故說法界聖法依此境生此中因義是界義是性義謂是諸法所依性故此經上文云法界法性辯亦然故也三是分齊義謂諸緣起相不雜故初一唯依主後一唯持業中間通二釋境合目故云入法界也 二來意者初明分來謂前顯託法進修今辨依人入證義次第故是故來也會來品來亦同此說 三明宗趣者分會品同旣明入法界卽以此爲宗於中分別作三門一約義二約類三約位 初中先明所入法界義有五門一有爲法界二無爲法界亦有爲亦無爲法界四非有爲非無爲法界無障㝵法界初有爲法界有二門一本識能持諸法種子名爲法界如論云無始時來界等約因義二三世諸法差別邊際名爲法界不思議品云一切諸佛知過去一切法界悉無有餘知未來一切法界悉無有餘知現在一切法界悉無有餘等二無爲法界亦有二門一性淨門謂在凡位性恒淨故眞空一味無差別故二離垢門謂由對治方顯淨故隨行淺深分十種故三亦有爲亦無爲者亦有二門一隨相門謂受想行蘊及五種色幷八無爲此十六法唯意識所知十八界中名爲法界二無㝵門謂一心法界具含二門一心眞如門二心生滅門雖此二皆各摠攝一切諸法然其二位恒不相雜猶攝水之波非靜攝波之水非動故迴向品云於無爲界出有爲界而亦不壞無爲之性於有爲界出無爲界而亦不壞有爲之性四非有爲非無爲者亦二門一形奪門謂緣無不理之緣非有爲理無不緣之理故非無爲法體平等形奪雙泯大品經三十九云須菩提白佛言法平等爲是有爲法爲是無爲法佛言非有爲法非無爲法何以故離有爲法無爲法不可得離無爲法有爲法不可得須菩提是有爲性無爲性是二法不合不散此之謂也二無寄門此法界離相離性故非此二由離相故非有爲離性故非無爲又由是眞諦故非有爲由非安立諦故非無爲又非二名言所能至故是故俱非解深密經第一云一切法者略有二種所謂有爲無爲是中有爲非有爲非無爲無爲非無爲非有爲乃至廣說五無障㝵法界者亦有二一普攝門謂於上四門隨一卽攝餘一切故是故善財或睹山海或見堂宇皆名入法界圓融門謂以理融事故全事無分齊謂微塵非能容十剎剎海非太潛入一塵也以事融理全理非無分謂一多無㝵或云一法界或云諸法界性起品云譬如諸法界分齊不可得切非一切非見不可取此明諸則非諸也舍那品云於此蓮花藏世界海之內一一微塵中見一切法界此明一卽非一也是故善財或暫時執手遂經多劫或入樓觀普見三千皆此類也上來五門十義摠明所入法界應以摠別圓融六相准之二辨能入亦有五門一淨信二正解三修行四證得五圓滿此五於前所入法界五門之內有其二門一隨一能入通五所入隨一所入通五能入二此五能入如其次第各入所入五中之一又此上心境二義十門無㝵圓融摠爲一團無障㝵法界亦以六相准攝思之第二法界類別亦有五門謂所入能入存亡無初所入中亦五重一法法界二人法界三人法俱融法界四人法俱泯法界五無障㝵法界初中有十一事法界謂十重居宅等二理法界謂一味湛然等三境法界謂所知分齊等四行法界謂悲智廣深等五體法界謂寂滅無生等六用法界謂勝通自在等七順法界謂六度正行等八違法界謂五熱衆鞞等九教法界謂所聞言說等十義法界謂所詮旨趣等此十法界同一緣起無礙鎔融一具一切思之可見二人法界者准此下文亦有十門謂人天男女在家出家外道諸神菩薩及佛此竝緣起相分參而不善財見已便入法界故名人法界也三人法俱融法界者謂前十人十法同一緣起隨義相融攝無二思之可見四人法俱泯法界者平等果海離於言數緣起性相俱不可說五無障礙法界者謂合前四句於彼前人法一異無存亡不㝵自在圓融如理思之二明能入有五重一身二智三俱四泯五圓謂入樓觀還合身證也鑑無邊之理事智證也同普賢而普遍俱證也身智相卽而兩亡俱泯也一異存亡無㝵自在圓融也又發心品云甚深眞法性妙智隨順入無邊佛土中一念悉周遍案云前二句智入法界後二句身入法界由身智無㝵智入理身遍土也餘准可知三能入所入混融無二際限不分就義開異理仍不雜此五能所如次及通如理思攝四能所圓融形奪俱泯五一異存亡無㝵具足上來約類辨竟 第三約位明入法界者准下文中所入法界大位有所謂因果於前人法無不皆是佛果所收如來師子奮迅三昧所現法界自在是也又於前人法無不皆屬因位所收則文殊普賢所現法界法門是也此因位中曲分有五則信等五位之法界也准攝可知二明能入准文亦二前果位明諸菩薩頓入法界對前因位寄顯善財漸入法界因果旣其無㝵漸頓亦乃圓融以布教成詮寄斯位別耳四釋文者此一品中大分有二 初明本會二爾時文殊從善住樓閣出已下明末會亦則前明果法界後明因法界又前明頓入法後明漸入法界又前摠後別則本末圓融無礙思之 就前本會中長分有十一序分二請三三昧分四現淨土分五集新衆分六擧劣顯勝分七偈頌讚德分八普賢開發分九毫光示益分十文殊述德分 就初序分有三初爾佛在明智正覺世間圓滿舍衛城等器世間圓滿與五百等衆生世間圓滿初文可知器中有三謂一城二園三閣城名具言名室羅伐悉訛略稱舍衛此翻云聞者城謂昔有古老仙人住於此處復有少仙名爲聞者於老仙所受法要老亡已後少於此處建立城郭因以爲園在城南可三四里祇是太子之名具言誓此云戰勝又無父曰孤無子曰獨須達長者惠施資給名給孤獨然長者側金買地太子施樹同成二人共立伽藍故俱以名焉園內別閣宣法之所名曰講堂體無不周曰大德無不備曰嚴用依體起故曰重閣第三衆中亦三謂一菩薩二聲聞三諸天王初菩薩中亦三謂一擧二列名三歎德名中先標上首二人以其是助化主故釋有三義一普賢當法界門是所入文殊當般若門是能入也表其人法界故普賢三昧自在文殊般若自在三普賢明廣大之義文殊明甚深之義深廣一對故標上首列名中有一百四十一大位十十有十四位十同名幢顯行德高出故二十同名端嚴表福智二嚴故十中欠一是減數也三十同名藏顯德備含攝故四十同名眼明照法界故十中剩二是增數故五十同名天冠表淨德冠於心頂六十同名周羅此云頂髻表德重尊高故十同名光十四位中各以二義釋妙光具身智光照內外故八十同名幢者幢有二義前明獨出義今辨降伏義九十同名音明美音悅機故十十同名上德過衆表故十一十同名妙德吉祥顯勝故十二十同名王於法自在故十中剩一亦是增數也十三十復同名音者音有二義前明音體美妙今顯巧詮妙法十中剩一亦增數可知十四十同名覺鑑理察機故十中欠二亦是減數可知如是等結也就歎德中十句有二義一此十句德遍通上諸菩薩一一皆具別歎前十五位德謂初句歎前二上首德以普行普境皆通一切彼二同成此德故二持無量等歎前十幢十嚴二位菩薩謂身幢獨出具德端嚴能遍至故三具足無礙等歎十藏十眼二位菩薩謂具無㝵藏淨眼見佛故四至無量等歎十天冠十周羅菩薩謂天冠頂髮以自嚴身同梵王形至諸佛成道之所觀佛無休請說法五無量智光等歎十光十幢菩薩謂智光普照甚深法故又伏癡闇故六於無量等歎十音菩薩謂美音淸辯說無盡故七究竟等歎十上十妙德菩薩謂同虛空之上智極淨境之妙德八無所依等歎十王菩薩謂無依現色自在爲王亦現王身故九除滅等歎後十音菩薩內離智障巧說分別衆生界故十虛空智等歎十覺菩薩謂放阿含光善覺照故又釋此十句攝爲五對初二一對初行德內充後多身外遍次二一對初淨眼觀佛後觀無厭足次二一對初內智照法後辯說無盡次二一對初內智同後現身普應次二一對初內離智障後外演慧光又釋此十句中初句爲摠餘九是別莫不皆顯普賢行故一身詣佛普二遍見佛普三見全知無休普四智照理普五辯多劫普六理智淨普量智現身普八斷障普九光照普竝准釋可知二聲聞衆中亦二擧數歎德言聲聞者佛地論云聞佛言音而入聖道故曰聲聞又瑜伽八二云從他聽聞正法言音又能令他聞正法故曰聲聞大者是第四果故又是不動種姓故諸聲聞中最尊大故如鶖子等又此等竝是迴向大乘之聲聞故云大佛地論云如實義者皆是不定種姓聲聞得小果已趣大菩提故名爲大解云以其未入圓教一乘普賢法故是故下文如聾盲也如上性起品云聲聞緣覺不此經又云若菩薩億那由他劫行六波羅蜜種道品善根不聞此經雖聞不信是等猶爲假名菩薩此之謂也又釋此等竝是大菩薩示現作聲聞如新譯花嚴不思議境界分中說以顯此法深勝故示現如聾盲也二歎德中十句分初四句證涅槃捨生死謂覺眞諦者見道也證實際者修道也深入性者無學道也由此證理滿足故捨離分段故云離生死海又由怖畏生死故云離也又由無方便惠故證實際也由無大悲故捨離生死也二次二句住空斷結初住空者謂此人空之理亦是如來二空之一故云如來境也唯契此分故云安住後句由住人空斷離四住之惑謂九結十使相應纏縛三次二句通力自在謂於世無染故云不著一切神通遍遊故云遊行虛空四次二句疑盡信堅謂成就不壞信故也又釋此竝信佛甚深自在果法明知是大菩薩三諸天中亦二擧數歎德歎德全知中十句攝爲五對初二一對歎宿因德謂已供過去佛久已益衆生自下皆歎現行德次二一對歎行慈入智德謂慈念無間救生入智次二對歎在染顯淨德謂不捨染衆生出佛眞淨次二一對歎護持德謂護於果法使正教流通持於因法證性決定又外能守護持法之者內自受持佛眞性法後二一對歎家業德謂生於佛家作求佛業一切智因名爲智門以能通至佛智故云門也上來序分竟 第二請分中三初衆念請二念所請三念請問准下聲皆如聾盲何故此中而同疑念荅意法師釋曰理處不隔故得同疑未積大心故不應其次釋表同在祇洹故同念請普眼未開故如盲等又釋實是菩薩是以同念迹現聲聞是以如云云所請中摠有六十句古德釋云初三十明佛自入法界後三十明佛令他入法界今釋六十中初十念請果法何以得知所請是果謂次明下位不能測量故旣下不能知云何今欲請謂次十明因緣力具或亦得知雖力具得知未知此衆有知力不謂次十顯此衆根器力具雖衆器具若無佛力亦無能知謂次十明佛利他因具雖利他因滿若無現起利他果用亦無由令知次十辨果用攝生旣此緣具故結請云唯願現等又釋此中初三十句念法請後三十句念德請前中初十正念所請果法次十明深玄難測後十明緣會可涉初中一問悲智無㝵功用行如性起品說二問佛智所知眞俗無㝵亦如性起境界中說三佛地㧾持無邊念惠又如十佛中持佛所辨又如不思議品說十持四是處非處等十力又那羅延幢等十種大亦如彼品五四無畏十無畏六師子奮迅等不可稱量諸三昧海七理及功德幷諸剎土是如來身智所住亦如不思議品說八殊勝功初二會問中名佛勝法者彼就通辨此中別約福德顯勝九三身十身圓滿之相十四智十智理量融照又有經本此中更有一句名如來或是剩來或是結上諸句又此十問與前初會所問果德多分是同以彼攝門於此宜用十中初一是摠餘九是別別中初一所知德三智用德次一大定德次一所依德次一勝福後二身智德可知第二非下位測量中謂於前十種如來法中高故不能知廣故不能度故不得底多故不能受此四非聞惠境界玄故不能思妙故不能觀此二離思修境稱法界故不能分別一卽一切故不能開發因智不證故不能宣明超過言議故不能解說又前六離三後四超四辯謂法辯不能分義辯不能開辯不能宣樂說不能說又釋此十配前十種第現示甚深之義可准知之又釋於前一義有此十於此一門亦有前十准成百門等可知第三緣會可知中初四佛力爲緣後六根力爲方可得知初中佛持力者是佛加持力如加持靑蓮花菩薩令知佛功德說不思議品等自在力者是迴轉無㝵力如文殊轉鶖子令知說深理等三威神力者密以威加令知德如令迦葉知如來心等四本願力者是佛往昔本誓臣希願力是故令他知佛深德下六中初宿世多生種善根力二多生親近一乘善友力三現在深徹淨信心力四於上勝法欲願求力五不雜無明眞法所發大菩提心力六深心專求一切種不雜二乘心力於此十中隨一種力可分得知或二或三乃至十種以顯無盡第二三十句德請中初十歎機堪受德後二十歎佛能說德初中思量是意多故種種也從思起欲欲增名解則勝解印持也依解發言方音亦異所住行位優劣不同故云地也受法根器利鈍生熟三品不同故云根依根作業造修不同故云方便作業所緣境相非一故云境也皆依佛果爲緣差別而得入法或依佛光或因說法等樂聞所說淺深廣略多少不同故云樂聞法也二歎佛能說中初十念佛說因圓滿後十念佛說果德備前十中初一明昔初發菩提心願二依願起行故云淨波羅蜜三行成入位故云諸地四依位成行故云滿足行五摠說諸行皆具二嚴云菩薩莊嚴六別辨一行巧攝一切互相嚴飾故云方便嚴七別顯自利攝同前名道莊嚴道是因義通至果故八別明利他行巧多端故云出方便海嚴義同前九二利無㝵雙融究竟攝一切成普賢行故云自在莊嚴十多劫受身恒修勝行故云本生海顯本生身多故如多身修行行亦廣多也後十明佛說果備中初旣因圓有何所得謂菩提自在也二旣得提有何所用謂自在轉法輪也三於何處轉淨剎也四轉何所益謂嚴衆生界五轉何法謂法王法六以何智轉謂道明之智七佛智照法機何由悟謂自在能入衆生處故八入至機處作何所益謂作福田故九以何成福謂說成功德之達嚫達嚫者婆須論作檀嚫此云財施施之法名曰達嚫導引利他亦名達西域記正言達嚫拏或云馱器尼此云右也以用右受他所施爲其生福故從之立名今明佛施爲衆生功德故云功德達嚫十用何攝生謂三身業神通輪破疑成信語業正教輪破或成意業憶念輪破結成行下結請可知請分竟第三三昧分中何故入者前問願具現故今入定爲其現法何故前諸會集衆後入定此乃居釋前明從相入實今辨依體起用又前因人入定今果位自在故不同也何故此會佛自入爲表法界解脫自在唯佛窮原故文中有四入定緣二入定因三正入定四入定意初中知心念者以他心智領前疑念卽入定之緣二以四種大悲明入定之因謂入定益物要以大悲爲本故以爲因一身者利物之身積悲而立三昧所依之身也二門者然佛有大智大定大悲等門今欲益生故唯依大悲門也又亦開此悲門以攝群品故也三首者旣明益物諸所造皆以大悲先導故爲首也四隨順方便法者雖悲爲首若無巧便悲法隨物根緣無以令其同入法界此四亦從佛向機之漸次也三正入三昧者明定業用從喩爲名謂如師子奮迅之時諸根開張身毛皆豎現其威勢哮吼之相餘獸類失威竄伏令師子兒增其雄猛身得長今佛亦爾一奮大悲法界之身二開大悲之根門三豎悲毛之先導四現應機之威吼法界之法門令二乘 諸獸藏竄聾盲菩薩佛子增長百千諸三昧海及陁羅尼海如是相似故以爲喩又離世間品十種師子奮迅於此具論令一切下明入定意謂現此法界淸淨之法衆睹入名樂法也三昧分竟 第四現淨土分中有三初現器世間圓滿二智正覺世間圓滿三衆生世間圓滿初中二先明此祇桓現嚴淨後類結十方同現淨土前中亦二初正顯莊後出所因前中三初重閣莊嚴二園林莊嚴三虛空莊嚴光統云嚴空表無爲緣起嚴園表有爲緣起嚴閣顯自體緣起故也初中二先廣處無邊悤然廣博者謂按權顯實破情顯法故二正顯莊嚴於中有十種一金地二一切摩尼下明地上布寶三瑠璃下明閣柱四閻浮下正明成閣五摩尼下於閣上安網六建寶幢七懸幡八放光照法界九雜寶莊外十四邊階道令可登涉二嚴園中佛神力是所因也忽然廣等顯廣處也衆寶下亦十種莊嚴一摠句二以寶布地三寶牆四寶樹五香河六多閣樓七光照八寶莊地九出妙香十建寶幢有十七種三莊虛空亦有十種一天寶宮二香樹三須彌四寶五寶樹六寶座七寶像八珠網九樓閣十解脫音樂第二出嚴因中有二先徵謂何以有此不思議嚴故二釋中有十句一由是如來不思議善根之所生故此約因也二由是佛果無流法故此約果體下明果用三摠擧神力四別擧身遍五六二句明土無㝵微細相入七八現過去佛照現在剎九十出佛現剎此上莊嚴竝是如此佛果體用非餘位能知是故皆云不思議也上來一方祇洹竟二類結中如此祇樹等此也一切法界類通法界同此現土此處隨是須達所造然其據細乃稱周法界該於十方盡於三際以通不㝵局故須達新造以麤不異細故新造則微細而周法界如常在靈山及按足所現皆此類也二如來滿等明智正覺世圓滿此竝於斯所現剎內各有如來俱來此滿祇洹中三衆生世間中二初菩薩充滿二雨十種供養雲上來現淨土分竟 第五集新衆分中有二初明所集之衆後皆是如來威力故者釋集所因也前中亦二初別集十方後摠歎其德前中十方則爲十段於中初二及第六各有九門餘方有十先東方九義一集處遠近謂過不可說剎塵界表法深遠也二有世界海名金剛等表所依之法界也金剛有二義一堅二利雲亦二義一遍二潤明淨亦二義一普照二離染今勘梵本但此名明淨之言皆梵名毘遮那也燈亦二義一破闇二照現莊嚴亦義一飾事二嚴理三佛號等表能依之圓果明淨同前妙德梵名室利則吉祥之勝德也王自在四標上菩薩名顯能依之分因明淨前願是自體大願也光明破無明照法界也五眷屬俱來六興供養雲謂天花等事供滿虛空七詣佛禮供八本方化作樓閣花座結跏而坐九寶網覆身顯勝德自嚴若准下餘方加第十或髻珠或天冠顯其勝相爲標幟故餘方世界佛名等准釋可知南方供中妙香等雜事充滿一切佛世界者此竝稱法界法門成此供故是故或云滿虛空或云遍法界或遍一切剎或充衆生界皆無障礙參而不雜西方供中同名須彌山雲者顯妙高具德之相皆充法界者行同理性故一切如來相好爲須彌山者明果德妙高故爲菩薩所行須彌山者因行高成故此等竝以人同法以正同依以果同因無㝵法界自在之德北方供中同以衣供顯慚愧嚴身之相故也亦通人法教義等東北方中同以樓閣爲供者顯重威高出階級之相亦通理事等東南方同以圓滿光雲爲供者是身所珮表具德勝用故也雖通內行及外事文中以佛無見頂相爲供具者顯尊貴之極明以佛供佛方窮際故西南方同於毛孔出諸炎雲者顯燒惑薪而照故身出此炎乃照三世者明九世緣起貫通故以遍一切處該一切時也西北方同於相及毛孔出三世十身通三世間明身業勝能同法界佛果大用以爲供具下方同於毛孔出十雲明語業自在同佛果德應機設法無㝵相上方同於六處之內出三世佛十度等行因果圓融明意業自在此上十位供具亦從初至末顯漸深之相竝是圓滿教中菩薩同佛果而自在是故非下位及二乘等所能知見也第二歎德中有四十句分三初一句摠歎二成就三世下三十八句別歎三此諸菩薩下一句結歎別中亦三初明攝佛三業二於大衆中下明攝化之智三知世界智初中亦三初四句明語業自在一得佛眼見法二能轉佛所轉三攝佛圓四超因至果二於念念下六句明身業自在一念念無間詣諸佛所無有休息二明法界身雲一遍一切三能於佛衆現淨法身四幻通之力塵中現剎五雖常在佛所而化衆生恒不失六於身毛孔出法雷音如密嚴經中金剛藏菩薩遍身毛孔同時發聲演妙法亦同此也知衆生界下七句明意業自在一知衆生緣集如幻二知諸佛有用如電三知有趣現實如夢四知起果酬因如鏡像五知生相有體無如焰六知廣器顯現如變化七具足等結能知具果智也上來同佛三業竟二攝衆生三業中十句分三初五句明語業攝生一決定宣說二辯海無盡三同物言音四於理不㝵五於諍斯盡有二句身業攝生一具通智者通以惠爲性故名妙智也二懃行摧魔者以精懃力故魔夂摧又以神通力故伏耶歸依衆生故也三安住下三句明攝生意業一三達殊勝智二處世無染智三得佛圓果智三知一切有下十一句明世界自在智於中初二明眞諦智一了妄空深入等證眞性三量智普入謂不改眞而入俗故云不壞智也四入已迴轉現身自在五同時示現多處受生六知方圓等形類差別八二句明廣狹自在智亦是知微細世界智九得佛持剎智身能住於佛住卽器世間身也十淨惠照十方十一自在普周遍結文可知如來神力者集衆所因此文應在前但爲順西方語法故在此後辨上來集新衆分竟 第六擧失顯德分中有三初顯能不見人二明所不見境三釋不見所由初中前文通列大數五百今此別標上首故擧十大弟子舍利弗者此云鶖子梵正音云奢唎補呾囉也奢唎此云鶖卽當百舌鳥之類也吳僧會法師六度集中譯爲鶖鷺子也此是母名以其母有辯才峻捷似同彼鳥眼轉明利亦如彼鳥故從喩爲名補呾羅此云子兒從母爲名矣古譯爲身子者以梵語中名身爲舍利如佛身分爲舍利非此所用也智論中亦是過去發願爲釋迦佛弟子而立此名以能論義亦名優波提舍二摩訶目連者梵正音摩訶沒特伽羅此云大採菽氏上古有仙居山處常採綠豆而食以爲姓尊者之母是彼之族取母氏姓而爲其名得大神通簡餘此姓故云大採菽氏此與鶖子二人因緣如別說三摩訶迦葉者梵音具名摩訶迦葉波此云大飮光光是姓婆羅門姓中上古有仙身光飮奪日月之光迦葉是氏之族故以爲名是迦葉身光亦能飮奪日月之光又是大富長者之子捨大財出家能行少欲頭陁大行爲大人所識簡餘迦葉故名大矣四離波多者具云頡麗伐多云室星卽北方星也祀之得子因以爲名又名阿唎波多此云所供養也有云名假和合則智論中二鬼食事顯之也五須菩提者正云蘇蒱此云善現亦云善實古云善吉非也六阿泥嚧豆者正云阿泥嚧陁泥嚧陁此云滅阿云無卽名無滅是佛堂弟也七難陁者此云喜本令順牧牛人因問佛牧牛十一種法知佛具一切智得阿羅漢果性極聰明音聲絕妙令人聞喜故以爲名八金毘羅者正云劫比羅此云黃謂上古有黃頭仙因以爲姓亦從姓爲名九迦旃延者具云摩訶迦多衍那此是姓名此云大翦種男婆羅門姓上古多仙山中靜處年歲旣鬚髮稍長無人爲剔髮婆羅門法惡爲剔髮時一仙有二子俱來覲父少者乃爲諸仙剔髮仙願護後成仙貴爾來此種皆稱翦髮尊者身是男子威德特尊簡餘此種故云大翦髮種男又西方取母姓者今顯是父姓故置男名十樓那彌多羅尼子者富樓那者正云補剌拏#此云滿也彌多羅者正云挴呾唎曳此云慈也尼是女聲也弗呾羅此云子卽滿慈女子從母以立其名如鶖子等如是等結其不見第二所不中二先明不見法界佛果後顯不見法界薩前中十句與上衆人所念請法多分是同問若全無器不能同念若有器能念何故今乃示之不見答有悕法心前能同念眼未開故示之不見又前但念自三乘佛果今示一乘故不得見十句中初一摠謂顯如來障盡作用無㝵故云自在下別一勝果位二嚴二果位分齊及所知三作用多端四圓音決定五離麤相德六無思利物七威力自在八持諸佛所作九所依淨剎此等竝是前後所現身土等事如是下結其不見二亦復下明不見菩薩衆中亦十初不見大會者是摠也下九別別中一是境界業用集來之相二不見眷屬來處及坐此中宮殿則前化作樓閣是也三不見跏坐三昧觀察四不見菩薩所作供具等五不知受記長善等六不見菩薩所受之身有五身可知七不見菩薩圓光等八不見菩薩充滿一切十方等九不知菩薩所有德行又釋此上九中初四句中細開有十句釋前雲集菩薩衆後五句內亦有十釋普賢等本衆竝可知如是下摠結不見釋不見所由中二初法後喩前中亦二先明因時不修其見因是故不見二亦無三昧下明果時絕無其見分是故不見前中有四初明行劣不逮勝二是諸功德下顯勝以過劣三何以故下釋勝以非劣四是故下結劣不見勝初中先徵問云若無善根不應在會若有善根不應不見故云何以故也下釋成中初摠釋云有善行故得在會以是別異善行故不見也又由不同凡故有善根不同菩薩故不同善根也下別釋中十九句初十二句別釋前不見佛果於中初二句略釋謂釋初以本不修習大菩提善根云本不修習能見如來自在之善根故名別異是故無因不能見佛也自在是前佛果十句中初句是也二但修入趣涅槃之行故云不修淨佛土行淨土是前十中末後是故擧初擧後卽可知下廣釋中初七句不修利他行後三句不修自勝行亦卽初是狹心後是劣心文釋可 二不求菩薩下別釋不見菩薩所由中七一不求通明二不修彼善三不生彼願五不知法空六不入彼位七不得普眼二顯勝過劣明上二十種所不能修功德之法超過二乘公伅不與共故是故彼法非此能修不能修彼爲因故是故於彼不能見等謂眼不能見耳不聞證不能入比不能知察不能覺慮不能念智不能觀意不能思三釋中先徵問云何以如此摠不能知爲是摠不可知故不能知爲二乘摠無智故不能知故云何以故也下釋云菩薩智境者非是摠不可知以深智能知故非聲聞智者亦非聲聞是無智惠但智淺境深故不能四是故下結不知可解上來不修因故不竟第二明果時絕分故不見者謂得小果故此法絕分無入是故前文但言不能修習等今此文中乃至云無三昧眼等故知前約因時不能修行今就果位摠無分也文中有三初摠擧二徵釋三結不見初中十句一無深定眼二無得法三無大悲功德四無是處智五無大智眼此上無自勝德下五句無利他德二徵釋中徵云聲聞因果豈可不是佛境界中一分所何以摠言無彼法耶若摠無彼與凡夫何別故云何以故釋意以出三界故不同凡夫以住㩲乖實故無彼法又由有四失故是故摠無一出而不離細謂但出分段三界不離變易生死故二得權而不得實三滯寂而失悲四自調而救物又初離過不盡二得法不深三無大悲四無四攝行三是故下結不見上來法說竟問如有經云聲聞緣覺若智若斷皆是菩薩無法忍旣亦彼菩薩所得何故此中而言答二乘是菩薩法忍非菩薩是二乘知問若爾何故經云汝等所行是菩薩道耶答由迴心是漸悟菩薩道非是頓圓此約頓圓故非彼只可聞而不信如文殊行經中五百聲聞聞不信受等何故此摠不聞見彼是三乘逐機說今得故亦聞今此一乘逐法高出故不能其猶重陽麗空發雷振音蟻子等類不能聞若爾二乘應非法界所攝法界廣故攝於二乘二乘狹故不攝法界法界緣起一塵猶能攝於一切何故二乘狹而不攝廣耶狹相攝是菩薩所知二乘無此故非此攝乘豈不亦是菩薩所知法界何故不攝答是此攝故彼不知見如聾盲也若是此攝應得知見如菩薩衆法界緣起略有二門一順緣門如成法因等卽佛菩薩要是知見方得攝耳違緣門如相違因等卽二乘衆要不知見方乃攝耳此二緣門望所起法悉有功力是故同此緣起所收見不見異若爾凡夫外道亦是違何不此攝彼無德人不堪於此如聾盲故設餘聲聞猶恐不堪是故要以鶖子等類諸大聲聞或是菩薩變化所作方顯法勝是故辨之若爾此聲聞等得此法不竝得法何以故如聾盲入緣起故以此爲得思之可解若得應知見若知見卽不得以非是相違緣起攝不名得也菩薩不同此故不例也正由二乘問二乘高德尚如聾盲如今凡夫豈得受持往昔凡時不受持故今時對面如聾如盲今若不受還亦同彼是故只爲高德二乘如聾盲故故須受持增長信力令後得之第二喩況中有十喩況之遠法師等諸德皆將十喩配前所迷佛果十句功德唯第九二天喩喩上第二如來莊嚴餘皆次第配釋可知又就此十中見不見分別有三義一第一第五第十此三喩二乘不見佛果功德二第二第三第四此三喩菩薩能見佛果德餘四喩如來自見果德亦見二乘等又釋此十別相者一鬼對恒河喩喩二乘有所知障故不見殊勝境辨法師云如餓鬼者二乘人不得菩薩法界行食故云餓也鬼者似人非人喩二乘所得涅槃似而非眞也裸形者以無菩薩慚愧行服飢渴者以不得無二理觀沾其神故擧身燒燃者四相所遷不息也毒獸所逼者不知生死是自心所作乃怖而捨之也往詣恒河求水飮者趣祇洹處求解脫味水也或見枯竭等者唯證斷涅槃不見法身淨土法界之德水也由罪業障者喩法執無明之所障下合喩可知二覺對夢境喩喩二乘人守劣乖勝故不見於中先喩後法法中先摠次別後別中菩薩睹見出九種因故可知三愚對雪山喩喩二乘人狹心無悲故不見四呪見伏藏喩彼二乘無淨惠眼故不見五盲人至寶洲喩二乘無淨眼故不見六塗眼隱身喩喩彼二乘無深智故不見七遍處定境喩喩彼二乘無深定故不見喩中天者是空處識處也衆生境界者是靑黃赤白也八曀身自見喩喩彼二乘無深行故不見九二天隨人喩喩彼二乘無密智故不見十滅定無見喩喩彼二乘住位息求故不見上來摠擧劣顯勝分竟 第七偈頌讚德分於中十方菩薩說卽爲十段初段中十頌分二初九明述前三昧用後一結用所依顯是前師子奪迅定也前中初五歎佛身土無於中初一自在次二甚深後二廣大後四歎菩薩衆德於中一顯前雲集二願行深三超二四定惠堅第二頌中分六初二歎衆具德位滿後德深次二歎處衆集次一斷障證理二不動普遍次一結歸佛力後二了達佛法義後教第三頌中分二初三法說一歎佛說法應時二歎佛力用摧耶三歎佛法超情表後七喩況中一智達三際喩二無流德圓喩三自在遍知喩四德無限礙喩五法輪荷戴喩六無㝵速遍喩七智輪爲本喩第四頌中一德山益物二悲海除炎喩三行高深證喩五二頌明智海出生喩六巧現應機喩七隨願畢遂喩種智普照喩九隨方現法喩十見佛淨根喩釋此十中一大福二大悲三大定五理智量智七悲用八種智九鏡智十慈用第五頌中分四初一歎見益次三益菩薩一摠歎一別令得法一別令成行次一現三世間次三現法成一擧能一廣現一成智後二法輪益物第六頌中分三初三明凡小不能知次四明所不知之德一智深一福廣一巧化一德法後三顯能知之德一脩行一破我一願滿斯等能知非是佛德摠非可知第七頌中分三初五歎佛體德圓備於中初一摠歎身淨次二萬行爲因次二滅障成德次三歎妙用難測於中初一色用二智用末後二摠結一不思一不議第八頌中分三初二出智德一依聞出一依心出次三堅固行一精進行一信智行一迴向行後五斷德於中初二離染成自行後三離染成利他九頌中分四初二歎佛語業利益次二身業利次二身語雙益後四利益見聞第十有十一頌分四初二歎佛益菩薩一現德令見一轉法令聞次五歎佛爲生忍苦是大悲深厚也次一釋忍苦所以餘三明見佛成益上來偈讚分竟自下第八明普賢開發分令衆生信故於中二初長行後偈頌前中三初明說意二顯能說方便三辨所說分齊初中欲重等者前明教主自入此定廣現其事開現法界未有言說今明普賢以言廣說更重開前定用法界使顯現照明令諸菩薩同入此法故云重開等也二以法界等下明能說方便有三初摠次別後結別中十一種方便言以者是用也用此等法界等諸方便而得十種廣說如來三昧德也一法界等者謂如法界旣無邊盡此能說方便亦同法界云等也餘皆如是何以爾者以奮迅定業用廣用餘方便不能顯故是故十一皆將無分齊以用類之此一是摠句餘十皆是法界別句於中悕望約始欲據終法光是能化法隨時約就根生熟時等餘門可知三爲諸菩薩下結成顯意謂以法界等方便爲諸菩薩十種廣說師子三昧虛空界等方便亦十種說餘竝准之何等爲十下明所說之法亦有十門望前能說有二門次第配前十一方便謂以前方便如其次第說此所說是故各配一種唯第十中攝後二方便准釋可知二前十一方便一一皆有十種廣說則成一百一十門也細思准釋義理可此十何別一多佛出二多時說三多處現攝多衆五一念此一與前念請中初十可計會思之攝九世六一身充法界七依報境中現佛德位八依報微塵中現佛自在與前何別者境麤塵細故別也九正報毛孔出音恒作十遍坐道場常轉法輪此十竝師子奮迅三昧之德是略說佛子下顯未說者更復廣多唯如來智境者明更有廣多非菩薩能知第二爾時下明其重頌文中亦二初序意後正頌意中承佛力顯非自能故觀如來者明有所承故觀大衆明有所爲故餘句觀其所說故此等竝是佛果差別德故正頌中於前十法次第頌之初中一一毛孔中頌前一切法界中也餘三句頌佛興等二中淨法輪頌前一切佛所說三中最勝跏坐等頌前現成正覺四中菩薩雲集等頌前大衆皆往詣等五中說諸法界等頌前充滿一切法界也六中顯現諸佛剎入法界智海等頌前充滿一切世界海等七八二頌半頌前第七安住於如來一切諸境界者頌前一一境界亦有本作一切諸世界世界亦是依報境也安住如來地者頌自在功德地也中間竝是三世佛功德法九中初二句頌前第九法後二句卻頌第八法末後頌中初二句頌前遍坐後二句頌常說上來開發信分竟 自下第九毫光示益分令衆證入法界故於中有三初擧佛放光爲示法之緣二時祇洹下明衆依緣見法其有衆生下弁見法得益正入法界初中五句先標意欲令菩薩因人隨分亦得此三昧故此三昧中所顯現事卽是大衆前所疑問故答問而入此定令衆亦得方爲益也二放白毫光者顯中道平等白淨法界是前三昧攝生之三名照法界者依義立名謂照現三世法界法門令諸菩薩得入此門故云也四攝眷屬具主伴故五照十方等者辨攝化分齊也二令衆見法界中二先擧能見人謂普雲集通新舊二衆也二明所見法中亦二初見此方法界類見十方法界初中亦二先見一切世界中現身說法二或見天宮下明見一切宮殿中現身說法前中先擧所現之處如是等下正明現身說法具三世間可知二天宮等亦二先所現處則於前世界中更取微細十種宮殿二現種種身下正明現身說法亦有十種於中種種持者義持也教持是法持也此等所現竝是通答前十句疑問謂佛自在等可准思釋二類見十方中二初擧此類彼二顯自在類彼中初麤類十方世界諸業所起者彼十方中器世閒及衆生竝是實報顯現故名也三細類毛孔中可知顯自在中初一句不壞廣事謂雖在毛孔微細之中而亦不壞三世九世廣大無邊衆生界等差別宛然次三句明業用一照其心二爲現身三開示法後一句結神力三明見法得益中二先辨見法因緣後辨所得之益前中亦二初約佛有緣宿緣得見二約行已修具德方入三句一利他二自利三攝成入法方便二明所得益中有三初明因見得法二彼諸菩薩下明因法成德三爾時下明因德起用初中二先逮得下一句標其所得謂得佛地廣大三昧以此衆竝是普賢位中諸菩薩故是故所得無有漸次故卽究竟二或得下弁其所得於中三先摠標所得略列十門於中初六明得菩薩行位究竟四明得佛果自在成滿二此諸菩薩下結略顯於中初結數後結名名中十一句者是增數十也何以知者以結數中云十不可說等故知種種道者結前法身是智所遊處故云道有多類不同故云種種也理實無二何以言多謂攝生異故能遊之智有淺深故二種種門者結前色身異類標別故云門三種種入者結具諸行能有證入故四種種度者結諸波羅密度到彼岸故五方便者結前淨行巧能圓故六至結得菩薩究竟地故七方者結菩提自在遍十方故八光明者結三昧業用起光明故九功德及具者結諸行智力故十自在者結無礙辯才故三深入菩薩下釋但廣前初句所得三昧一門餘類准之就中二先明因顯廣義於中二初深因位明自分終極後入如來海下妙契果海顯勝進圓滿前中三初一句摠標二所謂下百門別辨三如是下結略顯廣此百三昧於上十句種種之中一一各有如此百門及後結廣以彼十種是標大門故所謂已下是別辨故上文結數云十不可說此中下結直云不可說故此是十中一也又釋此百但是前十之中種種門之一門也何以得知者以下結云不可說剎塵三昧門不云道等故得知又上文但云十不可說等妙功德不唯言三昧故也此種種門內含有陁羅尼門等無量諸門何以此中唯辨三昧門耶以初標云逮得如來不思議自在三昧是故就此以廣顯之又前云爲欲令諸菩薩安住師子奮迅三昧是故偏顯此門理實諸門無不皆具如下文云一一皆得不可說等大悲法門亦是此類也又百門竝由業用異故差別立名准釋可知於中初一明所依之本無盡行海用類平等法界使出纏結究竟圓明具德故以爲名末後一明攝歸其位故名觀察師子奮迅菩薩三昧上諸三昧皆爲趣向此三故云觀察然此不同佛地所得故云菩薩也中間諸名隨義思釋二入佛果者由前所得因位終盡是故果海方能趣入可知上來因見得法竟第二因法成德中二初令座廣大二現大自在下正顯所成德於中二先別顯後摠結中有十門顯德初成就深智德二悉爲衆生下了法爲師德三樂寂滅下隨緣無著德四安住莊嚴下成就衆生德五解一切衆生下解深具行德六具足十力下得法智能德七巧妙方便下巧便勝智德八得一切法無㝵下理智契眞九放淨法光下攝生見佛德於中初攝生成後常見下見佛得益以分別了知諸法自在大小相攝故是故於一切法得無諍境界也決了如來下照法圓融德於中先摠持轉法德二成就如來下妙窮佛境德二彼諸下摠結可上來所成竟第三明因德起用中三初摠後結初中深入等結前也身中等起用處也樂法力等用因也於念念等摠擧用相也別中十事差別可知結中法力者是此所得法界法門力也上來大段第九示法成益分竟 自下第十文殊述德分於中二先述讚後顯德前中二先序意可知後正頌有十三半頌分二初五歎祇洹中所顯示法於中初二歎衹洹中器世間自在用次二歎菩薩衆生世間自在用次一智正覺世間自在用二餘頌歎諸菩薩等得法業用於中初一頌前境界等中所出妙用之內初句歎三世佛功德次一頌歎前第二句說衆生淨業果報等次一超頌出佛化身雲等次一頌於一切佛剎讚佛功德次一超頌末後轉法等卽方便度生是也次一卻頌願行莊嚴等次一頌三世佛嚴道場雲等末後一頌半頌所歎普賢行等此等竝是祇洹林中當時所現之事今文殊頌中述讚辨矣第二顯德益中有三初明所得行體二一一毛孔下明所得行相三隨其所應下明行勝用初中由佛三昧照故得此大悲爲利他行體毛孔光所出尊重身雲明大悲之相就第三勝用中二初摠辨大用以滿法界二現不可說下別顯悲用於中有五門一以欣厭二門化二或於一切世下以十度門化於中三初明現處二爲一切衆生下正明所現十度於中初六可知七從善知時會下明方便度八悉能供養諸佛菩薩此一句是願度九降伏下是力度十知一切下是智度三以如是下結法成化三或現天宮下明以三輪門化於中四初明化處二大悲智下明化心三或以名號下明化行於中光明等是身業神通輪餘二可知四現處處下明化實謂此菩薩雖遍法界化用攝生而本不離此佛衆處閣內座上此顯不動而普遍繁興而恒靜也四或放化身下以三世間身化於中初以智正覺身化無二者爲無爲無二也又一身卽一切故無二也二或現聲聞下明以衆生世間身化三或現一切城邑等像是器世間身隨其所應結成化用五或現種種下以三業門化於中初明身語化次種種巧術下明意化後悉現下結成化處上來從會初至此十段不同摠明本會竟第二從爾時文殊下明其末會於中前則不異末之本故雖卷而恒舒則後文是也後則不異本之末故雖舒而恒卷卽前文是也是故本末無㝵同爲一品意存於此 今通釋此下文略作十門 一敍諸古說 二會數開合 三會主多少 四定會名義 五二位統收 六分成五相 七圓攝始終 八明法界人類九法界事義 十隨文解釋 初敍古中諸說極多難以備擧且敍一二一家云此中知識有四十五人後文殊不立只有四十四人初一是十信知識次四十是十住等四十位知識次二爲等覺位知識後一是妙覺位知識以舊無補闕文故但辨四十四五耳光統等諸德竝多同此說更依一家摠不配位亦不懸科但隨諸會依文散釋卽如五臺論及意法師等竝同此釋此二之中前說於文少違後說於義無妨准思可 二明會數開合者於中有六一若約所攝之機唯有三會一攝比丘會二攝龍王會三攝善財會功德雲已去竝同第三會攝以所攝之機無差別故二若就能化之主有五十二會初三及後第五十四普門城會俱是文殊無別主故餘五十一各別人會是故約主唯五十二三若約能所通弁有五十五會謂善財有五十三比丘及龍各有一故四若約主伴別分有一百一十會如下文弁五若約散說所依有三千大千世界微塵數會如後文殊處說此約引彼三乘機弁六若約普賢德有十方世界微塵數會如下結通處弁 三明會主多少者有二一若唯就人說有五十四人謂於五十五會中四會唯一人謂文殊又有兩會各二人謂遍友衆藝幷童子童女是故會有五十五主有五十四二若約會顯人有五十七人謂於五十五會中二處各加一謂遍友等可知 四定會名義者此等諸會竝無佛說何得爲經此等竝是傳法菩薩結集當時求法說法諸菩薩事同上本會所現祇洹自在等法令彼大衆睹已入法雖無佛語豈亦非經前本會中佛雖無諸所現事竝在佛會之中今此乃在遠方異處說非佛說復不對佛豈得爲例雖在遠處而不離本會是故常在佛前如上文中祇洹林一一境界尚攝十方一切佛剎況此諸處而不攝耶是故此五十五會不出本故名爲一會謂入法界品也旣此諸處竝在祇洹下文善財應見普賢及佛大衆在此重閣何故乃見在金剛道場以覺樹金剛爲八會本故是故不動金進覺樹遍諸會處尋末見本還在此故又此會初普賢及佛在祇洹中更無移動見之覺樹卽此祇洹亦在樹下思之可見五攝二位者此五十五會二主統收初文殊至後文殊是文殊位屬般若門後普賢一位屬法界門非般若無以入法界是故善財創見於文殊非入法界無以顯般若是故善財終見於普賢是故二人寄位以明入法界又前文殊卽明法界甚深普賢顯法界廣大義是故二門相影具德問前有功德雲等餘善知識何故乃云摠是文殊答皆是文殊攝化德故悉從文殊智惠大海所出生故是故下文或云文殊教我相黶法等彌勒亦云汝今得見諸善知識來我所皆由文殊師利之所攝受勘文是故有形文殊作開覺之初緣無相妙德爲結終之妙趣於中有三初一明始起於先際二從功德雲下明善修於中際後文殊明終歸於後際此亦是一周之行相耳就中際中初四十人明位內行緣則寄四十心位後十明位後行緣卽位外所修等也 六分五相者長科此文摠爲五相一寄位修行相有四十一人二從摩耶夫人下有九會十一人明會緣入實相三彌勒一人明攝德成因相四後文殊一人明智照無二相五普賢一位明顯因廣大相又此五相亦是菩薩五種行相一高行二大行三勝行四深行五廣行 七圓攝始終者謂此諸會差別位中一一各攝一切諸門是故一位卽有五十五及百一十幷剎塵等如一一切亦爾重重准之但爲寄法顯異布之前後思之可見若一卽具一切善財何須廣歷諸此之所歷竝是一中之一切故不出一也若是一中之一切者得一卽得彼何須更歷得一卽是歷多是故同時無有障㝵思之可見 八法界人類有二先弁類別後顯義相前中雖摠通論有五十七人收攝流類但有二一菩薩二比丘三尼四優婆塞五優婆夷童男七童女八天子九天女十外道十一婆羅十二長者十三博士十四醫人十五舩師六國王十七仙人十八佛母十九佛妃二十神二顯義相中有四句一約果攝化摠是佛智攝生之用海印三昧之所顯現二約因成行摠是菩薩成行攝生但隨願力現形差別以應群機三約義顯德摠是緣起法界之中人法門攝約相弁異卽是菩薩五生所收一息苦生二隨類生三勝生四增上生五最後生於中菩薩有三處現身一初文殊爲佛母故本有緣故位劣故唯一人也二中間漸進現於二人謂觀音正趣也後位成滿顯德勝故具有三人謂彌勒文殊及普賢餘人寄顯位別至文當弁九法界事義中通下諸位摠有十門一正報法二依報法界三現相法界四表義法界五言說法界六義理法界七業用法界八說往因法九結自分法界十推勝進法界然此十門同一緣起互融無㝵隨一皆具於下文中有具不隨文准之十釋文者今依五相科釋此文就初寄位修行相中有四十一知識內初文殊一人寄當十信守山知識以信不成位故不辨十人餘四位成故各有十就初中分二先明發起能化之緣後爾時尊者承力下明成彼化事初中三先主伴出閣明依本起末也證如離念名善安住法界數重名爲樓閣從此正證起後妙智名從閣出同行者智眷屬故以文殊表是吉祥智故菩薩是內屬餘力士等外眷屬十天者梵云提婆此云天亦云神同上初會中地神河神等竝是法門之神如名准釋此顯內報離染次有八王表法自在可知此竝顯文殊之威德耳二俱到佛前三設敬辭去明就機救濟故二成化事中有三會則爲三段 初攝比丘會中有二初明身儀攝益則令根熟起欲二爾時文殊告諸下明語業攝益則正授法門前中有七初睹勝緣二起勝念三攝勝機四示勝境五得勝益六詣勝人七蒙勝攝初中鶖子向會如盲何故此中乃得見釋以出本會故承佛力故二見已等者以根熟故作此勝念也三爾時下攝勝機於中初摠弁六千比丘是所被機從自房出者表捨小涅槃也向文殊者表趣一乘道也又文殊出閣辭南遊爲化主故鶖子房辭佛南遊從爲助引攝六千正所化問若爾鶖子亦是大菩薩何不同在閣答寄迹是聲聞故不在彼二此六千下別顯所被機於中三先標數位共行者同鶖子行如上文殊同行菩薩此亦如是又釋同彼鶖子相示聲聞德實菩薩之行故云共也新出家者未得羅漢果故染習未深明易迴故又釋新出小乘分別心家已入三乘位以鶖子守山是三乘之中法將故引之新出文殊是此一乘法將方便引之二其名曰下列名比丘者梵有三名或云比呼或云苾芻或云比丘此無正譯義翻有三謂怖魔破惡乞士釋相可知三曾下歎德於中有八句初二句明宿有大因性樂下現有深信四現行大願五觀佛勝境六了法實相七大悲益物八樂求佛果此等皆是下結德由緣謂明過去已蒙文殊攝護是故時還爲救濟也四爾時下明示勝境於中二勸觀自分境有六一令觀身光勝二眷屬勝三威儀勝四行處勝五依果勝六供養勝二海智勸觀勝進境謂加持勝也五爾時下明得勝益於中初聞讚悉喜是摠句下別有十三句益故歡喜也於中分五初五句明離障益二現見下二句發心益三逮得下二句成器益四長養下三句增行益五悉見下一句見佛益六時諸比丘下明詣勝人於中二先白尊者等起勝欲樂也二往詣等告來意也七爾時文殊下明蒙勝攝於中三初象迴顧視者明攝受之相二丘禮足明歸誠之相合掌而立明佇聞說相三作如是念下顯勝願熏心方堪受法初願知法以得涅槃後願身相等以得菩提前中如舍利弗者約生空實相釋迦者約法空實相也又釋如舍利弗所依之釋迦此則擧舍利而取釋迦也上來文殊身儀攝化竟自下第二語業授法中文有二先授自分法二爾時文殊下授勝進法中亦二先授法二彼諸比丘下明得益前中三初警告摠標二何等下別示行法三若善男惠光子下擧益勸修別中十門以顯無盡攝爲五對初二爲一謂大心敬佛次二爲一謂求法修行次二爲一謂依定起用用者則是大悲方便隨有受生不失正念能於生死久處攝生此卽翻彼乘怖生死見也次二爲一嚴土攝生後二爲一謂自行化人又釋前八自分後二勝進可知三擧益勸修中擧十種益以勸修學一生善益離染益三超出等出小益四生如來等入大益五具足等大願益六行菩薩行成行益七住位益八成果益九降魔益十制外益二彼諸下正明聞法得益中有二先明聞法得定益二得此下明因定行成益前中亦二先明所得定體謂所見徹過故云無㝵能見離曀故云淨眼下明業用亦二先見現在無㝵後又能下見過未無礙前中初見正覺及衆生二見器世間謂明所見境界廣大無邊故云如來十眼境也三聞所見諸佛說四他心通等知前所見衆生根欲五以生死智通知彼受生等二知過未中八各言十者以應圓數顯無盡故二明因得此定令行成立初句標所得心具十者廣無邊故際者深無底故二主伴定三主伴戒四主伴智五十明是智用如十明品說此是圓教攝機成大益故創立大心乃得十地之後十明之用以始攝終如上發心功德品及小相品等說餘教中則無此事第二勝進中亦二先教勸後得益不死通明者大悲爲因離業繫故又釋離分段故又釋通明作用無休息故不離此處等有二一不動此因出生果故云生如來等二不離一處能出佛身滿十方界此是不死通明之具一切佛法者明成果德之法上來明攝比令入法界一會竟此中明二乘迴心義略作三門一明迴之有無二明迴心身位三弁迴心至得云云 自下第三攝龍王入法界會中有四初結前起後二辨說法處三辨所說法四所得益處中辨法師釋云覺城者本覺也東者始覺大塔廟者始覺覺本覺也則於此處說普照法界者則於始覺覺本覺處覺心無初從本已來遍照法界故又日照三藏云此城在南天竺城東大塔是古佛塔佛在世時已有此塔三藏親到其所其塔極大東面鼓樂供養西面不聞於今現在此處諸人處處唱善財歌詞此城內人竝有解脫分善根堪爲修道之器有覺分者此城內故云覺城也此則覺者之城名爲覺又釋文中旣云是過去諸佛所遊止處佛旣名覺故知亦是覺者之城又准釋下文城山處所有名義皆是法門之所表也謂覺者表於生死有覺察故城者防敵外難內守德故卽覺用東者開明之始表是發覺之初簡終位之覺故云也塔廟者顯此覺德是歸宗之所故也餘教中託處表法非處卽法此圓教中所託之卽是所表之法名義卽事義故也思准之文處意竝同此 三所說經從所詮立名謂智用宏舒名爲普照所照深廣稱爲法界卽是入法界經也具足主伴是圓教法門四獲益中捨惡身後堅勝心此亦同前比丘住不退轉普賢菩提心位也第二會竟正三自下第三攝善財會今通辨下文相別不同略十門一明趣求差別二修入衆別三示方差別四示處差別五教問差別六歎不歎別七推不推別八結不結別九去不去別十釋文初中有三句初文殊自就覺城以物機初劣未發心故就之方攝二功德雲已去有善財往求顯位成故根漸勝故已發心故知識不就顯法重人尊故三末後普賢中知識不就善財不往明法界位滿無來去故 二修入衆別者於中唯初位內有三會四衆以是修故餘位唯善財一身以行別在人故 三示方差別者大位有三初地前知識多在南方地內無方地後亦有南方之者其南有四義一是正義如指南之說等表所向非耶故二是背闇向明義表捨障向理故三是離增減義如日東出西沒是增減相南離二邊表中道法界四是生義謂南主其陽生義北主其陰是滅義此表善財因行漸增故顯生義如來涅槃金棺北首表其滅義於此中前二後一地前表之其離增減義地後之地中正證離相故不可南表地後顯業用同地內也後文殊有示無方表般若有加行證無二也末後普賢無示無方表法界德圓普徧故也 四示處者有四句初三賢未證散在諸處二地上證眞生在佛家故多佛衆中等三地後起用亦散隨緣四普賢表因圓剋果亦在佛所五遣不遣中有二初後二位無教遣而自往至初謂文殊自往就故無人教後普賢遍故眼開自見又至後文殊般若智成自見法界故不待餘位無此二義皆有教遣又若不教遣卽諸知識獨著於己何成自行又唯言知一若不遣餘求何成圓備之益又若不遣豈合一位不進昇後 六歎不歎中三初文殊亦歎亦不歎善財未發心但勸令發心故不歎後勸令發心已方乃歎之中間知識皆有歎以發修進故不歎者應是略也後文殊普賢不歎以位成滿故 七推不推中二謂諸位知識皆有結自分仰推勝進唯初一後三無結無推爲顯人尊德滿故爾何以有遣謂表令位增故顯法門別故餘位有結有推以因行未圓故若爾普賢等以不推佛以非因位善友攝故 八結不結中前諸文皆無結通以行未究竟故唯後普賢有結通十方等於塵剎以普遍故行滿故事究竟 九去不去中唯末後二位無辭去以文殊以離相故無去普賢以德滿故無去餘位非此皆有辭去若不辭去封守一師何得遍求法界知識何成昇進之行 十釋文中就覺城攝善財會令成十信行中文別有四初明衆集顯所被機二明觀機辨授說方便三正說所授之法四引起勝進之行初中二先摠擧二時有下別別顯中四衆優婆塞者古翻名善宿男今譯名近事男謂親近比丘而承事故女亦同之修達多此名善施婆須達多此名財施跋陁羅此云賢餘名准釋可知第二文殊知覺城人下明觀機爲授說方便中有二初通標說意可知二觀察下別觀善財於中亦二初觀其現生勝二此童子者下察其宿因德行初中三初摠二別顯三善明相師下摠結別中由此福報財寶相起立善財名卽善爲因財爲果又得此順道之財故曰善財又生時寶現爲財後歎其行德爲善亦如善現空生等又智論釋常啼名准此可知二歎其德行中十句爲五對初曾供佛種善明此善財已曾宿種解脫分善根也二樂淨近友三三業淨修四求修果法五心淨具行以心無異念故淨如空又無現行煩惱等此善財是何位菩薩經無正斷位相難或有判爲地上菩薩設後發心則是四種發心中後二位也又是論中三發心內證發心也或有說是實報凡夫但有信心能求善友今更准釋應善趣信中行人依圓教宗有其三位見聞位則是善賊次前生身見聞如此普賢法成彼解脫分善根故如歎德中弁者是二是解行位頓修如此五位行法如善財此生所成至普賢位者是三證入位卽因位窮終潛同果善財來生是也若爾善財定是何位謂是何以在信是信位在住是住位一身歷五位隨在則彼位遍一切故如普賢位餘義准宗思釋第三文殊如象王迴下明正說所授之法中二明攝機許說身首俱迴如象王現身攝受相察目視顯意攝受相告而許說明語攝受相則爲下正宣所說說佛果法令成信故令彼發心求此果故八句之中初一摠後七別別中初三妙用攝生德一明爲機出世二放光集衆法三正說所說法後四明體相圓備德於中前二後二各先相後體可知第四爾時文殊下明引成勝進行於中有三初文殊南行引發二善財隨逐求救三文殊象迴攝受初中先結前後遊南方生後也前中令成信位菩提之心故云歡喜等也顯明過去善根者令彼過去所修善由今菩提心故更得增長使不失沒故云顯明也不捨本座等者明不離覺城而遍遊故也同上不起覺樹至六天等如上已釋若爾童子亦如文殊不去而遍諸位准之二善財隨逐中有二先經家敍事二善財說偈求救於中有三十四頌分二初四傷已迷淪不能自出後三十歎文殊德請求救濟前中四頌通皆具有惑業苦三別分三初二起惑次一造業後一苦轉中三有等起惑處也癡闇等起惑因也惡魔等起惑緣也三毒等正起惑也就造業中初二句失正行後二句成耶行就苦報中慳等擧餓鬼下結成苦果可知就第二三十頌中亦二九歎文殊德求其救厄悕離生死之苦後二十一歎德求其與法悕成行得果又前希離凡地後望離二乘樂又前望得涅槃後望得菩提初中九頌歎文殊九種功德一悲智德二慈惠三法化德四願滿德五救苦德六自在德力用德八善淨德九淨眼德又前八及後頌初三句歎德下一句求救二遠離下求菩提法中分四初二求示果法令知所求菩提次一求見三世諸佛成菩提行緣次十七正求能得菩提因行是故皆云乘或云道也後一結請就因行中分四初五歎智悲定攝德次三歎十度行圓德次四歎二利滅障德後五歎隨事攝生德第三文殊攝受中分五初迴視歎善財明受之相#二是故善男子下教近善友問菩薩行三說偈歎德令其心喜修四指示後位令其趣入時善財下慶聞辭退依教趣求就第二教近友問行中初教近善友二教請問行於中十句一句摠後九句別別中一問創修行法二問行成滿法三問淨治行法四問淨已圓成法五問從行出行法六問念持所行道七問緣彼差別境界道八問增長法用九問攝成普賢行亦是攝別成普行此上九種皆依前起後可知三偈頌中十頌分二初一歎善財已成行令喜後九歎普賢行令修初一教發大願爲行之本次二擧普賢行勸彼令求一擧行一勸求後六辨普賢行令修一多聞法行二多見佛行三順教修行四一切處行五一切時行六成大益行謂有衆生聞彼普賢名號者還成彼行得大菩提上來明信位成滿竟就第四指示後位第五慶聞辭退此二段文若約會分卽屬前會以是前位善友說故若約法分卽屬後位以是後位之方便 今通辨下文諸善知識略作四門一明求善友意二顯善知識義三科簡文段四消釋本 初中何故文殊不卽爲其一切宣說而令善財廣歷多處求善友者釋云意乃多端略論七種一爲軌範故謂諸菩薩於佛聖法恒修二謂求法說法經云明諸菩薩求法不懈說法無悋此中顯斯二行示諸衆生是故善財成求法之妙軌善友現說法之良規使諸衆生軌此躅成行卽佛花常敷廣嚴恒著者也二行緣勝謂成行之要莫不以良友爲先如阿難言知識是半梵行佛言不爾是全梵行經云阿闍世王若不用耆婆語者來月七日定墮地獄故我言得道之來莫若善友又如論說迦旃延令應入地獄弟子而得聖果等又經言善知識者是大因緣能令汝等當得見佛又下文云知識者是奇特法等由是要用是故善財求之無足三破見慢故令善財等新學菩薩破自憍慢及執見故令其求法不簡男女長幼貴賤道俗尊卑神天外道但卑身屈辱務存得法經云有知法者若老若少應當恭敬猶如諸天奉事帝釋四寄成行故此善財得一法門足成修何不修習乃遊歷無厭卽此廣求成就菩薩事善友行及求法行縱不得法此已成行皆得彼未曾得法慧眼開明見眞法界如花手經中求法千歲而不得聞因茲捨命生佛土等此卽是其所得之法謂得行法故也何不觀空入理乃隨事諠諠豈成菩薩甚深之行此隨事常見理故是故遍遊而未嘗有去未嘗有去仍有遍遊何不未嘗有去而不去也亦相似以去不去無二相故若爾何不座而有去解去坐亦相似以俱無性故五寄現位故謂廣寄善友顯信等五位差別之相文處可見何故善財不向佛所求法表因行未圓未至佛故不到佛所也六顯深廣故謂表顯佛法廣無邊故諸知識雖有位極法雲猶稱我唯知此一法門豈能了知諸大菩薩無量行相表顯佛法深無底故善財縱位至登地猶云而我未長在知云何菩薩行菩薩道等況今具縛少善凡夫微有所解便自謂解一切佛法起慢自高𣣋懱人恥有不知便臆斷經論自陷陷人何悲之甚七顯緣起故善財與善友成一緣起以能入所入無二相故是故無善友之外善財故彰一卽一切明善財歷諸位也無善財之外善友故顯一切卽一明多位成在於善財也由是卷舒自在相融無礙思之可知 第二釋知識義者有二先通後別通論眞善知識有其三類一人二法三人法合辨初人中有六一有人雖能濟其現苦而不勸修善非眞善友二雖勸修世善免於惡趣而不勸修向出世路亦非眞友三雖二乘出世善行免三界苦而不勸行菩薩之道亦非眞友四雖勸修菩薩道免於二乘猶存相善亦非眞友五要勸衆生修無相行方爲眞善知識此依佛藏經及智論等辨六要勸令具普賢行願方名究竟眞善知識此上竝是行善識以行引機故唯屬人二法善知識亦有重一人天法二二乘法三初教法四終教法五教法六圓教法依此等法以成正行故名善但隨教㩲實辨眞善友三人法合辨中亦六重謂於上六位法各說一門以授機緣卽人法雙辨也以此是解善知識說法授人不同前位眞善友等准之可解今此下文於上三位六門之內有通有別通卽六門皆有別唯未後以成就普賢行故又離世間品有十種善知識於此敍之二別辨下文諸善知識皆具前三此三位中各有三義且人中三者初聞名等爲方長在便二正見人爲得法界三問法等彰其德二法中三者初言教爲方便二智眼所得爲得法界三通明業用以顯其德三人法合辨中初聞名至處爲方便二見人得法爲得法界三說往因及推勝進以顯其德下諸知識皆准此知第三明科文分齊增數有十初摠爲一謂各一位故二依遠法師分二初親近善友後告言下結聽聞正法其繫念思及如說行竝攝在聞中就近友中有四初聞善友二求善友三見善友請問法就初聞善友中亦四初列國名是通處二山名是別處三善友名四教往詣二求善中有三一初聞心喜二禮足辭去三漸行訪友三見善友中二初往見後設禮退住四請問三一向已發心明已有機二而未知等問行法三我聞等歎德請近善友竟二聞正法中二歎其發心後正爲說法說法中初說證量法門後仰推等說教量法門此上科文諸位多同小有不同者三依辨法師分三分初聞名求覓等是加行位二受其所說是正證法界三仰推勝進是後得位四依衍法師等分爲四量一初聞名等是教量二依教尋求是信量三見彼依正是比量四聞彼所說爲現量此四卽是聞思修證也五有諸德分五於上第四現量中開出自分勝進二位餘同前辨六依意法師等分作六分一明求詣心行二明敬諮問三讚說己知以授善財四說己未知五更示智者勸令往辭退造彼七或分爲七於此六中第二內見後敬故也八或分爲八於此六中第三內先讚發心後說己法九或分爲九於此八中第五先指示後勸往十或分爲十於上九中第六先致敬後辭去謂一求二見三禮四問五讚六說七推八指九敬十去此上增數十種科中初五約位科後五約會科 第四釋文中今且依位五分科釋一擧法勸修二依教趣入三推求簡擇四正得法界五仰推勝進就此初位發心住知識內五分中 初擧勸內有四一處名二人名三教問四歎德初處中國表攝生分齊之義但此十住之初是信地所欣名可樂山者隨相閑靜賢聖所居亦是修三昧之所若約法卽表住位高出信門之上名和合者比丘在中得三昧相應故云和合又令善財與住位相應亦名和合又辯法師云聞熏與解性和合轉成聖人依故入發心住也二人名中比丘義如前釋爲創出外凡故以比丘表之勘天竺本梵名迷伽室利迷伽此名雲室利此云德順彼應名雲德比丘但雲有四義一普徧二澤潤義三蔭覆義四注雨義德亦四義定德二福德三悲德四智德於雲四義如次配釋可知又定眼普開如雲見佛妙德境智立名又普眼見佛多故如雲有斯德故以立其名經是于奠本翻名功德雲義亦相似可知三汝詣彼下勸往教問問中十問同前是故擧初二乃至十也四善男子下歎彼比丘德令其喜去擧法勸修竟 第二依教趣入中聞法歡喜者知有所向故悲戀者荷深恩故 第三推求簡擇中二初登山者明見心陟位故二於彼下明尋求實義七日者古說表度七方便方見本位又亦應是於彼山處先淨身語七支之失然後得見眞善知識 第四爾時善財見彼下明正得法界於中五初見人二設禮三諮問四讚問五正說初中見在山頂者表茲住位不退之際靜思經行者明修般舟三昧等故亦是一行三昧故又靜思修止經行成觀又是賢護等經思惟諸佛現前三昧之相狀也二禮中右遶是極尊敬相三諮問中二先白已發心顯有法器其易說二問所未知彰已渴法令起悲速說文諸處皆同此釋問中雖前教十問下諸位內多存此二依勘梵本應云而未知菩薩於菩薩應云何學應云何行此卽先解後行文處可我聞大師善能宣暢者依梵本應云我聞大師於諸菩薩善能教授善能教誡此卽由教授成前解由教誡成前行傳譯存略故摠云宣暢下諸文皆同此釋四讚問中二先摠後別別中九句同前所教初二句正同餘句不次三入菩薩境是前緣菩薩境也四出生等亦同五廣心是前增廣等六具足等是前具普賢行七隨順等是前滿足等八於生死等是前究竟等九有爲等是前淸淨及正念等此竝以他心智稱根而歎五善男子下正示法界於中有二先示義後我唯下結名前中二先明所得法體二普照下明其業用前中解脫力者正法師云此是發心住體謂本解性由大乘聞熏習故轉凡夫依令其得脫故名解脫依此所證能證智名之爲今釋此是依定所發作用無㝵稱爲解脫順宜不思議解脫等於一塵處見多世界今此亦爾不離此處見十方佛依正差別是此解脫之力用耳言逮得惠眼者然此解脫有能小處容致廣大有於一處而見一切今於二中偏取能見不取能致故云於彼逮得此也此則簡定所得法體二明用中二先通後別通論此眼見一切世界等非但見佛普照等釋惠眼也境界無㝵釋方便也除一切障釋淸淨也二一切佛化下別辨見佛先明能見之力謂陁羅尼此云摠持以念惠爲性然有多種或法持或佛等持今簡法等持故云佛也然佛中亦有法身報化今簡法報但取化佛故云一切佛化也是故所見之種種形色等竝是化身佛也二正明所見佛中先見佛身初東方後類九方二種種下見佛作用於中先見佛隨機現種種依正二見佛於衆決定說法二善男子下結名分齊中普門者簡異別門故謂別門中或見一方二方一佛佛等皆不稱十方今不依彼故云普門此門若開普見十方塵數諸佛如文所顯光明者顯見分明故此普門光明是前普照也觀察者見審細故是前觀察也正念者見時不亂故是上除障等也上是能見諸佛是所見三昧是彼見所依定創入住位先明念佛三昧廣見佛者以佛是究竟所依本故自分竟依佛方成餘行故 第五豈能了知下明仰推勝進中二先摠後別前中豈能了知等者顯己於彼實不能知知何法謂菩薩圓滿等卽名爲智行障無不盡故云淸淨德無不備故云圓滿二諸大菩薩順宜下別顯有二十一門各先擧所得定門後辨業用差別初十明念佛勝德圓備後十一念佛妙用自在前中初一具見佛主伴依正故名圓滿普照二念佛令衆生離倒之德故名淸淨摠中圓淨依此應知三念佛是處非處等十力之亦是大力那羅延等十力四念佛於法無倒能說能授亦是菩薩心於法無倒故能見佛已聞受持五以達佛海智分別如來約能念智爲名六念佛微細境謂一念具八相等如前後說故云自在下位菩薩摠不能見上位菩薩雖不能證入故名也七以念佛常住故云無倒八念佛應機未曾斷絕故云隨時等也九念佛依土現身十念窮三際佛第二明妙用自在門中初一念佛遍滿一切差別境中二念佛涅槃相故云寂靜三念佛超時不離時四念佛身滿法界故云廣大五念佛毛孔重現六念佛於一切處現成正覺故名莊嚴七念佛光照離染轉淨法輪八唯心念佛九由念佛故見所作業由如鏡像無體有相離執著染故云淨業十念佛修生功德嚴眞如法界十一念佛大智等功德遍照法界等十住第一位竟第二治地住位中五門同前 初擧法勸修中前旣推己不知誰能知耶故今指示後位勸令修入於中言海門者此國近在南海城門向海故名也又表觀海門開見治地法界故以爲名比丘同前海雲者此比丘常在海岸觀緣起大海及彼海上人法莊嚴遍覆如雲從所觀爲名如菩提薩埵等又表此比丘內具勝德深廣如外應群機雨法若雲又所觀法界深廣如海能觀大智周遍如雲故從境智爲名勸往教問同前可知二善男子下歎彼勝德有十句初一摠餘九別具因善者地前善也大地是地上力是佛地次二能歎因令增廣次二令行願淨次二令二利德滿三時善財下設敬辭去第二爾時善財下明依教趣求中先心念法門顯無散動故溫前所得故悕望後位故長養淨心故二身步漸進至於後位 第三見已敬請中二先設敬後申請於中先申己意樂二而未知下正請所要十句初五句問自行後五問利他行一一各二謂背凡向佛捨生死向佛果一約轉位餘多約喩准釋可知 第四爾時雲下明示法界中二初歎法器爲授法方便正示法界令其修學前中亦二先問答審定善男子下正歎其德於中初摠歎二得普門下別歎別歎中初十句歎能發之德謂具此德者方能發心二大悲心下十句歎所發心德謂具此十德是菩提心前中初得字貫下九句後者字亦通前九門其初普門普照等多是前功德雲處所得之法亦是宿有普賢種性故也十心中增數有十一初四攝生心一救現苦二授現三滅當苦四除彼因謂惡業也次二滅障心一斷煩惱障二除所知障次二證理心一正證二後得後三赴佛心一見佛身二順佛量智究佛理智二善男子下示已法界於中有五觀察大海爲證門方便二得見法界無礙依正三領受所流無邊教法四傳授衆生同入法界五結己所知唯一非餘初中十二年者有人釋觀十二因緣大海故有云住菩薩十二住故云此是十住之第二故云十二也觀海中初二句是摠擧所觀能觀下十句別顯觀相此中十種與十地品中大海十相有同有別准釋可知善男子我如是下重更硏覈令海門開二從作已下明海門旣開見法界依正於中先見依後見正報前中四初見蓮花出明依眞法界淨土集成二百萬下明外相莊嚴有二十句十一明衆生世間莊嚴後九器世間莊嚴三彼寶蓮花下明出所因亦是智正覺世間莊嚴中亦十句可知四隨順世間下結歎無盡謂據實唯佛境故摠不可說若約方便順於世間亦不盡二見彼花上下明見正報佛身有二十初十明佛果德備後十明妙用自在竝可知三時如來下明受所流教於中有五初摩頂身加顯攝受之相二說普眼下明所說經法普眼者從所詮爲目此是摠名唯如來境下十種別准釋可知三善男子我從下摠顯己聞四假使下別辨所聞法廣五我於佛所下別顯己廣聞持力此十持力中皆先擧所聞廣法後辨能持大力以大海等墨等書一品不盡於一日以此十持受爾所阿僧祇品如是於千二百一一日新受以此普眼經是一乘無盡修多羅故也四其有十方下明傳授衆生同入此法可知五善男子下結己所知 第五豈能盡知下仰推勝進於中二先摠擧二何以故下十句別辨初五自分行後五入佛果行皆云海者此比丘但知自一海更有多海非己能知故皆推也第二治地住竟第三修行住位中亦五 初擧法勸修中六十由旬者古人云修六度行故海岸國者此國在海濱故天竺梵本名海岸楞伽道解云此國通向楞伽山故也又到勝流法界之岸故又前入於海門今達到海岸故也善住者巧入理住身住虛空行路無㝵名爲善住勸往教問敬遶辭退竝可知略無歎德 第二爾時善財下依教趣入中先憶念前法隨路而行有十句中念彼教法次思惟彼義次修習法行後入深正證攝法除障 第三見已敬請中四初至彼推求見其依報二見彼下明見正報以智住無相身遊虛空下天等供養有十句明眷屬行三爾時善財下親臨設敬四白言下申己請意初十句問於法起行後我聞大聖下十句問行起勝用前中十種皆從微至著准釋可知後十中初二句明不離三寶行次不捨大願下二句明二利次不捨佛剎下二句明攝佛依正行次不離有爲下二句明悲智無住行後常聞下二句明攝法行 第四爾時善住下正示法界中二初歎其發法器二我已成就下示已法界於中四摠標法門謂證法界無障㝵義能令隨事用亦無礙也二我已修習下釋上法門初釋上成就義謂修習明了故也逮得下釋無㝵義謂照達所作名無㝵慧光則十二句是照用自在無礙之相剎那者此云念頃於一彈指頃有六十剎一百二十剎那名一呾剎那同此間瞬息頃六十呾剎那名一羅婆三十羅婆名一摩睺妒此云須臾三十摩睺妒路名一日一夜何以下釋成無礙義無所有者稱理性故無作者無功用故天竺本名無體性無作神力三善男子下顯法門業用中三初摠擧通用二於一念下明速至十方見佛供養聞法等行三若有衆生下明利物不空行四結名可知天竺本云得普速疾不空超度究竟無盡菩薩解脫解云速至十方名普疾超度供佛利生名不空此用無限故云究竟無盡 第五仰推勝進中二初別辨二十門淨戒善男子下摠無量皆不能知說三修行竟第四生貴住中五分同前 初擧法勸修中通城別名自在者良醫於此攝化自在故以爲又表此位中種姓尊貴生在佛家是故國名自在城名呪藥者謂於此城中放三昧光破無明闇如呪除鬼病說輪字法破餘煩惱如藥療餘病以此良醫者天竺本名達閉多解云此是種類之號在南天竺如此方吳楚等類但此類中此人善醫故能以法藥善治惑病故以爲名以此寄當無流位故滅障義顯故以表之彌伽者此翻名雲謂能注法雨潤益衆生故名也無歎德餘同前辨 第二爾時善財下依教趣人中思念前法使純熟成滿十句中初二句念所得所具次正念佛下二句念所歸所離次念善知識下二句念所求所度次於一切下二句明護煩惱行後悉能下二句護小乘行以此熏心增其正行漸至等明進至後處 第三見敬申請中四先入見依報二見正報法堂顯其正說輪字莊嚴光經者明所說教法有本錯作論字諸德種種解釋近勘兩本梵經皆名輪字請則改正謂三藏解云輪有多義一約字相伽中字輪圓滿猶如象迹等二約所詮盡理周備如輪滿足三約用謂下所言不虛等有傳授義滅惑義如法輪等卽輪字教法詮示莊嚴光除障爲光證理爲嚴三時善財下親近設敬四白言下申情請問問中初二句爲摠後十句爲別竝准釋可知 第四爾時良醫下明示法界中二初敬歎法器後授己法門前中四初審其發心二敬禮供養何故禮者古釋云顯敬法重人故明諸弟子修行法時敬法具顯師卽不爾已有通教之德是故於弟子常有敬法之心但身事不得起禮今此以心行難明故現相表又云敬其道器也又云不輕末學也今更釋以菩提心是佛因故重其果而敬其因此敬則是行菩薩行故示此軌則令衆倣學又釋佛果大心不足爲難創起大心此則爲難是故經云發心畢竟二不別如是二心前心難自未得度度他故我頂禮初發心又釋此心希有能廣出是故敬禮如新翻法界無差別論中敬禮菩提心者如世間人禮白分初月不禮滿等以希現故滿月由此故三敬重下明言中歎德中三初十歎大心功德能初二爲佛果依正性性者因也以菩提心是因法故皆云性次二成所化次二成業行因次二願智因謂願常隨有恒離欲後二爲大果因謂菩提涅槃也二爲一切佛下十句爲十王敬護三彼爲安慰下明得敬護之因亦十句可知四善男子下汎明一切菩薩勝德中二初法說二菩薩爲大風下十三句約喩顯德准釋可知二爾時良醫下示已法界中二初口光集衆說法廣益二還昇本座方示已法界前旣敬禮今何故復坐前未與非弟子故致敬無咎今現師位是故還坐言不虛者言必饒益故天竺本名得妙音陁羅尼法門解云卽是此中分別知天龍等語言是業用及結名可知 第五云何能說下仰推勝進中三初一句摠擧二彼諸菩薩下別顯句悉是言音字句施設等繁廣如海勝進深入非已能知三逮得下結彼所得深妙之法第四生貴住竟第五方便具足住中五分同前 初擧法勸修中住林者行德建立名林安固不動稱住又此長者棲薄大林長道之所因以爲名又住三昧身內廣現佛境依正因果如林長者名解脫者有財有德名爲長者身內容現無邊佛境定用自在名爲解脫 第二爾時善財下依教趣入初念法熏修也二如是念已下明身遊涉中初一句摠念前法二入菩薩下六句明利他三堅固菩薩下十句明自分行成四逮得普眼下十句明勝進行立二身遊中十二年者人云自分勝進各修六度故以表之後漸至後 第三正敬請中三先推求簡擇見已設敬二作如是念下生勝欲樂起難遭想以悕望多年今方見故九句可知三白言下申意請問諸文皆先述己力發菩提心然後請法以此文驗卽欲受大法要須發菩提心若不發此心非此法器是故諸文皆先定發心或善友重問然後爲說此爲佛法之大轍應思記之請中三申自欲樂二我聞大聖下歎德勸說三唯願下結請令說前中四初十句欲窮佛寶境界二欲聞一切佛法下十句欲窮盡法寶僧寶境界各五句可知三欲得一切諸佛菩薩因緣下十句明欲窮盡十藏源底四欲滿諸願下十句明欲令萬行圓備欠一句二白言我聞下歎德勸說初歎能善教令餘菩薩離障得果二其心下歎其自心常淨具德三唯願下結請可知第四時解脫長者下示法界中三初入定嘿示二出定告示三結唯知此一初中亦三先具緣入定內文殊憶念力者善財善友不捨之力攝剎從境爲目旋持從智爲名攝彼剎隨己智轉含攝㧾持故爲號二入已下明法界業用無㝵之於中初身內現佛三種世間實報因果二或於一剎下明現佛八相㩲化攝生三善財悉聞下明善財入前法界聞彼身內佛所說法又見彼身內佛神力等二爾時解脫下明出定告示中亦三初擧法門體二辨業用三勸修令入中無㝵有四義一者一一如來各具一切無㝵莊嚴二者一一如來互遍無礙三者一切如來莊嚴悉皆入此長者身內四長者徹見十方佛此文具四故云無㝵三得此法門下正顯業用中四初略見十方各方剎塵佛二若欲見安樂下隨心廣見一切諸佛皆佛不來此而令此見此不往彼而常見彼如是無㝵三知一切下釋不來往知見所由中先釋有五對初一對標下釋何以無從至以能見所#見俱在夢中各無自體何所來去以夢無處所故此約體釋二對中如電等約佛大用有四種義一照水現影以應機故二破闇見道滅衆生障故三不可執持以離相無㝵故四速滅不住以非世攝故心水定澄能現彼像水亦不去電亦不來而像無不現故也三如幻對中以幻心無㝵故能現無㝵之幻佛於幻身內現多幻佛無所障㝵此是緣起相由門中自在之義思准之四如響對中釋上聞佛說法音聲等如是知下結知證入故得自在四善男子當知下通結所作皆由自心諸佛境界遍滿一切但以心垢對之不見若修治自心令離障得定諸佛境界當處便現故云三是故善男子下勸其修學是前所說由自心得故勸以十法修治自心謂一以善長心以法潤心三於境鍊心四以懃策心五以定攝六以智洗心七以惠反照心八法純熟心等佛果心十十力照心下結己唯一可知第五仰推勝進中初一句摠次五句別顯行體無㝵次於一切諸方下明行用自在然諸文仰推有二類一卽於自己法門之內更有深細非己能知卽如此文及前位等二推異類法門非己能知如前第三住中推菩薩戒等上下諸文皆此應知第五住竟第六正心住中 初擧法勸修內國名頂者在閻浮最南畔處故云頂也表第六般若終極故也海幢者古人云定深如海智勝若幢又釋定身獨出名幢業用繁多云海設敬辭退中歎悲泣者傷已無始不逢善友今遇會心原故又指示般若門荷恩深故 第二爾時善財下依教趣入謂念前趣後念中初二句摠下十句別一能入慧二所證理三所攝德四所起用次四了知剎海後二受持行願皆是解脫業用難知同名不思議也二漸趣至後 第三見敬請中初見彼依報推求簡擇二見正報靜處安 第四從三昧正受下正示法界於中七辨法體二示法界業用三令善財觀證法界出定歎德五問答現名六問答現用七結唯知初中身安不動心寂無覺七轉已息唯第八持身定前加行誓願力故令於定身起諸業用若圓教中融攝法界自在無㝵故業用無方未曾起念摠有十四門初足下出長者等衆明修行之初以施爲首二從兩膝出剎利等者具云剎帝利剎此云土田帝利此云主則王種王種以福化人婆羅門以智化導三從腰出仙人者以多著斷常故兩邊出也三歧杖於上安居甁洗淨用也西域外道多執此甁杖四脅出龍五胸德字出阿修羅六背出二乘者與大乘正面相背故也此是貪他財故慈觀治也瞋無情故教緣起觀是耶見愚故教巧觀法體無二我也七肩出夜叉八腹出緊那羅等九口出輪王十兩目出日十一眉間出帝釋十二額出梵王十三頭出菩薩以十波羅密教化衆生十四頂上出佛者明極果尊勝故於中二先十二位攝菩薩衆後二十事攝雜類衆前中初平等法者令道場菩薩速成佛果齊諸古佛也二普門法因位旣滿令攝別歸普三普莊嚴法者以灌頂受職普嚴法門授第九位令其修學四堅固山法者第八住中成三業離過不動故也又令不捨此不動而進受第九無㝵說法是故方云堅固如山五海藏者以第八住無生藏海住與第七令其修學故六普境界法者以七住中善巧周遍所緣境法住與第六令其修學七自性地音聲法者六住中讚毀自性但有言聲授與五令其修學八隨順世間法者令第四住進修五住隨於世間五明等法九厭離法者令第三住厭離世間向於第四出世住故十長養法藏令此受持第三住聞持陁羅尼甚深法故一精進法者策此初心令更進修至後故十二信行者住前信中菩薩何以不言菩薩者以不成位但是行故言無盡法者令脩普賢無盡行准依此文十住滿後卽至道場成佛而不說十行等者何也此是普賢十住攝後諸位皆在此中顯一位卽一切位故是故一位滿後卽至佛地如上十行等後成佛同此也此是以位攝位門若以行攝位卽十信滿心成佛如賢首品說此之一轍非此圓教餘處摠無正是一乘宗之大例自下二十門爲諸天竝是入法界之器非是世法一以色究竟天雖是長壽終歸有盡今爲說法身平等無盡法二者初禪梵王有慈不普爲說大慈普覆衆生三者自在天世中大力終歸滅盡爲說法身生善根力四者建正法幢降彼耶心此亦是他化天攝五者化樂自念化作樂具爲說淨念令念法門六者爲說出世淨意樂故令其遠離執手染心七者夜摩喜樂終竟無常爲說出世眞法歡喜八者彼著地居有爲莊嚴爲說福智莊嚴性空九者令此夜叉捨離惡護衆生命故云歡喜十者彼屬諸天而不自在爲說出世法樂圓滿不繫屬他十一者修羅大力爲天所伏爲說出世法身大境物莫能過十二者彼金翅鳥雖有大力只遊一界故今爲說法身金翅覆無量世界十三者緊那作樂愚著無益爲說出世勝智益生自他俱樂十四者人王樂著世間五欲爲說欲過不可樂十五者龍有熱沙金翅等憂爲說無我令彼歡喜十六者摩睺惡性事中好諍因則爲說甚深寂靜十七者地獄苦逼心亂爲說法安心令得正念十八者說智治癡十九者閻羅王處苦具可畏說法除之故云無畏二十者餓鬼飢渴常惡悕望令說法翻之言悉令衆生下結上所說皆向出世賢聖之門明放光利益可知第三爾時善財下明善財觀見得法中二初觀比丘身明證人法界二念彼三昧下證法法界中四句初一句念彼法體二思業用難測三思其大用深廣言無量者明前十四處所出廣多言無作者明不作功用顯其甚深四觀察法界下明法起所因謂法界嚴智是因力依佛智等是緣力出生等現所作事明善財委得其本故具知也第四出定歎德中二先出定者利益事訖六月六日者是第六住故二爾時善財下明言中歎德於中二初十句歎三昧體深廣具二大聖其有下歎業用於中初歎下救三途人天等二發菩提心歎上益菩薩用謂從信行終至道場等第五問答顯名中答有三名初一摠名普眼平等法門見法界故障無不盡云捨理無不證名得二淨般若約智離障三淨嚴約境證得善男子下釋立所由良以此德當其第六般若位故第六大聖下問答辨業用答中有二十三句初六句明於器世間自在二見一切佛下十一句明於智正覺世間自在三大悲攝下六句明於衆生世間自在第七結已唯一可 第五仰推勝進中三初一句摠推二皆悉深入下別三我尚不能下結不能知以積行成德行尚不知況所成德第六住竟第七不退住中 初擧法勸修中海潮者顯別住處近大海側潮浪至之處表此第七巧便就機用不過限故園林者衆行建立棲止之所嚴者勝德圓備優婆夷者是慈悲之貌休捨者智論第八名呼捨羅勘天竺本名阿舍此翻名意亦名滿願以能滿一切衆生願故二勸往教三時善財下慶己所得設敬辭退 第二爾時善財正念下明依教趣入於中二先敬念人二又作是念下見其勝德身漸遊行 第三至海潮下明見已敬請於中四先見依報二見正報三設禮四申請初中有十三事嚴此園林初寶牆二花樹三堂四閣五殿六池七有大宮殿八殿內有十種座九寶帳覆座十寶網覆帳十一光明普照十二有十種電光十三百種雲二時優婆夷下辨正報莊嚴於中三初勝德嚴身吉由羅者此云臂印莊嚴也二眷屬圍遶其有見下明利物不空三爾時下明善財正設四白言下申請可知 第四答言下正示法於中有四初擧法門體用二明因緣厚薄來果夂近四顯法門名字初中四初一句擧法門體二若見聞下明其勝用三東方下顯佛被四我此大衆下明眷屬行成二往因厚薄中先問後答答中二初擧過去所事諸佛涅槃中八恒佛所此位中多於彼也二了知下十句明所成法界行德三來果夂近中亦先問後答中三初不爲限齊故發心二欲教化一切下正爲作無齊限事故發心於中各有十四事相可知三是故下結自修行無限齊故不辨自身成佛期若爾豈可成耶菩薩闡提亦不成衆生須成亦現成故望自證理無成不成故四顯法名字中先問後答言離憂安隱幢者心多劫遭苦無憂造修正行安隱無倦大志獨是故云幢天竺本名無憂建立幢我唯下結已可知 第五仰推中二初一句摠擧二諸菩薩心下九句別顯行德我當下摠結第七住竟第八童眞住中 初擧法勸修中國名海潮者雖起潮浪海無增減表此位得無增減法界證理起悲如海起潮同前處者表第七已上同是菩薩故仙人者表第八童眞淸潔之貌又表純無漏故又表唯反易身故同八地等也毘目多羅者天竺本名毘目多羅濕懼沙此翻名最上無恐怖聲上文歎佛處云以一切智微妙音安慰無邊衆生界此名得也二歎德勸往教問可知三善財荷恩敬辭中十一句初一句摠餘十句別一大乘眞友暫逢亦難二況得同止多此二善友難遇値之三若自無大乘根器不成故云得菩薩根難四雖得根器正直眞心此發亦難五雖具此因得同行同願伴善知識亦復更難此三法器難辦六正得法身難證正說法身難聞此二法義難得八生大心難求果智難十長大行難此三心行難備 第二爾時下依教趣入中初念前法初句摠心能長養下十句別顯所念皆言心能者心若淨則行無不成是故順教念心法功能也初二心爲行次二心能起行次二心能攝法次二心能成定惠後二心能除障二漸遊下正趣後位推求簡擇 第三見敬請中五初見依報二爾時善財見彼下明見正報樹皮衣等明少欲之相設禮中五體投地敬之極也四念善知識下起勝念想十句初五句念彼能作成之因後五句念彼悲智巧運度故五作是念下敬遶申請第四時彼仙人下明示法界中二初歎發心爲授法方便於中三初仙人歎有十句明善財大志所作德二眷屬供禮歎亦十句明善財廣益衆生三時彼仙告大衆下結歎大心當成大果二告善財下正授法界於中四初示法門名體以此位中高出功用之表故云幢然不爲相惑所動故云無壞智惠是其法體是故天竺本名無能勝幢菩薩解脫又此仙人定惠作用勝出無屈故以爲名二辨其業用中先問中境界者問其業用分齊也則申右手下示用現答摩頂執手是加持之相於中三初入廣處見佛聞法以脩大行二或自見下復多時以修勝行三明法門照得益之相有十句五對初一摠後四別能照皆是無壞憧之別義因照所得皆是明淨藏異德以此明淨梵本名爲毘盧遮那藏是故該攝也三放手下明息用歸本放手者令其出還在本處者不移此處而見十方故處旣還本時亦未經一日是故於一時一處頓修成十方多劫行成者皆善友圓教法門力也是故善財一生至究竟位者良由此等也下文云一切諸佛無量劫修善財一生皆得者亦由是也故普賢位中或無量不可說劫修非唯三祇法力加持所經時劫或一生一念如本時等無定限可准通之汝憶念者問觀中事唯然者正憶不忘知識力者是勝位加持顯非自力答所由四我唯下結己所知明授法卽盡更無遺惜故 第五仰推勝進中三初摠推二諸大菩薩下別於一切時輪自在者古人云於一切時機三輪自在又可於一切時劫迴轉自在故說輪也三我豈能下結非己分第八住竟第九法王子住中 初擧法勸修中國名進求反道之相人皆背捨旣成順用故令進求在反道之位不宜怠慢故以爲名依天竺本伊舍那此云曠野亦名悕求婆羅門者梵志淨行方便命者隨事以方便爲命故刀火不能損又刀火返道以爲方便正行相續故稱爲命天竺本是野人也 第二爾時善財下依教趣入中亦先念前二漸漸等趣後此等亦得摠屬前謂初見敬申請是親近善知識二告言等摠是聽聞正法三念前法門是繫念思惟四進至後處是如說修行是故摠成四親近行念前法中四初念前因無壞憧照所得三昧等法於中聲聞忍是人空無生忍是法空善財此處得無生忍者以是前第八住位之益故同第八地也二常行菩薩行下念前遊諸佛所成勝行三於一念頃下念前遊諸剎海行四又知無量下念前所見諸佛化衆生行是卽諸文成益皆悉在此憶持法門使純熟明淨證會究竟二到處可知 第三見敬請中三初見苦行相二禮初中四面火聚者正法師云四無㝵智能燒惑薪刀山者眞無分別出妄解也從彼山上自投火聚者加行相應意言分別緣眞望證眞顯妄滅故也又解火聚者是根本般若故智論云般若波羅蜜猶如大火聚四邊不可觸遠離於四句解云此智火有四義一燒煩惱薪二破無明闇三成熟善根四照現證理刀山者加行智趣證疾利故高峻者非卽正證故投下者從彼入此故又刀是斷德障無不割故火是智德無不照故投下者障盡證理故此火聚刀山卽法門更無表示若爾何故有刀火相解云卽似此相卽是法門甚難解者是此文意設敬申請可知 第四答言下示法界中有六初示法勸二善財作如是念下對此生疑三作是念時下菩薩加勸四童子聞奇特下除疑悔過五登刀山下如說修行正證法界六我唯成此下結己唯一就初中言若能登刀入火者勸其捨分入正證法界也菩薩行淨者分別盡故離障淸淨證法界故菩薩行成何故要以如此法勸爲破其見故令解菩薩深密法故順相易解逆相難知故令知也如是反道上下文中摠有三一此位同耶見二滿足王同瞋恚三婆須密同貪愛是故三毒相竝有正法然有四義一以當相卽空故諸法無行經云貪欲卽是道恚癡亦復然於此三事中有無量佛法解云此約卽空是佛法非謂三事卽是佛法二約巧攝生說爲佛法非謂卽是如淨名云先以欲拘牽後令入佛智等三約留惑潤生長菩薩道說有佛法非謂卽是如淨名一切煩惱爲如來種四約當相則是不同前三此極難解不思議故如此文是也二生疑中初十二句念現得生疑恐壞道緣失正行故二此將非下念當得出疑壞我應得不令得故惡菩薩者實是惡魔詐現菩薩是初心菩薩已退本心欲妒害者名惡菩薩驢菩薩狗菩薩等三加勸中有三初色界梵天二欲界六天勸三龍神八部勸初中三一告善財莫作是念者摠勸莫疑二別歎炙身本意德三時諸梵天下明因此通化攝生德四種道者四無礙智道也二一萬魔等六天中一萬諸天者是夜摩天與忉利四天等同說曼陁羅花等者大小白花也伊那槃那龍者伊那是樹槃那是以過去壞樹葉故墮在龍中立此名也難陁等名歡喜極歡喜龍也餘勸等可知四除疑悔過中三初起眞心二禮謝悔過三說偈受懺開文寶善財是大人何故疑者以相是反道理須疑也若不爾者無以甄別耶正何故勸者顯示實德故若不爾者無以簡眞僞是故拒其耶相勸故受實德問若是魔王作此豈亦不能現此勸耶答亦是前善知識指示此人固非悞況勸中正說非魔所能善財已得超魔之眼豈不見之若爾知非是魔何故生疑以大菩薩境未能知故法須疑故如前說也偈中初一勸順教除障後一勸因得果五如說修行中三初得安住三昧者加行定謂無散動智以刀應割斷反此故安住也二旣至者到正證位寂靜是所證理安樂是能證智照明是證相應亦是破無明也入火應燒苦反此故寂靜安樂三白言下明得智說證中事觸者是證智與理融故云快樂六我唯下結名無盡者智依大定遍照法界故云也又反道之用普周法界故云無盡天竺本名得普攝道場菩薩解脫解云普攝無盡諸衆生界如上加勸中顯皆令向佛果故云道場梵本名毘目叉此云解脫舊翻名法門但依得出離名門則此名解脫亦有業用自在可知第五仰推勝進三初明淨法王等一句是摠二滿足下別三如是等下結推可知第九住竟第十灌頂住中 初擧法勸修中城名師子奮迅者謂三昧德用自在之相童女者位滿離染貞潔之相彌多羅尼者此云慈女謂智德內圓慈相外彰故名也天竺本名彌多羅衍那此云慈救物也彼本亦云此女父名師子幢卽是王女也以位滿故 第二爾時善財下依教趣入定孝中先念前法後至後處前中初念自分境中觀眞際等二決定了知佛下明念勝進分中果法等漸至後處可知 第三見敬請中五初推問二指示三入見殊勝依正金色者可貴之貌位滿顯彰四設敬五申請可知 第四答言下示法界中四初示法令觀二觀已顯名三辨法業用四結己唯一初中三先一句擧法勸觀則業用自在依止法界二見一一下明正觀證法界略十句一一理實無邊下文普賢毛孔現塵剎等卽正報現依此中則依報現正皆是無㝵界自在故也又此亦是器世間內現智正覺是因位中現果法亦是體中現用有法喩合三皆是彼女下結法屬人亦是結果由因二爾時財正念下顯法門名先問後答答中名般者第十住位智度滿故卽智自在依止法界普莊嚴者依智起用具德圓備如法雲所顯則其事也彼諸如來以異門令我入者攝別歸普故一切成一故顯一甚深故廣多故三白言下辨業用中先問後答答中二先擧法摠標生平等時者明正證相應時明得法門之體也得普等者摠明所得業用也以此中得陁羅尼門三摩提地門依止法界故以十住十地境位同故得法亦相似也二所謂下別顯所得於中略擧摠有一百一十六門分作十位初八門明所知理事持二功德下十門明行持三從業陁羅尼八門明業持四從善行三昧下六門明定用持五心海下五門明知他心持六發起衆生下十一門明知所化持七大悲下十五門起能化八世界起下十七門知剎海自在持九分別佛身下二十七門知佛海自在持十菩提心色下十門知色海無礙持我唯下結已可知第五仰推勝進中三初一句摠推深廣之德安住下十句別顯於中初二句明行深次離癡下二句明惠廣次得無㝵下明眼智無㝵次一切世間下二句明行堅固後善巧下二句明攝化自在三如是下結非己分上來十住摠明十住竟花嚴經探玄記卷第十八乙巳歲分司大藏都監開板
  1. 1)『화엄경』 전체를 다섯으로 나누는 현수의 과분 중 그 다섯째이다.
  2. 2)『탐현기』 제17권[대정장35, p.432 중] 참조.
  3. 3)『섭대승론』 제1권[대정장31, p.156 하].
  4. 4)『중변분별론』 상권[대정장31, p.452 하].
  5. 5)60권본 『화엄경』 제1권[대정장9, p.400 중].
  6. 6)위의 세 가지 해석 중에서 첫째는 법으로부터 일어나는 세계가 법계라는 의미이므로 법과 계 사이에 격 관계가 성립되는 복합어. 즉 의주석(依主釋:tatpuruṣa)으로 본 것이고, 셋째는 법 하나하나가 곧 계라는 뜻이므로 지업석(持業釋:ka-rmadhāraya) 즉 동격관계가 성립하는 복합어로 본 것이다. 둘째 의주석도 되고 지업석도 된다는 것은 모든 법이 의지하는 성품이라는 의미에서는 의주석이지만, 그 성품이 곧 법계라는 뜻에서는 지업석이기 때문이다.
  7. 7)「입법계품」을 해석하는 데 넷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8. 8)탁법진수성행분. 곧 「이세간품」을 가리킨다. 『탐현기』 제17권에서 해석하였다.
  9. 9)「입법계품」을 해석하는 데 넷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10. 10)제8 아뢰야식.
  11. 11)『섭대승론본』 상권[대정장31, p.133 중]. 원래 이 구절은 『대승아비달마경』의 게송[無始時來界, 一切法等依, 由此有諸法, 及涅槃證得] 중에서 설해진 것이다.
  12. 12)60권본 『화엄경』 제31권[대정장9, p.597].
  13. 13)“열 가지 지위에서 증득하는 열 가지 진여이니 진여가 비록 하나지만 지혜의 깊고 옅음에 따라서 열 가지 차별이 있다.”[『통유초』, p.469] 열 가지 지위에서 증득하는 열 가지 진여는 『성유식론』에서 설해지고 있다.
  14. 14)법처에서 거두어지는 색인데 극략색(極畧色)ㆍ극형색(極逈色)ㆍ수소인색(受所引色)ㆍ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ㆍ자성소생색(自性所生色) 등이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대정장31, p.696 중].
  15. 15)선법진여(善法眞如)ㆍ불선법진여(不善法眞如)ㆍ무기법진여(無記法眞如)ㆍ허공무위(虛空無爲)ㆍ택멸무위(擇滅無爲)ㆍ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ㆍ부동(不動) 및 상수멸(想受滅)이다.『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대정장31, p.666 상]. 기타 무위법의 분류에 대해서는 『탐현기』 제6권 참조.
  16. 16)이는 『기신론』의 뜻이다. 수상문은 시교(始敎)의 뜻이며, 무애문은 종교의 뜻이다.[『발휘초』 p.358 참조].
  17. 17)60권본 『화엄경』 제15권[대정장9, p.496 중].
  18. 18)대정장 8, p.415 중.
  19. 19)표의명언(表義名言)과 현경명언(顯境名言). 표의명언은 소리ㆍ단어ㆍ문장ㆍ음절 등에 의한 것이고, 현경명언은 의식이 대상에 연하여 종자를 훈습하는 것이다.
  20. 20)대정장16, p.688 하.
  21. 21)신수대장경의 갑본에는 전(全)이 영(令)으로 나와 있다.
  22. 22)60권본 『화엄경』 제3권[대정장9, p.412 하].
  23. 23)상동.
  24. 24)뜻을 기준으로 한 것에 둘이 있는 가운데 그 둘째이다.
  25. 25)신수대장경 갑본에는 ‘단(團)’이 ‘원(圓)’으로 나와 있다.
  26. 26)주제를 밝히는 셋 중에서 그 둘째이다.
  27. 27)제16 선지식 법보주라(法寶周羅)에게 10중의 누각이 있다[대정장9, pp.706 하~707 중].
  28. 28)제10 선지식 방편명(方便命) 바라문에서 나온다.[위의 책, p.701 상].
  29. 29)갖추어 말하면 아중비(阿衆鞞)인데, 입맞춤의 의미다. 제26 선지식 바수밀다녀(婆須密多女)에서 나온다.[위의 책, p.717 중].
  30. 30)법계의 종류에 다섯 가지가 있는 중 그 둘째이다.
  31. 31)위의 책, p.457 하.
  32. 32)주제를 밝히는 데 셋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33. 33)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 것이다.
  34. 34)과위의 기준으로 해서 볼 때는 돈오이고, 인위의 기준으로 해서 볼 때는 점수이다. 그런데 인 속에 과가 있으며 과 속에 인이 있으므로 돈오와 점수는 원융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35. 35)‘말씀[詮]’은 ‘증(證)’이라 되어 있는 고본도 있다. 양자가 통하지는 않지만, 전(詮)자가 옳을 것이다.[『발휘초』, p.359].
  36. 36)이 품을 해석하는 데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넷째이다.
  37. 37)대정장9, p.686 하.
  38. 38)산스크리트 Śrāvast의 음역어이다.
  39. 39)산스크리트 Jeta의 음역어인데, 제다(制多) 또는 기타(祇陀)로도 옮긴다.
  40. 40)산스크리트 Sudatta의 음역어이다.
  41. 41)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42. 42)보현보살과 문수사리보살이다.
  43. 43)문맥에 따라서 ‘셋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44. 44)중생세간에 셋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45. 45)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46. 46)『불지경론』 제2권[대정장26, p.298 하].
  47. 47)대정장30, p.759 중.
  48. 48)아라한과를 가리킨다.
  49. 49)『불지경론』 제2권[대정장26, p.298 하].
  50. 50)대정장9, p.679 하 참조.
  51. 51)위의 책, p.630 상.
  52. 52)상동.
  53. 53)“무량 백천억의 보살이 있어서 성문의 형상을 나타낸다.”[대정장10, p.905 중].
  54. 54)인공과 법공.
  55. 55)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ㆍ욕애주지(欲愛住地)ㆍ색애주지(色愛住地)ㆍ유애주지(有愛住地)의 번뇌를 말한다. 『승만경』[대정장12, p.220 상] 참조.
  56. 56)애(愛)ㆍ에(恚)ㆍ만(慢)ㆍ무명(無明)ㆍ견(見)ㆍ취(取)ㆍ의(疑)ㆍ질(嫉)ㆍ간(慳). 『유가론』 제8권[대정장30, p.313 중].
  57. 57)유신견(有身見)ㆍ변집견(邊執見)ㆍ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탐(貪)ㆍ에(恚)ㆍ만(慢)ㆍ무명(無明)ㆍ의(疑)[상동].
  58. 58)
  59. 59)본 회를 크게 열로 나누는 중에 그 둘째이다.
  60. 60)위(魏)의 북대(北臺) 의 법사를 가리킨다. 『화엄경전기』 제3권에 의하면, 그에게는 몇 권인지 알 수 없으나 『소(疏)』가 있었다고 한다.
  61. 61)신수대장경 갑본에는 ‘응(應)’이 ‘칙(廁)’으로 되어 있다.
  62. 62)60권본 『화엄경』 제44권[대정장9, p.677 상].
  63. 63)대정장9, p.625 상.
  64. 64)「성기품」 상동.
  65. 65)「이세간품」에서 설하는 10불 중의 하나[대정장9, p.663 중]. 『탐현기』 제17권 참조.
  66. 66)대정장9, p.591 중.
  67. 67)대력나라연당불이 머무는 열 가지의 법이다. 「부사의품」 [대정장9, pp.597 하~600 상] 참조.
  68. 68)「이세간품」[대정장9, pp.649 하~650 중].
  69. 69)대정장9, p.600 중.
  70. 70)「노사나불품」[대정장9, p.405 상].
  71. 71)「여래명호품」[대정장9, p.418 중].
  72. 72)법무애지(法無礙智)ㆍ의무애지(義無礙智)ㆍ사무애지(辭無礙智)ㆍ요설무애지(樂說無礙智).[대정장9, p.568 하].
  73. 73)무애지(無礙智)ㆍ무주지(無住智)ㆍ무단지(無斷智)ㆍ무치지(無癡智)ㆍ무경지(無境智)ㆍ무악지(無惡智)ㆍ무량지(無量智)ㆍ무승지(無勝智)ㆍ무해태지(無懈怠智)ㆍ무퇴지(無退智).[대정장9, p.444 하].
  74. 74)신수대장경 각주에 있는 송ㆍ원ㆍ명 판본에서는 이 ‘여래법’이라는 구절이 없다.
  75. 75)대정장9, p.590 중ㆍ하.
  76. 76)청함의 대상을 염하는 둘 중에서 그 둘째이다.
  77. 77)산스크리트 dakṣiṇā의 음역어이다.
  78. 78)『존파수밀론』 제2권[대정장28, p.737 상].
  79. 79)『사분율』 제49권[대정장22, p.935 하], 『십송률』 제9권[대정장23, p.71 상].
  80. 80)본회를 크게 열로 나누는 중에 그 셋째이다.
  81. 81)대정장9, p.677 상. 여기서 설명된다.
  82. 82)색(色)ㆍ상(象)ㆍ용(龍)ㆍ대금시조왕(大金翅鳥王)ㆍ사자(師子)ㆍ용건(勇健)ㆍ지혜(智慧)ㆍ다라니(陀羅尼)ㆍ변재(辯才)ㆍ여래(如來).[대정장9, p.659 중]
  83. 83)본 회를 크게 열로 나누는 중 그 넷째이다.
  84. 84)대정장9, p.677 중.
  85. 85)기원이 정토를 장엄함에 둘이 있는데 그 중 둘째이다.
  86. 86)대정장9, p.677 중.
  87. 87)기세간의 원만을 나타내는 둘 중에 그 둘째이다.
  88. 88)『법화경』 「여래수량품」[대정장9, p.43 하].
  89. 89)『유마경』 「불국품」[대정장14, p.538 하].
  90. 90)현정토분(現淨土分)에 셋이 있는데 그 중 둘째이다.
  91. 91)본 회를 열로 나누는 중에 그 다섯째이다.
  92. 92)명정원광명(明淨願光明)이다.
  93. 93)동방이다.
  94. 94)연화장사자좌이다.
  95. 95)대정장9, p.677 하.
  96. 96)대정장9, p.678 중.
  97. 97)상동.
  98. 98)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설(設)’을 ‘설(說)’로 고쳐서 옮긴다.
  99. 99)집신중분에 둘이 있는데 그 중 둘째이다.
  100. 100)대정장 16, p.746 상.
  101. 101)따로 찬탄하는 데 셋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02. 102)문맥에 따라서 ‘야(耶)’를 ‘사(邪)’로 고쳐서 옮긴다.
  103. 103)세 번은 3세의 의미이다.
  104. 104)따로 찬탄하는 데 셋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105. 105)‘모두 여래의 신력 때문이다’라는 원인을 나타내는 구절은 중국어나 우리말에서는 결과를 나타내는 구절보다 앞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에서는 결과가 먼저 제시되며, 그 이유가 뒤에 제시된다. 그 같은 문법적 구조는 인도 논리학의 논증식(論證式)에서부터 볼 수 있다.
  106. 106)본 회를 크게 열로 나누는 중에 그 여섯째이다.
  107. 107)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108. 108)『탐현기』 본문은 산스크리트를 중국어로 옮기고 있으나, 우리는 그 중국어를 다시 한글로 음사(音寫)할 수 없다. 중국어로 음사된 술어와 산스크리트 형태를 복원하여 그로부터 한글로 음사한다. 이때 중국어 음사는 괄호 속에 병기(倂記)해 주어야 할 것이다. 번역은 글자의 옮김이 아니라 의미의 옮김이기 때문이다.
  109. 109)『육도집경』 제8권[대정장3, p.16 상].
  110. 110)『대지도론』 제11권[대정장25, p.137 상~하].
  111. 111)흔히 한 텍스트에 대한 주석서를 의미한다.
  112. 112)규기, 『관미륵상생도솔천경찬』[대정장38, pp.283 하~284 중]. 부처님 당시의 유명한 여섯 외도(外道) 중의 하나인 산자야(Sañjaya)의 제자였다가 불교로 개종하였다.
  113. 113)산스크리트 dhūta의 음사이다. 의식주 생활을 검소하게 하는 수행을 말한다.
  114. 114)불교 교단에는 마하가섭 외에도 우루빌라 가섭ㆍ나제 가섭ㆍ가야 가섭ㆍ십력 가섭 등이 또 있었다.
  115. 115)『대지도론』 제12권[대정장25, p.148 하].
  116. 116)『대지도론』 제2권[대정장25, p.74 상].
  117. 117)거실현덕분에 셋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18. 118)보지 못하는 것 중에 둘이 있는데 그 둘째이다.
  119. 119)대정장9, p.679 하.
  120. 120)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시(是)’를 ‘불견(不見)’으로 고쳐서 옮긴다.
  121. 121)수신(受身)ㆍ청정법신(淸淨法身)ㆍ지신(智身)ㆍ원신(願身)ㆍ색신(色身)[대정장9, p.679 하].
  122. 122)거실현덕분에 셋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123. 123)인시(因時)에 인을 봄을 닦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함을 밝히는 것에 넷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24. 124)인시에 그 인을 봄을 닦지 않으므로 보지 못함을 밝히는 데 넷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125. 125)법에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26. 126)『대품반야경』[대정장8, p.381 중].
  127. 127)『법화경』[대정장9, p.20 중].
  128. 128)『문수사리순행경』[대정장14, p.511 상].
  129. 129)10인(因) 중에 상위인(相違因)을 제외한 아홉 가지 인은 수설인(隨說因)ㆍ관대인(觀待因)ㆍ견인인(牽引因)ㆍ섭수인(攝受因)ㆍ생기인(生起因)ㆍ인발인(引發因)ㆍ정별인(定別因)ㆍ동사인(同事因)ㆍ불상위인(不相違因) 등이다. 10인에 대해서는 『유가론』 제15권, 제38권, 『현양성교론』 제18권, 『유식론』 제8권 등 참조.
  130. 130)보지 못하는 이유를 해석하는 중에 둘이 있는데 그 둘째이다.
  131. 131)동생천(同生天)과 동명천(同名天)이다.
  132. 132)본 회를 크게 열로 나누는 중에 그 일곱째이다.
  133. 133)명정원광명(明淨願光明)보살의 게송이다.
  134. 134)불가괴정진세왕(不可壞精進勢王)보살의 게송이다.
  135. 135)무상보문덕왕(無上普門德王)보살의 게송이다.
  136. 136)무애묘덕장왕(無礙妙德藏王)보살의 게송이다.
  137. 137)법계선화원월왕(法界善化願月王)보살의 게송이다.
  138. 138)법의혜염왕(法義慧焰王)보살의 게송이다.
  139. 139)괴산일체중마지당(壞散一切衆魔智幢)보살의 게송이다.
  140. 140)명정원지당왕(明淨願智幢王)보살의 게송이다.
  141. 141)괴산일체지혜세왕(壞散一切智慧勢王)보살의 게송이다.
  142. 142)분별법계지통왕(分別法界智通王)보살의 게송이다.
  143. 143)본 회를 크게 열로 나누는 중 그 여덟째이다.
  144. 144)문맥에 따라서 ‘둘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첫째 총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었다.
  145. 145)장행에 셋이 있는데 그 중 셋째이다.
  146. 146)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147. 147)보현개발분(普賢開發分)에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48. 148)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149. 149)본 회를 크게 열로 나누는 중 그 아홉째이다.
  150. 150)천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ㆍ비인.
  151. 151)보이는 대상인 법을 보는 중에 둘이 있으니, 그 둘째이다.
  152. 152)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153. 153)호광시익분에 셋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154. 154)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155. 155)소득의 이익을 분별하는 데 셋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156. 156)이 문장은 잘못 들어간 것 같다. 『남기록』 참조.
  157. 157)대정장9, p.684 중.
  158. 158)대정장9, pp.683 하~684 상.
  159. 159)대정장9, p.686 상.
  160. 160)보장엄법계보살삼매(普莊嚴法界菩薩三昧)이다.[대정장9, p.684 중].
  161. 161)대정장9, p.685 상.
  162. 162)경에서는 ‘입여래해(入如來海)’라고 되어 있다.[대정장9, p.685 상].
  163. 163)소득의 이익을 밝히는 중에 셋이 있는데 그 둘째이다.
  164. 164)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 것이다.
  165. 165)소득의 이익을 밝히는 중에 셋이 있는데 그 셋째이다.
  166. 166)영인본 고려대장경 제47권 p.778 가운데 단은 착간이다. 그것은 『화엄경탐현기』 제16권[영인본 고려대장경 제47권 p.741] 중의 내용이다. 이 같은 착간이 판본 자체의 잘못인지 영인할 때의 잘못인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 부분은 신수대장경 제35권 p.450상ㆍ중의 하단 부분을 번역하였다.
  167. 167)본 회를 크게 열로 나누는 중에 그 열째이다.
  168. 168)문수술덕분을 둘로 나누는 중 그 둘째이다.
  169. 169)본문을 해석함에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70. 170)문수사리를 가리킨다.
  171. 40171)제2 공덕운 비구로부터 제41 구이까지를 말한다.
  172. 172)마야부인과 미륵보살을 말한다.
  173. 173)보현보살을 말한다.
  174. 174)회연입실상(會緣入實相)의 선지식 중에서 천주광 동녀부터 덕생 동자ㆍ유덕 동녀까지의 경문을 가리킨다. 이 부분은 일조(日照) 삼장과 법장 등이 다른 사본을 참조하여 보역(補譯)한 것이다. 『탐현기』 제1권 참조.
  175. 175)영변(靈辨)의 『화엄론』을 가리킨다.
  176. 176)섭비구회ㆍ섭용왕회ㆍ섭신위의 문수를 가리킨다.
  177. 177)대정장9, pp.784 하~785 상.[『탐현기』 제20권 참조].
  178. 178)말회의 본문을 열로 나누는 중에 그 셋째이다.
  179. 179)대정장9, p.784 중.
  180. 180)대정장9, p.704 하. 여기서 상염법은 관상과 주술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181. 181)대정장9, p.772 중.
  182. 182)신수대장경 원록본에 의하여 ‘득(得)’ 다음에 ‘다(多)’를 삽입하여 옮긴다.
  183. 183)『보살지지경』 제10권[대정장30, p.953 상ㆍ중].
  184. 184)문맥에 따라서 ‘셋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185. 185)말회의 본문을 열로 나누는 중 그 아홉째이다.
  186. 186)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의 지위.
  187. 187)「세간정안품」[대정장9, pp.395 하~396 상].
  188. 188)대정장9, p.686 하.
  189. 189)10신위에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90. 190)섭비구회ㆍ섭용왕회ㆍ섭선재회.
  191. 191)비구는 산스크리트로 bhikṣu이다.
  192. 192)몸의 위의로써 이익을 거두어들임을 밝히는 데 일곱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193. 193)몸의 위의로써 이익을 거두어들임을 밝히는 데 일곱이 있는 중 그 다섯째이다.
  194. 194)비구를 거두어들이는 회에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95. 195)문맥에 따라서 ‘2’를 삽입하여 옮긴다.
  196. 196)자분의 법을 수여하는 데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97. 197)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ㆍ지안(智眼)ㆍ명안(明眼)ㆍ출생안(出生眼)ㆍ무애안(無礙眼)ㆍ보안(普眼).[대정장9, p.657 하].
  198. 198)법을 듣고 이익을 얻음에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199. 199)열 가지 실제보리(實際菩提)의 마음을 가리킨다[대정장9, p.687 하].
  200. 200)대정장9, pp.578 상~580 하.
  201. 201)어업으로 법을 수여함에 둘이 있는 중에 그 둘째이다.
  202. 202)2승이 회심하는 뜻에 대해서는 『화엄일승교의분제장』[대정장45, p.496 상~하], 『화엄공목장』[대정장45, pp.583 중~584 상]에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203. 203)교화를 이루는 3회 중에 둘째이다.
  204. 204)문맥에 따라서 ‘둘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205. 205)용왕을 거두어들이는 회에 넷이 있는데, 그 셋째이다.
  206. 206)교화를 이루는 3회 중의 셋째이다.
  207. 207)정취보살은 동방에 있으며, 안주지신(安住地神)은 방위가 없다.
  208. 208)파사파타야천(婆娑婆陀夜天)으로부터 구이(瞿夷)까지를 가리킨다.
  209. 209)견고해탈 장자ㆍ무승군 장자ㆍ시비최상 바라문ㆍ덕생 동자ㆍ유덕 동녀ㆍ미륵보살을 가리킨다.
  210. 210)이는 중국의 음양오행사상의 기준으로 해서 해석한 것이다.
  211. 211)찬탄하지 않는 이유로서 첫째는 정히 선정에 있기 때문이니 해당비구 등과 같으며, 둘째는 비도(非道)를 행하기 때문이니 승열ㆍ무염족ㆍ바수밀과 같은 경우이다.[『발휘초』, p.366].
  212. 212)문수사리보살이다.
  213. 213)미륵보살ㆍ문수보살ㆍ보현보살을 말한다.
  214. 214)우바새ㆍ우바이ㆍ동남ㆍ동녀.[대정장9, pp.687 하~688 상].
  215. 215)산스크리트 upāsaka의 음역어이다.
  216. 216)우바이는 산스크리트 upāsikā의 음역어인데, 근사녀(近事女)로 옮긴다.
  217. 217)문맥에 따라서 ‘둘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218. 218)선현ㆍ공생은 모두 수보리를 옮긴 것이다.
  219. 219)『대지도론』[대정장25, p.732 상].
  220. 220)따로 선재를 관찰하는 데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221. 221)초발심(初發心)ㆍ행발심(行發心)ㆍ불퇴발심(不退發心)ㆍ일생보처발심(一生補處發心).
  222. 222)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ㆍ해행발심(解行發心)ㆍ증발심(證發心). 『기신론』의 설이다.
  223. 223)섭선재회에서 10신의 행을 이루는 중에 넷이 있는데, 그 셋째이다.
  224. 224)대정장9, p.688 중.
  225. 225)섭선재회에서 10신의 행을 이루는 중에 넷이 있는데, 그 넷째이다.
  226. 226)욕유ㆍ색유ㆍ무색유를 말한다.
  227. 227)문맥에 따라서 ‘둘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228. 228)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야(耶)’를 ‘사(邪)’로 고쳐서 옮긴다.
  229. 229)문맥에 따라서 ‘셋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230. 230)선재가 게송을 설하여 구제해 주시기를 청하는 데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231. 231)승진행을 이끌어 이루는 데 셋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232. 232)문수가 섭수하는데 다섯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233. 233)문수가 섭수하는데 다섯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234. 234)뒤의 지위에 속한다는 것은, 그 다음의 공덕운 비구를 해석하는 다섯 가지 중 첫째 법을 열거하여 닦기를 권함과 둘째 가르침에 의지하여 나아가 들어감의 과문(科文)에 해당하는 것이다.
  235. 235)기위수행상의 선지식을 둘로 나누는 중에 그 둘째이다. 문맥에 따라서 ‘둘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236. 236)『유마경』 「보살행품」[대정장14, p.554 중].
  237. 237)남본 『열반경』 제24권[대정장12, p.766 중].
  238. 238)『열반경』 제20권[대정장12, p.482 하].
  239. 239)『잡보장경』 제2권[대정장4, p.459 상~하].
  240. 240)『법화경』 제7권[대정장9, p.60 하].
  241. 241)대정장9, p.697 하.
  242. 242)『열반경』 제6권[대정장 p.399 하].
  243. 243)신수대장경 갑본에는 ‘넷째[四]’ 다음에 51자가 더 있다. 그 부분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세마(細魔)를 떠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을 봉해서 하나를 지킨다면 곧바로 뒤의 행이 더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 역시 집착의 잘못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세간품」의 열 가지 마(魔) 중에서 선지식마(善知識魔)가 있으니, ‘그에 대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집착을 떠나서 다시 닦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244. 244)『화수경』 중에는 이 문장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발휘초』, p.367].
  245. 245)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르면 ‘여섯째’가 된다.
  246. 246)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르면 ‘일곱째’가 된다.
  247. 247)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르면 ‘여덟째’가 된다.
  248. 248)여러 선지식을 분별하는 데 넷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249. 249)대정장15, p.782 하.
  250. 250)『대지도론』 제71권[대정장25, p.557 중].
  251. 251)대정장9, p.633 상.
  252. 252)선지식의 뜻을 해석하는 데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253. 253)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254. 254)여러 선지식을 밝히는 데 간략히 넷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255. 255)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256. 256)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향(向)’을 ‘백(白)’으로 고쳐서 옮긴다.
  257. 257)증량의 법문은 선지식 스스로 얻은 법문이고, 교량의 법문은 아직 스스로 얻지 못한 법문이다.
  258. 258)과분의 영역을 밝히는 열 중에서 그 셋째이다.
  259. 259)양(量)은 인도 인식논리학의 술어 pramana의 번역어이다. 이는 바른 인식을 얻기 위한 수단을 의미한다. 현량은 직접지각, 비량은 추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량과 신량은 경전에 의한 판단을 의미하는 성언량(聖言量, śabda)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60. 260)여러 선지식을 분별하는 데 간략히 넷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261. 261)『섭대승론』 세친 석[대정장31, p.175 상]에, “성인의 의지라는 것은 문훈습과 해성(解性)이 화합하는 것이니, 이로써 의지가 되는 것이다. 모든 성도(聖道)는 모두 이에 의지하여 생기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262. 262)‘존(尊)’은 ‘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전(khotan)은 중앙아시아 지방에 있던 나라이다. 60권본 『화엄경』과 같은 대본(大本) 『화엄경』은 이 우전 지방에서 집대성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63. 263)본문을 해석하는 데 다섯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264. 264)소승 성문의 수행의 계위인데 견도 이전의 범부위, 즉 3현위(賢位:五停心住ㆍ別相念住位ㆍ摠相念住位)와 4선근위(善根位:煖位ㆍ頂位ㆍ忍位ㆍ世第一法位)를 말한다.
  265. 265)반주삼매는 “능히 정 가운데 있을 때는 시방 현재의 부처님께서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마하지관』(대정장46, p.12 상)]라고 정의되고 있다.
  266. 266)『문수반야경』 하권[대정장8, p.731 중]에 설해져 있다.
  267. 267)『대방등대집경현호분』을 가리킨다.[대정장13, p.872 상].
  268. 268)문맥에 따라서 ‘둘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269. 269)바로 법계를 얻음을 밝히는 데 다섯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270. 270)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271. 271)바로 법계를 보이는 데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272. 272)고려대장경에는 ‘선(先)’으로 되어 있으나 신수대장경에 따라 ‘광(光)’으로 고쳤다.
  273. 273)다섯 분과에 의지하여 해석하는 중 그 다섯째이다.
  274. 274)원만보조염불삼매문(圓滿普照念佛三昧門).
  275. 275)일체중생원리전도염불삼매문(一切衆生遠離顚倒念佛三昧門).
  276. 276)일체력구경염불삼매문(一切力究竟念佛三昧門).
  277. 277)제법중심무전도염불삼매문(諸法中心無顚倒念佛三昧門).
  278. 278)분별시방일체여래염불삼매문(分別十方一切如來念佛三昧門).
  279. 279)불가견불가입염불삼매문(不可見不可入念佛三昧門).
  280. 280)제겁부전도염불삼매문(諸劫不顚倒念佛三昧門).
  281. 281)수시염불삼매문(隨時念佛三昧門).
  282. 282)엄정불찰염불삼매문(嚴淨佛刹念佛三昧門).
  283. 283)삼세부전도염불삼매문(三世不顚倒念佛三昧門).
  284. 284)무괴경계염불삼매문(無壞境界念佛三昧門).
  285. 285)적정염불삼매문(寂靜念佛三昧門).
  286. 286)이월이시염불삼매문(離月離時念佛三昧門).
  287. 287)광대염불삼매문(廣大念佛三昧門).
  288. 288)미세염불삼매문(微細念佛三昧門).
  289. 289)장엄염불삼매문(莊嚴念佛三昧門).
  290. 290)청정염불삼매문(淸淨念佛三昧門).
  291. 291)정심염불삼매문(淨心念佛三昧門).
  292. 292)정업염불삼매문(淨業念佛三昧門).
  293. 293)자재염불삼매문(自在念佛三昧門).
  294. 294)허공등염불삼매문(虛空等念佛三昧門).
  295. 295)10주위 중 둘째이다.
  296. 296)산스크리트로는 sāgara-megha이다.
  297. 297)관찰의 대상에 따라서 ‘해’를, 관찰의 주체에 따라서 ‘운’을 합하여 ‘해운’이라 이름한 것이다.
  298. 298)다섯 분과에 의지하여 해석하는 중 그 둘째이다.
  299. 299)대비심(大悲心)ㆍ대자심(大慈心)ㆍ무치권심(無癡倦心)ㆍ요익심(饒益心)ㆍ무외심(無畏心)ㆍ무애심(無礙心)ㆍ광대심(廣大心)ㆍ무변심(無邊心)ㆍ광심(廣心)ㆍ청정심(淸淨心)ㆍ지심(智心).[대정장9, p.690 하].
  300. 300)법계를 보이는 데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301. 301)『유가론』 제47권[대정장30, p.553 상ㆍ중].
  302. 302)대정장9, p.575 중.
  303. 303)해문이 이미 열려서 법계의 의정을 보는 것을 밝히는 중 그 둘째이다.
  304. 304)자기의 법계를 나타내는 데 다섯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305. 305)『화엄경』에 여섯 가지 본(本)이 있다고 하는데, 그 중 대본(大本)을 가리킨다. 이는 문자로 기록할 수 없으며, 다라니의 힘으로 수지할 수 있을 뿐이라 말한다.[『탐현기』 제1권 참조].
  306. 306)대정장9, p.691 중ㆍ하.
  307. 307)자기의 법계를 나타내는 데 다섯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308. 308)다섯 가지 분과에 의지하여 해석하는 중 그 다섯째이다.
  309. 309)10주위 중의 셋째이다.
  310. 310)다섯 가지 분과에 의지하여 해석하는 중 그 넷째이다.
  311. 311)10주위 중 넷째이다.
  312. 312)80권본 『화엄경』에서는 성의 이름을 자재라고 하였다.
  313. 313)‘달폐다’는 draviḍa의 음역어인데, 산스크리트 사본에서는 dramiḍa라고 되어 있다.
  314. 314)산스크리트로는 megha이다.
  315. 315)일조(日照) 삼장을 가리킨다.
  316. 316)『입능가경』 제4권[대정장16, p.536 상]에는 자륜에 대한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자륜에 대해서는 『화엄경소』 제56권[대정장35, p.927 상]에 보인다.
  317. 317)생귀주를 밝히는 데 다섯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318. 318)『열반경』 제34권[대정장 12, p.838 상].
  319. 319)대정장31, p.892 중.
  320. 320)법장은 새롭게 번역한 『법계무차별론』을 주석한 『법계무차별론소』를 썼는데, 거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셋째, ‘보리심’ 아래는 저 인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 보리심이 뛰어난 과의 인이기 때문에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하는 것이다. 마치 세상 사람이 상현달이 처음 뜰 때 모두 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능히 만월의 인이 되기 때문이며 길상의 뛰어난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대정장44, p.65 하].
  321. 321)법기를 공경하여 찬탄함에 넷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322. 322)법계를 보임을 밝히는 데 둘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323. 323)생귀주를 밝히는 데 다섯이 있는 중 그 다섯째이다.
  324. 324)10주위 중의 다섯째이다.
  325. 325)산스크리트로 muktaka이다.
  326. 326)다섯 번째 방편구족주 가운데 다섯이 있는데, 그 중 넷째이다.
  327. 327)섭일체불찰무량선다라니(攝一切佛刹無量旋陀羅尼)를 해석한다.
  328. 328)법계를 내보임에 셋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329. 329)업용을 나타내는 중에 그 넷째이다.
  330. 330)정에서 나와서 고하여 보이는 중에 셋이 있는데 그 셋째이다.
  331. 331)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준(准)’을 삽입하여 옮긴다.
  332. 332)10주위 중의 여섯째이다.
  333. 333)경[대정장9, p.695 상]에서는 ‘장엄염부제정(莊嚴閻浮提頂)’이라 하였다.
  334. 334)산스크리트로 Sāgara-dhvaja이다.
  335. 335)여섯째 중에 다섯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336. 336)이 부분은 법장의 오역이다. ‘땅’의 산스크리트는 kṣetra이며, 무(武)의 의미다. 그러니까 크샤트리야는 무사(통치자) 계급인 것이다.
  337. 337)īya는 일반적으로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이다. ‘……에 속하는’의 의미다. 크샤트리야는 국토에 속하는 계급, 국토를 지배하는 계급을 말한다.
  338. 338)양 무릎에서 크샤트리야와 바라문을 낸다고 하였다.
  339. 339)방편지관(方便智觀).
  340. 340)산스크리트 yakṣa의 음역어이다.
  341. 341)산스크리트 kiṁnara의 음역어이다.
  342. 342)산스크리트로 Indra이다. 도리천의 왕이다.
  343. 343)명은 지식의 의미인데, 내오명(內五明)과 외오명(外五明)이 있다. 내오명은 성명(聲明:문법학)ㆍ인명(因明:논리학)ㆍ내명(內明:불교교리학)ㆍ의방명(醫方明:의학)ㆍ공교명(工巧明:공학) 등이고, 외오명은 성명ㆍ의방명ㆍ공교명ㆍ주술명(呪術明:주술)ㆍ부인명(符印明:부적) 등이다.
  344. 344)『화엄경』에서 신은 지위를 이루지 않는다. 그러므로 10신의 열 가지 지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문수보살만이 있는 것이다.
  345. 345)이를 신만성불(信滿成佛)이라 말한다.
  346. 346)대정장9, p.433 상ㆍ중.
  347. 347)제4선천의 최고 색계에 속하는 최고의 하늘. 산스크리트로 akaniṣṭha이다.
  348. 348)초선천에는 범중천(梵衆天,brahma-kāyika)ㆍ범보천(梵輔天, purohita)ㆍ대범천(大梵天, mahā-brahmān)의 셋이 있다.
  349. 349)욕계 6천의 최고, 산스크리트로는 Vaśa-vartin이다.
  350. 350)6욕천의 다섯째이다. 산스크리트로는 Nirmāṇa-rati이다.
  351. 351)6욕천 중의 사천왕과 도리천을 말한다.
  352. 352)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권(眷)’자를 삽입하여 옮긴다.
  353. 353)산스크리트로는 garuḍa(迦樓羅)이다.
  354. 354)『장아함경』 제18권 「염부제주품」[대정장1, p.117 상]에 의하면, 용에게 세 가지 걱정이 있다. 첫째 열풍ㆍ열사를 맞으며 피ㆍ살ㆍ뼈ㆍ골수가 불에 탄다. 둘째, 폭풍이 일어 보배 옷을 잃고서 용의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셋째, 궁중에 있으면서 오락을 할 때 금시조가 와서 잡아가는 것이다.
  355. 355)산스크리트 maharoga의 음역어이다.
  356. 356)축생에 대해서이다.
  357. 357)산스크리트로는 yama-laukika이다.
  358. 358)법계를 바로 보이는 데 일곱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359. 359)법계를 바로 보이는 데 일곱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360. 360)법계를 바로 보이는 데 일곱이 있는 중 그 다섯째이다.
  361. 361)경[대정장9, p.697 중]에는 ‘보안평등법문’을 ‘보안사득(普眼捨得)’이라 하였다.
  362. 362)법계를 바로 보이는 데 일곱이 있는 중 그 여섯째이다.
  363. 363)법계를 바로 보이는 데 일곱이 있는 중 그 다섯째이다.
  364. 364)정심주를 다섯으로 나누는 데 그 다섯째이다.
  365. 365)10주위 중의 일곱째이다.
  366. 366)『대지도론』 제5권[대정장 25, p.94 중]에서 말하는 ‘구사나(俱舍那)’를 가리키는 것 같다.
  367. 367)영락(瓔珞)을 말한다.
  368. 368)일곱째 주위에 다섯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369. 369)대정장12, p.398 하.
  370. 370)대비천제(大悲闡提)라고도 한다. 『능가경』[대정장16, p.527 중]에 의하면, 선근이 끊어진 일천제와 달리 중생제도를 위해 스스로 일천제가 됨을 말한다.
  371. 371)일곱째 주위에 다섯이 있는 중 그 다섯째이다.
  372. 372)10주위 중의 여덟째이다.
  373. 373)신수대장경에는 ‘변역신(變易身)’으로 되어 있다.
  374. 374)신수대장경에는 ‘열(涅)’로 되어 있다.
  375. 375)「세간정안품」[대정장9, p.402 중].
  376. 376)보리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377. 377)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수치난치지우(雖置難置之友)’를 삽입하여 옮긴다.
  378. 378)신수대장경에는 ‘삼(三)’으로 되어 있다.
  379. 379)여덟째 주위에 다섯이 있는 중 그 둘째이다.
  380. 380)여덟째 주위에 다섯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381. 381)보살무괴당지혜법문(菩薩無壞幢智慧法門)이다.
  382. 382)“선재의 정수리를 만지며, 선재의 손을 잡는다.”[대정장9, p.700 상].
  383. 383)대정장9, p.773 상 참조.
  384. 384)여덟째 주위를 다섯으로 나누는 중에 그 다섯째이다.
  385. 385)10주위 중의 아홉째이다.
  386. 386)산스크리트로 jayoṣmāyatana이다.
  387. 387)신수대장경의 갑본에 따라서, ‘역(亦)’ 다음에 ‘이(二)’를 삽입해서 옮긴다.
  388. 388)『열반경』[대정장12, p.510 중]. 여기서 말하는 네 가지가 곧 네 가지 친근행이다.
  389. 389)문맥에 따라서 ‘첫째’를 삽입하여 옮긴다.
  390. 390)아홉째 주위에 다섯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391. 391)대정장 25, p.139 하.
  392. 392)아홉째 주위에 다섯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393. 393)『제법무행경』 하권[대정장15, p.759 하].
  394. 394)『유마경』 중권[대정장14, p.550 중].
  395. 395)『유마경』 중권[대정장14, p.549 중].
  396. 396)산스크리트로 māndāra이다.
  397. 397)산스크리트로 airāvata이다.
  398. 398)산스크리트로 nanda이다.
  399. 399)법계를 내보이는 데 여섯이 있는 중 그 넷째이다.
  400. 400)신수대장경 갑본에 따라서 ‘권(勸)’ 다음에 ‘수(修)’를 삽입하여 옮긴다.
  401. 401)아홉째 주위에 다섯이 있는 중 그 다섯째이다.
  402. 402)10주위 중의 열째이다.
  403. 403)열째 주위에 다섯이 있는 중 그 셋째이다.
  404. 404)대정장14, p.784 중~하.
  405. 405)문맥에 따라서 ‘넷째’를 삽입하여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