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문헌

선한문역鮮漢文譯 선문촬요禪門撮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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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문역鮮漢文譯 선문촬요禪門撮要
[표지]
선한문역鮮漢文譯 선문촬요禪門撮要
대각교大覺敎 관정사灌頂師 백상규白相奎 편집編集·의역意譯
법상* 옮김
鮮漢文譯 선문촬요禪門撮要 附修心正路
목차
선문촬요禪門撮要 제1권

달마관심론達摩觀心論
제1절 관심觀心
제2절 심구염정연기心具染淨緣起
제3절 진심인망불현眞心因妄不現
제4절 선법이각위근자善法以覺爲根者
제5절 악법이삼독위근惡法以三毒爲根
제6절 정명육적正明六賊
제7절 단삼독근斷三毒根
제8절 요출삼계了出三界
제9절 삼계원인三界原因
제10절 미현육취迷現六趣
제11절 섭심해탈攝心解脫
제12절 즉삼독현아승지卽三毒現阿僧祗
제13절 명삼취육바라밀明三聚六波羅密
제14절 심정즉각토정心淨卽覺土淨
제15절 중명육도重明六度
제16절 명법유明法乳
제17절 수조성전修造聖殿
제18절 주사각상鑄寫覺像
제19절 오분향五分香
제20절 산화散花
제21절 명등明燈
제22절 행도行道
제23절 재계齋戒
제24절 재식齋(齊)食
제25절 단식斷食
제26절 예배禮拜
제27절 세욕洗浴
제28절 명염각明念覺
제29절 회상귀심會相歸心
제30절 망영각상탑묘妄營覺像塔廟
제31절 결귀관심結歸觀心

선문촬요禪門撮要 제2권

보조수심결普照修心訣
제1절 거고시진擧苦示眞
제2절 미심수도종무이익迷心修道終無利益
제3절 성범일도지명일심聖凡一道只明一心
제4절 중생일용부지저일물衆生日用不知這一物
제5절 거고명증擧古明證
제6절 의오이수비일시돈현신통依悟而修非一時頓現神通
제7절 선변돈오점수先辨頓悟漸修
제8절 구오방편전전차과求悟方便轉轉蹉過
제9절 직시공적영지直示空寂靈知
제10절 직지인심본래시각直指人心本來是覺
제11절 지시관음입리문指示觀音入理門
제12절 결권結勸
제13절 중시오후점수重示悟後漸修
제14절 정시이문정혜正示二門定慧
제15절 상명이문정혜詳明二門定慧
제16절 권결勸結

선문촬요禪門撮要 제3권

달마혈맥론達摩血脈論
제1절 심외무각성心外無覺性
제2절 미심만행미면윤회迷心萬行未免輪廻
제3절 명불경소이明不敬所以
제4절 도부재산야道不在山野
제5절 도한역득성도屠漢亦得成道

선문촬요禪門撮要 제4권

고려高麗 보조국사普照國師 진심직설眞心直說
1. 진심정신眞心正信
2. 진심이명眞心異名
3. 진심묘체眞心妙體
4. 진심묘용眞心妙用
5. 진심체용의 동일함과 다름(眞心體用一異)
6. 진심재미眞心在迷
7. 진심식망眞心息妄
8. 진심사의眞心四儀
9. 진심소재眞心所在
10. 진심출사眞心出死
11. 진심정조眞心正助
12. 진심공덕眞心功德
13. 진심험공眞心驗功
14. 진심무지眞心無知
15. 진심소재(왕)眞心所在(往)

선문촬요禪門撮要 참구문參究門 제5권

선경어禪警語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완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보제 존자普濟尊者가 각오 선인覺悟禪人에게 보이심

부록 : 수심정로修心正路
1. 시심마是甚麽 화두話頭에 병을 간택揀擇함
2. 화두가 좋은 화두가 있다 함을 간택함
3. 시심마 화두가 백천百千 화두에 근본根本 된다 함을 간택함
4. 모든 화두마다 본의심本疑心이 있으며, 또 병病 된 것을 가림
5.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데 모든 병통을 자세히 밝힘
6. 화두참구話頭參究하는 모양模樣
7. 공부에 불가불不可不 마군魔群이를 알아야 할 것
8. 마가 도덕을 해롭게 하는 연유를 밝힘
9. 도를 해롭게 못함을 밝힘
10. 외도의 괴수된 자만 가림
11. 색음色陰이 녹을 때에 열 가지 경계가 나타남
12. 수음受陰이 녹아지고자 함에 열 가지 마군이가 나는 것
13. 상음想陰이 녹아질 적에 열 가지 경계가 나는 것
14. 외도의 종류를 밝힘
15. 행음과 식음이 다 녹지 못하고 그 가운데 앉아 외도 됨을 밝힘
16. 상무상외도
선문촬요禪門撮要 제1권
달마관심론達摩觀心論1)
제1절 관심觀心
2)摩(師)3)答慧可曰 (唯)觀心一法이 總攝諸行(法)이니 名4)爲省要니라.
달마 대사께서 혜가에게 답하시기를,
“마음을 보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총괄하여 섭수攝受한 것이니 간단하고 요긴한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5)答曰心者는 萬法之根本이라 一切諸法이 唯心所生이니 若能了心하면 (則)萬行6)이 俱備하니라.
또 답하시기를,
“마음은 만법의 근본이라 일체 모든 법이 오직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만일 능히 마음을 알면 만행이 구비하느니라.”
7)如大樹에 所有枝條와 及諸花果가 皆悉依根이어든 栽樹者는 存根而始生하고 及伐樹者는 去根이 而必死ㅣ니 若了心修道면 則省功而易成이요 不了心而修道면 則費功而無益이니라.
비유하면 큰 나무는 가지와 모든 꽃과 열매가 다 뿌리로 인하여 있으니 나무를 기르려면 뿌리를 북돋워야 비로소 잘 사는 것이다. 또한 나무를 베려고 하면 뿌리를 제거해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약 마음을 알고서 도를 닦으면 곧 공이 적게 들어도 이루기 쉽고, 만일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이에 공력만 허비하고 이익이 없느니라.
故知하라 一切善惡이 皆由自心하며 心外別求는 終無是處이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일체 선과 악은 모두 자기 마음(自心)으로 연유하니, 마음 밖에 별도로 구하는 것은 마침내 옳지 못하느니라.
제2절 심구염정연기心具染淨緣起
8)答曰9) 了四大五蘊(陰)이 本空無我하며 了見自心起用이 有二種差別이니 云何爲二오 一者는 淨心이요 二者는 染心이라. 其淨心者는 卽是無漏眞如之心이요 其染心者는 有漏無明之心이니 此二種心이 (法界)自然本來俱有하야 雖(離)假緣合이나 互不相生이니라.10)
0001_0005_a_01L또 답하시길,
“사대오온이사대란 땅과 물과 불과 바람, 이 네 가지로 몸이 된 것이고, 오온은 빛과 받아들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과 아는 것, 이 다섯 가지이다. 본래 공하여 내가 없음을 알며,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이 두 가지 차별이 있음을 알 것이다. 어찌하여 둘인가? 첫째는 깨끗한 마음이고, 둘째는 더러운 마음이다. 그 깨끗한 마음은 곧 이 새는 것이 없는 진여심이요,眞如는 不染曰眞이요, 不二曰如 그 더러운 마음은 곧 샘이 있는 무명심이니,無明은 어두운 마음 이 두 가지 마음이 자연히 본래 같이 있어금돌을 가지고 돌이 먼저 생긴 것인가 금이 먼저 생긴 것인가. 비록 인연으로 화합하였다고 할지라도緣散則眞妄이 都無實體이니라. 서로 상생하지는 못하느니라.眞은 眞이라 妄을 不生하고 妄은 妄이라 眞을 不生하나니라.
淨心은 恒樂善因하고 染心(體)11)은 常思惡業하나니 若眞如自覺하야 覺不受所染則稱之爲聖이니 遂能遠離諸苦하고 證涅槃樂이요 若隨染心造惡하야 受其纏覆則名之爲凡이니 於是에 沈淪三界하야 受種種苦하나니 何以故오 由彼染心이 障眞如體故니라.
청정한 마음은 항상 착한 인연을 좋아하고, 더러운 마음은 항상 악한 업을 생각한다. 만일 진여眞如가 스스로 깨달아 그 깨달음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성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드디어 모든 괴로움을 멀리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할 것이다. 만일 더러운 마음으로 악을 지어 그것을 받아 얽히고 덮이면 범부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삼계에 빠져 가지가지 고통을 받을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저 더러운 마음이 진여의 본체를 가리기 때문이다.”
제3절 진심인망불현眞心因妄不現
十地經에 云衆生身中에 有金剛覺12)性호되 猶如日輪이 體明圓滿하야 廣大無邊컨만 只爲五陰黑(重)雲의 所覆홈이 猶如甁內燈光이 不能顯現이라 하시고 又大圓寂(涅槃經)13)에 云一切衆生이 皆有覺性(悉有佛性)호대 無明이 覆故로 不得解脫이라 하시니.
『십지경』에 이르시기를,
“중생의 몸에 금강과 같은 각성이 있으니 마치 태양날 바퀴와 같아서 그 본체가 밝고 원만하여 광대무변廣大無邊하다. 다만 오음의 검은 구름에 덮여서 마치 병 속에 있는 등불의 광명이 능히 드러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또 『대원적경(열반경)』에 이르시기를,
“일체중생이 다 각성이 있으나 무명에 덮였기 때문에 해탈解脫을 얻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제4절 선법이각위근자善法以覺爲根者
覺(佛)性者는 覺也(卽覺性也)ㅣ니 但能自覺(自覺覺他)하야 覺智明了하야 離其所覆하면 則名解脫이니 故知一切諸善이 以覺爲根이로다 因其覺根하야 遂能顯現諸功德(樹)이어든 究竟之菓(涅槃之果)가 因此而成하나니 如是觀心을 可名爲了니라.14)
0001_0006_a_01L각성覺性이라는 것은 깨달은 것이니, 다만 능히 스스로 깨달아서 깨달은 지혜가 밝아 그 덮인 바를 여의면 곧 해탈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알아라. 일체 모든 착한 것이 깨달음으로 뿌리를 삼는다. 그 깨달음의 뿌리로 인해서 드디어 능히 모든 공덕이 나타나니 원적의 열매가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마음을 보는 것을 이름하여 요달함이라고 하느니라.
제5절 악법이삼독위근惡法以三毒爲根
慧可問曰15) 答曰無明之心이 雖有八萬四千煩惱情欲하야 及恒河沙衆惡이 無量無邊이나 取要言之컨대 皆因三毒하야 以爲根本이니라.
혜가가 묻기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두운 마음과 일체 모든 악은 무엇으로써 뿌리가 됩니까?”
달마 대사께서 답하시기를,
“어두운 마음이 비록 팔만사천 번뇌와 정욕이 있어서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모든 악이 무량무변하지만, 간략하게 간추려서 말한다면 다 삼독으로 인해서 근본이 되느니라.”
其三毒者는 卽貪嗔癡是也ㅣ라 此三毒心이 自然本來具有一切諸惡홈이 猶如大樹가 根雖是一이나 所生枝葉이 其數無邊인달하야 彼三毒根이 一一根中에 生諸惡業홈이 百千萬億倍나 過於前하야 不可爲喩니라.16)
0001_0006_b_01L그 삼독이라는 것은 곧 탐심과 진심과 치심이다. 이 삼독심이 자연히 본래 일체 악을 갖추어 있는 것이 마치 큰 나무가 뿌리는 하나이지만 생겨난 가지와 잎의 수효가 한량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저 삼독 뿌리도 낱낱 뿌리 가운데 모든 악업이 생기는 것이 백천만억 배나 되지만 그것은 앞의 것보다 비유하지 못할 정도로 많으니라.
제6절 정명육적正明六賊
如是三毒心이 於一本體(中)에 自爲三毒이어니와 若應現六根하면 亦名六賊이니 六賊者는 卽六識也ㅣ니라. 由此六識이 出入諸根하야 貪著萬境하야 然成惡業하야 障眞如體故로 名六賊이니라.17)
이와 같은 삼독은 하나의 본체本體에서 스스로 삼독이 된 것이다. 만일 뻑뻑이(마땅히) 육근六根에 나타나게 되면 또한 육적六賊이라고 이름한다. 육적이라는 것은 곧 육식六識이다. 이 육식이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뿌리로 출입하여 일만 경계를 탐착함으로 말미암아서 악업을 지어 진여를 장애한다. 그러므로 육적이라고 이름한다.
一切衆生이 由此三毒과 及以六賊하야 惑亂身心하며 沈沒生死하며 輪廻六趣한다노 受諸苦惱홈이 猶如江河가 因少泉源에 涓流不絶하야 乃能彌漫하야 波濤萬里하나니.
일체중생이 이 삼독과 육적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을 미혹되어 어지럽게 함으로 말미암아서 생사에 빠지며, 육취에 윤회윤회는 수레바퀴 굴리듯 하는 것하게 된다. 이는 모든 고뇌苦惱를 받는 것이 마치 큰 강물의 근원이 작은 샘에서 졸졸 흘러 끊어지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 길게 이어져 철철 넘쳐 파도가 만 리에 출렁이게 되는 것과도 같다.
제7절 단삼독근斷三毒根
若復有人이 斷其根(本)18)源則衆流皆息이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그 근원을 끊으면 여러 갈래의 물결의 흐름이 모두 멈추게 되느니라.
求解脫者는 能轉三毒하야 爲三聚淨戒하고 轉六賊하야 爲六波羅蜜하나니 自然永離一切諸苦(海)이니라.
해탈을 구하는 자는 삼독을 바꾸어 삼취정계로 삼고일은 섭선법계, 이는 섭중생계, 삼은 섭율의계이니라. 능히 육적六賊을 바꾸어육적은 육식 육바라밀바라밀은 此云到彼岸之意로 삼으면 자연히 일체 모든 고해苦海를 길이 벗어나리라.
제8절 요출삼계了出三界
19)答三界業報가 唯心所生이니 若能了心하면 於三界中에 則(卽)出三界하리라.20)
0001_0007_b_01L또 답하기를,
“삼계업보가 오직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만일 능히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삼계에서 바로 삼계를 벗어나리라.”
제9절 삼계원인三界原因
其三界者는 卽(則)三毒也니 貪爲欲界요 嗔爲色界요 癡爲無色界라 (故名三界) 由此三毒하야 結集諸惡할새 業報成就하야 輪廻六趣故로 名爲三界이니라.21)
그 삼계라는 것은 바로 삼독이다. 탐심은 욕계가 되고, 진심은 색계가 되며, 치심은 무색계가 된다. 이 삼독심으로 인하여 모든 악을 모아서 업보가 이루어져서 육취에 윤회하기 때문에 삼계라고 이름하니라.
제10절 미현육취迷現六趣
22)答曰 若有衆生이 不了正因하고 迷心修善하면 未免三界하야 生於三輕趣하나니 云何三輕(趣)고 所謂迷(修)十善하야 妄求快樂하면 未免貪界하야 生於天趣하고 迷持五戒하야 妄起愛憎하면 未免嗔界하야 生於人趣하고 迷執有爲하야 信邪求福하면 未免癡界하야 生阿修羅趣하나니 如是三類를 通名三輕趣이니라.
0001_0008_a_01L또 답하기를,
“만일 중생이 정인正因은 覺性에 正다운 因을 알지 못하고을 알지 못하고, 어두운 마음으로 선을 닦으면 삼계를 면치 못하여 세 가지 가벼운 갈래에 태어나니, 무엇이 세 가지 가벼운 갈래가 되는가? 미혹한 마음으로 열 가지 선을 닦아 망녕되이 쾌락을 추구하면 탐내는 경계를 모면하지 못하여 하늘에 태어나고, 미혹한 마음으로 다섯 가지 계를 가져 망령되이 미워하고 사랑하게 되면 성내는 경계를 모면하지 못하여 인간에 태어나며, 미혹한 마음으로 세상 유위법을 집착해서 삿된 것을 믿어 복을 추구하면 어리석은 경계를 모면하지 못하여 아수라의 갈래에 태어난다. 이러한 분류를 통틀어 세 가지 가벼운 갈래라고 말하느니라.
云何三重(趣)고 所謂縱三毒心하야 唯造惡業이니 若貪業이 重者는 墮餓鬼趣하고 嗔業이 重者는 墮地獄趣하고 癡業이 重者는 墮畜生趣할새 如是三重을 通前三輕하야 遂成六趣이니라.
무엇을 세 가지 무거운 것(갈래)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삼독심을 풀어 놓아 오직 악업만을 짓는 것이다. 만일 탐욕의 업이 무거운 자는 아귀의 갈래에 떨어지고, 성냄의 업이 무거운 자는 지옥의 갈래에 떨어지며, 어리석음의 업이 무거운 자는 축생의 갈래에 떨어진다. 이러한 세 가지 무거운 것을 앞의 세 가지 가벼운 것과 합쳐서 마침내 여섯 가지 갈래를 이루느니라.
제11절 섭심해탈攝心解脫
故知惡(一切苦)業이 由自心(所)生이니 但能攝心하야 離諸邪惡하면 三界(六趣)輪廻(之苦)가 自然消滅하야 能盡諸苦할새 則名(卽得)解脫이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악(일체의 괴로운) 업이 자기 마음으로 부터 생긴 것이니, 다만 마음을 거두어 모든 삿되고 악한 것을 여의면 삼계에 윤회하는 것(의 괴로움)이 자연히 사라져서 능히 모든 고가 다하니, 이것을 해탈이라 이름하느니라.
제12절 즉삼독현아승지卽三毒現阿僧祗
23)答阿僧祗問曰此는 則三毒心也니 胡名(言)에 阿僧祗라 하고든 漢言에는 不可數니 此心中에 有恒沙惡念이어든 一一念中에 皆有一劫이니라 恒沙者는 不可數也니 以三毒惡念이 如恒沙故로 言不可數也니라.24)
또 혜가의 아승지를 묻는 것에 답하기를,
“이것은 곧 삼독심이니 인도에서는 아승지라 하는데 한漢나라의 말로는 불가수不可數라 한다. 이 마음에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악한 생각이 있는데 하나하나의 생각 가운데 모두 한 겁씩 있다. 또 항하사라 하는 것은 가히 헤아리지 못한다는 말이니, 삼독의 악한 생각이 모래 수와 같기 때문에 불가수라 하느니라.”
0001_0009_a_01L眞如之性이 旣被三毒之所覆할새 若不超彼恒沙惡念하면 云何名解脫이리요 今者에 能除(轉)貪嗔癡하면 卽超過三大阿僧祗劫이어늘 末世衆生이 (愚痴)鈍根하야 不解大覺의 甚深妙義三(大)阿僧祗祕密之說하고 遂言歷此塵劫하야사 方得成覺이라 하나니 末劫에 豈不疑誤修行之人하야 退菩提之道也리요.25)
진여의 성품이 이미 삼독에 덮여 있기 때문에 만일 저 모래 수와 같은 악한 생각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면, 어찌 해탈이라 이름하겠느냐!
이제 능히 탐·진·치 등 삼독심을 제거하면 곧 삼(대)아승지겁을 지낸 것이다. 말세 중생들이 어리석고 근기가 둔하여 대각(부처님)의 매우 깊고 미묘한 이치와 삼아승지겁의 비밀한 말씀을 알지 못하고 마침내 말하기를, ‘이 티끌 수와 같은 겁을 지내야 비로소 깨달음을 이룬다’고 한다. 이는 말겁에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잘못 의심하게 하여 깨달음의 도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13절 명삼취육바라밀明三聚六波羅密
又問曰(由)持三聚淨戒하며 行六波羅蜜하야사 方成覺道어늘 今令學者로 唯持觀心하고 不修戒行이면 云何成覺이리요.26)
0001_0009_b_01L또 묻기를,
“세 무더기 청정한 계행(三聚淨戒)을 지키고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비로소 깨달음의 도를 이룰 것이거늘 지금 배우는 사람들에게 오직 마음만 관하게 하니 계행만 닦지 않고 어찌 깨달음을 이루겠습니까?”
答曰三聚淨戒者는 卽制三毒心也니 制一毒하면 成無量善聚하나니라 聚者는 會也니 能制三毒心하면 無量善法이 普會於心일새 名이 三聚淨戒이니라.27)
답하기를,
“삼취정계는 곧 삼독심을 제어하는 것이니 하나의 독을 제거하면 한량이 없는 선취善聚를 이루느니라. 취라 하는 뜻은 ‘모인다’는 것이니, 능히 삼독심을 제어하면 세 가지 한량없는 착한 것이 두루 마음에 모이기 때문에 이름을 삼취정계라 하느니라.”
六波羅蜜者는 卽淨六根(也)이니 胡名波羅蜜이오 漢言達彼岸이어든 以六根이 淸淨하야 不染世(六)塵이면 卽是出(度)煩惱(河)하야 便至彼(菩提)岸일새 故名(云)六波羅蜜이니라.28)
육바라밀이라는 것은 곧 육근이 청정한 것이니, 인도에서는 바라밀이라 이름하고, 한나라에서는 저 언덕에 건너갔다 하거든 육근이 청정하야 세간 티끌에 물들지 아니하면 곧 번뇌에서 벗어나 저 (보리)언덕에서 건너간다. 그러므로 육바라밀이라 이름하나니라.
0001_0010_a_01L又問曰三聚淨戒者는 誓斷一切惡하며 誓修一切善하며 誓度一切衆生이어늘 今者에 唯言制三毒心이라 하시니 豈不文義가 有所乖也리까 答曰覺ㅣ(佛)所說經이 眞實하야 應無謬也시니라 大正士(菩薩)가 於過去因中에 修正士(菩薩摩訶薩)行時에 爲對三毒하야 發三誓願할새 持三聚(一切)淨戒하시니 常修戒는 (於)對貪毒이라 誓斷一切惡故요, 常習(修)定은 (於)對嗔毒이라 誓修一切善故요, 常修慧는 (於)對癡毒이라 誓度一切衆生故니라.29)
또 묻기를,
“삼취정계라고 하는 것은 맹세코 일체 악을 끊고, 맹세코 일체 선을 닦으며, 맹세코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직 삼독심을 제어하기만을 말씀하시니 어찌 경문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답하기를,
“대각(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이 진실하여 마땅히 틀림이 없느니라. 대정사(보살마하살)가 저 과거 인행因行중에 정사행(보살행)을 닦을 때에 삼독이 있는 것에 대하여 세 가지 서원을 발해서 삼취정계를 지니시니, 항상 계戒를 닦은 것은 탐심에 대하는 것이라서 맹세코 일체 악을 끊기 때문이고, 항상 정을 닦는 것은 진독嗔毒을 대한 것이어서 맹세코 일체 선을 닦기 때문이며, 항상 지혜를 닦는 것은 치독痴毒을 대한 것이어서 맹세코 일체중생을 제도코자 하기 때문이니라.”
0001_0010_b_01L由持如是戒定慧三種等淨法故로 超彼三毒業하야 成覺道也니 能制三毒하면 諸惡이 消滅故로 名之爲斷이요 能持三聚淨戒하면 諸善이 具足故로 名之爲修요 能히 斷惡修善하면 萬行이 成就하며 自他俱利하야 普濟群生故로 名之爲度(解脫)니 故(則)知所修戒行이 不離於心이로다.30)
이와 같은 계와 정과 혜 등 세 가지 청정한 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저 삼독의 악업을 벗어나서 대각의 도(불도)를 이룬다. 능히 삼독을 제거하면 모든 악이 소멸하기 때문에 끊는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능히 삼취정계를 가지면 모든 착한 것이 구족하기 때문에 닦는다고 이름한다. 능히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만행이 성취되어 자타가 모두 이익 되어 널리 일체중생을 건지기 때문에 도라고 이름한다.度는 苦海를 건넌다는 뜻 그러므로 계행을 닦는 것이 마음을 떠나는 것이 아니니라.
제14절 심정즉각토정心淨卽覺土淨
若自心이 (淸)淨하면 一切衆生이 皆悉淸淨이니라.31) 故로 經云心垢則衆生垢요 心淨則衆生淨이라 하시고 又云32)欲淨覺土컨대 先淨其心이니 隨其心淨하야 則覺土淨이라 하시니 若能制得三種毒心하면 三聚淨戒를 自能成就하리라.33)
0001_0011_a_01L만일 자기 마음이 청정하면 일체중생이 다 청정하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시기를, “마음이 더러우면 중생이 더럽고 마음이 청정하면 중생이 청정하다.”라고 하셨다. 또 이르시기를, “깨달음의 나라(佛土)를 청정하게 하려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할지니, 그 마음이 청정함을 따라 곧 깨달음의 나라가 청정하리라.”라고 하셨다. 만일 능히 삼독심을 제어하면 삼취정계를 스스로 능히 성취하리라.
제15절 중명육도重明六度
問曰六度者는34) 所謂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거늘 今言六根淸淨을 名爲六波羅蜜(者)이라 하시니35) 其義云何있고 答曰欲修六度컨대 當淨六根이요 欲淨六根인대 先36)降六賊이니 能捨眼賊하면 離諸色境하야 心無慳悋일새37) 名爲布施요 能禁耳賊하면 於彼聲塵에 不令縱(放)逸일새 名爲持戒오 能伏鼻賊하면 等諸香臭하야 自在調柔할새 名爲忍辱이오 能制舌(口)賊하면 不貪邪味하며 讚詠講說호대 心無厭心할새 名爲精進이요 能降身賊하면 於諸觸欲에 湛然不動일새 名爲禪定이오 能調意賊하면 不順無明하고 常修覺慧하야 樂諸功德일새 名爲智慧이니라 又六度者는 運也라 六波羅蜜은 喩若船筏이어든 能運衆生하야 達彼岸故로 名六度니라.38)
0001_0011_b_01L묻기를,
“육도란 이른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이 여섯 가지이거늘 이제 육근만 청정한 것으로 육바라밀이라 이름하시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답하기를,
“육도를 닦고자 한다면 마땅히 육근을 깨끗이 하고, 육근을 깨끗이 하고자 하면 먼저 육적을 항복 받아야 한다. 능히 눈의 도적을 버리면 모든 색의 경계(色境)를 떠나 마음에 인색함이 없기 때문에 보시라고 한다. 능히 귀의 도적을 막으면 저 소리의 경계에 풀어 놓지 않기 때문에 지계라고 한다. 능히 코의 도적을 항복 받으면 향기와 악취에 평등하고 자재하게 길들이기 때문에 인욕이라고 한다. 능히 혀(舌)의 도적을 제어하면 삿된 맛을 탐내지 아니하며 노래하고 찬탄하며, 강의하고 연설하되, 마음에 피곤함이 없기 때문에 정진이라고 한다. 능히 몸의 도적을 항복 받으면 모든 닿는 욕심에 맑아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선정이라고 한다. 능히 뜻의 도적을 조복시키면 어두운 마음을 따르지 않고, 항상 깨친 지혜를 닦아서 모든 공덕을 즐기기 때문에 지혜라고 한다. 또 ‘도度’라는 말은 ‘건넌다’는 말이니, ‘건넌다’는 것은 운반한다는 것이다. 육바라밀은 비유하면 배와 뗏목과 같다. 능히 중생을 운반해서 저 언덕에 도달하기 때문에 육도六度라 하느니라.”
제16절 명법유明法乳
0001_0012_a_01L又問大覺께서 曾飮三斗六升乳糜하시고 方成大覺道이라 하시니 豈唯觀心하야 而得解脫乎이닛고 答曰覺所說食乳者는 必因食乳 然始成佛 言食乳者有二種 佛所食者 非是世間不淨之乳라 三斗者는 三聚淨戒요 六升者는 六波羅蜜이니 覺이 成道時에 由食此淸淨法乳하야 方證覺果어시늘 若言大覺食於世間媱欲和合한 不淨羶腥之乳者라 하면 豈不成謗之甚乎아.39)
또 묻길,
“대각께서 일찍이 서 말 여섯 되 젖을 마시시고 비로소 대각의 도를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어찌 오직 마음만 관觀하여 해탈을 얻겠습니까?”
대답하길,
“각께서 말씀하신 젖을 먹는단 말은 세간의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 진여眞如의 청정한 법유이니라. 서 말이란 것은 삼취정계를 말하신 것이요, 육승六升을 말씀하시는 것은 육바라밀을 말씀하신 것이니, 각께서 도를 이루실 때에 이 청정한 법유를 잡수심을 말미암아 바야흐로 대각과(果)를 증득하셨다. 만일 대각께서 세간에 음욕과 화합한 것을 잡수시고 비린 냄새 나는 청정하지 못한 젖이라면 어찌 그것을 비방함이 심한 것이 아니겠는가?”
大覺者는 自是金剛不壞無漏法身이라 永離世間苦어니 豈須如是不淨之乳하야 以免飢渴也리요 如經所說하야 其牛는 不在高原하며 不在下濕하며 不食穀麥糠麩하며 不與特牛로 同群이라 身作紫磨金色이라 하시니.40)
대각자는 이 금강과 같이 무너지지 않는 무루진신無漏眞身이시라. 길이 세간의 고통을 떠나셨는데, 어찌 반드시 이와 같은 부정한 젖을 구하여 기갈을 면하였겠는가! 경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 소는 높은 언덕에도 있지 아니하고, 아래의 습한 땅에도 있지 아니하며, 곡식의 껍질과 재강과 밀 겨를 먹지 아니하고, 수소와 암소로 동일한 무리를 짓지 아니하니라. 그 소의 몸이 자마금색을 짓는다고 하시니라.
言此牛者는 則光明遍照覺也시니 以大慈悲로 憐愍一切하사 故於淸淨法體中에 流出如是三聚淨戒와 六波羅蜜微妙法乳하사 乳養育一切求解脫者하시니 非獨大覺이 飮之成道라 一切衆生이 若能飮者면 皆得無上正眞之道하리라.41)
이 소를 말하자면 곧 광명이 변조한 각이시다. 대자비로써 일체를 연민히 여기시어 저 청정한 법체 가운데에서 이러한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의 미묘한 법유를 흘려 내시어 일체가 해탈을 구하는 자에게 법유를 주어 기르시니라. 유독 대각께서 그것을 마시고 도를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일체중생도 만일 능히 마시는 자라면 모두 위가 없는 밝고 바른 참된 도를 얻으리라.
제17절 수조성전修造聖殿
又問曰經中에 修造聖殿하며 鑄寫聖像하며 燒香散花하며 燃長明燈하며 晝夜六時로 行道禮拜持齋하야 修種種功德한달로 皆成佛道ㅣ라 하시니 若唯觀心一法이 總攝諸行云者는 必虛妄也니라.42)
또 묻길,
“경 가운데 성스런 전각을 조성하고 성스런 불상을 주조하고 그리며 향을 사르고 꽃을 흩으며 길이 밝은 등불을 켜며 밤과 낮의 육시로 행도함에행도는 도복과 법의를 입고 몸을 단정히 하여 성탑을 돌며 염불하는 것이다. 예배하고 재계하며 가지가지 공덕을 닦는 것으로 모두 각도를 이룸이라 하시니, 만약 오직 마음만 보는 한 법이 모든 행을 총괄하여 섭수하였다는 것은 반드시 허망합니다.”
答曰一切衆生이 鈍根狹劣하야 不悟深深妙理할새 無數方便으로 引導衆生하사 假有爲事하야 現無爲理하시니 汝知之不아 不修內行하고 唯只外求하며 希望獲福이 無有是處이니라 言伽藍者는 梵語어든 此言淸淨地也니 若永除三毒하야 常淨六根하며 身心이 湛然하야 內外淸淨하면 是則修伽藍也오.42)
0001_0013_b_01L답하길,
“일체중생이 근기가 둔하고 지혜가 부족하여 깊고 깊은 미묘한 이치를 깨닫지 못함에 수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인도하시려고 세상 유위의 일을 가자하시어 무위의 이치를 나타내시는데 그대는 그것을 알겠는가? 안으로 행을 닦지 아니하고 오직 밖으로만 구하여 복보를 희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라. 가람이란 말은 인도의 말로 이것은 청정한 곳이니, 만일 길이 삼독을 제거하여 항상 육근이 깨끗하고 몸과 마음이 고요(조촐)하여 내외가 청정하면 이것이 곧 가람을 닦음이니라.”
제18절 주사각상鑄寫覺像
又鑄寫覺像者는 卽一切衆生이 求覺道也ㅣ니 所謂修諸覺行하야 假像大覺眞容妙相이라 豈道鑄金銅之所作也리요 是故로 求解脫者는 以身으로 爲爐하고 以法으로 爲火하고 以智慧로 爲巧匠하고 以三聚淨戒와 六波羅蜜로 爲模樣하야 鎔鍊身中眞如覺性하야 遍入一切戒律模中하야 如敎奉行호대 一無缺漏하면 自然成就眞容之相하나니 所謂究竟常住微妙色身이라 非是有爲敗壞之法이니라 若人이 求道호대 不解鑄寫眞容하면 憑何輒言成功德也리요.43)
0001_0014_a_01L또 불상을 부어 짓거나 그리는 자는 곧 일체중생이 각도를 구하는 것을 표방하는 것이니라. 이른바 모든 대각의 행을 닦아 거짓 대각의 참다운 존안과 묘하신 모습을 형용한 것이니라. 어찌 쇠와 구리로 부어서 지어 만든 것이겠는가! 이 때문에 해탈을 구하는 자는 몸으로써 화로를 삼고, 법으로써 불을 삼으며, 지혜로써 공장을 삼고, 삼취정계와 육바라밀로써 묘법을 삼아 몸 가운데 진여각성을 단련하여 모두 일체 계율戒律 모범 가운데에 들어가 가르치심과 같이 받들어 행함에 하나도 어그러지고 새는 것이 없으면 자연히 대각의 형용을 성취할 것이니라. 이른바 구경에 상주하는 미묘한 법신(究竟常住微妙法身)이니라. 이 세상에 유위법과 같이 패괴敗壞하는 법이 아니니라. 만일 사람이 도를 구하되 진각眞覺을 조성하는 뜻을 알지 못하면 무엇을 의지하여 공덕을 이룬다고 말하겠는가!
제19절 오분향五分香
燒香者는 亦非世間有相之香이라 乃是無爲正法之香이니 薰諸臭穢하며 斷無明惡業하야 悉令消滅이니라 其正法香者는 有五種하니 一者는 戒香이니 所謂能斷諸惡하고 能修諸善이요 二者는 定香이니 所謂深信大機하야 心無退轉이요 三者는 慧香이니 所謂常於身心에 內外觀察이요 四者는 解脫香이니 所謂能斷一切無明結縛이요 五者는 解脫知見香이니 所謂觀察이 常明하야 通達無礙니라.
0001_0014_b_01L향을 사르는 것은 또한 세간에 형상이 있는 향이 아니라 바로 이것은 함이 없는 바른 법의 향기이니라. 모든 냄새나는 더러움에 훈습함과 무명無明의 악업을 끊어 버리어 다 하여금 녹여 없애 버리는 것이니라. 그 바른 향에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는 계향이니, 이른바 모든 악을 끊고 능히 모든 선을 닦는 것이요, 둘째는 정향이니, 이른바 대근기를 깊이 믿어서 마음에 퇴전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혜향이니, 몸과 마음의 내외를 살펴보는 것이요, 넷째는 해탈향이니, 이른바 능히 무명에 결박된 것을 끊어 버리는 것이요, 다섯째는 해탈지견향이니, 이른바 깨쳐 살피는 것이 항상 밝게 통달해서 걸림 없는 것이니라.
如是五香이 名最上香이라 世間에 無比이니 覺이 在世日에 令諸弟子로 燒如是無價寶香하야 供養十方一切大覺이어늘 今時衆生이 愚痴鈍根하야 不解大覺 眞實之義하고 唯將外火하야 燒於世間沈檀薰陸質碍之香하야 希望福報하나니 云何可得이리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향이 최상의 향이다. 세간에 비교할 것이 없으니, 각께서 세상에 계시던 날에 모든 제자로 하여금 이와 같은 값없는 보배의 향을 피워 시방 일체 각께 공양하였느니라. 금시의 중생들은 우치하고 근기가 암둔하여 대각의 진실하신 뜻을 알지 못하고 오직 밖의 불을 가져서 세간에 침수향과 전단향과 훈육향과 모든 물질의 장애가 있는 향을 불살라 복보를 희망하지만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제20절 산화散花
又散花者도 義亦如是하니 所謂演說正法諸功德花하야 饒益有情하며 散治一切眞如之性하야 普施莊嚴이니 此功德花는 覺所稱歎이라 無凋落期하니라.
또 꽃을 흩는다는 것도 역시 뜻이 이와 같다. 이른바 올바른 법을 연설演說한 모든 공덕의 꽃으로 유정有情을 요익饒益하게 하며 흩어 일체 진여眞如의 성품을 다스리어 널리 장엄하는 것이니라. 이 공덕의 꽃은 각께서 칭찬하신 것으로 시들어 떨어질 기약이 없느니라.
若復有人이 散如是花하면 獲福無量이어니와 若言大覺이 令諸弟子와 及衆生等으로 剪截艶綵하며 傷損草木하야 以爲散花는 無有是處이니라 所以者何오 持淨戒者는 於諸ㅣ天地森羅萬像에 不令觸死이니 悞損者도 由獲大罪온 況復今者에 加毁淨戒하며 傷損萬物하야 求於福報리요 欲益反損이라 豈有是乎아.
0001_0015_b_01L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꽃을 흩으면 한량없는 복을 얻느니라. 만일 말하길, “대각께서 모든 제자와 중생들로 하여금 고운 꽃을 베며 초목을 손상해서 꽃을 흩는다.”라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청정한 계행을 가지는 것은 모든 천지의 삼라만상에 하여금 닿아 죽이지 못하게 하며, 그릇 손상하는 자도 큰 죄를 얻기 때문이니라. 하물며 다시 지금에 더 청정한 것을 헐며 만물을 손상하여 복보를 구하겠는가! 유익하고자 하다가 도리어 손상하는 것이라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
제21절 명등明燈
又長明燈者는 正覺心也이니 覺知明了를 喩之爲燈이니라 是故로 一切求解脫者는 常以身으로 爲燈臺하고 以心으로 爲燈盞하고 以信으로爲燈炷하고 以戒香으로 爲燈油하고 以智慧明達로 爲燈光하나니 常燃如是覺燈하야 炤破一切無明癡暗니니라 能以此法으로 轉相開悟하면 卽是一燈이 燃百千燈호대 燈燈續明하야 終無盡故로 號를 長明燈이니라.
0001_0016_a_01L또 장명등이라는 것은 바르게 깨친 마음이니, 깨달아 아는 것이 밝은 그것을 비유하여 등잔이라 하느니라. 이 때문에 일체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항상 몸으로써 등대를 삼고 마음으로써 등잔을 삼으며 믿는 것으로써 등불의 심지를 삼고 모든 계행으로써 등불의 기름을 삼으며 지혜가 밝은 것으로써 등불의 광명을 삼아서 항상 이와 같이 깨달음의 등불로써 일체 밝지 못한 어리석은 어두운 것을 비추어 파하는 것이니라. 능히 이 법으로써 굴리어 서로 열어 깨치게 하면 바로 하나의 등불이 백천 등불을 켜되 등불과 등불이 밝은 것을 이어서 마침내 다함이 없기 때문에 이름을 장명등이라 하느니라.
過去에 有覺호대 名曰燃(然)燈이시니 義亦如是어늘 愚痴衆生이 不會大覺方便之說하고 專行虛妄하며 執著有爲한달로 遂燃世間蘇油之燈하야 以炤空室하고 乃稱依敎라 하나니 豈不謬乎아 所以者何오 覺放眉間一毫之光하야도 尙照十萬八千世界하며 若身光이 盡現則普照十方하나니 豈假如是世俗之燈하야 以爲利益이리요 審察斯理하면 應不然乎아.
과거에 각이 계셨는데 명호가 연등이시고 뜻도 또한 이와 같다. 우치한 중생들이 대각의 방편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허망함을 행하며 세상 유위법을 집착함으로 마침내 세간世間의 깨(蘇)와 기름(油)으로 등불을 켜서 빈집을 밝히고 각의 교칙을 의지하나니, 어찌 그릇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 까닭이 무엇인가? 각께서 미간의 한 터럭에서 광명을 놓아도 오히려 동방으로 십만팔천세계를 비추시는데, 만일 몸의 광명을 다 나타낸다면 시방을 두루 비추나니, 어찌 이와 같은 세속의 등불을 가자함으로써 이익을 삼았겠는가. 이 이치를 자세히 살피면 마땅히 그렇지 아니한가.
제22절 행도行道
又六時行道者는 所謂六根之中에 常行覺道니 修諸覺行하야 調伏六根하야 長時不捨를 名爲六時行道이니라 塔者는 身心也ㅣ니 常令覺慧로 巡遶身心을 名爲遶塔이니 過去諸聖이 曾行此道하야 得涅槃이거늘 世人이 不會斯理하니 何名行道리요 鈍根之輩는 不曾內行하고 唯執外求하야 遶世間塔하야 日夜走驟하나니 徒自疲勞라 而於眞性에 一無利益이니 甚可憐愍이로다.
0001_0017_a_01L또 육시에 행도하는 것은세상 사람이 행도라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탑이나 각상이나 가운데에 두고 갓으로 빙빙 돌아다니는 것을 행도라 한다고 하나니 참 우치하오. 이른바 육근 가운데 항상 각도를 행하는 것이니라. 모든 깨친 행을 닦아 육근을 조복하여 길이 놓아 버리지 아니하는 것을 이름하여 육시행도라 하는 것이니라. 탑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을 표방한 것이니라. 항상 깨친 지혜로 몸과 마음을 둘러 순찰하는 것을 이름하여 요탑이라 하느니라. 과거에 모든 성현이 일찍이 도를 행하여 진락(열반)을 얻었거늘 세상 사람이 이치를 알지 못하니 어찌 행도라 하겠는가. 둔근들은 일찍이 안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밖으로 구하여 세간 탑을 돌되 일야에 빨리빨리 돌아다닌다. 한갓 스스로 피곤하여 어지러울 따름이니라. 저 참된 성품에 하나도 이익이 없을 것이니, 심히 불쌍하다.
제23절 재계齋戒
又持齋者는 齊也ㅣ니 所謂勤治身心하야 不令散亂이오 持者는 護也ㅣ니 所謂於諸戒行에 如法護持호대 必須外禁六情而制三毒하며 勤修覺察而淨其心인 了如是義者ㅣ라사 名爲持齋이니라.
또 재를 가진다는 것은 가지런히 하는 것이니, 이른바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다스려 산란심이 없게 하는 것이니라. 가진다는 말은 보호하는 것이니, 이른바 모든 계행에 여법하게 보호하여 가지는 것이니라. 반드시 육정을 엄금하여 삼독을 억제하며 부지런히 깨치고 살피어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할지니, 이와 같은 뜻을 알면 가히 재를 가지는 것이 되느니라.
제24절 재식齋(齊)食
又齋食者는 食有五種하니 一者는 法喜食이니 依大覺正法하야 歡喜奉行이오 二者는 禪悅食이니 內外澄寂하야 身心悅樂이요 三者는 念食이니 常念諸覺하야 心口相應이요 四者는 願食이니 行住坐臥에 常求善願이요 五者는 解脫食이니 心常淸淨하야 不染世塵일새 名爲齋食이니라.
또 재를 가진다는 것은 재식에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첫째는 (법희식이니)44) 대각의 정법을 의지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니라. 둘째는 선열식이니 내외가 맑고 고요하여 몸과 마음이 즐거운 것이니라. 셋째는 염식念食이니 항상 제각(모든 부처님)을 생각하여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는 것이니라. 넷째는 원식이니 행주좌와에 항상 착한 원을 구하는 것이니라. 다섯째는 해탈식이니 마음이 항상 청정하여 세상 티끌에 물들지 아니함에 이름이 재식이라 하느니라.
제25절 단식斷食
又斷食者는 斷無明惡業之食이어늘 迷人이 不悟斯理하고 身心放逸하야 造諸惡業하며 貪恣情欲하야 不生慚愧하고 唯斷外食하야 自爲持齋라 하나니 何異痴兒가 見爛壞死屍하고 稱言有命이리요 必無是處이니라.
또 밥을 끊는 것은 무명과 악업의 식을 끊는 것이니라. 미혹한 사람들은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방탕유일하여 모든 악업을 지으며 정욕을 마음껏 탐착하여 참괴심을 내지 아니하고 오직 먹는 밥을 끊는 것으로 스스로 재를 가짐을 삼는 것이니라. 어찌 어린아이가 썩어 흐늘흐늘한 송장을 보고 목숨이 있다고 하는 것과 다르겠는가. 반드시 옳지 못하니라.
제26절 예배禮拜
又禮拜者는 常如法也니 理體는 內明하고 事相은 外變이어든 理不可捨어니와 事有行藏하나니 會如是義하야사 乃名依法이니라 夫禮者는 敬也오 拜者는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라사 名爲禮拜니라 以恭敬故로 不敢毁傷하고 以屈伏故로 無令縱逸하나니 若能惡情이 永滅하고 善念이 恒存하면 雖不現相이나 常爲禮拜이니라 用之則現하고 捨之則藏이라 擧外明內는 雖性相이 相應也일새니라 若復唯執外相禮拜컨대 內則縱於貪嗔하야 常行惡念하고 外則空顯身相하야 假作敬禮하나니 何名禮拜리요 欺賢誑聖이라 必不免於輪廻하리라.
0001_0018_b_01L또 예배라는 것은 항상 법답게 하는 것이니라. 이체理體는 안으로 밝고 사상事相은 밖으로 변한다. 이치는 가히 버리지 못하려니와 사상은 드러나고 감춤이 있다. 이와 같은 뜻을 알면 법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대개 예를 차린다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고, 절한다는 것은 아만을 조복 받는 것이니라. 나의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어두운 마음을 굴복시킬 때에 이름을 예배한다는 것이니라. 공경을 행하기 때문에 아만이 끊어진 것이니라. 감히 훼상毁傷하지 못하고, 어두운 마음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방탕하지 못하느니라. 만일 능히 악한 뜻을 길이 멸하고 착한 생각이 항상 있으면 비록 형상을 나타내어 공경하지 아니해도 항상 예배하는 것이니라. 그렇지만 사상의 법이 밖으로 쓰이면 나타나고, 안으로 버린다면 감추어진 것이니라. 밖으로 공경하는 것을 들어 안으로 진성을 밝히는 것은 성품과 외상이 서로 응함을 표시한 것이니라. 만일 다시 외상으로 예배하는 것만 집착한다면 안으로는 곧 탐진치를 놓아 항상 악념을 행하고 밖으로는 공연히 몸에 모양을 나타내어 거짓 예경을 짓는 것이니라. 어찌 진실로 예배라고 하겠는가. 어진 이를 속이고 성인을 속인 것이니라. 반드시 생사에 윤회하여 악도에 떨어짐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
제27절 세욕洗浴
0001_0019_a_01L又問曰溫室經에 云洗浴衆士이면 得福無量이라 하시니 若有觀心이면 可相應不이까 答曰洗浴衆士者는 非說世間有爲之事也라 此는 假諸事하사 譬喩眞宗하시니 隱說七事이니라 其七事者는 一者는 淨水요 二者는 燃火요 三者는 澡豆요 四者는 楊枝요 五者는 淨灰요 六者는 酥膏이요 七者는 內衣이니라 用此七法하야 沐浴莊嚴하면 能除三毒無明垢穢하니라 其七法者는 一者는 法戒이니 洗溫僭非45)가 猶如淨水하야 去諸塵垢요 二者는 智慧니 觀察內外가 猶如燃火하야 能溫淨水요 三者는 分別이니 揀棄諸惡이 猶如澡豆하야 能淨垢膩요 四者는 眞實이니 斷諸妄語가 猶如楊枝하야 能消口氣요 五者는 正信이니 決意無慮가 猶如淨灰摩身하야 能除諸風이오 六者는 調息이니 柔軟 伏諸剛强이 猶如酥膏하야 通潤皮膚요 七者는 慙愧이니 悔諸惡業이 猶如內衣하야 遮蔽醜形이 以上七事가 幷是經中秘密之藏이어늘 今人이 無能悟解로다.
0001_0019_b_01L또 묻길,
“『온실경』에 이르시길, ‘중사衆士(여러 보살)를 목욕시키면 복을 얻는 것이 한량이 없다’고 하셨는데 오직 마음만 본다면 가히 서로 상응하겠습니까?”
달마 대답하길,
“중정사를 세욕하는 것은 세간 유위사가 아니라 이것은 세간에 모든 일을 가자하여 진종眞宗에 비유하신 것이니라. 가만히 일곱 가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첫째는 청정한 물이요, 둘째는 불을 피우는 것이요, 셋째는 비누요, 넷째는 버드나무 가지요, 다섯째는 깨끗한 재요, 여섯째는 젖과 기름이요, 일곱째는 속옷이니라. 이 일곱 가지 법을 써서 목욕을 장엄하면 능히 삼독의 무명과 더러운 때를 제거하는 것이니라. 그 일곱 가지 법은, 첫째는 법계法戒이니 그릇된 허물을 따뜻이 씻는 것이 마치 깨끗한 물과 같아서 모든 진구를 씻는 것이니라. 둘째는 지혜이니 안과 밖을 보아 살피는 것이 불을 피우는 것과 같아서 능히 깨끗한 물을 따뜻이 하느니라. 셋째는 분별이니 모든 악을 가려서 버리는 것이 비누와 같아서 능히 더러운 때를 깨끗이 하는 것이니라. 넷째는 진실한 것이니 모든 망어를 끊는 것이 버들가지와 같아서 능히 구취를 녹이느니라. 다섯째는 정신正信이니 뜻을 결단하여 사려가 없는 것이 깨끗한 재로 몸을 씻는 것과 같아서 능히 모든 바람을 제거하느니라. 여섯째는 조식이니 모든 강강한 것을 조복 받는 것이 젖과 기름 같아서 통틀어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것이니라. 일곱째는 참괴이니 모든 악업을 뉘우치는 것이 속옷과 같아서 더러운 얼굴을 가리느니라. 이 일곱 가지가 경중의 비밀장이기에 지금의 사람이 능히 깨달아 알지 못하느니라.
其溫室者는 則身이 是也니 以智慧火로 溫淨戒湯하야 沐浴身中眞如覺性호대 受持七法하야 以自莊嚴이니라 當時正士는 聰明利智혼들로 皆悟聖意하야 如說修行할새 功德成就하야 俱證聖果어니와 今時衆生은 愚癡鈍根이라 莫測斯事하고 將世間水하야 洗質碍身으로 自言依敎라 하나니 豈非誤也리요 且眞如覺性은 非是凡形이라 煩惱塵垢가 本來無相이어니 豈將碍水하야 洗無明身이리요 事不相應이어니 云何悟道리요 常觀此身이 本因貪欲하야 不淨所生이라 臭穢騈闐하야 內外充塞이니라.
0001_0020_a_01L그 따뜻한 집은 곧 몸에 비유한 것이니라. 지혜의 불로써 깨끗한 계탕을 따뜻이 하여 몸 가운데 진여각성을 목욕하되 일곱 가지 법을 가짐으로써 장엄하느니라. 각의 당시에 정사들은 총명하고 지혜가 날카로워 다 성인의 뜻을 깨달아 말씀과 같이 수행함에 공덕을 성취하여 한 가지 성과聖果에 올랐거니와 금시 중생은 우치둔근愚癡鈍根이니라. 이것을 측량치 못하고 세간에 몸을 가져 둔탁한 몸을 씻음으로 각의 교칙을 의지한다고 말하니, 어찌 그릇되지 아니하겠는가. 또 진여각성眞如覺性이 범상한 사람의 형용이 아니라 번뇌진구가 본래 없는데, 어찌 물을 가져 몸을 씻는 것으로 성도하겠는가. 일이 상응치 못하니, 어찌 도를 깨쳤다고 하겠는가. 항상 이 몸이 음욕을 인하여 부정不淨으로 나느니라.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동일하게 가득하여 내외에 충만하느니라.
若洗此身하야 求於淨者는 猶如洗泥에 終無得淨이니 如此驗之면 明知外洗가 非覺說也니라.
만일 이 몸을 씻어 깨끗하기를 구하는 자는 마치 진흙을 씻음에 마침내 깨끗함을 얻지 못함과 같으니, 이와 같이 그것을 증험하면 밝게 밖으로 몸을 씻는 것이 각의 설이 아님을 알 것이니라.”
제28절 명염각明念覺
46)摩答曰 夫念覺者는 當修正念이니 了義로 爲正이요 不了義로 爲邪이니라 正念은 必得眞樂이어니와 邪念은 云何達彼리요 覺者는 覺察心身하야 勿令起惡이요 念者는 憶也니 憶持戒行하야 不忘精勤이니라 了如是義하야사 故知念住於心 名爲正念이요 不在於言也이니라.
달마께서 혜가의 물음에 대답하시길,
“대저 염각하는 것은 마땅히 정념을 닦느니라. 분명한 뜻으로 바름(정다움)을 삼고 분명치 못한 뜻으로 삿된 것을 삼느니라. 정념은 반드시 참다운 즐거움(진락)을 얻을 것이거니와 사념으로 어찌 저 열반의 언덕을 달려가겠는가. 각자는 몸과 마음을 살펴 하여금 악한 것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느니라. 염자는 생각하는 것이니 계행을 생각하면서 가져서 정밀하게 나아가며 부지런히 하는 것을 잃지 아니하느니라. 이와 같은 뜻을 요해하면 이름이 정념이니, 그러므로 생각이 마음에 머물고, 말에 있지 아니한 것을 아느니라.
0001_0021_a_01L因筌求魚에 得魚忘筌이요 因言求意에 得意忘言이니 旣稱念覺之名인대 須行念覺之體이니라 若念無實體하고 口誦空名이면 徒自虛功이라 有何成益이리요 且如誦之與念이 名義懸殊하니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故知念從心起라 名爲覺行之門이요 誦在口中이라 卽是音聲之相이니 執相求福이 終無是乎인저.
통발을 인하여 고기를 구함에 고기를 얻었거든 통발은 잊느니라. 말을 인하여 뜻을 얻었거든 말을 잊느니라. 이미 염각하는 이름을 일컬음에 모름지기 염각하는 마음의 본체를 행하느니라. 만일 실다운 체體가 없고 입으로만 공연히 성호만 외우고 마음이 제대로 나가서 온갖 분별을 다하지 않으면 한갓 헛된 공력만 들이느니라. 무슨 이익을 이루겠는가. 또 외우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이름과 뜻이 현저히 다른 것이니라. 입에 있으면 외우는 것이요, 마음에 있어서는 생각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알라. 생각은 마음으로 좇아 일어나느니라. 이름이 깨쳐서 행하는 문이 되는 것이요, 외우는 것은 입에 있는 것이니라. 곧 이 소리하는 양태이니 형상에 집착하여 복을 구하는 것은 마침내 옳지 못하느니라.”
제29절 회상귀심會相歸心
0001_0021_b_01L故로 敬에 云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라 하시고 又云若以色見我커나 以音聲으로 求我하면 是人이 行邪道라 不能見大覺이라 하시니 以此觀之컨대 乃知事相은 非眞正也로다 故知하라 過去諸聖에 所修功德은 皆非外說이라 唯只論心이니라 心是衆聖之源이요 心爲萬惡之主ㅣ라 無上眞樂이 由自心生이요 三界輪廻가 亦從心起이니라 心爲出世之門戶오 心是解脫之關津이니 知門戶者는 豈慮難成이며 識關津者는 何憂不達이리요.
그러므로 경에 이르시길,
“무릇 형상 있는 것이 다 허망하다.”라고 하시고,
또 말씀하시길,
“만일 모양으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음성音聲으로 나를 구하려고 하면 이 사람이 사도를 행하느니라. 능히 대각을 보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이것으로써 본다면 이에 사상으로 각을 찾는 것은 진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알라. 과거 모든 성현의 닦은바 공덕이 다 마음의 형상에 말이 아니라 오직 다만 마음을 의논함이니라. 마음은 무릇 성인의 근원이요, 만악의 주인이 되느니라. 뚜렷이 밝고 고요히 비추어 떳떳이 즐거운 낙이 자심을 말미암아 나느니라. 삼계에 윤회하는 것이 또한 마음으로 좇아 일어나느니라. 마음은 세간을 벗어나는 문호요, 마음은 이 해탈하는 관진關津이니라.관진은 관을 뚫어 나가는 기관에 요긴한 곳이니라. 문호를 아는 자는 어찌 이루지 못할까 염려하며 관진을 아는 자가 어찌 저 언덕에 도달치 못할까 근심하겠는가.
제30절 망영각상탑묘妄營覺像塔廟
竊見今時淺識호니 唯知立相爲功하야 廣費財寶하며 多傷水陸하야 妄營像塔하며 虛役人功하야 積木壘泥하며 塗靑畫綵호대 傾心盡力하야 損己迷他하나니 未解慙愧ㅣ라 何曾覺悟리요 見有爲則勤勤愛着하고 說無相則兀兀如迷로다 且貪世上之小樂하야 不覺當來之大苦로다 此之修學은 徒自疲勞라 背正歸邪어늘 誑言獲福이로다.
가만히 금시에 천식들을 보니, 오직 명상을 세워 공을 삼을 줄만 알아 널리 재보를 허비하며 많이 물과 육지에 있는 것을 손상하여 망령되이 각상과 탑을 경영하며, 헛되이 사람의 공력을 들여서 나무를 쌓아서 각탑을 조성하거나 진흙을 발라서 각탑을 조성하며 혹 단청도 바르며 채색으로 각상을 그리되, 마음을 기울이며 힘을 다하여 나의 몸도 손상하게 하며 다른 사람의 정신도 미혹케 하나니, 참괴함을 알지 못한지라 어찌 일찍이 깨치겠는가. 세상에 유위법을 보면 부지런히 애착하고 명상 없는 천진본연성품을 말하면 나무둥치와 같이 우뚝하여 미혹함과 같으니라. 또한 세상에 조그마한 적은 낙을 탐하여 당래에 큰 고 됨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이 닦으며 배우는 것은 한갓 스스로 피곤하고 괴로울 뿐이니라. 올바른(정다운) 것은 등지고 삿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광혹한 말로 복을 얻는다고 하느니라.
제31절 결귀관심結歸觀心
但能攝心內照하야 覺觀常明이어다 絶三毒心하야 永使消亡하며 閉六賊門하야 不令侵擾하면 恒沙功德과 種種莊嚴과 無量法門을 一一成就하리라 超凡證聖이 目擊非遙라 悟在須臾어니 何煩皓首리요 眞門이 幽秘하니 寧可具陳이리요 略說觀心하야 詳其小分하노라.
다만 능히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반조하여 깨쳐 보는 것이 항상 밝게 해야 하느니라. 삼독의 마음이 끊어져서 길이 녹아 없어지게 하며 여섯 도적의 문을 닫아 침노하여 요란치 못하게 하면 항하사 공덕과 갖가지 장엄과 한량없는 법문을 낱낱이 성취하느니라. 범부에서 뛰쳐나와 성현을 증득하는 것이 눈 한 번 깜짝할 사이니라. 도를 깨치는 것이 잠깐 사이에 있거니, 어찌 머리가 희도록 번거로이 닦겠는가. 참된 법문이 깊고 비밀하기에 어찌 갖추어 말하겠는가. 간략히 마음보는 것을 말하여 그 조금(약간) 자상케 하였느니라.
선문촬요禪門撮要 제2권
보조수심결普照修心訣覺日普照國師高麗人卽牧牛子也
제1절 거고시진擧苦示眞
三界熱惱가 猶如火宅하니 其忍淹留하야 甘受長苦아 欲免輪廻컨대 莫若求覺이오 若欲求覺인대 覺卽是心이니 心何遠覓이리오 不離身中이로다 色身은 是假라 有生有滅커니와 眞心은 如空하야 不斷不變이니라 故로 云百骸는 潰散하야 歸火歸風커니와 一物은 長靈하야 蓋天蓋地라 하시니.
0001_0023_b_01L삼계가 몹시 뜨거워 열뇌한 것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으니, 그곳에 오래 머물러 차마 한량이 없는 장시간 고(長時間苦)를 달게 받겠는가. 삼계 불집에 윤회하는 것을 면하고자 한다면 깨친 것을 구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깨친 것을 구하고자 한다면 깨친 것이 곧 마음이니 마음을 어찌 멀리 찾겠는가. 몸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몸은 이 거짓 것이라, 사는 것이 있고 죽는 것이 있거니와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변하는 것도 아니니라. 그런고로 임제 말씀하시길, 사람이 죽음에 일백 뼈는 문드러지고 헐어짐에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거니와 나의 본연本然한 성품 이 한 물건은 신령해서 하늘도 덮고 땅도 덮었다 하시니,
제2절 미심수도종무이익迷心修道終無利益
嗟夫라 今之人이여 迷來久矣로다 不識自心이 是眞覺(佛)이며 不識自性이 是眞法하고 欲求法호대 而遠推諸聖하며 欲求覺(佛)호대 而不觀己心하나 若言心外有覺(佛)하고 性外에 有法이라 하야 堅執此情하야 欲求覺(佛)道者인댄 縱經塵劫토록 燒身鍊臂하며 敲骨出髓하며 刺血寫經하며 長坐不臥하며 一食卯齋하며 乃至轉讀一大藏敎히 修種種苦行하야도 如蒸沙作飯하야 只益自勞爾이니라.
0001_0024_a_01L슬프다. 지금의 사람이여! 마음을 미혹하여 온 것이 오래되었느니라. 자기의 마음이 진각(불)인 것을 알지 못하며 자기의 자성이 진법인 것을 알지 못하고 법을 구하고자 하면 멀리 모든 성인에게 미루며 각(불)을 구하고자 하면 자기의 마음을 보지 아니하나니, 만일 말하자면 마음 밖에 각(불)이 따로 있고 성품 밖에 법이 따로 있다고 하여 굳게 이 뜻을 집착하여 각(불)의 도를 구하고자 하는 자는 비록 티끌 수와 같은 겁을 지내도록 몸을 태우고 팔을 불사르며 뼈를 으깨어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을 쓰며 장좌하여 눕지 아니하고 날마다 한 번씩 먹으며 모든 성경(일대장교)을 읽으며 가지가지 괴로이 행함이 모래를 쪄서 밥 짓는 것과 같아서 다만 저만 번뇌로울 따름이니라.
제3절 성범일도지명일심聖凡一道只明一心
但識自心하면 恒沙法門과 無量妙義를 不求而得하리라 故로 大覺(世尊)47)이 云普觀一切衆生호니 具有大覺(如來)智慧德相이라 하시고 又云一切衆生의 種種幻化가 皆生大覺(如來)의 圓覺妙心이라 하시니 是知커라 離此心外에 無覺(佛)可成이로다 過去諸大覺(如來)도 只是明心底人이며 現在諸賢聖도 亦是修心底人이며 未來修學人도 當依如是法이니 願諸修道之人은 切莫外求어다 心性이 無染하야 本自圓成하니 但離妄緣하면 卽如如覺(佛)이니라.
0001_0024_b_01L다만48) 제 마음만 알면 항하강 모래 수와 같은 법문과 한량없는 미묘한 뜻을 구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얻느니라. 그러므로 각(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일체중생을 보니 낱낱이 각(불)의 지혜와 만덕상이 갖추어 있다고 하시고, 또 말씀하시길, 일체중생의 가지가지 환화가 다 본연한 성품의 대원각(여래) 청정묘심으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하시니, 이것을 알겠다. 이 마음을 떠나고는 각(불)을 가히 이루지 못하느니라. 과거의 모든 각(부처)도 다만 마음 밝힌 사람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도 또한 마음 닦는 사람이며 미래에 수학할 사람도 마땅히 이와 같은 법을 의지하느니라. 원컨대 모든 도 닦을 사람은 간절히 마음 밖에 구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심성은 더러움이 없어 본래 스스로 뚜렷이 이루었으니, 다만 망령된 것만 여의면 곧 여여한 각(부처)이니라.
제4절 중생일용부지저일물衆生日用不知這一物
問曰若言覺性이 現在此身컨대 旣在身中이라 不離凡夫어니 因何我今에 不見覺性이니잇고 更爲消釋하야 悉令開悟하소서 答曰在汝身中컨만 汝自不見이로다 汝於十二時中에 知飢知渴하며 知寒知熱하며 或瞋或喜가 竟是何物고 且色身은 是地水火風四緣의 所集이라 其質이 頑而無情커니 豈能見聞覺知리오 能見聞覺知者는 必是汝의 覺性(佛性)이니라 故로 臨濟云四大不解說法聽法하며 虛空이 不解說法聽法하나니 只汝目前에 歷歷孤明하야 勿形段者ㅣ라사 始解說法聽法이라 하시니 所謂勿形段者는 是諸覺(佛)之法印이며 亦是汝의 本來心也ㅣ니라.
0001_0025_a_01L묻길,
“만일 각성이 몸에 번듯이 있다고 말하자면 이미 몸 가운데 있습니다. 범부를 떠나지 아니한 것이니 무슨 허물로 인하여 내가 이제 각성(불성)을 보지 못합니까? 다시 나를 위하여 분명히 뜻을 해석하시어 다 하여금 마음을 열어서 깨치게 하옵소서!”
대답하시길,
“너의 몸 가운데 있건만 네가 스스로 보지 못하느니라. 네가 열두 시 가운데 배 주린 줄 알고 목마른 줄 알며 추운 줄 알고 더운 줄 알며 혹 진심 내고 혹 기꺼워하는 것이 마침내 이 무슨 물건인가? 또한 몸은 지수화풍 네 가지 인연으로 모아서 되느니라. 그 바탕이 완악하게 무정한 것이다. 어찌 능히 보고 듣고 깨치고 알겠는가. 능히 보고 듣고 깨치고 아는 것은 반드시 너의 각성(불성)이니라. 그러므로 임제 말씀하시길, 사대는 법을 말하며 법을 들을 줄을 알지 못하고, 허공이 법을 말하고 법을 들을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 단지 너의 목전에 역력히 홀로 밝아 눈도 귀도 코도 없어 형단이 없는 놈이 비로소 법을 말하고 법을 들을 줄 안다 하셨느니라. 이른바 형단이 없는 자는 모든 각(부처님)의 법인法印이며 또한 너의 본래 마음이니라.”
제5절 거고명증擧古明證
0001_0025_b_01L則覺性이 現在汝身이라 何假外求리요 汝若不信인대 略擧古聖入道因緣하야 令汝除疑호리니 汝須諦信하라 昔에 異見王이 問婆羅提尊者ㅣ曰何者ㅣ是覺이닛고 尊者曰見性이 是覺이니라 王曰師ㅣ見性否닛가 尊者曰我見覺性이니라 王曰性在何處닛고 尊者ㅣ曰性在作用이니라 王曰是何作用이관대 我今不見이닛고 尊者ㅣ曰今見作用호대 王自不見이니라 王曰於我에 有否니까 尊者曰王若作用인대 無有不是處어니와 王若不用인댄 體亦難見이니다 王曰若當用時에 幾處出現고 尊者曰若出現時에 當有其八이니라 王曰其八出現을 當爲我說하소서 尊者曰在胎曰身이요 處世曰人이오 在眼曰見이오 在耳曰聞이오 在鼻辨香이오 在舌談論이오 在手執捉이오 在足運奔이니 遍現하야는 俱該沙界하고 收攝하야는 在一微塵하나니 識者는 知是覺性하고 不識者는 喚作精魂이니다 王이 聞하고 心卽開悟하니라 又人이 問歸宗和尙호대 如何是覺이닛고 宗이 云我今向汝道호려 하나 恐汝不信일까 하노라 又問云正士49)誠言을 焉敢不信호리까 師云汝가 是이니라 又問云如何保任이닛고 師云一翳在眼이면 空華亂墜이니 其人이 言下에 有省하다 上來所擧古聖入道因緣이 明白簡易하야 不妨省力하니 因此公案하야 若有信解處면 卽與古聖으로 把手共行하리라.
0001_0026_a_01L곧 각성이 너의 몸에 버젓이 있다. 어찌 밖으로 구하겠는가. 네가 만일 믿지 아니한다면 간략히 옛 성인의 도에 들어가는 인연을 들어 너로 하여금 의심을 제거하게 하겠다. 너는 모름지기 자세히 믿어야 하느니라.
옛적에 이견왕이 바라제존자에게 묻길, “무엇이 이 각입니까?”
존자 말하길, “성품 보는 것이 이 각입니다.”
왕이 말하길, “스님께서 성품을 보십니까?”
존자 말하길, “내가 각성을 봅니다.”
왕이 말하길, “각성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존자 말하길, “각성이 작용作用하는 데 있습니다.”
왕이 말하길,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기에 내가 이제 보지 못합니까?”
존자 말하길, “이제 버젓이 작용하지만 왕이 스스로 보지 못하십니다.”
왕이 말하길, “나에게도 있습니까?”
존자 말하길, “왕이 만일 작용한다면 이것이 아님이 없고, 왕이 만일 쓰지 아니한다면 그 체體를 또한 보기 어렵습니다.”
왕이 말하길, “만일 정당하게 쓸 때는 몇 군데에서 나타납니까?”
존자 말하길, “나타날 때는 마땅히 그 여덟 곳이 있습니다.”
왕이 말하길, “그 여덟 군데로 나타나는 것을 마땅히 나를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존자 말하길, “부모의 태에 있을 때는 몸이라 하고, 세상에 처해서는 사람이라 하고, 눈에 있어서는 보는 것이요, 귀에 있어서는 듣는 것이요, 코에 있어서는 향을 가리는 것이요, 혀에 있어서는 말하는 것이요, 손에 있어서는 잡는 것이요, 발에 있어서는 운전하여 다니는 것이니, 두루 나타나면 한 가지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꾸리고, 거두어들이면 한 티끌에 있으니, 아는 자는 이것이 각성인 줄로 알고, 모르는 자는 정신 혼백이라고 합니다.”
왕이 듣고 마음이 곧 열리어 깨쳤다.
또 어떤 사람이 귀종 정사에게 묻길, “어떤 것이 이 각입니까?”
귀종이 말씀하시길, “내가 너에게 말하지만 아마 너는 믿지 않을 것이다.”
또 묻길, “정사(보살)의 정성스런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네가 곧 각이다.”
그 사람이 묻길, “어떻게 보임합니까?”
스님이 말씀하시길, “가린 것이 눈에 있으면 허공 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그 사람이 말하자마자 깨쳤다.
내가 위로부터 오며 옛 성인의 도에 들어감에 인연이 명백하고 간략히 쉬어서 힘 더는 것이 방해하지 아니하니, 이 공안을 인하여 믿어 아는 곳이 있으면 곧 옛 성인과 손잡고 함께 갈 것이니라.
제6절 의오이수비일시돈현신통依悟而修非一時頓現神通
問汝言見性하니 若眞見性인댄 卽是聖人이라 應現神通變化하야 與人有殊어늘 何故로 今時修心之輩는 無有一人도 發現神通變化耶아.
묻길,
“그대가 견성을 말하니, 만일 참으로 자성을 보았다면 곧 이 성인일 것이다. 마땅히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사람과 더불어 다름이 있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금시에 마음 닦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신통변화를 발현함이 없는가?”
0001_0027_a_01L答汝不得輕發狂言하라 不分邪正이면 是爲迷倒之人이니라 今時學道之人이 口談眞理이나 心生退屈하야 返墮無分之失者는 皆汝所疑이니 學道호대 而不知先後하며 說理호대 而不分本末者는 是名邪見이오 不名修學이니 非唯自誤라 兼亦誤他ㅣ니 其可不愼歟아.
대답하길,
“너는 응당 가벼이 망령된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사와 정을 분명히 나누지 못하면 이것이 미혹하여 전도된 사람이니라. 금시에 도 배우는 사람이 입으로는 진리眞理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퇴굴심을 내어 도리어 나누는 실수가 없다고 하는데 떨어진 것이 다 너의 의심한 바와 같으니, 도를 배우되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자성을 말하되 근본과 끝을 알지 못하는 것은 이 이름이 사견이요, 닦고 배우는 것이라고 이름하지 못할지니, 오직 저만 그릇된 것이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까지도 그르치는 것이니 가히 삼가지 아니하지 않겠는가.
夫入道多門이나 以要言之컨대 不出頓悟漸修兩門耳이니 雖曰頓悟頓修는 是最上根機에 得入也ㅣ나 若推過去컨대 已是多生에 依悟而修하야 漸熏而來라가 至於今生하야는 聞卽發悟하야 一時頓畢하나니 以實而論컨대 是亦先悟後修之機也ㅣ니 則而此頓漸兩門이 是千聖軌轍也ㅣ니라 則從上諸聖이 莫不先悟後修하며 因修乃證이니 所言神通變化는 依悟而修하야 漸熏所現이라 非謂悟時에 卽發現也ㅣ니라.
대저 도에 들어감에 문호가 많으나 요긴한 것을 말한다면 몰록 깨치는 문과 점점 닦는 문의 두 가지에 벗어나지 아니하니라. 비록 말하길, 몰록 깨치고 몰록 닦는 이것은 최상근기에 들어가느니라. 만일 과거를 미루어 생각하여 보건대 이미 여러 생을 드나들면서 자성을 깨친 것을 의지하여 닦아 점점 훈습하여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법을 듣는 그 자리에서 곧 깨쳐 한 때에 몰록 일을 마친다. 참되게 의논하여 본다면 먼저 깨치고 뒤에 깨친 것을 의지하여 닦는 기틀이니라. 이 몰록 깨치고 점점 닦는 두 가지 문은 일천 성인의 법 수레바퀴다. 곧 위로 좇아오며 모든 성인이 먼저 깨치고 뒤에 닦으며 또 닦는 것을 의지하여 이에 증득하지 아니함이 없다. 신통변화는 본래 깨친 것을 의지하여 닦아 옴에 점점 훈습하는 데서 신통변화가 나타나느니라. 깨칠 때에 곧 신통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니라.
0001_0028_a_01L經에 云理卽頓悟라 乘悟倂消어니와 事非頓除라 因次第盡이라 하시며 又圭峰이 深明先悟後修之義曰識氷池而全水나 借陽氣以鎔消하고 悟凡夫而卽覺이나 資法力以熏修니 氷消則水流潤하야 方呈漑滌之功하고 妄盡則心이 虛通하야 應現通光之用이라 하니 是如事上神通變化는 非一日之能成이라 乃漸熏而發現也로다 況事上神通은 於達人分上에 猶爲妖怪之事며 亦是聖의 末邊事라 雖或現之라도 不可要用이어늘 今時迷癡輩는 妄謂一念悟時에 卽隨現無量妙用神通變化라 하나니 此50)所謂不知先後하며 亦不分本末也ㅣ니 旣不知先後本末, 欲求覺道, 如將方木하야 逗圓孔也이라 豈非大錯이리오.
0001_0028_b_01L경에 말씀하시길,
‘이치는 곧 몰록 깨친다. 깨침을 탑승함과 아울러 녹이려니와 사상은 몰록 제하지 못할 것이니라. 차제를 인하여 다한다’ 하시며, 또 규봉이 깊이 먼저 깨치고 뒤에 닦는 뜻을 밝혀 말하길, ‘얼음 못이 온전히 물인 줄을 알았지만 양기를 가자하여 써서 무르녹이고 범부가 곧 각인 줄로 깨쳤지만 법력을 자뢰하여 훈습하여 닦을 것이니라. 얼음이 녹으면 물이 흘러 윤택하여 바야흐로 물건을 세탁하는 공력이 있고, 망상이 다한다면 마음이 신령하게 소통하여 마땅히 신통광명을 임의로 쓰는 것이 나타난다’고 하니, 이것을 알겠다. 사상事上의 신통변화는 하룻날에 능히 이룰 것이 아니라 점점 오래 닦아 훈습한 힘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니라. 사상의 신통은 달인분상達人分上에 앉아 보면 오히려 요망하고 괴상한 일이며, 또한 성인의 제일 끄트머리의 일이니라. 비록 나타나더라도 요긴히 쓰지 아니하거든 금시에 미혹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은 망령되이 말하길, 한 생각 깨칠 때에 곧 한량없는 신통변화가 나타난다고 하니라. 이것이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지 못한 것이며, 근본과 끝을 논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모난 나무를 가져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것이니라. 어찌 크게 어기지 아니하겠는가.”
제7절 선변돈오점수先辨頓悟漸修
51)曰하되 52)汝言頓悟漸修兩門이 千聖軌轍也라 하니 悟旣頓悟컨대 何假漸修하며 修若漸修컨대 何言頓悟리오 頓漸二義를 更爲宣說하시어 令絶餘疑하소서 答頓悟者는 凡夫迷時에 四大로 爲身하고 妄想으로 爲心일새 不知自性이 是眞法身하여 不知自己靈知가 是眞覺하고 心外에 覓覺하야 波波浪走라가 忽被善覺者의 指爾入路하야 一念廻光하야 見自本性호대 而此性地에 元無煩惱하고 無漏智性이 本自具足하야 卽與諸覺으로 分毫不殊할새 故云頓悟也ㅣ니라.
0001_0029_a_01L묻길,
“깨침이 이미 몰록 깨쳤다면 어찌 차례로 닦는 것을 가자하며, 닦는 것이 차례로 닦는 것이라면 어찌 몰록 깨치는 것을 말하겠습니까. 이 두 가지 뜻을 다시 말씀하여 나머지 의심을 끊게 해 주십시오!”
대답하길,
“범부들은 미혹할 때에 지수화풍 사대로 몸을 삼고 망상으로 마음을 삼음에, 자기의 자성이 참 법신인 줄을 알지 못하여 자기의 영지가 진각인 줄을 알지 못하고, 마음 밖에 각을 찾아 물결과 물결을 좇아 허랑하게 따라 달아나다가, 홀연히 선각자께서 들어갈 길을 자세히 가르쳐 보임을 입어 한 생각 지혜광명을 돌이켜 나의 본성을 봄에, 이 자성의 경지에는 원래로 번뇌가 없고 생멸이 없는 지혜가 본래 스스로 구족하여 제각(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터럭 끝도 다르지 아니하기 때문에 몰록 깨친다고 하니라.
漸修者는 雖悟本性이 與覺無殊나 無始習氣를 卒難頓除故로 依悟而修하야 漸熏功成하야 長養聖胎하야 久久成聖할새 故云漸修也ㅣ니라 比如孩子가 初生之日에 諸根具足이 與他無異나 然이나 其力이 未充하나니 頗經歲月하야사 方始成人이니라.
점차로 점점 닦는 것은 비록 본 자성이 각과 다름이 없으나 시작도 없는 무량겁으로 오며 익힌 습기를 돌연히 몰록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에, 깨친 자성을 의지하여 닦아서 점점 훈습하여 공을 이루어 오래 성인의 태를 기르되 오래오래 하여야 성인을 성취하는 연고로 점수라 하니라. 비교하건대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태어나는 날에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모든 뿌리가 다 구족하여 큰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 힘이 충실치 못하니, 자못 세월을 많이 지내야 바야흐로 대인을 이루느니라.”
제8절 구오방편전전차과求悟方便轉轉蹉過
問曰作何方便하야 一念廻機하야사 便悟自性이리있고 答曰只汝自心을 更作什麽方便고 若作方便하야 更求解會컨대 比如有人이 不見自眼혼들로 以謂無眼이라 하야 更欲求見이로다 旣是自眼이어니 如何更見이리오 若知不失이면 卽爲見眼이라 更無求見之心이어니 豈有不見之想이리오 自己靈知도 亦復如是하야 旣是自心이어니 何更求會이리오 若欲求會인대는 便會不得이니 但知不會하면 是卽見性이니라.
묻길,
“무슨 방편을 지어서 한 생각에 기틀을 돌이켜서 문득 자성을 깨칩니까?”
대답하길,
“다만 너의 자심으로 다시 무슨 방편을 짓고자 하는가? 만일 방편을 지어 다시 알기를 구하고자 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제 눈을 보지 못하면 눈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눈을 보고자 구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미 제 눈이라면 어찌 다시 보려고 하겠는가. 만일 자기에게 본래 있어 잃지 아니한 것을 알면 그것이 곧 눈이 보는 것이니라. 다시 보기를 구하는 마음도 없는데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겠는가. 자기 영지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제 마음을 어찌 다시 알기를 구하겠는가. 알기를 구하고자 한다면 문득 아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을 알면 곧 이 견성이니라.”이것은 아는 것으로도 알지 못하고 모르는 것으로도 알지 못하나니 다만 알고 모른 것으로 알지 못할 줄을 알면 곧 견성이라 하는 말
제9절 직시공적영지直示空寂靈知
問曰上上之人은 聞卽易會어니와 中下之人은 不無疑惑이니 更說方便하야 令迷者로 趣入케 하소서 答曰道不屬知不知이니 汝除卻將迷待悟之心하고 聽我言說하라 諸法이 如夢하며 亦如幻化하니 故로 妄念이 本寂하고 塵境이 本空이니라.
묻길,
“근기가 높은 사람은 들으면 곧 쉽게 알려니와 중하근기는 의혹이 없지 아니하니, 다시 방편을 말하시어 미한 자로 하여금 깨쳐 들어가게 하소서!”
대답하길,
“도는 알고 알지 못하는 데 속한 것이 아니니라. 네가 한 마음을 가져 깨치기를 기다린 마음을 제거하여 버리고 나의 말을 들어라. 모든 법이 꿈 같으며 환화 같으니, 그러므로 망령된 생각이 본래 고요하고 티끌 경계가 본래 공한 것이니라.
0001_0030_b_01L諸法皆空之處에 靈知不昧하니 卽此空寂靈知之心이 是汝本來面目이며 亦是三世諸覺과 歷代祖師와 天下先覺者의 密密相傳底法印也ㅣ니라 若悟此心하면 眞所謂不踐階梯하고 徑登覺地하야 步步超三界하며 歸家頓絶疑ㅣ니 便與人天爲師하야 悲智相資하야 具足二利하야 堪受人天妙供오대 日消萬兩黃金하리니 汝若如是인댄 眞大丈夫라 一生能事를 已畢矣리라.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영지가 어둡지 아니하니, 곧 비어 고요하고 신령하여 아는 마음이 너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또한 이 삼세 모든 각과 역대歷代 조사와 천하 선각자의 은밀히 서로 전하신 법인이니라. 만일 이 마음을 깨치면 참 이른바 계제階梯를 밟지 아니하고 바로 각의 경지에 올라 걸음걸음이 삼계에 뛰어나며, 나의 천진으로 있는 본분 고향에 돌아가 몰록 의심이 끊어진 것이니라. 문득 인천으로 더불어 스승이 되어 중생의 고행에 빠진 것을 슬퍼하는 것과 지혜가 서로 도와 나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구족하여 능히 인천에 미묘한 공양 받음을 감당함에 날로 만량황금을 녹일 것이니, 네가 만일 이와 같이 한다면 참 대장부라 일생에 능사能事를 이미 마칠 것이니라.”
제10절 직지인심본래시각直指人心本來是覺
問據吾分上컨대 何者ㅣ是空寂靈知之心耶아 答汝今問我者ㅣ是汝空寂靈知之心이어늘 何不返照하고 猶爲外覓고 我今據汝分上하야 直指本心하야 令汝로 便悟케 호리니 汝須淨心하야 聽我言說하라 從朝至暮히 十二時中에 或見或聞하며 或笑或語하며 或瞋或喜하며 或是或非하야 種種施爲運轉하나니 且道하라 畢竟是誰能伊麽運轉施爲耶아.
묻길,
“나의 분상을 의거하건대 어떤 것이 이 비어 고요하고 신령하게 아는 마음입니까?”
답하길,
“네가 이제 내게 묻는 것이 네가 비어 고요하고 신령하게 아는 마음인데, 어찌 반조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밖으로 찾는가? 내가 이제 너의 분상을 의거하여 바로 본마음을 가리켜 너로 하여금 깨치게 하겠노라. 네가 마음을 깨끗이 하여 나의 말을 들어라. 아침부터 날이 저물기까지 열두 시 가운데에 혹 보고 들으며 혹 웃고 말하며 혹 진심 내고 즐거우며 혹 시비하여 가지가지 베풀며 운전하나니, 또한 일러라. 필경에 이 누가 능히 이렇듯이 운전시위 하는가?
若言色身이 運轉컨대 何故로 有人이 一念命終에 都未壞爛호대 卽眼不自見하며 耳不能聞하여 鼻不辨香하며 舌不談論하며 身不動搖하며 手不執捉하며 足不運奔耶아 是知能見聞動作이 必是汝의 本心이요 不是汝의 色身也ㅣ로다 況此色身이 四大性空하야 如鏡中像하며 亦如水月하니 豈能了了常知하며 明明不昧하야 感而遂通恒沙妙用也리요 故로 云神通幷妙用이 運水及搬柴라 하시니라.
0001_0031_b_01L만일 색신이 운전한다고 말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어떤 사람이 한 생각 사이에 명을 마침에 모두 아직 흐늘흐늘 썩어 무너지지 아니하였는데, 눈이 스스로 보지 못하고 귀로 능히 듣지 못하며 코가 향냄새를 분별하지 못하고 혀가 담론하지 못하며 몸이 운동하지 못하고 손이 잡지 못하며 발이 달아나지 못하는가. 이것은 능히 보고 듣는 동작이 반드시 너의 본마음이 그런 것임을 알 것이니라. 이것은 너의 몸이 그런 것이 아니니라. 하물며 이 색신은 지수화풍 사대의 성질이 허망하여 마치 거울 가운데 영상 같으며, 또한 마치 물 가운데 비추어 나타난 달과 같으니라. 그 몸이 어찌 능히 요요了了히 항상 알며 명명明明히 어둡지 아니하여 느껴서 드디어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묘용妙用을 통하겠는가. 그러므로 말씀하길, 신통과 아울러 묘용이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라고 하니라.”
제11절 지시관음입리문指示觀音入理門
0001_0032_a_01L且入理多端이나 指汝一門하야 令汝로 還源케 하리라 汝還聞鴉鳴鵲噪之聲麽아 曰聞이니라 曰汝ㅣ返聞汝의 聞性에 還有許多聲麽아 曰到這裏하야는 一切聲과 一切分別을 俱不可得이로소니다 曰奇哉奇哉라 此是觀音入理之門으로다 我更問你하노라 你道호대 到這裡하야는 一切聲과 一切分別을 總不可得이라 하니 旣不可得인대 當伊麽時하야 莫是虛空麽아 曰元來不空하야 明明不昧이니다 曰作麽生是不空之體오 曰亦無相貌하니 言之不可及이로소니라.
또한 이성에 들어가는 길이 갈래가 많으니, 너에게 한 문으로 들어가는 길만 가리켜 너로 하여금 본원으로 돌아가게 하겠노라. 네가 도리어 까마귀가 울고 까치가 지절거리는 소리를 듣는가.
말하길, “듣습니다.”
말하길, “네가 도리어 너의 듣는 성품에 허다한 소리가 있음을 듣는가.”
말하길, “이 속에 이르러서는 일체 소리와 일체 분별을 함께 얻지 못합니다.”
말하길, “기특하고 기특하다. 이것은 이 관음께서 자성에 들어가신 문이니라. 내가 다시 네게 묻는다.”
네가 말하길, “이 속에 이르러서는 일체 소리와 일체 분별을 다 가히 얻지 못한다고 하니, 이미 가히 얻지 못한다면 이러한 때를 당하여 이 허공인가? 이 허공이 아닌가?”
말하길, “원래로 공하지 아니하여 밝고 밝아 어둡지 아니합니다.”
말하길, “어떤 것이 이 비지 아니한 체體가 되는가?”
말하길, “또한 상모가 없으니, 말로 가히 미치지 못합니다.”
0001_0032_b_01L曰此是諸覺諸祖의 壽命이니 更莫疑也어다 旣無相貌인대 還有大小麽아 旣無大小인대는 還有邊際麽아 無邊際故로 無內外하고 無內外故로 無遠近하고 無遠近故로 無彼此하나니 無彼此則無往來하고 無往來則無生死하고 無生死則無古今하고 無古今則無迷悟하고 無迷悟則無凡聖하고 無凡聖則無染淨하고 無染淨則無是非하고 無是非則一切名言을 俱不可得이니라 旣總無如是인대는 一切根境과 一切妄念과 乃至種種相貌와 種種名言을 俱不可得이니 此豈非本來空寂이며 本來無物也리오 然이나 諸法皆空之處에 靈知不昧하야 不同無情하야 性自神解하니 此ㅣ是汝空寂靈知淸淨心體이니라.
0001_0033_a_01L말하길,
“이것이 제각제조(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의 수명壽命이니, 다시 의심하지 말지어다. 이미 상모相貌가 없다면 도리어 대소가 있는가. 이미 대소가 없다면 도리어 갓과 지경이 있는가. 갓과 지경이 없기 때문에 내외가 없고, 내외가 없기 때문에 멀고 가까운 것이 없고, 원근이 없기 때문에 피차가 없느니라. 피차가 없기 때문에 왕래가 없고, 왕래가 없으면 생사가 없고, 생사가 없으면 고금이 없고, 고금이 없으면 미혹하고 깨친 것이 없고, 미혹하고 깨친 것이 없으면 범부와 성현이 없고, 범성이 없으면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고,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으면 시비가 없고, 시비가 없으면 일체 이름과 말이 모두 얻을 수 없느니라. 이미 모두 이와 같다면 일체 근경根境과 일체 망념과 나아가 가지가지 상모와 가지가지 명언名言을 모두 얻을 수 없느니라. 이것이 어찌 본래 공적한 것이 아니며, 본래 물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영지가 어둡지 아니하여 무정과 같지 아니하여 자성이 스스로 신령스럽게 아나니, 이것이 너의 공적영지에 청정심체이니라.
而此淸淨空寂之心이 是三世諸覺의 勝淨明心이며 亦是衆生의 本源覺性이니 悟此而守之者는 坐一如하야 而不動解脫하고 迷此而背之者는 往六趣하야 而長劫輪廻하나니라 故로 云迷一心而往六趣者는 去也ㅣ며 動也ㅣ오 悟法界而復一心者는 來也ㅣ며 靜也ㅣ라 하니 雖迷悟之有殊나 乃本源則一也ㅣ니라 所以로 云言法者는 衆生心이라 하시니 而此空寂之心이 在聖而不增하며 在凡而不減故로 云在聖智而不耀하며 隱凡心而不昧라 하니라 旣不增於聖하며 不少於凡인대는 覺祖가 奚以異於人이리오 而所以異於人者는 能自護心念耳이니라.
0001_0033_b_01L그래서 이 청정하여 비고 요요한 마음이 삼세제각(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승정명심수승하여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라.이며, 또한 중생의 본원각성이니라. 이것을 깨쳐서 지키는 자는 한결같이 앉아서 동함이 없어 해탈하고 이것을 미혹하여 등지는 자는 육취에 가서 길이 겁에 윤회하느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길, 일심을 미혹하여 육취에 가는 자는 마음이 경계를 따라가는 것이며 동하는 것이다. 법계를 깨쳐 일심으로 회복하는 자는 오는 것이며거래가 없는 본분고행에 온 것이라. 고요한 것이라고 하느니라. 비록 미혹하고 깨치는 것은 있을지라도 본래 근원은 하나이니라. 그러므로 말하되, 법이라는 것은 중생의 마음이라 하시니, 이 공적한 마음은 성인에 있어 더하지 아니하고 범부에 있어 감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말씀하시되, 성인의 지혜에 있어 빛나지 아니하며 범부의 마음에 숨었으나 어둡지 아니하다고 하느니라. 이미 성인에 있어 더하지 아니하며 범부에 있어 적지 아니하다면 각조(부처님과 조사)가 어찌 사람과 다르겠는가. 그런 까닭에 사람에게 있어서 다름은 능히 마음에 생각을 잘 두호해야 하느니라.
제12절 결권結勸
汝若信得及하면 疑情을 頓息하리니 出丈夫之志하며 發眞正見解하야 親嘗其味하야 自到自肯之地則是爲修心(正)人의 解悟處也ㅣ라 更無階級次第故로 云頓也ㅣ니라 如云於信因中에 契諸覺果德하야 分毫不殊하야사 方成信也ㅣ라 하니라.
0001_0034_a_01L네가 만일 믿음을 얻으면 의정을 몰록 쉬리니, 장부의 뜻을 내며 진정한 소견을 발하여 친히 그 맛을 보아 스스로 즐거워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니라. 곧 이것이 마음 닦는 사람의 깨치는 곳이니라. 다시 계급 차제가 없기 때문에 돈오라고 하느니라. 저 이르길, 믿는 가운데 제각(모든 부처님)의 과덕에 계합하여 터럭만큼도 다르지 않아야 바야흐로 믿음을 이룬다고 하느니라.”
제13절 중시오후점수重示悟後漸修
問旣悟此理하야 更無階級인대 何假後修하야 漸熏漸成耶오 答悟後漸修之義를 前已具說이어니와 而復疑情을 未釋일새 不妨重說이로다 汝須淨心하야 諦聽諦聽하라 凡夫無始曠大劫來로 至於今日히 流轉五道호대 生來死去에 堅執我相하야 妄想顚倒와 無明種習으로 久與成性일새 雖到今生에 頓悟自性이 本來空寂하야 與覺無殊나 而此舊習을 卒難除斷故로 逢逆順境하야 瞋喜是非가 熾然起滅하고 客塵煩惱가 與前無異하나니 若不以般若로 加功著力이면 焉能對治無明하야 得到大休大歇之地리요.
0001_0034_b_01L묻길,
“이미 이 자성을 깨쳐 다시 계급이 없다면 어찌 뒤에 닦는 것을 가자하여 점점 훈습하여 점점 이룹니까?”
대답하길,
“깨친 후에 점점 닦는 뜻을 앞에 이미 갖추어 말하였거니와 다시 의정을 놓지 못하였기에 거듭 말함을 방해하지 아니하느니라. 네가 마음을 깨끗이 하여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을지니라. 범부가 무시광대겁으로 좇아오므로 오늘날까지 이르러 오도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상에 굴러다니면서 나서 왔다가 죽어 갔다가 함에, 나라는 것을 굳게 집착하여 망상으로 전도하는 것과 무명에 익힌 습기로 오래 습성을 이루었기에, 비록 금생에 이르러 몰록 자성이 본래 공적하여 각(부처님)과 같음을 깨쳤으나 구습을 갑자기 제거하여 끊기 어렵기 때문에, 역순경계를 만나면 성냄과 기쁨과 시비심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멸하며 객진번뇌가 전과 다름없느니라. 만일 반야지혜로써 공력을 더하여 힘을 두지 아니하면, 어찌 능히 무명을 대치하여 크게 쉬고 크게 쉬는 땅에 이르겠는가.
如云頓悟雖同覺이나 多生習氣深이라 風停하야도 波尙湧하고 理現하야도 念猶侵이라 하며 又宗杲云往往에 利根之輩가 不費多力하고 打發此事혼들로 便生容易之心하야 更不修治라가 日久月深하면 依前流浪하야 未免輪廻라 하시니 豈可以一期所悟로 便撥置後修耶아 故로 悟後에 長須照察하야 妄念이 忽起어든 都不隨之이니 損之又損하야 以至無爲하야사 方始究竟이니라 天下善知者의 悟後牧牛行이 是也ㅣ니라 雖有後修나 已先頓悟妄念이 本空하며 心性이 本淨일새 於惡에 斷斷而無斷이오 於善에 修修而無修ㅣ니 此乃眞修眞斷矣라 故云雖備修萬行이나 唯以無念으로 爲宗이라 하니라.
0001_0035_a_01L저 말했던 것처럼, 몰록 깨친 것이 비록 각과 같으나 다생에 습기가 깊어졌다. 바람이 멈추려 해도 물결이 오히려 솟고 자성이 나타나되 망념이 오히려 침노하느니라. 또 대혜 종고께서 말씀하시길, 왕왕왕왕은 무데무데라.에 근기가 날카롭고 총명한 무리들이 힘을 많이 허비치 않고 이 일을 타격해서 발함으로 문득 용이한 마음을 내어 다시 닦아 다스리지 아니하다가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 전과 같이 흘러 방랑하여 윤회를 면치 못한다고 하느니라. 어찌 한번 깨친 것으로 문득 뒤에 닦는 것을 쓸어버려 두겠는가. 그러므로 깨친 후 길이 비추며 항상 살피어 망념이 홀연히 일어나거든 모두 따라 주지 말지니라. 덜고 또 덜어 하염없는 데 이르러야 바야흐로 마치는 것이 되는 것이니라. 천하 선각자의 깨친 후에 소 먹인 행이 이것이니라. 비록 뒤에 닦으나 이미 먼저 망념이 본래 공하며 심성이 본래 깨끗함을 몰록 깨쳤기에 악을 끊고 끊으나 끊는 것이 없고 선을 닦고 닦으나 닦을 것이 없으니, 이것은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말씀하시길, 비록 갖춘 만행을 닦을지라도 오직 무념으로써 종을 삼는다고 하였느니라.
0001_0035_b_01L圭峯이 總判先悟後修之義 云頓悟此性이 元無煩惱하며 無漏智性이 本自具足하야 與覺無殊라 依此而修者는 是名最上乘禪이며 亦名大覺淸淨禪也ㅣ니 若能念念修習하면 自然漸得百千三昧하리니 達磨門下에 轉展相傳者ㅣ가 是此禪也ㅣ라 하니 則頓悟漸修之義가 如車二輪하야 闕一不可이니라.
규봉이 먼저 깨치고 후에 닦는 뜻을 말하길, 몰록 이 자성이 원래 번뇌가 없으며 새는 것이 없는 지혜의 자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함을 깨치어 각(부처님)과 더불어 다름이 없느니라. 이것을 의지해서 닦는 자는 이 이름이 최상승선이며, 또한 이름이 대각(여래)의 청정선이니라. 만일 능히 생각생각을 닦아 익히면 자연히 점점 백천삼매를 얻을 것이니라. 달마의 문하에 전전이 서로 전하는 자가 이 선이라 하였느니라. 몰록 깨치고 점점 닦아 익히는 뜻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만 빠뜨려도 옳지 못하느니라.
或者ㅣ不知善惡性空하고 堅坐不動하야 捺伏身心을 如石壓草로 以爲修心하나니 是ㅣ大惑矣이로다 故云聲聞은 心心斷惑호대 能斷之心이 是賊이라 하나니 但ㅣ諦觀殺盜淫妄이 從性而起인달하면 起卽無起라 當處便寂하나니 何須更斷이리요 所以로 云不怕念起하고 唯恐覺遲라 하며 又云念起卽覺이라 覺之卽無라 하니 故로 悟人分上에는 雖有客塵煩惱나 俱成醍醐로다 但照惑無本하면 空華三界가 如風捲煙하고 幻化六塵이 如湯消氷이니라.
0001_0036_a_01L혹자들은 선악의 자성이 공함을 알지 못하고 굳건히 앉아 요동하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을 억지로 누르는 것이 마치 돌로 풀을 누르는 것처럼 마음 닦는 것을 삼으니, 이것은 크게 미혹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길, 성문들은 마음으로 마음의 미혹을 끊되 능히 끊는 마음이 이 도적이라고 하나니, 그러할 것이 아니라 다만 자세히 살생과 도적과 음탕함과 거짓말이 자성을 좇아 일어난 것으로 보면 일어난 것이 곧 일어난 것이 없느니라. 당처가 문득 고요하나니 어찌 다시 끊기를 구하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무서워 말고 오직 깨치기가 더딜까 무서워하라고 하였으며, 또 말씀하시길, 생각이 일어나거든 곧 깨칠지니 깨치면 곧 없다고 하였느니라. 그런 까닭에 깨친 사람의 분상에는 비록 객진번뇌가 있으나 한 가지 제호를 이루느니라. 다만 미혹이 본래 없는 것을 비추면 공화삼매가 바람에 연기가 걷히는 것과 같고, 환화육진이 끓는 물에 얼음 녹는 것과 같느니라.
0001_0036_b_01L若能如是念念修習야 不忘照顧하야 定慧等持則愛惡가 自然淡薄하며 悲智가 自然增明하며 罪業이 自然斷除하며 功行이 自然增進하나니 煩惱盡時에 生死卽絶이라 若微細流注가 永斷하고 圓覺大智가 朗然獨存하면 卽現千百億化身하야 於十方國中에 赴感應機호대 似月現九霄에 影分萬水인달하야 應用無窮하야 度有緣衆生호되 快樂無憂일새 名之爲大覺世尊이니라.
만일 능히 이와 같이 생각생각을 수습해서 본래 면목을53) 비추어 돌아보기를 잃지 아니하여 선정(일정한 것)과 지혜를 균등히 가지면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자연히 담박하여지며, 육도의 사생이 고통을 받는 것을54) 슬퍼하며, 또 큰 지혜가 점점 더 밝아지며(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증장하고 밝아지며) 죄업이 자연히 끊어지고 공력의 수행이 자연히 증진하나니, 번뇌가 다할 때에 생사가 곧 끊어지느니라. 만일 미세하게 흘러 간단없이 요동하는 미혹이55) 아주 끊어지고 뚜렷이 깨친 큰 지혜가 밝게 홀로 있으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국토 중에 중생의 마음으로56) 감당함을 따라 기틀에 상응하느니라. 마치 밝은 달이 구만리장천에 나타남에 그림자가 일만 물에 나누어 비추는 것과 같아서, 쓰는 것이 상응하여 다함이 없어 인연이 있는 중생을 건지는 데 쾌락하여 근심이 없어서, 그를 불러서 대각의 성존(세존)이라 하느니라.”
제14절 정시이문정혜正示二門定慧
問後修門中에 定慧等持之義를 實未明了하오니 更爲宣說하사 委示開迷引入解脫之門케 하소서.
0001_0037_a_01L묻길,
“위에 닦는 문 가운데에 정혜정이라 하는 것은 요동치 아니하고 고요히 그쳐 안정한 것이요, 혜라 하는 것은 지혜가 밝은 것이라.균등히 가지는 뜻이 실로 명료치 못하오니, 다시 위하여 말씀하시어 자세히 미혹한 사람을 열어 보이시어 해탈문에 들어가게 하소서!”
答若設法義인대 入理千門이나 莫非定慧요 取其綱要컨대 則但自性上體用二義니 前所謂空寂靈知가 是也ㅣ라 定是體요 慧是用也ㅣ니 卽體之用故로 慧不離定하고 卽用之體故로 定不離慧하며 定則慧故로 寂而常知하고 慧則定故로 知而常寂하나니 如曹溪云心地無亂이 自性定이요 心地無癡自性慧라 若悟如是하야 任運寂知하야 遮炤無二則是爲頓門箇者의 雙修定慧也ㅣ니라.
0001_0037_b_01L대답하길,
“만일 법의 뜻을 베푼다면 자성에 들어가는 문은 많지만 그 실제는 정定과 혜慧 두 가지뿐이니라. 그 강요綱要를 취한다면 다만 자성 위의 체와 용 두 가지뿐이니라. 앞에서 말했던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이것이니라. 정定은 체體가 되고 혜慧는 용用이 되는 것이니, 체體에 나가서 곧 용用이 있기 때문에 혜가 정을 떠나지 아니하고, 용에 나아가 체가 있기 때문에 혜를 떠나지 아니하고, 정이 곧 혜이기 때문에 고요히 항상 알고, 혜가 곧 정이기 때문에 알지만 항상 고요하니라. 조계산 육조 성사께서 말씀하시길, 심지心地가 어지럽지 아니한 것이 자성정自性定이요, 심지가 어리석지 아니한 것이 자성혜自性慧라고 하셨느니라. 만일 이와 같음을 깨치어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임의로 운전하여 맑고 비추는 것이 둘이 없으면 이것이 돈오문頓悟門에 쌍으로 정혜를 닦는 것이니라.
若言先以寂寂으로 治於緣慮하고 後以惺惺으로 治於昏住하야 先後對治하야 均調昏亂하야 以入於靜者는 是爲漸門劣機의 所行也ㅣ니 雖云惺寂等持이나 未免取靜爲行則豈爲了事人의 不離本寂本知하야 任運雙修者也리오 故로 曹溪云自悟修行은 不在於諍이니 若諍先後하면 卽是迷人이라 하시니.
0001_0038_a_01L만일 말하길, 먼저 고요하고 고요한 것으로 모든 반연하는 생각을 다스린 후에 또렷하고 또렷한 것으로써 혼침에 머묾을 다스려, 선후를 대치對治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루 조복 받아 고요한 데 들어가는 자는, 이것이 점수문중漸修門中에 하열한 근기가 수행하는 것이니라. 비록 또렷하고 고요함을 균등히 가진다 할지라도 아직 지극히 고요한 것을 탐착하여 수행하는 것을 삼음을 면하지 못하나니, 어찌 생사 대사를 마친 사람의 본래 고요하고 본래 아는 것을 떠나지 아니하여 정과 혜를 쌍雙으로 닦는 자가 되겠는가. 조계산 육조께서 말씀하시길, 스스로 깨쳐 닦는 것은 다투는 데 있지 아니하나니, 만일 선후를 다툼이 있으면 곧 이 미혹한 사람이라 하셨느니라.
則達人分上에 定慧等持之義는 不落功用이라 元自無爲하야 更無特地時節하나니 見色聞聲時에 但伊麽하며 著衣喫飯時에 但伊麽하며 屙屎送尿時에 但伊麽하며 對人接話時에 但伊麽하며 乃至行住坐臥或語或默하며 或喜或怒히 一切時中에 一一如是호대 似虛舟駕浪에 隨高隨下하며 如流水轉山에 遇曲遇直인달하야 而心心無知니 今日에 騰騰任運하며 明日에 任運騰騰이라 隨順衆緣호대 無障無礙하야 於善於惡에 不斷不修하며 質直無僞하야 視聽尋常이라 則絶一塵而作對어니 何勞遣蕩之功이리오 無一念而生情이라 不假忘緣之力이니라.
0001_0038_b_01L곧 통달한 사람의 분상에 정과 혜를 균등히 가지는 뜻은 공용功用에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원래로 함이 없음으로부터 다시 특별한 경지와 시절이 없느니라. 형색을 볼 때와 소리를 들을 때에도 다만 이러하고, 옷 입고 밥 먹을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똥 누고 오줌 눌 때에도 다만 이러하고, 사람을 대하여 말할 때에도 다만 이러하며, 내지 행주좌와에 혹 말하며 혹 잠잠하여 혹 기뻐하며 혹 성내는 데 이르러 일체 때 가운데 낱낱이 이와 같이 하되, 빈 배를 물의 풍랑에 둥둥 띄움에 높은 데는 배도 높이 뜨고 낮은 데는 배도 나직이 뜨는 것과 같느니라. 또 물이 산에 굴러 흐름에 구부러진 것을 만나며 곧은 것을 만나는 것과 같아서 마음마음이 분별하는 알음알이가 없느니라. 오늘날도 등등(흥뚱흥뚱)하게 임의로 운전하며 명일에도 등등(흥뚱흥뚱)하게 임의로 운전하느니라. 모든 인연을 수순하되 장애 없어 저 선과 악을 끊지도 아니하며, 닦지도 아니하며 바탕이 꿋꿋하여 보고 듣는 데에 심상하느니라. 곧 한 티끌도 대대 짓는 것이 끊어졌거니, 어찌 다 망념을 보내어 없애 버리려는 공력을 수고로이 하겠는가. 한 생각도 망정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망령되이 허망한 반연을 제거하여 버리려는 힘을 가자할 것이 없느니라.
0001_0039_a_01L然이나 障濃習重하고 觀劣心浮하야 無明之力은 大하고 般若之力은 小한달로 於善惡境界에 未免被動靜互換하야 心不恬淡者는 不無忘緣遣蕩功夫矣ㅣ니 古如云六根이 攝境하야 心不隨緣謂之定이오 心境이 俱空하야 炤鑑無惑을 謂之慧라 하니 此雖隨相門定慧漸門劣機의 所行也ㅣ나 對治門中에 不可無也ㅣ니라 若掉擧가 熾盛則先以定門으로 稱理攝散하야 心不隨緣하야 契乎本寂하고 若昏沈이 尤多則次以慧門으로 擇法觀空하야 照鑑無惑하야 契乎本知이니 以定治乎亂想하고 以慧治乎無記하야 動靜相忘(亡)하고 對治功終則對境而念念歸宗이오 遇緣而心心契道하야 任運雙修하야사 方爲無事人이니 若如是則眞可謂定慧等持하야 明見覺(佛)性者也이니라.
0001_0039_b_01L그러나 장애가 무르녹고 습기가 무거워 관력觀力이 적고 부심浮心이 많아, 어두운 마음의 힘이 크고 지혜의 힘이 적으므로 선악의 경계에 동정이 서로 바뀌어 불이 일어남을 면치 못해서, 마음이 편안하고 맑지 못한 자는 망연妄緣을 보내어 없애려는 공력이 없지 아니하니라. 옛적에 말하길, 육근六根으로부터 경계로 쫓아 나가는 것을 돌이키어 마음이 모든 경계를 쫓지 아니한 것을 정이라고 하고 마음과 경계가 텅 비어 비추는 지혜 거울에 때 낌이 없는 것을 혜라고 하니라. 이것이 비록 수상문 정혜의 점수문 가운데에서 닦아 가는 하열한 근기가 행할 바 망령된 것을 대치하는 것에는 반드시 없지 못하니라. 만일 산란심이 불꽃같이 일어나거든 먼저 정定으로써 자성에 칭합하여 마음이 망령된 반연을 따르지 아니하여 본래 공적함에 계합하고, 만일 자불음(졸음)이 많거든 지혜로써 깨끗이 법이 공함을 관찰觀察하여 비추는 거울이 때가 없어 본래 밝음에 계합하니라. 정으로써 흩어지는 생각을 다스리고 혜로써 흐린 마음을 다스려, 동하고 고요한 것을 서로 잊고 혼침과 산란을 대치하는 공력을 마친 뒤에야, 경계를 대하면 염념이 본 종취로 돌아가고 모든 인연을 만나더라도 마음마음이 도에 계합하여, 정과 혜를 임의로 운전하여 균등히 닦아야 바야흐로 일이 없는 사람이 되느니라. 만일 능히 이와 같이 하면 참으로 정혜를 닦아 밝게 각성을 보느니라.”
제15절 상명이문정혜詳明二門定慧
問據汝所判컨대 悟後修門中에 定慧等持之義가 有二種하니 一은 自性定慧오 二는 隨相門定慧니 自性門則曰任運寂知하야 元自無爲ㅣ라 絶一塵而作對어니 何勞遣蕩之功이며 無一念而生情이라 不假忘緣之力이라 하야 判云此是頓門箇者에 不離自性하야 定慧等持也ㅣ라 하고 隨相門則曰稱理攝散하여 擇法觀空호대 均調昏亂하야 以入無爲라 하야 判云此是漸門劣機의 所行也라 하니 爲兩門定慧하야 不無疑焉이로다.
0001_0040_a_01L묻길,
“너의 판단한 바를 의거한다면 깨친 뒤에 닦는 문 가운데에 정과 혜를 균등히 가지는 뜻이 두 가지가 있느니라. 하나는 자성문 정혜라 하고 또 하나는 수상문 정혜니라. 자성문 정혜는 말하자면 본래 공적하고 본래 아는 것을 임의로 운전하여 원래로 함이 없느니라. 한 티끌도 상대자를 짓지 아니하느니라. 어찌 보내어 없애려는 공력을 수고로이 하며 한 생각도 망정을 내지 아니하는 것이겠는가. 망령되이 공력을 허비하는 인연을 가자할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 말하느니라. 이것이 몰록 깨친 문호에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여 정혜를 균등히 가진 것이니라. 수상문 정혜로 말하자면 이성에 꼭 맞아 흐트러진 마음을 거두어 법이 본래 공함을 관찰하되, 혼침과 산란을 고루 조복 받아 함이 없는 데 들어감이라 하여 판단해서 말하느니라. 이것이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기틀이 행하는 것이라 하니, 이 두 정혜문에 나아가 의심이 없지 않느니라.
若言一人所行也인댄 爲復先依自性門하야 定慧雙修然後에 更用隨相門對治之功耶아 爲復先依隨相門하야 均調昏亂然後에 以入自性門耶아 若先依自性定慧則任運寂知하야 更無對治之功이어니 何須更取隨相門定慧耶리요 如將皓玉하야 彫文喪德이로다 若先以隨相門定慧로 對治功成然後에 趣於自性門則宛是漸門中劣機의 悟前漸熏也ㅣ니 豈云頓門箇者의 先悟後修하야 用無功之功也ㅣ며.
0001_0040_b_01L만일 말하길, 한 사람이 정혜를 수행할 것이라고 한다면, 먼저 자성문을 의지하여 정과 혜 두 가지를 닦은 연후에 다시 수상문에 정혜를 써 대치하는 것이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먼저 수상문을 의지하여 고루 혼침과 산란을 조복 받은 뒤에 자성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니라. 만일 먼저 자성문 정혜를 의지한즉 공적영지를 임의로 운전하여 다시 대치할 공력이 없는데, 어찌 다시 수상문 정혜를 취하겠는가. 결백한 옥을 가져 문채를 아로새기어 옥에 윤택한 덕을 손상하는 것과 같느니라. 만일 먼저 수상문 정혜로써 대치하는 공을 이룬 뒤에 자성문으로 나아간다면, 이것은 완전히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깨치기 전에 차차로 훈습하여 닦는 것이니라. 어찌 몰록 깨친 문에 먼저 깨치고 뒤에 닦아 공 없는 공을 쓰는 것이 되겠는가.
若一時에 無前後則二門定慧頓漸이 有異하니 如何一時竝行也리오 則頓門箇者는 依自性門하야 任運忘(亡)功하고 漸門劣機는 趣隨相門하야 對治勞功이니 二門之機頓漸이 不同하고 優劣이 皎然하니 云何先悟後修門中에 竝釋二種耶아.
0001_0041_a_01L만일 일시에 전후가 없으면 두 문의 정혜와 돈점이 다름이 있으니, 어찌 일시에 같이 행하겠는가. 곧 돈오문에는 자성문을 의지하여 공적영지를57) 임의로 운전하여 공功을 잊는 것이요, 점수문의 하열한 근기는 수상문 정혜에 나아가 대치하는 공력을 수고로이 하느니라. 두 문은 근기와 돈점이 다르고 우열이 분명하니, 어찌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문 가운데에 두 가지를 같이 해석하겠는가?”
58)所釋이 皎然커늘 汝自生疑로다 隨言生解하야 轉生疑惑하나니 得意忘言하면 不勞致詰하리라 若就兩門하야 各判所行則修自性定慧者는 此是頓門에 用無功之功하야 竝運雙寂하며 自修自性하야 自成覺(佛)道者也ㅣ오.
대답하길,
“해석이 분명한데 네가 의심을 내느니라. 뜻을 얻고 말을 잊으면 힐난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돈오와 점수 두 문에 나아가 각기 수행하는 것을 판단한다면, 자성문 정혜를 닦는 자는 이것이 돈오문에 공이 없는 공을 닦아 공적영지를 같이 운전하여 스스로 자성을 닦아 각도를 이루느니라.
修隨相門定慧者는 此是未悟前漸門劣機의 用對治之功하야 心心斷惑하야 取靜爲行者ㅣ니 而此二門所行이 頓漸이 各異ㅣ라 不可參亂也어다 然이나 悟後修門中에 兼論隨相門中對治者는 非全取漸機所行也ㅣ라 取其方便하야 假道托宿而已이니 何故오 於此頓門에도 亦有機勝者하며 亦有機劣者하니 不可一例判其行李也이니라.
0001_0041_b_01L수상문의 정혜를 수습하는 자는 이것이 아직 깨치기 전에 점수문의 하열한 근기가 대치하는 공력을 써서 마음마음이 미혹을 끊어 고요함을 취하여 행을 삼는 것이니, 이 두 문에 수행하는 돈점이 각기 다르니라. 가히 어지러이 섞지 말지니라. 그러나 깨친 뒤에 수습하는 문중에서 겸하여 수상문 대치를 의논한 자는 온전히 점기漸機의 행한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편을 취하여 도를 가자하여 익힘이 다름이니, 어떠한 까닭인가. 이 돈오문에도 또한 근기가 수승한 자 있으며 근기가 하열한 자가 있으니, 가히 일례로 그 행리를 판단치 못하느니라.
若煩惱가 淡薄하고 身心이 輕安하야 於善에 離善하며 於惡에 離惡하야 不動八風하며 寂然三受者는 依自性定慧하야 任運雙修하나니 天眞無作하며 動靜常禪이라 成就自然之理어니 何假隨相門對治之義也리오 無病에 不求藥이니라 雖先頓悟나 煩惱濃厚하고 習氣堅重하야 對境而念念生情하며 遇緣而心心作對하야 被他昏亂使殺하야 昧却寂知常然者는 卽借隨相門定慧하야 不忘對治하야 均調昏亂하야 以入無爲가 卽其宜矣이니라 雖借對治功夫하야 暫調習氣나 以先頓悟心性이 本淨59)하고 煩惱가 本空故로 卽不落漸門劣機의 汚染修也ㅣ니라.
0001_0042_a_01L만일 번뇌가 담박淡薄하고 신심身心이 경안하여 착한데 착한 것을 여의고 악한데 악한 것을 여의면 팔풍八風에 동요치 아니하여, 삼수三受가 고요한 자는 자성의 정혜를 의지하여 공적영지를60) 임의로 운전하여 같이 닦느니라. 천진天眞하여 지음이 없으며 동정動靜이 항상 선禪이라 자연의 이치를 성취하거니, 어찌 수상문에 대치하는 뜻을 가자하겠는가. 병이 없는 데는 약을 구하지 아니하느니라. 비록 먼저 한목(몰록) 깨쳤으나 번뇌가 두텁게 무르녹고, 습기가 굳고 무거워 경계를 대함에 생각생각이 망정을 내며, 모든 인연을 만남에 마음마음이 상대를 지으며, 저 혼침과 산란에 부림을 입어 공적영지를 매각昧却하여 항상 그런 자는 곧 수상문 정혜를 같이하여 대치對治함을 잊지 아니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루 조복 받아 함이 없는 데 들어가는 것이 곧 마땅하니라. 비록 대치하는 공부를 가자하여 잠깐 습기를 조복하나 써 먼저 몰록 심성이 본래 깨끗하고 번뇌가 본래 공함을 깨친 연고로 곧 점수문 가운데 하열한 근기의 오염수汚染修에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何者오 修在悟前則雖用功不忘하야 念念熏修나 著著生疑하야 未能無礙함이 如有一物이 礙在胸中인달하야 不安之相이 常現在前이라가 日久月深하야 對治功熟則身心客塵이 恰似輕安이니라 雖復輕安이나 疑根이 未斷함이 如石壓草하야 猶於生死界에 不得自在故로 云修在悟前하야는 非眞修也ㅣ라 하나니 悟人分上에는 雖有對治方便이나 念念無疑하야 不落汚染이니 日久月深하면 自然契合天眞妙性하야 任運寂知하며 念念攀緣一切境호대 心心永斷諸煩惱하야 不離自性하며 定慧等持하야 成就無上菩提호대 與前幾勝者로 更無差別하나니 則隨相門定慧가 雖是漸機所行이나 於悟人分上에는 可謂點鐵成金이니 若知如是則豈以二門定慧로 有先後次第二見之疑乎아.
0001_0043_a_01L왜냐하면 깨치기 전에 닦는 것은 비록 공력을 써서 잃지 아니하여 생각생각이 훈습하여 닦았으나, 착착着着히 의심을 내어 능히 무애하지 못한 한 물건이 가슴 가운데 걸려 있는 것과 같아서 편안치 못한 모양이 항상 앞에 나타나 있다가, 일구월심하여 대치하는 공력이 순숙하면 신심객진身心客塵의 흡사하게 경안輕安하듯 하니라. 비록 다시 경안한 듯하나 의근疑根이 끊어지지 못한 것이 마치 풀 누름과 같아서 오히려 생사계에 자재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길, 닦는 것이 깨치기 전에 있어서는 참으로 닦는 것이 아니다. 깨친 사람의 분상에는 비록 대치방편對治方便이 있으나 생각생각이 의심이 없어 더럽히는 데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 자연히 천진묘성天眞妙性에 계합하여 고요하고 아는 것을 임의로 운전하며 생각생각이 일체경계에 반연하되, 마음마음이 길이 모든 번뇌를 끊어 자성을 여의지 아니하며, 정혜를 균등히 가져 위없는 도를 성취하여 앞에 근기가 수승한 자로 더불어 다시 차별이 없느니라. 곧 수상문 정혜가 비록 이 점기漸機에 행하는 것이지만 깨친 사람의 분상에는 가히 이른바 점철성금點鐵成金이니라. 만일 이와 같음을 알면 어찌 이문二門의 정혜로써 선후차제의 두 소견의 의심이 있겠는가.”
제16절 권결勸結
願諸修道之人는 硏味此語코 更莫狐疑하야 自生退屈이어다 若具丈夫之志하야 求無上菩提者컨대 捨此奚以哉리오 切莫執文하고 直須了義하야 一一歸就自己하야 契合本宗則無師之智가 自然現前하고 天眞之理가 了然不昧하야 成就慧身이 不由他悟하리라 而此妙旨가 雖是諸人分上이나 若非夙植般若種智한 大乘根器者ㅣ면 不能一念而生正信이니라 豈徒不信이리요 亦乃謗讟하야 返招無間者ㅣ比比有之니 雖不信受나 一經於耳하야 暫時結緣이면 其功厥德을 不可稱量이니라 如唯心訣에 云聞而不信이라도 尙結覺種之因하고 學而不成이라도 猶益人天之福하야 不失成覺之正因이라 하니 況聞而信하고 學而不成이라도 守護不忘者ㅣ야 其功德豈能度量이리요.
0001_0043_b_01L“원컨대 모든 도 닦는 사람은 이 말을 연구하여 맛들이고 다 호의하여 스스로 퇴굴심을 내지 말아야 하니라. 만일 장부의 뜻을 갖추어 무상보리를 구한다면 이것을 버리고 무엇을 하겠는가. 간절히 글만 집착하지 말고 바로 요의了義를 구하여 낱낱이 자기 성품으로 나아가 본 종지에 계합하면 곧 스승 없는 지혜가 자연히 나타나고 천진의 자성을 요연了然히 매하지 아니하여, 혜신慧身을 성취하되 다른 사람의 깨침을 말미암지 아니해야 하니라. 이 묘한 지취가 비록 모든 사람의 분상이지만 만일 일찍이 반야종지를 심어 대근기가 아니면 능히 생각생각에 정신正信을 내지 못하느니라. 어찌 헛되이 믿지 아니하는가. 또한 비방하여 도리어 무간지옥을 부르는 자들이 비비比比이 있으니, 비록 신수信受치는 아니하나 한번 귀에 지내어 잠시 결연하면 그 공력에 큰 덕을 가히 칭량치 못하느니라. 『유심결』에 이르시길, ‘듣고 믿지 아니하더라도 오히려 각 종자의 인을 맺고, 배워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인천의 복을 덮어 성각成覺할 정인正因을 잃지 아니하리라’라고 하니, 하물며 들어서 믿고 배워 이루어 항상 수호하여 잊지 아니한 사람이야 그의 공덕을 어찌 능히 헤아리겠는가.
0001_0044_a_01L追念過去輪廻之業컨대 不知其幾千劫을 隨黑闇入無間히야 受種種苦하며 又不知其幾何而欲求覺道호대 不逢善友하야 長劫沈淪하야 冥冥無覺하야 造諸惡業이언요 時或一思면 不覺長吁로다 其可放緩하야 再受前殃가 又不知誰復使我로 今値人生에 爲萬物之靈하야 不昧修眞之路언요 實謂盲龜遇木이며 纖芥投鍼이라 其爲慶幸을 曷勝道哉아 我今에 若自生退屈커나 或生懈怠而恒常望後라가 須臾失命하면 退墮惡趣하야 受諸苦痛之時에는 雖欲願聞一句覺法하야 信解受持하야 欲免辛酸인달 豈可復得乎아 及到臨危하야는 悔無所益이니라 願諸修道之人은 莫生放逸하며 莫著貪淫하고 如救頭然하야 不忘照顧어다 無常이 迅速하야 身如朝露하고 命若西光이라 今日에 雖存이나 明亦難保니 切須在意하며 切須在意어다.
0001_0044_b_01L과거 윤회하던 업을 미루어 생각한다면 알지 못하는가? 그 몇천 겁이나 흑암지옥에 떨어지며 무간지옥에 들어가 온갖 고를 받았으며, 또 알지 못하는가? 그 얼마나 각도(불도) 구하고자 하여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고 장겁長劫에 윤회에 빠져 어두워 깨치지 못해서 모든 악업을 지었는가. 때에 혹 한번 생각하면 부지불각에 후유에 길이 탄식할 것이니라. 그 가히 방완放緩이 하며 두 번 다시 또 앞의 앙화를 받으려고 하는가? 또 알지 못하는가? 누가 다시 나로 하여금 이제 인생人生을 만나 만물에 신령함이 되어 진을 닦는 길을 매昧하지 않게 하겠는가. 실로 이른바 맹구우목이며눈먼 거북이 나무 만난 것이며 섬개투침이니라.작은 겨자에 바늘 던진 것이라. 그 경쾌하고 다행함을 어찌 수승하게 말하겠는가. 내가 이제 만일 스스로 퇴굴심을 내거나 혹 해태심을 내어 항상 뒤를 바라다가 잠깐 사이에 목숨을 잃으면, 물러가 악취에 떨어져 모든 고통을 받을 때는 비록 일구각법一句覺法을 듣기를 원하여 신해수지信解受持하여 신산辛酸을 면하고자 한들 어찌 가히 얻겠는가. 위태한 데 다다라서는 뉘우쳐도 유익한 바가 없느니라. 원컨대 모든 도 닦는 사람들은 방일심을 내지 말며 탐음을 착하지 말고 머리에 불타는 것을 구안하듯 하여 조고照顧함을 잃지 말아야 하느니라. 무상이 신속하여 몸은 아침 이슬 같고 명은 저녁 빛 같으니라. 금일에 비록 있으나 명일에 안보키 어려우니, 간절히 뜻에 두고 간절히 뜻에 두어야 하느니라.
0001_0045_a_01L且憑世間有爲之善하야도 亦可免三途苦輪하고 於天上人間에 得殊勝果報하야 受諸快樂이온 況此最上乘甚深法門이따녀 暫時生信이라도 所成功德을 不可以比喩로 說其小分이니라 如經云若人이 以三千大千世間七寶로 布施供給61)爾所世界衆生하야 皆得充滿하며 又敎化爾所世界一切衆生하야 令得四果하면 其功德이 無量無邊이어니 不如一食頃에 正思此法所獲功德이라 하시니 是知커라 我此法門이 最尊最貴하야 於諸功德에 比況不及이로다 故로 經云一念淨心이 是道場이라 勝造恒沙七寶塔이로다 寶塔은 畢竟에 碎爲塵이어니와 一念淨心은 成正覺이라 하시니 願諸修道之人은 硏味此語하야 切須在意어다 此身을 不向今生度하면 更待何生度此身이리오 今若不修면 萬劫差違어니와 今若彊修면 難修之行이라도 漸得不難하야 功行이 自進하리라 嗟夫라 今時人이 飢逢王膳호대 不知下口하며 病遇醫王호대 不知服藥하나니 不曰如之何如之何者는 吾未如之何也已矣!
0001_0045_b_01L또한 세간에 함이 있는 선을 의지하여도 또한 가히 삼도고륜三途苦輪을 면하고 천상과 인간에 수승한 과보를 얻어 모든 쾌락을 받건대 하물며 이 최상심심법문最上甚深法門이겠는가. 잠시 믿음을 내어도 이룬바 공덕을 가히 비유로써 그 소분도 말할 수 없느니라. 저 경에 이르시길, 만일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의 칠보로써 그곳의 세계 중생에게 보시하고 공급하여 다 충만함을 얻게 하며, 또 그곳의 세계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하여금 사과四果를 얻게 하면, 그 공덕이 한량없고 갓이 없으려니와 한 자리에서 밥 먹을 사이에 정正히 이 법을 생각하여 얻는바 공덕만 같지 못하다고 하시니, 이것을 알아야겠다. 나의 이 법문은 가장 높고 가장 존귀하여 저 모든 공덕에 견주어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길, 일념정심一念淨心이 이것이 도량이다. 항하사 칠보의 탑을 짓는 것보다 수승하다. 보탑은 필경에 부수어져 티끌이 되거니와 일념정심은 정각을 이룬다 하시니, 원컨대 모든 도를 닦는 사람은 이 말을 연구하여 맛들이어 간절히 뜻에 둘지어다. 이 몸을 금생에 제도치 아니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서 차신此身을 제도하겠는가. 이제 만일 닦지 아니하면 만겁에 어그러지려니와 이제 만일 굳건히 닦으면 닦기가 어려운 행일 지라도 점점 어렵지 아니함을 얻어 공행功行이 스스로 나아가리라. 슬프다. 금시 사람이 주린 데다가 좋은 음식을 만남에 입을 내릴 줄을 알지 못하며 중병에 의왕을 만남에 약을 복용할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 말하길, 저 어찌할고 저 어찌할고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도 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하리라.
且世間有爲之事는 其狀을 可見이며 其功을 可驗일새 人得一事라도 歎其希有어니와 我此心宗은 無形可觀이며 無狀可見이라 言語道ㅣ斷하고 心行處ㅣ滅할새 故로 天魔外道가 毁謗無門하고 釋梵諸天이 稱讚不及이온 況凡夫淺識之流가 其能彷彿이리오 悲夫라 井蛙가 焉知滄海之闊이며 野干이 何能師子之吼리요 故知末法世中에 聞此法門하고 生希有想하야 信解受持者는 已於無量劫中에 承事諸聖하야 植諸善根하야 深結般若正因한 最上根性也이니라 故로 金剛經에 云於此章句에 能生信心者는 當知是人이 已於無量覺所에 種諸善根이라 하시고 又云爲發大乘者하야 說하며 爲發最上乘者하야 說이라 하시니.
0001_0046_a_01L또한 세간 유위사는 그 형상을 가히 보며 그 공을 가히 증험함에 사람이 하나의 일을 증득할지라도 그 희유함을 찬탄하거니와, 나의 이 심종은 형상을 가히 볼 수 없으며 상태를 가히 볼 수 없느니라.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하느니라. 천마외도가 훼방하려고 해도 문이 없고 제석과 범천과 모든 천상이 칭찬하려고 해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하물며 범부의 천식한 무리가 그 능히 방불케 하겠는가. 슬프다. 우물의 개구리가 어찌 창해의 드넓은 것을 알며 야간(여우)이 어찌 능히 사자의 포효함을 하겠는가. 그러므로 말법의 세간 중에 이 법을 듣고 희유한 생각을 내어 신해수지信解受持자는 이미 무량겁 중에 모든 성인을 받들어 섬겨(承事)서 모든 선근을 심어 깊이 반야의 선근을 맺은 최상의 선근임을 알리라. 그러므로 『금강경』에 말씀하시길, 저 이 장구에 능히 신심을 내는 자는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이 이미 무량각소에 모든 선근을 심은 것이라고 하시고, 또 이르시길, 대승심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하시며, 최상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함이라 하시니라.
願諸求道之人은 莫生怯弱하고 須發勇猛之心하라 宿劫善因을 未可知也ㅣ니라 若不信殊勝하고 甘爲下劣하야 生艱阻之想하야 今不修之則縱有宿世善根이라도 今斷之故로 彌在其難하야 展轉遠矣리라 今旣到寶所대는 不可空手而還이니 一失人身하면 萬劫難復이니라 請須愼之하노니 豈有智者하야 知其寶所而反不求之하고 長怨孤貧이리오 若欲獲寶댄 放下皮囊이니라.
0001_0046_b_01L원컨대 모든 도를 구하는 사람은 겁내어 약한 마음을 내지 말고 모름지기 용맹심을 낼지니라. 숙겁宿劫의 선인을 가히 알지 못하니라. 만일 자기의 수승한 것을 믿지 아니하고 하열한 것을 달게 여기어 간조艱阻한 생각을 내어 이제 닦지 아니한다면, 비록 숙세의 선근이 있을지라도 이제 그것을 끊어 버리기 때문에 더욱 그 어려운 데에서 전전히 멀어지리라. 이제 이미 보소寶所에 도달하면 빈손으로 돌아감은 옳지 못하니, 한번 사람의 몸을 잃어버리면 만겁에 회복키 어려우니라. 모름지기 삼가하길 청하노니, 어찌 지혜 있는 자가 그 보소를 알고 도리어 구하지 않고 길이 외롭고 빈한함을 원망하겠는가. 만일 보배를 얻고자 한다면 가죽 주머니를 놓아 버릴지니라.”
선문촬요禪門撮要 제3권
달마혈맥론達摩血脈論차편대의此篇大義는 척사현정견斥邪顯正見
제1절 심외무각성心外無覺性
三界混(興)起가 同歸一心이니 前覺(佛)後覺(佛)이 以心傳心하사 不立文字시니라 問曰若不立文字신대는 以何로 爲心이닛고 答曰汝ㅣ問吾ㅣ가 卽是汝心이오 吾ㅣ答汝가 卽是吾心이니62) 從無始曠大劫以來로 乃至施爲運動이 一切時中과 一切處所가 皆是汝의 本心이며 皆是汝의 本覺(佛)이니 卽心是覺(佛)도 亦復如是하니라 除此心外에는 終無別覺(佛)可得이니 離此心外에 覓覺道(菩提)圓寂(涅槃)이 無有是處이니라 自性은 眞實하야 非因非果ㅣ며 又法卽是心義니 自心이 是覺(菩提)이며 自心이 是圓明寂照(涅槃)이니라 若言心外에 有覺及道(菩提)可得인댄 無有是處ㅣ니 覺(佛)及道(菩提)가 皆在何處오 譬如有人이 以手로 捉虛空得否아 虛空은 但ㅣ有名이요 亦無相貌니 取不得捨不得하며 是捉空不得인달하야 除此心外覓覺(佛)은 終不得也ㅣ니라.(달마혈맥론)
삼계가 혼연히 일어나는 것이 동일하게 일심으로 돌아가니, 전각후각(전불후불)이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시고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시니라.
묻길,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다면 무엇으로써 마음을 삼습니까?”
답하길, “네가 내게 묻는 것이 곧 너의 마음이요, 내가 너에게 대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다. 무시광겁으로 좇아옴으로써 내지 시위운동이 일체 때 가운데와 일체 처소가 다 이것이 너의 본심이며 다 이것이 너63)의 본각이니, 즉심시각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이 마음을 제하여 놓고는 마침내 별각을 가히 얻을 수 없으니, 이 마음을 여읜 밖에 도와 원적(영각)을 찾는 것이 옳은 곳이 없느니라. 자성은 진실하여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며 법이 곧 이 마음의 뜻이니, 자심이 이 각도(보리)이며 자심이 이 원명적조(열반)이니라. 만일 마음 밖에 각과 및 도를 가히 얻을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옳지 못하니라. ‘마음 밖에 각이 있다’고 한다면 각과 및 도가 다 어느 곳에 있는가.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손으로써 허공을 붙잡으려면 되겠는가? 되지 않겠는가? 허공은 다만 이름만 있고 또한 상모가 없으니, 취하려 해도 어찌 못하고 버리려고 해도 어찌 못하며 이 허공을 붙잡으려 해도 어찌 못하는 것과 같아서 이 마음을 제한 밖에 각을 찾으려면 마침내 가히 옳지 못하니라.
覺是自心作得이어니 因何離此心外에 覓覺이리오 前覺後覺이 只言其心하시니 心卽是覺이오 覺卽是心이라 心外에 無覺하고 覺外에 無心이니라 若言心外에 有覺인대 覺在何處오 心外에 旣無覺인대는 何起覺見이리오 遞相誑惑하야 不能了本心하고 被他無情物攝하야 無自由로다 若也不信컨대 自誑無益이라 覺無過患이언만 衆生이 顚倒하야 不覺不知自心是覺이니라 若知自心是覺인댄 不應心外에 覓覺이어다 覺不度覺이니 將心覓覺하면 不識覺이라 但是外覺者ㅣ니 盡是不識自心是覺이니라 亦不得將覺禮覺하며 不得將心念覺이어다 覺不誦經하며 覺不持戒하며 覺不犯戒하며 覺無持犯하며 亦不造善惡이니라 若欲覓覺인댄 須是見性이라사 卽是覺이오 若不見性이면 念覺誦經持齋持戒하야도 亦無益處이니라 念覺은 得因果하고 誦經은 得聰明하고 持戒는 得生天하고 布施는 得福報하나니 覓覺은 終不可得也이니라.
0001_0048_b_01L각은 이 자심으로 짓는 것이거니이것은 본각이 아니요 후각을 말한다. 무엇을 인하여 이 마음을 떠난 밖에 각을 찾겠는가. 전각후각이 단지 그 마음만 말씀하시니, 마음이 곧 이 각이요, 각이 곧 이 마음이니, 마음 밖에는 각이 없고, 각 밖에는 마음이 없느니라. 만일 마음 밖에 각이 있다면 어찌 각을 보려는 소견을 일으키는가? 서로서로 광혹狂惑하여 능히 본심을 알지 못하고 저 무정의 물건에 포섭하여짐을 입어무정물은 나무와 돌로 조성한 우상이라. 자유에 분이 없느니라.만일 저 무정물을 각이라고 하면 자기는 얽매여 자유분이 없다. 만일 또한 믿지 아니한다면 스스로 속인 것이라 알지 못하느니라. 만일 자심이 이 각임을 안다면 마땅히 마음 밖에 각을 찾지 말지니라. 각은 각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니, 마음을 가져 각을 찾으면 각을 모르느니라. 다만 마음 밖에 형상의 각만 숭상하는 것이니, 다 자심이 각인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 또한 각을 가져 각에 예하지 말며, 또 마음을 가져 각을 생각하지 말지니라. 각은 경을 외우는 것도 아니며, 각은 계를 가지는 것도 아니며, 각은 계를 범하는 것도 아니며, 각은 가지고 범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선악을 짓는 것도 없느니라.눈이 제 눈 못 보느니라. 만일 각을 찾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견성하여 곧 이것이 각이니라. 만일 견성치 못하면 각을 생각하고 경을 외우고 재를 가지고 계를 가져도 또한 이익이 없느니라. 염각은 인과를 얻고 송경은 총명을 얻으며 지계는 천상에 나아가고 보시는 복보를 얻나니, 각을 찾는 것은 가히 얻지 못할지니라.
0001_0049_a_01L若自己를 不明了어든 須參善知者64)(識)하야 了卻生死根本이어다 若不見性이면 卽不名善知者(識)이니 若不如此하면 縱說得十二部經하야도 亦不免生死하야 輪廻三界受苦하야 無有出期時하리라 昔에 有善星(比丘)하야 誦得十二部經하야도 猶自不免輪廻는 爲不見性일새니라 善星도 旣如此온 今時人이 講得三五本經論하고 以爲覺法者는 愚人也로다 若不識得自心이면 誦得閒文書하야도 都無用處ㅣ니라 若要覓覺인대 直須見性이니 性卽是覺이라 覺卽是自在人이며 無事無作人이니라 若不見性이며 終日茫茫하야 向外馳求覓覺일새 元來不得이니라 雖無一物可得이나 若求會인대는亦須參善知者하야 切須苦求하야 令心會解어다.
0001_0049_b_01L만일 자기를 밝게 알지 못하거든 모름지기 선지자를 참예하여 생사의 근본을 마칠지니라. 만일 견성하지 못하면 곧 이름이 선지자가 아니니라. 비록 십이부경을 설하더라도 또한 생사를 면치 못하여 삼계에 윤회하는 고통을 받아 나올 기약과 때가 없으리라. 옛적에 선성이 있어 십이부경을 외워도 오히려 윤회를 면치 못한 것은 다만 견성하지 못한 까닭이니라. 선성도 이미 이와 같거든 지금 사람이 삼오본의 경론을 강의하고 써 각법을 삼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만일 자심을 알지 못하면 부질없는 문서를 외울지라도 도무지 쓸 곳이 없느니라. 만일 각을 찾길 요구한다면 바로 모름지기 견성하여야 할지니라. 자성이 곧 이 각이다. 각은 곧 이 자재한 사람이며 일없는 사람이며 지은 사람이 아니니라. 만일 견성하지 못하면 종일토록 바삐바삐 하여 밖을 향하여 치구함에 각을 찾아도 원래 얻지 못하느니라. 비록 일물도 가히 얻을 수 없으나 만일 알지 못한다면 또한 선지자에게 참예하여 간절히 구해야 마음으로 하여금 알게 할지니라.
生死事大하니 不得空過어다 自誑無益이니라 縱有珍寶가 如山하고 眷屬이 如恒河沙라도 開眼에 卽見이어니와 合眼에 還見麽아 故知有爲之法이 如夢幻等이로다 若不急尋師면 空過一生하리라 然則覺性이 自有나 若不因師면 終不明了ㅣ니 不因師悟者는 萬中希有이니라 若自己ㅣ以緣會合하야 得聖人意者는 卽不用參善知者이니 此卽是生而知之勝學也ㅣ니라 若未悟解대는 須勤苦參學이니 因敎方得悟이니라 若自明了대는 不學亦得이니 不同迷人이니라 能分別皁白하고 妄言宣覺敎勅인대 謗佛妄法이니 如斯等類는 說法如雨라도 盡是魔說이라 卽非覺說이니 師是魔王이오 弟子是魔民이어늘 迷人이 任他指揮하야 不覺墮生死海로다.
0001_0050_a_01L생사의 일이 크니 응당 공과空過하지 말지니라. 스스로 속이면 이익이 없느니라. 비록 진보가 산과 같고 권속이 항하사 모래 같을지라도 눈을 뜨면 곧 보려니와 눈을 감으면 도리어 보겠는가. 그러므로 함이 있는 법이 몽환 같은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만일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공과하리라. 그렇다면 각성이 스스로 있으나 만일 스승을 인하지 아니하면 마침내 밝게 알지 못하리라. 스승 없이 저 혼자 깨친 자는 만인 중에 희유하니라. 만일 자기가 인연으로써 회합하여 성인의 뜻을 얻은 자는 곧 선생을 참예할 것을 쓰지 말지니라. 이것은 나면서 아는 수승한 학문이다. 만일 깨치지 못한다면 모름지기 부지런히 애써 참학할지니라. 가르침을 인하여 바야흐로 깨침을 얻으리라. 만일 스스로 명료하다면 배우지 아니하여도 역시 얻으리니, 미혹한 사람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능히 검고 흰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망령되이 각의 교칙을 펼친다면 각을 비방하며 법을 망령되이 하느니라. 이와 같은 등의 무리는 법설을 비와 같이 하더라도 다 이 마군의 설이니라. 곧 각설이 아니니 스승은 이 마군의 왕이요, 제자는 이 마군의 백성이다. 미혹한 사람이 저의 지휘를 받아 생사대해에 떨어짐을 깨닫지 못할지니라.
0001_0050_b_01L但是不見性人이 妄稱是覺이나 此等衆生은 是大罪人이라 誑他一切衆生하야 令入魔界이니라 若不見性이면 說得十二部經敎하야도 盡是魔說이며 魔家眷屬이라 不是覺家弟子이니라 旣不辨皁白이어니 憑何免生死리오 若見性이면 卽是覺이오 不見性이면 卽是衆生이니라 若離衆生性하고 別有覺性可得者진대는 覺이 今在何處오 卽衆生性이 卽是覺性也ㅣ니라 性外에 無覺이라 覺則(卽)是性이니 除此性外에는 無覺可得이오 覺外에는 無性可得이니라.
다만 견성하지 못한 사람이 망령되이 이 각이라고 일컫지만 이들 중생은 이 큰 죄인이니라. 저 일체중생을 속여서 마구니 경계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만일 견성하지 못하면 십이부경전을 설하여도 다 이 마군이 말이며 마군이 집의 권속이니라. 이 각가(불가)의 제자가 아니다. 이미 검고 흰 것을 가리지 못하거니 어찌 생사를 면하겠는가. 만일 견성하면 곧 각이요, 견성하지 못하면 곧 이 중생이니라. 만일 중생의 자성을 떠나서 별도로 각성을 가히 얻을 것이 있다면 각이 이제 어느 곳에 있는가. 곧 중생의 자성이 곧 이 각성이니라. 성품 밖에는 각이 없느니라. 각이 곧 성품이니, 이 성품을 제한 밖에는 각을 얻을 수 없고 각 밖에는 성품을 얻을 수가 없느니라.”
제2절 미심만행미면윤회迷心萬行未免輪廻
0001_0051_a_01L問曰若不見性이라도 念覺誦經布施持戒精進하야 廣興福利하면 得成覺否이까 答曰不得이니라 又問因何不得이닛고 答曰有少法可得이면 是有爲法이며 是因果 是受報 是輪廻法이라 不免生死어니 何時에 得成覺道리오 成覺은 須是見性이니라 若不見性이면 因果等語가 是外道法이니 若是覺인대 不習外道法이니라 覺是無業人이며 無因果이니 但有少法可得이면 盡是謗覺이라 憑何得成이리요 但有住着一心一能一解一見이면 覺이 都不許시니라 覺無持犯이라 心性이 本空이오 亦非垢淨諸法이라 無修無證이오 無因無果이니라 覺不持戒하며 覺不修善하며 覺不造惡하며 覺不精進하며 覺不懈怠하나니 覺是無作人이라 但有住着心見하면 覺이 卽不許也ㅣ신니라.
0001_0051_b_01L묻길, “만일 견성은 아니하였을지라도 염각(염불)하고 송경하며 보시하고 지계하며 정진하여 널리 복리福利를 일으키면 성각(성불)함을 얻겠나이까?”
답하길, “얻지 못한다.”
또 묻길, “어찌 하여 얻지 못합니까?”
답하길, “적은 법이라도 가히 얻을 것이 있으면 이것은 함이 있는 법이고, 이것은 인과이며, 이것은 업보 받는 법이고, 이것은 윤회 받는 법이니라. 생사도 면치 못하거든 어느 때에 각도(불도)를 얻겠는가. 성각은 견성하여야 할 것이니, 견성을 못하면 인과를 말하는 것이 외도의 법이니라. 만일 각한다면 외도의 법을 익히지 말지니라. 각(부처)은 이 업이 없는 사람이며 인과가 없으니, 다만 조그마한 법이라도 얻을 것이 있으면, 다 각을 비방하느니라. 무엇을 의지(빙거)하여 이룸을 얻겠는가. 다만 한 마음이든지 하나라도 능한 것이든지 하나라도 아는 것이든지 하나라도 볼 것에 주착하면 각이 모두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각은 계행 가지고 범한 것이 없느니라. 심성이 본래 공空한 것이오. 또한 때 끼고 깨끗한 것과 모든 법이 없느니라. 닦고 증할 것도 없으며 인도 없고 과도 없다. 각은 계율 가지는 것도 아니고 각은 선정을 닦는 것도 아니니라. 각은 악을 짓는 것도 아니고 각은 정진하는 것도 아니며 각은 해태하는 것도 아니니라. 각은 이 지음이 없는 사람이니, 다만 주착하는 마음과 소견이 있으면 각이 곧 허락하지 아니하니라.
覺不是覺이니 莫作覺解어다 若不見此義하면 一切時中과 一切處所(處)에 皆是不了本心이니라 若不見性코 一切時中에 擬作無作想인댄 是大罪人이며 是癡人이라 落無記空中하야 昏昏如醉人하야 不辨好惡하리라 若擬修無作法인대 先須見性然後에 息緣慮이니 若不見性코 得成覺道ㅣ無有是處이니라 有人이 撥無因果하야 熾然作惡業호대 妄言本空하야 作惡無過ㅣ라 하나니 如此之人은 墮無間黑暗地獄하야 永無出期하리니 若是智人인대 不應作如是見解이니라.
0001_0052_a_01L각은 이 각이 아니니 각이란 알음알이를 짓지 말라. 만일 이 뜻을 보지 못하면 일체 때 가운데와 일체 처소에 다 이 본심을 알지 못하느니라. 만일 견성하지 못하고 일체시중에 무작상 짓기를 헤아린다면 이것이 큰 죄인이며 이것이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무기공중無記空中에 떨어져 혼혼한 것이 술 취한 사람과 같아서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못하느니라. 만일 무작법 닦기를 헤아린다면 먼저 모름지기 견성한 연후에 분별하여 반연한 생각을 쉴지니라. 만일 견성하지 못하고 각도를 이룬다고 하는 것은 옳은 곳이 없느니라. 어떠한 사람이 인과를 쓸어 없애야 치연이 악을 지으면서 망령된 말을 함에, 본래 공한 것이어서 악업을 지어도 허물이 없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은 사람은 무간 흑암지옥에 떨어져 나올 기약이 없을 것이니라. 만일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이와 같은 견해를 아니 할지니라.”
問曰旣若施爲運動一切時中에 皆是本心인댄 色身無常之時에는 云何不見本心이닛고 答曰本心이 常現前호대 汝自不見이로다 問曰心旣見在인대 何故不見고 師云汝曾作夢否아 答曾作夢이니다 問曰汝作夢之時에 是汝本身否아 答是本身이니다 又問汝言語施爲運動이 以(與)汝로 別가 不別가 答不別이니다 師云旣若不別인대 卽是身이 是汝의 本法身이며 卽此法身이 是汝의 本心이니라.
0001_0052_b_01L묻길, “이미 만일 시위운동과 일체시중에 다 이 본심이라면 색신이 무상할 때는 어찌 본심을 보지 못합니까?”
답하길, “본심이 항상 현전하지만 네가 스스로 보지 못하느니라.”
묻길, “마음이 이미 반드시 있다면 어떠한 연고로 보지 못합니까?”
사師가 이르시길, “네가 일찍이 꿈을 지었는가.”
답하길, “일찍이 꿈을 지었나이다.”
물으시길, “네가 꿈을 지을 때에 꿈을 꾸지 않을 때 몸과 같던가? 같지 않던가?”
답하길, “이 꿈 짓기 전에 본 몸입니다.”
또 묻길, “너의 언어시위운동이 꿈 짓기 전에 너와 다르던가. 다르지 아니하던가?”
답하길, “다르지 않습니다.”
사가 말씀하시길, “다르지 않다면 곧 이 몸이 너의 본 법신이며 곧 이 법신이 너의 본심이니라.”용성이 말하길, 이 말씀을 잘못 알면 크게 그르칠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꿈 가운데 보이는 자기의 몸과 몽식夢識으로 분별하는 것을 본심이라 하면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겠는가. 달마께서는 꿈에 보는 몸과 꿈에 분별하는 생멸심을 가르침이 아니라 생시에 능히 어묵동정하는 그 놈과 몽중에 어묵동정하는 그 놈과 그 두 가지가 근본적으로 자성이 둘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此心이 從無始曠大劫來로 與如今不別하야 未曾有生死ㅣ라 不生不滅하며 不增不減하며 不垢不淨하며 不好不惡하며 不來不去하며 亦無是非하며 亦無男女相하며 亦無僧俗老少하며 無聖無凡하며 亦無覺亦無衆生하며 亦無修證하며 亦無因果하며 亦無筋力하며 亦無相貌홈이 猶如虛空하야 取不得捨不得이니라 山河石壁이 不能爲碍하야 出沒往來에 自在神通이라 透五蘊山하며 渡生死海(河)하나니 一切業이 拘此法身不得이니라.
이 마음이 무시광대겁으로 좇아오므로 지금과 더불어 다르지 아니하여 일찍이 생사가 없느니라. 나지도 아니하고 멸하지도 아니하며, 더하지도 아니하고 덜하지도 아니하며, 더럽지도 아니하고 깨끗하지도 아니하며, 고운 것도 아니고 미운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또한 남녀상도 없고 또한 중생도 없으며, 또한 닦고 증득하는 것도 없고, 또한 인과도 없으며, 또한 각도 없으며 또한 한 근력도 없으며 또한 상보도 없음이 허공과 같아서 취하려 해도 얻을 수 없으며 버리려 해도 얻을 수 없느니라. 산하석벽이 능히 장애하지 못하여 출몰왕래에 신통이 자재하니라. 오온산을 뚫으며 생사의 바다를 건너나니, 일체 업이 이 법신을 어찌 못하느니라.
0001_0053_b_01L此心은 微妙難見이라 此心이 不同色相이니 此心이 是覺이니라 人皆欲得見於此光明中에 運手動足者ㅣ如恒河沙로되 及乎問着하야는 惣道不得이 猶如木人相似하나니 惣是自己受用이어늘 因何不識고 覺言一切65)衆生이 盡是迷人이라 因此作業할새 墮生死海하여 欲出還沒하나니 只爲不見性일새니라 衆生이 若不迷대는 因何問着고 其中에 無有一人도 得會者로다 自家運手動足을 因何不識고 故知하라 聖人語不錯이로되 迷人이 自不會로다 故知하라 此心을 難明이니 惟覺一人이라사 能會此心하고 其餘人天衆生等은 盡不明了하나니라.
이 마음은 미묘하여 보기 어렵다. 색상色相과 다르니, 이 마음이 각(부처님)이니라. 사람마다 저 이 광명 가운데에서 손을 놀리고 발을 움직임을 보고자 하는 자가 항하사 모래 수와 같아서 묻는 데에 미쳐서는 다 얻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마침 목인과 상사하나니, 다 자기의 수용하는 것인데 무엇을 인하여 알지 못하는가? 각께서 말씀하시길, 일체중생이 다 이 미혹한 사람이니라. 미혹함을 인하여 업을 지었기에 생사의 바다에 떨어져 아무리 나오고자 하여도 도리어 빠지나니, 다만 견성하지 못한 까닭이니라. 중생이 만일 미혹하지 아니하다면 무엇을 인하여 묻는가? 그 중에 한 사람도 아는 자가 없느니라. 자기가 손 놀리고 발 꿈쩍이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그러므로 알라. 성인의 말씀은 어김이 없으시지만 미혹한 사람이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이 마음을 밝히기 어려우니 오직 각한 사람만 능히 이 마음을 알고 그 나머지 인천의 중생들은 다 밝게 알지 못하니라.
0001_0054_a_01L若智慧로 明了此心하면 方名法性이며 亦名解脫이니 生死不拘하며 一切法이 拘他不得할새 是名大自在王覺(如來)이며 亦名不思議며 亦名聖體며 亦名長生不死며 亦名大仙이니라. (名雖不同나 體卽是一이니라.)
만일 지혜로 밝게 이 마음을 요달하면 바야흐로 이름이 법성이며, 또한 이름이 이 해탈이니 생사에 거리끼지 아니하며 일체법이 저것에 거리낌을 얻지 못함에 이 이름이 대자재각이며 또한 이름이 불사의며 또한 이름이 성체聖體며 또한 이름이 장생불사며 또한 이름이 대선이니라. (이름은 비록 같지 않지만 체는 곧 하나다.)
聖人의 種種分別이 皆不離自心하시니 心量이 廣大하야 應用無窮이라 應眼見色하며 應耳聞聲하며 應鼻嗅香하며 應舌知味하며 乃至施爲運動이 皆是自心이며 一切時中에 語言道斷하며 心行處滅이니 是自心이니라 故云覺(如來)의 色이 無盡하며 智慧도 亦復然이라 하시니 色無盡是自心이니라 心識이 善能分別一切하며 乃至施爲運用이 皆是智慧이니 心無形相일새 智慧도 亦無盡하니라 故로 覺(如來)의 色이 無盡하고 智慧도 亦復然이라 하니 四大色身은 卽是煩惱色身이라 卽有生滅이어니와 法身은 常住而無所住라 大覺(如來)法身이 常不變異이니라 故로 經에 云衆生이 應知覺性本有之身이라 하시니 迦葉은 只是悟得本性하시고 更無他事로다 本性이 卽是心이요 心卽是性이니 此卽同諸覺心이라 前覺後覺이 只傳此心이시니 除此心外에 無覺可得이니라.
성인의 갖가지 분별이 다 자심을 떠나지 아니함이라 하시니, 심량心量이 광대하여 쓰는 데 응하여 무궁하다. 눈은 빛을 보며 귀는 소리를 들으며 코는 향기를 맡으며 혀는 맛을 알며 내지 시위운동이 다 이 자심이며 일체시중에 언어의 길이 끊어지며 심행처가 멸하나니, 이것이 자심이니라. 그러므로 이르길, 각의 빛이 다함이 없으며 지혜도 또한 그러하다 하시니, 색이 무진함이 이 자심이다. 심식이 잘 능히 일체를 분별하며 내지 시위운용이 다 이 지혜니, 마음이 형상이 없기에 지혜도 또한 다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르시길, 각의 색이 다함이 없고 지혜도 또한 다시 그러하다 하시니, 사대 색신은 곧 이 번뇌의 몸이기에 곧 생명이 있거니와 법신은 항상 주하여 주한 바 없다. 대각의 법신이 항상 변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길, 중생이 마땅히 각성이 본래 있는 것을 알 것이라 하시니, 가섭은 다만 본성을 깨치시고 다시 다른 일이 없으시니, 본성이 곧 이 마음이요, 마음이 곧 이 성품이니, 이것이 곧 제각심(모든 부처님의 마음)이다. 전각후각(전불후불)이 다만 이 마음을 전함이니, 이 마음을 제한 밖에는 각(부처)을 가히 얻을 것이 없느니라.
0001_0055_a_01L顚倒衆生이 不知自心是覺하고 向外馳求호대 終日忙忙하야 念覺禮覺하나니 覺在何處오 不應作如是等見이어다 但識自心하면 心外에 更無別覺이니라 經에 云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라 하시고 又云所在之處에 卽爲有覺이라 하시니 自心이 是覺이라 不應將覺禮覺이니라 但是有覺과 及正士(菩薩)相貌가 忽爾現前이어든 亦切不可禮敬이어다 我心이 空寂하야 本無如是相貌하니 若取相이면 卽是魔攝이라 盡落邪道하리라 若知幻從心起하면 卽不用禮이니라 禮者는 不知오 知者는 不禮니 禮被魔攝이니라 恐學人이 不知故로 作是辨하노라.
0001_0055_b_01L전도한 중생이 자심이 이 각임을 알지 못하고 밖을 향하여 치구하되 날이 마치도록 바쁘고 바쁘게 염각예각(염불예불) 하나니, 각(불)이 어느 곳에 있는가? 마땅히 이와 같은 소견을 짓지 말라. 다만 자심만 알면 마음 밖에 다시 각이 없느니라. 경에 말씀하시길, 무릇 상 있는 바가 다 이 허망한 것이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길, 있는바 곳에 각이 있다 하시니, 자심이 이 각이니라. 마땅히 각을 가져 각께 예배하지 말라. 다만 이 각과 및 정사(보살)의 상모가 홀연히 나타나거든 간절히 예경하지 말라. 나의 마음이 공적하여 본래 이와 같은 상모가 없으니, 만일 상을 취하면 곧 이 마가 섭수한 것이라 다 사도에 떨어지리라. 만약 환이 마음으로 좇아 일어남을 알면 곧 예배를 하지 아니할지니라. 예배하는 자는 알지 못한 것이요, 아는 자는 예배하지 아니하나니, 예배하는 것은 마귀에 섭수함을 입는 것이니라.용성이 이르길 도를 참으로 깨친 자는 예배하여도 좋고, 예배 아니하여도 좋으니, 허공에 나는 새가 자유로 임할 것이다. 마가 진법계와 같은지라 무슨 방해자 있으리오. 조사의 뜻은 식심 환변의 경계에 착하여 실성할까 접하심이다. 학인이 알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까닭에 이에 가린다.
諸覺의 本性體上에 都無如是相貌니 切須在意어다 但有異境界어든 切不用採括하며 亦莫生怕怖하며 又不要疑惑이니라 我心이 本來淸淨이어니 何處에 有如許相貌리오 乃至天龍夜叉鬼神帝釋梵王等이라도 亦不用心生敬重하며 亦莫怕懼이니라 我心이 本來空寂이라 一切相貌가 皆是妄相이니 但莫取相이어나 若起覺見法見커나 及覺正士等相에라도 而生敬重하면 自墮衆生位中하리라 若欲眞會인댄 但莫取一切相卽得이니 更無別語이니라 故로 經에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라 하시니 都無定實하며 幻無定相이라 是無常法이니 但不取相하면 合他聖意하리라 故로 經云離一切相하면 卽名諸覺이라 하니라.
0001_0056_a_01L제각의 본성체상에 도무지 이와 같은 상모가 없으니, 간절히 모름지기 뜻에 둘지어다. 다만 다른 경계가 있거든 간절히 캐지도 말며, 또한 겁도 내지 말며 또한 의혹심도 내지 말라. 나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거니, 어느 곳에 이와 같은 상모가 있겠는가. 나아가 천룡, 야차, 귀신, 제석, 범천왕 무리일지라도 또한 경중심을 내지 말며 또한 두려워하지도 말라. 나의 마음이 본래 공적하기에 일체 상모가 다 이 허망하니라. 다만 상을 취하지 말지어다. 만일 각의 소견과 법의 소견을 일으키거나 및 각과 정사의 등상에라도 경중심을 내면 저는 스스로 중생의 위치 가운데 떨어지리라. 만일 진실로 알고자 한다면 다만 일체 상을 취하지 아니하면 곧 얻을지니, 다시 별도의 말이 없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길, 무릇 상이 있는바 다 이 허망한 것이라고 하니라. 모두 일정한 실상이 없으며 환꼭두각시이 일정한 상이 없다. 이는 무상한 법이니, 다만 상을 취하지 아니하면 저 성인의 뜻에 칭합하리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길, 일체 상을 떠나면 곧 이름이 제각이라 하시니라.
제3절 명불경소이明不敬所以
0001_0056_b_01L問曰因66)何不得禮覺正士等이닛고 答曰天魔波旬과 阿修羅等이 示見神通하야 皆作得覺正士相貌호대 以能種種變化하나니 是外道이라 摠不是覺이니라 覺是自心이라 莫錯禮覺이어다 覺者는 是靈覺이니 應機接物하며 揚眉瞬目하며 運手動足이 皆是自己靈覺之性이니라 性卽是心이오 心卽是覺이오 覺卽是道오 道卽是覺(禪)이니 覺(禪)之一字는 非凡夫之所測이니라 又云見本性이 爲覺이니 若不見本性이면 卽非覺也ㅣ니라 假使說得千經萬論하야도 若不見本性이면 只是凡夫라 非是覺法이니라 至道幽深하야 不可話會니 典敎에 憑何所及이리오 但見本性하면 一字不識이라도 亦得이니라 見性이 卽是佛이니 聖體本來淸淨하야 無有雜穢하니라 所有言說이 皆是聖人의 從心起用이니 用體本空하야 名言이 尙不及온 十二部經이 憑何得及이리오 道本圓成이라 不用修證이며 道非聲色이라 微妙難見이니 如人이 飮水에 冷暖을 自知인달하니라 不可向人說也어다 唯有如來能知오 餘人天等類는 都不覺知이니라 凡夫는 智不及일새 所以로 執相이니라 不了自心이 本來空寂하고 妄執事相及一切法하면 卽墮外道하리라.
0001_0057_a_01L묻길, “어찌 각(불)과 정사(보살)에게 예배를 말라 하십니까?”
답하길, “천마 파순이와 아수라 무리들이 신통을 나타내어 다 각과 정사의 상모를 지음으로써 능히 여러 가지 변화를 하나니, 이것이 외도이라 다 각이 아니니라. 각은 이 그대의 마음이라. 그릇 각께 예배하지 말지어다. 각은 중국말이니, 우리말로 하면 깨친 성품이라는 말이니라. 깨친 것이라는 것은 이 신령하게 깨친 것이니라. 기틀을 응하여 물건을 제접하며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박거리며 손을 내두르고 발을 준동하는 것이 다 나의 마음이 영각한 성품이니라.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각이요, 각이 곧 도요 도가 곧 각이니, 각이라는 것은 범부의 측량할 바 아니니라. 또 본성을 보는 것으로 각을 삼는 것이니, 만일 본성을 보지 못하면 다만 곧 각이 아니니라. 가사 천경만론을 다 말하더라도 성품을 보지 못하면 다만 범부이고 각법이 아니니라. 지극한 도는 깊고 깊어 말로 할 수 없으니, 경전에 무엇을 의지하여 미치겠는가. 다만 본성만 보면 일자무식이라도 또한 얻느니라. 견성이 곧 이 각이니, 성체가 본래 청정하여 잡되고 더러움이 없다. 모든 말씀은 다 성인의 마음으로 좇아 씀을 일으킴이니, 쓰는 본체가 본래 텅 비어 이름과 말도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데 십이부경이 어찌 미치겠는가. 도가 본래 뚜렷이 이룬 것이기에 닦고 증득함을 쓰지 아니하는 것이며, 또는 소리와 빛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미묘하여 보기가 어려운 것이니,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더운 것을 자기가 아는 것과 같으니라. 또한 다른 사람을 향하여 말하지 말지어다. 오직 대각께서 아시고 인간 사람과 하늘 사람들은 도무지 알지 못하느니라. 범부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기에 그런 까닭으로 상을 집착하느니라. 자기의 마음이 본래 공적함을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모든 상과 일체법을 집착하면 곧 외도에 떨어지리라.
0001_0057_b_01L若知諸法이 從心生하면 不應有執이니 執卽不知이니라 若見本性하면 十二部經이 總是閒文字이니라 千經萬論이 是明心이니 言下契會하면 敎將何用이리오 至理는 絶言이오 敎是言詞니 實不是道이니라 道本無言일새 言說은 是妄이니라 若夜夢에 見樓閣宮殿象馬之屬과 及樹木叢林池亭如是等相이어든 不得起一念樂着이니 盡是託生之處이니라 切須在意어다 臨終之時에 都不取相하면 卽得除障어니와 纖毫(疑心)瞥起하면 卽攝(被)魔境하나니라 法身은 本來淸淨無受언마는 只緣迷故로 不覺不知이니 因茲故妄受報일새 所以有樂着하야 不得自在이니라.
0001_0058_a_01L만일 모든 법이 마음을 좇아 남을 알면 마땅히 있는 것을 집착하지 말지니, 집착하면 곧 알지 못하리라. 만일 본성을 보면 십이부경이 다 부질없는 문자니라. 천경만론이 다만 마음을 밝힌 것이니, 법을 가르친 말 아래에 확연히 계합하여 알면 경전을 장차 어디 쓰겠는가. 지극한 이치는 말이 끊어진 것이고, 경전은 이 말이니, 진실로 이 도가 아니니라. 만일 밤의 꿈에 궁전 누각이든지 코끼리나 말이나 그러한 무리든지 및 수목총림이든지 못이나 정자나 이와 같은 모양을 보거든 한 생각이라도 낙착심을 일으키지 말지니, 다 이 내가 의탁해서 나는 곳이 되느니라. 정신을 단단히 차려 간절히 뜻을 둘지어다. 임종 시에 도무지 상을 취하지 아니하면 곧 의심을 제하려니와 호말이라도 생각을 일으키면 곧 마에 포섭되리라. 법신은 본래 청정하여 받는 것이 없건만 다만 미혹한 것을 인연하기 때문에 깨치지 못하고 알지 못한 것이니, 이것을 인하여 망령되이 업보를 받음에 그런 까닭으로 낙착이 있기 때문에 자재치 못하리라.
只今에 若悟得本來身心이면 卽不染習이니라 若從聖入凡하야 示現種種雜類等은 自爲衆生故이니라 聖人은 逆順에 皆得自在하사 一切67)業이 拘他不得이니라 聖成久에 有大威德하나니 一切品類業이 被他聖人轉하야 天堂地獄이 無奈他何이니라 凡夫는 神識이 昏昧하야 不同聖人의 內外明徹이니라 若有疑어든 卽不作이니 作卽流浪生死하야 後悔라도 無相救處이니라 貧窮困苦가 皆從妄想生이니 若了是心하야 遞相勸勉호대 但無作而作이면 卽入大覺知見하리라 初發心人은 神識이 惣不定이니 若夢中에 頻見異境이라도 輒不用疑어다 皆是自心起라 不從外來이니라 夢에 若見光明出現이 過於日輪이면 卽餘習이 頓盡하고 法界性이 現이니라 若有此事면 卽是成道之因이니 唯自知하고 不可向人說이어다.
0001_0058_b_01L지금에 만일 본래 마음을 깨치면 곧 습기에 물들지 아니하리라. 만일 성인으로 좇아 범부에 들어 여러 가지 잡된 무리를 나타내는 것은 스스로 중생을 위하는 까닭이니라. 성인은 거슬리고 순종하는 데 다 자재함을 얻으시어 일체 업이 저 성인을 구속하지 못하니라. 성인을 이루어 오래됨에 큰 위덕이 있나니, 일체 품류의 업각항차별 업력이 저 성인에게 굴림을 입어 천당 지옥이 저 성인을 어찌하지 못하니라. 범부는 신식신령스럽게 아는 것이 어두워 성인의 내외가 명철한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만일 의심이 있거든 곧 짓지 말지니, 의심을 지으면 곧 생사에 유랑하리니, 후회하여도 쓸 곳이 없으리라. 빈궁하고 곤고한 것이 다 망상으로 좇아 나는 것이니, 만일 마음을 요달하여 서로서로 권면함에 다만 지음이 없이 지으면 곧 대각의 지견에 들어가리라. 초발심인은 신식이 다 정하지 못한 것이니, 만일 꿈에 자주 기이한 경계를 볼지라도 문득 의심치 말지어다. 다 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밖으로 좇아오는 것이 아니니라. 꿈에 만일 광명이 나타남이 해보다 더 지나가면 곧 남은 습기가 다하고 법계성이 나타나고자 함이니라. 만일 이 일이 있으면 성각할 인연이니, 오직 자기만 알고 가히 타인을 향하여 말하지 말지어다.
0001_0059_a_01L或靜園林中에 行住坐臥타가 眼見光明或大或小라도 莫與人說하며 亦不得取着이니 亦是自性光明이니라 或夜暗中에 行住坐臥타가 眼見光明이 與晝無異이라도 不得怪니 幷是自心이 欲明이니라 或夜夢中에 見星月이 分明이면 亦自心諸緣이 欲息이니 亦不得向人說이어다 夢若昏昏하야 猶如陰暗中行이면 亦是自心煩惱障重이니 亦可自知이니라 若見本性이어든 不用讀68)經念覺이니 廣學多知는 無益이라 神識이 轉昏인라 設敎는 只爲標心이니 若識心인댄 何用看敎리요 若從凡入聖인댄 卽須息業養神하야 隨分過日이어다 若多嗔恚69)댄 與道相違이니 自賺無益이니라 聖人은 於生死中에 自在出沒하사 隱顯不定하나니 一切業이 拘他不得하며 能破邪魔이니라 一切衆生이 但見本性하면 餘習이 頓滅하고 神識이 不昧이니라 欲眞會道댄 莫執一法하고 息業養神이어다 餘習이 亦盡하면 自然明白하야 不假用功하리라.
0001_0059_b_01L혹 고요한 원림 가운데 행주좌와하다가 눈에 광명이 혹 크고 적음을 볼지라도 타인에게 말하지 말며, 또한 취착하지도 말지니 역시 자성광명이니라. 혹 어두운 밤 가운데 행주좌와하다가 눈에 광명을 보는 것이 낮과 다름없더라도 괴이쩍게 여기지 말지니, 아울러 자심이 밝고자 함이니라. 혹 밤의 꿈 가운데에 별과 달을 분명히 보면 또한 자심에 모든 인연이 쉬고자 함이니, 또한 타인에게 말하지 말지어다. 꿈이 만일 혼혼하여 마침 어둡고 음침한 곳에 닿는 것과 같으면 역시 자심에 번뇌장애가 무거운 것이니 또한 알지어다. 만일 본성을 보았거든 독경 염각하지 말지니, 널리 배워 많이 아는 것이 이익이 없는지라 신식이 전전이 어둡다. 설교는 다만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니, 만일 마음을 안다면 어찌 간교看敎를 쓰겠는가. 만일 범부로 좇아 성인에 들어간다면 곧 업을 쉬고 신통을 길러 분을 따라 날을 지낼지어다. 만일 진에가 많다면 도와 어기는 것이니, 자기가 자기를 속여 이익이 없다. 성인은 생사 가운데에서 자재하게 출몰하시어 숨고 나타나는 것이 일정한 것이 없으니, 일체 업이 저 성인을 구속하지 못하며 능히 사마를 항복 받으라. 일체중생이 다만 본성을 보면 습기가 다 없어지고 신식이 밝아 문득 알지니, 참 도를 알고자 한다면 한 법도 집착하지 말고 업을 쉬고 정신을 기를지어다. 습기가 또한 다하면 자연히 명백하여 공들임을 쓰지 아니할지니라.
0001_0060_a_01L外道는 不會覺意혼덜노 用功이 最多나 違背聖意로다 終日驅驅하야 念覺轉經이라도 昏於神性하야 不免輪廻이니라 覺是閑人이라 何用驅驅며 廣求名利하야 後時何用가 但不見性人은 讀經念覺하며 長學精進하며 六時行道하며 長坐不臥하며 廣學多聞等으로 以爲覺法하나니 此等衆生은 盡是謗覺法人이니라 前覺後覺이 只言見性이시니 若不見性하고 妄言我得無上大道인대는 此是大罪人이니라 十大弟子中에 慶喜가 多聞博學하야 識見이 第一이나 覺이 責之하사 只令聲聞과 外道로 無識케 하시니 識數修證은 墮在因果中일새니라 是는 衆生의 業報라 不免生死하며 違背覺意이니 卽是謗覺衆生이라 殺卻無罪이니라 經云闡提人은斷善行惡人 不生信心하나니 殺卻無罪라 하시니라 若有眞正信心인댄 此人은 是70)覺位人이니라 若不見性인댄 切不謗他良善이어다 自賺無益이니라 善惡이 歷然하고 因果가 分明이라 天堂地獄이 只在眼前이니라.
0001_0060_b_01L외도는 각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공력은 가장 많이 쓰나 성인의 뜻에 가장 어기는 것이니라. 날을 마치도록 구구히 하여 염각 독경을 하더라도 신성이 어두워신령스러운 성품이 어두워 윤회를 면치 못하니라. 각은 이 한가한 사람이라 어찌 구구하겠는가. 널리 명리를 배워 어디에 쓰겠는가. 다만 견성하지 못한 사람은 동경 염각하며 길이 정진하며 육시에 행도예배하며 항상 앉아 눕지 아니하며 널리 배우고 많이 듣는 것으로써 각의 법을 삼나니, 이러한 중생은 다 이 각의 법을 비방하느니라. 전각후각이 다만 견성을 말씀하시니, 만일 견성치 못하고 망령되이 내가 무상대도를 얻었다고 한다면 이것들은 큰 죄인이니라. 십대제자 가운데에 경희가 박학다문하시어 식견이 제일이나 각께서 꾸중하시어 다만 성문과 외도로 모든 식견을 놓아 버리게 하시니, 식수를 닦아 증득하는 것은 인과 가운데에 떨어지느니라. 이것은 중생의 업보로 생사를 면치 못하며 각의 뜻에 크게 어긋난 것이니, 곧 각을 비방하는 중생으로 죽여도 죄가 없다. 만일 진정한 신심이 있다면 이 사람은 각의 위에 있는 사람이니라. 만일 견성치 못하면 간절히 양선한 사람을 비방하지 말지어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이어서 유익함이 없다. 선악이 역연하고 인과가 분명하여서 천당 지옥이 목전에 있느니라.
愚人은 不信이라 見墮黑暗地獄이라도 亦不覺不知하나니 只緣業重故로 所以不信이니라 譬如無目人이 不信道有光明이니 縱向伊說이라도 亦不信ㅣ니 只緣盲故라 憑何辨得日光이리오 愚人도 亦復如是하야 見今墮畜生雜類하며 誕在貧窮下賤하야 求生不得하며 求死不得하나니 雖受是苦나 直問着하야는 亦言我今快樂이 不異天堂이라 하나니 故知커라 一切衆生은 生處로 爲樂하야 不覺不知로다 如斯惡人은 只緣障重일새니라 若見自心是覺인댄 不在剃除鬢髮이니 白衣도 亦是覺이니라 若不見性이면 剃除鬚髮이라도 亦是外道이니라.
0001_0061_a_01L미련한 사람은 믿지 아니하여서 흑암지옥에 떨어져도 또한 깨치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니, 다만 업이 중하기 때문에 믿지 아니하느니라. 비유하건댄 눈이 없는 사람이 낮에 광명이 있음을 믿지 아니하나니, 비록 저를 향하여 말할지라도 또한 믿지 아니하는 것은 다만 눈이 먼 까닭에 무엇을 의거하여 낮에 광명을 가리겠는가. 어리석은 사람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현금에 축생 잡류에 떨어지며 빈궁하천에 탄생하여 있어 살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며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나니, 비록 이 고통을 받으나 바로 물으면 대답하길, 나의 즐거움이 천당과 다르지 아니함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알라. 일체중생은 나는 곳으로 쾌락을 삼아 깨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느니라. 이와 같은 악인은 다만 장애가 무거울 뿐이니라. 만일 자심이 이 각임을 본다면 수발을 깎고 승려가 되는 데 있지 아니하니, 백의 입은 속인이라도 또한 각이니라. 만일 견성하지 못하면 머리 깎고 승려가 되어도 또한 외도이니라.”
제4절 도부재산야道不在山野
問曰白衣는 有妻子하야 婬慾71)을 不除커니 憑何得成覺이닛고 答曰只言見性하고 不言婬慾이니 但得見性하면 婬慾이 本來空寂이라 不假斷除하며 亦不樂着이니 縱有餘習이라도 不能爲害이니라 何以故오 性本淸淨故니 雖處五蘊色身中이라도 其性이 本來淸淨하야 不得染汚이니라 法身은 本來無受하며 無飢無渴하며 無寒熱하며 無疾病하며 無因愛無眷屬하며 無苦樂無好惡하며 無短長無强弱하야 本來無有一物可得이언마는 只緣有此色身하야 卽有飢渴寒熱瘴病等相하나니 若不賺欺어든 一任作이어다 若於生死中에 得自在하야 轉一切法하야 與聖人神通으로 自在無礙하면 無處不安하리라 若心有疑면 決定透一切境界不過하야 不免輪廻生死이니 若見性이면 旃陀羅라도 亦得成覺이니라.
묻길, “세인은 처자가 있어 음욕을 제거하지 못하거니, 어찌 성각함을 얻겠습니까?”
답하길, “견성만 말하고 음욕을 말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견성만 하면 음욕은 본래 공적한 것이다. 끊기를 가자할 것도 아니며 또한 낙착할 것도 아니니,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능히 해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성품이 본래 청정한 연고니, 비록 오온색신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성품이 본래 청정하여 더럽히지 못하느니라. 자성은 본래 받는 것도 없으며 주리고 목마른 것도 없으며 한열도 없으며 질병도 없으며 은혜도 없으며 권속도 없으며 고락도 없으며 호오도 없으며 장단도 없으며 강약도 없어 본래 한 물건도 없지만 다만 색신이 있는 것을 인연하여 곧 기갈·한열·장병 등이 있나니, 만일 속지 아니한다면 한번 짓기를 무던히 할지어다. 만일 생사 가운데 자재함을 얻어 일체법을 능히 굴리어 성인의 신통과 자재 무애한다면 처소마다 편안치 아니한 곳이 없느니라. 만일 의심이 있으면 결정적으로 일체경계를 뚫어 내지 못하여 생사윤회를 면치 못할지니라. 만일 견성만 하면 소 잡는 백정이라도 또한 성도하리라.”
제5절 도한역득성도屠漢亦得成道
0001_0062_a_01L問曰旃陀羅는 殺生作業이어니 如何得成覺이닛고, 答曰只言見性이요 不言作業이니 縱使作業이라도 不同迷人하야 一切業이 抱他不得이니라 從無始曠大劫來로 只爲不見性함으로 墮在地獄中이라 所以作業하야 輪廻生死어니와 悟得本性하면 終不作業이니라 若不見性하면 念覺이라도 免報不得이니 非論殺生이니라 若見性하야 疑心을 頓除하면 殺害生命이라도 亦奈何他不得하리라 自西天二十八祖로 只是遞傳心印하시고 吾今에 來此土도 唯傳頓敎卽心是覺이오 不言持戒精進苦行과 乃至入水火登釗輪과 一食長坐不臥이니 盡是外道有爲之法이니라 若識得施爲運動靈覺之性하면 汝心이 卽諸覺心이니라 前覺後覺이 只言傳心하시고 更無別法이니라 若識此心하면 一字不識이라도 亦是覺이니라 若不識自己靈覺之性이면 假使身破微塵이라도 成覺은 終不可得也ㅣ니라 覺者는 亦名法身이며 亦名覺心이니 此心은 無形相하며 無因果하며 無筋骨이라 猶如虛空하야 取不得이니 不同質界하며 不同外道하니라 此心은 除大覺一人能會하고 其餘衆生迷人은 不明了이니라.
0001_0062_b_01L묻길, “전다라는 살생작업하거니 어찌 성각하겠습니까?”
답하길, “다만 견성만 말하고 작업은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비록 업을 짓더라도 미혹한 사람과 같지 아니하기에 일체 업이 견성한 사람을 구속하지 못하니라. 무시광대겁으로부터 좇아옴으로 다만 견성을 못했기에 지옥 가운데 떨어지나니, 그런 까닭으로 업을 지어 생사에 윤회하거니와 본성을 깨치면 마침내 업을 짓지 아니하니라.
만일 견성하지 못하면 염각이라도 업보를 면치 못하나니, 살생을 의논할 것이 아니니라. 만일 견성해서 의심이 없으면 생명을 살해하였더라도 또한 업력이 저 견성한 사람을 어찌하지 못하니라. 서천 이십팔조로부터 다만 이 서로서로 심인을 전하시고 나도 이제 이 나라에 온 것은 오직 돈교대기에 즉심시각을 전하고 계율을 가지고 정진하고 고행하며 내지 물과 불 중에 임의로 들어가고 검륜 위에도 올라가며 일종식하고 밤이나 낮이나 앉아서 눕지 아니한 그런 것은 말하지 아니하니라. 그것들은 외도의 유위법이요 각법이 아니니라.
만일 시위운동하는 영각의 성품을 알면 너의 마음이 곧 제각심이다. 전각후각이 다만 마음을 전하는 것만 말하시고 다시 별법이 없다. 만일 이 마음을 알면 일자무식이라도 또한 각이니라. 만일 자기 영각의 자성을 알지 못하면 가사 몸을 미진같이 부수더라도 성각은 못하느니라. 각이라는 것은 또한 이름이 법신이며 또한 이름이 각심이니, 이 마음은 형상이 없으며 인과가 없으며 힘줄과 뼈가 없느니라. 마치 허공과 같아서 취할 수 없나니, 질애가 있는 것과 같지 아니하며 외도와 같지 아니하다. 이 마음은 대각만 능히 아시고 그 미혹한 중생들은 밝게 알지 못하니라.”
此心은 不離四大色身中이니 若離此心이면 卽無能運動이니라 是身無知홈이 如草木瓦礫이라 身是無情이어니 因何運動고 若自心動으로 乃至語言施爲運動見聞覺知히 皆是動心動用이니라 動是心動이오 動卽其用이니 動用外에는 無心하고 心外에는 無動일새니라 動不是心이오 心不是動이니 動本無心이오 心本無動일새니라 動不離心하고 心不離動이나 無心離離하며 無心動動이니라 是心用用이오 是心動動이니 卽心用用이며 卽心動動일새니라 不動不用이니 用體本空이라 空本無動일새니라 動用이 同心이나 心本은 無動이로다 故로 經에 云動而無所動이라 하시니 終日去來而未曾去來요 終日見而未曾見이오 終日笑而未曾笑요 終日聞而未曾聞이요 終日喜而未曾喜요 終日行而未曾行이오 終日住而未曾住이니라.
0001_0063_b_01L이 마음은 사대 색신을 떠나지 아니하니, 만일 이 마음을 떠나서는 곧 능히 운동하는 것이 없다. 이 몸이 앎이 없는 것이 초목와력과 같으니라. 이 몸은 무정하거니 무엇을 인하여 운동하는가. 만일 마음으로부터 내지 언어 시위운동과 견문각지가 다 이 동한 마음이 동한 작용이며 동한 것은 이 마음이 동한 것이니라. 동한 것은 곧 그 작용이니, 동한 작용 밖에는 따로 심이 없고 심 외는 따로 동이 없느니라. 동한 것을 이 심이라 할 수 없고 심을 이 동이라 할 수 없으니, 동의 근본이 심이 없고 심의 근본이 동이 없기 때문이다. 동은 심을 떠난 것이 아니요, 심은 동을 떠난 것이 아니나 심은 떠나고 떠난 것이 없으며 심은 동하고 동한 것이 없다. 이 심이 작용하고 작용하는 것이요, 곧 심의 전체가 동하고 동하느니라. 동도 아니요 용도 아니니 용체가 본래 공하여 그 공한 근본은 동이 없기 때문이다. 동용이 한 가지 마음이나 마음 근본은 동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길, “동하여도 동한 바가 없다 하시니, 날이 마치도록 거래하여도 일찍이 웃어도 거래함이 없고, 날이 마치도록 보아도 일찍이 보는 것이 없고 날이 마치도록 웃어도 일찍이 웃는 것이 없고, 날이 마치도록 들어도 일찍이 듣는 것이 없고, 날이 마치도록 즐거워하여도 일찍이 즐거워하는 것이 없고, 날이 마치도록 다녀도 일찍이 다니는 것이 없고, 날이 마치도록 머물러도 일찍이 머무는 것이 없느니라.”
0001_0064_a_01L故로 云言語道斷하고 心行處滅이라 하시니 見聞覺知가 本自圓寂이라 乃至瞋喜痛痒이 何異木人이리오 轉轉推尋에 痛痒을 不可得이로다 故로 經경에 云惡業은 卽得苦報하고 善業은 卽得善報이라 하시니 不但嗔墮地獄하고 喜卽生天이라 若知嗔喜性空하야 但不執着이면 卽脫業力하리라 若不見性이면 講得經論이라도 決無依72)憑, 說亦無盡일새 略標邪正如是나 一一不及也하노라.
頌曰
心心心이여 難可尋이로다 寬時에 遍法界하고 窄也不容鍼이로다 我本求心不求覺이라了知三界空無物이로다 若欲求覺但求心이니 只這心心心是覺이로다 我本求心心自持이라 求心에 不得待心知어다 覺性은 不從心外得이니 心生便是罪生時이니라.
說頌曰
吾本來此土는 傳法救迷情이니 一華開五葉에 結果自然成하리라.
0001_0064_b_01L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길, “언어도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함”이라 하시니, 견문각지가 본래 스스로 두렷이 고요하며 나아가 진심이 나고 기꺼워하고 아프고 가려움이 어찌 목인과 다르겠는가. 전전이 추구하여 찾음에 아프고 가려움을 얻지 못할지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길, “악업은 괴로운 과보를 얻고 선업은 착한 과보를 얻는다.”라고 하시니, 다만 악은 지옥에 떨어지고 선은 천상에 날 뿐만 아니라, 만일 선악의 진희가 공한 줄을 깨쳐 다만 집착심이 없으면 곧 업력을 벗으리라. 만일 견성치 못하면 경론을 강하더라도 결정적으로 의거할 곳이 없으리라. 말로 다할 수 없기에 간략히 삿됨과 바름을 표함을 이와 같이 하지만 낱낱이 미치지 못하니라.

송하여 말하되

마음마음이라고 하는 마음이여!
가히 찾기 어렵다.
너그러울 때에는 법계에 편만하고,
좁을 때에는 또한 바늘도 용납할 수 없다.

나는 본래 마음을 구하고 각을 구하지 아니한다.
삼계가 공하여 물건이 없음을 밝게 알았다.
만일 각을 구하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을 구할지니,
다만 마음마음이라고 하는 마음이 이 각이다.

나는 본래 마음을 구하여 마음을 스스로 가진다.
마음을 구함에 실어금 마음 알기를 기다리지 말지어다.
각성은 마음 밖을 좇아 얻는 것이 아니니,
마음이 생함에 문득 이 죄가 생하는 때니라.

게를 설하여 말하되

내가 본래 이 나라에 온 것은
법을 전하여 미정을 구원하려 함이다.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림에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선문촬요禪門撮要 제4권
고려高麗 보조국사普照國師 진심직설眞心直說
1. 진심정신眞心正信
華嚴에 云信爲道源功德母ㅣ라 長養一切諸善根이라 하시며 又唯識에 云信如水淸珠라 能淸濁水故라 하시니 是知萬善發生이 信爲前導로다 故로 覺經首에 立如是我聞은 生信之所謂也ㅣ니라 或曰祖門之信이 與敎門信으로 有何異耶오 曰多種不同하니 敎門에는 令人天으로 信於因果호대 有愛福樂者면 信十善으로 爲妙因하고 人天으로 爲樂果하며 有樂空寂者면 信生滅因緣으로 爲正因하고 苦集滅道로 爲聖果하며 有樂覺(佛)果者면 信三劫六度로 爲大因하고 成正覺(菩提涅槃)으로 爲正果어니와 祖門正信은 非同前也ㅣ니라 不信一切有爲因果하고 只要信自己本來是覺(佛)이니 天眞自性이 人人具足하고 圓覺(涅槃)妙體가 箇箇圓成하야 不假他求라 從來自備이니라.
0001_0065_b_01L三祖云圓同太虛하야 無欠無餘언만 良由取舍하야 所以不如라 하시며 志公이 云有相身中에 無相身이오 無明路上에 無生路라 하시며 永嘉云無明實性이 卽覺性이오 幻化空身이 卽法身이라 하시니 故知衆生이 本來是覺이로다 旣生正信이라도 須要解滋이니 永明云信而不解면 增長無明하고 解而不信이면 增長邪見이라 하시니 故知信解相兼하야사 得入道疾이니라.
或曰初發信心하야 未能入道라도 有利益否아 曰起信論에 云若人이 聞是法已하고 不生怯弱하면 當知是人은 定紹覺(佛)種이라 必爲諸覺(佛)之所授記하리니 假使有人이 能化三千大千世界滿中衆生하야 令行十善이라도 不如有人이 於一念頃에 正思惟此法이니 達(過)前功德하야 不可爲喩라 하시며 又般若經에 云乃至一念生淨信者는 覺(如來)이 悉知悉見하나니 是諸衆生이 得如是無量福德이라 하시니 是知欲行千里인대는 初步를 要正이로다 初步를 若錯이면 千里俱錯인달하야 入無爲國인댄 初信步를 要正이니 初信을 旣失하면 萬善이 俱退라리라 故로 祖師云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이라 하시니 是此理也ㅣ라.
0001_0066_a_01L『화엄경』에 말씀하시길,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다. 일체 모든 선근을 기른다.”라고 하며, 『유식론』에 말씀하시길, “믿음은 물을 맑히는 구슬과 같다.”라고 하시니, 그러므로 일만 선을 발생함은 믿음이 앞을 인도함을 알지니라. 각경의 첫머리에 여시아문을 세우는 것은 믿음을 내게 함이다. 조사의 문의 믿음이 교문의 믿음으로 더불어 무엇이 다릅니까? 답하길, 여러 가지가 다르니라. 교문에는 인천으로 하여금 인과를 믿게 하여 복락을 사랑하는 자는 십선을 믿음으로 묘한 인을 삼아 인간 천상에 나는 걸로 즐거운 결과를 삼으며, 공적을 즐기는 생멸인연을 믿음으로 정인을 삼아 고집멸도로 성과를 삼으며, 각과를 즐기는 자는 삼무수겁에 육도만행을 닦음으로 큰 인을 삼고 성정각으로 정과를 삼거니와 조사문중에 정신은 교문에 믿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일체 유위인과를 믿지 아니하고 단지 자기 심성이 본래 대각임을 믿을지니, 천진자성이 사람사람이 구족하고 자성묘체가 각각이 원성하여 타인에게 구함을 가자하지 아니하니라. 종래로 스스로 갖추었다.
3조 이르시길, “두렷이 태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건마는 진실로 취사를 말미암은 까닭으로 같지 아니하다.”라고 하였고, 지공이 이르시길, “상이 있는 몸 가운데에 상이 없는 몸이요, 무명의 길 위에 생사가 없는 길”이라 하시며, 영가 이르시길, “무명의 실다운 성품이 곧 각성이요, 환화 헛된 몸이 곧 법신이라.”라고 하시니, 그러므로 알라. 중생이 본래 이 각이다. 이미 정신正信을 내었더라도 모름지기 이것을 알아야 하리라. 영명이 이르시길, “나의 성리를 알지 못하고 믿기만 하면 무명을 증장하고 알고 믿지 아니하면 사견을 증장함이라.”라고 하셨으니, 그러므로 믿음과 아는 것이 서로 겸하여야 도에 들어감이 빠르리라.
혹 이르길,
“처음으로 신심을 발하여 능히 도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이익이 있습니까?”
답하되,
“『기신론』에 이르시길, ‘만일 사람이 이 법을 듣기를 마치고 겁내지 아니하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바로 각성종자를 이루리라. 반드시 자각의 수기한바 되리니, 가사 어떠한 사람이 능히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중생을 화하여 하여금 십선을 행케 하더라도 어떠한 사람이 한 생각 사이에 바로 이 법을 생각함만 같지 못하니, 앞의 공덕을 지나서 가히 비유치 못할 것이라’고 하시고, 또 『반야경』에 이르시길, ‘내지 일념이라도 깨끗한 믿음을 내는 자는 대각(여래)이 다 알며 다 보나니, 이 모든 중생이 이와 같은 무량복덕을 얻을 것이라’고 하시니, 이것을 알아라. 천리를 가고자 한다면 첫걸음을 바로 할 것이다. 초보를 만일 어기면 천 리가 함께 어긴 것으로 무위국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처음 신심을 바로 할 것이니, 처음 믿음을 이미 잃어버리면 만선이 함께 물러갈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 이르시길, ‘호리라도 어김이 있으면 천지현격이라’고 하시니, 이 이치니라.”
2. 진심이명眞心異名
0001_0067_a_01L或曰已生正信이어니와 未知커라 何名眞心고 曰離妄名眞이오 靈鑑曰心이니 楞嚴經中이 發明此心하니라 或曰但名眞心耶아 別有異號耶아 曰覺(佛)敎祖敎가 立名不同하니 且覺(佛)敎者는 正士(菩薩)戒에 呼爲心地이니 發生萬善故요 般若經에 喚作覺(菩提)이니 與覺(佛)爲體故요 華嚴經에 立爲法界이니 交徹融攝故요 金剛經에 號爲如來ㅣ니 無所從來故요 般若經에 呼爲圓寂(涅槃)이니 衆聖所歸故요 金光明經에 號曰如如니 眞常不變故요 淨名經에 號曰法身이니 報化依止故요 起信論에 名曰眞如이니 不生不滅故요 圓寂(涅槃)經에 呼爲覺性이니 三身本體故요 圓覺經(中)에 名曰總持이니 流出功德故요 勝鬘經에 號曰如來藏이니 隱覆含攝故요 了義經에 名爲圓覺이니 破暗獨照故이니라.
0001_0067_b_01L由是로 壽禪師唯心訣에 云一法千名이라 應緣立號라 하시니 備在衆經이라 不能具引하노라 或曰佛敎는 已知어니 祖敎는 何如오 曰祖師門下에 杜絶名言하야 一名도 不立이어니 何更多名이리오만 應感隨機에 其名이니 亦衆하니라 有時에 呼爲自己이니 衆生本性故오 有時에 名爲正眼이니 鑑諸有相故오 有時에 號曰妙心이니 虛靈寂照故요 有時에 名曰主人翁이니 從來荷負故오 有時에 呼爲無底鉢이니 隨處生涯故요 有時에 喚作沒絃琴이니 韻出今時故오 有時에 號曰無盡燈이니 照破迷情故요 有時에 名曰無根樹이니 根蒂堅牢故오 有時에 呼爲吹毛劍이니 截斷塵根故오 有時에 喚作無爲國이니 海晏河淸故오 有時에 號曰牟尼珠이니 濟益貧窮故오 有時에 名曰無鑐鎖니 關閉六情故오 乃至名泥牛木馬心源心印心鏡心月心珠種種異名을 不可具錄이로다 若達眞心하면 諸名을 盡曉어니와 昧此眞心하면 諸名을 皆滯하리니 故로 於眞心에 切宜子細하노라.
혹 이르길, “이미 정신바로 믿는 것을 내었지만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이름이 진심입니까?”
답하길, “망령된 것을 떠난 것이 참된 것이요, 신령스럽게 감각하는 것을 마음이라 하나니, 『능엄경』에 이 마음을 발명하시니라.”
혹 이르길, “다만 이름을 진심이라 합니까? 별도로 바른 명호가 있습니까?”
답하길, “각교 조교가 이름을 세움이 다르니, 또한 각교는 정사(보살)계에 심지라고 부르니, 만선을 발생하는 연고요. 『반야경』에 정각이라고 부르나니, 각으로 체가 된 연고요, 『화엄경』에 법계라고 세우는 것은 서로 사귀어 융통하게 섭수하는 연고요, 『금강경』에 여래라고 하시니, 좇아오는 바가 없는 연고요, 『반야경』에 열반이라 하나니, 여러 성현이 돌아가 의지하는 연고요, 『금광명경』에 여여라 하나니, 참으로 떳떳하여 변치 않는 연고요, 『정명경』에 법신이라 하나니, 보신각(보신불)과 화신이 의지한 연고요, 『기신론』에 진여라고 하나니, 나지도 아니하고 멸하지도 아니한 연고요, 『열반경』에 각성(불성)이라 하나니, 삼신의 본체인 연고요, 『원각경』에 총지라 하나니, 공덕을 출생하는 연고요, 『승만경』에 여래장이라 하나니, 번뇌가 여래를 능히 숨기어 덮는 연고요, 또 여래가 능히 자체 내에 만법을 머금어 섭수하는 연고요, 『요의경』에 원각이라 하나니, 어둔 것을 파하고 홀로 비추는 연고이니라.
0001_0068_b_01L이로 말미암아 연수 선사73)가 『유심결』에 이르시길, ‘한 법의 이름이 천 가지다. 인연을 응하여 호를 세움’이라 하시니, 갖추어 여러 경에 설하였느니라. 능히 갖추어 인증할 수 없다.”
혹 이르길, “각교(불교)는 이미 알았거니와 조사의 교는 어떠합니까?”
답하길, “조사의 문하는 이름과 말을 두절막아 끊는다는 말하여 일명도 세우지 아니하였거니, 어찌 이름하겠는가마는 감응에 응하고 기틀을 좇아 그 이름이 또한 많다.
어떤 때에는 정안이라 하나니 모든 상 있는 것을 감각하는 연고요, 어떤 때에는 묘심이라 하나니 허령적조한 연고요, 어떤 때에는 주인옹이라 하나니 종래로 어깨에 매인 연고요, 어떤 때에는 무저발이라 하나니 곳을 따라 생활하는 연고요, 어떤 때에는 줄 없는 거문고라 하나니 금시를 울려 내는 연고요, 어떤 때에는 무진등이라 하나니 미혹한 망정을 비추어 타파하는 연고요, 어떤 때에는 뿌리 없는 나무라 하나니 뿌리와 꼭지가 견고한 연고요, 어떤 때에는 취모검이라 하나니 근진(육근과 육진)을 절단하는 연고요, 어떤 때에는 무위국이라 하나니 해안하청(태평세월)한 연고요, 어떤 때에는 마니주라고 하나니 빈궁을 건너는 연고요, 어떤 때에는 무수쇄라 하나니 육정을 개폐(六情開閉)하는 연고요 내지 이름이 진흙 소와 나무 말이며 심원이고 심인이며 심경이고 심월이며 심주며 가지가지 다른 이름을 가히 갖추어 기록하지 못하니라. 만일 참마음을 통달하면 모든 이름을 다 알겠지만 이 진심을 매하면 모든 이름을 다 알지 못할지니라. 그러므로 저 진심에 간절히 자세히 할지니라.”
3. 진심묘체眞心妙體
或曰眞心은 已知名字어니와 其體如何耶오 曰放光般若經에 云74) 般若는 無所有相이라 無生滅相이라 하시고 起信論에 云眞如自體者는 一切凡夫聲聞緣覺正士(菩薩)諸覺(佛)이 無有增減하야 非前際生이며 非後際滅이니 畢竟常恒하야 從本已來로 性自滿足一切功德이라 하시니 據此經論컨댄 眞心本體가 超出因果하며 通貫古今이로다 不立凡聖하야 無諸對待홈이 如太虛空이 遍一切處달하야 妙體凝寂하야 絶諸戱論이로다 不生不滅하며 非有非無하며 不動不搖하야 湛然常住하나니 喚作舊日主人翁이라 하며 名曰威音那畔人이며 又名空劫前自己라 하나니 一種平懷하면 無纖毫瑕翳하나니 一切山河와 大地草木과 叢林萬象森羅와 染淨諸法이 皆從中出하나니라 故로 圓覺經에 云善男子야 無上法王이 有大陀羅尼門하니 名爲圓覺이라 流出一切淸淨眞如와 正覺(菩提)圓寂(涅槃)과 及波羅蜜하야 敎授正士(菩薩)이라 하시고.
0001_0069_a_01L圭峰이 云心也者는 沖虛妙粹하고 炳煥靈明이로다 無去無來라 冥通三際하고 非中非外라 洞徹十方이로다 不滅不生이라 豈四山之可害며 離性離相이라 奚五色之能盲이리오하며 故로 永明唯心訣에 云夫此心者는 衆妙群靈이 而普會라 爲萬法之王오 三乘五性而冥歸라 作千聖之母로다 獨尊獨貴하며 無比無儔하나니 實大道之源이며 是眞法之要로다 信之則三世正士(菩薩)가 同學蓋學此心也오 三世諸覺(佛)이 同證蓋證此心也오 一大藏敎가 詮顯蓋顯此心也오 一切衆生의 迷妄이 蓋迷此心也오 一切行人의 發悟가 蓋悟此心也오 一切諸祖의 相傳이 蓋傳此心也오 天下行者(衲僧)의 參訪이 蓋參此心也로다 達此心則頭頭皆是며 物物全彰이오 迷此心則處處顚倒요 念念痴狂이로다 此體는 是一切衆生의 本有之覺(佛)性이며 乃一切世界의 生發之根源이로다 故로 大覺(世尊)이 鷲峰에 良久하시고 善現이 巖下에 忘言이삽다 達磨少室에 壁觀하시고 居士毘耶에 杜口하시니 悉皆發明此心妙體시니라 故로 初入祖門庭者ㅣ는 要先識此心體也ㅣ니라.
0001_0069_b_01L혹 이르길, “진심의 명자는 이미 알았거니와 그 체가 어떠합니까?”
답하시길, “『방광반야경』에 이르시길, ‘지혜는 형상이 없기에 생멸이 없다’ 하시고, 『기신론』에 이르시길, ‘진여 자체는 일체 범부, 성문, 연각, 정사(보살), 제각(諸佛)이 증감이 있음이 없어 전제에 생하는 것도 아니며, 후제에 멸하는 것도 아니니, 필경에 항상하여 본래로 좇아서 옴으로 성품이 스스로 일체 공덕이 만족함’이라 하시니, 이 경론을 의거하면 진심본체가 인과에 초출하며 고금을 관통함이라. 범성을 세우지 아니하여 모든 대대가 없는 것이 태허공이 일체 처소를 두루하는 것과 같다. 묘체가 고요하여 모든 희론이 끊어졌다. 나는 것도 아니며 멸한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며, 요동치 아니하여 깨끗하게 항상 있나니, 옛날 주인옹이라 하며, 또한 위음나반인이라 하며, 또한 이름이 공겁 이전 자기라 하나니, 한 가지 평평한 생각을 하면 섬호의 티끌도 가림이 없나니, 일체 산하와 초목 총림과 만상삼라와 염정제법이 다 가운데로 좇아 나느니라. 그러므로 『원각경』에 이르시길, ‘선남자야, 무상법왕에게 대다라니 문이 있으니 이름이 원각이다. 일체 청정진여와 보리와 열반과 및 바라밀을 유출하야 정사를 교수한다’ 하시고,
0001_0070_a_01L규봉이 이르시길, ‘마음이라는 것은 비고 미묘하여 정밀하고 빛나면서 신령하여 밝다. 무래무거라 그윽이 삼제三際에 통하고 비중비외하여 훤출이 시방에 사무쳤다. 불생불멸이라 어찌 사생(生老病死)이 가히 해롭게 하며, 성품을 떠나고 상도 떠났는데 어찌 오색이 능히 눈을 멀겠는가?’ 하며, 영명이 『유심결』에 이르시길, ‘대저 이 마음은 모든 묘한 것과 모든 신령한 것이 널리 모인 것이다. 만법에 왕이 되고 홀로 귀하며 견줄 데가 없고, 짝이 없나니 진실로 대도의 근원이며 이 진법의 강요다. 믿으면 삼세 정사가 한 가지 이 마음을 배우며 삼세 제각이 한 가지 이 마음을 증득하며, 일대장교가 이 마음을 나타내며, 일체중생이 이 마음을 미혹한 것이며 일체 수행인이 이 마음을 깨친 것이며, 일체 모든 조사의 서로 전한 것이며, 천하 행자가 이 마음을 참방하는 것이라. 이 마음을 통달한다면 두두가 다 이것이며 물물이 온전히 드러남이요, 이 마음을 미혹한다면 처처에 전도하며 염념이 치광함이니라. 이 본체는 이 일체중생의 본유각성이며 일체 세계를 발생하는 근원이다. 그러므로 대각이 영축봉에서 양구하시고 선현(수보리)이 바위 아래에서 말을 잊으셨다. 달마는 소실에서 벽을 관하시고 (유마)거사는 비야리에서 입을 막으시니, 다 이 마음의 묘체를 발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조사문정에 들어오는 자는 종요로이 먼저 이 마음의 본체를 알지니라.’ ”
4. 진심묘용眞心妙用
0001_0070_b_01L或曰妙體는 已知어니와 何名妙用耶오 曰古人이 云風動心搖樹요 雲生性起塵이로다 若明今日事댄 昧卻本來人이라 하니 乃妙體起用也이니라 眞心妙體는 本來不動하야 安靜眞常이나 眞常體上에 妙用現前하니 不妨隨流得妙로다 故로 祖師頌云心隨萬境轉이나 轉處寔能幽로다 隨流認得性하면 無喜亦無憂라 하시니 故로 一切時中에 動用施爲호대 東行西往하며 喫飯著衣하며 拈匙弄筯(箸)하며 左顧右盻이 皆是眞心의 妙用現前이어늘 凡夫는 迷倒하야 於著衣時에 只作著衣會하며 喫飯時에 只作喫飯會하나니 一切事業이 但隨相轉일새 所以로 在日用而不覺하며 在目前而不知로다 若是識性之(底)人인댄 動用施爲에 不曾昧卻이니라.
故로 祖師云在胎名神이오 處世名人이오 在眼觀照요 在耳聽聞이오 在鼻嗅香이오 在口談論이오 在手執捉이오 在足運奔이니 遍現하면 俱該法界하고 收攝하면 在一微塵하나니 知之者는 爲是覺(佛)性이어니와 不識者는 喚作精魂이라 하나니 所以로 道吾의 舞笏과 石鞏의 拈弓과 袐魔의 擎杈와 俱胝의 豎指와 忻州의 打地와 雲巖의 師子가 莫不發明這著大用이니 若於日用에 不迷하면 自然縱橫無礙也하리라.
0001_0071_a_01L혹 이르길, “묘체는 이미 알았거니와 어찌 이름을 묘용이라 합니까?”
답하시길, “고인이 이르길, ‘바람이 동함에 마음 나무가 흔들리고 구름이 일어남에 성품의 티끌이 일어남이라. 만일 금일의 일을 밝힌다면 본래의 사람을 매각할 것이니, 이는 이에 묘체의 용을 일으킴이라. 진심묘체는 본래 동하지 아니하여 안정진상하나 진상체상에 묘용이 현전하니, 유를 따라 묘를 얻음이 방해하지 아니하니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조사가 송하여 이르시길,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 굴리나 굴리는 곳에 다 능히 깊숙하다. 유를 따라 성품을 알면 즐거워함도 없고, 또한 근심도 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일체 시중에 동용시위動用施爲하되 동서에 왕래하며 밥 먹고 옷 입으며 숟가락 잡고 젓가락을 희롱하며 왼쪽 보고 오른쪽 보는 것이 다 참마음에 묘용이 현전한 것인데 범부는 미혹함에 전도되어 옷 입을 때에 다만 옷 입는 알음알이를 지으며, 밥 먹을 때에 다만 밥 먹는 알음알이를 짓나니, 일체 사업이 다만 상을 따라 굴림에 그런 까닭으로 날로 쓰면서 깨치지 못하며, 목전에 있지만 알지 못하느니라. 만일 이 성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동용시위에 일찍이 매각하지 아니할지니라.”
0001_0071_b_01L그러므로 조사 이르시길, “모태에 있어서는 이름이 신神이요, 세상에 처해서는 이름이 사람이요, 눈에 있어서는 보고, 귀에 있어서는 듣고, 코에 있어서는 냄새 맡고, 입에 있으면 말하고, 손에 있어서는 잡고, 발에 있으면 달아나나니, 두루 나타나면 함께 법계를 꾸리고 거두면 일 미진에 있나니, 아는 자는 이 각성이거니와 알지 못하는 자는 정혼이라 불러 짓는다고 하니, 그런 까닭으로 도오道吾는 홀로 춤추고, 석공은 활을 버티고, 비마는 나무집게를 가지고, 구지는 손가락을 세우고, 흔주는 땅을 치고, 운암은 사자를 희롱하는 것이 여기에 나타내어 이런 대용을 발명치 아니함이 없으니, 만약 일용에 미혹하지 아니하면 자연히 종횡으로 무애할지니라.”
5. 진심체용의 동일함과 다름(眞心體用一異)
或曰未審커라 眞心體用이 是一是異耶아 曰約相則非一이요 約性則非異이니라 故로 此體用은 非一非異이니75) 何以知然고 試爲論之허리라 妙體不動하야 絶諸對待하야 離一切相이니 非達性契證者ㅣ면 莫測其理也ㅣ니라 妙用隨緣하야 應諸萬類어든 妄立虛相하야 似有形狀하나니 約此有相無相故로 非一也ㅣ니라 又用從體發이라 用不離體하고 體能發用이라 體不離用하나니 約此不相離理故로 非異也ㅣ니라 如水는 以濕으로 爲體하나니 體無動故요 波는 以動으로 爲相하나니 因風起故이니라 水性波相이 動與不動故로 非一也이니라 然니나 波外에 無水하고 水外에 無波라 濕性이 是一인 故로 非異也ㅣ니 類上體用一異를 可知矣로다.
0001_0072_a_01L혹 말하길,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진심체용이 하나입니까 다릅니까?”
답하길, “현상을 잡으면 하나가 아니요, 본성을 잡으면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본체와 작용은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어찌해서 그러함을 아는가? 시험 삼아 의론하리라. 묘체는 동일하지 아니하여 모든 대대가 끊어져 일체 상을 여의었으니, 성품을 통달하여 증득한 자가 아니면 그 이치를 측량하지 못할지니라. 묘체가 연을 따라 모든 만 가지를 응하거든 망령되이 헛된 모양을 세워 형상이 있는 듯하니, 이 유상무상을 잡았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다. 또 용은 체를 좇아 발현하기에 용이 체를 여의지 못하고, 체는 능히 용을 발현한 것이기에 체는 용을 여의지 못하나니, 이것은 서로 여의지 못함을 잡았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아니니라. 물은 젖는 것으로 체를 삼나니, 체는 동치 아니하는 연고요, 파도는 동함으로써 상을 삼나니, 바람을 인하여 일어난 연고이니라. 물의 성품과 파도의 형상이 동하고 다만 동하지 아니하는 연고로 하나가 아니다. 파도 밖에는 물이 없고 물 밖에는 파도가 없기에 습성이 이 하나인 연고로 다른 것이 아니니, 체용이 하나이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하나임을 가히 알지니라.”
6. 진심재미眞心在迷
0001_0072_b_01L或이 曰眞心體用이 人人具有컨대 何爲聖凡不同耶오 曰眞心은 聖凡이 本同이언만 凡夫는 妄心認物흔들노 失自淨性이라 爲此所隔일새 所以로 眞心이 不得現前함이 但如暗中樹影과 地下流泉하야 有而不識耳이니라 故로 經에 云善男子야 譬如淸淨摩尼寶珠가 映於五色하야 隨方各現커든 諸愚痴者는 見彼摩尼에 實有五色인달하니라 善男子야 圓覺淨性이 現於身心하야 隨類各應커든 彼愚痴者는 說淨圓覺에 實有如是身心自性이라함도 亦復如是라 하시며 肇論에 云乾坤之內와 宇宙之間에 中有一寶가 袐在形山이라 하니 此乃眞心이 在纏也이니라 又慈恩이 云法身이 本有하야 諸覺(佛)凡夫가 共同이언마는 由有妄覆하야 而不覺煩惱纏裹할새 得如來藏名이라 하며 裴公이 云終日圓覺而未嘗圓覺者는 凡夫也ㅣ라 하니 故知眞心이 雖在塵勞나 不爲塵勞에 所染홈이 如白玉을 投泥에 其色이 不改也ㅣ인달하니라.
0001_0073_a_01L혹 이르길, “진심체용이 사람사람이 갖추어 있건만 어찌 성인범부가 같지 않습니까?”
답하길, “진심은 성인범부가 본래 같지마는 범부는 망령된 마음으로 물건에 집착하여 스스로 청정한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에 막힌 바가 되었기에 그런 까닭으로 진심이 나타나지 못함이 어두운 가운데 나무 그림자와 같고, 땅 아래 흘러가는 샘과 같아서 있어도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시길,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청정마니보주가 오색을 비추어 방소를 따라 각기 나타나거든 모든 우치한 자는 마니구슬에 실제로 청, 황, 적, 백 오색이 있는 것으로 보느니라. 선남자여! 원각의 청정한 성품이 몸과 마음을 나타내어 유를 따라 각기 나타나거든 저 우치한 자들은 깨끗한 원각의 성품에 실제로 이와 같은 몸과 마음의 모든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마니구슬에 오색이 있다는 것과 같으니라.
『조론』에 이르길, ‘건곤 안과 우주 사이에 그 가운데 한 보배가 형산(오온산)에 감추어져 있다’ 하니, 이는 이에 참마음이 번뇌에 얽힌 가운데 있느니라. 또 자은이 이르시길, ‘법신이 본래 있어 제각과 범부가 한 가지로 같건마는 망령된 것이 덮여 있음을 말미암아 번뇌로 감싸 얽힘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여래를 감득하였다는 이름을 얻음’이라 하며, 배 상국이 이르길, ‘날이 맞도록 원각이나 일찍이 원각이 아닌 자는 범부’라 하니, 그러므로 알라. 진심이 비록 진로에 있으나 진로에 더럽힘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 백옥을 진흙에 던짐에 그 빛이 고치지 아니한 것과 같으니라.”
7. 진심식망眞心息妄
或曰眞心이 在妄則是凡夫어니 如何得出妄成聖耶오 曰古云妄心無處에 卽正覺(菩提)이오 生死圓寂(涅槃)이 本平等이라 하며 經에 云彼之衆生의 幻身이 滅故로 幻心이 亦滅하며 幻心이 滅故로 幻塵이 亦滅하며 幻塵이 滅故로 幻滅이 亦滅하며 幻滅이 滅故非幻은 不滅하나니 譬如磨鏡에 垢盡明現탓하니라 하시며 永嘉亦云心是根이오 法是塵이라 兩種이 猶如鏡上痕이로다 痕垢盡時에 光始現이오 心法雙忘에 性卽眞이라 하니 此乃出妄而成眞也ㅣ니라.
0001_0073_b_01L或曰莊生云心者는 其熱燋火하고 其寒凝氷하며 其疾이 俛仰之間에 再撫四海之外하며 其居也애 淵而靜하고 其動也애 懸而天者는 其惟人心乎인저 하니 此는 莊生이 先說凡夫心不可治伏이 如此也ㅣ니 未審커라 宗門에는 以何法으로 治妄心也오 曰以無心法으로 治妄心也ㅣ니라 或曰人若無心이면 便同草木하니 無心之說을 請施方便하노라 曰今云無心者는 非無心體를 名無心也ㅣ라 但心中無物을 名曰無心이니 如言空甁컨대 甁中無物을 名曰空甁이오 非甁體無를 名空甁也ㅣ니라 故로 祖師云汝但於心에 無事하며 於事에 無心하면 自然虛而靈하며 寂而妙라 하니 是此心旨也ㅣ니라 據此則以無妄心이언정 非無眞心妙用也ㅣ니라 從來諸師가 說做無心功夫하사대 類各不同하니 今總大義하야 略明十種하리라.
一曰覺察인 謂做功夫時에 平常絶念하야 隄防念起호대 一念이 纔生이어든 便與覺破호리니 妄念破覺하면 後念이 不生하니 此之覺智도 亦不須用인 妄覺俱忘을 名曰無心이니라 故로 祖師云不怕念起하고 只恐覺遲라 하며 又偈云不用求眞하고 唯須息見이라 하니 此是息妄功夫也니라.
二曰休歇이니 謂做功夫時에 不思善不思惡하고 心起便休하며 遇緣便歇이니라 古人이 云一條白練去하며 冷湫湫地去하며 古廟裏香爐去라 하니 直得絶廉纖離分別하야 如痴似兀하야 方有少分相應하리니 此休歇妄心功夫也ㅣ니라.
0001_0074_a_01L三泯心存境이니 謂做功夫時에 於一切妄念을 俱息하야 不顧外境하고 但自息心이니 妄念(心)이 已息하면 何害有境이리오 卽古人의 奪人不奪境法門也ㅣ니라 故로 有語云是處에 有芳草호대 滿城無故人이라 하며 又龐公이 云但自無心於萬物이면 何妨萬物常圍繞리오 하니 此是泯心存境息妄功夫也이니라.
四泯境存心이니 謂做功夫時에 將一切內外諸境하야 悉觀爲空寂하고 只存一心하야 孤標獨立이니 所以로 古人이 云不與萬法으로 爲侶하며 不與諸塵으로 作對하라 心若著境하면 心卽是妄이어니와 今旣無境이어니 何妄之有리요 하니 乃眞心이 獨照하야 不礙於道라 卽古人의 奪境不奪人也ㅣ니라 故로 有語云上園에 花已謝호대 車馬尙騈闐이라 하며 又云三千劍客이 今何在오 獨計莊周定太平이라 하니 此是泯境存心息妄功夫也ㅣ니라.
五泯心泯境인 謂做功夫時에 先空寂外境하고 次滅內心이니 旣內外心境이 俱寂이어니 畢竟妄從何有리요 故로 灌溪云十方에 無壁落이오 四面에 亦無門하야 淨裸裸赤洒洒라 하니 卽祖師의 人境兩俱奪法門이 是也ㅣ니라 故로 有語云雲散水流去하니 寂然天地空이라 하며 又云人牛를 俱不見하니 正是月明時이라 하니 此는 泯心泯境息妄功夫也ㅣ니라.
0001_0074_b_01L六存境存心이니 謂做功夫時에 心住心位하고 境住境位하야 有時에 心境相對하야도 則心不取境하며 境不臨心하야 各不相到하면 自然妄念이 不生하고 於道에 無礙하리라 故로 經에 云是法이 住法位하야 世間相이 常住라 하시니 卽祖師의 人境俱不奪法門이 是也ㅣ라 故로 有語에 云一片月生海하니 幾家人上樓오하며 又云山花千萬朶에 遊子不知歸라 하니 此是存境存心滅妄功夫也ㅣ니라.
七內外全體니 謂做功夫時에 於山河大地日月星辰內身外器一切諸法이 同眞心體하야 湛然虛明하야 無一毫異하야 大千沙界를 打成一片이면 更於何處에 得妄心來리오 所以로 肇法師云天地與我同根이요 萬物이 與我同體라 하니 此是內外全體滅妄功夫也ㅣ니라.
八內外全用이니 謂做功夫時에 將一切內外身心器界諸法과 及一切動用施爲하야 悉觀作眞心妙用이니 一切心念纔生이 便是妙用現前이라 旣一切가 皆是妙用이어니 妄心向甚麽處安着(著)고 故로 永嘉云無明實性이 卽覺(佛)性이요 幻化空身이 卽法身이라 志公十二時歌에 云平朝寅 狂機內隱道人身이로다 坐臥에 不知元是道하고 只麽忙忙受苦辛가하시니 此是內外全用息妄功夫也ㅣ니라.
九卽體卽用이니 謂做功夫時에 雖冥合眞體一味空寂이나 而於中에 內隱靈明이니 乃體卽用也라 靈明中에 內隱空寂이니 用卽體也라 故로 永嘉云惺惺寂寂은 是이고 惺惺妄想은 非이며 寂寂惺惺은 是요 寂寂無記는 非라 旣寂寂中에 不容無記하고 惺惺中에 不用亂想이면 所有妄想(心)이 如何得生이리오 此是卽體卽用滅妄功夫也ㅣ니라.
0001_0075_a_01L十透出體用이니 謂做功夫時에 不分內外하며 亦不辨東西南北하야 將四方八面하야 只作一箇大解脫門圓陀陀地하야 體用不分하야 無分毫渗漏하야 通身打成一片이면 其妄이 何處得起리오 古人이 云通身無縫鏬라 上下忒團圝(欒)라 하니 是乃透出體用滅妄功夫也ㅣ니라.
已上十種做功夫法은 不須全用이니 但得一門하야 功夫成就하면 其妄이 自滅하고 眞心이 卽現하리니 隨根宿習하라 曾與何法에 有緣인지 卽便習之어다 此之功夫는 乃無功之功이오 非有心功力也이니라 此箇休歇妄心法門이 最緊要故로 偏多說하노니 無文繁也어다.
혹 이르길, “진심이 망령된 데 있으면 이 범부니, 어떻게 해서 망령된 데서 벗어나 성인이 되옵니까?”
답하길, “고인이 이르길, ‘망심이 없는 곳이 곧 정각이요, 생사와 원적이 본래 평등하다’ 하며, 경에 이르시길, ‘그 중생의 허환한 몸이 멸하므로 허환의 마음이 또한 멸하며 허환의 마음이 멸하므로 허환의 티끌이 또한 멸하며 허환의 티끌이 멸하므로 허환한 것이 멸한 것도 또한 멸하며 환멸한 것이 멸함으로 환이 아닌 것은 멸하지 아니하나니, 비유컨대 거울을 닦음에 때가 다하면 밝은 것이 나타남과 같다’ 하시며, 영가 이르시길, ‘마음은 뿌리요, 법은 이 티끌이다. 두 가지가 마침내 거울 위에 흔적 같다. 때가 다할 때에 거울의 광명이 비로소 나타나고 마음과 법을 잊음에 성품이 곧 참되다’ 하니, 이것은 망령된 데서 뛰쳐나와 참됨을 이루느니라.”
0001_0075_b_01L혹 이르길, “장자가 이르길, ‘마음은 그 뜨거움에 불타는 듯하며 얼음이 엉키는 듯하며 그 빠름은 쳐다보고 내려다볼 사이에 두 번이나 사해 밖을 쫓아 다니며 그 기거함에 맑아 고요하고 그 준동함에 하늘에 매달린 자는 그 오직 사람의 마음’이라 하니, 이것은 장자가 먼저 범부의 마음을 조복하지 못함이 이와 같음을 말한 것입니이다. 아직 알지 못하겠습니다. 종문에는 어떤 법으로써 망심을 다스립니까?”
답하길, “무심법으로 망심을 다스리느니라.”
혹 이르길, “사람이 무심하면 문득 초목과 같으니, 무심이라는 말을 청컨대 방편을 베푸소서!”
답하길, “이제 무심을 말하는 것은 참마음의 체가 없다는 것으로 무심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빈병을 말하자면 병 가운데 물건이 없는 것을 빈병이라 하는 것이요, 애초에 병이 없는 것을 빈병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조사 말씀하시길, ‘네가 다만 마음에 일이 없으며 일에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비고도 신령하고 고요하고도 묘하다’ 하니, 이것이 마음의 취지이다. 이것을 들지라도 망령된 마음만 없을지언정 진심묘용이 없단 말이 아니다. 종래로 제조사가 무심 공부 짓는 것을 말한 것이 종류가 각기 다르니, 이제 대의만 거두어 간략히 십종으로 밝히겠다.
0001_0076_a_01L첫째는 깨치어 살피는 것이니, 공부를 할 때에 평소에 생각을 끊어 생각이 일어남을 막되 한 생각이 겨우 일어나거든 문득 깨달아 타파할 것이니, 망령된 생각을 깨쳐 타파하면 뒷생각이 나지 아니하리라. 이 깨친 지혜도 또한 모름지기 쓸 것이 아니니, 번뇌 망상이나 깨치는 지혜나 다 한 가지 잊어버리는 것을 이름이 무심이라 하니라. 그러므로 조사 이르시길, ‘생각이 일어남을 무서워 말며, 오직 깨치기 더딜까 두려워하라’ 하시며, 또 게송에 이르시길, ‘별도로 참된 도를 구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소견을 쉬라’ 하니, 이것이 식망息妄 공부이니라.
둘째는 쉬는 것이니, 공부 지을 때에 선악을 생각지 말고, 마음이 일어나거든 문득 쉬며, 인연을 만나거든 문득 쉬라. 고인이 말하길, ‘한 가지 매우 단련된 흰 비단같이 하얗게 되어 가며, 차가운 연못물같이 하여 가며, 옛 사당 속에 향로와 같이 하여 가라’고 하니, 바로 섬진이 끊어져 분별을 여의어 어리석은 듯 오뚝한 썩은 고자백이나무같이 되어야 바야흐로 조금이나 상응하리니. 이것이 휴헐망심休歇妄心 공부이니라.
0001_0076_b_01L셋째는 마음은 없이 하고 경계만 두는 것이니, 공부를 할 때에 일체 망념을 함께 쉬어 외경을 돌아보지 말고 다만 스스로 마음만 쉴지니, 망념이 이미 쉬면 어찌 경계가 있는 것이 방해하겠는가. 곧 고인의 사람사람은 마음은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아니한 법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말(有語)에 이르길, ‘이곳에 방초가 있어서 가득히 성에 고인이 없다’ 하며, 또 방 거사가 이르길, ‘다만 스스로 만물에 무심하면 어찌 만물이 위요한데 방해하겠는가?’ 하였으니, 이것이 민심존경식망泯心存境息妄 공부이니라.
넷째는 경계는 없애고 마음은 두는 것이니, 공부를 할 때에 일체 모든 경계를 가져다 공적함을 관하고, 다만 일심만 두어 외로운 표찰과 같이 홀로 설지니, 그러므로 고인이 이르시길, ‘만법으로 벗을 삼지 말며, 제진으로 대하지 말라. 경계에 집착하면 마음이 망령되려니와 이제 경계가 없으니, 무슨 망령된 것이 있겠는가. 참마음이 홀로 비추어 도에 걸림이 없는 것이라’ 곧 고인의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아니한 법이니라. 그러므로 어떤 말에 이르길, ‘위의 화원에 꽃이 이미 떨어졌는데 거마가 오히려 아울러 요란하다’ 또 이르길, ‘삼천검객이 이제 어디 있는가? 홀로 장주가 태평을 결정적으로 꾀함이라’ 하니, 이것이 경계를 없애고 마음은 두어 허망을 쉬는 공부이니라.
0001_0077_a_01L다섯째는 마음도 없애고 경계도 없애는 것이니, 공부할 때에 먼저 외경이 공적하고 다음에 내심을 멸할지니, 이미 내외심경이 함께 고요하거니, 필경에 망상이 어디로 좇아 있겠는가. 그러므로 관계灌溪께서 이르시길, ‘시방에 벽이 떨어짐이 없고 사면에 문이 없어 깨끗하다. 옷 벗고 옷 벗어 붉은 몸에 물 뿌리고 물 뿌려 씻는 듯하다’ 하니, 곧 조사의 인경人境을 함께 빼앗는 법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말에 이르시길, ‘구름은 흩어지고 물은 흘러가니, 고요히 천지가 비었다’ 하며, 또 이르시길, ‘사람과 소를 함께 보지 못하니, 바로 이 달 밝은 때라’ 하니, 이것은 마음과 경계가 공하여 허망을 쉬는 공부이니라.
0001_0077_b_01L여섯째는 마음도 두고 경계도 두는 것이니, 공부를 할 때에 마음은 마음 위치에 머물고 경계는 경계 위치에 머무르니, 어떤 때에 마음과 경계가 서로 대하여도 곧 마음이 경계를 취하지 아니하며 경계가 마음에 다다르지 아니하여 각기 서로 이르지 아니하면 자연히 망념이 나지 아니하고, 도에 걸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시길, ‘이 법이 법위에 머물러 세간 현상이 상주라’ 하시니, 곧 조사의 인경人境을 함께 빼앗지 아니하는 법문이니라.이 말은 불생멸법이 제법위에 주하여 만상 체가 다 실상이라. 일체 세간 상이 항상 주하여 나지 아니하고, 항상 주하여 멸하지 아니하나니,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라. 거년에 처마 끝에 달려 있는 고드름이 이제까지 달려 있다 아느냐. 그러므로 이르길, ‘한 조각달이 바다에 나오니 몇 집 사람이 다락에 올랐는가?’ 하며, 또 이르길, ‘산화가 천 줄기라 어떤 자가 돌아갈 줄을 알지 못한다’고 하니, 이것이 마음도 두고 경계도 두어 망상을 멸하는 공부이니라.
일곱째는 내외가 온전한 성체이니, 공부를 할 때에 산하대지와 일월성진과 내신외기와 일체제법이 진심의 체와 같아서 담연히 허명하여 일호一毫도 다름없어 대천의 항하사세계를 쳐서 일편을 이루면 다시 어느 곳에 망심을 얻어 오겠는가. 그러므로 조법사가 이르시길, ‘천지가 나로 더불어 한 뿌리요, 만물이 나로 더불어 한 몸이라’ 하니, 이것이 내외전체의 멸망滅妄하는 공부이니라.
여덟째는 내외전용(안팎이 온전한 작용)이니, 공부를 할 때에 일체 내외의 몸과 마음과 세계와 제법과 및 일체 동용시위를 가져 다 진심묘용인 줄로 관할 것이니, 일체 생각이 나는 것이 문득 이 묘용이 현전한 것이니라. 이미 일체가 다 묘용이라면 망심이 어떤 곳을 행하여 집착하겠는가. 그러므로 영가 이르길, ‘무명의 실다운 성품이 곧 각성이요. 환화공신이 곧 법신’이라 하며, 지공의 십이시가에 이르길, ‘평소의 조인朝寅이여! 광기狂機 내에 도인의 몸이 숨었다. 앉고 눕는데 원래 이 도임을 알지 못하고, 이렇듯이 바삐바삐 신고辛苦를 받는가!’ 하시니, 이것이 안이나 밖이나 온전한 작용이니, 허망을 쉬는 공부이니라.
0001_0078_a_01L아홉째는 체에 나아가 곧 작용이니, 공부를 할 때에 비록 진체일미공적眞體一味空寂에 명합冥合하나 그 가운데 안으로 신령하게 밝은 것을 숨겼으니, 이에 체에 나아간 작용이니라. 신령하게 밝은 가운데 안으로 공적함을 숨김이니 작용이 곧 본체니라. 그러므로 영가 이르길, ‘성성적적惺惺寂寂은 옳고, 성성망상惺惺妄想은 그르며, 적적성성은 옳고 적적무기寂寂無記는 그르다’ 하였으니, 이미 적적한 가운데에 무기를 용납하지 못하고, 성성한 가운데 산란을 쓰지 아니하면 있는바 망상이 어찌 나겠는가. 이것이 체에 나아간 작용이니, 허망을 멸하는 공부이니라.
열째는 체용 밖에 뛰어나는 것이니, 공부를 할 때에 내외를 나누지 아니하고, 또한 동서남북을 가리지 아니하여 사방팔면을 가져 일개 대해탈문은 원만하고 아름다운(궁굴궁굴한) 경지를 지어 체용을 나누지 아니하여 터럭 끝도 셈(삼루함)이 없어 온몸이 한 조각(일편)을 이루면 그 망상이 어디로 좇아 일어나겠는가. 고인이 이르길, ‘온몸이 잡아매어 틈(터짐)이 없다. 상하가 튼실하여 둥글둥글하다’고 하였다. 이것이 체용에 투출하니, 허망을 멸하는 공부이니라.
이상 열 가지 공부하는 방법은 다 쓸 것이 아니라 다만 한 가지만 가져 공부를 성취하면 그 망상이 스스로 멸하고 참마음이 곧 나타나리니, 근기를 따라 익힐지니라. 일찍이 어떤 법에 인연이 있을는지 곧 하여금 익힐지니라. 이 공부는 무공無功의 공功이요, 유심공력이 아니니라. 이러한 망심을 쉬는 법문이 긴요한 연고로 치우쳐 많이 말하노니, 글이 번거롭다고 말지니라.”
8. 진심사의眞心四儀
或曰前說息妄하니 未審커라 但只坐習가 亦通行住等耶가 曰經論에 多說坐習하니 所以易成故요 亦通行住等이니 久漸成純熟故이니라 起信論에 云若修止者대는 住於靜處하야 端坐正意하야 不依氣息하며 不依形色하며 不依於空하며 不依地水火風하며 乃至不依見聞覺知하고 一切諸想을 隨念皆除호대 亦遣除想이니 以一切法이 本來無想일새 念念不生하며 念念不滅하나니 亦不得隨心하야 外念境界後에 以心除心이어다 心若馳散이어든 卽當收來하야 住於正念이니라 是正念者는 當知唯心이오 無外境界이니 卽復此心이 亦無自相하야 念念不可得이니라 若從坐起하야 去來進止하며 有所施作이라도 於一切時에 常念方便하야 隨順觀察하야 久習純熟하면 其心이 得住하리라 以心住故로 漸漸猛利하야 隨順得入眞如三昧하야 深伏煩惱하여 信心이 增長하야 速成不退하리니 唯除疑惑과 不信誹謗하난 重罪業障과 我慢懈怠이니 如是等人은 所不能入이라 하시니 據此則通四儀也ㅣ니라.
0001_0079_a_01L圓覺經에 云先依大覺(如來)奢摩他行하야 堅持禁戒하며 安處徒衆하며 宴坐靜室이라 하니 此初習也요 永嘉云行亦禪坐亦禪語默動靜體安然이라 하니 據此컨댄 亦通四儀耳로다 總論功力컨댄 坐尙不能息心이온 況行住等에 豈能入道耶리오 若是用得純熟底人인대 千聖이 興來라도 驚不起이요 萬般魔妖라도 不廻顧어든 豈況行住坐中에 不能做功夫也리오 如人欲讎恨於人이라도 乃至行住坐臥飮食動用一切時中에 不能忘了하며 欲愛樂於人이라도 亦復如是하나니 且憎愛는 有心中事로되 尙爾(於)온 況做工夫乎아 若有切信이면 四威儀中에 道必不失也니라 尙於有心中에 容得이어든 今做功夫는 是無心事라 又何疑四儀中에 不常現前耶아 只恐不信不爲언정 若爲若信則威儀中에 道必不失也니라.
0001_0079_b_01L혹 말하길, “앞에서 망심 쉼을 말하였는데, 아직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앉아서만 익히는 것입니까? 행주좌와에 통하는 것입니까?”
답하길, “경론에 앉아 익히는 것을 많이 말하시는 것은 쉽게 이루게 한 연고요, 또 행주좌와에 공부가 간단間斷이 없는 것은 오래오래 하여 점점 순숙한 연고니라. 『기신론』에 이르시길, ‘만일 지관을 닦으려면 고요한 곳에 주하여 단좌하고 정의하여 기식氣息에도 의지하지 말며, 형색에도 의지하지 말고, 공에도 의지하지 말고, 지수화풍에도 의지하지 말며, 내지 견문각지에도 의지하지 말고, 일체 모든 생각생각을 따라 다 제거함에 또한 제거하는 생각도 버릴지니, 그러므로 일체법이 본래 생각이 없을 것이다. 생각생각이 나지 아니하며, 생각생각이 멸하지 아니하나니, 또한 마음을 따라 밖으로 경계를 생각한 연후에 마음으로 마음을 제거하지 말지어다. 마음이 만일 달려 흩어지거든 곧 마땅히 거두어 정념에 머물지어다. 이 정념이라는 것은 마땅히 오직 마음이다. 외경계가 아니니, 곧 다시 이 마음이 또한 내외형상이 없어 염념을 가히 얻지 못할지니라. 만일 앉고 일어나며, 가고오며, 나아가고 그치며 베푼 바가 있을 때라든지 일체시에 항상 방편을 생각하여 수순하여 관찰해서 오래 익히어 순숙하면 그 마음이 안주함을 얻을지니라. 그러므로 마음이 머문 연고로 점점 맹렬하고 수순하여 진여삼매에 들어가 깊이 번뇌를 조복 받으며, 신심이 증장하여 속히 불퇴전을 이루리니, 오직 의혹과 믿지만 아니할 뿐이니라. 비방하는 중죄업장과 아만해태를 제거함이니, 이와 같은 사람들은 능히 들어가지 못할 바라’ 하시니, 이것을 의지하면 행주좌와에 회통함이니라.
0001_0080_a_01L『원각경』에 이르시길, ‘먼저 대각의 사마타행을 의지하여 굳게 계행을 갖추어 여러 대중에 안처하며, 고요한 집에 평안히 앉아 마음을 닦으라’ 하시니, 이것은 처음에 익히는 것이요, 영가 이르길, ‘행하여도 선이요, 앉아도 선이다. 어묵동정에 마음의 체가 평안하다’ 하니, 이것을 의지컨대 또한 행주좌와에 통한다. 총히 공력을 의론컨대 앉아도 오히려 능히 마음을 쉬지 못하거니, 하물며 행주좌와에 능히 들어갈 수 있겠는가. 만일 공부가 순숙한 사람이라면 일천 성현이 오더라도 일어나지 아니하고, 만반마군이가 아름답게 하여도 돌아보지 아니하거든 어찌 행주좌와 중에 공부를 하지 못하겠는가. 사람이 사람에게 원수를 갚고자 한다면 내지 행주좌와 일체 처소와 일체 시간에 능히 잃지 못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 유심 중에 일도 오히려 그렇거든 하물며 공부를 짓는 것이겠는가. 만일 믿으면 행주좌와에 도를 반드시 잃지 아니하리라.”
9. 진심소재眞心所在
或曰息妄心而眞心現矣라 하니 然則眞心體用이 今在何處오 曰眞心妙體가 遍一切處니 故로 永嘉云不離當處常湛然이나 覓卽知君不可見이라 하며 經에 云虛空性性(故)며 常不動故며 如來藏中에 無起滅故라 하시며 大法眼이 云處處正覺(菩提)路요 頭頭功德林이라 하시니 此卽是體所在也니라 眞心妙用은 隨感隨現홈이 如谷應聲이니라 法燈이 云今古에 應無墜하야 分明在目前이로다 片雲은 生晩谷하고 孤鶴은 下遙天이라 하니 所以로 魏府老(元)華嚴이 云覺(佛)法이 在日用處하며 在行住坐臥處하며 喫茶喫飯處하며 語言相問處하며 在所作所爲處하나니 擧心動念하면 又卻不是也라 하시니 故知하라 體則遍一切處하야 悉能起用이나 但因緣有無不定일새 故로 妙用不定耳이어니와 非無妙用也ㅣ니라 修心之人이 欲入無爲海하야 度諸生死인댄 莫迷眞心體用所在也어다.
혹 말하길, “망심을 쉬면 진심이 나타난다니, 그렇다면 진심체용이 이제 어느 곳에 있습니까?”
답하길, “진심묘체가 일체처소에 두루함이니, 그러므로 영가 이르시길, ‘당처를 떠나지 아니하여 항상 담연하나 찾으면 알겠지만 그대가 가히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며, 경에 이르시길, ‘허공의 성품인 연고며, 항상 동하지 아니한 연고며 여래장 중에 일어나고 멸함이 없는 연고라’ 하며, 대법안이 이르시길, ‘처처가 정각(菩提)의 길이요, 두두물물이 공덕의 총림이라’ 하시니, 이것이 곧 이 마음의 체가 있는 것이니라. 참마음의 미묘한 작용은 감을 따라 나타남이 산골짜기 소리를 응하여 메아리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법등이 이르시길, ‘고금에 마땅히 떨어짐이 없어 분명히 목전에 있다. 조각구름은 늦은 골짜기에서 나고 외로운 학은 먼 하늘에서 내려옴이라’ 하니, 그런 까닭으로 위부원로화엄이 이르시길, ‘각법이 일체 처소에 있고, 행주좌와의 처소에 있으며, 차 마시고 밥 먹는 곳에 있고, 말하고 서로 묻는 곳에 있으며, 짓고 행위하는 처소에 있다’고 하니, 마음을 들어 생각을 동하면 또 옳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알라. 마음의 본체가 일체 처소에 두루하여 다 능히 작용을 일으키나니, 다만 인연의 유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묘유도 또한 일정하지 않거니와 묘용이 없는 것은 아니니라. 마음 닦는 사람은 하염없는 바다에 들어가 모든 생사를 건너려고 한다면 진심체용의 있는 것을 미혹하지 말지어다.”
10. 진심출사眞心出死
或曰嘗聞見性之人은 出離生死나 然往昔諸祖가 是見性人이어늘 皆有生有死나 今現見世間修道之人하야도 有生有死(事)하니 如何云出生死耶오 答曰生死本無어늘 妄計爲有로다 如人이 病眼으로 見空中華어든 (或)無病人이 說無空花호대 病者不信이라가 目病이 若無하야 空花自滅하야사 方信花無하나니 只花未滅時이라도 其花亦空이로다 但病者妄執爲花언정 非體實有也ㅣ니라.
如人이 妄認生死爲有어든 或無生死人이 告云本無生死ㅣ라 하야도 彼人이 一朝妄息하야 生死自除하야사 方知生死가 本來是無하나니 只生死未息時에 亦非實有언만 以妄認生死有故로 經에 云善男子야 一切衆生이 從無始來로 種種顚倒홈이 猶如迷人이 四方을 易處달하야 妄認四大하야 爲自身相하며 六塵緣影으로 爲自心相하나니 譬彼病目이 見空中花달하니라 함으로 乃至如衆空花ㅣ滅於虛空에 不可說言有定滅處ㅣ니 何以故오 無生處故ㅣ니라 一切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滅일새 是故로 說名輪轉生死라 하시니 據此經文컨대 信知達悟圓覺眞心하면 本無生死로다 今知無生死而不能脫生死者는 功夫不到故也ㅣ니라.
0001_0081_b_01L故로 敎中에 說菴婆女가 問文殊云明知生가 是不生之法이로되 爲甚麽하야 被生死之所流이닛고 文殊云其力未充故라 하시며 後에 有進山主가 問修山主云明知生是不生之法이로되 爲甚麽하야 卻被生死之所流이닛고 修云笋(筍)이 畢竟成竹去나 如今作筏(篾)인달 使得麽아하니 所以로 知無生死가 不如體無生死요 體無生死가 不如契無生死요 契無生死가 不如用無生死이니라 今人은 尙不知無生死이온 況體無生死하며 契無生死하며 用無生死耶아 故로 認生死者는 不信無生死法이 不亦宜乎아.
혹 말하길, “일찍이 들으니,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여읜다고 하나, 그러나 옛날 해석에 모든 조사가 다 생사가 있으며, 현재의 세간에 무수한 도인을 보더라도 생사가 있으니, 어찌 생사에 벗어났다고 하겠습니까?”
대답하여 말하길, “생사가 본래 없거늘 망령되이 있음을 헤아리느니라. 저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 가운데 꽃을 보거든 눈병 없는 사람이 공화 없음을 말함에 병자가 불신하다가 눈병이 만일 없으면 허공에 꽃이 스스로 멸하여야만 바야흐로 꽃 없음을 믿나니, 다만 꽃이 멸하지 아니할 때라도 그 꽃이 없느니라. 다만 병자가 망령되이 집착할지언정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니라.
0001_0082_a_01L저 사람이 망령되이 생사 있음을 집착하거든 혹 생사 없는 사람이 알리어 이르길, ‘본래 생사 없다 하여도 저 사람이 불신하다가 일조一朝에 망념이 쉬고 생사가 스스로 제거되어야 바야흐로 생사가 본래 없음을 알지니라. 그러나 다만 생사를 쉬지 못할 때에도 또한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애써 망령되이 생사 있음을 그릇 아는 연고로 경에 이르시길, ‘선남자여! 일체중생이 무시이래로 좇아옴으로 종종으로 전도함이 마치 미혹한 사람이 사방의 처소를 바꾸어서 망령되이 사대를 그릇 알아 자신의 모양을 삼으며 육진 인연의 영역으로 자심自心의 모양을 삼나니, 비유컨대 저 병든 눈이 허공 가운데 꽃을 보는 것이라’고 하니라’ 하시므로 내지 모든 공화가 허공에서 멸함에 가히 정말로 멸한 곳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니, 어떠한 까닭인가? 나는 곳이 없는 까닭이니라. 일체중생이 저 무생 중에 망령되이 생명을 보느니라. 이 때문에 이름을 생사에 윤전함이라 하시니, 이 경문을 의거하면 원각진심을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는 것을 믿어 알지니라. 이제 생사가 없는 것을 알지만 능히 생사를 해탈치 못한 것은 공부를 이르지 못한 연고이니라.
0001_0082_b_01L그러므로 불교 중에 암바녀가 문수에게 묻길, ‘밝게 생사가 이 생사 아닌 법을 알았지만 어찌하여 생사에 유전함을 입었습니까?’ 문수 대답하길, ‘그 힘이 충분치 못한 연고라’ 하시며, 뒤에 진산주가 있어 수산주에게 묻길, ‘밝게 나는 것이니, 아니 나는 법인 줄을 알았으나 어찌하여 도리어 생사에 유전함을 입습니까?’ 수산주가 이르길, ‘죽순이 필경에 굳은 대가 되는 것이나 지금에는 곧 떼배를 지어 부릴 수 없나니, 그러므로 생사 없는 것을 아는 것이 생사 없는 것을 체달한 것만 같지 못하며, 생사 없는 것을 체달하였을지라도 생사 없는 것에 계합한 것만 같지 못하고, 생사 없는 데 계합하였을지라도 생사 없는 것을 쓰는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이제 사람들은 오히려 생사 없는 것을 알지도 못하거든 하물며 생사 없음을 체달하며 생사 없음에 계합하며 생사 없음을 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착認著(그릇 알아 집착)하는 자는 생사 없는 법을 믿지 아니하는 것이 또한 당연치 아니하니라.”
11. 진심정조眞心正助
或曰如前息妄에 眞心이 現前이언만 且如妄未息時에 但只歇妄하야 做無心功夫耶아 更有別法하야 可對治諸妄耶아 曰正助不同也ㅣ니 以無心息妄으로 爲正하고 以習衆善으로 爲助니라 譬如明鏡이 爲塵所覆어든 雖以手力으로 揩拭이나 要須妙藥磨瑩하야사 光始現也ㅣ니라 塵垢는 煩惱也ㅣ오 手力은 無心功夫也오 磨藥은 衆善也오 鏡光은 眞心也ㅣ니라 起信論에 云復次信成就發心者는 發何等心고 略有三種하니 云何爲三고 一者는 直心이니 正念眞如法故오 二者는 深心이니 集一切善行故요 三者는 大悲心이니 欲拔一切衆生苦故이니라.
0001_0083_a_01L問曰上說法界一相이라 覺(佛)體無二어늘 何故不唯念眞如法하고 復假求學諸善之行고 答曰譬如大摩尼寶가 體性이 明淨이나 而有礦穢之垢하니 若人이 雖念寶性이나 不以方便으로 種種磨治면 終無得淨인달하야 如是衆生眞如之法이 軆性空淨이나 而有無量煩惱染垢하니 雖念眞如나 不以方便으로 種種熏習이면 亦無得淨이니 以垢無量하야 遍一切法이니라 故로 修一切善行하야 以爲對治이니 若人이 修行一切善法하면 自然歸順眞如法故라 하시니.
據此所論컨댄 以休歇妄心으로 爲正이오 修諸善法으로 爲助이니라 若修善時어든 與無心으로 相應하야 不取著因果니 若取因果면 便落凡夫人天報中하야 難證眞如라 不脫生死이니라 若與無心相應인댄 乃是證眞如方便이면 脫生死之要術이라 兼得廣大福德하리라 金剛般若經에 云須菩提야 菩薩無住相布施하면 其福德이 不可思量이라 하시니라 今見世人에 有參學者호니 纔知有箇本來覺(佛)性이면 乃便自恃天眞하야 不習衆善하나니 豈只於眞心不達이리오 亦乃翻成懈怠하나니 惡道도 尙不能免이온 況脫生死리오 此見이 大錯也ㅣ니라.
0001_0083_b_01L혹 이르길, “망심을 쉬면 진심이 나타나려니와 아직 망심을 쉬지 못할 때에는 다만 무심 공부만 짓습니까? 다시 별법이 있어서 모든 망상을 대치합니까?”
답하길, “정正과 조助가 같지 아니하니, 망심을 쉬는 것으로 정을 삼고, 모든 착한 것을 익힌 것으로 돕는 것을 삼느니라.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진구塵垢가 덮였거든 비록 손으로써 닦으나 묘한 약으로 닦아야 광채가 비로소 나타나리라. 진구는 번뇌에 비유하고 손으로 닦는 것은 무심 공부에 비유하고 약으로 마련하는 것은 모든 착한 것을 닦는 데 비유함이요, 거울의 광명은 진심에 비유하느니라. 『기신론』에 이르시길, ‘다시 믿음을 성취하여 발심하는 자는 어떤 마음들을 발하는 것인가? 간략히 세 가지 마음이 있으니, 첫째는 직심直心이니 정직하게 진여의 법을 생각한 연고요, 둘째는 깊은 마음이니 일체 선행을 모은 연고요, 셋째는 대비심이니 일체중생의 고통을 빼내어주는 연고니라.’ ”
물어 말하길, “위에서 법계가 한 모양임을 말하였다. 각의 체성이 둘이 없거늘 어떤 연고로 오직 진여 법(진심)만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시 모든 선행을 가자하여 배우기를 구하는가?”
답하길, “비유컨대 큰 마니보배가 체성이 명정하나 광석의 더러운 때가 있으니, 만일 사람이 비록 보배 성품을 생각하나 여러 방편으로 갈고 닦지 않는다면 끝내 깨끗해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의 진여법은 그 체성이 공하고 청정하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번뇌에 물들어 있으니, 비록 진여를 생각하나 방편으로써 가지가지로 훈습하지 아니하면 또한 청정함을 얻지 못하나니, 그래서 때가 한량이 없어 일체 제법에 두루하니라. 그러므로 일체 선행을 닦은 것으로서 대치하나니, 만일 사람이 일체 선법을 수행하면 자연히 진여법에 귀순한 연고라고 하시니,
0001_0084_a_01L이 의론한 바를 의거하자면 망심을 쉬는 것으로 바름을 삼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으로 도움을 삼았다. 만일 선을 닦는 때이거든 무심으로 더불어 서로 응하여 인과를 취하여 집착하지 말지니, 만일 인과를 취한다면 문득 범부 인천의 과보에 떨어져 진여를 증득하기 어렵기에 생사를 해탈치 못하느니라. 만일 무심으로 더불어 서로 응한다면 이것은 진여를 증득하는 방편이며, 생사를 해탈하는 요긴한 기술법이라 겸하여 광대한 복덕을 얻느니라. 『금강반야경』에 이르시길, ‘수보리여! 정사正士가 무주상보시하면 그 복덕을 가히 사량치 못하리라’고 하셨다. 이제 세상 사람에 철학하는 자들을 보니, 겨우 본래 각성이 있음을 알면 문득 스스로 친절을 믿어 모든 착함을 익히지 아니하나 어찌 다만 진심만 통달치 못할 뿐이겠는가. 또한 이에 번득여 해태를 이룰지니 악도도 오히려 능히 못하거든 하물며 생사를 해탈하겠는가. 이 소견이 크게 어긋남이니라.”
12. 진심공덕眞心功德
或曰有心修因은 不疑功德矣이어니와 無心修因은 功德이 何來오 曰有心修因은 得有爲果하고 無心爲因은 顯性功德하니라 此諸功德이 本來自具나 妄76)覆不顯이니 今旣除妄77)하면 功德自現(前)78)이니라 故로 永嘉가 云79)三身四智體中圓이오 八解六通이 心地印이라 하시니 乃是體中에 自具性功德也ㅣ니라.
0001_0084_b_01L古云(頌)若人이 靜坐一須臾하면 勝造恒沙七寶塔이로다 寶塔은 畢竟에 化爲塵이어니와 一念淨心은 成正覺이라 하시니 故知하라 無心功力이 大於有心也ㅣ니라 洪州水潦和尙가 參馬祖할새 問如何是西來的的意라가 被馬祖의 一踏의 踏到에 忽然發悟하야 起來撫掌大笑云也大奇也大奇여 百千三昧無量妙義를 只向一毛頭上하야 便一時識得根源去라 하시고 乃作禮而退라 하시니 據此則功德이 不從外來라 本自具足也ㅣ로다 四祖謂懶融禪師曰夫百千法門이 同歸方寸이요 河沙功德이 總在心源이로다 一切戒門, 定門, 慧門과 神通變化가 悉自具足하야 不離汝心이라 하시니 據祖師語컨댄 無心功德이 甚大(多)언만은 但執(好)事相功德者는 於無心功德에 自不生信耳이니라.
혹 이르길, “유심으로 인을 닦는 것은 공덕이 있으려니와 무심으로 닦는 것은 공덕이 어디에서 옵니까?”
답하길, “유심으로 닦는 것은 유위의 과보를 얻고 무심으로 닦는 것은 본성공덕이 나타나느니라. 이 모든 공덕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졌으나 망심이 덮이어 나타나지 아니함이니, 이제 망심을 제거하면 공덕이 스스로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영가 이르시길, ‘삼신과 사지가 체중에 뚜렷함이요, 팔해탈과 육신통이 심지에 날인함이라’ 하시니, 이내 이것이 체중에 스스로 본성공덕을 갖춘 것이니라.
0001_0085_a_01L고인이 게송에 이르되, ‘만일 사람이 고요히 앉기를 한 순간이라도 하면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칠보탑 짓는 것보다 수승하다’ 하시니, 그런고로 무심의 공력이 유심의 공력보다 크니라. 홍주 수료 화상이 마조께 참례할 적에 서쪽으로 오신 적적한 달마 조사의 뜻을 묻다가 마조에게 한 번 밟히어 꺼꾸러졌다가 홀연히 깨달아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크게 웃어 말하길, ‘또한 기특하고 또한 기특하다. 백천삼매와 무량묘의를 한 터럭 끝을 행하여 문득 근원을 알았다’ 하시고, 예배하고 물러가시니, 이것을 의거하면 공덕이 밖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 저절로 구족함이로다. 사조께서 나융 선사에게 이르시길, ‘대저 백천 법문이 한 가지 방촌으로 돌아가고 항하사 공덕이 다 심원에 있도다. 일체 계문과 정문과 혜문과 신통변화가 다 스스로 구족하여 너의 마음을 여의지 아니함이라’ 하시니, 조사의 말씀을 의거한다면 무심의 공덕이 가장 크지마는 다만 사상의 공덕을 집착하는 자는 저 무심의 공덕을 믿지 아니하느니라.”
13. 진심험공眞心驗功
0001_0085_b_01L或이 曰眞心이 現前하야는 如何知是眞心에 成熟無礙也오 曰學道之人이 已得眞心現前時에 但習氣未除코 若遇熟境하야는 有時失念하나니 如牧牛人이 雖調到牽拽隨順處하야도 猶不敢放了鞭繩이니 直待心調步穩하야사 赶趁入苗稼中호대 不傷苗稼하리라 方敢撒手也ㅣ니라 到此地步하면 便不用牧童鞭繩하야도 自然無傷苗稼달하야 如道人이 得眞心後에 先且用功保養하야 有大力用하야사 方可利生이니라 若驗此眞心時에는 先將平生所愛底境하야 時時想在面前호대 如依前起憎愛心則道心이 未熟이오 若不生憎愛心하면 是는 道心이 熟也ㅣ니라 雖然如此成熟이라도 猶未是自然不起憎愛이니 又再驗心이어다 若遇憎愛境時에 特然起憎愛心하야 令取憎愛境界호려도 若心不起하면 是心無礙가 如露地白牛하야 不傷苗稼也ㅣ니라 古有呵覺(佛)罵祖者하니 是는 與此心으로 相應이니라 今見호니 纔入宗門하야 未知道之遠近하고 便學呵覺(佛)罵祖者는 太早計也로다.
0001_0086_a_01L혹 말하길, “진심이 나타나면 어떻게 이 진심이 성숙해서 무애함을 알게 됩니까?”
답하길,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마음이 나타남을 얻을 때에 다만 습기가 다하지 못하면 만일 익힌 경계를 만날 적에 어떤 때는 생각을 잊어버리나니, 소 먹이는 사람이 비록 조복 받았으나 오히려 고삐와 채찍을 놓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마음이 조복되고 걸음이 온당해야만이 곡식밭으로 쫓아 들여보내어도 곡식을 상하지 아니하여 바야흐로 감히 손을 놓아 버릴지니라. 이런 경지를 걸어서 이르러야 도인이 진심을 얻은 후에 먼저 공력을 써 안보하여 양육함을 써 크게 힘을 씀이 있어야 바야흐로 가히 중생을 이롭게 하리라.
만일 참마음을 증험할 때에 먼저 평생에 미워하고 사랑한 경계를 가졌을 때에 면전에 생각하여 두되 이전과 같이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도심이 순숙하지 못할 것이요, 만일 증애심을 내지 아니하면 이는 도심이 순숙함이니라. 비록 그렇게 이처럼 순숙할지라도 오히려 자연히 증애를 아니 일으킨 것은 아니니, 또다시 마음을 증험할지어다. 만일 증애의 경계를 만날 때에 특히 증애심이 일어나 하여금 증애의 경계를 취하려고 해도 만일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이 마음이 걸림 없는 것이 드러난 땅에 백우와 같아야 곡식의 싹을 상하지 아니하느니라. 옛 사람이 각을 꾸짖고 조사를 꾸짖는 자는 이 마음으로 더불어 상응할 것이니, 이제 사람을 보니 겨우 조종 문하에 들어옴에 도의 근원은 알지 못하고 문득 각과 조사를 꾸짖는 것만 배우니, 너무 일찍이 꾀하는 것이로다.”
14. 진심무지眞心無知
0001_0086_b_01L或이 曰眞心與妄心을 對境時에 如何辨別眞妄耶오 曰妄心對境은 有知而知라 於順違境에 起貪瞋痴心하나니 又於中容境에 起癡心也ㅣ니 旣於境上에 起貪瞋癡三毒인댄 足見是妄心也로다 祖師云逆順相爭이 是爲心病이라 하시니 故知하라 對於可不可者ㅣ가 是妄心也ㅣ니라 若眞心者ㅣ댄 無知而知라 平懷圓照故로 異於草木하고 不生憎愛故로 異於妄心하나니 卽對境虛明하야 不憎不愛하며 無知而知者ㅣ가 是眞心(故)이니라 肇論에 云夫聖心者는 微妙無相이라 不可爲有오 用之彌勤이라 不可爲無로다 乃至非有故로 知而無知하고 非無故로 無知而知로다 하시니 是以로 無知卽知라 無以言異於聖人心也ㅣ로다 又妄心을 在有着(著)有하고 在無着(著)無하야 常在二邊할새 不知中道라 하며 永嘉云捨妄心取眞理하면 取捨之心이 成功(巧)僞로다.
學人이 不了用修行하야 深成認賊將爲子로다 하니 若是眞心인댄 居有無而不落有無하고 常處中道이니라 故로 祖師云不逐有緣하며 勿住空忍이어다 一種平懷하면 泯然自盡이라 하며 肇論에 云是以로 聖人은 處有不有하고 居無不無로다 雖不取於有無나 然이나 不捨於有無로다 所以로 和光塵勞하며 周旋五趣하되 寂然而往하며 忽爾而來하야 恬淡無爲而無不爲라 하시니 此는 說聖人이 垂手爲人하사 周旋五趣하사 接化衆生하사되 雖往來而無往來相시니라 妄心은 不爾故로 眞心妄心이 不同也ㅣ니라 眞心은 乃平常心也요 妄心은 乃不平常心也ㅣ니라.
或曰何名平常心也오 曰人人具有一點靈明호대 湛若虛空하야 遍一切處하나니 對俗事하야는 假名理性이오 對妄識하야는 權號眞心이니라 無分毫分別이되 遇緣不昧하고 無一念取捨로되 觸物皆周라 不逐萬境遷移로다 設使隨流得妙라도 不離當處湛然이라 覓卽知君不見인 乃眞心也ㅣ니라.
0001_0087_a_01L或曰何名不平常心耶아 曰境有聖與凡, 境有染與淨, 境有斷與常, 境有理與事, 境有生與滅, 境有動與靜, 境有去與來, 境有好與醜, 境有善與惡, 境有因與果하나니 細論則萬別千差어니와 今乃且擧十對하니 皆名不平常境也ㅣ니라 心隨此不平常境而生하며 不平常境而滅하나니 不平常境心이 比(對)前平常眞心할새 所以로 名不平常妄心也ㅣ니라 眞心은 本然(具)하야 於(不隨)不平常境에 不(生)起種種差別할새 所以로 名平常眞心也ㅣ니라.
或曰眞心이 平常하야 無諸異因인대 奈何로 覺(佛)說因果善惡報應乎아 曰妄心이 逐種種境호대 不了種種境혼들노 遂起種種心할새 覺(佛)說種種因果法하사 治伏種種妄心호려 하사 須立因果也어니와 (若此)眞心不逐種種境하며 (由是)不起種種心할새 覺(佛)이 (卽)不說種種法하시니 何有因果也리오 或曰眞心은 平常不生耶아 曰眞心(有時)施用이 非逐境生이나 但妙用遊戱하야 不昧因果耳이니라.
0001_0087_b_01L혹 말하길, “진심과 망심이 경계에 대할 때에 어떻게 진망을 가립니까?”
답하길, “망심이 경계를 대하는 알음알이가 있어서 아는 것이다. 역순 경계에 탐진치심이 일어나나니, 이미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난다면 족히 망심을 보겠다. 조사 이르시길, ‘역순이 서로 싸우는 것이 마음에 병이라’ 하시니, 그러므로 시비의 경계를 대하는 것이 이 망심이니, 만일 진심이라면 앎이 없이 아는 것이다. 평소 생각이 뚜렷이 비추기 때문에 초목과 다르고, 증애심이 없기 때문에 망심과 다르니, 경계를 대하여 비고 밝아 증애가 없으며, 앎이 없이 아는 자가 이 진심이다. 『조론』에 이르시길, ‘대저 성인의 마음은 미묘하여 형상이 없기에 가히 있는 것이 아니요, 그것을 씀에 더욱 부지런하기에 가히 없는 것이 아니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되 앎이 없고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앎이 없되 아는 것이다. 이로써 앎이 없이 곧 알기에 애써 말함에 성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하시고, ‘또 망심은 유에 있으면 유에 집착하고 무에 있으면 무에 집착하여 항상 두 가지에 있기 때문에 중도를 알지 못한다’ 하시며, 영가 이르시길, ‘망심을 버리고 진리를 취하면 취사심이 공교하고 거짓됨을 이루는 것이다.’
학인이 알지 못하여 도적을 그릇 알아 자식을 삼는다 하니, 만일 진심이면 유무에 있어서 유무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항상 중도에 거처하니라. 그러므로 조사 이르시길, ‘인연을 좇지 말며 공에도 머물지 말지어다. 한 가지 평소 생각하면 민연泯然히 스스로 다하리라’ 하며, 『조론』에 이르길, ‘이로써 성인은 유에 처하여도 유가 아니요, 무에 거처해도 무가 아니다. 비록 유무를 취하지 아니하나 그러나 유무를 버리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광동진하여 오취에 두루 선회하나 고요히 가고 홀연히 오나니, 편안하고 맑아 함이 없되 하지 아니함이 없다’ 하시니, 성인이 사람을 위해서 두루 오취에 선회하시어 중생을 제접하여 교화하시니, 비록 왕래하나 왕래함이 없으시다. 망심은 그렇지 아니하기 때문에 진과 망이 다르다. 또 진심은 평상심이요, 망심은 불평상심이다.”
0001_0088_a_01L혹 말하길, “어떤 것이 평상심입니까?”
답하길, “사람마다 일점의 영명함을 갖추고 있어 맑기가 허공과 같아서 일체 처소에 두루하나니, 세속의 일을 대해서는 거짓 이름을 이성理性이라고 하고, 망식심을 대해서는 방편으로 이름을 진심이라 하니라. 털끝만치라도 분별이 없어 인연을 만나도 매하지 아니하고 일념이라도 취사가 없어 물건을 닿음에 다 두루하나 만경을 좇아 옮아가지 아니하니라. 설사 흐름을 따라 현묘함을 얻을지라도 당처를 여의지 아니하여 항상 담연하다. 찾으면 알지니라. 그대가 가히 보지 못하리니 이것이 진심이니라.”
혹 말하길, “어찌 이름을 불평상심이라 합니까?”
답하길, “경계에 성인과 범부가 있고, 경계에 더러움과 깨끗함이 있으며, 경계에 단멸과 상주가 있고, 경계에 원리와 현상이 있으며, 경계에 생겨남과 소멸함이 있고, 경계에 준동과 적정이 있으며, 경계에 감과 옴이 있고, 경계에 좋음과 추함이 있으며, 경계에 착함과 악함이 있고, 경계에 원인과 결과가 있나니, 만일 자세히 의론한다면 만별천차이거니와 다 불평등심이니라. 진심은 본연하여 불평상심의 경계에 갖가지 차별심을 일으키지 아니한 까닭에 이름이 평상진심이니라.”
0001_0088_b_01L혹 말하길, “진심이 평상하여 모든 다른 인유가 없다면 어찌 각께서 인과선악보응을 말씀하셨습니까?”
답하길, “망심이 갖가지 경계를 좇아 나되 갖가지 경계를 요달치 못하므로 갖가지 마음을 일으킴에 각께서 갖가지 인과를 말씀하시어 갖가지 망심을 다스려 조복 받으려고 하시어 인과법을 세우셨다. 진심은 갖가지 경계를 좇지 아니하며 갖가지 마음을 내지 아니함에 각께서 갖가지 법을 설하지 아니하시니, 어찌 인과가 있겠는가.”
혹 이르길, “진심은 평상하여 나지 아니합니까?”
답하길, “진심의 작용을 베푸는 것이 경계를 좇아 나지 아니하나 다만 묘용으로 유희하여 인과를 매하지 아니하니라.”평상이라 하는 말은, 평은 고하가 없다는 말이요, 상은 간단이 없단 말이니라.
15. 진심소재(왕)眞心所在(往)
或이 曰未達眞心人은 由迷眞心故로 作善惡因하나니 由作善因故로 生善道中하고 由作惡因故로 入惡道中호대 逐業受生은 其理를 不疑어니와 若達眞心之人인댄 妄情이 歇盡하야 契證眞心하면 無善惡因이라 一靈이 身後에 何所依託耶아 曰莫謂有依託者ㅣ가 勝無依託耶하며 又莫將無依託者하야 同人間飄零之蕩子하며 似鬼趣無主之孤魂하라 特爲此問은 求有依託耳아 或曰然하다 曰達性則不然也ㅣ니 一切衆生은 迷覺性故로 忘情愛念하야 結業爲因일새 生六趣中하야 受善惡報하나니라 假如天業爲因이면 只得天果이니 除合生處하고는 餘竝不得受用이니 諸趣도 皆爾하니라.
0001_0089_a_01L旣從其業일새 故로 合生處로 爲樂하고 不生處로 爲非樂하며 以合生處로 爲自己依託하고 不生處로 爲他人依託일새 所以로 有妄情則有妄因하고 有妄因則有妄果하고 有妄果則有依託하고 有依託則分彼此하고 分彼此則有可不可어니와 今達眞心은 契無生滅之覺性야 起無生滅之妙用하나니 妙體는 眞常이라 本無生滅하며 妙用은 隨緣이라 似有生滅이로다 然이나 從體起(生)用일새 用卽是體라 何生滅之可有리요 達人은 卽證眞體어니 其生滅이 何干涉耶아.
如水가 以濕性으로 爲體하고 波浪으로 爲用이니라 濕性은 元無生滅이니 故로 波中濕性인달 何生滅之有耶리오 然이나 波離濕性하고는 別無故로 波亦無生滅이니라 所以로 古人이 云盡大地가 是沙門一隻(雙)正眼이오 盡大地가 是箇伽藍이라 하니 盡是悟理人에 安身立命處이니라 旣達眞心인댄 四生六道가 一時消殞하고 山河大地가 悉是眞心이니 不可離此眞心之外에 別有依託處也ㅣ니라 旣無三界妄因이면 必無六趣妄果로다 妄果가 旣無컨댄 說甚依託이리요 必無彼此하고 旣無彼此대는 則何可不可也리요 卽十方世界가 唯一眞心全身受用이라 無別依託이로다.
又於示現門中에 隨意往生호대 而無障礙이니라 故로 傳燈에 云溫操尙書아 問圭峰曰悟理之人이 一期壽終에 何所依託고 圭峰曰一切衆生이 無不具有靈明覺性이라 與覺(佛)無殊하니 若能悟此眞性이면 卽是法身이요 本自無生이어니 何有依託이리요 靈明不昧하며 了了常知하야 無所從來하며 亦無所去이니 但以空寂으로 爲自體하야 勿認色身하며 但以靈知로 爲自心하야 勿認妄念이어다 妄念이 若起어든 都不隨之則臨命終時에 自然業不能繫하리라 雖有中陰이나 所向自由하야 天上人間에 隨意寄託이라 하시니 此卽眞心이 身後所往者也니라.
혹 말하길, “참마음을 통달하지 못한 사람은 진심을 미혹하였기 때문에 선악의 업을 짓나니, 선인을 짓기 때문에 선도 가운데에 나고, 악인을 짓기 때문에 악도 중에 들어감에 업을 좇아 수행하는 이치를 의심할 것이 없거니와 만일 진심을 통달한 사람이라면 망정이 쉬어 다하여 참마음에 계합하면 선악의 요인이 없을 것입니다. 한 신령한 몸이 죽은 후에 어디에 의탁합니까?”
답하길, “의탁이 있는 것이 의탁이 없는 것보다 수승하다고 말하지 말고, 또 의탁이 없는 것이 표령탕자(몰락한 방탕아)와 같다고 말하지 말며, 귀취에 무주고혼과 같다고 말라. 특별히 이것을 묻는 것은 의탁이 있음을 구하는가?”
혹 말하길, “네, 그렇습니다.”
답하길, “본성의 이치를 요달하면 그렇지 않거니와 일체중생은 각성을 미혹하였기 때문에 망정을 사랑하는 생각을 내어 업을 맺어 인이 되었기에 육취 가운데에 나서 선악업보를 발한 것이니라. 가령 하늘에 태어날 업이 되면 다만 하늘에 가서 나는 과보를 얻는 것이니, 합당히 나는 곳을 제하여 놓고는 아울러 다른 것은 수용하지 못하나니, 제취의 중생도 다 그러하니라.
0001_0090_a_01L이미 그 업을 좇기 때문에 합당히 나는 곳으로 낙을 삼고 나지 아니한 곳으로 낙을 삼지 아니하며, 합당히 나는 곳으로 자기의 의탁함을 삼고 나지 아니한 곳으로 타인의 의탁함을 삼기 때문에 망정이 있으면 망령된 인이 있고, 망인이 있으면 망과가 있고, 망과가 있으면 의탁이 있고, 의탁이 있으면 피차가 나뉘고 피차가 나뉘면 옳고 그른 것이 있거니와 이제 진심을 통달함은 생멸이 없는 각성에 계합하여 생멸이 없는 묘용을 일으키나니, 묘체는 참으로 항상하니라. 본래 생멸이 없으며 묘용은 연을 따르기에 생멸이 있는 듯하니라. 그러나 체를 좇아 용이 일어나기에 용이 곧 체여서 어찌 생멸이 있겠는가!
물이 습성으로써 체가 되고 파랑으로써 용이 되느니라. 습성은 원래 생멸이 없으니 파도 가운데 습성인들 어찌 생멸이 있겠는가! 그러나 파도는 젖는 성품을 떠나고는 별도로 없기 때문에 파도도 또한 생멸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고인이 이르시길, ‘온 대지가 이 사문의 일척정안이요, 온 대지가 이러한 가람이라 하니, 이 이치를 깨친 사람의 안신입명安身立命할 처소니라. 이미 진심을 통달하였다면 사생육취가 일시에 녹아지고 산하대지가 다 이 진심이니, 가히 이 진심을 떠난 밖에는 별도로 의탁할 곳이 없다. 이미 삼계에 수생할 망인이 없다면 반드시 육취에 망령된 과보가 없을지니라. 이미 없다면 무슨 의탁할 것을 말하겠는가. 별도로 피차가 없으니 피차가 없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 있겠는가. 곧 시방세계가 오직 참마음 전신이 수용함이니라. 별도로 의탁할 것이 없느니라.
0001_0090_b_01L또 생사에 자유를 얻어 뜻대로 나타내는 문에 뜻을 좇아 마음대로 왕래하면서 조금도 걸림이 없다. 그러므로 『전등록』의 온조 상서가 규봉에게 묻길, ‘본성의 성리를 깨친 사람은 한 목숨을 마침에 어느 곳에다가 의탁하는가?’ 규봉이 답하길, ‘일체중생이 영명각성을 갖추지 아니함이 없다. 대각으로 더불어 다름이 없으니, 만일 능히 참된 성품을 깨치면 본래 나는 것이 없거니, 무슨 의탁할 것이 있겠는가. 영명불매靈明不昧함이 요요상지了了常知하여 좇아오는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으니, 다만 공적으로써 자체를 삼아 이 육체의 몸에 그릇 집착하지 말며, 다만 영지靈知로써 자심을 삼고, 망심을 그릇 집착하지 말라. 망념이 만일 일어나거든 모두 따르지 아니하면 임종명시에 자연히 없이 능히 얽어매지 못할지니라. 비록 중음신이 있을지라도 행하는 바가 자유자재하여 천상과 인간에 뜻대로 좇아 붙어 의탁함이라’ 하니, 이것이 이 참마음이 이 몸을 버린 뒤에 자유로이 가느니라.”
선문촬요禪門撮要 참구문參究門 제5권
선경어禪警語
박산 무이博山無異 선사 설說
做工夫호대 最初에 要發箇破生死心이니 堅硬看破世界身心이 悉是假緣이라 無實主宰인달호리라 若不發明本具底大理則生死心이 不破오 生死心이 旣不破대는 無常殺鬼가 念念(不)80)停하나니 卻如何排遣고 將此一念하야 作箇敲門瓦子호되 如坐在烈火燄中求出相似하야 亂行一步不得하여 停止一步不得하며 別生一念不得하여 望別人救不得이니 當恁麽時하야 只須不顧猛火하며 不顧身命하며 不望人救하며 不生別念하며 不肯暫止하고 往前直奔호되 奔得出하야사 是好手이니라.
0001_0091_b_01L공부를 짓되 최초에 이렇게 생사심 파하기를 요구할지니, 굳게 세계와 몸과 마음이 다 이 거짓 인연이니라. 실로 주재자가 없는 것으로 간파看破할지니라. 만일 본래 구족한 크나큰 이치(本具底大理)를 밝히지 못하면 생사심이 파하지 못할 것이요, 생사심이 이미 파하지 못한다면 무상살귀가 염념이 머무나니, 도리어 저 어떻게 배척하여 보낼 것인가? 이 일념을 가져 이렇게 문을 두드리는 기왓장을 짓되 맹렬한 불꽃 가운데 앉아 있어 나오기를 구하는 것과 상사하여 일보를 어지러이 행하려고 해도 얻지 못하며, 일보를 멈추려 해도 얻을 수 없으며, 별도로 일념을 내려 해도 얻을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이 구하여 주기를 바라지만 얻을 수 없으니, 이런 때를 당하여 다만 맹화를 돌아보지 말며, 잠깐 그치기를 즐거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바로 달아나되 달아나 벗어남을 얻어야 이 좋은 수단이니라.
做工夫호대 貴在起疑情이니 何謂疑情고 如生不知何來진대는 不得不疑來處오 死不知何去대는 不得不疑去處이니라 生死關竅을 不破則疑情이 頓發하리니 結在眉睫上하야 放亦不下하며 趁亦不去하야 忽然一朝에 樸破疑團하면 生死二字가 是甚麽오 閑家(具)이니라. 噁.
0001_0092_a_01L공부를 짓되 그 귀한 것이 의정을 일으키는 데 있으니, 무엇을 일러 의정이라 하는가? 저 태어남에 어디로 옴을 알지 못한다면 온 곳을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고, 죽음에 어디로 감을 모른다면 가는 곳을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을지니라. 생사관을 타파하지 못하면 의정이 몰록 발하리니, 눈썹 위에 맺어 두어공부 일념이 간단없이 된다는 말 놓아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으며, 쫓으려 해도 쫓을 수 없어 홀연히 하루아침에 의단을 타파하면 나고 죽는 것이 이 무엇인가 부질없는 것이니라. 악!
做工夫호대 最怕耽著靜境이니 使人으로 困於枯寂호되 不覺不知로다 動境은 人多厭하고 靜境은 人多不厭은 良以行人이 一向에 處乎喧鬧之場이라가 一與靜境相應하면 如食飴蜜이라 如人이 倦久喜睡어니 安得自知耶아.
공부를 짓되 가장 고요한 경계에 탐착함을 두려워할지니, 사람으로 하여금 고적枯寂한 데 피곤(困)하게 하지만 깨닫지 못하니라. 분주한 경계는 사람마다 싫어하고, 고요한 것을 사람마다 좋아하는 경계는 진실로 수행하는 사람이 일행이 분주한 곳에 있다가 한번 고요한 경계로 상응하면 엿과 꿀을 먹는 것과 같이 탐착하느니라. 사람이 피곤함에 졸음에 취하여 잠자기 좋아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스스로 알 수 있겠는가?
做工夫호되 要中正勁挺하야 不近人情이어다 苟循情應對則工夫做不上하리라 不但做不上이라 日久月深하면 必隨流俗阿師無疑也리라.
공부를 짓되 중정을 굳세게 하여 사람의 정감에 가까이 말지어다. 인정을 좇으면 공부에 상승하지 못할지니라. 다만 공부만 짓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니라.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반드시 유행하는 풍속을 좇아 스승 됨이 의심 없을지니라.
0001_0092_b_01L做工夫人은 擡頭不見天하고 低頭不見地이로다 看山에 不是山이오 見水에 不是水로다 行不知行하고 坐不知坐로다 千人萬人之中이라도 不見有一人하야 通身內外가 只是一箇疑團이니 疑團을 不破하면 誓不休心이니라 此爲工夫緊要也ㅣ니라.
공부를 짓는 사람은 머리를 들지만 하늘을 보지 못하고, 머리를 숙여도 땅을 보지 못하니라.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요,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다. 행하여도 행함을 알지 못하고, 앉아도 앉음을 알지 못하니라. 천 인과 만 인 가운데라도 한 사람도 있음을 봄이 없어 온 몸뚱이 내외가 다만 한낱 의단이니, 의단을 파하지 아니하면 맹세코 쉬지 말라. 이것이 공부에 긴요하니라.
做工夫호되 不怕死不得活하고 只怕活不得死이니 果與疑情으로 廝結在一處乎아 動境은 不待遣而自遣하고 妄心은 不待淨而自淨하리라 六根門頭自然虛豁地에 點着卽到하고 呼着卽應이어니 何愁不活耶리오.
공부를 짓되 죽어서 살지 못할까 두려워 말고, 단지 살아서 죽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니, 과연 의정으로 더불어 한 곳에 맺어 두었는가? 동하는 경계는 보내기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가고, 망상심은 깨끗하기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청정해지리라. 육근문두가 자연히 텅 비어 넓은 지경에 점착하면 도달하고 부르면 대답하거니 어찌 살지 못할까 근심할 것인가?
做工夫호대 擧起話頭時어든 要歷歷明明호되 如貓捕鼠相似호리니 古所謂不斬黎(黧)奴면 誓不休라 하니라 不然則坐在鬼窟裡하야 昏昏沈沈하야 過了一生하리니 有何所益이리오.
공부를 짓되 화두를 들거든 역력히 하고 명명히 함에 고양이 쥐 잡는 것과 상사하게 할지니, 옛적에 이른바 살고양이를 베지 못하면 맹세코 쉬지 아니한다고 하였느니라.살고양이는 사견심과 도회심에 비유함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귀신의 소굴 속에 앉아 있어서 어둡고 침침한 데 일생을 지내리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貓捕鼠에 睜開兩眼하고 四脚撐撐하야 只要拿鼠到口하야사 始得다 縱有雞犬이 在傍이라도 亦不暇顧니 參禪者ㅣ도 亦復如是하야 只是憤然要明此理이니 縱八境이 交錯于前이라도 亦不暇顧ㅣ니라 纔有別念이면 非但鼠라 兼走卻貓兒하리라.
고양이가 쥐를 잡을 적에 두 눈을 부릅떠 노리고 네 다리를 딱 버텨서 다만 쥐를 이끌어 입에 이르게 하여야 옳다. 비록 닭과 개가 곁에 있더라도 또한 돌아볼 여가가 없으니, 참선자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야 하니라. 다만 분발하여 이 이치를 밝히기를 요구할지니, 비록 팔풍의 경계가 앞에서 서로 어기더라도 또한 돌아볼 여가가 없느니라. 비록 다른 생각이 있으면 다만 쥐뿐만 아니라 고양이까지라도 잊어버려라.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에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略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하야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딴여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대 不喪身失命者ㅣ幾希인저.
공부를 짓되 가히 고인의 공안 상에서 헤아려서 허망하게 해석을 더하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긴요함을 간략히 초과할지라도 자기로 더불어 교섭하지 말라. 특히 알지 못하는가? 고인의 한 말씀이 큰 불과 같아서 가까이할 수도 없고, 그것을 닿을 수도 없는 것인데 어찌 하물며 그 불 가운데 앉고 눕겠는가? 또다시 그 가운데 대소를 나누며 상하를 의론한다면 신명을 상실하지 아니할 자가 거의 드물지니라.
做工夫호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絶인달 豈可得乎아.
공부를 짓되 가히 문구를 좇아 찾으며 언어로 기록하지 말지니, 비단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부로 더불어 장애를 지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분별망상이 되리니, 마음이 행하는 길이 끊어지게 하고자 한다면 어찌 가히 얻을 수 있겠는가?
0001_0094_a_01L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이라 做到彌勒下生去이라도 管取沒交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대는 如坐在銀山鐵壁之中하야 只要得箇活路니 若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麽做去하면 時節이 到來에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짓되 비교하여 헤아림을 가장 꺼릴지니, 마음을 가지고 주박湊泊하면 도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니라. 아일다가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하여도 반드시 교섭이 없으리라. 만일 의정이 몰록 발하는 사람이라면 은산철벽 가운데 앉아서 다만 요컨대 하나의 살아 나갈 길을 구할지니, 만일 하나의 살 길을 얻지 못하면 어찌 평안히 지내겠는가. 다만 이렇듯 공부만 지어 가면 시절이 오는 때에 스스로 깨치리라.
黃蘗禪師云塵勞逈脫事非常이니 緊把繩頭做一場이어다 不是一翻寒徹骨이면 爭得梅花撲鼻香가하니 此語가 最親切이로다 若將此偈하야 時時警策하면 工夫自然做得上하리라.
황벽 선사가 이르시길, “진노를 멀리 벗어나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니니, 굳게 식심(識心頭 : 노끈)을 잡아 한 마당을 지을지니라. 이 한 번 뒤쳐 차가운 것이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매화의 향기가 코에 다다름을 얻을 것인가!”라고 하니, 이 말이 가장 친절한 것이니라. 만일 이 글귀를 가져 때때로 경책하면 공부가 자연히 상승함을 얻을 것이니라.
做工夫호되 最要緊이 是箇切字이니 切字最有力하니라 不切則懈怠하고 爲懈怠生則放逸縱意가 靡所不至하리라 若用心眞切이면 放逸懈怠가 何由得生이리오 當知하라 切之一字는 不愁不到古人田地하며 不愁生死心不破이니라.
공부를 짓되 가장 요긴한 것이 이 하나의 간절하다는 글자이니, 간절함의 한 글자가 가장 유력하니라.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해태심이 나고 해태심이 나면 방종한 뜻이 이르지 아니함이 없을지니라. 만일 마음이 참으로 간절하면 방일과 해태가 무엇을 말미암아 나겠는가. 마땅히 알라. 간절한 한 글자가 고인의 깨친 지경에 이르지 못할까 근심하지 말며, 생사를 파하지 못할까 근심하지 말지니라.
切之一字는 當下에 超善惡無記三性하나니 用心이 甚切則不思善하며 用心이 甚切則不思惡하며 不落無記하나니 話頭切이면 無悼擧하고 話頭切이면 無昏沈이니라.
간절함의 한 단어는 당장에 착한 것과 악한 것과 흐리멍덩한 것과 이 세 가지 성품에서 뛰쳐나오는 것이니, 작용하는 마음이 매우 간절하면 선도 생각할 수 없으며, 작용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악도 생각할 수 없고, 작용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흐린 성품에 떨어지지 아니하니, 화두에 간절하면 산란심이 없고 화두에 간절하면 혼침이 없느니라.
切之一字는 是最親切句이니 用心이 親切則無間隙故로 魔不能入하고 用心親切則不生計度有無等故로 不落外道이니라.
간절함의 한 단어는 가장 친절한 글귀이니, 작용하는 마음이 친절하면 간극이 없기 때문에 마가 능히 들어오지 못하고, 작용하는 마음이 친절하면 있다 없다는 무리를 헤아리지 아니하기 때문에 외도에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做工夫호대 最怕思惟하야 做詩做偈做文賦等이니 詩偈成則名詩僧이오 文賦工則稱文字僧이라 與心功(參禪)으로 總沒交涉이니라 凡遇著逆順境緣動人念處어든 便當覺破하야 提起話頭호대 不隨境緣轉하야사 始得다 或云不打緊이라 하나니 這三箇字가 最是悞人이라 學者는 不可不審이니라.
0001_0095_b_01L공부를 짓되 가장 두려운 것은 사유해서 시를 짓고 게송을 지으며, 작문과 부賦 짓는 것들을 꺼릴지니, 시나 게송을 일삼으면 이름을 시하는 승려라 하고, 문文과 부 짓기를 힘쓰면 문자승이라고 하느니라. 참선으로 더불어 총히 교섭이 없다. 무릇 역경계든지 순경계든지 사람의 생각을 동할 곳을 만나거든 문득 깨달아 화두만 잡아 들어 모든 경계를 쫓아 반연하여 굴리지 않아야 비로소 옳다. 혹 말하길 긴히 할 것이 없다 하나니, 이 세 개의 글자가 가장 사람을 그르치리라. 학자는 불가불 살펴야 할지니라.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라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치기를 기다리지 말지니라. 저 사람이 길을 감에 길 위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도달하기만 기다린다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함이니, 다만 가야만이 집에 이르는 것이요, 만일 마음을 가져 깨치기를 기다린다면 마침내 깨치지 못하는 것이니, 다만 핍박하여야 깨치리라. 깨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參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이면 古所謂雜毒이 入心에 傷乎身命이라 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하나의 실 터럭만큼이라도 딴 생각을 두지 말지니, 행주좌와에 오직 홀로 다만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잡아 들어 의정을 발기하고 분발하여 하나에 그치는 곳을 찾기를 요구할지니라. 만일 실 터럭만큼이라도 딴 생각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바 모든 독기가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을 상한다 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아니하지 못할지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는 覺(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覺(佛)法中事리오 於心體上에라도 取之捨之하며 執之化之가 悉別念矣이니라.
내가 이르길, 딴 생각은 비단 세간 법뿐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밖에는 불법 중에 일체 좋은 일이라도 다 이름이 딴 생각이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 중의 일뿐이겠는가? 내 마음의 본체 위에라도 그것을 취하고 그것을 버리며, 그것을 집착하고 그것을 변화시킴이 다 딴 생각이니라.
做工夫호되 最怕的一箇伶俐心이니 伶俐心이 爲之藥忌이니라 犯着些毫면 雖眞藥이 現前이라도 不能救耳이니라 若眞是個參禪漢인댄 眼如盲耳如聾하며 心念纔起時에 如撞着銀山鐵壁相似하리니 如此則工夫始得相應이니라.
공부를 짓되 가장 두려워할 것은 하나의 영리한 마음이니, 영리한 마음은 그 약에 상극이 되느니라. 터럭만큼이라도 범하면 비록 참 약이 현전하여도 능히 구원하지 못할지니라. 만일 진실로 이 하나의 참선한 자라면 눈이 맹인 같고 귀가 먹은 것과 같으며, 심념이 겨우 일어날 때에 은산철벽을 맞부딪침과 같으리니, 이와 같다면 공부에 비로소 상응할 수 있을지니라.
做工夫호되 不可避喧向寂이니 瞑目合眼하야 坐在鬼窟裏作活計어다 古所謂黑山下坐死水浸하니 濟得甚麽邊事리오 只須在境緣上做得去하야사 始是得力處이니라 一句話頭를 頓在眉睫上하야 行裏坐裏와 着衣喫(吃)81)飯裏와 迎賓送(待)客裏에 只要明這一句話頭落處니 一朝洗面時에 摸着鼻孔하면 原來太近이니라.
공부를 짓되 가히 시끄러움을 피하고 고요함을 향함에 눈을 질근 감고 귀신의 굴속에 앉아 있어 살길을 꾀하려 하지 말지니라. 고인이 말하길, “흑산 아래에 앉으니 죽은 물이 침범하였다.”라고 하니, 무슨 일을 마치겠는가. 다만 경계의 반연 위에서 공부를 지어 가야 비로소 힘을 얻으리라. 일구의 화두를 몰록 일으켜 눈썹 위에 두어 다니는 속과 앉은 속과 옷 입고 밥 먹는 속과 손님을 맞이하고 빈객을 보내는 속에 다만 이 일구 화두의 낙처를 밝힐지니, 하루아침에 낯을 씻을 때에 콧구멍을 만지면 원래로 가장 가까우니라.눈썹에 둔단 말은 항상 잊지 아니한단 말
工夫를 不怕做不上이니 做不上이어든 要做上하면 便是工夫이니라 做不上이라 하야 便打退鼓하면 縱百劫千生인달 其柰爾何리오.
공부를 지어서 향상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지 말지니, 지어서 향상하지 못하거든 짓는 것이 향상하기만 요구하면 문득 이것이 공부니라. 공부가 향상하지 않는다고 문득 물러나 북을 치면 비록 백겁 천생이라도 그 어찌하지 못하리라.
疑情이 發得起하야 放不下가 便是上路니 將生死二字하야 貼在額頭上호되 如猛虎趕來니 若不直走到家면 必喪身失命이라 猶可住脚耶리오.
의정이 발하여 일어남을 얻어 놓아 내리지 못한 곳이 문득 이것이 향상의 길이니, 생사 두 글자를 가지고서 이마 위에 붙여 둠에 마치 맹호가 쫓아오는 것과 같이 할지니, 만일 곧바로 달려 집에 이르지 아니하면 반드시 신명을 상실할 것인데 오히려 다리를 멈출 것인가?
做工夫호되 只在一則公案上用心이언정 不可一切公案上에 (作)解會니 縱能解得이라도 終是解요 非悟耶ㅣ니라 法華經에 云是法이 非思量分別之所能解(到)82)라 하시고 圓覺經에 云以思惟心으로 測度大覺(如來)의 圓覺境界댄 如將(取)83)螢火하야 燒須彌山인달하야 終不能得이라 하며 洞山이 云擬將心意學玄宗인댄 大似西行却向東이라 하시니 大凡穿鑿公案者는 須皮下有血이니 識慚愧84)하야사 始得다.
0001_0097_b_01L공부를 짓되 다만 일칙一則의 공안 상에 있어 마음을 쓸지언정 일체의 공안 상에 알려고 하지 말라. 비록 앎을 얻었을지라도 마침내 이것은 알음알이요, 깨친 것이 아니다. 『법화경』에 말씀하시길, “이 법이 사량분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라고 하시고, 『원각경』에 이르시길, “사유하는 마음으로써 여래의 원각경계를 헤아린다면 마치 반딧불을 취해 가지고 수미산을 태우려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능히 얻지 못한다.”라고 하며, 동산이 이르길, “심의식을 가져 현종을 배우려면 크게 서쪽으로 감에 도리어 동쪽으로 가는 것과 같다.”라고 하시니, 대체로 공안을 천착하는 자는 모름지기 가죽 아래에 피가 있는 자이니(죽어 썩은 놈이 아니니),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비로소 옳다.
道不可須臾離이니 可離면 非道也요 工夫를 不可須臾間斷이니 可間斷이면 非工夫也ㅣ니라 眞正參究人은 如火燒眉毛上하며 又如救頭然하나니 何暇爲他事動念耶리요 古德이 云如一人이 與萬人敵하야 覿面에 那容眨眼看이리오하니 此語가 做工夫에85) 最要라 不可不知이니라.
도는 잠깐이라도 여의지 않을 것이니, 가히 여의면 도가 아니요, 공부를 잠깐이라도 사이가 끊이지 않을 것이니, 사이가 끊이면 공부가 아니니라. 진정으로 참구하는 사람은 불이 눈썹 위에 타는 것과 같으며, 또 머리에 불타는 것을 구하는 것과 같이 하나니, 어찌 한가롭게 다른 일을 위해서 생각을 움직이겠는가. 고덕이 이르길, “마치 한 사람이 만인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과 같아서 얼굴을 봄에 어찌 눈을 끔적거리어 봄을 용납하겠는가?”라고 하니, 이 말이 공부하는 데 가장 긴요한 것으로 불가불 알아야 할지니라.
做工夫호되 曉夕에 不敢自怠니 如慈明大師는 夜欲將垂면 用引錐刺之하시고 又云古人이 爲道에 不食不寢이어시늘 予86)는 何人耶오하시니라.
공부를 짓되 아침과 저녁에 감히 스스로 게으르지 말지니, 저 자명 대사는 밤에 장차 졸리고자 하면 송곳으로 살을 찌르시고, 또 이르시길, ‘고인이 도를 하심에 먹고 잠잘 여가가 없이 하셨는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하셨다.
做工夫호되 不得向擧起處承當이니 若承當이면 正所謂瞞頇儱侗이라 與參究로 便不相應이니라 只須發起疑情하야 打敎徹無承當處하며 亦無承當者인대 如空中樓閣이 七通八達이니라 不然이면 認賊爲子하며 認奴作郞이니라 古德의 云莫將驢鞍橋하야 喚作阿爺下頷이라 하니 斯之謂也ㅣ인저.
0001_0098_b_01L공부를 짓되 거량을 일으키는 곳을 향하여 승당하려고 말지니승당함이라 함은 가령 종사가 종승을 거량함에 학자가 내달아 공연히 이것이요 저것이요 대답해서 승당하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승당하려고 하면 바로 이른바 미련하고 어리석으니라.만안롱동瞞頇儱侗은 두미頭眉가 없고 방행이 없는 두루뭉술이라 참 어리석다. 참구로 더불어 상응하지 못하니라. 다만 의정을 발기하여 하여금 승당할 것이 없는 곳에 사무치며, 승당할 것이 없는 데에 사무친다면 공중에 높이 지은 누각이 칠통팔달한 것과 같으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도적을 그릇 알아 자식을 삼은 것이며, 종을 그릇 알아 낭군을 삼는 것이니라. 고덕이 이르길, “나귀 안장 다리를 가지고 부모의 아래턱이라고 불러 짓지 말라.”라고 하시니, 이것을 말하느니라.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라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에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코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해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일 설파해 주더라도 마침내 다른 사람의 것이라 자기는 상관이 없느니라. 사람이 길을 물어 장안에 이르고자 함에 다만 그 길만 가르쳐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을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장안의 일을 낱낱이 설명하더라도 마침내 저 사람이 본 것이요, 길을 묻는 자가 친히 본 것이 아니니라. 만일 힘써 가지 아니하고 문득 다른 사람이 설파하여 준 것만 구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0001_0099_a_01L做工夫호되87) 不可須臾失正念이니 若失了參究一念이면 必流入異端하야 茫茫不返하리라 如有人이 靜坐애 只喜澄澄湛湛하야 純淸絶點으로 爲覺法(佛事)하나니 此喚作失正念이라 墮在澄湛中이오 或認箇能講能譚能動能靜으로 爲覺法(佛事)하나니 此喚作失正念이라 認識神이오 或將妄心遏捺하야 令妄心不起로 爲覺法(佛事)하면 此喚作失正念이라 如石壓草요 又如剝芭蕉葉子하며 或觀想身이 如虛空하야 不起念을 如牆壁하나니 此喚作失正念이라 落空亡外道며 魂不散底死人이니 總而言之컨대 皆失正念故이니라.
공부를 짓되 가히 잠깐이라도 정념을 잃지 말지니, 만일 참구하는 한 생각을 잊으면 반드시 이단의 도로 들어가 아득히 돌아오지 못할지니라. 어떤 사람이 고요히 앉아 맑고 맑은 것만 즐겨서 순일하게 청정하여 점에가 끊어진 것으로 각법을 삼나니, 이것은 정념을 잃을 것이라 맑고 맑은 데에 떨어지느니라. 혹 능히 강의도 하고 말도 하고 능히 꿈쩍이고 능히 고요한 것으로 각법을 삼나니, 이것도 정념을 잃은 것이라 신령스러운 알음알이를 그릇 안 것이니라. 혹 망상심을 억지로 막아 눌러 망상심이 일어나지 아니한 것으로 각법을 삼나니, 이것도 정념을 잃은 것이라 돌로 풀을 누른 듯하느니라. 또 파초의 잎을 벗겨내듯하며 혹 몸이 허공과 같음을 관하여 생각을 아니 일으키는 것이 장벽과 같이 하나니, 이것도 정념을 잃은 것이라 공망에 떨어진 외도며, 혹 흩어지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이라 총괄하여 말하면 다 정념을 잃은 것이니라.
0001_0099_b_01L做工夫호대 疑情을 發得起어든 更要撲得破니 若撲不破時에는 當確實正念호대 發大勇猛하야 切中에 更加個切字하야사 始得다 徑山이 云大丈夫漢이 決欲究竟此一段大事因緣인댄 一等打破面皮하야 性燥히 竪起脊梁骨하야 莫順人情하고 把自己平昔所疑處하야 貼在額頭上호대 常時에 一似欠人萬百貫錢하야 被人追索에 無物可償이라 怕被人恥辱일가하야 無急得急하며 無忙得忙하며 無大得大底一件事라사 方有趣向分이라 하니라.
공부를 짓되 의정이 발하여 일어나거든 다시 의정을 타파하기를 요구할지니, 만일 타파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정념을 확실히 하되 큰 용맹심을 발하여 간절한 가운데 또다시 간절함을 더하여야 옳다. 경산이 이르길, “대장부가 결단코 일대사인연을 궁구하고자 한다면 한 지위 낯가죽을 타파하여 성품이 조급히 하여 척량골을 버티어 인정을 수순하지 말라. 평석에 의심난 곳을 가져 이마 위에 붙여 둠에 평소에 타인의 빛이 백만 관이 모자라는 것과 같아서 저 사람의 재촉하는 것을 입어 가히 갚을 수 없는 지경이다. 사람의 치욕을 입을까 두려워하여 급함이 없는데 급하게 하며 바쁨이 없는데 바삐 하며 큼이 없는데 큰 하나의 사건이 있는 것과 같이 하여야 바야흐로 나아갈 분이 있을지니라.”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0001_0100_a_01L黃檗이 見百丈에 擧再參馬祖機緣하시고 便吐舌하니 是는 得百丈力耶아 得馬祖力耶아 巖頭가 見德山一喝하고 便禮拜하니 是知恩耶아 報恩耶아.
황벽이 마조를 친견하고자 하여 백장을 하직함에 백장이 말하길, “마조께옵서 이미 열반에 드셨다.” 황벽이 한탄하기를 마지아니하시고 다시 백장에게 여쭙길, “사부께옵서 마조를 친견하심에 무슨 법을 말씀하셨습니까?” 백장이 이르길, “내가 마조 선사를 두 번째 참여할 때에 마조께서 이와 같이 하였다.”라고 하고 문득 벽력같이 호령하니, 황벽이 활연대오하여 혀를 토하니, 이것은 백장의 힘을 얻어 깨친 것인가? 마조의 힘을 얻어 깨친 것인가? 암두께옵서 덕산을 보옵고 물어 말하길, “내가 이 범부인가? 성현인가?” 덕산이 벽력같이 호령하시기에 암두가 문득 예배하시니, 이것은 은혜를 알아서 예배한 것인가? 은혜를 갚으려고 예배한 것인가?88)
又答洞山語에 云我當時에 一手擡一手搦호라 하니 那裏가 是他擡搦處오. 見徹二老의 骨髓者ㅣ대는 便好着一轉語하야 截斷諸方舌頭하리니 許汝得入門이언.
0001_0100_b_01L암두 전활 선사가 덕산 화상을 뵈올 때에 문에 걸터앉아 묻길, “내가 이 성인인가 이 범부인가?” 덕산이 벽력같이 호령하시니, 암두가 문득 예배하였다. 동산이 이 말을 듣고 찬탄하여 말하길, “만일 암두 전활 상좌가 아니면 크게 승당하기가 어려웠다.”라고 하였다. 그 뒤에 암두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길, “동산 노인이 좋고 나쁜 것을 알지 못하고 그릇 이름하여 말하였다. 이런 것이 아니라89) 내가 당시에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렸다.”라고 하니, 어떤 속이 이 손 들고 내린 곳인가? 두 어른의 골수를 사무쳐 보면 문득 한 말을 내려 제방의 혀를 끊으리니, 네가 문에 들어옴을 허락하려니와
其或未然인댄 急宜參究어다 若涉參究인대는 便論工夫호리라 直須依本分如法하야사 始得다 當於本參公案上에 有疑호리니 大疑之下에 必有大悟이니라 千疑萬疑를 倂作一疑하야 於本參公案上에 取辦호리니 若不疑言句인대는 是爲大病이니라.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마땅히 급히 참구할지니라. 만일 참구하고자 한다면 문득 공부를 의론할지니라. 바로 본분을 의지하여 법답게 하여야 옳다. 마땅히 본래 참구하는 공안 위에 의심을 둘 것이니, 크게 의심하는 아래에서 반드시 크게 깨치리라. 천 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을 아울러 하나의 의심을 지어서 본래 참구하는 공안 위에 판단하기를 취할지니, 만일 언구를 의심하지 아니한다면 이것이 큰 병이 되느니라.
0001_0101_a_01L仍要盡捨諸緣하고 於四威儀內와 二六時中에 單單提箇話頭하야 廻光自看이니라. 若於坐中에 得力이 最多어든 坐宜得法이언정 不要瞠眉努目하야 遏捺身心이어다 若用氣力이면 則招病苦하리라 但端身正坐하야 平常開眼하야 身心境界를 不必顧着이어다.
인하여 다 모든 인연을 놓고 행주좌와 24시 중에 단단히 하나의 화두만 잡아 들어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어다. 만일 좌선하는 중에 득력이 가장 많거든 앉아 마땅히 법만 얻을지언정 똑바로 보아 눈에 힘을 써서 몸과 마음을 막아 억지로 누르지 말지니, 만일 기력을 쓰면 곧 병고를 부르리라. 다만 몸을 단정히 하여 바르게 앉아서 평소대로 눈을 떠서 몸과 마음의 경계를 반드시 돌아보아 집착하지 말지니라.
或有昏沈掉擧커든 着些精彩하야 提擧一二聲話頭하면 自然諸魔가 消滅하리라 眼定而心定하고 心定而身定이니 若得定時에는 不可以爲能事이니라 或忘話頭하야 沈空滯寂하면 不得大悟하야 反爲大病이리라. 吾祖西來하사 單提直指하심은 以大悟로 爲入門하시고 不論禪定神通이시니 此是末邊事이니라 若於定中에 得悟明者는 智慧가 却能廣大하야 水陸幷進也리라.
0001_0101_b_01L혹 혼침과 산란이 있거든 조금 정신을 거두어 화두를 한두 번 소리를 잡아 들면 자연히 모든 마가 소멸하리라. 눈이 일정한 것은 마음이 적정한 것이요, 마음이 적정하기에 몸도 적정해서 지은 것이니, 만일 선정을 얻을 때에는 능사로써 삼지 말라. 혹 화두를 잊고 저 공에 잠기고 고요한 데 걸리고 크게 깨치지 못하면 큰 병이 되느니라. 달마 조사가 서쪽으로 오시어 홀로 잡아 들어 바로 가르치심은 크게 깨친 것으로 문에 드는 것을 삼으시고, 선정과 신통은 의론하지 아니하셨으니, 이것이 다 끝과 갓의 일이니라. 만일 선정 중에 밝게 깨침을 얻은 자는 지혜가 도리어 광대해서 물과 뭍에 아울러 나아가는 것이니라.
0001_0102_a_01L工夫가 若到濃一上淡一上하야 無滋味時에 正好進步하야 漸入程節이니 切不可放捨(拾)어다 惺惺이면 便入靜이니 靜而後에 定이라 定各有名하야 有邪有正이니 宜知之이니라 起定後에 身心이 輕淸하야 一切處에 省力하리니 於動中에 打成一片이라도 却當仔細用心이어다 趁逐工夫始終이 不離靜淨二字니 靜極하면 便覺하이요 淨極하면 光通達이니 氣肅風淸하야 動靜境界가 如秋天相似時에 是第一箇程節이니라 便宜乘時進步하면 如澄秋野水하며 如古廟裏香爐相似하리니 寂寂惺惺하야 心路不行時에 亦不知有幻身이 在人間이라 但見箇話頭綿綿不絶이로다 到這裏하야는 塵將息而光將發이니 是第二箇程節이니라 於斯에 若生知覺心하면 則斷純一之妙하리니 大害也ㅣ로다 無此過者는 動靜이 一如하고 寤寐惺惺하야 話頭現前홈이 如透水月華가 在灘浪中活潑潑하야 觸不散蕩不失時에 中寂不搖하며 外憾不動矣니 是第三箇程節이니라 疑團이 破하면 正眼開近矣니 忽然築着磕着에 碎地絶爆地斷하면 洞明自己하야 捉敗覺(佛)祖得人憎處하리니 又宜見大宗匠하야 求煅煉成大法器언정 不可得少爲足이니라. 悟後에 若不見人이면 未免不了後事하리니 其害非一이니라.
0001_0102_b_01L공부가 만일 농후한 하나의 지위와 담담한 하나의 지위에 이르러 아무 재미가 없을 때에 바로 좋게 걸어 나아가야 점차로 절정에 들어가리니, 간절히 놓아 버리지 말라. 성성만 하면 문득 고요한 데 들어갈지니, 고요한 연후에 선정한 것이니, 선정에는 각각 이름이 있어서 바름과 삿됨이 있으니, 마땅히 알지니라. 선정에서 나온 연후에 몸과 마음이 가볍고 청명하여 일체의 처소에서 힘이 덜어지니, 바로 준동하는 가운데 한 조각을 이루어도 마땅히 자세히 마음을 쓸지니라.
공부에 나아감에 시작할 때나 마칠 때나 깨끗하고 고요한 두 가지를 여의지 말지니, 고요함이 극진하면 문득 깨치는 것이요, 깨끗함이 극진하면 광명이 통달하는 것이니, 기운이 엄숙하고 풍기가 맑아서 동정의 경계가 가을 하늘처럼 맑은 때가 이 공부의 첫째로 표준이 되는 절목이니라.
문득 이러한 지경에 때를 타고 나아가면 맑은 가을에 들판의 물과 같으며, 옛 사당 속의 향로와 같으리니, 고요하고 고요하며 또렷하고 또렷해서 마음이 다니지 아니하는 때에 나의 허환한 몸이 인간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화두만 면밀하고 면밀하게 끊어지지 아니하니라. 이 속에 이르면 티끌은 장차 쉬고 광명은 장차 발하리니, 이것이 제2의 표준이 되는 절목이니라.
이때에 만일 깨친 마음을 내면 공부가 순일함을 끊으리니, 크게 해로울 것이다. 이 허물이 없는 자는 동정動靜이 한결같고 오매寤寐가 또렷하고 또렷하여 화두가 현전한 것이 물속에 비추는 달빛의 광명이 여울의 물결 가운데에 있어 활발발하여 닿아도 흩어지지 않고, 동탕하여도 잃지 아니할 때에 중심이 고요하여 흔들리지 아니하며, 밖으로 흔들려도 요동하지 아니하리니, 이것이 제3의 표준이 되는 절목이니라.
의단이 타파되면 정안正眼이 열림이 가까우니, 홀연히 대쪽 맞듯 맷돌 맞듯 하여 계란이 새끼가 생겨나서 어미 닭이 부리로 쪼음에 병아리가 울고 나오는 듯 왕대 마디가 튀듯 해서, 나의 본연한 성품이 환하게 밝아진 신훈 각조覺祖의 본분인이 미워한 곳을 잡아 타파할지니라. 또 마땅히 대종장을 보아 백 번을 단련하여야 대법기 이루기를 구할지언정 조금 얻어 가지고 자족하는 마음을 내지 말지니라. 깨친 뒤에라도 대종장을 보지 못하면 후사를 알지 못하리니 그 해로움이 하나만이 아니니라.
0001_0103_a_01L或於覺(佛)祖機緣上에 有礙處하면 是는 悟淺이라 未盡玄妙이니라. 旣盡玄妙하야는 又要退步하야 韜晦保養호되 力量을 全備이니 看過藏敎儒道諸書하야 消磨多生習氣어다 淸淨無際하며 圓明無礙하야사 始可高飛遠擧하며 庶得光明이 盛大하야 不辱先宗하리라 其或換舊時行履處를 未盡이면 便墮常流이니라 說時에 似悟나 對境還迷하야 出語가 如醉人하야 作爲俗子하리라 機不識隱顯하고 語不知正邪하야 撥無因果인대는 極爲大害이니라.
혹 각조覺祖의 근기를 반연한 위에 장애한 곳이 있으면 이것은 깨친 것이 옅어 그러한 것이라 현현하고 미묘한 것을 다하지 못한 까닭이니라. 이미 현묘함을 다하였더라도 또한 걸음을 물러나서 이름을 감추고 자체를 숨기어 힘을 온전히 갖추어 대장경과 유서와 도가를 보아 나의 다생에 습기를 녹일지니라. 청정하여 갓이 없으며 뚜렷이 밝아 걸림이 없어야 애초에 가히 높이 날고 멀리 들어 광명이 성대함을 얻어 선대 조사의 종지에 욕되지 아니하리라. 그 혹시 옛 시절을 환기하여 행리를 다하지 못하면 문득 범상한 부류에 떨어지리라. 말할 때는 깨친 듯하나 경계를 대면하면 도리어 미혹하여 말이 술 취한 사람 같아서 세속의 자식을 지으리라. 기틀이 숨고 나타남을 알지 못하고, 말이 삿됨과 바름이 없이 인과를 쓸어 없앤다면 지극히 해가 되느니라.
0001_0103_b_01L先輩의 正之與邪가 大有樣子하니 了事者는 生死岸頭에 能易麤爲細하며 能易短爲長호되 以智光明解脫로 得出生一切法三昧王이니라 以此三昧故로 得意生身하며 向後에 能得妙應身信身하나니 道如大海하야 轉入轉深이니라. 達摩가 有頌云悟覺(佛)心宗은 等無差互나 解行이 相應하야사 名之曰祖라 하시니 更莫說宗門中에 有超覺(佛)越祖低作略이니 聰上人은 信麽아 信與不信은 向後自知하리라.
고인의 그 바름과 삿됨이 크게 표본이 있으니, 일을 마친 자는 생사의 언덕에 능히 거친 것을 바꾸어 미세한 것을 만들며 능히 짧은 것을 바꾸어 긴 것을 만들면서, 지혜 광명의 해탈로써 일체법을 출생하는 삼매왕을 얻으리라. 이러한 삼매이기 때문에 의생신을 얻으며, 그 뒤에는 미묘한 응화신(시방국토에 인연을 쫓아)과 믿음의 몸을 얻나니, 도가 큰 바다 같아야 전전이 들어갈수록 전전이 깊어지리라. 달마가 게송을 두어 이르길, “각의 마음의 종지를 깨치면 똑같아서 차등이 서로 없으나 아는 것과 생이 상응해야만이 이름하여 조사라고 한다.”라고 하시니, 다시 종문 중에 각조를 뛰어넘는 도약이 있다고 말라. 총상인은 믿는가? 믿고 믿지 아니하는 것은 이후에 스스로 알아지리라.
완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0001_0104_a_01L師見蒙山의 來禮하시고 先自問云호되 爾還信得及麽아 山云若信不及인댄 不到這裡이니다 師云十分信得이라도 更要持戒이니 持戒하야사 易得靈驗하리라 若無戒行이면 如空中樓閣이니 還持戒麽아 山이 云見持五戒이니다 師ㅣ云此後에 只着箇無字호되 不要思量卜度하며 不得有無會하며 且莫看經敎語錄之類하고 只單單提箇無字호되 於十二時中과 四威儀內에 須要惺惺하야 如猫捕鼠하며 如鷄抱卵하야 無斷續이어다 未得透徹時에는 當如老鼠가 咬棺材相似하야 不可改移이니라.
스님은 몽산이 와서 예배함을 보시고 먼저 스스로 묻길, “그대는 도리어 믿는가?” 몽산이 이르길, “만일 믿지 아니하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이르시길, “충분히 믿더라도 다시 계를 수지하길 요하니, 계를 가져야 영험을 쉽게 얻으리라. 만일 계행이 없으면 공중의 누각과 같으니, 도리어 계를 가지는가?” 몽상이 이르길, “오계는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이르시길, “이 뒤에는 다만 하나의 무자만 의심하되 사량하지 말며, 있고 없는 것도 알려고 하지 말고, 또한 경전이나 어록이나 그런 것을 보려고도 하지 말며, 다만 오직 무자만 잡아 들되 24시간과 행주좌와 내에 또렷또렷이 해서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하며, 닭이 알을 품은 듯 해서 조금도 끊이지 말지니라. 아직 투철하게 깨치지 못하였거든 늙은 쥐가 쌀 궤짝을 쏘는 것과 같이 하여 가히 고쳐서 옮기지 말지니라.(화두 의심하는 모양)
0001_0104_b_01L時復鞭起疑云一切含靈이 皆有覺(佛)性커시늘 趙州는 因甚道無오 意는 作麽生고 旣有疑時어든 默默提箇無字하야 廻光自看호리니 只這箇無字로 要識自己하며 要識得趙州하며 要捉敗覺(佛)祖得人憎處이니라 但信我如此說話하야 驀直做將去하면 決定有發明之時節하리니 斷不誤爾云云.
때론 다시 의심을 경책하여 일으키어 이르길, “일체 함령이함령은 중생이다. 다 신령한 각성이 있거늘 조주는 무엇을 인하여 없다고 말하는가?” 뜻은 어떠한가? 이미 의심이 있거든 묵묵히 하나의 무자를 잡아 들어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 다만 이 무無자로 자기 성품을 알기를 요구하며, 조주를 알기를 요구하고, 화문변이 신훈각조가 사람을 얻어 미워하는 곳을 잡아 팸을 요구할지니라. 다만 나의 이러한 말을 믿어 바로 공부를 지어 가면 결정적으로 발명할 시절이 있으리니, 결단코 너를 그르침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0001_0105_a_01L若欲參禪인대 不用多言이니 趙州無字를 念念相連하야 行住坐臥에 相對目前이어다 奮金剛志하야 一念萬年이라 廻光返照하야 察而復觀하며 昏沈散亂에 盡力加鞭이어다 千磨萬鍊하면 轉轉新鮮이요 日久月深하면 密密綿綿이라 不擧自擧호미 亦如流泉하며 心空境寂하야 快樂安然하리라 善惡魔來어든 莫懼莫歡이어다 心生憎愛하면 失正成顚하리라 立志如山하고 安心似海하면 大智如日하야 普照三千하리라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이라 虛空에 發焰하고 海底에 生烟하면 驀然築着磕着하야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都穿하여 諸覺(佛)妙理를 無不周圓하리라 到伊麽時하야는 早訪高玄하야 機味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儞어든 再入林巒하야 茅菴土洞에 苦樂을 隨緣호대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케 호리라 時至出山하야 駕無底船하야 隋流得妙하야 廣度人天하야 俱登覺岸하야 同證金仙이니라.
0001_0105_b_01L만일 참선하고자 한다면 수많은 말을 할 것이 없으니, 조주무자를 생각생각이 서로 이어져서 행주좌와에 한결같아서 목전에 서로 대한 듯이 매하지 말지니라. 금강과 같은 굳은 뜻을 분발하여 한 생각이 만년 가게 할지어다. 회광반조하여 살피고 다시 관하여 혼침과 산란에 힘을 다하여 채찍을 더할지어다. 천만번 갈고 단련하면 전전이 신선하고 일구월심하면 면밀하고 면밀하게 할지니라. 들지 아니하여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는 것이 물이 흘러 쉬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며, 마음이 비고 경계가 고요해서 즐겁고 평안하리라.
선악의 마군이 오거든 무서워하지도 말고, 즐거워하지도 말지어다. 마음에 증애심을 내면 정다움을 잃고 전도함을 이루리라. 뜻을 산처럼 굳게 세우고, 마음은 바다처럼 넉넉히 하면 큰 지혜의 해와 같아져야만이 삼천세계에 널리 비추리라. 미혹의 구름이 흩어져 다하면 만 리 청천에 중추의 보배 달이 맑게 사무쳐 그 근원이 맑으리라. 허공에서 불꽃이 발하고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이 맞추듯 하여 거듭 현현한 것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다 꿰며, 제각의 묘리를 두루 원만하게 아니함이 없으리라.
이러한 때에 이르러 일찍이 드높은 현자를 찾아 기미機味를 완전하게 굴려서 바름도 없고 편벽됨도 없이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산림에 들어가 띳집과 흙집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함이 없이 광대하게 하여 성품의 깨끗하기가 흰 연꽃처럼 할지어다. 때가 오거든 산 밖에 나와 바닥없는 배를 타고 반연의 물결을 따라 묘한 것을 얻어 널리 인천을 제도해서 동일하게 정각의 언덕에 올라 동일하게 금선金仙을 증득할지어다.
보제 존자가 각오 선인에게 보이심(普濟尊者示覺悟禪人)
念起念滅을 謂之生死이니 當生死之際하야 須盡力提起話頭어다. 話頭純一하면 起滅卽盡하리니 起滅卽盡處를 謂之寂이니 寂中에 無話頭하면 謂之無記이오 寂中에 不昧話頭하면 謂之靈이니라. 卽此空寂靈知가 無壞無雜하야 如是用功하면 不日成之하리라.
0001_0106_a_01L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소멸하는 그것을 일러 생사라 하는 것이니, 나고 죽는 때를 당해서 힘을 다해서 화두를 잡아들지니라. 화두가 순일하면 일어나고 소멸함이 곧 다하리라. 일어나고 소멸하는 것이 곧 다하는 곳의 그것을 고요함이라 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그것을 일러 무기無記라 하고,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뚜렷뚜렷 매하지 아니하면 그것을 일러 신령하다 하느니라. 곧 이 공적영지가 무너지지 않고 섞이지도 아니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여러 날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이루리라.
대각기원 2949년(1922) 임술 9월 21일 끝마침
부록附錄
수심정로修心正路
대각교 관정사 백상규 지음
1. 시심마是甚麽 화두話頭에 병을 간택揀擇함
0001_0107_a_01L대저大抵 마음을 닦는 도인道人들은 먼저 공부工夫길을 자세仔細히 간택揀擇하여 바른 길을 얻어야 헛고생(苦相)을 아니하고 탄탄대로坦坦大路로 걸림 없이 갈 것입니다. 수도인修道人들은 자세히 들어 보시오. 사람사람마다 한 물건이 있으니, 천지와 허공을 온통 집어삼키어 있고, 또 가는 티끌 속에도 작아서 차지 아니하오. 밝기는 백천일월百千日月로 견주어 말할 수 없고, 검기는 칠통漆桶으로도 같다 할 수 없습니다.
이 물건物件이 우리의 옷 입고 밥 먹고 잠자는 데 있지만 이름 지을 수 없고 얼굴(모습)을 그려 낼 수 없습니다. 이는 곧 마음도 아니요 마음 아님도 아니요, 생각生覺도 아니요 생각 아님도 아니요, 각도 아니요 각 아님도 아니요, 하늘도 아니요 하늘 아님도 아니요, 귀신鬼神도 아니요 귀신 아님도 아니요, 허공虛空도 아니요 허공 아님도 아니요, 일물一物도 아니요 일물 아님도 아니니, 그가 종종種種 여러 가지가 아니지만 능히 종종 여러 가지를 건립建立하나니, 지극히 밝으며 지극히 신령神靈하며 지극히 비었으며 지극히 크며 지극히 가늘며 지극히 강强하며 지극히 유柔합니다. 이 물건은 명상名相이 없으며 명상이 아님도 없습니다. 이 물건은 마음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없고, 마음이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없으며, 언설言說로도 지을 수 없으며, 고요하여 말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物件인가? 의심하고 또다시 의심함에 어린아이가 어머니 생각生覺하듯이 간절히 하며 닭이 알을 품고 앉아 그 따뜻함이 끊이지 아니한 것과 같이 하면 참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칠 것입니다.
수도인修道人들은 또다시 나의 말을 들어 보시오. 우리가 공부를 닦는 것은 삼장십이부경전三藏十二部經典에 상관相關이 없고 오직 능인대각能仁大覺이 다자탑전多子塔前에서 반좌半座를 나누시고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드시고 사라쌍수간娑羅雙樹間에서 관棺으로 쫓아 두 발을 내어 보이시니, 이것이 전하여 오는 것이 우리가 믿어 행하는 것이오. 출격장부出格丈夫들은 알거든 곧 알 것이지만 모르거든 의심疑心하여 보시오. 사리불舍利弗과 같이 지혜智慧가 있는 사람이 온 세상(世間)에 가득하고 티끌 수와 같지마는 정사라도 조금도 알지 못하며 삼세三世 모든 각도 이 물건을 알지 못하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모든 도인들은 알거든 내어놓으시오. 모르거든 의심하여 보시오. 부디 공부하는 도인들은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모든 경계境界를 쫓아가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하지 마시오. 또 소소영영한 것이 무엇인가 하지 마시라. 또 생각 일어나는 곳을 들여다보지도 마시오. 또 화두할 때에 잘 되고 못 되는 데 이해理解를 취하지도 마시오. 또 고요하고 안락安樂함을 취하지 마시오. 또 공부하다가 마음이 텅 빈 것을 보고 견성見性하였다고 마시오. 이 물건은 천지天地와 허공虛空을 집어삼키고 있는 물건입니다.
이 물건이 무슨 물건인가? 이와 같이 의심하시오. 어떤 사람이 묻길, “무슨 인유因由로 보고 듣는 것이 이 무엇인가 하지 말라 하며, 소소영영昭昭靈靈한 것이 무엇인가 말라 하며, 생각 일어나는 곳을 찾아보지 말라 하는가?” 용성龍城이 대답하길, “육근이 경계를 대함에 그 아는 분별이 나타남이 한정이 없거늘 그 허다한 경계를 쫓아가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찾으면 그 마음이 어지러울 뿐만 아니라 그 화두도 일정一定한 것이 아니요. 그리하다가 혹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아는 것으로 자기自己의 본면목本面目으로 그릇 알기도 쉽다. 그렇지 아니하면 고요한 것으로 자기自己의 본성本性을 삼기도 쉽다. 그렇지 아니하면 공空한 것으로 본성을 그릇 알기도 쉽다. 그렇지 아니하면 말끔한 것으로 자성을 깨쳤다 하기도 쉽다. 마음이 스스로 내가 소소영영昭昭靈靈하다고 아니하거늘 무슨 일로 소소영영하다고 하는가? 생각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서 비추어 보지도 말라. 혹 맑은 생각으로 맑고 맑은 곳을 보아 그곳에 집을 짓고 들어가 앉기도 쉽다. 설혹 일념一念 당처當處가 곧 공함을 깨칠지라도 확철대오確徹大悟가 아니요.”
육조六祖께서 말씀하시길,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 땅을 고였으며, 밝은 것은 일월日月과 같고 검기는 칠통과 같아서 항상 나의 동정動靜하는 가운데에 있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라고 하시며, 또 육조께서 회양懷讓을 대하여 물어 말하길, “무슨 물건이 이렇듯이 왔는가?”라고 하시니, 회양懷讓이 알지 못해서 팔년八年을 궁구하다가 확철대오確徹大悟하였으니, 이것이 화두하는 법이다. 이 물건은 육근六根으로 구조構造된 몸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相關이 없이 항상恒常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상관없이 항상 있다. 공空하고 공하지 아니한 것이 상관이 없이 항상 있다. 허공은 없어져도 이 물건은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밝은 것은 무량無量한 일월로 비준할 수 없다. 검은 것은 칠통漆桶으로도 같다 할 수 없다. 참으로 크다. 천지와 세계世界와 허공을 다 삼켜도 삼킨 곳이 없다. 참으로 작은 것이다. 가는 티끌에 들어갔지만 그 티끌 속에도 보이지 아니한다.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단지 의심하여 볼지어다. 추호秋毫라도 달리 아는 마음을 내지 말고, 단지 의심疑心이 큰 불덩어리같이 의심만 할지니라. 단지 은산銀山과 철벽鐵壁같이 해서 발붙이지 못할 곳을 행하여 뚫어 들어가리라.
묻길,
“천지허공을 온통 집어먹고 있다 하니, 이것이 나의 본원本源 각성覺性이 아닌가? 나의 참 마음이 아닌가?”
용성이 대답하길,
“이것은 네게 지해知解가 아닌가? 네가 참으로 증득證得한 것인가? 비유컨대 어떠한 사람이 서울은 보지 못하고 서울을 본 사람에게 서울의 일을 들어 보았다고 하자. 그 서울을 자세히 본 사람은 서울을 본 말을 자세히 하니, 그 서울을 아니 본 사람이 서울에 남대문이 어떻고 종로가 어떻고 대궐이 어떻다고 하는 말을 들어서 알았다. 그러면 그것이 서울을 친히 본 것이 되는가? 성인聖人의 마음이니 성품이니 말하시니, 그 말만 듣고 그 말만 외우기만 하면 성인이 되는 것인가? 본성이 어느 때에 내가 본성本性이라고 말하는가? 이것은 사람이 명상名相을 지어 마음이다 성품性品이다 여러 가지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명상 짓기 전에는 무슨 물건인가? 네가 궁구窮究하여 실답게 깨치며, 실답게 증득하여야 될 일이 아닌가? 이 일은 말로 지어 꾸미어도 될 수 없고 말이 잠잠하거나 고요한 것으로도 될 수 없고, 있는 마음으로도 될 수 없으며, 없는 마음으로도 될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궁구窮究하여 볼지어다.”
이것은 모든 성현도 알지 못한다고 하거든 너의 아는 것으로 알 수 있는가? 그 의미意味가 깊다. 모든 성인聖人이 참으로 몰라서 모른단 말도 아니요 알아서 아는 것도 아니니, 그대가 이 물건을 아는가? 이것은 물건도 아니니 말로 그려낼 수 없다. 이 물건을 알겠는가. 이것은 그려낼 수도 없다고 하나 깨친 자에게는 분명하다. 비유컨대 저기 철로鐵路가 있소. 철로 위에는 차가 있소. 차에는 화통火桶이 있소. 화통 속에는 석탄石炭과 물이 있어서 물이 자꾸 졸아 간다. 그러나 차가 가지 않소. 어찌 차가 아니 가오. 사람이 기계를 부리지 아니하면 차가 가지 아니하오. 예, 그렇소. 사람이 이 몸을 가지고 동작動作하여 앉고 눕고 다니니, 몸이 능히 동작하는 것이요. 예, 그렇지 않소. 차와 같소. 그러면 무엇이 동작을 하는가요. 그것은 나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당신當身이 당신의 몸을 능히 운동運動시키는 것을 찾아보시오.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의심하여 보시오. 어찌 내가 나를 알지 못하시오. 내가 열성熱性으로 당신에게 권하노니 부디 찾아보시오. 몸은 아침 이슬 같고 목숨은 서쪽에 다 넘어가는 햇빛 같소. 어서 찾아보시오.
2. 화두가 좋은 화두가 있다 함을 간택함
0001_0110_a_01L어떤 사람이 묻길,
“화두가 좋은 것이 따로 있다지요?”
용성龍城이 말하길,
“그런 말씀 마시오. 화두가 어디 좋은 화두가 따로 있단 말이오?”
“내가 시심마是甚麽는 무無자만 못한 줄로 알았소.”
용성이 말하길, “다시 그러한 사견邪見을 내지 마시오. 좋고 나쁜 것은 사람에게 있고, 화두법에는 없소. 용성이 거금距今 사십 년 전에 선각자를 찾아 도처到處에 다니니, 그 행색行色은 폐의걸식弊衣乞食이 나의 직분에 족한지라. 청천靑天에 나는 학鶴과 같이 백운白雲으로 벗을 삼고 사해四海 팔방八方을 두루 다니니 청풍명월淸風明月이 나의 집이었다.”
한 선각자를 친견親見하고 법法을 물었더니 그 선각자가 이르길, “시심마 화두는 사구死句요, 무자 화두는 활구活句라고 하였소.”
용성이 정색正色하며 대답하여 말하길, “감히 명命을 듣지 못하겠소. 그러한 이치理致가 만무萬無하오. 시심마는 사구도 아니요, 활구도 아닌 줄로 압니다. 시심마 화두가 사구로 확정確定될 것 같으면 남악 회양 성인南嶽懷讓聖人이 숭산崇山으로부터 왔거늘 육조 성사六祖聖師께서 물어 말씀하시길, ‘네가 어떤 곳으로 왔는가?’ 회양께서 망지소조罔知所措하여 팔 년八年을 궁구하다가 확철대오하여 육조 성사의 적자嫡子가 되시니, 도道가 천하에 으뜸이었소. 어찌 사구死句에서 깨치시고 활구活句 문중門中에 동량棟樑이 되었겠는가? 시심마가 활구로 확정될 것 같으면 육조 성사께서 어느 날 이르시길,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천지에 기둥(柱)이 되며 밝기는 해와 달과 같이 밝으며 어둡기는 칠통과 같이 검으며 머리와 꼬리, 얼굴이 없지만 우리들이 움직이고 작용하는 가운데에 있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하시니, 하택 신회荷澤神會가 나이 칠 세라 곧 나와서 정례하고 대답하길, ‘삼세각三世覺의 본원本源이요, 신회神會의 각성覺性입니다.’ 육조 성사께서, ‘네가 종사관宗師冠을 머리에 쓰고 학자學者를 제접提接할지라도 지해知解 종사宗師밖에는 되지 못하리라’ 하시니, 어찌 활구문 중에서 깨치고 사구문 중에서 지해종도가 되겠습니까? 사구이니 활구이니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선각자가 말하길, “시심마는 병통이 많다.”라고 하였다.
용성이 말하길, “무슨 말씀입니까?”
선각자가 말하길, “근일近日 깨쳤다는 것이 시심마 화두하는 사람에게 유독唯獨 많다.”라고 하였다.
용성이 말하길, “시심마를 어떻게 알기에 그렇단 말씀입니까?”
선각자가 대답하길,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하였다.
용성이 말하길, “무엇을 가져 무엇인가 합니까?”
그가 말하길, “혹 소소영영한 것이 무엇인가? 혹 보고 듣는 것이 이 무엇인가? 혹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하였다.
용성이 대답하길, “가탄可歎 가탄可歎이 이옵니다. 화두를 이와 같이 궁구하거든 어찌 병통이 없겠습니까? 육근문六根門 머리에 아는 빛 그림자가 경계境界를 좇아 감각感覺하는 대로 이것이 무엇인가 하며, 또 뜻 뿌리(의근)에 분별分別하는 그림자를 가지고, 이 무엇인가 하며, 또 생각으로 염念이 일어나는 뿌리(根)를 들여다보며, 이것이 무엇인가 찾으니, 이것으로 좇아 병이 많이 납니다. 이 사람은 공한 병이 아니면 맑은 병이요, 그렇지 않으면 소소영영昭昭靈靈한 것을 지키는 병病이 허다許多합니다. 이와 같은 것으로 어찌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증득證得하겠습니까? 천칠백 화두千七百話頭가 그 참구參究하는 법은 통틀어 하나이니 어찌 다름이 있겠습니까? 시심마는 한 물건을 알지 못해서 참구하는 것이니, 앞에서 이미 말하였기 때문에 그만두리다.”
3. 시심마 화두가 백천百千 화두에 근본根本 된다 함을 간택함
0001_0111_a_01L혹 묻길(或이 問曰),
“백천 화두가 시심마로 아니 들면 화두가 되지 아니한 줄로 생각生覺합니다.”
용성이 대답하길,
“내가 그 말에 의미意味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가 말하길, “이 무엇인가 하지 아니하면 무엇을 가지고 의심하리요. 가령 무자無字 화두話頭라 할지라도 무無가 무엇인가 하든지 무가 무슨 도리道理인가 하든지 그렇게 해야만이 화두가 되지요.”
용성이 묻길,
“누가 화두를 그 모양模樣으로 가르치던가?”
“현금現今 선각자로 저명著名한 모모某某가 이와 같이 가르칩니다.”
“화두 드는 법도 자세히 모르고 학자學者들을 거느리고 앉아서 도를 가르치는 것은 대단大端한 일입니다. 한 장님이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격으로 화두에 시심마가 들어가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하니, 그러면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 드는 사람은 잣나무가 이 무엇인가? 마삼근麻三斤 화두 드는 사람은 삼 세 근이 무엇인가? 간시궐幹屎橛 화두 드는 사람은 마른 똥 막대기가 무엇인가 하겠구나. 그래서 잣나무와 삼 세 근과 마른 똥 막대기를 알지 못하여 이것을 알려고 무엇인가 하는가? 참으로 알자면 산이나 물이나 돌이나 일체一切 만물萬物을 다 활구로 알기는 어렵다마는 그렇게 화두를 드는 법은 아니다. 또 네가 무無자를 알지 못해서 무엇인가 하는가? 일체一切 화두에다가 시심마를 넣어서 의심하지 아니하여도 화두마다 제 화두에 의심이 있는 것이다.”
4. 모든 화두마다 본의심本疑心이 있으며, 또 병病 된 것을 가림
0001_0111_b_01L시심마是甚麽는 일물一物의 소이연所以緣을 알지 못해서 의심疑心하는 것이니, 이 물건은 천지 허공虛空과 만물萬物을 온통 집어삼키고 있는 물건物件이 있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이 물건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없고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없으며, 없고 있는 물건도 아니요 참으로 없는 물건도 아니요, 일물一物이 아니라고 할 것도 아니요 다만 일물이라고 할 것도 아니요, 일체 사의思議로 알 것도 아니요 일체 불사의不思議로 알 것도 아니니, 이것이 무슨 물건物件인가? 이와 같이 다만 의심疑心할지어다. 만일 이 밖에 다른 말과 다른 사상思想이 있으면 병이니라. 다만 이것이 무슨 물건物件인가만 할지어다.
이것은 무자無字나 시심마나 백천 화두百千話頭가 의심疑心하는 것과 그 병이 되는 것이 한 가지로 일반이니라. 무자無字는 중국말 조선朝鮮말이 다르니라. 즉, 순전純全한 중국말로 하면 준동함령蠢動含靈 개유불성皆有佛性 조주인심도무趙州因甚道無라 하나니, 이것을 전제全提라 하고, 인심도무因甚道無 이것을 단제但提라 하니라. 또 순전히 조선말로 하자면 고물고물한 것까지라도 신령神靈한 것을 머금은 것이 다 깨닫는 성품이 있다고 하셨거늘대각께서 다 각성이 있다고 하셨다. 조주趙州는 무슨 까닭으로 없다고 하는가? 또 무엇을 인하여 없다고 하는가 하는 것이며, 조선말하고 중국말하고 섞어서 말하자면 준동함령이 다 각성覺性이 있다고 하셨거늘 조주는 무엇을 인하여 무라 이르셨는가? 무엇을 인하여 무無라 이르셨는가 하는 것은 단제但提라 하느니라.
이 화두는 대각의 말로 보면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대원각성大圓覺性이 있다고 하셨거늘 조주趙州는 어찌 없다고 하시는가? 이로 좇아 의심이 다 근일近日에 선각자들이 많이 말하길, 어찌 없다고 하는가? 그러든지 또 무슨 까닭으로 없다고 하는가? 또 무엇을 인하여 없다고 하는가? 어찌 없는가? 어찌 없다고 하는가? 이와 같이 하면 다 조주趙州의 뜻을 참구參究하는 참의사구參意死句가 되니라. 조주는 무엇을 인하여 무라고 일렀는가? 또 단지但只 무무無無라 하며, 또 무가 무엇인가? 이와 같이 하면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니, 그래서 조선말과 중국말을 섞어 가면 활구活句가 되고, 순전純全히 조선말로 하면 참의사구參意死句가 된다 하니, 참 그러한 말을 마시라. 내가 항상 제방諸方의 학자學者들이 이러한 말을 함을 대단히 탄식하였느니라. 알지 못하고 선각자가 되어 남의 눈을 멀게 하지 마시라. 어찌 조선朝鮮말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면 참의사구參意死句가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쓸데없는 말로 나의 잘함을 자랑하여 타인他人의 단처短處를 구求하니 참 수치한 일이니라.
여보시오. 활구活句는 어떤 것이 활구가 되고, 사구死句는 어떤 것이 사구가 됩니까? 모든 학자學者로 하여금 눈을 멀게 해 주는 것은 선생의 허물이니, 그 허물이 한량이 없이 크다고 하겠다. 활구라 사구라 하는 것을 내가 비유譬喩로 말하여 보이겠다. 비유컨대 그대가 허공虛空을 허공과 같이 그려내겠는가.
혹자가 말하길,
“허공은 비고 통하여 상하변제上下邊際가 없으며, 물을 뿌려도 물이 묻지 아니하고, 불로 태워도 불에 타지 아니하며, 바람이 불어도 요동搖動하지 아니하니, 이것이 허공이 아닌가?”
용성이 이르길,
“허공이 조만간에 그대에게 내가 여차여차如此如此하다고 말하든가? 이것은 그대의 알음알이 뜻으로 허공을 화작化作함이 아닌가? 허공이 그대의 식정識情의 화작함을 입었으니, 그러고 보면 허공의 활면목活面目이 그대의 분변의식分別意識에 화함을 입어 사구가 되었다. 이 비유를 자세仔細히 알면 활구사구活句死句가 즉시卽時 판단判斷되리라.
대체로 화두話頭에 의정疑情이 큰 불덩이와 같아서 참구하는 의정밖에는 추호만큼이라도 달리 아는 생각을 두지 아니하면 이것이 활구가 되는 것이요, 어찌 무無는 무엇을 인하여 무라 하는가 하더라도 달리 아는 마음이 있으면 사구가 되느니라. 또 무가 무엇인가 단지但只 무 하는 것은 아무 데도 못쓰게 하느니라. 무가 무엇인가 찾는 것은 네가 무無자를 몰라서 그러는가 무자를 알고도 무가 무엇인가 하는가? 백 년 삼만 육천 조百年三萬六千朝를 반복하여 아무리 찾아도 없을 무자 밖에는 또다시 다른 무자가 없다. 또 입을 삐죽여서 무무 소리를 하고 앉았으니, 생각을 붙들어 매자는 주의인가 무슨 까닭인가? 하필何必 무자만 무무無無할 것이 없다. 옴자唵字라도 옴옴唵唵하면 되지 아니할까? 내가 이것을 많이 보아 왔다. 대체로 언구를 의심하지 아니하는 것이 큰 병이니, 큰 의심이 있는 연후에야 크게 깨닫는다고 하셨다.”
근일近日에 한낱 참선하는 학자가 와서 공부工夫를 묻기에 내가 말하길, “그대가 본시本是 무슨 공부를 하였는지 말해 보시라.”
그 객客이 대답하길, “내가 마음 가운데 무자無字를 하나 써 놓고 그 무자無字를 관觀합니다.”
용성이 말하길, “그것은 참선이 아니요, 교중敎中에 혹 일몰관 백호관日沒觀白毫觀이 있으니, 차라리 그것을 하는 것이 옳지 않소?”
또 한 선객客이 와서 말하길, “나는 유무有無의 무無도 아니요, 진무眞無의 무無도 아니니, 이것이 웬 무無합니다.”
용성이 웃으면서 말하길, “그대는 병病이 나기 전에 약방문을 준비하여 가지고 다니는 것이니, 지혜가 매우 있소.”
객이 말하길, “무슨 말씀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용성이 말하길, “이것은 세상 사람이 진실하게 공부를 하여 진실하게 깨닫지 못하고, 쓸데없는 알음알이로 헤아려 말하길, ‘조주가 각성이 있다고 하는 말을 대하여 각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각성覺性이 있다는 말은 영각靈覺이 소소昭昭하다는 말씀이요, 각성이 없다는 말은 본래 공하다는 말이라 함으로 그 병통病通을 제거하기 위하여 있다 없다 하는 무無가 아니라고 배척한 것이며, 또 혹자들은 유무有無가 본래 공하여 없는 것이라 유무 없는 것이 참으로 없는 것이라고 지해知解를 내기 때문에 참으로 없는 무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는 병이 나기 전에 약방문을 가져 미리 약을 먹는 것이 아닌가? 그대는 미리 그런 생각을 말고 단지 무라 하는 뜻을 알 수 없는 데에 나아가 크게 의심하되, 일체중생이 다 깨달을 성품性稟이 있거늘 어찌 조주는 무라 하는가? 무슨 까닭으로 무라 하시는가? 어찌 없다 하시는가? 어찌 없는가? 무슨 뜻으로 없다고 하는가? 어떻게 하든지 의심만 할지어다.”
또 한 선객이 이르길, “대혜大慧의 서장書狀에 말하길, ‘개도 각성이 있습니까?’ 조주 이르길, ‘무無라 함을 보라’고 하시니, 이렇기 때문에 무자만 볼지언정 무슨 의정을 하리요.”
용성이 이르길, “슬프다. 세상 사람의 가지가지 병통이 참으로 말할 수 없다. 그 무자를 보라 한다고 하니, 그대의 눈으로 보는가, 마음으로 보는가? 그것은 개가 각성이 있습니까? 조주 말하길, ‘무하는 것을 의심하여 보라’고 하는 말씀이다. 정전백수자화두庭前栢樹子話頭는 어떤 사람이 조주趙州께 묻길, ‘어떤 것이 달마 조사가 서쪽으로 오신 뜻입니까?’ 조주 말씀하시길, ‘뜰 앞의 잣나무라’ 하시니 이 화두話頭 드는 법法은 서쪽에서 오신 달마 조사達摩祖師의 뜻을 묻는데 무슨 까닭으로 잣나무라고 하는가? 또 무엇을 인因하여 잣나무라고 하셨는가 할지어다. 간시궐화두幹屎橛話頭 드는 법은 어떤 사람이 운문雲門에게 묻길, ‘어떤 것이 각입니까?’ 운문이 말하되, ‘간시궐이라’ 하시니, 이 화두 드는 법은 각을 묻는데 무슨 뜻으로 간시궐이라 하시는가? 다만 무슨 뜻으로 간시궐이라 하였는가 할지어다.
또 부모미생전화두父母未生前話頭 드는 법은 위산潙山이 향암에게 묻길, ‘네가 부모미생전면목父母未生前面目한 글귀를 일러 볼지어다. 그런 후에야 너(汝)로 더불어 서로 보리라’ 하시니, 부모父母는 나의 고깃덩어리라 이 몸을 생하였을지라도 부모가 나의 본래면목을 낳지 못하였으니, 어떤 것이 나의 본래면목인가 의심하여 볼지어다.”
혹 물어 말하길, “그러면 내가 전세前世에 개로 사람이 되었던가? 스스로 사람이 되었던가? 의심하여 보라는 말이요?”
용성이 대답하길, “그것을 궁구하라는 말이 아니요, 나의 천진天眞한 본연本然의 면목面目은 부모가 나를 나려고 하여도 능히 나지 못하나니, 나의 본래 구주인舊主人의 면목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에 부모가 낳기 전에 어떤 것이 나의 본래면목인가 의심함이다. 또 만법귀일화두萬法歸一話頭는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나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의심하는 것이니라.”
5.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데 모든 병통을 자세히 밝힘
0001_0115_a_01L대저大抵 모든 병病이 아는 데서 나느니라. 중생의 아는 마음이 파리와 같다. 파리가 모든 물건마다 다 옮겨 붙지만 불꽃 위에는 엉겨 붙지 못하나니, 중생의 아는 마음이 이와 같으니라. 아는 가운데에 두 가지 병이 있으니, 하나는 마음이 총명하여 잘 아는 것으로 계교計較를 잘 내며, 생각을 잘 하여 재주로 도道를 알려고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모든 법을 입으로 의론하여 알 수 없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알 수 없다고 하는 이 두 가지 병이 있다. 이 아는 병과 모르는 두 가지 병으로부터 네 가지 병이 있다. 하나는 병으로부터 유심병有心病을 내는 것이니, 혹자들은 눈으로 보고 아는 것과 귀로 듣고 아는 것과 코로 냄새를 맡고 아는 것과 입으로 맛보고 아는 것과 몸에 닿아 아는 것과 뜻의 뿌리로 분별하여 아는 것과 이 여섯 가지 문으로 감각하여 아는 것을 지키라고 하는 자도 있고, 혹 소소영영昭昭靈靈으로 길을 삼으라는 사람도 있으니, 이것이 육근六根의 광영光影을 지키는 것이다. 종을 그릇 알아 상전을 삼느니라.
혹 공空함을 돌이켜 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며, 혹 공을 증득證得하는 것을 도道로 삼는 사람도 있으나 이것이 다 병이다. 혹 나의 본심本心으로 계행戒行도 가지고 절도 짓고 각사覺事도 하고 모든 복덕福德을 지어야 성각이 된다는 것이 다 우치愚痴한 병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나의 본성은 억지로 조작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보아라. 허공을 사람이 만드는 것인가. 우리의 본성을 짓는 것으로 아는 것이 이와 같다. 네가 아는 마음으로 무량겁無量劫을 이리저리 생각하여 볼지라도 추호도 상관相關이 없느니라.
그러면 모르는 마음이 도가 되는가? 혹자들은 무심無心이 도道라 하여 무심을 짓되 얼굴을 잊어버리고 마음을 죽이어 얼굴은 고목古木나무와 같이 하고, 마음은 찬 재와 같이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것이 병이다. 혹자들은 마음을 비우고, 아무 모습이 없이 아는 것으로 도를 삼으며, 혹자들은 어느 때든지 마음을 쉬어라. 쉬고 쉬어 가면 정념情念이 나지 아니한다 하니, 이것은 달마 성사達摩聖師가 중국에 처음 왔을 적에 2조二祖 혜가 성사慧可聖師께서 밖으로 치구馳驅하는 마음을 쉬지 아니하여 한없는 총명聰明으로, 마음이니 성품性品이니 이치니 하여 여러 가지를 설하여 도를 증거證據하였다. 달마께서 2조 혜가를 꾸짖어 말하길, “네가 도를 알고자 한다면 밖으로 모든 인연을 제거하여 버리고 안으로 마음이 헐떡이지 아니하여 장벽牆壁과 같이 하여야 도에 들어가리라.”라고 하시니, 혜가께서 달마의 말씀하신 그 자리에서 모든 인연을 쉬고 크게 깨쳤으니, 이것은 혜가의 치구심馳求心을 제거하려는 잠시방편暫時方便이라 진실로 일정한 법法이 아니다. 지금 사람들이 마음을 고목古木나무와 돌덩이같이 만들라고 하니, 참 불쌍하다.
또 말끔한 것을 비추어 보는 것으로 도를 삼으니, 이것은 제8식第八識을 지키는 외도外道라 각법覺法하고는 상관이 없다. 탕탕무애蕩蕩無碍하여 마음대로 자재自在하게 하라. 생각이 일어나든지 생각이 멸하든지 제멋대로 내버려 두어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니, 이것은 자연自然 외도外道라 각의 도와는 상관이 없다. 이것이 다 아는 병과 모르는 병과 두 가지 나지 아니하는 것이니, 학생學生에게 만병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선각자先覺者가 잘못 가르쳐서 병이 있다. 도를 알지 못하거든 남을 가르치지 말지니라. 그 죄악罪惡이 천지에 용납容納하기 어렵다. 남의 대사大事를 그르쳐 주니, 그 허물이 적다 할 수 없다. 근일近日에 견성見性한 사람이 많으나 실지實地상으로 보면 참으로 없다고 하여도 가可하다. 일시一時에 적은 명리名利를 탐하다가 무량겁無量劫에 허물이 되리라.
또한 도를 실답게 참구參究하여 실답게 깨치는 것이 옳거든 눈치와 말로 알려고 하니 참 어리석다.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실답게 깨닫지 못하고 어찌 눈치로 알며 말로 알며 문자文字에 있는 언설言說로 알겠는가. 또한 말없이 고요히 하고 잠잠한 것으로 알 수 없다. 나의 진면목眞面目은 적묵寂默도 아니요, 유심有心이라 무심無心이라 언어言語라 적묵寂默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진정을 모르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묻길, “육조六祖가 이르시길, ‘위로 하늘을 기둥 하고 아래로 땅을 기둥 하였다’고 하시니, 천지 사이에 가득히 찼다는 말인가?”
용성이 대답하길, “그런 것이 아니다. 위로 하늘을 버티는 기둥이 되니 하늘이 이것이 아니면 능히 덮지 못하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는 기둥이 되니 땅이 이것이 아니면 능히 싣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찌 천지만 버티겠는가. 온 세계世界와 허공虛空과 법계法界를 온통 집어먹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묻길, “무자화두無字話頭에 열 가지 병이 있으니, 다른 화두도 열 가지 병이 있습니까?”
대답하길, “화두마다 있다.”
“그러면 그 열 가지 병을 자세히 일러 주시오.”
대답하길, 열 가지 병이 아는 것으로 있으니, 이 아는 한 글자가 도에 장애障碍되는 것이니, 이 아는 것으로부터 이것은 이런 뜻이다, 저것은 저런 뜻이다, 이것은 이런 이치다, 저것은 저런 이치다 하는 병이며, 귀로 듣고 마음으로 뜻을 풀어내어 요리조리 사량하나니, 이것으로 좇아 뜻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의론하며, 또 생각할 수 없는 두 가지 병이 있고, 이것으로 좇아 네 갈래로 병이 있으니, 있는 마음으로 구하고자 하며, 없는 마음으로 얻고자 하며, 말로 지으려고 하며, 잠잠한 것으로 통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좇아 열 가지 병이 있으니, 있다 없다 하는 것으로 아는 것과 참 없음으로 아는 것과 도리로 아는 것과 의근으로 이리저리 헤아려 아는 것과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짝깜짝하는 곳에 묵묵한 업의 집을 짓고, 뿌리를 박는 것과 말로 쟁기를 삼아 활계活計를 짓는 것과 일 없는 구덩이 속에 있는 것과 각조의 향상관向上關을 거기擧起하는 곳에 승당承當하는 것과 문자 중에 인증引證하는 것과 미迷를 가져 깨치기를 기다리는 것을 열 가지 병이라 하니라. 이 열 가지 병이 경교經敎 가운데에 있으면 법계法界 부사의不思議 법法이 되거니와 경전經典 밖에 별도로 전한 것으로 보면 큰 병이 되느니라.
“그러면 이것을 자세히 가르쳐 주기를 바라노라.”
대답하길, “첫째는 있다 없다는 무로 아는 병이니, 학자學者의 대병大病은 깨쳤다 알았다 하는데 모든 병이 있다. 확철確徹이 깨치지 못하면 병이 많은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화두만 참구參究하는 것이 좋다.”
혹 어떠한 사람은 내가 조주趙州께서 무를 말한 것을 깨쳤다. 어떻게 깨쳤는가. 예, 내가 깨친 것은 각성覺性이 있는 것을 대하여 없다고 하는 것이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각성이 있다고 하는 말은 깨치는 성품이 있다는 말이니, 이 신령하고 참된 성품이 외로이 드러나 각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일체중생이 각성이 있다는 말이다.신령하게 깨치는 성품을 각이라고 한다. 각성이 없다는 말은 신령하게 깨치는 그 당처當處가 본래공本來空하여 한 법도 없는 것이니, 무엇을 각이니 마음이니 성품이니 하는가? 그러므로 없다고 하는 것이다.
용성이 말하길, “당신의 말씀은 각조의 설화문說話門에 앉아 보면 병이 될 것이 없다고 하지만, 화두참구話頭參究하는 데에는 큰 병이 되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말씀하길, 있다 없다 하는 것으로 알 것이 아니니라.”라고 하셨다.
둘째는 참 없다는 병이니, 가사 어떠한 사람이 화두를 깨쳤다 하거든 곧 묻되 어떻게 깨쳤는가. 예, 내가 깨친 뜻은 나의 본래면목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절대絶對로 없어 각성이 있느니, 각성이 없느니 이것을 다 벗어버려 참으로 없는 것이니, 이같이 깨달았는가. 용성이 말하길, “유무有無를 함께 보내면 정각正覺을 수순한다는 말씀은 경에도 있으니, 이것은 각조의 설화문에 좋은 말이다. 그러나 화두를 참구하는 데는 큰 병이 되느니라.”
셋째는 도리道理로 아는 병이니, 그 사람이 다시 말하길, “내가 한 가지 깨침이 있다. 이미 있고 없는 것으로 알 수 없고,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가지가 다 공한 것으로도 무자의 뜻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또다시 깨친 곳이 있는가? 그러면 어떻게 깨쳤는가에 내가 묘妙한 것으로 알았소. 묘한 것으로 알다니 무슨 말인가. 말로 보일 수 없고, 분별로 알 수 없는 것이 묘한 것이요. 내가 『법화경法華經』을 보니, 그치고 그치라 말하지 아니 하리니, 나의 법法은 묘妙해서 사의思議하기 어려우니라 하시니, 조주무자趙州無字도 이와 같소.” 용성이 말하길, “그대가 이 말이 경교로 보면 병 될 것이 없겠지만 활구에는 큰 병이 된다. 그러므로 고인古人이 혹 현현묘묘玄玄妙妙한 도리道理로 도道를 삼을까 염려(접허)하여 도리道理로 앎을 짓지 말라 하셨다.”
넷째는 의근이 헤아리는 병이니, 이 사람이 모두 병이 되는 것이라 함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 하여 까막까막 생각하여 헤아리어 알려고 하거늘 급히 호령하여 말하길, 이 여의如意한 정녕精靈이여! 무슨 계교사량計較思量을 하는가? 그러므로 고인이 의근意根으로 헤아리지 말라고 하였다.
다섯째는 눈썹을 찡긋찡긋하고 눈을 끔쩍끔쩍하니, 이 사람이 다시 이르길, “내가 깨친 바가 있노라.”라고 하였다. “여보시오. 당신이 어떻게 깨쳤는가.” “예, 이것은 참으로 말하기 어렵소. 이것은 가만히 작용作用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는 없겠소. 그러자면 가만히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짝이는 것이 그 진상眞相으로 보이는 것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용성이 급히 소리를 쳐서 말하길, “곧 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닫지 못하고 옛 사람의 기틀을 따라 한 번 눈을 깜작여 보이는 것으로 자기의 깨침을 삼는가?” 그러므로 고인이 말하길,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작이는 곳을 향하여 무수겁의 집을 짓지 말라.”라고 하시니, 이것이 무자無字의 뜻을 깨친 것이 아니다.
여섯째는 진실로 공부는 하지 아니하고, 말로만 도를 말하지 말지어다. 말은 도가 아니다. 일곱째는 일 없는 갑匣 속에 있는 병이니, 그 사람이 다시 말하길, “내가 무無자를 또 깨친 바가 있다고 함에 어떻게 깨쳤는가? 예, 내가 깨달은 바는 곧 일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도를 듣고 갖가지 분별심分別心과 갖가지 치구심馳求心이 있기 때문에 한 칼로 동강을 내어 당장에 일 없음을 깨치게 하기 때문에 무라고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용성이 이르길, “그대가 자성을 확철廓徹이 깨달아야 무자無字를 타파打破한 것이다. 이제 너의 자성을 깨치지 못하고, 할 것이 없다 일이 없다 하니, 다시 대답하여라. 어떤 것이 조주趙州 무자의 의미인가?”
저가 다시 대답하길, “함이 없고 일 없는 것이 무無에 이른 뜻이오이다.”
용성이 이르길, “그까짓 소견으로 어찌 무상도無上道를 알겠는가. 근일에 학자들이 흔히(多分) 이러한 폐단이 많다. 자칭 일 마친 사람이라 해서 고기 잡는 집과 술파는 집에 한가히 노닐며 녹수청산에 뜻대로 하여 함이 없이 즐겁다 함이니, 이것은 네가 무단이 지레 꿰여졌다. 그러함으로 옛사람이 말하길, 일 없는 갑匣 속에 있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여덟째는 그 사람이 묵묵부답하였다. 용성이 말하길, “알겠는가. 승이 조주趙州께 묻길, ‘구자狗子 도리어 각성覺性이 있습니까?’ 조주 대답하길, ‘무無라’ 하심을 볼지어다.” 그 사람이 예배하였다. 용성이 급히 말하길, “예배는 무슨 일을 위함인지 알고 예배하는 것인가.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것인가. 승당承當하는 뜻인가.” 답하길, “승당하는 것이요.” “그러면 알고 하는 것인가? 모르고 하는 것인가?” 그 사람이 호령하였다. 용성이 천연한 태도로 소리를 질러 말하길, “큰 용을 낚자고 하였더니, 쓰지 못할 작은 자라가 앙금앙금 걸어 나온다. 다시 일러 보라.” 그 사람이 잠잠하고 있었다. 웃어 말하길, “찬 벙어리다. 현현玄玄한 지취旨趣를 알지 못하고 한갓 적묵寂默하기만 뇌롭게 하고 있다.” 그 사람이 눈만 멀뚱멀뚱(디룩디룩)하고 소향所向을 알지 못하였다. 용성이 소리쳐서 말하길, “무상도無上道를 눈치로 알려고 하는가. 근일近日에 종사宗師가 고인古人의 향상법向上法을 들어 말하면 얼른 눈치로 알아 승당하는 사람이 많으니 가히 애석하다. 그러하므로 옛사람이 고인의 화두話頭를 들어 말하는데 승당承當하지 말라고 하니라.”
아홉째는 문자 중에 인증하는 법인데, 그 사람이 다시 이 말 저 말 여러 말을 끌어대어 말하길, “아무 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아무 글에는 이렇게 말하였다.”라고 하였다. 용성이 말하길, “그대의 도안道眼이 명백明白하여 가슴 가운데 솟아난 것이라도 지극히 바르고 자세히 하여 간택할 것이다. 어찌 고인의 착안한 것 가운데 있는 것으로 인증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옛사람이 문자文字 가운데 인증함을 허락하지 아니하니라.”
열째는 미혹함을 가지고 깨치기를 기다리는 병이다. 그 사람이 다시 말하길, “나는 미혹한 사람이니, 어서 깨치기를 기다린다.” 용성이 말하길, “내가 미하였다고 깨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어찌 그러한가? 내가 고인의 현관玄關을 알지 못하오니, 어서 급히 공부하겠다고 하여 머리에 불을 끄듯 하나니, 급히 깨칠 마음이 앞에 있어 큰 장애障碍가 되니라. 부디 깨치기를 기다리지 말지어다. 혹자가 사량하여 말하길, ‘조주가 없다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사람을 보고 공연히 빵긋빵긋 웃고 물건을 가지고 희롱하여도 이름을 모르나니, 무자의 뜻이 이와 같다’고 하며, 또 혹자는 말하길,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요, 구자狗子는 다만 구자요, 무자無字는 다만 무할 밖에 없다’ 하며, 또 혹자는 ‘조선문朝鮮文에 무자無字라’ 하나니, 이것이 큰 병이 되나니, 이 문중門中에 들어와서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만 화두話頭만 참구參究하고, 아는 마음은 두지 말지어다.”
천하만세天下萬世 영웅호걸英雄豪傑이며, 고금古今의 철학가哲學家가 하나도 이 마음을 깨친 사람이 없고, 오직 대각능인大覺能仁과 삼십삼三十三 성사聖師와 오파분방五派芬芳의 모든 성사聖師께서 크게 깨치셨다. 이 마음을 어떻게 아는가 말하여라. 혹자가 말하길, “이것은 떳떳하여 변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용성이 말하길, “그렇지 않다. 하늘과 땅이 이루고 무너지는 것과 사시四時가 변變하여 바뀌는 것과 만물이 변하여 옮기어 가는 것과 삼세가 간단없이 흘러가는 것들이 가지가지 허환虛幻하거니, 어찌 떳떳하다고 하는가. 그대의 몸이 떳떳하다고 할 수 없다. 백세광음百世光陰이 자꾸자꾸 홀로 감에 목숨이 아침 이슬과 같으니, 어찌 떳떳하다고 하겠는가. 너의 마음이 떳떳하여 희로애락喜怒哀樂과 또 생멸심生滅心이 변화무쌍變化無雙하나니, 어찌 떳떳하다고 하겠는가. 또 너의 성품이 떳떳한 것인가. 그러면 고금에 응연凝然히 변하지 아니하여 나는 이치가 끊어지리라.”
또다시 묻는다. 어떤 것이 너의 성품인가. 만일 빈 것이 너의 성품이라 한다면 길이 빌 것이며 있는 것이 아니요, 만일 맑은 것이 너의 성품이라면 길이 맑아 흐리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착한 것이 너의 성품이라면 길이 착하여 악하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악한 것이 너의 성품이라면 길이 악하여 착하지 아니할 것이니, 성인은 길이 성인이 되고 범부는 길이 범부가 되리라. 나아가 겁이 다하여도 한 사람도 보리심菩提心을 발할 자가 없을지니라.
옛사람이 말하길, “참된 성품이 심히 깊고 미묘微妙하여 자성自性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을 따라 이룬다.”라고 하셨다. 또 일체 제법을 만일 그르다고 한다면 천지만물과 사대오온四大五蘊과 유정무정有情無情이 다 그 없는 데로 돌아가 허무虛無하리니, 이것들이 다 외도外道의 견해見解니라.
옛사람이 말하길, “비고도 신령하며 고요하고도 미묘하다.”라고 하니, 네가 감히 끊어져 없는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이치가 스스로 내가 이치라고 함이 없다. 마음을 인하여 이치를 세운 것이니, 본래 이치가 끊어진 것이다. 감히 이치라고 말하는 것인가. 기운이 여러 가지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허령지각虛靈知覺의 기운과 공기와 전기와 물기와 불기운의 무리들이 수효가 없다. 본래 모든 기운이 없는 것이니, 감히 모든 기운이라고 하겠는가. 인연因緣은 화합化合할 것으로 이루느니라.
이 한 물건은 인연因緣으로 조직된 것이 아니니, 감히 인연이라고 말하겠는가. 자연自然은 천진天眞만 믿느니라. 성품은 자연도 아니니, 네가 감히 자연이라고 말하겠는가. 사제법四諦法이라는 것은 하나는 괴로운 법이니, 이것은 삼계三界에 괴로운 과보果報요, 또 하나는 멸滅하는 법이요, 또 하나는 도법道法이니, 이 도법인 인因을 닦아 몸 뿌리, 입 뿌리, 뜻 뿌리의 모든 죄악에 근본인根本因을 끊고, 청정적멸과淸淨寂滅果를 증득證得하는 것이니, 참 도는 마음을 찬 재와 같이 하는 것이 아니니, 감히 사제법四諦法이라고 말하겠는가.
십이인연十二因緣이라는 것은 일체중생이 모두 가히 사량할 만한 경계를 대하면 참으로 아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탐착심을 내나니, 앎이 없는 것은 어두운 무명無明의 인因이 되고, 탐착심貪着心을 내는 것은 행하는 과果가 되나니, 그렇기 때문에 무명의 인연으로부터 탐착을 행行하는 과果가 생生하느니라.
또 탐착하는 인연으로부터 모든 경계를 낱낱이 가리어 분별하여 아는 과가 나고, 또한 아는 인연으로부터 가지가지 차별을 갖추었기 때문에 명색名色의 과果가 나고, 또 명색의 인연으로 육근六根의 받아들이는 육입六入의 과果가 나고, 또 육근의 받아들이는 인연으로부터 닿는 과가 나고, 육근의 닿는 인연으로부터 낱낱이 받아들이는 과果가 나고, 또 받아들이는 인연으로 사랑하는 과가 나고, 또 사랑하는 인연으로 취取하는 과가 나고, 또 취하는 것으로부터 업業이 있는 과가 나고, 또 업業이 있는 인연으로 생生하는 과果가 나고, 또 생하는 인연으로 늙어 죽는 것이 나고, 또 늙어 죽는 인연으로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나나니, 본래 무명이 끊어졌거니 감히 십이인연이라고 말하겠는가.
각도 알지 못하나니, 감히 각승이라고 말하겠는가. 아는 것으로도 알지 못하고 지혜로도 믿지 못한다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원래로 이름과 말이 아니니, 감히 최상승最上乘이라고 말하겠는가. 본래 격내格內가 없으니 누가 격 밖을 말하겠는가. 모두 이것이 아니면 무슨 물건인지 한 번 궁구하여 볼지어다. 날파리가 곳곳마다 엉키어 붙되 불꽃 위에는 붙지 못하나니, 세상 사람의 아는 마음도 이와 같으니라.
또 한 사람이 묻길, “기운이 모이면 사람이 나는 것이요, 기운이 흩어지면 사람이 죽는 것이다. 무슨 궁구할 가치가 있으리오.” 용성이 대답하길, “기운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또 기운은 지각知覺이 있는 것인가? 지각이 없는 것인가? 만일 기운이 지각이 있다고 한다면 허공 기운과 전기 기운과 물기운과 불기운이 다 아는 지각이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분명히 알 것이요, 나무 돌덩이라도 기운이 다 있는 것이니, 그들이 다 지각이 있어 말하든가? 아무 지각도 없이 기운으로만 사람이 난다고 할 수 없다. 또 네 말대로 사람이 기운으로만 낳고 죽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지각이 기운을 인因하여 나타난 것인가? 기운이 지각을 인하여 나타난 것인가? 그 기운은 어디서 나는 것이며, 그 형색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 물건이 무슨 물건인가? 궁구하여 볼지어다. 공부를 할 때에 한가히 앉아 잠만 졸지 말지니라. 혹 잠이 오거든 곧 일어나 서서 한 걸음을 걸어 다니며 공부를 놓아 버리지 말지니라.
6. 화두참구話頭參究하는 모양模樣
0001_0122_a_01L어떤 사람이 묻길, “화두를 의심하라 하니, 어찌 의심해야 되겠습니까?”
용성이 대답하길, “어떤 사람이 귀중한 보배를 몸에 깊이 간수하여 애지중지하다가 홀연忽然히 잃은(遺失) 것이다. 그 사람이 모르고 있다가 손으로 보배 둔 곳을 만져 보니, 보배가 간 곳이 없었다. 그 사람이 의심이 나서 보배를 어디다가 두었는지 찾는 것과 같이 할지니라. 또 어떤 사람이 날이 환하게 새기 전에 이상한 물건을 주거늘 자세히 보니, 날이 아직 확실히 새지 못한지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음에 그 사람이 의심이 바짝 난 것과 같다. 화두 드는 모양이 이와 같다. 혹 화두를 들 때에 어떤 때에는 나귀를 끌고 샘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고, 어떤 때에는 뜨거운 불과 같이 번뇌가 끓고, 어떤 때에는 차가운 얼음과 같아야만이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어떤 때에는 순풍에 돛단배와 같아야 술술 잘 된다.
그러나 이 공부가 잘 되든지 못 되든지 좋고 언짢은 마음을 두지 말고, 화두만 다만 들지니라. 또 고요히 앉아 있지 말고 맑은 것을 취하여 공부를 삼지 말며, 또 운동運動하고 능히 말하며, 능히 동하고 능히 고요히 하는 것으로 공부를 삼지 말며, 또 망령된 마음을 억제하여 누르는 것으로 공부를 삼지 말며, 또 생각을 허공과 같이 하든지, 또 마음을 담벽과 같이 하여 공부를 하지 말지니, 공망空亡에 떨어진 외도外道며, 혼魂이 흩어지지 아니하여도 죽은 사람이다. 다만 이 한 물건 모르는 것을 의심疑心할지니라. 공부를 일심一心으로 하여 가면 보고 듣는 경계가 자연히 고요하고 물건과 나를 함께 잊어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없어지고 허공이 녹아지나니,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자연히 칠통漆桶을 타파打破하리라.”
또 묻길, “망상이 자꾸 나니 그 망상을 어떻게 제거할까요.”
용성이 말하길, “망상이 일어나든지 아니 일어나든지 가만히 두어 망상을 제거하려고 말라. 망상을 제거하려고 하면 망상이 더 일어나느니라. 비유컨대 소가 달아나거든 소고삐를 단단히 잡아 당기며 소가 스스로 사람을 쫓아오는 것과 같아서 망상이 나든지 아니 나든지 상관을 말고 화두만 들어 의심하면 망상은 스스로 없어지리라.
또 화두로 망상을 제거하려고 말며, 또 다만 화두만 들어 의심하여도 망상을 걷잡을 수 없거든 화두를 즉시 놓아 버리고 마음도 쉬고 여전한 뒤에 다시 화두를 들면 새롭고 다시 깨끗해진다. 또 화두를 들어 의심할 적에 몸과 마음을 다 놓아 항상 더불어 편안히 하고 화두를 또렷이 의심할지니라. 화두를 너무 급急하게 들면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하여 가슴도 답답畓畓하며 머리도 아프며 코에서 피도 나나니, 이 병은 마음을 너무 조급히 한 탓이다.
또 마음을 너무 방심하면 화두를 잃기가 쉬운 것이니, 부디 화두를 너무 극도로 하지 말고, 너무 방심放心도 하지 말라. 거문고 줄이 늦어도 소리가 나지 않고 되어도 소리가 아니 나나니, 공부를 하는 것도 이와 같다. 비유컨대 사람이 죽장마혜竹杖麻鞋로 첩첩疊疊한 산중山中을 들어가다가 홀연히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하여 진퇴進退할 곳이 없다. 이럴 때를 당하여 용단력勇斷力을 다하여 한 걸음 나아가면 꽃이 불긋불긋하고 버들이 푸릇푸릇한 곳에 별천지가 있으리라.
세상世上에 다른 것은 다 아는 마음으로 헤아리어 궁구하지만, 이 공부는 단지 알지 못할 이 한 물건을 일심으로 의심하여 참구하는 것이다. 헤아리어 알고자 하면 만년 궁구하여도 알지 못한다. 화두를 참구할 적에 무슨 재미를 찾지 말고, 모기가 쇠로 만든 철소 위에 앉아 입 뿌리를 내리지 못할 곳을 향하여 신명神命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한번 뚫어 들어가면 몸조차 쏙 들어갈지니라. 화두만 일심으로 의심하여 궁구하고 추호라도 아는 마음과 구하는 마음을 두지 말지니라. 일난풍화日暖風和 춘절春節이 돌아오면 꽃 피고 잎이 피듯이 공부가 익으면 자연히 같이 되리라.
7. 공부에 불가불不可不 마군魔群이를 알아야 할 것
0001_0123_b_01L용성이 이르길, 공부하는 도인들은 마장魔障을 먼저 알 것이다. 마魔라 하는 것은 생사生死를 좋아하나니, 사람의 지혜를 끊으면 착한 법을 파괴破壞하며, 오욕五欲에 탐착貪着하는 것이다. 마왕魔王이 세 가지 악한 것이 있으니, 악한 것으로써 해롭게 함에 악한 것으로써 갚으며, 또 사람이 나를 해하지 아니 하는데 무고無故히 악으로써 해롭게 하며, 사람에게 은혜를 입음에 갚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해를 끼치나니, 삼계 가운데에 마왕의 악惡이 극심極甚하다.
묻길, 무엇을 마왕이라 하는가? 대답하길, 대저 세계가 있으면 육도六道가 있고, 육도가 있으면 선악善惡이 있고, 선악이 있으면 사정邪正이 있는 것은 무궁겁無窮劫에 바뀌지 못할 정리正理이다. 한량이 없이 옴으로 수없는 마왕은 다 말할 수 없거니와 이제 내가 경전經典 중中에 많이 본 것으로 말한다면 욕계欲界에 여섯 하늘을 지나서 색계천色界天에 올라가기 전에 마왕 세계가 있는데 궁창이 오천 유순이오. 복 받는 것은 색계천과 같다. 모든 마가 몇 가지나 되는가? 대답하길, 두 가지 마로부터 여러 가지 마魔가 있으니, 하나는 나의 마음 가운데에서 나는 마요, 또 하나는 밖에서 들어오는 마다.
첫째, 나의 마음에서 마가 일어나나니, 첫째는 오음마五陰魔요, 둘째는 번뇌마煩惱魔요, 셋째는 산란마散亂魔요, 넷째는 음란마淫亂魔요, 다섯째는 탐마貪魔요, 여섯째는 진심마嗔心魔요, 일곱째는 즐거워하는 마요, 여덟째는 슬픈 마(悲魔)요, 아홉째는 조그만큼 깨치면 자족自足한 줄로 아는 마요, 열째는 잘 안다는 마요, 열한째는 아만마我慢魔요, 열둘째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음마陰魔요, 열셋째는 마음을 일으키는 천마天魔요, 열넷째는 일으키기도 하고 아니 일으키기도 하는 희론마戱論魔요, 열다섯째는 인과因果가 없다는 마요, 열여섯째는 사견마니, 범인의 마음 가운데에 팔만사천 장애하는 번뇌가 있기 때문에 팔만사천 자심마自心魔가 있다.
외마外魔가 들어오는 것은 옛사람이 말하길, 벽壁이 틈 나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이 틈 나면 마가 침노한다 하니, 원컨대 도道 닦는 사람들은 목인木人이 꽃 보듯 새 보듯 하여 무서워하지도 말고 즐거워하지도 말 것이다. 혹 도 닦는 사람에게 음마陰魔든지 천마든지 귀신마든지 이매망양마든지 산정요괴山精妖怪들이 수도인修道人을 뇌롭게 하여도 업을 파괴破壞하나니, 간절히 마음에 주의注意할 것이다.
8. 마가 도덕을 해롭게 하는 연유를 밝힘
0001_0124_b_01L묻길, “무슨 일로 모든 마들이 남의 도덕을 해코자 하는가?”
대답하길, “내가 『능엄경』을 보니 경에 말씀하시길, ‘도를 닦는 마음이 정답고 일정한 곳에 들어감에 시방의 정사와 무루無漏의 대아라한大阿羅漢이 마음이 지극히 정밀하여 담연청정淡然淸淨하면 모든 마왕과 범부의 하늘들이 인간 사람과는 다르다. 그 무리들의 오통신안五通神眼으로 궁전이 무고히 무너지며 땅이 떨어지고 벌어지며 물과 육지가 날며 솟음을 보고 놀라고 무서워한다. 인간 사람은 어두워 알지 못하거든 범부의 하늘 무리들은 다섯 가지 신통이 있어서 이것을 보고 크게 놀라서 서로 와서 백천 방편으로 도를 파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말씀하시길, ‘한 사람이 참된 마음을 발하여 본원각성으로 돌아가면 시방 허공이 다 녹아지거니, 어찌 허공 가운데에 있는 세계가 무너지지 아니하겠는가.’ ”
9. 도를 해롭게 못함을 밝힘
0001_0125_a_01L대각께서 다시 말씀하시길, ‘저 모든 마가 비록 크게 성을 내지만 그의 무리들은 진뇌망상 가운데에 있는 것이요, 너는 묘각妙覺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신통을 다하여 도를 파괴하려 하여도 비유컨대 바람이 태양광명을 불어 옮기려고 하는 것과 같으며, 칼로 물을 베고자 하는 것과 같아서 조금도 서로 상관이 없는 것이다. 만일 마음이 요동하면 마의 장애를 이룰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는 끓는 물과 같고, 범부 하늘과 마왕과 모든 귀신들은 얼음과 같아서 더욱 기운이 가까이 오면 곧 녹아지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신력을 믿어도 쓸 곳이 없다’ 하시니,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아는 마음과 구하는 마음을 두지 말고, 단지 일심으로 조사공안을 의심하여 궁구할지어다. 기름이 밀가루 속에 들어가면 마침내 찾아낼 수 없는 것과 같아서 한 번 사도로 들어가면 나오기 어려우니라.
10. 외도의 괴수된 자만 가림
0001_0125_b_01L근일에 각법을 해하는 도는 승려 가운데에 가장 많고, 선지식 중에도 간간이 있다.
묻길, “선지식이면 어찌 외도라고 하겠는가.”
대답하길, “요사이 사람들은 조사공안을 실답게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고 하여 사람에게 스승 되기를 좋아하여 학자의 안목을 많이 눈멀게 하니, 참으로 슬프다. 사와 정을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 대단히 희소하며, 사와 정을 알고 배우는 사람이 대단히 적다. 그렇기 때문에 외도는 견성한 사람에게 많이 있다.”
묻길, “외도가 몇 가지나 되는가요?”
대답하길, “이십 가지 큰 외도가 있는데 모든 외도 중에 상수가 된다. 내가 간략히 간택하겠다. 모든 외도는 깨달았다고 아는 데에 있으니, 아니 깨치면 말 것이지만 깨달았다면 철저히 깨달아야 될지니라. 모든 외도들은 다분히 각법 중에서 도를 닦다가 소견이 잘못 들면 외도가 되느니라. 저 외도들도 제자가 많이 있다. 각기 내가 무상대도를 이루었다고 하느니라.
참 애달프다. 곡식에서 벌레가 나가지고 도리어 곡식을 해롭게 한다. 외도가 되고자 함이 아니라 자기가 알지 못한 탓이다. 참 도는 대단히 알기 어렵다. 내가 비유로써 조금 말하겠다. 오음산五陰山에 하나가 있거든 저 오음산 밖에 또 산이 하나 있어 이름을 대각산大覺山이라 하니라. 그러나 이 산이 지극히 높을 뿐만 아니라 사면四面이 철벽鐵壁이라 발을 붙일 길이 없으나 오직 오음산이 있어 한 실마리 길이 통하니, 이 오음산이 평지로부터 절정絶頂에 가기가 오백 리며, 그 정면중심正面中心으로 길이 하나 있으니, 대각산大覺山으로 바로 가는 길이니라.이 비유는 모든 병에 걸리지 아니하고 다만 일심으로 화두만 하면 필경에 크게 깨친단 말이다. 양 옆에 오십 군데로 갈라 가는 길이 있으니, 그 길이 험악하여 독사와 호랑이의 굴이 있어서 행인들이 낱낱이 호랑이와 독사에게 잡혀 먹히는 바가 되느니라.이것은 오음五陰 중에 오십 군데로 갈라 가는 험악한 삿된 길을 말한다.
11. 색음色陰이 녹을 때에 열 가지 경계가 나타남
0001_0126_a_01L비유컨대 날이 지극히 차가움에 물이 어린 것을 얼음이라고 하고, 마음이 출렁(動蕩)임에 그 습기로 맺힌 것을 오음이라고 하나니,색음色陰은 오음 가운데 하나의 수로 있는 것이니라. 어찌 음陰이라고 하는가? 비유컨대 날이 음함에 태양太陽이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과 같아서 오음이 일어남에 맑은 마음이 나타나지 아니함을 그것들이라고 하느니라.
마음을 일심으로 닦아 감에 습기習氣로 맺히어 있던 색음色陰이 녹아지는데 열 가지 보지 못하던 희유한 경계가 나타나나니, 첫째는 몸이 능히 걸리는 데에 나가는 것이니, 산속이나 물속이나 석벽 속이나 능히 걸림 없이 왕래하는 것이요, 둘째는 몸이 온통 내외內外 없이 환히 보이는 것이 유리와 같은 가운데 회와 벌레를 주워 내어 몸이 조금도 헐고 상함이 없는 것이요, 셋째는 공중空中에 법설法說함을 듣는 것이니, 안과 밖이 텅 비어 사무치며, 눈 뿌리에 아는 것과 귀뿌리에 아는 것과 코 뿌리에 아는 것과 혀뿌리에 아는 것과 또 뜻 뿌리에 의탁하여 아는 것들이 색음이 녹는 바람에 다 그전 경계를 잃어버리고, 서로 빈주賓主가 되어 공중에 설법함을 듣느니라.
넷째는 각의 경계가 나타나는 것이니, 마음과 경계가 신령하게 깨달은 데 물들임으로 마음의 광명이 밝아 모든 세계에 환하게 비추는 것이요, 다섯째는 허공이 보배 빛으로 화化하는 것이니, 마음을 억제하여 잡된 생각이 없게 됨에 그 쓰는 힘이 뛰어나기 때문에 허공이 보배 빛으로 변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어두운 집이 낮과 같이 밝은 것이니, 마음 닦음이 점점 깊어 감에 그 보는 것이 점점 맑아져 그 아는 마음이 광채가 찬란하여 어두운 것을 깨쳐 보는 것이요, 일곱째는 몸에다가 불을 놓고 칼로 찍어도 아픔을 깨치지 못하는 것이니,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 오진五塵이 함께 녹음에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를 흩어 순전히 몸이 공하느니라.
여덟째는 세계를 다 사무쳐 보아 각국을 이룸이니, 오탁악세를 싫어하고 각 세계를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 생각이 어리어 정밀하게 닦아 생각이 오래 함에 자기의 아는 마음이 각국을 화化한 것이요, 아홉째는 한밤중에 산이든지 물이든지 석벽이든지 멀고 가까운 것을 걸림 없이 보나니, 이것은 마음을 정밀히 닦아 그 정신이 핍박됨으로 그 투명透明한 것이 원근이 없이 사무쳐 보느니라.
열째는 외마外魔가 점점 들어오는 것이니, 그 마군의 신통으로 혹 선각자도 나타나며, 혹 각과 정사도 나타나며, 혹 미인美人도 나타나며, 혹 호랑이와 사자도 나타나되 그 변화가 불규칙하여 백천 방편으로 공부를 저해하고자 하며, 혹 사람을 미치게도 하나니, 만일 도인이 공부를 힘써 하다가 이 열 가지 경계가 나타나거든 추호라도 희유한 생각이든지 공포恐怖한 생각이든지 모든 생각을 내지 말고, 다만 일심으로 공부만 할지니라. 모든 마군이는 스스로 없어지고, 공부는 점점 앞으로 나아갈지니라. 만일 이 경계를 깨치지 못하면 자기의 신세를 그르치리라. 세상 사람이 조그만큼 아는 것이 있으면 희유한 생각을 내어 마음이 전도하는 까닭으로 대도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12. 수음受陰이 녹아지고자 함에 열 가지 마군이가 나는 것
0001_0127_b_01L모든 아는 것을 두지 아니하고, 일심으로 나아감에 색음은 다 녹아지고, 또다시 수음受陰이 녹고자 할 때에 열 가지 마군이 경계가 나타나나니, 자세히 보고 공부할 것이니, 수음의 성질은 받아들이는 것이니라. 색음이 이미 다 녹음에 내외內外가 비어 융통하나 수음이 녹지 못하면 가위눌린 사람과 같아서 훤히 들리고 보이나 마음에 객기客氣가 접촉接觸된 것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것과 같다. 이 색음이 녹아지면 이 몸으로 산하석벽을 걸림 없이 다 드나들고 수음受陰이 다 녹으면 비유컨대 사람이 집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는 것과 같이 마음이 몸에서 출입出入하기를 마음대로 하느니라.
첫째는 일심으로 마음을 닦는 것으로 수음受陰이 녹을 때에 마음이 몸을 떠나 순식간에 무량세계를 두루 왕래하여 자유自由로이 하거든 그때에 자기가 위없는 도를 성취한 것으로 알고, 저 중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내어 저 중생을 어찌할까 하여 눈물을 흘리며 모기만 보아도 외아들 생각하듯 하여 눈물을 흘리나니, 이것은 비마悲魔가 마음에 들어간 것이고, 둘째는 그 마음이 한없이 날카롭고 용맹하여 모든 성현을 업신여기나니, 이것은 미친 마군이가 들린 것이며, 셋째는 크게 목마른 생각을 내나니, 정력定力은 굳세고 지혜는 적으며, 또 수음이 다 녹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아감에 새로이 더 증득한 것은 없고 색음은 이미 녹고 아득히 의탁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크게 답답하여 목마른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넷째는 내가 위없는 도를 철저히 증득함이라 하여 다시 공부를 하지 아니하나니, 지족知足하다는 마군이가 들어와 붙은 것이고, 다섯째는 무단히 근심하여 살고자 아니하나니, 곧 근심 마군이가 들어와 붙은 것이며, 여섯째는 즐거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나니, 이것은 희마喜魔가 붙은 것이고, 일곱째는 무단이 아만심我慢心을 걷잡지 못하여 고금의 천하에 한 사람도 눈앞에 없다. 모든 사람에게 포고布告하여 말하길, ‘각상覺像이라 함은 우상偶像에 불과한 것이다. 너희들이 이것을 보라. 이것은 금으로 만든 것이요, 저것은 구리로 만든 것이요, 또 이것은 흙으로 만든 것이요, 저것은 나무로 만든 것이다. 또 저 경을 보라. 이것은 종이와 먹으로 된 것이다. 사람의 육신이 참된 것인데, 이것을 공경치 아니하고 무단히 쓸데없는 흙과 나무를 숭배하여 예배 공경하는 것이 실로 허망하다’ 하니, 누가 이것을 알지 못할 사람이 있겠는가. 경전과 각상은 만세에 표준뿐이라 저만 아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큰 아만마군이가 붙은 것이니라.
여덟째는 무단이 한량없이 편하다는 마음을 내서 노래도 하며 춤도 추나니, 이것은 경청마輕淸魔가 붙은 것이고, 아홉째는 비고 밝은 성품을 얻어 길이 없어진 것으로 주장하여 인과가 없다 하나니, 이는 공마空魔가 붙은 것이며, 열째는 그 공부가 깊이 듦에 수음이 다 녹아질 지경에 이름에 그 마음이 홀연히 사량함을 내나니, 사량이 극도에 이르면 미친 마음이 발하여 탐욕심이 불이 일어나듯 하나니, 이는 욕마欲魔가 붙은 것이니라.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부디 자세히 이 글을 보라. 마군이에게 속지 말라. 요사이에 선지식이 많으나 외도 마군이가 대단히 많다. 근일 승려들이 석가대성의 제자라 하나 거반 외도 마군이의 종자다. 그들이 자칭 내가 불제자라 내가 선지식이라 하나 그 실상은 석가의 도를 해롭게 하는 외도 마군이다. 승속 남녀 없이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 모두 속아 지내나니, 참으로 애석하다. 내가 이와 같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도 민망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하니라. 선지식이라 자칭하는 자가 옛적이나 지금이나 많이 그러한 병통이 있다.
대혜 종고 선사大慧宗杲禪師 말씀과 같이 고기의 눈알을 밝은 구슬이라고 가르친 것이 많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을 고요히 비추어 지키라 하나니, 이것은 육근문두六根門頭에 감각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요. 또 일체 마음을 다 쉬고 쉬라는 것이다. 이 쉬는 것이 참 공부라고 가르치나니, 이것은 공적空寂한 것을 지키는 것이요. 또 마음을 쉬고 쉬어서 몸은 고목과 같이 하고, 마음은 찬 재와 같이 하여 아무 분별도 없는 것이 마치 담벼락같이 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르치는 자도 있나니, 이것은 달마達摩께서 2조 혜가가 밖으로 치구馳求하여 마음을 쉬지 아니하고, 도를 분별심으로 알고자 하였기 때문에 그 분별심에 결박됨을 구해 주고자 하여 말하길, 혜가도 도를 깨치고자 한다면 밖으로 반연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안으로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어라. 담벼락같이 하라고 하는 것은 잠시 혜가의 분별에 결박된 마음을 풀어 주신 방편이요, 참 도가 아닌 것인데 우치한 사람이 이것을 가르치니, 참 애석한 것이니라.
또 육칠의식六七意識으로 맑고 맑은 허공과 같은 제8식第八識을 고요히 비추어 안으로 들여다보라고 하니 이것은 제8식으로 도를 삼는 것이요, 또 생각이 일어나든지 생각이 멸하든지 간섭할 것이 없으니, 탕탕무애蕩蕩無碍하여 뜻대로 하라고 하니, 이것은 자연의 체를 지키어 도를 삼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가르치는 것이 다 마군이의 권속이요, 대각성인의 도가 아니니라.
13. 상음想陰이 녹아질 적에 열 가지 경계가 나는 것
0001_0129_b_01L일심으로 마음을 닦음에 수음은 비록 녹았을지라도 또다시 상음想陰이 있느니라. 다시 용맹정진하여 일심으로 정진精進하면 상음이 녹을 때에 열 가지 경계가 나타나느니라. 상음이라는 것은 부동浮動하는 망습이니, 낮에는 생각이 되고, 밤이면 꿈이 되느니라. 그러함으로 상음이 녹아지면 꿈이 없어지고 자나 깨나 한결같아 말끔한 허공과 같다. 그러나 이때에 마가 제일 극심하나니, 이 글을 자세히 보라.
첫째는 수음이 다 없어진 사람은 마음이 일정하고 밝아지느니라. 그 사람이 더욱 일심으로만 닦아 가면 허물이 없어지지만 무단히 그 마음이 두렷이 밝은 것을 사량하여 그 정밀한 생각을 날카롭게 하여 잘 공교함을 구함에 그 구하는 마음을 틈타서 하늘 마군이가 그 사람의 심간에 붙어 만 가지 변화를 나타내고, 혹 그 사람으로 하여금 변재가 한량없어 설법을 잘하게도 하며, 혹 상제의 몸도 나타내며, 부인 몸도 나타내며, 여러 가지 몸을 나타내되 그 몸 가운데에서 광명이 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은 도인인 줄로 믿어 그 교화를 받아 청정계행을 파하고 가만히 음욕을 잠통하느니라. 그러할 뿐만 아니라 또 마귀에게 부림을 받아 온갖 변화를 부리되 어떤 때에는 변고가 나고 어떤 때에는 좋은 일이 있고, 어떤 때에는 겁화가 일어나고, 어떤 때에는 난리가 난다 해서 모든 백성에 재물을 무고히 모두 훼손케 하나니, 자기의 몸에 마군이가 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든 신도로 하여금 사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참 애석하다.
용성이 만세에 우리 대각교를 믿는 사람은 정도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이 글을 기록한다. 나도 지금 노년이라 눈이 어두워 붓을 잡아 기록하기 심히 어렵다. 아무쪼록 이 글을 보고, 사도에 떨어지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공부에는 아는 것과 구하는 것이 큰 병이다. 공부하는 법을 잘 알아 가지고 단지 일심의 정성심으로 하여 가면 공부가 순숙하여 자나 깨나 어묵동정에 간단없이 화두가 자연히 들림이 있으리니, 그러할수록 더욱이 단지 한결같이 하여 가면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아 모든 마군이에게 속임을 입지 아니할지니라.
상음 가운데에 열 가지 마군의 경계가 있으니, 너무 지루하여 번민증이 나기 때문에 그만 둔다. 그렇지만 추호라도 달리할 생각과 구하는 마음을 두지 말며, 설혹 이상한 경계를 볼지라도 마음을 동하지 아니하면 마군이가 자연히 물러나가리라. 구하는 틈을 보든지 알려고 하는 틈을 보든지 무슨 틈을 보든지 그 마음이 동함을 따라 하늘 마군이와 귀신 마군들이 백천 가지 방편을 베풀어 도를 닦지 못하게 방해하느니라. 그 사람이 태산같이 아니하면 마가 부모형제 친척권속이나 친구나 그런 사람에게 붙어 가지고 백방으로 인도하느니라.
마의 신변으로 지나간 일도 다 알게 되고, 돌아오는 일도 알게 되고, 잠시 동안에 여러 만 리를 갔다 왔다 하기도 하고, 앉은 자리에서 천상인간과 지옥, 아귀, 축생을 다 보기도 하나니,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마음 가운데에서 참 도덕으로 난 것인가 하여 즐거운 마음을 내어 그 경계를 좇다가 그 마군이의 권속이 되고 만다. 또 마군이의 말은 다분히 음욕도 상관없다. 술과 오신채도 상관없다. 음주식육이 무방반야이다. 이러한 소리를 함에 신도들은 참을 가리어 잡을 수 없다.
근래에는 각법이 더욱 쇠퇴하여 마군이가 대단히 왕성하다. 참으로 신도들은 알 수 없을지니라. 승려의 마군이가 많다. 도는 도인이라야 서로 알지니라. 근래 신도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무단이 된 승려나 아니 된 승려나 자기의 친소를 따라 도인이니 선지식이니 하니, 참 애석한 일이다. 하여간 도에 눈이 밝아 가지고도 도인을 알기 어렵거든 어찌 나의 눈이 밝지 못하고 남의 도를 알겠는가. 부디 신도들은 음주와 식육이 무방반야라 하는 승려들이 비록 선지식일지라도 좇아 배우지 마시라.
14. 외도의 종류를 밝힘
0001_0130_b_01L대저 능인대성의 도를 닦아 정도를 크게 깨치지 못하고 외도로 떨어지는 것은 외도라도 큰 외도가 되나니, 그 다음에는 족히 말할 것도 없다. 능인의 도는 다만 일심만 닦아 성취되는 것이요, 하늘이나 귀신이나 그것들을 섬겨서 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면 어찌하여서 일심을 닦는 가운데에도 외도로 빠지는가? 이에 자세히 들으시라. 범부가 처음으로 능인의 도에 발심하여 일심으로 도를 닦음에 점점 마음이 새지 아니하여 일정한 성품이 태산과 같다. 그러한 때에 장차 색음色陰이 공空하나니, 이 경지에 당하면 산하석벽이 걸림이 없이 몸이 아무데나 들어 다닌다. 그때에는 그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되 내가 위없는 도를 얻었다 하여 제 마음으로 모든 마업魔業을 지으며, 또다시 그 전에 색음이 녹은 경계는 비록 팔리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수음受陰이 녹음을 얻으며, 마음을 떠나 온갖 곳에 나아가 놀다가 돌아오느니라. 비유컨대 사람이 집을 떠나가다가 도로 돌아오는 것과 같나니, 이때 그 사람이 위없는 도를 얻은 것으로 인증하여 가지가지 뜻을 내거든 밖으로 하늘 마군이와 대력마왕大力魔王들이 그 사람의 마음에 틈남을 따라 그 뜻대로 이루게 하기에 이 사람이 미혹하여 정도를 알지 못하고, 마도에 떨어지느니라.
또 그 사람이 이것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시 일심으로 견고하게 닦다가 행음行陰이 녹아지면 마음이 고요하고 말끔한 것이 청명한 허공과 같아져야 천류遷流하는 상이 다하며, 꿈이 아주 없어지리라.낮에 생각이 밤에 꿈이 되느니라. 일어난 경지에 이르면 하늘 마군이와 대력귀왕은 능히 도를 흩어지게 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스스로 집을 짓고 들어 앉아 외도가 되느니라. 대저 행음은 만 가지를 화하여 내는 생멸生滅의 근원根元이 되기 때문에 태란습화 십이유생十二類生의 근원을 보지 아니함이 없기에 문득 아는 것을 내어 외도가 되나니, 이것은 행음이 허망한 줄을 알지 못한 탓이며, 또 식음이 생명에 근본 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15. 행음과 식음이 다 녹지 못하고 그 가운데 앉아 외도 됨을 밝힘
0001_0131_b_01L하나는 색수상행음色受想行陰이 텅 빔에 일체중생이 이곳에 나서 저곳에서 죽는 것을 알지 못함이 없으나 과거로 팔만 겁 전 일은 알고, 미래에 팔만 겁 뒷일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팔만 겁 전에는 천지 세계가 생긴 원인이 없다고 하여 인因 없는 논을 세움으로 정지견을 잃어버렸나니, 이것이 무인외도가 되느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말하길, “물질은 변화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본래 사람이요 축생은 본래 축생이다. 까마귀는 본래 검은 것이요 따오기는 본래 흰 것이며, 인천人天은 본래 서서 다니는 것이요 축생은 본래 가로로 다니는 것이니, 흰 것은 씻어서 흰 것이 아니요 검은 것은 물들여서 검은 것이 아니니, 일체 물건이 필경 인因이 없는 것이라.”라고 하나니, 이것은 끝머리가 인이 없다는 외도니라.
셋째는 상음이 녹아지면 마음과 경계가 다하기 때문에 이 만겁 가운데에 일을 다 아나니, 이 사람이 나는 것과 멸하는 것을 쓸어버리고 별도로 떳떳함을 헤아리나니, 이것은 마음과 경계와 두 가지 성품을 다하여 생멸을 다 쓸어버리고, 뚜렷하고 떳떳함을 세우는 외도니라.
넷째는 혹 나고 혹 멸하는 것을 헤아려 떳떳함을 삼는 것이니, 이 사람이 이 말을 하길, 지수화풍 사대를 의지하여 생멸이 있을지라도 사대의 원소는 항상 멸하지 아니하나니, 모든 법이 생멸하는 자체가 다 떳떳함이라고 헤아리는 것이니, 이 상견도 능히 만겁 일을 다 알아지느니라.
다섯째는 여덟째 알음알이가 청정하여 허공과 같음을 보고 이것을 집착하여 도를 삼는 것이니, 이것이 무명의 뿌리가 됨을 알지 못한 연고니라. 이 외도는 제8신식을 그릇 알아 도를 삼는 것이니, 능히 팔만 겁 일을 아는 것이니라.
여섯째는 혹 사견을 일으키어 떳떳함을 삼는 것이니, 저 사람이 망령되이 말하길, “생멸은 상음에 속하는 것이다. 이제 상음이 다 멸하였으니, 영혼이 생멸이 없는 성품은 행음에 속한 것이라.”라고 하니, 참 우치하다. 행음이 곧 생멸에 근원이 됨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것을 통틀어 이름하여 상견외도라 하니라.
16. 상무상외도
혹 나는 떳떳하고 다른 이는 무상하다 하는 것이니, 나의 말끔한 성품은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어리어 없어지지 아니하거든 일체중생이 다 나의 맑은 성품 가운데에 스스로 일어났다가 멸하였다가 하느니라. 그러므로 나 하나만 떳떳한 것이요, 일체중생은 다 무상한 것이라고 하나니, 이것은 팔식을 지키는 외도니라. 고금외도가 단견과 상견에 더 벗어남이 없으니 그만 두고자 한다.

대각응화 2939년 6월 초7일
대각교 삼장역회 용성 백상규 지음
出資者
  1. 1)『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大正新脩大藏經』 48, 366c~369c); 『達磨大師破相論』(『卍新纂續藏經』 63, 8c~11c);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p.123~135.
    達磨의 『觀心論』은 『大正新脩大藏經』과 『卍新纂續藏經』에서는 『破相論』이라고 한다. 근래의 학자들에 의해서 弘忍의 저술임이 밝혀졌다.
  2. 2)앞에 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慧可ㅣ問曰 若復有人이 志求佛道인댄 當修何法하야사 最爲省要닛고”(혜가慧可가 묻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뜻으로 불도佛道를 구하려 한다면 마땅히 어떤 법을 닦아야 가장 간략한 요점이 되겠습니까?”)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123; 『達磨大師破相論』(『卍新纂續藏經』 63, 8c) “論曰 若復有人 志求佛道者 當脩何法 最爲省要”; 『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大正新脩大藏經』 48, 366c) “問曰 若復有人 志求佛道 當修何法 最爲省要”. 『용성대종사전집』 제4집의 『禪門撮要』 원문(p.451)에는 기재되어 있다.
  3. 3)『禪門撮要』 원문에는 있으나 용성 선사본에는 생략된 부분은 괄호로 표시한다.
  4. 4)『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大正新脩大藏經』 48, 366c)에는 ‘最’로 되어 있으며, 이는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125. “師答曰 唯觀心一法 總攝諸法 名爲省要”를 참고한 것 같다. 『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大正新脩大藏經』 48, 366c); 『達磨大師破相論』(『卍新纂續藏經』 63, 8c) “答曰 唯觀心一法 總攝諸法 最爲省要”.
  5. 5)앞에 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問曰 云何一法이 能攝諸行이닛고”(묻기를, “어떠한 일법一法이 제행諸行을 총괄하여 섭수하는 것입니까?”)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123; 『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大正新脩大藏經』 48, 366c); 『達磨大師破相論』(『卍新纂續藏經』 63, 8c) “問曰 何一法能攝諸法”
  6. 6)『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大正新脩大藏經』 48, 366c)에는 ‘法’으로 되어 있으며, 용성 선사본,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123에는 ‘行’으로 되어 있다.
  7. 7)『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大正新脩大藏經』 48, 366c), 『達磨大師破相論』(『卍新纂續藏經』 63, 8c),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123에는 ‘猶’로 되어 있고, 용성 선사본에는 ‘譬’로 되어 있다.
  8. 8)앞에 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又問曰 云何觀心이 稱之爲了닛고”(또 묻기를, “어떻게 마음을 관하는 것이 그것을 일컬어 깨닫는다고 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123이고 『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又’ 이하가 없다.
  9. 9)『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菩薩摩訶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가 첨가되어 있다.
  10. 10)『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蘊’이 ‘陰’으로 되어 있고, 『少室六門』에는 ‘法界’가 첨가되어 있으며, 『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모두 ‘離’가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互不相生’은 『少室六門』에는 ‘合互相待’, 『達磨大師破相論』에는 ‘互相因待’라고 하였다. 하지만 『禪門撮要』와는 동일하다.
  11. 11)『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體’가 첨가되어 있다.
  12. 12)『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大正新脩大藏經』 48, 366c)에는 ‘佛’로 되어 있다.
  13. 13)『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黑’이 ‘重’으로 되어 있고, 『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과 『禪門撮要』에 ‘大圓寂’이 ‘涅槃經’이라 하였으며, ‘皆有覺性’을 『禪門撮要』에서는 ‘皆有佛性’, 『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서는 ‘悉有佛性’이라 하였다.
  14. 14)‘覺也’를 『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서는 ‘卽覺性也’라고 하였고, ‘能自覺’을 ‘自覺覺他’라 하였으며, ‘功德’에 ‘樹’가 첨가되었으며, ‘究竟之菓’은 여타 본에는 ‘涅槃之果’라 하였다.
  15. 15)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上說眞如覺(佛)性과 一切功德은 因覺爲根이어니와 未審커라 無明之心과 一切諸惡은 以何爲根이닛고”
    『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慧可問曰’이 ‘問’으로 되어 있고, “上說眞如佛性一切功德因覺爲根”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용성 선사본에는 “無量無邊 取要言之”가 첨가되었다.
  16. 16)‘自然本來具有’는 『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서는 ‘自能具足’으로 되어 있다.
  17. 17)『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서는 “如是三毒心 於本體中 應現六根 亦名六賊 卽六識也 由此六識 出入諸根 貪著萬境 能成惡業 障眞如體 故名六賊”으로 되어 있다. ‘自爲三毒若’와 ‘六賊者’가 첨가되었고, ‘然成’이 ‘能成’으로 되어 있다. ‘一’은 누락되었으며, 용성 선사는 ‘中’을 생략하였다.
  18. 18)『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本源’으로 되어 있다.
  19. 19)앞에 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又問 六賊三毒은 廣大無邊이어늘 若唯觀心하면 何由免無窮之苦닛고”(또 묻기를, “육적과 삼독이 광대무변하거늘 만약 오직 마음만 보고 무엇으로 말미암아 무궁한 고통을 면합니까?”)
    『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六趣三界’라 하였고, 『禪門撮要』에서는 ‘六賊三毒’이라 하였고 ‘云’이 첨가되었다. 여기서는 전자를 따라 번역하였다.
  20. 20)용성 선사본에는 ‘又’가 첨가되었다. ‘若能了心’은 『禪門撮要』와 동일하고, 『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서는 ‘本若無心’이라고 하였다.
  21. 21)『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서는 “故名三界 由此三毒 造業輕重 受報不同 分歸六處 故名六趣”라고 하였다. 또 『禪門撮要』에서는 “又三毒造業輕重으로 受報不同하야 分歸六處故로 名六趣니라”가 첨가되어 있다. 역자의 첨가가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22. 22)앞에 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又問云何輕重이 分之爲六이닛고”(또 묻기를, “어떻게 가볍고 무거운 그것이 나누어져 여섯이 됩니까?”)
  23. 23)앞에 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又問曰如佛所說하야 我於三大阿僧祇劫에 無量勤苦하야 方成佛道라 하셨거늘 云何今說 唯只觀心而制三毒을 則名解脫이닛고”(또 묻기를, “저 각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저 아승기겁阿僧祗劫에 한량없이 부지런히 애써서 바야흐로 각도를 이루었다’고 하셨거늘 어떻게 지금에 설한 것은 오직 다만 마음만을 관해서 삼독을 제거하면 곧 이름하여 해탈한다고 합니까?”)
  24. 24)『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佛所說言 無虛妄也 阿僧祇劫者 卽三毒心也 胡言阿僧祇 漢名不可數 此三毒心 於中有恒沙惡念 於一一念中 皆爲一劫 如是恒沙不可數也 故言三大阿僧祇”라고 하였다.
  25. 25)『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眞如之性 旣被三毒之所覆蓋 若不超彼三大恒沙毒惡之心 云何名爲解脫 今若能轉貪瞋癡等三毒心 爲三解脫 是則名爲得度三大阿僧祇劫 末世衆生 愚癡鈍根 不解如來三大阿僧祇秘密之說 遂言成佛塵劫未期 豈不疑誤行人退菩提道”라고 하였다.
  26. 26)『少室六門』과 『達磨大師破相論』에는 “問 菩薩摩訶薩 由持三聚淨戒 行六波羅蜜 方成佛道 今令學者唯只觀心 不修戒行 云何成佛”라고 하였다. ‘又’와 ‘曰’을 첨가하고, ‘菩薩摩訶薩’과 ‘只’를 탈락시켰다.
  27. 27)上揭書. “答 三聚淨戒者 卽制三毒心也 制三毒心成無量善聚 聚者會也 無量善法普會於心 故名三聚淨戒”. ‘曰’을 첨가하였다.
  28. 28)上揭書. “六波羅蜜者 卽淨六根也 胡名波羅蜜 漢名達彼岸 以六根淸淨不染六塵 卽是度煩惱河 至菩提岸 故云六波羅蜜”. ‘六’과 ‘河’와 ‘菩提’를 탈락시키고, ‘便’과 ‘岸’을 첨가하였다.
  29. 29)前揭書. “問 如經所說 三聚淨戒者 誓斷一切惡 誓修一切善 誓度一切衆生 今者唯言制三毒心 豈不文義有乖 答 佛所說經是眞實語 菩薩摩訶薩 於過去因中修行時 爲對三毒 發三誓願 斷一切惡 故常持戒 對於貪毒 誓修一切善 故常習定 對於瞋毒 誓度一切衆生 故常修慧 對於癡毒”. ‘又’와 ‘問’을 첨가하고 ‘如經所說’을 탈락시키고, ‘佛’을 ‘覺’으로, ‘菩薩摩訶薩’을 ‘大正士’로 대체하고, ‘正士’를 첨가하였다.
  30. 30)前揭書. “由持如是戒定慧等三種淨法故 能超彼三毒成佛道也 諸惡消滅 名之爲斷 諸善具足 名之爲修 以能斷惡修善 則萬行成就 自他俱利 普濟群生 名之爲度 故知所修戒行不離於心”. ‘能’을 탈락시키고 ‘佛’을 ‘覺’으로 대체하였다.
  31. 31)『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과 『達磨大師破相論』(『卍新纂續藏經』)에는 ‘佛土’로 되어 있고, 『법해보벌』과 범어사본 『선문촬요』에는 ‘衆生’으로 되어 있다.
  32. 32)『법해보벌』, 범어사본 『선문촬요』에서는 ‘又云’이 있다.
  33. 33)前揭書. “若自心淸淨 則一切佛土皆悉淸淨 故經云 心垢則衆生垢 心淨則衆生淨 欲得淨土 當淨其心 隨其心淨則佛土淨 三聚淨戒自然成就”. ‘淸’과 ‘則’과 ‘得’과 ‘當’과 ‘然’을 탈락시키고, ‘佛土’를 ‘衆生’으로, ‘佛’을 ‘覺’으로 대체하였다.
  34. 34)『법해보벌』, 범어사본 『선문촬요』에서는 “又問曰如經所說 六波羅蜜者 亦名六道”로 되어 있다.
  35. 35)“若爲通會又度者”가 생략되었다. 『達磨大師破相論』(『卍新纂續藏經』)에는 ‘若爲通會’, 『少室六門』 「第二門破相論」(『大正新脩大藏經』)에는 ‘何爲通會’로 되어 있다.
  36. 36)『법해보벌』, 범어사본, 용성 선사본에서 ‘欲淨六根 先’ 보입.
  37. 37)『법해보벌』, 범어사본에는 ‘心無固恡’으로, 용성 선사본에서는 ‘心無慳悋’으로 보입.
  38. 38)前揭書. “問曰如經所說 六波羅蜜者 亦名六度 所謂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 今言六根淸淨 名波羅蜜者 何爲通會 又六度者 其義如何 答 欲修六度 當淨六根降六賊 能捨眼賊 離諸色境 名爲布施 能禁耳賊 於彼聲塵 不令放逸 名爲持戒 能伏鼻賊 等諸香臭 自在調柔 名爲忍辱 能制舌賊 不貪諸味 讚詠講說 名爲精進 能降身賊 於諸觸慾 湛然不動 名爲禪定 能調意賊 不順無明 常修覺慧 名爲智慧 六度者運也 六波羅蜜若船筏 能運衆生 達於彼岸 故名六度”에서 ‘如經所說’과 ‘波羅蜜’과 ‘亦名’과 ‘亦名六度’와 ‘者’와 ‘爲通會 又六度者 其義如何’와 ‘於’를 탈락시키고, ‘諸’를 ‘邪’로, ‘慾’을 ‘欲’으로 대체하고, ‘曰’과 ‘欲淨六根’과 ‘心無慳悋’과 ‘心無厭心’과 ‘喩’를 첨가하였다.
  39. 39)前揭書. “問 經云 釋迦如來爲菩薩時 曾飮三斗六升乳糜 方成佛道 先因飮乳 後證佛果 豈唯觀心得解脫乎 答 誠知所言無虛妄也 必因食乳 然始成佛 言食乳者有二種 佛所食者 不是世間不淨之乳 乃是眞如淸淨法乳也 三斗者 卽三聚淨戒 六升者 卽六波羅蜜 成佛道時 由食如是淸淨法乳 方證佛果 若言如來食於世間和合不淨之牛羶腥乳者 豈不謗誤之甚乎”에서 ‘又’와 ‘曰’과 ‘而’와 ‘曰’과 ‘所說’과 ‘媱欲’과 ‘之’와 ‘成’을 첨가하고, “經云 釋迦如來爲菩薩時”와 “先因飮乳 後證佛果”와 “誠知所言無虛妄也 必因食乳 然始成佛 言”과 “有二種 佛所食者”와 ‘卽’과 ‘之牛’와 ‘誤’를 탈락시켰으며, 각각의 ‘佛’을 ‘覺’으로, ‘佛道’와 ‘如來’를 ‘大覺’으로, ‘不’을 ‘非’로 대체하였다.
  40. 40)前揭書. “眞如者 自是金剛不壞 無漏法身 永離世間一切諸苦 豈須如是不淨之乳 以充飢渴 如經所說 其牛不在高原 不在下濕 不食穀麥糠麩 不與特牛同群 其牛身作紫磨金色”. ‘眞如’를 ‘大覺’으로, ‘充’을 ‘免’으로 대체하고 ‘一切諸’와 ‘其牛’를 탈락시키고, ‘也’를 첨가시켰다.
  41. 41)前揭書. “言此牛者 毘盧舍那佛也 以大慈悲 怜愍一切 故於淸淨法體中 出如是三聚淨戒六波羅蜜微妙法乳 育一切求解脫者 如是眞淨之牛 淸淨之乳 非但如來飮之成道 一切衆生若能飮者 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毘盧舍那佛’을 ‘光明遍照覺’, ‘怜’을 ‘憐’, ‘育’을 ‘養’, ‘但如來’를 ‘獨大覺’,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無上正眞之道’로 대체시키고 ‘流’와 ‘乳’를 첨가하였고, ‘故’와 ‘如是眞淨之牛 淸淨之乳’를 탈락시켰다.
  42. 42)前揭書. “問 經中所說 佛令衆生修造伽藍 鑄寫形像 燒香散花 燃長明燈 晝夜六時 遶塔行道 持齋禮拜 種種功德 皆成佛道 若唯觀心 總攝諸行 說如是事 應虛妄也”. ‘又’와 ‘曰’과 ‘一法’을 첨가하고, ‘伽藍’을 ‘聖殿’, ‘形’을 ‘聖’, ‘佛’을 ‘覺’, ‘應’을 ‘必’로, ‘說如是事’를 ‘云者’로 대체하였고, ‘所說佛令衆生’과 ‘遶塔’을 탈락시켰다.
  43. 42)前揭書. “答 佛所說經 有無量方便 以一切衆生鈍根狹劣 不悟甚深之義 所以假有爲喩無爲 若復不修內行 唯只外求 希望獲福 無有是處 言伽藍者 西國語 此土翻爲淸淨地也 若永除三毒 常淨六根 身心湛然 內外淸淨 是名修造伽藍”. ‘曰’과 ‘無數方便 引導衆生’과 ‘汝知之不’과 ‘理’와 ‘也’를 첨가하고, ‘佛所說經 有無量方便 以’와 ‘所以’와 ‘若復’와 ‘造’를 삭제하고, ‘甚’을 ‘深’, ‘之義’를 ‘妙理’, ‘喩’를 ‘事’, ‘西國’을 ‘梵’, ‘土翻爲’를 ‘言’, ‘名’을 ‘則’으로 대체하였다.
  44. 43)前揭書. “鑄寫形像者 卽是一切衆生求佛道也 所謂修諸覺行 彷像如來眞容妙相 豈是鑄寫金銅之所作乎 是故求解脫者 以身爲爐 以法爲火 以智慧爲巧匠 以三聚淨戒六波羅蜜以爲模楑 鎔鍊身中眞如佛性 遍入一切戒律模中 如敎奉行 一無漏缺 自然成就眞容之像 所謂究竟常住微妙色身 不是有爲敗壞之法 若人求道 不解如是鑄寫眞容 憑何輒言功德”. ‘又’를 첨가하였고, ‘形’을 ‘覺’, ‘佛’을 ‘覺’, ‘妨’을 ‘假’, ‘如來’를 ‘大覺’, ‘是’를 ‘道’, ‘佛性’을 ‘覺性’, ‘乎’를 ‘也’, ‘揆’를 ‘樣’, ‘像’을 ‘相’, ‘不’을 ‘非’로 대체시키고, ‘卽是’에서 ‘是’, ‘鑄寫’에서 ‘寫’, ‘以爲’에서 ‘以’, ‘如是’에서 ‘如’를 탈락시켰다.
  45. 44)법희식이니 : 번역에서 탈락된 것을 보충하였다.
  46. 45)『小室六門』(『大正新脩大藏經』 48, p.369b) “一者淨戒 洗蕩愆非 猶如淨水 濯諸塵垢”; 『達磨大師破相論』(『卍新纂續藏經』 63, 11a) “一者謂淨戒 洗蕩僭非 猶如淨水 濯諸塵垢”;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p.134~135 “一者謂淨戒 洗溫愆非 猶如淨水 去諸塵垢”. 여기서 번역은 『小室六門』을 따르고 있다.
  47. 46)앞에 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又問曰經所說言에 至心念佛하면 必得往生西方淨土라 하시니 以此妙門으로 則應成佛이어늘 如何觀心하야 求於解脫이닛고.”(또 묻길, “경에서 말씀하신 것에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반드시 서방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라고 하시니, 이 묘문으로 곧 응당히 깨달음을 이루거늘 어떻게 마음을 관해서 해탈을 구합니까?)
  48. 47)『高麗國普照禪師修心訣』(『大正新脩大藏經』 48, p.1006a) “但識自心 恒沙法門 無量妙義 不求而得 故世尊云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又云 一切衆生 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是知離此心外 無佛可成 過去諸如來 只是明心底人 現在諸賢聖 亦是修心底人 未來修學人 當依如是法 願諸修道之人 切莫外求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여기서 ‘佛’과 ‘如來’, ‘世尊’은 모두 ‘大覺’으로, ‘佛’은 ‘覺’으로 바꿨다. 이는 조선시대의 부처님을 폄하하는 내용을 경계한 의도로 여겨진다.
  49. 48)용성은 ‘但’을 ‘다못’이라 번역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다만’으로 바꾼다.
  50. 49)『高麗國普照禪師修心訣』(『大正新脩大藏經』 48, p.1006b) “宗云 我今向汝道 恐汝不信 僧云 和尙誠言 焉敢不信 師云 卽汝是”. 여기서 ‘和尙’을 ‘正士’로 대체하였다.
  51. 50)『高麗國普照禪師修心訣』(『大正新脩大藏經』 48, p.1006c). ‘若作是解’를 ‘此’로 대체하였다.
  52. 51)『高麗國普照禪師修心訣』(『大正新脩大藏經』 48, p.1006c) “旣不知方便故로 作懸崖之想하야 自生退屈하며 斷覺種性者가 不爲不多矣로다 旣自未明일새 亦未信他의 旣有解悟處하고 見無神通者하면 乃生輕慢하야 欺賢誑聖하니 良可悲哉로다”(이미 방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물러날 생각을 내며, 깨달음의 종성을 끊는 자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미 스스로 아직 밝히지 못하였기에, 또한 아직 다른 이가 이미 깨달아 아는 곳을 믿지 못하고 신통이 없다고 보는 자는 이에 가볍게 교만을 내어서 현인을 속이고 성인을 속임이니 진실로 가련하다.) 이상의 내용을 빠뜨렸다.
  53. 52)『高麗國普照禪師修心訣』(『大正新脩大藏經』 48, p.1006c) “汝言頓悟 漸修兩門 千聖軌轍也”(그대가 몰록 깨닫고 점차 닦는 두 문호가 일천 성인의 법 수레바퀴라고 말하였는데,)를 생략하였다.
  54. 53)본래 면목을 : 용성 선사가 보충하였다.
  55. 54)육도의 사생이~받는 것을 : 용성 선사가 보충하였다.
  56. 55)간단없이 요동하는 미혹이 : 용성 선사가 보충하였다.
  57. 56)중생의 마음으로 : 용성 선사가 보충하였다.
  58. 57)공적영지를 : 용성 선사가 보충하였다.
  59. 58)앞에 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請爲通會하시어 令絶疑情하소서”(청컨대 회통하시어 의심의 망정을 끊어주소서!)
  60. 59)13 원문의 ‘浮’는 ‘淨’의 오기이다.
  61. 60)14 공적영지를 : 용성 선사가 보충하였다.
  62. 61)『高麗國普照禪師修心訣』(『大正新脩大藏經』 48, p.1009b)에 ‘給’이 ‘養’으로 되어 있다.
  63. 62)다음 구절이 생략되었다. “吾若無心이면 因何解答汝하며 汝若無心이며 因何解問吾리오 問吾가 卽是汝心이니라”(내가 만약 마음이 없다면 무엇으로 인해서 네게 답할 줄 알며 네가 만약 마음이 없다면 무엇으로 인해서 내게 물을 줄 알겠는가. 내게 묻는 것이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少室六門』, 「第六門血脈論」(『大正新脩大藏經』 48, p.373b); 『達磨大師血脈論』(『卍新纂續藏經』 63, p.2b);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111 모두 동일하다.
  64. 63)원문의 ‘汝’를 ‘나’로 오역하였기에 바로잡았다.
  65. 64)『少室六門』, 「第六門血脈論」(『大正新脩大藏經』 48, p.373b); 『達磨大師血脈論』(『卍新纂續藏經』 63, p.2b); 編輯 鏡虛惺牛, 懸吐 雪峰鶴夢, 新刊懸吐 『禪門撮要』(범어사, 1968), p.111. 모두 ‘識’으로 동일한데 ‘者’로 바꾸었다.
  66. 65)원문의 ‘功’은 ‘切’의 오기이다.
  67. 66)원문에는 ‘云’으로 되어 있는데 『血脈論』에는 ‘問曰因’으로 되어 있다. 번역에도 ‘問曰’의 번역이 생략되었지만 첨가한다.
  68. 67)원문의 ‘功’은 ‘切’의 오기로 보인다.
  69. 68)원문의 ‘續’은 ‘讀’의 오기인 듯하다.
  70. 69)원문은 ‘喜’로 되어 있다.
  71. 70)원문에는 번역으로 ‘그’라고 되어 있으나 『血脈論』에는 ‘是’라고 되어 있다.
  72. 71)10 원문에는 ‘媱欲’으로 되어 있지만 번역으로 보아 ‘婬慾’이 타당하다.
  73. 72)원문의 ‘衣’는 ‘依’의 오기로 보인다.
  74. 73)‘연수 정사’로 번역한 것을 원문을 따라 ‘연수 선사’로 바꾸었다.
  75. 74)원문에 ‘이르사대’라고 번역어를 삽입하였기에 대신 ‘云’ 자를 첨가한다.
  76. 75)故로 此體用은 非一非異이니 : 용성 선사본의 원문과 번역에 생략된 것을, 知納 撰, 『眞心直說』(『大正新脩大藏經』 48, p.1000c)의 내용에 의거해서 첨가한다.
  77. 76)원문의 ‘忘’은 ‘妄’의 오기인 듯하다.
  78. 77)『眞心直說』에 ‘妄除’라고 하였으나 원문의 ‘除妄’이 옳은 듯하다.
  79. 78)『眞心直說』은 ‘現前’이고 원문은 ‘自現’이나 의미상 두 가지 다 무방하다.
  80. 79)『眞心直說』은 ‘故永嘉云’인데 원문에 ‘故云永嘉’라고 한 것은 오기인 듯하다.
  81. 80)내용으로 보아 ‘不’을 생략해야 하는 듯하다.
  82. 81)원문과 『禪警語』 모두 ‘吃’이지만, 成正 集, 『博山禪警語』(『卍新纂續藏』 63, 758c)에는 ‘喫’으로 되어 있다.
  83. 82)鳩摩羅什 譯, 『妙法蓮華經』(『大正新脩大藏經』 9, 7a)에는 ‘解’다.
  84. 83)원문은 ‘取’이지만 『禪警語』와 佛陀多羅 譯,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大正新脩大藏經』 17, 915c)에는 ‘將’이다.
  85. 84)원문에는 ‘皮下有血이니須識慚愧’로 되어 있다.
  86. 85)원문에 ‘做工夫’가 생략되었으나 내용상 필요하다.
  87. 86)원문의 ‘矛’는 ‘予’의 오기인 듯하다.
  88. 87)『博山禪警語』(『卍新纂續藏經』 63, p.759c)에 이하의 내용이 생략되었다. “做工夫호대 不只是念公案이니 念來念去인들 有甚麽交涉이리요 念到彌勒下生時하야도 亦沒交涉이니 何不念阿彌陀佛하야 更有利益고 不但敎不必念이라 不妨一一擧起話頭니 如看無字인댄 便就無上하야 起疑情하고 如看栢樹子인댄 便就栢樹子하야 起疑情하고 如看一歸何處인댄 便就一歸何處하야 起疑情하고 疑情이 發得起하면 盡十方世界가 是一箇疑團이라 不知有父母身心하며 不知有十方世界하며 非內非外輥成一團하얀 一日 如桶篐自爆하리라 再見善知識하면 不待開口而大事了畢의하라”(공부를 짓되 다만 공안을 염하지 말지니, 염해 가고 염해 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염하여 미륵불이 나오실 때까지 이를지라도 또한 소용이 없을 것이니, 차라리 아미타불을 염한다면 공덕이나 있지 않겠는가? 다만 염念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각기 화두를 거각할지니, 무자無字를 한다면 무자 상에 나아가 의심을 일으킬 것이요, 백수자栢樹子를 간한다면 백수자에 나아가 의심을 일으킬 것이요, 일귀하처一歸何處를 한다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하고 의심할지니, 의심이 일어나면 온 시방세계가 한낱 의심덩어리라. 부모나 제 몸과 마음이 있는 줄도 모르며, 시방세계가 있는 줄도 모르며 안팎이 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하루아침에 통잡桶篐이 저절로 터지듯 하리니, 선지식을 다시 친견하면 입을 열기를 기다리지 않고 큰일을 해 마치리라.)
  89. 88)이상은 원문의 내용과는 다른 용성 선사의 번역이지만 원문의 내용을 따라 의역한 것으로 보인다.
  90. 89)여기까지의 번역은 원문에는 없다. 다만 『五家正宗贊』(『卍新纂續藏經』 78, pp.582c~583a)에 “一日參山 方跨門 便問 是凡是聖 山便喝 師禮拜 有僧擧似洞山 山曰 若不是奯公 大難承當 師曰 洞山老人不識好惡 錯下名言 我當時一手抬一手搦”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