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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58_a_01L법화영험전 하권 法華靈驗傳 卷下관식 사문 요원 지음 觀識沙門 了圓錄 ✽7. 호주湖州의 천하상좌스님은 본명이 포옥抱玉이고, 오흥吳興 사람이다. 어머니 매씨梅氏가 스님을 잉태할 때 신령스러운 상서가 있은 후로는 냄새나는 채소(辛菜)를 싫어하였다. 이를 갈 나이(齔歲1))가 되자 총지惣持 비구니2)의 법화사法華寺에서 출가하여 『법화경』 외우기를 발원하더니, 석 달 만에 통달하여 날마다 7부를 다 독송했다. 스님은 20세 때 서울로 가서 계를 받았다.이에 앞서 숙종 황제가 밤에 꿈을 꾸니, 오나라 승려가 『법화경』을 독송하는데 입에서 오색 빛이 나오고, 그 목소리가 맑고도 고왔다. 이튿날 아침 황제는 영을 내려 서울 안에 있는 승려로서 『법화경』을 외울 줄 아는 사람 2백여 명을 대궐 안으로 불러들여 보았으나 모두 꿈에 보았던 그 스님이 아니었다. 이때 포옥은 마침 관문關門(성으로 출입하는 문)으로 들어오는데 관령關令이 먼 곳에서 여기에 온 까닭을 물었다.“나는 『법화경』을 잘 독송합니다. 그래서 계戒를 받으러 왔습니다.”관령이 황제에게 아뢰자 황제는 곧 그를 불러들여 보고는, “내가 꿈에 본 그 사람의 음성과 용모가 흡사하다.”라고 하면서 전각으로 오르게 하여 자리를 내주고, 『법화경』을 독송해 보라고 하였다.스님이 독송하여 「수희공덕품」에 이르자, 포옥의 입에서 오색 빛이 뻗어 나오므로 황제는 크게 기뻐하고, “내가 꿈에 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하였다.독송이 끝나자 황제는 칠보 석장을 하사하고 새로이 향단을 차리고 스님에게만 수계한 다음 대광大光이라는 법명을 내리고, 천하상좌天下上座에 봉하여 천복사千福寺에 있게 하였는데, 스님의 독송하는 소리가 널리 퍼져서 늘 황제에게도 들렸다.스님은 또 남전藍田의 정사精舍에도 있었는데, 이 절 스님의 꿈에 천상계의 동자가 내려와 하는 말이, “대광 스님의 경 읽으시는 소리가 유정천有頂天3)까지 들려옵니다. 그분은 예사 분이 아니십니다.”라고 하였다. 이 무렵 모두들 스님을 양나라 때 비구니 총지의 후신이라고 했다.뒤에 스님은 황제에게 청하여 오흥吳興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때 이신李伸이라는 사람이 오흥의 자사刺史로 있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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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58_a_02L法華靈驗傳卷下
006_0558_a_03L
006_0558_a_04L1)觀識沙門。釋了圓錄
006_0558_a_05L[第九段。從地涌出品。如來壽量品。分別功德品。]湖州天下上座
006_0558_a_06L師本名抱玉。吳興人也。母梅氏。孕恊
006_0558_a_07L靈祥。即惡薰穢。旣誕2)齕 [91] 歲。於尼惣
006_0558_a_08L持法華寺出家。願誦蓮經。三月通貫。日
006_0558_a_09L持七部。年登二十。詣京受戒。時肅宗
006_0558_a_10L皇帝夜夢。吳僧誦法華經。口出五色光。
006_0558_a_11L3)其 [92] 音淸亮。洎翌旦。勑京城僧能誦法
006_0558_a_12L華者。二百餘人。竝入禁中。帝視之。皆
006_0558_a_13L非所夢者。其時抱玉方入關。4)關 [93] 令問
006_0558_a_14L其遠來之意。答云善誦蓮經。特來受戒
006_0558_a_15L也。令奏帝即降旨召見。帝5)田 [94] 朕所夢
006_0558_a_16L者。音容宛若。遂令上殿。賜座誦經。至
006_0558_a_17L隨喜功德品。口角放五色光。帝大悅曰。
006_0558_a_18L朕夢中所覩之即此也。經纔訖賜七寶
006_0558_a_19L6)湯。 [95] 令別築香壇。專爲受戒。賜名大光。
006_0558_a_20L封天下上座。勑居千福寺。玉梵音遍滿。
006_0558_a_21L常通帝聽。又別居藍田精舍。寺僧夢
006_0558_a_22L天童來降告言。大光經聲。通7)于 [96] 有頂。
006_0558_a_23L非聊尒人也。時衆咸謂。師即梁朝尼摠
006_0558_a_24L持後身。後乞歸吳興。時李伸刺于吳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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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58_b_01L하루는 술이 취하여 지경도량持經道場에 쓰러져 자다가 밤에 깨어 보니, 흰빛이 대광 스님의 방안에 가득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문틈으로 스님의 방안을 들여다보니, 스님이 연좌宴坐4)하여 경을 독송하고 있는데 독송하는 소리가 멎자 빛도 따라서 거두어졌다.이신은 본래 불교를 깊이 믿지는 않았지만 대광 스님을 깊이 공경하여 친히 비문을 지었으니, 제목을 ‘묵조지경대덕신이비문墨詔持經大德神異碑文’이라 하였다. 전에 처음 스님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오흥으로 돌아가기를 청했을 때 황제가 묵조墨詔(임금이 직접 쓴 조서) 한 통을 내렸기 때문이다.제10단 「수희공덕품」ㆍ「법사공덕품」1. 무덤에서 연꽃이 피어나다소흥紹興 말년(1162)에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에 조씨趙氏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 안씨安氏는 부처님을 존중하여 늘 재계하고 『법화경』을 독송하였다.시중 드는 여인이 매번 몰래 그 독송을 들은 지 오래되니, 어느 날 갑자기 “청련화 향기, 백련화 향기, 꽃나무 향기, 과일나무 향기”5)의 네 구절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여인은 무슨 일을 할 때나 가만히 앉아 있을 때나 항상 그 네 구절을 끊임없이 흥얼거렸다. 남들이 보고 웃음거리로 삼았으나 그녀가 마음 쓰는 데가 따로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그런데 하루는 그 여인이 어떤 일을 하다가 주인의 뜻을 어겼으므로 주인이 혹독한 형벌을 가하여 그만 죽어 버려서 그 시체를 후원에 묻어 버렸다. 그랬더니 얼마 후 그 위에 푸른 연꽃 한 송이가 우뚝 나와서 향기와 빛이 아주 좋았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안씨 혼자만 짐작하고 있었다. 네 구절의 경문을 독송한 감응이 이와 같이 뚜렷하므로 안씨는 그녀의 덕을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비밀히 허당 법사虛堂法師 본공本空에게 밝히니, 본공은 매양 이 사연을 들어 사람들을 깨우쳐 주었다. 내가 일찍이 들은 말을 -
006_0558_b_01L醉於持經道場。夜醒忽見白光滿室。往
006_0558_b_02L覘光公。宴坐持經。光起面門。經聲向
006_0558_b_03L息。光亦隨歛。李相8)素 [97] 於空門。寡信而
006_0558_b_04L篤敬於師。親著碑文。題曰墨詔持經。大
006_0558_b_05L德神異碑文。初師上表。乞歸吳興。帝
006_0558_b_06L賜墨詔一道。
006_0558_b_07L
006_0558_b_08L第十段。隨喜功德品。法師功德品。
006_0558_b_09L埋即生蓮。舌常諷典。窰瓦變作蓮華而警俗
006_0558_b_10L凾經化爲草束而拯生。經一通而更不忘。髮
006_0558_b_11L三剪而輒自長卷下第一張
006_0558_b_12L埋即生蓮
006_0558_b_13L紹興末。明州奉化縣。有姓趙人。其母
006_0558_b_14L安人。重佛齋戒。誦法華經。房下有一
006_0558_b_15L女。使每竊聽久久。忽記得四句。所謂
006_0558_b_16L靑蓮花香。白蓮花香。花樹香。菓樹香。
006_0558_b_17L自此動靜施爲。常吟詠不絕。人聞之
006_0558_b_18L謂爲笑語。殊不知此女亦有用心處。一
006_0558_b_19L日作事乖主意。9)稜 [98] 遲至死。遂以其屍。
006_0558_b_20L潜瘞後園。異時忽於其上。秀出靑蓮花
006_0558_b_21L一朶。香色可愛。餘人不知其由。獨安
006_0558_b_22L人默而識之。盖所誦四句經。感應之如
006_0558_b_23L是也。安人復不匿其德。密說與虛堂法
006_0558_b_24L師本空。空每擧10)似。 [99] 化人宗曉。甞親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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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58_c_01L여기에 대강 기록해 둔다.『현응록』2. 혀가 경전을 외우다선비였던 양난급楊難及은 옹주雍州 만년현萬年縣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지조가 있었는데 나이 50세가 되자 불교에 뜻을 두어 법성 법사法誠法師가 덕이 높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법사를 스승으로 섬겼다. 법사는 그에게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는데 몇 달 안 되어 환하게 통달하였다. 밤을 새어도 피로한 줄 모르며 온갖 일을 다 하면서도 『법화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후에 그는 아무 병도 없이 갑자기 죽어 화장을 했더니 해골과 혀만은 타지 않고 남았다. 법성 법사가 거두어 돌함에 넣어서 법화당法華堂6) 안에 두고 때때로 공양하였는데, 가끔 돌함 안에서 경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돌함이 진동하고 말소리가 또렷또렷하여 듣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공경하였다. 『법화경』을 받아 지닌 힘으로 생긴 일이었다.『홍찬법화전』 권83. 기와가 연꽃으로 변하여 세속 사람들을 경계하다혜초慧超 스님은 단양丹陽 건원현建元縣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법화경』 독송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금지령을 내려 승려들을 엄중히 탄압하니, 스님은 기왓굴 속에 숨어서 여러 해를 지내다가 뒤에 금지령이 없어져 자유롭게 되자 기왓굴 주인을 찾아가서 말하였다.“빈도가 이 안에서 『법화경』을 천여 번이나 독송했으니 깨끗이 소제하여 공양하시고, 다시 기와 굽는 데 쓰지 마시오.”그러나 주인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수리하여 전과 같이 기와를 구웠는데 꺼내 보니 모두 연꽃 모양으로 변하여 사방의 벽에 덮여 있었다. 원근의 사람들이 보고서는 다 감탄하며 기이하게 여겼다.또 혜초 스님이 일찍이 절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는데 -
006_0558_c_01L其說。聊記于此。出現應錄。
006_0558_c_02L舌常諷典
006_0558_c_03L俗士楊難及。雍州萬年縣人也。幻而耿
006_0558_c_04L介。年將知命。方祈妙典。聞法誠法師
006_0558_c_05L有道。遂師事焉。誠乃授以法華。數月
006_0558_c_06L之間。悉得通利。曉夜忘疲。雖渉衆務。
006_0558_c_07L其聲不輟。於後無疾。奄然而終。終後
006_0558_c_08L焚燒。髏舌獨存。試收藏之石凾。置法
006_0558_c_09L華堂。時加供養。屢聞凾內諷誦之聲。
006_0558_c_10L振動石凾。詞句明了。聞者敬悚。知受
006_0558_c_11L持之力焉。出弘賛第八。
006_0558_c_12L窰瓦便作蓮花而警俗
006_0558_c_13L釋慧超。丹陽建元人也。11)少 [100] 有遠量。誦
006_0558_c_14L法華經。以爲恒業。甞遇法令嚴峻。禁
006_0558_c_15L勒沙門。超潜伏瓦窰。綿歷多年。後時
006_0558_c_16L難廓淸。拂衣而去。告窰主曰。貧道此中
006_0558_c_17L誦法華經。卷下第一張 已千餘遍。可洒
006_0558_c_18L掃供養。勿更用之。其人不信。乃修舊貫。
006_0558_c_19L所燒之瓦。遂變作蓮花之形。周植四壁。
006_0558_c_20L遠近見者。咸歎異之。又嘗在寺誦經。有
006_0558_c_21L撰者名補入{編}。「齕」作「齔」 {乙}。「其」作
006_0558_c_22L「吳」{甲}{乙}。「關」作「閉」又冠註曰閍疑關{乙}。
006_0558_c_23L「田」作「曰」{甲}{乙}。冠註曰湯疑錫{乙}。
006_0558_c_24L「于」作「干」{乙}。「素」作「索」{乙}。「稜」作「陵」
006_0558_c_25L{乙}。「似」作「以」{乙}。「少」作「作」{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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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59_a_01L사나운 짐승이 와서 들었다. 스님이 그들에게 계를 설해 주니,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온순해졌다. 스님이 “단월檀越7)은 이제 돌아가시게.” 하니, 맹수는 순순히 가 버렸다. 스님이 이승과 저승을 다 감동시킨 것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뒤에 병이 들어서 위독해지자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니, 혜초 스님은 “오래 산다고 기뻐할 것도 없고 일찍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라고 하고는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나이 77세, 무덕武德 5년(622) 12월 6일이었다.문인 중에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어서 역시 『법화경』을 1만여 번이나 독송했는데, 임종하는 날 번幡과 하늘 꽃이 하늘에서 분분히 떨어지고 하늘의 음악이 요란히 들려왔다. 절에 있던 여러 스님들이 모두 보고 들었다. 또 스님은 연화대가 맞으러 온 것을 보고 단정히 서서 합장하고 입적하였다. 사방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었다.『홍찬법화전』 권84. 함에 든 경전이 건초단으로 되어 물에 빠진 중생을 구하다의봉儀鳳 연간(676〜679)에 여주汝州 양현梁縣 북촌에 사는 유씨劉氏의 아들이 고구려8) 정벌의 군사에 종군했다가 붙잡혀 종이 되었다. 요해遼海 동쪽 기슭에서 말을 먹이고 있었는데 하루는 밤이 되어 돌아와 잠자리에 드니, 꿈에 한 스님이 그를 불러서 바다로 들어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러한 꿈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유씨의 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러한 신세가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이러한 꿈을 자주 꾸자 마침내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런데 물속에서 국화꽃 한 단을 붙잡게 되어 이것을 끌어안고 파도를 따라 흘러갔다. 얼마를 떠돌다가 바다를 건너 서쪽 해안에 닿아 있었다.뭍에 올라 한참을 가다가 문득, ‘그 국화꽃 단이 나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라고 생각하고 되돌아가서 그 풀단을 풀어 헤쳐 보았다. 풀단 속에서 『법화경』 제6권이 나왔다. 그는 기이하게 생각하고 그 『법화경』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그의 아버지 유씨 노인은 아들이 종군하여 영영 소식이 없으므로 『법화경』 한 질을 정성을 다해 베껴 쓰고 모든 일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하였다. 아들이 돌아오자 부자는 서로 붙잡고 한편으로는 서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이 하도 신기하여 어떻게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돌아오게 된 연유를 자세히 말하니, 그 아버지는 함께 정사로 갔다. 『법화경』을 넣어 둔 함지를 열어 보니, 제6권 한 질이 없었다. -
006_0559_a_01L一猛獸來聽。超兼爲受戒。略如家犬。
006_0559_a_02L語曰。檀越好去。即依言而返。感徹幽
006_0559_a_03L明。難以具記。後臥疾弟子流涕。超曰
006_0559_a_04L長生不欣。夕死不慼。乃面西而坐。奄
006_0559_a_05L然長往。年七十有七。即武德1)五。 [16] 十2)二 [101]
006_0559_a_06L月六日也。有門人善思者。亦誦法華。萬
006_0559_a_07L有餘徧。臨終之日。幡花音樂。紛聆空
006_0559_a_08L際。在寺僧衆。咸悉見聞。又自見花臺
006_0559_a_09L迎之思。乃端然拱立。合掌而化。遠近
006_0559_a_10L觀者。如堵墻焉。出弘賛第八。
006_0559_a_11L凾經化爲草束而拯生
006_0559_a_12L儀鳳年。汝州梁縣北村。劉氏男。從征東
006_0559_a_13L討高麗。沒爲奴。於遼海東岸牧馬。因
006_0559_a_14L而寢睡。屢夢有一僧。喚令入海。共汝
006_0559_a_15L歸家。若此非一。劉氏子自惟。漂落與死
006_0559_a_16L莫殊。頻感斯夢。遂投身海浦。於水中
006_0559_a_17L抱得菊草一束。隨波漂流。浮渡海西。
006_0559_a_18L至于岸上。行餘一里。思念此草。能濟
006_0559_a_19L吾身命。却廻取草。解束曝之。乃於其
006_0559_a_20L中。得法華經第六卷。遂持還。其父劉
006_0559_a_21L老。先綠子沒蕃。遂爲造法華經一部。
006_0559_a_22L書寫淸淨。每事嚴潔。及見子到。相持
006_0559_a_23L悲慶恠。問所由。子具說前事。父子遂共。
006_0559_a_24L於精舍中。開視經凾。乃欠第六一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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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59_b_01L그래서 아들이 바다에서 얻은 『법화경』을 가져다가 맞추어 보니, 과연 아버지가 그 아들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종이며 먹이 똑같은 것이 틀림이 없었다.『홍찬법화전』 권105. 한 번 통달하여 다시 잊지 않다청신사 사지장謝智藏은 옹주雍州 남전藍田 사람이다. 그는 비록 농가에서 살고 있었지만 항상 오계五戒를 굳게 지켰다. 이런 인연으로 잠시 고을 아래 갔을 때 절에서 어떤 스님을 보았는데, 『법화경』을 강설하고 계셨다. 제6권에 이르러 『법화경』을 받아 가지면,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의 공덕이 크다.”9)라는 대목에 이르러 곧 발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날마다 제1권을 외웠다. 어떤 일을 할 때를 빼고는 잠시도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더 나아가서 제2권, 제3권도 계속해서 배우기를 원했으나, 멀리 외진 시골에 있어서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 훌륭한 스승을 만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몇 해가 지났다. 홀연 한 스님이 나타나 그의 문을 두드렸다.“여보시오, 먹을 것이 있거든 주십시오.”지장은 흔연히 집에 있는 대로 법에 따라 공양하였다. 스님은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지장에게 말하였다.“그대가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싶거든 본래의 경을 가져오시오.”지장은 크게 기뻐하였다. 깊이 소원해 오던 바라 곧 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한 번 가르쳐 준 것은 잊지 않았다.강설이 끝나자 스님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지장은 몹시 서운하여 낙심했으나 그가 신인神人인 줄은 몰랐다. 스승이 사라지고부터 기이한 향내가 며칠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홍찬법화전』 권86. 머리카락을 세 번이나 잘랐는데 그때마다 저절로 자라나다홍조弘照 스님은 나이 20세에 출가하여 바로 『법화경』을 독송해서 몇 달 안 되어 수계하였다. 종남산終南山에 집을 짓고 『법화경』 1천 번 독송하기를 서원하였는데, 자주 신이 와서 도와주고 보호해 줌을 느꼈다. 또 눈이 깊이 쌓여 길이 막히고 양식은 겨우 한 말밖에 안 남아서 20여 일을 먹을 수 있는 양이었으나 계속 먹었는데도 줄어들지 않았다. 뒤에 친구 이신履信과 한 거사가 함께 한산寒山으로 이주해 와 같이 초막을 짓고 다시 수행을 계속했다. -
006_0559_b_01L驗其子海中得者。果是其父爲子所造
006_0559_b_02L之經。紙墨僉同。宛然符會。出弘賛第十。
006_0559_b_03L經一通而更不忘卷下第三張
006_0559_b_04L淸信士謝智藏。雍州藍田人也。雖處田
006_0559_b_05L家。恒持五戒。因綠暫至縣下。見寺中
006_0559_b_06L有沙門。講法華經。至第六卷持經。眼耳
006_0559_b_07L鼻舌身意功德。乃即發心歸家。誦持第
006_0559_b_08L一卷。除人事外。不曾休息。其人心願。
006_0559_b_09L更進餘卷。旣遠居田。無人敎授。思遇
006_0559_b_10L明師。經於數年。忽見一波羅門僧來
006_0559_b_11L扣門。謂藏曰。汝有食不乞我一齋。智
006_0559_b_12L藏欣然。隨家所有。如法供設。僧旣食
006_0559_b_13L畢。謂智藏曰。汝欲得受法華經者。可
006_0559_b_14L將本經來。智藏歡喜。深適所願。即授
006_0559_b_15L其經。一從聞受。更不忘失。受經旣了。
006_0559_b_16L僧忽不現。智藏情甚惆悵。不識神人。
006_0559_b_17L自師去後。但聞異香。數日不絶。出弘賛
006_0559_b_18L第八。
006_0559_b_19L髮三剪而輒自長
006_0559_b_20L釋弘照。年二十出家。即誦法華。數月
006_0559_b_21L便度。卜宅終南。誓誦千徧。頻感3)冥 [102] 祗
006_0559_b_22L潜來翼衛。又逢深雪。麵唯一斗。許二
006_0559_b_23L十餘日。食之不盡。乃與友人履信及一
006_0559_b_24L居士。移4)往 [103] 寒山。並結草庵。更修前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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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59_c_01L하루는 갑자기 길이 1백 자나 되고 머리 높이가 한 길이나 되는 오색 무늬의 큰 뱀이 암자 앞에 와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스님의 『법화경』 독송을 들었다. 홍조 스님은 처음에는 크게 놀라 몸이 떨려서 감히 바로 보지도 못하다가 대비심을 일으켜 깊은 서원을 세워 합장하고 눈물을 흘리며 목소리를 높여 끝까지 경을 외웠다. 뱀은 끝까지 듣고 잠시 후에 물러갔다. 이로부터 뱀은 계속해 와서 경을 들었는데, 홍조 스님은 뱀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 비린내가 싫고, 그 모양이 두려워 거사더러 뱀을 쫓아 버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거사는 밧줄로 뱀의 목을 얽어 끌어다가 깊은 숲속 큰 나무에 매어 놓았다.밤이 되어 홍조 스님과 이신 그리고 거사 세 사람이 똑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한 여인이 나타나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제자는 이 산에 있는 산신의 딸입니다. 본래 법 듣기를 좋아하여 번추한 모습으로 법중法衆10)을 많이 범했습니다. 이제 쫓겨나 스님을 하직하고 멀리 가게 되어 다시는 대승경 독송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게 된 것이 한스럽습니다.”세 사람은 놀라 깨어 서로의 꿈 이야기를 하였다. 뱀이 죽은 것이 아닌가 더럭 의심이 가서 횃불을 들고 숲속으로 찾아가 보니, 과연 뱀은 이미 죽어 있었다. 거사는 땅에 쓰러져 흐느껴 울며 진심으로 참회하고 사과하였다. 이어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뱀을 위하여 경을 외우고 또 천승재千僧齋11)를 베풀기로 하였는데, 우연히 암자 옆에서 많은 은銀이 생겨서 산을 내려가 재에 올릴 물건들을 풍족히 장만할 수 있었다.홍조 스님이 일찍이 어느 마을에 이르렀는데 유씨劉氏라는 가난한 여인이 스님을 공양하기를 청했다. 스님은 그의 뜻을 가엾이 여겨 그 집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이레를 묵는 동안에 여인은 양식이 다 떨어졌다. 스님은 떠나가려고 했으나 여인이 간곡히 만류하여 스님은 그냥 머물러 있었다. 여인은 돈 구할 길이 없어서 마침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양식을 마련하였다.다시 이레가 지나갔다. 홍조 스님이 다시 떠나려고 하니, 가난한 여인은 슬피 울며 다시 굳이 만류하여 스님은 또다시 머무르게 되었다. 여인은 머리카락까지 잘라 팔아서 그것마저 다 써 버렸으니, 밤새도록 근심하고 한탄하였으나 -
006_0559_c_01L忽一虵長百尺。斑文五色。頭高丈餘。
006_0559_c_02L直來庵所。低身俛聽。照初驚惶戰5)栗。 [104]
006_0559_c_03L不敢視之。起大悲心。發深重願。合掌
006_0559_c_04L流泪。抗聲終部。虵少選而退。自尒頻
006_0559_c_05L來不息。照雖頗知無菩。然惡其腥臭。
006_0559_c_06L懼其形狀。令居土驅之。其乃以繩纒。頸
006_0559_c_07L引致深叢。繫於大樹。至夜照信。及居
006_0559_c_08L士同夢。一女人掩泪。泣而前曰。弟子
006_0559_c_09L是此山神女。性樂聞法。數以穢形。干
006_0559_c_10L突法衆。今被驅繫。辭師遠去。不復聞
006_0559_c_11L誦大乘。以此爲恨。卷下第四張 照等各
006_0559_c_12L自驚覺。遽相徵問。所夢旣同。疑其致
006_0559_c_13L死。即執炬往看。果有斯事。居士呼泣
006_0559_c_14L投地。披誠懺謝。就其屍所。共爲誦經。
006_0559_c_15L又欲設千僧齋。乃於庵側。獲銀數餅。
006_0559_c_16L下山饌會。恰然周足。甞行至一村。有貧
006_0559_c_17L女劉氏。請留供養。照愍之而止。於七日
006_0559_c_18L中。罄其所有。照便欲去。信女啓6)勤 [105] 復
006_0559_c_19L留。更無資貨。遂剪頭髮。以買齋食。更經
006_0559_c_20L七日。照復欲去。貧女悲泣固留。因復停
006_0559_c_21L止。女賣髮之。直用之已盡。憂恨通7)。 [106]
006_0559_c_22L「五」下疑脫「年」{編}。「二」作「三」{甲}。「冥」
006_0559_c_23L作「具」{乙}。冠註曰往疑住{乙}。「栗」作「慄」
006_0559_c_24L{乙}。「勤」作「勸」{乙}。「」作「宵」{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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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0_a_01L별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를 만지니 머리카락이 전과 같이 길어 있었다. 놀랍고 기뻐서 즉시 그것을 잘라 팔았다.다시 이레가 지나니 또 전과 같이 자랐다. 이렇게 세 번 머리카락을 자르는 사이에 스님은 이미 오래 묵으면서 공양을 받았기 때문에 의발을 챙겨 들었다. 이제는 더 머물러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여인은 머리를 조아려 경례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낱낱이 이야기 한 다음, “스님께서 공양 드실 것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홍조 스님이 이 말을 듣고 목이 메어 말을 못하다가, “변변치 못한 이 몸이 그런 후의厚意를 받다니요.” 하고 말을 잇지 못하였다.홍조 스님은 영순永淳 연간(682~683)에 갑자기 아무 병도 없이 감천사甘泉寺에서 입적하였다. 사중이 다비를 하였는데, 오직 혀만이 타지 않고 새빨갛게 생시와 같았다.경희사慶喜寺 주지 계인戒因 등이 깊이 세속에 젖어 그럴 리가 있느냐고 하고, 절의 스님들과 세간 사람들 5백여 명과 함께 나무와 숯 여러 수레를 마련해 가지고 가서 다시 홍조 스님의 혀를 태웠다. 열 번을 태워도 모양과 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아 계인 스님 등은 모두 깊이 참회하고 그 혀를 향함에 담아 두고두고 공양하였다.『홍찬법화전』 권8제11단 「상불경품」ㆍ「여래신력품」ㆍ「촉루품」1. 무덤 옆에 지초芝草가 나다청신사 위중규韋仲珪는 임공臨邛(중국 四川省) 사람이다. 타고난 성품은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두터웠다. 당나라 무덕武德 연중(618~626)에 아버지가 병이 들자 중규는 정성껏 병구완을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내도 내버려 둔 채 시묘(廬墓) 살이를 하였다.그는 원래 불교를 착실하게 믿어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낮에는 흙을 져다가 봉분을 만들고, 밤에는 경전을 독송하여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밤이 되면 늘 맹수들이 여막 앞에 웅크리고 앉아 경 읽는 소리를 듣고 한참 동안 가지 않고 있었다. 중규가 정념正念으로 말하기를, “맹수가 가까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자, 맹수는 곧 일어나 가 버렸다. -
006_0560_a_01L莫知出處。忽以手摩頭。覺髮生如故。
006_0560_a_02L驚喜踊躍。即便更剪。復經七日。還長
006_0560_a_03L如前。凡經三剪。照以淹留1)旣 [107] 2)久。 [108] 執持
006_0560_a_04L衣鉢。決不肯住。女乃頂禮具陳云。師
006_0560_a_05L自有料。照等聞此。噎不得言。悼嘖微。 [109]
006_0560_a_06L當斯厚意。照於永淳中。忽無疾。終於
006_0560_a_07L甘泉寺。四輩聚火燒之。唯舌不然。紅
006_0560_a_08L赤如本。時慶喜寺寺主戒因等。行頗流
006_0560_a_09L3)俗。 [110] 不信有之。乃與合寺僧徒。士俗五
006_0560_a_10L百。柴炭數車。更燒十遍。形色儼然。方
006_0560_a_11L皆悔伏。其舌盛以香凾。流傳供養。出弘
006_0560_a_12L賛第八。
006_0560_a_13L
006_0560_a_14L第十一段。常不輕品。如來神力品。
006_0560_a_15L囑累品。
006_0560_a_16L芝生墓側。蓮出舌根。舍利流出於金文。光明
006_0560_a_17L照耀於寶塔。瓶水冬溫夏冷。天兵匝地盈空
006_0560_a_18L芝生墓側
006_0560_a_19L淸信士韋仲珪。臨卭人也。天性孝弟。武
006_0560_a_20L德中父遘病。仲珪勤於孝養。父之卒也。
006_0560_a_21L捨遣妻妾。廬於墓左。尤信佛敎。誦法
006_0560_a_22L華經。晝則負4)土 [111] 成墳卷下第五張 夜
006_0560_a_23L則誦經。精勤不倦。常有猛獸。夜至廬
006_0560_a_24L前。蹲踞聽經。久而不去。仲珪正念曰。
006_0560_a_25L不願猛獸之相逼也。獸即起去。明5)旦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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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0_b_01L이튿날 아침에 보니 무덤 둘레에 지초芝草12)가 73포기 피어나 있었다. 무덤 앞의 것은 차례로 줄지어 나 있어서 마치 사람이 일부러 그렇게 심어 놓은 것 같았다. 모두 줄기는 붉고 바탕은 자줏빛인데, 바탕에서는 두 줄기의 이상한 광채가 났다.이웃사람들이 알고 주와 현에 알렸다. 이때 신군창辛君昌이 자사刺史, 심유沈裕가 별가別駕로 있었는데, 두 사람은 무덤에 와 보고서 크게 감탄하였다. 지초를 뜯어 글과 함께 나라에 바치니, 나라에서는 정문㫌門13)을 세워서 표창하였다.그 뒤 중규는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홍찬법화전』 권82. 혀에서 연꽃이 피어나다지업智業 스님은 성이 양씨楊氏인데 양주楊州 장락사長樂寺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지런히 계율을 닦고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수隋나라 대업大業 말년(616)에 우문화급宇文化及14)이 양주에서 반역을 일으켜 대궐로 들어가서 양제煬帝를 죽였다. 이때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고 백성은 굶주려 한 말의 쌀값이 만 전이나 되었다.지업 스님은 이때 별원別院의 조그만 집에서 거처하며 오로지 『법화경』 독송에만 전념하다가 끝내 방안에서 굶어 죽었으나 아무도 거두어 장사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집도 퇴락하여 무너지자 스님의 시신은 그 아래 깔려 버렸다.수나라 의령義寧 초(617)에 우문화급이 토벌된 후 그 집터에서 홀연히 한 줄기 연꽃이 피어났다. 광채와 빛깔이 기이하여 스님들과 속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이때 그 절의 노스님이 문득 생각이 나서 말하였다.“이곳은 전에 한 스님이 『법화경』을 독송하던 자리입니다. 난리 통에 여기서 입적했으나 아무도 장사지내지 않았으니, 아마도 그 유골이 여기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이 연꽃은 아마도 그 스님의 영험일 것입니다.”그래서 연꽃의 뿌리를 캐 들어가니 그 푸른 연꽃은 해골 가운데 혀 밑에서 나와 있는데 혀가 조금도 상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과 같았다. 스님들이 그 혀와 꽃을 법당에 옮겨다가 모셔 놓고 종을 쳐 대중을 모아 『법화경』을 강설하였더니, 그 혀가 설법 소리를 듣자 오히려 흔들리며 움직였다. 스님과 신도들이 모두 이 소식을 듣고 보러 왔는데, 마치 담장과 같이 길게 늘어서서 다들 감탄하고 모두 수승한 마음을 일으켰다.『홍찬법화전』 권7 -
006_0560_b_01L見繞墓生芝草七十三莖。當墳前者。行
006_0560_b_02L列次第。如人種植。皆朱莖紫蓋。蓋經
006_0560_b_03L6)二光。 [113] 光色異常。隣里以告州縣。時
006_0560_b_04L7)辛 [114] 君昌爲刺史。8)沈 [115] 裕爲別駕。共至
006_0560_b_05L墓所嗟歎。採芝草9)封 [116] 奏。詔10)旌 [117] 門閭。
006_0560_b_06L後不知所終。出弘賛第八。
006_0560_b_07L蓮出舌根
006_0560_b_08L釋智業。俗姓楊氏。住楊州長樂寺。精
006_0560_b_09L勤戒業。誦法華經。隋大業末年。宇文
006_0560_b_10L化及在楊州。作逆殺煬帝於宮闈。于時
006_0560_b_11L天下崩離。百姓飢饉。斗米萬錢。智業時
006_0560_b_12L在別院。居一小屋。專誦不輟。遂餓死
006_0560_b_13L房中。無人收葬。此屋因復傾倒。業屍
006_0560_b_14L骸。竟在其下。及義寧初平定之後。其
006_0560_b_15L處忽生一莖蓮花。光色異常。道俗驚嗟。
006_0560_b_16L莫知其故。時寺僧有耆舊者。乃11)悟 [118] 曰。
006_0560_b_17L此地曾有一僧。專誦法華。于時旣屬喪
006_0560_b_18L亂。於玆捨命。無人12)理 [119] 殯。骸骨在此。
006_0560_b_19L必是僧之靈也。乃尋掘花根。其靑蓮花。
006_0560_b_20L乃從髑髏中舌根下生。舌如生存。都不
006_0560_b_21L爛壞。寺衆乃將舌及花上堂。鳴鐘集衆。
006_0560_b_22L爲轉法華。其舌聞經。猶能振動。道俗
006_0560_b_23L聞之。觀者如堵。莫不嗟歎。咸發勝心。
006_0560_b_24L出弘賛第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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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0_c_01L3. 경전에서 사리가 나오다지엄智儼15) 스님은 동주同州(중국 섬서성) 사람이다. 나이 열세 살 때 인도의 스님(梵僧)을 만나서 출가하여 계업사戒業寺에 머물렀다. 『법화경』ㆍ『유마경』ㆍ『반야경』 등을 두루 배워서 그 깊은 뜻을 구명하여 마침내 통달하고, 말과 행동이 모두 뛰어난 이른바 ‘고결한 법사’가 되었다.현경顯慶 3년(658) 태주太州 선장현仙掌縣의 여러 신도 대중들이 지엄 스님을 영선사靈仙寺로 청하여 『법화경』을 강설해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이 절의 환향還香 스님16)의 방에 거처하게 되어, 첫날 밤에 『법화경』을 꺼내 책상 위에 펴놓고 한 대문을 찾아서 독송하였다. 그때 환향 스님과 시자 세 사람이 함께 거기에 있었는데 지엄 스님이 향을 피우자마자 갑자기 『법화경』의 불佛 자에서 세 과의 사리가 나왔다.오색 광명이 경 위에 찬란히 퍼지고 사리는 이리저리 흘러 다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환향 스님이 곧 절의 다른 스님들에게 알려 모두 와서 예배하고 함께 사리를 거두어 모시려고 하니까 사리는 모두 불佛 자로 흘러 들어갔다.스님들이 슬피 울며 예배한 다음 향을 피우고 다시 진용을 뵙기를 발원하니, 사리가 다시 불佛 자에서 나와 흘러 다니며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에 다른 불佛 자로 들어가 차례대로 없어졌다. 지엄 스님은 『법화경』을 수십 번 강설하여 영험과 상서로움을 얻은 일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았다.스님은 입적하기 며칠 전부터 여러 곳을 다니면서 여러 스님과 아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보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갑자기 어느 날 아침에 마당을 깨끗이 소제한 다음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들어 그대로 입적하였다. -
006_0560_c_01L舍利流出於金文
006_0560_c_02L釋智儼。同州人也。年至十三。忽遇梵
006_0560_c_03L僧出家。住戒業寺。徧學法華維摩般若
006_0560_c_04L等。並窮其了義。遂當法匠。實所謂高
006_0560_c_05L潔法師。卷下第六張 言行兼至者也。顯
006_0560_c_06L慶三年。太州仙掌縣道俗。請儼於靈仙
006_0560_c_07L寺。講法華經。儼於寺僧還香房13)內。 [120] 居
006_0560_c_08L止閤舍。初夜取法華經。舒披案上。方欲
006_0560_c_09L尋讀。于時還香幷侍者三人。並在其處。
006_0560_c_10L儼焚香未訖。忽見經上佛字中。出三舍
006_0560_c_11L利。五色光明。散滿經上。流行不住。還
006_0560_c_12L香等徧告寺僧。俱來禮拜。欲共收取舍
006_0560_c_13L利。舍利還流入於佛字。僧等禮拜悲泣。
006_0560_c_14L然香發願。更覩眞容。舍利還從佛字中
006_0560_c_15L出。流行不住。少選之間。別於他佛字中。
006_0560_c_16L相從隱沒。儼講法華。凡數十餘徧。感
006_0560_c_17L靈獲瑞。難以具言。將終數日。處處巡
006_0560_c_18L行。法朋舊識。人人共別。忽一14)旦 [121] 灑掃
006_0560_c_19L庭院。端坐入定。於是而終。忽有異香。
006_0560_c_20L「旣」作「留」{乙}。「久」作「夕」{甲}。「俗」下
006_0560_c_21L有「類」{乙}。「土」作「上」{甲}。「旦」作「且」{甲}。
006_0560_c_22L「二光」作「五寸」{乙}。「辛」作「爭」{乙}。「沈」
006_0560_c_23L作「說」{乙}。「封」作「對」{乙}。「旌」作「表」{乙}。
006_0560_c_24L「悟」作「語」{乙}。「理」作「埋」{乙}。「內」無有
006_0560_c_25L{乙}。「旦」作「且」{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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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1_a_01L기이한 향기와 기운이 온 절 안에 가득하여 이레가 되도록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혀는 입적하고 몇 해가 지나도 썩지 않았고, 머리털이 두 마디나 더 자랐으며, 얼굴빛이 생전과 같아 지혜 있는 사람들은 다들 그가 득도했다고 하였다.『홍찬법화전』 권34. 광명이 보탑을 비추다좌복야左僕射(천자를 보좌하는 벼슬) 송국공宋國公 소우簫瑀는 자字가 시문時文17)인데, 고조부는 양나라 무제이고, 아버지는 명제18)이다.그는 불교를 깊이 믿어 때때로 어떤 모임이 있으면 언제나 별도로 채식을 주도록 하였다. 비록 국무에 참여할 때라도 『법화경』을 염송하여 조금도 빠진 적이 없었으며, 『법화의기法華義記』 10권19)을 직접 저술하여 때때로 집안의 아이들과 조카들에게 그것을 강설하였다.『의기』가 완성된 날 밤, 꿈에 다보불탑多寶佛塔이 허공중에 떠 있어 찬란하게 빛났으므로 이름난 공장工匠을 불러다가 그 묘탑을 조성하였다.『홍찬법화전』 권35. 병의 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지다장간사長干寺의 동쪽에 아사리(闍梨20))가 살았는데,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며 절조 있는 수행이 매우 높았다. 독송할 때면 항상 병의 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져서 언제나 보호가 되었다.『홍찬법화전』 권76. 천병天兵이 하늘에 가득하다현수玄秀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황주黃州(중국 호북성) 수화사隨化寺에서 늘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자주 기이한 경험을 하였다.더운 한 여름철에 스님의 친구들이 시원한 바람이나 쐬며 이야기나 나누자고 사람을 보내 현수 스님을 청하였다. 심부름 간 사람이 스님의 방 앞에 이르러 보니, 호위가 엄숙하고 사람과 말들이 수없이 들끓고 있기에 겁이 나서 그대로 돌아와 고하였다. 이에 함께 가서 보니 처음과 다름없었다.뒷문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그곳에도 그 무리가 대단하였고, 하늘을 쳐다보니 군사가 공중에 가득 차 끝이 없고 코끼리와 말을 탄 귀신들도 수없이 북적대고 있었다. 친구들은 현수 스님에게 감응하는 바 있음을 알고 물러나 돌아왔다.이튿날 아침에 친구들이 찾아와 사죄하고, 다시 찾지 않았다. 스님은 『법화경』 독송에 전념하다가 -
006_0561_a_01L氛氳滿院。經餘七日。亡後數年。其舌
006_0561_a_02L不壞。鬢髮加長二寸。顏色如舊。識者。
006_0561_a_03L以爲得道之流也。出弘賛第三。
006_0561_a_04L光明照耀於寶塔
006_0561_a_05L左僕射宋國公蕭瑀。字時文。高祖梁武
006_0561_a_06L帝。父明帝。公深信釋典。時處會讌。每
006_0561_a_07L勑別賜素食。公雖叅國務。而誦念無虧。
006_0561_a_08L手著法華義記凡十卷。時於第1)內。 [122] 爲
006_0561_a_09L子姪講之。䟽成之日。夢多寶佛塔。炳
006_0561_a_10L耀空中。因召名工。造玆妙塔。出弘賛第
006_0561_a_11L三。
006_0561_a_12L瓶水冬溫夏冷
006_0561_a_13L長干寺東闍梨。誦法華經。甚有節行。
006_0561_a_14L每有所誦。瓶水冬溫夏冷。略爲常候。
006_0561_a_15L出弘賛第七。
006_0561_a_16L天兵匝地盈空
006_0561_a_17L釋玄秀。少出家。住黃州隨化寺。常誦
006_0561_a_18L法華。每感徵異。時屬炎暑。同友逐凉。
006_0561_a_19L遣召秀來。卷下第七張 欲有談笑。旣至
006_0561_a_20L房前。但見羽衛嚴肅人馬偉2)太。 [123] 怖而
006_0561_a_21L返告。同往共觀。如初不異。轉至後門。
006_0561_a_22L其徒彌盛。上望空中。塡塞無際。多乘象
006_0561_a_23L馬。類雜鬼神。乃知其感通也。置而遂
006_0561_a_24L却。明晨慚謝。朋徒遂絶。秀專斯業。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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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1_b_01L수나라 말엽에 수화사에서 입적하였다.『홍찬법화전』 권7제12단 「약왕보살본사품」1. 스스로 자기 전생을 알다수나라 개황 연중(581~600)에 위주 자사魏州刺史 최언무崔彦武가 부임하여 관내를 순시하는데, 한 고을에 이르자 갑자기 따르는 이를 돌아보고 말하였다.“내가 옛날 이 고을에서 어떤 사람의 부인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때 살던 집을 알고 있다.”말을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돌아서 한 집에 이르자, 문을 두드리도록 명하였다.주인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와서 맞아들이니, 최언무는 마루에 올라가 앉았다. 노인이 말하였다.“관가 사람께서 무슨 볼일로 저희 집에 오셨습니까?”그러자 최언무가 “나의 전생은 노인장의 아내였습니다.”라고 답하자, 노인은 뜻밖의 말에 놀라 다시 물었다.“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내가 전에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그 경전과 금비녀 다섯 개를 동쪽 벽의 땅에서 6~7자쯤 되는 곳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벽의 불룩하게 솟아 나온 곳이 그곳입니다. 그리고 그 『법화경』 제7권 뒤의 한 장이 불에 타 글자가 없어져서 내가 지금도 『법화경』을 독송할 때면 늘 그 부분을 잊어버립니다.”주인이 사람을 시켜 벽 위의 불룩한 곳을 파 보니 과연 뒷장이 탄 『법화경』과 금비녀가 나와 언무의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주인은 흐느껴 울며, “죽은 아내는 항상 이 『법화경』을 읽었고, 이 금비녀도 그때 아내가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언무가 다시 말하였다.“마당에 괴목槐木이 있는데, 내가 옛날 해산할 때 머리카락을 잘라서 나무의 빈틈에 넣어 두었습니다.”또 사람을 시켜 찾아보니 과연 그 머리 타래가 있었다. 주인은 이것을 보고 더욱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였다. 언무는 머물러 옷가지와 재물을 주고는 임지로 떠났다.21)『영서집』, 『홍찬법화전』 제9권, 『현응록』2. 두 글자를 기억하지 못하다 -
006_0561_b_01L末終寺。出弘賛第七。
006_0561_b_02L
006_0561_b_03L第十二段。藥王菩薩本事品。
006_0561_b_04L自識前身。難通二字。檀香遠達。佛手親摩
006_0561_b_05L藥精入懷。池水療病。癩瘡即愈。氣力鬱增
006_0561_b_06L3)大風亦利。急疾乃瘳
006_0561_b_07L自識前身
006_0561_b_08L隋開皇中。魏州刺史崔彥武。受職行
006_0561_b_09L4)部 [124] 至一邑。忽謂從者曰。吾昔在此邑
006_0561_b_10L中。爲人婦。今知舊住處。因乘馬循港
006_0561_b_11L屈曲。至一家命扣門。主人老翁。開門
006_0561_b_12L請入。武升堂而坐。老翁曰。官人何事
006_0561_b_13L至此。武即言。吾前身。是汝之妻。老翁
006_0561_b_14L曰。憑何爲驗。武曰吾昔誦法華經。幷
006_0561_b_15L金釵五隻。藏東壁5)上。 [125] 去地六七尺。其
006_0561_b_16L隆高處是也。其經第七卷。後一紙火燒。
006_0561_b_17L失去文字。吾6)令 [126] 誦此經。其後恒忘失
006_0561_b_18L也。令人穿壁高處。果然得經。火損後
006_0561_b_19L紙。并獲金釵。一如其言。主人泣曰。亡
006_0561_b_20L妻在日常誦此經。金釵亦其所有。彥
006_0561_b_21L武又曰。庭前槐樹。吾昔産時。解頭髮
006_0561_b_22L置樹空中。令人探之。果得其髮。主人
006_0561_b_23L見已。悲喜交集。武即留衣物。賜之而
006_0561_b_24L去。出靈瑞集弘賛傳現應錄。卷下第八張
006_0561_b_25L難通二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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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1_c_01L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스님이 진군秦郡 동사東寺에 있었다. 한 사미에게 『법화경』을 독송시켜 매우 깊이 통달하였는데, 다만 「약초유품」의 ‘애체靉靆’22) 두 글자만은 가르쳐 주면 잊어버리고 가르쳐 주면 잊어버리기를 천 번에 이르렀다. 스승이 꾸짖으며 말하였다.“너는 『법화경』을 거의 통달하였는데 어찌하여 이 두 글자는 그렇게도 기억하지 못하는가?”그날 밤 스님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였다.“그대는 사미를 너무 꾸짖지 마시오. 그 사미는 전생에 절 동쪽 마을에서 우바이優婆夷 몸으로 태어나 본래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그 집의 『법화경』 「약초유품」 중 ‘애체’ 두 글자를 좀이 쏠아서 그때부터 이 두 글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태어나 새로 배워도 얼른 깨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아무개이며, 그때의 경전이 지금도 있으니, 믿지 못하겠으면 가서 알아보시오.”이튿날 아침 스님이 그 마을에 가서 그 집을 찾아가 모두 이야기한 후에 주인에게 물었다.“댁에 무슨 경전이 있습니까?”주인은, “예, 『법화경』 한 부가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책을 내어다 보니, 과연 「약초유품」의 두 글자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주인이 다시 말하였다.“이 경전은 죽은 며느리가 살아 있을 때 늘 독송하던 것인데 죽은 지 17년이 되었습니다.”며느리의 죽은 달과 사미의 잉태한 달을 맞추어 보니 틀림이 없었다. 그 뒤 사미가 어디서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를 아는 이가 없었다.『홍찬법화전』 권63. 전단향의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다장안 대사章安大師는 이름이 관정灌頂23)인데, 오월왕吳越王이 총지摠持라는 시호를 내렸다. 장안章安의 오씨吳氏 집안에 태어나 3세에 문득 어머니를 따라 불ㆍ법ㆍ승 삼보의 명호를 불렀다. 처음에는 천태 지관(定慧24))의 법을 이어받았는데, 만년에 칭심정사稱心精舍에서 오랫동안 『법화경』을 강설하여 세속 사람들을 많이 교화시켰다. -
006_0561_c_01L釋某。失其名。住秦郡東寺。有沙彌。誦
006_0561_c_02L法華經。甚通利。唯到藥草喩品靉靆二
006_0561_c_03L字。隨敎隨忘。如是至千。師苦嘖之曰。
006_0561_c_04L汝法華一部熟利如此。豈不能作意。憶
006_0561_c_05L此二字耶。師夜夢。見一僧謂之曰。汝
006_0561_c_06L不應嘖。此沙彌前生。在寺側東村。受優
006_0561_c_07L婆夷身。本誦法華一部。但其家法華。
006_0561_c_08L當時藥草喩品。白魚食去靉靆二字。于
006_0561_c_09L時經本。無此二字。爲其今生新受習未
006_0561_c_10L成耳。其7)性 [127] 名某。經亦現在。脫不信者。
006_0561_c_11L可往驗之。師明8)旦 [128] 就彼村。訪問此家
006_0561_c_12L言畢。問主人云。有何經書。答云有
006_0561_c_13L法華經一部。索取看藥草喩品。果缺二
006_0561_c_14L字。訪 [17] 云是太兒亡婦生存。受持之計。亡
006_0561_c_15L已得一十七年。果與此沙彌。年時胎月
006_0561_c_16L相應也。沙彌後不知所終。出弘賛第六。
006_0561_c_17L檀香遠達
006_0561_c_18L師諱灌頂。吳越王謚號摠持。生於章安
006_0561_c_19L吳氏。三歲時。便能隨母。稱三寶名。禀
006_0561_c_20L承天台定慧之法。晩至稱心精舍。長講
006_0561_c_21L法華。化流囂俗。時有法龍村人。去山
006_0561_c_22L「內」作「四」{乙}。「太」作「大」{乙}。「大風亦
006_0561_c_23L利急疾乃瘳」作「急疾乃瘳大風亦利」{乙}。「部」
006_0561_c_24L作「郡」{乙}。「上」作「中」{乙}。「令」作「今」{乙}。
006_0561_c_25L「性」作「姓」{乙}。「旦」作「且」{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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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2_a_01L이때 산에서 30리쯤 떨어진 법룡촌法龍村 사람이 병이 들어 거의 목숨이 끊어지게 되었는데, 그의 아들이 대사에게 달려와 구원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대사가 그를 위해 전단향을 피우고 『법화경』을 독송하니, 병자가 멀리서 그 전단향 냄새를 맡고 즉시 병이 나았다.『홍찬법화전』 권3, 『현응록』4. 부처님께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다송宋나라 나여羅璵의 아내 비씨費氏는 영주寧州 사람이다. 그녀는 삼보를 열심히 믿고 공경하였으며, 여러 해 동안 『법화경』 독송을 부지런히 힘써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병에 걸려 가슴이 몹시 아팠다. 점점 더 심해져서 고통이 극한에 이르자 온 집안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고 근심하였다.비씨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법화경』을 부지런히 독송했으므로 반드시 좋은 도움이 있으리라. 끝내 이로 인해 죽을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는 이내 잠이 들었다.곧 꿈을 꾸었는데 부처님이 나타나 창밖에서 손을 뻗어서 그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셨다. 이때 집 안팎의 사람들이 온통 금빛으로 찬 것을 보았고, 또 방안에는 기이한 향내가 가득하였다. 이로부터 병이 나아서 완쾌되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로서 신심을 일으키지 않는 이가 없었다.『홍찬법화전』 권6, 『현응록』5. 약의 정기精氣가 품에 들어가다정견淨見 스님은 어디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다. 어릴 때 출가하여 숭고산崇高山과 용문산龍門山에 주로 살면서 『법화경』을 1만 3천 번이나 독송하니, 너무 오랫동안 독송을 지속하여 몸이 몹시 쇠약해졌다. 이렇게 20여 년을 지나 어느 날 갑자기 스님이 살고 있는 북쪽에서 어린아이들이 요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나서 더욱 괴로웠는데, 그 아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그러자 머리가 하얗게 센 한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와서 말하였다.“선사께서는 사대四大가 편안하십니까?”이와 같이 문안을 하므로 스님이 대답하였다.“차차 몸이 수척해집니다. 게다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많은 아이들이 날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니 더욱 견디기가 어렵습니다.”노인이 말했다.“스님께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가셔서 그 애들이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목욕하기를 기다렸다가 한 아이의 옷을 가지고 돌아오십시오. 뒤따라와서 달라고 하거든 절대로 주지 마십시오. -
006_0562_a_01L三十里。染患將絶。其子奔來求救師。
006_0562_a_02L爲轉法華經。焚栴檀香。病者遙聞。香氣
006_0562_a_03L即愈。出弘賛第三及現應錄。
006_0562_a_04L佛手親摩
006_0562_a_05L宋朝羅璵妻費氏。寧州人也。費信敬三
006_0562_a_06L寶。誦法華經。數年之間。勤苦不懈。俄
006_0562_a_07L而染患心痛。浸成極1)勢。 [129] 闔門惶懼。費
006_0562_a_08L作念言。我誦經勤苦。必有善祐。終不
006_0562_a_09L因此至死地也。旣而睡臥。即2)夢 [130] 佛身。
006_0562_a_10L舒手過窓。以摩其心。內外皆3)都 [131] 金光
006_0562_a_11L滿室。又聞異香襲4)人。 [132] 自此病愈。見者
006_0562_a_12L莫不生信。出弘賛第六及現應錄。
006_0562_a_13L藥精入懷卷下第九張
006_0562_a_14L釋淨見。不知何許人也。童稚出家。多
006_0562_a_15L住崇高及龍門山。誦法華經。一萬三千
006_0562_a_16L部。旣誦持積久。身力疲困。過二十餘
006_0562_a_17L年後。忽聞住處北邊。有諸小兒。言語
006_0562_a_18L閙亂。轉覺煩悶。亦不測小兒。從何所
006_0562_a_19L來。有一白頭老翁。著白練裙襦。每叅
006_0562_a_20L問云。禪師四大何如。師答漸覺羸頓。
006_0562_a_21L又不知何處。得多許小兒。日相煩亂。
006_0562_a_22L不復可忍。老公云。師往其戱處。坐待
006_0562_a_23L彼脫衣。入水洗浴。師隨抱一小兒衣。
006_0562_a_24L還若來取者。愼勿與之。其若罵師。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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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2_b_01L설사 스님을 욕하고 꾸짖더라도 절대로 대꾸하지도 마십시오. 그러면 제가 와서 말하겠습니다.”정견 스님이 노인의 말대로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가서 기다리니, 과연 여러 아이들이 와서 옷을 벗고 못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스님은 한 아이의 옷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한 아이가 뒤따라와서 옷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스님이, 노인이 하던 말이 생각나서 끝내 옷을 돌려주지 않으니까, 아이는 마구 욕설을 퍼붓고 스님과 조사를 비방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역시 대꾸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노인이 와서 아이들에게 말하였다.“네가 스님의 품속으로 들어가거라.”처음에는 노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다가 노인이 몇 번을 독촉하니, 스님의 품으로 들어와 다시 뱃속으로 들어가 없어졌다. 노인이 스님에게 물었다.“몸이 어떠하십니까?”스님이 “예전보다는 기분이 좋고 기운이 좀 납니다.”라고 대답하자, 노인은 곧 가 버렸다. 이때부터 스님은 차차 건강이 회복되어 『법화경』 독송을 몇 갑절 더하였다.지혜 있는 사람들은 그 노인이 보현보살인데 산신을 시켜 약의 정기를 어린아이로 변하게 하여 스님에게 먹여서 병이 나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정견 스님은 그 뒤 어디에서 입적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홍찬법화전』 권66. 못의 물로 병을 고치다승명僧明 스님은 호주濠州 석문산石門山에 머물러 있었다. 스님은 산꼭대기 바위 위에 벽돌을 쌓아 미륵천궁을 만들고, 미륵상을 조성하여 모셔 놓고 늘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그때마다 공중에서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와 “좋도다(善哉)!”라고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천감天監 연중(502~519)에 양나라 무제에게 글을 올려 몸을 태워 공양하겠다고 하였다. 두번 세번 거듭 청하여 드디어 허락이 내렸다. 스님은 미륵천궁 앞 네모난 바위 위에서 분신하여 뜻대로 몸이 다 재가 되어 버리고 오직 해골만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네모난 바위 가운데가 사방 4~5척쯤 움푹 함몰하여 못이 되었다.밤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에 보니 연못에 연꽃이 피었는데 세상에 다시없이 아름다웠고, 이 못의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 병이 씻은 듯이 깨끗이 나았다. 뒷사람이 조그만 상을 만들고, 다시 그 해골을 태워서 재를 상에 발랐는데, 누가 그 상에 흠을 내거나 더럽히면 곧 상이 옮겨 앉고, 그 옮겨 앉는 곳에는 -
006_0562_b_01L愼勿應答。弟子自來語之。見隨老公語。
006_0562_b_02L往俟之。諸小兒果脫衣。入池洗浴。乃
006_0562_b_03L抱小兒衣。還房小兒。尋後索衣。見憶
006_0562_b_04L老公言囑。永不還之。小兒即惡口。毁
006_0562_b_05L謗禪師及宗祖。師亦不應。白頭老公尋
006_0562_b_06L至。語小兒云。汝入師懷裏。小兒初不
006_0562_b_07L肯。從老公駈逼數迴。始入見懷。沒在
006_0562_b_08L腹內。老公問師。四大何如。見云氣力
006_0562_b_09L勝於從來。老公尋去。自爾已後氣力
006_0562_b_10L休。强誦數倍。識者云此當是普賢菩薩。
006_0562_b_11L令山神駈諸藥之精。變爲小兒。使其服
006_0562_b_12L之。除疾病耳。見後不知所終。出弘賛第
006_0562_b_13L六。
006_0562_b_14L池水療病
006_0562_b_15L釋僧明。住濠州石門山。於山頂石5)上 [133]
006_0562_b_16L累甎。造彌勒天宮一所。幷彌勒像。常誦
006_0562_b_17L法華經。每聞空中彈指。及稱善哉聲。至
006_0562_b_18L天監年中。奏啓梁武。請欲焚身。頻煩再
006_0562_b_19L三。方蒙6)聞 [134] 許。乃於彌勒宮前方石上。
006_0562_b_20L遂其先志。身並灰燼。唯餘一甲。燒訖
006_0562_b_21L其7)石。 [135] 方四五尺。忽陷成池。信宿花生。
006_0562_b_22L卷下第一○張 鮮榮絕代。諸飮池者。疾
006_0562_b_23L病皆愈。後人造一小像。重燒此甲。以
006_0562_b_24L灰塗之。人或8)玷 [136] 汙。像即移去。其行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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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2_c_01L모두 꽃이 피었다. 크기가 배꽃이나 대추만 한 것이 수백 수천이나 되었다. 지금도 이를 표시하는 탑이 있어 그 사실을 갖추어 기리고 있다.『홍찬법화전』 권57. 나병이 낫다당나라 강주絳州 고산孤山의 함천사陷泉寺 법철 선사法轍禪師라는 분이 있었다. 하루는 산행을 하는데, 한 나병 환자가 토굴 속에 있다가 스님을 보자 먹을 것을 빌었다. 스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절로 데리고 와서 토굴을 파서 거처하게 하고, 옷과 음식을 주면서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다. 그 사람은 원래 글을 모르는 데다가 아둔하고 어리석어서 가르치기가 몹시 힘들었지만, 스님은 한 구절 한 구절 싫증내지 않고 꾸준히 가르쳐 주었다.절반쯤 독송하게 되었을 때 갑자기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그를 깨우쳐 준 후부터는 차차 총명해져 깨우침이 빨라졌다. 이리하여 제5권~제6권에 이르자 몸의 상처가 아물고, 『법화경』 한 부를 전부 통달하자 몸이 완전히 건강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병에 대해 좋은 약’25)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그 말씀의 뚜렷한 징험이었다.『영서집』, 『홍찬법화전』 권8, 『현응록』8. 기력이 왕성해지다승환僧歡 스님은 금릉金陵 치성사治城寺에 있었는데 본래 병이 있어서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 스님은 절에 있는 탑 앞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간절히 기원한 다음 『법화경』 독송을 결심하여 잠시도 쉬지 아니하였다. 그랬더니 갑자기 기력이 왕성해졌다.탑 앞에 두 개의 돌사자가 있는데 매우 크고 무거웠다. 스님은 두 팔로 돌사자를 하나씩 들어 올려 옆구리에 끼고 10여 리를 달렸으나 전혀 피곤한 줄 몰랐다.『홍찬법화전』 권69. 급성 질병이 낫다 -
006_0562_c_01L之處。皆悉生花。大如梨9)。 [137] 數過千百。
006_0562_c_02L現有表塔。具旌其事。出弘賛第五。
006_0562_c_03L癩瘡即愈
006_0562_c_04L唐絳州孤山陷泉寺。有法轍禪師。山行
006_0562_c_05L見一癩人。在土穴中。從師乞食。師憫
006_0562_c_06L之。引歸寺中。仍 [18] 土穴安之。授與衣食。
006_0562_c_07L敎誦法華經。其人素不識字。加又凡鄙。
006_0562_c_08L師句句授之。終不辭倦。誦之將半。忽
006_0562_c_09L夢一僧指敎。自後漸覺聰慧。及五六卷。
006_0562_c_10L身瘡漸安。一部通利。四大專蘇。佛言
006_0562_c_11L病之良藥。斯言驗矣。出靈瑞集 弘賛第八
006_0562_c_12L及現應錄。
006_0562_c_13L氣力鬱增
006_0562_c_14L釋僧歡。出家住金陵10)治 [138] 城寺。本羸病
006_0562_c_15L乏氣力。乃志心於寺塔下懺悔。祈請懇
006_0562_c_16L到。誦法華經。不輟於小時11)間。 [139] 鬱然旋
006_0562_c_17L力。寺塔前有兩石獅子。形甚重大。歡
006_0562_c_18L忽以兩臂。各貫獅子。腹下擎之。而走
006_0562_c_19L行十許里。都不覺倦。出弘賛第六。
006_0562_c_20L急疾乃瘳
006_0562_c_21L「勢」作「熟」{乙}。「夢」作「夜」{乙}。冠註曰
006_0562_c_22L都疑覩{乙}。「人」作「入」{乙}。「上」作「山」
006_0562_c_23L{乙}。冠註曰聞疑開{乙}。「石」作「氏」{乙}。
006_0562_c_24L冠註曰玷疑沾{乙}。「」作「棗」{乙}。冠註曰
006_0562_c_25L治疑治{乙}。「間」作「聞」{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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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3_a_01L조간趙仠은 타고난 성품이 곧고 성실하였다. 불행하게도 갑자기 발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서 치료해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드디어 뜻을 내어 『법화경』을 독송하자 그 병이 단박에 나았다. 조간은 이때부터 늘 『법화경』을 독송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음양승陰陽僧26)인 일자日資ㆍ연원演源과 승속(緇素27)) 몇몇이 함께 법화도法華徒를 결성하여 같이 불혜佛慧를 닦았다.10. 나병(大風28))에도 도움이 되다스님은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는데 불행히 흑라黑癩(피부가 검어지는 나병)에 걸렸다. 별의별 처방을 다 써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법화경』은 염부제閻浮提29) 사람의 병에 양약”이라는 말을 듣고, 『법화경』을 독송할 뜻을 세우고 한 질을 전부 독송하니, 병이 말끔히 나았다.또 남대南臺의 녹사錄事30) 유씨劉氏도 그 병에 걸려 여러 가지로 치료해 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유씨가 길에서 이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나도 전에 그 병에 걸렸었는데 『법화경』을 독송한 덕으로 완전히 나았습니다.”라고 일러 주었다.이에 유씨는 확고한 신심이 생겨서 곧 『법화경』을 구해서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부지런히 독송하였다. 한 질을 다 독송하니, 꿈에 한 신이한 스님이 나타나서 손으로 유씨의 몸을 어루만지고 몸에 쑥뜸을 해주었다. 유씨가 놀라서 잠을 깨 보니, 땀이 흥건하여 물 흐르듯 하는데 몸과 마음이 상쾌하였다. 그리고 구름과 안개가 걷히듯 병이 깨끗이 나아 전과 같이 회복되었다.제13단 「묘음보살품」1. 죽은 어머니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다장안 통궤방通軌坊 유공신劉公信의 아내 진씨陳氏의 어머니가 병으로 먼저 죽고, 뒤에는 진씨도 갑자기 죽었다. 어떤 사람이 진씨를 인도하여 지옥으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죄로 고통 받는 모습을 모두 구경시켜 주었다. 나중에 한 지옥의 옥문이 갑자기 열리는데, 그의 어머니가 그 안에서 -
006_0563_a_01L趙仠受性貞固。不幸1)遘 [140] 急發之疾。雖
006_0563_a_02L種種治。無一驗効。遂秉志誦蓮經。厥
006_0563_a_03L疾頓愈。仠自是常誦不怠。乃與陰陽僧。
006_0563_a_04L日資演源。并緇素若干人。結法華徒。
006_0563_a_05L同修佛慧。
006_0563_a_06L大風亦利
006_0563_a_07L釋2)王 [141] [19] 名。不知何許人也。不幸*遘黑癩。
006_0563_a_08L萬方無効。忽聞法華是閻浮提人病之
006_0563_a_09L良藥。誓志3)全誦。厥疾乃瘳。卷下第一一
006_0563_a_10L張 又有南臺錄事劉氏。亦感此疾。雖
006_0563_a_11L種種治無驗。一日亡名路逢劉氏。曰
006_0563_a_12L我亦曾得此病。賴誦蓮經。即得除愈。劉
006_0563_a_13L氏於是。生決定信。即覔蓮經。手不釋卷。
006_0563_a_14L一部乃畢。忽夢有異僧。以手摩挲身已。
006_0563_a_15L即以艾炷。渾身炙之。驚駭即覺。白汗
006_0563_a_16L如流。身心豁然。如雲霧4)捲。 [142] 平復如舊。
006_0563_a_17L
006_0563_a_18L第十三段。妙音菩薩品。
006_0563_a_19L亡母脫苦。神人住空。水不能漂。屍不生臭
006_0563_a_20L虎吼退賊。字化爲金
006_0563_a_21L亡母脫苦
006_0563_a_22L長安通5)軌 [143] 坊。劉公信妻。陳氏之母。因
006_0563_a_23L病先卒。後陳氏暴亡。見一人引入地獄。
006_0563_a_24L俻覩諸罪相。後見一獄。石門忽開。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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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3_b_01L심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딸을 보자 말하였다.“너는 나를 위해 『법화경』 한 질을 베껴 써서 내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다오.”말이 끝나자마자 옥문이 도로 닫혔다. 진씨가 다시 소생하여 그 이야기를 하니, 남편 공신이 매부 조사자趙師子를 불러다가 『법화경』을 베껴 쓰게 하였다. 이때 어떤 경전 쓰는 사람이 새로 쓴 『법화경』 한 질을 가지고 와서 팔려고 했다. 조사자가 말하였다.“다행히 이 경이 있으니 이것을 사시지요. 새로 쓸 필요는 없겠습니다.”유공신이 그의 말을 따라 그 『법화경』을 사서 진씨에게 주었다. 진씨가 하루는 음식을 차려 어머니를 제사 지냈더니,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내가 먼젓번에 너에게 『법화경』 한 질을 써 달라고 했는데 왜 써 주지 않느냐?” 하고 나무라는 것이었다. “벌써 한 질을 사 놓았어요.” 하고 딸이 대답하니, 어머니가 하는 말이, “나는 그 경 때문에 더 무거운 죄를 받았으니, 옥졸이 내 등을 때려 터트렸다. 그 범가范家의 경을 취하여 내 몫으로 했기 때문이다.” 하였다.딸은 꿈에서 깨어나 급히 사람을 시켜 새로이 『법화경』을 베껴 쓰게 하였다. 경이 완성되자 어머니가 또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새로 쓴 경의 힘으로 나는 이미 지옥에서 벗어나 좋은 곳에 가 몸이 편안해졌기에 와서 네게 알려 주는 것이다. 너는 깊이 믿어 세상을 잘 살아가도록 하여라.”전에 산 경을 가져다가 조사해 보니 과연 범씨가 베껴 쓴 것이었다. 당 용삭龍朔(661~663) 때의 일이다.『법원주림전法苑珠林傳』.31) 도세道世 스님이 엮은 것으로 그 1백 권이 장경에 들어 있다.2. 신인이 와 허공에 머물러 경을 듣다현진玄眞 스님은 수춘壽春 사람이다. 영복사永福寺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잠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어느 해 가을, 달이 밝은 밤에 스님이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제7권의 절반쯤 이르렀을 때 옆방에 있는 한 사문이 갑자기 일어나서 변소에 가려고 방에서 나왔다.뜰에 내려서 보니 밝은 달빛에 엄청나게 큰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마당에 비치고 있었다. 무슨 그림자인가 하고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공중에 한 신인神人이 의연히 머물고 있는 것이었다. 스님은 발끝을 세우고서 우러러보면서 오랫동안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현진 스님의 『법화경』 독송이 끝나자 신인도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그 스님은 이때부터 『법화경』을 배워 독송하고 지니기를 종신토록 게을리 하지 않았다.『홍찬법화전』 권8 -
006_0563_b_01L在其中。受極重苦。母見女曰。汝可爲
006_0563_b_02L吾。寫法華經一部。使吾脫免。言已門
006_0563_b_03L閉。陳氏再蘇。說之公信。即憑妹婿趙
006_0563_b_04L師子。寫是經。忽有經生。持新寫蓮經
006_0563_b_05L一部。來貿錢。趙言幸有此經。可贖之。
006_0563_b_06L不必寫也。劉從之。授與陳氏。陳氏一
006_0563_b_07L日。設母食。乃夢母曰。吾先令汝寫經一
006_0563_b_08L部。何不爲之。女曰已爲贖一部訖。母
006_0563_b_09L曰吾爲此經。增受重罪。獄卒打吾脊。
006_0563_b_10L破以不合。取范家經。爲己有故。女夢
006_0563_b_11L覺。急請人書之。經成又夢。母報曰。吾
006_0563_b_12L承經力。已脫冥司。好處安身。今來報
006_0563_b_13L汝。汝當信心。好住世間。及詢前經。果
006_0563_b_14L是姓范人寫。唐龍朔中也。出法苑珠林傳
006_0563_b_15L釋道世撰也。有一百卷入藏本。
006_0563_b_16L神人住空卷下第一二張
006_0563_b_17L釋玄眞。壽春人也。居永福寺。誦法華
006_0563_b_18L經。無時懈息。時於秋天月夜。持誦此
006_0563_b_19L經。至第七卷方半。比房有一沙門。忽
006_0563_b_20L起如厠。乃見庭中。有大人形影。因擧
006_0563_b_21L頭四望。即觀空中。有一神人。嶷然而
006_0563_b_22L住。此沙門。因立足瞻仰。更不移步久
006_0563_b_23L之。經文亦了。神忽不現。其僧從此。始
006_0563_b_24L學誦持。終身不懈。出弘賛第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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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3_c_01L3. 물도 떠내려 보내지 못하다당나라 무덕武德 연중(618~626)에 소장蘇長이라는 사람이 파주 자사巴州刺史에 임명되어 가족을 데리고 부임길에 올랐다.도중에 가릉강嘉陵江을 건너게 되었는데 중류에 이르렀을 때 바람이 크게 일어 배가 뒤집혀서 남녀 60여 명이 몰살했다. 그런데 오직 여자 하인 한 사람만이 살아났다. 그녀는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배에 파도가 쳐들어오자 『법화경』을 머리에 이고 경전과 목숨을 함께하리라 맹세하였다.이에 여인은 물에 빠지지 않고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다 이내 기슭에 닿았다. 뭍에 올라 경전 상자를 열어 보니 『법화경』이 조금도 젖지 않았다. 그녀는 뒤에 양주로 시집가 살았는데 『법화경』을 믿고 독송함이 오히려 전보다 더 독실하였다.『법원주림』, 『홍찬법화전』 권9, 『현응록』4. 시체에서 냄새가 나지 않다도사道士 사숭史崇은 장안 교남郊南 사람이다. 어려서 도교를 믿어 황건黃巾을 쓰고 현도관玄都觀(도교의 절)에 머물렀다. 뒤에 갑자기 발심하여 하루에 한 번씩 『법화경』을 독송하고 개인적으로 불상을 모시고 매일 여섯 차례 예배 참회하니, 매양 여러 도교인들의 미움을 받았다. 그로 인해 퇴속했으나 더욱 애써서 독송하였다.뒤에 사숭은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는데,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도 시체가 조금도 부패하지 않고 오히려 향기가 났다. 친척과 이웃 사람들이 공경하여 담 옆에 감실龕室을 만들어 안치하고 때때로 찾아보았는데, 항상 좋은 향내가 났다.그 뒤 1년가량 지나니 근육은 다 없어지고 오직 혀만이 남아 모양과 빛깔이 살아 있는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의아하고 해괴하게 생각하여 불로 태워 보았으나 변하지 않았고, 도끼로 찍어 보았으나 깨뜨려지지 않았다. 원근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보고는 크게 신심을 일으켰다.『홍찬법화전』 권8 -
006_0563_c_01L水不能漂
006_0563_c_02L唐武德中蘇長。授巴州刺史。帶家族赴
006_0563_c_03L官。因渡嘉陵江。中流風作。船帆傾沒。
006_0563_c_04L男女六十餘人。一時喪失。唯一女使。
006_0563_c_05L常讀法華經。浪入船中。女乃頭戴經凾。
006_0563_c_06L誓與俱沒。旣而女即不沈。隨波泛泛。
006_0563_c_07L頃刻至岸。捧凾而上。開視其經。了無
006_0563_c_08L霑濕。此女後嫁於楊州。6)其 [144] 篤信讀誦。
006_0563_c_09L愈於舊也。出法苑珠林傳 又出弘賛第九及
006_0563_c_10L現應錄。
006_0563_c_11L屍不生臭
006_0563_c_12L道士史崇。長安郊南人也。小屬道流。
006_0563_c_13L早預黃巾。住玄都觀。後忽發心。誦法
006_0563_c_14L華經。日恒一徧。私立佛像。六時禮懺。
006_0563_c_15L每爲諸道所嫉。因玆返俗。彌精諷誦。
006_0563_c_16L後忽染患身亡。時在盛夏。一無變壞。
006_0563_c_17L唯聞香氣。親里敬之。 [20] 龕安堵側。時
006_0563_c_18L時常聞妙香。後經年餘。筋肉都盡。唯
006_0563_c_19L舌形顔色。與常人不異。或有疑駭之
006_0563_c_20L者。乃火燒不變。斧斫無損。遠近見聞。
006_0563_c_21L信倍恒百。出弘賛第八。
006_0563_c_22L「遘」作「遭」{乙}次同。「王」作「亡」{甲}{乙}。冠
006_0563_c_23L註曰全疑念{乙}。「捲」作「撥」乙。「軌」作
006_0563_c_24L「輙」乙。「其」作「某{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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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4_a_02L5. 범이 울부짖어 도적을 물리치다법애法愛 스님은 장사長沙 사람이다.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볼일이 있어 교지交趾32)에 갔다. 마침 그 지방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스님은 몸을 피해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다섯 명의 도둑에게 붙잡혔다. 도둑들은, “우리가 밥을 다 먹고 나서 저 도인을 죽여 없애 버리자.” 하였다.꼼짝없이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스님이 무심코 벽 쪽을 보니 창이 한 개 있었다. 스님은 그것을 가지고 얼른 밖으로 나와 북쪽을 향해 달렸다. 도둑들이 밥을 다 먹고 일어나 스님이 멀리 달아나는 것을 보고 급히 뒤쫓아 왔다.스님은 가시덤불 숲에 이르러 숨으려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덤불 속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나란히 누워 있다가 스님이 온 것을 보자 일제히 머리를 들어 스님을 바라보았다. 스님은 소스라치게 놀라 엉겁결에 말했다.“두 분 단월檀越이여, 빈도는 도둑들에게 쫓겨 급한 김에 단월께 왔습니다.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두 호랑이는 곧 밖으로 나가더니 큰 소리를 지르면서 도둑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도적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 흩어졌다. 스님이 다시 북쪽으로 향해 달리니 호랑이가 뒤따라와 스님을 보호해 주었다. 얼마를 달렸는지 강가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이 음식을 가지고 있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배고프던 참이었기 때문에 맛있게 먹었다. 스님이 곧 물을 건너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가니, 호랑이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고 돌아서 가버렸다.언덕에서 또 두 사람을 만나 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 주었다. 새벽녘에 두 사람은 작별하면서, “그저 북쪽으로만 가십시오. 그러면 환난을 면할 것입니다.” 하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래서 스님은 그들의 말대로 북쪽으로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30여 리쯤 갔을까 뜻밖에 옛 친구들을 만나서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비로소 환난을 완전히 면한 것이었다.스님은 뒤에 여러 스님들과 신자들에게 겪은 일을 이야기하였는데, 나중에 어디서 입적했는지는 알 수 없다.『홍찬법화전』 권76. 글자가 금 글씨로 변하다장만복張萬福이라는 사람이 정관貞觀 연중(627~649)에 낙주 자사洛州刺史가 되었다. 성품이 거칠고 포악하여 공경심과 믿음이 없었다.그는 부임해 가자마자, “관내에 덕행이 높은 중들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좌우에서 보고하기를, “근처에 묘지妙智라는 비구니가 있는데 깊이 정진하고, 또 『법화경』 한 질을 만들어 -
006_0564_a_01L虎吼退賊
006_0564_a_02L釋法愛。長沙人也。誦法華經。因綠往
006_0564_a_03L交趾。値交人反亂。愛隨例藏避。忽爲
006_0564_a_04L五賊所得。置在一處。口云待我食竟。
006_0564_a_05L殺却道人。愛乃見壁邊。有一槊子。卷下
006_0564_a_06L第一三張 挾將出外。向北直走。賊食竟
006_0564_a_07L起。遙1)似 [145] 見愛。奔馳竸往。愛到一棘林。
006_0564_a_08L即投中隱避。乃遇兩虎。相抱而臥。虎
006_0564_a_09L見愛來。並擧頭看愛。愛轉惶懼。口云。
006_0564_a_10L二檀越。貧道被賊逐。急投檀越。願將
006_0564_a_11L接救護。二虎即出外。奮迅驚吼。賊便
006_0564_a_12L退散。愛又北走。虎隨送之。到一水邊。
006_0564_a_13L見人持數片飮食。授與愛。2)愛 [146] 而食之。
006_0564_a_14L氣味甚美。即便渡水上洲。虎亦捨去。仍
006_0564_a_15L宿洲上。又遇二人。亦同在宿。大設異味。
006_0564_a_16L至3)䁱 [147] 方別。仍又囑云。但北向行。自當
006_0564_a_17L得脫。於是北出三十餘里。乃逢舊知。相
006_0564_a_18L見歡喜。始得免脫。愛後向道俗說之。
006_0564_a_19L不知所終。出弘賛第七。
006_0564_a_20L字化爲金
006_0564_a_21L張萬福。貞觀中。爲洛州刺史。其人性麁
006_0564_a_22L獷。不甚敬信。初至任所。問訪左右。管
006_0564_a_23L內有何德行衆僧。左右報云。廓下有一
006_0564_a_24L尼。名妙智。甚精進。又造一部法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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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4_b_01L가르침대로 잘 받아 지니고 공양하고 있어서 그 명성이 그 고장에서는 자자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만복은 시험 삼아 사람을 보내서 그 『법화경』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이를 거절하고 주지 않았다. 사군使君이 청정함을 지키지 않고, 또 재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였다.만복이 크게 노하여 다시 사람을 보내왔기에 스님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법화경』을 내주었다. 만복은 『법화경』을 얻기는 하였으나 끝내 손도 씻지 않고 경을 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누런 종이였고,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만복은 크게 노하여, “이런 요망한 노인네가 있나. 내 어찌 더 이상 참겠는가.” 하고, 곧 좌우에 명하여 당장 스님을 잡아오라고 하였다. 사자使者가 스님에게 가서 말하였다.“스님의 경전에 글자가 한 자도 없어서 자사께서 크게 노하여 스님을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스님은 이유도 모른 채 두렵고 걱정이 되어 땀이 온몸을 적셨다. 사자를 따라 자사의 관아에 이르러 문안으로 들어서니, 두 금강신이 금강저金剛杵를 두 손으로 받들어 스님에게 드리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스님은 겨우 마음이 놓였다. 바로 안으로 들어가 자사의 앞으로 나아가자 『법화경』이 허공으로 올라가 글자가 모두 금자金字로 나타났다.자사는 스님이 이르자마자 금강신과 허공에 떠 있는 금자를 보고 놀라고 두려워 급히 대청 아래로 달려 내려가 스님 앞으로 가서 슬피 울며 사죄 참회하고 예배하였다. 마침내 마음을 돌려 신심을 일으키고 『법화경』 1천 부를 조성코자 발원하여 널리 사방에 공양하고 자기도 『법화경』을 받아 지녀서 게으름이 없었다. 자사가 스스로 마음을 돌린 후 사람들은 모두 『법화경』을 읽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만복이 『법화경』을 조성한 이유를 물으니, 스님이 말해 주었다.“경을 조성할 생각을 하고는 먼저 산중에 닥나무를 심고 늘 향 물을 주어 잘 자라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닥나무가 크게 자란 다음 진흙에 향 물을 섞어 종이 뜨는 집을 짓고, 닥나무 껍질을 벗겨서 법식대로 향 물로 깨끗이 하고, 직공을 고용하여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청정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모집했더니, 스물네댓 살쯤 된 강남 사람이 모집에 응해 와서 『법화경』을 베껴 쓰게 했는데, -
006_0564_b_01L如法受持供養。綠此譽滿鄕閭。萬福
006_0564_b_02L試使人索經來看。尼聞刺史索經。拒而
006_0564_b_03L不與。爲使君不護淨。又未齋潔。萬福
006_0564_b_04L大嗔。更使人往。尼不敢留。即付經去。
006_0564_b_05L萬福得經。竟不洗手。即取經開。卷中
006_0564_b_06L並黃紙。遂無一字。萬福大怒曰。此妖
006_0564_b_07L老嫗。何由可耐。即命左右。追4)耴 [148] 尼來。
006_0564_b_08L使往語尼曰。師經上並無一字。使君大
006_0564_b_09L嗔。令追師來。尼甚憂懼。莫知所由。汗
006_0564_b_10L流浹體。隨使往至刺史牙門。入屏墻。尼
006_0564_b_11L見一雙金剛。手擎杵棒。如似授尼。尼
006_0564_b_12L遂心安。即入至刺史前。其經文並在空
006_0564_b_13L中。化作金字。刺史見尼至。卷下第四
006_0564_b_14L張 并見金剛及金字在虛空中。因即
006_0564_b_15L驚懼。走起下廳。號咷悲。泣謝罪懺悔
006_0564_b_16L禮拜。遂即廻心。信向發願。造法華經
006_0564_b_17L一千部。通十方供養。仍自受持。不敢
006_0564_b_18L懈怠。自刺史歸向之後。人皆以法華爲
006_0564_b_19L業。萬福乃問。造經由緖。尼曰。欲造經之
006_0564_b_20L時。於山中。先種5)穀 [149] 樹。每用香水漑灌。
006_0564_b_21L令得滋長。樹成之後。以香水和泥。造
006_0564_b_22L作紙屋。乃採取*穀皮。雇匠如法。香水
006_0564_b_23L淸淨造紙。募訪能護淨之人。後有一江
006_0564_b_24L南人士。年可二十四五。應募爲書。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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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4_c_01L우선 진흙에 향 물을 섞어서 청정하게 집을 지었습니다. 서생은 새로 지은 깨끗한 옷을 입고, 사경을 하기 전에 49일 동안 채식을 지킨 뒤에 비로소 썼습니다. 외출했을 때에는 돌아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다시 썼습니다. 쓸 때는 소승이 손에 향로를 들고 그 경 앞에 꿇어앉아 서생을 공양했습니다. 『법화경』은 이처럼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정성을 다하여 장엄하게 성취한 것입니다. 그리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한 네 종류의 옷을 각각 열 벌씩 만들어 두고 경전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이레 동안 목욕재계하여 깨끗이 한 뒤에 새 옷을 주어 입게 한 다음에야 경전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공경하면 영원히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홍찬법화전』 권10제14단 「(관세음보살)보문품」1. 불도 태우지 못하다사문 법지法智가 재가자(白衣)였을 때 혼자서 넓은 못가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맹렬한 불길이 사방에서 일시에 일어났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하면서 얼굴을 땅에 대고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불은 그에게로 번져 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못가의 풀들이 아주 작은 것까지 모두 타 버렸는데, 오직 그가 엎드려 있던 곳만은 타지 않았다.33) 그는 이 일로 인하여 크게 감동하여 속세를 떠나 출가하였다.『진조사부관음전晉朝謝敷觀音傳』2. 물에도 떠내려가지 않다중서령中書令 잠문본岑文本은 강릉江陵(중국 湖北省에 있음)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어 항상 『법화경』 「보문품」을 독송하고 있었다. 한번은 오송강吳松江34)을 건너다가 중류에서 바람이 일어 사람과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 문본이 수면 위로 떠오르니, 어디선가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
006_0564_c_01L書經屋。還以香水和泥。淸淨造屋。書
006_0564_c_02L生著新淨衣。未寫經前。預四十九日。
006_0564_c_03L護淸淨齋。然後始書。每出訖。改易衣
006_0564_c_04L服洗浴畢然後。始就書。書時尼手執香
006_0564_c_05L爐。胡跪經前。供養書生。如是不闕經
006_0564_c_06L了。莊嚴成就。乃作僧尼男女四色人衣
006_0564_c_07L各十通。每來借經。預令七日護淨。兼
006_0564_c_08L與新衣著然後。始付經。如是恭敬。永
006_0564_c_09L不虧闕。出弘賛第十。
006_0564_c_10L
006_0564_c_11L第十四段。普門品。
006_0564_c_12L火不能燒
006_0564_c_13L沙門法智。爲白衣時。獨行大澤。猛火
006_0564_c_14L四面。一時俱起。自知必死。乃合面於地。
006_0564_c_15L至心稱觀音。恠火不至。擧頭看之。一澤
006_0564_c_16L之草。纎微皆燼。唯所伏地。火不燒耳。
006_0564_c_17L因此感悟。捨俗出家。出6)音 [21] 朝謝敷觀音傳
006_0564_c_18L水不能漂。 [22] 7)出靈瑞集。又出現應錄。
006_0564_c_19L中書令岺文本。江陵人也。少懷正信。常
006_0564_c_20L誦法華普門品。過吳松江。中流風作。人
006_0564_c_21L船俱沒。文本浮在水面。卷下第一五張
006_0564_c_22L「似」作「以」{乙}。冠註曰愛疑受{乙}。「䁱」
006_0564_c_23L作「曉」{乙}。「耴」作「取」{乙}次同。「穀」作「糓」
006_0564_c_24L{乙}次同。「音」作「普」{乙}。「出靈…應錄」九
006_0564_c_25L字無有{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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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5_a_01L“부처님을 염하고 경을 외우기만 하면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이와 같이 세 번 듣고 나서 그는 물결에 따라 흘러가 강기슭에 닿을 수 있었다.35)문본이 뒤에 강릉에서 재를 베푸니 승려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는데, 한 스님이 혼자 뒤에까지 남아 있다가 가면서 문본에게 말하였다.“천하에 곧 큰 난리가 날 텐데 당신은 다행히 해를 입지 않고 태평 시대를 만나 크게 부귀를 누릴 것입니다.”이렇게 말하고서 가 버렸다. 뒤에 문본은 어느 때 밥을 먹다가 갑자기 밥그릇 속에서 한꺼번에 사리舍利 두 과를 얻고 태평 시대를 만나 부귀를 누렸으니, 모두 스님의 말과 같았다.『영서집』, 『현응록』해염현海鹽縣(중국 절강성에 있음)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함께 탔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그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여 우연히 바위 하나를 만났다. 몸이 노곤하여 잠이 스르르 들었는데, 꿈에 배를 타고 가던 두 사람이 그를 배 위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눈을 떠 보니, 과연 어떤 사람이 배로 그를 기슭까지 내려다 주고는 갑자기 없어져 버렸다.『사부관음전』3. 나찰귀의 환란을 모면하다외국 사람 백여 명이 배로 사자국師子國36) 부남扶南(지금의 태국에 있던 나라)으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 나찰 귀신들의 나라에 떨어졌는데, 귀신들이 달려들어 뱃사람들을 잡아먹으려고 하였다.모두들 두려워서 같이 ‘관세음보살’을 불렀지만, 그중 한 소승小乘의 사문은 이를 믿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않았다. 귀신들이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어 잡아먹으려고 하자, 그 사문도 두려워서 진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러 화를 모면하였다.37)『사부관음전謝敷觀音傳』4. 폭풍이 배에 휘몰아치다신라 때 보개寶開라는 여인이 서울(경주) 우금방隅金坊38)에서 살고 있었는데, 장춘長春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이 상선商舶을 타고 바다로 나가서 돌아올 날짜가 지났으나 그 뒤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근심하고 걱정하여 몸까지 몹시 초췌해졌다.그러다가 다행히 “관세음보살께서 널리 듣고 신통한 힘을 나타내시어 설사 폭풍이 불어 배가 표류하여 나찰귀의 나라에 떨어지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곧 환난에서 벗어날 것”39)이라는 말을 듣고, 곧 깊은 신심이 생겨 민장사敏藏寺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이레를 기약하고 부지런히 마음을 다해 기도를 시작했다. 이레째 되는 날 갑자기 장춘이 나타나 -
006_0565_a_01L聞人語曰。但念佛誦經。必不死也。如
006_0565_a_02L是者三。自此隨波。達于址岸。後於江
006_0565_a_03L陵設齋。1)雲 [150] 徒並集。有一僧獨後去。謂
006_0565_a_04L文本曰。天下方亂。君幸不遇害。當逢
006_0565_a_05L大平。致富貴也。言已而去。文本忽一
006_0565_a_06L時食。2)椀 [151] 中得舍利3)二 [152] 顆。獲大平富貴。
006_0565_a_07L皆如僧4)言。 [153]
006_0565_a_08L5)海 [154] 6)鹽 [155] 縣有人落水。同伴皆沉。此人稱
006_0565_a_09L觀音。遇得一石。困倦如眠。7)夢 [156] 見兩人。
006_0565_a_10L乘船喚入。開眼果見有人。船送達岸。
006_0565_a_11L已遂不見之。出謝敷傳。
006_0565_a_12L脫羅刹難
006_0565_a_13L外國百餘人。從師子國。向扶南。忽遇
006_0565_a_14L惡風。墮鬼國。鬼便欲食。一船人衆。怖
006_0565_a_15L稱觀音。其中有一。小乘沙門。不信不稱。
006_0565_a_16L鬼便索之。心怖稱名亦免。出謝敷觀音傳。
006_0565_a_17L黑風吹其船舫
006_0565_a_18L新羅時。有女名寶開。居王京隅金坊。
006_0565_a_19L有一子。名長春。隨商舶。泛海而去。過
006_0565_a_20L期不知所之。朝夕思念。至於憔悴。幸
006_0565_a_21L聞普門示顯神通之力。假使黑風。吹
006_0565_a_22L其船舫。漂墮羅刹鬼國。稱其名故。即
006_0565_a_23L得解脫。便生深信。就敏藏寺觀音像前。
006_0565_a_24L約一七日。精勤祈禱。至七日。忽感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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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5_b_01L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너무도 놀랍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울었다.절의 스님이 괴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장춘이 대답하였다.“내가 집을 떠나 바다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폭풍을 만나 함께 배에 탔던 다른 사람들은 다 고기밥이 되고 나만 혼자 널빤지를 타고 표류하다가 오吳나라에 도착했는데, 그 나라 사람이 나를 데려다가 종으로 부렸습니다. 하루는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있는데 기이한 차림의 스님이 와서 말하기를, ‘고국이 생각나지 않느냐?’라고 하기에, 나는 그의 앞에 꿇어앉아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어 그리운 마음이 간절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만약 어머니를 만나고 싶거든 나를 따라오라!’라고 하여 동쪽으로 가기에 나는 곧 뒤를 따라갔습니다. 깊은 도랑이 있어 스님이 내 손을 잡아 이끌어 건너는데40) 정신이 몽롱해져서 마치 꿈속과 같더니, 갑자기 우리나라의 말이 들리고, 민장사의 관음상 앞에 와 있었습니다. 이내 우리 어머님인 줄 알았지만 오히려 꿈속과 같았습니다.”당 현종 천보天寶 4년 을유(745, 신라 경덕왕 4년) 4월 8일 신시申時(오후 3시~5시)에 오吳나라를 떠나 술시戌時(오후 7시~9시)에 이곳에 닿은 것이다.경덕왕이 이 소문을 듣고 깊이 공경하여 우대하고 재물을 내려 영구히 공양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매년 4월 8일이면 절에 행차하여 부처님을 예찬禮讚하는 것을 영원한 법도로 정하였다. 어머니 보개와 아들 장춘은 인근 마을의 청신사와 청신녀 들41)과 더불어 함께 금으로 쓴 『법화경』 한 부를 조성하고, 매년 봄 3월이 되면 도량을 세워 『법화경』의 미묘하고도 깊은 이치를 널리 폈으며, 수행에 정진하고 관세음보살을 공경 예배하여 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민장사기敏藏寺記』, 『계림고기雞林古記』, 『해동전홍록』5. 칼로 내리쳤으나 칼이 조각조각 부러지다진晋나라 태원太元(동진 효무제 376~396) 때 팽성彭城에 사는 어떤 사람이 도둑으로 몰려서 관가에 체포되었다.그는 본래 금불상을 공양하여 상투 속에 넣어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참형을 받게 되어 칼을 내리치니 쇳소리만 쨍그랑 하고 났다. 세 번을 내리쳤으나 아무렇지도 않았다.42) 상투를 풀어 살펴보았더니 금불상에 세 군데 흠이 나 있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죄를 사면 받았다.『사부관음전』고간高簡이라는 사람이 법을 어기고 죄를 지어 처형을 받게 되었는데 일심으로 귀의하였더니, 옥졸이 칼로 목을 내리치면 칼이 부러지고, -
006_0565_b_01L春。執母手。驚喜哭泣。寺僧恠問所由。
006_0565_b_02L春曰離家泛海。忽値惡風。同船之人。
006_0565_b_03L皆葬魚腹。余獨乘一板。至於吳。吳人
006_0565_b_04L收之奴。使之耕於野田。忽有異僧來謂
006_0565_b_05L曰。憶汝國乎。余即跪曰。有老母在。戀
006_0565_b_06L慕無極。僧曰若欲見母。隨我而來。言
006_0565_b_07L訖東行。余隨之。有一渠僧。乃執手超
006_0565_b_08L之。昏昏如夢。忽聞8)羅 [157] 語。到此敏藏寺
006_0565_b_09L像前。卷下第一六張 雖審知我母。猶疑
006_0565_b_10L夢中矣。即天寶四年乙酉。四月八日。申
006_0565_b_11L時離吳。戍時到此堂中。景德王。聞而
006_0565_b_12L敬重。優9) [158] 信賄。永充供養。每於月生
006_0565_b_13L八日。幸寺禮讃。永爲定式。寶開與長
006_0565_b_14L春。約結鄰里。淸信士女。特成金字蓮
006_0565_b_15L經一部。每至春三月。爲立道場。敷宣
006_0565_b_16L妙理。精修禮敬。仰賽玄恩。10)見 [159] 敏藏寺記
006_0565_b_17L11)及 [160] 雞林古記。12)略見 [161] 傳弘錄。
006_0565_b_18L13)刁 [162] 段段壞
006_0565_b_19L晉太14)元 [163] 中。彭城有一人。被枉爲賊。其
006_0565_b_20L人本曾供養金像。帶在髻中。後伏法
006_0565_b_21L*刁下。聞金聲。*刁三15)斫 [164] 頸。終無異解。
006_0565_b_22L看像有三痕。由是免罪。出謝敷觀音傳。
006_0565_b_23L16)又 [165]
006_0565_b_24L有高簡。犯法臨刑。一心歸命。下*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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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5_c_01L끈으로 목을 조르면 끈이 끊어져 나갔다. 그리하여 처자와 자신을 팔아서 5층탑을 세웠다.6. 칼과 쇠사슬이 저절로 벗겨지다진晋나라 장창張暢이 초왕譙王이 되었는데, 그는 장사왕長史王과 함께 어떤 사건에 관계되어 정위廷尉(감옥을 담당하는 벼슬)에 체포되어 갇히게 되었다. 장창은 일찍부터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곧 발심하여 『법화경』 「보문품」을 1천 번이나 독송하며 죄를 면해 벗어날 수 있기를 구했다. 마음의 생각과 입으로 하는 말이 지극해지자43) 칼과 쇠사슬이 저절로 끊어지고 부서져서 두 사람이 함께 처벌을 면하였다.44)『진사부관음전晋謝敷觀音傳』, 『현응록』개호蓋護는 산양山陽(중국 강소성에 있음) 사람으로 옥에 갇혀 죽게 되었는데, 사흘 낮 사흘 밤을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눈에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보이고, 보살이 빛을 놓아 그를 비추니 자물쇠(鏁)가 벗겨지고 옥문이 열렸다. 개호가 그 빛을 찾아 따라가기를 20리쯤 지나니 어느덧 빛이 사라졌다.『진사부관음전』, 『현응록』7. 도적이 해치지 못하다진晋나라 융안隆安(397~401) 때 스님 혜달慧達이 산 북쪽 등성이에서 감초甘草를 캐고 있었다. 이때 서쪽 오랑캐 강인羌人(지금의 티베트 족)들이 굶주려 사람들까지 잡아먹고 다녔다. 스님이 그만 그들에게 잡혀 여러 사람과 함께 우리 안에 갇혔다. 살찐 사람부터 골라서 잡아먹으니, 스님은 두려워서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보문품」을 독송하였다.한 사람 한 사람 다 잡아먹고 이젠 스님과 어린아이 하나만 남아서 -
006_0565_c_01L*刁折。絞之寸斷。遂賣妻子及以自身。
006_0565_c_02L起五層塔。
006_0565_c_03L枷鏁自脫
006_0565_c_04L晉有張暢。爲譙王。長史王。與暢因事。
006_0565_c_05L繫廷尉。暢夙有正信。便即發心。誦法
006_0565_c_06L華普門品一千徧。以求脫免。念言之至。
006_0565_c_07L枷鏁尋即斷壞。二人俱得。出晉謝敷觀音
006_0565_c_08L傳。17)又出 [166] 現應錄
006_0565_c_09L18)蓋 [167] 護山陽人。繫獄應死。三日三夜。稱
006_0565_c_10L名無間。眼見觀音。放光照之。鏁脫門
006_0565_c_11L開。尋光而去。行二十里。光明方息。
006_0565_c_12L出處19)上同。 [168]
006_0565_c_13L賊不能害
006_0565_c_14L晉隆安中。僧20)惠 [169] 達。於山北隴。掘甘草。
006_0565_c_15L時羌人飢荒。捕人而食。達爲所獲。寘
006_0565_c_16L之21)柵 [170] 中。擇肥者先食。達懼甚。一心稱
006_0565_c_17L觀音名。誦普門品。食人取盡。唯達與
006_0565_c_18L「雲」作「僧」{乙}。「椀」作「梡」{乙}。「二」作
006_0565_c_19L「土」又冠註曰土疑七{乙}。「言」下有「出靈瑞
006_0565_c_20L集又出現應錄」{乙}。此右側行間有小題名「又」
006_0565_c_21L{乙}。「鹽」作「濫」{乙}。「夢」作「船」{乙}。「羅」
006_0565_c_22L作「母」{乙}。「」作「頒」{乙}。「見」作「出」{乙}。
006_0565_c_23L「及」作「又見」{乙}。「略見」作「及略」{乙}。
006_0565_c_24L「刁」作「刀」{乙}次同。「元」無有{乙}。「斫」作
006_0565_c_25L「所」{甲}。「又」作別行{編}。「又出」作「及」{乙}。
006_0565_c_26L此右側行間有小題名「又」{乙}。「上同」作「同
006_0565_c_27L上」{乙}。「惠」作「慧」{乙}。「柵」作「構」{乙}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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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6_a_01L목숨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스님은 여전히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보문품」을 독송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풀 속에서 뛰쳐나와 크게 울부짖어 온 산이 진동하였다. 강인들이 두려워하며 달아나자, 호랑이가 입으로 우리를 물어뜯어 부수어 놓고 가니, 스님과 어린아이는 달아나 화를 면하였다.45)『천태별행소』상서尙書 서의徐義는 진나라 말엽에 군인들이 봉기하여 어지러울 때 도둑에게 붙잡혀 죽게 되었다. 도둑들은 그의 두 발을 땅에 묻고 머리를 나무에 꽁꽁 매어 놓았다.밤이 되자 서의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다.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지금이 얼마나 위급한 때인데 이렇게 잠을 자고 있습니까?”라며 나무라는 것이었다. 사의가 깜짝 놀라 잠을 깨 보니, 지키는 자들이 피곤하여 골아 떨어져 있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가까스로 손으로 머리를 풀고 발도 빼내어 백여 걸음쯤 달아나 숲속에 숨었다.얼마 후 도둑들이 추적해 오는데 그 횃불이 마치 별이 늘어선 것과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끝내 서의를 찾아내지 못하고 날이 밝으니, 도적들은 모두 흩어져 가 버리고 서의는 화를 면하였다.『사부관음전』8. 아들을 소원하여 낳다진晋나라 때 익주益州(중국 사천성) 사람 손도덕孫道德은 나이 50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일러 주기를,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보문품」을 독송해 보시오.” 하여 그는 곧 이르는 대로 하였다. 며칠이 지나서 도덕이 꿈을 꾸고, 부인은 태기가 있어 마침내 아들을 낳았다.46)『사부관음전』9. 몸을 나타내 법을 설하다당나라 태화太和(827~835) 때 문종文宗은 조개를 몹시 좋아해서 오랫동안 연해沿海 지방의 관리들이 번갈아 가며 조개를 진상하느라 백성들이 몹시 애를 먹었다. 하루는 황제의 반찬으로 오른 조개에 틈은 있는데 벌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황제가 기이하게 생각하고는 곧 향을 피우고 기원을 하였더니, 조개가 문득 보살의 형상으로 변하였는데, 모습도 매우 청정하였다.황제는 계수나무와 향나무로 만든 함에 넣어서 아름다운 비단으로 덮어 흥선사興善寺에 내려 주고 스님들로 하여금 예배하게 한 다음 -
006_0566_a_01L小兒。在命只一日耳。達持念不捨。至
006_0566_a_02L1)旦 [171] 忽一虎。自草中跳出。咆吼震山。諸
006_0566_a_03L羌畏走。卷下第一七張 虎乃嚙*柵而去。
006_0566_a_04L達與小兒奔走得免。出天台別行䟽。
006_0566_a_05L又
006_0566_a_06L尙書徐義。秦末兵革蜂起。賊獲徐義。
006_0566_a_07L將欲殺之。乃埋兩足。編髮於樹。夜中
006_0566_a_08L至心專念觀音。有頃得眼。夢人謂曰。
006_0566_a_09L今事極矣。何暇眠乎。義便驚起。見守
006_0566_a_10L衛人。並疲而睡。義乃奮動。手髮旣解。
006_0566_a_11L足亦得脫。行百餘步。隱草叢中。便聞
006_0566_a_12L賊追。火炬星陳。竟無見者。天明賊散。
006_0566_a_13L遂免之。出謝敷傳。
006_0566_a_14L求男得男
006_0566_a_15L晉時益州。孫道德。年過五十。未有子息。
006_0566_a_16L有僧令其至心稱誦觀世音經。其即依
006_0566_a_17L之。少日之中。而自得夢。婦即有孕。遂
006_0566_a_18L生男也。出謝敷傳。
006_0566_a_19L現身說法
006_0566_a_20L唐大和中。文宗嗜蛤蜊。㳂海官吏。先
006_0566_a_21L時遞進。人亦勞止。一日䘖饌中。有擘
006_0566_a_22L不張者。帝以其異。即焚香禱之俄變。
006_0566_a_23L爲菩薩形。梵相具足。即貯以金粟檀香
006_0566_a_24L合。覆以美彩。賜興善寺。令衆僧瞻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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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6_b_01L신하들에게 물었다.“이것은 무슨 상서인가?”한 신하가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대일산大一山에 유정惟政이라는 선사가 있는데 불법에 매우 밝고 학식이 많다고 합니다.”그리하여 황제는 곧 선사를 불러들여 그 일에 대하여 물었다. 스님이 말하였다.“신臣이 듣건대 세상일은 반드시 감응하는 바가 있다 하오니, 이는 폐하의 신심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전에서도 말하기를, ‘이 몸으로 응하여 깨달음을 얻을 사람에게는 곧 이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47)라고 하였습니다.”그러자 황제가 말하였다.“보살의 몸이 이미 나타났는데 나는 설법을 듣지 못하였소.”그러자 선사가 물었다.“폐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이것이 예삿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못하시겠습니까?”“이것은 희유한 일이고 기이한 일이오. 나는 깊이 믿습니다.”“그러면 폐하께서는 이미 설법을 들으신 것입니다.”이에 황제는 기분이 좋고 즐거워서 일찍이 맛보지 못한 감동을 받았으며, 천하의 모든 절에 조서를 내려 각기 관음상을 모시라고 하여 이 큰 경사에 보답하게 하였다.내가 찬탄한다. 관세음보살은 몸을 혀 삼아 법을 설하고, 문종은 마음을 귀 삼아 법을 들었네.10. 소녀의 몸을 나타내다마랑馬郞의 아내는 그 내력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당나라 때 불교가 크게 융성하였는데, 협우陜右 지방의 관습은 말 타고 활 쏘기를 좋아하여 삼보三寶의 이름은 듣지도 못하였다.여인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 그곳 사람들에게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나 홀홀 단신이니 양녀養女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48) 또한 말하기를, “저는 부모가 안 계십니다. 시집을 갈까도 생각하지만 세속의 재산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다만 총명하고 착한 사람으로 능히 불경을 독송하는 분이라면 섬기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그들에게 「보문품」을 나누어 주고 말하였다.“이것을 하룻밤 사이에 다 외우는 분에게 시집가겠습니다.”이튿날 「보문품」을 완전히 외우게 된 사람이 20여 명이나 되었다. 여인은 말하였다.“여자의 몸은 정조가 곧고 행동이 깨끗해야 합니다. 한 몸으로 여러 사람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다른 경전을 외워 보도록 하십시오.”이번에는 『금강반야경』을 주었다. 이튿날 아침 10여 명이 『금강반야경』을 외워 가지고 왔다. 다시 여인은 『법화경』 7권을 주면서 말하였다.“사흘 동안 이것을 외워 보십시오.”약속한 날이 되었는데 마씨馬氏 아들 한 사람만이 『법화경』을 외워 가지고 왔다. 여인이 말했다.“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뛰어납니다. -
006_0566_b_01L因問群臣。斯何祥也。或言。大一山有
006_0566_b_02L惟政禪師。深明佛法。2)愽 [172] 問强識。帝即
006_0566_b_03L令召至。問其事。師曰臣聞物無虛應。
006_0566_b_04L此乃啓陛下之信心耳。故契經云。應以
006_0566_b_05L此身得度者。即現此身。而爲說法。帝
006_0566_b_06L曰菩薩身已現。且未聞說法。師曰陛下。
006_0566_b_07L覩此爲常非常耶。信非信耶。帝曰希
006_0566_b_08L奇之事。朕深信焉。師曰陛下已聞說
006_0566_b_09L法了。時皇情悅豫。得未曾有。詔天下
006_0566_b_10L寺院。各立觀音像。以答殊3)休。 [173] 私云。 [23] 菩
薩以身爲
006_0566_b_11L舌而說。文宗
以心爲耳而聽。
006_0566_b_12L顯童女身卷下第一八張
006_0566_b_13L馬郞婦。不知出處。大唐隆盛佛敎。而
006_0566_b_14L陜右俗習騎射。篾聞三寶之名。婦憫
006_0566_b_15L其愚。乃之其所。人見少女。風韻單子。
006_0566_b_16L欲乞爲養。女曰我無父母。亦欲有歸。
006_0566_b_17L然不好世財。但聰明賢善人。能誦佛經。
006_0566_b_18L則願事之。男子衆皆聚觀。女即授與普
006_0566_b_19L門品。若能一夕通此則歸之。至翌日
006_0566_b_20L誦徹者。二十餘軰。女曰女子一身。家
006_0566_b_21L世貞潔。無以一體事多人也。可更別
006_0566_b_22L誦。因授以金剛般若。至*旦背者十數。
006_0566_b_23L女更授與法華經七軸。約三日通之。至
006_0566_b_24L期獨馬氏子能徹。女曰君旣能過衆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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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6_c_01L부모님께 말씀드려 매파媒婆를 내세우시고 예물을 갖추어 보내십시오. 그리고 나서 혼인을 하십시다.”그래서 마씨는 예로써 여인을 맞아들였는데, 그녀는 대문 앞에 이르러 말하였다.“마땅히 당신을 맞아들여야 하겠지만 지금은 몸이 다소 깨끗하지 못합니다. 다른 방에서 안정되기를 기다려 뵙겠습니다.”이로 말미암아 다른 방에서 안정을 취하였다. 하객들이 돌아가기도 전에 여인은 죽어 있었다. 시신이 금새 썩어 문드러지므로 곧 장사지내 주었다.며칠이 지났다. 자색의 승가리(紫伽梨)49)를 하였고, 모습이 남루한(古野) 한 스님이 찾아와서 그 여인을 찾았다. 마씨가 그를 무덤으로 인도하였다. 스님이 석장으로 모래땅을 파헤치니, 시체는 이미 없어지고 오직 금쇄골金鏁骨50)만이 남아 있었다.스님은 강물로 가지고 가서 목욕시켜 깨끗이 닦아 석장 끝에 매달고 대중에게 말하였다.“이 성자는 당신네가 불교(正法)를 믿지 않음을 불쌍히 여겨 방편으로 타일러 교화한 것이니, 좋은 인연을 생각하여 고해에 떨어지는 것을 면하도록 하시오.”그리고는 갑자기 공중으로 솟아올라 어디론지 가 버렸다. 모두들 슬피 울며 우러러보고 수없이 예배하였다. 이때부터 이 지방 사람들이 모두 부처님을 받들고 경전을 독송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그 여인의 힘에 의한 것이다.산곡 도인山谷道人51)의 관음찬觀音讚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만약 진실로 관세음보살을 뵙고자 하거든
금사탄金沙灘 마랑의 아내가 그분일세.
평강平江 만수 체萬壽體 선사는 다음과 같이 찬송하였다.
더없이 아름다운 저 여인 뉘집 딸이런가.
뛰어나게 총명한 이 사람은 마랑이로구나.
우습구나, 금사탄 기슭의 굳은 약속이여.
끝내 부부로서 한 쌍 이루지 못했네.11. 비구니의 몸을 나타내다신라의 경흥 국사憬興國師52)가 서울(경주) 삼랑사三郞寺에 있을 때 병이 들어 오랫동안 낫지 않았다. 하루는 한 비구니 스님이 찾아와 국사를 뵙기 청하였다. 제자가 그를 국사께 인도하였더니 말하였다.“스승께서는 큰 법(大法)을 깨달으셨지만, 사대四大가 합하여 몸이 되었으니, 어찌 병이 없으실 수 있겠습니까? 병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다 사대에서 생겨납니다. 첫째는 몸의 병(身病)이니 -
006_0566_c_01L可白父母。具媒娉送禮。然後成姻。4)及 [174]
006_0566_c_02L馬氏以禮迎之。女將至門。且5)曰 [175] 適以
006_0566_c_03L應接。體6)中 [176] 少不佳。願求別室7)俟 [177] 安。
006_0566_c_04L與君相見。因頓止他房。筵客未散而女
006_0566_c_05L命終。而壞爛乃卜葬之。未數日。有僧
006_0566_c_06L紫伽梨。姿貌古野。來尋女子馬氏。引之
006_0566_c_07L葬所。僧即以錫杖。撥開沙土。見屍已
006_0566_c_08L化。唯金鏁骨存焉。僧*耴就河浴洗。挑
006_0566_c_09L於錫上。謂衆曰。此聖者。憫汝等不信
006_0566_c_10L正法。方便諭化。當思善因。免墮苦海。
006_0566_c_11L忽然凌空而去。衆見悲泣。瞻禮不已。
006_0566_c_12L自尒一境奉佛誦經。由女之力也。山
006_0566_c_13L谷道人觀音讃云。若欲眞見觀世音。金
006_0566_c_14L沙灘頭馬郞婦。8)又 [178] 平江萬壽體禪師頌
006_0566_c_15L曰。十分美貌誰家女。百倍聰明是馬郞。
006_0566_c_16L堪笑金沙灘畔約。始終姻婭不成雙。
006_0566_c_17L顯比丘尼身
006_0566_c_18L新羅憬興國師。住京師三郞寺。病久不
006_0566_c_19L瘳。有一尼請看。門人引視之。尼曰師
006_0566_c_20L雖悟大法。合四大爲身。豈能無病。卷下
006_0566_c_21L第一九張 病有四種。從四大生。一曰身
006_0566_c_22L「旦」作「且」{甲}次同。「愽」作「博」{乙}。「休」
006_0566_c_23L作「俗」{乙}。「及」作「乃」{乙}。「曰」作「白」{乙}。
006_0566_c_24L「中」作「小」{乙}。「俟」作「候」{甲}。「又」無
006_0566_c_25L有{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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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7_a_01L풍병風病ㆍ황병黃病ㆍ담병痰病ㆍ열병熱病이 위주가 되고, 둘째는 마음의 병(心病)이니 미치광이(顚狂)ㆍ정신착란(昏亂)이 위주가 되고, 셋째는 외부로부터 받는 병(客病)이니 칼이나 막대기로 찍히고 다치거나 움직임이 지나쳐 피로함이 위주가 되고, 넷째는 서로 함께 존재하므로 생기는 병(俱有病)이니 굶주림ㆍ추위ㆍ더위ㆍ괴로움ㆍ즐거움ㆍ근심ㆍ걱정이 위주가 됩니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울려 서로 원인이 되어 만일 사대 중 하나라도 조화롭지 못하면 백 가지 병이 다 일어납니다. 지금 스승의 병환은 약으로 다스려 치료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스꽝스러운 놀이를 구경하신다면 나으실 것입니다.”그래서 여러 사람이 열한 가지의 탈을 만들어 쓰고 춤을 추었다. 국사가 그 야릇하고 괴상한 모습에 매우 즐거워하다 보니, 어느덧 병이 다 사라진 줄도 몰랐다.비구니가 떠나자 국사가 곧 사람을 시켜 그 뒤를 따라가 보게 했더니, 스님은 남화사南花寺 불전佛殿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는데, 그가 가지고 있던 대나무 지팡이가 십일면관세음보살十一面觀世音菩薩의 상 앞에 놓여 있었다.53)『해동고승전』 권5제15단 「다라니품」ㆍ「묘장엄품」ㆍ「보현보살권발품」1. 귀신이 구멍으로 빠져나가다송宋나라 효건 초에 보명普明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어려서 출가하였는데, 성품이 순수하고 소박하였으며, 항상 채식菜食과 베옷으로 생활하였다. 스님은 『법화경』 독송을 일과로 하였다. 독송을 할 때는 특별히 마련한 옷을 입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앉아 하는데 절대로 혼동하지 않았다. 독송이 「권발품」에 이르면 보현보살이 코끼리를 타고 그의 앞에 나타나 보였다.54)마을 사람 왕도진王道眞의 아내가 병이 위독하여 스님에게 주문을 외워 달라고 청했다. 스님이 막 문에 들어서자 병자가 기절하면서 갑자기 두어 자쯤 되어 보이는 너구리같이 생긴 것이 개구멍으로 빠져나가더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 또 한번은 스님이 물가에 가니, 무당이 말하기를, “신들(神明)이 보명 법사님을 보고는 모두 달아나 버립니다.”라고 하였다.『홍찬법화전』 권6, 『현응록』 -
006_0567_a_01L病。風黃痰熱爲主。二曰心病。顚狂昏
006_0567_a_02L亂爲主。三曰客病。刀杖1)斫 [179] 傷。動作過。
006_0567_a_03L勞爲主。四曰俱有病。飢渴寒暑苦樂憂
006_0567_a_04L2)曺 [180] 爲主。其餘品類。展轉相因。一大不
006_0567_a_05L調。百病俱起。今師之病。非藥石所療。
006_0567_a_06L若觀戱謔事則理矣。於是作3)廿 [181] 一㨾面
006_0567_a_07L而舞之。師視詭譎之態。頗歡悅。不知
006_0567_a_08L病之去也。尼出師使跡之。入南花寺佛
006_0567_a_09L殿而隱。其所持竹杖。在十一面觀音像
006_0567_a_10L前。出海東高僧傳第五。
006_0567_a_11L
006_0567_a_12L第十五段。4)多羅尼品。妙莊嚴王品。
006_0567_a_13L普賢勸發品。
006_0567_a_14L5)崇自出竇。鬼乃扣頭。閻王指送第四天
006_0567_a_15L菩薩來乘六牙象。
006_0567_a_16L*崇自出竇
006_0567_a_17L宋建初 [24] 中。有僧普明。少出家。性純素。
006_0567_a_18L常蔬食布衣。以法華爲日課。誦時有別
006_0567_a_19L衣別座。未甞混雜。每誦至勸發品。即見
006_0567_a_20L普賢乘象前立。鄕人王道眞妻病革。請
006_0567_a_21L師持呪方入門。病者悶絕。忽見一物。
006_0567_a_22L如狸長數尺。從狗竇出。其病即愈。又
006_0567_a_23L嘗行水旁。有巫者云。神明見明法師。
006_0567_a_24L悉皆奔走。出弘賛第六及6)顯應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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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7_b_01L2. 귀신이 머리를 조아리다보통寶通 스님은 깨끗한 수행(梵行)으로 불법을 부지런히 닦았는데, 『법화경』 「다라니품」을 오랫동안 독송하여 약간 신령스런 이적이 있었다.이때 양교촌楊橋村 조씨趙氏의 아내가 귀신이 들려 스님의 주문을 청했다. 그래서 스님이 그 집에 이르니, 귀신이 곧 형상을 나타냈다. 스님이 말하기를, “너는 이 마을에 있으니 마땅히 마을 사람들의 복을 일으켜 주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도리어 사람에 붙어서 괴롭히느냐?” 하고 꾸짖었다. 그러니까 귀신이 말하기를, “그것은 제가 한 짓이 아니라 제 부하 졸개의 짓입니다.” 하고 부하 졸개를 불러 그 앞에서 꾸짖고 벌을 주었다.조씨의 아내는 병이 약간 차도가 있더니, 얼마 안 가서 다시 발병하여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조씨는 다시 스님을 찾아와 알려 주었다. 스님이 다시 가 보니, 앞서 책망 받았던 귀신이 병상 앞에 서 있었다.스님이, “저번에 타일렀는데 어찌하여 또 왔느냐? 만약 네가 지금 가지 않는다면 내 마땅히 주문을 외워서 네 머리를 깨뜨려 일곱 조각을 내어 아리수55) 가지처럼 만들어 놓을 것이다.” 하고 호통치니, 귀신이 황급히 머리를 땅에 조아리면서 제발 주문을 외우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였다.56) 이때부터 부인의 병은 나았고, 귀신이 다시는 오지 않았다.『영서집』, 『홍찬법화전』 권7, 『현응록』. 수나라 개황開皇(581〜600) 때의 일이다.3. 염라대왕이 도솔천으로 보내다도진道璡 스님은 형주荊州 사람이다. 그는 『법화경』을 독송하였으며(諷誦), 베옷과 하루 한 끼의 밥으로 만족하였으며, 남보다 뛰어난 도량이 있었다. 스님이 변재사辨才寺에 머물러 있는데 하루는 갑자기 졸도하여 숨이 겨우 붙어 며칠을 보냈다. 스님이 보니, 저승의 관원이 추가 기록한 명부를 가지고 염라대왕 앞으로 데리고 갔다. 대왕이 말하였다.“스님은 『법화경』을 독송하였고 계율을 지키는 수행이 청정하였으니, 반드시 욕계 제4천57) 가운데 미륵보살이 계신 곳에 태어날 것인데, 제자는 죄악이 많은 몸이라 다시는 서로 만나 뵙지 못할 것 같아 스님을 뵙고자 한 것입니다.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도진 스님은 마침내 잠시 동안 다시 깨어나 여러 스님들에게 겪은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는 말을 마치자 숨을 거두었다.『홍찬법화전』 권84. 보살이 여섯 이빨의 코끼리를 타고 오시다고려 때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영암사靈岩寺 동쪽 숲에 머물러 있으면서 -
006_0567_b_01L鬼乃扣頭
006_0567_b_02L寶通。梵行精修。長誦法華陁羅尼品。
006_0567_b_03L稍有靈異。時楊橋村。有趙氏家妻。爲
006_0567_b_04L神所魅。請通持呪。通旣至。神即現形。
006_0567_b_05L通告曰神在村中。合當興福。如何反魅
006_0567_b_06L於人。神曰非弟子事。此乃部下小鬼耳。
006_0567_b_07L遂呼小鬼。至前嘖罰。趙妻因此得差。
006_0567_b_08L續後趙妻之病。仍發歌吟竟日。又來告
006_0567_b_09L通。卷下第二○張 通又7)去。 [182] 見所責鬼。
006_0567_b_10L在病床前。通曰前曾誠治。那得再來。
006_0567_b_11L汝若不去。吾當誦呪。令汝頭破作七分。
006_0567_b_12L如阿梨樹枝也。鬼乃扣首求哀。不煩呪
006_0567_b_13L也。從此病差。鬼不復至矣。出靈瑞集。及
006_0567_b_14L弘賛第七現應錄(隋開皇年中事)。
006_0567_b_15L閻王指送第四天
006_0567_b_16L釋道璡。荊州人也。諷誦玆典。布衣一
006_0567_b_17L食。殆有過人之量。止辨才寺。忽體仆
006_0567_b_18L息。微經數日。自見冥官追錄。將至王
006_0567_b_19L前。王曰師誦法華。律行淸淨。應生第
006_0567_b_20L四天中慈尊衆所。弟子罪惡之身。恐不
006_0567_b_21L復相遇。故欲見師。願垂救也。璡遂暫
006_0567_b_22L蘇。向諸僧具說。言訖而卒。出弘賛第八。
006_0567_b_23L菩薩來乘六牙象
006_0567_b_24L高麗時有僧。失其名。在靈岩寺東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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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7_c_01L『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항상 정성을 다했으며,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향을 피우고 부처님을 공경 예배하여 영험이 있기를 바랐다.처음에는 큰 뱀과 꿩, 노루 등이 와서 『법화경』 독송을 듣다가 독송이 끝나면 흩어져 갔고, 한낮이 되면 산신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스님을 공양하였다.후에 갑자기 찬란한 빛이 동산에서 내려오는데, 큰 보살이 여섯 이빨의 흰 코끼리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보살을 호위하여 바로 스님의 앞으로 다가왔다. 스님은 광명을 바라보고 예배하였다. 한없이 기쁘고 즐겁더니 경전의 의심나는 구절과 빠뜨린 문장도 저절로 다 풀렸다.58) 다른 사람들은 다만 기이한 향내가 나는 것을 알 뿐이었고, 그 광경은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마침내 사라졌다.『홍찬법화전』 권7제16단1. 어린 비구니가 『법화경』을 외우다양梁나라 대학 박사大學博士59) 강필江泌의 딸은 어려서 출가하니, 그 이름이 승법僧法이다. 그녀는 8세, 9세 때 가끔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법화경』 한 권을 조금도 막힘이 없이 외웠다.그래서 양주 지방의 도인이나 속인들은 모두 신이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하였는데, 비장방費長房60)은 말했다.“경과 논에 징험해 보면 그 이치가 분명하다. 이것은 전생으로부터 배워 온 것일 뿐, 신이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지난 생의 일을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 어찌 신의 공이라 하겠는가?”『홍찬법화전』 권2 -
006_0567_c_01L誦法華經。每精誠懇到。中表潔淨。焚香
006_0567_c_02L禮佛。以求證驗。初有大虵及雉鹿。俱
006_0567_c_03L來立聽。誦訖乃散。中時山神將食。自
006_0567_c_04L來供養。後忽見光明。從東山而下。有
006_0567_c_05L大菩薩。乘六牙白象。大衆圍繞。直至
006_0567_c_06L其前。僧望光拜。慶悅深至。疑義闕文。
006_0567_c_07L皆爲敷釋。餘衆但聞異香。經久方隱。
006_0567_c_08L出弘賛第七。
006_0567_c_09L
006_0567_c_10L第十六段。
006_0567_c_11L幼尼誦出眞詮。侍女冥通梵部。舟人護涉
006_0567_c_12L天樂來迎。深敬辯山人之精書。堪歌崔牧伯
006_0567_c_13L之慶會。光明出於口角。菡萏生於舌根。寶
006_0567_c_14L岩徒之或講或疑。蓮華院之若讀若說。珎禽
006_0567_c_15L現瑞。亡妹告徵。誦舌長存。燒經不改。經無
006_0567_c_16L一字。瓜生五花。
006_0567_c_17L幼尼誦出眞詮
006_0567_c_18L梁大學8)愽 [183] 士。江泌女卷下第二一張 少
006_0567_c_19L而出家。名僧法。年八九歲。有時靜坐
006_0567_c_20L閉目。誦出一卷法華經。楊州道俗。咸
006_0567_c_21L稱神授。費長房云。驗於經論。斯理皎
006_0567_c_22L然。是宿習來。非9)關 [184] 神授。即是次生事
006_0567_c_23L憶而不忘。其神功乎。出弘賛第二。
006_0567_c_24L「斫」作「所」{甲}{乙}。「曺」作「喜」{乙}。「廿」作
006_0567_c_25L「十」{甲}{乙}。「多」作「陀」{乙}。「崇」疑「祟」{編}
006_0567_c_26L次同。「顯」作「現」{乙}。「去」作「至」{乙}。
006_0567_c_27L「愽」作「博」{乙}。「關」作「開」{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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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8_a_01L2. 시녀가 저승에서 범어 경전을 배워 오다좌숙기左肅機 최의기崔義起에게 돌궐突厥인 시녀가 한 사람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글을 알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당 고종 인덕麟德 연중(664~666)에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밤이 지나서 한 범승梵僧이 나타나자 돌궐 시녀는 스님에게 구해 달라고 애걸하였다. 스님이 석장으로 그녀의 머리를 두드리며 『법화경』 한 부를 가르쳐 주며 외우게 하였는데, 말은 범어梵語였다. 저녁때가 되어 그녀가 깨어나서 범승 만난 일을 이야기하였더니, 집안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주인 의기에게 보고하였다.의기가 시험 삼아 『법화경』을 외워 보라고 하였다. 그녀는 물 흐르듯이 경을 외워 나갔다. 의기는 곧 범승 한 사람을 청하여 그녀가 외우는 경을 들어 보게 했다. 다 듣고 난 범승은, “처음부터 끝까지 발음이 정확하였고, 한 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뒤에 황제가 이 말을 듣고, “저승이 이러한데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고, 당시의 조정 신하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홍찬법화전』 권83. 뱃사람이 보호해 건네주다지총智聰 스님은 양주楊州 백마사白馬寺에 머물러 있다가 강을 건너 안락사安樂寺에서 주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수隋나라가 망하여 돌아갈 생각을 하였으나 강을 건너갈 방법이 없어서 강가 갈대밭 속에 숨어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이레가 지났어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고, 늘 네 마리의 호랑이가 스님의 주위를 지키며 맴돌고 있었다.그러자 갑자기 한 노인이 겨드랑이에 조그마한 배를 끼고 와서 말하였다.“스님께서 강을 건너고자 하시거든 이 배에 타십시오.”스님이 배에 오르려 하니, 네 마리의 호랑이가 와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스님은, “위태로움을 함께 지켜 주었으니 어려움을 벗어나는 것도 바로 지금이다.” 하고서 네 마리 호랑이와 함께 배에 올랐다. 강을 수월하게 건너 남쪽 기슭에 내리자, 배와 노인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스님은 네 마리의 호랑이를 거느리고 서하탑西霞塔 서쪽에 이르러 경행經行ㆍ선禪ㆍ송경誦經 등으로 교화하여 무리 80여 명이 귀의하게 되었다. 만약 나쁜 일이 있을 때면 호랑이가 와서 크게 울부짖어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정관貞觀(627~649) 연간에 나이 99세에 이르러 부처님 오신 날, 향로에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聖像) 두루 예배한 다음 선방으로 들어가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속고승전』, 『홍찬법화전』 권8, 『현응록』4. 하늘 음악을 울리며 와서 맞이하다 -
006_0568_a_01L侍女冥通梵部
006_0568_a_02L1)左 [185] 肅機崔義起。有一突厥侍女。素不
006_0568_a_03L識文。於麟德中病死。經夜見一梵僧。突
006_0568_a_04L厥求哀。僧以錫扣其頂。敎誦法華經一
006_0568_a_05L部。言作梵音。比晩乃蘇。自陳其事。家
006_0568_a_06L人不信。告義起。起試之突厥。便誦經
006_0568_a_07L如流。即請西域梵僧來聽。侍女所誦
006_0568_a_08L之經。自首至尾。言音通正。一字不遺。
006_0568_a_09L時以奏聞。上云冥道如此。豈得不信。
006_0568_a_10L當時朝臣。無不知者。出弘賛第八。
006_0568_a_11L舟人護渉
006_0568_a_12L僧智聦。住楊州白馬寺。尋渡江。住安
006_0568_a_13L樂寺。値隋國崩。思歸無計。隱江荻中。
006_0568_a_14L誦法華經。七日不飢。恒有四虎馴繞。
006_0568_a_15L忽見一老翁。腋下挾小舟來曰。師欲
006_0568_a_16L渡江。即上船。其四虎見而淚出。聦曰
006_0568_a_17L持危放難。正在今日。即同四虎。利渉
006_0568_a_18L南岸。船及老人。忽然不現。聦領四虎。
006_0568_a_19L止西霞塔西。經行禪誦。安衆八十餘人。
006_0568_a_20L若有凶事。虎來大吼。由此驚覺。至貞
006_0568_a_21L觀中。年九十九。於佛降生日。熏鑢徧
006_0568_a_22L禮聖像。還歸靜室。端坐而化。續高僧傳
006_0568_a_23L出弘賛第八及現應錄。
006_0568_a_24L天樂來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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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8_b_01L지우智友 스님은 장주蔣州 사람이다. 보운사普雲寺에 있으면서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하루도 그만두는 일이 없었고, 독송할 때마다 반드시 향로를 잡고 눈을 감았다. 이와 같이 향연이 끊이지 않기를 무릇 42년간 하여 앞뒤로 모두 합하면 『법화경』을 5만 번이나 독송하였는데, 사용하는 조병澡甁61)에는 언제나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정관 8년(634)에 아무런 병도 없이 앉아서 입적하였다. 입적하는 날에는 하늘의 음악이 울리며 와서 방안 공중에서 한동안 요란하게 울려 스님을 맞이하고 잠시 조용하더니, 또 기이한 향내가 공중에서 일어나 집 안팎에 가득하였다가 한참 만에 없어졌다. 제자와 신도들 천여 명이 스님의 유해를 동남쪽으로 옮겨다가 시신을 나무 아래에 좌선 자세로 안치하였는데, 밤이 지나고 보았더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홍찬법화전』 권85. 홍변 스님이 정성 들여 쓴 『법화경』을 깊이 공경하다스님 홍변洪辯62)은 순창淳昌 조씨趙氏의 아들이다.출가하여 조계사曹溪寺에서 승과에 합격하였는데, 거삼巨滲의 산중 암자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정진하고 지계를 청정히 하면서 한 글자에 한 번 절하여 『법화경』 한 부를 베껴 쓴 다음 극진히 장엄하고 아침저녁으로 예배 공양하였다.이때 일본(倭國)의 한 스님이 찾아와 그 『법화경』을 보고 간절히 달라고 하므로 홍변 스님은 내어 주면서 『법화경』을 가지고 가서 널리 유통시키도록 당부하였다. 일본 스님이 머리에 소중히 이고서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배 안에서 『법화경』이 찬란한 빛을 내었다. 본국으로 돌아가자 숭복사崇福寺 도량에 안치하고 모든 스님들이 예배 공경하자 사리가 나오는 감응이 있었다.1년 후에 도인 법행法行이 사신을 따라 일본에 갔다가 숭복사에 있는 그 『법화경』을 직접 찾아보고 왔다. 곧 원元나라 세조 중통中統 원년 경신庚申(1260, 고려 원종 1년)이었다.『해동전홍록』6. 최 목사가 미친 아이의 노래를 알아듣고 경찬법회를 베풀다소경小卿 최린崔63)이 나주 목사羅州牧使가 되어 부임해 가는데, 먼저 송도(개성) 사람 양혁추楊赫推를 나주로 내려 보내면서 말하기를, “정성을 다해 큰 재회齋會64)를 베풀고 대승법을 공양하면 그 공덕은 멀리에까지 이를 것이다.”라고 하면서 준비를 명령하고, 임지에 도착하자 원묘圓妙65) 스님을 청하여 -
006_0568_b_01L釋智友。蔣州人。住普雲寺。誦法華經。
006_0568_b_02L略無弃日。每誦經之時。必執爐2)閉 [186] 目。
006_0568_b_03L香煙不絶。凡經四十二年。前後摠計。
006_0568_b_04L將五萬徧。所用澡瓶。卷下第二二張 居
006_0568_b_05L常溢滿。3)眞 [187] 觀八年。無疾坐卒。將終之
006_0568_b_06L日。有天樂來迎於房戶。空中繁會良
006_0568_b_07L久。又有香氣。惹空充塞院宇。久之而
006_0568_b_08L滅。弟子及道俗。千有餘人。4)迁樞 [188] 于東
006_0568_b_09L南。坐屍樹下。經宿就視。莫知所在。出
006_0568_b_10L弘賛第八。
006_0568_b_11L深敬辯山人之精書
006_0568_b_12L山人洪辯。淳昌趙氏子。出家于曹溪中
006_0568_b_13L高科。往入巨滲山菴。精進持戒。一字一
006_0568_b_14L拜。書法華經一部。極盡莊嚴。朝夕禮
006_0568_b_15L拜供養。適有倭國僧。來見懇求之。乃
006_0568_b_16L付囑流通。其僧頂戴。賫歸本國。船中
006_0568_b_17L放光。到已安崇福寺道場中。衆僧禮敬。
006_0568_b_18L感得舍利。後一年道人法行隨使。舸入
006_0568_b_19L彼國。親見而來。即中統元年庚申也。
006_0568_b_20L出海東傳弘錄。
006_0568_b_21L堪歌崔牧伯5)之 [189] 慶會
006_0568_b_22L少卿崔。將赴官羅州。使宋人楊赫推
006_0568_b_23L命曰。冝精設大會。供養大乘。則必當
006_0568_b_24L遠到。公及下車。請圓妙。結夏安居。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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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8_c_01L운곡사雲谷寺에 여름 안거를 결제하게 하고 부하들에게 명하여 주변을 지키게 하였다.최린이 관아官衙로 들어가니, 한 나이 어린 여자 종이 갑자기 미쳐 버렸다. 갖가지 방도로 다스려 보았더니, 여자 종이 말하였다.“저는 미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유모의 남편 아무개입니다. 죽은 지 여러 해가 되어 저승에 있으나 아직 좋은 곳으로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행히 정성을 다해 크게 법석을 베풀기에 한두 가지 불법의 깊은 뜻을 물어보고자 했는데, 지키는 신중들이 꾸짖어 들여보내지 않아서 문밖에서 방황하기를 며칠이 지났습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먼저 죽은 친척 아무개 아무개도 법을 듣고자 저를 따라왔는데, 너무 목이 말라서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먼저 마실 것을 주시고, 또 우리들이 운곡사에 가거든 이름을 불러 도량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주시면 해탈을 얻게 될 것입니다.”최린이 듣고 몹시 괴이하게 여겨 손님을 다 돌려보내고 운곡사로 가서 하나하나 그 이름을 불러 자리를 마련해 주어 법을 듣게 했다.그는 이때부터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이듬해 가을 최린은 소환되어 우승선右承宣(임금의 명령을 출납하는 직책)에 승진하고, 몇 해 안 가서 정승에 올라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중서문하성 정이품 벼슬)가 되어 신하로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가 죽었다.『해동전홍록』7. 입에서 광명이 나오다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한 스님(亡名)이 상주尙州의 어느 조그마한 절에서 항상 음양陰陽과 점복占卜으로 근방 동네에 드나드니, 모두들 그를 맞아서 길흉화복을 물어보았고, 이로써 옷과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루는 관청에서 법석을 베풀어 그 주州의 여러 절에서 부처님께 예불을 담당하는 스님(典香)이 모두 모였다.이름 없는 스님(亡名)도 비록 참가하기는 하였지만 한갓 음양승이기에 대중의 말석에 앉히고 모두들 그를 하찮게 홀대하였다. 그런데 한밤중이 되어 등불과 촛불이 다 꺼지고 캄캄한 가운데 모두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등불 같은 밝은 광명이 비쳐 왔다. -
006_0568_c_01L雲谷寺。及指揮使。行色近境。公入官
006_0568_c_02L時。小婢忽得顚狂。種種對治。婢即語
006_0568_c_03L曰。我非顚狂。我是乳母之夫某也。物
006_0568_c_04L故許多年冥遊。未得超升。今幸竭誠張
006_0568_c_05L皇梵席。欲問一二大旨。然守護神將。
006_0568_c_06L呵禁不入。彷徨門外。數日矣。非但某耳。
006_0568_c_07L先亡親屬某與某。亦欲聞法。隨我來耳。
006_0568_c_08L然飢渴害志。請先6) [190] 酌。又令吾輩。至
006_0568_c_09L雲谷寺。呼名許入於道場。冀得度脫。
006_0568_c_10L公聞之恠甚。送客。已到寺。一一如其
006_0568_c_11L呼名。設席使之聞法。公自是常讀蓮經。
006_0568_c_12L翌年秋。召爲右承宣。卷下第二三張 不
006_0568_c_13L數年。拜相至門下平章事。7)位 [191] 極人8)巨 [192]
006_0568_c_14L而卒 出海東傳弘錄。
006_0568_c_15L光明出於口角
006_0568_c_16L僧亡名。寓尙州小寺。常以陰陽占卜。
006_0568_c_17L出入里閭。男女皆迎之。問禍福。以此
006_0568_c_18L資衣食。一日官廳設法9)席。 [193] 州內諸寺
006_0568_c_19L典香者。咸會焉。10)王 [194] 名雖預。只是陰陽
006_0568_c_20L僧居衆末。皆忽之如草。比及夜半。燈
006_0568_c_21L燭已息。昏昏假寐中。忽見光明如燈火。
006_0568_c_22L「左」作「尤」{乙}。「閉」作「閇」{乙}。「眞」作
006_0568_c_23L「貞」{乙}。「迁樞」作「迂」{乙}。「之」無有{乙}。
006_0568_c_24L「酹」作「酧」{乙}。「位」作「立」{乙}。「巨」作
006_0568_c_25L「臣」{甲}ㆍ作「品」{乙}。「席」作「廗」{乙}。「王」
006_0568_c_26L作「亡」{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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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9_a_01L모두들 깜짝 놀라 일어나 무슨 빛인가 살펴보니, 이름 없는 스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모두가 그 까닭을 물으니, “나는 음양 점복의 술수를 하기 때문에 도리어 악업을 부끄러워하여 속으로 참회하며, 다만 『법화경』 독송을 일과로 삼아 온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여러 스님들이 모두 그의 수행에 탄복하고 공경하게 되었다.『해동전홍록』8. 혀에서 연꽃 봉오리가 피어나다상주尙州의 호장戶長 김의균金義鈞은 항상 『법화경』 독송을 즐겨 하였는데, 대중들을 나이 든 이와 젊은이 두 반으로 나누었다. 매월 육재일六齋日66)에 나이 든 이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법화경』을 학습하고 독송하게 하고, 경을 마치고 나면 대개 다과를 내어 위로하고, 한편으로 젊은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마치고 나면 술을 권하였다.이렇게 해서 발심하여 술을 마시지 않게 된 젊은이는 나이 든 사람들의 반으로 옮겨 넣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무개와 아무개는 이미 술 없는 법화(無酒法華)의 무리에 이르렀고, 아무개와 아무개는 아직도 술이 있는 법화(有酒法華)의 무리에 들어 있다.”라고 하였다.이처럼 김의균은 근기에 따라 사람들의 발심을 돋우어 주었는데, 죽은 뒤에 산기슭에 장사지냈더니, 무덤 위에 연꽃이 피었다.『해동전홍록』9. 보암사의 신도들이 혹은 강설하고 혹은 질문을 주고받다송경松京(개성의 옛 이름) 선기문宣祺門 오른편으로 고개가 있는데, 잇따라 뻗어내려 보정문保定門에 이르는 산을 덕산德山이라고 한다. 산의 서북쪽 귀퉁이에 보암사寶岩寺라는 절이 있는데, 누각에 오르면 앞이 훤히 트이어 앉아서 멀리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볼 수 있다.이 절의 동북쪽 마을에 벼슬자리에 있거나 또는 물러난 재상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추밀원 임천미林千美, 상서 진세의秦世儀, 대경 양동재梁桐材, 그리고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난 사람들과 할 일이 없는 한가한 사람 등 40여 명이 함께 법화사法華社를 조직하여 다달이 육재일에 각기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한 사람이 다른 자리에 앉아 경의 구조를 설파하고 뜻과 이치를 해설하였다. 다른 여러 노장들은 명심해 듣고, 혹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계속하여 사람마다 더욱더 열심히 해설하고자 하였다. -
006_0569_a_01L衆皆驚起。試尋之。乃從亡名口中出也。
006_0569_a_02L因委問其由。答曰予1)失 [195] 身術數。反愧
006_0569_a_03L黑業。內自懺悔。但誦課蓮經有年矣。
006_0569_a_04L諸僧皆歎。伏修敬焉。出海東傳弘錄。
006_0569_a_05L菡萏生於舌根
006_0569_a_06L尙州戶長金義鈞。常樂讀法華經。募勸
006_0569_a_07L耆老少壯。道俗分爲二徒。每月六齋日。
006_0569_a_08L召耆老于私2)第。 [196] 習誦3)蓮 [197] 經。經畢略以
006_0569_a_09L茶菓慰之。及集少壯。則幷寘酒侑之。
006_0569_a_10L自此少壯之發心不飮者。4)移 [198] 入耆老
006_0569_a_11L徒。時人戱曰。某與某已入無酒法華徒。
006_0569_a_12L某與某猶在有酒法華徒。其隨機激發
006_0569_a_13L如此。比及無常。葬於山麓。蓮華發於
006_0569_a_14L塚上。出海東傳弘錄。
006_0569_a_15L寶岩徒之或講或疑
006_0569_a_16L松京宣5)祺 [199] 門右臂有嶺。連亘垂及保定
006_0569_a_17L門者曰德山。山之乾維。有一蘭若。曰
006_0569_a_18L寶岩。樓閣開豁。坐見山川縹緲之外。東
006_0569_a_19L北里致仕卿相。若林樞密千6)美。 [200] 秦尙
006_0569_a_20L書世儀。梁大卿7)棟 [201] 材。與諸退老。并散
006_0569_a_21L逸四十餘人。同結法華社。每月六齋日。
006_0569_a_22L各持科本蓮經。差一人別座。點破科端。
006_0569_a_23L銷釋義理。諸者老證聽。卷下第二四張
006_0569_a_24L或設疑問。如是次第輪環相續。益欲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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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9_b_01L그리고 15일이 되면 정성을 들여 좋은 음식을 장만해서 아미타여래께 함께 공양하고, 전 대중이 재를 베풀어 밤을 세워 정진하여 다 같이 정토에 가기를 빌었다. 그러므로 죽을 때에 이르러서는 뜻과 같이 자재하게 되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해동전홍록』10. 연화원에서 읽고 설하다송경(개성) 낙타교駱駝橋 동쪽 마을에 연화원蓮華院이라는 절이 있었는데, 성남리城南里 청신사들이 법화사法華社를 조직하고 매월 육재일마다 모여 『법화경』을 읽기도 하고 설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법화경』에 의지하여 정토에 회향하고자 하는 것이니, 다분히 보암사寶岩寺 결사와 서로 낫고 못함이 없었다.11. 진기한 새가 상서를 나타내다거사 최표崔彪67)는 탐진耽津(지금의 전남 강진) 사람이다. 원묘 스님이 보월산寶月山에 절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아우 최홍崔弘과 함께 만덕산萬德山에 세우기를 청하여 각각 자리를 잡아 세웠는데 매우 웅장하였다.최표는 평생에 성난 얼굴을 한 적이 없었다. 그의 아들이 이웃 고을에 갔다가 큰 벌레에 물려 죽었다. 최표는 종이와 먹을 마련하여 산승山人 일여一如68)를 청해다가 『법화경』을 베껴 쓰게 하였는데, 갑자기 푸른 새가 와서 경을 베끼는 방으로 들어갔다. 모습이 매우 여유로웠는데, 이렇게 하기를 두세 번 하면서 경을 쓰는 것이 끝날 때까지 반복하였다.최표의 꿈에 죽은 아들이 나타나 말하기를, “경을 베껴 써 주신 힘으로 인해 아주 착하고 잘생긴 남자의 몸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였다.12. 죽은 누이가 징험을 알려 주다우시금右侍禁이란 여인은 김식金軾69)의 둘째 딸인데, 그녀의 남동생인 도인道人 지허之虛는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다.그런데 어느 날 여인이 갑자기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그녀는 꿈에 지허에게 의탁하여 말하였다.“네가 나를 위해 법화의 법석을 베풀어 주어 극락으로 가는 것을 도와다오!”이때 지허는 혈구사穴口寺에 있었는데 꿈을 꾸고는 곧 집으로 돌아와 집안을 깨끗이 소제하고 -
006_0569_b_01L人之盡能解說也。至十五日。則精設妙
006_0569_b_02L饌。供養彌陁。合院設齋。過夜精勤。同
006_0569_b_03L廻向淨土。故至臨終之際。如意自在者
006_0569_b_04L不絶焉。出海東傳弘錄。
006_0569_b_05L蓮華院之若讀若說
006_0569_b_06L松京駱8)駞 [202] 橋東巷。有一招提。曰蓮華
006_0569_b_07L院。凡城南里。淸信士輩。結法華社。每
006_0569_b_08L月六齋日。同會9)干 [203] 此。若讀若說。其所
006_0569_b_09L以憑仗妙乘。廻向淨土者。多與寶岩社。
006_0569_b_10L相爲甲乙。
006_0569_b_11L珍禽顯瑞
006_0569_b_12L居士崔彪。耽津人也。聞圓妙結於寶月
006_0569_b_13L山。與堂弟弘請。剏於萬德山。各占構
006_0569_b_14L堂宇。甚有力焉。平生未甞現嗔怒相。
006_0569_b_15L其子往鄰邑。忽爲大虫所害。彪爲10)辦 [204]
006_0569_b_16L紙墨。請山人一如。書法華經。忽感靑
006_0569_b_17L鳥來入經室。貌甚閑暇。如是者。至于
006_0569_b_18L再三。洎經將畢。夢亡子告曰。因寫經
006_0569_b_19L力。得爲純善美丈11)天 [205] 身。
006_0569_b_20L12)三 [206] 妹告徵
006_0569_b_21L女右侍禁。金軾之第二女也。其弟道人
006_0569_b_22L之虛。常誦蓮經。女忽遘疾命終。托之
006_0569_b_23L虛告曰。請爲我設法華勝筵。用助超升。
006_0569_b_24L時之虛住穴13)口 [207] 寺。得得來家。即酒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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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69_c_01L7일을 기약하고 『법화경』을 독송하는 큰스님들을 청해다가 밤낮(六時70) )으로 정진하였다.마지막 날 김씨가 또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잠깐 경을 들은 힘으로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었다.”뒤에 지허는 절로 돌아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제17단1. 『법화경』을 독송한 혀가 오래도록 그대로 남아 있다진주秦州(중국 섬서성에 있음)의 권씨權氏라는 여인은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그녀가 죽고 10년이 지난 뒤에 그녀의 가족들이 개장하려고 무덤을 파 보았더니, 뼈와 살은 다 없어졌고, 오직 혀만이 생시와 같았다.『홍찬법화전』 권82. 경전이 불에 탔으나 변하지 않다정관貞觀 5년(631) 융주隆州 읍서邑西의 현령縣令 호원궤狐元軌는 불법을 독실하게 믿었다. 『법화경』ㆍ『금강경』ㆍ『열반경』 등의 경전을 베껴 썼는데 잘못 쓸까 두려워하여 토원 선사土杬禪師의 교정을 청하기로 했다.경이 완성되자 그는 곧 경을 기주岐州(중국 섬서성에 있음)에 있는 시골 농장으로 가지고 갔다.하루는 볼일이 있어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 농장이 이웃에서 난 불에 옮겨 붙어 한꺼번에 모든 것이 다 타 버렸다. 그는 땅을 치며 한탄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사람을 시켜서 잿더미를 헤쳐 보도록 하였더니 금동金銅의 축軸이 드러나고 여러 경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종이 빛깔도 오히려 변하지 않았는데, 다만 『금강반야경』의 첫머리 제목만이 검게 타 있었다.그는 그 원인을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를, “처음 베껴 쓸 때 한 관원이 글씨를 잘 썼는데 갈 길이 바빠서 미처 몸을 청결하게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제목을 썼더니 그래서 제목이 타 버렸구나!”라고 하였다.『홍찬법화전』 권10, 『현응록』 -
006_0569_c_01L私14)第。 [208] 約一七日。請持經開士。六時精
006_0569_c_02L進。至罷席日。金氏又現夢曰。暫聞經
006_0569_c_03L力。得生勝處。後虛到社。委說如此。
006_0569_c_04L
006_0569_c_05L第十七段
006_0569_c_06L誦舌長存
006_0569_c_07L秦州權氏女。常誦法華。死後十餘年。
006_0569_c_08L其家改葬。見其骨肉略盡。唯舌如生。
006_0569_c_09L出弘賛第八。
006_0569_c_10L燒經不改
006_0569_c_11L貞觀五年。隆州邑西縣令狐元軌。信重
006_0569_c_12L佛法。卷下第二五張 寫法華金剛涅槃
006_0569_c_13L等經。恐致訛誤。遂憑土15)坃 [25] 禪師。撿挍
006_0569_c_14L寫已。即帶往16)歧 [209] 州莊所。一日他行。其
006_0569_c_15L莊爲外火延燒。一時蕩盡。元軌廻嗟歎
006_0569_c_16L莫窮。因令人撥灰。*耴金銅軸頭。忽見
006_0569_c_17L諸經。完然17)潢 [210] 色。猶不改。但金剛般若。
006_0569_c_18L首題焦黑。自言所因。乃初寫時。有官
006_0569_c_19L人能書。其人行急。不獲潔淨。直爾立
006_0569_c_20L題。由是被焚。出弘賛第十及現應錄。
006_0569_c_21L「失」作「夫」{乙}。「第」作「弟」{乙}。「蓮」下有
006_0569_c_22L「華」{乙}。「移」作「壯」{乙}。「祺」作「棋」{甲}。
006_0569_c_23L「美」作「表」{乙}。「棟」作「梀」{甲}。「駞」作
006_0569_c_24L「馳」{乙}。「干」作「于」{乙}。「辦」作「辨」{乙}。
006_0569_c_25L「天」作「夫」{甲}{乙}。「三」作「亡」{乙}。「口」
006_0569_c_26L作「古」{乙}。「第」作「弟」{乙}。「坃」作「坑」{乙}。
006_0569_c_27L「歧」作「岐」{乙}。「潢」作「黃」{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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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70_a_01L3. 경전에 한 글자도 보이지 않다당나라 무덕武德(618~626) 때 법신法信이라는 비구니71)가 『법화경』에 통달하였는데 정성을 다해서 『법화경』 한 부를 베껴 쓸 생각을 하였다.글씨 잘 쓰는 사람을 찾아서 보수를 갑절로 주고 특별히 집간을 마련하여 거처하며 베껴 쓰게 하였는데, 언제나 일어나면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서야 책상에 앉게 하였다. 또 벽에 구멍을 뚫어 밖으로 통하게 하고, 대나무 토막을 꽂아서 서생이 숨을 내쉴 때 이 대나무 토막을 입에 물고 숨을 밖으로 내쉬게 하여 외부와 연락을 끊고 일심으로 『법화경』을 쓰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법화경』 전 7권을 베끼는 데 8년이 걸렸다. 경이 완성되자 재를 베풀고 축하하는 예참을 한 뒤, 깨끗한 도량을 세워서 모시고, 꽃과 향으로 융숭히 공양하였다.정관 13년(649, 진덕여왕 8년), 용문사龍門寺 스님 법단法端은 항상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이 법신 스님의 경이 정성이 지극한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 청하였다. 법신 스님이 끝내 거절하지 못하여 법단 스님께로 보냈다. 그리하여 법을 강설하려고 경전을 펴 보았더니, 거기에는 누런 종이일 뿐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법단 스님은 부끄러워하면서 곧 경을 돌려보냈다.법신 스님은 무언가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곧 향탕香湯으로 경함을 씻고, 머리에 이고서 불상 주위를 돌며 예경하고 정진하기를 무릇 7일 밤낮을 행한 다음 경함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문자가 다시 전과 똑같이 쓰여 있었다.『법원주림전』, 『홍찬법화전』 권104. 손톱에 다섯 송이 꽃이 피다고우현高郵縣(중국 강소성에 있었음)에 한 비구니가 있었는데, 뜻과 절조가 서릿발처럼 깨끗하고 말과 행동이 얼음과 같이 맑았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하루는 첫째 권을 외우니, 오른손 손톱 위에 꽃이 한 송이 피어났다. 모양이 비단실 같았다. 차례대로 다섯 권을 외우니, 다섯 손톱 위에 다 꽃이 한 송이씩 나오고, 6권, 7권까지 다 독송하니, 손바닥에 두 송이 꽃이 났는데, 손톱 위에 난 것보다 월등히 컸다.그 소문이 대궐까지 전해져서 진陳나라 무제가 친히 불러 그것을 보았다. 이리하여 이 고을 사람들은 그 비구니를 ‘화수니花手尼’라고 불렀다.『영서집』 -
006_0570_a_01L經無一字
006_0570_a_02L唐武德中。有尼法信。通持法華經。仍
006_0570_a_03L欲精寫一部。遂訪書人。倍酬其直。別
006_0570_a_04L置堂戶令書之。每一起一浴。更着淨
006_0570_a_05L衣。仍於案上。1)壁 [211] 通外。加一竹筒。
006_0570_a_06L書生凡出息。2)輕 [212] 含竹筒。吐息于外。寫
006_0570_a_07L經七卷。八年乃終。設齋慶懺。立淨道場。
006_0570_a_08L香花崇奉。至貞觀十三年。有龍門寺僧
006_0570_a_09L法端。常講是經。以此尼經本精至。遣
006_0570_a_10L人往請。固辭不已而自送去。及講法開
006_0570_a_11L讀。唯見黃紙。了無一字。端慚懼即還
006_0570_a_12L之。尼知有所犯。即以香湯。灌滌其凾。
006_0570_a_13L頂戴遶佛行道。凡七晝夜。及開視之。
006_0570_a_14L還復如舊。本出法苑珠林傳弘賛第十。
006_0570_a_15L瓜生五花
006_0570_a_16L尼高郵縣人。志節霜淨。言行氷淸。誦
006_0570_a_17L法華經。不捨晝夜。初誦一卷。忽於右
006_0570_a_18L手瓜上生一花。狀如綾絲。次至五卷。
006_0570_a_19L五指瓜上。皆生一花。誦徹六七。掌併二
006_0570_a_20L花。大過瓜上。由是聲傳闕下。陳武皇
006_0570_a_21L勑入看之。從此郡人。呼爲花手尼。本
006_0570_a_22L出靈瑞集。
006_0570_a_23L法華靈驗傳卷3)下。
- 1)츤세齔歲 : 배냇니가 빠지고 간니가 날 나이를 일컫는다.
- 2)총지惣持 비구니 : 양 무제의 딸이면서 보리달마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전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제자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 3)유정천有頂天 : 유형세계(有)의 가장 꼭대기(頂)이므로 색계 제4천 색구경천色究竟天을 말한다. 또는 삼계의 최정상으로서 무색계無色界의 제4천인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의 별명이기도 하다.
- 4)연좌宴坐 : 연좌燕坐라고도 하며,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머물러 선정에 드는 것으로 좌선坐禪을 말한다.
- 5)「법사공덕품」 제19에 나오는 구절이다.(T9, 48b)
- 6)법화당法華堂 : 법화삼매당法華三昧堂을 줄인 말이며, 법화삼매를 수행하는 곳이다.
- 7)단월檀越 : 단가檀家라고도 하며, 육바라밀의 한 덕목인 보시를 행하는 시주施主를 말한다. 여기서는 신도信徒를 가리킨다.
- 8)고구려 : 원문에 ‘高麗’라고 되어 있으나, 의봉儀鳳 연간(676〜679)은 고려 건국(918) 이전이므로 ‘고구려’로 보아야 한다.
- 9)『법화경』 권6 「법사공덕품」 제19의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법화경』을 받아 지니거나 해설하거나 베껴 쓴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8백 가지 눈의 공덕과 1천2백 가지 귀의 공덕과 8백 가지 코의 공덕과 1천2백 가지 혀의 공덕과 8백 가지 몸의 공덕과 1천2백 가지 마음의 공덕을 얻으리라. 이 공덕으로 육근을 장엄하여 모두 청정하리라.”(T9, 47c)
- 10)법중法衆 : 불법佛法을 따르는 출가 대중(僧衆)을 일컫는다.
- 11)천승재千僧齋 : 천승공양千僧供養 또는 천승회千僧會라고도 한다. 1천 명의 스님을 청하여 공양을 베푸는 것으로, 중국 남북조시대부터 성행하였다.
- 12)지초芝草 : 영지초靈芝草의 다른 이름. 버섯의 한 종류로, 예부터 상서로운 풀로 여겼다.
- 13)정문㫌門 : 충忠ㆍ효孝ㆍ열烈이 뛰어난 사람들을 나라에서 표창하여 그 마을에 세우는 문을 가리킨다.
- 14)우문화급宇文化及(583〜619) : 수隋나라 때 고구려를 침공해 온 사령관 우문술의 장남이자 우문지급宇文智及과 우문혜급宇文惠及의 형이며, 우문사급宇文士及의 이복형이다.
- 15)지엄智儼 : 화엄종 2조로 불리는 지엄(602~668)과 비슷한 연대이기는 하나, 행적이 전혀 다르므로 같은 시대의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듯하다. 화엄종의 지엄은 천수天水(甘肅) 사람으로, 속성은 조씨趙氏이고, 12세에 두순杜順을 따라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서 출가하였다.
- 16)환향還香 스님 : 원문에 ‘寺僧還香’이라고 되어 있는데, ‘환향 스님’은 절에서 향 피우는 소임을 맡은 분인 듯하다.
- 17)시문時文 : 『홍찬법화전』 권3(T51, 19c)에는 ‘時父’로 되어 있다.
- 18)아버지는 명제明帝 : 양梁나라나 당나라에는 명제가 없다. 명제는 후한의 2대 황제(28〜75), 삼국시대 위魏의 2대 황제(205〜239), 동진東晉의 제2대 왕(재위 323〜325), 남조의 송宋나라 제6대 황제(439〜472) 등이다.
- 19)『법화의기法華義記』 10권 : 여기 언급된 『법화의기』는 기존에 알려진 법화 주석서는 아닌 듯하다. 법화 주석서로는 광택 법운의 『법화의기』 8권, 천태 지의의 『법화현의』10권, 길장의 『법화현론』 10권, 규기의 『법화현찬』 10권 등이 유명하다.
- 20)사리闍梨 : 아사리阿闍梨의 준말이며, 제자의 품행을 가르쳐 그 규범規範이 되는 승도僧徒의 스승을 말한다.
- 21)이 영험담은 「약왕보살본사품」 제23에서 “만일 여인으로서 이 「약왕보살본사품」을 잘 받아 지니는 자는 여인의 몸을 다하여 후에 다시는 (여인의 몸을) 받지 않으리라.”(T9, 54b)라고 한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 22)해당 경문은 「약초유품」 제5의 게송 부분이다. “우렛소리 멀리 울려 중생들 기쁘게 하고, 햇볕 가려 주어 대지가 시원해지며, 뭉게구름 낮게 드리워 손끝에 닿을 듯하네.(雷聲遠震。 令衆悅豫。 日光恰蔽。 地上淸凉。 靉靆垂布。 如可承攬。)”(T9, 19c)
- 23)관정灌頂(561~632) : 자가 법운法雲이며, 임해臨海 장안章安 출신이다. 7세 때 출가하여 20세 때 구족계를 받았다. 지덕至德 원년(583) 천태산으로 가 지자 대사智者大師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스승의 강설을 기록하여 이른바 천태삼대부를 편찬하였으며, 천태 5조로 추앙받고 있다.
- 24)정혜定慧 : 지관止觀의 뜻이다. 지止는 사마타의 번역으로서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이며, 관觀은 위빠사나의 번역으로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바라보는 수행이다. 사마타를 행하여 번뇌를 조복하여 선정(定)을 얻고, 위빠사나를 행하여 미혹을 타파하여 지혜(慧)를 얻는다. 천태 지의는 ‘지관’으로써 불교의 수행 체계를 확립하였다.
- 25)「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 경은 염부제 사람들에게는 병에 좋은 약이 된다. 어떤 사람이 병이 들었을 때 이 경을 들으면 병이 곧 소멸되며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느니라.(此經則爲閻浮提人。 病之良藥。 若人有病。 得聞是經。 病即消滅。 不老不死。)”(T9, 54c)
- 26)음양승陰陽僧 : 역易의 사상을 잘 알아 음양陰陽에 밝은 스님.
- 27)치소緇素 : 스님과 재가자들이 입는 옷의 색깔로서, 승속僧俗을 일컫는 말이다.
- 28)대풍大風 : 나병, 즉 문둥병, 여풍癘風을 말한다. 「장자절론長刺節論」에서 “골절骨節이 무겁고 수염과 눈썹이 빠지는 것을 대풍大風이라 한다.(骨節重。 鬚眉墮。 名曰大風。)”라고 하였다.
- 29)염부제閻浮提 : 수미산須彌山 남쪽에 있으므로 남염부제(혹은 남섬부제)라고 한다. 염부제란 ‘더러운 곳(穢土)’으로, 우리가 사는 중생계를 말한다.
- 30)남대南臺의 녹사錄事 : 남대는 어사대御史臺의 별칭, 녹사는 문부文簿를 맡아보고 그 잘잘못을 규찰하는 직책이다.
- 31)『법원주림전法苑珠林傳』 : 『법원주림法苑珠林』 100권은 당나라 도세(?~683)가 편찬한 불교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겁량劫量편ㆍ삼계三界편……전기傳記편 등 100편 668부로 분류하여 불교의 사상ㆍ술어ㆍ법수 등을 개설하였다. 여기서는 전기편만을 말한다.
- 32)교지交趾 : 지금의 베트남 북부 통킹ㆍ하노이 지방을 포함한 손코이 강 유역의 옛 명칭.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남월南越을 정복하고 그 지역에 설치한 군郡 이름으로, 후에 교주交州로 개칭되었다.
- 33)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관세음보살 명호를 지니는(부르는) 자는 설령 큰불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니, 이 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다.”(T9, 56c)라고 함에 근거한다.
- 34)오송강吳松江 : 오강吳江 또는 송강松江이라고도 한다. 태호太湖에서 시작하여 상해를 지나 황포강黃浦江으로 흘러 들어간다.
- 35)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큰물에 빠졌을지라도 그 명호를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리라.”(T9, 56c)라고 함에 근거한다.
- 36)사자국師子國 : 승가라국僧伽羅國 또는 집사자국執師子國이라 한다. 지금의 스리랑카이다. 원래 나찰귀의 나라였던 것을 승가라가 평정하여 승가라국을 세웠다. 『서역기』 등에 전한다.
- 37)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가령 흑풍이 불어서 그 배가 표류하여 멀리 나찰귀의 나라에 떨어지게 되었을지라도 만일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이 모든 사람들이 다 나찰귀의 환난을 벗어나게 된다.”(T9, 56c)라고 함에 근거한다.
- 38)우금방隅金坊 : 『삼국유사』 「민장사敏藏寺」조에는 ‘우금리禺金里’로 되어 있다.(T49, 993a)
- 39)앞의 주 37 참조.
- 40)『삼국유사』 「민장사」조에서는, “앞에 깊은 도랑이 있어 스님이 겨드랑이에 끼고 뛰어넘었다.(前有深渠。 僧掖我跳之。)”라고 하였다.(T49, 993a)
- 41)청신사와 청신녀 들 : 청신사는 남자 신도, 청신녀는 여자 신도를 말한다.
- 42)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사람이 해를 입게 되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저들이 가지고 있는 칼과 막대기가 모두 조각으로 부서져 벗어나게 되리라.” 함에 근거한다.(T9, 56c)
- 43)마음의 생각이 지극해지면 삼매三昧에 들어간 것이고, 말이 지극해지면 다라니가 이루어진 것이니, 이와 같은 상태에서 감응感應이 이루어진다.
- 44)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가령 또 사람이 죄가 있거나 혹은 죄가 없거나 쇠고랑으로 채우고 칼을 씌워서 그 몸을 결박하였을지라도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면 다 끊어지고 부서져서 곧 벗어나리라.”라고 함에 근거한다.(T9, 56c)
- 45)이것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원수 맺은 자나 도둑에게서 벗어나게 하리라.”라고 함에 근거한다.(T9, 56c)
- 46)이것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여인이 아들을 낳고자 하여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경하면, 곧 복덕과 지혜를 갖춘 아들을 낳는다.”라고 함에 근거한다.(T9, 57a)
- 47)「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선남자여! 만일 어떤 국토 중생으로서 부처님의 몸이 되어 깨닫게 할 자에게는 관세음보살이 곧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며…….”라고 하였다.(T9, 57a)
- 48)「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는, “동남동녀의 몸이 되어 깨닫게 할 자에게는 동남동녀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라고 하였다.(T9, 57a)
- 49)승가리 : 승려의 세 가지 옷(三衣) 중 가장 큰 것으로, 대의大衣 또는 중의重衣라고 한다. 설법과 탁발을 위해 왕궁이나 마을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이것을 걸친다.
- 50)금쇄골金鏁骨 : 금빛의 사슬처럼 이어져 있는 뼈.
- 51)산곡 도인山谷道人 : 황정견黃庭堅(1045~1105)이다. 송대 시인이며, 거사로서 불교를 신앙하였다. 안휘安徽의 산곡사에서 유학遊學하였고, 만년에는 정사를 짓고 정토를 닦았다.
- 52)경흥 국사憬興國師 : 문무왕의 존신을 받고, 신문왕 때 국사國師를 지낸 고승이다. 학덕과 도예道譽가 뛰어난 분으로, 삼장三藏을 모두 통달하여 『법화경소法華經疏』를 비롯해 40여 부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 53)「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로 되어 깨닫게 할 자에게는 곧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라고 하였다.(T9, 57b)
- 54)「보현보살권발품」 제28에서 보현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이 경을 읽고 외우면 저는 그때 여섯 이빨의 흰 코끼리를 타고 큰 보살들과 함께 그가 있는 곳에 가서 저의 몸을 나타내어 공양하고 수호하며,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T9, 61a)
- 55)아리수阿梨樹 : 난향蘭香이라고도 한다. 꽃이 필 때 나무 끝의 꽃이 일곱 갈래로 갈라진다고 하고, 혹은 난초 가지와 같이 떨어질 때 일곱 갈래로 갈라진다고 한다.
- 56)이 영험은 「다라니품」 제26의 게송에서 “만일 나의 주문에 따르지 않고 설법하는 사람을 괴롭히면, 머리를 일곱 조각으로 내어 아리수나무 가지와 같이 만들 것이니…….”라고 함에 근거하였다.(T9, 59b)
- 57)제4천 : 욕계의 육천 가운데 네 번째 하늘인 도솔천을 말한다. 석가모니부처님도 예전에 호명護明보살로서 여기에 계시면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다가 이 세상에 오셨고, 현재 미륵보살도 이곳에 머무르며 염부제에 내려와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곳 천인들의 수명은 4천 년이며, 그 하루는 인간계의 4백 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 58)이 영험담은 「보현보살권발품」 제27에서 “이 사람이 만일 앉아서 이 경을 깊이 생각하면, 그때 나는 다시 커다란 흰 코끼리를 타고 그 사람 앞에 나타나리라. 그가 만일 『법화경』의 한 구절이나 한 게송을 잊어버린 곳이 있으면, 내가 마땅히 이를 가르쳐 읽고 외워서 통리하게 하오리다.”라고 한 보현보살의 서원에 근거하고 있다.(T9, 61a)
- 59)대학 박사大學博士 : 옛 국학國學 또 태학太學에 딸린 벼슬.
- 60)비장방費長房 : 출가 승려였으나 후주後周 무제武帝의 폐불 때문에 환속해서 은거하다가 수隋나라가 흥하자 역경譯經에 참가하여 번경 박사飜經博士가 되었다. 유불儒佛ㆍ백가百家를 모두 통달하고, 귀신을 잘 부렸다고도 한다.
- 61)조병澡甁 : 손을 씻는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는 병.
- 62)홍변洪辯 : 호는 청우. 보조 국사에게 계를 받았고, 강종康宗 때 창복사昌福寺 담선법회談禪法會를 주도하였다가 고종高宗 초에 쌍봉사 주지가 되었다.
- 63)최린崔(?~1256) : 고려 중기의 명신 평장사 당讜의 손자이다. 3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간으로 있다가 고종 때 나주 부사로 나가서 자칭 백적원수百賊元帥라고 하던 이연년李延年의 난동을 토벌하여 우부승선右副承宣에 특진되었고, 원元나라에 사신으로 여러 번 왕래하여 후한 대접을 받았다. 벼슬이 문하시랑 평장사에 이르렀다.
- 64)큰 재회齋會 : 대재회大齋會 또는 무차회無遮會를 말한다. 일체중생을 청하여 평등히 공양하는 법회이다.
- 65)원묘圓妙(1163~1245) : 12세에 출가하여 강양(지금의 합천) 천락사天樂寺 균정均定에게 득도하고 천태교관을 수행하였다. 천태의 묘해를 강의하고 1216년(고종 3) 백련사 결사를 시작 법화삼매를 닦아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였다.
- 66)육재일六齋日 : 한 달 중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고 행하는 날로서, 음력 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을 말한다. 이때는 사천왕四天王이 세상을 순행하면서 사람의 선악을 살피고, 또한 악귀가 사람의 빈틈을 노리는 날이라고 한다.
- 67)최표崔彪 : 고려 고종 때 사람이다. 강진의 토호로서 최홍崔弘과 함께 요세了世를 월출산 약사암에서 만덕산으로 옮기도록 청하였으며, 만덕사 창건을 도왔다.
- 68)일여一如 : 이제현의 형, 각해 일여覺海一如. 반룡사盤龍社에서 숙종 11년(1324)에 화엄 계통의 결사를 개창하였다.
- 69)김식金軾 : 고려 고종 때 문신. 고종 44년(1257) 몽고 2차 침입으로 개성과 남경이 함락되자 시어사侍御使로 몽고 군영에 가서 태자의 입조 조건으로 몽고군을 철군하게 하였다.
- 70)육시六時 : 하루 밤낮을 여섯 때로 나눈 것. 즉 아침(晨朝)ㆍ낮(日中)ㆍ해질 녘(日沒)ㆍ초저녁(初夜)ㆍ한밤중(中夜)ㆍ새벽(後夜)이다.
- 71)『홍찬법화전』 권10에는 ‘본명을 알 수 없는 하동河東 사람인 연행練行 비구니’의 일화로 되어 있다.(T51, 43b)
- 1)撰者名補入{編}。
- 2)「齕」作「齔」 {乙}。
- 3)「其」作「吳」{甲}{乙}。
- 4)「關」作「閉」又冠註曰閍疑關{乙}。
- 5)「田」作「曰」{甲}{乙}。
- 6)冠註曰湯疑錫{乙}。
- 7)「于」作「干」{乙}。
- 8)「素」作「索」{乙}。
- 9)「稜」作「陵」{乙}。
- 10)「似」作「以」{乙}。
- 11)「少」作「作」{乙}。
- 1)「五」下疑脫「年」{編}。
- 2)「二」作「三」{甲}。
- 3)「冥」作「具」{乙}。
- 4)冠註曰往疑住{乙}。
- 5)「栗」作「慄」{乙}。
- 6)「勤」作「勸」{乙}。
- 7)「」作「宵」{乙}。
- 1)「旣」作「留」{乙}。
- 2)「久」作「夕」{甲}。
- 3)「俗」下有「類」{乙}。
- 4)「土」作「上」{甲}。
- 5)「旦」作「且」{甲}。
- 6)「二光」作「五寸」{乙}。
- 7)「辛」作「爭」{乙}。
- 8)「沈」作「說」{乙}。
- 9)「封」作「對」{乙}。
- 10)「旌」作「表」{乙}。
- 11)「悟」作「語」{乙}。
- 12)「理」作「埋」{乙}。
- 13)「內」無有{乙}。
- 14)「旦」作「且」{甲}。
- 1)「內」作「四」{乙}。
- 2)「太」作「大」{乙}。
- 3)「大風亦利急疾乃瘳」作「急疾乃瘳大風亦利」{乙}。
- 4)「部」作「郡」{乙}。
- 5)「上」作「中」{乙}。
- 6)「令」作「今」{乙}。
- 7)「性」作「姓」{乙}。
- 8)「旦」作「且」{甲}。
- 1)「勢」作「熟」{乙}。
- 2)「夢」作「夜」{乙}。
- 3)冠註曰都疑覩{乙}。
- 4)「人」作「入」{乙}。
- 5)「上」作「山」{乙}。
- 6)冠註曰聞疑開{乙}。
- 7)「石」作「氏」{乙}。
- 8)冠註曰玷疑沾{乙}。
- 9)「」作「棗」{乙}。
- 10)冠註曰治疑治{乙}。
- 11)「間」作「聞」{甲}。
- 1)「遘」作「遭」{乙}次同。
- 2)「王」作「亡」{甲}{乙}。
- 3)冠註曰全疑念{乙}。
- 4)「捲」作「撥」乙。
- 5)「軌」作「輙」乙。
- 6)「其」作「某{乙}。
- 1)「似」作「以」{乙}。
- 2)冠註曰愛疑受{乙}。
- 3)「䁱」作「曉」{乙}。
- 4)「耴」作「取」{乙}次同。
- 5)「穀」作「糓」{乙}次同。
- 6)「音」作「普」{乙}。
- 7)「出靈…應錄」九字無有{乙}。
- 1)「雲」作「僧」{乙}。
- 2)「椀」作「梡」{乙}。
- 3)「二」作「土」又冠註曰土疑七{乙}。
- 4)「言」下有「出靈瑞集又出現應錄」{乙}。
- 5)此右側行間有小題名「又」{乙}。
- 6)「鹽」作「濫」{乙}。
- 7)「夢」作「船」{乙}。
- 8)「羅」作「母」{乙}。
- 9)「」作「頒」{乙}。
- 10)「見」作「出」{乙}。
- 11)「及」作「又見」{乙}。
- 12)「略見」作「及略」{乙}。
- 13)「刁」作「刀」{乙}次同。
- 14)「元」無有{乙}。
- 15)「斫」作「所」{甲}。
- 16)「又」作別行{編}。
- 17)「又出」作「及」{乙}。
- 18)此右側行間有小題名「又」{乙}。
- 19)「上同」作「同上」{乙}。
- 20)「惠」作「慧」{乙}。
- 21)「柵」作「構」{乙}次同。
- 1)「旦」作「且」{甲}次同。
- 2)「愽」作「博」{乙}。
- 3)「休」作「俗」{乙}。
- 4)「及」作「乃」{乙}。
- 5)「曰」作「白」{乙}。
- 6)「中」作「小」{乙}。
- 7)「俟」作「候」{甲}。
- 8)「又」無有{乙}。
- 1)「斫」作「所」{甲}{乙}。
- 2)「曺」作「喜」{乙}。
- 3)「廿」作「十」{甲}{乙}。
- 4)「多」作「陀」{乙}。
- 5)「崇」疑「祟」{編}次同。
- 6)「顯」作「現」{乙}。
- 7)「去」作「至」{乙}。
- 8)「愽」作「博」{乙}。
- 9)「關」作「開」{乙}。
- 1)「左」作「尤」{乙}。
- 2)「閉」作「閇」{乙}。
- 3)「眞」作「貞」{乙}。
- 4)「迁樞」作「迂」{乙}。
- 5)「之」無有{乙}。
- 6)「酹」作「酧」{乙}。
- 7)「位」作「立」{乙}。
- 8)「巨」作「臣」{甲}ㆍ作「品」{乙}。
- 9)「席」作「廗」{乙}。
- 10)「王」作「亡」{乙}。
- 1)「失」作「夫」{乙}。
- 2)「第」作「弟」{乙}。
- 3)「蓮」下有「華」{乙}。
- 4)「移」作「壯」{乙}。
- 5)「祺」作「棋」{甲}。
- 6)「美」作「表」{乙}。
- 7)「棟」作「梀」{甲}。
- 8)「駞」作「馳」{乙}。
- 9)「干」作「于」{乙}。
- 10)「辦」作「辨」{乙}。
- 11)「天」作「夫」{甲}{乙}。
- 12)「三」作「亡」{乙}。
- 13)「口」作「古」{乙}。
- 14)「第」作「弟」{乙}。
- 15)「坃」作「坑」{乙}。
- 16)「歧」作「岐」{乙}。
- 17)「潢」作「黃」{乙}。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오지연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