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 / 法華靈驗傳卷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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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영험전 하권 法華靈驗傳 卷下
관식 사문 요원 지음 觀識沙門 了圓錄
7. 호주湖州의 천하상좌
스님은 본명이 포옥抱玉이고, 오흥吳興 사람이다. 어머니 매씨梅氏가 스님을 잉태할 때 신령스러운 상서가 있은 후로는 냄새나는 채소(辛菜)를 싫어하였다. 이를 갈 나이(齔歲1))가 되자 총지惣持 비구니2)의 법화사法華寺에서 출가하여 『법화경』 외우기를 발원하더니, 석 달 만에 통달하여 날마다 7부를 다 독송했다. 스님은 20세 때 서울로 가서 계를 받았다.
이에 앞서 숙종 황제가 밤에 꿈을 꾸니, 오나라 승려가 『법화경』을 독송하는데 입에서 오색 빛이 나오고, 그 목소리가 맑고도 고왔다. 이튿날 아침 황제는 영을 내려 서울 안에 있는 승려로서 『법화경』을 외울 줄 아는 사람 2백여 명을 대궐 안으로 불러들여 보았으나 모두 꿈에 보았던 그 스님이 아니었다. 이때 포옥은 마침 관문關門(성으로 출입하는 문)으로 들어오는데 관령關令이 먼 곳에서 여기에 온 까닭을 물었다.
“나는 『법화경』을 잘 독송합니다. 그래서 계戒를 받으러 왔습니다.”
관령이 황제에게 아뢰자 황제는 곧 그를 불러들여 보고는, “내가 꿈에 본 그 사람의 음성과 용모가 흡사하다.”라고 하면서 전각으로 오르게 하여 자리를 내주고, 『법화경』을 독송해 보라고 하였다.
스님이 독송하여 「수희공덕품」에 이르자, 포옥의 입에서 오색 빛이 뻗어 나오므로 황제는 크게 기뻐하고, “내가 꿈에 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하였다.
독송이 끝나자 황제는 칠보 석장을 하사하고 새로이 향단을 차리고 스님에게만 수계한 다음 대광大光이라는 법명을 내리고, 천하상좌天下上座에 봉하여 천복사千福寺에 있게 하였는데, 스님의 독송하는 소리가 널리 퍼져서 늘 황제에게도 들렸다.
스님은 또 남전藍田의 정사精舍에도 있었는데, 이 절 스님의 꿈에 천상계의 동자가 내려와 하는 말이, “대광 스님의 경 읽으시는 소리가 유정천有頂天3)까지 들려옵니다. 그분은 예사 분이 아니십니다.”라고 하였다. 이 무렵 모두들 스님을 양나라 때 비구니 총지의 후신이라고 했다.
뒤에 스님은 황제에게 청하여 오흥吳興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때 이신李伸이라는 사람이 오흥의 자사刺史로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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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58_a_02L法華靈驗傳卷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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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558_a_04L1)觀識沙門釋了圓錄

006_0558_a_05L[第九段從地涌出品如來壽量品分別功德品]
湖州天下上座

006_0558_a_06L
師本名抱玉吳興人也母梅氏孕恊
006_0558_a_07L靈祥即惡薰穢旣誕2) [91] 於尼惣
006_0558_a_08L持法華寺出家願誦蓮經三月通貫
006_0558_a_09L持七部年登二十詣京受戒時肅宗
006_0558_a_10L皇帝夜夢吳僧誦法華經口出五色光
006_0558_a_11L3) [92] 音淸亮洎翌旦勑京城僧能誦法
006_0558_a_12L華者二百餘人竝入禁中帝視之
006_0558_a_13L非所夢者其時抱玉方入關4) [93] 令問
006_0558_a_14L其遠來之意答云善誦蓮經特來受戒
006_0558_a_15L令奏帝即降旨召見5) [94] 朕所夢
006_0558_a_16L音容宛若遂令上殿賜座誦經
006_0558_a_17L隨喜功德品口角放五色光帝大悅曰
006_0558_a_18L朕夢中所覩之即此也經纔訖賜七寶
006_0558_a_19L6) [95] 令別築香壇專爲受戒賜名大光
006_0558_a_20L封天下上座勑居千福寺玉梵音遍滿
006_0558_a_21L常通帝聽又別居藍田精舍寺僧夢
006_0558_a_22L天童來降告言大光經聲7) [96] 有頂
006_0558_a_23L非聊尒人也時衆咸謂師即梁朝尼摠
006_0558_a_24L持後身後乞歸吳興時李伸刺于吳興

006_0558_b_01L하루는 술이 취하여 지경도량持經道場에 쓰러져 자다가 밤에 깨어 보니, 흰빛이 대광 스님의 방안에 가득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문틈으로 스님의 방안을 들여다보니, 스님이 연좌宴坐4)하여 경을 독송하고 있는데 독송하는 소리가 멎자 빛도 따라서 거두어졌다.
이신은 본래 불교를 깊이 믿지는 않았지만 대광 스님을 깊이 공경하여 친히 비문을 지었으니, 제목을 ‘묵조지경대덕신이비문墨詔持經大德神異碑文’이라 하였다. 전에 처음 스님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오흥으로 돌아가기를 청했을 때 황제가 묵조墨詔(임금이 직접 쓴 조서) 한 통을 내렸기 때문이다.
제10단 「수희공덕품」ㆍ「법사공덕품」
1. 무덤에서 연꽃이 피어나다
소흥紹興 말년(1162)에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에 조씨趙氏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 안씨安氏는 부처님을 존중하여 늘 재계하고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시중 드는 여인이 매번 몰래 그 독송을 들은 지 오래되니, 어느 날 갑자기 “청련화 향기, 백련화 향기, 꽃나무 향기, 과일나무 향기”5)의 네 구절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여인은 무슨 일을 할 때나 가만히 앉아 있을 때나 항상 그 네 구절을 끊임없이 흥얼거렸다. 남들이 보고 웃음거리로 삼았으나 그녀가 마음 쓰는 데가 따로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인이 어떤 일을 하다가 주인의 뜻을 어겼으므로 주인이 혹독한 형벌을 가하여 그만 죽어 버려서 그 시체를 후원에 묻어 버렸다. 그랬더니 얼마 후 그 위에 푸른 연꽃 한 송이가 우뚝 나와서 향기와 빛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안씨 혼자만 짐작하고 있었다. 네 구절의 경문을 독송한 감응이 이와 같이 뚜렷하므로 안씨는 그녀의 덕을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비밀히 허당 법사虛堂法師 본공本空에게 밝히니, 본공은 매양 이 사연을 들어 사람들을 깨우쳐 주었다. 내가 일찍이 들은 말을

006_0558_b_01L醉於持經道場夜醒忽見白光滿室
006_0558_b_02L覘光公宴坐持經光起面門經聲向
006_0558_b_03L光亦隨歛李相8) [97] 於空門寡信而
006_0558_b_04L篤敬於師親著碑文題曰墨詔持經
006_0558_b_05L德神異碑文初師上表乞歸吳興
006_0558_b_06L賜墨詔一道

006_0558_b_07L

006_0558_b_08L第十段隨喜功德品法師功德品

006_0558_b_09L
埋即生蓮舌常諷典窰瓦變作蓮華而警俗
006_0558_b_10L凾經化爲草束而拯生經一通而更不忘
006_0558_b_11L三剪而輒自長卷下第一張

006_0558_b_12L埋即生蓮

006_0558_b_13L
紹興末明州奉化縣有姓趙人其母
006_0558_b_14L安人重佛齋戒誦法華經房下有一
006_0558_b_15L使每竊聽久久忽記得四句所謂
006_0558_b_16L靑蓮花香白蓮花香花樹香菓樹香
006_0558_b_17L自此動靜施爲常吟詠不絕人聞之
006_0558_b_18L謂爲笑語殊不知此女亦有用心處
006_0558_b_19L日作事乖主意9) [98] 遲至死遂以其屍
006_0558_b_20L潜瘞後園異時忽於其上秀出靑蓮花
006_0558_b_21L一朶香色可愛餘人不知其由獨安
006_0558_b_22L人默而識之盖所誦四句經感應之如
006_0558_b_23L是也安人復不匿其德密說與虛堂法
006_0558_b_24L師本空空每擧10) [99] 化人宗曉甞親聞

006_0558_c_01L여기에 대강 기록해 둔다.
『현응록』
2. 혀가 경전을 외우다
선비였던 양난급楊難及은 옹주雍州 만년현萬年縣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지조가 있었는데 나이 50세가 되자 불교에 뜻을 두어 법성 법사法誠法師가 덕이 높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법사를 스승으로 섬겼다. 법사는 그에게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는데 몇 달 안 되어 환하게 통달하였다. 밤을 새어도 피로한 줄 모르며 온갖 일을 다 하면서도 『법화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후에 그는 아무 병도 없이 갑자기 죽어 화장을 했더니 해골과 혀만은 타지 않고 남았다. 법성 법사가 거두어 돌함에 넣어서 법화당法華堂6) 안에 두고 때때로 공양하였는데, 가끔 돌함 안에서 경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돌함이 진동하고 말소리가 또렷또렷하여 듣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공경하였다. 『법화경』을 받아 지닌 힘으로 생긴 일이었다.
『홍찬법화전』 권8
3. 기와가 연꽃으로 변하여 세속 사람들을 경계하다
혜초慧超 스님은 단양丹陽 건원현建元縣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법화경』 독송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나라에서 금지령을 내려 승려들을 엄중히 탄압하니, 스님은 기왓굴 속에 숨어서 여러 해를 지내다가 뒤에 금지령이 없어져 자유롭게 되자 기왓굴 주인을 찾아가서 말하였다.
“빈도가 이 안에서 『법화경』을 천여 번이나 독송했으니 깨끗이 소제하여 공양하시고, 다시 기와 굽는 데 쓰지 마시오.”
그러나 주인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수리하여 전과 같이 기와를 구웠는데 꺼내 보니 모두 연꽃 모양으로 변하여 사방의 벽에 덮여 있었다. 원근의 사람들이 보고서는 다 감탄하며 기이하게 여겼다.
또 혜초 스님이 일찍이 절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는데

006_0558_c_01L其說聊記于此出現應錄

006_0558_c_02L舌常諷典

006_0558_c_03L
俗士楊難及雍州萬年縣人也幻而耿
006_0558_c_04L年將知命方祈妙典聞法誠法師
006_0558_c_05L有道遂師事焉誠乃授以法華數月
006_0558_c_06L之間悉得通利曉夜忘疲雖渉衆務
006_0558_c_07L其聲不輟於後無疾奄然而終終後
006_0558_c_08L焚燒髏舌獨存試收藏之石凾置法
006_0558_c_09L華堂時加供養屢聞凾內諷誦之聲
006_0558_c_10L振動石凾詞句明了聞者敬悚知受
006_0558_c_11L持之力焉出弘賛第八

006_0558_c_12L窰瓦便作蓮花而警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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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慧超丹陽建元人也11) [100] 有遠量
006_0558_c_14L法華經以爲恒業甞遇法令嚴峻
006_0558_c_15L勒沙門超潜伏瓦窰綿歷多年後時
006_0558_c_16L難廓淸拂衣而去告窰主曰貧道此中
006_0558_c_17L誦法華經卷下第一張 已千餘遍可洒
006_0558_c_18L掃供養勿更用之其人不信乃修舊貫
006_0558_c_19L所燒之瓦遂變作蓮花之形周植四壁
006_0558_c_20L遠近見者咸歎異之又嘗在寺誦經
006_0558_c_21L撰者名補入{編}「齕」作「齔」 {乙}「其」作
006_0558_c_22L「吳」{甲}{乙}
「關」作「閉」又冠註曰閍疑關{乙}
006_0558_c_23L
「田」作「曰」{甲}{乙}冠註曰湯疑錫{乙}
006_0558_c_24L「于」作「干」{乙}
「素」作「索」{乙}「稜」作「陵」
006_0558_c_25L{乙}
「似」作「以」{乙}「少」作「作」{乙}

006_0559_a_01L사나운 짐승이 와서 들었다. 스님이 그들에게 계를 설해 주니,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온순해졌다. 스님이 “단월檀越7)은 이제 돌아가시게.” 하니, 맹수는 순순히 가 버렸다. 스님이 이승과 저승을 다 감동시킨 것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뒤에 병이 들어서 위독해지자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니, 혜초 스님은 “오래 산다고 기뻐할 것도 없고 일찍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라고 하고는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나이 77세, 무덕武德 5년(622) 12월 6일이었다.
문인 중에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어서 역시 『법화경』을 1만여 번이나 독송했는데, 임종하는 날 번幡과 하늘 꽃이 하늘에서 분분히 떨어지고 하늘의 음악이 요란히 들려왔다. 절에 있던 여러 스님들이 모두 보고 들었다. 또 스님은 연화대가 맞으러 온 것을 보고 단정히 서서 합장하고 입적하였다. 사방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홍찬법화전』 권8
4. 함에 든 경전이 건초단으로 되어 물에 빠진 중생을 구하다
의봉儀鳳 연간(676〜679)에 여주汝州 양현梁縣 북촌에 사는 유씨劉氏의 아들이 고구려8) 정벌의 군사에 종군했다가 붙잡혀 종이 되었다. 요해遼海 동쪽 기슭에서 말을 먹이고 있었는데 하루는 밤이 되어 돌아와 잠자리에 드니, 꿈에 한 스님이 그를 불러서 바다로 들어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러한 꿈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씨의 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러한 신세가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이러한 꿈을 자주 꾸자 마침내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런데 물속에서 국화꽃 한 단을 붙잡게 되어 이것을 끌어안고 파도를 따라 흘러갔다. 얼마를 떠돌다가 바다를 건너 서쪽 해안에 닿아 있었다.
뭍에 올라 한참을 가다가 문득, ‘그 국화꽃 단이 나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라고 생각하고 되돌아가서 그 풀단을 풀어 헤쳐 보았다. 풀단 속에서 『법화경』 제6권이 나왔다. 그는 기이하게 생각하고 그 『법화경』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 유씨 노인은 아들이 종군하여 영영 소식이 없으므로 『법화경』 한 질을 정성을 다해 베껴 쓰고 모든 일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하였다. 아들이 돌아오자 부자는 서로 붙잡고 한편으로는 서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이 하도 신기하여 어떻게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돌아오게 된 연유를 자세히 말하니, 그 아버지는 함께 정사로 갔다. 『법화경』을 넣어 둔 함지를 열어 보니, 제6권 한 질이 없었다.

006_0559_a_01L一猛獸來聽超兼爲受戒略如家犬
006_0559_a_02L語曰檀越好去即依言而返感徹幽
006_0559_a_03L難以具記後臥疾弟子流涕超曰
006_0559_a_04L長生不欣夕死不慼乃面西而坐
006_0559_a_05L然長往年七十有七即武德1) [16] 2) [101]
006_0559_a_06L月六日也有門人善思者亦誦法華
006_0559_a_07L有餘徧臨終之日幡花音樂紛聆空
006_0559_a_08L在寺僧衆咸悉見聞又自見花臺
006_0559_a_09L迎之思乃端然拱立合掌而化遠近
006_0559_a_10L觀者如堵墻焉出弘賛第八

006_0559_a_11L凾經化爲草束而拯生

006_0559_a_12L
儀鳳年汝州梁縣北村劉氏男從征東
006_0559_a_13L討高麗沒爲奴於遼海東岸牧馬
006_0559_a_14L而寢睡屢夢有一僧喚令入海共汝
006_0559_a_15L歸家若此非一劉氏子自惟漂落與死
006_0559_a_16L莫殊頻感斯夢遂投身海浦於水中
006_0559_a_17L抱得菊草一束隨波漂流浮渡海西
006_0559_a_18L至于岸上行餘一里思念此草能濟
006_0559_a_19L吾身命却廻取草解束曝之乃於其
006_0559_a_20L得法華經第六卷遂持還其父劉
006_0559_a_21L先綠子沒蕃遂爲造法華經一部
006_0559_a_22L書寫淸淨每事嚴潔及見子到相持
006_0559_a_23L悲慶恠問所由子具說前事父子遂共
006_0559_a_24L於精舍中開視經凾乃欠第六一卷

006_0559_b_01L그래서 아들이 바다에서 얻은 『법화경』을 가져다가 맞추어 보니, 과연 아버지가 그 아들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종이며 먹이 똑같은 것이 틀림이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10
5. 한 번 통달하여 다시 잊지 않다
청신사 사지장謝智藏은 옹주雍州 남전藍田 사람이다. 그는 비록 농가에서 살고 있었지만 항상 오계五戒를 굳게 지켰다. 이런 인연으로 잠시 고을 아래 갔을 때 절에서 어떤 스님을 보았는데, 『법화경』을 강설하고 계셨다. 제6권에 이르러 『법화경』을 받아 가지면,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의 공덕이 크다.”9)라는 대목에 이르러 곧 발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날마다 제1권을 외웠다. 어떤 일을 할 때를 빼고는 잠시도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더 나아가서 제2권, 제3권도 계속해서 배우기를 원했으나, 멀리 외진 시골에 있어서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 훌륭한 스승을 만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몇 해가 지났다. 홀연 한 스님이 나타나 그의 문을 두드렸다.
“여보시오, 먹을 것이 있거든 주십시오.”
지장은 흔연히 집에 있는 대로 법에 따라 공양하였다. 스님은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지장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법화경』을 받아 지니고 싶거든 본래의 경을 가져오시오.”
지장은 크게 기뻐하였다. 깊이 소원해 오던 바라 곧 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한 번 가르쳐 준 것은 잊지 않았다.
강설이 끝나자 스님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지장은 몹시 서운하여 낙심했으나 그가 신인神人인 줄은 몰랐다. 스승이 사라지고부터 기이한 향내가 며칠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홍찬법화전』 권8
6. 머리카락을 세 번이나 잘랐는데 그때마다 저절로 자라나다
홍조弘照 스님은 나이 20세에 출가하여 바로 『법화경』을 독송해서 몇 달 안 되어 수계하였다. 종남산終南山에 집을 짓고 『법화경』 1천 번 독송하기를 서원하였는데, 자주 신이 와서 도와주고 보호해 줌을 느꼈다. 또 눈이 깊이 쌓여 길이 막히고 양식은 겨우 한 말밖에 안 남아서 20여 일을 먹을 수 있는 양이었으나 계속 먹었는데도 줄어들지 않았다. 뒤에 친구 이신履信과 한 거사가 함께 한산寒山으로 이주해 와 같이 초막을 짓고 다시 수행을 계속했다.

006_0559_b_01L驗其子海中得者果是其父爲子所造
006_0559_b_02L之經紙墨僉同宛然符會出弘賛第十

006_0559_b_03L經一通而更不忘卷下第三張

006_0559_b_04L
淸信士謝智藏雍州藍田人也雖處田
006_0559_b_05L恒持五戒因綠暫至縣下見寺中
006_0559_b_06L有沙門講法華經至第六卷持經眼耳
006_0559_b_07L鼻舌身意功德乃即發心歸家誦持第
006_0559_b_08L一卷除人事外不曾休息其人心願
006_0559_b_09L更進餘卷旣遠居田無人敎授思遇
006_0559_b_10L明師經於數年忽見一波羅門僧來
006_0559_b_11L扣門謂藏曰汝有食不乞我一齋
006_0559_b_12L藏欣然隨家所有如法供設僧旣食
006_0559_b_13L謂智藏曰汝欲得受法華經者
006_0559_b_14L將本經來智藏歡喜深適所願即授
006_0559_b_15L其經一從聞受更不忘失受經旣了
006_0559_b_16L僧忽不現智藏情甚惆悵不識神人
006_0559_b_17L自師去後但聞異香數日不絶出弘賛
006_0559_b_18L第八

006_0559_b_19L髮三剪而輒自長

006_0559_b_20L
釋弘照年二十出家即誦法華數月
006_0559_b_21L便度卜宅終南誓誦千徧頻感3) [102]
006_0559_b_22L潜來翼衛又逢深雪麵唯一斗許二
006_0559_b_23L十餘日食之不盡乃與友人履信及一
006_0559_b_24L居士4) [103] 寒山並結草庵更修前業

006_0559_c_01L
하루는 갑자기 길이 1백 자나 되고 머리 높이가 한 길이나 되는 오색 무늬의 큰 뱀이 암자 앞에 와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스님의 『법화경』 독송을 들었다. 홍조 스님은 처음에는 크게 놀라 몸이 떨려서 감히 바로 보지도 못하다가 대비심을 일으켜 깊은 서원을 세워 합장하고 눈물을 흘리며 목소리를 높여 끝까지 경을 외웠다. 뱀은 끝까지 듣고 잠시 후에 물러갔다. 이로부터 뱀은 계속해 와서 경을 들었는데, 홍조 스님은 뱀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 비린내가 싫고, 그 모양이 두려워 거사더러 뱀을 쫓아 버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거사는 밧줄로 뱀의 목을 얽어 끌어다가 깊은 숲속 큰 나무에 매어 놓았다.
밤이 되어 홍조 스님과 이신 그리고 거사 세 사람이 똑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한 여인이 나타나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제자는 이 산에 있는 산신의 딸입니다. 본래 법 듣기를 좋아하여 번추한 모습으로 법중法衆10)을 많이 범했습니다. 이제 쫓겨나 스님을 하직하고 멀리 가게 되어 다시는 대승경 독송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게 된 것이 한스럽습니다.”
세 사람은 놀라 깨어 서로의 꿈 이야기를 하였다. 뱀이 죽은 것이 아닌가 더럭 의심이 가서 횃불을 들고 숲속으로 찾아가 보니, 과연 뱀은 이미 죽어 있었다. 거사는 땅에 쓰러져 흐느껴 울며 진심으로 참회하고 사과하였다. 이어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뱀을 위하여 경을 외우고 또 천승재千僧齋11)를 베풀기로 하였는데, 우연히 암자 옆에서 많은 은銀이 생겨서 산을 내려가 재에 올릴 물건들을 풍족히 장만할 수 있었다.
홍조 스님이 일찍이 어느 마을에 이르렀는데 유씨劉氏라는 가난한 여인이 스님을 공양하기를 청했다. 스님은 그의 뜻을 가엾이 여겨 그 집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이레를 묵는 동안에 여인은 양식이 다 떨어졌다. 스님은 떠나가려고 했으나 여인이 간곡히 만류하여 스님은 그냥 머물러 있었다. 여인은 돈 구할 길이 없어서 마침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양식을 마련하였다.
다시 이레가 지나갔다. 홍조 스님이 다시 떠나려고 하니, 가난한 여인은 슬피 울며 다시 굳이 만류하여 스님은 또다시 머무르게 되었다. 여인은 머리카락까지 잘라 팔아서 그것마저 다 써 버렸으니, 밤새도록 근심하고 한탄하였으나

006_0559_c_01L忽一虵長百尺斑文五色頭高丈餘
006_0559_c_02L直來庵所低身俛聽照初驚惶戰5) [104]
006_0559_c_03L不敢視之起大悲心發深重願合掌
006_0559_c_04L流泪抗聲終部虵少選而退自尒頻
006_0559_c_05L來不息照雖頗知無菩然惡其腥臭
006_0559_c_06L懼其形狀令居土驅之其乃以繩纒
006_0559_c_07L引致深叢繫於大樹至夜照信及居
006_0559_c_08L士同夢一女人掩泪泣而前曰弟子
006_0559_c_09L是此山神女性樂聞法數以穢形
006_0559_c_10L突法衆今被驅繫辭師遠去不復聞
006_0559_c_11L誦大乘以此爲恨卷下第四張 照等各
006_0559_c_12L自驚覺遽相徵問所夢旣同疑其致
006_0559_c_13L即執炬往看果有斯事居士呼泣
006_0559_c_14L投地披誠懺謝就其屍所共爲誦經
006_0559_c_15L又欲設千僧齋乃於庵側獲銀數餅
006_0559_c_16L下山饌會恰然周足甞行至一村有貧
006_0559_c_17L女劉氏請留供養照愍之而止於七日
006_0559_c_18L罄其所有照便欲去信女啓6) [105]
006_0559_c_19L更無資貨遂剪頭髮以買齋食更經
006_0559_c_20L七日照復欲去貧女悲泣固留因復停
006_0559_c_21L女賣髮之直用之已盡憂恨通7) [106]
006_0559_c_22L「五」下疑脫「年」{編}「二」作「三」{甲}「冥」
006_0559_c_23L作「具」{乙}
冠註曰往疑住{乙}「栗」作「慄」
006_0559_c_24L{乙}
「勤」作「勸」{乙}」作「宵」{乙}

006_0560_a_01L별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를 만지니 머리카락이 전과 같이 길어 있었다. 놀랍고 기뻐서 즉시 그것을 잘라 팔았다.
다시 이레가 지나니 또 전과 같이 자랐다. 이렇게 세 번 머리카락을 자르는 사이에 스님은 이미 오래 묵으면서 공양을 받았기 때문에 의발을 챙겨 들었다. 이제는 더 머물러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인은 머리를 조아려 경례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낱낱이 이야기 한 다음, “스님께서 공양 드실 것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홍조 스님이 이 말을 듣고 목이 메어 말을 못하다가, “변변치 못한 이 몸이 그런 후의厚意를 받다니요.” 하고 말을 잇지 못하였다.
홍조 스님은 영순永淳 연간(682~683)에 갑자기 아무 병도 없이 감천사甘泉寺에서 입적하였다. 사중이 다비를 하였는데, 오직 혀만이 타지 않고 새빨갛게 생시와 같았다.
경희사慶喜寺 주지 계인戒因 등이 깊이 세속에 젖어 그럴 리가 있느냐고 하고, 절의 스님들과 세간 사람들 5백여 명과 함께 나무와 숯 여러 수레를 마련해 가지고 가서 다시 홍조 스님의 혀를 태웠다. 열 번을 태워도 모양과 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아 계인 스님 등은 모두 깊이 참회하고 그 혀를 향함에 담아 두고두고 공양하였다.
『홍찬법화전』 권8
제11단 「상불경품」ㆍ「여래신력품」ㆍ「촉루품」
1. 무덤 옆에 지초芝草가 나다
청신사 위중규韋仲珪는 임공臨邛(중국 四川省) 사람이다. 타고난 성품은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두터웠다. 당나라 무덕武德 연중(618~626)에 아버지가 병이 들자 중규는 정성껏 병구완을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내도 내버려 둔 채 시묘(廬墓) 살이를 하였다.
그는 원래 불교를 착실하게 믿어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낮에는 흙을 져다가 봉분을 만들고, 밤에는 경전을 독송하여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밤이 되면 늘 맹수들이 여막 앞에 웅크리고 앉아 경 읽는 소리를 듣고 한참 동안 가지 않고 있었다. 중규가 정념正念으로 말하기를, “맹수가 가까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자, 맹수는 곧 일어나 가 버렸다.

006_0560_a_01L莫知出處忽以手摩頭覺髮生如故
006_0560_a_02L驚喜踊躍即便更剪復經七日還長
006_0560_a_03L如前凡經三剪照以淹留1) [107] 2) [108] 執持
006_0560_a_04L衣鉢決不肯住女乃頂禮具陳云
006_0560_a_05L自有料照等聞此噎不得言悼嘖微 [109]
006_0560_a_06L當斯厚意照於永淳中忽無疾終於
006_0560_a_07L甘泉寺四輩聚火燒之唯舌不然
006_0560_a_08L赤如本時慶喜寺寺主戒因等行頗流
006_0560_a_09L3) [110] 不信有之乃與合寺僧徒士俗五
006_0560_a_10L柴炭數車更燒十遍形色儼然
006_0560_a_11L皆悔伏其舌盛以香凾流傳供養出弘
006_0560_a_12L賛第八

006_0560_a_13L

006_0560_a_14L第十一段常不輕品如來神力品
006_0560_a_15L囑累品

006_0560_a_16L
芝生墓側蓮出舌根舍利流出於金文光明
006_0560_a_17L照耀於寶塔瓶水冬溫夏冷天兵匝地盈空

006_0560_a_18L芝生墓側

006_0560_a_19L
淸信士韋仲珪臨卭人也天性孝弟
006_0560_a_20L德中父遘病仲珪勤於孝養父之卒也
006_0560_a_21L捨遣妻妾廬於墓左尤信佛敎誦法
006_0560_a_22L華經晝則負4) [111] 成墳卷下第五張
006_0560_a_23L則誦經精勤不倦常有猛獸夜至廬
006_0560_a_24L蹲踞聽經久而不去仲珪正念曰
006_0560_a_25L不願猛獸之相逼也獸即起去5) [112]

006_0560_b_01L
이튿날 아침에 보니 무덤 둘레에 지초芝草12)가 73포기 피어나 있었다. 무덤 앞의 것은 차례로 줄지어 나 있어서 마치 사람이 일부러 그렇게 심어 놓은 것 같았다. 모두 줄기는 붉고 바탕은 자줏빛인데, 바탕에서는 두 줄기의 이상한 광채가 났다.
이웃사람들이 알고 주와 현에 알렸다. 이때 신군창辛君昌이 자사刺史, 심유沈裕가 별가別駕로 있었는데, 두 사람은 무덤에 와 보고서 크게 감탄하였다. 지초를 뜯어 글과 함께 나라에 바치니, 나라에서는 정문㫌門13)을 세워서 표창하였다.
그 뒤 중규는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8
2. 혀에서 연꽃이 피어나다
지업智業 스님은 성이 양씨楊氏인데 양주楊州 장락사長樂寺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지런히 계율을 닦고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수隋나라 대업大業 말년(616)에 우문화급宇文化及14)이 양주에서 반역을 일으켜 대궐로 들어가서 양제煬帝를 죽였다. 이때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고 백성은 굶주려 한 말의 쌀값이 만 전이나 되었다.
지업 스님은 이때 별원別院의 조그만 집에서 거처하며 오로지 『법화경』 독송에만 전념하다가 끝내 방안에서 굶어 죽었으나 아무도 거두어 장사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집도 퇴락하여 무너지자 스님의 시신은 그 아래 깔려 버렸다.
수나라 의령義寧 초(617)에 우문화급이 토벌된 후 그 집터에서 홀연히 한 줄기 연꽃이 피어났다. 광채와 빛깔이 기이하여 스님들과 속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이때 그 절의 노스님이 문득 생각이 나서 말하였다.
“이곳은 전에 한 스님이 『법화경』을 독송하던 자리입니다. 난리 통에 여기서 입적했으나 아무도 장사지내지 않았으니, 아마도 그 유골이 여기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이 연꽃은 아마도 그 스님의 영험일 것입니다.”
그래서 연꽃의 뿌리를 캐 들어가니 그 푸른 연꽃은 해골 가운데 혀 밑에서 나와 있는데 혀가 조금도 상하지 않고 살아 있는 것과 같았다. 스님들이 그 혀와 꽃을 법당에 옮겨다가 모셔 놓고 종을 쳐 대중을 모아 『법화경』을 강설하였더니, 그 혀가 설법 소리를 듣자 오히려 흔들리며 움직였다. 스님과 신도들이 모두 이 소식을 듣고 보러 왔는데, 마치 담장과 같이 길게 늘어서서 다들 감탄하고 모두 수승한 마음을 일으켰다.
『홍찬법화전』 권7

006_0560_b_01L見繞墓生芝草七十三莖當墳前者
006_0560_b_02L列次第如人種植皆朱莖紫蓋蓋經
006_0560_b_03L6)二光 [113] 光色異常隣里以告州縣
006_0560_b_04L7) [114] 君昌爲刺史8) [115] 裕爲別駕共至
006_0560_b_05L墓所嗟歎採芝草9) [116] 10) [117] 門閭
006_0560_b_06L後不知所終出弘賛第八

006_0560_b_07L蓮出舌根

006_0560_b_08L
釋智業俗姓楊氏住楊州長樂寺
006_0560_b_09L勤戒業誦法華經隋大業末年宇文
006_0560_b_10L化及在楊州作逆殺煬帝於宮闈于時
006_0560_b_11L天下崩離百姓飢饉斗米萬錢智業時
006_0560_b_12L在別院居一小屋專誦不輟遂餓死
006_0560_b_13L房中無人收葬此屋因復傾倒業屍
006_0560_b_14L竟在其下及義寧初平定之後
006_0560_b_15L處忽生一莖蓮花光色異常道俗驚嗟
006_0560_b_16L莫知其故時寺僧有耆舊者11) [118]
006_0560_b_17L此地曾有一僧專誦法華于時旣屬喪
006_0560_b_18L於玆捨命無人12) [119] 骸骨在此
006_0560_b_19L必是僧之靈也乃尋掘花根其靑蓮花
006_0560_b_20L乃從髑髏中舌根下生舌如生存都不
006_0560_b_21L爛壞寺衆乃將舌及花上堂鳴鐘集衆
006_0560_b_22L爲轉法華其舌聞經猶能振動道俗
006_0560_b_23L聞之觀者如堵莫不嗟歎咸發勝心
006_0560_b_24L出弘賛第七

006_0560_c_01L
3. 경전에서 사리가 나오다
지엄智儼15) 스님은 동주同州(중국 섬서성) 사람이다. 나이 열세 살 때 인도의 스님(梵僧)을 만나서 출가하여 계업사戒業寺에 머물렀다. 『법화경』ㆍ『유마경』ㆍ『반야경』 등을 두루 배워서 그 깊은 뜻을 구명하여 마침내 통달하고, 말과 행동이 모두 뛰어난 이른바 ‘고결한 법사’가 되었다.
현경顯慶 3년(658) 태주太州 선장현仙掌縣의 여러 신도 대중들이 지엄 스님을 영선사靈仙寺로 청하여 『법화경』을 강설해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이 절의 환향還香 스님16)의 방에 거처하게 되어, 첫날 밤에 『법화경』을 꺼내 책상 위에 펴놓고 한 대문을 찾아서 독송하였다. 그때 환향 스님과 시자 세 사람이 함께 거기에 있었는데 지엄 스님이 향을 피우자마자 갑자기 『법화경』의 불佛 자에서 세 과의 사리가 나왔다.
오색 광명이 경 위에 찬란히 퍼지고 사리는 이리저리 흘러 다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환향 스님이 곧 절의 다른 스님들에게 알려 모두 와서 예배하고 함께 사리를 거두어 모시려고 하니까 사리는 모두 불佛 자로 흘러 들어갔다.
스님들이 슬피 울며 예배한 다음 향을 피우고 다시 진용을 뵙기를 발원하니, 사리가 다시 불佛 자에서 나와 흘러 다니며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에 다른 불佛 자로 들어가 차례대로 없어졌다. 지엄 스님은 『법화경』을 수십 번 강설하여 영험과 상서로움을 얻은 일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스님은 입적하기 며칠 전부터 여러 곳을 다니면서 여러 스님과 아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보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갑자기 어느 날 아침에 마당을 깨끗이 소제한 다음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들어 그대로 입적하였다.

006_0560_c_01L舍利流出於金文

006_0560_c_02L
釋智儼同州人也年至十三忽遇梵
006_0560_c_03L僧出家住戒業寺徧學法華維摩般若
006_0560_c_04L並窮其了義遂當法匠實所謂高
006_0560_c_05L潔法師卷下第六張 言行兼至者也
006_0560_c_06L慶三年太州仙掌縣道俗請儼於靈仙
006_0560_c_07L講法華經儼於寺僧還香房13) [120]
006_0560_c_08L止閤舍初夜取法華經舒披案上方欲
006_0560_c_09L尋讀于時還香幷侍者三人並在其處
006_0560_c_10L儼焚香未訖忽見經上佛字中出三舍
006_0560_c_11L五色光明散滿經上流行不住
006_0560_c_12L香等徧告寺僧俱來禮拜欲共收取舍
006_0560_c_13L舍利還流入於佛字僧等禮拜悲泣
006_0560_c_14L然香發願更覩眞容舍利還從佛字中
006_0560_c_15L流行不住少選之間別於他佛字中
006_0560_c_16L相從隱沒儼講法華凡數十餘徧
006_0560_c_17L靈獲瑞難以具言將終數日處處巡
006_0560_c_18L法朋舊識人人共別忽一14) [121] 灑掃
006_0560_c_19L庭院端坐入定於是而終忽有異香
006_0560_c_20L「旣」作「留」{乙}「久」作「夕」{甲}「俗」下
006_0560_c_21L有「類」{乙}
「土」作「上」{甲}「旦」作「且」{甲}
006_0560_c_22L
「二光」作「五寸」{乙}「辛」作「爭」{乙}「沈」
006_0560_c_23L作「說」{乙}
「封」作「對」{乙}「旌」作「表」{乙}
006_0560_c_24L
「悟」作「語」{乙}「理」作「埋」{乙}「內」無有
006_0560_c_25L{乙}
「旦」作「且」{甲}

006_0561_a_01L
기이한 향기와 기운이 온 절 안에 가득하여 이레가 되도록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혀는 입적하고 몇 해가 지나도 썩지 않았고, 머리털이 두 마디나 더 자랐으며, 얼굴빛이 생전과 같아 지혜 있는 사람들은 다들 그가 득도했다고 하였다.
『홍찬법화전』 권3
4. 광명이 보탑을 비추다
좌복야左僕射(천자를 보좌하는 벼슬) 송국공宋國公 소우簫瑀는 자字가 시문時文17)인데, 고조부는 양나라 무제이고, 아버지는 명제18)이다.
그는 불교를 깊이 믿어 때때로 어떤 모임이 있으면 언제나 별도로 채식을 주도록 하였다. 비록 국무에 참여할 때라도 『법화경』을 염송하여 조금도 빠진 적이 없었으며, 『법화의기法華義記』 10권19)을 직접 저술하여 때때로 집안의 아이들과 조카들에게 그것을 강설하였다.
『의기』가 완성된 날 밤, 꿈에 다보불탑多寶佛塔이 허공중에 떠 있어 찬란하게 빛났으므로 이름난 공장工匠을 불러다가 그 묘탑을 조성하였다.
『홍찬법화전』 권3
5. 병의 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지다
장간사長干寺의 동쪽에 아사리(闍梨20))가 살았는데,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며 절조 있는 수행이 매우 높았다. 독송할 때면 항상 병의 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져서 언제나 보호가 되었다.
『홍찬법화전』 권7
6. 천병天兵이 하늘에 가득하다
현수玄秀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황주黃州(중국 호북성) 수화사隨化寺에서 늘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자주 기이한 경험을 하였다.
더운 한 여름철에 스님의 친구들이 시원한 바람이나 쐬며 이야기나 나누자고 사람을 보내 현수 스님을 청하였다. 심부름 간 사람이 스님의 방 앞에 이르러 보니, 호위가 엄숙하고 사람과 말들이 수없이 들끓고 있기에 겁이 나서 그대로 돌아와 고하였다. 이에 함께 가서 보니 처음과 다름없었다.
뒷문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그곳에도 그 무리가 대단하였고, 하늘을 쳐다보니 군사가 공중에 가득 차 끝이 없고 코끼리와 말을 탄 귀신들도 수없이 북적대고 있었다. 친구들은 현수 스님에게 감응하는 바 있음을 알고 물러나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에 친구들이 찾아와 사죄하고, 다시 찾지 않았다. 스님은 『법화경』 독송에 전념하다가

006_0561_a_01L氛氳滿院經餘七日亡後數年其舌
006_0561_a_02L不壞鬢髮加長二寸顏色如舊識者
006_0561_a_03L以爲得道之流也出弘賛第三

006_0561_a_04L光明照耀於寶塔

006_0561_a_05L
左僕射宋國公蕭瑀字時文高祖梁武
006_0561_a_06L父明帝公深信釋典時處會讌
006_0561_a_07L勑別賜素食公雖叅國務而誦念無虧
006_0561_a_08L手著法華義記凡十卷時於第1) [122]
006_0561_a_09L子姪講之䟽成之日夢多寶佛塔
006_0561_a_10L耀空中因召名工造玆妙塔出弘賛第
006_0561_a_11L

006_0561_a_12L瓶水冬溫夏冷

006_0561_a_13L
長干寺東闍梨誦法華經甚有節行
006_0561_a_14L每有所誦瓶水冬溫夏冷略爲常候
006_0561_a_15L出弘賛第七

006_0561_a_16L天兵匝地盈空

006_0561_a_17L
釋玄秀少出家住黃州隨化寺常誦
006_0561_a_18L法華每感徵異時屬炎暑同友逐凉
006_0561_a_19L遣召秀來卷下第七張 欲有談笑旣至
006_0561_a_20L房前但見羽衛嚴肅人馬偉2) [123] 怖而
006_0561_a_21L返告同往共觀如初不異轉至後門
006_0561_a_22L其徒彌盛上望空中塡塞無際多乘象
006_0561_a_23L類雜鬼神乃知其感通也置而遂
006_0561_a_24L明晨慚謝朋徒遂絶秀專斯業

006_0561_b_01L수나라 말엽에 수화사에서 입적하였다.
『홍찬법화전』 권7
제12단 「약왕보살본사품」
1. 스스로 자기 전생을 알다
수나라 개황 연중(581~600)에 위주 자사魏州刺史 최언무崔彦武가 부임하여 관내를 순시하는데, 한 고을에 이르자 갑자기 따르는 이를 돌아보고 말하였다.
“내가 옛날 이 고을에서 어떤 사람의 부인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때 살던 집을 알고 있다.”
말을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돌아서 한 집에 이르자, 문을 두드리도록 명하였다.
주인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와서 맞아들이니, 최언무는 마루에 올라가 앉았다. 노인이 말하였다.
“관가 사람께서 무슨 볼일로 저희 집에 오셨습니까?”
그러자 최언무가 “나의 전생은 노인장의 아내였습니다.”라고 답하자, 노인은 뜻밖의 말에 놀라 다시 물었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전에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그 경전과 금비녀 다섯 개를 동쪽 벽의 땅에서 6~7자쯤 되는 곳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벽의 불룩하게 솟아 나온 곳이 그곳입니다. 그리고 그 『법화경』 제7권 뒤의 한 장이 불에 타 글자가 없어져서 내가 지금도 『법화경』을 독송할 때면 늘 그 부분을 잊어버립니다.”
주인이 사람을 시켜 벽 위의 불룩한 곳을 파 보니 과연 뒷장이 탄 『법화경』과 금비녀가 나와 언무의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주인은 흐느껴 울며, “죽은 아내는 항상 이 『법화경』을 읽었고, 이 금비녀도 그때 아내가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언무가 다시 말하였다.
“마당에 괴목槐木이 있는데, 내가 옛날 해산할 때 머리카락을 잘라서 나무의 빈틈에 넣어 두었습니다.”
또 사람을 시켜 찾아보니 과연 그 머리 타래가 있었다. 주인은 이것을 보고 더욱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였다. 언무는 머물러 옷가지와 재물을 주고는 임지로 떠났다.21)
『영서집』, 『홍찬법화전』 제9권, 『현응록』
2. 두 글자를 기억하지 못하다

006_0561_b_01L末終寺出弘賛第七

006_0561_b_02L

006_0561_b_03L第十二段藥王菩薩本事品

006_0561_b_04L
自識前身難通二字檀香遠達佛手親摩
006_0561_b_05L藥精入懷池水療病癩瘡即愈氣力鬱增
006_0561_b_06L3)大風亦利急疾乃瘳

006_0561_b_07L自識前身

006_0561_b_08L
隋開皇中魏州刺史崔彥武受職行
006_0561_b_09L4) [124] 至一邑忽謂從者曰吾昔在此邑
006_0561_b_10L爲人婦今知舊住處因乘馬循港
006_0561_b_11L屈曲至一家命扣門主人老翁開門
006_0561_b_12L請入武升堂而坐老翁曰官人何事
006_0561_b_13L至此武即言吾前身是汝之妻老翁
006_0561_b_14L憑何爲驗武曰吾昔誦法華經
006_0561_b_15L金釵五隻藏東壁5) [125] 去地六七尺
006_0561_b_16L隆高處是也其經第七卷後一紙火燒
006_0561_b_17L失去文字6) [126] 誦此經其後恒忘失
006_0561_b_18L令人穿壁高處果然得經火損後
006_0561_b_19L并獲金釵一如其言主人泣曰
006_0561_b_20L妻在日常誦此經金釵亦其所有
006_0561_b_21L武又曰庭前槐樹吾昔産時解頭髮
006_0561_b_22L置樹空中令人探之果得其髮主人
006_0561_b_23L見已悲喜交集武即留衣物賜之而
006_0561_b_24L出靈瑞集弘賛傳現應錄卷下第八張

006_0561_b_25L難通二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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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스님이 진군秦郡 동사東寺에 있었다. 한 사미에게 『법화경』을 독송시켜 매우 깊이 통달하였는데, 다만 「약초유품」의 ‘애체靉靆’22) 두 글자만은 가르쳐 주면 잊어버리고 가르쳐 주면 잊어버리기를 천 번에 이르렀다. 스승이 꾸짖으며 말하였다.
“너는 『법화경』을 거의 통달하였는데 어찌하여 이 두 글자는 그렇게도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날 밤 스님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그대는 사미를 너무 꾸짖지 마시오. 그 사미는 전생에 절 동쪽 마을에서 우바이優婆夷 몸으로 태어나 본래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그 집의 『법화경』 「약초유품」 중 ‘애체’ 두 글자를 좀이 쏠아서 그때부터 이 두 글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태어나 새로 배워도 얼른 깨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은 아무개이며, 그때의 경전이 지금도 있으니, 믿지 못하겠으면 가서 알아보시오.”
이튿날 아침 스님이 그 마을에 가서 그 집을 찾아가 모두 이야기한 후에 주인에게 물었다.
“댁에 무슨 경전이 있습니까?”
주인은, “예, 『법화경』 한 부가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책을 내어다 보니, 과연 「약초유품」의 두 글자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주인이 다시 말하였다.
“이 경전은 죽은 며느리가 살아 있을 때 늘 독송하던 것인데 죽은 지 17년이 되었습니다.”
며느리의 죽은 달과 사미의 잉태한 달을 맞추어 보니 틀림이 없었다. 그 뒤 사미가 어디서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를 아는 이가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6
3. 전단향의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다
장안 대사章安大師는 이름이 관정灌頂23)인데, 오월왕吳越王이 총지摠持라는 시호를 내렸다. 장안章安의 오씨吳氏 집안에 태어나 3세에 문득 어머니를 따라 불ㆍ법ㆍ승 삼보의 명호를 불렀다. 처음에는 천태 지관(定慧24))의 법을 이어받았는데, 만년에 칭심정사稱心精舍에서 오랫동안 『법화경』을 강설하여 세속 사람들을 많이 교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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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某失其名住秦郡東寺有沙彌
006_0561_c_02L法華經甚通利唯到藥草喩品靉靆二
006_0561_c_03L隨敎隨忘如是至千師苦嘖之曰
006_0561_c_04L汝法華一部熟利如此豈不能作意
006_0561_c_05L此二字耶師夜夢見一僧謂之曰
006_0561_c_06L不應嘖此沙彌前生在寺側東村受優
006_0561_c_07L婆夷身本誦法華一部但其家法華
006_0561_c_08L當時藥草喩品白魚食去靉靆二字
006_0561_c_09L時經本無此二字爲其今生新受習未
006_0561_c_10L成耳7) [127] 名某經亦現在脫不信者
006_0561_c_11L可往驗之師明8) [128] 就彼村訪問此家
006_0561_c_12L言畢問主人云有何經書答云有
006_0561_c_13L法華經一部索取看藥草喩品果缺二
006_0561_c_14L [17] 云是太兒亡婦生存受持之計
006_0561_c_15L已得一十七年果與此沙彌年時胎月
006_0561_c_16L相應也沙彌後不知所終出弘賛第六

006_0561_c_17L檀香遠達

006_0561_c_18L
師諱灌頂吳越王謚號摠持生於章安
006_0561_c_19L吳氏三歲時便能隨母稱三寶名
006_0561_c_20L承天台定慧之法晩至稱心精舍長講
006_0561_c_21L法華化流囂俗時有法龍村人去山
006_0561_c_22L「內」作「四」{乙}「太」作「大」{乙}「大風亦
006_0561_c_23L利急疾乃瘳」作「急疾乃瘳大風亦利」{乙}
「部」
006_0561_c_24L作「郡」{乙}
「上」作「中」{乙}「令」作「今」{乙}
006_0561_c_25L
「性」作「姓」{乙}「旦」作「且」{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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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산에서 30리쯤 떨어진 법룡촌法龍村 사람이 병이 들어 거의 목숨이 끊어지게 되었는데, 그의 아들이 대사에게 달려와 구원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대사가 그를 위해 전단향을 피우고 『법화경』을 독송하니, 병자가 멀리서 그 전단향 냄새를 맡고 즉시 병이 나았다.
『홍찬법화전』 권3, 『현응록』
4. 부처님께서 손으로 어루만지시다
송宋나라 나여羅璵의 아내 비씨費氏는 영주寧州 사람이다. 그녀는 삼보를 열심히 믿고 공경하였으며, 여러 해 동안 『법화경』 독송을 부지런히 힘써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병에 걸려 가슴이 몹시 아팠다. 점점 더 심해져서 고통이 극한에 이르자 온 집안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고 근심하였다.
비씨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법화경』을 부지런히 독송했으므로 반드시 좋은 도움이 있으리라. 끝내 이로 인해 죽을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는 이내 잠이 들었다.
곧 꿈을 꾸었는데 부처님이 나타나 창밖에서 손을 뻗어서 그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셨다. 이때 집 안팎의 사람들이 온통 금빛으로 찬 것을 보았고, 또 방안에는 기이한 향내가 가득하였다. 이로부터 병이 나아서 완쾌되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로서 신심을 일으키지 않는 이가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6, 『현응록』
5. 약의 정기精氣가 품에 들어가다
정견淨見 스님은 어디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다. 어릴 때 출가하여 숭고산崇高山과 용문산龍門山에 주로 살면서 『법화경』을 1만 3천 번이나 독송하니, 너무 오랫동안 독송을 지속하여 몸이 몹시 쇠약해졌다. 이렇게 20여 년을 지나 어느 날 갑자기 스님이 살고 있는 북쪽에서 어린아이들이 요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나서 더욱 괴로웠는데, 그 아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머리가 하얗게 센 한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와서 말하였다.
“선사께서는 사대四大가 편안하십니까?”
이와 같이 문안을 하므로 스님이 대답하였다.
“차차 몸이 수척해집니다. 게다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많은 아이들이 날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니 더욱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스님께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가셔서 그 애들이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 목욕하기를 기다렸다가 한 아이의 옷을 가지고 돌아오십시오. 뒤따라와서 달라고 하거든 절대로 주지 마십시오.

006_0562_a_01L三十里染患將絶其子奔來求救師
006_0562_a_02L爲轉法華經焚栴檀香病者遙聞香氣
006_0562_a_03L即愈出弘賛第三及現應錄

006_0562_a_04L佛手親摩

006_0562_a_05L
宋朝羅璵妻費氏寧州人也費信敬三
006_0562_a_06L誦法華經數年之間勤苦不懈
006_0562_a_07L而染患心痛浸成極1) [129] 闔門惶懼
006_0562_a_08L作念言我誦經勤苦必有善祐終不
006_0562_a_09L因此至死地也旣而睡臥2) [130] 佛身
006_0562_a_10L舒手過窓以摩其心內外皆3) [131] 金光
006_0562_a_11L滿室又聞異香襲4) [132] 自此病愈見者
006_0562_a_12L莫不生信出弘賛第六及現應錄

006_0562_a_13L藥精入懷卷下第九張

006_0562_a_14L
釋淨見不知何許人也童稚出家
006_0562_a_15L住崇高及龍門山誦法華經一萬三千
006_0562_a_16L旣誦持積久身力疲困過二十餘
006_0562_a_17L年後忽聞住處北邊有諸小兒言語
006_0562_a_18L閙亂轉覺煩悶亦不測小兒從何所
006_0562_a_19L有一白頭老翁著白練裙襦每叅
006_0562_a_20L問云禪師四大何如師答漸覺羸頓
006_0562_a_21L又不知何處得多許小兒日相煩亂
006_0562_a_22L不復可忍老公云師往其戱處坐待
006_0562_a_23L彼脫衣入水洗浴師隨抱一小兒衣
006_0562_a_24L還若來取者愼勿與之其若罵師

006_0562_b_01L설사 스님을 욕하고 꾸짖더라도 절대로 대꾸하지도 마십시오. 그러면 제가 와서 말하겠습니다.”
정견 스님이 노인의 말대로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가서 기다리니, 과연 여러 아이들이 와서 옷을 벗고 못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스님은 한 아이의 옷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한 아이가 뒤따라와서 옷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스님이, 노인이 하던 말이 생각나서 끝내 옷을 돌려주지 않으니까, 아이는 마구 욕설을 퍼붓고 스님과 조사를 비방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역시 대꾸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노인이 와서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네가 스님의 품속으로 들어가거라.”
처음에는 노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다가 노인이 몇 번을 독촉하니, 스님의 품으로 들어와 다시 뱃속으로 들어가 없어졌다. 노인이 스님에게 물었다.
“몸이 어떠하십니까?”
스님이 “예전보다는 기분이 좋고 기운이 좀 납니다.”라고 대답하자, 노인은 곧 가 버렸다. 이때부터 스님은 차차 건강이 회복되어 『법화경』 독송을 몇 갑절 더하였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그 노인이 보현보살인데 산신을 시켜 약의 정기를 어린아이로 변하게 하여 스님에게 먹여서 병이 나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정견 스님은 그 뒤 어디에서 입적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홍찬법화전』 권6
6. 못의 물로 병을 고치다
승명僧明 스님은 호주濠州 석문산石門山에 머물러 있었다. 스님은 산꼭대기 바위 위에 벽돌을 쌓아 미륵천궁을 만들고, 미륵상을 조성하여 모셔 놓고 늘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그때마다 공중에서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와 “좋도다(善哉)!”라고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감天監 연중(502~519)에 양나라 무제에게 글을 올려 몸을 태워 공양하겠다고 하였다. 두번 세번 거듭 청하여 드디어 허락이 내렸다. 스님은 미륵천궁 앞 네모난 바위 위에서 분신하여 뜻대로 몸이 다 재가 되어 버리고 오직 해골만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네모난 바위 가운데가 사방 4~5척쯤 움푹 함몰하여 못이 되었다.
밤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에 보니 연못에 연꽃이 피었는데 세상에 다시없이 아름다웠고, 이 못의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 병이 씻은 듯이 깨끗이 나았다. 뒷사람이 조그만 상을 만들고, 다시 그 해골을 태워서 재를 상에 발랐는데, 누가 그 상에 흠을 내거나 더럽히면 곧 상이 옮겨 앉고, 그 옮겨 앉는 곳에는

006_0562_b_01L愼勿應答弟子自來語之見隨老公語
006_0562_b_02L往俟之諸小兒果脫衣入池洗浴
006_0562_b_03L抱小兒衣還房小兒尋後索衣見憶
006_0562_b_04L老公言囑永不還之小兒即惡口
006_0562_b_05L謗禪師及宗祖師亦不應白頭老公尋
006_0562_b_06L語小兒云汝入師懷裏小兒初不
006_0562_b_07L從老公駈逼數迴始入見懷沒在
006_0562_b_08L腹內老公問師四大何如見云氣力
006_0562_b_09L勝於從來老公尋去自爾已後氣力
006_0562_b_10L强誦數倍識者云此當是普賢菩薩
006_0562_b_11L令山神駈諸藥之精變爲小兒使其服
006_0562_b_12L除疾病耳見後不知所終出弘賛第
006_0562_b_13L

006_0562_b_14L池水療病

006_0562_b_15L
釋僧明住濠州石門山於山頂石5) [133]
006_0562_b_16L累甎造彌勒天宮一所幷彌勒像常誦
006_0562_b_17L法華經每聞空中彈指及稱善哉聲
006_0562_b_18L天監年中奏啓梁武請欲焚身頻煩再
006_0562_b_19L方蒙6) [134] 乃於彌勒宮前方石上
006_0562_b_20L遂其先志身並灰燼唯餘一甲燒訖
006_0562_b_21L7) [135] 方四五尺忽陷成池信宿花生
006_0562_b_22L卷下第一○張 鮮榮絕代諸飮池者
006_0562_b_23L病皆愈後人造一小像重燒此甲
006_0562_b_24L灰塗之人或8) [136] 像即移去其行道

006_0562_c_01L모두 꽃이 피었다. 크기가 배꽃이나 대추만 한 것이 수백 수천이나 되었다. 지금도 이를 표시하는 탑이 있어 그 사실을 갖추어 기리고 있다.
『홍찬법화전』 권5
7. 나병이 낫다
당나라 강주絳州 고산孤山의 함천사陷泉寺 법철 선사法轍禪師라는 분이 있었다. 하루는 산행을 하는데, 한 나병 환자가 토굴 속에 있다가 스님을 보자 먹을 것을 빌었다. 스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절로 데리고 와서 토굴을 파서 거처하게 하고, 옷과 음식을 주면서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다. 그 사람은 원래 글을 모르는 데다가 아둔하고 어리석어서 가르치기가 몹시 힘들었지만, 스님은 한 구절 한 구절 싫증내지 않고 꾸준히 가르쳐 주었다.
절반쯤 독송하게 되었을 때 갑자기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그를 깨우쳐 준 후부터는 차차 총명해져 깨우침이 빨라졌다. 이리하여 제5권~제6권에 이르자 몸의 상처가 아물고, 『법화경』 한 부를 전부 통달하자 몸이 완전히 건강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병에 대해 좋은 약’25)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그 말씀의 뚜렷한 징험이었다.
『영서집』, 『홍찬법화전』 권8, 『현응록』
8. 기력이 왕성해지다
승환僧歡 스님은 금릉金陵 치성사治城寺에 있었는데 본래 병이 있어서 기력이 없었다. 그래서 스님은 절에 있는 탑 앞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간절히 기원한 다음 『법화경』 독송을 결심하여 잠시도 쉬지 아니하였다. 그랬더니 갑자기 기력이 왕성해졌다.
탑 앞에 두 개의 돌사자가 있는데 매우 크고 무거웠다. 스님은 두 팔로 돌사자를 하나씩 들어 올려 옆구리에 끼고 10여 리를 달렸으나 전혀 피곤한 줄 몰랐다.
『홍찬법화전』 권6
9. 급성 질병이 낫다

006_0562_c_01L之處皆悉生花大如梨9) [137] 數過千百
006_0562_c_02L現有表塔具旌其事出弘賛第五

006_0562_c_03L癩瘡即愈

006_0562_c_04L
唐絳州孤山陷泉寺有法轍禪師山行
006_0562_c_05L見一癩人在土穴中從師乞食師憫
006_0562_c_06L引歸寺中 [18] 土穴安之授與衣食
006_0562_c_07L敎誦法華經其人素不識字加又凡鄙
006_0562_c_08L師句句授之終不辭倦誦之將半
006_0562_c_09L夢一僧指敎自後漸覺聰慧及五六卷
006_0562_c_10L身瘡漸安一部通利四大專蘇佛言
006_0562_c_11L病之良藥斯言驗矣出靈瑞集 弘賛第八
006_0562_c_12L及現應錄

006_0562_c_13L氣力鬱增

006_0562_c_14L
釋僧歡出家住金陵10) [138] 城寺本羸病
006_0562_c_15L乏氣力乃志心於寺塔下懺悔祈請懇
006_0562_c_16L誦法華經不輟於小時11) [139] 鬱然旋
006_0562_c_17L寺塔前有兩石獅子形甚重大
006_0562_c_18L忽以兩臂各貫獅子腹下擎之而走
006_0562_c_19L行十許里都不覺倦出弘賛第六

006_0562_c_20L急疾乃瘳

006_0562_c_21L「勢」作「熟」{乙}「夢」作「夜」{乙}冠註曰
006_0562_c_22L都疑覩{乙}
「人」作「入」{乙}「上」作「山」
006_0562_c_23L{乙}
冠註曰聞疑開{乙}「石」作「氏」{乙}
006_0562_c_24L冠註曰玷疑沾{乙}
」作「棗」{乙}冠註曰
006_0562_c_25L治疑治{乙}
「間」作「聞」{甲}

006_0563_a_01L
조간趙仠은 타고난 성품이 곧고 성실하였다. 불행하게도 갑자기 발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서 치료해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드디어 뜻을 내어 『법화경』을 독송하자 그 병이 단박에 나았다. 조간은 이때부터 늘 『법화경』을 독송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음양승陰陽僧26)인 일자日資ㆍ연원演源과 승속(緇素27)) 몇몇이 함께 법화도法華徒를 결성하여 같이 불혜佛慧를 닦았다.
10. 나병(大風28))에도 도움이 되다
스님은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는데 불행히 흑라黑癩(피부가 검어지는 나병)에 걸렸다. 별의별 처방을 다 써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법화경』은 염부제閻浮提29) 사람의 병에 양약”이라는 말을 듣고, 『법화경』을 독송할 뜻을 세우고 한 질을 전부 독송하니, 병이 말끔히 나았다.
또 남대南臺의 녹사錄事30) 유씨劉氏도 그 병에 걸려 여러 가지로 치료해 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유씨가 길에서 이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나도 전에 그 병에 걸렸었는데 『법화경』을 독송한 덕으로 완전히 나았습니다.”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유씨는 확고한 신심이 생겨서 곧 『법화경』을 구해서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부지런히 독송하였다. 한 질을 다 독송하니, 꿈에 한 신이한 스님이 나타나서 손으로 유씨의 몸을 어루만지고 몸에 쑥뜸을 해주었다. 유씨가 놀라서 잠을 깨 보니, 땀이 흥건하여 물 흐르듯 하는데 몸과 마음이 상쾌하였다. 그리고 구름과 안개가 걷히듯 병이 깨끗이 나아 전과 같이 회복되었다.
제13단 「묘음보살품」
1. 죽은 어머니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다
장안 통궤방通軌坊 유공신劉公信의 아내 진씨陳氏의 어머니가 병으로 먼저 죽고, 뒤에는 진씨도 갑자기 죽었다. 어떤 사람이 진씨를 인도하여 지옥으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죄로 고통 받는 모습을 모두 구경시켜 주었다. 나중에 한 지옥의 옥문이 갑자기 열리는데, 그의 어머니가 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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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仠受性貞固不幸1) [140] 急發之疾
006_0563_a_02L種種治無一驗効遂秉志誦蓮經
006_0563_a_03L疾頓愈仠自是常誦不怠乃與陰陽僧
006_0563_a_04L日資演源并緇素若干人結法華徒
006_0563_a_05L同修佛慧

006_0563_a_06L大風亦利

006_0563_a_07L
2) [141] [19] 不知何許人也不幸*遘黑癩
006_0563_a_08L萬方無効忽聞法華是閻浮提人病之
006_0563_a_09L良藥誓志3)全誦厥疾乃瘳卷下第一一
006_0563_a_10L
又有南臺錄事劉氏亦感此疾
006_0563_a_11L種種治無驗一日亡名路逢劉氏
006_0563_a_12L我亦曾得此病賴誦蓮經即得除愈
006_0563_a_13L氏於是生決定信即覔蓮經手不釋卷
006_0563_a_14L一部乃畢忽夢有異僧以手摩挲身已
006_0563_a_15L即以艾炷渾身炙之驚駭即覺白汗
006_0563_a_16L如流身心豁然如雲霧4) [142] 平復如舊

006_0563_a_17L

006_0563_a_18L第十三段妙音菩薩品

006_0563_a_19L
亡母脫苦神人住空水不能漂屍不生臭
006_0563_a_20L虎吼退賊字化爲金

006_0563_a_21L亡母脫苦

006_0563_a_22L
長安通5) [143] 劉公信妻陳氏之母
006_0563_a_23L病先卒後陳氏暴亡見一人引入地獄
006_0563_a_24L俻覩諸罪相後見一獄石門忽開

006_0563_b_01L심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딸을 보자 말하였다.
“너는 나를 위해 『법화경』 한 질을 베껴 써서 내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다오.”
말이 끝나자마자 옥문이 도로 닫혔다. 진씨가 다시 소생하여 그 이야기를 하니, 남편 공신이 매부 조사자趙師子를 불러다가 『법화경』을 베껴 쓰게 하였다. 이때 어떤 경전 쓰는 사람이 새로 쓴 『법화경』 한 질을 가지고 와서 팔려고 했다. 조사자가 말하였다.
“다행히 이 경이 있으니 이것을 사시지요. 새로 쓸 필요는 없겠습니다.”
유공신이 그의 말을 따라 그 『법화경』을 사서 진씨에게 주었다. 진씨가 하루는 음식을 차려 어머니를 제사 지냈더니,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내가 먼젓번에 너에게 『법화경』 한 질을 써 달라고 했는데 왜 써 주지 않느냐?” 하고 나무라는 것이었다. “벌써 한 질을 사 놓았어요.” 하고 딸이 대답하니, 어머니가 하는 말이, “나는 그 경 때문에 더 무거운 죄를 받았으니, 옥졸이 내 등을 때려 터트렸다. 그 범가范家의 경을 취하여 내 몫으로 했기 때문이다.” 하였다.
딸은 꿈에서 깨어나 급히 사람을 시켜 새로이 『법화경』을 베껴 쓰게 하였다. 경이 완성되자 어머니가 또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새로 쓴 경의 힘으로 나는 이미 지옥에서 벗어나 좋은 곳에 가 몸이 편안해졌기에 와서 네게 알려 주는 것이다. 너는 깊이 믿어 세상을 잘 살아가도록 하여라.”
전에 산 경을 가져다가 조사해 보니 과연 범씨가 베껴 쓴 것이었다. 당 용삭龍朔(661~663) 때의 일이다.
『법원주림전法苑珠林傳』.31) 도세道世 스님이 엮은 것으로 그 1백 권이 장경에 들어 있다.
2. 신인이 와 허공에 머물러 경을 듣다
현진玄眞 스님은 수춘壽春 사람이다. 영복사永福寺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잠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어느 해 가을, 달이 밝은 밤에 스님이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제7권의 절반쯤 이르렀을 때 옆방에 있는 한 사문이 갑자기 일어나서 변소에 가려고 방에서 나왔다.
뜰에 내려서 보니 밝은 달빛에 엄청나게 큰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마당에 비치고 있었다. 무슨 그림자인가 하고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공중에 한 신인神人이 의연히 머물고 있는 것이었다. 스님은 발끝을 세우고서 우러러보면서 오랫동안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현진 스님의 『법화경』 독송이 끝나자 신인도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그 스님은 이때부터 『법화경』을 배워 독송하고 지니기를 종신토록 게을리 하지 않았다.
『홍찬법화전』 권8

006_0563_b_01L在其中受極重苦母見女曰汝可爲
006_0563_b_02L寫法華經一部使吾脫免言已門
006_0563_b_03L陳氏再蘇說之公信即憑妹婿趙
006_0563_b_04L師子寫是經忽有經生持新寫蓮經
006_0563_b_05L一部來貿錢趙言幸有此經可贖之
006_0563_b_06L不必寫也劉從之授與陳氏陳氏一
006_0563_b_07L設母食乃夢母曰吾先令汝寫經一
006_0563_b_08L何不爲之女曰已爲贖一部訖
006_0563_b_09L曰吾爲此經增受重罪獄卒打吾脊
006_0563_b_10L破以不合取范家經爲己有故女夢
006_0563_b_11L急請人書之經成又夢母報曰
006_0563_b_12L承經力已脫冥司好處安身今來報
006_0563_b_13L汝當信心好住世間及詢前經
006_0563_b_14L是姓范人寫唐龍朔中也出法苑珠林傳
006_0563_b_15L釋道世撰也有一百卷入藏本

006_0563_b_16L神人住空卷下第一二張

006_0563_b_17L
釋玄眞壽春人也居永福寺誦法華
006_0563_b_18L無時懈息時於秋天月夜持誦此
006_0563_b_19L至第七卷方半比房有一沙門
006_0563_b_20L起如厠乃見庭中有大人形影因擧
006_0563_b_21L頭四望即觀空中有一神人嶷然而
006_0563_b_22L此沙門因立足瞻仰更不移步久
006_0563_b_23L經文亦了神忽不現其僧從此
006_0563_b_24L學誦持終身不懈出弘賛第八

006_0563_c_01L
3. 물도 떠내려 보내지 못하다
당나라 무덕武德 연중(618~626)에 소장蘇長이라는 사람이 파주 자사巴州刺史에 임명되어 가족을 데리고 부임길에 올랐다.
도중에 가릉강嘉陵江을 건너게 되었는데 중류에 이르렀을 때 바람이 크게 일어 배가 뒤집혀서 남녀 60여 명이 몰살했다. 그런데 오직 여자 하인 한 사람만이 살아났다. 그녀는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배에 파도가 쳐들어오자 『법화경』을 머리에 이고 경전과 목숨을 함께하리라 맹세하였다.
이에 여인은 물에 빠지지 않고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다 이내 기슭에 닿았다. 뭍에 올라 경전 상자를 열어 보니 『법화경』이 조금도 젖지 않았다. 그녀는 뒤에 양주로 시집가 살았는데 『법화경』을 믿고 독송함이 오히려 전보다 더 독실하였다.
『법원주림』, 『홍찬법화전』 권9, 『현응록』
4. 시체에서 냄새가 나지 않다
도사道士 사숭史崇은 장안 교남郊南 사람이다. 어려서 도교를 믿어 황건黃巾을 쓰고 현도관玄都觀(도교의 절)에 머물렀다. 뒤에 갑자기 발심하여 하루에 한 번씩 『법화경』을 독송하고 개인적으로 불상을 모시고 매일 여섯 차례 예배 참회하니, 매양 여러 도교인들의 미움을 받았다. 그로 인해 퇴속했으나 더욱 애써서 독송하였다.
뒤에 사숭은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는데,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도 시체가 조금도 부패하지 않고 오히려 향기가 났다. 친척과 이웃 사람들이 공경하여 담 옆에 감실龕室을 만들어 안치하고 때때로 찾아보았는데, 항상 좋은 향내가 났다.
그 뒤 1년가량 지나니 근육은 다 없어지고 오직 혀만이 남아 모양과 빛깔이 살아 있는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의아하고 해괴하게 생각하여 불로 태워 보았으나 변하지 않았고, 도끼로 찍어 보았으나 깨뜨려지지 않았다. 원근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보고는 크게 신심을 일으켰다.
『홍찬법화전』 권8

006_0563_c_01L水不能漂

006_0563_c_02L
唐武德中蘇長授巴州刺史帶家族赴
006_0563_c_03L因渡嘉陵江中流風作船帆傾沒
006_0563_c_04L男女六十餘人一時喪失唯一女使
006_0563_c_05L常讀法華經浪入船中女乃頭戴經凾
006_0563_c_06L誓與俱沒旣而女即不沈隨波泛泛
006_0563_c_07L頃刻至岸捧凾而上開視其經了無
006_0563_c_08L霑濕此女後嫁於楊州6) [144] 篤信讀誦
006_0563_c_09L愈於舊也出法苑珠林傳 又出弘賛第九及
006_0563_c_10L現應錄

006_0563_c_11L屍不生臭

006_0563_c_12L
道士史崇長安郊南人也小屬道流
006_0563_c_13L早預黃巾住玄都觀後忽發心誦法
006_0563_c_14L華經日恒一徧私立佛像六時禮懺
006_0563_c_15L每爲諸道所嫉因玆返俗彌精諷誦
006_0563_c_16L後忽染患身亡時在盛夏一無變壞
006_0563_c_17L唯聞香氣親里敬之 [20] 龕安堵側
006_0563_c_18L時常聞妙香後經年餘筋肉都盡
006_0563_c_19L舌形顔色與常人不異或有疑駭之
006_0563_c_20L乃火燒不變斧斫無損遠近見聞
006_0563_c_21L信倍恒百出弘賛第八

006_0563_c_22L「遘」作「遭」{乙}次同「王」作「亡」{甲}{乙}
006_0563_c_23L註曰全疑念{乙}
「捲」作「撥」乙「軌」作
006_0563_c_24L「輙」乙
「其」作「某{乙}

006_0564_a_02L
5. 범이 울부짖어 도적을 물리치다
법애法愛 스님은 장사長沙 사람이다.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볼일이 있어 교지交趾32)에 갔다. 마침 그 지방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스님은 몸을 피해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다섯 명의 도둑에게 붙잡혔다. 도둑들은, “우리가 밥을 다 먹고 나서 저 도인을 죽여 없애 버리자.” 하였다.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스님이 무심코 벽 쪽을 보니 창이 한 개 있었다. 스님은 그것을 가지고 얼른 밖으로 나와 북쪽을 향해 달렸다. 도둑들이 밥을 다 먹고 일어나 스님이 멀리 달아나는 것을 보고 급히 뒤쫓아 왔다.
스님은 가시덤불 숲에 이르러 숨으려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덤불 속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나란히 누워 있다가 스님이 온 것을 보자 일제히 머리를 들어 스님을 바라보았다. 스님은 소스라치게 놀라 엉겁결에 말했다.
“두 분 단월檀越이여, 빈도는 도둑들에게 쫓겨 급한 김에 단월께 왔습니다.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호랑이는 곧 밖으로 나가더니 큰 소리를 지르면서 도둑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도적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 흩어졌다. 스님이 다시 북쪽으로 향해 달리니 호랑이가 뒤따라와 스님을 보호해 주었다. 얼마를 달렸는지 강가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이 음식을 가지고 있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배고프던 참이었기 때문에 맛있게 먹었다. 스님이 곧 물을 건너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가니, 호랑이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고 돌아서 가버렸다.
언덕에서 또 두 사람을 만나 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 주었다. 새벽녘에 두 사람은 작별하면서, “그저 북쪽으로만 가십시오. 그러면 환난을 면할 것입니다.” 하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래서 스님은 그들의 말대로 북쪽으로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30여 리쯤 갔을까 뜻밖에 옛 친구들을 만나서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비로소 환난을 완전히 면한 것이었다.
스님은 뒤에 여러 스님들과 신자들에게 겪은 일을 이야기하였는데, 나중에 어디서 입적했는지는 알 수 없다.
『홍찬법화전』 권7
6. 글자가 금 글씨로 변하다
장만복張萬福이라는 사람이 정관貞觀 연중(627~649)에 낙주 자사洛州刺史가 되었다. 성품이 거칠고 포악하여 공경심과 믿음이 없었다.
그는 부임해 가자마자, “관내에 덕행이 높은 중들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좌우에서 보고하기를, “근처에 묘지妙智라는 비구니가 있는데 깊이 정진하고, 또 『법화경』 한 질을 만들어

006_0564_a_01L虎吼退賊

006_0564_a_02L
釋法愛長沙人也誦法華經因綠往
006_0564_a_03L交趾値交人反亂愛隨例藏避忽爲
006_0564_a_04L五賊所得置在一處口云待我食竟
006_0564_a_05L殺却道人愛乃見壁邊有一槊子卷下
006_0564_a_06L第一三張
挾將出外向北直走賊食竟
006_0564_a_07L1) [145] 見愛奔馳竸往愛到一棘林
006_0564_a_08L即投中隱避乃遇兩虎相抱而臥
006_0564_a_09L見愛來並擧頭看愛愛轉惶懼口云
006_0564_a_10L二檀越貧道被賊逐急投檀越願將
006_0564_a_11L接救護二虎即出外奮迅驚吼賊便
006_0564_a_12L退散愛又北走虎隨送之到一水邊
006_0564_a_13L見人持數片飮食授與愛2) [146] 而食之
006_0564_a_14L氣味甚美即便渡水上洲虎亦捨去
006_0564_a_15L宿洲上又遇二人亦同在宿大設異味
006_0564_a_16L3) [147] 方別仍又囑云但北向行自當
006_0564_a_17L得脫於是北出三十餘里乃逢舊知
006_0564_a_18L見歡喜始得免脫愛後向道俗說之
006_0564_a_19L不知所終出弘賛第七

006_0564_a_20L字化爲金

006_0564_a_21L
張萬福貞觀中爲洛州刺史其人性麁
006_0564_a_22L不甚敬信初至任所問訪左右
006_0564_a_23L內有何德行衆僧左右報云廓下有一
006_0564_a_24L名妙智甚精進又造一部法華經

006_0564_b_01L가르침대로 잘 받아 지니고 공양하고 있어서 그 명성이 그 고장에서는 자자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만복은 시험 삼아 사람을 보내서 그 『법화경』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이를 거절하고 주지 않았다. 사군使君이 청정함을 지키지 않고, 또 재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만복이 크게 노하여 다시 사람을 보내왔기에 스님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법화경』을 내주었다. 만복은 『법화경』을 얻기는 하였으나 끝내 손도 씻지 않고 경을 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누런 종이였고,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만복은 크게 노하여, “이런 요망한 노인네가 있나. 내 어찌 더 이상 참겠는가.” 하고, 곧 좌우에 명하여 당장 스님을 잡아오라고 하였다. 사자使者가 스님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님의 경전에 글자가 한 자도 없어서 자사께서 크게 노하여 스님을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스님은 이유도 모른 채 두렵고 걱정이 되어 땀이 온몸을 적셨다. 사자를 따라 자사의 관아에 이르러 문안으로 들어서니, 두 금강신이 금강저金剛杵를 두 손으로 받들어 스님에게 드리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스님은 겨우 마음이 놓였다. 바로 안으로 들어가 자사의 앞으로 나아가자 『법화경』이 허공으로 올라가 글자가 모두 금자金字로 나타났다.
자사는 스님이 이르자마자 금강신과 허공에 떠 있는 금자를 보고 놀라고 두려워 급히 대청 아래로 달려 내려가 스님 앞으로 가서 슬피 울며 사죄 참회하고 예배하였다. 마침내 마음을 돌려 신심을 일으키고 『법화경』 1천 부를 조성코자 발원하여 널리 사방에 공양하고 자기도 『법화경』을 받아 지녀서 게으름이 없었다. 자사가 스스로 마음을 돌린 후 사람들은 모두 『법화경』을 읽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만복이 『법화경』을 조성한 이유를 물으니, 스님이 말해 주었다.
“경을 조성할 생각을 하고는 먼저 산중에 닥나무를 심고 늘 향 물을 주어 잘 자라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닥나무가 크게 자란 다음 진흙에 향 물을 섞어 종이 뜨는 집을 짓고, 닥나무 껍질을 벗겨서 법식대로 향 물로 깨끗이 하고, 직공을 고용하여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청정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모집했더니, 스물네댓 살쯤 된 강남 사람이 모집에 응해 와서 『법화경』을 베껴 쓰게 했는데,

006_0564_b_01L如法受持供養綠此譽滿鄕閭萬福
006_0564_b_02L試使人索經來看尼聞刺史索經拒而
006_0564_b_03L不與爲使君不護淨又未齋潔萬福
006_0564_b_04L大嗔更使人往尼不敢留即付經去
006_0564_b_05L萬福得經竟不洗手即取經開卷中
006_0564_b_06L並黃紙遂無一字萬福大怒曰此妖
006_0564_b_07L老嫗何由可耐即命左右4) [148] 尼來
006_0564_b_08L使往語尼曰師經上並無一字使君大
006_0564_b_09L令追師來尼甚憂懼莫知所由
006_0564_b_10L流浹體隨使往至刺史牙門入屏墻
006_0564_b_11L見一雙金剛手擎杵棒如似授尼
006_0564_b_12L遂心安即入至刺史前其經文並在空
006_0564_b_13L化作金字刺史見尼至卷下第四
006_0564_b_14L
并見金剛及金字在虛空中因即
006_0564_b_15L驚懼走起下廳號咷悲泣謝罪懺悔
006_0564_b_16L禮拜遂即廻心信向發願造法華經
006_0564_b_17L一千部通十方供養仍自受持不敢
006_0564_b_18L懈怠自刺史歸向之後人皆以法華爲
006_0564_b_19L萬福乃問造經由緖尼曰欲造經之
006_0564_b_20L於山中先種5) [149] 每用香水漑灌
006_0564_b_21L令得滋長樹成之後以香水和泥
006_0564_b_22L作紙屋乃採取*穀皮雇匠如法香水
006_0564_b_23L淸淨造紙募訪能護淨之人後有一江
006_0564_b_24L南人士年可二十四五應募爲書

006_0564_c_01L우선 진흙에 향 물을 섞어서 청정하게 집을 지었습니다. 서생은 새로 지은 깨끗한 옷을 입고, 사경을 하기 전에 49일 동안 채식을 지킨 뒤에 비로소 썼습니다. 외출했을 때에는 돌아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다시 썼습니다. 쓸 때는 소승이 손에 향로를 들고 그 경 앞에 꿇어앉아 서생을 공양했습니다. 『법화경』은 이처럼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정성을 다하여 장엄하게 성취한 것입니다. 그리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한 네 종류의 옷을 각각 열 벌씩 만들어 두고 경전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이레 동안 목욕재계하여 깨끗이 한 뒤에 새 옷을 주어 입게 한 다음에야 경전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공경하면 영원히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홍찬법화전』 권10
제14단 「(관세음보살)보문품」
1. 불도 태우지 못하다
사문 법지法智가 재가자(白衣)였을 때 혼자서 넓은 못가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맹렬한 불길이 사방에서 일시에 일어났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하면서 얼굴을 땅에 대고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불은 그에게로 번져 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못가의 풀들이 아주 작은 것까지 모두 타 버렸는데, 오직 그가 엎드려 있던 곳만은 타지 않았다.33) 그는 이 일로 인하여 크게 감동하여 속세를 떠나 출가하였다.
『진조사부관음전晉朝謝敷觀音傳』
2. 물에도 떠내려가지 않다
중서령中書令 잠문본岑文本은 강릉江陵(중국 湖北省에 있음)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어 항상 『법화경』 「보문품」을 독송하고 있었다. 한번은 오송강吳松江34)을 건너다가 중류에서 바람이 일어 사람과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 문본이 수면 위로 떠오르니, 어디선가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006_0564_c_01L書經屋還以香水和泥淸淨造屋
006_0564_c_02L生著新淨衣未寫經前預四十九日
006_0564_c_03L護淸淨齋然後始書每出訖改易衣
006_0564_c_04L服洗浴畢然後始就書書時尼手執香
006_0564_c_05L胡跪經前供養書生如是不闕經
006_0564_c_06L莊嚴成就乃作僧尼男女四色人衣
006_0564_c_07L各十通每來借經預令七日護淨
006_0564_c_08L與新衣著然後始付經如是恭敬
006_0564_c_09L不虧闕出弘賛第十

006_0564_c_10L

006_0564_c_11L第十四段普門品

006_0564_c_12L火不能燒

006_0564_c_13L
沙門法智爲白衣時獨行大澤猛火
006_0564_c_14L四面一時俱起自知必死乃合面於地
006_0564_c_15L至心稱觀音恠火不至擧頭看之一澤
006_0564_c_16L之草纎微皆燼唯所伏地火不燒耳
006_0564_c_17L因此感悟捨俗出家6) [21] 朝謝敷觀音傳

006_0564_c_18L水不能漂 [22] 7)出靈瑞集又出現應錄

006_0564_c_19L
中書令岺文本江陵人也少懷正信
006_0564_c_20L誦法華普門品過吳松江中流風作
006_0564_c_21L船俱沒文本浮在水面卷下第一五張
006_0564_c_22L「似」作「以」{乙}冠註曰愛疑受{乙}「䁱」
006_0564_c_23L作「曉」{乙}
「耴」作「取」{乙}次同「穀」作「糓」
006_0564_c_24L{乙}次同
「音」作「普」{乙}「出靈…應錄」九
006_0564_c_25L字無有{乙}

006_0565_a_01L
“부처님을 염하고 경을 외우기만 하면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세 번 듣고 나서 그는 물결에 따라 흘러가 강기슭에 닿을 수 있었다.35)
문본이 뒤에 강릉에서 재를 베푸니 승려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는데, 한 스님이 혼자 뒤에까지 남아 있다가 가면서 문본에게 말하였다.
“천하에 곧 큰 난리가 날 텐데 당신은 다행히 해를 입지 않고 태평 시대를 만나 크게 부귀를 누릴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가 버렸다. 뒤에 문본은 어느 때 밥을 먹다가 갑자기 밥그릇 속에서 한꺼번에 사리舍利 두 과를 얻고 태평 시대를 만나 부귀를 누렸으니, 모두 스님의 말과 같았다.
『영서집』, 『현응록』
해염현海鹽縣(중국 절강성에 있음)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함께 탔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그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여 우연히 바위 하나를 만났다. 몸이 노곤하여 잠이 스르르 들었는데, 꿈에 배를 타고 가던 두 사람이 그를 배 위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눈을 떠 보니, 과연 어떤 사람이 배로 그를 기슭까지 내려다 주고는 갑자기 없어져 버렸다.
『사부관음전』
3. 나찰귀의 환란을 모면하다
외국 사람 백여 명이 배로 사자국師子國36) 부남扶南(지금의 태국에 있던 나라)으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 나찰 귀신들의 나라에 떨어졌는데, 귀신들이 달려들어 뱃사람들을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모두들 두려워서 같이 ‘관세음보살’을 불렀지만, 그중 한 소승小乘의 사문은 이를 믿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않았다. 귀신들이 ‘관세음보살’을 부르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어 잡아먹으려고 하자, 그 사문도 두려워서 진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러 화를 모면하였다.37)
『사부관음전謝敷觀音傳』
4. 폭풍이 배에 휘몰아치다
신라 때 보개寶開라는 여인이 서울(경주) 우금방隅金坊38)에서 살고 있었는데, 장춘長春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이 상선商舶을 타고 바다로 나가서 돌아올 날짜가 지났으나 그 뒤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근심하고 걱정하여 몸까지 몹시 초췌해졌다.
그러다가 다행히 “관세음보살께서 널리 듣고 신통한 힘을 나타내시어 설사 폭풍이 불어 배가 표류하여 나찰귀의 나라에 떨어지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곧 환난에서 벗어날 것”39)이라는 말을 듣고, 곧 깊은 신심이 생겨 민장사敏藏寺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이레를 기약하고 부지런히 마음을 다해 기도를 시작했다. 이레째 되는 날 갑자기 장춘이 나타나

006_0565_a_01L聞人語曰但念佛誦經必不死也
006_0565_a_02L是者三自此隨波達于址岸後於江
006_0565_a_03L陵設齋1) [150] 徒並集有一僧獨後去
006_0565_a_04L文本曰天下方亂君幸不遇害當逢
006_0565_a_05L大平致富貴也言已而去文本忽一
006_0565_a_06L時食2) [151] 中得舍利3) [152] 獲大平富貴
006_0565_a_07L皆如僧4) [153]

006_0565_a_08L
5) [154] 6) [155] 縣有人落水同伴皆沉此人稱
006_0565_a_09L觀音遇得一石困倦如眠7) [156] 見兩人
006_0565_a_10L乘船喚入開眼果見有人船送達岸
006_0565_a_11L已遂不見之出謝敷傳

006_0565_a_12L脫羅刹難

006_0565_a_13L
外國百餘人從師子國向扶南忽遇
006_0565_a_14L惡風墮鬼國鬼便欲食一船人衆
006_0565_a_15L稱觀音其中有一小乘沙門不信不稱
006_0565_a_16L鬼便索之心怖稱名亦免出謝敷觀音傳

006_0565_a_17L黑風吹其船舫

006_0565_a_18L
新羅時有女名寶開居王京隅金坊
006_0565_a_19L有一子名長春隨商舶泛海而去
006_0565_a_20L期不知所之朝夕思念至於憔悴
006_0565_a_21L聞普門示顯神通之力假使黑風
006_0565_a_22L其船舫漂墮羅刹鬼國稱其名故
006_0565_a_23L得解脫便生深信就敏藏寺觀音像前
006_0565_a_24L約一七日精勤祈禱至七日忽感長

006_0565_b_01L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너무도 놀랍고 기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울었다.
절의 스님이 괴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장춘이 대답하였다.
“내가 집을 떠나 바다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폭풍을 만나 함께 배에 탔던 다른 사람들은 다 고기밥이 되고 나만 혼자 널빤지를 타고 표류하다가 오吳나라에 도착했는데, 그 나라 사람이 나를 데려다가 종으로 부렸습니다. 하루는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있는데 기이한 차림의 스님이 와서 말하기를, ‘고국이 생각나지 않느냐?’라고 하기에, 나는 그의 앞에 꿇어앉아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어 그리운 마음이 간절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만약 어머니를 만나고 싶거든 나를 따라오라!’라고 하여 동쪽으로 가기에 나는 곧 뒤를 따라갔습니다. 깊은 도랑이 있어 스님이 내 손을 잡아 이끌어 건너는데40) 정신이 몽롱해져서 마치 꿈속과 같더니, 갑자기 우리나라의 말이 들리고, 민장사의 관음상 앞에 와 있었습니다. 이내 우리 어머님인 줄 알았지만 오히려 꿈속과 같았습니다.”
당 현종 천보天寶 4년 을유(745, 신라 경덕왕 4년) 4월 8일 신시申時(오후 3시~5시)에 오吳나라를 떠나 술시戌時(오후 7시~9시)에 이곳에 닿은 것이다.
경덕왕이 이 소문을 듣고 깊이 공경하여 우대하고 재물을 내려 영구히 공양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매년 4월 8일이면 절에 행차하여 부처님을 예찬禮讚하는 것을 영원한 법도로 정하였다. 어머니 보개와 아들 장춘은 인근 마을의 청신사와 청신녀 들41)과 더불어 함께 금으로 쓴 『법화경』 한 부를 조성하고, 매년 봄 3월이 되면 도량을 세워 『법화경』의 미묘하고도 깊은 이치를 널리 폈으며, 수행에 정진하고 관세음보살을 공경 예배하여 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민장사기敏藏寺記』, 『계림고기雞林古記』, 『해동전홍록』
5. 칼로 내리쳤으나 칼이 조각조각 부러지다
진晋나라 태원太元(동진 효무제 376~396) 때 팽성彭城에 사는 어떤 사람이 도둑으로 몰려서 관가에 체포되었다.
그는 본래 금불상을 공양하여 상투 속에 넣어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참형을 받게 되어 칼을 내리치니 쇳소리만 쨍그랑 하고 났다. 세 번을 내리쳤으나 아무렇지도 않았다.42) 상투를 풀어 살펴보았더니 금불상에 세 군데 흠이 나 있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죄를 사면 받았다.
『사부관음전』
고간高簡이라는 사람이 법을 어기고 죄를 지어 처형을 받게 되었는데 일심으로 귀의하였더니, 옥졸이 칼로 목을 내리치면 칼이 부러지고,

006_0565_b_01L執母手驚喜哭泣寺僧恠問所由
006_0565_b_02L春曰離家泛海忽値惡風同船之人
006_0565_b_03L皆葬魚腹余獨乘一板至於吳吳人
006_0565_b_04L收之奴使之耕於野田忽有異僧來謂
006_0565_b_05L憶汝國乎余即跪曰有老母在
006_0565_b_06L慕無極僧曰若欲見母隨我而來
006_0565_b_07L訖東行余隨之有一渠僧乃執手超
006_0565_b_08L昏昏如夢忽聞8) [157] 到此敏藏寺
006_0565_b_09L像前卷下第一六張 雖審知我母猶疑
006_0565_b_10L夢中矣即天寶四年乙酉四月八日
006_0565_b_11L時離吳戍時到此堂中景德王聞而
006_0565_b_12L敬重9) [158] 信賄永充供養每於月生
006_0565_b_13L八日幸寺禮讃永爲定式寶開與長
006_0565_b_14L約結鄰里淸信士女特成金字蓮
006_0565_b_15L經一部每至春三月爲立道場敷宣
006_0565_b_16L妙理精修禮敬仰賽玄恩10) [159] 敏藏寺記
006_0565_b_17L11) [160] 雞林古記12)略見 [161] 傳弘錄

006_0565_b_18L13) [162] 段段壞

006_0565_b_19L
晉太14) [163] 彭城有一人被枉爲賊
006_0565_b_20L人本曾供養金像帶在髻中後伏法
006_0565_b_21L*刁下聞金聲*刁三15) [164] 終無異解
006_0565_b_22L看像有三痕由是免罪出謝敷觀音傳

006_0565_b_23L16) [165]

006_0565_b_24L
有高簡犯法臨刑一心歸命下*刁

006_0565_c_01L끈으로 목을 조르면 끈이 끊어져 나갔다. 그리하여 처자와 자신을 팔아서 5층탑을 세웠다.
6. 칼과 쇠사슬이 저절로 벗겨지다
진晋나라 장창張暢이 초왕譙王이 되었는데, 그는 장사왕長史王과 함께 어떤 사건에 관계되어 정위廷尉(감옥을 담당하는 벼슬)에 체포되어 갇히게 되었다. 장창은 일찍부터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곧 발심하여 『법화경』 「보문품」을 1천 번이나 독송하며 죄를 면해 벗어날 수 있기를 구했다. 마음의 생각과 입으로 하는 말이 지극해지자43) 칼과 쇠사슬이 저절로 끊어지고 부서져서 두 사람이 함께 처벌을 면하였다.44)
『진사부관음전晋謝敷觀音傳』, 『현응록』
개호蓋護는 산양山陽(중국 강소성에 있음) 사람으로 옥에 갇혀 죽게 되었는데, 사흘 낮 사흘 밤을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눈에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보이고, 보살이 빛을 놓아 그를 비추니 자물쇠(鏁)가 벗겨지고 옥문이 열렸다. 개호가 그 빛을 찾아 따라가기를 20리쯤 지나니 어느덧 빛이 사라졌다.
『진사부관음전』, 『현응록』
7. 도적이 해치지 못하다
진晋나라 융안隆安(397~401) 때 스님 혜달慧達이 산 북쪽 등성이에서 감초甘草를 캐고 있었다. 이때 서쪽 오랑캐 강인羌人(지금의 티베트 족)들이 굶주려 사람들까지 잡아먹고 다녔다. 스님이 그만 그들에게 잡혀 여러 사람과 함께 우리 안에 갇혔다. 살찐 사람부터 골라서 잡아먹으니, 스님은 두려워서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보문품」을 독송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잡아먹고 이젠 스님과 어린아이 하나만 남아서

006_0565_c_01L*刁折絞之寸斷遂賣妻子及以自身
006_0565_c_02L起五層塔

006_0565_c_03L枷鏁自脫

006_0565_c_04L
晉有張暢爲譙王長史王與暢因事
006_0565_c_05L繫廷尉暢夙有正信便即發心誦法
006_0565_c_06L華普門品一千徧以求脫免念言之至
006_0565_c_07L枷鏁尋即斷壞二人俱得出晉謝敷觀音
006_0565_c_08L17)又出 [166] 現應錄
006_0565_c_09L18) [167] 護山陽人繫獄應死三日三夜
006_0565_c_10L名無間眼見觀音放光照之鏁脫門
006_0565_c_11L尋光而去行二十里光明方息
006_0565_c_12L出處19)上同 [168]

006_0565_c_13L賊不能害

006_0565_c_14L
晉隆安中20) [169] 於山北隴掘甘草
006_0565_c_15L時羌人飢荒捕人而食達爲所獲
006_0565_c_16L21) [170] 擇肥者先食達懼甚一心稱
006_0565_c_17L觀音名誦普門品食人取盡唯達與
006_0565_c_18L「雲」作「僧」{乙}「椀」作「梡」{乙}「二」作
006_0565_c_19L「土」又冠註曰土疑七{乙}
「言」下有「出靈瑞
006_0565_c_20L集又出現應錄」{乙}
此右側行間有小題名「又」
006_0565_c_21L{乙}
「鹽」作「濫」{乙}「夢」作「船」{乙}「羅」
006_0565_c_22L作「母」{乙}
」作「頒」{乙}「見」作「出」{乙}
006_0565_c_23L
「及」作「又見」{乙}「略見」作「及略」{乙}
006_0565_c_24L「刁」作「刀」{乙}次同
「元」無有{乙}「斫」作
006_0565_c_25L「所」{甲}
「又」作別行{編}「又出」作「及」{乙}
006_0565_c_26L
此右側行間有小題名「又」{乙}「上同」作「同
006_0565_c_27L上」{乙}
「惠」作「慧」{乙}「柵」作「構」{乙}次同

006_0566_a_01L목숨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스님은 여전히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보문품」을 독송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풀 속에서 뛰쳐나와 크게 울부짖어 온 산이 진동하였다. 강인들이 두려워하며 달아나자, 호랑이가 입으로 우리를 물어뜯어 부수어 놓고 가니, 스님과 어린아이는 달아나 화를 면하였다.45)
『천태별행소』
상서尙書 서의徐義는 진나라 말엽에 군인들이 봉기하여 어지러울 때 도둑에게 붙잡혀 죽게 되었다. 도둑들은 그의 두 발을 땅에 묻고 머리를 나무에 꽁꽁 매어 놓았다.
밤이 되자 서의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다.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지금이 얼마나 위급한 때인데 이렇게 잠을 자고 있습니까?”라며 나무라는 것이었다. 사의가 깜짝 놀라 잠을 깨 보니, 지키는 자들이 피곤하여 골아 떨어져 있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가까스로 손으로 머리를 풀고 발도 빼내어 백여 걸음쯤 달아나 숲속에 숨었다.
얼마 후 도둑들이 추적해 오는데 그 횃불이 마치 별이 늘어선 것과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끝내 서의를 찾아내지 못하고 날이 밝으니, 도적들은 모두 흩어져 가 버리고 서의는 화를 면하였다.
『사부관음전』
8. 아들을 소원하여 낳다
진晋나라 때 익주益州(중국 사천성) 사람 손도덕孫道德은 나이 50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일러 주기를,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보문품」을 독송해 보시오.” 하여 그는 곧 이르는 대로 하였다. 며칠이 지나서 도덕이 꿈을 꾸고, 부인은 태기가 있어 마침내 아들을 낳았다.46)
『사부관음전』
9. 몸을 나타내 법을 설하다
당나라 태화太和(827~835) 때 문종文宗은 조개를 몹시 좋아해서 오랫동안 연해沿海 지방의 관리들이 번갈아 가며 조개를 진상하느라 백성들이 몹시 애를 먹었다. 하루는 황제의 반찬으로 오른 조개에 틈은 있는데 벌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황제가 기이하게 생각하고는 곧 향을 피우고 기원을 하였더니, 조개가 문득 보살의 형상으로 변하였는데, 모습도 매우 청정하였다.
황제는 계수나무와 향나무로 만든 함에 넣어서 아름다운 비단으로 덮어 흥선사興善寺에 내려 주고 스님들로 하여금 예배하게 한 다음

006_0566_a_01L小兒在命只一日耳達持念不捨
006_0566_a_02L1) [171] 忽一虎自草中跳出咆吼震山
006_0566_a_03L羌畏走卷下第一七張 虎乃嚙*柵而去
006_0566_a_04L達與小兒奔走得免出天台別行䟽

006_0566_a_05L

006_0566_a_06L
尙書徐義秦末兵革蜂起賊獲徐義
006_0566_a_07L將欲殺之乃埋兩足編髮於樹夜中
006_0566_a_08L至心專念觀音有頃得眼夢人謂曰
006_0566_a_09L今事極矣何暇眠乎義便驚起見守
006_0566_a_10L衛人並疲而睡義乃奮動手髮旣解
006_0566_a_11L足亦得脫行百餘步隱草叢中便聞
006_0566_a_12L賊追火炬星陳竟無見者天明賊散
006_0566_a_13L遂免之出謝敷傳

006_0566_a_14L求男得男

006_0566_a_15L
晉時益州孫道德年過五十未有子息
006_0566_a_16L有僧令其至心稱誦觀世音經其即依
006_0566_a_17L少日之中而自得夢婦即有孕
006_0566_a_18L生男也出謝敷傳

006_0566_a_19L現身說法

006_0566_a_20L
唐大和中文宗嗜蛤蜊㳂海官吏
006_0566_a_21L時遞進人亦勞止一日䘖饌中有擘
006_0566_a_22L不張者帝以其異即焚香禱之俄變
006_0566_a_23L爲菩薩形梵相具足即貯以金粟檀香
006_0566_a_24L覆以美彩賜興善寺令衆僧瞻禮

006_0566_b_01L신하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상서인가?”
한 신하가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대일산大一山에 유정惟政이라는 선사가 있는데 불법에 매우 밝고 학식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황제는 곧 선사를 불러들여 그 일에 대하여 물었다. 스님이 말하였다.
“신臣이 듣건대 세상일은 반드시 감응하는 바가 있다 하오니, 이는 폐하의 신심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전에서도 말하기를, ‘이 몸으로 응하여 깨달음을 얻을 사람에게는 곧 이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47)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말하였다.
“보살의 몸이 이미 나타났는데 나는 설법을 듣지 못하였소.”
그러자 선사가 물었다.
“폐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이것이 예삿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못하시겠습니까?”
“이것은 희유한 일이고 기이한 일이오. 나는 깊이 믿습니다.”
“그러면 폐하께서는 이미 설법을 들으신 것입니다.”
이에 황제는 기분이 좋고 즐거워서 일찍이 맛보지 못한 감동을 받았으며, 천하의 모든 절에 조서를 내려 각기 관음상을 모시라고 하여 이 큰 경사에 보답하게 하였다.내가 찬탄한다. 관세음보살은 몸을 혀 삼아 법을 설하고, 문종은 마음을 귀 삼아 법을 들었네.
10. 소녀의 몸을 나타내다
마랑馬郞의 아내는 그 내력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당나라 때 불교가 크게 융성하였는데, 협우陜右 지방의 관습은 말 타고 활 쏘기를 좋아하여 삼보三寶의 이름은 듣지도 못하였다.
여인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 그곳 사람들에게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나 홀홀 단신이니 양녀養女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48) 또한 말하기를, “저는 부모가 안 계십니다. 시집을 갈까도 생각하지만 세속의 재산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다만 총명하고 착한 사람으로 능히 불경을 독송하는 분이라면 섬기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그들에게 「보문품」을 나누어 주고 말하였다.
“이것을 하룻밤 사이에 다 외우는 분에게 시집가겠습니다.”
이튿날 「보문품」을 완전히 외우게 된 사람이 20여 명이나 되었다. 여인은 말하였다.
“여자의 몸은 정조가 곧고 행동이 깨끗해야 합니다. 한 몸으로 여러 사람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다른 경전을 외워 보도록 하십시오.”
이번에는 『금강반야경』을 주었다. 이튿날 아침 10여 명이 『금강반야경』을 외워 가지고 왔다. 다시 여인은 『법화경』 7권을 주면서 말하였다.
“사흘 동안 이것을 외워 보십시오.”
약속한 날이 되었는데 마씨馬氏 아들 한 사람만이 『법화경』을 외워 가지고 왔다. 여인이 말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뛰어납니다.

006_0566_b_01L因問群臣斯何祥也或言大一山有
006_0566_b_02L惟政禪師深明佛法2) [172] 問强識帝即
006_0566_b_03L令召至問其事師曰臣聞物無虛應
006_0566_b_04L此乃啓陛下之信心耳故契經云應以
006_0566_b_05L此身得度者即現此身而爲說法
006_0566_b_06L曰菩薩身已現且未聞說法師曰陛下
006_0566_b_07L覩此爲常非常耶信非信耶帝曰希
006_0566_b_08L奇之事朕深信焉師曰陛下已聞說
006_0566_b_09L法了時皇情悅豫得未曾有詔天下
006_0566_b_10L寺院各立觀音像以答殊3) [173] 私云 [23]
薩以身爲

006_0566_b_11L舌而說文宗
以心爲耳而聽

006_0566_b_12L顯童女身卷下第一八張

006_0566_b_13L
馬郞婦不知出處大唐隆盛佛敎
006_0566_b_14L陜右俗習騎射篾聞三寶之名婦憫
006_0566_b_15L其愚乃之其所人見少女風韻單子
006_0566_b_16L欲乞爲養女曰我無父母亦欲有歸
006_0566_b_17L然不好世財但聰明賢善人能誦佛經
006_0566_b_18L則願事之男子衆皆聚觀女即授與普
006_0566_b_19L門品若能一夕通此則歸之至翌日
006_0566_b_20L誦徹者二十餘軰女曰女子一身
006_0566_b_21L世貞潔無以一體事多人也可更別
006_0566_b_22L因授以金剛般若至*旦背者十數
006_0566_b_23L女更授與法華經七軸約三日通之
006_0566_b_24L期獨馬氏子能徹女曰君旣能過衆人

006_0566_c_01L부모님께 말씀드려 매파媒婆를 내세우시고 예물을 갖추어 보내십시오. 그리고 나서 혼인을 하십시다.”
그래서 마씨는 예로써 여인을 맞아들였는데, 그녀는 대문 앞에 이르러 말하였다.
“마땅히 당신을 맞아들여야 하겠지만 지금은 몸이 다소 깨끗하지 못합니다. 다른 방에서 안정되기를 기다려 뵙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다른 방에서 안정을 취하였다. 하객들이 돌아가기도 전에 여인은 죽어 있었다. 시신이 금새 썩어 문드러지므로 곧 장사지내 주었다.
며칠이 지났다. 자색의 승가리(紫伽梨)49)를 하였고, 모습이 남루한(古野) 한 스님이 찾아와서 그 여인을 찾았다. 마씨가 그를 무덤으로 인도하였다. 스님이 석장으로 모래땅을 파헤치니, 시체는 이미 없어지고 오직 금쇄골金鏁骨50)만이 남아 있었다.
스님은 강물로 가지고 가서 목욕시켜 깨끗이 닦아 석장 끝에 매달고 대중에게 말하였다.
“이 성자는 당신네가 불교(正法)를 믿지 않음을 불쌍히 여겨 방편으로 타일러 교화한 것이니, 좋은 인연을 생각하여 고해에 떨어지는 것을 면하도록 하시오.”
그리고는 갑자기 공중으로 솟아올라 어디론지 가 버렸다. 모두들 슬피 울며 우러러보고 수없이 예배하였다. 이때부터 이 지방 사람들이 모두 부처님을 받들고 경전을 독송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그 여인의 힘에 의한 것이다.
산곡 도인山谷道人51)의 관음찬觀音讚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만약 진실로 관세음보살을 뵙고자 하거든
금사탄金沙灘 마랑의 아내가 그분일세.

평강平江 만수 체萬壽體 선사는 다음과 같이 찬송하였다.

더없이 아름다운 저 여인 뉘집 딸이런가.
뛰어나게 총명한 이 사람은 마랑이로구나.
우습구나, 금사탄 기슭의 굳은 약속이여.
끝내 부부로서 한 쌍 이루지 못했네.
11. 비구니의 몸을 나타내다
신라의 경흥 국사憬興國師52)가 서울(경주) 삼랑사三郞寺에 있을 때 병이 들어 오랫동안 낫지 않았다. 하루는 한 비구니 스님이 찾아와 국사를 뵙기 청하였다. 제자가 그를 국사께 인도하였더니 말하였다.
“스승께서는 큰 법(大法)을 깨달으셨지만, 사대四大가 합하여 몸이 되었으니, 어찌 병이 없으실 수 있겠습니까? 병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다 사대에서 생겨납니다. 첫째는 몸의 병(身病)이니

006_0566_c_01L可白父母具媒娉送禮然後成姻4) [174]
006_0566_c_02L馬氏以禮迎之女將至門5) [175] 適以
006_0566_c_03L應接6) [176] 少不佳願求別室7) [177]
006_0566_c_04L與君相見因頓止他房筵客未散而女
006_0566_c_05L命終而壞爛乃卜葬之未數日有僧
006_0566_c_06L紫伽梨姿貌古野來尋女子馬氏引之
006_0566_c_07L葬所僧即以錫杖撥開沙土見屍已
006_0566_c_08L唯金鏁骨存焉僧*耴就河浴洗
006_0566_c_09L於錫上謂衆曰此聖者憫汝等不信
006_0566_c_10L正法方便諭化當思善因免墮苦海
006_0566_c_11L忽然凌空而去衆見悲泣瞻禮不已
006_0566_c_12L自尒一境奉佛誦經由女之力也
006_0566_c_13L谷道人觀音讃云若欲眞見觀世音
006_0566_c_14L沙灘頭馬郞婦8) [178] 平江萬壽體禪師頌
006_0566_c_15L十分美貌誰家女百倍聰明是馬郞
006_0566_c_16L堪笑金沙灘畔約始終姻婭不成雙

006_0566_c_17L顯比丘尼身

006_0566_c_18L
新羅憬興國師住京師三郞寺病久不
006_0566_c_19L有一尼請看門人引視之尼曰師
006_0566_c_20L雖悟大法合四大爲身豈能無病卷下
006_0566_c_21L第一九張
病有四種從四大生一曰身
006_0566_c_22L「旦」作「且」{甲}次同「愽」作「博」{乙}「休」
006_0566_c_23L作「俗」{乙}
「及」作「乃」{乙}「曰」作「白」{乙}
006_0566_c_24L
「中」作「小」{乙}「俟」作「候」{甲}「又」無
006_0566_c_25L有{乙}

006_0567_a_01L풍병風病ㆍ황병黃病ㆍ담병痰病ㆍ열병熱病이 위주가 되고, 둘째는 마음의 병(心病)이니 미치광이(顚狂)ㆍ정신착란(昏亂)이 위주가 되고, 셋째는 외부로부터 받는 병(客病)이니 칼이나 막대기로 찍히고 다치거나 움직임이 지나쳐 피로함이 위주가 되고, 넷째는 서로 함께 존재하므로 생기는 병(俱有病)이니 굶주림ㆍ추위ㆍ더위ㆍ괴로움ㆍ즐거움ㆍ근심ㆍ걱정이 위주가 됩니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울려 서로 원인이 되어 만일 사대 중 하나라도 조화롭지 못하면 백 가지 병이 다 일어납니다. 지금 스승의 병환은 약으로 다스려 치료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스꽝스러운 놀이를 구경하신다면 나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열한 가지의 탈을 만들어 쓰고 춤을 추었다. 국사가 그 야릇하고 괴상한 모습에 매우 즐거워하다 보니, 어느덧 병이 다 사라진 줄도 몰랐다.
비구니가 떠나자 국사가 곧 사람을 시켜 그 뒤를 따라가 보게 했더니, 스님은 남화사南花寺 불전佛殿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는데, 그가 가지고 있던 대나무 지팡이가 십일면관세음보살十一面觀世音菩薩의 상 앞에 놓여 있었다.53)
『해동고승전』 권5
제15단 「다라니품」ㆍ「묘장엄품」ㆍ「보현보살권발품」
1. 귀신이 구멍으로 빠져나가다
송宋나라 효건 초에 보명普明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어려서 출가하였는데, 성품이 순수하고 소박하였으며, 항상 채식菜食과 베옷으로 생활하였다. 스님은 『법화경』 독송을 일과로 하였다. 독송을 할 때는 특별히 마련한 옷을 입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앉아 하는데 절대로 혼동하지 않았다. 독송이 「권발품」에 이르면 보현보살이 코끼리를 타고 그의 앞에 나타나 보였다.54)
마을 사람 왕도진王道眞의 아내가 병이 위독하여 스님에게 주문을 외워 달라고 청했다. 스님이 막 문에 들어서자 병자가 기절하면서 갑자기 두어 자쯤 되어 보이는 너구리같이 생긴 것이 개구멍으로 빠져나가더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 또 한번은 스님이 물가에 가니, 무당이 말하기를, “신들(神明)이 보명 법사님을 보고는 모두 달아나 버립니다.”라고 하였다.
『홍찬법화전』 권6, 『현응록』

006_0567_a_01L風黃痰熱爲主二曰心病顚狂昏
006_0567_a_02L亂爲主三曰客病刀杖1) [179] 動作過
006_0567_a_03L勞爲主四曰俱有病飢渴寒暑苦樂憂
006_0567_a_04L2) [180] 爲主其餘品類展轉相因一大不
006_0567_a_05L調百病俱起今師之病非藥石所療
006_0567_a_06L若觀戱謔事則理矣於是作3)廿 [181] 一㨾面
006_0567_a_07L而舞之師視詭譎之態頗歡悅不知
006_0567_a_08L病之去也尼出師使跡之入南花寺佛
006_0567_a_09L殿而隱其所持竹杖在十一面觀音像
006_0567_a_10L出海東高僧傳第五

006_0567_a_11L

006_0567_a_12L第十五段4)多羅尼品妙莊嚴王品
006_0567_a_13L普賢勸發品

006_0567_a_14L
5)崇自出竇鬼乃扣頭閻王指送第四天
006_0567_a_15L菩薩來乘六牙象

006_0567_a_16L*崇自出竇

006_0567_a_17L
宋建初 [24] 有僧普明少出家性純素
006_0567_a_18L常蔬食布衣以法華爲日課誦時有別
006_0567_a_19L衣別座未甞混雜每誦至勸發品即見
006_0567_a_20L普賢乘象前立鄕人王道眞妻病革
006_0567_a_21L師持呪方入門病者悶絕忽見一物
006_0567_a_22L如狸長數尺從狗竇出其病即愈
006_0567_a_23L嘗行水旁有巫者云神明見明法師
006_0567_a_24L悉皆奔走出弘賛第六及6)顯應錄

006_0567_b_01L
2. 귀신이 머리를 조아리다
보통寶通 스님은 깨끗한 수행(梵行)으로 불법을 부지런히 닦았는데, 『법화경』 「다라니품」을 오랫동안 독송하여 약간 신령스런 이적이 있었다.
이때 양교촌楊橋村 조씨趙氏의 아내가 귀신이 들려 스님의 주문을 청했다. 그래서 스님이 그 집에 이르니, 귀신이 곧 형상을 나타냈다. 스님이 말하기를, “너는 이 마을에 있으니 마땅히 마을 사람들의 복을 일으켜 주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도리어 사람에 붙어서 괴롭히느냐?” 하고 꾸짖었다. 그러니까 귀신이 말하기를, “그것은 제가 한 짓이 아니라 제 부하 졸개의 짓입니다.” 하고 부하 졸개를 불러 그 앞에서 꾸짖고 벌을 주었다.
조씨의 아내는 병이 약간 차도가 있더니, 얼마 안 가서 다시 발병하여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조씨는 다시 스님을 찾아와 알려 주었다. 스님이 다시 가 보니, 앞서 책망 받았던 귀신이 병상 앞에 서 있었다.
스님이, “저번에 타일렀는데 어찌하여 또 왔느냐? 만약 네가 지금 가지 않는다면 내 마땅히 주문을 외워서 네 머리를 깨뜨려 일곱 조각을 내어 아리수55) 가지처럼 만들어 놓을 것이다.” 하고 호통치니, 귀신이 황급히 머리를 땅에 조아리면서 제발 주문을 외우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였다.56) 이때부터 부인의 병은 나았고, 귀신이 다시는 오지 않았다.
『영서집』, 『홍찬법화전』 권7, 『현응록』. 수나라 개황開皇(581〜600) 때의 일이다.
3. 염라대왕이 도솔천으로 보내다
도진道璡 스님은 형주荊州 사람이다. 그는 『법화경』을 독송하였으며(諷誦), 베옷과 하루 한 끼의 밥으로 만족하였으며, 남보다 뛰어난 도량이 있었다. 스님이 변재사辨才寺에 머물러 있는데 하루는 갑자기 졸도하여 숨이 겨우 붙어 며칠을 보냈다. 스님이 보니, 저승의 관원이 추가 기록한 명부를 가지고 염라대왕 앞으로 데리고 갔다. 대왕이 말하였다.
“스님은 『법화경』을 독송하였고 계율을 지키는 수행이 청정하였으니, 반드시 욕계 제4천57) 가운데 미륵보살이 계신 곳에 태어날 것인데, 제자는 죄악이 많은 몸이라 다시는 서로 만나 뵙지 못할 것 같아 스님을 뵙고자 한 것입니다.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진 스님은 마침내 잠시 동안 다시 깨어나 여러 스님들에게 겪은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는 말을 마치자 숨을 거두었다.
『홍찬법화전』 권8
4. 보살이 여섯 이빨의 코끼리를 타고 오시다
고려 때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영암사靈岩寺 동쪽 숲에 머물러 있으면서

006_0567_b_01L鬼乃扣頭

006_0567_b_02L
寶通梵行精修長誦法華陁羅尼品
006_0567_b_03L稍有靈異時楊橋村有趙氏家妻
006_0567_b_04L神所魅請通持呪通旣至神即現形
006_0567_b_05L通告曰神在村中合當興福如何反魅
006_0567_b_06L於人神曰非弟子事此乃部下小鬼耳
006_0567_b_07L遂呼小鬼至前嘖罰趙妻因此得差
006_0567_b_08L續後趙妻之病仍發歌吟竟日又來告
006_0567_b_09L卷下第二○張 通又7) [182] 見所責鬼
006_0567_b_10L在病床前通曰前曾誠治那得再來
006_0567_b_11L汝若不去吾當誦呪令汝頭破作七分
006_0567_b_12L如阿梨樹枝也鬼乃扣首求哀不煩呪
006_0567_b_13L從此病差鬼不復至矣出靈瑞集
006_0567_b_14L弘賛第七現應錄(隋開皇年中事)

006_0567_b_15L閻王指送第四天

006_0567_b_16L
釋道璡荊州人也諷誦玆典布衣一
006_0567_b_17L殆有過人之量止辨才寺忽體仆
006_0567_b_18L微經數日自見冥官追錄將至王
006_0567_b_19L王曰師誦法華律行淸淨應生第
006_0567_b_20L四天中慈尊衆所弟子罪惡之身恐不
006_0567_b_21L復相遇故欲見師願垂救也璡遂暫
006_0567_b_22L向諸僧具說言訖而卒出弘賛第八

006_0567_b_23L菩薩來乘六牙象

006_0567_b_24L
高麗時有僧失其名在靈岩寺東林

006_0567_c_01L『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항상 정성을 다했으며,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향을 피우고 부처님을 공경 예배하여 영험이 있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큰 뱀과 꿩, 노루 등이 와서 『법화경』 독송을 듣다가 독송이 끝나면 흩어져 갔고, 한낮이 되면 산신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스님을 공양하였다.
후에 갑자기 찬란한 빛이 동산에서 내려오는데, 큰 보살이 여섯 이빨의 흰 코끼리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보살을 호위하여 바로 스님의 앞으로 다가왔다. 스님은 광명을 바라보고 예배하였다. 한없이 기쁘고 즐겁더니 경전의 의심나는 구절과 빠뜨린 문장도 저절로 다 풀렸다.58) 다른 사람들은 다만 기이한 향내가 나는 것을 알 뿐이었고, 그 광경은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마침내 사라졌다.
『홍찬법화전』 권7
제16단
1. 어린 비구니가 『법화경』을 외우다
양梁나라 대학 박사大學博士59) 강필江泌의 딸은 어려서 출가하니, 그 이름이 승법僧法이다. 그녀는 8세, 9세 때 가끔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법화경』 한 권을 조금도 막힘이 없이 외웠다.
그래서 양주 지방의 도인이나 속인들은 모두 신이 가르쳐 준 것이라고 하였는데, 비장방費長房60)은 말했다.
“경과 논에 징험해 보면 그 이치가 분명하다. 이것은 전생으로부터 배워 온 것일 뿐, 신이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지난 생의 일을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 어찌 신의 공이라 하겠는가?”
『홍찬법화전』 권2

006_0567_c_01L誦法華經每精誠懇到中表潔淨焚香
006_0567_c_02L禮佛以求證驗初有大虵及雉鹿
006_0567_c_03L來立聽誦訖乃散中時山神將食
006_0567_c_04L來供養後忽見光明從東山而下
006_0567_c_05L大菩薩乘六牙白象大衆圍繞直至
006_0567_c_06L其前僧望光拜慶悅深至疑義闕文
006_0567_c_07L皆爲敷釋餘衆但聞異香經久方隱
006_0567_c_08L出弘賛第七

006_0567_c_09L

006_0567_c_10L第十六段

006_0567_c_11L
幼尼誦出眞詮侍女冥通梵部舟人護涉
006_0567_c_12L天樂來迎深敬辯山人之精書堪歌崔牧伯
006_0567_c_13L之慶會光明出於口角菡萏生於舌根
006_0567_c_14L岩徒之或講或疑蓮華院之若讀若說珎禽
006_0567_c_15L現瑞亡妹告徵誦舌長存燒經不改經無
006_0567_c_16L一字瓜生五花

006_0567_c_17L幼尼誦出眞詮

006_0567_c_18L
梁大學8) [183] 江泌女卷下第二一張
006_0567_c_19L而出家名僧法年八九歲有時靜坐
006_0567_c_20L閉目誦出一卷法華經楊州道俗
006_0567_c_21L稱神授費長房云驗於經論斯理皎
006_0567_c_22L是宿習來9) [184] 神授即是次生事
006_0567_c_23L憶而不忘其神功乎出弘賛第二

006_0567_c_24L「斫」作「所」{甲}{乙}「曺」作「喜」{乙}「廿」作
006_0567_c_25L「十」{甲}{乙}
「多」作「陀」{乙}「崇」疑「祟」{編}
006_0567_c_26L次同
「顯」作「現」{乙}「去」作「至」{乙}
006_0567_c_27L「愽」作「博」{乙}
「關」作「開」{乙}

006_0568_a_01L
2. 시녀가 저승에서 범어 경전을 배워 오다
좌숙기左肅機 최의기崔義起에게 돌궐突厥인 시녀가 한 사람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글을 알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당 고종 인덕麟德 연중(664~666)에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밤이 지나서 한 범승梵僧이 나타나자 돌궐 시녀는 스님에게 구해 달라고 애걸하였다. 스님이 석장으로 그녀의 머리를 두드리며 『법화경』 한 부를 가르쳐 주며 외우게 하였는데, 말은 범어梵語였다. 저녁때가 되어 그녀가 깨어나서 범승 만난 일을 이야기하였더니, 집안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주인 의기에게 보고하였다.
의기가 시험 삼아 『법화경』을 외워 보라고 하였다. 그녀는 물 흐르듯이 경을 외워 나갔다. 의기는 곧 범승 한 사람을 청하여 그녀가 외우는 경을 들어 보게 했다. 다 듣고 난 범승은, “처음부터 끝까지 발음이 정확하였고, 한 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뒤에 황제가 이 말을 듣고, “저승이 이러한데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고, 당시의 조정 신하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8
3. 뱃사람이 보호해 건네주다
지총智聰 스님은 양주楊州 백마사白馬寺에 머물러 있다가 강을 건너 안락사安樂寺에서 주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수隋나라가 망하여 돌아갈 생각을 하였으나 강을 건너갈 방법이 없어서 강가 갈대밭 속에 숨어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이레가 지났어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고, 늘 네 마리의 호랑이가 스님의 주위를 지키며 맴돌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한 노인이 겨드랑이에 조그마한 배를 끼고 와서 말하였다.
“스님께서 강을 건너고자 하시거든 이 배에 타십시오.”
스님이 배에 오르려 하니, 네 마리의 호랑이가 와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스님은, “위태로움을 함께 지켜 주었으니 어려움을 벗어나는 것도 바로 지금이다.” 하고서 네 마리 호랑이와 함께 배에 올랐다. 강을 수월하게 건너 남쪽 기슭에 내리자, 배와 노인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스님은 네 마리의 호랑이를 거느리고 서하탑西霞塔 서쪽에 이르러 경행經行ㆍ선禪ㆍ송경誦經 등으로 교화하여 무리 80여 명이 귀의하게 되었다. 만약 나쁜 일이 있을 때면 호랑이가 와서 크게 울부짖어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정관貞觀(627~649) 연간에 나이 99세에 이르러 부처님 오신 날, 향로에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聖像) 두루 예배한 다음 선방으로 들어가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속고승전』, 『홍찬법화전』 권8, 『현응록』
4. 하늘 음악을 울리며 와서 맞이하다

006_0568_a_01L侍女冥通梵部

006_0568_a_02L
1) [185] 肅機崔義起有一突厥侍女素不
006_0568_a_03L識文於麟德中病死經夜見一梵僧
006_0568_a_04L厥求哀僧以錫扣其頂敎誦法華經一
006_0568_a_05L言作梵音比晩乃蘇自陳其事
006_0568_a_06L人不信告義起起試之突厥便誦經
006_0568_a_07L如流即請西域梵僧來聽侍女所誦
006_0568_a_08L之經自首至尾言音通正一字不遺
006_0568_a_09L時以奏聞上云冥道如此豈得不信
006_0568_a_10L當時朝臣無不知者出弘賛第八

006_0568_a_11L舟人護渉

006_0568_a_12L
僧智聦住楊州白馬寺尋渡江住安
006_0568_a_13L樂寺値隋國崩思歸無計隱江荻中
006_0568_a_14L誦法華經七日不飢恒有四虎馴繞
006_0568_a_15L忽見一老翁腋下挾小舟來曰師欲
006_0568_a_16L渡江即上船其四虎見而淚出聦曰
006_0568_a_17L持危放難正在今日即同四虎利渉
006_0568_a_18L南岸船及老人忽然不現聦領四虎
006_0568_a_19L止西霞塔西經行禪誦安衆八十餘人
006_0568_a_20L若有凶事虎來大吼由此驚覺至貞
006_0568_a_21L觀中年九十九於佛降生日熏鑢徧
006_0568_a_22L禮聖像還歸靜室端坐而化續高僧傳
006_0568_a_23L出弘賛第八及現應錄

006_0568_a_24L天樂來迎

006_0568_b_01L
지우智友 스님은 장주蔣州 사람이다. 보운사普雲寺에 있으면서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하루도 그만두는 일이 없었고, 독송할 때마다 반드시 향로를 잡고 눈을 감았다. 이와 같이 향연이 끊이지 않기를 무릇 42년간 하여 앞뒤로 모두 합하면 『법화경』을 5만 번이나 독송하였는데, 사용하는 조병澡甁61)에는 언제나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정관 8년(634)에 아무런 병도 없이 앉아서 입적하였다. 입적하는 날에는 하늘의 음악이 울리며 와서 방안 공중에서 한동안 요란하게 울려 스님을 맞이하고 잠시 조용하더니, 또 기이한 향내가 공중에서 일어나 집 안팎에 가득하였다가 한참 만에 없어졌다. 제자와 신도들 천여 명이 스님의 유해를 동남쪽으로 옮겨다가 시신을 나무 아래에 좌선 자세로 안치하였는데, 밤이 지나고 보았더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홍찬법화전』 권8
5. 홍변 스님이 정성 들여 쓴 『법화경』을 깊이 공경하다
스님 홍변洪辯62)은 순창淳昌 조씨趙氏의 아들이다.
출가하여 조계사曹溪寺에서 승과에 합격하였는데, 거삼巨滲의 산중 암자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정진하고 지계를 청정히 하면서 한 글자에 한 번 절하여 『법화경』 한 부를 베껴 쓴 다음 극진히 장엄하고 아침저녁으로 예배 공양하였다.
이때 일본(倭國)의 한 스님이 찾아와 그 『법화경』을 보고 간절히 달라고 하므로 홍변 스님은 내어 주면서 『법화경』을 가지고 가서 널리 유통시키도록 당부하였다. 일본 스님이 머리에 소중히 이고서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배 안에서 『법화경』이 찬란한 빛을 내었다. 본국으로 돌아가자 숭복사崇福寺 도량에 안치하고 모든 스님들이 예배 공경하자 사리가 나오는 감응이 있었다.
1년 후에 도인 법행法行이 사신을 따라 일본에 갔다가 숭복사에 있는 그 『법화경』을 직접 찾아보고 왔다. 곧 원元나라 세조 중통中統 원년 경신庚申(1260, 고려 원종 1년)이었다.
『해동전홍록』
6. 최 목사가 미친 아이의 노래를 알아듣고 경찬법회를 베풀다
소경小卿 최린崔63)이 나주 목사羅州牧使가 되어 부임해 가는데, 먼저 송도(개성) 사람 양혁추楊赫推를 나주로 내려 보내면서 말하기를, “정성을 다해 큰 재회齋會64)를 베풀고 대승법을 공양하면 그 공덕은 멀리에까지 이를 것이다.”라고 하면서 준비를 명령하고, 임지에 도착하자 원묘圓妙65) 스님을 청하여

006_0568_b_01L
釋智友蔣州人住普雲寺誦法華經
006_0568_b_02L略無弃日每誦經之時必執爐2) [186]
006_0568_b_03L香煙不絶凡經四十二年前後摠計
006_0568_b_04L將五萬徧所用澡瓶卷下第二二張
006_0568_b_05L常溢滿3) [187] 觀八年無疾坐卒將終之
006_0568_b_06L有天樂來迎於房戶空中繁會良
006_0568_b_07L又有香氣惹空充塞院宇久之而
006_0568_b_08L弟子及道俗千有餘人4)迁樞 [188] 于東
006_0568_b_09L坐屍樹下經宿就視莫知所在
006_0568_b_10L弘賛第八

006_0568_b_11L深敬辯山人之精書

006_0568_b_12L
山人洪辯淳昌趙氏子出家于曹溪中
006_0568_b_13L高科往入巨滲山菴精進持戒一字一
006_0568_b_14L書法華經一部極盡莊嚴朝夕禮
006_0568_b_15L拜供養適有倭國僧來見懇求之
006_0568_b_16L付囑流通其僧頂戴賫歸本國船中
006_0568_b_17L放光到已安崇福寺道場中衆僧禮敬
006_0568_b_18L感得舍利後一年道人法行隨使舸入
006_0568_b_19L彼國親見而來即中統元年庚申也
006_0568_b_20L出海東傳弘錄

006_0568_b_21L堪歌崔牧伯5) [189] 慶會

006_0568_b_22L
少卿崔將赴官羅州使宋人楊赫推
006_0568_b_23L命曰冝精設大會供養大乘則必當
006_0568_b_24L遠到公及下車請圓妙結夏安居

006_0568_c_01L운곡사雲谷寺에 여름 안거를 결제하게 하고 부하들에게 명하여 주변을 지키게 하였다.
최린이 관아官衙로 들어가니, 한 나이 어린 여자 종이 갑자기 미쳐 버렸다. 갖가지 방도로 다스려 보았더니, 여자 종이 말하였다.
“저는 미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유모의 남편 아무개입니다. 죽은 지 여러 해가 되어 저승에 있으나 아직 좋은 곳으로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행히 정성을 다해 크게 법석을 베풀기에 한두 가지 불법의 깊은 뜻을 물어보고자 했는데, 지키는 신중들이 꾸짖어 들여보내지 않아서 문밖에서 방황하기를 며칠이 지났습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먼저 죽은 친척 아무개 아무개도 법을 듣고자 저를 따라왔는데, 너무 목이 말라서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먼저 마실 것을 주시고, 또 우리들이 운곡사에 가거든 이름을 불러 도량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주시면 해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최린이 듣고 몹시 괴이하게 여겨 손님을 다 돌려보내고 운곡사로 가서 하나하나 그 이름을 불러 자리를 마련해 주어 법을 듣게 했다.
그는 이때부터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이듬해 가을 최린은 소환되어 우승선右承宣(임금의 명령을 출납하는 직책)에 승진하고, 몇 해 안 가서 정승에 올라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중서문하성 정이품 벼슬)가 되어 신하로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가 죽었다.
『해동전홍록』
7. 입에서 광명이 나오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한 스님(亡名)이 상주尙州의 어느 조그마한 절에서 항상 음양陰陽과 점복占卜으로 근방 동네에 드나드니, 모두들 그를 맞아서 길흉화복을 물어보았고, 이로써 옷과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루는 관청에서 법석을 베풀어 그 주州의 여러 절에서 부처님께 예불을 담당하는 스님(典香)이 모두 모였다.
이름 없는 스님(亡名)도 비록 참가하기는 하였지만 한갓 음양승이기에 대중의 말석에 앉히고 모두들 그를 하찮게 홀대하였다. 그런데 한밤중이 되어 등불과 촛불이 다 꺼지고 캄캄한 가운데 모두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등불 같은 밝은 광명이 비쳐 왔다.

006_0568_c_01L雲谷寺及指揮使行色近境公入官
006_0568_c_02L小婢忽得顚狂種種對治婢即語
006_0568_c_03L我非顚狂我是乳母之夫某也
006_0568_c_04L故許多年冥遊未得超升今幸竭誠張
006_0568_c_05L皇梵席欲問一二大旨然守護神將
006_0568_c_06L呵禁不入彷徨門外數日矣非但某耳
006_0568_c_07L先亡親屬某與某亦欲聞法隨我來耳
006_0568_c_08L然飢渴害志請先6) [190] 又令吾輩
006_0568_c_09L雲谷寺呼名許入於道場冀得度脫
006_0568_c_10L公聞之恠甚送客已到寺一一如其
006_0568_c_11L呼名設席使之聞法公自是常讀蓮經
006_0568_c_12L翌年秋召爲右承宣卷下第二三張
006_0568_c_13L數年拜相至門下平章事7) [191] 極人8) [192]
006_0568_c_14L而卒 出海東傳弘錄

006_0568_c_15L光明出於口角

006_0568_c_16L
僧亡名寓尙州小寺常以陰陽占卜
006_0568_c_17L出入里閭男女皆迎之問禍福以此
006_0568_c_18L資衣食一日官廳設法9) [193] 州內諸寺
006_0568_c_19L典香者咸會焉10) [194] 名雖預只是陰陽
006_0568_c_20L僧居衆末皆忽之如草比及夜半
006_0568_c_21L燭已息昏昏假寐中忽見光明如燈火
006_0568_c_22L「左」作「尤」{乙}「閉」作「閇」{乙}「眞」作
006_0568_c_23L「貞」{乙}
「迁樞」作「迂」{乙}「之」無有{乙}
006_0568_c_24L
「酹」作「酧」{乙}「位」作「立」{乙}「巨」作
006_0568_c_25L「臣」{甲}ㆍ作「品」{乙}
「席」作「廗」{乙}「王」
006_0568_c_26L作「亡」{乙}

006_0569_a_01L모두들 깜짝 놀라 일어나 무슨 빛인가 살펴보니, 이름 없는 스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모두가 그 까닭을 물으니, “나는 음양 점복의 술수를 하기 때문에 도리어 악업을 부끄러워하여 속으로 참회하며, 다만 『법화경』 독송을 일과로 삼아 온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여러 스님들이 모두 그의 수행에 탄복하고 공경하게 되었다.
『해동전홍록』
8. 혀에서 연꽃 봉오리가 피어나다
상주尙州의 호장戶長 김의균金義鈞은 항상 『법화경』 독송을 즐겨 하였는데, 대중들을 나이 든 이와 젊은이 두 반으로 나누었다. 매월 육재일六齋日66)에 나이 든 이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법화경』을 학습하고 독송하게 하고, 경을 마치고 나면 대개 다과를 내어 위로하고, 한편으로 젊은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마치고 나면 술을 권하였다.
이렇게 해서 발심하여 술을 마시지 않게 된 젊은이는 나이 든 사람들의 반으로 옮겨 넣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무개와 아무개는 이미 술 없는 법화(無酒法華)의 무리에 이르렀고, 아무개와 아무개는 아직도 술이 있는 법화(有酒法華)의 무리에 들어 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김의균은 근기에 따라 사람들의 발심을 돋우어 주었는데, 죽은 뒤에 산기슭에 장사지냈더니, 무덤 위에 연꽃이 피었다.
『해동전홍록』
9. 보암사의 신도들이 혹은 강설하고 혹은 질문을 주고받다
송경松京(개성의 옛 이름) 선기문宣祺門 오른편으로 고개가 있는데, 잇따라 뻗어내려 보정문保定門에 이르는 산을 덕산德山이라고 한다. 산의 서북쪽 귀퉁이에 보암사寶岩寺라는 절이 있는데, 누각에 오르면 앞이 훤히 트이어 앉아서 멀리 아름다운 산천을 바라볼 수 있다.
이 절의 동북쪽 마을에 벼슬자리에 있거나 또는 물러난 재상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추밀원 임천미林千美, 상서 진세의秦世儀, 대경 양동재梁桐材, 그리고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난 사람들과 할 일이 없는 한가한 사람 등 40여 명이 함께 법화사法華社를 조직하여 다달이 육재일에 각기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한 사람이 다른 자리에 앉아 경의 구조를 설파하고 뜻과 이치를 해설하였다. 다른 여러 노장들은 명심해 듣고, 혹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계속하여 사람마다 더욱더 열심히 해설하고자 하였다.

006_0569_a_01L衆皆驚起試尋之乃從亡名口中出也
006_0569_a_02L因委問其由答曰予1) [195] 身術數反愧
006_0569_a_03L黑業內自懺悔但誦課蓮經有年矣
006_0569_a_04L諸僧皆歎伏修敬焉出海東傳弘錄

006_0569_a_05L菡萏生於舌根

006_0569_a_06L
尙州戶長金義鈞常樂讀法華經募勸
006_0569_a_07L耆老少壯道俗分爲二徒每月六齋日
006_0569_a_08L召耆老于私2) [196] 習誦3) [197] 經畢略以
006_0569_a_09L茶菓慰之及集少壯則幷寘酒侑之
006_0569_a_10L自此少壯之發心不飮者4) [198] 入耆老
006_0569_a_11L時人戱曰某與某已入無酒法華徒
006_0569_a_12L某與某猶在有酒法華徒其隨機激發
006_0569_a_13L如此比及無常葬於山麓蓮華發於
006_0569_a_14L塚上出海東傳弘錄

006_0569_a_15L寶岩徒之或講或疑

006_0569_a_16L
松京宣5) [199] 門右臂有嶺連亘垂及保定
006_0569_a_17L門者曰德山山之乾維有一蘭若
006_0569_a_18L寶岩樓閣開豁坐見山川縹緲之外
006_0569_a_19L北里致仕卿相若林樞密千6) [200] 秦尙
006_0569_a_20L書世儀梁大卿7) [201] 與諸退老并散
006_0569_a_21L逸四十餘人同結法華社每月六齋日
006_0569_a_22L各持科本蓮經差一人別座點破科端
006_0569_a_23L銷釋義理諸者老證聽卷下第二四張
006_0569_a_24L或設疑問如是次第輪環相續益欲人

006_0569_b_01L
그리고 15일이 되면 정성을 들여 좋은 음식을 장만해서 아미타여래께 함께 공양하고, 전 대중이 재를 베풀어 밤을 세워 정진하여 다 같이 정토에 가기를 빌었다. 그러므로 죽을 때에 이르러서는 뜻과 같이 자재하게 되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해동전홍록』
10. 연화원에서 읽고 설하다
송경(개성) 낙타교駱駝橋 동쪽 마을에 연화원蓮華院이라는 절이 있었는데, 성남리城南里 청신사들이 법화사法華社를 조직하고 매월 육재일마다 모여 『법화경』을 읽기도 하고 설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법화경』에 의지하여 정토에 회향하고자 하는 것이니, 다분히 보암사寶岩寺 결사와 서로 낫고 못함이 없었다.
11. 진기한 새가 상서를 나타내다
거사 최표崔彪67)는 탐진耽津(지금의 전남 강진) 사람이다. 원묘 스님이 보월산寶月山에 절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아우 최홍崔弘과 함께 만덕산萬德山에 세우기를 청하여 각각 자리를 잡아 세웠는데 매우 웅장하였다.
최표는 평생에 성난 얼굴을 한 적이 없었다. 그의 아들이 이웃 고을에 갔다가 큰 벌레에 물려 죽었다. 최표는 종이와 먹을 마련하여 산승山人 일여一如68)를 청해다가 『법화경』을 베껴 쓰게 하였는데, 갑자기 푸른 새가 와서 경을 베끼는 방으로 들어갔다. 모습이 매우 여유로웠는데, 이렇게 하기를 두세 번 하면서 경을 쓰는 것이 끝날 때까지 반복하였다.
최표의 꿈에 죽은 아들이 나타나 말하기를, “경을 베껴 써 주신 힘으로 인해 아주 착하고 잘생긴 남자의 몸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였다.
12. 죽은 누이가 징험을 알려 주다
우시금右侍禁이란 여인은 김식金軾69)의 둘째 딸인데, 그녀의 남동생인 도인道人 지허之虛는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인이 갑자기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그녀는 꿈에 지허에게 의탁하여 말하였다.
“네가 나를 위해 법화의 법석을 베풀어 주어 극락으로 가는 것을 도와다오!”
이때 지허는 혈구사穴口寺에 있었는데 꿈을 꾸고는 곧 집으로 돌아와 집안을 깨끗이 소제하고

006_0569_b_01L人之盡能解說也至十五日則精設妙
006_0569_b_02L供養彌陁合院設齋過夜精勤
006_0569_b_03L廻向淨土故至臨終之際如意自在者
006_0569_b_04L不絶焉出海東傳弘錄

006_0569_b_05L蓮華院之若讀若說

006_0569_b_06L
松京駱8) [202] 橋東巷有一招提曰蓮華
006_0569_b_07L凡城南里淸信士輩結法華社
006_0569_b_08L月六齋日同會9) [203] 若讀若說其所
006_0569_b_09L以憑仗妙乘廻向淨土者多與寶岩社
006_0569_b_10L相爲甲乙

006_0569_b_11L珍禽顯瑞

006_0569_b_12L
居士崔彪耽津人也聞圓妙結於寶月
006_0569_b_13L與堂弟弘請剏於萬德山各占構
006_0569_b_14L堂宇甚有力焉平生未甞現嗔怒相
006_0569_b_15L其子往鄰邑忽爲大虫所害彪爲10) [204]
006_0569_b_16L紙墨請山人一如書法華經忽感靑
006_0569_b_17L鳥來入經室貌甚閑暇如是者至于
006_0569_b_18L再三洎經將畢夢亡子告曰因寫經
006_0569_b_19L得爲純善美丈11) [205]

006_0569_b_20L12) [206] 妹告徵

006_0569_b_21L
女右侍禁金軾之第二女也其弟道人
006_0569_b_22L之虛常誦蓮經女忽遘疾命終托之
006_0569_b_23L虛告曰請爲我設法華勝筵用助超升
006_0569_b_24L時之虛住穴13) [207] 得得來家即酒掃

006_0569_c_01L7일을 기약하고 『법화경』을 독송하는 큰스님들을 청해다가 밤낮(六時70) )으로 정진하였다.
마지막 날 김씨가 또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잠깐 경을 들은 힘으로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었다.”
뒤에 지허는 절로 돌아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제17단
1. 『법화경』을 독송한 혀가 오래도록 그대로 남아 있다
진주秦州(중국 섬서성에 있음)의 권씨權氏라는 여인은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그녀가 죽고 10년이 지난 뒤에 그녀의 가족들이 개장하려고 무덤을 파 보았더니, 뼈와 살은 다 없어졌고, 오직 혀만이 생시와 같았다.
『홍찬법화전』 권8
2. 경전이 불에 탔으나 변하지 않다
정관貞觀 5년(631) 융주隆州 읍서邑西의 현령縣令 호원궤狐元軌는 불법을 독실하게 믿었다. 『법화경』ㆍ『금강경』ㆍ『열반경』 등의 경전을 베껴 썼는데 잘못 쓸까 두려워하여 토원 선사土杬禪師의 교정을 청하기로 했다.
경이 완성되자 그는 곧 경을 기주岐州(중국 섬서성에 있음)에 있는 시골 농장으로 가지고 갔다.
하루는 볼일이 있어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 농장이 이웃에서 난 불에 옮겨 붙어 한꺼번에 모든 것이 다 타 버렸다. 그는 땅을 치며 한탄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을 시켜서 잿더미를 헤쳐 보도록 하였더니 금동金銅의 축軸이 드러나고 여러 경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종이 빛깔도 오히려 변하지 않았는데, 다만 『금강반야경』의 첫머리 제목만이 검게 타 있었다.
그는 그 원인을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를, “처음 베껴 쓸 때 한 관원이 글씨를 잘 썼는데 갈 길이 바빠서 미처 몸을 청결하게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제목을 썼더니 그래서 제목이 타 버렸구나!”라고 하였다.
『홍찬법화전』 권10, 『현응록』

006_0569_c_01L14) [208] 約一七日請持經開士六時精
006_0569_c_02L至罷席日金氏又現夢曰暫聞經
006_0569_c_03L得生勝處後虛到社委說如此

006_0569_c_04L

006_0569_c_05L第十七段

006_0569_c_06L誦舌長存

006_0569_c_07L
秦州權氏女常誦法華死後十餘年
006_0569_c_08L其家改葬見其骨肉略盡唯舌如生
006_0569_c_09L出弘賛第八

006_0569_c_10L燒經不改

006_0569_c_11L
貞觀五年隆州邑西縣令狐元軌信重
006_0569_c_12L佛法卷下第二五張 寫法華金剛涅槃
006_0569_c_13L等經恐致訛誤遂憑土15) [25] 禪師撿挍
006_0569_c_14L寫已即帶往16) [209] 州莊所一日他行
006_0569_c_15L莊爲外火延燒一時蕩盡元軌廻嗟歎
006_0569_c_16L莫窮因令人撥灰*耴金銅軸頭忽見
006_0569_c_17L諸經完然17) [210] 猶不改但金剛般若
006_0569_c_18L首題焦黑自言所因乃初寫時有官
006_0569_c_19L人能書其人行急不獲潔淨直爾立
006_0569_c_20L由是被焚出弘賛第十及現應錄

006_0569_c_21L「失」作「夫」{乙}「第」作「弟」{乙}「蓮」下有
006_0569_c_22L「華」{乙}
「移」作「壯」{乙}「祺」作「棋」{甲}
006_0569_c_23L
「美」作「表」{乙}「棟」作「梀」{甲}「駞」作
006_0569_c_24L「馳」{乙}
「干」作「于」{乙}「辦」作「辨」{乙}
006_0569_c_25L
「天」作「夫」{甲}{乙}「三」作「亡」{乙}「口」
006_0569_c_26L作「古」{乙}
「第」作「弟」{乙}「坃」作「坑」{乙}
006_0569_c_27L
「歧」作「岐」{乙}「潢」作「黃」{乙}

006_0570_a_01L
3. 경전에 한 글자도 보이지 않다
당나라 무덕武德(618~626) 때 법신法信이라는 비구니71)가 『법화경』에 통달하였는데 정성을 다해서 『법화경』 한 부를 베껴 쓸 생각을 하였다.
글씨 잘 쓰는 사람을 찾아서 보수를 갑절로 주고 특별히 집간을 마련하여 거처하며 베껴 쓰게 하였는데, 언제나 일어나면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서야 책상에 앉게 하였다. 또 벽에 구멍을 뚫어 밖으로 통하게 하고, 대나무 토막을 꽂아서 서생이 숨을 내쉴 때 이 대나무 토막을 입에 물고 숨을 밖으로 내쉬게 하여 외부와 연락을 끊고 일심으로 『법화경』을 쓰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법화경』 전 7권을 베끼는 데 8년이 걸렸다. 경이 완성되자 재를 베풀고 축하하는 예참을 한 뒤, 깨끗한 도량을 세워서 모시고, 꽃과 향으로 융숭히 공양하였다.
정관 13년(649, 진덕여왕 8년), 용문사龍門寺 스님 법단法端은 항상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이 법신 스님의 경이 정성이 지극한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 청하였다. 법신 스님이 끝내 거절하지 못하여 법단 스님께로 보냈다. 그리하여 법을 강설하려고 경전을 펴 보았더니, 거기에는 누런 종이일 뿐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법단 스님은 부끄러워하면서 곧 경을 돌려보냈다.
법신 스님은 무언가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곧 향탕香湯으로 경함을 씻고, 머리에 이고서 불상 주위를 돌며 예경하고 정진하기를 무릇 7일 밤낮을 행한 다음 경함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문자가 다시 전과 똑같이 쓰여 있었다.
『법원주림전』, 『홍찬법화전』 권10
4. 손톱에 다섯 송이 꽃이 피다
고우현高郵縣(중국 강소성에 있었음)에 한 비구니가 있었는데, 뜻과 절조가 서릿발처럼 깨끗하고 말과 행동이 얼음과 같이 맑았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하루는 첫째 권을 외우니, 오른손 손톱 위에 꽃이 한 송이 피어났다. 모양이 비단실 같았다. 차례대로 다섯 권을 외우니, 다섯 손톱 위에 다 꽃이 한 송이씩 나오고, 6권, 7권까지 다 독송하니, 손바닥에 두 송이 꽃이 났는데, 손톱 위에 난 것보다 월등히 컸다.
그 소문이 대궐까지 전해져서 진陳나라 무제가 친히 불러 그것을 보았다. 이리하여 이 고을 사람들은 그 비구니를 ‘화수니花手尼’라고 불렀다.
『영서집』

006_0570_a_01L經無一字

006_0570_a_02L
唐武德中有尼法信通持法華經
006_0570_a_03L欲精寫一部遂訪書人倍酬其直
006_0570_a_04L置堂戶令書之每一起一浴更着淨
006_0570_a_05L仍於案上1) [211] 通外加一竹筒
006_0570_a_06L書生凡出息2) [212] 含竹筒吐息于外
006_0570_a_07L經七卷八年乃終設齋慶懺立淨道場
006_0570_a_08L香花崇奉至貞觀十三年有龍門寺僧
006_0570_a_09L法端常講是經以此尼經本精至
006_0570_a_10L人往請固辭不已而自送去及講法開
006_0570_a_11L唯見黃紙了無一字端慚懼即還
006_0570_a_12L尼知有所犯即以香湯灌滌其凾
006_0570_a_13L頂戴遶佛行道凡七晝夜及開視之
006_0570_a_14L還復如舊本出法苑珠林傳弘賛第十

006_0570_a_15L瓜生五花

006_0570_a_16L
尼高郵縣人志節霜淨言行氷淸
006_0570_a_17L法華經不捨晝夜初誦一卷忽於右
006_0570_a_18L手瓜上生一花狀如綾絲次至五卷
006_0570_a_19L五指瓜上皆生一花誦徹六七掌併二
006_0570_a_20L大過瓜上由是聲傳闕下陳武皇
006_0570_a_21L勑入看之從此郡人呼爲花手尼
006_0570_a_22L出靈瑞集
006_0570_a_23L法華靈驗傳卷3)
  1. 1)츤세齔歲 : 배냇니가 빠지고 간니가 날 나이를 일컫는다.
  2. 2)총지惣持 비구니 : 양 무제의 딸이면서 보리달마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전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제자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3. 3)유정천有頂天 : 유형세계(有)의 가장 꼭대기(頂)이므로 색계 제4천 색구경천色究竟天을 말한다. 또는 삼계의 최정상으로서 무색계無色界의 제4천인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의 별명이기도 하다.
  4. 4)연좌宴坐 : 연좌燕坐라고도 하며,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머물러 선정에 드는 것으로 좌선坐禪을 말한다.
  5. 5)「법사공덕품」 제19에 나오는 구절이다.(T9, 48b)
  6. 6)법화당法華堂 : 법화삼매당法華三昧堂을 줄인 말이며, 법화삼매를 수행하는 곳이다.
  7. 7)단월檀越 : 단가檀家라고도 하며, 육바라밀의 한 덕목인 보시를 행하는 시주施主를 말한다. 여기서는 신도信徒를 가리킨다.
  8. 8)고구려 : 원문에 ‘高麗’라고 되어 있으나, 의봉儀鳳 연간(676〜679)은 고려 건국(918) 이전이므로 ‘고구려’로 보아야 한다.
  9. 9)『법화경』 권6 「법사공덕품」 제19의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법화경』을 받아 지니거나 해설하거나 베껴 쓴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8백 가지 눈의 공덕과 1천2백 가지 귀의 공덕과 8백 가지 코의 공덕과 1천2백 가지 혀의 공덕과 8백 가지 몸의 공덕과 1천2백 가지 마음의 공덕을 얻으리라. 이 공덕으로 육근을 장엄하여 모두 청정하리라.”(T9, 47c)
  10. 10)법중法衆 : 불법佛法을 따르는 출가 대중(僧衆)을 일컫는다.
  11. 11)천승재千僧齋 : 천승공양千僧供養 또는 천승회千僧會라고도 한다. 1천 명의 스님을 청하여 공양을 베푸는 것으로, 중국 남북조시대부터 성행하였다.
  12. 12)지초芝草 : 영지초靈芝草의 다른 이름. 버섯의 한 종류로, 예부터 상서로운 풀로 여겼다.
  13. 13)정문㫌門 : 충忠ㆍ효孝ㆍ열烈이 뛰어난 사람들을 나라에서 표창하여 그 마을에 세우는 문을 가리킨다.
  14. 14)우문화급宇文化及(583〜619) : 수隋나라 때 고구려를 침공해 온 사령관 우문술의 장남이자 우문지급宇文智及과 우문혜급宇文惠及의 형이며, 우문사급宇文士及의 이복형이다.
  15. 15)지엄智儼 : 화엄종 2조로 불리는 지엄(602~668)과 비슷한 연대이기는 하나, 행적이 전혀 다르므로 같은 시대의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듯하다. 화엄종의 지엄은 천수天水(甘肅) 사람으로, 속성은 조씨趙氏이고, 12세에 두순杜順을 따라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서 출가하였다.
  16. 16)환향還香 스님 : 원문에 ‘寺僧還香’이라고 되어 있는데, ‘환향 스님’은 절에서 향 피우는 소임을 맡은 분인 듯하다.
  17. 17)시문時文 : 『홍찬법화전』 권3(T51, 19c)에는 ‘時父’로 되어 있다.
  18. 18)아버지는 명제明帝 : 양梁나라나 당나라에는 명제가 없다. 명제는 후한의 2대 황제(28〜75), 삼국시대 위魏의 2대 황제(205〜239), 동진東晉의 제2대 왕(재위 323〜325), 남조의 송宋나라 제6대 황제(439〜472) 등이다.
  19. 19)『법화의기法華義記』 10권 : 여기 언급된 『법화의기』는 기존에 알려진 법화 주석서는 아닌 듯하다. 법화 주석서로는 광택 법운의 『법화의기』 8권, 천태 지의의 『법화현의』10권, 길장의 『법화현론』 10권, 규기의 『법화현찬』 10권 등이 유명하다.
  20. 20)사리闍梨 : 아사리阿闍梨의 준말이며, 제자의 품행을 가르쳐 그 규범規範이 되는 승도僧徒의 스승을 말한다.
  21. 21)이 영험담은 「약왕보살본사품」 제23에서 “만일 여인으로서 이 「약왕보살본사품」을 잘 받아 지니는 자는 여인의 몸을 다하여 후에 다시는 (여인의 몸을) 받지 않으리라.”(T9, 54b)라고 한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22. 22)해당 경문은 「약초유품」 제5의 게송 부분이다. “우렛소리 멀리 울려 중생들 기쁘게 하고, 햇볕 가려 주어 대지가 시원해지며, 뭉게구름 낮게 드리워 손끝에 닿을 듯하네.(雷聲遠震。 令衆悅豫。 日光恰蔽。 地上淸凉。 靉靆垂布。 如可承攬。)”(T9, 19c)
  23. 23)관정灌頂(561~632) : 자가 법운法雲이며, 임해臨海 장안章安 출신이다. 7세 때 출가하여 20세 때 구족계를 받았다. 지덕至德 원년(583) 천태산으로 가 지자 대사智者大師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스승의 강설을 기록하여 이른바 천태삼대부를 편찬하였으며, 천태 5조로 추앙받고 있다.
  24. 24)정혜定慧 : 지관止觀의 뜻이다. 지止는 사마타의 번역으로서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이며, 관觀은 위빠사나의 번역으로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바라보는 수행이다. 사마타를 행하여 번뇌를 조복하여 선정(定)을 얻고, 위빠사나를 행하여 미혹을 타파하여 지혜(慧)를 얻는다. 천태 지의는 ‘지관’으로써 불교의 수행 체계를 확립하였다.
  25. 25)「약왕보살본사품」 제23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 경은 염부제 사람들에게는 병에 좋은 약이 된다. 어떤 사람이 병이 들었을 때 이 경을 들으면 병이 곧 소멸되며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느니라.(此經則爲閻浮提人。 病之良藥。 若人有病。 得聞是經。 病即消滅。 不老不死。)”(T9, 54c)
  26. 26)음양승陰陽僧 : 역易의 사상을 잘 알아 음양陰陽에 밝은 스님.
  27. 27)치소緇素 : 스님과 재가자들이 입는 옷의 색깔로서, 승속僧俗을 일컫는 말이다.
  28. 28)대풍大風 : 나병, 즉 문둥병, 여풍癘風을 말한다. 「장자절론長刺節論」에서 “골절骨節이 무겁고 수염과 눈썹이 빠지는 것을 대풍大風이라 한다.(骨節重。 鬚眉墮。 名曰大風。)”라고 하였다.
  29. 29)염부제閻浮提 : 수미산須彌山 남쪽에 있으므로 남염부제(혹은 남섬부제)라고 한다. 염부제란 ‘더러운 곳(穢土)’으로, 우리가 사는 중생계를 말한다.
  30. 30)남대南臺의 녹사錄事 : 남대는 어사대御史臺의 별칭, 녹사는 문부文簿를 맡아보고 그 잘잘못을 규찰하는 직책이다.
  31. 31)『법원주림전法苑珠林傳』 : 『법원주림法苑珠林』 100권은 당나라 도세(?~683)가 편찬한 불교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겁량劫量편ㆍ삼계三界편……전기傳記편 등 100편 668부로 분류하여 불교의 사상ㆍ술어ㆍ법수 등을 개설하였다. 여기서는 전기편만을 말한다.
  32. 32)교지交趾 : 지금의 베트남 북부 통킹ㆍ하노이 지방을 포함한 손코이 강 유역의 옛 명칭.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남월南越을 정복하고 그 지역에 설치한 군郡 이름으로, 후에 교주交州로 개칭되었다.
  33. 33)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관세음보살 명호를 지니는(부르는) 자는 설령 큰불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니, 이 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다.”(T9, 56c)라고 함에 근거한다.
  34. 34)오송강吳松江 : 오강吳江 또는 송강松江이라고도 한다. 태호太湖에서 시작하여 상해를 지나 황포강黃浦江으로 흘러 들어간다.
  35. 35)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큰물에 빠졌을지라도 그 명호를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리라.”(T9, 56c)라고 함에 근거한다.
  36. 36)사자국師子國 : 승가라국僧伽羅國 또는 집사자국執師子國이라 한다. 지금의 스리랑카이다. 원래 나찰귀의 나라였던 것을 승가라가 평정하여 승가라국을 세웠다. 『서역기』 등에 전한다.
  37. 37)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가령 흑풍이 불어서 그 배가 표류하여 멀리 나찰귀의 나라에 떨어지게 되었을지라도 만일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이 모든 사람들이 다 나찰귀의 환난을 벗어나게 된다.”(T9, 56c)라고 함에 근거한다.
  38. 38)우금방隅金坊 : 『삼국유사』 「민장사敏藏寺」조에는 ‘우금리禺金里’로 되어 있다.(T49, 993a)
  39. 39)앞의 주 37 참조.
  40. 40)『삼국유사』 「민장사」조에서는, “앞에 깊은 도랑이 있어 스님이 겨드랑이에 끼고 뛰어넘었다.(前有深渠。 僧掖我跳之。)”라고 하였다.(T49, 993a)
  41. 41)청신사와 청신녀 들 : 청신사는 남자 신도, 청신녀는 여자 신도를 말한다.
  42. 42)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사람이 해를 입게 되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저들이 가지고 있는 칼과 막대기가 모두 조각으로 부서져 벗어나게 되리라.” 함에 근거한다.(T9, 56c)
  43. 43)마음의 생각이 지극해지면 삼매三昧에 들어간 것이고, 말이 지극해지면 다라니가 이루어진 것이니, 이와 같은 상태에서 감응感應이 이루어진다.
  44. 44)이 영험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가령 또 사람이 죄가 있거나 혹은 죄가 없거나 쇠고랑으로 채우고 칼을 씌워서 그 몸을 결박하였을지라도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면 다 끊어지고 부서져서 곧 벗어나리라.”라고 함에 근거한다.(T9, 56c)
  45. 45)이것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원수 맺은 자나 도둑에게서 벗어나게 하리라.”라고 함에 근거한다.(T9, 56c)
  46. 46)이것은 『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만일 여인이 아들을 낳고자 하여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경하면, 곧 복덕과 지혜를 갖춘 아들을 낳는다.”라고 함에 근거한다.(T9, 57a)
  47. 47)「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선남자여! 만일 어떤 국토 중생으로서 부처님의 몸이 되어 깨닫게 할 자에게는 관세음보살이 곧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며…….”라고 하였다.(T9, 57a)
  48. 48)「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는, “동남동녀의 몸이 되어 깨닫게 할 자에게는 동남동녀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라고 하였다.(T9, 57a)
  49. 49)승가리 : 승려의 세 가지 옷(三衣) 중 가장 큰 것으로, 대의大衣 또는 중의重衣라고 한다. 설법과 탁발을 위해 왕궁이나 마을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이것을 걸친다.
  50. 50)금쇄골金鏁骨 : 금빛의 사슬처럼 이어져 있는 뼈.
  51. 51)산곡 도인山谷道人 : 황정견黃庭堅(1045~1105)이다. 송대 시인이며, 거사로서 불교를 신앙하였다. 안휘安徽의 산곡사에서 유학遊學하였고, 만년에는 정사를 짓고 정토를 닦았다.
  52. 52)경흥 국사憬興國師 : 문무왕의 존신을 받고, 신문왕 때 국사國師를 지낸 고승이다. 학덕과 도예道譽가 뛰어난 분으로, 삼장三藏을 모두 통달하여 『법화경소法華經疏』를 비롯해 40여 부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53. 53)「관세음보살보문품」 제25에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로 되어 깨닫게 할 자에게는 곧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라고 하였다.(T9, 57b)
  54. 54)「보현보살권발품」 제28에서 보현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이 경을 읽고 외우면 저는 그때 여섯 이빨의 흰 코끼리를 타고 큰 보살들과 함께 그가 있는 곳에 가서 저의 몸을 나타내어 공양하고 수호하며,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T9, 61a)
  55. 55)아리수阿梨樹 : 난향蘭香이라고도 한다. 꽃이 필 때 나무 끝의 꽃이 일곱 갈래로 갈라진다고 하고, 혹은 난초 가지와 같이 떨어질 때 일곱 갈래로 갈라진다고 한다.
  56. 56)이 영험은 「다라니품」 제26의 게송에서 “만일 나의 주문에 따르지 않고 설법하는 사람을 괴롭히면, 머리를 일곱 조각으로 내어 아리수나무 가지와 같이 만들 것이니…….”라고 함에 근거하였다.(T9, 59b)
  57. 57)제4천 : 욕계의 육천 가운데 네 번째 하늘인 도솔천을 말한다. 석가모니부처님도 예전에 호명護明보살로서 여기에 계시면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다가 이 세상에 오셨고, 현재 미륵보살도 이곳에 머무르며 염부제에 내려와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곳 천인들의 수명은 4천 년이며, 그 하루는 인간계의 4백 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58. 58)이 영험담은 「보현보살권발품」 제27에서 “이 사람이 만일 앉아서 이 경을 깊이 생각하면, 그때 나는 다시 커다란 흰 코끼리를 타고 그 사람 앞에 나타나리라. 그가 만일 『법화경』의 한 구절이나 한 게송을 잊어버린 곳이 있으면, 내가 마땅히 이를 가르쳐 읽고 외워서 통리하게 하오리다.”라고 한 보현보살의 서원에 근거하고 있다.(T9, 61a)
  59. 59)대학 박사大學博士 : 옛 국학國學 또 태학太學에 딸린 벼슬.
  60. 60)비장방費長房 : 출가 승려였으나 후주後周 무제武帝의 폐불 때문에 환속해서 은거하다가 수隋나라가 흥하자 역경譯經에 참가하여 번경 박사飜經博士가 되었다. 유불儒佛ㆍ백가百家를 모두 통달하고, 귀신을 잘 부렸다고도 한다.
  61. 61)조병澡甁 : 손을 씻는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는 병.
  62. 62)홍변洪辯 : 호는 청우. 보조 국사에게 계를 받았고, 강종康宗 때 창복사昌福寺 담선법회談禪法會를 주도하였다가 고종高宗 초에 쌍봉사 주지가 되었다.
  63. 63)최린崔(?~1256) : 고려 중기의 명신 평장사 당讜의 손자이다. 3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간으로 있다가 고종 때 나주 부사로 나가서 자칭 백적원수百賊元帥라고 하던 이연년李延年의 난동을 토벌하여 우부승선右副承宣에 특진되었고, 원元나라에 사신으로 여러 번 왕래하여 후한 대접을 받았다. 벼슬이 문하시랑 평장사에 이르렀다.
  64. 64)큰 재회齋會 : 대재회大齋會 또는 무차회無遮會를 말한다. 일체중생을 청하여 평등히 공양하는 법회이다.
  65. 65)원묘圓妙(1163~1245) : 12세에 출가하여 강양(지금의 합천) 천락사天樂寺 균정均定에게 득도하고 천태교관을 수행하였다. 천태의 묘해를 강의하고 1216년(고종 3) 백련사 결사를 시작 법화삼매를 닦아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였다.
  66. 66)육재일六齋日 : 한 달 중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고 행하는 날로서, 음력 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을 말한다. 이때는 사천왕四天王이 세상을 순행하면서 사람의 선악을 살피고, 또한 악귀가 사람의 빈틈을 노리는 날이라고 한다.
  67. 67)최표崔彪 : 고려 고종 때 사람이다. 강진의 토호로서 최홍崔弘과 함께 요세了世를 월출산 약사암에서 만덕산으로 옮기도록 청하였으며, 만덕사 창건을 도왔다.
  68. 68)일여一如 : 이제현의 형, 각해 일여覺海一如. 반룡사盤龍社에서 숙종 11년(1324)에 화엄 계통의 결사를 개창하였다.
  69. 69)김식金軾 : 고려 고종 때 문신. 고종 44년(1257) 몽고 2차 침입으로 개성과 남경이 함락되자 시어사侍御使로 몽고 군영에 가서 태자의 입조 조건으로 몽고군을 철군하게 하였다.
  70. 70)육시六時 : 하루 밤낮을 여섯 때로 나눈 것. 즉 아침(晨朝)ㆍ낮(日中)ㆍ해질 녘(日沒)ㆍ초저녁(初夜)ㆍ한밤중(中夜)ㆍ새벽(後夜)이다.
  71. 71)『홍찬법화전』 권10에는 ‘본명을 알 수 없는 하동河東 사람인 연행練行 비구니’의 일화로 되어 있다.(T51, 43b)
  1. 1)撰者名補入{編}。
  2. 2)「齕」作「齔」 {乙}。
  3. 3)「其」作「吳」{甲}{乙}。
  4. 4)「關」作「閉」又冠註曰閍疑關{乙}。
  5. 5)「田」作「曰」{甲}{乙}。
  6. 6)冠註曰湯疑錫{乙}。
  7. 7)「于」作「干」{乙}。
  8. 8)「素」作「索」{乙}。
  9. 9)「稜」作「陵」{乙}。
  10. 10)「似」作「以」{乙}。
  11. 11)「少」作「作」{乙}。
  12. 1)「五」下疑脫「年」{編}。
  13. 2)「二」作「三」{甲}。
  14. 3)「冥」作「具」{乙}。
  15. 4)冠註曰往疑住{乙}。
  16. 5)「栗」作「慄」{乙}。
  17. 6)「勤」作「勸」{乙}。
  18. 7)」作「宵」{乙}。
  19. 1)「旣」作「留」{乙}。
  20. 2)「久」作「夕」{甲}。
  21. 3)「俗」下有「類」{乙}。
  22. 4)「土」作「上」{甲}。
  23. 5)「旦」作「且」{甲}。
  24. 6)「二光」作「五寸」{乙}。
  25. 7)「辛」作「爭」{乙}。
  26. 8)「沈」作「說」{乙}。
  27. 9)「封」作「對」{乙}。
  28. 10)「旌」作「表」{乙}。
  29. 11)「悟」作「語」{乙}。
  30. 12)「理」作「埋」{乙}。
  31. 13)「內」無有{乙}。
  32. 14)「旦」作「且」{甲}。
  33. 1)「內」作「四」{乙}。
  34. 2)「太」作「大」{乙}。
  35. 3)「大風亦利急疾乃瘳」作「急疾乃瘳大風亦利」{乙}。
  36. 4)「部」作「郡」{乙}。
  37. 5)「上」作「中」{乙}。
  38. 6)「令」作「今」{乙}。
  39. 7)「性」作「姓」{乙}。
  40. 8)「旦」作「且」{甲}。
  41. 1)「勢」作「熟」{乙}。
  42. 2)「夢」作「夜」{乙}。
  43. 3)冠註曰都疑覩{乙}。
  44. 4)「人」作「入」{乙}。
  45. 5)「上」作「山」{乙}。
  46. 6)冠註曰聞疑開{乙}。
  47. 7)「石」作「氏」{乙}。
  48. 8)冠註曰玷疑沾{乙}。
  49. 9)」作「棗」{乙}。
  50. 10)冠註曰治疑治{乙}。
  51. 11)「間」作「聞」{甲}。
  52. 1)「遘」作「遭」{乙}次同。
  53. 2)「王」作「亡」{甲}{乙}。
  54. 3)冠註曰全疑念{乙}。
  55. 4)「捲」作「撥」乙。
  56. 5)「軌」作「輙」乙。
  57. 6)「其」作「某{乙}。
  58. 1)「似」作「以」{乙}。
  59. 2)冠註曰愛疑受{乙}。
  60. 3)「䁱」作「曉」{乙}。
  61. 4)「耴」作「取」{乙}次同。
  62. 5)「穀」作「糓」{乙}次同。
  63. 6)「音」作「普」{乙}。
  64. 7)「出靈…應錄」九字無有{乙}。
  65. 1)「雲」作「僧」{乙}。
  66. 2)「椀」作「梡」{乙}。
  67. 3)「二」作「土」又冠註曰土疑七{乙}。
  68. 4)「言」下有「出靈瑞集又出現應錄」{乙}。
  69. 5)此右側行間有小題名「又」{乙}。
  70. 6)「鹽」作「濫」{乙}。
  71. 7)「夢」作「船」{乙}。
  72. 8)「羅」作「母」{乙}。
  73. 9)」作「頒」{乙}。
  74. 10)「見」作「出」{乙}。
  75. 11)「及」作「又見」{乙}。
  76. 12)「略見」作「及略」{乙}。
  77. 13)「刁」作「刀」{乙}次同。
  78. 14)「元」無有{乙}。
  79. 15)「斫」作「所」{甲}。
  80. 16)「又」作別行{編}。
  81. 17)「又出」作「及」{乙}。
  82. 18)此右側行間有小題名「又」{乙}。
  83. 19)「上同」作「同上」{乙}。
  84. 20)「惠」作「慧」{乙}。
  85. 21)「柵」作「構」{乙}次同。
  86. 1)「旦」作「且」{甲}次同。
  87. 2)「愽」作「博」{乙}。
  88. 3)「休」作「俗」{乙}。
  89. 4)「及」作「乃」{乙}。
  90. 5)「曰」作「白」{乙}。
  91. 6)「中」作「小」{乙}。
  92. 7)「俟」作「候」{甲}。
  93. 8)「又」無有{乙}。
  94. 1)「斫」作「所」{甲}{乙}。
  95. 2)「曺」作「喜」{乙}。
  96. 3)「廿」作「十」{甲}{乙}。
  97. 4)「多」作「陀」{乙}。
  98. 5)「崇」疑「祟」{編}次同。
  99. 6)「顯」作「現」{乙}。
  100. 7)「去」作「至」{乙}。
  101. 8)「愽」作「博」{乙}。
  102. 9)「關」作「開」{乙}。
  103. 1)「左」作「尤」{乙}。
  104. 2)「閉」作「閇」{乙}。
  105. 3)「眞」作「貞」{乙}。
  106. 4)「迁樞」作「迂」{乙}。
  107. 5)「之」無有{乙}。
  108. 6)「酹」作「酧」{乙}。
  109. 7)「位」作「立」{乙}。
  110. 8)「巨」作「臣」{甲}ㆍ作「品」{乙}。
  111. 9)「席」作「廗」{乙}。
  112. 10)「王」作「亡」{乙}。
  113. 1)「失」作「夫」{乙}。
  114. 2)「第」作「弟」{乙}。
  115. 3)「蓮」下有「華」{乙}。
  116. 4)「移」作「壯」{乙}。
  117. 5)「祺」作「棋」{甲}。
  118. 6)「美」作「表」{乙}。
  119. 7)「棟」作「梀」{甲}。
  120. 8)「駞」作「馳」{乙}。
  121. 9)「干」作「于」{乙}。
  122. 10)「辦」作「辨」{乙}。
  123. 11)「天」作「夫」{甲}{乙}。
  124. 12)「三」作「亡」{乙}。
  125. 13)「口」作「古」{乙}。
  126. 14)「第」作「弟」{乙}。
  127. 15)「坃」作「坑」{乙}。
  128. 16)「歧」作「岐」{乙}。
  129. 17)「潢」作「黃」{乙}。